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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북키의 테마 독서논술 역사인물 (3)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 어떻게 지킬 것인가 ( 교사용 지도서) ( 주) 클애들교육 부설 한국독서교육개발원

2 지도하시는 선생님에게 안녕하세요? 남미영입니다.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북키의 테마 독서논술 이 탄생되었습니다. 중학생을 위한 독서논술 전문 프로그램의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내놓은 이 프로그램에는 저의 오랜 연구의 경험이 담겨 있습입니다. 저는 지난 20여년 동안 국책연구소인 한국교육개발원 국어교육연구실의 책임자로 일하면서 세계적인 독서논술 교육의 중심지인 프랑스,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뉴질랜드,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중등학교 교실, 도서관 학교, 연구기관에서 협력연구를 하면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도 교과별 사고력을 길러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가 물고기를 잡아서 먹여주는 지식 위주 교과 교육을 하고 있는 동안, 선진국들은 물고기 잡는 방식의 교과별 사고력을 길러주는 교육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로 수십조원의 학원비를 지불하면서도 학생들에게는 기쁨이 없는 교육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학교가 싫고, 학원이 두려운 것은 끝없이 밀려드는 방대한 지식을 다 기억해야 하는 교육 컨셉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그 지식들을 선별하고, 처리하고, 응용하고, 창조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우리 교육의 컨셉을 바꾼다면 학생들은 얼마든지 즐겁고도 여유만만하게 지식의 억만장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북키의 테마 독서논술 바로 우리 학생들에게 그러한 교육을 선보이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이 프로그램을 보내면서 약간의 두려움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도 저자가 직접 학생들은 교육할 수는 없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는 현장에서 직접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 여러분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독서교육의 동지로 서로를 선택하고, 수년간 서로를 길들여온 사이이기 때문에 두려움보다는 믿음이 더 큽니다. 가르치시는 여러분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프로그램 구성과 집필 배경, 문제의 핵심, 참고자료 등을 알려드리는 교사용 지도서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지도서는 선생님 여러분의 열정과 노력이 가미 될 때에만 교육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호를 거듭해갈수록 더욱 알차게 성장할

3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뜨거운 열정과 정성을 곁들여 완성시켜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05년에 여러분의 직장과 가정에 큰 행운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5년 2월 ( 주) 클 애 들 교 육 부설 한국독서교육개발원장 문학박사 남 미 영

4 1. 단원 설정의 의의 중학생을 위한 테마 독서논술의 일부인 역사인물편 제 3 권의 주제는 < 우리 민족 사, 어떻게 지킬 것인가> 입니다. 세계사의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역사를 지 키고 자주적인 근대화와 독립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우리 겨레의 모습을 살펴보게 됩니다. 더불어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역사논쟁 속에 우리의 앞날을 밝혀나갈 실마리를 찾아보려 합니다. 1차시에는 동학농민운동을 공부하면서 안으로 쌓인 낡은 문제를 개혁하고 밖으로 는 당당히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키고자 하였던 농민들의 모습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 모두가 바랐던 참된 근대화는 어떤 모습일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2차시에는 안타깝게도 우리 나름의 근대화에 실패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된 채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독립의 의지를 굳건히 밝힌 3. 1 운동의 장엄한 물결을 살펴보게 됩니다. 용기와 애국심이 어우러져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임을 공부하게 됩니다. 3차시에는 해방과 더불어 독립된 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이념에 휘말려 분단으로 치닫게 된 불행한 현대사를 배우게 됩니다. 역사가 강요한 분단을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노력도 아울러 살펴볼 것입니다. 4차시에는 오늘날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분쟁을 살펴봅니다.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논리를 비판하면서 우리 자신의 역사관을 돌아보고, 나아가 평화와 미래지향적인 자세를 가다듬어보려 합니 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청소년들이 한국 근, 현대사의 주요한 흐름을 찾아보고, 논쟁 을 통해 성숙한 역사의식을 갖게끔 하여 역사와 현재, 역사 속의 나를 생각하는 계 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역사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역사를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합니다. <1 차시를 위한 교사용 지도서> 1. 필독도서명 : <5교시 국사시간 - 개정판> 2. 학습테마 : < 갑오세 가보세> 3. 학습목표 1) 개항기 각 세력의 근대화에 대한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 2) 동학농민운동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다. 3) 동학농민운동의 과정을 정리하여 말할 수 있다. 4) 동학농민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

5 4. 지도상의 유의점 1) 개항기 각 세력의 근대화를 서로 비교하여 설명하도록 안내한다. 2) 동학농민운동의 배경을 다각도로 이해하도록 지도한다. 3) 동학농민운동의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말할 수 있도록 한다. 4) 동학농민운동이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는지 예를 들어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5. 1차시 학습지도안 8 쪽~9쪽 단원과 관련된 사진을 보면서 가볍게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10자-20 자 정도의 간단한 느낌을 쓰면서 단원의 창을 열어보는 과정이다. 이어 주 요 용어 해설이 있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꼭 익혀야 할 사건, 인물, 용어를 짚어보 면서 핵심적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목적이 있다. 주제에 관련된 내용을 간추리는 부분도 있다. 그 시기 역사의 주요한 흐름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열쇠 말을 징검다리 삼아 당시 역사의 줄기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설명하면서 내용의 얼개를 잡는 것이다. 백산봉기 기록화 - 동학농민운동의 실질적인 시작을 의미하는 봉기로서 흰 옷 입은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모였다. 그들이 서면 흰 옷만 보여 백산이 되고, 앉으면 죽창 만 보이니 대나무( 죽) 산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백산 년 4월 17 일, 동학교도와 농민 수천 명이 전봉준의 지도하에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고부군저에 집결하여 봉기를 일으킨다. 고부에 이어서 흥덕, 고 창, 부안, 금구, 태인 등 각처에서 동학농민군이 일어난다. 전봉준은 동지 김개남과 협의하여 4 월 말 부근 일대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을 고부 백산에 집결시켰다. 그 일 대의 수령들은 모두 도망가서 그 일대의 읍성은 동학농민군에 대하여 무방비상태였 다. 이 시점에서 상황은 일개 지역의 봉기가 아닌 농민층의 집권층에 대한 도전으 로서 본격저긴 동학농민전재의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태인의 동학교도와 농민들은

6 5월 4 일에 관아를 습격하여 무기고를 부수고 무장을 하였다. 그들은 현감 홍면주에 게서 그의 인신을 탈취하려 했으나 완강한 거부로 무기만을 탈취하였다. 다른 지방 에서도 비슷한 봉기가 이어졌다. 고부를 중심으로 전라도 각처의 동학의 두령들은 각기 무리를 이끌고 고부 백산으로 집결하였다. 태인의 김낙삼과 김문행이 인솔한 1천 3 백명, 태인의 최경선, 김제의 김봉년, 금구의 김사엽 등이 인솔한 2 천명, 무장 의 송경찬 등이 인솔한 1천 3 백명, 정읍의 손여옥 등이 인솔한 1천 2백명 등 모두 8 천여명에 이르는 민중이 모여들어 동학농민군의 대오가 이루어졌다. 이들은 전봉 준을 수령으로 하였고 손화중, 김개남, 김덕명 등이 그 막료가 되었다. 1) 척왜양 창의 - 왜놈, 양놈을 몰아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자 는 뜻의 구호. 동학농 민운동은 반외세, 반봉건 민족운동으로서 외세로부터 자주적인 나라를 만들고, 안으 로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신분제를 폐지하여 근대화된 나라를 만들고자 하였다. 농민전쟁의 진원지인 호남지방은 전통적으로 대지주에 의한 봉건적 수탈이 심하 고, 강경 법성포 줄포 논산포 등의 포구 개항장은 대일 미곡수출이 활발한 지역이었 다. 미곡무역에 편승한 지주층의 지주제 강화로 인해 소농 빈농층이 몰락했으며, 농 촌사회 내부의 분화 및 계급대립이 전면에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학의 교세 가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봉건사회를 변혁하려는 일군의 혁명적 지식인들과 결합하 게 되었다. 호남지역에서는 유형원의 학문적 전통을 잇는 부안( 扶 安 ) 동림서원( 東 林 書 院 )과 오랫동안 강진에 유배되었던 다산 정약용 등 실학자의 진보적 사상이 암암 리에 몰락양반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유포되고 있었다. 농민전쟁의 지도자인 전봉 준도 그중의 한 인물이다. 이들은 기존의 군현단위의 농민봉기가 가진 지방적 분산 성을 극복하고 체제개혁을 위한 대규모 농민전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각지의 농민들을 조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광범위하게 교세를 확장하던 동학조직을 주목했다. 동학( 東 學 ) 은 몰락양반 최제우가 창시한 종교로, 후천개벽( 後 天 開 闢 ) 을 통 하여 만민평등의 지상천국을 건설하려 했다. 동학의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으로는 ' 무위이화'( 無 爲 而 化 ) 라는 관념적 차원에 머물렀으나 만민평등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반봉건 의식과 척왜양( 斥 倭 洋 ) 이라는 반침략의 민족 논리를 바탕으로 깔고 있었다. 동학교단은 1892년 11월 삼례집회와 1893년 3월 보은집회에서 교조신원운동이라 는 종교적 운동을 벌였다. 이때 전봉준 등 남접세력은 동학조직을 이용하여 농민군 을 결집시키고 민족적 계급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혁명을 기도했다. 이들은 교조 신원운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금구집회( ) 를 소집, ' 척왜척양'( 斥 倭 斥 洋 ) 과 ' 수령의 불법 침학 반대' 를 외치면서 사회혁명의 기반 을 다져나갔다.

7 2) 집강소 - 집강이라는 이름을 지닌 농민대표가 고을 관리와 상의하여 자율적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농민 자치기구. 역사상 최초의 자치기구이면서 농민 중심의 개혁 을 추진하였던 곳이다. 1894년 6월 10 일( 음력 5. 7) 정부로부터 폐정개혁의 실시를 약속받은 전주화약이 성립되자 농민군은 해산하여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무장은 풀지 않고 순변사 ( 巡 邊 使 ) 이원회( 李 元 會 ) 와 전라감사 김학진( 金 鶴 鎭 ) 에게 원정서( 原 情 書 ) 를 보내 폐 정개혁의 조속한 실시를 촉구했다. 관군은 농민군이 해산한 며칠 후에 강화병 200 명을 남겨두고 대부분 전주에서 철수하여 서울로 돌아갔다. 전라도 지역은 정부의 무장력이 상실되고 사실상 농민군이 장악한 상태였으나 정부에서는 계속 폐정개혁 을 외면하고 있었다. 6월 중순경부터 농민군은 스스로 폐정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산발적으로 집강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6 월 하순에는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 大 都 所 都 所 大 義 所 行 軍 義 所 등) 가 설치되어 본격적으로 집강소 시기가 시작되었다. 초 기의 집강소는 분산적으로 운영되면서 관리 양반 부민의 약탈 등 억울함을 해소하는 기관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7월 17 일경 전봉준( 全 琫 準 ) 과 김개남( 金 開 南 ) 이 남원에서 농민군 대회를 열어,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농민군 중에서 집강을 두어 수령의 일을 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면서, 집강소는 억울한 일을 해소하는 형태 에서 새로운 질서 수립을 위한 행정기관의 성격으로 강화되어갔다. 이러한 성격의 집강소는 나주( 羅 州 ) 를 제외한 전라도의 모든 지역 52 개 고을에 설치되었고, 농민 군의 의식 이념도 집강소의 경험이 축적되어감에 따라 점차 성장했다. 일본과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맺을 무렵, 신식문물을 받아들이자는 개화 운동이 일 어나는가 하면, 전통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위정척사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동학농 민들은 고부민란을 시작으로 하여 백산봉기(1 차)를 일으켜 낡은 체제에 반대하는 반 봉건 개혁을 외치며 일어났다. 이들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조선정부는 농민군과 타협 하여 농민군은 집강소 활동으로 내실을 다졌다. 한편 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조선에 들어온 청과 일본은 전쟁을 벌였는데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정치에 간섭하였다. 농 민들은 다시금 나라를 지키기 위해 2차 봉기를 일으켜 반외세의 깃발을 들었다. 그 러나 일본과의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농민운동은 막을 내렸다. 농민들의 요구는 일부가 갑오개혁에 반영되었다.

