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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안병영 초청연구위원 한국행정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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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차 례 Ⅰ. 오스트리아 근 현대사의 재조명 1 1.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치적 유산 1 2. 제1공화국 제2공화국 23 Ⅱ. 오스트리아 정치체계의 특징 헌법의 전개와 기본 구조 연방대통령 입법부: 국민의회(Nationalrat)와 연방의회(Bundesrat) 입법과정 연방정부와 행정 정당과 선거 이익집단 52 Ⅲ. 오스트리아 중립화 통일 머리글 중립화 통일을 위한 협상과정 56 iii

4 3. 중립법과 중립정책 오스트리아 중립화 성공요인정 중립화 이후의 중립정책 중립의 전망 83 Ⅳ. 의제 정치와 대연정 개념적 논의 오스트리아 정치와 대연정 제1차 대연정( )의 집중 분석 합의제 정치의 기반 침식 합의제 정치의 미래 전망 111 Ⅴ. 사회적 파트너십 : 형성. 위기. 전망 서론 사회적 파트너십의 제도화 과정 사회적 파트너십의 변화: 도전과 기회 전망 133 Ⅵ. 오스트리아 근 현대사의 재조명 서론 형성원리. 조직. 재원 138 iv

5 3. 오스트리아 복지국가의 전개 주요 정책의 개혁과정 결론 159 Ⅶ. 오스트리아 정체성을 찾아서 서론 오스트리아 의식의 전개과정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오스트리아 정체성의 추이 오스트리아 정체성 확립에 기여한 요인들 전망과 과제 182 v

6 오스트리아 근 현대사의 재조명 I 1. 합스부르크 제국의 정치적 유산 년 3월 혁명과 신 절대주의 시대 ( ) 1848년은 실로 질풍의 해 (Sturmjahre)였다. 그 해 2월 프랑스에서 시작한 혁 명의 격류는 빠른 속도로 오스트리아로 옮겨와 3월에는 빈, 프라하, 부다페스트, 밀라노 및 베니스에 혁명적 봉기에 불을 지핀다. 그동안 억눌렸던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열망과 정치의 수면으로 오르려는 시민계급의 상승 욕구가 한데 어 울려 3월 이전 절대주의 (vormaerzlicher Absolutismus) 체제에 정면으로 맞선 것 이다. 이로써 구체제는 심각한 정당성 위기를 맞는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오스트리아에서는 1949년 역사상 최초로 헌법제정회 의가 구성되고, 이 나라를 입헌군주국으로 변화시키는 내용을 담은 헌법안 (Krem- sierter Entwurf)이 의결된다. 그러나 새 황제 프란쯔 요제프(Franz Josepf, 재위 )는 자신의 무력과 러시아의 힘을 빌려 곳곳의 혁명의 불 길을 차례로 잠재운다. 요제프 황제는 그 여세를 몰아 이미 결의된 헌법안을 거 부하고 절대주의 체제를 다시 굳힌다. 이렇게 모처럼 움텄던 시민혁명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른바 신( 新 )절대주의 (Neu- absolutism) 시대가 막을 올린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9세기를 통하여 제국내의 다수의 소수민족들, 즉 헝가리, 체코, 이탈리아, 폴란드, 크로아티아 등의 계속적인 도전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신절대주의체제의 기본목표는 카톨릭 정신을 정체성의 근원으로 삼아 이 거대하 1

7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고 복잡한 다민족, 다문화 제국을 초민족적 통일국가로 결속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종교적, 문화적 가치는 유럽정치의 새로운 태풍의 눈인 민족주의에 맞 서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제체위기는 점차 깊어졌다. 한편 제국내의 핵심 지배세 력인 독일계 오스트리아인들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유지 및 위기극복에 대한 강 한 욕구와 더불어 대독일 통일을 향한 민족주의적 열망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소독일 통일을 겨냥하는 프로이센과의 리더십 경쟁 도 날이 갈수록 치열해 졌다. 1860년대에 진입하자 요제프 황제는 유보적이나마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헌법 개정과 입헌군주국으로의 전환에 동의하게 된다. 거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그 하나는 1859년 프랑스-피에몽테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 이탈리 아 북부의 롬바르디아 지방을 잃게 됨에 따라 제국의 위세가 크게 약화되었던 점이다. 다른 하나는 제국의 심각한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우세 한 부르조아 계급의 국정참여가 절실하게 필요했던 점이다. 1960년대 초의 두 차례 헌법안(Oktoberdiplom 1860 및 Februarpatent 1961)이 제시되어 제한적이 나마 의회주의의 실험이 시작되었고, 아울러 제3 계급의 정치참여의 문이 열렸 다. 1.2 유사( 類 似 ) 의회주의 시대(1967년 이후) 오스트리아는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함으로써, 마침내 독일연방내 의 리더십 경쟁에서 탈락한다 1). 아울러 대내외적으로 나라의 위세는 더욱 약화 된다. 그 결과 1967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은 이른바 대타협 (Ausgleich) 1) 1848년 5월,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독일민족을 구성하는 각 지역의 대표들은 프랑크푸르트에 모여 국 민회의를 개최한다. 여기서 독일통일을 오스트리아 중심으로 하자는 대독일주의 와 프로이센 중심으로 하자는 소독일주의 가 맞선다. 이후 프로이센에서는 새 왕 빌헤름 1세가 즉위하고 비스마르크을 수상으 로 맞아들인다. 비스마르크는 철혈정책 을 주창하며 의회의 반대를 물리치고 군비를 확장하여 프로이센 이 주도하는 독일통일을 획책한다. 한편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계기로 독일연 방 (Deutscher Bund, )의 해체에 합의하고, 오스트리아 및 남부 독일 몇몇 공국을 제외한 북 독일연방 (Norddeutscher Bund, )의 수립을 수용한다. 이후 비스마르크 주도하의 프로이센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에서 승리한 후, 북독일연방을 바탕으로 1971년 독일통일의 대업을 완 수한다. 2

8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을 통해, 그 지배하에 있던 헝가리를 자치왕국으로 격상시키는 커다란 정치적 양 보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 (Doppelmonarchie Oesterreich-Ungarn, )이다. 이제 헝가리는 공동협의 를 요하는 외교와 국방, 그리고 재정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부문에서 폭넓은 자치 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2) 실제로 그동안 오스트리아가 연이은 전쟁에 실패 등으 로 점차 국력이 소진되는 가운데 날로 치열해 지는 소수민족의 저항에 대응해 온 방법은 회유(appeasement)와 타협(compromise)였다. 그런데 이중왕국의 탄생 은 이제 오스트리아가 저들을 유인할 수 있는 수단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헤미아와 이탈리아의 저항은 더욱 치열해 졌다. 1867년 합스브르크 제국의 반쪽 오스트리아는 국가기본법의 형태로 새 헌법 (Dezember Verfassung)을 마련하여, 체제를 유보적이나마 입헌군주국으로 전환 시키기 위한 큰 걸음을 옮긴다. 반( 半 ) 혹은 유사( 類 似 ) 의회주의 (Halb-oder Pseudo- Parliamentarismus)라 칭해 마땅할 이 헌법은, 대의정치의 겉모습만 갖 추었을 뿐, 내실에 있어서는 의회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정치의 중심축은 황제 와 행정부에 놓여 있었다. 이처럼 오스트리아의 헌법 및 의회주의의 발전이 안 으로부터의 내적 혁명에 의해서가 이니라, 연이은 군사적 패배의 따른 밖으로부 터의 충격에 의해 주어 졌다는 것은 자못 역설적이다 3). 새 헌법의 몇 가지 특 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황제와 그가 임명한 수상이 한 축이라면, 입법기관인 제국의회(Raichsrat)가 다 른 축이다. 의회는 양원으로 구성되며, 하원의원은 재산과 소득에 따라 선거권이 주어지는 불평등 남성선거법에 의해 선출되었다. 황제에 의해 임명된 정부는 의 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의회는 불신임투표에 의해 정부 를 무너뜨릴 가능성이 없었다. 반면 황제와 그의 정부는 긴급명 2)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제국내에서 가장 극렬한 저항세력이었고, 독일계 오스트리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갖고 있었다. 이중왕국에서는 헝가리 왕국과 의회를 독립시키되, 헝가리 왕위만은 계속 오스트 리아 황제가 차지하는 동군연합( 同 君 聯 合 )의 형식을 취하였다. 당시 헝가리 왕국에는 오늘날의 헝가리 뿐만 아니라, 슬로바티아, 크로아티아, 루마니아의 일부, 오늘날의 오스트리아의 Burgenland가 포함되어 있었다. 3)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후 오스트리아의 현대사에서 주요한 민주주의 이정표가 된 두 번의 계기, 즉 제1 차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8/19년과 제2차 대전 종식 직후인 1945년에 이루어졌다는 면에서, 내재적 성 장의 결과가 아니라 똑 같이 밖으로부터의 충격에 의한 것이었다. 3

9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령 (Nordverordungen)을 통해 제국의회의 입법기능을 무력화할 수 있다. 정부는 실제로 민족갈등으로 인해 자주 제 구실을 못하는 의회를 우회해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이 긴급명령권을 자주 사용했다. 이러한 상황조건 때문에 당시 오스트리아의 정치체제는 실제로 귀족주의, 관료 제 및 군대 등 전( 前 ) 입헌적, 전( 前 ) 민주적 이해관계(vorkonstitutionale und vordemokratische Interessen)에 의해 지배되었다. 이렇듯 당시 서구 여러 나라의 선진 의회주의와 비교할 때, 부르주아 혁명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유주의의 세례 를 늦게 받은 오스트리아의 정치체제는 매우 뒤 늦었고 저 발전의 수준이었다 4). 이 시기에 제국의 정부 구성은 주로 황제와 큰 정당들 간의 협력에 의해 이루 어졌다. 대중적 기반이 취약하여 주로 의회내 클럽 수준의 이른바 명망가 정 당 (Honoratioren Parteien)인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 정당들, 그리고 소수의 전문 가 내지 자문역들이 참여하였다. 이렇게 구성된 내각은 언제나 다양한 정당 및 정파들, 그리고 서로 경쟁적인 다수 민족들이 참여하는 연립정부이거나 그와 유 사 형태의 이익공동체였다. 자유주의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이른바 시민내각 (Buerger- Minesterium: )시기에도 당시 황제의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타페(Edward Taaffe)와 다른 두 명의 고위귀족이 참여했었다. 여기에는 의회주의 다수제 정부에 대한 요제프 황제의 깊은 불신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요제프 관료제는 제국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민족적 갈등과 이익 들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것을 그들의 일차적 역할로 인식했다. 이에 따라 역대 수상 및 내각들도 그들의 이념적 지향과 관계없이 이러한 요제프 관료제의 특성 을 내면화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황제와 의회 사이에 적절한 위치를 정하 고, 다양한 이익들의 조정과 중재를 통하여 사회적, 민족적 이해대립을 완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처럼 요세핀 정부는 타협과 갈등조정에 매우 익숙했고, 따라서 정책과정에서 이를 표현하는 어휘들이 난무했다. 그 대표적인 개념이 Ausgleich' 와 Junktim'이었다. 타협을 의미하는 Ausgleich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1860년 이 4) 오스트리아가 유사 의회주의 를 벗어나 근대적 의회주의체제를 확립한 것은 1918년 제1공화국에서부터 이다. 이는 1833년의 벨지움, 1934년의 영국, 1861년 이탈리아, 1968년 네덜란드, 1975년, 프랑스, 1884 년 놀위에 등과 비교할 때 매우 늦은 것이다. 4

