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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 시 민 속 조 사 보 고 서 0 9 민 속 지 인 천 차 이 나 타 운 淸 館 청관 Ethnographic Research on the Chinatown(Qing guan) of Incheon 글 강경표 안일국 사진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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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도 시 민 속 조 사 보 고 서 0 9 민 속 지 인 천 차 이 나 타 운 淸 館 청관 Ethnographic Research on the Chinatown(Qing guan) of Incheon 글 강경표 안일국 사진 김은진

4 일러두기 이 책은 2011년 도시민속조사의 일환으로 2011년 1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현지조사를 토대로 쓰여진 인천 차이나타운 민속지이다. 조사는 선대( 先 代 )에 인천으로 이주하였으며, 대만 국적을 갖고 현재 차이나타운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화교를 대상으로 하였다. 제보자의 정보, 구술내용 그리고 사진은 제보자의 동의를 얻어 인용하였다. 단, 제보자의 정보 중 공개를 원치 않을 경우 기록하지 않았다. 제보자의 이름은 6장 화교 직업인 생애사의 제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식 한자 발음으로 표기하였다. 구술자료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현지어를 그대로 표기하며, 문맥상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표준어를 함께 표기했다. 사진과 참고문헌은 출처를 밝혀 인용하였다. 참고문헌은 각주로 대신한다. 제보자의 구술내용은 국립민속박물관의 방향과 맞지 않을 수 있다.

5 도 시 민 속 조 사 보 고 서 0 9 민 속 지 인 천 차 이 나 타 운 淸 館 청관 Ethnographic Research on the Chinatown(Qing guan) of Incheon 글 강경표 안일국 사진 김은진

6 발 간 사

7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농어촌 지역에 국한된 민속조사에서 벗어나 현대 한국인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도시공간에 관심을 갖고, 2007년부터 5년 째 도시 민속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2011년에는 다문화 연구 로 조사 주제를 설정하고, 1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차이나타운 또는 청관( 淸 館 ) 으로 불리는 인천의 북성 동 일대의 화교문화를 조사하였습니다. 인천 화교사회는 어느덧 5세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1세대는 모두 세상을 떠나시고, 1세대의 고난을 보고 자라면서 한국에 어렵게 정착한 2세대, 어렵게 정착한 만큼 후세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고 싶은 3세대, 고향도 한국이고 중국어보다 한국어가 익숙한 4 5세대들의 이야기들이 모두 차이나타운을 지키는 힘이 되었습니다. 인천 차이나타운 조사보고서에는 한국에서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 윗세대에게 물려받은 중국적 생활문화부터 한국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문화까지 그들 삶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수록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이 조사보고서가 인천 차이나타운과 화교사회를, 더 나아가서 다문화 사회를 이 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본 결과물이 있기까지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가감 없이 진솔하게 제보해주신 지역주민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자료협조 등 조사 진 행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인천 화교협회, 인천 화교학교, 인천 중구청 관계자 여러 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2012년 7월 국립민속박물관장

8 차 례 발간사 6 조사 개요 년 인천 다문화지역 민속 조사 12 조사지 개관 18 공간 지리적 특징 역사 문화적 특징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2 정착부흥기 쇠퇴기 적응기 재정착기 화교촌의 공간구성 54 의례공간 교육공간 상업공간

9 세시풍속 94 소년 춘절 원소절 청년절 아동절 청명절 한중문화축제 개교기념일, 운동회 결혼식 단오 졸업식 입학식 중추절 쌍십절 차이나타운의 2011년 한해살이 화교 직업인 생애사 166 웬쇼우친[원소흠, 原 所 欽 ] 취창쒼[곡창신, 曲 昌 信 ] 류우텐하이[유천해, 劉 天 海 ] 김바우위인[김보운, 金 寶 雲 ] 취덕청[곡덕성, 曲 德 成 ] 쒸쉬에바오[서학보, 徐 學 寶 ]

10 조사개요 10

11 11 조사 개요

12 조사개요 년 인천 다문화지역 민속 조사 한국사회에서 다문화 는 이미 오래된 화두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2.7% 인 140만 명이 외국인이고, 결혼하는 10쌍 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으 며, 2020년이 되면 청소년의 20%가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보고는 다문화 정책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하는 다문화 는 원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를 일컫는다. 이 다문화주의는 단일한 민족국가들이 가지고 있던 다양 한 문화를 서로 인정하고 교류하기 위해 여러 문화를 존중하고자 하는 이론 에서 출발하여 여러 유형의 이질적인 주변문화를 제도권 안으로 수용하자 는 입장을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다문화주의의 기본 이념은 상호 존중과 문 화적 차이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다문화 라는 말은 마치 생계를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키는 용어로 쓰여지고 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정책도 단지 인도적 차 원의 온정과 연민, 교육과 상담의 대상일 뿐 결코 문화적 주체로 존중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사회는 이미 선택이 아닌 현실이 되었고, 그들을 사회 구 성원으로 보듬어주지 못한 채 범죄자나 사회부적응자로 내몰 경우 감당할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해야만 사회적 갈등을 최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앞으로의 다문화정책은 다문화주의의 부정적인 요인 을 극복하고 다양성을 포용하여, 연대감을 증대시키는 공동의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타문 화를 알아야하고, 국립민속박물관의 다문화지역 조사 도 이러한 의미에서 중요한 작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화교는 130년 전 한국에 들어와 한국사회에 적응하며 살아온 가장 오랜 타문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교문화 특히 화교들이 한국문화에 어떻 게 적응하며 살아 왔고, 화교문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번 조사가 기초 가 되어 우리가 또다른 타문화를 포용하는 방법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보탬

13 2011년 인천 다문화지역 민속 조사 13 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다. 조사팀은 국립민속박물관 도시민속 조사사업 의 일환으로 2011년 1월 부터 9개월간 인천 차이나타운을 조사하였다. 대한민국 인구의 80%가 거 주하는 도시 공간에 대한 연구이니만큼 조사지 선정과 조사방식이 기존의 사라져가는 공간에 대해 기록하는 방식 보다 조금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고 판단했다. 이에 도시공간에 대한 주제별 접근을 시도하였다. 역사적 문화적 특징 이 있는 공간에 대해 분류하고 정리하였다. 다문화 도시, 기업 도시, 근대 도 시 등 주제를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제 별 조사 방식은 도시공간의 역사적 문화적 특징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 는 장점이 있다. 또한 유물수집, 전시연계 가능성에 있어서도 장점이 있다. 특히 이번 조사는 현대 한국사회의 한 부분이 된 다문화 사회 에 대한 학술 적 조명을 해보자는데 의의가 있다. 이는 국립민속박물관의 첫 번째 다문화 조사 로서 그 대상지는 청관( 淸 館 ) 차이나타운 등으로 불리는 인천의 북성동 일대이다. 다문화 조사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조사 대상지로서 염두에 두었던 지역은 안산 원곡동과 서울 이태원, 그리고 인천의 북성동이었다. 이중 인천의 북성동을 최종 선택하였다. 130여 년 전, 타문화를 가진 사 람들이 정착하여 자신들의 문화를 전승하며 살아가는 인천 화교 에 대한 조 사 연구로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이는 학문적 다문화(Multi Culture) = 타 문화(Different Culture) 연구의 집성 이라 판단하는 조사자로서, 역사성이 담보되어 더욱 깊이 있는 이야기를 수집할 수 있을 것 이라는 판단에 의해 서였다. 안산의 원곡동과 같이 생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집단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보다 역사성을 담보하고 있으며, 대를 이어 살아오면서 독특한 문화 를 형성하였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14 조사개요 년 임오군란 때에, 조선정부의 참전 요청에 의해 리홍장( 李 鴻 章, ~ )의 군대가 인천에 주둔하였는데, 이때 함께 따라 온 상공화교( 商 工 華 僑 ) 40명이 한국에 온 첫 화교이다. 이후 꾸준히 화교인구 가 유입되었는데, 이들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으며 채소농사, 이발사, 재 단사, 요리사 등으로 생업을 이어갔다. 이들은 한국인들로부터 짱깨, 짱꼴라 라는 말을 듣는 등 민족적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다. 또한 한국정부의 화교정책(주변국과의 관계에 따른)에 따 라 업다운을 겪으며 살아왔다. 산둥성이 고향이고 본적이나, 한국전쟁 이후 한중관계 악화로 본적지를 버리고 대만의 국적을 취득해야만 했다. 그러나 여 전히 사는 곳은 인천이다. 1950년대에는 창고봉쇄 조치로 무역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으며, 1997년까지 이어진 부동산 규제 정책으로 일정 수준 이 상의 점포와 농토를 소유할 수 없었다. 반면에 최근에는 이른바 다문화 특구 조성 사업 등으로 여러 해택을 받고 있다. 130년 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인천의 화교들은 5세대를 맞이하고 있다. 화교가정에 한국인 엄마가 70%에 달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화교 민들의 수가 중국에서 태어나 이주한 그 윗세대보다 몇 곱절 더 많은 시대가 되었다. 첨밀밀 보다 빅뱅 과 소녀시대 에 환호하는 화교들이 더 많게 된 것 이다. 이러한 후세대들을 가리켜 일명 6.25세대 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의 피 가 6.25%섞인 세대라는 뜻이다. 1세대 중국인과 한국인이 결혼하여 낳은 자 녀는 50%, 2세대는 25%, 3세대는 12.5%, 4세대 부모로부터 출생한 5세대 자 녀는 중국의 피가 6.25%만 섞여 있다는 의미이다. 인천의 화교들은 전통의 유 지와 융합사이에서 꾸준히 고민하여 왔다.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고향 의 짜장면을 복원하여 백년짜장 이라는 상품을 만들어 팔며 자부심을 느낀 다. 한편 그들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간에 유지와 융합의 시대를 넘어 이른바 변화의 시대에 들어섰다. 그 시대의 흐름은 한국 땅에서 화교들이 어떻게 적 응하며 살 것인가의 수동적인 변화가 아니라 한국문화와 소통하고 한국인, 나 아가 세계인에게 화교들을 알리는 적극적인 변화를 택한 것이다. 차이나타운 을 이른바 화교를 이해하는 소통의 창구 로 만들고자 자비를 들여 각종 활동 을 펼치고 있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15 2011년 인천 다문화지역 민속 조사 15 국립민속박물관의 조사 원칙 중 하나는, 현지 체류조사 이다. 1월부터 시작하여 9월까지 현지에 숙소를 구하고 연구원이 상주하며 피조사자와 함 께 9개월을 산다. 그들의 세시에 대해 기록하였고, 그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수집하였다. 또한 그들의 생애에 대한 심층조사를 실시하고, 살아온 공간의 이야기를 기록하였다. 조사팀은 먼저 인천 중구청과 인천시립박물관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 한 결과 손덕준, 서학보 사장님을 소개받았다. 다시 손덕준, 서학보 사장께 서 조사 취지를 잘 이해하시고, 주변의 화교들에게 조사팀을 소개해주고 제 보자를 찾기위해 직접 전화를 해 주시는 등 여러모로 중간 역할을 많이 해 주셨다. 처음엔 그들이 우리에게 느꼈던 벽만큼 화교들에게 다가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팀은 이러한 작업을 하기 위하여, 기꺼이 그들 안 으로 들어가 함께 살며 이야기를 들었다. 만남이 거듭될수록 정이 쌓이고 신 뢰가 깊어졌으며, 이와 더불어 이야기의 깊이와 범위 또한 넓어졌다. 인천 차이나타운이라는 문화접변(acculturation)의 현장을 조사하면서, 이러한 조사행위의 집성이 다문화 사회 이해에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 였다. 화교민들이 적응하며 살아온 삶의 양상들을 보며 그들의 고충에 대해 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 한 가치판단을 도울 수 있다. 또한 다문화가정 교육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 는데 있어서도 화교학교의 예를 살피며 견본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한 지속적인 심층조사가 필 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다문화조사는 올해 첫 단추를 꿰었다. 그 첫 번째 대 상은 역사성이 담보되어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에 마침맞은 인천 화 교 이다. 다문화라는 것은 피부색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저기 멀찍하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우리 가까이에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던 사람들, 그리고 최근에 우리 곁에 와서 함께 호흡하며 살아갈 사람들 이라는 사실이 사회 전반에 퍼질 수 있도록 우리의 결과물 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인천 차이나타운 보고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인

16 조사개요 16 천 화교들의 시기별 생활모습과, 살아온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시대에 따 라 부침을 겪으며 살아온 화교들의 생활사에 대해 다루었으며, 그들이 점유 하며 살아온 공간 즉, 차이나타운에 대해서 기록하였다. 두 번째는, 세시풍 속이다. 춘절부터 쌍십절까지를 기록하였고, 지역의 행사와 결혼식 등을 기 록하였다. 중국의 전통을 유지하며 전승 변용하는 양상들을 살펴 볼 수 있 을 것이다. 셋째는 화교 개인 생애사이다. 화교의 대표직업군이라 할 수 있 는 가이드, 요리사, 한의사, 무역상 등을 포함한 화교 개개인의 생애 이야기 를 수록하였다. 시대에 따라 강제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화교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17 2011년 인천 다문화지역 민속 조사 17

