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논문 2 하멜보고서의한국종교서술에대한고찰 방원일 I. 머리말 1653년제주도에표착한네덜란드상선스페르버르호에타고있었던하멜일행은 13년간조선에서생활하였고, 1666년그중 8명이일본으로탈출하였다. 하멜은본국으로돌아가기전나가사키에서한국생활에대한보고서를제출하였는데, 이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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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구논문 2 하멜보고서의한국종교서술에대한고찰 방원일 I. 머리말 1653년제주도에표착한네덜란드상선스페르버르호에타고있었던하멜일행은 13년간조선에서생활하였고, 1666년그중 8명이일본으로탈출하였다. 하멜은본국으로돌아가기전나가사키에서한국생활에대한보고서를제출하였는데, 이보고서는 1668년에출판되어오랫동안유럽에서, 그리고 20세기이후에는한국에서 하멜표류기 라는책으로널리읽혔다. 이책은서구인최초의본격적인한국기록으로주목을받아왔으며, 서양인의한국종교서술이라는측면에서종교학계에서도중요하게논의되는텍스트이다. 하멜의보고이전에유럽에서는한국이섬나라인지대륙에붙어있는반도국인지불분명했을정도로한국에대한정보가부족했다. 한국의종교에관한언급역시중국이나일본을통한간접적인정보가고작이었다. 예를들어 16세기말에저술된루이스프로이스의 일본사 에서는임진왜란때얻은정보를바탕으로 [ 한국의 ] 종교의식은일본과마찬가지로석가모니 (Xaca) 와아미타불 (Amida) 을숭배한다. 고말한다. 1) 또한 1655년에출간된마르티니의 새중국지도첩 (Nous 1) 루이스프로이스, 오만 & 장원철옮김, ( 프로이스의 < 일본사 > 를통해다시보는 ) 임진왜란과도요토미히데요시, 부키, 2003, 187 쪽. 임진왜란이후작성된 <1592 년일본예수회연례보고서 > 나 1601 년루이스데구스만 (Luis de Guzmán) 이저술한 선교사들의이야기 에서 204_ 종교문화비평 18

2 Atlas Sinesis) 에서는중국의정보를바탕으로 [ 한국의 ] 신앙과종교, 즉영혼의이거 ( 移居 ) 를설교하는것까지도중국과동일하다. 또훠 (Fe[ 佛 ]) 라는똑같은우상을섬기고있다. 고말한다. 2) 일본과마찬가지 이거나 중국과동일 하다고서술된이러한기록들에비할때, 하멜이한국생활을직접경험한후에보고한내용이중요하게받아들여졌음을쉽게짐작할수있다. 하멜의보고서는오랫동안한국을이해하고자하는서양인들에게중요한자료로사용되었고, 최근에는한국에대한서양인들의시각을분석하는한국인연구자들에게도중요하게인식되었다. 이사정은종교분야에서도마찬가지여서, 그리피스이래로한국에관심을가진선교사들에게하멜의보고서는한국을이해하는주요자료였으며, 한국인연구자들에게도하멜은서양인의한국종교서술의역사에서언제나첫머리에등장하였다. 그런데이런중요성에비하여하멜의종교서술이그의의도대로제대로이해되었는가에대해서는의문을제기할필요가있다. 여기에는하멜자료의판본문제가개입되어있기때문이다. 20세기들어서하멜의원본에가까운회팅크판이공개되고최근에회팅크판의영어번역과한국어번역이소개되면서, 그동안받아들여졌던하멜텍스트의문제가지적되고있기때문이다. 본논문에서는회팅크판을받아들일때하멜의한국종교서술에대한이해가어떻게달라질수있는지를집중적으로탐구하고자한다. 본논문의 2장에서는회팅크판을갖고서하멜의한국종교서술을새롭게이해하고자하였다. 그간연구자들이하멜의종교서술을언급할때주된요지는하멜이한국종교의존재를부정하였다는것, 혹은종교를인정한다하더라도몇몇 도동일한내용이나온다. 박철, ( 예수회신부 ) 세스뻬데스 : 한국방문최초서구인, 서강대학교출판부, 1987, 쪽. 2) 지명숙 & B.C.A. 왈라벤, 보물섬은어디에 : 네덜란드공문서를통해본한국과의교류사, 연세대학교출판부, 2003, 177 쪽에서재인용 년네덜란드동인도회사에서중국특사로파견되었던얀니호프 ( ) 의책에서도마르티니를인용하여동일한내용을말한다. Jan Nieuhof, An Embassy from the East-India Company of the United Provinces, to the Grand Tartar Cham, emperor of China, London, 1673, p.260. 연구논문 _205

3 신기한언급을제외하고는피상적인관찰에그쳤다는것이었다. 기존의하멜에대한평가에는 16세기네덜란드상인이라는하멜의입장과, 그가한국사회의일원으로전사회계층을두루경험한예외적인인물이라는사실이간과되었다. 본논문에서는그동안간과된측면들을고려하여하멜이한국종교에대해말하고자했던지점들을조명하고자하였다. 하멜이한국종교에대해보고한분량은많지않지만, 그내용은오랜기간한국과한국종교에관심을가졌던서양과한국독자들에게수용된두터운역사를지닌다. 3장에서는하멜보고서가출판되고번역된숱한판본들을횡단하면서, 어떻게하멜기록에대한상이한이해가생겨나게되었고그것이독자들의어떠한바람을반영한것인지를분석할것이다. 특히기존판본과회팅크판의비교를통해서하멜의종교서술에서항상문제가되었던, 한국에는종교가없다 는언급이후대의첨부임을밝힐것이다. 이분석을바탕으로기존종교학계에서하멜을논해온방식도반성적으로검토할것이다. II. 하멜의한국종교서술 하멜보고서가기존에어떻게해석되었는지를살피기에앞서서, 새로운판본에기초해서하멜이한국종교에대해서언급한내용을검토하도록하겠다. 하멜의기록에서한국종교에관한내용은세쪽정도의적은분량이지만당시의종교문화에대한적지않은정보를포함하고있다. 그가제공한정보는크게두부분으로나눌수있는데, 그는앞부분에서한국인의신앙일반을개괄하고, 나머지부분에서는한국의승려와사찰에대해이야기한다. 206_ 종교문화비평 18

4 1. 한국인의신앙 하멜이서술한종교부분의첫대목은다음과같다. 그들의종교 (godsdienst), 사찰, 승려 (papen), 종파 (secten) 에대해말해보자면, 백성들은여러우상 (afgoden) 을섬기는등이교도 [ 미신 ](superstitie) 를믿는것은사실이지만, 실로우상보다는그들의권세가들을더숭상함. 고관과양반은우상숭배따위는거들떠보지도않을뿐만아니라오히려그들자신이우상위에군림하는양자만심이강했음. 설교라든지교리문답같은것은그들에게는아예알려져있지않고, 서로에게자기믿음 (geloof) 을강요하려들지도않음. 다들이미신앙 (geloof) 을가지고있으며, 또전국에걸쳐우상숭배가이미만연된상태이기때문에종교에대한논쟁을벌일필요도없음. 3) 위의내용과관련해서세사항을지적하고자한다. 첫째, 그동안하멜의종교서술에서논란이되었던것은과연하멜이한국종교의존재를인정하느냐의문제였다. 왜이것이문제가되었는지에대해서는뒤에서다루기로하고, 일단여기서는하멜이분명히당시조선의종교문화를서술하고있다는점을명확히해둘필요가있다. 이글은 [ 한국인의 ] 종교, 사찰, 승려, 종파에대해말해보자면 이라는표현으로시작한다. 이것은다루어질내용을적시하는도입부형식으로, 4) 저자가해당 3) 지명숙 & B.C.A. 왈라벤, 위의책, 쪽. 뒤에서설명하겠지만, 이번역본은원본인회팅크판의한국어번역중하나이기에본논문에서사용되었다. 이하본문에나오는괄호안의쪽수표시는이번역본의쪽수이다. 위인용문에서네덜란드어단어표기는필자가첨부한것이다. 이를위해헨니사브나이예의다음웹페이지에서제공되는네덜란드어 - 영어직역대조본을참고했다. hendrick-hamel.henny-savenije.pe.kr/transcription/hamel1166.htm 4) 이러한도입부는하멜보고서에서다른주제를언급할때흔히나타난다. 이것은이글이지정된항목을서술하는보고서형식임을암시한다. 그예는다음과같다. 왕의권한으로말하자면 (232 쪽 ) 국왕, 양반, 고장과촌락의재원에관한한 (235 쪽 ) 가옥과세간살이에대해서말하자면 (242 쪽 ) 혼례에관한한 (244 쪽 ) 그국민들의신임과불신, 아울러관용에관해말하자면 (248 쪽 ) 대외무역을비롯해그들끼리의국내상업을포함한교역이어떻게이루어지고있는가에대해살펴보자면 (250 쪽 ) 이나라상인들이사용하는크기, 길이와용적의단위에대해말하자면 (252 쪽 ) 그곳에사는짐승과조류에관해보자면 (253 쪽 ) 그들의언어와문자, 그리고계산법에관 연구논문 _207

