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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차 례 1장. 탄허큰스님의 재가 인연 이동식 김종서 최창규 최승순 박재원 김희옥 김의정 이영자 박금규 진민자 전보삼 그런 실력을 갖고 있는 분은 이제는 없어 8 스님 때문에 불교와 교육학을 접목할 수 있었지요 18 스님은 세계적인 사상가 29 내 평생에 만난, 가장 두드러진 분 38 천하의 보물, 제 인생의 스승 52 스님에게 받은 가르침을 꼭 회향하겠습니다 64 민족정신을 강조하신 스님 72 학승과 선승을 초월한 분 80 우리 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93 스님에게 배운 지혜로 여성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년은 공부해야 한다는 그 말씀을 실천했어요 123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19

5 채원화 최정화 이동형 권영채 자기 소명의식을 가졌던 분 스님과의 추억을 잊을 수 없어요 민족정신의 관점에서 불교를 바라보신 어른 소탈한 스님이 그리워요 장. 탄허큰스님과 재가 제자들 박용열 전창열 명호근 고준환 서우담 김문환 김동건 박명혜 장화수 송찬우 버리는 공부를 일러준 스님 내 인생에 이정표 역할을 하신 분 스님과의 만남은 필연이었습니다 자유자재로 진리를 찾고, 전달한 도인 유불선 모든 분야에서 대종사이었죠 행동으로 증명된 대도인 제 인생의 위대한 스승 스님의 가르침으로 불사를 했어요 유불선을 회통한 사상가 종지( 宗 旨 )가 없으면 죽은 학문이지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19

6 여익구 박완식 심백강 윤창화 최옥화 나의 불교운동의 지주 선교( 禪 敎 )를 회통한 큰스님 진리와 도의 입장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분 인재양성을 강조하고 실천한 스님 이제는 탄허스님 같은 분이 나올 수 없어요 후 기 411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7 1장 탄허큰스님의 재가 인연 이동식 김종서 최창규 최승순 박재원 김희옥 김의정 이영자 박금규 진민자 전보삼 채원화 최정화 이동형 권영채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8 그런 실력을 갖고 있는 분이 이제는 없어 대상 이동식 이화여대 경북대 교수. 정신치료학회 회장. 신경정신의학회 회장 등 역임, 현재 정신과 의사 일시 2012년 1월 6일 장소 정신치료연구원 서울 성북구 우리나라 정신치료학 분야의 대가(1920년생)이신 박사님이 탄허스님과 인연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탄허스님을 만나시기 전에도 불교와 동양사상에 관심이 있었는 가요? 탄허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불교와 동양철학에 관심을 조금 가졌지. 내가 1954년도에 정신분석을 공부하러 미국을 갔는데, 미국에 가기 전에는 별 로 관심을 못 가졌어. 어렸을 적에는 왜놈들이 좋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아서 주 로 일본말 책, 영어 책 그걸 많이 읽었지. 그러나 그때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특 별난 생각이 없었어. 그런데 일제 말기(1942년)에 경성제대에 가서 신경정신과의 부수보( 副 手 輔 )로 있 으면서 공부할 적에 서양철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 우리가 이렇게 열등감을 갖 8 게 되고, 한국을 무시하면 되겠냐고 하였지. 미국 가기 전에, 해방이 되고 나서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9 문리대 교정에서 철학과 조교하는 친구인 김규용에게 우리 5천년 역사가 볼 게 없을리가 없다고 하였지. 우리 문화를 서양적인, 과학적 용어로 번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지. 일제 말기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가치를 느끼셨군요. 미국에 갔다 와서는 어떻게 생각을 9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하셨는가요. 내가 미국에 정신분석을 공부하러 1954년에 갔는데, 앵커리지에 서 기름을 넣는다고 할 때 72세 된 캐나다 사람이 내 옆자리에 탔어. 그 사람이 날보고 어디로 가느냐 고 그래. 그래서 뉴욕에 간다고 그랬지. 그랬더니 그 사 람이 무엇하러 가느냐 고 해서, 난 정신분석학을 공부하러 간다고 했어. 그랬 더니 그 사람이 나에게 미국은 기초가 없는 고층건물이라고 그랬어. 건물이 높 이 올라갈수록 붕괴된다고 하였단 말야. 그러면서 장차 미국은 도( 道 )가 프리베 이할 것이라는 이런 말을 하더라구. 그런 말을 듣고서 미국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해 보니 부지하세월( 不 知 何 歲 月 )이 야. 시간이 너무 걸려, 돈도 많이 들고. 그래서 원래는 뉴욕대학에 3년 있으면서 공부하려고 하였는데 마지막 1년은 계약 취소해 버리고 1958년에 그냥 와 버렸 어. 돈도 많이 들고, 배울 것도 없어서 2년 있다가 돌아왔지. 돌아오면서 구라파 를 돌아보고 왔는데, 그때에 베니스 섬에서 열린 세계 제1회 철학자대회에 참가 해서 서양 일류 철학자라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이게 뭐 이야기하는 게 우리가 다 알아들을 수 있는 내용들이야. 나는 귀국해서 생각하기를 한국 전통문화가 세계 최고이다, 한국인이 최고이 다라는 그런 결론을 얻었어. 그러나 이런 생각을 얻어도 그것을 아무한테 말할 수가 없었어. 왜냐, 사람들이 안 믿으니깐.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0 그러셨군요. 그러면 언제, 어떤 계기에 의해서 불교에 관심을 가졌는가요? 내가 1962년부터 성북동에 동북의원이라고 해서 정신병원을 냈 어. 그것이 언제인가? 그런데 역경원에 이재복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우울증 이 걸린 이 사람을 어떤 사람이 나에게로 보냈어. 그 사람은 역경위원인데 대처 승이고, 대전 보문학교의 교장이었어. 이 사람이 여기 2층에 입원해서 있었는데 처음 1주일은 아무 말도 없다가, 그 이후에는 서장( 書 狀 ) 을 꺼내서 보더라구. 그 사람이 그 책을 보면서 나에게 그 내용을 물어보더라구. 내가 그 사람의 말에 답 을 하다 보니 불교라는 것이 완전히 정신치료라는 것을 알았지. 불교가 순전히 정신치료다 이거야. 불교의 근본은 집착을 없애는 것이야. 나는 애응지물( 碍 膺 之 物 )이라는 그것을 집착이라고 보는데, 그것은 정신분석으로 말하면 핵심감정이 지. 그 이재복이라는 사람이 날보고 그 책을 한번 번역해 보라 그러는 거야. 그 때에는 지금보다 한문 실력이 더 있었어. 그렇게 답을 하면서, 불교가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그런 인연으로 불교를 알게 되었군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가요? 그래서 나는 동국대 조명기 총장을 찾아갔지. 조명기 총장은 일제 시대에 경성제대 종교사회학과 조수로 있었거든, 나는 정신과 부수( 副 手 )로 있었 으니 내가 알고 있었어. 그래서 동대 총장실로 찾아갔지. 그래서 만났지. 그게 1965년이야. 그래 조명기에게 우리가 불교를 배울 터이니 강사를 소개하라 그 랬어. 그래서 소개받은 이가 죽은 이희익과 조계종단 교무부장을 하던 숭산스님 이야. 숭산스님은 그때에는 행원이라고 했어. 그런데 이희익은 찾지 못해서 우 리들이 행원스님에게서 서장을 배우기 시작했어. 우리가 처음으로 배운 곳은 서 울대병원에 학생심리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시작했어. 그런데 그 연구소의 10 조교가 방해를 해서 철학교수 연구실에서 했어. 방해한 조교는 서울 문리대 교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1 수를 하다가 은퇴했지. 그런데 숭산스님하고 시작하다가 숭산스님이 많이 바빠서 두 번인가를 하다 가, 자기 후임으로 넘긴 사람이 월운스님이야. 월운스님에게서 끝난 거지. 서 장 을 다 떼었거든. 그때 배운 사람이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심리학과 교수, 대 학원생들이었어. 정신과 교수는 나중에 들어왔어. 김규용이라고 동국대에 있다 11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가 서강대로 간 그 친구도 들었어. 그러면 이제 탄허스님과의 만남을 들려주시지요. 나는 그렇게 동양사상을 공부하면서 정신분석과 도를 결합하기 시 작했어. 그런데 누가 그랬나? 동양사상의 도에 대해서는 탄허스님이 많이 안다 고 그래. 세월이 오래가고, 내가 금년부터는 기억이 좋지 않아서 소개해준 사람 은 기억이 안 나. 그래서 학회에서 초청하려고 하였는데 잘 안 되었어. 그래 2년 이 안 되어서 탄허스님이 동국대에 와 있다고 해서 내가 갔거든. 탄허스님이 바 쁘다고 하면서 기회를 안 주어서 간 거야. 동국대에 참선하는 데(대학선원)를 가서 나도 참선을 한 시간 이상을 하고서 그때 만났는데, 만나는 데 1~2년 걸렸지. 그게 아마 처음이지. 그 이후로는 자주 만나게 되었지. 참으로 어렵게 만나셨군요. 그것이 1966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 만난 장소가 주로 어디였나요? 지금 기억나는 것은 고려대 옆의 대원암이야. 대원암에서는 단 둘 이 많은 이야기를 서로 하였지. 그리고 그것이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탄 허스님이 나를 초청해서 월정사에 같이 간 적이 있어. 동국대학 불교대 승가학 과 1기생의 첫 연찬회를 월정사에서 5박 6일 하였는데, 그때 나하고 동료 교수 인 박홍규 교수, 서울대에서 플라톤 철학을 전공한 그 교수와 김규용이라고 중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2 세철학을 한 우리 또래인 그 교수도 같이 갔어. 그러고 또 내 제자들 상담하고 심 리학하는 교수들도 갔거든. 교육 프로그램을 하니깐, 같이 가자고 해서 간 것이 지. 그래 그런 연찬회를 하니, 나도 강연해 달라고 해서 갔어. 고속도로가 나지 않았을 때, 울퉁불퉁하는 길을 버스를 타고 갔지. 그때 탄허스님이 월정사 조실 로 있었거든. 그때 내 나이가 사십대였을 거야. 그 연찬회 때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세요. 5박 6일간 월정사에 있을 때, 그때 탄허스님이 조실이어서 방산굴 에서 나하고 단 둘이서 많이 얘기했지. 이박사 말이야, 자존심이 높은 사람들 은 왜 그러냐 고 그래. 탄허스님의 질문에 나는 열등감이 있으면 그리 된다 고 그랬지. 그러니까 탄허스님이 깊이 생각하더라구. 월정사에서 올라가면 상원사가 있어. 그 입구에 탄허스님이 쓴 방한암대선사 비석이 있거든. 상원사에 올라가서 탄허스님과 우리 셋이 마루에 앉아 있는데, 박교수가 스님은 대선사입니까? 하고 물어봤거든. 그런데 탄허스님이 대답을 안 했어. 탄허스님이 고려대에 가서 교수님들에게 강의를 하였어요. 이런 강의에 이박사님이 관여 하신 것이 없나요? 그거는 탄허스님의 부탁으로 내가 만들어 준거야. 월정사에서 연 찬회를 마치고 내가 서울로 돌아올 때에 탄허스님이 버스타는 데 와서 지식인들 을 모아서 뭘 강의하도록 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어. 그래서 고려대에서 강의 를 하게 됐지. 그때에 배운 책이 아직도 여기에 있어. 그리고 화엄경을 번역해 서 낸 몇십 권 책도 그때 돈 50만 원 주고 산 것도 있어. 12 하여간 그래서 내가 고려대 교수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교수와 학생들이 강의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3 를 듣도록 하였어. 그래서 외부인도 오고 그랬어. 강의한 것은 장자와 영가집 등 이었지. 처음에는 듣는 사람이 많아서 좌석이 모자랐거든. 그래 서서도 듣고 그 랬어. 그런데 그때에는 학생 데모가 심해서 휴교령이 자꾸 내리고 그래서 사람 수가 자꾸 줄고 그랬어. 또 탄허스님이 고대 철학과 교수인 손명현 교수를 자주 놀리고, 수도 줄어서 30명밖에 안 되니 탄허스님이 재미가 없어 그만 하려고 여 13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러 번 그랬어. 하두 그러기에 탄허스님이 나보다 나이가 여덟 살인가 더 많았지 만, 스님이 불교를 더 잘 아나, 내가 불교를 더 잘 아나 한번 해 보실까요? 그 랬어. 대종사(탄허)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구(이 대목에서 이박사는 허허 하면서 웃었다). 내 가 그렇게 하니깐 탄허스님도 웃으셨지. 운허스님은 강의를 할 때에 한 사람만 있어도 했거든. 대원암에서 보고 들은 것을 더 들려주세요. 그때, 돌아가신 무교회주의자인 함석헌씨가 탄허스님을 찾아와서 자기가 하는 운동에 탄허스님도 참가해달라고, 같이 하자고 하는 그런 걸 봤지. 탄허스님과 박사님은 만나면 서로 좋은 기분이었겠네요. 나와 탄허스님은 만나면 서로 좋았지. 탄허스님은 풍전호텔에서 몇백 명에게 강의를 하는데 거기는 자기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없는데, 우리 모 임에는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니깐 제일 좋아했지. 그리고 참 탄허스님이 나한테 말하기를 사람이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은 스 스로 남에게 굴복하지 말고, 그리고 남을 무시하지도 말고 남을 너무 높이지도 않는 것이 좋다 고 했어. 이 말은 비굴하게 살지 말고, 자존심을 갖는 것이 좋다 는 것이지. 그러니깐 자존심과 도는 같은 것이야.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4 탄허스님에게 배웠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탄허스님에게서 제일 크게 얻은 것은 유불선이 마찬가지라는 것이 었지. 내 생각과 완전히 같은 거야. 이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서는 나오지 않아. 내가 주장하는 도정신치료라는 것은 서양의 정신분석하고 동양의 도가 같다는 것이지. 동양의 유교, 불교, 도교가 결국 하나라는 것, 이게 핵심이야. 그러니깐 박사님의 도정신치료는 탄허스님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군요. 영향이 있지. 누가 나하고 의견 일치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어. 딴 사람은 없었어. 내 말을 동의하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자신이 생기지 안 그래? 내 말에 동의해 주는 사람은 탄허스님밖에 없지. 나의 이론은 탄허사상에서 시작된 거야. 유불선이 하나라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는 도움이 되지. 탄허스님의 첫인상이라고 할까, 느낌은 어떠하셨는가요? 그때 탄허스님이 50대였지. 탄허스님에게서 들은 것이 직지인심 자심반조인데, 그것도 핵심이지. 서양의 정신분석, 정신치료에서 공감이라고 말 하는 것과 이런 것들이 일치해.