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ze: px
Start display at page:

Download ""

Transcription

1 원로에게 듣는 예술경영

2

3 편집인의 글 예술경영 원로들의 인터뷰를 두 번째로 기획한다. 첫 번째는 ((재)예술경영지원센터 발 행) 창간2주년기념 특별기획 한국현대예술경영의 흐름 으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2월까지 게재되었다. 당시 이 기획의 출발은 소박한 것이었다. 분야별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어보자는 것 이었다. 그렇다고 이즈음 학문적 방법론으로 정립되고 있는 구술사를 시도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선 생님들이 작업해 오신 이야기를 듣다보면 예술경영 분야에 대한 사적 흐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 다. 무턱대고 선생님들을 찾아가 녹음기를 틀어놓고 말씀을 부탁드렸던 셈이다. 소박한 출발에 비하면 독자 들에게 과분한 격려를 받았고, 덕분에 다시 새로운 기획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원로에게 듣는 예술경영 PRESTORY 는 한국현대예술경영의 흐름 에서 출발하면서 웹진의 기획을 보완했 다. 웹진 책임기획을 맡으셨던 이용관 선생님과 박신의, 양효석, 이승엽 선생님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셨다. 가장 먼저 검토했던 점은 기존 기획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분야에 대한 것이었다. 이 논의 역시 좌담에서 다루고 있는 예술경영 기점 만큼이나 현재적 이슈라 할 것인데, 결국 두 문제 모두 예술경영이란 무엇인가 라 는 질문에 가닿기 때문이다. 공연에서는 강석흥 선생님을 새롭게 모셔서 예술단체 운영 및 공연예술경영 등 좀 더 세부적인 분야에 집중하고자 했다. 미술에서는 하정웅 선생님과 노준의 관장님을 통해 컬렉터와 사립 미술관 등 현재적 관점에서 주목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고자 했다. 다음으로는 예술경영 이슈를 좀 더 부각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기존 기획에서도 개인사의 술회에서 당대 예 술환경이라든가 예술경영의 전개가 드러나지만 이번 기획에서는 이를 좀 더 부각하고자 했다. 웹진에서 발행 되었던 김의경, 강준혁, 오광수, 이종인 선생님의 경우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인터뷰를 재정리하였다. 또한 이 를 위해 각 선생님들의 말씀에서 주요한 예술경영의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글을 추가했다. 한편 안타깝게도 웹진에서 다루었던 선생님들을 이 자료집에 게재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상만 선생님편 과 신문사 문화사업 분야 좌담은 예술경영과 공연기획, 어제, 오늘, 내일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30주년 기념 발간물)에 수록되었다. 중복게재를 피하기 위해 이번 자료집에서 빠졌다. 박래경 선생님은 좀 더 보완 된 인터뷰를 위해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이 자료집에서 다루고 있는 선생님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다. 이 때문에 자료집의 제목에 원로 라는 말이 적합한가라는 고민도 잠깐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활동해온 시 간이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역사 라는 점을 부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일곱 선생님들의 말씀을 모았다. 지면의 한계 등등으로 안타깝게 빠뜨려야 했던 말씀도 적 지 않다. 또 엄정한 학문적 방법론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도 안타깝다. 앞서 말했듯이 이 자료집에서 전개 되는 이야기들은 비단 개인사에 대한 술회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획을 진행하면서 다시 들었던 생각은 더 많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자료집을 마무리하면서 드는 생각 은 엄정한 학문적 방법론에서는 미처 그리기 어려울 수도 있는 사람 과 시간 을 이 자료집은 담고 있다는 것 이다. 한 분 한 분 모두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척박한 현실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개척해 오신 분들이 다. 이 자료집이 역사를 정립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역사를 만드는 시간을 살아낸 선생님들의 삶이, 예 술경영의 현재에 놓여 있는 시간의 두께가 독자 여러분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 소 연

4 원 로 에 게 듣 는 예 술 경 영 P R E S T O R Y 6 7

5 편집인의 글 004 김의경 강준혁 강석흥 오광수 하정웅 노준의 이종인 직업극단 소극장 운영 예술단체 운영 미술비평 컬렉터 토탈미술관 예술지원기구 연극기획과 제작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공연매니지먼트협의회 국제전 커미셔너 기부 사립미술관협회 문화정책 음악극 축제 아트마켓 큐레이팅 공공미술관 문화예술조사통계 공연예술 국제교류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좌 담 한국현대예술경영의 전개 김소연/박신의/양효석/이승엽/이용관 214

6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60년대 동인제 극단의 출발 실험극장과 매니페스토 장충동 국립극장 극장은 레퍼토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직업 극단의 꿈, 현대극장 창단 계층 연령 지역을 넘어 관객과 만나다 뮤지컬과 음악극 제3세계연극제, 베세토연극제 그리고 97년 세계연극제 제작자 30년 대차대조표 10 11

7 김의경 김의경은 1936년 평안남도 순안에서 태어났다. 서울사대부고를 거 쳐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60년 실 험극장 창단을 주도하고 1972년까지 대표를 맡았다. 실험극장은 아 직도 활동하고 있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민간극단으로서 1960년대 한국연극계의 동인제 극단의 시대 를 열었다.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1964년 문학춘추 에 갈대의 노래 와 신병후보생 이 추천되면 서 극작가로 데뷔했다. 그 전해에는 실험극장이 공연한 단막극 애 욕 愛 慾 의 우화 寓 話 가 문화공보부 주최 신인예술상을 수상 했다. 남한산성 1975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1986 는 백 상예술상 희곡상을 길 떠나는 가족 1991 은 서울연극제에서 작 품상 희곡상 연기상 등을 받았다. 그의 희곡은 주로 실험극장이나 현대극장 등 자신이 주도한 공연집단에 의해 무대화되었다. 1970년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원 연극학과에서 한국인 최초로 연극 학 MFA 학위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서라벌예술대학 이후 중앙대 학교와 통합 에 부임하여 연극영화학과 학과장을 맡았다. 1973년 장충동 국립극장 개관 후 초대 공연과장으로 자리를 옮겨 1976년까 지 일했다. 1976년에는 그의 연극인생 전성기를 담은 그릇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극장을 만들었다. 현대극장은 창단 후 지금까지 70 여 편의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했다. 특히 빠담 빠담 빠담 에 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은 우리나라 공연계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한국 아시테지 초대 이사장 1982년-1986년 한국연극협회 이사 장 1986년-1989년 한국 ITI 회장 1995년-2000년 세계연극제 집행위원장 1997년 서울시립극단 초대 예술감독 1997년-2000 년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초대 집행위원장 겸 예술감독 등을 지냈다. 2001년 공연문화산업연구소를 창립하여 지금 까지 이끌고 있다.

8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 연극인 김의경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연극인 정도가 그의 다양한 활동의 테두리를 그나마 맞게 표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의 연극 인생을 관통하는 역할과 활동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먼저 극작가. 1964년 문학춘추 를 통해 극작가로 데뷔했다. <남한산성 >(1973), <길 떠나는 가족>(1991), <팔만대장경>(1999) 등 서사극과 역사극이 주요 영역이다. 다음은 제작자다. 그의 프로필은 극작가로 시작하지만 한국 연 극계에서 그의 자리 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제작자로서의 김의경이 다. 그는 1960년 실험극장의 창단부터 시작하여 줄곧 제작자 또는 그와 유사한 60년대 동인제 극단의 출발 실험극장과 매니페스토 언젠가 연극을 왜 하게 되었느냐 라고 질문 받은 적 있는 데, 무심코 조직하는 데 재미를 느꼈다 고 말한 적 있습니다. 대구 피난 시절이 었죠. 그때 고 1이었는데, 학교에서 연극을 했어요. 나는 주인공 할 생각으로 갔는데 내게 맡겨진 것은 프롬프터였습니다.(웃음) 그때는 프로들이 하는 연극 도 연습을 몇 달 하는 법이 없었어요. 보통 일주일, 열흘, 길어야 2주였습니다. 배우가 대충 대사만 맞춰 보고 다 외우지 않은 채 공연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역할을 맡았다. 특히 1976년에 창단한 현대극장의 제작자인 김의경은 우리 공 장치 뒤에 대사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죠. 그게 프롬프터입니다. 특별히 연 연사에 프로듀서 또는 제작자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공연기획과 관객개발, 극을 좋아할 이유도 없었는데 궁하게나마 찾아낸 게, 어떤 조직에 대한 매력, 연극경영이라는 말이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김의경의 또 다른 면은 조직자다. 극단과 사업을 조직하는 것은 제작자로서 당 그는 1936년 평안남도 순안생이다. 서울사대부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철학과 연한 일이지만 그는 국내외에 새로운 조직과 행사를 만드는 데 선수였다. 그의 를 졸업했다. 조직하는 데 재미를 느낀 그는 이후 연극 분야 안에서 다양한 분 주도로 이루어진 제3세계연극제, 베세토연극제,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야에서 재미를 느끼게 된다. 등은 그 중 일부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연극 모임들이 생기기 시작 예술경영자, 예술행정가, 연극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는 장충동으로 옮긴 국립 했는데, 그때 그 모임의 주요 멤버들이 HLKZ라는 대한민국 최초의 텔레비전 극장의 첫 공연과장을 역임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서라벌예대(후에 중앙대 방송국에 있었습니다. 방송국이 화신백화점 건너편 보신각 바로 옆 건물에 있 학과 합쳤다)의 교수이기도 했고, 아시테지 초대 이사장과 연극협회 이사장을 었죠. 사장은 장기영 씨(한국일보 사주)였고 방송부장은 나중에 MBC 사장을 지냈다. 서울시극단의 초대 단장도 그의 몫이었다. 하신 최창봉 씨였습니다. 제작극회의 창립동인이기도 했던 최창봉 씨가 방송 부장을 하면서 텔레비전 드라마도 했지요. 그때는 녹화방식이 없었으니 드라 마지막으로 그는 기록자다. 실험극장 이후 그가 거쳐 간 자리에는 이전과는 다 마도 다 생방송이었습니다. 작고한 이기하, 황운진 이런 사람들이 조무래기로 른 수준의 기록이 남았다. 지금도 기록 은 그의 주 관심사 중의 하나다. 우리 예 참여할 때였는데, 나는 그나마도 나이가 한두 살 모자라서 끼지는 못하고 옆에 술경영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만난 인물로 합당한 이유를 고루 갖춘 셈이다. 서 왔다 갔다만 했습니다. 그러면서 실험극장이 만들어졌죠. 앞에 말한 이기하

9 실험극단 10년지 실험극장 창단 10주년 파티 학문으로서 공부하고 연극을 직업으로 한다 는 기본자세에 5조 10항의 화려한 공약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험극장을 시작하면서 선언문(manifesto)을 냈었는데, 내가 그걸 어디서 배웠냐면, 우연히 막 ( 幕 )이라는 동경학생예술좌의 잡지 창 간호를 보고서였습니다. 대학 후배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 다락방에서 그 책을 봤어요. 후배 아버지가 아마 동경 유학생이었던 모양이지요. 한 50여 페이지 되는 얄팍한 잡지였습니다. 동경학생예술좌는 1934년에 주요한의 동생인 주 영섭( 朱 永 涉, 이후 월북)이 주도하고 마완영, 이해랑, 이진순, 박동근 같은 사람 들이 참여해 4~5년쯤 활동을 했죠. 그 사람들 거의가 1916년생이니까 스무 살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안쪽 때였죠. 막 에 실린 그 사람들의 선언문을 보고, 아, 극단이라는 건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뒤에 우리도 모두가 연극의 실험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고 연극을 직업으로 하는 는 연대 국문과 출신인데 나중에 KBS, MBC에서 드라마 제작국장을 지낸 이예 것을 목표로 한다는 식의 선언문을 썼지요. 다들 또래들이고 갓 대학 요. 이 사람이 연희극예술회, 고대극회 등 대학극 출신 젊은이들을 모아서 연 을 졸업해서 직업이 없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출을 했어요. 대전고등학교 출신인데 조그맣고 못생겼어요. 진짜 못생겼어요. 내가 백 배는 잘생겼지.(웃음) 하지만 그이의 열정과 재주는 못생긴 것의 백배 실험극장 운영에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재원 조성과 회원제 등의 고민이 엿보 는 될 겁니다. 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잡담이나 하고 그러기보다는 무언 인다. 관객실태조사와 관객운동을 사업계획에 포함시킬 정도다. 후원회원을 가 필요한 일을 해보자, 공부를 해보자, 연극 얘기를 좀 조직적으로 해 모집하고 관객개발을 도모했다. 상술이 좋아도 상품이 좋지 않아서는 아니 된 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극단이 목표가 아니었어요. 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품이 아무리 좋아도 상술이 뒤따르지 않아서는 아니 된 그런데 시작을 하자마자, 6개월 만인가, 공연을 했으니까 결국 그게 극 단의 출발이었던 셈이지요. 1960년 11월에 이오네스코의 <수업>을 공 연했어요. 실험극장과 60년대 동인제극단 - 실험극장은 대학 연극반 출신의 이십대 젊은이들이 신협 등 기성 극계에 반대하며 1960년에 창단한 극단이다. 실 험극장을 시작으로 산하 1963 민중극장 1963 드라마센터 1964 가교 1965 여인극장 1966 자유극장 1966 극단 에저또 1967 등이 연이어 창단된다. 60년대 동인제극단의 출현은 첫째 급격한 연극계의 세대교체를 가시화했다는 점 / 둘째 연극 행위에 대한 새로운 이념이나 접근 우리 연극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실험극장, 1960년 10월 창단한 실험극장 은 1960년대 들어 연극계를 주도하는 동인제 극단의 선두주자였다. 연극을 방법의 정립을 재촉했다는 점 / 셋째 한국연극을 세계 연극의 패러다임 속에 배치시키려는 인식적 전환을 가져왔다는 점 등으로 한국연극의 지형 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70년대 이후 이들 동인제극단들이 한국연극의 주류로 성장하는데 그 대표주자인 실험극장은 극단 자체 소극장을 운영하면 서 에쿠우스 아일랜드 신의 아그네스 등 소극장 연극의 대표작들을 발표한다

10 다 ( 실험극장 10년지 )는 주장은 1960년대 초반에 이미 공연마케팅을 본격적 으로 주장하는 것으로 읽힌다. 장충동 국립극장 극장은 레퍼토리 시스템이 필요하다 1971년 대학에 자리를 옮길 때까지 10년 이상 젊은 김의경의 직장은 방송국이 었다. 나중에 그가 뮤지컬 등 대형 공연을 흥행시킬 때 미디어와 협업하는 과 정에서 이 인연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1961년 MBC 창설멤버로 직 장생활을 시작했고 1971년 퇴직할 당시에는 TBC 소속이었다. 서라벌예대 연 극영화과 학과장으로 짧은 교원생활을 거쳐 국립극장으로 옮긴 것이 1973년이 다. 장충동에 새 극장을 짓고 개관한 국립극장 의 첫 공연과장이었다. 그 직전 에 그는 미국에 가서 연극 공부를 하고 MFA를 딴다. 미국에서 연극 전공으로 딴 첫 MFA 취득자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진 그의 미국 유학 경험 은 그가 후에 국제 활동을 하는 밑거름이 된다. 분이죠. 다른 곳 옮기기 전에 들르는 임시정거장으로 생각하지 않고 극장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거기서 1973년부터 1976년 초까지 2년 반 정도 초대 공연과장을 지냈습니다. 여러 관습들을 새 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는데 특히 두 가지가 기억에 남 습니다. 첫 번째는 그때까지 국립극장을 내셔널 씨어 터(National Theater)라고 썼는데 내가 오브 코리아(of Korea)를 붙였습니다. 공로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셔널 씨어터 오브 코리아(National Theater of Korea)라고 씁니다. 두 번째는, 내가 들어간 이듬해에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제외한 다른 단체들은 모두 일 년 전에 레퍼토리를 정했습니다. 무슨 작품을 할까 그때그때 정하는 게 아니라, 다음해 일 년 동안의 작품을 미리 선정한 거죠. 개관 초기 프로그램 책자를 찾아보면, 다음 해 공연 레퍼토리를 알리는 광고가 있을 겁니다. 국립극장 개관 기사 경향신문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최신식 설비와 넓은 로비 등을 갖춘 국립극장의 개관을 준비하면서 이전의 관 행을 바꾸고 새로운 것들을 정착시킨다. 이 과정에 그는 유럽식 레퍼토리 시스 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장충동 국립극장의 초대 극장장은 김창구 씨라고, 서울 대 음대 1기 졸업생입니다. 다른 공무원하고는 달리 극장경영에 관심이 컸던 한국연극사에서 연극에 관한 한 극장사의 시작은 이 장충동의 국립극장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은 공연예술 의 터인데 그 터 없이 지속적인 공연예술을 기대할 순 없으니까요. 극 장이 없는 극단은 당장 다음해에 어디서 공연할지도 모르는 형편이 죠. 그래서 나는 거기서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장충동 국립극장 시대 개막 - 국립극장은 1948년 12월 통과된 국립극장 설치령을 바탕으로 설립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극장건물 지정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구 부민관 현재 서울시의회 의사당 을 국립극장으로 지정하고 1950년 4월 29일 개관기념 공연 원술랑 유치진 작 허석 연출 을 개막한다. 그 러나 곧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 문화극장으로 옮겨갔다가 휴전 후에도 환도하지 못한 채 대구에 머문다. 한때 국립극장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1957년 서울시공관 현재 명동예술극장 이 국립극장으로 지정된다. 1962년 서울 시민회관이 개관하면서 단독으로 사용하게 되자 극장을 전면 개보수하고 재개관한다. 1967년 정부는 국립극장 신축을 발표하고 명동 국립극장 매각을 추진한다. 그러나 공연예술계에서는 명동 국립극장이 대관극 장으로 민간공연단체가 활발히 사용했던 점을 들어 매각을 반대한다. 비용 등등의 문제로 당초 계획보다 늦어진 1973년 장충동 국립극장이 완공되고 10 월 17일 성웅 이순신 으로 개막공연을 연다. 국립극장 설립 23년 만에 우리 손으로 지은 극장을 갖기에 이르고 대관 위주 극장에서 전속예술단 제작공 연을 중심으로 운영하게 된다. 명동 국립극장은 예술극장으로 개칭하고 대관극장으로 운영되다가 75년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되면서 극장을 닫게 된다. 그리고 단체마다 고정 레퍼토리를 가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 년에 네 작품 을 한다면 그 중 두 작품은 레퍼토리로 하고 두 작품은 신작을 하는 식이죠. 소