5 항목들의존재를인식하고있었음을전제한다. 한국인들은 다들이미신앙을가 지고있다 는표현은이인식을강하게드러낸다. 이표현은하멜일행이조선에서 탈출한직후일본나가사키에머무르는동안받았던심문기록에도나타난다. 나가사키지사 : 그들은어떤신앙을믿으며, 우리에게그것을포교하려고든적이있었는가? 하멜일행 : 우리판단으로는중국인들과동일한신앙을가지고있으며, 그들의제도는누구에게도그것을강요하려들지않고개인의뜻에맡김.(277쪽) 하멜일행이말한 중국과동일한 이정확히무엇을뜻하는지는분명하지않다. 이표현은한국에대한기존의견해인마르티니, 그리고중국을방문한네덜란드인니호프의언급을떠올리게한다. 5) 그러나중국에대해간접적인경험을가졌으리라생각되는하멜일행이실질적인비교의인식을할수있었는지는알수없다. 다만이증언에서확인할수있는것은하멜일행이한국종교문화의존재를인식했다는것이다. 둘째, 위에서하멜이한국의종교문화를기록했다고했지만, 그가현재우리가사용하는일반개념으로서의 종교 를사용하지는않았다는점에유의할필요가있다. 잘알려져있듯이, 유럽에서종교가그리스도교외부전통을포괄하는유 ( 類 ) 개념으로서사용되기시작한것은 17세기이후였으며 19세기들어본격화되었다. 탐험, 식민지, 선교활동을통해유럽에대거유입된비서구사회의자료들을비교하고분류하는과정에서종교 들 (religions) 에대한인식이생기고, 이를바탕 해언급하자면 (253 쪽 ) 5) 앞의주 2 를볼것. 208_ 종교문화비평 18

6 으로종교에대한일반적인설명이제시된것이서구의종교개념이발달된과정이었다. 6) 이를염두에둔다면, 17세기전반에유럽에서살았고한국생활을거쳐 1667년에보고서를제출했던하멜에게종교개념은본격화되지않았다고보는것이자연스럽다. 뒤에서보게되듯이, 종교 의문제는하멜의저술에서제기되는것이아니라하멜이제공한자료를유럽에서수용할때제기된다. 위인용문에서종교라고 번역 된단어 (godsdienst) 나신앙으로번역된단어 (geloof) 는사실상동일한의미를지닌다. 이단어들은현대네덜란드어에서는종교, 신앙의의미로사용되지만, 7) 하멜의시대에는그리스도교신앙을가리키는말이었다. 한국의낯선종교문화를기술하는하멜에게그것을지칭하는개념은주어져있지않았던상황이었다. 이것은콜럼버스가아메리카를탐험한기록을남길때의상황과비슷하다. 콜럼버스는항해록곳곳에서원주민들에게 종교가없는것같다 거나 종교도우상숭배도없다 는언급을남겼다. 8) 그런데이표현에대해조너선스미스 (Jonathan Smith) 가번역의문제를지적한바있다. 스미스에따르면, 콜럼버스가사용한단어는가톨릭교회를지칭하는것이기때문에그표현의의미는그리스도교분파가없다는것이지원주민에게종교가없다는것은아니라는것이다. 9) 이지적을받아들인다면, 콜럼버스에겐그리스도교외부의전통을묘사할언어가없었다고할수있을것이다. 하멜이나콜럼버스나 종교 개념은주어져있지않았다. 그러나둘의차이는적지않다. 콜럼버스는아메리카에그리스도교가없다는하나마나한보고를한반면에, 하멜은그리스도교전통내부의언어를전용 ( 轉用 ) 하여한국종교문화를서술하였다. 6) Jonathan Z. Smith, Religion, Religions, Religious, 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2004, pp ; 윌프레드캔트웰스미스, 길희성옮김, 종교의의미와목적, 분도출판사, 1991, 3 장. 7) 현대네덜란드어에서종교에해당하는단어로는 religie, godsdienst, geloof 이있다. 일상적으로이들단어의쓰임새는상당부분겹쳐지지만굳이뉘앙스를구별하자면, religie 가일반적종교개념에가장가깝고, godsdienst 는일신교전통을일컬을때많이사용되며, geloof 는신앙의의미가강하다. religie 는하멜보고서에등장하지않는다. 8) 크리스토퍼콜럼버스, 이종훈옮김, 콜럼버스항해록, 서해문집, 2004, 82 쪽, 93 쪽. 9) Smith, op. cit., p.194, n.1. 연구논문 _209

7 하멜이사용한언어들에는종교개혁당시개신교의상황이반영되어있다. 30년전쟁 ( ) 이진행되던시절에유럽에살았던하멜에게 서로에게자기믿음을강요하려들지도않으며 종교에대한논쟁을벌일필요도없는 한국의상황은눈에띄는것이었다. 이표현에서믿음이나종교는종교개혁논쟁에서그리스도교교파를지칭하는데사용되었던바로그단어였다. 우상 이나 미신 이라는용어는개신교가가톨릭을공격할때흔히사용되었던단어인데, 하멜의기록에서는민간신앙과불교를가리키는데사용된다. 승려를지칭하는용어 (papen=papist) 는개신교에서가톨릭성직자와수도승을공격하면서사용한 교황주의자 라는욕설이었다. 하멜이유럽에서이용어들이지닌부정적인함의를담아서한국종교문화를기술하였는지는확실히알수없다. 하지만본문의맥락상교황주의자 (= 승려 ) 는하멜이한국의승려를일컫기위해사용할수있는유일한단어이기때문에사용되었을가능성이크다고생각된다. 우상 에대해서도비슷한추정이가능하다. 우상숭배는분명부정적인용어이지만, 하멜이비그리스도교신앙행위를지칭할수있었던유일한용어이기도했다. 과연하멜이이용어를썼을때, 유럽에서개신교도들이가톨릭을혹독하게비판할때의욕설로서의함의가담겨있는지는의심스럽다. 우리는하멜이저술할때사용한단어에담긴의도와, 그단어가유럽독자에게받아들여진의미사이에거리가있을수있다는것을염두에둘필요가있다. 셋째, 하멜은 13년의생활동안조선사회를두루체험하였으며, 그경험의결과조선종교지형의이원적구조를서술하였다. 1653년에제주도에표착한하멜일행은제주도에서잠시머물다 (1653년) 왕의부름을받고서울에올라와훈련도감에서활동하였으며 ( 년), 청나라사신에게도주를부탁하려다적발되어전남강진에서 7년 ( 년), 신성, 순천, 남원에흩어져 3년 ( 년) 간유배생활을하다가탈출하였다. 하멜일행은서울에서는왕을알현하고관직 210_ 종교문화비평 18