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말하는 자기 마음을 보 는 것, 그것은 동서양이 일치해. 내가 주장하는 도정신치료는 개념이 아니고, 경험이야. 경험만이 진리라는 것 이지. 서양에서도 이론과 지식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 탄허스님도 입산 이전부터 도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그걸을 찾다가 불교에 입문하셨지요. 14 나도 그런 것은 본인에게서 들었어. 입산 이전에 유교와 장자를 통 달하였다고. 그래서 딴 사람과 달리 내가 탁 들어왔지. 그래서 나하고는 기분이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5 좋게 만났을 거야. 그리고 탄허스님은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 날보고 정치교수 라고 농담을 하고 그랬어. 박사님은 탄허스님 이외에도 경봉스님과도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봉스님을 만난 것은 1972년 근처일 거야. 탄허스님을 만날 때에 비슷하게 만났어. 내가 만난 스님 중에서 선이 제일 깊은 스님은 경봉스님이야. 15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그 스님은 순수 도인이지. 탄허스님은 유불선 회통을 주장하여서 경봉스님과는 약간 달라. 그리고 도선사에 있던 청담스님과도 만났지. 청담스님이 거처하는 절에서 4박 5일간 있으면서, 먹고 자고 그랬어, 심리학 철학 교수들하고. 청담 스님도 정신분석을 이용해서 법문을 하고 그랬는데, 정신분석과 불교에서도 자 존심과 정신건강이 핵심이야. 정신분석에 투사라는 말이 있어. 자기가 깨닫지 못하면 마음을 밖에서 본다는 것이지. 청담스님은 바른 마음을 설명할 때에 그 림도 그렸는데, 그런 것이 정신분석과 완전히 통하지. 이곳 정신치료원에서 불교 공부를 하고 그랬나요? 그럼. 여기 2층에서 철학과 교수, 정신과 의사들, 대학원생들이 몇 십 년 했지. 동국대 이종익 교수가 여기에 몇 년간을 와서 했다고. 그리고 월운 스님도 오래 했고, 종범스님은 10년이 넘게 하였는데 요새도 찾아오고 그러지. 또 혜거스님도 불러서 했어. 박사님이 지켜본 탄허스님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글쎄, 탄허스님의 정체성은 학승으로는 최고이지. 물론 탄허스님 은 내가 지적하는 것을 받아들인 힘이 있지. 그러나 학승보다는 도( 道 ) 쪽에 정체 성이 많지. 탄허스님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은 좀 어려워.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6 얼마 전 박사님께서는 도( 道 )정신치료를 개척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도정신치료가 후학들 에게 계승되어야 하지 않습니까? 박사님의 사상에 불교의 영향이 있다는 것도 더욱 분석 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그렇지. 지금은 미국 친구가 많이 하고 있어. 내 철학에 탄허 스님과 인연이 있어. 도 치료를 정립한 것, 내 사상에 불교가 있다는 것은 후세에 참고가 될 것이야. 공부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야. 내가 이런 것을 한 것도 50년 넘게 공부한 결과야. 지금은 나처럼 한 분야만 공부하는 사람들이 없어. 예전에 학자들은 독립정신이 많았다구. 요즈음 학자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어. 운허스님도 그렇고, 이상은씨도 그런 말을 했어. 그 전의 학자들은 독립정신이 있었다구. 운허스님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절에 숨어서 스님이 되었다고 그러 잖아. 박사님께서는 탄허스님과의 인연, 교류, 영향 등에 대한 것이 없나요? 글쎄? 그것은 오늘 선생처럼 탄허스님에 대한 것을 묻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탄허스님과 인연도 많고, 영향받은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찾아와 서 스님에 대한 질문을 한 것이 오늘이 처음이야. 말하자면 유불선이 하나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도, 모두 관심이 없으니 탄허 스님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없었지. 유불선이 하나라는 것을 잘 이해도 못하고, 그러니 질문도 하지 않지. 그래서 그냥 지나가거든. 하여간 나는 탄허스님의 유 불선 회통에 공감해서 공부를 하였고,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으니 우 리 서로만 자주 만나고 좋아했지. 제가 탄허스님 탄신 100년이 되어서 찾아온다고 하였을 때의 소감은. 16 벌써 그렇게 되었나 그랬지. 지금도 나는 탄허스님 생각이 가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7 나.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나. 그리고 나는 지금도 임상치료를 하 고, 여러 활동을 하는데 시간이 나면 휴식을 하고 있어. 하여간 탄허스님은 내 가 당신을 알아주니깐 좋아했어. 그걸 알아주는 것은 나밖에 없으니. 그래서 오늘 선생이 온다고 해서, 나는 속으로 탄허스님의 이야기를 할 좋은 찬스라고 생각했지. 탄허스님과 같은 그런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제는 없 17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어. 그 스님은 유교와 노장을 공부해서 절에 온 것이 특징이야. 오늘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귀한 증언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 오늘 식사라도 같이 하면 좋은데 내가 요즈음 과로가 겹쳐서 쉬어야 하겠어. 나는 시간이 나면 쉬는 게 일이야.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8 스님 때문에 불교와 교육학을 접목할 수 있었지요 대상 김종서 이화여대 및 서울대 교수, 국가교육개혁위원장 역임, 서울대 명예교수, 길상사 자문위원 일시 2012년 2월 21일 장소 김종서 교수 자택 서울, 반포 교수님은 탄허스님과의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한암스님과의 만남도 있었지요. 맞아요. 그런데 올해 내 나이가 여든아홉(1924년생)이라 시력도 좋지 않고 많은 것이 기억이 안 나요. 그렇지만 생각이 나는 대로 이야기를 해보지요. 내가 한암스님, 탄허스님을 만난 것은 1945년 해방되던 해입니다. 그때 해방될 때에 나는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어요. 그때에는 모든 국민이 광복의 벅찬 감 격과 눈물겨운 즐거움에 독립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어요. 나도 감수 성이 예민한 학생이었기에 그런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의 한구석에는 허전하고, 쓸쓸하고, 자칫하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것은 우리나라는 독립이 되었는데 내 마음은 그 무 18 엇에 항상 예속되고 있으니 나란 도대체 무엇이냐 는 의심이었어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19 나는 일정 말기부터 불교의 큰스님은 한암스님과 만공스님이라는 것을 들어 서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한암스님을 만나러 오대산 상원사로 떠난 것이 1945 년 9월 1일이었습니다. 월정거리에서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트럭을 타고 상원사 로 들어갔습니다. 19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그런 비사가 다 있었군요. 그래 한암스님을 만났습니까? 꿈과 번뇌를 가득 지닌 채 한암스님을 뵈었을 때 나는 스님이야말 로 나의 의문과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분이라고 직감했어요. 얼굴이 구슬같 이 맑고 빛이 나는 듯한 느낌에 압도되어 두 무릎을 꿇었지요. 나는 한암스님이 반겨주실 줄 알았는데 스님은 의외로 큰소리로 야단을 치며 나를 꾸짖었습니다. 스님은 나라가 해방되어 젊은 학도들이 할 일이 많은데 어째서 이 산속으로 들 어왔냐 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묵고 당장 내일 나가라 는 말씀이었어 요. 그러나 나는 이 말씀에 더욱 매혹되었고, 여러 가지 질문을 드리자 스님은 체념하셨던지 탄허스님을 불렀어요. 얘가 자꾸 물어보니 네가 대답 좀 해줘라 고 하셨지요. 그때 내가 한암스님에게 불교가 무엇이고, 인생이 무엇이냐고 자 꾸 당돌하게 질문을 하였더니 내 질문에 탄허스님이 답을 해주라는 분부였죠. 그때에 보니 탄허스님은 한암스님에게 꼼짝을 못해요. 그러면 상원사에서 어떻게 지냈는가요? 나는 탄허스님에게 1주일간을 불교에 대한 것을 물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흘러서 그 질문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요. 이렇게 해서 탄허스님과 의 인연이 이루어져서 스님이 입적하실 때까지 이어졌지요. 그때 탄허스님은 30 대 초반이었고, 나는 20대 초반이었지요. 탄허스님은 신식교육을 받지 않았지 만 이미 유학, 불교의 대가의 경지에 있었고 나는 서당에 다닌 일이 없어 천자문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20 조차 읽은 적이 없는 신학문만을 접한 학생이었어요. 탄허스님은 유학을 공부하 다 오대산으로 입산하여 한암스님에게 무릎을 꿇고 참선을 하여 이미 득도를 하 였으나, 나는 어린 시절에 기독교 분위기에서 자랐기에 불교에 대해서는 그야말 로 백지 상태였어요. 그렇지만 나는 이번 기회에 불교의 핵심을 알고야 말겠다 고 생각하고, 탄허스님이 무엇을 하든 상관치 않고 거머리같이 찰싹 붙어 따라 다니며 질문 공세를 퍼부었습니다. 내가 물은 것은 대부분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이었어요. 그러나 이 질문은 스님의 입장에서는 가소로운 질문이었지만 거 기에 대해서 성심껏 답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문답을 통해서, 그리고 지켜보신 생활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끼셨을 터인데, 소감이 어떠하였는가요? 그때 내가 스님으로부터 받은 교훈은 너무나 강렬한 것이었습니 다. 그것을 구분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첫째, 스님의 자신감에 넘치는 모 습에 저는 감동했어요. 어떤 질문을 해도 분명하고 명쾌하게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말씀하셨어요. 신행에서 우러나오는 자신만만한 말씀이었기에 전후 간의 맥이 일관되었어요. 둘째, 신학문의 능통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스님은 성장 배경을 보면 국민학교도 나오지 않았기에 신식 학문을 접할 기회가 없었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철학, 과학 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셋 째, 저는 큰스님의 설명 방식에 감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가르치셨다는 것을 그때는 나는 알 리가 없었죠. 스님은 부처님의 교육방 법을 알고, 실천하셨으며 불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여러 가지 비유 를 들어가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넷째, 사회 사정에도 능통하셨습니다. 그 당 시 일본이 쫓겨가고 정치인들이 우후죽순 나타나던 시절인데 정치는 물론 사회, 20 문화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갖고 계셨습니다. 다섯째, 수도를 위한 정진의 모습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21 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하루에 3~4시간만 주무시고 정진하는 것 같았어 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서운 정진의 생활을 하셨어 요. 여섯째, 남다른 기억력은 분명히 천재의 경지였어요. 영재라는 말도 있지만, 스님은 영재가 아니라 천재였어요. 특히 유불선의 구절을 막힘없이 줄줄 외우는 데에는 탄성이 나올 뿐이었지요. 일곱째, 스님은 대학자였어요. 스님께서는 당 21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시 30대 초반이었는데 유불선 삼교에 회통하고 있었어요. 모르기는 하지만 당 시 스님과 같이 이 부분의 학문을 그렇게 넓게, 깊게 통달한 학자는 없었을 것입 니다. 여덟째, 한학의 대가였습니다. 한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함은 물론 이를 토 대로 현재 및 미래를 투시하는 혜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홉째, 스님은 분명 히 득도하신 것으로 보였습니다. 나 같은 소인배는 득도의 경지를 감히 짐작도 할 수 없겠지만 스님의 눈에서 가끔 조용하고 잔잔한 빛이 나오는 것을 느꼈거 든요. 이런 스님의 모습은 그 당시 스님이 30대 초반 시절에 그러하였다는 것입니 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는 속담이 있는데, 내가 스님을 처음 뵈었 던 상원사 시절, 해방된 직후의 장면이 이를 말해주는 것일 것입니다. 그때 저는 스님이라는 위치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몰랐고, 부처님에게 절도 하지 않았던 무지한 입장이었지요. 그래서 탄허스님 말씀 하나 하나에 대해 논 쟁을 벌였고, 비판하였으며, 반박하였지요. 그런데 1주일 정도가 지나자 스님의 말씀을 어렴풋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논지로 스님의 말씀에 대드는 것은 계란을 들고 바위에 부딪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 었어요.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의 입은 닫혀졌어요. 감히 질문을 할 수 없었어 요. 나의 태도가 변하자 탄허스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22 그러면 침묵한 이후에는 어떤 생활을 하셨는가요? 그 이후에는 선방에 들어가서 벽을 바라보고 묵묵히 앉아 있었지 요. 한암스님에게 선방에 들어가는 것을 승낙받아서 한암스님, 탄허스님과 같이 참선을 했어요. 그때 한암스님이 다른 수좌들에게 저 종서 봐라. 얼마나 열심 히 하느냐, 그런데 너희들은 뭐하냐? 고 하셨어요. 그때 나는 화두도 잡았어요. 나는 중학 시절부터 이게 뭐냐 하는 의심을 했어요. 