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Ⅰ. 근현대미술 연구 문화학원과 이중섭 김인혜 7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장순강 21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양옥금 32 Ⅱ. 미술관 연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Journal of the National Museum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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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2015 제7집

2 목 차 Ⅰ. 근현대미술 연구 문화학원과 이중섭 김인혜 7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장순강 21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양옥금 32 Ⅱ. 미술관 연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Journal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Vol. 7 발행일 2015년 12월 31일 발행처 국립현대미술관 발행인 바르토메우 마리(Bartomeu Mari) 기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2실 진행 및 편집 박지혜 편집 디자인 허봉선 국립현대미술관 ( )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전화 팩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필자 및 국립현대미술관의 동의 없이 무단전재할 수 없습니다.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정다영 45 국립현대미술관 문화나눔 프로그램: 2015 찾아가는 미술관교육 사례를 중심으로 한정인 58 Ⅲ 미술연구센터 제4집단 사건의 전말: 한국적 해프닝의 도전과 좌절 조수진 년대 중 후반의 이벤트 류한승 ~70년대 실험미술: 초기 해프닝과 이벤트 장석원 대담 장석원 년 미술연구센터 결과 보고 미술연구센터 140 C 2015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Gwangmyeong-ro, Gwacheon-si, Gyeonggi-do, Korea All rights reserved. No parts of the book may be reproduced or utilized in any forms or by any means without permission from writers and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ISSN

3 Ⅰ. 근현대미술 연구

4 문화학원과 이중섭 1) 김 인 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문화학원 Ⅱ. 문화학원에서 만난 사람들 Ⅲ. 졸업 후 일본에서의 활동 이중섭(1916~56)은 한국인에게 단연 가장 잘 알려진 예술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중섭에 대한 사실관계 의 확인은 의외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그의 일본 체류기 활동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연구가 부족한 편이다. 이 시기 남아 있는 작품이라고는 문화학원의 후배로 후에 부인이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 山 本 方 子, 1921~ )에게 보낸 엽서들뿐이며, 당시 제작된 야심찬 유화작들이 대부분 흑백 도판으로만 전하고 있는 점도 연구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의 일본 체류기는 본격적인 미술 실기 교육 기간이었을 뿐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태도 를 형성한 시기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중섭은 정주의 사립학교인 오산고보를 졸업하고, 1936년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제국미술학교를 잠시 거친 후 1937년부터 문화학원( 文 化 學 院. 분카가쿠인)에 입학했다. 이 글은 이중섭이 일본의 문화학원에서 수학한 1937~1940년, 그리고 졸업 후 문화학원에 적을 두며 일본화단에서 활동했던 1943년까지의 시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당대 일본 문예계의 상황, 문화학원의 특수한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이중섭의 활동 등을 살펴보면서, 이중섭의 예술 태도가 형성되는 근원을 탐구해보는 것이 이 글의 취지이다. 1) 이 원고는 2014년 9월 1일,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개최된 이중섭 세미나(서귀포시 및 조선일보 주최)의 발표 원고를 수정 보완한 것임을 밝혀둔다. 문화학원과 이중섭 7

5 Ⅰ. 문화학원 이중섭은 1936년 4월 10일 일본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한 후 1년간 3학기를 보내고 방학을 맞아 원산으로 돌아왔다. 2) 그리고는 1937년 2월 다시 일본으로 가서는 재학 중이던 제국미술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같은 해 4월 문화학원에 입학해버린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분들의 엇갈린 증언과 해석이 있는데, 3) 그러한 주장의 시비를 따지기 전에 도대체 문화학원 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문화학원은 니시무라 이사쿠( 西 村 伊 作, 1884~1963)라는 전설적인 인물이 1921년 설립한 학교였다. 1884년생인 니시무라 이사쿠는 그의 이름 이사쿠 가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에서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오이시 요헤( 大 石 余 平, 1854~1891)는 선교사를 초대해 세례를 받고 신도들과 교회당을 건립할 정도로 일본의 초기 장로교 유입기에 적극적인 종교인이었다. 그러나 니시무라 이사쿠가 7살일 때(1891년) 지진으로 그의 부모님이 모두 사망하게 된다. 만 7세에 고아가 된 그는 부유한 산림지주 집안인 외가, 즉 니시무라가( 家 )에서 자랐다. 4) 니시무라 이사쿠의 성장과정에서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그의 숙부 오이시 세노스케( 大 石 誠 之 助, 1867~1911)였다. 그는 19세기 말 이미 미국 유학을 했던 인물로 유학 후 돌아와 의원을 개설하고 무료 진료를 했으며, 태평양식당을 매입해서 스스로 요리를 하며 서민에게 서양식 요리를 접하게 했다. 싱가포르와 인도 등지에서 체류, 카스트 제도의 부당성을 비판하며 사회주의에 눈을 떠, 고토쿠 슈스이( 幸 德 秋 水, 1871~1911)와 교류했다. 사회주의 전도를 위해 행상을 다니기도 하며 메이지말 일본 사회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리더였던 그는 1910년 유명한 대역사건이 일어났을 때 고토큐 슈스이와 마찬가지로 사형을 당했다(1911년). 이 사건은 일본 지식인의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고(무정부주의, 사회주의, 자유주의 계열의 지식인에 대한 첫 번째 강력한 경고), 니시무라 이사쿠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개인사였다. 숙부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은 니시무라 이사쿠는 반전주의자여서, 1905년 러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징병을 피해 싱가포르로 피신할 정도였다. 1907년에 결혼을 하여 9명의 자녀를 2) 이중섭의 제국미술학교 학적부 참조.(박형국 무사시노대학 교수 제공) 3) 제국미술학교의 학내분규에 따른 혼란, 문화학원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대한 동경 등이 이유로 거론되어 왔다. 무사시노대학 박형국 교수는 이중섭의 제국미술학교 시절 한국인 선배들의 인터뷰를 근거로 하여, 이중섭의 동기생들이 선배들의 혹독한 오 리엔테이션에 불만을 가지고 군국주의 분위기가 심한 학교를 떠나, 한국인 선배들이 별로 없는 문화학원을 택했다고 밝혔다. 4) 니시무라 이사쿠에 대한 상세한 자료로는, 生 活 を 藝 術 として 西 村 伊 作 の 世 界, 神 奈 川 縣 立 美 術 館, 2002; 我 に 益 あり: 西 村 伊 作 自 敍 傳, 紀 元 社 出 版 株 式 會 社, 1960 참조. 두었고,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가 그랬던 것처럼 생활을 예술로 를 모토로 하면서 삶과 예술의 일체를 실천했다. 자신 스스로는 건축가가 되어 집도 직접 지었고, 당연하게도 문화학원 건물도 자신이 직접 설계, 시공하였다. 사상적으로 굉장히 서양에 경도되었기 때문에 건축, 요리, 의상, 생활 하나하나가 대부분 서양식이었다. 니시무라 이사쿠가 문화학원을 설립하게 된 동기는 잘 알려진 대로 그의 큰 딸 아야(アヤ)가 다닐 적당한 학교가 없어서, 그의 많은 자녀들을 위해 자신 스스로 학교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가 보기에 기존 학교는 너무 틀에 박혀 있고 집단의 질서를 따르게 했다. 이미 1886년 처음 발표되어 개정을 거듭했던 학교령 의 개입이 전혀 없는, 자유롭고 쾌활하며 학생들이 다니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병영을 연상시키는 학교 건물이 아니라, 가정집 같은 분위기, 나무와 정원이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을 지었다. 건물 내부에는 여기 저기 유화, 수채화가 걸려있고, 문학, 미술, 음악 등 각종 예술이 장르를 초월하여 공존하며, 그것이 무엇보다 생활과 통합되는 그런 유토피아를 설계하고자 했다. 학생들은 교복 대신 자율복을 입고 일본 최초로 중학부 남녀공학을 실현했다. 1921년 니시무라 이사쿠가 이 학교를 설립할 때 모신 인물은 요사노 부부와 이시이 하쿠데이였다. 요사노 뎃칸( 與 謝 野 寬, 1873~1935), 요사노 아키코( 與 謝 晶 子, 1878~1942) 부부도 5남 6녀를 두었기 때문에 자녀교육이 절실했다. 요사노 뎃칸은 유명한 문예지 묘조( 明 星 ) 를 간행했던 문학가, 정치인으로 조선의 일본인 학교 을미의숙의 교사로 재직하며 한국에 체류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의 아내 요사노 아키코는 문학가이자 여성운동가로, 문화학원의 여학부 학감을 오랫동안 맡았다. 이들이 문화학원의 문학부를 초창기에 이끌었다. 또한 한국의 근대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이시이 하쿠데이( 石 井 柏 亭, 1882~1958)가 문화학원의 미술부를 맡았는데, 그의 6명의 자녀 중 4명이 문화학원을 다녔다. 그는 동경미술학교를 중퇴하고 묘조( 明 星 ) 의 삽화를 그렸으며 시도 발표했던 문예가였다. 야마모토 가나에( 山 本 鼎 )와 함께 미술잡지 호슨( 方 寸 ) 을 창간했으며, 1913~14년에는 아리시마 이쿠마( 有 島 生 馬, 1882~1974)와 함께 이과회를 결성, 1920년대 당시로서는 상당히 재야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작가이다. 이시아 하쿠데이의 친구이자 이과회의 창립멤버인 아리시마 이쿠마도 곧 문화학원의 교사로 합류했는데, 그의 형이 바로 야나기 무네요시와 함께 시라카바( 白 樺 ) 의 창간 동인이었던 아리시마 다케오( 有 島 武 郞, 1878~1923)였다. 그러니까 이들 무리들은 문학과 미술, 심지어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일본 다이쇼 시기 일종의 문예운동 을 주도하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당시로는 일본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사상가들이었기에 대체로 조선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 세대들이 문화학원의 초창기 창립 주체들이었기 때문에, 이후 1930년대에도 문화학원 구성원들의 조선에 대한 우호적 입장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문화학원과 이중섭 9

