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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이달의 편지 05 양심거울 외 2014 May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추억을 깎는 이발소

2 contents 2014년 5월호 04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1 추억을 깎는 이발소 08 이달의 편지 양심거울 외 행복을 찾는 사람들 (유)동양실업해외관광 최수연 대표 76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2 작은 학교 큰 마음들 코너 속 편지 덧니 사랑 외 106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재난에 대해 이야기하기 양희은의 스튜디오에서 기억하고 새겨야 할 일들 112 강석우의 스튜디오에서 몸에게 관심 주기 114 행복한 책 읽기 난쟁이 피터 IBK기업은행 협찬의 월간 여성시대는 작지만 큰 감동을 전하고자 합니다. 매월 10일 IBK기업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하며, 이웃과 함께 보면 감동이 2배로 늘어납니다. 발행일 2014년 5월 10일 발행인 (주)문화방송 대표이사 안광한 등록번호 라 진행 양희은, 강석우 프로듀서 한재희, 박정언 방송 MBC라디오 매일 아침 9:05~11:00 인터넷 주소 방송중 열린전화 문의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400호 편집 제작 하나로애드컴( ) 표지 작가 최솜이 월간지(비매품) 본지는 한국도서윤리위원회 규정을 준수합니다. 전국 주파수 안내(표준FM) 전국 각 지역은 위 주파수대에서 MBC 라디오 청취가 가능합니다. 서울 95.9 부산 95.9 / 대구 96.5 광주 93.9 대전 92.5 / 91.3 전주 / 94.3 마산 98.9 춘천 92.3 / 88.9 청주 제주 97.9(견월악) / 97.1(삼대봉) 울산 97.5 강릉 96.3 진주 91.1 / 93.5 목포 89.1 여수 안동 원주 / 92.7 충주 96.1 삼척 / 93.1 포항 울진 울릉도 98.5

3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1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1 추억을 깎는 이발소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컷트마트 이발소 김영오 씨를 찾아서 글 성기애 (여성시대 작가) 사진 송인혁 손님이 이발소에 들어서면 우선 정중히 인 사한다. 그리고 자리에 모신다. 이발 보자기 를 손님 몸에 맞추고 나서는 LP판을 골라 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손님의 나이와 기호에 따라 배호의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아니 면 이미자나 남인수, 나훈아의 음색이 흘러나 온다. 이발소 안은 어느새 먼 과거로 돌아가 있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컷트마트 를 운영하는 김영오 씨가 이발 일에 몸담은 지는 50년 가까이 된다. 18살의 나이에 이발소에 들어가 바닥 닦는 일과 손님의 머리 감기는 일을 먼저 배웠다. 그리 고 면도를 하게 됐다. 가위를 손에 들고 머리를 깎기까지 7년이란 시 간이 걸렸다. 고향 포항에서 기술을 익히고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이발 기술 을 연마했다. 종로에 있는 이발소에 취직을 하여 낮에는 손님을 맞고 밤이면 이발의자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당시는 이 발소가 남녀노소가 다 다니는 곳으로 늘 바쁘고 북적이며 손님이 많 04 05

4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으니 기술만 있으면 돈을 버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본인의 이발소를 차려서 승승장구하던 어 느 날, 일본에서 온 손님이 넌지시 일본에서 이발을 해보면 어떻겠느 냐는 제안을 했다. 1990년대 이발소는 이미 사양길을 걷고 있었다. 우후죽순으로 퇴폐이발소가 생기며 이발소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 다. 동네 골목은 물론이고 목 좋은 곳마다 미용실이 들어서며 이발소 를 찾는 발길이 점점 줄어들었다. 일본은 달랐다. 이발소 문화가 살아있어, 손님이 늘 줄을 서 기다 렸다. 더군다나 일본 여성들은 중요한 모임이 있으면 얼굴을 깨끗하 게 면도하는 것이 유행이어서 이발소 손님이 많았다. 김영오 씨는 주 저 없이 일본 생활을 택했다. 일본 생활은 이발 서비스에 대한 많은 것을 익히고 연마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게 12년, 일본 생활을 청 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이발관을 열었다. 김영오 씨는 한국이용사 강동구지회 소속이다. 그는 30년 동안 꾸 준히 해온 일이 있다. 강동구에 있는 이발사들의 모임인 사랑의 이발 봉사단 과 함께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장애인시설인 우성원 에 가 서 하는 이발봉사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우성원 식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다. 이발 봉사단이 와서 말끔하게 머리를 깎아주면 깔끔해진 용모로 기분 이 저절로 좋아진다. 30년을 드나드니 이젠 한 식구처럼 스스럼없이 없다. 김영오 씨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간직한 우성원 식구들로 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자신이 가진 기능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기쁨은 물론이고, 비록 몸이 불편하지만 늘 웃음기를 거두지 않는 모 습에서 삶에 대한 경건함을 배운다. 이발소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는 눈이 보 이지 않거나 손이 떨리지 않는 한 이발과 봉사는 계속할 생각이다. 이발은 예술 이라고 단언하는 김 영오 씨. 그는 아름다움을 창조하 는 기능장으로서의 삶을 당당히 살아갈 생각이다. 머리를 깎으며 추억도 함께 나누면서 말이다. 김영호 씨가 여성시대 가족을 위한 건강한 머리 만들기 비법 대공개 1 채소를 많이 먹어라. 그 중 우리 뇌의 모습과 비슷한 양배추를 많이 먹으면 머리가 덜 빠지고 건강한 모발이 된다. 2 하루에 3분 두피 마사지를 한다.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거나 손가락 끝으로 마사지를 해준다. 그러면 두피가 건강해지고 머리가 잘 빠지지 않는다.

5 이달의 편지 09 양심거울 13 집으로 가는 길 22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19 나의 첫 손님 25 조부모 수난시대 33 그 새벽, 내게 오신 봄 손님 38 돈세탁 58 응답하라, 할아버지의 가족들 이달의 09 Letter 1 29 수영을 시작하고 41 질투의 화신 양심 거울 46 은정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곁에서 너를 지킬 거야 51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 생일 잔치 풍속도 62 25년 차 우정 사진 편지 김선애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3동 바 쁘게 전철역으로 걸어가는 골목길에서다. 어느 담벼락에 거 울이 붙어 있었다. 웬 거울? 궁금하긴 했지만 그냥 지나치다 가 다시 발걸음을 뒤로 돌렸다. 거울은 가로 50센티미터, 세로 40센티미터 정도 되는 크기에 말 갛게 잘 닦여 있었고, 검은색 마커로 또박또박 윗부분엔 양심거울 이라고, 아랫부분엔 이 거울이 당신의 양심을 비춰보고 있습니다 라 고 쓰여 있었다. 일반 서민주택에 사는 사람은 아마 무슨 말인지 금 방 알아챘으리라.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경고문인 것이다. 그 거울 아랫부분엔 구청 청소과의 빛바랜 경고문도 붙어 있었다. 이곳에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면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일러스트 이경선 그러나 벌금이고 뭐고 알 바 없는 양심은 그런 문구 따윈 아랑곳하

6 이달의 편지 지 않는다. 그야말로 CCTV가 내려다보기 전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 돈이 꽤 들어가는 CCTV 대신 거울 을 생각해 낸 참 신한 발상이 얼마나 기발한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어느 골목길에 이 쓰레기 버린! 난 네 가 누군지 알고 있다. 오늘 당장 안 치우면 X망신 당할 줄 알라! 큼 지막한 종이에 욕을 써 붙인 걸 보고 기분이 씁쓸했는데 그 거울 속 경고문은 가슴에 따뜻하게 와 닿았다. 그 골목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쓰레기는커녕 마침 햇살까지 비추고 있어서 더욱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쓰레기를 꼭 골목에만 버리진 않는다. 오래 전, 밤사이에 우리 집 과 이웃집 담벼락 사이 애매모호한 중간 지점에 1인용 소파가 버려 져 있었다. 요즘이야 구청 청소과에 전화해 수거해 가게 하지만, 그 당시는 대부분 집주인이 그걸 해결해야 했다. 옆집 여자도 나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 니 소파는 우리 집 쪽으로 확 기울어져 있었다. 눈치로 보아, 옆집 여자가 그리한 듯싶었다. 아마 우리가 버린 걸로 오해를 했거나 아 니면 자기가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보였다. 그렇게 되자 우리 집에 세 들어 살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제일 큰 피해자가 됐다. 그 집과 우리 집 사이에 문이 하나 있는데, 그 볼 썽사나운 소파가 바로 아주머니의 전용 출입문에 닿을 만큼 가까워 졌기 때문이다. 내가 옆집 여자에게 제안했다. 우선 먼저대로 이쯤에 놓아둡시 다. 댁의 대문에선 소파가 한참 멀리 있으니 여기쯤에 둬도 그리 흉 하지 않으니. 그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 지 서로 생각해봅시다. 옆 집 여자는 떨떠름해 하는 눈치였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7 이달의 편지 그런데 며칠 후, 소파는 우리 집 쪽으로 먼저보다 훨씬 더 기울었 다. 우리 집 세든 아주머니가 그걸 그쪽으로 확 밀어낸 것이다. 옆집 여자와 아주머니가 언성을 높이며 가타부타 싸움이 붙었다. 화가 잔 뜩 난 아주머니는 안으로 들어가더니 부엌칼과 가위, 대형 쓰레기봉 투를 들고 나왔다. 어? 왜 저러시나? 하고 지켜보니, 아주머니는 이를 악물더니 칼과 가위로 소파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감 이 왔다. 그걸 분해해서 대형 쓰레기봉투에 넣으려는 것임을. 옆집 여자도 나도 할 말을 잃었다. 집주인인 나는 더더욱 몸을 어디에 두 어야 할지 몰랐다. 그때, 길을 지나던 고물장수가 그 광경을 보더니 그거, 나, 주시 오! 하는 게 아닌가? 고물장수에게 소파를 얼른 줘버렸다. 그 바람 에 소파 사건은 싱겁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이웃 간에 얼굴을 붉혀 야 했던 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씁쓸하기만 하다. 그 일 이후, 나는 어린 아이들이 과자 봉지를 생각 없이 길가에 휙 버리면 얘야, 집에 가져 가서 버려! 하며 그걸 집어 손에 쥐어주곤 한다. 거리에 침을 뱉거나 담뱃갑이나 꽁초 버리는 어른들에겐 그 걸 그렇게 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한마디 하고 싶은 걸 참느라 속 이 끓는다. 한 번은 우리 집 대문 앞에 시커먼 봉지에 싼 게 버려져 있었다. 펴 보니 구더기가 바글거리는 된장이었다. 또 어느 날은 내용물을 볼 수도 없게 마대에 꽁꽁 묶어 얌전히 놓아둔 게 있었다. 요즘은 점점 줄어들긴 하지만 잊을 만하면 몰래 버린 쓰레기가 나타난다. 이참에 우리 집 담벼락에도 양심거울 하나 붙여볼까! 퇴 Letter 2 집으로 가는 길 여종욱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2동 근하여 오는 길에 집 앞에서 웬 할아버지께서 두리번두리번 무언가 찾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뭘 찾으십니꺼. 강원도 함백 집에 가야 합니다. 강원도 어디예? 강원도 함백 집에 가야 합니다. 강원도예? 할아버지, 여긴 대구라예. 강원도 가려면 터미널로 가 야 되는데 이쪽으로 쭉 가서 저기 골목 네거리 보이지예. 저기서 왼쪽 으로 곧장 가면 큰 도로가 나옵니더. 그기서 차를 타고 가시면 되예. 할아버지는 제가 일러준 길로 가더군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 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뒤돌아보았더니 할아버지는 조금 걷다 다시 이쪽저쪽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고 계시더군요. 저는 다시 할

8 이달의 편지 아버지 곁으로 가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뭘 또 찾고 계십니꺼? 강원도 함백 집에 가야 합니다. 할아버지, 여기가 어딘 줄 아십니꺼? 강원도 함백 집에 가야 합니다. 그때서야 아! 할아버지가 치매를 앓고 계시는구나 싶더군요. 저 는 옷부터 갈아입고 할아버지를 경찰서에 모시고 가야 되겠다 싶어 우선 할아버지를 집으로 모셨습니다.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웬 할 아버지와 함께 들어오는 저를 보고 놀란 듯했습니다. 앞에서 집을 찾고 계시던데 아마 치매를 앓고 계시는 갑다. 옷 좀 갈아입고 경찰서에 모시다 드리려고. 할아버지를 소파에 앉혀 드리고 저는 옷부터 갈아입고 다시 거실 로 나왔습니다. 거실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풍기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배고프시죠? 밥 드릴까예? 빵 주세요. 저는 아내를 보았습니다. 아내가 급히 식빵을 굽는 동안 저는 냉장 고 속에 든 우유를 꺼내어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소파 에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보니 아주 깨끗한 생활 한복 을 입고 계시고 머리카락은 검은 색이 없는 은백색입니다. 얼굴 모 습은 온화하며 곱게 연세가 드신 듯합니다. 강원도 함백 집에 가야 합니다. 예, 할아버지. 빵 드시고 집에 가입시더. 식빵 하나를 드신 할아버지는 저를 보시곤 나 먹으라고 식빵을 든 손을 내미신다. 할아버지, 저는 괜찮심더. 할아버지 드이소. 할아버지는, 내민 손을 조금 더 길게 내밉니다. 저는 할 수 없이 할아버지, 잘 먹을께예 대답했습니다. 온화한 할아버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집니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미소입니다. 맞습니다. 지금 제 나이도 되기 전 하늘나라로 가 신 저의 아버지. 저 어릴 적 한겨울에 국화빵을 가슴에 품고, 자고 있는 저를 깨워 국화빵을 내어주시며 웃음 짓던 아버지의 미소입니 다. 갑자기 시야가 희뿌옇게 흐려옵니다. 제 모습을 아내에게 들킬 세라 얼른 눈에 힘을 줍니다. 그제야 천천히 시야가 맑아오며 할아 버지가 또렷이 보입니다. 혹시 연락처가 있지 않을까. 저는 할아버지 목 주위를 보았습니 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매 끝을 살짝 올려 손목도 보았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활 한복 윗주머니에 뭔가 있어서 실례를 무릅 쓰고 꺼내어 보니 손수건입니다. 손수건에 재봉 자수로 새긴 숫자가 보입니다. 집 전화번호와 휴대폰 번호, 이름까지 있습니다. 할아버 지를 보호하는 가족의 세심함이 느껴졌습니다. 기뻤습니다. 먼저 할아버지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받지 않습니다. 다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격앙된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렸습 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혹시 권 할아버지를 아십니꺼. 예, 우리 아버님입니더. 아버님 지금 그기 계십니꺼? 아! 예. 지금 저하고 같이 계십니더. 그러자 갑자기 아줌마는 울음을 터트리며 어무이예~ 아가씨~ 아버님 찾았심더. 거기 어디십니꺼.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가겠심더! 여기가 골목이 길어 찾기가 좀 어려운데, 혹시 할아버지 집은 어

