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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ntents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01 : 당대성과 전통성의 양가적 만화 07 강철수 <팔불출> _ 박인하(청강문화산업대 교수) 02 :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17 강철수의 초기 성인극화를 중심으로 _ 서은영(만화연구가) 03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활자화 29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_ 한상정(상지대학교 교수) 04 : 독자를 잡기의 세계로 안내하는 잡기( 雜 技 )에 능한 잡꾼의 썰 39 강철수 바둑만화 _ 이원석(공주대학교 교수) 05 : 만화 OSMU 초기모델로서의 <발바리의 추억> 47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_ 임학순(가톨릭대학교 교수), 이승진(우송대학교 교수) 06 : 만화가 강철수 인터뷰 59 _ 윤기헌(부산대학교 교수), 김병수(목원대학교 교수)

6 part 2. 만화포럼 리포트 01 : 제5차 만화포럼 81 만화, 시각적 특성이 지배하는 서사적 종( 種 ) 을 다루는 본질적 문제들 _ 한상정(상지대학교 교수) 한국만화연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_ 백정숙(만화평론가) 02 : 제6차 만화포럼 99 만화비평 유머 4컷 만화가 석동연 작품론 _ 이화자(공주대학교 교수) 03 : 제7차 만화포럼 113 부천 만화클러스터 : 집적을 넘어 창조도시로 _ 임학순(가톨릭대학교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 교수, 문화비즈니스연구소장) 한국만화계의 미싱링크들 _ 박인하(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평론가) 04 : 제9차 만화포럼 133 웹툰의 광고효과 연구 _ 이승진(우송대학교) 근대 만화의 인접 장르 인식과 교합 양상 _ 서은영(한국종합예술대학교)

7 part 1

8 2014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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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1 당대성과 전통성의 양가적 만화 강철수 <팔불출> 박인하 _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1. 조명되지 못한 당대의 작가 강철수 2. 역사만화가 아닌 장편 시대극화 <팔불출> 3. 청춘 극화의 빠진 고리 <팔불출> 4. 역사서사가 없는 <팔불출> 5. 당대성과 전통성, 양가적 특징을 보여주는 <팔불출> 6. 결론

11 8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1. 조명되지 못한 당대의 작가 강철수 강철수는 당대의 인기에 비해 후대에 가장 기억되지 못한 작가이다. 일찍 데뷔해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또 성인극화를 수 십 년간 꾸준히 작업을 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강철수는 당대에 봤을 때 가장 유명한 작가이며 동시에 대중적인 작가였다. 만화뿐만 아니라 스스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감독을 맡기도 했다. 1) 1984년에는 당시 가장 유명했던 어린이 TV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TV 쇼의 패널로도 출연했고, <발바리의 추억>의 히트 후에는 스포츠 신문 전 면 광고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만화역사나 비평 등에서 강철수의 이름을 찾기 쉽지 않다. 1995년 4월 14일 영화 주간지 씨네 21 이 창간되면서 매주 한국만화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을 한 편씩 소개했다. 이후 이 연재물은 1998년 <호호에서 아하까지>(교보문고)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였다가, 다시 2002년 <날자! 우리만화>(교보문고) 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 책에는 48편의 만화가 소개되었는데, 그 중 강철수의 작품은 <사랑의 낙서> 한편이었다. <사랑의 낙서>는 70년대 성인만화의 등장을 이야기할 때마다 거론되었다. 하지만, 성인만화의 시작점은 1972년 1월 1일 일간스포츠 창간호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고우영의 <임꺽정>이 차지했다. 고우영은 정통 사극 <임꺽정> 후속작으로 <수호지>를 1973년 6 월 18일부터 연재하기 시작한다. 고우영은 중국 명대의 무협 소설을 고우영 스타일로 천연덕스럽게 각색했다. 전작인 <임꺽정>이 정통 역사만화 스타일이 었다면, <수호지>는 여기에 고우영식 유머를 덧입혔다. 유머를 덧입힌 이야기에 대중은 환호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지닌 불온 성은 이 작품을 단명하게 만들었다. 1974년 5월 6일, 271회로 연재가 중단된다. (박인하 7080 대중문화 풍경과 스포츠 신문 만화, <고우영 이야기>, 씨네이십일(주) 아르코미술관, 2008, PP ) 성인만화의 결정적 변화는 1974년에 시작된다. 1973년 <수호지>가 <극화 고우영 수호지>(김 데스크)라는 제목으로 가판용 만화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며 1974년도에도 계속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강철수도 1974년 주간여성 에 <사랑의 낙서>를 연 재하고, 이를 화문각에서 가판용 만화로 출간했다. 초기에는 주간여성 연재분으로 단행본을 묶었다가, 이후 단행본용을 새 로 그리기도 했다. <사랑의 낙서>는 <임꺽정>, <수호지>와 함께 70년대 짧은 성인만화 시대를 열었지만, 가볍게 설명되고 넘 어갈 뿐이다. 게다가 <사랑의 낙서>를 제외하면 만화역사나 비평에서는 구체적으로 다뤄지는 작품을 찾기도 힘들다. 60년대 잡지와 만화방 만화를 넘나들며 서부극, 스포츠, 고전사극 등 다양한 장르를 발표했고, 70년대에는 <사랑의 낙서>를 통해 청 춘극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으며, 80년대에는 <팔불출>이라는 독특한 사극을 발표했으며,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는 <발바리의 추억>으로 신드롬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영화 <매춘>(1988) 이후 불어닥친 성인영화 붐과 잡지, 스포츠신문에서 큰 인기를 구가하던 성인만화가 절묘하게 결합하며 강철수, 한희작, 배금택 성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성인영화의 시대를 연다. (중략) <서울손자병법>(1986), <가루지기>(1988), <사랑의 낙서>(1988), <들병이>(1989), <발바리의 추억>(1989), <돈아돈아돈아>(1991), <한희작의 러브러브>(1991), <변금련2>(1992), <애사당 홍도>(1992)로 이어진 성인만화 원작 영화는 원작의 가치를 무색하게 할 영화로 만화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시기 <가루기지>와 <발바리의 추억>은 직접 원작자인 고우영과 강철수 작가가 감독을 맡기도 했는데, 만화가가 만든 영화 정도의 화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절묘하게도 강철수-한희 작-배금택으로 이어지는 성인만화의 계보를 성인영화가 함께 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박인하 <은밀하고 위대하게, 스크린을 만난 만화-만화의 시대에서 웹툰 그리고 영화화까지>, 한국영상자료원 웹진 영화천국 33호, 2013년 9/10월호)

12 01 : 당대성과 전통성의 양가적 만화 9 2. 역사만화가 아닌 장편 시대극화 <팔불출> <팔불출>은 1979년 3월 주간경향 에 연재된 작품이며, 1980년 2월 19일 기린원에서 단행본 1권이 출판되었다. 2) <팔불출> 의 시대적 배경은 16-17세기로 추정된다. 기린원판 3) 2권 난중희곡( 亂 中 喜 哭 ) 편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시대가 특정되었는데, 여기서 난은 1592년의 임진왜란이다. <팔불출>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바보스러운 캐릭터 팔불출 의 활약을 그린 사극이다. 이를 오규원은 장편 시대극화 라 명명했다. 70년대에 와서 오락만화의 세대 를 형성하는 그룹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는 강철수의 <팔불출( 八 不 出 )>은 이른바 장편 시대극화( 長 篇 時 代 劇 畵 )이다. 이때의 시대 라는 말은 대체로 과거의 역사적 또는 야사적( 野 史 的 ) 성격을 띤 소재를 다루고 있 다는, 소재의 색깔을 확실히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편법으로 사용하는 어휘이다. 그러나 그것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 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문제를 제기하자면 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극화 <팔불출>이 만화로서 무엇을 우리에게 보고 있는가 라고 해 볼 수도 있다. 시대극화라고 해서 따로 다른 극화로부터 분리해서 가치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규원 <한국만화의 현실>, 열화당, 1981, p.60) 4) 위에 인용한 오규원의 글이 작성된 시점이 1980년 <팔불출>이 연재되던 중이었으므로, 장편 시대극화 라는 용어는 <팔불출 >을 규정하는 당대의 용어가 된다. 여기서 장편 은 분량의 문제이니까, <팔불출>을 직접 규정하는 용어는 시대극화 이다. 그 리고 이 시대극화라는 의미는 역사적 또는 야사적 성격을 띤 소재 를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 오규원은 이에 대해 편법으로 사용하는 어휘 라고 강하게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즉, <팔불출>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역사만화 혹은 사극 이 아닌 그 시대를 소재로 활용한 시대극화 라는 말이다. 역사적 또는 야사적 성격을 띤 소재 로 창작된 <팔불출>을 시대극화 로 규정한다면, 역사만화와의 관계는 어떻게 규정해 야 하나. 먼저, 역사만화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두호 만화와 역사의 부정성 (한창완 외 <조선을 그린 이두호>, 씨엔 씨레볼루션, 2008, PP.80-82)에서 공임순의 역사소설의 4가지 분류 를 인용해 역사만화를 구분했다. 아래 표와 같이 구분했 다. 좌측의 기록적 역사는 공적 역사 서사를 다룬 만화이고, 우측으로 갈수록 허구(환상)의 영역이 확대된다. [표 1] 역사소설, 역사만화의 구분 5) 구분 기록적 가장적 창안적 환상적 역사와 환상의 표현 정도 공적 역사 중심 역사 > 허구 역사 < 허구 환상 2)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자료에는 <팔불출>이 1980년 주간경향 에 연재되었다고 되어있다. 강철수 작가도 인뷰를 통해 1974년 주간여성 지에 <사랑의 낙서>,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주간경향에 <팔불출>을 연재할 무렵 이미 성인극화 시대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모두 젊은 시절 나와 운명을 함께한 소중한 것들이다. ( 다큐영화 준비하는 <발바리의 추억>의 만화가 강철수, 인터뷰 365, http://interview365.mk.co.kr/news/3027)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팔불출> 초판본인 기린원 판이 1980년 2월 19일에 발행되었 다. 1980년 10월 4일 동아일보 의 만화원작 바꾸지 않고 그대로 화면에 라는 기사에서 <팔불출>은 지난해봄부터 지금까지 1년 7개월 가까이 주간경향 에 연재되고 있는데 라는 설 명이 등장했다. 1980년 10월 4일에서 1년 7개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1979년 3월이 된다. 즉, <팔불출>은 작가의 기억과 달리 1979년 3월부터 주간경향 에 연재한 것이다. 3) <팔불출>은 여러 번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는데, 1980년에 출간된 최초의 단행본이 기린원판이다. 1권은 1980년 2월 19일, 2권은 5월 10일 발행되었다. 1981년 우석출판사에서 <인 간 팔불출>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시리즈 6권, 7권은 <속 팔불출>이라는 제목으로 1982년에 출간되었다.(출간 사실만 확인. 판본은 미확인) 기린원판은 1987년 동아문예에서 양 장본으로 재출간되었고, 같은 해 고려가에서 5권으로 출간했다. 1992년 한국문예출판은 만화방용(140쪽 내외) 10권으로 재편집해 완간했고, 가로쓰기로 재편집되어 출간된 2002년 우석판이 2014년 현재 <팔불출>의 마지막 판본이다. 4) 이 글은 원래 1980년 출간된 기린원판 <팔불출>의 서문으로 작성되었다. 5) 박인하, 이두호 만화와 역사의 부정성, 한창완 외 <조선을 그린 이두호>, 씨엔씨레볼루션, 2008, p.81.

