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열의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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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열의사록 예문관 박성진

2 소개글

3 목차 1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5 2 박열 어록 28 3 개새끼(1922년2월) 32 4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4 5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0 6 한국일보 박열 특집 59 7 박열의 옥중단가 60 8 박열 의사 출옥 후에 보내온 지인들의 휘호 63 9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조선일보) 일본 여인을 사랑에 빠뜨린 박열의 무정부주의 [중앙일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박열 독립운동사 박열-가네코후미코 일본대심원 판결문 박열의 옥중단가(아키타형무소에서) 납북이후 박열의사의 행적 나의 옥중잡영(박열 한시) 박열 의사의 친필 박열의사기념사업회 및 박열의사 기념관 연혁 박열 作 옥창( 獄 窓 )의 시(동아일보 1926년 1월 1일)2수 대역죄로 사형 선고 받은 박열 재판장, 수고했네 [이덕일의 事 思 史 근대를 말하다] 박열의사와 가네코후미코 그리고 기념관 불령사( 不 逞 社 ) 동지 명단 박열과 가네코후미코 동지들 사진 북한의 새로단장한 박열의사 등의 묘역 162

4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1 근대사와 아나키즘 등장(이덕일칼럼 중앙일보).pdf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4

5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5

6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6

7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7

8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8

9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9

10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0

11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1

12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2

13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3

14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4

15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5

16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6

17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7

18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8

19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19

20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0

21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1

22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2

23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3

24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4

25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5

26 근대사와 아나키즘의 등장(이덕일 칼럼 중앙일보 연재물) 26

27 박열 어록 :57 박열 어록 27

28 이치가야형무소 형사자위령탑 박열 어록 28

29 이치가야 ( 市 ヶ 谷 )형무소) 예심조서에서 박열은 1924년 2월4일 이치가야( 市 ヶ 谷 )형무소에서 있은 제6회 예심 조서에서 일본 천황과 그 황실에 대해서 자신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나타냈다. 나는 일본에게 억압을 당하고 있는 조선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의 천황, 황태자, 황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증오와 반역의 마음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존경심은 추호도 가지고 있 지 않았다. 일본의 천황과 황태자는 하나의 우상( 偶 像 )에 지나지 않는다. 가련한 제분기( 製 糞 機 ) 이자 희생자에 불과하다. 특히 조선의 일반 민중들은 천황과 황태자가 일본의 명실상부한 실권 자이다. 한 하늘 밑에서는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러한 존재를 지 구로 부터 추방해 버리는 것은 조선의 민중들을 감격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보다 전투적인 기 분을 가지게 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는 실로 가장 의미있는 방법중의 하나라 할 수 있 을 것이다. 박열은 일본 사법부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조선청년의 철저한 민족적 독립 의지와 확고한 항일투쟁 의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대항하며 싸웠다. 그는 1923년 가을에 있을 예 정인 황태자결혼식에 폭탄을 사용할 목적과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첫째, 일본 국민에게 있어서 일본의 황실이 얼마나 일본 국민에게 고혈을 갈취하는 권력자의 간 판격이고, 또한 일본국민들이 미신처럼 믿고 신성시 하는것 신격화하는 것의 정체가 사악한 귀 신과 같은 존재임을 알리고, 일본황실의 진상을 밝혀서 그 신성함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함이었 다. 둘째, 조선 민족에게 있어서 일반적으로 일본 황실은 모든 것의 실권자이며 민족의 증오의 대상 이기 때문에, 이 황실을 무너뜨려서 조선민족에게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열정을 자극하기 위해서 였다. 셋째, 침체되어 있는 일본의 사회운동가들에게 혁명적인 기운을 불어 넣기 위해서였다. 나의선언 멸하라! 모든 것을 멸하라! 폭탄을 날려라! 독을 퍼트려라! 기요틴을 설치하라! 정부 에,의희에,감옥에,공장에,인간시장에,사원에,교회에,학교에,마을에, 거리에. 모든 것을 박열 어록 29

30 멸할 것이다. 붉은 피로써 가장 추악하고 어리석은 인류에 의해 더렵혀진 세계를 깨끗이 씻을 것이 다 나는 독립국의 머슴이고싶다 박열은 출옥후 아키다( 秋 田 )현과 야마가다( 山 形 )시 그리고 동경에서 동포들이 환영하는 모임과 민중대회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스스로 민중의 지도자가 될 계획은 없다. 나는 내가 경애하는 조선민중의 수족이 되어 심 부름꾼이 되고, 내가 신성한 목적 달성 때문에 30수년을 살아 지내온 이 목숨을 거듭 바치고자 굳게 맹세할 따름이다. 그리고 조선인의 한사람으로서 세계인의 한사람으로서 조선인의 발전과 자유조선의 독립완성에 헌신할 것이다. 이 신성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장애가 되는 일체의 모든 것에 대하여, 철저하게 싸우고 이를 배제하여 나간다고 말하였다. 그는 또 일본의 천황제가 제 국주의 군국주의로 몰고간 전정( 專 政 )의 위험에 대해 지적하였다. 일본 민중에 대해서는 결코 적으로 하는 것은 없으며, 조선과 일본뿐만이 아니라 각 민족은 금후 공존공영으로 매진해 나가 야 할것이다. 박열 어록 30

31 개새끼(1922 (1922년2월) :49 청년 박열 개새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개새끼(1922년2월) 31

32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감상노트 *가네코후미코가 1922년 2월 일본유학생들이 펴낸' 조선청년' 에 실린 박열의 개새끼 시를 읽고 내 마음속에 찾던 그 사람이 바로 박열이라고 확신을 하 게 된다.) 개새끼(1922년2월) 32

33 박열( (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46 박열 (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김명섭 (단국대학교 강사) 1. 머리말 박열은 일제 강점기동안 항일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중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18세의 나이 로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흑도회 흑우회 등 항일 사상단체를 이끌어 온 그는 19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학 살의 와중에 일본국왕을 폭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른바 대역사건 ( 大 逆 事 件 )으로 인해 그는 1945년 10월 27일 아키다( 秋 田 )감옥에서 석방될 때까지 22년 2개월이라는 세계최장의 옥살이를 치루어야 했다. 해방후 맥아더 정부에 의해 석방된 박열은 신조선건설동맹에 이어 재일본조선인거류민단의 초대단장을 맡았으 며, 1949년 영구귀국했다가 한국전쟁으로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고 말았다. 북한에서 그는 조소앙 엄항섭 등과 함께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서 활동해 회장을 맡아 군대축소와 국제적 중립국화에 노력하였다. 1974년 1월 17일 서거하 여 현재 그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하지만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에 끼친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의 업적은 남북한 양쪽을 비롯해 고향에서조차 제 대로 알려지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미소 냉전체제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아나키즘 사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 롯되었지만, 밑바탕에는 일제의 천황제 체제는 물론 남북한 정권의 철권통치 모두를 거부하고자 했던 그의 자유정신 에서 찾을 수 있다. 다행이 지난 2001년 문경의 뜻있는 지역유지들을 중심으로 기념사업이 진행 중에 있어 업적에 대 한 재평가가 기대된다. 2. 성장과 항일투쟁 박열은 1902년 3월 12일(음력 2월 3일) 경상북도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샘골) 98번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함양 ( 咸 陽 )으로 부친 박지수( 朴 芝 洙 )와 모친 정선동( 鄭 仙 洞 )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초명은 혁식( 赫 植 )이었으 나 어려서부터 열( 烈 )로 불렀고, 호적에는 준식( 準 植 )으로 되어 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마성면 오천리 일대는 일찍이 일제에 의한 광산촌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개 조선총 독부의 후원아래 일본 자본가들이 마구잡이로 개발한 광산촌에는 조선인에 대한 가혹한 노동착취와 저임금, 인권유 린 등의 각종 폐해가 뒤따랐던 만큼, 지역주민들의 반일정서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일찍이 오천리에는 인근 산지의 삼림과 식수관리, 경로사업 등 마을자치 활동을 펼치는 성산조합( 星 山 組 合 )이 결성되었는데, 이 단체는 1919 년 1월 권농조합으로 개칭되었다. 박열의 맏형 정식과 둘째형은 이 조합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년경 마을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3

34 구장을 맡아보는 등 마을일에 적극 앞장섰다. 박열의 집안은 누대로 전통적인 양반 가문으로 지방 사민( 士 民 )이었다. 하지만 경술국치 이후 자작농업과 소작료 수확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궁핍하였다고 한다. 7세인 1908년부터 서당교육을 받았으며 10세 때에는 집에서 40리나 떨어진 함창공립보통학교에 다녔다. 이 지방 최초로 설립된 4년제인 보통학교에 통학하면서, 소년 박열은 민족의식 형성에 큰 계기를 갖게 된다. 즉 1916년 3월 졸업식을 앞두고 조선인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그동안 일본의 압력에 못 이겨 거짓교육을 시킨 것에 대해 눈물로 사과하며 조선역사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교사는 형사 라는 선생님의 말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은 소년 박열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 공부하여 민족을 위한 큰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보통학교 졸업 후 박열은 농사를 지으라는 맏형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 사범과에 진학하였다. 재학 중 그는 일본인 교사로부터 고토쿠 슈스이( 幸 德 秋 水 )의 이른바 대역사건( 大 逆 事 件 ) (일 본천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음모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후 1919년 3 1운동이 일어나자 여기에 참여하 였던 박열은 일본인이 세운 학교에 다니는 치욕을 견딜 수 없다며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다. 고향 문경에 돌아온 이후에도 박열은 친구들과 함께 태극기와 격문을 살포하는 등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로부터 일제의 가혹한 고문과 탄압 만행을 전해 듣고, 더 이상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힘 들다는 판단 아래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했다. 마침내 1919년 10월경 그는 도쿄( 東 京 )로 가는 배에 몸을 싣게 되 었다. 도쿄에 도착한 박열은 여느 고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신문배달과 날품팔이, 우편배달부, 인력거꾼, 인삼행상 등의 노동에 종사하였다. 이러한 험난한 고학생활 속에서도 그는 틈틈이 단기어학 전문학원인 세이소쿠( 正 則 )영어학교에 다니며 학업에 전념하였다. 나아가 오스기 사카에( 大 杉 榮 ) 사카이 토시히코( 堺 利 彦 ) 이와사 사쿠타로( 岩 佐 作 太 郞 ) 등 당시의 저명한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찾아가 직접 교류하면서 그들의 반제 자유의식과 아나키즘사상에 공명하게 되었다. 박열은 보다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김찬 조봉암 등 도쿄에 거주하는 고학생들을 규합해 의혈단 ( 義 血 團, 후에 鐵 拳 團 - 血 拳 團 - 撲 殺 團 으로 개칭)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친일 행위자들에게 협박장을 보내 떠나라고 명 령하고, 철저히 응징하겠다고 위협하였다. 또한 그는 당시 도쿄의 최대 조선인 노동단체였던 조선고학생동우회( 朝 鮮 苦 學 生 同 友 會 )에서 김약수 백무 최갑춘 등과 함께 간부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1922년 2월경 박열은 그의 평생동지이자 아내인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 다. 요코하마 태생의 그녀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성적학대로 제국주의 일본의 모순을 온몸으로 받아오면서 천황제와 군국주의에 반감을 가져온 자유여성이었다. 약 7년 동안 조선 땅에서 갖은 고생을 한 바 있는 그녀는 도쿄시내의 작 은 오뎅집에서 일하면서 조선유학생들과 교류하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조선잡지에 실린 박열의 자작시를 읽고 강 한 감동과 함께 그를 흠모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곧 만남을 통해 사상공감에 이르렀고, 민족적 차이를 넘어 계급적 동지로서 함께 항일활동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3. 흑도회와 흑우회, 불령사 활동 도쿄 고학생 동우회와 혈권단 등으로 항일활동을 펼치던 박열은 김약수, 원종린 등 유학생들과 함께 1921년 11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4