9 이달의 편지 디십니꺼? 다행히 할아버지 댁은 걸어서 15~20분 거리였습니다.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진정하고 걱정하지 마이소. 지금 할아버 지가 빵을 드시고 계시니까 다 드시고 나면 이 번호로 전화드리고 제 가 모시다 드리겠심더. 흥분한 상태에서 한사코 찾아오겠다는 걸 말리며 전화를 끊었습니 다. 빵을 다 드신 할아버지의 손을 휴지로 닦아 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집에 가까예? 강원도 함백 집에 가야 합니다. 예, 할아버지 강원도 집에 가입시더. 다시 전화를 드리고 할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밤공기가 찹니다. 제 목에 두른 목도리를 할아버지 목에 감아 드렸습니다. 할 아버지는 어린 아이처럼 제 시선과 마주치며 얌전히 계십니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가 제 아버지였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길을 걸으며 살짝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할아 버지의 손도 작은 힘이 가해집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약속장소에 여러 사람이 모여 두리번두리번 이 쪽저쪽을 살피고 있습니다. 아마 할아버지의 가족들인가 봅니다. 우 리를 발견한 아주머니 한 분이 급히 뛰어오며 할아버지를 부릅니다. 다가오는 아줌마를 보고 할아버지는 쥐고 있는 손을 더욱 꼭 쥐며 제 뒤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아줌마 뒤로 여러 사람이 다가오는데 그중 연세가 많이 드신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부르십니다. 그제야 할아버 지는 꼭 쥔 손을 풀며 할머니 쪽으로 가십니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온 가족을 무사히 만났습니다. 사건은 이러했습니다. 이날은 할아버지의 팔순 생신으로 멀리 있

10 이달의 편지 는 아들, 딸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집에만 계시는 부모님을 오랜만 에 만난 가족들은 바람도 쐴 겸 수성유원지에서 외식도 하고 사진관 에서 가족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왔답니다. 할 아버지는 피곤하였는지 방에서 이내 주무시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 저런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다 조 금 늦은 저녁상을 차리고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깨우기 위해 방문을 여니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더랍니다. 놀란 가족들은 온 동네를 찾아 헤매여도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이젠 경찰서에 신고해야겠다 싶을 때, 제 전화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강원도 함백은 바로 할아버지의 고향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감사하다며 할아버지의 집으로 가자는 걸, 저는 바쁘다 는 핑계를 대며 거절하고 뒤돌아 집에 오는데 저, 아저씨 죄송해서 어쩌죠. 아버님이 하고 있는 목도리를 거기 잠시만 계시면 바로 갖 다 드리겠심더 전화가 왔습니다. 아니라예, 그 목도리 일부러 안 받았심더. 그 목도리 따뜻하고 깨 끗한 겁니더. 버리지는 마시고 할아버지 외출하실 때 찬바람 불면 목에 감아 드리소. 죄송해서 안된다고 한사코 목도리를 갖다 주겠다는 걸 괜찮다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습니다.할아버지가 언제나 가족들 옆에서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선가 본 글귀가 생 각납니다. - 산 위의 소나무는 바람을 기다려 주는데 부모님은 자식들의 봉양을 기다려 주지 않네. - 오늘 따라 부모님이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이번 일요일 가족과 함 께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저 Letter 3 나의 첫 손님 김순옥 부산광역시 사상구 괘법동 는 남편과 함께 이발소를 하는 중국 조선족 아주머니입니다. 가끔 제가 처음 면도를 배우던 일이 생각나곤 합니다 년에 중국 연변에서 결혼을 위해 부산에 오게 되었지요. 그때 남편 은 면도사 아주머니 한 분을 두고 이발소를 하고 있었어요. 저는 부 산에 와서 처음에 누룽지 공장에 취직을 했는데요. 누룽지 공장에서 한 18일 정도 일을 했을 때던가 남편이 저에게 말하더군요. 여보, 당신 누룽지 공장 다니지 말고 나랑 같이 이발소나 하자. 이발소? 이발소는 뭐 아무나 합니까? 나는 면도칼 쥘 줄도 모르 는데 어이합니까? 괜찮아. 누구는 뭐 처음부터 잘했나? 다 배워가면서 하는 거지. 내가 차근차근 가르쳐줄 테니 한번 해봐. 그리하여 남편은 아랫집 일흔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을

11 이달의 편지 모시고 와서는 저를 가리키며 제 마누라입니다. 오늘부터 제 마누 라가 아저씨를 공짜로 면도해 드릴 테니 앞으로 하루 건너마다 와서 면도 하이소. 여보, 요 아저씨 면도 잘해 드려라. 예예! 안녕하세요 아저씨. 지가예 천천히 깐깐하게 잘해 드리겠 습니다. 이쪽으로 와 누우세요. 아저씨는 싱글벙글 웃으며 그럼 어디 한번 해볼까? 하며 의자에 누우셨습니다. 저는 로션을 바르고 뜨거운 수건을 수염 위에 올려놨 습니다. 순간, 으아! 하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셨어 요. 수건이 너무 뜨겁다. 좀 식혀 갖고 해라. 옆에 면도사 아주머 니가 저를 보고 눈을 끔뻑하면서 시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찜통에서 수건을 꺼낸 다음 빠른 동작으로 수건을 쫙 폈다가 다시 접은 후 수 염 위에 올려놓으면 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 아주머니가 시키는 대로 이마에서부터 면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할만 하더라고요. 그래 서 속으로 생각했지요. 면도, 별 거 아니네. 그저 슥슥 문지르면 되 는구먼. 뭘 어렵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콧수염 깎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콧수 염이 잘 깎이지 않는 겁니다. 가만히 보니까 아저씨 수염은 많으면 서 질기기도 한 게 꼭 야무진 나무뿌리 같았어요. 게다가 바짝 마른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턱뼈도 튀어나오고, 입은 합죽이어서 면도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콧수염을 깎다 말고, 에 라 모르겠다. 면도 아줌마가 처음에 이마, 그 다음에 콧수염, 옆 볼, 귀, 이런 순서로 하라고 했는데 순서가 뭐 중요해? 아무렇게나 해 도 다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생각하고 콧수염 깎다 말고 옆 볼을 깎 다가, 귓불을 깎다가, 다시 콧수염을 깎으려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잠깐 쉬었다 하지? 하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두 손으로 허리를 이리 주무르고 저리 주무르면서, 아마 한 반 시간은 누워 있었는갑 다 하시는 겁니다. 시계를 보니 어머, 면도 시작한지 40분이 지난 거예요. 그런데 아 직 면도 할 데가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콧수염도 깎다 말았고, 귀 옆 머리도 한쪽만 깎았는데. 한 5분 정도 쉬었을까요? 저는 아저 씨, 수염 마저 깎으셔야죠. 자, 누우세요 했는데, 제 말이 분명 들 렸을 텐데도 아저씨는 못 들은 척 그냥 앉아 있는 겁니다. 아저씨, 이번에는 금방 끝날 거예요. 이리 오세요. 허허. 오늘은 이만 깎고 내일 또 와서 깎지 하면서 웃으시는 겁 니다. 전 민망해서 예... 예... 연신 대답만 되풀이했어요. 원래 면도사 아줌마는 수염이 적으면 5분에서 8분, 수염이 많은 편이면 10분에서 15분이면 깎았는데, 전 40분이나 지났음에도 수 염을 다 못 깎았으니, 그 아저씨 생각에는 이제 다시 누우면 또 언제 끝날지 모르니 겁이 나서 다시 안 누우셨던 것 같아요. 저는 저대로 온 신경을 써서 하다 보니 팔에 쥐가 날 정도로 손이 경직되었고 이러다 실수로 손을 베어 피가 나면 어쩌나 걱정하다 보 니 머리도 띵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아랫집 아저씨는 저에게 처음으로 수염을 깎은 첫 고 객이었는데요. 그날 이후로 길에서 그 아저씨와 마주치면 아저씨는 괜히 미안쩍어 하시면서 헤헤 헛웃음만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물 론, 우리 이발소에 두 번 다시 면도하러 안 오셨고요. 그 아저씨는 2, 3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요즘도 가끔 손님 면도하다 말고 비슷하게 생긴 분 보면 그 아저씨가 생각난답니다. 아저씨, 하 늘나라에서는 저 같은 초짜에겐 면도하지 마세요.

12 이달의 편지 Letter 4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박문형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하는 사람인 줄로 알았습니다. 이웃집까지 불이 번졌을 때야 일곱여 대의 소방차가 도착해서 불 을 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한 청년이 맨발로 그 아파트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나왔습니다. 알고 보니 그 집은 엄마가 없는 한부모 가정으로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출타 중이었고 청년 의 형은 군대에 복무 중이라고 합니다. 청년이 혼자 집에 있다가 가스레인지 사용 중 불이 나자 아파트 지 하실로 도망을 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아파트 지하실에서 청년을 발견했을 때 공포에 질린 청년은 물을 한 바가지 들고 웅크린 채로 덜덜 떨고 있었답니다. 어 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밖에서 펑~ 펑~ 소리가 났습니다. 총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여 이웃 군부대에서 사격 연습을 이 렇게 심하게 할 리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밥을 먹다 말고 집 밖 으로 나가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발을 동동 구르며 쳐다보는 곳을 바라보니, 우리 다세대주택 바로 옆에 있는 5층짜리 나 홀로 아파트 의 맨 위층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습니다. 그 정신 나간 놈, 이상스럽게 굴더니 결국 사고를 치네. 아파트 관리인이라는 아주머니는 욕설을 하며 타지에 있는 불 타 고 있는 집의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불을 낸 사람은 그 집의 세입자인데 정신이상자라며 사람들이 수 군거렸죠. 그래서 저는 늘 술에 취해서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행동을

13 이달의 편지 청년은 지적장애인이었습니다. 그 청년에게 험한 말을 내뱉는 사 람들뿐만 아니라 웅성거리며 불구경을 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불 을 낸 청년을 불쌍해하고 안타까워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은 불이 나면 불을 끄기는커녕 춤추는 불길을 보 며 좋아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함부로 내뱉는 말들이 제 귀에 무척 거슬렸던 것은 우리 아 들이 지적장애 2급이기 때문이겠지요. 더러는 얼핏 보기에 정상인 처럼 말과 행동을 하는 지적장애인들도 있기는 하지만, 지적장애우 들은 장애 정도를 불문하고 위기 대처 능력이 어이없을 정도로 낮다 는 걸, 아니 거의 없다는 걸, 지적장애에 대해 모르는 분들은 이해 하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농장이나 새우잡이배에 끌려가서 몇 십 년 동안이나 노예생활을 할까요. 펑~ 펑~ 유리 파편을 내뿜으며 원자폭탄이라도 터진 듯 아파트 맨 위층에서 꾸역꾸역 솟아오르던 검은 연기, 맨발로 끌려 나와서 경찰차에 올라타는 여윈 청년, 타지에서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숨 가쁘게 달려왔을 청년의 아버지, 군 복무 중인 장애 청년의 형, 그리 고 세를 준 집에서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집주인. 그들의 마음 이 자꾸만 느껴져서 밤새 잠을 설쳤습니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삭 막한 삶을 일깨우기 위해서 검은 연기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마귀 처럼 솟아올랐을지도 모르는데, 동네사람들은 오로지 청년만을 나 무라며 혀를 차고 있었습니다. 저부터라도 동네에서 가끔 만나는 지적장애우들에게 관심을 갖고 지적장애 2급인 아들을 혼자 집에 두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놀 란 마음을 다스려봅니다. 남 Letter 5 조부모 수난시대 임은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편 고교 동창 중에 절친한 사람이 있다. 우리 결혼식에 내 친 구는 많이 찾아온 반면, 남편은 딱 세 사람만 초청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며 유일하게 나도 만나본 사람이었다. IMF 이후 건설회 사에 다니다 그만둔 그 친구를 남편이 자기네 회사에 소개시켜 같은 회사에 다니게 된 후로는 더욱 자주 만나게 되었다. 그 집 부인과 나 도 친구가 되었다. 둘째 딸 결혼식 후, 영 시간을 못 내다가 얼마 전에 우리는 모처럼 점심이나 같이 하기로 하였다. 우리 부부가 먼저 도착하고 나서 그 부부가 도착했는데, 나를 보자마자 지선이 엄마, 나 일주일 동안에 3킬로그램이나 쪘어. 배가 이렇게 많이 나왔어 한다. 그런데 내가 보니 살이 쪄서 배가 부른 것이 아니라 복수가 찬 거 같았다. 복수가 찬 거 같은데 병원에 가봤어?