10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후 무엇보다 첨예한 민족갈등을 해결하기 위하여 활용했던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왕국을 탄생시킨 1867년의 대타협 (Ausgleich)이었고, 1905년 메렌(Maehren)에서 독일계화 체코계간의 민족갈등을 해결한 이른바 메렌 타협 (Maehrischer Ausgleich)도 그 예이다. Juktim'은 합스 부르크 관료제가 이익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자주 활용했던 갈등조정 방식 이다. 이는 정책결정과정에서 A측이 원하는 사안과 B측이 요구하는 사안을 연계 하여 서로 주고 받기 식으로 두 사안을 함께 처리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등조정방식은 비단 정부 관료제뿐만 아니라 의회에서도 매우 보편화되 었으니, 이는 제국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특수이익을 보다 고양된 수준에서 결 집, 통합할 수 있는 근대 정당의 이익결집 (interest aggregation) 기능이 결여되 어 있었기 때문에 이 역할을 관료제가 떠맡았다고도 말 할 수 있다. 그러나 여 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갈등조정 및 타협과정에서 주로 고려되었 던 이익들은 그 대부분이 제국내의 상위계층의 이익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준( 準 ) 입헌군주제 내지 유사 의회주의의 첫 단계( )는 흔히 자유주의시대로 불리는데, 이 시기에 체코 출신 의원들의 의회 출석거부로 독일 계 오스트리아 자유주의자들이 의회와 정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런데 이들은 특히 도시지역의 독일계 오스트리아인 및 동화된 유대인들의 이익을 많 이 대변했고, 자유주의적 성향 때문에 입법활동에서 반교권주의( 反 敎 權 主 義 )적 입장이 두드러졌다. 자유주의 이념이 경제활동에도 폭넓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는 서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뒤늦게, 역시 후발 산업국가인 독 일보다도 한 걸음 뒤늦게 산업화가 진척된다. 그러나 산업화의 속도가 빨라지면 서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따른 제반 경제, 사회적 문제들이 속출하게 된다. 이럴 즈음, 1873년 5월 과잉투기 활동으로 빈 주식시장이 붕괴되면서 경제가 파국을 맞는다. 이른바 주식공황의 여파로 산업 프로레타리아 계급은 물론, 소부르조아, 수공업자, 소상인 등 폭넓은 사회계층이 경제적 곤궁에 빠진다. 상황이 이에 이 르자, 이른바 자유방임형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급속히 떨어지 고, 시대정신으로서 자유주의 자체가 심각한 정당성 위기에 빠지게 된다. 아울러 경제적 파탄의 모든 책임을 유대인 자본가들에게 돌리는 포퓰리즘 정서가 팽배 5

11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해져 반 유대주의 가 풍미하게 된다. 1960년대 이후 정부를 장악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1879년 프란쯔 요제프 황제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아 합병에 반대하다가 내각에서 밀려나고 보수주의 지향의 타페(Taffee) 내각이 들어선다. 타페정부는 황제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 며, 친 카톨릭 정치세력, 독일계 보수주의 오스트리아인, 폴란드 및 체코 대표들 의 지지를 폭넓게 끌어 모아 의회에 안정세력을 구축한다. 타페 정부가 주도한 1882년 선거법 개정으로 투표인구가 하류사회계층까지 확대되면서, 도시 중산층 에 기반을 둔 자유주의의 정치적 기반은 더욱 약화된다. 오스트리아는 이렇듯 부르조아 혁명의 불발, 늦은 산업화, 그리고 의회주의의 제도적 취약성이 서로 맞물리면서,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가 꽃피지 못하고 권 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주된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대중정당의 대두와 진영 ( 陣 營 )의 형성 1980년대에 진입하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은 점차 심화되는 정당성의 위기, 통합 위기, 그리고 참여위기라는 3중 위기로 몸살을 앓게 된다. 우선 합스부르크 제국 은 신 절대주의 시대 이후 서구 여러 나라와 비교할 때 크게 뒤떨어진 정치질서 때문에 체제 정당성의 커다란 결손을 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정신 이었던 자유주의마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체제를 지탱해 줄 이념적, 제도 적 기반이 모두 흔들리게 된다. 그런가 하면 독립을 겨냥하는 제국내의 슬라브 민족들의 민족주의적 저항운동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독일계 오스트리아인 들의 독일과의 통일열망도 계속 고조되어 체제의 통합위기는 이미 그 위험수위 를 넘었다. 그런가 하면 1980년대 이후, 급진적, 평등주의적 민주화의 파고가 높 아지고, 선거법이 확대됨에 따라 하층계층의 정치참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체 제는 엄청난 참여위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체제의 정당성 위기, 통합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위기는 근대적 유 형의 의회외적 대중정당의 대두에 매우 유리한 토양을 선사한다. 정치 무대에 6

12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새로 등장한 이들 대중정당들은 의회와 엘리트 계층에 뿌리를 둔 기존의 명망가 정당(자유주의 정당 및 보수주의 정당)들과 조직유형 및 세계관, 그리고 생활세 계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달랐다. 우선 이들 밖에서 태어난 정당 ('Parteien 'aeusseren Ursprungs'/ outsider' parties)은 그 정치적 기반을 대중에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치밀하고 중앙집권화된 조직과 세계관적 이데올로기 및 프로그림으 로 무장했다는 면에서, 그리고 각기 하나의 진영 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기존의 정당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들 정당들과 그들을 핵으로 폭넓은 정치세력인 개개 진영들은 이후 100 년 후까지도 시대에 따라 변화된 모습으로, 그러나 그 원형질과 태생적 특징은 그대로 지닌 채 그 생존을 이어갔다. 이들 정당들은 사회민주주의, 기독보수주의 및 민족주의라는 세 갈래의 정치세 력이다. 개개 정당들은 자신의 세계관적 정향에 따라 정치적 고객을 충원하였으 니, 사민주의는 도시의 산업노동자를, 기독보수주의는 카톨릭 신자들과 농민 및 도시 소시민을, 그리고 독일 민족주의는 지식인과 관료층을 그 주된 고객으로 했 다. 이들 중 특히 대중정당적, 그리고 진영적 성격이 두드러졌던 것은 앞의 두 정당이었다. 개개 진영들은 각기 그 핵심을 이루는 정당 외에 서로 연계되는 경 제적 이익집단, 스포츠 및 문화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보조 집단들로 구성되 는 폭넓은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었다, 당은 이들 집단 구성원들의 생활세계에 깊 숙이 침투하여, 경쟁진영에 대해 배타적이고, 적대적 이데올로기를 갖도록 그들 을 사회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들의 삶 자체를 각각의 하위문화(subculture) 속, 폐쇄적 생활공간 안에 가두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 및 기독보수 주의 진영은 특히 프로레타리아와 부르조아라는 계급적 균열선을 따라 나뉘었다 는 점에서 갈등의 정도가 깊었다. 1889년 창당한 사회민주노동당(Sozialdemokrtische Arbeiterpartei, SDAP)은 19 세기 후반이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크게 대두된 산업 프로레타리아를 기반 으로 태어난 대중정당이다. 그 지도적 인물 중에는 적지 않은 수의 동화된 유태 인과 반종교적 지식인들이 있었다. 이 정당은 자신의 역할을 광범한 노동운동 내지 체제변혁 운동의 주요한 주체로 인식했다. 이 진영의 품속에는 사민당 외 에, 노동조합, 프로레타리아 여성운동, 그리고 다양한 문화조직들이 있었다. 사민 7

13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주의진영은 오스트로 마르크시즘'(Austromarxismus)이라는 고유의 이념체계를 발 전시켰는데, 그 바탕에는 의회주의라는 수단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적 경제 및 사 회질서를 수립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한편 1889년 출범한 기독교사회당(Christlichsoziale Partei)는 카톨릭 교회의 사 회교리를 토대로 사회개혁을 지향하는 다수의 단체들의 연합체로 출발한다. 카톨 릭 보수주의 진영이 실제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최초로 확인한 것은 수도 빈에서였다. 1907년 기사당 지도자 칼 뢰거(Karl Lueger)가 시장으로 당선되자, 그 때까지 제도권 밖의 머물렀던 기사당이 점차 보수주의 서클에 수용된다. 이 를 계기로 도시 소부르조아 중심의 기독교사회주의자들이 1907년 총선에 앞서 지방의 보수주의적 농민세력과 제휴하면서, 일약 대정당으로 발돋음한다. 이후 1911년을 분수령으로 기사당이 기민당에 패배, 빈에서 세력을 잃게 되자, 점차 그 주된 관심을 농촌 과 소도시로 돌린다 5). 아울러 빈의 귀족 및 기업가 등 지 배적 사회, 경제 엘리트와 긴밀한 관계를 마련한다. 이렇듯 카톨릭 보수주의 진 영은 점차 밖으로부터의 정당 의 성격에서 벗어나 보수주의 전체를 아우르는 현 상유지 세력으로 바뀐다. 당시 카톨릭 보주주의 진영 내에는 교회조직과 정치조 직이 밀접히 얽혀있었고, 가능한 한 교회와 국가를 긴밀히 연계 시키려는 정치 적 카톨릭주의 (politischer Katholisismus)가 큰 흐름을 주도했다. 한편 제3의 진영인 민족주의 진영은 독일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반( 反 ) 교권적, 반( 反 )사회주의적 진영이다. 다양한 작은 정당들로 구성되는데, 특히 전독일 정당(alldeutsche Partei)은 제국내의 독일계와 다른 민족들 간의 이 해관계의 대립을 크게 강조했다. 이들 정당들은 주로 화이트칼라 사무원들, 관료 및 비 유태 독일계의 지식인들을 주축으로 하였다. 학생조직을 중심으로 엘리트 충원을 했는데, 훗날 그 안에서 관료들이 많이 나왔다. 이 정당은 밖으로부터의 정당 적 성격이 짙었던 앞의 두 정당과 달리, 자유주의의 성향이 강한 오스트리 5) 농촌 및 소도시 지역은 사회적으로, 지역적으로 비( 非 ) 유동적 인구를 가진 대면적(face-to-face) 공동체 로서 종교적 가치와 교회의 영향력이 높은 곳이며, 그 사회경제적 구조가 길드와 유사한 직업적 집단 의 모습을 견지하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들 지역의 전통적인 사회엘리트는 하위문화적 침투와 통합 에서 사회계층제와 유대에 호소하고 사회, 문화적 원칙을 많이 활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접근에 만 의존하는 사회주의진영과 차이가 있었다. 8

14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아의 정치적, 행정적 엘리트를 다수 배출했다는 점에서 안으로부터의 정당 내지 명망가 정당 의 성격을 많이 내포하고 있었다. 이데올로기적 명료성, 구성원의 사회적 동질성, 세력의 크기 및 정치적 결집력 모두에 있어 앞의 두 진영에 크 게 미치지 못했다. 민족주의 진영 내에는 대중 수준이나 엘리트 수준 모두에서 이념적 갈등이 있었는데,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신념 모두를 견지하는 부류와 쉐네러(Schoenerer)처럼 비이성적이고 반 유태적, 그리고 인종주의적 성격이 강 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부류간의 갈등이 그것이다. 이 두 흐름은 이후 오랜 세 월 동안 오스트리아 민족진영 안에서 잠류하며 서로 갈등하는데, 이 중 후자의 전통은 훗날 많은 이가 나치의 호소에 쉽게 넘어가는 계기가 되었고, 더 멀리는 최근까지, 하이더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9

15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2. 제1공화국 2.1. 제1공화국 초기의 정치. 경제 제 1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그에 따른 이른바 오스트리아 혁명 (1918/19년)은 급진적인 정치 및 사회변혁을 수반했다. 한 때 중부 유럽을 석권했던 대 제국이 하루아침에 알프스 산간의 작은 약소국으로 전락했고, 인구도 1/4로 크게 줄었 다. 또한 혁명적 소용돌이 속에 모든 사회집단은 그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의 급 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초기에 노동자 계급이 기선을 잡았으나, 뒤이어 시민계급 의 방어 메커니즘의 강화되면서 두 진영 간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대체로 공화국 초창기( 년간)에는 양대 진영 간의 합의적 분위기가 두드 러졌다.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 독일계 오스트리아의 사민당, 기독 교사회당, 독일민족주의정당들의 의원들이 함께 모여 독일오스트리아 (Deutsch oesterreich)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아울러 독일과의 합병(Anschluss)을 선언 한다. 이들은 또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사민당의 온건 지도자 레너(Karl Renner)를 국가수상(Staatskanzler)로 선출한다. 당시 사민당은 의회내 정치불럭 중 수적으로 가장 약세였으나, 군사적 패배와 경제붕괴에 따른 혁명적 분위기에 서 공공질서의 유지를 위해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므로 6), 전후 임시정부에 서 가장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1919년 2월 제헌의회선거에서 사민당은 전체의 40.8%를 득표하여 제1당이 되 었다. 기사당이 35.9%, 그리고 독일민족주의계가 20.8%를 득표한다. 레너를 수 반으로 사민당-기사당 연립정부가 구성되어, 국가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두 과 제, 즉 연합국과의 평화협정체결과 새 헌법제정에 나선다. 그러나 1919년 9월 연 합국은 생제르망(Saint-Germain) 조약 7) 을 통해 오스트리아의 독일과의 합병을 6) 당시 오스트리아에는 러시아 혁명정부를 모방하여 노동자 평의회(worker's Council)과 군사평의회 (Soldier's Council)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성되었다. 사민당은 노동세력에 대한 강한 유대와 통제력을 바 탕으로 공산당(KPOe)의 책동을 물리치고 공공질서를 잡았다. 아울러 구 제국의 군대를 제압하고 새 군 대, 즉 인민군 (Volkswehr)의 창설을 주도한다. 사민당은 이렇듯 지나친 혁명적 선동을 자제하면서 부 로조의의 반혁명에 대항한다. 10