35 월 29일 첫 사상단체인 흑도회( 黑 濤 會 )를 결성하였다. 저명한 일본 아나키스트인 이와사 사쿠타로의 후원아래 다양한 항일투사들이 결집된 흑도회의 회원들은 세계노동절 행사를 비롯해 일본 사상단체의 반정부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나아가 그는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흑도회의 기관지인 흑도( 黑 濤 ) 의 발간책임을 맡아 창간호와 2호를 발간하여 항일세력의 규합과 선전활동에 전념하였다. 흑도회는 1922년 8월 니카다( 新 潟 )현 나가스가와( 中 津 川 )에서 조선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착취와 학대로 다수가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박열과 김약수를 조사단으로 파견하였다. 이어 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9월 7일 도쿄 YMCA에서 보고하기에 이르렀는데,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을 비롯해 1천여 명의 군중이 모이는 등 큰 관심과 반향 을 불러 일으켰다. 박열은 이 사건과 같은 반인도적 행위가 민족차별과 식민체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이의 근본 적인 파괴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니카타현 조선 노동자학살사건의 조사를 계기로 흑도회는 식민체제의 근본적인 파괴와 의열투쟁을 강조하는 박 열과 대중적 전위정당을 추구하는 김약수와의 균열이 발생하였다. 실제로 박열은 국내에 사건보고를 위해 들어왔다가 김한( 金 翰 ) 등 의열단 간부들을 만나 폭탄구입을 요청하였다. 김약수 역시 조선인노동조사회와 노동자동맹을 결성함 에 따라 흑도회의 해체를 불러왔다. 박열은 1922년 12월경 김약수 등과 결별한 후 직접행동을 추구하는 회원들과 함께 흑우회를 조직하였다. 결성 당 시 회원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포함해 신영우 홍진유 서상일 박흥곤 장상중 등이었다. 흑우회 멤버들은 곧 사무실 내에 민중운동사를 세우고 1923년 5월경 기관지 민중운동( 民 衆 運 動 ) 을 발간하였다. 순수 조선문으로 발간 된 이 월간 사상잡지의 발행을 위해, 박열은 흑우회 사무소에서 편집 및 통신을 비롯한 기타 일체의 사무를 보았다고 밝혔다. 흑우회는 일본 및 조선의 여러 사회단체들과 함께 연대활동을 전개하였다. 흑우회원들은 후데이센징( 太 い 鮮 人 ) 과 현사회( 現 社 會 ) 라는 기관지를 통해 과격사회운동 취체법안 에 대해 반대의견을 개진하고 대규모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또 일본 노동단체 주최로 열린 세계노동절 행사에 참가해 8시간 노동제 실시 와 조선의 해 방 을 외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등 흑우회 멤버들도 대회에 참가하다가 경찰의 검속에 걸 려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이밖에도 흑우회원들은 조선문제강연회를 열어 항일의식을 고취시 키는 한편, 서울과 도쿄의 노동단체들과 연락관계를 맺는 등 활발한 대외 연대활동을 펼쳤다. 4. 일왕폭살계획과 옥중투쟁 박열은 1923년 4월 중순경 흑우회와 별도로 불령사( 不 逞 社 )를 조직하였다. 조선인 15명과 일본인 6명 등 총 21명 으로 조직된 불령사에서 박열은 정기모임을 통해 일본 아나키스트의 강연을 듣거나 국내의 파업투쟁을 후원하고, 사 회주의를 매도한 조선기자를 폭행하는 등 반일 직접활동을 주도하였다. 나아가 그는 보다 적극적이며 파괴적인 의열 투쟁을 펼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박열은 외국에서 폭탄을 반입할 방도를 논의하거나 직접 제조하려 하는 한편, 의열단의 중요간부인 김한( 金 翰 )을 만나 폭탄구입을 요청해 폭탄 50개를 반입하려 하였다. 세 번째에 걸친 폭탄 반입 실패에도 불구하고, 박열은 1923년 가을의 일본 황태자 결혼식 소식을 접하고 다시 거사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의 명성을 듣고 도쿄로 찾아온 김중한 ( 金 重 漢 )에게 폭탄구입 여부를 타진하였으나, 구입비용 때문에 잠시 보류하였다. 이때까지 박열은 폭탄을 구입해 이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5

36 를 언제, 어디에 투척할 것인지 분명한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9월 1일 돌연 도쿄에 대지진이 발생해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이런 와중에 일본내각과 군부는 1918년 쌀폭동 당시의 민란움직임을 사전에 막기 위해 도쿄시내와 인근 5개 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출동시 켰다. 완전무장한 상태의 군대와 경찰은 이 기회를 사회주의자와 조선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학살로 악용하였다. 정부 의 고의적인 유언비어 살포로 인해 자경단과 민중들조차 이 광란의 대학살에 참여한 나머지, 오스기 사카에를 비롯한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과 약 6천여 명의 조선인들이 무참히 희생당하였고, 6천여 명이 검속되기에 이르렀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그리고 불령사 회원들 역시 9월 3일경 보호검속이란 명목으로 검속되었다. 일본경찰은 이 어 일정한 거주 또는 생업 없이 배회하는 자 를 명분으로 한 달간의 구류에 처하더니, 곧 불령사를 비밀결사의 금지 위반혐의로 들어 구속 기소시켜 버렸다. 이러한 조치는 박열과 불령사를 오랫동안 감시해온 경찰의 사전계획 에 의해 취해진 것이다. 경찰의 취조 도중 박열의 폭탄구입계획 사실이 알려졌다. 이때부터 일본정부와 검찰은 불령사를 폭동과 천황암살 을 꾀한 조직사건, 즉 대역사건 으로 비화시키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듬해 1월 27일 박열 부부의 폭발물 유입계획 과 불령사 조직을 연결시켜 이 사건을 대진재( 大 震 災 )를 틈탄 조선인 비밀결사의 폭동계획 으로 보도하였다. 조선 인 대학살에 대한 각계여론과 조선인들의 들끓는 비난을 모면하려는 일본정부의 계략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는 검찰이 박열과 가네코 후미고 김중한 세 사람 이외의 나머지 불령사 회원들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함으로써 스 스로 실패하였음을 인정하였다. 박열은 검찰에 기소된 이후, 1923년 10월 24일부터 1925년 6월 6일까지 총 21회에 걸친 신문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그는 일본천황을 폭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 했다고 당당히 밝혔다. 특히 그는 공판에 앞서 재판장에게 죄인취급하지 말 것과 동등한 좌석을 설치할 것, 조선 관복을 입을 것, 조선어 사용 등 4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일본 사법부가 그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임에 따라 그는 조선 전통관복을 입고 출두해 반말투로 답변하는, 초유의 법정투쟁 을 벌인 것이다. 나아가 미리 써 두었던 음모론 과 나의 선언, 불령선인이 일본 권자계급에게 준다 등의 글을 읽으며 일본 천황의 죄를 폭로하였다. 일본정부는 1926년 3월 두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나, 1주일만에 특별 감형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스스로 조작사 건의 실체를 드러내 준 꼴이 아닐 수 없다. 사형판결 후에 박열은 미소지으며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 하였고, 가네코 후미코는 사면장을 갈갈이 찢어 버렸다. 이러한 두 사람의 저항의지에 대해 일본 재판장까지도 감동하여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가 파면 당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은 사형선고 1개월 전에 혼인서를 제출함으로서 영원히 삶과 죽음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이 불행 한 세기의 연인은 각각 치바( 千 葉 )형무소와 도치키( 栃 木 )형무소로 옮겨짐에 따라 눈물의 이별을 해야 했다. 가네코는 옥중에서 자신의 가혹한 삶과 자유사상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라는 책자에 고스란히 담아 출간하였다. 일제는 두 사람의 항일의지를 꺾기 위해 사상전향 공작을 끊임없이 펼쳤다. 편지왕래나 독서내용을 제한한 것은 물론, 글 쓰는 것도 방해하거나 전향을 종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26년 7월 23일 급작스럽게 가네코 후미코의 자살소식이 전해졌다. 자살의 원인이나 방법도 알려지지 않은 타살의 의문 속에, 그녀의 사체는 교도소 측에 의해 서 둘러 가매장되었다. 유골은 옛 동지들의 노력으로 인해 비밀리에 박열의 친형에게 전해졌고, 무사히 경북 문경 팔령 산( 八 靈 山 )에 옮겨 묻힐 수 있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기구한 삶과 사랑은 두 사람의 다정한 포즈가 담긴 사진이 언론에 알려짐에 따라 또 다 시 일본정계를 뒤흔들었다. 즉 두 사람에게 호의와 존경심을 가졌던 검사와 예심판사가 두 사람을 동석시켜 사진을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6

37 함께 찍었고, 이 사진을 빌미로 야당에 의해 대역죄인 우대 라는 정치공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사건은 당시 내각의 총사퇴와 사법관 파면 등 세간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제는 박열에게도 꾸준히 전향공작을 펼쳤다. 일본 사법당국은 1934년부터 1938년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전향선 언을 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전향서라고 밝힌 글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천황의 적자 를 자처하거나 불교에 귀의 하겠다는 등 일관성이 없으며, 이전의 문투와 달리 일본식 표현을 쓰는 등 조작의 흔적을 짙게 남기고 있다. 더욱이 일제는 그에게 어떠한 감형이나 출옥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1945년 10월까지도 정치범이 아니라 대역사 범( 大 逆 事 犯 )이라는 이유로 석방하지 않으려 했다. 제국주의와 천황제에 맞서 싸운 박열을 일제가 얼마나 두려워했는 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5. 해방 후 재일본거류민단 단장 활동과 납북 21세의 젊은 나이에 투옥된 박열은 1945년 10월 27일 홋카이도( 北 海 島 ) 변방의 아키다( 秋 田 )형무소에서 44세의 중 년이 되어 석방되었다. 실로 22년 2개월이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장의 수감기록이 아닐 수 없다. 23년만의 생 환 못지않게 해방 후 박열의 삶 역시 극적인 사건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도쿄에서 열린 석방환영 대회에서 그를 옥중에서 감시했던 형무소 소장 후지시타 이사부로( 藤 下 伊 三 郞 )가 수 천의 조선동포들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연설을 하였다. 이날 그는 참회의 뜻으로 자신의 아들을 박열의 양 자로 바치고, 이름 또한 박정진( 朴 定 鎭 )으로 개명한다고 밝혀 주위를 감동시켰다. 박열이 도쿄에 돌아오자, 당시 재일조선인연맹 등 조선인단체들이 앞다투어 그를 지도자로 모시려 하였다. 하지만 그는 반공산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고 이강훈 원심창 등 항일동지들과 함께 1946년 1월 20일 신조선건설동맹을 결성 하여 위원장으로 추대되었다. 민주주의적 건국의식 사해동포적 세계협동 근로대중의 동지 등의 문구가 들어있는 동맹의 강령에서는 아나키즘의 자유사상과 개방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등 중도우파의 색채를 읽을 수 있 다. 이러한 가운데 박열은 1946년 5월 백범 김구의 부탁을 받아 3열사들의 유해송환 책임을 맡았다. 즉 항일 의열투쟁 의 선봉에 섰다가 일본의 형무소 뒷자리에 쓸쓸히 버려진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등 3열사의 유해를 발굴하여 고국으로 모셔오게 된 것이다. 이어 그는 자신의 민족자주적 독립사상과 자유평등 이념을 밝힌 신조선혁명론 을 발간하였다. 신조선건국동맹은 1946년 10월 3일 김구의 임시정부를 법통으로 삼는 재일조선건국촉진동맹 등 우파 단체들과 통 합하여 재일조선거류민단(이하 민단)을 발족시켰다. 박열은 초대단장으로 추대되었고 부단장에 이강훈, 사무국장에 원심창, 도쿄지국장에 고순흠 등이 맡았다. 이로써 초기민단은 일제치하에서 아나키즘 사상을 통해 함께 항일운동을 펼친 동지들이 중추를 이룬, 반일 반공산주의적 재일동포단체로 자리잡아갔다. 당시 이승만도 일본에서의 입지를 고려해 미국 방문길과 귀로에 박열을 만나 향후 진로를 상의하였다. 이 회담 이 후 박열은 건국운동에서 공산주의를 배격한다 는 방침을 대내외에 밝히고, 이승만 계열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적극 지지하는 방향으로 정치노선을 굳히고 말았다. 이후 1947년경 이승만 정부는 민단을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유일 한 단체로 인정하였다. 하지만 박열의 이승만 정부지지 방침은 오랜 수감생활로 인한 정세판단의 미숙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를 대한민국 국무위원으로 초빙하겠다는 이승만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고, 독재정권의 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인한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7

38 부작용은 민단 내부의 분열만 촉진시켰기 때문이다. 박열은 1948년 2월 대한민국거류민단 으로 바뀌기 전, 민단의 재정고갈과 이승만 정권 반대세력 등의 내부갈등으로 인해 단장직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후 박열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축전에 초대되어 귀국했으며, 고향을 찾아 부인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를 참배하고 친지들과 옛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재단법인 박열장학회를 설립하여 후학들을 위한 장학사업에 뛰 어 들었으며, 이듬해 5월 영구귀국을 결심해 돌아와 서울에 머물렀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밀고 내려와 서울을 점령했고, 사흘 뒤 인민군은 그를 북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북으로 건너간 이후 박열의 행적에 관한 자료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그와 함께 북으로 끌려간 다른 납북인사들의 소식과 함께 일부 전해질 뿐이다. 그중 주목할 만한 일은 그가 1956년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참여한 사실이다. 이 협의회는 당시 그와 함께 북으로 끌려간 조소앙 안재홍 엄항섭 김약수 등 민족 지사들이 남 북한 정권 모두에게 자주적 평화통일 원칙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단체이다. 이 단체의 주요 강령을 살펴보면, 외국군 대의 즉각적 철수와 군대 축소, 임시정부의 수립과 국제적 중립화의 선언 등 민족공동의 이해와 민중 생존권에 입각 한 자주 평화노선을 천명하고 있다. 또한 남북한 자유왕래와 교류, 총선거 실시와 통일헌법 제정 등 5단계에 걸친 통일방안을 제시하였으나, 북한정권의 불협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열을 비롯한 조헌영 등은 이 협의회에 몸담으면서 위원장과 최고위원 등을 맡으며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활동을 꾸준히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중 1974년 1월 17일 평양에서 72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그해 2월 남한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회가 열렸다. 박열( 朴 烈 )의 항일투쟁과 신조국건설운동 38

39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 年 譜 ) :21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39