14 이달의 편지 아니, 그냥 약국에서 약만 지어 먹었어. 왜 그랬어? 병원에 가봐. 살찐 게 아니라 복수가 찬 거 같아. 병원에 갈 새가 있어야지. 무슨 소리야? 병원에 가봐야지. 남편은 막걸리 한 통을 시켰고 처음이니만치 건배를 위해 모두에 게 한 잔씩 술을 따랐다. 그런데 그 집 부인이 나 술 못 먹어. 얼마 전에 백내장 수술했는 데 의사가 당분간 술 마시지 말래 하며 거부하는 것이었다. 아니, 백내장 수술하고도 애를 봤단 말이야? 내가 기겁할 듯 놀 라면서 반문했다. 그들 부부는 친손녀딸을 돌보고 있었다. 아들 부부가 맞벌이하는 지라 손녀딸을 돌보고 있는데, 남편이 순천 현장으로 내려가는 바람 에 부인이 혼자 손녀를 보게 되었다. 손녀는 다음 주에 돌잔치를 한 다고 한다. 아니, 왜 애를 봐? 수술했으니 당연히 쉬어야지. 딴 사람이 볼 수가 없어서. 뭔 소리야? 요즘 일거리가 없어서 난리인데 애 보는 사람을 불러 야지. 그랬더니 곁에 있던 남편 친구가 이런다. 이 사람은요, 집에 있으면 누워만 있어서 안돼요. 나는 펄쩍 뛰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세상에. 이 사람은 환자잖아요.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사람은 구하지. 남을 어떻게 믿어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렇다고 환자한테 애를 맡긴단 말이에요? 더구나 돌도 안 된 애 를? 돌도 안 된 애 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걷기만 하면 어디 다 세워놓을 수도 있지만 돌도 안 된 애는 어디 세워놓을 수도 없고 번번이 안아 올려야 하는데 어떻게 환자한테 애를 보게 할 수가 있 어요? 그리고 이 사람은 살찐 것이 아니라, 내가 봐선 복수가 찬 거 예요. 당장 병원에 가야 해요 했더니 곁에 앉은 남편 친구는 핀잔을 준다. 어제 내가 집에 있었으니, 어제 병원에 가보지 그랬어? 어제는 복수가 찬 게 아니라 살찐 것이라 생각했으니 병원 갈 생각 은 못했을 것이다. 왜 살찐 사람은 게으르다 생각하고 왜 살찐 사람은 혹시 병이 아닐 까 의심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집에 있으 면 누워만 있어서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있어? 그러다 중병이라도 걸 리면 어쩌려고.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손녀를 어린이집이라도 보내라고 했더니 못 믿어서 못 보낸단다.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거 안 보냐면서. 그거야 1프로도 안 되는 거니까 신문이나 뉴스에 나오는 거지. 그 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어린이집에 보내는데 왜 안 보내요? 그리고 건강한 사람이 애를 보는 거지. 이 사람은 환자야, 환자! 나는 밥을 먹는 내내 화만 냈다. 생각하는 것이 어째 그 모양이고 말하는 것이 어찌 그리 인정머리가 없는지, 며느리가 간호사라면서 일반인인 나보다 못한가? 나는 남편 친구에게 말했다. 아들한테 말해요. 네 자식보다 내 마누라가 더 중요하다. 네 자식 은 네가 알아서 키워라. 난 내 마누라를 챙겨야겠다. 그래야 남편이 지. 아니 말을 해도 어떻게 그렇게 해요? 나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내내 그 남편을 타박했다.

15 이달의 편지 그 집 부인도 서운했는지 그래서 내가 소주 2병 먹고 어디 가서 팍 죽어버려야겠다 그런 생각도 했어 한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는데, 당장 내가 응급실에라도 데려 다줄 걸 그랬나 생각하면서도 그 집 남편을 믿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일주일 후, 그 부인 일이 궁금해서 연락을 했다. 나 죽을 거 같아.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병원에서 복수가 찼다 면서 물을 뺐는데 물이 3킬로그램이더라고. 간경화래. 간에 무슨 덩 어리가 있다는 거야. 어머나, 세상에. 내 말이 맞았구나. 20년 전에 내 친구 남편이 사 망했는데, 친구가 그때 말해 주었다. 그이 세상 떠나기 전에 복수가 차서 배가 빵빵해지더니, 황달이 오고 그리고는 가버렸어. 친구 남편은 간경화로 입원했다가 간암으로 사망했다. 남편 친구 부인도 간경화 같았는데 내 예감이 적중했던 것이다. 죽긴 왜 죽어. 요새 의술이 얼마나 좋은데. 그나저나 손녀는? 친정엄마가 와서 본대. 남편이 아들한테 그랬다는군. 네 자식보 다 내 마누라가 중요하다고. 아들이 내게 그러더라고. 그리고 간병 인도 하나 붙여줘서 편하게 있어. 내가 죽을까봐 모두 벌벌 떠는 거 있지. 그나저나 지선 엄마가 정말 말 잘해줬어. 내 속이 다 시원하더 라. 치사해서 말도 못하고 속 끓이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해준 덕분 에 지금은 모두 벌벌 떨어! 잘했네. 잘했어. 그것 봐. 애는 누구라도 볼 수 있어. 몸조리나 잘해. 나는 마음 편하게 갖고 살라고, 그녀에게 여러 번 당부했다. 저 Letter 6 수영을 시작하고 장동숙 충청남도 천안시 청수동 는 수영을 시작한지 7개월째에 접어든 54세의 주부입니다. 오래 전부터 막연하게 수영을 하고 싶다는 맘만 갖고 있고 실 행은 엄두를 못 내고 살아왔는데 자꾸 아픈 데가 늘어나고 삶의 의욕 도 떨어지고 해서 결정을 내렸지요. 이 나이에 나에게 하루 두 시간 할애하는 거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하고 수영 강습 등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수영이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어린 시절 개헤엄도 쳐보 지 못한 완전초보라 생각과 달리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겁니다. 킥판 잡고 한 동작 한 동작 배워 나가는 데 팔 따로, 다리 따로, 호흡 도 제멋대로라서 툭하면 물을 잔뜩 먹게 되더라고요. 한 달이 넘었는데도 그 모양이니 수영이 잘 안 되는 스트레스로 밤 에 잠이 안 올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남편과 식당을 하는 데 시간을

16 이달의 편지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월, 수, 금 요일 정규수업 외에 화, 목요일에 자유시간을 이용해서 좀 더 열심 히 해보자고 했습니다. 체구가 작다보니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학교 다닐 때 체육은 못 했지만 그래도 수영은 다를 거라 기대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겁니 다. 힘든 날의 연속이었습니다. 4개월이 지나고 같이 시작한 회원 들은 깊은 곳에서 연습을 할 때 저는 그곳은 엄두도 못 내고 얕은 곳 에서만 퐁당퐁당 수영을 했습니다. 이게 뭐하는 건지, 운동하러 오 는 건지 스트레스 받으러 오는 건지 정말 서글프기까지 하더라고요. 꼴찌에 매일 지적당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내 돈 내고 이렇 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속상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옆에서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섬 출신인 남편 은 수영을 정식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제법 수영을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수영에 관한 조언도 해주고 물에서 오래 놀다보면 자 연히 수영 실력이 는다고 위로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지적당할 때마다 민망하고 당장 그만둘까 생각하다가도 그래 내가 잘하는 거 라고는 끈기 있게 열심히 하는 거니까 까짓것 한번 끝까지 해보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 나이 마흔 살에 방송통신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방통대까지 마친 저력이 있는데 열심히 하면 될 거다, 저를 다독거렸습니다. 수영을 배운지 5개월 만에 깊은 물에 들어가서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 가 키가 작아서 그런 건지 물이 깊은 건지, 발차기도 안되고 개구리 마냥 끌려 다니면서 주변사람들에게 많은 웃음을 선사했지요. 그래도 수영시간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보다 물에서 늦게 나

17 이달의 편지 오며 열심히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 늘었나 봅니다. 지난 금요일엔 수업 중간에 회원들과 잠깐 쉬고 있는데 수영 선생님께서 여기서 제일 열심히 하는 분이 계십니다.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 히 해서 많이 는 분이 계십니다. 인간 승리입니다 하며 저를 지목하 며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회원들이 박수를 쳐주는 데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저는 그냥 아휴, 왜 그러세요 하고 말았지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 정도 회원들과 친해지니 그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벌써 포기 했을 겁니다. 대단하세요. 놀림 반 위로 반의 말을 해주는 겁니다. 이제는 회원들과 웃고 떠들고 즐기면서 수영을 합니다. 서로 알고 있는 좋은 정보를 주고받고 맛난 것도 먹으러 다닙니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것입니다. 그만 둘 때 그만두더라도 잘한 다음에 그만두어야 다른 것을 하더라고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쉽게 포기하고 끈기 없는 우리 아이 들한테도 말해줍니다. 오늘 일에 최선을 다하라 고요. 요즘 하루가 즐겁고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갑니다. 예전 늦은 나이에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살아오는 날 중에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싶었 는데 지금 이 순간도 그렇게 행복합니다. 수영장으로 가는 셔틀버스 에서 회원들과 수다 한 시간, 수영장에서 수영 한 시간, 이 두 시간 이 제 인생을 아름답게 해줍니다. 가게 일 바쁜데 빠져 나가서 남편한테 미안하기도 하지만 제가 행 복해야 주변 사람도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셔틀버스 놓친다고 빨리 가라고 등 떠밀어주는 그이가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대학생인 두 아들에게도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끝으로 홍익수영장 회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오늘도 행복하세요. 먼 Letter 7 그 새벽, 내게 오신 봄 손님 최은미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 친척분이 모텔을 임대하여 운영 중인데 어렵사리 부탁하여 카운터 일을 보게 된 지 4개월째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 는데 언제부턴가 반가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벽에 기대 쪽잠을 자려는데 문이 살짝 열렸다 닫힌다. 바람이 부나 생각하고 다시 슬며시 잠이 들려고 하는데 또다시 문이 살짝 열리곤 바로 닫히 지 않는다. 문득, 겁이 더럭 났다. 뉴스에서 가끔 모텔에 강도가 침 입하여 금전적인 손해뿐만 아니라 사람을 해한다는 무시무시한 보도 를 접한 게 생각이 났다. 그때 또다시 문이 열리며 머리가 하얗게 쇤 노인분이 지팡이에 의 지한 채 들어오신다. 어서 오세요! 하면서도 이렇게 이른 새벽에 손님으로 오시기엔 너무 남루한 모습이라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 다. 우물쭈물 뭐라고 하시는데 잘 들리지가 않는다. 낮이면 가끔 노

