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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ol. 46 봄 경기도 의정부 사패산 석굴암에는 石 窟 庵 佛 戊 子 仲 秋 遊 此 白 凡 金 九 광복 70년을 맞은 지금도 통일을 기다리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명문이 조각되어 있다.

2 PROLOG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나란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교육 방침 일제는 1937년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침략으로 전쟁을 확대하면서 조선에 대 해서는 내선일체( 內 鮮 一 體 )라는 구호를 내걸고 민족말살정책 즉, 황국신민화 정책( 皇 國 臣 民 化 政 策 )을 감행했다. 일제는 조선에서 모든 민족적인 문화 활동 을 금지하고 일본어와 일본식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정 책을 획책하였다. 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41년 11월 23일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정, 공포 하면서, 정치 및 경제적인 균등과 함께 교육의 균등을 이루는 나라를 만들고 자 하였다. 임시정부는 일제에 의해 제한되고 훼손되었던 교육의 정상화를 통 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되찾아 조국 건설에 앞장설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 하여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교육 정책을 제시했다

3 Contents 열다 마음의 문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06 들여다 보기 8 15 광복 당시 세계 열강의 상황과 백범의 혜안( 慧 眼 ) 10 함께 생각하기 1 광복 70주년 갈수록 퇴보하는 일본의 역사인식 14 함께 생각하기2 70주년에 되새겨 보는 광복의 의미 잇다 아름다운 인연 엄항섭 연미당 부부의 독립운동 이야기 22 史, 돋보기 광복 7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6주년 기념 특별전 26 말과 시간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김자동 회장 광복 70주년, 진짜 독립 을 꿈꾼다 30 그곳에 가면 사패산 석굴암에서 백범의 정신과 만나다 묻다 특별한 정신 우리는 그를 샤오 라 불렀다 36 청소년을 위한 역사인문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3 1운동의 역사적 의미 38 통일교육가이드 교실 밖에서 바라본 광복 70주년의 진정한 의미와 통일 40 다시 읽는 백범일지 2015년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42 다시 읽는 백범어록 백범 김구 선생이 시작한 평화통일의 첫 걸음 44 더없이 좋은 날 2015년 겨울방학교육 찾아라! 우리역사! 46 기념관소식 48 안내마당 50 독자 참여마당 Quiz Quiz 통! 통! Spring Vol.46 발행일 / 2015년 3월 31일 통권 46호 발행인 / 김신 발행처 / 백범김구기념관 사단법인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서울시 용산구 임정로 26 기획 편집 인쇄 / (주)성우애드컴 본문에 실린 외부 집필자의 글은 우리 관과 협회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4 열다 마음의 문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통일의 원년으로 글 장세윤(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 이에서 보내게 된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훙커 우리 민족이 염원하던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우리는 아직도 평 화통일의 깊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의 말처 럼 우리의 완전한 자주 독립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때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분단 70년인 올해를 통일 원년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백범 선생을 통해 들어보자 우( 虹 口 )공원에서 일본 침략군 수뇌부를 폭살할 때까지 임 시정부가 있던 좁은 면적의 프랑스 조계( 租 界 )를 벗어난 적 이 없었다. 특히 일본 영사관이 부근에 있었으므로 프랑스 조계 바로 옆에 있던 훙커우 공원(현재는 루쉰 공원)조차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통일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어느덧 96주년 3 1절을 맞이하였다. 올해는 광복 70년! 그 리고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다. 또 따져보면 한일협정 50 년, 을사5조약 110년, 을미사변 12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 다. 깊은 역사적 통찰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광복 70년은 그렇다고 해도 분단 70년 을 어떻게 보아야 하 는가? 왜 우리는 70년이 흐르는 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했 을까? 진지한 검토와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평소에 늘 가까이 두고 보던 백범일지 를 다시 읽어본다. 백범 김구는 1919년 3 1운동이 한창일 때 중국 망명길에 올 랐다. 황해도 안악을 떠났을 때가 3월 29일이었다. 3 1운동 이 한창이던 신의주를 지날 때가 30일이었다. 신의주 3 1 운동은 3월 4일 처음 시작되었지만, 이날 절정에 달했다. 그 는 신의주 건너편인 안동( 安 東, 현재는 단둥( 丹 東 ))에서 동지 15명과 함께 이륭양행에서 운행하던 여객선을 타고 나흘만 에 상해( 上 海 )에 도착했다. 4월 3일로 추정된다. 이후 백범은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경무국장 과 내무총장, 국무령, 국무위원 등을 지내며 임시정부의 파 수꾼으로 44세부터 57세까지, 인생의 황금기 13년을 상하 우리 민족이 괄목상대( 刮 目 相 對 )하는 길 필자는 상하이를 여러 차례 가보았다. 무더운 여름철에 그 곳에 갔다가 습도와 기온이 매우 높아 냉방시설이 없는 곳 에서는 정말 참기 어려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점에서 백범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참으로 인내 의 달인들 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강한 민족주의 이념을 표방하며 오로지 일제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임시정부를 이끌 었던 백범은 편협한 민족주의를 고집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는 1942년 1월 중국 시안( 西 安 ) 발행 광복 에 발표한 해 내외 동포( 同 胞 ) 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 립당이 조국의 주권과 영토를 광복할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지위를 제고하며 정치평등, 경제평등, 교육평등의 진정한 민 주국가를 세울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일제를 타도 하고 우리 한민족을 구원함은 물론, 세계인류의 생존 발전도 도울 것이라고 자신 있게 천명하였다. 하지만 백범과 임시정 부 요인들은 일제가 패망한 뒤 1945년 11월 개인자격으로 귀국해야 했다. 1947년, 일제의 질곡( 桎 梏 )으로부터 해방은 04

5 되었지만, 남북분단이 거의 굳어져 가고 이념과 계층간 갈등 이 심화됨에 따라 혼란이 가중되고 있던 어려운 시기에 백범 은 나의 소원 을 발표하였다. 이 가운데 필자가 다시 한번 백 범의 뛰어난 안목( 眼 目 )을 실감하게 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우리의 오늘날 형편이 초라한 것을 보고 자굴지심( 自 屈 之 心 )을 발하여, 우리가 세우는 나라가 그처럼 위대한 일 을 할 것을 의심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다. (중 략) 우리가 주연배우로 세계역사의 무대에 나서는 것은 오늘 이후다. (중략)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중략) 나는 우리나라의 청년남녀가 모두 과거의 조그맣고 좁다란 생각 을 버리고, 우리 민족의 큰 사명에 눈을 떠서 제 마음을 닦고 제 힘을 기르기로 낙을 삼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이 정신을 가지고 이 방향으로 힘을 쓸진대 30년이 못 되어 우리 민족은 괄목상대하게 될 것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다. 우리의 통일을 온 인류의 축제로 백범은 그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우리민족과 우리 청년들 의 장래를 낙관하고, 자신있게 세계와 인류 전체를 향해 나 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다. 백범은 또한 앞으로는 세계 인류 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 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라고 자신있게 단언하였다. 과연 백범의 혜안( 慧 眼 )은 적중하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교 육의 힘으로 선진국 대열의 문턱에 와 있으며, 한국문화, 한 류 가 세계 각지에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백범은 나의 소원 에서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 이야 말로 정말 원하는 소원이라고 강조하였다. 대한의 완 전한 자주독립 은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때 가능할 것이다. 때문에 백범은 남북분단이 가시화하는 상황에서 1948년 2 월 통일을 절규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을 발표하고, 분단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4월에 북으로 달려가기도 하였다. 그렇다. 백범이 그토록 원했고, 우리 모두가 진정 통 일을 꿈꾼다면, 특히 통일을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통일이 되지 않겠는가? 96주년 3 1절을 맞은 우리는 이제 올해가 분단 70년이 아닌 통일의 원 년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혼신의 노 력과 실천에 앞장서야 하겠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북한의 동조 와 주변 열강의 도움도 필수적이다. 3 1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 3 1절 기념식을 남북이 하나가 되어, 온겨레와 세계 인류가 함께하는 거 족적 축전으로 거행할 수 있다면 얼 마나 좋겠는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신년축하기념 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 번 째가 백범 김구 05

6 열다 들여다 보기 8 15광복 당시 세계열강의 상황과 백범의 혜안( 慧 眼 ) 글 이상호(건국대 사학과 교수)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력과 군사력 등에서 세계 10위권에 드는 강소국( 强 小 國 )의 위상을 가지며 세계평화 수립과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는 격언처럼,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 위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같이 주요 강대국이 주변에 위치에 있는 경우 끊임없이 국제정세의 변동과 변화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국가의 생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광복 전후의 국제 정세는 이보다 더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연합국의 형성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주축이 된 파시스트 및 군국주의 국가가 세계 질서를 깨뜨리고 주변국을 침략 한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독일의 히틀러는 1939년 9월 1일 생활권(Lebensraum) 을 주장하며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일본 역시 1941년 12월 7일 중국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 지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미국이 거부하자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결국 1942년 1월 1일 독일, 이탈리아, 일본의 추축국들에 대항해 싸우는 26개국의 대표들이 모여, 동맹의 체결을 알리는 국제연합선언(Declaration of the United Nations)에 서명하였다. 일명 대동맹 (Grand Alliance) 안에서 미국은 병기창의 역할을 자임하였고, 주요 연합국들은 미국과 무기대여협 정을 체결하였다. 1942년 5월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전쟁의 전국( 戰 局 )을 전환시켰다. 유럽 전선에서도 소련군이 스 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에 크게 승리하며 전세를 역전시켜 연합국에게 유리해졌다. 06

7 독일의 패망과 얄타회담 그리고 냉전의 기원 1945년 2월 독일의 패망이 가까워지자 전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소련 크리미아 반도의 얄타에서 미국, 영국, 소련 3국 정상이 회합했다. 얄타회담은 전후 독일패망에 따른 유럽 1 의 전후질서 재편과 일본에 대한 소련의 참전이 주요 논의 대상이 되었다. 독일이 항복하자 연합국들은 1945년 6월에 국제연합헌장(The Charter of the United Nations)에 서명하였다. 얄타회담에서 독일문제에 대해 완전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1 미국 AP통신의 맥스 데스포 기자가 촬영한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부서진 대동강 철교 사진 미 영 소 3국 정상은 1945년 7월 독일의 포츠담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이 회담에서도 독일점령지역의 분할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지속되었다. 07

8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소련은 계속해서 주변지역에 대한 팽창정책을 고수하 고 있었다. 영국과 공동으로 점령했던 이란으로부터 군대 철수를 거부했고, 터키의 다다넬스 해협의 지배권을 요구했으며, 동유럽 전역과 독일 동부지역에서의 지배도 강화했다. 소련군은 동유럽의 국가에서 독일군을 몰아낸 후 자국에 유리한 정부를 세우려고 시 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동유럽에 진주한 소련군은 각국에 공산주의자들 과 비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하는 연립정부를 수립하였다. 이와 같은 잠정적인 연립정 부의 단계를 거쳐 소련은 이들 국가들에게 스탈린식 공산주의 체제를 강요하였다. 한편 소련의 동유럽 공산화 작업과 함께 미소간의 냉전도 더욱 격화되었다. 미국과 소련의 충돌은 폴란드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했다. 소련은 점령지인 폴란드에서 공 산정권을 수립함으로써 그 지역을 공산화하려고 하였다. 1946년 3월 처칠은 미국을 방문하여 미주리 주의 풀턴에서 발틱해의 스테틴에서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 항까지 긴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쳐져 있다 고 연설하 며 소련의 팽창정책을 비난했다. 또한 그리스 지역에 소련이 지원하는 공산주의자들 의 반란이 일어나 내란이 시작되자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을 선포하고 공산주의자에 대한 적극적인 봉쇄정책을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냉전(Cold War)의 시작이었다. 2 소련의 팽창과 미국의 봉쇄정책 그리고 미소냉전의 격화 냉전이라는 개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의 미국과 소련간의 대결을 묘사 하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다. 그러나 냉전이라는 용어는 단순히 미 소간의 대립과 갈 등을 가리키는 수준을 넘어서 하나의 시대로서 그리고 국제적 체제로서의 개념으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1947년 3월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 의해 공산주의자들의 위협을 받는 그리스와 터 키에 대한 원조를 선언하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 이 발표되었다. 또한 유럽부흥을 위한 마셜플랜(Marshall Plan)도 시행되었다. 이러한 과정 중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격화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바로 베를 린 봉쇄 였다. 1948년 6월에 소련은 자신의 점령지역에서 서방측 점령지구인 서베 를린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하였다. 이는 미국, 영국, 프랑스의 점령지 통합을 통한 단독정부 구상을 방해하려는 소련의 의도였다. 소련은 서방측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독일을 재건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베를린을 봉쇄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소련에 대해 강경노선을 전개하여 고립된 베를린에 식량, 연료, 생 활필수품을 항공기로 수송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서베를린 공수작전은 1년간에 걸 쳐 이루어졌다. 결국 소련은 1949년 5월 봉쇄를 해제하였다. 이렇게 소련의 팽창정책과 이에 대한 미국의 봉쇄정책은 냉전을 심화시켰고 이는 이후 전 세계적 대결구도로 체제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년 9월 29일 수도탈환식 식장에서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대통령 년 9월 27일 일본 도쿄 미국대사 관을 찾은 히로히토 일왕이 맥아더장군 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년 7월 31일 타이베이에서 만나는 장제스와 맥아더 장군 08