그때에는 기독교 신자이 면서 그런 고민을 하였는데 그런 이야기를 한암스님에게 드렸더니 한암스님은 그러면 그걸 화두로 잡으라고 하셨어요. 요즈음 말로 하면 시심마 이지요. 그런 생활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추억을 들려주세요. 그때 나는 상원사 옆에 흐르는 개울물, 찬물에 들어가서 세수와 목 욕을 했어요. 고행을 하면서 참선을 하면 뭐가 될까 해서 그리한 것이지요. 그 리고 한암스님의 승낙을 얻어서 상원사 범종을 새벽 세 시 경 무렵에 종을 쳤어 요. 지금은 종에 금이 가서 종을 안 친다고 그러죠. 그리고 내가 그때 상원사에서 30~40여 명의 스님들에게 보건체조를 가르쳐 드렸어요. 스님들은 앉아서 수행을 하셔서 그런지 위장병이 많았어요. 내가 체 조를 가르쳐 드렸더니 스님들이 이 체조를 하면 위장병도 없어지고 좋은데, 공 연하게 위장병 때문에 고생을 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이 아주 좋아하셨어요. 참, 그리고 그때에 탄허스님이 하늘로 난다고 양 손을 옆으 로 뻗치시고, 위 아래로 내젖으면서 막 뛰었어요. 아마 그때에 도교를 공부해서 그랬나 봐요. 그곳 상원사에는 뱀이 그리 많았어요. 마당에 가면 여기 저기에 뱀 이 슬슬 기어 다니고 그랬어요. 그런데 뱀에 물린 사람은 없었어요. 그리고 또 상원사 그곳의 김치가 무척 짰어요. 스님들은 많고, 절 사정이 좋지 않아서 그 22 렇게 해서 먹은 것 같아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23 그때 상원사에서 만난 수좌 중에서 기억나시는 분이 있나요? 기억이 없어요. 세월이 너무 가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 억이 안 나. 내 나이가 여든아홉이니 너무 늙었어요. 그런데 내가 상원사에 들 어갈 때에 나간 분이 사학자인 황의돈 교수예요. 그 교수님은 일정 말기에 오대 산 상원사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때 본 한암스님은 세수가 일흔이셨는데, 밤 열 23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시 경이면 주무시고, 새벽 두 시경이면 일어나서 정진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오 직 정진생활의 연속이었어요. 오대산에서 얼마나 있다가 나오셨나요? 상원사에서 근 한 달을 있었어요. 그때에 한암스님이 나에게 원성 ( 圓 成 )이라는 법명을 지어 주셨지요. 그때에 스님은 이름을 지어 주면서, 함께 게송도 써 주셨어요. 그런데 오대산에서 나올 때에 갖고 나와서 집에 두었는데 6 25사변이 나서 황간으로 피난을 갔다오니깐 그만 없어져 버렸어요. 다른 사진들과 함께 다 없어져 버렸어요. 그것을 가지고 있었으면 참 좋았을 터인데. 그때에 참선의 방법도 모르고, 화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선방에 앉아 있으려 니 온갖 잡념이 뭉게구름같이 떠오르고 다리는 왜 그렇게 아픈지 견딜 수가 없 더라구요. 그러면서도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무엇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 면 서, 낭만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탄허스님이 심각한 표 정을 지으면서 학생! 머리 깎고 나하고 같이 공부하지 그랬어요. 나는 그 말씀 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것은 나의 인생이 달라짐을 뜻하는 것이잖아요? 그런 갈림길에 서 있기도 했어요. 그래 나는 고민하고 갈등하였어요. 그러는 순 간 내 머리에는 부모형제의 모습이 떠오르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그리워지 고, 만세를 부르면서 서울 거리를 누비던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어 요. 그래서 고민을 거듭하다가 스님에게 저는 아마도 인연이 안 되는 것 같습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24 니다. 저는 속세에 나가 학교생활을 계속 하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리 고 그 다음날 한암스님, 탄허스님에게 감사, 고별의 인사를 드리고 상원사를 내 려와서 서울로 올라갔지요. 오대산과 그런 추억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나는 상원사에서 나온 이후에는 상원사에서의 참선, 추억 을 전부 잊고 살았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1967년 부터는 이화여대에 교수로 있었지요. 얼마 후에는 서울대 사범대에 있으면서 불 교학생회를 지도하였지만. 그러다가 탄허스님이 고려대에서 불교 특강을 하시다가, 강의를 듣는 사람들 에게 옛날 상원사에 와서 공부하던 젊은 사람인 김종서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혹 시 지금 뭐하고 있느냐고 물어 봤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강의를 듣던 사람 중 에 내 친구가 있어서, 지금 이화여대의 교수로 있다고 알려 주었어요. 그래서 탄 허스님이 나를 찾아서 다시 만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만난 곳이 개운사의 대원 암이에요. 내가 이대에 들어가기 전에 스님과 나는 소식이 끊어졌었지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다가, 다시 만난 것이지요. 그러나 다시 만났을 때에는 무 덤덤했지요. 불교인들은 반갑다고 호들갑 떨지도 않고, 표정도 없고 그러잖아 요. 담담했지요. 다시 만나서는 탄허스님의 법문을 들었나요? 그것이 삼보법회에서 강의를 하실 때에 가서 조금 들었지요. 그리 고 월정사로 내 처와 같이 가서 만나서, 식사도 하고 방산굴에서 하루 자기도 했 지요. 그리고 스님을 따라다니던 이화여대 출신인 진민자라고 있어요. 진민자가 24 이대에 다닐 때에 내가 교수로 있어서 잘 알았지요. 월정사에서 진민자를 만나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0

25 서 우리 처와 함께 좁은 방에서 자기도 하였어요. 대원암 시절에 탄허스님은 화엄경 출판을 하였지요. 맞아요. 스님이 출간한 신화엄경합론이라는 것을 스님은 나에게는 그냥 주셨어요. 스님은 그후에도 사집, 주역선해 같은 것을 출간하셨는데 나에 25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게는 전부 그냥 주셨어요. 나에게는 돈을 받지 않으셔서, 사위인 우담거사가 갖 다 주었지요. 김교수님은 요즈음도 신행생활을 철저히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신행에 탄허스님의 영향이 있나요? 탄허스님을 다시 만나면서 불교에 관심이 생기게 되었지요. 그래 서 이동식 박사가 주관하여 이박사 병원 2층에서 하던 불교 강의를 다 들었어 요. 그때 강의한 분이 종범스님, 지관스님, 이종익 등이지요. 그리고 종범스님 으로부터는 승현사에서도 배웠고요. 그리고 탄허스님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도 세 번이나 오셨어요. 그때 우리 집사람이 무엇을 대접할까를 많이 고심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계란도 내 놓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스님은 계란은 무정란이라 잡수신다고 하더구만. 지금 여기 거실에 걸려 있는 스님의 유묵( 向 上 一 路 )은 스님이 대원암에 계실 적에 써주신 것 입니다. 그때가 내 아들인 김성철(동국대 교수)이가 중학교 때일 거예요. 탄허스님이 입적하셨을 때에 월정사에서 있었던 영결식장에 가셨는가요? 문병을 했지요. 스님이 입적하시기 이전, 한양대병원에 입원하였을 때에도 가서 월정사 영결식에는 내 처와 같이 갔지요. 월정사에를 갔더니 서우담이가 날보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26 고 조사( 弔 辭 )를 하라고 그래요. 그러나 나는 조사를 한 번도 한 적도 없어서 거절 을 하고, 대신 국회의원을 한 최창규가 하도록 추천을 하였지요. 최창규는 최익 현의 후손인데, 탄허스님이 최익현의 제자에게 유학을 배워서 내가 서울대 교수 를 하던 최창규를 스님에게 소개를 시켜 드렸지요. 그때 서울대 교수로 국어학 자로 이름이 있는 이응백 교수 부부도 갔지요. 그 교수의 부인이 신실한 불교신 자였거든요. 그때에 영결식을 마치고 운구를 다비장으로 옮길 때에 봉선사의 월 운스님이 자기도 운구를 메겠다고 간청을 하던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나네요. 월 운스님은 동국대 역경원장을 하던데, 지금도 잘 지내시지요? 그 스님은 강의를 구수하게 잘 하지요. 나는 그 스님의 불교 테이프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탄허스님의 정체성에 대한 의견이 있나요? 스님은 선승이기도 하고, 학승이기도 하고, 대학자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밤을 새워서 역경 작업에 주력하셨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항상 참선을 하 셨지요. 그리고 머리는 천재야. 기억력이 대단해요. 번역하시는 것에 주력하셔 서 참선할 시간이 부족했을 거예요. 탄허스님은 예언을 많이 하셨지요? 맞아. 탄허스님은 예언자예요. 예언에 대한 말을 많이 하셨어요. 스님이 예언한 것 중에서 내가 기억나는 것을 하나 말해 보면, 스님은 북한의 김 일성 주석이 죽는다는 것과 박정희 대통령이 몸에 쇠붙이가 들어가서 죽는다고 그랬어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박대통령이 무슨 수술을 하다가 죽는가 그랬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총을 맞아서 돌아갔지요. 그리고 일본이 얼마 후에는 가라 앉는다고도 그랬어요. 26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27 학하리에는 가 보셨나요? 탄허스님과 같이 가 보았죠. 스님은 그곳이 명당자리라고 하셨지 요. 보통 절의 화장실은 법당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보통인데, 그곳은 바로 옆에 있어서 나는 이상하게 여겼어요. 스님은 그곳을 인재를 길러내는 도량으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셨어요. 27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탄허스님의 생각이 지금도 나십니까? 나지, 매일 나지요. 나는 탄허스님을 존경해요. 스님 때문에 내가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불교를 알 수 있었고, 교육학에 불교를 접목시킬 수가 있 었어요. 내가 한암스님, 탄허스님을 존경해요. 한암스님도 그렇고 탄허스님은 불 교식으로 말하면 오직 정진을 하신 분이에요. 두 스님은 정진을 엄청 하신 분이 에요. 한암스님은 도인 같은 분이셨고, 탄허스님은 조금 자존심이 강한 분이지요. 탄허스님은 신학문을 안 한 분인데, 동서 철학 특히 칸트에 대해서도 해박하셨 지요. 대단한 분이야. 요즈음은 신행생활을 어떻게 하시나요? 나는 지금도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국립묘지를 반 바퀴 돌면서 금강경 독송을 합니다. 그리고 길상사로 가는 지하철에서 독송을 또 한 번 하고, 길상사에서 참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독송을 또 다시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세 번씩을 합니다. 내가 이렇게 수행생활을 하면서 여생을 잘 보 내는 것도 탄허스님을 만난 인연에서 나온 것입니다.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28 탄허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해서 제가 찾아뵌다는 말을 들은 소회는. 글쎄요. 벌써 백 년이 되었나 여기면서 덤덤했지요. 나는 탄허스 님이 하교( 下 敎 )해 주신 향상일로( 向 上 一 路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서 정서적 사회 적 신체적인 측면에서 향상일로하는 길을 가려고 하고 있어요. 나는 지금껏 스 님의 가르침, 문집, 유묵을 통하여 불교를 믿고 생활해 왔어요. 스님 때문에 불 교와 교육학을 접목할 수 있었어요. 스님의 진면목은 대학자, 대학승, 석학입니 다. 머리가 천재입니다. 그러면서도 부단한 노력을 하신 분입니다. 이걸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오늘 귀한 회고 감사합니다. 내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증언 자료집을 만들 어 주시길 바랍니다. 수고했어요. 28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29 스님은 세계적인 사상가 29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대상 최창규 서울대 교수, 국회의원, 독립기념관 관장, 성균관 관장 등 역임 일시 2012년 8월 4일 장소 새길병원 서울, 성북 교수님은 제가 독립기념관 재직 시절에 모시던 관장님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탄허스님 과의 인연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내가 탄허스님을 만난 것은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합니 다. 서울대 교수였던 김종서 교수가 소개를 해서 만나게 되었지요. 스님이 나를 방문하는 형식으로,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만났는데, 첫인상이 아주 인자하시면 서도 재문( 才 門 ), 재기( 才 氣 )가 발랄하신 것이 인상이 깊었지요. 그러면, 첫 만남 이전에는 탄허스님에 대한 풍문을 들으셨나요? 들었지요. 탄허스님은 유불선을 회통한 고승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어요. 내가 서울대에서 그때 한국사상이라는 과목을 6, 7년간이나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탄허스님도 스님대로 나를 굉장히 만나고 싶었대요. 왜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0 냐하면 스님은 면암의 제자인 이극종 선생의 제자였고, 나는 면암의 현손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그러셨대요. 혹시 이극종이라는 분을 만나시지는 않았는가요? 나는 그 어른을 만난 적은 없었고, 주변 사람들이나 집안 어른들에 게서 얘기는 들었지요. 첫 만남에서는 어떤 대화를 하셨는가요? 첫 만남은 퍽 의미가 있었어요. 스님의 재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나는 스님에게서 강한 인상을 느낀 것이지요. 처음 만났을 때에 스님은 칸트의 순수이성을 가지고 논의를 하자고 그래요.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어요. 