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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 동구의

2 대구 동구의 김기현 지음 대구 동구의 발행일 2013년 1월 21일 지은이 김기현 발행인 김성수 발행처 대구동구팔공문화원 주소 대구시 동구 백안동 전화 팩스 전자우편 홈페이지 편집디자인 제작 도서출판 디자인플랜 c 김기현 2012 ISBN 이 책은 대구광역시 동구청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 도서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은 e-cip 홈페이지(http://www.nl.go.kr/ecip)에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CIP제어번호: CIP )

3 발간사 광야에 건설된 지구촌의 많은 도시에 비하면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히 역사와 문화가 다양하며 를 열며 많은 이야기가 살아있는 전설로 숨 쉬고 있는 긍지의 고장인 것입니다. 고려의 고승이요 국사였던 일연스님은 삼국유사에서 팔공산에는 기 러기떼 같이 많은 탑과 절이 있다 고 하셨습니다. 팔공산 동구에는 이러 한 불적위에 장중한 전설과 설화 및 영험담이 천지에 내린 봄꽃 같이 다 양한 문화와 스토리로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2012년 총림( 叢 林 )격을 전승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는 말로 된 문학입니다. 우리의 전통사회 가 해체되고 삶의 방식이 급격히 변하면서 구비문학의 중요한 전승과 창 조기반도 약해지는 가운데 지역의 많은 이야기들도 점차 잊혀지며 사라 부여받은 대본찰 동화사의 신비한 창건설화나 사찰문화, 파계사와 왕실 과의 이야기, 세계 최고였던 불타버린 부인사 대장경 등, 그야말로 이야 기의 보고입니다. 져 가고 있습니다. 동구에서 927년에 있었던 견훤과 왕건의 동수전투는 전란의 처절한 현대는 매스미디어를 통한 대량성과 소리와 영상의 직접성을 내세운 전파문학이 대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도 전설이나 설화, 민담 등의 전래된 이야기나 일상적 삶속에서 겪은 일과 각자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흔적이 우리지역에 지명으로 남아있는 독보적인 큰 이야기입니다. 근자 에 스토리텔링화되고, 동구 왕건길 걷기여행코스로 개발이 되어 워킹매 니아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전하는 형식인 이야기들은 기록문학과 함께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 살아있 습니다. 15C 조선 세종 때의 석학인 서거정이 칠언절구로 된 10수의 시로 대 구를 예찬 했습니다. 서거정이 예찬한 대구 10경( 十 景 )중에 4경이 동구 우리지역 동구는 팔공산과 금호강을 품고 있는 배산임수의 입지로 에 있음은 빼 놓을 수 없는 동구의 자랑스런 이야기입니다. -공산팔경은 004 발간사 005

4 두말 할 나위 없음이구요- 금호강에 놀이배 타고 밝은 달에 취해 돌아오 면 중국의 오호 부럽지 않다고 한 제1경 금호범주(금호강의 뱃놀이), 제 6경 북벽향림(도동 절벽산의 측백수림 -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 제 7경 동화심승(동화사에서 스님을 찾음), 제9경 공영적설(팔공산에 쌓인 그동안 문화원에서 지역의 문화유산과 사람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토대로 몇 권의 책을 발간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동구의 역사 문화들 을 집적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팔공산 사랑운동"과 함께 좀 더 본격적으 로 이 사업을 전개해 볼까 합니다. 눈)이 그것입니다. 금번에 집성을 해본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획 동구의 중요한 스토리텔링으로 첫째, 팔공산과 동화사 등의 불교문 화, 둘째, 부인사와 최고의 지혜 대장경, 셋째, 불로고분과 고려왕조의 기운을 틔운 공산전투, 넷째, 아양루가 있는 금호강을 꼽고 싶습니다. 된 것입니다. 구비문학부문이다 보니 탐방과 채록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많았으나 대대로 지역을 지켜 오신 향사( 鄕 士 )들의 뜻있고 흔쾌한 동참의 감사가 있었고 담고 꾸려내는 분들의 정성과 노고가 각별 했었습니다.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는 팔공산과 금호강을 중심으로 한 동구민들의 역사와 문화이며 지역민들의 생각과 가치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동구 지역에 있는 신화나 전설, 효행담, 민담 등을 채록한 이 이야기는 지역의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며 훌륭한 유산이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끝나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여운을 새로운 사 업의 동력으로 옮겨 다음의 알찬 준비를 기하고져 합니다. 이야기 전체 를 이끄신 김기현 교수님과 이재만 구청장님을 비롯한 구의회 강대식 의 장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소중한 말씀들을 옮기고 나눠주신 많 동구의 이야기는 지금도 어디선가 전승되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를 드리며 정려히 손모웁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팔공산에서 금호강에서 혁신도 시에서 동대구역에서 미래의 어느 날 신화나 전설이 될 찬연하고 감동 적이며 행복한 이야기였으면 좋겠습니다. 2013년 1월 대구동구팔공문화원장 김 성 수 006 발간사 007

5 축사 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며 보람을 나누는 힘찬 출발점이 되어 동 구를 재발견하고 한 걸음 더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후손들에게 동 2012 향토사자료집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구 구민의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며, 우리 고장의 참모습을 자랑스럽게 후손에게 전하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세월의 저편에 흩어져 있던 전설과 민담을 일일이 찾아서 책으 로 엮어 주신 경북대학교 김기현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원 여러분에게 감 사드리며, 전 구민과 함께 향토사자료집 발간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 지역문화를 개발 보존하고 활발한 문화 활동으로 구민의 문화수준 드립니다. 향상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는 대구동구팔공문화원에서 우리지 역의 전설과 민담을 찾아서 집대성한 2012 향토사자료집 동구의 오래 동구팔공문화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된 이야기 의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잊혀져가는 동구의 오랜 역사가 만든 이야기 를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향토사자료집 발간에 정성을 다해 오신 김성수 2013년 1월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이 재 만 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향토사자료집 발간으로 구전으로 전승 되어온 우리지역만이 갖고 있 는 재미있는 동구의 이야기 를 하나로 묶어 잘 정리해서 고장의 구비문 학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하며, 또한 동구의 발전과 영광 008 축사 009

6 책을 펴내면서 ~ 라거나, 옛날 고려 개국 시기에 ~ 라는 과거의 시간이 이야기의 앞 머리에 나온다. 대구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이야기는 말로 표현하고 말로 전해지는 구비문학이다. 말로 존재하 고 말로 전해지기에 쉽게 잊어지거나 변한다. 글자처럼 오래 고정된 모 습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이야기를 변하게 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사는 방식이 이야기를 변하게 한다.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재미있게 꾸 며낸 말이다. 꾸며낸 것이란 사실( 事 實 )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허 구적인 것을, 거짓된 것을 만들어 낸 것이란 뜻이 아니고 본디에는 없었 기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서 재미있고 그럴듯 하게 꾸미고 다듬어 만들었다는 뜻이다. 사실이 아닌 사실이며, 사실여 부 보다 재미와 의미 있는 교훈이 더 주목되는 것이다. 이야기는 일정한 몸짓이나 가락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냥 긴 말의 엮 음이기에 특별한 구성과 짜임에 의해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 한 부분만 기억 했다가 다시 짜 맞추어 전해준다. 따라 이야기꾼의 말하 는 역량과 기법이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야기는 쉬 변 한다. 문헌으로 기록되어 전하는 이야기는 한번 기록되면 변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기억했다가 말로 전하는 이야기는 시시때때로 변하는 것이다. 시대가 가지는 의미에 따라 새로이 만들어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야기는 크게는 민족 전체를 위해 만들어진 신화나 마을의 어떤 존 재물, 사람, 사건 등등을 꾸며낸 전설이나 민담 등등이 있다. 그래서 이 야기의 역사는 매우 길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사람이 모여 살면서 만든 것이니, 그리고 그들이 보고 느낀 것을 엮어 만든 것이니 그 종류와 양도 매우 많다. 그래서 이야기는 늘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오래된 것이라서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가? 이야기도 새 로워야 재미있고 가치 있는가? 이야기를 만들어 이를 다른 이에게 옮겨 말해줄 때,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만이 가진 소통의 공통분 모가 존재한다. 만일 이 공통의 요소가 필요 없고 무의미하다면 그 이야 010 책을 펴내면서 011

7 기는 사라진다. 가장 오래되고 큰 이야기인 신화는 민족끼리, 전설은 지 역에서, 민담은 어느 곳에서나 이 공통분모가 있기에 아직까지 전해지고 그것이 필요하고 진실 된 이야기라 믿었기에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 이다. 남아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야기가 사라지고 없어진다면 이미 그 이 야기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요, 그 이야기가 가진 교훈과 가치가 퇴색하 여 소통의 공통분모를 잃어버린 때문이다. 여기 대구의 주산 팔공산 자락과 금호강을 사이 한 이 대구광역시 동구 에서 전해지던 오래된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는 신성성이 사라져 이야기가 진실하며 사실이라는 믿음이 없어 져 변한다. 전설은 실제로 있었다고 믿었던 그 믿음의 증거물이 사라져 변한다. 그리고 민담은 신성하거나 진실하다기보다는 재미있고 교훈적 인 이야기인데 재미가 사라지거나, 교훈적인 것이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맞지 않을 때 변한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는 신화가 전설이 되고, 전설은 민담으로 바뀌어 입에 오르내리다 사라지곤 하는 것이다. 그 사이 급격하게 진행된 산업화로 인해 전통사회와는 세상사는 방 법이 변하고 바뀌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의 생각과 가치마저 바뀌어져 이제는 그 소통의 공간마저 사라지고 있기에, 이곳의 옛이야기를 모아 선조들의 지혜와 의식을 지키고 보듬어 보고자 함이다. 이 지역에서 만 들어져 그 진실성과 재미로 인해 전승되어 온 이곳의 전설과 민담은 곧 이 동구의 역사요 이곳 사람들의 의식태이다. 역사의 현장이, 진실성을 입증할 증거물의 현장이 이곳 동구이기에 동구의 이야기 는 이곳에서 오늘날 많은 이야기는 만들어진 시대나 장소, 그리고 이야기하고 이 매우 가치 있는 것이다. 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다른 세상이 되어간다. 그러나 옛날 에는 있었고 지금은 사라지는 이야기라면 옛날, 이 땅, 그곳에서 어느 때 우리가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해서 만들어진 그 가치 있었던 이야기는 오 늘날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다. 수 많은 이야기 중에 전설은 지역민이 사실이라고 믿는 이야기이다. 바로 이 고장에서 실재하고 있었던 이야기,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꾸몄기에 동구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일구어 온 곳이며, 신라 와 고려문화의 중핵적인 역사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사시대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긴 역사의 흔적을 전하는 이야기에서 만나고자 한다. 여기 모은 이야기는 이곳 동구에서 이곳 사람들이 아주 오랜 시절 부터 만들어, 가치 있다고 전해 내려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 012 책을 펴내면서 013

8 승되어 오늘의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급격하게 도시화를 이룬 여타 지역에 토박이 거주자가 드물거나 이야기가 남아 전하지 않음으로 하여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동구의 오랜 역사가 만든 긴 삶의 터전에는 매우 많은 이야기가 전한 다. 많은 문헌에 전하는 이야기[문헌설화]가 있고 입으로 전하는 [구비전 승설화] 이야기도 있다. 문헌설화에는 삼국유사, 삼국사기 를 비롯한 역사서와 개인 문집, 사찰의 기록물 등이 있어 여러 관심 있는 분들의 노 작이 많이 남아 있다.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으로 이번 책에서는 불노동 지역에서 부터 팔공 산록까지의 지역에서 조사 채록한 이야기와 관련 문헌설화 들 을 주로 모았다. 이중 동화사, 파계사나 신숭겸에 관한 기존의 여러 이야 기를 모아 두는 것은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남게 되는가를 함 께 살펴보기 위함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인 민담도 모아 사라지는 이야기 를 모아 그 말맛을 살려두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다 조사하지 못한 나 또 구비전승된 설화이던 것도 앞선 여러 저술물에 의해 이미 문헌설 머지 지역은 다음의 기회를 얻고자 한다. 화로 바뀌어져 영원히 기록한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전하게 되었다. 이 책 에서 모은 것들에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이렇게 정착 기록된 구비물이 많다. 그 이유는 동구지역에서 이제 옛 이야기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음 이요, 이야기를 제대로 구연하고 전승하는 소통의 공간이 사라졌기 때문 이다. 지난 한해 학생들과 함께 팔공산 지역을 다니면서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은 곧 모래 벌에서 금을 찾는 일 보다 더 힘들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기존의 것들을 바탕으로 다시 새로이 살펴보는 것은 흩어진 자료 지금 많은 학자들은 구비문학의 위기 라고 말한다. 그래서 구비문학 자료를 하루라도 빨리 모으고 갈무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노령층이 살 아 계실 때만 가능하다. 지금도 살아 있는 구비문학보다 사라진 것이 더 많다. 특히 이야기 문학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동구의 이야기가 사라진 다면 이 땅에서 살아온 동구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까지 사라지는 것이 되고, 그들의 생각과 가치마저 사라지는 것이 된다. 들을 하나로 묶어 재정리하여 이를 갈무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대구 동구 지역, 특히 팔공산 유역은 대구의 정신이 되는 문화적 요 그리고 동구의 관할 전 지역을 모두 다 모아 정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이는 출판 사업이 가진 절대시간의 부족과 예산 때문이기도 하다. 소가 많은 곳이다. 고려 태조 왕건과 신숭겸의 이야기, 동화사와 부인사, 파계사 등의 사찰 이야기, 그리고 선사시대 유물이 있는 봉무, 불노동의 014 책을 펴내면서 015