18

19 조사지 개관

20 조사지 개관 년 다문화지역 조사 대상지는 인천 차이나타운 청관( 淸 館 ) 등으 로 불리는 인천의 북성동과 신포동 일대의 화교촌( 華 僑 村 )이다. 화교( 華 僑 ) 라는 용어는 청나라와 조선이 교환한 문서에 따르면 청조인( 淸 朝 人 ), 화 인( 華 人 ), 청상( 淸 商 ) 등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용어가 등장한 것은 청나 라 말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교( 華 僑 ) 는 한자어의 의미로 외국 영토 에 거주하는 중국인을 모두 통칭한다. 다만 원래는 임시 거처 교( 僑 ) 를 썼 으나 요즘들어 중국과 한국을 이어준다는 의미로 다리 교( 橋 ) 를 쓰는 경 우도 있다. 차이나타운 일대의 면적은 30만 평방미터이며, 화교 인구는 3백 가구 약 1천여 명이 살고 있다. 차이나타운 일대의 전체 인구가 약1만 명인 것에 비 추어보면, 화교인구가 1/7인 것이다. 인천 전역에 살고 있는 화교의 숫자는 1,000가구, 약 3천명이다. 인천 전체화교의 약 1/3가량이 차이나타운 내에 거주하고 있는 것이다. 1 인천 차이나타운의 화교는 대만국적이 90% 이상이다. 이들은 대부분 1884년 이후부터 한중수교 2 이전까지 유입된 화교의 후손들이다. 약 130 년간 같은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초창기 화교 들은 이른바 칼을 쓰는 세가지 직업 즉 이발사, 재단사, 요리사 그리고 낫 을 쓰는 농사를 주로 생업으로 삼았다. 1세기 이상이 흐른 2011년 현재의 화교 대표 생업은 요식업, 여행업(가이드 등), 무역업, 잡화점, 한의사 등으 로 다양해졌다. 인천 전체 가구 수 인천 북성동 가구 수 인천 화교 가구 수 인천 북성동 화교가구 수 1,059,664가구 2,136가구 약 1,000가구 가구 수 비교로 본 화교( 2011 통계연보, 통계청 / 중구청 경제지원과 제공) 약 300가구 년 인천이 개항을 하고, 일본이 같은 해 9월 에 현재의 차이나타운에 조계지를 설정하였다. 이후, 1884년 4월 청국이 조계지를 설정하였다. 5 천 평 토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다. 그해 10월 청국 영사관도 지금의 화교협회 자리에 세워졌 다. 최초 청관, 차이나타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적대관계를 청산 하고 국교를 정상화하였다.

21 위 지도는 인천 한중문화관 제공 / 아래 지도는 인천시 제공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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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조사지 개관 24 구 일본은행

25 공간 지리적 특징 25 공간 지리적 특징 인천 차이나타운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처음부터 평지를 두고 산으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1884년 최초 조계지가 설정될 당시 현재의 1패 루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무역업을 하기 가장 좋은 조건인 무역 항 인근에 자리를 잡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1884년 당시 조성된 조계지 경계 계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일본 조계지, 왼쪽은 중국 조계지로 구획하 였다. 그 구획선을 따라 건물의 양식도 판이하게 다르다. 일본 조계지 쪽으 로는 일본 양식의 은행건물, (구)창고건물 등이 있으며 이를 활용한 박물관 과 전시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에 조계지 경계 계단의 좌측에 위치한 청국 조계지 구역은 중국 느 낌이 물씬 난다. 과거 청국영사관 터에 인천 화교협회 건물이 자리 잡고 있 으며, 뒤편에는 구 영사관의 회의청인 중화회관( 中 華 會 館 )이 위치해 있다. 또한 언제나 대만국기가 나부끼는 화교학교가 있고, 중국음식점, 중국빵집, 만두집, 잡화점, 의선당 등이 위치한 중화가( 中 華 街 )가 자리잡고 있다. 청국 조계지 내에는 또한 3개의 패루와 한중문화회관, 중국어마을 문화체험관, 그리고 짜장면 박물관 등이 위치해 있다. 이 구역에는 화교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렇듯 인천 차이나타운은 (구) 창고건물(인천 중구청 사진 제공)

26 조사지 개관 26 구 청국영사관 회의청 건물(현재 화교학교 부지 내) 130년을 살아온 화교들의 이야기가 있고, 건물 등의 흔적도 여전히 남아 있 으며, 현재까지도 과거의 공간을 활용하고 해당 공간에서 거주하며 생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른바 생태박물관이다.

27 역사 문화적 특징 27 역사 문화적 특징 인천 화교들의 대다수는 본적이 중국, 국적은 대만, 주소는 인천이다. 선 조의 대다수는 1920년대 이후 산동성에서 건너온 농공화교들이다. 이들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국적을 바꿔야한 했다. 한국에서 대만 정부만을 합 법 정부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지금 인천의 화교사회는 5세대를 맞이하고 있다. 태어난 곳도 인천이고, 살아가는 곳도 인천이다. 그들은 5세대를 이어오며, 한국 정부의 화교 정책 및 한중 대만관계에 따라 업다운을 겪으며 살아왔다. 부동산 소유를 제한하고 영주비자가 없어, 태어난 고향인 인천에서 외국인과 같은 대접을 받으며 반한감정이 생기기 도 하였다. 그러나 내고향 내집 내가 살아야 할 곳이기에 어떻게든 살아가 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에서의 취업이 어려워 일본, 대만, 미국, 중국 등으로 다니며 새로운 기회를 잡기도 하였다. 또한 최근에는 이른바, 다문화특구 조 성사업 등으로 해택을 보고 있기도 하다. 130년 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인천의 화교들은 5세대를 맞이하며 전통의 유지와 융합 사이 에서 꾸준히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고향의 전통 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후대를 위해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한국이 더 친숙하고 익숙한 요즘 세대들의 이야기가 모두 공존하고 있다.

28 조사지 개관 28 역사 개관 1882년 임오군란때, 조선정부의 참전요청에 의한 청국 군인의 입국: 군함 3척, 상선 2척, 청국군인 3천 명 주둔. 군수보급품 위한 상인 40명(한국 화교의 시작) 조선상민수륙무역장정( 朝 淸 商 民 水 陸 貿 易 章 程 ) 공포: 치외법권, 내지통상권, 연안어업 권, 청군함의 연안항해권 보장. 불평등 조약 1883년 인천 개항 일본조계지 설정 1884년 청국조계지 설정. 돈벌이가 잘되는 곳으로 소문이 퍼져 많은 산동인들이 서해를 건너옴. 1883년 48명이던 화교가 1년 후에는 5배에 가까운 235명으로 급증함. 중국의 비단, 광목, 농수산품 및 경공업품 등을 수입, 조선의 사금 등을 중국에 보내어 큰 이득을 거 둠.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인천에 상가 건물이나 주거할 집을 짓기 위해 중국식 건축에 필 요한 목수, 기와공, 미장공들도 인천에 들어옴. 1887년 농공화교 이주 시작: 조선에 없던 양파, 홍당무, 토마토 등 재배. 경동, 신포동, 용현동, 주안, 부평지역까지 영역을 확대해감 1896년 청일전쟁 패전 후, 군인 무역업자를 비롯한 많은 화교들 귀국 1898년 의화단의 난. 산동반도 근원지.

29 역사 문화적 특징 년대 산동성 농업지역 대홍수. 1931년 만보산 사건: 중국 길림성 장춘 지역에서 한국인과 중국인 간에 수로 문제를 둘러싼 갈 등이 일어남. 한국 내 과장 보도되어 유혈사태 발생. 화교 점포 습격 사건으로 사상자 발생. 한국인과 중국인 간 적대감 상승 계기. 1940년대 정치적 혼란 이 시기에 산둥지역 농민들 인천으로 대거 이주: 생계형 화교(농공화교) 1948년 광복, 대한민국 정부 수립. 화교 견제정책 실시: 외국인 출입 규제(중국행 차질 무역업 타격), 외국인 외환거래 규제(은행가의 3배가 넘는 가격으로 암시장에서 외환거래) 1950년대 외래상품 불법수입 규제를 목적으로 창고 봉쇄 조치. 물건을 대량으로 구입하여 적절 한 시기에 시장에 내놓아 이득을 취하던 화교 무역업에 큰 타격 한국전쟁 발발. 종전 후, 중공군의 전쟁참여로 인해 화교민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 확대. 종전 후, 공산국가인 중국의 국적을 인정하지 않아, 대만 국적으로 전환 1961년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 채소농사를 하던 농토, 음식점을 운영하던 점포를 본인 명의로 소유할 수 없게 됨. 한국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한국인 부인의 명의로 재산 등록. 사기 및 배신 등으로 재산을 잃은 경우도 있음.

30 조사지 개관 년 화폐 개혁: 1953년에 이은 두 번째 화폐 개혁. 화교들은 언제든 본국으로 떠날 생각으 로 재산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음. 일정액 이상은 새 돈으로 교환해 주 지 않아, 손실을 입기도 함. 1968년 외국인 토지소유 제한: 1961년의 금지에서 완화 됨. 주거용 200평, 상업용 50평이내의 토지를 취득허락 후 소유할 수 있게 되었음. 1970년대 짜장면 값 동결. 절미운동. 중국집에서만 쌀밥을 못팔게 함. 볶음밥 없는 중국집들 성행 1992년 대만과의 단교, 중국과의 수교. 중국 보따리 장사의 활로가 열림. 1998년 외국인 토지 소유 제한 해제. 2002년 영주비자(F5)발급: 영주권을 인정받게 됨. 2005년 선거법 개정: 화교들 지방선거권 부여. 2000년 대 인천 차이나타운 활성화 계획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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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4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4 이 장에서는 인천 차이나타운에 1884년 청국조계지가 설정된 후로 유입 된 인천 화교들의 생활사에 대한 이야기를 시기별로 정리하였다. 조사팀은 시기를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시기는 1884년부터 1940년 까 지를 구분하여 정착 부흥기 라 하였다. 이 시기 내에서도 중흥과 쇠퇴를 반 복하였지만, 130년을 전체로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화교들의 생활사에 중 점을 둔 관점에서 구분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광복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 를 구분하였다. 이는 세 번째 시기와도 그 기간이 같다. 똑같은 시기를 두고 두 가지로 분류하여 다루었다. 하나는 쇠퇴기이며, 다른 하나는 적응기이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주어진 조건이 열악하여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았 던 기간이기에 쇠퇴기 라 하였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주어진 조건 내에서 좌절하지 않고 해외로의 이주 및 취업을 통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기에 적응기 로도 구분하였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시기는 1990년도부터 현재까 지로서 재정착기 로 구분하였다. 이 시기에는 여러 규제가 풀렸고 영주권도 생기는 등의 많은 변화가 있었다. 또한 다문화특구 조성 사업 등의 영향으로 해택을 받고 있기도 하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시기인 것이다. 일본조계지역 청일조계 경계지역(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재한화교의 수 ,489 1,805 2,182 3,661 7,902 9,978 6,568 수 ,254 1,654 2,255 2,069 인천화교 비율 (표1) 1883~1909년 在 韓 華 僑, 仁 川 華 僑 의 증가 1

35 정착부흥기 35 정착부흥기: 1884년 ~ 1940년 1) 상공화교의 정착 부흥 1882년 임오군란 때에, 조선정부의 참전 요 청에 의해 이홍장( 李 鴻 章 )의 청나라 군대가 인 천에 주둔하였는데, 이때 함께 따라온 상공화 교 40명이 한국의 첫 화교이다. 이후 조청상민 수륙무역장정( 朝 淸 商 民 水 陸 貿 易 章 程 ) 2 이 체 결되고, 1884년 4월, 현재의 차이나타운에 청 국조계지를 설정하였다. 현재의 인천 북성동 일대 5천평 토지에 중국 조계지가 세워졌으며, 중국의 조계지가 생긴 후 중국의 건축 방식을 본뜬 건물이 많이 세워졌다. 이곳이 오늘날 우 1890년대 제물포(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리가 말하는 차이나타운 의 최초 형태이다.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에서는 치외법권과 내지통상권, 연안어업권 그리고 청군함의 연안항해권을 보장하 였다. 사실상 조선 땅 내에 청나라의 무역 전진기지를 마련한 셈이다. 인천에 조계 지역이 설립되면서, 인천과 뱃길이 트인 산동성에서 인천 은 돈벌이가 잘되는 곳으로 소문이 퍼져 많은 산동인들이 서해를 건너왔다. 화교의 수는 급증하여 1883년 48명이던 화교가 1년 후에는 5배에 가까운 235명으로 늘어났고 1890년에는 약 1천명에 이르렀다. 이들 대부분은 인 천을 상업 활동의 중심으로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중국에서 수입한 비단, 광목, 농수산품 및 경공업품 등 식료 잡화를 팔고 다시 조선의 사금 등을 중 국에 보내는 방식으로 무역을 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의 전반적인 상 권을 장악하였다. 장기 거주를 목적으로 인천에 상가 건물이나 주거할 집 을 지을 필요가 생겨 중국식 건축에 필요한 목수, 기와공, 미장공들도 인천 에 들어오게 되었다. 1. 김승욱, 20세기 초(1910~1931) 인천화교의 이 주 네트워크와 사회적 공간, 중국근현대사연구 47집, 중국근현대사학회, 2010, 24쪽 재인용. 2. 이는 평등한 두 나라간의 대등한 조약이 아니라 청이 일방적으로 공포하는 장정 형식으로 조선 정부의 비준조차 생략한 것이었다. 장정은 종속 관계의 증거가 되어 청이 조선문제에 적극적으 로 간섭하는 계기가 되었고 내용이나 성격에 있 어서 서방열강이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 강요했 던 불평등조약이나 한 일간의 강화도조약과 유 사한 것이었다.

