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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5 18민중항쟁 최정기 유경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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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 차 Ⅰ. 총론 05 Ⅱ. 광주지역의 5 18민중항쟁 08 1장 신군부 세력의 집권과 5 17 비상계엄 1절 5월 학생 시위와 5 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2절 전남대 정문 앞 시위 장 항쟁의 발발과 광주지역의 확산 1절 학생시위대의 시내 진출과 계엄군의 과잉진압 2절 시민들의 참여와 항쟁의 확산 장 시민군의 등장과 활동 1절 시민들의 무장과 시민군 2절 도청 지휘부와 선전 활동 장 시민군의 등장과 활동 1절 시민들의 무장과 시민군 2절 도청 지휘부와 선전 활동 장 시민자치조직과 공동체 1절 수습위원회의 조직과 무기회수 2절 자치조직의 재편과 그 활동 3절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장 최후항쟁 (26~27일) 1절 도청지도부의 재편과 기동타격대 2절 도청항쟁과 광주진압 Ⅲ. 전남지역의 5 18민중항쟁 73 1장 5 18민중항쟁의 확산과정 1절 화순 방향 2절 나주 방향과 목포 및 해남 방향 3절 광산군 방향 4절 담양 및 장성방향

6 2장 전남지역의 5 18민중항쟁 거점들 1절 목포지역의 항쟁 2절 화순지역의 항쟁 3절 나주지역의 항쟁 4절 해남지역의 항쟁 장 전남 시민군의 광주진입 시도 100 4장 항쟁의 매개 지역들 1절 영암-강진-장흥-보성지역의 5 18민중항쟁 2절 함평-영광-무안지역의 5 18민중항쟁 장 전남지역 항쟁의 특징 1절 강력한 향토애와 지역연대 2절 난리 에 대한 방어 행동 Ⅳ. 1980년 이후 5 18민중항쟁과 오늘 1. 5월 27일 이후의 항쟁 진상규명 과정과 그 한계 3. 현재의 5 18민중항쟁

7 Ⅰ. 총 론 1980년 5 18민중항쟁은 한국사의 한 기점, 전환점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왜냐하면 5 18항쟁이 1987년 6월 항쟁과 한국의 민주화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은 항쟁의 지도세력과 참여주체의 계급 계층을 확인하는 작업, 항쟁의 원인과 배경, 항쟁을 비롯하여 항쟁이후의 민주화운동이 가지는 한국사[ 國 史 ]적 의미 를 규명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1) 이에 항쟁에 관한 연구들은 한국 사회의 정치 공학적 구도를 배경으로 항쟁의 진실 진상을 인정받기 위한 투쟁 의 연장선상에 이루어졌다. 2) 이에 반해 1980년 광주항쟁 당시의 현장성을 주목하거나, 다양한 사건들과 사건들이 일으키는 항쟁의 분위기 속에서 지역민 내부의 움직임 은 단조롭게 이해되었다. 3) 본 글은 5 18항쟁 시기의 시위 대중 이라는 집단을 중심으로 항쟁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일반적으로 대중 은 서구세계의 근대적 시선에 의해 규정된 집단으로서, 4) 학문적 관찰의 대상 이었다. 5)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시즘(fascism)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대중은 조작 왜곡될 수 있는 동원되는 대상( 對 象 ) 으로서 근대 세계가 극복해야 할 부정적 인간상 의 하나였다. 대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근대의 동원 체제 내에서 대중이 보여주는 일체화와 1)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 편, 역사와 현장1-5 18광주민중항쟁 9주년 기념학술토론회, 도서출판 남풍, 이정로,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 전환, 노동해방문학 (5월호), 손호철, 80년 5 18항쟁: 민중항쟁인가, 시민항쟁인가?, 현대 한국정치, 사회평론, 안종철, 광주민중항쟁의 배경과 전개과정, 광주민중항쟁과 5월운동 연구, 전남대 5 18연구소, 이종범, 5 18의 지역적 배경, 5 18민중항쟁사, 광주광역시5 18사료편찬위원회, 김영택, 5 18 광주민중항쟁 연구, 국민대 사학과 박사논문, ) 이용기, 5 18 에 대한 역사서술의 변천, 5 18민중항쟁과 정치 역사 사회 3(5 18기념재단, 2007) ; 임종 명, 5월항쟁의 대중적 참여와 그 계기 및 의식성-5월 18일과 19일을 중심으로, 역사학연구 32(호남사학회, 2008). 3) 이에 반해 일군의 연구들은 항쟁의 확산과 사실관계 및 계엄군의 폭력과 이에 대한 저항세력의 활동을 밝히는 데 주목하였 다. 최정기, 광주민중항쟁의 지역적 확산과정과 주민참여기제, 광주민중항쟁과 5월운동 연구 (전남대5 18연구소, 1997) ; 국가폭력과 대중들의 자생적 저항-5 18에서의 국가폭력과 저항을 중심으로-, 5 18민중항쟁과 정치 역 사 사회 2(5 18기념재단, 2007) ; 신진욱, 사회운동의 연대 형성과 프레이밍에서 도덕감정의 역할-5 18광주항쟁 팜플렛에 대한 내용분석, 경제와 사회 73(한국산업사회학회, 2007) ; 김정한, 대중운동의 이데올로기 연구 광주항쟁과 6 4천안문운동의 비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박사논문, 2009) 등 참조. 4) 조지 모스(임지현 김지혜 옮김), 대중의 국민화, 소나무, ) 대중 에 대한 논의는 귀스따브 르봉(민문홍 강영숙 옮김), 군중의 심리, 학문과 사상사, 1981 ; 오르테가 이 가세트 (황보영조 옮김), 대중의 반역, 역사비평사, 2005 ; 천정환, 대중지성의 시대, 푸른역사, 2008 참조. 5 18민중항쟁 5

8 동일화의 외면성 에 주목한 것들이다. 그러나 보다 주요한 것은 대중 이 어떠한 내부의 동력에 의해 구성되는 공동체인가이다. 이에 따라 대중이 어떠한 조건이나 사회적 분위기 또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 결속이나 해체의 과정을 거치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의를 배경으로 이 글은 5 18항쟁 시기의 대중, 즉 시위 군중들의 사건을 통해 항쟁의 발발과 확산의 과정 속 시민들의 모습에 주목하고자 한다. 1980년 5월 18일 계엄군과 시위군중의 충돌로 시작된 사건의 전개와 사건들의 상호적 연쇄반응 속에서 사람들의 행위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전 5 18항쟁에 대한 서술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1985, 풀빛)을 시작으로 1988~89년 광주청문회 를 계기로, 광주민중항쟁: 다큐멘타리 1980 (1990, 돌베개) 등에서 잘 정리되었다. 또한 광주5월민중항쟁자료전집 (1990, 풀빛)과 같은 종합 자료집이 발간되기도 하였다. 이들 도서는 5 18민중항쟁을 이해하는 교과서 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5 18진상규명이 미진한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5 18민중항쟁에 대한 서술은 항쟁의 진실, 즉 1980년 광주항쟁 기간, 그리고 5월 운동 의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요구 실천되었던 의제였다. 6) 1980년대 분산적이고 산발적 이었던 구호와 과제들 중 5 18의 진실 은 책임자 처벌과 함께 1980년 5월 광주의 과제를 해결하는 선결조건으로 중요하게 인식되었고, 투쟁 의 원칙으로서 한국 민주화운동의 주요 동력 노릇을 하였다. 민주화운동의 주체들은 5 18의 진실규명이 곧 한국의 민주화 와 직결되는 과제였다. 이에 반해 신군부와 정부는 항쟁을 진압한 이후 5 18항쟁을 불순분자 및 고정간첩들 에 의한 선동과 난동 으로 규정해 왔다. 따라서 5 18항쟁에 대한 서술은 곧 항쟁의 진실 을 획득하는 투쟁의 과정이었다. 1980년대 5월 운동 역시 항쟁의 사실들을 확인하고 그 사실을 확산시키는 진실투쟁 의 과정이었다. 7) 그러한 과정을 거쳐 1989~90년 광주청문회가 이루어졌고, 1995년 5 18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다 1995~98년 사이 5 18특별법 제정과 전두환 노태우 재판을 통해 5 18항쟁에 대한 공식적인 진실규명이 시작되었고, 2007년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군 자료 등이 공개되면서 6) 애초에 5 18담론에서는 진상 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쓰였다. 5월운동의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 이 1990년대 중 반이후 한국사에서의 과거청산 작업으로 전환되면서 진실 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을 생각된다. 사전적 의미에서 진상과 진실은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지난 30년의 과정을 고려한다면 진상 이라는 용어는 왜곡된 사실의 폭로와 참된 사실의 확산 인정 을 의미한다면, 진실 은 해외의 과거청산 사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진다. 전 자의 경우 사실의 내용적 측면을 강조하며 사실의 발굴과 확인된 사실의 인정 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전국적 확산 을 핵 심으로 하고 있다면, 후자의 경우 제도적 측면에서 과거사 바로잡기 를 통한 정치적 복권, 나아가 진실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를 사회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의미성까지 포함한다. 7) 5 18이 끝나자마자 계엄사령부는 이른바 광주사태 에 대한 최종 보고를 하였다. 이 발표는 진상을 은폐하고 희생을 축 소한 것이었지만, 이 발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거나 항쟁의 진상을 말하는 것은 유언비어 유포죄로 검거되었다. 거짓과 참 이 전도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투쟁은 죽음에 대한 추모와 진실 규명 요구를 기초로 전개되었다. 예컨대 1980년 6월 천 주교 광주대교구 사제단은 <광주사태에 대한 진상>이라는 유인물을 통해 자신들이 목격하고 체험했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 다(정근식, 청산과 복원으로서의 5월운동, 5 18민중항쟁사, 광주광역시5 18사료편찬위원회, 2001). 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9 5 18항쟁에 총괄적인 이해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5 18항쟁의 사실들은 법적 제도적 차원에서 진실의 위상을 부여받았고, 후속작업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최근에까지 지만원을 비롯한 보수세력 들은 광주사태는 북한 특수부대의 소행이다 등의 5 18왜곡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어 5 18항쟁의 사실이 보다 중요해 지고 있다. 8) 이에 본 글은 기왕의 1980년 5 18민중항쟁의 연장선상 속에서 만들어진 항쟁사( 抗 爭 史 )에 관한 기록과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밝혀지고 정리된 사실들을 한데 모아 5 18민중항쟁의 전개과정을 정리하였다. 먼저 광주지역과 전남지역을 구분하여 1980년 항쟁의 전개과정을 서술하였고, 1980년 이후 항쟁의 연장선상에서 5월 운동 및 5 18진상규명의 과정과 의미를 정리하였다. 8) 5 18민주화운동과 과거청산 운동과 관련된 논의는 정근식, 청산과 복원으로서의 5월운동, 5 18민중항쟁사 (광 주광역시5 18사료편찬위원회, 2001) ; 조현연, 5 18 진상규명 투쟁과 광주청문회, 5 18민중항쟁과 정치 역 사 사회 5(5 18기념재단, 2007) ; 5 18기념재단 엮음, 5 18민중항쟁과 법학 (5 18기념재단, 2006) ; 정일준, 5 18담론의 변화와 권력-지식관계, 민주주의와 인권 4-2(5 18연구소, 2004) ; 정근식, 대한민국 5 18: 광주 의 전국화 명제를 다시 생각함, 기억과 전망 10(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5) ; 노영기, 5 18항쟁기 민간 인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 역사비평 90(역사문제연구소, 2010) 참조. 5 18민중항쟁 7

10 Ⅱ. 광주지역의 5 18민중항쟁 1장 신군부 세력의 집권과 5 17 비상계엄 1절 신군부 세력의 집권과 5 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4 19민주혁명의 열망을 짓밟고 1961년 등장한 박정희 군부정권은 1972년 유신헌법을 공포하며 1인 영구독재 체제를 구축하였다. 박정희 정권의 폭력적 억압 속에서 계속되던 민주화운동은 1979년 10월 16일 부 마 민주항쟁 으로 이어졌다. 난관에 부딪친 독재 정권은 스스로 무너져 내려,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궁정동 안가 만찬회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해 버린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최규하 권한대행과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10월 27일 합동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전두환은 정보 보안 수사 등 업무를 총괄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되었는데, 군권을 장악하고자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하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노태우 등 하나회라는 군부 사조직을 기반으로 군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국가권력을 정권을 탈취하고자 하는 계획을 실행해 갔다. 이들이 바로 박정희 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한 정치장교로서, 박정희 사후 등장한 신군부 였다. 박정희 시해사건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긴급조치 로 상징되는 18년간의 유신독재가 끝나고, 1980년 봄을 맞이하면서 대학가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유신체제에 저항하다 강제로 대학을 떠났던 해직 교수와 제적생들이 복직 복교되어 학교로 돌아왔다. 대학가는 학원자유화 의 바람이 불어일어나, 이름뿐인 1979년 박정희 시해 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11 학생기구였던 학도호국단을 해체시키고 총학생회가 부활했다. 1980년 3월 서 울 대 총 학 생 회 의 출 범 을 시 작 으 로 전 국 대학에서 학원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것이다. 박정희의 사망으로 국민 대다수는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민주화가 실현 되리라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다. 기대에 찬 사람들은 1980년 초를 서울의 봄, 겨울공화국이 끝나고 민주화의 봄 이 왔다고 생각했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은 학원민주화투쟁을 거쳐 계엄해제와 유신잔당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투쟁으로 발전하였다. 1980년 4월은 그야말로 학원민주화투쟁 시기였다. 5월이 되자 대학생들은 계엄령 해제, 유신잔당 퇴진, 정부개헌 중단, 노동 3권 보장 등 본격적인 정치투쟁을 전개하며, 대학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5월 10일 전국 대학 대표들은 비상계엄의 즉각 해제 와 전두환, 신현확 등 유신잔당 퇴진 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정치권은 최규하 정부 하에서 개헌주도권을 둘러싸고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관료집단에 대항하며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1980년 2월 김대중이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하자, 경향신문 1980년 4월 15일자. 김영삼과 대립하며 야당인 신민당이 분열 위기에 봉착하였고, 공화당 김종필은 야당과 신군부의 힘겨루기를 관망할 뿐이었다. 정치권이 힘을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신군부는 전국의 주요 도시에 군을 투입하며, 권력을 장악 할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9) <표> 1980년 5월 신군부 충정부대 이동 상황 일 시 내 용 5월 3일 1개 특전여단(9특전여단) 수도군단에 배속 5월 5일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해병 1사단의 1개 연대를 소요사태 진압부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건의 9) 학생들의 가두 진출 등 민주화의 압력이 보다 거세어지자 신군부세력은 공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충정부대들을 서울 주변에 배치시키고 있었다(정상용 외, 1995, 광주민중항쟁, 돌베개, 쪽). 5 18민중항쟁 9