9 오래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구를 대표하는 이야기 문학이다.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시고 방향을 걱정해주신 대구동구팔공문 화원 김성수( 金 成 洙 )원장과 이응재( 李 鷹 載 ) 이사님, 팔공산지킴이 용수 동의 김태락( 金 泰 洛 ) 님, 공산향우회 최희현( 崔 熙 鉉 ) 회장님, 이정웅( 李 貞 雄 ) 달구벌 얼 찾는 모임 회장님, 영신고 구본욱( 具 本 旭 ) 선생님의 많 은 지도와 편달에 머리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같이 조사와 정 리 작업을 해 온 경북대학교 대학원 유명옥( 柳 明 玉 ) 양에게 고마움을 전 합니다. 부족한 작업이지만 이 지역민과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 동구민으로 서의 자긍심이 자리하기를 빌어 본다. 2012년 12월 저자 김 기 현 016

10 차례 발간사 /004 축사 /008 책을 펴내면서 /010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1 장_ 동구의 이야기 전설 / 비롯된 이야기 연기 설화 / 사람 이야기 인물 설화 / 땅이름 이야기 지명 설화 / 효자 이야기 효행 설화 / 기타 이야기 기타 설화 /120 2장_ 재미난 이야기 민담 /151

11 동구의 오래된 이야기 1 장_ 동구의 이야기 전설 1. 비롯된 이야기 연기 설화 2. 사람 이야기 인물 설화 3. 땅이름 이야기 지명 설화 4. 효자 이야기 효행 설화 5. 기타 이야기 기타 설화

12 1 story 비롯된 이야기 심지대사 나무 안내판 심지대사 나무 심지( 心 地 )대사가 세운 동화사 동화사는 493년 극달( 極 達 )이 창건하여 유가사( 瑜 伽 寺 )라 하다가, 832년 심지( 心 地 )에 의해 중창되었다. 중창 당시 겨울철인데도 절 주위 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 한다. 그러나 극달의 동화사 창건연대인 493년은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 이전의 시 기이므로 법상종( 法 相 宗 )의 성격을 띤 유가사 라는 절 이름이 붙여질 수 없다는 이유로 심지가 창건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을 검증받는 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법회에 불골간자( 佛 骨 簡 子 )가 전해지게 되는데 심지는 여기에 참여하기로 마음먹고 찾아갔으나 이미 날짜가 지나가버려 참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심지는 거기에 개 의치 않고 땅에 엎드려 참례를 하게 되었다. 법회 7일 째 되던 날에는 마 침 진눈깨비가 심하게 내렸는데 심지의 둘레 10자에는 눈이 내리지 않 았다. 이것을 신기하게 여긴 스님들은 심지를 당으로 안내했다. 그러나 심지는 굳이 사양하고 당을 향해 조용히 예배할 뿐이었다. 삼국유사 권4 심지계조( 心 地 繼 祖 ) 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심지는 신 라 41대 헌덕대왕( 憲 德 大 王 )의 셋째 아들이다. 나면서부터 효성과 우애 가 있었고 천성이 맑고 지혜가 있었다 한다. 그는 15세 되던 해 머리를 깎고 중악( 中 岳 ), 즉 팔공산에서 부지런히 수도를 하였다. 정진 중 속리 산 길상사의 영심( 永 心 )이 그의 스승 진표율사( 眞 表 律 師 )로부터 깨달음 법회가 끝나고 팔공산으로 돌아가는 도중 그의 옷깃에 간자 두 개가 끼여 있었으므로 다시 길상사로 돌아가 영심에게 사실대로 아뢰었다. 영 심은 간자가 함 속에 있는 것이어서 그럴 수가 없다고 하면서 함을 조사 해보니 과연 간자가 둘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영심이 간자를 겹겹이 022 1장. 동구의 이야기 023

13 싸서 간직해 두었다. 심지가 속리산을 떠나 다시 길을 가게 되었는데 이 번에도 지난번처럼 간자가 자신의 옷깃에 들어 있었다. 다시 돌아와 영 심에게 말하자 영심은 부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다 고 하면서 그 간자 를 심지가 봉안하도록 하였다. 계 최대의 석조대불인 통일약사대불 이 우뚝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어 동화사의 새로운 모습을 창출해내고 있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영심으로 부터 간자를 전해 받은 심지는 그것을 머리에 이고 팔공산 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팔공산 꼭대기에 올라가 부처의 간자를 모시기 위한 길지를 정하기 위하여 산신의 입회하에 서쪽을 향하여 간자를 던 졌다. 간자는 바람을 타고 날아 지금의 동화사 북쪽 첨당( 籤 堂 )의 우물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심지는 그곳에 집을 짓고 불골간자를 모셨는데 이것 이 동화사가 창건하게 된 연유라는 것이다. 삼국유사 의 저자 일연( 一 然 )은 다음과 같은 시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있다. 동화사 불간자의 봉안 이야기 부악( 父 岳 )이 팔공산( 八 公 山 )으로 불리우게 된 내력에는 대여섯 가지 의 전설이 있다. 그 중 한가지가 팔간자 봉안설이다. 간자( 簡 子 )는 선악을 통해 인과응보와 미래를 예지해 보는, 점을 치는 도 구이다. 그런데 이 간자를 미륵불로부터 바로 건네받은 사람이 진표( 眞 表 ) 다. 그런데 기이한 사실은, 이 진표 스님의 출생지가 이 곳 모악산 기슭이라 는 것이다. 生 長 金 閨 旱 脫 籠 儉 懃 聰 惠 自 天 種 滿 庭 積 雪 愉 神 簡 來 放 桐 華 最 上 峰 그 후 동화사는 1190년 보조국사 지눌, 1298년 홍진국사, 1606년(선 조39) 유정, 1732년(영조8) 관허 운구 등이 중건하여 오늘에 전한다. 동화사 경내에는 1990년 10월에 착공하여 1992년 11월 27일 준공된 세 동화사 024 1장. 동구의 이야기 025

14 희한한 일은 전주 모악산( 母 岳 山 ) 진표의 팔간자는 많은 사람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 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제쳐두고, 이 곳 부악 동화사에 봉안되고 그로 인해 부악에서 공산( 公 山 )으로 바뀐 산명( 山 名 )이 다시 팔 간자의 머리글 팔( 八 )자를 더하여 팔공산으로 되었다는 사실이다. 진표 스님은 김제 만경에서 태어났다. 12살에 금산사 숭제법사( 崇 濟 法 師 ) 밑에 들어가 머리깎기를 간청하니 스승 숭제가 이르되, 나는 일찍이 당에 들어가 선도( 善 道 )에게 배운 후 오대산 문수보살 로부터 5계( 五 戒 )를 받았다. 진표가 스승 숭제에게, 부지런히 수행하면 얼마나 되어 계를 얻게 됩니까? 물으니 정성만 지극하다면 1년을 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진표는 명산을 섭렵하고, 다다른 곳이 변산에 있는 내소사( 來 자인데, 이 제8간자는 신훈성불종자( 新 熏 成 佛 種 子 ) 라 하여 누구나 부처 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후 금산사로 돌아와 법상종( 法 相 宗 )을 설법하니 신라 오교( 五 敎 ) 의 하나로 그가 개조( 開 祖 )가 된다. 또 다시 전국을 주유( 周 遊 )하다가 마 침내 금강산 발연사( 鉢 淵 寺 )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수제자는 영심( 永 心 )이다. 이상은 삼국유사 의 기록을 대체로 인용한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심이 속리산 길상사(법주사 전신)에서 법회를 여는 가운데 동화사 중 심 지( 心 地 )가 참석하게 되고 그 간자는 부처님의 뜻에 따라 이 곳 팔공산 동 화사에 봉안된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蘇 寺 ), 처음 7일은 전신을 돌에 부딪치면서 피가 나도록 정진하였다. 그 래도 부처님의 감응이 없었다. 7일을 더 열심히 수행하여, 14일이 되자 드디어 지장보살로부터 계를 받으니 효성왕 4년(740) 진표의 나이 22세 였다. 그러나 진표가 바라는 것은 미륵보살을 만나는 일이었으므로, 기도 처를 다시 영산사로 옮겨 뼈를 깎는 고행을 하였더니 미륵보살이 나타났 다. 점찰경과 189개의 간자를 얻었다. 이 중에서 제8간자와 제9간자는 미륵보살의 손가락뼈라고 한다.(나중에 동화사로 전래되는 것은 제 8간 염불암 이야기 염불암은 동화사의 부속암자로 팔공산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 하고 있다. 이 절은 928년(신라 경순왕2) 영조선사( 靈 照 禪 師 )가 창건하 였고, 고려 중기에 보조국사가 중창하였다. 그 후 세종 20년(1438), 광해 군 13년(1621), 숙종 44년(1718), 순조 3년(1803), 헌종 7년(1841)에 중 창 혹은 중수하였으며 이는 최근까지 여러 차례 계속되었다. 극락전 옆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이 있는데 유형문화 026 1장. 동구의 이야기 027

15 부인사 이름 이야기 우리 강토 자체가 수많은 외침으로 유린되었듯이 이 절 또한 숱한 전 란의 와중에 온전할 리 없었다. 혹은 불타고 뭉개지면서 오늘날의 초라 한 모습으로 남아 있음이다. 염불암 바위 최근 지표조사( 地 表 調 査 )에 참여했던 학자들마저 사명의 표기를 달 리하고 있는 현실이 위의 사실을 잘 증명해 준다. 예를 들면 1986년 지표조사에 참여했던 윤용진( 尹 容 鎭, 경북대학교) 재 제 14호이며, 이 마애불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이 암자 에서 수도하고 있던 한 스님이 이 바위에 불상을 새길 것을 발원( 發 源 )하 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암자 주변에 신비한 안개가 끼이기 시작하더니 7 일 동안이나 걷히지 않았다. 스님은 더욱 신심을 내어 발원하였고 7일째 교수는 부인사( 夫 人 寺 )로 쓰고, 1989년 사지발굴( 寺 地 發 掘 )에 참여했던 이명식( 李 明 植, 대구대학교) 교수는 부인사( 符 仁 寺 )로 쓴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 절이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하나 삼국사 기 나 삼국유사 에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되는 날에 드디어 안개가 걷혔는데 스님이 법당문을 열고 나서 보니 바 위에 자신이 발원했던 불상 둘이 새겨져 있는 게 아닌가. 스님은 이 일을 문수보살( 文 殊 菩 薩 )이 했다고 믿었다. 이렇게 하여 새겨진 불상에서 그 후로 염불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암자의 이름도 지금처럼 염불암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부인사 028 1장. 동구의 이야기 029

16 상고해 보면 고려시대에는 符 人 으로 썼고, 조선조에는 夫 人 으로 불 리운 것 같다. 다만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부적부( 符 ) 자와 어질인 ( 仁 ) 자를 써서 부인사로 불렀던 이유는, 대장경을 보관한 데 연유하고, 지아비 夫 자와 사람 人 을 써 부인사로 부른 이유는 신라시대 여왕을 夫 人 이라 칭한 데서 선덕여왕의 묘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과, 이 절이 퇴락하 여 흔적만 남아 있는 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허상득( 許 相 得 )이라 는 비구니가 현재의 사우를 건축할 때 쉬운 한자말인 夫 人 을 써서 그렇 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만 필자의 견해로는 대장경을 봉안한 데서 이름한 符 仁 과 선덕여왕의 원찰이기에 夫 人 이라 했다는 설은 설득력이 없는 것 같다. 선덕여왕을 모신 부인사의 내력 부인사( 夫 人 寺 )는 선덕여왕대인 7세기에 처음 세워졌다. 이렇게 세 워진 절이 고려조까지 이어져 몽고의 침입으로 전소되고, 그 자리에 다 시 세운 절이 1928년 또 소실되었다. 소실된 다음 3~4년간은 그냥 방치 되어 있었고, 우리가 지금 보는 절은 그 후 다시 세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한다. 절이 모두 소실 된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팔공산 일대의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놓으 면 모두 썩어 버리고 가뭄과 장마로 흉년이 4년 동안이나 거듭되었다. 팔공산민들이 대단한 고난을 겪고 있던 어느 날 하늘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선덕여왕을 모시고 제를 올려라., 선덕여왕을 모시고 제를 올 려라. 이 소리를 분명히 들은 마을 사람들은 불타 없어진 선덕여왕의 사 여하튼 고려사, 고려사절요 의 기록은 符 仁 이며 신증동국여지승 당인 숭모전( 崇 慕 殿 ) 을 다시 짓고 제를 올렸다. 이로부터 흉년이 그치 람, 대구부읍지 는 夫 人 이고, 동사열전 의 기록은 조금 이채롭게 夫 仁 이다. 현재 절에서 사용하는 이름은 符 仁 이고, 정사인 고려사 기록 또한 符 仁 이니 사명을 符 仁 으로 통일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선덕여왕 영정 사진 030 1장. 동구의 이야기 031