6 이들은 문화학원이 그저 좋아서, 월급도 받지 않고 기꺼이 강사가 되어주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학원을 이끌었다. 1921년 처음 중학부를 설립했던 학교에서 1925년 제 1회 중학부 졸업생이 나오자, 자연스럽게도 대학부를 만들게 된다. 1925년 대학부 본과와 미술과를 처음 개설하고, 이후 미술부에는 다케히사 유메지, 히라츠카 운이치( 平 塚 運 一 ), 온치 코시로( 恩 地 孝 四 郞 ), 무나카타 시코( 棟 方 志 功 ), 도고 세이지( 東 郷 青 児, 1897~1978), 무라이 마사나리( 村 井 正 誠, 1905~1999), 야마구치 카오루( 山 口 薰, 1907~1968), 와키다 카즈( 脇 田 和, 1908~2005) 등이 실기와 미학, 미술사를 가르쳤다. 문학에는 유명한 사토 하루오( 佐 藤 春 夫, 1892~1964), 다니사키 준이치로( 谷 崎 潤 一 郞, 1886~1965) 등이, 음악에는 야마다 코사쿠( 山 田 耕 筰, 1886~1965) 등이 지도했다. 이 학교는 점차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로 자리매김해서, 다케히사 유메지, 무나카타 시코, 다케우치 요시미( 竹 內 好 ) 등 당대 가장 진보적인 지식인 예술가들이 자녀들을 이 학교로 보냈다. 5) Ⅱ. 문화학원에서 만난 사람들 다시 이중섭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중섭이 문화학원에 입학한 해는 1937년이다. 이 해에는 문화학원이 설립 초기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의도하지 않게도 소규모 귀족학교여서, 아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보내는 그런 학교로 학생 수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학생 수가 점차 줄어들자 1930년경에는 창작, 저널리즘 전공과를 신설할 정도였다. 그러나 1937~38년경 이 학교는 갑자기 각광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학교령의 지배를 받는 대부분의 다른 학교들이 1937년부터 근로봉사, 체육교련 등을 정식으로 대학 커리큘럼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1937년 즉 이중섭과 같은 해에 동경미술학교에 들어갔던 조각가 윤효중이 후에 김종영, 이순종, 김재선, 조규봉 등과 함께 군사훈련을 받았던 상황과 비교하면, 같은 해에 문화학원으로 들어갔던 이중섭의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1935년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했던 한 일본인( 小 谷 博 貞 )의 회고록에 따르면, 1936년부터 재학 중 징집유예제도가 없어져서, 학생신분으로도 전장에 끌려가야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6) 이 5) 문화학원에 대한 상세한 자료는 文 化 學 院 史 編 纂 室, 愛 と 叛 逆 ー 文 化 學 院 の 五 十 年, 文 化 學 院 出 版 局, 1971 참조. 6) 小 谷 博 貞, 昭 和 を 送 った 画 学 生 : 第 2 次 世 界 大 戦 をはさんで, 札 幌 大 谷 短 期 大 学 美 術 科 論 文 集 25, 1992, pp.1~21 참조. 7) 최열, 문화학원의 조선인 학생, 인물미술사학회 2012년 추계발표문 참조. 8) 위의 글 참조. 9) 문화학원의 학적부는 전쟁 중 소실되었고, 출신 동창생들을 통해 사료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문화학원 동창생 명부 참조.(문화학원 사료실을 통해 박형국 무사시노대학교수 제공) 제국미술학교 학생은 1938년 9월 소집되어 북중국의 전장을 돌다가 1940년 7월 소집해제된 후, 학내 분규 이후 떨어져 나온 타마제국미술학교로 복학했다. 이는 1936년 입학했던 제국 미술학교를 재등록하지 않고 1937년 돌연 문화학원으로 적을 바꾼 이중섭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중섭은 학교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군국주의 시대 자유주의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문화학원에서 3년간의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문화학원에는 1937년 갑자기 늘어난 학생들 때문에 콘크리트로 신교사를 지어 1938년 9월 낙성식을 했다. 이 해에 이중섭과 함께 문화학원으로 들어온 한국인들은 이중섭을 포함해 안기풍(1914~?), 이정규(1916년 이후~?), 이주행(1917~?), 홍하구 등 총 5명이나 된다고 한다. 7) 이중 오산고보 출신의 안기풍도 제국미술학교에서 문화학원으로 적을 옮긴 경우로, 이중섭과 안기풍은 일부 사진에서도 증명되는 바 매우 친한 친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 이전에 문화학원을 다녔던 한국인 유학생으로는 박성규(1910~1994), 이철이(1915~1969), 유영국 (1916~2002), 김병기(1914~ ), 김종찬(1910년 이전~1945년 이후), 문학수 (1916~1988)가 있었고, 이중섭의 후배로는 박성환(1919~2001)이 있어, 문화학원 출신으로 확인되는 한국인 유학생은 총 12명이라는 연구가 있다. 8) 또한 문화학원 동창생 명부를 통해 확인되는 졸업생 명단에서 한국인으로는 박성규(1935년 졸), 김종찬(1936년 졸), 이철이(1937년 졸), 한중근, 유영국(1938년 졸), 김병기, 문학수(1939년 졸), 안기풍, 이중섭 (1940년 졸), 이병규(1943년 졸) 등 총 9명이다. 9) 여기서 잠시 당대의 일본 사회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중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1927년 대공황의 국제 경제 상황 속에서 다나카 내각이 들어서고, 대중국 적극정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다나타 내각의 정책 중에는 조선인들의 만주 이동을 적극 권장함으로써, 그곳의 조선인 인구를 비약적으로 늘인 후 조선인과 중국인 간의 분쟁을 조장하여 전쟁의 발판을 삼아야 한다는 전략이 이미 나온다. 이후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2년 상하이 공습을 감행했으며, 1933년에는 국제연맹을 탈퇴하여 본격적인 전쟁 모드로 진입했다. 1933년은 여러 모로 전환점 이 된 해인데, 전쟁총동원을 정신적으로 준비하는 맥락에서 어떠한 종류의 자유주의적 사상(무정부주의(아나)와 사회주의(프로))도 불허한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은 이미 1925년 치안유지법의 제정을 통해 시작되다가, 1933년에는 유명한 교토대사건(교토제국대학 다키가와사건, 京 大 滝 川 事 件 )으로 사상통제가 학교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 해를 기점으로 하여,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그토록 강렬했던 아나, 프로 운동은 거의 극적이라고 할 만큼 빠른 속도로 소멸되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화되었을 때는 이미 사상통제 의 상황이 마무리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문화학원과 이중섭 11

7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도 문화학원의 교장 니시무라 이사쿠는 태연했던 것 같다. 그는 문화학원에서 발간하던 여러 잡지에 글을 쓰면서, 개인'을 강조할 뿐 국가나 단체의 개념을 학교 밖의 일로 간주했다. 1940년에는 월간문화학원 이라는 기관잡지에 숫자와 우상 이라는 글이 검열당해 삭제명령을 받기도 했다. 소위 비상시국 에도 니시무라 이사쿠는 시국에 맞지 않는 발언을 서슴지 않아 다들 전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나는 전쟁반대에나 총력을 기울여볼까 하고 말할 정도였다. 10) 그러한 교장의 언행으로 인해 1940년경에는 교장배척운동이 일어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이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바로 이시이 하쿠데이였다. 이시이 하쿠데이는 이미 1937년 제국예술원 회원이 되어 국가주의 예술의 체제 속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결국 교장과 이시이 하쿠데이의 의견대립이 노골화되어, 1941년에는 이시이 하쿠데이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1940년 졸업한 이중섭의 졸업사진(도판 1)에는 그 전까지 언제나 등장하던 이시이 하쿠데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기류가 계속되던 중 1943년 4월 12일 새 학기가 시작되는 입학식 날, 니시무라 교장이 천황에 대한 불경죄 로 구속되었고, 같은 해 9월 학교가 강제폐교되어 건물이 군대에 접수되었다. 일본역사상 사상적 이유로 학교가 강제폐교된 유일한 경우이다. 도판 년 문화학원 졸업식, 앞줄 왼쪽 세 번째 이중섭, 가운데 니시무라 이사쿠 교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김복기 기증) 한편 이중섭이 문화학원을 다닐 무렵 에는 이시이 하쿠데이나 아리시마 이쿠마와 같은 이들의 다음 세대가 화단의 중추로 떠오를 때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 중에는 무라이 마사나리( 村 井 正 誠, 1905~1999), 야마구치 카오루( 山 口 薰, 1907~1968), 츠다 세이슈( 津 田 正 周, 1907~1952) 등 문화학원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중섭보다 약 10살 정도씩 차이가 나는 문화학원의 대선배들인데, 예를 들어 무라이 마사나리는 1925년 문화학원 대학부가 처음 생겼을 때 1회 입학생이자 1회 졸업생이며, 이중섭이 이 학원을 다니던 1938년부터 문화학원의 강사로 나왔다. 이들은 대부분 문화학원 졸업 후 바로 프랑스 유학을 하였고, 귀국 직후인 1934년 신시대양화전 을 함께 결성하였다(하세가와 사브로( 長 谷 川 三 郞, 1906~1957), 무라이 마사나리, 츠다 세이후( 津 田 正 豊 ), 츠다 세이슈 형제, 야마구치 카오루, 야바시 로쿠로( 矢 橋 六 郞, 1905~1988), 하마구치 요조( 浜 口 陽 三, 1909~2000), 에이큐( 瑛 九 ), 샤를류크(シャルル ユーグ) 등 총 9명). 이들이 처음 신시대양화전 을 결성했을 때 평균나이가 31~32세 정도였는데, 선언서도, 공동의 -주의(ism) 도 없으며, 오로지 현대의 화가 를 추구한다고만 내세웠다. 기성의 화단정치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소그룹 활동을 강조했던 이들은 당시 일본화단의 매우 예외적으로 전위적인 이들이었다. 후쿠자와 이치로( 福 沢 一 郎, 1898~1992)가 이끄는 초현실주의 경향과, 그보다 조금 더 젊은 세대로 하세가와 사브로를 중심으로 한 추상예술 경향이 1930년대 말의 중요한 두 개의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신시대양화전 은 1937년 동인들의 개인전을 한 명씩 열어주고 해산한 후, 자유미술가협회 로 재창립된다. 이때 신시대양화전 회원들은 그대로 남아있고, 흑색양화전 등의 소그룹들이 여기에 합류, 연립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신시대양화전 의 규모가 더욱 확장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때 자유미술협회 가 아니라 굳이 자유미술가협회 라는 용어를 쓴 것은 각자의 개인 이 개성을 지니고 작품 활동을 독려하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는 당시 국가주의, 집단주의, 군국주의의 분위기를 의도적으로 역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유 라는 용어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했고, 1940년에는 단체의 명칭을 미술창작가협회 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다. 그 후로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초현실주의의 두 거두 후쿠자와 이치로, 다키구치 슈조 ( 瀧 口 修 造, 1903~1979, 이중섭 작품평도 많이 했던 평론가)는 1941년 4월 5일 초현실주의가 공산주의라는 이유로 검거되어 8개월간 구속되었고, 하세가와 사브로도 단기간이지만 2번에 걸쳐 구치 생활을 했다. 11) 1941년 이후 젊은 아방가르드 미술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시대양화전-자유미술가협회-미술창작가협회로 이어지는 이들 무리 중에 문화학원 출신으로 조선인, 대만인들에 대해 상당히 평등하고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던 인물들이 있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문화학원을 다니고 있던 이중섭의 삶의 방식, 예술적 진로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은 1938년 문화학원 2학년 재학 중일 때 이미 자유미술가협회 에 작품을 출품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0년대 태평양전쟁이 한창일 때도 이 일본인들(무라이 마사나리, 야마구치 카오루, 야바시 로쿠로 등)은 끝까지 전쟁화를 그리지 않았으며, 1950년에는 모던아트협회 를 재결성하여 그들의 진로를 이어갔다. 1952년 야마모토 마사코가 일본에 가 있을 때, 이중섭이 일본에서의 체류허가를 받기 위해 모던아트협회의 초청장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편지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12) 이를 통해 볼 때 이중섭과 ( 자유미술가협회 에서 시작된) 모던아트협회 회원들과의 연대는 이 무렵에도 계속되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10) 文 化 學 院 史 編 纂 室, 愛 と 叛 逆 ー 文 化 學 院 の 五 十 年, 文 化 學 院 出 版 局, 1971 참조. 11) 小 谷 博 貞, 昭 和 を 送 った 画 学 生 : 第 2 次 世 界 大 戦 をはさんで, 札 幌 大 谷 短 期 大 学 美 術 科 論 文 集 25, 1992,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문화학원과 이중섭 13

