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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결정사안 한국전쟁당시충남서부지역 ( 서산, 당진, 태안, 홍성, 보령, 부여 ) 에서보도연맹원을포함한예비검속자수백명이이지역경찰에의해불법적으로사살되었는데그중 74명에대한희생사실을확인하고진실규명으로규명한사례. 결정요지 1. 한국전쟁이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 7월 14일사이에 충남서부지역 일원에서보도연맹원을비롯한요시찰인수백명이경찰에의해불법적으로살해되었다. 희생자중상당수는좌익사상과는무관하게좌익단체에가입한전력이있거나, 보도연맹이무엇인지모르고가입한농민들로주로 20~40대의청장년층이었다. 2. 조사결과진실규명대상자중희생사실이확인된희생자는명창근 ( 明昌根, 다-741호 ) 등 36명이며, 희생자로추정되는자는백충흠 ( 白忠欽, 다-6374호 ) 1명이다. 또한, 진실규명을신청하지는않았으나조사과정에서희생자로확인된자는이관세 ( 李冠世 ) 등 32명이며, 희생자로추정되는자는이종국 ( 李鍾國 ) 등 5명이다. 3. 이사건의가해주체는주로경찰이었던것으로확인되었다. 당시충남서부지역에상시주둔한군부대나 CIC파견대는없었으며, 경찰이대부분의치안을담당했고소방대등우익단체가보조했다. 1950년 6월 25일치안국장명의로전국각시 도경찰국장에게내려진 전국요시찰인단속및전국형무소경비의건 에의해충남서부지역에서도일제히예비검속이시작되었다. 4. 그결과지역별로보도연맹원을비롯한요시찰인수백명이불법구금되었으며, 그중일부는대전형무소로이송되었고또다른일부는경찰의후퇴시에서둘러총살되었다. 이사건의희생장소는서산성연면의메지골, 당진의한진포구 ( 목캥이 ), 태안의백화산 ( 사기실재 ), 홍성의용봉산과이동부락뒷산 ( 폐광 ), 보령의이어니재, 부여의백마강 ( 구드레나루터부근 ) 으로확인되었다. 5. 이사건의가해책임은일차적으로는희생자들을예비검속하고사살한충남서부지역의각경찰서 ( 지서 ) 장및소속경찰에게귀속된다. 그러나경찰조직이상명하복의특수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35

2 제 3 권 조직이라는것과사건당시가전시 ( 戰時 ) 상황이었음을감안한다면, 더큰책임은그명령체계의상층부에서집행을결정하고하달한자들에게귀속된다. 이러한의미에서가해의주된지휘책임은경찰명령체계의정점에있는치안국장을비롯한내무부장관과계엄사령관, 국방장관등을거쳐최종적으로는이승만정부에귀속된다. 6. 진실화해위원회는본사건의진실이규명되었으므로국가의사과와위령사업지원, 공공기록물등재및가족관계등록부정정, 군인 경찰 공무원등에대한전시인권침해사례교육및초 중 고생등을대상으로한평화인권교육강화, 지역사회화합을위한지속적인관심등을권고하였다. 전문 사건 사건번호다-741호외 35건, 충남서부국민보도연맹사건 신청인 명장근외 35명 결정일 주문 이사건에대하여다음과같이진실이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 으로결정한다. 이유 Ⅰ. 조사개요 1. 사건개요가. 사건접수및처리상황 신청인명장근 ( 明章根 ) 외 35명은진실화해위원회에한국전쟁초기서산 당진 태안 홍성 보령 부여 ( 이하 충남서부지역 ) 에서발생한민간인집단희생사건에대하여진실규명을신청하였다. 1) 1) 충남지역의 국민보도연맹사건 신청사건수는 64 건 ( 대전포함 ) 이며이중사건의성격이다른것을이관하고현재남아있는신청사건수는 60 건이다. 여기서는먼저조사가마무리된충남서부지역 ( 서산, 당진, 태안, 홍성, 보령, 부여 ) 을그대상으로하였다. 예로부터이지역은내포 ( 內浦 ) 문화권이라하여여러가지 년상반기조사보고서

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진실화해위원회는 2006년 10월 10일사건번호다-741호 ( 신청인명장근 ) 외 17건, 2007 년 2월 13일사건번호다-7557호 ( 신청인김동수 ) 외 18건등 37건에대하여 국민보도연맹사건 으로분류하여조사개시를결정하였다. 조사과정에서사건의성격이다른 2건 ( 다 -9540호, 다-2971호 ) 은이관되었으며, 2007년 1월 9일 부역혐의사건 으로조사개시된 1건 ( 다-6374호 ) 이 2008년 7월 2일 국민보도연맹사건 으로병합되었다. 그결과충남서부지역의신청사건수는총 36건이며, 신청서접수상황은 < 표 1> 과같다. 2) < 표 1> 신청서접수상황 지역연번사건번호접수일자신청인 명장근 ( 明章根 ) 진실규명대상자 성명성별당시나이 명창근 ( 明昌根 ) 신청인과의관계 남 19 형제 비고 이정수 ( 李正洙 ) 이창석 ( 李昌錫 ) 남 26 부 서 ) 고수남 ( 高秀男 ) 고영귀 ( 高永貴 ) 남 32 부 산 김길환 ( 金吉煥 ) 김동현 ( 金東鉉 ) 남 23 부 고봉규 ( 高奉圭 ) 고영목 ( 高泳穆 ) 남 23 형제 이지황 ( 李之潢 ) 이지택 ( 李之澤 ) 남 38 형제 당 김중기 ( 金中基 ) 김병엽 ( 金炳葉 ) 남 35 부 호적이름 : 김병열 ( 烈 ) 진 김성원 ( 金成元 ) 김병태 ( 金炳泰 ) 남 45 조부 공통분모를많이가지고있는곳으로알려져왔다. 조선중기실학자이중환 ( 李重煥 :1690~1756) 은택리지 ( 擇里志 ) 에서 ' 가야산의앞, 두 10 고을 ( 당진, 면천, 서산, 태안, 해미, 덕산, 홍주, 결성, 대흥, 보령 ) 은내포지방이다 ' 라고하여이지역을내포문화권이라명명하고있다.( 공주대학교박물관 충남지역평생교육센터, 내포로의역사여행 - 또하나의백제 -, 2002.). 2) 사건번호다 호 ( 신청인 ) 의경우신청인이사망하자그동생 이사건취하를요청하였다. 현행법상사건취하는 신청인이조사개시또는각하결정이있기까지는취하할수있다 ( 시행령제 3 조제 4 항 ) 고되어있다. 그러므로신청인조사까지마친당해사건에대해서는원칙적으로취하가불가능하나유족의청을고려하여최종보고서에는익명처리키로한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37

4 제 3 권 지역연번사건번호접수일자신청인 김길랑 ( 金吉郞 ) 김정호 ( 金貞浩 ) 김종수 ( 金鍾秀 ) 진실규명대상자 성명성별당시나이 김임춘 ( 金壬春 ) 김상기 ( 金相基 ) 김정기 ( 金鼎基 ) 신청인과의관계 남 49 부 남 48 조부 남 30 부 비고 남 42 부취하요청 김태호 ( 金泰浩 ) 김종욱 ( 金鍾彧 ) 남 37 부 김종우 ( 金鍾禹 ) 김영배 ( 金永培 ) 남 31 부 김종부 ( 金鍾富 ) 김영배 ( 金英培 ) 남 28 부 김은호 ( 金銀浩 ) 김종헌 ( 金鍾憲 ) 남 29 부 김석철 ( 金碩喆 ) 김기철 ( 金起喆 ) 남 32 형제 김동수 ( 金東秀 ) 김영기 ( 金永基 ) 남 27 부 권학중 ( 權鶴重 ) 권병직 ( 權柄直 ) 남 47 부 곽영철 ( 郭永喆 ) 곽영욱 ( 郭永頊 ) 남 26 형제 태안 백승찬 ( 白承燦 ) 백상기 ( 白尙基 ) 백충흠 ( 白忠欽 ) 남 51 조부 남 18 삼촌 심상천 ( 沈相天 ) 심명록 ( 沈明祿 ) 남 34 부 홍성 황선항 ( 黃善恒 ) 박기만 ( 朴基萬 ) 장국진 ( 張國鎭 ) 황은동 ( 黃殷東 ) 박상화 ( 朴尙和 ) 장영환 ( 張英煥 ) 남 29 부 남 36 부 남 26 부 년상반기조사보고서

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지역연번사건번호접수일자신청인 김수일 ( 金壽一 ) 전병목 ( 田炳穆 ) 진실규명대상자 성명성별당시나이 김종갑 ( 金鍾甲 ) 전천수 ( 田千秀 ) 신청인과의관계 남 31 부 남 20 숙부 비고 황창섭 ( 黃彰疌 ) 황길동 ( 黃吉東 ) 남 20 숙부 박영원 ( 朴泳源 ) 박봉석 ( 朴鳳錫 ) 남 35 부 이종민 ( 李鍾敏 ) 이강세 ( 李康世 ) 남 42 부 보령 박종갑 ( 朴鍾甲 ) 최정진 ( 崔正鎭 ) 이은규 ( 李殷珪 ) 박창규 ( 朴昌圭 ) 최돈규 ( 崔敦奎 ) 이준직 ( 李畯稙 ) 남 32 부 남 26 부 남 27 부 부여 강철민 ( 姜撤敏 ) 유황열 ( 柳晃烈 ) 유익렬 ( 柳益烈 ) 강일구 ( 姜日求 ) 유인길 ( 柳寅吉 ) 유인성 ( 柳寅聖 ) 남 40 부 남 37 부 남 33 부 나. 신청요지 유족이나시민사회단체등은한국전쟁발발직후인 1950년 6월말에서 7월초까지충남서부지역일원에서, 적게는수십명에서많게는수백명의민간인이군 경에의해집단희생되었다고주장하였다. 4) 신청인들이주장하는사건내용은대체로다음과같다. 3) 사건번호다 호 ( 신청인고수남 ) 는진실규명대상자 2 명 ( 고영귀, 고영홍 ) 중 1 명 ( 고영홍 ) 은 부역혐의희생사건 으로분류되어분리이관되었다.( ). 4) 유족이나시민단체등이주장하는희생자수는대체로서산 400 여명, 태안다수, 홍성 100 여명, 보령 200 여명, 부여 54 명등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민간인학살주요사건 2006, 104~106 쪽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39

6 제 3 권 1) 서산 ( 당진일부포함 ) 지역의보도연맹원을포함한민간인수백여명이 1950년 6월말에서 7월초에예비검속되어서산시성연면일람리메지골에서집단학살되었다. 2) 태안지역의보도연맹원을포함한민간인수백여명이 1950년 6월말에서 7월초에예비검속되어태안읍백화산한티재에서집단학살되었다. 3) 홍성지역의보도연맹원을포함한민간인수백여명이 1950년 6월말에서 7월초에예비검속되어홍성군홍북면용봉산등지에서집단학살되었다. 4) 보령지역의보도연맹원을포함한민간인수백여명이 1950년 6월말에서 7월초에예비검속되어보령군남포면옥서리소재이어니재에서집단학살되었다. 5) 부여지역의보도연맹원을포함한민간인수십여명이 1950년 6월말에서 7월초에예비검속되어부여군소재백마강구드레나루터에서집단학살되었다. 신청인들은이러한사실에대해서철저한진상규명과더불어명예회복과국가의사과, 위령탑건립은물론이고, 더나아가유족이입은정신적 물질적피해배상을요구하였다. 2. 조사의근거와목적 진실화해위원회는이사건이 1945년 8월 15일부터한국전쟁전후의시기에불법적으로이루어진민간인집단희생사건 ( 기본법제2조제1항제3호 ) 에포함된다고판단하여조사개시를결정하였다. 그리고국민보도연맹 ( 이하 보도연맹 ) 사건은한국전쟁전후최소한수만명이상이희생된사건으로희생지역이전국에걸쳐있고, 진실화해위원회에진실규명을신청한건수도전체의 34.2%(7,539건중 2,576건 ) 를차지할정도로큰사건이어서제27차전원위원회 ( ) 에서직권조사를의결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조사를통해희생경위, 희생규모및희생자신원, 가해주체와위법여부등이사건에대한진실을밝히고자하였다. 3. 규명과제 진실화해위원회는이사건조사에서충남도 시 군보도연맹의조직과활동, 충남서부지역보도연맹원의예비검속및희생경위, 희생규모및희생자의신원, 가해주체및책임소재, 가해의불법성여부등을규명하고자하였다 년상반기조사보고서

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4. 조사방법 조사는신청인조사, 참고인조사, 자료조사와현지조사등의방법으로진행됐다. 규명과제중예비검속, 희생경위및희생규모, 희생자신원등은각지역별로조사하였고보도연맹의조직과활동, 가해책임은전체적인시각에서접근하였다. 직권조사의취지를살려신청기간경과후에진실화해위원회에진실규명을요청한경우뿐만아니라조사과정에서희생자로드러난경우도조사대상에포함시켰다. 가. 자료조사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을조사하기위하여경찰서자료를비롯하여당시발행된신문및각종연구서, 논문자료등을조사하였다. 경찰서생산자료로는충남지방경찰청에서생산된 사령부 와내무부치안국에서생산된 경찰10년사, 한국경찰사 Ⅰ, Ⅱ 등을비롯하여각지역경찰연혁사를참고하였다. 충남경찰서를비롯하여서산, 당진, 홍성, 보령, 부여등각지역경찰서에서생산된경찰연혁사는현재국가기록원에 MF형태로보존되어있다. 1) 경찰관련자료및각종연구서 논문자료 - 사령부, 충남지방경찰청, 경찰10년사,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Ⅰ,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 Ⅱ, 내무부치안국,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백서, 경찰청, 충남경찰서연혁사 5) 5) 이자료는국가기록원 ( 관리번호 :BA ~BA ) 에는 1950 년생산자료로나와있으나, 검토결과 1958~1959 년도에충남경찰국의 경찰연혁사작성제출의건 에따라각급경찰서에서작성하여보고한것으로나타났다. 내용은해방이후부터각경찰서의연혁을비롯하여주요변동사항을포함하고있다. 목차는각종제도의신설 개폐를비롯하여 15 개항목으로구성되어있으며, 그중에는 6 ㆍ 25 사변중중요한경찰사항 도들어있다. 주요목차는다음과같다. 1 제도의신설 개폐및경찰구역, 경찰직원의배치, 청사및부지증감변경사항. 2 법령, 훈령, 고시등발포, 개폐및此에대한집행사항. 3 경찰서장의임면및보직사항. 4 직원순직및중대조난사항. 5 직원의중대한공적또는실 및상훈사항. 6 중대한회의또는 00 및 0000 사항. 7 중대한시설계획및此에대한집행사항. 8 지방에있어서특이사항. 9 중대한폭동, 00, 쟁의, 범죄기타사회의이목을끈경찰사항. 10 민심동향. 11 중대한水火震災상황. 12 중요한지방병전염병및獸질. 13 조장행정기타 00 외사무원조및집행중요사항 사변중중요한경찰사항. 15 기타중요참고사항.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41

8 제 3 권 - 서산경찰서연혁사 6) - 당진경찰서연혁사 7) - 부여경찰서연혁사 8) - 홍성경찰서연혁사 9) - 보령경찰서연혁사 10) - 기타각종연구서및논문자료 11) 6) 서산경찰서연혁사에나타난 6 ㆍ 25 사변중중요한경찰사항 중일부를소개하면다음과같다. 불의에 6 ㆍ 25 사변이발생되자전경찰관이임전비상태세를취하는동시전력을경주방어작전을전개하는중그해 7 월 11 일인접예산및홍성서가괴뢰군에피탈되어완전후퇴하였으므로, 서해안의첨단에위치하고있는당서는퇴로가차단되고완전포위상태에이르렀으므로부득이중요서류일체를매몰또는소각처분한후전서원과통신기구및총기등을임시관하부석면창리포구로옮기는등임기응변의조치를취하였으며, 분립되었던태안서역시동일한조치를취하여남면신온리포구로옮기였는바익일사태불리하므로오후 3 시 30 분각당해포구를출범 ( 出帆 ) 해상에서 3 일간정박후, 주신곤서장이하직원 150 명은차기작전을맹약하면서후퇴하여 ~( 하략 )~. ( 서산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 7) 한국전쟁당시당진경찰서장은김종걸 ( 金鍾杰, ~ ) 이며후퇴는 1950 년 7 월 12 일선편으로하였다고되어있다. 6 ㆍ 25 사변으로인한사망자수는우익사망자 239 명, 좌익사망자 384 명등으로기록되어있으며, 1957 년 11 월 6 일서산군의정미면, 대호지면이당진군으로편입됨으로정미지서와대호지지서의업무도서산경찰서에서당진경찰서로이관된내용등을알수있다.( 당진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 8) 한국전쟁당시부여경찰서장은전병길 ( 全柄吉, ~ ) 이며 6 ㆍ 25 사변중주요경찰사항으로는 UN 군의작전상의지시에의해동년 7 월 14 일관지를철수하였던바동년 7 월 20 일경부여에침입한괴뢰정치공작대급내무서원, 정치보위부원등은외곽단체인인위 ( 인민위원회 ), 민청, 여맹, 농위 ( 農委 ), 자위대등을사주하여가진 ( 온갖 ) 만행과학살을감행하여피살자경찰관 18 명, 양민 174 명, 관공리원 44 명, 외국인 ( 佛국인 ) 1 명계 237 명에달하고동년 11 월 5 일경찰이진주하였다 고되어있다.( 부여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 9) 한국전당시홍성경찰서장이박헌교 ( 朴憲敎, ~ ) 라는사실과 1948 년 9 월 3 일대통령령제 3 호에의한기구개혁에따라홍성경찰서로개칭한사실, 홍성경찰서후퇴일은 1950 년 7 월 11 일이며그후 7 월 12 일광천을후퇴하여 7 월 14 일에는간치 판교에서교전한사실등이기록되어있다.( 홍성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 10) 한국전쟁당시보령경찰서장은김선호 ( 金善浩, ~ ) 이며보령경찰서후퇴일은 1950 년 7 월 14 일이고그후 7 월 18 일오후 0 시경전북익산군 지구에서전투에참가한사실및 6 ㆍ 25 사변중중요경찰사항으로전투중사망한경찰대원들의유해를부락민이매장하여관리한사실과충혼비를건립한것등이기록되어있다.( 보령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 11) 북한의전면남침과초기방어전투,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2005 ; 한국전쟁과집단학살, 김기진, 2006; 대공 30 년사, 국군보안사령부, 1978 ; 민간인학살주요사건, 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2006; 한국전쟁사부도, 육군사관학교, 2005 ; 조봉암과 1950 년대 ( 하 ), 서중석, 2000 ; 한국전쟁 -38 선충돌과전쟁의형성, 정병준, 2006 ; 제노사이드 - 학살과은폐의역사, 최호근, 2005; 국민보도연맹의조직과가입자 김선호, 2002 ; 충청지방국민보도연맹의조직과활동 강성현, 2006 ; 해방후국가건설과지역사회동향 장규식, 1994 ; 근현대당진지방의정치사회적동향과지역엘리트 박찬승, 2004 ; 국민보도연맹원학살사건에대하여 - 보령지역 이선행, 2005 ; 1950 년주산전투에관하여 황의호, 년상반기조사보고서

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2) 당시발행된신문 - 동방신문 12) - 충청매일 13) - 기타신문 : 동아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보등. 3) 기타향토자료등 -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대한행정학회, 보령문화제14집, 보령문화연구회, 보령문화제16집, 보령문화연구회, 용감했던홍성사람들, 이번영, 서산시지, 서산시, 태안군지, 태안군, 향토문화, 태안향토문화연구소, 태안읍지, 태안읍지편찬위원회, 당진군지, 당진군지편찬위원회, 보령군지, 보령군지편찬위원회, 부여군지, 부여군지편찬위원회, 홍주대관, 홍주대관편찬위원회, 내가겪은 6.25, 이향우, 내포로의역사기행, 공주대학교박물관, 주간홍성 ( ) : 홍성신문의전신. 나. 신청인조사신청인조사는진실규명대상인 36명을대상으로 2007년 6월 20일부터 2008년 9월 30일까지진행하였다. 조사방법은직접면담조사 ( 진술조서 ), ( ), 기타해외거주자조사 ( 이메일 ) 등이다. 신청인조사내용은진실규명대상자의신원과특성, 연행, 희 12) 해방후대전에서창간된최초의신문으로중선일보, 중앙일보, 인민일보, 동방신문으로제호가변경되었고한국전쟁으로폐간되었다. 동방신문당시의것은현재국립중앙도서관에 MF 로소장되어있다.( ~ 일분.). 13) 해방후대전에서창간된신문으로 1949 년 7 월 1 일부터 1949 년 12 월 31 일까지국립중앙도서관에 MF 로소장되어있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43

10 제 3 권 생과정, 희생이유및가해자그리고시신수습여부등이었다. 신청인조사현황과주요진술내용 < 표 2> 와같다. < 표 2> 신청인조사내용 연번 신청인 ( 사건번호 ) 출생연도 조사일시조사장소 진술형태 주요진술내용 1 명장근 (741) 33 년생 위원회조사실 진술조서 해미지서에서보도연맹회의가소집되어형명창근이아버지대신에출두하였다가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되었음. 당시현장에는약 500 여구의시신이있었음.( 시신수습 ) 2 이정수 (1443) 47 년생 이메일및 ( 베트남 ) 이메일및전화 전쟁발발며칠후부이창석이서산고북지서의통지를받고자진출두하였으며그이후상황은모름. 그후할머니, 어머니로부터부친이보도연맹으로돌아가셨다는말을들었음. 3 고수남 (2751) 44 년생 위원회조사실 진술조서 전쟁당시부고영귀와삼촌고영홍이동네사람들과연행되어간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당했음. 4 김길환 (9538) 42 년생 서산시청종합상황실 진술조서 부김동현은전쟁전에좌익으로잡혔으나자수서를쓰고나왔으며그후보도연맹에가입하였고, 전쟁당시서산경찰서에서회의차소집된이후돌아오지않음. 그밖에마을의보도연맹희생자로김동현, 고영목, 지추성, 김진곤등이있음. 5 고봉규 (9539) 30 년생 서산시청종합상황실 진술조서 경찰 2 명이와서형고영목을연행해갔으며, 마을의보도연맹희생자로고영목, 김동현, 지추성, 김진곤등이있음. 희생장소로홍성참나무쟁이하고청양싸리재라는소문을들었음. 6 이지황 (9541) 32 년생 서산시청종합상황실 진술조서 형이지택은본인의사와무관하게보도연맹에가입하였으며, 전쟁후인 50 년 7 월초에연행된후 경서산메지골에서학살됨.( 시신수습 ) 김중기 (3210) 40년생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부김병엽 ( 호적김병렬 ) 이동네어른초상치르러갔다가그곳에서연행되었다고하며, 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됨. ( 시신수습 ) 8 김성원 (3211) 41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조부김병태는 7 월초정미지서의출두명령에따라정미지서로출두하였으나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됨.( 시신수습 ) 9 김길랑 (3212) 40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부김임춘은 대호지지서출두하였으며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당함. 당시두산 1 리에서만 10 여명이잡혀갔음.( 시신수습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1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연번 신청인 ( 사건번호 ) 출생연도 조사일시조사장소 진술형태 주요진술내용 10 김정호 (3213) 49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경새벽조부김상기는정미지서로연행되었으며그후서산경찰서에약 5 일정도구금되었다가서산메지골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11 김종수 (3214) 50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경부김정기는대호지지서로연행되었으며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12 (3215) 28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신청인의병환으로그의제 이대신조사받았으며, 그후신청인이사망하자 는대리인김종하를통하여조사취하를요청함. 13 김태호 (3216) 39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경부김종욱이대호지지서에교육받으러나간다고나갔으며그후메지골에서학살되었음.( 시신수습 ) 14 김종우 (3217) 49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날짜는정확히모르나모내기할즈음부김영배 ( 金永培 ) 는대호지지서에서나오라는말을듣고출두하였으며그후메지골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15 김종부 (3218) 50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신청인은관련사실에대해서는알지못하며, 단지그당시부김영배 ( 金英培 ) 의시신을메지골에서수습했다함.( 시신수습 ) 16 김은호 (3219) 49 년생 인천원창동자택 진술조서 신청인은관련사실에대해서는알지못하며, 단지부김종현이어딘가에도장을찍어주었다는이야기는들었으며메지골에서희생당했다함.( 시신수습 ) 17 김석철 (3220) 35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경형김기철이천의지서로출두하였으며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18 김동수 (7557) 45 년생 날짜는정확히모르나늦은모내기할즈음부김영기가대호통화지지서로출두하였으며, 그후서산메지골에서학살당함.( 시보고서신수습 ) 19 권학중 (9999) 37 년생 당진군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부권병직은친구들과함께보련에가입하였으며, 전쟁발발며칠후정미지서에출두하였고그후메지골에서학살당함. ( 시신수습 ) 20 곽영철 (2394) 34 년생 위원회조사실 진술조서 형곽영욱은경찰서에서가입을권유하여보도연맹에가입하였으며, 월말 ~7 월초에원북지서순경이와서연행을해갔음. 마을에서보도연맹가입자는약 15 명정도이며기억나는사람은고흥규, 최성연, 권석출의작은아버지등임.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45

