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심으로 한 한국학 전반을 새롭게 이해하는 구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강안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의 성리학이 유입되었고 이후 사림파가 성장하였다. 길재 나 김숙자와 김종직, 그리고 김굉필이 강안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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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1)정 우 락* 차 례 1. 머리말 2. 강안인식과 강안학의 개념 3. 강안학으로서의 고령 유학 4. 고령 유학의 특징과 전망 5. 맺음말 국문초록 본고는 고령 유학의 전반적 성격과 특징, 그리고 전망을 다룬 것이다. 이를 위하여 먼저 낙동강 연안에 위치한 고령의 지리적 특수성에 입각하여 江 岸 學 이라는 새로운 가 설을 통해 영남 유학의 성격을 시론으로 살핀 다음, 거기에 입각하여 고령 유학의 특 징을 구명하는 것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이는 퇴계학과 남명학을 중심으로 영남학을 읽던 기존의 관점을 극복하는 측면에서, 나아가 한강이나 금강 등 전국적 범위의 강안 학을 고령지역에 적용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의의를 확보하고 있다. 江 岸 이라는 용어는 영남지역의 詩 歌 문학적 특성을 살피면서 제출되어 낙동강 연안 을 중심으로 유학사상사를 새롭게 이해하자는 쪽으로 확대 적용되었다. 즉 강좌의 退 溪 學 派 와 강우의 南 冥 學 派 로 양분되던 영남학을 강안지역의 寒 旅 學 派 를 다시 설정하여 소 통과 화합의 영남학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의식 하에 이 용어가 탄생한 것이니, 강안학은 16세기 이후라는 시간적 범위, 상주에서 창원에 이르는 공간적 범 위, 유학사상이라는 학문적 범위를 포괄한 개념이다. 이 개념을 더욱 확장하여 강을 중 *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2 6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심으로 한 한국학 전반을 새롭게 이해하는 구도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강안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의 성리학이 유입되었고 이후 사림파가 성장하였다. 길재 나 김숙자와 김종직, 그리고 김굉필이 강안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활동하였다는 사 실은 이를 증명하기에 족하다. 고령지역은 김숙자가 현감직을 수행하면서 초기 사림이 뿌리 내리기 시작했고 김종직의 후손이 살면서 사림파 着 根 의 한 표본이 되었다. 강안 학의 특징은 기호학과 영남학, 혹은 퇴계학과 남명학의 會 通 性, 박학에 바탕 한 실천정 신을 지닌 實 用 性,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담보된 獨 創 性 을 들 수 있다. 강안지역 에 위치한 고령지역은 이 같은 강안학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면서도 고령이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회통성의 경우 고령 유학은 畿 嶺 學 의 회통성보다 退 南 學 의 회통성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며, 퇴남학의 회통성에서도 남명학 쪽으로 다소 경사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즉 남명학의 저류와 그 발전적 면모를 통해 고령 유학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용주의에 입각한 실천정신은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의병활동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것 은 고령 유학이 지닌 최대의 특징이다. 그리고 독창성은 朴 而 章 의 양명학 수용 가능성 과 서양철학 도입을 통한 李 寅 梓 의 유교개혁사상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사정을 고려 하며 고령 유학의 미래를 전망해 본다면, 고령지역의 강안학적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회통성과 실용성, 그리고 독창성이 역동적 상생관계를 구축하며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응전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라 하겠다. 주제어 강안학, 낙동강 연안, 고령 유학, 기호학, 영남학, 퇴계학파, 남명학파, 한려학파, 회통 성, 실용성, 독창성 1. 머리말 죽령과 조령의 남쪽을 의미하는 嶺 之 南 으로서의 영남은 그 자연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영남문화라 할 수 있는 독특한 문화를 이룩해 왔다. 영남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뚜렷한 경계로 하여 이 지역을 다른 지역으로부터 고

3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7 립시키고, 또한 지역 안으로는 낙동강이 흘러 독립된 유역분지를 이루고 있 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과 함께 가야를 병합한 신라의 문화적 전통을 적극적 으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여타의 지역에 비해 통일성과 일체감이 강하다. 특히 낙동강은 다양한 지류를 합류시키면서 본류를 형성하고 있어 문화적 통 일성을 이루는데 많은 역할을 해왔다. 영남을 찬양해 마지않았던 李 翼 ( 星 湖, 1681~1763)은 이를 염두에 두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지금 온 나라 가운데서 五 倫 을 갖춘 지역을 찾자면 오직 이 한 지역이 있을 뿐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산천의 형세로 증명할 수 있다. 대체로 영남의 큰 물은 낙동강인데, 사방의 크고 작은 하천이 모두 모여들어 한 방울의 물도 밖으 로 새어 나가는 일이 없다. 그 물이 이와 같으면 그 산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러 인심이 한데 모이게 하는 것이니, 부르면 반드시 화답하고, 일 을 당하면 힘을 합치며, 儒 賢 이 대대로 일어나 스스로 聲 敎 를 이루어서 변할 수 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의 말기에 오직 신라가 통일하여 1천 년을 전하였 으니 이것이 어찌 인심이 흩어지지 않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1) 이 자료는 이익이 유가의 오륜이 영남에 제대로 전해지는 이유를 나름대 로 유추한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거로 인심의 통일을 들고 있다. 영남의 인심은 한데 모여 부르면 화답하고 일이 있을 때는 힘을 합쳐 그것을 수행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영남의 인심이 어떻게 통일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이유를 자연지리 내지 역사지리적 측면에서 찾고 있다. 즉 자연지 리적 측면에서는 사방의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하나의 강을 이루고, 역 사지리적 측면에서는 신라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남 1) 李 翼, 嶺 南 五 倫 (ꡔ 星 湖 僿 說 ꡕ 經 史 篇 ), 今 環 域 之 中, 求 五 倫 備 具 之 鄕, 惟 此 一 區, 是 野. 其 故 何 也? 山 川 風 氣 可 驗. 凡 嶺 南 之 大 水, 曰 洛 東, 四 圍 群 川 鉅 流 微 淙 一 齊 合 同, 無 一 點 外 泄, 其 水 如 此, 其 山 可 知. 此 爲 衆 情 索 聚, 有 倡 必 和, 當 事 則 倂 力 加 之. 儒 賢 代 興, 自 爲 聲 敎, 不 可 以 嬗 變 也. 是 以, 三 國 之 際, 惟 羅 卒 能 統 三, 傳 世 一 千, 豈 非 人 必 之 不 渙 耶?

4 8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은 신라문화를 계승하면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인심이 통일되어 있기 때문에 유가의 중요한 도덕률인 오륜이 잘 계승된다고 본 것이다. 이익은 낙동강에 모여드는 사방의 지류를 통해 영남의 통일된 인심을 직 관하고 있다. 사방의 인심이 낙동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에 비로소 통일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익의 관점과는 반대로 낙동강을 중심으로 영남을 좌우 혹은 상하로 나누어보려는 시각이 있어왔다. 중종 14년(1519)과 선조 15년(1592)에는 경상도 지역이 너무 크다고 여겨 아예 서울에서 보아 동쪽 을 좌도로 서쪽을 우도로 구분하기도 했다. 鄭 慶 雲 ( 孤 臺, 155~?)이 ꡔ 孤 臺 日 錄 ꡕ에서 영남을 둘로 나누어 좌우도라 하였는데, 순무어사 徐 渻 이 승진하여 右 巡 察 使 가 되었다. 2) 라고 하여 전쟁기에 영남좌우도를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를 알게 하기도 한다. 정치사상사적 측면에서 볼 때, 강을 중심으로 영남을 둘로 나누어 이해하고 자 하는 생각은 16세기 이후 李 滉 ( 退 溪, 1501~1570)과 曺 植 ( 南 冥, 1570~ 1572)이 학단을 이끌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퇴계학파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좌도에, 남명학파는 진주를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에 거점을 마련하고 때 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화합하면서 독특한 영남의 유학사상을 만들어갔기 때 문이다. 강을 사이에 둔 대립은 鄭 仁 弘 ( 來 庵, 1536~1623)이 ꡔ남명집ꡕ을 간행하면서 그 말미에서 이황이 조식을 두고 한 비평을 공개적으로 변척하면 서 시작되었다. 정경운은 그의 일기에서 듣건대 江 左 의 유생들이 상소하여 來 庵 先 生 을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趙 月 川 이 굳게 금하여 중지시켰다고 한다 3) 고 하여 당시의 사정이 간단하지 않았음을 기록해 두고 있다. 퇴계학파와 남명학파가 갈등의 관계를 지속하지만 이들은 상호보완적인 2) 鄭 慶 雲, ꡔ 孤 臺 日 錄 ꡕ 乙 未 年 (1595) 3 月 12 日 條, 以 嶺 南, 分 爲 左 右 道, 巡 撫 御 史 徐 渻, 升 爲 右 巡 察. 3) 鄭 慶 雲, ꡔ 孤 臺 日 錄 ꡕ 乙 巳 年 (1605) 12 月 8 日 條, 聞 江 左 儒 生 上 疏, 欲 攻 來 庵 先 生, 趙 月 川, 固 禁 中 止.

5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9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예컨대 명종 20년(1565) 8월 權 審 行 ( 聚 奎 齋, 1517~ 1579)을 중심으로 한 이황의 제자들과 金 宇 宏 ( 開 巖, 1524~1590)을 중심 으로 한 조식의 제자들이 안동의 京 在 所 에 모여 보우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 소를 하고, 나아가 성균관 유생들이 수업을 거부하고 나가버리는 空 館 과 대 궐 앞에서 연좌시위를 하며 보우의 목을 벨 것을 요구하는 데 있어 보조를 같이한다. 영남학파의 이 같은 노력으로 윤원형과 보우는 처단되고 척신정치 는 마침내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공론정치는 이로써 시작될 수 있었다. 4) 여기서 우리는 통합된 영남의 저력을 유감없이 확인하게 된다. 이익이 관찰하고 있듯이 낙동강은 영남의 내륙에서 흘러드는 수많은 지류 에 의해 만들어진 한 줄기의 강이다. 분리의 강이 아니라 소통의 강이며 통 합의 강이라는 것이다. 영남은 퇴계학파를 중심으로 한 강좌의 仁 과 남명학 파를 중심으로 한 강우의 義 가 하나로 모여 仁 義 로 흐른다. 낙동강을 중심으 로 강의 좌우는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것 이 아니라, 다른 듯하면서도 같다 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낙동강에 의해 구분되는 안동이나 진주를 중심으로 한 영남의 유학사상 읽기를 넘어, 오히려 낙동강에 의해 통합되는 성주 고 령 대구 등 江 岸 地 域 을 중심으로 영남의 유학사상을 새롭게 읽을 필요가 있 다. 이것이 바로 본 논의가 지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이라 하겠다. 강안지역을 중심으로 영남유학을 이해하고자 할 때 고령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역은 吉 再 의 맥을 이은 金 叔 滋 부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 기 때문에 영남 사림파의 성장에 더없이 중요한 지역이다. 퇴계학파와 남명 학파의 점이지대로 이황과 조식의 공동 제자들이 많으며, 이들은 퇴계학과 남명학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본고는 이를 염두에 두면서 먼저 강안학 이라는 용어를 새로 상정하며 그 타당성을 따지고 이에 4) 이에 대해서는 설석규, 경의검의 또 다른 주인공-개암 김우굉 (ꡔ선비문화ꡕ 5, 남명학 연구원, 2005)에 자세하다.

6 10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기반하여 강안학의 성격을 논의한다. 다음으로 고령 유학과 강안학이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마지막으로 고령 유학의 특징과 전망을 제시 하여 현재와 미래를 위하여 고령 유학이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를 모 색한다. 본고는 영남 유학사상사 읽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하자는 측면에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시론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논의가 가능성으로 존재하 는 것이지 하나의 완결된 구조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논의는 영남 유학의 특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으며, 낙동강을 중심에 두지만 영남을 훨씬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갖 고 있다. 한강이나 금강 등 우리 나라에 산재해 있는 강 연안 지역으로 연구 의 시야를 확장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의는 영남학의 특성과 맞물려 있으면서도 여타 지역에로의 확산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하 겠다. 2. 강안인식과 강안학의 개념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소통과 화합의 영남학을 읽기 위해서는 특별한 장 치가 필요하다. 그 하나가 용어개발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낙동강과 그 연안의 학문을 의미하는 강안학 이라는 용어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강안학 이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영남학을 새롭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은 관련 연구자 사이에서 이미 있어온 터다. 그리고 일부 적용이 되기도 했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낙동강과 그 연안에 대한 그동안의 인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강안학의 개념과 범위를 따져보기로 한다. 이로써 강안학에 대한 연구방향이 명확하게 설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7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11 1) 강안지역에 대한 인식 낙동강은 영남지역에서 행정단위를 넘어서는 총체적 의미를 지닌다. 그 유역의 면적은 여러 도에 걸쳐있는 한강보다 약간 뒤지는 23,895km 2 이지 만, 길이는 525km로 남한에서 제일이다. 이 강은 순흥의 소백산, 문경의 곶갑천, 청송의 보현산 등 세 갈래의 물을 받아, 상주에서 비로소 낙동강 본 류가 되는데, 본류는 영남지역만을 관통하고 있어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다음 자료를 통 해 낙동강이라는 이름의 연원과 그 흐름을 간단히 살펴보자. (가) 洛 水 의 물은 태백산 黃 池 에서 나와 급하게 수백 리를 흘러 上 洛 의 동쪽 에 이르러서야 그 세력이 점점 커진다. 물의 이름을 낙동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5) (나) 경상도의 낙동강은 근원이 태백산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꺾어져 서쪽으 로 흐르다가 다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한 도의 중간을 그었으며, 또 동쪽으로 꺾어져 남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간다. 태백산 황지 는 산을 뚫고 남쪽으로 나와서 봉화에 이르러 매토천이 되며 상주 북쪽에 이르러 송라탄이 되며 주의 동북 35리에 이르러 낙동강이 되고, 의성과 의흥의 여러 냇물은 군위와 비안을 거쳐 와서 합쳐진다. 남 쪽으로 양산의 동원진이 되며, 또 남쪽으로는 세 갈래 물이 되어서 김 해부 남쪽 취량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6) 앞의 것은 李 俊 ( 蒼 石, 1560~1635)이 洛 江 泛 月 詩 序 에서 언급한 것이 5) 李 俊, 洛 江 泛 月 詩 序 (ꡔ 壬 戌 泛 月 錄 ꡕ 張 4), 洛 水, 出 太 白 之 黃 池, 奔 流 數 百 里, 至 上 洛 之 東, 而 其 勢 漸 大, 水 之 名 洛 東, 以 是 也. 6) 李 肯 翊, 地 理 典 故 (ꡔ 燃 藜 室 記 述 ꡕ 卷 16), 慶 尙 道 洛 東 江, 源 出 太 白 山, 東 折 西 流, 又 折 而 南 流, 畫 一 道 之 中, 又 東 折 南 流 而 入 海 至 尙 州 北, 爲 松 蘿 灘, 州 東 北 三 十 五 里 爲 洛 東 江, 義 城 義 興 諸 川, 經 軍 威 比 安 來 合 又 南 爲 梁 山 東 院 津, 又 南 爲 三 分 水 ㅡ 至 金 海 府 南 鷲 梁 入 海.