16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금지하고, 나라이름도 독일오스트리아 대신 오스트리아 공화국 으로 부를 것을 강요하자, 전 국민이 깊은 좌절에 빠진다. 독일오스트리아를 독일과의 합병으로 가는 건널목 정도로 생각했던 오스트리 아인들에게 신생 오스트리아는 아무도 원치않은 국가 (Staat Widerwillen)이었다. 이러한 심리적 공황은 하루아침에 구제국이 붕괴된 가운데, 아직 민주주의적 신 뢰체계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빚어졌기 때문에, 또 실제로 곡창과 공장지대 를 모두 잃어 많은 이들이 경제적 관점에서 오스트리아의 생존가능 성 (Lebensfaehigkeit)에 깊은 회의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심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제1공화국 초기에 사민당과 기사당 간의 정치 적 합의를 위한 노력은 두드러졌다. 그들은 상황극복을 위해 특히 노.사 간의 사 회적 파트너십 형성에 힘을 모았는데, 그 개혁적 성과 중의 하나가 노동회의소 (Arbeitskammer)의 창설이었다. 이로써 이미 1848년부터 존재하였던 부르주아의 이익단체인 상공회의소(Handelskammer)에 대한 균형추( 均 衡 錘 )가 마련되었고, 훗날 제2공화국에서 크게 꽃피는 사회적 파트너십이 주춧돌이 세워졌다. 그러나 1920년 6월 기민당과 기사당 간의 정치적 갈등이 깊어져 급기야 연정 의 붕괴로 치닫는다. 그해 7월 기사당의 마이어(Michael Mayer)를 수상으로 하 여, 의회 내의 모든 정당이 참여하는 비례정부 (Proporzregierung)이 구성된다. 이어 1920년 10월 제헌의회는 새 헌법을 통과시킨다. 주지하듯이 이 헌법은 이 후 제2 공화국의 헌법으로 다시 받아들여지는 역사적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그 제정과정을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제정은 새 나라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구조화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중대사 이기 때문에, 사민주의 진영과 카톨릭 보주주의 진영 모두에게 초미의 관심사였 다. 그런데 양자의 차이는 분명했다. 사민당은 의회주의에 입각하여 주권은 마땅 히 의회에 놓여야 하며, 국가형태는 중앙집권적 단일 국가이어야 한다는 입장이 7) 이 조약에서 연합국은 오스트리아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승계국이라 규정하고, 이에 따라 전쟁에 대한 책임과 배상, 그리고 오스트리아 군대의 크기를 제한하는 내용까지 규정했다. 아울러 앞으로 오스 트리아는 국제연맹의 동의없이 독일과 합병할 수 없음을 명백히 했다. 이 조약은 다음해 7월 의회에서 인준된다. 11

17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었다. 이에 반해, 기사당은 강력한 국가수반과 상대적으로 약한 양원제, 그리고 분권화된 연방국가를 선호했다. 새 헌법은 두 진영 간의 타협의 산물이었으나, 실제로 사민당의 요구가 더 많이 반영되었다. 즉, 새 헌법은 약한 연방대통령, 중앙집권화된 연방체제, 그리고 의회주권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의회는 명목 상 양원제이나 실질적 정치권력은 하원인 국민의회 (Nationalrat)에게 집중되었고, 지역이익을 대표하는 상원인 연방의회(Bundesrat)에게는 별로 의미있는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8). 1920년 10월 제헌의회에서 헌법이 의결되었다. 그러나 문제 는 세 주요 정당 중 어느 정당도 새 헌법에 의해 창출된 국가와 주요 제도에 대 한 신념과 신뢰을 결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9) 이렇듯 사민당과 기사당은 대연정을 통해 절박한 국가적 두 과제, 즉 평화협정 과 헌법을 해결했으나, 이후 점차 상호협력이 어려워지고 정치적 갈등이 격화된 다. 헌법제정 직후에 치러진 총선에서, 기사당이 41.8%(85석), 사민당이 36.0%(69석), 그리고 독일민족주의계가 17.2%(28석)을 기록한다. 기사당은 이를 바탕으로 민족주의계 정당과 이른바 시민정부 를 구성하고, 사민당은 정부에서 나와 야당이 된다. 그러나 새 시민정부는 군과 경찰, 그리고 교통기관 등에 잔존 하고 있는 사회주의의 영향력 때문에 정부의 권력수행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사민당은 그들이 깊게 관여했던 대연정 기간( 년) 동안 일연의 복지 및 노동법을 제도화하고, 그들이 지배하는 이른바 붉은 빈 (roter Wien)을 사회주의적 개혁모형으로 키우는 등 노동계급의 생활개선을 위해 적잖 은 성과를 거뒀다. 그 때문에 사민당의 대표적 이론가인 바우어(Otto Bauer)는 1919년 가을부터 1922년까지의 정치공간을 계급세력의 균형상태 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1922년을 고비로, 보수세력이 연방정부와 대부분의 지방 주정부의 행정을 8) 헌법제정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당대 최고의 국가법 합자인 한스 켈젠(Hans Kelsen)은 1920년 오 스트리아 헌법은 두 권력집단 간의 힘의 상대적 균형상태를 확인한 문건 리라고 평했다. 9) 사민당은 새 민주공화국을 일단 사회주의적 성취로 받아들였으나, 사민당의 궁극인 목표는 사회주의 독 일과 통합된 오스트리아였다. 그리고 사민당의 선동적인 마르크르주의적 수사( 修 辭 ) 때문에, 다른 정당 들은 사민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민주적 제도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깊은 우려를 낳 게 했다. 한편 기사당은, 적어도 그 지도자였던 자이펠(Seipel)의 관점대로 라면, 주요 정치세력 중 가 장 독립적인 오스트리아에 대해 믿음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도 실은 공화국보다 군주제를 더 선호했 다. 한편, 독일민주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독립적인 오스트리아의 존재 자체를 반대했고, 독일과의 통 일을 의원했다. 12

18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지배하면서 세력균형은 보수주의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군대의 정치적 색깔도 보수화로 바뀐다. 대체로 이때쯤 전후 급진주의가 퇴조하면서, 정치영역에서도 사회주의 영향력이 약화된다. 정치적 권력관계 변화에 발맞춰 카톨릭 보수주의 세력은 강력하게 헌법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1929년 마침내 헌법이 개정되었다. 새 헌법은 이전까지 의회에 서 선출되던 연방대통령을 국민이 직선하도록 규정하고, 대통령에게 정부 구성 및 의회 해산의 권한을 부여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크게 보강되었으나, 대부분의 대통령 권한이 국민의회에 책임을 지는 연방정부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대통 령의 지위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켰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개정헌법은 1934년 까지 통용되었고, 전후 다시 제2공화국의 헌법으로 승계된다. 전후 오스트리아의 경제상황은 무척 어려웠다. 그것은 무엇보다 구 제국의 몰 락과 이에 따른 단일적 경제공간의 붕괴에서 비롯됐다. 식량 및 산업원료의 원 천뿐만 아니라 기존 시장의 대부분을 잃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네트워 크를 상실한 엉성한 경제구조와 관료제를 주축으로 불균형적으로 큰 서비스 분 야였다. 게다가 막대한 전쟁배상금 때문에 경제적 고통은 가중되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극심한 인프레이션, 정부의 구조정책의 실패, 넘치는 화이트칼라 노동 자들 때문에 도시 중산층의 경제적 상태가 크게 악화되었다. 특히 중소상인, 은 급생활자, 주택보유자, 자유직종 종사자 및 국가관료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 이렇듯 제1공화국 초기 오스트리아는 체제의 정당성 위기와 경제적 위기라는 이 중적 위기 속에서 크게 방황하고 있었다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 전후 년간의 대연정 시대가 막을 내린 후, 진영 간, 특히 기민주의와 카톨릭 보수주의 진영 간의 정치적 갈등은 점차 심화된다. 이후 년간 기독교사회당이 주축이 되어 독일민족주의 정당들 중 하나 혹은 여럿과 제휴하 여 이른바 시민 불럭 형태의 연정을 구성하여 오스트리아를 통치했다. 그런데 실 제로 이 부르조아 연립정부는 내적 갈등으로 10) 정치적 안정도 이루지 못했고, 13

19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정책결정능력도 취약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부르주아 단일전선 을 이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보수 양 진영, 즉 기독사회주의와 독일민 족우의 진영이 이른바 마르크스 혁명분자, 즉 사민당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고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기에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서는 바우어(Bauer)가 주도하는 계급 투쟁적 좌파가 온건파 레너(Renner)를 누르고 당권을 장악한다. 바우어는 오스트 리아와 같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사회민주당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자 연스럽고 바람직한 역할은 바로 원칙으로서의 야당 (Opposition aus Prinzip)이 라고 규정하고, 철저하게 반체제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사민당의 정치적 아성인 붉은 빈 의 시정부에서 개혁적인 보건 및 주택정책 등 다양한 복 지 프로그램의 실시하고, 아울러 사회주의적 영감으로 무장된 노동자 문화 를 창 출함으로써 빈을 나머지 오스트리아에 대한 대항모델로 발전시키는데 주력했다. 오스트리아 사민당의 이른바 오스트로마르크시즘 (Austromarxismus)의 이념적 특색은 1926년 1926년 린쯔 전당대회 정강(Linzer Programm)에서 잘 드러난다. 사민주의자들은 이 정강에서, 한편으로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표방하면 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사회의 사회주의사회로의 이행을 공언하고, 그 가 능한 방식으로 프로레타리아 독재 를 언급한다. 시민정당들은 사민당의 이러한 언어적 급진주의 (verbal radicalism)를 자신들에 대한 실존적 위협으로 해석하 고 이에 대항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과잉방어체제 구축에 나서게 된다. 1920년대가 진행되면서 사민당의 급진적 좌경화에 발맞춰 기독교사회당도 급 진적 우경화의 길로 접어든다. 기사당내의 극단적 반 마르크스세력인 이른바 빈 정향 (Wiener-Richtung)이 보다 공화주의 및 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농민세력을 몰아내고 주도권을 장악한다. 빈 정향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카톨릭 성직자 10) 시민불럭 내의 기사당과 독일민족주의계간의 갈등은 대체로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기사당의 지나 친 공직 정실주의 풍조 때문에 자주 정부위기를 빚었다. 두 번째는 기사당 주도의 오스트리아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차관을 얻으려면, 독일과의 합병을 하지 않겠다는 대외적 약속을 해야 하므 로 이를 독일과의 합병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독일민족주의계와 갈등이 야기되었다. 세 번째, 민족주 의계는 반 교회적 성향이 두드러졌으므로, 종교와 연관되는 문화정책이 의제가 되는 경우 양당은 자주 부딪혔다. 부로주아 연정내의 이러한 내홍은 훗날 반 민주주의운동 및 권뤼주의 리더십을 불러들이기 쉬훈 토양을 마련했다. 14

20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출신의 자이펠(Ignaz Seipel)이 1920년대에 두 차례(1922/5-24/11, 1926/10-29/5) 수상을 역임하면서 기사당내에 권위주의적 요소는 더욱 심화된다. 오스트리아 정치의 양극화는 급기야 기사당과 사민당이 각기 준( 準 )군사적 집단 을 창설하면서 더욱 첨예화된다. 사회민주진영의 공화수호연맹 (Republikanische Schutzbund)과 카톨릭 보수진영의 향토방위 (Heimwehr)가 바로 그것이다. 두 진 영은 멀지않은 결전의 날에 대비하며 칼날을 세운다. 정치적 양극화는 물리적 충돌로 이어 졌다. 그 대표적 예가 1927년 7월의 대 법원 방화사건 (Justizpalastbrand)이였다. 대법원 앞에서 법원의 편향적 정치적 판 결에 불복종하는 사회주의자들의 거친 시위에 대해 이를 제지하던 경찰이 발포 를 하자 군중들은 삽시간에 폭도로 변하였다. 이 사건으로 89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다쳤다. 이 사건이후 진영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이에 더하여 1930년대의 경제공황과 이에 따른 대량실업은 불루 칼라 노동자를 비롯해서 거 의 모든 계층에게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악화된 경제상황은 세 정치진 영 구성원들 모두의 정치적 급진화에 큰 몫을 했다. 그런가 하면 1930년대에 진 입한 후, 히틀러의 독일국가사회주의, 즉 나치의 오스트리아 침투가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이는 특히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가속화되어 독일민 족주의 진영을 빠르게 잠식한다 <붉은 진영>과 <검은 진영>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정치, 특히 그 정치적 양극화와 그에 따른 '진영 (Lager)화( 化 ) 내지 하위문화 (subculture) 형성은 세계 정치사에서도 보기 드믄 현상일 뿐더러, 그 어두운 정치적 유산은 제2공화국 정치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 운다. 따라서 세 진영, 특히 대결적 관계를 연출했던 두 진영, 즉 사민주의 진영 과 카톨릭 보수주의 진영에 관해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붕괴로 군주에 의한 부권적( 父 權 的 ) 권위질서가 일시에 무 너졌으나, 이를 대신할 민주적 신념체계가 형성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15

