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턱걸이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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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랑이 턱걸이 바위 임공이산

2 소개글 반성문 거울 앞에 마주앉은 중늙은이가 힐책한다 허송해버린 시간들을 어찌 할거나 반성하라 한발자국도 전진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일삼는 자신이 부끄럽지 않느냐 고인물은 썩나니 발전은 커녕 현상유지에도 급급한 못난위인이여 한심하다 한심하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이처럼 기막힌 이름을 붙이신 옛 선조들의 해학에 감탄하며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덕유산 남쪽자락 청정한산골 거창군 북상면! 그곳엔 골마다 언덕마다 전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답니다. 타향살이 어언 사십여년... 블로그와 초등학교 동문회 글방에 반성문처럼 써 오던 글들을 모아 보니 못나고 부끄러운 자화상이 되었습니다.

3 목차 1 40년 전에 무슨일이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9 3 깨어진 기름병 13 4 겨울밤 15 5 막걸리 시대 18 6 임공이산에 대하여 무시적 27 8 호랑이 턱걸이 바위 29 9 향기 어머니의 팔 그리고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이구아나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서노인 입춘첩 거꾸로 읽는 한국현대사 시인 임백종목사님 패트리어트 (신도안에서 도 닦던 이야기) 초보 할아버지 쑥과 어머니 아들과 목욕하는 봄날 돋보기 연애편지 96

4 26 가을밤에 알밤과 추억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임공이산의 변명 첫 출근하는 딸을 보면서 손 이청준선생을 추모함 영화 - 아바타 택호를 만들어 사용하자 숲속을 거닐며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나그네 '반장거울' 베던 날 중산리- 닥나무와 문종이 중산리- 안도랑 중산리-소나무와 별 홀통골 동막골을 찾아서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으악새 어떤 죽음 메리 크리스마스 교육감님 나빠요 포크송. 세시봉 206

5 51 가장의 권위 새들과 함께 아오라지 덕유산 북상골 절교 선언서 조성민의 친권회복을 반대합니다 노벨과 김대중과 주성영 디오게네스와 남명선생 245

6 40년 전에 무슨일이 :11 40년 전에 무슨 일이... 임공이산 산촌의 길고 긴 겨울, 농한기라 하지만 땔감을 위해 나무를 하는 계절이다. 덩치가 커지면서 전용지게를 하나 부여 받게 되면 어른이 되었다는 뿌듯함도 생기고, 또래들과 산을 오르는 일은 힘든 노동이라기보다는 즐 거운 일과요 생활이라는 생각이었다. 폭설이 내리거나 명절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오전 오후 두 짐씩의 나무를 해 날랐다. 조숙해서 덩치가 컸던 덕분에 힘만 믿고 통나무를 잘라다가 마당 한쪽에 수북이 쌓아놓고서 아침마다 운동 삼아 도끼로 패서 장작을 만드는 일도 재미있었다. 정지간 입구에는 비를 막기 위해 처마를 길게 달아낸 나뭇간이 있었다. 나뭇간에는 불쏘시개로 사용할 마른 솔잎인 갈비를 쌓아놓곤 했다. 다른 나무하기와 달리 갈쿠리로 갈비를 긁어 나뭇짐을 꾸리는 일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 했다. 생솔가지를 바닥에 깔고 차곡차곡 결을 만들며 긁어모은 갈비짐을 꾸리는 일이 서툴러서 친구의 도움 없이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60년대 말쯤부터인가. 조용하던 산골마을에 새로운 나무꾼들이 등장하였다. 리어카가 보급되고 새로운 수송수단으로 보편화되면서 아랫면인 위천면과 마리면 사람들이 줄지어 나무를 하러 왔던 것이다. '항고'라는 반합으로 점심을 해결하면서 이른 아침에 올라와서 해떨어질 무렵까지 리어카 가득 나무를 해서 싣고 가는 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들의 나무하기는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것이다. 싣고 가는 나무의 종류는 죽은 나뭇가지나 캐어낸 고자배기, 나무껍질 부스러기, 심지어 활엽수의 낙엽과 말라비틀어진 풀포기까지 긁어가면 서 우리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니 특별히 충돌이나 마찰은 없었다. 사고는 동네 형들이 가끔씩 치고 했다. 역대 중산리의 사고뭉치 행적은 인근 동네에 악명이 높았던 모양이다. 윗동리 신기촌 뒷산. 청솔가지를 솎아서 나뭇짐으로 만들어 살아있는 소나무를 기둥삼아 차곡차곡 쌓아 일년동안 잠재우며 잘 말려둔 나무삐 까리! 헐지도 않은 무더기에서 10여명이 한 짐씩 지고 와 버렸다가, 나무주인이 동네를 찾아와서 소동이 벌어지는 일 정도는 약과였다. 40년 전에 무슨일이... 6

7 어느 해 정월의 추운 날. 물이 얼어서 동네 물레방앗간이 쉬었기에 소정리 방앗간까지 나락을 찧으러 갔던 형님이 한분 있었다. 방앗간 집 돼지우리에는 100여근 훨씬 넘어갈 토실한 돼지가 있었으니... 풍부한 왕겨를 먹고 자란 돼지였으니 얼마나 살이 올랐겠는가. 그날 밤. 달빛을 이용하여 낮에 찜해둔 돼지를 업어오는데 까지는 성공한 동네형님들이었으나, 눈길에 찍힌 발자국과 핏자국을 따라 뒷동산 은밀한 바위틈에 숨겨둔 노획물은 금세 탄로가 나고 말았다. 제대로 고기 맛도 보지 못하고, 가담을 했던 대여섯 명 동네형님들의 이후 고초야 더 말해 무엇 하리오. 지서 순경들까지 출동했던 산골마을 의 일대 소동이었다. 진즉에 할아버지가 다 되셨을 그 때 그 형님들이 그립다. 얌전하고 착하기로 소문날 만큼 난 말썽한번 피운 적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시냇가 버들강아지에 통통히 물이 오르고 불어오는 바람에 봄 냄새가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는 늦겨울의 어느 날 오후, 앙무들 살구나무 바 탕. 약을 놓아서 잡은 '팬치'란 새 몇 마리를 모닥불에 구워먹고 있었다. 빨간 찔레열매 속 노란 씨앗을 꺼낸 다음 '싸이나'라 불리는 독약, 하얀 청산가리를 집어넣고 가시덤불 밑에 교묘히 위장해 두면 가끔은 꿩이 나 토끼를 잡기도 했으며 작은 새 팬치는 한꺼번에 10여 마리씩 잡기도 했다. 사실 그런 방면에 통 소질이 없었기에 내손으로는 참새 한 마리도 잡아 본적이 없다. 그 쪽에 재주가 있는 친구는 읍내 철공소에서 쇠붙이의 담금질에 사용한다는 청산가리의 매입루트는 물론이요, 새들이 먹이를 찾아오는 길목 에 약을 넣은 열매씨앗이나 콩을 어떻게 설치를 해야 의심 많은 새를 잡을 수 있음을 꽤 차고 있었다. 꿩이나 토끼를 잡은 날에는 밤에 사랑방에 모여서 막걸리파티를 벌이고 했다. 작은 새 몇 마리를 뼈만 남기고 다 발라먹고 난 다음, 파랑새 담배 한가치를 불붙여서 돌아가면서 한 모금씩 빨았다. 독한 담배에 몽롱해지 는 기분이다. 걸터앉은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유행가를 불렀다. 태어나서 여태껏 고향을 벗어나 본 적 한번 없으면서 '타향살이'를 불렀고 '고향무정'을 노래했다. 난생 기차를 한 번도 타보지 않았지만 코스 모스 피어있는 기차역에 마중 나온 순이를 찾았다. 산 아래 신작로 갯들모리, 들머리쪽 가파른 오르막을 향해 악을 쓰는 고물버스의 엔진소리가 들릴 때 까지 노래를 불렀다. 윗동네 소정리에서 밤을 지새울 막차다. 짧은 겨울해가 서쪽 음지담 뒷산에 한 뼘 밖에 남지 않았다. 그 제서야 모두들 일어섰다. 사위어가는 모닥불을 향하여 바지춤을 내리고 일제히 시원한 배출을 했다. 역한 암모니아 가스가 확 풍겨 나온 다. 바람이 불면서 눈발까지 시작되고 있다. 각자 지게를 지고 한짐꺼리 나무를 찾아서 골짜기로 언덕으로 흩어졌다. "바보 같은 녀석들, 멀리 갈 것 뭐 있냐. 여기 한 짐 꺼리 좋은 나무가 있는 것을..." 모닥불 자리 주변 바로 곁에, 잘 생긴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 한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지 않은가! 허벅지만한 굵기의 몸통을 자르고 큰 가지들을 재단해서 지게에 실으니 딱 알맞은 한 짐이 되었다. 프로 나무꾼은 나무 한 짐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장소를 옮기지 않는 법, 지게 작대기는 현지에서 만들어 쓰고, 통나무 둥구리 나뭇짐엔 새 끼줄도 사용하지 않는다. 10분도 채 안 걸려서 간단히 한 짐을 했으니 역시 난 경지에 오른 나무꾼이로다. 한 3일쯤 지났을까, 점심을 먹고 동구 밖 갯들 비석거리에 모두 모였다. 40년 전에 무슨일이... 7

8 어느 골짜기로 나무를 하러 갈 것인가를 의논하면서, 누군가 새로 산 개스라이터를 자랑하고 있었다. 스위치에 가볍게 손만 대면 파란 불꽃 이 붙는 최신식 전자 개스라이터! 개스라이터로 불을 붙인 담배는 맛이 더 좋은 듯하다. 그때 동네에서 제일 무섭기로 소문난 호랑이 형님께서 잔뜩 화가 나서 나타나셨다. 우리들은 얼른 담배를 숨기고... "어떤 후레 쉑히가 앙무들 바탕감 단풍나무를 베어갔단 말이냐! 어떤 놈인지 잡히기만 하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고 말아야지!!!!!" 그 동안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던 살구나무가 너무 고목이 되어서, 대신해 줄 단풍나무 한그루를 십 몇 년째 키우고 가꿔 오고 있는데, 세상 에나 어떤 망종 같은 놈이 그 걸 베어 갔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눈짓을 하면서 얼른 답했다. "아, 형님 설마 우리 동네 사람이 그런 짓을 했을라구요. 틀림없이 위천이나 마리사람들 짓 일겁니다." 그 날 저녁, 채 마르지도 않은 단풍나무는 군불 때는 아궁이에서 장열히 산화하고 말았다. 40년 전에 무슨일이... 8

9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39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林 公 移 山 1. 농촌 출신이라면 누구나 소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소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요 소 없이 하는 농삿일은 생각 할 수도 없으며 소는 한 집안 식구로까지 대접을 했었다. 최근 먹거리로만 전락한 소가 인간들의 이기심 때문에 동족의 뼈와 살이 섞인 사료를 먹고 천형의 병까지 얻게 되었 단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병들었을 수도 있는 소고기를 사다가, 안심하고 먹으라느니 못 먹겠다느니 시끄러운 세상을 보면서, 소에 대한 남다른 아픈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작은집네 소를 배냇소로 먹였던 우리집에서 8살 때부터 고삐를 잡았고, 꼴베고 풀 뜯기고 쇠죽쑤는 일은 유년시절의 일상이요 일과였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께서는 소장수를 하셨는데 써리꾼의 면도칼을 막기 위해 작크를 여러 겹으로 누빈 전대를 가슴에 차고, 거창과 김천 우시장까지 다니셨다. 연세가 드시면서는, 자본이 없기도 했지만 농사일이 끝난 농한기에만 근동의 소들을 거간하셨고, 소를 보는 안목으로 좋은 송아지를 사다가 한철 내지는 일년을 살찌우고 키워서 내다 팔기를 반복하셨다. 그러다보니 소먹이는 역할을 맡은 나에겐 겨우 훈련시키고 정들만하면 헤어지는 아픔이 되풀이되었다. 시골 마을의 소라는 것이 그 집 농사 규모의 척도가 되어서 부농의 소들은 으레 힘도 세고 덩치가 좋았다. 당시 치내 도갓집의 그 웅장한 기골의 소는 지금도 생각난다. 술찌기미를 먹여서 윤기가 번지르한 가죽에 잘생긴 뿔하며, 부리부리한 눈이 장관이었다. 우리 중산 동네, 특히 양지담에서는 소를 방목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집집마다 아이들이 소를 몰아서 큰도랑 건너 산 골짜기에 풀어 놓은 다음에 아침을 먹고 학교를 갔다. 바른골, 앙무들, 청다라지, 구남속골, 등을 순환하면서 풀어놓기를 했는데, 집단성이 있는 소들은 자연히 리더가 정해 지고 서열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소는 새로 전입 한 소이고보니 항시 무리에서 왕따를 당하기 일쑤여서, 어린 마음에 속상해 했다. 아침에 풀어 놓았던 소를 학교가 파하고 저녁에 몰러가기까지의 여름날의 추억은 수없이 많다. 누룩진소에서 실컷 미역을 감고, 심심해지면 신작로에다 바위를 굴려서 당시 유일한 대중교통이며 하루 3번 왕복하 는 버스의 통행을 막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고, 남의 밭에서 훔친 밀서리, 콩서리, 감자삶곶 등을 자주했다. 어른들의 길삼용 대마를 삶는 방법을 응용한 감자삶곶은 잘 다구어진 자갈에 물을 부어 생기는 김으로 감자를 삶는 일사불란한 협동심이 필요한 재미있는 놀이였다. 철따라 산딸기, 머루, 다래, 어름, 돌배, 까치복숭, 등 산과일을 따먹는 재미도 많았는데, 청다라지 너덜지대에만 있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9

10 던 비자열매의 그 향긋한 솔내음은 지금도 그립다. 즐겁고 재미있는 여름날의 추억도 끝나고 겨울이 또 가고 새봄이 다시 시작되는 날. 아버지께서 이번에는 아주 특별 한 소를 사오셨다. "내 평생 소장수에 쉽게 만날수 없는 물건이다." 처음으로 황소를 사오셨는데 정말 잘생긴 중소로서 씨받기용 종자소라고 쇠죽도 항시 특식으로 아버지께서 직접 만 드셨고, 애지중지 소사랑이 대단하셨다. "금년 여름 한 철만 잘먹이면 씨를 받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만, 그렇게 귀중한 소를 나의 게으름 탓에 죽게 하는 엄청난 사고를 치고 말았다. 2. 부슬부슬 장맛비가 내리는 초여름 일요일 아침, 불어난 큰 도랑 물 때문에 건너 산으로의 방목을 못가고 뒷동산 장 군뫼 주변에서 풀을 뜯기고 난 다음, 다른 아이들은 소를 몰고서 집으로 아침을 먹으러 갔지만 얕은꾀를 쓴 나는 소 를 작은 부득 솔에 묶어 놓은채 집으로 갔다. 아침을 먹고 난 후, 얼마나 낮잠을 잤을까. "이놈아, 해가 중천이다. 소한테 가 보거라." 어머니의 꾸중에 일어나보니 그사이 비가 그치고 햇살이 눈부시다. 어슬렁 어슬렁 동산을 올라갔는데... 아-아! 비가 그치며 달라붙는 파리 떼를 피해 움직이다가고삐에 걸려 넘어진 소는 얼마나 발버둥을 쳤었는지. 하늘을 향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드러내고, 하얗게 뒤집어진 눈을 부릅뜬체 죽어 있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어무이, 소가, 소가 죽었어요." 집쪽을 향한 나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동산 바로 밑 당숙네와 마을 사람들이, 그리고 하얗게 질린 불쌍한 우리 어 머니가 허공을 휘저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다시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이 치더니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속을 내쳐 달려서 줄뫼를 지나 니리바위 절벽끝에 섰다. 절벽 높이가 죽기엔 너무 낮아 보인다. 누룩진 소로 갔다. 폭우로 인해 사납게 넘치는 물살이 너무 무섭다. 여울쪽 냇물을 건너 농은정이란 작은 정자로 갔다. 정자 마루 위 아래에는 온통, 미처 타작을 못하고 쌓아 놓은 보릿 더미로 가득 차 있었다.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10

11 보릿더미 속을 파고 들어 앉아서 밀려오는 회한에 울고 또 울었다. 보릿짐을 묶었던 새끼줄을 풀어서 대들보에 올가미를 만들고 주변 모닥불 자리에서 숯검정을 주워다 마룻바닥에 "불효자식을 용서하십시오" 라는 글을 썼다. 어느사이 비는 그쳐 있었다. 냇물 건너편 신작로에 위천에서 올라 온 수의사의 자전거가 보인다. 신문지에 싸서 뒤에 싣고 가는 것은 필시 사인을 규명해 준 댓가로 얻어가는 고깃덩이이리라. 아침밥 이후 종일 굶고 울기만 했더니 춥고 배도 고팠다. 죽으려고 작정한 놈이 무슨-... 산골마을의 어둠은 금방 내리고 동네 청년들과 함께 아들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의 등불이 냇물 건너 쪽에서 오르내 린다. 물소리에 묻혔지만 필시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시겠지! 월남 전선에서 막 제대하고 귀향해 있던 이웃 형님에게 발각되어 집으로 끌려갔다. 냉장고도 없던 그 시절. 더운 장마철. 그 와중에 고깃값이라도 건지기 위해 동네사람들과 함께 소를 잡고 나누고 하 셨을 아버지의 퀭한 모습은 하루 사이 10년은 늙어지셨다. "못난 놈, 사내놈이 그깟 일로... 밥이나 먹고 자거라." 구수한 고깃국으로 변해서 꽁보리밥과 함께 차려진 밥상 앞에서 또 눈물이 쏟아졌다. 차마 그 국에는 손을 대지 못했고 이후 한동안은 소고기는 먹지를 않았다. 정말 입대를하고 군시절 까지는 먹지않았 었다. 이듬해 이른 봄.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하고 중학을 졸업 하자마자 재 넘어 감자밭 거름을 마저 내어놓고 서울행 버스 를 탔다. 빚진 소 값을 벌기 위하여... 먹고 잘 곳도 없는 서울생활. 공장과 배달꾼 등을 전전하며 1년여를 허송해버린 어느 여름밤. 서울의 휘황한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낙산 꼭대기에 서 나이는 한 살 위이지만 동향이며 집안 조카가 되는 여자애와 같이 울고 있었다. 폭군 같은 아버지를 원망도 하고 불쌍한 엄마와 어린동생들을 생각하며 울었던 그녀는 이튿날 낙산 기슭에 있는 보 문사를 찾아서 비구니 스님이 되었다. 십수년전 스님이신 우리 형님께서 계룡산 어느 암자에서 본 일이 있었다는 외에는 지금도 그녀의 소식을 모른다. 빚진 소 한 마리만 사드린 후에 나도 따라서 출가를 하마고 굳은 약속을 했었건만... 근기가 약하고 결단력이 없는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어느덧 50 중반을 넘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고 있다. 소판 돈을 훔쳐 도시로 간 어떤 이는 대한민국 제일의 부자가 되었다는데, 빚진 소 값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났던 소년 은 아직도 소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무거운 화두처럼 들고만 있는 것이다 봄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11

12 소와 함께 했던 어린날의 肖 像 12

13 깨어진 기름병 :08 깨어진 기름병 글/임공이산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오늘 같은 날이면 애호박과 풋고추 썰어 넣은 넣은 칼국수도 먹고 싶고, 파전이나 정구지에 막 걸리도 생각난다. 에스프레소 진한 커피를 앞에 놓고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다보니 또 버릇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유년으로의 과거여행 을 떠난다. "지름이 다 떨어졌구나. 핵교 다녀오면서 애지름 좀 받아 오거라." 지난 밤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치지를 않는 아침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나에게 어머니께서 기름병을 들려 주셨다. 무엇이든 귀한 시절이었지만 호롱불을 켜기 위한 석유를 담는 댓병이라 불리던 유리병 또한 귀한 물건이었다. 대각선으로 책보따리를 어께에 메고, 비료 포장 푸대였던 비닐을 망토처럼 두르고서 용감하게 오리길 신작로를 걸 어 학교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가는 '해리포터'의 모습이었지 않았나 싶다. 교문 앞 오른쪽 작은 점방, 석유가게를 겸하는 학용품 점, 꼬깃꼬깃 접은 지폐와 병을 맡겨두고 등교를 했다. 마지막 수업시간, 맨 뒷줄 창가에 앉은 나는 더욱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와 물 고인 운동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석유병을 들고 빗길을 길을 걸어 집으로 갈 걱정에 빠져 있었다. 깨어진 기름병 13

14 어느 사이 곁에까지 오신 선생님의 화난 호명에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매섭게 내리치는 회초리를 두 손 으로 공손히 받았다. 벌겋게 멍이 들고 얼얼한 통증이 남아있는 손바닥으로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기름병을 조심스럽게 부둥켜안고 집으 로 돌아가는 그 날의 길은 어찌 그리도 멀었던가! 갈밭만당 언덕을 오르고 아랫탑불과 윗탑불 마을들을 지나 드디어 우리 동네 앞에 다다랐다. 그래도 물레방앗간 앞 징검다리위로 작년에 콘크리트 다리가 놓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이 다리마저 없었다면 오늘같이 물이 불은 날이면,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고무신과 석유병을 안고 건너야 할 것이 아니던가! 동네 안으로 들어서니 서서히 비도 그쳐가고 있었다. 친구인 영달이네 집의 급하게 휘어진 돌담길을 따라 골목길을 걸었다. 황토 흙에 볏짚을 적당히 썰어 섞어 쌓은 돌 담부랑! 배 부분이 불룩 튀어나왔지만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 할 뿐 이다. 저기 보이는 집이 우리 큰집, 그 골목만 돌아가면 바로 우리집! 무사히 다 왔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고... 퍼~퍽!! 불룩 배가 튀어나온 담부랑, 그 중에서 특히 돌출된 돌 하나에 부딪친 석유 댓병! 내 손에는 헝겊을 꼬아 만든 끈에 단단하게 묶인... 뚜껑 덮인 병목만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냄새를 풍기며 쏟아진 석유는 무지개 빛깔 같은 무늬를 그리며 빗물 위를 타고서 골목길을 흐르고... 깨어진 기름병 14

15 겨울밤 :30 겨울밤 온 세상이 순백으로 덮여버렸다. 쌓인 눈 때문에 사랑방 마실 출입을 못하신 건넌방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만이 간 간히 들려오는 적막한 산골마을의 겨울밤은 깊어간다. 속옷에 붙은 서캐를 태운 냄새가 호롱불의 그림자를 타고서 좁은 방안에 하늘거린다. 헤어진 양말을 깁고 꿰매시는 어머니 옆에서 배를 깔고 엎드린채 '방학생활' 숙제는 몇 페이지나 해치워버리고 말았 다. U-N표 사각통의 성냥 개피를 방바닥에 늘어놓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지었다가 헐었다가 넓은 정원도 만들고, 나 무도 심어가면서 행복을 설계하며 노는 것도 심심해지고 졸음이 밀려와서 풀 먹인 빳빳한 광목이불속을 파고들었다. 반짇고리를 정리하신 어머니는 일찍부터 잠에 곯아떨어진 동생들의 이불을 다독여 주신 후 방문을 열고 눈발 날리는 어둠속으로 나가셨다. 소마굿간의 소도 확인하고 돼지우리랑 마당가의 닭장을 살펴보려는 것일 것이다. 삵괭이나 족제비가 닭장을 뚫고 들 어가서 닭을 죽이거나 물고 가는 일이 가끔씩 있었다. 어느날 밤엔 화장실을 가려고 마당에 내려서다가 불을 뚝뚝 흘 리는 삵쾡이와 마주치고서 어찌나 무서움에 놀랐던지 고함도 치지 못했었다. 방구들의 온기를 느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 이 여편네야 그걸 알고서도 가만히 그냥 돌아왔단 말이야? 내 이놈의 자식들을 그냥!" 이른 아침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투고 계셨다. 화가 나신 아버지의 언성이 높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진정시키려 애를 쓰시고 있었다. "글쎄! 동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일단은 모른 척 하고 있어요. 그런다고 이미 잡아먹고 없는 닭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겨울밤 15

16 아니고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놈아 자식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놔야지 그게 어떤 닭인데..." "사랑에 나가서도 바깥양반들한테는 비밀로 하세요. 당골양반 알아놓으면 또 그 집 아들 동석이 머리가 깨어지든지 다리가 부러지든가 큰일이 나요. 내가 조용히 당골댁하고 안사람들한테 말해서 닭 값을 받아내면 되잖소." 간밤에 가축들을 살피러 나갔던 어머니는 닭장이 통째로 없어진 것을 알았다. 장닭 한마리와 씨암탁 두마리! 가난한 살림에 귀하고 귀한 재산이다. 동산에 올라 동네를 내려다보면서 홀로 불이 켜진 건너편의 집히는 집이 있어 조용히 찾아갔다. 마을의 총각 처녀들 몇 명이 삶은 닭을 뜯어먹으면서 떠드는 소리가 문밖으로 다 들렸다. 살이 떨리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보지 않아도 누구 집 누구네 자식들인지 훤히 알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집안 일가이기도 한 당골양반네 아들 강식이도 있었다. 당골아제는 동네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무서운 다혈질의 성격이다. 언젠가 뒤주의 쌀을 퍼내다 들킨 아들 강식이를 얼마나 몽둥이로 두들겨 패던지 옆에서 말리지 않았다면... 자 기 자식을 잡을뻔 했던 사람이다. 문밖에서 한참을 생각하던 어머니는 조용히 돌아오셨다. 화가 나신 아버지는 아침밥도 드시지 않고 주막으로 나가시고, 어린 내가 어머니와 함께 뒷동산 눈밭 속에 버려진 닭 장을 끌고 내려왔다. 닭 잃고 닭장 고친다는 말은 없어도, 어머니는 빈 닭장을 수리하고 손을 보아서 제자리에 두었다. 그날 저녁에 당골아지매가 집으로 찾아오셨다. 아버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며 책임지고 아이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닭값을 물어주겠다고 했다. 어머니에겐 고마 운 그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몇번이고 말씀하셨다. "당골띠기,우리도 자식 키우는 사람아니오. 너무 걱정마시고 봄오기 전까지 닭값이나 어떻게 좀 마련해 주세요. 저렇 게 닭장을 비워 둘수는 없지 않겠어요." 겨울이 가고, 오일 장날에 아버지께서 사오신 암탉 한 마리가 병아리들을 부화시켰다. 따뜻한 봄 햇살이 눈부신 마당에는 엄마 닭을 따르는 노란 병아리들이 삐약거리는 소리가 귀엽다. 마루에 걸터앉은 아버지께서 담배를 피우시며 말씀하셨다. "허어 참! 남의 집 자식까지 걱정해주고... 사람 인심이 변소간 갈 때 다르고 일마친 다음 생각이 틀린다더니, 그래 겨우 닭 한마리값 받아서 이게 뭐란 말인가!" "또 저 병아리 키우면 되지 뭘 그래요. 여름 한철만 키우면 큰 닭 될텐데요. 비싼 술 한잔 자셨다 치고 그만 잊어버 립시다." 겨울밤 16

17 겨울밤 17

18 막걸리 시대 :27 막걸리 시대 18

19 막걸리 시대 막걸리 시대 19

20 본인 생전에 부모님산소에 비석하나 세워드리기를 소원하시는 큰형님 뜻에 따라 연내에 작고 소박한 비석을 세우 기로 형제들끼리 의견을 모았다. 비대석(받침돌)도 이수(가청석.머리돌)도 없이 비신만으로 자연석을 약간 다듬어 시비 모양의 수수한 비석을 제작하기 로 하였다. 아버지를 기리며 쓴 비문 중에 '청빈한 생활 속에서도 술 한 잔 즐기신 삶'이라 표현하게 되었다. 과음으로 자세를 흩트리거나 주정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보이신 적이 없는 아버지는 말년까지 반주를 즐기신 애주가 이셨다. 달리 다양한 술이 있을 턱이 없는 농촌이기도 했지만 소주보다는 막걸리를 선호하셨다. 어머니는 농주 빚는 일에 일가견이 있으셨다. 안방과 부엌을 끼고 있는 작은 공간 방 곁방에는 익어가는 술 단지가 이불을 덮어쓰고 있는 일이 종종 있었고 항시 꼬리한 누룩냄새가 배어 있었다. 혼.분식 장려책을 강하게 추진했던 6-70년대, 정부에서는 가양주 담기를 엄하게 단속했다. 자급하기위해 농주를 빚는 것도 밀주로 취급해 벌금을 매겼으니 술을 걸러내기까지는 전전긍긍 불안에 떨어야했다. 설이나 추석 같은 큰 명절전이나 추수철 등 술 소비가 많을 때에 꼭 동네에 밀주조사 단속원들이 들이 닥쳐서 숨겨 놓은 술 항아리들을 적발해내곤 했다. 집이 동네 입구였던 탓에 첫 번째로 술독을 들켜버린 어떤 아저씨는 홧김에 마을 뒤 동산에 올라 고함을 질러서 진 풍경을 만들었던 일도 있었다. "동민 여러부운! 술조사가 나왔어요. 술독을 숨기거나 집 대문을 잠그고 집을 비워버리세요오~~~" 전성기에는 월성리에도 양조장이 있었다는데, 문중집안에서 운영하는 소재지의 양조장은 명실 공히 지역 내 최고의 산업이었다. 술 소비 철에 판매가 부진하면 밀주조사단속을 각 부락에 나가달라고 도가에서 군청에 의뢰를 했었다고 한다. 양조장의 술도 맛이 좋기로는 정평이 났었다. 그러나 "이번 술은 싱겁네. 이번술은 잘 걸러졌네." 하는 어른들의 품평이 있었던 걸 보면 항시 일정한 맛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가 마당에 찐 고두밥을 널어 말리는 모습과 누룩에 버무려 술 담그는 냄새가 좋아서 여러 번 구경을 갔었고, 한웅 큼 고두밥을 훔쳐 먹으며 고픈 배를 채우기도 했다. 막걸리 시대 20

21 월성과 소정, 양쪽골을 향해 올라가는 막차버스에는 각 동네 주막집으로 배달되는 나무술통 몇 개가 꼭 실려 있었다. 장날처럼 사람이 만원일 땐 뒤 범퍼에도 술통이 달려갔다. 농촌에서의 혼인이나 대사는 주로 농한기인 겨울에 이루어졌다. 잔치를 치루는 집에서는 요령껏, 술 소비량의 절반은 직접 담그고 절반은 도가에서 주문을 하곤 했다. 맛이 서로 다 른 술을 섞기도 했고 잔치를 치르다 술의 양이 부족하면 도가에 추가 주문을 하기도 하고, 아니면 물을 타서 양을 늘 리기도 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웃음 나오는 일이지만, 난 선천적으로 술이 센 체질인데다 조숙하고 키도 커서 초등학교 고급학년 시절에 이미 형들을 따라 사랑방출입을 했다. 시낭이나 회갑연등 잔치를 치르는 집, 한쪽에 차일을 치고 마당 중앙엔 화톳불이 타고 있는 겨울밤,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대문앞에서 장작개비로 양철통을 두드렸다. "단자요~" "어느 사랑에서 오시었소?" "저~ 음지담... 말랑뜰~~ 음~ 얼렁 뚱땅~~더듬 더듬..." 푸짐하게 얻어온 각종 전들을 안주삼아 한 양재기씩 돌려 마시던 그 막거얼리!...캬아~! 새마을운동이다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다 하는 변화에 따라 술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읍내 거창갑부 신덕균이란 분이 생산하는 막걸리보다 도수 높고 휴대가 간편한 '길로소주'가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비되기 시작하고 가끔 맥주도 마셔지기 시작했다. 그러구러 도시로의 진출바람에 따라 나도 고향을 떠나 서울생활에 접어들었다. 당시 서울에도 10여개의 막걸리 양조장이 각 구 단위 지역마다 있었는데 유류 탱크차 같은 막걸리 운반차에 실려 배 달된, 옥수수와 밀가루로 만든 탁주는 영 맛이 아니었다. 무교동 낙지골목이나 대학가의 민속주점에서 파는 동동주는 카바이트로 발효를 시켰기에 이튿날이면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뒤끝이 좋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두꺼비그림이 그려진 ㅇㅇ소주를 더 많이 애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막걸리 맛을 잊어가고 있던 객지생활 몇 년이 지나고... 막걸리 시대 21

22 입대 영장을 받고 고향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귀향했던 난 감격하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날짜에 맞춰 술 한 동이를 익혀 놓고 계셨던것이다. 입영전날 친구들과 함께 코가 비뚤어지게 퍼 마셨던 그 동동주! 후에도 어머니의 솜씨로 빚어진 전통주를 몇 번 맛 볼 수 있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집안일이 큰형수님 손으로 넘어가 면서는 더 이상 어머니의 술 빚는 일도 끝나고 말았다. 함양군 서상에서 술 잘 빚는 장인을 모셔다가 더욱 정성들여 술을 제조하고,산넘어 구천동 삼공리까지 배달을 하면서 중흥을 모색했던 북상양조장이 결국 문을 닫았다는 안타까운소식을 들은지도 오래다. 귀향 후 귀경길에 전주 한 두말을 트렁크에 싣고 가면 서울친구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었던 고향표 술을 더 이상 맛 볼수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4~5년 전부터 일기 시작한 막걸리의 부활이 놀랍다. 소주 맥주 양주 와인 등에 밀려서 거의 사장되어가던 막걸리가 새로운 변신으로 술 시장을 흔들고 있다. 재벌 대기업들마저 막걸리시장에 손을 뻗치기 시작했고 금년 막걸리 매출은 4,000억을 장담하고 2012년에는 1조원대 가 넘을 것이라 한다. 시내엔 막걸리 전문점도 꽤 많이 생겼다. 포장도 다양해지고 맛도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내 입맛에는 영 옛날의 그 순수한 막걸리 만한 것이 없다. 요즘같이 더운 날엔, 댓병에 담아 찬 샘물에 담가두었던 그 시원한 막걸리 그 맛! 왜 그런 막걸리 그 때 그 맛이 안 날까? 예전 집안들에서 담가 먹던 전통농주 맛을 보기도 어렵다. 오랫동안 향리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셨기에 종호선생님으로 불리시던 집안 큰집의 돌밭형님께서 생전에 계실 때에, 내가 가끔 귀향을 하면 바둑벗이 되어드리곤 했다. 그 어른의 바둑취미가 대단했는데, 어떻게 내가 온 줄을 알 고서 "종배마, 한수 두러 오너라." 부르시면 난 또 그 집의 술이 그리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고향마을에서도 농주를 직접 담그는 가까운 집안이 없는 듯 해 못내 아쉬운 마음이다. 내 나이 아직은 이르고 생활에 여유가 없지만, 언젠가는 귀향하여 술 한동이 익혀놓고 책도 읽고 바둑도 즐기는 그런 여생을 보내기를, 꿈만이라도 꾸어본다. 막걸리 시대 22

23 비문을 직접 쓰신 형님의 좋은 필체를 살려서 원형대로 비석에 새기는 것이 의미가 있다하겠다. 우리고향이 돌의 산지라서 좋은 돌은 무궁한데 글씨를 새기는 일이 쉽지가 않다. 글씨체를 살리는 컴퓨터 방식이 있는가? 직접 수공으로 새겨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차 고향의 석재공장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기왕이면 동문회 날짜와 맞추어서 동문회 참석도 하자고 형님께 권유를 했고, 바쁜 일정을 조정하여 날짜에 맞추어 귀향을 했다. 고향식으로 쿰쿰하게 발효시킨 두부비지를 반찬으로 주는 마리면 어느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사촌형님이 아 주 특별한 술과 안주를 구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청주! 잘익은 농주에서 맑게 걸러 낸 노오란 색깔의 최고급 술! 옛날, 큰 대사를 치룰때에 사돈이나 귀한 손님에게만 특별히 대접하던 귀한 술! 구식 결혼식에 신랑친구들이 우인대 표로 신부집에 따라가면 특별히 대접받던 그런 추억의 술이었다. 안주 또한 우리고향에서만이 맛 볼 수 있는 돼지순대 '피창'을 구해놓고 있는데야 어찌 감동이 아니리오. 들뜬 기분에 그만 점심부터 절주를 넘어서고... 유서 깊은 치내숲 가선정 뜰 앞에서 펼쳐지는 본격적 총동문잔치! 옛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추억의 밤에는 추억의 술과 함께! 본격적인 동문회마당에서도 역시 막걸 리가 대세였다. 오늘같이 좋은 날 어찌 취하지 않겠는가. 친구들이여 잔을 비워라. 가득 가득 추억을 마시자. 전성기로 되돌아온 막걸리시대! 되돌아온 우리들의 청춘시대! 막걸리 만세! 청춘만세! 막걸리 시대 23

24 막걸리 시대 24

25 임공이산에 대하여 :28 임공이산에 대하여... 집 앞을 가로막는 산이 있어 불편하다면 집을 옮기거나 이사를 가면 될 것을, 한 짐씩 산을 퍼 나르는 노 인이 있었다는 중국고사 愚 公 移 山 과 같은 현대판 어리석은 노인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바보 노무 현 이다. 수구언론들과 보수세력 들로부터 중상모략과 왜곡편파성 공격을 수도 없이 받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공격 의 대상이다. 대통령까지 지냈으면서도 웬만한 정치인들은 다 가지고 있는 그 흔한 이니셜 조차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정치인으로서는 최초의 펜클럽인 노사모 는 이미 전설을 만들 었고, 그를 부르는 애칭도 많아서 노짱 노간지 등으로 불리는 모양이다. 역사상 최초의 낙향한 퇴임대통령으로서 농사도 짓고 고향을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쓰는데, 그의 집에는 매일 방문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행복한 고민이란다. 그 와중에 인터넷 공식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 을 꾸미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대한민국의 진보적 정치발전을 모색하기위한 정치토론의 장인 민주주의 2.0 이라는 공 간을 만들었단다. 이곳에서 쓸 필명을 우공이산 으로 하려했더니 누군가 먼저 선점한 사용자가 있어, 노공이산 으로 살짝 비틀어 작명 했다는데 대단한 재치이다. 그토록 그가 피하지 않고 옮기고자 애쓰고 있는 산이란 무엇일까? 친일에서 친미까지, 사대주의를 애국인양 호도하는 수구기득권세력들... 언론 종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각계각층에 뿌리 깊게 버티고 있는 수구의 산! 임공이산에 대하여... 25

26 우리 대에 못하면 다음 대에, 또 다음과 다음에... 과거사를 청산하고, 정의가 바로서고, 다 같이 잘사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의 건설을 위하 여, 나 역시 한 삽의 흙이나마 퍼 나르리라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해서 본인의 필명도, '우공이산' '노공이산'을 패러디한 '임공이산'으로 정했음을 알리는 바이다. 임공이산에 대하여... 26

27 무시적 :51 무시적 명절이나 제사 때에는 가마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적을 구웠다. 제사가 없던 우리집은 명절이나 되어야 적을 구웠지만 제사가 많은 큰집에서는 적을 굽는 일이 잦았었다. 더운 날에는 마당가 감나무 밑에서, 큰어머니 우리어머니 작은어머니 때로는 당숙모님들까지 같이 구우셨고, 추운날 에는 좁은 정지간에서 구우셨다. 파 고추 정구지 애호박 동태 등등의 적을 돼지기름이나 소기름을 사용하여 구웠다.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남자어른들은 방안에서 지방을 쓰거나 밤을 깎으면서 제사준비를 하다가, 막구운 적을 쟁반에 들고 들어오면, 제사전이라도 막걸리와 함께 한 점씩 맛을 보았다. 그 중 유독 맛이 없는 것이 무시적이었다. 그러나 어른들께서는 그 맛없는 무시적을 잘 잡수셨다. 그때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껍질은 껍질대로 따로 놀기 일쑤요 맛이라고는 도통없는 그 무시적을 무슨 맛으로 드시는지를... 아, 아 -- 내 나이 들면서 희한하게도 무시적의 맛을 알게 되었다. 요즘처럼 식용유에 범벅하지 않고 담백하게 구워낸 무시적의 맛을... 뜨끈한 무시적을 베어 물었을 때 온기와 함께 배어나오는 무즙의 그 형언키 어려운 맛을... 돌아오는 아버지 제삿날에는 큰형수님께 무시적 좀 많이 부치자고 해야겠다. 아니 나도 같이 구워서 먹어야겠다. 나이 들면서 식성이라는 것도 변하나 봅니다. 우리고향에서는 전이라 하지 않고 적이라 불렀고 부친다 하지 않고 굽는다고 했습니다. 명절 끝에 더욱 옛 생각이 나서 두서없이 써 보았습니다. 무시적 27

