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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의로 실패한 한국의 교육 강국진 들어가며 지난 10년동안 나는 이스라엘, 미국, 일본에서 연구생활을 해왔다. 그 기간 동안 두 아이를 아내와 키웠으며 한국은 거의 해마다 방문해 왔고 그 지역 의 한국인들과 외국인들의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교육이란 문제는 언제나 내 마음에 있었다. 이는 또한 한국에서 언제나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되는것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내가 다시 절감한 것은 아이의 교육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이를 둘러싼 가정과 사회의 문화라는 점이었다. 이 책의 제목 인 고의로 실패한 한국의 교육은 과도한 권위주의적 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위선적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의 교육은 성공하지 못할것이라는 이야 기를 하기 위하여 선택되었다. 이 책은 가벼운 에세이집이기도 하고 철학책이거나 윤리나 과학에 대한 책 이기도 하며 각 나라의 문화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이렇게 복잡한 책이 되 버린 것은 나는 교육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르치고 배우 는 것에서 시작하고 끝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체성이 란 문제는 문화, 철학, 과학 모든 분야에 관련되어져 있다. 개인의 정체성이란, 즉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수학 문제를 푸는 법이라던가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도 물론 중요한 배움이지만 그런 것들은 기본적으로 왜 어떤 것을 배우는가, 왜 우리는 이러저러하게 행 동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문제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으로 생각된다. 예 를 들어 아이의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참고서와 공부방법 이전에 동기의식이 필요하다. 스스로 동기를 가지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교육이란 처 음부터 실패하기로 예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책의 처음에 먼저 한국사회의 모습에 대해 논했다. 그리고 이책의 대 부분의 내용에 걸쳐서는 주로 다른 나라의 생활과 문화와 교육에 대해 이야 기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한국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의 이

2 야기를 하면서 우리 나라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한국 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게된 이유이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생각한 것은 한국이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가치란 무엇인가, 한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에세이의 형식으로 씌여졌다. 이런 형식이 되버린 것이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가치판단은 엄밀한 숫자의 나열속에서는 실종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엄밀하게 객관적입장에서 세계의 교육과 문화를 논하는 책은 아니다. 어떤 때는 자료를 수록하는 것을 피할수 없었지만 나의 개인적 체험에서 느 낀 것에 집중했다. 아이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키울수가 있다. 거기에 절대적 인 객관적 기준이란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며 설사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아직 인간은 그걸 발견하지 못한 것같다. 객관적 입장에서 문화를 비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겠다는 주장을 담기 힘들다. 문화는 상대적이고 그래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키울수 있다는 선에서 끝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우리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따라서 따라 서 세계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내 나름대로 경험 한 것을 주관적인 입장임을 숨기지 않고 에세이 형식으로 적었다. 이것은 기 본적으로 한국인인 내가 세계를 보고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이책을 인터넷에 올려놓기로 결정했다. 이책을 읽는 사람은 자유롭게 배포해도 좋다.다만 이책을 쓰는 것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기 위한 것이므 로 만약 이 책을 읽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도 권해주기 바랄뿐이다. 나와 생각을 더 나누기 바라는 사람은 나의 블로그, 방문해도 좋겠다. 목차 한국편- 나는 너를 뭐라고 부르는가. 고의로 실패한 한국의 교육. 권위주의적 남자들의 좌절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나라가 필요하다. 정체성이 교육의 시작이자 몸통이다.

3 이스라엘편- 예루살렘 유태인은 누구인가 유태인 아이들이 자라는 방식 때로는 정말 점심만 먹었으면 좋겠다. 비극적 인생 우리는 왜 김구 공항이 없을까 가깝다고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편- 911의 기억 자유의 신화 신은 미국을 사랑한다. 학교가는 길 반즈앤드노블에서 크는 아이들 독립적인 아이 과학이 몸에 흐르는 나라 뉴 올리언즈로부터의 여행 일본편- 일본이란 나라의 첫인상 인간적 일본 다양한 신이 사는 나라. 사이타마현 와코시 화의 일본 일본의 노인들 죽음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 지역사회와 교육 일본의 집, 한국의 집 한국편-

4 나는 너를 뭐라고 부르는가. 한국에서 학회일로 사람들을 만날때의 일이다. 어떤 박사과정 말기쯤 되는 사람이 자동차 운전을 해주었다. 나는 처음본 사람이니 당연히 존대어를 쓰면서 이야기하는데 한 교수가 나에게 그럴거 없다는 듯이 아직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라고 말해 준다. 그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이 사람이 1년쯤 지나 박사를 받으면 갑자기 나와 동등해지고 지금은 이런저런 잡일을 시키며 반말로 무시해도 된다는 뜻일까? 학생이 졸업을 하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걸까? 내가 대학교 4학년때 제주도 여행을 했던 때의 일이었다. 제주에서 한무리의 대학생을 만나는데 인상좋게 생긴 한 대학생이 대학교 학번을 묻더니 자기는 2학년이고 다른 학생은 1학년이란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아직 애들입니다. 그 사람에게 어떤 악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학교 2학년이 1학년을 애취급한다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 적어도 그때의 한국이었다. 지금은 다른가. 얼마나 다른가. 그런 사람들에게 대학원생이나 교수나 사회인은 감히 말도 섞기 어려운 신적인 존재일것이다. 하늘위에 하늘위에 하늘이니까. 하지만 이래서야 한국의 지식인이 진취적이 될수 있을까. 외국 생활을 좀 하면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은 한국인을 피해다닌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외국에 살면서 고의적으로 현지 한국인들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다른 한국 사람에게 알려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 사람이란 서로를 만나면 인사 한두번하고 또 마치 친형제 친부모라도 되는 것처럼 뭉치는 것이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 사람이나 일본사람이나 중국 사람이상으로 잘 뭉친다. 이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가지 현실들은 실상 긴밀히 연결되어져 있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한국 사람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데 바로 일단 약간이라도 친분을 가지게 되면 지나치게 서로 얽혀드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때는 만나자마자 5분만에 친형제처럼 친해진다. 이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좋은 것이지만 잘 모르는 나쁜 사람을 만났을때는 재앙이 된다. 따라서 한국 사람과 친분을 맺는 것은 거액의 도박과 비슷해 진다. 잘되면 아주 든든해 질수 있지만 잘못되면 너무 힘들어 진다.

5 이 때문에 외국에 사는 사람은 외국인들과 인사하고 잡담을 시작할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하지만 한국 사람의 경우에는 매우 조심을 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도박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한국 사람을 피하고서도 잘 살수 있다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피하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한국에 살면서는 한국 사람을 피할 수 없다. 항상 한국사람에 둘러쌓여 살다보면 그렇게 살지 않는다는게 뭔지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문화의 특징은 호칭의 문제에서 극명히 들어난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도 한국 사람만큼 호칭따지고 높은 호칭 불러주기 좋아하는 나라를 찾기 힘들다. 서로를 다르게 부르고 딱지를 붙여서 부르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대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박사 받고 교수되면 사석에서도 무슨 박사, 무슨 교수라고 서로 존칭하는 건 흔한 일이다. 조기축구회 회장을 10년전에 했어도 회장님이고 하다못해 형님, 선배 라고 부르고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서로 높여주니 좋은거라고 할지 모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호칭부르기란 사실 서로를 옭아매는 그물이나 늪 같은 것이다. 한국을 명예의 거품으로 가득찬 사회로 만든다. 모두가 평등한게 아니라 서로를 이러저러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그에 따른 의무와 권한이 따라서 인정된다. 이것은 매우 귀찮은 것이다. 또한 호칭이란 대개 일단 불려지면 고정이 되기 마련이다. 이는 한번 호칭이 정해지면 두사람간의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물흐르듯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질과 호칭과 예법이 다른 경우도 생긴다. 물론 그 결과 우리는 불편해 진다. 그리고 사람들을 차별하는 장벽은 더 많이 생겨난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긴장이 흐른다. 바로 호칭때문이다. 서로를 어떻게 부르는 가는 몇분안에 결정되는데 대부분 이 호칭의 결정이 상호간에 지켜야할 예의범절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선배라고 부르거나 형이라고 부르거나 무슨 씨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그러니 서로 어떻게 부르는가를 두고 당황해 하고 서로 나이를 알게 되거나 하는 일에 조심스러워 진다. 직장 상사의 부인과 부하직원의 부인, 의사의 부인과 레지던트의 부인은 남편들의 직급처럼 상하관계가 있다는 식의 몰상식이 한국에서 지속 되는 것도 이 복잡한 위계질서에 대한 인식때문이다. 호칭이 그런 구조를 포함하고 있고 사람들이 그런걸 기대하게 만든다.

6 미국이나 이스라엘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지도학생을 나는 본적이 없다. 그쪽에서는 서로에 대해 존칭을 부르고 있다는 것은 서로 안 친하다는 증거다. 지도학생이 지도교수랑 안 친하다는게 말이 되는가. 미국에서 지도학생에게 나를 부를때는 계속 프로페서라는 말을 붙이라고 한다면 그런 교수는 지독한 경멸의 대상이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도 사석에서는 아는 사람들과 서로 이름을 부르고 지내는게 당연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서양이라 그렇다치고 일본은 어떨까. 일본의 연구소에는 당연히 박사들이 즐비하다. 거기도 한국같이 서로 나까무라박사 고이즈미 박사 이렇게 부를까? 서양과는 다르다. 하지만 일본도 우리나라 만큼은 아니다. 존경의 의미로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평어를 쓰거나 무슨 무슨 상이라고 부를 뿐이다. 우리나라만큼 사석에서도 이사님, 박사님, 교수님, 장관님 하면서 서로 직함 부르는 나라를 나는 본적이 없다. 우리는 강력히 직함을 의식한다. 의식하게 만든다. 감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문화다. 호칭은 더구나 남녀 불평등적인 요소도 많다. 전통적인 호칭은 으레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는 남자의 부인을 높이는 말로 사모님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는 그 남자를 내가 배움을 얻는 스승이라고 높이는 뜻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여자라고 하자. 그 여자의 남편은 어떻게 불러야 할까? 사부님? 적당한 단어를 찾아 헤매는 일이 종종 있다. 규칙을 따져보면 바깥양반이나 바깥어른으로 불러야 한단다. 그러나 이런 규칙은 도대체 어디 구석에서 나온것일까. 누가 언제 만든것일까. 원래 그렇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조선시대 기준인가? 언어를 유지하는 것이 과거의 악습도 유지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친형제가 아닌데도 남녀가 친해지면 오빠라고 부르는 일이 많다. 그런데 그게 남녀관계의 친밀도를 너무 강조하기 때문에 어떤 여학생들은 그걸 거부하고 싶어서 연상의 남자를 부를 때 아예 형이라고 부른다. 오빠라고 불렀을 때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막기 위해서다. 이렇게 한국의 인간관계에서 호칭은 골치아픈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만나 처음 호칭을 부르는 순간 한국인의 인간관계는 상당부분 고정되고 만다. 구분이 생기고 누구와 누구는 같은 부류로 누구와 누구는 다른 부류로 분류되고 만다. 한번 불린 호칭은 대개 시간에 따라