21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열망하던 독일과의 합병마저 수포로 돌아가자, 신생 오스트리아 국민은 자신들의 심리적 공백을 채워 줄 수 있는 새로운 권위를 갈망했다. 이들은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세계관적 정당들에게서 정신적 하이마트를 찾은 것이다. 특히 이들 세계 관적 정당들은 미래에 대한 전체성 요구 (Totalitaetsanspruch)를 지향하고 있었으 므로, 절대권위를 찾는 이들에게는 이상적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제1공화국에서 오스트리아인들은 정상적 상황에서 시민들이 국가라는 대상에게 투사하는 충성심과 희생심을 정당에게 바쳤다. 정당들은 그들 자신의 정당가( 歌 ), 정당기( 旗 ), 영웅상( 像 ) 등 온갖 정치적 상징물을 가졌을 뿐만 아니 라, 각기 정규군을 능가하는 민병대까지 확보하면서, 언젠가 도래할 결전의 순간 에 대비했다. 사민당으로 대표되는 <붉은 진영>과 기민당으로 상징되는 <검은 진영>은 각기 저마다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서로 배타적이며 교조적인 세계관을 표방하며, 정당을 핵심으로 다수의 방계 조직체들에 의해 사회적, 이념적으로 획 일화된 그들만의 폐쇄적 생활공간이 구축했다. 그러면서 두 진영 간의 횡적인 유대는 단절된다. 따라서 두 진영 간에는 국가형태나 헌법질서와 같은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에 대한 기본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극단적 형태의 분절적 정 치문화 (fragemented political culture)의 라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 당시 양대 진영은 각기 사회적 주요 카테고리, 예컨대 사회계층, 종교 및 거주지역 등에 있어 극히 동질적인 성원구조를 보여주고 있었 다. 11) 즉 사회주의 진영은 주로 빈을 비롯한 주요 산업지역의 임금노동자들을 정 치적 충원대상으로 했는데, 그들은 비( 非 ) 카톨릭이었는데 반해, 카톨릭 보수진영 은 그 주축이 농촌지역의 농민과 도시의 소시민들로 그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들 이었다. 또한 사회주의 진영이 당시 바우어로 대표되는 오스트로마르크시즘의 좌 파적 관점을 표방했는데 반해, 카톨릭 보수진영 또한 권위주의적이며 조합주의적 인 천주교 사회철학을 기조로 하고 있었다. 특히 정치사회적으로 열세한 위치로 몰린 사회주의 진영은 고도의 조직력을 11) 사이몬(Walter B. Simon)에 다르면, 일정 정당의 구성원이 고도의 사회적 동질성 을 보여 주는 경우, 그 정당은 수단구속적 정치윤리 (mittelgebundene politische Ethik)보다 목표정향적 정칭윤 리 (Zweckorientierte politische Ethik)을 중시한다고 말한다(Simon, 446). 16

22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바탕으로 사상 유례없는 동원체제를 갖췄는데, 이를 다이아만(Alfred Diamand)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회민주당, 노조와 기타 다수의 방계조직을 통하여 사회주의 진영은 그 구성 원들을 위한 폐쇄적 생활영역을 주축할 수 있었다. 이는 하나의 격리된 하나의 자기 세계였으니, 노동자들은 (노동자) 시영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어울리며, 노 동신문 (Arbeiter Zeitung)을 읽고, 그들 끼리로만 조직된 우표수집 클럽에서, 혹 은 노동자 낙시회에서 여가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들은 자식들을 일찍부터 사회 주의 소년단에 가입시켜 다른 노동자들 자제들과 함께 빈 숲을 거닐며 산록에서 야영을 하게 한다. 이들 소년들은 장성하면서 모두 노조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죽게 되면 그들은 사회주의 시정부가 직영하는 화장터에서 몸을 사른다. 이는 그들이 속세에서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적대 진영인 보수적 시민계급에 대한 도 전인 것이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양대 정당, 즉 사회민주노동당과 기독사회당은 대중 통합정당 (Massenintegrationspartei)로 개념화할 수 있다. 이들 정당은 세계관적 이데올로기, 치밀한 관료적 정당조직과 다수의 연계조직을 통하여 구성원의 모든 생활영역에 대해 전체적 통제를 꾀하는 대중정당이다. 무엇보다 계급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계급간의 고도의 갈등과 적대감이 특징적이며, 조직력을 높이 기 위해 추종자의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에 전력을 다한다. 오스트리아 사민당은 대중통합정당의 대표적인 예로서, 1930년 총선 당시 사민 당 투표자의 46.2%가 이미 당원으로 확보되어 있었다. 전체 성인인구의 17.29%, 남성 4명 중 1인, 여성 10명 중 1인이 사민당 공식 당원이었다. 사민당내에 붉 은 빈 의 비중은 절대적이어서, 사민당 당원수가 최고조에 달했던 1929년 빈의 사민당 당원 수가 58%에 달했다. 오스트로 마르크시즘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사회운동 초기에 이 나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12) 들의 이념적 특징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개념 12) 대표적 오스트로 마르크시스트로 카우츠키(Kart Kautsky), 힐퍼딩(Rudolf Hilferding), 바우어*Otto Bauer), 에크쉬타인(Gustav Eckstein), 레너(Karl Renner), 아들러(Max und Friedrich Adler) 등으로 대 표되며, 이들의 글은 주로 1904 창간)와 Kampf'(1907년 창간)에 발표되었다. 17

23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이었으나, 이후 오스트리아 사회주의자들 특유의 정치적 프락시스를 지칭하는 의 미로 확장된다. 오늘날 이 개념은 오스트리아 제1 공화국 시대, 사민주의의 두 거장 오토 바우어와 칼 레너의 이념형적 대결로 압축되는 전간( 戰 間 )시대의 전 형적인 현상 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바우어와 레너의 국가, 민주주 의, 계급투쟁, 혁명, 볼셰비즘 및 연립정부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제1 공화국 시절 오스트리아 사민당의 프락시스에서 나타난, 레너의 합의추구적 정향과 바우어의 대결적 정향의 차이는 이 두 정치가의 아래와 같은 사상적 차 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3). 한편 양극화 첨예화되면서 기독사회당내에 잠재했던 의회민주주의 내지 형식 민주주의(Formaldemokratie)에 대한 불신과 반감은 권위주의적, 조합주의적 사고 에서 그 출구를 찾는다. 직업집단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를 유기적으로 재구성 하자는 이 보수적, 신낭만주의적 이념체계는 기본적으로 반자유주의적이이며, 파 시스트적 경향을 내포했다. 그러나 그것이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사상에 대 항하는 적극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했기 때문에 카톨릭 보수진영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30년 카톨릭 보수진영의 민병대인 향토방위가 서방적, 민주적 정당 국가 를 거부하는 이른바 코르노이부르그 맹약 (Korneuburger Eid)를 하면서 파 13) 주요 쟁점에 관한 레너와 바우어의 비교 레너(K. Renner) 바우어(O. Bauer) 국가 노동자 및 시민계급의 재산 계급투쟁의 수단 긍정적 국가관. 계급이원론 계급지배가 반드시 계급 부정: 다원주의 사회관 독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리아: 부르주아 공화국 민주주의 이상적 정부형태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론 계급투쟁 계급투쟁의 법제화와 제도화 종말론적 투쟁관 혁 명 경제에서 작업장에서 그러나 개념 사용에서 비일관성 그러나 거리에서는 안된다 물리적 폭력없이, 법을 지키면서 볼쉐비즘 명백한 부정 애매한 평가 연립정부 긍정적 부정적 Nobert Leser, Zwischen Reformismus und Bolschewismus의 제1장에서 정리 18

24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시스트적 권위주의의 색채는 더욱 심화된다. 특히 권위주의적, 조합국가 사상은 1932년 기사당의 돌프스(Engelbert Dollfuss)가 수상이 된 후, 역시 조합국가를 표방하는 이탈리아의 무소리니와 밀월관계를 형성하면서 급물살을 탄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는 위의 두 주도적 진영 외에 흔히 (독일)민족주의진 영 (nationalistischer Lager)으로 통칭되는 제3의 세력이 있었다. 이 민족주의계의 정당 중, 유력 정당은 대독일국민당(Grossdeutsche Volkspartei)과 지역동 맹 (landbund)의 두 개가 있었다. 대독일통일당은 도시의 중산층 집단, 특히 관 료들에 바탕을 두었는데 반해, 지역동맹은 지방의 비교적 유족한 반( 反 ) 교권주 의적 농민들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이들 정당들은 이념적으로 덜 교조적이고, 조직 또한 방만한 편이어서 전형적인 대중통합정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국 민 대다수가 독일과의 합병에 우호적이었고, 양대 당 역시 원칙적으로 합병을 지 지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독일민족주의 정당들은 1930년대에 진입하기 까지 전 략적 유리점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1930대 초 이후 나치의 급작스런 대두로 위 협을 느낀 앞의 두 진영이 급기야 독일과의 합병 프로그램을 포기하기에 이르고, 동시에 민족주의진영의 급진화가 시작되면서, 그간 온건했던 민족주의자들이 점 차 나치 노선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국가사회주의정당(나치 당)은 독일과의 합병을 표방하는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어, 독일 나치 본산 으로부터 적극적 지원을 받으며,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주저 없는 헌신, 전체 권력장악과 독점적 지배를 목표로 하는 전체주의적 통합정당 (tatalitaere Integrationspartei)의 길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이후 나치화된 민족주의진영은 끝 내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합병의 전초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극단적 원심화로 치닫는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의 정치와 연관하여, 우리는 레 너가 1927년 사민당 전당대회에서 바우어 식의 기다림의 이론과 프락시 스 (Theorie und Praxis des Abwartens)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일갈한 것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 이 나라에서 혁명이라는 것이 가까운 장래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수사학적인 파토스는 이제 앞 문장에서 뒷 문장으로 옮겨져야 한 다. 항상 혁명을 논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는 19

25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것, 그것은 위험이고 모순이다 다시 이와 연관하여, 1932년 기독사회당이 사민주의자들에게 대연정을 제의했 을 때, 사민주의자들이 이 제안을 거절한 것은 큰 실수였다는 관점이 다름 아닌 사회주의진영에서 적지 않았다는 것은 음미해 볼 문제다. 제1공화국에서 진영 간의 대결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영 간의 합의를 추구했 던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년간의 대연정이 그러했고, 몇몇 주 정부 차원에서, 특히 Niederoesterriech에서 주요 쟁점에 대한 ad hoc 협력이 잦았다. 특히 년간 진영 간의 갈등이 대결적 상황으로 치닫을 때, 민주주 의 체제의 유지를 위한 반 나치 대연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는 것 은 기억해야 할 일이다 민주주의의 종언과 독재로의 길 1933년 기사당의 수상 돌푸스는 의회의 의사규정상의 갈등을 기화로 의회해산 을 선포한다. 이후 돌푸스는 제1차 대전 당시 전쟁경제를 위한 수권법( 授 權 法 )을 활용하여 의회 없이 자신의 정책을 시행한다. 야당의 행동반경은 크게 줄어들었 다. 이후 돌푸스 정부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예에 따라 권위주의적 조합국가로 의 길을 재촉한다. 1933년 3월 돌푸스는 기사당과 향토방위(Heimwehr), 지역동 맹(Landbund) 및 몇몇 민병대들을 모아 보수주의세력의 결집체인 애국전선 (Vaterlaendische Front)을 창설한다. 곧이어 온갖 선거를 중단하고, 사회주의 진 영의 민병대인 공화방위동맹을 해체한다. 아울러 공산당 및 사회민주노동당, 그 리고 민족주의 진영의 자유노조 (Freie Gewerkschaft)를 폐쇄한다. 1934년 2월 마침내 정부, 즉 연방군, 경찰, 그리고 기사당계열의 군사단체들과 사회주의 진영의 공화수호연맹 간의 시민전쟁이 발발한다. 이 수치스런 전쟁에서 정부는 무력으로 사민주의 세력을 제압한다. 이른바 오스트로-파시즘으로의 도정 에서 마지막 관문을 넘긴 것이다. 그해 5월 돌푸스 정부와 애국전선(VP)은 오스트리아 권위주의 연방국가 를 위 20