13 10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공임순은 터너(Joseph W. Turner)의 논의를 가져와 역사소설을 기록적, 창안적, 가장적 역사소설로 구분했다. 이처럼 크 게 양분되는 것으로서의 역사 소설과 역사 소설 의 경계를 구분지은 터너는 역사 소설에 가장 근접해 있는 역사 소설의 종류 로 기록적 역사소설을 들고 있는 반면, 역사 소설 에 가장 근접해 있는 역사 소설의 종류로 창안적 역사소설을 꼽는다. (중 략) 역사소설의 한 축에 기록적 역사소설이 있고, 다른 한 축에 창안적 역사소설이 놓여질 때, 그 중간 지점에는 그가 설정한 가장적 역사소설이 있다. 이 가장적 역사소설은 기록된 과거를 변장하는 것으로 기록적인 것과 창안적인 것 사이에 놓여 있 다. 일련의 연속체를 구성하는 이 세 범주는 역사소설이라는 단일한 장르로 묶인다 하더라도, 각기 다른 기대지평을 구성한다 는 점에서 차별화시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공임순,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장르론적 연구, 서강대 대학원 박사, 2000, p.46) 그리고 여기에 환상적 역사소설 을 추가했다. 표에서 보듯, 역사소설의 구분은 역사 와 허구 중 어느 부분이 우위에 있느 냐에 초점을 맞춘다. 기록적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 해석 등을 기대하며 창작, 소비된다. 반면, 창안적 역사는 역사에 대한 창조적 허구를 기대한다. 시간적으로 보자면, 기록적 역사소설이 가까운 과거를, 창안적 역사소설이 먼 과거를 주로 그린다. 역사만화는 대부분 창안적 특징을 갖고 있다. 고우영의 <임꺽정>이나, <일지매>, 방학기의 <애사당 홍도>나 <바리데기>, 이두호의 <덩더꿍> 같은 작품들은 대부분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공적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중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야말로 창안적으로 담아낸다. 반면 환상적 역사소설은 장르 적으로 구분하면 판타지의 영역이다. 김진의 <바람의 나라>, 김혜린의 <불의 검>과 같은 작품은 환상적 역사 만화로 구분되 며, 공임순의 표현을 빌면 합의된 리얼리티의 이탈 (앞의 논문, p.52)이다. 그렇다면, <팔불출>은 위에서 구분한 기록적 / 가 장적 / 창안적 / 환상적 역사만화의 영역 중 어디에 포함되는 것인가? 오규원은 시대극화 라는 정의에서 과거의 역사적 또는 야사적 성격을 띤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작품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고 확정한다. 역사만화는 적어도 역사서사가 작품에 직접적 영향을 끼쳐야 한다. 환상적인 역사만화 조차도 환상적 방법으로 역사서사를 다뤄야 한다. 이런 측 면에서 보자면, <팔불출>은 기린원판 2권 난중희곡 편을 제외하면 역사서사와 영향관계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측면 때문에 오 규원은 <팔불출>을 장편시대극화 라고 설명하고, 다른 극화로부터 분리해서 가치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 다고 단언한 것이 다. 다시 설명하면, <팔불출>은 역사만화가 아닌 것이다. 3. 청춘극화의 빠진 고리 <팔불출> <팔불출>의 장르적 속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팔불출>의 앞과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팔불출>의 앞에는 청춘극화의 모델 을 제시한 <사랑의 낙서>가 있다. 고우영의 고전극화와 강철수의 청춘극화는 70년대 가판용 성인만화 붐을 끌어냈다.(가판대 만화는 성인만화의 붐을 끌어내는듯 싶었지만, 정부의 심의와 무분별한-당시 표현을 빌자면 저질 만화-의 출간으로 봄눈처 럼 사라졌다) 70년대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와 자유연애의 청춘문화를 담아낸 <사랑의 낙서>는 80년대 <팔불출>을 거쳐 90 년대 <발바리의 추억>으로 이어졌다. 각각 성격은 다르지만, 이 세 히트작은 다른 유사한 작품군과 어울리며 강철수의 당대적 청춘극화의 계보를 완성했다. <사랑의 낙서>는 남녀 간의 미묘한 사랑싸움과 거기서 비롯되는 작은 오해들을 다룬 만화다. 멋지게 담배를 피워 문 즉, 크

14 01 : 당대성과 전통성의 양가적 만화 11 린트 이스트우드를 닮은 남자를 사모해 가슴앓이를 하다 어렵게 말을 걸지만 자신은 위암이라며 여자의 사랑을 거부한다. 하 지만 알고 보니 위암이 아니라 회층증 이었다. 멋진 청년이 너무 짠돌이어서 점점 싫어졌는데, 알고 보니 집안이 망해 정말 어 려웠다는 것을 알고 오해가 풀렸다. 늘 농담만 하던 남자의 버릇을 고치려고 다른 애인이 생겼다는 헛소문을 낸다.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서사다. 어린이 만화들만 있을 70년대 당시 청바지를 입고, 스카프를 한 여 주인공의 데이트를 보는 것 만으로도 당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1972년 12월 27일에 유신헌법을 공포한 박정희가 1974년 대통령긴급조치 를 발동했던 바로 그 시대였다. 멋진 선남선녀가 마음 놓고 데이트를 하고, 가벼운 오해와 우스개를 보는 것만으로도 젊은 독 자들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팔불출>을 건너가면, 90년대 스포츠 신문 만화 붐을 끌어간 <발바리의 추억>이 있다. <발바리의 추억>은 <사랑의 낙서>의 90년대 판이다. 1988년 스포츠서울 에 <발바리의 추억>이 연재되며 선풍적 인기를 모은다. 70년대 <사랑의 낙서>가 선보인 바바리 깃 올린 남자 주인공 모습을 넘어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달호는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둘은 장르적으로 어렵지 않게 연계된다. 두 작품 모두 청춘극화이며, <사랑의 낙서>는 70년대적 정서를, <발바리의 추억>은 90년대적 정서를 담아낸다. 그런데 그 가운데 80년대적 정서를 담은 청춘극화가 <팔불출>이다. <팔불출>은 주거부정 머슴, 스스로 자유머슴을 주장하는 팔불출 의 여정을 보여주는 만화다. 그는 겉으로 보기에 바보이다. 힘이 좋고, 먹을 걸 좋아한다. 그런데 문득문득 바보가 아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한문으로 시를 읊는다거나, 독사와 논뱀을 구분하거나, 뛰어난 무술실력을 보여준다. 많은 여자들이 팔불출을 좋아하고, 조금 멍청하긴 해도 당신은 착하고 매력적인 사내에요. 그리고 패기도 있고 또 희망적이고. (2권, p.70)라고 평가한다. 이런 이중적 캐릭터는 낯설지 않다. 히어로 장르의 기본 속성도 신분을 감춘 주인공이다. 허영만의 <각시탈>의 히어로 이강산도 바보흉내를 낸다. 하지만 팔불출은 이중적 캐릭 터가 아니라 모호한 캐릭터다.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당대를 호출하는 작용을 하는 캐릭터로 <팔불출>의 역사서사를 지 우는 역할을 한다. [그림 1] <팔불출> 2권, p.70

15 12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팔불출>의 기본 구조는 거의 유사하다. 팔불출이 떠돈다. 누군가를 만난다. 밥을 얻어 먹기 위해(머슴을 살기 위해) 좇아간 다. 여자를 만난다. 여자는 팔불출에게 호감을 갖는다. 팔불출도 여자에게 다가간다. 여자가 팔불출에게 다가가면, 팔불출이 도망간다와 같은 구조가 반복된다. 한국문예출판판으로 살펴보자. 1권에서는 좌의정 아들이라 주장하는 꼬마를 만난다. 꼬마와 함께 한양으로 간다. 배고파 들른 과부집에서 미모의 과부를 만난다. 함께 한양으로 올라간다. 꼬마는 알고 보니 좌의정 아들이 아니고, 과부가 팔불출에게 청혼하지만 팔불출이 거부한 다. 안되겠어요. 아무래도 2권에서 팔불출은 송도의 소실로 시 집가기 위해 길을 떠난 일행을 만난 다. 팔불출이 젊은 처자에게 반해 쫓 아간다. 산적에게서 이들을 구해주고, 처자가 물린 뱀이 독사가 아니라는 걸 알아낸다. 우여곡절 끝에 송도에 도착 하지만, 부자는 죽어버렸다. 처자는 팔불출에게 결혼하자고 고백하고, 팔 불출은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치하고도 아리송한 대사가 들어가 는 영화가 어째서 손님이 많이 드는지 를 이제야 알겠네요. 라고 처자의 청 [그림 2] <팔불출> 2권, p.141~140 혼을 거부한다. 이렇게 <팔불출>에는 항상 예쁜 처 자가 등장하고, 그 처자는 팔불출에게 반해 결혼을 청하지만 늘 팔불출이 거절한다. 3권 두발개혁론을 주장하는 단발 여자가 나오고, 5권은 무술을 배우는 남장 여자가 나오고, 6권은 앞이 안 보이는 처녀가 등장한다. 이들 처자는 모두 예쁘고, 결국에 는 팔불출을 좋아하게 된다. 전형적인 청춘극화의 구조다. 누구에게나 꼬리치고, 또 결국에는 상대편이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 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팔불출. <사랑의 낙서>에 등장하는 애뜻한 사랑과 <발바리의 추억>에 나오는 바람기로 이어주는 청춘 극화의 빠진 고리이다. 4. 역사서사가 없는 <팔불출> 앞서 <팔불출>은 역사서사를 담고 있지 않다고 했다. 배경 사건, 인물에서 역사서사를 구체화하지 않는다. <팔불출>에 나 오는 조선 시대는 역사서사로 조선이 아니라 옛날옛적에 와 같은 그 시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팔불출>은 역사서사를 담고 있 지 않은 대신 80년대의 당대성을 담고 있다.

16 01 : 당대성과 전통성의 양가적 만화 13 한국문예출판판 5권에서 팔불출 은 우연히 울고 있는 남장여인을 만 나 그녀를 따라간다. 그녀는 무술 을 익히고 있고, 팔불출은 대련상 대가 된다. 팔불출에게 무술을 가 르쳐 달라는 인물에게 팔불출이 걱 정하며 말한다. 이것도 엄격히 따 져서 과외수업인데, 포도청에서 단 속 나 오 지 않 을 까? (5권 p.77) 1980년 7월 30일 신군부는 국가보 위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7.30 교 육개혁조치를 발표한다. 이 조치를 [그림 3] <팔불출> 5권 p.77 [그림 4] <팔불출> 5권 p.74 통해 과외교습이 금지된다. 즉, <팔 불출> 5권 무술수업 시퀀스에 등장 하는 대사는 정확하게 1980년대 당대를 반영하고 있다. 강철수는 팔불출 을 통해 끊임없이 오늘을 불러낸다. 팔불출은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 2백년만 더 있어봐 (5권 p.74)라고 말하며, 조니워커블랙, 근로기준법, 컬러TV중계, 공장폐수, KS규격, 새마을호를 이야기한다. 당연히 조선시대로 설정한 만 화의 다른 주인공들은 팔불출의 대사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마치 현대인인 듯한 팔불출의 대사로 인해 <팔불출>은 역사서 사에서 분리된다. 팔불출은 조선이라는 시대로 독자를 끌어들이지 않고, 오히려 80년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80년대의 언어로 말을 건다. 만화는 칸 안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을 만화에 몰입시킨다. 독자들을 칸 안의 세계로 들어 오게 하지, 칸 안의 세계가 칸 바깥의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많지 않다. 만화의 캐릭터나 작가가 만화에서 독자들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주로 70-80년대 명랑만화에 등장하는 기법이다. 길창덕, 윤승운 등의 만화를 보면 작가가 직접 만화에 등 장해 캐릭터와 대화를 한다. <팔불출> 은 70-80년대 명랑만화처럼 이 상황 이 만화임을 대사를 통해 드러낸다. 매를 맞던 팔불출이 명색이 극화의 주인공인데 맞을 수가 있는 거냐 고! (5권 p.37)라고 말한다. 이런 대 사가 나오면, 만화에 몰입해 있던 독 자도 바깥으로 빠져 나온다. 팔불출의 이런 대사는 만화 안의 인물들에게도 [그림 5] <팔불출> 5권 p.37 의아하게 받아들여진다.