18 이달의 편지 인회에서 나왔다며 휴지나 볼펜을 파시는 분들이 오가는데 그럴 시 간도 아니고, 아직은 추운 삼월 새벽녘에 그것도 언제부터인지 봄비 를 흠뻑 맞은 차림새로 지팡이에 의지해 계신다. 방 드려요? 하니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누굴 찾아 왔나 싶 어 누구 찾으셔요? 여쭈니 저~ 사장님. 새벽부터 재수 없다 생 각 말고 이 늙은이 방 하나만 주면 안되겄소! 돈이 많음서야 이런 실 례를 안할틴디 수중에 칠천 원이 전부요. 젊은 사람들 사업하는데 정말 미안하지만 적선한다 생각하면 안 되겄소 하신다. 음. 아~ 죄송한데요. 제가 사장이 아니고 직원이라 하는데 며늘애가 많이 아파서 애라도 봐줄까 싶어 시골서 할마시 하고 같 이 올라왔는디 친정에 간 건지 연락은 안 되고, 집은 어딘지 알 수가 없어 이 골목 저 골목 뺑뺑이 돌다봉께 이 시간이 되어부렀소. 나는 괘않은디 할마시가 비까지 맞아 부러 몸이라도 녹일라고 들어왔소 하셨다. 일단은 밖에 계시다는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아휴. 아드님께 미리 올라온다 말씀을 하고 올라오시지. 여기가 어디라고 두 분이 서 올라오셨대요? 할머니 일단 들어오시라 하세요. 제가 파출소로 전화해서 아드님 댁 찾아서 모셔드리라 말할게요 했더니 가만히 서 계신다. 어르신~! 하고 재차 말씀드리려 하니, 고개를 가만 숙이더니 겨 우 들릴만한 목소리로 아들은 죽어버렸소. 혼자 남은 며늘애마저 아프다 해서 도와줄 건 없고 부모가 되아서 애덜이라도 봐줄까 싶어 올라오지 않았겄소. 아들이 살았다믄 이 늙은 것들이 이라고 비 맞 아 헤매고 다니겄소. 휴~ 할마시도 몸이 빳빳해져서 힘들어 하기에 멀리 이 집 간판만 보고 온거인디 미안하게 됐 하는데 목소리 가 격하게 떨린다. 갑자기 두 노인분의 애달아 헤매고 다니셨을 그 길들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르신, 그럼 며느님께서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안 받아. 집이라도 알믄 찾아가련만 아들놈 죽기 전에 병원비 보 탠다 줄여 이사한 집이라 이 늙은이들이 두 번 가봤는디 우리도 죽을 때가 됐는가 도통 어딘지 알 수가 없어. 어젯밤 열시부텀 이 시간까 지 헤매고 다니지 않았겄소. 어르신! 일단 밖에 계신 할머니 들어오시라 하세요. 며느님 전화 번호 저 주고 들어가시면, 제가 이따 날 밝으면 전화해보고 방으로 연락드릴게요. 고맙수, 고맙수. 문을 열어 할머니께 들어오라 하시니 곧 쓰러질듯 비척대며 들어 오시는 할머니의 바지자락으로 빗물이 뚝뚝 떨어진다. 얼른 들어가 쉬세요 하고 제일 따뜻한 방 키를 전해드리니 바지 춤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나에게 건네신다. 어르신, 제가 그냥 방 내어드리는 거니까 그건 넣어두셔요. 저도 집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이러는 거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에 전화를 걸어 설렁탕 두 개를 시켰다. 수 중에 칠천 원으로 손주들 과자라도 사주시라 말씀드렸다. 두 노인분 이 아무 말도 못하신다. 그런데 그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동이 터오고 밖으론 분주한 출근길 차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알 려주신 며느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말씀대로 역시나 안 받는 다. 삼십분 가량 지나 다시 한번 걸었더니 그래도 역시나 받질 않는 다. 음성녹음을 남겨 둘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19 이달의 편지 아홉시면 낮 근무 직원과 교대를 해야 하는데 퇴근을 할 수가 없었 다. 직원에게 새벽녘 어르신들 내용을 전달하고 뒤돌아 나서는데 마 음이 편치 않았다. 며느님께 전화를 걸어 봐도 계속 받지를 않는다. 어쩌나 싶어 고민하고 있는데 어르신들 방문이 열린다. 채 말리지도 않은 옷을 입고 나오신다. 어르신, 아직 며느님이 전화를 안 받네요. 조금 더 쉬시고 옷이라 도 좀 말려서 입고 나서지 그러셔요? 젊은 양반이 방도 내주고 음식까지 사줬는데 미안해서 있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덕분에 우리 내외 몸도 녹이고 배도 든든하니 걱정 마시오. 날 밝았으니 찾을 수 있을 것도 같고 정 못 찾으면 집으로 내려가야지. 잠시만 계셔 보셔요. 제가 같이 나서서 찾아봐 드릴게요 하니 한 사코 손사래 치신다. 아들 앞세운 염치없는 늙은이들 남의 귀한 자식한테 이렇게 신세 졌음 됐지. 아니오, 아니오. 여태 한 말씀도 없던 할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우리 집이 서 천이유. 내려가서 뭣 좀 보낼 테니 여기 주소나 적어주시유. 사장님 덕분에 우리 따뜻하게 자알 있다 내려가는디. 할머니, 안 그러셔도 돼요. 그런데 거기까지 갈 차비는 있으신 거 예요? 찻삯은 올 때 낼까정만 있으려고 미리 끊어 놨지유. 오늘 며느리 못 만나믄 바꿔서 가믄 쓰겄소.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시고 나가신다. 축축한 옷을 걸치신 채 거 리로 나서는 두 분의 등을 보고 있자니 그냥 눈물이 와락 쏟아진다. 뛰어갔다. 어르신, 어르신! 이거 얼마 안 되는데 여비에 보태 쓰세요. 혹시 며느님 찾으면 손주들 과자라도 사주고 그냥 내려가시게 되믄 식사 라도 하세요. 후딱 삼만 원을 어르신 주머니에 넣어드리니 아~ 아~ 아니 아 이구 아뇨. 어르신, 저 퇴근해야 돼서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뒤도 안 돌아 보고 뛰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며느님을 만나셨는지 그냥 돌아가셨는지 궁금해 하던 그날 이후, 그러니까 바로 오늘 개구쟁이 사내 녀석 둘을 손에 잡고 그 며느님이 나를 찾아왔다. 암으로 2년을 투병하던 남편을 잃고 49제까지 마치 고 올라오니 지독한 몸살이 났었더란다. 초저녁에 일찌감치 약을 먹 고 자리에 누워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 개구쟁이 녀석들이 엄마 휴대 폰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전화벨을 무음으로 만들어놓는 바람에 전화를 못 받았다고 한다. 시어른들이 그 차림새로 찾아오신 걸 보고서야 놀라서 확인해보니 그랬다고. 음료수 한 박스와 오만 원이 든 봉투를 내민다. 시어르신 들이 꼭 찾아뵈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내려가셨단다. 꼬마 녀석들을 불러 이건 아줌마가 주는 거니까 사이좋게 저축하고 맛있는 것도 사먹으렴 하고 그 봉투를 돌려주었다. 봄이 오려는지 콧속으로 들어오는 바람 속에서 상큼한 내음이 느 껴진다. 남편을 졸지에 잃은 아픈 며느리가 안쓰러워 그 늦은 시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밤길을 헤매고 다녔던 연로하신 두 어르신에 게도 이 봄이 따뜻하고 온화했으면 좋겠다. 가장을 잃은 젊은 며느 님과 개구쟁이 두 녀석에게도 이 봄은 온전한 희망이 되었으면 좋 겠다.

20 이달의 편지 Letter 8 돈세탁 김상철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율하리 며 칭찬이 자자하다. 옷차림은 물론 친절하다며 거스름돈을 안 받아 가는 승객도 더러 있다. 그리고 배움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4년제 대 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학했다. 일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류 택시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하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중 요한 것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 충실할 때, 사회는 밝고 활기차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 지역은 농촌이 발전되어 도시화가 되었기 때문에 택시 승강장 에 대기하는 차들이 많다. 거리에서 승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이다. 그리고 콜문화가 발달되어 집에서 호출하여 택시를 타는 분들 돈 세탁 하면 정치가들이나 가진 자들이 부정이나 세금 탈루를 위해 돈을 감추거나 숨기기 위해 진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 러나 내가 하는 돈세탁은 앞에서 말한 것과 차원이 다른 돈세탁이다. 나는 중소도시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개인택시 운전사다. 항시 아 침에 출근하기 전에 면도를 하고 찬물에 샤워를 하고 아침밥을 꼭 챙 겨 먹는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찬물에 샤워를 하는 것은 마음을 다잡 기 위한 것이며 아침밥을 꼭 챙겨 먹는 것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 이다. 그리고 여름을 제외하고는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맨다. 그것은 개인택시를 받고 8년 동안 해오는 나의 경영 마인드다. 일반 넥타이 를 매기도 하지만 주로 나비넥타이를 맨다. 동료들 인사가 김 형, 또 는 김 사장, 김 아무개 오늘 결혼식에 가냐 고 묻곤 한다. 자주 보는 동료들은 내 스타일을 알기 때문에 묻지 않는다. 손님들도 깔끔하다

21 이달의 편지 이 많다. 가스 값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기하는 시간 에 음악을 듣거나 라디오 방송을 듣기도 하고 책이나 신문을 보기도 하지만 나는 짬나는 대로 돈세탁을 한다. 차에는 늘 투명 테이프와 물티슈가 비치되어 있다. 찢어진 돈은 바르게 펴서 테이프로 바르고, 구겨진 돈은 물티슈로 문질러 펴서 한동안 책 속에 넣어두었다가 꺼 내면 쭈글쭈글 하던 것이 쫙 펴진다. 간혹 책 속에 넣어놓고 잊고 있 다가 책을 보다가 돈을 발견하면 새삼스럽고 공돈처럼 쓰기도 한다. 집에서 나올 때는 잔돈을 항시 준비해 나온다. 그래도 잔돈이 모자 라 허둥댈 때가 많다. 아침에 첫 승객을 태울 때면 현진건의 소설 운 수 좋은 날 이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무사고와 행운을 빈다. 돈을 깨끗하게 취급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도 우러러 보 이고 돈을 함부로 구기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얕게 보이곤 한다. 취급부주의로 1년에 손실되는 돈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 돈을 다시 찍는데도 막대한 경비가 소요된다고 한다. 가끔 청소년들이나 심지어 어른들도 돈을 입에 물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승객에게 호 되게 질책을 하곤 한다. 돈은 여러 사람이 만지기 때문에 나쁜 균이 많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들어가서 손을 씻어보면 땟국이 시커멓게 나오 곤 한다. 돈 외에는 만지는 것이 없기 때문에 돈에 이물질이나 때가 많이 묻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꼭 일기를 쓰곤 한다. 돈은 소중한 것이지만 더럽다. 입에 물면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다. 돈을 만지면 손을 씻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건강을 지 키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택시 운행을 하는 날까지 나는 짬나는 대 로 돈세탁을 할 것이다. 사소하지만 그것 또한 애국의 길이 아닐까? 제 Letter 9 질투의 화신 정승영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조카 시후는 올해 다섯 살이에요. 시후에게는 연년생 여동생 시아가 있어요. 시후는 시아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가족의 사 랑을 혼자 독차지하다가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 사랑이 둘로 나눠지 니 그게 싫었나봅니다. 사람들 안 보이는데서 몰래 동생 머리카락 잡아끄는 건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이구요. 지나가다 애를 밀치기도 하는데, 애가 울라치면 이 녀석이 더 크게 울어서 어른들이 상황 판 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거죠. 어느 날 언니가 시댁에 급한 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집에 혼자 있 는 제게 조카 둘을 맡긴 적이 있어요. 저는 단 하루지만 이 녀석의 모난 행동들을 알고 있기에 이번 기회에 버릇을 확 고치자 맘먹었 죠. 시아가 혼자서 퍼즐을 갖고 놀기에 시후를 불렀어요. 시후야, 이모가 궁금한 거 있는데, 우리 시후 다음에 뭐 될 거야?

22 이달의 편지 녀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굳은 얼굴로 대답합니다. 몬스터 될 거야. 뭐? 너 몬스터가 뭔 줄 알고,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아빠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어. 근데 왜 그게 되고 싶어? 시아 혼내줄 거야.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할 거야. 우리 집의 첫 손주이자 첫 조카인 시후의 장래희망이 오직 동생이 미워 괴물이 되는 거라네요.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왔어요. 잠시 후 시아가 배가 고픈지 맘마, 맘마 하며 제게 오는 거예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배고파요? 이모가 얼른 해줄게요 하면서 시아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데, 갑 자기 그 모습을 본 시후가 대성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러워 쳐다만 보고 있는데, 그때 언니에게 연락이 왔어요. 시후 울고 있네? 갑자기 왜 그런지 모르겠어. 시아가 배고프다고 해서 얼른 해준 다고 말만 했는데. 너 혹시 시아에게 조금이라도 스킨십 했어? 머리 쓰다듬어주기만 했는데, 왜? 야, 빨리 시아한테 한 것처럼 시후 머리 쓰다듬어줘. 안 그러면 울음 안 그쳐. 그리고 오늘 저녁에 형부랑 영화 보고 애들 데리러 갈 테니까 좀 늦을 거야. 애들 씻기고 재워주라. 알았지? 전화를 끊고 나서 언니 말대로 얼른 시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더 니 기막히게도 시후는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을 그치고 씩 하고 웃는 거예요. 시후에게 물었어요. 너 왜 울었어? 이모가 시아 이뻐하잖아. 이모는 시후도 이뻐하지. 아니야. 아까 시아만 이뻐했잖아. 어린 애들 앞에서는 물도 맘대로 못 마신다더니 딱 그거였죠. 점심을 먹이고 애들 낮잠을 재운 후 집안일을 하고 저녁 준비 때문 에 집 근처 마트에 갔다 오려고 지갑을 드는데, 그 순간 시아가 깨는 거예요. 그래서 대충 겉옷만 입히고 현관에서 시아 신을 신기고 있 던 찰나, 작은 방에 자고 있던 시후가 잠이 깨서 저와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시후는 또 다시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화나 있 는 시후에게 가서는 시후야, 이모랑 시아랑 같이 마트 가자. 아이 스크림 사 줄게 했는데 그래도 시후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어요. 이모가 어떻게 해줄까? 시아는 집에 있고 시후하고만 가. 뭐? 시아 싫어. 시후만 갈 거야. 안 된다고 해도 시후는 자기 고집만 내세우며 자지러질듯 울기만 했고 저는 이러다 남의 집 귀한 자식 잘못될까봐 결국에는 옆집 아줌 마에게 시아를 맡기고 시후만 데리고 마트에 갔야만 했어요. 시아를 떨궈 놓고 마트 온 게 세상을 얻은 것 마냥 기분 좋은 일인지 시후는 미소천사의 모습을 보이며 마트 아줌마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집 에 왔는데, 옆집에서 시아를 데리고 온 순간부터 이 녀석의 얼굴은 또 싸늘해지기 시작했어요. 동생 옆집에 줘 버릴까? 응.

23 이달의 편지 제 물음이 끝나고 1초도 안돼 자동으로 대답이 나오더군요. 저녁에는 부모님이 오셔서 아이 둘을 하나씩 맡으셨고 저는 저녁 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시아가 울기 시작했어요. 왜 무슨 일이야? 아빠가 시아를 안고 있으니까 샘이 나서 그런지 애기 머리를 막 당기는 거야. 저는 준비를 하다 말고 그 말에 화가 나 시후를 불러 앉혀서는 엉 덩이를 때렸죠. 동생한테 그러면 돼? 다섯 살이나 먹은 게 언제까지 그럴래, 응? 할아버지 미워! 이모 미워! 하더니 작은 방 이불 속에 들어가 울 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녀석 때문에 언니가 힘들겠다 생각하니 화가 더 치밀어 올랐고 저녁을 굶겨 버렸는데, 시아 목욕시키고 9시 가 넘어가자 걱정이 좀 되더군요. 이불 속에 그대로 누워 있는 시후 의 이불을 들추니 시후가 눈을 뜨고 있는 거예요. 너, 안 잤어? 응. 배 안고파? 고파. 이모가 밥 줄 테니까 나가자. 시후는 제 말을 듣고 순순히 나오더군요. 그런데 TV를 보며 앉아 있는 시아를 보더니 나 밥 안 먹을래 하는 거예요. 왜? 밥 먹기 싫어졌어. 시아 들어가서 자라고 할까? 응. 그러면 밥 먹을 거야? 응, 먹을 거야. 부모님은 이런 시후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어요. 밥을 먹이기 위해 서 어쩔 수 없이 시아를 다른 방에 보내고 겨우 밥을 먹였어요. 밥 먹인 후 양치시키고 10분 정도 쉬었다가 시후 목욕을 시키고 있는 데, 언니 부부가 아이를 데리러 집에 왔어요. 시후 옷을 입히고 시아 를 데리러 방에 들어가는데 시아가 잠에 푹 빠져 있어서 저는 언니에 게 시아, 내가 내일 잠 깨면 데려다 줄게. 오늘 여기서 재워 했죠. 그럴까? 그런데 갑자기 시후가 한마디 하더군요. 나 안 갈래? 왜? 시아도 있잖아. 저는 그래도 남매는 남맨가 보다 생각하며 뿌듯해하고 있는데, 언 니가 시후의 엉덩이를 때리는 거였어요. 언니, 왜 그래? 지 동생 안 간다니까 지도 안 간다잖아. 얼마나 예뻐? 예쁘긴 뭐가 예뻐? 얘가 왜 안 가려고 하는지 알아? 같이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시아 혼자 있으면 혼자서 좋은 거 먹고 예쁘다는 소리 듣게 될까 봐 그게 싫어서 그러는 거야. 얼마나 어이없던지요. 동생을 경쟁 상대자로 생각한 우리 시후. 아직은 어리지만, 좀 더 크면 사이좋은 남매로 잘 자라겠죠!