9 해방직후 한반도의 상황과 백범의 혜안 백범일지 에서 김구 선생은 일본이 항복한다는 소리에 기쁨보다는 회한 을 표명했다. 내게 이 말은 희소식이라기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노력한 참전 준비가 모두 헛일이 되고 말았다. 서안훈련소와 부양훈련소에서 훈련 받은 우리 청년들을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침투시킨 후 조직적으로 공작하게 하려고 미 육군성과 긴밀히 합작했는 데, 한 번도 실행해 보지 못하고 일본이 항복하였으니, 지금까지 들인 정 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김구 선생이 일본의 패망을 기뻐하기 보다는 낙담했던 것은 당시 국제 정 세의 긴박함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그리 순탄하지는 못하리라 3 는 것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유럽에서의 미 소간 갈등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협정에서도 영향 을 미쳤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미소냉전의 대결은 한반도에도 불 어 닥쳤다. 모스크바3상회의, 미소공동위원회 등 한국문제를 둘러싼 미 소간의 논의가 파탄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통일정부 수립의 기회가 점 점 사라지게 된 1947년 2월 김구 선생은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 泣 告 )함 이라는 연설에서 우리 생존은 자주 독립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워 싱턴 선생도 자유가 아니면 죽음 이라고 고함을 친 것이다. 그러므로 필 리핀, 버마, 월남, 인도네시아, 인도도 모두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고 있나 4 니 어찌 한국만이 예외가 될 수가 있으랴. 자주독립을 위하여 영국과도 감히 전쟁을 한 미국은 누구보다도 우리를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라며 자주 독립을 강력히 주장했다. 하지만 1947년 9월 한국문제의 유엔 이관과 함께 통일정부 수립은 어려워졌고, 남북이 분단되어 전쟁까지 치르게 되었다. 주변 4강에 둘러싸여 민족과 국가의 생존을 끊임없이 도모해야 할 현재 우리에게 검은 안경테 뒤 에서 형형한 눈빛으로 우리를 꾸짖는 김구 선생의 모습이 다가오는 것 같다. 끝으로 김구 선생이 1948년 2월 독립신문 에 호소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읽으며 김구 선생의 충정( 忠 情 )을 되새겨 보자. 삼천만 자매 형제여! 한국이 있고야 한국 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자주독립적 통일정부를 수립하려는 이때에 있어서 어찌 개인이나 자기의 사리사욕을 탐하여 국가 민족의 백년대계를 그르친 자가 있으랴. 관련 사진 제공 - 푸른역사( ), 맥아더와 한국전쟁(이상호 著 ) 09

10 열다 함께 생각하기1 광복 70주년 갈수록 퇴보하는 일본의 역사인식 글 호사카유지(세종대 교수, 정치학) 왜곡된 일본의 역사인식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지속적인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베정권 의 왜곡된 발언은 순간적인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두 치밀한 계산과 정치적 배경 아래서 나온 발언들이 다. 따라서 대한민국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고 독도와 역 사문제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10

11 아베정권의 역사인식과 동북아 경색 올해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자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를 계기로 한일관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하여 보다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 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2012년 후반기부터 경색( 梗 塞 )되기 시작한 한일관계는 양국에서 정권이 바뀐 뒤 더욱 심해져 갔다. 특히 2012년 12월 말에 탄생된 일본의 아베정권은 우파정권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으므로 한일관계는 계속 경색될 수밖에 없었다. 한일관계뿐만 이 아니라 중일관계도 경색을 거듭하고 있다. 그 원인 제공자는 아베정권이라는 사실을 일본자체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언론들은 마치 한국이나 중국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일본국민을 호 도( 好 道 )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일본 언론들 자체도 한일관계를 악화 일로로 몰아갔다.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 중 하나로 일본 언론들의 왜 곡된 행태( 行 態 )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대형서점에 가면 한 국과 중국을 마음대로 비난한 책들이 많이 진열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 라 그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는 웃지 못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런 광경은 한국이나 중국의 서점에서는 볼 수 없다. 즉 일본에는 남 의 나라를 비난하는 책을 태연하게 출판하는 문화가 있고 그것으로 일 1 본국민에 대한 세뇌효과를 노리고 있는 듯하다. 최근 특히 심해진 이런 출판문화를 볼 때 배후에 일본정부의 개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 우파 정권인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은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다. 되풀이되는 영토와 역사에 대한 망언 일본정부는 역사수정주의적인 태도를 고수하면서 위안부 문제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아시 아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군국주의의 상징 야스쿠니신사 에 대한 각료들의 참배를 개인의 자유라고 우기면서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명백한 한국영 토인 독도를 일본영토라고 억지주장하면서 계속적으로 도발해 오고 있다. 말로만 한일관 계는 중요하고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행동은 대단히 비우호적이고 반( 反 ) 한국, 반( 反 ) 중국적이다. 아베정권의 최종목표는 일본헌법 개정에 있다. 특히 헌법 제9조, 즉 전쟁을 포기하여 군대 와 무기를 갖지 않는다는 조항을 삭제하여 정식군대를 갖게 하는 개헌을 하는 것이 그들의 최종목표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전체 국회의원수의 2/3가 개헌에 찬성해야 하고 그 다음 에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유효투표수의 과반수가 개헌에 찬성해야만 한다. 아베정권의 되풀 이되는 역사와 영토에 대한 망언은 정권에 의한 국민우경화교육이 그 목표이다. 국민들로 하여금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를 백인지배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아시아 해방전쟁이었기 때문에 일본군대는 나쁜 군대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국민을 세뇌시키려 하 고 있다. 그런 세뇌교육이 일본에 만연된다면 정식군대를 가져도 된다는 국민들을 많이 만 11

12 들어낼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개헌 국민투표에서도 50% 이상의 찬성표를 얻을 수 있다고 아베정권은 계 산하고 있다. 악화되어가는 한일관계에 우려를 나타내면서 한국과 일본의 양식이 있는 사람들이 한일우호를 회복 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일본의 침략사실을 부정하 는 아베정권이 일본의 중심에 있는 한 한일우호, 한중일 우호 같은 것은 사실상 꿈일 수밖에 없다는 점 을 명심해야 한다. 바로 세워야 하는 왜곡된 일본 언론 아베정권이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진정한 한일우호는 불가능하며 한국 측에서 한일우호를 아무리 원한다 하더라도 역대 한국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 측의 배신행위에 농락당할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먼저 한국정부와 국민은 아베정권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만 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우파철학이 절대 바 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의 자세가 바뀌도록 한국이 행동해야 한다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국 측이 대일 행동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여러 문제 중 먼저 위안부 문제는 생존해 있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이 90세에 가깝다 는 점을 생각해 하루속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아베정권은 이 문제에 대해 항상 정치적인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학술적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라는 회피성 언급으로 일관해 왔다. 그런데 지난 해 10월 일본의 4대 역사학회가 위안부 문제는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일본에 의한 강제 동원이었음이 역사의 진실 이라고 강조하면서 앞으로 일본정부가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 이라 는 성명을 냈다. 즉 위안부 가 일본에 의해 강제 동원되었음이 학술적으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 이 일본 내에서도 이미 나 있다. 이에 아베 총리 자체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나 승부는 이미 다 정해진 셈이다. 이 문제에 더 이상 시비를 건다면 일본정부자체가 크나큰 국내외적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일제시대의 강제징용자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1,000명 정도의 한국인 강제징용자들이 당시의 미지급임금 등을 미쯔비시( 三 菱 ) 등 한국 내 일본 기업들에게 청구하는 소송을 한국법원에 제기하려고 준비를 마쳤다고 전해진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아베정권은 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까지 모두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개인청구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강변하면서 한 국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정권 이라고까지 매도( 賣 渡 )했다. 일본 언론들도 일본 내에서 이런 잘못된 보도를 되풀이하면서 일본인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하지만 이 문제, 65년 한일협정으로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일본 측 결론이기도 하다. 91년 일본정부는 일본국회에서 국가가 개인을 보호한다는 뜻에서의 보호권은 소멸되었으나 개인청구권 자 체가 소멸된 것이 아니다 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실제로도 최근 일본법원이 일제시대 한국인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해 199엔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액이지만 일본 기업에 지급명령을 내린 바 있다. 즉 개인 청구권은 종합적인 뜻에서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한 판단임이 틀림이 없다. 한국에서 는 이런 논리적인 부분을 정확히 홍보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 측의 왜곡된 여론을 바로 세워야 한다. 12

13 한국인 중에는 독도문제를 센카쿠열도와 같이 미래에 맡기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견해이며 독도는 타협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임을 2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3 2 독도는 일본의 간계에 전혀 말려 들 필요가 없는 우리 고 유의 영토이다. 3 중국과 일본은 센카쿠열도가 분쟁지역이라는 사실을 인정 하고 그 해결을 미래세대에 맡기기로 암묵적 합의했다. 이런 것이 한일우호를 위해 한국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한국 내에서는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소리만 나오면 오히려 대단히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잘 된 일인 것처럼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경향이다. 왜곡된 여론 조작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한국은 올바른 견해를 준비하고 있어야 최근 중일 간에서 센카쿠열도 문제를 보류하여 미래 세대에게 맡기자는 암묵의 합의가 형성되 어 가고 있다. 이런 중일관계를 보면서 사고능력이 깊지 못한 일부 한국인들이 한국에서도 독도 문제를 미래세대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센카쿠열도 문제와 독 도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라는 판단을 잘 해야 한다.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면서 오키나와 제도 범위 내에 센카쿠열도를 포함시킴으로써 센카쿠열도 문제가 발생 했다. 그런데 당시 일본과 중국은 중일국교정상화를 하면서 센카쿠열도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이므로 미래세대에 해결을 맡기자 라고 합의한 바 있다. 그 후 1978년 중일평화조약을 맺으면 서 중국의 덩샤오핑 수석과 일본의 다나카 카쿠에이 총리는 다시 한번 센카쿠열도 문제 해결을 미래세대에 맡기는 것에 합의했다. 그러므로 독도문제와 달리 센카쿠열도 문제는 처음부터 미 래세대에 해결을 맡기는 방안 이 존재했고 당초에는 중국이 강하게 센카쿠열도를 요구하지 않 았다는 경위가 있다. 그러므로 지난해 11월 APEC 정상회의 때 중국 측은 일본이 센카쿠열도 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문제의 해결을 미래세대에 맡길 수 있고 시진핑 중국수 석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을 수용할 수 있다 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일본정부는 센카쿠열도에 대해 중일 간에 이견( 異 見 )이 있다 라는 말로 사실상 센카쿠열도가 중일 간의 분쟁지역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그냥 흉내 내면서 독도문제 해결을 미래세대에 맡기자고 한국 측에서 주장한다면 우선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원래 미래세대에 맡겨야 하는 어떤 문제도 독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입장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일본의 간계( 奸 計 )에 말려들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너무 유화적인 태도는 오히려 문제를 잘못 만들어 나간다. 올바른 인식과 정당한 주장은 굽히면 안 된다. 한국 측은 그런 기본적인 견해를 버리면 안 될 것이다. 즉 퇴보해가는 일본의 역사인식 에 대해 한국 측은 항상 올바른 견해를 개진( 開 陳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3

14 열다 함께 생각하기2 1 70주년에 되새겨보는 광복의 의미 글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광복의 의미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멈추지 않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우리는 광복을 맞이했다. 그래서 혹자는 광복을 연합국으로부터 주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 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투쟁하지 않았다면 광복을 쟁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백범 김 구 선생의 표현대로 일본의 항복이 너무 일찍 찾아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고 할까? 1 광복은 잃었던 빛을 다시 찾는다 는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은 광복을 기뻐하며 만세를 부르 는 국민들 모습 14