12 5월 6일 위 건의 승인 11, 13여단 이동 지시 5월 7일 13여단 거여동 배치, 11여단 김포 배치 5월 9일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해병 1사단 1개 연대의 추가 투입 건의 국방부장관 위 건의 승인 5월13일 경장갑차 차출(1군 26대 수경사 배속, 3군의 24대 수도군단 배속) 5월14일 소요사태 진압부대 투입준비 지시 소요사태 진압본부 개소 특전부대 이동을 위한 차량 245대 지원 2군 500MD 헬기 5대 지원 3특전여단 12대대 국립묘지 배치 청와대 특정 경비지역 봉쇄 7개 방송국 경계 강화 5월15일 20사단 60연대와 포병단을 제외하고 잠실종합운동장과 효창운동장으로 이동 5월16일 육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수도권 질서유지를 위한 20사단 60연대와 포병단을 상용할 수 있도록 요청 한미연합사령관이 국방부장관에게 20사단 60연대와 포병단을 사용토록 승인. 국방부장관이 육군참모총장에게 20사단의 60연대와 포병단 사용 승인 5월17일 20사단 태릉으로 이동 * 정해구, 군 작전의 전개과정, 5 18민중항쟁사, 광주광역시5 18사료편찬위원회(고령, 2001) 263쪽 5월 14~15일 전국 27개 대학 학생대표는 서울역 광장에 모인 10만 명의 학생들을 이끌며 가두시위를 시작하였고, 지방 24개 대학의 학생들 역시 각 지역에서 시위를 진행하며 경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서울역 광장에 모인 학생들은 연좌농성을 벌이며 신군부와 최규하 정부에 대한 대규모 성토대회를 벌였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호응이 없는 상황이었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서 군과 충돌은 현명치 않다는 판단에 정치일정을 관망하고자 서울역 회군 을 결정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서울역 회군에 결정된 것과 달리 광주 전남 지역의 대학생 민주화운동의 전개 양상은 달랐다. 전남대학교 학생회는 4월부터 병영집체 훈련의 거부 를 주장하며 철야 농성을 벌여 왔었다. 학생들은 '병영집체 훈련은 과거 유신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실시된 군사 훈련이었기 때문에 "병영집체 훈련 전면거부"는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고 하며 학원민주화 운동을 계속해 갔다. 이후 5월에 이르기까지 대학생들은 교내 어용교수 문제를 제기하며 학원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나아가 학생들의 학원민주화운동은 점차 정치상황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1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13 현금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시대적 상황은 대학인에게 안일과 무사의 소극적 자세를 더 이상 허락치 않는다. 사태는 심각하고 추세는 불확실하여 낙관은 요원하다. 이에 진정한 민주를 성취하려는 전남대 학생 일동은 구체제 잔재에 대한 부단한 청산작업과 조국 민주화를 위한 능동적인 방향 제시를 위해 민족민주화성회 를 갖게 되었다.(전남대 총학생회 민족민주화성회를 위한 취지문 ) 10) 5월 학원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관현은 5월 8일부터 1주일간 민족민주화성회를 개최한다고 선포했다. 이에 8일에는 조선대학교 민주투쟁위원회 가 제1시국선언문 을 발표하였고, 전남대 도서관 앞에서는 5천여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학내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1주일간의 학내 시위가 계속되었고, 14일에는 교외로 진출하여 대학생들의 가두시위가 전개되었다. 민족민주화성회 이후 교수 학생시민 행진 (1980년 5월 16일) 15일에는 전남대, 조선대, 광주교육대, 조선대공업전문대, 동신실업전문대, 송원전문대, 성인경상전문대, 기독병원 간호전문대, 서강전문대 등 광주 시내 9개 대학 학생 3만여 명은 10) 전남대 총학생회 민족민주화성회를 위한 취지문 5 18민중항쟁 11

14 오후 3시 부터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여 시국성토대회를 열며 각종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11) 시국성토대회에서는 각 대학 학생대표들이 연합해 작성한 제2시국선언문 이 낭독됐고, 복학생을 대표해 정동년(38세, 전남대 화공과 4학년)이 메시지를 읽었다. 학생들은 6시 30분부터 전남도청 앞 분수대를 돌며 가두시위를 전개했다. 광주 시내를 돌아온 시위대는 도청 앞 광장에 다시 모여 2개조로 나뉘어 계엄철폐 의 구호와 정의가, 투사의 노래 등을 부르며 횃불 시가행진을 벌였다. 횃불시위를 마친 학생들은 다시 전남도청 앞 광장에 모여 유신체제와 5 16군사쿠데타를 응징한다는 의미에서 5 16 화형식 을 진행하기도 했다. 횃불시위를 마친 학생운동 지도부는 사태를 관망한 뒤 5월 19일 다시 성토대회를 열자고 결의했다. 12) 특히 당시 박관현은 시민 학생들에게, 내일 도청에서 만납시다 라는 약속을 강조하였다. 만 약 오늘 저녁에 휴교령이나 휴업령이 내려지면 이미 총학생회에서 공고했듯이 교문이나 후문 앞에서 오늘과 같은 시위를 벌일 것입니다. 만약에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12시 정오에 도청 앞에 집결하여 오늘과 같은 시위를 벌일 것을 여러분과 함께 약속합니다(5월 14일 연설문 중에서). 이와 같은 암흑의 시대, 칠흑 같은 질곡의 역사를 정말로 우리 민주화의 횃불로 밝히기 위해 모든 전남지역 대학생들의 이름으로 내일 오후 3시에 이곳 도청 앞에 모여 횃불시위를 거행하겠습니다. 내일의 민족민주화 횃불대행진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5월 15일 연설문 중에서). (김병인, 2001: ) 그 동안 수업을 팽개치고 행했던 학내외의 집회와, 특히 연 3일 동안 진행된 시가지 시위와 도청 앞 집회에서 충분히 우리들의 뜻이 전달되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성스런 요구가 묵살될 때에는 또다시 수업을 중단하고 투쟁할 것입니다. 휴교령이 발표되면 즉시 투쟁할 것을 약속합니다. (나의갑, 2001: 225) 이 시기 5월 17일자 동아일보는 이들은 4백여 개의 횃불을 들고 대오를 지어 5만여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시가를 행진했고, 일부 학생들은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데모 대열이 지나간 지저분한 거리를 말끔히 청소하기도 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시위학생들의 11) 당시 전라남도 경찰 국장이던 안병하와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과의 사전약속에 의해 그날 밤 시위는 평화적이고 질서 있게 진행되었다.(나의갑, 5 18의 전개과정, 5 18민중항쟁사, 광주광역시5 18사료편찬위원회(고령, 2001), 225쪽) 12) 전남사회운동협의회 편 황석영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풀빛, 1985, 22~29쪽; 정상용 외, 같은 책, 153~154쪽. 1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15 앞과 뒤를 따라갔으며, 시위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고 보도했다(나의갑, 2001: 226). 그런데 같은 시기 신군부는 국무회의에서 5 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가 통과되기 전부터 군사작전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5월 10일 윤흥정 전교사령관은 전남북의 향토사단인 제31사단과 제35사단 사단장들에게 학원을 포함한 지역 내 무기고 경계 및 통제 철저 히 하고, 각 사단은 학원을 포함한 지역 내 무기고 및 탄약고의 통제 책을 재확인 점검하여 불순분자에 대한 피탈사항이 없도록 강구 하라고 지시했다. 5월 10일에는 2군에서 전교사에 2군 학원소요에 대한 증원계획지시 를 내렸다. 여기에는 공수부대의 배치지침이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전북대에는 7공수여단 제32대대, 충남대 31대대, 전남대와 광주교대 제33대대, 조선대와 전남대 의대 제35대대가 배치됐다(전교사, 전교사 작전일지 ). 당시 7공수여단은 시위진압에 대비한 충정훈련을 매일 시행하고 있었다. 광주 시내에 계엄병력이 처음 배치된 때는 5월 14일이었다. 이날 KBS, 전일방송, MBC, CBS 등 주요 시설물에 31사단 병력이 배치되었고(31사단, 작전 상황일지 ), 윤흥정 전교사령관은 작전에 대비해 주요 목표물을 파악하라고 31사단과 35사단에 지시했다(전교사, 전교사 작전일지 ). 이날 오전 전남도지사실에서는 학원사태 대책회의 가 열려 학원사태에 대한 분석보고가 이루어졌다. 13) 2군사령부는 5월 17일 오후 5시 군 사령관 구도 지시 사항으로 충정작전 유효, 00:01를 기해 불순분자를 체포, 04:00 이전 주요 학교 점령 토록 하달했고, 부대이동 및 작전준비 지시 를 각 관구 작전참모와 해병대사령부, 7공수여단에 내렸다. 신군부는 또한 충정작전 지시 80-2호(작상전 414) 와 학교 점령시간 변동 지시(육본 지시에 의거) 를 내려 비상계엄 전국 확대 를 치밀하게 준비해 갔다(2군사령부,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 1980년 5월 17일 저녁 9시 40분경 정부는 임시국무회의를 개최, 국방부가 제출한 비상계엄 확대선포 안을 찬반토론 없이 통과시켜 버렸다. 불과 8분만의 일이었다. 이에 따라 최규하 대통령은 특별성명 을 통해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하여 현 지역계엄을 전국 비상계엄으로 전환 선포할 것을 발표했고, 계엄사령관 이희성 역시 포고령 10호 를 내려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언론 출판 보도 방송의 사전 검열, 대학의 휴교, 직장 이탈 및 태업이나 파업 행위의 금지, 그리고 유언비어의 날조 등을 금지시켰다. 당시 신군부 세력이 전국 계엄령을 실시하며 내세운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국내적으로 계속되는 사회혼란을 이용한 북한 공산집단의 대남 적화책동이 날로 격증되고 우리사회 교란을 목적으로 한 무장간첩의 계속적인 침투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결정적 시기 조성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중대한 시기에 일부 정치인, 학생 및 근로자들의 13) 이 회의에 참석자는 전남도지사, 전남대 총장, 조선대 총장, 중앙정보부 광주지부장, 광주전남 합수단장(505보안부대장), 전남도 경찰 국장이었다. 5 18민중항쟁 13