8 10 쪽~12쪽 주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사료, 그림 자료 등을 살피면서 텍스트 를 다시 한 번 참고하도록 하고, 간단한 문제를 풀면서 의미를 더듬어 보게 한다. 당시 인물의 설명이나 역사기록을 직접 읽어보면서 깊이있게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강화도 조약 이후 문호를 열자는 개화파와 닫자는 위정척사파의 대립이 심해졌다. 이는 지배층의 논쟁으로 농민의 삶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에 일어난 농민운동이 어 떤 과정을 거쳐 확대되었는지 과정을 짚어보도록 한다. 1) 빈칸 : 군란 - 위정척사파, 정변 - 개화파 임오군란 년 6월 10 일( 음력 5. 7) 정부로부터 폐정개혁의 실시를 약속받은 전주화약이 성립되자 농민군은 해산하여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무장은 풀지 않 고 순변사( 巡 邊 使 ) 이원회( 李 元 會 ) 와 전라감사 김학진( 金 鶴 鎭 ) 에게 원정서( 原 情 書 ) 를 보내 폐정개혁의 조속한 실시를 촉구했다. 관군은 농민군이 해산한 며칠 후에 강화 병 200 명을 남겨두고 대부분 전주에서 철수하여 서울로 돌아갔다. 전라도 지역은 정부의 무장력이 상실되고 사실상 농민군이 장악한 상태였으나 정부에서는 계속 폐 정개혁을 외면하고 있었다. 6월 중순경부터 농민군은 스스로 폐정개혁을 시행하기 위해 산발적으로 집강소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6월 하순에는 전라도 지방에 집강소 ( 大 都 所 都 所 大 義 所 行 軍 義 所 등) 가 설치되어 본격적으로 집강소 시기가 시작되었 다. 초기의 집강소는 분산적으로 운영되면서 관리 양반 부민의 약탈 등 억울함을 해 소하는 기관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7월 17 일경 전봉준( 全 琫 準 ) 과 김개남 ( 金 開 南 ) 이 남원에서 농민군 대회를 열어,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농민군 중 에서 집강을 두어 수령의 일을 행하도록 명령을 내리면서, 집강소는 억울한 일을 해소하는 형태에서 새로운 질서 수립을 위한 행정기관의 성격으로 강화되어갔다. 이러한 성격의 집강소는 나주( 羅 州 ) 를 제외한 전라도의 모든 지역 52개 고을에 설 치되었고, 농민군의 의식 이념도 집강소의 경험이 축적되어감에 따라 점차 성장했

9 다. 갑신정변 - 한국사에서 정치세력으로서 근대적 개혁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것은 개 화파였다. 실학의 북학사상을 계승한 이들은 문호개방을 전후한 시기에는 박규수 오 경석 유대치 등을 중심으로 그 움직임이 보다 적극화되고 조직화되기 시작했으며, 점차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젊은 양반계급 지식인들을 핵심으로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해가며 정부의 개화정책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임오군란 (1882) 을 계기로 민씨정권의 친청수구정책은 날로 횡포를 더해갔고, 청국은 군대를 주둔시키며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획책함에 따라 개화파의 정치적 위기는 높아져갔 다. 이에 따라 개화파는 정변을 통해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청과의 종속관계를 청 산할 것을 결정했다. 마침 월남문제를 둘러싸고 청-프랑스 전쟁이 터져 청국이 패 배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간섭이 약화되고 또 임오군란 이후 냉담했던 일본공사가 다시 접근해왔다. 개화파는 일본공사관의 후원을 확인하고 계획대로 1884년 12월 4 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정변을 일으켰다. 우선 축하연에 참석한 민영익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국왕과 왕비를 경우궁으로 옮 겨 50여 명의 개화파 군사력과 200여 명의 일본군으로 호위케 하고 수구파 우두머 리를 처단했다. 이어서 개화파들은 홍영식이 우의정, 박영효가 좌포도대장, 서광범 이 우포도대장, 김옥균이 호조참판이 되어 군사권과 재정권을 장악하고 정강을 제 정 발표했다. 정변의 실패로 이 정강 정책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중 14개 조가 뒷날 김옥균이 일본에 망명하여 저술한 갑신일록 에 실려 있다. 그 주요 내용은 청국에 대한 종속관계의 청산, 문벌폐지와 인민평등권의 제정 및 능력에 따르는 인 재의 등용, 지조법( 地 租 法 ) 개혁, 탐관오리 처벌, 백성들이 빚진 환자미[ 還 上 米 ] 의 영원한 면제, 모든 재정의 호조 관할, 경찰제도의 실시, 혜상공국( 惠 商 工 局 ) 의 혁파 등이었다. 청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지향했고, 아직 국민국가 수립을 위한 적 극적인 자세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양반지배체제를 청산하려 했으며, 또 뒷날의 갑 오농민전쟁에서 요구된 농민적 토지소유가 제기되지는 않았으나 지조법의 개혁이 제시되었고, 왕실경비와 정부재정을 구분하고 호조가 국가재정을 전담케 하며 특권 상인의 존재를 부인한 것 등은 개화파의 국정개혁 의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2) 조병갑, 전봉준 조병갑 - 본관은 양주( 楊 州 ). 영의정 조두순( 趙 斗 淳 ) 의 서질( 庶 姪 ) 이다. 여러 주군 ( 州 郡 ) 의 수령을 거쳐 1892 년( 고종 29) 4 월 고부군수가 되었다. 부임한 이래 갖가 지 명목으로 탐학비행( 貪 虐 非 行 ) 을 저질렀다. 농민에게 면세( 免 稅 ) 를 약속하고 황무 지의 개간을 허가해주고는 추수기에 강제로 세를 징수했고, 부민( 富 民 ) 을 붙잡아들 여 불효( 不 孝 ) 불목( 不 睦 ) 음행( 淫 行 ) 잡기( 雜 技 ) 등의 죄명을 씌워 그들의 재물 2만 여 냥을 빼앗았으며, 대동미를 쌀 대신에 돈으로 거두고 그것으로 질이 나쁜 쌀을 사서 중앙에 상납하고 차액을 착복했다. 또한 세곡을 운송하는 전운소( 轉 運 所 ) 에서

10 추가로 쌀을 강징( 强 徵 ) 하고 부족미( 不 足 米 ) 명색으로도 더 거두었고, 묵은 땅을 개 간하여 면세가 되어야 할 땅에서 도조( 賭 租 ) 와 시초( 柴 草 ) 를 거두었으며, 태인현감 을 지낸 아버지의 공덕비를 세운다고 1,000 여 냥을 거두었다. 특히 고부읍 북쪽에 흐르는 동진강( 東 津 江 ) 에 축조되어 고부군과 태인현의 농민들이 수리( 水 利 ) 의 혜택 을 받고 있던 만석보( 萬 石 洑 ) 가 파손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농민들을 동원하여 구보 ( 舊 洑 ) 밑에 신보( 新 洑 ) 를 쌓게 하고, 그해 가을에 신보 이용에 따르는 수세( 水 稅 ) 를 1마지기에 상등논은 쌀 2 말, 하등논은 쌀 1말씩 농민들로부터 거두어 700여 석을 사취했다. 이러한 탐학이 계속되자 농민들은 1893년 11월 진정서를 제출하기로 하 고 동학접주인 전봉준( 全 琫 準 ) 을 찾아가 진정서를 부탁했다. 11월 15일 전봉준이 농민 40 여 명과 함께 조병갑에게 진정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전봉준 등이 봉기를 준비하고 사발통문( 沙 鉢 通 文 ) 을 작성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30일 조 병갑이 익산군수로 전근명령을 받음으로써 이 봉기는 취소되었다. 그러나 조병갑을 이어 고부군수로 발령받은 자들이 계속 다른 곳으로 재발령되거나, 병으로 오지 못 하게 되자 이듬해 1월 9 일 조병갑이 고부군수로 다시 임명되었다. 그해 1월 11일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는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농민들이 고부관아를 습격하자, 그는 전부사( 前 府 使 ) 정모( 鄭 某 ) 의 집에 숨어 있다가 옷을 바꿔입고 정읍을 거쳐 전주로 도망쳐 관찰사 김문현( 金 文 鉉 ) 에게 농민항쟁을 보고했다. 김문현은 조병갑의 탐학으 로 민란이 일어난 것을 알고 그의 죄상을 취조해야 된다고 정부에 건의했는데, 그 러자 정부는 조병갑을 체포하여 의금부에 압송하여 치죄( 治 罪 ) 하고 섬으로 귀양보 냈다. 이 고부민란이 계기가 되어 갑오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봉준 - 전봉준은 1893년 11월초 고부 고을 농민 40여 명과 함께 군수인 조병 갑( 趙 秉 甲 ) 에게 나아가 그의 학정을 시정할 것을 등소( 等 訴 ) 했으나, 전봉준은 일시 구속되고 등소는 거부되었다. 전봉준은 1893년 11 월 하순에 최경선( 崔 景 善 ) 김도삼 ( 金 道 三 ) 등 20 여 명과 함께 사발통문을 작성하고, 고부성의 점령, 조병갑의 처형, 탐관오리의 처단, 전주성의 점령, 서울로의 진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봉기를 계획했 다. 그러나 때마침 조병갑이 익산군수로 이동 발령되어 이 계획은 보류되었다. 1893년 12월 전봉준은 고부 고을 농민 60여 명과 함께 전주의 감영에 가서 감사 김문현( 金 文 鉉 ) 에게 고부의 폐정을 시정해달라고 등소했으나, 모두 쫓겨나고 말았 다. 그런데 익산군수로 이동 발령되었던 조병갑이 1894년 1월 9일에 고부군수로 잉임( 仍 任 ) 되었고, 2일 뒤인 1월 11 일에 고부민란이 일어났다. 이 민란은 앞의 사 발통문 서명자 20 명 중 전봉준 최경선 김도삼 정익서( 鄭 益 西 ) 등의 사전계획과 준비 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전봉준 등이 지도한 농민들은 조병갑의 일련의 악정을 시 정하고 읍내에 진을 치고 있다가 1월 17 일에는 마항( 馬 項 ) 장터로, 2월 25일에는 백산( 白 山 ) 으로 진을 옮겼다. 한편 조정에서는 고부민란 발생의 책임을 물어 조병갑 을 체포 국문하라는 처벌을 내리고, 용안현감 박원명( 朴 源 明 ) 을 고부군수로, 장흥부 사 이용태( 李 容 泰 ) 를 고부군안핵사로 임명했다. 박원명은 부임 후 회유와 설득에 주

11 력하여 난민은 대부분 해산했는데, 3월 2 일 역졸( 驛 卒 ) 800여 명을 데리고 고부에 들이닥친 이용태는 갖은 야만적인 노략질을 자행하여 난민을 완전히 해산시켰다. 고부민란은 조병갑의 가렴주구로 인해 소생산자로서의 생활을 위협받게 된 소농 빈 농, 장시의 확보와 화폐경제의 발전이 흐려지자 위기를 느낀 소상품생산자들이 자 발적으로 지방행정을 시정하기 위하여 봉기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부민란의 지도자 인 전봉준은 더 확대된 차원에서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전봉준은 일신상으로는 조병갑에게서 별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 백성' 과 ' 세상' 이라는 더 넓은 지평( 地 平 ) 위에서 문제를 의식하고 있었다. 3) 안민, 창의 천도교는 그 종교적 목적이 매우 뚜렷한 종교이다. 천도교의 종교적 목적은 포덕 천하( 布 德 天 下 ), 광제창생( 廣 濟 蒼 生 ), 보국안민( 輔 國 安 民 ), 지상천국( 地 上 天 國 ) 건설 이다. 매우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 천도교의 종교적인 목적은, 실은 선천( 先 天 ) 의 기성종교 들이 지향하는 종교적인 목적인 천당( 天 堂 ) 이나 극락( 極 樂 ) 이라는 차원의 변화, 또 는 공간의 변화를 통한 영생( 永 生 ) 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겠다. 즉 천당과 지옥, 차안( 此 岸 ) 과 피안( 彼 岸 ), 삶과 죽음, 현실과 초월, 신과 인간 등의 이원적( 二 元 的 ) 구도를 벗어나고 있는 데에 천도교의 진정한 모습이 있다고 하겠다. 천도교의 중요한 가르침인 포덕천하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도탄에 빠져 힘들게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그 도탄 중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천도교는 광제 창생( 廣 濟 蒼 生 ) 을 그 중요한 종교적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잘못된 관념과 타락한 이기주의인 각자위심으로 인하여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삶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 는 세상의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 곧 이들 세상 사람들을 도탄에서 구하는 광제창생의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러한 광제창생과 함께 보국 안민( 輔 國 安 民 ), 곧 국가와 민족을 보전하고 모든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가는 보국안민 또한 천도교의 중요한 종교적인 목적이 되고 있다. 특히 대신 사가 도( 道 ) 를 펼치던 조선조 말기, 곧 19세기 중엽은 서양의 열강들에 의하여 위 협적인 통상( 通 商 ) 이 요구되고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당시 새로운 세 력으로 들어오는 서학에 의하여 우리의 민생은 정치적 사회적, 나아가 문화적인 혼 란까지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서양의 서세동점( 西 勢 東 漸 ) 에 의한 세력 확장과 서학 의 전래는 당시 조선 사회를 비롯한 동양 사회 전반을 불안과 위기로 몰아가고 있 었다. 이와 같은 시대에 대신사는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고 보국안민의 기치를 세 우기 위해서는 당시 집권층인 양반들만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 역시 이와 같은 현실 을 깊이 자각하여,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당시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힘의 소재가 다만 특정한 집권층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에게도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민중들 스스로 국가적