스님은 칸트를 조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스님이 왜 그러셨느냐 하면 만 유의 인식의 모체를 순수이성이라고 하면, 그를 환원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 고, 그 정답이 순수이성이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칸트에게는 아무런 정 답이 없다고 하시면서 칸트는 죽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스님에게 그러면 답이 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스님은 그것은 태극( 太 極 )이라고 하시면서 모든 것은 통체일태극( 統 體 一 太 極 )라고 하셨어요. 스님 은 돌은 돌이 아니고, 청산은 청산이 아니고, 똥덩어리는 똥덩어리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것들의 근본에는 태극이 있고, 모든 것은 통체일태극이라, 태극으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칸트의 순수이성에서는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서 칸트는 죽었다 고 하신 것이지요.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대단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스님이 칸트의 실천이성을 알았 으면 그렇게 보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봤지요. 30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1 그 후에도 자주 만나셨는가요? 그럼요. 개운사 대원암, 방산굴, 학하리에서도 만났어요. 우리 집 에도 오시고, 여러 번을 만났어요. 그리고 면암선생의 사당인 충남 청양의 모덕 사에도 오시고 그러셨지요. 31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탄허스님을 만나시면 어떤 이야기를 하셨는가요? 스님과 나는 앞으로 우리 민족의 통일과 나아가서는 세계평화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였어요. 스님께서는 그런 주제에 대해서 나와 대화를 해서 결론을 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하여간에 만나기만 하면 민족통일, 세계평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지요. 그럴 때에 주로 나온 것이 현묘지도( 玄 妙 之 道 ), 율곡의 이분수론( 理 分 殊 論 ) 등이었 어요. 그 분은 내가 볼 때에 유불도에 능통한 분이셨지요. 탄허스님은 민족의식이 강렬하셨고, 통일에 대한 관심도 많았지요. 나와 스님과의 대화는 나라 걱정이 초점이었어요. 스님께서는 불 가( 佛 家 )의 입장에서 동양사상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면서, 한민족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갈구하시는 것이었지요. 그러시면서도 스님은 겸손하시고, 순수하시고, 예리하셨어요. 그때 스님은 여러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보았지만, 내가 말 상대가 된 유 일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그때에 스님의 의견에 내가 답을 하면 스님은 기 분이 좋으셔서 옳지, 맞어 하시면서 얼굴이 상기되고 그러셨어요. 흥분된 모 습으로, 나와의 대화에 황홀해 하셨어요. 우리 집에 가끔 오시면 우리 집사람이 콩나물국을 내오면 맛있게 드시고 그랬지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2 현묘지도는 무엇인가요? 스님은 모든 도가 통합이 된다는 거였어요, 통합이 되면 통일을 이 룬다고 보셨어요. 그런데 스님은 문명의 전쟁은 종교전쟁을 말하게 되는데, 통 일이 되면 그런 전쟁은 해소가 되어버린다고 보신 것이지요. 그러면 21세기의 최상의 도는 평화인데, 그 해답이 우리 한민족에게 있다고 하셨어요. 스님은 통 체일태극만을 말씀하셨는데, 내가 통일의 어원이 통체일태극에서 나온 것이라 고 하자 스님은 그러냐고 하면서 기뻐하셨지요. 탄허스님은 인재양성을 많이 강조하였는데, 이런 말씀을 듣지 않았는가요? 인재양성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하였지요. 스님은 대전 학하리 에 학교를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자고 나와 이야기를 같이 하셨어요. 앞으로 그 곳을 세계 인류평화 연구의 메카로 하신다고 그랬어요. 탄허스님의 부친이 독립운동을 하신 내용을 아시나요? 그럼, 알지요. 그 당시에 스님과 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지요. 스 님의 아버님은 보천교 간부를 하면서 민족운동을 하였다고 그래요. 나의 할아버 지인 면암 선생은 의병을 일으키시고 대마도에서 순국을 하셨지요. 그래서 스님 과 그런 것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했지요. 그래서 스님과 나는 동질감이 있었 지요. 탄허스님의 은사인 한암스님을 아시지요. 스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지요. 스님이 스물두 살 때에 한암스님에 게 편지를 했어요. 탄허스님은 그 편지 내용을 나에게 설명을 하시더군요. 그래 32 그런 인연으로 입불( 入 佛 )을 하셨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깐 한암스님 때문에 유학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3 의 젊은 학도가 불교로 간 것이지요. 즉 유불( 儒 彿 )이 그 분(한암)을 통해 탄허스님 에게서 학문적으로 합일, 회통되었다고 볼 수 있지요. 탄허스님에 대한 추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스님과 자주 만나면서 대화를 하다가, 그러니깐 1978년 가을에 내 가 여러 일을 무리하게 하다가 과로로 발병이 되어서 쓰러졌어요. 내가 발병이 33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된 다음 해인 1979년 8월에 탄허스님께서 갑자기 나를 방산굴로 부르셨어요. 스님은 희대( 稀 代 )의 인물인 나를 구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시가 2천만 원짜리 산 삼을 구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최박사가 그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런데 당신에게는 돈이 5백만 원밖에 없으니 박대통령에게 편지로 그 사정을 이야기 해서 그 산삼을 먹어야 된다는 것이었어요. 박대통령이 나를 좋아하니 돈을 보 내줄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스님은 그 산삼이 나의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고 하셨어요. 스님은 이렇게 인간성이 좋으신 분이었어요. 그 산삼을 잡수셨는가요? 먹을 수가 없었지요. 내가 편지를 쓰지 않았어요. 탄허스님에게 그 런 말씀을 들었지만 내가 스님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어요. 우리 집에 90조모가 계시고, 70노모가 계시는데 그 분들은 산삼은커녕 인삼도 제대로 못 쓰시고 생 존하고 계신데 내가 나의 치병에 급급한 나머지 산삼을 먹겠다는 편지를 쓸 수 가 없다고 하였지요.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충신의 가문에서 효자가 난다고 하는데, 면암이라는 충 신의 집안에서 효손( 孝 孫 )을 두었다고 하시면서 충( 忠 )이란 것에 감탄을 하시더군 요. 스님께서는 그 비싼 산삼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다른 산삼을 구해서 나에 게 먹으라고 주셨어요. 그래서 나는 효과를 봤지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4 교수님이 국회의원을 오래 하지 말고, 학교로 돌아가라고 스님이 말씀하였다는 것을 제가 들었어요. 내가 국회의원이 된 것은 1980년인데, 내 고향인 청양에서 두 번을 하였어요. 내가 국회의원을 처음 할 때에 스님이 학교로 가라고 몇 번이나 하 셨지요. 1980년 그때에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어요. 1979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를 당하고, 광주사태가 일어났고,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이 새 롭게 등장하고 그랬어요. 이런 것이 이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일어났어요. 동 양에서는 장군이 쓰러지면 패전이라고 봐요. 박대통령이 죽었으니, 이는 패전의 개념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을 도저히 그냥 넘길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 무렵, 집권당인 민정당에서 나에게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권유가 심했어요. 그러나 나는 서울대를 떠날 수 없다고 하면서, 그런 제의를 아홉 번 이나 사양을 했어요. 내가 서울대를 나와서 석사, 박사를 거쳐서 교수가 되었기 때문에 한 번도 떠나지 않은 서울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하였어요. 그랬더니 전 두환 대통령이 서울대 교수를 겸직하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있게 명분을 만들 어 놓았어요. 그러니깐 내가 어떻게 안 할 수가 있겠나요. 서울대 교수를 겸직 으로 하면서 국회의원을 한 것은 내가 처음이었어요. 우리나라 정치사에 유일한 일이었지요. 바로 그때에 이런 나의 신상 변화를 갖고 탄허스님과 대화를 하였 지요.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그러면 한 번만 하고, 두 번은 절대 하지 마라고 하 셨어요. 교수님이 탄허스님의 비문을 쓰셨지요. 34 내가 스님이 입적하시고 나서 세워진 비석의 비문을 썼지요. 비석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5 을 만들 때에 스님의 상좌와 관계자들이 나를 찾아와서 비문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어요. 그러나 나는 처음에는 사양을 하였지요. 그랬더니 그 분들이 사실은 이런 부탁은 우리 뜻이 아니고,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탁( 遺 託 )으로 하신 말 씀이라고 이야기를 하대요. 그래서 승낙을 했지요. 내가 비문에서 강조한 것은 스님은 동방문화의 핵( 核 )이었다는 취지였어요. 35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상원사에서 하였던 제막식에도 갔지요. 그 비석을 본 느낌은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었어요. 첫째는 내가 스님을 흠모하는 것이 절실한 것에서 나온 것이고 둘 째는 스님과 함께 둘이서 하려고 한 인류의 영구 평화에 대한 사업을 함께하지 못한 것에서 나온 것이지요. 비석을 세운 후에 비문 글자에서 광채가 나고, 비 석에서 방광( 放 光 )을 하였다고 상원사 스님이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어요. 탄허스님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시나요? 내가 보기에 스님은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었어요. 여기에서 말하 는 한국적이란 것에서 유불선의 회통은 한국 사상의 기본이지요. 인류의 강령인 자유, 평등, 평화라는 것은 천부경( 天 符 經 )에서 나온 것이에요. 이것이 고운 최치 원의 현묘지도로 전파되고, 율곡의 이분수론이란 것도 태극을 통한 현묘예요. 인내천( 人 乃 天 )은 천인합일( 天 人 合 一 )이거든요. 그래서 앞에 나온 인( 人 )도 천( 天 )이고, 뒤에 나온 천( 天 )도 사람인 거죠. 이것은 후천과 선천이 만나서 천부경을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나는 스님을 대선사로 보지요. 원래 스님은 학승인데, 학문을 통해서 선의 경 지가 높고 깊어진 것이에요. 그래서 학승 겸 선승으로 봐요. 그리고 나는 어려 서부터 집안에서 한문을 공부해서 유학의 경전은 그런 대로 외우는 편이었는데, 스님이 유불선에 대한 모든 것을 외우는 것은 당할 수가 없더군요. 스님의 암기 력은 당해낼 수가 없었지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6 최근에 탄허박물관이 세워졌어요. 나도 거기에 가 보았어요. 박물관이 세워졌다고 보도가 되어서 알 게 되었는데, 개관기념식 때에는 못 가고, 그 후에 가 봤지요. 교수님은 스님에게서 글씨를 받지 않았는가요? 나도 한 점을 받았어요. 지금도 집에 있을 거예요. 스님께서는 주 일무적( 主 一 無 適 )이라는 것을 직접 써서, 쌍낙관을 찍어서 보내왔어요. 주일무적 은 불가사상이 아니고, 천부경의 사상이에요. 유학, 주자학에서도 자주 쓰이는 개념이지요. 스님은 그것을 한국사상의 핵을 이야기한다는 의미로 직접 써서 보 내 주셨지요. 후학들이 스님에게 배울 점이 있으면 무엇일까요? 우리가 스님에게 배울 점도 주일무적에서 찾을 수 있어요. 사람이 하나의 진리를 집중하면, 그것은 태극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지요. 태극을 통하 면 숫자로는 1이지만, 무( 無 )는 0이에요. 0과 1의 만남이 디지털의 원리잖아요. 주일무적은 우리 동방의 태극사상인데, 스님은 그것을 생활화셨어요. 생활로 실 천을 하셨어요. 그것을 쉽게 풀어서 말하면, 주일무적( 主 一 無 適 )이라고 할 때 주일( 主 一 )이란 하 나를 위주로 한다 는 것이며, 무적( 無 適 )이란 이리저리 변하여 옮겨감이 없다 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이 오직 하나를 향하게 되면 이것이 나아가 심신( 心 身 )의 통일 혹은 집중상태를 가져오게 되어 마음의 일심( 一 心 ) 상태가 되니, 이것이 곧 경이고 진리가 된다는 의미로 보면 됩니다. 36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7 탄허스님의 생각이 가끔 나시는가요? 그럼요. 자주 생각이 나요. 스님은 가셨지만 내가 스님과 함께 하 려고 하였던 그것을 나 혼자라도 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해서 스님과 궁리하였 던 것의 만분의 일이라도 완성을 하면 스님의 유업이 달성이 되는 것이지요. 나 는 지금 몸이 불편하지만, 병이 나아지면 천부경을 펴내려고 그래요. 그러면 내 37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책을 통해서, 나를 통해서 스님은 다시 현신( 現 身 )하는 것이지요.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추억을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박사는 예전에 나와 함께 독립기념관에서 한민족의 역사와 얼을 찾는 작업을 하더니, 이제는 불교계 고승들의 역사 복원작업을 하는군요. 