8 12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다. 여기에 의하면 낙동강은 상주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주는 예로부터 上 洛, 商 山, 洛 陽 등으로 불려왔는데 7) 낙동강은 바로 상락의 동쪽 을 흐르는 강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낙동강 700리 라고 할 때는 바로 상주의 낙동에서 시작한 길이이다. 뒤의 것은 李 肯 翊 ( 燃 藜 室, 1736~1806)이 지리전고 에서 언급한 것으로 낙동강의 흐름을 대체적 으로 알게 한다.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산의 황지이며, 8) 여기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남하하다가 안동부근에 이르러 반변천 등을 만나면서 방향을 서쪽 으로 바꾸고, 점촌 부근에서 내성천을 합하며 다시 남쪽으로 흐른다. 이 강 이 마산과 진해의 산지에 막혀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마침내 부산의 서쪽에 이르러 바다로 흘러든다. 대체로 영남의 列 邑 을 ㄷ 자로 흐르며 지나 간다. 낙동강은 영남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여기에 는 이 지역 사람들의 삶이 포괄적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水 運 을 통해 각 종 물품들이 교역되면서 이와 관련된 저층의 문화를 만들었고, 주변의 승경 을 통해 선비들은 또한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성취하였다. 수많은 농요나 탈 놀이가 발달해 있을 뿐만 아니라 詩 會 를 통한 선유문화 등도 다양하게 발달 했다. 하회탈놀이나 이준 등의 洛 江 泛 月 詩, 9) 權 應 仁 ( 松 溪, 1521~?) 등의 7) ꡔ 新 增 東 國 輿 地 勝 覽 ꡕ 卷 28 尙 州 牧 條 에 의하면, 상주는 이 밖에도 上 州 沙 梁 伐 沙 伐 陀 阿 歸 德 軍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중환은 ꡔ 擇 里 志 ꡕ 慶 尙 道 조에 서 상주는 일명 洛 陽 이며, 조령 밑에서 있는 하나의 큰 도회로서 산이 웅장하고 들이 넓다 라고 기술한 바 있다. 8) 황지에 모여드는 물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에서 정선군 고한읍으로 넘어가는 곳에 싸리재를 만나게 된다. 싸리재를 중심으로 저쪽 너머에는 한강의 발원지 가 있고, 이쪽 너머에는 낙동강의 발원지 너덜샘이 있다. 황지에서 시작하면 낙동강은 1,300리가 된다. 현재 황지에는 洛 東 江 千 三 百 里 예서부터 시작되다 라는 커다란 표석 이 세워져 있다. 9)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개최한 낙강시회는 李 俊 등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시회는 1607 년부터 1778년까지 171년 동안 총 8회 시행되었다. 이때 지은 시를 누적해서 기록한 것이 壬 戌 泛 月 錄 이다. 이에 대해서는 權 泰 乙, 洛 江 詩 會 硏 究 (ꡔ 尙 州 文 化 硏 究 ꡕ 2, 상

9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13 洛 江 同 舟 錄, 이른바 낙강 7현의 泛 舟 洛 江 分 韻, 10) 鄭 章 ( 晩 悟 齋, 1569~ 1614) 등의 追 次 洛 江 韻, 徐 思 遠 ( 樂 齋, 1550~1615) 등의 琴 湖 江 同 舟 錄 등은 모두 이 과정에서 생성된 것이었다. 이처럼 낙동강은 영남인들에게 중요한 기능을 하였으며, 여기서 나아가 낙동강과 그 연안을 중심으로 영남 인의 강한 자부심이 드러나기도 했다. 다음 자료를 검토해 보자. (가) 만력 정사(1617년) 7월 20일 맑음. 닭이 세 번 울자 한강선생이 肩 輿 로 출발하였는데 먼동이 틀 무렵 枝 巖 앞에 도착하여 배에 올랐다. 蔡 夢 硯 郭 永 禧 李 天 封 李 彦 英 李 潤 雨 裵 尙 龍 李 命 龍 柳 武 龍 李 蘭 貴 李 壆 鄭 天 㴻 등이 따랐다. 달성백 李 煿 이 배에 들어와 인사하고 내려갔다. 朴 忠 胤 李 文 雨 都 聖 兪 李 稑 李 綜 李 倫 金 楶 李 興 雨 李 道 昌 등이 뱃머리에서 인사하였다. 배는 도동서원의 것이었다. 11) (나) 내가 들으니, 中 夏 의 절의를 사모하는 자들이 砥 柱 中 流 라는 네 글자를 伯 夷 叔 齊 의 사당 아래 흐르는 물가에 우뚝이 솟아 있는 돌에 크게 새 겼다 한다. 우리 동방의 절의를 사모하는 자들이 또 그 네 글자를 模 寫 하여 선생의 묘소 아래인 洛 東 江 의 江 岸 에 비석을 세우고 이것을 새겨 걸었다. 이는 진실로 천하의 큰 한계를 세우고 만세의 綱 常 을 보전한 것이 중하에는 백이이고 우리 동방에는 선생이기 때문이다. 12) 주문화연구소, 1992)에 상세하다. 권태을은 최근 이를 번역해서 ꡔ 洛 江 泛 月 詩 ꡕ(아세아 문화사, 2007)를 발간한 바 있다. 10) 李 起 春 ( 玉 山, ) 등 7인이 참여하였으며, 1589년(선조 22) 5월에 이루어 졌다. 당시의 分 韻 은 萬 頃 蒼 波 欲 暮 天 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장을 달리해서 다룬다. 11) 鄭 在 夔, 蓬 山 浴 行 錄, 萬 曆 丁 巳 七 月 二 十 一, 晴. 鷄 三 鳴, 寒 岡 先 生, 以 肩 輿 發 行, 昧 爽 至 枝 巖 前, 乘 船. 蔡 夢 硯 郭 永 禧 李 天 封 李 彦 英 李 潤 雨 裵 尙 龍 李 命 龍 柳 武 龍 李 蘭 貴 李 壆 鄭 天 㴻 等 從. 達 城 伯 李 煿, 入 船 拜 辭 而 下. 朴 忠 胤 李 文 雨 都 聖 兪 李 稑 李 綜 李 倫 金 楶 李 興 雨 李 道 昌 等 拜 辭 于 船 頭, 船 則 道 東 院 船 也. 12) 張 顯 光, 冶 隱 先 生 文 集 跋 (ꡔ 旅 軒 集 ꡕ 卷 10,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60, 183쪽), 聞 中 夏 之 慕 節 義 者, 刻 砥 柱 中 流 四 大 字 於 夷 齊 廟 之 下 抗 流 之 石, 而 又 吾 東 之 慕 節 義 者, 摹 其 四 字, 立 碣 刻 揭 于 先 生 墓 下 洛 江 之 岸. 則 誠 以 立 天 下 之 大 閑, 存 萬 世 之 綱 常 者, 中 夏 而 伯 夷, 我 東 而 先 生 也.

10 14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가)는 정구의 후손 鄭 在 夔 ( 省 齋, 1851~1919)가 편찬한 ꡔ 蓬 山 浴 行 錄 ꡕ 13) 의 첫머리이다. 이 책은 정구가 75세 되던 해 풍비를 치료하기 위하여 낙동강 수로를 이용하여 1617년 윤7월 20일에서 9월 5일까지 45일간 동래 온천을 다녀온 것에 대한 기록이다. 이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정구가 가 는 길에 마중하기도 하고 배웅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제자들은 물론이고 관 직을 갖고 있는 사람이나 일반 선비들도 무수히 많았다. 모여든 사람들은 단 순히 노학자의 요양길을 보기 위한 구경꾼이 아니었다. 우리는 여기서 자연 히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강학파를 짐작하게 된다. 한강학파는 장현광 및 그의 제자들과 함께 寒 旅 學 派 를 성립시킨다. 강안지역에는 이 학 파가 퇴계학파 및 남명학파와는 다른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구의 제자 張 顯 光 ( 旅 軒, 1554~1637)이 쓴 冶 隱 先 生 文 集 跋 의 일부이다. 장현광은 이 글에서 吉 再 ( 冶 隱, 1353~1419)의 절의정신을 제시하며 강안지역의 선비정신을 드높였다. 그는 길재의 정신을 지주중류 에 비유하였는데, 낙동강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비유이다. 이 뿐만 아니다. 그는 盧 更 任 의 제문을 쓰면서, 군은 낙동강 언덕에 작은 정자를 지으니, 내 원당의 寓 居 와 서로 마주하였다. 14) 면서 강안에 세운 정자를 특기하기도 했 다. 장현광이 이처럼 강안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영남의 강좌와 강우지역의 중간 점이지대를 인식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러나 길재에게서 흘러내리는 강안지역의 정신사를 염두에 둔 것은 틀림이 없다. 정구가 낙동강을 따라 욕행의 길을 나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장현광이 낙동강 연안에 길재를 기리는 비석이 서자 절의정신을 생각하면서 강안지역의 정신사를 부각시켰다. 정구와 장현광을 중심으로 한 한려학파는 13) 이 책은 정구의 제자 이윤우의 기록과 밀양 사람 노극홍의 집에 있던 초고를 정구의 후손 정재기가 세밀하게 대조 검토하여 1913년에 편찬한 것이다. 14) 張 顯 光, 祭 盧 甥 景 任 文 (ꡔ 旅 軒 集 ꡕ 卷 11,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60, 212쪽), 君 構 洛 江 岸 之 小 亭, 與 吾 元 堂 之 寓 相 對 矣.

11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15 이처럼 낙동강과 그 연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영남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 을 담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퇴계학파 및 남명학파와 변별되는 강안 지역의 특수성을 자각한 것은 근대학문 이후의 일이다. 이 문제는 李 東 英 (1933~2007)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다. 다음과 같은 그의 언급에 주목하기 로 한다. 嶺 南 을 上 下 로 구분할 경우 上 道 를 嶺 左 라 하고, 下 道 를 嶺 右 라 하면 기왕의 명칭이요, 그래서 左 右 로 區 劃 한 연후에 學 脈 과 文 化 環 境 으로 볼 때 嶺 左 右 의 中 間 地 域 이 한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의 명칭을 嶺 中 이란 것으로도 마땅하지 않고 그래서 이 緩 衝 的 接 脈 區 域 의 특성을 감안하여 江 岸 이라 命 名 하였다. 15) 이동영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의 嶺 左 詩 歌, 오른쪽의 嶺 右 詩 歌, 그리고 시조문학상 뚜렷이 변별되는 그 사이의 완충지역을 새롭게 설정하여 江 岸 詩 歌 라 하며 조선조의 영남시가를 이해하였다. 성주와 고령, 칠곡 등 강 안지역이 지닌 특수한 국면을 뚜렷이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영남의 시가문학 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제출된 것이긴 하지만, 강안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영 남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일보 진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강안 지역에 대한 사상사적 자각이 새롭게 일어나기도 했다. 우선 박병련의 다음 언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영남을 낙동강을 중심으로 江 左, 江 右 로 나누고, 학파도 강좌를 退 溪 學 派, 강우를 南 冥 學 派 로 보는데, 여기서 필자가 江 岸 地 域 이라 칭하고자 하는 것은 寒 岡 鄭 逑, 旅 軒 張 顯 光 등 소위 文 穆 淵 源 또는 寒 旅 學 派 라는 독특한 분위기 를 갖고 있는 지역을 지칭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영남이 강좌, 강우로 대별되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지역이지만 퇴계와 남명 모두를 수용하면 15) 李 東 英, ꡔ 朝 鮮 朝 嶺 南 詩 歌 의 硏 究 ꡕ, 釜 山 大 學 校 出 版 部, 쪽.

12 16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서 독특한 학풍을 형성하기도 한 지역이다. 구체적으로는 성주, 고령, 현풍, 창 녕, 영산, 의령, 함안, 밀양, 청도, 김해, 창원지역을 지칭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지역은 초기에는 남명학파의 핵심지역이었으나, 光 海 君 復 立 謀 議 사건에 연루 되어 세력이 와해되었다. 이 사건 이후 이 지역에서는 寒 岡 을 매개로 汎 退 溪 學 派 로 흡수되었으나 여러 가지 미묘한 특징들을 나타내고 있는 지역이다. 16) 박병련은 1631년(인조 9년) 2월에 있었던 光 海 君 復 立 謀 議 사건을 통해 남명학파의 존재양상을 살피는 과정에서 강안지역을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 는 퇴계학파와 남명학파의 중간 점이지대에 위치한 한려학파(문목연원)가 지 니는 위상을 분명히 설정한 것이며, 이동영이 막연하게 구상하였던 학맥과 문화환경 을 영남학파의 사상사적 맥락에서 읽으려 한 데서 커다란 진전을 보 였다. 그는 이에서 더욱 나아가 강안지역 범 남명학파의 혈연적 연대와 학문 적 연대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점검해 봄으로써, 당시 남명학파의 사회적 토 대를 살피기도 했다. 17) 박병련의 이 같은 논의는 강안지역의 남명학파를 정 치사상사적 시각에서 주목한 것이지만, 강안지역에 대한 연구의 시각을 새롭 게 열어주었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8) 강안지역은 정우락에 의해 주목받기도 했다. 그는 성주 출신인 金 聃 壽 ( 西 溪, 1535~1603)의 전쟁체험과 그것의 문학적 대응을 살피면서 강안지역을 주목하고, 이 지역은 유학사상사적 측면에서 강우의 남명학과 강좌의 퇴계학 을 통섭한 측면과 함께 현실대응에 민감하면서도 성리학적 사유를 동시에 추 구하는 특징적 국면이 있다 19) 고 했다. 여기서 나아가 밀양 출신인 盧 相 稷 ( 小 16) 朴 丙 鍊, 光 海 君 復 立 謀 議 事 件 으로 본 江 岸 地 域 南 冥 學 派, ꡔ 南 冥 學 硏 究 論 叢 ꡕ 11, 南 冥 學 硏 究 院, 쪽. 17) 朴 丙 鍊, 南 冥 學 派 와 嶺 南 江 岸 地 域 士 林 의 혈연적 연대, ꡔ 南 冥 學 報 ꡕ 4, 南 冥 學 會, ) 이밖에도 밀양 창녕 청도 김해 함안 의령 성주 칠곡 등을 강안지역으로 설정 하여 이 지역 향촌지배층의 형성과 변화를 살핀 논의가 있다. 박병련 외, ꡔ남명학파와 영남우도의 사림ꡕ, 예문서원, 2004.