40 박열의사가 복역한 형무소와 기간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0

41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출생과 성장 1902년 3월12일(음2월3일) 문경군 호서남면 모전리 (현 문경시 모전동 311번지) 에서 父 박지수 ( 朴 之 洙 )와 母 정선동( 鄭 仙 洞 )의 1 女 3 男 중 막내로 출생 초명 혁식( 赫 植 ), 호적 준식( 準 植 )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 98번지 번지( 샘골)로 이주하여 성장 1906년(5세) 父 사망 兄 정식 호주상속 논밭 10 두락씩 (1두락 150평 내외) 상속 받음. 1908년(7세)~1910년(9세) 서당에서 천자문, 동몽선습, 치감강목, 통감6권 수학 1909년(8세) 유명( 幼 名 ) 혁식( 赫 植 ), 민적법시행 준식( 準 植 )으로 개명( 改 名 ), 一 名 열( 烈 ) 1911년(10세)~1915년(14세) 함창공립보통학교(4년제) 다님 1916년(15세) 3월24일 함창공립보통학교 3회 졸업 4월8일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 입학 1919년(18세) 경성고보 3년 재학 중 3.1독립만세운동 참여 독립신문 발행, 격문배포. 중퇴 1919년 10월 동경으로 건너감 1920년~1921년 兄 정식과 두식등 가족들은 문경군 마성면 오천리(샘골)98번지에서 상주군 화북면 장암 리 870번지로 이사. 이후 1936년에 형의 가족들이 충북 진천군 이월면 노은리 847번지로 이주해감. 일본동경 유학과 항일독립운동 1919년(18세) 10월 일본 동경으로 건너감. 정칙영어학교에 다님 1920년(19세) 일본의 사상가이며 아나키스트인 오스기 사카에( 大 杉 榮 ), 사카이 도시히코 ( 堺 利 彦 ), 이와사 사쿠타로( 岩 佐 作 太 郞 )와 교유( 交 遊 ) 11월 재동경 조선인 학생 15~16명 의거단( 義 擧 團 )결성, 이 단체는 의거단( 義 擧 團 ) 철권단( 鐵 擧 團 ) 혈 권단( 血 拳 團 ), 박살단( 撲 殺 團 ), 혈거단( 血 擧 團 : 1921년 11월) 으로 명칭을 바꾸어 계속 활동 김약수, 원종린, 정태성 등과 고학생동우회 결성 회원50명 1921년(20세) 1월 박열, 정태성, 김천해, 최갑춘, 이기동, 유진걸, 박일병, 김약수 등 재일조선인고학생 동우회 확대 개편 4월 박열, 경성에서 이강하등과 함께 조선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 흑로회( 黑 勞 會 ) 조직 11월29 동경기독교청년회관 흑도회( 黑 濤 會 ) 창립대회 개최 박열, 정태신, 김약수, 조봉암, 원종린, 김판국, 정태성, 서상일, 황석우등 조선인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동경 흑도회( 黑 濤 會 ) 창립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1

42 박열 일본외항선원 스기모토( 杉 本 貞 一 ) 외국 폭탄입수의뢰 1922년(21세) 1월 박열, 정태성, 김약수등과 함께 재일조선인 고학생동우회에서 전국노동자 제군에 격 함" 발표. 동우회가 고학생 및 노동자 구제기관임을 버리고 계급투쟁의 직접적 행동기관임을 선언 2월4일 박열, 원종린등 11명 연명 조선일보 에 동우회 선언 발표 2월 상해임시정부 一 員 최혁진, 경성의 파괴계획 연락. 박열과 에도가와( 江 戶 川 )공원에서 밀회( 密 會 ) 2월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만남. 동경에서 가네코가 청년조선 잡지 교정중 정우영( 鄭 隅 影 )을 통 하여 "개새끼"라는 시를 읽고 감동받음. 22년 5월부터 동거를 시작함. 5월1일 흑도회( 黑 濤 會 ) 동경 노동절 참가 7월10일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흑도회( 黑 濤 會 ) 기관지 黑 濤 창간 7월 니이카다( 新 潟 )현 탄광 조선인 노동자 100여명 살해사건 박열주도 흑도회 진상규명, 항의투쟁, 규탄 연설회 개최 8월 시노가와( 中 津 川 )댐공사 조선인학살사건 현장조사. 조사위원 박열, 김약수, 라경석, 백무 黑 濤 2호 간행 9월7일 동경기독교청년회관 조선인노동자학살문제연설회 개최 9월 경성, 니이카다( 新 潟 )현 조선인학살사건 조사회 초청 경성 경운동천도교회당 연설 조선 무산자 동 맹위원 김한 면담 10월~11월 동경 오오시마( 大 島 )제강소 쟁의 박열 지원 11월 재경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흑우회( 黑 友 會 ) 조직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후도이 센징( 太 鮮 人 ) 창간 박열, 경성의 의열단원인 김 한에게 폭탄 입수 의뢰 동경 조선 노동자 동맹회 발족 12 月 末 후도이 센징( 太 鮮 人 ) 제2호 발간 1923년(22세) 1월12일 김한, 의열단원 김상옥사건 관계 혐의 체포 박열 폭탄 입수계획 좌절. 박열, 서울 도착 김한과 면담 3월15일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現 社 會 ( 太 鮮 人 改 題 ) 제3호 발행 4월중순 불령사( 不 逞 社 ) 설립 박열외 5명 동아일보 주필 장덕수를 神 田 宝 亭 에서 구타. 박열, 간다( 神 田 ) 暑 에 검거 되어 이찌가야( 市 谷 )형무소에 투옥 간수와 대난투극을 벌임 4월26일 조선인 무정부주의자 김중한 경성 동경체류(박열방문) 5월 후세 다츠시( 布 施 辰 治 ), 박열 관련 조선인 불법감금규탄연설회 동경 간다( 神 田 )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서 개최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2

43 5월20일 박열, 김중한 폭탄입수계획 상해 연락 의뢰 6월30일 현사회( 現 社 會 ) 제4호 간행 8월3일 흑우회( 黑 友 會 ) 주최 조선문제연설회 간다( 神 田 ) 기독청년회관 개최 관동대지진과 박열의 법정투쟁 1923년(22세) 9월1일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에게 누명을 씌워 6,000여명 학살 9월3일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보호검속 9월4일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경찰범처벌령 구류연장 10월20일 동경지방재판소 검사국 치안경찰법위반용의 기소 被 起 訴 者 :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외 14명 10월22일 동경지방재판소 예심판사, 불령사( 不 逞 社 ) 전 원에 대하여 예심 10월24일 대역죄혐의로 구속기소 재판회부 (1925년6월6일까지 17회의 동경지방재판소 예심받음) 논문4편 저술 일본 권력자계급에 전한다 나의 선언 無 爲 徒 食 論 음모론 년(24세) 7월17일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대역죄 폭발물취제규칙 위반 용의 기소 대심원 제2특별형사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에 대하여 형법 제73조 대 역죄 적용 공판개시 결 정 1926년(25세) 2월26일 대심원 대역사건 제1회 공판 (박열 조선예복, 金 子 文 子 한복) 2월27일 제2회공판 2월28일 제3회공판 3월 1일 제4회공판 3월23일 우시꼬매( 牛 込 )구역소( 區 役 所 )에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혼인계 제출 3월25일 박열,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 사형선고 4월 5일 무기 감형 4월 6일 박열, 이치가야( 市 谷 )형무소 지바( 千 葉 ) 형무소 이감( 移 監 ) 1936년 7월 지바( 千 葉 )형무소에서 코스게( 小 菅 )형무소 이감( 移 監 ) 1943년(42세) 8월 코스게( 小 菅 )형무소에서 아끼다( 秋 田 )형무소 이감( 移 監 )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3

44 일본의 패망과 출감 1945년(44세) 8월15일 정오 일본천황, 포츠담선언(무조건 항복) 수락. 한국해방 10월15일 동경 히비야( 日 比 谷 )공회당 재일조선인연맹 결성대회 박열석방청원 데모 1945년(44세) 10월27일 아키다 ( 秋 田 )형무소) 오오다테 ( 大 舘 )지소에서 석방 (22년 3개월) 朝 鮮 人 連 盟 秋 田 縣 本 部 주최 大 舘 驛 前 廣 場 에서 박열출옥환영회 개최 11월16일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결성 12월8일 동경 히비야( 日 比 谷 )음악당에서 박열환영회 개최 1946년(45세) 1월20일 신조선건설동맹 결성 (위원장 박열, 부위원장 이강훈 원심창) 2월19일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 주최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3열사 추도회 개최 3월25일 박열후원회 일본총본부주최 박열선생부인 故 금자문자 여사추도회 동경 神 田 一 橋 공립강당 개최 2월~6월 백범 김구선생의 부탁을 받아 3의사(윤봉길,이봉창,백정기) 유해봉환 추진위원장으로 세분 열사의 유해를 발굴 본국으로 보냄 10월3일 재일조선거류민단 창단(단장 박열. 부단장 이강훈, 사무총장 원심창) 1대( ~ ) 2대( ~ ) 3대( ~ ) 4대( ~ ) 5대( ~49.4.1) 12월10일, 1947년4월8일 일본 동경을 거쳐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이승만박사와 동경 제국호텔에서 2차 례 회담 1947년(46세) 2월15일 동경 청년회관에서 장의숙( 張 義 淑 )과 결혼 장의숙 : 황해도 진남포면 출생. 서울여상졸업. 동경청산사범대학 속성과 졸업. 일본국제신문기자-광음사( 光 音 社 )에 근무하면서 '붉은 서울의 3개월'기고 6월30일 박열, 민단신문 에 건국운동에서 공산주의를 배격한다 발표 10월1일 박열, 민단정기대회에서 이승만계열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노선을 적극 지지 1948년(47세) 2월10일 박열, 재일조선인거류민단 단장직 사임 발표 4월 박열, 사설기관 박열장학회 박열문화연구소 설치 7월1일 이승만 초대대통령으로 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임명 받음 8월10일 신조선혁명론 저술 출판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4

45 8월15일 대한민국정부 수립 및 광복축전에 박열외 13명 참석 10월8일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 개칭( 改 稱 ) 1949년(48세) 4월1일 민단 제6회 대회에서 단장 사임 5월4일 영구귀국 서울도착. 재단법인 박열장학회 설립 8월5일 대구방문(2박3일) 8월7일 문경방문(2박3일) 1950년(49세) 6월25일 한국전쟁 발발( 勃 發 ) 6월28일 서울 모처에서 피랍( 被 拉 ), 납북 1974년(73세) 1월17일 북한에서 사망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장 (향년 73세) 2월8일 서울 명동YWCA강당에서 곽상훈 추도위원장 외 1,000명 참석한 가운데 박열의사추도식 거행 1976년2월12일 부인 장의숙여사 사망(58세). 경기도 파주시 금촌공원묘지. 아들 영일, 딸 경희 1989년3월1일 대한민국건국훈장 대통령장(제 85호) 추서 1991년11월21일 박열등 15명 납북독립유공민족지도자추모제 거행(국립묘지 현충관) 1993년 6월 1일 대한민국 국가유공자 지정(12-181호) 2001년 10월 10일 법인설립 허가(국가보훈처 호) 2001년 10월 30일 사단법인 박열의사 기념사업회 설립 2004년 6월 28일 박열의사 생가 문화재 지정(경북지방문화재 148호) 聞 慶 郡 麻 城 面 梧 泉 里 に 生 まれる 1908 書 堂 に 通 学 1910 公 立 普 通 学 校 入 学 1915 京 城 公 立 普 通 高 等 学 校 入 学 日 本 人 教 員 から 幸 徳 秋 水 の 天 皇 暗 殺 計 画 の 話 を 聞 き 思 想 的 影 響 を 受 ける 運 動 に 参 加 独 立 新 聞 発 行 檄 文 を 散 布 学 校 を 中 退 故 郷 に 戻 った 後 東 京 へ 渡 る 新 聞 配 達 製 ビン 工 場 人 力 車 夫 ワンタン 屋 夜 警 深 川 の 立 ちんぼう 中 央 郵 便 局 の 臨 時 配 達 夫 中 頃 血 挙 団 を 組 織 義 挙 団 に 加 入 本 郷 駒 込 で 友 達 と 間 借 り 生 活 黒 濤 会 結 成 月 末 か12 上 旬 頃 朴 烈 が 京 橋 区 南 小 田 原 町 柴 田 武 福 を 訪 ねる その 晩 の 朝 鮮 基 督 青 年 会 館 演 説 会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5

46 での 演 説 依 頼 をする 月 上 旬 か4 日 岩 佐 作 太 郎 方 忘 年 会 に 出 席 柴 田 杉 本 貞 一 神 田 区 仲 猿 楽 町 カフエ 豊 生 軒 に 立 寄 り 吉 原 に 泊 まる 翌 朝 柴 田 方 で 雑 談 の 末 外 国 には 爆 弾 が 在 るかと 尋 ねる 杉 本 が 答 えると 夫 れは 至 極 好 い 物 だ 是 非 夫 んな 物 が 欲 しい ( 杉 本 は 後 に 出 鱈 目 と 供 述 ) 名 の 連 名 で 朝 鮮 日 報 紙 1 月 4 日 号 に 同 友 会 宣 言 を 発 表 頃 上 海 臨 時 政 府 の 一 員 崔? 鎮 から 破 壊 計 画 を 伝 えられる 秋 田 雨 雀 を 訪 問 秋 田 雨 雀 日 記 280 頁 淀 橋 署 に16 日 間 検 束 < 英 国 皇 太 子 来 訪 のため 予 防 拘 束 > 金 子 文 子 と 同 棲 東 京 府 荏 原 郡 世 田 谷 池 尻 412 相 川 新 作 方 二 階 現 在 地 世 田 谷 区 池 尻 か ら17 国 道 246 号 下 り 方 向 池 尻 バス 停 辺 り 2003 年 10 月 世 田 谷 区 立 中 央 図 書 館 調 べ 現 地 確 認 黒 濤 創 刊 号 東 京 府 下 世 田 谷 池 尻 412 黒 濤 発 行 所 発 行 人 兼 編 集 人 兼 印 刷 人 朴 烈 直 接 行 動 の 標 本 烈 生 ボロ 長 屋 の 二 階 より 金 子 活 浪 朴 烈 朴 烈 から 黒 濤 第 二 号 此 の 態 を 見 て 呉 れ 烈 生 思 ったこと 二 つ 三 つ ふみ 子 東 支 線 駐 屯 の 日 本 軍 烈 生 ボロ 長 屋 の 二 階 から 金 子 文 子 朴 烈 から 朝 鮮 光 州 に 印 刷 職 工 の 罷 業 烈 栄 養 研 究 所 所 長 佐 伯 博 士 に ふみ 子 信 濃 川 虐 殺 真 相 調 査 会 が 組 織 され 調 査 委 員 として 参 加 頃 新 潟 現 地 調 査 に 赴 く < 新 居 格 の 信 濃 川 虐 殺 に 関 する 論 文 に イニシャルBとあるが 朴 烈 の 事 か > 調 査 会 主 催 新 潟 県 朝 鮮 人 労 働 者 虐 殺 問 題 演 説 会 朴 烈 は 現 地 調 査 を 報 告 1922 ソウルの 思 想 研 究 会 から 招 待 され 信 濃 川 虐 殺 真 相 報 告 演 説 会 に 出 席 ソウルで 義 烈 団 員 周 辺 にいた 金 翰 と 会 う 大 島 製 鋼 争 議 支 援 黒 濤 会 分 裂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6

