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熊 : 단군신화, 開闢 1 (1920) 李能和 : 조선사편수회 2차위원회발언 (1923) 崔南善 : 단군론 (1926) 불함문화론 (1928) 백남운 : 단군신화에대한비판적견해 (1933) 김태준 : 단군신화연구 (1935) 이청원 : 단군신화에대한과학적비판 (193

Save this PDF as:
 WORD  PNG  TXT  JPG

Size: px
Start display at page:

Download "一熊 : 단군신화, 開闢 1 (1920) 李能和 : 조선사편수회 2차위원회발언 (1923) 崔南善 : 단군론 (1926) 불함문화론 (1928) 백남운 : 단군신화에대한비판적견해 (1933) 김태준 : 단군신화연구 (1935) 이청원 : 단군신화에대한과학적비판 (193"

Transcription

1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서영대 ( 인하대교수 ) 언제부터인가단군에대한이야기를 단군신화 라고하면일제식민사학의아류로비난을받게된다. 논리인즉은신화란허구를뜻하는데, 일제가단군조선의역사를날조로돌리고한국역사의유구함을부정하기위해단군신화라는말을사용했기때문이란것이다. 그간우리학계에서는단군신화란용어를별다른고민없이관용적으로사용해왔던것이사실이다. 따라서이러한비판은신선한충격일수있다. 일본인들이단군문제를본격적으로거론하기시작한것은 1890년대부터인데, 대개는단군전승을가리켜 단군전설 이라했다. 학술논문은말할것도없고, 그들이편찬한동화집에까지단군전승은조선전설의하나로소개되어있었다. 그중몇가지만예시하면다음과같다. 白鳥庫吉, 朝鮮の古傳說考 (1894) 今西龍, 檀君傳說について (1910) 三浦周行, 朝鮮の開國傳說 (1918) 高橋亨, 檀君傳說に對て (1920) 小田省吾, 謂ゆる檀君傳說について (1926) 中村亮平, 朝鮮童話集 (1926) 제3부전설, 朝鮮の始祖壇君の話 심지어단군전승에는신화적요소가있다고하면서도, 단군신화란표현을사용하지 않고, 단군전설이라했다. 1) 따라서단군신화란말을식민사학자들이만들었다는주장 은성립되기어렵다. 오히려 단군신화 라는말은한말이래한국학자들이사용하기시작했다. 예컨대 1908 년단재신채호가발표한 독사신론 에서신시시대 ( 神市時代 ) 에는신화에의하여 인민을규합하였다고한것이그것이다. 역시몇가지를예시하면다음과같다. 1) 三品彰英, クマナリ考 (1935). 단군전설처럼퍽후대에정리된전설중에어떻게해서熊女와같은오랜신화적요소가잔존하게되었는지는불가사의하다

2 一熊 : 단군신화, 開闢 1 (1920) 李能和 : 조선사편수회 2차위원회발언 (1923) 崔南善 : 단군론 (1926) 불함문화론 (1928) 백남운 : 단군신화에대한비판적견해 (1933) 김태준 : 단군신화연구 (1935) 이청원 : 단군신화에대한과학적비판 (1936) 그러므로단군신화란말은일제강점기한국학자들에의해사용되기시작했다고할 수있다. 당시동아시아에서는신화를가진국가가오랜역사를가진문명국이란인식이있었다. 동양보다앞선서양문화의토대가그리스로마신화라여겨졌기때문이다. 그래서중국은중국대로자국의신화유산을찾는노력을했고, 일본도자국의건국전승은신화라했다. 신화를신성한이야기로본것이다. 이런의미에서일제강점기의한국지식인들이단군전승을가리켜단군신화라한것은이해가간다. 그렇다면단군신화란말이타당한지를생각해볼필요가있다. 신화란말은 myth 란서양어의번역어로서, 19세기말일본에서사용하기시작하여같은한자문화권인한국과중국에서도통용된번역어이다. 그렇다면 myth가무엇인지를생각해볼필요가있는데, 그의미는 1 우주ㆍ인간ㆍ문화의기원에관한이야기, 2 신이나문화영웅의활동을전하는신성한이야기로요약할수있다. 단군에관한가장오래된기록은 13세기에편찬된 삼국유사 이다. 이에의하면단군은하늘신의아들인환웅과곰여인사이에서태어났으며, 고조선을 1500년간통치하다가아사달산 ( 阿斯達山 ) 의산신이되었다고한다. 이러한비현실적스토리는설화의장르로보았을때신화라할수밖에없다. 그렇다면신화라고해서역사와는무관한것일까? 과거조선시대지식인들은유교적합리주의에입각하여단군신화는황당하다고비판했다. 그러나단군의존재와고조선의실재를부정하지는않았다. 단군은개국의시조로인정하여단군에서부터한국사의서술을시작함은물론, 국가차원에서단군제사를정기적으로거행했다 ( 中祀 ). 한말에단기를사용하고개천절을제정하는등, 일제의침략에대항할수있는민족적구심점으로단군을부각시킨것도이처럼단군인식의확고한토대위에서가능할수있었다