11 위 유럽식의 레퍼토리 공연을 하려면 한 시즌에 몇 개 공연을 정해서 2~3일 공 연하고 무대 바꿔서 다른 공연하고 그래야 하는 거죠. 상업연극처럼 한 달 또 는 두 달 내내 한 공연을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당시 제가 그런 제안을 했더니 무대과장이 자기네를 죽일 셈이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장 치를 세우고 철수하는 무대 작업이 미숙할 때니까요. 무엇보다 인력이 모자랐 지요. 개관 초기라 나도 양보하고 극장장도 어쩔 수 없어 레퍼토리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내놓자마자 깨졌어요. 공연 목록이라는 것을 최소한 일 년 전에 정해서 미리 준비해 내놓던 것도 내가 2년 반 만에 극장을 그만두고 나니 지속되지 않게 되었죠. 고 했습니다. 한창 때는 일년에 100일, 150일까지 공연을 했었죠. 그렇 게 극단이 운영되려면 배우들을 붙잡아 둬야 하고, 배우들을 붙잡아 두려면 또 공연을 해야 했죠. 김상열을 포함해서 7~8명에게 월급을 십 만 원씩 줬습니다. 그때 월급 받았던 배우들이 윤문식, 작고한 김종구, 미국 에 간 양성화, 양재성, 최주봉 등입니다. 이 친구들이 그 때를 회고하면서, 그 십만 원이 참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들 해요. 지금도 현대극장 연구생 출신들이 사방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현대극장 시절에 서울이건 지방이건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것이 큰 메리트였다고 봅니다. 그 만큼 연기력을 키울 수 있었던 거죠.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직업 극단의 꿈, 현대극장 창단 1970년 실험극장 10년을 맞아 실험극장 10년지 가 발간되었다. 그는 이 책자 에 실은 실험극장의 출발과 재출발 이라는 글에서 지난 10년은 실험극장의 아 마추어적인 방황기로 보아도 좋았다. 새 10년은 프로페셔널리즘의 정착기로 삼고 싶다 고 적고 있다. 그의 이런 희망은 현대극장을 창단하면서 구체적으로 진척을 보이게 된다. 1976년의 일이다. 미국서 돌아온 해가 마침 실험극장 10주년이어서 실험극 장의 출발과 재출발 이란 글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구체적으로 직업연극 을 표방한 건 현대극장을 하면서였다고 봐요. 그때는 직업화가 가능하지 않을 까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지금 그게 얼마나 이뤄졌냐고 물으면 글쎄요. 내가 현대극장을 만들 때도 모든 연극 단체들이 일 년에 두 번 정도밖 에 공연을 안 했습니다. 그래서 현대극장은 되도록 많은 공연을 하려 그리고 커뮤니티 의식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단원부터 가족까지 매 년 봄이면 극단 체육대회를 하는데 단원 부인들까지 애를 업고 와서 참가하곤 했었죠. 애들 경주도 하고 점심도 먹고 술도 먹고 하는, 요샛말로는 패밀리데 이 같은 걸 매년 했습니다. 가을에는 수련대회를 가졌어요. 1박2일 코스로 산 에 가서 자고 왔었죠. 그게 커뮤니티를 감각적으로 의식하게 하는 방법이 아니 었나 생각합니다. 나는 극단이라는 것이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운명공 동체라고 봅니다. 이런 뜻으로 내가 쓰는 모둥킴 이라는 단어도, 동경학생예 술좌의 막 이라는 잡지에서 처음으로 발견해서 쓰는 단어인데, 일종의 집단 성 이란 의미입니다. 주영섭이라는 사람이 쓴 글을 보면, 극단은 하나의 부족 이다. 만약 그 부족이 왼쪽 귀를 자르는 풍습이 있다면 모든 단원들의 귀를 잘 라야 한다 는 겁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어요. 물론 귀를 자르라고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공동체 의식을 갖고 일 년에 몇 번씩 지방공연을 다니고 공연 일수도 많으니까 자연히 단원이 연애할 시간조차 없었을 정도였죠. 그런 식으 로 단체가 존재해야 구심력이 나오고 가족의식 같은 것도 생기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상업연극은 관계가 없지만, 연극을 진실로 전문직업으로 삼고 싶다면 반드시 그런 공동운명체 같은 의식을 갖고 하나의 예술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12 관철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일본의 스즈키 다다시 극단 같은 거 고, 손진책의 미추도 비교적 그런 편이죠. 현대극장 초기에 했던 것이 그런 것 들입니다. 그냥 간단하게 이합집산 하는 극단이어서는 자기 자신의 스타일은 성립할 수 없으니까요. 계층 연령 지역을 넘어 관객과 만나다 현대극장 창단 관련기사 신아일보 / 서울신문 현대극장의 창단은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는다. 현대극장의 방향으로 제 시한 전문연극, 직업연극, 과학화 의 화두들이 매우 새로웠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그것이 연극이 살 길이다. 김의경이 막 40대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에서 상업극을 한다는 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가능한 것으로는 전문 화하는 게 첫째이고 전문화하기 위해 평균 B학점 이상의 스태프와 캐스트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공연을 많이 해야 했죠. 당시 극장이 몇 개 밖에 없어서 극장의 개념을 확대하기 위해 유관순기념관 빌려서 공연하고 지 방에서는 문예회관이 없어서 체육관을 빌려서 공연하고 그랬습니다. 1980년에 들어서는 농촌, 어촌, 탄광촌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습니 다. 그때 이동무대를 만들었어요. 극장이 없으면 공연할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연극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죠.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 에 무대를 설치하고 공연을 했습니다. 미국의 연출가이자 평론가인 해롤 드 클러먼(Harold Clurman, 1901 ~ 1980)의 충고도 한 몫 했어요. 그 사람은 연 극은 어린이 연극부터 시작하라 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공연을 보게 해서 미래의 재능과 미래의 관객을 개발한다는 것이죠. 관객의 전 연령층화! 그래서 어린이 연극, 청소년 연극, 어른 연극, 심지어는 장애인 연극, 거기에 한 술 더 떠 교도소에 연출자를 파견해서 수감자들과 공연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는 여대생들이 주요 관객이었는데 여대생들은 연애할 때만 남자친구 들하고 극장에 오고 결혼하면 극장에 안 왔어요. 관객개발을 위해 여 대생에 편중되어 있는 관객층을 어린이, 청소년, 어른, 장애인 등으로 넓힌 것이죠. 장애인에게 관람 기회를 주고, 수감자들과 공연을 같이 만들면서 계층적으로 연령적으로 공연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들의 중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첫 공연 <막베뜨>(1976)를 올렸지요. 당시 신문기사를 보 면 전문극단, 연극의 직업화의 새 시도, 상업극단과 동인제의 한계성 탈피, 현 대극장이 상업극시대를 열었다 뭐 이렇게 썼었죠.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 상황 현대극장의 농어촌 탄광촌의 청소년을 위한 순회공연 - 현대청소년극장은 1986년 사운드 오브 뮤직 으로 전국 15개 도시에서 농어촌 및 탄광촌 의 청소년과 주민을 위한 순회공연을 갖는다. 농어촌과 탄광촌의 문화소외지역 순회공연 기획은 이듬해 1987년 화랑원술 이재현 작 최창권 음 악 문석봉 연출 로 이어진다. 화랑원술 은 국내 최초로 컴퓨터 음악을 사용 블루스 창법을 선보이며 60여명이 출연한 록뮤지컬 공연으로 경북 문경과 상주의 탄광촌을 비롯하여 전국 31개의 시군에서 두 달여 동안 순회공연을 갖는다. 현대극장의 대표를 맡아 전국순회공연을 이끈 최문경은 1990년 장애를 갖고 있거나 근로청소년 혹은 소년원생들을 위한 전국청소년연극축전 을 개최한다

13 요한 목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연을 많이 할 수 있었죠. 스폰서를 많이 따온 내 처( 崔 文 卿 )의 공로가 컸습니다. 그에 의하면, 자기는 단 단한 다이아몬드라는 겁니다. 관공서 관리의 대부분은 일반인들과 달리 금속 인데, 자기는 다이아몬드라 금속보다 강하다는 거지요. 내 처는 현대그룹, 태 평양화학 같은 데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스폰서를 받아와서 청소년공연 도 하고 전국순회공연도 할 수 있었죠. 어린이공연은 해태가 스폰서를 해줬습 니다. 그런 식으로 연령층 지역을 확대하고 보급하게 된 거죠. 그렇게 공연을 하려면 그만큼 인적 자원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1977 년에 현대연극아카데미(Hyundai Academy for Dramatic Arts, 이하 HADA)를 만들게 되었죠. 드라마틱 아츠라는 말은 영국의 로열연극아카데 미(Royal Academy for Dramatic Arts)의 표기를 따온 것입니다. 지금까지 정식 으로 현대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들이 500명 정도 되는데 그 중 20%는 현역으 로 남아 있습니다. 김갑수(1기)나 박해미 같은 사람도 현대 출신입니다. 그들 에게 재능과 열정도 있었겠지만, 공연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도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극단의 연구생들은 일 년에 20~30일 정도 출연하 는 것이 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재능을 늘릴 수 없죠. 그런데 우리는 한번 농어탄광촌 공연을 하면 제주도 포함해서 52곳, 54회 공연을 했죠. 그것이 배 우들에게는 상당한 기회가 됩니다. 현대극장은 어린이 연극과 청소년 연극으로도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다. 극단 사계의 명작극장을 연상시키는 해태명작극장이나 청소년 프로그램은 현대극 장의 강점 중 하나다. 관객개발이나 공연의 횟수를 최대화하는 효과도 있었지 만 현대극장이 추구하는 연령과 지역의 한계를 넘는 관객층 에 대한 적극적 접 근방식이다. 영국 학자가 쓴 드라마의 이론 (Allardyce Nicoll의 Theory of Drama )을 보면, 어느 특정 계층만이 아닌, 사회 각 계층의 관객(Heterogenous Audience)이 골고루 서포트를 해줘야 극장 예술이 산다고 해요. 우리에게는 어린이 연극을 위한 해태명작극장이 있었고, 일반 공연을 청소년 들에게 맞게 각색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한 중고생을 위한 청소년극장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이 공연들은 상당 부분 태평양화학에서 스폰서를 했습 니다. 오리온하고는 인형극장을 만들었는데 길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해태명 작극장은 1977년 제1회로 <보물섬>을 했고,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예가 일본의 극단 시키( 四 季 )입니다. 극단 시키는 1950년대 창단 해서 1960년대 전후해서 <벌거벗은 임금님>으로 어린이 연극을 처음 시작했습 니다. 극단 시키가 라이센스 뮤지컬로 유명하지만 그렇지 않은 활동도 꾸준히 해왔던 거죠. 현대극장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 뮤지컬 <빠 담, 빠담, 빠담>이 그쪽과는 아무런 교감이 없이 시작했는데 일본에서도 같은 소재로 제목도 <사랑의 찬가 - 에디트 피아프의 인생과 사랑> 이런 식으로 붙인 공연을 제작했더라고요. 출연자도 우리는 가수 윤복희, 그쪽은 고시지 후부키 ( 越 路 吹 雪 )라는 유명한 대중가수였습니다. 의도나 방식이 아주 비슷했죠. 뮤지컬과 음악극 뭐니 뭐니 해도 현대극장의 브랜드는 뮤지컬이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를 논쟁으로 이끈 진원지이기도 하고 현대극장 레퍼토리의 중심을 이루는 장르이 다. 현대극장이 뮤지컬을 전면에 내세울 때만 해도 뮤지컬은 이단 취급을 받는 때였다.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14 <빠담, 빠담, 빠담> 도 음악극적인 접근이었는데, 우리 가 음악극으로 간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는 어떻게 관객들과 폭넓게 접촉할 것이냐 할 때 음악적 요소와 무용적 요소가 관객들을 끌어내는 데 도움 이 될 것이라고 봤어요. 두 번째는 그걸 통해서 극단의 살림을 향상시켜야겠다 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다음에는 대담하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올렸습니다. 정말 노심초사하면서 공연을 올렸는데,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처 음 8일간 공연했을 때는 빚이 조금 남았고, 나중에 재공연할 때는 청소년극장 과 연계해서 청소년들을 동원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손해는 안 봤습니다. 아마 지금까지 합하면 총관객수가 200만 명에 육박할 겁니다. 그 시대에는 뮤지컬을 연극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있었죠. 이해랑 씨나 차범 석 씨도 그랬습니다. 요새는 그런 구분을 안 하잖아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 르겠지만, 내 경우 상당히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작품을 가지고 왔다고 생각합 니다. 요즘처럼 재미만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뮤지컬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 었던 거죠. 사람들은 내가 뮤지컬을 많이 했네 어쩌네 하면서 긍정적으로도 부 정적으로도 보는데, 극단을 유지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앞서 얘기한 대로 극단 이 하나의 부족( 部 族 )으로서 존재한다고 했을 때, 그 부족이 가져야 하는 양식 이라든가 목표, 감각 등 끊임없이 여러 요소의 인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트랙을 찾아가야 연극이 성립되죠. 그냥 웨스트엔드나 브로드웨이처럼 이거 해서 돈 을 벌겠다는 것, 거기에 1차적 목표가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난 지금도 당분간 연극이 극단 중심으로 해야 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겁니다. 지원사업도 정책적이고 철학적인 백그라운드를 정리하고 그러한 배경 위에서 펼쳐져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관객도 끌어들이고 극단 살림도 하려면, 아무래도 전형적인 브로드웨이류의 안정적인 공연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빠담, 빠담, 빠담> 같은 프로그램은 좀 불안해 보인다. 이미 검증된 브로드웨이 작품 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까? 브로드웨이에서 온 검증받은, 안정적인 공연보다 <지 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나 <빠담, 빠담, 빠담>을 선택한 것은 당시의 우 리 현실 때문입니다. 소위 라이선스에 대한 개념도 몰랐고. 어디에 가서 구하 겠어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옛날에 뉴욕에서 팔았던 Selections of Superstar 라는 보컬 스코어가 있었습니다. 그걸 구했 어도 오케스트레이션은 돈 안주면 못 구하니까, 그래서 어떻게 모험 을 한 줄 아세요? 정성조라고 지금 서울예대 교수로 있는 이에게 보컬 악보하고 카세트를 주고 전부 채보를 하게 했습니다. 당시 정성조 악 단은 11~13인조의 관악기 위주의 악단으로 로얄호텔에서 공연했습니 다. 그래서 첫 번째 공연을 할 때는 관악기만 가지고 반주했었죠. 관악 기의 짱짱한 소리가 나니까 배우 가사가 안 들렸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사운드 시스템이 없어서 무대에 마이크 몇 개 매달고 배우가 그 앞에 가서 노래를 하 니 전달이 더 안 되었죠. 음악은 꽝꽝 울리는데 배우의 노랫소리가 안 들리는 거예요.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빠담 빠담 빠담 과 연극의 상업화/대중화 논쟁 - 김의경 표재순 이반 등은 PD제 운영을 선언하며 1976년 극단 현대극장을 창단한다. 현대극장 은 1977년 창작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백승규 작 표재순 연출 을 류관순기념관에서 공연한다. 인기가수 윤복희와 후라이보이 곽규석의 파격적 캐스팅과 추송웅 이순재 등 명망 있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단 5일의 공연에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몇 차례 이어진 공연 역시 크게 성공한다. 그러나 이 공연에 대한 평론가들의 집중공격을 받았으며 제작측 김의경 의 반론이 이어지면서 논쟁으로까지 발전 한다. 이태주 유민영 정진수 등은 이 연극을 저질 상업극이라 비판했으나 김의경 등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이원화하는 것에 대해 공박했다. 라이브를 하면 돈이 많이 드니까 서울 공연 끝나고 마침 대구에 초청을 받아서 갈 때 녹음을 했습니다. 녹음을 하니까 가사 전달 방법이 나오는 거죠. 솔로는