아무 쪼록 탄허스님을 세계적인 사상가로 정립시켜 주길 바래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8 내 평생에 만난, 가장 두드러진 분 대상 최승순 강원대 교수, 강원문화연구소 소장, 율곡학회 이사장 등 역임, 강원대 명예교수, 강원도사 편찬위원 일시 2011년 8월 24일 장소 최승순 자택 춘천 강원대 명예교수이신 선생님도 탄허스님과 인연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인연의 시작은 어떻게 되었나요. 나는 1951년 8월에 강릉농고에서 선생을 시작하였고, 1970년부 터는 강원대의 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정년퇴임했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초반 그 시절에 주말이 되면 강릉 향당의 노인들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도 받고, 고 서적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강릉의 어떤 노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공연히 나에게 찾아오지 말고 오대산의 탄허스님을 찾아가라 고 그래요. 그 노인은 자네 공연히 우리와 만날 것 없이, 월정사 탄허스님은 내가 만나 본 사람 중에 율곡 이후 처음 보는 대학 자이니 시간이 나면 탄허스님을 만나 보게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노인은 한 38 학과 유학을 한 어른이었는데, 세월이 너무 흘러 이름은 기억이 안 나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39 그렇습니까, 그러면 언제 탄허스님을 만났는가요? 그런 말을 들어서 탄허스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1950년대 중반인 가 학교에서 오대산 월정사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학생들의 통솔 은 나이 먹은 학생에게 맡기고, 나는 탄허스님을 찾아갔어요. 그때 월정사는 전 란으로 다 타버리고 함석집밖에 없었어요. 그래 함석집에 가서 탄허스님을 찾으 39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니깐 어느 스님이 따라오라면서 나를 대웅전 옆의 조그만 집(인법당)의 뒷방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스님은 그 뒷방에 앉아 있거든요. 그래 나는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한 시간 가량 대화를 했습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이 분은 하늘이 내린 분이고, 보통 근기가 아닌 상근기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강릉 노인이 한 말이 딱! 생각나더라 구요. 그래서 그 노인이 율곡 이후로 처음이라는 말을 내게 했구나, 그랬구나 하 고 여겼지요. 그 이후로 자주 만나 뵈었는가요? 그럼요. 스님이 강릉에 오시면 꼭 들르는 곳이 법왕사입니다. 그 러고 나서는 포교당에서 머물지요. 그러면 스님은 인편으로 저를 오라고 하십니 다. 그 시절에는 전화가 없어서 그렇게 사람을 보냈어요. 그러면 스님을 만나서, 서로 얘기하고 그렇게 지냈지요. 한 번은 나에게 말하시기를 오늘이 경신날인데 잠을 자지 않고 나하고 이야기 를 할 수 있느냐고 그래요. 경신날은 스님들은 잠을 안 자고 밤을 새는 날입니 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날은 스님과 잠을 안 자고 불교 이 야기, 유교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지낸 적이 있지요. 그때에는 책도 없었고, 볼 것도 없었어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0 선생님이 강원일보에 기고한 강원문화의 연재 내용에는 영은사로 스님을 찾아갔다는 내 용이 나옵니다. 그것을 들려주시지요. 그것이 아마 1960년대 초일 것입니다. 내가 그 무렵에 조당집 과 해동고승전 을 번역했는데, 강릉포교당의 이수동 포교사가 갖고 있는 불교사전 의 신세를 졌어요. 그러나 그 사전도 시원찮아 스님에게 물어볼 것도 있고 그래 서 스님에게 편지를 썼어요. 찾아가도 좋겠냐고, 그랬더니 스님께서 시경 의 구 절을 인용하시면서 오라는 답이 왔어요. 그래서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갔는데 무 척 추웠어요. 그때 스님에게 받은 편지를 최근까지는 보관했었는데 지금은 어디 로 갔는지 못 찾겠더라구요. 궁촌에서 내려 걸어서 영은사로 찾아갔더니 스님은 그곳에서 5백 미터 떨어 진 일소굴이라는 곳에 계셨어요. 영은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호롱불을 든 스 님을 따라 산길을 갔더니 산 속에서 불빛이 반짝거리고 강의하는 낭랑한 목소리 가 스님의 음성이었어요. 일소굴이라는 집은 초가 삼칸집이었어요. 한칸은 부 엌, 한칸은 스님방이고, 또 한칸은 시봉을 하던 인보스님이 있던 방이었어요. 영은사에서 보았던 것을 구체적으로 회고하여 주세요. 몇 일간이나 있었나요? 거기에 머문 것은 한 보름 정도는 있었어요. 그때에 동국대 대학원 생 7~8명이 와서 스님에게 장자 강의를 들었어요. 그들은 전부 남자였고, 인솔 교수는 털보교수로 유명한 서경수 교수가 함께한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내가 간 날에도 밖에서 인기척을 하자 나를 방으로 들어오라고 해서, 인사를 드렸더니 나를 그 학생들에게 소개하시고는 장자 강의를 계속하시더라구요. 그 런데 스님은 당신이 갖고 있던 책은 날 주고, 애들을 마저 가르친 후에 우리끼 리 이야기를 합시다 고 하시면서 학생에게 어디까지 했냐고 그러셨어요. 그러 40 니 학생이 어디까지 했습니다 하니까 스님은 책을 보지 않고 장자를 줄줄 외시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1 면서 강의를 하시더군요. 그대로 외워서 하시더라구요. 나는 그때 속으로 장자 를 몇 번을 하면 저렇게 되나 그런 생각을 하였어요. 그래서 율곡 이후에 처음 나온 대학자라는 말을 또 한번 실감했지요. 그때 스님은 조그만한 법자( 法 子 )를 딱 딱 치시면서 말씀을 하셨어요. 스님은 새벽 두 시 반이면 일어나셔서 인근 계곡물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하 41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십니다. 나도 스님과 한방에서 같이 지내고 잠을 잤으니깐 따라가서 계곡물로 세수를 하였지요. 그러고 나서 스님은 그때부터 다섯 시까지는 참선을 하더구만 요. 그래서 나도 할 수 없이 같이 참선을 했지요. 그렇지만 스님은 날보고, 당신 은 출가한 스님이어서 이런 생활을 하지만 손님인 나는 그렇게 안 해도 되니, 잠 을 자고 싶으면 더 자라고 말씀했어요. 그러나 어디 잘 수가 있나요, 같은 방에 있으면서. 공양은 아래 절에서 가져오는 것으로 스님과 같이 겸상을 했어요. 아 침에는 비구니들 몇 명이 와서 스님에게 배웠는데, 그때 비구니들에게는 유교 경서를 흑판에 써서 가르쳤습니다. 일소굴이라는 간판은 스님이 쓰신 한문으로 된 것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 생활을 하셨군요. 나는 보름을 머물다가, 스님에게 내일 가겠습니다 하고 미리 알 리니까 스님은 인보야, 벼루에다가 먹을 갈아라 그러시더라구요. 그때 병풍채 의 글씨를 스님에게 받아서, 저는 그것을 병풍으로 만들어 가보로 보관하고 있 습니다. 그로부터 20년 후에, 탄허스님도 열반하신 후에 내가 우연히 홍천의 수타사를 가게 되었어요. 거길 갔는데 한 스님이 나를 유심히 보더니, 혹시 강원대 어느 교수님이 아닙니까 하고 물어요. 그래 그렇다고 하니, 20년 전에 영은사에 오 셨을 때에 그 옆방에 있었던 탄허스님 시봉을 하던 인보를 아시겠습니까? 그래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2 요. 그러나 나는 기억이 잘 안난다고 그러니깐 그 스님이 제가 인보입니다 라 고 얘기를 하더구먼요. 그래 거기서 재회한 일이 있어요. 그때 탄허스님은 그 스 님에게 인보, 이 멍충아! 라는 소리를 많이 했어요. 그 이후에도 스님을 찾아 뵈었지요. 그렇지요. 월정사를 찾아가면 방산굴에서 자고 그랬습니다. 그때 스님은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사찰에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세 부류가 있다고 그랬어요. 첫 번째는 보통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공양 때가 되면 대중공양 처소 로 안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와 겸상을 하겠다고 말해서 상을 올려보내게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오늘은 내가 손님과 같이 잘 터이니 손님의 이부자리를 펴서 대접하는 것이라고 그랬는데, 이것은 국빈 대접을 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그러니 나는 국빈 대접을 받은 거지요. 나는 가끔 방산굴에서 스님을 모시고 잤 어요. 그리고 1969년인가 그 무렵인데 강릉의 향교에서 한학자들이 모여서 강릉의 유명한 향토지인 임영집 을 재발간하는 작업을 했어요. 그 작업을 강릉 향교인 명륜당에서 하였는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문을 하는 노인들이었고 나만 30대였어요. 그런데 강릉의 보현사에 있는 낭원국사( 郎 圓 國 師 ) 오진( 悟 眞 )의 비문을 읽는데 한문이 너무 어려워서 그만 거기에서 걸렸단 말야. 그러니 노인 들이 이것을 빼라고 그래요. 한문으로 된 비문만 넣고, 번역이 안 되니 번역하 지 말고 그냥 가자는 것이지요. 그래서 내가 이것을 빼면 영원히 그 내용을 알 수 없는데, 그러면 유명한 글을 알 수 없게 되니까 번역하지 않고 그냥 놔둘 수 가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내가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탄허스님을 만나서 읽어 오겠다고 그랬어요. 42 그래서 다음 날, 강릉에서 버스를 타고 오대산으로 가서 스님을 만났지요. 그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3 랬더니 스님은 첫마디가 방학이라서 쉬러 왔는가 그래요. 그래서 나는 쉬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일거리를 가져 왔습니다 했지요. 그리고는 스님에게 강릉의 보현사에 가신 일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았어요. 보현사를 가셨다면 그 비문을 읽으셨겠고, 안 가셨다면 비문을 보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이지요. 그랬더니 스 님은 보현사를 가 본 적이 없다고 그래요. 43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그래서 나는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였지요. 강릉 향교에서 노인들과 비문을 읽 다가 막혀서 찾아오게 되었다는 것을 죽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스님은 내가 들으니 강릉은 문향으로 이름이 나 있다는데 비문 하나를 읽지 못하여 이 더위 에 사람을 여기까지 보냈느냐 면서 그 비문을 보자고 하시더니 처음부터 줄줄 해요. 스님이 읽어 내려가시자, 나는 교수가 강의하면 학생들이 받아 적듯이 스 님이 읽는 토를 달아 내려가기가 바빴지요. 그러면 그 내용을 강릉 향교의 노인들에게 전달하셨지요? 스님은 그 비문을 다 보시고 나서 하는 말씀이 내가 강릉 노인들 에게 한마디를 하면 이 비문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다 들어가 있어서 어줍잖 은 유생들은 절대 못 읽겠다 고 하시더라구요. 나는 다음날 향교에 가서 그 노 인들에게 탄허스님의 독후감을 전달했지요. 그랬더니 노인들이 아주 기분이 나 쁜 표정을 지었지요. 그러나 노인들도 더 이상은 아무 말도 못하고, 내가 읽어 왔다고 하면서 비문을 죽 읽고, 설명을 했지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탄허스님은 화엄경 역경, 출판 불사를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계시지요? 그럼요. 내가 그 전에 동대문 밖의 청룡사에 계시는 스님을 찾아 간 적이 있어요. 거길 가 보았더니 그 절은 비구니들이 사는 절입디다. 그런데 스님이 거기 문간방에 있었어요. 그래 내가 인사를 마치고 나서, 이 절에는 임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4 자가 없소. 아니 큰스님을 이런 문간방에 모시고 있어요? 라고 했어요. 그때 그 방에는 비구니들이 있다가, 내 말을 듣고 막 웃어요. 그랬더니 스님이 나니깐 문간방이라도 와 있지, 나 아니면 이런 곳에 오지 못한다 고 하면서 웃으시더라 구요. 역경을 하시던 다른 곳에 가 보셨나요? 대원군 별장에를 가봤어요. 스님으로부터 기별이 왔어요. 화엄경 마지막 교정을 하기 위해서 대원군 별장에 와 있는데 방학이 되면 기회를 내서 올라오라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방학이 되자 시간이 나서 서울에 가서 택시를 타고 대원군 별장을 가자고 하니깐 그리로 데려가 줬어요. 대원군 별장에를 갔 더니, 별장은 보이지 않고 대궐집 같은 것만 보여, 촌놈의 눈으로 보니까요. 택 시기사에게 여기가 대원군 별장이 맞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그렇게 알고 다녔으 니 내리라고 그래요. 택시에서 내렸는데, 사람도 보이지 않아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어디가 탄허스님이 계신다는 별장인가를 찾으면서 왔다 갔다를 했어요. 그런데 얼마 후에 택시가 하나 오더니만 비구니 스님이 내리더라구요. 그런데 그 비구니 스님이 큰 철대문 안으로 손을 넣어서 버저를 누르더군요. 그래서 나 는 그곳이 들어가는 출입구인 것을 알고서는 비구니 스님에게 여기에 탄허스님 이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해서 왔는데 나를 스님에게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했어 요. 그래 그 비구니 스님의 안내를 받아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한참을 들어가고, 대문 몇 개를 통과해서 맨 위에 있는 채의 스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들어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스님이 내 키가 대원군 키와 같다는 그런 말 씀을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대원군이 오면 이 방에서 거처했다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때가 겨울이어서 그런지 스님은 나의 인사를 받고 나서는 바로 담요를 44 뒤집어 쓰면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방이 추워서 그러셨겠지만 큰스님이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5 담요를 쓰고 있는 것이 저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래서 내가 스님에게 나라 에 큰일이 났습니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스님은 왜 대학생들의 데모가 일어났 습니까? 