36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6 2) 청일전쟁과 상공화교의 후퇴 1885년 청일전쟁의 패전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위상을 위축시켰다. 정 치적 지위와 더불어 여러 면에서 일본에게 우위를 빼앗겼으며 청국에서 온 화교들은 패전 국민으로 전락하였다. 청국 상인들도 청일전쟁 이후 인천을 떠났으며 청국조계지는 점차 쇠락해 갔다. 이 시기에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 정부는 조청통상무역조약의 폐기 성명을 발표했고, 청국조계지는 법 적 근거를 상실했다. 그러나 양국 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로 말미암아 전쟁 후에도 사실상 이전과 같은 조계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3 3) 생계형 농공화교의 이주 청일전쟁 패전 후 무역업을 하던 상공화교들이 청국으로 돌아가면서 청 국조계지는 전처럼 많은 재화가 유통되는 곳이 아니었다. 무역업을 중심으 로 형성되었던 이른바 신도시 는 쇄락의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조계지 내에 서 무역업의 활성화에 기대어 살아가던 3차 산업 종사자들 역시 인천을 떠 났다. 4 이후 1887년에 산동 연태지방에 살던 왕씨와 강씨가 채소 종자를 들여 와 채소 농사를 시작하였다. 배추, 파, 오이, 고추, 중국 미나리, 시금치와 당 시 조선에서 보기 힘들었던 양파, 당근, 토마토 등을 재배하였다. 이후 1920 년대에는 일본에 의해 산둥지역의 농부들이 한국으로 이주하였다. 채소농 사 기술이 없던 조선에 이주시킨 농사 용병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 시기 산둥지역의 대홍수는 많은 중국인들의 조선이주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 었다. 이렇게하여 조선드림을 안고 인천을 찾은 이들이 생계형 농공화교들 이다.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대다수 화교들의 선조들 역시 이 시기 1920년대 제물포항 전경(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3. 인천 화교 사회의 형성과 전개, 인천문화재단, 2008, 90쪽. 4. 그러나 모든 무역상들이 떠난 것은 아니고, 남아 있던 화교 무역상들은 1940년대까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호황을 누렸다. 일본 영사관(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인천 제물포 각국 조계지도(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37 정착부흥기 37 에 조선으로 이주하였다. 농사를 기반으로 생업을 이어갔기에 경제력에 있 어 1880년대 초중반 무역업을 했던 상공화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4) 만보산 사건( 萬 寶 山 事 件 ) 만보산 사건은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 장춘 만보산지역에서 한 중 두 나라 농민 사이에 수로공사 문제로 일어난 분쟁이다. 이 사건은 국내 에 과장 보도되어 한국내 반중 감정을 북돋았고 급기야 유혈사태로 번졌 다. 한국인들은 화교촌으로 몰려가 음식점과 집, 이발소, 호떡집 등을 습격 하여 유리창을 깨는 등 소란을 피웠고 중국인 집 68호와 각종 기물을 파괴 하였다. 각종 유언비어 등으로 사건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커져갔고 급기 야 부평에서는 중국인 2명이 피살되고, 한국인이 부상을 입는 사건도 일어 났다. 사태가 이처럼 악화되자 인천경찰서는 중국인 거리를 통행하거나 중 국인을 습격하는 행동을 취할 때는 용서 없이 발포하겠다고 인천시민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이 만보산 사건의 충격은 화교들에게 여전히 각인되어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차이나타운에 한국 사람이 오는 것을, 화교 노인들은 썩 좋아하지 않았다. 실제로 만보산사건을 직접 겪은 세대는 아니라 할지라도, 만보산 사건은 화교들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38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38 만보산 사건때 군산으로 피신을 간 화교들(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만보산 사건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을 계기로 일본인 대지주가 증가한 반면, 조선 의 많은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했고 생활은 극도로 비참해졌다. 이 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만주나 일본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증가하 기 시작했다. 1927년 56만 명 정도이던 만주의 이민수는 1936년 89만 명으로 급속히 증가했다. 만주로 간 농민들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 지만 궁핍한 생활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만보산 사건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어났다. 완바오 산은 지린 성 창춘[ 長 春 ]에서 서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31년 4월 창춘 와세다 공사[ 早 稻 田 公 司 ]의 경리 하오융더[ 郝 永 德 ]가 이퉁허[ 伊 通 河 ]기슭에 있는 완바오 산 지역의 미개간지 약 3ha를 차지( 借 地 )한 것을 다시 조선농민 이승훈 ( 李 昇 薰 ) 등 8명이 10년 기한으로 조차계약을 맺어 개간했다. 이때 조 선농민 180여 명을 동원해 수로공사를 진행하자 부근에 거주하고 있던 토착 중국농민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로 양국 농민간에 감정적 대립이 생기기는 했으나, 그다지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

39 정착부흥기 39 에 능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간섭으로 사건은 더욱 악화되 었다. 일본 영사관은 중국 농민측의 불만을 무시한 채 순박한 우리 농민 들을 교활하게 조종하면서 일본 관헌들을 믿고 그대로 공사를 강행하 라고 부추겼다. 중국측은 5월 31일 200명의 보안대를 파견해 공사를 곧 중지하라고 권고하다가 한인 9명을 체포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다다이 [ 田 代 ] 영사는 체포한 농민을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하면서, 6월 2일 영 사관 경찰관을 직접 파견했다. 이리하여 우리 농민들은 이들의 보호하 에 공사를 계속하도록 조종되었다. 이 조치는 중국측을 자극해서 중 일 쌍방의 무장경관이 대치하는 상태까지 되었으며, 6월 8일 임시협정 으로 쌍방의 경관이 철수한 후 공동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같은 달 12일 일본측은 협정을 어기고 다시 경관을 파견해 그 보호 아래 공사를 강행하게 했다. 이리하여 6월 하순에 이퉁허 제방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는데, 이것을 본 완바우 산 일대의 중국농민 약 500여 명은 7월 1일 농기구를 가지고 모여 용수로를 막은 제방을 파괴 했다. 다음날 중국인 농민과 중국 경관 300명이 다시 모였으나 우리 농 민들은 일본의 무력만 믿고 수로복구와 제방공사를 계속 진행시켜 7월 11일 물길이 통하게 되었다. 일본 관헌의 이러한 행위는 진심으로 우리 농민을 보호하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음흉한 속셈을 지닌 계획적 행동 이었다. 7월 1일과 2일의 충돌에서 조선농민은 사상자가 없었으며, 중 국농민에게서만 약간의 부상자가 있었다. 그러나 일제는 특무기관에 조작기사를 제공해 경성일보 에 사건을 대대적으로 확대 보도하게 했 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반( 反 )중국적 감정이 유발되었으며, 인천 평 양 서울 등지에서 수천 명의 한국인이 중국인을 습격하는 사태가 발 생했다. 일본 영사관은 신문기자를 매수해 특무기관에서 만든 만보산 사건에 관한 기사를 그대로 국내신문에 게재하게 해 일부 조선인으로 하여금 중국인에 대한 분별없는 폭력행위를 일으키도록 했다. 더 나아 가 국내의 일제경찰은 일부 조선인 불량배를 금품으로 매수해 범죄행 위를 조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곧 국내 동아일보 에 만보산 사건이라 는 것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도되면서 수습되었으며, 일제 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국민당 정부의 장제스[ 蔣 介 石 ]는 동 아일보사에 한 중 우호를 다짐하는 감사패를 전달하기까지 했다. 한때 이 사건은 조선농민 대 중국농민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일본 대 중국의 국제문제로까지 확대되었다. 이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신문사에서 진상조사에 나선 결과, 이 사건의 배후에 중국의 주권 을 무시하는 일본의 침략음모가 숨어 있다는 점, 이 사건이 일본의 모략 과 과장선전으로 인해 확대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이 보도과정에서 동아일보의 장덕준( 張 德 俊 ) 특파원이 일본 관헌에게 피살, 행방불명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실제로 국제연맹의 조사보고서도 만보산 사 건이 사실보다 너무 과장되었다고 발표했다. 즉 아무런 사상자도 내지 청국 영사관(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40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40 않은 이 사건을 과장 보도함으로써 한 중 양국민 사이에 강렬한 반감 이 생겼으며, 조선에서는 한인에 의한 화교습격 사건이 일어났고, 중국 에서는 배일운동을 재발시키게 되었다. 일제는 이 사건으로 한국인의 항일의식을 반( 反 )중국인 감정으로 쏠리게 했으며, 한 중 양국민의 공 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연대의식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또한 한 중 사이의 민족감정을 자극해 두 민족을 분열시키고, 만주사변을 일으키는 데 이용하고자 했다 만보산 사건, 한국브리테니커 온라인 1930년대 인천항(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41 쇠퇴기 41 쇠퇴기: 광복이후 ~ 1990년대 1) 광복과 화교 견제정책 1948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 정책의 모든 방향이 한국의 기틀을 세우는 것 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그해 바로 외국인 출입을 규제하였다. 이로 인해 화교들은 무역의 기반이었던 중국과의 교역 이 끊겼으며, 고향집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 출입규제에 이어 같은 해에 외 국인 외환규제도 실시되었다. 이는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관리하기 위함이었지만, 화교 무역상들에게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이로 인해 화교들은 은행에서 환전이 불가능해졌다. 어쩔 수 없 이 공식 환율보다 세 네배 비싼 암시장에서 외환거래를 해야만 했다. 한국 기업보다 2배의 실적을 올렸다고 할지라도 외환거래에서 입는 손실을 따져 보면 실제적인 수입은 한국기업보다 적을 수 밖에 없었다. 6 이후 1950년 자 유당 정부가 6.25 직전, 전국에 외래상품 불법 수입을 금한다는 명목으로 외 국인에 대한 창고 봉쇄 조치를 내렸다. 물건을 대량으로 사두었다가 적절한 시기에 매매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는 화교 무역상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수색대원으로 활동한 화교들(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2) 한국전쟁과 화교 수색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인천항과 차이나타운이 위치한 지역은 미군 함대의 표적이었다. 실제로 전쟁 기간 동안 인천 일대 는 격전지였으며,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녔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공군들 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종전 후, 화교들은 이웃들로부터 따가운 시 선을 받아야만 했다. 화교들은 전쟁 기간에 부산, 성남, 수원 등지로 피난을 갔지만 참전하여 척후병( 斥 候 兵 )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6. 화교이야기 인천대학교출판부. 71쪽.

42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42 폐허가 된 답동성당(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인천 상륙작전(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화교수색대 중공군과 싸우려면 중국말을 하는 병사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에 사 는 중국 화교들을 끌어 모아 약 50명으로 구성된 수색대를 편성했다. 그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그들은 적진에 들어가 중공군과 관련된 정 보를 수집했다. 수색작전 중 포로를 붙잡아 오기도 했다. 작전 중 전사한 수색대 용사들 중에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힌 사람도 있다. 용인에서 붙잡혀 온 중공군 포로를 신문하다가 나는 귀에 익은 이 름을 듣고 놀랐다. 중공군 38군 113사단 소속 포로 한 사람은 자기 부 대 사단장이 왕가선이고, 연대장은 부연화라고 진술했다. 만군대령 출 신인 왕 은 전술가로 유명했고, 부 는 나의 만주군관학교 시절 구대장 이었다. 만군 출신들이 일본 패망 후 소련군 또는 국부군에 투항했다 가 중공군으로 편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로들이 말하는 중공군의 실상은 처참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추위 와 허기를 호소했다. 사흘을 싸우고 사흘을 굶었다고 했다. 무명으로 된 군복은 땀에 젖었다가, 얼기를 되풀이해 모두가 동상에 걸려 있었다. 장 티푸스 같은 전염병에 걸린 병사도 많았다. 중공군의 그런 몰골은 우리 병사들에게 자신감을 회복시켜 줬다. 신출귀몰한다는 중공군도 별것 아니구나 싶었던 것이다. 7 3) 토지소유 금지와 화폐 개혁 1961년에는 외국인에 대한 토지 소유를 금지시켰다. 채소농사를 짓던 경작지를 소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한국인의 명의를 빌려 토지 7. 국방일보 기획시리즈, 그때 그 이야기- 노병 이 걸어온 길 - 65 중동부 전선의 불행-,

43 쇠퇴기 43 를 몰수당하지 않고 지켜내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사기와 배신 등으로 경작지의 소유권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빈번하였다. 이 시기에 사실 상 화교들의 채소농사는 막을 내렸다. 이후, 1968년에는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법이 변경되어, 1가구에 1주택 1점포만 허용되었고, 주택 면적은 200 평 이하, 점포는 50평 이하 내에서 사전신고로만 취득이 가능했다. 또한 취 득한 토지의 건물은 자신만 사용하고 타인에게 임대할 수 없었다. 논밭이나 임야의 취득도 불가능하였다. 또한 자유당 정권과 박정희 정권 아래 두 번(1953년, 1962년)의 화폐 개 혁이 있었다. 이는 재산을 주로 현금으로 가지고 있던 화교들에게는 타격이 컸다. 교환 한도를 제한하여 손해를 보는 화교들이 많았다. 땀 흘려 번 돈이 하루 아침에 휴지조각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외에도 중국음식점에 대하여 음식 값을 통제하기도 하였다. 1970년 짜장면 값을 동결시켰으며, 절미운동을 이유로 중식당에서만 쌀밥을 판매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거센 항의로 3개월 만에 해제되긴 하였지만, 이 시기 인천 상륙작전 당시의 해안(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44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44 에 중국음식점에서는 볶음밥을 팔지 못하였다. 일부 화교들 중에는 이 기간 에 밥을 판매하여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하였다. 4) 국제 난민 인천의 화교 어르신들은 그 시기 우리는 국제적 난민이었다. 라고 회상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출입국 시 비자가 필요했다. 심지어는 국적 이 대만이었지만 대만 입국에도 비자가 필요했다. 화교 어르신들은 그 시기 를 떠올리며 30년 이상을 한국에서 살아왔지만, 바로 어제 공항에 내린 외 국인과 똑같은 신세 라며 한탄했다. 당시 한국에는 영주권 제도가 없었기에 화교들은 외국인 출입관리법 을 따라야 했다. 외국인은 거주자와 비거주 자로 분류되고, 거주자는 2년에 한번 비자를 받아야 했다. 1997년부터 그것 이 5년에 한번으로 바뀌어 다소 사정이 나아졌다. 재입국제도도 현재는 복수로 되어있어 1년에 여러번 출입국이 가능하 나 당시에는 단수이며, 기한 내에 반드시 돌아와야 거주자 자격을 유지하게 끔 되어 있었다. 그래서 화교들이 이른바 보따리장사로 해외에 다니다가 기 한 내에 재입국을 하지 못해 거주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대만 으로 유학간 화교학생이 재입국 기간을 넘겨 거주권을 상실하는 경우도 드 물지 않았다. 수십 년을 살아도, 어제 방금 공항에 내린 외국인과 똑같은 신세라고. 여행이라도 갈라 면 미리 재입국허가를 받아야 하는 거야. 완전 웃긴 거지. 나는 약재 구하러 자주 나가야 되는 데 이건 뭐 그때마다 다시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야 되는거라고. 출입국 대에서도 다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창피하고. 하여튼 외국에 나갈때마다 들어올때마다 기분이 안 좋지.(김보운, 남, 1958년 생)