12 민족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주체 임을 일깨워주었다. 곧 민중들에게 스스로 자 신의 삶과 이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존재, 그 주체임을 눈뜨게 했던 가르침이 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천도교가 지향하는 보국안민의 정신은 역사적으로는 민중 들 스스로, 민중들의 힘에 의하여 역사의 주체가 되어, 그 역사를 매우 주체적으로 열어가는 근대적 양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그 중요한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면에서 천도교는 매우 자생적( 自 生 的 ) 으로 한국의 근대화를 우리의 역사 속에 서 열어간 그러한 종교 사상이며, 19세기 중엽이라는 봉건의 시대에 서구의 충격이 아닌, 자생적인 근대의식을 펼쳐나간 가르침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는 종교라고 하 겠다. 수운대신사 이후 이 보국안민의 정신은 해월신사에게로 이어져, 서양의 열강( 列 强 ) 을 비롯한 일제( 日 帝 ) 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있던 19 세기 말엽, 척양척왜( 斥 洋 斥 倭 ) 의 깃발을 높이 들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학혁명을 주도함으로써 민의( 民 意 ) 를 집결시켜 외세( 外 勢 ) 라는 부당한 침략에 항거하게 되었다. 또한 의암성사에 이르러 보국안민의 정신은 국가와 민족의 독립정신으로 승화되어 3 1 독립운동으로 이어지 기도 하였으며, 춘암상사에 이르러 일제의 식민정책이 극에 달했던 1930 년대 후반, 구국( 救 國 ) 을 위한 무인멸왜기도( 戊 寅 滅 倭 祈 禱 ) 로 이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또한 이 러한 정신은 8 15 광복 후에는 민족통일운동으로 이어졌다. 즉 천도교는 그 종교적인 목적인 광제창생과 보국안민의 정신으로 부당한 침략 침 탈과 싸우며, 협의( 俠 義 ) 에서는 민족의 독립운동을 펼쳐나갔고, 광의( 廣 義 ) 에서는 인 류가 새로운 차원의 삶을 열어갈 수 있는 후천개벽( 後 天 開 闢 ) 의 운동 을 전개시켜 나간 종교라고 하겠다.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고 정부와 타협하는 집강소 활동을 벌여 농민들의 자 치활동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살펴본다. 요 이념이 된 폐정개혁안 12 조를 이해하도록 한다. 특히 집강소를 중심으로 한 개혁활동의 주 1) 전주성 - 호남의 제일가는 성으로 전라도의 전통적인 중심지이며, 곡창지대를 차지한 셈이 되므로 조선정부가 당황하게 되었다. 고부에서 일어난 농민들이 일단 해산한 후, 전봉준은 무장( 茂 長 ) 으로 가서 3월 초 순부터 손화중 김개남과 함께 농민군을 조직했다. 약 15일 동안 4,000여 명의 농민 군을 규합한 전봉준은 탐관오리의 숙청과 보국안민을 위해 일어서자는 내용의 첫 창의문( 倡 義 文 ) 을 발표했다. 이어 무장 고창 흥덕 태인 정읍 김제 금구 등지 농민들의 호응을 받아 보국안민의 기치 아래 백산에 집결했다. 3월 25 일 ' 호남창의대장소' 를

13 조직하여 농민군을 정비했다. 연합부대의 대장에는 전봉준이 추대되고, 손화중과 김 개남이 부대장이 되었다. 이들은 서울로 진격하여 부패한 봉건지배층을 타도하고 외래침략자들을 내쫓을 것을 제시하며 고통받는 민중과 봉건통치지배의 하수인인 아전까지도 힘을 합해 일어나자는 내용의 격문을 전국에 띄웠다. 백산에서 대오를 편성한 농민군은 4월 7 일 황토현에서 전주 감영군을 격파한 후, 정부군과 정면대결 을 피하고 힘을 모으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가 정읍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 장성 등지를 공략했다. 진격하는 곳마다 관청을 습격하여 감옥에 갇힌 백성들을 석방하 고 무기를 압수하였으며, 탐학관리를 비롯한 양반 지주 부호들을 징계하고 재물을 빼앗아 빈민에게 나누어 주었다. 한편 정부는 4월 2 일 홍계훈( 洪 啓 薰 ) 을 양호초토 사로 임명하여 장위영병을 현지로 파견했다. 그러나 장성의 황룡시 전투에서 홍계 훈이 이끄는 장위영병의 선발대는 농민군에게 격파당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농 민군은 장성을 떠나 북상길에 올라 원평 정읍을 거쳐 4월 27 일( 양력 5. 31) 전주성 에 입성했다. 2) 집강소 -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농민이 중심이 되어 자기 고을을 다스리게 되었 다. 원래 집강소는 지방행정을 원활히 수행하려고 수령의 보조기구로서 면리 단위에 근원을 두었던 집강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이후의 집강소는 농민군의 지방 통치조직 이었다. 각 고을의 관아 안에 설치된 집강소에는 1 인의 집강 아래 서기 성찰( 省 察 ) 집사 동몽( 童 蒙 ) 등의 임원을 두어 각 지방의 대민 행정업무를 처리하였다. 각 군 현에는 비록 군수나 현령 현감 등의 지방관이 있었지만 농민군이 호남 일대를 장 악한 상태에서 그들의 지위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고 집강소가 사실상 지방행정을 좌우하였다. 집강소는 주로 관민상화책에 따라 무기관리와 치안유지 그리고 합법적 인 범위 안에서의 폐정개혁활동을 벌이였지만, 곳에 따라서는 독자적으로 부정한 지방관과 아전들에 대한 반관투쟁( 反 官 鬪 爭 ), 지주들에 대한 반부민투쟁( 反 富 民 鬪 爭 ) 그리고 양반을 대상으로 하는 신분해방투쟁을 지속적으로 벌이기도 하였다. 이 렇게 지방행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했던 집강소는 그해 10월 농민군이 2차 봉기를 하였을 때 농민군을 조직 동원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고, 이후 농민군이 전쟁 에서 패함으로써 집강소 체제도 무너지고 말았다. 3) 노비문서는 불태워 버릴 것 4) 토지는 골고루 나누어 경작할 것 일본의 침략 야욕이 드러나자 2차 봉기에 나선 동학농민들이 우금치 고개를 넘지

14 못하고 안타까운 패배를 하는 장면이다. 비록 실패했지만, 농민이 주체가 된 참된 근대화를 꿈꾸었으며, 반외세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던 사건이다. 1) 우금치 - 10월 21일경 논산을 출발한 전봉준과 손병희의 농민군은 공주를 눈앞 에 두고 23 일부터 잇따라 일본군 및 관군과 전투를 벌였다. 공주성을 둘러싼 공방 전은 크게 두 번 치뤄졌다. 1차전투는 10월 23일 25 일 사이에 벌어진 이인 효포 웅치 싸움이며 2차전투는 11월 8일부터 4 일간 계속된 우금치 혈전이다. 9일 날이 밝으면서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으로 기록되는 이른바 우금 치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농민군은 총집결하여, 동으로 판치 뒷봉우리에서 서쪽으 로 봉황산 뒷편까지 여리에 걸쳐 산 위에 진을 쳤다. 북쪽을 제외하고 삼면 에 진을 치며 공주감영을 둘러싼 것이다. 일 관연합군은 우금치를 중심으로 왼쪽 봉 우리에 모리오 대위의 일본군이, 맞은편 견준봉에는 백낙완, 고개 밑에는 성하영 부 대가 각각 배치돼 주방어선을 형성했다. 또한 동남쪽으로 금학동, 웅치, 효포의 봉 수대, 그리고 금강나루와 산성쪽, 공주감영 뒷편 봉황산 방면에 각각 수비대를 배치 했다. 일 관연합군 역시 전면 전투 채비를 갖춘 것이다. 곧 효포 쪽에서 전투가 시 작되었고, 전봉준의 주력부대가 우금치를 공격하자 일본군과 관군이 무차별 포격을 가함으로써 전투는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우금치를 지키던 성하영 부대가 농민군 의 공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모리오 대위는 우금치 견준봉 사이의 능선에 일 본군을 배치하였다. 공격해 오는 전봉준 부대를 향해 이들은 산마루에 나란히 서서 일제사격을 가했다가 산 속으로 은신하였다. 농민군이 고개를 넘고자 하면 곧바로 또 산마루에 올라가서 일제히 총을 발사했는데, 이렇게 하기를 40 50차례 거듭하 자 농민군의 시체가 온 산에 가득히 찼다. 농민군은 잘 훈련된 일본군과 그들의 최 신 병기의 화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천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채 끝내 패하고 말았다. 9일의 우금치 전투에서 농민군은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 다. 전투는 이후 11 일까지 계속되었지만, 이미 전면적 전투가 아니었다. 수만에 이 르는 농민군은 일본군 200여명 관군 2,500여명 등 2,700여명에 불과한 진압군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2) 국내 - 갑오개혁, 국외 - 청, 일 전쟁 갑오개혁 - 갑오경장( 甲 午 更 張 ) 이라고도 한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민 씨정권은 청국에 파병을 요청하였다. 청국이 이를 수락하고 군대를 파견하자 일본 도 1884 년의 톈진[ 天 津 ] 조약을 빌미로 군대를 출동시켰다. 청 일 양군이 주둔한 가운데 양국간에 전쟁 기운이 높아지자 조선 정부는 다시 양국군의 철수를 요청하 였다. 이미 조선에서 정치적 지배력을 구축하고 있던 청국은 이를 받아들였으나, 일 본은 이를 거부하고 침략의 명분으로서 조선에 내정개혁을 요구하였다. 민씨정권이 이를 내정간섭이라 하여 거절하자 일본군은 7월 23일 궁중에 난입하여 무력으로 민씨정권을 타도하고 흥선 대원군을 다시 영입하는 한편, 김홍집( 金 弘 集 ) 등 개화파

15 인사들로 신내각을 구성하게 하였다. 이어 7월 27일에는 내정개혁 추진기구로 군국 기무처가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회의총재( 會 議 總 裁 ) 김홍집을 비롯한 박정양( 朴 定 陽 ) 김윤식( 金 允 植 ) 유길준( 兪 吉 濬 ) 등 주로 개화파 인사들로 구성된 17명의 의원이 참여하여 개혁사업을 총괄 지휘하였다. 군국기무처가 설치되면서 진행된 개혁사업 은 일본의 간섭 정도와 개혁주체의 성격변화에 따라 3 단계로 나누어진다. 제1차 개 혁은 군국기무처가 설치된 7월 27일부터 12월 17일까지 약 210건 개혁안을 제정 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제1차 개혁기간 동안에 일본은 청일전쟁을 치르는 데 주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혁과정에 집중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 시 기 개혁에는 갑신정변 이래 개화파가 줄기차게 추구해온 개혁구상이 비교적 충실히 반영되었다. 또한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이 제기한 요구도 부분적으로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의 압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고, 또한 개 화파 자신이 친일적 성향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내용 의 개혁도 상당 부분 존재했다. 청일전쟁 - 청의 식민지적 지배와 일본 상업자본의 진출, 조선왕조의 압제 등에 시 달려온 농민들과 동학 교도들이 봉기하여, 1894년 5월에 전주를 점령하자 조선왕 조는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6월 8~9일 청군 2,400여 명이 아산 만에 상륙하여 12 일부터 군사행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텐진조약에 의하여 조선에서 청 일 양국의 세력균형을 요구하던 일본 정부는 6 월 초에 출병을 결정하였다. 그 들은 일본공사관과 거류민 보호라는 구실 아래 해군과 육군의 대부대를 파병했고, 이어 인천- 서울 간의 정치적 군사적 요충을 장악했다. 일본군의 침입에 당황한 조 선정부는 갑오농민전쟁이 이미 진정되었음을 이유로 청 일 양군의 동시철병을 요구 했다. 일본의 오오토리 공사는 본국의 훈령에 따라 갑오농민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 았다는 것과 조선의 내정개혁을 구실로 철수를 거부했다. 일본의 내정개혁 요구는 겉으로는 ' 일본의 자위를 위해 조선내정의 개혁을 촉구하여 변란의 근원을 단절할 수밖에 없다' 는 것을 내세우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러시아에 대처할 전략적 시설을 한반도 안에서 확보하고 불평등조약 체제를 더욱 강화하여 본원적 축적을 강행하려 는 것이었고, 나아가 조선을 보호국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조선정부는 일본이 철수한 후 비로소 내정개혁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하여 일본의 요구를 거절했 다. 이에 일본은 7월 23일 무력으로 경복궁을 점령하고 쿠데타를 통해 흥선대원군 을 앞세운 친일정권을 수립했고, 7월 25일 선전포고도 없이 청군을 공격하여 청일 전쟁을 도발했다. 3) 전봉준 - 자( 字 ) 명숙( 明 淑 ) 천안전씨( 天 安 全 氏 ) 이니 전북 고창읍 죽림리 당촌 에서 출생했다. 그는 체구가 아주 작아서 녹두( 綠 豆 ) 란 별호를 갖게 되었다. 그는 봉건전제에 짓밟히고 있는 민권을 부르짖었고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위기에 처해 있 는 민족을 구하려 민중을 이끌고 무명의 동학접주( 東 學 接 主 ) 로 갑오동학혁명을 영