8 생활을하며양반들과교류하였고, 유배지에서는지방관의관리아래노역에종사하였다. 관청에서지급하는식량이부족할때는돌아다니며지역민들에게이야기를해주거나장작을해서돈을벌기도했다. 하멜의기록이한국에대한이전기록이나이후기록들과도차별화되는부분은, 이렇게한국사회계층을두루망라한경험을바탕으로한기록이었다는점이었다. 하멜은유교나민간신앙을일컬을용어를알지못하였다. 하지만양반계층과백성들이 우상 으로지칭되는신앙대상에대해서로다른태도를가지고있었음을감지할수있었다. 두태도의바탕이된세계관, 즉양반들의유교와백성들의민간신앙및불교를지적할수는없었지만, 하멜은그것이현실에서어떻게상이하게드러나는지를정확히지적하였다. 그는민간신앙을배척하는 고관과양반은우상숭배따위는거들떠보지도않을뿐만아니라오히려그들자신이우상위에군림하는양자만심이강했다 고기록하였다. 반면에 백성들은여러우상을섬기는등미신을믿는 다고하였고, 그러면서도현실에서는 권세가들을더숭상 한다는점도지적하였다. 조선의장례풍습과의료를설명할때 점쟁이 ( 풍수가 ) 나 마술쟁이 ( 무당 ) 가있음을언급하기도했지만, 10) 그는그들과관련된민간신앙을종교에관련해서서술하지는않았다. 대신에그가종교부분에서언급한대부분의내용은유럽가톨릭조직에서비슷한예를떠올릴수있는불교조직에관한것이었다. 2. 불교조직 하멜의종교문화서술에서대부분을차지하는것은승려, 계율, 승가조직, 사 10) 장례와관련해서, 시신을매장할때 점쟁이들이지적해준산중턱에물이들지않는묏자리를고른다 (247 쪽 ) 고기록하였다. 의료에대해서언급할때민간신앙에대해가장상세한설명이나온다. 백성들은의원대신장인과점쟁이들에게로찾아가며, 그들이귀띔해준그대로실행함. 그것이산위든, 강가든, 절벽이든, 바위든또는신당안이든, 어디든지간에시키는곳에공양물을사들고가서악귀에게조언을구함. 그렇지만우상을모셔놓은신당을근래에들어서는더이상사용되지않는데, 1662 년왕이그것을전부다허물고파괴하도록명령을내린탓임. (252 쪽 ) 연구논문 _211

9 찰에관한내용이다. 하멜일행은서울에있을때는불교를접할기회가없었지만전라도에있을때지역을돌아다니며불교를접한것으로보인다. 그들은지역주민과상호교류를통해돈을충당하는것을 구걸행각 이라고표현하였는데, 그것은 농가나 [ 그곳에태반인 ] 절간을찾아다니면서 (227쪽) 모험담을들려주거나장작을파는활동이었다. 그활동의와중에다음같은식으로불교와의만남이있었음을볼수있다. [ 구걸행각을할때 ] 절의스님들한테서가장큰덕을봤는데, 그들은빈민들을관대하게돌봐주었고우리에게도더없는자비심을베풀었음. 특히외국풍물에대해관심이지대하여얼마나듣고싶어애를태우던지우리나라와다른나라들의풍습을들려줄때한층더후한대접을받았음. 만약우리만괜찮다고하면밤을꼬박새워들어도직성이풀리지않을정도였음.(228쪽) 이런실제적인경험은당시불교계현실에대한상세한보고로이어졌다. 하멜은절에있는승려의수와조직체계를묘사한다. 승려의숙소에는통솔권을지닌이가있어 만약누군가가과오를범했을경우해당인의볼기 20~30대를때리는즉결재판을해도된다. (240쪽) 승려는사회적으로하급신분에속했다. 그래서 국가에많은공물을바쳐야하고노역도치러야한다는점에서공노비나다름없다. (241쪽) 또한승려에겐불살생과금욕에대한계명이있으며이를어기면 볼기 70~80대를맞고사원에서추방 (241쪽) 당한다. 그는이어서승려조직내의유대관계, 승려의종류, 사찰재산의관리에대해말하고, 마지막으로사찰의사회적역할에대해다음과같이언급한다. 양반들이유흥삼아창녀 [ 기생 ] 들과다른권속들을거느리고종종절을찾곤 212_ 종교문화비평 18

10 하는데, 그것은절이산속에그리고숲속에자리잡고있어분위기가그만이기때문. 또항간에서는절을이나라에서가장훌륭한건물이라일컫지만, 실제로는신당 ( 神堂 ) 이라기보다는매춘굴이나주막집이라해도과언이아님. 재삼강조하건대소위사원이라는게일반적으로다그런식이며, 중들역시도액류 ( 液類 )[ 주색 ] 라면무엇이든사족을못쓰는판국이기때문.(242쪽) 지금의관점에서보면이러한서술은불교의타락, 혹은세속화된모습에대한비판으로보일수있다. 그러나하멜의묘사에가치판단이개입되어있는지에대해서는그의서술의도를고려해서신중히생각할필요가있다. 이것은네덜란드상인의시각에서서술한종교에다름아니다. 종교의종교답지못함을꾸짖는것보다는종교의실제운영과사회적위치에대한냉정한묘사가주된관심사였음을쉽게짐작할수있다. 실제로하멜의글은네덜란드동인도회사에제출하는보고서로쓰여졌다. 최근연구에따르면이글은동인도회사가제공한세부적인지침들로구조화되어있다고한다. 동인도회사직원은미지의지역을방문하게되면 7개의일반항목과그안의하위항목으로세분된지침을따르도록되어있었다. 하멜의한국묘사는회사의지침에있는일반항목의내용과순서를따랐으며, 때로는하위항목의질문을글자그대로인용하여표제로삼기도했다. 11) 보고서의목적은회사로하여금한국이상업에좋은대상인지를판단하도록하는데있었다. 글의목적을염두에둘때, 우리는지나칠정도로건조한하멜의문체를이해할수있다. 뒤에서보겠지만 11) Vibeke Roeper, The Castaways of the Sperwer, in Vibeke Roeper & Boudewijin Walraven (eds.), Hamel s World: A Dutch-Korean Encounter in the Seventeenth Century, Amsterdam: SUN, 2003, pp 연구논문 _213

11 후대의번역자와편집자들은하멜의건조한문체에대해불평하곤했다. 12) 전형적인보고서의문체를통해하멜이추구하는것은꾸밈없는현실묘사였다. 그가 한국이상업에좋은대상인지 를보여주기위해서술의중점을둔것은 한국이얼마나잘다스려지고있는지, 즉한국사회가얼마나체계성을갖추고있는지를밝히는것이었다. 하멜보고서 에서두드러지는부분중하나가조선의형벌체계에대한생생한묘사이다. 이묘사에는범죄의종류와그에대한형벌이자세하게나열되고있는데, 이묘사의목적은조선의야만성을폭로하기위한것이라기보다는조선사회가엄격하게통치되고있다는것, 더나아가유럽과는다른조선사회의 체계 를보여주기위한것으로보아야한다. 이러한현실적인관심은종교묘사에도일관되었다. 하멜이종교에서관심을둔것은승려조직이얼마나잘다스려지는지 체계 를밝히는것과승려와사찰이사회내에서어떤경제적인위치를차지하는지를분석하는것이었다. 이런점에서그의관심을종교사회학적인것으로평가할수있을것이다. III. 하멜기록의수용과해석의역사 앞장에서우리는하멜의입장에서그의종교서술을이해하고자하였다. 하 지만이러한하멜서술의도와유럽인독자들의이해, 더나아가한국인독자들의 이해사이에는커다란간극이존재해왔다. 이장에서는이간극의원인을추적하 12) 영역판번역자처칠은하멜의글이 소재는싱겁고문장스타일도평범 하다고불평했다고한다. 레드야드, 조선에표류한화란인들, 쪽. 또한최근의영역자바위스는, 하멜이 매우 라는표현을거의쓰지않았기때문에, 불교사원이 산의숲가운데매우아름답게자리잡고있다 고묘사했을때, 하멜은정말로감명받았음을알수있다고지적한다. Jean-Paul Buys of Taizé, Translator s Preface, in Hamel 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 2nd ed., Seoul: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1998, xv. 214_ 종교문화비평 18