그래요. 그래서 나는 신라 이래로 제일가는 역경작업을 해서 그 원고 가 10만 장이 넘는 출판의 마지막 작업을 하는 스님이 이렇게 추워서, 담요를 쓰 신 채로 교정을 보고 계시니 이래 갖고 나라가 잘 되겠습니까? 하였죠. 그리고 45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는 지금 무교동의 맥주집에서는 더워서 저고리를 벗어 던지고 맥주를 마시고 있 을 터인데, 이곳에서는 추워서 담요를 덮고 교정하고 있으니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웃으시면서 그게 바로 되는 거요 하 시면서, 맥주집이 추워서 담요를 두르고 있으면 그 맥주집은 술꾼이 없어 망할 것이고, 우리는 한사( 寒 士 )요, 수도하는 한사가 등 따시고 배부르면 다른 생각할 지도 모르기에 한사는 춥고 배고프게 마련이오 이러셨다 말입니다. 스님에게 그런 말씀을 들었는데, 그곳에서는 자지 않고, 구경하고 대화를 하고는 바로 내 려왔어요. 그 방에는 스님밖에 없었고, 집이 크니까 다른 작업자들은 흩어져서 다른 방에서 작업을 하더라구요. 출판 불사와 연관된 내용은 들은 것이 없나요? 한 번은 강릉포교당에서 뵈었는데, 스님의 오른쪽 손가락 하나에 붕대에 감겨 있어요. 그래서 내가 왜 붕대를 감았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그랬더 니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화엄경 원고 16만 장을 쓰고 나니, 만년필이 닿는 그 부분에서 사리가 나왔는지, 뭐가 나와서 그것을 없애는 수술을 했다고 그래 요. 아마 티눈이 박혀 있어서 그러셨겠지요. 그래서 수술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6 춘천에서는 뵙지 않았나요? 스님이 춘천에 오셔서 전화를 하셨어요. 내가 그 전에 서울에 가서 학생들의 특강에 모시려고 부탁을 하러 갔다가, 동국대 대학선원에 강의도 있으 시고 주말에도 시간이 없어서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는 내려왔거든요. 그런데 춘 천에서 전화가 왔단 말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시면 우리 집에서 주무시고 올 라가시라고 권유해서 하루 주무시고 올라간 일이 있어요. 스님이 그렇게 된 것 은 여기 서봉사라는 절이 있어요. 그 절의 보살이 절을 짓고서 봉불식을 하는데 스님보고 꼭 와달라고 해서 왔는데, 행사에 장차관 부인네 차가 아홉 대나 왔다 고 하시면서 법회를 마치고 서울로 가는 길에 전화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 하루 주무시고 그 다음날 떠났어요. 그날 밤,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원고는 다 되었 는데 출판비가 없으시다면서 걱정하시는 말씀을 했어요. 어떤 사람이 출판비를 대겠다고 하는데 조건부로 하는 것이어서 거절하였고, 조건이 없는 후원을 받아 야 하는데 아직은 출판비가 없다는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나는 스님이 춘천에 오셨다는 것을 몇 사람에게 기별을 했더니, 찾아왔던 사 람이 있었어요. 그 중에 공화당 활동을 하던 분이 있었는데, 스님이 나가실 때 에 자기 사무실을 들르게 해서 스님의 글씨를 한 점 받고 싶다고 해요. 그래서 가시는 길에 그 사람의 사무실에 갔더니만 벼루는 그렇다고 하지만, 붓이 형편 없었어요. 붓이 없으면 나에게 이야기를 하든가 하면 내가 준비를 할 터인데, 쓰 지도 못하는 것을 내놓았더라구요. 그래도 스님은 아무 말도 없이 선념국사( 先 念 國 事 ) 후사사사( 後 思 私 事 ) 라는 것을 써주셨어요. 탄허스님의 상좌분들과도 인연을 가졌는가요? 46 탄허스님에게 오대산 수도원에서 배우던 김운학스님과는 친하게 지냈어요. 그 스님은 강릉포교당에 와서 문학강연도 하고 그래서 알고 지냈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7 데, 강릉 우리집에 자주 오고 나와는 친하게 지냈어요. 그런데 1960년대 초에 내게 편지가 오기를 당신이 지금 설악산 계조암에 있는데 시간이 나면 행각을 할 겸 탐방을 할 겸 해서 놀러 오라구 그랬어요. 그래서 나는 설악산 탐방도 하고, 설악산에 관련된 전설의 현장도 둘러보려고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때에는 여름이라 비가 자주, 많이 왔어요. 그때만 해도 설 47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악산의 등산 시설, 보호 시설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깐 비가 조금만 와도 계곡물 이 넘치고 그랬어요. 그러니깐 등산이나 탐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곳 에서 열흘간을 머물다가 그냥 내려왔어요. 그때 단벌이 비에 젖어서 스님의 옷 을 빌려 입고 내원암으로 내려갔더니, 지나가는 행인들이 나를 스님인 줄 알고 깍듯한 대접을 해서 예상치 못한 청복( 淸 福 )을 받은 일도 있어요. 그때 운학스님이 계조암 인근에다가 바위에 붙여서 토굴을 조그마하게 지어 놓고 있었는데 바위에다가 탄허스님이 써 준 글씨인 운학산방이라고 새겨 놓았 더라구요. 그것은 운학스님이 탄허스님에게 부탁을 해서 받았다고 그랬는데, 맨 바위에 한문으로 되어 있었어요. 내가 그후에 그곳에 가 보지 못했는데 지금도 새겨져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그대로 있을 거예요. 그곳 계조암 스님이 공 양 때에는 목탁을 탕탕 치면 공양하라고 알려주고 그랬지요. 그리고 희찬스님도 알고 지냈는데 한 번은 월정사에서 하룻밤을 같이 자면서 한암스님의 열반 장면을 말해 주었어요. 한암스님이 좌사( 坐 死 )했잖아요. 그때 당 신이 시봉한 이야기입니다. 그날, 며칠 전부터 한암스님이 잘 안 드시더래요. 그 러더니 열반하는 그날 아침에는 희찬스님보고 오늘이 몇일이냐고 묻고, 좌복을 깔라고 하고, 가사와 장삼을 입혀다오 그랬대요. 그래서 희찬스님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한암스님이 좌복에 앉아서 가사와 장삼을 입으시고는 눈 을 감으셨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해요. 그래 가만히 보니 한암스님의 모습 이 이상하고, 열반하실려고 하는 것 같아서 상원사 밑에 있었던 수색대의 중대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8 장에게 말을 했답니다. 그 중대장은 불교 신자인 모양으로 아침저녁으로 한암스 님에게 와서 문안을 드리고 그랬대요. 그래서 그 중대장이 카메라를 갖고 와서 찍은 것이 한암스님의 마지막을 찍은 것으로 널리 알려지고, 지금도 상원사에 있는 그 사진이라는 말을 나에게 하시더라구요. 교수님도 탄허스님과 공식적인 대담을 하였지요? 딱 한 번 했어요. 강원대 신문사가 주관한 것인데 내가 주선했지 요. 그게 오대산 방산굴에서 하였을 것입니다. 탄허스님은 미래 예측을 하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혹시 이와 연관된 것을 들으신 것이 없나요? 나에게 그런 말씀은 별로 없었고, 다만 이런 것은 보고 들었어요. 스님은 그때 우리집에서 하루 주무시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셔서 동전을 가지고 육효를 치시면서 운수를 봐요. 동전의 앞뒤가 안팎으로는 음과 양으로 볼 수 있 으니 그리 하시더군요. 그리고 월정사에 계실 때에, 스님을 모시고 잘 때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것은 월정사 대웅전을 새로 지을 때의 조중훈 회장과의 인연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초반에 스님이 그해 운수를 보니까 만약 속가에 있으면 천석의 재원이 붙는다고 나왔대요. 내 집에서 동전 갖고 하신 것처럼 하셨겠지요. 그랬더니 천 석이 생긴다고 나와서 스님은 혼자 웃고 말았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해 스님이 동국대 대학선원에서 30여 명을 모아 놓고 법문을 하였는 데, 그때에 조 아무개라는 노인도 있었다고 해요. 그 노인은 탄허스님도 잘 모 르는 노인이었는데, 강의가 다 끝나는 날 스님을 찾아와서는 내일 스님 어디에 48 계십니까? 별일이 없으면 제가 점심 대접을 하고 싶은데, 나오실 수 있습니까?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49 그랬대요. 그러고 그 다음 날에 스님을 모시러 좋은 차가 왔더래요. 그런 차는 서울에서도 몇 대 안 되는 차라고 그래요. 그 차에서 조 아무개라는 노인이 내렸 는데, 그 노인이 어떤 젊은이를 데리고 왔더래요.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젊은이 가 바로 대한항공의 조중훈 회장이었어요. 그래 그날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 그 노인이 하는 이야기가 얘가 월남에 가서 돈을 많이 벌어 왔습니다. 스님이 돈 49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이 없어 월정사 대웅전을 중수도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 제 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고 하였던 것이지요. 그러자 조회장이 자기가 돈을 대겠다고 하면서 얼마나 필요합니까? 그랬어요. 그러니 스님은 자기는 자세히 알지를 못하고, 상좌들이 그러는데 얼마가 든다고 그렇게 말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깐 조회장이 주머니에서 수표책을 꺼내더니 거기에다가 무엇인가를 쓰 더래요. 그래 스님이 조회장에게 이것이 무엇인가 하니깐, 조회장은 스님은 돈 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 모양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현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라고 그랬어요. 스님은 나야 산중에 있어서 돈에 대해서는 모른다 고 하니까 조회장은 그러면 스님의 도장을 여기에 찍어 주세요 하면서, 스님의 도장이 아니면 절대로 돈이 못 나갑니다 는 그런 말을 하였답니다. 그런 인연으로 월정 사 대웅전 중수비의 거의 전부를 받았다고 그랬어요. 그러시면서 그렇게 조회장 의 말을 들을 때에, 스님은 금년 초의 당신 운수에 나온 속가에 있으면 천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생각하고, 바로 이거로구나 하였대요. 그러시면서 나에 게 조회장이 돈을 준 것은 오대산 월정사 보고 준 것이 아니라. 김탄허를 보고 준 거여 그런 말씀을 했어요. 월정사 재건 불사에는 조중훈 회장의 시주가 대단하였지요. 그래 가지고 대웅전 불사 회향식을 하고 조중훈 송덕비 제막식을 하는데 조중훈 회장이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비행기를 타고 강릉까지 와서, 거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0 기에서는 차를 타고 오대산에 왔더래요. 와서 제막을 하고는 거기에 글자로 대 시주 조중훈이라고 새겨진 것을 보고는 감격을 했단 말이지요. 조중훈씨가 하는 말이 월정사는 역사가 1300년이나 되는 고찰인데, 돈 몇푼을 냈다고 해서 그렇 게 비석을 세워준 것은 도무지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앞으로 돈이 얼마나 더 들어가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스님은 총무, 재무를 보는 애들이 알지 잘 모르겠다고 하니 하여간에 자기가 더 보시를 하겠다고 그랬대요. 그래서 오 대산 월정사에 조중훈 송덕비가 서고, 재건불사가 된 것입니다. 탄허스님도 강원도 문화의 인물로 볼 수 있지요. 그럼요. 우리들은 자기와 관계가 조금 있으면 일부러 끄집어 내고, 그것을 자기들의 역사와 문화로 만드는 경향이 있지 않아요. 그런데 탄허스님은 월정사 조실을 하셨으니 저절로 강원도의 문화가 되지요. 그런 이야기는 제가 강원일보에 <강원문화 회고>라는 주제로 연재하던 것을 묶은 강원여지승람 이 라는 책에도 쓰여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탄허스님 열반 시에 교수님이 조사를 기고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원일보에 기고한 것입니다. 나와 스님과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써 달라고 해서 몇 자 쓴 것이지요. 그 세부 내용은 세월이 가서 잘 기 억이 안 나요. 다만 탄허스님에게서 불교에 대한 것을 들으면 스님 같고, 유교 에 대한 것을 들으면 선생 같고, 도교에 대한 것을 들으면 탄허당 같다는 그런 이야기를 갖고 쓴 것은 기억이 나요. 이 분은 유불선을 다 통합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일 문제되는 것이 뭐냐 하면, 탄허스님 같은 그런 재질이 있는 분이 앞으로는 없을 거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 50 은 나는 처음 봅니다. 그런 스님은 세상에 없어요. 우리는 남의 글을 외우기도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1 어려운데, 스님은 불경, 장자, 유교경전 같은 것을 다 외우지 않습니까? 누가 그 랬지, 장자가 다시 살아 나온대 해도, 탄허스님보다 강의를 더 잘할 수 없다 고요. 교수님이 탄허스님을 만난 의미를 어떻게 보시나요? 51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나는 평소에 그렇게 위대한 분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어도 몇 분은 만났어요. 학교에 다닐 때에는 위당 정인보 선생을 직접 뵙지는 못했어도 더러 들은 적이 있고, 육당 최남선은 학교에 다닐 때에 본 적이 있습니다. 성균관대 학교의 부학장님이 두루마기를 입은 허술한 분을 모시고 학교에 왔더라구요. 그 날은 육당의 특강이 있다고 해서 나도 들으려고 왔는데, 그 강연장에를 갔더니 바로 그 허술하게 생긴 사람을 부학장님이 육당 최남선 선생이라고 소개를 하더 군요. 그래서 나는 외모하고는 많이 다르구나 하면서, 속으로는 깜짝 놀랐어요. 하여간에 그런 분을 몇 분 만났지만, 내 평생에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탄허스님 이었어요. 오늘 귀중한 회고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내가 탄허스님과 인연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오신 것에 대해서 고맙게 여깁니다. 좋은 자료집이 나오길 바랄 뿐이지요. 수고가 많 습니다.