17 14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맞기 싫어 도망간 팔불출을 다시 데려오자, 우연을 가장해 남정 여인의 무술을 피해 다닌다. 팔불출의 이중성이 드러나지 않는 이런 장면은 캐릭터에 기괴성( 奇 怪 性, grotesque)의 분위기를 부여한다. 감추어진 정체가 끝까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바보 팔불출과 다른 특별한 실력을 보고 캐릭터에 대해 난데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장에 서 다루겠다. 그날 밤, 팔불출은 고구마 한 알을 들고 야반도주를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장여인은 팔불출에게 단도를 던 지고, 팔불출은 그 칼을 고구마로 막아낸다. 남장 여인이 묻는다. 이것 봐! 넌 도대체 누구지? 정체를 밝혀라! (5권 p.60) 팔 불출은 때가 왔다 싶게 장황하게 떠든다. 바보 / 좀 등신 / 자유로운 머슴 / 자유인 / 노동조합 머슴분과위원회 / 외국유학도 갔다 오고 박사학위도 몇 개씩 받고 그랬어 / 무술박사 / 야구는 5단 / 축구는 7단 / 탁구는 WBA챔피언 / 황금사자기 야구시 합에 나가서 9회말에 패널티킥을 얻어서 통쾌한 전원일치 판정승을 한 몸 / 바둑도 유단자 / 무엇이든지 9단 (5권 P.60-66) 이라고 자기 정체를 말한다. 이를 듣고 있던 남장 여인의 아버지는 야구니 축구니 판쓸이니 그게 다 뭔 말들이냐? 중국서 공 부하고 왔다는 사람들도 그런 말 안쓰던데 (5권 p.67)이라고 말한다. 팔불출은 당대의 언어로 말한다. 그 리고 그 언어를 들은 작품 안의 당대인 (조선인)은 의아해 한다. 이런 충돌을 통해 <팔불출>은 역사서사를 버리고 당 대성을 얻는다. <팔불출>의 계보 머리 에는 70년대 <사랑의 낙서>가 있다. 70 년대 <사랑의 낙서>는 청춘의 삶을 드 러내는 것만으로도 불온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같은 청춘의 기호들은 사회에서 통제되어야할 대상이었다. 80년대 <팔불출>은, 비록 당대성을 지 닌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시대극화 로 [그림 6] <팔불출> 5권, p.60~66 소재와 주제도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5. 당대성과 전통성, 양가적 특징을 보여주는 <팔불출> <팔불출>을 당대에 시대극화 라 구분한 이유는 역사만화에서 있어야할 역사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서사를 지우는 가장 큰 요인은 팔불출 이라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팔불출 캐릭터는 만화 안의 당대인 조선시대 보다는 만화 밖의 당대인 80년대를 사는 인물이다. 80년대의 언어로 조선시대의 인물과 대화한다. 독자와 소통하는 80년대의 당대성을 (1)당대성이라고 하고, 만 화 안의 캐릭터들과 소통하는 당대성을 (2)전통성이라고 하면, <팔불출>에서 이 두 요소를 모두 구현하는 인물이 팔불출 이라 는 캐릭터다. 사실 이 캐릭터는 만화 <팔불출>의 전부이다. 앞서 80년대 독자와 소통하는 당대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18 01 : 당대성과 전통성의 양가적 만화 15 팔불출은 당대성과 동시에 전통성을 보여준다. 팔불출은 한 가지 논리로 풀이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다. 바보, 등신(만화에 나온 표현)이면서, 놀라운 무술 실력을 보이 고 있고, 한시를 짓는다. 대개 이처럼 상반된 특징을 지닌 인물은 위장된 바보 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팔불출은 전체 만화를 통해 바보가 아닌 자신을 한번도 드러내지 않는다. 위장된 바보가 아니라, 한 몸에 바보와 천재의 양가적 특징을 한꺼번에 보 여주는 인물이다. 팔불출은 바보이면서, 천재다. 바보인데 천재다. 바보의 어느 측면에서 천재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와 천재가 공존 한다. 현대 캐릭터라면 도저히 이해 못할 이런 성격은 사실 판소리와 같은 고전서사에서는 익숙하게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판소리를 근거로 판소리계 소설로 정착한 <춘향전>의 춘향이는 팔불출 같은 양가적 성격을 보여주는 모순된 캐릭터다. 조동 일은 이몽룡을 위해서 정절을 지키느라고 변사또의 수청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한 춘향을 열녀라고 칭송했으며, 그렇게 하는 데 합당하게 춘향이는 양반의 서녀로서 품행과 교양을 갖추었다고 했다. 또 한편으로는, 춘향이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에 맞게, 이몽룡에게 혼례를 하지 않고도 몸을 허락했으며, 첫날밤부터 능숙한 성행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변사또는 춘향의 이름을 익 히 듣고 도임하자 마자 기생 점고를 서둘렀다. 춘향과 변사또가 맞설 때, 춘향은 양가의 부녀를 겁탈한다고 항변했으며, 변사 또는 기생이 수절을 하겠다니 가소로운 일이라고 했는데, 그 어느 쪽 주장만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요컨대 춘향은 기생이면 서 기생이 아니다. 신분에서는 기생이지만, 의식에서는 기생이 아니어서, 그 둘 사이의 갈등에서 작품이 전개되고, 신분적 제 약을 청산하고 인간적인 해방을 이룩하는 데 이르렀다. 기생 춘향과 기생 아닌 춘향 중에서 어느 쪽을 강조했느냐는 이본에 따 라 다르고 이본을 나누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지만, 어느 한쪽만 있어서는 작품이 성립되지 않는다.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권, 지식산업사, 1992, PP )고 설명했다. 춘향은 열녀이면서 기생이고, 기생이면서 열녀이다. 품행과 교양을 갖고 있으면서, 만나자마자 몽룡과 능숙한 성행위를 한다. 마치 팔불출을 보는 듯, 상반된 특징이 한 캐릭터 안에 공존한다. 정충권은 판소리 문학에 나타난 사회적 상상력과 기괴 라는 논문에서 판소리 작품에는 인간의 육체를 제재로 하여 예상치 못한 급격한 미적 체험을 하게 하는 기괴( 奇 怪, grotesque)한 대목들도 있어 우리를 당황 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괴의 사례로 <흥부전>에서 놀부가 탄 박에서 장비가 나와 벌이는 유희를 인용했다. 그 유희는 상식적 수준을 넘어 서 있다. 중국 역사 속 인물 장비가, 흥부가 탄 박속으로부터 등장한다는 설정부터가 현실 원칙과는 거리가 있다. 게다가 장비는 놀부에게 명 석을 내어 펴라고 한 후 주먹으로 다리를 치라고 한다. 놀부가 힘이 빠져 그만하게 해 달라고 하자 이번에는 자신의 등으로 기 어 올라가 발로 차 달라는 해괴한 주문을 한다. (정춘권, 판소리 문학에 나타난 사회적 상상력과 기괴, 국어국문학 제146 호, 국어국문학회, p.101) 상식적 수준을 넘어 선 유희는 기괴한 미감 을 느끼게 한다고 보았다. 기괴한 미감은 독자(청 자)의 정서적 상태다. 팔불출이라는 캐릭터는 독자에게 편하지는 않다. 수시로 당대적 언어로 이야기를 하며, 칸 안의 세계에 균열을 준다. 때때 로 몇 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사를 퍼붓기도 한다. 마치 광대들이 재담을 하듯, 판소리에서 사설을 하듯 말이다. 정춘권이 규정 한 기괴 와는 거리가 있지만, 팔불출은 판소리에 등장한 캐릭터의 복잡한 성격과 같은 계보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19 16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6. 결론 그동안 만화 역사와 비평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강철수의 작품 중에서, 70년대의 <사랑의 낙서>와 90년대 <발바리의 추억>을 이 어주는 <팔불출>을 살펴보았다. 본문에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강철수의 작화는 미려하다. 작품 안에 등장하는 공간이나 인 물의 복식은 세부적인 부분까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인물은 일정한 외형을 갖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과장되고 왜곡된다. 아무 말 없이 여러 페이지가 진행되기는 경우가 많은데(예를 들어 4권 p.48~54), 작화의 완성도가 없다면 불가능한 연출이다. <팔불출>은 70년대 <사랑의 낙서>와 90년대 <발바리의 추억>을 잇는 청춘 극화의 성격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역사만화라 규정하 기 쉽지만, 역사서사보다는 자유로운 당대의 서사들이 개입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팔불출>의 주인공 팔불출은 작품이 연재되던 80년대의 언어와 감 성으로 만화 안 조선시대의 주인공들과 대화를 한다. 바보이면서 천재인 팔불 출은 판소리 혹은 판소리계 소설 의 주 인공 같은 속성을 보여준다. <팔불출> [그림 7] <팔불출> 4권 P 은 80년대 당대의 청춘들에게 사랑받 았다. 이 같은 당대성의 특징은 시간이 흐른 뒤 <팔불출>을 볼 경우 그 때의 재미만큼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당대의 인기에 비해 시간이 흐른 뒤, 대중들에게 기억되 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인하) 참고문헌 고우영 등, <고우영 이야기>, 씨네이십일(주) 아르코미술관, 오규원, <한국만화의 현실>, 열화당, 한창완 외, <조선을 그린 이두호>, 씨엔씨레볼루션, 공임순,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장르론적 연구, 서강대 대학원 박사학위, 조동일, <한국문학통사 3권>, 지식산업사, 정춘권, 판소리 문학에 나타난 사회적 상상력과 기괴, 국어국문학 제146호, 국어국문학회, 2007.

20 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강철수의 초기 성인극화를 중심으로 서은영 _ 만화연구가 1. 들어가며 2. 청년문화의 대두와 성인극화의 등장 3. 남자의 순정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 4. 순결에의 강박과 훼손된 육체의 배제 5. 나가며

21 18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1. 들어가며 문화담론을 분석한 연구 성과들은 1970년대를 대중문화의 시대로 규정한다. 이 시기에는 소설, 영화, TV, 잡지, 만화 등 다 양한 매체들이 양적으로 증가하면서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는 점이 우선된다. 그런데 대중소설, 대중영화, 대중잡 지와 같은 단어들과 달리 대중만화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의 단어들이 가지는 함의와 달리 만화는 줄곧 계층/계급 간의 취향으로도 양분할 수 없는 매체라는 사실이 이 단어들 안에는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만화야말로 가 장 대중적인 매체가 아닐까? 만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대중에 가장 근접하게 닿아있으면서도 불행히도 대중문화 속에서 만화 를 논하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1) 본 연구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인 만화를 통해 대중문화의 시대로 규정된 1970년대를 조망할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시행되어 온 근대화 프로젝트가 70년대에 이르러 양적 팽창을 이루었다. 그 결과 다양한 매체와 그것을 소비할 대중 주체가 부상했다. 주간지 붐과 더불어 TV 보급과 수상기의 확대, 최인호와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의 탄생, 높은 진학률과 청년 세대의 대두와 같은 문화적 역량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양희은, 김민기, 이장희와 같은 대학생 집단 이 청년 문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부상하기도 했다. 2) 특히 1970년대의 문을 연 것은 성인극화 이다. 성인극화의 탄생과 폭발 적인 반응은 1970년대 대중들의 취향과 욕망의 발현을 단적으로 제시해준다. 선데이서울, 주간여성 과 같은 잡지들이 성행하고 청년층에서 형성된 자율적인 분위기와 서구의 소비 유흥 문화가 확대 됨에 따라 만화 역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게 된다. 성인극화 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만화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1972년 1월부터 일간스포츠 에 연재한 <임꺽정>을 시작으로 성인극화의 시대가 열렸다. 당시 일간스포츠 의 국장을 역임했 던 계창호는 그의 만화로 인해 일간스포츠 의 판매부수가 불과 4년 만에 2만부에서 삼십만부에 이를 정도로 절대적인 기여 1) 이것은 만화연구서가 아닌, 대중문화 담론을 분석하는 연구물에서 보이는 경향을 말한다. 최근에 김성환은 1970년대 대중서사의 전략을 분석하면서 고우영의 <임꺽정>을 유사소설의 형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 (김성환, 1970년대 대중서사의 전략적 변화, 현대문학의 연구 51집, ) 2) 송은영, 대중문화 현상으로서의 최인호 소설, 상허학보 15집, 2005.

22 02 :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19 를 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3) 그로부터 시작된 성인만화는 박수동, 강철수로 이어지면서 1970년대의 대중 문화사를 읽는 주요 한 키워드가 된 셈이다. 이 가운데 강철수의 성인극화야말로 1970년대 청년대중의 욕망을 드러내며 당대의 키워드들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이 분야 연구에 선행되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강철수는 1974년 주간여성 에 <사랑의 낙서>를 연재하면서 성인극화를 시작했다. 1974년 한 해 동안에만 세 편의 연재물 을 창작했다. 그는 <사랑의 낙서>, <청춘만세>, <핑크수첩>을 강철수 프로덕션에서 간행하면서 일명 성인극화 시리즈 라 명 명하기도 했다. 성문제를 다루고 싶었다. 무조건 억눌러버리려 했던 기성세대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고 모순덩어리였던가를 여러분께서 도 이미 잘 알고 계실 것. 성에 얽힌 우리네 사회 부조리를 무수히 보아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보고 있다. 어디서 어디까지 가 윤리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도덕이고 어디까지가 탈선이니깐 무조건 어떤 선 이상은 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 따위를 내 가 여기서 새삼스럽게 제시하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 웃고 즐기다 보면 무언가 부각되는 것 바로 그것이 앞서 열거 한데 대한 필자의 의견이자 주장 4) <핑크수첩>의 서문을 살펴보면 그는 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부조리에 대적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 다. 그는 윤리, 도덕, 규정과 같은 이미 정해놓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서술할 것을 피력했다. 그것이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온 성 을 공론화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를 구별짓는 방식이기도 했다. 강철수의 성인극화 시리즈가 다른 작품들과 다른 것은 바로 청년 세대를 표상한다는 점에 있다. 즉 강철수 식의 성인극화에는 당대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청년 세대와 그들의 풍속도, 취향과 가치체계를 파악할 수 있는 텍스트이다. 성 인극화가 독자대상으로 삼고 있는 청년 집단의 욕망이 극화 내에서 재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소비하는 독 서 대중의 행태가 사실은 극화가 재현하는 청년 문화를 욕망하고 동일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철수의 성인극화가 특히 사랑 을 중심으로 다룬 만큼 청년 세대의 성에 관한 인식과 가치체계 또한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 청년문화의 대두와 성인극화의 등장 4.19, 5.16이라는 정치적 파고를 지나 국가재건이라는 미명 하에 호명된 청년 집단은 관의 주도 하에 건전한 사회를 건설하 는 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담당해줄 것을 부여 받으며 대두되었다. 1960년대 호명된 청년들은 1970년대에도 문화를 주도하 며 기성세대와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갔다. 다만 1960년대에는 이제 막 호명된, 진입한 세대이자 정치적 이데올로기 에 의해 헤게모니 안에 갇혀 있던 존재들이었다면, 1968년을 지나면서부터는 자율성이 확대된 세대로서 문화적 주체성을 보 다 확고히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1968년 중학교입시제도가 폐지되면서 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이전과 다른 자율적인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되 었다. 바로 이 시기가 문제적인 것은 억압되거나 은폐되었던 욕망들이 일시에 터져 나오는 것 같은 분위기가 곳곳에서 포착되 3) 박재동 외, <한국만화의 선구자들>, 열화당, 1995, 164쪽. 4) 강철수, <핑크수첩> 에필로그