12 고, 그것이종교에대한이해와어떻게관련되는지를살피고자한다. 하멜보고서 는오랫동안 하멜표류기 라는이름으로유통되었고유럽과한국독자들의사랑을받아왔다. 짧은분량이지만수세기동안독자들의독서경험이누적된두터운역사를지닌텍스트로존재해왔다. 이텍스트가유럽으로전해졌다가다시우리에게전해지는과정을파악하는일은간단치않다. 하지만이것이출판되어여러판본으로유통되며다양한언어로번역된과정을알필요가있고, 이과정을염두에두고종교에관한부분이어떤식으로변형되어이해되었는지를추적할수있을것이다. 이로부터종교서술에대한이해혹은오해가한국종교학계에미친영향을성찰할기회를얻을수있을것이다. 그리고서양과한국의만남을매개한이텍스트가유럽인들의타자인식에서어떤자리를차지하는지를생각해볼수있을것이다. 1. 출판과정과변형하멜일행은 1653년제주도에표착해 13년동안조선정부의감독하에제주도, 서울, 전라도강진등을전전하다가 1666년에조선을탈출하여일본으로갔다. 그들은본국생환을기다리며나가사키에머무르는동안 (1666년 9월 ~1667년 10월 ) 네덜란드동인도회사에보고하기위하여난파이후의경과와한국생활에대한기록을작성했다. 이것이 하멜보고서 이다. 어떤경위인지는밝혀지지않았지만, 일종의관공문서로작성되었던이원고는 1668년에네덜란드출판사에유출되어편집출판되었다. 하멜이네덜란드에도착하기도전의일이었다. 네덜란드에서출판된하멜기록은 3종으로, 각각편집자의이름을따라벨센 (Velsen) 판, 스티처 (Stichter) 판, 사그만 (Saagman) 판이라고불린다. 편집자들은각각상업적인안목에서원고의구성을달리하고삽화를넣고내용을수정하거나첨가하였다. 1670년독일에서이책의번역판이나왔으며, 1672년에프랑스에서는구성상으로 연구논문 _215

13 는스티처판을따르고책의내용상으로는사그만판을따른불어번역판 ( 미뉘톨리판 ) 이나왔다. 1704년에는영국에서불어본을중역한영어번역판이나왔다. 이판본은처칠판이라고불리는데, 지금까지영미권과한국에소개된하멜기록은대부분이판본에기초한다. 1884년에당시대표적인한국전문가였던그리피스 (William Elliot Griffis) 가 한국의안팎 (Corea, Without and Within) 에하멜의이야기를수록함으로써하멜의자료를보급하는데큰기여를하였다. 이책에포함된것은영문처칠판을근간으로한것이었다. 13) 1918년에는아시아학회한국지부에서하멜의영문자료를재출간했다. 14) 하멜의자료가한글로처음소개된것은 1935년이었다. 이병도는영어본 ( 처칠판 ) 을대본으로하고불어본을참고한번역을 하멜표류기 라는제목으로 진단학보 에 3회에걸쳐연재하였다. 이번역은 1954년에단행본으로출판되었다. 15) 그이후여러판본들이출판되었는데, 중요한것으로는 1976년삼중당에서처칠판의번역에레드야드 (Gari Ledyard) 의해설이첨부된판본이있다. 16) 오늘날까지우리나라에서는수많은판본의 하멜표류기 들이출판되었는데, 이책들은대부분영어본인처칠판을대본으로한것이기때문에내용의차이가크지않다. 한편위의판본의흐름과는별도로 1920년네덜란드에서는회팅크가공문서보관소에소장되어있던헤이그필사본을공개하였다. 이것은그동안출판사를통해서유통되었던판본들의변형과왜곡을바로잡는중요한자료였다. 그러나네덜 13) William Elliot Griffis, Corea, Without and Within, 2nd ed.,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5[1884], part II. 14) Hendrik Hamel, An Account of the Shipwreck of a Dutch Vessel on the Coaft of the Isle of Quelpart,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l. 9, 1918, pp 그리피스의책에실린것이철자를현대화하고주관적인주석을달아놓은것임에반해, 여기에실린것은 1755 년에간행된영어본을글자그대로재인쇄한것이었다. 하지만서문을쓴트롤로프는이판본이 1755 년에발간된것만알수있을뿐이지처칠판, 애스틀리판, 피커톤판중어느것인지는확인하지못했다고말하고있다. 15) 헨드릭하멜, 이병도옮김, 자료 : 난선 ( 蘭船 ) 제주도 ( 濟州島 ) 난파기 ( 難破記 ) ( 하멜표류기 )(2) 부 ( 附 ) 조선국기 ( 朝鮮國記 ), 진단학보 2 호, 1935 년 ; 이병도옮김, 하멜표류기, 일조각, ) 레드야드, 박윤희옮김, 하멜漂流記 : 朝鮮王國見聞錄, 三中堂, _ 종교문화비평 18

14 1653~1667 년하멜의조선생활, 보고서작성 1668 년 1672 년 1704 년 네덜란드에서출판 ( 벨센판 (v), 스티처판 (st), 사그만판 (sa)) 불어번역본미뉘톨리판의출판 (m) (st) + (sa) (m) 영어번역본처칠판의출판 (c) (st) + (sa) (m) (c) 1884 년그리피스의 한국의안팎 에처칠판 (c) 수록 1920 년하멜보고서원본인회팅크판공개 (h) 1935 년 1994 년 2003 년 이병도가 < 진단학보 > 에한국어번역소개 (l) (st) + (sa) (m) (c) (l) 회팅크판의영역본출간. 바위스 (b) (h) (b) 회팅크판의한글번역본출간. 왈라벤 (w), 유동익 (y) (h) (w), (y) < 표 1> 하멜기록의출판과번역과정 란드어자료인회팅크판은오랫동안번역되지못하다가, 1994년바위스 (Buys) 에의해영역되었고, 17) 한국에는 2003년들어왈라벤과유동익의번역이출판되었다. 18) 판본이출판된연대를정리하면위의 < 표1> 과같다. 19) 요약해서말하면, 기존에하멜의기록으로소개되었던내용은상업적기획에따른수정이첨가된처칠판과그것을대본으로한한글번역본이었던반면에, 최근에소개된번역들은하멜의원본에가까운회팅크판을대본으로한다. 도대체 17) Hendrik Hamel, Jean-Paul Buys of Taizé (tr.), Hamel 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 2nd ed., Seoul: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 지명숙 & B.C.A. 왈라벤, 앞의책 ; 헨드릭하멜, 유동익옮김, 하멜보고서, 중앙 M&B, 또한바이스의영역본을번역한다음책도회팅크판을반영한다. 김태진옮김, 하멜표류기, 서해문고, ) 하멜보고서 의서지사항에대해서는다음을볼것. 레드야드, 박윤희옮김, 조선에표류한화란인들, 하멜漂流記 : 朝鮮王國見聞錄 ; Jean-Paul Buys of Taizé, About the Author and the Different Editions of the Text, in Hamel 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 정성화, 하멜보고서 의서지적해설, 헨드릭하멜, 유동익옮김, 하멜보고서 ; 지명숙 & B.C.A. 왈라벤, 보물섬은어디에, 제 4 장. 연구논문 _217

15 대부분의한글판의대본인처칠판, 처칠판의대본인불어본, 불어본의대본이된스티처판과사그만판에는어떠한변형들이있었을까? 앞서보았듯이하멜의원고는동인도회사에보고서로제출된건조한문체의서술이었고, 그일행의조선생활에는극적인요소가부족했다. 20) 네덜란드출판사에서는이원고를독자들의구미를당길만한책으로만들기위해책의구성을바꾸고, 원본에없는흥미위주의표현이나해설을부가했다. 예를들어벨센과스티처는책제목에굵은글씨로 13년을야만인들사이에서노예처럼보냈다 고적어넣었다. 그리고스티처는원고의순서를바꾸어연도별서술인 난파기 를앞에싣고조선의각분야에대한서술인 조선왕국기 를분리하여부록형식으로넣었다. 21) 이구성은처칠판을비롯한후속번역에서유지되어왔다. 22) 처칠판의실질적인대본이었고사실상우리가그동안한국어로접해온판본의근간이되었던사그만판의변형은더욱심각한것이었다. 변형내용은두가지로나누어볼수있다. 첫째는출판업자의필요에따라원본에없는내용들을노골적으로삽입한경우이다. 사그만은전에다른여행기출판에사용했던자바의궁전만찬그림과악어와코끼리의도판을하멜책에그대로삽입했다. 그리고그도판의삽입을그럴듯한것으로보이기위해한국의동식물에관한대목에 한국에서코끼리는보지못했으나악어는수두룩했다 로시작되는한단락을집어넣었다. 23) 이러한변형때문에그간하멜기록의신빙성에는적지않은생채기가났다. 예를들어아시아학회한국지부에서하멜의영문자료를재출간할때서문을썼던성공회주교트롤로프 (Mark Trollope) 는다음과같이말한다. 20) 네덜란드의종교학자틸레도 하멜보고서 에는포악무도한장면이많지않아독자의큰인기를끈적이없었다고지적했다. 지명숙 & B.C.A. 왈라벤, 앞의책, 179 쪽. 21) 원본에서 조선왕국기 내용은별도로분리되어있지않고 1662 년과 1663 년내용사이에나온다. 22) 지명숙 & B.C.A. 왈라벤, 앞의책, 쪽. 23) 지명숙 & B.C.A. 왈라벤, 위의책, 172 쪽. 218_ 종교문화비평 18