28 무시적 28

29 호랑이 턱걸이 바위 :53 전설 ㅡ 호랑이 턱걸이 바위 갈밭 만당을 올라서 모퉁이를 돌면 높지 않은 언덕에 바위두개가 포개져 있어 이름 하여 호랑이 턱걸이 바위'입니 다. 바위틈을 딛고서 밤마다 호랑이가 턱걸이를 합니다. 담배만 피워서는 호랑이 체면을 지키지 못합니다. 한 마리 토끼라도 잡으려면 평소에 체력을 단련 해 두어야 합니다. 달도 안 뜬 어느 날 밤 치내(면소재지)장터 천막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운동을 방해받은 호랑 이가 우리들에게 모래를 뿌려서 혼비백산 중산(우리동네)까지 단숨에 뛰었던 일이 있습니다. 어떤 애는 바지에 오줌까지 쌌지요. 날이 저물어 혼자 집으로 가던 어느 장꾼은 불을 켜고 달려드는 호랑이에게, 지게가지에 달고 가던 갈치 두 마리를 던져주고서야 간신히 도망쳤답니다. 바위 중턱에 구멍이 있어 소원구멍입니다. 자갈을 던져서 떨어지지 않으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등, 하교 길 열심히 자갈을 던지는 아이들의 팔뚝도 호랑이와 한바탕 씨름을 할 만큼 굵어만 갑니다. 사진기 하나를 메고 호랑이 박제인형 리어카를 끌고서 시골마을들을 돌며 아이들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던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병든 노구에 리어카를 힘들게 끌었지만 아이들만 보면 신이 났고, 덩달아 아이가 되는 호랑이 할아버지였습니다. 첫돌 사진을 찍을 때는 호랑이가 무섭다고 울던 애가 좀 커서는 의젓하게 호랑이 등을 타고 찍기도 했습니다. 일이 없어 심심 할 때면 할아버지는 혼자서 피리를 불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왔습니다. 갈밭 만당에 아지랑이가 피고, 호랑이 턱걸이 바위'아래 못자리에 올챙이들이 무리지어 헤엄을 치는데도 할아버지 의 리어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29

30 어느 날 바위에는 붉은 페인트로 큰 글씨가 쓰여 졌습니다. 반 공 방 첩 이곳은 간첩이 활동했던 곳입니다.수상한 사람은 신고합시다. 간첩신고는 113 마을에는 전기가 안 들어 올 때였고 더더욱 전화는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소원을 비는 돌팔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반공 방첩이라는 글자를 향해 돌을 던지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도 곶감보다 훨씬 더 무서운 간첩이 또 나타날까봐 멀리 가벼렸습니다. 호랑이 할아버지가 위장간첩이었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카메라는 자유대한민국의 요소들을 찍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호랑이 인형 속에는 무전기와 총을 감추고 다녔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할아버지는 무슨 사진을 찍어서 간첩활동을 했을까요? 북상에는 군사시설이나 산업시설이 없는 평범한 산골입니다. 진달래 피는 앞산이나 종달새 우는 보리밭을 찍었을까요? 호랑이가 턱걸이 하는 모습을 찍어서 보고 했을까요? 갈밭만당 계곡에서 냄비에 밥을 짓던 할아버지를 본적이 있습니다. 인형 속에는 밑반찬통과 냄비와 할아버지의 초라한 세간이 들어 있었습니다. 신작로가 포장되고 호랑이 턱걸이 바위는 키가 닿을 만큼 낮아졌습니다. 자갈을 던지는 아이들도 없을뿐더러 던질 자갈도 없는 아스팔트길입니다. 그런데... 비오고 바람부는 날 밤에는 바위에서 피리소리가 들린답니다. 호랑이 턱걸이 바위 30

31 향기 :59 *향기1 야생화 화려하지 않으나 그윽한 향기를 품은 야생화는 깊은 산속 바위틈에 숨어 피어도 벌 나비가 찾아 옵니다. *향기2 ㅈ 일보 언제부턴가 동무 라는 우리말이 북한 사람들을 연상 시키면서 잘 쓰지 않는 말이 되었습니다. 조선 하면 무엇이 연상되시나요? 500년 역사의 우리나라 이름이었습니다만, 그 또한 북조선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친일, 독재, 왜곡, 편파, 반민주, 수구, 등이 떠오를 뿐만 아니라 썩고 구린 냄새까지 납니다. 정말이지 신선한 아침을... 구린 냄새로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향기 31

32 *향기3 에스프레소 적도의 태양을 갈고 대륙을 농축시킨 향 에스프레소 데미타스 음ㅡ 쓰다. 갈구했던 님의 입술 눈물인가 독배인가 에스프레소 데미타스 역시ㅡ 쓰다! 향기 32

33 어머니의 팔 그리고 :56 시리즈: 아! 어머니 어머니의 팔 그리고... 林 公 移 山 가을걷이도 모두 끝난 늦가을의 어느 날 오후. 마당 가득히 덕석(멍석)들을 펼쳐놓고 나락(벼)을 말리고 있었다. 200여 호 가까이 되는 꽤 큰 산골동네.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동산 바로 아래에 작은 초가 우리 집이 있었다. 울타리 옆엔 단풍든 잎을 떨구어 가며 황금색 감들이 익어가는, 얼마나 평화로운 한낮의 풍경이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변덕스러운 산골 날씨로 인해 남쪽 기백산으로부터 몰려오는 먹구름 속에 끔찍한 사고가 묻어있음 을 알 리가 없었다. 앞,뒤 좌,우로 병풍처럼 산들이 둘러쳐진 첩첩산중의 좁은 하늘이 갑자기 닫히더니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식구들 모두가 급히 나락(벼)을 당그레(고모레)로 긁어 가마니에 퍼 담고 옮기고 하는 와중에, 마루 밑에 넣어두려고 둘둘 말아놓은 덕석에 그만, 어머니가 걸려서 넘어지셨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혼절해버린 어머니의 오른팔은 마루아래 놓여있던 단단한 댓돌을 사정없이 내려치며 부러져서 힘없이 흔들거렸다. 모든 것이 무지함으로 넘쳤던 그 시절, 윗마을 소정리 어느 부락에 용한 접골인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어머니 를 들쳐 업은 형님과 아버지가 소나기속으로 황급히 달려나갔다. 한바탕 무서운 재앙을 쏟아 부었던 소나기가 지난 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어린 나는 도저히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애매한 마굿간의 소를 몰고 동구 밖 유일한 작은 들판인 갯들로 갔다. 그 곳은 윗마을 소정리로 통하는 신작로가 보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건초를 만들기 위해 논두렁마저 모두 말갛게 깎아버린 추수 끝난 황량한 논들, 벼포기 그루터기에서 가끔 파랗게 솟 아나는 새순을 핥고 있는 소를 보면서 논두렁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아니 난생 처음 간절히 기도란 것도 했다. 집안 어른들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면서 면소재지 예배당을 다니던 둘째형님을 통해 주보와 인쇄물 성경책 등을 보 아 와서 기도 정도는 할 줄을 알았었다. 하나님 예수님 간절히 비오니 우리 어무이를 살려주소서! 불쌍한 우리 어무이 살려 주소서! 비옵고 비옵나이다 우 어머니의 팔 그리고... 33

34 리 어무이 살려주소서!! 시골 돌팔이 접골인의 엉터리 치료로 인하여 어머니의 팔은 휘어지고 손목 부근이 툭 튀어나온 채로 아물어 버렸다. 이후 평생을 신경통으로 기압이 낮은 날에는 고통스러워했지만 변변한 치료를 받으신 적은 없다. 그러나 어머니의 손은 약손 그이상의 손이었다. 뒤틀린 팔로 밭 매고 길삼하고 바느질하고 모든 가사노동과 들일을 다함은 물론이요 특히 감을 빠르게 잘 깎아서 곶감 철에는 서로 어머니를 모셔가려 했다. 가까운 집안이었던 중배이 아제는 우리 어머니를 믿고 열 몇 동이나 되는 곶감농사를 지으신다고 할 정도였다. 마을에 큰 잔치가 있어 시루떡을 찔 때는 설지 않도록 상하 시루에 반죽을 붙이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요, 아주 큰 가 마솥 밥을 지을 때도 물을 잡고 뜸을 들이는 중요한 일은 어머니의 손을 거쳤다. 농주를 잘 빚으셨고 가끔은 청주나 소주도 내렸는데 그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어머니는 손이야기보다 훨씬 가슴 저린 사연을 하나 더 가지고 계신 분이다. 어느 해, 서울 아들네 집을 오신 어머니께 효도를 한답시고 곰탕을 사드렸다. 평생 육류와 생선을 멀리하고 채소만을 먹고 사셨던 터에 그만 탈이 나고 말았다. 치료를 위해 서울 삼선교의 어느 유명한 내과를 찾았다. 서울대학병원의 교수이면서 일주일에 오전 며칠만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한다는 원장선생께서 나를 부르더니, 의 사생활 몇 십 년에 처음으로 희귀한 환자를 보았다면서 어머니의 젖꼭지가 왜 없느냐고 물었다. 순간 수치감에 얼굴 이 확 달아올랐고 조롱을 당한 것 같아 화를 내면서 병원을 나오고 말았다. 그랬다. 첫아들인 큰형님을 낳고서 나물죽도 제대로 먹지 못한 산모의 영양부실로 젖이 돌지 않았고, 배고픈 아이가 왼쪽 젖꼭지를 물어뜯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몸으로 7명의 아들딸을 더 낳아서 전쟁통에 어린 딸 한명을 가슴에 묻은 것 외엔 모두 잘 키웠으니 얼마나 초인 이신가?! 괜히 부아가 치밀어서 어머니께 역정을 내었다. 어무이, 그런 몸을 해 각고 머 한다꼬 자식을 그리 마이도 나았쏘? 야가 머라카노? 그걸 와 나한테 묻노? 너그 아부지 한테 가서 물어 보거라. 와. 2009년 3월 중순 어머니의 팔 그리고... 34

35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18 접동새 울면 접동~ 접동~ 밤이 새도록 구슬피 울던 접동새 날아간 자리 뒷 텃밭 울타리엔 연초록 햇닢이 피어납니다. 지난겨울 눈보라에 가지 부러진 복숭아나무에도 붉은 꽃 달리고 뒷동산 기슭엔 진달래가 만발입니다. 시안에 우리 누나 시집가고 다시 봄 오고 진달래 피고 햇닢도 피었습니다.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35

36 쌉싸름 햇닢 나물 달근한 누나 냄새 누나는 시집가고 접동~ 접동~ 접동새 울면 그리운 누나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졸시- 유난히도 길고 지루했던 지난겨울이었다. 자연의 섭리란 결국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 3월말까지 폭설이 내리며 이상기온의 연속이더니 4월 중순이 되면서는 산야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접동새 울고 들판에 뾰족 뾰족 피어오르는 봄나물들의 새순과 연분홍 진달래의 만개를 보면,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누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밀려온다. 넉넉지 못한 집안의 많은 형제들 틈에서 불우하게 자랐고, 가난한 농부와 결혼해서 평생 땅만 일구며 아들 둘 딸 하 나를 장성시키고, 여생을 즐길 때가 될 즈음에 그만 저 세상으로 가버린 누나다. 5남 2녀 중, 위로 오빠 둘 다음의 세 번째인 누나는 형제끼리 자랄 때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항상 양보를 하 거나 손해를 보는 그런 존재였다. 집안의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덜컥 월남전 파병을 자원하여 북상면 최초의 파월 용사가 되었던 큰형님은 독립심과 모험심이 강하나 시행착오를 동반한 사고 또한 많이 치신 분이다. 불같은 성격에 칠순 넘으신 지금도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한다. 북상면 최초로 엔진동력을 이용한 벼나 보리 탈곡기를 도입해서 운영했고 경운기도 최초로 구입했으며 컴바인 트렉 터 등을 최초로 운용할 만큼 앞서갔으나... 항시 너무 앞서가는 것이 탈이었다. 고향집을 지키시고 계시면서 그 연세에도 컴퓨터를 잘 다루시는 것을 보면 역시 대단한 분이시다.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36

37 큰형님과 상반된 차분하고 내성적인 둘째 형님은 부모님의 뜻을 거슬리는 일이 없이 착한 효자의 전형이신 분이었다. 그런데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형님과 함께 어쩌다가 면소재지 예배당을 다니는 예수쟁이가 되어버렸다. 내가 아는 한 마을 최초의 크리스찬이었는데, 집안어른들의 '조상도 모르는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비난이 하도 심해서 거의 순교적 고난과 핍박을 받았다. 허나 끝내 참고서 꿋꿋이 버텨낸 분이다. 서울로의 이주가 시작되고 북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삼선동, 낙산 기슭의 개척교회인 숭인교회를 다니면서 40 세 초반 이른 나이에 장로님이 되었고, 지금은 재적 신자 수 1,000여 가까이 되도록 이끌고 계신 원로이시다. 둘째형님의 영향으로 예수교인이 된 가까운 친인척과 주변인들이 많다. 끝내 나를 교회로 인도하지 못한것을 가슴아파하시지만 내가 가장 존경하는 기독교인 중 한분이시다. 그리고 누나의 바로 아래 동생이 출가한 스님이다. 나와는 네 살 차이 바로 위의 형님이신데 참 사연이 많은 분이다. 덕유산 남쪽골짜기, 600여년을 조상대대로 뿌리 이어온 지역 최대 집성가 은진임씨 의령공파 20세 대종손! 높은 효성과 덕망으로 효간공이란 시호를 받은 갈천 임훈선생의 15세 종손으로 7살에 양자를 갔다. 외가의 내력도 참 고하고 본인의 총명함이 돋보여 선택이 되었다는데, 대문중 대종손이란 귀하신 신분이었다. 본가인 우리 집은 물론이요 임씨 집안이면 어느 집에 가더라도 종손으로 예우를 받았다. 11살 어린 나이에 양부께서 별세하시고 열흘이 넘는 전통 유가 풍습의 장례식을 의연히 치러 내었다. 타고난 종손의 그릇이라고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던 형님은 그러나, 15살 중학2학년의 여름방학을 이용해 약초꾼들 이나 다니는 길을 따라 덕유산을 넘었고, 구천동 작은 암자 백연암을 찾아서 그길로 불가에 입문을 해버렸다. 철저한 수행의 길을 걸으면서 초기엔 15년이 넘도록 속가와도 연을 완전히 끊었었다. 자연 문중 어른들의 비난의 화살이 아버지에게 쏠렸고, 어머니는... 평생 눈물을 훔치곤 했다. 왕세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하신 싯달타 부처님을 닮아서인가. 문중을 발칵 뒤집고 끝내 스님의 길을 걷고 있는 형 님의 이야기는 소설책 몇 권을 써야할 만큼 드라마틱한 사연이 많다. 이렇게 개성 강한 형제들 틈에서 누나만큼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용히 희생하며 모든 일을 감수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였다. 열 살이 넘어서야 학교를 보내주어서 동생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겨우 다녔으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들일 나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았고 나와 아래 여동생과 남동생은 업어서 키웠다. 특별히 배운 적이 없었으나 바느질 솜씨가 훌륭했고 눈썰미가 좋아서 왠만 한 옷은 한번 보면 따라서 만들어버렸다. 헤지고 떨어진 양말, 발바닥 부분에는 본천이 남아 있지도 않았으나 교묘히 덧대고 예쁘게 기워주었고, 나는 항상 고 맙다기 보다는 심통을 부려서 누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37

38 누나는 시집갈 밑천도 스스로 벌었다. 봄철이면 저 큰 산까지 점심을 싸서 마을처녀들과 함께 산나물을 뜯으러갔다. 나물보따리가 집채만 했는데 해거름에 형님이나 아버지께서 당산말 뒤까지 지게를 지고 마중을 갔다. 참나물 고사리 등을 분류해 삶아서 말리고 짚으로 다발을 만들어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모내기철에는 동무들과 조를 짜서 달밤에 모를 쪄 두었다가 낮에는 돈내기 모내기를 해 치웠다. 겨울이면 가짜 속눈썹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우리나라 수출1호 공산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주 어려서 감기치료를 제대로 못한 것이 겨울철이면 콜록거리는 평생 만성질환 천식이 되었다. 제대로 치료 한번 받지 못하고 시집을 갔는데 훗날, 결국 이 천식으로 인하여 누나의 운명이 단축케 되었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누나로선 첫 번째 들어온 중매인 이웃 아지매의 연결로 혼담이 오가고 혼사가 성립되었다. 부잣집 고명딸로 재작년에 큰 형님께 시집오신 형수님과 너무나 대비가 되는... 혼수품 한 가지 제대로 장만 못해주 는 어머니의 한숨 속에 딸 자식하나 치워버리기로 작정이 된 것이다. 멍석 깐 마당에 청실 홍실로 꾸민 초례청이 쳐지고 연지곤지 찍고 족도리 쓴 누나는 예쁘고 고왔다. 단장한 누나의 모습은 처음이라 우리누나가 맞나 싶어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술 빚고 돼지 잡아 조촐하지만 그런대로 떠들썩한 동네잔치를 하였다. 신방이 된 자근방에서 신랑을 달아매고... 문구멍이 뚫리고... 왁자지껄 그렇게 사흘 잔치가 끝났다. "처남, 누나 데리고 갈라카는 내가 밉제?" 집 뒤 동산에서처음으로 자형과 나눈 대화였다. "자형, 우리 누나 꼭 행복하게 해 줘야 합니다. 안그라마 내가 가마이 안 있을낍니더." 신혼여행 따위의 사치는 생각도 못하고 소정리에서 내려오는 첫차를 타고 신혼부부는 떠났다. 평생 살 시집을 향 해... 떠나가는 버스를 보면서 비로소 실감이 났다. 그래, 누나는 영영 시집을 가버렸구나. 가슴속에 휭하니 바람이 불고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38

39 울컥 슬픔이 솟구쳤다. 긴 겨울밤 부엌 장독 속에 담가두었던 고염을 꺼내 먹던 일, 봄날 보리개떡 쪄 먹던 일, 여름, 날마다 삶아 먹던 감 자가 입에 물리면 우물가 돌절구에 찧어 먹던 일, 이 모든 게 더 이상 할 수 없는 추억이 되는가! 내 나이 14살 중2때의 겨울에 누나를 그렇게 시집보내고 어김없이 접동새 우는 새 봄은 찾아 왔다.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 조산부락! 남덕유산 자락 하늘아래 첫 동네. 천년 고찰 영각사의 사하촌! 서상면 소재지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수킬로미터 협곡을 끼고 있기에 설마 이런 곳에 마을이 있을 것인가 의 심이 가는 순간 하늘이 열리고, 넓은 분지 유토피아가 펼쳐지는 영남의 대관령 같은 곳이 바로 상남리 5개 부락이고, 그 중 상남분교 위 작은 예배당과 보건소가 있는 왼쪽마을이 조산부락이다. 누나가 시집간 이듬해, 중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돈 벌러 갈 결심을 하였던 내가 처음으로 누나네 집을 찾아 갔던 것 은 이른 봄날이었다. 버스를 타고 거창읍에서 안의로, 다시 전북여객 전주행 직행을 갈아타고 안내양에게 사정을 해서 육십령 정상에서 내 렸다. 우리 동네도 유명한 산골이지만 당시의 상남리는 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였다. 지금 육십령 정상 휴게소 못미처 황 토마을집들이 있는, 그 뒤로 난 논둑길 3~4킬로를 걸어서 물어물어 찾아간 누나네 집! 돌담을 따라 마을 뒤쪽에 자리 잡은 작은 초가집을 보고 어린 마음에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치밀어 간신히 울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들일 나가서 집에 없는 자형이 미웠다. 갑자기 찾아온 동생을 위해 부랴부랴 밥을 짓느라 좁은 정지에 들어간 누나가 안방과 통하는 작은 샛문을 향해 말했 다. "이산아, 실망했나? 나 괘않타.~ 너그 자형~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나한테 얼매나 잘 해주는지 아나! 나~ 차 암~~ 행복하다. 집에 가서 아부지 어무이 한테~ 말 좀 잘해 주거래이." 시집보내기 전,후의 밤마다 보이시던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의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20세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한 자형은 아래로 두 남동생과 18살이나 차이나는 어린 여동생까지 있었고, 그 와중에 군 대까지 갔다 온 가난한 집안의 가장이였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소작을 부치는 농부였는데 특히나 인근에 집성을 이루고 있는 창녕 조씨들의 종손으로 제사까지 많았으니... 얼마나 한심한 혼처였던가! 그 걸 알고도 어머니는 이런 자리에 누나를 시집보냈더란 말인가!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39

40 "누우야, 그래 잘 살마 되지. 행복하다캉께 좋타. 나도 서울 돈 벌러 갈라칸다." 마침 들에서 돌아오신 자형과 함께 밥상마저 온전하지 못한 두루판에 차려진 눈물어린 누나의 정성을 먹고,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다음에 계속... 그리운 누나 생각-( 上 )- 접동새 울면- 40

41 그리운 누나 생각( ( 中 ) - 덕유산 아라리 :46 덕유산 아라리 정선 아라리 1,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2, 서산에 지는 해는 지구 싶어지나 정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1

42 3, 아침 저녁에 돌아가는 구름은 산 끝에서 자고 예와 이제 흐르는 물은 돌부리에서 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4, 일년일도에 감자 꽃은 삼재팔난을 적는데 대한의 청년남아는 만고풍상을 다 적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5, 산천에 올라서 임 생각을 하니 풀잎에 매디매디 찬이슬이 맺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6, 정선 앞 조양강물은 소리없이 흐르고 님향한 충절은 변함이 없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7,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동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2

43 뒷동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8, 무릉도원 삼산호수에 도화는 만발했는데 짝을 잃은 외기러기 갈곳이 없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9,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10, 네날 짚세기 육날미투리 신들매 짤끈 매구서 문경새재 넘어가니 눈물이 팽팽 도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11, 돌담넘어 밭한뙈기를 건너가면 되련만 얼키고 설키었으니 수천리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3

44 12, 비봉산 한중 허리에 두견새가 울거든 정든님 영혼이 돌아온 줄 알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우리의 노래 아리랑은 지역에 따라 특색과 느낌이 다르다. 밀양아리랑 처럼 빠르고 흥겨운 리듬도 있으나 대부분의 아리랑은 한과 정서가 배어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아리랑이 바로 정선아리랑, 아니 정선 아라리이다. 반도의 등줄기가 아래로 아래로 뻗어 내리던 산맥이 남도 땅에 이르러 크게 용트림을 치니, 덕유산과 지리산이다. 첩첩이 둘러친 산군 속에 들어앉은 우리 고향은 강원도 정선 못지않은 곳이다. 절절한 누나의 일생! 북덕유산 자락에서 나서 남덕유산 아래에 묻히니, 애달픈 정선 아라리 같은 덕유산 아라리가 바로 누나의 노 래가 아닐까한다. 순하고 용하기가 바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 우리자형 조 ㅇ ㅇ! 비록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가난한 농부였으나 타고난 근면함에 예쁜 색씨를 얻었으니 무엇이 더 부러우랴. 그런 자형에게 일대 도깨비바람 같은 사건이 있었으니 신혼 초였다. 때는 3공화국시절, 정부에서는 조총련계 이던 거류민단계 이던 가리지 않고 재일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주선하고 왕래를 자유롭게 하 는 정책을 폈다. 그 틈에, 밀항 후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숙부님의 연락이 오고 조카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당시엔 일본과의 경제적 격차가 많았던 때인지라, 재일동포 친인척을 둔 사람들은 갑자기 복권당첨이라도 된 것처럼 행운을 잡은 듯 한 분위기가 있었다. 조실부모하고 혈육의 정이 그리웠던 자형은 숙부의 말씀만 믿고 기대를 품은 채 고향살림을 정리해서 부산으로 갔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숙부님은 행운이... 아니었다. 2년여를 방황하고 고생만 하다가 결국, 고향으로 되돌아 왔다. 남은 것은 크게 입은 마음의 상처와 누나 품에 안긴 젖먹이였다.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4

45 사람은 믿을 것이 못된다. 속이지 않는 것은 땅이다. 땅을 파는 것만이 천직이다. 마음을 다잡은 두 부부는 무섭게 일을 했다. 맨손으로 다시 시작한 가난한 부부에겐 봄철에 논밭을 갈 소가 없어서... 우리 집 소를 빌려가곤 했다. 난 서울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후에 이야기로만 들었지만,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무거운 슬픔이 있다. 우리 집 중산리에서 상남리까지 그 거리가 얼마인가? 남의 눈을 의식해 안개 자욱한 새벽을 틈타 소재지로 통하는 신작로 길을 버리고 험한 산길인 가래실로 통하는 큰골 재를 넘고, 창 선 월성 황점을 거쳐 다시 등산로 같은 월성재를 넘어 영각사로, 왼 종일 소를 끌고 갔을 애기 업은 새댁을 상상 해 보라! 그 딸의 뒷모습을 애처롭게 바라 보셨을 부모님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소를 다 부리고 집으로 되몰고 오는 일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우리집 막내를 시켰다. 힘들고 바쁜 누나를 위한 어머니의 배려였다. 사람도 지치고 소도 지치는 봄철의 농번기를 그렇게 험한 고개, 월성재고개, 아리랑고개, 인생고개를... 넘고 넘어 살았다. 땅만은 역시 배신을 하지 않았다. 땀 흘린 만큼 소득을 가져다주었고 알뜰하게 살림이 늘었다. 돈이 모이는 데로 땅을 샀는데 비싼 문전답은 엄두를 못 내고 주로 비탈밭들을, 동서남북 사방 팔방 닥치는대로 샀던 모양이다. 어느 해 새로 산 밭 자랑에 따라갔더니, 북상으로 통하는 재 바로아래에 있는, 집에서 몇 킬로미터나 되는 아득한 먼 곳이어서 놀랐 다. 선견지명인가 운이 따라서인가! 산골에도 빠른 변화가 이루어져 농로가 포장되고 농법도 달라졌다. 경운기는 물론이요 자동차를 이용하는 세상이고 보니 거리정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기적 같은 변화가 또 따랐으니 고랭지 채소였다. 어느 선구자 한분의 노력으로 강원도 대관령에서 부터 비롯된 고랭지 여름농사법이 개발되고, 해발 칠,팔백미터가 넘는 누나네 밭은 적소가 되었으니 문전옥답과 비할 바 아닌 소득원으로 변했다. 물론 쉬운 농사는 아니었다. 한포기한포기 정성을 다해 삼복더위에 모종을 하고 팥죽 같은 땀을 흘리는 농사였다. "자형, 올 배추농사 재미 좀 봤습니까?" "아이가! 처남, 금년에는 시세가 안 좋아서 한 오천 쪼매 넘게 밖에..." 세상에나... 안부전화를 드리면 밭뙈기 째 판 배추 값이 적게 받은 게 얼마라고?!!! 가속도 붙은 살림 늘리기에 신이 난 누나네였다. 두 분의 금슬은 다른 사람들의 질투를 받을 만큼 좋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한가해지면 자형은 덕유산에 올랐다. 온갖 산약초를 캐고 독이 오른 뱀을 잡아서 약을 만들어 누나에게 먹였다. 엄청난 크기의 살모사를 잡은 얘기며 몇 십 년 먹은 더덕을 캔 이야기는 영웅담처럼 재미있었다.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5

46 덕분에 누나의 건강도 좋아져서 여자의 몸으로 경운기까지 운전했고, 아이들 셋은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창원의 공립 실업계 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를 제대한 장남은 고향에서, 수도방위사 복무에서 전역한 차남은 서울에서, 막내인 딸은 삼촌들과 고모가 있는 부산에서 각각 독립을 하였다. 경남 교육원이 있는 좌측 골짜기 계곡을 따라 상류를 오른 곳에 누나네의 넓은 밭이 있는데 그곳에 축사를 짓고 장남을 위해 작은 집을 지어주었다. 소에 맺힌 한이 있어서일까! 몇 년간 수 십 마리의 한우를 키우게 했는데 수입 쇠고기 등의 문제로 결국, 축산은 접을 수 밖에 없었 다. 부지런하기가 제 아버지를 닮은 큰 조카는 고랭지 채소농사를 이어받았고 든든한 아들노릇을 다했다. 그런 녀석이 얼굴 값을 했을까! 사고를 쳤다. 농촌청년들의 문제 중 하나가 결혼인데, 축사 옆 숙소에 왠 아가씨가 들락거리게 된 것이다. 그것도 대학물까지 먹었다는 대도시 부 산 출신의 예쁜 아가씨가... 누나는 한편 좋으면서도 한편 불안해했다. "아, 뭐가 걱정이요? 그 놈 재주도 좋네, 지들끼리 좋아서 그러는데 애기하나 만들어 버리고... 결혼 시켜주면 되잖아요." "뭐라카노, 그라마 안 되지. 딸 가진 부모심정이 어떻겠노! 이런 촌구석에 누가 시집을 보낼라카겠노.~~ 저 걸, 오짜마 좋을꼬!" 조카도 울고 아가씨도 울면서 사정을했지만, 기어코 아가씨의 손을 강제로 끌고 부산 본가에 데려다 주었다. 아가씨의 부모님들께는 아들을 잘 못 가르킨 죄를 용서하라며 백배 사죄를 드렸다. 집으로 돌아온 누나는 몇 일을 뜬 눈으로 밤을 세우며 베갯잇을 적셨다. 마을에서도 몇킬로나 외따로 떨어진 깊은 산 골짜기 축사! 그 작은 숙소에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다시 아가씨가 나타났다. 계속...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6

47 그리운 누나 생각( 中 ) - 덕유산 아라리- 47

48 그리운 누나생각( ( 下 ) -고추밭 :26 고추밭 글/임공이산 옛날에... 일곱 살짜리 동생을 데려가려는 어른들에게 울면서 항의를 했던 소녀가 있었답니다. "제 동생 뺏아가지 마세요. 가난해도 배고파도 우리끼리 살거예요." 어른들의 손에 이끌려서 문중의 대종손으로 입양이 되었던 동생은 열다섯 살 철들면서 더 큰 꿈을 위해 결국 종갓집 을 뛰쳐나갔고, 덕유산으로 들어가서 덕유산 같은 스님이 되었답니다. 높디높은 고개 넘어 서쪽동네 착한농부에게 시집을 간 소녀는 평생 땅만 파면서 아들 딸 낳고 살다가... 어릴 때부 터 앓았던 천식으로 그만... 죽었답니다. 죽어서... 덕유산 기슭 고추밭에 묻혔답니다. 잘못된 세상을 번쩍 들어 바로 잡고, 역사 한 페이지를 굵게 썼던 산이 된 스님도, 누나의 죽음 앞에서 통곡을 했답 니다.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48

49 여기, 누나를 향한 애달픔으로 쓴 시 2편을 허락도 없이 옮겨 왔습니다. 고추밭 고추 당초 고달픈 인생살이 고역의 무더위에 고추는 익어가고 누님은 죽어서 고추밭에 묻혔다 효림 시집 [흔들리는 나무]에서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49

50 진달래꽃 누나야 우리는 진달래꽃을 먹고 진달래꽃이나 먹고 해 긴 봄날 주린 배를 채우며 신명이 났지 앞산 뒷산 불타듯 피는 진달래꽃 먹고 효림 시집[흔들리는 나무]에서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50

51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가난! 얼마나 서럽고 한 맺힌 이름인가! 비록 가난했으나 비겁하지 않았고 과욕을 부리지도 않았다. 농업을 천직으로 열심히 땅만 파면서 살아온 일생, 어느 만 큼 살림을 일구고 한숨 돌리려는 때에 누님과 자형 모두 건강에 이상이 오고 있었다. 몸을 너무 혹사시킨 결과이리라. 지병인 천식이 도져서 겨울철과 환절기엔 병원출입이 잦았고, 위궤양이 심한 자형은 음식까지 가려야 했다. 그러던 차에 자형의 신경성 위궤양을 더 악화시키는 일까지 생겼다. 새로 오신 마을 위 영각사의 주지스님께서 사찰소유의 땅들을 정리하던 중에 자형네의 논 3마지기가 절 땅으로 밝혀 져서, 수 십 년간 부치던 땅을 빼앗기게 된 것이다. 아주 오래전 선대에 거래했던 영수증과 문서와 증인들까지 있었지만 등기등록을 하지 않아서 등본상에는 여전히 절 땅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평생 법 없이도 살아오던 자형은 같은 경우의 마을사람들과 함께 거창법원까지 들락거렸으나 해결이 되지 않았다. 궁리 끝에 도움이 될까봐 스님인 형님을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해 왔다. 당시에 형님은 매우 유명해져 있었다. 1994년 4월의 조계종 개혁사건! 그 최고 중심에 있었던 관계로 각종 매스컴을 많이 탔던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만행을 저질렀던 신군부는 그해 또 군화발로 불교를 유린하는 10,27법난을 일 으켰다. 이후 자주성을 잃어버린 한국불교는 급기야, 김영삼 정권의 불법선거자금까지 조성해준 총무원장 의현스님의 3선개 헌이란 파행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에 분연히 일어선 젊은 스님들의 봉거! 한국불교사 기념비적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속가와 많은 거리를 두고 있던 형님이었으나, 나와는 일정 소통이 있어서 당시의 일련 과정을 마음 졸이며 지켜보았 다. 무소불위 권력위에 군림하는 총무원장과 그를 지켜주는 김영삼 정권과의 싸움이었기에 누구나 승산 없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말렸었다. 백골단 전투경찰에 얻어맞고 짓밟히고, 왜곡 편향된 언론들에 채이고...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51

52 천신만고 3개월 여의 사투 끝에 기어코 바위를 깨트린 계란이었으니, 당시의 직함이 [범 승가 종단개혁 추진위원장] 이었다. 이어서 비상종단을 꾸리며 제도를 정비하고 개선하고, 매우 바쁜 활약과 눈부신 역할을 하더니 정상화된 새로운 총무 원 출범과 함께 그 모든 것들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파주 고령산 보광사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보광사 주지소임 마저도 물리고 큰절 뒤로 산중턱을 한참 올라간 수구암이란 작은 암자에서 홀로 지내는 한 가한 때여서 바람도 쐴 겸 함께 고향을 찾았다. "스님 처남, 좀 도와주시게. 우리 창녕 조씨 제사에는 그 논에서 수확한 쌀로 메(제사밥)를 지어 올리라는 아버지 유 언을 받은 유일한 유산이라네. 이제 나도 먹고 살만하니까 다시 금을 쳐 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 땅을 빼앗겨선 안 되 네." 덕유산 골짜기 누님네 집에도 전파는 전달되었으니, TV에서 본 대로 그리 큰일을 해낸 스님이니만큼 시골 사찰의 작 은 문제하나쯤 쉽게 해결해 주리란 기대를 했을 것이다. "안타깝습니다. 제가 종단 일을 관계할 때, 일선 주지스님은 물론이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종단 재산을 건드리지 못 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전국 사찰소유의 부동산현황파악과 전산화등록 제도를 추진했는데 그 여파가 바로 누님네에게 미치는군요. 난 지금은 종단일과는 관계 않고 수구암( 守 口 庵 )에서 이름 그대로 입을 닫고 글만 읽고 있습 니다." 1970년도의 특별 일제정리기간을 놓친 일, 전국에 걸쳐 특히 불교재산에 이런 경우가 많다는 일, 등을 이야기 하면서 법적으론 어쩔 수 없음을 이야기 하였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영각사 주지스님의 재임 중에는 계속 그 땅에 농사를 짓게는 해 준다는 것이다. 인간지사 '새옹지마'란 말처럼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일로 거창 등기소를 들락거리다가 자형에게 상속권이 있는 어마어마한 큰 산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자형은 모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나이 많은 친척이 나쁜 마음으로 자기 앞으 로 빼 돌린 사실이 들통이 난 것이다. 마을사람들과 친척들이 분노하며 응징을 주장했으나, 자형은 땅을 찾았으면 되 었다며 오히려 말렸다. 그 산에선 특히 송이가 많이 생산되며 가끔 임산물을 우리들에게 나눠 주기도 한다. 해마다 고로쇠 한말씩을 우리 형 제들에게 일일이 보내 주고 있다. 우리 형제가 적기나 한가? 이처럼 선하기만 한 분에게 어찌 복이 따르지않으리...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52

53 상남리 조산부락! 남덕유산 주봉을 뒤에 두고 좌로는 월성재를 따라 황석산 까지 이어지는 능선이요 오른쪽에는 육십령을 따라 백운산 으로, 저 아득히 지리산으로 뻗어가는 산맥을 끼고 남향으로 자리 잡은 고원지대 마을. TV프로 '여섯시 내 고향'에 여러 번 소개가 되었고 동절기엔 마을회관에서 공동으로 점심 저녁을 먹는 전통을 전국으 로 퍼지게 한 마을이다. 재산을 모두 마을에 기부하고 돌아가신 분이 두 분이나 있으며, 이 분들의 공덕비가 마을 입구에 세워졌고 해마다 합 동으로 제사를 지내드리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는 마을, 경노사상이 투철한 마을, 동민 모두가 합심하여 자연을 해치 고 산을 망가뜨리는 돌산 개발을 막았고, 폐교된 학교터를 지키며 운동장으로 활용하는 마을, 등등 누나는 마을에 대 한 자긍심이 매우 높았다. 고랭지 채소재배 등으로 서상농협의 돈줄이 될 만큼 평균소득도 높아서 자연히 젊은 사람들도 여럿 살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고장에 대대손손 뿌리내리고 사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가! 마음잡고 농사일의 대를 이어주겠다는 큰 아들이 대견스럽고 함께 살아주는 부산아가씨가 그저 기특하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좋은날 잡아서 혼인식을 올려주고 손자만 얻는다면 더 이상 무얼바랄게 없었다. 그렇건만, 그랬건만... 사람의 운명이란 하늘에 달렸다던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도대체 어디인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누님의 부음을 들었다. 설마 꿈이겠지. 이건 사실이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어. 너무나 허망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급히 내려갔더니 충격 받은 자형까지 거듭 실신을 해서 구급차에 실려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졸지에 닥친 황망한 일에 마을사람들 모두가 함께 슬퍼하며 장례를 치러주었다. 북망산은 그리 멀지 않은 지척인 것을... 서러운 생을 마친 누님은 꽃상여를 타고 마을 뒷산, 누님네 집에서는 가장 가까운 고추밭 뒤쪽자리에 묻혔다. 친정 가는 길, 동쪽으로 난 월성재를 바라보는 곳이다. 누님은 돌아가셨지만 남은 우리들이 더욱 가까이 지내는 것은 누님의 바램 일 것이다. 그 해 여름휴가도 일부러 조카의 외딴 골짜기 집으로 갔다. 누나 생전에도 여름마다 가서 놀았던 곳, 남덕유산 계곡의 최상류 원류인 그곳은 천혜의 피서지이다. 바위를 굴려 물 길을 막으면 천연풀장이 만들어지고, 은하수가 흐르고 별들이 쏟아지는 밤에는 우리들만의 캠프파이어를 벌렸다. 고기를 굽고 감자도 굽고 술을 마시고, 낭만에 취한 아이들은 밤새 노래를 불렀다.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53

54 내 여동생과 남동생네 식구들, 큰 형님네 조카들 또 그 식구들... 적지 않은 인원이다. 우사 밑에 짚단을 깔고 텐트를 치고, 반 야영 비슷한 잠자리가 또 추억을 만들어준다. 뱃속에 누님의 손주를 품고 있던 부산아가씨는 안주인 노릇을 다하면서 함께 놀았는데 자형은 흐뭇해하면서도 산모 가 염려되는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일행들이 늦잠에 빠진 아침 무렵에 자형이 나와 여동생을 불렀다. 마침 진안읍내의 오일 장날이라고 장을 보러 가자고 하셨다. 토종닭 몇 마리를 잡아서 돌아오는 시골길은 도로폭도 무척 넓어지고 포장 잘 된 아스팔트길이다. 장계리를 지나고 논개의 생가마을을 지나 꼬불꼬불 육십령을 돌아 차가 정상에 이르자 자형께서 잠시 쉬어가자고 하 셨다.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홍준교수가 화림동을 가기 전엔 꼭 쉬면서 내려다 본다는 육십령정상, 비행기를 탄 것처럼 까 마득히 장계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자형께서 말씀하셨다. "고랭지채소농사가 도입되기 전, 비탈밭에 부쳐묵을끼 없어서 '부자'라카는 약초농사를 지었었네. 서상 장보다 금을 낫게 받을끼라꼬 지 혼자서 저 장계장까지 팔러 가지 않았던가베... 미련한 사람이 요기도 하지 않고~ 수박 한디를 아아들 줄라꼬 사서 들고~ 이 육십령 고개길을 올라오다가...날은 더운데~ 허기가 져서~ 자갈밭에 굴러 무릎이 깨 져 각꼬... 피가난채로 집에와서는... 그 까짓 수박 그기 머시 아깝다고 울어서... 처남, 내가 참~ 못난 사람이 제?" "...!!" 당시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이어주는 육십령을 넘어 다니는 버스는 직행밖에 없었다. 직행버스 안내양은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가는 시골아낙 장꾼에게 육십령까지 태워주는 선심성 융통을 부리지 않았 을 것이다. "구비구비 육십구비라꼬... 육십령 옆에서 살았으마 육십고개는 넘기야제 겨우 오십고개에서... 와 그리 빨리 가뿌리 노 말이다." 자형도 나도 여동생도, 서로가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먼 하늘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았다. 당해에는 결혼식을 올릴 수 없다 해서 그 다음해에 큰조카는, 부산에서 식을 올렸다. 누님을 대신해 조카의 고모가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54

55 촛불을 켜고 혼주의 자리를 지켰다. 무심한 세월이 빨리도 흘러 누님이 가신지 십년도 훨씬 더 넘었다. 처갓집이 있는 목포에서 결혼식을 올린 둘째조카도 딸을 둔 아빠가 되었고, 이제 녀석들과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눈치를 보아하니 나한테는 어려워하면서도 나하고 비슷한 연배인 지들 이모부하고는 매우 가까이 지내는 모양이다. 누님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많은 만남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많은 변신을 한 부산아가씨! 아니 조카며느리는 세상에나... 딸을 셋이나 낳더니 이제 그만 낳으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기어이 조씨 문중을 이을 떡두꺼비 아들을 낳고 말았다. 자형은 싱글벙글 입이 벌어졌다. 모처럼 계곡 외딴집을 방문했더니 안의에 있는 목욕탕을 간다고 지프차에 네 명의 애들을 태우고 있는 부산댁의 모습속에 누나가 생각난다. 아니, 막내 남동생을 보살피는 세 명의 소녀들에게서도 아득한 그 옛날 동생들을 챙겨주던 누나가 보인다. -끝- 그리운 누나생각( 下 ) -고추밭- 55

