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국내학술심포지움 자료집(차이의 정치와 윤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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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시기 경성의 중국인거리와 그 생활세계 - 魔 窟 獵 奇 街 이미지의 정치성과 종족성을 중심으로 오 미 일(한국민족문화연구소) - 목 차 - 1. 머리말 2. 경성의 중국인 인구 추이와 직업별 구성 3. 중국인거리의 형성과 생활세계 4. 이미지의 정치성과 종족성 5. 맺음말 1. 머리말 1930년대 초에 이미 6만 명이 훨씬 넘었던 한국 화교는 2000년대에는 2만여 명에 지나지 않 는다. 국제간 이동이 훨씬 증가한 세계화시대에 화교의 수는 1930년대보다 훨씬 감소한 것이다. 화교들은 한국사회의 차별 을 그 이유로 든다. 1) 이 차별 의 기원을 1961년 제정된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으로 들기도 하지만, 2) 법적인 제도 에 앞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인식 은 훨씬 소급하여 찾을 수 있다. 보기를 들어 김동인의 소설 <감자>(1925년)에서 주인공 복녀를 능욕한 중국인 왕서방은 호색한이자 냉혈한 수전노로 그려지 고 있다. 문학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이 글에서 다루는 신문기사 자료의 상당한 내용 또한 객관적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이면에는 은연 중 차별적 시선이 존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결국 화교에 대한 차별의식은 이미 일제시기부터 기제화되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 현재까지 전승되 고 있다고 할 것이다. 3) 1927년 중국 내부의 전란으로 중국인 피난민들이 만주로 모여들자 중국 정부는 만주 거주 조 선인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고, 조선에서는 이에 격분하여 전국적으로 화교배척운동이 일어나 군산 인천 등지에서는 화교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다. 또한 1931년 7월 중국 長 春 만보산의 한 농 1)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화교의 생활과 정체성 (구술사료선집 5), 2007, 7~11쪽. 2) 이 법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도시 근교에서 채소를 재배하던 화교 농민은 큰 타격을 입고 사라지게 되었다. 3) 보기를 들어, 1979년 작품인 오정희의 <중국인거리>에서는 중국인을 뙈놈 이라고 부르며 밀수업자, 더러운 아편장이, 누더기의 바늘땀마다 금을 넣는 쿠리, 사람 고기로 만두를 빚는 백정, 원수의 생 肝 을 내어 형님도 한 점, 아우도 한 점 씹어 먹는 오랑캐 십년을 사귀어도 흉중을 내보이지 않는 이들 로 묘사했다( 제3세대 한국문학: 吳 貞 姬, 삼성출판사, 1983, 227~228쪽)

2 촌에서 물꼬 문제로 인한 조선인과 중국인의 분쟁에 대해 일본영사관이 조선 농민이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도하면서 열흘간 화교배척폭동이 발생했다. 그 결과, 세계연맹의 조사에 의하면 조선 내의 중국인은 사망 127명, 부상 393명이란 피해를 입었고 폭동에 참가하여 체포된 조선인 은 1,800여 명에 이르는 결과를 낳았다. 4) 그런데 이 중국인배척폭동의 기원은 1910년대부터 시 작된 조선인의 만주 이주에 있었다. 당시 중국 관헌은 국권을 상실한 조선인을 일제의 走 狗 라고 간주했으며, 이들의 이주는 일제의 만주침략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노골적으로 조선인 구축방침을 취했다. 5) 1927년과 1931년의 조선화교배척은 이에 대한 대응이었다. 따라서 조 중 양국의 민족 갈등은 바로 대륙침략을 획책하고 있었던 일본제국주의의 정책에 의해 조장되었음 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가 의도한 이러한 민족 갈등은 생존과 연결되는 현실적인 사회경제적 문제를 계기 로 인종적 편견과 차별의식으로 사회화되고 구조화되어 현재까지 전승되었다. 중국인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을 천하고 미개하다고 생각했으며, 조선인은 화교를 불결한 수전노ㆍ파렴치한이라 고 공공연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양자의 인종적 편견은 사회문화적 차이에 기인하지만, 더욱 주 요한 원인은 일본제국주의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패권질서의 재편과 이에 대항하는 조 중 양국의 민족주의가 얽히면서 상승작용을 한 데에 있었다. 사회의 차별의식과 편견은 구성원 전체의 경험에 의해 습득되기 보다 대개 학습되거나 전달 혹은 전승된 것이다. 즉 인종적 편견과 차별의식은 사회적 정치적 기제에 의해 형성되고 구조화 되며, 이 때 생물학적 특성은 차이를 차별화하는 상징으로 이미지화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종 적 편견이 처음 탄생하는 상황, 그리고 인종주의가 유지되고 강화되는 상황의 이면에는 그 논리 를 적극적으로 생산해내거나 동조 혹은 방관하는 지배세력이나 엘리트의 역할이 있다. 6) 그런데 인종 편견을 재생산하는 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기제 중 하나는 대중매체이다. 대중매체를 주도하 는 지식인집단이나 엘리트(유지, 지식인)는 여론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대중 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일제시기 중국인의 종족성에 대한 편견, 그리고 이것이 이데올로기로 고착 화되는 과정에도 대중매체와 여기에 관여하는 지식인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은 일제시기 反 제국주의투쟁의 국제적 연대를 무색하게 만든 조선 화교에 대한 인종적 편견의 사회구조적 형성 기제에 대해 로컬리티와 관련하여 분석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한국사회 의 소수자인 화교의 종족성(ethnicity)이 근대 일본제국주의 지배하에 일본 국가이데올로기 그리 고 이에 저항한 한국 민족주의 양자에 의해 이미지화되고 그것이 사회적 정체성으로 정형화되는 과정을 로컬리티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일제시기 경성의 중국인거리가 민족주의적 편견에 의해 어떻게 악마의 소굴 로 이미지화되고, 나아가 추방의 대상으로 지목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경성은 1920년대에 들어서 산동지역 중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북부지방으로 유입되기 전까지 중국인이 가장 많은 도 시였기 때문에, 조선 상업계를 장악한 화상으로부터 소상업ㆍ행상ㆍ서비스업ㆍ농업ㆍ노동 등 다 양한 업종에 종사하는 여러 계층의 중국인이 거주했다. 따라서 일찍부터 출신지역별, 계층별로 4) 박영석 역, 리턴(Lytton) 보고서, 탐구당, 1986, 138쪽. 5) 이훈구, 만주와 조선인, 성진문화사, 1979, 240~243쪽. 6) 박경태, 소수자와 한국사회, 후마니타스, 2008, 48쪽 참조

3 권익단체나 동향친목회가 조직되었고 중국인밀집지역이 형성되어 대표적으로 규모있는 중국인거 리가 발달했다. 또한 신문ㆍ잡지사 등의 본사가 전부 경성에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거리의 생활세 계와 풍경에 관한 여론의 발신이 가장 많았고, 또한 발신지가 지리적 중심인 관계로 중국인 관 련 담론 형성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중국인거리의 이미지가 정형화되고 그것이 종족 성으로 확산된 사회정치적 배경을 살펴보기에 적합한 대상지역이다. 근대 화교 관련 연구는 시기적으로 볼 때에는 주로 1931년 만보산 사건을 계기로 한 중국인 배척폭동에 대해 많이 이루어졌으며, 7) 그 외에 중일전쟁시기 화교문제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었 다. 8) 공간적으로는 인천지역 화교에 대한 연구가 압도적이며, 9) 군산 마산 등 주로 개항장도시에 서 화교의 定 住 化 와 緣 網, 경제활동에 대해 연구가 이루어졌다. 10) 특히 중국인 노동자문제는 일 제시기 화교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관련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11) 화상의 구체적 영업활 동이나 자본축적에 관해 분석한 연구, 그리고 근현대 한국 화교의 정착과 이동을 통해 종족성에 접근한 연구도 이루어졌다. 12) 그러나 본고에서 다루는 경성지역의 화교나 중국인 거리에 대한 연구는 전혀 이루지지 못했다. 이 글은 일제시기 경성에 이주한 중국인이 식민지 조선사회에서 식민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시선에 의해 어떻게 인종적으로 비하되고 타자화되는가를 구명하기 위해 먼저 중국인 인구 추이 와 직업별 구성, 계층분화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이후 중국인 밀집공간이 계층별로 어떻게 조성 되며, 중국인거리벨트가 언제 형성되는지 검토하려고 한다. 나아가 중국인거리의 대로변 풍경과 뒷골목의 생활세계를 살펴보고, 중국인거리= 마굴 이란 담론과 그 이미지화가 어떠한 정치적 배경 에서 이루어지는지 분석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오늘날 뙈놈 아편장이 란 命 名 에 내재된 화교에 대한 인종적 차별의식이, 제국주의 지배 하 식민지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사회화되어 전승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로컬리티 개념은 그러한 차별인식이 중국인거리 란 특정 장소에 공간적으로 구현되어 공간주체에게 그대로 투사되는 과정을 통해 동 7) 최병도, 萬 寶 山 사건 직후 華 僑 排 斥 事 件 에 대한 日 帝 의 대응, 한국사연구 156, 2012; 손승회, 1931년 식민지조선의 排 華 運 動 과 華 僑, 중국근현대사연구 41, 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 2009; 손승회, 만보산사건 과 중국의 언론, 역사문화연구 28, 2007; 이준식, 만보산 사건과 중국인의 조선인식, 한국사연구 156, 2012; 8) 이정희, 중일전쟁과 화교, 중국현대사연구 35호, 한국중국근현대사학회, ) 김영신, 일제시기 在 韓 華 僑 (1910~1931)-인천지역 화교를 중심으로, 인천학연구 4호, 2005; 류제헌, 인 천시 화교가의 성쇠과정:1884~1992, 문화역사지리 18권 1호,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2006; 정혜중, 개 항기 仁 川 華 商 네트워크와 華 僑 정착의 특징, 중국근현대사연구 36, 2007; 김승욱, 20세기 초 (1910~1931) 인천화교의 이주 네트워크와 사회적 공간, 중국근현대사연구 47, 2010; 김승욱,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천의 운송망과 華 僑 거류양상의 변화, 중국근현대사연구 50호, ) 김중규, 화교의 생활사와 정체성의 변화과정: 군산 여씨가를 중심으로, 지방사와 지방문화, 10권 2호, 2007; 김중규, 화교학교의 역사를 통해서 본 화교문화의 형성과 변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13권 1호, 2010; 문은정, 근대 마산지역 화교의 형성과 그 구조, 경남대 석사논문, 2002; 김태웅, 일제하 군산부 화 교의 존재형태와 활동양상, 지방사와 지방문화 13권 2호, 2010; 김태웅, 일제하 조선 개항장도시에서 화교의 定 住 化 양상과 緣 網 의 변동-인천, 신의주, 부산을 중심으로, 한국학연구 26, 2012; 이정희, 20세 기 전반기 대구지역 화교의 경제적 활동(1905~1955년), 대구사학 80, 대구사학회, ) 이옥련, 근대 한국화교사회의 형성과 전개, 인하대 박사학위논문, 2005; 전우용, 한국 근대의 華 僑 문제, 한국사학보 15호, 2003; 李 正 熙, 朝 鮮 華 僑 と 近 代 東 アジア, 京 都 大 學 學 術 出 版 會, ) 이시카와 료타, 조선 개항 후 중국인 상인의 무역활동과 네트워크, 역사문제연구 20, 2008; 강진아, 동 순태호: 동아시아 화교자본과 근대 조선, 경북대학교출판부, 2011; 박은경, 한국화교의 종족성, 한국연구 원,