26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한 새 헌법(5월 1일 헌법)을 의결한다. 이 헌법에서 규정안 권위주의적 조합국가 개념은 한 마디로 무쏘리니 이탈리아 조합국가의 요소와 카톨릭 사회교리의 조 합주의 질서 개념을 합쳐 놓은 것이었다. 또한 애국전선은 단일정당으로서 정치 적 독점권을 공인받는다. 1934년 2월부터 38년 3월까지 애국전선으로 재조직된 카톨릭 보수주의진영은 이제 공화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사민당과 나치 독일에의 합병을 획책하는 독 일민족주의 진영에 강렬히 대항하여 권위주의적으로 오스트리아를 통치한다. 그 과정에서 독일 나치 정권의 엄청난 정치적 압력과 극단으로 치닫는 비합법적인 국내 나치활동 때문에 큰 고통을 받는다. 1936년 특히 믿었던 이탈리아의 무쏘 리니가 끝내 히틀러와 손을 잡개 되자, 돌푸스 정권은 대외정치적 거점을 잃고 고립무원이 된다. 돌푸스는 1934년 7월 나치의 실패한 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 서 희생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의 후계자인 슈쉬니히(Kurt Schuschnhigg)도 힘겹 게 버텨 보았으나 14) 히틀러의 벌거벗은 권력 앞에는 역부족이었다.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는 마침내 독립을 잃고 나치 독일제국에 합병된다. 권 위주의 독재체제가 이제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전환한 것이다. 1938/39년간 오 스트리아는 국가적으로, 군사적으로, 또 경제사회적으로 독일제국의 모형에 따라 재편된다. 오스트리아 라는 개념도 공식적인 소통에서 사라졌다. 오스트리아는 이제 구 제국 (Altreich), 오스트마르크(Ostmark)로, 또 나중에는 도나우와 알프 스 제국 지방 (Donau-und Alpenreichsgaue)으로 명명됐다 오스트리아인의 다수가 처음에는 합병 에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곧이어 나치의 전체주의적 독재는 크게 강화되었고, 그 불법적, 반인도주의적 면모를 공 공연히 드러내면서, 적지 않은 민심의 이반이 있었다.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통합 정당인 독일국가사회주의 정당은 관제화된 활동 이외에 자유로운 생활공간을 최 14) 1938년 2월 히틀러는 나치당의 금지를 해제하고 그들을 오스트리아 정부에 참여시킬 것을 요구하고, 거부하는 경우, 독일군이 오스트리아에 진입하겠다고 위협했다. 슈쉬니히는 이에 굴복하였으나, 독일에 의 급속한 합병을 막기 위해, 놀랍게도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독일적, 그리스트적인 오스트리아 (ein freies, unabhaengiges, deutsches und christliches Oesterreich)를 위한 국민투표를 1938년 3월 13일 실시하겠다고 공표를 하였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히틀러는 연방대통령을 협박하여 2월부터 내무장 관직을 맡고 있는 세이스-인쿼아르트(Arthur Seyss-Inauart)를 새 수상으로 지명하도록 하고, 3월 12일 독일군의 오스트리아 진주를 단행한다. 21

27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소한으로 줄였다. 그러나 나치 지배 하에서 가장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부류 는 유태인이었다. 그들은 비법화되고 약탈당하고 추방되었으며, 많은 수가 나치 의 섬멸정책의 희생되었다. 그런가 하면 좌, 우의 많은 정치인들, 특히 사민주의 진영과 카톨릭 보수주의 진영의 적지 않은 정치인들도 다수 다카우(Dackau)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인고 ( 忍 苦 )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가 하면 나치 정권에 대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던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특히 공산주의자, 왕정파들이 많았고 기민당, 기사당 출신도 있었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사실은 비례적으로 많은 수의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치의 지도층에서 복무했고, 제 2차 대전의 수행, 유태인 학살 등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는 사실이다 15). 따라서 나치지배하에셔 적지 않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체 제의 형성, 운영, 특히 그 악행에 대해 얼마간 공동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제2공화국에 들어와 과거극복 (Vergangenheitbewaeltigung)의 쟁점으로 재론이 되었고,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이다. 이 밖에도 7년간의 나치지배가 남 긴 많은 숙제들, 년간 추방에 대한 최소한의 상징적인 보상, 나치독재가 빼앗은 재산의 배상문제, 강제노동의 보상문제 등 적지 않은 문제를 남겼다. 전쟁과 나치 이데올로기는 약 명의 오스트리아인의 생명을 앗아갔다. 약 명의 유태인이 살해되었고, 명이 포로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다 명의 유태계 오스트리아인이 외국으로 도추자거나 추방되었고, 그 중 eiqo분이 전쟁이 끝난 후 귀국하지 않았다. 약 명이 게스타포에 의해 잡혔 고, 6.000명 이상이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 2,700명이 나치에 저항하다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렇듯, 나치의 폭정과 전쟁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희생과 고통이 따 랐다. 7년간의 나치지배는 오스트리아인의 정치적 사고와 행태에도 크게 영향을 미 쳤다. 특히 사회주의진영의 지도자와 카톨릭 보수진영의 지도자들이 나치 수용소 에서 과거의 극한적 다툼을 크게 반성하고 제2공화국에서 새 합의의 역사를 펼 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대가 선사한 귀중한 선물일 것이다. 15) Arthur Syss-Inquart, Alexander Loehr, Irmfried Eberl, Franz Stangt, Amon Goeth, Odilo Flobocnik, Adolf Eichman, Ernst Kaltenbrunner등이 전쟁범제에 참여했다. 22

28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3. 제2공화국 필자는 제2공화국을 두 시기로 나누어 년간을 오스트리아 모델의 형 성기로, 그리고 그 이후 최근까지를 오스트리아 모델의 재창조기로 잡는다. 필자 가 생각하는 오스트리아 모델의 구성요소는 1) 영구중립 2) 합의제 민주주의 3) 사회적 파트너십 4) 혼합경제/조정된 시장경제 그리고 5) 오스트리아 정체성 확 립이다. 위의 구성요소들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상호 보강하면서 상승적 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 오스트리아 모델은 대체로 1980년대 중반까지 안정적으로 정착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이후, 이 오스트리아 모델은 내외의 상황변화에 따라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결국 자기변신을 강요받는다. 필자의 관 점에서 볼 때, 1987년 이후의 오스트리아 현대사는 오스트리아 모델의 재창조를 위한 갈등과 고뇌의 시기라고 본다. 재창조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대략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오스트리아 모델의 구성요소 중 혼합경제/조정된 시장경제를 제외한 나머지 주 제들은 이 책에서 하나하나 장으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모델 형성과 그 특징적 면모, 그리고 새로운 도전과 이에 대한 응전으로서 재창조 과정이 비 교적 자세히 언급된다. 따라서 여기 제2 공화국 논의에서는 이들 오스트리아 모 델의 개별 토의를 피하고, 대신 그들을 잉태하고 발전, 변화시킨 시대적 맥락과 주요 사건 및 쟁점을 다루려고 한다. 편의상 오스트리아 모델의 형성기는 1955년 국가조약이 체결되고 오스트리아 의 영구중립이 선포되기 이전 시기와 그 이후 시기로 나누어 논의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오스트리아 모델의 재창조시기는, 뒤의 각 장에서 상세히 논의할 것이 므로 여기서는 논의를 줄이려 한다 오스트리아 모델의 형성 ( ) 연합국 점령하의 오스트리아( ) 23

29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전후 오스트리아의 정치적 전개 년간 연합국 점령하의 오스트리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3년 11월 1일, 미, 소, 영 3국외상들이 회동하여 채택했던 모스크바 선언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오스트리아는 히틀러 침략전쟁의 최초의 희생물이며, 따라서 1938 년 3월 4일의 독일의 오스트리아 점령은 전혀 무효 (null und nichtig)임이 선포 되었다. 그러나 이 선언에는 오스트리아가 히틀러 편에서 전쟁에 참가한 것에 대해 얼마간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자신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 얼마나 기여했 는지 검토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첨부되었다. 이 모스크바 선언은 전후 오스트리 아가 처하게 된 특수한 입장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에 따라 년 간 연합국의 오스트리아 정치개입은 이원적 성격을 띠게 된다. 즉 연합국들, 특 히 서방 3개국은 많은 경우, 오스트리아를 나치의 희생자, 피해국 내지 해방된 나라로 다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으로는 오스트리아를 패전국으로 다루기도 했 다. 그들이 10년간 오스트리아를 점령했던 것도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기 때문이 었다. 그 때문에 년간 오스트리아에서는 두 개의 정치체제가 함께, 그러 면서 거의 대립적으로 존재 했다. 따라서 이 이원주의는 특수한 종류의 이중권위 ( doppelautoritaet besonderer Art)라고 할 수 있다(Pelika). 1945년 5월 8일 독일군(Wehrmacht)의 무조건 항복으로 유럽에서 제2차대전이 종언을 고할 때, 연합군들은 이미 오스트리아에 깊숙히 진격해 들어와 있었다. 4 월 초, 소련의 스탈린은 제1공화국 국가수상이었던 레너(K. Renner)에게 임시정 부(provisorische Regierung)를 구성해 줄 것을 부탁한다.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이는 서방 연합군들로부터 소련과 협력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 얼마 후 4월 중순, 제1공화국의 대표적 정치세력이었던 카톨릭 보수계와 사회주 의계는 발빠르게 움직여, 각각 오스트리아사회당( Sozialdemokratische Partei Oesterreichs, SPOe)과 오스트리아국민당Oesterreichische Vorlkparei, OeVP)을 창 당한다. 새롭게 전개되는 유리한 정치상황에 발맞추어 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 Oesterreichs)도 고고의 성을 울었다. 4월 27일 레너 주도하에 1934년 이전의 정치적 균형에 맞춰 임시정부를 구성 24

30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한다. 다만 민족주의 진영을 제외하고 대신 공산주의자들을 늘렸다. 사회당 10 명, 국민당 9명, 공산당 3명, 무소속 3명으로 내각이 구성된다. 아울러 임시정부 는 합병을 무효화하고, 1920년 헌법(1929년 개정 버전)을 바탕으로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오 스트리아 공화국을 선포한다. 같은 해 7월 4일 연합국 4개국은 모 스크바 선언에 준거하여 이른바 제1차 통제조약(Kontrollabkommen)을 체결하고 이에 의해 4개국 분할점령지역을 확정했다 16). 아울러 분할통치의 정상기관으로 연합국평의회(Allierter Rat)가 구성되었다. 이로써 네 점령군과 그 최고기관인 평 의회는 오스트리아의 정치체제로부터 독립적인 결정수준을 구성하고, 이 나라의 주권을 본질적으로 제한했다. 오스트리아는 점령기간 동안 독립적이었으나, 완전 주권적지는 않았다(unabhaengig, aber nichgt voll soveraen) (Pelika) 17). 임시정부는 처음에는 소련에 의해서만 승인되었고, 그 정치적 영향권도 소련 진주지역에 한정되었다. 연합국의 분할점령과 연합국평의회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레너의 임시정부는 단일한 행정권 아래 오스트리아 전역을 통합시키기 위한 노 력을 계속했다. 소련측의 속셈은 사회주의자인 그를 통해 가능한 한 오스트리아 를 적화( 赤 化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정객 레너는 이를 일찍이 간파하고 치 밀하게 대응한다. 이미 제1공화국 초기에 수상직을 역임한 경륜외에, 뛰어난 통 찰력을 갖추고, 또 여러 정치세력으로부터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던 그는, 천주 교 보수계와 더불어 공산당을 적절히 견제하며 18), 임시정부 관할권 밖의 여러 주( 州 )의 정치지도자들과의 감정이입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미국, 영국과 프랑스의 의심도 풀려 임시정부를 인정하게 된다. 뒤이어 레너정부의 관할권은 16) 오스트리아는 네 지역으로 나뉘었다. Voralberg와 Tirol은 프랑스 점령지역으로,, Steiermark와 Osttirol 은 영국지역으로, Salzberg와 Oberoesterreich의 도나우 남쪽지역ss은 미국지역, 그리고 도나우 북쪽의 Oberoesterreich, Niederoesterreich와 Burgenland는 소련지역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빈은 4개 지역으 로 분할점령되었는데, 도심지역인 Innere Stadt'(제 1구)는 네 연합국기 공동관리하게 되었다. 17) 점령기간 중, 한편에는 연방정부와 국회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연합국 평의회가 있어 양자간의 경쟁 상황이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의회의 모든 입법안은 평의회의 인준을 받아야 했으나, 1946년 제2차 통 제협정 이후, 이 승인의무는 헌법전( 憲 法 典 )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어, 단순한 법률은 더 이상 인준 이 필요 없게 되었다. 평의회는 자신의 의결을 만장일치로만 하게 되었는데, 동서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합의가 점차 어려워 지자, 이렇게 바뀐 것이다. 이렇게 되자 오스트리아 정치체제는 평의회에 대해 결정적으로 자주성을 제 고할 수 있게 디었다. 18) 이미 1945년 4월, 임시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과정에서, 사회당은 공동전선(Aktionsgemeinschaft)과 단일조직 형성을 요구하는 공산당의 제안을 거부하였다. 25