56 이구아나 :16 이구아나 글/임공이산 진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사투리 그 자체를 노랫말로 한 '와그라노'를 불렀던 강산에란 가수가 있다. 윤도현 김C등과 친하게 지내는 모양인데 이 젊은 친구들의 자유분방함이 참 부럽다. 이번에 또 강산에가 기발한 가사를 가지고 부른 노래가 '이구아나'이다. 제목만 듣고는 얼핏 독특한 동물을 연상했는데, 이게 구구단외우기, 그 중에서도 제일 쉬운 2단을 줄줄 외우는 것이 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이던가! 큰형님께서 구구단이 인쇄된 책받침을 사다 주셨다. 교과서마저 사지 못해서 형들이 쓰던 낡은 것을 물려받거나 그나마 구하지 못하면 책도 없이 공부를 하던 때라 빳빳 하게 반짝거리는 그 책받침이 너무 좋았다. 그 좋은 책받침을 가지고 놀다보니 소위 선행학습을 하게 되어서, 산수과목의 정규진도에 앞서 구구단을 다 외웠다. 학교공부가 막 구구단 외우기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께서 자신있게 구구단을 외울 사람은 손을 들라고 하셨다. 제일 먼저 번쩍 손을 들었는데, 힐끗 쳐다보신 선생님은 다른 애를 시키셨다. 학교 주변 동네에 살던 그 애는 옷차림도 깨끗했으며 학용품도 비교적 넉넉했고 공부도 나보다 잘했다. 그러나 구구단만큼은 내가 더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영악한 나는 선생님의 편애를 눈치 챘고, 이후부터는 다른 과목에서도 손을 들지 못했다. 언제나 손을 드는 애들만 손을 들었고 선생님은 잘하는 놈이 역시 잘 한다고 칭찬을 하셧다. 손위 동서형님은 대구의 어느 특수학교 교장선생님이다. 이구아나 56

57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딸이 교육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덕담을 해준다는 것이 그만 엉뚱하게 초등학교 때의 경험을 얘기하고 말았다. 이모부, 요즘 애들은 금방 항의를 하거나 부모에게 일러서 난리가 나요. 그렇지만 귀엽게 구는 애는 역시 귀엽지 않나요? 듣고 계시던 형님께서 햇병아리 선생님을 꾸짖으셨다. 모름지기 선생님은 모든 학생을 다 똑같이 사랑해야 한단다. 평생을 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시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은 청와대를 방문해서 국제중학교의 설립계획을 대통령과 상의 했다. 자율형 사립고 특수목적고들도 서민들은 오르지 못할 벽이건만, 이제 중학교까지 벽을 만들겠단다. 뉴스에선 2010년까지는 현재의 3불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했단다. 뒤집어 말하면 2010년 이후에는, 노무현정권이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던 3불 정책을 없애겠다는 것이 아닌가? 전국의 모든 학교를 햑력 평가해서 줄세우기를 하고, 내신 성적과 수능을 없애서 대학자체들이 본고사를 실시하고, 기부금만 듬뿍 내면 일류학교를 막 들어갈 수 있게 한다면. 서민들의 자녀교육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공정택교육감의 공약 중에는 전교조로부터 교권을 지키고, 강남서초지역에 건설예정인 임대아파트를 막겠다눈 말울 공공연히 하였었다. 덕분에 그는 부자들이 주로 사는 강남지역의 몰표를 얻어서 당선이 되었다. 강남이라는 특권의 성을... 임대아파트나 사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겠던가?!! 내 주변 친구들 중에도 전국교직원조합을 무슨 용공좌익단체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한때 [접시꽃 당신]이란 시집으로 장안의 지가를 올린 도종환 시인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는 일선 교사이며 전교조 충북지부장이기도 하다. 한때 억울하게 교직을 박탈당하고 수감생활도 했던 그는 칼럼도 쓴다. 그의 글 몇 편을 읽어보면 교육계의 부조리와 병폐를 고발하며 참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이, [접시꽃 당신]만큼 이나 감동을 준다. 그러니 기득권을 가진 교육계의 관계자들이 보면 그들은 피곤한 존재일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하에서 돈 있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교육마저 돈 있는 사람들 위주의 벽을 쌓아 간다면... 우리의 자식들이!! 이구만 아는 것이 아니라 구구까지 알고 있는데도, 외울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참, 매우, 억울하겠다! 이구아나 57

58 이구아나 58

59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48 방황하는 뻐꾸기 ㅡ3일간의 청춘일기ㅡ 글/ 林 公 移 山 "야 이 새꺄, 너 때문에 아침부터 교무회의에서 교장선생님께 깨졌잖아! 밀린 학비를 가져오던지 부모님을 모셔 오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59

60 란 말이야. 거지같은... 전근 오신지 얼마 안 되는 체육담당 담임선생님께서 출석체크를 하신 후, 교탁앞으로 불러세워서 한바탕 욕설과 함께 출석부로 나의 머리를 내리치셨다. 점심시간 화장실 뒤편 골목. 피우다가 건네주는 친구의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 딱성냥까지 내장 되어있는 4개피 들이 날씬한 담배갑, 양말 속에 감추기에 안성맞춤인 '스포츠'란 특이한 이름을 가진 담배다. 막 입에 대기 시작한 담배 맛을 제대로 알 리 없지만 말아서 피우는 풍년초나 필터 없는 궐련인 파랑새보다는 확실 히 순한 맛이다. 급우들 중 유독 친하게 지내는 두 친구가 위로랍시고 몇 마디씩 해 주고는 있지만 사실은 동병상련의 처지다. 서울로 유학을 하려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1년을 쉬다가 온 모동초교 출신의 친구, 비슷한 사정으로 2년을 꿀리 고 나랑 같이 입학한 모교초등의 선배, 만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친구와 나, 우리 셋은 오래전부터 모종의 거사 를 모의했었다. 보리 베기와 모심기가 겹치는, 부지깽이도 일을 한다는 절정의 농번기 때는 가정학습이란 명분으로 일주일간 방학을 주는 것이 당시 농촌학교의 실정 이었다. 그 기간을 이용하여 학교와 부모님 몰래 동해바다로 여행을 가기로 했던 것이다. 읍내 구경 두어 번 외에는 대처엘 나가 본 일이 없던 나는, 특히 기차를 타보고 싶은 욕심에 별궁리를 다 썼었지 만... 끝내 여행비를 구하지 못했다. 결국 나만 빠지고, 경주를 경유해서 포항까지를 목표로 둘은 용감히 떠났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동대구역에서 깡패들 을 만나 돈만 빼앗기고 집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던 친구들은, 더욱 운 나쁘게 학교에 들켜서, 실컷 매를 맞고 매일같이 한 달간 반성문을 써내고 있던 중 이었다. 오후 첫 수업시간. 공부에 흥미와 의욕을 잃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목인 국어시간이다. 언제나 한복 치마저고리만 입었고 모윤숙의 '렌의 애가'를 낭송하면서 스스로 도취가 되시는 키 작은 여선생님. 보름 전부터 본인 키의 절반은 되는 라디오 겸용 녹음기를 들고 와서 일명 최첨단 학습기자재를 이용한 수업이란 걸 하였 다. 발표력 신장을 고취 시킨다며 녹음기에 붙은 마이크를 이용해서 무엇이던 발표를 하게 했는데, 친구들은 주로 노 래, 웅변, 시낭송, 등을 했다 나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 하던 KBS '이광재' 아나운서의 흉내를 내면서 '엉라이 후터리 뉴스'란 것을 했다. 육성이 아닌 스피커를 통한 목소리를 처음으로 접하면서 재미있는 수업이 되었는데, 선생님은 아예 남녀 합반으로 겨 루기를 하는 특별 수업을 계획했고 오늘은 바로 그 이벤트 수업을 하루 앞둔 최종 리허설! 선생님의 지시대로 진행을 했는데 결과는 매우 좋았다.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60

61 하교 길. 노송이 우거진 척수대 절벽 위. 시퍼런 냇물을 내려다보면서 셋이 앉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낼부터 학교 때려 칠란다. 차비만 구하면 도시로 돈 벌러 갈끼다." "머라카노? 당장 내일 국어시간은 어짤라꼬?" "알끼 뭐시고! 앞으로도 우리들의 우정만은 변치 말자. 잘 가거라." 모동리 친구는 보름재를 향해 가고 우리 둘은 북상 쪽 수승대를 향해 신작로를 걸었다. 뻐꾹~ 뻐꾹~ 보름재 쪽에서 한 마리가 울면 뻐꾹~ 뻐꾹~ 수승대 쪽에서 또 한 마리가 답했다. "먹고 죽을라캐도 없는 돈을 오짜겠노. 누에농사를 두구나 짓고 있응께 수매하고 나마 마카 갚아준다꼬 선상님께 사정 좀 해 보거라." 불쌍한 우리어머니. 깊은 한숨으로 싸주시는 꽁보리밥 도시락을 가방에 쑤셔 넣고 일단 또 집을 나섰다. 지각을 면하려고 다른 친구들이 바쁘게 달려간 신작로를 벗어나 혼자서 천천히 수승대 속으로 들었다. 지저귀는 새소 리와 바람소리 시원한 물소리만 들릴 뿐. 넓은 수승대 경내가 초여름 따뜻한 날씨에 고즈넉이 졸고 있었다.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서 언덕위의 요수정으로 바로 갔다. 벚꽃 만개하고 상춘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던 지난 봄 어느 날. 이 외딴 정자에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술자리 를 벌이고 있었다. 저 쪽 댓바위 아래, 관수루 주변과 소나무 숲속 등에는 각 부락 단위로 봄놀이를 온 농부들이 농주에 취해 꽹가리 북 장구 징을 치면서 흥겨운 춤판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고급술과 귀한 음식을 차려놓고 고운 여자들이 따 르는 술을 마시며 고상하게들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친구는 일행 속 전직 국회의원이었다는 지체 높으신 그 분의 얼굴이나 보겠다고 가까이 갔다. 그때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자유당... 국회의원 마산의거 때 갱상도 도백 해 처묵을때... 학생들을 빨갱이로...더러운 인간...에이 퉤! 퉤!... 또 박정희 밑에서... 장관자리나..." 잔뜩 취한 중년의 남자가 필사적으로 악을 쓰면서 고함을 질러댔고, 우락부락한 수행원들은 그 사람의 입을 틀어 막 고 폭력을 가하며 팔을 꺾은 채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 새끼들아, 뭘 보고 있어? 빨리 꺼지지 못 해!" 구경하던 우리들까지 수행원들의 호통을 들으며 쫓겨났다. 그때의 생각에 깊이 빠져 있는데 젊은 연인 한 쌍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61

62 "어머, 불량학생인가 봐. 여기서 중간학교를 하나보네." 꽃무늬 양산을 들고 한 껏 멋을 낸 여자의 말이다. "그 쉬키 뉘 집 자식인지 불량하게도 생겼네." 경멸에 찬 그들의 눈초리를 받으며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댓바위 아래로 내려와 버렸다. 잘 생긴 거북모양의 바위. 그 위까지 소나무가 자라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가 놀랍다. 그러나 바위 측면을 빙 둘러 빽빽하게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은 흉물스럽기만 하다. 관수루! 휘고 뒤틀어진 나무를 기둥으로 삼은 장인의 경지가 느껴진다. 왁자지껄, 500살이 넘는다는 은하리 은행나무 쪽에서 구경꾼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을 피하여 구연서원으로 숨어들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처마에는 거미줄이 치렁거린다. 옛날 유생들이 글을 읽고 쓰고 공부 하였을 대청마루에 올랐다. 지금 이 시각이면 국어시간쯤 될 텐데... 문득 학교가 그립고... 내가 빠진 국어수업은 어떻게 진행이 잘되고나 있 을까? 걱정도 된다. 서원을 나와서 신작로 길 옆 가게로 갔다. 일본식 2층 목조건물. 이런집을 적산가옥이라 하던가? 마침 어머니는 들일 을 가시고 내 또래 친구가 혼자 지키고 있다. 당시 읍내에서 생산되던 '길로'란 상표의 소주 한 병을 외상으로 사서 2 층으로 올라갔다. 이층창밖으로 내려다보는 수승대는 또 다른 절경이다. 그런데 이집은 누가 지었을까? 친일파 중 누군가가? 아니면 일본인이었을까? 저 신라의 연화공주와 백제의 서동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나누었을 무대요, 갈천선생과 퇴계선생의 교유의 사 연이 깃들어 있으며 요수선생의 학문탐구의 정신이 녹아 있는 곳이 아니던가? 이곳에 별장을 지은이들은... 유구한 역사 유서 깊은 경내에 사쿠라를 심고 그 꽃을 보며 여흥이나 즐기고 했을 것이 아니던가?! 우리학교 건너편 새안골 마을에 거물급 인사 한분이 있어서 일정 때 벌써 '남전'의 전기를 끌어 들였다고 그 동네 사 는 친구가 자랑을 했었다.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새로 부임 오는 군수가 제일 먼저 인사를 왔다고 한다. 동계선 생 고택이 있는 마을 입구 강변에는 아름다운 벚꽃 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것도 아마 친일의 소산이 아닐까? 별 스런 생각을 다해 본다. 우리 고향 이 깊은 오지 산골짜기에도 역사의 흔적은 많이 남아있다. 조선 영조 때 이인좌와 같이 난을 일으켰다던 정희량! 그가 바로 이 고장에서 거사를 준비했다지 않았던가! 반란군을 암행하러 온 어사 박문수를 체포해서 그에게 막강한 군비 를 과시하고 조정으로 되돌려 보내주었다는 그의 배포만큼 은 과히 대단했던 모양이다. 서인들의 횡포와 권력 전형에 맞서 과감히거사를 단행했던 그가 꿈꾼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실패한 반역이니만큼 모든 사실을 감추고 싶어 하겠지만... 보름재나 말무덤 같은 현장이 엄연히 남아 있지 않는가?! 댓바위에 이름 석자라도 새겨서... 남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저리도 많고... 산고 수장! 산은 높고 물은 유장하게 흐를 뿐이로다.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62

63 해방 후. 위로 두형님을 데리고 귀국선을 타고 허겁지겁 일본을 빠져 나오셨다는 우리부모님은 왜 이리 가난하실 까? 건국 후 자유당시절. 무고하게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는 아버지는... 그 후유증으로 뻐꾸기 우 는 이맘때만 되면 자리보전을 하신다. 나는 아버지께서 일본에서의 생활이나 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하시는 것을 본적이 없다. 다른 어른들처럼 대화중에 가끔 일본말을 쓰시는 것도... 한 번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가 싸주신 꽁보리밥 도시락과 함께 소주 한 병을 마셨더니 취기가 올랐다. 뻐~꾹! 뻐~꾹! 더욱 처량하게 들리 는 뻐꾸기 울음이다. 둥지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갈 곳 없는 나와 같지 않은가? 까닭 없이 눈물이 나왔다. 삼년 여 만에 나타난 형은 몰라볼 만큼 많이 변했다. 보릿대 모자로 감춘 빡빡머리. 더운 초여름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걸레쪽 같은 천 조각들을 수없이 깊고 붙이고 누빈 두꺼운 누더기를 걸친 모습이 흡사 그림책 속의 거지스님! 원효대사 같았다. 그동안 형은 첩첩산중 무주구천동. 그 깊고 깊은 골짜기 작은 절 백련암에서 홀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젊은 스님 과 함께 절밥을 먹고 지내었다고 한다. 어찌 어찌 소문을 듣고 찾아간 집안 어른들에게 붙잡혀 온 것이다. 형이야말로... 절대 출가를 해서는 안 될 사람이다. 어린나이에 대종가의 종손으로 양자를 가게 된 특별한 신분의 주 인공이었기 때문이다. 600년 세월을 뿌리 내린 덕유산 남측 또 하나의 구천동같은 갈천동! 골짜기 최대의 집성가문 은진임씨! 효간공 갈천 선생의 15대 종손! 양부께서 별세 하시고 열흘이 넘게 치른 전통장례식을 열 살 갓 넘은 어린 나이의 상주로 의연히 치러내었던 형은, 불천위만 몇 위 씩 되는 문중의 대종손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다. 일곱 살 나이에 종가를 향해 우리 집을 떠나던 날! 우시는 어머니를 오히려 위로하였다던 형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별난 기행이 많았다는 형이었긴 했지만, 그렇게 엄청난 사고를 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학2학년 여름방학중의 어느 날 오후. 냇가에서 미역을 감다가 홀연히 약초꾼들이나 다니던 초행의 산길을 더듬어 그 높은 덕유산을 넘어가서 구천동 백련암으로 입산 출가를 해버렸던 것이다. "형, 나도 학교 때려 치고 도시로 돈이나 벌로 갈거야!" "오늘은 그냥 자고... 내일 생각해 보자."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63

64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벽같이 어딘가를 다녀온 형은 돈을 구해온 모양이다. 그 큰돈을 어떻게 구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 돈을 주면 진짜로 도시로 도망갈 것을 염려했음인지, 아침 식사 후 느지막히 학교 길을 같이 가자고 나섰 다. 아랫동네 탑불리를 지날 때 윗마을에서 내려오는 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지만 타지 않고 신작로를 그냥 걸었 다. 발에 채이는 자갈길 옆 논두렁은 가뭄 탓에 흙먼지를 덮어쓰고 있었지만 새로운 땅에 적응한 나락들은 싱싱하게 푸르르 가고 있었다. 칠 남매 중 네 번째인 형과 다섯 번째인 나였지만, 내 나이 세 살 때 양자를 간 형이었기에 이렇게 단둘만이 걸었던 일은 없었다. 형은 출가의 동기나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에게 지금의 어려움정도는 딛고 일어서 세상을 번쩍 들어 올리 는 장부의 기개를 가지라는 등 엄청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리 길을 걸어 닿은 소재지동네. 솟을 대문이 보이는 종가집 앞을 그냥 지나치고 또 십리 길을 걸었다. 여전히 구슬 픈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 수승대를 지나고 척수대 언덕 밑에 자리한 학교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보릿대 모자를 눌러쓰고 누더기를 걸친 기이한 행색의 젊은 스님의 출현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너 때문에... 어제 국어시간은 완전히 망치고 엉망이 돼버렸어! 국어선생님께선... 오늘 결근 하셨다." "병이라도 나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다." 역시 두 친구가 달려와서 반겨주었다. 서무과에 들러 밀린 4개월 치 학비를 완납하고 교무실로 갔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즐기고 있던 선생님들은 의외의 방문객에 놀라는 눈치였다. "시정의 장사꾼들도 사정에 따라서는 외상 거래를 하는 법이거늘... 학비 몇 개월 치 밀렸다고 학생에게 빚쟁이처럼 닦달을 하는 선생님이 어디 있습니까?" 30대 담임선생님을 향하여 힐난 하는 형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무게가 있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에~교육청 지침이... 에~윗선에서... 임**이는 성실하고 착한 모범 학생인줄 알고 있지만 혹 엉뚱한 일에...에~"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느라 담임선생님은 쩔쩔 매고 있었다. 그런데 불과 3년 전까지 이 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형을 알아보는 선생님들이 있지나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해진 나만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학교 옆 동네 황산리 출신의 선생님 몇 분은 붙박이로 몇 년째 우리학교에서 근무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형은 겨우 2학년 일 학기 까지만 학교를 다녔지만 재학시절, 작은 시골 학교에서는 꽤 유명세를 탔던 모양이었다. 체육시간의 일화 한 토막! 그 시절의 운동복은 하얀 옥양목 바지를 재봉해서 입는 것이었는데 연세 높으신 양모께서 그 옷을 만들어 주시지 못했던 모양이다.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64

65 체육복 준비를 하지 않은 벌을 내리려 하자 웃통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서는... 우리 전통의 노동과 운동복장 이라고 우겼다가 선생님에게 더 혼이 났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교문 앞까지 배웅을 나온 담임선생님과 작별인사를 나눈 형은 껄껄 웃으면서 척수대 언덕길을 향하여 허위 허위 올 라갔다. 누더기를 걸친 그 뒷모습은 이미 도통한 고승처럼 보였다. 더 이상 뻐꾸기 울음은 들리지 않았다. 저녁에 집에 오니 형은 없었다. 그길로 서울 삼각산 도선사 청담 큰스님의 문하에 들어 본격적으로 혹독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국어선생님도 담임선생님도 타계를 하셨다. 평생 다니던 직장 포스코를 퇴사한 모동리 친구는 어찌나 열성 교인이던지 일요일엔 만날 수도 없다. 초등모교 2년 선배는 목사님이 되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근황을 몰라서 안타깝다. 40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 버렸다. 그저께 초파일엔 성남 봉국사에서 불탄일 봉축 법문을 들었다. 주지스님이신 효림스님의 법문은 항시 울림이 크다. 산처럼 보이는... 형님이시다. 방황하는 뻐꾸기 -3일간의 청춘일기- 65

66 서노인 :36 서노인 글/ 林 公 移 山 앙무들 거대한 덕유산에서 뻗쳐나온 여러 산줄기중, 남쪽으로 향한 지류 속에 깊숙히 들어앉은 우리 마을은 온통 산으로 에워 싸여있다. 앞뒤 좌우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은 모두가 덕유산의 가지에 불과하므로, 독립된 이름을 가진 산은 하나도 없다. 겨우 무슨 봉, 무슨 골로 불려 질 뿐이다. 그 중 봉이 가장 웅장하고 골이 깊은 곳이 앙무들 봉이다. 큰 도랑 징검다리를 건너서 깔딱 고개를 넘고, 크고 작은 밭들을 지나 산의 깊은 안부로 들어가면 영길이 할아버 지께서 심으셨다는 살구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살구나무바탕' 즉 앙무들 산의 베이 스캠프다. 겨울엔 나무를 하고, 여름에는 소를 먹이고 풀을 베는 일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동북쪽으로 난 가파른 사면 길을 타고 한참을 더 올라가면 '세질래기바탕'이 나온다. 왼쪽은 청다라지, 오른쪽은 속 등, 바로가면 정상으로 향하는, 삼거리쉼터라는 뜻으로 전진캠프에 해당되는 곳이다. 어느 해 늦가을, 초가지붕 이엉감으로 쓸 억새를 베기위해 정상까지 올라갔었다. 그곳은 그리 넓지 않은 평전으로 잦은 산불과 거센 바람 탓인지 키 큰 나무는 없었고, 은빛 억새꽃들이 바람에 물결 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머리를 들어 서북쪽을 바라보니 상봉 중봉 하봉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북덕유산이 손에 잡힐 듯 하고, 못( 池 )봉, 삼봉산, 대덕산으로 뻗치는 산맥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보였다. 산 너머에는 고제면 물 서노인 66

67 안실이라는 동네인데, 마을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결에 소우는 소리 요롱소리가 들려왔고 미풍에는 밥 짓는 냄새가 묻어 있었다. 세질래기바탕과 이 정상의 중간쯤에 해당 되는 곳, 산의 8부능선 가파른 비탈에 토굴을 파고 사는 신비한 노인이 있 었는데, 모두들 그냥 서노인이라고 불렀다. 양지바르긴 했지만 워낙 험준한 곳이라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고, 토 굴 앞에 손바닥만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약초를 캐면서 살아가는 베일속의 노인이었다. 노인이 약초를 담은 망태기를 메고서 어쩌다 다녀오는 장날에는 동네 주막에서 밤이 이슥하도록 말술을 마셨다. 동네 의 다른 사람들과는 인사정도만 하고 깊은 대화를 잘 나누지 않았지만, 젊어서 만주로 일본으로 유랑생활을 하셨던 우리아버지와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안주삼아 즐겨 대작을 했다. 술이 거나해지고 밤이 깊어졌으니 그만 주막에서 주무시고 날이 밝으면 올라가시라고 극구 말려도 자신을 태워가려 고 큰짐승(호랑이)친구가 살구나무바탕에서 기다리고 있노라면서, 비틀거리면서도 깔막고개를 올라갔노라고... 고집불 통 노인이라며 걱정하시던 아버지의 말씀을 여러 번씩 들었다. 봉우리 정상부에서부터 속등까지는 단풍이 붉게 타 내려오고 있었지만, 살구나무바탕 주변의 나무들은 아직 푸른 잎 을 가지고 있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이맘때면 머루나 다래가 알맞게 익는 때이다. 산열매들도 해거리를 하는데, 금년은 열매가 풍성히 열리는 해. 어느 골짜기 어느 곳에 머루가 많이 달리고, 어느 나무를 타고 오른 덩굴에 다래가 주렁주렁 하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 다. 높은 절벽을 끼고 있는 골짜기. 사람들의 발길이 좀체 닿지 않는 앙무들 물밭골에는 사철 빛이 들지 않는 곳이다. 비 가 오거나 궂은 날에는 능구렁이가 황소울음을 우는 그곳에 머루를 따러 들어갔다. 개울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무엇을 굽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산토끼라도 잡아서 굽고 있는가? 몰래 숨어서 훔쳐보 기로 했는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노인이 말했다. "그기, 옥산이 아들놈 아니냐? 가까이 오지 말거라." 깜짝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뭐~뭐하고 계시는데요?" "허, 맹랑한 놈! 옻을 내리고 있었느니라. 연기를 쐬면 독이 오르니까... 쪼매마 기다리거라. 다아 됐느니라." 초등학교를 막 입학했던 해, 긴 옻나무가지를 꺾어서 남의 밭의 밤을 따다가, 온몸에 심한 옻이 올라서 고생을 했던 일이 있었다. 달리 약도 없어서 생갈치의 비늘을 환부에 바르고, 생버들을 아궁이에 태우면서 굴뚝속에 들어앉아 가 마니를 덮어쓰고, 매운 연기를 쐬어가며 치료를 했었다. 그 이후에는 면역이 생겨서 옻이라면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가을철을 맞아 독이 가득 오른 옻나무가지를 구워서 새까만 옻진을 사발에 받쳐 내린 노인은, 양재기 가득 따른 소주 서노인 67

68 에 옻진을 풀더니 벌컥 벌컥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냇가에서 갓잡은 가재를 꼬챙이에 끼워 옻 내리던 모닥불에 굽더니, 안주삼아 통소금에 찍어 먹었다. "속 옻이 오르마 큰일 난다카던데 할아버지는 괜찮으세요?" 구운 가재 몇 마리를 얻어먹으면서 물어 보았다. "월동을 하기 위한 준비란다. 몸속 오장 육부에 옻칠을 입혀 놓으면 어떤 보약보다 좋은 법이다." 실지로 노인은 엄동설한 산속생활에도 홑바지만 입고 지낸다는 소문이 났었다. 삼돌이 이듬해 추석 이튿날. 점심을 먹고 친구 삼돌이와 버섯을 따러 산에 올랐다. 삼돌이는 나보다 세살이나 나이가 많지만 제일 친한 친구다. 워낙 불우한 환경으로 태어나서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어려서 부터 동네의 부잣집에 꼴머슴으로 들어가서 지금까지 그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있다. 너무나 착하고 순하기 만 한 그를 다른 아이들은 바보라며 무시하고 놀려댔지만, 나는 이름을 쓰는 법 정도의 한글을 가르쳐 주면서 다정하 게 대해주었다.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베러 같이 산에 오르면 친형처럼 나를 도와준다. 삼돌이의 재주는 어 찌나 비상하던지, 그가 꾸린 나뭇짐은 좌우 대칭이 정확하고 무게중심을 절묘하게 잡아서 지고 가기가 한결 수월하게 만들었다. 그가 꾸린 풀 짐은 풀어지는 법이 절대 없고, 균형 잡힌 모양은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훗날 내가 등산학교에서 독도법과 짐 꾸리기를 배울 때, 같은 부피 같은 무게의 짐도 어떻게 배낭 속에 꾸리는가가 중요하고, 경사진 산길을 걸을 때 어떻게 발걸음을 걷는가의 중요성을 배웠는데, 모두 이미 삼돌이로부터 익혔던 것 들이었다. 버섯을 따러 같이 나선 것도, 기실 난 그냥 따라만 온 것이다. 특히 송이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나 같은 얼치기 초보자에겐 발 앞에 있는 송이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재수가 좋으면 국더더기버섯 구름버섯 싸리버섯 정도 몇 개를 간신히 따곤 할 뿐이다. 서노인 68

69 삼돌이의 송이버섯을 따는 재주는 또 어찌나 비상하던지 버섯이 있는 적소를 훤히 꽤 뚫고 있었다. 송이가 나는 장소는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처럼, 송이밭의 위치를 노출시키기를 꺼리는 삼돌이의 눈치 때 문에 살구나무바탕에서 각자 헤어졌다. 갓이 피어버려 상품가치가 떨어진 것이나 상처가 난 것 몇 개라도 얻자면 그 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몇 십년 이상 된 소나무들이 잘 가꾸어진 상낭모티와 서당*깍끔 쪽으로 삼돌이가 가는 것을 보고서, 천천히 정상 쪽 을 향하여 걸었다. 세질래기바탕 언덕 운치있게 자란 소나무 그늘. 바위위에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왠지 방해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살금살금 지나갔다. 무심코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노인의 토굴 앞까지 다다라버렸다. 호기심도 발동하고 물이나 떠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토굴을 들어서는데, "어서 오너라."하며 노인이 마중을 하는 것 이 아닌가? 이런 귀신이 곡할 노릇이 있나? 저 아래 바위위에서 가부좌를 틀고 좌선삼매에 빠져있는 것을 분명히 보 았는데... 어느 사이 어느 길로 먼저 와 있단 말인가?! "버섯 따러 왔다가 목이 말라서 물 좀 마실락꼬..." 토굴 옆 절벽엔 자연동굴이 파였고 그 바위틈에서 맑은 석간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걸 마셔라." 물대신 노인이 내미는 사발에 담긴 약물을 마셨더니 쓰고 달면서 온갖 형언키 어려운 향이 그윽한 약초 즙이었다. 땀을 식히고 갈증이 풀리니 기운이 생기고 정신이 맑아졌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니 언덕을 이용하여 굴을 파고 입구 쪽으로 기둥을 세워 지붕을 이었고, 앞에는 작은 나무 가지 와 억새를 엮어 만든 문을 달아 놓았다. 굴 안이 궁금했지만 들어가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풍성한 가지를 단 자작나무 그늘아래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걸터앉았다. 시야가 시원하게 전개되는데, 오른쪽엔 북덕유산 남으로는 금원산과 기백산 지재미가 펼쳐 보인다. 어린 눈에도 이곳 이 범상치 않은 명당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대접할게 없어서..." 잘 익은 머루와 다래가 가득담긴 소쿠리를 내어 오셨다. "할아버지는 이런 산속에서 혼자 사시면 외롭고 무섭지 않으세요?" "헛! 그놈, 무섭기는... 든든한 친구가 지켜주는데..." "친구요? 누군데요?" "껄껄껄, 내 친구는 호랑이다! 아주 착한 놈이지." 실없는 농담이라는 생각에 더 질문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이 바위 잘 생겼군요. 어디서 옮겨 왔나 보지요?" "아! 그 너럭바위 말이냐? 얼마나 잘 생겼느냐? 바위에게도 제 할일과 제 자리가 있는 법이다. 내가 올라서 마음을 닦고 참선을 하는 곳이다. 저 언덕에 있던 것을 옮겨다가 좀 다듬기도 했지." "와, 이렇게 무거은 바위를 어떻게 혼자 옮겼는가요?" "연암선생과 다산선생의 지혜를 빌리고 내 친구가 힘 좀 썼단다. 책속에는 모든 지혜가 다 있거던." 서노인 69

70 " 그런데 이런 산중생활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맹랑한 질문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시더니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두희에 의한 백범 선생의 시해사건이 터지고, 국민장으로 치른 장례식이 끝난 뒤 세상을 한탄하며 입산을 하였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국치를 당한 것도 우리민족의 무지와 어리석음이었다는 것, 독립을 하기위 해 수많은 피를 흘렸지만 결국 외세의 힘으로 해방을 맞았고,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남과 북으 로 갈라진 채 건국을 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고, 통일의 길은 점점 멀어지고, 군인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여 전히 친일과 외세를 등에 업은 무리들이 떵떵거리는 세상이 잘못되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세월 많은 댓가를 지불 하고 많은 국민들이 깨우쳐한다는 등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데요?" "삼돌이 같은 아이도 당당히 권리를 누리는 세상, 도둑놈들이 큰소리치지 못하는 세상!" "삼돌이는 글도 읽지 못하는데요." "나뭇군 '혜능'은 일자무식이라도 부처님의 법통을 이어 부처님이 되었느니라..." 무슨 말인지 이해는 잘 되지 않았지만 홀로 산에 사는 노인이 세상모르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경외감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산을 내려가겠다고 일어섰다. 노인이 내 망태기 가득 송이를 담아 주면서, 잘생긴 도라지 두 뿌 리를 이끼와 함께 한지에 곱게 싸서 깊숙이 넣어주었다. "너거 아부지 갖다 드리거라." 산을 내려오니 큰 또랑 징검다리에서 삼돌이가 발을 씻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야! 너 어데서 송이를 그렇기 많이 땃노?" "어, 중상골 쪽에 갔디마는 버섯이 쎄 빌렀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삼돌이와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잘 가거라. 내일 또 보자 부처님아." 노인의 죽음 서노인 70

71 산간 골짜기의 짧은 가을이 지나 겨울의 문턱을 넘어서고, 북쪽 덕유산 줄기 큰 산들의 머리에는 벌써 하얗게 눈 을 이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집에서 키우던 세퍼트 잡종인 개가 원인도 모르게 죽어있었고, 아버지의 방문 앞 마루에 노인의 벙거지가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큰 변고가 있는 모양이라며 허겁지겁 집을 나섰던 아버지는 살구나무바 탕에서 가부좌를 튼 이상한 자세의 주검을 발견했다. 마을의 젊은 장정7~8명과 함께 조촐한 장례를 치러 주고 돌아오신 아버지는 잔뜩 취하신 모습이었다. "그 참,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뜰 줄이야...며칠 전 주막에서 했던 그 말이 유언이란 걸 눈치 챘어야 했는데...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네. 다행히 땅이 깊이 얼지는 않아서..." "아이고 무서버라. 큰짐승하고 같이 산다 카디마는 그기 진짜였던 가베!" 호랑이가 우리 집을 다녀가면서 겁에 눌린 개가 질식사 했나보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해가 바뀌고 봄이 돌아왔어도 서노인이 살던 토굴이 무섭다고, 세질래기 바탕의 위로는 좀체 아무도 올라가지 않 았다. 산길이라는 것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으면 금방 풀과 나무가 자라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 을도 가고 또 겨울의 문턱을 넘어선 어느 날. 삼돌이와 나는 소나무를 도벌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친구들과 어울려 화투치기 내기를 하거나 술을 마시다 보면 동네주막의 가게에 외상값이 늘어나게 되는데 우리처럼 가난한 집에서는 달리 용돈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 필요한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나무를 도벌해서 파는 방법이 제일 쉬웠다. 길이 여덟 자 정도로 베어낸 적당한 굵기의 소나무는 윗부분의 지름을 재어서 사이수라는 단위로 계산을 하였고 현 금으로의 환산이 용이했다. 소나무를 여러 개 베어다가 신작로 옆 거름자리에 묻어 두고 있으면 밤중에 나무를 사러 읍내에서 트럭이 올라오곤 했다. 산마다 깍끔마다 주인이 있었기에 주로 높은 꼭대기 부분의 국유림의 나무를 도벌했다. 산주들은 허가를 내어 대대적인 벌목을 하는 산판을 벌였다. 나무의 수송방법으로 산에서 신작로 옆까지 와이어를 매 고 나무를 묶어 도르레로 달아 내렸다. 자연 나무를 굴리고 부딪치고 하다보니 상처가 많이 나게 되었고, 이에 비해 서 도벌한 나무는 상처 없이 곱게 운송이 된 만큼 값이 더 나갔다. 그날따라 날씨가 심상치 않았지만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앙무들 정상부의 잘생긴 소나무 한그루를 자르고 다듬어서 하산을 시작했다. 톱을 자로 삼아 여덟 자 길이로 자른 나무의 지름은 약 팔인치! 5백원 이상은 너끈히 받을 곧게 생 긴 나무였다. 거세지는 바람을 따라 휘날리던 눈발이 이내 함박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서두르다가 그만... 나무뿌 서노인 71

72 리에 걸리면서 짐을 진채로 고꾸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겨우 일어났지만 다리를 겹지르면서 삐이고 인대가 늘어났는지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 했다. "삼돌아, 도저히 걸을 수가 없겠다. 이걸 오짜면 좋겠노?" 고통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다가 겨우 일어섰다. 날씨는 더욱 바람이 거세지고 눈은 점점 많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가까운 노인의 토굴이 생각나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삼돌이가 자기 지게에 올라타라고 권했지만 싫다고 사양했다. 내 지게와 톱은 한쪽에 세워 놓고 지게작대기에 의지한 채로 겨우 토굴을 찾았을 때는 발이 묻힐 만큼 눈이 쌓였고 어둠마저 밀려 오기 시작했다. 토굴의 밤 비틀어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오랫동안 비워놓았던 굴 안이라 퀴퀴한 곰팡냄새가 가득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서 관솔가지를 태우니 시야가 밝아졌다. "안에 들어가 쉬고 있거라. 금방 뜨겁게 될끼다." 삼돌이가 풍년초를 한가치 말아서 불을 붙여 주며 말했다. 방에는 노인이 쓰던 호롱이 있어 불을 키고 심지를 올렸더니 고소한 산초기름 냄새가 가득했다. 나무로 얼기설기 짠 벽장 속에는 이부자리와 단촐한 살림들이 정리되어 있다. 엉성하게 만든 키 낮은 책상 위에는 고서 몇 권이 쌓여 있다. 모두가 한지로 엮은 누렇게 퇴색한 책들이었다. 먼지를 털고 맨 위의 책 한권을 펼쳐보았다. 虎 步 秘 法 (호보비법)이란 제목이 있고 내용은 호랑이의 걸음걸이를 그림으로 나 타내면서 따라 걸으면 쉽게 산길을 간다는 내용들로서 한글로 된 해설도 곁들여 있는 만화책 같은 것이었다. '증산도개벽실제상황론' '토정유고' '열하일기' '한단고기 桓 檀 古 記 ' 'ㅇㅇ 典 ' 'ㅇㅇ 經 ' 'ㅇㅇ 集 ''ㅇㅇ 書 '등의 책들 도 있었 지만 한글로 토를 달지 않은 것들은 읽을 수가 없어서 제목도 알 수 없었다. 책상 아래에는 지필묵이 정리되어 있고 그 옆에 세로로 쓰인 편지글이 있어 읽어 보았다. "젊은 친구에게 그대의 방문은 인연의 끈이로다. 서노인 72

73 놀라지 말라. 피하지 말라. 장부의 기개로 운명을 개척하라. 책속에 길이 있도다." 이건... 필시 나에게 쓴 노인의 편지가 아닌가! 이 책들을 나에게 주는 것이란 말이지? 등골이 오싹하고 두려움이 엄습했다. 구들이 차츰 뜨거워져 오는데 삼돌이가 조용히 불러서 부엌으로 나갔더니 사립문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분명 바람 때문은 아니다. 누굴까? 관솔불을 치켜들고 "누구요?" 고함을 치면서 문짝을 밀쳤다. 눈발과 함께 차가운 바람이 확 덮쳐왔다. 깜깜한 어둠속에 관솔불이 춤을 추면 그림자도 너울거렸다. "이게 뭐지?" 비릿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허연 물체가 자작나무 아래에 있었다. 머리끝이 쭈볏 서면서 모골이 송연해졌다.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식지 않은 두 마리 토끼가 목을 물려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엄습하는 무서움도 컸지만 배고픔도 참을 수 없어서 토끼를 부엌으로 들고 들어왔다. 삼돌이의 솜씨는 익숙했다. 찬장에 있던 부엌칼을 찾아서 토끼를 천장에 달아매고 껍질을 벗겼다. 두 마리 토끼의 내 장은 다시 자작나무 아래에 버렸다. 노인이 쓰던 부엌살림에는 소금 간장 된장들이 일부는 곰팡이가 생겨 있기도 했 고 일부는 먹을 수 있을 만큼 상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이게 뭐고?" 토막 낸 고기를 꼬챙이에 굽고 있는 동안 삼돌이가 나뭇단 속에 숨겨져 있던 술 단지를 찾아내었다. 흙과 한지와 밀 납으로 잘 봉해진 술독의 뚜껑을 여니 향긋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사발로 눌러가면서 걸러낸 맑은 술은 독특한 맛이 혼미 되어 도저히 말로는 표현 할 수도 없었다. 다리가 아픈 것은 일찌감치 잊어버렸다. 장작이 타고난 잉걸불에 지글지글 구운 토끼고기를 왕소금에 찍어서 안주 삼 다보니 술 한 동이가 바닥이 나버렸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칼을 에는 바람소리가 우~ 웅 우~웅 나무들을 울리고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에 쓰러지고 말았다. 안개가 자욱한 산등성이 산죽 밭이 갈라지면서 거대한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등에 탄 노인이 인자한 웃 음을 지으며 자기 뒤에 올라타라고 했다. 노인의 허리를 붙들자 호랑이가 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바위산에 올랐다. 사자모양을 한 바위의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꽃상여를 따라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었다. 수 천개의 만장이 숲을 이루고 춤추던 사람들은 곡을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어디선가 커다란 부엉이가 날아와서 하늘을 한 바 퀴 돌더니... 노란 꽃잎들이 하늘을 덮었다. 나풀거리던 꽃잎들이 떨어지고... 빛을 내면서 수없이 많은 촛불이 되 었다. 촛불은 점점 더 밝아지고... 노란 금빛이 되고, 푸른 초원위에 원추리 꽃으로... 나리 꽃으로 변했다. 서노인 73