15 광복인가 해방인가?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1945년 8 15를 광복절이라고 공식 호칭하였다. 북에서는 광복이라는 말 앞에 조국이라는 용어를 첨가하여 광복보다는 조국광복 이라는 합성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1945 년을 조국광복의 해 로 공식 호칭하고 있으며 8월 15일을 조국광복의 날 이라 고 규정하며, 해방 기념일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남과 북 모두 공식용어로는 광복 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해방 이란 용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해방 이라는 표현도 1945년 당시부터 사용해 왔는데, 1946년과 1947년 8 15는 좌우 모두 해방 1주년, 해방 2주년 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기념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 2조에 광복절을 국경일의 하나로 제정하였다. 이 법안의 신규제 정 이유 에는 獨 立 記 念 日 로 되어 있어 그 날이 1945년 8월 15일인지 아니 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현재 대 한민국 정부는 광복절을 공식적으로 Liberation Day라고 번역하고 있어 1) [네이버 영어사전에서는 광복절( 光 復 節 )을 Independence Day of Korea라고 번역 하고 있다. 2) 하지만 광복 이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회복 부활의 의미인 restoration 이 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정확한 의미가 되므로 국가보훈처 산하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 운동사연구소에서 주최한 광복60주년기념국제학술회의(주제: 세계 식민지 해방운동 과 한국독립운동) 에서는 광복 60년을 the 60th Anniversary of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로 번역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인 해방의 날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으며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기념일은 독립기념일이라고 할 수 있다. 3) 단지 진보적 학자들은 독립운동이라는 용어보다 민족해방운동 이라는 표현 을 선호하는 등 해방 이라는 말이 다소 진보적인 어감을 가진 것처럼 간주되 기도 한다. 광복 은 국권상실 상태로부터의 회복을 의미하여 복고적이며 자 강운동적-계몽운동적 지향이 보인다고 진보적 학자들은 비판적으로 인식한 다. 4) 진보진영의 한홍구 교수는 빼앗긴 것을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광복 이 1) (검색일 2005년 8월 1일) 2) (검색일 2005년 8월 1일). 3) 미국과는 달리 우리의 경우 식민지 이전에 독립국이 존재했으므로 독립이라는 표현 보다 광복이 더 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4) 임대식(1993). 일제시기 해방 후 나라 이름에 반영된 좌우갈등: 右 대한. 左 조선 과 南 대한 北 조선 의 대립과 통일 역사비평 제21호, p ) 한홍구, 건국절? 차라리 8 29를 문명절 이라 해라: 그들이 광복 을 싫어하는 이유, 프레시안, 2008년 8월 4일, asp?article_num= (검색일 2008년 8월 28일). 호소력이 있었지만 좀 복고적인 냄새가 난다는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해 방 을 선호했다고 평가한다. 5) 그러나 두 용어 사용자에 이데올로기적 구분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적어 도 정치적으로는 두 용어를 혼용할 수 있 으며, 단지 의미 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은 연합국이 한국을 일 제로부터 해방했다 거나 한국은 1945 년 해방되었다 는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연합국이 주체가 된 표현이다. 또한 노 예(상태)를 해방 한다는 기분 좋지 않은 어감을 연상시킨다. 우리 입장에서 해방 은 다소 수동적인 표현이다. 이에 비해 광복 은 주체적인 표현이다. 광복 의 본 뜻은 빛나게 회복하다, 힘이 줄어들거나 기울어진 것을 이전상태로 되돌린다 는 뜻이다. 잃었던 국권-주권을 도로 찾는다 는 의미로 사용했다. 주역에서 은 원 래 자리로 오는 것 을 의미하는데 원상태 로 완전히 회복하는 것이다. 광복 은 빛 나는 되돌림을 뜻한다. 한편 해방 은 외 세의 지배로부터의 해방 이다. 따라서 광 복 의 주체는 우리이지만 해방 의 주체는 연합국이며 우리는 객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광복 은 이전 시기 주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전제하고 있는데 비해 해방 은 15

16 이전에 주권국가로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는 용어이다. 그러한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광복 이라는 단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일제강점기, 국내에서의 끈질긴 독립운동,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의 줄기찬 항일 무장 투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활동과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잇단 의거 등이 있었기에 연합국 지도자들은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약속했다. 광복의 밑거름이 된 한민족의 독립의지 역사적으로 우리의 광복 은 연합국의 제 2차세계대 전 승리의 결과라고 보는 견 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광복되었으며, 소련은 원자폭탄이 투하된 상황에서 마 지막에 편승하여 세력 확보를 꾀한 것에 불과하다는 견해도 있다. 비록 소련이 늦 게 참전하여 전과( 戰 果 )만을 챙겼던 측 우리는 위와 같은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이 춤을 춘다 는 광복절 노래 첫 소절을 해마다 8 15만 되면 듣고 있다. 광복절 노래의 분위기는 일제시대의 암흑에서 벗어나 다시 빛을 찾았다는 것이다. 잃었던 빛을 다시 찾은 광복절 은 우리 민족 최대의 정치적 잔칫날이다.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만약 소련이 일본 과의 불가침 조약을 계속 유지했더라면 전쟁의 조기종전이 어려웠을 것이므로 미-소의 유기적 결합이 일본의 조기 항복 을 가져온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민족 의 투쟁이었다. 일제강점기, 국내에서의 끈질긴 독립운 동,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의 줄기찬 항 일 무장 투쟁,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 활동과 한국광복군의 대일항전, 그리고 우리 민족의 잇단 의거 등이 있었기에 연 광복을 맞아 중경에서 귀국을 준비하는 백범 김구 선생 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대학생들이 남산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16

17 우리의 힘만으로 쟁취한 광복이 아니었 지 않느냐 하는 인식과 함께 광복 그 자 체도 완전한 광복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 자꾸 떠오른다. 외세인 일본의 지배에서 는 해방되었지만 그 자리에 또 다른 외세 가 들어섰던 것이다. 1945년 미-소의 지 배가 시작되었으므로 해방은 곧 독립이 아니었다(물론 1948년과 1949년에 각 각 소련과 미국은 물러갔다). 4 소련과 영국 미국은 얄타회담을 개최해 소련의 대일본 참전을 협의했다. 합국 지도자들은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약속했다. 따라서 위에서 열거한 모든 국내외 항쟁이 복합적-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광복 으로 귀결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지칠줄 모르는 독립 운동과 강렬한 독립 의 지가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6) 그런데 한국인들의 독립투쟁과 연합국의 승리를 동등한 힘으로 보는 견해에 는 일리가 있을지라도 독립투쟁이 광복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주장하 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한민족의 저항은 광복을 가능케 한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7) 배경적 요인이었고 광복의 직접적 원인은 연합 국의 승리였다. 하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싸우지 않았다면 광복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이라 는 점에서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백범 김구 선생의 표현대로 일본의 항복이 너무 일찍 찾아 온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고나 할 까? 8) 스스로 광복을 맞이할 수 있는 역량은 있었으나 역량 발휘의 기회가 없 었던 것이었다. 광복과 그 한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던 우리 겨레, 1945 광복절만 맞으면 무언가 허전한 감도 있다. 8 15를 기쁘게만 인식할 수 없다. 4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 1945년 38선을 경계로 분할점령되었고 1948년 에 남북 각각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었으 며 1950년 한국전쟁으로 분단이 고착 화되어 아직도 휴전체제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식민지 시대가 분단시대 로 나아갔으므로 통일된 민족국가 수립 이라는 과제를 안겨준 계기가 바로 8 15 이다. 광복 이라는 기쁨 뒤에 분단이라 는 더 큰 불행이 있었기에 광복절에 그렇 게 기뻐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광 복을 불완전하게 만든 현실적 조건은 여 러 가지가 있다. 우선 광복을 우리의 힘 만으로, 우리의 노력만으로 싸워서 쟁취 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한 광복 후 외세에 의해 조국이 분단되 어 통일민족국가가 수립되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에게는 진정한 독립 실현이라는 과 제가 남아있다. 이제는 행복한 광복절을 맞이하고 싶다. 6) 김호일(1998년). 8 15해방의 역사적 의의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23호. 7) 강만길(1994년). 고쳐쓴 한국현대사, 서울:창작과 비평사, p.201 8) 한홍구(2003). 대한민국사. 서울:한겨레신문사, P.18 17

18 잇다 아름다운 인연 엄항섭, 연미당 부부의 독립운동 이야기 글 김형목(독립기념관 연구위원) 엄항섭과 연미당의 천생연분으로 맺어진 인연은 항일투쟁이라는 고 난과 역경 속에서 동반자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만들었다. 조국광복을 향해 부부가 함께 한 인생역정은 가슴 벅찬 감동으로 성큼 다가온다. 임시정부 요인들과 이들 인연은 그래서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한다. 1 18

19 상해로 망명하여 어학 공부에 치중하다 엄항섭은 1898년 9월 1일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현 산북면) 주록리에서 태 어났다. 부친은 승지를 지낸 주완( 柱 完 )으로 본관은 영월, 호는 일파( 一 波 )이 다. 중국 망명 당시에는 예빗 엄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보성법률상업학교 를 졸업할 즈음에 천지를 진동시킨 3 1만세운동이 폭발되었다.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굳은 결심을 하고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는 이미 민주공화제를 천명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백범 김구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었다. 1919년 9월 법무부 참사에 임명되면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였다. 연해 주 상해 서울에서 각각 수립된 임시정부는 통합되어 대통령 이승만과 국무총 리 이동휘를 중심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그는 항주( 杭 州 )에 있는 지강( 芝 江 ) 대학에 입학하여 중국어 영어 불어 등 어학 공부에 혼신을 다하였다. 이는 훗 날 외교활동을 하는데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1 엄항섭이 아내 연미당 그리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2 임정 선전부장인 엄항섭(사진 왼쪽)과 김구 주석이 미군 OSS 책임자 책임자 도노반(W.J. Donovan) 소장과 만나고 있다. ( ) 2 대한민국임시정부 파수꾼이 되다 1922년 졸업과 동시에 상해로 돌아왔다. 그동안 임시정부는 많은 변화가 있 었다. 항일투쟁 방법론을 둘러싸고 극심한 반목과 갈등을 초래했다. 이로 인 해 임시정부로서 조직조차 유지하기 힘든 형국이었다. 더욱이 경제적인 곤궁 으로 청사 집세는 물론 임정 요인들은 끼니마저 걱정하는 극한에 달하였다. 반드시 임시정부를 유지시켜야 한다고 결심한 그는 불란서 조계의 공무국에 취직하여 요인들 끼니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엄항섭군은 유지청년으로 지강대학 중학을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그는 자기 집 생활은 돌보지 않고, 석오 이동녕 선생이나 나처럼 먹고 자는 것이 어려 운 운동가를 구제하기 위해 불란서 공무국에 취직을 하였다. 그가 불란서 공 무국에 취직한 것은 두 가지 목적에서였다. 하나는 월급을 받아 우리에게 음 식을 제공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倭 )영사관에서 우리를 체포하려는 사건을 탐지하여 피하게 하고, 우리 동포 중 범죄자가 있을 때 편리를 도모 해주는 것이었다(김구, 백범일지 중에서). 이는 단순한 생계를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고 일본영사관 정보를 수집하려는 의도였다. 백범은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1926년 12월 국무령에 취임한 백범 은 임시정부 활성화 방안으로 헌법 개정에 착수했다. 헌법개정기초위원으로 참여하여 국무위원제를 채택하는데 일 익을 담당하였다. 백범이 가흥으로 피신 해 있을 때도 곁에서 보좌하였다. 일제는 60만원이라는 현상금을 걸고 백범을 체 포하는데 혈안이었다. 중국인이나 한국 인도 이에 현혹될 수 있는 위급한 순간을 맞았다. 남경에서 장개석을 만나러 갈 때 도 수행하였다. 한편 민족유일당운동이 좌절된 후 정당 결성은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광주학생 운동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촉진시키는 계기였다. 정당 난립으로 임시정부는 무 정부 상태를 맞는 가운데 정당통일운동 이 전개되었다. 엄항섭은 여기에 참여하 지 않고 이를 수습하는데 노력하였다. 외 곽단체로 한국국민당청년단이나 한국 청년전위당 등을 결성하는 동시에 한민 19