7 변하지 않고 나는 내가 원하지 않는 호칭으로 불려서 휩쓸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람들을 구분해서 부르는 순간 세상에는 차별이 생기고 사람들을 구속하고 구속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 부지런히 세상을 복잡하고 고정된 것으로 만드는 일은 요즘 같이 세상이 복잡하고 빨리 변하는 시대에 특히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구분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더라도 좀 덜 구분해야 하는거 아닐까. 호칭문제의 배후에는 한국 사회가 매우 권위주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한국에서 선배라고 쉽게 부를 수 없는 것은 선배라고 부르는 순간 선배 후배사이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관습이 적용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호칭이 세분화되어 쓰인다는 것은 그 호칭을 부르는 순간 그 관계가 고정된다는 의미다. 그렇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는 부지런히 상하관계를 만든다. 대학에서 학번따지고 회사에서 기수따지고 해병대 기수따지고 나이따지고 촌수따지고 집안내 서열따진다. 서로가 서로를 얽어맨다. 누가 누구보다 위니까 이러저러한 권한, 이러저러한 기득권을 가진다는 것인데 그 상하관계를 따지는 방법은 무수히 많다. 이쯤되면 제대로 따지기 위해서는 박사학위라도 가진 전문가가 필요할 지경이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경우 호칭을 제대로 몰라 전문가가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부자유하게 만들고 그 제약속에서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허우적 댄다. 세상은 합리적 사고 이상으로 사회적 관계에 의해 지나치게 영향받는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미국이나 중국은 물론 일본과 비교해도 매우 작은 나라다. 결국 전국민이 몇다리 건너면 이리저리 사회적 관계로 얽힌다. 몇다리 건너면 모두가 위아래로 얽혀있으니 모두가 상처입을까봐 꼼짝도 못한다. 공사구분이 어려워 진다. 아들딸들 입시관리를 아버지가 하는 셈이다. 자유가 없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으면서도 가장 높은 시청률을 보이는 드라마는 바로 가족이 나오는 드라마다. 이상한 며느리,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삼촌, 여동생이 줄줄이 나타나서 한판의 자학적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또 그만큼 열심히 본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다. 왜 관심이 있을까. 바로 그 인간관계가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8 모든 한국인은 자유롭지 못하다. 나이가 많은데도 대학동기인 친구와 껄끄러운 일이 있을 수있다. 입사선배 보다 높은 직급으로 출세했을 경우 우리는 곤란함에 처한다. 형제들의 며느리가 혹은 자매들의 사위가 나이순서 대로가 아니면 서로를 부르는데 곤란해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 어제까지 언니 언니하던 사람에게 반말을 듣는 수도 있다. 친구의 남편이 내 남편의 직장상사가 된다면 심각하게 손상된 자존심때문에 우정에 금이 갈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만난 앤디는 대학원에 들어오기전에 세계를 2년간 여행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것이 보다 어려워지는 이유는 돈의 문제가 아니다. 위아래를 따지는 문화 때문에 모두가 같은 경로를 밟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남보다 늦게, 남과 다르게 살았다가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규격품이 아니기 때문에 분류가 되지 않는다. 규격품이 아니라면 어떤 사람으로 대접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대학이든 대학원이든 회사든 몇살에는 뭐 하는 식으로 인생 시간표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은 한국사람들의 삶의 다양성을 크게 해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가 아닐까. 불필요한 권위와 인간관계의 차별은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 고의로 실패한 한국의 교육 예나를 한국에 있는 여름캠프에 보낸적이 있다. 돌아와서 한국에 가니까 뭐가 다르더냐고 했더니 그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언니들은 나이를 엄격히 따져서 놀더라는 것이다. 즉 나이따지고 위아래 따져서 패거리 구분을 하는 것이 한국 어린이 캠프에서 느꼈던 외국과의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 하긴 현대의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아예 나이따져서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 관습자체가 없다.서로 이름을 부를 뿐이다. 나이를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 만나면 먼저 나이부터 따지는 한국과는 풍토가 다르다. 내게는 예나의 대답이 매우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한국은 권위주의와 차별 때문에 교육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가 이 권위주의와 차별을 유지하는가 우리 자신, 한국인들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교육은 고의로 실패하는 것이 아닌가? 층층이 차별이 있는 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는 가를 생각해 보기위해 여기 회사가 하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당신이 고참사원이고 신입사원에게 교육을 시켜서 부하직원으로 써먹어야 한다. 당신은 부하직원에게 책을 복사하는

9 것을 시키고 그렇게 복사된것을 당신이 제본한다고 하자. 부하직원에게 복사를 시켰더니 기가막히게 잘 한다. 참으로 도움이 된다. 그런데 만약 그 부하직원이 제본까지 잘 한다면 당신은 기뻐해야 할까? 천만에. 자칫하면 당신의 존재 의미 자체가 없어진다. 당신은 당신이 제본을 그만두고 그 위의 단계인 판매라던가 인사같은 것을 할 때까지, 그 부하직원의 능력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는 주요한 방법은 그 부하직원의 시야를 제한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부하직원에게 도대체 왜 복사를 하는 지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리고 제본을 어떻게 하는 지 따위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쩌면 일부러 틀린 정보를 줘서 세상에 대한 어리석은 견해를 가지게 만들런지도 모른다. 그쪽이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그 부하직원의 약점을 잡고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네가 나한테 잘못보이면 인생 매장당하는 수가 있다고 협박도 해야 할지 모른다. 추월은 용서할 수 없으며, 부하직원의 능력은 오직 복사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늘어나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회사에서는 전체 사원교육에 비용을 더 들인다고 해도, 더 뛰어난 인재를 신입사원으로 뽑는다고 해도 전체적 능력향상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서로 서로 견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뛰어난 경력사원을 뽑아서 들여와도 마찬가지고 성과를 내는 대로 월급을 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층층히 계급을 만들어 견제를 하게 되는 비민주적인 구조다. 애초에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생각이란걸 안하게 되고 자기 분수 지키고 윗사람 의중을 잘 살피는 능력이 최고로 가치있는 능력이 된다. 한국은 이런 층층의 구조를 지키는 권위주의가 만연하고 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전에 말한 바대로 우리의 언어생활과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이런 층상구조를 탈피하려고 노력하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인간관계전반의 문화가 바뀌지 않고서는 이 문제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돌고 돌아 결국 교육에 관한 상식과 태도에 있어서 큰 차이를 만들게 된다. 소위 선진국의 학생과 선진국의 교육이란 건 한국과 뭐가 다른 것일까. 선진국의 학부교육과 한국의 학부교육을 비교했을 때 가장 차이나는 것은 기술적인 강의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내가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느낀 점이다. 학부 때 전공과목 공부에서 문제를 푸는 건 어떻게 보면 한국 학생이 더 많이 문제를 푼다. 즉 기술적인 교육은 한국도

10 선진국 못지 않다. 차이가 나는 것은 학생의 태도와 넓은 시야를 주는 교육이 안되는 것이고 사실은 이 후자가 압도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선진국의 학부에서는 학생들이 최첨단 연구현실에 대해 더 일찍 소개받고 관심을 가진다. 교수들이 로보트를 연구하는 지, 우주론을 연구하는 지, 바다를 연구하는 지, 그런걸 왜 하는지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게 소개한다. 물론 학생들은 그 기술적 세부사항을 잘 모르지만 지금 무슨 연구들이 현실세상에 일어나는가를 일찍부터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선진국의 교수들이란 대개 이런일의 중요성을 보다 강력하게 인식하고 기술적인 문제를 제치고 문제를 흥미있고 쉽게 설명하는데 더 능숙하다. 말하자면 선진국의 학생들은 처음부터 사업가로 길러지고 한국의 학생들은 처음부터 컨베이어 벨트 위의 무지한 직공으로 전문화 되어 길러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선진국의 학생들이 자동차 산업의 중요성과 전망을 배울 때 이쪽은 나중에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는채 브레이크의 제작과 조정기술에 대해 배우는 식이다. 선진국의 교육이란 철학과 비전과 넓은 시야를 강조하는 것이다. 기술적인 것은 흥미가 강하면 어떻게든 배울수 있기 마련이다. 차이는 물론 교수에게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도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대학교 입학을 앞둔 한 고등학생을 만났다. 내가 그와의 만남에서 신선하게 느꼈던 것은 사학과에 합격한 그 학생이 역사를 공부하겠다는 의욕에 가득차 있었다는 점이다. 왜 이학과에 들어가는지 확실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그 학생은 아마도 여가시간에도 역사에 대한 책을 취미로 읽을 것이다. 그게 좋아서 대학에 온 학생이니까. 물론 영국이나 미국에도 대학에 들어가면 놀겠다고 하는 학생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도 이렇게 열의에 가득찬 학생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내 느낌으로는 좀 차이가 있다. 한국학생들은 항상 정해진 교과서를 순서대로 공부하는데 익숙하다.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것을 파고 드는 것이 아니라 1 학년 공부 다하면 2 학년 것을 하고 그 다음엔 3 학년 것을 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항상 사회전반에 세상은 층층의 구조가 있고 너는 1 학년때는 이걸하고 2 학년때는 저걸한다는 식의 인식이 강하게 깔려있기 때문이다. 어릴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순서대로 내 나이와 위치에 맞게 정해진 것만 공부하는데 익숙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기 보다는 내 의무를 다한다는 느낌이다. 그 결과

11 대학생이건 교수건 한국에서는 과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이 과학에 대한 잡담을 하지 않고 공학을 전공한다는 사람들이 공학에 대한 잡담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말 그들은 자신이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일까. 이런 차이는 선진국의 학생들이 자기 연구를 언제 시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선진국 학생들은 뛰어난 학생들의 경우 상당히 일찍 연구를 시작하고 연구가 본격화된다. 반면에 한국의 학생들은 이것이 매우 늦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군대도 가지 않는 선진국 학생들은 20 대 말 전에 상당한 연구경력을 쌓게되는 반면 한국의 학생들은 종종 자기 연구주제 자체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 매우 늦는다. 가장 창의적인 젊은 시기가 헛되이 다 흘러가 버리고 만다. 교수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연구에 있어서도 독립성이 떨어진다. 빌 게이츠가 대학교를 2 년도 안다니고 사업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나중에 대학끝나고 대학원과정이 끝나고 내가 뭐가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고 하면 그것은 너무 늦다. 진짜 중요한 강의는 인터넷 사업이 요즘 전망이 좋다는 식의 강의일것이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대학생들은 그런 강의는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프로그램밍의 자세한 테크닉을 설명해 주는 강의를 들으면 내용이 알차다고 생각한다. 대학생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 고등학생이 안다면 더욱 좋다. 중학생이 안다면 더더욱 좋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어리건 많건 서로 대화가 통하면 대화하는 것이고 대화가 안되면 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이리저리 잣대로 나누어 차별하고 각자의 작은 층속에 빠져든다. 그러니까 5 학년은 3 학년하고 동등하게 대화를 하지 않고 학벌이 높으면 학벌대로 깃수가 높으면 깃수대로 모여서 마치 아랫층 사람들은 전부 우리 수준이 안된다는 식으로 행동한다. 지연 학연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패거리를 만들고 그안에서만 겨우 터놓고 대화를 한다. 이렇게 해서 과연 제대로 된 공부를 할수 있을까? 효율적인 정보교환이 일어날까? 남이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서 일찍부터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을거라고 믿겠지만 대학 교수들은 사실상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하는지 모른다. 알수가 없다. 물론 확신을 가지고 가르칠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12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리고 나면 뭘 가르쳐야 하는지는 누구도 확실히 모른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으니 혹시 쓰일지도 모르는 기술적인 것을 전부 배우자면 끝이없다. 그렇게 잡다하게 배우다보면 결국 자기가 뭘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교과서만 공부하다가 나이만 먹는다. 10 년뒤 20 년뒤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아는가. 결국 학생이 스스로 선택해서 스스로의 관심사에 따라 공부해야 한다. 교수는 그저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칠 뿐이다. 어느 교수가 뭘 가르친다고 해서 그것만 쭉 따라서 배우면 뭐가 될거라고 생각하는 건 대개 착각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비민주적인 구조적 풍토는 그대로 두고 아직도 한국교육에 대해 말할 때 대학을 운영할 돈이나 학생선발에 대한 것만 주요 화제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더 많은 돈이 대학에 있으면 잘 할 수 있다, 대학입시만 더 잘 치면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등학생이며 대학생들, 연구원들이나 대학교수들을 더 쥐어 짤 수 있는 방안이나 어린 학생들을 결과야 어찌되건 달콤한 말로 유혹해서 이공계로 밀어넣을 수 있는 방안들을 연구한다. 더 많은 채찍질과 당근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돈을 쓴다고 해도 훨씬 부자나라이고 나라규모가 훨씬 큰 미국이나 일본의 연구비만큼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전 세계에서 인재들이 모여드는 미국, 인구가 몇배나 많은 일본보다 재능있는 인재의 수가 한국에서 훨씬 더 많을 수가 없다. 미국보다도 일본보다도 더 비민주적인 풍토를 그대로 두고 단순히 돈을 더 투자하고 재능있는 인재를 끌어들여서 학문적 선진국가를 이룩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한국에서 교육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역없는 민주적 분위기가 교육기관에 존재해야 할것이다. 그게 어떻하면 가능한지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같이 공부하는 분위기,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배우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걸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전체로 퍼뜨리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학문적이든 기술적이든 발전이 일어나려면 일단 높은 곳에 앉아있는 분들, 층층이 계급을 만들어 너와 나는 다르다고 말하며 소통을 중단시키고 있는 분들이 내려와야 한다. 기분은 좋겠지만 교수가 해를