74 "가치로 따질수 없을 만큼 소중하고 진귀한 고서 몇권과 그동안 내가 모아온 귀한 물건들을 옻칠한 괘에 넣어서 잘 묻어 두었느니라. 상당한 값을 할 것인즉, 몇 십년이고 기다리다 때가 되면 그 물건들을 꺼내어서 요긴하게 사용 하라. 오백만 사람들의 눈물로 쓴 비석을 보면 답을 찾으리니! 세상을 밝히는데 이바지하라. 항시 깨어 있으라!" 아버지께 갖다 드리라며 작은 보자기를 하나를 안주머니에 넣어 주고서 호랑이 등을 탄 노인이 홀연히 안개속으로 사라졌다. "야, 그만자고 일어 나거라. 눈도 그치고 햇살이 좋다 아이가!" 삼돌이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니 해가 많이 솟았다. 그렇게 많이 취했었는데 머리는 맑았다. 발에 통증은 있지만 참을 만 했다. 첫눈치고는 제법 많이 내린 눈이었다. 간밤에 버린 토끼의 내장은 사라지고 없었 다. 큰 짐승의 발자국이 눈위에 도장을 찍으며 산위로 뻗어 있었다. 작대기를 짚으면서 하산을 시작하는데... 길을 따라 흙과 모래가 뿌려져 있었다. "이상하다. 누가 미끄럽지 말라고 일부러 뿌린 것 같다." 삼돌이가 앞장을 서면서 담배를 하나 붙여주었다. 살구나무 바탕 아래 평지에 다다르니 눈이 녹아 질척거렸고 더 이상 흙도 뿌려져 있지 않았다. 산 쪽을 향해 뒤를 돌아보는데... 살구나무 바탕 위 눈밭으로 긴 꼬리를 흔들며 거대한 호랑이의 뒷 모습이 사라지고 있었다. 산불 집에서는 내가 친구네 집 사랑방에서 자고 온 줄로만 알고 있었다. 신기한 것이 속주머니 속에 작은 보자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 주머니를 드리면서 간밤의 이야기도 했다. "가만 있거라. 그제가 할머니 제삿날이었으니...맞다. 어제는 바로... 서노인의 기일이었구나! 정말 신비한 일일세! 내가 무심 했구나." 날을 꼽아 보시던 아버지는 첫제사를 몰라 본 것이 미안하신 모양이었다. 서노인 74

75 "이건, 웅담 말린 것이 아니냐? 이 귀한 것을... 도대체 얼마나 큰 곰이기에 이리 큰 쓸개를 달고 있었단 말이냐." 새까맣게 쪼그라진 웅담은 볼품이 없었지만 아버지는 소중히 다루었다. 다리가 좀 나으면 눈길을 더듬어서라도 지게와 톱을 찾아오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니다. 낡은 것들인데 그까짓 것들 버려버려라." 사흘 후, 아버지는 아래동네 면소재지의 기연장에서 반짝반짝한 새 톱과, 장인이 걸었다는 멋진 새 지게를 하나 사오 셨다. 주막 담배집 외상값의 다섯 배는 되는 큰 용돈도 주셨다. 설을 쇠고 해가 바뀌었다. 농촌의 정월은 한 달 내내 명절처럼 지낸다. 정월 대보름날 삼돌이는 세경을 갑절이나 더 받기로 재계약을 했다고 좋아했다. 다리도 완전히 나았고 눈도 녹아서 모레쯤엔 토굴을 올라가자고 삼돌이와 약속을 했다. 마을 앞 논들에 달집을 만들고 청솔가지를 집채 무더기만큼 쌓고서 불을 붙였다.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달집 거슬르 기를 하는 것이다. 타다다닥!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솔가지가 타고 불꽃과 불똥이 하늘 높이 날았다. 휘영청 밝은 달 이 연기에 가렸다. 이윽고 달집이 다 타버리고 붉은 숯불만 남았다. 그런데 어디선가 검은 연기가 몰려와 더욱 달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앙무들이었다. 산꼭대기에 거대한 산불이 났는 모양이다. 산 넘어 동네 물안실에서 난 불이 산을 넘어 온 것일 거라고 사람들이 수군대었다. 이튿날까지 산은 타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면사무소 산림계장이 올라오고 지서장과 순경들도 올라왔다. 세질래 기 바탕쯤에 호를 파고서 맞불을 놓아야 한다느니, 전 면민이 나서야 불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느니 의견들만 분분한 가운데 날이 또 저물었다. 여전히 달은 연기에 가리고 매캐한 불 냄새가 마을까지 내려왔다. 그날 밤 또 꿈을 꾸었다. 활 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 노인이 웃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간밤에 꽤 많은 겨울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세질래기 바탕 부근까지 내려오던 산불은 저절로 꺼져 버렸다. *깍끔: 산의 주인에 따라 구획이 정해지는 단지. 논이나 밭의 배미나 떼기에 해당하는 단위의 경상도식 표현. 끝. 서노인 75

76 입춘첩 :26 입춘첩 立 春 帖 꼭두새벽 어스름에 뒷 새미 물 길어 정한수 한 사발 정지간에 올려놓고 아이야, 동트기 전에 사립문 활짝열고 삽작길 비질해라 갈밭만당 넘어 웃탑불 모리 돌아 오시는 귀한님 봄님 마중하세 뒤주바닥 긁어서 쌀밥 한 솥 앉히시고 묵은 나물 무쳐 담고 술한동이 걸러내소 입춘대길 건양다경 부귀안락 수비금석 복록정명 장락만년 화신양소 광풍동춘 입춘첩 76

77 화기치상 장락무극 춘화태탕 발상치복 귀한손님 큰손님 경건하게 영접하세 ****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 春 大 吉 建 陽 多 慶 입춘에 크게 길하고 힘이 넘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으소서 부귀안락 수비금석 富 貴 安 樂 壽 比 金 石 집은 부유하고 몸은 귀하여 편안하고 즐거우며 수명은 쇠나 돌처럼 끝이 없으소서 복록정명 장락만년 福 祿 正 明 長 樂 萬 年 행복은 공명정대하여 까닭 없이 오지 않으니 큰 즐거움이 오래 가소서 화신양소 광풍동춘 和 神 養 素 光 風 動 春 정신은 부드럽고 뜻은 꾸밈없이 기르니 비온 뒤의 맑은 날에 부드럽게 부는 바람이 봄을 부른다. 화기치상 장락무극 和 氣 致 祥 長 樂 無 極 음양이 고를 때 반드시 상서로운 일을 이루고 즐거움이 끝이 없도다. 춘화태탕, 발상치복 春 和 駘 蕩 發 祥 致 福 봄은 따뜻하고 한가하니 상서로움이 생겨 행복을 부른다. 입춘첩 77

78 거꾸로 읽는 한국현대사 :23 거꾸로 읽는 한국현대사 외환위기 때 거꾸로 간판을 붙였던 음식점들이 여럿 있었지. 때로는ㅡ 거꾸로도 서고 뒤집어도 보고 역발상도 필요한 법. 하지만ㅡ 작금, 거꾸로 가는 나라가 심히 걱정스럽네. 거꾸로 된 것은, 다시 거꾸로 해야 바로 서는 것. 어떤 賢 者 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 란 책을 내어 역사를 바로 잡았었지. 아!ㅡ 거꾸로 읽는 한국현대사 78

79 거꾸로 읽는 한국현대사 는 또 얼마나 두껍게 써질 것인가?! 거꾸로 읽는 한국현대사 79

80 시인 임백종목사님 :27 시인 임백종목사님 글/임공이산 작년에 거창군청에서 전국의 향우들을 대상으로 군정발전을 위한 제안과 고향에 대한 각종의견발언 및 추억을 회상하는 시, 수필, 사진 등, 기타 글과 이야기를 모집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그냥 잊고 지내었습니다. 그런데 책으로 발간하려고보니 향우들의 저조한 참여로 자료가 부족해 애로가 있다는 우편물이 집으로 왔더군요. 해서 동문회카페와 개인블로그에 실었던 글 중에서 졸작 '깨어진 기름병' 외 2편을 별로 손보지 않은 채 군청 담당자에게 메일로 보 내었더니 59명으로부터 출품 받은 69건의 글을 엮었다면서 <고향생각>이란 책이 지난 연말에 배달되어왔습니다. 책의 목차를 보다가 그 속에서 아주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제 아련한 유년의 추억 한 자락에 깊이 자리한 고향 이웃집 형님이시며 현재 경북 청도의 부야교회 담임목사로 재직 중이신 임백종 목사님이십니다. 당시의 시골 동네에선 흔치 않은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셨는데 그만 예수쟁이가 되어버렸다고 반향이 대단했었답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금년 쯤 칠순이 되시며, 우리 둘째형님보다 두 살인가 위이시지만 막역한 사이의 교우로서 두 분의 우정을 익히 시인 임백종목사님 80

81 알고 있는터에, 훌륭한 작품까지 감상하게 되니 감동이었습니다. 즉시 두서없는 편지를 드렸더니 사랑어린 답장은 물론이요 <고향4>라는 자작시집까지 동봉해서 보내주셨군요. 질책을 각오하고 그 분의 작품 몇 편과 편지일부를 싣습니다. 선홍뫼 꽃 詩 / 임백종 갯가밭 넘나드는 낮은 하천길 호박꽃 뫼꽃 피었네 선홍뫼 긴 꽃자루 손에 잡고 오요오요 거기 강아지 마중 나오면 옛 할머니 보이고 꼬막손이 예쁘던 첫사랑도 보인다. 저 멀리 파란 산 파란 하늘 선홍뫼 꽃 입 가까이 오요오요 오요요 시인 임백종목사님 81

82 장독에 비친 세상 詩 /임백종 우물가에 윤기 흐르는 펑퍼짐한 항아리 빗물 가득 담아 넓고 둥근 세상 비추는 커다란 거울 늘어진 감나무 가지 갓 피어난 새잎 하얀 아그배꽃 골담초꽃 해묵은 풍선갈 빨래줄 죄다 담았네 보슬비 맞아 찡긋찡긋 하는 듯 비 맞은 흔적 없고 감지 못할 바람결 소금쟁이 헤엄치듯 헤엄쳐간다. 나는 언제까지 너를 바라보며 이 경이로움 텅 빈 가슴에 다 채울꼬 시인 임백종목사님 82

83 징검다리 詩 /임백종 아림들 아림천 유서깊은 고향읍 까만 교복에 모자 쓰고 활보하던 이곳 여기 잠시 들른 시간 소읍의 장날 정오 옛다리 아래 꽃시장 수백리 여행길 왠 꽃이냐고 그래도 난 꽃이 좋아 처음보는 금작화 사서 들고 정한 시간 늦을새라 발걸음 재촉한다. (...) 돌다리 한걸음 한걸음 웃음 띤 여인의 얼굴 맑은 물 맴도는 송사리떼 강변의 해오라기 파아란 황새꽃 고향읍 아림천 징검다리 어여쁜 님 만나는 곳 임백종 詩 <징검다리> 일부 이상 3편은 '고향생각'에서 모신 글입니다. 시인 임백종목사님 83

84 안녕하십니까? 포근하게 풀린 겨울날씨입니다. 먼저, 이렇게 불쑥 편지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 중산리 임종권의 아우 종범이라고 합니다. 기억나시는지요. 종한, 종권, 누나, 스님인 종율, 그다음 순서입니다. 경북 청도에서 목회를 보신다는 형님의 소식은 진작부터 우리 작은형님께 들어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금번 거창군청에서 발간한 '고향생각' 이란 책에서 반가운 형님의 이름을 만났고 또 격조 있으신 작품 詩 3(?)편을 감상 하였습니다. 바쁜 목회일 속에서도 문학을 하시는 형님이 존경스럽고 연세 많으신 데도 불구하고 서정성 깊으신 맑은 시심을 엿보이시니 감동이 었습니다. 무지한 제가 봐도 금방 알 수 있을, '징검다리' 란 또 한편의 훌륭한 작품을 '장독에 비친 세상' 에 연결해서 인쇄를 해버린 오류를 범한 거창군청 편집자들의 큰 실수가 있어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형님의 시 작품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저 또한 아련한 옛날 일들을 반추하면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형님께 고백드릴일과 또 용서를 구할 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득한 제 유년시절의 이맘때, 형님으로부터 크리스마스카드를 받았습니다. 내 생애 최초의 일이었고 루돌프가 끄는 썰매를 탄 산타크로스 그림의 카드가 어찌나 예뻐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 다. 그 감동을 잊지 못해서, 비록 교인은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저 또한 어린 조카들에게 카드를 보내곤 했답니다. 또 하나의 추억 중에 책 '고향생각' 에 올린 '어머니의 팔 그리고...' 란 제 부끄러운 글 중에서 갯들에서 어머니를 살려달라는 기도 를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 때 형님께서 저에게 위로를 해 주셨거든요. 소를 몰고 있던 그 논이 바로 형님네 논이었고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어머니를 구해 주실 것이니 안심해라." 라고 격려해 주신 기억 이 있습니다. 그리고 10여 년 전에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난 다음날에 형님께서 조문을 오셨습니다. 마침 집에는 어머니와 저 밖에 없었고 며칠간의 장례일정을 마친 피로와 잠에 취해 있던 저는 그만,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시는 형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가시고 난 후에야 형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서 어찌나 죄송했던지...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합니다. (...) 축복의 성탄절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10년 12월 21일 종범 드림 시인 임백종목사님 84

85 -이상 편지글 중에서- 사랑하는 아우님 까마득하게 얼굴 잊을 정도로 참으로 오랜만에 펜을 들어 보네요.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온 가정에 문안합니다. 거창 '고향생각' 誌 에 실린 글을 보고 많이 놀랬어요. 어찌나 글이 매끈하고 포근한지 한편의 멋진 시를 읽는 듯 바로 시 그것이었어요. 동생 종범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인이라고 자랑하고 싶네요. 고향 동리에서 살던 어린 그때의 일들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동생은 그때의 일을 생생히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좋은 글 을 쓸 수 있는 소재가 구절구절 풍성히 담겨있네요. 사실은 나도 네 살 때 뇌리에 꼭 박힌 추억하나 때문에 60이 지난 2000년 접어들며 짧은 글 하나 쓴 것이 시 인줄 몰랐더니 그것이 시가 되었네요. 동생이 지적했듯이 거창군청에서 발간한 '고향생각'에 나의 졸작 3편을 출품했는데 '징검다리' 한편은 '장독에 비친 세상'에 흡수되고 그나마 그 책 9페이지 왼편 아래 8줄의 '거기 이전에 저 맑은 아림천으로' 는 원작에 없는 것을 마음대로 삽입한 것을 보고 황당하여 군청 편집자에게 문의했더니 잘못 되었다 하더군요. (...) 동생 종범이도 친형님 임종권장로님이 믿는 그 주 예수 믿어 평생 구원받는 감격과 기쁨 넘치기를 바랄께요. (...)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온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청도에서 임백종목사드림. 시인 임백종목사님 85

86 -이상 목사님의 답장 편지중에서- 네 번째 시집을 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작은 시집 [고향4]를 내게되었습니다. 나서 그 땅의 소산으로 몸을 키우고 낮은 골짝에서부터 부는 바람으로 가슴을 키우고 덕유의 높고 거친 재를 자유롭게 나는 구름과 그 위의 하늘을 보며 머리가 자랐습니다. 그리고 이식된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한 조용한 부야 마을을 사랑하며 이곳에서 내 인생은 들에 앉은 노을처럼 고운 세월을 먹었습니다. 마침내 나는 영원한 고향을 좀더 가까이 가면서 애틋하고 아름다운 순례의 뒤안길을 헤아려봅니다. 그 찬연하고 평화로운 땅 그렇게 사모하던 님을 만나 마음껏 목놓아 울고싶은 그날을 그리워하면서 나는 또 이렇게 사랑을 노래합니다 청도 부야에서 임백종목사 이상 시집 <고향4>에서 작가의 말 시인 임백종목사님 86

87 시인 임백종목사님 87

88 패트리어트 (신도안에서 도 닦던 이야기) :21 주의!! 식사 전에는 절대로 이글을 읽지 마십시오. 식후 1시간이 지난 후에 읽도록 하십시오. 패트리어트 정감록에서 예언했다는 미래가 악속 된 땅, 바로그곳 신도안.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의 골짜기와는 또 다른 계룡산의 한 자락입니다. 개발되기 전의 신도안은 세상을 구하겠다는 온갖 신흥종교의 본산이었습니다. 독수리5형제 말고는 지구를 지키겠다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있었으니까요. 현신한 미륵보살과 수도 없는 메시아들이 있었습니다. 기성종교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점들만 혼합시킨 짬뽕종교도 있었습니다. 신도안은 정말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소싯적 그곳에서 수도생활 중에 겪었던 경험담입니다. (아니면 말고...) 내가 뜻을 품고 입산수도를 위해 찾았던 곳은 숫용추와 암용추의 지기가 두루 닿아있는 언덕에, 선방달린 요사채와 뚝 떨어져 해우소 1채가 달랑 있는 곳이었다. 무슨 종교와는 거리가 멀고 그저 심신을 수련하고, 세상의 근본이치를 깨닫기 위한 공부를 하는 곳이다. 제일 말단인 나는 청소하고 밥 짓고 나무하는 틈틈이 공부를 해야 했는데, 우선 해결해야할 난제가 해우소를 가는 일 이었다. 解 憂 所 (해우소)란 근심을 덜어내는 곳이란 뜻인데, 근심을 덜어 내기는 커녕 근심 그 자체였으니까... 구조가 우리고향의 재래식 통시 인데 깊이는 어찌나 깊고 몇십년 퍼내지를 않아서, 숙성된 향기에다가 떨어뜨린 ㅇ이 반동으로 튀어 올라 입고 있는 도복 핫바지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고향에서는 재를 뿌리고 짚을 덮기나 했었지.ㅡ 해서~~ 해우소벽에 구멍을 내고 선배도인들은 어떻게 하나 엿보기로 했다. 10년차 도인.ㅡ 변기구멍을 막는 덮개를 한손에 들고 발사 후에 잽싸게 뚜껑을 막았다. 30년차 도인,ㅡ 장삼 같은 윗옷을 벗어 대들보에 그네를 매더니 그네를 타는 것이 아닌가! 한치 오차 없이 구멍을 향하는 공력이란,~~ 패트리어트 (신도안에서 도 닦던 이야기) 88

89 그런데,50년이 넘으신 방장님,ㅡ 점잖게 앉아계시다가 점잖게 일어나셨다. 그런데도 옷이 깨끗했다. 이상하다. 혹 변비라도...? 이튿날도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도저히 궁금해서 방장님의 방을 찾아 큰절하고 여쭈어보았다. 스승님, 비법을 전수해 주소서. 고얀놈, 50여년 동안 터득한 비법이니라. 도대체 어떤 비법입니까? 패트리어트!! 네에? 나의 두번째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궁금하면 검색창을 두드려 보거라....? 걸프전 때 사용했다는 신무기!! 그때는 걸프전쟁의 전이었고 P.C는 더욱 없었다. 도인들의 세계는 언제나 시공을 초월하는 법이다. ㅡ 이상ㅡ 패트리어트 (신도안에서 도 닦던 이야기) 89

90 초보 할아버지 :07 초보 할아버지 우리친구는 초보 할아버지입니다. 귀여운 손녀딸을 주머니에 품고 다니는 철없는 초보 할아버지랍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 속 들어가서 방긋거리는 손녀딸 눈에 넣고도 아프지 않다는 마냥 행복한 할아버지입니다. 금지옥엽 내리사랑 손녀사랑에 빠져서 불면 날아가 버릴까 노심초사 눈도 못 떼는 철부지 세 살 같은 할아버지랍니다. 초보 할아버지 90

91 쑥과 어머니 :13 시리즈:아! 어머니 쑥과 어머니 긴 겨울잠을 깨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따스한 봄기운을 타고 여리고 귀여운 새싹들이 움트는 모습을 보노라면 새삼 자연의 경이로움에 경탄을 하게 된다. 이른 봄 첫 순은 대부분 먹을 수 있는 나물이 된다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쑥을 보면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사무치게 떠오른다. 그랬다. 그 시절 이맘때를 보릿고개라 하지 않았던가! 긴 겨우살이를 하다보면 작은 곡간의 양식은 일찌감치 바닥이 났고 햇보리를 수확하기엔 까마득히 멀었다. 머슴까지 부리는 큰집이나 친척들과 이웃집들에 비해, 우리 집 살림은 특히 궁색했고 또 자식들 까지 많았다. 농토가 없다보니 소작농으로 버티는 것이었는데, 춘궁기에 장래쌀을 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었다. 굶고 있는 자식들을 위해 온 동네 들판의 쑥을 뜯으면서 험한 고개를 넘었던 어머니. 그 절절한 고생을 어찌 다 이야 기하랴! 홑이불을 기워 만든 보따리에 집채더미만큼 뜯어 날랐던 쑥. 그리고 밀기울에 버무려서 쪄내었던 쑥버무리. 어쩌다 싸래기 가루라도 좀 들어가면 훨씬 부드러운 맛을 내었던, 흥부네 집이 따로없는 어린시절 우리들의 봄철 주식이었 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시인의 시 구절처럼, 지천에 널린게 쑥이지만... 어머니 생각을 하면 함부로 밟지 말일이다. 내일 아침엔 모처럼 아내에게 쑥국이나 좀 끓여 먹자고 해야겠다. 2009년 3월초 林 公 移 山 쑥과 어머니 91

92 아들과 목욕하는 봄날 :56 아들과 목욕하는 봄날 뭇 생명들 긴 잠 깨고 기지개켜는 경칩지절 일요일아침 늦잠 몽환에 빠진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공부 도를 닦느라 학교와 학원순례에 지친 중2 아들 녀석아 내 오늘 너에게 안식을 주리니 오늘 만큼 훌훌 벗어던지고 사나이 대 사나이 원초적 사랑을 나누자. 채 갈기 세우지 못한 어중쩡 중닭 *인성무럭이 애무하는 손길 따라 봄날 하늘 처럼 푸른 싱싱함 방정한 혈기가 펄떡인다. 청춘! 이 얼마나 좋으냐? 건강한 육체를 다듬고 바른 정신을 심어라. 역발산기개세 [ 力 拔 山 氣 蓋 世 ] 원대함인들 못 품으리. 당당히 솟아라. 날개 달고 날아라. 네 할아버지 생전에 서울오시면 지고계신 무거운 짐 내려드리고 아들과 목욕하는 봄날 92

93 한평생 농사꾼 지게질로 굽으신 등 지난한 삶의 파편들 눈물과 속죄로 씻어드렸건만... 핏줄이란 그런 것! 윤회와 윤회를 거듭하고 영겁을 건너도 너는 내 생명. 훗날 어느 날에 너 또한 자식 놈과 살을 맞대고 갸륵한 연을 나누겠지! 풋풋한 젊음이 마냥 상긋한 봄날이다. *인성무럭이: 우리 고향의 방언으로서, 우리 아들처럼 인성이 채 갖추어지지 않은 젊은이를 지칭하는 적절한 명사입니다. 사족( 蛇 足 ):목욕탕 가서 등 밀어 줄때 늦둥이 아들을 둔 보람을 느낍니다. 아들과 목욕하는 봄날 93

94 돋보기 :09 돋보기 늙고 나이 듦에 서러움이 어디 한두 가지랴! 못나고 못가지고 배움 적어도 타고난 건강하나 자랑했었네. 봄날 길었던 한바탕 꿈 깨고 보니 어허! 내 청춘 어디로 갔나 밖에 그 누고? 지게문 열고 돋보기 94

95 안경 너머 치켜보시던 사랑방 할아버지 50년 세월 건너 돋보기 코에 걸린 나의 자화상 돋보기 95

96 연애편지 :34 그리운 ㅇ ㅇ 씨에게 홀로이 창가에 앉아 풀벌레들의 합창과 함께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면서 잠 못 드는 가을밤. 그리운 그대여! 님께서는 달콤한 꿈나라의 세계에 빠져 계시나요? 지금 무슨 꿈을 꾸시나요? 그대의 눈빛을 닮아서 유난히도 아름답게 반짝이는 동쪽하늘 저 별이 잠들지 않는 한, 저 역 시 이 밤을 뜬 눈으로 지새려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 깊숙이 들어앉아서 뜨겁게 박동하는 심장의 일부가 되어버린 님이여! 그대와 함께하지 못한다면 찬란히 솟아나는 아침 해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대와 함 께 걷지 않는 길이라면 곱디고운 저 단풍잎도 한낮 떨어질 낙엽에 불과 할 뿐이랍니다 월 일 당신을 사랑하는 J B드림 연애편지 96

97 (Goethe and Charlotte) 눈과 서리 사이에서 꽃 한 송이가 반짝입니다. 마치 내 사랑이 삶의 얼음과 악천후 속에 서 빛나듯이 말입니다. 난 잘 있고, 마음도 편안합니다. 그리고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요한 볼프강 괴테가 살롯 폰 슈타인에게, 1780년쯤) (James Joyce and Nora) 나는 열한시 삼십분에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는 줄곧 바보처럼 안락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언제나 당신이 사랑하는 당신 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 바보입니다. 나는 오늘 두 사람에게나 말도 하지 않고 냉정하게 굴어서 그들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습니다. 내 가 듣고 싶은 것은 그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당신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조 이스가 노라 바너클에게, 1904년) 연애편지 97

98 Nathaniel Hawthorne, Sophia Peabody 사랑하는 당신, 나에게 운율을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면 합니다. 당신과 사랑에 빠진 이후 내 머리와 가슴 속에는 언제나 시( 詩 )가 있습니다. 아니, 당신이 바로 시입니다. 당신은 자 연이 부르는 달콤하고 소박하고 즐거운 노래와 같습니다. (나사니엘 호손이 소피아 피바 디에게, 1839년) 연애편지 98

99 (Franz Kafka and Felice Bauer) 사랑하는 당신이여,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토록 나를 괴롭히십니까? 오늘도 편지가 없 군요. 첫 번째 들어오는 우편에도, 두 번째 우편에도 말입니다. 이토록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시다뇨! 당신이 보내는 단 할 글자라도 모면 내 마음은 행복해질 텐에요! 당신은 내가 싫증 이 난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낼 수가 없군요. (프란츠 카프카가 펠리스 바워 에게, 1912년) ㅡ 아름다운 미술관에서 자료인용ㅡ 세태가 변하다 보니 요즘 젊은 사람들은 편지를 쓰지 않는다. 메일을 이용하거나 엄지손가락으로 문자 메시지를 날리면서 소통을 하는 모양이다. 편리한 통신의 세상이지만 편지의 묘미와 연애편지의낭만을 모르는 불쌍한 청춘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월과 영랑과 청마의 싯귀들을 훔치고, 유행가 가사를 짜깁고, T.S엘리엇과 바이런의 사랑시를 표절했던 낯뜨거운 문장들... 밤새 끙끙대면서 편지지 몇 장을 채웠다가,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너무나 유치해서 차마 부치지 못했던 사연들... 풋냄새 물씬 풍기던 시절의 추억 한 페이지가 그리워지는 가을이다. 연애편지 99

100 밤하늘을 수놓았던 수많은 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슬만 먹고 살겠다던 그 때 그 청초한 아가씨는 어디서 살고 있을까? 연애편지 100

101 가을밤에 :55 가을밤에 林 公 移 山 피는 꽃의 화사함 보다 시나브로 물드는 단풍의 자태가 더 곱다는 것을 이제사 깨닫는다. 화려하고 장중한 교향악보다 홀로 우는 현의 갸날픔이 서럽도록 맺힌 외로움 심금마저 함께 떨린다. 해 넘어간 서쪽하늘 슬픔 묻어있는 저녁노을이 아리도록 가슴 시리다. 가을밤에 101

102 굽이굽이 달려온 길 허공 끝 달린 자리 부끄러움만 선명하다. 어쩌랴! 아물지 않을 상처들 그 모두가 업보인 것을 외롭게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어 낡은 줄 새삼스레 끌어당기나 채색할 여백은 많지 않아 잠 못드는 가을밤은 깊어만 가고 소리없이 낙엽은 떨어지고... 기축년 만추 가을밤에 102

103 알밤과 추억 :26 알밤과 추억 글/임공이산 고향집을 지키시는 큰형님께서 알밤을 택배로 보내주셨다. 건강도 좋지 않으신 칠순노인이 밤을 털고 줍고 하셨을 노고를 생각하니 차마 그냥 먹기가 송구스럽다. 금년엔 모든 과일이 풍년인가보다. 다른 물가는 모두 올랐으나 포도, 감, 밤, 배, 등, 가을철 과일들이 예년에 비해 엄청 싸다. 사먹는 입장에서야 좋겠으나 땀 흘린 만큼 제값을 못 받을 농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과일 중에서 특히나 밤을 좋아해서 가을엔 몇 되씩 사서 먹는다. 그런데 햇밤이라 해서 사고 나면 실망을 하는 때가 많다. 굵고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도 맛이 없이 덤덤한 것이 다반사요 딱딱하게 굳은 것을 보면 햇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형님께서 보내주신 고향산 밤은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햇밤 특유의 말랑한 껍질하며 오도독 씹었을 때 배어나오는 달콤하고 고소한 밤즙이 틀림없는 고향의 맛이다. 내가 유난히 밤을 좋아하는 것은 성장기 때의 기억들이 깊이 새겨 있기 때문이리라. 먹을거리가 귀하던 때라 덜 익은 산과일을 따먹고 배탈이 나기도하고 풋감을 먹고서 생목이 올라 김칫국을 퍼마시기 도 했었다. 그러나 밤은 달랐다. 오히려 덜 익은 풋밤이 향기가 짙고 훨씬 맛이 좋은 것이다. 꼴을 뜯기던 소가 남의 콩밭을 망치는 줄도 모르고 한나절 내내 밤나무에 팔매질을 하였던, 밤이 여물어가던 가을날 들이었다. 알밤과 추억 103

104 장작개비만 한 몽둥이를 하늘 높이 달린 밤송이를 향해 던져 올리다 가지에 몽둥이가 걸리면 그 몽둥이를 향해 또 돌멩이를 던졌다. 파르스름하게 토실한 밤송이가 떨어지면 꼭지의 반대쪽 배꼽으로 송이를 까야 한다는 것쯤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양말도 없이 낡은 고무신으로 밤송이를 밟다 보면 가시에 찔리는 일은 부지기수다. 밤 가시가 짧고 껍질이 얇아 쉽게 벗겨지는 밤이 대체로 품종이 좋은 것이고, 대부분이 세알들이이지만 송이만 척 봐 도 외톨밤인지 가끔 있는 네 알, 다섯 알, 짜리인지 알 수 있었다. 가끔은 밤나무 주인에게 혼이 나기도 했으나 나무 전체를 터는 것도 아닌 한,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길 옆 낮은 가지의 밤은 대부분 아이들의 몫이라고 치부해버렸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농토가 많고 살림이 윤택한 집들이 과일나무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이나 밭 주변의 공한지에 조금만 노력해서 과일나무를 심었다면 두고두고 따먹을 수 있을 것이건만, 가난한 집은 그런 공터마저 귀하기도 했고, 그나마 잘 이용을 못하기도 했던 것 같다. 우리 집도 겨우 골반시, 맛종감, 두리감, 등, 감나무 몇그루와 밤나무 세 그루가 있었을 뿐이었다. 특히 앙무들 밭가 벼랑 끝에 엄청 큰 고목의 밤나무가 있었는데, 품종이 좋고 꽤 많이 달려서 몇 가마를 딸 수 있었 다. 밤을 따는 날이면 아찔한 절벽을 끼고 무성한 잡목 풀숲을 헤치며 밤을 줍느라 무척 고생을 했다. 바지게 가득 밤송이를 집으로 날라서 마당가득 쌓아 놓고 밤을 까다가 귀찮으면 밤송이채로 소죽 쑤는 부엌이나 모 닥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굽던 밤이 뻥하고 터지면 여동생은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요즘의 개량종 밤나무는 키도 낮고 산 전체를 밤나무단지로 조성한 곳이 많지만 예전의 밤나무는 키가 큰 고목들이 띄엄띄엄 심어져 있었다. 우리 동네에는 물밭에 여러 그루가 있었고 안산에서부터 기염나무박골까지에 걸쳐서 꽤 많은 밤나무들이 있었다. 밤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쯤 해서 간밤에 비바람이라도 불었던 새벽이면, 덜 깬 잠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며 밤나무 숲 엘 갔다. 자루에 가득 주워온 밤을 골라 상품가치가 있는 것은 5일장에 내다팔아서 학용품을 사기도 했다. 호주머니 가득 밤을 넣고 말랑한 속 비늘을 뱉어가면서 오리길 학교를 가는 날에는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 그러던 중 어느 해 겨울에 수많은 밤나무들이 참살을 당하는 재앙이 있었다. 배를 만드는 목재로 쓸 밤나무를 구하러 장사꾼이 오고, 비싼 값을 쳐 준다는 통에 마을 대부분의 밤나무들은 쓰러지 고 말았던 것이다. 가볍고 단단하며 물에서 썩지 않는 밤나무가 목선의 재료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알밤과 추억 104

105 형님께서 보내주신 밤이 양이 많아서 일부는 생밤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만 삶았다. 아직 치아도 견딜만해서 두고두고 생밤의 맛을 즐기고 싶다. 한 톨씩 까서 먹는 생밤 맛 속에 아득한 추억까지 곁들여 먹고 싶은 것이다. 삶은 밤을 먹던 딸 녀석들이 가끔 나오는 벌레를 보며 기겁을 하더니, 껍질 벗기기도 귀찮다며 별로 먹지를 않는다. "이놈들아, 무농약 유기농이란 증거니라, 원래 산짐승과 벌레들의 양식을 우리 인간이 뺏어 먹는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사히 먹도록 해라." 옛사람들은 과일에도 의미를 두어서 세알들은 밤을 가리켜 3정승에 비유해 품격을 높이 치었다. 유독 밤을 좋아한 덕분인지 나는 3명의 자식을 얻었다. 부디 영근 밤톨처럼 똘똘하게 자라기만을 바랄뿐이다. 알밤과 추억 105

106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55 다산선생 유적지에서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라 다들 조금씩 들떠있는 기분들이다. 햇살 좋은 가을 강변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우리 민족과 가장 밀접한 역사를 간직하며 흐르고 있다는 한강!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며 장엄한 풍경을 연출하는 장소, 두물머리! 넓은 강 한복판으로 툭 튀어나온 반도지 끝머리에 연륜에 따른 고고한 품위를 지키고 서있는 느티나무! 일행들이 절경에 취해 있는 동안 나는 또 남다른 감회에 젖어든다. 뒤로 보이는 운길산 정상 바로 밑 절벽에 자리한 고찰 수종사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조선국 최초의 쿠데타 군주인 세조로 인해 창건되었다는 저 절에서, 어떤 인연에 의해 짧은 기간이었지만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팔당댐이 완공되고, 막 담수를 시작하면서 강변의 들판이 수몰되어가던 70년대 초반이었다. 산골짜기 다랭이 논 몇 마지기로 생계를 의지하며 자랐던 터라 넓직한 논들이 강으로 변해 가는 모습이 아깝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른 새 벽 5시에 일어나 절 마당을 쓸면서 내려다보는 여명의 강풍경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탁, 숨이 멎을 지경이었었다. 다시 구 길을 따라 양수리 다리를 건너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로 차를 몰았다. 선생의 묘소 참배는 예전에도 여러 번 했었으나 성역화사업과 함께 새로 지어진 기념관 견학은 처음이다. 넓은 주차장과 잘 정돈된 주변공원이 한강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나 방문객이 많지 않아 한산한 편이다. 서울 양평 간 국도가 터널과 고가를 만들어 준고속도로 수준으로 뚫리고 보니, 맘먹고 구 길로 들어서지 않는 한 그냥 지나치기 쉽상인 탓도 있을 것이다. 선생의 귀양처였던 전라도 강진의 다산초당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잘 보존된 생가와 사당, 문화관, 기념관, 기념비, 동상, 동산 위 부인과 함께 안치된 묘소, 등으로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입구에 있는 화성 축조 때 사용했던 거중기의 복원모델, 500여권에 달한다는 선생의 저서를 상징하는 조형물도 인상 깊다. 시대를 앞선 진보의 삶, 철저한 애국 애민의 철학과 사상, 기득권 수구세력들의 중상과 모략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나들고 20여 년간의 유 배생활에도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어른! 200여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선생의 유품들에는 고매한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추석명절이 끝나고 국회도 개원되었다. 정치권 최대 쟁점은 여전히 4대강 개발에 관한 것이다. 정권 초 부터 대운하개발을 추진하다가 대국민 저항에 부딪치며 한발 빼더니, 이제는 4대강 살리기란 미명으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06

107 정권 초 부터 대운하개발을 추진하다가 대국민 저항에 부딪치며 한발 빼더니, 이제는 4대강 살리기란 미명으로 밀어붙이기를 하고 있다. 최고의 국립대학 총장 출신 신임 국무총리는 자신의 평소 소신을 손바닥 뒤집듯 바꾸었다. 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병역, 탈세, 위장전입, 기업 으로부터 받은 이상한 거액의 돈, 편법으로 한 겸직, 거짓증언, 등, 비리와 의혹이 가히 종합세트 같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도대체 이런 정권 이런 정부에서 공직자의 윤리와 도덕은 어디 가서 찾을 것인가? 시대를 되돌아 오늘 또다시 다산선생께서 일갈하신 목민관의 자세를 어찌 다시 생각 치 않겠는가? 바로 이 주변 동리들, 진중리, 송촌리, 양수리, 등에 어지럽게 내걸린 농부들의 플랭카드가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70년대에는 댐건설로 많은 농토를 수몰시켜야 했고, 이후에는 상수원지역으로 묶여서 수많은 제재와 불이익을 당했던 주민들이다. 유기농재배를 도입하면서 그나마 인지도를 높이고 겨우 살만해졌다는데, 이제 또 4대강 개발로 그 터전을 잃게 된 것이다. 입버릇처럼 외고 있는 치산치수는 과연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일까? 가을바람에 어지럽게 나부끼는 플랭카드를 보면서 다산선생은 뭐라고 말씀하실까?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07

108 방송만 장악하면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집권자들은 미디어법을 억지로 고치더니, 그 사이에도 입바른 소리를 하는 방송인들을 계속 몰아내고 있다. 시사평론가 정관용과 유창선, 가수 윤도현, 앵커 신경민, 방송진행인 김제동등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하차시키고, 100분 토론의 진행자 손석 희 마져 교체시킬 것이란 소식이다. 참으로 한심한 작태를 보면서, 이 화창한 가을이 한없이 우울하게만 느껴진다. 교장선생 공모제를 추진하던 중 교육청의 간부가 보안사항을 언론사에 흘리고, 그를 핑계로 공모제를 원천무효 시키려드는 내 고향 모교의 작금사태에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 공모제를 간절히 원하는 학부모들과 지역민들의 뜻을 무참히 짓밟는 교육공무원들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반면에 참교육을 위하여 일제고사를 반대하거나 양심선언을 하였다 해서 교권을 박탈당했던 선생님들도 있다. 그 분들 중, 어떤 선생님은 모교의 마을 숲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신다고 한다. 삭탈관직을 당하고 유배생활 중에도 서당을 열어 제자들을 가르치시고, 실지로 18명의 훌륭한 인물을 만들어 내신 선생의 일화와 겹쳐져 보 인다. 민족의 큰 스승 다산선생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4대강 개발로 인해 더욱 피곤해질 한강은 말없이 그저 유유히 흐르고 있을 뿐이다.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08

109 <스크랩> 홈 >다산 유적지 >남양주 다산 유적지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위치한 다산 유적지는 나라의 부패를 꾸짖던 선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꼿꼿하고 검소한 그의 생활이 그대로 보 존되어 있는 생가 여유당, 이백 년 세월의 흐름 앞에 절로 고개 숙여지는 다산의 묘,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의 업적과 자취가 전시된 다산기 념관과 다산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조명해 보는 다산문화관이 있다. 한 걸음이면 뛰어 넘을 것 같은 여유당의 낮은 담장에는 허물없이 백성들 의 기쁨 과 아픔을 함께하고자 했던 다산 선생의 마음이 담겨 있다. 매년 10월 다산유적지에서 펼쳐지는 다산문화제는 다채로운 시민행사와 공연 등 모두 함께 어우러지는축제의 한 마당으로 다산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문화적 시각으로 재조명, 우리 문화를 통해 다산 선생을 직접 체험하는 시민문화축제이다. 위치 :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산75-1 시설내용 : 다산 정약용선생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7호)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 문도사(사당) 기념관 문화관 문화의 거리 전시물품 : 총58종 304점(동상, 영정, 목민심서등 저서, 거중기, 녹로, 디오드라마, 영상자료 및 조형물) 다산 유적지 입구에 다산선생의 얼이 느껴지도록 수원성 축조에 사용된 거중기 전시 및 동판에 선생이 집필하신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이 새 겨져 있다. 다산 기념관 내에 들어서면 다산선생의 일대기를 디오드라마로 연출하였으며, 생가에는 당시의 생활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 되어있다. 생가 뒤 나지막한 언덕위에 다산선생과 부인(풍산 홍씨)의 합장묘가 있다. 동절기(11월 ~ 2월) : 오전 9시 ~ 오후 6시(입장가능시간 : 오전 9시 ~ 오후 5시) 하절기(3월 ~ 10월) : 오전 9시 ~ 오후 7시(입장가능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입장료 무료 버스 : 다산유적지입구 하차(도보 20분)청량리에서 167번, 8번(배차간격 10~15분)(청량리 - 구리시 - 덕소 - 다산유적지 - 양수리) 강변역에서 번 (배차간격 20~30분)(강변역 - 구리시 - 덕소 - 다산유적지 - 양수리 - 양평) 철도(중앙선) : 팔당역에서 하차 양수리행 버스 승차 다산유적지입구 하차 (도보20분)(용산역 - 회기역 - 구리 - 덕소 - 팔 당 - 국수)용산역에서 국수행 열차(배차간격 1시간 2대) 승용차교통안내 승용차교통안내 인천공항 - 올림픽대로(목동 - 여의도 - 강남 경유) - 미사리 - 팔당대교- 팔당댐 -다산유적지 강변대로 이용 김포공항 - 행주대교 - 강변대로(마포 - 한남동 - 워커힐 경유) - 덕소 팔당댐 - 다산유적지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09