16 도한 민족의 선각자요 불요불굴의 의지력과 탁월한 영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전봉준은 정월 봉기후 이용태 안핵사가 역졸을 거느리고 내려와 동학교도들을 역 도로 몰아, 서슬이 멀큼했지만 이때 전봉준은 좌절하지 않고 무장의 대접주 손화중 을 움직여 동학교의 세력을 동원 마침내 삼월봉기로 전라도를 장악하고 집강소 정 치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해 6월 21 일 ( 양 7월 23 일) 일본군이 궁성에 침입하여 고종 임금을 연금하는 사태에 이르자 전봉준은 삼례에서 구월봉기를 일으켜 서울로 진격하다가 10월 23일 공주에서 15일 동안 혈전 끝에 패하고 후퇴하여 11월 27일 태인 싸움을 최후로 농민군을 해산했다. 갑오혁명에는 삼남지방 각지에서 많은 동 학접주들이 봉기하였으나 전봉준처럼 호남의 5천 대군을 거느리고 일사불란의 전열 로 일본군에 최후까지 혈전을 벌인 영도인물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인 싸움을 최후로 농민군을 해산한 전봉준은 수행 몇 명과 동 29일 입암산성으로 들 어갔다. 때마침 일본군 三 尾 ( 모리오) 부대와 이규태의 관군이 천원에서 추격해 온다 는 정보가 있어 30 일 다시 백양사로 이동했다. 김경천은 전봉준을 맞이해 놓고 전 주감영 퇴교( 지금의 현역장교) 로 이웃에 살고 있는 한신현에 밀고 했다.1894년 12 월 2 일( 양 12월 28 일) 이었다. 전봉준은 순창을 거쳐 담양의 일본군에 인계되어 나 주, 전주를 경유 12월 18일에 서울에 도착되었는데 동학군들을 경계하여 일본영사 관 감방에 수감되었다. 전봉준은 다음해 2월 9 일, 동 11 일, 동 19 일, 3월 7 일, 동 10 일, 5차에 걸쳐 일본 영사의 심문을 받고 1895년 3월 30 일 손화중, 최경선 등과 함께 최후를 마치니 나이 41세였다 손화중 - 호 초산이니 밀양손씨이다. 그의 동학과 인연은 지리산 청학동에서 비롯 한다. 그는 한때 처남 유용수와 함께 지리산 청학동으로 들어가 수도생활을 한 적 이 있었다. 이무렵 영남에서는 새로운 종교인 동학이 한참 퍼지고 있었는데, 손화중 은 후천개벽의 동학 종교론에 공명하여 동학에 입교한 것이다. 그는 비폭력 무저항 의 교단의 방침에도 불구하고 전봉준의 혁명론에 공명하여 마침내 삼월봉기 주역으 로 전봉준과 갑오동학혁명을 영도했다. 전봉준은 공초에서 고부봉기를 누구와 협의했느냐는 물음에 손화중과 상의했다고 하였다. 3월 봉기에 손화중포가 무장 구수내에 집결하여 전봉준 영솔 아래 고부로 와서 백산봉기의 주력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전주 해산후 무장, 장성 등지에 머물 고 있었던 것 같다. 손화중포의 농민군은 이해 7월 자주성 싸움에 최경선이 거느리 는 농민군의 주력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11월 전봉준의 공주패전 후 나주성을 포 위하고 공격을 시도했으나 태인 전투를 최후로 대세가 재기불능에 이르자 11월 27 일 광주로 진격했다가 12월 1 일( 양 12월 27 일) 농민군을 해산했다. 그 후 그는 몸을 피하여 고창군 부안면 안현리( 高 敞 郡 富 安 面 鞍 峴 里 ) 이모씨( 李 某 氏 ) 의 제실( 祭 室 ) 에 있다가 12월 11 일( 양 1월 6 일, 1895) 제실직( 祭 室 直 ) 인 이봉우 ( 李 鳳 宇 ) 의 고발로 관군에 잡혀 전주감영( 全 州 監 營 ) 을 거쳐 서울로 압송되었다. 1895년 3월 30일 새벽녘 전봉준과 함께 최후를 마치니 나이 35 세였다.

17 김개남 - 이름 영주( 永 疇 ) 자 기선( 箕 先 ) 기범( 箕 範 ) 도강김씨( 道 康 金 氏 ) 이니 정읍 시 산외면 동곡리( 山 外 面 東 谷 里 지금실) 에서 김대현( 金 大 鉉 ) 의 셋째 아들로 출생했 다. 태인( 泰 仁 ) 은 이웃 금구의 원평( 院 坪 ) 과 아울러 호남에서 동학이 가장 세를 떨 친 곳이다. 그 가운데 산외면 동곡리는 김개남의 출생지일뿐 아니라 전봉준의 성장 지로 갑오동학혁명의 요람지라 할 수 있다. 갑오년 6 월 김개남의 남원 정벌군( 征 伐 軍 ) 이 이곳 지금실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전봉준 손화중과 아울러 갑오동학혁명 의 삼걸( 三 傑 ) 로 일컫는 김개남은 그 가운데서도 적극적인 강경파였다. 그는 남원을 본거지로 우도( 右 道 ) 의 금산( 錦 山 ), 무주( 茂 朱 ), 진안( 鎭 安 ), 장수( 長 水 ), 용담( 龍 潭 ) 을 비롯하여 좌도를 호령하였고 순천( 順 天 ) 에 영호도회소( 嶺 湖 都 會 所 ) 를 설치하고 대접주( 大 接 主 ) 김인배( 金 仁 培 ) 로 하여금 영남의 서남부지방( 하동, 산청, 진주) 을 관 장케 했다. 이해 7 월 대원군( 大 院 君 ) 의 효유문( 曉 諭 文 ) 을 가지고 찾아온 정석모( 鄭 碩 謨 ) 일행을 곤장을 치고 두 달 동안이나 연금했던 것이다. 그는 11월 10일 청주 성( 淸 州 城 ) 을 공격했으나 일본군에 패하여 진잠( 鎭 岑 ) 을 거쳐 태인으로 돌아와 태인 장금리( 長 錦 里 ) 매부인 서영기( 徐 英 基 ) 집에 잠거해 있다가 임병찬( 林 炳 瓚 ) 의 고발 로 12월 1 일( 양 12월 27 일) 강화병방( 江 華 兵 房 ) 황헌주( 黃 憲 周 ) 에 피체되어 전주로 이송되었다. 전라관찰사 이도재( 李 道 宰 ) 는 김개남의 명성에 겁을 먹고 서울로 압송 하는데 위험을 느껴 12월 3 일( 양 12월 29 일) 신시( 申 時 하오사시( 下 午 四 時 )) 서교 장( 西 敎 場 ) 에서 임의로 처형하여 최후를 마치니 나이 42 세였다. 13 쪽~17쪽 논쟁점을 두 가지 뽑아 서로 다른 생각을 제시하여 사건의 여러 측면을 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느껴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어떤 판단을 할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연극 대사 쓰기 등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역사에 흥미 롭게 접근하는 과정도 제시하였다. 동학농민운동이 어떤 성과를 낳았는지를 따져보는 자리이다. 운동의 명칭부터 점검 하면서 의미를 따지고, 운동의 핵심인 집강소 활동의 영향력과 운동이 막을 내린

18 우금치 전투의 상황을 살펴본다. 한솔이나 아름의 편에 서도 되고, 자기 나름의 입 장에서 써도 좋으나 되도록이면 일관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좋겠다. 1) 동학과 농민 사이 - 명칭 문제는 운동 주체가 누구인가를 살펴봄으로써 정리할 수 있다. 과거에는 동학교도가 주체라는 주장이 많았다. 당시에도 동학교도, 줄여서 동도 등으로 불렸으며, 실제 운동도 교조신원운동에서 시작하여 차츰 세력을 키워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군 지도자가 모두 동학의 접주라는 사 실은 동학의 영향이 절대적임을 보여주며, 당시 농민들의 시름을 달래줄 중요한 터 전이라는 점에서 동학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는 입장이다. 이에 비해 농민운동의 측 면을 강조하는 쪽은 동학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동학 자체의 교리와 관련된 구호는 사라지고 실제 개혁과 투쟁의 구호로 바 뀌었으며, 동학교도가 아닌 농민들도 합류하여 사실상 농민들의 운동으로 나아갔다 는 점을 지적한다. 더욱이 2차 봉기 때는 정부를 대신하여 일본과 싸웠기 때문에 농민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현행 교과서에서는 두 입장을 고려하여 동학과 농민을 모두 명칭에 넣고 운동이라는 표현을 써서 정리하고 있다. 2) 집강소 역할 - 집강소는 그 자체가 매우 혁명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통치의 대상이 직접 통치를 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던 개혁을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집강소에서는 경제적 수탈과 신분의 불평등의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농민군들은 노비문서는 물론 토지문서도 불태워 버리고 고리대에 따른 빚이나 그 비슷한 부담 을 모두 없애주었다. 또 양반들의 재물을 빼앗아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그 시기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봉건적인 경제, 신분질서를 크게 허물어 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물론 집강소가 전국에 실시된 것도 아닐뿐더러 전라도에서도 제각각 설치되어 전봉준의 통제에서 벗어난 곳도 있었고, 지역사정에 따라 각기 다른 시기에 생겼으며, 따로 집강소에 관련된 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다소 무질서한 면이 있었다. 또 양반 지주층의 반발로 집강소 활동은 혼란만 초래 할 뿐 변변히 시행되지 못한 곳도 있다. 그럼에도 농민 자치 또는 농민 통치는 큰 역사적 경험이었으며 그 기간 동안에는 외국상인의 경제적 침투가 사라졌으며, 이 러한 경험이 이후 민족운동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3) 동학농민운동의 영향 - 우금치 전투는 불가능에 도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 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농민군은 진격하였으나 압도적인 무력 을 지닌 일본군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구식 화승총으로, 맨손에 가까운 창과 낫으 로 대포와 신식양총의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무엇보다도 힘없는 민중들 이 봉기하여 조선정부를 무너뜨리고 외세의 간섭 없는 나라를 만드는 꿈 자체가 불 가능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결과로 우금치의 패전으로 농민군의 기세가 크게