15 그래서 내가 일본 국립극장에서 보고 온 구식방법으로, 바턴 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상하운동의 기능에다, 그 바턴에 롤러 를 달아서 좌우와 상하운동을 시도했어요. 당연히 무대 앞 관 객 머리 위를 나는 전후운동은 불가능했어요. 여하튼 도르래 를 써서 한쪽에서는 바턴을 올리고 내리고 한쪽에서는 줄을 잡 아당기고 해서 무대에서 윤복희가 날았죠. 리허설도 없이. 부 랴부랴 철공소에서 만들어 온 걸로. 몇 년 뒤에는 라스베가스의 Peter Foy사( 社 )를 정식으로 초청했습니다. 그들은 앞쪽으로 나르는 게 백미였습니다. 처음 할 때는 잘 안되었는데 한번 보니깐 금방 알겠더 군요. 그래서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히 연구 많이 현대극장의 아동극 피터팬 기사 경향신문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했습니다. 우리 식구인 표재순이나 유경환 모두 기술적인 무대를 즐겨 공중장치를 이용한 현대극장의 피터팬 공연 현대극장 30년사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성과로 무대가 재미있어지니까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라이선스 관련 클레임이 들어오 기 시작했어요. 1994년에 처음으로 돈을 내고 공연을 했죠. 돈은 좀 들었지만 공연 때 부르고, 합창은 미리 녹음한 걸 틀었습니다. 10일 공연 하고 나서 녹음 하니까 녹음이 하루 만에 끝났어요. 공연 전에 녹음했으면 아마도 3일은 걸렸 을 겁니다. 그때부터 뮤지컬이 본격화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저스 크라이스 트 슈퍼스타>에 비하면 <에비타>는 그렇게 폭발적이지 않더군요. <에비타>도 초기에는 라이선스를 안 했는데, 영국의 라이선스 회사인 매킨토시 사무실에 서 편지가 왔어요. 하지 말라고. 그래서 내 딴에는 비장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는 무대기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1979년도 <피터팬>을 공연 할 때인데, 피터팬이 날아야 하잖아요? 철공소에 있는 친구와 얘기를 해서 배 우를 매다는 것까지는 생각했는데 좌우로만 움직이는 겁니다. 그나마 그 사람 이 설계한 것도 실행을 못한 이유는, 카운터 웨이트를 만들어 밸런스를 맞춰 야 사람이 쉽게 올라갈 수 있는데, 그러려면 세종문화회관 바닥에 볼트를 박 아야 하니 할 수가 없었죠. 그때는 밤에 주로 무대 작업했는데, 우리 나름의 비 행장치를 설치하고 몸이 제일 가벼운 이영주를 매달았는데도 안 되는 겁니다. 공연과 저작권 -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법률인 저작권법은 정부 수립 이후 1957년 최초로 제정된 이래 1986년 전면개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에 정 착되었다. 그동안 저작권법은 실연자의 저작인접권 2차저작물작성권 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졌다. 해외 저작물의 국내 공연과 관련해 서 가장 큰 변화는 세계저작권협약 UCC 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에 가입한 1987년과 세계무역기구 WTO 체제의 출범으로 우리나라도 WTO 회원국으로서 TRIPs 협정에 따르게 된 1996년이다. 이로써 공연 저작물과 관련된 권리와 행위는 국제적 기준에 따르게 되었다. 1992년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정덕애 번역 임영웅 연출 와 죽음과 소녀 허순자 번역 손진책 연출 가 해외 저작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공연한 첫 사례들이다. 주요한 공연과 관련된 저작권 분쟁으로는 뮤지컬 캣츠 2000년 원저작물인지 2차 저작물로서 회복저작물인지 여부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2007년 제작자 기획자 연출자의 저작권 및 결합저작권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2009년 상표등록권자와 창작자의 저작권 다툼 등이 있다

16 너희는 로열티가 일상화 되어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않고, 협회에 가입한 것도 최근 일이다. 너희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 달라 고. 그 다음부터는 그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어느새 그는 음악극 이라는 말을 쓴다.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에는 뮤지컬이 라는 말 대신 음악극이 사용된다. 이 축제는 차별적인 포지셔닝 덕을 톡톡히 본 케이스로 평이 나있다. 음악극과 뮤지컬은 넓게는 같은 뜻이지요. ITI (국제극예 술협회, International Theater Institute)에서는 주로 Music Theatre 라는 표현을 쓰지요. 그게 좀 더 외연이 넓은 표현이라 하겠지요. 우리나라의 대부분 창작 ITI에는 음악극 분과(Music Theatre Committee)가 있습니다. ITI의 뮤직 씨어터 개념에서 따와서 음악극이라 했고, 그래서 의정부에서도 뮤지 컬축제가 아니라 음악극축제로 하자고 했죠. 의정부에서 어느 날 찾 아 와서 어떤 축제를 했으면 하고 묻기에 주저 없이 음악극축제 를 하 라고 했습니다. 내가 초대 의정부음악극축제 예술감독이었어요. 2 년 하고 스스로 그만두었지요. 제3세계연극제, 베세토연극제 그리고 97년 세계연극제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뮤지컬은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릅니다. 뮤지컬은 기본적으로 뮤지컬 코미디 의 약자입니다. 미국에서는 코미디가 아닌 것을 뮤지컬 플레이 라고 합니다. 장르상 코미디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엄밀히 따지려면 뮤지컬 코미디나 뮤 지컬 플레이라 표현해야죠. 미국은 뮤지컬 코미디가 대부분이니까 뮤지컬로 쓰는 겁니다. ITI와 아시테지 - 국제극예술협회 약칭 ITI 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아시테지 약칭 ASSITEJ 는 공연예술의 국제적 교류를 목표로 하는 비정 부 국제연극기구이다. ITI는 유네스코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의 후원으로 1948년 체코 프라하에서 설립되었으며 한국은 1958년 회원국으로 가입해 1985년 한국본부가 창설됐다. 아시테지는 1965년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되었으며 아동청소년연극의 정보교류와 공연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1982년 아시테지 한국본부가 설립됐다. 국제극예술협회는 2년마다 108개 국가가 가입한 회원국을 돌며 세계총회를 열어 연극 무용 음악극 등의 공 연예술의 국제적 교류를 꾀하며 세계연극제를 개최한다.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는 세계대회를 3년에 한번 씩 개최하고 있으며 국제아동청소년연 극협회 한국본부는 1년에 두 번씩 아동청소년연극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의정부음악극축제 -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는 의정부예술의전당이 개관 1주년 기념으로 2002년에 시작한 국제공연예술축제이다. 의정부예술의 전당의 관장 구자흥과 초대 집행위원장 김의경이 주도했다. 축제를 준비하던 2001년은 우리 뮤지컬에 지각변동을 가져온 오페라의 유령 이 큰 화제 를 모았던 시기다. 오늘날과 같은 시장구조를 갖게 되며 본격적으로 서구 뮤지컬 시장에 편입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브로드웨이류의 뮤 지컬을 중심에 두지 않은 음악극 을 내세운 것은 모험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우려와 크지 않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축제는 우리나라의 중요한 공 연 이벤트로 자리를 잡았다. 브로드웨이류의 뮤지컬을 넘어 음악극의 지평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그동안 우싱궈의 경극 리어왕 하이너괴벨 스의 하시리가끼 등 동시대의 주목받을 만한 해외 공연들이 이 축제를 통해 소개되었다. 초대 예술감독 김의경에 이어 박상순 연극평론가/경민대 교 수 이승엽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임경식 연출가/서경대 교수 을 거쳐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 예술감독으로 축제를 이끌고 있다. 1960년대에 연극공부를 미국에서 한 덕일까. 그는 일찍 세계에 눈뜬 연극인이 다. 엄혹한 군사정권 아래에서 비수교국이 대거 참여하는 제3세계연극제 를 유치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크고 작은 국제 교류 사업을 주도했다. 굳이 공헌이라 말할 건 아니지만, 1981년에 처 음으로 제3세계연극제 를 유치했는데, 그게 우리나라 국제공 연예술제의 효시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58년에 ITI 에 가입신청을 해서, 1959년 헬싱키 총회에서 공식가입이 됐습 니다, 제3세계연극제 를 하면서 한국ITI가 국제적으로 발돋움 제3세계연극제 - 제3세계연극제 는 국제극예술협회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의 연극인들이 소속된 제3세계 분과위원회에서 개최하는 국제연극 제다. 1971년 마닐라에서 처음 개최되었으며 1981년 제5회 연극제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집행위원장 여석기 / 부위원장 김정옥 / 사무국장 김의 경 한국 연극계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된 국제연극제이다. 당시 연극제에는 인도네시아 인도 태국 프랑스 일본 튀니지 방글라데시 등 9개국의 10 개 단체가 참여했으며 그림자극 인형극 가면극 등의 전통극 요소가 강한 작품부터 전통적 요소와 현대적 무대 언어가 공존하는 작품까지 다양한 세계 연극의 풍경을 보여줬다. 1981년의 제3세계연극제 서울 개최를 계기로 대학로의 문예회관 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이 개관하게 된다

17 제3세계연극제 을 할 수 있었죠. 연극제 직후에 마드리드에서 ITI 총회가 있었는데 그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이사국으로 처음 피선이 됐고, 지금까지도 계속 이 사국으로 있습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정도를 제외하고는 연속 으로 이사국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 이사에 선출될 때는 영국, 이집트, 중 국하고 경합해서 3차 투표까지 갔어요. 결국 1표 차로 우리가 되었죠. 그의 주도로 창설된 베세토연극제 (BeSeTo연극제, 이하 베세토)는 그의 대 표작이다. 우리가 한국에 있을 때는 중국, 일본, 한국 다 구분이 되 지만, 예를 들어 미국에서 본다면 유럽과 아시아의 문제로 구분됩니다. 하와이 베세토연극제 - 한 중 일 삼국의 연극인들이 공동으로 개최하고 있는 공연예술축제로 세 나라의 현대연극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1994년 처음 개최되었으며 서울 베이징 도쿄 세 도시에서 번갈아 해마다 열리고 있다. 한편 한중일 합동공연도 제작하고 있는데 춘향전 폐차장의 별난 사 람 백설공주 물의 정거장-2 등이 있다. 에 이승만 박사가 다니던 릴리하(Liliha)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의 문이 엄밀 히 말하면 중국식 문이었는데 서양 사람들이 보면 아시아적인 것이라고 봅니 다. 내가 하와이 갔을 때 그 릴리하 교회 문을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근세사에서 우리와 일본과 중국의 아름답지 못한 역사에서 제일 희생당한 게 한국입니다. 그런데 연극으로 보면 일본과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몇 백 년 앞선 극장의 역사 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것입니다. 1994년에 베세토를 만든 것은 한국의 연극이 중국과 일본에 미치지 못 하는 현실에서 살아날 길이 뭐냐, 전통극이 아니라 현대연극이다, 라 는 판단에서였습니다. 한국의 현대연극은 중국과 일본의 현대연극과 맞서도 꿀리지 않는다, 이거죠. 그것이 내가 베세토를 하게 된 속마음 입니다. 전통극으로 하면 우리가 뒤져요. 예를 들어 리얼리즘 연극은, 북경인 민예술극원 같은 경우는 철저히 훈련받았습니다. 전에 러시아에서 리얼리즘 연극을 배우고 온 사람들이 있어서 철저히 리얼리즘을 배우고 그게 지속되었 습니다. 현대연극이라면 겨뤄서 꿀릴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또 하나의 이유 는 중국, 일본의 연극과 우리 연극이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른지를 깨닫 는 것이 한국연극을 발견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 을 비교함으로써 장단점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중국에 같이 하기로 약속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해 봄에 그분이 돌아가셨습니 다. 그래서 새 파트너를 찾는데 마침인 사람을 찾았어요. 당시 중국희극가협 회 부주석이고 북경중앙희극학원 원장이 서효종( 徐 曉 鐘 )이라는 사람입니다. 1928년생인데요, 모스크바에서 6여 년간 유학한 연출자로 상당한 파워가 있 었습니다. 더구나 북경중앙희극학원이란 곳이 연출가와 배우를 키워내는 학 교니 제자들이 전국적으로 퍼져있고. 중국 내에서 신망이 대단합니다. 그 때 만 해도 중국 경제가 지금만 못했습니다. 우리나라 예총 같은 문련( 文 聯 )의 간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18 제1회 베세토연극제 팜플렛 1994 베세토연극제 창립의 주역들 왼쪽부터 서효종 김의경 스즈키 다다시 부가 거의 마오쩌뚱 혁명운동에 관여했던 사람들이니까 사회적 발언권도 셌 죠. 결국 북경에 가서 서효종 선생을 만났습니다. 문련 건물 맨 꼭대기에 식당 이 있는데 그 곳에서 저녁을 하면서, 내가 연설을 했습니다. 우리 근세사를 봐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있었던 우리나라의 비극은 곧 동양 의 비극 아닌가. 이런 관계 속에서 과거에 우리가 당한 침략은 우리나 라가 약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은 틀림없지만, 연극인으로서 우리들은 그러한 역사를 단순히 역사로 바라보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연극을 통해서 상대를 진실로 이해하려는 태 도를 찾아야할 것이다. 서효종 씨는 내 애기를 듣자마자 심각한 표정이 되 어 일어나더니, 지금까지 미적거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미안하다. 우리도 하겠다. 첫 단체는 중국 최고의 단체인 중국 북경인민예술극원을 보내 겠다 하더군요. 반면 일본은 ITI가 약해요. 일본 ITI와 이 얘기를 했는데 우리처럼 짜임새가 있 는 단체가 아닙니다. 그들보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이 더 조직적으로 잘 하죠. 그래서 일본 ITI랑 협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스즈키 다다시 씨를 만나서 취지를 말하니 즉석에서 찬성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첫 행사를 치르게 되었는데 1994년 서울의 예술의전당에서였습니 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연극 <천하제일루>를, 스즈키 다다시의 <리어 왕>을, 한국은 손진책 연출의 <오장군의 발톱>과 오태석 연출의 <백마강 달밤 에>를 공연했습니다. 스즈키 다다시는 런던공연을 마치고 곧바로 한국으로 와 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국수호의 무용 프로그램을 더했죠. 우리나라는 연극 쪽과 무용 쪽이 상당히 친한데, 중국과 일본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베세토에 무용을 가져온 적이 없습니 다. 중국에서는 우리에게 꼭 무용단을 데려와야 하냐고 그럴 정도였 죠. 그런 면에서 우리는 상당히 개방적이죠. 거창하게 시작을 한 건 다 타이밍 덕이었지요. 그 때 일 년 후배가 서울시 부시 장 김의재( 金 義 在 ) 씨였는데, 동창회에서 만났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말을 꺼냈습니다. 내년이 서울정도( 定 都 ) 600주년 되는 해인데, 삼국이 모여서 행사를 하고 싶다. 길이 없을까요? 그는 이 행사의 뜻을 즉시 이해하더군요. 그 의 노력으로 예산을 만들 수 있었지요. 거기에 우리 대학 동기, 연극을 좋아하 는 한완상 씨에게 대회장을 부탁했어요. 스폰서로는 현대그룹을 끌어들였어 요. 착착 진행된 겁니다. 그런데 세 도시를 어떻게 묶으면 좋을까 곤란했어요. 북경 서울 도쿄인데, 베 세토, 세베토, 토세베 등 다 따져봤는데 어감이 베세토가 제일 나았습니다. 거 기에 알파벳순으로도 베이징 서울 도쿄인 거예요. 그래서 베세토가 되었죠.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19 베세토연극제 는 매년 세 도시를 돌아가면서 개최하는데 개최국이 프로그램 을 조금씩 다르게 해요. 그 중에서도 2000년 연극제에서 <춘향전>을 일본, 중 국, 한국이 공동으로 제작한 적이 있는데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봐 요. 지금도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베세토는 또 다른 매머드 행사로 이어진다. 그가 탄생시킨 가장 거대한 축제 인 ITI세계총회 및 97년 세계연극제 가 그것이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열 렸다. 그가 한국 ITI 회장을 맡고 있을 때 유치했다. 25개국 40여 개 공연단체를 포함해서 74개국에서 3천여 명이 참여했다. 예산만 37억 원이 소요된 이 축제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가 우리 공연계에 미친 영향은 막대하다. 서울시립극단 시절 만든 프로그램 겸 잡지 시민연극 그는 초대 자가 붙은 직책을 많이 지낸 인물이다. 국립극장 공연과장, 서울 시립극단,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베세토연극제, 실험극장 등이 모두 그렇다. 그런 한편으로 기록을 중시한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기록이 쌓인 다. 2001년 창립한 공연문화산업연구소는 아예 가장 중요한 일이 기록과 보 존이다. 한 이해를 위해 작품의 백그라운드, 리뷰, 차기공연에 대한 정보 등을 넣어서 책으로 만들었지요. 기록과 관련해서도 내가 초대 가 많죠. 1997년 초대 서울 시립극단을 맡았을 때 만든 프로그램 겸 잡지가 시민연극 이었습니다. 일반 적으로 공연 프로그램을 만들 때 배우들 사진만 크게 넣는데, 나는 공연에 대 지금 공연문화산업연구소를 운영하는데, 우리 연극인들이 기록에 대한 열정 이 없다는 것과 극단 경영에 대한 과학성이 없다는 것, 그리고 연극계에 할 일 이 많은데 모두가 공연에만 매달려 있는 게 안타까워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연극인이, 특히 지방 연극인이 오랫동안 연극에 일생을 바쳤는데 내게 남은 게 뭐 있어,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관심을 갖고 하나하나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고 본 겁니다. 97년 세계연극제 년 9월 국제극예술협회 제27차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이 시기에 맞춰 연극과 무용을 포함하는 세계연극제 세계마당 극큰잔치 서울연극제 베세토연극제 창무국제예술제 세계대학연극축제 등 대규모 연극제와 부대행사가 열린다. 국제극예술협회 총회는 2년마다 회원 국에서 개최되고 있는데 세계연극제가 함께 열린다. 97년 세계연극제 집행위원장 김의경 에서는 45일간 25개국이 참가한 140여 편의 공연을 선보였다. 미국 라마마 극단의 트로이의 여인들 일본 지진카이의 명의 야부하라 신주쿠양산박의 맹인안내견 캐나다의 약속의 땅 등이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과천에서 처음 열린 세계마당극 잔치도 성공을 거두면서 과천마당극축제 현재 과천축제 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역사적인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예를 들면 <베니스의 상인> 공연할 때 국 내 박사급 논문을 총 망라했고, 한국에서 셰익스피어의 공연 목록을 쫙 뽑거나