8 문화학원 시절 이중섭이 만났던 사람들로, 일본인 작가들뿐만 아니라 조선인 작가들과의 교유도 매우 중요하다. 무라이 마사나리, 츠다 세이슈의 주변에는 길진섭, 김환기, 유영국이 있었고, 그 누구보다 중요한 문학수가 있었다. 오산고보 선배였고 후에 시인 백석의 처형이 되었던 문학수는 이중섭보다 한 해 일찍 문화학원에 입학하여 자유미술가협회 활동도 조금 더 빨랐다. 같은 해에 태어났음에도 이중섭이 항상 깍듯하게 대했던 문학수는 신비로움과 순박함을 동시에 지닌 말 그림을 주로 그리고 있었다. 13) 문학수나 이중섭 모두 프랑스 문학, 특히 프랑스 시인들을 동경했고 프랑스로의 유학을 꿈꾸었던 이들이었다. 또한 미술의 영역에서는 동물을 소재로 하여 환상적이고 신화 같은 꿈의 세계, 상징의 세계를 동경했다. 츠다 세이슈를 누구보다 존경했던 문학수는 그와 이중섭을 포함한 한국인 작가들을 연결시키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이 문화학원에서 만났던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보다도 야마모토 마사코일 것이다. 그녀는 이중섭의 문화학원 후배였다. 그녀의 부친은 기업의 중진이었을 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의 딸을 문화학원에 입학시켰던 것이다. 이중섭이 1941~42년 문화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문화학원에 적을 두고 동경에 머물면서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수많은 그림엽서는 그에게 마사코가 얼마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었는지를 말해 준다.(도판 2, 3 참조) 그림엽서에 등장하는 사람들, 동물들, 나무들, 풀들은 상상의 것인지 현실의 것인지 그러한 구분 자체가 모호하다. 각각의 개별 존재들이 하등의 차별도 없이 다함께 뒤엉켜 평화로이 공존한다. 우주의 갖가지 생명 들이 생겨나 자라고 자유롭게 어울려 유희하는 세상. 그러한 세상은 1941년 세계대전이 한창인 현실의 시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도판 2. 이중섭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 도판 3. 이중섭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 12) 이 편지를 받는 대로 부탁한 서류 새로이 한 통씩 속히 작성하여 보내주시오.(중략) 어머님의 증명, 히로카와( 廣 川 )씨의 증 명, 모던아트협회의 서류, 이마이즈미( 今 泉 )씨의 증명, 지급 항공편 등기로 부탁하오. 이중섭 편지, 1953년 3월 초순(이중 섭 지음, 박재삼 옮김, 이중섭 서한집-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한국문화사, 1980, p ) 김병기의 인터뷰, 삼성미술관편, 한국미술기록보존소 자료집 제3호, 2004 참조. 있다. 이중섭이 평생 목숨과도 같이 예술을 지켰던 힘은 바로 그런 피폐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벗어나려는 유토피아에의 몸부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러한 유토피아의 세계에는 언제나 마사코를 향한 사랑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Ⅲ. 졸업 후 일본에서의 활동 이중섭은 1938년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한 이래, 문화학원을 졸업한 후에도 1943년 8월경 귀국하기 전까지 매년 자유미술가협회 (1940년부터 협회명이 바뀐 미술창작가협회 )에 작품을 출품했다. <서 있는 소>, <소와 여인>, <망월>, <소묘(황소)> 등 이 시기에 제작된 그의 작품은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의 소묘나 수채화를 유화로 발전시킨 것처럼 보인다. <망월>(도판 4)에는 동물들, 새들, 도판 4. 이중섭, <망월>, 1940 그리고 나체의 여인이 자연 풍경 속에 자유로이 자리를 잡았고, 이들은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멀리 저 달을 바라보며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평화로운 세계의 공존을 꿈꾸는 이중섭의 갈망이 이 작품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천진한 동경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이중섭의 작품에 소 가 등장할 때는 어쩐지 힘이 느껴지고, 분노와 고통의 감정이 묻어난다(도판 5). 인간과 동물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믿었던 이중섭의 세계에서 소를 통해 암시되는 인내의 미덕, 참고 또 참고도 일어서는 우직하고 순박한 눈망울은 이중섭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탱하는 힘의 원천을 표상한다. 이중섭은 미술창작가협회의 활동을 통해 당대 초현실주의 계열 최고의 평론가였던 다키구치 슈조, 이마이 한자부로( 今 正 繁 三 郞 ) 등의 극찬을 받았고, 1943년에는 <망월>로 태양상을 수상, 회원의 자격으로 뽑히게 된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문화학원을 매개로 한 선배 강사들의 도움을 통해 어느 정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1944년 5월, 제8회전을 마지막으로 미술창작가협회전 도 막을 내렸다. 이중섭은 이미 1943년 8월 귀국했기 때문에 이 마지막 협회전에 회원 자격이었으나 작품을 내지 못했다. 이 시기 이중섭의 일본 활동 중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한국인 작가들과의 그룹 활동 이었다. 1941년 동경에서 결성된 조선신미술가협회 가 그것이다. 동경미술학교를 제외한 14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문화학원과 이중섭 15

9 도판 5. 이중섭, <서있는 소>, 1940년 타대학 출신 작가들, 즉 제국미술학교의 이쾌대, 김학준, 태평양미술학교의 최재덕, 일본미술학교의 진환, 문화학원의 김종찬, 이중섭이 함께 결성한 조선신미술가협회 는 그 1회전을 도쿄 긴자의 수사( 靑 樹 社 ) 화랑에서 1941년 3월 2일~3월 6일 개최하였다. 현존 하는 방명록(도판 6)에는 안기풍, 츠다 세이슈를 비롯하여 많은 일본인 작가들의 이름이 확인되며, 그중에는 니시무라 이사쿠, 야마구치 카오루 뿐 아니라 문화학원의 문학부 교수인 사토 하루오( 佐 藤 春 夫, 1892~1964)의 이름도 보여 흥미롭다. 그 외에도 시라카바의 창립동인 중 한 사람인 무샤노코지 사네아츠( 武 者 小 路 実 篤, 1885 ~1978), 노동운동가이자 문학가이며 <불령선인>의 작가인 나카니시 이노스케( 中 西 伊 之 助, 1887~1958) 등 한국에 동정적인 원로 문예인들의 이름도 보인다. 이중섭은 이 전시에서 <연못이 있는 풍경>(도판 7)이라는 다소 우울한 느낌의 그림을 출품했다. 소와 물고기가 육지 인지 연못인지도 알 수 없는 공간에 함께 그려졌고, 그 옆에는 한 남자의 우울한 초상이 우두커니 들어섰다. 조선신미술가협회 는 3월 동경전 에 이어 5월 경성전 을 개최했고, 이후로도 1944년까지 지속되었다. 14) 이중섭은 1943년 제3회 신미술가협회전 이 경성에서 열릴 때 아직 일본에서 귀국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경성에 없었고 작품도 출품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시절, 이차대전이 가장 급박한 총력전으로 치닫고 있던 이때, 이중섭은 그래도 어디에서든 상대적으로 행복한 편이었다. 조선에는 이중섭의 자리를 비워둔 채 그를 기다리는 많은 화우들이 있었고, 일본에는 그를 지지해주는 일본화가 및 평론가들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의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가 있었다. 세상은 시끄러웠지만, 이중섭은 그의 그림처럼 우울하지만 행복한 세계 속에 있었다. 이중섭이 처한 현실은 점차 그러한 행복감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은 그의 예술 세계에서만큼은 그러한 행복한 세계를 평생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었다. 그는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이중섭의 세계에 존재하는 현실과 예술의 극적인 괴리,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이중섭이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일종의 드라마 를 완성하는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도판 7. 이중섭, <연못이 있는 풍경>,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 출품작 도판 6. 신미술가협회 제1회 동경전 방명록 14) 이쾌대, 진환, 이중섭, 최재덕, 김학준 등이 주요 멤버인 신미술가협회는 다양한 학교 출신의 회원 구성, 한 명씩 개인전을 열어주며 그룹전과 병행하는 방식 등에서 신시대전을 포함한 일본의 소그룹 활동의 운영방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1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문화학원과 이중섭 17

10 참고문헌 Abstract 我 に 益 あり: 西 村 伊 作 自 敍 傳, 紀 元 社 出 版 株 式 會 社, 文 化 學 院 史 編 纂 室, 愛 と 叛 逆 ー 文 化 學 院 の 五 十 年, 文 化 學 院 出 版 局, 小 谷 博 貞, 昭 和 を 送 った 画 学 生 : 第 2 次 世 界 大 戦 をはさんで, 札 幌 大 谷 短 期 大 学 美 術 科 論 文 集 25, 1992, pp.1~21. 生 活 を 藝 術 として 西 村 伊 作 の 世 界, 神 奈 川 縣 立 美 術 館, 김병기, 김병기의 인터뷰, 한국미술기록보존소 자료집 제3호, 삼성미술관편, 이중섭 지음, 박재삼 옮김, 이중섭 서한집-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까지도, 한국문화사, 최열, 문화학원의 조선인 학생, 인물미술사학 8호, 인물미술사학회, 2012, pp.219~248. Bunka-Gakuin( 文 化 學 院, Institute of Culture) & Lee Jung Seob Kim Inhye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This text is a study focusing on the period from 1937 to 1940 when Lee Jung Seob attended the Bunka-Gakuin( 文 化 學 院, Institute of Culture) in Japan, then extending to 1943 where Lee worked within the Japanese artistic circle as he was still enrolled in this institute. This text aims to examine the Japanese arts and cultural circumstances of the time, the liberal ambience of the Bunka-Gakuin and Lee Jung Seob s practice within this environment to explore the root of formation of Lee s artistic attitude. The Bunka-Gakuin was established in 1921 by an architect and education entrepeneur, Nishimura Isaku( ). It was a private institution with great liberty, not under the school ordinance legislated by the Japanese government. Nishimura Isaku participated in the actual architectural design to create building with comfortable atmosphere, resounding private household. In fact, the institution did not have uniform, allowing students to wear their own clothes and it not only implemented the first junior high level coeducation in Japan, but also continued to stand with its liberal spirit to the end, amongst the extreme militarism at the end of the 1930 s. As Principal Nishimura Isaku was imprisoned for the crime of violating majesty of the Japanese Emperor in 1943, this institution was forced to shut down and it holds a painful history of being used as military barracks. Lee Jung Seob graduated from Osan High School in Jeongju, Korea and entered first the Imperial Art Academy( 帝 國 美 術 學 校 ) of Japan in April However, he quit after a year and re-enrolled in the Bunka-Gakuin. Here, Lee was educated by artists like Ishii Hakutei, but it appears that he was deeply influenced by the older alumni who taught as 1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문화학원과 이중섭 19