23 20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주간지의 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격조 높은 지식인의 위클리 인 주간조선, 여 성 가정 중심 의 주간여성, 주간한국의 체제를 답습 하는 주간중앙, 시사 문제를 거의 외면, 가벼운 읽을거리에 집념 하게 될 선데이서울 등 1968년 기사들은 많은 주간지의 등장을 예고했다. 5) 이 시기의 주간지들은 다양한 대중독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각각의 특성에 따라 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당시 기사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많은 지식인들이 주간지가 황색저널화, 선정적으로 변질되는 것에 우려를 표함에도 불구하고 주간지 붐은 매스컴 영역의 확장욕과 생활수준 향상에 따른 더 많은 읽 을거리를 요구하는 화이트칼라화 사회의 추세로 인해 더욱 개성화, 다양화, 대량화 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했다. 6) 즉 주간지 붐 은 매스컴와 대중의 요구가 잘 맞물린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 매스컴은 다양해진 대중의 요구를 확대된 매스컴 시장에서 어떻 게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이에 선데이서울 을 비롯한 몇몇 잡지들은 60년대 초반의 잡지들에 비해서도 오락적 소재와 자극적 화보로 구성하며 더욱 선정성이 강한 도색잡지로 변모하고 있었다. 특히 선데이서울 의 성공은 이런 류의 잡지들의 출현을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7) 게다가 1968년 11월에 해제된 주간지 발 행금지 협약 해소 는 선데이서울 과 같은 대중잡지들이 잇따라 출간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이전에도 <명랑>과 같은 오락잡지들이 소비되고 있었지만 60년대 후반의 대중잡지들은 성적코드가 더욱 강화된 자극적 소재와 화보로 구성되었다. 1972년에 <선데이서울>의 지면을 분석한 박광성에 따르면, 선데이서울 이 1년 동안 쏟아낸 기사들의 16%가 섹스물이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8) 이런 주간지들의 선정성은 성인극화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편 잡지 성행에 이어 TV 보급률도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연예오락 및 드라마 프로그램 제작이 증가했고, '안방극장'이라 는 말이 나올 만큼 대다수의 국민들을 TV라는 시각매체 앞으로 이끌었다. 방송사에서는 청년들을 TV 시청자로 끌어 들이기 위해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영화계는 산업화되어 대중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이 같은 미디어들에는 청년들이 표상되었으며, 문화 소비를 통해 청년 문화가 능동적으로 팽창되는 측면도 있었다. 9) 이 시기에는 60년대에 부상한 청년들과는 다른, 새로운 청년들에 의한 세대교차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1960년대의 청년은 대학생 집단이 대두되면서 청년문화를 선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내부로 들어가면 대학생이 되지 못한 노동자 계급, 혹은 건달로 표상되는 청년들 또한 다수 존재했다. 1960년대의 청년문화에는 청년 집단 내부의 계층적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상황이었다면, 70년대를 전후한 시기부터는 하층 계급들은 거세된, 대학생 집단 위주의 청년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70년 대 초반 베이비붐 세대(54-61년생) 초기 출생자들의 대학진학이 늘어난 것도 이전과는 다른 청년문화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4년제 대학교는 64년부터 본격적으로 증가해 전년도의 47개에서 66개로 늘고, 74년 72개의 대학교가 설립된 상태였 다. 73년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는 청년문화의 주요 소비자가 된다. 10) 따라서 70년대 청년문화는 60년대와 다른 사회 문화적 환경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60년대에 비해 청년층 내에 존재하 던 계층차가 옅어지면서 대학생 중심의 문화가 형성되었고, 청년 문화의 주체로 대학생 집단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확연해졌 다. 여성의 경우, 남학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학교 진학 비율은 낮았지만 그 어떤 시대보다도 여대생 비율은 높아졌다. 여성 5) <다가온 주간지 붐>, 동아일보, 면. 6) 위의 기사, 동아일보, 면. 7) 1968년 9월 창간된 선데이서울 은 1991년 12월 29일자를 마지막으로 23년 만에 폐간되었다. 창간호 발매 2시간 만에 6만 부가 매진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으며, 1975년을 전후해 한 달 순수익이 1억 원에 달했고, 1975년 15만부, 1978년 23만 부, 그 후에도 20만 부 이상을 발행하면서 당시 주간지로서는 최고의 부수 발행과 광고 수익을 자랑했다. (임종수, 박 세현, 선데이서울 에 나타난 여성, 섹슈얼리티 그리고 1970년대, 한국문학연구 44집, p.93) 8) 박광성, 한국주간지의 성격연구, 한국커뮤니케이션연구, 민중서관, ) 송은영, 위의 논문, 2005 / 주창윤, 1975년 전후 한국 당대문화의 지형과 형성과정, 한국언론학보 51권 4호, 참조 10) 이혜림, 1970년대 청년문화구성체의 역사적 형성과정-대중음악의 소비양상을 중심으로, 사회연구 10집, 2005 참조.

24 02 :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21 들의 사회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대중문화 속의 남자 대학생의 데이트 상대는 단연 여대생과 더불어 직장여성이 빈번하게 출현 했다. 이 시기의 청년들은 장발, 청바지, 팝송, 맥주센터(막걸리, 소주 보다는 맥주를 선호), 영화관, 호텔 로비, (음악)다방, 볼링장, 고고홀 등을 비롯한 청년문화의 스타일과 풍속들을 만들어가며 그들만의 문화를 향유했다. 이들의 문화는 때로는 사 회규범의 일탈로 간주되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급기야 1974년에는 청년문화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했 다. 하지만 이제 대중문화 속의 청년은 대학생과 그 이상의 화이트컬러들이 차지하게 됐고 이들은 대중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 는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자리매김해 나갔다. 대중잡지를 읽는 것은 청년들의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으나 기성세대들은 그런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만 화 속에서 대중지를 읽는 청년들을 부모나 이웃들은 한결같이 한심하게 바라본다. 즉 선전성이 강하고 황색저널화가 심한 대 중지 읽기는 청년들의 전유물처럼 소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간스포츠 에 연재된 고우영의 <임꺽정>이나 <수호지>와 거 의 동시기에 주간여성 에 연재되었던 강철수의 성인극화의 독자구상이 다른 것은 이러한 사정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강철수 성인극화의 주인공들은 1970년대의 청년들을 표상하고 그들의 일상을 재현한다는 점이다. 강 철수의 성인극화 시리즈에는 대중잡지를 읽는 남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시간을 때우거나 소일거리 삼아 대중잡지를 읽 는다. 다양한 기획과 사연, 만화, 선정적인 화보가 뒤섞인 대중잡지는 청년들의 뒤섞인 욕망들을 한 데 묶어 놓은 산물이었다. 더욱 심화된 선정성은 물론이거니와 매체라는 공적영역에서 개인의 사적생활들을 은밀히 들여다 볼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정 당화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청년 세대들에게는 매력적인 여가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무정>(74년)의 주인공 P군은 만 화와 대중잡지를 보는 것이 일과이다. 그는 대중잡지에 정신이 팔려 두문불출 하며 잡지를 스크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가 스 크랩한 기사들은 인생문답 과 같은 개인들이 보내온 사연이다. 그는 그 사연들을 친구들 앞에서 낭독하고 열화와 같은 성원 을 받는다. 이러한 P의 행위는 일견 관음증적인 행태를 보이는데, 개인의 사생활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대중지가 소비되는 방 식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주간여성 에 연재된 <사랑의 낙서>는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했다. 한 명의 주인공이 계속 등장하지 않고 한 회 연재분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형식으로 꾸며져,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 이것은 마치 대중잡지 에 게재된, 혹은 <사랑무정>의 P군이 읽었던 인생문답 과 같이 매회 바뀌는 사연들을 읽는 것 같은 방식이다. 연애를 카테고 리의 바깥 항으로 삼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해 수많은 사연들이 전개되는 방식은 대중잡지에 게재된 독자수기의 서사 방 식과 닮아 있다. 이것이 고우영이나 박수동의 극화와는 다른 강철수만의 개성을 지니는 것이면서, 동시에 대중잡지의 독서방 식에 익숙한 청춘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강철수 극화의 매력으로 작용했다. 3. 남자의 순정과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 강철수의 성인극화 3부작 시리즈는 성과 사랑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루지만 정작 두드러지는 것은 청춘들의 달뜬 사랑의 풍속도이다. 성인극화의 붐을 타고 강철수 프로덕션에서 간행된 출판물들과 비교해 보아도 강철수 성인극화가 지향하고자 하 는 바가 드러난다. 하영조의 <어떤 情 事 >, <불타는 호텔>, 조원기의 <욕망>과 같이 제목에서부터 성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전

25 22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면에 드러내는 것과 다르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상의를 탈의한 남성 앞에 옷이 찢겨진 채 어깨와 허벅지를 드러내고 있는 여 성의 모습을 전면 광고로 내세운 하영조의 <어떤 정사>는 궁전의 침실, 전쟁의 포화 속에도 인간의 욕망과 사랑이 있다 여 기 갖가지 쇼킹한 인간 정사가 있다 는 것을 부각시킨다. 강철수의 성인극화는 노골적인 성욕망과 성애적 사랑에 천착하기보다도 연애가 우선되고 그 가운데 발현되는 성 문제를 다 루고 있다는 점이 다른 성인극화와의 차별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강철수의 성인극화 시리즈는 연애와 관련된 에피소드 들이 나열된다. A,B 두 여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그녀들에게 동등한 시간과 사랑을 배분했던 남자가 최종적으로 B를 선택했지만 알고 보니 B역시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그에게 점수를 매겨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는 <양곤마작전>(<청춘만세 >2권 6화), 한 여자를 쟁취하기 위해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펴고 그녀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 사랑의 낙서> 42화) 등, 강철수의 성인극화는 새롭게 부상한 청춘들의 새로운 사랑 방식의 일면을 때로는 희화화하거나 때로 는 비극적으로 제시한다. 성인극화의 제목을 수첩 이나 낙서 라고 명명한 것을 보더라도 사랑에 대한 단상을 감각적인 필치로 스케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긴 스토리를 가지지 않으며 단행본 역시 60쪽을 내외한 짧은 분량 으로 되어 있다. 파편화된 사랑 이야기들은 청년 군상들의 다양한 사랑 방식들을 제시하거나 재현한다. 강철수의 성인극화는 이들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낭만적 사랑에 대한 남성의 환타지가 구현된다. 우선 그의 성 인극화에는 한 여자를 향한 끈질긴 구애와 지고지순한 사랑만이 연애의 입문에 들어설 수 있으며, 그런 자만이 순결한 여성을 성취할 수 있다. <마물>의 남자는 고2 때부터 한 여자를 쫓아다니다 그녀에게 자신이 대학갈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하지만 정 작 여자는 그에게 관심이 없다. 남자는 연이어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그녀를 찾아가 울면서 군에 입대하는 사실을 알린다. 이 상하게도 여자는 이때부터 마음이 흔들려 둘은 군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우게 된다. 한 여자를 향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난공불락 같았던 그녀의 마음을 녹여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더욱 애틋한 사랑으로 다 가온다. 이 에피소드는 결국 남자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면서 남자의 순정이 비극적 사랑으로 승화되면서 끝이 나게 된다. <이주기>(45화)의 명철은 옆방에 하숙 들어온 여대생을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진다. 명철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노동력 제