3 그러나한국을강점한일본인들의관점은달랐다. 물론일본인들간에도입장의차이가있었다. 우선단군의존재를인정하는입장이있었다. 그들은단군을일본천황가의시조신인아마테라스 [ 天照大神 ] 의동생스사노오 [ 須佐之男命또는素戔嗚尊 ] 이라했다. 2) 따라서한국과일본은뿌리가같기때문에일제의한국강점은과거역사로의복귀라는것인데, 이것은소위내선일체라는동화정책의논리이다. 이에반해단군은가공의인물이며, 단군전승은민간에전해지는전설에불과하다는입장도있었다. 시라토리구리키치 ( 白鳥庫吉 ) 나나카미찌요 ( 那珂通世 ) 같은일본관학자들의논리가그것인데, 3) 그들은고조선당시에는있을수없는불교적요소가보인다는점등을근거로단군은고구려또는고려시대에날조된것이며, 역사적사실을반영하는것이아니라고했다. 그렇다면고조선의역사도당연히부정되기마련이다. 여기에는한국인의단군에토대한민족의식을말살하려는의도가개재되어있음은물론, 2700년에불과한일본보다조선의역사가앞설수는없다는인식도깔려있었다. 이러한식민사학의논리는한국인의자기역사에대한자부심과민족적정체성을송두리째위협하는것이었다. 그래서한국의지식인들은단군부정론을비판하고단군의역사성을입증하고자했다. 여기에앞장선것이육당최남선이다. 그는서구신화학의이론을도입하여단군전승은후대에날조된것이아니라오래된민족의신화라는점을강조하면서고조선시조로서의단군의위치를확실히했고, 나아가단군왕검이란명칭을통해고조선이제정일치 ( 祭政一致 ) 단계의사회라주장했다. 4) 단군신화를통해고조선의발전단계를유추하려는입장은좌익계통의백남운 ( 白南雲 ) 으로이어졌는데, 그는단군신화를원시공동체사회의말기사회를반영하는것이라했다. 5) 한국인의연구는단군전승이신화이되고조선의역사를담고있는신화임을전제하고, 이를통해고조선의역사를재구성하고자한것이다. 이처럼한국학자들에게단군의역사성을부정한다는것은있을수없는일이었는데, 이러한관점은타당한가? 다시말해신화가역사를반영할수있는가? 신화를통해역사를재구성할수있는가라는문제이다. 신화중에는역사와무관한것도있다. 바리데기공주신화같은무속신화가그런것이다. 이것은죽은사람의영혼을저승으로안내하는바리데기의유래를설명하는것일뿐역사적인내용이없다. 그렇지만한국가의성립을전하는건국신화에는역사적사실이반영되지않을수없다. 2) 단군을스사노오의아들五十猛神 ( イソタケル ) 와동일인이란설도있다. 3) 白鳥庫吉, 檀君考 學習院輔仁會雜誌 28, 那珂通世, 朝鮮古史考 史學雜誌 5-4, ) 최남선, 불함문화론 조선급조선민족 1927 최남선, 壇君及其硏究 별건곤 )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4 물론신화의목적은과거의사실을있는그대로전하는데있는것이아니라, 현존하는질서를정당화하는것이다. 멜라네시아의트로브리안드 (Trobriand) 섬에는사회적계급을달리하는 4 씨족이사는데, 사회적계급의순서는각씨족조상이지상에출현한순서에의해결정되었다고하는신화가있다. 