4 시대인에게 확산되며, 나아가 시간적으로 축적되어 후세대에게 전승되는 과정을 해명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라고 생각한다. 2. 중국인 인구 추이와 직업별 구성 1) 인구 추이 경성은 1920년대에 들어서 중국인 노동자들이 특히 신의주 등의 북부지역으로 유입되기 이전 까지 중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도시였다. 13) 경성에 중국인이 와서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경으로 당시에는 겨우 2,3명에 불과했다. 14) 그러나 1883년 朝 淸 商 民 水 陸 貿 易 章 程 이 체결 되면서 水 標 橋 부근에 20호 내외의 중국 상인이 거주했으며, 1885년 경성조약 및 텐진조약 성립 후에는 수표교와 남대문 부근에 거주하는 이가 3백여 명에 이르렀다. 동순태, 廣 大 號, 錦 成 東, 兆 公 順, 新 泰 字 號, 肇 康 興, 仁 昌 盛, 同 順 德, 雙 和 東, 公 和 順, 利 和 順 號 등의 유력 상점이 개점한 것 도 이 시기 전후 무렵이었다. 15) 1893년경 일본인이 겨우 780명인데 비해 수천 명을 헤아렸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16) 청일전쟁 직전 무렵 번영을 구가했음을 알 수 있다. 연도 조선내 중국인 총인구수 (A) 경성부 중국인 戶 數 <표 1> 경성부 거류 중국인 호구 변화 경성부 중국인 人 口 數 男 女 計 (B) (B/A) % ,902 조선일보 ,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 同 , , , 同 , , , 同 , , , 同 , , , 同 , , , 同 , , 同 , , , 同 , , , 同 , , , 同 , , , 同 , , , 同 , , , 同 , , 동아일보 출전 13) 1923년 말 현재 경성의 중국인은 4,107명( 府 接 續 地 居 住 者 327명), 신의주 3,641명(1423), 인천 1,774명, 평양 779명(734) 순이었다. 그러나 府 接 續 地 거주자를 포함하면 이미 중국인이 제일 많이 거주하는 곳은 신 의주였다( 小 田 內 通 敏, 主 要 都 市 在 住 支 那 人 活 動 狀 態 一 覽 表 (1923년 말 현재),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の 經 濟 的 勢 力, 동양협회출판부, 1924). 14)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조선총독부조사자료 제7집, 1924, 47쪽. 15)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1924, 47쪽. 16) 경성부, 京 城 府 史 3권, 1941, 514쪽

5 , , , 경성부제1회국세조사보고, 108~112, , , , 京 城 の 面 影 , , , 동아일보 , , , 京 城 の 面 影, 동아일보 , (1117) 5,066 (7,174) 921 (1,039) 5,987 (8,213) 8.8 (12.1) 京 城 の 面 影 (경성일보 ) ,732 2, ,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 , , 동아일보 자료: (B) 1910~1923년은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조선총독부조사자료 제7집, 1924, 2쪽, 48쪽; 1925 년은 경성부제1회국세조사보고 (대정 14년), 108쪽; 1926~1930년은 長 野 末 喜, 京 城 の 面 影, 內 外 事 情 社, 1932, 5~7쪽; 1932년은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303호, 1933년 2월 (A) 조선총독부통계연보 각년판;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288호, 1931년 11월. 비고: 1925년의 숫자가 이례적으로 높은 것은 국세조사 시 乞 丏 浮 浪 者 까지 조사했기 때문이다. 또한 1930년 국세조사에서도 경성부 조사수보다 약 37% 정도가 더 많게 파악되어 있다. 따라서 1912~1923년, 1926~1930년 경성부 내 실제 중국인 인구수는 통계숫자보다 훨씬 많다고 보아 야 한다. 이는 호구통계의 주체가 경찰관서 혹은 경성부로 다른 데에 기인한다.(각주 47 참조). <표 1>은 병합 이후 경성 거류 중국인 호구수이다. 이를 보면 첫째 경성의 중국인 인구수는 계속 증가추세이지만, 그 증가세는 1910년대 보다 1920년대가 훨씬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내 중국인총수에서 경성의 중국인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1920년대에 들어서 떨어졌 는데, 이는 신의주 등지 북부지방의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둘째 드물게 인구수가 정체된 시점은 1927년이고 감소된 시기는 1932년 이후인데, 이는 조선 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정세 변화나 혹은 일제의 노동자수급정책과 연관된 현상이었다 년의 경우 5월에 만주에서 중국 군경이 조선인 동포를 학대 참살하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전해 지면서 경성의 조선인들이 중국인을 습격하는 등 민족적 분쟁이 자주 발생하여 17) 중국인들의 입 국이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이 당시 시민대회를 통한 중국물화배척운동이나 조선인과 중국인 사 이의 폭력적 분쟁은 대부분의 주요 도시와 읍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18) 1932년에 인구가 급격하 게 감소한 것은 1931년 9월 발생한 만주사변으로 불안한 중국인 노동자들이 귀국했기 때문이 다. 19) 셋째 세대수가 인구수에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으며, 20) 남녀 비율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는 17) 5월 15일 오후 5시경과 16일 밤 9시경에 중국인 밀집지인 장곡천정 부근에서 조선인과 중국인 수백 명이 곤봉과 단도로 무장하여 편싸움을 벌였다. 그 발단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조선인이 경적을 여러 번 울렸 으나 중국인이 비켜주지 않아 치게 되면서 시비가 붙은 일이 민족적 갈등으로 비화되었던 것이다( 조선인과 중국인 수백명이 대혈전, 매일신보 1927년 5월 18일; 중국인과 곤봉으로 便 戰, 동아일보 1927년 5 월 18일; 중국군경의 동포학대사건 속출과 시내 조선인 중국인의 충돌이 빈빈, 조선일보 1927년 6월 1 일). 18) 長 城 市 民 大 會 중국물화배척결의, 조선일보 1927년 12월 12일; 載 寧 市 民 大 會, 동아일보 1927년 12 월 13일. 이에 신간회본부에서는 조선 내 거류 중국인에게 보복적 수단을 취함은 불가하므로 지회에 지령 하여 거류 중국인의 생명 재산에 危 害 가 미치지 않도록 활동할 것 이라는 결의를 공식표명하기도 했다( 거 류중국인에 보복박해는 불가, 조선일보 1927년 12월 12일). 19) 당시 전국적으로 만주사변 이전에 67,800명에 달했던 중국인은 1932년에 36,700명으로 감소했었다( 本 誌 記 者,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303호, 1933년 2월, 82쪽). 20) 예를 들어 1923년 인구수가 3107명으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호수는 835호로 증가했으며, 반면

6 점이다. 남자 단독세대가 많은 것이 이주민사회의 보편적 현상임을 감안하더라도, 경성 중국인의 경우 더욱 심한 것은 고향에 처자를 남겨두고 단독으로 이주한 계절노동자의 비율이 높았기 때 문이다. 계절노동자는 대개 거류 중국인의 6할에 가까웠기 때문에 21) 조선의 중국인사회에서 그 들이 차지하는 사회경제적 비중과 파급효과는 매우 컸다. 2) 직업과 계층별 분화 그러면 경성 거류 중국인은 어떤 업종, 직업에 종사하며 생활을 영위했을까? 支 那 人 으로도 각종 계급의 사람이 건너오고 있다. 경성에도 굴지의 대상인이 있는가 하고 생 각하면 계절적 노동자도 자못 많다. 면사포상, 잡화상에는 큰 자본을 지니고 손이 넓은 상인도 10명 정도 있다. 기타 소상인은 支 那 料 理 屋, 중화이발관, 아래로는 支 那 빵 屋 등 그 종류도 상당 했다. 22) 예문에서 보듯이 자산 수십만 원을 소유한 굴지의 대상인으로부터 아래로는 철새인 계절노동 자에 이르기까지 각종 계급의 중국인이 경성으로 유입되었다. 23) <표 2> 京 城 거주 중국인의 직업별 戶 數 (1923년 말 경기도경찰부 조사) 업종 잡화상(62)/ 직물상(13)/약종상(11)/ 매약상(3)/ 재목상(1)/ 일용품잡화(22)/ 서 적점(5) 상업 184 직물행상(12)/ 야채행상(26)/ 과실행상(15)/ 獸 肉 行 商 (2)/ 賣 藥 行 商 (1)/ 두부행상 (1) 점원(10) 제조업 빵 商 (193)/ 제분업(2)/ 양복제조(12)/ 양조업(1)/ 中 國 服 製 造 業 (7)/ 제화업(4)/ 주 221 물제조업(2) 음식점(114) / 요리옥(45) 서비스업 이발업(31)/ 세탁업(8)/ 탕옥(3)/ 여인숙(3) 219 청부업(8)/ 貸 家 業 (5) 환전업(1)/ 대금업(1) 노동 204 목수(58)/ 석공(49)/ 미장공(16)/땜질공(4)/ 양철공(7)/ 瓦 工 (1) 노동(19)/ 勞 動 組 (25) 농업 19 농업(19) 기타 28 재봉업(1)/ 靴 수리(1)/ 고물상(1)/ 無 職 者 (25) 계 875호 24) (45개 업종) 자료: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조선총독부조사자료 제7집, 1924, 49~50쪽. 비고: 6개 업종은 필자가 임의로 대분류한 것임. 1927년과 1930년에는 전년 대비 인구수 증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호수는 감소했다. 21) 本 誌 記 者,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288호, 1931년 11월. 22) 本 誌 記 者,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の 生 活 狀 態, 朝 鮮 及 滿 洲 292호, 1932년 3월 23) 本 誌 記 者,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303호, 1933년 2월. 24) 이는 <표 1>의 1923년도 호수 825호와 차이가 나는데, 조사주체가 경찰부와 경성부로 달랐기 때문일 것이 다