24 이달의 편지 Letter 10 은정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지킬 거야 신은정 경상북도 경주시 초당길 년 봄, 나는 집안 사정상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여상을 졸업하여 작은 제조업체에 경리 로 입사했다. 한 달 후쯤, 머리에 컬러 무스를 떡칠하고 힙합바지를 입고 휴대폰에 자가용까지, 그야말로 오렌지족 같은 날라리 청년이 시골에 있는 우리 회사에 들어왔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병역 특례업체인 우리 회사에 온 것이었다. 그때 우리 나이 스무 살, 그렇 게 우리 인연은 시작되었다. 몇 주가 지나, 오렌지족 같았던 그가 사무실 여직원 네 명 중 나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회사에 돌았다. 나 역시 멋 부리는 걸 좋아했고, 어린 나이라 멋있는 겉모습에 자가용도 있는 그가 싫지 않았다. 어느 날, 우린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 남자랑 약속 을 한 것이었다. 궁금하고 떨려 잠도 설쳤다. 그런데 그렇게 멋있고 건방져보이던 남자가 커피숍에서 처음 만나자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손을 부르르 떠는 숙맥이었다. 나는 그가 부잣집 아들인 줄 알 고 기대를 했는데 그냥 보통 가정의 1남 5녀 중 외동아들이었고, 자 가용도 출퇴근거리가 너무 멀어 부모님이 무리해서 사주셨단다. 그 는 매우 깔끔한 성격이었으며 멋 부리는 것은 자기 스타일일 뿐이 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외동아들 같지 않은 의젓함, 착하고 여린 마 음, 남에 대한 배려, 성실함에 끌렸다. 그렇게 우리는 연애라는 걸 하게 되었다. 주말이 기다려지고 눈 오 는 날도 기다려지는 꿈같은 1년이 흘렀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는 이벤트의 왕자였다. 만난 지 1주년 이벤트를 나에게 드라마처럼 해 주었다. 그러나 1주년 이벤트의 감동이 가시기도 전에 나는 퇴근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차가 인도를 덮쳐, 나는 골반이 부서지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정신이 들었을 땐 경주가 아닌 대구였다. 경주병 원에서 힘들 것 같다고 해서 대구로 옮겼던 것이다. 정신이 들자 온 몸 신경을 타고 오는 아픔, 뼈를 깎는 고통에 그냥 죽여 달라 고 소 리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겨우 떠지는 한쪽 눈으 로 대성통곡하면서 떨리는 손으로 피범벅이 된 딸의 다리를 잡고 있 는 어머니, 아버지가 보였다. 엑스레이 촬영 내내 부러진 뼈가 살갗 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그 꽃다운 나이에 일 년이란 긴 시간 동안의 병원 생활에 들어갔 다. 감기로 병원 한 번 안간 내가 9시간의 대수술을 비롯해 세 번의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날 때마다 받아들이기 힘들게 늘어난 수술 자국들, 누워서 보는 대소변, 움직일 수 없는 다리, 스물한 살의 아 가씨가 겪기엔 너무도 수치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날이면

25 이달의 편지 날마다 울부짖었다. 수술 흔적이 너무도 커서 매끄러워야 할 내 엉 덩이와 다리는 울퉁불퉁 흉하게 변했고, 그후로 지금껏 대중목욕탕 에 가본 적이 없다. 나를 다시 일으키려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은 지극했다. 그리 고 또 다른 나를 향한 사랑! 당시 그와의 사랑이 없었으면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그가 대구로 왔을 때, 나는 수술 중이었고 그는 보호자 대기실에서 처음 부모님과 대 면했단다. 요즘 아이돌 가수 같은 옷차림이 부모님에게 매우 인상적 이었단다. 수술 후 깨어나는 것도 못 보고 그는 출근 때문에 경주로 다시 갔 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 후, 통증으로 땀범벅이 된 나에게 부리나케 왔다. 왼쪽 눈도 심하게 다쳐 뜰 수 없어서 오른쪽 눈을 겨우 떠서 보니, 나에게 책 같은 걸 내밀었다. 다시 보니 자물쇠가 달린 일기장 이었다. 첫 장에 쓰인 그의 글귀는 평생 잊을 수 없는데, 1년의 병원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했던 생명수와 같았다. 눈 뜨면 찾아오는 고통 을 잊으려고 그 일기장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 글귀를 하루에 수 천 번도 더 읽고, 희미하게 보이는 한쪽 눈으로 일기장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는 경주에서 대구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다. 나 역시 그가 올 시간이 되면 비록 고개를 들 수는 없었지만 병실 문소리에 온통 신경이 쏠렸다. 그를 기다리는 설렘과 옆에 있을 때 느끼는 사랑의 힘으로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변함 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나이에 주위에 유혹도 많았을 텐 데 주말만 되면 대구 병원에 왔다는 사실이 정말 존경스럽다. 그가 오면 침대를 밀고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어주고, 맛있는 것도 먹으 며 주말을 보냈다. 날이 갈수록 엄마도 착하고 듬직하고 자상한 그 를 많이 좋아하셨다. 나 역시 피나는 재활운동으로 다리도 남들보다 빨리 굽혀졌으며, 석 달이 흐른 후에는 앉을 수도 있게 되었다. 휠체어를 탈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땐 주말이 더더욱 기다려졌다. 그는 나를 휠체어에 태워 병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사람 욕심이 누워만 있을 땐 등이라도 돌리고 싶고, 등을 돌리니 앉고 싶고, 앉으니 서고 싶고, 서고 나니 걷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걷는 것에는 확답을 못했다. 골반을 다치면서 신경이 너무 많이 손 상됐다고 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꾸준한 재활운동에 물리치료 를 받으면서 목발도 짚게 되었고, 다리에 힘도 들어가게 되었다. 처 음 다시 일어섰을 때 피가 아래로 쏟아지는 느낌은 정말 큰 기쁨이었 고, 그 황홀함은 잊을 수가 없다.

26 이달의 편지 그렇게 일 년을 병원에서 나를 지켜준 그가 지금의 나의 신랑이다. 그가 외동이라는 현실에 퇴원 후 산부인과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 임신도 가능하고, 핀이 골반을 고정하고 있어서 제왕절개로 출산하 면 된다고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 어느덧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해, 눈 깜짝할 사이 에 이십 년이 흘러버렸다. 나는 고1, 초등 6학년 두 아들을 둔 평범 한 중년이 되어 있다. 지금은 예민한 사람만이 내가 약간 저는 걸 알 아챈다. 평범한 지금의 현실이 가장 행복하다는 걸 망각하고 욕심을 낼 때, 나는 내 자신을 채찍질하기 위해 옷장 깊숙이 넣어둔 신랑이 준 일기 장을 넘겨본다. 결혼하고 애기 낳고 현실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그때 의 고마움을 잊고 자꾸 더 많은 걸 요구하게 된다. 나는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성격이라 목숨처럼 소중한 신랑에 대한 고마움을 한번도 진지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요즘의 가벼운 인스턴트 사랑을 보면, 쇳덩이보다 단단하고 무거웠던 신랑의 사랑에 다시 한번 놀라며 감 사하다. 작년부터 신랑이 운전 일을 하게 되더니 여성시대 얘기를 자주 한 다. 비록 지금도 여름이면 흉터가 부끄러워 긴 바지를 입고 다니지 만, 이렇게라도 나를 버티게 해준 세상에 하나뿐인 내 남자에게 더 늦기 전에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다. 당신은 지금도 라디오를 들으며 일하고 있겠네. 기억나지? 그때 일기장에 써준 은정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너의 곁에서 너를 지킬 거 야 이 글처럼 지금껏 변함없이 지켜주는 당신! 정말 고맙고 또 고맙 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당신이 준 목숨 같은 사랑, 앞으로 하 나하나 갚으면서 살게. 사랑해! 1994 Letter 11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 문광만 경기도 시흥시 거모동 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이 되어 반도체장비 회사에 입사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았습니다. 큰 것도 바라지 않았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삶 속에서 충분히 만족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1996년 느닷없이 찾아온 원인 모를 병으로 실명을 하게 되 고 그렇게도 정들었던 회사를 그해 6월에 떠나게 되었습니다. 보이 던 삶에서 시각장애인의 삶으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3년간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웠던 시절도 있었고 아내를 만나 가게를 하면 서 즐거웠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게를 그만두면서, 저의 삶은 역시 시각장애인으로서 쉽지는 않았습니다. 안 보이니 결국 집 만 지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 아내를 생 각하면 너무나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27 이달의 편지 그러는 과정에서 점자를 배워 맹학교를 다녔고 컴퓨터를 배워 대 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안 보이지만 공 부를 해서 나도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동기부여가 저를 채찍질했습니다. 어려움 속에 맹학교 2년과 대학원 2년 반의 공부를 마쳤지만 시각 장애인으로서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다는 사실 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았지만 결 국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 저를 서럽게 눈물 흘리게 할 때도 많았 습니다. 그러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기회는 찾아온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공부해서 컴퓨터 자격증과 점역교정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물론, 취업의 성공에까지 도달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4월 1일부터 사회복지사로 당당하게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꿈꾸었던 게 현실이 되어 저의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출근이 결정되고 아내와 통화를 하면서 저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니, 참지 않았습 니다. 이럴 때는 흘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아내도 너무 기뻐서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고생하는 아내에게 이젠 짐을 좀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비록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이지만 가장으로서 또 당당한 사회구성원 으로서 다른 사람들처럼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저를 행 복하게 합니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재활의 과정에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도 함께 기뻐하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십니다. 이분들께 보답하 는 길은 이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저는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좋아했 습니다. 그땐 젊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첫 출근하는 날에도 다시 빨간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40대 중반을 넘었는데 아내가 주책이라고 그러지는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4월은 저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달 그리고 새 삶을 얻는 아주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장애는 좌절이 아 닙니다. 노력하고 극복하면 충분히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

28 이달의 편지 중 Letter 12 생일 잔치 풍속도 김문정 경기도 용인시 신봉로 학교 2학년인 아들이 생일을 맞았습니다. 저는 여태껏 아들 의 생일을 단 한번도 잊지 않고 챙겨주었고 올해도 그럴 생각 이었습니다. 간단히 수수팥떡을 맞추고 미역국을 끓여 아들이 좋아 하는 불고기와 함께 생일상을 차릴 참이었지요. 그런데 아들이 생일 며칠 전쯤 제게 그러더군요. 엄마, 올해 생일은 친구들과 보내고 싶은데. 친구들? 그날 친구들 다 학원 가서 바쁘잖아? 제가 물으니 아들 녀석은 머뭇머뭇거리면서 그래도 토요일이니 까 친구들끼리 할 게요 라는 것입니다. 그래? 좋아. 그럼, 네가 좋 아하는 불고기랑 떡볶이, 치킨도 있어야겠고 라며 계획을 세우는 데 아니요. 집으로 초대하는 게 아니라 밖에서 할 거에요 라는 것 입니다. 아들의 말은 토요일에 친구들끼리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놀고 싶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돈 15만 원만 달라는 것입니다. 저는 서운 하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해서 얼굴을 붉히며 뭐? 15만 원? 무슨 생일잔치를 하는데 15만 원씩이나 들어? 라고 따졌습니다. 아들은 그 돈을 다 쓸 것이 아니고 남으면 다시 갖고 오겠다며 갖은 아양을 떨었습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편이 그냥 15만 원 줘. 중학생 이나 됐는데, 친구들이랑 놀고 싶겠지. 아이 편을 드는 참에 저는 할 수 없이 지갑에서 15만 원을 꺼내 아들 손에 쥐어주고 말았습니 다. 그런데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것입니다. 내 배 아파 힘들게 낳았는데 가족들은 다 팽개치고 친구들끼리만 논다고? 저는 속이 상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 그렇게 생일 치르 는 게 요즘 중학생들 문화인가 보다 싶어 제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 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아들 녀석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 도 생일이고 하니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을 끓이고 떡을 찾아와 상 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비슷하게 일어난 아들 녀석이 제 눈도 마주 칠 새 없이 후다닥 뛰어나가며 엄마, 생일잔치 하고 올 게요 하며 쌩하니 나가버리는 것입니다. 저는 화가 날대로 나서 생일이고 뭐고 힘들게 차린 상을 뒤집어엎 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아들은 중2. 네, 공산당도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극도의 시기인 중2입니다. 남편은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는 달라. 이제 중2면 애도 아니고, 성인 대접해줘야 해 라며 제 게 누누이 말해 왔지만 제 눈에는 철없고 버르장머리 없는 애송이로