47 黒 友 会 を 組 織 再 びソウルで 金 翰 と 会 う 爆 弾 の 件 頃 太 い 鮮 人 第 一 号 枠 外 に フテイ 鮮 人 と 記 載 取 締 法 案 朴 烈 日 本 人 の 自 惚 れた 朝 鮮 観 に 就 いて 烈 生 破 れ 障 子 から 金 子 文 子 朴 烈 太 い 鮮 人 はモット 早 く 出 る 筈 だったが 朴 烈 が 例 の 信 濃 川 の 虐 殺 事 件 で 現 場 へ 行 ったり 所 用 有 って 朝 鮮 落 ちをしたりで 遅 れた 頃 太 い 鮮 人 第 二 号 亞 細 亞 モンロー 主 義 に 就 いて 朴 烈 所 謂 不 逞 鮮 人 とは 朴 文 子 学 者 の 戯 言 烈 生 破 れ 障 子 から 文 子 去 四 日 朴 烈 が 京 城 から 病 魔 に 護 衛 されて 帰 ったりオマケに 十 五 日 許 り 寝 込 まれたので スッカリ 喰 い 違 って 四 苦 八 苦 の 揚 句 ヤット 今 日 印 刷 屋 へ 廻 すべく 漕 ぎつけた 朝 鮮 の 詐 欺 共 産 党 烈 生 朝 鮮 古 代 芸 術 を 排 す 烈 生 秘 密 結 社 血 拳 団 組 織 ソウルで 金 翰 と 会 い 爆 弾 入 手 依 頼 黒 友 会 機 関 紙 民 衆 運 動 朝 鮮 文 創 刊 現 社 会 第 三 号 世 田 谷 池 尻 412 烈 生 註 タイトル 本 文 テキスト 全 て 潰 れていて 不 明 もなし 働 かずにどんどん 食 ひ 倒 す 論 朴 烈 後 に 獄 中 で 執 筆 する 同 タイトルの 論 文 とは 内 容 が 異 なる 在 日 鮮 人 諸 君 に 金 子 ふみ 朝 鮮 記 念 日 金 子 ふみ 破 れ 障 子 から 文 子 金 子 文 子 と 東 京 府 豊 多 摩 郡 代 々 幡 町 代 々 木 富 ヶ 谷 1474 番 地 に 移 る 現 渋 谷 区 富 ヶ 谷 1-28 NTT 裏 辺 り 2003 年 5 月 現 地 確 認 不 逞 社 を 組 織 東 亜 日 報 主 筆 張 徳 秀 への 殴 り 込 みで 神 田 署 に 検 挙 される 市 ヶ 谷 刑 務 所 に 送 られ 既 決 囚 扱 いで 頭 髪 を 刈 ろうとする 看 守 と 乱 闘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7

48 金 子 文 子 はメーデーに 参 加 来 日 したばかりの 金 重 漢 に 爆 弾 運 搬 依 頼 朴 烈 新 山 初 代 を 訪 問 不 逞 社 への 入 会 を 勧 める 本 郷 区 駒 込 蓬 莱 町 一 八 現 文 京 区 向 丘 二 丁 目 確 認 不 逞 社 第 一 回 例 会 朝 鮮 の 運 動 がテーマ 金 重 漢 に 爆 弾 の 件 を 取 り 消 し 不 逞 社 第 二 回 例 会 望 月 桂 を 招 く 不 逞 社 第 三 回 例 会 加 藤 一 夫 を 招 く 頃 不 逞 社 第 四 回 例 会 中 西 伊 之 助 出 獄 歓 迎 会 現 社 会 第 四 号 代 々 木 富 ヶ 谷 朝 鮮 の 民 衆 と 政 治 運 動 朴 烈 朝 鮮 の 衡 平 社 運 動 に 就 いて 朴 烈 スッパ 抜 キ バクレツ 或 る 会 話 金 子 ふみ 破 れ 障 子 から 文 実 は 同 志 十 名 許 りが メーデーの 夕 方 丁 度 にも 再 び 裟 婆 へとオッポリ 出 された メーデーの 日 私 は 他 四 五 名 の 同 志 と 共 に 愛 宕 署 の 御 厄 介 になって 一 夜 を 明 かした 府 下 代 々 木 富 ヶ 谷 1474 現 社 会 社 省 線 原 宿 市 電 渋 谷 下 車 名 教 中 学 下 < 現 東 海 大 附 属 高 校 > 不 逞 社 第 五 回 例 会 親 日 派 の 東 亜 日 報 記 者 を 殴 る 黒 友 会 主 催 朝 鮮 問 題 演 説 会 神 田 基 督 教 青 年 会 館 で 開 く 黒 友 会 臨 時 例 会 解 散 を 決 める 金 重 漢 が 爆 弾 計 画 の 話 を 暴 露 不 逞 社 第 六 回 例 会 馬 山 のストライキの 話 題 金 重 漢 と 論 争 警 視 庁 が 新 山 初 代 を 訪 れ 不 逞 社 の 動 向 を 訪 ねる 午 前 中 滝 野 川 高 麗 社 にいる 張 祥 重 を 訪 問 四 ツ 谷 の 布 施 弁 護 士 を 訪 ねる 朴 烈 金 子 文 子 代 々 木 富 ヶ 谷 の 自 宅 で 世 田 谷 警 察 署 により 検 束 不 逞 社 のメンバーが 検 挙 され 始 める 東 京 地 裁 検 事 局 治 安 警 察 法 違 反 容 疑 で 朴 烈 と 不 逞 社 メンバーを 起 訴 大 阪 朝 日 記 事 < 不 逞 鮮 人 の 秘 密 結 社 大 検 挙 > 予 審 判 事 予 審 尋 問 を 始 める 朴 烈 への 訊 問 陳 述 を 拒 否 新 山 初 代 予 審 尋 問 で 供 述 を 始 める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8

49 新 山 初 代 病 死 危 篤 状 態 で 獄 外 に 出 される 谷 中 法 蔵 院 に 墓 碑 金 子 文 子 第 六 回 予 審 尋 問 にて 朴 烈 の 爆 弾 入 手 意 図 と 目 的 を 供 述 朴 烈 第 三 回 予 審 訊 問 にて 金 子 文 子 の 供 述 を 認 める 自 分 が 話 さないと 不 逞 社 の 仲 間 に 迷 惑 がかかる 朴 烈 第 四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五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六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七 回 予 審 訊 問 朴 烈 金 子 文 子 金 重 漢 爆 発 物 取 締 罰 則 で 起 訴 される 朴 烈 論 文 日 本 の 権 力 者 階 級 に 与 ふ を 獄 中 で 執 筆 朴 烈 第 八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九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一 回 予 審 訊 問 東 亜 日 報 記 事 韓? 相 は6.24に 保 釈 出 獄 李 小 岩 は 早 暁 ソウルの 鍾 路 警 察 に 検 束 論 文 俺 の 宣 言 執 筆 論 文 働 かずしてどしどし 喰 ひ 倒 す 論 執 筆 論 文 陰 謀 論 を 執 筆 朴 烈 第 十 三 回 十 四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五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六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七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八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十 九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二 十 一 回 予 審 訊 問 予 審 終 結 決 定 検 事 総 長 朴 烈 と 金 子 文 子 に 対 し 刑 法 73 条 と 爆 取 罰 則 で 起 訴 判 事 朴 烈 と 金 子 文 子 に 対 し 接 見 禁 止 書 類 物 品 の 授 受 禁 止 にする 朴 烈 第 一 回 予 審 訊 問 朝 鮮 日 報 夕 刊 記 事 不 逞 社 事 件 予 審 を 終 わる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49

50 朴 廷 植 証 人 訊 問 大 邱 地 方 法 院 尚 州 支 庁 朴 烈 第 二 回 予 審 訊 問 朴 烈 第 三 回 予 審 訊 問 朴 烈 テキスト< 刑 務 所 消 息 不 逞 の 烙 印 > 自 我 人 第 二 号 掲 載 朴 烈 第 四 回 予 審 訊 問 検 事 総 長 小 山 大 審 院 第 二 特 別 刑 事 部 裁 判 長 判 事 豊 島 に 大 審 院 公 判 に 付 すべきという 意 見 書 提 出 大 審 院 公 判 開 始 を 決 定 接 見 禁 止 を 解 く 朴 烈 金 子 文 子 山 崎 今 朝 弥 を 私 選 弁 護 人 として 選 任 朴 烈 金 子 文 子 布 施 辰 治 上 村 進 を 私 選 弁 護 人 として 選 任 公 判 準 備 調 書 作 成 のため 朴 烈 に 訊 問 朴 烈 金 子 文 子 中 村 高 一 を 私 選 弁 護 人 として 選 任 東 亜 日 報 記 事 大 審 院 重 大 犯 人 の 結 婚 式 布 施 弁 護 士 結 婚 届 け 三 通 を 差 入 署 名 捺 印 を 求 める 朴 烈 金 子 文 子 の 記 事 が 解 禁 東 京 日 日 新 聞 夕 刊 < 震 災 渦 中 に 暴 露 した 朴 烈 一 味 の 大 逆 事 件 > < 来 月 八 九 両 日 特 別 裁 判 開 廷 ( 本 日 解 禁 ) 罪 の 裏 に 女! 躍 動 する 朴 烈 が 内 縁 の 妻 金 子 ふみ> < 予 審 免 訴 十 五 名 >< 変 転 の 運 命 から 逆 徒 の 友 へ>< 惨 苦 の 中 に 真 っ 赤 な 恋 > < 検 束 で 名 物 の 朴 夫 妻 >< 同 志 の 新 山 初 題 は 獄 死 >< 新 山 初 代 肺 患 に 冒 されヤケの 生 活 > < 審 問 は 傍 聴 禁 止 宣 告 のみ 公 開 >< 朴 筆 を 傾 けて 獄 中 に 自 叙 伝 雑 誌 自 我 人 にも 寄 稿 > 写 真 < 大 逆 事 件 の 首 魁 朴 烈 とその 筆 蹟 > 東 京 朝 日 夕 刊 < 震 災 に 際 して 計 画 された 鮮 人 団 の 陰 謀 計 画 > < 近 く 刑 務 所 で 正 式 の 結 婚 >< 自 叙 伝 を 書 く 文 子 と 読 書 にふける 朴 烈 > 末 か12 初 め 接 禁 解 除 後 中 西 伊 之 助 が 朴 烈 に 面 会 朴 烈 金 子 文 子 晋 直 鉉 を 私 選 弁 護 人 として 選 任 東 亜 日 報 記 事 < 正 式 結 婚 手 続 き> 東 亜 日 報 記 事 < 結 婚 に 関 して> 朝 鮮 日 報 記 事 < 獄 中 結 婚 は 風 説 > 東 亜 日 報 記 事 < 書 面 上 の 結 婚 だけだろう> < 鑑 定 人 の 報 告 > 市 ヶ 谷 刑 務 所 内 診 察 室 に 於 て 被 告 と 初 めて 対 顔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0

51 私 はパックヤールです 併 し 私 は 鑑 定 の 通 知 書 を 送 り 返 し 同 時 に 鑑 定 を 拒 否 する 旨 を 既 に 大 審 院 に 申 し 送 ってあるのに それに 対 しまだ 何 等 の 返 事 を 受 取 りません 故 に 私 は 大 審 院 より 何 等 かの 返 事 を 受 取 るまでは 鑑 定 を 受 けるこ とは 断 然 謝 絶 します 論 文 所 謂 裁 判 に 対 する 俺 の 態 度 執 筆 朴 烈 君 のことなど 冬 日 記 中 西 伊 之 助 文 芸 戦 線 掲 載 朴 烈 裁 判 長 に 対 し 法 廷 での 四 条 件 を 提 出 朝 鮮 日 報 記 事 < 条 件 を 提 出 したこと> 東 亜 日 報 記 事 < 条 件 を 提 出 したこと> 朴 烈 朝 鮮 大 邱 の 弁 護 士 金 完 燮 に 公 判 出 席 を 要 請 朴 烈 朝 鮮 大 邱 の 金 完 燮 を 私 選 弁 護 人 とする 届 け 第 一 回 公 判 大 審 院 人 定 質 問 再 結 成 された 黒 友 会 を 中 心 に 傍 聴 等 の 支 援 文 子 手 記 二 十 六 日 夜 半 執 筆 第 二 回 公 判 金 子 文 子 手 記 朗 読 検 事 論 告 死 刑 求 刑 第 三 回 公 判 弁 護 人 弁 論 日 曜 開 廷 には 反 対 があった 第 四 回 公 判 弁 論 文 子 の 最 終 陳 述 朴 烈 はしなかった 東 亜 日 報 社 説 朴 烈 の 思 想 行 為 と 環 境 牧 野 裁 判 長 の 観 察 朝 鮮 日 報 社 説 朴 烈 事 件 に 鑑 みて 安 在 鴻 執 筆 自 我 声 ( CHIGASEI と 欄 外 にローマ 字 標 記 ) 創 刊 号 在 大 阪 の 朝 鮮 アナキストが 発 行 強 者 の 宣 言 朴 烈 ほとんど 伏 字 後 に 叛 逆 者 の 牢 獄 手 記 に 所 収 の 同 タイトルのテキストか? 朴 烈 特 別 公 判 朝 鮮 礼 服 に 身 を 飾 り 朴 烈 事 朴 準 植 法 廷 に 立 つ 傍 聴 禁 止 二 月 十 六 日 午 前 九 時 大 審 院 法 廷 で 開 廷 された この 日 鮮 人 及 主 義 者 検 束 十 数 名 警 戒 の 厳 重 なる 大 阪 のギロチン 團 公 判 と 東 西 共 に 近 時 稀 に 見 る 有 様 なりき ( 高 ) ギロチン 團 控 訴 判 決 編 集 後 記 朝 鮮 文 で 発 行 の 予 定 が 日 文 とある 結 婚 届 けを 出 す 死 刑 判 決 大 阪 朝 日 新 聞 < 恩 赦 も 知 らぬ 獄 中 の 朴 夫 妻 きのうきょうの 生 活 は? 流 石 に 夫 を 案 ずる 文 子 > 判 決 後 四 日 間 外 界 の 何 事 も 知 らず 市 ヶ 谷 刑 務 所 の 独 房 で 妻 と 夫 も 名 ばかりで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1