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2 천하의 보물, 제 인생의 스승 대상 박재원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국제불교도협의회 수석부회장, 익성회 회장, 한마음선원 이사, 한마음 전국불자회 전국회장 등 역임, 현재 한마음선원 상임고문 일시 2012년 10월 22일 장소 한마음선원 회장님과 탄허스님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요? 저는 연세대 사학과를 나와서 5 16이 나던 해(1961)부터 국사편찬 위원회의 편사연구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 을 하다가 문집 같은 것을 보면 왕도정치니 천리( 天 理 )와 같은 개념이 나와요. 이 런 것은 한문으로도 직역이 잘 안 되는 철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것 을 공부 좀 해서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런 방면에 조 예가 깊은 탄허스님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탄허스님을 처음 뵌 소감은 어떠하였는가요? 52 제가 스님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60년대 후반 월정사 방산굴이 었어요. 처음 방산굴에서 만나고 나서, 그 이후에는 대원암에서 꾸준히 만났고,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3 또 대전 학하리에서도 뵈었지요. 스님이 서울에 오시면 자주 뵙고 그랬습니다. 저는 스님 옆에 있는 것이 그냥 좋았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뵈었을 때에 제가 이것 저것을 물어보면 스님은 말씀을 잘 안 하시고, 그냥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무엇을 여쭈어 보면 스님은 선문답으로 답 을 하시고, 글쎄올시다 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스님의 말씀도 들어 53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보고, 또 스님의 책을 읽어 보고서 이 어른 밑에서 공부하기는 힘들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래 저는 탄허스님에게서 배우는 것보다는 탄허스님의 무량한 끝이 없 는 동양철학과 경륜을 모든 사람들이 얻어 배울 수 있도록 내가 도와줄 수는 없 을까를 궁리하였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셨는가요? 그 시절에 저는 30여 명의 청년지도자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친목회 성격이었지요. 그들 중에는 기독교인도 있었지만, 저는 이 사람들을 데리고 탄허스님에게 가서 인사도 하고, 자주 뵈러 갔어요. 스님은 그럴 때면 저희들에게 질문을 툭 던지시고, 저희들은 그것에 대해 궁리를 하면 서 자꾸 친해갔죠. 그러나 스님은 저희들의 질문에는 잘 대답하시지 않는 조금 은 오만한 분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스님이 서울에 오시면 여기저기 모시고 다니는 등 친근하게 모시다가 10여 년이 된 1970년대 후반 무렵에 저희들의 모임은 익성회라는 이름을 띠고 새출발을 하였습니다. 바 로 그때에 스님께서 익성회( 溺 誠 會 )라는 단체명을 지어 주시고, 그 뜻을 적어도 주 셨습니다. 즉 스님이 익성회를 만들어 주신 것이지요. 그때 스님께서는 저희 회 원 30명 전부에게 수계 법명을 개인적으로 지어 주시고, 그를 증명하는 문건을 직접 붓으로 써주시기도 했어요. 제가 받은 이름은 도안( 道 眼 )입니다. 저는 익성 회의 회장으로 활동을 하여 1980년까지 회장을 하였습니다.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4 저는 익성회 회원들에게 우리가 스님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라고 그 랬어요. 우리 회원들은 가정형편이 비교적 좋았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외교구락 부에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교육, 정치, 철학, 사상, 종교, 문학 등 각 방면의 권위자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듣고 저녁식사 대접을 하고 헤어지는 행사를 몇 년 간 하였는데 이런 것에도 탄허스님이 버팀목이 되어 주셨지요. 그 시절에 탄허 스님을 따르던 서울법대 전창열, 명호근 등의 불교학생회 출신들이 스님에게 많 이 배우고 있었지만 우리와는 차원이 조금 다르지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스님이 서울에 오셨다고 해서, 내가 대원암에 가 보면 대원암에는 스님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운집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은 대개 스님 의 지식, 학식을 배우려고 하였고 간혹은 스님에게 글씨를 받으려는 사람들이었 습니다. 그들은 스님에게서 무엇인가를 가져가려는 사람들이었단 말입니다. 그 러나 우리들은 스님의 경륜, 뜻을 바깥으로 널리 퍼지게 도와주자는 입장이었습 니다. 스님이 서울에 오시면, 시자 스님으로부터 저에게 전화 연락이 옵니다. 그러 면 저는 부리나케 쫓아가서 뵙고, 어떤 때에는 외부에 같이 가기도 합니다. 석 관동에 있는 박초당 선생 집에 공양갈 때에도 같이 간 적이 있는데, 박초당 여사 가 저를 좋아했어요. 그 분도 박가( 朴 家 )이고, 나도 박가라 친했어요. 그 당시에 제가 경주에 신라오릉보존회를 만들었습니다. 전국에 박씨만 300만 명이 되었 는데, 이를 바탕으로 박씨종친회를 조직해서 내가 상임을 맡아 있었습니다. 그 래서 경주에서 행사를 하면 우리 회원 20여 명이 몇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같 이 가서 행사를 하는데, 올 때에는 꼭 학하리(장경각)에 들러서 스님을 찾아뵙고 54 인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5 스님의 경륜을 외부로 알렸다는 내용을 들려주시지요. 제가 스님에게 부탁을 해서 거절당한 적이 거의 없었어요. 예를 들 면, 저희 익성회가 주관을 해서 탄허스님을 모시고, 전국에 다니면서 순회 법회 를 가졌습니다. 스님은 외부 법회에 가서 하는 강연 같은 것을 잘 응하시지 않았 어요. 사람들이 와서 강연 요청을 하면, 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느냐? 55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못 알아들을 말을 나보고 씨부리라는 것이냐! 나는 만담가가 아니야! 저기 무진 장스님을 데리고 하라 는 말씀도 하시고 그랬어요. 그러나 제가 찾아가서 강연 부탁을 하면 대부분 들어주셨어요. 저는 법회 계획을 갖고 진행하려고 합니다 하면, 스님은 글쎄요 하시면서도 긍정도 부정도 안 해요. 혹은 알았습니다 라 고도 하셨지만요. 그래서 나중에 힘을 모으자고 해서 대전, 대구, 부산에서 전국 법회를 기획하 였습니다.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할 때에는 5만 명이나 왔고, 대구에서 할 때에 도 3만 명이 왔어요. 우리 30여 명 회원들이 대불련 관계, 천태종 관계 등 각종 조직을 동원하는 활동을 해서 그런 인파가 온 것입니다. 부산 구덕체육관 행사 에서는 2만 명은 체육관에 들어오고, 3만 명은 바깥에서 들었어요. 우리 회원들 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행사를 준비한 것입니다. 그때 통도사의 경봉스님이 오셔 서 탄허스님에게 아니 탄허당은 말야, 내가 통도사 절 바깥에서 한 부산 시민 회관 강연회에 모인 숫자가 2400명이 최고인데, 당신이 내 마당에 와서 5만 명 이라는 사람을 모아서 강연을 하였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 고 하였습니다. 이 강연회의 내용은 불교와 동양철학이었는데 그것은 탄허스님의 법문집 부처님 이 계신다면 과 이번에 우담거사가 만든 연보 에도 나옵니다. 지금 현재까지 불 교 법회에서 그렇게 사람이 많이 온 법회는 없어요. 그때 그 법회가 언론에 보도 되고 그랬어요. 내가 그 자료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리고 부처님이 계신다면 을 우담거사가 만들 때에 우리 종친회 사무실에서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6 하였어요. 내가 종친회 상임이사장을 하니깐 사무실이 허리우드 극장이 있는 낙 원빌딩 314호실이었는데, 거기에서 작업을 한 것입니다. 스님은 익성회를 신뢰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요. 우리는 스님과 교감을 10년간 하였기에, 스님이 우리들을 신뢰하신 것이지요. 스님과는 교감을 하기가 어려워요. 스님과 우리들과의 생각 을 완전히 같이 갖게 된 것이 10년이란 세월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희들은 스 님의 뜻을 봉찬하고, 받드는 그런 취지로 스님을 모셨습니다. 대원암에 드나들던 고려대 한승조 교수라고 있습니다. 이 분도 스님과 친분이 있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스님이 한교수에게 박재원이라는 친구를 만나서 지식, 인품 등을 가늠해 보라고 하였다고 그래요. 이러면서 스님이 저를 무척 좋아하 시게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저를 귀여워하신 것이지요. 제가 듣기에 회장님이 대통령 출마를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된 것입 니까? 그것은 탄허스님과 여기 한마음선원의 대행스님 부탁에서 나온 것 입니다. 1980년에 10 27법난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탄허스님과 대행스님 이 법난이 일어나서 불교가 당하였으니 불교를 위해서 싸워달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제가 스님에게 그런 당부의 말씀을 들은 것은 대원암입니다. 탄허 스님은 저에게 투쟁을 해다오 하셨습니다. 그럴 정도로 스님이 저를 믿었어요. 스님은 당명까지 지어주셨어요. 스님이 당명, 방향 등 그런 것에 대해서 구두로 말씀하시면 저는 전부 메모해서 진행을 하였지요. 그때 스님이 써주신 설명서가 다 있었는데 제가 만든 당이 탄압을 받고 수색을 당하는 바람에 전부 유실되었 56 습니다.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7 하여간 그때에 스님은 저에게 당신께서 마지막에 내가 하는 정치에 모든 것을 걸어보겠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익성회 회원들에게 동의를 다 받아 서 준비를 하였습니다. 창당은 익성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었고, 그 밖에 외부에 서 정치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일민립당( 圓 一 民 立 黨 )이라 는 당명까지도 정해 주시고, 정관도 나오고, 창당준비위원회도 조직하고, 창립 57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대회도 준비하고 정당의 골격을 갖추고 전국 27군데에 지구당 조직을 만들어 놓 은 다음에 롯데호텔에서 창당대회를 하고 대통령에 출마하려고 하는 날, 입후보 하려고 하는데 어떤 허름한 호텔에 갇혔어요. 잡혀간 것이지요. 잡혀가서 이십 몇 일을 갇혀 있었습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등록을 안 받으려고 피하고 그 래서 우리쪽 사람들이 가서 실력행사를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깐 선거 벽보도 못 나왔지요. 그때(1981.2) 후보로 나온 사람이 민정당의 전두환과 민한당의 유치 송인가 단 두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대행스님도 이런 일에 탄허스님과 뜻을 같 이했어요. 대행스님도 대단하신 분입니다. 대행스님을 여자라는 생각을 갖고 접 근하면 큰일납니다. 탄허스님은 정치의식, 민족의식이 대단한 스님이었지요. 탄압을 받아서 무산되었군요. 그래요. 그래서 우리 익성회는 와해되었습니다. 또 당사를 세 군 데나 옮겨야 했습니다. 정부에서 당사를 빌려준 건물 주인과 주인의 자식들이나 연고자들에게 갖은 압력을 주고 그랬어요. 이때에 나는 익성회 회장도 그만둔 것이지요. 저는 법난 때에도 투서에 의해서 태평로 국회의사당 건너편의 특수수 사대가 있는 건물에 끌려가서 이틀간 조사를 받고 나왔습니다. 그때 송월주 총 무원장도 거기에 끌려와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제가 국제불교도협의회보에 조계종을 질타하는 글도 실어서 그랬는지, 조사해 봐야 죄가 없으니 풀려나왔지 만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8 그런데 탄허스님이 왜 고문님에게 정당 창당, 대통령 입후보라는 것을 하도록 제안을 하 였을까요? 글쎄요. 아마 그것은 제가 스님에게 신뢰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 다. 제가 익성회 회장으로 10년간 교류를 한 것, 그리고 제 나름으로의 조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것의 실례를 들면 스님을 모실 때 그 당시에 제가 국제불교 도협의회 수석 부회장을 했어요. 그 단체는 그때 문공부에 등록된 유일한 단체 입니다. 제가 공직에 있으니깐 회장을 할 수 없어서, 부회장으로 있었습니다. 동 대총장을 한 김법린의 며느리, 그러니깐 김인홍 교수의 부인인 하보리심도 이사 로 있었지요. 지금의 증언은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라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제가 정보부의 탄압으로 대통령 출마를 못하게 되자, 김지 견 박사가 불교 야당 계통을 모아서 불교민주당(약칭 불민당)이라는 것을 만들었습 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된 탄허스님이 불러서 꾸지람을 하려고 하니깐 김지 견이가 광주로 피신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탄허스님에게 직접 듣지는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었지요. 탄허스님의 글씨는 유명하지요. 고문님은 보관하고 계시나요? 저는 스님에게 글씨를 백수십 개를 받았지요. 그러나 지금은 한 점 도 보관하고 있지를 않아요. 아까도 말했지만 경주의 행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꼭 장경각을 들릅니다. 그러면 스님이 계시면 인사를 드리지요. 그러다 가 1978년인가 그때에 들렸더니 스님께서 학하리에 바로 옆의 딸기밭을 샀다고 그러셨습니다. 그 딸기밭에 담장을 치면 그 안에 건물을 쉽게 지을 수 있다고 역 58 학으로 풀이하시면서 담장을 치는 데 도움을 주셨으면 했어요. 그래서 저는 그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1