13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17 訥, 1855~1931)의 학문적 특징을 살피면서 강안학이 지닌 영남적 보편성 과 강안적 특수성을 함께 떠올리고 지역적 범위와 함께 학문적 특성을 寒 岡 淵 源 의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논의하기도 했다. 20) 이는 강안학이 하나의 학문 으로 성립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의의가 있다. 21) 설석규 역시 이 대열에 동참하였다. 그는 강안학의 학파적 성격에 주목하 고 특히 김담수를 중심으로 강안학파의 실학적 풍모를 찾으려 하였다. 22) 이 같은 구상은 강안지역 학문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 다. 그는 강안지역 사림들에 의해 강좌와 강우지역 사림들이 지니는 내부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었고, 숱한 정치적 기복에도 불구하고 생명력을 유지하 였다면서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이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서 더욱 나아가 장현광의 경위설 을 통해 영남학의 통합적 논리구조를 유추하기도 했다. 23) 이상과 같이 낙동강 연안지역을 강안 이라 명명하면서 영남학을 새롭게 읽고자 하는 노력은 꾸준히 있어왔다. 이 지역의 시가문학적 특성을 살피면 서 제출된 강안 이라는 용어는 낙동강 연안을 중심으로 영남의 유학사상사를 이해하는 데로 확대 적용되었다. 즉 강좌의 퇴계학파와 강우의 남명학파로 양분되던 영남학을 강안지역의 한려학파를 다시 설정하여 소통과 화합의 영 남학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강안지역 강안학 강안학파 로 심화되어 가 던 이 같은 인식은 이 분야 연구의 가능성을 새롭게 타진했다는 측면에서 시 19) 鄭 羽 洛, 西 溪 金 聃 壽 의 戰 爭 體 驗 과 그 文 學 的 對 應, ꡔ 嶺 南 學 ꡕ 10, 嶺 南 文 化 硏 究 院, 쪽. 20) 鄭 羽 洛, 嶺 南 儒 學 의 傳 統 에서 본 小 訥 盧 相 稷 學 問 의 實 踐 的 局 面 들, ꡔ 南 冥 學 硏 究 ꡕ 24, 南 冥 學 硏 究 所, ) 이밖에도 정우락은 강안학, 하나의 영남학을 위하여 (경북대신문, 2008년 4월 7일 자)에서 강안학을 통해 새롭게 영남읽기를 강조한 바 있다. 22) 薛 錫 圭, 江 岸 學 派 의 실학적 풍모를 지킨 徵 士 - 西 溪 金 聃 壽, ꡔ선비문화ꡕ 12, 남명학 연구원, ) 薛 錫 圭, 旅 軒 學 과 江 岸 學, ꡔ 旅 軒 學 報 ꡕ 15, 旅 軒 學 硏 究 會, 2008.

14 18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사하는 바 크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본격 연구가 이루어진 바 없으며, 개념 과 범위에 대한 구체적 논의도 시도되지 않았다. 이것은 강안학 연구가 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강안학의 개념과 범위 강안학을 통해 영남학을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시점에서 이 용어에 대 한 개념과 범위를 명확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낙동강 연안지역이 지니는 사상사적 중요성을 인식하는데 그치고 이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한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용어를 중심으로 영남학을 설계하고자 할 때 이것이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강안학이 江 과 岸 과 學 을 조합한 용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세 요소의 특징적 국면에 대한 파악이 이 용어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제 강 과 안, 그리고 학 에 지니는 의미망에 대하여 조금 자세히 들여다 보기로 한다. 첫째, 江 에 대해서다. 강이 지닌 역사문화적 의미는 지대하다. 세계 4대 문명이 모두 큰 강을 끼고 발생한 것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강이 인류에게 부여되는 의미는 생명의 젖줄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4 대강인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도 마찬가지여서 이들 강 유역을 중심 으로 우리의 민족문화는 형성되어왔다. 즉 우리 민족의 일상성과 역사성은 이들 강의 연안을 중심으로 생성 발달해 왔다는 것이다. 강이 우리 국토의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물류가 수송되는가 하면, 전쟁 등 민족적 위난 역시 이들 강을 오르내리며 전개되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 러하다. 결국 강에 대한 이해는 민족에 대한 이해와 결합될 수 있다는 것이 다.

15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19 영남의 강인 낙동강 역시 영남의 문화를 형성하는 구심적 기능을 하였다. 특히 낙동강이 지닌 일체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영남의 정체성은 낙동 강을 중심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강이나 금강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의 강이 여러 도를 거치면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작은 강들이 낙동강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이 강을 통해 물자를 교환하고 지 식과 문화를 공유하면서 영남의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갔다. 유교적 측면에 서 볼 때, 성리학의 수입과 발달 역시 이 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만인 소나 의병들의 활동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통일된 영남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도 낙동강은 일정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岸 에 대해서다. 안은 연안을 의미하므로 낙동강 연안이 된다. 오늘 날의 행정구역으로 볼 때, 상류의 태백 봉화 안동 예천 문경지역, 중류 의 상주 의성 구미 김천 칠곡 성주 대구 고령 합천지역, 하류의 창 녕 영산 의령 함안 밀양 창원 양산 김해 부산지역이 여기에 해당한 다. 이들 지역은 편의상 상류의 안동권, 중류의 대구권, 하류의 부산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안동권은 낙동강이 처음으로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측 면에서, 대구권은 낙동강의 본류가 형성되며 낙동 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이라 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부산권은 낙동강이 끝나는 지역이며 해양문화 와 결합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지닌다. 낙동강 연안이 다양한 지역을 거느리고 있지만 이들 지역을 모두 강안학 에서 수용할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를 중심으로 한 영남유학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자는 측면에서 이 용어가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퇴계학파는 경상 좌도로 낙동강 상류에서, 남명학파는 경상 우도로 낙동강 하류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이 두 학파가 서 로 만나면서 새로운 유교문화를 만들어 갔던 사실을 고려할 때 낙동강 중류 지역을 주목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는 寒 旅 學 派 의 중요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16 20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볼 때, 낙동강의 본류가 시작하는 상주지역을 강안학의 상한선으로, 정구가 강학활동을 했던 관해정이 있는 창원을 그 하 한선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강안학의 주요지역은 상주 의성 구 미 김천 칠곡 성주 대구 고령 합천 창녕 영산 의령 함안 밀 양 창원지역이 된다. 셋째, 學 에 대해서다. 학은 학문을 의미하니 그 영역이 실로 다양하다. 文 史 哲 이 그것일 수도 있고, 儒 彿 仙 이 그것일 수도 있으며 근대 이후의 학문 도 포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낙동강 연안에서 향유된 모든 학문을 수용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광의로 학문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강안 학은 유학 으로 한정하기로 한다. 이렇게 보면 강안학은 낙동강 연안의 유학 을 중심에 두고, 다른 학문과의 관계 속에서 이 지역의 유학사상이 어떠한 특징을 지니며, 영남학 내지 한국학에 강안학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 하는 문 제를 심도 있게 따지는 것이 주요 임무이다. 낙동강 연안지역, 즉 강안지역은 남명학파와 퇴계학파가 강을 사이에 두 고 갈등하고 대립할 때는 그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지역적 특성상 정구 와 김우옹, 오운과 김면 등과 같이 이황과 조식을 공동의 스승을 삼은 문인 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체감과 통일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 이들을 보면 영남 유학을 하나로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즉 퇴계학과 남명학을 포괄 적으로 수용하면서 발전적인 면모를 지니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사정의 이러 함을 염두에 둔다면 강안지역의 유학사상은 영남학에 있어 하나의 통합논리 를 만들 수 있어 중요하다. 본고에서는 강안학을 낙동강 연안의 유학사상이라는 제한적 의미로 사용 하고자 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간적 범위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용어가 지닌 편의성과 특수성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낙동강 연안지역의 학문 적 중요성에 대한 자각은 영남을 강좌의 퇴계학파와 강우의 남명학파로 나누

17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21 어 이해하는 일반론을 반성하면서 그 중간지역을 새롭게 설정하면서부터 시 작되었다. 이로 볼 때 이황과 조식 이후, 즉 16세기 이후로 강안학의 시간적 범위를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강안학의 역사성을 따질 때는 역 사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면서 시대를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즉 16세기를 상한선으로 두면서도 시간적 범위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고려할 때, 강안학은 16세기 이후 낙동강 연안의 유학사 상 으로 개념과 범위가 설정될 수 있다. 이때 낙동강 연안이라 함은 상주에서 창원으로 한정한다. 따라서 강안학은 16세기 이후라는 시간적 범위, 상주에 서 창원에 이르는 공간적 범위, 유학사상이라는 학문적 범위를 포괄한 개념 이다. 낙동강은 영남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신라와 가야의 경계이자 통합의 역할을 했고, 이후 삼국이 통일신라를 만들어내는데 있어 주역을 한 통일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정을 고려한다면 그 개념을 더욱 확장하여 강을 중심으로 한 한국학 전반 을 새롭게 이해하는 구도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24) 3. 강안학으로서의 고령 유학 16세기 이후 낙동강 연안의 유학사상을 의미하는 강안학은 다양한 특징 이 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영남이 다른 문화권 의 유학사상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듯이, 영남문화 내에서 발견되는 강안지역 의 유학사상도 강좌나 강우 지역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다소의 편 24) 강안학이 한국적 범위에서 연구된다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자 하는 협의의 강안학은 영남 강안학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낙동강 연안의 역사와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 룬 대표적인 업적은, 金 宅 圭 외, ꡔ 洛 東 江 流 域 史 硏 究 ꡕ( 韓 國 鄕 土 史 硏 究 全 國 協 議 會 修 書 院, 1996)와 유명기 외, ꡔ낙동강 유역의 사람들과 문화ꡕ(역락, 2007)를 들 수 있다.

18 22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차도 발생한다. 입지적 조건을 고려해 볼 때 상주지역은 퇴계학과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기호지방과 일정하게 맥락이 닿아 있고, 성주지역은 퇴계학과 남 명학의 절충점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고령지역의 경우 남명의 매부가 살았던 곳으로서 남명학적 요소가 더욱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본장에서는 이 같 은 동이점을 염두에 두면서 강안학이 지닌 특성을 가설로 제시하고 이에 따 른 고령 유학의 성격을 시론적 측면에서 고찰해보기로 한다. 1) 사림파의 성장과 고령에서의 着 根 영남지역에는 한국 유학의 주맥이 흐르고 있다. 신라에 유교가 들어온 것 은 고구려와 백제에 비해서 늦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왕대에 국학 을 설치하고, 유학으로 무장한 육두품 출신들이 행정실무를 담당하면서 일정한 한계가 있긴 했지만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여말의 성리학 유입기에는 영남 사람인 安 珦 ( 晦 軒, 1243~1306)과 鄭 夢 周 ( 圃 隱, 1337~1392) 등이 주자 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조선의 성리학적 기반을 구축하였으며, 鄭 道 傳 ( 三 峰, 1342~1398)과 權 近 ( 陽 村, 1352~1409) 등 영남출신 관료문인들도 조선의 이념적 바탕을 만드는데 혼신을 다했다. 15세기에 들어 金 宗 直 ( 佔 畢 齋, 1431~1492)과 그 학단이 훈구파와 대립 하면서 영남사림파를 성립시켰고, 16세기를 거치면서 이황과 조식이 일련의 학단을 이끌면서 영남유학은 꽃을 피웠으며, 이들의 제자 鄭 逑 ( 寒 岡, 1543~ 1620)가 許 穆 ( 眉 叟, 1595~1682)에게 실용학문을 전수하면서 근기남인들 의 실학을 성립할 수 있게 했다. 뿐만 아니라 서양의 기독교가 유입되자 이 에 대한 능동적 대응을 위하여 李 炳 憲 ( 眞 庵, 1870~1940)은 조선의 공자교 를 선도하여 유학의 새로운 복원론을 제창하면서 근대유학의 개혁사상을 천 명하기도 했다. 25) 이 같은 사정을 생각하면서 사림파가 고령지역에서 어떻게

19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23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검토해보자. 주지하듯이 조선의 성리학은 1289년 고려의 충렬왕 때 순흥 사람 안향이 원나라를 왕래하면서 직접 朱 子 書 를 베껴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하 여 시작된 성리학은 강안지역을 중심으로 그 맥이 흐르게 되는데, 東 方 理 學 之 祖 로 불리는 정몽주는 인근의 영천 출신이었으며, 吉 再 ( 冶 隱, 1353~ 1419)는 강안지역의 주요 거점인 선산 사람이다. 이 같은 학맥이 역시 선산 출신의 金 叔 滋 ( 江 湖, 1389~1456)에게로 흐르고, 김숙자는 그의 아들 김종 직에게 그 도통을 전하는데 역시 강안지역이 주요 활동무대였다. 더욱이 김 숙자는 선산과 성주 등 강안지역에서 교수를 맡았고, 고령과 개령에서 현감 직을 수행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로써 길재의 유풍이 강안지역에 어떻게 전 해지고 있었던가 하는 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당시 김숙자는 고 령의 東 軒 에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적이 있다. 伽 倻 千 古 地 가야국 천고의 땅, 文 物 更 舒 長 문물이 다시 펼치어 있네. 大 寶 光 臨 宇 대보는 천지에 빛나고, 雲 霞 映 澗 塘 구름과 노을은 개울과 못에 비치네. 壁 詩 驚 杜 白 벽에 걸린 시 두보와 이백을 놀라게 하고, 風 俗 擬 羲 黃 풍속은 복희와 황제시대에 비긴다네. 水 勢 龍 旋 顧 물의 기운은 용이 서려있는 듯하고, 山 容 鳳 下 翔 산의 모습은 봉이 내려앉는 듯하네. 人 皆 能 射 御 사람들은 모두 육례에 능하고, 家 復 足 麰 梁 집은 다시 양식이 풍족하다네. 何 用 絃 歌 政 어찌 絃 歌 의 정치를 하리요? 無 爲 望 帝 鄕 무위로 다스리며 帝 鄕 을 꿈꾼다네. 26) 25) 정우락, 영남지역 유교문화와 그 교육과정에 대한 모색, ꡔ퇴계학과 한국문화ꡕ 37,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2005, 215~225쪽 참조. 26) ꡔ 高 靈 縣 邑 誌 ꡕ 人 物 條, ꡔ 邑 誌 ꡕ 一, 慶 尙 道 1, 亞 細 亞 文 化 社, 1982, 841쪽.