19 꺾이고 전봉준 등의 지도자가 체포되면서 사실상 농민운동이 끝났다. 그러나 우금 치의 실패는 단순한 패전이 아니었다.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여 침략자 일본군을 상 대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어지는 의병운동, 독립운동의 큰 흐름은 바로 우금 치의 저항정신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동학농민운동은 허 망하게 끝난 싸움이 아니며 내용적으로는 조선 사회의 대변혁을 이끌고 있었다. 신 분제 폐지를 비롯하여 조선이 봉건적인 사회의 틀을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 련해 주었고,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얼마나 가능한지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의 주요 지도자 전봉준의 면모를 살펴보는 자리이다. 그는 단지 권력 을 탐하는 사람이었는지, 하급 지도자에 불과한 사람이 지나치게 앞장서 일을 그르 쳤는지, 잘못된 전략으로 애꿎은 희생만 낳은 사람인지, 그 반대로 녹두장군이라는 추앙을 받을만한지 인물됨을 이해하고 각자의 의견을 말하게 한다. 1) 권력욕이 많은 사람 - 전봉준이 몰락양반으로서 세상에 대한 불만이 많았을 가능 성은 높다. 지식은 있으나 뜻을 펴볼 기회도 없기 마련이다. 더욱이 아버지 전창혁 이 고부군수 조병갑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곤장을 맞아 죽게 되면서 그의 결심은 확 고해졌을 것이다. 차츰 동학에 심취하는 그는 1892 년에 교주 최시형( 崔 時 亨 ) 에 의 하여 고부지방의 접주( 接 主 ) 로 임명되었다. 이듬해 2월 무렵 서울로 올라가 대원군 을 방문하여 " 나의 뜻은 나라와 인민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는 바"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세간에는 전봉준과 대원군 사이에 무슨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 이 돌았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우선 대원군이 정치적으로 큰 인물이라 자 주 감시의 대상이 되었기에 자유롭게 누군가를 만날 처지가 못 되었다. 전봉준 역 시 한창 세력을 기르며 봉기를 준비하던 때였으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전봉준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물도 아니었다. 오히려 만났을 가능성은 1894년 전봉준이 농 민군 지도자로 활약했을 때가 더 높으며, 만났다 하더라도 밀사가 오가면서 둘 사 이의 의견교환이 있었을 법하다. 대원군은 당시 권력자 가운데 삼정문란, 세도정치 를 없애 민중들의 호응을 받던 몇 안되는 인물이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 되어 전봉준이 접촉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 중요한 점은 전봉준이 다각도로 현 실적인 개혁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지 개인적인 권력욕으로 일을 그르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행적을 통해서도 사심없이 일을 처리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2) 하급지도자 주제에 - 그의 20, 30 대에 조선사회는 극히 어수선했다. 개항을 계기

20 로 하여 외세는 물밀듯이 밀려들어왔고, 봉건 말기의 위기적 상황은 날이 갈수록 가중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전봉준 역시 나라의 장래에 대해 고민했으며, 그러 한 고민의 과정에서 1888 년( 고종 25) 무렵 손화중( 孫 和 中 ) 과 접촉했다. 1890년 무 렵에는 " 그의 용무지지( 用 武 之 地 ) 로서 동학 교문이 있음을 발견하고", 서장옥( 徐 璋 玉 ) 의 막료인 황하일( 黃 河 一 ) 의 소개로 동학에 입교했다. 뒷날 그는 제2차 재판에서 " 동학은 수심( 守 心 ) 하여 충효( 忠 孝 ) 로써 근본을 삼고 보국안민( 輔 國 安 民 ) 하려는 것 이었다. 동학은 수심경천( 守 心 敬 天 ) 의 도( 道 ) 였다. 때문에 나는 동학을 극히 좋아했 다" 고 하여 동학에 입교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그러나 갈수록 나라의 형편은 어려워지고 민중은 도탄에 빠졌다. 마침내 동학의 울타리를 지키는 데서 벗어나 봉기를 결심하게 되었다. 애초에 실질적인 민중구제 와 개혁의 뜻을 품었던 그이기에 동학 자체의 세력 유지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삼례집회가 전체적으로 열리고 있을 때 원평집회를 따로 열어 당시 농민들의 핵심적인 요구를 보여주려 하였다. 이 때문에 전봉준은 동학교단에 의해 위험한 인 물로 지목되기도 하였으나 그의 충정과 설득력, 논리 등은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 모이게 할 만하였다. 비록 동학교단에서는 하급 지도자였을지 모르나 그의 지도력 만큼은 농민군의 대장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그가 야심가며, 반 란자인 것처럼 비치기 쉬우나 그는 한결같이 참된 근대화와 개혁에 뜻을 두었을 뿐 이었다. 3) 실패한 전략가 - 우금치 전투 당시 주무장 화기는 스나이더 소총과 무라다 소총 이었다. 1876년부터 사용하였으며 메이지 유신 후의 서남 전쟁과 대만 침략에서 도 사용되었다. 제원은 구경 14.9mm, 초속 359m이며 최대사거리는 1,800m 이다. 이에 반해 농민군은 겨우 재래식 화승총 정도로 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양측의 화력을 계산하면 일본군 3천명으로 농민군 75만에서 150만을 상대할 정도로 압도 적인 차이였다. 이 정도면 거의 학살 수준의 전투가 진행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훈 련이나 전술의 운용 면에서 농민군이 정규군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농민군으로서는 승리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던 셈이다.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전투에 나선 것 자체가 전봉준의 전략가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일본군은 허술하고 무능한 관군과 달랐을 뿐더러 청일 전쟁 에 승리하면서 사기가 매우 높은 상태였다. 이에 비해 농민군은 전투경험도 많지 않고 무기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공주만을 고집 할 게 아니라 우회를 해서 서울로 진격할 수 있는 방법이나 서울에서 공주 쪽으로 다른 동학군이 움직이도록 협조를 요청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곧이곧 대로 공주 우금치로 향했다. 아예 전략이 없는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 다. 그러나 그의 전략을 우금치 한번으로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찍이 고부봉기 에서부터 1 차 봉기 때의 각 전투마다 전봉준은 기발한 작전과 효과적인 전술, 새롭

21 게 만든 농민들의 무기로 관군을 연달아 격파하였다. 2차 봉기에서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는 게 문제였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일본군은 압도적인 화력을 갖고 있었다. 공주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서울로 가는 지름길이요, 그 곳이 요새였기 때문에 지 더라도 가야하는 곳이었다. 불행히도 관군과 일본군이 먼저 공주를 차지하였고, 전 봉준은 다섯 갈래로 공주를 치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뿐이 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설명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면 동학농민운동이 성공했더라면 이라는 소재이다. 그렇다면 식민지가 안 될 수도 있었고, 나름대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대로 이겼다 하더라도 더 큰 시련이 닥쳤을 수도 있다. 약 10 분 정도 시간을 준 다음, 어떤 구상을 하였 는지 서로 말하게 하면 재미 있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18 쪽~20쪽 본격적인 토론의 자리로서 주제에 관련된 쟁점을 서로 이야기하는 과정이다. 주제 자체를 명확히 따져보는 꼭지도 있고, 주제에서 현실로 눈을 돌려 현재적 문제를 살피는 꼭지도 있다. 현실사회의 쟁점을 일부러 제시한 것은 역사를 과거의 사실로 만 여기지 않고, 역사가 현재와의 깊은 연관 속에 있음을, 미래에 대한 판단도 역사 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다양한 근대화의 길 비교 가) 위정척사파 : 뜻을 풀이하면 '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물리치자' 는 것으 로 조선이 건국된 이후 변하지 않고 집권층에 형성된 의식, 사상이다. 조선이 건국 될 당시에는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였으며, 조선 중기에는 양명학, 후기에는 서학과

22 동학, 근대화 시기에는 서양 문물을 거부하는 형태로 존재하였다. 전통의 수호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었으나 이 사상의 가장 큰 맹점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것 이다. 격변기인 조선 말, 이들은 통상반대(1860 년대)* 개항반대(1870 년대)* 개화반대 (1880 년대) 등을 외치며 조선의 근대화에 반대하였다. 1890년대 항일의병운동으로 반침략* 반외세운동을 펼쳤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으나 이들의 주된 목표가 - 조선왕조의 전제적 정치체제 - 지주 중심의 봉건적 경제체제 - 양반중심의 차별적 사회체제 - 성리학적 유일사상테제를 유지 인 점을 들어보면 이들의 한계성을 잘 알 수 있다. 나) 개화파 : 북학파인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의 실학사상을 배경으로 성장한 세력 들을 개화파라 한다. 이들 중에서 청의 양무운동을 본받아 점진적인 개화를 주장한 이를 온건( 보수) 개화파, 수구당이라 하고, 일본의 명치유신을 본받아 급진적인 개화 를 주장한 이를 급진개화파, 개화당이라 한다. - 온건개화파 : 이들은 우리나라만의 자주적 방식으로 개화하기를 주장하였다. [ 동 도서기] 라 불리는 이 방식은 우리의 유교정신을 이어받으면서 서양의 기술을 받아 들이자는 것으로 점진적인 개화를 주장한 것이다. 이들의 성격을 파악하기에 가장 좋은 것은 갑오개혁이다. 일제의 간섭을 받으면서 이룬 개혁안인 갑오개혁이지만 여기에서 그들은 조선의 변화를 조금씩 이루려고 하였다. - 급진개화파 : 일본의 지원을 업고 조선을 개화시키고자 한 이들로 주로 젊은 신 진 관료들이었다. 이들은 청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일본을 본받아 급진적인 위에서 의 개혁을 부르짖었으나 당시의 민중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이들의 성격 을 파악하기에 좋은 것은 이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에서 내건 신정부강령 14개조이 다. * 청의 종주권 폐지 * 문벌의 폐지와 사민 평등, 인재등용 * 조세제도( 지조법) 의 개혁 * 내시부, 혜상공국, 6조 외의 불필요한 관아의 폐지 * 순사와 근위대의 설치 등을 주장하였다. 다) 동학농민운동 : 세도정치 하에서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성리학이 민중에 대한 지도능력이 상실되었으며 이양선의 출몰에 의한 위기의식의 팽배, 전통사상과 어긋 나는 천주교 등에 대한 반발로 창시된 종교가 동학이다. 동학은 전통적인 민족신앙 을 바탕으로 유* 불* 도* 천주교의 교리 일부를 흡수한 종합적인 성격을 지녔으며 사 회적으로 평등주의를 강조하였다. 또, 조선왕조를 부정하였고 대외적으로 외세를 부 정하였다. 삼남일대로 퍼지기 시작한 교세에 위협을 느낀 집권층에서는 교주인 최

23 제우를 처형함으로써 교세 확장을 막고자 하였으나 근대화되는 시기 민중들은 여기 에 많은 의지를 하였다. 지방의 많은 몰락 양반들과 농민 사이로 퍼진 이 종교는 후에 동학농민운동을 통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 폐정개혁안 * 탐관오리와 부정한 부호를 엄징한다. * 노비문서의 소각, 7 종 천인차별 폐지, 청상과부의 개가 허용 * 왜와 통한 자는 엄징한다. *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농민들은 당시 수탈의 대상이 되다보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장하였다. 자신 이 갈아먹을 토지를 요구하고, 누구의 수탈대상에도 포함되지 않게 되길 원했던 것 이다. 라) 갑오개혁 : 마지막으로 볼 것은 일본에 의해 주동된, 온건 개화파의 갑오개혁이 다. 4차례 걸쳐서 진행된 개혁으로서 많은 것을 대상으로 개혁하였지만 중요한 것 은 일제에 의해 배제되었다. 홍범 14조에서 중요한 것은 갑신정변과 폐정개혁안에 서 요구한 문벌의 폐지를 들 수 있고, 일본의 간섭이 통할 수 있도록 청을 배제한 것 정도이다. 을미개혁으로 이어지는 4차 개혁에서도 중요하게 거론될 만한 것은 독자성을 나타내는 연호의 사용과 군제 개편 정도 밖에 없다. 온건 개화파는 일본 이라는 큰 산을 넘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그들의 필요에 의해 조금씩 개혁을 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개혁의 주제가 일본이 요구하는 것으로 많이 흘러 갔다. 근대화= 서구화? - 서양의 역사에서 배울 점은 참으로 많다. 신분적 굴레와 봉건적 차별에 과감히 맞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깃발을 치켜든 프랑스혁명은 만화 베르사 유의 장미 이상으로 가슴 뭉클하다. 어쩌면 관료제가 잘 갖춰지고 중앙집권화가 오 래 유지된 동양세계보다 더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단칼에 속 시원히 풀어낸 그들의 모습은 한량없이 부럽다. 그로 말미암은 자유, 평등, 박애는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하늘이 내린 인간의 권리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러 차례 혁명으 로, 다양한 지역의 시민혁명으로 서술된 서양사회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부르조아 지라고 부르는 중산층이 권력을 잡으면서 열기가 식어버리고, 더 많은 서민층, 노동 자나 농민들은 들러리서서 군침만 흘리는 쪽으로 흘러갔다. 화려한 수식어로 포장 된 서양의 시민혁명은 실상은 소수를 위한 격변으로 굳어져갔다. 이에 항거하여 나 온 권리주장 끝에 사회주의가 나왔으며, 선거제도가 개편되었다. 한 가지 허탈한 것 은 그토록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서양에서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선거권을 얻은 것 은 1928 년 무렵 영국에서부터였다. 다른 나라는 조금씩 늦게 이런 일이 이루어졌