11 part-time instructors rather than official teachers of the institution. Along with his alumni including, Murai Masanari, Yamaguchi Kaoru and etc., who formed emerging artists collective, Lee worked within this circle of Free Artist Society( 自 由 美 術 家 協 會 ) (renamed as Creative Artists Association( 美 術 創 作 家 協 會 ) in 1940) until 1943 after his graduation. In pursuit of free artistic activity, this collective resisted drawing war paintings in the firsthalf of 1940 s, even when Asia-Pacific War reached its extremity. It could be suspected that their movement did have certain degree of influence on small collective activities of Koreans, including Lee Jung Seob. In 1941 Tokyo, Koreans who studied in various art schools initially organized Joseon New Artist Associatio( 朝 鮮 新 美 術 家 協 會 ) and it is especially remarkable that figures with pro-joseon tendency from Japanese arts and culture sphere visited their exhibition. Except for the postcards Lee sent to his junior, Yamamoto Masako he met in the Bunka- Gakuin, very few works of Lee Jung Seob remain in this era. Nonetheless, Lee Jung Seob s period at the Bunka-Gakuin is entirely momentous in that it resolved the attitude of a free spirited artist through the sincere companionship between Japanese and Joseon artists in Japan during the time.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Ⅰ. 머리말 Ⅱ. 본문 1. 교육자로서의 삶 2. 사진이론가로서의 삶 3. 작가로서의 삶 Ⅲ. 맺음말 Ⅰ. 머리말 장 순 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육명심( 陸 明 心, 1932~ )은 우리 땅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의 예술성에 대한 논의가 발화된 1960년대에 처음 사진을 시작한 한국사진의 원로 작가이다. 당시 한국은 제대로 된 사진학과는 물론이려니와 사진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서적조차 변변치 않을 만큼 사진가들에게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1) 육명심은 목우회( 木 友 會 )의 창립 멤버였던 서양화가 이동훈( 李 東 勳 ) 선생의 막내딸인 아내 이명희를 통해 처음으로 사진을 접한 이후 독학을 통해 사진을 공부해나가며 교육자이자 이론가, 작가로서 한국사진의 기틀을 닦아왔다. 그는 이론가로서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사진사를 정리하고, 해외의 유명한 사진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기도 하고 리얼리즘 사진과 살롱 사진만이 존재하던 한국사진계에 해외의 풍부한 사례를 제시하여 이를 통해 사진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북돋우는 역할을 하기도 했으며, 교육자로서 걸출한 작가들을 키워내는 한편, 작가로서는 한국의 정체성을 다루는 작업들을 선보이며 한국사진의 중심을 잡아나갔다. 1) 1880년대에 한국에 들어온 사진은 단순히 있는 현상을 기록하는 기계적인 기술로만 인식되어 오다가 인화기술의 발달과 함께 회화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이 가능해지면서 비로소 예술성 논의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1964년에 이르러 서는 국전에 사진부가 신설되고, 사진 단체가 문화예술단체로 인정받는 등 예술의 한 분야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육명심, 60년대 사진의 흐름, 한국현대미술사(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21

12 이 글에서는 올해로 사진을 시작한지 만 50주기를 맞이하는 육명심의 교육자, 이론가, 작가로서의 삶을 통해 한국 사진의 지형을 그려보고 그의 삶이 한국사진사에서 가지는 의의를 고찰해보려 한다. Ⅱ. 본문 1. 교육자로서의 삶 육명심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교육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는 1972년 서라벌예술대학(지금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강사로 사진 교육자의 길에 들어섰다. 당시 사진과 학과장이던 박필호( 朴 弼 浩 ) 선생 2) 의 소개로 세계사진사 강의를 시작한 것이다.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세계사진사는 기존의 사진사와는 조금 달랐다. 그는 사진사와 미술사를 구분해서 정리하기보다는 당시 예술 전반에서 일어나던 현상들을 사진사와 함께 엮어 풀어냈다. 이러한 태도는 기존의 사진사 책들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데 주효했다. 단순히 사진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술사, 문학사 등 다양한 예술계의 상황을 두루 살피며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1937년 발행된 버몬트 뉴홀(Beaumont Newhall)의 사진사 나 일본의 미술잡지인 미술수첩 등 다양한 참고서적들을 통해 자신만의 강의노트를 만들어냈다. 3) 그리고 이러한 그의 강의방식은 학생들에게 기존 리얼리즘 경향에 고착되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국 사진계의 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었다. 이후 198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진계에 비로소 현대사진이라 일컬을 만한 다양성의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도 그의 이러한 교육방식이 맺은 결실과 무관하지 않다. 육명심에게 사진사는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는 도구였다. 그는 늘 지뢰밭 을 피하기 위해 사진사를 공부해야 한다고 강의했다. 여기서 지뢰밭 이란 기존의 명망있는 사진가들이 이뤄놓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의미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라는 지뢰,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라는 지뢰 를 피하기 위해서는 사진사를 공부하고, 이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것이 바로 그의 가르침이었다. 2) 육명심과 박필호의 만남은 청계천에 있던 헌책방에서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1967년부터 매주 주말마다 사진예술과 관련된 일본과 서양의 책들을 찾아 서점을 드나들던 육명심을 눈여겨본 박필호 선생이 후에 그를 중앙대학교 강사로 초청하게 된다. 한국사진문화연구소, 제2차 구술면담: 교육자로서의 육명심, 한국사진사 구술프로젝트: 육명심, 가현문화재단, 2011, pp.65~68. 3) 위의 책, pp.69~70. 그는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며 사진작가 권부문( 權 富 問 )을 발굴해내기도 했다. 대학 2학년생이던 권부문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보고, 개인전을 개최할 기회를 주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이후 신구대로 옮겨서는 이갑철( 李 甲 哲 )과 최광호( 崔 光 鎬 )를 키워냈다. 찍고 싶은 것을 찍어오게 하는 그의 실기수업 방식과 학생 스스로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사진사 수업 방식은 제자들에게 자신만의 시각을 기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이를 통해 권부문, 이갑철, 최광호 같은 고유한 시선을 가진 사진작가들이 배출되었다. 그는 학생들이 자신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세계를 가지도록 늘 독려했고, 선생의 세계에 말려들지 않도록 결코 단점을 지적하지 않는 교수법을 고수했다. 그는 자신의 교육방식이 학생들이 가진 임계의식을 자극하고 이를 극복, 확장해나갈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믿었다. 4) 특히 사진계에서 육명심의 다섯 아들 중 하나로 불리는 이갑철의 작품세계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갑철의 경우 한국의 전통 정서가 담긴 소재들을 다루지만 기존의 보편적인 미를 드러내는 구도가 아닌 이미지가 프레임 밖으로 튀어나갈 듯한 독창적인 구도를 사용해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5) (도판 1) 이러한 이갑철의 접근법은 육명심이 다큐멘터리 실기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이미지를 생각에 동조시키는 훈련, 즉 자신이 느낀 것을 이미지로 담아내는 훈련이 일궈낸 큰 수확 중 하나이다. 같은 시기에 활동하던 해외 유학파 작가들이 쉽게 손에 넣지 못했던 우리의 토착적인 정서와 현대성을 이처럼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작가를 한국사진사가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육명심이 교육자로서 가지고 있던 신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진사 수업과 실기수업 방식은 모두 모든 인간은 자신만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다 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주체적 자아에 대한 굳은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인 자아를 가지고 있고, 이 자아라는 소우주를 개발하고 가꿔나가는 것이 인간 삶의 목적이며 예술은 이를 촉진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생각이다. 개개인의 개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의 태도는 학생들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공을 세웠다. 지금 4) 위의 책, pp.69~70. 5) 배문성, 이갑철 작가론, 이갑철, 열화당, 2012, pp.4~15. 도판 1. 이갑철, 아버지와 아들, 남원,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23

13 한국사진계를 이끌어가는 튼튼한 허리가 되는 세대인 사오십대 사진작가들 중 많은 수가 그의 손때가 묻은 제자들이며,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한국사진의 풍경을 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한국사진계의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사진예술이 나아가야 할 더 먼 미래를 제시하는 데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2. 사진이론가로서의 삶 한국사진사 속에서 현대사진이 시작되는 시점을 1980년대 말로 보는 시각에는 큰 이견이 없다. 6) 이전의 리얼리즘적 경향과 공모전 중심의 살롱풍 사진에서 벗어나, 세계사진의 조류를 받아들여 자유롭고 다양한 표현이 사진에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 변화의 뒤에서 육명심은 이론가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가 교육자로서 강조했던 개개인의 개성과 고유한 시각의 개발은 당시 사진계가 바라던 현대적 의미의 작가주의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현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객관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개개인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작가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를 통해 한국 사진은 현대사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것도 바로 육명심이었다. 사진이론가 진동선( 陳 東 善 )은 자신의 책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1989~2000 에서 한국 현대사진의 신호탄이 된 전시인 사진, 새 시좌( 視 座 ) (1988)에 대해 논하면서 전시 서문에서 드러나는 육명심의 예리한 판단력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서문에서 새로운 세대에 거는 새로운 기대 라는 말과 한국 사진사의 한 페이지의 장식 이라는 말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을 예견하고 있다. 7) 물론 이러한 변화의 산파 역할을 한 것도 그였다. 197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펴낸 한국현대미술사: 사진 을 최인진( 崔 仁 辰 )과 공동 집필하며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에 이르는 한국사진사를 세계사진사의 흐름에 따라 정리한 것을 비롯해, 사진을 가르치던 교재가 없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1980년에는 와타나베 쓰토무( 渡 邊 勉 )의 책 사진의 표현과 기법 을 번역했고, 이제 막 창간한 다양한 사진잡지들에 서양 사진가들의 사진세계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1987년 열화당에서 출판한 그의 저서 세계사진가론 은 현대사진을 마주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가 된 책들 중 하나로 꼽힌다. 육명심은 이처럼 한국사진사를 세계적인 사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며, 리얼리즘 사진과 살롱 사진으로 양분되는 6) 진동선은 자신의 책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1980~2000 에서 한국사진이 1985년을 기점으로 현대성을 지각하고 수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하며, 1988년 워커힐미술관에서 있었던 사진, 새 시좌( 視 座 ) 를 통해 현대성의 불꽃이 비로소 피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진동선, 1980년대 한국현대사진의 토대,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1980~2000, 아카이브북스, 2005, pp.19~20. 7) 진동선, 현대성의 불꽃 <88 사진, 새 시좌전>,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1980~2000, 아카이브북스, 2005, pp.28~ 작가로서의 삶 육명심이 걸어온 작가로서의 삶은 그가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늘 강조하던 것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강조하며 남을 따라하지 않기 위해 사진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처럼, 처음으로 카메라를 손에 들고 그가 담아낸 화면들은 당시 한국사진의 주류가 되었던 리얼리즘 경향과는 사뭇 다른 것들이었다. 그가 1966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찍었던 초기 사진이 보여주는 화면 구성과 소재는 당시의 사진들이 주력하던 사실에 대한 기록성 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특히 생활주의 사진 의 주창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응식이나 이해선 등 그보다 이십여 년 이상 먼저 사진을 시작한 앞세대 작가들의 기록사진에 가까운 작업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초기 사진의 또 다른 이름은 인상 연작인데 이는 작가가 주변의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인상 을 그대로 담았다는 의미로, 1960년대의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맹목적인 신봉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는 사진사 공부를 통해 이미 1960년대 말에 리얼리즘 사진이 가지는 한계를 직감했고 세계 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다. 그리고 초기 사진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의 작업들을 살펴보면 그가 단순히 현실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사물과 교감하는 작가의 내면적인 세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담하게 트리밍되거나 화면 가운데가 텅 빈 장면들(도판 2), 인물이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뒷모습 혹은 사물에 가려진 채로 등장하는 장면들은 같은 시기 활동했던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구성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보여주려 했던 기록성은 단순히 리얼리티에 대한 자각 을 넘어 작가가 느끼는 삶에 대한 비애 까지 표현해내는 진하고 깊은 진실에 가까운 기록성 이었다. 8) 그 의 인상시리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모홀리 나기(Moholy Nagy)의 신시각(New Vision) 운동이다. 이 운동은 사진의 시각이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것과 같다는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달리 우리가 볼 수 없는 것까지 8) 윤세영,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 육명심, 열화당, 2011, pp.4~15. 도판 2. 육명심,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25