17 고 곡식이 썩어 가는 기이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음 력 3월이 되면 선덕여왕을 기리는 선덕여왕 숭모대제 가 대구 지역 부인 들의 모임인 선덕여왕 숭모회 주관으로 열린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선덕묘-부인사 재건에 얽힌 이야기 선덕여왕릉 여기가 옛날에 선덕묘라는 작은 전각이 있었어요. 선덕묘는 이 절 을 창간하신 신라 67대 선덕여왕을 모신 전각인데. 여기다가 진영을 보 관되어 있었어요. 진영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도난 되어 없어지고 지금 새로 짓고, 선덕묘가 이름이 바꿨어요. 이 안에 진영을 새로 보관했 는데, 1991년도에 새로 보관했는데 그게 누구냐면 지금 경북대학교 미 술학과 교수님이 새로 진영을 보관했어요. 그래서 지금 학생들이 카는 동네에 전해지는 설화는 이것과 관련된 게 하나 나오거든요. 옛날에 이 절을 창간한 건 선덕여왕인데, 이전에 선덕묘에다가 진영을 보시고 마 을에서 제를 지냈어요. 해마다 지냈는데, 이 절이 다 폐허가 되는 바람에 동네사람들이 제를 못 지냈어요. 그 후로 동네에는 크고 작은 재앙들이 일어나요. 여러 차례. 어느 동네 이장이나 동네 사람들 주민들 꿈에 이 선덕여왕이 나와서 나를 모셔라 고 말해서 제를 다시 지내기로 했어요. 거기에 새로 부임한 비구니 스님과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건물을 크게 짓고는 선덕여왕을 모시고 추모제를 다시 지내기로 했어요. 그 주민들 이 새로 옮긴 거지. 선덕묘라고 있었다잖아. 그 이후로는 마을에 크고 작 은 재앙들이 없어졌다는 거죠. 그러고 절에도 새로 크게 번창하고. 예전 에 30년전에 학생들은 여기 온 적이 없겠지만 부모님들은 30년전에 여 기 오신 분들은 여기 쪼매난 대웅전 하나만 있고 허름한 절이었어요. 그 지금 절이 이래 커져버린거라. 그래서 그런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거 지. 그 후로부터 마을에 재앙도 없어지고 절도 커지고 마을도 번창했다. 그리고 또 여기 어원이 여자와 관련되잖아. 부인 이라는. 그래서 옛날에 는 남자 스님들이 여기 살림을 살 때는 이 밑에 땅도 팔아먹었거든. 지금 이런 포도밭 같은게 원래 부인사 땅이었는데 지금 개인 소유로 넘어가 버렸잖아. 그때 남자 스님들이 있을 때 좀 팔아먹었던 말이야. 근데 여자 스님들이 오고는 절이 이래 커졌으니까. 어원하고도 관련되고 우스갯소 032 1장. 동구의 이야기 033

18 리로 어떤 게 나오냐면은 여자가 살림 살면 잘산다. 그때부터 그런 동 네 사람들이 입소문이 전해지는거지. 제보자 : 권오진, 남, 55세, 문화해설사, 다. 영조의 탄생이 영원선사의 기도 덕분이라고 생각한 숙종은 영원에게 현응( 玄 應 )이라는 호를 내리고 파계사를 숙빈 최씨의 원찰( 願 刹 )로 삼아 원자( 元 子 )의 수복( 壽 福 )을 빌게 했다.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신무동 부인사에서 숙종은 현응선사의 공을 높이 샀기 때문에 파계사 주변 40리의 세금 을 파계사에서 거두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현응은 이를 사양하고, 그 파계사가 낳은 왕 영조 파계사( 把 溪 寺 )의 파계 는 시내를 잡는다 는 의미의 파계( 把 溪 ) 를 쓴다. 이 절을 중심으로 좌우에서 흐르는 아홉의 물줄기가 흩어지지 않 고 한 곳에 모인다는 뜻에서 사찰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원래 신라 애장왕(800~809) 때 심지대사가 세운 것인데, 특히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대왕( 英 祖 大 王, 1694~1776)과 인연이 깊다. 영조는 숙종의 넷째 아들로 이름이 금( 昑 ), 자는 광숙( 光 叔 ), 호는 양성재 대신 왕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게 해 달라고 청원하여 1696년(숙종 22) 기영각( 祈 永 閣 )을 지었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심으로 지방 유생 들의 행패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왕실 원찰로서의 지위를 한층 확고 히 하고자 함이었다. 그리하여 기영각은 1696년 성전암( 聖 殿 庵 )과 함께 건립되고, 1704년에는 여기에 영조가 11세에 쓴 자응전( 慈 應 殿 )이라는 편액을 붙이게 되었다. 이 현판은 현재 성철( 性 撤 ) 스님이 9년간 수도한 바 있는 성전암 법당에 걸려 전해지고 있다. ( 養 性 齋 )였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은 제위 19년 째가 되던 해인 1693년 10월 5일 밤에 산승( 山 僧 )이 대전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상하게 여긴 숙종은 남대문 밖에 혹시 승려가 있는지 알아보게 하였다. 때마침 팔공산 파계사의 영원( 靈 源 )선사가 묘향산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남 문 밖에서 쉬고 있었다. 이에 숙종은 그에게 왕자의 탄생을 위한 백일기 도를 드리게 한다. 이 같은 일이 있는 뒤 숙빈 최씨는 태기가 있었고 드 디어 이듬해인 1694년 9월 13일에 왕자가 탄생하였다. 이가 곧 영조였 영조가 즉위하자 왕비인 정성왕후( 貞 聖 王 后 )는 이 같은 내력을 알고 이 절을 자신의 원찰로 삼은 다음 1732년에는 영조가 입던 도포를 하사 하였다. 이 도포는 1797년 파계사 원통전 내의 관세음보살상을 개금( 改 金 )하다가 발견되었다. 도포와 함께 한지 두루마리에 적인 발원문이 발 견되어 이 도포가 파계사에 보관된 경위를 소상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발원문에 의하면 1740년(영조16) 12월에 대법당을 개금하고 불상과 나 034 1장. 동구의 이야기 035

19 한을 중수하였으며, 영조가 탱불 1,000불을 희사하여 불공원당( 佛 供 願 堂 )의 장소로 삼았고, 이와 함께 만세토록 길이 전해질 것을 빌면서 왕의 청사( 靑 紗 ) 도포를 복장( 服 藏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도포의 뒷목에는 발원문의 내용과 같은 묵서가 한지에 적혀 꿰매져 있다. 파계사의 이 도 포는 현품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는 것으로, 형태와 색이 거의 완전하여 의복사적 가치가 크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님을 궁궐로 불러들인 거예요. 그 스님이 누구냐 하면, 파계사 주지스님 이셨어요. 이 파계사의 주지스님이셨는데 이 파계사의 주지스님은 서울, 파계사는 대구고 한양은 지금의 서울이잖아요. 옛날로 치면 길이 엄청 멀잖아요. 그리고 조선 시대에 불교가 탄압을 받아요. 억불숭유정책 불교는 억 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그런 정책이죠. 그런 정책이 되니까 유교를 막 떠받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불교를 억압했어요. 불교를 억압하니까 이 절이 되는 거예요. 유교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을 유생이라 그러는데 유생들이 요즘으로 치면 데모를 막 한 거죠. 스님들, 타락한 스님 때문에 파계사와 영조대왕 이야기 그 장희빈 드라마에 등장하는 숙종이 이 숙종인데, 이 숙종에게는 왕자가 굉장히 귀했어요. 인현왕후가 원래 정빈데 소생이 없어요. 그리 절을 다 없애야 된다고 절을 철폐시키라고 많이 그걸 해요. 그러니까 많 은 절이 없어졌어요. 조선 시대 때. 그래서 우리 파계사도 없어질 것 같 으니까 이 파계사의 주지스님이셨던 분이 염원선사인데 그 분이 이제 서 고 장희빈에게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분이 경종이에요, 경종. 숙경영 종 이렇게 가잖아요. 그래서 경종인데 일찍 죽어요. 여덟 살인가 아홉 살 에 일찍 죽습니다. 그 죽고, 왕자가 없으니까, 왕실에 왕자가 없다는 건 굉장히 큰 근심거리잖아요. 그래서 숙종대왕이 늘 그것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어느 날 밤에 꿈을 꾸니까 꿈속에 스님이, 이렇게 광채를 띄는 스 님이 나타나셔가지고 그 스님에게 빌면 그 기도를 드리면 꼭 왕자가 탄 생할 것 같다 이런 느낌을 받아서 잠에서 확 깨어났는데 깨어나서 궁궐 밖을 보니까 진짜 스님이 딱 한 분 앉아계신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스 기영각 036 1장. 동구의 이야기 037

20 울에 가서 탄원을 드리려고 서울을 가신 거예요. 가셔서 기록에는 아, 이 건 기록이 아니고 전부 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깁니다. 전해 내려오는 얘 기로는 이 분이 삼년이나 서울에 머물렀다고 해요. 그래도 궁궐 안에 들 어가 보지도 못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마지막 날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다시 파계사로 돌아가야 되겠다. 그래서 마지막 날 궁궐 앞에 이렇게 앉아있었는데 그날 밤 숙종이 꿈에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숙종 임금이 딱 불러들여서 그 이제 스님이 정말 꿈속에서 봤던 스님이 딱 계 시니까 우리 궁궐에, 왕실에 왕자를 탄생하는 기도를 드려달라고 이렇게 부탁을 드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백일기도를 드렸어요. 백일기도를 드 렸는데 백일기도를 턱 드리고 나니까 정말로 이제 당시 장희빈 말고 그 장희빈 드라마에 보면 무수리 최씨가 있습니다. 그 무수리 최씨가 그 때 후궁이 되어 가꼬 숙이 최씨로 있었거든요. 탁 임신을 한 거예요. 잉태가 된거죠. 그러니까 이 숙종임금이 너무 기뻐서 이 염원선사에게 내가 큰 상을 주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상이라 하면 뭐 전답이라던가 이렇 제사를 지내게 해 준거예요. 그래서 이곳이 왕실의 원찰이 됩니다. 그래 서 숙종임금님, 영조임금님, 이런 임금님들의 그 위패를 모셨어요. 그기 어디서 모셨는가 하면 좀 조금 있다 올라가시면 바로 보입니다. 바로 앞 에 요기에서는 기영각이라고 있습니다. 기영각이라는 쪼끄만한 암자예 요. 원통전 바로 옆에 있어요. 고 보면 기영각이라고 작은 암자가 하나있 습니다. 이 기역각에서 영조대왕을 위해서 기도도 드리고 제사도 드렸던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위패가 없어요. 그 지금 왜 또 위패가 없냐하면 일제강점기 때 그 서울의 종묘로 옮겨놨어요. 서울의 종묘는 이제 여러 임금님들의 위패가 있고 제사를 모시잖아요. 그 쪽으로 가고 지금은 그림만 이렇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 이곳은 영조임금님과 관계가 있구나. 그렇지만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건 다 그냥 전해 내 려오는 이야기예요. 제보자 : 이명신, 여, 55세, 대구시 문화 관광 해설사,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중대동 파계사에서 게 돈을 많이 주겠다 하니까 염원선사가 뭐라고 대답을 했냐면 그런 건 다 필요가 없고, 이 절을 이 파계사라는 절을 왕실의 원찰로 해달라. 왕 실의 원찰이라고 하면 왕실을 위해서 기도드리는 절입니다. 그걸로 해 달라 이렇게 부탁을 드렸어요. 그러면 유생, 이 절이 없어지지 않을 거잖 아요. 그래서 숙종임금이 허락을 하셨어요. 허락을 하시면서 여기에 왕 실 그 임금님들의 위패, 그 제사지낼 때 모시는 이 위패를 절에서 모시고 파계사 진동루와 영통전 파계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2층 다락으로 된 진동루( 鎭 洞 樓 )가 있 고, 그곳을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 圓 通 殿 )이 있다. 원통전은 유형문화 재 제7호로 자비의 화신인 보물 제 992호인 목조 관세음보살( 觀 世 音 菩 038 1장. 동구의 이야기 039

21 아가 보라고 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한 겨울이었지만 스님은 스승이 가르쳐주는 대로 깊은 산 속을 찾아갔다. 스승의 말대로 거기에 어떤 나 무꾼이 딸 한 명과 살고 있었다. 스님은 자신의 소원을 이야기하고 그 나 무꾼에게 자신의 제자로 받아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나무꾼은 스님 을 밖으로 쫓아내었다. 스님은 여기에서 물러서지 않고 그의 몸에 눈이 진동루 덮이는 것도 모르고 밖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을 받아줄 것을 청했 다. 7일 동안이나 이렇게 하자 나무꾼은 그의 신심을 인정하고 또 그의 딸을 아내로 맞아 살게 하였다. 薩 )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원통은 절대적 진리는 모든 것에 두루 통 해 있다 는 뜻으로, 주원융통( 周 圓 融 通 )의 준말이다. 능엄경( 楞 嚴 經 ) 에는 귀로 듣는 성품은 사람마다 본래 원통한 것이어서 모든 곳에서 북 을 치면 일시에 똑같이 들리니 원( 圓 )이라 하고, 담장이 막혔어도 소리가 그러나 나무꾼은 3년이 지나도록 관세음보살이 계시는 곳으로 인도 해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숯 굽고 밭 가는 일 등 고된 일만 시켰다. 이 에 스님은 자신이 수도할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곳을 도망쳐 나왔 다. 산 아래에 한참을 내려와 물을 건너가려고 할 때 물에 비치는 아름다 들리며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모두 듣는 것을 통( 通 )이라 한다 고 적혀 있다. 그러니까 원통 은 귀로 듣는 뛰어난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관( 觀 )한다는 관세음보살을 의미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온갖 두려움을 없애는 무외심( 無 畏 心 )을 베푼 다는 뜻에서 시무외자( 施 無 畏 者 )라고도 한다. 여기와 관련하여 하나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신심( 信 心 )이 돈독한 스님 한 분이 스승을 찾아 열심히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찾았다. 그러기를 십 수년, 그의 스승 은 이제 자신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고 하면서 한 나무꾼을 일러주며 찾 원통전 관세음보살 부처님과 영산화상도 040 1장. 동구의 이야기 041