12 제 3 권 연번 신청인 ( 사건번호 ) 출생연도 조사일시조사장소 진술형태 주요진술내용 21 백승찬 (6374) 60 년생 :55 분경 조부백상기와삼촌백충흠이전쟁때희생당했다고하며, 들통화은바에의하면집에머슴이 5~6명이있었는데이들이좌익보고서에가담을했고그래서할아버지를모함했다고함.( 백상기의시신은태안백화산에서수습 ) 22 심상천 (7949) 38 년생 서산시청감사상황실 진술조서 부심명록은보도연맹에가입했으며, 전쟁발발후연행된후대전으로실려가는것을신청인의모가직접목격함. 당시태안면남문리 1 구에있던보도연맹사무실자리를기억하고있음. 23 황선항 (4524) 46 년생 갈산면사무소 진술조서 부황은동이경찰의권유로보도연맹에가입했으며, 경경찰에연행된후용봉산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신청인의母로부터보도연맹가입당시한달에얼마씩회비를냈다는소리를들었으며. 마을에서희생자는장영환, 박상화, 황은동, 전영진등이있음. 24 박기만 (4525) 37 년생 갈산면사무소 진술조서 부박상화 ( 집에서는박수산으로불림 ) 는전쟁발발며칠후갈산지서로출두하였으며, 그후용봉산에서학살당했음. 마을에서희생자는장영환, 박상화 ( 박수산 ), 황은동, 전영진등임. 25 장국진 (7730) 47 년생 갈산면사무소 진술조서 부장영환은보도연맹에가입했으며, 동네어른들께들은이야기에의하면당시마을에서똑똑한사람은모두보도연맹에가입했었다고함. 그후홍성경찰서경찰이연행해갔으며용봉산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26 김수일 (8406) 49 년생 :00 경 부김종갑은보도연맹에가입을했다고하며, 행산리야산금광굴에서희생당하였고마을주민박수남이근처에시신을매통화장했으나훗날찾을수없었다고함. 마을에서함께희생된보고서사람은약 7명정도이나이름은기억나지않으며황창섭의삼촌, 황선항의아버지등이있음. 27 전병목 (8990) 39 년생 대전시청소회의실 진술조서 숙부전천수는당시는몰랐으나나중에누군가가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다고알려주었으며용봉산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마을에서 4 명정도가함께희생당했으며박봉석, 정대옥, 전천수등임. 28 황창섭 (9049) 49 년생 갈산면사무소 진술조서 숙부황길동이같은마을의김종갑과같이보련으로학살당했다는이야기를동네어른들로부터들었으며, 그후행산리이동부락폐광에서시신을수습했다고함. 29 박영원 (9577) 36 년생 대전시청소회의실 진술조서 부박봉석은당시이장으로 50 년 ~7. 1. 경모내기중에사복형사두명이와서데려감. 마을에서전천수, 정대옥등이같이희생당했음.( 용봉산에서시신수습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1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연번 신청인 ( 사건번호 ) 30 이종민 (10510) 출생연도 조사일시조사장소 48 년생 갈산면사무소 진술형태 진술조서 주요진술내용 부이강세는보도연맹홍성지부선전부장으로홍성경찰서상무대에구금 ( 약 100 여명 ) 되어있다가학살당했음. 함께검속되었던이관세 ( 이강세의사촌 ) 등은용봉산에서학살되었음 ( 이관세의시신은용봉산에서수습 ). 31 박종갑 (3941) 42 년생 조치원읍사무소 진술조서 소설가이문희의형님이천희가같은마을에살았는데이사람이남로당이좋다고선전하였고부박창규도그영향으로보련에가입하였음 경모내기중에연행되었으며, 마을에서희생당한사람은박창규, 서갑출, 염태식, 백남돈, 백남창, 곽개준등임 32 최정진 (6526) 48 년생 위원회사무실 진술조서 부최돈규는전쟁발발며칠후경찰두명이와서연행해갔으며마을의최상규씨부친도함께희생됨. 33 이은규 (10608) 46 년생 보령시자택 진술조서 부이준직은보령군남로당총책이익규의영향으로보도연맹에가입했음. 조모로부터들은바에따르면부친이보령경찰서에서실려나갈때트럭 3 대가나갔다고하며, 보련희생자는마을에서부친이유일함.( 이어니재에서시신수습 ) 34 강철민 (926) 41 년생 대전시청소회의실 진술조서 부강일구는일제시대부여군의칠모회, 신간회등에가입하여독립운동을했으며, 날짜는모르나논에서일하다가연행된후대전형무소로이감됨. 35 유황열 (2860) 35 년생 부여군청역사기록실 진술조서 부유인길은전쟁나기전에벽보부착혐의로약 4 개월정도수감된적이있으며, 경부여경찰서출두한후 3 일만에백마강구드레나루터에서학살당함.( 시신수습 ) 36 유익렬 (5142) 44 년생 부여군청역사기록실 진술조서 부유인성은 경부여경찰서형사에게연행되었음. 부여경찰서에학살현장으로가지않고석방된허동식 ( 사망 ) 에의하면당시두대의트럭이있었는데, 한대는대전쪽으로갔다고하며그트럭에신청인의부친이타고있었다함. 다. 참고인조사신청사건과직 간접적으로관련된참고인 55명과군 경측참고인 20여명을조사했으며, 주요대상자는사건발생당시현장을목격했던자, 사건의재구성에필요한정보를보유한자, 가해책임의소재규명에필요하다고인정되는자등이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47

14 제 3 권 < 표 3> 신청인측참고인조사내용 연번 성명 ( 연령 ) 사건과의관계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진술내용 1 김종하 (76) 사건전문 서산시청 진술조서대호지면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당한사람은 11 명이며김임춘, 김병엽, 김종헌, 김상기,, 김종욱, 김정기, 김영기, 김영배, 김영배, 김병태, 김기철등임. 2 이용순 (66) 메지골현장목격 성연면자택 면담보고서 메지골의처형은모내기를하고난어느날점심때부터해질녘까지이루어졌다고하며, 10 여명의경찰이 100 여명을끌고가는것을보았음. 3 조진일 (67) 미신청인 서산시청 참고인의부친과삼촌이한국전쟁이발발하자예비검속되어홍성진술조서오대산에서사살당함. 4 이번영 (61) 사건전문 홍성군청 면담보고서 참고인은 주간홍성 편집국장으로있을당시 1990 년 8 월 27 일 주간홍성 은 1950 년당시홍성경찰서장이었던박헌교를인터뷰하였고, 당시박헌교는보도연맹원처리에관한증언을한바있음. 5 이종립 (78) 현장목격 6 이선행향토사연구 7 이병순 (56) 홍북면자택 참고인사무실 미신청인 보령천북면 면담보고서 면담보고서 면담보고서 6 월 28 일경홍성쪽에서트럭 1~2 대가홍성경찰서에수감되었던사람들을싣고용봉산으로오는것을보았으며, 잠시후점심때쯤총소리가나는것을들음. 보령문화 제 14 집에 국민보도연맹 ( 보령지역 ) 학살사건에관하여 란논문을기고함. 보령지역학살현장과학살인원에대하여밝힘. 참고인은신청기간경과후에위원회에전화로접수한자로부친이종국이보도연맹으로희생당했다함. 8 이정순 (61) 미신청인 보령천북면 면담보고서 시아버지이종배가보도연맹으로희생당했다고하며같은마을의김제춘에의하면, 이종배는보도연맹천북면면단위책임자였음. 9 김제춘 (65) 미신청인 보령천북면 면담보고서 형김동봉이 7. 8 월경에예비검속되었다고하나, 제삿날은음력 11 월이라고진술함.( 부역혐의희생사건으로사료됨 ) 10 황두선미신청인 보령천북면 면담보고서 조부황복남이한국전쟁당시희생했다고하나, 제사날짜가음력 11 월 15 일임.( 부역혐의희생사건으로사료됨 ) 11 이종석 (71) 사건전문 비인면사무소 면담보고서 성북리의김동준이비인 서면보도연맹위원장이었으며그집안사람 2~3 명이비인해수욕장에서달밤에사살당함. 12 황의호향토사연구 ~6 년경전쟁당시주산면장이었던임회재를면담한적이있으며, 임회재는 50 년 7 월 10 일경주산면보도연맹원 20 여명을학살하는현장에참관함. 13 김종학 (78) 희생자증언 당진김종하자택 면담보고서 대호지면두산리는부안김씨집성촌으로전쟁당시마을의희생자는김임춘, 김병엽, 김종헌, 김상기,, 김종욱, 김정기, 김영기, 김영배 ( 英培 ), 김영배 ( 永培 ), 김병태, 김기철등임 년상반기조사보고서

1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연번 성명 ( 연령 ) 사건과의관계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진술내용 14 김우철 (73) 희생자증언 당진김종하자택 면담보고서 음력 5 월 21 일경대호지지서에출두하라고했으며, 순사들이총을메고직접잡으러오기도하였음. 희생장소는메지골이며희생자는상동 ( 上同 ). 15 권임중 (78) 희생자증언 당진김종하자택 진술조서 정미면의희생자권병직은참고인의아버지로음력 ( 양 7. 7.) 낮에경찰에의해정미지서로연행된후서산경찰서로이송되었음. 16 김응환 (75) 희생자증언 서산시부석면강수리 진술조서 부석면강수리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된사람은김동환, 고영목, 고수영, 지추성, 김진곤, 이지택등임. 17 이기성 (80) 희생자증언 홍성갈산면자택 면담보고서 갈산면상촌리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된자는황은동, 장영환, 박수산, 전영진, 김종갑, 황길동임. 이들은갈산지서경찰이잡아갔으며, 용봉산에서희생되었음. 18 고광성사건전문 홍성의보련원들은홍성경찰서상무관에구금이되었으며, 희생자는약 83 명정도이고, 희생장소는용봉산임. 19 곽정근 (75) 희생자증언 위원회조사실 진술조서 태안군원북면황촌리의경우남로당원들이많았으며곽영욱, 고흥규, 최성년, 권흥준등이보도연맹희생자임. 불에탄시신 99 구가창고에있는것을목격함. 20 백명숙 (75) 희생자증언 부백상기가경찰에연행되어간것은 50 년 6 월 25 일에서 26 일경이라고하며, 백상기의시신은백화산에서수습하였으나오빠백충흠은전쟁때행불되어현재까지소식없음. 21 윤재옥 (82) 희생자증언 대전유성장대동 진술조서 부여의세도면에서강일구라는사람이모심을때, 논에서일하다가오후 3 시쯤형사들에게연행되어갔음. 22 김영진 (77) 사건전문 당진자택 진술녹취당진군한진포구의목캥이에서약 10 명정도죽었다고알고있음. 23 정성운 (73) 사건전문 김영진의자택 진술녹취 한진포구목캥이의사건현장에서살아난사람과현장에서총을쏜경찰로부터당시에 160 명인지 360 명인지가사살되었다고들었음. 24 장현택 (70) 미신청인 면담보고서 참고인의부친이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으며제적부에당시지서장이사망신고를한것을보았음. 25 고수국 (67) 희생자증언 서산부석면자택 면담보고서 해미면관리에서보도연맹에가입해서희생된사람은약 30 여명이며, 희생자로는고영귀, 전재묵, 모동순, 전창배, 전재원, 전재륜, 정기창등임.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49

16 제 3 권 연번 성명 ( 연령 ) 사건과의관계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진술내용 26 김용환 (74) 사건목격 태안한티재 ( 지금의부대위치 ) 에서그날오후 7 시쯤시신들을꺼내길거리에늘어놓는것을목격함. 당시함인기가보도연맹으로태안한티재서희생됨. 27 정태동 (79) 사건전문 보도연맹원들이주로하던일은전봇대에 ~ 행사있다 같은것을알리는삐라같은것을붙이는정도이며, 그이외에경찰이후퇴할때보도연맹원들을많이죽였다고하는이야기를들었음. 28 정복순 (28 생 ) 사건전문 당시경찰이태안한티재에서 5~6 시경에통행금지를시킨채, 태안지서에잡아다놓았던사람들을죽이고후퇴하였음. 조시현이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음. 29 조한종 (25 생 ) 현장목격 학살현장은한티재가아니라사기실재이며, 유해수습을직접했는데사망자들은두명씩엄지손가락을철사로묶어놓았고유해는불에타있었음. 대부분찾아가고현장에남은유해는 7 구였음. 30 이종립 (78) 용봉산현장목격 년 7 월 28 일면담조사에서사살집행일을 6 월 28 일이라고한이유에대해특별한계기는없으며, 그때가전쟁난후였기때문에날짜는대강말한것이며나머지는사실임. 31 박우석 (77) 홍성참고인 은하면의희생자는박봉석, 전천수 ( 은하면대율리 ), 정대옥 ( 은하면학산리 ) 등이며, 형박봉석은이웃사람과친하게지내다가보도연맹에가입함. 가해자는경찰이며, 당시홍성에는군인들이거의없었음. 32 윤인희 (63) 보령참고인 ( 미산면평라 2 리 ) 마을에서보도연맹으로사망한사람은 7 명정도이며박창규, 서갑출, 백남창, 백남준, 백남돈, 곽개준, 염태식등임, 백남돈과백남준은형제인데형백남준은보도연맹으로잡혀간동생을찾으러갔다가같이잡혀간경우임. 33 박정순 (88) 서산메지골거주자 참고인은전쟁당시서른이며결혼하여메지골에살았음. 당시정광산아래골짜기에서총소리가오후한나절정도 ( 약 2 시간 ) 들렸으며, 그날사람들이많이죽었다고진술함. 34 윤여준 (61) 보령미신청인 부윤석정 (25 년생 ) 이큰아버지가보도연맹원이었는데, 큰아버지를말리기위해따라다니다가경찰에게연행되었다하며그후는행불임. 35 심영택 (69) 당진미신청인 심의덕 ( 부친, 당시 29 세 ) 과이병학 ( 고모부, 당시 32 세 ) 은 6 월어느날서산경찰서로경찰과함께출두함. 당시경찰은조사할것이있다고하면서강압적이지않은분위기속에서출두함. 36 강 (74) 부여참고인 장암면장하리의사망자로는강진모, 강윤모, 강준모, 강명구, 강순모, 강석빈등이며이들은모두낙화암과구드레나루터중간지점에서사살당하였음. 시신은전부물에떠내려가서대부분수습못함 년상반기조사보고서

1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연번 성명 ( 연령 ) 사건과의관계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진술내용 37 이윤화 (68) 희생자증언 황촌리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된사람은고흥규, 김규태, 이환용, 이준용, 권흥준등이며, 이준용 ( 참고인의작은아버지 ) 은논에서모심다가잡혀갔음. 38 유욱동 (72) 희생자증언 경찰이후퇴하면서메지골에서많은사람들을죽였으며, 그때죽은사람들로는전운종, 전재훈, 전후종, 전재길, 전재묵, 전재극, 모동순, 전재윤이며이들의시신을메지골에서수습하였음. 39 이종순 (74) 희생자증언 참고인의이웃에살던김종고가생전에이준직의부인과함께보령이어니재에서이준직의시신을수습하여매장했다는이야기를해주었음. 40 김동우 (80) 희생자증언 마을에서사상이다르다고하여잡혀간사람은최돈규와최흥복 ( 최돈규의당숙 ) 두사람이며둘다시신은못찾았으며이어니재에서희생되었다는소리를들었음. 41 정낙관 (72) 희생자증언 소원면모항리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된사람은정진영, 문장윤, 국서환, 김이관등이며대부분은시신을수습하지못함. 42 한원석 (72) 희생자증언 이북면 ( 현, 이원면 ) 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된사람은정성해, 윤대갑, 이주필, 김재경, 이주형, 장병석, 조재진, 김동휘, 손응규, 이인준, 손창규, 김호석, 전용배등임. 그중이주필과전용배는시신수습함. 43 이병운 (77) 희생자증언 소원면의항2구에서보도연맹희생자는문용운, 김의순등임 44 김용환 (75) 희생자증언 근흥면안기리의보도연맹희생자는함용성, 함인기, 함정태, 함풍기, 함용능등이며, 함정묵은수복후에사망하였음. 45 함형원 (73) 희생자증언 근흥면안기리의보도연맹희생자는함인기, 함현기, 함정태, 함풍기, 함용능등이며함용성과함정묵은수복후에사망함. 46 박상원 (77) 희생자증언 소원면의항리에서보도연맹희생자는박창원, 박상진, 박상곤, 지재인, 지부상, 국응백, 지종갑등임. 47 정형용 (83) 희생자증언 소원면파도리의보도연맹희생자는오수창, 이병준, 박낙원, 신병원등임. 48 윤태의 (75) 희생자증언 소원면송현리의보도연맹희생자는국중구, 김을성등임. 49 이용선 (83) 희생자증언 근흥면정죽리, 도항리의보도연맹희생자는이태산, 설세진, 김흥안, 김영출등임.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51

18 제 3 권 연번 성명 ( 연령 ) 사건과의관계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진술내용 50 최복룡 (75) 희생자증언 근흥면도항리의보도연맹희생자는김귀성, 지덕흠, 김영출, 김흥일등임. 51 이병남 (77) 희생자증언 태안삭선의이병하는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음. 52 이종수 (76) 희생자증언 안면읍승언리에서보도연맹희생자는오세진, 한종근등이며, 그밖에김종섭은수복후에희생됨. 53 황건환 (76) 희생자증언 서산시고북면기포리의이창석 ( 혹은이창길 ) 은보도연맹으로희생됨. 54 명혜근 (83) 희생자증언 동생명창근은서산성연면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으며시신을수습함. 시신은비온뒤라퉁퉁불어있었으며, 총상흔적이있었음. 55 박종철 (79) 희생자증언 전쟁때 21 살이었음. 전쟁때보령군미산면평라리에서보도연맹으로희생된사람은서갑출, 박창규, 염태식, 백남돈, 백남창, 곽개 ( 태 ) 준등 6 명임. < 표 4> 군경측참고인조사내용 연번 성명 ( 연령 ) 당시소속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 진술내용 1 이 (77) 소방대원수복후 : 태안경찰서 태안 00 면자택 면담보고서 ( 녹취 ) 태안에서경찰이후퇴할때보도연맹원들을태안경찰서로잡아갔으며, 그중에서주동자급은대전으로이송하고나머지사람들은백화산어디서죽었다고들었음. 2 김 (80) 태안경찰서순경 안면읍 00 리자택 면담보고서 ( 녹취 ) 경찰이보도연맹원들을예방차원에서감시하였으며, 그후경찰이후퇴할때보도연맹원들을서산어디에서죽였다고들었음. 지휘 명령체계모름. 3 조 (84) 보령경찰서순경 차방문 차 : 조사관의방문조사에극도의경계를드러냈으며, 보도연맹관련해서아는바가전혀없다고함. 4 이 (88) 태안경찰서순경 (1 차 ) 전화 (2 차 ) 전화 1 차통화조사시보령지역에서보도연맹원중상당수를대전형무소로직접이송하였다고하였으나, 2 차통화에서홍성지역에서이송하는것을목격했다고번복함 년상반기조사보고서

1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연번 성명 ( 연령 ) 당시소속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 진술내용 5 박 (83) 태안경찰서순경 경찰이후퇴할때백화산에서보도연맹원들을사살했다는소문을들었다고함. 경찰이독자적으로하지는않았고상부지시에의해서행했을것이라함. 6 이 (80) 양주경찰서순경 참전자명부에는퇴직당시소속이보령경찰서로되어있었으나직접통화한결과보령서에는근무한적이없다하며, 참고인의근무지인의정부지역은처형이없었다고함. 7 이 (81) 논산, 부여경찰서순경 전쟁당시에는논산서에근무하였으며수복후부여서에근무함. 논산지역의경우보도연맹원들을예비검속한후일부는대전으로보내고, 일부는유치장에남겨둔채로후퇴함. 8 강 (80) 서천, 부여경찰서순경 서천의경우 7 월후퇴당시에유치장에좌익 30~40 명이갇혀있었는데, 후퇴하던군인패잔병들이모두다데리고가서사살했다고함. 9 방 (79) 수복후철도경찰대 전쟁당시부여서에서발생한상황에대해서는아는바가없음. 전쟁당시부여서에서근무했던임 에대해서는현재투병중이라함. 10 한 (80) 태안경찰서사찰계순경 태안경찰서사찰계근무당시보도연맹원의처형문제와관련해서는자신은참석하지않아서잘모르겠다며더이상의통화를거절함. 11 김 (83) 수복후홍성경찰서순경 차 : 선배들에게들은바에의하면대전교도소에있던사람들몇백명을산내로데리고가서죽였다고하며각지방에서도자체적으로죽였다고함. 12 김 (83). 상동 차 : 보도연맹업무를주로다룬부서는사찰계였으며전쟁당시보련원들을영장없이소집해서경찰서마다구속을시켰음 ( 예비검속 ). 예비검속은상부지시에의해서경찰이담당했으나, 그후처리는계엄하이기때문에계엄사령부의지시에의해서행해졌을것이라함. 13 홍 (80) 경찰학교입문 참고인이전해들은이야기로는당시천안경찰서장이던김 가후퇴할때예비검속되었던보도연맹원들을전부풀어주었기때문에그후인민군들에의한우익의희생사실이없었다고함. 14 최 (85) 당진경찰서순경 당진의경우도보도연맹가입자가많이있었다고하며, 1 개면단위로백명이넘었다고함. 경찰서장은김, 당진서의사찰계장은박 라고함. 보도연맹원처리에관해서는함구함.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53