20 했죠. 지금 우리가 주로 하는 일이 그런 겁니다. 그 시대의 연극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는 연극을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우리 연극계에 꼭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바빠서 하지 않는 일들을 골라서 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작자 30년 대차대조표 현대극장 출발로만 계산해도 예술경영자로서의 그의 삶은 30년이 넘었다. 게 다가 그가 제작한 공연들은 규모나 장르 면에서 부침이 심한 분야다. 그가 내 리는 자체결산은 어떨까? 김의경 직업극단 연극기획과 제작 음악극 공연예술 국제교류 뮤지컬을 많이 제작했으니 김의경이 떼돈을 벌었다는 사 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제작한 공연이 크게 재미 본 것도 별로 없 현대극장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지만 엄청나게 깨진 것도 없습니다. 한번 제작한 공연은 계속 횟수를 늘리며 공연하니까 처음에는 손해를 보지만 최종 결과는 그렇지 않죠. 전국 안 찾아 간 데가 없습니다. 근로청소년 대상으로 공단( 工 團 )을 찾아갔고 당시 내 무부와 정주영 씨 도움으로 농 어 탄광촌 방문공연 프로그램을 만 들어 다녔지요. 그러니 총관객수는 엄청났죠. 언론사들을 끌어들인 것도 주효했죠. 방송국 스팟 홍보를 도입한 게 나부터인데, 큰 공연은 40, 50회 스팟을 내보냈습니다. 내가 방송 쪽에서 일한 것이 도움이 됐 겠지요. 덕분에 이 극단 사무실 하나 남았습니다. 대신 내 집은 없습니다. 사 무실도 은행 빚이 좀 있으니 온전한 재산은 아니지만... 은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보다 먼저 세계와 보조를 맞추 었고 오늘날 공연예술시장을 독식하는 뮤지컬과 음악극 분야에는 그가 놓은 주춧돌이 건재하다. 기록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현대적 의미에서 프로페셔널한 제작자 1호로서 손색이 없다. 더욱이 그는 아직도 현장을 지킨 다. 1960년대 그와 그의 동료들이 내세운 직업연극 에의 꿈은 아직도 그의 가 슴에 살아 있다. 그의 물질적 대차대조표와는 달리 제작자로서는 길고 굵은 흔적을 남겼다. 극 단과 연극제작에 경영과 마케팅의 개념을 도입하였고 공연을 통해 더 강해진 수백 명의 연극인을 배출했다. 전국의 모든 연령대를 관객으로 삼은 그의 기획 이승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과 교수로 축제와 관련해서는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와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 등으로 일한 인연이 있다

21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국내 최초 음악캠프 세실극장 개관 작업 전속단체 없는 소극장, 공간사랑 비주류 공연 정기 프로그램 극장의 교육프로그램 인력은 최소화 하되, 프로그램은 전문극장 예술의전당 프로그램 매뉴얼 소위 연기자 교육, 아리아카데미 스튜디오 메타와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의 시대가 시작되다 아비뇽페스티벌 한국주간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다움아카데미 문화복지 정책 1호, 문화의집 나담문화축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문화 뿌리찾기 20세기와 21세기를 잇다 40 41

22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강준혁은 1947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강갑문은 음악애호가 이며 가족들이 모두 그렇다. 강준혁의 바로 윗 형인 강준일은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 졸업을 얼마 앞두고 동생과 같은 해에 음대에 입학 해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강준혁은 서울중학교에 입학하자 바로 밴드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고1 때는 경희대 학교 음악콩쿠르 관악부수석 고3 때는 서울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콩쿠르에서 수석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는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 과에 입학한다. 대학 입학 후 금난새를 비롯해 고교시절 음악친구들이 많아 음대에 서 살다시피 하면서 여름 겨울 음악캠프를 조직하게 되고 이것이 계 기가 되어 서울음악학회 SMA 가 자리잡게 된다. 이후 1977년부 터 10년 간 소극장 공간사랑 극장장으로 일하면서 사물놀이 공옥 진의 1인 창무극 무속굿제 등 전통예술을 현대 공연문화와 접목하 는 다양한 공연 기획과 제작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이외에 도 다양한 현대 공연예술을 소개했다. 1988년 공간사랑을 떠나 스튜디오 메타 혹은 개인 작업으로 춘천 인형극제 안동탈춤페스티벌 전주세계소리축제 세계평 화축전 등 대표적인 문화예술축제를 만들었으며 1998년 아비뇽 페스티벌 한국주간 예술감독으로 프로그램을 진두지휘했다. 한편 같은 해 사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를 창립하고 다움아카데미 원장을 지내면서 문화예술기획 교육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00년 추계예술대학교 예술경영대학원 원장을 2004년부터 현재 까지는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원장으로 있다. 043

23 김소연 연극평론가 이미 알려져 있듯이 강준혁은 1977년 개관한 공간사랑 극장장으로 수많은 프 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작했다. 이후 그는 스튜디오메타를 설립하고 문화예술 분야 기획컨설팅을 독자적인 영역으로 전문화했다.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축 제의 시대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춘천인형극제 를 시작으로 수많은 축제를 기획하고 만들어왔다. 그리고 다움아카데미, 추계예대 예술경영대학, 성공회 대 문화대학원 등을 설립부터 이끌며 기획경영 교육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의 삶을 일별해보는 것만으로도 한국 문화예술기획의 전개라 할 것이다. 그 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 문화기획자 1호 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 그는 어느 누구도 그것이 하나의 독자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는 일을 시 작하지만, 이후 그 일은 뚜렷한 하나의 영역이 되고 많은 이들이 그 일에 뛰어 서울음악학회 협주곡의 밤 공연 리플렛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든다. 그가 문화기획자 1호 라 불리는 이유는, 그가 처음 이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 계획은 서울 농대 기숙사에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 어떤 흐름의 맨 앞자리에서 물꼬를 터왔기 때문이다. 데 학교에서 허락을 안했다. 여름방학도 다 끝나갈 즈음 다시 궁리를 하다가 매형의 은사이신 원주에 계신 장일순 선생께 의논을 드렸다. 장일순 선생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지학순 주교에게 말씀드리니 지 주교께서 아직 국내 최초 음악캠프 문도 안 열었던 가톨릭센터를 쓰라고 허락하셨다. 그래서 갑자기 준 비해서, 음악캠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90여 명이 왔는데, 처음 있 강준혁 선생은 상당히 오랫동안 음악가를 꿈꿨다. 고등학교 때는 전국음악콩 는 일이니 첼로 전봉천, 바이올린 양혜엽 선생이 지도교수 격으로 왔 쿠르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주위에서도 모두 음악가가 되려니 으레 그렇게 다. 그때 박은성(전 지휘자협회 회장) 선배가 4학년이었는데 지휘를 생각했다. 하지만 1966년 대학은 미학과로 진학한다. 순수한 학문에 대한 막 맡아 오케스트라 연습을 했다. 강좌도 하고, 좀 엉성했지만 열흘 정도 연한 동경 같은 것 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학생활 내내 선생은 거의 음대에 재미있게 했다. 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생활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금난새와 는 연주단체 메아리를 만들어 연주를 다니고 1968년에는 음악캠프를 만들기도 했다. 이때의 음악캠프가 2년 후 서울음악학회 로 발전하였고 지금까지 일 년 에 두 번씩 열리는 캠프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음악학회 년 창립된 서울음악학회는 갓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생이었던 강준일 금난새 임현정 강준혁 등 젊은 음악인들의 정기적 인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서울음악학회는 매년 여름음악캠프 SMA 음악캠프 를 열고 공간사랑의 실내악의 밤 프로그램에 참여해 실내악 운동 을 펼친다. 70년대까지 우리나라 음악은 서양 음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교향악단의 외형적 포맷에 치중했다. 그러나 서울음악학회는 연주자 개인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소규모로 진행돼 무대와 객석이 일체감을 느끼기에 용이한 실내악을 보급한다. 서울음악학회의 활동은 서울쳄버오케스 트라의 창단 1978년 과 서울바로크합주단의 부활 등과 함께 80년대 실내악에 대한 관심을 국내에 싹트게 했다

24 초기에는 항상 원주에 내려가서 했다. 하루는 장일순 선 생의 동생이 중학교 교장선생님이었는데, 음악선생을 통해 학생을 하나 데려 왔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고. 그때 선생님이 데리고 왔던 학생이 박종서(작 곡)이다. 그 때쯤 원주에서 학생이 오면 맡아 가르치기도 했다. 박종서(작곡), 정치용(지휘) 등 우리 캠프가 작은 씨앗이 되어 원주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이 들이 계속 나왔다. 캠프에서 배우고 학교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서울음악학회 에 와서 캠프를 다니고 그랬다. 그때는 지휘과 같은 곳이 없었으니까 젊은 친 구들이 우리 캠프 오면 지휘해 볼 기회가 있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원주시립 교향악단을 만들고 지휘자가 되었다. 세실극장 개관 작업 그는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다니는 것도 아닌, 학림에서 음악 듣고 서울 음악학회 친구들과 연주회를 하면서 20대 청춘을 통과해간다. 그 와중에 잠시 세실극장 개관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1975년 가을쯤으로 기억하는데, 하루는 동아일보 사업부 장으로 퇴임한 임석규라는 분이 서울음악학회에 찾아왔다. 그 분이 퇴직금으로 공연장을 빌렸는데, 운영할 사람이 없으니 누군가 자기를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서울음악학회가 새로운 오케스트라 운동으로 신문에도 나고 그랬는데, 보고 찾아온 거다. 오케스트라의 기획 일을 내가 하고 있었으니까, 그때는 기획 이라는 말 자체를 안 쓰던 시대지만, 내가 하는 게 좋겠다 해서 가게 되었다. 조명, 음향 설비부터 객석 번호표를 붙이는 것까지 부족한 돈 때문에 친구들 손을 빌리고 발로 뛰면서 공연장 설비를 마치고 개관공연까지 치렀지만, 결국 운영자금이 없어 대관극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고 극장 프로그램을 운영할 형편이 안 되었다. 온갖 고생 하면서 극장을 만들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나와 야 한다는 것이 서러웠다. 하지만 결국 잘 된 일이었다. 세실을 그만두고 다시 학림과 서울음악학회로 되돌아온 그는 그해 겨울, 김수근 선생을 만나게 된다. 겨울음악 캠프를 마치고 돌아와 1월초에 김수근 선 생이 만나자고 연락을 하셨다. 찾아갔더니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더 라. 면접이었던 셈인데, 당시에는 그런 줄도 몰랐다. 선생이 공간 의 지 향이 무엇인 것 같으냐 물으시기에, 현대와 전통의 조화인 것 같다고 했 더니 맘에 들었던 듯하다. 그때 여전히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지 금 당장 일할 수 있겠냐 하고 물으시더라. 대학을 안 끝냈다고 했더니, 그래도 일할 수 있겠냐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대학생활이 끝나고 공간에 들어갔다. 전속단체 없는 소극장, 공간사랑 1977년 1월초부터 일을 시작해서 공간사랑 은 4월 22일 에 개관했다. 공간그룹의 메인은 건축이라서 당시 공간사랑 소극장은 획기적 공간사랑 년 4월 22일 개관한 공간사랑 空 間 舍 廊 은 건축그룹인 공간 이 사옥을 건축하면서 만든 소극장이다. 종로구 원서동 219번지 공 간사옥 지하에 위치한 소극장은 건평 60평 중 40평이며 무대는 8평 150석 정도의 유동적인 객석을 갖추었다. 공간사는 이미 종합문화예술지를 표방 하는 공간 이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었고 72년부터 공간 독자들을 위한 현대음악 감상회와 한국 전통예술 초청 공연 각종 전시회를 마련하여 24회의 예술발표회 및 감상회를 가져왔다. 공간사랑은 그러한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지어졌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는 가변형 구조로 크기가 다른 680개의 나무 상자를 계단식으로 포개어 객석을 대신하였고 공연의 형태에 따라 무대나 객석의 배치가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었다. 건물 벽돌을 헌 벽돌로 구축하여 대사의 정반사를 피하였고 우수한 조명과 음향시설 또한 제한된 극장 공간을 확대하여 공연예술의 입체적인 효과를 얻 을 수 있도록 갖추었다. 또한 사랑 이라는 명칭처럼 극장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했다.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25 리플렛 중 공간사랑 극장 소개 이었다.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가로세 로 45센티, 높이 15센티, 30센티의 박 스들을 조합하여 객석을 만들었다. 그 러니까 객석이 아닌 부분은 무대가 되 는 거다. 승효상(건축가)의 아이디어 였다. 승효상은 나보다도 어렸는데, 일찍 공간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아 이디어를 많이 냈다. 김수근 선생이 워낙 최고를 좋아하신 분이어서 설비도 최고였다. 음향은 정말 좋은 게 들어와 있었다. 그 작은 극장에 슈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주문해놨 사랑은 공연단체 없이 공연장을 만들어놓은 거다. 그러니 어디선가 공연할 사람을 데려오든가 직접 돈을 들여 제작해야 했다. 기획 제작 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공간사랑의 태생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것은, 단체에서 만든 공연장이 아니기 때문에, 마치 예술 가들이 식구같이 항상 여기 있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해서 사람들 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일 년 내내 사람 만나서 커 피 마시고 떠드는 일이었다. 학림생활의 연장이다. 단, 공간사랑에서는 양악뿐 아니라 연극, 국악 하는 사람들까지 폭넓게 만났다. 그때 황병기(가야금연주 자), 심우성(민속학자), 최종민(동국대학교 교수) 선생을 자주 만났다. 그냥 차 마시러 얘기하러 오는 거다. 사랑방 오듯이.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더라. 정말 놀라운 생각이었다. 그리고 조명기 배튼을 레일로 움직이게도 해 놓고. 그런데 디머도 금방 망가지고 조명은 좀 문제가 있었다. 아무튼 작은 공 공간사랑에서 일했던 10년 동안 따로 사무실도 없었던 당시 공간사랑 1층 카페 간이지만 굉장히 시설이 뛰어난 극장이었다. 가 곧 그의 사무실이었다. 커피마시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곧 그의 가장 중요 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이 사람과 친해져서 다음번엔 뭘 하겠다 는 생각 박용구, 황병기, 강석희 선생 등이 공간 그룹의 자문위원이었는데, 개관공연을 으로 사람들을 만났던 것은 아니다. 그는 평소에 인간관계가 자연스럽게 맺어 할 때 도움을 많이 주셨다. 당시만 해도 나는 전통예술을 잘 모를 때여서 황병 지고, 그걸 통해서 자연스럽게 공연이건 뭐건 활동이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 기 선생이 많이 도와줬다. 4월 22일부터 8일 동안 개관기념공연을 했는데, 전 다 고 생각하는 세대여서, 모든 것을 비즈니스로 하지 않으면 시간의 손해 인 통예술의 밤 나흘, 현대음악의 밤 나흘을 번갈아가면서 했다. 것처럼 생각하는 요즘 세태가 불편하다. 내가 한국문화기획사 를 강의 할 때에 공간사랑은 강조 해 이야기한다.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극장들이 생겨나는데, 드라마 센터, 카페 떼아뜨르, 에저또로 시작한 삼일로창고극장, 극단 실험극 70년대 소극장 운동 - 69년 카페 떼아뜨르와 에저또 소극장이 개관하면서 70년대 내내 다양한 소극장들이 문을 연다. 살롱드라마를 표방한 카페 떼 아뜨르의 활동은 설파음악실 까페 파리 등의 다방극장으로 확산되었고 극단전용극장으로는 에저또 소극장에 이어 실험소극장 1973 민예소극 장 1974 중앙소극장 1975 삼일로창고극장 1976 이 대관극장으로는 연극인회관 1974 세실극장 1976 공간사랑 1977 등이 개관한다. 장의 실험소극장 등이 있었다. 그러니까 연극 하려고 모여 있는 극단 들이 자기들이 공연할 공간이 없으니까 소극장이건 카페건 공간을 점 이중 공간사랑은 다양한 프로그램 기획을 선보인다. 70년대 소극장들은 거의 민간에 의해 개관한 것으로 60년대를 거쳐 70년대 전반기에 이르기까 지 공연장 난을 겪으며 정부에서 마련한 대극장 중심의 단기 공연을 해오던 민간단체들은 비로소 소극장 중심의 공연체제를 갖추게 된다. 전용극장 을 지닌 극단들은 행사성 공연에서 벗어나 장기공연 체제로 전환 레퍼토리 시스템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 외 극단들도 소극장이 증가함에 따라 공 유해서 공연장화 하는 것이 70년대 중반 극장들 이었다. 그런데 공간 연 날짜와 횟수를 늘려 공연하였다. 극단 공연작품 공연회수가 증가하면서 관객 확대도 함께 이루어져 에쿠우스 빨간 피이터의 고백 등과 같 은 흥행작들이 등장한다