31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같은 해 10월 연합국평의회는 이를 각서의 형식을 빌려 최 종적으로 승인했다. 이로써 비록 분할점령된 상황에서 나마 하나의 통일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19) 1945년 11월 25일, 여기서 보수계의 국민당은 50%의 득표율로 85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되었고, 사회당은 45%의 득표로 76석을 차지한 반면, 공산당은 예상을 훨씬 밑도는 5%의 득표율로 겨우 4석을 얻는 데 그쳤다. 국민당은 절대다수의 의석을 차지했으나, 다시 세 당이 모두 참여하는 이른바 집중정 부 (Konzentrations-regierung)을 구성한다. 연립내각의 수상에는 국민당의 휘글(L. Figl)이 부수상에는 사회당의 쉐르프(A. Schaerf)가 선출되었고, 각료구성을 보면, 국민당이 8명, 사회당이 6명, 무소속 2명, 공산당 1명이 각각 차지했다. 소련의 간접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은 이후 쇠퇴일로를 밟아 군소정당으로 전락 한다. 1947년 공산당은 내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공산당의 탈퇴를 계기로 국민 당, 사회당을 양축( 兩 軸 )으로 하는 좌우합작의 대연정( 大 聯 政 ) 시대가 바야흐로 막을 열었다. 지속적 점령상태, 전후 극심한 경제난, 행동반경의 제약 등은 보다 적극적인 현실극복의 필요성을 높였다. 1947년 공산당의 정부탈퇴이후 오스트리아 정부는 지배적 여론의 지지에 힘입어 친서방적 궤도로 진입한다. 특히 1947년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는 흔히 마셜플랜(Marschall Plan)으로 알려진 유럽 부흥프로그램(European Recovery Program)에 참여하고, 아울러 유럽경제협력기 구(the Organization for Economic Co-peration, EEC)에 가입했다. 전자는 오스 트리아가 극심한 경제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고, 후자는 이 나 라의 서방과의 경제적 통합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소련이 자신의 점령지역내에 광산, 산업시설, 토지, 석유생산시설 등 다수의 독일재산 (Deusches Eigentum)을 전쟁배상의 명목으로 몰수하려 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에 맞서 이들 이른바 독일재산을 국유화하는 강수를 두었다. 국민당도 불가피하게 자신의 이념적 지향 과는 거리가 먼 이 대규모 국유화 조치을 수용했다. 그런가 하면 사회당도 당내 19) 종전 후 몇 달 동안은 오스트리아도 독일처럼 긑내 두 개의 부분으로 분단될 위험을 안고 있었다(Figl, 64) 26

32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적으로 큰 갈등 없이 무역자유화, 자본주의 및 사유재산을 토대로 한 마샬플랜을 받아들였다. 연방정부는 1945년 4월 27일 독립선언에서 앞에서 논의한 모스크바 선언 의 앞 단락, 즉 오스트리아가 히틀러 독일의 첫 번째 희생자라는 표현만을 채택하 고, 그 두 번째 단락, 즉 오스트리아도 독일의 침략전쟁에 함께 책임이 있음을 밝히는 데는 의도적으로 소홀히 했다. 실제로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이 나치정권을 열렬히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인 못지않은 비중으로 전쟁 및 유태인학살 등 에 참여했던 게 사실이다. 이후 1980년대에 들어와 역사의 진실이 다시 파헤쳐 지기 까지 이 희생자 신화 는 오스트리아인의 역사의식 속에 위장된 모습으로 보존되었다. 전후 과거 나치 전력자의 처리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된다. 초기에는 이른바 탈( 脫 )나치화 (denazification)가 추세였다. 반( 反 )나치법(Entnazifizierungsgesetz, 1947)은 나치와 연루의 정도에 따라 고위당료처럼 크게 연루된자 ('belasteten')와 단순 가담자 (Mitlaeufern)로 나눠. 수준 차이에 따라 재제하고 선거권을 제한했 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양대 당은 거의 전인구의 1/3에 이르는 전력자 (Emahligen)와 그 가족들이 계속 체제에 통합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배체되는 경 우, 오스트리아의 정치와 시민사회의 안정성이 침해될 점을 우려하게 된다. 결국 정부는 1949년 총선에 앞서 1948년 6월 사면법을 제정한다 20). 전후 탈 나치화 의 열풍이 가라않자, 표를 의식한 양대 정당은 구 나치세력과 확실하게 선을 긋 기 보다는 이들의 표를 의식해 그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형국이 된다. 한편 나치 전력자에 대한 족쇄가 풀리자, 구 독일민족주의 세력은 다시 결집하여 독립연맹 (der Verband der Unabhaengigen, VdU)을 창당한다. 아렇게 오스트리아 정치 의 세 번째 진영이 다시 정치의 표면위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사회당은 이 정 당이 1949년 총선에서 시민계급의 표를 분산시켜 국민당을 약화시키리라는 기대 에서 새 당의 출범을 고무했다. 정치지형은 이제 두 진영 간의 경쟁에서 세 진 영 간의 각축으로 바바뀐 것이다. 멀리 합스부르크 제국 말기에 형성된 세 진영 20) 이 법을 통하여 나치에 크게 연루된 자 42, 000명을 제외한 잔여의 나치 전력자들에게 환정한 시민권 을 최복시켜 주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회당과 국민당은 이들 구 나치 연루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정치적 지지를 호소하게 된다. 27

33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정치 가, 제1공화국을 거쳐 이제 제2공화국에서 다시 개화한 것이다. 1949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8석을 잃었으나 44%의 득표율, 77석의 의석으로 제 1당으로 남았다. 사회당도 9석을 잃어 39%의 득표율로 67석을 차지했다. 독립연 맹은 거의 12%의 지지율로 17석을 차지했다. 공산당은 5%의 지지율로 1석을 늘 려 5석이 되었다. 국민당과 사회당은 다시 제휴, 대연정을 구성하고 합의제 정치 를 계속한다. 두 연정 파트너들은 정치적 정실임용제의 범위를 확대하여 비단 내각 부처 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국유화된 산업체 모두에게 적용한다. 이른바 선거에서 나타난 세력비율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는 이른바 비례 (Proporz)라 불 리우는 공직의 배분방식은 이후 대연정의 지속적 특징으로 남는다. 전후 제1공화국의 출범이후, 오스트리아의 최대의 관심사는 4개국 점령을 종식 시켜 이 나라의 영원한 분열을 맞고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오스트리아의 공식적인 조약협상은 지지부진하고 계속 늦춰졌다. 특히 점차 격화되는 동서냉전의 검은 그림자는 이 길의 진척을 어렵게 했다. 1948년 베르린 봉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출범, 1949 독일의 분할, 그리고 1950 년 한국전쟁의 발발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정부는 불퇴전( 不 退 轉 ) 의 기세로 10년에 걸친 끈질긴 협상을 통해, 그리고 냉전시대를 뛰어 넘는 중립 화 라는 절묘한 방식을 통해 1955년 국가조약을 체결하고 주권을 회복한다. 이 과정에서 연정 파트너인 국민당과 사회당은 공동목표를 향한 빈틈없는 결속과 협력을 통하여 이 역사적 과업을 성취한다. 오스트리아의 영구중립은 오스트리아의 국가 및 민족형성의 맥락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구중립을 통하여 오스트리아 국민은 국 가주권을 반석위에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전후 냉전사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 할을 찾았고, 아울러 국민적 자존심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를 만들었기 떄문 이다. 그런 의미에서 후술하거니와 중립 은 오스트리아 모델의 첫 번째 구성요소 라고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정치의 지속과 변화 28

34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정치적 갈등과 물리적 폭력으로 점철되었던 제1공화국 및 전간( 戰 間 )시대와 달 리 오스트리아의 제1공화국 처음 10년의 역사는 주요 정치세력간의 정치적 합의 와 협력으로 특징짓는다. 그런데 이러한 정치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정 치체제를 결정짓는 주요 요인 중 많은 것들이 실제로 제1공화국으로부터 크게 변하지 않고 승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1945년 오스트리아는 합병 이전인 1937년의 국경선과 1920년 헌법 (1929년 개정)을 바탕으로 독립국가로 재탄생하였다. 1920년 헌법으로의 복귀는 1934년-38년간의 권위주의 체제와 1938년-1945년간의 전체주의 시대의 역사전개 를 무효화한 것이며, 아울러 제1공화국과 이제 막 출범하는 제2공화국간의 연속 성을 웅변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또한 제2공화국의 제1공화국 헌법승계는 두 공 화국이 기본적으로 똑 같은 정치제도적 틀 위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제2공화국은 제1공화국과 같은 정당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 주 역들 중 몇몇 주요 인물들도 같은 인물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주지하듯이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의 정당 및 정당체제 또한 1934년 및 1938년 이전 체제를 그대로 계승했다. 뿐만 아니라 제2공화국의 건국의 주역들 중 적지 않은 정치엘 리트들이 이미 제1공화국에서 주요한 역할 수행했던 역사적 인물들이다. 제2공화 국의 첫 수상이자 이후 연방대통령으로 추대된 레너는 제1공화국의 첫 정부 수 상이었으며 마지막 정부의 국민의회 의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년간 제2 공화국 수상이었던 라브(Julius Raab)는 1927년부터 제1공화국 국민의회 의원이 었으며, 1938년 슈쉬니히 정부의 각료였다. 전자가 좌파의 연속성을, 그리고 라 브는 우파의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당의 정치적 성향이나 정치엘리트의 정치행태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이러한 정당 및 정치엘리트의 연속성은, 제 2공화국 정치체제의 민주발전에 반드시 유리한 조건만은 아닐 것이다. 특히 역사 적으로 뿌리 깊은 이 나라의 진영의식 (Lagermentalitaet)이 상존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은 제1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본질 적인 경제문제 및 불균형적인 산업구조를 그대로 안고 있는 경제적으로 취약한 작은 나라라는 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29

35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그러나 오스트리아 제2공화국 초기의 상황적 조건은 제1공화국과 확연히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그 하나는 연합국에 의한 분할점령과 그것이 던져준 정신적 충격이었다. 외국군에 의한 점령은 그 자체로서 오스트리아의 주권과 그 영토적 통합성을 크게 훼손한 것은 사실이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오스트리 아인을 결속하고 그들의 자의식을 키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소련점령군의 무리한 요구와 각종 만행은 외국의 지배와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을 크게 키웠고, 오스트리아인의 국민적 자존감을 일깨웠다. 아울러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구 이웃나라들이 차례로 공산화되면서 정 치적 자유와 의회민주주의를 상실해 가는 사실을 목격하면서 주권회복과 의회민 주주의 수호의 의지를 더욱 다지게 되었다. 제1공화국에서는 전후 전승국들이 패전국인 오스트리아에게 배상의 책임을 물 었으나 제2공화국에서는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마샬플랜 등에 의해 오스트리아 와 전유럽의 경제회복을 도왔다. 그러한 점에서 양자 간의 차이는 컸다 이러한 경험이 오스트리아가 서방 민주주의체제를 더 선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힘입어 오스트리아 정치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그 중 하 나는 오스트리아의 양대 정당, 즉 국민당과 사회당의 정치엘리트들이 과거의 극 단적, 교조적 이념에서 벗어나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보다 온건 한 이념적 성향을 지향하게 되었다. 아울러 지나친 경쟁과 권력독점 보다 정치 적 햡의와 권력공유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집약될 수 있다고 본다. 우선 1934년 좌, 우 간의 극한적 대결이 빚어 낸 치욕적 시민전쟁 의 교훈적 학습효과이다. 당시 양대 진영은 완승( 完 勝 )을 겨냥한 제로섬 게임을 벌렸으나 그 결과 의회민주주의의 종식과 권위주의체제의 도래를 불러왔고, 그것 은 결국 나치의 전체주의적 독재체제로 이어졌던 것이다. 양대 진영의 적지 않 은 지도자들이 나치 정권하에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는 운명을 맞았고, 그곳에서 이들은 함께 수난을 겪으면서 자유의 소중함과 교조적 이데올로기의 해악을 재 인식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21). 그와 더불어 제2공화국 수립 이후 국민당과 사회 30