26 02 :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23 공은 물론이거니와 돈까지도 모두 바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안 뒤로부터 명철은 그녀 에게 갖은 악담을 퍼붓고 괴롭힌다. 그럴수록 그녀 역시 명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한편 그녀는 자신의 애인이 자신을 사 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놀아볼 상대로 만났다는 것에 분노해 헤어지고, 이사 가라며 종용하는 명철의 강요에 다른 곳으로 이 사를 간다. 그녀가 이사 간 후 그녀를 좋아했던 명철의 마음은 여전히 아프기만 한데, 뜻밖에도 그녀가 나타나 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결국 자신의 육체를 탐하는 남성에서 자신에게 마음을 바치는 남성을 선택하며 사랑을 이주 시킨 이야기이다. 이 처럼 사랑을 나누는 데 능력, 재력과 같은 조건이나 남성의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된 화자 는 대학생이나 직장인인 미혼 남성이다. 이는 70년대 청년 세대의 주도권을 쥔 대학생들의 문화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취업을 하지 못한 취업준비생이거나 백수도 등장한다. 공장을 다니는 노동자나 사환과 같은 하층 계급은 등장 하지 않는다. 만화의 남성들은 하는 일 없이 만화책을 읽거나 대중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낼지라도 그들의 연애 대상은 주로 여대생이거나 직장 여성이다. 그들이 연애를 하기 위해 여성에게 돌진하는 것은 청춘의 전유물인양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사랑에서만큼은 남자의 순정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사랑을 고귀하고 순결한 것이라는 낭만적 환상을 심어준다.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 부박한 사랑놀음이 유입되고 사랑이 물신화되는 등 서구의 가치가 팽배해진 청년 문화의 한편에서는, 외양과 조건 보다 남자의 순정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통해 정신주의적 가치를 우위에 두는 연애론이 위치하고 있었다. 이는 순결 한 것의 대척점에 놓이는 불결한 것, 즉 창녀에게도 자신의 순정을 바치는 남성들의 사랑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강철수 성인극화에 드러나는 순결 강박증에도 불구하고 이들 만화에는 더럽고 불결한 여성으로 간주되는 술집 여자, 창녀에게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남성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건 너>(25화)의 5명의 남자들처럼 술집 아가씨를 향한 구애가 대부분은 유희와 향락을 즐기기 위한 밤의 문화일 수 있 다. 그러나 그 가운데 순정을 바치는 순진한 남자에게 여성의 직업은 중요치 않다. <사상 최대의 짝사랑>의 주인공이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맥주집에서 서빙하는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품어왔던 선생을 향한 연정이었 다. <시한폭탄 아가씨>의 남자는 회사동료들과 색주가에 들렸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미스리를 사랑하게 된다. 미스리는 돈만 주면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몸과 웃음을 파는 창녀에 불과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순정, 돈 모두를 바쳤다. 결국 그는 회사에 서마저 쫓겨났지만 그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성인극화의 남성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는 대부분 여대생이거나 직장 여성이지만 드물게는 더러운 여자, 불결한 여자 로 간주되는 그녀들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들의 괴로움은 강철수의 성인극화에서 보여주는 술집 여자에 대한 결벽증에 쉽게 굴복하지 못해서 생기는 반응이다. 술집 여성에 대한 남성의 반응은 양가적이다. 더럽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이는 여대생이나 직장 여성과의 연애와 달리 주도권이 남성에게 전 적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관계를 전제로 하는 연애의 과정에서 관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성의 권 위를 회복할 수 있다. 여대생이나 직장여성과의 연애에서는 주로 남성이 쫓아다니며 사랑을 구걸하는 장면이 많이 포착되는 반면, 술집 여성을 좋아하는 남성의 연애는 그녀의 감정 보다 그녀가 술집 여자인 것을 남성이 받아들일 수 있느냐 마느냐의 선택의 문제에서 고민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남성이 관계의 우위를 점하며 그의 권위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1970년대 들어 본격적인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남성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여전히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보장되지 못했고 박탈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여성이나 여대생

27 24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과 같이 남성과 동등한 직위와 학력이 배분되었다. 남성들의 위기의식은 이들 여성/성을 정복함으로써 그들의 성의식을 회복 하고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유지하는 데 이용되었다. 그 안에서 술집 여자는 쉽게 정복될 수 있는 대상이었고, 그들의 욕망 을 풀 수 있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순정을 바친다한들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남자의 순정을 거절하는 것은 항상 여자이지만, 이것은 어 디까지나 자신이 순결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으로부터 기인한다. 그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애당초 가지는 결함으로 인 해 여성은 남자와 사랑을 나눌 수 없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공고하게 놓여진 사회 통념상 이 사랑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다만 이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남성이 가지는 순수함, 여성과는 다른 순 결함과 순정함이다. 술집 여자를 대상으로 놓고 볼 때 이것은 절대적으로 여성이 갖지 못하는 것으로 그런 여성을 거부할 패 는 남성에게 주어진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고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연애를 하고자 하는 여성들에 대한 열패 감은 자유연애 속에서도 순정을 지키는 남성들의 연애를 구현하면서 교감한다.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입으며 맥주바나 고 고홀에서 남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여성 들에 대한 반감은 낭만적 사랑과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누는 남자들의 서사를 만들며 남성들만의 세계를 공고히 한다. 육체를 탐하지 않고 마음으로 다가선 순정만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에피소드들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모순 적이다. 성인극화의 남성들은 하나같이 여성의 육체를 탐하지만 남자의 순정과 낭만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에서는 그 것을 드러내지 않는 정신주의야말로 육체의 우위에 놓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정을 바치는 남성들은 하나같 이 여성을 한 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즉 정신적 교감 이전에 이미 그들 스스로 여성의 육체를 탐한 것이다. 즉 남성의 순정 과 낭만적 사랑의 환상은 육체에의 갈망, 욕망을 은폐시키며 여성을 성의 산물로 대상화한다. 4. 순결에의 강박과 훼손된 육체의 배제 남성의 순정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바칠 순정의 대상이 되는 여성들도 있기 마련이다. 강철수의 성인극화에 등장하는 남성들 은 예쁜 여자를 쫓아다니며 그녀들을 열망한다. <불 꺼지지 않는 창>(<청춘만세>1권), <이 남자를 보라>(<핑크수첩>), <시 한폭탄 아가씨>의 남자 주인공, <이주기>의 명철, <사랑무정>의 P 등은 예쁜 여자를 향해 구애한다. 모든 것에 만능이며, 재능 이 있는 남자가 우연히 길에서 본 예쁜 여자에게 빠져 그녀를 찾아 헤매는 스토리는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들이 선망하는 것은 예쁜 여자인데, 예쁜 여자를 찾기 위해 남자는 아무 여자나 거들떠보지 않는다든지, 한 번 본 그녀를 만나기 위한 것이라면 직 장을 포기할지라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쫓아다녔던 그녀와의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지는 순 간, 그들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할 것인가 끊을 것인가의 선택에 있다. 이때 그들이 관계의 지속성 여부 에서 기준으로 삼는 것은 바로 여성의 순결이다. 즉, 아무리 예쁘더라도 순결하지 못하면 남자는 미련 없이 여자를 포기한다. 예쁜 여자를 쫓아가보면 여성들은 여대생이거나 직장여성, 혹은 술집 종업원이었다든지 유부녀로 양분된다. 통념상 전자는 처녀성을 그대로 유지하며 순결한 존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만 만약 그녀들이 처녀성을 잃었다면 이미 더럽혀진 존재로 가차 없이 버려진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술집 종업원은 이미 더럽혀진 존재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술집에 다니는 여성이 처

28 02 :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25 녀라면 구애가 가능하지만 유부녀라면 열정이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그건 너>의 5명의 남자가 술집처녀를 꼬시기 위해 벌였 던 고군분투는 그녀가 남편과 아이가 있는 유부녀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종결된다. <불 꺼지지 않는 창>의 남자 주인공 역시 길에서 본 아가씨를 짝사랑하게 되면서 매일 밤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연서를 날린다. 하지만 그 녀가 유부녀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그녀를 향한 마음은 분노로 바뀌어 버린다. 강철수의 성인극화에는 불륜이 존재하지 않는다. 만화 속 남성들은 어렵게 사랑에 빠진 상대가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망설임 없이 그녀들을 떠난다. 약간의 괴로운 반응을 보이지만 그것은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강철수의 만화들은 청춘들의 다양한 사랑이야기를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그 속에 불륜을 다룬 에피소드는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권을 해 치는 성적 방종이나 성적일탈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성규범을 깨지 않는 선에서 청년들의 사랑이 유지된 다는 점에서 꽤나 건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적일탈이 허용되고 욕망이 해소되는 지점도 존재한다. 이것은 순결하지 못한 여자에게 다소 폭력적인 방 식으로 자행된다.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핑크수첩>)에 등장하는 선배는 자신이 사귀던 애인이 다른 남자와 불륜관계를 맺 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에 휩싸인다. 여성혐오증과 같은 격정에 사로잡힌 선배는 옆방에 살던 술집 여자를 겁탈하게 되고 아 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다. 애인에게 배신당한 분노와 좌절을 아무런 상관도 없는 옆방 여자에게 폭력적 으로 해소하지만 그는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옆집 여자를 바라보는 선배의 인식에서부터 드러난다. 자신 과 동거인인 남학생이 옆집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본 선배는 그에게 더러운 여자 와 가까이하지 말 것을 충고한 바 있 다. 결국 선배의 폭력적인 행동은 술집여자는 이미 더럽혀지고 순결이 훼손된 육체라는 인식이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이는 이 남성이 옆방 처녀에게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의외의 순간에 발현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해준다. 선배 의 행동을 지켜본 남학생이 여성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들어간 방에서 여성의 피 묻은 이불을 발견한 것이다. 처녀성의 상실 로 상징되는 이불에 남겨진 혈흔은 그녀를 선배로부터 처녀성을 빼앗긴 가련한 여자로 만든다. 즉 선배가 그동안 더러운 여 자 라며 가까이 하지 말 것을 당부했던 그녀가 오히려 순결을 지키던 깨끗한 여자였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이전에 당 당했던 태도는 사라지고 선배는 죄책감에 빠지게 된다. 처녀성을 상실시켰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선배는 가해자가 되어 시 골 학생이 존경할 수 없는 나쁜 선배가 된다. 결국 남학생은 진실로 깨끗했던 여자 (p.44)인 옆집 여자를 훼손시킨 선배를 증 오하며 떠나게 된다. 이처럼 더러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행위는 남성의 반성이나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전부터 그녀에게 내재되어 있었거나 그녀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일 뿐이라는 식이다. <사랑대회>에서의 남성은 자신이 결혼을 결심했던 여성이 과거에 여러 남자를 번갈아가며 만났던 전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뺨을 때리며 더러운 년 밤거리로 나가라 고 말한 다. 남성 역시 여러 여자를 만나며 사랑의 집적물인 머리카락을 수집한 전력이 있지만, 그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녀가 순진하지 않기 때문에 폭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이 남자를 보라>(<핑크수첩>)의 남성 역시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일지라 도 그녀가 술집 여자라는 사실을 안 순간 더 이상 고민의 여지가 없다. <사랑무정>의 P는 잡지에 게재된 사연을 보고 그녀가 순진하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녀는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일면식도 모르는 그녀에게 화를 내는 것도 정당화된다. 그가 집으 로 돌아와 그동안 자신이 애지중지 스크랩해두었던 대중잡지의 연애사연들을 찢는 것은 자신이 상상했던 사랑이 깨져버렸기

29 26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가 믿었던 세계에 기만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잡지에 게재되었던 순결을 잃 은 여성들의 사연을 스크랩하고 친구들 앞에서 재미삼아 늘어놓았던 그가, 순진할 것으로 상상했던 그녀가 정작 순결하지 못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분노하게 되는 것은 모순적이다. 이러한 모순이 발생한 책임은 혼자만의 상상으로 사랑을 키운 그 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거짓사연으로 돌린다. 그녀의 거짓은 순결한 여인에 대한 그의 기대를 기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결/불결, 깨끗한/더러운, 처녀/비처녀는 강철수의 성인극화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여성성이다. 지극히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바라볼 때 그들은 여성의 육체를 탐하지만 동시에 그 육체 안의 처녀성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할 것으로 강조한다. 만 약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가해지는 폭력은 훼손된 육체에 가해지는 정당한 훈육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한 방종에 대한 대가 이다. 여성육체에 대한 탐욕과 통제가 동시에 발현되는 모순적인 시선 속에 갇힌 여성들은 남성에 의해 통제된 이데올로기 안 에 자신의 육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을 내재하게 된다. <깡이야기>(<청춘만세>1)의 경숙은 순결을 잃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이 그대로 내면화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대학생활을 하는 여학생이 어느 날 갑자기 변해 특유의 깡따구 기질을 가지게 되어 집안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녀의 깡은 공부와 담쌓기, 부모님께 용돈 타서 군것질하기, 캠핑, 고고홀을 가거나 맥주 마시고 놀기와 같은 방종적 인 생활을 말한다. 집에서 쫓겨난 그녀에게 친구 정희는 명분 없는 깡따구 짓을 그만할 것을 종용한다. 알고 보니 그동안 그녀가 깡따구 짓을 한 이유는 캠핑에서 순결을 잃은 후부터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한 것이었다. 이런 그녀를 반성하게 한 것은 다름 아 닌 똑같은 피해를 입은 정희였다. 그런데 이 정희라는 인물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투쟁=자유 라는 경숙의 생각에 그것은 방종이며, 반성을 요구하는 정희는 처녀성의 상실이 오로지 경숙 의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마실 줄도 모르는 술이라는 마물이 철부지 여대생의 경솔에 부채질을 했던거야. 그 상황에서 남자 애들을 야수니 뭐니 할 건 못 된다구 라는 정희의 발화는 순결을 지키지 못한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오히려 처 녀성을 지키지 못한 경숙을 질책하는 정희의 시선은 정숙하고 조신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질서를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 근대 화 산업화를 이룬 사회의 새로운 세대로 부상된 청년층에는 여학생의 급격한 대학 진학과 사회진출도 동반하고 있었다. 급격 한 사회변화는 양적 팽창은 가져오되 질적 변화까지 수반되지는 못했다. 자본과 산업의 팽창에 비례해 가부장의 전통적 질서 가 와해되기 보다는 대중문화에서는 오히려 공고해지는 일면을 보이기도 했다. 여성들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주체성을 의식하 기도 전에 여성들의 육체는 남성들의 보이는/보여지는 시선안에서 통제되었다. 경숙의 깡따구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며 야비하 고 부질없는 보복 으로 비춰질 뿐이었다. 11) 경숙의 깡따구가 기존 사회 질서와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나 기성 세대에 대한 투쟁이 아닌, 자신의 육체를 돌보지 못한 여성의 가학적 반응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한편 훼손된 신체는 회복될 수 없기에 자리를 떠나거나 은폐시켜야 한다. 정희는 우리는 그 상처들을 영원히 모르는 것으 로 해야 한다, 어리석게 고백 따위를 늘어놓고 파탄을 자초할 필요는 없는 것 (<깡이야기>)이라며 처녀성을 상실한 자신들 은 범죄 의 단초를 이미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핑크수첩>)의 옆방 여자 역시 육체의 훼 손으로 인해 더 이상 자신의 자리에 머물지 못한다. 죄책감을 느끼던 선배도, 진실로 깨끗했던 여자 라고 믿었던 남학생도 더 이상 그녀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비록 술집여자였지만 순결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그녀는 이미 순결하지 못한 여자가 되어 11) 야비하게 넌 스스로의 실수를 애매하고 엉뚱한 대상을 찍어 부질없는 보복을 하고 있 다(<깡이야기>, 64쪽).