110 시내도로 이용 서울시청 - 동대문 - 청량리 - 망우리 - 구리시 - 도농삼거리(검문소) 덕소 - 팔당댐 - 다산유적지 남양주시청 문화관광과 (전화 031) , 2067) 다산유적지관리사무소 (전화 031) , 2837) 자신의 인격수양으로 시작하는 학문 다산의 학문은 경학( 經 學 )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쓴 <자찬묘지명> 에 육경( 六 經 ) 사서( 四 書 )로써 자신의 심신을 수양하 고, 일표이서( 一 表 二 書 )로써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니, 이로써 본( 本 )과 말( 末 )을 갖추었다 고 적고 있다. 다산의 학문체계는 경학을 근본으로 하고, 경세학을 그 실현 방법으로 보고 있다. 경 학을 통해 수기( 修 己 ), 즉 자기의 인간됨의 완성을 위해 수양하고, 경세학으로 치인 ( 治 人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배시절 초기에 경학부터 본격적으로 연구에 들어갔다. 주자 성리학 비판, 공자 정신으로 돌아가자 다산은 오학론 에서 성리학, 훈고학, 문장학, 과거학, 술수학의 다섯 가지 학에 관해서 그 폐단을 비판했다. 다산은 당시의 지배적인 학문 이던 주자성리학에 안주하지 않았다. 관념화된 주자성리학은 더 이상 시대를 이끌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산 은 공자와 맹자의 본래 정 신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는 결코 복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동양의 혁명적 사상은 당시의 지배이면에 대한 비판으로 그 근거를 고 대의 전통에서 찾곤 했다. 다산의 개혁론도 전통에 내재된 본래적 가치를 재각성함으로써 현재의 묵은 폐단을 제거하는 논리를 취하고 있 다.(오늘날 우리가 다산정신으로 돌아가자 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다산은 이론 위주의 성리철학으로 윤색된 육경( 六 經 )과 사서( 四 書 )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공자, 맹자의 본지( 本 旨 )가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데에 힘썼다. 그 결과가 <논어고금주> 48권을 비롯 하여 <맹자요의> 9권 등 육경사서에 대한 232권의 방대한 저술로 남았다. 여기서 다산은 성( 性 ) 인( 仁 ) 도( 道 ) 덕( 德 ) 명( 命 ) 등 대부분의 유교 중심적인 명제( 命 題 )들을 다시 해석한다. 이( 理 )라는 관념의 세계로 해석한 주자와 달리 실행과 실천이 가능한 실학적 사고로 새로운 경전 해석을 시도한 것이 다산의 경학이었다.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 다산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학문자세를 견지하였다. 청나라에서 새롭게 전래된 경전 해석 방법인 고증학이나 서양에서 전래된 서학 등 새로 운 사조에 열려 있었다. 그리 고 고증학의 실증적 태도 등 객관적 학문자세를 따르지만 그에 머물지 않았다. 실증 이라는 수단에 매몰되지 않고 실용이라는 목적을 추구했다. 인간과 사회의 가치를 추구했던 것이다. 다산은 속유론( 俗 儒 論 )에서 속된 선비는 시의( 時 宜 )를 모르니 어찌 일을 맡길 수 있겠는가? 라는 주장에 대해 논하면서 고루한 선비의 잘못을 질타했다. 참 선비의 학문은, 본디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 을 편안하게 하며, 외적을 물리치고 재용( 財 用 )을 넉넉하게 하며, 문( 文 )에 능하고 무( 武 )에 능한 것, 이 모두 해당하지 않는 것이 없다. 어찌 옛사람의 글귀나 따서 글을 짓고, 벌레나 물고기등류의 해설을 하고, 소매 넓은 선비 옷을 입고서 예모( 禮 貌 )를 익히는 것만이 선비의 학문이 겠는 가. 경세학,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사상 경학과 더불어 다산의 중심과제인 경세학은 당시 사회 현실에 대한 잔반적인 문제의 식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후기의 세상은 썩고 병들지 않 은 분야가 없었다는 것이 다산 의 진단이었다.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 一 毛 一 髮 無 非 病 耳 ) 고 보았으며, 지금 당장 개혁 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말하고 만다. 며 개혁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정약용이 쓴 자찬묘지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경 세유표 를 지은 동기는 오래된 나라를 새롭게 할( 新 我 之 舊 邦 ) 생각이라 했다. 나라를 완전히 개혁하여 새로운 체제로 바꾸려는 의사로 경세유표를 저작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다 산은 숱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민( 民 )이 근본이다 다산 경세학의 근저에는 민( 民 )을 근본으로 여기는 자세 또는 민( 民 )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다. 다산이 남긴 시문들은 당시 민초의 피폐 하고 참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다. 경기 암행어사로 민간에 잠행하면서 농촌의 피폐상을 직접 보고서, 강진 귀양살이 때 국가권력 과 아전의 횡포를 직접 듣고서 토해낸 글들이다. 다산은 당시의 치자-피치자의 구조에서 백성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치자의 책무와 피치자의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10

111 권리를 각성시키고자 노력했다. 원목( 原 牧 )이라는 글에서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생긴 것인가? 이러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목민 관이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 다( 牧 爲 民 有 也 ) 고 결말을 짓고 있다. 또한 탕론( 湯 論 )에서는 탕왕( 湯 王 )이 걸( 桀 )을 추방한 것이 옳은 일인가?, 신하가 임금을 친 것이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하 여 천자는 여러 사람이 추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天 子 者 衆 推 之 而 成 者 也 ) 고 답한다. 그리하여 옛날에는 아랫사람 이 윗사람을 추대했으 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는 것이 순( 順 )이라 고 보았다. 다산은 목민심서 서문에서 군자의 학문은 수신( 修 身 )이 그 절반이요, 나머지 절반은 목민( 牧 民 :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목민관으로서 요구되는 덕목으로 율기( 律 己 : 자신을 다스림), 봉공( 奉 公 : 공을 받듦), 애민( 愛 民 : 백성을 사랑 함) 세 가지를 벼리로 삼고 있다. 이 모두가 백성 한사람이라도 그 혜택을 입었으면 하는 것이 다산의 마음이었다. 흠흠신서 를 지은 것도 법의 집행에서 억울한 백성 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러한 다산의 애민정신, 민본사상은 민생을 위한 각종 대책으로 연결된다. 경자유전( 耕 者 有 田 ), 균산병활 원칙 에 입각한 토지제도 조세제도의 개혁 론을 전개했다. 나아가 제도개혁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생산증대의 방법을 모색한다. 기계와 기술의 도입에 의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 는 것이다. 기술을 개발하여 백성을 편하고 넉넉하게 다산은 그의 기예론( 技 藝 論 ) 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널리 적극 도입할 것을 주장 했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그 기예가 정교하게 되고, 세대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그 기예가 더욱 공교하게 되는 것 이 당연하다고 보아, 더 넓은 세계의 기예를 배울 것과 새로운 기예 배우는 것 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하여 농업의 기예나 직조의 기예를 정교하게 하여 편리함을 도모하고 소득을 올릴 수 있 고, 병기의 기예를 정교하게 하여 용맹을 돕고 그 위태로움을 보호할 수 있다고 했 다. 그 밖에도 의술과 백공의 기예가 정교해 지면, 나라가 부유해 지고 군대가 강해지고 백성들이 넉넉하여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 했다. 21세기에 다시 보는 다산사상 21세기 초입에 왜 다산 정약용인가. 다산을 한국 사상사의 한 고봉으로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지금 새 세기의 첫걸음을 내 디디면서 특별한 의미를 갖 고 그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가. 그것은 개혁이라는 문맥이다. 한국은 지금 개혁도상국(Newly Restructuring Countries)이다. IT(Information Technology)혁명을 축으로 하는 정보화와 세계화의 물결을 잘 타지 못하면 물에 빠져 죽고 만다. 세계 각국이 구조조정에 필사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개혁이 아니면 죽음이 있을 뿐이 다. 고 하면 지금의 한국경제에 관한 말 같지만 실은 다산의 문구에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흔히 다산을 조선후기 실학사상의 위대성자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개혁사상의 위대 성자라고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는 크고 작은 여러 개혁적 사 고의 개울물들을 자신의 물줄기 속으로 모아 체계화 했고 큰 강물의 출발점으로 이루어냈다. 그러므로 구한말 장지연, 박은식 같은 개혁사상가들은 정다산의 개혁의 강물 로 돌아가 그곳에서 재출발하려 했다. 오늘날 21세기 개혁의 흐름 속에서 다시 다산 이 이룬 강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그 순수와 정열 그리고 꿈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 남양주시 다산의사상편에서 발췌-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11

112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 與 猶 堂 )은 현재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당시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에 있다. 그 옛날에는 이곳을 소내( 苕 川 ) 또는 두 릉( 杜 陵 )이라고 했고 다산의 5대조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았다. 유적지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다산의 생가인 여유당이 고졸한 자태로 은근 히 나그네 유혹하지만 정작 발걸음을 재촉하게 되는 곳은 여유당의 오른편을 돌아 뒤편 동산의 다산묘소이다. 다산은 여기서 세상을 떠났고 이 집 뒷산에 묻혔다. 모진 비바람에도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박한 護 石 의 보호아래 부인 풍산 홍씨와 함께 조용히 누워있는 다산 선생은 여유당을 휘감고 도는 한강의 여유로운 흐름을 관망한다. 다산기념관에는 다산의 친필 서한 간찰( 簡 札 ) 산수도 등과 대표적 경세서인 목민 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사본이 전시되어 있 으며 특히 실물 크기의 4분의 1 과 2분의 1크기의 거중기와 녹로가 눈길을 끈다. 97년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 으로 등재된 화성(수원 성)을 쌓을 때 역학적인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리는 데 사용되어 백성들의 노고를 덜어주었던 거중기와 도르래의 원리를 이 용해서 만든 일종의 크레인인 녹로는 바로 실학정신에 바탕한 다산의 설계로 제작된 기계이다. 다산 기념관 옆에 있는 다산문화관에는 다산이 설계한 배다리( 舟 橋 )를 이용해 정조가 수원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 顯 隆 園 )을 참배하 러 갈 때의 모습을 그린 능행 도와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분야별로 기록하여 놓았으며 조금 더 자세한 자료를 알고자 할 경우에는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12

113 컴퓨터를 활용하여 검색할 수 있다. 영상실에서는 다산의 일생을 소개하는 약25분 분량의 영상물이 자동으로 상영되고 있어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 유적지에서 113

114 임공이산의 변명 :28 임공이산( 林 公 移 山 )의 변명 집 앞을 가로막는 산이 있어 불편하다면 집을 옮기거나 이사를 하면 될 것을 한 삽, 한 짐씩 산을 퍼 옮기는 노인이 있어 우공이 산( 愚 公 移 山 ) 이라 했다는 중국고사가 있습니다. 내 아직 젊어 노인의 반열에 들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앞에 가로놓인 폐단과 모순, 비상식, 반인권, 반민주, 비합리.등,등 장애들을 비 켜가기 보다는 한 삽이나마 퍼 나르겠다는 뜻이 있습니다. 해서 우공이산을 패러디해 즐겨 쓰는 또 하나의 필명이 '임공이산'입니다. 특히 역사에 관해 깊은 관심과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습니다. 주제넘게도 때론 짧은 지식으로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진실과 거짓 "(어리석은)백성들은 진실을 부담스러워하고 희망을 버거워하며 소통을 귀찮아하고 자유를 주면 망설입니다."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TV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나오는 미실의 어록중 한 대목입니다. 임공이산의 변명 114

115 작가의 글이겠지만 때맞추어 적절한 표현을 썼더군요. 아버지 제삿날 밤 미리 상차림을 해놓고 집안 형님들과 조카들과 둘러앉아 TV마감뉴스를 보고 있었습니다. 마침 세종시 논란에 관한 소식이었습니다. "노무혀이가 대통령 해처묵을라꼬 택도 없는 공약을 하고 밀어부치던 것을 이제 바로 잡을라카는데, 무조건 반대만하는 야당놈들 때 문에 나라가 큰일이다카이." 칠순 넘으신 집안 형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충청도로의 수도이전은 박정희 대통령이 77년부터 비밀리에 계획을 짜서 79년도 연두교서에서 발표했었던 '국토균형발전과 서울권 과밀현상을 대비한 계획'이었습니다. 박근혜의원도 반대를 하고요." "시끄럽다마, 다 노무혀이 그노마 때문이다." "지금도 인터넷을 찾으면 당시 박정희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육성이... " "시끄럽다카이, 인터넷인가 그기 그 아주 나쁜 것이..." 뉴스는 다시 노무현대통령의 생가복원에 관한 것으로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수백 수천억을 들여서 아방궁을 짓더니 금세 뒈질것을...쯧쯧쯧, 생가는 무슨 얼어 죽을 짓들을 하는지..." "봉하마을 가 봤더니 집이 초라해서 실망했습니다. 직접 가보니 신문들이 거짓말 하는 것을 알겠더군요. 아방궁이 아니었습니다." 옆에 있던 4촌형이 거덜었습니다. "거짓말 하지마라. 수백억 처 발랐다고 뉴스에 다 나왔는데 무신 씰데없는 소리고!" 더 나이 많으신 6촌형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언제 시간 나시면 여행 삼아 한번들 가보시지요. 교통도 편리해졌지 않습니까?" 조카도 한몫 거들고 어른들과 젊은 사람들의 상반된 의견충돌이 일어났습니다. "니가 차비를 줄래?" "직접 모시곤들 못가겠습니까." "미쳤나? 내가 그딴델 가구로. 너그가 전쟁을 직접 겪꺼를 봤나? 철없는 놈들이 빨개이 물이 들어가지고, 저그들이 머슬 안다꼬, 에 이..." 그 어른들은 봉하마을을 가보고 싶지 않으실 겁니다. 아방궁의 진실이 부담스러우신게지요. 질곡의 세월을 살아오신 그 어른들을 안 타깝지만 이해를 합니다. 평생 우상으로 섬겨오던 박정희대통령이 교편생활을 그만두고 천황에 대한 충성맹세의 혈서까지 써서 전일본인을 감동시키며, 기어 이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사실의 최근 뉴스는 더욱 부담스러우실 겁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무장공비의 총칼 앞에서도 용감히 저항하며 외친 이승복 어린이의 반공정신! 전국 어린이들의 귀감이요 모범인 이승복! 많은 학교에 이승복상이 세워지고, 웅변의 단골 메뉴가 되고, 정말 본받고 싶은 용감하고 자랑스러운 이승복입니다. 울진 삼척지구에 침공했던 무장공비가 국군장병들의 대공작전에 후퇴를 하다가 계방산 골짜기 외딴 화전민 집을 습격하여 먹을 것을 뺏고 전 가족을 무참히 참살한 천인공노할 사건! 조선일보의 기사로 그 사실이 전국에 알려졌는데... 당시 교통이 불편한 계방산 아래 속사면 외딴 동네는 작전지역이어서 기자가 임공이산의 변명 115

116 현장을 찾았을 때는 사건이 종결되고 며칠도 더 지난 날. 생존자도 없는데 어떻게 기자는 이승복의 마지막 외침을 들었을까요? 나이 들어서 우연히 알게 된 진실! 아~뿔~사! 그 혼란스러움! 정말 부담스러운 진실이었습니다. - 언론은 흉기일 수 있다. 썩고 오염된 언론은 흉기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까지 오염시키는 마약보다 더 나쁠 수 있습니다. 1933년,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하고 몇 년 뒤부터 일보천왕의 생일날에는 일왕부부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대문짝만한 사진이 1 면에 실리고, 국방헌금을 내어 일본군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스스로도 거액의 돈을 기부하여 무기를 사주고, 시국강연을 나서 고... 초기 민족지로 사랑받던 사주 김성수의 동아일보도 변절신문이 되어 '육군특별지원병제도'를 찬양하며, 조선의 청년들에게 대일본제 국의 황군이 되어 젊은 피를 바치라고 외치며, 거액의 국방헌금을 바치고,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간 퇴임총독에게까지 보약을 선물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편지를 쓰고... 2차 세계대전시 독일에 점령당했던 프랑스 역시 많은 언론들이 히틀러를 찬양하고 레지스탕스 독립운동을 테러행위라 비난하고 나치 독일에 협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방 후의 프랑스는 우리와 달랐습니다. 1944년 해방임시정부의 샤를 드골은 훈령을 내려 나치에 협력한 언론사는 폐간을 시켰습니다. 반 나치 운동에 협력한 지하신문들에 시설을 통째로 인수시켰지요. 나치에 아부하고 부역한 일간지<오주르뒤>의 편집인 조르주 쉬아레즈, 일간지<누보탕>의 발행인 장 뤼쉐르 등은 총살에 처합니다. 간 신히 총살을 면한 반민족 언론인들은 모두 추방을 당했습니다. 친일행위에 대한 아무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은 우리의 신문들은 반성은 커녕 오히려 민족지로 둔갑을 시키고, 독재정권에 아부하며 사세를 키워 거대한 언론권력이 되어있습니다. '독립에 기여하며 항일신문을 찍었던 윤전기'라는 안내판을 달고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던 조선일보의 구식윤전기를, 민간단체가 들어내는 일이 참여정부시절에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억울한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으며 언론탄압이라는 저주의 글을 쓰기도 했지요. 고당 조만식선생 같은 분들이 필진으로 활동하시던 당시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항일신문이요 민족지로 자랑스럽던 때가 한때나 마 있었기는 했지요. 임공이산의 변명 116

117 프랑스의 보수적신문 <르 피가로>는 피에르 브리송사장이 지하 저항운동에 가담하였고 변절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신문이 되었습니다. 초기 민족지였을 때만을 강조하며 변절에 대한 뉘우침이 없는 조선과 동아는 친일신문이며 사랑할 수 없는 신문입니다. 친일청산문제에 있어 마땅히 피고자가 되어야할 그들이 칼보다 무섭다는 펜을 들고 오히려 원고들을 심판하려합니다. 충성스런 사주의 글쟁이들은 현란한 글솜씨로, 본질의 방향을 틀고 물타기하고 왜곡시키기를 일삼습니다. 자전거, 시계, 현금봉투, 스포츠지끼워팔기, 등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며 독자수를 늘려서 일등신문이라 합니다. 정언유착을 일삼으며 미디어법 통과에 일조해서 드디어 방송마저 손아귀에 넣게 되었습니다. 곡필아세한 그들의 글과 똑같은 논리를 펴는 주변분들을 만나면 아득한 산, 깜깜한 절벽을 느낍니다. 주제넘게도 저는 특정신문만을 애독하는 분들을 보면 감히, 여러 신문과 각종 정보미디어를 접하시라 권합니다. 아방궁의 진실을 확인하러 봉하 까지 갈 필요가 없듯이, 돈도 필요 없고 약간만의 시간을 투자해서 인터넷 미디어를 활용하시라 고... 진실을 부담스러워하시는 집안 형님들처럼 "내가 미쳤나?" 하시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세종시 명성산! 명성이 높아서가 아니라 울음명( 鳴 )소리성( 聲 )자의 산으로서 경기포천과 강원 철원에 걸쳐있는 명산입니다. 가을 으악새가 유명해 으 악새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권좌를 빼앗긴 궁예가 울었다는 설과 마의태자가 망국의 설움으로 울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름이란 것이 묘해서 십몇년 전 까지만 해도 등산이 통제되었고, 매일같이 울었던 산입니다. 저 매향리 어느 섬처럼 전투기의 폭탄 투하 연습장이었거던요. 폭탄이 터지고 불타고... 때문에 으악 으악 울다보니 으악새만 무성한 산이 되었습니다. 비운의 고장 철원! 한때는 그래도 일국의 서울이 될 뻔한 곳입니다. 태봉을 건국한 궁예가 쌓았던 궁궐지가 비무장지대 쪽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궁예를 쫒아내고 왕건의 반란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개성의 호족세력들의 힘이 컸습니다. 개성에 쌓아 놓은 기득권을 버리고 철원으로 오기를 싫어했던 귀족들의 반란이지요. 한탄강의 수량이 많지 않은 점이 흠이긴 하지만, 넓고 기름진 평야와 특히 철이 많아서 철원이니만큼 수도가 되었다면 이후 역사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만큼 분단의 역사에도 엄청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도읍을 개성으로 빼앗기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장 많이 안고 있는 백마고지, 철의 삼각지, 군소재지마저 옮겨 있게 되는, 먼 훗날 임공이산의 변명 117

118 의 비극을 예측한 명성산이 울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조선건국의 태조 이성계도 한양에 경복궁을 건립하고 천도를 단행했으나 개성 호족들 귀족계급 기득권자들의 항거를 심하게 받기도 하였습니다. 왕자의 난등의 일로 도로 환도를 하게도 됩니다. 이후 강력한 왕 태종이방원이 다시 한양으로 천도를 하게 되는... 역사 를 모두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강력한 개혁정책을 폈던 정조임금도 수원화성을 쌓고서, 암살설의 논란이 되는 의문사를 하게 되지요. 일국의 수도이전은 왕국이 몰락하거나 정권이 바뀌게도 되는 위험한 일입니다. 충청도의 도읍지 천도는 태조이성계 때 부터의 구상이기도 했으며,충청도로의 수도이전 최초의 언급은, 박정희 대통령과 대선경쟁 을 하던 젊은 김대중후보의 공약이었습니다. 이후 유신헌법을 만들어 종신대통령을 굳힌 박정희 대통령이 1977년 백지계획이란 프로젝트로 2년여간 장소물색과 법안, 제도,등을 완성하고 1979년 새해벽두에 수도이전의 대국민 발표를 하였습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당시 신문들은 20년 앞을 내다보신 각하의 위대한 영도력이라고 환영일색의 보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해 10.26일. 아산만 방조제 완공기념 테이프 커팅을 마치고... 궁정동사건으로 서거를 하면서 무산이 되어버립니다. 불행히도 충청도는 아산만과 삽교천 방조제를 선물 받았으나 수도를 거느린 지방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지요. 삽교천 물을 끌어다 농수로 쓰는 당진평야 일대의 주민들은 지금도 10.26일에는 박정희대통령의 제사를 지냅니다. 현대건설에 근무하던 당시 이명박후보가, 옥천군 이원면 마을 공동소유의 산을 매입한 증거자료들을 공개한, 경향신문의 17대 대선 전의 신문보도가 있었습니다. 수도이전의 정보를 미리 알고 투기한 의혹이 짙다는 내용으로 도곡동 땅 의혹과 BBK사건에 앞서 보도 되었었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은 약속을 뒤집어 세종시 건설의 원안을 버리고 이름마저 바꾸려합니다. 박정희대통령시절 20년을 내다본 혜안이라고 적극 찬양하던 신문들은, 안보와 비효율성, 국론 분열, 등, 등을 들먹이며 반대론을 펴 고 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서거가 꼭 30년 지났습니다. 서울에 집중해 있던 육군 공군 해군 본부가 계룡시등, 지방으로 이전했고 미군들도 평택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안보에는 문제가 없으 며, 이미 과천제2청사 대전제3청사로 행정부서들도 나누어져 있습니다. 행정부서 모두가 통째로 옮겨가는 규모가 아닌 세종시의 원안을, 그대로 따른다 해도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3공과 국민의 정부에서 연이어 총리를 지냈던 김종필, 문민정부의 이회창, 참여정부의 이해찬, 등등 국무총리의 산실인 충청도가 이 번에 또 세종시의 반대급부로 정운찬을 만들어 내었지만, 충청도의 민심이 화가 났습니다. 전 야당들의 반대가 심하고 여당도 양분되어 원안을 고수하자는 측과 반대측이 대립을 합니다. 세종시의 뒤집기를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무현대통령의 공약실천이며 노무현대통령의 유산이기에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요? 세종시 원안의 추진파나 뒤집기파나 노무현은 거론하면서 박정희를 거론하지 않는 것이 이상합니다. 이제 박통이란 약발마저 다 떨 어졌기 때문입니까? 임공이산의 변명 118

119 노무현대통령의 표를 얻으려던 공약이라 비판하지만, 표와는 관계없는 박정희대통령의 미래구상이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보다 더 큰 국가를 위한 비젼이었습니다. 왕조까지 바꾸기도 하는 위험한 도박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천하의 박정희대통령이, 종신대통령자리까지 걸고 추진하려 했던 유 산입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서거가 없었다면, 조치원이나, 계룡산아래나, 옥천군쪽 어디가, 세종시 원안정도의 도시를 넘어 정말 수도가 되어있 을겁니다. 오늘밤 충청도 어디쯤에 울고 있을, 명성산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읽기 역사란 어차피 인간사의 기록입니다. 의도적으로 왜곡되거나 거짓으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이는 바라 잡아야 할 것이며 정확히 읽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바로 잡아야할 명칭이나 용어도 많습니다. '을사보호조약'은 '을사늑약'( 乙 巳 勒 約 )으로 한일합방'은 '일제강점'으로 '동학란'은 '동학농민혁명'으로 '4.19학생데모'는 '4.19학생의 거'나 '학생혁명'으로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일제 강점부터 근현대사에 무수한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대부분 용어부터 잘못지어지고 거짓 왜곡으로 기록되어진 것들이 참 많습니 다. <역사는 승리자가 쓰는 것이다.> 사건의 가해자가 승리하여 작의로 써진 기록이 사실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제주 4.3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노근리사건, 한국전쟁중 아군과 미군들에 의해 자행된 여러 사건들, 그리고 최근에도 몇십년만에 진 실이 밝혀지는 인혁당사건, 진도가족간첩단사건, 등등, 어느 것 하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원통하기가 상상이나 하겠습니 까? 그냥 아군의 총에 죽은 것만도 억울하거늘 빨갱이로 간첩으로 누명까지 쓰지 않았습니까. 이 원통하고 억울한 영령들에게 누가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습니까? 악법인 연좌제에 걸린 유족들은 공직에 나갈 수도 없고 호적에는 빨간 줄이 오르고... 여전히 가해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선 숨죽여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세상이 변해 민주정부다운 정권이 탄생하고서야, 물질적인 보상 은 못하더라도 명예나마 찾아주려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란 기구가 활동을 했습니다. 정작 가해자측의 세력들은 여전히 색깔론에 국민통합론에 경제론을 갖다 부치며 흔들어 대더니 다시 정권이 바뀐 지금은 제주4.3사 건을 뒤집기 합니다. <역사는 돌고 돈다.> 정말 억울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지요. 임공이산의 변명 119

120 [참고 자료] # 1905년11월17일(광무 9) 일본이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고자 강압적으로 체결한 을사늑약( 乙 巳 勒 約 )을 한일협상조약, 제2차 한일협약, 을사보호조약, 을사5조약, 을사조약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우리는 강제로 당했기에 분명히 늑약이라고 불러야 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眞 實 和 解 - 爲 - 過 去 史 整 理 委 員 會, Truth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Republic of Korea, 공식 약칭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년 5월 3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통과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속칭 과거사법)에 의해 2005년 12월 1 일 출범한 위원회로 항일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이후 국력을 신장시킨 해외동포사, 광복이후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한민국의 국가 기관이다. 진실 화해위원회는 한시조직이기는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적인 국가 기관으로서 입법, 사법, 행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위원회로 독립위원회의 성격을 지닌 위원회다. # 임공이산의 변명 120

121 임공이산의 변명 121

122 첫 출근하는 딸을 보면서 :29 첫 출근을 하는 딸을 보면서 동.식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서 오목눈이란 예쁜 이름을 가진 작은 새 가족의 생활을 보았다. 천적을 피해 위태한 나무 끝에 집을 짓고 보석 같은 알 몇 개를 낳은 뒤, 체온을 나누며 포란을 하고, 껍질을 깨고, 생명을 탄생 시키는 위대 한 사랑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움! 그것은 새로운 우주의 탄생이요 기적이었다. 온종일 먹이를 물어 날라도 보채기만 하는 새끼들, 부부애, 부성애, 모성애, 숭고한 사랑의 결정들! 그러나 때가 되면 이별을 해야 하는 냉혹한 자연의 섭리를 또 배우게 되었다. 이소! 요람을 버리고 세상을 향해 날개 짓을 종용하는 매서운 어미새의 꾸짖음! 독립의 비행을 해야만 드넓은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음에야... 세월 참 빠르다. 갓 낳아서 기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고, 당당히 직업인이 되어서 첫 출근을 하는 딸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새내기 패션이라면서 숙녀복을 입고 가볍게 화장을 한 모습은 이효리 보다 날씬하고 김태희 보다 예쁘다. 스스로 기상조차 못해서 꼭 깨워 줘야하는 철부지이지만 늠름하게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제 엄마의 눈에는 이슬까지 맺혀있다. 26년전, 사당동 어느 한옥집 문간, 350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소꿉장난 같은 신혼살림을 시작했었다. 아침밥 짓는 협소한 연탄불 아궁이 옆에서 세수를 하면서 각자 출근을 준비해야 했던 맞벌이 가난뱅이 부부였지만 꿈이 있었고 행복했었다. 작은집을 장만하기까지는 애기를 갖지 말자고 약속을 하고서 열심히 저축을 했다. 서로가 상여금까지 받고 보니 곱하기4가되는 거금을 놓고 좋아했던 연말 어느 날, 마침 상경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고 오니, 그사이 허술한 방문 잠금장치가 부숴진채 몽땅 도둑을 맞고서 통곡을 했던 일도 있었지만 말이다. 세상이 어찌 계획 되로만 살아지던가. 덜컥, 아내가 입덧을 하게 되었고 계획차질을 염려하는 나의 경솔한 발언은 평생 아내의 가슴에 못질이 되었다. 아내의 직장이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후생복지가 수준급인 곳이어서, 은근히 계속 근무해 주기를 바라는 얄팍한 내 의도가 또 아내를 섭섭 하게 했었던 모양이다. 임신 8개월 무거운 몸으로도 출근했다가 급기야 근무 중에 빈혈로 쓰러지는 사고를 당하기에 이르렀으니... 첫 출근하는 딸을 보면서 122

123 돌이켜보면 녀석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참 부끄럽고 한심한 아빠였던 것이다.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고 배움에 대한 회한이 있었던 난, 아이의 출생신고부터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래, 평생을 따라다닐 출생지를 강남으로 해 주리라. 아내의 퇴직금을 보태서 소위 8학군의 변두리 강남구 방배동으로 주거지를 옮겼고, '맹부삼천지교'를 하리라 생각했었다. 우리 부부처럼 어리 석은 사람을 '듀크족'이라 하던가! 지금까지 녀석을 키우는 동안 많은 파란을 겪기도 했다. 동생을 둘이나 더 낳고도 별 탈 없던 원만한 가정이었는데... 아~~아! 아둔한 나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아주 크게 실족을 하고 말았었다. 녀석의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다. 돌이켜 생각하기도 끔찍하리만치 우리가정이 심각하게 위기에 처했을 그 당시에도 자식들을 위한 아내의 모습은 마치 오목눈이 어미새처럼 지극정성이었다. 연이은 악수와 실책으로 인하여 가정경제는 점점 절망상태에 빠졌고, 정신까지 황폐해졌었다. 한참을 헤메던중, 다행히 지인의 물심양면에 걸친 도움과 성원덕택으로 늦게나마 정신을 가다듬으면서 험로를 뚫고 어찌어찌 지금까지 먹고 입히고 교육을 시킬 수 있었다. 그 고마움의 엄청난 부채를 어찌하리오. 400만 실업자시대, 험난한 취업전선을 뚫고 대한민국 유수한 대기업의 한 일원이 된 딸애가 장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얽힌 사연들도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갓 난 애기였을 때부터 자기 이불이 아니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정서불안이 심했던 녀석인지라 어디 여행을 갈 때도 꼭 이불을 챙겨가 야만 했었다. 어찌나 울보였던지 우리 형제들끼리 모이거나 친척집에서 잠을 잘 때에는, 다른 사람들 모두 밤새 한잠도 못 자게 만들기 일쑤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발표를 하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듣고 자신감을 얻더니 이후에는 적극적 성격으로 변해서 줄곧 학급회장을 맡는 등 리더 쉽을 발휘하면서 자랐다. 공부도 곧 잘해서 서울대 수시전형의 자격을 얻는 교장선생의 추천서까지 받을 정도의 내신성적이었다. 서울대는 고사하고, K대 경영학과에 지원해서도 최종 2배수 안에까지 들었다가 마지막 심층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었다. 최종 S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을 했는데 본인은 그래도 만족 해 했다. 퇴계선생 율곡선생 등과 동문이 되었다면서 격려해 주시는 큰아버지의 위로가 도움이 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대학입학부터 떨어지는 연습을 많이 했던 셈이지 않은가. 형편상, 흔하게들 가는 외국어 연수는 못 갔지만 장학금도 몇 번 받을 만큼 학점도 좋았다. 공기업 취업을 목표로 준비를 해 왔었는데, 정부 의 방침으로 목표했던 회사는 신규채용이 없단다. 할 수 없이 목표를 대기업으로 수정했지만 정말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난관이었다. 그 럴 때는 외국어 연수 등, 스펙을 더 쌓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수십 통의 원서를 써내면서 고민하는 딸애의 방문사이트를 몰래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회원수 100만명에 가까운 '닥치고 취업'!! 서류낙방의 회수는 이루 말할수 도 없고 어쩌다 최종면접까지 갔다가도 낙방하는 좌절을 겪던 끝에 드디어 어느 회사의 최종합격통지서를 받 아들었던 날, 기어이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현재 대학2학년으로 휴학을 하면서 좀 더 어려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동생을 위해 일조를 하겠다는 기특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이제는 연 애감 후보를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얄미운 소리도 한다. 첫 출근하는 딸을 보면서 123

124 대한민국 유수한 대기업 소속의 IT회사. 전공을 살려 지원부서는 재무.회계이다. 소재지는 가산디지털단지! 바로 26년 전, 녀석을 뱃속에 품은 임신8개월의 제 엄마가 빈혈로 쓰러지면서까지 텔레비젼을 조립하던 구로공단 의 새로운 이름이다. 경인년 정월에 첫 출근하는 딸을 보면서 124

125 손 :43 손 글/임공이산 우연히 보게 된 아침방송에 신달자시인께서 초대 손님으로 출연하셨다. 동향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터인지라 귀한 아침시간을 TV에 빼앗기지 않을 수 없다. 작년 연말, 재경고향향우회 송년의 밤에 참석하셔서 고향을 그리는 자작시를 낭송 하시던 여운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결코 평탄치 않았던 지난 삶의 여정을 담담히 풀어내시는 선생의 강의가 방청객들을 감동시킨다. 작은 소읍이지만 읍내 제일의 운수업을 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남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성장기를 보내었다는 시인이 다.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 부모님의 불화와 아버지의 파산과 별세. 기대했던 이상과는 너무 다른 신혼생활로 인한 우울증, 뇌졸증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처럼 되어버린 남편의 병간호와 뒤이은 시어머님의 병수발 도합24년! 본인 에게 닥친 암이란 병마와의 싸움! 걷잡을 수 없이 연속으로 닥치는 시련과 불행을 극복해 내는 초인적 이야기는 40세 넘어서 삶의 걸음마를 시작했다는 선생의 자서전에도 자세히 밝혀져 있다. 방송이 끝 날 무렵, 험난한 세파를 헤쳐 온 분 답지 않게 밝은 모습이라고, 같이 출연한 패널 한분이 덕담을 건넨다. 화장술과 방송출연을 위한 코디네이션 덕분이라고 웃어넘기시는데, 예리한 사회자가 선생의 손을 지적했다. 손 125

126 화장술로도 감출 수 없는 삶의 이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마디 굵고 주름진 손이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다. 전도 유망한 대학교수 남편이 쓰러졌을 때, 가망 없다고 모두가 포기를 종용했을 때, 전 재산을 치료비로 탕진하고 몰락한 집안이라고 친척과 주변에서 냉대와 수모를 주었을 때, 마지막으로 매달렸던 신앙으로 기적을 체험하며 성당 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빌었던 두 손이다. 보따리장수 등 온갖 밑바닥 생활로부터 끝내 가정을 지켜냈고, 중단했던 본인의 공부도 다시해서 한국문단에 우뚝 선 자랑스러운 여인의 손이다. 34년 전,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중학진학을 못하고 공장을 전전해야만 했던 13살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손이 익도록 종일 뜨거운 납땜질을 했으나 석달치 봉급을 떼이고, 모터벨트에 손이 감기고, 독한 신나를 다루다 후각 을 잃게 되고, 프레스에 손을 찧어서 영원히 불구가 되어버린 경상도시골 안동출신의 소년, 제대로 된 보상은 고사하 고 공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장애를 입은 손으로 이를 악물고 공부를 했던 소년은 검정고시를 거쳐 사법시험에 도전했고 합격했다.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연수원을 마친 그는 출세길이 보장 된 판.검사의 길을 외면하고 친구와 했던 약속 초심을 지키며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자신처럼 억울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동전문 변호사로...두 차례나 구속을 당해가면서 시민운동을 겸하는 인권 변 호사로... 이상은 '모라트리움(채무지급 유예선언)'을 해서 연일 뉴스를 타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이야기이다. 지방자치제를 시행한지 어언 15년! 그동안 민선자치단체장들의 방만한 경영과 무리하게 벌인 사업들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하다. 총체적인 국가부실경영이 가져왔던 IMF를 혹독하게 경험한 우리들이다. 이제라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썩고 곪은 상처를 치유하겠다는 이재명시장을 향해 '정치쑈'라고 비판하고 야유 하는 사람들도 있다. 3,200억이 넘는 초호화 성남시청의 모형이 스텔스 전투기라고 한다. 손 126

127 군 복무를 한 적 없는 이대엽전시장이 영화배우로의 자신 출세작 빨간마후라에서 착안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이대엽 전시장의 배포 있는 큰 손이 아름다울까? 긴축 살림을 살려는 이재명 현시장의 손이 아름다울까? 초심을 더욱 다지기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주일 예배를 빠지지않는다는 이재명시장의 장애 입은 손을 나는 믿는다. 남의 손을 논하면서 어찌 내 손을 들여다보지 않겠는가.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일관해온 거칠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손이다. 크게 손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적도 없지만 자랑스러운 일을 한 적도 없다. 도박이나 다른 삿된 행위에 빠진 적도 없이 열심히 일만 해 왔건만 수중에 남은 것이 없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빈손으로 갈 때 가더라도 아직은 다섯 식구를 책임져야 할 가장의 손이다. 요즘 들어서 부쩍 힘들어하는 아내에겐 더욱 미안한 손. 오늘 밤엔... 피곤한 아내의 다리라도 주물러주고 안마라도 해 주어야겠다. 손 127

128 이청준선생을 추모함 :01 이청준선생을 추모함 자작시 글 방 전원일기 라는 농촌 드라마에서 순박한 시골청년 역을 맡으면서 좋은 이미지를 갖게 했던 모 배우는, 또 다른 드라마에서 현대 통령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공로로 문화담당 장관이 되더니, 정치와는 크게 관계가 없는 문화계 인사들의 숙청작업에 총대를 메고 설쳤었다. 또, 이시대의 베스트작가중의 한분인 모 인사는 수구 보수 세력들의 앞에 서서, 현 정부의 실정과 소고기파동을 비판하고 시위하는 시민단체들과 어린 학생들까지 내란폭동세력 으로 몰았다. 뿐만 아니라 극우단체들을 의병이라 치켜세우며 궐기하라고 선동까지 한다. 근간의 혼탁하고 답답한 세상을 보면서, 과연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를 새삼 생각해 본다. 한낮 이름 없는 범부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사는 만큼은 나름대로 뜻 깊게 살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하면서... 문학이란 장르를 통해서 뭇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야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최근 또 훌륭한 문학의 별 몇 분을 잃었다. 토지 의 박경리 선생이 가신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이청준 선생이 가셨다. 저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저항의 상징인 솔제니친의 부음도 지상을 통해 들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청준의 많은 작품을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감히 그분의 문학세계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주제 넘는 짓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문학을 직간접으로 접하게 되었던 것이 영화로 꾸며진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중 세편을 가지고 간략히 이야기 해 보고자 하는데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으로 풀어보는 것이다. 임권택이라는 거장이 만들고 오정해와 김명곤이라는 명연기자의 열연으로 한국 영화사의 금자탑을 쌓은 서편제 는 더 말이 필요 치 않는 작품이었다. 판소리 한자락에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절절히 베어 있지 않았던가!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과 서로 나누어 동편제와 서편제가 되는데, 사실 우리야 그 차이를 잘 알지 못한다. 판소리라는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을 되살리고 가꾸고 싶은 작가 이청준의 심정이, 김명곤과 오정해를 통해 표현되었다. 축제 라는 작품도 임권택 감독의 영화인데 오랜 기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식을 통해, 고인과 인연을 가진 사 람들의 반목과 질시와 미움과 애증이 얽히고 설킨것을 화합으로 풀어내는 내용이었다. 이청준선생을 추모함 128