13 달이라고 하면 달이라고 믿는 학생들만 있으면 한국교육은 계속 선진국 교육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언뜻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여기저기서 어디서 어린 놈이 같은 말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그 어린 놈이라는게 이미 성인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들일때도 그렇다. 한국에 민주적 분위기를 퍼뜨리는 것을 사람들은 항상 달가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할 때 한국의 교육, 고의로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권의주의적 남자들의 좌절 한국에서 여자들은 충성도가 낮다 라는 평가가 있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직장에 서 진급에 차별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육아나 가정이나 본인의 상황에 따라 직장에 대한 충성심을 저버리는 존재로 그야말로 쓸 만하면 가버린다는 평가를 종 종 받는다. 문제는 이 같은 평가에 대하여 여성들의 대응이 그렇지 않다 라고 반응하는데 있다고 본다. 많은 평균적 평가란 사실 환상이다. 사람 하나하나로 가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 이 있다. 어느 나라 남자들은 바람둥이다라던가 신사라던가 하는 평가는 개개인으 로 가면 아무 의미도 없는 선입견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성의 직장충성도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으로 보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서 책임감 이나 충성심 따위가 남자 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나는 느꼈다. 그런데 어느쪽이 비정상일까. 어느쪽이 제대로 교육을 받은 것일까. 우리나라의 기 업들은 비정상적인 충성을 사원에게 요구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여자들을 차 별하는 거 아닐까. 따라서 여성들이 직장 내의 불평들을 극복하는 방식은 회사가 요구하는 충성심이 몰상식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해야지, 우리도 알고 보면 충성한다는 식이 되어서는 답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은 충성과 의리에 대해 지나치게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21세기에 그런 남자들은 좌절하고 있다. 어느 정 도 시대에 맞지 않는 사고 방식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충성심과 권위주의를 가르치는 곳에는 한국의 군대가 있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인간이 된다 는 식의 표현을 하는 것은, 그 표현이 적합하냐 아니냐의 논란은 있지만 진실의 일면을 가지고 있다. 즉,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사회

14 의 적나라한 모습을 군대에 가서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시야는 알고 보면 치욕스러울 만큼 좁다. 장사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만 알 고 공부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만 안다. 부자는 부자끼리만 살고 가난뱅이는 가난뱅 이끼리만 사는 것이다. 박사공부 하는 사람은 주변에 박사나 교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문화를 당연시 한다. 짜장면집 배달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를 또한 당연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군대에서 훈련소에서 남자들은 최초로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한솥밥을 먹고 같은 것을 고민하게 된다. 그들은 단체기합을 받는 것을 걱정하고 함께 뛰고 구르 면서 하나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서로의 절대적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일단 대화 의 불가능성 을 깨닫는다. 논리나 이성이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상류층에 사는 사람들은 하류층으로 떨어지는 것의 무서움을 절실하게 알게 된다. 그들은 폭력의 위협과 상명하복의 절대성이 가득 찬 장소에서 동기끼리는 뭉쳐야 하고 윗사람에게는 사적 공적 일의 구분 없이 절대충성해야 한다는 것 만 배울 뿐 이다. 즉 대화를 통한 이성적 해결은 어차피 불가능하고 충성만이 살길이며 남이 하면 나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 지 남자는 군대에서 가장 생생하게 배운다. 지면 죽는다. 상사의 미움을 받으면 죽는것 과 마찬가지다 라는 교훈을 얻는다. 남자들에게는 군대 밖의 세상도 커다 란 군대와 비슷하다. 동기가 누군지 누구에게 머리 숙여야 하는지를 빨리 알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들은 세상에 나와서도 군대식의 사고방식을 종종 발견한다. 같은 사회에 살지만 여자는 흔히 이런 교육에서 열외되어진다. 여자는 상대적으로 불합리한 일이 있거나 힘이 드는 일이 있으면 불평하고 떼쓰고 항의해서 문제를 개 선한다는 식의 상식적이고 정상적 생활을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직장이야 돈 벌러 가는 곳이니까 돈 받은 만큼 일해주면 된다는 상식적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시 장에서 물건값을 깎는 것은 여자들이다. 한국 남자들은 시스템에 함부로 저항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은 목을 걸고 인생을 걸고 하는 대단한 결 심 끝에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남자의 삶이 여자의 삶보다 고되다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말해, 남자는 강력히 충성하도록 교육된 리더로 크고, 여자는 리더싸움에서 일찌감치 탈 락된 존재로 크기 때문에 충성도 교육이 남자들만큼 강하지 않았던 것이다. 누가

15 더 편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문화는 물론 오늘날의 상식인 남녀평등 원칙과 매 우 어긋난다. 때문에 노조운동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여성들이다. 직장생활이 상식적이 되면 될수 록 과도한 충성심교육을 받은 남자들이 가지는 비교우위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 국사회도 세월의 변화는 견딜 수 없다. 신세대들이 사회로 나오자 충성심 강한 사 람이 줄었다. 이제 군대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래서 회사들은 안간힘을 다해 충성 심 높은 사람들을 뽑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역들의 눈에는 신세대가 이 해가 안가는 것이다. 그러나 충성심의 이익구조는 실상 이미 깨어졌다. 한국경제가 급격히 팽창할 때는 피라미드식 성장이 가능했다. 피라미드는 하층부가 상층부보다 훨씬 큰 구조다. 그 래도 조직의 팽창이 빠르므로 상관이 없다. 쉽게 말해 대리가 시간 되면 전부 과장 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그럴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직 을 하며 살아야 한다. 몇 십 년 뒤는 고사하고 몇 년 뒤도 어찌될지 모르는데, 권 리주장은 뒤로 하고 충성만 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평생직장 개념이 깨진 직장 은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곳으로 변해간다. 그럴수 밖에 없다. 이런 군대문화는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군대의 방식이 한 국군대로 전해지고 한국사회에까지 퍼진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 진실여부는 떠나 서 상당히 그럴듯한 이야기다. 침략국가가 떠나도 식민국가는 정체성 혼돈의 상태 에 빠지게 된다. 식민지배동안 침략국가는 당연히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 치를 교육하고 강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의리와 충성과 은원의 가치는 일제시 대에 강하게 강조되었을 것이다. 현대의 일본은 전쟁 이전의 일본과는 또 다르다. 그러나 한국은 얼마나 과거의 일본에서 자유로워 졌을까. 21세기는 여성의 리더쉽이 힘을 발휘한다. 충성과 의리의 사회란 대단히 단순한 것 이다. 공식적으로는 법이 있지만 사적인 판단이 우선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법과 계약의 원칙이 강조될수록 이제 중요한 것은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잘 타협하고 헛 점을 찾아 자기몫을 챙기는 능력이다. 정상적으로 큰쪽은 여자다. 여자들은 사람들 과 말로 타협하고 진정한 인간적 친화성을 발휘하여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한국의 나이든 중역세대는 곧잘 부하직원 다루는 방식이란게 위에서 힘으로 누르고 술먹고 쓰러질때까지 취해서 우리는 형제요 가족이다라는 식의 군대식 친구가 되는 방식밖 에 모른다. 또박또박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따져오며 공과 사를 구분하는 젊은 세 대앞에서 이 구식 리더 는 저항할 무기가 없다. 의리만 믿고 사는 단순한 남자 는 오늘날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한다.

16 구식리더는 젊은 사람들과 사적인 대화를 할 줄 모른다. 그들은 애초 사적인 대화 따위는 배우지 못했다. 진정한 대화란 서로의 속마음과 감정을 주고 받는 것이며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하는 것이다. 인간적 신뢰를 보다 높이는 것이다. 무한한 권위로 하느님처럼 아래를 억누르는 군대상사는 아랫 사람과 진정한 의미의 대화 따위 하질 않았다. 그래봐야 권위만 손상된다. 실은 권위를 지키는 중요한 방법중 의 하나가 나에 대한 정보를 주지 않는것이다. 구식남자들은 언제나 속마음을 숨기고 뻔한 반응만 보이는데 익숙하다. 따라서 대 화는 항상 뻔하게 시작해서 뻔하게 흐르기 쉽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다. 거의 아무 런 정보가 오고가지 않는다. 진짜 마음의 교감이 없다.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모 르고 윗사람들은 윗사람끼리 모이면 애들처럼 굴다가도 아랫사람이끼면 성직자처럼 근엄하게 군다. 권위를 유지하고 충성심의 피라미드를 지킨다는 것이 옛날 한국 남 자가 배운 것이다. 이런 구식남자들은 직장에서는 물론 가정에서도 좌절한다. 아내와 소통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아직도 옛날방식으로 생각 하고 행동하는 남자들이 한국에는 많다. 그리고 그들은 아이들에게 응당 남자는 이 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 아이들이 그대로 큰다면 비슷한 좌절을 겪게 될것이다. 이런 남자들이 정상이라며 나도 남자처럼 할수 있다고 남자처럼 행동하려는 여자 리더들이 있다. 그들이 해야할 이야기는 나도 남자처럼 충성할수 있다가 아니다. 그 끈끈한 남자들의 충성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부드러운 인 간이 잘사는 시대다. 아이를 키우는데는 온 나라가 다 필요하다. 영어 속담중에 아이를 키우는데는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 다. 요즘처럼 세상의 정보가 빨리 흐르고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움직이는 시 대에는 아이를 키우는데는 한 마을이 아니라 한 도시, 한 나라가 온통 다 필 요한 것같다. 한국이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인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보고 듣 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외국에서 한국 사회를 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돈에 대 한 소리로만 가득한 것 같다. 때로는 부모자식간의 관계도 돈 때문에 갈라지

17 고 만다. 다들 경제만 문제란다. 물론 경제는 큰 문제다. 그러나 경제가 모 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정말 돈 돈 하고 있으면 다들 부자가 되는 것일까. 아이들은 그런 한국에서 어떻게 클까. 돈 돈 하다보면 정작 부자 나라되는데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돈으로 당장 환산할수 있는 것만 보게 된다. 지역마을의 화합이나 문화적 활성화, 공공의 식과 도덕심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그저 아파트 높게 지어 돈이 생기면 그 것으로 좋다고 보게 되기 쉽다. 좋은 상품이나 좋은 가게 좋은 과학적 발견 은 장인정신, 일에 대한 열정, 자기 일에 대한 자긍심, 자기일을 천명이라고 생각하는 정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돈돈돈하는 사회에서 누가 그런 것에 가치를 둘까. 그런 사회가 부자가 될까? 돈 돈하다보면 길게 보는 투자와 정책을 생각하지 못한다. 주식시장에서 날 마다 주식사고 파는 사람처럼 당장 결과나오는 정책에 매몰되고 교육에 대 한 긴 안목 같은 것은 잊혀진다. 직접 돈을 만지는 금융이나 주식이나 부동 산 투기 같은 것에만 관심이 많다. 정말 돈돈돈 하고외치면 경제가 살아나고 부자 나라가 될수 있을까. 오히려 돈을 잊어야 다들 부자가 되는거 아닐까. 경제가 중요하다라는 주장만 가지고는 제대로된 가치판단이 안된다. 그런 사 회에서 큰 아이는 돈으로 환산할수 있는 문제에 대한 것을 제하고 나면 가 치판단을 하지못할것이다. 나머지는 컨닝하듯이 유럽이 옳다, 미국이 옳다, 일본이 옳다는 식으로 베끼는 것뿐이다. 외국의 멋진 리조트에 놀러갈 만큼 부자만 되면 우리나라 산천이 어찌되든 상관없고 커서 돈잘버는 직종에 일할수 있으면 아이가 어린 시절내내 불행 해도 상관없는 것일까? 돈만 잘벌면 한국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과 살던 한 국을 떠나 외국에서 외국인들과 어울려 살건 정말 삶의 질이 똑 같은 것일 까. 커서 미국에서 살 것 같은 아이들에게는 한국이 어찌되건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까? 가치판단이 안되는 사람만 있으면 싸움은 끝이 없다. 결론은 결코 안난다. 우리는 어떤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가, 어떻게 안살면 그건 한국사람이라고 할수 없는가라는 것에 대해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여러 선진국가 가 있지만 그들은 모두가 또 상당히 서로 다르다. 한국도 그들과 다르고 미 래에도 다를것이다. 남에게 물어서 나의 꿈과 비전을 찾을 수는 없다.