52 会 うこともならずただ 黙 々として 静 かな 日 を 過 ごしている このごろの 彼 等 への 差 入 は 朝 鮮 からはるばる 出 てきた 晋 直 鉉 弁 護 士 が 食 事 の 全 部 を 負 担 し 差 入 ているが 朴 は 朝 は 牛 乳 一 合 にパン 一 片 昼 は 三 十 五 錢 の 弁 当 夜 は 官 弁 という 質 素 な 食 事 に 反 し て 文 子 は 朝 は 鶏 卵 二 つに 五 十 錢 弁 当 に 特 に 許 されて 菓 子 が 添 えられている 朴 は 晋 弁 護 士 の 五 十 錢 弁 当 が 贅 沢 だからとて 安 いのに 代 えたもので それとは 知 らぬ 文 子 はさすがに 夫 を 案 じ 朴 は 肉 類 が 好 きだからなるべく 肉 食 をさせてくれ と 註 文 をし てきたので 差 入 屋 もこのごろは 註 文 に 添 ってはしりの 野 菜 類 等 を 入 れてやっている と しかし 判 決 言 渡 後 は 一 切 面 会 は 両 人 とも 拒 絶 せられている ただその 中 で 山 梨 県 から 出 てきた 文 子 の 母 たか 子 は 特 に 許 され 判 決 当 時 僅 か 五 分 間 変 り 果 てた 娘 の 顔 を 見 ることができたが これもただ 涙 だけで 深 く 語 る 暇 もなく 母 親 は 刑 務 所 を 出 た 一 方 また 朴 は 判 決 後 は 読 書 も 余 りせず 密 かに 死 の 準 備 を 急 ぐのか 公 判 第 一 日 に 着 た 朝 鮮 礼 装 一 揃 えをまづ 二 十 七 日 夕 方 差 入 屋 に 戻 し 文 子 も 書 き 続 けていた 生 立 の 記 が 完 成 したので 伊 藤 野 枝 全 集 を 読 み 耽 っているというが 彼 女 のためには 食 事 を 除 いた 身 の 廻 りを 小 説 家 中 西 伊 之 助 君 夫 妻 が 何 くれと 世 話 をやき 判 決 当 時 文 子 はふだん 着 で よいというので 中 西 夫 人 はわざわざ 自 分 の 着 物 を 脱 いで 贈 ってやった なお 刑 務 所 内 の 最 近 の 生 活 について 秋 山 所 長 は 全 体 としては 別 に 変 ったこともないようで 朝 六 時 に 起 き 夜 八 時 の 就 寝 まで 元 気 というよりもむしろ 静 かに 読 書 や 手 紙 を 認 めて 過 ごしていますが 自 分 が 判 決 当 時 会 って 気 持 ちを 聞 いた 時 には ただ 何 も 感 想 はありませぬ と 語 って いました 東 京 朝 日 記 事 23 日 に 結 婚 届 けを 出 す 恩 赦 で 無 期 懲 役 に 減 刑 朴 烈 千 葉 刑 務 所 に 移 監 朴 烈 絶 食 を 始 める< 金 子 文 子 の 自 殺 と 恩 赦 前 后 の 処 遇 布 施 文 書 には6 日 恩 赦 伝 達 後 からと 記 されている> 千 葉 刑 務 所 長 絶 食 中 止 を 説 得 朝 日 新 聞 記 事 < 千 葉 刑 に 送 られると 朴 烈 は 絶 食 を 始 める> 思 出 の 朴 烈 君 の 顔 里 村 欣 二 文 芸 戦 線 掲 載 朝 鮮 時 論 創 刊 号 在 朝 鮮 日 本 語 雑 誌 朴 烈 事 件 に 鑑 みて の 翻 訳 掲 載 金 子 文 子 死 亡 宇 都 宮 刑 務 所 栃 木 支 所 現 在 地 は 栃 木 市 立 文 化 会 館 と 図 書 館 栃 木 駅 から 徒 歩 10 分 余 り2003 年 7 月 23 日 現 地 確 認 刑 務 所 跡 を 示 す 碑 は 無 し 舎 房 棟 跡 は 文 化 会 館 正 面 入 口 前 広 場 以 降 布 施 弁 護 士 は 朴 列 に 面 会 文 子 の 死 を 伝 えた 瞬 間 に 面 会 を 打 ち 切 り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2

53 朴 烈 金 子 文 子 の 取 調 べ 中 の 写 真 をめぐり 怪 文 書 が 配 布 される 不 逞 社 のメンバーであった 張 祥 重 鄭 泰 成 が 黒 友 会 組 織 < 朴 烈 より> 立 松 懐 清 予 審 判 事 快 写 真 問 題 で 引 責 辞 職 朴 烈 の 兄 朴 廷 植 息 子 を 伴 い 東 京 に 着 く 朴 烈 の 兄 朴 廷 植 が 朝 鮮 に 戻 る 京 城 日 報 < 文 子 の 葬 儀 は 純 朝 鮮 式 で 行 う 写 真 はまだ 見 ない と 朴 廷 植 釜 山 で 語 る> 釜 山 特 電 獄 中 の 実 弟 朴 烈 に 会 い 金 子 文 子 の 遺 骨 を 受 取 る ため 本 月 十 四 日 夜 東 京 に 向 った 朴 烈 の 実 兄 朴 廷 植 は 二 週 間 振 りで 二 十 九 日 朝 実 子 朴 烱 來 ( 一 二 )をともないカーキ 色 の 労 働 服 にささやかなバスケット 一 個 を 携 えて 釜 山 に 上 陸 したが 官 憲 の 監 視 の 中 に 二 三 鮮 人 青 年 からいたわる 様 に 出 迎 えられひそひそ ばなしの 後 九 時 十 分 発 特 急 で 大 邱 に 向 ったが 朴 廷 植 は 語 る 弟 には 身 体 の 具 合 が 悪 いというので 面 会 ができなかったがいづれまた 健 康 でも 快 復 すれば 面 会 に 行 きたいつ もりです 文 子 の 遺 骨 は 私 が 直 接 持 って 帰 るはずであったが 警 視 庁 から 受 取 ってか ら 別 送 する 方 が 安 全 だというので 遺 骨 は 警 視 庁 に 頼 みましたがも 早 郷 里 についている でしょう 文 子 は 私 の 弟 の 嫁 として 郷 里 で 朝 鮮 式 の 葬 儀 をいとなんでやりますがその 日 の 取 はまだきめておりません 内 地 からはだれも 来 ないでしょう 写 真 のことについては 弟 から 送 ってやるとのことで 手 紙 は 来 ていましたが 私 はまだ 見 たこともありません 子 供 は 布 施 弁 護 士 が 養 成 するという 様 なことは 噂 で 私 の 通 譯 のために 連 れて 行 ったまでで す 朴 廷 植 は 直 に 北 行 したが 同 人 は 二 十 九 日 大 邱 に 一 泊 する 予 定 だと 東 京 日 日 記 事 石 黒 鋭 一 郎 手 記 快 写 真 の 件 司 法 省 快 写 真 の 経 緯 を 発 表 真 相 を 認 める 1926 政 争 化 したる 朴 烈 問 題 江 渡 由 郎 青 年 政 治 協 会 ( 青 年 パンフレット 第 3 輯 ) 1926 朴 烈 問 題 の 批 判 鶉 山 学 堂 1926 若 槻 内 閣 と 不 景 気 朴 烈 事 件 と 憲 政 会 内 閣 豊 島 新 聞 社 今 村 東 京 地 裁 所 長 無 罪 を 宣 告 されるも 検 事 控 訴 される 秋 山 市 ヶ 谷 刑 務 所 所 長 大 審 院 懲 戒 裁 判 所 で 無 罪 確 定 秋 山 所 長 奥 村 看 守 長 懲 戒 処 分 を 受 ける 1928 強 者 の 宣 言 朴 烈 叛 逆 者 の 牢 獄 手 記 行 動 社 同 人 編 に 掲 載 入 獄 中 のアナキスト 朴 烈 の 動 静 特 高 月 報 内 務 省 警 保 局 保 安 課 1935 大 逆 事 件 犯 人 朴 烈 の 思 想 転 向 社 会 運 動 の 状 況 内 務 省 警 保 局 入 獄 中 のアナキスト 朴 準 植 の 思 想 転 向 特 高 月 報 内 務 省 警 保 局 保 安 課 東 京 日 日 記 事 朴 烈 転 向 新 聞 雑 誌 の 閲 読 禁 止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3

54 小 菅 刑 務 所 に 移 される 朴 烈 の 所 感 朝 鮮 総 督 府 高 等 法 院 検 事 局 思 想 部 思 想 彙 報 第 16 号 秋 田 刑 務 所 に 移 される 大 館 支 所 か? 朴 烈 秋 田 刑 務 所 大 館 支 所 を 出 獄 大 館 駅 前 で 出 獄 歓 迎 大 会 開 かれる 1946 独 立 の 指 導 者 朴 烈 鄭 泰 成 新 朝 鮮 建 設 同 盟 宣 伝 部 国 会 図 書 館 所 蔵 1946? 新 朝 鮮 建 国 の 指 標 : 独 立 指 導 者 朴 烈 朝 鮮 半 島 における 自 由 解 放 の 指 導 者 朴 烈 の 獄 中 詩 歌 在 日 朝 鮮 人 同 胞 へのメッセージ 日 本 の 新 聞 に 対 する 声 明 等 を 収 録 した " 独 立 指 導 者 朴 烈 " 及 び 朴 烈 による 新 朝 鮮 建 国 に 対 する 朴 烈 の 信 念 思 想 を 収 録 した " 新 朝 鮮 建 国 の 指 標 "を 収 録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Asia Collection, 梶 山 コレクション 所 蔵 運 命 の 勝 利 者 朴 烈 布 施 辰 治 張 祥 重 鄭 泰 成 共 著 世 紀 書 房 民 団 新 間 創 刊 号 発 行 民 団 第 二 回 大 会 団 長 朴 烈 副 団 長 李 康 勲 元 心 昌 朴 烈 三 たび 八 月 十 五 日 を 迎 へて 民 団 新 聞 週 刊 13 号 在 日 本 朝 鮮 居 留 民 団 中 央 総 本 部 朴 烈 留 日 朝 鮮 学 徒 の 進 路 民 団 新 聞 週 刊 14 号 朴 烈 主 張 第 廿 五 回 関 東 大 震 災 民 団 新 聞 週 刊 15 号 当 時 自 ら 不 てい 鮮 人 社 と 名 乗 った 我 々の 同 志 も 文 字 通 り 一 網 打 尽 に 検 挙 されて 有 無 を 言 わさず 全 く 投 獄 されてしまった 由 来 ゲーペーウー 式 の 日 本 帝 国 主 義 的 陰 謀 によって 裁 かれ 私 は 遂 に 死 刑 を 宣 告 され さらに 彼 等 の 勝 手 な 判 断 によって 終 身 の 懲 役 に 処 せられ さらにまた 彼 等 帝 国 主 義 の 世 界 戦 争 敗 戦 の 結 果 として 二 十 三 年 余 の 獄 中 から この 明 るい 社 会 に 出 てきたのである 無 署 名 記 事 関 東 大 震 災 廿 五 周 年 を 迎 えて 想 起 すれば 当 時 大 地 震 直 後 陸 軍 憲 兵 司 令 部 の 謀 略 に 依 り 朝 鮮 人 三 万 名 が 日 本 無 政 府 主 義 者 と 内 応 して 日 本 襲 撃 に 上 陸 して 来 た と 言 う 捏 造 のデマを 廣 島 より 全 国 に 飛 ばして 置 いてそれを 口 実 にかかる 不 可 抗 力 むの 機 会 を 逆 用 して 日 本 軍 部 及 青 年 団 が 白 昼 公 然 と 国 際 社 会 の 面 前 にかかる 大 事 件 を 三 日 間 も 続 けて 敢 行 したのである 然 しアナキスト 系 では 天 変 地 異 は 不 可 抗 力 である 本 当 の 愛 と 相 互 扶 助 との 懸 念 の 下 に お 互 に 相 あわれむのみであった 月 1 2 日 民 団 第 三 回 大 会 ( 大 阪 ) 団 長 朴 烈 1947 年 張 義 淑 と 再 婚 一 九 四 八 年 八 月 一 五 日 新 朝 鮮 革 命 論 朴 烈 中 外 出 版 株 式 会 社 目 次 自 序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4