129 산자와 죽은자의 소통이 무엇이며 산자들은 산자들끼리 또 어떤 소통을 해야 하는가? 우리 주변에서 장례식이 끝나고 형제간에 원수가 되는 일을 가끔 보지 않는가! 그렇다, 장례식은 축제로 승화 시킬 수도 있고, 더욱 슬픈 재앙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문제의 작품이 '밀양'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작명은 벌레이야기 이다. 세계 유수의 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고 전도연은 최고의 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그리 큰 빛을 발하지 못했나보다. 밀양.( 密 陽 ), 시크릿 선샤인.. 그 이름 자체가 비밀스러운 빛이란 뜻이 아닌가? 처절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련한 여인의 구원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교회의 집단화된 성( 城 )안의 신앙을 비꼬기도 하고 마을유지인 장로나 성직자들의 위선을 표현했다고 보수 기독교 단체의 비토를 받기도 했었다. 특히 노무현 코드의 대표적 인물인 이창동의(그도 문화담당 장관이었다) 복귀작이라는 점 때문에 보수언론의 견제를 받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나만의 지나친 편견일까? 일생을 초야에서 글만을 써오던 이시대의 선비요 진정한 문학의 별. 이청준! 그는 동편도 서편도 아닌 또 다른 비밀의 빛을 찿아서 떠났다. 많은 문인들과 추모객들로 그의 장례식은 축제가 되었다. 삼가 선생의 명복을 다시 빌며, 선생의 고결한 정신을 가슴에 새기는 바이다 이청준선생을 추모함 129

130 :13 아바타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찾기 아바타는 고대 힌두 신앙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현재는 가상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사이버 캐릭터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원래 아바타는 산스크리트 '아바따라(avataara)'에서 유래한 말로 아바따라는 '내려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바뜨르(ava-tr)'의 명사형으 로, 신이 지상에 강림함 또는 지상에 강림한 신의 화신을 뜻한다. 이 단어가 왜 가상공간의 캐릭터에 쓰이게 되었는지는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아바타라는 말이 컴퓨터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리처드 게리엇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울티마의 4편인 아바타의 임무(Quest of the Avatar)(1985)에서이다. 이 게임은 기존의 롤플레잉 게임의 선악구도를 폐기하고 메인 캐릭터의 미덕을 완성하는 데 게임의 목적을 두었다. 게임을 클리어하게 되면 사용자의 캐릭터는 모든 미덕의 화신(아바타)로 새롭게 탄생한다. 따라서 이후 울티마 시리즈에서는 사용자가 조정 하는 캐릭터는 이름 대신 아바타로 NPC(논플레이어 캐릭터)들에게 불리게 된다. 이 게임의 영향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이후 나오는 롤 플레잉 게임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를 아바타로 부르는 현상이 매우 보편화되었다. 여기 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울티마 온라인을 비롯해 롤플레잉 게임이 온라인 게임(머드/머그)화 하면서 특히 고속통신 망 보급이 빠르던 한국에서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이 급속하게 발전하였고, 캐릭터에게 아바타라는 애칭을 붙이는 것이 크게 유 행하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90년대 후반, 각종 채팅사이트와 포털 사이트들에서 수익사업 차원에서 캐릭터를 치장하는 사업을 개시하는데, 이들도 "사 이버 캐릭터"라는 공식적인 용어 대신 아바타라는 용어를 일반적으로 사용하면서 아바타라는 단어가 사이버 캐릭터를 일컽는 말로 일반화되 었다. 영화 - 아바타- -줄거리- 인류의 마지막 희망, 행성 판도라! 이 곳을 정복하기 위한 아바타 프로젝트 가 시작된다!가까운 미래,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 게 된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 vi) 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 를 탄생시키는 영화 - 아바타- 130

131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우주의 미래가 걸린 거대한 운명이 그에게 찾아왔다! 한편, 하반신 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딩튼) 는 아바타 프로그램 에 참가할 것을 제안 받아 판도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 를 통해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제이크 는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Na vi) 의 무리에 침투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 다. 임무 수행 중 나비(Na vi) 의 여전사 네이티리(조 샐다나) 를 만난 제이크 는 그녀와 함께 다채로운 모험을 경험하면서 네 이티리 를 사랑하게 되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간다. 하지만 머지 않아 전 우주의 운명을 결정 짓는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면서 제이크 는 최후의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데. 행성 판도라와 지구의 피할 수 없는 전쟁! 이 모든 운명을 손에 쥔 제이크의 선택은?** 아바타 (Avatar) 아바타는 인간과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 나비(Na vi)의 DNA를 결합해 만든 새로운 하이브리드 생명체. 링크 머신을 통해 인간의 의식으로 아바타 몸체를 원격조종할 수 있다. 아바타는 나비(Na vi)와 동일한 신체 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판도라 행성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 판도라( (Pando ra) 인류가 발견해낸 새로운 행성으로,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이다. 300m에 달하는 나무들이 우림을 이루고, 언옵 타늄이라는 물질이 지닌 자기장 속성으로 인해 거대한 산들이 공중에 뜬 채 끊임없이 이동한다. 밤이 되면 판도라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내부 의 화학반응을 통해 뿜어내는 형광빛으로 빛난다. ** 나비( (Na vi) 판도라의 토착민으로, 파란 피부, 3m가 넘는 신장, 뾰족한 귀, 긴 꼬리를 가졌다.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지닌 이들은 동족 및 모든 생명체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삶과 죽음을 비롯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살아간다. - 감상문- 10여년이 넘는 제작기간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 개봉 전부터 요란했던 문제의 영화였건만 차일피일 미루다 그제 밤 늦은 시각으로 예약을 해서 가족과 함께 관람을 하였다. 자식 놈들 셋은 모두 한번 씩 봤으면서도 3D판으로 한 번 더 보겠다고 하니 관람료만 5x1,3000원, 거금이 나갔다. 만만치 않은 관람료에 벌써 1,200만의 관객이 다녀갔고 개봉한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인기가 시들지 않아서 3D 상영판은 예약이 필수라고 한다. 충격과 감탄! 지금껏 보아왔던 영화라는 장르, 종합예술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 어느 저명인사의 혹평을 미리 읽은 적이 있었는데 글쎄, 나의 소감은 영화사의 한 지평을 연 수작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돌비 서라운드! 등등의 영화광고 멘트가 아직도 귓전에 남아있는 우리세대들로서는 흑백영화에서 칼라영화로 바뀌었을 당시의 충격 과 비견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듯 하다. 대전 엑스포때 아이맥스 입체영상을 체험했던것을 감안하면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바야흐르 3D 4D영화의 도래를 알리는 영화가 아바타라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진부한 스토리에 각종 지난 영화들로부터 캐릭터들을 모방한 것은 재미로 봐야할 지 비판을 해야할 지 모르겠 다. 영화 - 아바타- 131

132 때묻지 않은 문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비족'은 어느 인디언부족을 연상케하고, 본래의 임무를 버리고서 원주민편에 서 서 싸우는 주인공은 '미션'이란 영화에서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젊은 신부들의 모습이었다. '늑대와 함께 춤을' '반지의 제왕' '쥬라기공원' '트랜스 포머' 등등 각종 헐리우드영화 짜깁기의 냄새가 곳곳에 배어 있지만 162분이나 되는 런닝타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는 영화 아바타! 자본력과 발달된 문명, 과학 등의 힘을 앞세워 고유한 문명을 침범하고 수탈해 온 그 간의 인류역사를 비판하고 성찰 하자는 메세지도 공감을 가지게한다. 영화와는 별개로 TV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며칠 전 MBC에서 방영되어 감동을 주었었다. 진정한 판도라의 행성은 바로 지구별, 훼손하지 않아야할 자원이요 보물인 것을... 그러나 거대한 헐리우드의 자본력으로 이런 대작을 만들어 무차별 공격을 해 댄다면, 한국 같은 열악한 환경의 영화 산업은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자본력을 바탕으로한 침탈이라는 소재의 영화가 사실은, 자본력을 앞세워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하는 아이러니를 어 떻게 봐야할 것인지, 극장을 나오면서도 한참을 생각케 만들었다. 영화 - 아바타- 132

133 택호를 만들어 사용하자 :12 택호를 만들어 사용하자는 제안입니다. 글 /임종범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 아직 젊다는 우리들도 감각을 따라 잡기에 정신이 없을 지 경입니다. 동네 신작로에 삼판 나무를 실어나르는 육발이 제무시가 나타나 흙먼지 날리면 그 뒤를 따라 쫒던 일이 엊그제만 같은데, 상전벽해 처럼 변해버린 고향 마을에는 지게보다는 경운기나 자동차가 더 흔하게 보입 니다. 뒷산 골짜기 콩밭을 메다가 휴대폰 컬러링이 울리는 세상을 어찌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문명의 발달로 편리해지고 얻는 것도 많지만 사라지는 고유문화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 중의 하나에 바 로 택호가 있습니다. 우리 또래를 전후해서 고향에서 결혼을 했거나 지금도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청소년 때 도시 로의 이민을 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택호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가지고 있던 택호였는데 말입니다. 택호는 우리고장만의 문화요 풍습이요. 경상도 전역과 전라도 일부지역 등 남부지방에서만 사용하는 문화 입니다. 그리고 여성 존중의 문화입니다. 옛날 여성들은 족보나 비문에도 성씨만 기록 될 뿐 이름이 없는데 반하여 택호는 아내의 친정이름을 따서 정해지고 평생 부부의 고유명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광역단위 보다는 작은 단위마을의 이름을 주로 썼는데 아마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며 또한 갈계 댁 보다는 치내댁으로 칭하는 등 친근하고 소박한 우리말 위주로 사용했습니다. 택호를 만들어 사용하자. 133

134 좀 더 깊이 연구 해 보면 재미있는 것이 옛날에도 한마을에서 사돈을 맺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부모끼리 뜻이 맞아서 자식들의 연을 맺어 주기도 했을 것이고 앞집 처녀와 뒷집 총각이 정분이 나면 결 혼을 시키는 일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택호는 본( 本 )동( 洞 )댁이 되는데 또 같은 경우가 불가피 생 기면 원( 原 )동댁이 되고 다음은 또 한동댁 등으로 지어졌습니다. 택호가 정해지는 데에는 소위 신고식과 같은 의식과 절차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담을 맞대고 살았던 33회로 두회가 선배인 김계근 형이 있습니다. 북상우체국에서 오래 근무 를 한 양반인데 처가가 월성이라 당연히 월성양반이라 불리지요. 명절이나 귀향 때면 꼭 만나는데 같이 어른들께 인사를 하면 여보게 월성 이라 칭하면서 나에게는 내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샘도 나고 멋있게도 보여서 나에게도 내 처가인 당진군 송악면의 지명을 빌어 송악 이라고 불러 달랬 더니 신고식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해서 막걸리 두말을 동네 아지매들에게 턱으로 냈었는데, 자주 고향을 찾지 못하다 보니 그만 유명무실 해 져버렸습니다. 이름이란 남들이 불러 줄 때 그 의미가 있는 것이건만, 혼자만 간직하고 있으려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정장차림이냐 케주얼이냐 운동복이냐 예비군복이냐, 복장에 따라 행동이 점잖아 지기도 하고 자유로워지 기고 하듯이 이름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우리들의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거늘 이제는 이름 보다는 호를 쓰면서 무게 좀 잡아 보자는 얘기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아이디나 닉네임의 사용이 흔해졌습니다. 일부 포털이나 사이트에서는 모호한 아이디 등 을 쓰면서 언어가 거칠어지고 표현이 과격해 지는 익명성의 폐단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포털에서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에 제약을 가하게 될 실명제에는 나도 적극 반대하 는 입장입니다. 이런 차제에 다들 멋있고 뜻 깊은 별칭들을 인터넷 온라인 상에서 쓰고 있지만 가능하면 택호를 별칭으로 쓰자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프라인에서 만났을 때도 자연스럽게 중무형님, 용수막아제, 당산선배, 가래올양반, 하고 부른 다면 멋과 품위도 있고 우리고장만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하면서 또한 아내에게 점수까지 따게 될 것이니 까요. 해서 나 지천명에겐 오늘부터 송악 이라 불러 주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택호를 만들어 사용하자. 134

135 택호를 만들어 사용하자. 135

136 숲속을 거닐며 :30 숲속을 거닐며 송악 신록이 짙어진 상쾌한 초여름 오전의 숲속을 거닐고 있다.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한 총동문회! 간밤의 떠들썩함과 흥분된 잔치가 벌어졌던 곳이건만 어느새 무대장치와 천막과 기타 시설물들이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었다. 이내 고즈넉한 산골 숲의 모습으로 되돌아와 있는 것이다. 들뜬 기분에 주체 못한 과음에다 흐트르진 자세를 보였던 필자만이 아직도 숙취를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 고 있나보다. 가뭄 탓인지 논물로 빠져나가서인지, 수량 많지 않은 맑은 계류를 끼고 있는 숲속은 변한게 없다. 예전부터 아름드리였던 노송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귀품을 지키고 있고 굴밤을 털리기 위해 매질당한 상처를 안고서도 상수리나무들은 늠름하다. 어린 소녀들의 고사리 손에 간지럼을 당했던 배롱나무도 연륜만큼이나 고고한 품위를 보이고 있다. 도계정 경모제 별묘를 비롯 북쪽위쪽에 자리한 아담한 병암정까지 두루 돌아보고서 친구들이 소담을 나누 고 있는 가선정에 올랐다. 숲속을 거닐며 136

137 마루바닥에 송화가루가 소복하다. 그만큼 인적이 뜸했던가보다. 정자나 숲이나 너무 번잡해서 좋을 것이 없겠지만 왠 만큼은 사람때를 타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난간에 걸터앉아 상념에 빠지는데 어느 못자리에서 미꾸라지라도 한 마리 사냥하고 오는지, 둥지로 날아 드는 백로의 날개짓이 우아하다. 간밤 행사무대 옆 나무엔 폭죽에서 터져 나온 오색종이 실이 가지에 걸려있다. 언젠가 어느 동문이 폭죽사용에 관한 염려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어젯밤에 놀랐을 새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다. 오래전부터 이 숲의 주인노릇을 하는 새들이 아니던가. 장소를 숲으로 택한 것은 정말 현명한 판단이었다. 어제 오늘처럼 무더운 폭염에 학교 운동장이란 장소보다는 이곳이 얼마나 시원한 그늘인가. 혹시나 오염원 배출을 염려했던 생각은 역시 기우였다. 우리 동문들은 역시 문화인들임이 여실히 증명된 셈이다. 점심으로 준비한 어탕을 먹기 전, 구슬치기 딱지치기 제기차기 공기놀이 자치기 등등, 우리 동기들 끼리만 의 동심어린 숲속놀이를 하면서 모처럼 때묻지 않았던 초등학교 그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이런 놀이를 생각해낸 친구 정영상의 순수한 발상이 놀랍다. 잠시 틈을 내어 갈천선생 악강 오백주년기념건립비들을 돌아보면서 어려운 용어를 풀어가며 설명하는 친 구 임영목의 해설도 좋은 공부가 되었다. 여러 가지로 우리 북상인들에게 유용한 공간 치내숲!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까지 새롭고 자랑스럽다. 아끼고 가꾸어서 후손들에게도 물려주어야 할 유산임이 분명하다.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숲을 나온다. 더욱 많은 동문들이 모일 내년을 기약하면서... 숲속을 거닐며 137

138 숲속을 거닐며 138

139 숲속을 거닐며 139

140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40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뿌리 없는 가지와 줄기가 어찌 있을 수 있으며 조상 없는 후손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서구화 산업화 기계화를 넘어 디지털화하는 변화무쌍한 세상속이라 정신세계 가치관도 많이 바뀌었다. 특히나 생활변화로 핵가족화 하면서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무너져가고 가까운 친인척간의 끈끈한 유대감까지 사라져 만 가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집안도 예외가 아니다. 양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큰형님내외분만 본가를 지키시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장남 이란 의무감으로 도맡아 하신다. 아버지께서도 생전에 말씀하시길 맏형은 부모와 맞잡이라 여기라고 하셨다. 큰형님에 대한 권위를 세워드리지는 못 할지라도, 먹고살기 힘들고 바쁘다는 핑계로 동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번에 큰형님의 오랜 숙원과 형제들의 뜻을 모아서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 화려한 석물들로 치장하고 호화롭게 분묘를 꾸미는 것이 유행처럼 행해지고 있지만, 우리 형제들은 소박하고 간소한 비석을 세우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부모님을 추모하고 자손들끼리 유대를 돈독히 하는 근원으로 삼는다면 족하지 않겠는가. 누구나 읽기 쉽게 추모의 비문을 쉬운 우리말 글로 만들고 셋째 형님의 친필로 새겨 넣기로 하면서 부모님의 일생을 더듬고보니 정말 파란만장한 생이시다. 1919년 3.1만세운동의 해에 나시고 일제치하와 해방, 한국전쟁, 등 굵직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을 누구 못지않게 부딪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140

141 치며 사셨던 아버지! 부모님을 따라 상주 옥산을 떠나 윗마을 신기촌에 유하시던 중 중매로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고, 풍운아적 기질이 강 하신 아버지의 뒷바라지는 물론이요 고생고생 일곱 자식을 키워내신 어머님! 두 분의 고초를 어찌 다 표현하리오. 큰형님께서 길일로 택하신 날이 무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때인지라 간략히 하기로 한 행사일망정 초대한 손님들께 송 구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참석해주신 문중 원로 분들과 마을어르신들, 친.외가를 비롯한 인척들께 진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올리는 바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자손이 어언 40여명이 넘었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의 거룩한 뜻의 비석을 가슴에 새기고, 앞으로 더욱 돈독한 우애를 나눌 일이다. 이에 연암선생의 고귀한 글귀 한편을 마음으로 되새겨 본다. 燕 巖 憶 先 兄 연암 박지원 우리 형님 모습이 누구와 닮았던가? 我 兄 顔 髮 曾 誰 似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141

142 아버님 그릴 때마다 형님 얼굴 뵙곤 했지 每 憶 先 君 看 我 兄 이제 형님 생각나면 어느 곳에서 뵈올까? 今 日 思 兄 何 處 見 의관을 갖추고서 시냇물에 비춰보려네 自 將 巾 袂 暎 溪 行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142

143 玉 山 부부 비명 여기 산수가 수려한 북상은 선조께서 터 잡아 여러 대를 이어오시니 우리 아버지 옥산께서는 은진임씨 의 령공파 십구 세 손이요 특히 효행선비 효간공 갈천선생 직계손으로 일천구백십구년 시월 십사일 장환공의 차남으로 향리에서 나시니 이름은 재자 업자이다. 위로는 형 재홍과 아래로 아우 재우 재수 사형제는 효심 이 깊고 우애가 두터워 사람들의 송찬을 들으시다. 어머니께서는 진양정씨 정우복선생의 후손으로 일녀 삼남중 장녀로 일천구백이십일년 이월십사일 본향인 경북 상주에서 나시니 이름은 임자 이자이다. 부모님이 신기촌에 옮겨 사시던 중 중매로 인연을 맺어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고 처가 본향의 지명을 따라 玉 山 이란 택호를 얻으셨다. 슬하에 자식이 많았지만 항상 온화하시고 인정이 많았던 두 분은 자녀들 앞에서 언성을 높여 다투지 않으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143

144 시고 검소하고 근면한 가정은 항상 화목하였다. 그 어진 성품에 눈물이 많고 걱정이 많았으나 또한 잘 웃 고 술을 좋아하시고 명랑하셨다. 일제 식민치하 아버지께서는 청천시절 마음 둘 곳이 없어 만주와 일본으로 돌아다니셨다. 이로 인해 어머 니는 혼자 장남 종한을 낳고 또한 아버지를 찾아 타국 일본에 가셔서 차남 종권을 낳게 되시니 그 고초가 오죽 했으리요. 일본에서 해방을 맞이하니 왜인들의 횡포를 피해 전 재산을 잃고 간신히 귀국선을 탔도다. 천신만고 귀향 하여 물려받은 재산 없이 빈손으로 살림을 꾸리던 중 다시 육이오 동란으로 아버지는 징용을 당하셨도다. 그런 중에도 연이어 자식을 두게 되니 풀뿌리 캐고 나물죽으로 자식을 키우신 어머니의 고초가 오죽 했으 리요. 인고의 세월로 일곱 자식을 무탈하게 장성시켜주신 두 분 삶을 어찌 다 말하며 이 은공을 어찌 다 갚으리오. 장하시도다 우리 부모님 우리가 물려 받을 것은 어진 성품이요 자손들에게 길이 물려 줄 것도 어진 성품이로다. 일천구백구십구년 구월구일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천이년 십이월 십칠일에 어머니 돌아가시니 두분 안택 에 고이 모시며 추모의 정성을 모아 자손들은 여기에 비석을 세우다. 경인년 봄 서기 이천이십년 칠남매 배향 부모님 산소에 비석을 세우다. 144

145 나그네 :53 나그네 詩 / 林 公 移 山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를 마오 가지 떠난 잎새는 바람 따라 구르고 물에 뜬 낙엽은 물길 따라 흐를 뿐 짝 잃은 외기러기 쓸쓸히 날아가는 해 저문 서산하늘 노을이 붉게 타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를 마오 나 어디서 왔는지 모르거늘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네 나그네 145

146 나그네 146

147 '반장거울' 베던 날 :42 ' '반장거울' 베던 날 글/ 임공이산 좀체 수그러들 줄 모르던 더위가 긴 여름의 끝자락까지 계속되더니 때 아닌 비가 또 일주일이 넘도록 오락가락하 고 있다. 요즘의 여름이야 피서다 뭐다 즐기는 문화가 많지만, 그 옛날 농촌에서는 여름철 더위에도 쉴 틈 없이 일을 해야만 했다. 까마득한 옛 시절의 어느 해 여름 '반장거울베기'날에 있었던 추억 한토막이 생각난다. 부연해 설명하자면 산골 우리마을에선 이장을 구장이라 불렀고 200여호 되는 마을집들을 4개 반으로 나누어 반장을 두었었다. 구장에게는 집집마다 보리쌀 얼마씩을 거두어 연간의 세경을 내었고 반장에게는 여름날 하루 날을 잡아 풀을 베어주 는 것으로 삯을 대신했다. 여름철 한창 웃자란 풀을 베어 두엄더미로 쌓아두면 절로 썩고 발효가 되어 최고의 천연퇴비가 되는데 이 풀을 방언 으로 '거울'이라 불렀던 것이다. '반장거울' 베던 날 147

148 서툴고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베는 일에는 톱이나 낫의 성능이 매우 중 요한 몫을 차지한다. 나무를 할 때는 무쇠로 만든 조선낫을 사용하고 풀베기에 사용하는 낫은 얇은 강판으로 만든 왜낫을 사용하는 것이 다. 특히 숫돌에 갈아서 날을 세우는 일이 중요한데 너무 옥갈면 금방 날이 무디어지는 결점이 있다. 우물가에 상시로 있는 숫돌에 앞뒤면 골고루 파랗게 날을 세운 왜낫을 지게에 꽂고 반장거울을 베어주러 갔던 날이 다. 15살 나이에 불과했지만 한 장골 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부피 있는 거울짐을 지고 다녔던 때이다. 솜씨 있는 일꾼은 한주먹 한웅큼씩 풀포기를 잡고 베지 않는다. 조자룡 헌 칼 쓰듯이 현란한 솜씨로 낫을 뿌리면 풀들은 절로 쓰러져 눕는다. 적당히 그늘진 곳에 무성한 풀밭이 있는 법! 동네 앞 안산골짜기에서 가뿐히 오전 몫의 '거울' 한 짐을 베었다. 사람이 좋아서 호인소리를 듣는 이웃집 반장형님네는 한창 깨가 쏟아진다는 신혼이었다. '거울베기' 부역을 해주는 반원 일꾼들을 위해 점심으로 국수를 삶고 밀주단속을 피해가며 담궈 놓은 농주를 내어놓 았다. 마당가 감나무 그늘아래에서 국수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물도 타지 않은 독한 전주를 거의 세숫대야 수준 크기로 한 양재기를 퍼 마셔버렸다. 땀 흘린 뒤끝이라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시원한 막걸리에 피로가 씻어진다. 그런데 그 광경을 지켜본 새댁형수님이 놀라서 고함을 질렀다. 위천면 새안골 친정집의 내 또래 동생과 비교가 되었던 모양인데, 덕분에 옥산댁 넷째아들 종버미는 술고래라는 소문 이 붙어버렸다. 정작 큰 사고는 오후에 일으키고 말았다. 오후의 '거울베기'는 음지담 큰골 골짜기에 있는 반장네 밭에 거울짐을 부려 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밭 주변 산에서 간단히 거울 한 짐을 베어서 부려주고 친구인 해동이와 빈 지게를 지고 논과 밭 사이의 들길을 내려 오고 있었다. 개울물에서 서로가 등목까지 해 준 뒤라 기분마저 상쾌하다. 길게 늘어진 콩밭 울타리를 따라 걷는데 뽕나무 그루터기위에 웬 담배 한 갑이 성냥과 함께 얹혀 있었다. 두 세가치 밖에 빠지지 않은 팽팽한 새마을 담배갑의 강렬한 유혹! 주변엔 아무도 없으니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반장거울' 베던 날 148

149 밭두렁 밑 밤나무 그늘에서 일단 한가치 씩을 피워버렸다. 그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서 슬쩍 주머니에 넣고 마을을 향해 바삐 걷는데... "야, 이놈들아 게 섯거라. 이놈들아!" 뒤쪽에서 웬 어른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필시 담배의 주인이렷다. 이걸 어쩐단 말인가? 두 개피를 이미 빼 어서 피워버렸으니...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떠 올리다가 시치미를 떼기로 마음먹었다. 얼른 담배갑을 나락논의 벼포기 밑 진흙 뻘 속에 쑤셔 넣었다. "안녕하세요?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왜 그러시는데요?"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뿔사! 다른 사람도 아닌 친구 허재환이의 아버지였다. 친구의 아버지가 문제가 아니다. 우리아버지와 갑장이시며 절친한 사이이신 덕산아저씨가 아닌가! "이놈들아 내가 논두렁을 깍느라고 잠시 둔 담배갑이 없어졌는데, 그 사이 지나간 사람은 너희 두 놈밖에 없었단 말이다. 다 용서해 줄 테니 담배만 내 놓아라." 입술이 탔다. 하늘이 노랗게 올려다 보였다. 노을인지 정신이 아득해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입으로는 여전히 거짓말을 토하고 있었다. "저희는 정말 모릅니다. 피울 줄도 모르는 담배 같은 걸 왜 탐을 내겠습니까?" 깊게 한숨을 쉬시며 덕산아재가 말씀하셨다. "오냐, 알았다. 옆에 넌 뉘집 아들인지 잘 모르겠다만 옥사이 아들 니놈은... 참 맹랑하구나!" 집에 돌아왔으나 저녁밥이 모래알처럼 씹혔다. 후회가 막심했다. 왜 그런 짓을 했고 왜 그렇게 거짓말을 했을까! 시간 을 되돌리고 싶고 멀리 떠날 수 있으면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이 사실들이 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고민 에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었다. 그래, 사실대로 고백하고 용서를 빌자. 막담 담배 가게에 가서 당시로는 최고급 담배 바람개비 무늬가 그려진 아리랑 한 갑을 샀다. 재환이네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덕산아재는 대청마루에 앉아 부채를 부치며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침을 삼켜가며 떠듬떠듬 말씀을 드렸다. "저~~~~ 죄송합니다. 호기심에~~~ 저질렀던 일이었고 ~~~경황이~~~ 없어서 거짓말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용서 ~~ 해 주십시오." "허허허허! 옥사이 아들놈 그놈 고 참 맹랑한 놈! 떽기놈아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비싼 담배를... 어디 보 자. 아리랑이 맛이 좋긴 좋군 그래!" "아저씨, 그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우리 아버지에게는 절대 말씀하시지 말아 주십시오." "허허허헛! 이놈아! 난 오늘 논두렁을 깎으러 가지도 않았었고 담배를 잃어버린 일도 없었다. 어~ 아리랑 아리랑 그 담배 맛 참 좋~다!" '반장거울' 베던 날 149

150 '반장거울' 베던 날 150

151 중산리- 닥나무와 문종이 :29 중산리- 닥나무와 문종이 임공이산 지난여름, 절정의 피서철이요 '수승대세계연극제' 기간 중의 고향방문이라 당연히 숙박업소를 구할 수 없을 터, 인 원이 좀 많지만 고향집에서 하룻밤 묵으리라 각오를 했는데, 도대체가 거창 땅 일원에서 실속 없이 발만 넓다는 조카 가 위천면 금원산 입구에 어느 민박집을 구해주었다. 덕분에 도자기 공방을 겸하는 넓고 운치 있는 외딴 찻집에서 우리와 두 동생네 식구들 모두 편하게 밤을 새울 수 있 었다. 이른 아침, 여명의 창밖을 내다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나 불과 십 여리 남짓 차이에 이렇게 경치가 다른가! 서덕들 일대의 광활함! 눈앞에 펼쳐진 시원한 평야는 우리 동네 중산리와는 비교가 아니었다. 우리동네 중산리는 과연 어떤 동네이던가! 갈밭만당에서부터 윗탑불까지는 그런대로 길게 논뜰이 펼쳐지지만 동네입구에 들어서면 앞뒤 좌우 모두가 산으로 에 워싸인 것도 모자라서 동네 가운데에 또 산이 있는 마을 중산리! 중산리- 닥나무와 문종이 151

152 처음 중산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질문이 마을은 제법 큰데 비해서 들판이 없으니 무얼 먹고 사느냐고 한다. 방철껄일대와 갯들주변 좁은 들판의 논들은 그야말로 문전옥답이라, 주변의 논임자들은 비교적 윤택한 살림이요 쉽 게 농사를 지었던데 반해 나머지 집안들은 물만 끌어댈 수 있는 곳이면 어떤 골짝이던 논을 개간해서 벼포기를 꽂아 가며 힘들게 벼농사를 지어야했다. 논이 없으면 밭이라도 많아야 할 터인데 중산리의 산들이 경사가 급하고 험한 악산이고 보니 밭을 일구기도 쉽지 않 은 조건들이다. 산으로부터 얻는 것 중에서는 역시 나무가 제일이다. 수십 년 이상 키운 소나무를 벌채하는 삼판이 종종 벌어졌다. 바퀴가 여섯이라 육발이 제무시(미제GMC트럭)라 불리는 나무수송 화물차가 신작로를 따라 올라와서 산 아래 까지 접근했다. 벌채한 통나무를 그곳까지 나르는 방법으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본식 썰매 '겜마'를 한동안 이용하다가 한참 발 달한 것이 '공중철'이었다. 산에서부터 신작로 변까지 길게 두 줄의 와이어를 경사지게 매고 도르레에 묶은 통나무를 달아 내리는 쉽고 빠른 수 송방법이었지만 위험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그러한 산악 동네 중산리에도 중산리만의 특수산업이 있었으니 바로 닥나무를 이용한 한지생산이었다. 어떤 조건에서도 잘 자라는 닥나무는 밭두렁이나 논두렁 아래 등, 별 용도가치가 없는 땅에 주로 심었고 해마다 자 라는 긴 새순가지를 잘라서 껍질을 벗겨 한지용 펄프를 만들었다. 생명력이 강한 아름드리 그루터기에선 봄마다 무성하게 새순을 올려주었으며 크고 두꺼운 잎은 소들이 좋아하는 최 고의 영양식이된다. 가을철 잘라낸 가지는 대마를 삼곶하듯 익혀서 껍질을 벗겼다. 벗긴 껍질을 냇물에 담가 불려서 갈색의 겉껍질을 벗기는 작업 '딱깎기'는 농한기인 겨울철 내내 하는 지루하고 힘든 노동이었다. 맑은 냇물을 퍼 쓰기가 쉽고 나무를 삼곶하는 가마와 닥을 삶는 아주 큰 가마솥이 걸려있는 장소가 바로 마을 입구 아래쪽에 있는'지통껄'(종이 뜨는 곳)이다. 닥나무의 순수 흰색 속껍질만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 미국에서 수입한 '굽지'라고 불리는 전산용 두꺼운 폐지를 함께 풀어서 가마솥에 삶으면 보얗게 반투명한 액체가 되었다. 외가닥 끈을 묶어서 내린 문틀에 고운 돗자리를 올리고 펄프 원료인 액체를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골고루 얇게 퍼 올려서 달구어진 철판에 널어 말리면 한 장의 한지가 완성되는데 이 마지막 공정이 최고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중산리 사람으로서는 이 마지막 공정을 하는 이가 없어서 의령에서 온 기술자들이 도맡아했다. 두껍지도 얇지도 않고 질기며 전면이 골고루 결이 고운 양질의 종이 생산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한옥 문짝하나에 부족한 크기의 이 종이를 '문종이'라 불렀고 꼭 '종이를 뜬다.'라고 표현했다. 중산리- 닥나무와 문종이 152

153 문종이를 뜨는 사업은 몇 십 마지기 벼농사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었다. 한창 전성기 때 종이를 떴던 어떤 집안은 현금 보유고가 얼마나 많아서 방안 가득 돈을 쌓아놓고 있다는 소문이 나 기도 했다. 회상해 보면 중산리란 척박한 산골마을에서도 옛 선인들의 놀라운 지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산골의 특성을 살려 뽕나무를 심고 잠실을 크게 지어 대대적인 잠업을 했던 집안이나 40여 년 전에 이미 사과나무 과 수원을 만들었던 선견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모두 떠나버린 산촌에서 '문종이뜨기' 등의 노동집약산업들은 자 연히 사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전이 벽해가 된다고 했던가! 뽕나무밭 닥나무밭들은 묵어지고 지통껄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넓은 벌판보다 골짝 산야의 땅들이 더 가치가 있는 세상이다. 농촌도 특성화되는 시절! 위천면 넓은 서득들보다 중산리 깊은 산골이 더 좋다. 서예를 하기에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형님은 고향방문길에 항상 지통껄을 보면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옛날의 그 문종이 뜨는 산업을 살릴 수만 있다면...요즘에야 말로 중산리 최고의 특화산업이 될 텐데." 중산리- 닥나무와 문종이 153

154 중산리- 안도랑 :25 중산리-안도랑 글/송악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378번지! 우리 형제들의 생가요 내 개인기록에 영원히 따라붙는 본적지이다. 일찍부터 난 이 주소에 불만과 의문을 가지고 있다. 엄연히 중산리란 이름이 있고 모두가 '중산리'로 부르고 있는데도 왜 행정 주소가 '갈계리'로 되어 있을까? 산골로서는 꽤 큰 마을로서 전성기 땐 이백여호에 육박했었고 면소재지인 갈계리 본동과는 2KM이상의 거리가 떨어진 동네이다. 정확한 근원을 알 수는 없으나 추측컨대 일제치하 시절의 행정개편 산물이라 짐작한다. 중산리! 성산 지리산의 등산인기처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천왕봉 아래의 중산리를 비롯하여 같은 이름을 가진 동네는 전국에 꽤 많은 모양인데 어느 곳이나 공통점은 산중동네란 것이다. 우리 마을 역시 산골임은 말 할 필요 없고 대부분의 집들 자체가 평지가 아닌 가파른 언덕에 옹기종기 지어졌다. 마을의 자랑거리로 '안도랑'이 있다. 위쪽 진양지에서 발원한 비단결처럼 고운 시냇물이 음지담과 양지담, 동서로 마 을을 양분하며 동네 안쪽을 흐르는데 '굴띠기' '독다리껄' '방청껄'등을 거치면서 윗동네 소정리에서 내려오는 바깥 큰 도랑과 '지통껄'에서 만나게 된다. 안도랑을 중심으로 서쪽 언덕에 위치한 음지담이 아침 햇살을 먼저 받는 곳이니 사실 양지라 할 것인데 왜, 음지담으 로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음과 양의 조화처럼 양쪽의 호수도 비슷했고 집들의 방향도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경우가 많 다. 도랑의 제일 중심 마을안부에 '독다리'라 불리던 노디(징검다리)가 있었는데, 대구에 나가서 크게 돈을 벌었다는 어떤 분의 기부로 작은 큰크리트 다리로 바뀌었으니 양쪽을 편리하게 잇는 60년대 초반의 획기적인 토목공사였다. 중산리- 안도랑 154

155 다리가 놓이고도 여전히 독다리껄이라 불리던 이 다리아래는 마을 제일의 빨래터였다. 빨래하는 주변엔 중태와 미꾸 라지 등,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놀만큼 물이 맑았다. 중산리로서는 최고의 가치가 있는 문전옥답 논들에 물을 대어주 는 보가 몇 개 있는 안도랑의 상류로 올라가면 물은 더욱 맑아지고 들판 가운데 있는 반석위에 작은 비석이 서 있는 '비석걸'이다. 주위엔 많지 않은 수량이었지만 메기와 뱀장어도 잡을 수 있는 沼 (소)와 潭 (담)이 몇 군데 있었다. 그 위쪽이 꽤 넓게 펼쳐지는 '새말'과 '노루갯들'이란 들판이며 주로 음지담 분들의 쌀 수확지다. 건너 쪽 산 아래에 작은 다랭이논 세 개가 있어 우리집의 유일한 서마지기 재산이었다. 아버지께서 제금(분가) 나올 때 받은 유산인데 흰거리(물논)이어서 이모작(보리농사)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래쪽 다랭이 중간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북(뻘)이 있는 고약한 구조요 윗다랭이 물꼬 입구의 맑은 옹달샘 찬물을 끌어 농 사를 지었기에 나락의 소출이 형편없었다. 우리 아홉 식구의 생명줄이었던 이 논에, 초등학교 입학도 전부터 꼴망태를 매고 안도랑을 거슬러 올라 다녔다. 가을날 벼들이 여물기 시작하면 밥을 먹기가 바쁘게 논에 나가 참새들로 부터 한 톨의 벼이삭이라도 지켜야하는 것 이 나의 임무이기도 했다. 메뚜기를 잡다가 물재사(뱀)를 만나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다가... 무료함에 지치고 있을 때였다. 따~~~~~~앙!!! 맑은 가을하늘에 천둥이 치고 고요한 산골짜기가 흔들렸다. 노루갯들, 새말, 박골, 굴띠기, 일대의 놀란 참새떼가 혼비백산 산을 넘어 도망을 가버렸다. 비석걸! 바위위에서 서너 발 짜리 뙈기를 치는 형님이 있었다. 소리와 함께 들판의 아이들은 비석걸로 모여들어 삶아온 고구마를 나눠먹고 논고랑에 묻어서 삭힌 감을 씻어 먹으며 같이 놀았다. 도망갔던 참새 떼가 모여들 때 쯤이면 다시 뙈기를 치면 그만이었다. 따~~~~~~~~앙!!!! 짚으로 손잡이를 도톰하게 만들고 여자아이 머리를 땋듯이 세 갈래로 땋아가다가 마지막 가는 부분에는 질긴 삼껍질 이나 닥나무 껍질로 꼬아 만든 뙈기! 머리위로 들어서 서너 바퀴 빙빙 돌리다가 갑자기 훽 방향을 바꾸면 꼬리가 부딪치며 큰 소리를 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치면 '따~악' 소리만 겨우 났으나 은아형님이 치는 뙈기는 우레처럼 큰 소리를 내었다. 빈 약병에 화약을 채워놓고 사제폭탄(깡)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다가 사고를 치는 등, 모험을 즐기고 각종 놀이에 탁 월한 재주가 있던 그 형님은 어린 나의 눈에 우상이었다. 비교적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던 그 형님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찍 요절하였다. 구비구비 안도랑변에 새겼던 유년의 추억들을 어찌 다 말하랴. 중산리- 안도랑 155

156 '시게토'를 타고 젖은 양말 태워먹던 겨울날의 방청껄에서부터 빌린 빵틀에 밀가루 냄새 풀풀 나도록 풀빵 구워먹던 여름날의 진양지 골짝까지 무수히도 많은 고무신 발자국을 찍었다. 중산리의 보물 안도랑이 사라져버렸다. 행정지명에 중산리가 없는 것처럼 중산리의 안도랑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주차장을 확보한다고 독다리껄 일대를 복개하더니 급기야는 도랑전체를 덮어서 신기촌까지 통하는 길을 닦아버렸다. 60년대, 작은 콘크리트다리 하나를 놓기보다도 쉽게 공사를 끝내버렸다. 편리성만 찾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안도랑을 청계천으로 만들어버린것이다. 아니, 수십 년간 덮여있던 서울의 청계천은 천문학적 돈을 들여서 복구를 하는 마당에 산골 중산리는 거꾸로, 천혜의 보물에 뚜껑을 덮어버렸다. 노디(징검다리)로 놓았던 큰 바위가 떠내려가는 큰물에도 범람하거나 마을에 피해를 준 일 한번 없었던 도랑이요 아 무리 가물어도 마르는 일 없었던 귀하고 귀한 보물이 사라져버린 사실에... 통탄을 금치 못하는것이다. 중산리- 안도랑 156