45 적응기 45 적응기: 광복 이후 ~ 1990년대 1) 꽌시[ 關 係 ]와 후이[ 會 ] 토지소유가 제한되고, 은행거래를 원활하게 할 수 없었던 화교들은 당 장 목돈을 마련할 방법이 없었기에 창업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러한 조 건 하에서 화교들을 본인들끼리 네트워크를 동원하여 이 시기를 극복하려 애썼다. 창업을 해야 하는 데 창업자금이 필요하잖아요. 어디서 나요? 은행거래가 안 되니까. 그 래서 후이( 會 )라는 게 나온거에요. 돈이 필요하면 원로를 찾아가요. 거기서는 어떤 식이냐. 사부와 제자 식으로. 대부같은거지. 내 제자라고 데리고 사부를 찾아가요. 사부는 거의 다 원 로에요. 사부가 원로가 아니면 사부의 사부가 여기 원로에요. 아 그래. 그놈 어떠냐? 됨됨 이가 괜찮다. 착실하다. 열심히 할 거다. 일종의 신용보증을 서는 거에요. 얼마 필요하냐? 아 그래서 1억이라 그러면, 너 한 달에 얼마 갚을 수 있을 것 같애? 어. 한 달에 500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이 원로가 스무 명을 찾아요. 너희들 500씩 내라. 빌려줘. 이자 없어요. 기껏해야 술 한자리 밥 한 끼 감사합니다. 하고 사는 거에요. 사업설명회식으로 다 짐 하는거에요. 빌려주는 거야. 아무 이자 없이.(서학보, 남, 1959년 생) 우리 중국 계가 있어요. 그 계모임이 낙찰계란 말이야. 내가 장사를 해야 되는데 돈이 없 다. 자금이 모자라다 그러면 친구들한테 다 빌려. 천만 원짜리. 지금 하는거는 거의 오백 있고 삼백 있고 천만 원짜리 있어요. 한 명에 그만큼씩 출자해주는 거지. 회원들이 다 그 돈을 주 는거야. 삼백을 다. 10명이면 10명 20명이면 20명. 5백짜리면 20명이면 1억 아니야. 1억을 갖다가 도와주는데 거기서 이자를 띠어줘. 옛날에는 한턱을 냈어. 음식점에서 잔치상을 채려 주고 한턱 맥여. 근데 나중에 인제 시간없으까는 에이 거기서 3부이자 띠어주자 2부이자 띠 어주자 해가지고 천만 원에서 2부이자 띠어주는거야. 액수가 많을수록 이자가 작게 2부로. 액수가 적으면 3부로. 이렇게. (유천해, 남, 1954년 생) 친구끼리니까 다 아는사이니까. 하나 들어줘 부탁하면. 하는 거지. 어쩌다 장사안되가지 고 망한사람도 있어. 그럴 경우에는 선언을 해. 내가 이거 먹고 도망가지 않고 내가 천천히 갚 겠다. 생기는데로 내가 갚겠다. 그때는 스톱되는거야. 그런 경우도 있고. 친구끼리니까는 야

46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46 그래 너 안됐다. 천천히 갚아라 하지. 그래도 대부분 갚아요 또. 재산 있으면 집 있으면 집 팔 고서라도 갚고 그래. 어느 놈은 나쁜 놈들도 있어. 그런 놈도 몇 명 있었는데 그런 놈은 잘 살 지도 못해. (유천해, 남, 1954년 생) 그렇게 한번 하면은. 더 이상 이 동네에서 더 이상 걔 쳐다볼 사람 없어. 신용이 없어졌으 니까는. 지역에서 걔는 못살아. 저새끼 저거 사기꾼 새끼라고 그러면 짐 싸서 떠나야 돼. 지역 이 작잖어. 명예회복하려면 너무 힘들어. 한번 비틀어지면 걔는 이 동네에서 몰살당하는 거 야. (유천해, 남, 1954년 생) 지금도 해요. 공동출자 우리 지금 하는거 많아요. 며칠 전에 누가 했냐면 감사장. 저번에 계하나 묶었어. 중국집 다시 오픈할라고. 옛날부터 융자 같은거 못 받았으니까는 중국사람들 끼리 뭉쳐가지고 서로 도우면서 살아온 그런 의미가 있어요. 금융기관하고 접촉하기 힘들었 으니까. 지금도 그래요. 왠만한 담보 없으면 안 해줘. (유천해, 남, 1954년 생) 2) 외국으로 진출 한국에서 취업 등의 생업을 이어나가는데에 제도적인 제약에 부딪힌 화 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교 3세대들은 제도적 제약에 직접 적으로 부딪히는 부모를 보며 성장하였다. 음식점에 와서 횡포를 부리거나 무전취식을 하는 한국 사람들과 다투는 아버지를 보고 살았고, 무너지는 자 존심을 삭히며 조용히 눈물을 닦는 어머니를 보며 살아왔다. 또한 배달 길 에서는 한국 아저씨들로부터 짱깨, 짱꼴라 등의 말을 들으며 사춘기 청소 년의 마음에는 상처가 생겼다. 그래서 중국음식점을 개업하여 살아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화교 3세 대들은 왠만하면 돈을 벌기 위해 일본, 대만에 한 번씩은 다 다녀왔던 이력 을 가지고 있다. 2세대까지는 당장 생업의 현장에서 살아가며 변화하는 제도들과 맞닥 뜨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세대이다. 선택이 아닌 변화의 물결에 쓸려 흐르는 대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화교 3세대는 다르다. 그 들이 장성하였을 즈음엔 더 이상 제도적 불이익이 악화되진 않았고, 본인의 미래에 대한 선택의 기회가 아버지 세대보다는 많았다. 이러한 이유로 화교 3세대들은 해외로 이주를 꿈꾸는 경우가 많았다. 대 만에 나가 있는 친척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기도 했으며, 자리를 잡은 친 구 선배를 따라 대만으로 나가기도 하였다. 위축되고 반항심이 익숙했던 한국에서와는 달리 반갑게 맞아주는 조국의 느낌은 편안하였다고 말하는 화교들이 많다. 인천의 화교들은 대만에 가서 식당, 공장, 일반기업, 시장 등 에서 일을 하였다. 한국보다 발전해 있던 대만은 살아가기에도 좋았으며 임

47 적응기 47 금 수준 역시 한국보다 높았다. 이 시기에 대만에 진출한 화교들은 중국어와 한국어가 모두 가능하였기 에 관광가이드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1980년대 대만을 찾는 한국인 관광 객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 가이드의 수가 부족하였고, 한국어와 중국어가 가 능한 한국의 화교들은 가이드를 하기에 적합하였다. 대만으로의 진출 못지않게 일본으로의 진출도 줄을 이었다. 1980년대부 터 1990년대까지 인천의 화교들은 일본의 요코하마, 동경, 오사카 등으로 진출해 중식당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고, 빠칭코, 술집 등에서 일을 하였다.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임금은 한국의 6배 수준에 달하였다. 1980년대 한국 인 평균 월급이 20만원 안팎이었는데, 이때 당시 일본에서의 한 달 수입은 120만원에 달하였다. 내가 1986에 일본에 갔는데 그때 가와사키에서 화교가 하는 중식당에서 일했어. 시간 당 800엔을 받았는데, 일 많이 해서 한 달에 한국 돈으로 120만원 정도 벌었어. 그때 한국에 서 일하면 20만원 정도 벌었으니까, 6배 번거지. 그때만해도 일본에는 동전 넣어서 건조까지 되는 세탁기도 있었고, 자판기도 있어서 맥주도 언제든지 사먹을 수 있어서 편리하고 좋았는 데, 고향이 그립더라고. 그래서 2년 일하고 인천으로 다시 간거야. 인천 집에와서 있는데 답답하더라고. 그때만해도 여기는 9시 10시만 되도 다 문 닫고 편 의점 같은 것도 없고 그랬거든. 일본에서 편리하고 재밌게 살아봐가지고 더 답답했던 거지. 그래서 1991년에 대만으로 갔어. 가서 여기저기서 일했는데, 그때 월급이 60만원 정도 됐 어. 근데 나는 KTV노래방 같은데서 또 일해가지고 3백만원 까지 벌었어. 그때 한국에서는 40만원, 50만원 정도 벌었던 땐데. (노영, 남, 1968년 생) 이 시기 인천의 화교들은 대만, 일본 등을 오가며 국제경제 감각을 익혀, 이른바 돈 이 되는 일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소규모 무역업, 보따리상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버섯, 이불, 인삼 등을 가지고 가서 대만에서 팔았으며 대만의 옷, 소형 가전제품 등을 한국에 가져와 팔며 큰 이익을 남겼다. 1980년대 90년대에 한국에 소니, 아이와, 닌텐도 이런 제품들 있잖아. 원래 비싼데 싸게 나와서 워크맨 같은거 많이 일반화되고 그랬던 거 알지? 그게 다 화교들이 지어 나른거라고. 일제가 홍콩을 통해서 대만으로 온거를 우리가 가져 오는거야. 그게 하나당 2만원에서 3만원 남았다고. 한번에 3백개 씩만 가져와도 800만원은 되는거잖아. 그걸 한 달에 두 번만 해도 수 입이 괜찮은 거지. 그걸 한동안 꾸준히 했었어. (원소흠, 남, 1959년 생) 1950년대부터 화교들이 한국 내에서 사업이나 취업을 하기가 어려운 상 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인천의 화교들은 미국, 일본, 대만 등지로 아주 이주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이상 취업을 나가는 경

48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48 우도 많았다. 제한적으로 기회가 주어진 본인들의 고향인 한국 인천에서의 상황에 적응하며 새로운 살 길을 모색한 것이다. 그때 당시 우리 화교들이 중국집 주방이나 뭐별로 할 것이 없었는데 대만하고 또 중국하 고 가까우니깐 무역, 아니 보따리지. 보따리 장사로 돈을 그때 많이 벌었다고. 그때 많이 벌 었어. (노영, 남, 1968년 생)

49 적응기 49 <사례 1> 1986년 1988년 1991년 인천 화교중산화교 고등부 졸업 일본행 중국식당 취업 월 수입 120만(한국의 6배) 고향에 대한 향수, 귀국 결심 한국 귀국 백수 생활 답답한 느낌 대만행 ( 行 ) 술집, KTV 웨이터 - 변기본월급 월 60만, 팁 합산 300만 (당시 한국 임금은 40~50만원) 고향에 대한 향수 귀국 결심 1993년 1994년 노영(1968년 생, 주방장) 일본에서 번 돈으로 차이나타운 내 5,700만원 집 구입 주방일 배움 - 현재 송도에 있는 중화요리집 주방장 <사례 2> 1974년 1993년 인천 화교중산화교 고등부 졸업 대만행 ( 行 ) 2년 좌판, 김치판매 일본행 ( 行 ) 4년 한달 20만엔 대만 行 7년 여행사 가이드 한 대 외교 단절 한국 관광객 줄어듬 중국 출입 보따리 장사 시작 (한국 원단이 좋아서 중국의 중산층에서 많이 구입함) 보따리 무역 (T셔츠판매등)으로 큰 돈을 벌었음 2002년 2003년 원소흠(1959년 생, 잡화점) 중국으로 유학 다도교육 (1년만에 졸업함) 한국 귀국 찻집 및, 실내장식 소품 판매 (서학보와 함께 문화발전위원회 중추 역활)

50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50 재정착기: 1990년 ~ 현재 1) 보따리무역 1992년 8월, 한국정부는 대만과 단교를 하고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이 사건은 당시 화교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아울러 진정화 국면 으로 접어든 대 화교정책에 어떠한 영향이 미칠지에 대해 불안해하였다. 한 국에 살면서 대만식 교육을 받으며 자라온 이들이기에 반공교육에 대해서 도 철저하게 각인이 돼 있던 터라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감정적으로 너무한다. 세련되지 못하게 단교를 했다. 일방적인 통보 를 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등의 반응을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인천의 화교 들에게 닥친 직접적인 시련은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에 중국으로의 무역 활로가 열려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 졌다. 동 대문과 남대문 등에서 T셔츠 등의 생활용품을 가져다가 중국에 팔아 큰 돈 을 벌 수 있었다. 대 중국 보따리 상들은 보통 일주일에 2회, 2천만원 가량 의 품목을 가지고 중국에서 판매하였다. 기본 2배의 수익을 거두었다. 단순 계산하면 월 1억 6천의 이익을 거둔 셈이 된다. 수교(한중수교) 이후에는 중국으로 갔지. 남대문에서 티(셔츠) 가져다 팔고, 양복 원단 팔고 그쪽에서 약재 가져다가 팔고 그랬어. 밀수도 많이 했지. 비싸니까 세금이.(원소흠, 남, 1959년 생) 또한 화교 3세대들은 이 시기에 본인들의 국적국이 아닌, 본적국을 간 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곡창신의 경우, 한국수교 이후 처음 찾은 중국 공항에 들어서면서 아, 여기가 내 진짜 고향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고 한다. 중국 공항에 처음 딱 들어갔는데, 아, 여기가 내 진짜 고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쓰는 말이 들리는거지. 눈물이 핑도는 거야. 공기도 내가 생각했던 대로고, 어머니 아버지한테 듣던 그 기억들이 하나씩 생각나면서 참 좋더라고. (조사자: 지난번에 아 이들 대만으로 수학여행 갈 때, 우리나라 간다고 좋아하던데요.)걔들은 아직 어려서 그렇지.