30 02 : 1970년대 청년 세대의 성 풍속도에 대한 단상 27 버린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 결국 그 공 간을 떠나는 것은 가해자인 남성이 아 니라 피해자인 여성이다. 그녀는 순결 하지 못한, 훼손된 육체를 끌고 자신의 집을 떠나 다른 공간으로 이주하게 되 고, 더러운 육체가 나간 공간에는 현모 양처와 같은 깨끗할 것으로 예측되는 새로운 애인이 드나들게 된다. 그녀가 피해자인 것을 인정하고 그녀에 대해 죄책감도 가지지만 한번 훼손된 육체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기에 그녀는 떠날 수밖에 없다. <이주기>의 여성, <깡이 야기>의 경숙,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의 옆방 처녀 모두 집이라는 공간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 배제되고 내쳐진다. 집은 순결한 공간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순결을 잃은 여성들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배제된다. 이처럼 가부장의 질서가 가장 공고히 자리 잡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내쳐지는 여성들은 순결이데올로기에 대한 남성 들이 가하는 은폐된 폭력의 한 반응이다. 5. 나오며 본고는 1970년대 등장한 성인극화 가운데 강철수의 초기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았다. <사랑의 낙서>, <핑 크수첩>, <청춘만세>로 이어지는 강철수의 성인극화는 1970년대 청년문화의 한 양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텍스트이다. 이 시 기의 강철수의 극화는 당시의 대중문화의 지형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즉 강철수가 표방했던 성인극화 라는 장르와 그의 만화 에서 표상했던 청년 들의 풍속도, 그리고 대중지 읽기 방식을 양식화한 만화그리기가 정확히 맞물리고 있다. 독자의 욕망과 그 욕망을 담아내고자 했던 매체의 욕망,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강철수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 어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성인 주간지의 흥행과 더불어 성인극화의 시대가 열렸고, 선데이서울 을 계기로 주간 지들은 선정성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정치세력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청년들은 70년대 들어서면서 서서히 대중문 화의 주체로 부상했다. 통기타, 맥주홀, 고고홀, 캠퍼스와 같은 대학생들이 전유할 공간과 문화가 생성되었고, 그 과정에서 블 루칼라 군의 하층계급 청년들은 문화 주체의 전면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보였다. 1970년대는 대학생과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이 청년문화를 주도하는 세대로 자리 잡게 되었고, 영화나 TV, 만화 등에서 그들을 표상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강철수

31 28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의 만화는 주간지를 읽는 청년들 을 대상으로 하며 재현하며 소비되는 방식으로 여타의 성인극화와 차별화했다. 자유로운 연애가 처음 대두되었던 식민지 시기 때부터 연애는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이자 새로운 세대의 전유물인양 재현되 었다. 강철수 성인극화 역시 청년들의 연애를 다루지만 이것이 이전의 시대와 다른 것은 연애에 잇따른 부산물로 성 문제로까 지 확대하고자 했던 점이다. 1975년 <핑크수첩>은 남녀 정사장면을 어린이가 옆에서 보는 내용의 성인만화 로 분류돼 구속 영장이 신청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12) 그렇다고 해서 강철수의 성인극화가 에로틱한 내용으로 도배되거나 성애적 도착적 사랑이 주로 다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들은 주로 청춘들의 사랑이야기를 에피소드로 하면서 간혹 정사 장면이 삽입되어 있을 뿐이다. 중요한 점은 강철수가 발언하고 있듯이 이 극화들에서 성문제를 통해 기성세대와의 구별짓기를 시도했 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인 보이지만 사실은 더욱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가부장적 사회질서에 대 한 실현이 은폐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성인극화의 탄생과 소비 역시 1970년대 대중문화 전반에 깊게 뿌리박힌 이데올로기 를 공고히 하면서 향유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로 낭만적 사랑의 명분으로 여성의 순결성은 강조되고 강요되었다. 순결하지 못한 여성들은 가차 없이 배제되며 폭력 적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순결을 잃은 여성들은 남성이 만든 순정한 공간에서 외부로 이주되어야 한다. 그것이 남성의 폭력 에 의한 것이든, 그녀가 피해자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러한 순결에 대한 강박증은 여성에게 훈육되고 내면화되지만, 남성에 게는 강요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순결하지 못한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순정으로 포장되어 남성의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어디까지나 불결한 여성은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남성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할 뿐 이다. 남성 내면의 성의식을 겉으로 표면화한 것으로 성의식은 여성에게는 여전히 불평등하며 불균질한 것으로 내재되어 있 다. 1970년대 성인극화의 성의식은 기성세대와의 결별이 아닌,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하고 있었음을 알려준다. 참고문헌 [1차 자료] 동아일보 <사랑의 낙서> 1권~11권(서문각, ), <핑크수첩> 1권~2권(강철수 프로덕션,1975.1), <청춘만세> 1권~3권 (서문각, ) [2차 자료] 김성환, 1970년대 대중서사의 전략적 변화, 현대문학의 연구 51집, 송은영, 대중문화 현상으로서의 최인호 소설, 상허학보 15집, 박재동 외, <한국만화의 선구자들>, 열화당, 임종수, 박세현, 선데이서울 에 나타난 여성, 섹슈얼리티 그리고 1970년대, 한국문학연구 44집, 박광성, 한국주간지의 성격연구, 한국커뮤니케이션연구, 민중서관, 주창윤, 1975년 전후 한국 당대문화의 지형과 형성과정, 한국언론학보 51권 4호, 이혜림, 1970년대 청년문화구성체의 역사적 형성과정-대중음악의 소비양상을 중심으로, 사회연구 10집, ) <음란만화 제작판매 만화가 등 영장신청>, 동아일보,

32 03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활자화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한상정 _ 상지대학교 교수 1. 들어가며 2. 스토리 측면에서의 작품 전개 3. 내용적 분석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들 4. 배경적, 형식적 특성 4-1. 스포츠신문이라는 지면의 한계점 4-2. 만화작품으로서의 특징들 5. 나가며 : 새로운 성인만화를 기다리며

33 30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1. 들어가며 강철수의 <발바리의 추억>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스포츠서울 에 연재된 작품이다. 최근 인터뷰 1) 에서 강철수는 이 작품 의 탄생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1974년에 발표해서 많은 인기를 끌었던 <사랑의 낙서>를 영화화하기 위해 일종의 마케팅으로 시작했던 작품이었다고 한다. 원래 한 두 달만 연재할 예정이었으나 연재 시작 후 6개월 만에 50만부 정도 판매부수가 증가하 자 계속 연재하게 된 작품이다. 스포츠신문, 그 중에서도 일간스포츠 는 대본소형 만화밖에 없었던 시절, 신문만화라는 새로 운 내용과 형식을 내보였다는 점에서 만화계에선 꽤 중요한 행보로 꼽혀왔다. 1969년 9월에 일간스포츠 가 창간된 이후 1972 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고우영의 <임꺽정> 2) 이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다. 스포츠서울 은 1985년 6월에 창간되었고, 스포츠조선 은 1991년 3월 3) 에 창간되었다. 창간한지 몇 년 만에 스포츠서울 은 일간스포츠 의 판매량을 따라잡았고 신문가 판대에서 약 100만부씩 팔려나갔다 4) 고 한다. 신문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스포츠 영역에 대한 뉴스가 서로 엇비슷하다고 본다 면, 결국 신문의 판매부수는 그러한 뉴스 이외의 콘텐츠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이며, 만화는 그 경쟁의 주된 콘텐츠로 다뤄졌 다. 이렇게 본다면 강철수가 신문만화계에 처음 발을 들였던 1988년은 두 스포츠신문의 경쟁이 치열한 시기였고, <발바리의 추억>은 그 상업적 판매경쟁의 핵심에 있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연재되던 시대는 1988년 이후 스포츠가 군사정권의 체제유지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형태로 발전해가고 거기다가 3S(sex, sport, screen) 정책이 덧붙여지던 5) 시기이기도 하다. <발바리의 추억>과 <돈아 돈아 돈아>두 작품 모두 1990년에 음란성 지적에 따라 연재가 중단되었으나, 1991년부터 다시 그 후속작인 것처럼 보이는 <사랑이 무엇이더냐>를 스포츠조선 에 싣기 시작한 것을 비판 6)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중단될 만큼의 무언가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물 론, 검열에 의해 중단된 작품들이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특히 만화는 1990년대 이전까지 검열과 탄압이 라는 용어와 함께 공존해왔으므로, 그러한 판단은 조심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2003년에 애니북스에서 펴낸 <발바리의 추억>을 접했을 때, 연재중단은 필요한 조치였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 이유는 일 반적으로 지적되듯이 음란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언어적, 시각적 폭력성 때문이었어야 한다고 보인다. 사실 상, 이 작품이 모두에게 개방되어있는 신문이 아니라 연령제한이 있는 잡지나 단행본으로 발표되었다면, 음란성 논란에 휘말릴만 한 작품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설사 연령제한이 있는 잡지나 단행본으로 발표되었다고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비하 및 차별은 계 속 지적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이 정도의 작품이 그 당시 여성운동단체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던가가 의문스러울 뿐이다. 물론, 1988년과 2014년 현재라는 20여년의 시차를 무시하고, 현재의 관점에서만 이 작품을 비평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 이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하기에, 이 작품에 대해 엄밀한 잣대를 들여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개별적인 한 작품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지만, 여성비하를 상술 7) 로 활용하는 산물들 일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2003년에 재발행된 이 작품의 선전문구를 참조해보자. 사랑, 그 투신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 두 개의 삽화, 사랑에 대한, 젊음에 대한, 여자에 대한, 남자 에 대한, 섹스와 결혼에 대한 촌철살인의 재치와 유머와 잠언들로 가득 찬 젊은 날의 필독 만화 8)! 라고 되어 있다. 여성비하 이 1) 윤기헌 김병수, <강철수 인터뷰>, 만화포럼, ) 이는 그를 70년대의 아이콘으로 만들기도 했으며, 그는 이 신문에 그는 1991년까지 18개의 작품을 연재했다. 3) 유재천, 반사회적인 스포츠신문들, 한국논단 8월호, 1991, pp , p. 191 참조. 4) 장상용, <1980년대~90년대 : (8) 스포츠신문과 만화 전쟁>, 2014/5/17. 5) 이득재, 스포츠신문, 욕망의 영상화, 저널리즘 비평, vol.17, No , pp ) 유해신, <사회윤리 허무는 스포츠신문>, 한겨레신문, 1991, ) 이득재 역시 스포츠신문의 외설성은 자본주의의 탈영토화의 일환으로 해석하고 있다.