7 <표 2>는 1923년 말 경기도경찰부에서 조사한 경성 거주 중국인의 직업별 호수이다. 총 875 호의 중국인 세대가 45개의 다양한 업종에 종사했는데, 크게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 노동 농업 기타 로 분류할 수 있다. 상업 중에서 가장 대표적 거물인 잡화상과 직물상, 약종상은 대개 1897년 무 렵 이주,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 지 수십년이 되어 자본력과 상업수완이 상당했기 때문에 일본 상 인도 얕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들은 경성 내에 상당한 토지를 소유했으며 다수의 가옥을 소유하 여 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임대해주기도 했다. 25) 화상들의 경제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단적으로 그 납세액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표 3> 1923년도 경성부의 각종 稅 額 민족별 조사 민족별 세목 세총액 과세인원 1인평균액 최고1인세액 내지인 시가지세 88, , (2) 1, 가옥세 73, , (2) 영업세 109, , (2) 1, 호별세 111, , , 조선인 시가지세 98, , (3) 1, 가옥세 58, , (3) 영업세 84, , (3) 호별세 29, , 중국인 시가지세 6, (1) 2, 가옥세 3, (1) 1, 영업세 13, (1) 호별세 6, , 출전: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조선총독부조사자료 제7집, 1924, 53쪽. <표 3>을 보면 시가지세, 가옥세, 영업세, 호별세의 총액은 당연히 과세인원이 압도적으로 적 은 중국인이 가장 적었다. 그러나 시가지세 1인평균액을 보면 중국인은 38.99원으로 일본인 26.74원, 조선인 5.22원보다 훨씬 많았다. 또한 중국인의 가옥세 1인평균액도 조선인의 7.6배, 일본인의 1.2배 이상 많았으며, 호별세1인평균액 역시 조선인의 3배, 일본인의 2.8배 정도 많았 다. 영업세1인평균액은 조선인에 비해서는 1.9배 많았지만, 일본인보다는 약간 높았다. 최고1인 세액 을 보더라도 시가지세와 가옥세는 일본인의 2배이며, 26) 단지 영업세만 일본인의 1/2이었다. 따라서 과세대상자인 156~466명의 화상은 개별적으로는 조선인 자본가는 물론이고 조선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일본인들보다 훨씬 우월한 재력을 보유했음을 알 수 있다. 27) 화상들이 소수이면서도 이렇게 일본 자산가나 조선 상인과 경쟁하는 가운데 경성의 상업권을 장악하고 지속적으로 그 세력을 강고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자본의 우세와 점원의 철저 한 교육, 그리고 연대보증에 의한 신용 확보와 화상총회를 통한 상업적 단결 덕분이었다. 주요한 25) 경성내 중국인토지소유자 156인, 조선일보 1923년 12월 11일; 중국인의 경제세력 동아일보 1923 년 12월 11일. 대표적으로 동순태의 주인 담걸생은 시내 요지의 금싸라기 토지 8,626평(시가 약 16만 원)과 많은 가옥을 소유하고 있었다. 26) 1923년 중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국세(2천 원)를 납부한 이는 同 順 泰 의 경영주 譚 傑 生 이었다( 國 稅 千 圓 以 上 의 富 豪 實 力 調 査, 동아일보 1923년 3월 10일 ). 27) 예를 들어 同 順 泰 의 주인 담걸생은 경성 재계의 주요 인물로 조선식산은행에서 수백만 원의 신용대부를 받 을 정도였다( 譚 傑 生 二 子 를 아편밀매로 拘 引, 동아일보 1924년 8월 13일)

8 직물상 또는 잡화상은 2,3인이나 4,5인의 합자조직으로 그 자본주( 財 東 )는 대개 본국에 있었으며, 경성의 상점은 지배인( 掌 櫃 )에 의해 경영되었다. 대상점에는 점원이 30,40명 정도 있는데, 대개 직접 본국으로부터 채용하여 불러들인 이들이었다. 28) 이들 상점의 거래대상은 주로 조선인이었 다. 그 다음으로 중국인 사회에서 중요한 업종은 경성 호수의 약 40%에 달하는 352호가 종사하는 중국요리ㆍ중국음식점ㆍ빵제조판매업이었다. 중국요리점은 45호로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四 海 樓 (명치정) 金 谷 園 (장곡천정) 悅 賓 樓 (돈의동) 大 觀 園 (관수동) 雅 敍 園 (황금정) 福 海 軒 ( 授 恩 洞 ) 馬 華 (종로) 第 一 樓 (관철동) 등이었다. 특히 사해루 금곡원과 같은 것은 일본인들의 주요 宴 會 場 으로 규 모가 크고 화려하여 그 과세표준액이 7만 2천 원, 6만 원에 이를 정도였다. 중국음식점은 대중적 으로 먹을 수 있는 만두가게나 구이집 등으로 경성부 및 근교에서 140호(경성부만 114호)가 영 업 중이었다. 값싸고 간단하여 중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조선인 노동자에게도 적합하여 조선인 동네에서도 많이 영업했다. 특히 경성부 및 근교에서 빵 제조 및 판매에 종사하는 중국인은 203 호였는데 중국인과 조선인의 식용으로 계속 증가추세였다. 빵상 이외에 중국옷제조업이나 제화업같은 것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냄비 나 솥을 제조하는 주물제조업(경성부내 2호, 府 外 1호)은 조선인을 대상으로 했는데, 가격이 저 렴하면서도 품질이 우수하여 경성의 모든 솥은 이들이 제조한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발업과 같은 일부 서비스업의 경우에도 조선인이나 일본인 동업자에게 매우 경쟁적이었다. 중국인 이발소는 경성 시내에 1923년경 23개소가 존재했는데 위생상태나 설비, 이발기술은 다소 떨어지지만 값이 저렴하면서도 귀를 후벼주고 어깨를 주물러주는 등의 서비스로 인해 조선인이 나 일본인도 몰려들었다. 이 탓에 1910년대 말 1920년대 초 2백여 곳이나 되던 조선인 이발소 가 폐업하여 130개소로 줄었다. 29) 한편 중국인 노동자는 토목ㆍ건축에 종사하는 자가 首 位 를 점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계절적으 로 이주하는 이들이었다. 목수 미장공 땜장공 양철공 와공 등 숙련노동자는 총 86호이고, 미숙련노 동자는 총 44호였다. 목수나 미장공의 기능은 조선인보다 훨씬 뛰어나 조선인 노동자의 强 敵 이었 다. 중국인 노동자는 누구나 싼 임금을 감수하고 종일 노동하는 근면한 점 때문에 雇 主 에게 환영 받았다. 그러나 그 임금은 일본인보다 훨씬 낮았고 조선인에 비해 약간 낮거나 비슷했다. 30) 따라 서 약간의 임금 격차가 있더라도 휴일에 쉬지 않고 몸을 아끼지 않는, 저렴한 임금의 중국인 노 28) 小 田 內 通 敏, 앞의 책, 1924, 18쪽;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の 生 活 狀 態, 56~57쪽; 양필승ㆍ이정희,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 삼성경제연구소, 2004, 40쪽. 29) 곤경이 박두한 조선인 이발업자, 중국인이발요금 5전인상, 동아일보 1924년 12월 4일, 1926년 2월 9 일. 이에 일본인 이발소와 조선인 이발소가 경무국 위생과에 진정하여 그 대책으로 이발사시험제도가 도입되 었으며, 결국 이발조합의 압력으로 요금을 인하하기도 했다( 來 住 支 那 人, 조선부락조사보고, 조선총독부, 1924, 36쪽;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조선총독부조사자료 제7집, 1924, 64쪽; 경성이발업자를 울리든 중국 인이발업자가 시험제도에는 대공황이다, 동아일보 1923년 8월 27일). 30) 1924년경에는 목수의 경우 하루 임금이 일본인 3원 50전/ 조선인 2원 50전/ 중국인 2원 70전이었고, 미장 공 4원/2.80원/2.50원, 석공 4.30원/ 3원/ 2.20원이었다( 조선노동자의 참상, 조선일보 1924년 4월 22 일). 1931년에는 목수는 일본인 3원 45전, 조선인 2원 10전, 중국인 1원 95전, 미장공은 일본인 3원 85전 조선인 2원 40전 중국인 2원 30전, 석공은 일본인 3원 95전 조선인 2원 25전, 중국인 2원 31전, 보통인부 일본인 1원 72전, 조선인 91전, 중국인 90전, 農 耕 夫 일본인 1원 50전 조선인 77전 중국인 50전이었다( 本 誌 記 者,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288호, 1931년 11월, 56~57쪽)

9 동자는 조선인에게는 위협적인 경쟁자였다. 또한 농부나 농업노동자로서 채소나 과일을 재배하는 자도 많았다. 혹 일본인 농장주가 경영하 더라도 대개 중국인 농업노동자를 고용하므로 府 의 근교, 京 仁 線 沿 線 등에서 생산되어 경성부민 의 식탁에 오르는 채소는 거의 전부 중국인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31) 대도시 즉 경성 평양 인천 등의 근교에는 이러한 중국인의 菜 園 이 많았는데 특히 경성 주변에는 더욱 그러했 다. 32) <표 3>에 농부는 19호로 되어 있지만, 경성부의 교외 즉 연희면, 용산, 서대문밖 마포 공 덕리 등지에서 菜 園 을 경작하는 54호까지 합하면 총 73호에 달했다. 33) 경성부 및 그 接 續 地 에 거주하면서 菜 園 의 경작에 종사하는 중국인은 모두 山 東 人 으로 밭을 借 地 하여 대개 胡 瓜, 시금 치, 상치, 무 등 계절야채를 재배했다. 수확한 야채류는 직접 시내에 행상하기도 하고 혹은 행상 인에게 판매하거나 시장에 반입시키는데, 대개 旭 町 ( 現 회현동)의 경성식량품시장 및 남미창정( 現 남창동)의 남대문시장에 반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생산된 야채의 2할은 시장에서 판매되었지 만, 나머지 8할은 행상인의 판매에 의존했다. 따라서 야채 과일행상에 종사하는 중국인도 매우 많았다. 이들은 경성부 및 부 근교까지 합하 여 총 45호로 경성의 중국인 가운데 石 工, 목수들과 함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할 정도라고 이야 기되기도 했다. 즉 봄에 結 氷 期 를 지나 도래하는 出 家 勞 動 者 중에는 토목 건축공사장 일이 없으면 야채행상을 업으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오쿠상 야사이 이리마센까. 나이코 타마뉴키 사 츠마이모 이로이로 아리마스. (아주머니 야채 있습니까? 무 양파 고구마 여러 가지 있습니다.) 34) 라고 외치며 주로 일본인 가정을 판매대상으로 했다. 위에서 살펴본 경성 거주 중국인의 직업(업종)을 생활수준과 이주기간을 기준으로 계층화해보 면 대략 <그림 1>과 같다. <그림 1> 이주중국인의 업종별 계층화 1 직물상, 잡화상, 약종상 2 일용잡화점 매약상 등 소상업, 요리옥 3 빵상 주물업 등 소규모제조업, 음식점, 이발업 세탁업 등 서비스업, 점원 4 각종 행상 5 숙련노동자 6 미숙련노동자, 농업노동자, 실업자 이 가운데 1~3은 비교적 일찍부터 이주하여 정착한 이들로, 이주기간이 길면 수십년 이상, 31) 本 誌 記 者,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288호, 1931년 11월, 56~57쪽; 경성부사, 1941, 517쪽. 32) 小 田 內 通 敏,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の 經 濟 的 勢 力, 동양협회출판부, 1924, 27쪽. 33)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1924, 68쪽; 경성부사 3권, 516쪽. 34) 矢 野 干 城 森 川 淸 人 共 編, 앞의 책, 1936, 150쪽