24 다. 우리나라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여성 참정권이 생겼으니 별 차이가 없는 것 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나마 정치 개편을 이룩한 나라들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영악해 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려 대량으로 만들어진 물건은 나라 안 은 물론 나라 밖으로도 팔려나가야 했다. 아주 신통한 물건이 아닌 다음에야 꾸준 히, 그것도 비싼 값에 남의 나라 물건을 넙죽 사줄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이때 떠 오른 것이 식민지였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콜럼버스 같은 이들을 앞세워 식민 지 개척에 나섰던 경험을 본받아 이제는 은이나 노예를 끌고 오는 단순한 약탈 경 영이 아니라 군함을 앞세워서 나라를 송두리째 집어 삼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에는 어떠한 도덕도 필요 없었다. 아니 다윈의 진화론 학설을 교묘히 변형시켜 적자생존을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우수한 서양이 어리숙한 나머지 세계를 거느리는 것은 당연하다. 지극히 정당하다, 역사의 순리, 신의 섭리라고까지 믿었다. 제국주 의!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 원료와 노동력을 거저 부려먹다시피 하고, 자기네의 물 건을 강제로 떠안기는 가장 확실한 시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질 좋 은 면화를 생산했고 수출했던 인도를 식민지로 삼킨 영국은 인도를 최대의 면제품 수입국으로 전락시켰다. 인도의 민족운동가 간디가 물레질 하는 장면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이렇게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서양 여러 나라들은 식민지가 황금알을 낳은 거 위라는 것을 실감하였고, 이제부터는 누가 더 빨리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땅을 챙 길 것인가로 관심이 바뀌었다. 멀쩡히 수 천 년을 지내온 중국을 아편 밀무역으로 망가뜨린 서양 세력들은 그 밖의 나라들을 주위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잠식해 들어 갔다. 압도적인 무력을 앞세워 영국은 아프리카 땅을 남북으로 가르고, 프랑스는 동 서로 갈랐다. 영국이 인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이런 식으로 분할 경쟁에 나섰 다. 뒤늦게 산업화에 나선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도 꿀맛 같은 식민지 경영에서 빠 질 수 없었다. 자원은 많고, 교통은 편리한데 강력한 권력이 없는 곳은 너무나 손쉬 운 먹이였다. 결국 지나친 경쟁은 식민지, 약소국의 처지나 아픔을 외면한 채, 제국 주의 국가 간의 전쟁으로 치달았다. 그것이 바로 1 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이었 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 - 아래 글은 오지영의 < 동학사> 와 이돈화의 < 천도교 창도사> 내용을 일부 재구성한 것임. 최시형 : 교조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함의 본뜻은 인간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그대가 백성의 곤궁함을 구한다 하더라도 그 바탕은 인륜에 근거한 것이며,

25 창과 칼이 아니라 마땅히 어진 마음으로써만이 고난 받는 백성들의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전봉준 : 허나 그것은 먼저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충직할 때 일이다. 오늘날 신하된 자가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백성을 위하기는커녕 무거운 세금으로 탐학을 일삼으니 학정을 날로 더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뼈에 사무쳐 그 기틀이 흔들릴 지경에 처한 나라의 위기를 어찌 앉아서 기다리만 할까. 최시형 :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였다면 백성된 도리일 것이요, 당장 바로 잡아 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땅히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터인데 인간의 생명을 하늘처 럼 귀히 여겨야 할 종교지도자가 감히 순진한 농민을 선동하여 피를 흘려 뜻을 이 루려 함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전봉준 : 지금 우리가 일어선 것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부패한 관리 들의 수탈로부터 백성을 구하고 야만적인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여 의를 바로 세우고자 함이니 국가의 백성된 이는 모두 힘을 합하고 분연히 일어서야 할 것이다. 21세기 폐정개혁안 - 토지문제만 가지고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상위 1% 계층이 사유지 토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자치부 부동산정 보관리센터가 부동산대책 마련을 위해 지난 3월 개인소유 토지에 대한 전국단위 거 주지별, 연령대별 부동산( 토지ㆍ건물) 소유 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인구의 5% 가 전체 개인소유 토지(5만7218 km2, 173억3390 만평) 의 82.7% 를 차 지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그중에서도 상위 1% 는 51.5% 를 차지하는 것 으로 조사됐다. 토지소유가 극히 일부 계층에 편중되어 있음이 입증 되며 우리사회 에 내재된 또 하나의 양극화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른 셈이다. 자료에 따르면 상위 5% 의 토지보유 비율은 작년말 현재 82.7% 로 최근 약 20년만에 17.5% 포인트나 급 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상위 1% 는 면적 기준으로 서울(605 km2,1억8330 만평) 의 48.7배에 해당하는 2만9467 km2(89억2940 만평) 를 소유하고 있고 땅부자 상위 5% 는 서울의 78,5배인 4만7천319 km2(143억3천910 만평) 를 각각 소유한 것으로 파 악됐다. 이번 조사에 대상이 된 개인 소유 토지는 전체 국내 토지 가운데 국가 등 공공기 관의 소유가 아닌 개인소유 땅 전체로 면적이 173 억평에 달한다. 이를 백 명 단위 로 대입해 보면 한명이 전체 땅의 절반을 차지하고 20명 가운데 한명이 전체 땅의

26 80% 를 독차지하고 있기 셈이다. 결국 나머지 중산층과 대부분의 서민은 자신 명의 로 된 땅이 거의 없는 셈이다. 토지에 대한 소유편중 현상이 심화된 원인은 토초세 로 불리는 토지초과이득세법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지는 등 토지공개념이 오히려 후퇴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최근 개발정책의 영향을 받아 땅 투기가 전국적인 현상으로 일어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토지개발 이익의 대부분이 토지소유자에 게 돌아가게 돼 있는 현행 토지 제도 하에서 전국적인 부동산 개발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해 온 현 정부의 정책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토지소유 편중 심화현상은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처음으로 개 인토지소유 편중 비율을 조사한 1986년 당시 땅 부자 상위 5% 의 토지보유비율은 65.2% 였음을 돌이켜 볼 때 앞으로 발표될 정부의 부동산 관련 종합대책 방향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 인터넷 신문 기사 인용> 21 쪽~22쪽 지금까지 학습한 내용과 부각된 쟁점, 토론을 바탕으로 테마에 맞게 자신의 생각 을 조리있게 쓰는 순서이다. 논점을 잡기 쉽게 4가지 유의사항을 앞에 제시하였으 므로 이를 참고하여 논리적인 글을 쓰되, 문장력, 창의력, 표현력이 돋보일 수 있도 록 안내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말미에 자기 평가표를 붙여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게 하였다. 여기서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모두 종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도교사는 그 동안 학습하고 토론한 내용을 상기시키며, 네 가지 참고사항을 십분 활용하여 가닥 을 잡고 의견을 정리하라고 유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다양한 근대화의 길을 먼저 제시한 다음, 참된 근대화에 이르는 길의 하나로 등장한 동학농민운동의 배경 은 무엇인지 설명하고, 진행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가 되도록 전개하게 한다. 더불어 오늘날 우리에게 미완의 개혁으로 남은 부분을 어떻게 개혁하여 참된 근대 화를 완성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면 되겠다. 아울러 어디만큼 왔니? 의 자기

27 평가표를 보면서 스스로 점검해 보도록 한다. 23 쪽~27쪽 주제와 관련된 문화재, 주요 인물, 답사할 만한 곳, 간단한 상식 등을 읽어보면서 학생들의 풍부한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대체로 주제와 관련한 다양한 소재를 제시 하여 주제를 보다 입체적, 다면적으로 파악하게끔 하였다. 더불어 더 읽어볼만한 책 자와 인터넷 사이트를 소개하여 참고하도록 하였다. <23 쪽> 사발통문 - 사발을 엎어놓고 둘레에 이름을 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의 편지글이다. 이 글은 역사적인 동학농민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또 서로 가 주동자임을 함께 느끼며, 온몸을 다해 모순을 극복하려는 자세가 돋보인다. <24 쪽> 녹두장군 전봉준 - 작고 다부지다 하여 생긴 녹두장군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전봉준은 작지만 태산 같은 일을 해냈다. 안팎으로 쌓인 조선의 문제를 가장 민중 적인 입장에서 해결하려고 한 헌신적인 지식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25 쪽> 개혁의 산실 집강소 - 역사상 최초로 농민들이 자기 지역을 다스리게 된 자치기구인 집강소는 비록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양반들의 반대로 철저한 개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의미있는 활동공간이었다. <27 쪽> 갑오세 가보세 - 당시 민중들의 심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민요에 동학농민운동의 여러 가지 기억들이 숨겨져 있다. 불행한 조선의 앞날을 예언한 민요도 당시 농민 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더 살펴보세요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 권> 은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활동하는 현직교사들이 모 여 만든 책이다. 따라서 수업하면서 학생들이 질문한 내용들을 많이 반영하고 있으 면서도 약간의 깊이가 있다. 화보도 다양하고 흐름을 알기 쉽게 서술하여 지도교사

28 의 일독을 권한다. < 금강> 은 고 김수영 시인의 시집으로 금강 물줄기를 타고 오르내리며, 새 역사를 일구어간 동학농민운동의 과정을 하나의 캐릭터를 정하여 서사적인 흐름을 서정적 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적 감수성으로 역사를 노래한 예이다. 기타의 동학농민운동 관련 인물 책과 사이트는 상당히 많이 있으므로 두루 참고하 기 바란다. 28쪽 간단한 질문이나 선다형 문제를 풀면서 독서활동의 주요 내용을 점검하도록 한다. 다양하고 심층적인 독서활동에도 불구하고, 논쟁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다보면, 정 작 익혀야 할 내용지식에 소홀하기 쉽다.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단답형 문제와 약 간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함께 제시하여 주제에 따른 학습활동을 마무리하도 록 하였다. 답 :2번 1 번은 직접 관련이 없고, 3 번은 과정, 4, 5 번은 결과에 해당한다. 답 :4번 1, 2, 3 번은 동학의 교주들이며, 5번은 개화파의 한 사람으로 갑오개혁의 중심 인 물이다.

29 답 :4번 다른 보기는 반봉건적 내부개혁이며, 4 번은 반외세적 구호이다. 답 : 폐정개혁안 12조

30 <2 차시를 위한 교사용 지도서> 1. 필독도서명 :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2 권> 2. 학습테마 : 대한독립만세 3. 학습목표 1) 3. 1 운동의 배경을 설명할 수 있다. 2) 3. 1 운동의 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3) 민족대표의 역할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4) 3. 1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말할 수 있다. 4. 지도상의 유의점 1) 3. 1 운동의 배경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2) 3. 1 운동의 과정을 다각도로 분석하도록 유도한다. 3) 민족대표의 긍정적, 부정적 역할을 면밀하게 살피도록 지도한다. 4) 3. 1 운동의 의의와 한계를 함께 설명할 수 있도록 한다. 5. 2차시 학습지도안 30 쪽~31쪽 단원과 관련된 사진을 보면서 가볍게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10자-20 자 정도의 간단한 느낌을 쓰면서 단원의 창을 열어보는 과정이다. 이어 주 요 용어 해설이 있다. 이 주제를 다루면서 꼭 익혀야 할 사건, 인물, 용어를 짚어보 면서 핵심적인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 목적이 있다. 주제에 관련된 내용을 간추리는 부분도 있다. 그 시기 역사의 주요한 흐름을 스스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열쇠 말을 징검다리 삼아 당시 역사의 줄기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설명하면서 내용의 얼개를 잡는 것이다.