18 어른들에게 꿈이 없을 때 과연 교육이란건 뭘까.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꿈 과 희망과 동기의식은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어 른은 아이에게 자신의 꿈과 희망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에게 자신이 소중하 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한번 더 이야기하고 그걸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된다. 자연히 아이는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어른들에게 꿈이 없을 때 아이들은 뭘 배우 게 될까. 아이는 어떤 동기의식을 가질까. 꿈이 없는 사회는 아이들을 꿈을 가지고 키우는게 아니라 욕심과 공포를 가 지고 키우는 것 같다. 경쟁에서 탈락하기 싫고 버려지기 싫다는 공포와 누구 보다 잘나고 싶다, 누구보다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다. 아이 는 자신의 동기의식에 따라 자신의 꿈을 따라 클때에 가장 열심히 산다. 꿈 이란 누구보다가 더 멋있게가, 누구보다 잘나게가 중요한게 아니다. 그저 그 게 하고 싶으니 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욕심과 공포는 대개 아이를 망치고 만다. 아이는 공포 가 주는 스트레스에 지쳐 쓰러지기 마련이다. 욕심으로 살아가는 아이란 남 을 흉내내다가 이도저도 안되는 뒤죽박죽의 노력을 하게 되기 쉽상이다. 자 기 스스로 생각을 하고 주관을 가지고 노력하는게 아니라 남을 따라하는 인 생이고 누군가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생이다. 잘되기가 힘들고 직업적으로 금 전적으로 잘된다고 해도 행복한 인생이 되기 힘들것이다. 한국에는 온갖 부자유와 권위주의가 있다. 한국에는 예전부터 내려오는 여러가지 규칙이 있고 미국에서 유럽에서 일본에서 수입한 여러가지 문화가 있다. 사람들을 그것을 뒤섞어서 자신과 타인에게 그때 그때 편한대로 덮어씌우고 있다. 현대한국에서 선생님이란 조선시대의 스승과 같은 것인가? 현대한국에서 며느리란 어떤 것인가. 직장상사란 어떤 존재인가. 부모님이란 어떤 존재인가. 학교란 본래 어떤 장소여야 하는가. 정리된 원칙이 없는 문화들이 만들어 내는 혼란이 크다. 그렇다고 여러가지 다양성이 공존하기에 좋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아이들은 이 가치관 부재의 혼돈을 배우고 배금주의를 배우고 권위주의를 배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런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필요없는 온갖 권위와 차별을 내버리지 못한다. 모든 권위와 모든 분별이 필요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요즘은 부모의 권위가 너무 없고 선생님의 권위가 너무

19 없으며 지식인의 권위가 너무 없어서 문제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자잘해 보이는 권위주의, 나이, 학벌, 복잡한 친인척관계나 선후배관계가 만들어내는 시대에 뒤진 권위에 매몰되어 생긴 일이 아닐까. 한국의 교육은 고의로 실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이 보다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싶다면 정권을 바꾼다던가 대단한 철학을 들여 와 국민에게 보급한다던가 하는 일을 할수도 있겠지만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안에 있는 불필요한 차별과 권위주의, 사람과 사람이 만 나고 사귀는 방식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복잡한 호칭을 정리하고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르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은 어떨까. 사장님이니 박사님이니 과장님이니 선배님이니 하는 호칭은 일부 공식 적인 자리에서만 쓰고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어떨까. 친하질 않아서 마구 이름만 부르기 뭐하다면 무슨 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우리나라는 전에 자니 호니 하고 자기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을 만들기도 했으니 그렇게 해보는건 어떨까. 조기축구회 회장잠시 했다고 평생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좌우명 같 은 것을 이름으로 만들어 서로 부르는 쪽이 멋도 있고 뜻도 있지 않을까? 이미 인 터넷에서는 인터넷 아이디를 그런식으로 쓰고 있다. 예절에 대해서 잘 아시는 분들 이 나름대로 또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겠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방식에 대해서도 좀더 생각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시대같다라는 말을 하면서 권위주의적 태도를 과거에서 온것으로 생각한다. 그 런데 정작 진짜 조선시대 사람인 이황과 기대승이 편지를 나눈 이야기를 보면 그렇 지가 않다. 그들은 유명한 사단칠정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오랬동안 편지를 한 다. 이황은 기대승보다 훨씬 연배가 연위일뿐더러 관직도 훨씬 위다. 고위 관리직 과 신입사원간의 관계나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이황이 기대승에게 얼마나 공손하게 편지를 쓰는 가하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이황은 그 머리를 숙이기를 마치 이름없 는 촌부가 학식높은 선비에게 가르침을 청하듯 했다. 처음만 그런게 아니다 이미 알고지낸지가 아주 오래되고도 그렇다. 그들의 사귐이란 매우 평등하고 담백한 것 이다. 서로에 대한 정과 존경이 깊으면서도 자신을 무너뜨리고 기본적 예의를 무너 뜨리고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따위는 포기하고 끈적하게 얽히지 않는다. 요즘 흔히 보는 것처럼 자기가 없어지고 누가 누구밑으로 들어가는 그런 만남이 되어 공사를 혼동해도 거절하기 곤란해 지는 그런 만남이 아니다. 자기를 지키는 만남이라는 것이 반드시 예의를 엄격히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람과 미국사람, 혹은 일본사람과 미국사람을 비교했을 때 물론 경우

20 마다 다르긴 하지만 어떤 차이를 느낄 때가 있다. 예의를 지키는 것은 한국사람이 나 일본사람이 더 잘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를 지킨다는 점에서 과연 미국사람의 사귐보다 한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이 더 잘하는지는 모르겠다. 미국 사람의 만남이 더 평등하고 자기를 지킨다는 느낌이다. 미국 사람이 더 독립적인 인간이 되도록 교육되어 있다. 아이는 결코 나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다. 아니는 이웃과 함께 키우고 이웃이 키우 는 아이들과 함께 자란다. 우리는 내가 사는 동네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우 리 동네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같이 청소라도 하고 같이 할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투자해야 하는거 아닐까. 이런 것들 이 기발한 교육방법에 비하면 평범하게 보이고 지루하게 들리지만 진짜 교육을 원 한다면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운다. 유태인의 교육이며 미국의 교육, 일본의 교육을 보고 배운다고 하면서 어른은 빼고 기발한 방법 한가지만 배우겠다는 생각은 애초 에 무리다. 우리는 유태인이나 미국인이나 일본인이 될수도 없지만 겉모습만 흉내 낸다고 그게 그들의 교육이 될리가 없다. 선진국의 교육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강조되면서 그밖의 것 에 대해 상당한 개방성을 가지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뚜렸한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그밖의 일에 대해 개방적이다. 이스라엘은 민족전통과 종교가 존중되지 만 동시에 토론과 지식의 수용에 개방적이고 민주적이다. 미국은 기독교적 윤리를 지키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에 대한 깊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일본은 인간과 인 간사이의 은원에 철저하면서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었는가 싶으면 또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는데 매우 개방적이다. 지킬것은 확실히 지키지만 그밖의 것에 대 해서는 또 개방적인 것이다. 이런 가치의 강조와 개방성의 균형은 사회 내적인 질 서를 유지시키면서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준다. 이 것은 소위 다원화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에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무엇보다 아 이들을 포함한 그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숨쉴 공간을, 자유를 준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우리가 꼭 강조해야하고 가르칠 우리의 가치는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식민지시대를 거치고 빈곤한 시대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한국에는 정체성의 혼란이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것같다. 따라서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두가지가 있다고 느낀다.

21 첫번째는 효의 정신이다. 부모자식간에 서로 생각하는 마음이다. 한국사회에서 부모 자식간의 관계는 유독 끈끈한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 끈끈하고 강한 힘 때문에 조금씩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변해 왔다. 우리 부모님만 해도 그리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하셨다. 우리 가족의 경제 형편도 좋지 않았다. 그러나 그 세 아들은 전부 대학 이상을 나왔다. 많은 한국의 가정이 이렇다. 한국의 기업이며 문화와 과학은 이렇게 해서 발전한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안먹고 안입으면서 교육시켜서 가난한 나라가 이만큼 성장했다. 어른들이 이렇게 분발하기 때문에 아이도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믿는다. 한국인의 윤리의식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효다. 효의 정신이 없으면 한국인은 한국인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두번째는 합리주의의 전통이다. 우리는 사리를 따져서 이치에 맞게 살아가는 것 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단히 괴 로워한다. 충성이나 인간적 의리는 세계 어디서나 그렇듯 한국에서도 미덕이지만 그것들을 넘어 그 위에 있는 진리가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이런 전통이 있기 때문 에 한국이 빨리 민주국가가 된것이다. 독재가 이치에 맞지 않으니 도저히 참고 살 지 못하겠다고 나서니까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이런 합리주의적 전통에 인정되는 예외가 있다면 오직 하나 효 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원칙에 맞게 살아가되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자식이 부모 를 위해서 행하는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 효의 정신이 가정을 넘어 온 사회로 확대 적용되면 합리주의가 실종되고 만다. 합리주의가 너무 강조되 면 개인주의가 넘쳐나서 효가 실종되고 윤리가 실종되는 것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둘의 적절한 조화다. 정체성이 교육의 시작이자 몸통이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우리 집은 서울 봉천동에서 화곡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래서 나는 같은 서울이지만 중학교는 봉천동에서 고등학교는 화곡동에서 다녔다. 봉천동과 화곡동의 학교는 너무 달랐다. 한 번은 내가 싸움을 벌일 뻔 한 일이 있다. 한 친구가 체육 시간에 고의로 내 신발을 계속해서 밟았던 것이다. 난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그 친구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계속했다. 봉천동 중학교의 상식대로라면 그런 경우에 참지 말아야 했다. 그건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겁쟁이라는 뜻이다. 중학교에서는 남자가 시비에 빠지면 주먹을 날리는 것이 상식이었다.

22 싸움에 자신이 있건 없건 일단 화를 낼 수는 있어야 했다. 나는 그 친구를 세게 밀쳐 넘어뜨렸다. 그리고 한판 붙을 준비를 했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전혀 내 상식과 달랐다. 응당 그 친구는 일어나 나에게 덤벼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를 멍하니 올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마치 살인사건이라도 목격한 것처럼 조용해 졌다. 화곡동 고등학교의 기준으로는 그런 상황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화를 낸다는 것은 상식을 크게 넘는 것이었다. 봉천동 중학교에서는 그런 경우엔 둥글게 원을 만들어주며 서로 잘 싸우라고 격려를 했다. 봉천동의 상식은 화곡동의 상식이 아니었다. 봉천동에서는 농담 한 마디에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주먹을 날리는 일이 일상이었다. 나는 상식이란 것도 사는 곳에 따라 크게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봉천동의 학교는 매우 거칠었다. 반면에 화곡동의 학교는 굉장히 조용했다. 중학교 친구들은 일을 저지를 때 이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될까 같은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저지르고 봤다. 그리고 그냥 어찌 되겠지 하는 식이다. 반면에 화곡동의 학생들은 정해진 규칙의 선을 넘지 않았다. 행동을 하기 전에 그 결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 대부분의 경우 행동이랄 것은 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의 일상은 남이 정해준 그대로였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중학교 때는 아직 난로에 석탄을 때서 난방을 했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땔감을 주지 않았다. 하루는 춥다고 청소시간에 교실문이며 책걸상을 조금씩 부셔서 난로에 불을 피운 적이 있다. 문을 부실 때 나중엔 어떡하지 같은 생각은 없었다. 문을 부시고 불을 쬐니 따뜻해 좋았지만 물론 이건 난감한 일이다. 결국은 하급생 교실에 몇 명이 가서 문을 훔쳐왔다. 다음날에 그 하급생 반은 아침부터 운동장을 돌았다. 교실문을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고등학교에서는 나는 3 년 동안 주먹 싸움도 내 눈으로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친구들은 손가락을 움직여야 할 때도 선생님 허락을 받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봉천동의 학생들은 자기 주장이 강했고 학교 공부에 연연하지 않았다. 나는 중학교 때 상대성 이론에 대해 교실에서 떠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듣는 아이들은 관심이 많았다. 컴퓨터에 도사인 친구도 있었고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을 숫자까지 줄줄이 외워서 우주 이야기가 나오면 단연