16 무책임한 경거망동은 이 사회를 혼란과 무질서, 선동과 파괴가 난무하는 무법지대로 만들고 있으며 이에 정부는 국가를 보위하고 3천7백만 명의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며 일대 단안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14) 이때 505보안부대 대공과장 중령 서의남은 사령부 지시에 따라 광주지역 예비검속 대상자들에 대한 검거에 들어갔다. 검거대상자는 전남대 12명, 조선대 10명 등 총 22명 15) 이었다. 505보안부대는 22대 차량과 86명의 인원이 출동해 12명을 검거했다(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국방부과거사위 ), 2007: 375). 16) 5월 17일 저녁 12시 전국에 비상계엄이 확대되자 7공수여단은 광주 외에도 대전(32대대)과 전주(31대대)로 출동했다. 광주와 전주 및 대전에 배치된 7공수여단의 병력은 아래와 같이 배치되었다(특전사, 전투상보 ). 17) 7공 수 여 단 은 18일 아 침 전 남 북 에 서 대 학 내 79명 을 연행했다(7공수여단, 전투상보 ; 전교사, 전투상보 ). 18) <표> 7공수여단 배치도 대대 출동인원(장교/병사) 주둔학교 부대출발시간 점거시간 31 16/172 전북대 : : /291 충남대 : : /321 전남대, 광주교대 : : /283 조선대, 전남대 의대 : :30 본부 10/76 조선대, 전남대 의대 : :50 계 148/1,143 14) 전남사회문제연구소 편, 1988, 특별성명, 5 18 광주민중항쟁 자료집, 도서출판 광주, 144~145쪽. 15) 전남대 : 박관현, 윤한봉, 정동년, 박선정, 윤목현, 한상석, 박진, 윤강옥, 문덕희, 하태수, 박형선, 김상윤. 조선대 : 김운기, 이경, 유소영, 송찬식, 이강래, 유재도, 이곤섭, 양희승, 구교성. 16) 정동년, 박선정, 윤목현, 김상윤, 박형선, 문덕희, 하태수, 김운기, 유소영, 유재도, 이곤섭, 양희승(보안사, 광주사태 합 동수사 ). 전남대 복학생 김상윤은 그날 오후 11시 30분쯤 서점 셔터를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후배들이 왔는가 싶어 황급히 문 쪽으 로 갔다. 반쯤 셔터를 들어 올렸다. 안면이 있는 광주서부경찰서 소속 형사가 이 사람이 맞다 고 하자, 뒤에 있던 사람이 권총을 들이댔다. 그를 검거하러 온 일행은 4명이었고, 그 길로 그는 광주505보안대에 연행되었다. 정동년이 505보안대로 끌려갔다. 그날 밤 정동년, 김상윤 외에도 광주에선 윤목현, 박선정, 박형선, 문덕희, 양희승, 유재도, 이승룡 등 대학생 및 재야인사 14명 가량이 예비 검속되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에 연루되었다(나의갑, 2001: 226). 17) 전북에는 14개교(52/660)에 배치됐고, 전남은 20개교(14/1132)에 배치됐다. 18) 학교별로는 전북대 33명, 전남대와 광주교대 23명, 조선대와 전남대 의대 33명이다. 전북대에서는 공수부대의 연행을 피하 려다 학생 1명(이세종. 전북대 농대 농학과 2학년)이 실족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전교사 보고는 약간 다르다. 전교사 의 전투상보 에 따르면, 학교별 연행자 수는 다음과 같다. 전남대 69명, 조선대 43명, 전북대 34명, 원광대 23명 등이었 다. 또 주모자 검거 항목에 전북은 46명중 6명이 검거되었고, 전남은 22명 중 8명이 검거되었다. 1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17 <표> 5월 17일 24:00 충정부대 대학점령 현황(정상용 외, 1995: 146) 부 대 점 령 대 학 비 고 1공수여단 4개 대대 5공수여단 4개 대대 11공수여단 3개 대대 13공수여단 2개 대대 보병 20사단 3개 연대 연세대, 서강대, 홍익대 고려대 동국대 성균관대 국민대, 산업대, 경희대, 한양대, 외대 수경사 작전통제 9공수여단 3개 대대 서울대, 중앙대, 숭전대 수도군단 작전통제 3공수여단 5개 대대 육군 중앙 기동 예비부대로 거여동 주둔 육군본부 작전통제 7공수여단 4개 대대 해병 1사단 2개 연대 광주(전남대, 조선대) 전주(전북대), 대전(충남대) 대구(경북대) 부산(부산대, 경남대) 2군사령부 작전통제 2절 전남대 정문 앞 시위 계엄사는 17일 충정작전 의 발효와 동시에 예비검속을 완료하고, 18일 새벽 4시까지 대학점거를 완료하도록 윤흥정 전투병과교육사령관에게 시달했다. 제7공수여단장에게는 전남대와 광주교대, 조선대와 전남대 의대 등을 18일 새벽 2시까지 점거하고 새벽 4시까지 소요주모자 전원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 18일 새벽 전남대에 진주한 33대대는 교내를 수색하여 학생회관과 도서관에서 농성하거나 공부하던 학생을 체포했고, 조선대에 도착한 35대대는 학생 43명을 체포하여 31사단 헌병대에 인계했다. 전남대학교 운동장에는 군인들의 대형 천막들이 설치되었고, 교문에는 정부조치로 휴교령이 내려졌으니 가정학습하기 바란다 는 총장의 공고문이 붙었다. 그 옆으로 제7공수여단 33대대 9지역대 7중대 소속 11명의 공수부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이들은 휴교령이 내린 사실을 말하면서 학생들에게 귀가를 강요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쉽게 돌아서지 않았고, 10시가 넘어서자 부근에 남아있던 100여 명의 학생들이 정문 앞 다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휴교령이 내리면 그 다음날 10시에 교문 앞에 모이자 고 했던 박관현 학생회장의 약속을 기억하고 시위를 시작했던 것이다(나의갑, 2001: 227). 19) 19) 5월 16일 대성회 마지막 날 전남대 총학생회장 박관현의 약속이었다. 그는 휴교령이 내리면 아침 10시에 각 학교 정문 앞 에서 만나자.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낮 12시 도청 앞 광장에 모여 총궐기하자 고 했다. 5 18민중항쟁 15

18 학생들이 항의시위를 벌이자 2개 지역대가 증원되었고, 해산에 나선 7공수여단 부대원들은 학생들을 인근 집이나 상가까지 쫓아가 폭행을 가했고, 심지어는 신분을 밝힌 전남대 교수까지 폭행했다. 근처를 지나던 시내버스에서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에 항의하던 학생들도 폭행을 당했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376). 점차 시위에 합세하는 학생들이 200~300여 명으로 불어나자 자연스럽게 노래와 구호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이에 공수부대원들은 무력진압을 개시하였다. 처음 곤봉으로 머리를 때리는 공수부대원들에게 학생들은 쉽게 대응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전남대 정문 쪽 건축공사장에서 돌을 구해 군인들에게 던지자, 군인들은 "지금 즉시 귀가하지 않으면 강제 해산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학생들을 뒤쫓았다. 학생들은 골목으로 도망쳤고, 군인들은 끝까지 추격하며 구타하고 강제 연행했다. 이내 학생들은 도청 앞으로 나가 시민들에게 공수부대의 만행을 알리자 는데 합의하고 시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시내를 향하다가 가까운 광주역 광장에 학생들이 집결했다. 10시 30분경 400여명으로 늘어난 학생들은 광주역 앞 광장에서 대열을 가다듬고 공용버스터미널을 앞을 거쳐 중심가인 금남로로 뛰어갔다. 이들은 18일 아침의 상황을 군사쿠데타로 규정짓고 이 사실과 계엄군의 폭력을 시민과 동료 학생들에게 알리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학생시위대는 비상계업 해제하라 김대중 석방하라 휴교령을 철회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계엄군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내에서 가두시위를 시작했다. 오전 11시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선을 좁혀 오자, 농성을 하고 있던 학생들이 인근 골목길로 흩어졌다. 그때 이미 금남로 일대 인도는 시위를 구경하는 시민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나의갑, 2001: 228). 학생들의 시위는 전국계엄령 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정도였지만, 시민들은 경찰과 학생시위대의 충돌이 며칠 전 양상과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음을 서서히 목격하였다. 11시 30분경, 학생들이 수를 불려 다시 금남로로 진출하자, 경찰은 전일빌딩과 한일은행 광주지점 앞길에 저지선을 구축했다. 그 중간에 자리를 잡은 학생들은 길가의 대형 화분대 등을 깨뜨려 바리게이트 를 만들었다. 비상계엄 해제하라 는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학생들의 김대중이 석방하라 는 구호가 나오자, 시민들은 학생들의 시위와 김대중의 연행 소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학생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격렬해지며, 금남로 일대가 최루가스로 뿌옇게 뒤덮였다. 학생들은 두 갈래로 갈라져 충장로 방향의 시위대열은 황금동-수기동-광주공원-현대극장-한일은행 4거리를 거치면서 500여 명으로 늘어났고, 또 다른 대열은 금남로-광주공고-청산학원-중앙초등학교- 대인동을 돌면서 3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학생시위대는 대인동 공용버스터미널 부근에서 합류하여, 광주를 오가는 승객들에게 계엄령의 부당함을 알리는데 주력했다. 이후 학생시위대는 몇 무리로 갈라져 충장, 동산, 산수, 지산, 대인 등 6개 파출소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시위를 벌였고, 젊은 시민들 이 자발적으로 시위대에 합류하며 그 수가 2천명에 이르렀는데 경찰의 저지선을 넘을 수는 없었다(나의갑, 2001: 229). 1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19 점심시간을 전후하여 소강상태에 접어들던 시위는 오후 3시가 되면서 재개되었다. 이때부터 시위대의 시위에 대한 군경의 대응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수천 명으로 늘어난 학생 시민 시위대는 보다 조직적으로 공세적인 양상을 띠었다. 그러자 계엄군은 공수부대를 시위진압에 투입했다. 18일 광주에서 벌어진 군 활동사항을 살펴보면, 먼저 11시 40분경 광주시 동구 가톨릭센터 앞에서 학생들과 경찰이 대치하자 7공수여단이 출동 준비를 시작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31사단은 작전명령 1호 를 통해 전남대와 조선대에 주둔한 7공수여단 병력의 출동준비 지시를 내렸다(12:45)(보안사, 광주소요사태 진행상황 ). 이것은 전남대 및 조선대에 주둔한 7공수여단 33대대와 35대대를 최소의 학교 경계 병력만 남기고 시내 소요사태 진압을 위해 출동 준비하라는 지시였다. 지시를 받은 공수부대는 대학 주둔지를 나와 수창국민학교에 집결하였고, 조선대에서 정웅 31사단장 주재 아래 7공수여단 대대장 및 경찰서 경비과장들이 참석한 대책회의가 열렸다(14:30). 31사단장의 명령에 따라 7공수여단 33대대(35/267)와 35대대(26/196)가 광주 시내 시위진압에 투입됐다(15:40)(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7공수여단 33대대와 35대대가 광주 시내로 출동한 시각은 각각 15:40과 15:50이었고, 금남로와 충장로로 이동한 시각은 오후 4시경이었다(16:00)(7공수여단, 전투상보 ). 시내에 투입되기 시작한 공수부대는 과잉진압을 시작했다. 20) 시위를 벌이는 대학생뿐만 아니라 인도에서 구경하는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진압하기 시작했다. 공수부대원들은 곤봉이나 총 개머리판으로 사람들을 구타했는데, 연행한 젊은이들을 길 한복판에 옷을 벗겨 기합을 주기도 했다.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런 광경을 바라보자, 군인들은 시민들을 윽박지르며 모멸감을 주기도 했다. 당시 진압군으로 파견된 공수부대가 보인 이러한 폭력성은 5 17 전국계엄령 이전에 훈련받은 내용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공수부대가 받은 시위진압 훈련 충정작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정해구, 2001: 262). 21) <표> 충정작전의 개요 구 분 소 요 폭 동 정 의 학생 및 사회집단이 의사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표현 (법질서 위협) 다중의 집단이 사회법질서를 파괴할 목적으로 폭도화 (법질서를 파괴) 진압책임 경 찰 군, 경찰 작전성격 수세적 저지 공세적 진압 20) 이때쯤 서울에서는 광주의 혼란 과 북괴의 심상치 않은 동태 를 이유로 제3 제11공수여단과 육군 제20사단의 광 주투입이 결정되고 있었다. 21) 차후 공개된 군의 부마지역 학생소요사태 교훈 에도 시위 발생 시 초동단계에서 강경하게 진압해야 된다 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5월 18일 광주지역에서 펼쳐진 계엄군의 살인적 과잉진압을 시사하는 점이 있다. 5 18민중항쟁 17

20 작전목표 장 비 확산방지, 자진해산 (이해 설득, 봉쇄 저지) 자기보호 우선 (방석모, 방석복, 방패 등) 돌격, 와해, 재집결 불허 (분쇄, 주모자 체포) 기본화기 최대 이용 (진압봉 휴대: 와해후 체포시 필요) 계엄군의 과잉 폭력 진압(출처, 5.18기념재단) 당시 공수부대는 끝까지 쫓아가 잡는다 두들겨 팬다 팬티만 남긴 채 옷을 벗긴다 군 트럭에 싣는다 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여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무차별적인 폭력으로 금남로 일대는 한 순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고함소리와 비명소리로 사방은 아비규환이었다. 군인들이 덮쳐올 때마다 시민들은 이리저리 피해 숨을 곳을 찾느라 난리였다. 군인들은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지나가는 시내버스나 택시도 예외 없이 세워놓고 젊은이들을 골라내 두들겨 패고 군화발로 짓밟았으며, 시외버스 공용터미널에도 뛰어들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또 광주제일고등학교에 들이가 수업중인 방송통신고등학교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팬 뒤 어디론가 끌고 가기도 했다. 도망치는 젊은이를 잡는다고 집 안방까지 침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군인들은 벽장을 뒤지고 심지어는 장롱까지 열어 보며 '어디다 숨겨놨느냐'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나의갑, 2001: 230). 이날 계엄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은 농아 김경철의 사망을 비롯해 당시의 부상자들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 김경철은 후두부타박상에 의한 뇌출혈로 19일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하였고, 22) 조선대 의대 4학년 이민오는 구타 후 연행되어 상무대 영창에서 복통과 구토를 호소하다가 22) 광주통합병원 영안실로 옮겨진 후 상무대 내 101사격장에 매장, 이후 망월동에 안장 1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21 광주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된 이후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이러한 피해 양상은 당시 공수부대의 진압이 단순한 시위해산이 아닌, 죽을 수 있을 정도 의 폭력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계엄군의 폭력을 길거리에서 목격한 시민은 구타로 붙잡혀 가는 사람들에게 지역민으로서의 연민을 느껴 자기 집으로 피신시키거나, 자신의 자녀들을 집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하기도 했다. 18~19일 양일간 광주 시내에서는 754명이 계엄군에 의해 검거되는데, 검거된 이들에 대한 소식이 두절된 상황에서 시민들은 가족에 대한 걱정, 자녀들의 보호, 친척 등의 안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이날의 광경을 지켜봤던 한 노인은 한국 전쟁 당시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김영택, 2010: 265). 이날 계엄군은 전국의 주요도시에 진주하였지만 계엄군에 맞서 저항한 곳은 오직 광주뿐이었다. 사전검속으로 인해 전국의 학생운동 지도부는 마비된 상태에 있었다. 휴교령이 내릴 경우의 행동지침도 전국적으로 비슷했다. 그런데 광주에서 학생들의 시위가 가능했던 이유는 1980년 봄 광주지역의 정치적 분위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광주지역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의 구체성과 치열함을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계엄이 확대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에 굴하지 않고 이렇다 할 지도부나 조직도 없이 즉각 저항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저항의 초기단계 공수부대의 엄청난 폭력에 굴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간 것은 이름 없는 학생들 이었다. 그리고 공수부대의 만행에 분노한 시민들이 있었다. 특히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자행된 공수부대의 살상행위는 시민들의 저항을 분출시키는 자극적인 기폭제 가 되었다. 계엄군의 폭력이 오히려 폭력의 공포를 사라지게 하고 치열한 연대감과 폭력에 대한 증오심을 낳은 것이다. 2장 항쟁의 발발과 광주지역의 확산 1절 학생시위대의 시내 진출과 계엄군의 과잉진압 18일 오후가 되자 학생시민시위대는 오전과는 달리 공수부대의 잔인한 공격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이날 김대중 체포와 전두환의 쿠데타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동향 출신 정치인 김대중의 핍박과 수난을 전라도 지역민에 대한 수난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광주시민들은 김대중의 투옥을 민주화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기대가 좌절된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잔혹한 진압을 가하는 공수부대에 분노하면서 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학생 시민 시위 대중들은 숫자가 수천 명으로 늘어나고, 기동성을 갖추기 시작하며 보다 조직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계엄군은 정호용 특전사령관이 광주를 직접 방문하며 진압에 대한 결의를 과시하기도 했다. 오후 6시쯤 전남 북 계엄분소는 광주시내 통금시간을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로 연장한다 고 발표했다. 군은 통금시간 직전 5 18민중항쟁 19