20 제 3 권 연번 성명 ( 연령 ) 당시소속 진술일진술장소 진술형태 진술내용 15 이 (86) 공주경찰서 당시사찰계간부들이보도연맹원들을남하시킨다고다데리고갔으며, 그후남하시켰는지어디로데려가서죽였는지는모른다고함. 인원은꽤많았다고하며, 당시공주경찰서장은이, 사찰계장은황 이었음. 16 구 (81) 당진경찰서순경 선배들에게들은이야기에의하면당진지역전체의보도연맹원은대략 30 여명정도이며그중에서경찰후퇴당시한진에서처형당한사람은 20 여명정도라고함. 17 이 (81) 태안경찰서순경 태안에서대전형무소로이송한사람은초기에검거한사람들이며충남경찰국의지시가있었음. 나중에검거한사람은전부사살시켰는데사살에대해서도충남경찰국의지시가있었음. 지시는후퇴하기 2~3 일전에공문으로내려왔고공문내용은 즉결처분하라 는것이었음. 18 신 (81) 태안경찰서안흥지서순경 안흥지서등각지서는각각관할지역의보도연맹원들을체포해서태안경찰서로바로이송하였음. 19 서 (81) 보령경찰서순경 보령의보도연맹원수에대해서는확실하지는않으나대략 30 여명정도될것이라고하며, 당시경찰의복무규율은상사의명령에는절대복종해야한다함. 20 김 (80) 참전군인 참고인은 지역참전동지회회원으로전쟁때는대전 (2 사단 ) 에있다가동두천전투에투입되었다고하며, 충남서부지역에서는국군과인민군간의직접적인교전은없었을것이라고진술함. 라. 현장조사신청인과참고인들의진술을토대로사건현장을정리하면대체로서산시성연면의메지골, 당진의한진포구 ( 목캥이 ), 태안의백화산 ( 사기실재 ), 홍성의용봉산, 보령의이어니재, 부여의백마강구드레나루터등에서대량총격살상이있었던것으로파악된다. 그밖에도일부진술에따르면홍성의참나무쟁이와싸리골및오서산, 서산의양대리등도희생지로거론되었으나비교적소규모이거나진술인의기억이부정확한경우가있어현장조사에서는생략되었다. 사건현장은아래그림과같다. 14) 14) 여기표시된지역은대규모집단희생지역이며이외에도소규모희생이있었던곳은더있을수있다. 대표적으로홍성의경우는용봉산외에도행산리이동부락폐광에서도희생자의시신이수습되었다고한다 년상반기조사보고서

2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그림 1] 충남서부지역보도연맹원희생지 Ⅱ. 조사결과 1. 사건배경가. 충남국민보도연맹의조직과활동 1) 충남도연맹의조직구성진실화해위원회는충남도 ( 道 ) 연맹을비롯한시 군연맹의조직과활동에대해조사하였다. 동방신문, 충청매일등을비롯한당시의신문을분석하였으며기존의연구도참조하였다. 또한, 신청인과참고인을통하여이들연맹의조직구성을비롯한활동내역도조사하였다. 보도연맹은 1949년 10월 25일부터 1949년 11월 30일까지세차례에걸쳐남로당원자수주간을설정하고대대적인자수 전향작업을진행하였다. 이에대응하여충청지방의검경당국에서도중앙과는별개로 11월 1일부터 30일까지한달동안자수주간을설치하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55

22 제 3 권 고자수 전향을독려하였다. 15) 이러한활동의결과많은남로당원들이탈당을하였으며, 당시의신문광고란에는이들의탈당성명서가줄을이어게재되었다. 1949년 11월 26일자동방신문에는부여지역에서남로당을탈당한 188명명의의탈당성명서가게재되기도하였다. 16) 충청지방의검경당국이정한자수주간이끝나갈무렵충남도전체자수 전향자는약 3,902명이었다. 시 군별자수자수는본청 27명, 서산 75명, 당진 36명, 온양 396명, 천안 181명, 홍성 1,380명, 예산 56명, 조치원 58명, 보령 126명, 청양 234명, 공주278명, 서천 163명, 부여 91명, 강경 429명, 대전 65명, 태안 29명, 대덕 278명이다. 17) 자수주간을거치면서자수 전향자들이대량으로속출하게되었는데, 특히기간막바지로갈수록그숫자는크게늘어났다. 11월 20일현재도내자수자는 539명 18) 이던것이 25일부로 1,054명 19) 으로늘어났고, 불과 5일후인 30일엔 4배에가까운 3,902명으로증가한것이다. 자수자수가이렇게증가하는데는당시검경의자수독려가그만큼적극적이었다는것을보여준다. 실제로충청매일의경우만을놓고보더라도 11월하순에는거의매일자수를독려하는기사가실렸다. 20) 특히자수자에대해서는증명서발급, 직업알선등과같은혜택도약속되었다. 21) 반면에이기간에자수하지않은자에대해서는준엄한제재가뒤따를것임을경고하기도하였다. 22) 이러한노력의결과자수자는급증하였으며이들을 여하히선도하느냐 가보도연맹의또다른임무이며사명이었다. 23) 이들좌익전향자를효과적으로관리하기위해서는각지방지부의결성이절실하게요구되었으며, 이에따라충남도보도연맹결성식이 1949년 12월 27일거행되었다. 이날대 15) 충청매일, ) 모두에는 남로당을탈당하며그말살에적극협력하고대한민국에충성을다할것을굳게맹서 ( 盟誓 ) 한다 고되어있다.( 동방신문, ) 17) 일부연구에서동방신문과충청매일의보도내용 ( 자수자인원 ) 이다르다고하였으나진실화해위원회조사결과동일함을확인하였다.( 동방신문, ; 충청매일, ). 18) 충청매일, ) 충청매일, ) 자수만이살길 (11.19), 증명서도발급 - 앞으로 10 일주저말라 (11.20), 전향자수자좌담회 (11.22), 자수기한드디어박두 (11.23), 경찰국장담화 : 다시안올천재일우의기회 (11.25), 검사장담화 : 관대한은전도이달뿐 - 회오 ( 悔悟 ) 자수하지않으면제재준엄 (11.26), 불순학도자수하라 (11.26), 자수자좌담회 (11.28), 은전은앞으로 3 일간 (11.28), 자수자육속 ( 陸續 )!-25 일현재 1 천명돌파 (11.29) 21) 충청매일, ) 11 월 25 일이순구경찰국장은 다시안올천재일우의호기 ( 好機 ) 를천명하는가하면, 다음날정재환검사장은 관대한은전도이달뿐 - 회오자수않으면제재준엄 할것이라는담화문을발표하였다.( 충청매일, ). 23) 동아일보, 년상반기조사보고서

2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전검찰청회의실에서고문권영옥 이영진 ( 李寧鎭 ) 송호성 ( 宋虎聲 ), 지도위원장정재환 ( 鄭在煥 ), 지도위원윤준영 서광순 ( 상임지도위원겸 ), 참사 ( 參事 ) 김진권 ( 金振權 ) 외 30 명, 그밖에이사회소속으로명예이사장이영진등다수가참석한가운데하오 2시반부터 4시까지거행되었다. 식 ( 式 ) 은국기경례, 애국가봉창에이어순국선열에대한묵념을한후정재환검사장의인사가있었고, 뒤이어윤차장검사의국민보도연맹결성취지설명과규약선언이있었다. 이어서충남도연맹임원을발표했는데, 간사장에강창우 ( 姜昌祐 ) 를, 사무국장에조강희 ( 趙岡熙 ) 를임명했다. 각부서임원에는총무부장임완빈 ( 任完彬 ), 심사부장송영호 ( 宋永鎬 ), 보도부장이진구 ( 李鎭求 ), 사업부장박문규 ( 朴文圭 ), 선전부장송재선 ( 宋在旋 ), 조직부장김지수, 부녀부장권유진 ( 權有鎭 ), 문화실장서하 ( 徐霞 ) 가임명되었다. 24) 충남도연맹임원들의면면을살펴보면고문권영옥은당시대전지방법원장이며, 이영진 ( 李寧鎭 ) 은충남도지사, 송호성 ( 宋虎聲 ) 은중부전투총사령관겸 125부대장이다. 그밖에지도위원장정재환 ( 鄭在煥 ) 은대전지검검사장이며, 이사장이순구는충남경찰국장, 지도위원윤준영은차장검사, 지도위원서광순은도사찰과장, 참사 ( 參事 ) 김진권 ( 金振權 ) 은판사였다. 이처럼충남도연맹의조직과운영에는행정 사법 군 경찰등각분야의지역수뇌부가중심축으로참여하고있는데, 이는보도연맹의성격과운영방향성을가늠할수있게해준다. 보도연맹이비록국가의법령에의해서설립된공식조직은아니라할지라도, 조직의구성과운영은대부분관 ( 官 ) 주도하에이루어졌음을보여주고있다. 25) 충남의경우다른도연맹에서는찾아볼수없는부서로심사부와문화실이설치되었는데, 이는도연맹의지도방향에따라필요한부서를추가했던것으로보인다. 26) 도연맹을실질적으로지도 운영하는지도위원회는지도위원장, 지도위원, 상임지도위원으로구성되어있으며, 충남의경우지도위원이상임지도위원을겸하고있는데그조직구성은 < 표 5> 와같다. 24) 동방신문, ) 서중석, 조봉암과 1950 년대 ( 하 ), 역사비평사, 2000, 602 쪽. ; 최호근, 제노사이드 - 학살과은폐의역사, 책세상, 2005, 409 쪽. 26) 김선호, 국민보도연맹의조직과가입자 역사와현실 제 45 권, 한국역사연구회, 2002, 307 쪽.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57

24 제 3 권 < 표 5> 충남도연맹조직구성 고문 간사장지도위원회이사장명예이사장 간사상임지도위원이사참사 사무국 총무부심사부보도부사업부조직부선전부부녀부문화실 2) 시 군연맹의조직도 ( 道 ) 연맹결성식에이어도내각지역별시 군보도연맹결성식도잇달아거행되어 1950년 1~2월사이에시 군지부결성이이루어진것으로보인다. 27) 시 군지부결성에이어읍 면 리 구단위의지부결성과세포조직의정비가뒤따랐을것으로보이며, 어느정도조직이정비된 1950년 5월 6일온양온천모처에서제1회도내간사장회의가개최되었다. 28) 이날참석자는지도위원장정재환, 상임지도위원윤준영차장검사, 이순구충남경찰국장, 도연맹간사장강창우를비롯하여각시 군연맹간사장들이었다. 충남서부지역중시 군지부조직결성과관련하여, 신문자료등을통해확인가능한곳은홍성, 부여, 보령, 서천등이며, 서산, 당진, 태안의경우관련자료가발견되지않았다. 1950년 1월 24일자동방신문에따르면 1950년 1월 16일대전지방검찰청홍성지청에서는홍성지청관할하에있는홍성군, 보령군, 서천군의보도연맹지방지부결성을준비하기위한예비모임을가졌다. 여기서홍성, 보령, 서천지역의지방지부결성일이결정되었는데, 홍성은 1월 25일, 보령은 1월 26일, 서천은 1월 27일이었다. 당시홍성지청은 1948 년검찰청법의제정으로홍성군, 예산군, 서천군및보령군을관할하고있었다. 29) 27) 강성현, 충청지방국민보도연맹의조직과활동 전쟁과지역사회, 제노사이드연구회, 2006 하계워크숍자료 쪽. 28) 동방신문, ) 홍주대관편찬위원회, 洪州大觀 ( 상권 ),2002, 571 쪽 년상반기조사보고서

2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현재까지서산 당진 태안지역의군 ( 郡 ) 지부결성일이나보도연맹조직등에대해서알려진바는없으나, 시기적으로는타지역과비슷한시기인 50년 1~2월사이에이지역의군지부가결성되었을것으로추정된다. 서산 당진 태안지역은지리적으로인접하여있는데다, 행정구역편제에서도서로통합되기도하고분리되기도하는등정서적으로도가까운편이다. 30) 1950년당시, 태안군의경우군전체지역이서산군에속해있었으며, 당진군의경우대호지면과정미면이서산군에속해있었다. 당시신문을비롯하여기타사항을종합해볼때, 홍성군연맹의결성식은 1월 25일개최된것으로보인다. 이날홍성지청장성세호를비롯하여, 박헌교 ( 朴憲敎 ) 홍성경찰서장과김영배사찰주임및다수의지방유지와우익단체간부를비롯한 1백여명의맹원들이참석했다. 이날피선된임원은타시도의예로미루어, 이사장은경찰서장인박헌교가, 지도위원장은지청장인성세호가맡았을것으로보인다. 그밖에사무국장에박종세, 선전부장에이강세등이임명되었다. 31) 보령군연맹은 1월 26일오전보령경찰서무도장에서자수자 162명의참석하에개최되었다. 32) 한편, 동방신문 2월 1일자기사에는이날참석자의한사람으로대전지방법원홍성지원장성세호를거론하고있으나, 성세호는 1948년 4월 1일부터 1950년 6월 12일까지대전지방검찰청홍성지청장을역임하였다. 33) 조사결과당시대전지방법원홍성지원장은성세호가아니라김영환 ( ~ ) 이었다. 그러므로이날결성식에는홍성지청장성세호를비롯하여보령경찰서장김선호, 보령경찰서사찰주임이정순등이참석하였다. 이날피선된임원은위원장성세호 ( 成世鎬 ), 명예이사장송인호 ( 宋寅 ), 이사장김선호 ( 金善鎬 ), 간사장김태연 ( 金泰淵 ) 등이다. 34) 30) 1957 년 11 월 20 일에는정미면과대호지면이당진군으로이속되었다가 1973 년 7 월 1 일에는당진군정미면여미리가다시서산군운산면에편입되었다.1973 년 7 월 7 일에는태안면이읍으로승격되었으며, 1980 년 12 월 1 일에는안면면이읍으로승격되었고, 1986 년 4 월 1 일에안면읍고남리 루동리 장곡리등 3 개리를분할하여고남면으로승격시켰다.1989 년 1 월 1 일에는서산읍이서산시로승격되었고, 태안읍 안면읍 고남면 남면 근흥면 소원면 원북면 이원면이분할되어태안군으로되었다. 이로써서산군은인지면 부석면 팔봉면 지곡면 대산면 성연면 음암면 운산면 해미면 고북면의 10 개면을관할하는군으로남게되었다.1991 년 12 월 1 일에대산면이읍으로승격되었고, 1995 년 1 월 1 일에는시 군통합에의하여종래의서산시와서산군이통합되어서산시로행정구역명칭을바꾸어오늘에이르고있다. 31) 동방신문, ; 장규식, 해방후국가건설운동과지역사회동향 학림제 16 집 1994, 132~133 쪽 ; 강성현, 앞의글, 15 쪽. 32) 동방신문, ) 홍주대관편찬위원회, 洪州大觀 ( 상권 ), 2002, 573 쪽. 34) 동방신문,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59

26 제 3 권 부여군연맹은 1월 27일오전 11시부터부여경찰서무도장에서강경지청장노동시 ( 盧東始 ) 를비롯한각관공서장지방유지등이다수참석한가운데결성되었으며, 이날피선된임원은고문남궁현 ( 南宮炫 ), 지도위원장김 수 ( 金 洙 ), 지도위원전병철 ( 全병喆 ) 외 7 명, 당무지도위원박성래 ( 朴成來 ), 김기석 ( 金基錫 ), 참사 ( 參事 ) 이석우 ( 李錫雨 ) 외 10명, 명예회장이재서 ( 李載瑞 ), 이사장전병철, 이사민영주외 39명이다. 35) 3) 도 시 군연맹의활동 도연맹이나그산하군연맹의활동내용도중앙조직의그것과크게다르지않은데, 주된활동은좌익전향자를포섭하여계몽 지도하는것이다. 이러한주된활동을지원하기위한여러가지보조활동도함께진행되었는데, 1950년 5월 6일개최된제1회도내간사장회의에서는다음과같은내용들이토의되었다. 이날회의에서논의된것은보도연맹원들이지켜야할사항으로가맹 ( 加盟 ) 보도사업, 도선거 (5 30 선거 ) 불간섭, 탈맹추천, 타공 ( 打共 ) 에의협조등이다. 그외에도조직운영과관련해서맹원의신분보장과선전문제, 재정문제등이토의되었으며학생맹원의복교, 간사직업알선등의건의도있었다. 36) 이러한내용들은보도연맹지방조직의활동지침으로작용을하였고, 그것은곧가맹원의교육에도활용되었을것으로사료된다. 보도연맹에가입하게된경위가 장래성도있고발전할수있다고해서가입했다 37), 직업알선을해준다해서가입했다 38) 등과같은진술내용이이를뒷받침한다. 보도연맹지방조직의구체적인활동내용에대해서는현재까지의조사결과명확하게밝혀내지못했다. 단지신청인이나참고인의진술에서그에관한단편적정보를얻을수있었으며, 이를통해어느정도까지는재구성이가능하다. 예를들어서산지역보도연맹의경우좌익활동과는상관없는사람들도다수가입했으며, 가입시에는자수서 남로당탈퇴서등을써야했다. 조직된연맹원들은필요에의해각읍면마다지서에모여정신교육을받았으며, 연맹원들이타지역으로이동할때는반드시경찰에신고를해야했다. 39) 태안지역의보도연맹원들은평소에는크게하는일이없었으나, 40) 간혹무슨행사같은것이있을때전봇대에 ~행사있다 같은것을알리는삐라같은것을붙이기도하였 35) 동방신문, ) 동방신문, ) 신청인황선항진술조서 ( ). 38) 청양신청인이필재진술조서 ( ). 39) 참고인김종하면담보고서 ( ). 40)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2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다. 41) 보령시천북면의미신청인이병순등은천북면의보도연맹책임자로이종배가있었으며, 그의영향으로천북면에도많은희생자가있었다고했다. 42) 홍성지역의보도연맹원들은가끔경찰서에모여교육을받았으며, 홍성보도연맹사무국장은박종세, 43) 선전부장은이강세였다. 44) 이상살펴본바와같이충남서부지역도 시 군연맹의활동도다른지역과크게다르지않았음을알수있다. 즉, 정기적으로맹원들을지서로소집하여여러가지사상교육을하였고, 남로당원의탈당을독려하는등좌익사상의근절을위한활동을주로하였다고추정된다. 나. 보도연맹가입경위 보도연맹의일차적가입대상은기본적으로좌익전향자였다. 45) 이에진실화해위원회는희생자들이과거에좌익에가담했는지여부를조사하기위하여신청인 참고인조사및자료조사를실시하였다. 또한신청사건 38건 ( 이관사건포함 ) 전원의행형기록을조회하였으며, 그중에서국가보안법이나포고령위반등과같이주로좌익사범에게적용된것을조사하였다. 그결과 3건의사건에대해서해당자료를확보하였으며, 나머지는전과사실이발견되지않았다. 1) 서산지역 당진일부 ( 대호지와정미 ) 와태안을포함한서산지역의신청건수는총 22건이나, 이중에서희생자가보도연맹에가입했다고진술한경우는 5건에불과하다. 그러나보도연맹가입여부는정확하게알수없지만여러가지정황으로미루어가입했을개연성이높은경우까지포함한다면 14건에이른다. 46) 이지역신청인및참고인들의진술내용을검토하면가입자의대부분은좌익과는무관하게가입된것으로나타난다. 이와관련하여참고인김종하는 당시경찰은자수를많이시킨사람이우수경찰이었습니다. 그래서부풀리기식으로가입을시킨것이보도연맹입 41) 참고인정태동면담보고서 ( ). 42) 참고인이병순면담보고서 ( ). 43) 주간홍성, ) 신청인이종민진술조서 ( ). 45) 동아일보, ; 조선일보, ) 보도연맹에가입했을개연성이높은경우는신청인이가입여부에대해확신을가지진못하지만, 집안어른이나마을어른들로부터 피해자가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다 는전언 ( 傳言 ) 을들었거나, 행형기록조회결과좌익혐의로실형을언도받은경우가있다거나, 어딘가에도장을찍어준것때문에희생되었다거나하는경우를전부포함한의미이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61

28 제 3 권 니다. 좌익활동과는상관없이순수했던사람들도많이가입을했던것으로알고있습니다 라고하였다. 47) 그밖에도그냥정부에서가입하라고해서가입한경우, 48) 본인의의사와는상관없이경찰이가입을시킨경우 49) 등도여기에속한다. 이러한사실은당시경찰로재직했던참고인의진술을통하여서도확인이되는데, 참고인김 에따르면 당시남로당원들은명단에만들어있고아무죄가없는사람들이대부분이며, 나중에그사람들이보도연맹원이되었다 고한다. 50) 또다른가입유형으로는어딘가에도장을찍어준경우 51) 가있는데신청인들은희생자가남로당에가입도장을찍어준것인지, 아니면보도연맹에가입도장을찍어준것인지혼동하는경우도있다. 52) 한편가입자중에는과거에남로당에가담을했거나좌익계에몸담은경우도있는데, 사건번호다-2394호 ( 신청인곽영철 ) 의곽영욱 ( 郭永頊 ) 이대표적이다. 곽영욱은남로당에서탈당하면서탈당성명서를신문지상에광고하기도하였다.([ 그림 2] 참조 ) 2) 당진지역당진지역의보도연맹조직결성이나활동등에대해서는관련기록이나연구성과도거의없는실정이다. 그동안각처에서보도연맹원학살을주장해온관련단체의주장에서도당진지역의희생사실은빠져있다. 53) 진실화해위원회에진실규명을신청한당진군의신청인들은전부대호지면과정미면에거주하고있으며, 대호지면과정미면은 1950년당시에는서산군소속이었다. 그결과이지역의진실규명대상자들은전부서산경찰서로예비검속되어서산지역의보도연맹원들과운명을같이했다. 47) 참고인김종하진술조서 ( ).: 참고인김종하는전쟁당시중 3 년으로 9 ㆍ 28 수복후학훈단 ( 학도호국단의전신 ) 대호지선전부장으로활동한바있다.( 동참고인면담보고서 ( ).). 48)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49) 신청인이지황진술조서 ( ). 50) 참고인김 면담보고서 ( ). 51) 신청인김정호진술조서 ( ); 신청인김종수진술조서 ( ); 신청인김종우진술조서 ( ); 신청인김동수 ( ). 52) 예컨대 보도연맹에가입을했는지안했는지는모르지만어머니께듣기로는어딘가에도장을찍었다는이야기는들었습니다. 그도장찍은것때문에잡혀가셨다고했습니다. 신청인김정호진술조서 ( ); 통일이되면북한에서전기같은것을공짜로가져다쓸수있다는말에속아머슴이나무식쟁이등이모두도장만찍었다 고한다.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53)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민간인학살주요사건 2006, 104~106 쪽 년상반기조사보고서