16 < 그림 1> 사그만판에사용된악어도상. 편집자는이도상을집어넣기위해본문에악어이야기를삽입하였다. 헨드릭하멜은솔직하면서도면밀한관찰자였다. 이나라와사람들에대한그의묘사들은지난 30년간우리의경험과부합하는것이많다. 물론그의진술에하나하나동의하려는사람은없을것이다. 이중에는사람을잡아먹는 악어 가조선에있다는, 다소 여행담 처럼들리는상황묘사도몇있다. 그동물이 250년전에존재했다가지금은멸종되었을수도있지만말이다. 24) 둘째로, 눈에잘띄지않는교묘한각색들이있다. 사그만은한국의간통에대 한처벌을설명하는부분에 남자들은원래호색한이다 라는문장을넣었다. 이러 한삽입은독자를돕기위한친절한의도에서이루어진것이긴하지만, 하멜의원 24) Mark N. Trollope, Foreword: An Account of the Shipwreck of a Dutch Vessel on the Coaft of the Isle of Quelpart,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Asiatic Society, vol.9, 1918, p.94. 연구논문 _219

17 래의도를왜곡시키는사족에다름아니었다. 25) 사실이러한은밀한변형은눈에띄지않으면서도텍스트해석의방향을바꿀수있는것이기때문에노골적인변형보다도더큰위험성을갖는다. 우리는바로종교에관한부분에서이은밀한변형이해석에얼마나큰영향을주었는지를보게될것이다. 이처럼네덜란드판본은여러오류들을품고있었다. 게다가이판본이불어로, 영어로, 그리고한국어로중역되는과정에서오류가계속적으로증폭되었음은쉽게예상할수있을것이다. 26) 그렇다면이증폭된오류들이하멜의종교서술을이해하는데어떻게작용하였는지를보도록하자. 2. 출판과번역을거치며생겨난 종교없음 서술하멜텍스트의판본문제를정리하면다음과같다. 지금까지우리가접해온기존의 하멜표류기 가변형과중역을거친판본이라면, 최근에소개된 하멜보고서 는원본인회팅크판에기초를둔판본이다. 27) 종교서술부분에관련해서볼때, 기존판본과새로운판본의차이는적지않으며이때문에하멜의종교서술에대한평가는새로워져야할필요가있다. 앞장에서우리는회팅크판에기반을둔번역을통해하멜의종교서술을살펴본바있다. 그서술은 그들의종교, 사찰, 승려, 종파에대해말해보자면 으로시작되었다. 회팅크판을대본으로한바이스의영역본에서도이첫부분을비교해보면크게다르지않음을확인할수있다. 25) 왈라벤, 내키지않은여행자들 : 핸드릭하멜과그의동료들의관찰에대한해석의변화, 대동문화연구, 56 호, 2006 년, 쪽. 26) 다음을볼것. 왈라벤, 위의글, 쪽, 쪽. 27) 본논문에서언급되는종교서술첫머리에해당하는회팅크판의내용은다음과같다. Wat haer godsdienst, tempels, papen ende secten belanght, de gemene man doen voor haer afgoden wel eenige superstitie, maer achten haer overheijt meerder dan d afgoden, de grooten of edele weten daar gans niet van, om haer afgoden eenige eer te bewijsen achten haer selven meer dan de selve te wesen van predicken ofte leeringh, Is haer onbekent, ofte malcanderen eenige onderrichtinge in haer gelooff te doen, disputeeren daer noijt over, doordien sij al een geloof hebben, door t heele land, ende afgoden al eene eer bewijsen. 헨니사브나이예의웹페이지에서인용함 _ 종교문화비평 18

18 As regards their religion, temples, monks and religious groups, the ordinary people do pay their idols some superstitious rites, but they have more respect for public authority than for their many gods. Preaching and catechism are unknown to them, neither do they instruct one another in their faith. Even if they have any faith, they never debate about religion. All through the country idols are venerated in the same fashion. 28) 그러나기존의판본들에서는 종교에관하여 에뒤이어 종교가없다 는진술이추가되어있음을볼수있다. 기존의네덜란드판본 [(st)+(sa)] 을번역한불역본 [(st)+(sa) (m)] 을보면, 이부분이 한국인들은거의종교를가지고있지않다 (Pour la Religion, les Corefiens n en ont prelque point) 는언급으로시작되고있음을볼수있다. 29) 불역본의영어번역 [(st)+(sa) (m) (c)] 에는불역본의내용이글자그대로번역되어있다. 그리피스의 한국의안팎 을통해가장많이참조되었고많은한국연구자들에게기준이되었던처칠판의해당부분은다음과같다. As for religion, the Coreans have scarce any. The common sort make some odd grimaces before the idols, but pay them little respect; and the great ones honor them much less, because they think themselves to 28) Hendrik Hamel, Jean-Paul Buys of Taizé (tr.), op. cit., pp 유동익의번역역시회팅크판을대본으로하는데, 이번역은첫줄의 ~ 에대하여말하자면 이라는구절이빠진것을제외하고는비슷하다. 평민들은약간의미신을가지고있으며우상을섬기지만, 국가에대해더많은경외심을가진다. 고관들혹은양반들은우상을전혀섬기지않는다. 이는자신들이우상보다더뛰어나다고생각하기때문이다. 그들은설교나교리를알지못하며신앙안에서자신들이해야할일을하며그들의신앙에대해서결코논쟁을하지않는다. 왜냐하면그들은모두동일한신앙을가지고있으며동일한방법으로우상을숭배하기때문이다. 헨드릭하멜, 유동익옮김, 앞의책, 쪽. 29) 불어본에서종교서술의처음부분은다음과같다. Pour la Religion, les Corefiens n en ont prelque point. Le menu peuple fait bien quelque grimace devant les Idoles, mais ils ne les révérent guéres, & les Grands les honorent encore moins, parcequ ils fe croyent être quelque chofe de plus qu une Idole. Du reflte ils ne favent ce que c eft que de prédication, ni de miftére, auffi ne difputent ils point de Religion, croyant tous une méme chofe, & la pratiquant également par tout le Royaume. Recueil de Voiages au Nord Contenant divers Memoires tres utiles au Commerce & a la Navigation, 2nd ed.(1732). 연구논문 _221

19 be something more than an idol. Beyond this they know nothing of preaching nor of mysteries, and therefore they have no disputes of religion. 30) 왜기존의판본에는회팅크판과는달리 한국인들은거의종교를가지고있지않다 는문장이등장하는것일까? 번역의정황을고려해볼때, 이문장은유럽독자들의눈높이를고려한은밀한변형이많이이루어진사그만판에서삽입된것으로보인다. 조선의간통을묘사하는부분에서 남자들은원래호색한이다 라는상식에의거한부연설명을달아놓았듯이, 출판업자는 상식 에의거해서 종교가거의없다 는부연설명을달아놓은것이다. 그러나유럽인들의상식은하멜이생각했던바와는달랐다. 일반개념으로서의 종교 를의식하지않았던하멜은결코종교의유무에관한질문을던지지않았다. 그리스도교전통을일컫던용어를갖고한국종교문화를서술하였던하멜에게굳이그질문을소급한다면, 그는종교가있다고했을것이다. 그러나하멜이현실적인입장에서서술한내용은유럽의출판업자와독자들에게는종교가없다는것으로이해되었다. 이변화는단순히한문장의삽입이아니라전체해석의기조를뒤흔들었다. 위인용문의마지막부분은회팅크판에서 설교라든지교리문답같은것은그들에게는아예알려져있지않고, 서로에게자기믿음을강요하려들지도않음. 다들이미신앙을가지고있으며 에해당되는내용이다. 원본에서는신앙의존재를전제로진술된내용인데, 처칠판에서는 설교와신비 (!) 를알지못하므로종교에대한논쟁이없다 고, 종교가없음을전제로하는내용으로변화되어있음을볼수있다. 이첫대목의변화로인해하멜의종교서술은이해하기에불투명한텍스트 30) Griffis, op. cit., pp _ 종교문화비평 18