20 ( 韓 民 ) 과 한청( 韓 靑 ) 등을 발행하여 청년들에게 독립운동 노선과 지도이념 을 교육 선전했다. 많은 파란을 겪으면서 임시정부는 1940년 9월 중경에 안착했다. 첫 번째 과 업은 한국광복군 창설이었다. 가릉빈관에서 성대한 광복군총사령부성립전례 식이 거행되었다. 중국국민당을 비롯하여 외국사절 등 200여 명이나 참석하 였다. 행사를 주관한 이도 엄항섭이었다. 그는 광복군 활동상을 미주 한인사 회에 알리면서 재정적인 지원을 호소했다. 1944년에는 임시정부 선전부장을 맡아 이념을 초월하여 항일무장 대오( 抗 日 武 裝 隊 伍 )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 었다. 임시정부가 난관을 극복하면서 조직을 지켜갈 수 있었던 이면에는 엄항섭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다. 열성은 임시정부를 유지 존립시키는 원천이었다. 그 의 활동은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자기에 맡겨진 소임을 다했다. 정파나 이념을 초월한 진지한 태도는 대동단결을 도모하는 밑거름이었다. 임시정부의 파수 꾼 이나 젊은 일꾼 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된 미사여구( 美 辭 麗 句 )가 아니다. 환국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다 1945년 11월 23일 엄항섭은 임시정 부 요인과 함께 환국했다. 국내에서 도 이전처럼 임시정부와 함께 활동하 며 백범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정하에서 임시정부 이름으로 활 동할 공간은 너무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단독정부 수립이 추진되자 이를 반대하며 남북협상에 동참했다. 그럼에도 남북에 이념과 체제가 다른 정부가 수립됨으로 결국 민족은 분단 되고 말았다. 더욱이 스승처럼 모시 던 백범이 흉탄에 서거하면서 통일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다. 충심으로 백범 김구 선생을 도와 임시정부의 살림살이를 맡고 독립을 위해 애썼던 엄항섭과 연미당 부부는 항일 투쟁의 동지이며 평생의 친구였다. 3 국장으로 치러진 김구 선생 영결식에서 엄항 섭이 추모사를 읽고 있다. 4 엄항섭과 연미당은 의좋은 부부이자 함께 독 립운동을 하는 뜻있는 동지였다. 사진은 두 사 람의 결혼식 모습

21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은 가셨는데 무 슨 말씀하오리까. 우리들은 다만 통곡할 뿐입니다. 선생님! 선생님! 민족을 걱정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을 저녁마다 듣자왔는데, 오늘 저녁부터는 뉘게 가서 이 말씀을 듣자오리까. 선생님! 선생님! 민족을 걱정하시던 선 생님의 얼굴을 아침마다 뵈었는데, 내일 아침부터는 어데 가서 그 얼굴을 뵈오리 까. 선생님은 가신대도 우리는 선생님을 붙들고 보내고 싶지 아니합니다. - 김구 선생 추모사 중에서 - 이는 엄항섭이 백범의 영전에 바친 추모 사 일부이다. 어느 누구보다 가슴 깊숙이 저려오는 슬픔을 느낀 사람은 바로 엄항 섭이었다. 민족 분단은 처절한 동족상잔인 6 25전 쟁을 초래하는 가운데 1950년 9월 엄 함섭은 납북( 拉 北 )되었다. 북에서도 통 일을 위해 나름대로 진력( 盡 力 )하다가 1962년 7월 30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연미당은 항일투쟁의 동반자였다 엄항섭이 임시정부 숨은 일꾼 으로 활동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인 연미당(본명 은 延 忠 孝 )을 빼놓을 수 없다. 부부 인연 을 맺어 준 이는 바로 석오 이동녕( 李 東 寧 ) 이었다. 이때 나이는 19세였다. 연병 환( 延 秉 煥 )딸로 1908년 7월 만주 용정 ( 龍 井 )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찍부터 독 립운동에 관심을 가졌다. 미당은 비록 나 이는 많지만 묵묵히 자기역할을 수행하 는 엄항섭의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되었다. 부모들도 두 사람 결합을 반대하지 않았다. 부부 사이에는 6남매를 둘 만큼 금실이 좋았다. 임시정부 안사람 의 역할은 다양하고 막중하였다. 남편 내조는 물론 가족들 에 대한 생계 책임과 자녀 교육문제도 그녀 몫이었다. 독립운동계를 위해 봉 사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헌신하는 공적 영역에서 활동이 요구되었다. 그녀는 1930년 상해에서 이념적인 대립으로 임시정부가 파행의 위기에 직 면했을 때 한인여자청년동맹 창립에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한국독립당이 나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측면에서 지원하는데 앞장섰다. 교민들 단합을 위하여 활동하는 한편 3 1절 기념행사와 8 29국치기념일( 國 恥 紀 念 日 ) 등 각 종 기념행사가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주선하였다. 윤봉길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나 유랑길 에 올랐다. 남편은 중국 정부와 연락 임무를 맡아 가정을 돌볼 틈이 전혀 없었다. 연미당은 임정 가족 을 돌보는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폐결핵에 걸려 각혈을 하는 이동녕을 극진히 간호하였다. 힘든 상황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억척스러운 부 인 모습은 부군에게 커다란 용기를 북돋아주는 에너지원이었다. 1936년부 터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부군을 지원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일제 침략으로 남경에서 장사로 이동한 3 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등 여성 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당시 중국인 내빈들도 한중 국제적인 연대를 강조하 는 분위기였다. 독립운동 중에도 옷 세탁과 삯바느질로 돈을 벌어 능력이 닿는 대로 임시정 부를 지원하였다. 필요한 자금을 염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도 경주하였 다. 국내진공작전을 추진할 때 광복군 모집에 열성을 다했다. 환국을 준비 하면서 한국은 반드시 독립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자유한국인대회 선언문 을 발표하였다.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이 일어나고, 남편 엄항섭이 납북당하는 시련을 겪으면서 1958년 뇌졸증으로 쓰러져 1981년 1월 1일 숨을 거둘 때까지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녀에게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엄항섭과 연미당은 슬하( 膝 下 )에 2남 4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특히 큰딸 엄 기선은 부모님을 도와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1993년 건국포장을 받 았다. 21

22 잇다 史, 돋보기 광복 70주년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6주년 기념 특별전 정리 편집실 광복 7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96주년을 맞아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특별전을 개최하여 조국 광복을 위 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선열들의 뜻에 보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소통을 통한 역사의 재조명을 시도하고자 한다. 22

23 1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광복 7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6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의 대한민 국임시정부의 시대적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보기 위한 특별전을 기획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단편적 유물중심의 전시나 역사중심의 서술 형 전시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임시정부라는 역사적 공간 속 에서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였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복 2 원하고, 그 삶을 통해 누구보다 뜨겁게 조국을 향한 절절한 애국심을 가졌던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 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1 동오 안태국 선생의 장례식 모습( /중국 상하이) 2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중국 충칭) 특히, 이번 특별전에서는 1945년 충칭( 重 慶 )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이할 때 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개인의 삶을 온전히 희생해야 했던 독립운동가들 의 삶을 그들이 입었던 복식( 服 飾 )의 변화를 통해 접근하여 남의 나라에서 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조국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3

24 이번 특별전은 광복 70주년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6주년을 기념하는 전시인 만큼, 오는 8월 7일(금)~20일 (목)까지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개막예정일인 7일에는 청나라 말기, 서양의 문물을 받 아들이며 변화했던 중국 전통복식인 치파오( 旗 袍 )의 양식변화 등 생활사를 통해 본 중국 근현대사와 중국에서 활동했던 그래서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 삶을 재조명해 광복 70주년 을 맞이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과제 등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이다. 3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제6회 기념( ) 4 가흥 피난 시기(1930년대 초)

25 전시내용 분석 제1기 1919년~1920년대 중 제2기 1920년대 중~1930년대 초 이 시기, 대한민국임시정부사 람들은 양복을 팔아 생계를 꾸릴 정도로 생활이 어려워 졌다. 한인들은 점차 중국사 회 일원으로 살아가며 일제 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치파 오를 입기 시작했다. 제3기 1930년대 중~1930년대 말 제4기 1930년대 말~1940년대 초 제5기 1944년대~1945년대 초 이 시기는 임시정부가 중국 국민 당 정부로부터 약소하나마 안정 적인 지원을 받으며 한국광복군 을 창설하고 좌우합작을 위해 노 력하는 등 우리의 손으로 조국 광 복을 준비하던 시기로 주로 광복 군 옷, 중산복, 양복의 혼용이 나 타나고 있다. 당시 상하이의 한인들은 주로 양복을 입었고 여성 들은 한복, 치파오, 양장 등을 다양하게 입었다. 이 시기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상하이를 떠나 충칭에 이 르기까지 이동생활 기간으로 대부 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사람들 과 같은 옷을 입어 신분을 위장할 수 밖에 없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는 시기로 사진 자료를 보면 남성들의 경우 중산복 의 착용이 눈에 뜨게 늘어나 고 있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1919년~1945년 사이의 중국에서 활동하셨던 순국선열( 殉 國 先 烈 )의 의복이나 생활소품을 찾고 있습니다. 백범김구기념관의 광복 70주년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6주년 기념 특별전에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관련 물품의 출품을 희망하시는 분께서는 아래의 번호로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ㅣ

26 잇다 말과 시간 광복 70주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 (사)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 김 자 동 회 장 광복 70주년, 진짜 독립 을 꿈꾼다 26 글 정영아(자유기고가) / 사진 장병국

27 QR코드를 스캔하면 관련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일제 강점기의 딱 두 배가 되 는 기간이다. 일제 35년이 길고도 험한 세월이었지만, 해 방 후의 시간 역시 녹록치 않았다. 임시정부의 산증인 이 자 현재 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자동 선생에게는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기만 하다. 임시정부 품에서 자라다 2004년 9월 발족한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 업회(이하 임시정부기념사업회 ) 회장을 맡고 있 는 김자동 선생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고문이었던 독립운동가 김가진( 金 嘉 鎭 ) 선생의 손자이자 독립 운동가 김의한( 金 毅 漢 ) 정정화( 鄭 靖 和 ) 부부의 외 아들이다. 1928년 중국 상해 임시정부청사 인근 에서 태어나 1946년 조국에 돌아올 때까지 부모 님을 따라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나고 자랐다. 또 년 가을, 내가 태어날 때는 5백 명 정도밖에 안 남았지요. 그 중 1 백 명 정도가 우리 가족이 살던 프랑스 조계 아이런이에 살았는 데 대부분이 직 간접적으로 항일투쟁에 가담하고 있었어요. 당시 임시정부는 넉넉한 살림살이가 아닐뿐더러 긴 싸움이 될 것이라며 생계는 각자 알아서 해야 한다고 취직을 권장했다. 김 회장 집안 역시 아버지 김의한 선생이 프랑스 조계와 미 영 공공 조계가 운영하는 전차 회사에 취직해 임시정부 일과 병행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해서도 부족한 살림은 어머니 정정화 선생이 국내를 오가며 외가( 外 家 )의 지원으로 보탰다. 백범 김구 우당 이시영 일파 엄항섭 선생 등 독립 운동가들의 품에서 자라면서 그들을 가족처럼 따 랐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임시정부에 대한 추억으 로 물꼬를 텄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또는 임정 )가 세워진 중국 상해에는 조국독립의 포부를 안고 1천 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모여들었어요. 하 지만 독립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고, 당장 생계마저 어려워지면서 하나, 둘씩 상해를 떠났어요 당시 임시정부에 연통제라는 게 있었는데 국내 연락책이었죠. 어머니께서는 큰 외삼촌의 친구이자 임시정부의 법무부장으로 있는 신규식( 申 圭 植 ) 선생께 연통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어요. 신 선생은 단순히 친정에 가서 돈 받아 오는 것에 머물지 말고 자기가 알려주는 루트를 통해 독립자금을 모금해오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고, 어머니 역시 흔쾌히 수락해서 임정의 사명 을 띠고 몇 차례 국내를 왕래했습니다. 하지만 독립의 실현에 대한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국내 모금 27