26 전통예술과 소극장의 접목 사물놀이 와 공옥진 창무극 의 발견 진정성 있는 사람들은 계속 만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을 같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이가 심우성 선생이다. 심 선생은 공주 출 신의 부잣집 자제였는데, 선친께서 남겨주신 재산을 민속학 답사한답시고 거 의 탕진했다. 물론 그래서 좋은 것을 많이 수집하고 나중에 공주민속박물관을 만들기도 했다. 필드를 잘 아시는 분이었다. 공간사랑을 자주 드나들며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하고 했다. 심우성 선생의 소개로 민속악회 시나위의 정기연주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것이 1978년 2월에 시작된 공간 전통예술의 밤 이었다.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사 물놀이 가 탄생하게 된다. 첫 프로그램에는 시나위 합주, 웃다리 풍물이 있었고 마 지막은 채희완(무용평론가) 씨의 허튼춤이었다. 웃다리 풍물은 장고 김덕수, 꽹과리 김용배, 징 최태현, 북 이종대 이렇게 넷이 연주했다. 최태현과 이종대 는 타악 연주자가 아니고 해금과 대금 연주자이다. 웃다리 풍물은 중부지방의 농악가락이다. 본래 농악대가 대열을 이루어서 연주하던 것인데 그 가 락을 소극장에서 공연한 것이다. 정말 멋있게 했다. 1978년 2월 22일, 23일 이틀간 공연이었는데, 연주자들도 너무나 좋아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전문공연장에서 이런 식으로 공연한 것이 처음이었다. 첫 번 째 공연이 끝나고 웃다리만 할 게 아니고 아랫것도 해보고 다 해보자, 하고 합의가 됐다. 그래서 그 다음에 삼천포 12차 농악을 했다. 그러다 보니 전문적인 타악 주자가 들어와야겠더라. 그래서 이광수, 최종실 이 들어왔다. 전통예술을 소극장이라는 현대적 극장공간에 접목시키면서 사물놀이 라는 새 로운 장르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또 하나의 예가 있으니, 바로 공옥진의 창무극 이다. 이 역시 그가 말했던 그의 작업방식, 카페에서 일 년 내내 사람들 만나서 떠드는 중에 시작된다. 공간사랑에서 공연된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 매일경제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1978년 개관 후 1주년 기념공연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정병호 선생이 영광에 곱사춤을 잘 추는 사람이 있는데 부르면 어떠냐고 꼬드 기는 거다. 곱사춤이 여흥거리로는 괜찮지만 개관 1주년 극장프로그램으로 곤 공간사랑에서 탄생한 사물놀이의 첫 공연 공옥진 창무극 - 공옥진은 1933년 남도인간문화재 1호인 공대일 명창의 딸로 태어났다. 전남 영광에서 춤과 소리를 연마해오다가 공간사랑에서 첫 선을 보인 창무극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공옥진은 심청전 수궁가 흥부전 등의 일부분을 곱사춤과 동물춤 등으로 창의적 해석해 보여주 며 천 가지 표정 이라 일컬어지는 뛰어난 표현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전통춤과 민중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당시의 상황도 영향을 미친다. 이후 서울과 전국 각지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의 단골 레퍼토리로 공연되었고 미국 링컨센타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1인 무대를 갖는다. 소외된 이들 의 한풀이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공옥진의 창무극은 창작이란 이유로 다소 늦은 2010년에 무형문화재지정을 받았다

27 공간사랑의 밤 리플렛 공옥진 심청전 공연 리플렛 무명의 예인이 서울 공연계의 중심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물론 작 품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부터 관객이 많았던 건 아니다. 첫날은 우리가 공연 때면 발송하는 공연 안내를 보고 온 사람들이었다. 처음에 본 사람들이 거의 다시 오고, 다시 오면서 사람들을 데려오고 그렇게 관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외국인 들도 많이 왔다. 그때가 어떤 점에서는 더 꼼꼼하게 일했다. 공연안내문은 항상 한글과 영문으로 제작해서 발송했다. 그 래서 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 많이 왔었다. 그 다음해인가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란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너무 재주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일단 개관 1주년 프 프랑스의 마임이스트 마르셀 마르소(Marcel Marceau, 1923~ 로그램에 넣었다. 드디어 공연 날, 아무도 없는 아침에 와서 공옥진 씨가 리허 설을 하고 있었다. 살풀이를 추는데, 내가 전통공연을 많이 보진 못했지 2007)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공옥진 씨의 공연을 봤다. 공간사랑 시절 강준혁 선생 인터뷰 기사 동아일보 만, 살풀이를 정말 제대로 추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병신춤으로 넘어가더라. 앞곱사, 뒷곱사 춤을 추고 또 <심청가> 의 맹인잔치를 소리와 몸짓을 섞어서 하더라. 제대로 다듬어 올릴 만 비주류 공연 정기 프로그램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놀이나 창무극과 같은 전설적인 히트작(?) 외에도 공간사랑 소극장 운영에 서 주목할 점이 있다. 사물놀이가 탄생한 전통음악의 밤 만이 아니라 PAN 뮤 공연이 끝나고 <심청가> 전편을 소리와 춤으로 바꾸는 것을 기획하게 된다. 그 직페스티벌, 전통음악의 밤, 시낭독회, 공간 재즈페스티벌, 무속 페스 렇게 <1인 창무극 심청가> 초연이 공간사랑에서 오르게 된다. 티벌, 현대무용의 밤, 실내악의 밤 등 공연 자체가 쉽지 않았던 다양한 장 르의 공연들을 월례 정기연주회나 페스티벌 등으로 지속해왔다는 것이다. 1978년 10월이었다. 1주일을 공연했는데, 공간사랑이 120명이 적정 관객 수인데, 마지막에는 250명이 들어왔다. 정말 꾸역꾸역 들어 정기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갔다. 정기공연들은 왔다. 관객들을 앉히고 보니 화문석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의 춤출 자리만 남더 전부 별다른 수익 없이 이루어졌다. 공간은 물론 기자재 등을 모두 제 라. 그해 12월에 앙코르 공연을 보름을 더 했다. 공하고 홍보 등도 모두 극장이 도맡았다

28 1979년 가을에 시작한 공간 재즈페스티벌 은 길옥윤 씨가 주로 앞장섰었다. 이때 만 해도 재즈를 연주할 곳이 거의 없었다. 이태원, 미8군 클럽에나 있는 정도였다. 호텔에서도 거의 재즈공연이 없었다. 아주 열심히들 했다. 표도 몇 장 안 팔리는데, 여기서 공연한 티켓 값을 일 년 내내 모아서 고아원 자선연주회 같은 것을 했다. 그 때 재즈페스티벌에서 가장 인기 없는 현대재즈가 있었는데, 강태환 트리오(강태 환, 최선배, 김대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고인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너무 어려 웠다. 강태환 트리오는 공간재즈페스티벌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끝까지 같이했다. 정기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유진규 김성구의 마임공연, 실험무대, 실내악 등 비 주류, 실험적 공연들을 계속 만들어갔다. 한편 80년 여름에는 신파극시리즈, 코미디시리즈 등 비수기 탈출을 위한 대중적 기획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형극 상설공연도 공간사랑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인형극 극단도 두셋이 전 부인데다가 상설공연은 어렵다는 답이었다. 유일하게 서울인형극회 안정의 선생이 하겠다고 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공연 기회가 늘 어나면서 인형극, 인형극단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인형극 상설공연은 이후 샘 터파랑새극장, 바탕골소극장의 인형극 상설공연으로 이어지면서 어린이를 위 한 11시, 2시 공연 모델이 만들어진다. 극장의 교육프로그램 개관 이듬해인 1978년부터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운영 한다. 공간 하계대학, 공간 동계대학 등의 이름으로 미술, 사진, 음악 등의 강좌 를 열었다. 전통미술 강좌도 있었다. 이외에도 독일문화원, 프랑스문화원과 같 이 하는 비정기적인 강좌를 열었다. 공연장에서 열리는 강좌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백화점 문화센터 등 일반인 대상의 문화교육프로그램이 많지만 그때는 없었다. 1979년 4월에는 채플린 필름 감상 및 강좌 를 열기도 했다. 당시 채플린 영화는 상영 금지 영화였다. 규제를 피하기 위해 강좌랑 같이 했다. 강준혁은 지금도 여름이면 홍천 집 앞마당에서 지인들과 함께 채플린 영화 감상회를 연다. 인력은 최소화 하되, 프로그램은 전문극장 공연장 영업이 아닌 문화운동 을 표방했다고 했지만 100% 자체 제작으로 공 연장을 운영할 수는 없다. 게다가 당시는 공연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절 이다. 1980년의 경우를 예를 들어 본다면 기획과 대관이 2대1 정도였다. 101작품, 490회 공연을 진행하면서 가동률이 100% 이상이었다. 공 연 건수로는 음악회가 많았다. 전문극장을 지향했기 때문에 대학생들에게는 대관도 하지 않았다. 건축설계실에서 운영비를 댔다. 건축가들은 자기가 번 돈 을 우리가 쓴다고 하고, 우리는 공간사랑 때문에 그룹이 홍보가 되는 걸 생각 해보라고 했다. 돈 많이 들었다. 대신 나, 연출가인 강영걸, 기술을 맡은 문광인 그리고 여 사무원, 이렇게 네 명이 모든 일을 다 했다. 인력을 최소화했다. 역할 이니 직함이니 할 것 없이 그때그때 있는 사람이 일을 하는 식이었다. 어떤 때 는 내가 음향오퍼 하고. 역할을 나누면 다 소화할 수 없었다. 다른 데서 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구태여 할 필요 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필요한 건데, 받아줄 곳이 하나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29 도 없다고 할 때는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공간 3일 연주회 를 했는데 사흘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사 람들이 무대에 섰다. 테너 하영일은 슈베르트 <겨울나그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 한국가곡으로 삼일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우리 연주자 들이 레퍼토리가 풍성하지 못했다. 젊을 때 사흘 정도 다른 레퍼토리를 할 수 있는 실력을 쌓으면 두고두고 자신의 재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끌어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도 여 전히 새로운 걸 하게 만드는 힘은 공익성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이 사회에 필요 할 거다, 앞으로 필요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내가 보기에 지금 프로 그램의 기획력이 떨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근본적인 정신이나 공익성을 잃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때그때 비즈니스가 되느냐, 성과가 있느냐 만을 따진다. 또 다른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운도 있어야 잘 된다.(웃음) 예술가들과의 접 촉이 끊임없이 있어야 한다. 시대의 흐름이나 사람들의 취향을 알아 야 한다. 뭘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그래야 우리가 보이고 싶은 것에 대한 평가도 알 수 있다. 그의 첫 직장이기도 했던 공간사랑 소극장에서의 활동은 1988년 즈음에 마무리된다. 뒤돌아보니 10년마다 변화가 있더라 라고 말 하는 그는 1986년 김수근 선생이 돌아가시고, 내 마음 속으로 3년 상 치른다 생각하고 88년까지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8년 에 완전히 공간을 떠났다. 예술의전당 프로그램 매뉴얼 소위 내가 공간을 그만둘 즈음이니까 1986~87년쯤 인 것 같다. 그때 예술의전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예술의전당 프로그램 매뉴얼 작업을 하 는 소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김문환(미학자), 구히서(연극평론가), 이건용(작곡 가), 유홍준이 있었고, 김철수라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하고 일해재단 소속으 로 정리 작업을 했던 이가 있었다. 앞으로 예술의전당이 어떤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프로그램 모델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예술의전당은 공연장을 여러 개 한꺼번에 모아둔 물리적인 콤플렉스 에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중앙과 지역, 우리나라와 해외를 잇는 거점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구체적 인 실행프로그램으로 제시해보자 해서 첫해에 지역과의 만남 이라는 주제 하에 열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지역의 오케스트라가 와서 오케스트라 축제를 하고, 전시관에서는 지역작가 순회전을 하 고, 이런 것을 공연장, 전시관 등 여러 공간이 한꺼번에 움직였으면 좋 겠다 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제안한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 는 교향악축제, 합창축제였다. 그런데 지역과의 만남 이라는 큰 주제는 잊어버리고 교향악축제 만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소위가 몇 달 동안 활동해서 매뉴얼 북을 만들어 예술의전당 에 줬다. 몇 년 동안은 그걸로 직원교육도 하고 그랬는데 요새는 안 하는 것 같 더라.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일본 사진작가 무라이 오사무가 찍은 故 김수근 건축가