2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그림 2] 곽영욱 ( 다 호 ) 의탈당성명서 ( 출전 : 동방신문, ) 이에진실화해위원회는대호지면과정미면을제외한다른지역의피해여부를조사하였다. 식민지시기당진은정치적으로는당진면이중심이었지만사회운동면에서는합덕일대가그중심지였다고한다. 해방이후건준과인민위원회가구성되었을때그주역들가운데에도합덕과그인근출신의사회주의자들이많았다고한다. 54) 이에따라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합덕주민중일부를탐문하였다. 당진군청의협조를받아합덕읍관내의이장과주민가운데비교적고령인사람들을대상으로조사하였으며, 그과정에서당진에도보도연맹원들이처형된사실을일부확인할수있었다. 55) 그러나이들참고인들도보도연맹조직관계나활동, 가입과정등에대해서는대부분알지못하였다. 단지, 지리적으로나역사적으로나당진지역주민들이보도연맹에가입했던경위역시타지역과크게다르지는않았을것으로추정된다. 보도연맹원들의성향과관련하여당시당진경찰서에근무했던참고인최 은보도연맹원들은주로산에올라가만세를부르고봉화올리던사람들이많았다고진술하였다. 56) 반면에참고인김종하 54) 박찬승, 근현대당진지방의정치사회적동향과지역엘리트 지방사와지방문화 제 7 권제 2 호. 2004, 205 쪽. 55) 참고인정성운, 김영진면담보고서 ( ); 참고인이재훈 ( ); 참고인윤재영 ( ); 참고인이도철 ( ); 참고인김종태 ( ); 참고인김대기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63

30 제 3 권 는보도연맹원으로죽은사람들은대부분낫놓고기역자도모르는사람들이며, 도장을왜찍는지도모르고찍어준사람들이라고했다. 57) 3) 태안지역태안의경우행정구역상은서산의관할에속하였지만태안경찰서가서산경찰서와는독립해서존속을하였기때문에예비검속과처형이서산과는다르게이루어졌다. 이지역신청인곽영철에의하면서산군 ( 현재는태안군 ) 원북면황촌리의경우마을전체에서좌익이심하였으며, 마을젊은이들은대부분남로당에가입하였다고한다. 가입이유는당시그것이마을의분위기였기때문이며, 몇몇사람이가입을하니까대부분따라서가입을했다고한다. 58) 이처럼남로당에가입을했던경우도그동기가사회주의국가건설이나혁명같은거창한이념을공명 ( 共鳴 ) 해서라기보다는, 단순히마을사람들의공동체의식의발현으로가입한경우가많았다. 그밖에도신청인심상천에따르면부심명록은좌익활동후보련 ( 보도연맹 ) 에가입하였다고하며, 당시마을에는 15명정도가보도연맹원으로몰려다녔다고한다. 그들은태안면남문리 1구에있는보도연맹사무실에서무슨회의같은것을하기도했다고한다. 59) 보도연맹사무실이있던건물은아직도현존하고있으며, 약 30여미터거리에태안경찰서가위치하고있었다.([ 사진 1, 2] 참조 ) [ 사진 1] 보도연맹사무실이있던곳 [ 사진 2] 태안경찰서자리 태안경찰서 56) 참고인최 ( ) 57) 참고인김종하면담보고서 ( ). 58) 신청인곽영철은당시만 16 세 (34 년생 ) 로서산중 3 학년에재학중인학생으로당시상황을비교적소상하게기억하고있었다.( 신청인곽영철진술조서 ( )). 59)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3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4) 홍성지역홍성지역의신청건수는총 8건이며그중 7건의신청인이희생자가보도연맹에가입을했다고진술하였다. 그이유는신청인들대부분이같은마을사람들로당시사정을서로공유할수있었기때문으로보인다. 60) 이들의가입경위역시좌익과는무관한경우가대부분이라고진술하고있는데, 경찰이보련에가입할경우장래성도있고발전할수도있다고회유한경우, 61) 동네에서똑똑한사람들은모두다가입했다고하는경우, 62) 나중에동네사람들이알려주어서가입한사실을알게된경우, 63) 사유는모르지만어딘가에도장을찍어준경우 64) 등이있다. 홍성군의경우는좌익활동경험이있는자들, 특히해방직후인민위원회, 농민조합등에서주도적으로활동을하였던이강세, 이차흥, 박종세, 전주봉, 김정환, 유문규, 최재환등이가입을했다는증언도있다. 65) 이강세 ( 李康世 ) 는이지역농민조합장을지낸인물로, 신청인이종민에따르면보도연맹홍성지부선전부장을지냈다고도한다. 66) 5) 보령지역보령지역의신청건수는총 3건에불과하다. 신청인이은규의부이준직 ( 李畯稙 ) 은보령군남로당총책이익규의영향으로가입했으며, 67) 신청인박종갑의부박창규 ( 朴昌圭, 다-3941호 ) 는같은마을사람이천희 ( 소설가이 의형 ) 의영향으로가입했다고한다. 68) 한편, 행형기록조회결과박창규 ( 朴昌圭, 다-3941호 ) 와최돈규 ( 崔敦奎, 다-6526호 ) 는포고령제2호위반사실 ( 무허가집회, 삐라살포등 ) 이있는걸로보아보도연맹에가입했을개연성이높다. 69) 60) 총 8 건중 5 건의신청인이갈산면상촌리에거주하고, 2 건이은하면대율리와금국리에거주한다. 신청인이마을별로편중되어있는것은비단홍성뿐만아니라서산, 당진등에서도마찬가지인데희생자가그마을에국한되어있기때문이아니라, 홍보부족등으로많은유족들이신청을하지못했기때문으로사료된다. 61) 신청인황선항진술조서 ( ). 62) 신청인장국진진술조서 ( ). 63) 신청인전병목진술조서 ( ); 신청인김수일통화조사서 ( ); 신청인황창섭진술조서 ( ). 64) 신청인박영원진술조서 ( ). 65) 이태현의증언 ( 장규식, 앞의글에서재인용, 133 쪽 ). 66) 신청인이종민진술조서 ( ). 67) 신청인이은규진술조서 ( ). 68) 신청인박종갑진술조서 ( ). 69) 대전지법홍성지원, 형공제 432 호. ; 대전지법홍성지원, 형공제 35 호.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65

32 제 3 권 6) 부여지역 부여지역의신청건수도총 3건이다. 신청인강철민은부강일구 ( 姜日求 ) 가보도연맹에가입을했는지여부는알수없지만, 일제강점기에부여군에서계몽운동과독립운동을했던칠모회소속이었다고진술하였다. 70) 신청인류익렬에따르면류인성 ( 柳寅聖 ) 과류인길 ( 柳寅吉 ) 은좌익활동을하다가보련에가입했다고한다. 71) 신청인류황렬은부류인길 ( 柳寅吉 ) 의보도연맹가입여부에대해서는 잘모르겠다 고했으나, 벽보붙이는일로해서전쟁나기전에약 4개월정도수감된적이있다고했다. 72) 부여읍중정리당리마을은류기섭 ( 신청인류익렬의종조부 ) 의영향으로류씨집안을중심으로사회주의세가강했던것으로보인다. 류기섭은지역의뜻있는사람들과문인회를만들고그모임의총무를맡는등활발한활동을하다가, 1933년일명 금강문인회사건 73) 으로옥고를치렀다고한다. 한편, 일부유족은 2003년 6월 17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피학살자유족증언대회 에서부여지역보도연맹원희생사실을 금강문인회학살사건 으로증언한바있다. 74) 7) 요약 위에서살펴보았듯이신청인조사결과진실규명대상자가보도연맹에가입한사실을인정하거나기억하는경우는신청인 36명중 15명으로전체의 41% 이다. 나머지대부분신청인들은진실규명대상자들의보도연맹가입여부를잘알지못하고있었다. 대상자가보도연맹에가입한경우에도명백히과거전력 ( 좌익 ) 이문제가된경우는 36명중 6명정도에불과하다. 나머지대상자들은대부분과거좌익전력과는무관하게가입된경우로보인다. 그이유는 1949년이후관의압력과회유에못이겨보도연맹에가입하였거나, 70) 신청인강철민진술조서 ( ). 71) 신청인류익렬진술조서 ( ). 72) 신청인유황열진술조서 ( ); 한편, 행형기록조회결과류인길의전과사실은조회되지않았음.( 조사 3 팀 -520, ) 73) 금강문인회사건 : 부여농촌적화공작사건 혹은 부여공산주의자협의회사건 이라고도한다 년부여지역의혁신청년들은 공산주의자협의회 를결성하였다. 책임대표자 ( 이호철 ), 조사부 ( 노명우 ). 조직부 ( 유기섭 ), 선전부 ( 오기영 ), 평의원 ( 강일구, 최재봉 ) 등이었다. 이들은활동이부진하자 1933 년 6 월경조직을자진해산하였다. 이들은동년 9 월 국제무산청년데이 (9 월첫번째일요일 ) 를즈음해서불온삐라를수송했다는혐의등으로대거검거되기시작하였으며, 앞서언급한조직이경찰에발각된것도이사건을수사하는과정에서였다. 그후이들은무려 3 년동안미결수생활을하면서온갖고문과협박, 혹은전향요구에시달려야했다.( 부여군지편찬위원회, 부여군지제 2 권 - 부여의역사,2003, 262 쪽 ~266 쪽.). 74) 그러나 보도연맹원희생사건 과 ' 금강문인회사건 ' 은사회주의사상을가진자에대한핍박이라는공통점은있으나, 전혀다른시대에발생한것이어서두사건을동일시하는것은적합하지않다 년상반기조사보고서

3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당시보도연맹에가입하지않으면불이익을당할것이라는우려도있어서자의반타의반으로가입한사람이많았기때문으로보인다. 75) 종합하면충남서부지역의보도연맹사건희생자는원래가입대상자였던좌익활동경력의 전향자 도있었지만, 좌익사상이무엇인지도모른채단체에가입했던사람은물론자신이그러한단체에가입한사실조차도모르고있었던일반농민들이다수포함되어있었던것으로보인다. 2. 사건경위가. 예비검속 1) 예비검속의주체충남서부지역에서예비검속은지역에따라차이는있으나 1950년 6월 25일전쟁발발직후부터 7월 10~13일경까지진행되었던것으로보이며, 예비검속의주된수행주체는경찰이었다. 그외에특무대나군, 그리고우익단체등도경찰의예비검속과정에일부관여하였을것으로추정되나현재까지의조사로는밝혀지지않았다. 전쟁발발직후인 1950년 6월 25일내무부치안국장 ( 장석윤 ) 은전국각도의경찰국장에게 전국요시찰인단속및전국형무소경비의건 이라는제목의비상통첩을전언통신문으로내려보냈다. 6월 25일의전언통신문에연이어후속조치들도뒤따랐다. 6월 29일에는 불순분자구속의건, 6월 30일에는 불순분자구속처리의건, 7월 11일에는 불순분자검거의건 이잇따라하달되었으며, 경찰의예비검속은이러한일련의통첩을통하여진행되었다. 6월 25일지시된전언통신문의내용은 전국요시찰인전원을경찰에서구금할것 을지시하는것이었다. 76) 문제는 요시찰인전원을구금하라 는내용속에보도연맹원도포함되어있느냐이다. 요시찰제도란일제강점기일본경찰이독립군들을감시하기위해만든관행으로해방후우리경찰에그대로승계되었다. 77) 그것은말그대로요주의인물을 75) 서중석, 조봉암과 1950 년대 ( 하 ) 역사비평사, 2000, 607 쪽 ; 최호근, 제노사이드 - 학살과은폐의역사, 책세상, 2005, 410 쪽. 76) 전국요시찰인단속및전국형무소경비의건 ( 城署査제 1799 호. 6 월 25 일 14:50), 진실화해위원회입수경찰문서. 77) 경찰청, 민간인불법사찰의혹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백서, 범신사, 2007,63 쪽.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67

34 제 3 권 감시하는제도인것이다. 당시경찰의시각에서보면보도연맹원은아직까지전향과정중에있는자들이기때문에당연히요시찰대상이다. 일선경찰서에서발견된 요시인명부 에도보도연맹원을요시찰대상자로분류하고있는경우를볼수있다. 78) 이러한사실은당시보도연맹원도다른요시찰인과마찬가지로 6월 25일의전언통신문에근거하여예비검속되었음을보여주는것이다. 79) 실제로진실규명대상자중에도전쟁당일이나그다음날바로경찰에연행된경우도있다. 80) 즉, 경찰은 6월 25일지시된이내용에따라보도연맹원및요시찰인을검속하기시작하였으며, 그이후연이은지시에의해검속의강도가점점더강해졌을것이라고추측된다. 일반적으로전쟁초기보도연맹원의예비검속은치안국통첩에따라경찰이전담하였으나, 1950년 7월중순이후에는헌병대, 군등경찰이외기관이다수관여한것으로알려져있다. 81) 한편,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조사내용역시 개전초기에는전국적으로각경찰서에서경찰이주체가되어보도연맹원을구금하였다고판단되며, 7월 8 일계엄령이선포되어경찰의사무가군의관할로이관되고, 7월 12일 체포 구금특별조치령 이발령된이후에는계엄사령관관장하에계엄군의주도로군과경찰이합동하여예비검속을진행하였다 고하고있다. 82) 충남서부지역의예비검속이전쟁발발후비교적초기에진행된사실과이지역에상시주둔했던군부대가없었던점을고려하면, 이지역의예비검속은대부분경찰이전담하였던것으로판단된다. 2) 예비검속과정 가 ) 서산지역 서산지역의예비검속은 1950년 6월 25일에서 7월 12일사이에이루어진것으로추측된다. 서산에서경찰이철수하기시작한것이 1950년 7월 12일이기때문이다. 83) 서산의각 78) 전북고창경찰서에서발견된 요시인명부 에는각 20 명, 5 명, 5 명등 30 명의보도연맹원들이기재되어있다.( 경찰청,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백서,2007, 282 쪽.) 79) 그이후 보도연맹원 이란단어를 요시찰인 과병행하거나독립해서사용한예가많이있으나, 이것은보도연맹원의수가다수이며그인원이별도의관리를받고있었기때문이지, 보도연맹원이요시찰인의개념밖이라는의미는아니다. 80) 참고인백명숙 ( ). 81) 김선호, 국민보도연맹사건의과정과성격 경희대석사학위논문, 2002, 39 쪽. 82)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백서, 2007, 292 쪽. 83) 서산경찰서연혁사 에는 동년 7 월 12 일인접의예산, 홍성서 ( 署 ) 가적에피탈 ( 被奪 ) 되어퇴로가막히자, 익일인 12 일오후 3 시 30 분주신곤 ( 朱信坤 ) 서장이하전직원 150 명은관하부석면창리항을출범 ( 出帆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3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지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일차로관할지서에구금되었다가서산경찰서로이송된것으로보인다. 이와관련된신청인들의진술내용도대체로일치하고있다. 명창근 ( 明昌根, 다-741호 ) 은아버지명인수 ( 서산지역건국준비위원회에서활동 ) 를대신해서예비소집에응했는데, 6월 28일오전에해미지서에서보도연맹회의가있다는전갈을받고집을나갔다고한다. 84) 그외다른신청인들의진술내용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이창석 ( 李昌錫, 다-1443 호 ) 은전쟁발발며칠후에처가에있다가집에돌아온후, 경찰이찾으러왔다는말을듣고고북지서로자진출두하였으며, 85) 백상기 ( 白尙基, 다-6374호 ) 는 6월 25~26 일경사복경찰이와서연행해갔다. 86) 김동현 ( 金東鉉, 다-9538호 ) 은전쟁발발며칠후저녁녘에부석지서순경이와서 서산경찰서에서대한청년단간부회의가있으니, 부석지서로나와서같이가자 고해서순경을따라지서로갔다. 87) 고영목 ( 高泳穆, 다-9539호 ) 은 7월 6일 ( 음력 5월 21일 ) 사복경찰두명이와서같이나갔으며, 88) 이지택 ( 李之澤, 다-9541호 ) 은 7월초에집으로찾아온누군가에의해연행되었다. 89) 그밖에해미면관유리의보도연맹원 30여명은당시이장이회의가있다고소집하여자진출두하였다고한다. 90) 당진군대호지면과정미면의보도연맹원들은대부분대호지지서와정미지서를거쳐서산경찰서로예비검속되었다. 당시이두지역은서산군관할이었기때문이다. 대호지면두산리의보도연맹원김임춘 ( 金壬春, 다-3212호 ) 외 11명은 6월 30일에서 7월 6일 ( 음력 5 월 21일 ) 사이에예비검속되었으며, 91) 정미면의권병직 ( 權柄直, 다-9999호 ) 도전쟁발발며칠후정미지서로연행되었다. 92) 나 ) 당진지역이지역진실규명대상자들은전부대호지면과정미면에거주하고있었기때문에대부 후퇴하였다 고되어있다.( 서산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8 년. 644 쪽 ) ; 이와관련하여같은자료의다른쪽에서는예산, 홍성서가피탈된시점을 7 월 11 일로기술하고있다.( 동일자료, 681 쪽.) 84)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85) 신청인이정수통화 ( 이메일포함 ) 보고서 ( ). 86) 신청인백승찬 ( ). 87) 신청인김길환진술조서 ( ). 88) 신청인고봉규진술조서 ( ). 89) 신청인이지황진술조서 ( ). 90)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91) 참고인김종학, 김종하, 김우철면담보고서 ( ). 92) 신청인권학중진술조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69

36 제 3 권 분서산경찰서로예비검속되었다. 이두곳을제외한당진의각지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일차로각지서단위로구금되었다가당진경찰서로이송된것으로추정된다. 당진에서경찰이후퇴한시점은기록마다조금씩다르다. 당진군지 에의하면 당진에인민군이들어온것이 7월 10일이었다. 경찰이후퇴한뒤였으므로그들은아무저항없이당진에들어왔다 고하여경찰의후퇴시기를 7월 10일이전으로잡고있다. 93) 한편, 당진경찰연혁사 에는 단기 4283년 7월 12일부득이남하를결의함. 전직원이선편을이용하여충남서해안을우회풍도, 삽시도, 개야도를거쳐군산에상륙했다 고되어있다. 94) 이러한기록을기준으로한다면예비검속은이르면 7월 10일이전, 늦으면 7월 12일경까지진행된것으로보인다. 다 ) 태안지역태안에서예비검속은 1950년 6월 25일에서 7월 12일사이에있었던것으로보인다. 태안에서경찰이철수하기시작한것은 1950년 7월 12일이기때문이다. 95) 태안전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일차로각지서단위로구금되었다가태안경찰서로이송된것으로보인다. 신청인들의진술에나타난예비검속당시의상황은다음과같다. 곽영욱 ( 郭永頊, 다 -2394호) 은 6월말~7월초순경안면이있는순경이점심때집으로와서데려갔으며, 96) 심명록 ( 沈明祿, 다-7949호 ) 은이발소에갔다가연행되었는데그후태안경찰서경찰이그사실을알려주었다. 97) 참고인정낙관의경우경찰이아버지를연행하려다아버지가없자대신논에서일하던삼촌을연행해갔다고한다. 98) 한편, 당시태안경찰서에순경으로근무했던참고인이 은이러한예비검속에대해서충남경찰국의지시가있었다고진술하였다. 99) 93) 당진군지편찬위원회, 당진군지 ( 상권 ), 1997, 534 쪽. 94) 당진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9 년, 404 쪽. 95) 서산경찰서연혁사 에는 당시분리되어있던태안서역시동일 (7 월 12 일 ) 오후 5 시경남면신온리에서출범후퇴하였다 고되어있다.( 서산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8 년. 644 쪽.). 96) 신청인곽영철진술조서 ( ). 97)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98) 참고인정낙관 ( ). 99) 참고인이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3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라 ) 홍성지역홍성에서예비검속은 1950년 6월 25일에서홍성에서경찰이철수하기시작한 7월 11일사이에있었던것으로보인다. 100) 홍성전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일차로각지서를거처홍성경찰서상무관에구금되었다고한다. 101) 신청인들의진술에나타난예비검속당시의상황은다음과같다. 황은동 ( 黃殷東, 다 -4524호) 은 7월 9일 ( 음력 5월 24일 ) 홍성경찰서소속경찰이와서 경찰서에볼일이좀있으니같이가자 고하면서데려갔다. 102) 박상화 ( 朴尙和, 다-4525호 ) 는전쟁후어느날지서에서오라고했을때아내가만류했음에도 내가무슨죄를지었느냐 며지서로나갔다. 103) 장영환 ( 張英煥, 다-7730호 ) 은저녁때트럭에실려서홍성쪽으로갔으며, 104) 김종갑 ( 金鍾甲, 다-8460호 ) 은갈산지서순경이와서연행해갔다. 105) 박봉석 ( 朴鳳錫, 다-9577호 ) 은 6월 30일이나 7월 1일오후 3시경논에서못줄을잡고있었는데사복형사두명이와서데리고갔으며, 106) 이강세 ( 李康世, 다-10510호 ) 는 6월 27 일논에서일을하던중홍성경찰서소속경찰에게연행되어갔다. 107) 이강세는 홍성경찰서연혁사 에도등장할정도로이지방에선알려진좌익계인물이기때문에, 그가연행된날짜는예비검속일자를확인하는중요한기준이될수있다. 108) 즉예비검속지시가내려왔을때가장우선적인연행대상자가이강세였을것이기때문이다. 109) 한편, 이지역신청건중전천수 ( 田千秀, 다-8990호 ) 는유일하게전쟁전인 6월초에연행되었다고하며, 사망일도 6월 25일이나 26일이라한다. 110) 그러나이는착오에기인한 100) 홍성경찰서연혁사에의하면 단기 4283 년 7 월 11 일홍성을후퇴, 동년 7 월 12 일광천을후퇴하여 7 월 14 일간치 판교에서교전타가패전하여금강을도하하여동년 7 월 19 일이리시가전에참가하였다 고되어있다.( 홍성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9 년, 122 쪽.). 101) 참고인고광성 ( ). 102) 신청인황선항진술조서 ( ). 103) 신청인박기만진술조서 ( ). 104) 신청인장국진진술조서 ( ). 105) 신청인김수일통화조사 ( ). 106) 신청인박영원진술조서 ( ). 107) 신청인이종민진술조서 ( ). 108) 단기 4379 년 10 월 17 일오전 2 시를기하여관하갈산구항지서가인민위원회 이강세를위시한악군 ( 惡群 ) 에게피습당하여직원구타又는지서청사及전화기타시설파괴를당하고 하략 ( 홍성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9 년, 109 쪽 ) 109) 이강세 (1909~1950): 홍동면금당리생으로홍동공립보통학교를졸업. 사촌이관세 ( 광주학생운동당시공주고보의맹휴를주도한인물로해방후홍동면자치위원회와인민위원회에서활동 ) 의영향을많이받았으며훗날홍성군농민조합장으로활동하기도했음.( 이번영, 앞의책, 191 쪽 ) 110) 신청인전병목진술조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71