36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당의 정치엘리트들은 엄습하는 가공( 可 恐 )할 공산주의의 위협 속에서 성내평화 ( 城 內 平 和 )의 정신. (Mentalitaet der Burgfriedens) 을 매개로 민주주의의 수호를 일종의 초( 超 ) 이데올로기 (Oberideologie)로 승화시켰다는 것도 기억할 만하다. 이러한 정치엘리트들의 가치관 변화에 힘입어 1947년 이후 양대 정당은 대연정 을 구성하고 정치적 컨센서스 형성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이로써 경쟁과 한시 적 권력독점을 바탕으로 하는 웨스터민스터 모형 대신, 정치적 합의와 권력공유 (power sharing)를 1945년 이후 10년간 오스트리아 정치를 관통하는 게임규칙으 로 만든 것이다. 이 기간 중 양대 정당은 오스트리아 선거인구의 90%이상을 대 표하는 일종의 준( 準 ) 국민정부로서 이 나라의 완전한 주권회복이라는 공동목표 를 향해 함께 매진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제2 공화국이 그 초기과정에서 이룩한 또 하나의 변화는 점차 오 스트리아인들이 점차 국민적/민족적 정체성 (national identity)를 인식하게 되었 다는 점이다. 이렇게 된 데는 독일과의 합병에서 그들이 경험했던 아픈 기억과 환멸, 그리고 제2 공화국의 건국과 주권회복 과정에서 새롭게 터득한 애국주의적 집단의식이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이 점은 대부분의 오스트리아인들은 제1공화 국을 독일이라는 조국으로 향하는 간이 정류장 쯤으로 생각했던 것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오스트리아 제2 공화국의 정치변화를 논의하면서 크게 부각되는 상징적 인물 이 레너이다. 그는 온건성향의 사민주의자로서 긍정적 국가관과 의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평생 합의정치를 추구했다. 제1공화국 초기에 그는 국가수상으 로 년간 대연정을 구축하여 좌.우 양진영 간의 합의정치의 바탕을 마련하 는 데 크게 기여했디. 그러나 이후 바우어의 교조적 오스트로마르크시즘에 밀려 정치 후면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제2공화국 초 다시 혜성과 같이 정 치무대에 재등장하여, 오스트리아의 통일과 합의정치 수립에 결정적 기여를 한 다. 21) 오스트리아에는 이른바 수용소 사잇길의 신화 (Mythos der Lagerstrasse)라는 말이 있다. 이는 한때 적 대적 관계였던 기독사회당과 사민당의 정치가들이 나치 치하에서 똑 같이 수용소에 수감되는 운명에 처하자, 수용소 사잇길을 함께 거닐며 지난 날을 크게 후회하고, 앞날의 협력과 합의정치를 다짐했다 는 이야기다.,, 31

37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제2공화국 초기 10년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 정치의 연속성과 변화를 논의하 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전후에도 이 나라의 진영의식 은 과거와 큰 변화 없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오스트리아인들의 높은 정당가입률과 충성도, 안정적인 선거행태, 그리고 주요 쟁점에 대한 정치적 견해의 분포 등에 서 간단없이 표출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연정의 구축과 공동관리의 저 변에는 상호 불신과 우려가 깊게 깔려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권럭공 유와 합의정치의 기반은 아직까지 취약하고, 그것이 공고화되기까지는 보다 긴 시간을 요한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 모델을 향하여( ) 오스트리아는 1956년 이후 1986년까지 국민당과 사회당의 대연정, 국민당 단 독정부( ), 사회당 단독정부( ) 그리고 사회당과 자유당의 소연 정을 거친다.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오스트리아 모델은 그 틀이 완성되고 관 행이 정착한다. 그 전개과정을 살펴보자. 국가조약과 중립화 통일이 성취됨으로써 국민당과 사회당간의 대연정은 그들 에게 맡겨진 가장 큰 역사적 과제를 수행하고 새로운 건국신화를 창출했다. 대 연정의 위력이 다시 한 번 증명된 것이다. 당시의 관점에서 볼 때, 막강한 양대 진영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대연정은 가히 영원할 것 으로 비춰졌다. 좀처럼 절대다수를 얻기 어렵게 구조화된 선거법, 아직 상존하는 진영의식과 그에 따른 안정적 선거행태는 대연정 이외의 다른 정치적 대안을 상정하기 어렵게 만들었 다. 따라서 많은 이는 대연정은 오스트리아 정치문화가 창출한 지속적인, 그리고 떼어낼 수 없는 갈등조정기제라고 생각했다. 국민당과 사회당은 무엇보다 권력공 유 및 권력배분(proporz)에 크게 유념했다. 대통령도 대연정에 집착했고, 누구도 자유당과의 연정가능성은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이른바 영원한 대연 정 (permanete Grosse koalition)이라는 말도 이렇게 창출되었다. 대연정이 제도 적으로 안정화되면서 합의민주주의의 기반도 강화되었다. 1950, 60년대에 오스트리아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흔히 독일의 라인강의 기 32

38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적 에 견주어 오스트리아의 경제성과를 작은 기적 으로 불렸는데, 비록 속도는 독 일보다 다소 늦었으나 성장세는 지속적이었다. 특히 1950년대에 적자지출의 바 탕위에서 국가적 조정조치에 의해 문제를 풀어가는 이른바 라브-카미츠 노 선 (Raab-Kamiz-Kurs)이 크게 주효했다. 경제자유적 환경조성, 국가적, 사적 투자 의 활성화, 목표정향적 수출진흥으로 국민총생산은 크게 신장되었다. 국내적으로 는 완전고용, 서비스분야로의 역점이동,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서방무역에 큰 힘 을 기울였다. 1957년 임금-물가를 위한 균동위원회 (Paritaetische Kommission fuer Lohnund Preisfragen)가 창설되면서, 오스트리아 고유의 네오 코포라티즘이 그 제도 적 첫걸음이 옮겨진다. 이후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파트너십은 물가통제와 인프레 이션 억제, 노동관계의 규율뿐만 아니라, 경제 및 사회정책 과정에 깊숙이 관여 함으로써, 이 나라의 경제발전과 사회평화에 크게 기여한다. 대연정을 이끄는 사 회당과 국민당은 노, 사를 대표하는 오스트리아의 주요 경제적 이익집단과 복합 적으로 깊이 얽혀 있기 때문에, 사회적 파트너십의 제도화는 대연정의 내실을 다 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사회적 파트너십이 제도화됨에 따 라 노동갈등이 테이블로 옮겨졌고, 제도화된 이익조정을 통해 생산장애가 제거되 고 정치적 안정성도 높아졌다. 이는 국내외적으로 오스트리아의 정치 및 경제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그런가 하면 1955년의 일반사회보험법(Allgemeines Sozialversicherungsgesetz, ASVG)은 오스트리아가 현대적 복지국가로 받돋음하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 다. 국민당과 사회당은 이념적 지향이나 정책역점에 있어 차이는 있으나, 크게 보아 친 복지국가 정당이다. 따라서 양당은 대연정과 사회적 파트너십의 틀 안 에서 오스트리아가 유럽 굴지의 복지국가로 발전하는데 함께 기여했다. 오스트리아는 또한 1955년 이후 중립정책의 효율적 관리를 통하여 냉전의 소 용돌이 속에서 동서 불럭간의 가교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1961년 6월 빈 에서 케네디와 후르시쵸프 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런가 하면 이미 1955년 12월 유엔에, 그리고 1956년 4월 유럽평의회(Europarat)에 가입함으로서 주권회복 직후 국제적 국가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는 자신의 33

39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중립적 지위를 바탕으로 헝가리 봉기(1956년), 프라하의 봄(1968)년 당시 많은 이들의 피난처가 됨으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955년 국가조약이 체결되고 중립이 선포된 후, 오스트리아인들의 정체성 의식 은 크게 고양되었다. 점차 많은 이들이 이제 오스트리아의 고유한 국민성/민족성 (Nation)에 대한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민족주의 내지 대독일주의를 표방해 온 자유당(FPOe)도 1957년 정당 프로그램에서 변화된 정치상황에 맞춰 우리는 오스트리아의 고유한 국가성(Eigenstaatlichkeit)을 긍정한다 라고 밝혔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몇몇 대목에서는 독일 민족성과 오스트리아 국가성 을 나누어 설명하 고 있어 잠재적 급진 정당으로 변신할 수 있는 그루터기를 남기고 있다. 이처험 오스트리아는 1950, 60년대 통해, 오스트리아 고유한 모델을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 틀을 다져 갔다. 그러나 그들의 합의제 민주주의의 기본 틀인 대연 정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차 피로의 기색이 역력해졌다. 주권회복이라는 국가적 공동목표를 성취한 이후, 양대 당 간의 갈등이 잦자지고, 대연정의 어두 운 측면이 부각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 두 정당을 이어 주는 연결점은 공동목표 나 공동이익이 아니라 상대 당의 단독집권에 대한 불신과 우려로 치환이 되어 있었다. 증대되는 경정 무능력 이 자주 언급되었다. 그런가 하면, 이미 합스부르 크 시대부터 습성화된 junktimieren (전혀 별개의 정치적 성격을 지닌 결정을 주고 받기식으로 한 몫에 해결하는 것는 방식), 'fortwusteln (떳떳하지 못한 방 식으로 일을 꾸리기), 기타 주요 문제의 뒤로 미루기의 반복 등을 일삼았다. 공 직 정실주의, 그와 연계되는 부패도 대연정 비판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대연 정을 이끌어 오던 양당의 거물급 정치가들이 정치무대에서 물러난 것도 대연정 에 대한 신뢰 실추의 원인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1966년 3월 국민의회 선거에서 국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이어서 양대 당의 연정협상이 좌초되면서 대연정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하루아 침에 국민당의 집권당으로, 사회당은 야당으로 새로운 역할을 학습하게 되었다. 대연정의 붕괴로 인해 자칫 제1 공화국의 원심적 민주주의로 복귀하지 않을까 하는 일부의 우려가 있었으나, 이는 근거 없는 기우였다. 정치사회내에 민주주의 34

40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에 대한 기본적 합의는 이미 안정되어 있었고, 제1공화국의 전철은 더 이상 되 풀이 되지 않았다. 단독정부의 출범으로 이제 의회과 야당이 제 구실을 찾았다 는 의미에서 오히려 그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될 수 있었다 아울러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중요한 사실은. 대연정의 종언에도 불구하고 노. 사, 정 간의 사회적 합의체제인 사회적 파트너십은 단독정부 아래서도 별 어려움 없이 그대로 존속했다는 것이다. 후 대연정 시기의 정치적 프락시스에서 흥미있 는 사실은, 대연정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jkitimieren'이 제한적으로 존 속되었다는 사실이다 22). 크라이스키 시대 ( ) 1970년 사회당은 크라이스키(Bruno Kreisky)를 앞세워 총선에서 승리한 후, 자 유당의 묵인 및 지원아래 소수 단독정부를 구성한다. 역사상 최초의 사민당 정 부의 출범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시민정당만이 통치가능하다는 전래의 속설을 불식 시켰다. 다음해 앞당겨진 총선에서 사회당은 국민의회의 총 의석 183석 중 93석 (국민당 80석, 자유당 10석)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여, 안정적 장기통치의 발판 을 마련한다. 이후 크라이스키의 뛰어난 리더십과 정치, 경제, 사회 및 외교 전 분야에 걸친 개혁을 통하여, 이 나라를 세계와 호홉하는 개방적인 나라로 만들었 고, 생활수준의 획기적인 향상과 더불어, 오스트리아 복지국가의 황금시대 를 마 련했다. 오스트리아 모델이 안정적으로 정착된 것도 그의 치하에서 였다. 크라이스키는 우선 사회당의 체질을 크게 개선했다. 당내의 계급투쟁적 요소를 크게 떨쳐버리고, 당시 자유화와 반위계화(Liberalisierung und antihierarchisierung)를 지향하는 시대적 추세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 특히 그가 사회정책적 으로 적극적으로 지향했던 모두를 위한 복지국가 (Wohlfahrtsstaat fuer Alle)의 개념은 사회당이 모든 계층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온건 개혁정당이라는 이미지를 22) 그 예로서 국민당이 원하는 농산물 시장질서법의 연장과 사회당이 추진했던 국영기업의 재조직 간의 Junktim'이다. 여기서 국영기업의 재조직은 국영기업의 이사회와 감사회를 국민당와 사회당의 비례에 따라 구성한다는 내용을 담았다(Ahn 1970, 92). 35