30 연기자 교육, 아리아카데미 그렇게 시작된 공간사랑 밖으로의 걸음은 연기자 양성을 위한 아리아카데미 로 이어졌다. 내가 잘 이야기를 안 해서 다들 잘 모르는 것이 아리아카 데미다. 1987년인가 김옥랑 씨(동숭아트센터 대표)가 찾아왔는데, 자기가 공연 장을 만들려고 하는데 도와달라는 거다. 별 뜻이 없었는데, 김옥랑 씨가 내 일 을 도와줄 테니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때 김덕수 사물놀이가 어려울 때 였는데, 해외 공연을 나가는데 비행기 표를 해주겠다는 거다. 그래서 공연장을 짓는 과정에서 설계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했다. 또 극단을 만들고 싶다고 하는 데, 기존 극단에서 좋은 사람 빼오느니 차라리 연극아카데미를 운영해라, 몇 년 운영을 하다보면 저절로 극단이 생길 거라 했다. 나도 나름대로 연극아카데미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 공간사랑을 운영하면 서 가지게 된 생각인데, 우리의 연기방법을 찾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꼭두각시놀음이나 탈춤이 있지만 다 옛날 것이다. 그래서 두고두고 생각한 것 중 하나는 우리의 언어로부터 우리의 연기방식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도 가능하다 고 믿는다. 그걸 교육시킬 수 있는 연기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나 의 꿈같은 생각이었다. 나의 제안을 김옥랑 씨가 받아들였다. 혜화동에 있는 자 신의 한옥을 아카데미에 쓰라고 내놓았다. 나는 기성 30대 연기자들을 재교육 시키는 걸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대상을 30대 연기자 20명으로 했다. 30대 연기자가 왔는데, 괜찮은 사람들이 많이 왔다. 제일 연장자가 여무웅 씨 (전 시립극단 단장)였고 김지숙, 정규수 등이 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수업을 했고 학비는 무료였다. 내 욕심으로는 2년쯤 지나서 내가 생각하는 코리아 메소드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해 3월에 시작해서 무난히 11월까지 갔는데, 내가 미국 출장을 간 사이에 김옥랑 씨가 갑자기 학교를 접었다. 스튜디오 메타와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예술의전당 프로그램 소위, 아리아카데미를 거치면서 공간사랑에서 독립한 강 준혁은 스튜디오 메타를 열고 문화기획가 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다. 하루아침에 아리아카데미를 끝내고 나니, 문신규 토탈미 술관 회장이 안 쓰는 지하공간을 줄 테니 사무실을 차리라고 하더라. 거기에 작은 사무실을 냈다. 그때 공간 에 있던 건축가 김병윤, 이종호가 와서 공간 도 건축과 문화가 함께 있었듯이, 자기들도 그런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 메타라는 사무실을 내려고 하는데, 셋이 하면 어떠냐 해서 같이하게 되었다. 스튜디오 메타는, 건축사무실은 한남에 따로 있고 정신적 파트너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었다. 그 후에 지금 원더스페이스 자리에 있던 집 위 아래로 들어갔다. 1989년 어디선가 소문을 듣고 미도파백화점 사장 이 스튜디오 메타를 찾아왔다. 백화점 한 층을 문화공간으로 만들겠 다고 컨설팅 해달라고 하더라. 그것이 문화프로젝트 컨설팅의 첫 번 째 케이스이다. 문화공간을 만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 라고 자문을 구하 는데 그때까지 그런 것을 돈 주고 하는 데가 없었다. 그 다음에는 바른손에서 찾아와서 마찬가지로 문화프로젝트 컨설팅을 의뢰했다. 춘천에 어린이회관을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31 을 썼다. 아마도 처음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기획이라는 말이 생 소했었다. 일은 있었지만 그 일에 따로 명칭을 붙여서 부르지 않았 다. 강의를 할 때 기획자의 롤을 일곱 가지로 정리한 적이 있 다. 조직자, 플래너, 프로모터(흥행사), 매니저, 문화촉매자 (animator), 프로듀서, (자료를 모아 보고하는) 보고자. 내 경 험에서 정리한 것이다. 내가 일을 할 때는 이런 역할들이 분 화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한 역할이 분화될 만큼, 그렇게 인 력을 쓸 만한 규모가 아니었다. 축제의 시대가 시작되다 제1회 춘천인형극제 포스터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춘천인형극제 전경 위탁운영하게 됐는데, 어떻게 할지 컨설팅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 작업을 하면 서 어린이축제를 만들게 되었고 그것이 춘천인형극제 가 되었다. 춘천인 형극제 첫 번째 사무국장이던 정연일 씨가 원래는 바른손 스태프였다. 스튜디오 메타는 문화기획가 라는 명칭이 처음 시작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공간에 있을 때 명함에 공연기획가 라는 타이틀을 썼었 다. 메타를 하면서 축제를 자꾸 하다 보니 맞지 않아서 문화기획가 라는 타이틀 춘천인형극제 - 춘천인형극제 는 안정의 강승균 강준혁 등에 의해 1989년에 시작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형극 축제로 90년대 서울인형극제 광주인형극 제 원주인형극제 등 많은 인형극 축제들이 생겨나는 시발점이 된다. 한국현대 인형극은 1962년 한국방송사가 개국하며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인형극을 편성 전 국적으로 보급되면서 큰 인기를 누린다. 인형극계 1세대인 안정의 강승균 하정효 등은 70년대에 방송 인형극에서 무대 인형극으로 전환하고 80년대에는 국내에 많 은 인형극 단체가 생기며 인형극 상설극장 공간사랑 소극장 샘터파랑새 극장 꿈나무 극장 이 문을 연다. 이 같은 배경에서 시작된 춘천인형극제 는 세계적으로 인지도 높은 인형극 축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한편 출범 당시 30여개였던 국내 인형극 단체들을 100여개가 넘을 정도로 키워내며 인형극계의 성장에 기여한다. 스튜디오 메타에서 컨설팅 작업이 이루어지던 그때 강준혁에게나 한국 문화 예술사적으로나 축제의 시대 가 시작된다. 지금까지도 성공적인 문화예술 축 제로 진행되고 있는 축제들 중에는 초기에 콘셉트를 잡고 축제의 틀을 만드는 데에 강준혁이 직접 관여한 축제들이 많다. 안동탈춤축제, 전주소리축제, 원주따뚜, 세계평화축전 등이 그러하다. 1989년 춘천인형극제 가 있었고 1990년에 LA아트페스 티벌 주제프로그램을 담당했고, 1993년에 대전엑스포 해외프로그램을 맡 았다. 대전엑스포 를 하면서 우리도 좋은 자료들이 많은데 국제적인 축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머니즘이나 탈춤은 훌륭한 소재라는 생각 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그러다가 1995년인가 사옥을 짓고 스튜디오메타가 다 모이면서 탈춤축제를 본격적으로 기획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안동 출신인 세빅코(Sevico, 당시 태영교역, JBL 한국총판)라는 음향회 사 사장인 권경섭 씨가 기왕이면 안동에 축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물

32 놀이가 일본이랑 교환프로그램 할 때 그 분이 굉장히 비싼 음향기계를 무료로 빌려준 적이 있는데 빚 갚음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리아카데미도 그 렇고, 내가 사물놀이 때문에 여러 가지 빚 갚음을 했다. 그래서 기왕이면 안동에서 하자하고 기획서를 써놨는데, 문화부 한 사무관이 메타 사무실에 왔다가 그걸 보더니, 내가 안동시에 얘기하겠다, 문화부와 안동 시가 예산을 같이 마련하면 괜찮을 것 같다 하더라. 그래서 안동시가 들어왔 다. 그런데 한해 축제가 끝나고 나니까 지역 대학 같은 데서 왜 외부사람이 와 서 하느냐는 말들이 나왔다. 난 그런 게 정말 싫다. 그래서 나는 빠졌다. 최근에 도 여러 번 사람이 찾아오지만, 진정성이 없다. 난 첫해 하고 손을 뗐다. 원주따뚜 2006 세계평화축전 2005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자체나 지역문화계가 외부(?) 전문가와 상생하는 소통 공연장소로 만들었다. 또한 모든 종류의 소리, 음악뿐 아니라 심지어는 건널목 에 원활하지 못한 것은 안동탈춤축제 만이 아니다. 장애자 신호음을 개발하는 등 소리와 관련된 모든 걸 다 다루는 축제로 시작했 다. 그렇게 1회를 끝냈는데, 그 다음부터는 자기들이 하겠다고 하더니 판소리 2000년 전주세계소리축제 를 맡아서 축제의 개념 위주로 끌어가고 있다. 을 정립하는데, 그쪽에서는 자꾸 판소리 쪽으로 끌어가려고 했다. 나 는 판소리 위주의 축제를 하려면 현재 하고 있는 전주대사습을 키워 2004년에는 원주에서 원주세계평화팡파레 라는 축제를 라, 전주대사습은 조선시대부터 있던 제도이고, 소리뿐 아니라 무예 맡아달라고 부탁이 왔다. 그때 원주에 대한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까지 다 있으니 그게 더 적절하다, 국제적인 축제를 만들고 싶어 하면 다. 대학생 시절 음악캠프를 처음 만들 때 장일순 선생, 지학순 주교의 도움이 서 판소리 위주로 축제를 하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끼지 말라고 없었다면 어떻게 시작했겠나. 그래서 축제를 맡게 되었다. 우선 원주따뚜 라 하는 거다, 국제적인 성격을 버리던지, 아니면 판소리로 한정하지 말 고 이름을 바꾸었다. 군악대, 타투축제인데, 타투하면 정감도 없고 하니까 라 라고 이야기했다. 아무리 얘기해도 그 사람들은 판소리 위주로 하려고 했다. 틴식으로 따뚜로 바꿨다. 그걸 군악축제가 아니라 관악축제로 바꿀 생각이었 다. 내가 계속 맡아서 했으면 바꿨을 거다. 내가 맡았을 때는 군악 말고도 관악 첫 회는 내가 총감독이니까, 소리에 관련된 모든 걸 다루고자 했다. 공연장소 을 많이 했었는데, 그 다음에 맡은 친구들이 그 노선을 지키지 않는다. 그런 게 도 향교, 경기전, 대학 앞 재즈카페 등 전주 시내 곳곳이었다. 불교음악은 금산 많다. 사 가서도 하고, 기독교 관련 음악은 전동성당 같은 데서도 하고, 모든 곳을 다

33 이외에도 2005년 베를린 아태주간 예술감독 등 그는 많은 축제들에 직간접적 으로 관여했다. 특히 2005년 세계평화축전 은 규모도 크고 의미도 남달랐던 축제이다. 임진각 음악의 언덕은 꼭 가 봤으면 좋겠다. 평화축전을 하면서 만든 것인데, 축제를 통해 뭔가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음 악의 언덕은 두고두고 쓰임새가 많아질 것이다. 아비뇽페스티벌 한국주간 아마도 그의 축제 기획에서의 정점은 아비뇽페스티벌 한국주간 예술감독이 아닐까 싶다. 당시 공연계에서는 아비뇽 한국주간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었다. 국내에 공연예술축제가 활성화 되면서 아비뇽페스티벌 에 대한 관 심도 컸고 공연예술계의 권위 있는 축제에 한국공연이 선다는 것에 대한 관심 도 컸다. 와서, 감독을 맡아줄 수 있느냐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그 사람은 이미 조사를 다 해왔다. 뭐가 중요하고 안 중요한지. 전통예술가는 누가 좋 겠다는 이야기는 다 끝난 상황이었는데, 현대물은 자기네 축제와 맞 지 않으니 전통예술로만 꾸며 달라는 거다.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말 이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 과거에 어느 만큼 좋은 것을 가지고 있었느냐를 보여주는 것 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현재 그러한 창조력을 한국인이 가지고 있느냐 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12월에 직접 축제사이트를 보러 오라고 하기에 현 대공연은 어떻게 쓰면 좋겠는지를 그때 얘기하자고 그랬다. 현대무용, 재즈트 리오 등을 넣은 프로그램을 들고 12월에 가져가서 사이트를 보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오케이 했다. 당시 국내에 내한한 아비뇽 예술감독이 연극, 무용 등 현대물에 대해서는 흥미 없다는 발언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1996년에 최준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 프랑스 문화원장) 교수와 함께 아비뇽페스티벌 다르시에 예술감독을 와인파티에서 만났다. 1998년에 한국공연을 초청하려고 하는데, 어떤 프로그램을 가져가면 좋겠느냐 의견을 묻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는 사흘 후에 다시 한국공연예술축제의 전개 년 대한민국연극제 현 서울연극제 를 시작으로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 현 서울무용제 1983년 전국 연극제 등이 창작극 진흥 등 예술지원의 목적에서 정부주도로 시작된다. 민간주도 공연예술축제는 전국민족극한마당 1988 춘천마임축제 1989 거창연극제 현 거창국제연극제 1989 등으로 80년대 후반 시작된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실행된 이래 관광축제가 광범위하게 확산 되는 가운데 2000년도를 전후해 공연예술축제는 보다 다양한 모습으로 개최된다. 이전 연극 무용 등 주류 장르를 테마로 한 공연예술축제에서 거리 극 음악극 소리 프린지페스티벌 등 비주류 장르 혹은 복합적인 공연예술축제들이 성장한다. 아비뇽페스티벌

34 아비뇽페스티벌 공연은 84년 <울타리굿> 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덕수 사물놀이 네 명, 안숙선, 김경숙(판소리), 강태환-김대환-최선배 트리오, 남정호(현대무용), 이혜경(춤), 한무(전통무예, 수벽치기), 강준일, 정치용 이 <울타리굿>의 기본멤버이다. 여기에 구히서 선생과 내가 껴서 이런저런 얘기 를 하다가 뭔가 하나 제대로 된 걸 보여주자, 해서 문예회관을 빌려서 한 시간짜 리 공연을 했다. 아비뇽페스티벌 의 공연은 <울타리굿>의 확장된 형태다. 공연은 아비뇽페스티벌 의 두 개 메인스테이지 중 하나인 절벽극장에서 했 다. 다른 하나가 교황청 중정이다. 절벽극장은 높이가 40m인 채석장이다. 돌 을 파내고 자연스럽게 둥그렇게 생긴 절벽 앞에 900석 가량의 객석이 있다. 사 람들이 기다리는 곳에 선물의 나무 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부채 같은 것들을 매달아 두고 미리 와있는 사람이 기념품으로 따갈 수 있도록 했다. 메인무대 앞뒤에 작은 무대를 만들었고 절벽 중간에 강태환 선생을 앉혔다. 공연은 아홉 시에 시작해서 한시 반에 끝났다. 절벽 중간에 앉아있는 강태환 선생이 연주를 시작하면서 공연이 시작되는데, 음악이 시작되면 비어있던 무대에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들어와 앉아서 <수제천>을 시작한다. <수제천>이 끝나면 북이 울리기 시작하 면서 전통무예가 이이지고 현대무용이 나올 때는 김대환 선생이 반주를 한다 든지, 그렇게 흘러 흘러 네 시간 반을 공연했다.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 다움아카데미 그렇게 다시 10년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한 번 터닝 포인트가 온다. 바로 다움연 구회이다. 강준혁의 역할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종종 스튜디오 메타와 다움연 구회가 그대로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튜디오 메타는 몇 년 전 메타기획컨설팅으로 주 식회사가 되었다. 2002년부터 메타는 이승훈 등 후배들이 맡고 있다. 다움문화예술기획연구회(이하 다움연구회)는 사단법인이니까 전혀 성격이 다르다. 다움의 경우 초기에는 주로 교육을 했었다. 1998년에 다움의 교육프로그램을 보고 추계예대에서 찾아왔다. 그래서 만든 것 이 추계예술경영대학원이다. 2002년에 심장수술하고 쉬는 바람에 그 쪽은 끝냈다. 2004년에는 새로 성공회대하고 문화대학원을 만들었다. 교육과 관련된 것은 다움아카데미부터 지금까지 쭉 오고 있는데, 나의 활동에 서 가장 중요한 맥 중의 하나다. 다움연구회는 이승훈 현 메타 대표, 김보성(문화기획가), 박승현(문화기획가)과 같이 이야기모임을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이 세 명과 일주일에 한 번씩 메타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리하는 일 은 추미경(다움연구회 상임이사)이 했다. 내가 일하는 스타일이 그렇다. 나는 꾸준히 오랜 시간 만나고 얘기한다. 그러다 보면 서로 기를 공유하게 되고, 그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축제를 할 때도 그렇다.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울타리굿 - 울타리굿 은 1985년 연출가 임영웅 선생이 산울림소극장을 열고 개관 공연 프로그램을 제안하면서 공간에서 활동한 여러 분야 예술인들이 함 께 만드는 공연으로 시작되었다. 이어서 문예회관 현 아르코예술극장 에서 재공연을 갖게 된다. 이후 울타리굿 은 사물놀이 클래식 재즈 시낭송 판소리 무용 전통무예 등 다양한 분야 예술가들의 예술적 만남의 장이자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지는 총체예술 로 전개된다. 임진각 통일 기원 대제 1987 에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강태환 재즈그룹 공옥진 김성녀 조영남 등 70여 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임진각에서 통일을 기원했다. 이후 울타리굿89-하나되어 1989 호암아트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개관기념공연 1993 세계평화를 위한 울타리굿 일간 벨기에 네덜란드 스위스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 6 개국 10개 도시 순회 등의 공연을 가졌고 아비뇽페스티벌 한국주간 초청공연 1998 은 울타리굿 의 확장된 형태로 진행되었다. 오랜 시간 모여 한국적 문화기획, 문화기획자, 한국은 정 체성이 있느냐를 끊임없이 이야기 해나가면서 몇 가지 길을 잡은 것이다. 그 냥 강의로는 안 되겠다, 실제로 자기 자신이 해볼 수 있는 워크숍이 있