10 짧게는 수년 정도 되지만, 56은 계절노동자가 대부분이었다. 직물상 잡화상 등 일부 화상은 거 액자산가로 상당한 생활수준을 구가했으며 35) 경성 중국인 사회를 지도했다. 그들은 상업회의소 성격의 화상총회, 그리고 同 鄕 人 親 睦 會 이자 권익단체인 북방회 남방회 광동회를 조직, 운영하면서 중국영사관이나 조선총독부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공동이익을 추구하기도 했다. 36) 그리고 병이 들거나 생활이 궁핍한 중국인 동포의 구휼과 자선사업을 위해 1929년 재단법인 형태의 京 城 南 幫 과 京 城 北 幫 을 설립하기도 했다. 37) 또한 화상총회가 중심이 되어 중국인 유지들은 자국 노동자와 점원의 직업교육을 위해 간단한 교과와 언어를 가르치는 徒 弟 學 校 설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38) 이와 같이 경성 내 중국인들의 경제단체나 권익단체 혹은 자선단체와 친목회, 직업학교 등을 조직하고 운영한 것은 대개 정착한지 오래된 화상이나 유지들이었다. 39) 숙련노동자와 미숙련노동자, 그리고 농업노동자의 유입이 크게 증가한 것은 1920년대에 들어 서였다. 그들은 봄이면 들어와 11월이면 돌아가는 철새지만 경성 중국인거리의 형성과 확대에 중 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주로 1호당 7,8명 많게는 20~30명이 노동자합숙소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며 중국인 십장이나 일본인 청부업자의 지휘 하에 작업에 동원되었다. 40) 중국인 십장은 보통 음식점을 경영하는데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며 십장의 청부에 따라 노동했다. 41)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매우 열악했으니 1개월 생활비는 보통 15원 정도로, 식사는 밀가루로 만든 1개 5전짜리 중국빵으로 때웠고, 다다미 4장 반 정도의 좁은 방에서 6, 7명이 다리를 꼬부 리고 새우잠을 잤다. 이들 계절노동 목적의 거류민수는 동아시아 삼국의 노동력수급이나 만주사 변 중일전쟁과 같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동이 심했다. 35) 일례로 동순태의 경영주 담걸생의 맏아들인 譚 廷 琨 은 본래 여자를 좋아 하야 조선사람 일본사람 중국사람 등 돈의 위력으로 국제적으로 오입을 한 자 인데, 기생 김옥련과의 호화스런 생활을 통해 그 생활수준을 짐 작할 수 있다( 譚 家 兄 弟 를 華 商 들이 석방운동, 동아일보 1924년 8월 15일; 長 安 名 妓 榮 華 史, 삼천리 4권 10호, 1932년 10월). 36) 支 那 人 의 人 權 尊 重, 매일신보 1922년 1월 29일. 화상은 거의 대부분 1901년 설립된 중화총상회에 가입 되어 매월 捐 金 을 차등적으로 납부했다. 북방회는 산동 출신 상인단이 상호친목과 이익 증진 도모를 목적으 로 조직한 것으로 회관은 수표정에 있었으며, 남방회는 남방 출신(주로 浙 江 省 ) 중국인들이 조직한 것으로 회관은 서소문정에 있었다. 또한 廣 東 同 鄕 會 는 광동출신자가 조직한 것으로 회관은 태평정 2정목에 있었다. 그 외에 요리점은 중화요리조합(수표정), 이발소는 중화이발조합(본정) 등의 동업조합을 조직하여 경제적 단 결을 꾀하고 있었다(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1924, 50~51쪽; 在 京 中 國 人 도 三 派 로 鼎 立, 동아일보 1925 년 12월 1일; 메유화-스의 거리 ) 37) 재조선중국인 공제기관 조직, 동아일보 1928년 1월 26일. 그 외에 문화시설, 친목 도모 등의 목적으로 1914년 12월 태평정에 경성중국인구락부 건물을 신축하기도 했다( 京 城 支 那 人 俱 樂 部, 매일신보 1914년 12월 5일). 비슷한 시기인 1914년 12월 10일 미국인 언더우드와 항카, 영국인 데이비슨이 놀이와 운동 보 급을 목적으로 정동 8번지 민가를 빌려 경성체육구락부를 열었다. 그런데 이 구락부의 규정에 중국인은 제 외함 이란 규정이 있었는데 경성중국인구락부가 존재했기 때문인지 혹은 중국인 배척을 위해 이런 조항을 넣은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38) 在 朝 鮮 中 國 人 徒 弟 學 校 計 劃, 동아일보 1929년 1월 27일. 39) 1935년 3월 중국총영사관의 후원으로 경성의 토목건축청부업자 姜 鏡 文 이 중심이 되어 中 華 工 會 를 조직했는 데 이는 조선의 중국인 노동자들을 등록시키고 불량한 자는 송환시키는 등 자치적 통제기관이었다. 이어서 위생과 생활향상을 목적으로 화교공회연합회를 조직했다( 중국인노동자 自 制 機 關 설치, 조선일보 1935년 3월 17일; 在 城 華 僑 의 工 會 聯 合 會, 매일신보 1935년 6월 30일). 40)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1924, 66쪽. 41) 本 誌 記 者,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288호, 1931년 11월, 83쪽

11 3. 중국인거리의 형성과 생활세계 1) 支 那 人 街 의 형성과 거리 풍경 이상에서 경성 내 중국인들은 직업 업종별로 분화되었고, 따라서 그들의 경제력이나 생활상태 도 양극화되어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경성에서 중국인들이 밀집한 생활공간은 어느 곳이 며, 언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자. 외국인들이 개항장에서 거류지 혹은 租 界 등 확연한 경계를 정해 집단거주를 했던 것과 달리, 경성에서는 그들의 거주공간이 법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들어오면서 경성 사대문 안의 공간은 종족별로 구획되었으니, 대체로 일본인은 泥 峴 ( 現 충무로 부근)을 중심 으로 하고, 미국인 등 서구인들은 貞 洞 에, 그리고 중국인은 명치정( 現 의 명동) 중국영사관 및 수 표교 부근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42) 병합 후 주로 鑄 字 洞 ( 壽 町 )과 남산동, 용산 일부 지역 에 거주했던 일본인이 동북쪽으로 진출하면서 이러한 경계구획은 변화되었으나, 1930년대 시점 에도 여전히 일본인은 청계천 남쪽에 많이 거주했고, 조선인은 청계천 북쪽에 많았다. 43) 화상의 점포 개설은 처음 남대문통 大 路 로 지정되었고, 차츰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꺽어서 동대 문통으로 진출하면서 城 內 의 중앙을 丁 字 形 으로 占 據 하게 되었다. 44) 러일전쟁 후에도 여전히 화 상은, 상업적 세력은 강했지만 소수였기 때문에 산재하여 거주했고 공간적으로 뚜렷한 할거지역 이 없었다. 45) 1910년대에 중국인 거주지는 청계천 수표정 부근과 종로ㆍ관수동이었고, 그리고 남대문 부근 에서 장곡천정(소공동)으로 확장되었을 뿐이었다. 화상들은 종로 부근, 그리고 남대문통과 명치정 ㆍ욱정 등지에 점포를 내고 영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이 주변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각기 산재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거리나 중국인마을이라고 할 정도의 밀집지역은 별도로 형성 되지 못했다. <표 4> 년 경성 내 외국인 거주지역 인구 추이 서소문정 (서소문동) 태평통 2정목 (태평로2가) 장곡천정 (소공동) 북미창정 (북창동) 수표정 관수동 貞 洞 한강통 京 町 (13번지) (문배동) 1925 조선인 , 일본인 중국인 668(13) 823(3) 651(13) 114(5) 31(0) 301(0) 155 (92) 139(0) 132(0) 1930 조선인 일본인 ? 461 외국인 1,622 1, ) 경성부, 앞의 책, 1941, 514쪽. 43) 長 野 末 喜, 京 城 の 面 影, 1932, 5쪽. 44) 朝 鮮 に 於 ける 支 那 人, 1924, 48쪽. 45) 鹽 崎 誓 月, 最 新 の 韓 半 島, 동경 嵩 山 堂, 1906, 29쪽

12 조선인 439 1, , 일본인 외국인 조선인 392 1, 일본인 외국인 1, 조선인 일본인 외국인 1, 조 일 외 1, 조 일 외 1, 조 일 외 조 일 외 조 일 외 출처: 제1회 國 勢 調 査, 경성부, 1926; 京 城 府 町 洞 別 世 帶 及 び 人 口, 京 城 日 報 1931년 7월 31일~8 월 2일; 경성부, 호구통계 1932~1940년. 46) 비고: 년도에는 중국인과 외국인을 각각 별도의 항목으로 계산함. 1930~1940년에는 각 町 洞 거 주 중국인이 별도로 파악되어 있지 않고 외국인으로 분류됨. 그러나 21925년도의 ( )안 숫자는 중국인을 제외한 기타 외국인을 말함. <표 4>는 1925~1940년 경성 내에서 외국인이 100명 이상 다수 거주하는 町 洞 을 정리한 것 이다. 1930년 이후에는 중국인이 외국인에 포함되었는데, 전국적으로 중국인수가 1920년대에는 외국인수의 96~97%, 1930년대에 98%를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여 대략 외국인 숫자의 97% 내 외로 보면 될 것이다. 47) 정동의 외국인 거주자는 대부분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이었고, 중국 인이 다수 거주한 곳은 북쪽으로는 관수동과 수표정, 남쪽으로는 장곡천정ㆍ북미창정ㆍ태평정 2 정목ㆍ서소문정이었다. 그리고 경성부 외곽 한강통 13번지와 京 町 에 많이 거주한 것은 이곳에 용 46) 종래 경성부의 호구통계는 주로 경찰관서의 호구조사에 의거하여 연말에 인구조사를 실시했는데, 1932년 8 월 경기도훈령에 의해 이후 매년 12월 말일에 경성부에서 호구조사를 시행하게 되었다(경성부, 호구통계, 1933년 3월). 47) <표 > 조선의 외국인 중 중국인 인구비율 외국인 총인구(A) 內 중국인 인구(B) B/A(%) ,100 15, ,061 23, ,460 46, ,109 67, ,888 57, ,815 48, 자료: 1915~1925년은 조선총독부, 朝 鮮 の 人 口 現 象, 조사자료 제22집, 1927, 115~120, 1930~1940년은 조선총독부통계연보, 각년판

13 산공작소제2공장과 풍국제분주식회사가 있어 직공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1930~1940년 중국인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서소문정이었고 그 다음이 태평통 2정목, 장곡천 정 順 이었다. 태평통으로부터 의주통으로 빠지는 서소문정의 서쪽 편 거리는 회색 연와로 만들어 진 商 館, 푸른 페인트칠을 한 요리옥, 재봉점, 鞋 店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纏 足 을 한 중국인 여자들이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支 那 街 즉 중국인거리였다. 48) 그러면 이 중국인거리는 언제 형성되었을까? <표 4>를 보면 1925년경 중국인이 가장 많이 거 주한 곳은 태평통 2정목이고 그 다음이 서소문정-장곡천정 순이었다. 그러나 1930년에 이르러 서소문정의 중국인수가 태평통 2정목의 그것을 훨씬 앞질렀다. 또한 태평통 2정목에서는 조선인 과 일본인 인구비율이 훨씬 높지만, 서소문정의 경우 중국인 인구비율이 2~3배 더 높았다. 따라 서 서소문정에 중국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910년대부터이지만, 중국인마을, 중국인거리로 온전히 틀을 갖추게 된 것은 1920년대 말 무렵임을 알 수 있다. 49) 한편 경성의 중국인들은 직업 혹은 업종에 따라 계층별로 생활공간도 대개 분리되어 있었다. 거물 화상들과 이름있는 요리옥을 경영하는 이들은 주로 관수동과 수표정 부근에 거주했다. 50) 1925년경 경성의 동북 방면에서 중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한 곳은 관수동(301명) 이외에 종로 3 정목(112명), 황금정 4정목(88명)과 1정목(80명), 남대문통 1정목 (78명), 명치정 2정목(73명), 욱정 1정목(63명) 순이었다. 이곳은 모두 경성의 번화가 상업구역으로 주로 대표적 거물 화상들 과 그 점원들이 이곳에 거주했다. 이는 1930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1920년대에 대거 유입된 중국인 노동자는 차츰 서쪽 북미창정으로 거주구역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하여 51) 1920년대 후반 태평통 2정목과 서소문정까지 확대되어 장곡천정-북미창정- 태평통2정목-서소문정은 중국인거주공간벨트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인거리 하면 이제 서소문정 부근을 떠올리게 되었다. 48) 이들 支 那 人 은 경성 西 小 門, 長 谷 川 町 부근에 支 那 町 을 만들어 있다. ( 矢 野 干 城 森 川 淸 人 共 編, 앞의 책, 1936, 150쪽). 경성 한복판에서 색다른 외인거리를 이루어 支 那 街 로 이름지워 잇는 서소문정 일대 ( 西 小 門 町 支 那 人 街 探 訪 記, 조선일보 1938년 6월 24일) 부내 중국인 시가로 제일 번화한 서소문정 ( 서소문중국인, 동아일보 1937년 7월 20일) 경성에서는 특히 支 那 人 街 로 유명한 서소문정 일대 ( 西 小 門 町 支 那 街, 매일신보 1937년 8월 22일) 49) 그전에는 水 標 町 에 많이 있었는데 약 10년 전 전후하야 서소문정으로 많이 옮겨왔습니다. 수표정의 중국인 은 지금은 二 百 名 에 불과한 아직까지도 중국인 豪 商 은 이곳에 많습니다. ( 메유화-스의 거리, 매일신보 1936년 5월 8일). 서울의 지나인촌이라면 그중 만키로는 서소문정이요 다음에는 觀 水 洞 이 될 것이다. 또는 長 谷 川 町 근처의 뒷골목일 것이다. ( 大 京 城 의 特 殊 村, 별건곤 23, 1929년 9월). 50) 메유화스의 거리, 매일신보 1936년 5월 8일. 예를 들어 관수동에는 직물상 裕 豊 德 錦 成 東, 잡화상 東 興 盛 瑞 豊 德 永 來 盛, 요리옥 大 觀 園 이, 종로에는 직물상 瑞 泰 號 와 잡화상 德 發 祥 源 生 盛 德 聚 盛, 요리옥 馬 華, 수 표정에는 잡화상 德 生 恒, 황금정에는 잡화상이자 약재상인 同 順 泰 와 요리옥 雅 敍 園 등이 있었다. 51) 지나인도 또한 城 內 外 各 所 에 산재하는데 그 밀집한 곳은 남대문으로부터 종로 및 수표교통, 북미창정을 근 거지로 하여 차츰 발전하고 있는 경향이다. 외국인 중 많은 것은 중국인이다. 外 人 總 數 의 8,9할까지는 거 의 중국인이다. 대개 北 米 倉 町 으로부터 관수동을 중심으로 기타 各 所 에 산재하고 있다 ( 靑 柳 綱 太 郞, 大 京 城, 조선연구회, 1925, 8쪽, 181쪽)