41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확산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결과 그의 통치기간 중 사회당의 당원 및 투표 자의 구성에서 사무원과 공무원 등 화이트 칼라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크라이스키는 주당 40시간 노동, 노동자의 경영참가 확대, 국유산업체의 통합, 여성동등권을 내용으로 하는 가족법개정, 성인연령의 인하, 형사법의 개정, 대학 조직의 개혁 등 전 사회적으로 광범한 제도개혁을 성취하였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 석유파동 등으로 전 유럽이 경제위기로 허덕일 때, 이른바 오스트로 케인지아니즘 23) (Austro-Keynsianim)을 통해 실업을 극복하고, 오스트리아를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두드러진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중립정책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동서 불럭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중동분쟁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직접 중재자로 나서기도 하였다. 주지하듯이 그는 아라파 트와 카다피를 만난 최초의 서방 정치인이었다. (그런가 하면 빈은 UNO, IAEO 및 OPEC 과 같은 다수의 국제기구를 불러 들였다.)그의 이러한 적극적 중립정 책 (aktive Neutralitaetspolitik)은 오스트리아의 국제적 지위향상과 국민들의 자존 감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크라이스키는 1970년대의 석유파동이후 원자력발전소를 건립하여 석유 의존도 를 낮추려 하였다. 그러나 1978년 츠베텐돌프(Zwetendorf) 원자력발전소에 관한 국민투표에서 발전소의 가동이 간발의 차이로 거부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한 다. 그런가 하면 그의 절대적 목표였던 완전고용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급격한 국가부채의 증가로 비판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1983년 4월 총선에서 사회당은 절대다수를 얻는데 실패하고, 한 시대를 풍미 했던 크라이스키는 정치무대에서 물러난다. 같은 해 5월 시노바츠(Fred Sinowatz)를 수상으로 사회당과 자유당간의 연정이 형성된다. 이른바 적-청 연 23) 1960, 70년간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은 전형적인 케인지안 수요관리의 입장이었는데, 오스트로 케인지아 니즘은 공급과 수요 측면을 동시에 관리하는 비전형적 혼합모델이었다. 이는 다섯 개의 요소로 구성된 다. 그 중 앞의 두 개는 전형적인 케인지안 수요관리 정책, 즉 1) 수요을 자극시키기 위한 케인지안 적 자지출과 2) 사적 투자를 진작시키기 위한 케인지안 저이자 통화정책이었는데, 이외에, 두 개의 통화주 의적 터치의 오스트리아 보충 수단, 즉 3) DM에 대한 오스트로 경화 정책 4) 국내적 비용상승 인프레 이션을 막기 위한 오스트로 적정 임급정책, 그리고 충격 완충용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온 5) 고 용위기 때 노동력을 품에 안는 국영기업내의 오스트로 고용정책이 그것이었다. 36

42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정은 크라이스키의 개혁노선에서 벗어나 현상유지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1984년 하인부르그(Heinburg)의 도나우발전소 건설계획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생태논 쟁이 가열화되고 급기야는 민중들의 점거와 농성으로 이어진다. 츠베켄돌프와 하 인베르그 사태의 추이는 사회적 파트너십이 국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 다는 것을 분명하게 했다. 아울러 엘리트간의 합의를 무산시키는 기초민주주의의 힘과 새롭게 대두되는 생태주의의 정치력, 그리고 향후 에너지 정책의 방향 등을 강하게 보여 주었다. 1985년 전 유엔 사무총장 발트하임( Kurt Waldheim)이 국민당의 대통령 후보 로 나서는 과정에서 야기된 발트하임 사건 (Waldheim Affaire)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 이목을 끌었다. 당시 시사주간지에 나온 충격적인 기사 내용은 그가 년간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에서 나치 정보장교로 근무하면서 6만 여명 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데 간여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발트하임은 많은 세계인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발트하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오스트리아인의 빗나간 역사의식의 맹점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자, 그간 스스로를 히틀러 의 첫 번째 희생자 라는 희생자 명제 (Opfermythos)만을 앞세웠던 오스트리아인 들이 허의의식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오스트리아 모델의 재창조(1987-) 198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오스트리아는 국내외적으로 엄습하는 엄청난 변 화의 영향권 안에 들게 된다. 산업사회의 후퇴와 후기 산업사회의 도래, 후물질 주의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 세계화, 유럽화, 냉전의 종식과 소련 및 동구의 자 유화, 인구론적 변화 등이 그것인데, 이들 충격요인들은 오스트리아 모델을 구성 하는 모든 제도 및 정책의 기반을 흔들고 이들에게 변화와 쇄신을 요구하게 된 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의 초기 징후들은 분야에 따라서는 이미 1980년대 진입 이전부터 인지되기 시작했으나, 대체로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과 제도개혁으로 이어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다. 37

43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오스트리아 모델의 재창조 시기는 2000년 국민당과 자유당의 소연정이 구축되 기 이전 시기와 그 이후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전반기는 재창조를 위한 초기 변화가 찾아오는 시기로, 그리고 후반기는 틀이 정착되고 변 화가 가속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시기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뒤에 이어지는 장( 章 )들에서 비교적 자세히 언급할 것이기 때문에 자칫 중복의 우려가 있기 때 문이다. - 참고 문헌 - Ahn, Byung Young (1970). Der Entwicklungsprosess der poliischen Parteien in Oesterreich, Dissertation(Dr,rer.pol), Universitaet Wien. Diamant, Alfred(1968). die oesterreichische Katholiken und die erste Repbulik, Wien. Friest, Christian u.a. (2009). Die Oesterreicherinnen Wertwandel , Wien. Gehler, Michael(2006). Die Zweiter Republik-zwischen Konsens und Konflikt. Historischer Ueberblick( ), in: Herbert Dachs/Peter Gerlich/ Herbert Gottweis/Helmut Kramer/Volksmar Lauber/Wolfgang C. Mueller/Emmerich Talos(Hg.): Politik in Oeserreich das Handbuch, Wien. Kautsky, Benedikt (1953). Geistige Stoemungen in oesterreichischen Sozialismus, Wien. 38

44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Leser, Nobert(1968). Zwischen Reformismus und Bolschewismus, Der \ Austromarxismus ale Theorie und Praxis, Wien. Mueller, Wolfgang C.(2006). Towards a Liberal market Economy? Political Economy and Political Forces of Change in Austria. Prot-Paper prepared for the conference "Austria as a Mirror for Small States in the European Union"(April 7, 2006) Minda de Gunzberg Center for European Studies Harbard University. Pelinka, Anton/Rosenberger, sieglinde (2007). Oesterreichische Politik: Grundlagen Strukturen Trends, 3., akualisierte Auflage, Wien. Rathkolb, Oliver (2011). Die paradoxe Repblik Oesterreich , Wien. Vodopivec, Alexander(1962). Wer regiert in Oesterreich, Die Aera Gorbach- Pitterman, Wien. 39

45 오스트리아 정치체계의 특징 Ⅱ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볼 때,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 유럽의 선진 여러 나라에 비해 산업화, 민주화에 있어 크게 뒤졌다. 그런가 하면 체제 민주화 의 결정적 계기도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한 것이 아니라, 제1차, 2차 대전 이후 두 번에 걸친 전승국들의 위로부터 의 개입으로 이루어 진 것이다. 오스트리아의 정치과정에서 드러나는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관료주의적 특색도 이 나라의 이 러한 역사적 전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불 수 있다. 여기서는 오스트리아 정 치체계의 기본적인 특징을 간추려 본다. 이는 뒤의 주제별 논의를 위해서도 필 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1. 헌법의 전개와 기본 구조 오스트리아 정치체계는 민주주의 원칙, 공화주의적 국가형태, 연방국가, 권력분 립, 자유주의적 원칙 및 유럽연방 소속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치체계의 가장 주 요한 법적 기초는 유럽연합의 리사본 협약과 연방헌법이다. 오스트리아 헌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태생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1 공화국에서 1920년 처음 제정되고, 1929년에 개정된 오스트리아 연방헌법 (B-VG von 1920)은 사회주의 진영과 기독보수주의 진영 간의 정치적 타협의 산 물이었다. 1920년 처음 제정될 당시에는 권력관계의 맥락에서 사회주의 진영이 보다 우세한 입장이었고, 1929 년 개정될 때에는 기독보수주의 세력이 더 강화 된 상황이었다. 1929년 연방헌법의 개정으로, 1920년 헌법의 의회주의적 성격이

46 오스트리아의 갈등관리와 체제통합에 관한 연구 약화되고, 대신 대통령의 권능이 강화된 것도 이러한 권력관계의 추이를 반영한 것이었다. 제1 공화국에서 양대 진영은 국가 기본법 목록을 합의하지 못했다. 연방헌법 에 1867년의 국가기본법 형태로 합스부르크 제국시대의 기본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제2 공화국에서도 몇 번의 시도가 있었으나, 끝내 기본법을 새로 작성하는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그 태생적 특생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기본 법은 자유주의적 성격은 충분하나 사회적 성향이 부족하다. 양대 진영 간의 1929 년의 정치적 타협은 1945년 제2공화국이 출범한 이후에 도 그대로 이어졌다. 정치적 합의 지향의 국민당과 사회당은 자칫 양당 간의 화 해 무드를 깰 수 있는 헌법적 논쟁을 피하고 싶었고, 더욱이 1929년 헌법의 폐 기를 주장하는 공산당의 공세를 공동으로 방어해야 할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입장을 지켰다. 유럽연합(EU)의 구성국가인 오스트리아는 (준 準 ) 의회주의적 민주국가이다. 오 스트리아와 유럽연합(EU)간의 역할분할은 유럽협약(EU-Vertrag)에 의해, 그리고 연방(Bund)과 연방주(Bundeslaender)간의 역할분할은 연방헌법(B-VG)에 의해 규 율된다. 국민의회(Nationalrat)은 단순다수의 의결로서 연방정부와 개별 장관을 해임할 수 있고, 이런 형식으로 정부를 전복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정부와 의회 간의 제도적 권력분립은 연방정부와 의회 다수세력 간의 실질적 동질성에 의해 큰 의 미가 없다. 국민의회 선거는 비례대표선거법에 의해 시행되며, 선거결과에 준거 해서 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의회선거는 정부선거의 성격을 지닌다. 대통령은 국민직선에 의해 선출된다. 따라서 그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가 국민 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대통령은 역시 국민에 의해 선출되는 국민의회와 같은 반열에서 서로 경합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는 의회에 대해 아무런 정치적 책임 을 지지 않으며, 연방수상과 -그의 제안에 따라-연방정부의 다른 구성원들을 임 명하고, 또 해임 할 수 있다. 이처럼 오스트리아 정부구조는 의회주의적 요소와 대통령제적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어 일종의 혼합체제 (gemischtes System)라고

47 한국행정연구원 수시과제 할 수 있다. 24) 오스트리아의 연방헌법은 일견해서,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이나 프랑스 제5공화 국 헌법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오스트리아 헌법의 전개과정을 보 면, 대툥령제적 특색은 약화되고, 의회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일 반 시민들의 정치인식 속에서도 오스트리아 정치의 중심축은 단연 의회이다. 이 는 그가 정부당의 최고지도자며, 스스로 대통령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연맥된다(Pelinka). 그러나 이러한 의회주의적 본질의 우선성은 국민회의 내에 안정적이고 명백한 다수관계를 전제로 한다. 1980년대까지 오스트리아 정치체계의 본질적 특징이었 던 정당체제의 '집중'(Kaonzentration), 다시 말해 양대 정당의 합의적 구조는 안 정된 의회다수를 형성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고, 이러한 제한된 상황에서 대통 령도 자신의 역할강화를 시도해 볼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2000년대 이후 양대 당에 의한 카르텔의 퇴조로 정당체제의 집중이 크게 약화된 상황에서, 앞으로 의회(국민의회)와 정부수장(대통령)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좀 더 두고 보아야 할 문제다. 연방헌법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연방주의 (Federalismus) 또한 일종의 혼합형 이다. 즉 헌법 15조는 연방정부에게 명시적으로 유보되지 않은 모 든 문제의 관할권은 주정부가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에게 유보되어 있는 법적 영역은 수가 많지 않을뿐더러, 덜 주요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오스트 리아의 연방주의는 대체로 취약할뿐더러 덜 발달된 것으로 (unterentwickelt)으로 평가된다 25). 오스트리아를 집권적 연방국가 (zentralisierter Bundesstaat)라 부르 24) 서구 정치체게 중, 이러한 혼합모형을 갖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 포르투갈, 핀란드 등이 있다. 옛 공산 주의 국가 중에도 자유화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모형을 취하는 나라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 와 폴란드이다. 러시아을 제외하면, 러시아를 제외하면, 이러한 동서유럽의 혼합모형들은 대체로 의회 가 더 우세한 유형으로 수렴한다. 이는 대통령과 의회 간의 이견이 있을 때에,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정부와 정부구성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elinka/Rosenberger, 69). 25) 외교, 국가안보, 법무, 재정, 민, 사법, 경찰 및 교육 등은 연방정부가 거의 배타적으로 책임지며, 다른 법적 영역에 대해서도 대체로 연방정부가 이미 경정한 사안에 대해 지방정부는 법 집행의 책임만 진 다. 선거, 고속도로, 경찰, 주택문제 등이 그러하다. 여타의 법적 영역들은 주 차원에서 제정 집행되나, 연방정부에서 마련한 지침의 테두리 안에서 시행되는데, 사회복지, 토지관계가 그런 영역이다. 주가 주 된 권한을 확보하고 있는 영역은 쓰레기 수거, 지역구획, 유치원, 건축 및 소방, 관광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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