20 로전락했다. 서두에서 종교없음 을선언하고본문에서는종교에대한내용을묘사하는모순된구조를지니게되었기때문이다. 기존에유통된판본의문제는한국어번역에도고스란히계승되었다. 영어본처칠판을기본으로받아들여번역한이병도의번역 [(st)+(sa) (m) (c) (l)] 에서해당부분은다음과같이번역되었다. 宗敎에關하여는, 朝鮮人은거의아무것도없다고할만하다. 普通種類로는偶像앞에서몇가지奇怪한모양을보이는것이있으나 ( 아마巫堂의굿하는것을이름인듯 ) 尊敬이不足하고, ( 더구나 ) 大人 ( 兩班 ) 들은그보다도훨씬不足하게숭배하니, 그것은自己네의地位가偶像보다좀더나은양으로생각하는까닭이다. 이以上에說敎라던지神秘奧妙에關하여는何等의아는것이없다. 그러므로그들사이에는아무宗敎上의討論이없고, 全國을通하야모다同一한것만信하고行할뿐이다. 31) 이병도의번역역시기존판본을좇아 종교없음 의서술로시작된다. 그리고두번째문장에서도많은해석상의난점이있음을볼수있다. 이부분은회팅크판에서 백성들은여러우상을섬기는등미신을믿는것은사실이지만 에해당한다. 애초에이부분은사그만판을옮긴불어판부터 평민들은우상을냉대한다 (Le menu peuple fait bien quelque grimace devant les Idoles) 라고, 회팅크판과는반대의뉘앙스로번역되었다. 32) 영어번역처칠판에이르러서는, 냉대한다 (faire le grimace devant) 라는불어관용구가글자그대로옮겨지면서 얼굴을찌푸린다 (make some odd grimaces before) 라는이해하기힘든표현이되었고, 뒤에역접 31) 헨드릭하멜, 이병도옮김, 앞의글, 쪽. 32) 앞의주 28 을참조할것. 연구논문 _223

21 으로이어지는내용과도잘연결되지않게되었다.[The common sort make some odd grimaces before the idols, but pay them little respect.] 이불투명성으로인해이병도의번역에는다른의미가부가되었다. 평민 (the common sort) 을 보통종류 라고옮겨생긴문제는차치하더라도, 냉대한다는부분이 우상앞에서기괴한모양을보이는것 이라고번역되면서다른의미를획득한것이눈에띈다. 번역자는이대목에 아마무당의굿하는것을이르는듯 이라는풀이를덧붙였다. 번역과개작으로생긴난해한구문을이해하기위하여, 번역자는자신의지식을사용하여창조적인해석을덧붙였지만, 그결과는원래의미로부터의일탈이었다. 자료가이러한식으로주어졌기때문에, 그동안한국학연구자들이하멜자료의의미를이해하는데어려움을겪은당연한결과였다. 서구인들의한국종교연구를개괄한선구적인논문에서이필영은다음과같이하멜기록을인용한다. 조선사람들은우상앞에서괴상한몸짓으로의식을베푸는것이고작이며, 더구나양반들은이러한우상에존경심을나타내지않는다. 왜냐하면이들은우상보다자신이우월하다고믿기때문이다. 이런점에서보면조선에는거의신앙이존재하지않는다. 33) 그는한국종교를미신으로보는피상적인서양관찰자들의첫머리에하멜을 놓고다음과같이말한다. 이렇듯불교까지도미신으로보는관점에서는, 조선에 진정한종교가없다고판단한것은오히려당연한일인지도모른다. 34) 앞서밝혔 33) 이필영, 초기그리스도교선교사의민간신앙연구, 동서문화연구소편, 서양인의한국문화이해와그영향, 한남대학교출판부, 1989, 171 쪽. 이필영은이것을삼중당판본에서인용하고있지만, 인용내용은일치하지않는다. 아마저자가삼중당판본을보고요약해서메모해둔내용을인용한것같다. 삼중당판본에서해당하는내용은다음과같다. 종교를보면조선사람들은거의신앙이없다고말하여도과언이아니다. 서민들은우상앞에서괴상한몸짓을하는것이고작인데존경은하지않으며양반들은더욱이존경심이부족하다. 그이유는자기들이우상보다는훌륭하다고믿기때문이다. ( 레드야드, 앞의책, 265 쪽 ) 34) 이필영, 위의글, 171 쪽. 이필영은 우상 을불상으로보았다. 하멜의종교서술이불교에집중되어있기때문에이해석에는타당한면이있다. 하지만다른곳에서하멜이민간신앙대상에도우상이라는표현을사용하였다는점을감안하면, 우상을불교신앙대상과민 224_ 종교문화비평 18

22 듯이하멜에게 우상 과 미신 은한국종교를묘사하기위해주어진유일한언어였다는점에서이용어에경멸적인함의가있는지는불분명하지만, 한국학자들은그함의를단정적인것으로받아들였다. 하멜에대한이필영식의해석은하멜자료를인용해서한국에대해말했던서양선교사들에서도보였던것이고, 서구인의한국종교연구를개괄한이후의한국학자들에서도여전히나타난다. 최근의학자들에게도하멜은첫서양인관찰자로서중요하게언급되기는하지만, 한국에서종교의존재를인정하지못했고설혹부분적으로인정했다하더라도깊이있는관찰을하지는못했던관찰자로남아있다. 35) 그러나하멜이한국을경험하지못한다른피상적인서양인관찰자들과동일선상에서논의되는데서벗어날필요가있다. 조선사회의일원으로서 13년간생활하면서조선의상하계급을두루체험한하멜기록의예외성이그의종교서술을평가할때고려될필요가있으며, 아울러그가사용한언어의특수성에대한고려도필요한것이다. 3. 유럽에서타자이야기가받아들여진방식하멜의이야기가유럽에서출판될때 13년을야만인들사이에서노예처럼보냈다 는제목이표지에포함되었다는사실은앞에서본바있다. 이러한출판업자의가공은유럽독자들의바람이투영된것이었다. 유럽독자들이기대한것은종교없는미개한국가에서겪은모험담이었다 년에일본에체류하면서한국에대한기록을남겼던독일인의사시볼트 (Philipp Franz von Siebold) 는하멜 간신앙대상을포괄하는것으로보는것이더좋다고생각한다. 35) 김종서, 서양인의한국종교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6, 7-8 쪽. 프랑스학자불레스텍스역시이러한해석에서벗어나지못했다. 불어본을참조하였으리라생각되는그의입장에따르면, 하멜은한국인들이종교에관심을보이지않는다고매우비판했다는입장이었다. 그가제시한하멜기록의번역은다음과같다. 꼬레지엥들에게종교는거의없다고해야할것이다. 이작은인종들은우상앞에서우스꽝스런표정을짓기도하지만진정으로숭상하는것은아니고, 어른들의경우는더더욱그렇다. 그들자신이우상보다는낫다고여기는모양이다. 불레스텍스, 이향 & 김정연옮김, 착한미개인동양의현자 : 서양인이본한국인 800 년, 청년사, 2001, 40 쪽. 연구논문 _225