22 도청을 중심으로 주요시설 및 교차로 등에 병력을 배치, 시위대의 집결을 원천봉쇄하려 했지만, 학생시민들의 산발적인 시위는 계속되었다(나의갑, 2001, 230). 이날 오후 광주공원 부근의 시위대는 도청 쪽으로 진출하면서 학생회관 앞에서 경찰과 충돌, 페퍼포그차 1대를 전소시키기도 했다. 이때부터 시내에 진출한 공수부대원의 진압과 학생시민 시위대의 경찰에 대한 공격이 번갈아가면서 진행되었다.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와 충장로 등 광주시내 전역을 누비면서 젊은 사람만 보면 두들겨 팬 후, 옷을 벗기고, 포박하여 연행해 갔다. 이에 맞서 시위대는 동명동이나 지산동 등지에서 파출소를 습격하거나 파괴하였으며, 시장 관사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5시경에는 경찰차를 포위한 시위대가 30여 명의 경찰을 잡아, 방석모와 곤봉 등을 빼앗기도 하였다. 18일 오후 7시쯤 계림동 광주고등학교 부근에서는 학생시민 시위대 수백 명이 공수부대와 충돌했다. 시위대는 각목 등을 들고 공수부대원들과 육탄전을 벌였다. 이에 공수부대가 시위대에 밀리기도 했다. 이날 저녁 공수부대는 인원을 증파하여 젊은 사람만 보면 무조건 연행해 가버렸다. 이 때문인지, 이날 오후부터 진압과정에서 일부 군인들이 경상도 특유의 억센 사투리를 사용하는 상황이 발생하며, 경상도군인들이 전라도사람 다 죽인다 는 내용의 유언비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런 유언비어가 지역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한 것이지만, 유언비어가 전하는 계엄군의 잔악한 진압 내용은 사실이었다. 계엄군에 의한 젊은이들의 연행은 밤새 계속되었고,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공수부대의 만행에 대한 소식을 전했고, 광주의 시민들은 공포와 분노 속에서 점차 하나가 되어갔다. 계엄사령부는 이날 밤 광주지역의 상황이 악화되자 이에 대한 대비를 준비해 갔다. 우선 광주시내 전역에서 직장예비군의 무기와 탄약을 회수하여 군부대에 보관하게 했다. 이날 밤 거두어들인 무기는 총기류 4,717정, 탄약 115만 발이었다. 2군사령관은 각 공수부대에 시내 출동, 융통성 있게 운영 하며, 전 가용 작전부대 투입 하여 주모자 체포 하고 단호한 조치 를 취하라고 지시하였다(23:00)(2군사령부,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 또한 포고령 위반자는 가용수단 동원 엄중 처리 하며 소요자는 최후의 1인까지 추격하여 타격 및 체포 하도록 했다( 충정업무 일일 주요사항 ). 이 같은 지침은 다음날 현장에 투입된 공수부대원이 더욱 더 과격한 진압을 하게한 상부의 명령이었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380). 23) 23) 반면 안병하 전남도경찰국장(아래 도경국장 으로 줄임)은 시위진압을 지시하면서도 군과는 다른 지시를 내렸다. 5월 18일 11시 안병하 도경국장은 광주 시내에서 시위가 발생하자 분산되는 자는 너무 추격 말 것, 부상자 발생치 않도록 할 것, 기타 학생은 연행할 것 등을 지시했고, 이어 연행과정에서 학생의 피해가 없도록 유의 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시 위 중인 학생을 철저하게 검거하라고 지시했다. 안병하 도경국장은 오후 3시경 16:20부터 공수단이 투입되어 협동작전 을 하게 되니 각 부대장은 현장을 유지하고 가스차 피탈이나 인명피해가 없도록 조치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인명피해 를 바라지 않았던 도경국장의 지시는 공수부대의 과격진압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2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23 도시게릴라식 소요 및 난동 형태에 대비. 소규모로 편성한 다수 진압부대를 융통성 있게 운용. 전 작전가용 병력 최대 운용. 바둑판식 분할 점령. 대대단위 기동타격대 보유 조기에 분할 타격 체포. 군중 10인 이상 집결 방지. 다수 편의대 운용(첩보 수집). 치명상을 입지 않은 범위 내에서 과감한 타격. 통금시간 대폭 연장. 총기피탈 방지(엄중 문책). 주민에게 선무 홍보활동 강화(전단, 방송)(전교사, 전투상보(충정작전결과) ) 위의 자료를 보면 계엄군은 시위의 원인에 대한 규명 없이 시민들의 행위를 난동 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2군사령부는 5월 20일 계엄군 자세 확립 지시(작상전 439호) 를 통해 총기 피탈 방지, 대민 적대행위 방지, 장기작전 대비, 연행자 처리 등을 지시했다(18:25). 같은 날 훈시문에서는 계엄군의 이성적 행동 강조, 이적 행위자-단호히 조치, 선량한 학생 및 시민 보호, 군인 기본자세 견지, 정부 재산 보호(주둔지 시설 포함) 라고 하며 계엄군의 과격한 진압 행위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이때부터 광주지역의 시위를 이적행위 로 규정하며 이적 행위자 와 선량한 학생과 시민 을 분리시키라는 지침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전교사, 전투상보(충정작전결과) ). 계엄사는 비상계엄 전국 확대와 김대중 연행에 항의하는 광주 시민들의 시위를 불순분자 나 고첩 들의 책동으로 왜곡 은폐했고, 5월 21일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담화문을 통해 오늘의 엄청난 사태로 확산된 것은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인물 및 고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고장에 잠입,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 약탈행위 등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행위를 선도한 데 기인된 것이다 고 왜곡하여 발표했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 결국 5 18민중항쟁은 시위 진압군으로 투입된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진압에서 시작되었다. 사전에 진압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는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시민까지 폭력을 행사했고, 이에 저항하는 지역민들의 시위는 점차 확산되었다.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일방적인 폭력적 진압에 분노 하면서 항쟁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특히 지역민들은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의 이유 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문을 통해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다. 이것이 정부와 언론이 말하는 유언비어 이다. 즉, 계엄령으로 인해 공공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유언비어는 지역민들이 사이에서 대안 언론의 역할을 했다. 18일 오후부터는 시내 산수동, 계림동 부근에 유인물이 배포되기 시작했다. 이 유인물들은 극회 광대 회원, 24) 전남대 학생, 들불야학 학생들이 만든 것이었다. 이들은 당시의 상황을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유인물을 제작하였다. 이들 유인물은 18일 오전 중에 일어났던 공수부대의 24) 이들은 현대문화연구소(윤한봉, 정용화)가 후원한 YWCA소속 극회 광대 의 회원들이었다. 5 18민중항쟁 21

24 폭력과 만행 그리고 진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학생회나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들이 체포되거나 잠적해버린 상황에서 계엄군에 대응하려는 학생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 < 그림 18~19일 유인물 > 광주에서 이렇게 신군부에 의한 폭력 진압이 일어나고 있을 때, 정부와 언론은 평소와 다름없이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최규하 대통령은 5 17조치 와 관련하여 특별성명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최근의 소요로 야기된 사회혼란 상태가 더 이상 계속되면 국가의 기강을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가를 보위하고 3,700만 국민의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었다.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는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2절 시민들의 참여와 항쟁의 확산 두려움에 떨며 18일 밤이 지났다. 19일 초 중 고교학생들은 등교를 시작했고, 관공서와 회사들이 정상적으로 근무함에 따라 여느 날과 다름없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내 중심가의 상가들은 대부분 철시한 상태였다. 이른 새벽부터 군인과 경찰들이 시내 전 지역에 걸쳐서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금남로는 일체의 차량이 통행할 수 없었다.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곳은 계엄군 일개 소대 정도의 병력이 주둔하여 젊은 사람들과 차량의 통행을 통제하고, 검문을 실시하고 있었다. 계엄군의 배치로 도시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으며, 시민들은 어제의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2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25 했다. 사람들의 표정엔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이런 와중에 시민들은 시내로 나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고자 했고, 몇 명씩 짝을 지어 금남로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전 9시 학생과 시민들이 골목을 빠져나와 금남로 가톨릭회관 앞으로 모여들었다(보안사, 광주사태 상황보고 ). 10시 모여든 군중은 3,000~4,000명으로 불어났으며, 자연스럽게 군경과 대치하고 있었다. 일반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수부대가 00도 출신 군인들만 뽑아 갖고 왔다면서요. 군인들에게 약을 먹였다는 소문도 맞는가 봐요.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런 거지요. 00도 군인들이 00도 사람들 씨를 말리러 왔다고들 야단이던데 참말이 답니까? 그럴 리가 있겠어요.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근데 군인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참말인 것도 같고. 18일 오후부터 나돌기 시작한, 이 출처불명의 소문들에 시민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반신반의했다(나의갑, 2001: 231). 모여든 사람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계엄군과 경찰은 확성기와 헬기를 동원하여 시민들의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공중에 떠서 돌아다니는 헬기를 향해 주먹다짐과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있기도 했다. [18일] 10:00 전남대 학생 약 200여명 공동터미날에서 금남로 경유 관광호텔 골목으로 가고 있음 11:30 카톨릭센타 앞에서 도로에 전남대학생 200여명 앉아서 연좌대모 및 구호외침(계엄령 해제 전두환 물러가라) (중략) 14:44 아모레 화장품 앞에서 인도시민 및 학생들에게 최루탄 발사로 흩어짐 14:50 현대극장 앞 100명이 데모 중앙극장 앞 학생과 기동경찰 투석전 (중략) 16:10 구 금성여객 장소에서 학생과 군인 투석전 (중략) 17:00 현대극장 앞. 군인과 학생 투석전중. 학생 및 시민 군용차량에 2 台 연행 약 40 名 20:30 광주은행 앞 학생 150여명 군인 경찰과 투석중 전대병원 앞에서 공수부대원이 학생 10여명 구타 [19일] 10:20 카톨릭센타 앞 무장공수부대 5명 시민 1000명 정도 구경 학생을 잡으려 할 때 시민들의 야유로 저지 (중략) 10:35 무장군인 20명을 카톨릭센타 앞 배치로 시민들 흥분 야유 ( 5 18사태일지-광주시 동구 ) 당시 작성한 위와 같은 문서들을 보면 학생들의 시위에 시민들이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18일 계엄군의 폭력에 시민 들은 시위 군중과 군인들이 충돌하는 광경을 인도 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군인들이 시민 들을 학생들과 함께 군용차량에 실어 연행해 가자, 시민들은 (19일) 길거리에 계엄군들에게 야유 를 보내는 등 점차 학생들의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무장 군인들의 숫자는 증가했고, 이에 시민들은 흥분 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시민들을 해산시키고자 군인들은 곤봉 을 휘둘렀다( 5 18사태일지-광주시 동구 ; 상황보고-광주시 ; 5 18민중항쟁 23