38 제 3 권 것으로보이며, 같은마을의신청인박영원과참고인박우석에의하면전천수의경우도다른희생자들과마찬가지로전쟁발발후예비검속되었으며용봉산에서시신을수습한사실이확인되었다. 111) 마 ) 보령지역 보령에서예비검속은 1950년 6월 25일에서 7월 13일사이에있었던것으로보인다. 보령의각지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일차로각지서를거쳐보령시대천동소재농협창고에구금된것으로보인다. 112) 그러나주산면과같이보령시내에서멀리떨어진지역은해당지서에서구금을시켰던것으로추정된다. 113) 보령에서경찰이후퇴한시점에대해서는이견 ( 異見 ) 이있을수있으나 7월 13일오후로볼수있다. 이와관련해서 보령경찰서연혁사 에는 4283년 7월 14일에중과부적으로당 에서도작전상부득이후퇴 ( 하략 ) 라고기록되어경찰의후퇴일이 1950년 7월 14일임을밝히고있다. 114) 그러나일제시대부터한국전쟁이후까지경찰관으로근무하였던이향우의진술 115) 과 홍성경찰서연혁사 116) 등에의하면보령에서경찰이후퇴한시점은 1950년 7월 13일오후일가능성이높다. 신청인들의진술에나타난예비검속과정은다음과같다. 박창규 ( 朴昌圭, 다 호 ) 는 7월 9일 ( 음력 5월 24일 ) 논에서모내기를하다가동네사람 5명과함께같이연행되었으며, 117) 최돈규 ( 崔敦奎, 다-6526호 ) 는전쟁발발며칠후경찰두명에의해연행되었으며, 118) 이준직 ( 李畯稙, 다-10608호 ) 도전쟁발발며칠후모내기중에경찰두명에의해 111) 신청인박영원진술조서 ( ); 참고인박우석 ( ). 112) 이선행, 국민보도연맹원학살사건에대하여 - 보령지역사건을조사 보고하며, 보령문화제 14 집, 2005, 214~215 쪽. 113) 주산면보도연맹원들은이후에따로사살되었다.( 참고인황의호 ( )). 114) 보령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9 년, 539 쪽. 115) 1996 년 9 월지역향토사연구단체인 보령문화연구회 의황의호가이향우를만나한국전쟁당시의경험담을채록정리한내용이 保寧文化 ( 제 7 집 ) 에수록되어있다. 이에따르면이향우는일제시대부터 1948 년 3 월까지보령경찰서소속으로재직하다가경사로퇴직하였으나, 9 ㆍ 28 수복후보령경찰서에다시복직하여대천농협창고에수용되었던보령지역좌익및부역혐의자의분류심사를담당했다. 이향우의진술에의하면보령에서경찰이후퇴한것은 7 월 13 일오후라고한다. ( 이향우 ( 대담정리 : 황의호 ), 내가겪은 6 25 保寧文化 ( 제 7 집 ), 보령문화연구회, 1998.) 116) 홍성경찰서연혁사 에의하면 1950 년 7 월 11 일홍성을후퇴, 동년 7 월 12 일광천을후퇴하여 7 월 14 일간치 판교에서교전타가패전하여금강을도하하였다 고되어있다. 간치 판교는보령보다도남쪽에위치하고있는점을감안한다면보령경찰서의후퇴일은 7 월 13 일오후일가능성이크다.( 홍성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9 년, 122 쪽.). 117) 신청인박종갑진술조서 ( ). 118) 신청인최정진진술조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3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남포지서로연행되었다. 119) 바 ) 부여지역부여의예비검속은전쟁발발후부터부여에서경찰이철수하기시작한 7월 14일사이에있었던것으로보인다. 120) 부여의각지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일차로관할지서를거쳐부여경찰서유치장에구금되었던것으로보인다. 신청인들의진술에따르면, 강일구 ( 姜日求, 다-926호 ) 는논에서일하다가경찰에게잡혀갔으며, 121) 유인길 ( 柳寅吉, 다-2860호 ) 은 7월 11일 ( 음력 5월 26일 ) 경찰서로잠깐와서서약서만쓰고가라 는전갈을받고경찰서로나갔으며, 122) 유인성 ( 柳寅聖, 다-5142호 ) 은 7월 13일 ( 음력 5월 28일 ) 부여경찰서형사두명이와서 오늘중으로부여경찰서로와서잠깐자술서를쓰고가라 는이야기를듣고부여경찰서로자진출두하였다. 123) 사 ) 요약충남서부지역의보도연맹원등에대한예비검속은 1950년 6월 25일전쟁발발과함께시작되어경찰이후퇴할때까지진행된것으로추정된다. 지역별경찰후퇴일은서산 7월 12일경, 당진 7월 12일경, 태안 7월 12일경, 홍성 7월 11일경, 보령 7월 13일경, 부여 7월 14일경이다. 보도연맹원들에대한소집은지역별로경찰이직접연행한경우도있지만, 지서나면사무소에서회의가있으니출두하라는통지가와서자진출두한경우도있다. 평소에도이러한소집은종종있었으며소집이있을때면대부분의보도연맹원들은빠짐없이참석했다고한다. 참석하지않으면의심을받을수도있기때문이다. 124) 소집된보도연맹원들은관할지서에구금되거나곧바로해당경찰서로이송되어경찰서유치장이나부근창고에구금되었다. 119) 신청인이은규진술조서 ( ). 120) 부여경찰서연혁사 에의하면 4283 년 6 월 25 일북한괴집 ( 傀集 ) 의불법남침으로 UN 군의작전상지시에의하여동년 7 월 14 일관지 ( 官地 ) 를철수하였던바 ( 하략 ) 라고되어있다.( 부여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9 년, 745 쪽.). 121) 신청인강철민진술조서 ( ). 122) 신청인유황렬진술조서 ( ). 123) 신청인유익렬진술조서 ( ). 124) 이선행, 국민보도연맹원학살사건에대하여 - 보령지역사건을조사 보고하며 보령문화제 14 집, 2005,, 201 쪽.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73

40 제 3 권 3) 예비검속이후의경과 경찰서구금과대전형무소이송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들이그후어떻게되었는지에대해서는여러경우가있었을것이나일차적으로해당지역경찰서에구금된것으로보인다. 이후의행보는신청인명장근의진술내용으로일부추정해볼수있는데, 그일부를소개하면다음과같다. 125) 형님은 1950년 6월 28일오전에해미지서에서나와서보도연맹회의가있다고집에서나가셨습니다. 저는그날오후에집에도착해서어머니로부터그사실을전해들었습니다. ( 중략 ) 해미지서에계시다가 29일정도에서산경찰서로갔을것입니다. 그리고 30일날이해미장날이었는데그날제가장에갔습니다. 그때트럭과버스 10여대에사람들을가득싣고해미에서홍성방향으로가는것입니다. 사람들이창문밖으로손을흔들고그랬던기억이납니다. 그때그차에형님은없었고그사람은제가국민학교육상선수할때청년부육상선수여서얼굴을알고있었던고영귀라는사람도있었습니다. 그런데그날차로끌려갔던약 400~500명은그뒤로어떻게되었는지아무도모릅니다. 아무도시신을수습하지못했습니다. 명장근의진술중트럭과버스 10여대에사람들을가득싣고홍성쪽으로갔다고하는대목은서산경찰서에예비검속되어있던사람들을대전형무소로이송한것을지칭하는것으로보인다. 126) 다른신청인 참고인진술에서도당시이지역을비롯한충남일원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중일부를대전형무소로이송하였다는진술은곳곳에서나타나고있다. 127) 전쟁초기에태안에서소방대원으로근무하다가수복후에경찰관이된참고인이 도태안에서경찰이후퇴할때일부는대전으로실어갔다고진술하였다. 128) 또한일부미국문서에도이를뒷받침하는글이발견되고있다. 1950년 8월 12일미병참사령부가미8군에보낸통신문에는충남서산에서보도연맹원 400명이트럭에실려대전으로끌려가는장면을미군군속이목격했다고한다. 129) 125)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126) 당시서산에서대전으로가는길은해미를거쳐홍성을지나게되어있다. 127) 신청인곽영철진술조서 ( );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128)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129) 미병참사령부가미 8 군에보낸통신문에실려있는보고서의제목은 Conditions in North Korean Held Territory"( 인민군점령지역의상황 ) 이며, 그내용은다음과같다. 50 년 7 월 3 일인민군이탱크를앞세워인천에진입했다. 7 월 6 일수원으로피난하기위해인천을떠났으나도중에수원이함락됐다는소식을들었다. 해안으로가한국군틈에끼어배에올랐다. 배는충남서산에정박했다. 그러나대전으로갈수없었다. 트럭 6 대모두가보도연맹원 400 명을대전으로실어나르는데동원되었기때문이다. ( 김기진, 한국전쟁과집단학살, 푸른역사, 2006, 49 쪽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4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그러나지금까지이러한진술을뒷받침해줄정부의공식문서나자료는없었다. 그런데이번진실화해위원회의조사과정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들이대전으로이송되었음을추정케해주는문건이확인되었다. 서산경찰서연혁사 중 직원순직급중대피난사항 ( 直員殉職及重大遭難事項 ) 항목에서경위조정찬 ( 趙偵燦 ) 의순직사유에다음과같은내용이발견되었다. 當時泰安署所屬 130) 左記職員은同年 (1950년) 七月九日左翼極烈分子 ( 保聯 ) 等을大田刑務所에押送途中洪城長谷面에서 의交通妨害로因한自動車發火事故로不幸히도燒死殉職하였음. 131) ( 당시태안서소속좌기직원은동년 (1950년) 좌익극렬분자 ( 보련 ) 등을대전형무소에압송도중홍성장곡면에서 의교통방해로인한자동차발화사고로불행히도소사순직하였음. ) 이와관련하여태안지역신청인심상천의다음진술은위기록과어느정도부합한다. 제부친과사람들이포승줄에묶인채트럭에실려대전으로이송되는것을모친이직접목격했다고합니다. 그후당시트럭을운전하던사람이동네에와서모친에게말하기를 다죽을사람들이라서내가일부러사고를냈다. 사람들이많이다쳤다 고하면서, 다친부친이 애들데리고큰집에가서살아라 는말을모친에게전하라고했다고합니다. 132) 이렇게보도연맹원들을대전형무소로이송한것은비단서산이나태안지역에만국한된것은아니다. 홍성, 부여, 청양등충남의대부분지역에서이송 ( 移送 ) 이있었던것으로보인다. 당시태안지역에서경찰로재직했던이 에따르면경찰이후퇴하기전홍성지역보도연맹원들을대전형무소로이송하는것을직접목격했다고하며, 133) 부여지역에서예비검속되었다가풀려난허동식이생전에주변에증언한바에따르면트럭한대분량이대전으로갔다고한다. 134) 또한전쟁당시논산서에근무했던이 도논산지역의보도연맹원들을예비검속한후일부는대전으로이송하고나머지는유치장에가두었 130) 태안경찰서는당시는독립된관서였으나 1956 년서산경찰서에흡수되었다. 131) 서산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쪽 ( 국가기록원에소장된원본에는페이지수가두가지이상찍혀져있는데그중가장큰숫자를인용함. 이하동일 ). 132)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133) 이 은 1 차통화조사에서는보도연맹원들상당수를직접대전으로이송했다고했으나 ( ( )), 2 차통화조사에서는홍성지역에서이송하는것을보았을뿐이라고진술을번복하였다.( ( )). 134) 신청인류익렬진술조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75

42 제 3 권 다고한다. 135) 대전형무소로이송한것과관련하여당시태안경찰서순경으로근무했던이 은대전으로이송한사람들은 예비검속초기검거자 들이라고하면서이에대한지시가충남도경에서내려왔다고하였다. 136) 이에대해당시소방대원이었던이 는대전형무소로보낸자들은 주동자급 들이었다고증언하였다. 137) 이러한증언과자료에비추어보면보도연맹원들을예비검속한후일부는경찰서유치장이나농협창고등에가두었으며, 다른일부는대전형무소로이송하였던것은사실로판단된다. 그리고이러한사실은뒷날대전의산내골령골에서발생한대규모살상행위를뒷받침해주는근거가될수있다. 나. 희생상황및희생현장 1) 서산지역가 ) 희생상황서산지역보도연맹원희생일과관련하여신청인명장근은 1950년 6월 30일이라고진술하고있으며, 신청인은희생소식을듣자마자수레 2대및인부 2명과함께메지골로가서시신들을수습했다고한다. 138) 반면에대호지면에거주하는신청인들의진술은사건발생일이 7월 10일에서 7월 12일사이임을시사하고있다. 이들의경우진실규명대상자의시신을수습한날이대체로 7월 10일에서 7월 13일경이며, 제삿날도대체로 7월 9일에서 7월 12일까지로일치한다. 진실규명대상자가집중되어있는대호지면두산리는현재는당진군관할이지만당시는서산군의관할이었다. 이마을은부안김씨 ( 扶安金氏 ) 집성촌으로당시 150호정도가살았던비교적큰마을이었다. 참고인김종하에따르면 7월 6일 ( 음력 5월 21일 ) 집안어른의장례식이있었는데, 마을의호상계원들이대거참여하지않았다고한다. 그래서무슨일인가하고알아보았더니대부분지서에잡혀가서오지않았다고했다. 그리고이때잡혀간사 135) 이 ( ) ; 한편,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NARA) 소장사진중에는 1950 년 7 월초대전형무소정치범처형과관련된것이있다. 동사진은정치범들이차에서내려진후에경찰, 헌병등의통솔을받고있는장면인데, 사진속의트럭에 논산읍 이라는표지가선명한걸로봐서논산의정치범들이대전으로이송된것으로사료된다.( 박도, 지울수없는이미지, 눈빛, 2004, 164 쪽.) 136) 참고인이 ( ). 137)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138)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4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람들의시신이대부분 7월 10일에서 13일 ( 음력 5월 25일~28일 ) 사이에수습이되었다고한다. 139) 신청인이나참고인들의진술에비추어보면보도연맹원들이메지골에서여러날에걸쳐살해되었을가능성도있다. 그러나부근에거주하는목격자들의진술은이러한가능성을반박한다. 참고인이용순에따르면보도연맹원들의총격사살은모내기를한어느날점심때부터해질녘까지있었다고한다. 참고인은 10여명의경찰이 100여명이상의사람들을메지골로끌고가는것을보았는데, 그들의양손은뒤로묶인채허리부분이서로엮어져있었다고한다. 그래서참고인이무슨일인가싶어쫓아갔으나경찰이집으로돌려보냈으며, 그직후총소리가끊이지않았다고한다. 현장에가보니시신들이 30여미터 (m) 정도길게널려있었고몇몇은총상을입었음에도살아서산을내려갔다고한다. 140) 메지골현장에서살아난사람으로는해미면홍천리의전재준을들수있다. 전재준 ( 현재, 사망 ) 이생전에주변에한말에의하면 현장에서정신을잃었다가깨어보니물흐르는소리가들려왔다. 마침목이말라물을마셨는데알고보니사람피였다 고한다. 141) 참고인이용순이그후들은이야기에의하면당시사망자중에는팔봉면사람들이가장많았고, 총을쏜경찰은대부분근처지서소속으로 4명이라고했다. 142) 그밖에메지골에거주하는박정순 (88세) 도당시총소리가오후한나절정도 (2시간이상 ) 연속해서들렸으며, 그날사람들이많이죽었다고진술하였다. 143) 이상의증언들을비롯하여서산경찰서후퇴일및전선상황을종합해보면서산지역보도연맹원희생일은 7월 12일근처일것으로사료된다. 다만일부지역 ( 보령 ) 에서경찰의후퇴일보다 2~3일전에보도연맹원들이희생된사실이있었음을감안한다면, 서산에서도대략 7월 9일에서 12일사이가유력해보인다. 진실규명대상자중메지골에서시신이수습된사람은명창근 ( 다-741호 ), 이지택 ( 다 -9541호), 김병엽 ( 열 )( 다-3210호 ), 김병태 ( 다-3211호 ), 김임춘 ( 다-3212호 ), 김상기 ( 다 -3213호), 김정기 ( 다-3214호 ), ( 다-3215호 ), 김종욱 ( 다-3216호 ), 김영배 ( 金永培, 다 -3217호), 김영배 ( 金英培, 다-3218호 ), 김종헌 ( 다-3219호 ), 김기철 ( 다-3220호 ), 김영기 ( 다 139) 참고인김종하면담보고서 ( ). 140) 참고인이용순면담보고서 ( ). 141)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142) 참고인이용순면담보고서 ( ). 143) 참고인박정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77

44 제 3 권 -7557호), 권병직 ( 다-9999호 ) 등이다. 반면에시신이수습되지못한진실규명대상자들은이창석 ( 다-1443호 ), 고영귀 ( 다-2751호 ), 김동현 ( 다-9538호 ), 고영목 ( 다-9539호 ) 이며이들은대전형무소로이송되어희생되었거나이송도중에희생된것으로추정된다. 이들중고영귀가 6월 30일경홍성방향으로 서산에서대전으로갈때거쳐야함 가는버스에실려있는것을보았다는진술이있다. 144) 한편, 참고인고수국에따르면당시홍성으로실려간사람들이홍성의 구황깨 어디에서전부희생당했다는소문을들었다고한다. 145) 나 ) 희생현장서산시성연면일람1 리에위치한메지골은서산경찰서에서자동차로 10~15 분정도의거리이며, 29번국도를타고북쪽 ( 대산면 ) 으로조금가다보면오른쪽에 메지골 이란이정표가세워진곳에있다. 여기서오른쪽으로조금더들어가면몇채의민가가나오며그뒤로정광산이펼 [ 그림 3] 서산경찰서와메지골쳐져있다. 메지골은지형이 쥐 를닮았다는뜻에서 멧쥐골 로불려왔으나그후메지골로이름이굳어졌다. 희생현장은정광산의아랫부분에있는구릉으로차가다닐수있는도로에 서그리멀지않은곳이다. 메지골 서산경찰서 144)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145)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4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사진 3] 일람리메지골현장 2) 당진지역가 ) 희생상황진실화해위원회에진실규명을요청한당진군신청인들은대부분대호지면과정미면거주자인바, 이지역은전쟁당시에는서산군에속해있었다. 그러므로이들은예비검속과구금에서희생에이르기까지서산군관할보도연맹원들과같은절차를거쳤다. 대호지면과정미면을제외한당진군의다른지역에서도예비검속과살해행위가있었는지여부를알아보기위해, 각마을이장과주민중비교적고령인자들을선정하여참고인조사를하였다. 146) 그결과대호지면과정미면외에당진의다른지역에서도예비검속과살해가있었음이확인되었다. 즉당진지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등은, 당진경찰서에구금되어있다가당진군송악면에있는한진포구의 목캥이 에서살해당한것으로드러났다. 참고인정성운은당시현장에서직접총을쏜경찰관의말을빌려현장에서약 160명 ( 혹은 360명 ) 정도가사살당했다고한다. 146) 참고인정성운, 김영진면담보고서 ( ).; 참고인이재훈 ( ); 참고인윤재영 ( ); 참고인이도철 ( ); 참고인김종태 ( ).; 참고인김대기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79

46 제 3 권 희생당한날짜는당진경찰서후퇴시기및인민군이당진에들어온날짜를고려해보면 1950년 7월 10일 ( 당진군지 ) 이나 12일 ( 당진경찰서연혁사 ) 무렵일것으로사료된다. 당진경찰서연혁사 에따라 7월 12일을경찰후퇴일로본다면이지역의희생추정날짜는대략 7월 9일에서 7월 12일사이가될것이다. 한편, 참고인정성운에의하면합덕지서순경박 과김 등이현장에서카빈총으로보도연맹원등을사살했으며, 현장에서생존한최기성은인민군점령시절에보안대장을하다가수복후바로죽임을당했다고한다. 147) 조사결과총을쏘았다는박 과김 은당시당진경찰서에근무한것으로나타났다. 참고인정성운은박 이라고진술하였으나조사결과박 ( 朴 ) 으로밝혀졌으며 1948년 9월 5일부터 1952년 12월 7일사이에합덕지서에근무한것이확인되었다. 148) 또한김 도 1952년 6월 2일까지당진경찰서에근무한것이확인되었다. 149) 이에비해수복후당진경찰서에서근무했던참고인구 은한진포구 ( 목캥이 ) 에서처형당한보도연맹원이 20여명정도라고진술하고있다. 150) 그밖에도 경찰이후퇴하면서당진경찰서근처남산에서보도연맹원들을많이죽였다 는진술 151) 도있었으나추가진술을확보하지못하였다. 또한계성2리의 밤절고개 에서도많은사람이희생되었다는진술이있었으나조사결과인민군점령기에일어난일로밝혀졌다. 152) 나 ) 희생현장당진의경우한진포구에있는해변에서총격사살이있었으며, 현지인들은그곳을 목캥이 이라불렀다. 목캥이 이라는지명은해안선이움푹들어간지형을의미하는것이라한다. 153) 당진경찰서에서현장까지는대략 25~30 분정도 ( 약 20km) 의거리이며, 현장은민가와는격리된외진곳이다. 147) 참고인에따르면순경박 과김 은참고인의형과아는사이로참고인의집에자주놀러왔다고한다. 이들은술자리등에서당시상황을무용담처럼이야기했다고하며, 희생된보도연맹원규모와관련하여 160 명인가 360 명 ( 뒷자리 60 명은정확히기억난다고함 ) 을카빈총으로사살했다고한다.( 참고인정성운면담보고서 ( )). 148) 박 과김 에대한퇴직경찰관인사자료요청 ( 조사 3 팀 -958, ) 및이에대한통보 ( 당진경찰서경무과 , ). 149) 충남경찰청사령원부 (1950~1953.). 150) 참고인구 은대부분전문 ( 傳聞 ) 에의존하여진술하였다.( 참고인구 ( )). 151) 윤재영 ( ). 152) 참고인이도철 ( ); 참고인김종태 ( ); 참고인김대기 ( ); 진실화해위원회, 2008 년상반기조사보고서제 1 권, 2008, 418 쪽. 153) 참고인김영진면담보고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4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그림 4] 당진경찰서와목캥이일대 목캥이 당진경찰서 [ 사진 4] 당진한진포구의 목캥이 현장 내려오는길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81