20 24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이 시는 김숙자가 당시 고령현감으로 부임한 후 그의 포부를 읊은 것이 다. 그는 여기서 가야국의 번성한 문물과 복희 황제 시대의 선한 풍속, 훌 륭한 산수 등이 고령에는 두루 있다고 했다. ꡔ세종실록지리지ꡕ에서 제시한 俗 尙 强 武 와 다소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김숙자는 고령을 하나의 이상향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사람들은 활쏘기와 말타기 등 의 육례에 능하고 집집마다 양식이 풍족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자의 제자 子 游 가 武 城 을 다스릴 때 금슬과 시가로 예악의 정치를 폈으나 고령은 덕화 가 잘 갖추어져 無 爲 而 治 가 가능하다고 했다. 김숙자는 이처럼 고령을 통해 이상적인 정치를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던 것이다. 김숙자의 아들 김종직 역시 고령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 그가 중앙정계 로 진출하는데 있어서도 고령 토성으로 서울에서 관료생활을 하고 있었던 신 숙주의 후원이 컸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신숙주의 손자 申 用 濩 는 김종직 의 문인이 되었고, 또한 김종직의 문인으로 고령 출신의 朴 誾 ( 挹 翠 軒, 1479~1504)은 신숙주의 손자 申 用 漑 ( 松 溪, 1463~1519)의 사위가 되었 다. 이뿐 아니라 김종직은 金 係 行 ( 寶 白 堂, 1431~1521)이 고령현감으로 좌 천되었을 때 그에게 특별히 전별시를 지어주면서 옛날 아버지 김숙자를 모시 고 고령에 있을 때를 떠올렸다. 두 수를 지었는데 첫째 수는 이렇다. 伽 倻 古 滕 薛 가야는 옛날 등나라 설나라와 같으니, 謫 宦 勝 封 留 좌천이 留 땅에 봉해지는 것보다 나으리라. 27) 筍 鱖 供 廚 興 죽순과 생선은 주방의 흥취를 제공하고, 溪 山 與 目 謀 시내와 산은 눈과 함께 어울리네. 風 淳 甿 保 靜 풍속 순박하니 백성의 삶이 조용하고, 27) 장량은 漢 高 祖 가 그를 齊 땅 3만 호를 봉하려 하자, 留 땅에 봉해지면 족하다면서 마 침내 공명을 버리고 신선 赤 松 子 를 따라 놀았다. 김종직은 이를 인용하면서 김계행을 위로한 것으로 보인다.

21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25 官 冷 屋 廬 幽 관청 한가하니 주거가 그윽하구나. 昔 我 趨 庭 處 내가 옛날 아버님 모시던 곳이라, 絃 歌 待 子 游 자유의 현가 소리가 기다려지는구나. 28) 김종직은 이 시에서 고령이 내가 아버지를 모시던 곳 이라고 하면서, 아 버지의 시를 떠올리고 있다. 일찍이 김숙자가 이곳에서 현감을 하면서 어찌 絃 歌 의 정치를 하리요? 라고 했고, 김종직은 자유의 현가 소리가 기다려지는 구나 라고 했다. 詩 句 의 표면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덕화를 펼친다는 점에서 는 다르지 않다. 김종직은 여기서 고령의 풍속을 지적하기도 했다. 風 淳 이라 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 같은 풍속으로 백성과 관리가 태평을 누릴 수 있다 는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김종직은 김계행에게 최치원을 찾아 가야산 유람 을 권하기도 했다. 儒 仙 의 자취를 찾아보고 싶거든, 가야산에 올라 유람해야 하리 29) 라 한 것이 그것이다. 최치원이 해인사로 들어가면서 고령의 揖 仙 臺 와 孤 雲 亭 에서 노닐었을 뿐 아니라, 碧 松 亭 중건 상량문을 짓기도 했다는 전 언을 염두에 둔 것 30) 이었다. 김종직의 제자 金 宏 弼 ( 寒 暄 堂, 1454~1504)은 인근의 강안지역인 달성 출신이다. 鄭 汝 昌 ( 一 蠹, 1450~1504) 역시 이 강안지역에서 김굉필과의 道 同 志 合 으로 학문을 닦았다. 벽송정에 관한 이들의 시가 현전하는 것을 통해 이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김종직 학단이 고령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사 림 문화를 성장시켜갔다는 사실은 사림파의 발달에 있어 고령이 얼마나 중요 28) 金 宗 直, 辛 丑 歲, 僕 嘗 記 夢 與 金 監 察 係 行 相 遇 事, 前 年, 被 恩 命 還 京, 再 與 金 君 遇, 終 不 言 夢 事. 今 年 秋, 金 君 以 事 不 容 於 朝, 出 爲 高 靈 縣 監, 雖 非 程 驛 之 任, 余 之 夢 果 有 徵 也. 遂 語 其 事, 金 亦 大 噱, 仍 用 前 韻 賦, 聊 以 贐 行 云 (ꡔ 佔 畢 齋 集 ꡕ 卷 18,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12, 348쪽). 29) 金 宗 直, 앞의 책, 같은 곳, 欲 訪 儒 仙 跡, 倻 山 峙 上 游. 30) ꡔ 高 靈 縣 邑 誌 ꡕ 樓 亭 條 (ꡔ 邑 誌 ꡕ 一, 慶 尙 道 1, 亞 細 亞 文 化 社, 1982, 837쪽), 揖 仙 臺 孤 雲 亭, 崔 致 遠 所 遊 處, 曾 古 老 相 傳 云, 亭 之 刱 建, 在 漢 五 鳳 元 年, 而 重 修 時, 孤 雲 作 上 樑 文, 今 無 所 徵 焉.

22 26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알게 한다. 더욱이 김종직이 부친의 임지인 고령을 왕래하였고, 이후 후처로 합천 야로의 文 氏 를 맞으면서 그의 자손들이 이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하게 된 것도 중요하다. 그의 손자 대에 와서 야로와 고령지방에 강력한 가세를 유지했던 진주 하씨, 양천 최씨, 남 평 문씨, 고령 박씨, 현풍 곽씨 등과 혼인하면서, 종손계는 그 5대손부터 고 령에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31) 사림문화를 이 지역에 펼치는데 있 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강안지역의 사림파는 선산의 길재에게서 시작되고, 그 도맥이 김숙자와 김종직 부자를 통해 전수, 다시 김굉필과 정여창 등에게 이어지면서 학맥을 유지하게 된다. 고령은 강안지역으로 이들의 주요한 활동무대가 되면서 사림 파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고, 이 지역에서도 확실한 착근이 이루어졌다. 16 세기를 거치면서 이황과 조식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가 정립되면서 성리학 은 안동과 진주 등 영남의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때 로 양 학파를 중심으로 한 갈등과 대립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고령을 위시한 강안지역에 거주하는 문인들을 중심으로 이황과 조식을 함께 스승으 로 모시면서 소통과 상생의 영남학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것은 강 안학의 주요 과제이기도 했다. 2) 회통성- 畿 嶺 學 및 退 南 學 의 융합 낙동강 연안은 영남의 내륙에 비해 타문화의 흡수력이 훨씬 빠르다. 이것 은 낙동강 물길을 통해 이질적인 문화가 신속하게 전파 향유될 수 있었기 때 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기호지방의 학문이 상주나 칠곡, 대구 등에서 영 남학과 융합되면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른바 畿 嶺 學 의 회통이 이루어지고 31) 李 樹 健, ꡔ 嶺 南 學 派 의 形 成 과 展 開 ꡕ, 一 潮 閣, 1995, 113쪽 참조.

23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27 있었던 것이다. 32) 이 뿐만 아니라 강안지역에 사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이황 과 조식을 함께 스승으로 모시면서 退 南 學 을 통섭하기도 했다. 즉 남북으로 는 기령학을 동서로는 퇴남학을 아우르는 회통성이 강안학에는 존재하고 있 었다는 것이다. 강안학의 회통성을 먼저 다루고 이와 관련된 고령 유학을 다 음으로 살펴보자. 먼저 기령학의 회통성에 대해서다. 강안지역은 영남의 내륙에 비해 기호 지방과의 연맥성이 강하다. 조령은 경북 문경시와 충북 연풍군의 경계에 해 당하는데, 낙동강에서 배를 타고 올라갈 때 서울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며, 서울에서 경상도관찰사들이 부임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조령을 경계로 한 기호학과 영남학의 회통이 영남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낙동 강의 본류가 시작하는 상주지역이 가장 빠를 수밖에 없다. 이 지역은 안동의 퇴계학적 자장 속에 있으면서도 그 힘이 많이 약화되었고 동시에 고개 너머 의 기호학을 받아들이면서 회통적 강안학을 만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서 나아 가 강의 운반기능과 관련하여, 기호학이 물길을 따라 가장 빠르게 그 연안지 역으로 전파 착근되었다. 영남지역 宋 時 烈 ( 尤 庵, 1607~1689)의 문인을 분석해 보면 이 사실은 어렵지 않게 납득된다.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영남지역에 거주하는 송시열의 문인 53명 가운데 44명 33) 이 강 32) 畿 嶺 學 이라는 용어는 安 朋 彦 ( 育 泉 齋, 1904~1976)에 의해 사용된 바 있다. 盧 相 稷 ( 小 訥, 1855~1931)의 묘갈명을 쓰면서 盖 先 生, 鎔 冶 畿 嶺 之 學 於 一 爐, 而 會 通 之 라 한 것이 그것이다. 근기 남인과 영남 남인의 학문을 중심으로 말한 것인데, 曹 兢 燮 ( 深 齋, 1873~1933)도 이황 이후의 학문을 두 파로 나누고, 有 嶺 畿 之 二 派, 嶺 學 精 嚴 常 主 於 守 經 反 約 畿 學 宏 博 多 急 於 應 用 救 時 라 한 바 있다. 본고에서는 이를 더욱 확대 하여 기호학과 영남학의 회통적 측면을 기령학 이라는 용어로 포괄하여 제시한다. 33) 44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성주(6명): 李 碩 堅 李 碩 剛 李 命 鐸 李 命 銋 李 重 夏 李 重 華, 상주(3명): 成 虎 英 成 晩 徵 申 爟, 함창(3명): 蔡 錫 疇 蔡 河 徵 蔡 之 沔, 선 산(7명): 李 增 華 李 志 奭 李 東 魯 沈 若 漢 李 志 遂 沈 瀜 李 志 洵, 대구(13명): 李 克 泰 李 克 念 李 克 和 羅 世 鳳 徐 惟 遠 全 克 欽 全 克 明 全 克 初 全 克 敏 許 誡 孫 尙 祖 朴 振 仁 朴 紹 遠, 삼가(4명): 權 錞 權 鑑 權 鍰 鄭 友 益, 하양(1명): 宋 得 楠, 청도(3명): 芮 碩 薰 朴 之 賢 朴 太 古, 인동(2명): 張 瑠 張 榮 達, 경산(1명): 韓 弘 翊,

24 28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안지역에 살았기 때문이다. 상주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이황의 제자 가운데 중요한 문파를 형성하였 던 柳 成 龍 ( 西 厓, 1542~1607)계가 독자성을 띠며 기령학을 회통시켜 갔다. 퇴계학을 바탕에 두면서도 기호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던 대표적인 영남인 은 유성룡의 제자 鄭 經 世 ( 愚 伏, 1563~1633)이다. 그는 예학과 인식론적 측면에서는 퇴계학을 계승하면서도 리기설에 있어서는 이황의 互 發 說 을 반대 하는 입장에 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4) 여기서 나아가 송시열과 함께 서 인의 종장으로 성장하는 宋 浚 吉 ( 同 春 堂, 1606~1672)을 사위로 맞는다. 이 밖에도 강안지역에는 기호지방의 사림들과 소통하면서 기령학의 회통적 성격 을 띤 사인들이 많았다. 예컨대, 성주의 鄭 逑 는 李 珥 ( 栗 谷, 1536~1584)와 일정한 학문적 교감을 하고 있었으며, 35) 이이와 정구를 함께 사사한 李 潤 雨 ( 石 潭, 1569~1634)는 자신의 아호를 이이가 우거하고 있었던 석담으로 할 만큼 이이에 대한 특별한 존경을 표하였다. 36) 다음은 퇴남학의 회통성에 대해서다. 강안지역은 영남학 내부에서 퇴계학 과 남명학이 회통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을 요한다. 퇴계학파는 낙동강의 상류 좌측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고, 남명학파는 낙동강의 하류 우측을 중심으 로 활동하였다. 이 과정에서 퇴계학파는 남진을, 남명학파는 북진을 모색하게 되었고, 중간 점이지대인 낙동강 중류의 강안지역에서 이황과 조식을 함께 스승으로 모신 선비들을 중심으로 강의 좌우를 절충하고 통합하고자 했다. 의령(1명): 權 宇 亨. 34) 김성윤, 영남의 유교문화권, ꡔ낙동강유역의 사람들과 문화ꡕ, 역락, 2007, 168쪽 참조. 35) 朴 世 采 의 跋 寒 岡 先 生 甲 申 手 帖 (ꡔ 南 溪 集 ꡕ 卷 68)에 의하면, 정구가 1584년 1월 19일 이이에게 답서로 작성한 간찰 한 통을 입수하고 여기에 발문을 붙인다고 했다. 36) 강안지역에는 기호학파의 선현을 봉향한 서원도 다소 있다. 상주의 서산서원(김상용 김상헌 봉향)과 흥암서원(송준길 봉향), 김천의 춘산서원(송시열 봉향), 고령의 노강 서원(송시열 등 봉향), 성주의 수덕서원(김창집 등 봉향), 합천의 옥계서원(이이 등 봉향) 등이 그것이다.