23 박사였던 친구도 있었다. 실은 대부분이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수업시간에 몰래 야한 책을 보거나 트럼프를 하는 말썽꾸러기들이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교과서 이외의 일에 대해서는 도통 아는 것도 관심도 없었다. 입시 공부는 열심히 했지만 한편으론 허무한 것이었다. 그들 중 자기가 무슨 학과에 가고 싶은지 아는 사람은 거의, 정말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에 뭘하러 가는지 대학을 졸업한다면 뭘하고 싶은지에 대해 꿈을 가진 친구조차 별로 없었다. 그저 선생님이 그 성적에 이 대학 이 학과가 좋다고 말하면 그리로 가는 것이다.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는 무슨 공부를 하거나 나중에 어떤 일에 종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가는 것이다. 그게 엘리트 코스니까. 그게 다음단계니까. 봉천동의 친구들은 자신의 욕구에 지나치게 솔직했다. 반면에 고등학교 친구들은 자신의 욕구란 걸 잊어버린 것 같았다. 자신의 욕구 대신 부모의 욕구, 선생님의 욕구가 그 자리에 있었다. 스스로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몰랐다. 왜 이런 것일까? 하루는 부모님 직업 조사를 학교에서 거수로 했다. 그리고 나는 큰 차이를 발견했다. 거칠었던 봉천동 중학교에서 대부분의 부모는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회사원은 적었다. 온화했던 화곡동 학교의 경우 압도적 다수의 학생이 회사원이나 공무원 부모님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자영업자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의 아이들은 자영업자처럼 행동했다. 부모가 공무원이거나 대기업 사원인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것처럼 행동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그에 적응하여 행동하게 된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 고용을 당한 사람이 아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규칙을 지키는 게 아니고 결과를 내는 것이다. 그는 규칙을 따르는 사람이기 전에 규칙을 만드는 사람이다. 사장은 나는 규칙을 잘 따랐고 잘못한 게 없다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성과가 있어야 한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상을 직접 봐야 한다. 그러나 커다란 조직에 고용된 사람은 다르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규칙을 지키고 협동하고 주어진 자신의 임무를 해내는 것이다. 어차피 커다란 조직에서 자신이 하는 일이 최종결과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알기 힘들다. 자신의 일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도 알기 어렵다. 그들은 전체적인 판단을 내릴 정도로 정보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판단을 내리는 일은 그들의

24 일이 아니다. 조직이 망해가는 것 같아도 자신의 몫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두가 중구난방으로 움직인다면 조직은 더더욱 빨리 망할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조직내부에 정신을 집중시킨다. 다른 사람과 협동하고 조직내부의 정보에 민감한 것이 중요하다. 바깥세상은 2차적인 문제다. 문화적 혼동이란 종종 자기 비하 같은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법이다. 중학교 때 나는 내가 너무 남자답지 못한 것을 걱정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나는 내가 너무 거친 사람인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재빨리 나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켰다. 이것은 결국 주관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주변 사람을 그저 따라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정도가 남자다움을 지키는 선이고 이 정도가 절대 선을 넘어서는 안 되는 매우 나쁜 짓 수준이다라는 것을 주변 사람의 반응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첫째, 아이는 결국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상식을 배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에게 내 직업이 이러저러해서 나는 이렇게 행동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특수한 행동방식은 아이의 보편적 상식이 된다. 아이에게 부모란 절대적인 사람이고 아주 어렸을 때는 어른 사회를 배우기 위한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이 애착을 가진 어른들과 어떻게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가 하는 것이 아이들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알고 세상에 던져진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특수성을 깨달아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일찍 고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평생 고치지 못하기도 한다. 둘째로 나 자신에 대해 혹은 주변에 대해 쉽사리 도덕적 판단을 내렸던 것은 잘못이었다. 어떤 문화적 차이를 발견했을 때 가장 범하기 쉬운 착오는 한쪽의 문화를 당연시하고 절대시하여 다른 쪽은 도덕적 혹은 유전적 열등함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왜 어떤 아이들은 규칙을 잘 안 지키는가? 그것은 그들이 그저 나쁜 아이들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왜 어떤 아이들은 교과서 이외에 관심이 없는가. 그것은 그저 그들이 본래 지루한 성격을 타고 났으며 멍청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주변을 무시하는 건방진 태도를 가지게 한다. 셋째로, 문화적 특성들은 서로 무관한 것들이 아니라 서로간에 인과적으로

25 얽혀있는 것들이라 장점도 단점도 같은 원인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문화에는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구조가 있다. 자영업자들이 자영업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큰 조직에 속한 회사원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그럴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각자의 상식이나 가정 문화에는 나름의 기본적 이유가 있어서 그런 행동 패턴을 만든다. 그런데도 표면적인 차이만 살펴서 둘을 조합하려고 하면 내부적으로 서로 모순을 발생시킨다. 규칙을 엄하게 생각하는 것과 성과중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방식을 조화시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만약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없이 의식적으로 표면적인 것들만 바꾸려고 들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기 쉽다. 결국 주관 없이 주변 사람들을 따라 하는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자기 내부에서 자기 행동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차라리 어느 한쪽의 문화를 확고히 믿는 것보다도 못하다. 자신감 없고 뼈대가 없는 것 같은 인간이 되고 만다. 옳다 그르다의 기준이 내 느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나는 내가 비판받거나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부분을 고치려고 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지 않은 것을 답답해하면서도 규칙을 엄중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배우려고 한 것이다.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혼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아이들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아니고 학교가 회사나 가게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이 일반적인 것이고 무엇이 특수한 상황에 적응한 결과 나온 것인가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내가 누군지 즉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배운다는 것이란 그 시작이자 몸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사방에서 좋다고 생각되는 것만 배워다가 조립해서 하나의 인간을 만들 수는 없다. 자기비하나 불행한 느낌에 빠질 뿐이다.아이들은 부모의 자식들이다. 아이들의 혼란은 부모들의 책임이다. 아이도 부모도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가,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문화의 차이, 자기 정체성의 차이는 여러 단계에서 일어난다. 한 나라 안에서도 가족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고 직업과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르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문화권과 문화권 사이에서 다르다. 나는 내가

26 고등학교 때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은 사방에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사람들도 역시 저지른다. 미국의 거리에서 만난 한 나이 지긋한 재미교포 노인은 한국에 대해 매우 비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 따위는 빨리 모두 잊고 그저 미국을 따라해야 한다는 소식을 피력했다. 아마 자식을 키울 때 최대한 미국사람을 따라하라고 말했을 것 같다. 유태인이라던가 미국사람이나 일본사람을 보면서 우리나라와의 차이를 느끼고 이를 쉽사리 도덕적이나 유전적으로 판단해 민족적 자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지나친 민족적 자긍심으로 다른 나라 사람을 깔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지난 10년 동안 세 개의 나라에서 각각 몇 년간씩 살았다. 그러다 보니 분명히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아이는 어떤 특정한 국가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부모를 두고 그 문화 안에서 자라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아이는 한국인 부부를 부모로 두었다. 그것은 기억해 둘만한 중요한 일이다. 사실 알래스카나 아프리카나 인도에서 태어난 아이가 혹은 뉴욕이나 홍콩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되는가에 그 나라, 그 부족, 그 지역의 특색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민족이나 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지극히 자명한 이 사실이 우리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종종 잊혀지고 만다.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말할때도 교과서나 대입시험제도나 학교 평준화 같은 비교적 쉽게 바꿀 수 있고 교육의 내용이라기 보다는 형식에 해당하는 문화의 비핵심적 부분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처럼 말해진다. 이스라엘이나 미국이나 일본의 아이들과 비교하면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사 회에서 크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어른들은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 는 것일까.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 그 이전에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세상에서 컷는지 생각해 봐야 하 지 않을까. 나는 과연 합리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혼란에서 자유로 을까. 이스라엘편- 예루살렘

27 초등학교 때 우연히 교내 과학경시대회에 나가서 2 등을 했다. 그래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서울 시내 어딘가에 가서 과학실험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2 등한 게 기쁘지는 않았다. 1 등 못한 게 분했다. 당시는 내가 1 등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과학자를 꿈꾸던 소년이긴 했지만 그 분한 마음이 없었으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1 등한 아이는 나중에 법대에 갔다. 제임스 코울먼의 상대성이론이란 책을 나는 중학교시절에 많이도 읽고 읽었다. 그렇게 여러 번 읽었던 이유는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갈때까지 결국 특수 상대성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열심히 여러 번 읽은 탓이었는지 나는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때도 물리 점수가 아주 좋았다. 내가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할 것이라는 생각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내게 있어 아주 당연한 일이 되었다. 물리학을 전공하던 대학교 4 학년 때 나는 하임 솜폴린스키라는 사람이 쓴 논문을 소개 받았다. 나는 그 논문을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그 논문을 읽은 이후 내 관심은 입자 물리학에서 인공지능과 뇌과학 같은 주제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머리에 쥐가 날만큼 지긋지긋하게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하는 연구를 했고 대학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학과공부보다 그 계산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 연구가 나중에 결국 박사 학위논문으로 이어졌다. 만약 그 경시대회에서 1 등을 했다면, 만약 상대성이론에 대한 책이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만약 내가 그 논문을 읽지 않았더라면 미래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랬더라면 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엔 평생 가볼 이유가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년 9 월, 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루 대학교에서 일하게 되었다. 바로 그 하임 솜폴린스키 교수에게서 박사 학위를 마치면 같이 연구하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은 것이다. 나는 아내와 아직 돌이 되지 않은 딸, 예나를 데리고 이스라엘로 가는 비행기를 탓다. 낯선 땅이다. 나는 이 곳의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이스라엘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만 해도 나는 중동지역을 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28 아내와 아이와 함께 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었다. 어떤 사회에 대한 경험과 느낌은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가 이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형식으로 그 사회를 접하는가에 크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혼의 몸으로 외국에서 연구 생활을 하는 것은 가족과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가족이 없으면 그 사회와 상당히 분리된 관광객처럼 살게 된다. 그러나 가족이 있으면 원하던 원치 않던 그 사회에 섞여들고 그 사회의 내부사정에 더 많이 의존하며 살게 된다. 일단 알고 지내게 되는 사람들과 행동 반경이 전혀 다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첫인상은 건조함과 눈부심이었다. 예루살렘은 바싹 말라있었다. 바닥을 걷어차면 먼지가 풀썩인다. 그 푸석한 땅을 보니 왠지 앞길이 험난할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우리 아파트의 앞길은 눈이 부시게 빛났다. 햇살이 강렬해서 땅이 타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땅이나 나무에 손을 오래 대고 있으면 풀향기나 나무즙이 손에 밸 것 같다거나 땅냄새가 밸 것 같은 한국의 느낌과는 다르다. 벽에 오래 손을 대면 뜨거운 돌의 열기만 느껴지거나 돌가루 먼지만이 손에 묻어난다. 집 앞에 작은 놀이터가 있는데 그것도 온통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다. 미끄럼틀도 순전히 시멘트로만 만든 것이다. 아마도 쇠로 만들면 너무 뜨거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물을 자주 마시라는 충고를 받았다. 뜨겁고 건조한 날씨에서는 모르는 사이에 수분을 많이 잃어 탈수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극동아시아로 불리는 중국이라던가 일본 한국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매우 드물었다. 그 전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몰라도 중국인은 세계 어디 가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우리가 예나를 데리고 예루살렘 거리로 나서거나 쇼핑몰을 돌아다닐 때면 너도 나도 신기하게 생긴 아기라며 말을 붙여서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사진 좀 찍으면 안 되는가, 한번 안아봐도 좋은가 하고 연신 부탁을 했다. 이스라엘에는 일본 중국 한국 사람이 거의 없으므로 한국 음식을 만들 재료도 없었다. 돼지고기 같은 것은 종교적 이유로 팔지도 않아서 훗날 특별한 경로로 구할 수 있기 전에는 먹을 수도 없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요리를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는 농담 삼아 때때로 지인들에게 말한다. 이스라엘식 한국요리는 요리단계의 첫번째가 틀리다고 말이다. 한국에서 콩나물국을 끓인다면 요리의 첫 단계는 콩나물을 끓는 물에 넣는다던가 파를 썬다가 될지 모른다. 이스라엘에서 콩나물국을