35 어야 하고, 그러려면 튜터십 도입이 필요하고, 한국적인 걸 하려면 실 제로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등등 그런 밑 그림이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왔다. 그러느라 시간이 걸 린다. 또 우리끼리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히서, 이건용(작곡가) 등 선생 님들을 찾아가서 같이 이야기를 한다. 다움연구회는 그 전통 때문에 지금까지 도 일주일에 한 번씩 운영위원회를 계속 하고 있다. 다움연구회는 2008년 지난 10년간의 작업을 정리한 다움 10년 다음 10년 을 펴냈다. 연구회의 창립에서부터 10년간의 활동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문화복지 정책 1호, 문화의집 냐 했을 때 그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지역마다 문화의집을 만들어보 자고 해서 매뉴얼을 만들게 된 것이다. 초기에 매뉴얼을 만들고 서대문구 문화의집은 직접 만드는 작업도 했다. 지금 은 150개쯤 된다. 지금도 문화의집 협회 이사장은 하고 있다. 사람만 있으면 그 만두려고 한다. 나담문화축제, 통일을 준비하는 한국문화 뿌리찾기 강준혁은 기획가이자 교육가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거기에 근 래 또 다시 새롭게 시작한 일이 있으니 2008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몽골 나담 문화축제 이다.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강준혁의 직함 중에는 문화의집 협회 이사장 이 있다. 워낙 폭넓은 활동을 하 고 있지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화의집은 1996년에 메타가 신사옥에 들어가면서 했던 작업이다. 문화의집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기본 컨셉을 잡아줄 수 있냐는 의뢰 가 왔다. 당시 우리나라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예술, 특히 창작 중심이었고 중 앙 중심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화복지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문화의집이 라는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때 개발한 것이 프랑스식 문화 의집과 미국식 커뮤니티센터의 중간쯤 되는 것이다. 스스로 문화의집 에 가서 자기계발도 하고 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 드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문화복지 정책 1호이다. 공동체의 구성원으 로 교육이나 건강처럼 마땅히 받을 수 있는 문화적 혜택이 뭐가 있느 한국문화의 유목성, 북방문화와의 연결고리를 후배들과 계속 얘기해왔다. 관련된 일을 꼭 하겠다고 이 친구들이 생각하다가 몽골과 작 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몽골에는 활 쏘고 말 타는 세계적인 스포츠 중심의 나 담문화축제 가 7월에 열린다. 몽골예술위원회(국가기관이 아닌 민간기관으로 미국에서 기금을 대서 만들어짐), 몽골국립예술대학교 그리고 메타가 나담문 화축제 의 일부를 문화축제로 해보자는 것에 합의하게 되어서 진행하고 있다. 나담문화축제 문화나담 - 나담문화축제 는 몽골 전역에서 매년 7월에 이틀 동안 열리는 유목민들의 전통 축제이다. 경쟁 스포츠의 의미를 지 니고 있는 이 축제는 몽골 전통 게임인 레슬링 활쏘기 말경주를 진행한다. 메타기획컨설팅은 몽골국립문화예술대학교 몽골예술위원회와 함께 북 방아시아 문화협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8년부터 문화나담 Culture Naadam 을 개최하고 있다. 문화나담은 나담축제 공식문화프로젝트로 말경 주가 열리는 후이덜렁후덕 초원에서 공연과 유목문화체험 설치미술 프로젝트 등이 진행된다. 문화나담의 성과를 토대로 2011년부터 한국과 몽골 러시아 등의 아티스트 기획자들이 북방아시아 초원대륙을 여행하면서 작품을 만드는 유목창작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36 나담문화축제 축제를 하면서 <트리 오브 컬처>(Tree of Culture)를 해오고 있다. 라이 사 프쉐치니키오바(Raisa Pshenichnikiova) 동시베리아 아카데미 총장, 체데프 더저(Tsedev Dojoo) 몽골국립예술대학 총장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미팅이다. 브리야트, 몽골, 한국에 대한 문화 적 주제를 담론화 하자는 것이다. 브리야트, 동고비사막에 이어서 세 번째인 올해(2010)는 한국에서 했다. 이번 주제는 유목민족에서 정주 민족으로 이었다. 나는 이야기꾼에서 판소리로 를 강의했다. 앞으로 도 계속할 것이다. 나담문화축제 나 <트리 오브 컬처>를 하는 것은 유목민족적인 기질을 통해 우리 민족문화의 뿌리를 정리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이다. 또 기반이 비슷한 동 북아시아의 문화들과 잘 만나두면 통일 됐을 때 서로 좋은 점이 있겠다는 생각 을 한다. 비록 지금 북한 때문에 대륙하고 이어지지 못하지만, 위쪽하고 어떤 일을 하면 통일 후 금방 하나의 문화권이 될 수 있다. 대부분 아시아의 문화라 고 하면 인도, 중국, 일본 같은 정주민 문화가 많이 알려져 있다. 유목민문화가 생소할지 모르지만, 이 부분을 이해하면 북방, 아시아 문화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20세기와 21세기를 잇다 음악청년에서부터 나담문화축제 까지 주마간산으로나마 한 기획자의 삶을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마칠 즈음해서 갑자기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생겼다. 탁월한 국제적 감각이나 해외 예술가들과의 폭넓은 네트워크 등 지레 짐작으 로 유학통이거나 장기간의 외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했건만, 그의 삶을 따라오 다 보니 도무지 빈틈이 없다. 해외 체류는 1981년에 문예진흥원 해외연수 프로그램으 로 3개월씩 유럽과 미국에 갔던 것이 전부다. 나머지는 모두 일 때문에 오가던 것이다. 국제적 네트워크는 공간사랑에서부터 독일문화원, 프랑스문화원 등 과 같이 일을 하면서, 즉 국제적인 프로그램을 하다가 생긴 것들이다. 해외인력들도 아주 좋은 인력들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 다. 물론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그런 기회가 많았다. 비 교적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기획자건 감독이건, 국제적으로 최고였다. 어떤 예술분야든 깊이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예술가나 창작 작업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렇다. 사람마다 정도나 방법은 다르겠지만 일찍이, 깊게 몰입해볼 필요가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음악을 해 서 그런지 모르지만, 음악은 시간 예술이다. 시간을 어떻게 잘라서 순간순간의 관계를 만드느냐에 따라 어떤 경우는 긴장감을 더 끌어당기기도 하고 이완시 키기도 한다. 그런 관계를 쭉 이어가는 것이 음악이다. 그걸 잘 이해하면, 축제 흐름에 대한 이해를 훨씬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걸 권한다. 앞서 그가 말했던, 새로운 것을 하게 하는 힘은 공익성 이라는 말을 상기한다 면, 그가 말하는 문화기획이란 문화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회 에 대한 공공적 역할이라 할 것이다. 그는 그 두 개의 축으로 20세기와 21세기 를 잇는 문화예술기획을 열어왔다. 김소연은 연극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컬처뉴스 2005~2007 예술경영웹진 2008~2011 편집장을 지냈다. 강준혁 소극장 운영 문화프로젝트 컨설팅 축제 문화예술 기획경영 아카데미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More information

152*220

152*220 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More information

º´¹«Ã»Ã¥-»ç³ªÀÌ·Î

º´¹«Ã»Ã¥-»ç³ªÀÌ·Î 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More information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More information

광주시향 최종22

광주시향 최종22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2 PM 페이지1 VOL.7 2015. 09 9월 4일(금) Masterwork Series Vl 프랑스 기행 9월 22일(화) 가족음악회 팝스콘서트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3 PM 페이지23 20세기 이전의 유명한 작곡가가 쓴 비올라 곡은

More information

741034.hwp

741034.hwp 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More information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More information

178È£pdf

178È£pdf 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More information

01¸é¼öÁ¤

01¸é¼öÁ¤ 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More information

**09콘텐츠산업백서_1 2

**09콘텐츠산업백서_1 2 2009 2 0 0 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M I N I S T R Y O F C U L T U R E, S P O R T S A N D T O U R I S M 2009 발간사 현재 우리 콘텐츠산업은 첨단 매체의 등장과 신기술의 개발, 미디어 환경의

More information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More information

untitled

untitled THENATIONAL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YEARBOOK 2005 Ⅰ. Ⅱ. Ⅲ. 3. 31. 가곡 계면조 한바탕 4. 15. 민속악단 정기공연 11. 24. 민속음악대제전 9. 1. 무용단 정기공연 창작무용 5. 26. 창작악단 제2

More information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B3EDB9AEC0DBBCBAB9FD2E687770> (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More information

»êÇÐ-150È£

»êÇÐ-150È£ 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More information

ÃѼŁ1-ÃÖÁ¾Ãâ·Â¿ë2

ÃѼŁ1-ÃÖÁ¾Ãâ·Â¿ë2 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More information

001-015_¸ñÂ÷(02¿ù)

001-015_¸ñÂ÷(02¿ù) JAPAN Global 한국 팝음악, 즉 K-POP이 일본 내 한류 열풍의 선봉에 나섰다. 인기 걸그룹 카라가 도쿄 아카사카의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데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_ 이태문 통신원 또다시 열도 뒤흔드는 한류 이번엔 K-POP 인베이전 아이돌 그룹 대활약 일본인의 일상에 뿌리내린 실세 한류 일 본에서 한류 열풍이 다시 뜨겁게

More information

750 1,500 35

750 1,500 35 data@opensurvey.co.kr 750 1,500 35 Contents Part 1. Part 2. 1. 2. 3. , 1.,, 2. skip 1 ( ) : 2 ( ) : 10~40 (, PC, ) 1 : 70 2 : 560 1 : 2015. 8. 25~26 2 : 2015. 9. 1 4 10~40 (, PC, ) 500 50.0 50.0 14.3 28.6

More information

나하나로 5호

나하나로 5호 Vol 3, No. 1, June, 2009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Korean Association of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KACPR) Newsletter 01 02 03 04 05 2 3 4 대한심폐소생협회 소식 교육위원회 소식 일반인(초등학생/가족)을

More information

3¿ù.PDF

3¿ù.PDF 창의와 열정으로 고객의 행복을 창조하는 선진일류 공기업 3 제35호 2010년 3월 고객을 위한 한결같은 마음의 공기업 중랑구시설관리공단으로 오세요. 소중한 한분 한분에게 행복한 웃음과 건강을 드리고자 유익한 소식과 프로그램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발행처 : 중랑구시설관리공단 편집 : 창의경영추진반 주소 : 서울특별시 중랑구 도당길 175번지 전화 : 02-3422-4831~4

More information

041~084 ¹®È�Çö»óÀбâ

041~084 ¹®È�Çö»óÀбâ 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More information

2015년9월도서관웹용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More information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1960 년대 1960 년 35 1960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36 37 1960 년 [ è ] 1851 1 [ ] 1 é é é 1851 É 1960 년 2 1 2 11 1952 22 38 1961년 1961년 39 1961 년 3 월 14 일, 한국일보 4 면, 2 3 2 3 40 1962년 1962년 41 1962 년 1

More information

연구노트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More information

¼øâÁö¿ª°úÇÐÀÚ¿ø

¼øâÁö¿ª°úÇÐÀÚ¿ø 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More information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news@hcc.or.kr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More information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More information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More information

*074-081pb61۲õðÀÚÀ̳ʸ

*074-081pb61۲õðÀÚÀ̳ʸ 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More information

학부모신문203호@@

학부모신문203호@@ 02 05 06 08 11 12 2 203 2008.07.05 2008.07.05 203 3 4 203 2008.07.05 2008.07.05 203 5 6 203 2008.07.05 2008.07.05 203 7 8 지부 지회 이렇게 했어요 203호 2008.07.05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근 2달여를 촛불 들고 거리로

More information

ITFGc03ÖÁ¾š

ITFGc03ÖÁ¾š Focus Group 2006 AUTUMN Volume. 02 Focus Group 2006 AUTUMN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두 길 모두를 가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 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돌아간 끝까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이

More information

10월추천dvd

10월추천dvd 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More information

2012 4 www.dalseo.daegu.kr APRIL 2012 02 04 04 Vol.200 06 07 08 10 11 12 13 14 16 19 22 23 XXXXXX XXXXXX XXXXXX XXXXX XXXXXX XXXXX XXXXXX XXXXXX XXXXX XXXXX XXXXXX XXXXX XXXXXX XXXXX XXXXXX 4 APRIL 2012

More information

03 ¸ñÂ÷

03 ¸ñÂ÷ 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More information

A000-008목차

A000-008목차 1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및 대도시 낙후지역에 150개의 기숙형공립 고교를 설립하여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겠습니다. 농어촌 지역과 중소도시 등 낙후지역에 150개의 기숙형공립고교를 설립 학생의 80% 정도가 기숙사에 입주할 수 있는 시설을 준비하고, 기숙사비는 학생의 가정형편을 반영한 맞춤형 장학금으로 지원하여 더 이상

More information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More information

Ä¡¿ì_44p °¡À» 89È£

Ä¡¿ì_44p °¡À» 89È£ 2012 vol.89 www.tda.or.kr 2 04 06 8 18 20 22 25 26 Contents 28 30 31 38 40 04 08 35 3 photo essay 4 Photograph by 5 6 DENTAL CARE 7 Journey to Italy 8 9 10 journey to Italy 11 journey to Italy 12 13 Shanghai

More information

º»ÀÛ¾÷-1

º»ÀÛ¾÷-1 Contents 10 http://www.homeplus.co.kr 11 http://www.homeplus.co.kr 12 http://www.homeplus.co.kr 13 http://www.homeplus.co.kr Interview 14 http://www.homeplus.co.kr Interview 15 http://www.homeplus.co.kr

More information

3 Contents 8p 10p 14p 20p 34p 36p 40p 46P 48p 50p 54p 58p 생명다양성재단 영물이라는 타이틀에 정 없어 보이는 고양이, 날카롭게 느껴지시나요? 얼음이 따뜻함에 녹듯이, 사람에게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도 곁을 내어주면 얼음 녹듯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길 위에 사는 생명체라 하여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싫으면 외면해주세요.

More information

내지1-41

내지1-41 04 05 07 10 12 20 21 37 42 47 61 62 66 68 71 78 4 Daehangno Culture Guide 5 Daehangno Culture Guide www.daehangno.or.kr 6 7 Daehangno Culture Guide www.daehangno.or.kr 8 www.daehangno.or.kr 9 P.21 A18

More information

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석진: 안녕하세요. 효진 씨. 효진: 안녕하세요. 석진: 안녕하세요. 여러분. 효진: 오늘 주제는 한류예요. 오빠. 석진: 네. 한류. 저희 청취자분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효진: 맞아요.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석진: 네. 효진: 오빠는 한류 하면은 뭐가 먼저 떠올라요? 석진: 저는 이거 봤을 때 정말 충격 받았어요. 효진: 뭐요? 석진: 프랑스에서

More information

È޴ϵåA4±â¼Û

È޴ϵåA4±â¼Û July 2006 Vol. 01 CONTENTS 02 Special Theme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Beautiful Huneed People 03 04 Special Destiny Interesting Story 05 06 Huneed News Huneed

More information

자유학기제-뉴스레터(6호).indd

자유학기제-뉴스레터(6호).indd freesem.kedi.re.kr CONTENTS 01 연속기획① : 협업기관에 가다! 예술 체육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에 가다! 02 협업기관을 찾아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폴리텍대학 03 자유학기제 자율과정 자료집 소개 04 알림 교육부 자유학기제지원센터, 협업기관 소식 꿈과 끼를 키우는 행복교육 자유학기제 Newsletter 알림

More information

....pdf..

....pdf.. 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More information

기본소득문답2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More information

정부3.0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과 참여로 정책을 함께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책 개선안을 도출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각 기관별 정부3.0 과제에 적용하여 국민 관점의 서비스 설계, 정책고객 확대 등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유도하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More information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More information

01정책백서목차(1~18)

01정책백서목차(1~18) 발간사 2008년 2월, 발전과 통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출범한 새 정부는 문화정책의 목표를 품격 있는 문화국가 로 설정하고, 그간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하는 한편 권한과 책임의 원칙에 따라 지원되고, 효율의 원리에 따라 운영될 수 있도록 과감한 변화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문화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란 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문화적 삶과 풍요로움을

More information

View Licenses and Services (customer)

View Licenses and Services (customer) 빠른 빠른 시작: 시작: 라이선스, 라이선스, 서비스 서비스 및 주문 주문 이력 이력 보기 보기 고객 가이드 Microsoft 비즈니스 센터의 라이선스, 서비스 및 혜택 섹션을 통해 라이선스, 온라인 서비스, 구매 기록 (주문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시작하려면, 비즈니스 센터에 로그인하여 상단 메뉴에서 재고를 선택한 후 내 재고 관리를 선택하십시오. 목차

More information

¿©¼ºÀαÇ24È£

¿©¼ºÀαÇ24È£ 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More information

#遺€?됱궗?뚮뱾168?

#遺€?됱궗?뚮뱾168? www.icbp.go.kr ISSN 2005-8632 4 2010. Vol.168 The Bupyeong Saramdul 02 Vol.168 Vol.168 03 04 Vol.168 Vol.168 05 06 Vol.168 Vol.168 기획 孝 2010년 3월 25일 발행 07 미니뉴스 부평구민 DNA에는 효(孝)가 있다 부평장애인복지관의 나눔 행사

More information

CR2006-41.hwp

CR2006-41.hwp 연구책임자 가나다 순 머 리 말 2006년 12월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원장 - i - - ii - - iii - 평가 영역 1. 교육계획 2. 수업 3. 인적자원 4. 물적자원 5. 경영과 행정 6. 교육성과 평가 부문 부문 배점 비율(%) 점수(점) 영역 배점 1.1 교육목표 3 15 45점 1.2 교육과정 6 30 (9%) 2.1 수업설계 6 30 2.2

More information

2ÀåÀÛ¾÷

2ÀåÀÛ¾÷ 02 102 103 104 105 혁신 17과 1/17 특히 05. 1부터 수준 높은 자료의 제공과 공유를 위해 국내 학회지 원문 데이 >> 교육정보마당 데이터베이스 구축 현황( 05. 8. 1 현재) 구 분 서지정보 원문내용 기사색인 내 용 단행본, 연속 간행물 종 수 50만종 교육정책연구보고서, 실 국발행자료 5,000여종 교육 과정 자료 3,000여종

More information

2015-05

2015-05 2015 Vol.159 www bible ac kr 총장의 편지 소망의 성적표 강우정 총장 매년 1학년과 4학년 상대로 대학생핵심역량진단 (K-CESA)을 실시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진 단은 우리 학우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핵심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었나를 알아보는 진단입니다. 지난번 4학년 진단 결과는 주관처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More information

내지1-41

내지1-41 04 05 07 10 12 20 20 37 42 47 64 68 70 73 4 Daehangno Culture Guide 5 Daehangno Culture Guide www.daehangno.or.kr 6 7 Daehangno Culture Guide www.daehangno.or.kr 8 www.daehangno.or.kr 9 P.20 B19 B19 B10

More information

!