55 第 一 章 思 想 立 国 第 一 節 世 界 は 一 なり 第 二 節 現 実 に 徹 する 思 想 第 三 節 共 産 党 を 語 る 第 四 節 死 に 生 くること 第 二 章 建 国 の 指 標 第 一 節 独 立 とは 形 式 ではない 第 二 節 具 体 的 に 建 国 の 立 地 条 件 を 究 めよ 第 三 節 戦 線 統 一 への 方 向 第 三 章 青 年 と 民 族 の 運 命 第 一 節 立 国 の 支 柱 としての 青 年 第 二 節 操 志 ある 青 年 第 三 節 高 き 文 化 の 使 徒 青 年 第 四 章 生 活 革 命 運 動 の 展 開 第 一 節 民 族 的 欠 陥 の 反 省 第 二 節 社 会 を 発 見 せよ 第 三 節 公 式 論 原 則 論 を 排 す 第 四 節 身 を 以 て 再 起 へ 付 録 一 三 千 万 我 等 とともに 罪 あり 二 対 日 協 力 者 戦 争 犯 罪 人 等 の 処 断 に 関 する 法 案 をめぐりて 三 祖 国 の 正 しき 産 業 建 設 のために 在 日 業 界 人 の 反 省 を 促 す 四 前 科 者 受 刑 者 現 科 者 五 祖 国 愛 と 国 際 的 観 念 六 世 界 の 現 実 に 学 び 世 界 の 現 実 に 捉 われる 勿 れ 七 われらは 先 ず 道 義 の 昂 揚 から 八 小 児 病 的 左 翼 陣 の 暴 挙 を 排 す 1948 年 11 月 20 日 政 党 人 に 望 む 発 行 人 朴 義 淑 東 京 都 杉 並 区 阿 佐 谷 一 丁 目 七 四 六 番 地 発 行 所 中 野 区 野 方 町 一 丁 目 七 三 二 番 地 朴 烈 文 化 研 究 所 1949 年 4 月 2 日 民 団 第 六 回 大 会 選 挙 に 敗 れて 団 長 を 辞 任 1949 年 朴 烈 は 家 族 と 共 に 韓 国 に 向 かう 李 政 権 の 国 務 委 員 となる 1950 年 4 月 張 義 淑 は 二 人 の 子 長 男 栄 一 と 長 女 慶 姫 を 連 れて 帰 国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5

56 1950 年 6 月 25 日 ソウルは 南 下 した 北 朝 鮮 軍 の 動 きにより 混 乱 状 況 1950 年 6 月 27 日 張 義 淑 大 元 ホテルに 止 宿 中 の 朴 烈 止 連 絡 がとれたのは27 日 の 未 明 子 供 たちをつれて すぐよその 家 へうつれ 今 後 連 絡 が 絶 えても 革 命 家 の 妻 として 恥 ずかしく 行 動 をせよ 朴 烈 はこれだけ 言 って 電 話 をきった たまりかねた 張 義 淑 が 慶 姫 ( 当 時 8ヶ 月 )を 隣 家 にあずけ 栄 一 (2 年 4ヶ 月 )をつれて 大 元 ホテルまでたどりつくと 部 屋 には 朴 烈 がひとり 目 をつむったまま 座 っていた 国 民 のほとんどがソウルに 残 っているのに おれだけ 逃 げられるか 帰 れ 義 淑 は 秘 書 に 送 られて 桂 洞 まで 戻 る 夜 になり 雨 が 降 り 出 した もう 一 度 朴 烈 のところへ 行 こうと 決 心 ホテルに 出 かけた やっとたどりついたホテルに 朴 烈 はいな かった 夜 が 更 けるにつれ 砲 声 はいよいよ 近 く 機 関 銃 が 地 底 からのような 音 をひびかしている 午 前 三 時 砲 声 がやみサイレンが 鳴 った 北 朝 鮮 軍 が 中 央 庁 に 入 った 合 図 にちがいない 夜 が 明 けると 幾 千 幾 万 とも 知 れぬ 足 音 が 聞 こえ 人 民 共 和 国 万 歳 の 叫 びが 伝 わってくる 共 産 軍 に 捕 らえられた 朴 烈 の 居 所 を 察 知 しようとして 西 大 門 刑 務 所 に 出 かけたのもそのころだった 十 五 年 目 のエンマ 帳 その 一 朝 鮮 の 人 朴 義 淑 さん 臼 井 吉 見 より 朴 烈 行 方 不 明 になる 1960 年 1 月 十 五 年 目 のエンマ 帳 その 一 朝 鮮 の 人 朴 義 淑 さん 臼 井 吉 見 婦 人 公 論 1960 年 1 月 号 掲 載 < 再 婚 相 手 は 東 京 女 子 大 で 臼 井 ゼミの 学 生 であった> 1963 年 3 月 4 月 朴 烈 金 子 文 子 事 件 森 長 英 三 郎 法 律 時 報 1966 年 6 月 共 産 主 義 者 と 私 朴 烈 統 一 評 論 掲 載 私 は 一 時 日 本 で 社 会 運 動 をおこそうと 思 い 政 治 団 体 を 組 織 したことがあった そして 日 帝 の 監 獄 にぶ ちこまれて 苦 労 もしてみた 私 は 共 産 主 義 者 の 幅 広 い 度 量 とあたたかい 同 族 愛 に 深 く 感 動 させられ 目 頭 が 熱 くなる 時 が 一 二 度 では なかった 祖 国 と 民 族 を 憂 えるすべての 人 々は 一 切 の 外 勢 を 排 撃 して 南 北 が 力 を 合 せて 祖 国 の 自 主 的 統 一 を 実 現 する 大 道 を 前 進 しなければならない 1967 年 民 団 在 日 韓 国 人 の 民 族 運 動 鄭 哲 洋 々 社 余 白 の 春 瀬 戸 内 晴 美 著 ムンギョン 金 子 文 子 の 墓 所 で 碑 の 除 幕 式 朴 烈 の 兄 所 有 の 土 地 朴 烈 金 一 勉 著 合 同 出 版 朴 烈 朝 鮮 民 主 主 義 人 民 共 和 国 で 死 去 と 報 じられる 春 一 番 臼 井 吉 見 展 望 第 200 号 掲 載 < 解 放 後 の 朴 烈 と 再 婚 小 説 >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6

57 山 梨 県 東 山 梨 郡 牧 丘 町 杣 口 の 金 子 家 の 敷 地 で 金 子 文 子 の 碑 除 幕 式 1977 朴 烈 金 子 文 子 裁 判 記 録 再 審 準 備 会 黒 色 戦 線 社 < 手 書 きのまま 複 製 > 栗 原 一 男 死 去 運 命 の 勝 利 者 朴 烈 復 刻 版 布 施 辰 治 黒 色 戦 線 社 1988 続 現 代 史 資 料 アナーキズム 小 松 隆 二 編 みすず 書 房 < 訊 問 調 書 を 活 字 化 難 波 大 助 大 逆 事 件 黒 旗 事 件 資 料 も 収 録 > 朴 烈 金 子 文 子 裁 判 記 録 黒 色 戦 線 社 < 本 文 は 続 現 代 史 資 料 アナーキズム の 複 製 > 付 録 として 大 審 院 判 決 減 刑 等 の 公 判 書 類 原 本 縮 小 パンフ 黒 濤 太 い 鮮 人 現 社 会 の 復 刻 連 帯 誌 < 山 梨 での 碑 の 除 幕 式 報 告 掲 載 > 発 行 が 刷 り 込 まれている 金 子 文 子 自 己 天 皇 制 国 家 朝 鮮 人 山 田 昭 次 影 書 房 金 子 文 子 を 支 えた 人 々 栗 原 一 男 を 中 心 に 佐 藤 信 子 甲 府 文 学 金 子 文 子 と 布 施 辰 治 シンポ 開 催 金 子 文 子 自 己 天 皇 制 国 家 朝 鮮 人 韓 国 語 版 刊 行 朴 烈 金 子 文 子 裁 判 記 録 運 命 の 勝 利 者 朴 烈 布 施 辰 治 朴 烈 金 一 勉 金 子 文 子 自 己 天 皇 制 国 家 朝 鮮 人 山 田 昭 次 を 主 として 参 考 にした 박열의사 생애와 발자취( 年 譜 ) 57

58 한국일보 박열 특집 :58 한국일보 이왕구 기자께서 직접 일본 현지를 발품팔아 쓴 특집기사 입니다. 한국일보 박열 특집 58

59 박열의 옥중단가 :58 박열의 옥중단가 59

60 박열이 가장 오랬동안 수감된 치바형무소. 지금도 10년이상의 장기수들이 복역하고 있다. 박열의 옥중가( 獄 中 歌 ) (제2의 괴사진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문제의 제2 사진 중에 씌어 있는 박열이 지은 단가( 短 歌 )이다) 시월달 달밝은 날 새벽에 가시니라 계신 데로 나의 님은 가시니라. * 먼저 가서 기다리리라 그대 오길 기다리리라 가는 이는 벽을 넘어 그런 말씀 하시니라 * 언제던가 복도에서 손잡은 일도 있었건만 박열의 옥중단가 60

61 그 언젠가 우연히 만나 손잡은 일도 있었건만 * 곁에 있던 간수께선 얼굴을 찡그리더라 안된다 안된다고 얼굴을 찡그리더라 * 가을날 바람 차고 구름은 덮였는데 아침부터 공중에서 비행기가 오고간다 * 오고가는 비행기에 타고앉은 비행가야 네중에는 한 사람의 테러 도 없는고야.(1926년 8월 30일 동아일보 수록) 박열의 옥중단가 61

62 박열 의사 출옥 후에 보내온 지인들의 휘호 :39 박열 의사 출옥 후에 보내온 지인들의 휘호 62

63 서예가 오세창 선생의 휘호 " 창해역사 명진열방 장상충혼 생환고국" 박열 의사 출옥 후에 보내온 지인들의 휘호 63

64 이시영 부통령의 휘호 " 존군자심 행장부사" 박열 의사 출옥 후에 보내온 지인들의 휘호 64

65 함께 납북된 삼균주의 주창자 조소앙 선생의 휘호 " 타도천황지선봉 개벽민주지건물" 박열 의사 출옥 후에 보내온 지인들의 휘호 65

66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20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66

67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67

68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68

69 민단간부들과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69

70 박열과 가네코의 동경시절 사진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70

71 가네코의 유해를 인수하기위해 일본을 방문한 박열의사의 형과 조카, 그리고 후세변호사(후세변호사의 집에서)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71

72 함양박씨종친회 창립대회에 참가한 박열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72

73 박열의사 추도대회에서 의사의 약력을 보고하는 전비서실장 박성진씨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73

74 출옥후 동지들과 함께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74

75 박열의사 관련 사진첩(1) 75

76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이규태 조선일보) :01 새로복원된 박열생가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조선일보) 76

77 [이규태 역사에세이] 박열열사 이야기 1923년 가을, 지금의 일본 임금의 아버지요 당시 왕세자였던 소화일왕의 결혼식이 약정돼 있었다. 한데 이 시기에 때 맞추어 폭탄을 해외로부터 입수하려고 물색하는 한국 청년이 있다는 제보가 일본 경찰 당국에 들어 왔다. 제보자는 니이야마라는 일본 아가씨다. 그녀의 한국인 연인인 김 중한이 독립사상을 품은 한 한국 젊은이의 부탁으로 폭탄 입수의 일을 진행중이라고 밀고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 왕과 왕세자를 폭살하려 음모 했다는 소위 박열사건의 발단이다. 사진설명 : 박열 사건을 보도한 당시의 조선일보 지면 몽타주 주모자인 박열은 경북 문경 점촌 태생으로 경성 고등보통학교를 다니면서 3 1운동을 겪고 잃어버린 나라 를 위해 일해보겠다는 작심으로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당시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던 오스기의 무정부 운 동에 동조하여 그 산하에 한국인 동지 16명을 규합, 불령사라는 결사를 했다. 바로 고자질을 한 김중한과 니이야마도 그 결사의 같은 동지였다. 불령이라는 말은 일본 당국이 독립사상을 품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조선일보) 77