29 끓이는 순서는 이런 식이다. 첫째, 콩을 구한다. 둘째, 콩나물을 키운다. 쑥갓을 넣은 된장국을 끓이고 싶다면 이렇다. 첫째, 들로 나간다. 둘째, 쑥갓을 뽑는다. 모든 걸 처음부터 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콩나물을 키우거나 들에서 쑥갓을 뽑아 오기까지는 않았지만 그런 한국 사람은 종종 있었다. 사람들은 어찌저찌 방법을 개발해서 떡국도 만들어 먹고 김치도 담궈먹는다. 채소 씨를 뿌리고 떡 만드는 기계도 사오고 해서 그렇게 한다. 삼겹살도 어디선가 누군가 구해온다. 쑥갓도 뽑아오고 콩나물도 키운다. 그렇게 해서 만들고 구한 것을 서로 나눈다. 마치 작은 한국같다.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뿌리박고 사는 모습을 보면 참 대단하다. 대민서비스는 어디나 매우 좋지 않았다. 은행에 가도 슈퍼에 가도 관공서에 가도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무능하고 불친절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은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었다고 했다. 노동력이 넘쳐나서 허드렛일도 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한국과는 다르기 때문인가 보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적응해 있던 나에게 그들은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한국같으면 그들은 전부 해고감일 것 같다. 나는 중고차를 샀다. 그런데 그 차를 등록하기 위해 차량 등록소를 10 번을 방문해야 했다. 그건 물론 기본적으로는 내가 현명하게 처신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만 거기서 일하는 공무원은 전혀 도움이 되질 못했다. 오히려 내게 혼란만 줄 뿐이었다. 그는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거기 있다기보다는 국민들에게 봉사를 받기 위해 거기에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등록과정에 대해 그는 잘 알고 나는 잘 모르는데 내가 겪을 수 있는 곤란함에 대해서는 눈꼽만큼의 고려도 없었다. 같은 곳을 5 번을 오건 10 번을 오건 그게 얼마나 시간이 걸리던 그건 내일이 아니라는 태도였다. 슈퍼에서 줄을 서면 반드시 계산하는 사람이 뭔가 문제를 일으켜서 줄은 멈춰서고야 만다. 나는 슈퍼점원이 그렇게 무능할 수 있다는 것을 거기서 처음 알았다. 해결은 시간이 걸렸다. 때때로 싸움이 났다. 점원은 무능하고, 따지는 사람들은 뒷사람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결국 다른 사람들이 항의하며 소리라도 치게된다. 나는 그저 무력하게 뒤에 서 있을 뿐이었다.

30 은행은 요일마다 시작하고 끝나고 중간에 휴식하는 시간이 다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헛걸음을 해야 했다. 은행창구직원은 왜 거기 앉아 있는건지 모를 정도로 업무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뭐하나 물어볼 때마다 결국 상위 관리자에게 왔다갔다 해야 했다. 적어도 당시에는 한국사람이 일처리해 주는 것과 비교가 안 되게 서투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가득했다. 사방에 검문소가 있어서 검문을 받는 것도 피곤한 일이었다. 쇼핑몰에 가도 검문을 받아야 하고 특히 공항에서의 검색은 악명이 높았다. 당시는 쌍둥이 건물 테러 이전이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공항검색이 크게 강화되기 이전이었다. 따라서 나는 이런 검색이 매우 낯설었다. 한국사람들이 모여서 공항 검색 이야기를 하면 간단히 밤을 샐 수 있을 거라고 한 목사님은 내게 자신있게 말했다. 노트북 컴퓨터 안의 파일을 전부 검사하고 보내줄 테니 노트북 컴퓨터를 놓아두고 출국하라는 경우부터 태도가 불량하다고 알몸으로 검색을 받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다양하다. 검색요원은 질문도 많이 하는데 이 질문이란 게 종이 위에 써 있는 걸 순서대로 하는 것이라 답을 하다 보면 짜증이 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방문목적이 뭐냐고 해서 형을 만나러 왔다고 하면 좀 있다가 누굴 만나러 왔냐고 묻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미 답을 말했으므로 짜증이 난다. 그런다고 빈정대면 검색은 더 길어진다. 잘못하면 조용한 후미진 방으로 끌려갈 수도 있다. 그러니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긴 질문이 끝나면 한번 더 참아야 하는 것이다. 질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일관성을 확인하기 위해 그 질문지의 질문을 두세 번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이 거칠었다. 이스라엘에서 아주 자주 듣는 두 가지 말이 있었다. 하나는 친구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찌나 오, 내 친구여 하는 식으로 친구라며 불러대는 사람이 많은지 모른다. 그런데 그 대부분의 사람들이 또 한결같이 나에게 해 주는 말이 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다 도둑놈이니 믿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는 친구라고 말하고 모두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다 도둑놈이라고 말하면 나는 누구를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믿음의 성지로 유명한 예루살렘은 다른 사람에 대한 불신에 가득차 있었다. 한국인이건 미국인이건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이스라엘에서 사는 유태인들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국사람들보다 훨씬 격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싸움도

31 사방에서 잦았다. 앞차 빨리 가라고 크랙션 울리는 사람, 양보 안 해준다고 창 열고 싸우는 운전자들이 사방에 흔했다. 항의하고 자기의 권리를 열심히 찾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적당히 물러나는 내가 왠지 바보같이 보인다. 이러니 실제로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을 통해서 뭔가를 처리하지 않으면 사기를 당하기 쉬워 보였다. 물론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족이 이스라엘에서 살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돌봐주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고 자기집에 초대도 해주고 같이 여행도 갔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어려움을 공유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한국 사람의 도움도 받았으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움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다른 사람을 믿지 말라고 하는 말도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어수룩한 외국인이 어디 가서 사기라도 당할 것을 걱정해 주는 친절에서 나오는 말이었을 것이다. 유태인들은 화목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매우 뛰어난 기술이 있는 것 같다. 지금 와 돌아보면 유태인들이 모이는 모임에는 항상 유머가 있고 웃음이 있다. 그들은 모임을 가지고 파티를 하고 식사 초대를 해서 다른 사람을 접대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유태인은 솔직하고 거침없이 말을 한다.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분위기가 딱딱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유머 감각이 항상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유태인은 낙천적이고 매우 사교적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조용한 분위기 혹은 썰렁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이 왕처럼 주도권을 잡고 다른 사람은 그저 이야기를 듣는 그런 분위기는 보기 힘들었다. 농담을 하든지 강력하게 의견을 주장하든지 해서 왁자지껄하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으면 사는 맛이 나지 않는 다는 식이다. 쾌활한 사람들이다. 이스라엘에는 몇백 명 정도의 한인 사회가 있다. 상당수는 목사나 전도사로 종교에 관련되어 유학을 온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이다. 한국에서 성지순례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가이드를 부업 삼아 혹은 주업처럼 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갑자기 환율 불안이 일어나서 여행이 줄거나 하면 이스라엘 쪽의 한국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진다. 한인이 얼마 안 되는 나라에 가면 한국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해 보인다. 사람이 넘쳐나서 사람이 덜 중요하게 느껴지는 곳이나 모든 것이 그저 풍족하기만

32 해서 작은 것을 나누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곳에서는 그런 곳의 삶이 가끔 그립다. 이스라엘은 어떤 면에서는 척박한 땅이며 무력분쟁으로 얼룩지고 여러 가지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땅이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게는 대단해 보였다. 그들이 가지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그들의 나라에 대한 사랑과 유머감각과 낙천주의가 모든 나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좋아질거라고 믿으며 살기 좋은 미래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가능한한 낙천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이다. 유태인은 누구인가. 오늘날 심장 이식수술 같은 것은 큰 화제거리가 못 된다. 시험관아기처럼 이제는 사람들을 놀래키지 않는 지난 소동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만약 두뇌 이식수술 같은 것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의 두뇌를 나의 두뇌와 바꾸거나 내 두뇌를 버리고 인공두뇌를 교체해 넣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나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내 몸에 남의 두뇌를 넣어서 나를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난다고 해도 그 사람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팔이 없어져도 내가 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내 몸에 기계심장을 달거나 남의 심장을 이식해도 내가 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몸에 남의 두뇌를 단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다. 우리는 손발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두뇌는 전혀 다르다. 그 수준이 아니다. 두뇌가 바뀌어 진다면 설사 그 두뇌가 내 두뇌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우리는 기쁘지 않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지 한 개의 뇌는 아니지만 두뇌는 우리 자신의 핵심이다. 오늘날에는 당연해 보이는 이 생각은 뜻밖에도 항상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은 심장을 가지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인은 두뇌는 펌프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파라오의 부활을 기대하며 미이라를 만들었던 이집트인은 내장기관은 따로 잘 보관했지만 뇌는 내다 버렸다. 사랑을 하는 것은 두뇌라는 것을 알고 있는 오늘날에도 깨어진 사랑을 가지고 영어에서는 브로큰 하트 즉 깨어진 심장으로 말한다. 인간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한 지식을 쌓아왔다. 그리고

33 인간의 두뇌가 팔다리와 심장을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대부분은 이제 두뇌는 우리에게서 포기할 수 없는 핵심적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몸의 모든 부분이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해를 한다는 것은 종종 이런 것이다. 서로의 상관관계를 통해 핵심적 부분을 찾고 복잡한 것을 간단한 것으로 설명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던가 유태인은 누구인가 혹은 한국인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데 있어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되지 않을까. 우리는 매우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 중의 어떤 것들은 매우 소중해서 절대 포기할수 없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으로 남는다. 그 중의 어떤 것들은 그것이 없어지거나 교체된다면 더 이상 우리를 우리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중요한 것이지만 어떤때는 우리는 그걸 의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이 핵심적인 것에 따라 우리의 행동은 상당부분 결정되고 만다. 사람들은 살아갈 이유를 잃는 순간 작은 어려움도 극복하기 힘들어 하고 건강도 나빠진다. 반면에 살아갈 이유를 확고히 가진 사람은 험한 조건도 잘 참고 견뎌낸다. 나는 아들을 위해 희생하며 주기만 하고 산다고 생각했으나 그 아들이 없어지고 나면 내가 사는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야망으로 사는 사람,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에 사는 소년도 있다. 희망이나 의무, 때로는 고통조차도 어떤 때는 그것이 없다면 더 이상 나를 나라고 부르기 힘든 것이 된다. 반면에 한국인이 누구인가를 말할 때 한국인은 매운 김치를 잘 먹는 사람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에게 김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김치를 먹을 수없다는 사실이 한국인을 한국인이 아니게 만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유태인은 누구인가에 대해 말해 본다고 하자. 유태인에게서 이것저것을 지워버린다고 할 때 무엇을 버리고 나면 유태인은 더 이상 유태인이라 부르기 어려운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들마다 꼭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나올법한 답은 있다. 유태인의 핵심에 있는 것은 유대교라는 종교 그리고 종교와 관련된 전통이다.