157 중산리-소나무와 별 :00 중산리-소나무와 별 송악 여느 산골이 다 마찬가지이겠으나 중산리는 특히 소나무가 많은 마을이었다. 윗 탑불 모리를 돌아 동네를 들어서는 왼편 개천가에는 100여 그루 장송들의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어서 장관이었고 큰도랑 주막거리앞 중보 옆에는 물쪽을 향해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한그루가 멋진 그림을 만들었다. 마을 뒤에는 온통 소나무들로 들어찬 완만하고 아담한 동산이 있는데 이 산이야말로 동네의 상징이다. 중뫼에서 중무 로 변형된 우리말 이름을 얻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동산으로 말미암았음이라 한다. 이 뒷동산에는 큰 장군뫼, 작은 장군뫼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조들의 산소와 봉분들이 요소요소 좋은 자리를 오래전부 터 차지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좋은 놀이터 구실을 해주었고 덕분에 잔디밭은 손대지 않아도 절로 가꾸어졌다. 여름이면 소를 놓아먹이고 겨울이면 덤불이나 나뭇잎 고사목뿌리 등을 긁어 갔으므로 산의 어느 곳에나 길이 나 있 었고 접근하기가 쉬웠다. 작은 소나무 밭들 사이에는 드문드문 키 큰 고목들 수십여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그 중 특히 잘생기고 마을사람들과 친근한 명품소나무 한그루가 있었으니... 바로 줄뫼가 끝나고 갯들쪽 급한 경사면 이 시작되는 그 꼭지점에 서 있던 소나무이다. 원체 우람하게 잘 생긴 위용에 가로로 뻗은 실한 가지를 가지고 있어서 해마다 추석이면 마을사람들이 동아줄을 엮 어서그네를 매었다. 중산리-소나무와 별 157

158 추석날 밤, 동쪽 안산 봉우리위로 두둥실 쟁반 같은 보름달이 떠오르면, 휘영청 달빛을 받으며 튼튼하게 엮은 동아줄 에 달아놓은 그네를 띄웠다. 탄력을 받은 그네는 하늘의 달까지 닿아서 달 속의 토끼들과 부딪쳤다가 뒤로 물러나 줄뫼쪽을 넘어가다가... 발밑은 심한 경사면이었기에 더욱 스릴감이 있었고, 그네를 타는 젊은 처자들의 묘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 아내었다. 갓 시집온 새댁들도, 더러는 남자들도, 용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네를 탔다. 두 사람이 함께 타기도 했고 부부가 같이 타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겁 없이 상사점까지 높이 날았던 반면에 남자들은 몸을 사렸다. 다음으로 유명한 소나무가 이름하여 '별따는소나무'이다. 저 큰산 덕유산의 중봉 하봉에서 남으로 뻗쳐 내린 산맥 한줄기가 동네 음지담 뒤쪽 능선인데 이 능선 중 가장 오똑 한 봉위에 거인처럼 늠름한 소나무 한그루가 있어 해지고 땅거미 내려앉는 시간이면 실루엣으로 더욱 또렷이 올려다 보였다. 장엄한 은하수가 남과 북 하늘을 흐르고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반짝이는 여름밤이면 하늘까지 닿아있는 소나무 가지에 올라 장대 끝 잠자리채 같은 보자기로 조심스럽게 별을 따서 바지게에 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미처 따지 못해 너무 익어버린 별들은 별똥별이 되어 떨어지고 말았으므로 아무도 말리거나 개의치 않았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도 십여 개 이상의 별똥별이 산 넘어 병곡 쪽으로 꼬리를 그리며 떨어졌다. 언젠가는 떨어진 별똥별 무더기를 찾으러 산을 넘어 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세상이 변해가고 있었다. 그네를 매었던 소나무가지에는 스피커가 달리고 잔디밭에 모여 앉은 동민들은 박수를 치면서 참가자들의 노래부르기 솜씨자랑을 즐기는 '콩쿨대회'가 새로운 명절 밤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상품으로 솥단지와 그릇 등이 걸렸으며 참가자는 돈을 내고 번호표를 사야했다. 이웃마을에서까지 젊은 처녀총각들이 원정을 오기도 했으며 매번 흥행은 성공을 했다. 새로 나온 대중가요는 라디오 전파를 타고 시골마을에도 빠르게 유행을 해서 남인수, 고복수, 오기택, 황금심, 이미 자,의 노래를 넘어 남진, 나훈아의 최신곡들도 앰프를 통해 뒷동산에 울려 퍼졌다. 가끔은 불공정한 심사로 장원과 입상 등수에 비리가 있다며 시비가 붙기도 했고, 각 동네 청년들끼리 싸움판이 벌어 지기도 했다. 유행가의 전달처럼 세상은 더욱 빠르게 변했다. 일부 마을노인들이 자신의 사후에 관으로 쓰겠다며 뒷동산 장송들을 베어버렸고, 그 와중에 그네를 매었던 명품소나 중산리-소나무와 별 158

159 무까지 잘리고 말았다. 소나무들을 잘라낸 뒷동산에는 산림녹화란 미명하에 왜국에서 들여온 '리기다'소나무 묘목들을 심었다. 어느날 밤... 욕심 많은 어느 청년은 '별따는소나무'에 올라서 밤나무의 밤을 털듯이 설익은 별들까지 밤하늘의 별들을 모조리 털어버렸다. '별딴소나무' 마저 비바람 불던 어느날에 벼락에 맞아 쓰러져버렸고, 이후 초롱초롱하던 밤하늘의 그 많던 별들은 생 기를 잃었고, 겨우 몇 개의 별들만이 가물가물 깜박이면서 하늘을 지키게되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십년세월도 세 네 번을 더 지났다. 금년 봄, 동산의 '리기다' 소나무들을 베어내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 토종소나무를 다시 심는단다. 중산리 뒷동산에 명품소나무들이 무성한 숲을 이룰때에 밤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가득하고 별똥별 다시 떨어지 는 날이 꼭 다시 오리라. 庚 寅 年 추석에... 중산리-소나무와 별 159

160 홀통골 :36 홀통골 맹열한 더위가 폭포처럼 쏟아지던 여름날 오후 '홀통골' 산에 들었습니다. 남의 산 삭정이 하나 줏기도 눈치 보이는 시절인심에 물려받은 선산 있으니 조상님의 은총입니다. 퇴비용 풀 한 짐 실하게 베어지고 일어서는데 "네 이노옴, 누구 맘대로 풀을 베어가느냐!" 호통이 어찌나 추상같은지 오한이 다 서렸습니다. 풀짐 버린 채 빈 지게 지고 산길 내려오는 열세살 소년의 멍든 가슴에 더 이상 ' 白 父 ' 따위는 없었습니다. 욕심 많은 '놀부영감'만 있었지요. 홀통골 160

161 홀통골 161

162 동막골을 찾아서 :33 동막골을 찾아서 높은 산 깊은 골 아무도 살지 않는 폐사나 인적 끊어진 암자에서 겨울 한철을 홀로 수행하는 스님들이 있으니 오래 된 불가의 수행 습속중 하나라고 합니다. 적막한 산중의 겨울을 홀로 지내고 난 다음 다시 만행길에 오르기 전엔 빈 쌀독에 탁발한 쌀을 채우고 나뭇간에 땔 감을 쌓아두는데 다음 겨울을 나게 될 누군지 모를 수행자를 위한 배려이지요. 젊은 시절엔 전국의 선방을 순례하며 동안거 하안거 공부를 하고 운수행각 또한 어지간히도 다녔던 효림스님입니다. 속가의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그 행적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보아온 사실만으로도 대충의 이력을 알고 있습니 다. 형편상 진학을 못하고 어린나이에 객지생활을 시작한 동생에게 출가를 권유 했었던 형님으로 인해 인천 보각사, 논산 동막골을 찾아서 162

163 관촉사, 등등에 잠깐씩 머물며 절밥을 얻어 먹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형님은 출가 이전 어릴 때부터 자신의 물건들을 남에게 줘 버리거나 버리기를 잘했고,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버 릇이 있습니다. 예의 내가 찾아 갔던 그 절들에서도 말없이 사라져 버리고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다른 스님들께 물어도 모두 모른다고 하니 형님만 믿고 왔던 나는 울면서 돌아오곤 했었지요. 훗날 왜 그랬느냐고 원 망을 했더니 그렇게 절 생활과 인연을 맺어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라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형님도 20살 전으 로 입문한지 오래되지 않은 초보스님이었을 때입니다. 어떤 절에서는 두고 간 소지품을 대신 치워달라고 해서 내가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스님이 되었다는 증명서인 수계첩, 강원에서의 기록표, 선방에서의 방부, 안거나 강원공부를 마친 후 방장스님과 큰 스님들을 모시고 찍은 흑백의 단체사진들, 범어사 통도사 해인사 등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큰 절에서의 수행기록들과 경전을 비롯한 몇 권의 책등, 모두가 소중한 물건들이었습니다. 제주도 관음사에서부터 강원도 상원사와 백담사까지 전국의 선방과 강원을 돌고 토굴생활도 하며 만행을 다닌다는 소문만 듣고서 오랫동안을 만나지 못하던 중에, 문경 봉암사에 공부하러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으나 일주문 을 들어서지도 못하고 돌아온 일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동양화를 그리던 전곡선생과 단 둘이 곤지암 토굴에서 한동안 살았을 때는, 주말을 이용해서 다 녀오고 나면 애닮은 마음만 가득했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한 학승이었던 분이 돌연 공부를 미루고 불교개혁운동과 사회운동에 뛰어들게 된 저간의 과정도 어렴풋 이나마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오랜 관행처럼 굳어져버린 정권과 종교가 유착한 거대한 권력과의 싸움! 개혁이란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처럼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험난한 길이었을 것인가! 그러나 마침내 이루어내었고 성과와 보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와중에 가장 절친한 도반을 잃고 괴로워하는 모습과 일선에서 물러나 다시 산속으로 돌아가는 파란만장한 여정들 을 발치에서나마 지켜보았던 사람입니다. 홀로 지내던 고령산 수구암 생활을 끝내고 봉국사 주지스님으로 다시 취임을 한다고 할 때에도 축하보다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십 몇 년을 돌고 돌아온 특히나 인연 깊은 봉국사였지요. 만나기도 쉽지 않을 만큼 어찌나 바쁘게 활동하며 왕성하게 일들을 벌이기에 건강을 해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올바른 길로만 흐르지 않는 가 봅니다. 돈 버는 수단만 탁월하면 도덕성은 없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풍조가 생기고 의로운 사람은 바보취급 당하고 간사한 무리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치 언론 교육 문화 종교를 비롯해 사회전반이 타락하고 오염되었습니다. 거꾸로 가고 있는 근간의 역사가 안타깝습니다. 동막골을 찾아서 163

164 열흘이 넘게 감기를 앓고 있던 어느 날 아침 인터넷을 켜고 뉴스를 검색하다가 아래와 같은 충격적 보도와 한국문학 포럼의 성명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명진 이어 효림스님도 퇴출 정치적 배경 있었나 김경환 기자 ㅣ 입력 :25:39 / 수정 :27:46 봉국사 주지 직에서 쫓겨난 효림 스님 c민중의소리 수경, 도법, 명진스님 등과 함께 불교계 개혁운동을 주도해온 효림 스님이 최근 성남 봉국사 주지직에서 뚜렷한 이유 없이 철직이 되면서 정 치적 뒷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 12일 오전 별다른 사전, 사후 통보 없이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 재임을 철회하고, 신임 주지에 효진 스님을 임명했다. 이에 대해 불교계와 문화예술계에서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홍일선)은 16일 긴급보도자료를 내고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실정에 날카로운 비 판을 가한 개혁적 성향의 승려를 연이어 퇴출, 숙청하는 폭거를 자행함으로써 그 정치적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들어 봉은사 명진 스님과 봉국사 효림 스님이 차례로 주지직에서 퇴출되는 일련의 상황을 볼 때 '개혁 승려 뿌리뽑기' '좌파적 성향의 불교지도자 숙청'이라는 현 정부의 의도가 관철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 7월 직할교구 공공사찰을 대상으로 종단사상 처음으로 주지인사 평가를 시행할 때 서울 학도암, 청룡암, 경국사와 함 께 성남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 등 4대 사찰을 대상으로 제1회 인사평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효림 스님이 주지로 있던 봉국사의 경우 주지 재임에 대한 인사고과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은 "그간 총무원 측으로부터 효림 스님의 주지 재임은 확실하다, 걱정 말라는 언질을 받았으나, 명진 스님 퇴출사건 이후 총무원 측으로 부터 아무런 사전, 사후 통보 없이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 재임을 전격 철회하는 폭거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포럼은 조계종 총무원에 명진, 효림 스님 등 개혁적 승려를 주지 직에서 연이어 퇴출한 이유를 밝힐 것과 조계종 총무원이 행한 4대 공공사 찰에 대한 객관적인 인사고과 내역 공개 등을 촉구했다. 효림 스님은 '실천불교 승가회'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의장을 역임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불교신문사' 사장 등을 지냈고, 현재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이사, 유시민 후원회 회장,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효림 스님은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 한국작가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최근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에 대해 "독재정권이 즐겨 쓰던 구호"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긴급히 알려 드립니다! 임효림 시인(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 봉국사 주지직 퇴출사건 전말! 동막골을 찾아서 164

165 조계종 개혁의 선봉장, 양심적인 시민운동가이자 시인인 봉국사 주지 효림 스님이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의 폭거에 의해 봉국사 주지 직에서 전격 퇴출되다! 현 정부의 개혁 승려 뿌리뽑기 좌파적 불교지도자 숙청 이라는 의도가 마침내 관철되어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 퇴출 사건의 전말> 수경, 도법, 명진 스님 등과 함께 소위 불교계 개혁운동을 주도하고 양심적인 시민사회운동가의 한 사람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효림( 曉 林 ) 스님이 명진 스님의 봉은사 주지직 퇴출(11. 9)에 이어 지난 11월 12일, 성남 봉국사 주지 직에서 전격 퇴출됨으로써 개혁 승려 뿌리뽑 기 좌파적 성향의 불교지도자 숙청 이라는 현 정부의 의도가 마침내 관철되었다. 이는 제2의 10.27법난의 재현이며, 조계종 총무원이 이명박 정부의 정권안보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실정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개혁적 성향의 승려를 연이어 퇴출, 숙청하는 폭거 를 자행함으로써 그 정치적 배경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효림 스님은 그동안 <실천불교승가회> 대표 스님으로서 개혁불사의 야전사령관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우리사회의 제반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펼쳐 왔으며, 이명박 정부의 사대강 사업 반대,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 현 정부의 처사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 최근 공정사회 라는 현 정부의 슬로건에 대해서도 그 진정성을 비판하는 대사회적 발언을 함으로써 명진 스님 퇴출사건 이후 자승 총무원장 체제가 효림 스님의 봉 국사 주지직 재임처리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왔다. 자승 총무원장은 지난 7월 직할교구 공공사찰을 대상으로 종단사상 처음으로 주지인사 평가를 시행할 때 서울 학도암, 청룡암, 경국사와 함 께 성남 태평동에 위치한 봉국사 등 4대 사찰을 대상으로 제1회 인사평가 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으로 활동하던 효림 스님이 2007년 3월 8일 성남 봉국사 주지로 취임했을 당시 봉국사는 사고( 事 故 ) 사찰로서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으나, 효림 스님이 번지르르한 말보다는 수행 가풍을 잘 계승하고 신도들에게도 모범을 보이는 노력하는 스님이 되겠다 고 취임사에 밝힌 바처럼 신도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지난 4년 동안 봉국사를 모범적인 사찰로 만드는 데 헌신해 왔다. (성 남 봉국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중창을 한 일도 있으나,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쇠락했던 사찰이다. 회주인 혜 성스님이 1968년부터 경내 부지를 새롭게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현재에 이르게 됐으며 조계종 직할사찰이다. 만해스님의 유일한 법제자 로 평생을 무소유정신으로 일관되게 살아온 춘성스님이 말년에 주석했던 도량이기도하다.) 지난 2007년 3월 8일, 봉국사 심검당에서 열린 효림스님 주지 취임법회에는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 백양사 지선 스님, 춘성문도회 대표 수명스님 등 사부대중 1천여 명이 동참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었다. 효림 주지스님은 봉국사 주지로서 사찰 중창과 함께 불교학교 개설, 금강경 강해, 봉국사 사찰신문 발간, 성남 시민과 함께하는 희망음악회 개최 등으로 성남시민들과 불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조계종 총무원 측의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직 퇴출 사건은 봉국사 신도들과 성남 시민사회, 그리고 효림 스님의 문학운동과 시 민사회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문화예술인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이 지난 2010년 7월부터 행한 주지 재임에 대한 인사고과에서 봉국사는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그간 총무원 측으로부터 효림 스님의 주지 재임은 확실하다, 걱정 말라는 언질을 받았으나, 명진 스님 퇴출사건 이후 총무원 측으로부터 아무런 사전, 사후 통보 없이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 재임을 전격 철회하는 폭거를 자행했으며, 지난 11월 12일 오전 9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봉국사 신 임 주지에 효진(덕현) 스님을 임명함으로써 효림 스님의 주지직 재임철회 사태라는 정치적 배경에 의혹이 가중되고 있다. 1968년 입산하여 법력 42년에 이른 효림 스님은 개혁승려의 대표적 조직인 <실천불교승가회> 의장을 역임하였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불 교신문사> 사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장) 후원회 회장,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 동막골을 찾아서 165

166 무총장, 한국문학평화포럼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실천문학사에서 <그늘도 꽃그늘>이라는 시집을 펴낸 중견 문인이기도 하다. 이에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종회 측에 아래와 같은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직 퇴출 사건 의혹에 대해 공개질의하고자 한 다. 1.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 체제는 현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명진, 효림 스님 등 개혁적 승려를 주지 직에서 연이어 퇴출한 사유를 진 솔하게 밝혀라! 2. 지난 2007년 3월 대표적인 사고사찰( 事 故 寺 刹 )의 하나였던 성남 봉국사의 주지로 취임하여 사찰 중흥과 함께 양심적인 시민사회운동을 병 행한 효림 스님에 대한 주지 재임 철회사태는 조계종이 현 정권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조계종 총무원이 행한 4대 공공사찰에 대한 객관적인 인사고과 내역을 밝혀라! 3. 조계종 중앙종회는 효림 스님의 봉국사 주지재임 철회사건을 건전한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재갈이자, 정치적 탄압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공정한 진상조사를 즉각 실시하라! (이하 중략) 아우된 사람으로서 어찌 불안하고 걱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떨리는 마음을 누르며 안부 전화를 하는데 역시나 효림스 님입니다. 만해 축전을 전 세계적 축제로 승화시키듯 승과 속에 걸림이 없고 국가와 인종과 종교까지도 초월하는 분다웠습니다. 호탕하게 웃으면서 뭘 그 까짓 것 가지고 걱정하느냐고 합니다. 짐을 벗고 자유로워졌으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것입니 다. 넓은 조선천지에 어디 살 곳 하나 없겠느냐며 거처가 정해지면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훨씬 더 흘러서 충청도 연기군 동막골이란 곳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기에, 여동생네와 조카네 식구들 과 함께 새해 첫날에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꽃잎처럼 피어나는 팝콘송이가 함박눈이 되어 하늘에서 쏟아지고 땅에선 남과 북, 동과 서, 좌.우가 한 몸으로 얼싸안고 덩실 덩실 춤을 춥니다 영화 속에서나마 존재하던 이상향의 동네는 강원도 심심산골 동막골입니다 같은 이름 동막골이 실존한다기에 새해 첫날부터 충청도땅을 더듬습니다. 네비게이션도 길안내가 틀리고 재를 넘다가 눈밭에 빠지고 미끄러지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에 청정한 불국토 있어 동막골을 찾아서 166

167 동막골 골짜기는 하얀 설경에 눈이 시린데 소담한 경원사 부처님을 우러러는 우리들의 마음이 또한 시립니다 편한 길 가는 모습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옳은 길 바른길이 좌파 길로 몰리는 세상이라 엄동설한 졸지에 쌓아올린 탑들과 거처마저 뺏기고도 한 점 미련 두지 않고 바람처럼 거침이 없으니 경이합니다 오로지 탐욕에 눈먼 자들의 국토유린을 어찌 꾸짖지 않을 것이며 산하강산의 신음을 누가 어루만져 줍니까 자연을 품고 사람을 품고 축생미물까지 더불어 사는 세상 강은 강으로서 산은 산으로서 그냥 그대로입니다 꽃이 지고 난 다음에야 봄이었음을 깨달았고 속절없이 보낸 날들이 회한으로 남습니다만 깊고 어두운 동면의 지하에도 해빙의 기운 도도하니 강남제비 꽃씨 물고 다시 올 봄날에는 동막골 산새 들새 화엄세상 함께 펼쳐지길 부처님 전에 두 손 모아 합장 합니다 -졸시<동막골을 찾아서> 전문- 한 송이 연꽃처럼 산봉우리들로 에워쌓인 아늑한 길지에 자리한 경원사는, 때마침 내린 서설로 인해 그대로 한 폭 그 림이었습니다. 단정한 대웅전과 아담한 한 채의 요사채! 함께하시는 스님들과 대중들의 기거에 불편을 짐작하겠는데 산기슭에 덩그 런 콘테이너박스 하나가 침실 겸 본인의 사용공간이라 합니다. 십몇 년 전 보광사 주지시절에 비슷한 작은 공간에서 잠을 자다가, 파주지역에 내린 게릴라성 폭우에 집과 함께 수십 미터를 떠내려가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던 일이 생각나서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옆에 있던 여동생도 마음이 아팠나 봅니다. "이제 좀 쉬어가면서 건강도 챙기세요." "허허, 무슨 소리!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일 좀 할 참인데... 동막골을 찾아서 167

168 동막골을 찾아서 168

169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04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임공이산 4월 13일 한겨레 그림판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169

170 "문자는 권력이다" 고대사회부터 문자는 지배의 도구와 수단으로 삼아 왔다는 흥미 있는 글에서 나온 말입니다. 문자가 널리 보급되거나 대중화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통치자들도 있었습니다. 분서갱유( 焚 書 坑 儒 )의 진시황. 한글(언문)의 사용을 금했던 연산군. 저 킬링필드로 악명 높았던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 이 예입니다. 훈민정음을 창제해서 만백성들에게 반포하려는 것을 극구 반대했던 최만리 같은 이도 있었지요. 최근 혁명적 정보매체인 인터넷을 달갑게 생각지 않고, 재갈을 물리고 통제하려는 집권세력이 있는데 바로 같은 맥락 이라 봅니다. 문맹율이 거의 제로인 우리나라에서 문자야 누구나 읽고 쓰고 있지만 정보와 뉴스를 다루는 언론기관은 바로 핵심 권력이 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들을 전달 해 주는 언론들이 고마운 것이야 더 말할 나위 없지만 자신들의 이해타산 에 따라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고 왜곡 편향 거짓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사들이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제 침략기엔 친일을, 군사독재 정부에게는 아부를, 정권과 유착하여 순수비판 기능을 상실한 전력이 있는 언론사도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정권이 탄생하고 사라지고 했지만 대를 이어 세습하면서 그들만의 아성을 구축 해 오고 있습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170

171 니다. 그들의 능력은 어찌나 위대하던지 친일을 항일로 독재찬양을 민주항쟁으로 둔갑을 시키기도 합니다. 심지어 북괴 무 장공비들의 만행으로, 숨진지 며칠이나 지나 발견된 산골 소년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며 죽어갔다는 시 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은 물론이요 전 국민을 세뇌 계몽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무소불위 장장 18년간을 장기 독재한 박정희 대통령이 밤의 대통령이라 칭했다는 권력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최근 모신인 탈렌트의 자살사건이 터지고 성 상납 등의 추악한 고리가 엉킨 리스트가 나왔다는데 그 최고 꼭대기에 밤의 제왕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수사는 이상하게도, 리스트를 밝힌 인물은 구속이 되고 리스트에 포함되었다는 인물들의 인적은 거론도 못하게 합니다. 국회에서 미진한 수사를 채근하며 리스트 인물을 거론했다는 어떤 국회의원은 피소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연일 언론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 있습니다. 그는 재임시 또는 퇴임후에, 가족과 친인척을 동원해 부정한 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트랜드마크는 청렴과 도덕성이었는데 위선과 가식이 탄로 났다는 요지의 보도들입니다. 뇌물을 주었다는 사람의 진술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다는 내용들은 바로바로 사실로 판결이 난 것처럼, 메이저 보수 언론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진보성향의 신문들까지 일제히 마녀 사냥식의 공격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신문보도내용들이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는 조만간 밝혀지겠지만, 저 유명한 *드레퓌스대위 사건처럼 엉터리 언론재 판의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전직대통령이 범죄가 되는 뇌물을 수수했다면 상응하는 응분의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입니다. 그를 지지하고 그를 믿었던 사람들은 실망이 클 것이고 화도 날 것입니다. 그러나 차떼기 책떼기 떡찰 장학금 등 그 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크고 비열한 전력의 온상이요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상한 짓은 또 역겹습니다. 밤의 대통령과 전직대통령간의 싸움은 진작부터 있어왔습니다. 밤의 대통령에게 무모한 도전을 했던 돈키호테같은 정치인. 무수히 얻어맞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다 천신만고 끝에 집 권까지 했었습니다만, 재임중 그토록 부르짖던 언론개혁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지금 수구세력들로부터 철저히 보복 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그가 재임시 검찰개혁도 추구했었던 만큼 검찰의 보복성도 의심되는 면이 있습니다. 고시에 합격하고 철저한 신원조사를 필 한 후에 판사임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빨간딱지를 붙이고, 요트동호 회원으로 추운 겨울 광안리 바다에서 바람을 갈랐던 전력을 유럽이나 중동부호들 같은 호화요트 소유자로 둔갑시키 는 가공할 언론권력들은, 앞으로도 얼마나 그를 괴롭힐 것인지 모릅니다.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171

172 여당과 집권세력들은 그 밤의 대통령들에게 공중파 방송마저 넘기려 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 그들의 더욱 막강한 권력 앞에 뉘라서 무릎 꿇지 않을 것입니까? 천하 언론권력 밤의제왕에게 용기있는 도전을 할 위인은 언제 또 나타날 것입니까? 새삼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란 책을 다시 펼쳐봅니다. 2009년 봄 밤의 대통령 & 전직 대통령 172

173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43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글/임공이산 바람 불고 비 온다. 때는 늦가을 무거운 쟂빛 세상 나무가 흔들린다. 스러지는 낙엽 낙엽 낙엽... 곪은 환부 도려내고 썩은 줄기 자르는 일 어찌 고통 없으리오! 소박한 나의 서가 소중히 모리시라. 민족정기 바로 세울 귀중한 바이블 [친일인명사전]!! 대대손손 교훈 삼으리! [친일인명사전]!!!!!!!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3

174 드디어 바로서는 나라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만만세! *우여곡절! 비열한 딴지걸기를 이겨내고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되었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바로가기민족문제연구소 아래사진 모셔온곳 출처 :사람이 희망이다. 글쓴이: 이재선님 1시 30분 숙대 정문 모습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4

175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5

176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6

177 행사장 입구를 막고 있는 전경들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7

178 학교측에서 행사장을 빌려주지 않아 백범김구기념관으로 급히 장소를 변경하고 있다.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8

179 백범김구기념관으로 가고 있는 시민들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79

180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0

181 백범 김구선생 동상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1

182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삼의사의 묘 ( 맨 왼쪽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 )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2

183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3

184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4

185 발간 될 친일인명사전 모습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5

186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6

187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7

188 묵념하는 시민들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8

189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89

190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90

191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91

192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92

193 위사진 출처 출처 :사람이 희망이다 원문보기 글쓴이 : 이재선 축! 발간! 친일인명사전 193

194 으악새 :05 으악새 동면속 은밀한 지하에서 더러운 음모는 싹텄나니 애초부터 봄은 없었다. 오욕의 한 쌓이고 쌓여 하늘마저 울었더라. 삼복중에 일어서는 서릿발 슬픔과 분노는 산을 오르고 비탄의 눈물은 강을 넘쳤다. 무너지는 자유여 민주여! 두 큰별 떨어진 서산마루 전설의 부엉이 발톱 숨기고 메말라 바스라지도록 삭풍에 날개 떨며 날을 세운다. 으악새 194

195 새하얀 소복 갈갈이 찢기도록 몸과 몸을 끌어안고 북망산 향해 토하는 신음 으악 으악 으악! 으악새! 억새! 악새! 새! 들불처럼 다시 일어설 민초여! 민초들이여! 으악새 195

196 어떤 죽음 :46 어떤 죽음 林 公 移 山 가진 자의 축복 없는 자의 재앙 허울 좋은 미명 뉴ㅡ 타운. 평생 일군 터전 온 가족의 목숨 줄 지키려다... 지키려다... 가난하고 못 배운 미련한 무지렁이 한( 恨 )! 통한( 痛 恨 )! 온몸으로 꿈틀대다 무지막지 폭력 속에 산화하다. 어떤 죽음 196

197 주검마저 난도질 이름마저 테러범? 군림하는 자들 호사스런 고층빌딩 초석이 되기 위해 스러져간 다섯 송이 불쌍한 국화꽃. 거짓말 林 公 移 山 양치기 목동의 거짓말도 세 번은 통하지 않거늘, 정직이란 애시 당초 쌈 싸먹은 위인들이 오늘도 엉터리 노래를 하네. 검은 것을 희다하고 팥으로 메주를 쑨다는 새빨간 거짓노래. 아뿔싸! 그 장단에 춤 추면서 하나님까지 파는 무리들은 또 누구냐? 어떤 죽음 197

198 메리 크리스마스 :00 메리 크리스마스 다사 다난했던 이해도 캐럴소리와 함께 저물어가고 있나봅니다. 나이 들면서 감성이 많이 무뎌지긴 했지만 예쁘게 장식된 트리와 신나는 캐럴을 듣노라면 무언가 축복을 받는 느낌이 있고 마음이 들뜨기도 합니다. 아침신문에 어떤 신부님의 글을 보았습니다. 22명이 사는 산골마을에서 성탄절을 맞이하여 구유를 만들고 청사초롱을 달아 불을 밝혔더니 산속 고즈넉 한 암자 같은 분위기가 난다는 표현에 미소를 짓고 말았습니다. 금년 한해를 돌이켜 보면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가 참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종교편향이라는 첨예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198

199 산중 깊은 곳에서 공부를 하던 스님들까지 시청 앞에 모여서 시위를 하였던 일이 있습니다. 워낙 나라의 형편이 백척간두 어려운 실정임을 감안해서 더 이상의 항의행동을 자제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조계사 안마당에 트리를 밝혔다고 합니다. 해마다 추기경과 총무원장은 서로 축하의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수유리 한신대학교와 화계사는 서로 이웃 해 있습니다. 성탄절과 석 탄절에는 서로가 축복하고 주차장을 제공해서 편리를 봐 줍니다. 이외에도 종교간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감동적인 일들이 참 많습 니다. 반면에, 이 시대 이 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중심이 되는 단체가 있습니다. 새로운 우익을 표방한다는 이분들은 장로님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10여명 가까운 소속단체 국 회의원도 배출했습니다. 덕분인지 이분들은 각계각층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문제에도 중심에 서 있습니다. 광복절을 유명무실하게 하고 건국절로 개편하려 하고 있습니다. 새로 발행될 10만원권의 인물로 선정된 백범김구선생 상을 초대대통 령 이승만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답니다.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는 재주가 있는 유명 목사님께서는 우리나라가 부자나라가 되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설교를 했습니다. 한술 더 떠서 모든 스님들이 정신 차리고 불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 고 했습니다. 세상에나, 부자가 천국에 들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 렵다 했거늘... 또, 종교간 마찰을 일으켜 무엇을 얻겠다는 겁니까? 날씨가 추워집니다. 화난 佛 心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거룩한 뜻이 진정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봅니다. 불교계가 2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현 정부의 종교 편향을 비판하는 범불교도대회를 열고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 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궁전보다 화려하고 바벨탑보다 더 높고 웅장한 대형교회, 북한의 김일성 부자와 같이 세습을 하면서도 부 끄러워하지 않는 배부른 목회자, 권력을 탐하며 정치에 개입하는 성직자, 그런 분들보다는 가난하나 마음 메리 크리스마스 199

200 은 부자인 수많은 선한 사람들에게 고루 은총을 내려주소서!! 이념과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서,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이들을 위한 축복의 성탄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200

201 교육감님 나빠요 :19 교육감님 나빠요. 글/임공이산 죽은 시인의 사회! 참다운 교육을 위해 외로히 힘든 싸움을 했던 키팅 선생님! 교장공모제를 추진하다가 예기치 않은 암초를 만나서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북상초등학교의 서원 운영위원장과 학부모들을 보면서 자꾸만 오래전에 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난다.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입장에서, 고향을 지켜주는 분들께는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도시생활을 하다가 뜻을 품고 귀농을 결행해서 고향땅을 일구어 주시는 분들께도 또한, 감사한 마음이다. 천하 유명한 오지 북상! 떠나온 우리들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척박한 땅을 일구어 주고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 오. 고향을 지키시는 그 분들이 뜻을 모아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 하고자, 모교의 교장선생 공모제를 추진하던 중, 심각 한 위기가 발생하였다는데도 이 무능한 동문은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도교육청에서 삭발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서원 운영위원장에게 건강 조심하라는 문자 메시지 하나 겨우 보내었었다. 성원에 고맙다는 답이 왔다.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왠지 참, 미안타. 들은바에 의하면 그 훨씬 이전인, 정상조 중산리 이장이 운영위원장 때부터, 황폐해 가는 고향발전을 모색하며 교장 공모제를 추진해 왔었다는 것이다. 수차례의 회의와 공청회도 거치고 순서와 절차에 따른 모든 수순을 밟아 왔던 모양이다. 최종 선출과정에서 입후보자들의 면면을 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 학부모들이 추진하고 원했던 일이니 만큼 당연히 교육감님 나빠요. 201

202 학교 발전을 위한 후보를 선택하지 않겠는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운영위원들의 채점 권리에 따라 행했던 일인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몰표와 몰 점수를 주었다고 시비를 거는 행태는 또 무어란 말인가? 운영위원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면 몰표 던, 몰 점수 던, 타인이 상관 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점수를 못받은 후보가 부끄러워해야지 채점 한사람들이 부끄러울 게 무언가! 비공개가 원칙이었다면, 그 원칙을 깬 자를 색출 처벌해야 할 소임을 가진 교육청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서, 문제가 있으니 무효라 한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망발인가? 능력과 의욕을 겸비한 교장선생님을 민주적 방식에 의하여 선출해서, 북상의 특성을 살리고 학교의 육성과 지역발전 을 도모하려는 학부모들을 이렇게 농락해도 된단 말인가! 도시와 비교해 교통 문화 소득 의료 등,등, 많은 것이 취약한 시골이지만 특히 교육이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니던가. 교장공모제를 잘 활용해 성공한 사례가 전국적으로 많이 있지 않던가! 북상이라는 산골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고자 하는 지역민들과 학부모들의 염원이 이렇게 무산 될 수는 없지 않겠는 가! 교장선생님의 역량에 따른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일찍이 고 노무현 대통령은 거창의 모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교육방침에 반해서 장남을 거창의 학교로 진학을 꿈꾸었 었다는 고백을 했었다. 대통령이 되어서 첫 내각구성 때, 그 교장선생님을 교육부 장관에 임명하려 했으나, 수구 단체들의 저항에 밀려 실현 하지는 못했지만, 이후로도 참모로 중용을 했었다.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선생도 자식을 유럽의 명문학교에 입학시키지 않고 거창으로 유학을 보내었다 해서 화제가 되 기도 했다. 그만큼 거창이란 곳이 진보된 교육의 산실이라 해서 우리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던가! 이번사태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다면 북상초등학교도 충분히 명문학교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앞으로도 수없이 험난한 고비를 넘어야겠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 않은가!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꼭 교장선생공모제를 관철 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의 모교 교사 옆에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숲이 있어 자랑스럽다. 등교를 거부한 학생들이 숲에서 천막을 치고 공부를 한다고 한다. 전국적인 뉴스가 되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걱정스러운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어떻게든 등교는 해야 된다는 의견들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말씀들이시다. 학교 측에서는 수업일 수를 채우지 않으면 진학이 되지 않는다는 으름장도 놓는 모양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득한 초등학교시절의 추억들이 생각난다. 그때도 여러 번 숲에서 수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랬다. 숲은 자연학습장이었고 훌륭한 교실이었다. 지금은 지형이 교육감님 나빠요. 202

203 바뀌었지만, 학교 쪽으로 흐르던 물길이 있었는데, 물을 에워서 텅가리 풀미띠기 피라미 등을 잡기도 했었다. 그 일 련의 일들이 교실에서 받던 수업보다 훨씬 의미 깊은 공부요 즐거운 수업이었다는 생각이다. 좋은 수업을 해 주신 당시의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숲에서의 천막교실 수업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실 아이들에게 물어 본다면 오히려 재미있어 할지도 모른다. 뜻을 같이 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외부에서 원정까지 오셔서 지원교육도 해 주시는 모양이다. 참 고맙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과 함께 했던 동굴 교육과 산위에 올라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던 감동어린 장면처럼... 떳떳하고 참다운 교육을 위한 일이라면 장소가 무슨 문제인가? 우리가 물고기를 잡던 추억이 아름답게 자리 잡혀 있듯이, 먼 훗날 그 아이들에겐 불의와 맞서 천막수업도 했었다는 빛나는 추억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언젠가 대운하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젊은 과학자 한분이 양심선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대 국민사기 극에 동참할 수 없었다는 그 분의 일성이, 자식에게 만큼은 떳떳한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는 것이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의 사표가 되는 것이다. 지금 천막수업을 감행하는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진정 떳떳한 부모의 길 이라는 신념이 있다면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란다. 천막수업을 통해 정의를 배우고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익힌다면 얼마나 훌륭한 교육인가! 그것이야말로 깨어 있는 것이요 행동하는 양심이 아닌가! 그 아이들 중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오고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훗날, 그 어린이들이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후배 동문이 되었을 때엔, 또 그 후배 학생들에게는 신화로 남게 될 것이 다. 지금까지도 힘든 싸움을 해 왔지만 앞으로의 길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이미 승부는 끝났다고 본다. 당연히 정당한 길을 걸어온 학부모들의 승리가 아니겠는가! 일련의 과정에서 순수 자발적 성금을 내 주신 분들도 있다 하고 여러 단체들이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다니 가히 감동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번일과 같은 어려움을 겪다보면 누가 진정한 우군인지 파악도 되는 법이다. 다만 염려 되는 것은 사실을 왜곡 호도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통상 그런 사람들은 본질을 피해서 무슨 단체 어느 지방 출신이라서 안된다는 식의 비열한 색깔론을 펴기 마련이다. 그 정도야 이미 각오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혹여라도, 우리 고향 정서가 보수성향이 강한편이라 사건의 진실과는 다르게 이해 하시고 오해 하는 분들도 있을 것 이다. 교육감님 나빠요. 203

204 그러나 넓은 마음으로 감수하고 이해하고 안고 가시길 바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정한 목적은 편 가르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시게 해야 할 것이다. 교육감님이 방문 할 때면 대청소를 해야만 했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전교생이 수업도 제쳐 두고 유리창을 닦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운동장을 쓸고 교실을 반짝거리게 해야만 하는 일이 속상했었다. 교장선생님을 대동하고서 거들먹거리며 교정을 돌다가, 뒷짐 지고 떠나던 당시의 교육감님의 뒤통수에 꼭 해주고 싶 은 말이 있었다. "교육감님 나빠요!"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초등학교가 교장선생공모제를 추진 하던 중 좌초되는 난국에 처해 있습니다. 거창군에서도 가장 산골 오지인 작은 학교이지만 자랑스러운 저의 모교입니다. 전교생 42명! 폐교의 위기에 직면해 불안한 학교입니다. 지금까지 전근오신 직전 교장선생님 4분이 모두 정년 2년씩을 앞두고 마지막 근무지로 발령 받았던 서러운 학교랍니다. 여러분! 초등학교 6년동안 교장선생님 퇴임식만 4번씩 치르는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습니까? 교장공모제를 통해서라도 살려보겠다는 지역민들과 학부모들의 노력을 무산시키려는 일련의 교육청의 음모가 있으며, 학부모와 학생들은 온몸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교육감님 나빠요. 204

205 포크송. 세시봉 :18 포크송, 세시봉 금년에 중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막내아들 녀석은 키타연습에 몰두해있어 내가 집에 들어온 줄도 모르 고 있다. 작년 이맘때, 새뱃돈으로 몰래 샀다는 전자키타인데 혼날 것이 두려워 한동안은 친구네 집에 맡겨두고 있었단다. 눈치를 챈 누나들이 나한테 일러바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성적을 상위권으로 올리고 취미수준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집으로 가져오도록 허락을 해 주었는데 꼭 일 년이 지난 지금, 성적은 제자리이고 키타연주 실력만 늘었다. 녀석을 보면 키타를 배우겠다고 뚱땅거렸던 내 한때의 시절이 떠올라 쓴웃음이 나온다. 워낙 우둔한 탓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생 기고도 코드하나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포기해버린 경험이 있다. 타고난 음치에다 특히 음악분야엔 재질이 없음을 스스로 안다. 어린나이에 고향을 떠나와 여러모로 황량했던 객지에서의 10대 후반 청춘시절, 키타를 배우겠다는 객기를 부렸던 이유는 바로 '피리 부는 사나이' 송창식에 반해서였다. 어눌한 몸동작, 하회탈 같은 눈웃음, 마냥 사람 좋은 인상과 함께 '왜불러' '고래사냥' '담배가게 아가씨' '가나다라' 등, 기성노래들과 는 판이한 호쾌한 창법으로 부르는 그의 노래 속에 한없이 빠져 들고 말았다. 포크송. 세시봉 205