28 액은 줄어들었고, 더욱이 임시정부에 대한 일제의 탄압으로 1921년 말 즈음 연통제는 대부분 붕괴되 었다. 가족에 다름 아닌 백범을 추억하다 김자동 회장이 태어나기 전인 1922년, 할아버지 김 가진 선생이 돌아가시고 국내에서 장례를 정리하던 어머니의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아버지 김의한 선생 은 살고 있던 융칭팡 집을 최중호( 崔 重 鎬 ) 선생에게 넘겼다. 백범 선생과는 죽마고우( 竹 馬 故 友 )로, 최 선생은 집 옥상을 백범 선생 가족에게 내줬다. 어머 니가 다시 중국으로 들어간 시기가 같은 해 10월. 집 이 매우 가까웠던 까닭에 어머니는 융창팡 옛 집에 자주 들르면서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부인 최 준례 여사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백범 선생의 둘째인 김신( 金 信 ) 형이 그 옥탑방에 서 태어났어요. 한데 백범 선생의 부인이 건강이 좋 지 않았어요. 결핵이었는데 김신 형을 낳고는 더욱 악화된 거죠. 설상가상으로 좁다란 계단에서 굴러 심한 낙상까지 입은 거죠. 돈 때문에 병원도 못 갈 형 선생이 오시면 어머니는 갓난아기였던 절 선생 손에 맡기고 점심 준비를 했어요. 제가 외동이다 보니 좀 낯가림이 심했는데 희한하게도 백범 선생이 안으면 울지 않았대요. 편이었지만 주위 알선으로 외국계 교회에서 운영하는 훙커우 폐의원 에 무료로 입원할 수 있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결국 임종( 臨 終 )을 맞으 셨어요. 당시 최준례 여사의 임종을 함께한 이들은 다름 아닌 김자동 회장의 부 모님이었다. 그때가 음력 초하루다 보니 세배 차 가장 먼저 병문안을 갔 다가 임종 순간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결국 백범 선생은 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병원이 있던 지역이 상해 중심가로 일본인들이 많은 곳 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백범 선생의 모친인 곽여사가 환갑 나이로 살림 도 하고 두 손자까지 돌봐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김 회장의 어머니가 백 범 가족의 살림을 도왔다. 그리고 1928년, 김자동 회장이 태어났다. 돌은 국내에서 보내라는 할머 니의 요청으로 두 돌 때인 1930년 모자( 母 子 )는 아버지를 두고 귀국해 1년여 정도를 보낸 후 다시 상해로 갔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집을 처분 하고 임시정부청사 합숙소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다행히 임정 인근인 28

29 보경리 1호에 살던 엄항섭 선생의 도움으로 김 회 장 가족은 그 집 3층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당시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의 재무부장으로 있으면서 국무령을 겸하고 있었다. 자금조달을 위해 해외 교 포들에게 편지를 써서 요청하고 그렇게 들어온 돈 을 손수 관리했다. 그 분이 원래도 검소하지만 공금( 公 金 )으로 점심 을 먹어서는 안 된다 는 것이 철칙( 鐵 則 )이었대요. 공금을 아끼기 위해 청사 인근에서 점심 신세를 지 곤 했는데, 자연스레 우리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곤 했어요. 선생이 오시면 어머니는 갓난아기였던 절 선생 손에 맡기고 점심 준비를 했어요. 제가 외동 이다 보니 좀 낯가림이 심했는데 희한하게도 백범 선생이 안으면 울지 않았대요. 임시정부의 지난( 至 難 )한 여정이 시작되다 프랑스 조계에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활동하던 임 시정부는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프 랑스 당국으로부터 테러집단으로 규정된 임시정 부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으니 빨리 피하라는 연 락을 받았다. 김자동 회장 가족과 임시정부 가족들 은 상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상해에서 항주, 진 강, 남경, 가흥, 장사, 광주, 유주, 기강, 중경까지 이 어지는 임시정부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윤봉길 의사 의거 후 가흥에서 2년, 강서성( 江 西 省 )에서 4년 중 1년은 어머니와 함께 남경에서 살 았어요. 백범 선생은 안전을 위해 가족과 따로 살 았는데 연로( 年 勞 )한 어머니가 걱정되어 저희 어 머니께 모친과 아들을 부탁한 거죠. 그래서 네 가 족이 남경에서 함께 살았죠. 그때 김신 형과 함께 학교도 다녔어요. 형이 중국말이 서툴러서 친구가 별로 없었죠. 그래서 일요일마다 둘이서 남경 시내 나가서 놀았어요. <걸리버 여행기>를 봤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정말 즐거웠죠.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군경의 탄압을 피해 긴 여정에 오 를 수밖에 없었던 임시정부에게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아직 어 렸던 김자동 선생과 김신 선생에게는 힘든 여정보다는 따뜻한 추 억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하기에 백범 선생의 암 살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선생의 서거 소식을 듣고 김 회장은 어머니와 함께 서둘러 서대문 경교장으로 향했다. 하 지만 경찰의 저지와 많은 인파로 인해 들어갈 수가 없는 상태였 다. 때마침 그곳의 경비대장으로 있던 윤경빈( 尹 慶 彬 ) 씨의 도움 으로 2층으로 올라가서 백범 선생의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 전차를 타고 경교장으로 가는 길에 나와 어머니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어요. 개인적인 안타까움도 컸지만 나라의 앞날이 더 걱 정되었어요. 대한의 완전자주독립을 꿈꾼다 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발족한 지도 어느덧 11년. 사업회 공식 행사인 대학생들과 함께하는 항일유적지답사 가 큰 자랑거리 다. 발족 이듬해부터 단 한 차례도 빠뜨리지 않고 현재까지 일본 1회, 시베리아 1회 그리고 중국까지 총 10회 진행했다. 이제 임시정부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없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임시정부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식 을 고취시키는 일입니다. 항일유적지답사 는 그 일환이지요. 답 사를 함께하면서 청년들의 달라지는 눈빛을 보는 게 무엇보다 큰 보람이에요. 2019년은 3.1운동 백주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백주년이 되 는 해이다. 김자동 회장은 이를 기념해 건국기념관 이나 대한민 국임시정부기념관 이 세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백범 김구는 백범일지 에서 나의 소원은 대한의 완전자주독립 이오 라고 외쳤다. 구순을 바라보는 김자동 회장에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다름 아닌 전쟁이 영원히 종식된 평화의 땅, 한반 도 이다. 즉 백범의 뜻을 이은 대한의 완전자주독립 이다. 이는 곧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이 건립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뿌 리가 없는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쓰러지기 마련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곧 대한의 완전한 독립과 평화통일을 이루게 하는 큰 뿌리인 까닭이다. 29

30 잇다 그곳에 가면 사패산 석굴암에서 백범의 정신과 만나다 글 정유미(자유기고가) 1 그곳에 가면 경기도 의정부 사패산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나라 사랑 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석굴암이 남아 있다. 석굴암 불 무자 중추 유차김구( 石 窟 庵 佛 戊 子 仲 秋 遊 此 金 九 ) 라는 백범의 친필명문이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사패산을 찾아가보자. 30 2

31 1 경기도 의정부에는 중국 상해로 망명하기 전 백범 선생이 잠시 몸을 숨겼던 사패산이 천연석굴을 품 고 있다. 2 사패산 천연석굴과 가까운 곳에 있는 회룡사는 조 선을 건국한 이성계가 다시 찾았다하여 붙여진 이 름이다. 3 백범의 혼이 깃든 사패산 천연석굴을 찾기 위해서 는 한참이나 이어지는 산길을 찾아올라가야 하지 만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3 나라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걸 어온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다보면 국내 곳곳과 상해, 중경 등 각지에서 선 생의 흔적들과 만날 수 있다. 그 흔적은 때론 의( 義 )를 위한 길이었고 때론 일제 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안타까운 길이기 도 했다. 경기도 의정부 사패산( 賜 牌 山 ) 자락에 는 천연석굴로 이루어진 작은 암자가 있 다. 사패산은 북한산이나 도봉산의 유명 세에 비할 바가 못 되고, 이 석굴암은 역 사가 오랜 고찰( 古 刹 )이긴 해도 그리 유 명한 사찰이 아니라 찾는 이들의 발길은 다소 뜸한 편이다. 그래도 일부러 사패산을 찾아 꽤 한참이 나 이어지는 가파른 산자락을 올라 이곳 에 닿는 이가 없지 않은 것은 이곳에 김 구 선생의 흔적과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상해로 망명하기 전 일제로부터 몸을 숨긴 곳 1907년 비밀단체인 신민회( 新 民 會 )에 가입해 학교와 군대를 만들어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구국운동을 벌였던 김구 선생은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 기게 되면서 서대문감옥에 갇혀 옥고를 치러야 했다. 감옥에서 나온 선생은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에 있는 옛 동료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독립운동의 중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건너갔다. 당시 선생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기 위해 재목 상과 좁쌀 장사로 변장하고는 사리원과 신의주를 거쳐 중국 안동에 도착했 고 그곳에서 영국 국적인 이륭양행 배에 몸을 싣고서 사흘 만에 상해 포동나 루에 도착했다고 한다. 상해에 도착한 김구 선생은 안창호 선생을 만나 임시 정부에 참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전달했고, 안창호 선생은 김구 선생을 경무국장 으로 임명하여 임시정부 가족들을 지키고, 임시정부의 정보를 몰 래 훔쳐가는 스파이들을 처단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김구 선생은 이때부터 조국이 독립을 맞이할 때까지 임시정부 활동에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 전해지는 말로는 선생이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펼치기 전, 몸을 숨기기 위해서 찾은 곳이 사패산이었다고 한다. 일제의 매서운 눈을 피해 깊은 산중 의 작은 암자를 찾은 선생은 이곳에서 나라 잃은 통한을 가슴에 새기며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친필명문( 親 筆 銘 文 ) 완공식을 앞두고 전해진 비보( 悲 報 )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을 맞이했다. 일제가 무조건 항복하였을 때 선생은 비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자력( 自 力 )으로 나라 를 찾지 못한 통한( 痛 恨 )이 백범일지 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31

32 4 아 왜적 항복! 이것은 내게는 기쁜 소식이었다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일이었다. 비통한 마음을 안고서 선생은 같은 해 11월 23일 임시정부요인들과 함께 대 한민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로서 인정받지 못 했고, 조국은 38도선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2월 28일 신탁통치가 결정되 자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은 외국의 손에 우리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 다며 신탁통치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갔다. 하지만 남과 북 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고, 심지어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만들자는 이야기 까지 나오게 되었다. 선생은 반으로 갈라진 나라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직접 평양으로 가서 김일성, 김두봉과 통일을 위 한 남북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그토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와 사패산 석굴암을 다시 찾은 선생은 지난 일 들을 떠올리며 많은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조국은 해방을 맞았으나 아직 완 전한 독립이 아니었고 남과 북으로 갈린 모습이 몹시도 위태로웠다. 선생이 서거하기 약 1년 전인 1948년 가을, 석굴암을 다시 찾은 선생은 남상도를 비롯한 지역 언론인들에게 반듯하게 써내려간 친필을 전해주었다. 석굴암 불 무자중추유차 백범 김 구 ( 石 窟 庵 佛 戊 子 仲 秋 遊 此 白 凡 金 九 ) 언론인들은 이를 기념하고자 석굴암 근 처에 선생의 친필명문을 조각하기로 하 고는 1949년 3월부터 3개월에 걸쳐 암 각에 나섰다. 6월 26일, 김구 선생을 모 시고 명문 완공식을 거행할 예정이었던 지역 주민들은 뜻하지 않은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선생이 경교장( 京 橋 莊 )에 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서 거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이후 주민들이 김구 선생의 친필이 새겨진 사패산 석굴 암에 선생의 위패를 모셨다고 석굴암 주 지 스님이 증언했으나, 아쉽게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져 없어졌다고 한다. 32

33 4 김구 선생은 자신의 친필명문 완공식을 앞두고 그만 경교장에서 비극의 흉탄으로 세상을 떠나셨 다. 석굴암 입구 3개의 거대한 자연석에 김구 선 생의 정신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거대한 자연석 위에 정신을 새기다 사패산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선조의 6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 柳 廷 亮 )에 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굴암의 동쪽에 는 회룡사( 回 龍 寺 )라는 고찰이 있는데 원래 이름은 법성사( 法 性 寺 )였다가 이성 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찾아오자 절 이름 을 지금의 회룡사로 바꾸었다는 이야기 가 전해진다. 회룡사와 석굴암이 가까이 에 있어 많은 이들이 석굴암을 회룡사의 말사나 경내에 있는 암자쯤으로 여기지 만 회룡사와 석굴암은 모두 봉선사( 奉 先 寺 )의 말사( 末 寺 )로 각각 독립적으로 운 영되고 있다. 깊고 높은 산중에 들어와 오직 믿음 하나로 단단하고 거대한 암석을 깨고 다듬 었을 이름 모를 석공들의 노고, 그리고 일제의 감시를 피해 들어와 수려한 경 관과 맑은 정기를 흡입하면서 조국 광복의 꿈을 잃지 않은 김구 선생의 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석굴암 입구에는 김구 선생 필적 이라는 제목과 함께 이러한 안내문구가 적혀 있다. 회룡사 경내의 석굴암은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상해로 망명하기 전 한때 피신했던 곳으로,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되어 귀국한 선생 은 이곳에 자주 들러 자연을 즐기며 고금을 회상했다고 한다. 석굴암 입구 3개 의 거대한 자연석 위에 각기 새긴 石 窟 庵 과 佛, 戊 子 仲 秋 遊 此 金 九 명문은, 당 시 언론인 남상도 외 7인이 선생의 친필을 받아 1949년 3월부터 약 3개월간 조각한 것이다. 주지스님을 통해 확인해보니 석굴암은 회룡사 경내에 있는 암자도 아니고, 김 구 선생의 위패는 현재 이곳에 없으며, 봄가을로 배향하던 행사도 없어진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민족의 스승이자 지도자로서 그 정신을 정성스럽게 이어 가야 할 김구 선생의 발자취가 세심히 관리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만 하다.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로 보고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아 갈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 할 올곧은 정신이 지 금 우리들의 노력으로 오래도록 면면히 이어져갔으면 하는 마음 절실하다. 지난 1986년 의정부시의 향토유적 제8 호로 지정된 사패산 석굴암은 천연석굴 로 이루어진 작은 암자와 극락전, 삼신 각, 요사채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암 석 두 개가 맞대고 서있는 불이문( 不 二 사패산 석굴암 가는 법 門 )을 지나면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의정부 회룡탐방지원센터 앞에 차를 세우고 바로 오른편에 석굴사원으로 오르는 계 단이 있고 그 입구에 커다란 암석 세 개 약 500m 들어가 회룡사교를 건너면 갈림길 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약 600m 오르면 된 다. 석굴암 오르는 길은 경사가 급해 숨이 차 가 버티고 서있다. 이 암석들은 김구 선 생필적암각문( 金 九 先 生 筆 跡 巖 刻 文 )이 오르지만 계곡이 깊고 풍광이 수려해 산행 을 위한 코스로도 부족함이 없다. 인근에 있 는 회룡역에서 도보로 이동해도 된다. 600M 사패산 석굴암 선명하다. 회룡사교 500M 의정부 회룡탐방지원센터 33