25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29 한려학파가 대표적이라 하겠는데, 이 학파는 강을 사이에 두고 대립한 영남 의 좌우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선악이나 군자 소인 등으 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지닌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성주지역을 주목해 보자. 이곳은 퇴계학과 남명학의 회통성이 가장 잘 나 타나는 지역이다. 黃 俊 良 ( 錦 溪, 1517~1563) 등 이황의 제자와 吳 健 ( 德 溪, 1521~1574) 등 조식의 제자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만나면서 학문을 논했 고, 정구와 김우옹 같이 이황과 조식 문하를 함께 드나드는 문인들도 많았다. 이황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지만 이 지역 출신으로 조식의 제자인 金 聃 壽 ( 西 溪, 1535~1603) 역시 전쟁을 맞아 예안지방으로 피신하면서 이황의 제자 들과 교유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퇴계학에도 심취한다. 즉 퇴남학의 회통적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퇴남학의 회통성이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정구이다. 그는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居 敬 窮 理 를 중심으 로 공부하면서도 邑 誌 와 人 物 誌 를 편찬하는 등 致 用 的 학문을 중시하였다. 여 기서 퇴남학에 대한 한강학의 강한 회통성을 엿볼 수 있다. 37) 그렇다면 회통성이 고령지역에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기령학의 경우, 老 江 書 院 이 고령군 다산면 송곡리에 소재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서 원은 1712년(숙종 38)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송시열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 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는데, 그 이후 權 尙 夏 ( 遂 菴, 1641~1721) 韓 元 震 ( 南 塘, 1682~1751) 尹 鳳 九 ( 屛 溪, 1681~1767) 宋 煥 箕 ( 心 齋, 1728~ 1807)를 추가 배향하였다. 이는 金 昌 集 ( 夢 窩, 1648~1722)을 봉향한 성주 의 修 德 書 院 이나 李 珥 ( 栗 谷, )를 봉향한 합천의 玉 溪 書 院 과 마찬 가지로 강안지역 깊숙이 기호학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영 37) 함안의 趙 任 道 ( 澗 松 堂, 1585~1664) 역시 강안지역에서 퇴남학을 회통하고 융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許 捲 洙, 南 冥 退 溪 兩 學 派 의 融 和 를 위해 노력한 澗 松 趙 任 道 (ꡔ남명학연구ꡕ 11,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2001)에 자세하다.

26 30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남학을 중심에 두고 기호학을 일부 수용한 선비들이 나왔을 것으로 예상되기 는 하나, 고령지역에서는 뚜렷하게 기령학을 회통한 선비가 나타났다고 하기 는 어렵다. 고령지역은 조식의 매부 鄭 師 賢 ( 月 潭, 1508~1555)의 고향이자 조식과 절친했던 벗 李 希 顔 ( 黃 江, 1504~1559)이 현감으로 있었던 곳이다. 이 때 문에 조식은 題 鄭 思 玄 客 廳 에서 가야 옛 나라의 산에는 무덤만 늘어서 있 고, 月 器 황량한 마을 없어진 듯 남아 있다 38) 라고 하면서 당시의 고령을 묘 사한 적이 있다. 이밖에도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 살았던 朴 潤 ( 竹 淵, 1571~1572)의 정자인 죽연정에서 고령군 우곡면 월오리에 살았던 尹 奎 ( 月 塢, 1500~?)의 시에 대한 차운을 남기기도 했다. 가야산 물이 멀리 백리를 흘러오니, 낙동강의 신은 너와 더불어 깊고 그윽하다. 고 노래한 竹 淵 亭 次 文 老 韻 39) 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조식이 고령의 인사들과 다양하게 교유하 고 있는 데 비해 이황이 고령을 중심으로 글을 쓰거나 시문을 남긴 것은 발 견되지 않는다. 다만, 23세부터 아홉 차례나 경남일대를 여행하면서 성주를 거쳐 고령과 합천을 지나 처가가 있는 의령으로 간 적이 있는데, 이 때 그는 가야산을 노래하며 최치원을 떠올리기도 하고, 합천의 함벽루를 들러 南 亭 次 許 公 簡 韻 을 지을 뿐이었다. 40) 조선 말기에 李 種 杞 ( 晩 求, 1837~1902)가 나타나 퇴계학의 보수적 경향 38) 曺 植, 題 鄭 思 玄 客 廳 (ꡔ 南 冥 集 ꡕ 卷 1,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31, 475쪽), 伽 倻 故 國 山 連 冢, 月 器 荒 村 亡 且 存. ꡔ 晉 陽 鄭 氏 世 譜 辨 破 錄 ꡕ 月 潭 先 生 實 記 에 의하면 鄭 師 賢 이 世 事 琴 三 尺, 生 涯 屋 數 椽. 誰 知 眞 境 樂? 秋 月 照 寒 淵. 이라는 精 舍 原 韻 을 짓고, 이에 대하여 鄭 逑 와 李 楨 이 차운시를 지었다며, 君 子 樂 幽 獨, 茅 齋 八 九 椽. 袖 琴 徽 軫 足, 氷 月 掛 天 淵.( 鄭 逑 ) 와 幽 人 居 實 地, 治 玉 竹 爲 椽. 道 味 琴 成 趣, 襟 懷 月 在 淵.( 李 楨 ) 이라는 시를 소개하 고 있다. 그러나 ꡔ 寒 岡 集 ꡕ과 ꡔ 龜 巖 集 ꡕ에는 이들 시가 등재되어 있지 않다. 39) 曺 植, 竹 淵 亭 次 文 老 韻 (ꡔ 南 冥 集 ꡕ 卷 1,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31, 475쪽), 倻 水 遙 從 百 里 流, 洛 神 還 與 女 深 幽. 40) 이황의 남도여행과 이에 따른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鄭 羽 洛, ꡔ 退 溪 先 生 ꡕ, 國 際 退 溪 學 會 大 邱 慶 北 支 部, 2007을 참고 바란다.

27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31 을 충실히 계승하기도 하지만, 고령지역은 퇴계학에 비해 남명학이 강세를 띠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는 이황과 조식을 함께 스승으로 모신 선비들이 다수 배출되었다. 裵 紳 ( 洛 川, 1520~1573)과 吳 澐 ( 竹 牖, 1540~1617), 그리고 金 沔 ( 松 庵, 1541~1592)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ꡔ 陶 山 及 門 諸 賢 錄 ꡕ이나 ꡔ 德 川 師 友 淵 源 錄 ꡕ에 동시에 등재되어 있는 인물로, 이 른바 퇴남학을 회통한 측면이 있다. 김면의 경우 11세에 이황을 찾아 ꡔ대학 연의ꡕ를 배우고, 21세에 남명을 찾아 삼가의 토동을 방문한다. 배신과 오운 의 경우는 다음 자료를 통해서 살펴보자 (가) 남방의 학자는 퇴계와 남명의 시대에 가장 성대하였다. 일찍이 뒤를 이 어 우뚝하게 스스로 유속에서 빼어난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雷 龍 門 下 의 선비임을 알 수 있고, 진실하게 자취를 따르며 과시하지도 않고 어기지 도 않아 퇴계의 풍모와 학문을 얻은 것은 낙천선생 裵 公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러할 뿐이다. 41) (나)-1. 도는 退 陶 를 사모했고 학문은 山 海 를 으뜸으로 삼았으며, 글씨는 왕 희지와 조맹부를 따랐고 시는 소식과 황정견을 모범으로 하였다. 42) (나)-2. 산해당에 오르고 퇴도실로 들어갔네. 나아가는 바가 정대하였고 학 식이 명확하였다네. 43) (가)는 李 源 祚 ( 凝 窩, 1792~1872)가 배신을 퇴남학의 회통자로 평가한 부분이다. 즉 그는 流 俗 에 물들지 않고 우뚝이 빼어난 조식의 제자였으며, 진 실한 자세로 과시하지도 어기지도 않는 이황의 제자였던 것이다. 이 같은 배 41) 李 源 祚, 洛 川 先 生 文 集 序 (ꡔ 洛 川 先 生 文 集 ꡕ), 南 方 學 者, 最 盛 於 退 溪 南 冥 兩 先 正 之 世, 早 定 脚 跟, 卓 然 自 拔 於 流 俗, 不 問 可 知, 爲 雷 龍 門 下 士, 而 恂 恂 途 轍, 不 矯 不 循, 兼 有 得 於 陶 山 風 旨, 若 洛 川 先 生 裵 公, 是 已. 42) 賜 祭 文 (ꡔ 竹 牖 全 書 ꡕ, 399쪽), 道 慕 退 陶, 學 宗 山 海, 筆 追 王 趙, 詩 模 蘇 黃. 43) 趙 亨 道, 士 林 祭 文 (ꡔ 竹 牖 全 書 ꡕ, 399쪽), 升 山 海 堂, 入 退 陶 室. 趨 向 正 大, 學 識 端 的.

28 32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신의 회통성은 허목이 쓴 행장에서도 나타난다. 허목은 여기에서 배신을 이 황과 조식의 학문을 회통한 이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44) (나)는 제문에서 당 대인이 吳 澐 ( 竹 牖, 1540~1617)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던가 하는 부분을 잘 알게 한다. 특히 升 山 海 堂, 入 退 陶 室 이라는 언명은 그의 학문경향을 단적 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 45) 즉 이들은 학문자세와 현실인식에 대 하여 이황과 조식의 자세를 본받으면서 때로는 성리학적 깊이를, 때로는 현 실비판과 의병활동으로 퇴남학의 회통적 측면을 나타냈던 것이다. 요컨대, 강안학에는 기령학과 퇴남학의 회통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같 은 특성은 고령이라고 하여 예외가 아니었다. 기호학과 영남학의 경우는 여 타의 강안지역과 마찬가지로 영남학적 풍토 속에서 기호학을 수용한다. 그러 나 고령의 경우 기령학의 회통은 극히 미약하다. 이에 비해 퇴남학의 경우는 배신 오운 김면 등에게서 집중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이황과 조식을 함 께 스승으로 모시며 진실한 학문자세를 배우면서도 현실주의적 자세를 공유 하고자 했다. 이 같은 강안학의 특성이자 고령 유학의 중요한 일 부면인 회 통성은 성리학에 대한 탐구와 의병활동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3) 실용성- 博 學 에 바탕 한 실천정신 강안학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로 실용성을 들 수 있다. 민중의 삶이 강을 무대로 형성되면서 수로를 통해 물류가 운반되고 사람들은 또 이를 통 해 여행하기도 했다. 즉 영남인들은 나루나 강, 그리고 강안을 배경으로 하 44) 許 穆, 行 狀 (ꡔ 洛 川 先 生 文 集 ꡕ 卷 2, 張 4-5), 先 生 旣 弱 冠, 初 見 南 冥 先 生, 後 從 李 先 生 於 陶 山, 得 聞 古 人 之 旨, 學 旣 通, 與 金 範 李 濟 臣, 講 諸 生 序 齒 之 禮 曰, 太 學 禮 義 相 先 之 地, 而 長 幼 無 序 無 義. 45) 오운이 말년에 ꡔ 東 史 簒 要 ꡕ를 저술하면서 ꡔ 東 國 通 鑑 ꡕ이나 ꡔ 東 國 史 略 ꡕ 등 우리의 역사 서를 참고하면서도 ꡔ 退 溪 集 ꡕ과 함께 ꡔ 南 冥 遺 稿 ꡕ를 특별히 제시한 것에서도 이 같은 사정을 알 수 있다.