34 유태인이란 무엇인가. 유태인이란 유일신이신 여호와에게 선택되고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유태인은 선택된 민족으로 특별하다. 그런데 유태인들은 교만하여 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고 기나긴 박해와 고난의 세월을 살아 왔다. 이것이 유태인들이 믿는 신화의 핵심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살라고 했는데 그렇게 살지 않았다. 그래서 온갖 고난을 당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율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럼 행복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유태인을 유태인이게 하는 것은 종교고 문화전통이고 계율이다. 따라서 유태인들에게 있어 계율을 지키고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 것은 당연히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계율과 전통이 사라진다면 유태인의 정체성은 증발되고 유태인 사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박해 때문에 사라졌을 것이다. 그들이 당해 온 박해가 힘겨웠을수록 계율을 엄밀히 지키는 것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유태인이란 신에게 선택 받은 민족이다. 이 말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그럼 유태인이 어떻게 이 계율을 지키는가를 조금 이야기해 보자. 종교적으로 신앙심이 강한 유태인들은 코셔라고 불리는 음식을 먹는다. 유태인들은 일단 피가 섞인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그래서 가축을 도축하면 피를 모두 뺀다. 네 발을 가진 동물을 먹으려면 위가 두 개 이상 있어야 한다. 발굽이 두 개로 갈라진 것만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돼지와 말은 유태인이 먹을 수 없다. 물고기에는 비늘이 있어야 먹을 수 있다. 뱀장어나 미꾸라지는 그래서 먹을 수 없다. 고기를 먹는 독수리는 먹을 수 없고 새우도 먹을 수 없다. 이러니 코셔 때문에 해외 여행을 갈 때 독실한 유태인들은 종종 음식을 가방 가득 가지고 떠난다. 유태인 율법에 따르면 고기와 유제품도 같이 섭취해서는 안 된다. 하루는 예나에게 예루살렘 시내의 버거킹에서 우유를 주다가 제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햄버거 가게에서는 우유나 치즈를 팔지 않거니와 누군가가 우유를 가져와서 먹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 유태인은 안식일을 지킨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은 모세의 십계명중의 하나다. 안식일은 샤밧이라고 불리는데 샤밧은 쉰다 멈춘다는 뜻으로 금요일의 일몰 때부터 토요일밤 세 개의 별이 나타날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안식일 식사는 식사인 동시에 예배와 같은 것으로 즐겁게 식사하라는 것 자체가 계율이다. 유태인들은 부모자식이나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한 주일 동안 곡을 한다. 이것을 시바라고 하는데 샤밧이 되면

35 이 시바도 멈춰야 한다. 즐겁게 먹고 마셔야지 다른 사람에게 슬픈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샤밧이 되기 전에 몸과 옷을 깨끗이 한다. 샤밧이 되면 노동을 하지 않고 즐겁게 보내고 3번의 성찬을 가지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요리조차도 전날 모두 해놓는다. 샤밧의 기간 동안 유태교도들은 세 번의 성찬을 가지는 것 이외에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뭐가 일인가 아닌가는 유태교법률에 의해 엄밀히 정해져 있다. 우회 방법이 있다고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유태교도는 전기를 켜거나 꺼서는 안 된다. 안식일에는 불을 쓸 수 없으므로 성찬의 음식들은 모두 전날 준비해서 음식을 따듯하게 유지시켜 주는 장소에 보관한다. 유태교도는 샤밧에 자동차를 몰거나 타는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여행도 할 수 없다. 다만 샤밧에도 친구나 가족을 초대하거나 방문할 수는 있고 기도를 하러 시나고그에 가는 것이 허용되며 유태인의 규약집인 토라를 읽거나 연구하는 것이 허용된다. 유태인 율법은 모든 것을 아주 자세히 규정해 놓고 있다. 유태인은 모든 것에 매우 꼼꼼하다. 예를 들어 샤밧이 시작될 때 하는 샤밧촛불의 점등은 일몰 18분 이전에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샤밧에 하지 못하는 일들도 39개의 집단으로 분류되어 지정되어 있다. 이 모든 규약의 근거는 성서에 나오는 한두 줄의 글을 가지고 유태인들이 열심히 싸우고 논쟁해서 만들어낸 것이다. 해가 질 때쯤 적당히 촛불을 켜자라던가 대충 이런 것들은 안 된다는 식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유태인 학자들이 모여 만든 탈무드는 일만 이천 페이지에 달한다고 한다. 유태인은 유태인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 매우 뜨거운 논쟁을 하고 기록을 남겨 온 것이다. 물론 유태인이라고 해서 모두 이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스스로 비종교적이라고 말하는 유태인이 더 많다. 그러나 이 비종교적이라는 뜻은 그들이 유태민족의 신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도 신을 존중하며 종교의 존재감을 크게 느낀다. 유태 민족에게 있어 종교적 전통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태인들의 핵심에 유대교가 있다는 것은 유태인들에게 간단치 않은 문제를 남기기도 한다. 어느 날 유태인 교수들과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나는 유태인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한 나이 지긋한 한 노교수가 내게 설명을 해 주셨지만 내 기억에 그 설명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아마도 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36 개념이 만들어 내는 문제를 진짜로 해결했다는 느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태인을 유태인이게 만드는 문화적 특색과 구심력은 그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선택된 민족이라는 개념은 아주 손쉽게 배타적 민족주의로 변질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티브이에서 한 랍비가 팔레스타인 사람과 유태인 사이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신이 유태인에게 팔레스타인 지방을 차지할 권리를 주었으니 그것은 정의라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특별하고 신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듣기에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전통과 현실을 조화시키는 것은 유태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법한 일이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이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신화는 반드시 악을 찾거나 위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우리가 우리를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남보다 뛰어나게 특별한 위대한 민족이라던가 우리는 위대한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로 민족 신화를 시작한다면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다. 현실을 보면 위대한 것치고는 별볼일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기대치보다 현실은 못하며 때로는 아주 비참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란다. 그렇다면 반드시 뭔가 엄청난 실수가 저질러 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 실수를 설명하는 중요한 방법은 악이다. 위대한 민족의 신화는 종종 악을 만들어 내서 그 악을 물리치면 우리 민족이 승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민족의 정체성이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우리는 반드시 더더욱 큰 악이 필요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그 악적에게 던져 넣는다. 우리는 위대하지만 그 악적 때문에 이렇게 산다는 것이다. 실수가 저질러진 이유가 뭐건 간에 그 실수를 만회했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유태민족은 계율을 지키고 있고 신에게 잘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룰 만큼 치루었다고 생각하는 유태인이 있다고 하자. 그럼 그는 우리 민족은 본래의 위대한 정체성에 맞는 위대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위대한 정체성은 위대한 권리의 주장으로 간다. 신에게 선택된 민족은 당연히 다른 민족과는 다른 권리를 가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중에도 민족의 우수성이나 위대함을 역설하는 사람들이

37 있다. 이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이들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의 언어는 제국적 침략을 꿈꾸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배타적 민족주의로 변하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단순히 민족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자긍심을 부정하는 쪽으로 가는 것도 올바른 방향이 아닐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시도로 여겨질 것이다. 왜 여러 나라에서 자신들의 유적이며 역사의 기록을 크게 선전하고 기념할까. 그것은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공동체의 도덕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이다. 모두를 하나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가치의 강조와 전통의 재해석이 필요하다. 이웃과 예를 들면 일본과도- 잘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유태인의 아이들이 자라는 방식 하루는 하임 가족의 샤밧 성찬에 초대받았다. 하임은 히부르 대학의 교수로 회색빛 나는 머리에 귀에서 귀까지 연결되는 근사한 턱수염을 가지고 있다. 그는 언제나 조그만 키파 모자를 쓰고 다닌다. 하임은 오소독소 쥬다이즘 다시 말해 유태정교의 신자다. 2007년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에 사는 유태인중 17%가 그와 같은 유태정교 신자다. 그리고 약 8%의 유태인은 유태정교보다 더욱 보수적인, 극보수 유태교도인 하레디 신자이다. 하레디 교도들은 그 60% 정도가 직업을 따로 가지지 않고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해서 살고 있다. 길을 가다가 검정색 옷을 입고 검은색 모자를 쓰고 귀밑머리를 길게 기른 사람들을 만나면 이들이 하레디 신자다. 안식일 날 차를 타고 이들 앞을 지나면 돌이 날아온다. 사실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하는 자들은 죽이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이 모두 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유태인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신론은 아니며 다만 보다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대개는 종교와 전통을 존중한다. 그의 집에 도착하자 그의 가족이 나와 따뜻한 인사를 해준다. 가족들을 소개받고 2층집인 그의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도록 안내를 받았다. 우리는 부엌이며 여러 방들을 둘러보고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긴 탁자로 돌아왔다. 규칙에 따라 손을 씻고 자리에 앉자 하임은 나에게 키파를 건넨다. 키파는 손바닥 만한 작은 모자다. 키파는 본래 하나님의 종이라는

38 뜻으로 예배 때 머리를 가리는 풍습에서 기인했다. 머리를 가리는 것이 노예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유태정교의 신자들은 하루종일 키파를 쓰고 생활한다. 신의 종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샤밧의 식사는 예배에 준하는 모양으로 평상시와는 다르게 하임은 나에게도 키파를 권했다. 하임은 꼬아놓은 밧줄처럼 생긴 안식일 빵을 엄숙히 잘라서 식탁주변으로 돌린다. 유태가정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매우 존중받는다. 항상 아버지가 뭔가를 먼저 먹는다. 유태인들은 가정의 질서가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질서를 가르친다고 믿는다. 빵을 자르고 나눠주는 것은 가장의 의무요 권리다. 약간 달고 고소해서 우리 가족은 이 빵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 이 빵을 먹으려고 했지만 목요일과 금요일에만 파는 빵이다. 기본적으로 안식일 날 먹는 빵이기 때문이다. 식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므로 예배나 제사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분위기는 그렇게 엄숙하지 않다. 하임의 가족들은 손님과 자유롭게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한다. 하임은 자기가 집안 일은 잘 안 거들지만 청소는 잘한다며 자신도 아내가 성찬을 준비하는 데 한몫 거들었음을 강조하곤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 남자가 한국 여자에게 얼마나 쥐어 사는가를 설명하는 동안 한쪽에선 두 쌍동이 남자아이들과 딸들이 뭔가를 가지고 킥킥 거리며 웃는다. 식탁은 매우 즐거운 분위기, 자유분방한 분위기다. 그러다가 하임의 아들이 하임과 말싸움을 시작했다. 아마도 뭔가를 허락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에서는 사람들이 유독 손으로 하는 제스추어를 많이 쓴다. 흔히 엄지와 검지와 중지를 모으고 손을 흔들어댄다. 하임은 아들 앞에서 열심히 손가락 세 개를 모은 손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 흔든다. 이제 중학생 나이인 어린 아들 역시 마찬가지로 손가락 세 개를 모은 손을 짮지만 단호히 흔든다. 하임은, 그리고 많은 유태인들은 상대방이 그래 뭐 내가 맞지만 네 뜻대로 할게 하는 식의 대답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은 엄밀히 계율을 따져 온 유태인 전통이 만들어낸 태도일지도 모른다. 적당히 넘어가지 못하는 유태인들은 어떤 때는 서로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처럼 논쟁에 열중한다. 그러니까 아들도 그냥 그렇다 하고 적당히 물러설 수는 없다. 그도 열심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39 유태인의 집안에서 그것은 중요한 교육이다. 어디 가서 자기 입장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알았어요 아빠 말대로 할게요 하는 식으로 대답하다 보면 옴짝달싹할 수 없이 사사건건 아빠 말대로 살아야 한다. 유태인들에게는 작은 것도 그냥 대충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들도 부모와 싸우고 싸워서 자기 입장을 관철해야 한다. 떼를 쓴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입장을 납득시켜야 한다. 떼를 쓰는 식으로 나가면 경멸적 반응이 나올 뿐이다. 유태인은 원리원칙 다툼에 매우 집요하다. 하임의 아들이 손가락을 모은 손이 흔들리는 속력이 증가한다. 하임의 고개 젓는 속력도 증가한다. 표정이 점점 더 강경해진다. 싸움이라도 나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땐 한국에서 부자지간에 저 정도면 아버지가 화를 냈을 것이다. 유태인의 언어인 히브리어에는 존대말이 없다. 그러니 부자지간이라도 말은 거침이 없다. 그러다 겨우 어떤 식이든 결말이 났다. 하지만 하임의 집안은 화목하다. 저런 논쟁은 유태인에겐 그저 늘상 있는 대화일 뿐이다. 하임이 매우 바쁜 사람이라 주중에는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일도 거의 없으며 장기 출장도 많지만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는 언뜻 봐도 상당히 스스럼없이 통하는 관계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받아온 십계 중의 4번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번인 다섯 번째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심지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인 6번째 계명보다도 앞에 있다. 샤밧은 유태인 자녀교육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샤밧이 되면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은 즐겁게 식사하는 것뿐이고 어디 갈수도 공부를 하거나 사업에 대한 토론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번은 가족들이 하루종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천천히 길게 이야기하는 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어떤 두 사람이 일주일에 한번씩 감옥에 같이 들어가야 한다면 그리고 서로 즐겁게 밥 먹으며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그 두 사람이 친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것이다. 즐겁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 계율의 일부다. 그러니 화목한 가정을 연출하는 게 계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목한 가정을 연출하다 보면 화목한 가정이 된다. 샤밧 성찬의 이야기 주제는 급할 것 없이 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천천히 계속된다. 아이들은 공부를 할 수는 없지만 철학이나