48 제 3 권 3) 태안지역가 ) 희생상황태안지역에서검속된사람들은경찰이후퇴하기전에일부는대전으로이송하고, 남은사람들은 2~3일후서산군태안면평천리 2구뒷산에서집단사살한후시신에불을질렀다고한다. 154) 신청인심상천은당시그곳을지나고있었는데경찰이군데군데보초를서있었고한참동안총소리가났다고한다. 다음날동네사람들이평천리에서사망한시신들을태안면사무소옆고추판매소앞에늘어놓았고유족들이시신을확인한후찾아갔다고한다. 155) 태안의경우는타지역과달리시신들이전부불에탄채발견되었다고하는데, 참고인곽정근의다음진술은당시상황을잘설명해주고있다. 156) 경찰이후퇴한직후시신들을태안면사무소의창고에전부찾아서늘어놓았고광목으로덮어둔것을보았습니다. 시신들은 99구가있었는데총에맞은후전부불에타서그형체가참혹했습니다. 옷가지가거의불에타고남은것은겨드랑이근처에조금남은조각들밖에없었는데유족들이그것을보고시신을식별했습니다. 이에대해참고인김 은당시들리는소문을인용하여, 김이환이라는사람이시신에다휘발유를뿌리고예광탄을쏴서시신이전부불에탔다고한다. 157) 참고인에따르면김이환은경찰도군인도아니었다고하며, 또한우익단체소속인지여부에대해서도알지못한다고하였다. 참고인정복순은경찰이후퇴할때태안한티재에서저녁 5~6시경통행금지를내리고나서사람들을많이죽였다고한다. 158) 참고인조한종은현장에서유해수습을직접한당사자로시신들은엄지손가락을철사로묶어서엮어놓았고, 유해는불에타있었다고한다. 당시현장에는 7구의시신이남아있었는데여러상황으로봤을때기름을뿌리고불을놓은다음, 그건너높은곳에서총을쏜것같다고했다. 159) 154)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155)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신청인곽영철진술조서 ( );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156)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157) 참고인김 ( ). 158) 당시참고인은 21 살의청년으로집안살림이어려워태안까지어른들하고일을하러다녔다고한다. 사건당일저녁태안에서일을하고돌아오는데통행금지가내려져있었다고한다. 나중에어른들께 통행금지가뭐냐 고묻자어른들이 사람을죽이기위해서내려진것이라고했다 고한다.( 참고인정복순 ( )). 159) 참고인조한종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4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한편, 참고인장현태의부장병석 ( 張炳錫, 1916년생 ) 도당시보도연맹으로희생되었는데, 장병석의제적등본에는 단기 4283년 (1950년) 7월 12일하오 10시서산군이북면포지리산번지불상에서 6ㆍ25사변으로인하야사망 이라고되어있다. 흥미로운점은신고자가태안경찰서이북지서주임경사김성옥 ( 金成玉 ) 으로되어있다는것인데, 이로미루어제적등본의사망일시는어느정도신빙성이있어보인다. 제적등본에사망한날로기재된 7월 12일에대해, 서산경찰서연혁사 에는 인접태안서역시고립상태였으므로 7월 12일오후 5시경에남면신온리에서출범후퇴하였다 고기록하고있다. 160) 문제는연혁사에기록된경찰의후퇴시점인오후 5시와, 장병석의제적등본에기록된사망시점인하오 10시가서로불일치하다는점이다. 이에대해연혁사에는태안에서경찰이후퇴를했어도, 일부경찰은아직도남아있었다는것을암시하는기록이있다. 즉 직원순직급중대조난사항 ( 職員殉職及重大遭難事項 ) 란에는다음과같은기록이있다. 當時泰安署所屬故警衛 ( 追敍 ) 崔承哲外 10 名 : 左記職員等은六二五當時傀儡軍이當地까지侵入不能일것이라고豫測한나머지後退치않고끝까지職場을死守하든中同年七月中旬頃 의 한侵攻으로退路가遮斷되어不得已地方山野에避身타가不幸히도敵에게逮捕, 悲慘히虐殺을當하였음. 161) ( 당시태안서소속고경위 ( 추서 ) 최승철외 10명 : 좌기직원등은 6 25당시괴뢰군이당지까지침입불능일것이라고예측한나머지후퇴치않고끝까지직장을사수하든중동년 7월중순경 의 한침공으로퇴로가차단되어부득이지방산야에피신타가불행히도적에게체포, 비참히학살을당하였음. ) 위의기록으로미루어 7월 12일오후 5시에경찰이후퇴를시작했더라도일부경찰은아직도태안에남아있었으며이들이보도연맹원사살을비롯하여나머지뒤처리를하였을것으로추정된다. 결국이상에서살펴본여러가지정황과진술을종합해보면, 당시경찰은 7월 12일경후퇴를준비하거나실행하는와중에급히보도연맹원들을사살하고불을질러증거를인멸하려고했던것으로판단된다. 또한이후인근마을사람들이불에탄시신을태안면사무소옆창고 ( 고추판매소 ) 안에다임시로수습하여모아놓았고, 162) 유족들은타다남은옷가지등을보고시신을수습하여간것으로보인다. 163) 태안지역진실규명대상자중에 160) 서산경찰서, 경찰연혁사 국가기록원소장자료, 1958 년. 644 쪽, 161) 서산경찰서, 경찰연혁사 앞의자료, 645 쪽. 162) 신청인심상천진술조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83

50 제 3 권 서백화산에서시신이수습된사람은백상기 ( 다-6374호 ) 이며, 164) 곽영욱 ( 다-2394호 ) 과심명록 ( 다-7949호 ) 은대전형무소로이송되어희생되었거나이송도중에희생된것으로추정된다. 나 ) 희생현장태안의보도연맹원들이희생된곳은지금까지 백화산한티재 라고알려져왔다. 그러나당시사건현장을목격한참고인등을조사한결과, 실제현장은한티재가아니라태안군평천리 2구에위치한 사기실재 로밝혀졌다. 한티재와사기실재는백화산의한줄기로원래서로이어져있었으나, 현재는도로와태안문화회관, 태안체육관등이건설되어서로분리된것처럼보인다. 사기실재는한티재보다시내쪽에위치하고있으나, 더욱후미진곳으로지금은군부대가자리잡고있다. [ 그림 5] 태안경찰서와희생지역 ( 사기실재 ) 163) 신청인곽영철진술조서 ( );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164) 참고인백명숙통화보고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5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사진 5] 사기실재현장 4) 홍성지역가 ) 희생상황홍성지역에서예비검속된사람들은홍성경찰서상무관에서며칠동안구금되어있다가용봉산으로끌려가살해당했다. 165) 참고인이종립은당시 19세로살해현장에서약 1km 정도떨어진곳에위치한참고인의집에서살해과정일부를목격하였다. 참고인에의하면 1950년 6월 28일경홍성쪽에서트럭 1~2대가용봉산입구로사람들을실어왔으며, 잠시후점심때쯤총소리가들렸다고한다. 이틀뒤현장에갔더니그곳에는두명의여성을포함한수십구의시신들이있었으며, 그후현장에서생존한월산장씨라는사람을통해서거기서죽은사람들이보도연맹원이라는것을알았다고한다. 당시이지역보도연맹원중에는학생이많았는데참고인과한살터울의이흥성 ( 홍북봉신리 ) 도홍성농업학교학생으로보도연맹원이었으며그곳에서사망했다고한다. 166) 165) 참고인고광성 ( ). 166) 참고인이종립면담보고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85

52 제 3 권 희생날짜와관련하여참고인이종립은처음에는 6월 28일이라고했으나추후통화조사에서 6월 28일은전쟁발발이후라는의미이며정확한것은아니라고정정하였다. 167) 홍성경찰서후퇴일이 7월 11일경이었던것을감안한다면이지역의희생일도그즈음이었을것으로사료되며, 대략 7월 8일에서 11일사이가유력하다. 한편, 당시홍성경찰서장이었던박헌교 ( 朴憲敎 ) 는 1990년경한지역신문과의인터뷰에서다음과같이진술했다. 지서별로예비검속한이들을군에집결시켜놓으니특무대에서 1차로거물급을포함약 20~30 명을트럭한대에실어이송했소. 이때보도연맹사무국장박종세 ( 금마면봉서리 ), 농민조합장으로 10월항쟁을주도하고도피하다자수해보도연맹선전부장을맡았던이강세 ( 홍성읍옥암리 ) 등이떠났지. 후퇴하는과정에선무공작원으로이용하려고잘알고지내던이종한 ( 홍동면 ), 김구선 ( 홍성읍 ), 박봉구 ( 은하면 ) 등 3명을빼내고다음날 2차로남은사람모두를트럭두대에실어특무대로이관하고경찰은보도연맹에서손을뗐소. 168) 그러나박헌교의이러한진술내용중어디까지가사실과부합하는지에대해서는검토가필요하다. 박헌교의진술내용중이강세등을 1차로이송했다는것은사실로보인다. 이강세가예비검속된것은 1950년 6월 27일경으로비교적전쟁초기이며, 169) 이시기에검거된사람들은대전형무소로이송되었을개연성이크기때문이다. 170) 그러나그가주장하듯이실제로그이후에경찰이보도연맹에서손을뗐는지에대해서는명확하지않다. 당시충남서부지역에상시주둔했던군부대나특무대는없었던것으로보이며, 대전등지에서파견된특무대원이활동했을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특무대가보도연맹살해에관여를했다하더라도경찰이그과정에서완전히배제되었다고보기는어렵다. 171) 이러한사실은당시용봉산현장을목격한참고인의증언에서도확인이 167) 참고인이종립 ( ). 168) 주간홍성, ( 장규식, 해방후국가건설운동과지역사회의동향 학림제 16 집, 1994, 133 쪽. 재인용 ). 169) 신청인이종민진술조서 ( ). 170) 전쟁당시태안경찰서에서순경으로근무했던참고인이규상은충남경찰국의지시에의하여초기에검거된사람들은대전형무소로이송했다고진술하였다.( 참고인이규상, ). 171) 장소적 시기적인점에서본다면오히려특무대보다는경찰이주도적인역할을했을수도있다. 장소적으로충남서부지역은계엄군이나특무대의주둔부대가없었던데다 계엄령 은 7 월 8 일에선포되고, 체포 구금에관한특별조치령 은 7 월 12 일에발동되기때문에특무대가전면에나서기에는이른감이없지않다. 일반적으로헌병대, 특무대등이주도적인역할을담당한것은 7 월중순이후라고본다.(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경찰청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백서,2007, 292 쪽.); 신청인박영원은아버지박봉석의시신을수습한날을기준으로용봉산 ( 홍성 ) 에서의총살은 7 월 10~11 일경에있었다고하며, 그때는 년상반기조사보고서

5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되는데, 참고인이종립에따르면총격사살이있던날경찰이홍성쪽에서사람들을트럭으로싣고왔다고한다. 172) 이러한상황에비추어볼때당시홍성지역의보도연맹원살해에는특무대와경찰이함께관여했던것으로판단되며, 그과정에서경찰은특무대의지휘를받았을것으로보인다. 당시는계엄하 ( 下 ) 였기에경찰은군의명령을따를수밖에없는상황이었다. 173) 한편, 용봉산이외에행산리이동부락뒷산에위치한폐광 ( 금광굴 ) 의희생경위는명확하지않다. 이곳에서마을사람들의시신을수습했다는장본인은몇년전에사망하였다. 174) 현재로는그사람으로부터사건경위를전해들은후손 ( 신청인 ) 들과몇몇마을사람들이당시의상황을전하고있으나, 대부분은 그곳에서희생자들의시신을수습했다 고하는정도이다. 175) 홍성지역의진실규명대상자중용봉산에서시신이수습된사람은황은동 ( 다-4524호 ), 장영환 ( 다-7730호 ), 전천수 ( 다-8990호 ), 황길동 ( 다-9049호 ), 박봉석 ( 다-9577호 ) 이며, 미신청인이관세의시신도이곳에서수습되었다. 행산리이동부락뒷산의폐광에서시신이수습된사람은김종갑 ( 다-8406호 ), 황길동 ( 다-9049호 ) 이다. 시신이수습되지않은박상화 ( 다-4525호 ), 이강세 ( 다-10510호 ) 등은대전형무소로이송되어희생되었거나이송도중에희생된것으로추정된다. 나 ) 희생현장홍성지역의보도연맹원이희생된곳은여러곳이다. 우선진실규명대상자들의시신이수습된곳만해도세곳이나되는데, 용봉산의두곳과갈산면행산리이동부락뒷산의폐광 ( 금광굴 ) 이그것이다. 이처럼홍성에보도연맹원희생장소가여러곳인이유는다음몇가지로추정된다. 첫째, 타지역보도연맹원들이홍성에서희생된경우가있을수있다. 태안이나서산등다른지역의보도연맹원들이대전형무소로이송될때반드시거쳐야되는길목이홍성이므로이송과정에보도연맹원들이집단사살되었을개연성도있다. 실제로서산지역의신청인이나참고인진술중에는홍성 구황깨 어디서사살당했다는 군인들이올틈이없었다고진술하였다.( 신청인박영원진술조서 ( ). 172) 참고인이종립 ( ) 173) 울산참고인김창록진술조서 ( 진실화해위원회, 울산국민보도연맹사건 2007 년하반기조사보고서, 982 쪽.)). 174) 시신을수습한장본인은희생자박상화 ( 다 -4525) 의동생인박수남이며, 당시홍성군갈산면상촌리에거주하였다. 175) 참고인이기성면담보고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87

54 제 3 권 진술도발견된다. 176) 둘째, 홍성지역은진실규명대상자수가 8명에불과하나실제희생자는그보다훨씬많았을가능성이있다. 그이유는 1949년 11월 30일자수자전향기간이끝났을때자수자현황을보면홍성은 1,380명으로그수가충남의타지역을압도하기때문이다. 177) 구체적인장소는 [ 그림 6] 과같다. [ 그림 6] 홍성지역의희생현장 용봉산과이동부락금광굴 서산방향 용봉산 이동부락금광굴 홍성경찰서 보령방향 청양방향 176)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177) 시 군별자수자수는본청 27 명, 서산 75 명, 당진 36 명, 온양 396 명, 천안 181 명, 예산 56 명, 조치원 58 명, 보령 126 명, 청양 234 명, 공주 278 명, 서천 163 명, 부여 91 명, 강경 429 명, 대전 65 명, 태안 29 명, 대덕 278 명이다.( 동방신문, ; 충청매일,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5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그림 7] 용봉산전경과희생지역 목격자의집 한편, 용봉산의희생현장은두곳으로 [ 그림 7] 의제1지역과제2지역이그것이다. 용봉산은홍성군홍북면에위치하고있으며, 해발 381m의높지않은산이지만산세가수려하고험준하다. 신청인들의주장에따르면두곳모두에서희생자들의시신이수습되었다고한다. 당시이지역에살던참고인이종립은제1지역에서벌어진참상의전후를일부목격했다. 178) 그러나제2지역에서발생한사건에대해서는전혀아는바가없었다. 제2지역에서시신을수습했다고주장하는신청인들은전부갈산면상촌리주민들로, 당시현장에서시신을수습했다는박수남 ( 현재사망 ) 의말을빌려현장에는약 30구의시신이있었다고했다. 179) 신청인들을대동한현장조사시상촌리신청인들은제1지역의존재에대해서는모르고있었다. 그리고제2지역을현장이라고주장하는이유에대해서 당시마을에서 178) 참고인이종립면담보고서 ( ). 179) 신청인황선항진술조서 ( ); 신청인장국진진술조서 ( ); 신청인박기만진술조서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89

56 제 3 권 [ 사진 6] 용봉산제 1 지역과목격자 [ 사진 7] 용봉산제 2 지역 [ 사진 8] 행산리이동부락폐광 시신을수습한박수남 ( 현재사망 ) 을비롯한어른들이 움푹패인곳이있다 고해서제2 지역인줄알았다 고했다. 180) 실제제2지역은움푹파인굴같은것이존재한다. 그러나제2지역은산입구에서부터상당히가파른산길을약 1시간정도더올라가야하는곳에위치한다. 후퇴가거론되는급박한시기에경찰이수십여명의묶인사람들을정상쪽으로한시간이상끌고갔다는것은납득하기어렵다. 여러상황을종합하면현재까지조사로는용봉산의희생지점은제1지역이유력하다고추정된다. 181) 180) 신청인등이실제시신을수습한박수남등마을어른들과현장을함께가서확인한적은없었다고한다. 어른들의말만들은상태에서훗날 여긴가보다 하고추측했다고한다.( 신청인황선항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5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5) 보령지역가 ) 희생상황보령지역에서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들은보령시대천동소재보령농협창고에수용되어있다가 1950년 7월 10일을전후하여이어니재로끌려가집단살해되었다. 살해현장인근에거주하는남포면옥서리사현마을주민들은전쟁소식이들리던어느날갑자기총소리를연속으로들었다고한다. 이에마을사람들은인민군이들어온줄알고인근산으로피난을갔으며, 이틀정도지난후인민군이들어오지않음을알고산에서내려왔다고한다. 그때마을주민들은이어니재부근에손이묶인채총맞아죽은민간인의시신이널려있는것을목격했다고한다. 182) 옥서2리에사는참고인김영호는 이어니재에서전쟁당시이쪽저쪽합해서많은사람들이죽었다. 사람들이너무많이죽어서개울물이다빨갰을정도였다. 마을어른들은버려져있는시신들을수습하기위해서쇠스랑의가운데를부러트린다음양쪽끝에다시신의목을걸어끄집어내기도했다. 수습한시신들을여기저기묻어놓았는데일부는유족들이와서찾아가고일부는방치되었다 고진술하였다. 183) 또한, 참고인황의호는전쟁당시주산면면장이었던임회재 ( 현재사망 ) 를면담한적이있는데, 임회재는 1950년 7월 10일경에주산면주민 20여명이총격사살당하는현장에면장으로서참관하였다고한다. 184) 임회재는황의호와의면담에서 살상당한주민은대부분보도연맹원으로주산지서에얼마간감금했다가데리고가서사살하였으며, 살상현장은보령군남포면옥서리에있는이어니재였다. 총격살상의집행은경찰 ( 주산지서소속이었는지는불명 ) 이맡았으며, 현장에참여한경찰도괴로웠는지전부술을먹었다 고증언했다고한다. 185) 임회재의증언은면단위혹은지서단위로살상행위가있었던것을 181) 갈산면상촌리신청인들은또한희생지역을용봉산싸리골이라고주장했으나현장조사시싸리골이정확하게어디인지몰랐으며막연하게 싸리가많아서싸리골로불린것일것이다 라는일반론을이야기했다. 그러나용봉산인근의주민들을상대로탐문한결과용봉산에는싸리골로지칭되는골짜기는없었다. 홍성의희생지로거론되는지명이 용봉산싸리골 로명명된것이어디서기원했는지는알수없었지만, 적어도제 1 지역이있는곳이현지주민들에게싸리골로불리지는않았다. 182) 이선행, 앞의글, 215 쪽. 183) 참고인김영호 ( ). 184) 보령문화연구회소속황의호 ( 현, 남포중학교교장 ) 는보령지역향토사를연구하는과정에서 1995~6 년경보도연맹학살현장을참관한임회재 ( 전쟁당시주산면장, 면담당시 93 세로현재는사망 ) 를면담하였다. 면담당시에도임회재는 살려달라 고하는소리가귀에생생하다고했다한다.( 참고인황의호 ( )). 185) 참고인황의호 (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91

58 제 3 권 보여주는사례로, 그이유는지리적요인과밀접한관련이있어보인다. 주산지서는보령경찰서보다훨씬남쪽에위치하고있으며, 보령경찰서로가기위해서는살상현장인이어니재를넘어야하기때문이다. 보령지역에서경찰의후퇴가 7월 13일경이었다고할때보도연맹원들이희생된날짜는대략 7월 10일에서 7월 13일사이라고추정된다. 보령지역진실규명대상자 3명중이어니재에서시신이수습된사람은이준직 ( 다 ) 이며, 나머지는시신을수습하지못하였다. 나 ) 희생현장보령지역의희생현장은보령시남포면옥서리에있는 이어니재 이다. 이어니재는남포면옥서리와웅천읍두룡리의경계를이루는고개이며, 21번국도와장항선철도가여기를지난다. 현재의 21번국도가생기기전에도비포장이긴하지만자동차가다닐수있는길은있었다고한다. 고개밑에서부터산마루까지비교적깊고울창한계곡이몇개씩형성되어있으며, 이들을이지역에서는 알미골 과 짚은골 등으로부른다. 산마루근처에는한국전쟁중주산전투에서순직한철도경찰 16인의합동묘지와위령탑으로이루어진추모공원이있다. 186) 주산전투는 1950년 7월 15일철도경찰대와인민군이주산지서에서조우하여치른전투를말한다. 187) 이전투에서포로로잡힌 10명의철도경찰은웅천지서에감금되었다가 7월 27일오후 2시이어니재에서사살당하였다. 사살장소로굳이이곳을택한것은경찰이후퇴하기전에이어니재에서보도연맹원을사살한것에대한보복의성격이강하다고한다. 188) 186) 현재양측의보존상태는아주대조적이어서한쪽은공원처럼관리되고있는데비해, 다른한쪽은수풀속에방치되어있는상태이다. 187) 1950 년 7 월 15 일인민군들의남하를저지하라는명을받고철도경찰대천안지대와장항지대대원 54 명은두대의트럭에분승한채비인에서팽나무재를넘어주산지서에집결하였다. 주산에서사태를파악해본후더올라가든지주산에진을치든지하자는계획이었다. 당시지서에는자체방어주민 ( 치안대원 ) 이있어서인민군이들어왔느냐물었더니 인민군은광천까지만들어오고주산에는아무이상이없다 고했다. 그러나철도경찰대가주산지서에서인원점검을하는순간인민군의공격을받았다. 인민군의공격을받은철도경찰은두방향으로도망하였다. 중략 이전투중 6 명이현장에서전사하고 10 명은포로로잡혀웅천면자위대원들에게인계되었다.( 황의호, 1950 년주산전투에관하여 보령문화제 14 집, 보령문화연구회, 2005, 138~140 쪽.). 188) 황의호, 앞의글, 161 쪽 년상반기조사보고서

5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그림 8] 보령의희생현장 ( 이어니재 ) [ 사진 9] 이어니재의알미골현장 [ 사진 10] 순국경찰묘지 ( 알미골위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93

60 제 3 권 6) 부여지역가 ) 희생상황부여지역에서예비검속된사람들은부여경찰서유치장에얼마간구금되어있다가 7월 14일오후 5시경백마강변에서살해당하였다. 189) 당시현장에서살아난사람으로이봉규 ( 현재사망 ) 가있는데, 그는사살현장까지갔으나트럭에서내리는과정에서포승줄이풀려호밀밭으로도망을쳐서살았다고한다. 이봉규가생전에주변사람들에게말한바에따르면, 사살이있기전에부여경찰서유치장에는약 50명정도의구금자가있었다고한다. 190) 또한, 당시살해현장으로가기전에풀려난허동식 ( 현재사망 ) 이생전에유족들에게전한바에따르면, 예비검속된사람들중유인성 ( 다-5142호 ) 을비롯한일부는대전쪽으로실려갔다고한다. 191) 부여경찰서유치장에남아있던사람들은사살당일백마강기슭까지트럭두대에분승하여실려왔으며, 백마강현장에는육지에서총을쏴서죽이는사람, 강으로시신을던지는사람이따로있었다고한다. 192) 부여지역진실규명대상자 3명중백마강현장에서시신이수습된사람은유인철 ( 다 -2971호) 이며, 당시현장에서유인철의시신을수습한유황열에따르면시신들은대부분물에떠내려가고있었다고한다. 193) 한편, 이곳에서희생된사람중기초사실조사 194) 결과그신원이드러난사람으로는부여군장암면장하리의강진모, 강윤모, 강준모, 강명구, 강순모, 강석빈이며, 이들의시신은대부분물에떠내려가서수습하지못했다고한다. 195) 나 ) 희생현장부여지역의희생현장은부여경찰서에서자동차로약 5분정도거리 (1km 내 ) 에있는백마강기슭으로, 구드레나루터에서낙화암쪽으로약간올라간지점에위치하고있다. 현장은인가와는격리된외진곳으로당시에도부여경찰서에서현장까지는비포장도로가있었다고한다. 이곳을택한이유는빠른기동성이확보되는데다, 시신을강물에던져유기하기쉬운곳이기때문으로보인다. 189) 신청인유익렬진술조서 ( ); 신청인유황렬진술조서 ( ). 190) 신청인유황렬진술조서 ( ). 191) 신청인유익렬진술조서 ( ) 192) 신청인유익렬진술조서 ( ); 신청인유황렬진술조서 ( ). 193) 신청인유황렬진술조서 ( ). 194) 기초사실및자료조사 :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지방자치단체중전국 71 개시 군 구를선정하여전쟁당시입은피해사례에대한조사를실시한바있다. 충남의경우당진, 태안, 보령, 서천, 부여, 논산, 계룡, 금산, 연기, 예산, 청양등 11 개지역이해당된다. 195) 참고인강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6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그림 9] 부여경찰서와희생현장 [ 사진 11] 백마강구드레나루터현장 유기된시신이떠내려간지점 사살현장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95