29 이달의 편지 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 녀석, 어디 들어오기만 해봐라! 저는 단단히 벼르며 아들 녀석이 생일잔치를 끝내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땀범벅이 되어 들어온 아들 녀석의 귀를 잡아당겨 제 앞에 무릎을 꿇어 앉혀놓았습 니다. 돈 15만 원으로 우선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니 아들은 우선 피 자와 치킨집에 가서 내가 음식을 사고, 그 다음에는 일명 방방이라 불리는 트램펄린을 하며 한 시간쯤 뛰고, 그 다음으로 PC방에 가서 게임하고, 그 다음에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고 놀았어요. 저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 많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생일 파티 한다고 간 곳이 겨우 치킨집, 방방이, PC방, 노래방이라니 사방이 막힌 방 아니면 가게들이었습니다. 저는 순간, 제 아이를 비 롯한 다른 청소년들이 한없이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돈 없는 애들은 생일잔치도 못하겠구나? 제 말에 아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셈이지요 라는 것입 니다. 그렇게 생일을 보내니 좋더냐고 물으니 아들은 신나긴 했지만 그 저 돈을 흥청망청 쓴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걸 느꼈으면 됐 다면서 아들 보고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현관 쪽으로 가더니 신발장에 숨겨놨던 장미꽃 한 송이를 제게 주며 엄마,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내년부터는 가족들과 생일 같이 보내요. 친구들끼리 보내니까 신나긴 한데 뭔가 추억에 남을 만한 것도 없고,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좀 그렇더라고 요 하는 겁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아들의 꽃 한 송이와 말 한마디에 저의 화는 눈 녹듯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찜찜한 마음이 계속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 때와는 달리 꽉 막힌 답답한 방 들밖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도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산과 강을 뛰어다니며 체력을 기르고 우정을 쌓고 할 나이에 온갖 방에 갇혀 공부하랴, 숙제하랴, 그나마 논다는 것도 돈을 내가며 PC 방이며 노래방밖에 갈 곳이 없다는 게 한편으론 참으로 안타깝고 불 쌍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아예 처음부터 친구를 사귀지 않는 아이도 있다고 하더군요. 친구를 사귀면 그만큼 돈들 곳도 많 고 돈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때와는 참 많이 다르더군요. 가난한 친구가 생일이라고 하면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반으로 툭 잘라 나누며 생일, 축하해! 라고 축하를 해줬고, 좀 잘 사는 집 애들의 생일잔치도 그 집 엄마가 정성 껏 차린 간단한 간식이 다였는데, 요즘 생일잔치는 정말 돈 없으면 안 되는 유흥거리들로만 꽉 차 있어 참으로 씁쓸할 뿐입니다. 먼 훗날, 아들의 기억 속에 중2 생일날, 친구들과 방에 갇혀 온갖 게임과 노래들을 정신없이 불렀지 라는 기억보다 중2 생일날, 가족 들과 함께 동네 길가에 피어 있던 아름다운 벚꽃 길을 함께 걸었지. 참 아름다웠는데 라는 추억 하나 만들어 주기 위해 남편 들어오면 아들 녀석 데리고 동네 어귀에라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 습니다.

30 이달의 편지 저 Letter 13 응답하라, 할아버지의 가족들 최희원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 삼문리 는 경상남도 김해에 사는 여고생입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들이 제일 바쁘다는 것은 두 분도 잘 알고 계시겠죠? 그럼에 도 모자라는 시간을 쪼개서 제가 이렇게 펜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 는 지난 토요일에 일어난 엄청난 사건, 텔레비전에서만 봐 왔던 일 이 내 이웃에서도 일어났다는 겁니다. 홀로 사시던 할아버지 고독사 한 달만에 발견되다. 이런 얘기를 다들 기사로 종종 들어서 잘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저희 엄마는 겉모습과는 달리 항상 가족의 건강만을 바라고 그 바 람이 자신의 행복이라며 매일 절을 다니는 자칭 타칭 현모양처이십 니다. 그렇게 엄마는 매일 절을 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 중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를 알게 되셨습니다. 그 분은 어떤 딱한 사 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부인과 세 명의 딸이 있음에도 혼자 외 로이 살아가시는 모습이 퍽 안타깝다며 엄마는 할아버지께 음식을 자주 싸다 주시곤 했습니다. 근래 들어 엄마가 집안사정으로 절 방문이 뜸해져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뵌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조금 지나버렸습니다. 엄마가 다시 절을 찾았을 때, 할아버지 안부를 물으니 요즘 거의 오지 않던 분이 며칠 전에 오셔서는 많이 아프다고 하며, 곧 죽을 것 같다 는 말만 남기고 가셨다는 얘기를 다른 신도 분께 전해 들었답니다. 엄마는 그 얘기를 듣고 오셔서는 하루에 한두 번씩 그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봤지만 신호음만 갈뿐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 다. 평소 저랑 엄마는 TV 프로그램에서 119 대원들이 사람들을 구급 하고 도와주던 모습을 많이 봐왔습니다. TV에서는 노인 고독사 에 대한 내용도 여러 번 방영했는데 엄마는 평소 건강이 나빴던 할아버 지가 혹여 나쁜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을 하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그럴 리가 있겠냐며 웃어 넘겼지만 엄마는 바리바리 죽과 반찬들을 싸서 나갈 준비를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엄마 가 괜히 오버하는 거라며 옆에서 잔소리를 했습니다. 엄마랑 아빠가 오후 3시 조금 넘어 길을 나섰고, 저는 부모님이 안 계신 틈을 타서 소파에 앉아서 빈둥빈둥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엄 마 아빠가 나가신 후 3~40분이 지났을까 도로에서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렸고 119 구급차가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엄마는 한참이 지나 오후 7시가 돼 서야 저녁은 너 혼자 먹으라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 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안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한참이 지나 밤 11시가 훨씬 넘어 엄마 아빠의 무거 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현관문이 열렸습니다.

31 이달의 편지 이야기를 들어본즉, 엄마가 할아버지 댁 문 앞에 섰을 때는 TV 소 리는 크게 울렸으나 초인종을 아무리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할아버 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리실에 찾아가서도 도움 을 구해봤으나 별 소득 없었고 마침내 119에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몇 분이 지나 119 대원들과 경찰관들이 도착하여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는 눈에 초점이 없었으며 몸은 미라 같이 말라 서 뼈만 앙상한 채 어디에 부딪쳤는지 눈 주위가 피멍이 들어있고, 혼자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구급대원들이 할아버지를 근처 병원으로 이송해서 검사해본 결과 하루 이틀만 늦었어도 영양실조와 뇌경색이 겹쳐 사망의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며, 정밀검사를 위해 다른 지역 종합병원으로 가 검사를 받아야 된다며 할아버지를 옮겨 보냈습니다. 정밀검사를 하기 위해 옮긴 종합병원이건만 정작 보호자가 없어 중요한 검사는 하지도 못 했답니다. 우리 엄마와 아빠는 보호자가 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애 가 탄 엄마는 할아버지의 가족들에게 긴급히 전화를 하고 문자를 해 보아도 전화를 받지 않더랍니다. 보호자들이 외면하고 나타나질 않 으니, 우리 엄마 아빠가 손쓸 방법이 전혀 없어 정말 화가 나고 분노 가 치밀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할아버지가 무슨 나쁜 짓을 해서 위급 하다는 연락을 받았어도 가족들이 외면할 지 궁금했습니다. 오늘 일 어난 일들을 되뇌이며 속상해하고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래도 할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우리 엄마를 만 나게 되신 걸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엄마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를 도울 수 없는 평범한 전업주부로서의 현실과 독거노인의 실태, 그리고 천륜을 져버리려는 할아버지 가족들 모든 것이 원망스럽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를 안전히 집에 모셔드리고 난 후에도 엄마는 걱정을 달고 사십니다. 오늘 할아버지를 찾아간 게 올바른 일이였을까? 한 달 수 입이라고는 연금 24만 원인 할아버지가 하루 병원비만으로 6~70만 을 지출하셨으니, 괜히 오지랖 넓은 본인 때문에 돈을 너무 많이 쓰 신 게 아닌지. 밤새도록 죄책감에 젖어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신 채 오늘도 할아버지가 기운 차릴 수 있도록 녹두죽이 좋다고 냄비 한가득 끓여 할아버지를 뵈러 가셨습니다. 엄마께선 자기의 오지랖을 자책하셨지만 저는 엄마의 오지랖 덕에 할아버지가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죽 냄비 들고 나가시는 엄 마의 뒷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존경스럽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저희 엄마의 오지랖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여성시대 가족분들 저희 엄마가 잘한 거라고, 주위에 어려운 사람 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지금처럼 계속 오지랖을 넓히라고, 칭찬 많이많이 해주세요. 그리고 엄마의 오지랖 덕에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옆에서 힘들어 하는 엄마를 위해서 운전기사를 자처하시는 우리 아빠 최 기사께도 힘내시라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 혹시 이 글이 방송이 된다면, 할아버지의 가족들이 꼭 들었 으면 합니다. 요 근래 반려동물이라고 하여 짐승도 가족이니 식구니 하는 마당에 아무리 남들이 모르는 가족의 속사정이 있다고 하더라 도 가족이라면 그 아픔과 고통, 슬픔, 기쁨 등을 같이 맞아줄 수 있 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이니까 그리고 내 아버지니까요.

32 이달의 편지 Letter 14 25년 차 우정 사진 사는 친구들은 새벽에 출발해 와야 했습니다. 드디어 그날이 되었습니다. 모두들 멋을 내고 미장원에 들려 힘을 준 친구들 모습에 절로 웃음보가 터졌답니다. 7명이나 되니 그동안 사연 없는 친구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삶이 그런 것 같습니다. 웃을 일도 있다가 슬프고 힘겨워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시겠 지 하고 체념하며 살다보면, 또 다시 잊혀짐이 반복되지요.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펜션에 마련된 스튜디오는 그야말로 아수 라장이 되었습니다. 40대 후반의 아줌마들 몸매가 어떻겠습니까? 김순애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여월동 7 명의 여고 동창생과 3월 14일과 15일 가평으로 1박 2일 우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졸업 후 모임 결성 한 지 25주년이 되는 행사였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 고 특별히 즐거울 일도 특별히 슬플 일도 없는 무의미한 일상에서 벗 어나자는 주제를 가지고 머리 맞대고 계획한 일이었습니다. 첫째, 드레스 입기(7명 모두) 둘째, 단체복 주문해서 똑같이 입기 셋째, 무조건 살 빼기 넷째, 미용실 들러서 예쁘게 머리하고 화장하기 등 회장인 홍순화의 주문은 하나 하나 추가되었고 그 과정이 유치하 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일단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휴가를 내야 했고, 포항이며 대구에

33 64 65 상상이 가시지요? 준비된 드레스가 맞지 않아서 끈으로 동동 동여 매기도 하고 옆구리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서로의 모습에 웃음이 끊 이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기사님의 셔터 소리가 우리의 흥을 더 돋 우는 듯했습니다. 미혼이라 유일하게 드레스를 못 입어본 친구가 개인 촬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머지 6명 모두 입을 모아 더 찍어달라고, 그 친구는 처 음 드레스 입어보는 거라고 합창을 했지요. 2년 전에 유방암 수술로 머리가 까까머리였는데 이젠 많이 자라서 컷트 머리형까지 된 친구 도 있어, 오늘 이 시간 속에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음이 더 감사했습 니다. 스튜디오 촬영이 끝나고 야외촬영까지 모두 마치는 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하루종이 많이 웃었습니다. 일상에 쫓기어 사는 우리 40대 아줌마들! 지금은 사진을 보면 쑥 스럽지만, 사진이라는 결과물보다도 그 과정이 즐거워서 몇 개월 동 안 웃을 일을 1박 2일 여행기간 동안 모두 웃었고, 돌아와서 일상생 활에 젖어도 행복하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아한 변신도 꿈꿔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 인생은 행복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으니까요. 언제나 변함없는 우정으로 옆에 함께해 주는 우리 징검다리 친구들 6명, 정순, 영숙, 상미, 은희, 현옥, 순화, 모두 모두 사랑한다고 외쳐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칠십 노인이 되었을 때도 이런 이벤트로 우리를 즐겁게 해줄 회장 홍순화에게 앞으로도 건강을 최우선으로 챙기면서 살아가자고, 항 암 치료, 방사선 치료 모두 끝내고 재발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 자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쑥스럽지만 사진 몇 컷트 올려봅니다. 보시고 크게 웃어주세요. 여성시대는 그대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여성시대 가족이 보내주신 문자와 미니메시지입니다. 서효정 아들, 딸들아, 어른이 되어 못 지켜줘서 미안해! 아이들 사진을 보니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한창 좋을 나이에 금덩이와도 바꿀 수 없는 아이들 이 갔습니다. 황정숙 세월호 사고를 보고 우리가 얼마나 안전불감증에 걸려있나 생각했 어요. 기적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을 저도 달았습니다. 곽은경 어떤 학생 시신은 손톱이 없거나 부러졌다고 합니다. 문을 열고 빠 져 나오려고 애를 써서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것을 본 부모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 나요. 김동안 인천에서 충주로 납품가는 중인데 고속도로 북수원쪽에서 안산 단 원고 학생 운구차량 석 대가 지나가네요. 앞에 경찰차가 호위하구요. 학생운구 차량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지네요. 부디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드립니다.