78 한국인을 지층하는 불은이란 뜻으로 결사 이름부터 반항적임을 알수 있다. 그는 직업을 물으면 법정에서 까지도 불령업 이라고 대꾸했을 정도로 민족의지가 투철했다. 박열은 평소에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의회란 국가라는 이름의 대강도단의 소두목 회의요 천황(일왕)이란 국가란 강도단의 소두목을 거느린 대두목이다 는--. 박열은 1922년에 두 번 서울에 가 의열단의 한사람인 김한에게 폭탄을 의뢰했고 이 두사람과의 연락을 서 울의 기생인 이소홍이 맡아했는데 암호편지로 내왕했다 한다. 한데 때마침 서울에 김상옥 의사의 폭탄사 건이 일어나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또한 그가 우편배달부로 임시 고용되어 일본 임금이 사는 궁성 내부를 드나들며 내부구조를 익히기도 했다. 곧 범죄 예비는 했을 망정 폭탄을 입수하거나 실행한 구체적 행동은 없었다. 이 박열 사건을 이해하고 진행하는데 일본 여인 가네코후미코를 빼고는 불가능하다. 일본 발음으로 부르 지 말고 금자문자로 불러달라던 박열 의사의 연인이다. 박열이 금자문자를 만난 것은 무정부주의자들이 모이는 오뎅집이었다. 그 집에서 막심부름하던 그녀의 생각이나 지성이 너무 진보적이고 날카로우며 풍부 한데 반한 것이다. 박열을 만나기 이전까지의 그녀의 인생역정은 어떤 통속소설보다 기구했다. 아버지는 첩을 들여놓고 어머니를 밤낮으로 패길 일삼았다. 어머니의 출타 중에 한 집에 살던 이모를 겁탈하는 아버 지를 숨어본 것은 금자문자의 여섯살 때 일이다. 끝내 문자를 업고 가출한 어머니는 방직공장에 다니면서 호구를 했는데 나카무라라는 사나이와 동서 생활하면서 문자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방이 하나라 추잡한 일을 할 때면 엄동설한에 밖에 내쫓기길 일쑤였다 한다. 이 귀찮은 존재인 문자를 조선 경상도 김천에 동 양척식회사의 개척이민으로 가 사는 외삼촌 집에 맡겼다. 후에 쓴 옥중기에 보면 조선에서 살았던 6년 간 은 매일처럼 철로변에 나아가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뛰어들까 말까하는 추억밖에 없다 했다. 그는 도쿄에 돌아와 허리에 방울을 달고 달랑대며 신문팔이를 하면서 정칙영어학교에 들어가 중등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 문예반에서 알게 된 것이 박열을 대역이라는 어마어마한 혐의로 고자질한 니이야마다. 그녀의 일생을 살았다고 가정하면 이 세상 어느 누구가 세상의 부조리에 저항하지 않을 수 있으며 허무주 의자가 되지않고 배겨났겠는가. 박열을 만난 금자문자는 이 부조리에의 억하심정을 무정부 운동의 열정으 로 쏟았다. 그들은 결사의 기관지를 편집하며 과격 논설을 싣는 등 의기투합하여 심신을 같이하는 동서생 활을 일본 빈민가 게다집 셋방에서 시작한 것이다.그 셋방에서 박열은 왕족폭탄살해 음모죄로 금자문자는 그 공범으로 잡혀든다. 박열이 과격한 반일 항일주의자인 것만은 틀림없고 일본국의 수장인 일왕을 폭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평 소에 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일본 법정이 밝힌 대로 실행에 옮겼는지는 근거가 박약하며 따라서 조작 설이 유력하게 나돈 채 의혹으로 남아 있다. 박열로 하여금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조작할 정치적 배 경을 훑어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은 1923년 9월에 일어난 관동지방의 대지진이 온상이다. 이 때 있었던 한 국인 대학살은 그 처참함이나 무도함으로 온세상을 경악시켰고 일본이 궁지에 빠지게 한 사건이었다. 일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조선일보) 78

79 본 자경대라는 민간단체에서 학살을 주도한 것으로 돼있지만 일본 정부나 군부 경찰이 배후 조작했다는 사실은 저희네 조사로도 엄연한 사실이 되고 있었으며 외국에서도 그 사실을 알아 날이 갈수록 외교적 입 장이 난처해지고 있었다. 이 학살의 정치적 조작을 한 배후로 당시 일본 내무대신이요 3 1운동 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지낸 한 국통 미즈노가 지목되기도 했다.그는 관동 대지진 이전에 일어났던 일본 각지의 쌀 파동의 무서움을 체험 해 알고 있는지라 대지진 후에 필연적으로 일어나게 될 식량 파동에 겁을 먹고 있었다. 시어머니한테 호통 맞은 며느리가 부엌에 들어와 무고한 강아지 배때기를 차 깨갱거리게 하여 스트레스를 전위시키듯이 팽배 한 일본민중의 욕구불만을 한국인으로 향하게 하여 분출시키는 불만 전위정책을 쓴 것이다. 한국인이 난 리 틈에 일본인을 습격하고 샘물에 독약을 풀고 다닌다는 루머를 퍼뜨려 대량 살상을 야기시킨 것이다. 이 무자비하고 잔인무도한 학살 사례가 구미 각국에 외교채넬과 신문 보도로 알려지자 열강에서 항의 규 탄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일본 주재 외국대사들이 연서명하여 한국인 학살을 항의하는것을 필두로 세 계 여론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에 대한 정치적 음모 하나를 진행시킬 필요가 생기고 이것이 바로 박 열 사건인 것이다. 곧 일본인이 재일 한국인에게 그토록 모질게 굴 수밖에 없는 골치아픈 한국인임을 세상 에 알리기 위해 한국인이 일본 왕을 죽일 뻔했다는 연극을 조작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당시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박열과 금자문자의 옥중괴사진도 이 조작선상의 한 작품이다. 괴사진이란 판사의 예심조사실에서 박열이 앉아있는 무릎에 금자문자가 태평스레 책을 들고있는 사진이다. 뿐만 아니 라 취조하던 다치마쓰 예심판사는 피의자인 박열과 금자문자를 취조실에 놓아두고 변소가는 척 오랜 시간 을 비워두곤 했다 한다. 당시 일본 우익은 괴사진을 두고 춘화라 표현하고 사법권의 문란이라 하여 당시 와카키 내각의 사퇴를 들고 나오기까지 했다. 끝내는 박열과 금자문자가 옥중결혼을 했다는 설이 끈질기 게 나돌았다. 당시 조선일보에 보면 옥에 갇히기 전 1년 남짓을 동거한 사이로 굳이 옥중결혼까지 할 아무 런 필요를 느끼지않는다 하고 당사자들이 부인한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사법사상 전례없는 옥 중결혼을 시킨 것이라 하여 떠들석했다. 이 괴사진과 옥중결혼은 그들의 공작대로 피의 사실을 자백케하 기 위한 유화정책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판이 열리기 전에 박열은 면회갔던 조선 학우회의 조헌영에게 자신과 금자문자가 한복을 입고 재판받게 해달라 부탁해서 한복을 차입했다. 공판정에 입정한 박열은 쌍학교비하는 혼례복에 사모를 쓰고 관대를 둘렀으며 태극선을 든 채였고 금자문자는 흰 옥양목 저고리에 검은 공릉치마 차림이었다. 일본 왕을 대표 하는 재판관이라면 나는 한국민족을 대표하기에 한복을 요구함이며 재판관석과 피고석의 높이를 동등하게 하라고 요구함이며 나는 한국말을 사용할 테니 통역을 딸려라고 말함이며 심문에 재판관이 꿀릴만큼 기개 가 당당했다.그는 지구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 가운데 첫걸음이 일본 제국을 쓸어버리는 일이다는 등 보도 하지 못하게 한 아의 선언 등 극단 발언이 많았다. 형법73조인 왕 왕비 왕세자 왕세손에 위해를 가하 거나 가하려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규를 적용, 사형을 언도하자 박열은 태연히 웃음을 띠었고 금자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조선일보) 79

80 문자는 박열과 나를 한 교수대에서 같이 목매어 죽여달라. 그리고 죽은 백골도 더불어 묻어달라 고 진 술했다. 1926년 3월25일의 일이었다. 한데 10일이 지난 4월5일에 무기징역으로 특사를 받는다. 특사를 받은 지 넉달이 되는 7월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 여죄수 독방에서 금자문자가 수인작업인 마니라 삼끈을 꼬다가 그 끈을 창살에 매어 목매어 자살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소설보다 더 기구한 한많은 25세의 삶을 그렇게 맺은 것이다. 꼭 그 시기에 죽을 이 유도 없고 또 작은 심경 변화에도 글로 써 나타냈던 평소 성격으로 보아 자살이라면 유서를 남겼을 텐데 흔적없이 사라진 게 또 하나의 의혹이 응어리진 것이다. 그 무렵 박열의 형인 박정식씨가 금자문자를 면회 코자 신청을 했으나 이유없이 거절당한 사실이 복합되어 더욱 그러했다. 옥중에서 일어난 일이라 추측이 만발했는데 그 중 유력한 추측이 임신한 것이 외형으로 드러났고 옥중임신이 알려지면 사법부가 또 한번 곤욕을 치러야 하기에 낙태수술을 하다가 치사한 것을 자살로 변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20년의 옥살이를 하고 일본의 패전으로 출감한 박열은 한국거류민단장을 하다가 6 25전쟁 때 납북 된 것이다. 그후 금자문자는 경북 문경읍 마성면 오천리 박열의사 기념공원에 이장되어 한국 땅에 잠들고 있다. 박열열사 이야기(이규태 조선일보) 80

81 일본 여인을 사랑에 빠뜨린 박열의 무정부주의 [중앙일보] :47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1903~1926)와 박열( 朴 烈 1902~1974) 두 사람의 기개를 존중한 다케마쓰 검사와 예심판사가 투옥 중인 두 사람을 동석시켜 찍은 사진. 다정한 포즈를 취한 두 사람의 사진이 신문지상에 보도되자, 대역 죄인을 우대했다는 빌미로 정쟁이 벌어져 내각이 붕 괴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일본 여인을 사랑에 빠뜨린 박열의 무정부주의 [중앙일보] 81

82 [그때 오늘] 일본 여인을 사랑에 빠뜨린 박열의 무정부주의 [중앙일보] 기사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1903~1926)와 박열( 朴 烈 1902~1974) 두 사람의 기개를 존중한 다케마쓰 검사와 예심판사가 투옥 중인 두 사람을 동석시켜 찍은 사진. 다정한 포즈를 취한 두 사람의 사 진이 신문지상에 보도되자, 대역 죄인을 우대했다는 빌미로 정쟁이 벌어져 내각이 붕괴되는 등 큰 파장이 일었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일본 여인을 사랑에 빠뜨린 박열의 무정부주의 [중앙일보] 82

83 1922년 2월 일본 유학생들이 펴낸 잡지 조선청년 에 실린 박열의 시 개새끼 를 읽은 가네 코 후미코는 숙명적 사랑에 빠졌다. 내가 찾고 있던 사람, 내가 하고 싶었던 일, 그것은 틀림 없이 그 사람 안에 있다. 그 사람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사람이다. 23년 9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미친 바람이 몰아치던 와중에 두 사람은 천황을 폭살 하려 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법정에 섰다. 멸하라! 모든 것을 멸하라! 불을 붙여라! 폭탄을 날려 라! 독을 퍼트려라! 기요틴을 설치하라! 정부에, 의회에, 감옥에, 공장에, 인간시장에, 사원에, 교 회에, 학교에, 마을에, 거리에. 모든 것을 멸할 것이다. 붉은 피로써 가장 추악하고 어리석은 인 류에 의해 더럽혀진 세계를 깨끗이 씻을 것이다. 1924년 옥중에서 박열이 쓴 나의 선언 이 잘 말해주듯, 두 사람을 맺어준 연결고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힘 국가 법 감옥 사제( 司 祭 ) 재산 등 이 사라진 세상을 꿈꾸는 아나키즘이었다. 일본 민중에 대해서는 일본 황실이 일본 민중의 고혈을 착취하는 권력자의 간판이며 신과 같 은 자가 아니라 유령과 같은 자에 지나지 않음을, 조선 민중에 대해서는 실권자로 생각하며 증 오의 과녁으로 삼고 있는 일본 황실을 쓰러뜨려 조선 민중에게 혁명적 독립적 열정을 자극하 기 위해서다. 나는 처음에 민족적 독립사상을 가지고 있던 차에 광의의 사회주의에 빠져들 었고, 그 후 무정부주의로 변한 후 다시 현재의 허무주의 사상을 갖게 되었지만, 지금도 민족독 립사상을 내 마음 속에서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나 후미코와 달리 차별 받는 식민지 사람이 었던 박열의 법정 진술이 잘 말해주듯이, 그의 뇌리 깊숙이 각인된 민족의식은 어떠한 지우개로 도 지울 수 없었다. 낱낱의 개인을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전체에 종속시킨 군국주의의 광기 속에서도 개인의 양 심을 굽히지 않은 일본인은 후미코만이 아니었다. 박열 부부의 죄로 말하면 일본인으로는 말 로 할 수 없는 큰 죄이지만, 경우를 바꿔 생각하면 박열만 나쁘다 할 수 없다. 이 발언으로 직 을 내놓은 마키노( 牧 野 ) 재판장. 이들의 변호를 맡았던 인권 변호사 후세 다쓰지( 布 施 辰 治 ). 모 래사장에서 찾은 바늘과 같기에 이들에 대한 기억은 한 일 두 나라 시민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밝힐 희망의 등불로 더욱 빛난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 한국근현대사 일본 여인을 사랑에 빠뜨린 박열의 무정부주의 [중앙일보] 83

84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한국일보) :40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을 다룬 1927년 1월 21일자 국내 신문. 가네코가 박열의 아이를 임신한 채 죽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 다.(왼쪽), 1926년 3월 25일 도쿄 대심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 직전의 가네코 후미코(왼쪽)와 박열(가운데). 산처럼 제 공 [한일 강제병합 100년] <15>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 국경 초월한 무정부주의자의 사랑 죽음 앞에서도 '천황제'에 온몸 항거 천황 폭살 모의하다 붙잡혀 사형선고 받은 후 부부 인연 박열, 23년간 복역후 석방, 가네코는 옥중서 의문의 자살 두 사람이 추구했던 아나키즘 독립운동가들에 큰 영향 도쿄=이왕구기자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을 다룬 1927년 1월 21일자 국내 신문. 가 네코가 박열의 아이를 임신한 채 죽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왼쪽), 1926년 3월 25일 도쿄 대심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 직전의 가네코 후미코(왼쪽)와 박열(가운데). 산처럼 제공 가부장제 저항한 1세대 신여성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84