! ! !"!# $# %! %" %#& %' %(& "! "% "# "( #$& #%& ##& #'&!"#$%&'(%)%&*+'$%,-#. ' (%%%!"#$&'(%%% / 0%%%!"#$&'(%%% 1 2%%%!"#$&'(%%% +* ++%%%!"#$&'(%%% +& +3%%%!"#$&'(%%% +' +(%%%!"#$&'(%%% +/ +0%%%!"#$&'(%%%

More information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More information

³»Áö_10-6

³»Áö_10-6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More information

장깨표지65

장깨표지65 06 어떻게 하면 믿음으로 살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아무런 방법이 없을 때가 많지요. 이번 여름! 믿음의 여행을 함께 떠나보는 건 어떠세요? 올해도 우리 친구들과 축제를 벌이실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믿음의 여행을 떠.나.요! 사진 _ 한국장애인사역연구소 www.kmind.net 2010 06 Vol.65 D-30, D-29 D-28,

More information

CT083001C

CT083001C 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More information

전도정책자료집-1

전도정책자료집-1 6 *부록_ 작은 자와 함께하는 희망교회를 위한 아티클 부록 1 작은 자와 함께 하는 희망교회 / 신명기 신학과 주석에 근거하여 - 황성일 교수 (광신대학교) 부록 2 한민족사랑교회 탈북민을 위한 사역 최금호

More information

글청봉3기 PDF용

글청봉3기 PDF용 + 32009. CONTENTS 014 016 018 021 026 048 062 080 100 102 105 108 110 120 122 125 CHINA Neimenggu CHINA Sichuan INDIA Chennai 02 014 015 016 017 018 019 020 > 022 023 wh a t makes YOU HAPPY?

More information

Çѹ̿ìÈ£-197È£

Çѹ̿ìÈ£-197È£ 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More information

SIGIL 완벽입문

SIGIL 완벽입문 누구나 만드는 전자책 SIGIL 을 이용해 전자책을 만들기 EPUB 전자책이 가지는 단점 EPUB이라는 포맷과 제일 많이 비교되는 포맷은 PDF라는 포맷 입니다. EPUB이 나오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던 전자책 포맷이고, 아직도 많이 사 용되기 때문이기도 한며, 또한 PDF는 종이책 출력을 위해서도 사용되기 때문에 종이책 VS

More information

±³À°È°µ¿Áö

±³À°È°µ¿Áö 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More information

레이아웃 1

레이아웃 1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vol.126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 vol.126 www.fsb.or.kr 20163 + 4 Contents 20163 + 4 vol.126 www.fsb.or.kr 26 02 08 30 SB Theme Talk 002 004 006 SB Issue 008 012 014

More information

DocHdl2OnPREPRESStmpTarget

DocHdl2OnPREPRESStmpTarget 자르는 선 5 월 월말 성취도 평가 국어 2쪽 사회 5쪽 과학 7쪽 자르는 선 학년 5 13 4 47 1 5 2 3 7 2 810 8 1113 11 9 12 10 3 13 14 141 1720 17 15 18 19 1 4 20 5 1 2 7 3 8 4 5 9 10 5 월말 성취도평가 11 다음 보기 에서 1 다음 안에 들어갈 알맞은 말을 찾아 쓰시오. 각 나라마다

More information

<B1DDC0B6B1E2B0FCB0FAC0CEC5CDB3DDB0B3C0CEC1A4BAB82E687770>

<B1DDC0B6B1E2B0FCB0FAC0CEC5CDB3DDB0B3C0CEC1A4BAB82E687770> 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More information

......-....4300.~5...03...

......-....4300.~5...03... 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More information

1220½É¹Ì¾Èâ27È£º»¹®

1220½É¹Ì¾Èâ27È£º»¹® CONTENTS 1220심미안창27호본문 1904.1.29 4:51 페이지3 CTP175아트지 3인3색 문화이야기 광주브랜드 브랜드: 이것은 주문呪文이 아니다 이향준_ 전남대 철학연구교육센터 연구원, 재단 운영위원 도시 브랜드 는 시민생활의 총체적 이미지에서 힘을 얻는다 도시의 트랜드 -옛길의 향기와 문화, 예술 조덕진_ 무등일보 아트플러스 편집장, 재단

More information

1028½É¹Ì¾Èâ30È£º»¹®

1028½É¹Ì¾Èâ30È£º»¹® 1028심미안창30호본문 1976.4.7 12:24 AM 페이지3 CTP175 특집기획 광주비엔날레의 혁신과 과제 스무 살의 광주비엔날레, 어디로 가야하나 조덕진_ 아트플러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담론의 새로운 정립을 통한 혁신 과제 김옥조_ 미술평론가, 편집국장 광주비엔날레와 문화사대주의 정인서_ 서구문화원장,

More information

5 291

5 291 1 2 3 4 290 5 291 1 1 336 292 340 341 293 1 342 1 294 2 3 3 343 2 295 296 297 298 05 05 10 15 10 15 20 20 25 346 347 299 1 2 1 3 348 3 2 300 301 302 05 05 10 10 15 20 25 350 355 303 304 1 3 2 4 356 357

More information

<34BFF9C8A320B4DCB8E9B0EDC7D8BBF32E706466>

<34BFF9C8A320B4DCB8E9B0EDC7D8BBF32E706466> ISSN 2288-5854 Print ISSN 2289-0009 online DIGITAL POST KOREA POST MAGAZINE 2016. APRIL VOL. 687 04 DIGITAL POST 2016. 4 AprilVOL. 687 04 08 04 08 10 13 13 14 16 16 28 34 46 22 28 34 38 42 46 50 54 56

More information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More information

- 2 -

- 2 - -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More information

%±¹¹®AR

%±¹¹®AR 2004 CONTENTS 03 04 06 14 21 27 34 40 06 07 08 09 10 11 12 13 14 15 16 17 Historical Dictionary of North Korea Auf den Spuren der Ostbarbaren Czech-Korean Dictionary 18 19 Transforming Korean Politics:

More information

<5B3134303432325DB1B3C0B0C0DAB8A65FC0A7C7D15FB5F0C0DAC0CEBBE7B0ED5FC5F8C5B62E706466>

<5B3134303432325DB1B3C0B0C0DAB8A65FC0A7C7D15FB5F0C0DAC0CEBBE7B0ED5FC5F8C5B62E706466> 2 3 교육자를 위한 디자인사고 / 교육자를 위한 디자인사고 / 4 5 어떻게 하면 나의 교실이 학생들의 니즈를 어떻게 하면 우리는 학교에서 21세기형 학습경험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재구성될 수 있을까? 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뉴욕에서 2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마이클(Michael Schurr)은 자신이 한번도 아이들에게 무엇이 그들을 교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More information

(연합뉴스) 마이더스

(연합뉴스) 마이더스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2012. 04 Vol. 98 Cover Story April 2012 _ Vol. 98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www.yonhapmidas.co.kr Contents... 14 16 20 24 28 32 Hot News 36 Cover Story 46 50 54 56 60

More information

내지(교사용) 4-6부

내지(교사용) 4-6부 Chapter5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01 02 03 04 05 06 07 08 149 활 / 동 / 지 2 01 즐겨 찾는 사이트와 찾는 이유는? 사이트: 이유: 02 아래는 어느 외국계 사이트의 회원가입 화면이다. 국내의 일반적인 회원가입보다 절차가 간소하거나 기입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 항목이 있다면 무엇인지

More information

더바이어102호 01~09

더바이어102호 01~09 www.withbuyer.com Highquality news for professionals www..kr Tel. 031)220-8685 2 Contents 01 02 08 17 18 TEL. 064720-1380~87 04 06 08 10 12 14 17 18 www.withbuyer.com 3 20 23 24 26 24 26 28 29 30 32 33

More information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5월전체 2005.6.9 5: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개 지역지식재산센터 를 통해 발명가와 중소기업들에게 기술개발에서 선진국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More information

한류 목차2

한류 목차2 2014 Ⅰ-Ⅰ 아시아대양주 Ⅰ-Ⅱ 아메리카 Ⅱ-Ⅰ유럽 Ⅱ-Ⅱ 아프리카 중동 지구촌 한류현황 개요 715 464 377 228 234 267 142 213 182 36 76 84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2012 2013 2014 지역별 한류 동호회 현황 Ⅰ. 유 럽 8 (1) 지정학적 유사성과 주변열강의

More information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 24 2저널(11월호).ok 2013.11.7 6:36 PM 페이지25 DK 이 높을 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업을 포기하고 물을 구하러 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본 사업은 한국남동발전 다닐 정도로 식수난이 심각한 만큼 이를 돕기 위해 나선 것 이 타당성 검토(Feasibility Study) 등을 수행하여 인니전력 이다. 공사(PLN)를 비롯한 인니

More information

1

1 2/33 3/33 4/33 5/33 6/33 7/33 8/33 9/33 10/33 11/33 12/33 13/33 14/33 15/33 16/33 17/33 5) 입력을 다 했으면 확인 버튼을 클릭합니다. 6) 시작 페이지가 제대로 설정이 되었는지 살펴볼까요. 익스플로러를 종료하고 다시 실행시켜 보세요. 시작화면에 야후! 코리아 화면이 뜬다면 설정 완료..^^

More information

•••••1301(•••).pdf

•••••1301(•••).pdf K I A M O T O R S V o l _ 1 0 6. 2 0 1 3 01 K I A M O T O R S V o l _ 1 0 6. 2 0 1 3 01 Happy Place + 은빛 추억이 새록새록, 태백산 눈축제 태백산에 하얗게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 축제가 시작된다. 태백산 눈축제 는 은빛 으로 옷을 갈아입은 태백의 매력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다양한

More information

ÆÞ¹÷-Æîħ¸é.PDF

ÆÞ¹÷-Æîħ¸é.PDF H.E.L.P. Vol. SUMMER Vol. WINTER 2015. vol 53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4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5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프로그램 세계문화유산 걷기대회 Walk Together 탐방길곳곳에서기다리고있는조별미션활동! 남한산성 탐방길에는

More information

레이아웃 1

레이아웃 1 03 04 06 08 10 12 13 14 16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현이가 이 곳 태화해뜨는샘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해샘에 처음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남을 의식해 힘들어하고, 사무실내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신경 쓰여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소현이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More information

<C3E6B3B2B1B3C0B0313832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C3E6B3B2B1B3C0B0313832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11-8140242-000001-08 2013-927 2013 182 2013 182 Contents 02 16 08 10 12 18 53 25 32 63 Summer 2 0 1 3 68 40 51 57 65 72 81 90 97 103 109 94 116 123 130 140 144 148 118 154 158 163 1 2 3 4 5 8 SUMMER

More information

CSG_keynote_KO copy.key

CSG_keynote_KO copy.key 101. 3 Shutterstock 4 Shutterstock 5 Shutterstock? 6? 10 What To Create 10 Ways to Find Trends and Inspiration 12 15 17 :. 21 24 Shutterstock 26 29 -. 31 Shutterstock : 36 " " 37! 39 41 45 46 47 49 Copyright

More information

복지백서내지001~016화보L265턁

복지백서내지001~016화보L265턁 Photo S tory 사진으로 보는 서울의 사회복지 1950년대 아동복지시설 연합 체육대회 (창경원) 3 1950년 삼성농아원 초창기 구화교육 (이진주 선생) 1928년 용정부녀자합동급식소 (명진보육원 전신) 1920년대 초기 태화유치원 교육 1930년대 무산아동운동장 (태화여자관 전경) 1936년 경성양로원 (1927년 설립, 1954년 현재의 청운양로원으로

More information

wtu05_ÃÖÁ¾

wtu05_ÃÖÁ¾ 한 눈에 보는 이달의 주요 글로벌 IT 트렌드 IDG World Tech Update May C o n t e n t s Cover Story 아이패드, 태블릿 컴퓨팅 시대를 열다 Monthly News Brief 이달의 주요 글로벌 IT 뉴스 IDG Insight 개발자 관점에서 본 윈도우 폰 7 vs. 아이폰 클라우드 컴퓨팅, 불만 검증 단계 돌입 기업의

More information

ºñ»óÀå±â¾÷ ¿ì¸®»çÁÖÁ¦µµ °³¼±¹æ¾È.hwp

ºñ»óÀå±â¾÷ ¿ì¸®»çÁÖÁ¦µµ °³¼±¹æ¾È.hwp V a lu e n C F = t 1 (1 r ) t t = + n : 평 가 자 산 의 수 명 C F t : t 기 의 현 금 흐 름 r: 할 인 율 또 는 자 본 환 원 율 은 행 1. 대 부 금 5. 대 부 금 상 환 E S O P 2. 주 식 매 입 3. 주 식 4. E S O P 기 여 금 기 업 주인으로 쌍방향의 투명

More information

와플-4년-2호-본문-15.ps

와플-4년-2호-본문-15.ps 1 2 1+2 + = = 1 1 1 +2 =(1+2)+& + *=+ = + 8 2 + = = =1 6 6 6 6 6 2 2 1 1 1 + =(1+)+& + *=+ =+1 = 2 6 1 21 1 + = + = = 1 1 1 + 1-1 1 1 + 6 6 0 1 + 1 + = = + 7 7 2 1 2 1 + =(+ )+& + *= + = 2-1 2 +2 9 9 2

More information

1 (1) 14 (2) 25 25 27 (3) 31 31 32 36 41 2 (1) 48 (2) 56 (3) 63 72 81 3 (1) 88 88 92 (2) 96 (3) 103 103 104 107 115 4 (1) 122 (2) 129 (3) 135 135 141 153 165 5 (1) 172 (2) 187 (3) 192 201 207 6 (1) 214

More information

,, ,

,, , 3. 2012 3.....,,... 2015 2...,....... 2 5. weekly@ (( ) ) 2 2010 11 2011.,,, 2.. ( 30 ).........,....,,....,........,..,,,. 2012 12 4. 98 2 4 122 8 154 38 186 74 214 9 60,, «3», 97 30 8 ., (2007-2009)

More information

77

77 76 77 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78 2. 1 2 3 4 5 6 7 8 9 10 11 12 79 80 II 81 82 II 83 84 II 85 86 II 87 s t r e t c h i n g 88 II 89 90 II 91 d a n c e s p o r t s 92 II 93 ;4#; 94 II

More information

소식지수정본-1

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More information

2017 Summer.Vol. 07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소식지 제4산업혁명시대 핵심인프라 공간정보 그 미래를 KAIA가 함께 합니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은 국토공간정보의 효율적, 체계적 생산 및 가공과 다양한 국토공간정보의 활용 융합 서비스 기술 구현을 통해 국민 편의와 산업발전 향상을 도모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4산업혁명시대 핵심인프라 공간정보 그

More information

아이콘의 정의 본 사용자 설명서에서는 다음 아이콘을 사용합니다. 참고 참고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거나 다른 기능과 함께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제공합니다. 상표 Brother 로고는 Brother Industries, Ltd.의 등록 상

아이콘의 정의 본 사용자 설명서에서는 다음 아이콘을 사용합니다. 참고 참고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거나 다른 기능과 함께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제공합니다. 상표 Brother 로고는 Brother Industries, Ltd.의 등록 상 Android 용 Brother Image Viewer 설명서 버전 0 KOR 아이콘의 정의 본 사용자 설명서에서는 다음 아이콘을 사용합니다. 참고 참고는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주거나 다른 기능과 함께 작동하는 방법에 대한 요령을 제공합니다. 상표 Brother 로고는 Brother Industries, Ltd.의 등록 상표입니다. Android는

More information

Art & Technology #5: 3D 프린팅 - Art World | 현대자동차

Art & Technology #5: 3D 프린팅 - Art World | 현대자동차 Art & Technology #5: 3D 프린팅 새로운 기술, 새로운 가능성 미래를 바꿔놓을 기술 이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답은 한 마치 한 쌍(pair)과도 같은 3D 스캐닝-프린팅 산업이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이유입니 가지는 아닐 것이나 그 대표적인 기술로 3D 스캐닝 과 3D 프린팅 을 들 수 있을 것입니 다. 카메라의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