51 재정착기 51 확실히 달러. 커보면 지들도 알거야. (곡창신, 남, 1955년 생) 2) 한국화교의 경쟁자, 조선족 한중 수교 이후 빠른 속도로 조선족들이 유입 되었는데, 이들은 한국화 교의 경쟁자가 되었다. 값싼 인건비와 저돌적인 적응력으로 한국 화교들의 일자리와 사업 영역을 잠식해 오기 시작했다. 화교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랐 기 때문에 식당에서 일을 할 때, 한국 사람과 같은 임금을 받는 반면에, 노동 을 위해 한국을 찾은 조선족들은 인건비가 저렴하였다.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절대 조선족을 고용하지 않는 차이나타운 내 중식당도 많이 있지만, 저렴한 인건비 때문에 그들을 고용하는 식당 역시 적지 않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화교들도 조선족들의 유입으로 손해를 많이 본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는 기본 단가라는 것이 있는데, 여행업에 뒤늦게 뛰어든 조선족들이 자리를 잡기 위해 그 최소 기본단가를 깨트린다는 것이 다. 여행상품 비용을 책정할 때, 항공비와 숙박비에서는 기존에도 거의 수익 없이 진행하였는데 조선족들은 오히려 이 부분에서 마이너스 상품을 내 놓 는다는 것이다. 조선족들은 상대적으로 덜 좋은 숙소, 덜 화려한 음식을 제 공하고 단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화교 여행사 사장들은, 이 단가에 맞추기 위해 마이너스 상품을 내 놓기 도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항공과 숙박에서 마이너스를 감수하고, 쇼핑에서 나오는 돈으로 적자를 매우는 방법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여행상품 단가를 낮춘다고 해서 숙박과 음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그동안 공고히 쌓아 온 화교여행사들의 자부심과 신뢰에 상처를 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방법 을 택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마이너스 감수하고 조선족 단가에 맞추는거야. 그러니까 힘들지. 걔네들은 뒤늦 게 들어왔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고객유치하려고 그렇게 하는 건데, 이게 좋은 것이 아니라 고. 우리는 기존에 쌓아온 신뢰관계라는 것이 있고 자부심이 있는데, 싸게 내 놓는다고 안 좋 은데 모시고 맛 없는거 드리고 그렇게 못하거든. 쇼핑에서라도 조금 남겨서 적자 메워야지. 그러니까 요즘 화교 여행사들이 다 힘들어.(왕조용, 남, 1966년 생) 3) 영주권과 지방선거권 2002년 5월 이전까지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거류비자인 F2비자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데, 주기적으로 비자를 연장하며 거주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자기정체성에 괴리감을 주고, 건전

52 인천 화교의 어제와 오늘 52 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2002년 5월부터 영주비자 즉, F5 비자가 신설되어 F2 비자를 받은 뒤 5년 후에 F5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원하는 동안 언제까 지 살아도 좋다는 영주권을 부여 받은 것이다. 법 규정은 바뀌었지만 여전 히 사회시스템과 인식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새롭게 부여받은 외국인 등 록번호를 처리해주는 인터넷 가입 시스템이 거의 없는 상황이며, 여전히 핸 드폰 개통이나, 신용카드 발급 시 실랑이를 하며 거류비자와 영주비자의 차 이를 설명해야 한다. 조사팀도 인천 화교촌을 찾은 첫 조사에서 당신들 F5 가 뭔 줄 알아? 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듣고, 제대로 대답하지 못해 발길 을 돌려야 했던 경험이 있다. 차차 나아지고 있지만, 인천의 화교들은 이러 한 불편함을 평생 몸으로 겪으며 살아오고 있기에 비자에 대해 매우 예민 한 반응을 보인다. 2005년 8월, 선거법이 개정되며 한국의 화교들에게 지방선거권이 생겼 다. 2006년 5.31 지방선거부터 화교들은 지방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인천의 화교들은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정도의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화교학교의 교육을 정규교 육으로 인정해 달라든지, 화교노인정을 지어달라든지 하는 화교사회 공통 의 요구사항은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단지 이제 우리도 보이는 구나. 이제 우리도 인정해주는 구나. 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만족감이다. 인천에서 만난 화교들은, 학교 행사나 쌍십절 등의 행사에 지역의 정치 인들이 참여할 때면 방긋 웃으며 귓속말을 한다. 저렇게 오는 것이 다 우리 한테도 선거권이 생겨서 그래요. 세상 참 좋아졌어요. 이제 우리도 신경을 쓴다는 거니까 좋죠. 우리도 보는 거니까.. 4) 차이나타운 조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 인천시의 다문화특구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인천 북성동 일대에서 단계 적으로 문화가 살아 숨쉬는 차이나타운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3개소 에 패루를 설치하고 한중문화관을 건립하였으며, 도로를 정비하고 건축물 리모델링을 지원하여 중국의 색채가 묻어나는 짜장면거리 [ 中 華 街 ]를 조성 하였다. 짜장면 박물관 등을 개관하고, 홍보 활동도 활발히하여 2011년 차 이나타운은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도 있다. 지금의 사업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먹거리 이외의 콘텐츠가 없 다. 화교들 스스로 차이나타운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다. 차이나타운 하면 짜장면, 만두, 공갈빵, 양꼬 치, 쟈스민 차 등의 먹는 것만 생각나는 것이 아니라, 중국전통 결혼식, 사자

53 재정착기 53 춤과 용춤, 그리고 한국화교의 생활사 등에 대해서 떠올리며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른바 중국과 대만의 문화를 이해하 는 한국의 창구 역할을 차이나타운 이 해냈으면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과거 섭섭했던 한국정부와 한국인들에 대 한 마음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고 살아 온 모습을 보여주어,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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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화교촌의 공간구성

56 화교촌의 공간구성 56 화교촌 공간구성에서는 차이나타운의 주요공간에 대해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수록하였다. 공간이야기는 의례공간, 교육공간, 상업공간 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각 공간의 이야기를 화교들의 증언과 문헌자료를 활용하여 담아내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크게 세 개의 공간으로 나눠진다. 의례공간 (인천상공회의소 지도제공) 첫 번째는 의례공간이다. 의례공간은 화교들의 종교 활동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의선당과 인천 화교 기독교회, 해안 천주성당, 패루(1패루, 2패 루, 3패루)를 들 수 있다. 의례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화교들의 의례나 신앙을 통해 화교사회에서 의례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한다. 두 번째 공간은 상업공간이다. 누구나 인천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짜 장면을 먼저 떠올린다. 인천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자리매김한 짜장면을 판매하는 중국음식점이 한곳에 모여 있는 공간이 짜장면 거리인 데, 음식점뿐만 아니라 잡화상점, 제과점도 함께 있어 볼거리, 살거리, 먹을 거리를 모두 해결할 수 있는 차이나타운의 중심 공간이다. 그 중에서도 짜 장면 거리가 단연코 상업공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천역에서 내려 제 1패루 쪽으로 바라보면 중국풍 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우뚝 솟은 패루를 지나 계속 경사진 길을 300m 따라 올라가면 공화춘 이라는 큰 중국음식 점 간판을 확인할 수 있는 T자형 길이 나온다. 바로 이곳을 기점으로 양 갈 래로 갈라진 길을 따라 중국요리집들이 연이어져 있으며, 그 곳이 바로 짜 장면 거리이다.

57 57 상업공간 (인천상공회의소 지도제공) 세 번째는 교육공간이다. 인천 화교는 거의가 대만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물론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쉽 게 해결될 일이지만 화교문화를 지키고 이어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국적을 바꾼다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인천 차이나타운 내에는 화교 자 녀들만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다. 바로 인천 화교소학교와 인천 화교중산 중학교이다. 두 학교의 역사는 다르지만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인천 화 교학교라고 불리기도 한다. 교육공간 (인천상공회의소 지도제공)

58 조사개요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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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화교촌의 공간구성 60 의례공간 1) 의선당( 義 善 堂 )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화교들의 민간신앙을 엿 볼 수 있는 의선당이라는 전통적인 묘우가 있다. 평소 인천과 그 주변 화교들이 의선당을 찾아 신앙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춘절이면 많은 화교들이 이곳에서 제례를 올린 다. 이처럼 인천 화교들이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찾는 공간이 의선당이다. 물론 평상시에도 의선당을 방문해서 향불을 올리고 절을 드리 며 집안의 화평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한다. 의선당은 인천 화교의 역사와 깊이를 같이 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 도로 유서가 깊은 건물이다. 묘우명 의선당은 의를 지키고 착하게 살겠다. 는 뜻을 가졌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의선당을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 다. 인천역을 나오면 마주보는 곳에 차이나타운 서편 패루가 세워져 있다. 패루 길을 따라 언덕 끝을 끝까지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에서 왼 편으로 꺾어 50m 정도 가면 왼편에 중국 전통의 붉은색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의 바깥은 의선당 관광기념품점의 간판을 건 골동품 가게이고, 그 안쪽 이 바로 의선당이다. 최근에 인천시 화교협회에서 의선당을 지정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다. 의선당이 1800년대 쯤에서 청나라 적에 화교들이 인천항을 통해서 들어왔거든요. 그 분 들이 항해라든가 여기 있는 화교들을 위해서 편안함을 위해서 여기에 절을 지었어요. 여기 를 중국말로 공소( 公 所 )라고 그래요. 많은 모임이라든가 신도들이 여기서 행사를 치렀던 곳 이고 그리고 일반 절이나 사찰하고 다릅니다. 여기는 유교, 불교, 도교 삼교가 합쳐진 토속적 인 종교라고 할까요. 토속적인 절이라고 일반 절에는 스님이 있지만 여기는 법사가 있어요. (유천해, 남, 1954년 생) 의선당은 1883년 경 황합경( 黃 合 卿 ) 이라는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 다. 1884년은 인천에 청나라 상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해인데 그 후 화 상( 華 商 )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주거지역을 형성하고 의선당이라는 묘우를 건립했다.

61 의례공간 61 의선당 내부 전경 의선당에 모셔진 신( 神 )과 선( 善 )은 모두 다섯 분이다. 이 신선들은 모 두 중국과 대만에서 추앙받는 신선들이다. 묘우 정전 내부 왼쪽부터 호삼태 야( 狐 三 太 爺 ), 사해용왕( 四 海 龍 王 ), 관음보살( 觀 音 菩 薩 ), 관우( 關 羽 ), 마조 신( 馬 祖 信 )이 있다. 각 신마다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서 독립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형태가 각기 다르다. 의선당 정전 내부로 들어가면 화려한 무늬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병풍과 내부구조물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천장에는 큰 등이 달려 있고, 각 신위 위 에는 큰 현판들이 걸려 있다. 이 현판들 맞은편 천정 즉, 들어오는 각 출입문 위에도 큰 현판들이 걸려 있다.

62 화교촌의 공간구성 62 의선당 내부 모습 여우신 호삼태야( 狐 三 太 爺 ) 호삼태야는 산동지역에서 모시는 지역의 토속 신선으로 본디 여우였다 고 한다. 그러다가 천자( 天 子 )가 봉신( 封 神 )하여 신선이 되었는데, 누구든 지 치성을 드리면 그 소원을 잘 들어준다고 해서 화교들은 다섯 신 중에서 도 신격이 가장 낮은 신인 호삼태야에게 진향하고 소원을 자주 빈다. 청나 라 관복과 망토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있는 호삼태야 좌우에 청나라 관복을 입은 2명의 신하가 서 있다. 호삼태야의 호삼은 狐 三, 胡 三, 胡 山 으로 쓰는데, 胡 와 狐 는 발음 이 같은 것에서 비롯된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三 은 가운데 여우로 인식되 는 신과 좌우의 신하들을 합한 숫자를 나타내고, 山 은 서식지를 나타내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박헌규 1 에 따르면 호선 은 여우를 숭배하는 신앙에서 나왔고, 태야 는 도행( 道 行 )과 지위가 높은 남성신성을 지칭하는 말이라 하였다 1. 박헌규, 인천화교 義 善 堂 의 모습과 민간신앙 조사, 역사민속학 제29호, 한국역사민속학회, 2009, 235쪽.