26 학원사태보고 ). 지역민은 시민학생 이라는 시위대를 이루어 공수부대와 투석전을 벌였다. 이러한 자료들은 학생들과 기동경찰의 충돌이 학생-공수부대의 충돌, 그 사이 시민이 시위 군중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렇게 학생들의 시위에 점차 시민들이 참여하고 여기에 계엄군이 더 폭력적인 진압을 행사는 모습은 전 시내에서 이루어졌다. 10:48 무장군인 약 25명 동구청 앞 = 광주은행 앞에 있는 시민들을 해산시키고자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로 달려 도망다님 (중략) 11:00 금남로 통은 쫓고 쫓기며 현재 금남로 통에는 사람이 별로 없음 11:00 무장군인 소위 25) 가 시민들 돌에 의해 얼굴에 부상 시민들 무차별 난타로 부상 부지기 11:00 탱크 2대 군용차 15대 카도릭센터 앞 배치 11:00 군용차량 1대에 학생 반죽음으로 싣고 감 ( 상황일지 ) 위의 자료는 공수부대의 때리 는 행동에 시민들은 투석전으로 대응하였고, 그 과정에서 일부 군인들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에 군인들은 학생 시민 시위대를 무차별 구타 하여, 학생들이 죽 는 지경에 이르렀고 시민들은 피 까지 흘렸다. 짐작컨대, 무장군인과 시민학생 사이의 투석전 과정에서 상황이 시위와 진압이 점차 가열되었다. 결국 일반 시민들에 대한 계엄군의 폭력이 지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며 이후 더욱 큰 저항을 불러왔다. 일반 시민을 폭행, 연행하는 계엄군(5 18기념재단) 시민과 학생들은 도청광장 쪽으로 진출하려 했다. 도청광장에 진을 치고 있던 경찰 은 스피커를 25) 기록에는 소위로 되어 있으나, 군위 였다는 증언이 있다. 2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27 통해 시민들의 해산을 종용하고 있었다. 공중에서는 군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10시 40분부터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해산에 나서 다 죽여 버린다. 빨리 창문 가리고 일이나 해, 자식들아. 군인들은 내다보는 눈 을 진압봉으로 탁탁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나의갑, 2001: 232). 그러나 어제의 잔인한 진압에 분노하고 있던 시민들은 그냥 쫓겨 도망가지 않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잔인한 살육전이 전개되었다. 항의하던 할아버지와 아주머니, 도망가던 여학생, 버스기사, 고시학원 창가에서 구경하던 어린 학원생들, 모두가 진압 대상이었다. 공수부대원들은 3~4명이 한 조가 되어 지나는 행인은 물론이고 사무실과 주택으로 들어가 젊은 사람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팬 뒤, 연행하였다. 붙잡힌 시민들은 팬티만 남기고 발가벗겨진 채 길거리에서 가혹한 기합을 받아야만 했다. 버스에 올라탔던 학생들도 잡혀갔고, 버스나 택시를 몰던 운전기사가 구타를 당하였다. 곳곳에서 부상자가 속출하자 택시기사들은 자진하여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운반했지만, 공수부대원이 택시에 실려 가는 부상자와 운전기사까지도 구타하였다. 이들의 만행을 보다 못한 경찰들이 서성거리는 시민들에게 제발 집으로 돌아가라, 공수부대에게 걸리면 다 죽는다 고 말 해줄 정도였다 (국방부과거사위, 2007: 284쪽). 26) 공수부대의 과도한 폭력 진압에 시위대를 뒤쫓는 계엄군(5월 19일)(5 18기념재단) 의해 시내는 텅 비워졌다. 관공서와 회사들도 낮 12시가 되자 직원들을 퇴근시키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잉 폭력 진압은 시가지 전역에 거쳐서 자행되고 있었다. 금남로는 완전히 교통이 차단되었고, 도청 앞은 다시 기동경찰이 바리게이트를 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일부 군인들이 시내 요소를 지키는 가운데 대부분의 군 병력은 점심을 먹기 위하여 주둔지인 조선대 캠퍼스로 이동하였다. 그러자 골목에 숨어있던 시민들이 다시 금남로에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불어난 사람들은 오전보다 훨씬 많은 시위군중이 되었다. 시위대 가운데 섞여있던 학생, 청년들은 애국가, 정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의 노래를 불렀고, 시위는 차츰 시가전( 市 街 戰 ) 양상을 보였다. 시위군중과 진압하는 26) 5월 19일 보안사의 보고에는, 이때까지의 피해 현황 중 인명피해를 총 69명으로 보고했으나 이것은 경찰의 피해였다 (14:30). 보안사는 민간인 1명만 사망한 것으로 파악했으며 민간인 피해자가 확인될 경우 인명피해는 더욱 증가될 것으 로 예상 했다. 5 18민중항쟁 25

28 군경 사이에는 돌과 화염병, 최루탄이 오가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시민들은 도로 가의 대형화분을 넘어뜨리고 보도블록을 깨트려 계엄군에 던졌다. 근처 지하상가 공사장 등에서 무기가 될 것을 들고 나와 경찰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화염병이 등장하기도 했다(700보안부대, 광주사태 동향 ). 무장력에 한계를 느낀 시위 군중들은 차량이나 기름통에 불을 붙여 경찰 바리게이트에 굴려 보내기 시작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군경도 가스차나 최루탄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위대에 달려들어 곤봉과 총 개머리판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해산시킨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때마다 시위대는 흩어졌다가 진압군경이 돌아가면 다시 모여들곤 했다. 시민들은 도로변의 대형화분과 공중전화박스 가드레일 버스정차장 입간판 등을 뜯어 바리게이트를 치고 보도블록을 깬 조각을 던지며 계속 저항했다. 그 후로도 금남로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수십 차례 거듭되었다. 이들 사이의 공방전을 전남도청에서 작성한 5 18사태 주요 사건일지 는 군 공수부대 200여명 투입. 학생 및 학생차림 젊은 층 무차별 구타 연행. 혹독( 酷 毒 )한 진압 목격 시민, 흥분 분개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전남도청, 5 18 주요 사건일지 ). 동구청에서 작성한 5 18사태일지 는 공수부대원들의 과격진압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광주시 동구청, 5 18사태일지 ) :00 조선대학 입구 철로변에서 공수부대 군인이 지나가는 학생 11명을 총개머리판으로 구타. 1시간 20여분 정도 :52 조선대학으로 군 트럭(1대)에 학생들을 연행 갑바를 씌워 일어나면 발로 차고 감 :00 무장군인 소위가 시민들 돌에 의해 얼굴에 부상. 시민들 보이면 무차별 구타중 :00 금남로 통은 공수부대들이 곤봉으로 때리므로 시민들 없음 :15 일반 시민 15명 정도가 충금지하상가 쪽 및 각처에서 팬티만 입고 관광호텔 앞에 있으며 등 어깨 다리는 곤봉 및 워커발 태죽이 보이며 빨갛게 되었음 :25 동구청 민원홀에 학생으로 보이는 2명을 잡아 구청 변소 앞에서 공수부대 7~8명이 곤봉 및 구둣발로 때리고 있음 :34 동구청 앞 도로에 머리 길고 젊은 사람은 잡혀오고 있으며, 허리띠를 빼서 차창 옆에 던지고, 엎드리게 하고 두 손으로 곤봉을 잡아 전부 때리고 있고, 뒹굴게 하여 동작이 늦으면 곤봉으로 무차별 때림. 일차 5분여 동안 기압이 끝나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손은 허리에 올려 두 손을 잡게 하여 잘못하면 구둣발로 등을 차고 있으며 일부 시민은 머리에서 피를 흘려 윗옷이 빨갛게 되어 있음. 2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29 가열된 시위와 잔혹해진 진압과정 속에서 공수부대원들의 진압봉이 교체되기도 했다. 새로 배분된 진압봉은 원래의 진압봉보다 길이가 긴 것이었다. 또한 시위 진압에 대검이 사용되었다. 전교사에서 작성한 전교사 작전상황일지 에는 대처상황 중 수습 및 작전에는 7 空 輸 隊 銃 劍 鎭 壓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5월 18일 20:15)(전교사, 전교사 작전상황일지, ). 1985년 안기부 자료에도 7공수여단 착검진압 으로 기술되고 있다. 대검을 M16에 착검한 사례는 사진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아래 사진에 속 착검 군인은 7공수여단 서 중사로 밝혀졌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387). 27) 착검한 총을 들고 뛰는 계엄군(5월 19일) 전남매일 (정상용 외, 1990: 196) 시위대는 주위 동료들뿐만 아니라 길가에서 구경하던 시민들까지 처참하게 살상당하는 것을 보고 죽음을 각오하고 공수부대에 대항했다. 도청 앞 가톨릭센터, 양림교, 광주공원 앞 다리, 양동시장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공수부대와 시위대의 충돌이 발생했다. 시민들은 맞아죽기 보다는 싸우다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 군과 경찰은 수적으로 우세하였지만 겨우 간선도로와 시 외곽으로 연결되는 국도만을 확보하고 있었고 작전상의 주요지점을 지키는데 급급했다. 오후 4시경부터는 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정상수업을 한다고 해서 등교했지만, 공수부대의 폭력을 목격하고 밖에서 벌어지는 참상이 전해지면서 누구도 수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오후 4시경 전남고와 대동고 그리고 중앙여고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했다. 27) 광주항쟁 기간 총 11명의 자상 사망자들이 있었다. 5월 23일 발생한 지원동 총격사건( 주남마을 미니버스 총격사건 )의 사망자 중 2명의 젊은 여성도 총상 외에도 자상이 있었다. 5 18민중항쟁 27

30 학생들은 교정에 모여 시가행진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으며, 광산여고와 정광고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 학교의 정문에는 계엄군이 배치되어 학생들의 시가행진이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방과 후 고등학생들이 시위대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등학생 희생자가 발생했고, 이에 전남 도교육위원회는 광주 시내 37개 고등학교에 하루 동안 휴교조치를 내렸다. 시민들의 저항도 갈수록 거세졌다. 오후 4시 30분경에는 공용터미널 근처에서 공수부대와 치열한 접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특히 공용터미널 지하도 속으로 쫓겼던 시민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지하도 속에서 공수대원들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5시 10분경에는 계림동 광주고등학교 부근에서 장갑차까지 동원한 공수부대의 발포가 있었다. 당시 시민들은 장갑차의 눈 역할을 하는 감시 경을 돌로 깨트리고 장갑차를 포위한 뒤 장갑차에 불을 지르려고 하였다. 그때 장갑차 안에서 뚜껑을 열고 공수대원 한명이 나오더니 총을 발포했다. 이 발포로 조선대부속고등학교 3학년 김영찬(19)군이 손과 대퇴부에 3발을 맞았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 28) 오후 5시 30분,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7여단 병력이 11여단 1병력으로 교체되었다. 11여단은 증파 명령을 받고 18, 19일 선 후발대로 나눠 광주에 왔다. 그 틈을 타 수만 명의 시위군중이 다시 금남로로 몰려들었으나, 이내 흩어지고 맞았다. 이런 밀고 밀림 은 금남로 등 곳곳의 시위현장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었다(나의갑, 2001: 233). 오후 6시 대인동 공용버스터미널 주차장에는 7~8구의 시체가 늘어져 있었다. 공수부대원들의 대검에 찔리거나 맞아 죽은 사람들이었다(김영택, 2010: 301). 또한 부상자를 싣고 가던 택시 기사가 공수부대의 명령을 거부했다고 칼에 찔려 죽기도 했다. 29) 당시 공수부대는 시내에서 연행해 간 사람을 대학교, 상무대 유치장에 수용했는데, 어느 누구도 온전한 사람이 없었다. 온몸에 난 상처를 안고 차분하게 앉아서 쉬거나 치료받지 못하고, 물도 먹지 못한 채 두들겨 맞거나, 기합을 받다가 쓰러져 끌려 나가는 상황이었다(김영택, 2010: 310). 하늘에서는 군용 헬기가 상공을 선회하면서 선무방송을 하고 있었다. 모든 시민은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거리에 나오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 계엄군은 시내 질서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시민 여러분들은 안심하십시오. 라는 방송만 반복했다. 상황이 매우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측에서는 광주의 상황과 관련하여 아무런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또한 각종 보도매체들도 계엄당국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광주의 상황과 관련된 보도를 전혀 하지 28) 11공수여단 63대대 작전장교 차 대위가 M16을 발포했고, 당시 조대부고 3학년인 김영찬이 유탄에 총상을 입었다 :00 보안사는 현지 505보안부대로부터 고교생 1명(인적사항 미상)이 우측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전남의대 병원에 입원 수술을 받았다. 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나 11여단의 전투상보, 상급부대인 31사단과 전교사의 상황일지 등 에는 발포에 관련된 어떤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11공수여단에서 상급부대에 보고를 하지 않은 채 발포 사실을 은 폐한 것으로 판단된다. 29) 이날 낮부터 광주 시내 종합병원과 개인병원에는 중환자가 줄을 이어 입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행히 계엄군의 트럭 에 실려 가지 않고 중상을 당한 채 달아났거나 주위의 도움을 받아 계엄군의 무자비한 손길을 벗어났던 사람들이었다. 그 러나 병원에 옮겨져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광주 시내 병원시설로는 이들 전체를 수용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2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31 않고 있었다. 오후 7시 도청에서 광남로에 이르는 길은 경찰과 공수부대가 여전히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가 곡괭이, 삽, 몽둥이 등으로 무장하고 이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이들은 광주역 앞에 있던 KBS 방송국을 공격하기도 하고, 인근 파출소로 몰려가 불을 지르기도 하였다. 이날 밤 시위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통행금지 시간인 7시를 훨씬 넘긴 저녁 10시까지 계속되었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자 계엄군은 지역민들에 대한 선무활동을 목표로 호남출신 장교들을 광주에 파견했다. 이들 장교들은 5 18 의 주요 원인이 공수부대원들의 과격진압이라고 지적했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388). 전교사 충정작전결과 에는 진압 간 일부 구타 사항 목격, 주민데모 합세 확대화 (전교사, 충정작전결과 ), 30) 전교사 광주소요사태분석(교훈집) 에는 소요사태로 전개된 직접적인 원인 중의 하나로 진압부대의 일부 충동 행위로 인한 군중의 정서적 흥분 이라고 기록되었다. 특전사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총괄) 에는 소요진압간 발생 부상자 후송 대책 결여로 장기간 노상방치로 군중 자극 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렇듯 공수부대의 초기 과격진압은 학생시위에 시민들이 적극 동참해 항쟁으로 나가는 주요 원인이었다. 1989년 국회청문회 대비 보안사 문건에서도 계엄군의 과격진압 사례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보안사 3처 2과, 1989: 광주사태 전말보고 ). - 무차별 구타(일부 군인 대검 소지) - 유혈 낭자 시민 계속 구타 및 시민 면전에서 끌고 다님 - 도망자 계속 추적 검거 구타 - 도망자 숨겨둘 경우 상점 물건 파손 - 무혐의 가게 종업원 및 배회자 연행 - 대중 면전 탈의 상태로 원산폭격 및 구타(금남로) - 버스, 택시 검문, 학생 모두 연행 - 장년, 노년층에게 이 새끼, 저 새끼 등 욕설 사용 - 일부 여자에 대한 과격한 저지 - 학생 수송 택시 운전사 제재 결국 7공수여단과 11공수여단의 과격진압에도 불구하고 광주시민들의 저항은 더 격렬해 졌다. 이에 육군본부는 제3공수여단의 추가 파병을 결정했다. 이날 7시 30분 전교사 사령관실에서는 광주지역 계엄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광주시내 시위 상황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계엄군의 30) 이외에도 학원자율화 이후 문교정책, 초기 단계의 과감한 조치 결여, 주동자 미검거, 유언비어, 시위과정의 투석, 파괴, 살 인 등을 들고 있다. 전교사, 충정작전결과 ( )(보안사, , 293쪽 인용). 5 18민중항쟁 29