59 자리에서 옆에 있는 시자에게 얼마가 드냐고 물어보니 1600만 원인가 그렇다고 해서 회원들에게 얼마씩을 배당해서 바로 일을 할 수 있게 조치한 적이 있습니 다. 그날 밤, 스님은 밤새도록 붓글씨를 써서 법화경으로 8쪽의 병풍을 만들 수 있는 것을 써주시면서 유묵 몇십 점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것을 회원들에게 한 점씩 다 나누어 주었어요. 그때 회원들이 개인당 50만 원씩 냈을 59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것입니다. 그때 돈 50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닙니다. 글씨와 관계된 비화는 없을까요? 그런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한진그룹의 조중훈 회장이 박정희 대통 령 회갑 때에 선물을 뭘 드릴까 궁리하다가 스님의 글씨를 받아서 선물로 드리 고 싶다고 해서 대원암으로 찾아와서 박대통령이 스님의 글씨를 참 좋아하시니 깐 하나 써 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두 시간 동안 대답을 않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시자가 저에게 전화 연락이 오기를, 회장님밖에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으니 급히 와달라고 그랬어요. 저는 그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나와 대원암으로 달려갔지요. 대원암에 가서 스님에게 저 왔습니다 하고 들어 갔더니 스님은 조회장을 앉혀놓고 눈을 감고 계셔요. 저는 스님에게 스님의 글 씨를 한 점 조회장에게 드리지요 했어요. 그랬더니 스님께서 조회장에게 박대 통령이 내 글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대통령이 나에게 전화하면 되는 것이지 조회장에게 부탁할 일이 있나요? 하셨습니다. 이렇듯이 어떤 면에서는 스님은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면도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수타사에 맡겨 놓은 스님의 유묵에서 한 점을 갖고 오라고 해서 조회장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연유가 돼서 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가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한진에 서 스님의 전용차를 준비하고, 비행기를 준비시켜서 갔다 오셨습니다. 성지순례 를 갖다가 돌아오신 때에, 스님 생신 파티 겸 성지순례 보고회를 겸해서 하얏트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60 호텔 오렌지룸에서 파티를 제가 주관해서 열어 드렸습니다. 그때 300명을 모셨 습니다. 참! 저도 개인적으로 스님 글씨를 받은 것이 있었습니다. 내 어머님이 후두암 으로 3년을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스님께서 나를 특별히 생각하셨는지 진묵대사 49재 제문을 쓰셔서 저에게 보냈어요. 그래서 저는 그것을 병풍으로 해서 놔두었는데 우리 모친이 돌아가셔서 용인공원 묘지에 모셨어요. 그때가 12 월이었는데, 옷가지와 유품을 불에 태우다가 그 불씨가 갖고 간 그 병풍에 옮겨 붙어서 그만 그 자리에서 불에 타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어요. 그런 일이 있어서 저는 스님에게 고맙게 생각을 하였지요. 그 시절의 조계종 종정은 성철스님이었는데, 탄허스님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제가 보기에 두 스님은 다 훌륭한 분입니다. 하지만 탄허스님의 재 가제자에 이름이 얹혀져 있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무게의 중심을 탄 허스님에게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탄허스님 같은 분은 나올 수가 없어요. 유불 선을 회통하신 실력, 민족과 국가를 생각하는 의식, 미래를 전망하는 예지력 등 은 그 누구의 추종을 불허하지요. 지금 스님들은 불교의 선, 교 중에서 일부분 만 조금 알지요. 나도 국제불교도협의회를 할 때에 성철스님을 뵙고 그랬지만 저는 탄허스님을 더 존경합니다. 다만 성철스님은 제자분들을 잘 두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철스님의 추모, 계승, 사상 정리 등이 잘 되었고 그에 비해서 탄허스님은 그런 점이 약해 요. 저는 그 점이 상당이 아쉬워요. 탄허스님에게도 각성 무비 혜거 스님 등 이 있기야 있지만 오대산과 재단이 불편한 것도 걱정입니다. 제가 지금 나이가 80이 넘었고, 몸도 불편합니다. 내 나이가 60대라면 내가 생각하는 것을 위해 60 서 뛰어보고 싶지만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요.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61 탄허스님과는 남다른 인연, 비화를 갖고 계시는군요. 탄허스님에게 배운 점이 있다면 무엇 일까요? 저는 스님에게 인생관뿐만 아니라 우주관, 불교 등 참 많이 배웠어 요. 저로서는 탄허스님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신 게 굉장한 것입니다. 내 마음 의 스승은 탄허스님입니다. 61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탄허스님을 일반 대중들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가요? 탄허스님은 저에게 사상적인 스승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스승이었 고, 불교에 있어서도 스승입니다. 저희 익성회 회원들은 스님이 하셨던 오대산 에서의 동양철학 강좌도 들었고, 방산굴에서 가서도 스님 옆방에서 놀기도 하였 습니다. 하여간 저희들에게는 파격적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탄허스님의 생각이 나시나요? 나지요. 특히 불교신문을 보고 있으면 더욱 납니다. 이럴 때에 스 님이 계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하게 되지요. 하여간에 제가 탄허스님, 대행스님을 만난 것은 저에게는 큰 복입니다. 탄허스님과 대행스님 간에도 인연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인연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것을 다 말씀드리기에는 그렇 고 추후에는 그런 점들이 종합적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제가 이곳 한마음선원에 오게 된 것은 탄허스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었어요. 제가 이곳에 온 것은 1970년대초부터입니다. 탄허스님이 대행스님을 도와서, 대행스 님이 큰일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여간에 탄허스님은 대행스님을 자주 찾아와서 대화를 하시고 그랬어요. 또 1978년부터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62 3년 동안을 이곳에 오셔서 대중 300여 명에게 화엄경 강의를 해주시기도 했어 요. 그 대중에는 이곳의 스님과 재가자 그리고 천주교의 수녀도 있었어요. 강의 하실 때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셨습니다. 또 1979년에는 탄허스님을 모시고 대 한불교회관(지금은 한마음과학원 건물, 구 법당) 신축을 위한 기공식을 하였습니다. 그때 에 덕도지도 라는 좋은 글씨도 써주셨지요. 탄허스님이 한마음선원을 조계종으 로 등록케 하여 좋은 방향으로 회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것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 익성회 회원들의 부인들을 조직하여 심단회( 心 丹 會 )라는 모임 을 만들었습니다. 이 모임도 탄허스님을 뒷바라지를 해드리고 스님 법문도 듣고 그랬어요. 그 대표가 김영숙이었지요. 그래서 저는 익성회 회원, 심단회 회원을 이곳 한마음선원으로 데려와서 불교 활동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탄허스님이 강조하신 어록을 든다면. 스님은 사람 간의 인과관계, 인격에 대한 것도 저희 회원들에게 말 씀하셨지만 그것보다는 우주섭리, 그리고 인도에는 불교가 없고, 우리 대한민국 에 불교가 있고, 한국이 세계불교의 중심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리 고 한국이 세계의 중심국이 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또 빙하가 녹고, 지구의 지축이 바뀌어서 세계 지도가 바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일본의 3분의 2는 침몰 될 것이고 우리 동해안은 조금 잠기고 서해는 융기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한 국도 100리는 피해를 보게 될 것인데, 그러면 농담으로 저희들에게 학하리로 오 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스님은 인재양성, 지혜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언제인가 62 는, 자네들의 세대에는 통일이 된다고 보시면서 그때를 준비하는 인재가 절대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63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정치적인 변고, 변화가 생기는데 그런 것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지요. 준비가 안 되 면, 인재가 없으면 그런 변화가 헛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탄허스님 탄신 100년에 즈음해서 탄허스님 역사를 채록하는 것에 대한 소감은. 63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탄허스님은 대석학이셨지만 살아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였습니 다. 제가 모셔보니 스님은 천하의 보물입니다. 이런 스님이 다시는 나올 수 없 어요. 나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탄허스님 같은 분을 스승 삼을 인연이 또 있 겠냐마는, 그런 인연이 다시 온다면 탄허스님을 모시고 싶어요. 그래서 최근에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정념 주지스님과 기념사업에 협조할 수 있는 방안을 상의 하였습니다. 저와 한마음선원도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 세월이 많이 갔어요. 저 와 같이 활동하던 익성회 회원도 대부분은 죽고,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7~8명 인데 요즈음도 한마음선원에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귀한 증언 정말 감사드립니다. 김교수님이 이곳까지 저를 찾아와서 저의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 니다. 좋은 증언을 채록해서 기념비적인 책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64 스님에게 받은 가르침을 꼭 회향하겠습니다 대상 김희옥 검찰청 부산 대전지청장, 사법연수원 교수, 법무부 차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역임 동국대 총장 일시 2012년 8월 9일 장소 동국대 총장실 총장님도 탄허스님과의 인연이 남다르다는 것을 신문 보도를 통해 알았습니다. 우선 불교 인연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고향이 경북 청도의 매전면입니다. 부모님이 불자라서 어릴 적에는 부모님을 따라서 절에 자주 갔어요. 그리고 고향에서 금천초등학교에 다 닐 적에는 인근에 있는 고찰인 운문사와 대비사에 소풍을 가서, 어린 시절부터 절에 대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총장님은 1968년 동국대에 수석입학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탄허스님의 인 64 연은 어디에서 이루어졌나요? 제가 1968년에 대학에 입학해서 그해 5월인가 그랬는데, 탄허스 님이 동국대 중강당에서 하였던 금강경 대강연을 들었습니다. 1주일에 한 번씩,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65 오후에 두 시간 정도 열여섯 번인가를 강의하였는데 제가 그 강의를 다 들었어 요. 금강경이 32품인데, 하루에 두 품씩 한 것 같습니다. 그 강의를 들었던 학생 들은 거의 없었고 주로 대학교수, 교직원, 서울에 사는 신도들이 들었어요. 제 가 그때에 학교 기숙사에 있었는데 기숙사에 있는 선배들도 안 들었는데, 저 혼 자 그 강의를 들었습니다. 아마 제가 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들은 것 같아요. 65 탄 허 큰 스 님 의 재 가 인 연 그때 스님은 동국대 대학선원장이었습니다. 대학선원은 지금의 제일병원 자 리, 명성여고가 이전하기 전에 있었던 그 근처에 있었죠. 저는 그때 교재로 나 누어 준 금강경 책을 아직도 집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탄허스님의 강의를 들은 소감이 어땠는가요? 스님의 강의를 들으니깐 굉장히 감동적이었죠. 스님은 강의를 하 시면 듣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시고, 충격을 주어서 생각을 깊게 하고, 불교 이 외의 것도 생각게 하셨어요. 저는 그래서 스님의 강의를 통해서 감화를 많이 받 았어요. 그때 스님의 금강경 강의는 중강당의 반이 찰 정도로 청중이 많이 왔어요. 성 황을 이루었습니다. 저는 스님의 강의를 듣고, 불교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교의 본질에 대하여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선을 하면 서 오는 느낌처럼, 깨달음이라고 할까 그런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 경전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게 되었지요. 그때에 보니까 스님은 분필을 갖고 칠판에 판서를 하면서 강의를 하시는데, 불 교에 대한 어떤 내용도 막히는 것이 없으시더라구요. 불교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책을 보지 않으시고, 거의 외워서 하셨습니다. 스 님은 사람들에게 확실히 전달해 주는 강력한 힘이라고 할까, 에너지 같은 것을 갖고 계셨습니다. 저에게는 지금도 스님의 그런 인상이 남아 있지요. 하여간에 최종-방상굴의 무영수 (하).indd 오전 10:4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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