14 다양하고 뚜렷하며,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모홀리 나기는 이제까지 사람들이 사진과 육안을 동일시하여 사진의 기록성에만 치중하는 것을 벗어나 카메라를 통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것은 육안이 아닌 카메라 아이 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육명심의 영상사진은 이 신시각 운동의 잠재적인 무한한 가능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신시각 운동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평범한 것을 영상적으로 새롭게 이미지화하는 사진을 찍었고 그 결과로 얻은 것이 기존 리얼리즘 경향과는 차별화된 작품들이었다. 9) 도판 3. 육명심, 박두진 (1916~1998, 시인), 서울 연희동 자택, 이후 이어지는 예술가의 초상 연작에서도 마찬가지로 그의 남다른 태도가 이어진다. 1966년 대학교 시절의 스승이었던 박두진( 朴 斗 鎭 ) 선생의 사진을 찍은 것을 계기로 문인과 화가, 국악인, 연극인 등의 초상을 담은 예술가의 초상 연작은 사실상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리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육명심이 사진을 통해 예술가들의 얼굴을 담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지닌 생각과 태도, 삶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서재를 배경으로 턱을 괸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시인 박두진의 사진에서는 단정하고 기품있는 문인의 태도가(도판 3), 담배를 빼물고 잔뜩 화면을 노려보는 영화감독 김기영( 金 綺 泳 )의 사진에서는 그의 고집스럽고 괴팍한 성격이 드러나고,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고 있는 화가 장욱진( 張 旭 鎭 )의 초상에는 그가 추구해온 순수한 작품세계가 겹쳐진다. 그는 다른 사진가들처럼 예술가들의 완벽한 순간을 담으려 하지 않았다. 쭈그리고 앉거나,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거나, 앞섶을 풀어헤치고 화면을 바라보는 예술가들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이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사진의 대상이 된 예술가들과의 교감이었다. 그는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예술가들에게 곧바로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았다. 몇 시간이고 대화를 하며 그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사진가가 관찰자로 남아 얼굴을 묘사하는 표면적인 사진이 아닌 작가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바탕으로 한 삶과 정서가 담긴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크게 백민 연작으로 묶을 수 있는 백민 연작, 검은 모살뜸 연작, 장승 연작을 거치면서 그의 사진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해나간다. 지금은 사장된 단어인 백민 은 벼슬이 없는 일반 백성을 뜻하는 말로 한국의 토박이들, 기층민들의 정서와 뿌리를 찍어 나간 그의 연작을 대표하는 제목이 되었다.(도판 4) 초기 사진과 예술가의 초상 연작에서 사물과 인물의 표면이 아닌 내면까지 아우르는 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백민 연작에서도 우리는 우리 나라를 지켜온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사람들의 소박하고 담백한 정신성을 도판 4. 육명심, 강원도 철원, 1986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도 육명심의 사진을 통해 이미지로나마 우리 곁에 붙잡아둘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육명심이 작가로서 이뤄낸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다. 그는 사물의 표면에 머무르던 리얼리즘 사진의 한계에서 벗어나 이들이 담고 있는 정신과 정체성을 카메라라는 또 하나의 작가의 눈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었고, 그가 포착한 우리 고유의 정신과 정체성은 작품을 통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생명력을 얻었다. 이 부분이 바로 육명심을 작가로서 다른 사진작가들과 구별해 주는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에 각 대학의 사진과 교수로 활동하며 세 교수 시대 를 열었던 홍순태( 洪 淳 泰 ), 한정식( 韓 靜 湜 )과 육명심은 비슷한 듯 다른 행보를 보이며 활동해왔다. 언뜻 그와 비슷한 소재를 다뤄온 것처럼 보이는 홍순태와 한정식이 끊임없이 변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추적하며 이를 기록하고 새로운 대상과 소재를 추구해왔다면, 육명심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 한국의 정신성과 정체성에 천착해왔다. 그가 하나의 주제를 십 년 가까이씩 찍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대상을 하나 정하면 다른 것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 대상만을 고집하며 사진을 찍는 작가로 유명하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그가 사진작가들과 함께 지방에 내려가는 길에 사진가들이 평생 한번 찍을 수 있을까 말까 한 기상이변을 겪은 적이 있었다. 다른 작가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들판으로 뛰어나갔는데 당시 장승을 주제로 작업하던 육명심만 혼자 차 안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눈앞에 놓인 표면적인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그 뒤에 앉은 정신성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온 육명심의 지고지순한 태도는 백민 연작에서 비로소 그 결실을 얻는다. 우리가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작품 속의 인물과 사물들은 단지 그때를 증언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를 말하고,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하는 것이다. 9) 육명심, 이것은 사진이다, 글씨미디어, 2012, pp.2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27

15 Ⅲ. 맺음말 참고문헌 길지 않은 한국사진의 역사 속에서 육명심이 일궈낸 성과는 참으로 크다. 세계사진사와 미술사를 통해 한국사진을 넓게 조망해온 그의 시선은 이제 한국 정서의 가장 깊은 곳을 꿰뚫고 있다. 그가 키워낸 수많은 제자들이 세계를 무대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동안 그는 이를 떠받치는 뿌리가 되어 한국의 정체성,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배문성, 이갑철, 열화당, 육명심, 60년대 사진의 흐름, 한국현대미술사(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78., 이것은 사진이다, 글씨미디어, 윤세영,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 육명심, 열화당, pp.4~15. 진동선,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 아카이브북스, pp.19~20., 현대성의 불꽃 <88 사진, 새 시좌전>, 한국 현대사진의 흐름 1980~2000, 아카이브북스, 한국사진문화연구소, 한국사진사 구술프로젝트: 육명심, 가현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29

16 Abstract The Life of Yook Myong-shim seen in the Course of the History of Korean Photography Sunkang Chang Associate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Yook Myong-shim( 陸 明 心, 1932~ ) is an elder artist who first set foot on photograhy in 1960 s, when discussion on the artistic value of photography intently began to kindle in the face of Korea. He studied photography on his own and laid firm foundation of Korean Photography as an educator, theorist, and artist. Yook organized the history of world photography in his own unique way as a theorist, introduced acclaimed photographers from abroad, and assumed the role of encouraging diverse perspectives on photography by informing abundant foreign cases to the scene of Korean photography, where only realism and salon photography existed. Also as an educator, he cultivated prominent artists and as an artist, he maintained his position in the center of Korean photography as he presented works imbedded with Korean identity. Yook Myong-shim first began teaching at Seorabeol Art College in 1972, through a course on Photography and History of World Photography. In this lecture, he unraveled the phenomenon occurring across the artistic realm along with the history of photography. Such instructional method further developed students who were fixed on the trend of realism to survey the conditions of Korean photography, which was unable to move forward. Afterwards in 1980 s, he made remarkable contribution for creating diversity in Korean photography, which was worthy to be deemed as modern photography at last. Moreover, through his pedagogy of encouraging individuality in students, he fostered various different photographers with their own peculiar prospects including, Kwon Boomoon, Lee Gapchul, and Choi Kwang-ho. He also played an integral role as a theorist in the advancement of Korean photography, escaping the trend of realism and entering into contemporary photography. Yook Myongshim and Choi Injin co-wrote Korean Contemporary Art History: Photography, arranging the history of Korean photography along the history of world photography between 1950 s to 1970 s. This was published in 1978 by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Considering the lack of theoretical materials at the time, Yook had translated Expression and Technique of Photography by Watanabe Tsutomu in Also, his book, Theories of World Photographers published in 1987 from Youlhwadang Publication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texts for theoretical basis in learning contemporary photography. Yook Myong-shim comprehended the history of Korean photography within the course of world photography in the means to prevent the reality of Korean photography being buried in the two parties of realism and salon photography, thus made endless efforts to pose the distant future that photography art shall progress into. On the other hand, Yook has been displaying distinctive works as an artist, surpassing the limit of realism photography. His early photograph series and Portrait of Artist series notably unveil the inner world of an artist, communicating with the object apart from simply recording the reality. Yook continues on his exploration of Korean identity, investigating through the series of Baekmin, Black Sand Bathing and Jangeung (Totem Poles). Yook delivered to us the spirit and identity of object through camera, as another lense of an artist and eloped the limitation of realism photography, as in remaining in the surface of object. The inherent Korean spirit and identity have gained vitality through his capture and this will continue to last together with us hereupon. 3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한국사진사의 흐름 속에서 본 육명심의 삶 31

17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1)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알 베르티나 박물관 등지에 소장되었다. 특히 그는 1984 년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가 16명이 참여한 양 옥 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사라예보 제14회 동계올림픽 공식 포스터 제작을 위해 Ⅰ. 머리말 Ⅱ. 황규백의 작업여정 1. 이주( 移 住 )와 조우( 遭 遇 ) 2. 음각판화(intaglio)의 실험자, 그리고 시인 3. 종이에서 캔버스로 Ⅲ. 맺음말 기획된 작품집(the Official Art Portfolio of XIV Olympic Winter Games in Sarajevo, Yugoslavia 1983~84) 3) 에 수록되는 판화를 제작함으로써 국제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였다.(도판 1, 2) 도판 1. <The Tortoise and the Hare>, 1983, 46x40cm, Mezzotint 도판 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공식 작품집 리플릿 표지 본 논문에서는 황규백이 1968년에 도불 후 파리에서 제작한 초기 판화작품과 이후 뉴욕에 정착하여 197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집중적으로 제작한 메조틴트 작품, Ⅰ. 머리말 그리고 2000년에 한국으로 영구 귀국 후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작업하고 있는 회화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구분하여 작가의 60년에 걸친 작업여정을 포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황규백은 1932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1968년 이후 30년 이상 파리와 뉴욕에 거주하며 국제적인 활동을 펼쳐온 대표적인 한국의 현대판화가이다. 그는 1954년부터 1967년까지 신조형 2) 과 신상회 의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조선일보사가 주최하는 한국현대작가초대전 등에 출품하며 작품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황규백은 서양미술에 대한 갈증과 전후 황폐했던 한국에서의 상황을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한 무대를 찾아 1968년 프랑스로 떠났다. 이후 황규백은 1970년에 또 한번의 이주를 통해 현대미술의 중심부인 뉴욕에 정착하여 작업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함으로써 전통적인 판화 매체인 메조틴트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조형세계를 구축하였다. Ⅱ. 황규백의 작업여정 1. 이주( 移 住 )와 조우( 遭 遇 ) 196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판화는 주류미술의 하나로 이에 대한 제작과 전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파리에 정착한 직후 황규백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판화제작소 중의 하나인 S.W. 헤이터의 아틀리에 17 4) 에서 수학하면서 숙명처럼 판화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영국 일찍이 해외에서 판화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황규백은 루브리아나 판화 비엔날레 (1979, 1981), 브래드포드 판화 비엔날레 (1974), 피렌체 판화 비엔날레 (1974) 등의 국제판화제에서 수상하였고,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파리현대미술관, 대영박물관, 1) 이 논문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작가 시리즈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 ~8.2.) 전시 도록에 실린 원고를 재수록한 것이다. 2) 김윤수 외 57인, 한국미술 100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한길사, 2006, pp.556~557. 3) 1984년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제14회 동계올림픽이 열렸을 당시 올림픽 공식 포스터 제작을 위한 작품집 Art and sports portfolio 가 만들어졌다. 그 작품집에는 황규백을 비롯하여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 데 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 제임스 로젠퀴스트(James Rosenquist, 1933~ ) 등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작가 16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4) 1927년 헤이터는 파리에 그의 스튜디오를 오픈하였고, 1933년에 캉파뉴-프르미에 가 7번지(7 Rue Campagne Première)로 옮겨갔으며 이것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판화제작소인 아틀리에 17이 되었다. 그곳에서 협업 등을 통하여 판화를 제작했던 대표적인 작가들로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 호안 미로 (Joan Miró, 1893~1983) 등이 있다. 내용 참조. 32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33