31 3. 1 정신상 년 3월 1일 시작된 3. 1운동은 민족의 역량이 폭발적으로 드러 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전국 방방곡곡 만세소리 울리지 않은 곳이 없었고, 해외에 도 태극기의 물결이었다. 당황한 일제가 총칼로 무자비하게 탄압하였지만, 우리의 독립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선조들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자부심과 불굴 의 용기로 세계 만방에 독립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1) 무단통치 : 일제가 무력을 앞세워 한국을 다스리고자 하였던 통치 방식으로 헌병 이 경찰 역할을 하고, 교사가 칼을 차고 수업하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헌병경찰통치라고도 한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강점을 반대하는 의병전쟁과 계몽운동 등을 탄압하면서 군사 정치 문화활동을 모두 금지하고 공포분 위기 속에서 행정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부분에 걸쳐 식민통치의 기반을 마련해갔다. 일제는 강점과 동시에 종래의 통감부 대신 조선총독부를 설치, 무력을 바탕으로 중 앙집권적 통치기구를 정비해갔다. 천황 직속의 조선총독은 육 해군의 대장으로 임명 되었고, 행정권 사법권뿐 아니라 나남 용산 평양에 배치된 3개 사단의 육군과 영흥 만 진해만에 배치된 해군의 통솔권을 장악했다. 이러한 절대적인 조선총독의 권한은 헌병경찰제도로써 뒷받침되었다. 1910년 9월 10 일 헌병경찰제도가 공포되어, 헌병 이 경찰행정을 담당했다. 헌병대 사령관이 총독부 경무총감을 겸임하고, 각도의 헌 병사령관은 경찰부장을 겸임하게 했다. 그 직권은 군사경찰과 보통경찰의 직무 이 외에도 첩보의 수집, ' 폭도' 의 토벌, 범죄의 즉결에서부터 일본어 보급, 부업장려까 지 광범위해 문자 그대로 헌병경찰은 조선인의 생사여탈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전 국의 헌병 경찰의 수도 급격히 증가해 강점되던 1910년에 헌병 2,019 명, 경찰 5,881명이던 것이 그 다음해에는 헌병 7,749 명, 경찰 6,222 명으로 증가했다. 또한 도장관( 도지사) 을 비롯하여 조선총독부 관리, 지방관청의 간부를 모두 일본인으로 임명하고 일부 친일파 인사들을 보좌역 참여관 등으로 참여시켰다. 지방행정 조직에 서도 전국을 13도 12부 317 군으로 나누고 면을 설치하여, 군 면장에는 부리기 쉬 운 친일파를 기용해 조선인에 대한 억압체제를 완성했다. 이러한 통치기구의 정비 를 배경으로 일제의 식민지 수탈은 폭력적으로 추진되었다. 일제는 1910년 3월부 터 1918년 11월에 걸쳐 실시된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거대한 국유지를 창출하여 조 선 최대의 지주로 부상했으며, 식민지지주제를 기저로 하는 식민지농정체계를 수립 해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농민들이 토지에서 이탈되었으며, 무단농정에 대한 격렬한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아울러 일제의 지주적 농정은 토착조선인 지주의 이

32 익을 최대한 보장해주어, 그들을 식민지지배의 동맹세력으로 편입시키려했다. 또 1910년 12 월 ' 회사령' 을 공포하여 회사 설립을 허가제로 함으로써 조선민족자본 성 장의 길을 차단하고, 일본자본의 본격적인 식민지진출을 위해 철도 도로 통신 항만 정비에 주력했다. 일본은 이같은 식민지 경제수탈정책을 강행하여 조선을 완전히 일본자본주의의 원료 식량의 공급지, 상품시장으로 재편시켜갔다. 또 이 시기 사회 문화 정책은 우민화 황민화 정책으로 조선의 민족적 고유문화를 말살하고 총독부 기관지 이외의 모든 언론을 금지하고 집회를 금지시켰다. 또 교육에서는 조선인에 게 열등의식을 주입시키면서 천황주의를 강요하고 미신과 원시적인 민간신앙을 조 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무단통치에 대해 조선민중은 의병전쟁의 전통을 이 어받아 국내외 각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으며, 이는 1919년 3 1운동이라는 전민 족적 항거로 표출되었다. 2) 기미독립선언 : 3. 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사용되었던 말로서 기미년 1919년 3월 1 일에 독립선언을 시작하면서 대규모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기미 독립 선언문( 번역문)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똑똑히 밝 히며, 이로써 자손 만대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 도록 하노라. 반 만 년 역사의 권위를 의지하여 이를 선언함이며, 2천 만 민중의 충성을 모아 이 를 두루 펴 밝히며, 겨레의 한결같은 자유 발전을 위하여 이를 주장함이며, 인류가 가진 양심의 발로에 뿌리 박은 세계 개조의 큰 움직임에 순응해 나가기 위하여 이 를 내세움이니, 이는 하늘의 분명한 명령이며 시대의 큰 추세이며, 온 인류가 더불 어 같이 살아갈 권리의 정당한 발동이기에, 하늘 아래 그 무엇도 이를 막고 억누르 지 못할 것이니라.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 강권주의에 희생되어, 역사 있은 지 몇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다른 민족에게 억눌려 고통을 겪은 지 이제 십 년이 지났는지라, 우리 생 존권을 빼앗겨 잃은 것이 무릇 얼마이며, 겨레의 존엄과 영예가 손상된 일이 무릇 얼마이며, 새롭고 날카로운 기백과 독창력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물결에 이바지할 기회를잃은것이무릇얼마인가! 오호, 예로부터의 억울함을 떨쳐 펴려면, 지금의 괴로움을 벗어나려면, 앞으로의 위 협을 없이 하려면,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체모가 도리어 짓눌려 시든 것을 키우려 면, 사람마다 제 인격을 올바르게 가꾸어 나가려면, 가엾은 아들딸들에게 괴롭고 부 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아니하려면, 자자손손이 완전한 경사와 행복을 길이 누리 도록 이끌어 주려면, 가장 크고 급한 일이 겨레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니, 2 천만 각자가 사람마다 마음의 칼날을 품고, 인류의 공통된 성품과 시대의 양심이

33 정의의 군대와 인도의 무기로써 지켜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는 나아가 얻고자 하매 어떤 힘인들 꺾지 못하랴? 물러가서 일을 꾀함에 무슨 뜻인들 펴지 못하랴? 병자 수호 조약 이후 때때로, 굳게 맺은 갖가지 약속을 저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죄주려 하지 아니 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제에서, 우리 옛 왕 조 대대로 물려 온 터전을 식민지로 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마치 미개한 사람들처 럼 대우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할 뿐이요, 우리의 오랜 사회 기초와 뛰어난 겨레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 하여, 일본의 의리 적음을 꾸짖으려 하지 아니하노라. 우리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쁜 우리는 남을 원망할 겨를을 갖지 못하노라. 현재 를 준비하기에 바쁜 우리는 묵은 옛일을 응징하고 가릴 겨를도 없노라. 오늘 우리의 할 일은 다만 자기 건설이 있을 뿐이요,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로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으로써 자기의 새 운명을 개척함이요, 결코 묵은 원한과 한 때의 감정으로써 남을 시기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로다. 낡은 사상과 낡은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에 희생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 한, 그릇된 상태를 고쳐서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 큰 으뜸으로 돌 아오게 함이로다. 당초에 민족의 요구로서 나온 것이 아닌 두 나라의 병합의 결과가 마침내 한때의 위압과 민족 차별의 불평등과 거짓으로 꾸민 통계 숫자에 의하여, 서로 이해가 다 른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화합할 수 없는 원한의 구덩이를 더욱 깊게 만드는 지금 까지의 실적을 보라! 용감하고 밝고 과감한 결단으로 지난날의 잘못을 바로잡고, 참 된 이해와 한 뜻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판국을 열어 나가는 것이 피차간에 화를 멀 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가까운 길임을 밝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또 울분과 원한이 쌓인 2천만 국민을 위력으로써 구속하는 것은 다만 동양의 영구 한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아닐 뿐 아니라, 이로 말미암아 동양의 안전과 위태를 좌 우하는 굴대인 4 억 중국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두려움과 새암을 갈수록 짙게 하 여, 그 결과로 동양의 온 판국이 함께 쓰러져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니, 오늘날 우리 조선 독립은 조선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의 번영을 이 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 동양을 지지하는 자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게 하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꿈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동양 평화로 그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 평 화와 인류 행복에 필요한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의 문제 리요? 아아! 새 천지가 눈앞에 펼쳐지도다. 힘의 시대가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도다. 지난 온 세기에 갈고 닦아 키우고 기른 인도의 정신이 바야흐로 새 문명의 밝아오는 빛 을 인류의 역사에 쏘아 비추기 시작하도다. 새 봄이 온누리에 찾아들어 만물의 소 생을 재촉하는도다. 얼어붙은 얼음과 찬 눈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것이 저 한 때의 형세라 하면, 화창한 봄바람과 따뜻한 햇볕에 원기와 혈맥을 떨쳐 펴는 것은 이 한때의 형세이니, 하늘과 땅에 새 기운이 되돌아오는 때를 맞고, 세계 변화의 물

34 결을 탄 우리는 아무 머뭇거릴 것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 없도다. 우리의 본디부터 지녀온 자유권을 지켜 풍성한 삶의 즐거움을 실컷 누릴 것이며, 우리의 풍부한 독 창력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누리에 민족의 정화를 맺게 할 것이로다. 우리가 이에 떨쳐 일어나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더불어 나아가는도다. 남녀노소 없이 음침한 옛집에서 힘차게 뛰쳐나와 삼라만상과 더불어 즐거운 부활을 이루어내게 되도다. 천만세 조상들의 넋이 은밀히 우리를 지키며, 전 세계의 움직임이 우리를 밖에서 보호하나니, 시작이 곧 성공이라, 다만 저 앞의 빛 으로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로다. 조선 나라를 세운 지 사천이백오십이년 되는 해 삼월 초하루 강화도 조약 이후 계속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나라가 어려워지자 항일 의병투 쟁이 일어났다. 그러나 항일투쟁을 진압한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화하였고, 무단통치 를 실시하였다. 강압적인 통치를 통해 일본은 조선에 많은 것을 빼앗아 가는 경제적 수탈을 자행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민족자결주의가 유행하자 그동안 독립을 염원해온 민족대표와 학생들은 기미 독립선언을 통해 독립을 외쳤다. 처음에는 학생 들이 나섰으나 차츰 노동자 시위가 늘어나면서 대규모 민족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에 놀란 일제는 문화통치를 실시하며 한 발 물러섰다. 한편 민족운동가들은 독립운 동의 중심을 마련하기 위해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32 쪽~34쪽 주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사료, 그림 자료 등을 살피면서 텍스트 를 다시 한 번 참고하도록 하고, 간단한 문제를 풀면서 의미를 더듬어 보게 한다. 당시 인물의 설명이나 역사기록을 직접 읽어보면서 깊이있게 공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35 3. 1 운동의 배경에 해당되는 내용으로 경술국치의 합방문서, 무단통치의 실상을 살펴보고, 세계정세의 변화를 상징하는 러시아 혁명의 소식을 보면서 어떠한 국내 외 정세 속에 독립만세의 기운이 무르익었는지 따져보기로 한다. 1) 식민지 : 원래 식민지는 민족이나 국민의 일부가 오래 거주하던 땅을 버리고 새 로운 곳으로 이주하여 건설한 사회를 뜻하였다. 식민지라는 말의 어원은 라틴어의 콜로니아 인데, 이는 로마 정부의 직할지( 直 轄 地 ) 였던 둔전병( 屯 田 兵 ) 의 이주지라는 뜻이었다. 영국에서는 식민지를 플랜테이션이라 하였으며, 이것은 본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토지를 개간하고 경작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세틀먼트 또는 콜로 니 라고도 하였으며, 모두 인민( 人 民 ) 을 새 토지로 이주시키는 것을 뜻하였으나 이 것이 나중에는 외국에 종속하여 외국으로부터 착취를 당하는 지역이란 뜻으로 바뀌 게 되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처음의 이주식민지에서 차차 착취식민지( 搾 取 植 民 地 ) 로 식민지의 개념이 변하게 된 것이다. 일제는 사회경제적 수탈 정책으로서 1 한국을 일본 공업화를 위한 식량 공급지 로 만들고, 2 일본의 공업발전에 소요되는 원료 공급지로 만들며, 3 일본의 공업 제품 판매를 위한 독점적 상품판매 시장으로 개편하고, 4 일본의 자본수출에 의한 식민지 초과 이윤의 수탈 지역으로 만들고, 5 일본의 경제발전을 위한 값싼 노동 력의 공급지로 개편하며, 6 일본의 장차의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려고 획책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일제는 1910 년 소위 ' 회사령( 會 社 令 )' 을 제정 공포하여 모든 회 사 설립은 일제 총독부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도록 만들어서 한국인의 회사 설립 을 억제하고 탄압하였다. 이것은 한국을 일본의 독점적 상품판매시장으로 만들기 위하여 일본의 산업자본과 경쟁이 되는 한국 민족산업자본의 발흥을 식민지 권력으 로 억압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였다. 일제는 한국 민족자본의 발흥을 탄압하면서, 다 른 한편으로 일본자본가들과 이주민들에게는 한국의 공업 철도 광업 상업 금융 등 모든 산업의 이권 등을 독점하도록 넘겨주고 총독부 권력으로 비호하였다. 또한 일제는 1910년 18 년에 걸쳐서 소위 ' 토지조사사업' 을 실시하여 한국인에 대한 토지약탈을 자행하였다. 일제는 한반도의 토지의 약 절반을 약탈하고, 종전의 국유지 전부와 민유지의 일부와 신고되지 않은 토지와 미개간지 전부를 일제 조선 총독부의 소유로 약탈했다가 동양척식회사( 東 洋 拓 殖 會 社 ) 와 기타 일본인 이주민들 에게 극히 헐값이나 무상으로 분배하였다. 그리고는 한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식량과 공업원료를 일본으로 착출해 가기 위하여 가혹한 반( 半 ) 봉건적 기생( 寄 生 ) 지주제 도를 법인하여 재정립하고 식민지 통치권력으로 엄호했으며, 일제 식민지통치의 재 정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가혹한 조세수탈을 자행하였다. 일제는 또한 1917 년 ' 임