23 의이야기가유럽독자들의바람과상호조응하면서나타난결과를다음과같이 정확하게지적했다. 17세기중반기에조선의해안에서난파당한네덜란드선박스페르버르호의유명한사건, 그리고체포된채귀국을거부당한난파자들, 억류중의가혹한취급, 몇사람의위험한도망과조국으로의귀환, 그들의체험담과꼬리를물고이어지는구전이진기한것을듣기좋아하는당시사람들의뇌리에비그리스도교적야만인이라는두려운이미지를만들어버렸던것이다. 36) 하멜의이야기는조선에서의생활을서술한보고서로작성되었지만, 유럽독자들에게는다른맥락에서읽혔다. 하멜이야기는주로당시유럽에서유행했던여행담이나항해전집안에포함되어서보급되었다. 37) 이과정에서하멜의기록은원래의이름인 항해일지 가아니라 난파기 (account of shipwreck) 라는이름으로유통되었다. 하멜의보고서가제주도표착에서시작하긴하지만주된내용은조선생활이라는점을생각해보면, 이제목은책내용의요약이라기보다유럽독자가원하는바의반영이었다. 대항해시대이후유럽출판계에서는탐험가, 정복자, 선교사에의해비서구세계에대한기술들이쏟아졌다. 이는하멜의자료중에서예외적인측면을지닌 36) 시볼트, 유상희옮김, 시볼트의조선견문기, 박영사, 1987, 49 쪽. 37) 한국에출판된하멜보고서중에신복룡의번역에수록된것이여행전집에포함되어유통된하멜이야기의한예가되리라생각된다. 이판본은심하게축약되어있어, 종교에관한부분은세단락에지나지않는다. 역자는다음책에수록된내용을번역했다고밝히고있다. James Burney (ed.), A Chronological History of the Voyages and Discoveries in the South Sea or Pacific Ocean Part III ( ), London: Luke Hansard and Sons, 이판본의종교부분의첫단락은다음과같다. 앞에서우리가집중적으로다룬부분은첫세문장에압축되어있다. 조선에는아무런종교가없다. 빈민들은아무런경외심도없이자신들의우상앞에서얼굴을찌푸린다. 그들은착한일을한사람은보답을받을것이며나쁜짓을한사람은벌을받을것이라는믿음을가지고있다. 그러나그들사이에설파되는교리는없다. 그럼에도불구하고조선에는암자와사찰이많았으며수많은종파가있다. 어떤사찰에는 5-6 백명이상의수도승이있다. 승려는스스로원한다면기꺼이자신의직업을그만둘수있으며누구든지승려가될수있다. 일반적으로승려들은노비와비슷한취급을받는다. 승려들은군역을면제받지않으며대다수가번갈아가며성이나요새를경계하는일에복무한다. 만약그가깨달음을얻으면고승으로추앙된다. 승려들은말을타고방문을한다. 신복룡역주, 하멜표류기外, 집문당, 1999, 56 쪽. 226_ 종교문화비평 18

24 < 그림 2> 표지에 13 년을야만인들사이에서노예처럼보냈다 는해설이붙어있는스티처판본문에사용된도상들 (1668 년 ) 다. 그것은서구인의입장에서일방적으로관찰한기록이아니라원주민인한국인사회에편입되어그일원으로살아간경험을기술한것이기때문이다. 당시유럽의출판물중에서이러한예외성을지닌텍스트를하나더꼽는다면스페인인카베사데바카 (Alvar Núñez Cabeza de Vaca) 가북아메리카에서겪은일을기록한책을들수있을것이다. 그는 1528년지금의플로리다지역에표착하였다. 배와다 연구논문 _227

25 수의동료를잃은카베사일행은북미원주민의도움을받아생활을영위하였다. 그들은점차원주민과의사소통을했고, 원주민들이필요로하는물건을갖다주고음식을얻는 행상 역할을하며부족들사이를전전하게된다. 그들이음식을얻기위해한행위중에는 의료 행위도있었는데, 이것은환자를안정시키고성호를긋고기도를하는행위였다. 그런데이행위의효험이알려지자그들은원주민사이에서 샤먼 으로인정받았다. 그들은샤먼으로서원주민부족들을전전하며북미남동부해안과내륙으로여행을계속했다. 그들의행로는플로리다로부터미시시피강, 텍사스, 뉴멕시코, 그리고애리조나까지이르렀다가남쪽으로방향을틀어멕시코에있는스페인식민지로돌아오게된다. 그들이백인사회로돌아오기까지걸린시간은 8년이었고, 생존자중한명인카베사는유럽에돌아와서이체험을출판하였다. 38) 카베사의텍스트는두가지점에서하멜의텍스트와의유사성을말할수있다. 하나는그들이원주민사회의일원이되어긴밀한상호관계를가졌다는경험의 예외성 이다. 하멜일행은처음엔조선관청에속해일했고, 유배된뒤에는지방관의관리아래노역에동원되었다. 뿐만아니라정부관리밖의영역에서는지역주민들사이를돌아다니며이야기와장작을해주고돈을받는 구걸행각 을했다. 결국하멜일행은이상호교류를통해돈을모으고, 함께술을마시며친하게지내던한국인친구의도움을받아탈출에필요한배를구입할수있었다. 극적인면에서다소차이가있지만, 카베사역시원주민사회의일원이되고행상과샤먼역할을통해그들과긴밀한상호관계를가짐으로써결국엔북미대륙을횡단하고멕시코로귀환할수있었다. 또하나의유사성을지적한다면, 그들이원주민과함께지냈다는예외성은유 38) 이책은우리나라에다음과같이번역, 소개되어있다. 카베사데바카, 송상기옮김, 조난일기, 고려대학교출판부, _ 종교문화비평 18

26 럽독자의흥미를불러일으킨요인이기도했지만, 바로그예외성의핵심적인부분은이해되지못했다는점이다. 카베사의기록에서예외적인측면은유럽의세계관과원주민들의주술적세계관이공존했다는점이었다. 그러나독자들은그공존을억압하면서주술적세계관내의치료행위를하느님에의한기적으로, 카베사를정복의수호성인으로바꾸어이해했다. 39) 그것은하멜이조선이라는 통치체제 아래겪은일들이유럽독자들에게는야만인의노예로지낸것으로이해된것과마찬가지였다. 하멜의이야기가 보고서 가아니라 난파기 로유통되었듯이, 카베사의이야기도원래제목은 이야기 (Relación) 였지만곧 난파기 (Naufragios) 라는제목으로바뀌어출판되었다. 한비평가는이러한제목의변화에는당시유럽인들을사로잡았던 난파 라는은유가작용했다고지적한다. 카베사데바카가난파를겪었기때문에그의설명은곧바로다른것보다도종교적인독해의대상이되었다. 난파는물질문명의상실, 카오스와사회적아노미로의전환을함축하는것이기도하지만, 서구적이성의한계, 그리고창조주와대면하는세계로의전환이기도하다. 40) 카베사의텍스트와하멜텍스트의성격은다소다르지만, 난파라는모티브가당시유럽인에게종교적인맥락에서작동한방식은두텍스트의독자에동일하게나타났다고생각된다. 난파는유럽과비유럽을문명과비문명의세계로가르는극적인사건이었다. 비문명세계를표현하는중요한방법중하나가종교가없다는것이었다. 당시는복제와표절의물결을타고세계적인산업으로성장한기행문학 39) José Rabasa, Writing Violence on the Northern Frontier: The Historiography of Sixteenth-century New Mexico and Florida and the Legacy of Conquest,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0, p ) Ibid. p.54. 연구논문 _229