29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33 여 그들의 일상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강이 이처럼 생민의 현실과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강안지역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사상기반에 실 용성이 빠르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실용성이 생활현장에 적용되면서 실천력을 확보하게 된다. 소극적으로는 灑 掃 應 對 등의 일상성으로, 적극적으로는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하는 실천성으로 나타 났다. 강안학에 보이는 실용주의적 태도는 실학적 측면과 밀착되어 있음은 물론 이다. 실학이 실용성을 담보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실학은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고, 당대인들 역시 그렇게 생각해 왔다. 성리학이 虛 無 寂 滅 之 敎 의 老 佛 學 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실학이라 한 것에서 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46) 그러나 성리학이 관념 일변도로 흐르면서 현실 응전력에 문제가 생기자 조선 후기에는 이것을 비판하는 측면에서 학문적 문제의식을 현실에 둔 실학이 거 듭 강조되었다. 이 같은 실용과 실천을 담지 한 학문경향이 강안지역 사람들 에게 충실히 반영되었던 것이다. 강안지역의 실용주의적 태도는 구체적으로 박학풍을 통해서 나타난다. 강 의 상류에서 보이는 성리학적 순수성보다 학문에 대한 개방적 입장에 선 현 실주의적 측면을 강조한다. 성주지역의 정구가 현실에 소용되는 다양한 서적 을 찬술한 것은 그 좋은 예가 된다. 그는 ꡔ 家 禮 輯 覽 補 註 ꡕ와 ꡔ 五 先 生 禮 說 分 類 ꡕ와 같은 禮 書, ꡔ 心 經 發 揮 ꡕ나 ꡔ 中 和 集 說 ꡕ과 같은 심학서, ꡔ 昌 山 志 ꡕ나 ꡔ 咸 州 志 ꡕ와 같은 地 志, ꡔ 古 文 會 粹 ꡕ나 ꡔ 朱 子 詩 分 類 ꡕ와 같은 문학서, ꡔ 歷 代 紀 年 ꡕ이 나 ꡔ 治 亂 提 要 ꡕ와 같은 역사서, ꡔ 醫 眼 集 方 ꡕ이나 ꡔ 廣 嗣 續 集 ꡕ과 같은 의서 등 전방위적인 박학풍의 학문경향을 보였던 것이다. 47) 46) 예컨대, 朱 熹 ( 晦 庵, 1130~1200)가 ꡔ중용ꡕ을 소개하면서 이 책이 처음에는 한 이치 를 말하였고, 가운데에서는 흩어져 만사가 되었고, 끝에는 다시 합하여 한 이치가 되 었다. 이것을 풀어놓으면 우주에 가득차고 거두어 들이면 물러가 은밀한 데 감추어져 서 그 맛이 무궁하니 모두 實 學 이다.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30 34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박학풍은 상주의 無 知 山 에 들어가 은거하였던 蔡 得 沂 ( 雩 潭, 1605~1646) 의 경우에도 확인된다. 그는 충북 충주에서 출생하였지만 장년 이후 상주를 거점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經 史 百 家 에 통달하였으며, 역학 지리 천문 복서 음 률 병서 등 현실에 소용되는 모든 학문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박학풍은 한말의 밀양지역 학자 盧 相 稷 ( 小 訥, 1855~1931)에게서 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이황이 편집하고 정구가 간행한 ꡔ고경중마방ꡕ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자기 수양을 철저히 하면서도, 박학풍에 입각하여 克 己 齋 學 約 沃 野 面 講 約 契 立 議 門 黨 約 束 儀 契 約 등 행동의 준칙들을 요목화하는 등 실천적 실용학풍을 굳건히 하였다. 이뿐 아니라 역대의 曆 法 을 정리한 曆 攷 를 비롯해서 예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深 衣 考 證 이나 歷 代 國 界 攷 등을 저술하여 현실에 대한 학문적 밀착도를 더욱 높였다. 48) 강안지역의 실용학풍은 결국 조선후기 실학을 도인하는 역할을 했다. 두 루 알려진 것처럼, 정구의 제자 허목을 통해 이어지는 근기남인의 실학연원 이 바로 그것이다. 정구는 이황과 조식의 학문을 동시에 이어받았지만, 조식 의 노장풍이나 이황의 리기설을 동시에 거부한다. 나아가 실용학풍을 구축하 여 이를 허목에게 전함으로써 이익, 안정복, 황덕길, 허전 등에게로 이어 소 위 근기 실학을 성립시킨다. 노상직은 이 같은 연원과 흐름을 물줄기에 비유 하여 檜 淵 의 물이 漣 川 으로 흘러 瞻 星 浦 로 들어오고 廣 陵 을 돌아 斗 湖 에 이 르러 冷 泉 에 모였다. 冷 泉 은 나의 스승 許 文 憲 公 이 도의를 강론하던 곳 49) 이 47) 權 文 海 ( 草 澗, 1534~1591)의 경우 본고에서 설정한 협의의 범위에서는 제외되지만 예천 역시 상주와 밀착되어 있는 강안지역이다. 주지하듯이 그의 ꡔ대동운부군옥ꡕ은 임진왜란 이전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을 방대하게 수집한 백과사전으로 박학풍을 가장 잘 나타낸 저작물이다. 강안학의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인 실용성이 담보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48) 鄭 羽 洛, 嶺 南 儒 學 의 傳 統 에서 본 小 訥 盧 相 稷 學 問 의 實 踐 的 局 面 들, ꡔ 南 冥 學 硏 究 ꡕ 24, 慶 尙 大 南 冥 學 硏 究 所, 2007, 311쪽.

31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35 라 표현한 바 있다. 상주에서 밀양으로 이어지는 강안지역의 실용학풍이 고령지역에서는 어떻 게 나타나는가? 고령지역의 경우에도 박학풍에 기반 한 실천적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예컨대, 오운은 ꡔ 朱 子 文 錄 ꡕ을 만들어 주자학이 지닌 경세적인 면 을 주목하였다. 즉 ꡔ주자대전ꡕ을 읽는 가운데, 주희의 封 事 와 奏 箚 등의 글 에서 애군 과 우국 의 뜻이 절실하니 이를 인출하여 경연에서 진강하자는 것 이었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사학방면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기전체와 편년체를 절충한 ꡔ 東 史 簒 要 ꡕ를 저술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사 람들에게 중국역사가 아닌 우리역사를 알게 하며, 옛 일을 통해 현재의 일을 알게 하고, 선악의 구분과 권선징악을 보여 당시 사서들의 문제점을 시정하 기 위하여 편집되었다. 고령읍 지산리에서 출생한 이황의 제자 金 守 雍 ( 棄 齋, 1513~1559)이 ꡔ 소학ꡕ을 읽으며 灑 掃 應 對 로 향촌사회의 질서를 잡아가려고 했던 것이나, 藍 田 呂 氏 鄕 約 之 義 라는 10여 조의 향약을 제정하여 상호부조를 통해 향풍을 쇄 신하고자 한 것도 실용성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 같은 향약은 오운의 후손인 吳 慶 鼎 (1756~1827)이 1822년(도광 2)에 제정한 梅 村 洞 約 으로 이어져 동민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였다. 50) 이 동약에는 부세의 공동 납부와 환난 에 대한 상호부조가 자세하게 제시되어 있어 실용성에 바탕 한 강안학의 실 천정신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고령지역 선비들의 실천정신은 임진왜란이라는 민족사적 위난을 맞아 더 49) 盧 相 稷, 訓 蒙 帖 序 (ꡔ 小 訥 集 ꡕ 卷 25 張 1-2), 檜 淵 之 水, 流 于 漣, 入 于 瞻 星 之 浦, 匯 廣 陵, 到 斗 湖, 會 于 冷 泉, 冷 泉, 我 先 師 許 文 憲 公, 講 道 之 所 也. 회연, 연천, 첨성포, 광릉, 두호, 냉천은 각각 정구, 허목, 이익, 안정복, 황덕길, 허전이 거주하던 곳의 지명 및 시내명이다. 50) 이에 대해서는 우인수의 고령 매촌동약의 특징과 동민의 결속 (ꡔ고령문화사대계ꡕ1 역사편, 고령군대가야박물관 경북대 퇴계연구소, 2008)에 자세하다.

32 36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욱 빛을 발하였다. 오운의 경우 郭 再 祐 ( 忘 憂 堂, 1552~1617)를 도와 군량 과 전마를 조달하고, 金 誠 一 ( 鶴 峯, 1538~1593)이 초유사로 부임해 왔을 때, 그를 도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51) 郭 ( 禮 谷, 1531~ 1593) 趙 宗 道 ( 大 笑 軒, 1537~1597) 등과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는 일에 대하여 논의하기도 했다. 52) 또한 朴 而 章 ( 龍 潭, 1547~1622)과 金 沔 ( 松 庵, 1541~1593) 등은 합천과 고령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국난극복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특히 김면은 고령에 거주하고 있었던 朴 廷 璠, 金 澮, 朴 廷 琓, 金 應 聖, 鄭 以 禮, 李 承, 李 弘 宇 등과 함께 많은 무공을 세웠다. 그의 졸기를 보 자. (가) 김면은 선비로서 의병을 일으켜 여러 번 싸워 공이 있었기 때문에 발탁 하여 병사로 삼아 여러 군사를 감독하게 하였다. 善 山 으로 진격하니 주 둔한 적이 날마다 조금씩 퇴각하여 위축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전염 병으로 죽었다. 김면은 군사를 일으켰을 때부터 진영을 떠나지 않았는 데, 처자가 가까운 지역에서 떠돌며 굶주려도 한 번도 서로 만나보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충성을 칭송하였다. 53) (나) 節 度 使 金 松 庵 沔 이 軍 中 에서 사망했다. 松 庵 은 巖 穴 에서 병을 다스리면 서 늙어갈 계책을 세웠지만 국가가 멸망할 위기를 만나 분연히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일어나 군사들을 거느리고 적을 토멸했다. 그렇지만 단지 몇 고을만 수복하여 뜻을 이루지는 못함이 있었는데 사망하고 말 51) 吳 澐, 與 金 鶴 峯 書 ( 竹 牖 集 ꡕ 卷 3 張 8) 참조. 여기서 오운은 김성일에게 편지하여 삼 가현에 초유사의 지휘소를 두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삼가가 경상도의 중간쯤 되기 때 문이다. 52) 鄭 慶 雲, ꡔ 孤 臺 日 錄 ꡕ 1593년( 癸 巳 ), 2월 15일조, 吳 判 校 澐 郭 草 溪 趙 丹 城 宗 道 金 學 瑞 廷 龍 成 正 字 安 義, 共 會 于 郡, 以 議 天 兵 支 待 之 事. 1593년( 癸 巳 ), 5월 6일 조, 吳 判 校 澐 趙 縣 監 宗 道, 出 通 文 于 列 邑, 以 迎 餉 天 兵 故 也. 53) ꡔ 宣 祖 修 正 實 錄 ꡕ 卷 26, 宣 祖 25 年 12 月 丁 亥 條, 沔 以 文 士, 起 義 兵, 屢 戰 有 功, 擢 爲 兵 使, 督 諸 軍, 進 臨 善 山 屯 賊, 日 頗 退 縮, 未 幾 以 癘 疫 死. 沔 自 起 兵, 不 離 行 陣, 妻 子 在 近 地, 流 離 飢 餓, 一 不 相 見, 人 稱 其 忠 誠 焉.

33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37 았다. 이른바 군대를 내어 승첩을 못 거두고 몸이 먼저 죽었다는 것이 니, 아! 슬프구나. 54) (가)는 ꡔ조선왕조실록ꡕ에, (나)는 정경운의 ꡔ고대일록ꡕ에 수록된 졸기이 다. 이에 의하면 김면이 우국충정으로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충성했음 을 칭송하는 한편,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중도에 죽고 말았음을 안타깝 게 생각하고 있다. 김면은 인근의 정구, 이기춘, 정인홍 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남명학의 사회적 실천정신을 현실에 충실히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무계 우척현, 거창, 성주 등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초기에는 소규모로 활동을 하다가 후기에는 경상우도 의병을 총괄하기도 했다. 그가 경상우도 의병도대장이 되고 이후 경상우병사가 되었던 사실은 바로 이를 말해주는 것 이다. 55) 강안학의 실용성은 박학적 학풍에 기반하여 사회적 실천성으로 구체화 되 어 나타났다고 하겠다. 남명학이 지닌 학문적 영향도 중요한 요인이 되었겠 지만 강의 연안이라는 실용적 문화풍토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상 주지역의 정경세가 국방에 대하여 自 强 의 논리를 전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는 節 用 과 治 兵, 그리고 安 民 을 상소할 때마다 급무로 강조하면 서 강한 현실주의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일반성이 강안지역에는 있 었고, 고령지역 역시 강안학의 특징적 국면 속에서 오운과 같이 역사를 주목 하기도 하고, 김면과 같이 의병장으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 나가기도 했던 것이다. 54) 鄭 慶 雲, ꡔ 孤 臺 日 錄 ꡕ 1593년( 癸 巳 ), 3월 13일조, 節 度 使 金 松 庵 沔, 卒 于 軍 中, 松 庵, 保 病 巖 穴 以 爲 終 老 之 計, 而 値 國 家 危 亡, 奮 不 顧 身, 提 兵 討 賊, 只 復 數 邑, 有 志 未 就 而 卒, 所 謂 出 師 未 捷, 身 先 死 者 也. 嗚 呼! 哀 哉. 55) 김면의 의병활동과 임진왜란 시기 고령지역의 의병활동에 대해서는, 김강식, 임진왜 란 시기 고령지역의 의병운동과 의미 (ꡔ고령문화사대계ꡕ1 역사편, 고령군대가야박물 관 경북대 퇴계연구소), 참조.