63 의례공간 63 (여우 호자네요.) 호산이에요. 산동지방 만주지방에서 모시는 신이에요. 근데 이 양반 이 청나라 적에 자금성에 누가 반란군이 올라가서 대포를 갖다가 황제가 앉는 금난전에다 가 대포를 향해 가지고 불을 질렀어요. 근데 이 양반이 올라가가지고 술이 채 가지고. 거기 다 오줌을 싸버린 거야. 올라가서 오줌을 싸가지고 불을 끈거에요. 이 사실을 황제한테 말씀 드리니까 이거는 은공이다. 그래서 7품관을 준거에요. 그 때서부터 신선이 된 거야. (유천 해, 남, 1954년 생) 호삼태야 바다를 관장하는 사해용왕( 四 海 龍 王 ) 사해용왕은 바다를 관장하는 용왕인데, 산동에서 인천까지 무역을 했던 당시 청국 상인들의 배를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모신 신 이다. 중앙에 검은색 얼굴과 검은색 수염을 늘어뜨리고 용왕이 앉아있고, 왼 쪽에는 질병을 관장하는 약사용왕 그리고 오른쪽에는 재물을 관장하는 재물용왕 이 각각 앉아 있다. 양쪽의 용왕에 비해 가운데 용왕의 얼굴이 검은 것이 특징이다. 당시 청 나라와 인천 사이에 뱃길을 통한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위엄있으라고 얼굴색이 검은거야 (유천해, 남, 1954년 생)

64 화교촌의 공간구성 64 사해용왕 중심을 지켜주는 관음보살( 觀 音 菩 薩 ) 관음보살은 다섯 신 중에서 가장 높은 서열에 해당되는 신으로서 의선 당의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두 손을 합장하 고 있는 협시상이 있다. 불타의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각종 재난 으로부터 중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중생의 부름에 답한다고 인식되고 있다. 2 이 신상( 神 像 )의 뒷쪽 그림도 팔난구제( 八 難 救 濟 )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들 주신( 主 神 ) 아래에도 작은 관음상이 놓여져 있다. 기복( 祈 福 )적인 성격이 강하다. 재물( 財 物 )과 벽사( 辟 邪 )를 관장하는 관우( 關 羽 ) 관우신은 붉은 망토를 걸치고 다소 검은 피부에, 양쪽에 시종을 거느리 고 앉아 있다. 관우는 유비, 장비와 함께 촉나라를 건국한 실존 인물이다. 용맹한 장군 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후에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박헌규에 따르면, 민 간에서는 관우를 통상적으로 무신으로 숭배하는 것 외에도 여러 형태의 변 형된 신으로 받들어지고 있다고 하였다. 3 상인들은 관우가 젊었을 때 상업 2. 강희정, 중국 관음보살상 연구, 일지사, 2004, 18쪽. 3. 박헌규, 위의 논문.

65 의례공간 65 관음보살 관우

66 화교촌의 공간구성 66 에 종사하여 이재( 理 財 )에 밝았다며 상업을 수호하는 재물신으로 받들고 있다. 또한 민간 약방에서는 관우가 마귀를 물리치고 병을 치료하는 의약 신으로 받들고 있다. 유교에서는 다섯 중의 하나로, 도교에서는 옥황상제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대제( 大 帝 )로 보고 있으며, 불교에서는 호법신으로 받 들고 있다. 4 관우는 중국에서 문신( 文 神 )과 무신( 武 神 )으로 모시는 대표적인 신이라 할 수 있다. 의선당에서도 관우를 특별히 신으로 모시어 제단을 마련한 것도 바로 이러한 중국 본토의 문화가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화교들은 집집 마다 관우상을 많이 모신다. 무역과 가족의 평안을 관장하는 마조( 媽 祖 )와 가신( 家 神 ) 마조는 사해용왕과 비슷한 신력( 神 力 )을 지닌 신으로 대만을 비롯한 도 서지역( 島 嶼 地 域 )에서 모셔지는 해신( 海 神 )이다. 마조를 중심으로 오른쪽 은 아기를 안고 있는 삼신이 있으며, 왼쪽으로는 귀와, 눈, 코를 관장하는 양 양[ 娘 娘 ]들이 모셔져 있다. 양양 은 여자에 대한 극존칭이다. 마조신앙의 기원 해신낭낭( 海 神 娘 娘 )은 마조의 별칭이다. 마조는 원래 송나라 초 임 묵( 林 默 )이라는 실존 여성에서 승격된 중국의 대표적인 해양 보호신이 다. 임묵은 복건 미주도( 湄 洲 島 )에서 생전에 뱃사람들이나 지역민들을 위하여 재난과 근심을 막아주는 무녀였다. 그녀의 사후에 미주도에 사 당이 지어졌고, 얼마 있지 않아 미주도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가 어업활 동이나 해상운항에 도움을 주는 해신( 海 神 )으로 받들여졌다. 북송 선 회( 宣 和 ) 연간에 노윤적( 路 允 迪 ) 일행이 바다를 통해 고려에 사신으로 나갈 때 마조의 도움으로 무사했다며 그 이후 국가적인 신으로 격상시 켰다. 남송시대와 원나라 시대에 해운업의 발달로 중국대륙의 연해안 과 내수지역까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중국 역대 조정은 이런저런 사 유로 마조에게 봉호를 하사했으며, 청나라 말기에는 최고신의 반열에 까지 올랐다. 오늘날 중국 대륙과 대만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동 남아시아 및 화교가 이주한 세계 각지에 많은 마조묘가 세워져 있고, 마 조신앙에 대한 숭배가 매우 다양하다 박헌규, 앞의 논문, 235쪽. 5. 박헌규, 앞의 논문, 235쪽.

67 의례공간 67 마조와 가신 화교학교 재학생이 그린 의선당

68 화교촌의 공간구성 68 2) 인천 부평 공동묘지와 육미리 화교공원 묘지 인천 부평 화교공동묘지는 인천 가족 공원 내 화교분묘 라고도 한다. 1884년 2월 조인된 인천구화상지계장정( 仁 川 口 華 商 地 界 章 程 )의 중국인을 위한 매장 관련 조항에 따라 도화동에 조성되었다. 이 조항에 의하면 제물 포에서 10여리 이내에 화상( 華 商 )이 적당한 지대를 선정하여 공동묘지를 만들고 나무를 심고 묘지를 지킬 수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 고 되어 있다. 인천 화교의 90% 이상은 산동성 출신이다. 따라서 인천 부평 화교 공동묘지의 무덤 가운데 산동성 출신의 무덤이 95%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산동성 출신 무덤 가운데 영성현( 榮 成 縣 ) 출신이 165개(39%), 모평현( 牟 平 縣 ) 출신이 84개(19.9%), 문등현( 文 登 縣 ) 출신이 47개 (11.1%)로 산동성 중에서도 이들 세 지역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6 제물포 도화동에 있던 화교공동묘지는 1958년 인천대학 부지로 그 일대가 편입되면서 만수동 산 6번지로 이장을 하였고, 인천시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1990년 부평공동묘지로 다시 이장하게 되었다. 7 현재는 인천시에 의해서 납골당으로 모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인 천 부평 화교공동묘지에 들어가면 납골당이 마련되어 있는데, 화교 무덤도 차차 납골당으로 모두 옮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직도 연락이 되지 않는 무연고자 무덤들이 있어서 화교협회 관계자들이 수소문하여 후손들을 찾아 빨리 납골당으로 모실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화교들은 인천 부평의 화교 공동묘지에만 무덤을 쓰지는 않는다. 인천 부평 화교공동묘지와 함께 많은 화교들이 무덤을 쓰는 곳이 파주에 있는 육 미리 공동묘지이다. 육미리 공동묘지는 인천 화교들 보다는 한성(서울) 화 교들의 무덤이 많다. 그리고 집안 형편이 좋은 화교들의 경우 육미리, 공동 6. 인천광역시박물관, 위의 책, 19~20쪽. 7. 인천광역시박물관, 위의 책, 53쪽. 인천 부평공동묘지 육미리 화교화원

69 의례공간 69 외국인특화묘역 조경도(인천 중구청 사진제공) 묘지에 무덤을 쓰는 경향이 높았다. 1883년 중구 북성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묘지가 설치되었다. 1914년 외국인 묘지의 일부가 철도부지로 수용되었고, 한국전쟁 중에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1965년 외국인 묘지가 방치되었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현재 연수구 청학동 53번지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곳에는 총 66기의 묘가 안치되어 있는데, 미국인 17기, 독일인 11기, 영국인 9기, 러시아인 5기, 이 태리인 3기, 호주인 2기, 네덜란드인 2기, 프랑스인 1기, 캐나다인 1기, 스페 인인 1기, 폴란드인 1기, 체코인 1기, 중국인 1기이다. 현재 인천시에서는 연수구 청학동에 있는 외국인 묘지를 인천부평 가족 공원으로 옮겨 외국인특화묘역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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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화교촌의 공간구성 72 제1패루 제3패루

73 의례공간 73 제2패루 3) 패루( 牌 樓 ) 일반적으로 중국의 마을 입구에는 큰 기와지붕으로 된 문이 있는 경우 가 많다. 이것을 패루라고 한다. 전 세계 어느 지역을 가든 화교들이 살고 있 는 마을 앞에는 패루를 세워둔다. 패루는 주로 마을 입구에 세워 마을의 영 역을 표시하는 의미이다. 인천 차이나타운도 2000년 10월에 인천역 건너 차이나타운으로 올라가 는 오르막길 입구에 패루를 세웠다. 차이나타운 개발 이전 화교촌이었을 무 렵에도 패루가 존재했었는지 그 유무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차이나타운 입구 에 세워진 패루는 차이나타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이 패루의 크기는 높이 15미터로 인천역 앞에서 보면 그 웅장한 위용을 느낄 수 있다. 패루를 마을 어귀에 세우는 이유는 마을의 외부로부터 나쁜 것을 막아주는 벽사의 의미를 지닌다. 차이나타운 입구에 설치된 제1패루 는 인천광역시가 이곳을 관광특구로 개발하려고 할 때, 중국 산동성 임기 시( 臨 沂 市 )에서 기와와 재료를 직접 공수해서 지었다. 8 패루는 인천역 앞에 있는 제1패루 외에도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제2패루, 한중문화 관 앞에 제3패루가 있다. 8.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앞의책, 20쪽.

74 화교촌의 공간구성 74 교육공간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대창반점이라는 중국음식집이 보인다. 대창반점을 끼고 작은 길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좌 측에 인천 화교유치원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뒤편으로 높게 솟은 담장을 보면 대만의 국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인천 화교중 산학교이다. 인천 화교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는 데, 모두 합해 화교학교라고 부른다. 이 화교학교는 옛 청국 영사관 터이다. 이들 학교는 1901년 소학교, 1957년에 중학교, 1964년에 고등학교각 각 각 설립되었다. 9 아래의 학교와 관련된 내용은 인천차이나타운 홈페이지에 소개된 것을 많은 부분 참조하여 구성하였다. 한어강습반 결업( 結 業 )(인천화교학교 사진제공) 인천 화교중산학교 건물 1)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의 교육 환경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화교는 계속 증가하지만 자녀교육에 대한 준비 가 없었던 터라 일부는 본국으로 보내어 학교에 보내기도 하고, 또 일부는 가정에서 천자문이나 사자경 등을 공부시키기도 하였다. 또 부유한 화교가 9. 인천광역시립박물관, 앞의 책. 22쪽.

75 교육공간 75 한성 화교학교 정은 가정교사를 고용하였지만 보통 가정의 자녀들은 글방에서 사서오경 과 산수를 배웠다. 학생들은 이렇게 5, 6년을 배운 후 곧바로 장사를 배웠 고, 사회로 나아가 생계를 꾸려갈 계책을 세웠다. 10 청일전쟁 후 유럽의 문 물이 아시아로 유입되면서, 화교들은 서당교육이 사회생활의 요구에 적합 하지 않음을 깊이 깨닫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뜻있는 지사들이 학당을 세우 고 새로운 교육방안을 마련하였다. 11 그래서 1902년 5월 인천 중화상무총회 (현 인천화교협회) 건물의 창고 한 켠을 내어 인천 화교학당이 세워졌고, 사 숙( 私 塾 )방식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30명의 학생이 등록하였고, 당시 교 장은 부영사관이었다. 한편 서울에서도 상공업계의 거두인 전 중화상공회장 장시영( 張 時 英 ) 이 화교 자녀들을 양성해야 함을 누차 강조하여, 전 주한총영사 마정량( 馬 廷 亮 )의 협조 하에, 중화상공회가 빌린 몇 칸의 교실에 서울 화교학당을 세 웠다. 몇 년 후, 부산, 영등포, 군산, 대구에서도 학당을 세웠다. 12 2) 1913년 자강소학( 自 强 小 學 )과 1929년 노교화교소학( 魯 僑 華 僑 小 學 ) 1913년 자강소학 이라는 교명으로 주로 광동지역 학생을 상대로 하는 10. 주금렴, 한국화교사회적변화여특점, 화교화 인역사연구 제2기, 1996, 22~34쪽. 11. 이재광, 韓 國 華 僑 의 歷 史 와 文 化 正 體 性, 화 교화인역사연구 제2기, 1996, 22~34쪽. 12. 이재광, 위의 논문, 22~34쪽.

76 화교촌의 공간구성 76 소학교 건물(1942년)(인천 화교학교 사진제공) 학교 입구(1947년)(인천 화교학교 사진제공) 인천 화교소학교 건립(1951년)(인천 화교학교 사진제공) 정초( 定 礎 )(1951년)(인천 화교학교 사진제공) 학교가 호텔 자리에 세워졌으나 후에 화교 소학교에 편입된다. 당시 학교 는 7년제로서 인천지역의 학생 외에도 전국에서 입학한 학생들이 기숙하면 서 공부를 하였다. 1929년에는 북방인(주로 산동인)들이 산동동향인회관(현 파라다이스 호텔 자리)에 노교화교소학교를 세우나 5 6년 후에 다시 화교학교로 통 합된다.