22 운 한 얼굴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아내로 맞아 살았던 그 여인이 관세음 보살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때 그 스님은 깨달았다. 자신과 가장 가까이 지내던 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는 자신이 떠나 온 곳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조금 전까지 걸 어온 곳엔 나무들만 무성하게 서 있을 뿐 길은 사라지고 없었다. 통곡하 면서 힘껏 관세음보살을 외쳐 보았으나 외로운 메아리가 공허한 소리로 돌아올 뿐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용암산성으로 몰려들었는데 그 수가 1천명을 넘었다. 나라를 구하고 비 명에 죽어가는 동족을 보다 못해 뜨거운 마음으로 모인 의병이었으나 불 타는 마음만 있었을 뿐 의병들은 전투에 있어 도저히 왜병의 상대가 되 지 못했다. 왜병은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오랫동안 군사훈련을 받 은 데다 조총( 鳥 銃 )이라는 최신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거기 비해 의 병들은 군사훈련이라고는 받은 적 없이 농사를 짓던 사람이라 그들이 가 진 무기는 쇠스랑과 낫 같은 농기구뿐이었고 짐승을 막기 위해 만들어 두었던 창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최상의 장비였다. 훈련과 무기가 이렇게 차이가 나니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의병들이 도동의 용암산성과 옥천( 玉 泉 ) 이야기 동구 도동에 있는 용암산성은 그 일대에서 삼국시대 초기 신라 토기 조각이 많이 발견돼 학자들이 이 성이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 하고 있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이 성은 임진왜란 때도 또 한 차례 국방의 요충지가 됐으니 임란으로 대구 지방이 초토화됐을 때 인근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이곳에 모여 활동했다. 그리고 지금 산성 동북쪽에 남아 있는 옥천( 玉 泉 )은 그 때 판 것이라고 하는데 이 샘에는 다음과 같은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구지방까지 밀려온 왜병이 집을 불사르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자 참다 못한 백성들이 누가 주동할 것도 없이 각지에서 마음만 믿고 왜병과 맞섰다가는 희생자만 늘고 전쟁에 질 수밖에 없었 다. 생각 다 못한 의병들은 어두운 밤을 이용하여 왜병의 진지를 습격하 는 게릴라식 전술을 썼다. 처음 몇 번은 이 전술이 성공했으나 왜병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왜병들은 피해가 늘어나자 게릴라 습격에 대비한 야간 수비 태세를 갖췄고 전과 같이만 생각하고 습격했던 의병은 왜병 의 반격에 부딪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패군은 쫓기는 의병을 추격하 여 용암산을 에워싸고 올라왔다. 그러나 천연의 요새인 용암산을 함락시 킬 수는 없었다. 용암산은 가파른 경사에 곳곳에 절벽이 있고 또 성벽까 지 둘려 쳐져 있어 용암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것이다. 왜군은 성 을 점령하려다가 사상자가 늘어나자 지구전을 펴기 시작했다. 왜군들 중 042 1장. 동구의 이야기 043

23 에 지형을 잘 살피는 자가 있었는데 용암산성과 주변 지세를 살피니 용 암산성 안에는 샘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성을 에워싼 채 포위망을 풀지 않으면 물을 먹지 못한 의병들이 제풀에 성문을 열고 항복할 것이 라고 판단했다. 닥 희망을 안고 조를 나눠 밤낮으로 샘 파는 작업을 계속했다. 수 십일을 계속 파헤쳤는데 땅 위에서 우물 바닥을 보면 가물가물할 지경이 됐는데 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산꼭대기에 물이 나올 리가 없지 라고 실 망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으나 샘 파기는 끊이지 않고 며칠이 더 계속 됐 다. 이제 우물 깊이는 명주실 한 꾸러미를 풀어도 바닥에 닿지 않을 정도 왜병의 예상은 적중했다. 용암산성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준해 요새 의 깊이가 됐다. 때마침 기적이 일어났다. 로 안성맞춤이었으나 물이 없는 게 흠이었다. 왜병들이 추격은 포기했 으나 포위망을 풀지 않고 지구전을 펴자 당황한 것은 의병들이었다. 처음엔 그릇에 받아둔 물을 먹고 여기저기 고인 물을 사용했으나 며칠 이 지나자 밥 지어 먹을 물이 떨어진 것은 물론 마른 목을 축일 물조차 없었다. 의병들의 열의에 감동을 안 것인지 드디어 깊은 바닥에서 물이 솟아 나기 시작했다. 의병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깊은 땅 속 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그런지 샘물은 차고 맛이 좋았다. 의병들은 그 물 로 밥을 지어먹고 용암산성을 지킬 수 있었다. 수 십일을 포위해도 의병들이 문을 열고 항복해 나오지 않고 밤으로 견디다 못한 의병들은 특공대를 조직하고 밤중에 산을 내려가 물을 길러오게 하였으나 특공대는 성공하는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더 많았다. 왜군이 의병의 작전을 알아차리고 이에 대한 경계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물 길러 나오던 특공작전조차 벌이지 않자 왜군은 의병이 성 안에 우물 을 판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끈질긴 집념에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포위망을 풀고 물러갔다. 특공대는 내려갔다 하면 사로잡히거나 조총과 칼에 희생되었다. 목숨을 건 특공작전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래도 동료들을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고 밤에 산을 내려가 물을 길어오겠다는 사람은 줄을 이어 나섰으나 무모히 인명을 버릴 수 없다 해서 죽을 각오로 샘을 파기로 결심했다. 비 록 높은 산 꼭대기이긴 하지만 깊이 파면 물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한 가 의병들의 목숨을 구한 이 샘은 의병의 한( 恨 )과 열성이 맺힌 탓인지 날 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옥천( 玉 泉 )이 란 이름은 항상 옥( 玉 )같이 맑고 찬물이 솟아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044 1장. 동구의 이야기 045

24 2 story 사람 이야기 신숭겸 동상 신숭겸이 평산( 平 山 )으로 관향( 貫 鄕 )을 받은 이야기 일찍이 고려 태조 왕건과 함께 평산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세 마리의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왕건이 여러 장수들에게 이를 쏘라고 하였다. 이 가운데 신숭겸은 어떤 기러기를 쏠 것인가에 대하여 묻자 왕건은 가운데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라고 하였고, 신숭겸은 분부대로 쏘아 맞혔다. 왕건은 신숭겸의 신기한 능력에 대하여 감탄하고 기러기가 날아가던 땅 을 하사하였는데, 이로 평산은 그의 관향이 되었다고 한다. 수( 桐 藪 )에서 견훤과 커다란 싸움을 벌인다. 이른바 동수대전( 桐 藪 大 戰 ) 이다. 그러자 후백제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몹시 위급하였는 데, 당시 신숭겸은 왕건과 외모가 흡사하였으므로 왕건을 부인사 근처 로 숨게 한 뒤, 자신은 왕건으로 가장하여 김락과 함께 힘을 다하여 싸 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표충사 앞의 순절단이 있는 자리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고려 태조 10년 9월에 후백제의 견훤이 영천을 습격한 뒤 신라의 수 도 경주에 침입하여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던 경애왕과 비빈 및 종친과 왕실의 외척들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왕건은 크게 격분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는 한편 기병 5천명을 거느리고 대구의 팔공산 동 지묘동 일대의 신숭겸 유적과 이야기 지금의 대구시 동구 지묘동 자리는 표충단, 충렬비, 표충재를 합쳐 대구시 지방 문화재 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전에는 달성군으 046 1장. 동구의 이야기 047

25 로서 경상북도 문화재 14호였는데 대구시로 승격되고 난 뒤 1호가 된 것 이다. 이 자리는 장절공 신숭겸 장군의 표충단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천여 년 전 서기 917년 태봉에서는 폭군 궁예를 내몰고 왕 건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 때 신숭겸, 김낙, 배현경, 복지겸 네 분이 왕 건을 고려 태조로 모시게 되었다. 그 뒤 10년 후 신라 경애왕 3년, 포석 정에서 견훤의 기습을 받아 신라는 사면초가( 四 面 楚 歌 )가 되어 고려에 원군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고려는 기병 5천을 신라에 보내 왔다. 최초 의 접전은 잘 알 수 없으나, 견훤의 군사는 연전연승( 連 戰 連 勝 ), 기세등 등, 승승장구하고 고려군은 연전연패( 連 戰 連 敗 )하다가 최후로 포위된 곳 이 지금의 지묘 1구, 이 자리라 한다. 이리하여 왕을 구하기 위해 지묘에서 구출 작전이 벌어졌다. 전 군사 가 전몰하는 일이 있어도 왕을 살려야 했는데 그 방법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용케도 왕건과 신장군의 얼굴이 흡사하여 거기서 신장군은 태조 왕건의 옷으로 바꿔 입고 왕건으로 가장하여 김낙 장군과 더불어 진두지 휘하였다. 왕을 평복으로 갈아 입혀 숲에 숨기고 동으로,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적의 시선을 끌어 왕을 그 사이에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신장군 이 그 곳에서 전사하자 견훤의 군사는 나팔을 불고 기뻐했다. 그들은 신 장군을 왕으로 생각하고 신장군의 머리를 잘라 갔으며 지금도 그 머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뒤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에 고려에서 시신을 거두려고 와 보니 머리는 없고 옷도 벗겨져 분별하기가 힘이 들었다. 장절공 유적 책자에 보면 신장군을 잘 아는 유금필 장군이 좌족하( 左 足 下 )에 칠성( 七 星 )이 있 으니 그것을 보면 찾을 것이다 하여 그 말을 믿고 지금 봉분자리에서 시 신을 찾아 지금의 강원도 춘천 춘선군 서면 방독리에 묘를 세우고 장례 를 치루었다. 왕건이 이를 추모하기 위해 그 자리에 지묘사( 智 妙 寺 ), 미 리사, 대비사( 大 悲 寺 )를 근처에 지었다. 대비사는 동구 평광동(이것은 행정명이며 실제 마을의 이름은 질왕 ( 迭 王 ): 또는 일명 대비동( 大 悲 洞 )이라고도 한다.)에 영정을 모시고 명 복을 빌었다. 대비사는 탄 기록이 있으나 미리사와 지묘사는 불탄 기 록이 없다. 아마 몽고란 때 부인사가 탈 때 근처 절이 불탔다는 기록이 신숭겸 사당 있어 같이 탔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대비사는 김천득이라는 자 048 1장. 동구의 이야기 049

26 가 선고( 先 考 )의 묘를 쓰기 위해 중과 짜고 불을 질러서 영정이 없어졌 다고 한다. 여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 無 怠 警 戒 )고 군사들에 명령한데서 무태( 無 怠 )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150년 전 무자년( 戊 子 年 )에 송축 기록이 있는데 그 후 자손이 다시 찾아와 비각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묘사가 타고 지묘( 智 妙 ) 는 황폐해졌는데 300년 전 유영순이라는 분이 이 자리에 와 보니 너무나 흔적도 없이 변해 버려 사람들의 힘을 모아 표충사라는 사당을 짓고 충 렬비를 세웠다고 한다. 표충사( 表 忠 寺 )는 김낙, 신숭겸 두 분을 모시는데 그 뒤 신길원 장군 그리고 나팔고개라는 것은 전쟁 때 나팔을 불었다는데서 연유한 말 로, 지묘를 중심으로 포위한 견훤의 군사들이 포위망을 압축시키기 위해 나팔을 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역시 견훤의 군사들이 나팔을 분 것이 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왕건의 군사가 무태로부터 6km를 긴장하면서 행군하다가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나팔을 불었기 때 문에 나팔고개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을 모셔 내려오다 서원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대원군 때 서원 철폐의 국 가령에 따라 지묘의 표충사가 헐리게 되었다. 지금의 표충재는 서원을 없애고 다시 재실을 짓고 후손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독좌암( 獨 坐 巖 )은 독지바우 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봉무동 노인회관 북쪽 5km 지점의 개천가에 있다. 이는 태조 왕건이 지묘에서 참패를 당 하고 왕산( 王 山 )으로 달아나서 팔공산( 八 空 山 )의 염불암 옆 일인석( 一 人 파군재는 견훤의 군사가 신숭겸, 김낙 등 고려 군사를 깨뜨렸다는 뜻 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견훤의 군사가 여기서 진을 거두었다는 데서 파군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러니 고려 군사가 전멸당 한 뒤 후백제군이 작전을 그만두고 군을 거두었다는 것을 말한데서 나왔 다고도 한다. 그러나 당시 고려군은 전멸했으므로 파군한데서 나온 말이 옳은 듯하다. 이에 앞서 왕건의 군사가 지금의 무태 잠수교가 있는 금호 강을 건너 팔공산 기슭까지 왔으므로 견훤의 군사가 나타날 것을 염려하 石 )에 앉았다가 다시 파군재를 넘어 봉무동 지금의 독좌암이란 바위에 앉았다는데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그 너머 불로동 마을 앞을 해안( 解 顔 )이라 하는데 이를 동촌면이라 하기 전에 해안면이라 했다. 태조가 패잔병을 끌고 들판을 지나면서 몹 시 걱정했는데 마침내 위급한 이 곳을 무사히 통과하여 얼굴의 수심이 가셔서 얼굴을 펼 수 있었다는 뜻에서 해안( 解 顔 )이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장. 동구의 이야기 051

27 지묘 1구 뒷산인 왕산( 王 山 )은 왕건이 죽을 것을 이 산 때문에 살았 다 하여 왕산( 王 山 )이라 했다고 한다. 그 뒤로 간 곳이 염불암인데, 왕건 이 그 옆 바위에 앉아 있었더니 수도하던 도승이 첫 눈에 왕건인 줄 알고 그의 자백을 받기 위해 넌지시 묻기를 이 자리는 이 어지러운 난세를 구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곳인데 그대는 누구인가, 내려오라. 고 했더니, 내가 바로 왕건이다. 라고 자백했다. 그러자 도승은 절을 하고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 후 염불암 옆의 그 할 때 그 곳을 파니 부엌의 재와 검정이며 기와 조각이 나왔고 요즘도 가 끔 나오고 있다. 그리고 왕건은 지묘 1구 뒷산인 왕산( 王 山 )으로 달아나 동화사 뒤의 염불암의 일인석을 거쳐 다시 지금의 봉무동 노인회관 북편에 있는 큰 바위에 혼자 앉아서 쉬었다가 다시 해안 지방을 거쳐 지금의 반야월( 半 夜 月 )에 오니 밤은 반야( 半 夜 )이고 달( 月 )이 떠 있다고 해서 반야월이라 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고 그리고 안심면( 安 心 面 ) 은 견훤 군사가 돌아가 서 안심이 되었다한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바위를 왕건이 혼자 앉았다 하여 일인석( 一 人 石 )이라 부른다고 전한다. 이렇듯 전쟁에서 있었던 일이 전해 내려와 지금의 지명이 된 것이 많 지금의 지묘 1구 앞들을 탑들이라 하는데 이는 옛날 지묘사의 탑이 있던 곳이라는데서 연유한 것이다(지금은 탑이 없어졌다). 경지 정리를 다. 대구 근교 주위가 거의 이런 연유로 이름이 지어졌는데 주위 이름이 산이나 강의 생김새를 보아 이름지은 것에 비해 이곳은 역사적 일이 있 어 이를 토대로 이름이 지어졌다. 지묘사( 智 妙 寺 )라는 것도 지( 智 ), 묘( 妙 ) 즉, 작전을 펼 때 지혜와 묘 책을 써서 왕건을 도망시키는데 성공했다 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 다. 그리고 지금의 지묘동은 옛날 지묘사라는 절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동명( 洞 名 )이라 전한다. 신숭겸의 왼쪽 발바닥에 7개의 점이 있는데 이는 왕건과 같게 하기 신숭겸 초상화 위해 바늘땀을 떠서 먹물을 넣어 새겼다고 전해 온다. 다른 한편으로는 052 1장. 동구의 이야기 053