14 <그림 2> 경성의 중국인 밀집공간 1 남대문통 2 수표정 3 관수동 4 장곡천정(소공동) 5 북미창정(북창동) 6 태평통 2정목(태평로 2가) 7 서소문정(서소문동) 자료: 경성시가도 경성도시계획조사서, 경성부, 1928, 48쪽 참조. <그림 2>에서 보듯이 1890년대~1910년에 중국인의 공간적 점유는 주로 동북쪽 진행이 강했 지만, 1920년대 이후 남대문에서 서쪽 방향으로의 진출이 훨씬 가속화되었다. 크게 보면 동북쪽 진행은 1890~1910년대 화상이나 점원, 요리옥경영주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남서쪽으로의 확 대는 1920년대에 주로 노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소문정 주변 중국인거리를 지나게 되면, 중국옷을 입고 중국신을 신은 이들이 거리를 활보하 는 풍경에 마치 중국 山 東 省 어느 곳에 온 듯한 느낌을 가질 정도였다. 52) 정동 골목을 지날 때 버터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서소문정 골목을 지나갈 때에는 청요리에 많이 쓰이는 도야지기름냄 새가 물컨물컨 난다 고 할 만큼 이곳은 후각적으로도 중국인거리임을 실감하게 하는 장소였다. 53) 수표정 부근에 중국인 豪 商 들이 주로 거주했다면, 서소문정에는 중국인 노동자와 농업자, 그리 고 이들의 일상품 수요를 겨냥한 소규모 제조업자나 점포상인, 이발업자, 행상 등 하층민이 거주 했다. 54) 서소문정의 중국인들 중 건전한 생계를 하여 가는 사람은 약 3할 가량 이고 대부분은 일용노동자 였다. 55) 서소문정의 대로변에는 대부분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잡화상과 요리점, 호떡 집들이 늘어섰는데 지저분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56) 태평통 2정목 역시 좌편 우편으로 게 52) 팽창경성가두변천기: 너저분한 중국인거리, 조선일보 1936년 8월 6일. 53) 그들의 거리를 드러스면 건물부터 근처의 공기부터가 지나 냄새가 나고 첫대파와 마눌 냄새가 우리네의 코 를 쿡 찌르는 것이나 모든 것이 과연 지나 냄새가 떠돈다. ( 대경성의 특수촌, 별건곤 23호, 1929년 9 월). 54) 1933년경 관할 서대문서에서 이곳 거주자를 직업별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음식점 경영 10명, 요리인 10 명, 빵제조업 9명, 야채상 12명, 농업자 16명, 목공 석공 29명, 무직자 5명이었다( 本 誌 記 者,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朝 鮮 及 滿 洲 303호, 1933년 2월). 55) 西 小 門 町 支 那 人 街 探 訪 記, 조선일보 1938년 6월 24일. 56) 西 小 門 町 支 那 街 整 理 美 化 를 계획, 조선일보 1937년 10월 5일. 그래서 1937년 중일전쟁으로 많은 중국 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자 조선총독부는 때마침 진행 중이던 대경성 프로젝트에 맞추어 시가정리계획을 발

15 딱지 같은 나지막한 집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냥 난쟁이같이 앉아 있는데 거기다가 벌여 놓은 상점들은 케케 때 묻은 고물들 뿐 이었다. 57) 이러한 중국인거리의 풍경은 경성부민관, 체신 사업관, 세무국, 조선화재보험회사, 경성부청 등 오피스센타 인 인근 태평통의 모던 경관과 대조 되곤 했다. 2) 뒷골목의 생활세계: 아편굴과 매음굴 대로변 상점가의 뒤편은 노동자나 행상이 거주하는 주택가였다. 좁다란 골목에 들어서면 대개 판자집이 옹기종기 몰려 있어 통풍이 잘 되지 않는데다가 하수와 위생 처리가 안되어 악취가 코 를 찌르는 빈민굴이 있었다. 58) 그런데 이곳에는 문제의 장소, 아편굴과 매음굴이 숨어 있어 도박 ㆍ폭행ㆍ살인 등 각종 범죄가 발생하곤 했다. 경성 시내 한복판에 세상에도 참담한 모루히네 주사를 맞는 소굴이 잇서서 그것은 물론 모 루히네의 큰 집이 되는 중국과 중국 사람의 손을 것처서 세상에도 가이업는 저 조선사람의 멸망 을 재촉하는 것이니 시내의 본바닥은 서소문정과 태평통 삼정목을 점령하고 잇는 중국인의 부락 이다. 더욱히 중추원 뒤 골목일대에 침울한 바람이 부는 백주에도 낫을 스치는 중국인의 빈민굴 을 중심으로 모루히네 밀매자와 모루히네 중독자 간의 죄악의 거래가 끈이지 아니하야 완연히 한 저자를 이루워 잇스니 59) 그전부터 西 小 門 町 급 長 谷 川 町 中 國 人 部 落 에는 도박 아편밀매 등 범죄사건이 만히 발생함 으로 각 경찰서가 연합하야 서소문정 급 장곡천정을 중심으로 시내 각처 중국인부락을 엄중히 수색하야 중국인 부랑자를 일망타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60) 대경성의 獵 奇 街 로 이미 數 種 의 殺 人 事 件 을 내이고 阿 片 窟 로도 유명한 서소문정에서 26일 밤 에 또 그로테스크한 살인사건이 발생하야 장안을 소란케 하엿다 61) 대장안 한복판에 마굴이란 이름판이 찍힌 지도 오랜 이 서소문 지나가 일대가 예부터 범죄의 溫 床 지대로 가지가지의 범죄를 자아내는 암흑가로 어떤 경로와 어떤 특수한 사정을 가졌는가 62) 이와 같이 중국인 집주공간인 장곡천정, 태평통 2정목과 특히 서소문정은 아편쟁이와 모르핀중 독자들의 소굴이었다. 중국인들은 표면상으로는 상점이나 호떡집 등의 간판을 걸어놓고 은밀하게 뒷방에 아편흡연장을 차려놓고 운영했다. 63) 특히 이곳은 경성 및 근교의 중국인이나 조선인 등 아편흡연자들이 모여드는 경성의 대표적인 아편소비지이기도 하지만, 해외밀수 중심지이자 국내 표하기도 했다. 57) 팽창경성가두변천기: 태평통편, 조선일보 1936년 8월 4일. 58) 西 小 門 町 支 那 人 街 探 訪 記, 조선일보 1938년 6월 24일. 59) 刺 身 窟 의 모여드는 魔 窟 探 訪 記 (1), 동아일보 1923년 11월 8일. 60) 阿 片 과 三 十 六 計 로 中 國 浮 浪 者 取 締, 시대일보 1925년 6월 3일. 61) 暗 黑 街 西 小 門 町 서 昨 夜 殺 人 劇 發 生, 조선중앙일보 1934년 10월 27일. 62) 西 小 門 町 支 那 人 街 探 訪 記, 동아일보 1938년 6월 24일. 63) 태평통에 아편굴, 조선일보 1925년 12월 4일; 서소문근거의 아편굴습격, 동아일보 1935년 12월 6 일; 서소문정아편굴소탕, 조선일보 1936년 12월 20일