85 조선인들 달동네와 일본인 번화가 경계선 남아 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원본크기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26년 2월 26일 오전 도쿄 대심원 대법정. 정복 차림의 경찰 150명과 헌병 30명이 법원 안팎을 통제하는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한 조선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이 피고석에 앉았다. 사내는 하얀 비단 바탕에 보라색을 띤 상의와 쥐색 바지를 입고 허리에는 학을 새긴 각대를 두 르고 있었다. 여성도 하얀 비단 저고리를 걸치고 머리에는 장식 두 개를 꽂은 단정한 모습이었 다. 조선식 의복을 착용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 법정을 향해 무언의 항의 표시를 한 피고인들은 박열(1902~1974)과 그의 부인 가네코 후미코( 金 子 文 子 ㆍ1903~1926)였다. 이들의 혐의는 형법 제73조와 폭발물 단속 벌칙 위반. 일제의 형법 제73조는 왕, 왕비, 왕세자, 왕세손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이른바 대역죄( 大 逆 罪 )였다. 증거도 없고, 폭발 물 테러의 대상과 날짜도 명시하지 못한 허술한 기소였지만 3월25일 결심공판에서 대역죄인 박 열 부부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죽음 앞에서도 당당했다. 퇴정하는 판사를 향해 박열은 "재판은 비열한 연극이다!"라고 외쳤다. 가네코 후미코는"만세"를 외치며 천황제 국 가 일본을 조롱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민족해방운동을 이끈 이념으로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를 꼽지만 제3의 사 상, 아나키즘도 간과할 수 없다.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은 개인적 자아의 해방 과 자율성을 주장하며 민중을 착취하는 모든 권력을 부인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우파 민족주의는 물론 당에 권력이 집중된 공산주의 역시 비판과 경원의 대상 으로 삼았다. 신채호, 이회영, 조봉암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아나키즘의 세례를 받았거나 이 를 적극 지지했다. 박열은 경북 문경 출신으로 경성고보에 입학, 3ㆍ1운동에 참가한 뒤 탄압을 피해 도쿄로 건너가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폭로하는 데 앞장섰다. 재일 유학생들, 일본인 아나키 스트들과 의기투합해 '흑도회' '불령사' 등의 모임을 꾸린 뒤 천황가에 대한 폭탄 테러를 모의했 다. 만물절멸을 주장한 그의 아나키즘이 허무주의로 폄하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박열은 법정 진술에서 자신의 이념을 "소극적으로는 나 하나의 생명을 부인하는 것이고, 적극적으로는 지상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85

86 에 있는 모든 권력의 타도가 궁극의 목적"이라고 진술했는데, 이는 그의 아나키즘이 개인적 희 생을 통해 사회를 구원하겠다는 살신성인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는 1923년 9월 구속돼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 1945년 10월 아키타 형무소에 서 풀려날 때까지 23년간 복역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에서 단일 사건으로는 최장 의 수감 기록이다. 박열은 한국전쟁 당시 납북돼 1974년 북한에서 사망했고, 1989년 항일투쟁에 대한 공로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무적자로 태어난 가네코 후미코는 부모와 친척들로부터 학대를 받고, 조선에 서 6년간 생활하며 식민지인들의 아픔을 체험한 뒤 아나키즘에 경도됐다. 그는 박열과 동거하며 조선의 해방과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다 스물셋의 나이에 옥중에서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친 인 물이다. 그의 생은 시련의 연속이었으나 그것은 권력과의 대결이라는 그의 신념을 더욱 굳게 했다. 일본 인 판사는 재판 과정에서 "왜 일본인인 당신이 조선인 편을 드느냐"며 여러 차례 전향을 강요했 지만 그는 "나는 권력 앞에 무릎을 끓고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기꺼이 죽어 끝까지 나 자신의 내면적 욕구를 따를 것이다.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흔적을 찾아 나선 지난달 29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공휴일인 쇼와 ( 昭 和 )의 날이었다. 히로히토 전 일본 천황의 생일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체포돼 1923년 9월부터 1926년 4월까지 함께 복역 했던 도쿄 신주쿠 도미히사마치의 이치가야( 市 個 谷 ) 감옥 터. 박열 부부는 이곳에 수감돼있는 동안 천황제의 허구성에 대해 일본 법조계와 치열한 법정 논쟁을 벌였다. 박열은 이 감옥에서 자신의 사상을 함축한 '일본의 권력자에게 줌'을 비롯해 '나의 선언'과 '음모 론' 등의 글을 썼다. 가네코도 이곳에서 원고지 3,000매에 달하는 자서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 들었는가'를 썼으며, 200여 편에 이르는 단가( 短 歌 )를 남기기도 했다. 가네코가 도쿄 북쪽 도치기 ( 栃 木 ) 형무소로 이감되기 한 달 전인 1926년 3월, 두 사람은 이치가야 감옥에서 구청에 결혼신 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정식 부부가 됐다. 신주쿠역 동쪽에서 15분가량 '감옥거리'라 불렸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으면 이치가야 감옥터를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구립 아동 놀이터와 작은 공원이 돼있다. 휴일을 맞아 공원을 산책하는 노 인 한두 명 외에는 인적이 드문데, 한 구석에 1964년 일본 변호사연합회가 세운 '형사자( 刑 死 者 ) 위령탑'이 이곳이 감옥터였음을 알려준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86

87 박열 부부가 투옥됐던 이 감옥에서 1932년 히로히토 천황의 암살을 시도한 이봉창 의사, 1924년 황궁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의사가 순국했다. 많은 일본인들이 아직도 "일본 고유의 제도인 천 황제에 대해 외부에서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지만 히로히토의 전쟁 책임을 묻는 것을 여전히 금기시하는 일본의 현실을 떠올리면 이 쓸쓸한 감옥터는 전체주의와 결합된 천황제가 어떤 비 극을 낳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게 한다. 박열과 가네코가 동거했고 23명의 한ㆍ일 무정부주의자들의 모임인 '불령사'가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기도 한 2층 셋집은 신주쿠에서 지하철로 10분 거리인 요요기( 代 代 木 )에 있다. 간선도로인 야마노테 거리의 북서쪽 지역으로 박열과 가네코가 머물던 당시에는 도시빈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지금은 중산층의 깨끗한 맨션이 즐비하지만 언덕과 언덕 사이에 위치한 저지대라 볕이 잘 들지 않고 잦은 비로 습기에 차 있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불령사( 不 逞 社 )' 표찰 을 걸고 벽에는 '반역( 反 逆 )'이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었다는 옛집은 사라졌지만, 1923년 9월 1일 대지진이 나자 박열과 후미코가 여진을 피해 노숙했다는 언덕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비극으 로 끝난 두 사람의 사연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20세기초의 일본 아나키즘을 연구하고 있는 가메다 히로시( 龜 田 博 ㆍ57) 전 도시샤( 同 志 社 )대 인 문연구원은 "박열이 추구했던 아나키즘은 개인의 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만큼 세력이 크지는 않았지만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나 일본의 진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 었다"고 말했다. 문화"천황제 허구 폭력성 밝혀 항일투쟁 금자탑" [한일 강제병합 100년] 김명섭 '자유공동체연구회' 연구간사 단국대 강사 김명섭 '자유공동체연구회' 연구간사.단국대 강사 식민지 청년 박열과 일본 민중 가네코 후미코의 투쟁과 사랑은 그야말로 1920년대 조선과 일본 사회를 뜨겁게 달군 핫 이슈였다. 의열단의 조선혁명선언으로 바짝 긴장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 에게 도쿄 한복판에서 추진된 박열의 일왕 폭살 계획은 그 사실만으로도 경천동지할 사건이었 다. 1905년 러일전쟁을 통해 명실상부한 국가신앙으로까지 권위를 차지한 일본의 천황제는 어떠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87

88 비판이나 저항도 허락하지 않는 신성불가침 영역이 되었다. 천황제는 일본 국민 전체를 맹신도로 만들어 전쟁터로 내몰았고,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전체를 장악하려는 제국주의 사상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당당 히 천황제의 허구성과 폭력성을 밝힌 투쟁은 그야말로 반전 반제 항일투쟁의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박열 사건'은 1923년 9월 1일 도쿄를 강타한 대지진의 와중에서 일본 지배층이 자행한 조선인 대 학살을 모면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단지 조선인이란 이유만으로 6,000여명을 잔혹하게 살해하 고, 6,000여명을 보호검속한 일제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폭동'을 명분으로 박열과 불령사 회원들 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러나 권력층의 의도는 이들의 당당한 투쟁으로 철저히 어긋났고, 그 대가로 박열은 세계 최장 기간의 기록인 23년 간의 투옥, 가네코 후미코는 의문의 죽음을 당해야 했다. 이후 박열의 항일 유지를 받든 아나키스트들은 보다 조직적이고 강렬하게 투쟁했다. 흑우회와 흑우연맹 등은 항일과 반공산주의 노선을 분명히 하며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과의 연대 활동 에 나서 재일 한인들을 규합했다. 3,000여명의 조합원을 가진 조선동흥노동동맹과 조선자유노동자조합은 그 대표적인 항일 노동단 체인데, 친일 단체에 대한 투쟁은 물론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에도 크게 기여하며 1937년까지 활 동했다. 이외에도 계림장과 신문배달인조합, 자유청년연맹 등 도쿄에서만 9개 조직 3,200여명의 아나키 스트들이 활동했고 오사카와 효고, 아이치 현 등에서도 13개 단체 800여명이 조직된 것으로 알 려졌다. 재일 한인 아나키스트들은 1940년말 비밀결사 건달회가 적발될 때까지 합법ㆍ비합법으 로 꾸준히, 치열하게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처럼 일본에서 풍부한 이론 습득과 다양한 활동을 경험한 젊은 아나키스트들 중 일부는 1931 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중국으로 망명해 본격적인 항일무장투쟁에 참여하였다. 원심창, 나월환, 이하유, 박기성, 이현근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상하이 남화한인청년연맹을 비 롯해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나아가 광복군 제5지대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다. 천황제와 군국주의 에 온몸으로 항거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유지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독립운동과 자유 공동체사회 건설에 기틀이 되었던 것이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 재일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한국일보) 88

89 박열 독립운동사 :01 수감 중에 가족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들 박열 독립운동사 박열( 朴 烈 )의 일황( 日 皇 ) 저격 1925년 9월 일본 정부는 조선인 박열의 대역사건( 大 逆 事 件 ) 음모를 적발한 후 저간예심( 豫 審 ) 중 에 있던 바, 이제 그 예심을 종결하고 대심원( 大 審 院 ) 공판에 회부하였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내 외에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일본인들의 소위 대역 사건이란 일본 황실( 皇 室 )에 관한 범죄로써 박열 독립운동사 89

90 그들의 구 형법( 舊 刑 法 ) 제73조에 의하여 극형에 처하게 마련돼 있었다. 즉 천황 황후 태황( 太 皇 ) 황태후 황태자 황태자비( 皇 太 子 妃 ) 등 천황의 직계 존속과 비속( 卑 屬 ) 누구에 대하여서든 지 위해를 가했거나 위해를 가하려한 자는 사형에 처하되, 재판도 대심원(대법원 격)에서 단 한 번만 하게끔 그 형법은 규정하고 있었다. 박열사건 이전에 이 조항을 적용하여 처벌한 예로써는 일본 사회주의 개척자이고 언론 저술가이던 무정부주의자( 無 政 府 主 義 者 ) 행덕추수( 幸 德 秋 水 )와 그의 동지들 20여 명이 대역 음모를 꾸몄다고 1910년에 일망 타진을 당하고, 이듬해인 1911년에 처형된 사건이 있었고, 동경( 東 京 ) 대진재( 大 震 災 ) 직후에 사상 계통과 행동 목적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유력한 집안 출신이라는 설이 있던 일본인 20대 청년 난파대조( 難 波 大 助 )가 지금의 일본 천황 유인( 裕 仁 )이 섭정( 攝 政 )을 하고 있을 적에 밖에 나들이 할 일이 있어서 궁문( 宮 門 )을 나와 차를 달리고 있는 것을 권총으로 저격 했던 소위 호지문 사건( 虎 之 門 事 件 )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들은 모두 형법 제73조의 적용을 받아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역 사건이란 신문 용 어도 행덕 추수 사건 이래로 쓰여 졌었다. 당시 일본 신문도 검열이 심하여 박열의 음모 내용의 구체적인 것은 보도할 수가 없고, 소위 공 판도 줄곧 방청 금지 비공개리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었으나, 변호사 등 의 입을 통하여 쉬쉬하며 전해진 바로는 1923년 9월에 지낼 예정이던 일본 황태자 결혼식을 기 하여 일본 천황과 황태자를 한꺼번에 폭살하려는 목적으로 폭탄 입수를 계획하고 첫번엔 일본 인 선원( 船 員 ) 송본정일( 松 本 貞 一 )과 다음에는 의열단원( 義 烈 團 員 ) 김한( 金 翰 )과 모의하였으나 모 두 여의치 못하여 실패했고, 같은 해 5월 불령사( 不 逞 社 ) 동지 김중한( 金 重 漢 )을 상해에 밀파하 여 폭탄을 반입할 계획을 추진 중에, 그해 9월 동경 대진재가 나고 불령사 동지가 일체 검거를 당하여 역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 경과를 거슬러 올라가며 검토해 보면 처음에 동경( 東 京 ) 경시청( 警 視 廳 )은 박열과 그 동지들인 불령사가 무엇인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 는 어떤 낌새를 눈치채고, 당시 언론 출판 결사 집회 등을 규제하는 소위 치안경찰법( 治 安 警 察 法 )에 걸어서 박열 등 불령사원 16명을 일제 검거하여 경찰 조사를 끝내고 검찰에 송치, 예심 에 회부했다. 이것이 사건 발전의 제1단계였다. 그리고, 경시청의 이 검거는 이른바 관동( 關 東 ) 대진재( 大 震 災 )가 일어나기 직전인 1923년 8월 하순에 시작하여 진재 직후인 이듬해 9월 상순까 지에 걸친 일이었다. 예심에서 사건을 진행하다 보니, 불령사가 비밀 결사라는 증거가 불충분하 므로 이를 치안 경찰법을 적용해서 입건할 수는 없다 하는 판정이 나려져서, 이 부분은 일괄 면 소( 免 訴 )하는 동시에 박열 금자문자 김중한 등 세 사람을 제외한 일행은 이를 전원 석방했다. 박열 독립운동사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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