34 03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활자화 31 데올로기가 가득찬 이 작품을 청년들의 필독서라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얼마나 여성비하 이데올로기가 가득차 있는가를 분석하기 위한 작품으로써 유용할지는 모른다. 2003년에 발행되어도 이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설명이 없다는 점은, 이 작 품의 성적 폭력성에 대해 지금까지 누구도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 작품은 스포츠신문의 판매부수를 좌지우지할 만큼의 파워풀한 콘텐츠였다. 이는 무엇인가, 이 작품이 가지고 있 는 매력이 독자들을 끌어들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연극화 9) 와 영화화 10) 역시 그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 한 측면에서도 이 작품의 성차별적 발언들이 그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이 작품의 대중적 파급력은 어디서 발생한 것이며, 그것이 여성에 대한 성차별화 전략이라면 우리는 과연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것일 까? 만약 이것이 성공의 원인이라면, 향후 성인만화는 여성차별전략을 지속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한 내용적 차원을 떠나서 도 이 작품의 완성도는 어느 정도인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경로를 거쳐보려고 한다. 우선, 이 작품의 이야기적 구성을 분석해보려고 한 다. 이 분석을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의 주된 축이 다양한 여성과 주인공이 펼치는 사건들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찾아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만화작품으로서의 완결 도, 그 형식적 특성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이를 통해, 향후 성인만화들이 성담론을 펼치는데 있어 어떠한 점들을 조심해야 하 는지, 또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논의해보려고 한다. 2. 스토리 측면에서의 작품 전개 2003년에 새로 출간된 이 작품은 총 9권으로 이루어져있다. 스토리 측면에서 이 작품은 중간 중간에 정치비판이라든가 자 기비판이라는 부분이 조금씩 결합되어있고 친구인 준태의 이야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은 주인공인 달호와 여성과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사랑, 그 투신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 두 개의 삽화 란 선전문구의 열 두 개란 곧 달호가 섹스를 시도했거나 섹스에 성공했던 여성들의 숫자이다. 주인공인 달호는 중산층 가정의 외동아들로 대학교 2학년이다. 대학을 들어간 이유가 여성을 만나기 위했던 것인 만큼, 그 냥 본성이 카사노바인 것으로 설정되어있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 여자만 보면 개처럼 쫓아다닌다는 비난을 포함하여 발바리라고 불린다. 그 만남이 짧은 경우도 있고 긴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헤어진다는 것이다. 스토리 진행을 위해 당연한 귀결이다. 발바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여성들과의 만남을 보여준다. 맨 처음 등장하는 여성은 미나라는, 애인이 바람피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는 여성(1. 1권)이다. 다음은 옆집에 사는 3살 연상 의 회사원인 주희이모로, 연애라고는 해본 적 없는 여성(2. 1권-2권)이다. 주변의 시선을 염려하는 준희이모는 결국 헤어지자 고 한다. 그 다음은 디스코텍에서 만난 진아(3. 2권). 그녀와는 섹스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미 그녀 가 너무 여러 남자와 쉽게 섹스를 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다른 여성을 만나는데 계속 실패하고 있자, 학보사 기자후배인 최희 8)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표지 참조, 2003, 애니북스. 9) 1989년 2월부터 3월까지 한 달간 극단 멘토가 대학로에서 무대화했고(< 발바리의 추억 연극으로>, 한겨레신문 1989년 2월 4일), 같은 해 8월부터 9월까지 동일한 극단이 재공연했 다. (<발바리의 추억 재공연>, 경향신문, 1989년 8월 3일) 10) 1989년에 강철수가 직접 대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던 이 영화는, 1989년 영화진흥공사가 지정하는 좋은 영화 에 선정되기도 했다.(<올 하반기 좋은 영화 <불의나라 등 9편 선정>, 경 향신문, 1989년 12월 19일)

35 32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경이 나타나서 좋은 여성을 소개시켜 줄 테니 건전하게 살아보라고 한다. 그렇게 만난 여성이 아름답고 성실하고, 열심히 교 회를 다니는 미스 박(4. 2권-3권). 그녀를 만나면서도 끊임없이 섹스를 시도하자, 결국 그녀에게 버림받는다. 그런 발바리에 게 최희경(5. 3권-4권)이, 이제 자기에게 정착하라며 제안한다. 희경의 애정과 헌신에 따라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 이던 달호는 결국, 그녀가 자신과의 섹스를 피하는데다가 요구가 많아지자 준태에게 상담한다. 준태는 희경이 달호의 재산을 보고 달려든 것이라고 하자 그 말에 발끈한 달호는 희경에게 달려가 손찌검을 한다. 오해를 풀고 다시 잘 만나던 둘은 호텔에 들어가려고 하던 모습을 교회집사에게 들키는 바람에 강제로 헤어지게 된다. 그 다음은 최희경과의 스토리가 진행될 때 잠깐 등장했던 다방의 여주인 미스 리(6. 4권-5권)이다. 남쪽의 사투리를 쓰는 연상의 그녀는 달호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성욕밖에 없는 그에게 딱 어울린다며 자신의 친구를 소개해준다. 룸싸 롱 고급 호스티스인 오민숙(7. 5권-6권 끝)은 세상에 대해 나름의 복수를 하겠다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다. 달호에게 결국은 타도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고 규정하고 떠난다. 그녀와 완전힌 헤어지기 전, 그녀가 연락 두절된 사이 잠깐 두 여성이 등장 한다. 한 여성은 예쁘다고 우겨서 소개받은 대학 후배 유은영(8. 5권 끝부분-6권 초 잠깐). 그의 작전에 전혀 넘어가지 않다가 오민숙이 등장하자 잊혀진다. 두 번째는 쫑(9. 6권 중간)이라는 재수할 때 잠깐 만났던 여자후배이다. 그녀와의 섹스가 흥이 나지 않자,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오민숙과 헤어진다. 다음번엔 여동생의 친구인 조명숙이 나타난다. 그래서 자 신이 다니는 병원의 간호사인 윤미희를 좀 혼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막상 윤미희( 중간)와 사귀게 되면서 그녀가 결혼하기 전까지 순결을 줄 수 없다고 하자 결혼을 약속한다. 웬걸,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그녀가 처녀가 아니었다고 의심하고 결국 그녀에게 버림받는다. 이제 조명숙(11. 8)과 하룻밤을 보내고 사실 자기가 오민숙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유가 자신이 걸레였다는 말을 하고, 음독자살을 시도하며 달호에게 똑바로 살라고 충고한다. 그 내용에 충격을 받은 달호는 자기도 자살하려고 도봉산에 갔다가 거기서 목매려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엄씨(12. 9)라는 여성을 만난다. 그녀를 따라 내려가 차 한잔 마시고 다음 미팅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부모님이 선을 주선한다. 어릴 때 만났던 쌀집 미자(13.9). 그녀가 호락 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자 달호는 엄씨와 만나지만, 그녀는 친구 준태와 동거하다 떠난다. 준태마저도 그의 곁을 떠나고 그의 진 지한 충고에 잠깐 마음이 흔들리는 듯 보이다가 결국 미자를 어떻게 하면 넘어트릴까를 고민하며 작품은 종결된다. 3. 내용적 분석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들 이 작품을 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언어적 폭력성이었다. 그것도 다른 영역이 아니라 여성에 대한 언어폭력의 수위 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음란성 지적에 의한 연재 중단된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이 작품의 문제는 음 란성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제재의 성격이 성적 비하보다는 음란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인지, 아 니면 음란성 속에 여성비하까지 포함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전자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스포츠신문의 음란성에 대한 당시의 기사들이나 연구물들이 다수를 점하기 때문이고, 여성비하에 대한 비판의 글들은 잘 만날 수 없기 때문 이다. 유재천은 스포츠신문의 만화부록들이 황색( 黃 色 )언론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색정적( 色 情 的 )이며, 도덕적 타 락을 부추기는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 11) 이라고 지적하지만, 딱히 여성성에 대

36 03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활자화 33 한 비하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임재구는 스포츠신문이 주창하는 성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지적의 핵심 은 여성비하가 아니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유포한다는 점에 그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상식화 하고, 스포츠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과는 무관하게 스포츠 보도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상징 12) 하듯이 여성선수의 신체를 노골적 으로 게시한다고 지적한다. 주진숙 13) 은 만화의 선정성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연재만화의 선정성은 다른 연재물들의 선정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신문이라는 특 성상 한번 보고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아무렇지 않은 것들도 떼어놓고 보면 음란하게 보일 수 있 다는 점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이런 선정적 만화는 본격적인 만화잡지나 단행본으로 제시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며, 신문사 들의 자율규제를 권하고 있다. 이는 합당한 해석이라 고 보지만, 1991년이라면 이미 <발바리의 추억>이 연 재되고 있을 무렵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언어적 폭 력에 대한 언급이 부재한 것은 안타깝다. 과연 이 작품을 선정성과 음란성에 맞추는 것이 적 절한 것인가? 연구자가 보기엔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 력성이 도를 넘었다고 보인다. 여성은 종종 접시위의 음식이나 먹을 것 등으로 묘사된다. 그림 1을 보면, 옆 집에 사는 여고생과 2번째 만났던 주희이모가 등장한 다. 이에 대해 이 불경기에 이제 졸지에 왠 쌍피냐? 한 마리는 씽씽한 영계! 한 마리는 쌈쌈한 중닭! 어느 [그림 1] <발바리의 추억> 3권 134쪽 [그림 3] <발바리의 추억> 8권 12쪽 [그림 2] <발바리의 추억> 9권 153쪽 [그림 4] <발바리의 추억> 8권 13쪽 닭부터 잡을까? 백숙으로 할까? 도리탕으로 할까? 라고 좋아라한다. 그림 2는 알고보면 논다하는 남녀 들은 족보를 맞춰보면 다 걸리는 친인척인데, 그 이유 를 여자에게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물량은 한정돼 있고 주문은 폭주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공중목욕탕 이 생길 수밖에 더 있어? 그 뿐만이 아니다. 몇몇 발 화들을 옮겨놓자면 다음과 같다. "남자의 갈비뼈 하나 로 만든 주제에(5권 45쪽), 여성은 머리비고, 초등2 학년 중퇴짜리가 딱 좋다 (5권 46-47쪽), 호스티스 에게 걸레도매상(5권 79쪽), 화대 없는 잠자리에 대해 만세, 이게 웬 공술이냐? 아니, 웬 공여자 냐? (5권 84쪽) 등이다. 게다가 12명의 여성과의 만남 중 3명은 처녀이기 11) 유재천, ibid., p, ) 임재구, 한국 스포츠신문의 공적여론 형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체육학회지, 제 2호. 2002, pp , p ) 주진숙, 스포츠신문의 선정적 만화에 대한 일고, 저널리즘 비평, Vol.5 No.1, 1991, pp

37 34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그림 5] <발바리의 추억> 8권 18쪽 [그림 6] <발바리의 추억> 8권 19쪽 에, 또 다른 여성들은 처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언급하 고 있는 순결이데올로기에 대한 유포는 상당히 과하 다. 여간 여자는 복수남자랑 그러는 게 아냐 (2권 141쪽), 여자가 신비감을 잃으면 남자의 사랑을 못 받는다는 둥. 사기그릇하고 여자는 내굴리면 어떻다 는 둥 마지막으로 열심히 충고를 해주었는데 (2-147), 신제품을 아무 포장도 안 해 갖고 고렇게 함부 로 내굴려? 그 귀한 걸...멀쩡한 새 부대를 못 쓰게 해 놓고(2권 81쪽). 그러나 가장 놀라운 것은 10번째 등 장했던 윤미희라는 여성과의 헤프닝이다. 거부하고 있는 그녀를 결혼하겠다고 하면서 하룻밤 같이 보낸 후, 달호는 그녀가 진짜 처녀가 아니라는 의혹을 가진 다. 그것을 아주 오랫동안 묘사하는데, 그 방식은 그림 3에서 6까지를 참조하길 바란다. 물론 이 전에도 지하갱구 깊숙이 굴 착기를 내려 보내(2-69)등의 언어묘사를 한 적이 있다. 물론 이 작품이 제작된 시기는 1988년이고,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시기였으므로 시대적 한계를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표현과 이야기들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용어와 표현들이 지금도 버젓이 남성들 의 술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제어 불가능한 것이며,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적 수치심을 불 러일으키는 표현들이 버젓이 활자화되어 유통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물론 구어로 말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자화되어 오늘날 재판되고, 또 언젠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질 기회를 가지는 작품 이라는 성격을 보면 그냥 넘 어갈 수는 없다. 당시의 스포츠신문에 실리던 모든 만화작품들이 이런 식의 여성에 대한 폭력적 발언의 수위가 높았던 것은 아 니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비록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고 해도 언어적 폭력성은 비판의 소지가 뚜렷하다. 4. 배경적, 형식적 특성 4-1. 스포츠신문이라는 지면의 한계점 오늘날도 동일한 맥락의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사실상 스포츠신문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법적, 구조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유채천은 1987년에 언론기본법이 폐기되고 대신 <정기간행물의 등록 등에 대한 법률>이 공포됨으로써 신문을 비롯한 정기간행물 발행의 자유가 크게 확대된 것을 배경으로 지적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언론의 자율경쟁시대를 도래시켰고, 정기간행물의 양적인 팽창이 격심한 경쟁과 황색언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4) 고 분석한다. 그리고 스포츠신문은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신문사로써 수익을 내기위한 매체로 인지되고 있다. 1985년의 스포츠서울 을 발행하는 대한매일은 정부 소유의 신문사나 마찬가지이며, 1991년의 스포츠조선 을 발행하는 조선일보는 국내에서 가장 보 14) 유재천, op.cit., p.190.