32 강경진압에 학생들을 동정하는 시민들이 가세했다는 점이 지적됐다. 또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유언비어 방지를 위해 라디오 방송을 통해 30분간 간격으로 광주시내 학생소요와 관계되어 계엄군이나 학생이 사망한 바 없으며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도록 계몽을 실시 하기로 결정했다. 또 5월 20일부터 계엄간담회를 통한 선무활동을 실시함과 동시에 시위대가 게릴라식으로 대항할 것에 대비해 계엄군 투입을 위한 1개 공수여단의 추가 지원을 육군본부에 요청하며 강력한 진압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광주지역 시민들의 저항에 계엄군은 더 강력한 진압을 계획했던 것이다. 3장 시위대의 형성과 도청 앞 발포 1절 학생 시민 시위대와 차량 시위 20일 오전 충장로와 금남로의 상가 대부분 문을 닫았고, 시민들은 군데군데 모여 공수부대의 과격진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광주시 동구청, 5 18사태일지 ). 전교사 병 력(6/135명)이 금 남 로 청 소 작 업 을 위 해 출 동 했 다 가(06:20), 철 수 했 다(09:00)(전 교 사, 전교사 작전일지 ). 전교사는 공수부대의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가 확대되자, 주요 기관장 회의(10:20~12:50), 각계 대표 56명과 31) 특별참모 간담회를 주재했다(14:00~14:20).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공수부대의 과격진압과 유언비어 문제를 원인으로 제기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상황일지 전문 ). 오전 10시경 대인시장 주변 천여 명의 시민들이 전날의 계엄군에 대해 이야기하며 분노와 적개심으로 하나가 되고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형성한 시위대는 얼마 나아가지 못하고 탱크를 앞세운 공수부대에 의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금남로에서는 시위 군중과 계엄군 사이의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반복되었고, 여기에는 전날 도착한 제11공수단에 이어 제3공수여단 병력 1,392명이 증파되어 있었다(김영택, 2010: 313).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시내는 대체로 소강상태였다. 점심시간이 지나면서 광주시가지는 다시 팽팽한 대치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대략 10만이 넘는 인파가 금남로에 모여 들었다. 시내의 도처에는 투사회보 라는 유인물이 수천 매씩 뿌려지고 있었다. 32) 오후 3시, 금남로의 시위대는 수만 명으로 불어났으며, 그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하며 시위대를 저지하려했다. 시위군중은 경찰의 저지에 대항하며 시위대를 형성했다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몰려들기를 31) 주요 참석자들은 광주상공회의소장, 전남의사회장, 전남약사회장, 한국부인회 광주지회장 등이었다. 32) 투사회보 는 윤상원이 중심이 된 광주지역의 사회운동 진영에서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만 들어 낸 대안 언론이었다. 3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33 반복했다. 이윽고 시민들은 금남로에 앉아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이들은 도청 쪽으로 이동하면서 공수부대 물러가라, 우리를 죽여라 죽여,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 물러가라 고 외쳤다. 도청 앞 공수부대가 철수하고 1,000여명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면서 시위대를 압박했다. 시위대는 애국가를 부르거나 갖가지 구호를 외치면서 도청 쪽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 전면에 있던 경찰병력 대신 공수부대 3개 소대가 배치되어 시위대를 향해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숫자는 엄청나게 불어났으며, 도망치거나 방관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청 앞 광장을 통하는 모든 도로에는 시민들이 물결처럼 술렁이고 있었다. 청년 하나가 나서서 스피커를 들고 시위대를 독려하는 선전활동을 시작했다. 직접 시위에 참가하기 어려운 여자와 노약자는 시위대에 물이나 돌 등을 운반했다. 도청에서 뻗어 나오는 길목에는 군경의 저지선이 있었고, 분수대를 중심으로 탱크와 수많은 병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시위군중은 순식간에 2~3만여 명으로 불러났고, 이들은 드럼통과 화분대를 굴리면서 군 경저지선으로 접근하는 투석전을 벌였다. 금남로 (5 18기념재단) 오후 5시 50분경 충장로 입구 쪽의 시위군중 5천여 명이 스크럼을 짜고 도청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 번의 충돌 후 양쪽은 다시 대치하면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경찰들에게 다가가 광주시민을 적으로 취급하는 공수부대와 사생결단을 내고 싶으니 경찰은 비켜 달라 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폭력에 분노의 공감대를 나누며 모여들었고, 서로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계속해 나갔던 것이다. 그렇다고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러한 비조직적 시위는 21일까지 계속되었다. 5 18민중항쟁 31

34 한편 20일 오후 시내 택시 기사들은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에 대한 이야기를 곳곳에서 나누었다. 그들은 버스와 택시를 세우고 학생이나 젊은이들을 무작정 끌고 가면서 기사들까지 구타하거나 연행하는 일을 두고 이대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는 공분을 형성했다. 기사들의 공분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의견으로 집약되었고, 자신들이 운전하는 택시를 한 장소에 대량으로 모이게 한 후 일제히 도청을 향하자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다. 오후 3시경 무등 경기장 앞에 영업 택시들이 한 대 두 대 모여들기 시작했다. 버스도 있었고, 화물자동차도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자 모여든 차량이 200여 대가 넘었다. 운전기사들은 시민들의 투쟁대열에 동참할 것을 결의하고 일제히 헤드라이트를 켜고 무등 경기장을 출발하여 저녁 7시쯤 금남로에 들어섰다. 대형버스와 화물차 그리고 택시가 그 뒤를 이었다. 화물차 위와 버스 안에는 머리에 흰 머리띠를 두른 젊은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갖가지 구호를 외쳐댔고, 시민들이 구호를 따라 외치며 차량 대열에 합세 하였다. 차량행렬이 금남로에 이르자, 어찌할지 모르고 군경 저지선에 맞서 있던 군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이들을 환영했다. 금남로 차량시위(5 18기념재단) 이날 택시, 버스 등 차량 시위가 진행되면서, 차량은 항쟁시기 매우 중요한 시위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상황일지 ). 33) 시위대와 시민들은 기사들의 차량시위를 보고, 차량 을 이용한 시위의 효과와 위세를 몸소 체득했다. 이에 항쟁시기에 소방차, 스쿨버스, 아세아자동차에서 생산한 33) 광주시 상황일지 에는 19:00Bus 8대 TAXI 50여대 10ton화물트럭 1대 구청 앞까지 도착 시위군중 앞 집결 Bus 1대 남동쪽에서 분수대까지 진출 군중 4,000 ~ 5,000 名 라는 기록이 있다. 3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35 일반차량과 군용 차량에 이르기까지 많은 양의 차량들을 동원되었고, 시위군중은 차량을 타고 활동하였다. 34) 금남로에서 도청을 향해 차량시위가 진행되던 오후 7시, 청년 7명이 시외버스에 올라 운전기사에게 버스로 공수부대 군인들을 밀어 버릴 테니 달리고 있는 동안 열심히 돌을 던져줘야 합니다.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7시 10분, 시위 진압 차량이 최루탄[페퍼포그]를 군중을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욱한 연기 속에서 버스는 가로수와 충돌하기도 했고, 시위대 여기 저기에서 힘겨운 숨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에 200 여명의 군인들이 뛰어나와 군중에게 진압봉을 휘둘러댔다. 차량의 창문 부수고 불 켜진 헤드라이트를 하나하나 두드려 부쉈다. 금남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가득했다(나의갑, 2001: 236). 당시 시위대는 공용터미널에서 버스를 몰고 온 시위대와 합류하며 계엄군을 압박하였고, 그 기세에 군경저지선은 금남로 전일빌딩 앞까지 후퇴하였다. 또한 시위군중은 도청으로 통하는 6개 길목에서 군 경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노동청 쪽과 학동쪽, 충장로 입구에서도 길을 가득 메운 채, 공수부대와 경찰을 포위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도청 앞 광장이 시위대의 손에 넘어갈 것 같은 형국이었다. 군 경은 방독면을 쓴 채 최루탄을 쏘아대며 가까스로 시위 군중들을 막아내고 있었다(김영택, 2010: 330). 이날 밤 시위군중은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계엄군의 방어는 필사적이었으나 시위군중은 시시각각 그들을 압박해 갔다. 시위대가 MBC와 KBS 방송국을 장악해 방송이 중단되었으며, 시내 파출소가 파손되거나, 방화되었다. 밤 9시 20분경에는 노동청 앞 오거리에서 군경저지선을 뚫고 돌진하던 광주고속 차량에 경찰이 사망하기도 했다. 35) 밤이 깊어갈수록 양 측의 공방전은 고조되었다. 그러던 중 MBC 방송국이 불타기 시작했다. 이날 저녁 뉴스에서 광주의 상황을 보도하지 않았다고 분노한 시위대가 방송국에 몰려가 불이 난 것이다. 다음 날 새벽 KBS도 불에 탔다. 36) 34) 항쟁에 참여한 지역민들은 차량을 매개로 대( 隊 ) 를 이루어 활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위대 들은 광주의 상황을 알리고자 사방으로 내달리며 광주에서 제작되는 유인물을 먼 장소까지 전달해 항쟁의 동참을 선전하거나, 무기와 인원을 광 주 내부로 들여오기도 하였다. 항쟁 시기 시위대와 차량이 내달렸던 도로는 광주 이외 지역은 전남지역의 연결되어 있었고, 시위대들의 인적 관계를 따라 급속히 확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계엄군과 정부는 그 확산을 제압하고자 광주와 통하 는 주요 도로를 차단하였고, 시위대는 주요 길목에서 계엄군과 가두 시위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35) 함평에서 파견 나온 경찰관 강정웅(39), 박기웅(40), 이세웅(31), 정충길(40) 이상 4명이다. 36) 광주MBC 화재는 저녁 9시 30분, KBS광주방송은 21일 새벽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5 18민중항쟁 33

36 이날 시내에는 트럭에 스피커를 매단 선전 차량이 등장하기도 했다. 계엄군 아저씨, 당신들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까? 도대체 어느 나라 군대입니까? 경찰 아저씨, 당신들은 우리 편입니다. 제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김영택, 2010: 334) 시내 주변을 돌며 흘러나오는 여성의 애절한 호소는 온 시내를 뒤흔들어 놓았다고 한다. 이 목소리의 호소력은 지도자도 없는 항쟁의 시위대에게 일종의 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정해구, 1999). 이 무렵 공수부대 제11여단은 조선대학교와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대와 대치하였고, 제7여단 33대대는 조선대로 복귀했고, 제35대대는 도청으로 이동해 11여단과 합류했다. 제3여단 제12 15대대는 광주역 앞에서 다섯 갈래의 방사형 도로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수천 명의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이때 일부 시위자들이 드럼통에 불을 붙여 굴려 보내거나 차량을 돌진시켜 하사관 3명이 중상을 입자, 대대장은 권총으로 시위대의 차량을 향해 발포했다. 여단장이 경계용 실탄은 위협사격용으로 사용하되 그 이외 사용 시에는 사전에 보고하라 는 지시와 함께 발포를 허락했던 것이다(나의갑, 2010: 237). 광주역 앞의 계엄군도 발포를 했다. 광주역에서 경계중인 제3여단 군인이 시위대의 차량에 사망하자 3공수여단장(여단장 최세창)은 각 대대에 M-16 실탄을 배부하고 장착토록 지시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37) 당시 3공수여단 본부중대 소속 하사 이 는 본부중대 병력들이 3공수여단 작전 참모와 작전과 선임하사의 지휘 아래 지프와 트럭에 실탄을 싣고 전남대에서 광주역으로 지원 나갔으며, 그 과정에서 지원 병력을 막아선 시위대를 향해 발포가 이루어졌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394). 계엄군의 발포에 선두에 섰던 청년들이 쓰러졌다. 38) 새벽 2시쯤 제3공수여단은 전남대로 철수했다. 결국 3개 여단의 공수부대가 장악하고 있던 주요 기점에서 일제히 시위대에 대한 발포가 이루어졌다. 시민 시위대는 적극적으로 대항했다. 새벽 1시 시위대는 국민들의 삶과 복지를 위하여 쓰라고 거두어진 세금이 자신들을 죽이려는 군대와 그들의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며 세무서를 장악했다. 시민들의 위세가 오르자 도청 앞 광장의 군 저지선에는 긴장감이 흘렸고, 계엄군 쪽에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라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나의갑, 2001: 238). 지금 집에서는 부모형제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이제 제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시민 여러분, 저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37) 사망한 군인은 16대대 정관철 중사이다. 38) 김재화(26, 이북일(29), 김만두(45), 김재수(25) 등 4명이 사망했고, 최명철(39세) 외 6명이 부상당했다. 3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37 안 됩니다. 절대로 동요해서는 안 됩니다. 공수부대가 우리 광주를 어떻게 했습니까. 공수부대가 우리 광주를 박살내고 있지 않습니까. 공수부대가 광주시민을 폭도로 취급하고 있는데 물러서면 되겠습니까. 우리는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광주를 지켜야 합니다. 그 무렵 도청과 광주역, 교도소, 전남대, 조선대 등 계엄군이 주둔한 곳을 제외한 광주시 일원은 사실상 군 경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오전 3시 밤은 깊어가자 도청 앞의 시위 군중들의 기세도 가라앉고 있었다. 21일 새벽 시외전화가 끊기면서 광주는 외부로부터 통신이 두절되었다. 2절 21일 도청 앞 시위와 발포 광주에 투입된 3개 공수여단은 21일 아침 시내에 재배치되었다. 제3공수여단 제11대대는 황금동 주변, 제12대대는 광주시청 대기, 제33대대는 공용터미널 일대, 제15대대는 양동 사거리 일대, 제16대대는 전남대 잔류 예비대, 제7공수여단 제33대대는 계림동 파출소와 광주고등학교 주변, 제35대대는 한일은행 사거리 일대, 제11공수여단 제61대대는 상업은행 일대, 제62대대는 충장로의 광주우체국 주변, 제63대대는 광주은행 사거리 일대에 각각 재배치되었다(김영택, 2010: 352). 카톨릭센터 앞에서는 새벽 4시부터 시체 2구를 손수레에 싣고 나온 시민들과 공수부대원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지난 밤 광주역에서 사망한 시민이었다. 시민들은 군용 차 뒤에다 손수레를 연결해서 그 위에 시체들을 싣고 대형 태극기로 덮어 천천히 시내로 나아갔다. 지난 밤 시위대와 경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노동청 쪽 시가는 폐허처럼 보였다. 불에 탄 7~8대의 버스와 승용차들이 아무렇게나 길에 놓여 있었고, 노동청 건물 일부는 불에 타 있었다. 오전 9시경 금남로를 향하여 몰려든 군중들은 10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도청으로 모여든 시민들은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도지사와 협상을 시도하고자 했는데 그런데 갑자기 군의 집단 발포가 이루어졌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84~89). 39) 아래의 증언을 참고해 보자. 아침에 상업은행 앞 웬 여자가 은행 앞에서 청바지를 입고 마이크를 든 채로 애국가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앞에는 리어커에 시체 2구가 태극기에 덮여 실고, 피묻은 태극기 아래로 양말이 신겨진 발목이 덜렁덜렁 했다. 어젯밤 광주역 앞 전투에서 죽은 시민이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었다. 순식간에 십만에 육박하는 군중이 모였다. 얼마나 모였는지 보려고 소년체전을 알리는 홍보용 아치에 매달려서 보니까 금남로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 마이크를 잡은 여자를 중심으로 계속 도청 쪽으로 밀고 가서 결국 YMCA와 전일빌딩 앞까지 시민들이 전진했다. 그 상태에서 동구청 뒤쪽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다. 나도 그곳에 가서 돌을 던졌고 최루탄도 맞았다. 도청 앞에서 39) 5월 21일 도청 앞 발포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정리된 군 측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광주 지역민의 증언과 관 련 자료를 수합하여 정리할 수 있겠다. 5 18민중항쟁 35