206 노래는 시대를 반영한다. 포크송은 인종차별, 인권, 반전운동 등등의 시대적요구가 들어있는 당시의 민중 노래다. 베트남전쟁으로 젊은이들의 가치관이 방황하던 미국에서는 록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있었고,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을 비롯 영국에서 건너온 '비틀스' 들이 대중음악의 전설을 만들고 있었다. 동시대, 군사독재 하에 억눌림을 당하고 있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대변하던 노래도 바로 통키타와 포크송이었다. 때마침 '세시봉'이란 대중문화 공간을 열었던 이가 있어, 재능 있는 젊은 무명 통키타 가수들의 등용문이었다고 한다. 작년 추석에 '놀러와'란 TV프로에 세시봉 출신의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 출연하여 포크송과 그에 얽힌 옛이야기를 풀어내 는 시간을 가진 것이 장안의 화제가 되더니 지난 '세시봉 설날특집'에서는 아이돌과 걸그룹들의 인기를 능가하는 시청률을 올렸다. 이장희, 양희은 등의 친구들과 윤도현, 장기하를 비롯한 후배들도 함께한 이틀간의 방송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감동이었다. 60중반을 넘어선 사나이들의 노래와 인생과 우정을 풀어내는 진솔한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다가 폭소를 터트리다가, 내 지난 청춘들 도 함께 대입해보는 시간이었다. 포크송이 변방의 노래라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을 중심으로 한 고급문화가 아니던가. 나야말로 대학문은 구경도 못한 아웃사이더 중 아웃사이더로서 밤마다 무교동 낙지골목을 뻔질나게 다녔더랬다. 막걸리를 퍼 마시고, 노래하고, 고래를 잡으러 가자고 고래고래 악 을 써대곤 했었다. 한 번도 가보진 못한 곳이지만, 세시봉이란 프랑스말의 뜻은 '이거 정말 좋네'란다. 며칠 후면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고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는 막내아들녀석은 본격적으로 대학진학을 위한 공부전선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너의 청춘인들 왜 아프지 않겠느냐? 쌓이는 스트레스는 키타줄에 튕겨버려라. 세~시~봉!!!! 포크송. 세시봉 206

207 가장의 권위 :51 가장의 권위 글/ 임공이산 "머락꼬 쌌노. 시끄럽다. 칵 고마 해 뿌리라 카이." 사람이 살다보면 항상 좋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부부간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보니 다툼도 많다. 화를 참지 못하고 발산을 하다 보면 고향식 말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그러다 언뜻, 자신을 돌아보면 옛날에 어머니를 향해 언성을 높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하는 것 이다. 천상, 아버지를 닮은 습관이 또 하나 있다. 텔레비전을 켜 놓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드는 버릇이다. 60년대, 당시 고향집에 당연히 텔레비전이란 없었다. 백마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큰형님이 '히타찌'란 상표의 파란색 일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가지고 귀국했다. 동네를 통틀어서 국산인 '금성사' 라디오를 가지고 있는 집도 몇 집 없는 때였으므로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가장의 권위 207

208 전기가 없던 때라 1.5V짜리 건전지를 여러 개 달고서 저녁마다 뉴스와 노래와 연속극을 듣곤 했다. 성능이 좋아서인지 나빠서인지, 채널에 맞게 잘 들리다가도 갑자기 전파가 방향을 타면, 웅변조의 북한 아나운서 목 소리가 들리는 조선중앙방송이 튀어나오다가, 평양제일방송의 남파간첩들에게 보내는 난수표 읽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당시 인기 있던 연속극으로는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삽다리총각' '삼현육각' 등이 있었고, 일요일저녁마다 이광재 아 나운서가 진행하던 '재치문답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란 공개방송이 있었다. 의학박사 안의섭, 문학박사 양주동, 등이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던 매우 재미있던 프로이다. 들을 만한 프로그램도 끝나고 밤이 이슥해지면 모든 식구들은 잠이 들게 마련인데, 아버지 방에서는 라디오가 혼자서 떠들고 있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께서 조용히 라디오를 끄시면, 여태 주무시던 아버지께선 "왜 잘 듣고 있는 라디오를 끄느냐."고 역정을 내시는 것이다. 며칠을 쓰지도 못하고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아야 하니, 그 값이 아까운 어머니는 속으로 애를 태우면서도 크게 아버 지와 다투시진 않았다. 요즘 내가 텔레비전을 들으면서 잠을 청하면, 고민이나 잡념들이 잊어지면서 스르르 잠이 들고 하는데, 절대 이해를 못하겠다는 아내는 텔레비전을 확 꺼버리는 것이다. 옛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다투실 땐, 아버지께서 언성을 높이시면 어머니는 조용히 참고 대꾸를 하지 않으셨는데, 아내는 참는 것은 커녕, 경상도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큰소리 치고 윽박지르길 좋아하느냐며 지역까지 들먹거린다. 딸 놈들까지 "아빠는 다 좋은데 그 버럭 하는 습관이 나빠요."라고 연합전선을 편다. "머락캐 쌌노. 다 시끄럽다." 라고 큰소리 치고 싶지만 속으로 삼키고 참는다. 에잇! 가장의 권위가 이게 뭐란 말인가. 가장의 권위 208

209 새들과 함께 :18 새들과 함께 임공이산 새들과 함께 209

210 출처:문화제청 1.새조리 키우기 앞을 봐도 산이요 뒤를 봐도 산이요 사방이 온통 산으로 막힌 첩첩산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마을 뒤 동산아래, 지대 높은 언덕에 위치한 우리집은 울타리를 따라 좌우로 세 그루의 감나무가 있어서 나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나무에 오르면 시원하기도 하고, 작은 마을이지만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자주 오르내리다보니 나무 등걸과 굵은 가지엔 손때가 묻어서 반질거리고 윤기까지 흘렀다. 여름날 참매미를 비롯한 각종 매미들이 나무에 붙어서 노래를 부르면 삼껍질을 벗긴 대마줄기인 지릅대기 를 삼각형으로 구부리고 거미줄을 감아서 매미를 사로잡았다. 한번 노래를 시작한 매미는 노래가 끝날 때 까지는 잘 날아가지 않는 습성이 있기에 살금살금 나무를 타 고 올라서 맨손으로도 잡았다. 매미를 잡고 노는 일은 아주 어렸을 때 이고, 좀 더 자라서는 새를 키우면서 긴 여름날들을 보내었다. 새들과 함께 210

211 초가지붕 처마 밑을 둥지로 살던 참새가족이 이소를 하다가, 새끼참새가 마당에 떨어지기라도 해서 파닥 거릴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철사 줄들을 엮어서 새장을 만들고, 참새 새끼를 넣어서 감나무에 올려두면 어미새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 어 나르며 보살피는데, 내가 잡아주는 벌레는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자기 어미가 먹여주는 먹이는 잘도 받 아먹는다. 짹짹거리는 참새를 두고 학교를 다녀오거나 소꼴을 베어오면, 어찌된 영문인지 튼튼히 만든 새장의 새끼 새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곤 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도저히 원인을 알 수가 없었는데, 아무래도 어머니가 의심이 되었다. 간절히 새끼를 구출하려는 어미 새의 모정을 보면서 살짝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본격적인 새 키우기는 고향방언으로 '새조리'라 부르는 매과 종류인 황조롱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요즘엔 천연기념물로 엄격히 보호받는 새이지만 당시엔 그런 것을 알 턱이 없었다. 맹금류인 황조롱이는 잘 죽지 않는 생명력에 길들이기도 비교적 쉬웠다. 집에서 작은 둔덕을 넘으면, 안도랑가 굴띠기란 숲속의 큰 밤나무 상부 가지에 새조리의 둥지가 있고, 해 마다 알을 낳아 부화시키고 있었다. 새를 키우고 싶은 욕심에 갓 부화된 새끼 중에서 가장 튼튼한 놈 한 마리를 슬쩍 잡아 와버렸다. 하얀 솜털이 복실복실한 병아리새는 귀엽기가 그만인데 처음엔 날파리나 곤충들을 잡아서 먹이며 키우게 된다. 차츰 자라면 하얀 솜털이 빠지면서 흑 갈색 털로 털갈이를 하고 점점 날카로운 눈매와 부리에 매서운 발 톱이 맹금류다운 위용으로 갖추어간다. 작은 개구리를 먹이로 주다가 다 큰 성조가 되면 큰 개구리를 살아있는 채로 발 앞에 던져준다. 풀쩍 뛰며 달아나는 두꺼비만한 개구리를 휙 날아서 한쪽 발로 낚아채고는 주위를 살피면서 구석진 자리 를 찾아 먹이를 먹는 모습은 야생의 본능이 그대로 나타난다. "야 이눔아 닭을 그리 열심히 먹이를 먹여 키우면 돈이라도 되지. 새 새끼를 그리 열심히 키워서 뭐할라 카노." 날만 밝으면 매일같이 개구리를 잡아다 먹이는 나에게 떨어지는 아버지의 핀잔이다. 그러나 나를 알아보고서 깍깍거리고 먹이를 달라며 보채기도 하고, 내어 미는 막대기위에 늠름하게 올라 타는 모습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 일인가. 하얀색과 검은색이 반반씩 섞인 고약한 냄새나는 배설물을 치우는 일마저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는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들선들한 바람이 가을을 알리기 시작하니, 완전히 어른새가 다되어 새들과 함께 211

212 버린 이놈에게 어디선가 친구가 나타났다. 감나무 주변을 서성이는 친구와 서로 짹짹이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니 이젠 녀석을 놓아 줄 때가 되었나보 다. 먹이가 귀한 겨울엔 키우기도 힘이 들것이니 그만 자연으로 돌려 보내주기로 했다.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서 묶었던 줄을 풀어 주니까, 주변을 한바퀴 배회하더니 둔덕을 넘어 굴띠기 쪽으로 높이 비상해 가버렸다. 해가 바뀌어 봄이 가고 또 여름이 왔다. 대부분의 새가 그렇듯이 새조리도 먹이가 풍부한 장마철 때에 번식을 위해 새끼를 친다. 여전히 굴띠기 밤나무 둥지엔 5개의 새조리 알이 낳아져 있었다. 어미새들의 경계를 뚫고 나무를 타고 오르내리며 알이 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하얀 솜털 보송보송 한 병아리 중에서 튼튼한 녀석 한 마리를 또 훔쳐와 버렸다. 어미새들이 깍깍거리며 노려보았으나 달려들지는 않는다. 한 마리 분양했다고 생각하거라. 내가 대신 잘 키워주마. 이젠 경험도 있으니 키우기에 더욱 자신이 있다. 감나무에 올려둔 새장속에서 키우는, 한창 갈색으로 털갈이를 시작하는 중새끼 새에게 잡아온 개구리를 먹이고 있던 어느 날 한낮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새장 옆 나뭇가지에 올라앉아서 나를 내려다보는 눈길이 있으니, 바로 작년에 키워 보낸 녀석이었다. 이미 야생에 물들고 자유의 맛을 알아버린 녀석은 개구리를 들고서 유혹을 해도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옛정을 생각하고 찾아 주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두 마리의 새조리를 키우며 지루한 줄 모른 채 두 해의 여름날들을 그렇게 보내었다. 새들과 함께 212

213 사진출처:블로그 유무도 2.꾀꼬리와 새들에게 용서를 구함 부슬 부슬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장마철이 막 시작된 어느 날의 오후. 앙무들 밭가에서 소에게 풀을 뜯기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무심코 숲 쪽을 바라보다가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꾀꼬리와 밤나무가지에 걸려있는 새집을 발견했 다. 나뭇가지위에 둥지를 트는 일반 새들과 달리 꾀꼬리는 망태기 모양의 둥지를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큰 새들과 함께 213

214 나무의 높은 가지에 실과 끈을 엮어서 대롱대롱 매달리게 만든다. 할 일 없이 심심하던 차에 밭고랑에 무수히 널려있는 돌멩이를 주워서 둥지를 향해 팔매질을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꾀꼬리 부부가 "까악 깍! 까악 깍 깍!"요란하게 울부짖더니 그 중 한 마리가 북쪽 뒷산 상낭모 티를 넘어 날아갔다. 처음엔 도망을 가나보다 했는데 웬걸, 수많은 응원군을 몰고 오더니 나를 향해 공격을 하는 것이다. "고~호~규~우~호, 고~규~우~우 호~오." 기분 좋을 때 내는 꾀꼬리의 노래 소리는 위와 같다. 꾀꼴 꾀꼴 하는 것은 책에나 있는 것이고, 노란 자태에 노래를 부르는 꾀꼬리의 소리는 매우 아름다운건 사실이지만 꾀꼴꾀꼴이라고 노래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 꾀꼬리가 경계를 하고 화가 났을 때 내는 소리는 섬득한 공포감이 묻어있었다. "꺄아아악! 끄아아악! 연약해 보이는 꾀꼬리는 통념을 깨고 그악하기가 이를데 없는 새였다. 미친 듯이 공격하는 새들을 피해 가며 나도 약이 올라서 팔매질을 계속하니, 어쩌다 돌멩이 하나가 둥지 를 정통으로 맞추었다. 놀란 새끼 한 마리가 떨어지고 필사적으로 날고 기며 도망치는데 3~40미터를 쫓아가서 결국 잡았다. 의기양양 새끼를 안고 집에 온 나는 새장을 청소하고, 금년 여름엔 꾀꼬리를 키워보기로 했다. 어머니께서는 나무라시며 당장 어미새에게 돌려주고 오라하신다. 꾀꼬리는 새조리와 달리 사람 손을 타면 금방 죽게 되니 절대로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이 맞았다. 물을 주어도 마시지 않고 먹이도 먹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먹겠지 생각했지만, 하룻밤을 자고 나도 여전히 먹지를 않는 것이다. 졸리운지 자꾸만 눈을 감기에 물이라도 먹이려고 애를 썼는데... 겨우 이틀만에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집에서 키울 수 있는 동물이 있고 절대 키울 수 없는 동물도 있다는 것을 몰랐었다. 무지로 인해 애꿎은 새 한 마리를 죽이고 말았던 것이다. 뒷동산 둔덕아래에 묻어주면서 죄스런 마음이 밀 려들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 참깨를 심은 앙무들 밭에 무성히 자라는 잡초를 매어주러 갔던 어머니께서 겁을 먹고 돌아오셨다. 여러 마리의 꾀꼬리무리가, 밭고랑에 앉아서 밭을 매는 어머니의 머리 위 수건을 낚아채고 할퀴고 공격을 해대기에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새들과 함께 214

215 자식을 잃은 슬픔을 한풀이로 하는 새! 꾀꼬리의 모성애는 그렇게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그해 여름이 다 가도록 앙무들 밭엔 어머니 혼자서는 가지 못하고 꼭 아버지와 동행을 해야만 했고, 화가 난 아버지께선 새집이 있는 밤나무를 베어버리겠다고 하셨는데 어머니께서 극구 말리셨다. 자식 잃은 슬픈 새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나 내가 서울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의 어느 여름날, 부모님으로부터 불길한 전보 한통을 받았 다. [막내 동생 위독! 급 귀향 요]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인가? 초등학교 중급생인 막내동생은 아주 어렸을 때 부터 무척이나 영특하고 똑똑한 아이였다. 급히 귀향했더니, 읍내 병원들을 전전했으나 모두가 자신 없다며 치료를 거부해, 어쩔수 없이 집으로 데려 올 수 밖에 없었다면서, 그냥 아랫목에 눕혀져 있었다. 큰도랑 누룩진 소 위쪽 언덕에 냇가쪽으로 비스듬히 큰 정자나무가 있고, 그 나무 위 새조리집의 새끼를 내리러 올라갔다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떨어질 때 냇가 반석에 머리가 부딪치고 깨어져 의식을 잃은 이후 아무런 조처도 없이 동생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 나 때문에... 내가 새들에게 몹쓸 짓을 많이 해서... 그 벌을 받는 것이구나. "천지신명님, 하나님, 부처님, 새들의 원혼신님, 동생을 살려주세요.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동생만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는 절대로 새들을 괴롭히지 않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고 비는 것 뿐이었다. 간절한 기도가 통해서였을까? 사흘 만에 기적 처럼 동생이 깨어났고, 이후 아무 탈 없이 잘 자랐다. 내 생각엔 스티브 잡스나 빌게이츠 못지 않은 총기가 분명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때의 후유증으로 인해 천재성을 좀 잃어버린 듯해 아쉽긴 하지만... 딸 둘의 아빠로서 창원에서 사업을 하는 동생도 어느덧 50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3. 맺는글 나의 작은 커피가게에 별난 단골손님이 있다. 중앙 행정부처 공무원으로서 새들을 관찰하러 전국의 산하를 다니는 젊은이다. 한 짐도 넘는 카메라와 렌 새들과 함께 215

216 즈가방을 메고 다니는 그는, 며칠간의 지방 원정이 끝나고 귀경할 때면 아프리카 원주민처럼 그을린 모습 으로 가게에 들린다. 점점 새들이 사라지는 현실에 가슴아파하는 그와 대화하는 나도 가슴이 아프다. 왜 새들이 사라지는 것일 까? 산을 허물고 강을 파헤치고 시멘트를 발라서 수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습지를 메우고, 바다의 갯벌을 없애버리니 먹이원이 없어지고, 자연히 새들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고향 같은 산골오지에서도 안도랑을 메워버리니, 굴띠기에서 살던 새조리들은 어디가서 먹이를 구하 겠는가. 천연기념물로 등록하고 보호하는 일보다, 나 같은 악동이 새끼 한마리 훔쳐가는 것보다, 생태계 파괴로 훨씬 더 큰 죄를, 새들에게 짓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알지 못할까? 새들이 살 수 없는 세상은 사람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할까! 새들과 함께 216

217 아오라지 :09 아오라지 글/송악 아오라지! 강원도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알려진 유명한 '아오라지'란 곳이 있는데 두 물이 합수되어 어우러진다는 뜻을 품고 있나보다. 강원도의 방언인지 표준말인지 모르겠으나 우리고향에서는 들어 보지 못했던 말이다. 고향 북상에도 월성천과 병곡천이 만나는 곳에 [아오라지]란 이름의 식당이 있어 주인의 뛰어난 감각이 엿보인다. 제 27회 총동문회 한마음축제가 성황리에 끝나고, 늦은 밤 각 기수들은 각 각의 숙소를 향해 헤쳐모여를 했다. 우리 기수들이 하룻밤 묵을 곳이 바로 전년도와 같은 장소인 아로라지식당의 맞은편 식당이다. 내년도(2012년) 주최 기수로서 당연히 총회가 있었다. 학교 운동장과 북상숲을 두고 선택을 한 결과, 운동장으로 장소가 결정되었고, 34회 선배들처럼 하루 전 집합 할 것 인가에 대한 토의 중에, 선배들보다 졸업생이 많은 우리 기수인 만큼 진행에 자신이 있다면서 당일 오전 10까지만 모 여 달라는 임종호 총 동문회장의 주문에 따르기로 하고, 세세한 준비와 진행들은 리더십 강한 총동문회장과 운영단에 일임하기로 큰 틀에서 의견일치를 보았다. 아오라지 217

218 또다시 본격적 여흥과 술판이 벌어지니, 참석 못한 축협근무의 임한종군이 보내준, 요즈음엔 소고기보다도 비싸다는 양질의 삼겹살을 숯불구이로 굽고, 고향 이웃고장 안의에서 임종녀가 직접 농사지어서 가져온 각종야채에 쌈을 싸 고, 술을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아직도 친구들은 열정이 넘친다. 이튿날에는 뜻 깊은 이벤트를 준비했으니, 4학년 때의 담임이셨던 최부자선생님을 모시고 조촐한 사은회를 가지기로 했다. 우리들의 6년간 재학에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은 대부분이 북상에 뿌리를 둔 붙박이 선생님들이시다. 김사수선생님, 임상근선생님, 임기수선생님 등등이 그런 선생님들이시다. 32회와 임기수선생님, 33회와 임기술선생님은 특별한 인연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한학년 이상을 담임 해 주셨던 선 생님은 없다. 외지에서 부임해 오신 분으로 4학년때의 최선생님과 5학년때의 방은주선생님이 계셨는데, 방선생님 역시 강한 기억으 로 남는 분이다. 젊고 핸섬하고 진취적이셨던 선생님은 담임 1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서울 뚝섬에 공장을 창업하겠다며 교직을 떠나 셨다. 작별의 날에는 여학생들이 울어서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근무처가 학교인 친구 윤용수군이 소재를 찾아 노력했으나 끝내 파악이 불가하다고 한다. 1965년, 진주교대를 갓 졸업하고 깡촌 북상을 첫 부임지로 오셨던 20대 초반의 최부자선생님! 운동장 서편 독립 校 舍 (교사)가 우리들의 교실이었는데, 멋쟁이 아가씨 선생님은 단연 교내 최고의 주목받는 주인공으 로 인기를 누렸다. 뾰족구두에 양장차림 패션은 호기심 많은 악동들의 시선을 어지럽히곤 했다. 그때 그 멋쟁이 여선생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꽃다운 아가씨 선생님은 칠순이 넘었고 코흘리개 아이들은 오십중반을 넘기고 있다. 장장 45년 세월이 지났다. 직접 운전으로 진주에서 오신다는 선생님을 세 명의 친구가 마리까지 마중을 하고, 영접해 모신 선생님은 칠순 나이 가 무색하도록 젊으시고 건강하시다. 상견례를 하면서 애써 옛날 모습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질 않는데, 선생님인들 우리들을 알아보실 리가 만무하지 않 은가. 그러나 2년간을 근무했었다는 첫 근무지 북상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더듬으며 담담히 소회를 풀어내신다. 충절과 선비정신이 깃든 고장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고, 아이들의 순박한 심성이 좋았고, 아름다운 산과 물에 반해서, 아오라지 218

219 울면서 왔었지만 울면서 떠났었다는 것이다. 임규희 교장선생님과 당시의 선생님들에 대해 소상히 기억하고 계셨고 수승대 소풍이야기 농산리에서의 거처, 장티 푸스에 걸려 고생한 이야기, 등등 허심탄회 대화가 무르익다보니 어느새 격의가 무너지고 사제지간 도타운 정이 쌓이 고, 당시의 비하인드 스토리들까지 쏟아진다. 당시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초보 선생님인 자신을 도와주고 신경써주셨는데 그것이 스캔들이 되어서, 분한 마음에 소 문을 퍼트린 6학년 남학생들을 벌주고 체벌했었다는 이야기까지 하시는 것이다. 이젠 서른아홉 살짜리 아들을 장가보내야 할 숙제가 남았다하시니 남순 친구가 과년한 딸이 있다고 응수해서 웃음바 다를 만들었다. 주로 1~2학년 위주의 저학년을 맡아서 30년 넘게 후회 없는 교직생활을 했으나, 오늘처럼 빛나는 자리를 마련해주니 더욱 보람을 느끼며 우리들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천왕봉 법계사까지 순례를 다녀온 피로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만 내일은 방생을 가기로 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으 로 보아 종교 활동 등으로 여생을 즐기시는 모양이다.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시고 말년이 여유로우신 선생님은 바로 최고 부자십니다. 최 부~~~~~~~~우~~~~~~~~자 선생님. 오래 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각박한 세상, 스승의 은혜를 생각하는 마음들이 점점 퇴색되어간다. 동기생 중엔 현직 선생님도 있고,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사모님도 두 사람이나 있다. 이런 뜻 깊은 자리를 기획하고 추진한 당시 회장(국민학교와 급장이란 말은 일제의 산물이므로 쓰지 않겠습니다.) 정 영상군의 노고에 감사한다. 친구들이여, 오늘 우리가 헤어지지만 내년에 또 고향에서 모두 반갑게 만나 아오라지 하세나. 아오라지 219

220 가운데 붉은 옷 입으신 분이 최부자선생님이십니다. 아오라지 220

221 덕유산 북상골 :35 덕유산 북상골 6월 4일은 모교인 북상초등학교 총동문회의 날. D-5, 한손으로 꼽히는 날자 앞으로 다가온 축제를 기다리는 마음이 소풍날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설레는 것을 보면 아직도 동심이 남아 있음입니다. 얼마 전, 서울 우리 집 주변의 초등학교에서도 동문회를 광고하는 풍물놀이로 동네를 한 바퀴 돌더군요. 도시학교나 시골학교나 모두 동문회를 하고 있나봅니다. 도시학교 출신들이라 해서 동창회와 동문회의 감흥이 없을 수 없겠으나 산골출신인 우리들과는 좀 다를 것이라는 생 각입니다. 덕유산 북상골 221

222 너 나 없이 가난하고 배고팠던 6~70년대 우리들의 재학시절. 그 시절의 산촌에서 학교는 여러 가지로 의미 깊은 곳이었지요. 6년간 글을 배우고 친구를 사귀고, 사회공동체생활을 익히고, 장래의 꿈을 키우는 곳이었음은 물론이요, 때론 지역 축제의 마당이기도 했으니, 온가족이 참여했던 가을 운동회와 전면민이 즐겼던 8-15 광복절의 체육대회 등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든 장소입니다. [북상초등학교]란 같은 이름의 학교가 전라남도 장성군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불행히도 그 고장과 학교는 장성댐 건설로 1976년에 수몰이 되었고, 인근으로 이전하여 분교로 운영되어오다가 학생 수의 감소로 결국은 폐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향과 모교를 영원히 잃어버린 그 분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까요? 이름이 같은 관계로 가끔 우리의 카페에 잘 못 들어오는 그 학교 출신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참 행복한 동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 모교도 '교장선생공모제'로 인해 한바탕 심한 몸살을 앓았던 적이 있었지요. 지금도 고향을 지키고 학교를 지키시는 분들께는 한없이 고마움을 느끼며,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시절 코흘리개였던 우리들은 각자의 삶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앞을 향해 열심히들 살았습니다. 한 호흡 숨을 고르며 문득 뒤돌아보니 훌쩍 중년을 넘겨버렸습니다. 지난 세월이 아쉽고 추억 속 친구들이 그립습니다. 다행히도 해마다 동문회를 개최하니 어찌 고맙지 않겠습니까. 연 중 하루, 옛 죽마고우들끼리 해후하는 자리를 벌리니 축제 중의 축제입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접고서라도 더욱 많은 동문들이 참여하여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뜻 깊은 시간들을 갖기를 바랍니 다. 잔치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해 오신 동문회 회장님과 운영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주최 해 오셨던 선배님들의 전통을 전수받은 노하우가 있겠습니다만, 이처럼 큰 행사에 물심양면 노고가 어찌 적겠습니까. 우리 고향 두레문화 품앗이 풍습에는 대사를 치루는 집 이웃에서도 부주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덕유산 북상골 222

223 막걸리를 한 동이 담아 주거나, 일손이 많이 가는 메밀묵을 쑤기를 해 준다든가 콩나물이라도 한 시루 길러주곤 했지 요. 메밀묵 한 당새기 쑤어서 부주는 하지 않더라도... 막강 34회 선배님들이 벌이시는 금년 축제를 기대합니다. 이번에도 너무 취해서 이미지 구기고 추태를 부리지는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리운 고향을 생각하는 졸시 한편 올리겠습니다. 덕유산 북상골 우람하다고 다 큰 산이요 높다고 모두 명산이랴 장엄한 묘향이 하늘에 닿고 아늑한 품은 어머니만 같아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울러 넓고 넓은 덕을 나누나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덕유산을 아시는가 그 덕유산의 절반 이상 남향 자락을 터전으로 무구한 사람들 끼리 산 처럼 칡 넝쿨 처럼 덕유산 북상골 223

224 어울렁 더울렁 寸 (촌) 戚 (척)으로 맺어 사는 悠 久 (유구)한 갈천 동천 북상골을 아시는가 교교한 달빛성 네 신선( 神 仙 ) 수담( 手 談 ) 한판에 도끼자루 썩어 지고 선녀들 몸씻을 때 나뭇군 총각 흑심 타고 사랑하는 사람이여 오늘도 전설이 살아 숨쉬는 북상골을 아시는가 꿈에도 그리운 고향 북상골을 아시는가 (졸시) -이상 동문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 덕유산 북상골 224

225 절교 선언서 :00 절교 선언서 시/임공이산 한 모금 연기 속에 사라져간 인생사 그대와 함께 태워버린 허황된 꿈 청춘의 날들이 그 얼마였더냐 사십 년 지기 벗이여 반려여 멘토여 나의 이기심을 許 하라 맺고 끊음에 모호하고 매사가 우유부단이지만 절교 선언서 225

226 이번만큼 모진 결행 했으니 그대와의 작별을 고하노라 주린 배 채운 다음 포만감을 힘든 노동 사이의 휴식을 지독한 외로움에 떨던 몸부림을 길 잃고 방황 할 때는 영감을 스스로 비관하고 자학할 땐 손도 잡아 주었었지 그러나 이젠 그대에게 이별을 선언하노라 맛 들리고 길들여진 그대의 키스를 더 이상 거부하겠노라 혈류를 타고 흐르는 마력을 씻어내고 녹슨 폐부에 자아의 뿌리를 심으리라 내 심신의 위안처여 그대와의 질긴 연을 끊겠노라 단호히 절교를 선언하노니 홀로 서겠노라 1970년대 중후반의 봄날, 충남 논산 연무대의 육군 제2신병훈련소. 절교 선언서 226

227 50분씩의 신병 기초 훈련이 끝날 때 마다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북괴군! 이룩하자 유신과업!"이란 복 창을 외쳤다. 그리고는 교관의 구령이 떨어지는 것이다. "담배 일발 장진 발사!" 나무그늘아래에서 대오를 갖춘 채 10분간의 휴식에 들어가는 훈련병들에게 일제히 담배를 피우게 했다. 전군의 장병들에게 이틀에 한 갑씩 보급되는 화랑담배는 필터까지 붙은 고급 담배였다. 긴장이 풀어지는 휴식과 함께하는 담배 맛은 가히 꿀맛이니 강제성은 없으나 입대 전엔 피우지 않던 친구 들도 대부분 담배를 배우게 마련이다. "한가치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란 군가까지 있을 정도였으니 함께 담배를 피우는 것은 전우애를 나 누는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자주국방을 기치로 세우고, 최신 M16자동소총과 품질 좋아진 개인보급품을 전방에서부터 교체해 오 고 있던 당시 정부는, 전 장병들에게 고급담배의 지급도 복리후생 차원이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초등학생들에게도 우리가 태어난 것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서라고 교육을 하던 때이다. 국방의 의무만큼이나 유신과업을 이룩해야한다고 세뇌시키면서도 젊은 장병들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은 우 를 범했던 정책이었다. 나의 흡연습관은 군대와 상관없이 입대하기 훨씬 전부터였다. 어린 나이에 독립된 객지생활을 시작했는데 약간의 불량기까지 있었으니 일찍 담배와 친해져버렸던 것이 다. 그 시대는 모두가 담배와 가까이 살았다. 담배를 물고 운전하는 시내버스 기사의 모습도 자연스러웠고, 심지어 병실에 회진을 도는 의사선생님이 청진기를 목에 걸고 입에는 담배를 피우고 있을 정도였다. 담배의 생산과 유통은 정부기관인 전매국-전매청에서 100% 관할하면서 외국산 담배의 유통과 소비를 철 저히 단속했다. 미군의 PX등을 통해 흘러나오는 양담배가 제법 있었고, 피우다가 걸리는 날엔 거의 매국 에 가까운 지탄을 받으며 거액의 벌금을 물어야했다. 국산 담배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애용하는 담뱃대용 각연,봉초,(봉지담배, 쌈지담배)로부터 필터 없는 싸구려 막궐련과 아리랑, 청자, 등과 같은 고급 필터담배, 그리고 엽궐련과 파이프담배까지 여러 종류 가 생산 판매되었다. 입맛에 맞는 담배를 골라 피운다기보다는 대체로 소득과 신분에 따라 즐겨 피우는 담 배의 종류가 정해졌다. 절교 선언서 227

228 나라의 빠른 산업화와 함께 내 청춘의 나이도 들어가면서 그 간에 출시된 수십 여종의 담배와 함께 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건국 초기의 승리, 백두산, 건설 같은 담배는 잘 모르지만 박정희 정권과 함께 등장한 재건, 파고다, 새마 을, 그리고 박하향의 여성용으로 만들어진 금관, 현대식 담배공장의 준공으로 대한 늬우스에서도 대대적 광고를 했던 신탄진, 70년대 이후의 한산도, 청자, 단오, 개나리, 환희, 남대문, 태양, 거북선, 샘, 명승, 수정, 은하수, 솔, 올림픽 기념으로 나온 88시리즈, 등등 추억의 담배를 거쳐 요즘의 다양한 담배에 이르 고 있다. 점차 디자인이 세련되고 품질도 고급화되어온 그 많은 담배들의 고유 이름엔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담배로선 어울리지 않는 것도 많다. 건강을 해치는 담배에 무슨 '희망'이요 '환희'라 부를 것이며, 6본들이 미니 담배갑에 딱성냥까지 내장시켜 서 청소년들이 숨기기에 딱 안성맞춤으로 만들었던 담배는 이름까지 '스포츠'라 명명했었다. 세계화의 일환인가 담배마저 영어이름들로 바뀌고, THIS(디스)를 거쳐서 SEASONS(시즌)을 마지막으로 애용하다가 담배를 끊었다. 오랜 기간 애환을 함께 나누고 기쁨을 함께했었지만 건강을 챙길 나이도 되었고 무엇보다 주변 분위기가 담배를 끊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담배 갑마다 건강을 해친다는 섬뜩한 글귀가 새겨지고, 흡연자는 비문화인 취급에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바둑한판에 장미 두 갑을 태운다던 조훈현기사도 금연했고, 폐암선고를 받고서 마지막까지 금연을 전도하 던 코미디의 황제 이주일선생도 생각나고, 천하 애연가였던 이외수선생 마저 금연을 노래한다. 같은 애연가로서 마지막까지 동지애를 나누던 친구마저 금연했다는 말을 듣고, 밀려오던 배신감과 패배감 은 어쩌란 말인가. 작년 새해부터의 결심이었으니 정확히 1년 6개월째다. 100% 성공했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처음엔 약국에서 파는 패치를 이용하기도 했고, 금단현상으로 잠을 설치고 고통을 참기위해 무진 애를 썼 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날 때는 아직도 생각이 난다. 요즘 인기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김정운교수의 글을 보니,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감동하고, 결단력 약하고 독 절교 선언서 228

229 하지 못하고,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을 A유형의 사람이라 하던데, 꼭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예전에도 끊었다 이었다를 반복한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이번엔 꼭, 꼭 성공하고야 말리라! 지난번처럼, '사람사는세상'과 '민주주의2.0'이란 공간에서나마 소통하던 존경하던 어떤 분께서, 진보세상을 위해 자신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억장 무너지는 일만 없다면... 마지막 담배 한대마저 못 피우고 가신 그런 비극이... 또 일어나지만 않는다면... -끝- 최초로담배가 전래된것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룩을 발 견하고부터다 담배가 세계로 퍼진것은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룩을 발견하 고 상육하였더니 인디언들이 잎을 부수어 대에담아 피우길래 그것이무어냐고 물어보았더 니 신경통에 좋은 약초라 하였다 그리하여 콜롬버스는 그약초 씨를 얻어 자기나라로 귀국하여 임금에게 받첬다 왕은 거씨를 정원에 심어 약초인줄 알고 인디언들이 하는 대로 피웠다 그리고 스페인 이 그당시 유럽을 제패하고 있었든관계로 담배는 유럽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동양에있는 일본에 전 해지게되었고 임진왜란때 조선에 전파되었다 조선에 들어온담배의 위상 과 신분의 차이 조선에 담배가 들어오자 그당시 유학자 장유 라는 고관대작 이 우리나라 최초의 골초가되고 부터 담배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기호품 아닌 약으로도 즐겨 피우 절교 선언서 229

230 담배는 어른 아이 할것없이 기호품 아닌 약으로도 즐겨 피우 는 담배천국 조선이 되었다 담배의 예절이 전해지기 전이라 어른앞에서도 어린에가 아무 러치도 않게 담배를피우는 모습도 눈에띤다 그러다가 담배에도 위아래 질서가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담배 대의 길이로 신분의 차이를 두었다 장죽은 양반 중죽 적 곰방대는 평민이 사용하고 단죽은 어리 애와 천민들이 사용했다 우리나라에 어린사람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된것은 옛날 우리 어른들은 아이가 배아파할때 담배를 권하여 피우게 했다 그당시 우리네경제 사정이 어려 웠든과계로 아이들의 영양상태및 위생관념이 없어 해충이 몸속에 가득하여 소위 인배가 많이 아팠다 그때 담배를 피우 면 해충들의 발작이 조용하여 배가 들아팠다 그때문에 담배가 약으로 오인되기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담배피우는 노부부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의 어른들 은 그걸 믿을수밖에 배아픈것이 낳으니말이다 그런관계로 담배는 남여노소 불문하고 즐겨피우는 최고의 기 호품이되었다 1. 최초의 담배, <승리>의 탄생 1945년 8월 15일, 한민족 역사이래 최대의 굴욕과 치정을 당한 지 36년 만에 주권을 되찾은 날, 전국민은 기쁨에 겨워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쳐댔다. 그리고 그해 9월, 감격스러운 민족해방을 기념하는 폭죽이라도 터트리듯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 기술 진의 힘으로 담배를 제조 발매했으니, 그 이름이 바로 승리( 勝 利 )이다. 가격은 3원, 길이는 6cm. 담배 이름이 `승리`인 것은 그 이전의 울분을 `승리 (Victory)`의 환호로 변환해 폭발시키고 싶은 바람이었을 절교 선언서 230

231 까?! 역대 담배의 이름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해왔듯, 최 초의 담배 이름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진에서 보이듯 담배 의장이 지금 보기에는 단순하고 촌스 러운 느낌이 드는데, 당시 해방된 감격이 너무나 벅차서 서 둘러 의장을 고안하였기 때문에 의장 자체는 졸작을 면치 못 했다. 하지만 빨간색의 사각선 테두리에 청색 글씨로 "승리 (Victory)"를 표기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 아 전통사상을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표기된 문자가 한글, 영어, 한자, 일본 어의 4개 국어로 잡다하게 도안되어 있다는 것. 도안에 관한 기본원칙도 정립되지 못한 느낌이 있으나 이에는 또다른 이 유가 있다. 일제 시대에 우리말과 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 했었기에 광복 직후에는 이렇게 표기해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앞면에는 한글로 `승리`라는 담배이름이 쓰여 있고, 그 위에 한자로 `기념궐련`이라고 표기했으며, 발매처 는 `조선군정청 전매국`으로 되어 있다. 한편 뒷면은 상단에 `Victory`라고 크게 흘림글씨로 썼으며, 그 밑에는 영문으로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만들었다는 내용의 문구가 쓰 여 있다. 그리고 옆면에는 일문으로 3엔이라 쓰여 있다. `승리`가 나올 무렵에 한국인들이 가장 애용했던 담배는 일 명 쌈지담배라고 하는 `풍년초`였다. 잎담배 썬 것을 봉지에 넣어 파는 담배였던 `풍년초`는 곰방대에 넣어 피우거나 신 문지에 말아 피웠다. 담배를 파는 곳에서 풍년초용 종이는 따로 팔기도 했는데, 이 종이는 얇고 누런 색깔이었다. 그러 다 하얀 종이에 깨끗하게 말려 있는 `승리`가 나오자, 이 담 배는 바로 `흰담배`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 누런 종이에 담배를 말아피우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 로, `승리`가 발매된 후 네모난 갑에서 `하얀` 담배를 꺼내 바로 입에 물고 불을 당기는 모습은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었다. 그런 까닭에 `승리`를 피워물고서 공연히 으스대는 사 람이 많았으며, `승리`를 피우는 것 자체가 상류층의 상징처 럼 여겨지기도 했다. 조선시대 어른앞에서 담배피우는아이 오른쪽해태상밑 우리나라 담배 변천사 우리나라에서 해방 이후 지금까지 발매된 담배는 총 88종에 이르며, 현재 22종이 생산, 판매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이후부터 그 동안 우리나라 사람 절교 선언서 231

무공수훈신문(35호)교체

무공수훈신문(35호)교체 무공훈장 보국훈장받은사람 신문 나라사랑 알리기 신문 무훈정신으로 자유민주주의 수호하자 2015. 2. 1/ 35호 회장 : 박종길(무공수훈자회 회장) 발행인 : 신동설 편집인 : 맹태균 인쇄인 : 이철구 편집주간 : 강성원(무공수훈자회 사무총장) 발행처 : 청미디어 서울, 다 10927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자는 나라가 책임을 진다 국가보훈처, 명예로운 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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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민주당 5 18 민주화운동왜곡 대책위 등 주최 토론회 ( 5 18 민주화운동 왜곡과 대한민국 ). 2013년 5월 30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 5 18 민주화운동 왜곡과 한국의 보수 --5 18 민주화운동 왜곡 현상과 한국 민주주의의 과제 1) 조희연(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 성공회대) 1. 들어가면서: 518 왜곡현상을 접하는 우리의 당혹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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