38 03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활자화 35 수적인 신문이고, 1999년에 창간한 스포츠투데이 를 발행하는 국민일보는 기독교단체와 밀접한 연관 15) 이 있다. 가장 먼저 창 간되었던 일간스포츠 는 한국일보의 자매지였다가 2005년에 중앙일보가 제 1주주가 되었다. 창간이후 일간스포츠 가 만화 계에 기여했던 긍정적인 역할은 스포츠서울 이 창간되면서 흐려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판을 독점하고 있던 일간 스포츠 에 대해 스포츠서울 은 창간 초기에 저가정책을 쓰며 몇 년 만에 일간스포츠 를 따라잡았다. 신문을 가판 판매업자 들에게 절반 값에 덤핑으로 제공하는 정책이었다. 가판 판매업자들로선 스포츠서울 한 부를 팔 때, 일간스포츠 두 부를 판 것과 비슷한 이득이 생겼다. 가판이 스포츠서울 을 밀면서 일간스포츠 와 스포츠서울, 양사 간의 감정대립이 심해졌다. 양 사는 신문 가판시장에서 각각 1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16) 당시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스포츠신문들의 발간의 자유와 과다경쟁이라는 구조적 배경이야말로 스포츠서울 의 창간을 통해 5공화국( )이 3S정책을 수행했다는 근거를 제공하기도 한다. 결국, 정부와 보수언론의 암묵적 지지 하에 스포츠신문들의 지면은 점점 더 그 음란성과 도덕적 하락을 조장했다. 대부분의 리뷰나 연구들은 만화도 그러하지만, 기사의 타이틀이나 다양한 종류의 콩트물, 음담패설류를 소개하는 글들 17) 역시 그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독자의 도덕성을 마비시키고 음란성을 부추긴다는 비판은, <발바리의 추억>이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 이데올로 기를 유포시킨다는 비판과 동일한 맥락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도덕성 마비와 음란성의 제시는 여성비하와 상관적일 수 있겠 지만 여성비하라는 부분이 필요불가결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스포츠신문에 연재된 모든 만화들이 <발바리의 추 억>처럼 여성비하나 모멸적 표현들이 일반적이었다면, 그야말로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의 사회적 분위기상 그것이 일반적 이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다른 잡지만화들, 예컨대 1985년에 창간된 만화광장 만 떠올려보더라도 그 러한 여성모멸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적 분위기 전체가 그렇지 않았다면, 이러한 여성비하 발언들은 스포츠신문들의 어조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나 스포츠신문에 실린 모든 연재만화들이 여성에 대한 폭력적 발언까지 추락하지 않고 있다 면, 이는 <발바리의 추억>자체의 특성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한번 보고 버리는 스포츠신문에 연재된 만화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문제제기 역시 적절하지 않다. 스포츠신문의 지면에 실린 작품들 중 많은 작품들은 우리 만화사의 중요한, 그리고 아직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발바리의 추 억>역시 긴 시간이 지난 이후에 재발간되었다.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만화작품은 작품이 아니라 휴지가 되어버 린다. 또한 비록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가 심하긴 하나, 주로 남성들로 이루어진 독자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을 비평의 대상으로 다루는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 만화작품으로서의 특징들 <발바리의 추억>은 형식적 측면에서 분석하자면 아주 단순하다. 일단 전체 작품은 4단 구조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는 다. 비록 한 단에서 2칸에서 4칸까지 분할하는 경우는 있어도, 9권이라는 전체 권수에 이르는 동안 단 한 번도 4단 구조를 벗 어난 적이 없다. 대부분의 칸들은 마치 TV드라마와 같은 앵글을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의 칸들은 등장인물들의 얼굴과 상체 까지 보여주며 풀샷과 롱샷은 많지 않다. 앵글도 상당히 단순하며 하이앵글과 로우앵글도 희귀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시각적 인 차원에서 읽을 것이 많지 않다. 사실 이는 강철수의 특징과도 이어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보이는데, 그의 재미의 대부분은 15) 정부, 기독교계열, 보수언론 계열이 함께 스포츠신문을 만들고 있는 것은, 타 지면에서 도덕성을 찬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임재구, op.cit., p ) 장상용, op.cit. 17) 주진숙, op.cit., p.51.

39 36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화술에서 기인한다. 그의 위트와 사건에 대한 해설이 웃음과, 때론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야기한다. 이 작품에서 그의 독백은 각 칸들의 윗부분을 많이 차지한다. 말풍선 안의 대사도 대사지만 독백이라는 형식으로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주인공의 어찌 보면 한심한 작태에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작가의 언어 적 흡인력만은 탁월하다. 달리 말하면, 그의 작품은 텍스트 주도적인 작품 으로 규정할 수 있다. 각 칸들 속의 이미지가 메시 지를 던지는 경우는 거의 없고, 텍스트의 내용들을 그림으로 다시 설명하는 방식, 그림이 텍스트를 보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림 3의 중간에서 4로 이어지는 칸들은 보면, 이 작가가 어떤 식으로 칸의 내용물들을 구성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사실상 이러한 방식은 만화라는 표현형식의 묘미를 모두 살려주는 것은 아니다. 만화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는 관계가 훨씬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미지들을 읽어들일 때, 이미 텍스트로 언급한 것이 다시 등장 하면 이미지의 매력은 추락한다. 결국 <발바리의 추억>은 보기 보다는 독자들이 읽어 주기를 의도하는 작품이다. 오히려 읽는 것만으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칸도 있다. 13쪽의 칸 6은 공포스럽다. 굴착기 18), 드릴, 톱에 이어, 이제 정과 망치도 등장한다. 뒤에 배경처럼 보이는 2단 서랍과 갓이 씌워진 등, 티슈 박스 등은 이곳이 발바리가 애용하는 호텔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 갓이 씌워진 등은 같은 권인 8권의 10페 이지에도 똑같은 형상으로 호텔의 침대 옆에 등장한다. 즉, 이것만 봐도 독자들은 이곳이 작업장이 아니라 호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머리 형태로 보아 달호가 아닌 다른 남자, 검은색으로 채색되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제 3자가 사람이 철판에 구 멍을 뚫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철판에 구멍이라는 용어들이 계속 등장한 이상, 이러한 이미지는 결코 은유적인 표현이 될 수 없다. 직접적으로 철판에 구멍을 뚫는 모습을 침대를 뒤로 하고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발바리의 추억>이 언어적 폭력에 이어 시각적 폭력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표 1] 텍스트 주도적인 칸 구성 쪽/칸 텍스트(독백) 내용 그림 내용 12/5 현장 검증할 게 따로 있지 이미 철판(?)에 구멍을 뚫어놓고 나서 구멍 뚫린 철판 12/6 이제 와서 새 철판이냐 헌 철판이냐 살피겠다는 건 뭐야? 구멍 뚫린 철만을 살펴보는 발바리 12/7 하실지 모르겠지만. 고것이 또 그런 것이 아니야. 여성을 억지로 잡아끄는 발바리 12/8 아무리 구멍이 뻥 뚫어진 철판이라 할지라도 구멍 뚫린 철판 13/1 전문가(?)의 눈으로 면밀히 살펴보면 그게 드릴 한 방에 관통당한 것인지, 톱으로 썬 것인지 (드릴 한방에 의한) 고르게 뚫린 구멍이 있는 철판 13/2 철판자체가 워낙 약하고 낡아서 저절로 뚫린 구멍인지 불규칙적인 구멍이 뚫린 구불구불한 철판 13/3 혹은 내가 뚫기전에 이미 다른 기능공이 뚫은 것인지 (기능공이 작업한 듯한) 고르게 구멍 뚫린 철판 13/4 혹은 여러 기능공들이 공동작업으로 넓힌 구멍인지 고르지 않게(공동작업한) 구멍 뚫린 철판 13/5 다 아는 수가 있는거야. 나 정도 안목의 발바리면. 구멍뚫린 철판을 관찰하고 있는 발바리 13/6 그것이 몇년도, 몇월, 며칠날, 몇번까지는 모른다 해도 망치와 정으로 철판을 구멍뚫고 있는 남자의 검은 옆모습 13/7 적어도 내 앞에 전임자가 있었느냐 정도는 대충 느낌으로 알 수가 있는 것이야. 구멍뚫린 철판을 관찰하고 있는 발바리 18) 지하갱구 깊숙이 굴착기를 내려보내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2권 69쪽, 2003, 애니북스.

40 03 : 여성에 대한 언어적 폭력의 활자화 37 이러한 시각적 폭력이 드러나는 곳들은 상당히 많다. 주로 여성들을 접시 위의 음식으로 표현하는 곳이 그러하다. 그림 2의 칸 7과 8을 비롯하여, 그림 7에서 9는 이러한 시각적 폭력들을 잘 보여준다. 여성들은 음식에 빗대는 것을 너머, 이제는 아무 리 독백이라고 하지만 머리채를 끌고 3층에서 던지고 싶다는 발화를 그대로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써 시각적 폭력을 가한다. [그림 7] <발바리의 추억> 9권 66쪽 [그림 8] <발바리의 추억> 9권 68쪽 [그림 9] <발바리의 추억> 9권 69쪽 [그림 10] <발바리의 추억> 9권 76쪽 5. 나가며 : 새로운 성인만화를 기다리며 <발바리의 추억>이 제시하는 여성에 대한 언어적, 시각적 폭력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인가? 폭력의 층위는 다를 지라 도 여전히 여성은 성적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음담패설을 빙자한 화술들은 여전히 우리 들의 술자리에서 끈질긴 유령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다. 황색언론으로서의 스포츠신문들도 여전히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최 근 스포츠신문에 대한 비판이 줄어든 것은 스포츠신문이 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사한 황색언론들이 너무나 많이 생 겨서 이제 더 이상의 비판도 소용없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제 누구도 스포츠신문의 만화에 열광하지 않는다. 연재만화를 읽기 위해 스포츠신문을 사보던 것도 한때의 현상이었을 뿐, 이제 스포츠신문은 존재하긴 하지만 그 영향력은 아 주 희박하다. 당시 스포츠신문의 대다수의 독자가 그러했듯이, <발바리의 추억>의 독자군들은 남성들이다. 철저히 남성 중심의 발화들의

41 38 만화포럼 칸 : part 연구프로젝트 강철수 집적장이다. 남성들이 위로받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이채원이 동의 19) 하듯이 페니스 파시즘 20) 이 떠오 른다. 동일한 제목의 저서를 출간하면서 이 편집부는 폭력적 성차별의 억압적 남성우월주의의 근거는 바로, 유일무이하게도 고작 페니스 라고 선언하며 근원적 파시즘으로서의 페니스 파시즘 이 남성의 허약함을 은폐하는 치졸한 가면이라고 분석한 다. 이는 마치 달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달호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면죄부라고는 이것 밖에 없다. 스스로의 허약함, 거대한 조직과 자본 앞에서 도저히 주체일 수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자신의 허약 함을 여성이라는 대척점이라고 보이는 곳에 투사하며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강변하고 싶은 욕구를 그대로 묘사해줬다는 것 말 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위안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거대한 조직과 자본은 남성들만 허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 니며, 여성도, 노인도, 아동도, 이주노동자도 그렇게 만든다. 여성을 모욕하고 희롱함으로써 남성은, 자신의 절대적 다수의, 파트너가 될 수 있는 아군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허위의식도 의식이며, 아무리 엉터리고 말도 안되는 생 각이라고 할지라도, 이러한 생각에 갇혀 있는 남성들에게 <발바리의 추억>이 많은 위안이 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아 무리 허위에 가득찬 위안이라도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새로운 성인만화가 필요하다. 언젠가부터 에로물과 동의어가 되어버린 성인만화가 아니라, 성인으로서의 우 리의 삶이 투영된 작품들 말이다. 독자들도 나이를 먹는다. 언제까지 원피스 류의 성장소설에 환호성을 보낼 수는 없다. 여성 과 남성이, 적어도 성적 평등이라는 기반 위에 함께 제시될 수 있는, 현재의 수많은 고민들을 함께 부딪히는, 그런 진짜 성인 만화를 기대해본다. 참고문헌 강철수, <발바리의 추억 1-9(완)>, 2003, 애니북스. 노혜경 외, <페니스 파시즘>, 개마고원, 유재천, 반사회적인 스포츠신문들, 한국논단, 월호. 유해신, <사회윤리 허무는 스포츠신문>, 한겨레신문, 1991, 윤기헌 김병수, <강철수 인터뷰>, 만화포럼, 이득재, 스포츠신문, 욕망의 영상화, 저널리즘 비평, vol.17, No 이채원, <영화 속 젠더 지평>, 서강대학교 출판부, 임재구, 한국 스포츠신문의 공적여론 형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체육학회지, 제 2호,2002. 장상용, <1980년대~90년대 : (8) 스포츠신문과 만화 전쟁>, 주진숙, 스포츠신문의 선정적 만화에 대한 일고, 저널리즘 비평, Vol.5 No.1, < 발바리의 추억 연극으로>, 한겨레신문, <발바리의 추억 재공연>, 경향신문, <올 하반기 좋은 영화 불의나라 등 9편 선정>, 경향신문, ) 이채원, <영화 속 젠더 지평>, 서강대학교 출판부, p ) 노혜경 외, <페니스 파시즘>, 개마고원, 2001, pp. 7-9.

2015 경제ㆍ재정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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