40 역사의 인물에 대해 부모가 설명해 주는 것은 규약에 어긋나지 않는 모양이다. 이야기하다가 무슨 유태인 철학자 이야기가 나오자 한참 그게 누구인지 하임의 장인이 그의 어린 외손자에게 설명한다. 아마도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가족과 자국의 역사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될 것이다. 샤밧에 공부는 할 수 없지만 부모나 친척에게 다른 날에 배우지 않는 것을 배우는 날이 또한 샤밧이 아닐까. 한국에서 교육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유태인 가정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역시 교육의 기본은 아버지 어머니가 아이들과 같이 있어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티브이나 컴퓨터나 학원이나 다른 아이들에게 아이들을 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들이 하루종일 같이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아버지 어머니를 만난다. 그게 교육의 기본이다. 너무 간단한 것 같지만 실상 한국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너무 바쁘거나 다른 오락거리에 정신이 팔려 서로의 얼굴을 볼 시간이 별로 없다. 한국의 아이들은 대개 수많은 학생들과 함께 부모나 친척에 비하면 낯선 어른들인 선생님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혼자 시간을 보낸다. 물론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이다.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간다든가 집에서 책을 같이 읽는다든가, 같이 요리를 만든다든가 같이 집안청소를 한다든가 같이 운동을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같은 활동을 같은 공간에서 같이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하임의 아이들은 사실 샤밧이 아니라도 온갖 행사에 참여하느라 바쁘다. 일년 내내 유태인의 명절이 많이 있는 데다가 친척이 아주 많기 때문에 경조사도 많다. 이스라엘의 유태인은 아이를 많이 가진다. 하임만 해도 형제가 열 명이고, 그 열 명의 형제 중 대다수가 또다시 그 정도의 아이를 가져 한 할아버지 밑에 100명에 육박하는 손자 손녀가 있는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대개 종교적으로 독실할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데 하레디 신자 가족이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면 마치 오리 가족이 지나가는 것 같다. 비슷한 검정 빛의 옷을 입고, 10명에 가까운 아이를, 일부는 유모차에 끌고 일부는 안고 일부는 한 줄로 걸어서 부모님을 따라오게 한다. 이런 대가족이 존재하는 데도 유태인들은 결혼이며 할례식이며 여러 가지 친구와 가족의 행사에 꼭 참여하는 편이다. 년중의 여러 가지 전통 명절행사도 빠지지 않고 충실히 치른다. 그러니까 일가 친척들이며 동네 어른들을 계속 만나게 된다. 물론

41 그것은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또다른 형태의 가족과의 시간이다. 한국도 사실은 몇십 년 전에는 이랬다는 생각이 든다. 7-8명의 형제가 보통이었던 때가 있었고 일년에 이런저런 명절을 일일이 지키느라 바쁘고 각종 제사며 경조사를 친구에서 사돈의 팔촌까지 지키느라 일년 내내 경조사로 바빴던 때가 있었다. 요새는 결혼 하객이 부족해서 결혼하객대행업이라는 직업이 생겼다고 한다. 돈을 받고 모르는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친인척으로 행세해 주고 밥을 먹는 것이다. 우리는 전통이 주는 많은 불편함과 구속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래서 명절에는 리조트로 놀러가거나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고 동지팥죽이며 대보름 쥐불놀이며 부럼이며 한복 입기 같은 것이 어느새 희미한 풍습이 되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도 매우 많다. 그 결과 좀더 자유로워졌고 좀더 편해졌다. 그런데 자유란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부자유가 어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는 제쳐놓고라도 최소한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의 많은 아이들은 친척도 잘 모르고 전통도 모르며 어릴 때부터 바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금방 줄어든다. 아이들은 친척어른을 만나지 않고 이웃어른을 만나지 않는다. 그들이 보는 어른은 종종 강단에 선 선생님이나 등 돌리고 티브이 시청에 바쁜 아버지다. 외롭게 크거나 어른과 만날 시간이 없는 아이에게 올바른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은 첫번째 단계에서부터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들은 한 마디로 믿고 따라할 어른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없다. 우리는 과거 한국에 있던 것이라면 그것은 후진적인 나라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신이라거나 의미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이 전세계 최하위 수준의 가난한 나라를 지금 만큼의 부자나라로 만든 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와 달라졌다. 더 좋아졌다. 정말 그런가? 오늘의 이스라엘은 해방 직후의 한국과는 다르다. 아무튼 평균국민소득 3만3천의 세계적 부국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아이들은 20세기 5-60년대의 한국과 비슷하게 크는 면이 있다. 가족이 강조되고 아이들은 전통 속에서 자라난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어른을 만나고 사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난다. 이게 이스라엘이 아이들에게 세상을 가르치는 방식이다. 나중에

42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실은 미국과 일본도 방법이 조금 다를 뿐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지역사회 활동이 교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이웃이 친척의 역할도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샤밧 성찬에서는 제미롯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손님인 나는 무슨 노래인지 몰라 그저 웅얼거릴 뿐이다. 하임의 가족들은 웃는 얼굴로 다같이 노래를 부른다. 중동의 이국적인 음악이 집안에 가득 찬다. 음악이란 사람을 뭉치게 한다. 다같이 노래 부르는 가족이란 멋져 보인다. 가족이 다같이 송편을 만든다던가 윷놀이를 하는 것만큼 멋져 보인다. 그 노래하는 장면에 유태인이 수천 년의 박해를 견디고 번성한 비밀이 있다. 때로는 정말 점심만 먹었으면 좋겠다. 히부루 대학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대학이며 많은 조사에서 세계적 명문으로 꼽히는 대학이다. 이 대학의 첫번째 이사회에 참여한 인물에는 물리학자 아인쉬타인, 심리학자 프로이드, 철학자 부버 그리고 지오니스트 리더 와이즈만이 있다. 이 대학은 4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는데 스코퍼스 산의 캠퍼스, 기밧 람 캠퍼스, 엔 케림 캠퍼스 그리고 르호봇의 캠퍼스다. 나는 이공계 학과들이 소속된 기밧 람 캠퍼스에 사무실이 있었다. 시험철이 되면 급해지는건 어느 나라 대학생들이나 마찬가지다. 시험철에 캠퍼스를 걷다보면 다급해진 유태인 학생들이 시끄럽게 공부하는게 보인다. 나같으면 차분하게 공부해야 하는 걸 외우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곳을 가겠지만 유태인 학생들은 복도며 건물앞에서 모여서 와글와글 시끄럽다. 언젠가 한 기억력 전문가 유태인이 한국 학생들의 공부방식에 대해 조언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공부하라고 하면 조용한 곳에 가서 조용히 공부하는데 유태인 학생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태인 학생들은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떠든다고 한다. 서로 말을 하면서 이야기를 해야 잘 외워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나라간의 차이인가 보다. 암기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언어와 생활습관에 따라 효율적인 방법이 틀릴 것이다. 유태인들은 주로 손발 짓을 많이 하고 얼굴표정을 많이 짓는데 비해

43 한국인들은 대화하면서 그러지 않는 편이다. 이런 차이도 분명 암기하는 방법에 영향을 줄 것이다. 아뭏튼 유태인들이 공부하는 방식은 시끄럽다. 누굴 붙잡고 마구 떠들면서 공부한다. 노벨상수상자의 3분의 1이 유태인이라고 해서 유태인 교육이 뭐가 틀린 가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을 많이 한다. 유태인들과 접촉하면서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이 있다. 그건 유태인들은 논쟁과 토론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기질상으로 남이 하는 소리를 한 시간 내내 조용히 듣고 있는 일이 없다. 나는 몇몇 국제 여름학교에 참여한적이 있다. 백 명 규모의 대학원생이나 박사후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여름학교로 전문가를 위한 강의다. 나름대로 수강생을 선발해서 뽑고 이미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받기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니 한마디로 바보나 사전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 거기에 유태인 학생이 7-8명씩 오는데 강의 시간에 질문하는 것의 반 이상은 이 유태인 학생들이 한다. 너무 질문을 많이 해서 시간 안에 강의가 끝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분명하게 말해서 이들의 이런 행태가 반드시 칭찬 받을 것만은 아니다. 이들이 가장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이 이들이 가장 똑똑했었다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은 알아들었는데 나를 포함한 몇몇만 모른다. 그래도 유태인 학생은 질문을 한다. 여기서는 질문하는 매너에 대해 칭찬하거나 비판 하자는 게 아니다. 요점은 왜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하는 것이고 유태인의 교육과 학문에 있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렇게 적극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같다.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다. 나는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세미나와 학회에 참석했다. 장기 체류한 곳으로만 미국, 일본 그리고 이스라엘이 있다. 내가 느끼기로는 세미나의 분위기가 가장 좋기로는 이스라엘의 세미나분위기가 가장 좋았다. 히브루 대학에 있을 때 세미나는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언제나 매우 비공식적인 분위기로 흘렀다. 연사가 나 아는 것 많으니 그냥 들으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듣는 사람들이 연사 틀렸다면서 면박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런 저런 문제가 있으니 함께 생각해 보자는 분위기랄까. 세미나는 종종 연사가 원하는 곳까지 발표를 하지 못하거나 정해진 시간을 훨씬 넘겼다. 전에 생각하지 못한 것을 지적 받고 연구발표를 하는 게

44 아니라 거기서 연구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벌어지는 상황도 있다. 첫번째 화면을 보여주고 뭔가가 질문이 나오면 그걸로 한정없이 늘어져서 첫번째 화면 보여줬는데 세미나 시간의 절반이 가버리는 경우도 있다. 유태인들은 이런 환경에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단련된다. 연사가 준비한 자료를 전부 보는 것이 세미나의 목표가 되지 않는다. 유태인 학생들은 자기 의견을 매우 강하게 표현한다. 히브루 대학교 학부 물리학 강의 시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수학에는 벡터라는 개념이 있고 텐서라는 개념이 있다. 텐서는 좀더 일반적이고 따라서 조금 더 고급과정에 나오는 개념이다. 학부저학년들이 듣는 과목이라 학생들은 텐서가 뭔지 몰랐다. 그런데 강의에 텐서를 말하면서 그 강사가 강의를 한 모양이다. 당장 한 학생이 일어나 거세게 항의를 한다. 이런 강의 못 알아 듣겠다는 것이다. 텐서 아는 사람있냐고 다른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뭐라고 한다. 나도 전해들은 이야기라 현장분위기는 정확히 모르나 일단 나중에 화제가 될 정도로 그 항의가 거세었나보다. 애초에 유태인 학생들의 항의란 한국의 유교적 분위기의 기준으로보면 매우 거세다. 히브리어엔 경어도 없다.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켰는데 오래 기다린 끝에 짬뽕나오면 다혈질인 한국사람이 중국집 종업원에게 어떻게 항의하겠는가. 교수에게 학생이 항의할 때 그런 분위기다. 한국기준으로는 그야말로 망신을 주는 것이다. 교수가 얼른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임을 다짐했다고 한다. 유태인 학생들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다. 그러니 국제 학회 가서도 행동이 다른 경우가 많다. 유태인이 단순히 하나님의 계율만을 엄격히 따르는 민족이라면 유태인의 뛰어난 성취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논쟁과 토론의 달인이라는 것은 그 사람들이 합리주의자들이고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계율은 바꾸지 못하지만 그 밖의 것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토론한다. 어떤 뛰어난 혹은 높은 위치를 가진 사람이 명령을 내리면 그 권위에 금방 순종하는 그런 문화가 아니다. 다른 민족들이 보기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서로 따지면서 의견을 나누고 최선의 방책을 배우고 발견해 나간다. 이런 열린 자세가 유태인의 성공을 가져왔을 것이다. 토론문화의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되었지만 여전히 한국에서는 제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다. 한국어로 토론할 땐 서로 체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토론하는 것도 때로는 어렵다. 나는 진정 토론의 중요성을 믿는 사람은 집단적 지성이 개인보다 뛰어나다고 진정으로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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