38 마이크를 잡은 여자가 광주시장 출두를 요구했다. 시장이 나오더니 광주시민 만세 를 외쳤다. 시민들은 도청 쪽의 군 저지선을 뚫으려했지만 최루탄이 밀가루처럼 쏟아져 내려 군중이 흩어졌다.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넘어지면 그대로 밟혀 죽을 만한 상황이었다. 하늘에서는 헬기가 계속 선회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다시 모여들었다. 약 1시경 어떤 시민들이 버스 3대, 장갑차 1대, 6톤 트럭 4대가 도로를 꽉 메우며 들어왔다. 먼저 계엄군에게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자 얼굴에 수건을 쓴 사람들이 차에 올랐다. 계엄군들도 장갑차 위에서 사격준비를 했다. 나는 전일빌딩 공사장 위로 올라가서 그 광경을 보았다. 1시 20분경 시위대 차량에 탄 사람들이 군 저지선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분수대를 우로 돌아서 계엄군을 향해 전진하자 군인들은 노동청 쪽으로 밀렸고 시민들은 와 하는 함성을 질렀다. 불과 30여 초도 되지 않아 타당탕탕 총소리와 함께 처절한 비명소리로 도청 광장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모조리 골목골목으로 숨어 들어갔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10여 명이 조준사격을 받아 쓰러지고 있었다 (한국현대사사료현구소(이하 현사련 ), 1990: 김길식의 증언). 21일 도청 앞에 모여든 시민 시위대 남아 있는 기록과 증언을 종합해 보면, 공수부대의 총격과 구타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에 분노한 시민들은 전남도청과 전남대, 조선대 등지로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각목 등을 들고 살인을 저지른 공수부대를 광주에서 몰아내겠다며 도청 앞으로 모여들었고, 전춘심(31세, 일명 전옥주)과 차명숙은 전화박스로 만든 연단에 올라가 스피커를 통해 시위 대열의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36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39 오전 9시 25분경, 시민들은 대표를 뽑아 전남도청에서 정부 측과 협상을 시도했다. 시민 대표로는 전춘심과 김범태 등 3명이 장형태 도지사와 도청 수산국장실에서 협상을 벌였다. 이들은 도지사에게 1 도지사가 유혈사태에 대해 1차적인 책임을 질 것, 2 연행자를 전원 석방할 것, 3 계엄군은 21일 낮 12시까지 철수할 것, 4 전남 북 계엄분소장과의 협상을 주선해 줄 것 등 4개항을 요구했다. 40) 장형태 지사는 시민들의 요구가 자신의 권한 밖의 일이었는지 매우 곤란한 표정으로 계엄군 쪽에 여러분의 뜻을 충분히 전달하겠다 는 말만 했다(나의갑, 2001: 239). 그러나 거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10시경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가져온 시민군 측 장갑차가 군 저지선 방향으로 돌진하자 공수부대원들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했다. 그러나 그 위세에 밀려 계엄군은 도청 분수대에서 100m 떨어진 전일빌딩 옆 4거리까지 후퇴했다. 전남도청 앞에 있던 63대대 공수부대원들과 시위대를 막고 있던 공수부대원들이 교대했고, 이때 교대한 공수부대원들 일부에게는 실탄이 지급됐다. 11시경 전남도지사는 헬기를 타고 선무방송을 하면서 공수부대가 12시까지 철수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약속했던 12시가 되어도 공수부대가 철수하지 않자 시민들은 장갑차를 앞세워 공수부대를 더욱 압박했고, 계엄군의 점점 뒤로 밀려났다. 이때 11공수여단은 중대장 이상까지 실탄이 분배되었고, 일부 하사관들에도 실탄이 배분된 상태였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399). 이 시기와 관련된 증언은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전해 준다. 시민 대표가 공수대들에게 시간 제약을 주며 퇴각할 것을 요구하자 군인 중령이 나와 말했다. 상부에 연락을 취해 곧 나가도록 해보겠다. 그런데 12시 30분이 되었는데도 움직일 기세가 보이지 않자 시위대 측에서는 다시 요구를 했다. 왜 약속을 해놓고 물러가지 않느냐. 빨리 물러가라. 그렇지만 오후 1시가 되었는데도 공수부대는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위대 측에서는 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니까 예의 그 중령이 다시 나와서 말했다. 상부에서 아직 연락이 안 와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늦어도 1시 30분까지는 나가겠다. 그 뒤부터 시위대 쪽에서는 시간별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현사련, 1999: 이수범의 증언). 그때가 12시에서 1시 사이였는데 공수부대들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곳마다 약 10분간에 걸쳐서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해 댔다. 나는 7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당시 나는 전일방송 VOC에서 사회인으로 구성된 여성 기타합주단 강사였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전일빌딩 7층에 오곤 했었다. 그래서 건물의 내부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7층에서 내려다보니 도청 앞에는 부처님 40) 계엄군 투입, 무차별 구타에 대한 공개사과, 연행 학생 및 시민 석방, 금일 12:00까지 공수단 완전 철수 를 요구했다(보안 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5 18민중항쟁 37

40 오시는 날이라고 하며 현수탑이 세워져 있었고 자비로운 날이라 씌어져 있어서 이상한 기분을 자아냈다. 공수부대가 도청 앞에서 화분대를 바리케이드로 쳐놓고 총을 쏘고 있었다. 금남로 아래쪽에 머리에 흰 띠를 두르고 태극기를 든 남자가 타이어가 달린 장갑차를 타고 상체를 밖으로 내민 상태에서 도청을 향해 달려왔다. 곧바로 그 남자는 공수대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다. 또 군용 트럭을 탄 사람이 도청 쪽으로 오다가 총에 맞았다 (현사련, 1999: 정해민의 증언). 오후 1시, 시위대에서 시위진압에 지원 나왔던 기갑학교 소속 장갑차 한 대에 화염병을 던지자, 불이 붙은 이 장갑차는 뒤로 후진했다. 동시에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했다. 저지선이 붕괴된 계엄군은 도청 분수대 뒤와 도로 주변으로 피신했으며, 그 과정에서 11공수단 63대대 8지역대 소속 무전병 권용운 41) 일병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장갑차가 잠시 멈춘 다음 분수대를 돌아나갈 때 공수부대원들이 장갑차에 사격을 가했고, 뒤따라오던 버스가 돌진하자 10여명의 공수부대원이 버스에 사격을 가해 운전사가 사망하면서 분수대를 들이받고 멈췄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400). 이어 뒤따라오던 차량과 시위대가 도청 쪽으로 몰려들었다. 돌진하는 버스를 공격하는 계엄군 이때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분수대 앞에 공수부대원들의 집중사격이 이루어졌다(전라남도, 41) 국방부과거사위 보고서는 권용운 으로, 김영택( 5월 18일, 광주 (역사공간, 2010)은 권상운 으로 보고 있다. 38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41 5 18사태 주요 사건일지(5. 14.~27.) ) 42) 깜짝 놀란 시위 군중들이 소리가 나는 도청 옥상 쪽에서 눈을 채 떼지도 않았을 때, 총성이 쏟아졌다. 황급히 주변 골목길로 피신했던 시위 군중들이 금방 공포탄임을 알아차리고 다시 집결해, 계엄령 해제하라, 전두환이 물러가라, 광주를 끝까지 지키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도청 앞 공수부대와 대치했다. 그때 5~6명의 청년들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나와 흔들어대며 전두환이 물러가라 고 외쳤다. 또 한바탕 사위를 찢어 놓을 듯 총성이 울리고, 그 청년들이 길바닥에 쓰러졌다. 공수부대원들의 조준사격이었다. 몇 사람이 쓰러진 청년들을 수습하는 사이, 또 다른 청년들이 앞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었지만, 그들도 쓰러지고 말았다(나의갑, 2001: 240). 당시 도청에 주둔했던 11공수여단 61, 63대대와 7공수여단 35대대는 부대를 정비한 후 주변 건물로 저격 요원들을 배치하여, 시위 주동자나 돌진하는 차량에 사격을 가했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400). 계엄군 측 장갑차도 금남로 쪽과 노동청 쪽으로 배치되어 일부 사격을 했다. 오후 3시 30분경 장갑차를 타고 오던 태극기를 든 청년이 관광호텔 앞에서 총을 맞아 사망했다. 그런데 당시 공수부대는 아래와 같이 장갑차의 위협사격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13시부터 폭도들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소총사격을 하면서 계엄군을 공격 많은 부상자를 냈으며 국민은행 앞에는 자동소총 1정과 칼빈 2-40정을 거치하고 사격함, 이때는 광주 주변의 모든 경찰관서가 피탈되고 화순에 있는 한국 화약의 화약고도 피탈되었음(11특전여단, 광주소요사태 진압작전(전투상보), - 도청 앞 금남로 일대 작전개요). 그러나 2007년 국방부과거사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계엄군 사상자 명단에는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총상에 의한 부상자나 사망자는 없다. 오히려 군 측 상황일지 자료(육군본부, 31사단, 전교사)에는 시위대의 발포와 계엄군의 사상에 대한 내용은 있으나 공수부대원의 발포로 인한 시민들의 사망보고는 없다. 당시 전남도청에 있었던 7공수여단과 11공수단의 전투상보 에는 전남도청 앞 발포상황이 누락됐으며, 상급부대인 31사단과 전교사의 작전상황실에도 발포 보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403). 아래의 증언들을 참고해 보자. 청년들은 트럭에 불을 붙여 공수부대에게 밀어붙였으나 트럭은 관광호텔 앞 가로수에 부딪히고 말았다. 잠시 후에 장갑차 한 대가 도청을 향해 질주했다. 뚜껑을 연 장갑차에는 상의를 벗어던진 42) 애국가를 방송한 것이 발포와 관련되었을 것이란 설이 있지만 이것은 전남도청 내무국장이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목적에서 틀었다는 기록이 있다. 전남도청에서 금남로까지 약 500m 거리에 있었던 시민들과 계엄군은 애국가를 들었다, 못 들었 다 라는 증언이 엇갈린다. 그러나 시위대의 함성과 총소리 그리고 비명 소리, 그리고 반경 1km의 시위 공간을 생각해 보 면 애국가 방송을 발포와 인과관계로 연관 짓는 것은 옳지 못한 듯하다. 5 18민중항쟁 39