27 ( 紀行文學 ) 이종교의부재 ( 不在 ) 를세계각지에증폭시켰던시기였다. 41) 이러한인식의구도를잘보여주는것으로는하멜의텍스트가유통되었던시기에폭발적인인기를누렸던소설 로빈슨크루소 (1719년) 가받아들여졌던방식을들수있다. 맥그레인은유럽독자들이크루소를통해타자를대면한방식을다음과같이설명한다. 크루소의경우에그와타자사이에가로놓인것은 ( 중략 ) 시간 이아니라 종교 이다. 그사이에는역사적인시간이아니라지리적인종교가, 직선적시간이아니라공간적인종교가가로놓여있는것이다. ( 중략 ) 크루소가보기에 야만인 들은벌거벗었고자신은옷을입었다. 그들은벌거벗었고그는총으로무장했다. 그들은벌거벗었고그의영혼은그리스도교로무장하였다. 타자는원시인 (primitive) 이아니라야만인 (savage) 이다. 그리스도교적인, 종교적인인식내에서타자가출현하는것이다. ( 중략 ) 크루소에게있어야만인의근본적인기준은그리스도교의부재와그에따라금수, 악마, 지옥으로떨어지는인간본성의바닥상태였다. 42) 유럽인들이하멜을통해만난한국인, 카베사를통해만난북미원주민, 크루소를통해만난야만인은동일한구도를통해이해되었다. 동아시아문화, 그중에서도한국문화의특수성은 야만인 내에서분별될수없었다. 유럽인들과한국인, 북미원주민, 야만인사이에가로놓인것은 종교 ( 그리스도교 ) 였다. 우리 ( 유럽인 ) 와그들을갈라놓는것은종교의있고없음이었다. 이러한타자대면의구도아래, 하 41)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Colonialism and Comparative Religion in Southern Africa, Charlottesvill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1996, p ) Bernard McGrane, Beyond Anthropology: Society and the Oth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9, p _ 종교문화비평 18

28 멜보고서의유통과정중에 한국인들에게종교는거의없다 라는문장이삽입되었 던것이다. IV. 맺음말 여러가지의미에서하멜은예외적관찰자였다. 하멜은미지의나라한국에표착한후훈련도감에서근무하기도하고지방관의노역에종사하기도하면서한국사회에서 13년을보냈다. 때로는지역사회나절을돌아다니며사람들과교류하였고, 그렇게모은돈으로배를사서한국을떠났다. 그는네덜란드동인도회사에올리는보고서를작성하여한국이상업적으로어떠한가치가있는지보이고거래가가능할정도로 잘다스려지는 사회임을알리고자하였다. 한국종교에대한그의서술은역시종교가어떠한체제를이루고있는지에집중되었다. 그의보고는유럽에서출판되어여러판본으로보급되고여러언어로번역되어유럽인들에게알려졌다. 그러나유럽의독자들은하멜의보고를어떤야만인에대한묘사라는관점에서이해하였다. 하멜경험의예외성은인정되지않았고야만인에대한전형적인시각이해석을지배하였다. 그과정에서하멜의종교묘사는한국의 종교없음 에대한것으로변형되었다. 이변형은지금의한국종교연구자들에게까지영향을미치고있어, 하멜은한국종교의존재를발견하지못했거나, 설혹그랬더라도피상적인관찰에그쳤던이방인으로평가받는것이대부분이었다. 원본인회팅크판소개를계기로그간하멜텍스트의변형과이해, 혹은오해의역사를되짚어볼수있었다. 하멜이 17세기한국에서접한종교문화에대한기록을남겼을때, 그것은 종교 이전의기록이었다. 기록자하멜에게는일반개념으 연구논문 _231

29 로서의종교개념이존재하지않았으며, 기껏해야종교개념의태동의계기가되었던종교개혁시절의언어들이존재했을뿐이었다. 종교개념이형성된것은하멜의기록을비롯한비서구지역에대한기록이축적된유럽에서였다. 유개념으로서종교개념이형성되자그부산물로 야만인에게도종교가존재하는가? 라는물음이뒤따르게되었다. 하멜보고서의해석을지배한것은바로이 종교 이후의물음이었다. 한국에종교가있는지없는지는하멜로서는가져보지못한물음이었다. 그러나이물음은하멜텍스트를해석하는결정적인물음으로지금까지존재해왔다. 그러나회팅크판이우리에게알려주는것은이물음을해체해야하멜의의도에접근할수있다는것이었다. 우리는여기서종교에대해언급하는다른자료들과마찬가지로하멜보고서의종교묘사를해석하는데하나의교훈을얻게된다. 어떤자료안에담긴종교에대한 인식 을이해하지않고서, 단순히그자료에서종교에대한 정보 를얻으려하는것은위험하다는것이다. _ 방원일서울대학교종교학과박사과정. 주요논문으로 < 혼합현상이론화하기 >, < 일본과그리스도교의만남의과정에서일어났던타자의인식 >, < 한국크리스마스前史, > 등이있으며, 옮긴책으로는조너선스미스의 자리잡기 가있다. 232_ 종교문화비평 18

30 참고문헌 김종서, 서양인의한국종교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레드야드, 박윤희옮김, 하멜漂流記 : 朝鮮王國見聞錄, 三中堂, 불레스텍스, 이향 & 김정연옮김, 착한미개인동양의현자 : 서양인이본한국인 800년, 청년사, 왈라벤, 내키지않은여행자들 : 핸드릭하멜과그의동료들의관찰에대한해석의변화, 대동문화연구, 56호, 2006년. 윌프레드캔트웰스미스, 길희성옮김, 종교의의미와목적, 분도출판사, 이필영, 초기그리스도교선교사의민간신앙연구, 동서문화연구소편, 서양인의한국문화이해와그영향, 한남대학교출판부, 지명숙 & B.C.A. 왈라벤, 보물섬은어디에 : 네덜란드공문서를통해본한국과의교류사, 연세대학교출판부, 카베사데바카, 송상기옮김, 조난일기, 고려대학교출판부, 헨드릭하멜, 유동익옮김, 하멜보고서, 중앙 M&B, Bernard McGrane, Beyond Anthropology: Society and the Othe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David Chidester, Savage Systems: Colonialism and Comparative Religion in Southern Africa, Charlottesville: University Press of Virginia, Hendrik Hamel, Jean-Paul Buys of Taizé (tr.), Hamel s Journal and a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 , 2nd ed., Seoul: Royal Asiatic Society, Korea Branch, Jonathan Z. Smith, Relating Religion: Essays in the Study of Religion,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Mark N. Trollope, Foreword: An Account of the Shipwreck of a Dutch Vessel on the Coaft of the Isle of Quelpart, Transactions of the Korea Branch of the Royal 연구논문 _233

31 Asiatic Society, vol.9, William Elliot Griffis, Corea, Without and Within, 2nd ed., Philadelphia: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1885[1884]. 헨니사브나이예의홈페이지 ( 234_ 종교문화비평 18

32 Abstract A Study on Hamel s Description on Korean Religion Bhang, Won Il Seoul National University Hendrik Hamel, a Dutch tradesman who shipwrecked at the Jeju Island in 1653 and had been kept in Korea for 13 years, reported his life in Korea to the Dutch East India Company. Since its publication in 1668, his journal has been a valuable source for Korean religion to Western and Korean scholars. As for religion, his journal has been accepted as a denial of religion in Korea and, at best, a superficial observation for Korean religions in 17th century. However, previous versions of Hamel's journal has been transformed by commercial publishers and misunderstood through translations. According to the Hoetink version, which is based on the original Dutch manuscript, we can revise the previous interpretation of Hamel s text. From this rereading, this study suggests three points concerning Hamel s description on Korean religion as follows: First, far from being the denial of Korean religion, Hamel s description supposes the existence of religion, or belief, in Korea. Second, the terms used in Hamel s description are those of religious debates during the Reformation. Because Hamel did not have the religion as a general concept, which is developed since the modern age, in his mind, it is impossible for him to raise the question of universality of religion. Third, Hamel s experience in Korea ranges various classes from King in Seoul to common people in Cheolla province. This enabled him to perceive the dual structure consisting 연구논문 _235

33 of the elites and popular traditions in Choseon dynasty. As Hamel s journal originally intends for the report to the commercial company, it emphasizes the systemic aspects in Korean religions. For European readers, however, it has been read as a story of escaping from the savages. Similar to the case of Cabeza de Vaca who survived the shipwreck in North America, Hamel s story has not been accepted as a journal or report on Koreans but a story of shipwreck, which was a religious metaphor distancing Koreans from Europeans. Koreans as savages were considered not having religion. It was this understanding of Hamel's text that enabled the interpolation of the sentence, As for religion, Koreans have scarce any. The distortion and misunderstanding of Hamel s text have influenced to the modern scholars of Korean religion. The rereading of it suggested in this study will rectify the previous scholarly discussion about Hamel s description on Korean religion. Key Words : Hendrik Hamel, Korean religion, Hamel s journal, shipwreck, the other, translation, absence of religion, Cabeza de Vaca 투고일 : 심사일 : 게재결정일 : _ 종교문화비평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