34 38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4) 독창성-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 강안지역을 중심으로 사림파가 형성되고 발달되었다. 16세기를 거치면서 강을 좌우로 하여 이황과 조식을 중심으로 학파가 형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양 학파는 공존과 경쟁관계를 동시에 유지하였다. 이황과 조식이 표면적으로 는 神 交 로 인정하면서도 이면적으로는 상호간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 같은 긴장과 경쟁은 그 문하생들 사이에서 갈등의 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성주지역의 정구는 퇴계학파와 남명학파를 넘 나들며 소통과 화합을 지향하였고 이는 강안학의 중요한 특성인 회통성에 근 거한 것이었다. 또한 강안지역에는 실용학풍이 있어 ꡔ읍지ꡕ 등의 지방사나 민족사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강안학은 회통성이나 실용성에서 더욱 나아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어 특기할 만하다. 이는 강안학이 기령 학과 퇴남학을 회통하면서도 독자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이 지역의 학문방향 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퇴계학과 남명학을 회통하면서 실 용주의적 측면을 보강한 정구의 학문이 김해의 허전을 거쳐 밀양의 노상직에 게 전수되는 것도 이 지역 학문경향의 중요한 부면이지만, 상주 선산 성주 지역에서 독특한 이론을 개발하여 강안학의 독창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은 이 지역의 유학적 특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盧 守 愼 ( 穌 齋, 1515~ 1590)과 張 顯 光 ( 旅 軒, 1554~1637), 그리고 李 震 相 ( 寒 洲, 1818~1886)이 바로 그들이다. 상주의 노수신은 金 世 弼 ( 十 淸 軒, 1473~1533)과 洪 仁 祐 ( 耻 齋, 1515~ 1554) 등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초기 양명학자다. 그는 羅 欽 順 이 지은 ꡔ 困 知 記 ꡕ의 영향을 받아 理 氣 一 物 說, 人 心 道 心 體 用 說, 욕망긍정설 등을 대체로 긍 정했다. 人 心 道 心 說 과 困 知 記 跋 등을 쓴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35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39 특히 곤지기발 에서 내가 늦게 ꡔ곤지기ꡕ를 얻어 보니 그 말이 正 大 하고 精 微 하여 발명하지 못한 것을 많이 발명하여 程 朱 의 문에 커다란 공이 있었 다 56) 라고 한 바 있다. 李 植 ( 澤 堂, 1584~1647)은 이에 대하여, 노수신은 당시 선비들에 의해 이황보다 더 큰 기대를 받았던 인물이며, 유배지에서 비 로소 나흠순의 ꡔ곤지기ꡕ을 읽으며 사상의 혁신을 꾀했고, 이 책이 지극히 정 밀하여 정주학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설에 기초하 여 인심도심설 의 주석을 개작하고 또한 ꡔ 大 學 章 句 ꡕ를 개정하였는데 모두가 육상산과 왕양명의 학설이었다 57) 고 했다. 노수신은 이처럼 양명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李 恒 ( 一 齋, 1499~1576), 盧 禛 ( 玉 溪, 1518~1578), 金 麟 厚 ( 河 西, 1510~1560), 이 황 등에 의해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황은 노수신에게 때로는 편지로 때로는 시로 그의 학문이 순정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이 황은 자신의 이 같은 생각을 제자들에게도 언급한 바도 있다. 李 德 弘 ( 艮 齋, 1541~1596)에게 편지를 보내 노수신을 들어 象 山 의 견해를 묵수하여 매우 걱정스럽다 58) 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당대인들이 노수신을 어떤 시각에서 평가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고, 최근에 발견된 노수신의 ꡔ 大 學 集 錄 ꡕ이 주희의 格 物 致 知 說 을 부정하는 선유들의 대학설을 모아 편집했 던 책 59) 이었음을 감안할 때 그의 학문적 주안점이 어디에 귀착되고 있었던 56) 盧 守 愼, 困 知 記 跋 (ꡔ 穌 齋 集 ꡕ 卷 7,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35, 214쪽), 守 愼, 晩 得 困 知 記, 見 其 言 正 大 精 微, 多 發 未 發, 大 有 功 於 程 朱 之 門. 57) 李 植, 追 錄 (ꡔ 澤 堂 先 生 別 集 ꡕ 卷 15,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88, 524쪽), 蘇 齋 自 少 厲 志 苦 學, 祖 述 靜 菴, 聲 名 高 於 退 溪, 及 在 海 中, 雖 不 廢 學, 憂 愁 之 餘, 詩 酒 遣 懷. 始 讀 羅 靜 庵 困 知 記, 以 爲 廣 大 精 微, 不 下 程 朱, 用 其 說, 改 作 人 心 道 心 傳 註, 又 改 定 大 學 章 句, 其 言 皆 陸 王 意 也. 58) 李 德 弘, 溪 山 記 善 錄 下 (ꡔ 艮 齋 集 ꡕ 卷 6,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51, 91쪽), 盧 蘇 齋 ( 名 守 愼, 字 寡 悔 ), 象 山 之 見, 甚 爲 懼 也. 59) 이에 대해서는 신향림, 蘇 齋 盧 守 愼 의 공부론에 나타난 陽 明 學 (ꡔ한국사상사학ꡕ 24, 한국사상사학회, 2005), 283~285쪽 참조.

36 40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가 하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선산의 장현광은 노수신의 理 氣 一 物 說 과 人 心 道 心 體 用 說 을 지지하는 입장 에 있었다. 그의 理 氣 經 緯 說 은 바로 이것을 토대로 해서 마련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현광의 학문적 경향은 ꡔ조선왕조실록ꡕ에서도 이황과는 일 정한 거리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효종 1년 5월 1일에 경상도의 진 사 申 碩 亨 ( 稼 亭,?~?) 등 40여인이 연명으로 상소를 한 바 있다. 여기에 의하면 장현광은 ꡔ 周 易 ꡕ에 조예가 깊어 사류들로부터 오랫동안 추앙을 받아 왔으며, 그가 지은 經 緯 之 說 은 理 氣 를 종횡으로 극론한 것으로 모두 이황과 다른 입장을 취하고 이이와 부합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었다. 60) 장현광이 道 一 元 論 에 바탕을 둔 理 氣 經 緯 說 을 강조하자 영남의 퇴계학파 는 이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柳 元 之 ( 拙 齋, 1598~ 1678), 李 榘 ( 活 齋, 1613~1654), 李 玄 逸 ( 葛 庵, 1627~1704) 등이다. 61) 이들은 장현광의 리기설이 이이의 기발일도설과 다르지 않다고 보고, 퇴계설 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강력히 비판하였던 것이다. 그동안의 논의에 따르면, 리와 기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장현광의 리기경위설은 영남학파의 중요한 일 원이면서도 리기의 차별성에 주목하는 이황의 그것과 일정한 거리가 있는 것 이었다. 이 같은 측면에서 장현광은 강안지역에서 독창적인 학설을 전개했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주의 이진상은 理 發 一 途 說 과 心 則 理 說 로 이 지역의 일원론적 전통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강안학의 독창성을 극대화시켰다. 이 같은 그의 논리는 이황의 心 合 理 氣 說 을 주리적 측면에서 더욱 강화시킨 것이다. 璞 玉 의 비유에 60) ꡔ 朝 鮮 王 朝 實 錄 ꡕ 孝 宗 1 年 5 月 1 日 ( 癸 丑 ) 條 참조. 61) 이들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는 금장태, 졸재 유원지의 경학과 성리설 (ꡔ퇴계학파와 리 철학의 전개ꡕ,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설석규, 활재 이구의 이기심성론 변설과 정치적 입장ꡕ(ꡔ조선시대사학보ꡕ 4, 조선시대사학회, 1998), 유권종, 갈암의 여헌 성 리설 비판 고찰ꡕ(ꡔ한국유교사상연구ꡕ 27, 한국유교학회, 2006)에서 이루어졌다.

37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41 서도 나타나듯이 그는 돌[기] 속에 있는 옥[리]이 박옥의 본래면목이라 생각 하고, 차라리 월형을 받을지언정 옥을 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하 면서 리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리의 주재성에 주목한다. 주재하는 것은 리 이고 작용하는 것은 기 62) 라고 한 언명에서 이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마음의 주재성을 리로써 설명하려고 했던 이진상의 심즉리설 에 대하여 퇴계학파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었다. 1897년 ꡔ한주문집ꡕ이 도산서원에 전 해졌을 때 이진상의 理 學 을 僞 學 으로 몰아 환송하고, 1902년 朴 海 齡 등은 이진상의 학문을 이단으로 보고 상주향교에서 ꡔ한주문집ꡕ을 불태우기까지 하 였다. 그리고 이황의 후손 李 晩 寅 ( 龍 山, 1834~1897)은 논리를 갖추어 적 극 비판하고 나섰다. 즉 理 發 만 있고 氣 發 이 없다는 것은 이이가 氣 發 만 있 고 理 發 은 없다고 말한 것을 반대하려고 하다가 지나침을 면치 못했다는 것 이다. 63) 이것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노수신이나 장현광이 그러 했듯이 퇴계 근본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이단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강안학의 주요 특징이기도 하다. 64) 고령지역의 경우 리기론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논의를 전개한 사람은 한말의 李 種 杞 ( 晩 求, 1837~1902)이다. 그러나 그의 리기론은 주희 62) 李 震 相, 答 郭 鳴 遠 疑 問 (ꡔ 寒 洲 全 書 ꡕ 卷 40), 太 一 將 分, 理 生 氣, 衆 萬 交 運, 理 乘 氣. 主 宰 在 理, 作 用 在 氣. 63) 이와 관련한 논의는 홍원식, 한주의 성리설과 계승 (ꡔ한주 이진상 연구ꡕ, 역락, 2006) 참조. 64) 강안학에 보이는 독창성은 유성룡의 제자인 정경세와 그의 학단에서도 드러난다. 그들 은 남명학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동시에 안동 예안권의 월천 학봉학맥에 대해서도 독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조식에 대해서는 ꡔ참동계ꡕ와 ꡔ 음부경ꡕ에 대한 탐독과 정몽주 인식을 비판하였고, 안동 예안권의 학자들과는 달리 李 爾 瞻 ( 觀 松, 1560~1623)에 대한 주벌 상소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대 한 구체적인 논의는, 김학수, 17세기 嶺 南 學 派 연구ꡕ,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 문, 쪽에서 이루어졌다.

38 42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와 이황의 이론을 철저하게 따르는 것 65) 이었기 때문에 독창성의 측면에서 일정한 한계가 있다. 오히려 노수신의 제자 박이장을 통해 양명학의 수용 가 능성을 보이고 있어 이 지역 학문의 독창성 부분에서 일정한 시사점을 제공 하고 있다. 박이장은 23세 되던 봄에 덕산으로 들어가 조식을 배알하고, 28 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노수신에게 배움을 청한다. 당시 노수신은 그의 양명 학적 주지가 담긴 人 心 道 心 辨 을 강론하였다. ꡔ연보ꡕ에 의하면 노수신이 李 彦 迪 ( 晦 齋, 1491~1553)의 ꡔ 大 學 章 句 補 遺 ꡕ를 講 定 하고 인심도심변 을 찬 술하였는데 박이장과 함께 여러 차례 토론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축해갔다 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시를 박이장에게 주었다. 學 必 貴 傳 習 배움은 반드시 전습을 귀하게 여기고, 喩 之 鳥 數 飛 깨우치기를 새가 자주 나는 듯이 한다. 非 無 豪 邁 質 호매한 자질이 없지 않아, 存 養 似 君 稀 존양을 그대와 같이 하는 이 드물구나. 66) 노수신은 晦 齋 先 生 大 學 補 遺 後 跋 에서, 나는 주자의 ꡔ대학장구ꡕ를 받아 신명처럼 받들고 있지만 유독 강령과 조목 외의 傳 에 무슨 의의가 있는지 알 지 못하겠으며, 또한 격물치지에 대한 元 傳 이 없어지지 않았는지 어찌 알겠 는가? 67) 라면서 주자의 分 章 과 補 亡 傳 을 비판하고 있다. 이에서 나아가 인심 을 긍정하는 측면에서 인심과 도심을 이해하였으며, 68) 이에 따라 많은 학자 들이 그를 양명학자로 보고 비판하였던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위의 작품을 65) 이종기의 성리사상에 대해서는, 임종진, 晩 求 李 種 杞 의 性 理 思 想 (ꡔ철학연구ꡕ 89, 대한철학회, 2004)에 자세하다. 66) 朴 而 章, ꡔ 龍 潭 集 人 ꡕ 卷 5 張 4. 67) 盧 守 愼, 晦 齋 先 生 大 學 補 遺 後 跋 (ꡔ 穌 齋 集 ꡕ 卷 7, ꡔ 韓 國 文 集 叢 刊 ꡕ 35, 215쪽), 守 愼 自 受 讀 章 句, 奉 之 如 神 明, 獨 未 解 綱 條 外 傳 有 何 義, 又 焉 知 格 致 元 傳 有 不 亡? 68) 이에 대해서는 신향림, 노수신의 인심도심설에 내포된 육왕학의 심성수양론, ꡔ한국 한문학 연구의 새지평ꡕ, 소명, 2005 참조.

39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43 볼 때, 1구의 傳 習 은 王 守 仁 ( 陽 明, 1472~1528)의 ꡔ전습록ꡕ에서의 전습 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4구의 存 養 역시 양명학적 심성론에 입각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령지역의 독창성은 뚜렷이 부각되지 않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반에 살았던 李 寅 梓 ( 省 窩, 1870~1929)에 의해 적극적으로 나타났다. 69) 그 는 고령의 館 洞 출신으로 가학으로는 성주의 정구와 연원이 닿아 있지만, 이 진상의 학문적 종지를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이인재는 전통적인 유 자적 모습을 지니면서도 서양의 고대철학을 적극 연구하여 ꡔ 古 代 希 臘 哲 學 攷 辨 ꡕ이라는 책을 편찬한다. 이는 당시로서 가장 체계성을 갖춘 업적이었다. 이 인재는 이를 통해 유학과 서양철학은 본질적으로 상호 소통한다고 보고 유교 의 개혁사상을 천명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한국유학은 고령지역을 중심으로 더욱 創 新 할 수 있었다. 70) 강안지역은 회통성에서 보여주던 것과 달리 조식의 학설을 따르지도 않았 고, 그렇다고 하여 이황의 학설에 적극적이지 않는 경향도 있었다. 즉 독자 성을 갖고 독창적인 학설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 선두에 노수신이 있었다. 그는 人 心 道 心 辨 과 執 中 說 을 중심으로 陸 王 學 을 수용하는 입장에 섰다. 이 때문에 노수신은 당대의 많은 학자들로부터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그러 69) 이인재에 대해서는, 김종석, 성와 이인재의 유교개혁사상 (제2회 고령문화사 학술대 회 ꡔ고령지역 사상의 특징과 사적 전개ꡕ, 2008) 참조. 70) 고령지역의 독창성은 문학방면에서 두드러지기도 한다. 이 지역 출신으로 조선후기에 특별하게 활동을 한 申 維 翰 ( 淸 泉, 1681~1752)이 대표적이다. 이설이 있기는 하나 신유한은 밀양에서 서얼로 태어났으나 고령의 申 泰 始 에게 양자로 들어간 후 고령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1713년(숙종 39, 33세) 과거에 급제한 후 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가서 문명을 날린다. 그는 유교에 중심을 두지만 도불교에도 지대 한 관심을 갖고 거기에도 개성적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다. 사상이 이 같았으므 로 그의 작품세계는 독창적 성취가 가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신유한에 대해서는, 鄭 羽 洛, 申 維 翰 의 文 學 思 想 과 그 詩 世 界 의 意 味 構 造, ꡔ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ꡕ 41, 경북 대 퇴계연구소, 2007 참조.