18 태생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스텐리 윌리엄 헤이터(Stanley William Hayter, 1901~1988)에 의해 1927년에 파리에 설립된 아틀리에 17에는 당시 세계 각지의 예술가들이 판화작업과 연구를 위하여 모여들었다. 헤이터는 판화 라는 장르를 당대의 작가들에게 새로운 매체로 인식시키고, 이를 통해 작업의 폭을 확장시키도록 적극 권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밑바탕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황규백 역시 1960년대 후반에 그곳에서 수학하며 다양한 기법을 습득하고 판화작가로서 새로운 실험과 작품제작에 매진하였다. 황규백은 이 시기 파리에서의 삶을 통해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태도를 배우고,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과 인적 교류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고 술회하였다. 판화라는 장르는 역사적으로 인쇄술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였으며 동양에서는 목판화가, 서양에서는 동판화가 발달하였다. 5) 그중에서 동판화는 제작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직접 묘화법 과 간접 묘화법 으로 분류되는데 그 기준은 판면 위에 잉크가 묻는 요철부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방식에 둔다. 6) 판 위에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직접적인 방식으로 이미지를 그려나가는 기법인 인그레이빙(engraving), 드라이포인트(drypoint) 등이 대표적인 직접 묘화법인데 황규백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메조틴트가 여기에 속한다. 반면 황규백의 초기 작품인 에칭(etching)과 아콰틴트(aquatint) 등과 같이 산( 酸 ) 등에 판을 부식시키는 화학적인 방법을 이용하여 판면에 이미지를 만들어낸 기법이 간접 묘화법이다. 황규백이 1968년 이후 파리에서 제작했던 판화작품들은 한국에서의 회화작업과 맥을 같이하는 추상화 경향의 연작들이다. 그는 에칭과 콜라그래프 등 음각판화(intaglio) 전반에 도판 3.<Origine de l Histoire>, 1968, 39x33cm, Etching 도판 4. <Évolution>, 1969, 52x41.5cm, Soldered, Engraved on Copper 걸친 다양한 기법을 통해 정형화되지 않은 재료들을 실험하고 판 위에서 이루어지는 우연의 효과와 물성의 표현을 극대화하는 작업들을 제작하였다. 이때 제작된 대표적인 판화들이 <Origine de l histoire>(1968), <Évolution>(1969), <Fossile-1>(1969), <Document de l histoire>(1970) 등의 작품이다.(도판 3, 4) 2. 음각판화(intaglio)의 실험자, 그리고 시인 파리에서 판화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황규백의 작품들이 다양한 전시에서 소개되고 미술시장에서 호응을 얻기 시작할 즈음인 1970년, 그는 뉴욕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삶에 있어 또 다른 전환점을 맞았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 작업에 대한 탐구와 고민의 시기를 거쳤던 황규백은 동판화 중에서도 특히 메조틴트를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마스터하였다. 이 무렵 황규백은 뉴욕 근교의 베어 마운틴의 잔디밭을 즐겨 찾아가곤 하였는데, 그곳에서 작품 구상에 대한 몰입의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우연히 그의 뇌리에 하늘, 잔디 그리고 손수건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들을 포착하게 되었고, 그렇게 저장해 두었던 기억 속의 소재들은 판화작품인 <White Handkerchief on the Grass>로 남게 되었다.(도판 5) 이 작품은 제작 직후 각종 국제판화제에서 수상하게 되었으며 황규백이 말하는 나만의 방식(my way) 7), 즉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이를 계기로 황규백은 그의 예술적 비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이상적인 매체인 메조틴트 작업으로 자연스럽게 전향하게 되는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된 것이다. 황규백이 집중적으로 제작한 메조틴트 기법은 17세기 독일 태생의 루드비히 폰 지겐 우트레히트(Ludwig von Siegen Utrecht, 1609~1680)에 의해 발명되었으며 18세기 영국에서 성행했던 대표적인 전통판화의 일종이다. 우트레히트는 금속세공, 가죽공예, 북아트 등에 쓰였던 도구인 룰렛(roulette)을 동판 위에 요철을 만들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메조틴트 기법을 개발하였는데, 8) 도판 5. <White Handkerchief on the Grass>, 1973, 33x27cm, Mezzotint 황규백 역시 메조틴트 제작시 룰렛을 즐겨 사용하였다. 황규백은 그의 메조틴트 작업이 집중과 반복, 그리고 치밀함을 동반한 노동집약적인 5) 이경성, 현대미술의 이해를 위하여, 예술지식, 1989, pp.299~308. 6) 구자현, 版 画, 미진사, 1989, pp.79~92. 7) Ronny Cohen, K.B. Hwang Complete Prints 1968~1988, John Szoke Graphics, 1989, pp.9~12. 8) Carol Wax, The Mezzotint, Harry N. Abrams, 1996, pp.15~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35

19 도판 6. <Watch in the bowl>, 1983, 30x35cm, Mezzotint 도판 7. <Three Moons>, 1993, 34x27.5cm, Mezzotint 결과물임에도 불구하고 테크닉 자체는 지극히 단순한 작업이라고 말하며, 그의 작품을 언급할 때 그 제작방법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완성된 작품을 자체로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황규백은 그의 작품이 현학적인 문구로 묘사되는 것을 경계하고 보이는 것과 그 이면 9) 에 담긴 서사와 함축이 열린 구조 안에서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음을 밝힌다. 황규백의 판화가 특별하고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인 메조틴트 작품의 화면 배경색이 어두운 색인 것에 반하여 황규백은 그것을 깃털과도 같이 밝고 부드러운, 독특한 회색 톤으로 만들어냄으로써 화면 안에서 보여지는 여백을 시각언어로 전이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의 브룩클린 미술관 큐레이터 조 밀러(Jo Miller)는 황규백을 음각판화의 위대한 실험자 10) 라고 평하였으며, 시( 詩 )적인 구도 안에서 인생을 관조한다 11) 고 언급 하였다. 최소의 단어와 운율로 쓰여지는 한 편의 시와도 같은 황규백의 작품에는 일상의 사물과 풍경이 화면 안에 은유적으로 병치되고 새롭게 재구성된다. 메조틴트 기법이 지닌 특유의 부드럽고 섬세한 디테일이 집약된 작품 속에 시적인 함의와 내밀한 환상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의 주변부에 존재하는 소소한 생물과 사물의 은밀한 대화, 혹은 무심코 놓아 두었던 기억과 현재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페르소나가 부재하는 풍경 속에 남겨진 그 자취가 다만 소리 없이 우리에게 말은 건네는 것이다.(도판 6, 7) 황규백이 미국에 정착하여 판화가로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할 무렵인 1970년대 초 중반 한국판화계의 상황은 1968년에 설립된 한국현대판화가협회 를 중심으로 판화에 대한 제작과 보급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당시 국내에서 보여지던 판화작품들은 회화를 위한 형식실험의 한 방편으로 보았으며, 그런 관계로 화가가 판화를 제작하는 형태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또한 판화자체의 장르적 특수성을 인식하고 판화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본격적인 판화가가 등장하게 된 것은 70년대 이후였다. 12) 1970년대에 이르러 판화작업에 대한 확장과 관심이 증대되면서 한국판화의 국제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1970 창립),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1970 창립) 등이 개최되었으나 황규백은 국내 판화계와는 거의 직접적인 교류와 연결고리를 갖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이 시기 황규백의 활동에 대해 오광수는 해외에 진출하여 새롭게 판화 영역을 습득한 작가들의 출현은, 판화가 갖는 특수한 기술적 영역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현대회화로서의 판화가 갖는 조형적 매제적 실험의 진폭을 확인시켜준 일로 기억된다 13) 고 말하며 헤이터 공방에서 판화 수업을 받고 다시 뉴욕으로 건너가 정착한 황규백의 메조틴트 방법에 의한 동판화전 (1973), 동양화의 중견작가로 활약하다가 미국에 건너가 동판화의 방법을 습득하고 돌아온 박래현의 귀국판화전 은 판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일깨운 계기가 되었다 14) 고 언급하였다. 판화가로서 작업의 깊이와 확장을 거듭하였던 황규백은 총 230여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이 시기에 제작하였다. 3. 종이에서 캔버스로 2000년에 이르러 황규백은 30년이 넘는 타국에서의 활동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였다. 육체적인 한계로 인하여 판화작업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았던 작가는 다시 돌아온 그의 터전에서 새로운 작업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70세가 넘어 다시 붓을 든 황규백은 기존의 판화작품에서 다루었던 소재들을 회화작업으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한 탐구와 시도를 거듭하였다. 이에 평소 그가 많은 예술적인 영감을 받았고 매료되었던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떠남으로써 회화에 대한 연구와 창작의욕을 고취시켰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특히 중점적으로 실견했던 프레스코 벽화(fresco)에서 회화작업의 기법적인 토대를 도판 8. <Violin on the Rock>, 2002, 102x122cm, Oil on Canvas 도판 9. <Hat in the Sky>, 2014, 122x102cm, Oil on Canvas 9) Jo Miller, The recent mezzotints of K.B Hwang, HMK Fine Arts, New York, 1975 재인용. 10) Jo Miller, Art Magazine, 1976 수록 글 재인용. 11) 위의 글. 12) 고충환, 한국현대판화 1958~2008, 국립현대미술관, 2007, pp.8~14. 13)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 열화당, 2000, p ) 위의 책,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37

20 찾았다. 프레스코의 특징들은 캔버스 표면에 만들어진 거친 마티에르와 그 위에 중첩되어 정교하게 그려진 사실적인 이미지들과의 미묘한 대조를 통해 보여진다. 황규백의 서정적이며 정제된 메조틴트 작품이 작은 스케일의 화면 속에 집약된 완성도를 농축하고 있다면, 그의 회화는 판( 板 )이 갖는 일종의 강박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또 다른 차원의 깊이를 더한다. 황규백의 회화는 우산, 모자, 악기, 시계 등 빈번하게 등장하는 일상의 사물들이 우리들 가까이에 있는, 혹은 미지의 세계에 존재할 법한 풍경과의 조합을 통해 우리 내부의 깊은 바다 15) 로 침잠하게 한다. Ⅲ. 맺음말 황규백이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근작들은 감성적인 직관과 내면적 통찰이 균형을 이루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흡사하다. 뉴욕 소호의 작업실에서 차가운 동판 위에 눈으로 보는 한 편의 시 를 새겨 놓았던 그의 정묘함은 무뎌졌으나, 그의 회화작품들은 사그러들지 않는 창작의욕에서 우러나오는 완숙한 붓질로 완성된다. 삶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사유와 관조를 바탕으로 하는 황규백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잃어가는 서정성의 회복을 이끌어내고, 내면의 낮고 깊은 대화에 귀 기울이게 한다. 참고문헌 가스통 바슐라르, 곽광수 옮김, 공간의 시학, 동문선, 고충환, 한국현대판화 1958~2008 展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곽남신, 한국 현대 판화사, 도서출판 재원, 구자현, 판화, 미진사, 김윤수 외 57인, 한국미술 100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 한길사,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 열화당미술책방, 2000., 한국현대판화의 오늘, 한국판화 드로잉대전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윤명로, 한국현대판화의 형성과 전개, 한국현대판화40년 展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이경성, 현대미술의 이해를 위하여, 예술지식, 이구열, 한국 판화예술의 흐름, 한국현대판화40년 展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장화진, 판화 감상법, 대원사, 하세가와 기미유키, 구자현 옮김, 현대판화의 기초지식, 시공사, 한운성, 판화세계, 미진사, Carol Wax, The Mezzotint, Harry N. Abrams, Jo Miller, The Recent Mezzotints of K. B. Hwang, HMK Fine Arts, New York, 1975., Exhibition Review Article, Art Magazine, John Szoke & Ronny Cohen, K.B Hwang Complete Prints , John Szoke Graphics, Riva Castleman, Prints of the 20th Century, Thames and Hudson Ltd, London, ) 세계는 크다. 하지만 우리들의 내부에서 그것은 바다처럼 깊다 는 릴케의 말 참조.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동문 선, 2003, p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39