34 66 67 김종현 대한민국이 실망스럽고 싫어지지만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 아이들 이 살아가야 하는 곳이니 우리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장인규 성직자, 교육자, 정치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들었습니 다. 하늘이 내린 천직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모두들 자기 위치에서 제 일을 잘했다면 이런 참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을. 김동진 저는 아빠이고, 어느 회사의 일원이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모두 들 제자리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안전과 관련되는 업무를 맡으 신 분들,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원칙을 지키는 아빠들이 되어 야 합니다.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된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 지 않을 겁니다. 김영배 우리 5천만 명이 다 죄인입니다. 이번 사고는 절대 잊지 말고 죽을 때까지 생각하면서 마음에 새깁시다. 이동열 여기는 블라디보스톡입니다. 러시아 현지직원들이 왜 선장이 먼저 나왔냐고 저에게 물어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도저히 용서를 할 수 없다 고 합니다. 뭐라고 얘기할까요? 저는 고개만 숙입니다. 조재현 아이들 아침밥을 챙겨주고 학교에 바래다주는 모든 것이 이렇게 죄 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고 숨 쉬고 있고 밥을 먹고 있음이 죄스러워요. 공자님은 효가 몸을 다치지 않는 거라고 하셨는데,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을 모 두 불효자를 만든 우리 모두가 너무나 중죄인입니다. 잔인한 봄날입니다 내 새끼들아! 아까바서 미치겠다. 얼마나 춥고 무섭고 집이 그립고 엄마 아빠가 보고 싶었겠노. 얼굴도 모르지만 진짜 보고 싶다. 진짜 진짜 너거 가 억수로 보고 싶다. 나도 너거 만한 애들이 있는 어미라 그런지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야들아! 아깝아 죽겠다. 아까바서 못살겠다 요즘 들어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더욱더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사회 적인 정의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고를 결코 잊 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희생자가족에게 오래오래 따뜻한 손 내밀어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여러분 명복을 빕니다. 그분들께 아무것도 해 줄 수 가 없어 정말 마음이 무겁습니다. 남아 있는 가족 모두의 슬픔의 눈물을 제 마 음속에 담아 놨습니다 같은 날 제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떠났었습니다. 딸아이는 비행기로 단원고 2학생은 배로 제주 숙소에서 함께 만나야했던 일정이었다 하더군요. 지 금 제 딸아이는 요즘 잠만 잡니다. TV도 안 보고 잠만 잡니다. 방에서 나와 잠 깐씩 저게 뭐야, 저게 뭐야 울부짖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갑니다 저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작은 일에도 약속과 규칙을 잘 지키는 사 람이었는지? 나 좋을 대로 규칙을 위반하고 약속을 어긴 적이 없었는지? 처절 하게 반성합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렵니다 여기는 옷수선 집인데요. 노란색 원단을 잘라서 리본을 만들어 매직 으로 기다릴게 꼭 돌아와 라고 써서 가게 앞에 달아 놓았어요 년 전 딸아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 낸 엄마입니다. 희생자 부모님 힘내시란 말도 못 하겠네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는 세월이 흘 러도 흘러도 가슴 한 켠에 슬픔이 잠겨 있거든요. 희생자 가족 여러분 건강하십시오. 기운 내셔야 합니다. 남은 가족을 위해서요.

35 행복을 찾는 사람들 행복을 찾는 사람들 모두가 즐거운 일터를 만드는 날까지 천여 명의 직원을 둔 기업 대표가 되기까지 어언 25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최수연 대표가 지켜온 신념은 직원들과 격의 없이 지내고, 회사가 힘들 때일수록 직원들을 챙기는 것. 간단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이것이 지금의 (유)동양실업해외관광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IBK기업은행 익산중앙지점 거래고객 (유)동양실업해외관광 최수연 대표 글 김하늘 (자유기고가) 사진 윤상영 최수연 대표의 가장 큰 자산은 바 로 사람이다. 사업을 꾸려나가면서 몇 차례 마주한 기회와 위기, 그때마 다 그의 곁을 지켜준 지인들이 있었 기에 (유)동양실업해외관광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1980년대 후반, 동 양화학공업주식회사에서 운전기사 로 일하던 그에게 아웃소싱 용역 업 체를 운영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 도 그를 지켜보던 상사였다. 성실하 고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그의 모습 을 보고, 최 대표에게 사업가로서 발 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다. 자동차학과를 졸업해 운전만 하던 그가 아웃소싱 용역업을 시작한 것이 1990년.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어 힘 들게 사업체를 꾸려나가던 그는 회사 설립 6년 만에 거래하던 회사가 매각 되면서 부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직 원들을 해고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상 황이 어렵다보니 직원들의 퇴직금을 챙겨줄 형편조차 되지 않았다. 저를 지켜보던 친구가 한마디 하 더군요.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뢰라고요. 직원들에게 임금과 퇴직금을 지불하 는 것은 사업주가 반드시 지켜야할 약속이라고, 힘들 때 그 사람이 어떻

36 행복을 찾는 사람들 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훗날 그 사람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일인 운수업 매월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윷놀 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고요. 에 뛰어들었다. IMF 때 작은 운수 회 이, 림보게임, 훌라후프 돌리기, 줄넘 사를 인수하여 회사 셔틀버스 운행 기 등 다양한 종목을 선정해 게임을 일을 맡기 시작했다. 하고 우승팀 시상도 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자신의 아파트를 매각 해 직원들의 퇴직금을 모두 정산해 주었고, 그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큰 처음에는 버스 5~6대로 시작했 일 년에 두 차례 1박 2일로 중간관리 감명을 주었다. 최 대표는 무슨 일이 는데, 지금은 저희가 소유한 차량만 자 워크숍도 진행하고 있고요. 중간 있어도 책임을 다하는 사람 이라는 150여 대에 이릅니다. 전북대학교와 냈다. 동우화인켐의 1차 계열사로서 관리자가 가져야할 마인드에 대한 교 인식이 널리 퍼져, 그에게 날개를 달 군산대학교 사람들의 통근, 통학은 편광필름을 제작하고 있는 동양실업, 육을 하고, 다과회를 하며 현장에서 아주었다. 직원들과 거래처 사람들이 물론 현대중공업, OCI 등 대기업 직 여행업계에서 손 꼽히는 동양해외관 발생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리 원들의 출퇴근까지 책임지고 있어요. 광. 최 대표는 두 회사를 통합해 (유) 누기도 합니다. 매김하면서, 사업의 규모는 점차 커 여행업도 겸하고 있고요. 동양실업해외관광을 설립했다. 져나갔고 위기는 기회가 되었다. 회사 형편이 점차 좋아지자 그는 최 대표는 워크숍을 통해 하부조 이렇게 사업 규모를 넓혀나간 것이 지난 25년 동안 회사가 많이 성장 직의 이야기를 듣고 간단한 이슈들은 연매출 200억 원이라는 성과를 이뤄 했습니다. 앞으로는 사업의 규모를 키 즉시 조치할 수 있도록 지시하고 있 워나가는 것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만 다. 검토가 필요한 부분은 이벤트가 전을 기울일 계획입니다. 직원들이 마 끝난 후, 실무진과 얘기해 중 장기 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회사, 즐거운 일 대책을 논의하고 실행방안을 마련하 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고 있다. 최 대표는 (유)동양실업해외관광을 (유)동양실업해외관광은 매년 우수 즐거운 직장으로 만들기 위해 다양 사원 시상도 진행하고 있는데, 수상 한 시도를 하고 있다. 시무식 때는 각 명이 눈길을 끈다. 품질향상 우수사 사업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소통하고, 원, 현장로스개선 우수사원, 근태 우 회사 신년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수사원, 대화 우수사원 등 직원 개개 각 사업소별로 좋은 직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직원들이 회사 생활에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인의 특성과 직무에 맞추어 시상해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있다. 최 대표 말을 경청하던 IBK기업은

37 행복을 찾는 사람들 (유)동양실업해외관광 최수연 대표(왼쪽)와 IBK기업은행 익산중앙지점 양홍모 지점장(오른쪽) 행 익산중앙지점 양홍모 지점장은 최 라며 최 대표를 응원했다. 대표를 인덕과 성실함을 두루 갖춘 사업을 운영하며 맞닥뜨렸던 숱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최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대표님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 그를 믿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한 분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의 어 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많은 직원들 려움까지 두루 살핍니다. 가족을 생 의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즐거운 각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경영하면 일터 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일생의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처럼만 목표라 말하는 최수연 대표. 그의 꿈 회사를 운영한다면 (유)동양실업해외 이 이루어져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하 관광은 앞으로도 승승장구할 것 이 게 일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TIP 최수연 대표의 성공 노하우 1. 신용 : 약속을 지키는 것은 모든 일의 기본이다. 2. 투명성 : 투명하게 경영해야만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3. 소통 : 직원들과 활발히 소통해야만 내부 문제를 원활히 해결할 수 있다. (유)동양실업해외관광 대 표 최수연 주 소 전북 익산시 서동로46길 33(석암동) 전화번호 (관광) , (실업)

38 중소기업 명품전 IBK기업은행 구미기업금융지점 거래고객.9 95 서울 구 대.5 96 삶의 무게 앞에 당당한 당신을 부 /10 산 6. 5 여성시대로 초대합니다 3 전 대 91. 5/ 92.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천 춘 8.9 3/8 92. IBK기업은행에서 추천하는 우량 중소기업을 소개하는 코너로, 위축된 중소기업의 경기 활성화에 다소나마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89 목포.1 9 광 3 주.9 MBC 라디오 매일 아침 9시 5분~11시

39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2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이층짜리 건물이 나지막이 앉아있습니다. 무 작은 학교 큰 마음들 한히 펼쳐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운동장을 가로지르면 학교 건물로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초등학교 권영희 교장선생님을 찾아서 좋게 마주하고 있지요. 글 성기애 (여성시대 작가) 사진 송인혁 들어가는 양쪽 편으로 세종대왕 동상과 책 읽는 어린이 동상이 사이 안동시 외곽에 자리 잡은 풍천초등학교는 작은 학교입니다. 학생 수 보다 선생님 수가 더 많은 학교지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16 명인데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선생님이 모두 20명입니다. 선생님들의 관 심과 사랑 때문인지 해맑은 미소가 아이들 얼굴에 물들어 있습니다. 오늘은 1학년 지영이의 생일날입니다. 아이들보다 더 신이 난 선생 님들은 지영이의 생일을 위해 며칠 전부터 분주했습니다. 교무부장 정 현주 선생님은 지영이 몰래 지영이네 집을 찾아 할머니, 아빠, 엄마의 지영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담은 영상편지를 제작했고, 교장선생님은 가까운 제과점에 케이크를 예약하고, 1학년 담임인 권영희 선생님은 한반인 친구들과 축하 노래 준비를 함께하고, 3학년과 5학 년 담임인 홍시영 선생님은 지영이 생일잔 치에 축하 말을 준비했습니다.

40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2 드디어 생일날 아침, 지영이는 예쁜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등교했고, 각자 역할을 맡은 친구들과 선생님은 한 교실에 모여 생일잔치 준비에 바빴습니다. 지영이는 선생님이 준비해준 커다란 리본머리띠를 하고 공주님처럼 교실에 도착했습니다. 힘찬 박수를 온몸으로 받으며 케이 크 앞에 지영이가 살포시 앉자 생일잔치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1학년, 2학년 친구들이 함께 준비한 동요 달팽이의 하루 가 불 리어지고, 4, 5, 6학년들의 숲속풍경 이라는 동요가 교실을 꽉 채웁니 다. 남학생 대표들의 태권도 시범이 이어지고 그 사이 지영이 부모님이 깜짝 선물로 등장했습니다. 케이크 위 8개의 촛불에 불이 밝혀지고 앙증맞은 입술로 촛불을 끈 지영이의 얼굴에 함박꽃 웃음이 활짝 피어났습니다. 양 볼에 움푹 파 인 보조개도 함께 따라 웃고 있었지요. 그때 한쪽 구석에 놓인 텔레비 전 화면을 통해 지영이 할머니, 아빠, 엄마의 영상편지가 흘러나오자 감격에 겨운 지영이의 눈가에서 아마도 눈물이 슬쩍 번져 나왔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준비한 양 인형이 지영이 품에 안겨지고 케이크 를 사이좋게 나눠 먹은 아이들은 수업을 위해 각자의 교실로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살면서 단 한번뿐인 8살 생일을 지영이는 그렇게 모두의 축하를 받 으며 보냈습니다. 전교생이 모여 모든 선생님이 함께하는 생일잔치는 작은 학교이니 가능한 일일 겁니다. 교직생활 34년 만에 처음으로 교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풍천초등학 교에 온 권영희 교장선생님은 이 작은 학교의 재미에 풍덩 빠져 하루 하루가 즐겁기만 합니다. 처음으로 교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니 처음엔 긴장도 많이 됐는데, 이곳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그냥 제가 초등학생이 되어버린 78 79