34 묻다 특별한 정신 우리는 그를 샤오 라 불렀다 하지만 역사교사로서 보는 단동은 상해 의 임시정부가 국내와 연결을 통해 항일 글 이경복(양서고등학교 역사교사) 독립운동을 촉진시킬 수 있었던 출발지, 바로 이륭양행( 怡 隆 洋 行 )과 샤오가 있 었던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무엇보다 큰 푸른눈의 독립운동가 중에서 가장 뜨겁게 한국을 사랑했 던 조지 루이스 쇼우는 흔히 임시정부의 숨은 영웅으로 불린다. 김구 선생과 그의 동지 15명의 상해 망명을 돕기 도 했던 그의 활약을 살펴보자. 지역이다. 임시정부는 1919년 5월 아일랜드인 샤 오가 경영하던 이륭양행 2층에 상해와 국내를 연결하는 비밀 연락조직인 교통 국을 설치했다. 1922년까지 교통국은 일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사람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 조지 루이스 쇼우 1) 하기 위해 국가보훈처는 올해의 독립운동가 12인 을 선정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조금은 낯선 이방인의 이름이 있어 이채롭기 만 하다. 푸른 눈의 독립운동가, 아일랜드계 영국인, 임시정부의 숨은 영웅 등 언제나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그는 조지 루이스 쇼우(George Lewis Shaw, 1880~1943)이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그를 님 웨일즈의 <아리랑>에서 김산은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제 감시를 피해 국내, 만주 지역 독립단체 들 간의 비밀 통신 업무, 이륭양행의 무역 선을 이용해 독립운동에 필요한 무기, 군 자금 전달과 운동가의 출입국 등 국내와 임정의 중요한 연락 창구 역할을 맡았다. 특히, 샤오의 도움아래 김구 선생과 동지 15명이 3.1운동 직후 상해로 망명할 때 이륭양행의 배를 이용해 4일만에( ) 상해 포동나루에 도착했다. 또한 폭탄은 안동에 있는 영국 회사 앞으로 보내는 의류품 화물 상자에 넣어보냈 다... 회사의 지배인은 아일랜드인 테러리스트였는데 우리 한국인들은 그들 샤오 라고 불렀다. 모든 한국 사람이 이 아일랜드인을 사랑했으며, 그는 지 금 혁명 운동에서 전설적인 인물이 되어 있다. 님 웨일즈 아리랑 그해 11월, 조선왕족( 朝 鮮 王 族 ) 중 반일 성향이 가장 강했고 독립운동에 강한 의 지를 보였던 의친왕 이강( 李 堈 )이 세계에 일제강점의 부당성을 알리고, 임시정부 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단행한 망명작전 역시 임시정부의 비밀 아지트인 이륭양 샤오의 도움으로 설치한 교통국 압록강, 끊어진 철교는 한국 현대사에서 비극의 상징이다. 철교를 사이에 두 고 극과 극의 도시 단동( 丹 東 :옛이름 안동)과 신의주가 자리 잡고 있다. 1) 아일랜드계와 일본계의 혼혈인 영국인 기업인으로,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조선인의 망명 계획 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행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한, 샤오는 독립운동가들의 신변이 위협 받을 때 주저없이 자신의 집을 은신처로 제공해 주었다. 1920년 7월, 일제의 손 길이 미치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임에 34

35 도 불구하고 한국의 반일( 反 日 ) 기운을 억 제하기 위해 샤오를 내란죄 명목으로 체 포하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영 일동맹을 맺고 있던 영국 정부의 강력한 항의로 4개월 만에 보석으로 석방된 샤오 는 이후에도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피해 독립운동에 대한 분명한 행적을 남겼다. 한국인 테러리스트들은 몇 년 동안 그의 배로 돌아다녔으며, 위험할 때는 단동에 있는 그의 집에 숨었다. 샤오는 일본 경 찰에 체포 되었고, 또 자기직업을 잃어버 렸다. 감옥에서 풀려나자 그는 상해로 갔 으며, 임시정부는 대규모 대중집회를 열 어 그를 환영하였다. 샤오는 한국의 독립 을 위하여 이런 희생을 한 것이 자랑스럽 고 기쁘다고 말했다. 님 웨일즈 아리랑 아일랜드인으로서의 동정심이 1922년 샤오는 임정요인 김문규( 金 文 奎 )가 교통국에서 체포될때까지 교통국 의 정보수집 및 군자금 모집활동을 꾸준 히 전개했으며, 의열단의 국내거사 계획 동아일보 기사 2) 을 지원하기 위한 무기를 수송하였다. 1931년 만주침략 이후 샤오를 탄압, 축출 하기 위해 일제는 대안기선회사( 大 安 汽 船 會 社 )를 설립해 이륭양행의 양적 팽창을 저지하였으며, 이륭양행이 대대적 인 밀수에 종사한다는 중상모략을 유포해 샤오와 그의 부인까지 체포하려고 하였다. 결국, 1935년 일제는 이륭양행을 매도( 賣 渡 )하였으며 이후 단동에서 의 독립운동 거점지역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다. 단둥회사의 지배인은 아일랜드인 테러리스트였는데, 그는 일본인을 거의 영 국인만큼이나 싫어했다. 그래서 커다란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 독립운동을 열 렬히 지원해 주었다. 샤오 자신이 상해로 가서 죽음의 화물 선적을 감독하였 다. 그는 돈은 한 푼도 받지 않고 오로지 동정심에 스스로 한국을 도와주었다. 님 웨일즈 아리랑 샤오는 아일랜드 출신 영국인으로 일제의 탄압과 한국의 독립 문제가 아일랜 드의 독립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했으며 이를 반일 감정으로 표출했을 가능 성이 높다. 샤오를 중심으로 3대가 모두 일본인 아내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족이 일본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항일 독립의지를 보여준 것은 가족과 민족구성을 넘어 인류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정의와 인간의 가치가 바로 善 임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또다른 샤오를 꿈꾸는 이들을 위해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샤오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으나 최근에 들어서야 어렵사리 후손을 찾아 그 훈장을 전수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가 들린다. 광복70주년, 아일랜드인 샤오를 통해 우리가 진정 놓치지 말아야 할 독립의 의미는 무엇일까? 샤오와 더불어 선교사로 3 1만세 운동을 지원한 윌리엄 린튼, 의료선교활동을 전개하며 끝까지 나는 한국인이라고 주장한 스 코필드 박사, 한국 근대화 교육에 기여하고 고종의 밀사로 활동한 헐버트, 독 립운동가를 변호한 일본인 인권변호사 후세다 츠지 등 한국의 독립을 위해 무한한 한국 사랑을 보여주었던 셀 수없이 많은 외국인 독립운동가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함께 웃고, 함께 아파하며 현재까지 왔다. 광복 70주년을 계기로 이들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발굴해 역사 앞에 당당하게 드러내고 학술연구를 통한 학교 현장에서의 활용, 추모기념관 건립을 통한 교 육의 장 제공,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물심양면의 지원 등 진정성 있고 지속 적인 활동을 전개해 보는 것은 역사 앞에 더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2) 샤오는 1920년 7월 이른바 오학수 사건 (국내 독립운동을 위해 오학수 등이 무기를 상하이 임 정에서 이륭양행 선박으로 운반해 교통국에 보관하다 적발된 사건)에 연루돼 신의주에서 일경에 체포되었는데 당시 동아일보는 샤오의 체포와 영국정부의 항의 내용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35

36 묻다 청소년을 위한 역사인문 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뜨거운 청소년에게 들려주는 3 1운동의 역사적 의미 글 강인구(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3 1운동은 우리 선조들이 조선이 독립국가임과 자주민을 선언하고 주창한 날이다. 우리 민족이 찾고자 하는 독립의 당위성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 정체 성을 제시한 이날은 우리 대한민국에 보석과 같은 날이었다. 감자 로 위치하고 있다. 90여 년 전 일찍 이 우리 선조들 역시 <3 1 독립 선언서> 3) 를 통해 조선은 독립 국가이고, 우리 민 족은 자주민( 自 主 民 )이라고 주창하였다. 조선의 독립선언은 일본 제국주의에 저 항하고, 자유와 인류 평등사상을 지향하 였다. 이 선언서는 올바른 상황인식과 새 로운 세계 사조에 기초해, 민족독립의 당 위성과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정당하게 제시함으로써 이천만( 二 天 萬 ) 민중( 民 衆 )의 성충( 誠 忠 )을 합( 合 )하야 차( 此 )를 조선의 독립국임을 선언하다 96년 전 3월 1일 오후 2시,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들이 모여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였다. 같은 시간에 탑골공 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 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만세 시위는 전국 주요도시로 확 산되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3 1 독립 선언서>가 뿌려지고 태극기가 물결쳤 다. 뿐만 아니라, 독립 만세 함성은 국외까지 메아리쳐 만주의 서간도, 북간 도, 훈춘( 琿 春 )에서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고,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톡 신한 촌에서도 해외동포들이 만세 행진을 하였다. 미주지역에서는 대한국민회 중 앙총회 주최로 독립을 다짐하는 포고문을 선포하였고, 필라델피아에서는 한 인 대회를 개최하여 독립 선언식과 만세 시가 행진을 전개하였다. 1) 포명( 佈 明 ) 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3 1 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초순에 육당 최남선( 崔 南 善 )이 초안을 집필하여 최린( 崔 麟 )에게 전달하였다. 최린이 받아 벽에 걸린 거 문고 안에 감추어 두었다가 손병희( 孫 秉 熙 ), 권동진( 權 東 鎭 ), 오세창( 吳 世 昌 )에게 보여 동의를 얻은 후 기독교측 함태영( 咸 台 永 )에게 주어 동의를 구하였다. 선언서 완성본은 천도교에서 운영하던 보성사 에서 인쇄되었고, 선언서의 배포는 천도 교, 기독교, 불교계측과 학생단 등이 분 독립선언이 선포되고 시가행진으로 시작된 항일독립운동은 약 3개월 동안 전 담하였다. 4) 국 각지에서 전개되었지만, 일본 침략자들의 탄압이 극에 치달아 주민을 교회 에 몰아넣고 불을 지른 제암리 학살사건 등이 일어났다. 항일운동으로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외에 46,948명이 투옥되었다. 2) 오늘날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어느 시대 어떤 곳에서도 민주주 의 길은 순탄대로가 아니다. 험난하고 오르막 내리막이 연속되지만, 자유와 평등을 양 축으로 하는 수레바퀴를 끊임없이 굴려야 하는 인류의 숙명과도 같은 길인지도 모른다. 사실상 자유와 평등이라는 화두는 인류사회가 근대화 1) 국사편찬위원회(2001). 한국사 47, P.403 2) 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상). 서문당, P ) 위키백과 참고(ko.wikipedia.org/wiki/3 1독립선언서) 4) 한국사 47, P.327. 선조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심을 우리가 <3 1 독립선언서>를 떠올릴 때, 항상 먼저 吾 等 (오등)은 자( 慈 )에 아( 我 ) 조선( 朝 鮮 )의 독립국( 獨 立 國 )임과 조선 인( 朝 鮮 人 )의 자주민( 自 主 民 )임을 선언 ( 宣 言 )하노라. 차( 此 )로써 세계만방( 世 界 萬 邦 )에 고( 告 )하야 인류평등( 人 類 平 等 ) 36