16 유통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태평통 2정목이나 서소문정의 번화가 뒷골목 주택지대에 숨어 있는 비밀아편흡연장에는 경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망을 보는 문지기가 있었고, 유사 시에 피신할 대피로를 만들어두어 좀처럼 단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경찰에게 상납하여 단속첩보도 제공받았기 때문에 취체가 더욱 어렵자, 1937년경 관할 서대문서는 의주통에 파출소가 있음에도 서소문정에 새로 파출소를 내기 도 했다. 64) 아편을 흡연하고 모르핀(morphine)을 주사하는 곳에는 대개 賣 淫 窟 도 함께 존재했다. 중국인 들은 본토에서 매춘녀를 데려오거나 혹은 조선 여자를 고용했다. 65) 그런데 경성의 매음굴은 중 국인거리 외에도 並 木 町 新 町 西 四 軒 町 大 島 町 등 여러 곳에 있었는데, 요리집 문패를 달고 매음영 업을 하기도 했다. 66) 그런데 중국인거리의 매음굴이 특히 문제가 된 것은 간혹 인신매매되거나 혹은 유괴되어 온 조선인 소녀들이 감금되어 있다 탈출하면서 이들을 아편이나 모르핀 중독자로 만들어 매춘을 강제하는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67) 매춘굴 중국인의 양녀라는 아이들은 대개 조 선인 친부모가 팔거나 혹은 유괴된 조선인 소녀라는 사실이 간혹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마굴 탐방기 조선인소녀구출기 와 같은 자극적인 연재물이 게재되었다. 이들 기사에서 중국인거리는 중국인에게 시집가서 그들의 만행을 일과로 겪고 사는 가련한 조선 여자들이 사는 곳 혹은 인신매매의 숨어 있는 중앙시장 으로 묘사되었다. 68) 또한 도박을 오락으로 즐기는 중국인들이 간혹 도박 과정에서 시비가 붙어 폭행 혹은 살인사건이 발생되면서 당시 유행했던 도박 三 十 六 契 의 굴혈 로 묘사되기도 했다. 69) 4. 이미지의 정치성과 종족성 1) 중국인거리=마굴 이미지의 정치성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중국인거리의 뒷골목에는 아편굴과 매음굴, 도박장이 존재했고 그 부수물 로 살인이나 폭력 등도 간혹 발생했다. 그래서 중국인거리의 뒷골목은 한낮에도 으스스하고 음침 한 獵 奇 街 魔 窟 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이곳의 중국인은 아편을 밀수입해서 조선인을 아편중독 자로 만들고 사회를 피폐시키는 장본인이자 조선소녀인신매매범으로 지목되었다. 64) 서소문정에 또 마약밀매범, 매일신보 1937년 6월 5일. 65) 膨 脹 京 城 街 頭 變 遷 記 : 西 小 門 町 篇, 조선일보 1936년 8월 6일 66) 밤 京 城 의 暗 黑 面 探 訪 記 (5), 매일신보 1924년 9월 14일; 태평통북미창정 매음굴을 취체, 중외일보 1928년 5월 23일. 67) 중국아편굴에 감금된 조선소녀구출기, 조광 2권 1호, 1936년 1월; 마적대신에 人 肉 賣 買, 중국영사관 에 투서 마굴을 버서난 두 女 兒, 조선일보 1924년 12월 20일, 1925년 2월 26일, 1925년 4월 15일; 중국인 毒 手 에 慘 殺 된 조선소녀, 櫃 中 에 裸 體 美 人, 서소문변의 암흑가, 마약중독으로 인한 간음행위, 조선소녀 魔 窟 脫 出, 魔 의 거리 西 小 門 町 秘 密 暴 露, 매일신보 1927년 2월 4일, 1927년 8월 28일, 1935 년 10월 30일, 1938년 6월 16일. 68) 밤 京 城 의 暗 黑 面 探 訪 記 : 사람을 팔고 사는 지나인의 소굴, 매일신보 1924년 9월 12일. 69) 中 國 人 村 中 心 三 十 六 契 유행, 동아일보 1927년 8월 19일; 西 小 門 町 殺 人 劇, 매일신보 1935년 10월 28일

17 그런데 당시 식민지 조선사회를 피폐시킨 마약 70) 밀수와 확산의 주범은 과연 이 중국인거리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이었을까? 아편의 유통경로는 대개 중국으로부터 인천에 입항하는 기선 편 으로 밀수되어 경성 중국인거리의 아편흡연장에서 직접 소비되거나 이곳을 경유하여 전국으로 판매되는 경로가 있었으며, 육로로는 신의주나 함남지역 등지를 통해 밀수되는 경로가 있었다. 71) 혹 조선인이 직접 앵속갓을 재배하여 아편을 제조한 후 중국인에게 밀매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72) 대개 아편은 중국인에 의해 밀수되었다. 모르핀은 드물게 중국인이 중국으로부터 밀수하는 경우 도 있었지만, 73) 대개 경성의 일본인 약종상 등이 오사카나 코베 등지에서 밀수하여 유통시켰 다. 74) 1910년대 이후 나타난 모르핀 중독은 1920년대에 들어와 급격하게 확산되면서 이로 인한 절 도ㆍ강도ㆍ살인 등의 범죄가 증가하여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에 지역의 청년회나 신간회 등 민간 사회단체가 나서서 모루히네 防 毒 講 演 會 등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75) 당시 유행한 刺 身 鬼 란 말은 바로 모르핀중독자를 가리키는 것인데, 경성 시내의 모르핀 밀매장은 서소문정 중 국인거리 이외에 觀 水 橋 부근과 병목정ㆍ수표정ㆍ용산 등 십여 곳에 있었다. 76) 일제 경찰은 각종 범죄의 근원으로 마약을 주목하고 그 단속에 열중했지만, 그들이 주력한 것 은 주로 아편이었고, 그와 똑같은 해악을 끼치고 있는 모르핀의 단속에는 적극적이지 않았다. 조 선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모루히네근절에 대한 일본의 정책이 어느 정도까지나 성실한지가 자못 의심이 난다 고 77)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는, 조선 내 모르핀의 확산은 70) 아편이나 모르핀 중독은 대개 기생이나 화류계 여자들의 권유에 의해 성적 쾌락을 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전염병이나 身 病 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혹은 정신적 고통에서 일시적으로 벗어나려는 동기에서 출발하여 중독의 길로 들어서기도 했다( 刺 身 鬼 二 萬 餘, 赤 痢 病 猖 獗 을 奇 貨 로 마약밀매자 발호, 매일신보 1927년 2월 27일, 1937년 7월 28일). 71) 各 署 司 法 係 總 動 阿 片 巢 窟 大 掃 蕩, 매일신보 1927년 7월 31일; 호떡집 根 據 아편을 密 賣, 동아일보 1934년 9월 30일; 西 小 門 王 書 房 집에서 五 千 餘 圓 價 格 의 生 阿 片 十 貫 押 收, 조선일보 1936년 4월 3일; 서소문정에 아편밀매범, 조선중앙일보 1936년 5월 9일; 서소문아편굴소탕, 西 小 門 魔 窟 檢 擧 後 聞 조 선일보 1936년 12월 20일, 12월 21일; 西 小 門 町 의 支 那 人 阿 片 密 賣 者, 매일신보 1937년 3월 2일. 72) 아편밀조범인, 동아일보 1934년 8월 24일. 73) 모히밀수자 九 名 을 검거, 동아일보 1934년 10월 31일. 74) 白 影 生, 모루히네 雜 考, 신민 29호, 1927년 9월, 33쪽. 아편은 전부 중국인의 손에서 나아오나 모루히네는 시내 모모한 일본인 약종상의 손을 거치어서 분포된다는 풍설은 사실인 모양이다. ( 刺 身 鬼 의 모여드는 魔 窟 探 訪 記 (3), 동아일보 1923년 11월 10일) 常 習 者 需 用 高 의 全 部 가 밀수입이 아니고는 안될 것은 물론이다. 이 밀수입의 대부분 혹은 전부가 경성을 중 심으로 하여 유수한 日 人 巨 商 의 손에 實 行 되는 것은 과거 幾 多 의 폭로된 사실로써 설명하기에 足 할 것이다. 개중에는 약품수입판매를 專 門 으로 하는 長 久 한 기반을 가진 藥 種 商 도 있고 기타 표면으로는 雜 貨 商 이니 帽 子 商 이니 무슨 貿 易 이니 하는 간판을 揭 하고 그 裏 面 에 있어서는 모루히네 密 輸 販 賣 를 本 業 으로 하는 자가 많다. 전화 한 번이면 소매상의 손에 배달되는 것이라 한다. 그 배달부는 훌륭한 紳 士 風 이 있어 누구에게 나 의심을 받지 않고 배달을 하고 만일 경관의 손에 검거가 된다 하더라도 절대로 사실을 자백치 않는 점에 서 자못 직업적 의무에 충실하여 그들은 경찰의 취조에 대하여는 十 이면 十 이 皆 曰 某 某 路 傍 에서 相 貌 如 此 한 支 那 人 에게서 買 受 한 것이라고 스스로 져서 벌금 또는 體 刑 을 당하는 바 이렇케 되면 그 배후에 있는 상 점에서 상당한 물자로써 慰 藉 하는 것이다 그 외에 1927년 7월 일본인 早 川 賢 滿 등 14명의 모루히네밀수사건 참조. 이 사건으로 모루히네를 구할 수 없게 된 경성의 수백 명 중독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으며 결국 모루히네를 구하기 위해 치료소로 갔다고 한 다( 首 犯 은 일본인 모히밀매 巨 魁 大 阪 에서 遂 逮 捕, 조선일보 1927년 7월 22일, 8월 21일). 75) 光 州 모루히네 防 毒 會 개최, 동아일보 1921년 8월 1일; 高 昌 모루히네방지회 刷 新, 동아일보 1924년 2 월 2일 76) 刺 身 鬼 의 모여드는 魔 窟 探 訪 記 (3), 동아일보 1923년 11월 10일. 77) 이상협, 모루히네 中 毒 者 退 治 策 : 그 정책을 의심한다, 신민 29호, 1927년 9월, 28~29쪽

18 남북만주를 돌아다니던 일본의 末 流 浪 人 들이 自 國 産 業 機 關 의 모루히네 密 賣 를 일종의 國 富 策 으 로 수행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 또한 일본 제약회사의 모르핀제조량이 적당한 용도를 훨씬 초과하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것을 당국이 알고서도 묵인한다는 점에 있었다. 78) 그런데 모르핀중독문제가 근절되지 않은 주요 이유는 바로 취체법령이 약하여 며칠 구류되거 나 벌금 물고 나와 79) 계속 밀수입하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 지식인이나 언론은 일제 당국이 거지떼나 붙들어다가 훈계나 구류형에 처할 뿐 근본적인 법령 강화나 밀수근절대책을 취하지 않 고 방관한다며 집중성토했다. 80) 예를 들어 조선일보 기자 崔 岡 은 時 局 犯 人 취체하듯이 그들(일 제당국: 필자)이 애를 써준다면 그까짓 조선 안에 있는 모루히네 중독자쯤 근절해버리기야 무엇 이 어려우랴 고 힐난할 정도였다. 81) 이는 일제가 조선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사찰하는 데에 골 몰하듯이 모르핀중독문제에 신경쓴다면 해결은 쉽다는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에 있어서의 모루히네는 중국에서의 아편과 마찬가지의 정책적 또는 생리상의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 82) 이라는 관점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즉 일제의 마약 단속에는 분명한 정치적 의도가 개재되어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마약단속의 집중대상은 아 편으로 중독자 취체와 함께 밀수 근절에 역점을 두었는 데 비해, 모르핀의 경우 밀수 근절보다 문화정치 운운 하며 중독자들의 치료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일제 당국은 마약단속법률 적용에서도 아편은 吸 用 器 具 만 소지해도 엄혹한 體 刑 을 부과했는데 비해 모르핀범에게는 구류나 벌금으로 처분했다. 83) 또한 일제 경찰은 단속 대상에 대해 차등을 두어 부르조아들의 소굴 에는 관대했고 프로레타리아들의 소굴 에는 엄혹한 이중의 잣대를 적용 했다. 84) 이렇듯 모르핀 중독과 밀매에 적당히 관대했던 조선총독부는 아편단속에 대해서는 철저 했다. 젊은이들이 모르핀에 중독되어 식민지 현실을 망각하고 비판정신을 잃어가는 사회현상은 일제당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따라서 아편은 철저하게 단속하되 일본 78) 이상협, 위의 글. 79) 모르핀밀매자에 대한 처벌조항은 오백 원 이하의 벌금이나 3개월 이하의 징역형이었으나 실제 대개는 4,50 원 벌금형이 상례여서 한달에 한번 잡혀도 그 벌금의 몇 배를 벌 수 있으므로 밀래가 근절되지 않았다. 그리 고 체포되는 이들은 대개 노상의 밀매 소매자( 分 賣 商 )로 밀수입상을 알지 못했다. 80) 모루히네 注 射 환자가 날로 격증하고 이것의 密 買 가 殆 히 公 行 하야 작년 7월에는 총독부의 턱 밋 경성시가에 서 早 川 某 라는 일본인을 首 犯 으로 한 대규모의 밀수범을 보게 된 것은 종래 당국의 此 의 取 締 가 緩 慢 함에 대하야는 조선민중의 怨 聲 이 자못 놉팟거니와 (홍인택, 모히 取 締 法 을 制 定 하라, 신민 33호, 1928년 1월). 대저 이 중독의 害 됨이 酷 烈 한 것은 세상사람이 다 같이 아는 바이니 다시 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이것을 취체하는 당국자의 태도에 대하야 疑 訝 치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민중에게 언론을 압박하고 사상을 구 속하는 데는 가혹한 수단을 아끼지 아니하며 아편과 모루히네를 밀매하고 사용함에 대하여는 자못 관대한 처 분을 베푸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 사설: 모루히네중독의 만연, 동아일보 1924년 8월 25일). 81) 崔 强, 모루히네중독자 退 治 策 : 법률적 제재를 기다릴 뿐이다, 신민 29호, 1927년 9월. 동아일보 도 사설에서 조선총독부 당국자에게 법률을 엄중히 제정하고 시행하도록 요구했으나 그네들은 일 반 민중이 각성하지 않으면 아니되며 인권이 발달되고 문화정치를 실시하는 금일에 법률로써 제재를 하는 것 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하지만, 조선인의 전부공통한 정치적 요구와 운동에 幾 十 圓 의 금품만 급여할지라도 고 문에 附 하고 징역에 처하는 문화정치가 敗 家 亡 身 하며 發 狂 하여 절도 강도를 범하고 精 神 喪 失 者 로까지 변하는 자에게 문화정치하의 법률효과가 無 力 한 것을 力 說 하는 것이 논리상 幾 分 의 가치가 있는가 라고 신랄하게 비 판했다( 사설: 모루히네중독과 당국자의 心 事, 동아일보 1924년 10월 29일). 82) 白 影 生, 모루히네 雜 考, 신민 29호, 1927년 9월, 31쪽. 83) 法 學 士 金 俊 淵 談 : 모루히네중독은 세계에 비참한 일인 중 조선이 우심하다고, 원인은 취체불완전, 조선 일보 1921년 3월 21일; 洪 仁 澤, 앞의 글. 84) 白 影 生, 앞의 글