21 Abstract Hwang Kyu Baik: Seen and Unseen Yang Okkum Associate Curator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Hwang Kyu-Baik (b.1932) was born in Busan and he had actively worked in Paris and New York since 1968 for over 30 years as a representative modern printmaker of Korea. He was a member of Shin Jo Hyung and Shin Sang Group from 1954 to 1967, and carried on his career by participating in the Korean Contemporary Artists Invitational Exhibition organized by Chosun Ilbo Company. However, Hwang s thirst for Western art and his will to escape the post-war devastation of Korea led him to the scene of more liberal creative activities as he departed to France in Afterwards in 1970, Hwang moved again and settled in New York, the center of contemporary art. He began to seek new transformation and thus constructed a distinctive style by internalizing the traditional printmaking technique of mezzotint in his own way. Apart from home, Hwang Kyu-Baik secured unrivaled position as a printmaker early on and won various awards at international print exhibitions including, Lublijana Print Biennale (1979, 1981), Bradford Print Biennale (1974), and Firenze Print Biennale (1974). Hwang s works are housed in the collection of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Musée d'art moderne de la ville de Paris, the British Museum, Victoria & Albert Museum, the Albertina and more. He especially established solid foothold as an international artist when he participated in the production of the official art portfolio of XIV Olympic Winter Games in Sarajevo, Yugoslavia ( ) with 16 internationally renowned artists. This thesis will extensively examine the 60 years working journey of Hwang Kyu-Baik in chronological order, from the early prints created in 1968 after he left to Paris, to the mezzotint works he concentrated between 1970 s to 1990 s settling in New York, and then the recent painting works Hwang has been working on since he permanently relocated to Korea in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22 Ⅱ. 미술관학 연구

23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정 다 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Ⅰ. 머리말 Ⅱ. 추진 배경 Ⅲ. 건축적 특성 Ⅳ. 운영 프로그램 Ⅴ. 맺음말 Ⅰ. 머리말 파빌리온(pavilion)은 온전한 건축물이 아닌 가설 건물이나 임시 구조체를 뜻하는 말이다. 영구적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모호하며 지어진 후 재빨리 허물기도 하는 가변적이면서 용도가 다양한 건축물이다. 천막과 텐트와 같은 원시적인 구조물이 파빌리온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갖게 된 것은 13세기로 추정된다. 일상을 벗어난 유희적 성격의 공간으로서 파빌리온은 귀족들의 정원에서 빈번히 만들어졌으며, 근대에 들어 만국박람회의 국가관이나 아케이드(Arcade)처럼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장소로 성행했다. 현대적 의미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미술관과 같은 시각예술 기관에서 촉발되었다. 특히 최근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공공 자치단체에서 장소브랜딩(place branding)을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행과 같은 이러한 현상의 배경에는 오늘날 파빌리온이 예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그 자체가 단순한 임시 구조물이 아닌 하나의 작업 으로 조명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이 설치미술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물리적으로 짓는 것 이상의 문화적 의미를 사회 전반으로 획득한 것이 주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도시적인 맥락에서는 파빌리온이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리고 침체기에 진입한 도시 조직의 틈새를 파고들 수 있는 실험적이면서 대안적인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45

24 도판 1. 자하 하디드,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2000 건축작업으로 조명 받고 있기 때문이다. 1) 영국 서펜타인 갤러리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는 21세기 파빌리온을 대표하는 사례다. 2000년 자하 하디드의 첫 번째 파빌리온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매해 영국에 건축 경험이 없는 스타 건축가들을 초청하여 작업을 의뢰하였다.(도판 1) 1998년에 시작된 뉴욕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Young Architects Program) 또한 건축가들의 실험과 도전 정신을 선보이는 대표적인 파빌리온 작업이다. 2012년 김찬중 건축가의 파빌리온 프로젝트 <큐브릭>을 선보인 국립현대미술관도 2014년부터 이탈리아 MAXXI, 이스탄불 현대미술관, 산티아고 컨스트럭토와 함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네트워크에 합류하여 서울관 마당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4년 당선작 프로젝트팀 문지방의 <신선놀음>, 2015년 당선작 SoA의 <지붕감각>은 모두 전통에 기반한 건축적 요소와 장소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으로 많은 이들의 인기를 얻었다.(도판 2~4) 국립현대미술관의 사례 외에도 <광주폴리(Gwangju Folly)>를 비롯, 2015년 한해만 해도 구 국세청 부지에 세워진 <럭스틸(Luxteel) 파빌리온>(운생동 설계),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의 <다이나믹 릴렉세이션(Dynamic Relaxation)>(국형걸 설계), 구 서울역 앞 광장에 설치한 <댄싱 포레스트(Dancing Forest)>(염상훈 & 이유정 설계), DDP 키오스크 등 건축가들의 다양한 파빌리온 작업이 선을 보였다. 건축과 미술에서 파빌리온은 경계를 허무는 매개체이다. 사회적으로는 뚜렷한 용도를 담지 않는 건축물이기에 복잡한 현대사회의 다양한 요구들을 시의적절하게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민관이 펼치는 여러 문화사업의 한가운데 파빌리온은 유용한 방법론을 제공한다. 임시성, 가변성, 융통성 등 파빌리온이 가진 본질적인 속성들은 여러 전문 분야와의 협업을 가능하게 하며, 빠른 속도로 모습을 바꾸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특징과 잘 맞아떨어진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분명히 파빌리온은 폴리, 키오스크 등 다양한 이름으로 확장하며 최근 우리 문화예술계를 달구고 있다. 미술관 바깥에서도 파빌리온은 팝업 스토어, 홍보관, 쉼터 등과 같이 여러 목적과 이름으로 게릴라처럼 견고한 도시의 틈새를 채우고 있다. 임시 구조물인 파빌리온의 물리적 한계를 떠나, 이러한 대안적이고 전복적인 특성은 건축과 미술 분야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이 글은 1988년 88서울올림픽 문화축전행사를 위해 기획된 <쿤스트디스코(Kunst Disco)>를 조망한다. 당시 서독 정부가 서울시에 기증한 이 임시 건축물은 전위적인 문화예술의 기지로서 여의도 앙카라 도판 5. 쿤스트디스코 외관 도판 6. 쿤스트디스코 내부 공원에 설치되어 26일간 가동되었다. 독일의 젊은 예술가 70여 명이 참여하여 운영된 <쿤스트디스코>는 국내에 전례 없던 사례로서 현대적 의미의 파빌리온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 전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의 이 건축물은 일반인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쿤스트디스코>는 그 실험성과 전위성에도 불구하고 임시 건축의 특성상 관련 연구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로컬 건축가로 협력했던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이 공간 지에 쓴 논고를 통해서 국내 건축계에 소개되었다. 또한 정기용이 <쿤스트디스코> 프로젝트에 협력하는 과정에서 남긴 도면, 사진, 스케치 등이 국립현대미술관 건축 아카이브에 수집되어 있다. 이 글은 <쿤스트디스코> 프로젝트 리뷰를 통해 파빌리온의 의미를 재고하는 것이 목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정기용 컬렉션 에 담겨 있는 문헌자료와 한국과 독일의 신문 및 잡지 기사를 토대로 작성하였다.(도판 5, 6) 도판 2. 김찬중, <큐브릭>, 2012 도판 3. 프로젝트팀 문지방, <신선놀음>, 2014 도판 4. SoA, <지붕감각>, 2015 Ⅱ. 추진배경 1) 건축가 구마 겐코는 저서 나, 건축가 구마 겐코 에서 최근 젊은 건축가들이 실제 건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닌 미술관이나 갤 러리 같은 예술 세계의 전시나 공간 구성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일컬어 파빌리온 계열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연계한 문화예술 행사의 일환으로 탄생한 <쿤스트디스코>는 한강축제 프로그램 중 청소년 축제를 위한 장소로 기획되었다. 예술(kunst)과 디스코(disco)의 결합을 의미하는 이름대로 서독 정부가 문화교류 차원에서 서울에 청소년을 위한 현대적인 만남의 46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47

25 디스코 공간을 제공했으며, 행사 이후 서울시에 건물을 기증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쿤스트디스코는 여러 장르의 서독 예술가 70여 명이 출연하여 레이저와 조명과 같은 요소가 부각되고, 안무, 영상 등 여러 장르가 함께 어우러지는 종합예술을 보여주었다. 460만 마르크 (한화 약 17억원)가 들어간 대규모 프로젝트로서 당시 KBS가 미디어 파트너였기 때문에 <쿤스트디스코>는 부지에 대한 별다른 대안 없이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 세워졌다. 2) 독일문화원(현 괴테인스티튜트)이 서독 외무성의 요청을 받고 올림픽게임 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쿤스트디스코>를 제안했을 때 이는 체제전복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고 여겨졌다. 한국 은 88서울올림픽 개최 직전까지만 해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으며, 괴테인스티튜트는 이러한 측면들을 문화적으로 전복시키는 향락과 자유주의 가 배어든 총체예술의 기지를 세우고 자 하였다. 3) 건축물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청소년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기존의 예술 장르를 내세우기보다 음악과 춤을 접목한 프로그램으로 관심을 끌도록 했다. 당시 프로젝트 책임자는 괴테인스티튜트 소속의 음악감독 유르겐 드류(Jürgen Drews)였다. 파빌리온에 해당하는 <쿤스트디스코>는 뮌헨공과대학교를 졸업한 뮌헨 출신의 건축가 율리아 망-본((Julia Mang-Bohn)과 페터 본(Peter Bohn)이 설계했다. 당시 나이로 20대 후반이었던 이 두 젊은 건축가를 비롯해 <쿤스트디스코>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안무가, 음악가, DJ 등 30세 전후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대거 협업하였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젊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이 1998년 9월 6일부터 10월 2일까지 총 26일간에 걸쳐 매일 다른 춤과 의상, 음악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총체적인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쿤스트디스코>의 핵심이다. 건축의 형식적 요소와 퍼포먼스가 여러 층위로 결합된 <쿤스트디스코>는 기존과는 다른 서브컬처의 기지로 올림픽 기간 동안 청소년들의 전위 무대로 사용되었다.(도판 7, 8) Ⅲ. 건축적 특성 여의도 앙카라 공원에 설치된 <쿤스트디스코>는 대지면적 6,800m2에 건축면적 926m2, 연면적 1,320m2의 지상 3층 규모로 대형무대, 레스토랑, 바(bar), 휴식공간 등으로 채워졌다. 외부는 노출철골조에 샌드위치 패널과 라미네이티드 글라스로 마감하였다. 건축 설계를 맡은 율리아+페터 본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협업하였는데, 인테리어는 산업 디자이너 빕스 호삭 롭스(Bibs Hosak-Robbs), 실내설치 작업은 의상 디자이너 미하엘 오디(Michael Ody), 전기와 레이저 시설은 조명 디자이너 울리 페졸트(Uli Petzold)가 맡았다.(도판 9, 10) 율리아+페터 본은 당시 시공현장에 건축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 많지 않고 기술이 부재한 상황에서 구식 방법을 동원하는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작업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원활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 내부 협업과정에서도 갈등은 발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레스토랑과 바 설계를 맡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빕스 호삭 롭스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설계 방식과 엄숙하고 논리적인 뮌헨 공과대 출신의 두 건축가들의 작업 방식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면 노출철골조의 구조물에 부드러운 직물 조각을 내 외부에 설치, 개입시켜 파빌리온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 의상 디자이너 미하엘 오디의 작업은 오히려 건축 형식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면서 이질적인 부분들이 복합적인 조화를 이루는 결과를 낳았다. 4) (도판 11~13) 도판 9, 10. 쿤스트디스코 건축 설계 다이어그램 현장의 기술적 어려움과 협업과정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갈등에도 불구하고 <쿤스트디스코>는 도판 7. 쿤스트디스코 외관 도판 8. 무대 내부 2) 쿤스트 디스코 서울 건립 독일서 한국문화행사 벌여, 한겨례, ; 독일문화공연장 건립 올림픽행사 소개위해, 경향신문, ; 88기간중 행위예술 축제 펼쳐, 동아일보, ; 서독정부기증 여의도 쿤스트 디스 코, 매일경제, ) BAUNETZWOCHE #332 special, , p.332. 도판 11, 12. 쿤스트디스코 레스토랑 및 바 인테리어 4) BAUNETZWOCHE #332 special, , 유르겐 드류 페터 본 율리아 망-본과의 인터뷰 48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49