77 교육공간 77 화교소학교 옛모습(인천 화교학교 사진제공) 화교소학교 현재모습 3) 1946년 분교 설치 1942년에는 학생 수가 수백 명에 이르러 2층 건물을 신축하여 1층은 교 실로, 2층은 강당으로 사용하며 1946년에는 주안에, 1951년에는 용현동과 부평에 분교를 설치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 까지도 인천에는 소학교 과정만 있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서울의 한성화교 중등학교로 가야했기 때문에 불편이 많았다. 4) 1956년 중고등학교 과정 신설 1957년 9월 1일 이사회를 거쳐 중고등학교 과정을 신설하고 학교명을 한국 인천중산소학, 중산중학으로 바꾼다. 중산( 中 山 )이란 중국인들이 국 부로 생각하는 쑨원의 호로서 학술방면의 공헌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 하여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수차례에 걸쳐 건축과 소실을 겪은 학교 교사는 1951년 지어진 소학교 건물과 1977년에 현재 중학 건물을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때는 1,500여 명이 북적대던 학생수는 현재 450명으로 줄었으며, 그 중 한국 학 생수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물론 중국 본토에서 온 자녀들도 섞여 있다. 역사가 유구한 인천 화교학교는 고등학교, 중학교와 초등학교의 총학생 수가 서울 일반중학교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행이 최근 몇 년에 인천 화교 초복성( 初 福 成 )이 이사장을 맡고 나서 사재를 털어 학교에 투자해 학 교를 정상적으로 회복시켰고, 현대화된 교육을 도입해 일약 화교학교의 모 범이 되었다. 화교학교의 경비축소 문제는 학생수의 감소에 따라 설비는 물 론, 기재( 器 財 )와 교재 등이 열악해지고 이런 악순환 속에서 날로 부실해진 문제가 있었다 이재광, 앞의 논문, 22~34쪽.

78 화교촌의 공간구성 78 상업공간 북성동 선린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은 짜장면 거리 가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짜장면 거리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 선 중화요리집과 잡화점 등은 이곳이 차이나타운 색깔을 가질 수 있도록 도 와준다. 1) 공간에 얽힌 이야기 인천 차이나타운의 짜장면 거리를 중심으로 하는 상업공간이 현재와 같 은 모습을 띄게 된 건 불과 1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일제강점기만 하더라도 짜장면과 같은 중국음식을 파는 가게는 한 두군데에 불과했고, 중국 전통 과 자나 빵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던 정도였다. 그리고 당시에는 차이나타운 이라는 명칭보다는 청관( 淸 館 )이라고 불리었다. 청국영사관을 줄여서 이르 는 말인데, 인천 화교촌을 가르키는 말로 쓰여지고 있다. 화교 노인들로부터 당시의 공간 모습을 재구해보고자 한다. 우물터 이야기 한국전쟁 전후의 차이나타운은 지금처럼 상가가 번화하게 들어서지 않 았다. 대부분이 주거지역으로 화교주민들이 일본식 하꼬방 14 을 개조해서 사 용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수도시설 조차 없었기 때문에 화교주민 들은 우물물을 길어다가 먹어야만 했다. 인천 차이나타운 내에는 물을 구할 수 있는 곳이 두 군데 있었다. 하나는 인천 차이나타운 짜장면 거리 내에 있는 우물이고, 또 하나는 물을 파는 상 점이다. 전자는 누구나 언제든지 물을 구할 수 있는 공동 우물터이고, 후자 는 물을 판매하는 곳이다. 현재 인천 차이나타운 자장면 거리에 있는 중국성 이라는 중국음식점을 보면 입구 좌측에 승용차가 한 대 정도 들어가서 주차 할 수 있을 정도의 빈 공간이 있다. 정사각형의 건물로 올리면 내부공간도 늘 어날텐데, 그 작은 공간을 비켜서 건물을 세운 이유는 그곳이 바로 예전부터 이용해왔던 공동 우물터였기 때문이다. 중국성이라는 건물이 음식점을 하기 14. 판자집을 속되게 이르는 말.

79 상업공간 79 전에는 목욕탕이었던 것도 원래 우물터였기 때문인것 같다. 그 목욕탕이 문 을 닫고 현재 중국성의 사장인 곡창신( 曲 昌 信 )이 임대를 해서 음식점을 운 영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 우물터는 청나라 영사관이 관할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 이후 인천 화교협회가 물려받아 관리하고 있으므로 그 공간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 천화교협회의 관할로 되어 있는 상태이다. 차이나타운에 우물 두 군데 있어요. 하나는 저쪽 가다보면 중국성 있지요. 중국성 알지 요? 중국성은 이렇게 코너가 있잖아요. 코너 보면 이렇게 집이 비어있어요. 이만큼. 비었지 요? 이게 공동 우물이에요. 토지 등기가 이 건물 거 아니고 화교협회 거에요. 청나라 영사관 만들 때 여기다가 공동우물을 만들었어요. 화교협회 땅이에요. 소유는 거기에요. 근데 영사 관 뒷켠이거든요. 거기 우물터 좋아서 그런지 물이 잘 나와서 그런지 거기에 우물을 만들었 어요. 거기에 우물이 하나 있었고 바로 그 앞 자리에 뜨신 물 파는 데가 있어요. 차수루자라고 그래요. 그게 이름이요 내가 여기다 적어드릴게요. 차수루자( 茶 水 婁 子 ) 이렇게. 이게 뭐냐 뜨 신 물만 팔아요. 예전에는 가마솥에 장작불을 붙여서 한참 끓여야 하잖아요. 중국집에 손님 왔는데 급하게 써야 하잖아요. 그래서 전문업체가 있었어요. 유료우물인거죠. 공화춘이든 그 런 집들은 다 여기 와서 다 물 질러가요. 물 질러가는 당번이 있어요. 직원 중에... 당번이 있 어요. (서학보, 남, 1959년 생) 차이나타운 내 짜장면 거리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음식점이 2군 데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이전인 1940년대에는 오히려 중국음식점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중국 음식점은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래서 그 만큼 음식을 빨리 준비해야만 했다. 주방에서는 늘 뜨거운 물이 갖추어져 있 어야 하는데, 뜨거운 물을 끓이고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등 장한 것이 뜨거운 물을 파는 곳이다. 공동 우물터를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곳에 지금은 찻집이 들어서있지만 예전에는 그곳에서 물을 끓여서 팔던 곳이 있었다. 차이나타운 내에 있는 식당도 뜨거운 물이 필요했지만, 일반 화교주민들도 뜨거운 물이 필요했다. 추운 겨울에 세면을 위해서도 뜨거운 물을 데워야 하는데 그런 시간적 여유 가 없을 때에는 이곳에서 뜨거운 물을 사서 사용한 것이다. 중국어로 차수 루자( 茶 水 婁 子 ) 라고 불렀다. 지금은 상하수도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공동 우물이 필요로 없게 되었 다. 그러나 여전히 그 공간이 비워져 있으므로 해서 화교사회에서는 우물과 차수루자( 茶 水 婁 子 ) 이야기가 계속 회자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삼불관 이야기 조선과 청국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이 맺어지게 되면서 조선은 청 국과 육상교역이 아닌 통상무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조약으로 말미암

80 화교촌의 공간구성 80 아 화교들이 한반도에 속속 들어와 수도 서울과 개항지 인천, 부산, 원산을 중심으로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인천에 정착한 상인들은 선린동 일대 에 터를 잡아 중국인 마을을 형성하였다. 이후 일본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 도 조선과 통상무역 조약을 맺으면서 시골 어촌이었던 인천 제물포는 그야 말로 청, 일본, 서구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각국은 자국의 국민들과 그들 의 상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조계지를 설정하였는데, 차이나타운이라 고 불리기 전에 선린동 일대를 청관이라고 부르게 된 연유도 바로 조계지 에 기인한다. 청국은 선린동 일대를 조차( 租 借 )하고, 청국 상인들과 자국민들을 관리 하기 위해서 영사관을 세운다. 청나라 영사관이 있다고 해서 선린동 일대 를 청관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현재 청국의 영사관 터는 인천화교협회 회의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차이나타운이라는 용어는 최근에 만들 어진 것이다. 아니에요. 이 앞에 계단이에요. 삼국지 계단은 가운데 있고요. 여기는 차 파는 뜨신 물 파 는데, 이 구역 안에 차이나타운이거든요. 이쪽은 차이나타운 안쳐주죠. 이쪽도 안쳐주죠. 그 게 여기가요 지금도 뭘로 부르는지 아세요? (삼불관 쓰고) 지금도 불러요. 무슨 말이냐. 이 관 아시죠? 관리한다. 아니한다. 세 곳에서 다 관리안해요. 네 삼불관. 이게 실은 무슨 뜻이냐. 무법천지에요. 이런 뜻이에요. 이게 차이나타운 지역도 아니고, 일본지역도 아니고, 한국사 람 지역도 아니고 여기가 노타치 전부다. 그래서 이쪽 지역이요. 여기요. 여기서 밑에까지 뭘 하냐. 첫째 밀주, (서학보, 남, 1959년 생) 현재 짜장면 거리가 있는 곳이 청나라가 조차( 租 借 )한 청관의 중심지였 다. 그 일대에 청나라 상인들 즉, 화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였다. 짜장면 거 리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 일대를 사람들은 삼불관이라고 불렀다. 삼불관( 三 不 官 )이라는 것은 무법천지라는 뜻이다. 일본, 청, 조선에서조차 관리가 되 지 않는 것을 뜻하는 한자어이다. 치외법권인 지역이 되다보니 밀주( 密 酒 )를 만들어 파는 불법적인 일들 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게 되었고, 홍등가( 紅 燈 街 )도 형성되기 시작했 다. 지금도 홍등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풍미 음식점이 있는 건물이다. 긴 장방형의 중국식 건물로 이층으로 되어 있으며, 이층은 난간 이 있고, 칸칸이 방이 있었다. 조계지 계단의 조포대( 造 砲 臺 ) 이야기 제물포조약으로 인천항이 개항되면서 중국의 노동자들이 대거 인천으 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던 인천은 신문물을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당시 구한말 신문명의 집성지라고 할 만큼 새로운 것들로 늘 넘쳐났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별천지와 같은 곳이 바로 제물포항이었다.

81 상업공간 81 조계지 경계 계단 당시 북양대신( 北 洋 大 臣 )이었던 위안 스카이[ 袁 世 凱 ]는 인천항을 통제 하려면 적당한 지점에 포를 설치해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원세개는 청나라 말기에서 신해혁명 직후까지 중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조선과 관 계가 깊어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주재하면서 청나라 황제를 대신하여 내정 간섭을 수행하였다. 청일전쟁 발발 직전 귀국하여 이후, 청나라 군대의 신 식 군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귀국 후 무술변법을 계기로 청나라의 실권 을 차지하였다. 쑨원과의 대타협으로 선통제를 제위에서 끌어내려 중국 이 천 년의 제국사에 종지부를 찍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현재 조계지 계단 꼭대기 지점에 대포를 설치하고 월미도 방향으로 포문을 향하도록 지시하였다. 조계지 계단 정상부에서 보면 월미 도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이러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곳을 점유하 지 않으면 인천 일대를 장악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었다. 그래서 인천 화교들은 조계지 계단 꼭대기를 조포대라고 한다. 조포대 라는 것은 대포를 설치했던 누대가 있었던 곳이라는 뜻이다. 원세개의 야망 이 만들어낸 지명이다. 파라다이스 호텔 터 용머리 자른 이야기 일본이 조선침탈에 대한 본격적인 야망을 드러내면서 자행한 여러가지

82 화교촌의 공간구성 82 일 중 하나가 바로 풍수를 이용한 방법이다. 명당 명승지에 말뚝을 박거나, 길이나 철도를 내어 혈을 자르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화교들이 밀집해서 살던 지역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화교들요. 파라다이스 아시지요. 원래 파라다이스에서 차이나타운 산이 이 렇게 이어져 있어요. 자유공원에서 산 흐름이 산 능선이 쭉 이어져서 파라다이스로가요. 풍수 가 굉장히 좋은 곳이거든요. 용이 바다에 가서 물 먹는 형상이라고. 근데 물론 나중에 교통수 해겠지요. 화교들은 무슨 이야기 하냐. 일본 놈들도 굉장히 풍수 따져요. 한국에 많은 해코지 하고 갔지요. 산에 가서 말뚝도 박고. 그래서 보니까는 이게 중국 사람들 자기 집보다 낫다 이 거에요. 그래서 거기다 길을 낸 거예요. 용머리를 잘라버렸어요. (서학보, 남, 1959년 생) 현재 파라다이스 호텔은 제물량로를 가운데로 차이나타운과 반대 방향 에 동떨어져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파라다이스호텔이 위치한 언덕과 차이 나타운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풍수적으로 이 산의 형상을 보면 용이 물 을 마시기 위해 머리를 바다로 향한 형태이다. 터가 좋은 곳에 화교들이 집 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일본 관리들이 일부러 용의 머리에 해 당하는 파라다이스 호텔의 언덕 부분과 청관이 위치한 산의 몸통 부분을 분 리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의 집이 일본 사람들의 집보다 좋다는 이유만으 로 제물량로를 내어서 혈을 끊어버린 것이다. 2) 청관의 역사와 함께하는 공화춘( 共 和 春 )과 중화루( 中 和 樓 ) 인천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짜장면이다. 짜장면은 중국 음식의 대표음식으로 학계나 음식 연구가들의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그 시작은 인천이라는게 정설이다. 따라서 인천 차이나타운은 청요리의 1 번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청요리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춘, 대청반점, 중화루, 본토, 복래춘, 부앤부, 북경장, 상원, 자금성, 풍미, 태림봉, 태화원, 향만성이 모두 청요리집이다. 공화춘은 1980년대까지 인천과 차이나타운을 대표하던 중국음식점이 었다. 연세가 지긋한 한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화춘이라는 세 글자를 들 어보았을 정도로 그 명성과 인기는 대단했었다. 공화춘은 30년 가까이 폐가로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에 짜장면박물관 으로 바뀌었고, 중화루는 건물은 헐려 터만 남아있고, 그 이름만 물려받아 본래 자리가 아닌 신포동쪽에서 손덕준에 의해 새로 운영되고 있다. 보통 식당의 규모는 100~150석 정도이며, 종업원은 10명 정도 둔다. 종 업원은 가족이나 친족 중심으로 고용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인과 조선족을 많