19 기업이나 전매국을 통한 모르핀의 제조판매를 적당히 조절하는 것은 식민지 통치의 고도의 술책 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국인거리=아편굴=악마의 소굴 이란 이미지는 일제의 정치적 사회정책적 의도가 깊숙하게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매일신보 와 같은 식민주의적 언론, 그리고 특히 조선일보 나 동아일보 등 민족주의적 시각의 언론에 의해 형상화되었다. 경찰의 마약단속의 집중 대상이 된 곳은 중국인거리였고 단속 결과는 곧장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이때 평범한 경제활동을 하는 중국인들의 생활세계이기도 한 이곳은 미국의 카포네 일당이 한번 시 찰을 온다면 오히려 배워가지고 갈만한 꺼리가 많은 85) 암흑가로 묘사되었다. 이와 같이 중국인 거리를 범죄소굴로, 그리고 여기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거의 모두 마약중독자로 인식하는 경향 은 조선인 언론의 경우 더욱 심했다. 경성 부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대개 모루히네중독자들일 뿐더러 모루히네 밀매자도 상당 함으로 각서에서 엄중취체한 모양이나 ( 모히중독밀매, 조선일보 1926년 8월 18일) 이 기사에서는 경성에 거류하는 중국인을 대개 모르핀 중독자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중국인의 생활상태나 정황에 대해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는 인종 편견임을 알 수 있다. 먼저 중 국인 중독자들은 모르핀 주사보다 아편을 흡연했다. 그리고 중국인거리의 대다수 중국인들은 앞 에서 서술했듯이 하루 15전으로 생활하고 나머지 돈을 저금하여 본국으로 송금했다. 설혹 모르핀 을 맞는다 하더라도 한 봉에 10~50전이고 중독될수록 비싼 것을 맞아야 하는데 86) 이들의 수입 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제적 인 중국인들이 가족을 남겨두고 돈 벌러 온 이곳 경성에서 그 대다수가 모르핀 중독자라는 것은 대단한 모순이다. 87) 이는 어느 중 국인을 대개 의 중국인으로 침소봉대한 것이다. 다른 관찰자의 시각으로 보면, 서소문정 중국인 거리는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利 惡 한 동포들을 敎 化 시키는 사명을 띤 중국인기독교회도 존재하 고, 길거리에 술주정하는 허럽숭이 중국사람은 하나도 없는 거리 였다. 88) 2) 조선인(노동자)의 敵 중국인(노동자)의 종족성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주로 중국인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서소문정 주변 중국인거리가 범죄의 온상인 암흑가 갖은 죄악에 싸인 특수부락 으로 이미지화된 데에는 일제의 마약 단속을 둘러 싼 정치적 음모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그러한 이미지가 고착되어 중국인의 사회적 정체성 즉 종족성으로 정형화된 근본적 요인은 조ㆍ중 양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보다 당시 노동시장에서 중국인에 의한 조선인의 구축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던 상황에 있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중국대륙의 정세 불안과 경제 곤란으로 중국인 노동자들의 주변국으로의 85) 팽창경성가두변천기: 서소문정, 조선일보 1936년 8월 6일. 86) 刺 身 鬼 의 모여드는 魔 窟 探 訪 記 (3), 동아일보 1923년 11월 10일. 87) 경성에 온 중국인은 생활고와 가혹한 노동에 힘들어도 자살하는 일이 드물다고 할 정도로 가족에 대한 책임 감이 강했다( 중국인염세자살, 동아일보 1933년 2월 24일). 88) 메유화스의 거리, 매일신보 1936년 5월 8일

20 월경이 증가했다. 일본에서는 1921년부터 도쿄, 오사카 코베 등 대도시에 입국한 중국인 노동자 들이 일본 노동자들을 압박하자, 1899년 제정된 <외국노동자취체규칙>에 의거하여 이들을 퇴거 시키고 또한 입국 금지를 단행했다. 89) 그러자 중국인 노동자들의 조선 유입이 크게 증가하였는 데, 중국의 銀 價 가 대거 폭락하고 장작림의 安 國 軍 과 장개석의 국민군이 충돌한 1927년에는 특 히 심했다. 이에 경성부에서는 한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노동력의 1/3 이상은 중국인 노동자 사용을 금지 하고 가능한 한 조선인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장려했으며, 각 경찰서에서 이를 감독하도록 했 다. 90) 그러나 이러한 권고사항은 시장원리상 지켜지기 어려웠다. 조선인 언론이나 사회단체는 일 제가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도항은 금지하면서 조선내의 중국인노동자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모 순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91) 그리고 토목협회 등에 중국인 노동자 고용 금지를 요청하는 한 편, 당국에 대해서는 일본과 같이 외국노동자입국금지법을 적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일제 당국은 일자리를 잃은 조선인들이 일본이나 만주로 떠나고 노동현장에서 조선인이 중국 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중국인 노동자문제가 단순한 사회문제 차원을 떠나 식민통치 를 위협하는 치안문제로까지 번지자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무국은 중국인 노동자의 입국제한은 국제문제로 비화될 수 있으므로, 먼저 고식책으로 경성ㆍ인천과 같은 대도시지역을 제외한 郡 단위 지방에 대해 <외국인취체규칙>(1910)을 적용하여 중국인 거주허가제를 실시했 다. 대공황을 거치며 조선의 혁명적 노동운동이 확산되는 상황에 밀려 1934년에는 1백원 이상의 소지금을 소유한 중국인만 입국을 허용하는 제도를 실시했는데, 경성 화상들은 이 조치에 크게 반발하며 철시를 감행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인 언론이나 지식인들도 조선 사람이 살 길을 찾기 위해 중국으로 향하는 마당에 중 국 사람들이 살 길을 찾기 위해 조선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절할 구실이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 었다. 92) 그럼에도 중국인 노동자가 조선인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강적 이라는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민족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정당한 인간적 생활을 보장해주는 최저임금보다 낮 은 임금을 받는 중국인은 그 존재 자체가 파렴치한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중국인은 조선 사람의 주머니를 긁어 가는 민족 중에 하나이며, 이 중국인 노동자가 반값에라 도 종일 근실하게 일하는 까닭에 조선인 노동자가 점점 살아 갈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93) 라는 데에서 조선인을 착취하고 못살게 하는 것은 일제뿐만 아니라 중국인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인식 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인을 배척하는 것은 민족감정이 아니라 생존권의 自 衛 를 爲 하는 一 面 94) 이므로 정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아가 중국인 노동자를 살해한 조선인 노동자의 처지를 변명하는 시론에서는 오직 색다른 백성(일본인과 중국인을 말함: 필자)에게 일터와 벌이 구역과 전답을 모조리 빼앗기는 중에 있는 우리들의 운명은 악 의 길이 유일한 살 길인지도 모른다 95) 라고 하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해져야 한다는 비장한 소회를 나타냈다. 여기에는 당 89) 支 那 勞 動 者 大 恐 慌, 매일신보 1922년 3월 24일; 중국인노동자 또 입국금지 단행, 조선일보 1925년 4월 11일. 90) 중국노동자 激 增 과 當 局 取 締 益 嚴, 동아일보 1927년 3월 25일 91) 시평: 중국인 노동자문제, 조선일보 1928년 12월 6일 92) 시평: 중국인노동자, 조선일보 1927년 1월 15일. 93) 대경성의 특수촌, 별건곤 23호, 1929년 9월. 94) 時 評 : 중국노동자, 조선일보 1925년 4월 3일