37 의 대의( 大 義 )를 극명( 克 明 )하며 차( 此 )로 써 자손만대( 子 孫 萬 代 )에 고( 誥 )하야 민 족자존( 民 族 自 存 )의 정권( 政 權 )을 영유 ( 永 有 )케 하노라 를 연상한다. 우리 민족 의 독립과 민족 자존이 정당한 권리가 되 는 이유를 인류평등이라는 대의명분에서 찾고 있다. 20세기 초 절망이 계속되는 시대를 산 우리 선조들은 구시대적이고 침략적인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조 선 독립의 당위성을 위해 인류 평등사상 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3 1 독립선언서 >는 3 1운동의 지도이념을 표방하고 독 립의 당위성을 호소함으로써 독립운동이 국내외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한 도화 선의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바로 3 1운동 을 상징한다. 5) 당시 우리 선조들이 생각한 또 다른 독립 선언의 당위성으로 일본 식민통치는 구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라고 인식하고, 민족( 民 族 )의 항구여일( 恒 久 如 一 )한 자유발전( 自 由 發 展 )을 위( 爲 )하 야 차( 此 )를 주장( 主 張 )함이며, 인류적( 人 類 的 ) 양심( 良 心 )의 발로( 發 露 )에 기인( 基 因 )한 세계개조( 世 界 改 造 )의 대기운( 大 機 運 )에 순응병진( 順 應 幷 進 )하기 위( 爲 ) 하야 차( 此 )를 제기( 提 起 )함 이라고 주창 하였다. 이같은 독립선언의 당위성은 오 늘날 우리 모두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의 윌 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 자결주의는 식 민지와 반식민지 민족을 크게 고무시켰 다. 게다가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으로 등 장한 소련의 레닌도 식민지의 민족 해방을 돕겠다는 내용의 민족 자결의 원칙 을 천명하였다. 6) 당시 같은 어려운 시절에도 이같은 세계개조의 새로운 흐름 을 직관( 直 觀 )하고 있던 우리 선조들에게 진심어린 존경심을 표현하고 싶다. 세계 평화의 시금석을 선언하다 오늘날 우리가 <3 1 독립선언 서>에 주목해야 하는 특별한 이 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당시에 조선 독립은 정의( 正 義 ), 인도 ( 人 道 ), 생존( 生 存 ), 존영( 尊 榮 ) 을 위( 爲 )하여 민족적( 民 族 的 ) 요구( 要 求 )이니, 오즉 자유적( 自 由 的 ) 정신( 精 神 )을 발휘( 發 揮 )할 것이오, 결 ( 決 )코 배타적( 排 他 的 ) 감정( 感 情 )으로 일주( 逸 走 )하지 말라 고 선언한 점이 다. 이같은 민족적 요구는 엄숙( 嚴 肅 )한 양심( 良 心 )의 명령( 命 令 )으로써 자가 ( 自 家 )의 신운명( 新 運 命 )을 개척( 開 拓 )함이오, 결( 決 )코 구원( 舊 怨 )과 일시적 ( 一 時 的 ) 감정( 感 情 )으로써 타( 他 )를 질축배척( 嫉 逐 排 斥 )함 이 아니라는 것이 다. 겉으로만 자유와 평등을 표방하면서 자기 민족 중심에 편중된 낡은 배타 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독립한 우리 민족은 강대국의 지배논리를 거부하고, 양 손에 자유사상과 평등의식을 좌우합작하여 모든 민족과 국가들과 진정한 우호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우리민족의 자기 정체성을 발현하기 위해 조선독립 ( 朝 鮮 獨 立 )은 조선인( 朝 鮮 人 )으로 하야금 정당( 正 當 )한 생영( 生 榮 )을 수( 遂 ) 케 하는 동시에... 동양평화( 東 洋 平 和 )로 중요한( 重 要 )한 일부( 一 部 )를 삼는 세계평화( 世 界 平 和 ), 인류행복( 人 類 幸 福 )에 필요( 必 要 )한 계단( 階 段 )이 되게 하려 했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독립 쟁취야말로 동양평화를 보장하는 길 이요, 더 나아가 세계평화의 시금석을 의미한다는 선언이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기성질서를 수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지난 세기 초에 우리 선조 들은 모든 민족국가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국제 사회를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날카롭고 선견지명 있게 지적했던 것이다. 이 점이야말로 3.1운 동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보석과도 같은 역사적 의미가 아닐까? 5)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연구소(2009).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18, P.84. 6) 리베르스쿨(2014).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P

38 묻다 통일교육가이드 교실 밖에서 바라본 광복 70주년의 진정한 의미와 통일 광복은 우리의 투쟁과 저항을 통해 우리의 독립운동은 의병항쟁을 시작으로 1945 년 해방이 되는 순간까지 독립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방법 도 아주 다양했습니다. 무기를 들고 일본에게 전 글 강윤정(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학예연구부장) 면적으로 맞섰던 의병항쟁이 있는가 하면, 교육 을 통해 지혜로운 백성을 길러 강한 나라의 기초 를 닦자는 애국계몽운동도 있었습니다. 또 나라 를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저항한 사람도 있었고, 나라 밖에서는 군인을 길 러 일본과 전쟁을 통해 독립을 하고자 했던 무장 항일투쟁도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침략의 우두 머리나 기관을 직접 응징하고자 했던 의열투쟁 이 있었고, 국제정세를 활용한 외교적인 노력도 올해는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은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그 날은 우리 모두에게 분명 기쁜 날입니다. 1894년 일제는 경 복궁을 침범하고 침략의 야욕을 본격적으로 드러 냈습니다. 1) 그 뒤 무너진 국권을 되찾기 위한 우리 의 노력은 51년간 쉼 없이 이어져, 결국 광복을 이 루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습니다. 광복 70주년은 안타깝게도 분단 70년과 그 역사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는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분들의 뜻과 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입니다. 1) 이를 갑오변란( 甲 午 變 亂 ) 이라고 부른다. 갑오는 1894 년을 의미한다. 1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에 따른 희생도 컸습니다. 우리의 광복은 어느 날 갑자기 강대국에 의해 그 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노력이 있었 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재빠 르게 독립을 승인받고, 유엔의 결정에 따라 국제 사회가 공인하는 정부를 가질 수 있었던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인이 독립투쟁과 저 항을 끈질기게 전개한 결과입니다. 38

39 광복 70주년이 주는 숙제 독립운동가들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복 후 우리 는 통일된 나라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밖으로는 우리나라 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큰 원인으로 작용하였 고, 안으로는 지도자들이 생각(이념)의 차이를 좁히지 못했 습니다. 물론 통합을 향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듯이 강력한 의지와 실천을 보 여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었고, 급기야는 전쟁으로 엄 청난 비극을 겪었습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은 국 군과 북한군을 비롯한 여러 나라 군인들의 목숨을 앗아 갔 고, 수많은 양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 이후에도 한 반도는 동 서 냉전시대의 화약고가 되었고, 지금도 고립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의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의 두 가지 큰 과제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과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근대 국가를 이룩하는 것이었습니 다. 우리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일된 나 라를 세우지는 못했습니다. 광복 70년이 된 오늘도 여전히 이는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백범의 외침 그대로 백범 김구 선생은 1945년 11월 24일 친애하는 동 포들이여! 라는 제목으로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유익한 일이라면 불속이나 물속이라도 들어 가겠습니다. 완전히 독립 자주하는 통일된 신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공동 분투합시다 라는 글 을 발표했습니다. 만주에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이동하는 1959년 세상을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유 서( 遺 書 )를 남겼습니다. 3 1정신으로 움직이는 유 일무이( 唯 一 無 二 )한 우리의 민족주의를 고수하고, 우리 민족 간에는 다시 혈쟁이 없는 평화의 대( 臺 ) 위에 조국을 수립하고 세계열강으로 더불어 공존공 영함을 바라고 비나이다. 이밖에도 많은 독립운동 가들이 통일을 염원하였습니다. 우리의 독립이 그저 주어지지 않았듯이 통일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독립운동의 역사 속에는 통합을 위한 노력이 많았습니다. 생각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통합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7년 결성된 신간회 와 만주 에서 이루어진 민족유일당 운동, 그리고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건국강령 에 는 여러 가지 이념을 아우르는 내용이 담겨있습니 다. 방법과 이념이 달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통합 의 길을 찾기도 했습니다. 이는 우리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경험입니다. 이 경험을 되살려 여러분들은 통일의 과제를 염두에 두어야할 것입니다. 2 1 통합을 위해 노력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생각하며 우리 청소년 들이 통일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염두에 두어야 한다. 2 경상북도 독립운동기념관 주최 우리는 새싹 독립군 활동 모습 39

40 묻다 다시 읽는 백범일지 전국 중 고등학교 및 군부대 38개 단체 대상 21,000여명 참가, 백범일지 11,000여권 증정 예정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회장 김신)와 백범김구기념관(관장 정양모)에서는 지난 2005 년 11월 육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군부대 및 전국의 중 고등 학교를 대상으로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를 실시, 많은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겨레사랑 나라사랑 정신을 지 속적으로 고취해 나가고 있다. 특히, 본 대회에는 지난 2014년까지 전국의 241개 중 고등 학교와 97개 군부대를 포함하여 338회에 걸쳐 총520,467명이 참가하였다. 따라서 2015년에도 전국의 중 고등학교와 군부대를 대상으로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 대회를 실시하여 38개 단체, 21,000여명의 젊은이와 청소년들에게 백범정신과 애국심을 지속적으로 전파하는데 그 노력을 다 하고자 한다. 2015년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시상 일정(4월~7월) 일정 단체명 참가인원 소재지 4월 5월 6월 7월 3(금) 마석고등학교 1,011명 경기 남양주시 28(화) 충주대원고등학교 583명 충북 충주시 11(월) 광문고등학교 500명 서울 강동구 13(수) 동일여자상업고등학교 312명 서울 금천구 21(수) 이화여자고등학교 432명 서울 중구 2(화) 장안제일고등학교 120명 부산 기장군 10(수) 동화고등학교 1,050명 경기 남양주시 17(수) 괴산고등학교 280명 충북 괴산군 18(목) 전주신흥고등학교 706명 전북 전주시 19(금) 한일여자중학교 575명 경북 김천시 24(수) 정선고등학교 240명 강원 정선군 10(금) 경성고등학교 520명 서울 마포구 13(월) 옥과고등학교 320명 전남 곡성군 14(화) 야탑고등학교 317명 경기 성남시 15(수) 충주여자고등학교 900명 충북 충주시 16(목) 논곡중학교 518명 인천 남동구 23(목) 양평고등학교 404명 경기 양평군 계 17개 학교 8,788명 40

41 특히, 2015년 3월 6일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대회 참가 신청 접수 결과, 3월 6일 현재 전국의 38개 중 고등학교의 대회 참가가 확정됨에 따라 해를 거듭 할수록 본 대회에 대한 각 학교의 관심과 열정을 반영하는 듯 하다. 2015년 대회 지역별 참가 학교 분포 현황을 살 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역별 참가학교 분포 총 38개교(수도권18개, 지방권 20개) 충북 4회 10.5% 충남 1회 2.6% 인천 2회 5.3% 전북 4회 10.5% 서울 11회 28.9% 전남 4회 10.5% 경기 5회 13.2% 강원 3회 7.9% 부산 2회 5.3% 경북 2회 5.3% 중 고등학교 참가 분포 7개 학교 18% 31개 학교 82% 중학교 고등학교 41