62 제 3 권 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의특징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의특징은다음과같이요약할수있다. 첫째, 비교적단기간에예비검속이진행되었고, 사살은경찰의후퇴와맞물려이루어졌다. 이지역의예비검속과살해는전쟁이발발한 1950년 6월 25일부터보름안에완료되었다. 이는전선의후퇴와맞물려있으며, 특히경찰이후퇴하기직전서둘러사살한점과도관련이있다. 보도연맹원의희생일은신청인의진술과경찰후퇴기록, 일부지역 ( 보령 ) 의사례등을종합해보면경찰의후퇴일로부터역산하여그 3일전사이일가능성이높다. 이에따라희생날짜를추정해보면, 서산은 7월 9일~12일경, 196) 태안은 7월 12 일경, 당진은 7월 9~12일경, 홍성 7월 8~11일경, 보령 7월 10~13일경, 부여 7월 11~14 일경이다. 197) 둘째, 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중일부를대전형무소로이송하였다. 앞에서도살펴보았듯이예비검속을시작한초기에는검속자중일부를대전형무소로이송한기록과증언들이남아있다. 보도연맹원중대전형무소로이송된사람에대하여참고인이 는 보도연맹원중주동자급 이라고한반면, 198) 당시태안경찰서순경이었던참고인이 은 초기에검거한사람들 이라고진술하였다. 또한, 이 은대전형무소로이송한것은 충남경찰국의지시에의한것이다 고진술하고있다. 199) 셋째, 충남서부지역의희생장소는대부분경찰서에서그리멀지않은곳 (30분이내 ) 에위치한구릉이나강가이며, 바로근처까지차량 ( 트럭 ) 이드나들수있다는공통점이있다. 이는후퇴에즈음하여급하게보도연맹원들을살해하는과정에서나타난결과로보인다. 희생장소로는서산시성연면일람리 ( 메지골 ), 당진의한진포구 ( 목캥이 ), 태안의백 196) 일부에의하면서산에서 6 월 30 일경에사살행위가있었다고한다.(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그러나이경우는경찰의후퇴시기및다른신청인이나참고인의진술과는모순되는점이있다. 실제서산메지골사살이 6 월 30 일이라는진술에따르면경찰이 6 월 30 일경후퇴를한것이되나, 이는당시의기록이나전선상황에비추어보면맞지않다. 이미살펴본바와같이서산경찰서연혁사에기록된서산경찰후퇴일은 7 월 12 일이며, 6 월 30 일현재서부전선은북한군일부가한강을도강하였으나전차부대등주력은아직한강이북에머물러있는상태였다.( 육군사관학교, 한국전쟁사부도, 황금알, 2005, 30 쪽.) 또한, 같은장소에서희생자들의시신을수습한당진군대호지면의신청인들에따르면이곳의사살은 7 월 10 일에서 7 월 12 일사이에이루어진것이라한다. 197) 희생일에대해서정확한기록이나증언이없는이상경찰서후퇴일을기준으로그 3 일전까지로추정하고자한다. 3 일을기준으로한것은일부지역 ( 보령 ) 에서경찰서후퇴일 (13 일 ) 보다 3 일전에도사살이있었다고한증언을참고로하였다.( 참고인황의호 ( )). 198)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199) 참고인이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6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화산 ( 사기실재 ), 홍성의용봉산 ( 매표소부근 ) 및행산리이동부락뒷산 ( 금광굴 ), 보령의이어니재, 부여의백마강구드레나루터등이다. 넷째, 보도연맹원들을살해한행위는그후수많은무고한인명살상의빌미가되었다. 경찰이후퇴한이지역에인민군이진주하자, 사살현장에서살아난사람들과일부유가족들은자신들이당한것에대해보복행위를했다. 그러나그러한보복행위는수복후에또다른보복행위를불러와후방에서같은마을사람끼리죽고죽이는유혈보복극이계속이어졌던것이다. 이와관련하여실제로 경찰후퇴시보도연맹원등을살해하지않은천안의경우는인민군점령기에우익에대한보복학살도거의없었다 고하는참전경찰관의진술은시사하는바가크다. 200) 3. 사건조사결과가. 희생규모 현재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희생자수를추정할수있는자료로는신청인및참고인들의진술밖에없다. 이지역관할경찰서에자료를조회한결과현재남아있는것은거의없다는회신을받았다. 201) 경찰서를비롯한정부기관이생산한문서가거의없는상태에서신청인이나참고인의진술에만의존하여희생자수를파악하는것은한계가있다. 202) 전체적인희생규모를파악하기위해서는전수조사 ( 全數調査 ) 등의방법이필요하나, 현실적으로어려운점이있다. 이하에서는신청인이나참고인의진술내용중희생자규모와관련된것을중심으로살펴보았다. 1) 서산지역조사결과 1950년당시서산군전체보도연맹원수와희생자수를확정하지못하였 200) 참고인홍 ( ). 201) 관할경찰서 ( 서산 당진 홍성 보령 부여경찰서 ) 에국민보도연맹사건발생당시 (1949 년 9 월 ~1950 년 9 월 ) 의관련자료 보도연맹원명부, 요시인명부 ( 혹은요시찰인명부 ), 6 ㆍ 25 당시처형자및동연고자명부, 신원기록존안대상자명부, 대공기본대장 ( 대공바인다 ), 대공인적위해자조사표, 사실조사서, 신원기록편람등 ) 일체의보유여부를확인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조사 3 팀 -819( ); 이에대해서관할경찰서에는위에적시한해당자료의보유여부를파악하였으나보유중인자료가없다는회신을하였다.[ 당진경찰서경무과 ( ); 부여경찰서경무과 ( ); 보령경찰서경무과 ( ); 홍성경찰서경무과 ( ); 서산경찰서경무과 ( ). 202) 충남서부지역의경우충북이나기타다른지역과같이유족회의활발한활동이있는곳도아니어서유족회나시민단체의활동에서나온내용도많지않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97

64 제 3 권 다. 203) 단지신청인명장근은해미면의보도연맹원이 50명이상이라고진술하면서당시서산군이 22개면으로구성되어있으니전체보도연맹원수는약 1,000명이상일것이라고진술하였다. 204) 또한신청인권학중은정미면의보도연맹원수가 30~40명정도된다고하였다. 205) 그러나이들의진술만으로는서산군전체보도연맹원수와희생자를확정하기어렵다. 다만당시현장에서시신을수습한참고인이나목격자의진술내용중희생규모와관련된것은다음과같다. 메지골현장에서시신을직접수습했다는신청인명장근은현장에수백구의시신이있었다고증언하고있으며, 206) 당시현장근처에살았던참고인이용순은 10여명의경찰이 100여명의사람들을메지골로끌고가는것을보았다고한다. 207) 또한, 여러가지정황으로보아예비검속된사람중일부는대전형무소로이송된것으로보인다. 일부신청인과참고인은 6월 30일경트럭과버스 10여대에사람들이가득실려홍성쪽으로가는것을해미면에서목격하였는데, 그속에는해미면관유리에서예비검속된고영귀 ( 다-2751호 ) 도섞여있었다고한다. 208) 또한 1950년 8월 12일미병참사령부가미8군에보낸통신문에도충남서산에서보도연맹원 400명이트럭에실려대전으로끌려가는장면이미군군속에게목격된사실이있다. 209) 이러한기록과증언으로보건대예비검속된보도연맹원중상당수가대전으로이송되었거나이송도중에희생된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서산지역보도연맹관련희생자의전체규모를가늠할수있는증거자료는확보하지못하였다. 2) 당진지역 전쟁당시당진경찰서에근무했다는참고인최 은당진의보도연맹가입자는 1개면당백명도넘었다고진술하고있다. 210) 이에따르면당진군전체보도연맹원은최소수백명이상에이를것으로짐작된다. 그러나이에대하여수복후에당진경찰서에근무했다는참고인구 은당시당진군 203) 1949 년당시서산군은 1 읍 19 개면 232 리로이루어져있었다.( 대한행정학회,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1949, 90 쪽.). 204)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205) 신청인권학중진술조서 ( ). 206)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207) 참고인이용순면담보고서 ( ). 208) 신청인명장근진술조서 ( ).;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209) 김기진, 한국전쟁과집단학살, 푸른역사, 2006, 49 쪽. 210) 참고인최 ( ) 년상반기조사보고서

6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전체보도연맹원은약 30명정도였다고진술하여큰차이를보이고있다. 211) 희생자수와관련하여참고인정성운은당시목캥이현장에서직접총을쏘았다는박 과김 등경찰관의말을빌려약 160명 ( 혹은 360명 ) 정도가사살당했다고한다. 212) 박 과김 이당시당진경찰서에근무한것은사실이나, 정성운의진술을뒷받침할만한객관적자료는확보하지못하였다. 3) 태안지역당시태안군전체에좌익의세가강했다고하며, 마을젊은이들사이에는남로당에가입하는것이하나의풍조였다고한다. 213) 이러한진술에비추어보면당시태안에도많은보도연맹원이있었을것으로추정되나, 정확한규모는알수없다. 당시태안지역은서산군의관할이었지만경찰서는서산군과독립해서태안경찰서가따로설치 운영되었다. 그러므로보도연맹원에대한관리도서산과는독립해서진행되었을것으로보인다. 현재로는태안의보도연맹원중예비검속되어희생된인원이얼마인지정확히알수없다. 이와관련해서참고인이 는태안경찰서로잡아간보도연맹원중에서주동자급은대전으로이송하고, 나머지는백화산근처어딘가에서수십명을죽였다는소리를들었다고한다. 214) 또한, 당시태안경찰서순경으로근무한참고인이 은초기에검거했던보도연맹원들은대전형무소로이송하였고, 경찰이후퇴할때남아있던보도연맹원 10여명은태안면평천리에서사살하였다고진술하였다. 215) 한편, 참고인곽정근은당시사기실재에서희생당한시신들이면사무소의창고에수습되어있는것을세어보았는데전부 99구였다한다. 216) 또한, 진실화해위원회의부역혐의희생사건조사과정에서태안 ( 서산의일부지역포함 ) 지역의보도연맹희생자약 140명정도가새롭게확인된바있다. 217) 211) 참고인구 의보도연맹관련진술은대부분전문 ( 傳聞 ) 한것이라한다.( 참고인구 ( )). 212) 참고인의정확한진술내용은 160 명인지 360 명인지모르지만뒷부분의 60 명이라는소리는분명히들었다 고했다. 여기서는그중작은수치를택하기로하였다.( 참고인정성운면담보고서 ( )). 213) 신청인곽영철진술조서 ( ) ;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214)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215) 참고인이 이진술한 10 명은직접참고인이현장에서처형당하는것을목격한인원이라고한다. 이들이처형된장소는태안면평천리라고만밝히고있는데, 그곳이백화산의사기실재인지여부에대해서참고인은잘알지못하였다. 또한처형할때는눈을수건으로가리고사살했다고진술하여사기실재 ( 총을쏘고불을질렀음 ) 의정황과는다르게진술하였다.( 참고인이 ( )). 216)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217) 진실화해위원회, 서산 태안부역혐의희생사건진실규명결정서,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299

66 제 3 권 이러한사실에비추어볼때태안지역에서희생된보도연맹원은최소 140여명이상일것으로사료된다. 그중일부는대전형무소로이송되어희생되었거나이송도중에희생된것으로추정되며, 일부는백화산사기실재등지에서사살당한것으로판단된다. 4) 홍성지역기존의연구에따르면홍성지역에서보도연맹에강제로가입한사람은 1백여명정도이며, 이중 83명의시신이홍북면상하리용봉산골짜기에서발견되었다고한다. 218) 또한당시현장을목격한이종립은사살이틀뒤에현장에갔더니수십구의시신이있었으며, 훗날현장에서살아난사람의말을빌려거기서죽은사람들이대략 61명정도된다고했다. 219) 당시홍성경찰서장이었던박헌교 ( 朴憲敎 ) 는 1990년 8월 주간홍성 과의인터뷰에서 지서별로예비검속한이들을군에집결시켜놓으니특무대에서 1차로거물급을포함약 20~30명을트럭한대에실어이송했소. ( 하략 ) 다음날 2차로남은사람들모두를트럭두대에실어특무대에이관하고경찰은손을뗐소 라고하여대략그정도의인원임을시사했다. 220) 이러한진술이나증언을종합하면홍성지역의보도연맹희생자는 1백여명안팎으로추정된다. 그러나홍성지역의희생장소는용봉산외에행산리이동부락뒷산의폐광도있으며, 충남의타지역에비해서자수자가압도적으로많았던사실등을고려한다면전체희생자규모에대해서는추후보완이필요하다고본다. 221) 5) 보령지역보령의경우남포면옥서리이어니재에서전쟁기간에좌 우익을합하여상당히많은사람들이희생당한것으로확인되었다. 충남지방의자수기간이만료된시점인 1949년 11 월 30일까지보령지역의자수자는 126명이었다. 222) 그보다약 2개월후에있었던보령군지부결성식 ( ) 에참석한자수자의수는 162명이다. 223) 이런사실들로미루어보 218) 장규식, 해방후국가건설운동과지역사회의동향 학림제 16 집, 1994, 133 쪽. 219) 참고인이종립면담보고서 ( ). 220) 주간홍성, ( 장규식, 앞의글, 재인용 ) 221) 홍성지역은당시대략 2 읍 9 개면 139 리로구성되어있었다. 각면에얼마의보도연맹원이있었는지혹은전체보도연맹원은어느정도였는지현재로는알수없다. 다만자수기간이끝났을때 ( 일현재 ) 홍성지역에서자수자로집계된사람은 1,380 명으로충남의다른지역보다훨씬많았다. 자수자는대부분이보도연맹에가입했었던당시상황과자수기간이끝난후에도많은사람들이보도연맹에가입했을것을감안한다면홍성지역의전체보도연맹원수는최소 1,400 명은상회할것으로보인다. 222) 동방신문, ; 충청매일, 년상반기조사보고서

6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면보령지역보도연맹원은최소 162명정도이고그후로얼마의인원증가가있었을것으로추정되나그정확한규모를알수는없다. 이에대해서전쟁당시보령지역에서경찰관이었던참고인서 은보령의보도연맹원중예비검속된인원은약 30명정도되었을것이라고추정하였다. 그러나그들이사살되었는지혹은대전형무소로이송되었는지여부에대해서는알지못하였다. 224) 반면에전쟁당시주산면면장이었던임회재의생전증언에의하면, 1950년 7월 10일경주산면보도연맹원 20여명이이어니재에서총격사살당하였다고한다. 225) 이증언은주산면의경우보도연맹원들이보령경찰서로이송되지않고별도로면단위에서사살되었음을보여주는것이며, 이는곧다른면단위에서도별도의사살이발생했을가능성을보여준다. 현재까지조사결과별도로사살된주산면보도연맹원 20여명과참고인서 이진술한보령경찰서유치장구금인원 30여명을합치면최소 50명정도의인원이희생된사실은확인된다. 그러나보령경찰서유치장에구금된인원이 30여명정도라는진술은참고인의추정적진술에불과할뿐이어서이를근거로전체희생자수를추정하는데는무리가있다. 보령군지부결성당시 ( ) 자수자는 162명이었는데이후증가한인원을고려한다면보령군전체보도연맹원은 200여명내외는될것으로보인다. 이중에서얼마의인원이희생되었는지는현재까지알수없다. 참고로당시보령지역은대략 10개면 110 리 226) 로구성되어있었으며, 주산면 1 곳에서희생된보도연맹원은 20 명이다. 6) 부여지역 1949년 11월 26일자동방신문에는부여지역에서남로당을탈당한 188명의탈당성명서가게재되어있다. 227) 성명서에는 188명의이름이마을별로분류되어게재되어있는걸로봐서탈당자들을체계적으로집계하고있었던것으로보인다. 하루동안탈당한인원이이정도라는사실은부여지역의전체보도연맹원수도그만큼많았음을나타내는것이라할수있다. 223) 동방신문, ) 참고인서 ( ). 225) 참고인황의호 ( ). 226) 대한행정학회, 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1949, 85 쪽. 227) 모두에는 남로당을탈당하며그말살에적극협력하고대한민국에충성을다할것을굳게맹서 ( 盟誓 ) 한다 고되어있다.( 동방신문,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01

68 제 3 권 보도연맹원희생자수와관련해서처형직전트럭에서내리는도중탈출했다는이봉규 ( 현재사망 ) 가유족들에게전한바에따르면, 당시부여경찰서에는약 50명이구금되어있었다고한다. 228) 또한, 당시살해현장으로가지않고석방된허동식 ( 현재사망 ) 이유족들에게전한바에의하면예비검속된사람중트럭 1대분은대전쪽으로실려갔다고한다. 229) 이러한증언들에기초하여산술적계산을한다면대략 100여명안팎의희생자가있었던것으로추정되지만, 이러한증언을뒷받침해줄추가적인진술이나증거자료는확보하지못하였다. 나. 희생자의신원희생자여부는진실규명신청서에나타난사건경위를바탕으로신청인, 참고인조사결과및각종자료조사결과를토대로판단하였다. 검토결과희생자로확인되는경우는 확인 으로, 희생자로확인되지는않았지만희생자일개연성이높은경우는 추정 으로, 그외는 불능 으로처리하였다. 희생자 확인 기준은다음과같다. 첫째, 경찰기록, 법원기록등각종국가기관생산자료에희생사실이등재되어있으며, 다른정황이뒷받침될때는희생자로확인하였다. 둘째, 각종향토사자료 ( 도 시 군지포함 ), 신문, 잡지, 연구서, 족보등에희생사실이있는경우는신청인및참고인의진술과일치하는경우에한하여희생자로확인하였다. 셋째, 연행과정이나시신수습에관하여제3자의진술만있는경우라도주변정황 ( 제사일 230), 제적부기재사유 231), 족보상의사망일등 ) 에비추어무리가없을경우는희생자로확인하였다. 넷째, 연행과정및시신수습등에가족의증언만있을경우라도주변정황이나참고인의진술이뒷받침될때는희생자로확인하였다. 반면에다음의경우는희생자로 추정 하였다. 첫째, 국가기관생산자료에단순히이름만기재되어있으며, 정황증거가불충분하여사실관계의확인이불가능한경우는희생자 228) 신청인유황열진술조서 ( ). 229) 신청인유익렬진술조서 ( ). 230) 제사일은양력으로환산하여해당지역의희생추정날짜와부합할때만희생자확인의근거로삼았다. 231) 제적부의사망사실은대부분시간이많이흐른후에신고를한경우가많으므로, 그정확성이결여된경우가많다. 여기서는전쟁발발시점인 1950 년 6 월 25 일 ( 음력 5 월 10 일 ) 부터충남서부지역의사살이있었다고추정되는 7 월 15 일 ( 음력 6 월 1 일 ) 사이에사망한경우는전부희생사실확인의근거로삼았다. 단음력을주로사용했던당시의상황을고려하여제적부에등재된기간중시기 ( 始期 ) 는음력을, 종기 ( 終期 ) 는양력을기준으로하였다. 그러므로여기서는 1950 년 5 월 10 일 ~7 월 15 일사이에사망한기록은희생사실 확인 의근거로삼았다 년상반기조사보고서

6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로추정하였다. 둘째, 각종자료와신청인및참고인의진술이불일치하거나, 근거자료의객관성과공정성이다소의심되는경우희생자로추정하였다. 셋째, 연행과정이나시신수습에관하여제3자의진술이있더라도주변정황에불일치하는경우는희생자로추정하였다. 넷째, 연행과정및시신수습과관련하여가족의진술이전문인경우라도주변정황등에의해사건의재구성이가능한경우는희생자로 추정 하였다. 1) 신청사건의희생자 < 표 6> 신청사건희생자신원 지역연번사건번호 희생자 성명성별당시나이관계참고인증언 232) 명창근 ( 明昌根 ) 시신수습 확인근거 관련기록 주변정황 확인여부 남 19 형제명혜근 233) 수습제적부 234) 확인 서산 이창석 ( 李昌錫 ) ) 고영귀 ( 高永貴 ) 김동현 ( 金東鉉 ) 남 26 부황건환확인 235) 남 32 부 남 23 부 명장근 ( 신 ) 고수국 김응환 239) 고봉규 ( 신 ) 신원기록심사보고 237) 신원기록심사보고 제적부 238) 확인 확인 고영목 ( 高泳穆 ) 남 23 형제김길환 ( 신 ) 김응환 신원기록심사보고 확인 이지택 ( 李之澤 ) 남 38 형제김응환 신원기록심사보고 제적부 240) 확인 김병엽 ( 金炳葉 ) 호적 : 김병열 ( 金炳烈 ) 남 35 부 김종학 241) 김종하김우철 수습족보 242) 확인 당진 김병태 ( 金炳泰 ) 김임춘 ( 金壬春 ) 남 45 조부상동수습족보확인 남 49 부상동수습족보확인 김상기 ( 金相基 ) 남 48 조부상동수습족보확인 김정기 ( 金鼎基 ) 남 30 부상동수습족보확인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03

70 제 3 권 지역연번사건번호 태안 희생자 성명성별당시나이관계참고인증언 232) ( ) 김종욱 ( 金鍾彧 ) 김영배 ( 金永培 ) 김영배 ( 金英培 ) 김종헌 ( 金鍾憲 ) 김기철 ( 金起喆 ) 김영기 ( 金永基 ) 권병직 ( 權柄直 ) 곽영욱 ( 郭永頊 ) 백상기 ( 白尙基 ) 백충흠 ( 白忠欽 ) 심명록 ( 沈明祿 ) 시신수습 확인근거 관련기록 주변정황 남 42 부상동수습족보 확인여부 취하요청 남 37 부상동수습족보확인 남 31 부상동수습족보확인 남 28 부상동수습족보확인 남 29 부상동수습족보확인 남 32 형제상동수습족보확인 남 27 부상동수습확인 남 47 부권임중 243) 수습제적부 244) 확인 남 26 형제곽정근 245) 신원기록심사보고 남 51 조부백명숙 246) 수습신원기록심사보고 제사 (7.10) 확인 확인 남 18 삼촌백명숙추정 남 34 부 신원기록심사보고 제적부 247) 제사 (7.12) 확인 황은동 ( 黃殷東 ) 남 29 부 이기성 248) 박기만 ( 신 ) 장국진 ( 신 ) 수습 제적부 249) 제사 (7.10) 확인 홍성 박상화 ( 朴尙和 ) 장영환 ( 張英煥 ) 남 36 부 남 26 부 이기성장국진 ( 신 ) 황선항 ( 신 ) 이기성황은동 ( 신 ) 박기만 ( 신 ) 제적부 250) 제사 (7.10) 확인 수습제적부 251) 확인 김종갑 ( 金鍾甲 ) 남 31 부 이기성황창섭 ( 신 ) 수습제사 (7.10) 확인 년상반기조사보고서