28 태조의 좌족하( 左 足 下 )에 흑성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장절공의 시신을 거둘 때 머리도 없고 왕복도 거두어 가서 전혀 알 수 없었는데, 마침 유 람이다. 군졸로서 서남해에 근무하다가 그 공으로 비장( 裨 將 )이 된 뒤, 혼란기인 진성여왕 6년(892) 신라에 대해 반심을 품고 거병한 인물이다. 금필 장군이 신 장군을 잘 알아 신 장군의 좌족하의 흑성을 찾아낸 것이 단서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표충사를 혈단 이라 부르는 것은 신 장군의 흘린 피를 모아 단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시체가 묻힌 곳과는 다르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전술한 바와 같이 당시 사회 현상은 정치 기강이 무너진데다가 기근 마저 겹쳐 혼란이 극심하였다. 견훤은 이때를 틈타 지방의 군사력과, 신 라에 적개심을 품고 있던 백제 유민을 규합, 전주를 근거지로 거병, 왕이 되었다. 그는 반( 反 ) 신라 세력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의자왕의 숙분( 宿 憤 )을 어찌 씻지 아니하리오. 하면서 도읍을 전주 팔공산과 견훤 이야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백제는 660년 수도 사비성이 나 당 연합군에 함락되어, 678년간 존속되어 왔던 나라가 망한다. 백제가 멸망하자 당의 소정방( 蘇 定 方 )은 의자왕을 비롯한 장사, 대신 등 무녀 12,807명을 포로로 잡아 본국으로 보내고, 백제 지역을 통치하 기 위하여 5도독부를 두고 그 밑에 자사( 刺 史 ) 현령을 현지 백제인으로 에 정하고 국호를 후백제라 칭하니 이때가 효공왕 4년(900)이다. 당시는 송도에서 고려를 세운 왕건과 늘 대립 관계에 있었는데 적어 도 초창기는 그가 늘 우세했다. 특히 927년에 팔공산에서 전개되었던 이 른바 동수회전( 桐 藪 會 戰 )에서는 왕건 자신이 이끌고 온 5,000명의 군사 가 견훤에 의해 몰살당하고, 자신만 신숭겸 김락 등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임명하는 한편, 유인원( 劉 仁 願 )이 지휘하는 당병 1만과 김인태( 金 仁 泰 ) 가 거느린 신라 병사 7천여 명으로 그를 돕게 했다. 그러나 백제인들의 부흥 운동은 집요하게 전개된다. 이러한 백제 출신들의 저항은 나말( 羅 末 )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잘 이 용한 사람이 견훤( 甄 萱 )이다. 그는 본래 신라의 땅인 상주 가은( 加 恩 ) 사 신라는 이미 국운이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지고, 왕을 잃은 고려는 깊 은 혼란에 빠질 것이며 그렇다면 후백제가 후삼국을 통일하는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후백제도 견훤의 잦은 군사 동원에 시달렸고, 견훤 자신도 장. 동구의 이야기 055

29 명의 아들 가운데 하필이면 넷째 아들인 금강( 金 剛 )에게 왕위를 물려주 려고 하니 이에 그의 형들이 불만을 품어 그를 금산사에 유폐시킨 뒤 금 따라서 대구지방 일대에는 이 전투에 얽힌 역사적인 유적과 또 사실 이 확인되지 않는 전설이 많이 전해온다. 강을 죽이고 신검( 神 劍 )이 왕위에 오른다. 그러나 그는 불행인지 다행인 지 막내 아들과 딸과 첩 등을 데리고 금산사를 탈출하여 고려에 귀부한 다. 이에, 앉아서 넝쿨째 굴러온 호박을 딴 형편이 된 왕건으로서는 기뻐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그를 최고의 예우인 상부( 尙 父 )로 맞는다.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유적으로는 지묘동에 있는 표충단과 평광동 에 있는 신숭겸 유허비각을 들 수 있고 왕건에 얽힌 이 일대의 지명( 地 名 ), 동명( 洞 名 )은 사실( 史 實 )과 상상의 합작으로 볼 수 있으며 사실여부 를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전설 또한 적지 않게 전해온다. 마침내 고려는 총 8만 7천 5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선산 일리천( 一 利 川 )을 사이에 두고 후백제의 신검과 대진을 벌이자 후백제의 군대는 고려군의 위세에 질려 좌장군 효봉( 孝 奉 )과 덕순 등이 항복하고, 이미 전 의를 상실한 후백제군 3천 2백 명이 생포되고 5천 7백여 명이 희생되는 참패를 당했다. 결국 신검도 황산군(논산) 마성(연산읍)에 진주한 왕건 진영에 항복하니 후백제는 건국 36년 만에 막을 내린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공산싸움은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서울 경주를 침범해 왕을 죽 이고 왕비를 겁간한 후 많은 재물을 뺏아 회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신라를 도우기 위해 출전한 왕건의 군사가 지묘동 일대에서 맞닥뜨리면 서 일어났다. 견훤이 신라를 기습한 것은 삼국이 정립해 있는데 신라가 북쪽의 왕 건과 친밀하게 지내기 때문에 두 나라가 더 가까운 사이가 되면 자기에 게 불리하겠다고 생각, 경애왕이 비빈 시한들과 포석정에서 놀이에 빠져 있을 때 급습한 것이다. 왕건( 王 建 )과 동구에 얽힌 이야기 역사상 대구지방을 무대로 벌어졌던 큰 싸움을 든다면 신라 말 왕건 과 견훤이 동구 지묘동 일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공산( 公 山 ) 싸움 을 빼놓을 수 없다. 신라 서울을 도륙낸 후 회군하던 견훤군과 왕건군사가 만난 것이 동 수( 桐 數 ) 오늘의 지묘동이다. 이 때 견훤군은 신라 서울 깊숙이 들어가 그 곳을 여지없이 유린하는 큰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때라 사기가 충천한 반면 왕건군은 먼 길을 056 1장. 동구의 이야기 057

30 급히 온데다 견훤군을 얕보았기 때문에 왕건 군사가 견훤군에 포위 당해 왕건의 생명이 위태롭게 됐다. 이 때 신숭겸( 申 崇 謙 ) 등 왕건의 심복장수가 아무리 애를 써도 포위 망을 뚫을 수 없게 되자 왕건이나마 살리려고 모습이 왕건과 비슷한 신 고 피곤해 숲 속에 숨어 있을 때 나무꾼이 주먹밥을 나눠준 뒤 나무하고 돌아와 보니 사람이 없어졌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왕이더라 그래서 왕을 잃은 곳이란 실왕, 처음 실왕으로 부르던 이곳은 차츰 발음이 어렵 다 해서 지금은 시량 이라 불리고 있다. 숭겸이 왕건의 투구와 갑옷으로 위장하고 일단의 장수들과 함께 한 쪽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는 시늉을 했다. 견훤군이 왕건을 놓치지 않기 위 해 모두 그리로 몰리는 사이에 군졸로 위장한 왕건은 간신히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심숭겸 등 심복은 그 자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심복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왕건은 나중에 신숭겸을 위해 그가 전 사한 장소에 지묘사를 짓고 그의 혼백을 위로토록 했다. 그 후 오랜 세월 왕건이 반야월에서 방향을 바꿔 대명동 안지랑 계곡으로 왔을 때 마 른 목을 추겼다는 장군수, 그가 잠시 숨어 정세를 살폈다는 은적함 등 그 에 얽힌 지명, 산이름, 강이름은 대구 일대에 수없이 많다. 그리고 평광동에 있는 신숭겸 유허비각에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전한다. 이 흐르는 동안 지묘사는 폐사되고 신숭겸이 전사한지 7백 여 년이 지난 뒤 경상도에 살던 그의 후손들이 지묘사 절터에 표충단을 쌓아 오늘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고려 말 나라가 어수선해지자 개국공신을 모셨던 지묘사에 대한 관 심도 줄어져 폐사가 되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정은 지묘사에 있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태조가 주먹밥으로 배고픔을 면했다는 실왕 표충단 외에도 이 일대와 대구 근교에는 왕건에 얽힌 지명이 많이 있 동네 뒷산에 대비사( 大 悲 寺 )와 영각을 짓고 논밭을 내려 돌보게 했다. 으니 왕건군사가 패군했다는 파군터, 왕건이 머물고 갔다는 왕산, 왕건 이 혼자 앉았다는 독좌암, 왕건이 겨우 위험을 벗어나 노한 얼굴을 풀었 다는 해안, 그의 탈출로를 비춰주던 새벽달이 외로웠던 반야월, 이곳에 서야 안심했다고 안심읍, 왕건 견훤 두 군사가 강 양쪽에서 서로 대치해 싸울 때 화살이 강을 이루었다는 살내, 포위망을 벗어난 왕건이 시장하 이후 대비사는 조선 중기까지 내려오며 신숭겸 영정을 봉안했는데 그 때 대구 도호부에 김철득( 金 喆 得 )이란 아전이 있었다. 그는 일개 아전 에 불과했지만 권세를 이용해서 백성들을 수탈, 큰 재물을 모았고 논밭 도 수백 마지기나 갖게 되었다. 김철득은 이제 돈은 엔간히 모았으니 좋 058 1장. 동구의 이야기 059

31 은 묘터를 구해 자손 대에 발복해야겠다고 생각, 명당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서 국풍( 國 風 )을 초빙했다.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후 김철득은 자기 소원대로 조상 산소를 불타버린 대비사 빈 터로 옮겼다. 그러나 비행은 언젠가는 탄로나기 마련, 어느 해 김철득이 자기 논을 그는 국풍을 데리고 명산으로 이름난 팔공산을 샅샅히 뒤졌으나 좋 은 터가 발견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묘터 찾기를 포기하고 내려오던 그들은 대비사에 들렸다. 그런데 승방주위를 둘러보던 국풍은 갑자기 손 뼉을 치면서 지금 대비사가 앉아 있는 절 터가 천하의 명당이라고 말했 다. 그러면서 그는 이 절은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을 모신 절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아쉬워했다. 김철득도 동감이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하니 그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다. 소작하던 농부가 추수 때 곡수를 적게 준다고 소작 주었던 논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당황한 농부는 애걸복걸 사정했으나 철득은 막무 가내였다. 사정사정해도 철득이 들어주지 않자 악이 받친 농부는 돈 서 푼만 있으면 이 억울함을 풀겠다 고 덤벼들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농사 꾼이 천하의 김철득에게 덤벼드는 게 가소로와 돈 서푼을 던져주며 어 디 이 놈 돈 서 푼 여기 있으니 억울한 것 한 번 풀어봐라 고 비웃었다. 돈 서 푼을 챙겨 넣은 농부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 그 돈을 노자 삼아 경상감영으로 갔다. 대대로 재상이 나올 명당자리라는 국풍의 말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 끝에 그는 대비사 주지를 찾아가 절에 불을 질러 버리기만 하면 돈을 듬뿍 줄 터이니 그 돈으로 다른 곳에 가서 편안히 사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유혹했다. 처음에는 주지가 펄쩍 뛰었으나 철득이 주겠다는 돈이 워낙 거금이 고 거푸거푸 꾀이는 바람에 돈을 받곤 그러마고 약속했다. 감영에 도착한 농부는 김철득이 절 터를 조상 묘자리를 쓰기 위해 주 지에게 돈을 주어 절을 불사르게 했다는 내용의 솟장을 관찰사 앞에 올 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때 경상관찰사는 신숭겸의 후예인 신기( 申 耆 )란 사람이었다. 신관찰사는 솟장을 읽고 그것을 낸 농부를 불러 사실 여부를 따진 후 어느 정도 심증이 가자 군사를 보내 현지를 조사케 했다. 현지에 간 군사가 여러 농군들의 말을 들으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날 밤 주지는 절에 불을 질러버리고 멀리 도망가 버렸다. 큰 절이 불 탔으나 대비사는 워낙 외딴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감영에서는 불이 난 관찰사는 김철득을 초달, 자백을 받은 후 목 베 죽이고 그의 일족을 060 1장. 동구의 이야기 061