41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듯 즐겁기만 합니다. 아이들과의 생활을 여성시대에 편지를 보내 풍천초등학교를 맘껏 자랑하신 권영희 교장선생님이십니다. 풍천초등학교는 1학년이 6명, 2 학년이 5명, 3학년이 1명, 4학년이 1명, 5학년이 2명, 6학년이 1명입니 다. 그래서 3학년과 5학년이 한 반에서, 그리고 4학년과 6학년이 한 반에서 수업을 하니 모두 4학급으로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거리가 보통 3~40분이 넘다보니 선생님들이 아이 들을 아침, 저녁으로 차에 태워 등하교를 시켜주고 있습니다. 방학이 되어도 학교 외에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방학 중에도 선생님들 이 돌아가며 학교에 나오고 등하교를 시킵니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 들을 대신해 선생님들이 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겁니다. 몇몇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고 있고, 또 먼 나라에 서 와서 아이를 낳은 엄마들 중엔 간혹 아이를 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 이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떠난 사람 들의 빈자리를 보며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선생님 들은 때론 엄마가 때론 아빠가 되어주어야 합니 다. 아이들 마음에 그늘이 내려앉을까 그게 가장 걱정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들은 생일 파티나 등하교 지도에 소홀할 수가 없습 니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고, 더 많 은 곳을 보여주고 싶어 선생님들이 더 몸 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 학교 아이들은 참 특별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은 저학년 아이들 챙 기기를 공기로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동생들의 머리 모 양이 비틀어지면 머리를 다시 매어주고, 몸이 불편해 반찬 집어 먹기 가 불편한 동생들에게 반찬을 집어주고, 학교 단위로 여행을 가는 날 이면 상급생들은 동생들을 저녁에 깨끗하게 목욕을 시킵니다. 처음 부임해서 이 광경을 본 선생님들은 다들 깜짝 놀랍니다. 아이들은 그 게 그냥 자연스러울 뿐인데 어른들은 편견이라는 안경을 쓰고 있기에 그런 순간에 놀라곤 하는 거겠지요? 선생님들은 아이들 입에서 욕설이 나오거나, 싸우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아이들이 순수한 만큼 선생님들이 헌신하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 다. 내년이면 풍천초등학교는 옆 학교와 통폐합을 해요. 올해가 마지 막 졸업생을 배출하는 해이지요. 그래서 마무리를 더 잘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옆 학교로 함께 가니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여기 계신 선생 님들도 아마 함께 옮겨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풍천초등학교에는 수업을 시작하고 끝내는 걸 알리는 벨소리가 없 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시간이 되면 알아서 수업을 끝내고 화장실 도 다녀옵니다. 그만큼 선생님과 아이들이 한마음이라는 걸 벨소리가 없는 걸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오후 4시 30분, 아이들은 간식을 먹고 방과 후 수업도 다 끝내고 집 으로 돌아갈 채비를 합니다. 교장실 문을 누군가 두드립니다. 교장선생님, 저 집에 가요. 안녕히 계세요. 아이들은 학교에 오고 가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배꼽 인 사를 하고 집으로 갑니다. 이렇게 16번 문이 열렸다 닫혀지고 아이들이 다 돌아간 학교에서 권영희 교장선생님은 내일은 어떤 일로 아이들을 기쁘게 해줄까, 해지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42 코너 속 편지 코너 속 편지 장용의 단 필 충 덧니 사랑 정태용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35년 전, 논산훈련소에서도 훈련이 가장 세다고 하는 25연대에 입소하여 3소대라는 곳에서 훈련은 시작되었다. 7월에 입대한지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었 다. 처음 제식훈련부터 시작된 훈련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 고 있었고 앞으로의 훈련 과정이 더욱더 걱정되던 어느 날, 엄청나 게 더운 날 땅바닥에 벌벌 기면서 몸조차 가누기 힘든 훈련을 마치고 저녁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달콤한 휴식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그 휴 애 일러스트 조신 83 장용의 단결 필승 충성 덧니 사랑 88 아웅다웅 우리 형제 고마운 우리 형 92 나의 연애시대 소심한 안녕하세요 96 노래 하나 추억 하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숙녀에게 102 나의 연애시대 그날 그곳에서 응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식시간이란 게 훈련이 끝난 후 사워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샤워라 고 해봤자 알몸으로 한 줄로 쭉~ 서서 샤워장을 통과하면 끝. 순서 가 먼저 잡히면 샤워를 마치고 시간이 조금 남게 된다. 그 짧은 여유시간이 하루에 제일로 행복한 시간인데 그날은 더 달 콤한 맛이 있었다. 그건 매점에서 사 먹는 아이스크림이었다. 한낮 의 더위를 잊게 해주는 아주 달콤함을 혼자 느끼기가 아쉬워 매점에

43 코너 속 편지 서부터 내무반까지 아껴 먹으며 기분 좋게 걸어갔다. 매점에서 3소 대까지 가려면 1소대, 2소대를 지나가야 되는데 각 소대에는 방문 이 없기 때문에 각 내무반을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맛있게 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1소대를 지나고 2소대를 지날 무 렵, 2소대는 악명 높은 소대장이 훈련병들을 샤워도 시키지 않고 얼 차려를 주고 있었다. 옆 소대가 얼차려를 받고 있는 것이 고소하기 도 하여 자랑스럽게 콘을 흔들며 천천히 약을 올리고 지나가기로 했 다. 낑낑대고 있는 2소대원들을 찬찬히 보며 지나갈 쯤에 눈에 살기 를 띄고 기합을 주고 있는 2소대 독사소대장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 순간 등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고 잽싸게 도망가려는 찰라, 벼 락 치는 소리와 눈에 번개가 번쩍하며 먹다 남은 그 아까운 00콘은 저 멀리 날아가고 행복에 겨웠던 내 몸뚱이는 차가운 복도 바닥에 내 동댕이쳐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방비할 틈도 없었고 아플 틈 도 없었는데, 입 안 가득 끈끈한 액체가 맴돌았다. 그 짧은 순간에 스치는 생각은 모든 군 생활을 다 한 것과 같이 긴 느낌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자식이 왜 이래? 웬 엄살이 이렇게 심해? 넌 몇 소대 야? 등등. 잠시 시원한 바닥에 누워 사태를 파악해 봤습니다. 내가 콘을 맛있게 먹고 있었고 까불다가 독사소대장에게 한 대 살짝 뺨을 얻어맞았고 지금은 바닥에 누워있는데, 내 입속에는 한입 베어 물고 있는 00콘이 시원하게 있고, 한 대 맞은 결과로 입속에는 피가 흐르 고 있다. 더 이상 매를 벌지 말아야겠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아, 맞다! 피~ 내 입속에는 피가 흐르고 있다! 여기서 잠깐! 학창시절을 생각 해보면 나는 공, 특히 축구공을 싫어했다. 그 이유는 축구를 하다 헤 딩을 잘못하여 얼굴에 공을 맞게 되면 어김없이 입에 피가 고이기 때 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덧니 때문이다. 그것도 양쪽에 두 개 튀어나온 덧 니 때문이다. 입술에 약간의 충격만 있어도 덧니에 속 입술이 찢어 지는 것이다. 입속에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엄살을 피워 야겠다는 계획이 생겼다. 해서, 약간 몸을 부르르 떨며 경기하는 척 하면서 입속에 있는 피를 혀로 밀어 입 바깥으로 내밀었다. 순간, 입 속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피로 물들어 빨갛게 되어 피거품을 내며 입 밖으로 괴괴히 흘러 나왔던 것이다.

44 코너 속 편지 이 광경을 보고 있는 그 독사소대장은 과연 기분이 어땠을까? 야, 임마! 왜 이래? 정신 차려 임마! 너 병 있냐? 하면서 그 독 사소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헐~! 더 이상 맞지 않으려고 엄살을 피웠는데, 결과는 대단했다. 살짝 떨리는 독 사소대장의 목소리는 과히 통쾌했다. 조금 전까지 공포스러웠는데 갑자기 웃음이 막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웃음을 꾹 참고 잠시 더 입 속의 피를 한껏 짜내어 밖으로 밀면서 피야, 조금만 더 나거라~ 하 면서 시원하게 바닥에 누워있었다. 잠시 소란했던 건물이 조용해지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듯 부스 스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독사소대장은 아주 걱정스런 표정 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으로 나의 얄미운 행동에 대한 처벌은 끝이 났고, 그날 저녁 점호시간이 되자 조금 전의 사건을 모르는 우 리 3소대장은 내 입술이 부풀어 오른 것을 보고 왜 이렇게 되었냐고 물었다. 자기 소대원이 옆 소대장에게 맞았다고 하면 이유와 상관없 이 기분이 좋지 않기에 그냥 넘어졌다고 얼버무려 버렸다. 그리고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독사소대장이 살며시 다가 왔다. 얌마, 괜찮냐? 병원 안 가도 되겠냐? 자식, 미안하다. 잘 자라. 걱정 반 미안함 반, 중얼거리고 돌아갔고 나는 약간 따끔거리는 입술을 꼭 물고 낮에 다 먹지 못한 아이스크림을 아까워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입술은 더 많이 부어올랐고 우리 소대장은 어떻게 된 거냐 고 또 물어 보았다. 나의 대답은 똑 같았고 소대장은 누구에게 들었 는지 아무래도 의심이 갔던가 보다. 의무대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지만 의무대에 가면 문제가 커질까봐 그냥 훈련을 받기로 했다. 또 그냥 하루만 지나면 별일 없다는 걸 나는 잘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의 훈련소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마음은 조금 찝 찝하지만 몸은 아주 편했다. 나는 모든 힘든 훈련을 그 독사소대장 의 배려로 쉽게 넘어갔던 것이다. 그 힘든 사격훈련에도 그늘 밑에 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원래 사격하는 것은 재미가 있다. 하지만 사선에 올라서서 총을 쏘기 전까지는 무지하게 굴리기 때문 이다. 안전사고가 많은 곳이라 혼을 빼놓는 훈련을 한다. 하지만 나 는 언제나 그렇듯이 훈련을 시작하면 어느새 독사소대장이 내게 다 가와 호통을 친다. 야! 임마! 너 고따위 밖에 못해? 너 이리와. 아주 군기가 쏙 빠졌 고만! 하면서 따로 불러내어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무릎 꿇고 앉아 있게 하거나 조금 시간이 흘러 다리가 아플 것 같으면 엎드려뻗쳐를 시켜 놓는다. 그것도 힘들어 보이면 아예 다른 곳으로 심부름을 시 키는 것이다. 때로 함께 훈련받는 전우들한테 미안해 열외를 안하겠 다고 하면 그 전우도 함께 쉬게 하곤 했다. 아직 훈련을 마치려면 많 은 과정이 있는데 매번 이렇게 독사소대장의 비호를 받으며 긴긴 훈 련을 부상 없이 마치게 되었다. 물론 자대 배치도 아주 좋은 곳으로 받았다. 이 정도 하면 덧니 의 덕을 아주 톡톡히 본 셈이다. 나중에 알았는 데 왜 그렇게 독사소대장이 벌벌 떨었는가 하면 바로 소원수리 때 문이었다. 그 당시 구타를 당했다는 소원수리를 쓰게 되면 가해자는 영창을 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아무 말도 쓰지 않았 다. 오히려 지금은 그 독사소대장에게 감사하고 있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나의 덧니는 내 인생에 많은 행운을 가져다주 었다. 덧니야 사랑한다! 덧니를 지닌 애청자 여러분들 덧니가 여러 분들께 행운을 가져다줄 겁니다. 뽑지 마세요!

45 코너 속 편지 아웅다웅 우리 형제 고마운 우리 형 안종하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형이 중학교 1학년 때 일인 걸로 기억합니다. 저는 형과 7살 차이 라서 학교 다니기 전이었어요. 그때는 유치원이 없었던 때라 학교 다 니기 전에는 해 뜨면 나가서 해지기 전까지 뛰어놀기 바빴습니다.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차고 학교 가는 동네 형들이 부러워서 저는 미리 사 놓았던 가방을 메고 골목길을 뛰어다니기도 했습니다. 틈틈 이 <나, 너, 그리고, 우리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하면서 국 어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셈 연습도 했고요. 그렇게 형, 누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공부했습니다. 누런 코를 손목으로 쓰윽 닦아서 소매 부분은 항상 코로 인해 반질 반질했습니다. 공부방이라고 있는 작은 방에는 작은 책상과 드들통 이라고 수수대로 엮은 동그란 통 안에 가을에 수확해놓은 생고구마가 윗목을 차지하고 있어 겨우 내내 주식, 간식거리로 사용했습니다. 드 들통 때문에 방은 더 좁아져서 형과 둘이 누우면 딱 맞는 방이 되어서 아늑했어요. 처마 밑에는 철망으로 만든 토끼장에 형이 소일거리로 키운 토끼 가 살고 있고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돼지막엔 돼지가 살고 있어 요. 형은 개울가나 논두렁에서 개구리를 잡아다가 삶아서 돼지를 먹 였습니다. 간혹 뒷다리는 살을 발라서 저를 주었는데요. 소금만 찍어 먹어도 닭다리 뺨치게 맛있었습니다. 형은 중학생이었지만 우리 집 에 큰아들이라 어렸어도 제가 보기에는 어른이었답니다. 아버지, 어 머니 하고 같이 힘든 논밭일도 하구요. 가을걷이가 끝나면 산에서 나 무도 거뜬히 지고 내려왔으니까요. 그런 형 옆에서 누런 코로 풍선을 만들고 따라다니는 조금 귀찮은 존재가 저였어요. 추운 겨울 함박눈이 펄펄 내리던 어느 날, 형이 맛있는 거 사준다고 조용히 따라오랍니다. 저녁을 먹은 지 얼마 안된 시간이었어요. 우리 집 밥은 아버지만 보리밥이 조금 섞인 중쌀밥이었고요, 우리들은 완 전 꽁보리밥이었답니다. 엄마는 그나마도 못 드시고 밥상 아래서 몇 숟갈 뜨는 정도니 말 다했지요. 제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도 형은 저만 데리고 다니더라고요. 그 저녁밥은 참, 금방 배가 고파져요. 그때 맛있는 걸 사준다는 형의 말에 전 총알처럼 천을 덧 댄 점퍼를 입고 형을 따라 나섰습니다. 깜깜한 밤에 동네를 갓 벗어 나면 공동묘지가 나왔지만 형은 겁이 없었습니다. 전 겁이 참 많아 요. 그래서 형 옆에 바짝 붙어서 걸었습니다. 그 무서운 공동묘지를 지나면 냇가를 따라서 미루나무가 외길로 서 있었어요. 저흰 눈길을 한 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바지 아랫단은 얼음알갱이가 덕지덕지 붙어 있고요. 구멍 뚫린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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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1월호 3-18(4도).indd 2014 01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양희은 강석우입니다 이달의 편지 힐링 푸드 외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하늘소장난감도서관의 이기원 관장 CONTENTS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1 장난감 걱정 뚝, 웃음으로만 꽉 채워요 하늘소장난감도서관의 이기원 관장 글 성기애 (여성시대 작가) 사진 송인혁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여러 가지 물건을 총칭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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