21 시 민족주의와 동전의 양면인 우승열패적 정서도 내면화되어 드러나고 있다. 중국인거리=마굴이란 이미지는 이와 같이 중국인 노동자문제가 사회이슈로 되었던 상황과 밀 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때문에 중국인거리의 이미지는 곧 이 공간의 주체인 중국인의 민족성, 종족성으로 투사되고 확대되었다. 당시 언론에서 묘사하는 중국인의 종족성은 대개 대동소이했다. 먼저 장점으로는 신용을 중히 여기는 습관, 단결력이 공고한 점, 매사에 주의가 자세하고 근면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 등을 들 었다. 그리고 단점으로는 수전노로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물질지상주의, 불결함, 이기심, 파렴치 함을 들었다. 96) 그런데 이러한 중국인의 종족성에 대한 평가는 계층별로 차이가 난다. 화상에 대 해서는 대개 정직하고 신용도가 높고 친절하다는 호의적인 이미지로 묘사되었다. 97) 화상들은 대 개 수십년 전에 이주한 이들이었고 또 지속적으로 조선 사회에 정착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98) 식민지 조선사회에 대한 관계맺기에 적극적이었으므로 이렇게 인식되었을 것이다. 99) 그러나 단 신으로 이주한 계절노동자들의 경우 조선사회는 경제활동의 場 일뿐 정착할 생활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의 습속, 언어, 문화에 대해 무지했고 관심도 없었다. 더구나 이들이 조선인 노동자를 일터로부터 구축하고 있는 장본인임에, 이들을 바라보는 조선인들의 시선은 고울 수가 없었다. 민족주의적 시각의 조선인 언론은 무엇에서 무엇까지 그들의 거리는 음침하고 충중하고 마 굴과도 같은 기분이 들고, 그들의 말소리나 음흉한 음성은 어디로 보든지 음모적 민족이다 중 국인의 국민성은 본시 음흉한 것 100) 이라고 공공연하게 종족성에 관한 담론을 생산하고 발신했 다. 중국인거리=마굴 이란 표현에는 청소해야 할, 혹은 제거하고 추방해야할 대상이란 의미가 내 포되어 있다. 당대의 소설가 박태원이 살풍경하고 어수선한 태평통거리의 저 불결한 고물상(중 국인 고물상: 필자)을 어떻게 이 거리에서 쫓아낼 것인가를 생각 했듯이, 101) 식민 통치에 저항적 이고 비판적인 조선인 언론이나 지식인들에게 조선인 노동자의 적 인 중국인과 그들의 생활공간 인 중국인거리는 추방하고 청소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102) 95) 중국인 노동자 살해와 악 만 남게 된 조선인 노동자의 처지, 동아일보 1924년 3월 12일. 96) 지나인의 長 處 를 取 할 事, 매일신보 1910년 9월 20일; 본지기자, 京 城 に 於 ける 支 那 人, 조선급만주 303호, 1933년 2월, 82~83쪽. 97) 華 商 界 에 覇 王, 매일신보 1921년 4월 15일 98) 1937년 중일전쟁이 발생했을 때에도 노동자들은 제일 먼저 떠났으나 화상들은 경성은 제2의 고향 이라며 사태를 관망하면서 귀국을 서두르지 않았다( 動 搖 支 人 은 극소수, 매일신보 1937년 8월 18일). 99) 예를 들어 1929년 경북지역에 대기근이 들어 구제의연금을 모집하자 화상들이 나서서 중화총상회와 북방회 를 중심으로 의연금을 모집하여 기부하기도 했다( 경성화상단의 동정의연, 중외일보 1929년 6월 11일). 100) 대경성의 특수촌, 별건곤 23호, 1929년 9월; 밤 경성의 暗 黑 面 探 訪 記 (4), 매일신보 1924년 9월 12일. 101)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학과지성사, 112쪽. 이 작품은 1934년 8월 1일~9월 19일 조선중앙일 보 에 연재된 것이다. 102) 중국인거리는 1966년 미국 존슨대통령의 방한 때 미국 TV에 서울 시청 앞 일대가 잠시 비추어졌는데, 이 때 더럽고 구차한 경관에 수치심을 느낀 재미교포들이 그 철거를 요구하면서 1967년 이후 도심재개발과 함께 모두 없어졌고, 그 자리에 프라자호텔이 들어섰다(손정목, 서울 도시계획이야기 2, 한울, 2003; 화 교상가 헐고 고층빌딩 4동, 조선일보 1967년 2월 4일)

22 5. 맺음말 일제시기 서소문정 주변 중국인거리는 중국인이 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자원을 쉽게 획득할 수 있고 모국의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으며 정신적 위안과 사회적 부조도 주고 받을 수 있는 에 스닉거주지였다. 경성의 이 중국인거리는 이른바 일제시기 가장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이었다. 경 성의 중국인사회는 1880년대부터 이주, 정착하기 시작하여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다. 일본인 이나 조선인을 압도할 정도로 조선의 상업계를 주도한 豪 商 들은 주로 수표정과 관수동에 많이 거주했다. 그러나 공간적으로 중국인마을이라고 할 뚜렷한 할거지역은 없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남대문에서 서쪽 방향 장곡천정ㆍ북미창정ㆍ태평정 2정목ㆍ서소문정으로 거주지가 확대되었다. 특히 1920년대 말에 서소문정은 중국인수가 조선인 이나 일본인보다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마을이 되어 이 거리를 지나게 되면, 마치 중국 山 東 省 어느 곳에 온 듯한 느낌을 가질 정도였다. 서소문정 주변에는 주로 중국인 노동자와 농업 자, 그리고 이들의 일상품 수요를 겨냥한 소규모 제조업자나 점포상인, 이발업자, 행상 등 하층민 이 거주했다. 이 중국인거리의 로컬리티를 이미지화하고 그것이 중국인의 사회정체성 즉 종족성으로 정형화 되어 한국사회에 전승되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중국인거 리의 뒷골목 주택가에 숨어 있는 아편굴과 매음굴의 존재였다. 이로 인해 중국인거리는 獵 奇 街 魔 窟 로 이미지화되었는데, 이는 중국인의 아편 밀매에 대해서는 철저하되 일본인의 모르핀 밀수 에는 적당히 관대했던 조선총독부의 정치적 의도가 관철된 결과였다. 두 번째 요인은 당시 노동 시장을 둘러싼 상황에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에 의한 조선인 노동자의 구축이 사회적 이슈가 되 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인 배척은 민족감정이 아니라 생존권의 自 衛 로 인식되었다. 민족주의적 시각의 조선인 언론은 음흉하며 물질지상주의적이고 파렴치한 점이 중국인의 본성이라고 공공연 하게 규정했다. 조선인 노동자의 적 인 중국인 노동자는 추방해야 하기에, 그들이 살고 있는 중 국인거리는 청소해야 할 마굴로 이미지화되었던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명명 또는 재명명한 오리엔탈리즘은 다른 문화권에 속한 개인에 대해 또 다른 문화권에 속한 개인이 갖는 정형화된 인식이라는 광범위한 현상의 한 특별한 사례이듯 이, 103) 경성의 조선인이 이주 중국인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차별의식은 기본적으로 오리엔탈리 즘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오늘날 인종주의의 배경에 신자유주의와 양극화, 만성적 실업상태로 인 한 노동자들의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과 극우세력의 선동이 존재한다면, 식민지 경성의 중국인거 리를 마굴로 명명하고 그 공간을 청소 대상으로 규정했던 배경에는 제국주의의 통치전략과 이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의 생존전략이 교차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103) 피터 버크 저, 박광식 옮김, 이미지의 문화사, 심산, 2005, 211~212쪽

23 일제시기 경성의 중국인거리와 그 생활세계 토론문 이 준 식(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대한민국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주요 국가 가운데 차이나타운이 존재하지 않는 극소수의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얼마 전에 중국과의 교류를 염두에 두고 인천광역시에서 차이나타운을 조성한 다고 야단법석을 떤 사실 자체가 이 땅에서 중국인들이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얼마 나 어려운 일이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짱꼴라, 되놈 등 중국인을 비하하는 용어가 하나 둘이 아니고 이러한 용어의 사용이 남녀노소, 각계각층을 막론하고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 한국 사회 안에 만연된 중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늘의 발표는 차이나타운의 부재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에서의 중국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뿌리를 일제 강점기(정확하게는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만연한 중국인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토론자는 일제 강점기에 중국인을 차별하는 인종주의 의식이 형성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중국인 인식 으로 이어졌다는 발표자의 문제의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발표 자와 생각을 달리 하는 부분도 있다. 첫째, 발표자는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에게 중국인에 대한 차별 의식이 생기게 된 배경으로 제 국주의의 통치전략과 이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의 생존전략 (맺음말)을 들고 있다. 제국주의나 식 민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인종주의가 출현하게 된 배경이라는 발표자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의 한다. 그런데 제국주의와 교차하는 민족주의 도 인종주의의 배경으로 꼽고 있는 데는 생각을 달 리 한다. 먼저 발표자가 분석하고 있는 시기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이다. 그런데 발표자가 한국 민족주의에 깔려 있다고 하는 우승열패, 약육강식 의 사회진화론적인 인식은 주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한정되는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적어도 민족 운동 진영에서는 1910년대 중반 이후 진화론적 인식을 극복해나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다음으로 발표자가 민족 주의 의 보기로 언급하고 있는 것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신문 잡지 기사, 그리고 일부 문학 작품이다. 특히 발표자가 중시하는 것은 이른바 민족주의 언론으로서의 동아일보 와 조선일 보 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과연 두 신문을 시종일관 민족주의 언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 문이다. 두 신문이 1920년대 초( 동아일보 )나 1920년대 중 후반( 조선일보 )에는 민족주의 성향을 강하게 띤 것이 사실이지만 나머지 시기에는 전형적인 상업 언론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었고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점차 친일적인 성격마저 띠어갔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백보를 양보해 두 신문이 민족주의 언론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두 신문에 실 린 기사가 모두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민족주의에서 인종 주의의 뿌리를 찾으려고 하는 연구자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 발표문의 내용만 놓고 본 다면 다소 지나친 해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히려 토론자는 민족 을 포기하고 일제의 식민주의 논리에 영합한 친일 지식인에 의해 한국 사회에서 인종주의 논리가 본격적으로 나타났

24 고 그것이 빠른 시간 안에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고 생각한다. 둘째, 발표자는 중국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나타난 중요한 계기로 1920년대 중반 이후 중 국인 노동자가 조선인 노동자의 노동 시장을 위협하고 있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물론 이 무렵 중국인 노동자 중국인 노동자 위협론과 관련된 이미지가 등장한 것은 사실이다. 조선인 노동자보 다 임금 수준이 낮고 작업 능률은 높은 중국인 노동자(쿠리 苦 力 )가 조선인의 노동 시장을 위협한 다는 기사가 당시 신문에 자주 등장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인 노동자가 쟁의(보기를 들어 원산총 파업)를 일으킬 때 중국인 노동자가 자본과 일제 권력에 이용되는 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분위기 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인 노동자 위협론이 미국에서의 황화론처럼 배척론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중국인 노동자 위협론은 다른 한편으로 는 중국인 노동자의 조선 진출은 묵인하면서 조선인 노동자의 일본 진출은 규제하는 일제 정책 에 대한 항의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했다. 중국인을 조선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식의 극단적인 모 습은 1920년까지만 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국인과 조선인 사이에 충돌이 일 어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문화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일반적 수준의 대립 이상은 아니었다. 조 선인은 상술이 뛰어난 화교에 대해 대국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중국 상인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東 亞 日 報 등). 이러한 의미에서 토론자는 오히려 중국인에 대한 인 식에 일대 전기가 마련된 것은 1931년의 만보산사건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사건의 배경에는 대 륙 침략의 과정에서 조선인과 중국인을 서로 적대시하도록 부추겼고, 연대해야 할 중국 조선의 피압박 민족을 이간시킨 일제가 있었다. 셋째, 발표자는 중국인 노동자 위협론을 부각시키기 위해 1925년과 1927년 사이 경성의 중국 인 인구 변동에 주목하고 있다. 1924년과 1925년 사이에 급증하던 중국인 인구가 1926년과 1927년에 걸쳐 격감한 이유를 일본과 중국의 정세 변화나 혹은 일제의 노동자 수급정책과 연관 된 현상 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인구를 파악하는 방법과 주체의 문제 때문이지 실제 중국인 유입 인구의 추세를 반영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1925년과 1930년의 통계는 국세조사에 의한 것이다. 이에 비해 다른 해의 인구 통계는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일단 경찰의 호 구조사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호구조사 자료의 신뢰도는 국세조사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호구조사에 의한 인구통계는 국세조사가 시행된 해에는 항상 전년에 비해 불연속적으로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결국 이전의 호구조사에서 누락되었던 인구가 국세조사를 계기로 새롭게 파악되었음을 의미한다. 경성의 중국인 인구도 마찬가지이다. 발표자 가 표로 작성한 시기만 놓고 보더라도 1925년과 1930년의 중국인 인구가 다른 해에 비해 많은 것은 국세조사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세조사를 전후한 시기의 인구의 증감이 실제 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데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조선왕조 능 원 묘 기본 사료집 -부록 : 능 원 묘의 현대적 명칭표기 기준안 차 례 서 장 : 조선왕실의 능 원 묘 제도 11 제 1부 능 원 묘 기본 사료 Ⅰ. 능호( 陵 號 ) 및 묘호( 廟 號 )를 결정한 유래 1. 건원릉( 健 元 陵 ) 21 2. 정릉( 貞 陵 ) 22 3. 헌릉( 獻 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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