26 도판 13. 미하엘 오디의 직물 조각 매일 300여 명이 방문 하는 명소로 성황리에 개막 하였다. <쿤스트디스코>의 한국 파트너로서 페터 본, 율리아 망-본과 교류했던 정기용은 공간 지 1988년 9월호 기고를 통해 <쿤스트디스코>의 세 가지 주요한 건축적 이슈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첫째는 도시건축과 임시구조물의 상응관계이다. 모두 비슷비슷한 상자형 건물이 즐비한 서울에서 젊은 두 독일 건축가는 가볍고 개방적인 하나의 깃털 과 같은 가건물을 제시했다. <쿤스트디스코>는 도시계획과 건축법규의 제약에서 벗어난 임시 건축의 관용적 측면 때문에 다른 건축물과는 다르게 실험적인 접근이 가능했으며, 이러한 현실적 규약을 벗어나는 새로운 시각은 견고한 서울의 건물들에 대응하는 유연한 유랑건축(Architectur Normade)의 재현을 꿈꾸게 했다. 둘째는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한국 전통건축의 만남이다. <쿤스트디스코>에는 철저한 비례감각 뒤에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의 문법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한국 전통지붕 형상을 역으로 사용한 환기그릴의 의장처리는 전통건축과 구성주의 문법의 적절한 조화를 보여준다. 추녀의 내민 모습에서 내외공간 사이의 전이공간을 해석하고, 쳐든 지붕선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찾아내거나, 남쪽을 개방하고 북쪽을 부속 건물로 폐쇄하는 등의 모습은 서구의 전위적인 언어와 우리 전통이 교차하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셋째는 건축자재로서 노출철골조에 대한 재해석이다. 페터 본과 율리아 망-본이 서울의 도시 건축물에 대해 느낀 바와 같이 서울은 선이 사라지고 폐쇄된 덩어리로 차있었다. 임시구조물 이라는 점에서 시공비 절감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겠지만 쿤스트디스코는 당시 도시 풍경과 대비되는 있는 그대로의 구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세 관점은 서로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 당시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자극을 던진 건축으로 보일 수 있었다. 5) (도판 14, 15) Ⅳ. 운영 프로그램 <쿤스트디스코>는 건축뿐만 아니라 내부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도 혁신적인 측면들이 돋보였다. 오후 5시에 개장하여 밤 11시에 문을 닫는 <쿤스트디스코>에는 매일 공연과 음악이 바뀌었으며, 연주자 들을 비롯한 여러 참가자들을 위해 미하엘 오디는 150여 벌의 의상을 제작했다. 미하엘 오디의 의상과 복장 또한 매우 전위적으로 기묘한 모습을 띠었다. 6) 디스코를 위한 음악은 슈트뢰어-브뢰어(Ströer-Brüder)가 총괄했고, 안무가 하워드 파인(Howard Fine)이 퍼포먼스와 댄스를 기획했으며 실제 현장 에서 웨스트밤(WestBam)이 DJ로 활약했다. 하워드 파인과 그의 팀원들은 놀이와 예술성을 가미한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다양하게 퍼포먼스를 구성했다. 당시 한국인들은 디스코라는 음악 장르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자 했고 사람들 사이에 활기가 생기도록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도판 16~18) 슈트뢰어-브뢰어의 컨셉에 맞춰 <쿤스트디스코>용으로 제작된 음악을 가지고 베스트밤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적절한 배경음악을 제시하는 등 민첩하게 대처했다. 베스트밤은 다양한 상황과 분위기에 맞춰 사용할 수 있는 LP 30장을 제작했고 쿤스트디스코가 폐장된 후 이중 일부가 서울의 베스트밤(WESTBAM in Seoul) 이라는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하워드 파인과 슈트뢰어-브뢰어, 베스트밤은 무대 뿐만 아니라 <쿤스트디스코>의 다른 부속 공간 안에서도 유연하게 관객과의 상호 교감이 이루어지도록 작업하였다.(도판 19) 음악에 초점을 맞춘 어둡고 큰 보통의 다른 디스코텍과 달리 <쿤스트디스코>는 외부공간을 개방해 춤을 추는 대상과 그 밖의 다른 대상과의 상호응시와 관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자연통풍을 이용한 환기시스템을 고려했으며, 공항터미널에서 컨셉을 차용해 전체적으로 도판 16~18. 오디의 의상을 입은 퍼포머, 댄서들 도판 19. 서울의 베스트밤 음반 도판 14. 쿤스트디스코 지상층 평면도 도판 15. 쿤스트디스코 단면도 5) 정기용, 쿤스트 디스코, 콘크리트 공간 속의 깃털같은 시어, 공간, ) 인터뷰: 독 쿤스트디스코 의상 담당 오디 씨, 무대 옷은 관객 이해 돕는 도구, 경향신문, 미하엘 오디의 의상 은 뮌헨패션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50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51

27 밝은 구성으로 알루미늄 타입의 간이 건축 방식을 선보였다. 이러한 디스코 클럽 속에서 <쿤스트디스코>는 발레, 오페라와 같은 고전예술 형식과 달리 전자음악과 관련하여 이를 건축물에 적용한 진보적이고 독특한 총체예술을 선보인 것이다. 음악의 경우, 건축보다는 유연한 대처가 가능하여 퍼포먼스는 진지하기 보다는 가볍고 즉흥적인 것에 초점을 맞춘 퍼포먼스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였다. 7) 입장료 3,000원을 내면 자유롭게 행위예술 이라는 혁신적인 문화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었지만, 비싼 입장료를 내야 했기에 <쿤스트디스코>는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개장 기간 동안 일부 언론들은 의도와 달리 결국 삼류 디스코장으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8) 독일의 전위예술가들의 몸짓과 이에 호응하는 신세대들의 환호성 속에는 기성세대가 감지하지 못한 서울올림픽 이후의 새로운 문화적 양태들이 담겨져 있었다. <쿤스트디스코>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과 더불어 등장하여 신세대로 호명된 새로운 젊은이들의 문화소비를 위한 실험적인 기지였다. 1988년 국내 최초 맥도날드 매장이 압구정동에 개장하고, 1990년대 오렌지족이 등장하는 등 문화적 사건에 맞춰 트렌디하고 급진적인 소비를 이끌었던 젊은이들은 <쿤스트디스코>에서 벌어진 26일 간의 축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Ⅴ. 맺음말 <쿤스트디스코>는 오늘날 민간과 공공기관 등 다양한 주체의 주도로 실현되는 파빌리온의 기획 배경과도 연결된다. 개발과 성장의 정점에서 문화적 갈증을 해갈하기 위한 낯설고도 급진적인 영토를 탐색하는 시도는 가건물의 문화공간화를 이루었다. <쿤스트디스코>는 유희적 도판 20. 보라매공원에 방치된 쿤스트디스코 도판 21. 앙카라 공원에 세워진 터키식 찻집 성격의 공간으로서 그전까지 한국사회에서 터부시 되었던 임시건축 혹은 가건물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킨다. 가건물은 한국 근대화를 위한 장치이자 임시 주거민으로써의 삶을 버리고 제대로 된 정착지를 찾고자 했던 한국인들에게 부정적인 대상이었다. 하지만 <쿤스트디스코>를 매개로 파빌리온(가건물)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이후의 삶이 펼쳐지는 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를 위한 장치로서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쿤스트디스코>는 올림픽이 끝난 후에 여러 다양한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었지만 이후 폐쇄된 채 몇 년간 방치되었다. <쿤스트디스코>는 1990년 9월 서울시 동작구 보라매공원으로 이전된 뒤 1991년부터 한국체육진흥회의 관리 하에 체육 프로그램 시행 장소나 서울액션스쿨 등으로 활용되었다. <쿤스트디스코>가 있던 앙카라공원에는 터키식 찻집이 세워졌다. 보라매공원에 옮겨진 <쿤스트디스코>는 외관에 패널들이 덧붙여지면서 원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모했으며, 가끔 바둑대회나 결혼식장으로도 이용되며 점심시간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탁구를 치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2007년 보라매공원 재정비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쿤스트디스코>는 철거되어 사라졌다. 9) (도판 20, 21) <쿤스트디스코>는 양질의 문화적 토양에서 발아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가건물의 문화적 맥락을 이끌어냈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미완의 토양에 불시착한 셈이 되었지만 새로운 문화적 실험을 위한 장을 제공하였기에 중요한 건축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건축물은 현재에도 지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플래툰 쿤스트할레(Platoon Kunsthalle)>가 있다. 이곳은 2000년대 들어 탄생한 한국의 서브컬처 기지로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 세워졌다. 28개의 컨테이너를 쌓아 만든 이 구조물은 일견 임시적으로 보이나 상설 운영되는 문화 상업공간이다. <플래툰 쿤스트할레>는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적 현상을 신속하게 반영하는 곳으로 젊은 예술인들을 지원하는 전시, 강연, 프리마켓 등을 열고 있다.(도판 22) <쿤스트디스코> 이후 국내에서 파빌리온 사례들은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 서울 도시갤러리 프로젝트와 같이 공공미술의 일환으로 나타나다가 2010년 이후 미술관 등 기관이 주최로 참여하면서 작업 주체, 규모와 성격 면에서 좀 더 건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러한 실험적이고 임시적인 건축은 보다 많은 도판 22. 플래툰 쿤스트할레 7) BAUNETZWOCHE #332 special, , 베스트밤, 안무가 루스 가이어스베르거와의 인터뷰. 8) 디스코 場 (장)된 獨 (독) 전위예술무대, 경향신문, ) 방치된 88공연장, 동아일보, ; 쿤스트디스코 보라매 공원 이전, 한겨례, ; 신건축기행/신 대방동 쿤스트 디스코, 매일경제, ; 한국 스턴트맨이 사는 법-서울액션스쿨, 씨네21, 국립현대미술관 연구논문 제7집 총체예술의 실험실로서의 파빌리온: <쿤스트디스코>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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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EDB9AEC0DBBCBAB9FD2E687770> (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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