40 44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나 강안지역의 선비들은 오히려 노수신의 학설을 지지하는 입장에 있었으며 장현광이 그 대표적이다. 그는 理 氣 經 緯 說 을 제시하면서 일원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심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는데, 이 일원론은 강안지역의 이진상에게서 도 분명히 나타났다. 이 같은 사정을 염두에 두고 고령 유학을 보면, 노수신 의 제자 박이장을 중심으로 양명학이 다소 수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방면에 있어 어떤 특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20세기 초에 이 인재가 나타나 유학적 소양 위에 서양철학을 적극 수용하면서 고령유학의 독 창성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4. 고령 유학의 특징과 전망 강안학의 특징적 국면이 회통성과 실용성, 그리고 독창성이라면 고령 유 학은 이 세 특성 속에서 어떤 역학구도로 존재하는가? 이에서 나아가 고령 유학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나 미래를 위하여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 두 가지 물음에 대하여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 본 장의 과제이다. 첫 번째 문제 가 강안학의 전반적인 성격 속에서 고령 유학의 특성을 찾아보기 위한 것이 라면, 두 번째 문제는 고령 유학이 우리의 현재적 삶과 관심 속에서 어떤 의 미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을 논의해 보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강안 학이나 고령 유학이 지닌 미래적 가치도 함께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남명학의 저류와 그 발전 강안학에는 다양한 성향이 공존한다. 어쩌면 다양성이 강안지역 최대의 특징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강안학의 특성이 어느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측 면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성은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는 중간자적 성격으로

41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45 말미암아 그 정체성을 의심받게 된다. 이황과 조식을 넘나들었던 많은 사람 들이 이황의 제자인가, 아니면 조식의 제자인가를 의심받은 것이 그 대표적 이다. 사정이 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을 중심으로 영남은 소통하고 화 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강안지역의 선비들은 이에 대하여 일정한 공헌을 하였다. 그렇다면 사림파의 발달을 이끌어낸 강안지역의 학문에 내재한 회통 성과 실용성, 그리고 독창성이 어떠한 역학관계를 지니며 고령의 유학세계를 구축하였던가? 이것을 밝히면 고령 유학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회통성의 경우, 고령은 기령학보다 퇴남학의 소통이 두드러진 지역이다. 이 지역에도 송시열 등을 배향한 서원이 있었지만 영남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인식에 바탕하여 기호학을 받아들인 예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에 비해 퇴남 학에 대한 소통성은 강하게 드러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裵 紳 과 吳 澐, 그리 고 金 沔 이다. 鄭 師 賢 과 같이 조식 쪽으로, 金 守 雍 과 같이 이황 쪽으로 밀착된 인사가 있기도 하다. 이처럼 사람들마다 성향이 한결같지 않은 점이 있기는 하나 퇴남학의 회통성이라는 강안학의 주요 특성을 고령지역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실용성의 경우는 향약과 의병활동이라는 실천정신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 다. 예안현감을 지낸 바 있는 이황의 제자 김수옹이 향약을 제정하여 향촌의 상호부조를 도모한 것이나, 퇴남학을 회통한 오운의 후손 오경정이 梅 村 洞 約 을 만들어 부세와 환난에 공동으로 대응코자 한 것이 모두 그것이다. 의병 활동은 임진왜란을 경유하면서 김면과 박정번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지역은 임진왜란이나 정유재란 중에 전라도로 진격하려는 일본군을 차단하는 곳이기도 하고, 후퇴하는 일본군을 추격하는 조선군과 명군의 주둔지이기도 했다. 낙동강 연안이라는 지리적 사상적 특수성에 입각하여 고령지역의 실 용주의적 유학정신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42 46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독창성 역시 강안학에는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된다. 상주의 노수신, 선산 의 장현광, 성주의 이진상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강안지역을 배경으로 등장 한다. 이들은 강좌와 강우지역의 중간에서 이황 및 조식과는 또 다른 세계관 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남학 내에서는 이채를 발하였던 것이다. 고령 지역의 경우 노수신의 제자 박이장이 있어 양명학적 맥락을 다소 이었고, 19 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이인재가 나타나 서양철학을 유교에 접목시키면서 유 교의 개혁사상을 천명하였다. 이밖에도 문학사상적 측면에서 신유한이 있어 독창적 세계를 구현하였다. 강안학의 전반적인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고령 유학은 퇴남학의 회통성과 실천정신에 입각한 실용성이 부각되고 비교적 늦은 시기이기는 하지만 독창 성 역시 뚜렷이 감지된다. 즉 회통성, 실용성, 독창성이라는 강안학적 보편성 이 고령지역에도 구체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셋이 균 형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회통성의 경우 기령학에 비해 퇴남학의 회통이 강조되고, 독창성의 경우 유학이 종말을 고하는 서구문명 도입기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천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실용성을 이황과 조식의 학문에 적용시켜 볼 때, 고령 유학은 남명학에 더욱 경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조반정과 더불어 남명학이 표면적으로 거의 몰락하는 듯하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지역은 퇴계학보다 남명학이 강세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남명학이 고령지역에서 부각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조식의 지역 적 근접성과 함께 고령 지산동 출신의 정사현이 조식의 매부가 되면서부터이 다. 조식은 이 때문에 자주 고령을 방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사현 의 객청에서 시를 짓기도 하고, 박윤이나 윤규 등 고령의 사림들과 친분을 두터이 하기도 한다. 배신과 김면 등 이 지역 출신의 제자들도 여럿 두게 된 다. 더욱이 조식 사후에는 남명의 문하생들이 모여 낙동강에 배를 띄워 시회

43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47 를 열기도 하고, 조식을 문묘에 종사하기 위한 疏 廳 을 고령에 설치하기도 한 다. 다음 자료를 보자. (가) 내가 돌아간 때는 마침 무자(1588년) 7월 15일이었는데 낙동강에 배 를 띄워 물을 거슬러 올라왔다. 하늘이 높고 물은 맑았으며 단풍과 국 화가 언덕에 가득하였고 하얀 달이 빛을 날려 흥취가 아득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서로 전송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평일 상종하는 士 友 들 이 오히려 많이 와서 강가에 나와 이별을 하였는데, 술잔을 잡고 시를 짓기도 하고 혹은 노래를 불러 회포를 말하기도 하였다. 또 지리산으로 가는 李 季 郁 ( 起 春 )과 朴 德 凝 ( 惺 )을 만났는데, 산으로 가느라 행색이 스 스로 달랐지만 외형을 잊고 산천에 회포를 붙여 그 즐거워할 바를 즐기 는 것에 대해서는 다르다고 말할 수 없었다. 71) (나) 만력(1617년) 가을 8월에 남명선생의 문묘종사를 청하는 소회가 고령 에서 열렸는데, 모인 사람이 수백 명이나 되었다. 정선생께서 상소문을 지으시고는 진사 李 서의 이름으로 보내셨는데, 내가 외람되게도 擇 疏 를 맡아 마침내 선생의 상소문을 뽑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新 安 으로 가서 선생을 뵙게 되었는데, 선생께서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맞아들여 앉 게 하시고 병으로 일어나 인사할 수 없음을 미안해 하시고는 두터운 예 와 따뜻한 말로 대접하면서, 우리 선생님의 종사를 이제야 비로소 소청 하게 되었소만 청이 받아들여질 것을 어찌 반드시 기약할 수 있겠소? 라고 하셨다. 72) 71) 鄭 逑, 洛 江 分 韻 序, 余 歸 適 在 戊 子 中 元 之 日, 泛 舟 東 洛, 泝 流 而 來. 天 高 水 淸, 楓 菊 滿 岸, 素 月 揚 輝, 思 致 渺 然, 不 許 郡 人 之 相 送, 而 平 日 相 從 士 友, 猶 多 來 別 於 江 上, 把 酒 賦 詩, 或 詠 歌 以 道 其 懷. 又 値 李 季 郁, 朴 德 凝 頭 流 之 行, 尋 山 問 路, 行 色 自 異, 而 其 忘 形 寓 懷, 樂 其 所 以 爲 樂, 則 不 可 謂 不 同 也. 72) 河 憕, 新 安 語 錄 (ꡔ 滄 洲 集 ꡕ 卷 2 張 7-8), 萬 曆 丁 巳 秋 八 月, 請 南 冥 先 生 從 祀, 疏 會 于 高 靈, 會 者, 幾 數 百 人. 鄭 先 生 製 疏, 代 門 人 進 士 李 서 名 以 送, 憕 忝 擇 疏, 遂 用 之. 因 新 安 上 謁 先 生, 先 生 卽 令 迎 入 引 坐, 辭 以 病 未 能 起 居 迎 揖, 優 禮 以 待, 溫 言 以 接, 曰 我 先 生 從 祀, 今 始 疏 請, 然, 得 請, 何 可 必 也?

44 48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가)는 고문서의 형태로 전하는 洛 江 分 韻 의 서문 가운데 일부로, 정구 의 ꡔ함주지ꡕ 서문에도 삽입되어 있다. 당시 정구는 1588년(55세) 7월에 함 안군수를 그만두고 낙동강을 배로 거슬러 올라와 사우들과 함께 萬 頃 蒼 波 欲 暮 天 을 분운하여, 고령의 쌍림면 開 山 浦 에서 멍드미 四 望 亭 에 이르는 구간에 서 시회를 열었다. 이때 지리산으로 유람을 가던 李 起 春 과 朴 惺 도 참가하였는 데 도합 7인이었다. 정구를 비롯한 李 弘 量 ( 六 一 軒, 1531~1592), 李 弘 宇 ( 茅 齋, 1535~1594), 金 沔 ( 松 庵, 1541~1593), 李 起 春 ( 玉 山, 1541~1597), 朴 惺 ( 大 庵, 1549~1607), 李 承 ( 晴 暉 堂, 1552~1598)이 바로 그들이다. 이 들은 대체로 조식의 문인이며 고령인이 4명이나 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고 령지역과 남명학파의 결합정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는 河 憕 ( 滄 洲, 1563~1624)이 기록한 新 安 語 錄 의 일부로 소청을 고령에 차리고, 여기서 정구의 상소문이 채택되었던 사실을 전한다. 1610년 이황 등 5현이 문묘에 종사되자 이에 자극을 받아 남명학파에서는 꾸준히 조 식의 문묘종사운동을 벌이게 되고 1617년에는 고령에 그 소청이 설치되었다. 고령에 조식의 문묘종사를 위한 소청을 차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이 지역이 강의 좌우를 아우를 수 있으면서도 남명학파의 중요한 거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근의 新 安, 즉 성주에는 정구가 있어 여러 가지로 이와 관련된 현안들을 논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살핀 것처럼 고령 유학에 강안학적 특징이 고르게 나타나는 것은 아 니다. 회통성과 실용성, 그리고 독창성 가운데 퇴남학의 회통성과 실용성이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남명학맥에 더욱 경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이다. 이것을 염두에 둔다면 고령은 퇴계학과 남명학의 완충지이면서도 남명 학의 자장이 더욱 강하게 작용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황과 조식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상호 교류하면서도, 조식의 문묘종사를 위한 소청을 고령 에 설치하면서 선비들이 남명학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던 상황은 주목할 만

45 江 岸 學 과 高 靈 儒 學 에 대한 試 論 49 하다. 이것은 상주 등 낙동강의 상류지역이나 밀양 등 낙동강의 하류지역과 는 변별되는 것이어서 특기할 만하다. 2) 회통 실용 독창성의 상생구도 영남은 嶺 之 南 으로서의 동질성도 확보하고 있지만 그동안 강을 중심으로 하여 좌도와 우도의 이질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해왔다. 이것은 영남지역을 양분하여 이해함으로써 그 성격을 명확히 하고, 이에 입각하여 정치사상사에 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예컨대 동서붕당 때에는 함께 동인으로 귀속이 되었으나 이후 강좌 지역에서는 퇴계학을 바탕으로 한 남인이, 강우 지역에서는 남명학을 바탕으로 한 북인이 거점 세력을 형성하 게 되었다는 설명이 그것이다. 73) 이 과정에서 강안지역에 있던 사림과 그 후예들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거듭 받아오게 되었다. 이 같은 불합리를 해 소하고 강안지역이 지닌 사상사적 의미를 새롭게 하면서 낙동강을 중심으로 하나의 영남학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한 신개념이 강안학이며 고령 유학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한 시론이 된다. 강은 분리와 갈등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화합의 기능을 한 다. 이 때문에 낙동강 연안지역이면서 그 중류에 해당하는 고령은 매우 중요 한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영남문화를 소통과 화합의 측면에서 새롭게 이해 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이 지역은 무한히 열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에서 강안학의 특성을 회통성과 실용성, 그리고 독창성이라는 가설 하에 논의를 전개해왔다. 이에 입각하여 고령 유학을 살펴본 결과 이 지역은 퇴계학과 남 명학의 회통성과 실천정신에 바탕한 실용성이 강조되고, 독창성은 서양철학 73) 당색의 측면에서 동서붕당 때에는 영남사인들이 東 人 으로 화합하지만, 좌도의 경우 南 人 으로 단일화되는 측면이 있으며, 우도의 경우 동인에서 南 北 人 으로, 다시 大 北 으 로 분화되었다가 인조반정 이후에는 南 人 과 西 人 으로 양분된다.

46 50 退 溪 學 과 韓 國 文 化 第 43 號 과 접목되면서 그 빛을 발하였다. 이를 인식하면서 다음 그림을 보자. 실용성 회통성 독창성 회통성은 소통과 화합을, 독창성은 개성과 창조를, 실용성은 일상과 생활 을 지향하는 강안학의 주요 성격들이다. 강안학은 이것이 배타적 관계로 존 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성을 지니며 구조화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표면적으로는 회통성과 독창성은 상호 대극점에 위치하고, 다시 실용성이 설 정되어 있어 상호 배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회통성이 독창성을 간섭 하지 않고, 독창성 역시 회통성을 방해하지 않는다. 회통성이 모호한 성격으 로, 독창성이 상대에 대한 비판적 자세로 나타날 때도 없지 않으나, 강안학 은 회통을 통해 창조적 세계를, 그 독창성에 입각하여 오히려 소통과 화합을 가능케 한다. 74) 그리고 이것은 강과 그 연안의 수월성에 따라 실용주의로 귀결된다. 고령 유학의 전망 또한 이 같은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모색할 수 있다. 이 는 유학이 미래의 학문일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성립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전망은 두 가지 방향에서 모색할 수 있다. 하나는 강안학적 보편성을 고려하 면서 고령 유학의 전망을 모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안학적 특수성을 고려하면서 고령 유학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모든 사물의 존재방식 74) 성주지역 정구의 경우 퇴계학과 남명학을 보완하고 절충하는 입장이 강한 데 비해, 상 주지역 정경세의 경우 남명학을 비판하면서 퇴계학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독창적 면모가 강하다. 강안학은 이 두 성향을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생의 관계로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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