83 상업공간 83 이 고용하는 추세다. 주방장은 연륜에 따라 조리하는 음식이 틀리다. 화덕은 계급에 따라서 틀려요. 주방장은 항상 주방장은 어쩔 때는 동보성에서 인원이 많 았지요. 주방 인원만 30명이었어요. 주방장은 일 안하고 손님 쪽을 관리하고 뭐 요리사 첫 번 째 요리사랑 첫째 프라이팬, 두 번째 프라이팬, 세 번째, 일곱째까지 있었어요. 저는 그 때 두 번째 프라이팬이었어요. (곡창신, 남, 1955년 생) 화덕을 사용하는 것과 위치에 따라서 하는 역할과 만드는 요리가 다르 다. 이처럼 주방안의 위계질서는 매우 엄격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화교 음 식점은 가족이나 친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60~70년대처럼 주 방의 분위기가 엄격하지는 않다. 전통 중국요리뿐만 아니라 퓨전 중국요리 도 나온다. 블루베리와 같은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재료를 이용해서 소스를 만든다. 그 때 내가 2대 회장이었어요. 손덕준은 내 이후고. 이 분이 1대 회장이고, 내가 2번째, 손회장이 세 번째. 그 때가 요리 전시대회에요. 이거 학교 강당에서 이게 할 때가 94년도 1월 이날이 바로 성수대교 무너진 날 있잖아요. 원래 서울에서 기자들 몇 분 오기로 했는데 마침 내 그 날 아침에 비가 많이 왔고 성수대교도 그날 아침에 무너져갔고 인천 기자들만 몇 분 오 셨고. 큰 사건이었죠. (곡창신, 남, 1955년 생) 차이나타운 내의 음식점 경영자들이 모이는 모임은 한 두 개 정도이며, 몇몇 음식점의 경우 중국음식협회에 가입되어 있다. 공화춘( 共 和 春 ) 공화춘의 설립자는 우희광( 于 希 光, 1886~1949)이다. 우희광은 1886년 중국 산동성 모평현 유방촌에서 태어났다. 1883년 인천의 개항과 더불어 형성된 청나라 조계지에는 청국 관리, 청 상, 노동자[ 苦 力 ]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하는 숙박업과 요식 업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1907년 동향의 중국인들을 따라 산동에서 가까 운 조선의 개항장 인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22세의 청년 우희광은 인천 항 부근에 산동회관( 山 東 會 館 ) 이라는 객잔을 열고 중국 상인들에게 숙식 을 제공하였다. 1912년경에는 상호를 공화춘으로 변경하였다. 우희광이 이처럼 큰 숙박 업을 오픈 할 수 있었던 것은 화교사회의 독특한 네트워크가 만들어낸 자본 출자 시스템 덕분이다. 1917년 현재의 장소인 선린동 38-1번지 건물을 우 희광을 비롯한 여러 명의 화교가 공동으로 매입한 기록이 남아 있고, 1934 년 7월의 인천지역 화교 상인 명부에 중화요리점으로 공화춘이 등재된 점 으로 미루어 공화춘은 빠르면 1917년 경, 늦어도 1934년 전에는 현재의 장

84 화교촌의 공간구성 84 (구) 공화춘(짜장면 박물관) 소에서 음식점 영업을 시작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화춘은 공화국의 밝아 오는 아침 이라는 뜻으로 신해혁명으로 1912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 宣 統 帝 )가 폐위되고, 중화민국 이 건립된 것을 기리기 위함이다. 현재 공화춘 건물은 2006년 4월 14일 등록문화재 제246호로 지정되어 중구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1984년 이후 문을 닫았던 공화춘은 2007년 중 구의 지역특구 개발정책에 따라 짜장면 박물관 으로 증개축 되었다. 중화루( 中 華 樓 ) 공화춘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중국요리집이 바로 중화루이다. 인천시립 박물관에 이 중화루( 中 華 樓 ) 의 옛 간판이 보관되어 있다. 중화루는 1910년 대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중국요리 점이었다. 뢰소정을 비롯한 40여명의 중 국인들은 대불호텔을 인수하여 일본인과 중국인을 상대로 북경요리 전문점을 창업하였다. 15 또 개항과 함께 인천에는 구미 각국의 외교사절, 선교사, 여행객들이 입항 15. 김창수, 인천대불호텔 중화루의 변천사 자료 연구, 인천학연구 제 13집, 인천대학교 인천 학 연구소, 2010, 289쪽.

85 상업공간 85 하였고 특히 서양인을 상대로 하는 근대적 숙박시설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호 텔이 생기게 되는데 그 첫 호텔이 1888년 세워진 대불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1902년 세워진 서울 중구 정동의 손탁호텔보다도 14년 앞서는 한국 최초의 서 양식 호텔이다. 이후 1990년대 말 태화원을 운영하던 손덕준은 신포동 쪽에 중화루라는 간판 을 건 중국음식점을 개점하면서 명맥이 끊어졌던 중화루를 다시 되살려 놓았다.

86 화교촌의 공간구성 86 경인일보( , 1면)기사 대불호텔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인천에는 구미 각국의 외교사절, 선교 사, 여행객들이 밀려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목적지가 서울이었기 때문 에 인천에 도착하면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그러나 철도가 놓이기 전이어서 교통편이라고는 조랑말이나 가마 정도가 고작이었다. 걸어서 가려면 하루 종일 걸렸다. 또 배의 도착시간 에 따라 하루를 묵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자 자연스레 숙 박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숙박시설의 정결함을 유난히 따지는 서양인들을 주막에 재

87 상업공간 87 울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근대적 숙박시설인 호텔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효시가 1888년 인천시 중구 중앙동에 세워진 대불호텔 이다. 이 호텔은 1902년 서울시 중구 정동에 들어선 손탁호텔 보다 14년 이나 앞선 것이었다. 대불호텔은 일본조계 입구에 벽돌식의 3층 건물로 일본인 호리 리 키타로에 의해 1887년 착공돼 다음해 완공됐다. 당시 일본조계 첫집이 호리씨 자택이었고, 두 번째가 대불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구라파인이나 미국인들을 겨냥해 서양식으로 설계됐다. 대불호텔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중국인 이타이라는 사람도 외국인 상대로 장사를 했는데, 1층에는 잡화상점을 차렸고 2층에는 스튜워드 호텔 을 개업했다. 대불호텔은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맞았으며 침대가 딸린 객 실 수는 11개, 다다미 수는 240개에 달했다. 숙박료는 당시 화폐로 상급 객실 2원 50전, 중급 2원, 하급 1원 50전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식 여관 인 수월루 의 상급 객실 숙박료가 1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2배 이상 비쌌음을 알 수 있다. 호텔 내에서는 외국인들의 입에 맞는 서양요 리도 제공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불호텔은 일제 강점기 때 중국요리집인 중화루 로 바뀌었다. 중 화루는 공화춘, 동흥루 등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3대 중국요리집으 로 명성을 떨쳤다. 이 건물은 1978년 헐린 뒤 현재는 나대지로 방치돼 있다. 대불호텔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은 우리나라에 처음 온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의 서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1885년 4월 5일자 비망록에 는 끝없이 지껄이고 고함치는 일본인과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들 한복 판에 짐들이 옮겨져 있었다. 다이부츠 호텔로 향했다. 라는 구절이 있 다. 다이부츠 는 대불호텔의 일본식 발음이다. 따라서 일본인 호리 리 키타로가 1888년 대불호텔을 건립하기 이전에 이미 같은 이름의 서양 식 호텔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아펜젤러는 호텔방은 편안하고 넓었으나 약간 싸늘했다. 식탁에 앉았을 때는 잘 요리되어 먹기 좋은 음식이 나왔다. 고 당시를 회고했 다. 2011년 5월 인천 중구청에서는 이러한 대불호텔 터에 대한 대대적 인 발굴조사를 하였다. 땅속에서는 당시 대불호텔의 벽돌이 대거 발굴 되는 등 매장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원형 보존 될 대불호텔 유적지에는 호텔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과 마루를 놓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기단 구조물이 남아 있다. 또 경사면을 평평하게 하 기 위한 석축, 호텔 야외공간을 만들기 위해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되는 장대석도 있다 서울신문( , 15면)기사

88 화교촌의 공간구성 88 중화루와 손덕준 근대화의 여러 산물, 곧 우체국이니 기상대니 혹은 교회니 서양의 문명 으로 일컬어지는 것들의 1번지가 한국 최초의 개항도시 인천임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그 가운데 인천의 대불호텔도 거기에 속하는, 다 시 말해 한국 최초의 호텔인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 대불호텔 자 리에 청요릿집 중화루가 들어선 사정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그리 많지 않은 편, 그런 점에서 왕과장의 <인천의 중화루>라는 글은 그야말로 실 증적 가치가 제법 있는 자료다. 왕 과장에 의하면 중화루는 연태 출신 화교 라이사오징(1872)씨가 중화루를 창업해서 그 아들인 라오청지우 씨에게 대를 물렸다가 그 손자인 라이성위씨가 1950년대에 장사를 접 고 도미했는데 그 라이 씨 가족이 양 관장과 마침 인척관계여서 수소문 끝에 미국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라이 씨와 선이 닿아 중화루 옛 사진을 입수한 사연을 연태일보에 실었다. 연태로 오기 바로 직전 지금의 중화루를 운영하는 손덕준 회장의 집 안 사진들을 일별할 기회가 있었는데, 훤칠한 키와 긴 얼굴의 호남형인 손 회장 부친 손세상 씨 그리고 옛날 중화루에 와이탕으로 일하던 손 회 장의 외조부인 왕영성 씨의 옛 모습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흥미로운 것 은 왕 관장이 발견한 그 중화루 옛 사진안의 인물이 손 회장이 내게 보 여준 그 사진의 인물과 같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17 중화루와 고동증서 연태의 자융쉬 씨의 아버지인 장옌두씨는 중화루 개점 당시의 동업자 로 고동증서(일종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증서를 누군가가 빌려가 서 되돌려주지 않는 바람에 그 증서는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인천의 옛날 중화루는 말하자면 여러 화교가 자본을 나누어 차린 음식점인 셈이다. 그 리고 자신의 두 형과 누님이 중화루에서 태어났는데 1931년에 귀국했다 는 것이다. 1931년대라면 완바오산 사건이 터지던 그 해이다. 일본인들이 만주에서 조선인 농부와 만주의 중국인들을 이간질해서 조선인들이 습격 을 당한 것처럼 보도를 하는 바람에 대중국 감정이 격화되었고 그런 연유 로 조선에 살고 있던 화교들이 분풀이를 당하자 많은 화교들이 떠난 그 해 인 것이다 유중하. 화교문화를 읽는 눈, 짜장면. 인천문 화재단 ~58쪽. 18. 유중하. 위의 책. 57~58쪽.

89 상업공간 89 3)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화교 3세대가 운영하는 가게 인천 차이나타운에는 공화춘과 중화루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중 국음식점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대를 이어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가게 들도 적지 않다. 풍미, 대창반점, 복래춘과 같은 곳은 최소한 3대를 이어오 는 가게들로 화교사회에 내에서도 인정받는다. 풍미 중국음식점 풍미를 운영하고 있는 한정화( 韓 正 華 )는 인천 차이나타운 에서 4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 화교이다. 1910년대 증조할아버지가 중국 산 동성에서 가족을 데리고 인천에 정착한 것이 한정화 집안의 한국생활의 시 작이었다. 할아버지는 청관의 거상이었던 동순동( 同 順 東 )에서 꽤 높은 자 리에 있었다고 한다. 풍미 내부전경

90 화교촌의 공간구성 90 대창반점 이처럼 큰 부를 축적하였던 한정화 집안은 인천화교사의 시련으로 불리 는 외국인 토지 거래법과 이민자 정책에 의해서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 었다. 그것이 한정화가 중국집을 하게 된 이유였다. 대창반점( 大 昌 飯 店 ) 대창반점은 풍미 맞은편에 있는 중국음식점이다. 대창반점도 인천 차이 나타운에서 꽤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중국음식점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현 재 대창반점은 고 유순하의 부인과 두 아들이 운영하고 있다. 대창반점의 시작은 원래 현재 위치가 아니다. 대창반점은 인천광역시 중 구 북성동 파출소 뒤에 있는 농협자리에서 시작했다. 1980년대에 현재 위 치로 옮겨왔다. 유순하는 그 전 농협자리에서 중국음식점을 했을 당시 주방 장으로 근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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