71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지역연번사건번호 보령 부여 희생자 성명성별당시나이관계참고인증언 232) 전천수 ( 田千秀 ) 황길동 ( 黃吉東 ) 박봉석 ( 朴鳳錫 ) 이강세 ( 李康世 ) 박창규 ( 朴昌圭 ) 최돈규 ( 崔敦奎 ) 이준직 ( 李畯稙 ) 강일구 ( 姜日求 ) 유인길 ( 柳寅吉 ) 유인성 ( 柳寅聖 ) 남 20 숙부 남 20 숙부 남 35 부 박우석 252) 박영원 ( 신 ) 이기성김수일 ( 신 ) 박우석전병목 ( 신 ) 시신수습 수습 수습 확인근거 관련기록 주변정황 확인여부 확인 확인 수습제적부 253) 확인 남 42 부이번영 254) 논문 255) 제적부 256) 확인 남 32 부 윤인희 257) 박종철 258) 제사 (7.9) 확인 남 26 부김동우 259) 제적부 260) 확인 남 27 부이종순 261) 수습확인 남 40 부윤재옥 262) 제사 (7.10) 확인 남 37 부 남 33 부 유익렬 ( 신 ) 유완열 ( 신 ) 유황열유완열 수습제사 (7.14) 확인 제적부 263) 확인 232) 신청인이다른신청인의참고인이된자는신청인진술조서에서언급된내용을참고로했으므로여기서는별도의조사일시를밝히지않았으며이름뒤에 ( 신 ) 으로표시하였다. 233) 참고인명혜근 ( ). 234) 명창근제적부사망일 :1950 년 6 월 28 일오후 6 시자택에서사망. 235) 참고인황건환은 이창석에대해서는잘모르지만그동생이창호와는국민학교동창이어서잘아는사이이다. 이창호의형 ( 이창석 ) 이전쟁초기끌려갔으며, 이때문에그의아버지이기태가인민공화국시절에행패를부렸고결국수복후경찰에게죽임을당했다 고한다.( 참고인황건환 ( )).; 한편, 이기태와이창석이부자지간임은신청인 ( 이정수 ) 이제출한제적등본에의해확인되었다. 참고인 ( 황건환 ) 의진술이구체적인데다이기태가부역혐의로희생된것도사실로확인되었다. 이로미루어이창석이예비검속시기에희생된것은사실로판단된다. 236) 다 호 ( 신청인고수남 ) 의경우고영귀, 고영홍 2 명에대하여진실규명을신청하였다. 조사과정에서고영홍은부역혐의희생사건으로판단되어해당팀으로사건을이관하였다. 237) 신원기록심사보고 : 한국전쟁중서산군내의처형된자, 월북자, 요시찰대상자등을기록한것으로서산경찰서에서생산된문서이다.( 진실화해위원회, 서산 태안부역혐의희생사건진실규명결정서, 2008.). 238) 고영귀제적부사망일 :1950 년 5 월 26 일오후사망. 239) 참고인김응환진술조서 ( ). 240) 이지택제적부사망일 :1950 년 7 월 8 일오후 10 시사망.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05

72 제 3 권 2) 미신청사건의희생자국민보도연맹사건이직권조사사항임을감안하여, 신청기간에신청하지않았더라도조사과정에서보도연맹희생자로드러난경우에는대부분신청자와동일한비중으로조사하였다. 그러나현실적으로조사대상지역에대하여전수조사를못한상태이므로, 이하에서언급된희생자는실제에비해극히일부임을미리밝혀둔다. 서산 태안지역은 부역혐의희생사건 조사과정에서약 140명에이르는보도연맹희생자가확인되었다. 264) 이명단을별첨자료로첨부한다. 여기서는중복을피하기위해, 시신이수습되었거나다른근거에의해희생자로 확인 된경우만을게시하였다. 미신청사건의유형은그후손들이피해사실을주장하는경우, 참고인등제3자가증언하는경우, 자료를통하여드러난경우등이있다. 피해자확인의기준은원칙적으로신청사건과동일하지만, 여기서는후손들의주장을또다른기준으로추가하였다. 또한참고인 2명이상의증언이있으면서여러가지정황으로미루어희생된것이분명한경우에도희생자로 확인 하였다. 241) 참고인김종학, 김종하, 김우철면담보고서 ( ). 242) 扶安金氏世譜 ( 全 ) : 庚寅 (1950 년 ) 五月二十八日 (7 월 13 일 ) 卒 ( 이하생략 ). 243) 참고인권임중진술조서 ( ). 244) 권병직제적부사망일 : 1950 년 6 월 20 일오후 8 시사망. 245)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246) 참고인백명숙은백상기의시신은수습했으나백충흠의시신은수습하지못했다고진술하였다.( 참고인백명숙 ( )). 247) 심명록제적부사망일 : 1950 년 7 월 15 일사망. 248) 참고인이기성면담보고서 ( ). 249) 황은동제적부사망일 :1950 년 5 월 15 일사망. 250) 박상화제적부사망일 :1950 년 6 월 7 일사망. 251) 장영환제적부사망일 : 1950 년 6 월 15 일사망. 252) 참고인박우석 ( ). 253) 박봉석제적부사망일 : 1950 년 6 월 15 일오후 5 시사망. 254) 참고인이번영면담보고서 ( ). 255) 장규식, 앞의글, 133 쪽. 256) 이강세제적부사망일 : 1950 년 6 월 15 일. 257) 참고인윤인희 ( ). 258) 참고인박종철 ( ). 259) 참고인김동우 ( ). 260) 최돈규제적부사망일 : 1950 년 7 월 15 일오전 11 시사망. 261) 참고인이종순 ( ). 262) 참고인윤재옥진술조서 ( ). 263) 유인성제적부사망일 :1950 년 5 월 28 일오후 10 시사망. 264) 진실화해위원회, 서산 태안부역혐의희생사건진실규명결정서, 년상반기조사보고서

73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 표 7> 미신청사건희생자신원 지역 연번 희생자 성명생년월일당시거주지후손증언 확인근거시신참고인증언관련기록주변정황수습 확인여부 1 지추성부석면강수리 김길환 ( 신 ) 고봉규 ( 신 ) 김응환 265) 확인 2 김진곤부석면강수리 김길환 ( 신 ) 고봉규 ( 신 ) 김응환 신원기록심사보고 확인 서산 3 전재묵해미면관유리 4 모동순해미면관유리 5 전재륜해미면관유리 유욱동 266) 고수국 267) 수습확인 유욱동고수국 유욱동고수국 6 전운종해미면관유리유욱동수습신원기록확인심사보고 7 전재훈해미면관유리유욱동수습확인 8 전후종해미면관유리유욱동수습확인 9 전재길해미면관유리유욱동수습신원기록확인심사보고 수습 수습 10 전재극해미면관유리유욱동수습신원기록심사보고 확인 확인 확인 11 고흥규 서산군 268) 북면황촌리 원 곽정근 269) 이윤화 270) 곽영철 ( 신 ) 신원기록심사보고 확인 태안 12 최성연원북면황촌리 13 권흥준원북면황촌리 곽정근곽영철 곽정근이윤화곽영철 신원기록심사보고 확인 확인 14 장병석 이원면포지리 신원기록심사보고제적부 271) 확인 당진 15 심의덕대호지면마중리 추정 16 이병학대호지면마중리 추정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07

74 제 3 권 지역 연번 희생자 성명생년월일당시거주지후손증언 확인근거시신참고인증언관련기록주변정황수습 확인여부 17 이관세李冠世 홍동면금당리 이종민 ( 신 ) 수습확인 18 박종세 272) 금마면봉서리박헌교 273) 논문 274) 확인 홍성 19 전영진갈산면상촌리 황선항 ( 신 ) 박기만 ( 신 ) 이기성 275) 확인 20 이흥성홍복면봉신리이종립 276) 수습확인 보령 21 정대옥은하면금국리 22 이종국李鍾國 23 이종배李鍾培 서갑출미산면평라리 박영원 ( 신 ) 박우석 277) 확인 천북면낙동리 추정 천북면낙동리 김제춘 278) 제사 (7.5) 279) 박종갑 ( 신 ) 윤인회 280) 박종철 281) 25 염태식미산면평라리상동확인 26 백남돈미산면평라리상동확인 확인 확인 27 백남창 미산면평라리 상동 확인 28 백남준 미산면평라리 상동 확인 29 곽개준 미산면평라리 상동 확인 30 윤석정 오천면갈현리 추정 31 강태구 장암면북고리 추정 32 강진모장암면장하리 강 외 32 명 282) 확인 부여 33 강윤모장암면장하리상동확인 34 강준모장암면장하리상동확인 35 강명구장암면장하리상동확인 36 강순모장암면장하리상동확인 37 강석빈장암면장하리상동확인 년상반기조사보고서

75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3) 희생자의특징충남서부지역의희생자들대부분은국민학교졸업이하의학력소지자로농업에종사한경우가가장많았다. 진실이규명된대상자 36명을기준으로직업과학력및기타사항을살펴보면다음과같다. 283) 즉대상자 36명중에농업종사자는 27명 ( 전체의 75%) 이며, 그밖에서당훈장 3명, 대서소 1명, 이발소운영 1명, 면사무소소사 1명, 우체국공무원 1명, 무직 1명, 모름 1명이다. 학력은국졸이하 ( 무학 한학포함 ) 가 24명 ( 전체의 66%) 이고중졸 ( 중퇴포함 ) 4명, 고졸이상이 4명, 모르는경우 4명이다. 나이는 19세에서 51세까지다양하나전부남성이며기 미혼이섞여있다. 284) 충남서부지역의진실규명대상자들은생업에종사한민간인이대부분이며, 연령별로는주로 2 0~40대의청장년층으로가계를책임지던가장들이많았음을알수있다.( 아래그림및표참조 ) 265) 참고인김응환진술조서 ( ). 266) 참고인유욱동 ( ). 267) 참고인고수국면담보고서 (( ). 268) 당시는서산군에속했으나현재는태안군에속한다. 269) 참고인곽정근진술조서 ( ). 270) 참고인이윤화 ( ). 271) 제적부에는당시태안지서주임이사망신고한내용이들어있으며, 사망일은 7월 12일이다. 272) 박종세 : 홍성보도연맹사무국장 273) 장규식, 앞의글, 133쪽. 274) 장규식, 앞의글, 133쪽 275) 참고인이기성면담보고서 ( ). 276) 참고인이종립면담보고서 ( ). 277) 참고인박우석 ( ). 278) 참고인김제춘에의하면이종배는천북면낙동리의보도연맹책임자였다고한다.( 참고인김제춘면담보고서 ( )). 279) 참고인이정순면담보고서 ( ). 280) 참고인윤인희 ( ). 281) 참고인박종철 ( ). 282) 참고인강 ( ).: 그외장하리마을주민 32명증언 ( 기초사실조사 ). 283) 백충흠 ( 다-6374호 : 당시 18세, 무학, 무직 ) 은희생자 추정 으로여기에는포함되지않았다. 284) 미신청인의경우는인적사항이나직업등관련정보가불명확한경우가많아통계에서는제외하였다.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09

76 제 3 권 [ 그림 10] 희생자의학력 < 표 8> 희생자직업분포 직업 인원 농업 27명 (75%) 서당훈장 3명 대서소 1명 이발소운영 1명 면사무소소사 1명 우체국공무원 1명 무직 1명 모름 1명 < 표 9> 희생자의연령별분포 ( 성별 : 전원남성 ) 연령 10 대 20 대 30 대 40 대 50 대 인원 ( 비율 ) 1(2.77%) 13(36.11%) 14(38.88%) 7(19.44%) 1(2.77%) 이사건으로인한유가족의피해상황은대체로다음과같다. 유가족 36명중연좌제관련피해가있다고한사람은 11명이며, 그중 1명은재산상의피해와또다른가족의생명침해를입었다고주장했다. 연좌제피해의유형으로는공직사퇴, 승진불이익, 경찰의감시, 면허취득의지연, 여권발급거부, 취직불이익, 장교임관좌절등으로다양했다. 재산상의피해와다른가족의생명침해는대부분수복후에일어난것이며, 부역혐의희생사건과도밀접한관련이있었다. 또한일부유가족은신원조회나기타사찰 ( 査察 ) 과같은특별한불이익보다도, 이웃으로부터받은 빨갱이집안 이란누명은벗고싶다고했다. 위원회조사과정에서신청인이나참고인들은연좌제와같은직접적피해를입지않은경우에도, 졸지에가족 ( 대부분가장 ) 을잃은탓에집안이그영향하에놓일수밖에없었던점을토로하였다 년상반기조사보고서

77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다. 가해주체와가해책임의귀속 1) 군 ( 軍 ) 과특무대충남서부지역의경우보도연맹원및예비검속자들을살해한것은주로경찰이었던것으로드러났다. 이지역신청인 36명중 34명이경찰서나지서로연행되었다고진술하고있으며, 연행한사람도사복형사나정복순경이대부분이다. 한편, 이지역의보도연맹원집단살해는대부분 1950년 7월 8일계엄선포 2~6일후에일어났는데, 전직홍성경찰서장박헌교는 1990년 8월지역신문 ( 주간홍성 ) 과의인터뷰에서홍성지역보도연맹원들을특무대에이관했다고진술하여특무대의개입을언급하였다. 285) 1950년 6월경충남서부지역은대전지구에배치된 2사단관할이었으며, 이지역과관련된부대는온양에있는제2사단 25연대였다. 그러나전쟁이발발하여의정부가함락되자제25연대 ( 연대장김병휘중령 ) 는의정부남쪽으로전진배치되었다. 286) 온양에서 25연대가전방으로빠져나간이후에충남서부지역에새로이보충된부대는없는듯하다. 287) 이지역은전선의후퇴와맞물려경찰의역할이그만큼증대되었을것으로추정된다. 한편, 특무대는미제971 CIC가수행하던기능을수행하였다. 즉간첩및오열적발처리, 이적행위의적발처리등과같은일을담당하였던것이다. 288) 방첩대 (SIS) 시절인 1949 년 1월, 육군정보국은전국각지에첩보수집및방첩활동을강화하기위하여파견대를설치하였다. 이때에정보국예하에 15개파견대가설치되었는데, 충남의경우는대전에설치되었다. 289) 그러므로전쟁초기에충남서부지역에서활동했던특무대는방첩대 (SIS) 대전파견대소속일가능성이높다. 그러나현재까지이를입증해줄기록이나증언은확 285) 주간홍성, ) 국방부군산편찬연구소, 북한의전면남침과초기방어전투, 2005, 382 쪽. 287) 참고인김용한 ( ). 288) 전쟁초기에특무대는아직까지정보국산하에있는조직이었으며, 1950 년 10 월 21 일육군특무부대가창설되어서야비로소독립조직이된다. 특무대의기원은 1948 년 5 월 27 일특별조사업무를수행하기위하여육군본부에설치된정보국제 3 과 ( 특별조사과 ) 이다. 그후여순사건을조사하는과정에서미제 971 CIC 요원에의한국군 CIC 요원 (33 명 ) 의교육이있었으며, 교육직후 1948 년 11 월 1 일특별조사과는방첩대 (SIS) 로개칭되며기구를확대조직하였다. 그후 1949 년 10 월 20 일방첩대 (SIS) 는명칭을 CIC 로변경하였다. CIC 로개칭한정보국산하방첩대는활발한활동을하던중 6 ㆍ 25 를맞게되었고, 9 ㆍ 28 수복직후에중령김창룡을중심으로경인지구 CIC 가설치되었다. 그후 1950 년 10 월 21 일國本一般命令第 91 號에의거방첩대를정보국으로부터완전독립시켜육군본부직할로육군특무부대 ( 통상명칭 1348 부대 ) 를창설하게되었으며, 초대부대장으로당시대령김형일이임명되었다.( 국군보안사령부, 대공 30 년사, 고려서적주식회사, 쪽이하.) 289) 파견대가설치된지역은개성, 인천, 주문진, 부평, 부산, 대전, 대구, 춘천, 양양, 청주, 광주, 여수, 목포, 포항이다.( 국국보안사령부, 앞의책, 34 쪽.)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11

78 제 3 권 보하지못하였다. 결국, 충남서부지역의경우에도 1950년 7월 8일계엄령선포이후에는군이나특무대의역할이확대되었을것으로추정되지만다른지역에비해서는상대적으로미미했던것같다. 그이유는지리적으로북한의주공인경부축선에서빗겨나있는데다, 290) 이지역에주둔한군부대가없었기때문으로사료된다. 다만, 계엄령이선포된후경찰은계엄사령관의지휘 명령을받게되는데, 이사실을감안한다면계엄사령관을위시한군 ( 軍 ) 에대한추가확인이필요하다. 2) 경찰 1950년당시보도연맹관련업무는공식적으로경찰의사찰과가담당하고있었다. 291) 이에따라전쟁발발직후인 1950년 6월 25일내무부치안국장 ( 장석윤 ) 은전국각도의경찰국장에게 전국요시찰인단속및전국형무소경비의건 이라는비상통첩을전언통신문으로내려보냈다. 6월 25일의전언통신문에이어후속조치들도뒤따랐다. 6월 29일에는 불순분자구속의건, 6월 30일에는 불순분자구속처리의건, 7월 11일에는 불순분자검거의건 이잇달아하달되었다. 경찰의예비검속은이러한일련의통첩에근거하여진행되었던것으로보인다. 그러나사살명령이구체적으로언제, 어떻게하달되었는지에대해서는현재까지밝혀진바없다. 단지신청인및참고인들의진술에따르면이지역에서사살이일어난시점은계엄령이후일것으로판단된다. 이시기에도상징적인계엄군 ( 군부대 ) 의부재속에서경찰은여전히중요한역할을담당하였다. 그역할의지침이된명령은계엄사령관으로부터내려온것이라추정된다. 한편, 사살주체가경찰이었다는진술은거의모든지역에공통되게나타나고있다. 292) 290) 서울을점령한북한군의차후작전의기본방침은 미군이증원되기전에한국군의주력부를수원이북에서포위한후평택 - 안성 - 충주 - 제천 - 영월에이르는선까지진출하는것으로설정하고, 주공을경부축선에두었다.( 육군사관학교, 한국전쟁사부도, 황금알, 2005, 30 쪽.). 291) 1949 년 9 월에 내무부직제 를개정하여사찰과는민정사찰과외사경찰외에특명에의한사찰사항을추가하여그업무범위를넓혔다. 그뒤 1950 년 3 월중앙기구의개편과함께사찰업무는더욱확대되어보도연맹운영까지담당하였다. 이리하여서무계는서무 보련반 ( 保聯班 ) 을, 사찰계는정문 ( 政文 ) 형사취조반을, 외사계는외사 외사형사반을, 분실은지하공작등을각각분장하였다.( 내무부치안국, 한국경찰사 (Ⅱ), 1973, 74 쪽, 189 쪽.) 292) 참고인이용순은서산메지골인근에사는자로당시경찰이사람들을살해현장으로끌고가는것과잠시후총소리를들었다.( 참고인이용순면담보고서 ( )); 참고인조한종은태안의백화산사기실재에서시신을수습한자로경찰이후퇴하기전에보도연맹원들을살해한후시신에기름을붓고불을질렀다고진술하였다.( 참고인조한종 ( )); 참고인정성운은당진의목캥이에서경찰이후퇴하기전에보도연맹원등을살해했다는소리를직접총을쏜경찰에게들었다고한다.( 참고인정 년상반기조사보고서

79 제 2 부집단희생규명위원회사건 (1) 참전경찰이, 김, 박 등도보도연맹원사살에경찰이관여하였음을직간접적으로시인하고있는데, 당시경찰은상부의지시에따라후퇴하기전에보도연맹원을처리했다고한다. 293) 특히당시태안서순경이었던참고인이 은사살명령은충남경찰국으로부터후퇴하기 2~3일전에공문형식으로내려왔다고하며, 공문내용은 즉결처분하라 는것이라고하였다. 294) 한편, 일부지역에서는이시기에희생된것으로추정되는보도연맹원및부역자의사망신고를지서주임이일괄적으로한사실이발견되어이들의희생에경찰이관여하고있음을입증하고있다. 태안경찰서지서주임김성옥 ( 金成玉 ) 은단기 4284년 (1951년) 2월 10 일부로이북면사무소 ( 현재이원면 ) 에이지역사망자들의사망신고를일괄하여한것으로나타났다. 295) 비록같은날사망신고를했으나그사망일은사망자마다달랐는데, 7월 12일, 10월 15일, 11월 20일, 12월 8일로다양했다. 반면에사망사유는대부분 번지불상에서 6ㆍ25사변으로인하여사망 이라고되어있다. 일괄신고를하면서사망일자가각기다르다는것은각각의사망일자가따로관리되고있었음을보여주는것으로, 당시이북지서에서는보도연맹원및부역자를사살하면서그에대한정보를기록해두었던것으로추정된다. 이상과같은여러진술과상황을종합해보면, 1950년 7월 8일~14일경충남서부지역일원에서발생한국민보도연맹원희생사건은충남도경혹은그이상의지시를받은이지역경찰이행한것으로판단된다.([ 그림 11] 지서주임이사망신고한제적부참조 ) 성운면담보고서 ( )); 홍성의용봉산에서시신을수습한박영원도사살집행은경찰에의해이루어졌다고하며, 사살당시는군인들이올틈이없었다고진술하였다.( 신청인박영원진술조서 ( )); 참고인황의호는보령의이어니재에서주산면보도연맹원이경찰에의해사살당할때현장을참관했던전주산면장임회재를인터뷰하였다.( 참고인황의호 ( )). 293) 참고인이 면담보고서 ( ) ; 참고인김 면담보고서 ( ) ; 참고인박 ( ) ; 참고인김 ( ). 294) 참고인이 ( ). 295) 이원면사무소에전쟁당시사망한것으로추정되는 10 명의제적부를의뢰하였다.( 조사 3 팀 -833, ) 그결과 3 명에한해회신이왔으며, 그들의제적부에는전부태안지서주임김성옥이름으로사망신고가되어있었다.( 이원면 -9935, ) 충남서부지역국민보도연맹사건 313

80 제 3 권 [ 그림 11] 지서주임김성옥이 1951 년 2 월 10 일사망신고한제적부 내용 : 단기 4283 년 7 월 12 일하오 10 시서산군이북면포지리산번지불상에서 6 ㆍ 25 사변으로인하야사망. 태안경찰서이북지서주임경사김성옥보고. 단기 4284 년 2 월 10 일수부 3) 가해책임의귀속 가 ) 가해의명령체계 충남서부지역예비검속및희생의지휘계통은계엄령 ( ) 이전과이후로나누어 년상반기조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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