42 젊은 청년이 타고 있었다. 갑자기 탕 하는 총소리가 들리더니 장갑차 위에 타고 있던 청년의 목이 뒤로 젖혀졌다. 공수대원의 조준사격이 정확히 청년의 목에 맞은 것이었다. 장갑차는 청년의 시체를 실은 채 노동청 방향으로 빠져 나갔다 (현사련, 1990: 최치수의 증언). 조금 후 장갑차 한 대가 서서히 도청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나는 현재의 광주백화점 앞에 있었다. 장갑차에는 런닝샤쓰 차림의 한 청년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만세! 만세! 하고 외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총성이 들렸고 장갑차에 탄 청년이 쓰러졌다. 청년이 쓰러지고 다른 청년이 장갑차에서 나와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이때는 더 이상 총격은 없었다. 장갑차가 뒤로 후진하는데 도로에 깔린 자갈더미 때문에 기우뚱 기우뚱하였다. 목에 총을 맞은 시신이 장갑차 위에서 목 윗부분과 아래의 몸체가 따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시민들은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현사련, 1990: 장준영의 증언). 위와 같은 당시 시민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이를 뒷받침하는 도청 앞 사격이 있은 뒤 주변 건물에 저격병을 배치 하였고,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가 되어 올라갔으며 사수의 지시에 따라 조준경이 달린 총으로 주동자나 총기를 휴대한 시위대를 조준사격 했다는 군인들의 증언이 있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403). 43) 시위대에 총이 있었다 는 군 기록과, 군인들의 증언이 있지만, 당시 시위대는 총기류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도청 앞 집단발포가 발생한 이후 화순, 나주, 시내 곳곳의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 무장을 시작했다. 결국 군 기록에 있는 13시부터 폭도들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소총사격을 하면서 공격하였다는 내용은 왜곡 조작된 것이다. 당시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도청 앞 집단사격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자, 공수부대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무장을 해야 한다 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총이 아니면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시민들은 인근 지역을 다니며 관공서나 예비군 중대에 보관 중인 총기를 가져와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주, 무안, 목포, 화순, 보성, 강진, 영암, 해남, 완도, 담양, 곡성, 구례, 장성, 영광 등지로 진출, 주로 경찰서와 지서의 무기고를 찾아갔다. 시위대는 별다른 저항 없이 카빈소총, M1소총, 탄약, 권총, LMG 등을 손에 넣었다. 특히 화순탄광에서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을 확보하기도 했다(나의갑, 2001: 241). 아래의 내용을 보자. 44) 13:00 광산군 하남면 파출소 13:00 화순광업소 무기고 카빈 64정 43) 11공수여단 62대대 5지역대장 박 소령, 11여단 62대대 소속 한 일병. 44) 보안사 505보안부대, 광주사태시 상황일지 ; 전남도경, 상황일지. 40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43 13:30 남평 무기고, 신포 예비군 무기고 13:50 화순 본서 예비군 무기고 14:00 나주 본서, 영산지서, 금천지서, 영광지서, 중앙 파출소, 금성 파출소, 다시 지서 14:00 화순 능주지서, 화순 동복지서, 화순 동복 예비군 무기고 14:30 나주 금성 예비군 무기고, 나주 영광 예비군 무기고 위와 같은 당시 군 기록을 정리하면 시민들은 계엄군의 발포가 시작된 21일 오후 1시경 광주시 인근 지역의 파출소나 예비군 무기고에서 총기를 빼내 무장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군 측 기록에 남아 있는 13시부터 폭도들은 장갑차를 앞세우고 소총사격을 하면서 라는 기록은 사실이 아니며, 군이 자신들의 발포 사실을 정당화하고자 이와 같이 기록을 조작했던 것으로 보아진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 시민들이 무장하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자 광주시내에 투입됐던 공수부대원들의 철수가 결정됐다. 3시가 넘어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전국 확산 방지, 선무활동으로 시민과 불순세력 분리, 지휘체제 일원화 군사기 진작, 교도소 끝까지 방어, 광주시 외부로 나가는 도로망 차단, 광주시의 지역에 자제 촉구 선무활동 등을 명령했다(15:35)(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2군사령부, 사태수습을 위한 참모총장 지시(작상전 455호), 광주권 충정작전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 이어 전교사령관에게 폭도가 부대에 침입해도 최대한 제지하고 약간의 피해는 감수하라. 설득할 때까지 최대한 설득하다 그래도 군 지역에 확대되면 다시 보고하여 지시를 받으라 고 지시했다(15:50). 그러나 이지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시민들의 무장과 공수부대의 대응으로 조선대와 전남대 등지에서는 시민과 공수부대의 교전이 발생했다(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4장 시민군의 등장과 활동 1절 시민들의 무장과 시민군 의 등장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도청 일대는 아수라장이었다. 도청 앞에서는 헬기가 내리고 뜨며 군인들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고, 광주시민 여러분 으로 시작되는 윤흥정 계엄분소장 이름의 전단이 뿌려지고 있었다. 잠시 후 2시 15분경에는 장형태 도지사가 경찰 헬기를 타고 시민의 자제와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을 하였다. 그러나 계엄군의 발포에 분노한 시민들이 무기를 확보해 적극적인 방위에 나서는 것을 말릴 수는 없었다. 당시 시민들은 무장한 시민들은 시민군 이라고 불렀다. 5 18민중항쟁 41

44 < 유인물 우리는 왜 총을 들 수 밖에 없었는가?- 시민군 일동 ( )> 시민들의 무장은 전적으로 공수부대의 집단사격 때문이었다. 무장은 부당한 발포에 대한 대항하는 적극적인 방어이자, 저항 활동이었다. 시민들이 무장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몇 사람이 총기류를 통제하고자 나서게 되었고, 이것이 자발적인 지도부의 조직으로 이어진 것이다. 오후 3시 20분경 계엄군의 발포에 시민군이 응사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시가전은 도청을 중심으로 전남대 의대 방향, 노동청 방향, 공원 방향, 금남로 방향 등지에서 벌어졌다. 온 시가지가 총성에 휩싸이고,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할 때까지 총격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공수부대와의 총격전은 42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45 승산이 없는 것이었다. 훈련 받은 정예 공수부대와 비조직적인 무장 시위대의 총격전은 결과가 분명했다. 시민 측 사상자가 속출했다. 차츰 전투를 치루는 과정에서 시민군의 대오와 편제가 갖추어 졌고, 오후 4시에서 5시경 사이 광주공원으로 수백 대의 차량과 무장 소식을 들은 수천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 사이에는 자발적으로 지도부가 형성되었고, 이들 지도부들은 무기를 소지한 사람들을 10여 명씩 나누어 조를 편성하였다. 유동삼거리에서도 비슷하게 조직된 시민군 약 300~400명이 각각 조별로 광주 시내 주요지점으로 배치되었다. 오후 5시경, 시민군의 위세에 도청 앞 공수부대가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나의갑, 2001: 242). 결국 계엄군은 도청에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이미 시민군들에게 포위당한 도청의 계엄군은 퇴각로를 확보하고자, 장갑차 1대로 도청과 지원동 입구를 왕복하면서 길가에 기관총을 난사하였다. 다음으로 계엄군을 실은 군용 트럭들이 총을 난사하면서 조선대 쪽으로 후퇴했다. 이때 군의 발포로 집에 있던 무고한 주민들이 총에 맞아 숨지기도 했으며, 집집마다 총탄을 막기 위해 방문에 솜이불을 둘러놓았다. 제7공수여단 제33대대를 비롯한 5개 공수 대대병력은 도보 및 차량을 이용하여 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제11공수여단의 차량부대는 오후 7시 30분부터 장갑차를 선두로 조선대-전남도청- 제2수원지 부근으로 철수하였다. 도보부대는 다음날 아침 조선대 뒷산을 넘어 주남마을로 이동 제7공수여단과 합류했다. 공수부대가 철수하자, 도청상황실은 오후 4시 30분경, 경찰 상황실은 오후 5시 15분경 폐쇄되었다. 이날 광주시를 벗어난 모든 계엄군은 송정리 방면으로 통하는 화정동, 화순 방면의 지원동, 목포 방면의 대동고등학교 앞, 여수 순천 방면의 문화동, 제31사단 방면의 오치동, 장성 방면의 동운동, 교도소 일대 등 7개 외곽지점을 점거하고 광주를 외부로부터 차단 고립시켰다. 계엄군의 퇴각은 광주시민들의 투쟁의 산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엄군의 전술적인 작전 이기도 했다. 계엄군은 이미 광주지역의 봉쇄-내부교란-최종진압 이라는 단계적 작전을 수립하고 있었다. 이날 계엄사는 전교사에 광주시 외곽 도로망을 완전 차단하라 는 지시( 작전지시 80-5호 )를 내렸고(19:30)(보안사, 광주사태 일일속보철 ), 광주시내에서 철수한 계엄군은 이 외곽봉쇄작전을 수행했던 것이다. 계엄군은 광주와 전남의 새로운 17개 소요 확산 지역과의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광주시를 봉쇄, 여타 지역으로부터 고립시킴으로써 경제적 곤란을 초래케 하고 광주시민으로 하여금 소요의 과오를 하루속히 뉘우치게 해 광주사태를 조기에 해결하면 그 다음 군소도시 문제는 쉽사리 진압할 수 있다 고 보았다. 이에 22~23일 사이 광주에서 완전철수, 광주시 외곽에 부대별 책임지역을 할당, 배치함으로써 광주와 타 지역과 연결하는 모든 도로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 계엄군이 철수했지만, 광주시의 검찰청, 보안대, 정보부 등을 통해 비밀 감시 업무는 계속 이루어졌고, 이들에 의해 시민들과 시민군의 동태가 중앙정부와 계엄사령부에 보고되고 있었다. 5 18민중항쟁 43

46 <표> 외곽봉쇄 작전부대 및 봉쇄지역(5. 21~ :00) 부 대 병 력 비 고 3공수 265/1,261 광주교도소 경계, 남부 고속도로 차단 7공수 82/604 광주-화순 도로 차단 11공수 163/1,056 광주-화순 도로 차단 20사단 308/4,778 60연대 추가 투입, 광주-목포간 도로 차단 31사단 22/294 자대 주둔 전교사 42/746 자대 주둔 계 882/8,739 5개 진입로상, 6개 차단지역 운영 한편 계엄군들은 외곽봉쇄지역에서 총기를 난사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3공수여단이 경계했던 광주교도소 부근은 광주-담양을 오가는 길목이었는데, 이 부근에서 민간인에 대한 살상사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광주교도소는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불순분자들의 선동에 따른 폭도들의 습격을 격퇴한 것으로 왜곡되어 전해졌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409). 이외 많은 지역에서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들 학살사건이 발생했고, 지원동 미니버스 총격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45) 이날 계엄군의 발포로 인해 광주 시내의 모든 병원들은 총상환자로 넘쳐 났다. 버스나 소형차량들은 부상자나 시체들을 보이는 대로 병원으로 실어 날랐다. 의약품이나 일손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내려고 전력을 다했다. 병원 앞에는 가정주부, 아주머니, 아가씨들이 헌혈을 하려고 몰려들었다. 45) 7공수여단은 5월 22일 오후 1시 16분경 너릿재 터널 입구에서 화순에서 광주로 오던 1/4톤 트럭에 발포해 1명을 연행하고 1명을 사살했다. 전교사의 작전상황일지 에는 :30 광주 소태 폭도 50명(버스 1대) 군부대 기습 기도. 군부 대(11공수) 반격소탕. 생포 3명(부상 2명). 사살 17. 칼빈 11정, 실탄 12발, M1 1정, 무전기 1대, 버스 1대 로 보고됐다. 미니버스 발포 직후 계엄군들이 현장을 확인하러 미니버스에 올라갔고, 지역대 및 대대 간부들이 현장으로 갔다. 현장 지휘 관인 지대장 도 중위는 버스에 올라가서 버스 상태를 확인했으며 곧이어 철수했다. 홍금숙 외 2명의 부상자들은 주남 마을 여단 상황실로 이송됐다. 당시 현장으로 출동했던 간호봉사원이 사상자들을 전남대병원으로 후송할 것을 요구했으나 공수부대 지휘관들이 이를 거부했다. 처음에는 5지역대 병사들이 부상자들의 이송을 담당했으나 중간에 주남마을 경계를 서고 있었던 4지역대 병사들로 교체됐다. 주남마을 뒷산에 위치한 11공수여단 상황실에서 부상자들의 상태를 본 11공수여 단 작전보좌관 김 소령이 데려온 것을 책망하자 상황실 주변에 있었던 4지역대 병사들이 부상자들을 처리했다. 당시 부상자들을 처리했던 병사는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 지대 정 중사 등 3명이었다. 야산 중턱으로 리어카를 몰고 간 한 일병에 의하면 누군가가 안락사를 시키자고 한 후 사살했고, 묻고 났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고 했다. 당시 현 장 부근에 있었던 11공수여단 간부들 중 누구도 이들의 행위를 제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 중사가 부상자들을 사살 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별다른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주남마을 뒷산 헬기장 부근에 암매장된 시신은 6월 2일 주남마 을 주민들의 신고로 광주시청에서 수습해 망월동 시립묘지에 안장했고, 2002년 망월묘지 이장과정에서 유전자 감식을 통 해 신원이 확인됐다(국방부과거사위, 2007: ). 44 민주장정 100년, 광주 전남지역 사회운동 연구

8-13.hwp

8-13.hwp 무더위나 장마에 상관없이 매년 7 8월이면 모든 교회들이 상반기동안 정성스레 준비한 여름 수련회 및 여름 성경학교를 실행한다. 지는 7 8월호 특집 으로 잊을 수 없는 여름 성경학교와 수련회 추억 을 보내드린다. 아울러 여름 수련 회와 성경학교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한 방향 제시를 한다.(편집자 주) 여름성경학교와 수련회 목적과 새 방향 참가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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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방송기자저널 한국방송기자클럽 발행인 엄효섭 편집인 김벽수 월간 발행처 2013 10October 서울시 양천구 목1동 923-5 방송회관 12층 T. 02) 782-0002,1881 F. 02) 761-8283 www.kbjc.net 1990년 6월 20일 창간 제175호 Contents 02 방송이슈 2013년도 3분기 'BJC보도상' 수상작 3편 선정 시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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