32 모두 멸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신숭겸 영각은 사라졌는데 그 뒤 대비사 자리에 김철득 선조묘를 파내고 영각유허비를 세워 그것이 오늘까지 전 해오는 것이다. 대구직할시, 대구의 향기, 경북인쇄소, 1982.에서 발췌 영조를 낳게 한 파계사의 스님 현응 현응대사나무 조선 숙종( 肅 宗, 1674 ~1720) 때 파계사의 성전암( 聖 殿 庵 )에서 한 스 님이 불도를 닦고 있었다. 당시에는 국가에서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숭유억불( 崇 儒 抑 佛 ) 정책을 폈기 때문에, 절에서도 창호지 노 끈 미투리 등을 만드는 부역을 하였다. 이러한 부역의 부당함을 호소하 기 위해 파계사에서는 성전암의 그 스님을 한양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한양에 도착한 스님은 좀처럼 왕을 만날 수가 없었다. 스님은 주막집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3년이나 기회를 엿보았으나 끝내 왕을 는 이름을 가진 용피( 龍 披 )라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파 계사에서 올라간 스님이었다. 그리하여 용피 스님은 숙종에게 불려가 이 때까지의 모든 일을 고하였고 왕은 스님의 모든 청을 들어주었다. 그 대 신 왕은 후궁 숙빈( 淑 嬪 ) 최씨가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스님은 한양에 있는 수락산( 水 落 山 ) 내원암에서 300일 동안 불공을 드렸다. 만날 수가 없었다. 이에 스님은 할 수 없이 숭례문( 崇 禮 門 -남대문) 근처 의 주막집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고 파계사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 후 숙종은 숙빈 최씨에게서 아들을 얻었는데 이 왕자가 후에 영조 ( 英 祖, 1724~76)가 되었다. 숙종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 공을 칭찬하고 그런데 그날 밤 숙종은 숭례문 근처에서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기이하게 생각한 왕은 이 꿈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보려고 숭 례문 근처를 살펴보게 하였다. 그랬더니 주막의 한 방에서 용과 관계되 용피 스님에게 현응조사( 玄 應 祖 師 ) 라는 법명을 내려주었다. 그리고 파 계사를 중심으로 사방 40리 안에서 국가에 내는 조세를 파계사에서 거 두어 들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현응조사는 이를 사양하고, 대신 숙종의 062 1장. 동구의 이야기 063

33 조상의 어패( 御 牌 )를 파계사에 모시도록 해 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어패 를 모시도록 하고, 절 입구에 하마비( 下 馬 碑 )를 세우도록 하였다. ( 眞 表 律 師 )와 불골간자( 佛 骨 簡 子 )를 전해 받아서 과증법회를 연다는 말 을 듣고 뜻을 결정하여 찾아갔으나, 이미 날짜가 지났기 때문에 참례를 허락받지 않았다. 이에 땅에 앉아서 신도들을 따라 예배하고 참회했다. 파계사 기영각( 祈 永 閣 )에는 현재 네 임금(성종 숙종 덕종(성종의 생부) 영조)의 어패가 모셔져 있고, 입구에는 하마비가 그대로 남아 있 다. 또 영조가 11세 때 써 보냈다는 자응전( 慈 應 殿 ) 이라는 글씨가 지금 도 성전암 마루 위에 걸려 있다. 그리고 1979년 파계사 원통전 관음보살 상 개금 공사 때에는 파계사가 차지하는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영조의 도 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필일이 지나자 큰 눈이 내렸으나, 심지가 서 있는 사방 열 자 가량은 눈이 내리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그 신기하고 이상함을 보고 당에 들어 오기를 허락했으나 심지는 거짓으로 병을 칭탁하여 들어가지 않고 예배 를 했다. 마침내 그의 팔꿈치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니 이는 마치 진 표율사가 선계산( 仙 溪 山, 변산반도에 있는 산)에서 수도하던 중 피를 흘 리던 일과 같았는데 지장보살이 매일 와서 위문했다. 향토사교육연구회, 새로 쓴 대구역사기행, 영한, 2002.에서 발췌 법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중에 옷깃 사이에 간자 두 개가 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가지고 돌아와서 심공에게 아뢰니, 영심( 永 心 )이 말 하기를 간자( 簡 子 )는 함 속에 들어 있는데 그럴 리가 있는가 하고 조사 동화사 심지 스님의 신통력 삼국유사 심지계조( 心 地 繼 祖 )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중 심지는 신라 제41대 헌덕왕(809~825) 김씨의 아들이다. 나면서 부터 효성과 우애가 있고 천성이 맑고 지혜가 있었다. 해 보니 함은 봉해 둔대로 있는데 열고 보니 간자가 없었다. 심공이 매우 이상히 여겨 다시 간자를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다. 심지가 또 길을 가 는데 간자가 먼저와 같았다. 다시 돌아와서 아뢰니 심공이 말하기를 부 처님의 뜻이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받들어 행하도록 하라. 하고 간자 를 주었다. 심지가 머리에 이고 중악으로 돌아오니 중악의 신이 선자( 仙 15세에 머리를 깎고 스승을 따라 불도에 부지런했다. 중악( 中 岳, 지 금의 팔공산)에 가서 살고 있는데 마침 속리산의 심공( 深 公 )이 진표율사 子 ) 둘을 데리고 산꼭대기에서 심지를 맞아 그를 인도하여 바위 위에 앉 히고는 엎드려 공손히 정계( 正 戒 )를 받았다. 심지가 말했다. 이제 땅을 064 1장. 동구의 이야기 065

34 가려서 불타( 佛 陀 )의 간자를 모시려 하는데 이것은 우리들만이 정할 일 이 못되니 그대들 셋과 함께 높은 곳에 올라가서 던져 점치도록 하자. 이에 신들과 함께 산마루로 올라가서 서쪽을 향하여 간자를 던지니 간자 1544~1610)은 사명당 이야기로 유명하다. 사명당의 이야기는 민중의 입으로 전승되기도 하고, 그것을 소설로 꾸민 <사명당전>, 혹은 임진왜 란을 소재로 한 <임진록>에 다양하게 제시된다. 는 바람에 날아간다. 이때 신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먼저 사명당의 출가와 관련된 설화를 살펴보면, 이 설화는 전주 밀 양 안동 등 여러 지역에 전해지는 것으로 <사명당전>에 집약되어 있다. 경상도 밀양 땅에 임유정( 任 惟 政 )이란 사람이 살았다. 그는 어릴 때 신동 으로 알려질 만큼 뛰어난 점이 많았는데 17세에는 그 고을 이참판의 딸 과 결혼하여 옥동자를 낳았다. 그 후 갑자기 이씨 부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유정은 다시 김씨 부인을 맞아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전처 몸에서 난 아들이 장가 간 첫날밤에 자객에 의해 목이 잘린다. 신부는 자신이 죽 였다는 누명을 벗기 위하여 남장을 하고 집을 떠나 범인 색출에 전념한 노래를 다 부르고, 간자를 숲 속 샘에서 찾았다. 곧 그 자리에 당( 堂 ) 을 짓고 간자를 모셨으니 지금 동화사 첨당( 籤 堂 )이라고 일연( 一 然 )이 기 록하고 있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기이한 능력으로 왜왕을 굴복시킨 사명대사 동화사 조사전( 祖 師 殿 )에 모셔져 있는 사명대사( 四 溟 大 師 )유정( 惟 政, 사명당 영정 066 1장. 동구의 이야기 067

35 다. 이 과정에서 신부는 남편의 계모인 김씨 부인의 사주를 받은 하인이 범인임을 알고 시아버지인 유정에게 알렸다. 이에 유정은 벽장 속에서 항아리 안에 들어 있는 전처 소생 아들의 머리를 찾아내고 후처와 그 아 들을 자신이 살던 집과 함께 태워 버리고 세상살이에 회의를 느낀다. 이 에 유정은 남은 재산을 모두 노복에게 흩어 주고 출가를 단행하였다는 것이다. 오게 하여 말을 식혔다. 사명당은 여기서 나아가 폭우가 쏟아지게 하여 왜국을 물에 잠기게 하고 급기야 왜왕의 항복을 받아 냈다고 한다. 그리 고 매년 사람의 껍질 삼백 장과 불알 서 말씩을 조선에 조공으로 바치게 하였다는 것이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다음으로 임진왜란과 관련된 설화를 보면, 이 설화는 사명대사가 임 진왜란 이후 일본의 사신으로 건너가 활약한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 는데 <임진록>에 집결되어 있으며 구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선조의 명 을 받고 사명대사가 사신의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가니 왜왕은 왜국의 시 를 병풍에 적어 사명대사가 지나가는 길마다 진열해 놓고 자국의 문물 이 번성하다는 것을 자랑하였다. 이에 사명당이 그 시들을 모두 암송하 부인사 동진대사 이야기 명산 명찰치고 고승들의 수도처가 아닌 곳이 있으랴만, 사지( 寺 誌 )를 잃어버린 부인사로서는 이렇다 할 스님이 머물었다는 물증을 확보하기 가 어려운데 기이하게도 범해선사( 梵 海 禪 師. 1820~1896)가 쓴 동사열 전 과 정도전(?~1398)이 지은 삼봉집 에 각각 동진대사( 洞 眞 大 師 )와 주 지 우운( 友 雲 ) 스님의 기록이 있다. 여 모작( 模 作 )이라고 질타하여 왜왕의 기를 꺾었다는 것이다. 또한 왜왕 이 사명대사를 죽이기 위하여 그를 무쇠로 된 방에 감금하고 숯불을 피 워 무쇠 방을 벌겋게 달구게 했다. 이제는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왜 왕이 방문을 열었더니 사명당은 천장에 얼음 빙( 氷 ) 자를 하나 써서 붙 여 두었는데, 수염과 눈썹에는 고드름을 주렁주렁 달고서는 너무 춥다고 불을 더 지펴 줄 것을 요구했다 한다. 이상하게 생각한 왜왕은 다시 무쇠 말을 벌겋게 달구어 놓고 사명당에게 타라고 하자 사명당은 도술로 비가 삼봉집에 관한 기록은 당시 거찰이었던 부인사에 우운을 주지로 임 명한다는 내용이나 우운이 어떤 스님인지는 묘사되어 있지 않은 반면, 동사열전의 동진대사조에는 스님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어 잠시 옮겨 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풍수지리설의 비조( 鼻 祖 )인 도선( 道 詵 )의 수제자가 경보 스 님인데 이 경보 스님의 출가지가 부인사라는 사실이다. 경보( 慶 甫 )는 공 068 1장. 동구의 이야기 069

36 교롭게도 스승인 도선과 같은 전라도 영암 구림( 鳩 林 )에서 경문왕 8년 (868) 그의 어머니가 흰 쥐가 푸른 유리구슬 한 개를 몰고와, 이것은 매우 드문 기이한 보물이며 불가의 최고 보배입니다. 품안에 있으면 부처님 호념( 護 念 )이 따를 것이고 나오면 틀림없이 광채를 발할 것입니다. 라는 이상한 꿈을 꾸고 잉태하여 태어났다. 그가 불도에 입문 하기를 간청하니 마침내 부모들이 울면서 스님되기를 허락하여 이곳 부 국사의 수제자로 일반인들에게는 풍수( 風 水 )로 알려진 비보사탑설의 이 론을 편 선종( 禪 宗 )계의 스님이다. 따라서 필자가 발견한 참으로 신비한 사실은 불맥이 혜철(은해사)- 도선(옥룡사)-경부(부인사)로 이어졌다는 일이다. 이정웅, 팔공산을 아십니까, 그루, 1993.에서 발췌 인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24세 되던 해, 당에 가 불경을 공부하고 후백제 견훤 30년(921) 귀국하여 견훤으로부터, 스님을 만난 것은 비록 늦었지만 제자되는 것이야 왜 꾸물대겠는가 라며 완산주에 있는 남복선원에서 주석해 달라는 청을 받았으나 새도 머물 나무를 가릴 줄 아는데 내 어찌 박이나 오이처럼 한 곳에만 매달려 있어야 한단 말이요? 하면서 박계산 옥룡사( 玉 龍 寺 )로 들어가 고려조 태 북지장사의 지장보살 이야기 동화사나 파계사 등 큰 절에 가리워져 소개도 안 될 만큼 작은 절이 있는데 바로 북지장사이다. 팔공산 남록에서 유일하게 지장보살을 모시 고 있는 지장도량이며, 원래 이름은 그냥 지장사 로 불렀을 것이나 최정 산에 있는 남지장사와 혼동을 막기 위해 북자장서로 불렀을 것이다. 조, 혜종, 정종 세 임금이 스승이 되어 불법을 펴다가 어느 날 목욕재계 한 뒤 사내( 寺 內 ) 대중을 모두 뜰 앞에 모이게 한 후 내 이제 떠날 것이 니 여러분들은 부디 여기 머물며 잘 정진하라 는 유훈을 하고 돌아가니 부모로부터 몸을 보전받은 지 80년 법렵 62년 정종 3년(948)이다. 이 소 식을 전해들은 왕이 친히 조사를 써 주고 시호를 동진( 洞 眞 ), 탑호를 보 운( 寶 雲 )이라 했다는 스님이다. 동진대사의 스승인 선각구사( 先 覺 國 師 ) 도선은 은해사 창건주 혜철 북지장사의 지장보살 070 1장. 동구의 이야기 071

37 백안 삼거리에서 동화사로 접어들면 1.5km 정도에서 안내표석이 보 이고 여기서 2.5km 정도 더 들어가면 고시촌으로 이름난 도장마을이 있 고 이곳을 지나 이르는 곳이 바로 북지장사이다. 확실히 기록은 없으나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신라 1대 소지왕 7년(485)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동화사를 창건하기 8년 전에 이미 이 북지장사를 창건한 것이 된다. 북지장사에는 지장보살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전해온다. 자라 입고 있던 옷마저 벗어주고 자기는 흙구덩이 속에 들어가 향을 사 르며 부디 어머니를 극락으로 천도하소서! 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 순 간 부처님이 소녀의 앞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착하다 성녀여 처녀의 몸으로 옷을 벗어 걸인에게 주고 벗은 몸을 흙구덩이에 감추었으니, 누가 너를 보살이라 하지 않겠느냐 너의 소원은 성취시켜 주리라. 아주 오랜 옛날 꽃다운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 깊은 신앙심 으로 이웃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아버지 역시 부처님 말씀을 잘 따르고 계율을 잘 지켰다. 반면 소녀의 어머니는 달랐다. 방탕한 것은 물론 부처님을 비방까지 가난하고 우매하며 병든 중생들을 먼저 깨우치게 한 후에야 비로소 성불하겠다는 염원을 세운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다. 이정웅, 대구가 자랑스러운 12가지 이유, 북랜드, 2000.에서 발췌 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술에 취한 채 죽어버렸다. 소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는 어렵다는 생각 에 이르렀다. 마침내 물려준 모든 재산을 팔고,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한 제를 올 리기 위해 꽃과 향, 의복과 음식, 탕약을 준비해 절을 찾아 길을 떠났다. 그날따라 소녀가 가는 길에는 많은 걸인들이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었 다. 소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는 옷을, 아픈 사람에게는 약을 주며 위로하고, 그것도 모 북지장사 072 1장. 동구의 이야기 073