42 묻다 다시 읽는 백범어록 백범 김구 선생이 시작한 평화통일의 첫 걸음 글 손완주(겨자씨만한 역사, 세상을 열다 저자) 오랫동안 염원했던 광복에도 불구하고 몸이 찢기는 듯한 분단의 현실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백범 김구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던 백연( 白 淵 ) 김두봉에 게 통일을 촉구하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인형( 仁 兄 김두봉)이여, 우리가 우리의 몸을 반쪽으로 나눌지언정 허리가 끊어진 조국이야 어찌 차마 더 보겠나이까? 가련한 동포들이 남북으로 흩어져 떠도는 꼴이 야 어찌 차마 더 보겠나이까? 거대한 평화통일의 흐름을 연 백범의 피어린 일언( 一 言 )을 들어본다. 피를 토하듯 절절한 목소리로 위에 소개한 백범의 일언은 분단의 기미가 갈수록 짙어지던 1948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자 김일성대학의 초대 총장이었던 김두봉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 중 일부이다. 1945년 8월 15일 갑작스럽게 해방을 맞은 백범과 임시정부 요인 들은 해방을 맞았다는 기쁨보다 우리 손으로 완전한 해방을 만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백범을 비롯한 우리 민족 의 많은 사람들이 끈질긴 투쟁을 통해 기어이 이끌어낸 광복인 것 은 맞지만 미군정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 었기 때문이다. 인형( 仁 兄 : 김두봉)이여! 지금 이곳에는 38 도선 이남과 이북을 별개국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게 만들려고 노력하 는 사람도 많습니다. (중략) 인형이여, 우리가 우리의 몸을 반쪽으로 나 눌지언정 허리가 끊어진 조국이야 어찌 차 마 더 보겠나이까? 가련한 동포들이 남북으 로 흩어져 떠도는 꼴이야 어찌 차마 더 보겠 나이까? 이런 아픔은 백범이 미군정에 의해 대한민국 정부 가 아니라 개인자 격 으로 귀국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백범 또한 기자회견을 통해 한갓 평민의 자격으로 귀국했다 며 답답한 상황을 토로했다. 그러나 백범은 이후 1949년 6월 안두희 저격으로 뜻하지 않게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신탁통치를 반대하고 우리나라의 자주독립과 좌우 합작을 고민하던 정치가로, 마지막까지도 통일을 위해 성심을 다하 던 통일 운동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갈수록 풀리지 않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백범은 북한의 김두봉에게 피를 토하듯 절절한 목소리로 평화통일의 협상을 제안하는 편지를 (중략) 그러므로 우사(김규식)와 인형과 저 는 우리 문제는 우리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 다는 것을 확신하고 남북지도자회담을 주창 하였습니다. (중략) 애국자가 애국자에게 호 소하는 성의와 열정으로써 조국의 땅 위에 서 남북지도자 회담을 가장 빠른 기간 내에 성취시키기를 간청합니다. - 김구, 김규식 김두봉에게 보낸 편지 보낸다. 42

43 평화통일을 위한 분연한 발걸음 당시 우리의 상황은 미군정의 통치를 받는 중에도 좌와 우의 사상을 근거로 서로 피 를 흘리며 물어뜯는 형상이었고, 언제 동족 상잔( 同 族 相 殘 )의 비극이 일어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또한 일부 사람들은 남북 협상을 제안한 백 범에게 협상파니 파시스트니 하며 얼토당 토않은 비판을 일삼고 있었다. 그러나 백범은 나라와 시대를 걱정하는 거 인답게 이 모든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평화 통일을 위해 분연히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떠한 모략( 謀 略 )도 여하한 짐승 같은 마 음도 치열한 애국심 앞에서는 그 정체가 드러날 것을 나는 확신한다. 우선 동족끼리 해방 이후 3,4년 동안이 나 38선이라는 국경 아닌 국경으로 말미암아 외국인 의 턱밑만 쳐다보고 말을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담판 을 해보아서 안되면 차리 38선을 베개 삼아 자살이라 도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년 4월 15일 한독당 대표 환송연에서 밝힌 백범의 심경 년 4월 19일 오후 6시 45분 드디어 백범은 38선 을 넘어 북으로 향했다. 백범은 4월 22일 평양 모란봉 극장에서 개최된 남북연석회의 축사에서 모든 사상과 이해를 관계를 넘어서 오직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바 라는 애국적 통일 민족주의자로서의 당당한 모습을 보 여주었다. 조국이 없으면 민족이 없고, 민족이 없으면 무슨 당, 무슨 주의, 무슨 단체는 존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 므로 현 단계에 있어서 우리 전 민족의 유일한 최대의 과업은 통일 독립의 쟁취인 것입니다. 반탁 연설을 하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 평화통일을 위한 귀한 결실을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백범의 남북연석회의 참여가 실패를 예상한 무모한 일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 해 노구( 老 軀 )를 이끌고 북으로 향했던 그의 정신은 오늘 날까지 이어져 2000년 6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라는 결실을 낳게 된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 원장이 발표한 남북공동선언문은 7년 뒤인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다시 현실화 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만남을 이끌어 냈다. 이 모든 시작이 바로 백범의 피를 토할 듯한 한 마디에서 시 작됐으며 지금도 평화통일을 위한 귀한 말씀이 되고 있다. 인형( 仁 兄 : 김두봉)이여, 우리가 우리의 몸을 반쪽으로 나눌지언정 허리가 끊어진 조국이야 어찌 차마 더 보겠나 이까? 가련한 동포들이 남북으로 흩어져 떠도는 꼴이야 어찌 차마 더 보겠나이까? - 남북연석회의 축사 중에서 - 43

44 묻다 더없이 좋은 날 2015년 겨울방학교육 찾아라! 우리역사 시행 정리 편집실 이번 겨울방학에 실시된 찾아라! 우리역사 겨울방학 교육에는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라는 주제로 선생 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었다. 다음 교육은 2015년 여름방학에 실시될 예정이다. 백범의 삶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 기념관에서 2015년 1월 6일부터 1월 23일, 12일간 어린이 와 가족을 대상으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백범 김구 선생의 삶과 사 상을 전달하는 방학교육 찾아라! 우리역사 를 시행하였다. 이번 겨울방학 교육은 겨레의 큰 스승, 백범 김구 라는 주제로 백 범 김구 선생의 일생과 독립을 위해 헌신한 삶을 이해하는 내용으 로 진행되었다. 44

45 재미있고 알찬 교육을 8~9세(초등 저학년)는 백범일지를 함께 읽고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백범 김구 선생의 일생을 정리한 어린이 백범신문 만들기 와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에 대해 알아 보고 소개하는 백범김구기념관 인물사전 을 만들었다. 그리 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당시 사람들의 삶을 체험하고 백범 김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는 연극으로 만나는 백 범김구선생 등의 교육을 통해 역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겨울방학 교육에 참여한 어린이와 학부모는 총 697명으로, 이 중 가족교육을 포함한 방학교육에 3회 이상 참가한 어린이 52명이 수료증을 받았고 전체 교 육(5회)에 참가한 5명의 어린이가 백범 김구 박사 학 위증 을 받았다. 교육에 참가한 학부모의 81%가 기념관 방학교육에 매우 만족 한다고 답변하였고, 어린이 91%가 방학교 육이 재미있었다 고 응답하였으며, 김구 선생님이 독 립을 위해 누구보다 힘쓰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김구 선생님은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시다, 알찬 수업 내용이었다, 학교에서는 느낄 수 없 는 좋은 경험이었다, 가족과 함께 매우 유익한 시간이 었다 등의 의견으로 참가자의 만족도와 재 참여율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기념관은 어린이와 가족에게 더욱 쉽고 재미있 게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5년 여름방학교육 찾아라! 우리역사 는 8월에 진행될 예 정이다. 10~11세(초등 고학년)은 전시 관람을 통해 백범 김구 선생 의 일생을 이해하고 위인전 사진 속 내용을 스스로 정리하는 내가 만든 위인전 백범 김구 와 독립과 통일을 바라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소원을 알아보고,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함 께 생각해 보는 나의소원 을 통해 문패 만들기를 진행하였다. 또한 모둠별로 백범 김구 선생의 어린 시절을 연극으로 만들 고 한국광복군이 되어 국내진입작전을 계획하는 연극으로 만나는 백범김구선생 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과 독립운동 가의 독립을 위한 노력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어린이뿐 만 아니라 가족이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나의 사랑 태극기 와 대한민국임시정부, 도슨트와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 시행 으로 태극기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의 활동을 이해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45

46 묻다 기념관 소식 NEWS 백범김구기념관 소식 2015 백범김구기념관 청소년 도슨트(신광여고 백범 도슨트반) 전시해설 시행 지난 1월부터 매주 토요일 11시, 15시 백 범김구기념관 청소년 도슨트(신광여고 백 범 도슨트반)의 전시해설이 진행되고 있 다. 2기로 선발된 신광여고 백범 도슨트반 학생들이 6개월 동안 백범 김구 선생과 우 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교육과 전시 해설 실습과정을 마치고, 기념관을 방문하 는 어린이 동반 가족을 대상으로 쉽고 재미 있게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전달하고자 노 력하고 있다. 청소년 도슨트 전시해설은 인터넷 접수와 현장접수로 진행된다 현장체험학습기관 교육강사 연수 시행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박물관 교육 및 현장체험학 습의 관심이 증대하면서 여러 현장체험학습기관이 우리 기념관을 방문하고 있다. 다양한 기관에서 활동하는 교육 강사를 대상으로 우리 관의 설립목적을 소개하고, 백범 김 구 선생의 생애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2015 년 3월 16일(월) 10시, 2015 현장체험학습기관 교육 강사 연수 를 시행하였다. 스쿨 김영사, 여행이야기 등 각 기관에서 50여명의 교육강 사가 연수에 참여하였으며, 기념관 관람 유의 사항과 안전 사고 발생 시 대책요령 안내, 기념관 자료 전달 및 전시 관 람과 효창원 애국선열묘역 참배를 통해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전달하였다. 이번 연수를 통하여 백범김구기념관을 방문하는 현장체험학습 기관의 교 육에서도 백범 김구 선생의 나라사랑이 어린이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념관의 현장체험학습기관 교육 강사 연수는 연2회 진행 될 예정이다. 46

47 2014학년도 2학기 교원직무연수 시행 2014 청소년 백범문화캠프 실시 지난 1월 26일(월)부터 이틀간 우리 기념관은 2014학년도 2 학기 교원직무연수를 실시하였다. 이번 연수는 백범 김구 선 생이 걸었던 길 이라는 대주제를 바탕으로 1일차 강의와 2일 차 답사로 진행되었다. 1일차(1월 26일) 강의에는 평택 은혜중학교 김일 선생님이 현장체험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우리 기 념관이 현장체험학습기관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지혜 학예사의 강의가 있었다. 2일차(1월 27일)에는 실제 김구 선생의 발길이 닿았던 서울, 인천 지역의 사적지를 둘러보았다. 오전에는 인천으로 이동 하여 치하포의거 이후 체포되어 수감생활을 했던 인천감리서 자리와 함께 개항장이자 김구 선생의 수감지로서의 인천을 알아보기 위해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과 인천개항박물 관을 방문하였다. 오후에는 을사늑약 체결 당시 김구 선생과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모였던 상동교회, 체결반대 상소를 올 렸던 덕수궁 대한문 앞, 을사늑약 체결지인 중명전, 아관파천 의 장소 러시아공사관 터와 함께 일제가 나라를 빼앗은 후 김 구 선생이 또 한 번 수감생활을 했던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 였다. 이번 연수에는 총 27명의 초, 중, 고 교사들이 과정을 이수하 였다. 또한 우리 기념관으로서는 현장체험학습기관으로서 역 할을 교사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 기념관은 2014년 12월 29일(월)과 30일(화) 양일 간 2014 청소년 백범문화캠프 를 진행하였다. 지난 2014년에 전국의 여러 학교에서 실시했던 백범일지 독서감상문쓰기 대회에서 우수한 독서능력과 글솜씨로 수상한 학생들 중에서 선발된 22개교 35명의 학생이 이번 캠프에 참여하였다. 또한 2014년 8월 중국 백범유적탐방에 참여했던 백범상 수상 대 학생 중 5명이 멘토로서 캠프를 같이 하였다. 이번 캠프는 우리 기념관과 효창원 애국선열묘역, 서대문형무 소, 안중근의사기념관 등 백범 김구 선생의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장소를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김구 선 생과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 전 자신의 소감을 적었던 서명 포처럼 참가 학생들이 큰 천에 자신의 소감을 적으며 캠프의 전 일정을 마쳤다. 참가 학생들은 너무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가게 되어 보람찼 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널리 알리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 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고 소감을 전해주었다. 멘토들 역시 멘 토로서 고맙고,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 또다른 만남으로 인 연을 만들어준 백범 선생님은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 많은가 봅니다,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라고 그 느낌을 표현해주었다. 앞으로 우리 기념관은 좀 더 알차고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청 소년들이 백범 김구 선생과 우리 역사에 대해 더 많이, 더 폭 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한 편, 나라사랑, 겨레사랑 정 신의 고취를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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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백범 47여름.indd Vol. 47 여름 서울 남산에는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있다. www.kimkoomuseum.org PROLOG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나란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그 헌법이 성립하게 된 사상적 배경은 1919년 3 1운동 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살던 국내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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