또인도에서는인간의조상이 Puruṣa라는신의몸에서나왔다고하는데, 어느부위에서나왔느냐에따라카스트가결정되었다고하는바, 이것역시카스트제도를정당화하는것이라할수있다. 그래서신화는정당화해야할사실이바뀌면더불어신화도변화하는일이있으며, 신화의이전 ( 異傳 ) 이많은것도이때문이다. 예컨대고대로마의건국신화에는 Romulus신화와 Aineias신화가있어, 로마가처한상황에따라두가지중하나가건국신화로서강조되었다고한다. 또동일한신화가민족과지역을초월하여널리존재하는경우가많다. 이러한신화를유사신화 (parallel myth) 라한다. 이러한사실역시신화가역사를그대로반영한다고보기어렵게한다. 유사신화가있는민족이나지역이똑같은역사를거쳤다고하기는어렵기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신화와역사는전혀별개의것은아니다. 신화속에민족의역사적경험이반영될수밖에없기때문이다. 또유사신화같은것은문화권내지문화교류를이해하는데중요한시사를준다. 따라서내용이비현실적이라고해서신화를통한역사의재구성을포기할수는없다. 단군신화가있기에고조선의존재를말할수있고, 단군신화를통해고조선의역사와문화를엿볼수있다. 신화의형식을빌려역사를전하는것은고대사회에서흔히있는일이다. 그러므로건국신화가있다는것은그민족의역사가그만큼오래되었다는의미이며, 역사가유구하다는자랑일수있다. 역사가일천한국가에는건국신화가없기때문이다. 그런데우리는신화와역사를이분법적으로갈라보면서, 신화 라는용어문제로대립하고있다. 나아가단군상건립을둘러싼종교계의대립, 교과서문제를둘러싼연구자간의갈등등등단군이야기가우리사회의갈등을증폭시키고있다. 물론여기에도역사적이유가있다. 단군의존재가크게부각되던한말은대외적으로민족의위기인동시에대내적으로는사회적위기의시기였다. 그러나민족적위기가워낙심각했기에민족단결의구심점으로단군을부각시켰지만, 단군을통해민족내부의모순을해결할수있는논리는제대로개발되지못했다. 그결과단군만으로는오늘날의한국사회의다양한목소리를봉합하는데한계가있을수밖에없었던것이다

5 여기에설상가상으로최근중국학계가단군문제를왜곡하고있다. 중국학계의단군론에도긍정론과부정론이있지만, 전자는단군신화에서중국적요소를강조함으로서고조선문화의독자성을간과했다는점에서, 후자는단군과함께단군조선의실재성을부정했다는점에서모두문제가있다. 따라서중국학계의연구를비판적으로극복하는것도당면의과제이다. 이런상황에서단군이 신화냐역사냐 라는소모적인논쟁을지양하고, 단군신화에서역사를찾아내는것이지금우리에게는시급한과제이다. 과거최남선이했던말을옮겨적음으로서, 결론에대신하고자한다

6 한국고대사시민강좌 < 강사프로필 > 제 4 강 (3 월 30 일 ) 단군, 신화인가? 역사인가? 서영대인하대사학과교수아시아고대학회회장역임, 현단군고조선학회회장, 문화재청문화재위원주요논저 : 단군 - 그이해와자료 - ( 공저 ) 단군과고조선사 ( 공저 ) 무당내력소재단군기사의검토 ( 민족문화논총 ) 등다수 -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