38 3 story 땅이름 이야기 독좌암 독좌암의 유래-왕건이 앉은 바위 불로동에서 동화사 방향을 따라 약 1km정도 가면 좌측의 예전 봉무 동 사무소 맞은 편에 큰 돌 하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신라의 원병 요청으로 온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팔공산에서 전투를 하다가 왕건이 패하여 달아 나게 되었다. 그 때 왕건이 포위되어 도피가 불가능하자 왕건의 부하인 신숭겸이 왕건의 갑옷을 입고 대신 포로가 되고 왕건을 도피시켜 왕건이 도망치면서 이끌고 간 몇몇 부하가 이곳에서 왕을 잃어서 실왕동( 失 王 洞 )이라 불리게 되었고, 왕건이 이 바위에 홀로 와서 앉았다 하여 이 바 위를 독좌암( 獨 坐 岩 )이라 일컬어진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지묘동의 유래 고려 태조 10년 9월에 후백제의 견훤이 영천을 습격한 뒤 신라의 수도 경주에 침입하여 포석정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던 경애왕과 비빈 및 종친과 왕실의 외척들을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왕건은 크게 격분 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문하는 한편 기병 5천명을 거느리고 대구의 팔 공산 동수( 桐 藪 )에서 견훤과 커다란 싸움을 벌인다. 이른바 동수대전 ( 桐 藪 大 戰 )이다. 그러자 후백제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어 형세가 몹시 위급하였는데, 당시 신숭겸은 왕건과 외모가 흡사하였으므로 왕건을 부인사 근처로 숨게 한 뒤, 자신은 왕건으로 가장하여 김락과 함께 힘 을 다하여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표충사 앞 의 순절단이 있는 자리다. 견훤의 군사들은 신숭겸이 왕건인 줄 알고 머리를 잘라 창에 꿰어 돌 074 1장. 동구의 이야기 075

39 나팔고개, 왕산, 파군재 유래 지금으로부터 천여 년 전 후백제의 침입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해 있 을 때 신라의 원병 요청으로 고려 태조 왕건은 후백제와의 일전을 벌이 게 되었다. 왕건은 군사를 이끌고 지금의 대구시 북구 서변동을 지나 연 경동, 지묘 3동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서변동 일대를 지날 때 왕건 신숭겸 표충사 전경 이 군사들에게 게을리 하지 말라( 無 怠 )고 당부했다 해서 지금도 이 지방 을 속칭 무태( 無 怠 ) 라고 불려지고 있다. 그리고 연경동 부근에 이르렀 을 때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와 왕건이 감탄한 마을이 아갔다. 그 후 왕건은 본진으로 돌아와 신숭겸의 시신을 찾았으나 머리 라 해서 연경( 硏 經 ) 이라 불려진다고 한다. 가 없었으므로 찾아내지 못하다가 왼쪽 발 아래에 북두칠성 같은 점이 있다는 유검필의 말에 의거하여 신숭겸을 찾아냈다. 왕건은 몹시 애통하 여 목공에게 생전의 모습과 같이 나무로 얼굴을 다듬게 하고 후하게 장 사를 지내주었다. 그리고 왕건은 신숭겸의 동생인 능길과 아들 보장에게 원윤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신숭겸이 전사했던 장소에 지묘사( 智 妙 寺 ) 를, 그리고 그 주변에 미리사( 美 理 寺 )라는 절을 세워 그의 명목을 빌었 진군을 계속하면서 지금의 지묘 3동에서 지묘 1등으로 가는 고개에 서 적진을 향해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 이로 인해 이 고개를 나팔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일설에 의하면 견훤의 군사가 왕건의 군사를 둘 러싸고 쳐들어가며 나팔을 불었다 해서 나팔고개라고도 하고 왕건의 군 사를 깨뜨린 견훤의 군사가 이 고개를 넘으며 나팔을 불었다고도 한다.) 다. 이것은 모두 신숭겸의 공훈에 특별히 보답하고자 함이었다. 현재의 지묘동은 바로 지묘사라는 절 이름에서 연유한 것이다. 정우락, 문화공간 팔공산과 대구, 글누림출판사, 2009.에서 발췌 이 나팔 고개를 넘어간 고려군은 드디어 후백제 견훤 군사와 일전을 치 르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고려군은 견훤의 군사에게 무참히 짓밟혀 풍 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때 고려 충신 신숭겸이 왕건을 살리기 위해 곤룡포를 입고 왕건의 모습과 비슷하게 꾸며 적군의 눈을 속였다. 이 틈 076 1장. 동구의 이야기 077

40 을 타서 왕건은 지묘 1동 북쪽에 있는 산으로 무사히 피신해 화를 면했 다. 이런 연유로, 이 산이 왕건을 살렸다는 뜻에서 왕산 이라 부르게 된 것이라 한다. 옻골의 유래 동구 방촌시장 맞은편으로 들어가는 둔산동에는 경주 최씨 성을 지 닌 20여 집이 모여 사는 옻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남쪽을 제 외한 동 서 북쪽의 모든 산에 옻나무가 많아 옻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왕을 보낸 고려군은 신숭겸을 중심으로 끝까지 항거를 계속했다. 지 묘 2동에서 파계사로 넘어가는 뒷산을 뚫고 위장전술을 폈으나 사기충 천한 견훤 군사에게는 역부족이었으며 많은 군사가 쓰러지고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다. 고려군은 간신힌 남은 몇몇의 군사를 수습하여 오른쪽 동화사 고갯길로 활로를 개척했으나 숨어 있던 적의 군사에게 비참한 희 생을 겪고 지묘 앞 냇물을 간신히 건넜다. 왕산을 배후에 두고 최후의 싸 움을 벌였으나 중과부적( 衆 寡 不 敵 )이라 진퇴유곡( 進 退 維 谷 )의 위기에 빠 지게 되었다. 이 때 견훤의 군사들은 발바닥에 사마귀가 있는 왕건을 잡 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기에 신숭겸은 팔공산 자락에 숨어 있을 왕건이 고 한다. 옻골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옛날 동네 가운데에 정자가 있었는데, 지나가던 노인이 정자에 올라 주위를 살핀 후 동네 사람들에게 이 마을의 정자에서 금호강 물이 보이 면 지기( 地 氣 )가 기괴하여 마을이 망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 후 금호 강 물이 보이자 주위의 산에 울창했던 나무들이 말라죽고 차차 다른 곳 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노인의 말 을 기억하여 동네 주변에 옻나무를 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향토사교육연구회, 새로 쓴 대구역사기행, 영한, 2002.에서 발췌 잡힐까 두려워 자기 발바닥에 상처를 내어 먹물로 검은 점을 만들었다. 장군과 더불어 마지막 남은 고려 군사는 견훤의 칼날 아래 쓰러져 팔공 산 누리를 붉게 물들여 그 당시의 처참한 광경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 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신숭겸의 군사가 제1차로 파해서 흩어진 곳을 아래 파군재라 하고 제2차로 파한 것을 윗파군재라 불려지고 있어 지금 도 이 곳을 지나가는 이로 하여금 발길을 멈추게 한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옻골 보본당 078 1장. 동구의 이야기 079

41 내동의 유래 내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공산1동이다. 지명은 미대동의 속 골짜 기에 있다는 뜻이다. 도덕골 망칫골 서작골 수무상골 시니밋골 어실 여싯골 오릿골 등의 골짜기와 마당재 열재 등의 고개, 매봉 재 삼마산 영기산 응봉 등의 야산이 있다. 삼마산은 삼밭이 많았다 고 해서, 여싯골은 여우가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곡동 새미덕봉, 효자천의 유래 새미덕봉 효자천은 우물이면서 내곡동의 자연부락이다. 내곡동 산록 에 초례봉 가는 능선으로 여대익의 선고( 先 考 ) 산소가 있는 곳으로 이 곳 에 조그마한 우물이 있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던 여씨 부친께서 돌아가 자 무덤 근처에 움막을 짓고 잠시도 떠나지 않고 슬피 울며 보살폈다고 한다. 여씨가 이와 같이 시묘살이를 하던 때 날씨가 몹시 가물어 갈증을 해소할 수 없을 만큼 물을 구하기 힘들어 곤경에 당했으나 여씨의 효성 지금으로부터 약 450년 전 순흥안씨( 順 興 安 氏 ) 씨족이 정착할 곳을 찾아다니다가 이 곳(지금의 내동)에 이르러 보니 북쪽 뒷산에 올라가 보 니 좌우는 산으로 가로 막혀 있고 안에 있는 자리가 너무나 아늑하고 따 뜻하게 보여 정착을 하고 내동이라 이름을 지어 불렀다고 한다. 그 후 가 뭄과 장마 때에 먹을 물이 없어 어려움을 당해 걱정하던 중 맑은 물이 나 오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이곳은 청석돌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고 가 에 하늘도 감복했음인지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 바위 틈에서 갑자기 샘 물이 솟아 나와 갈증을 풀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칠 수 있었다고 전해 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은 샘의 덕을 본 봉우이란 뜻에서 새미 덕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뭄이나 장마 때도 물의 양이 줄거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항시 똑같 은 양이며 아주 맑았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이 맑고 신기하여 물의 이름을 옥정( 玉 井 )이라 지어 옥정수라 하고 마을을 옥정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마을의 이름을 내동이라 부르고 아직까 지 순흥 안씨가 많이 살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초례산( 醋 禮 山 )의 유래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 왕과 싸우려고 오동나무 숲에 이르러 부하들과 함께 초례산에 올라가 필승을 기원하는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한다. 이 산을 초례봉이라고 한 것은 약 1500년 전 어씨라는 초부( 樵 夫 )가 이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선녀와 만나 가례( 嘉 禮 )를 이루고 이 봉우리에서 초례를 치렀다고 해서 초례봉이란 이름이 080 1장. 동구의 이야기 081

42 대림동 식송계보( 植 松 契 洑 )의 유래 식송계보는 하천이면서 대림동의 자연부락이다. 그리고 대림동 일대 의 하천이다. 현대 동구 사복동 변노우 씨의 6대 조가 이 지역이 금호강 이 있음에도 매년 심한 가뭄을 겪어 생활이 곤란하여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밤 꿈에 큰 용이 현몽하기를 하양 물띠미 깊은 소에 내가 살고 있는 초례봉 데 이 소( 沼 ) 위에 자갈과 모래가 쌓여 장차 내가 거주할 곳이 없어지니 당신이 이 소( 沼 ) 아래쪽에 보( 洑 )를 설치하여 내가 용신할 터를 마련해 주시면 어떤가? 하였다고 한다. 변 노인이 이 곳이 가뭄이 자주 들고 봇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이 봉우리에 인골( 人 骨 )을 암매장하면 그 후손이 거부가 되는 동시에 이 고을은 대단한 한발( 旱 魃 )을 만나게 된다고 해서 지금도 날씨가 가물면 이 산 위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냄과 동시에 암매장 흔적을 확인한 다고 한다. 물 시설이 어려운데 어떻게 하면 봇물을 끌어 올릴 수 있는가? 물어보자 내일 아침 눈 덯인 들판 위를 내가 꼬리를 끌며 지나간 흔적을 찾아 그 흔적대로 봇도랑을 개설하면 이 넓은 들이 가뭄에서 벗어날 것이다. 라 고 말한 뒤 사라졌다 한다. 과연 아침에 흰 눈이 가득 덮인 넓은 들(모시덤)로부터 용이 꼬리를 끌면서 지나간 자국이 물띠미까지 뚜렷하였다. 변노인은 곧 사람을 동원 초례봉 북쪽에 두루봉이 있는데 어떻게 하여 두루봉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봉우리가 두 개라고 해서 둘이봉 혹은 초례봉을 둘러 있다고 해서 두루봉이라고 부르는 것이라 짐작된다. 김종대, 우리고장 대구(지명유래), 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에서 발췌 하여 봇도랑이 설치될 표적으로 하고 보를 개설하여 이 곳 옥야 십리들 을 물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소나무를 심어 수해지에 표적하게 한 후 식송보의 권리를 변씨 문중에서 관리하다가 한일합방 무렵 보상금을 받고 식송계보로 발전하였다고 하는데 몽리면적인 약 20만 평에 달하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082 1장. 동구의 이야기 083

43 덕곡동 상리( 上 里 )의 유래 상리는 덕곡동의 자연부락이다. 팔공산 높은 기슭에 위치해 있다고 상리라 불려진듯하나 일설에 의하면 공산면 서촌에서 제일 먼저 집터를 자리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마을 위에 큰 암석이 하나 있는데, 천재지변 때에 마을이 위험했을 때 모든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어 이 바위를 땅 밑으로 숨겼던 일이 있다. 그래서 이 바위를 숨굼바위 라 하고 지금도 윗부분이 남아 있다. 상리는 가구수가 22호 정도로 달성 서 씨가 주성이다. 데 그거 드니까 학이 날아 댕긴다고 학구마을이라 캤다니께. 학이 날아 다녀서 학구마을이라. 그래가 학구 마을 딱 됀기라. 기생바위는 그 위에 서 놀다가 거 떨어져서 죽은 모양이라. 그래서 인자 옛날에 인자 머라카 노. 무당 카기도 하고 기생.. 기생이라 카고.. 그게 아니라~ 기생들이 바 위에서 춤추고 놀다가 술먹고 놀다가 널 쪄서 죽어가지고 그 이름이 기 생 바우! 저 위에 있다. 뭐... 제보자 : 신원호, 남, 75세, 채록일자 : 2012년 6월 1일, 대구시 동구 도학동 학부마을에서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모단의 유래 행정 구역상 지금의 대구시 동구 둔산 4구 지역은 속칭 빼골 또는 모 도동의 유래 도동은 도리동( 道 理 洞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효자 서시립( 徐 時 立 ) 이 어머니에게 효도하자 나라에서 그의 효성을 기려 전귀당( 全 歸 堂 )이란 단 이라 한다. 빼골이란 속명( 俗 名 )은 원래의 지역명인 빼어날 수( 秀 ), 골 동( 洞 ), 즉 수동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모단이라는 속명에는 특이한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호와 함께 이 마을 이름을 도리동이라 하사하였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옛날부터 전해오기를, 터가 좋은 곳은 왕도가 아니면 역적이 난다고 한다. 지금의 모단 지역은 예전에 그 터는 좋았으나 역적이 나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지역을 역적이 난 곳이라 하여 주위에 둑을 쌓아 못으로 학골 학부마을 도학동의 유래 학이 날고... 학구 마을 카면서 캤제.. 저저저저 내려가면 돌이 있는 만들어 버렸다. 그러다 오랜 세월 뒤에 둑은 자연 붕괴되었고 물이 빠진 후 다시 그 084 1장. 동구의 이야기 085

44 지역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 속명인 모단은 그래서 지어졌다고 한다. 못 안에 산다, 곧 못안 모단 이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 사람들은 모단이라는 속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때에 쌓 았던 못 둑은 아직도 그 흔적을 여러 곳에 남기고 있다.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갈미 묘실 숲골 아래갈미재 욱갈미 등의 자연마을과 십일골 완정 등의 골짜기가 있다. 묘실마을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수충( 鄭 守 忠 )의 묘가 있다. 마을 형성이 배 모양으로 생겼다고 하여 처음에는 배안 으로 불리어졌는데 점차 마을 호수가 많아져 100호 이상이 거주하게 되 면서 100호 모두가 편안함을 기원하기 위해서 백안 이라고 명명하게 되 었으며, 지금도 배를 정박하는 형상이 남아 있다고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방촌 용호동( 龍 湖 洞 ) 유래 용호동은 방촌동의 자연부락이다. 금호강 기슭 현 영남제일관 앞 강 변에 용수암( 龍 水 岩 )이란 바위가 현존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용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용수암을 정면으로 바라다보고 형성된 촌락 이라는 뜻에서 용호동이라 불려진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백안마을의 지명유래 천지가 개벽을 하여 모든 산과 마을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을 때 한 마을만이 물에 잠기지 않았다. 배가 한 척 떠 있을 정도의 지역만 남았기 때문에 배안이란 말이 한자로 쓰여져 백안( 百 安 )이 되었다고 하고, 마을 사람 백여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여 백안( 百 安 ) 이라고 불려지 고 있다고도 한다. 백안동( 百 安 洞 ) 유래 백안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공산동이다. 지명은 백원사우가 와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붙인 것이라고도 하고, 마을 지세가 배와 같아서 처음에는 배안 이라고 했는데 마을이 커지자 모두 편안하라는 뜻에서 백안 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불로동( 不 老 洞 )의 유래 불로동은 후삼국시대에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부대가 신라를 086 1장. 동구의 이야기 087

45 침공 후 승전하여 퇴각하였는데 이 소식을 듣고 5,000명의 원군을 이끌 고 내려오다 현 동화사와 파계사 삼거리에서 접전을 하여 왕건 부대가 참패하여 퇴각하게 되었다. 왕건이 후퇴하다 현재의 불로동에 오니 노인 과 부녀자는 모두 피난 가고 어린아이 등 젊은 사람만 살고 있는 동네라 합쳐져서 평탄한 분지가 되었는데 새로 만들어진 좋은 땅, 복이 있는 땅 이라 하여 복득듬( 福 得 ) 또는 복두듬 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하여 불로동이라 명명된 이름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도덕( 道 德 )마을 수구막의 유래 도덕마을은 달성군 공산면 연경동이었다가, 대구시로 편입되어 지금 은 행정구역상 대구시 동구 연경동이다. 태봉에서 북서쪽으로 1km쯤의 상매 용골( 龍 谷 ) 복득듬( 福 得 ) 복두듬의 유래 용골은 상매동의 자연부락이다. 상매동( 上 梅 洞 ) 뒤 능천산( 綾 泉 山 )에 인접한 이 곳은 높이 80m 정도의 수직 절벽을 이루고 약 200m의 계곡 으로 그 모양이 마치 용( 龍 )의 모양을 하고 있다하여 용골( 龍 谷 ) 이라 불 위치에 있으며 동래 정씨 임하공파(15대째 살고 있음. 종택에는 종손이 현재 살고 있음)를 중심으로 20여 호로 구성되어 있다. 도덕( 道 德 )이라 는 마을 이름은 예부터 도덕을 숭상한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렸다고 한다. 조선조 선조의 둘째 아들인 광해군이 태어나자 명산과 명당을 찾다 일설( 一 說 )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우리나라 에 온 명( 明 )나라 장수 이여송( 李 如 松 )이 산세( 山 勢 )가 너무나 빼어나고 아름다워 큰 인물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산의 정기( 精 氣 )를 끊으려고 혈 가 연경동 뒷산에 그 태( 胎 )를 안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봉우리 밑의 마을을 태봉이라 하였는데, 왕자의 태실( 胎 室 )이니만큼 석물이 웅장하고 화려했으며 석상이 아주 훌륭했다고 한다. ( 血 )을 잘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3일 간 선혈이 낭자하므로 짐승들도 이 산을 향하여 울부 짖었다고 하며 그 후 곧 절개된 산 일부가 상매동( 上 梅 洞 ) 능선과 다시 그런데 연경동 뒷산에 태실이 생기고 난 뒤부터 그 윗마을 도덕에서 는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을의 과년한 처녀나 시집 온 새색시 088 1장. 동구의 이야기 089

46 들이 봄만 되면 태봉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는 끝내 미쳐 마을에서 도망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는 보통 둘레 2~3m, 길이는 7~10m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두 그루가 남아 있는데 한 그루는 말라죽고, 한 그루만 남아 삼사백 년 마을 의 비밀을 안고 태봉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일이 해를 거듭하여 계속되자 마을에서는 큰 고민거리가 되었 다. 여자들이 바람이 나서 마을을 떠난다는 것은 마을 체면과도 관련이 김광순, 한국구비문학, 국학자료원, 2001.에서 발췌 되고 또 마을 자체 내에서도 곤란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무당을 불러 굿을 해 보니 태봉의 석상한테 반해서 마을 여자들이 미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왕실의 석물( 石 物 ) 을 없앨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이라 궁리 끝에 마을 앞에 소나무를 심기로 했다. 이곳은 도덕마을에서 보면 태봉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위치이다. 용계동( 龍 溪 洞 )의 유래 용계동의 금계리와 구용리는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 후에 창리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한데 구용리는 9정승들이 살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금계리는 개천에서 금이 났다는 전설에 의해 금계라 하였다 하며 대정 8 년 때 행정구역 정비 당시 구용리와 금계리를 합쳐 용( 龍 ) 자와 계( 溪 ) 그리고 나서는 마을 전체가 소나무를 가꾸기 시작했고, 그 숲의 이름 을 수구( 樹 口 )막 또는 수구맥 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로는 여자가 성적( 性 的 )으로 미쳐 마을을 떠나는 일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그 숲에서 풍악을 울리고 한 해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원하고 또 고마움을 전 자를 따서 용계동으로 칭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구용리는 리 성립 시 진주( 晋 州 ) 강씨( 姜 氏 )와 김해( 金 海 ) 김씨 2개 성( 姓 )이 창설하였다는 설이 유력한데 현재는 달성( 達 成 ) 배씨( 裵 氏 )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했다고 한다. 돈지봉의 유래 이러한 풍습은 1960년대 후반까지 있어 왔으며 그때까지 울창했던 소나무 숲이 솔잎혹파리와 태풍으로 한꺼번에 죽어 버렸다고 한다. 나 돈지봉( 豚 知 峰 )은 용계 1동에 위치한 산세가 비교적 완만한 산으로 서 대구 영천 간 국도에서 300m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돈지봉에 090 1장. 동구의 이야기 091

47 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설화가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돈지봉의 원래 이름은 조리봉 으로서 생성 당시에는 산세도 기묘하 고 수려하였으나 얼마 후 천지개벽이 일어나 산의 모양이 바뀌어 조그맣 게 남은 산봉우리가 쌀을 이는 조리만큼 남게 되어 조리봉 이라고 불려 졌다고 한다. 진인동 인산마을의 유래 우리 동네는 인산인데 어질 인자 뫼 산자 논어 책에 보면 인자 뫼산 어진사람은 인자, 음악 하는 그자가 좋을 로자로 풀이가 되거든. 음악 하 는 악자가 좋을 로 한문 한자를 가지고 두 가지 세 가지로 부른다고.. 뜻 이.. 그래서 인자요산 지사요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카는 게 적혀있어 그래가 우리 마을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 가지고 인산. 여는 아 또 하나의 전설로,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우리나라에 와서 산세를 보 니 이곳에 큰 인물이 날 것 같아 남북의 줄기를 모두 잘라 산의 맥을 끊 었고, 일본 침략기에 일본 경찰은 산봉우리에 쇠말뚝을 박아 산의 정기 를 끊었기 때문에 그 후로부터 부자 마을이었던 이곳은 가난한 마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김종대, 우리고장 大 邱 ( 地 名 由 來 ), 대구시교육위원회, 영문사, 1988.에서 발췌 주 참 인심도 좋고 범죄 없는 마을이다. 우리는 이제 진인동이거든. 참진 자 어질 인자. 그래서 진정카는 데 가 참 진자 하고 정자 정자를 진자를 따서 우리는 인산이제 인자를 따고 그래가 진인동 그래서 저 쪼는 진인1동 여기는 우리는 진인2동 그래서 진인동이 그래서 생겼어요. 진정마을... 글세 그거는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겠어.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용수동 태정( 胎 亭 )의 유래 태정은 용수동의 자연부락이다. 어느 태자가 태( 胎 )를 이곳에 묻었 는데 그 봉에 정자나무( 亭 子 木 )가 돋았다고 하여 태정 이라 칭하게 되었 다. 마을 앞에 큰 정자나무가 있어 태정( 泰 亭 )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김 해 김씨가 주성이다. 대구지명유래총람 - 자연부락을 중심으로, 대구광역시 택민국학연구원, 2009.에서 발췌 인산마을의 유래 2 그래여 도림사 절에 올라가다보면 현재 도림사에 나무 있는데 거 한 대 보면 대나무숲이 있어 거 바위가 하나 있는데 거기보면 인산이라 고 래 딱 돌로 딱 그런데 거는 주황색 칠을 딱 해 놓고 거 올라가면 못봐여 안비 자테가면 인산이다. 그게 장. 동구의 이야기 093

48 제보자 : 송재구, 남, 채록일자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은 골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 동래 정씨 12대조( 代 祖 )의 정 려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위치조차도 모르고 있으며 유달리 선조 거사듬이의 유래 5개 자연부락이 이루고 있어요. 저 밑에 내려가면 담동 또 저 밑에 내려가면 거사동 여 우리는 새터, 새터 새로운 터라 이 말이다. 저 위에 가면 큰 마을 저 골에가면 삼방 근데 저 우에 옛날에는 아카 캤듯이 신라 를 봉양하고 화목했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이후 효도하고 화목하라는 것을 강조함으로 인해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소목골을 한자식으로 효목 ( 孝 睦 )동 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효목동은 소목골의 다른 명 칭이다. 시대에 저 골짜기에 고 밑에 내려가면 큰마을 그래 사는데 이임년 수해 에 다 떠내려갔어요. 그면 이임년 수해가 지금부터 몇 년 됐나 하면 사십 년 육십년 넘었어요. 그래가 다 떠내리 가가 저 건너 전부 하천부지야. 하천부지 경록지가 아니란 말이야. 거리란 말이야. 그래서 인자..요 다음 인자.. 새로운 터를 다졌다 그래서 새터라. 수해가 가고난 후에 여에 인자 새터를 다져가지고 마을이 생긴 거야. 그렇지 이백 한 이 삼년 된거지. 제보자 : 정임수, 남, 채록일자 : , 대구시 동구 진인동 인산마을 이 동에는 갑오경장 이후 487번지에 당시 유일한 기와집을 마련하여 서당을 만들어 자제 훈육에 힘썼고, 그 이후 경로당, 고등공민학교로 이 용되었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다. 또한 지금 효목 교회 자리에는 당목이 있었고 이 당목을 기점으로 하여서 적은 골, 큰 골 로 나뉘었다고 한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만촌동이나 10여 년 전에는 효 목동이었던 효목못 주위에는 판교지라는 숲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못은 지금 메워져 효목공원으로 쓰이고 있으나 주위의 느티나무는 아직까지 남아 효목동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아울러 지금은 신천동인 동부정류 효목동의 유래 현재 행정구역상 효목동은 수성구 만촌동과 동구 신천동과 연접되 어 있는데 효목동이라 불리기 이전에는 소목골이라 했다고 한다. 임진왜 란을 전후하여 동래 정씨가 난을 피해 당시 수성현 수북면 소목골에 입 향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천동을 한골이라 한데 비해 효목동을 적 장 부근을 그 때는 야시골이라 했는데 유독 언덕이 높아서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또한 지금은 만촌동으로 편입된 지역으로 군의학교 제일육 군병원 뒤쪽 산은 인재가 많이 날 형상이라서 중국 명나라 이여송 장군 이 산 줄기를 끊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당시 효목동으로 들어오려면 이 산을 넘었어야 했는데, 그 산 주위에 돌무덤이 있어서 쉬어 가곤 했다 094 1장. 동구의 이야기 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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