36 야조사' 를 시행한다고 하여 막대한 국 공유림( 國 公 有 林 ) 과 민유림( 民 有 林 ) 의 대부분 을 일제 조선총독부의 소유로 약탈해서 일본인들에게 넘겨주었다. 그 후 일본인들 은 수 백년 자라온 울창한 사림을 벌목하여 일본으로 실어갔으며, 세계 각국에 수 출까지 하였다. 또한 일제는 전국의 금 은 철 아연 중석 등 모든 광산자원을 조사하여 그 채굴권 을 일본인들에게 넘겨주었으며, 막대한 광물들을 일본공업의 원료로서 착출하여 일 본으로 실어갔다. 2) 무단통치 :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1910년 8 월 한국을 그들의 ' 완전 식민지' 로 병 탄하자, 소위 ' 무단통치( 武 斷 統 治 )' 라 하여 무력에 의거한 식민지 지배체계를 만들었 다. 그들은 나남( 羅 南 ) 과 용산( 龍 山 ) 에 사단본부를 둔 육군 2 개 사단을 상주시키고, 한국인은 어떠한 무기도 가질 수 없도록 완전 무장 해제시킨 후, 헌병으로 하여금 일반 한국 민간인에 대한 경찰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 헌병경찰제도' 를 만들어 실 시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각종 행정관료와 함께 현대무기로 잘 무장된 육군 2개 사 단과 약 1만 4천명의 헌병경찰은 당시 한국민족이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완전히 무장 해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한국을 강점하여 식민지 무단통치를 자행하기에 충분 한 무력이었다. 일제는 또한 한국민족의 저항을 근저에서 철저히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경찰에게 사법권( 司 法 權 ) 을 부여하였다. 즉 조선총독부는 1910년 12월 한국인들에게 정식의 재판을 거치지 않고 헌병분대장이나 경찰서장이 3개월 이하의 징역이나 100엔 이 하의 벌금을 즉결하여 집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일제 헌병경찰에게 사법권까지 준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제 조선총독부는 1912년 12월에는 전근대적인 체형인 태 형( 笞 刑 ) 을 부활시켜 확대 강화해서 눈에 거슬리는 한국인을 수시로 헌병 분견소나 경찰관 주재소에 불러다 놓고 곤장을 쳐 남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제의 조선총독은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한 손에 쥐고 식민지 전제군주처럼 생사여탈권을 갖게 했고, 총독의 명령을 ' 제령( 制 令 )' 이라고 하여 법률에 준하도록 <14> 했으며, 각급 행정관리들에게 군복과 군모와 대검을 착용케 했고, 각급 학교의 교사들에게까지도 총독부 관리들과 동일한 군복과 군모와 대검을 차도록 하여 한국 인들 위협케 하였다. 일제는 이러한 무단 폭압의 방법으로 한국인이 법률을 위반한 일이 없는 경우에 도 단순히 그들의 눈에 거슬리거나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을 연 행하여 태형을 가하거나 체포하여 3 개월 징역에 처하였다. 한국민족의 이러한 무권 리( 無 權 利 ) 한 상태는 전 세계에 걸쳐서 식민지 한국에서만 존재했던 최악의 특이한 처지였다. 3) 1차대전 패전국 식민지만 독립되었음 민족자결주의 -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37 민족의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 인간이 개인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민족이라는 인간의 공동체도 민족자결권이라는 집단으로서의 기본적 권 리가 있으며, 민족자결은 그러한 권리에서 나온 것이다. 민족자결권은 특히 식민지 등 피억압민족이 타국의 지배로부터 이탈하여 자기 국가를 수립하는 권리를 주요내 용으로 하고 있고, 민족운동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의 3 1운동도 당시 에 팽배한 민족자결사상에 고무되었고, 독립선언서 에는 그러한 역사적 사조가 맥 맥히 흐른다. 제2 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헌장, 식민지독립선언(1960 국제연합 총회) 이나 인도차이나 문제에 관한 제네바협정(54) 등에 규정되어, 민족자결주의는 국제법상의 확고한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대개 패전국 식민지를 대상으로 하였다. 전쟁 주범인 독일의 힘을 빼놓기 위해 실시한 민족자결주의는 승전국인 미국, 일본 등과는 상관이 없었고, 그 의 식민지인 필리핀과 조선 등도 무관한 것으로 보았다. 숨가쁜 3. 1운동의 과정을 다각도로 살펴보면서 치열한 독립만세의 현장을 생생하 게 느끼고, 나라밖에서도 벌어진 독립만세의 열기를 알아보도록 한다. 1) 유관순 : 독립운동가. 본관은 고흥( 高 興 ). 충청남도 천안출신. 아버 지는 중권( 重 權 ), 어머니는 이씨( 李 氏 ) 이며, 5 남매 중 둘째 딸이다. 1916년 기독교 감리교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 梨 花 學 堂 ) 의 교비생으 로 입학하고, 1919년 3 1운동이 일어나자 이 학교 고등과 1년생으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그 뒤 일제가 이화학당을 휴교시키자 고향으로 돌아와 교회와 청신학 교( 靑 新 學 校 ) 를 찾아다니며 서울에서의 독립 시위운동 상황을 설명하고, 이곳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조인원( 趙 仁 元 ) 김구응( 金 球 應 ) 등의 마을지도 자를 규합하여 연기 청주 진천 등지의 교회와 유림계를 규합, 이해 음력 3월 1일 아 오내 병천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추진하였다. 이날 수천명의 군 중을 모아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격렬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시위 전개에서 잔인한 일본헌병의 총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 은 아오내 만세시위 주동자로 잡혀 일제의 무자비한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굴하지 않았다.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 년형을 언도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복 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 항의하 고, 일제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음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죄 까지 가산되어 징역 7 년형을 언도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틈만 있으 면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그때마다 형무관에게 끌려가 모진 악형을 받았다. 불굴

38 의 투혼으로 계속 옥중항쟁을 전개하다가 1920년 17세의 나이로 끝내 서대문형무 소에서 옥사하였다. 2) 농민, 3월말 4월초 민족대표와 학생들의 주도로 시작된 3. 1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3월 중순 을 지나면서 농촌으로 번져간 시위를 통해 농민들의 참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일제의 수탈로 가장 고통 받는 계층인 농민들은 주로 장날에 모여 장터에서 태극기 를 손에 들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운동이 계속되면서 시위 군중 가운데는 비 밀결사나 단체를 만들어 시위를 지속시키기도 하였다. 흔히 만세꾼 이라 불리는 사 람들이 곳곳에서 활약하면서 농민들의 시위는 계속되었다. 3) 연해주 : 본래 숙신( 肅 愼 ) 말갈( 靺 鞨 ) 여진( 女 眞 ) 의 땅으로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 는데, 1858 년 아이훈조약[ 愛 琿 條 約 ] 에 의해 청( 淸 ) 러시아의 공동관리하에 놓였다 가 1860 년 베이징조약[ 北 京 條 約 ] 에 의해 러시아령이 되어 군사기지로서 블라디보 스토크가 건설되었다. 1926년 원래 소비에트 극동 공화국이었던 지역이 극동지구 로 바뀌었고, 1938년 극동지구의 일부가 분리되어 지금의 프리모르스키주가 되었 다. 연해지방은 한말 이래 한국 교포들의 망명지가 되어 상당수가 그곳에서 거주해 왔다 운동의 영향으로 달라진 부분을 살펴보게 된다. 일제는 무단통치에서 문화통 치를 지배방식을 바꾸었으며, 나라밖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독립운동의 중심 구실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3. 1운동에 자극받아 5. 4운동이 일어나는 등 큰 영향을 미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지도한다. 1) 문화통치, 억압적인 통치로는 우리 민족의 독립열기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함 3 1 운동에 의해 일본 정부나 총독부측에서는 기존의 통치방식을 심각하게 고려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파견을 기점으로 기존의 강압적 통치 에서 회유적 통치로 그 방향을 선회하게 된다. 그 결과 헌병 경찰 제도가 폐지되고 보통 경찰제가 도입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하였다. 이 시기 에는 단체 활동 및 언론 활동이 허가되었고 아주 기초적인 초등 교육이 확대되었 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서는 민족주의 독립운동 계열의 실력 양성 운동이 힘을 얻 게 되고, 친일 인사들도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이는 결국 한반도의 민족 지도자들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편으로 이 당시에는 산미증식계획이 수립되어 한반도 의 미곡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오히려 일본으로 유출되는 양

39 이 더 높아져 한반도의 식량 부족이 심각해졌다. 2) 민주공화제, 대한민국 임시정부 : 1919년 3 1 운동 이후 국내외에서는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 대한국민의회정부( , 러시아령), 천도교 중심의 대한민간정부( , 서울), 조선민국임시정부( , 서울), 신한민국임시정부( , 평안도), 한성임시정부( , 서울 인천), 그리고 동삼성( 東 三 省 : 만주일대) 의 고려임시공화국 등 6 개 지역 이상에서 임시정부가 준비되었다. 이 가운데 상하 이 러시아령 서울의 3 개 지역에서 성립된 임시정부가 헌법 의회 서고문( 誓 告 文 ) 정 강 강령 등을 갖추었고 나머지 정부는 전단적( 傳 單 的 ) 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3 개의 실질적인 정부는 상하이에 집결, 1919년 9월 15일 통합임시정부를 구성 하고 1945 년까지 각종 광복정책을 펴나갔다. 대한민국임시정부(1919~45) 의 수립은 국내에서 3 1운동의 민주적 정부형성의 의 지와 해외각지에서 성숙된 민주공화적 자립의욕의 결과에 의해 복합된 2,000만 민 중의 욕구분출로 가능해졌다. 지역적인 이점을 고려하여 상하이에 자리를 잡은 임 시정부는 신규식( 申 圭 植 ) 의 터잡기와 이동녕( 李 東 寧 ) 이시영( 李 始 榮 ) 의 다양한 민주 공화적 전력을 승화 연결시켜 3 권분립의 민주공화정부를 탄생시켰다. 먼저 이동녕 의 주도로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여기서 임시헌장 10 개조를 제정 공포한 뒤 국무 총리와 6 부의 행정부, 국무원을 구성했다. 이어 1919년 4월 13일 의정원과 사법부 의 3 권 분립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민주정부를 출범시켰다. 3) 5. 4운동 : 제1 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뒤(1914), 중국에 있던 독일의 조차지 칭다오[ 靑 島 ] 를 비롯한 산둥 성[ 山 東 省 ] 전역에서 군사 행동을 전개했으며, 이어 위안스카이[ 袁 世 凱 ] 정부에 이른바 '21 개 조항' 을 제기했 다(1915.1). 요구의 핵심은 산둥에 있는 독일의 권익을 일본이 계승한다는 것이었 고, 1915년 5월 9 일 중국은 일본의 최후통첩에 굴복하여 이를 수락했다. 이듬해 위 안스카이가 죽은 후 실권을 장악한 돤치루이[ 段 棋 瑞 ] 정권은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차관을 얻어 친일적 성격이 강해졌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해인 1919 년 1 월부터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렸다( 파리 평화회의). 1917년에 연합국의 일 원으로 참전했던 중국도 이에 참가했다. 중국은 패전국인 독일이 산둥 내에서 차지 하고 있던 식민지적 권익을 중국이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21개 조항 가운데 산둥 문제에 관한 것과 돤치루이 정권이 1918년에 일본과 교환한 산둥 문 제에 관한 공문을 근거로 산둥 문제는 중 일 간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문서상의 증 거가 있었던데다가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국이 1918년의 중일협약을 지지해주기로 일본과 약속했었으므로, 4월 21 일의 회의에서 결국 일본 측의 주장이 승인되었다. 산둥 문제에 관한 파리 강화회의의 결정을 알리는 전보가 1919년 4월 30일 베이징 [ 北 京 ] 에 도착했고, 이어 5월 1~3일 베이징의 신문에 산둥의 권익을 일본에게 빼

40 앗긴 소식과 그 이유가 보도되었다. 이 소식은 곧 전국으로 퍼져 중국 국민들은 충 격과 분노를 느꼈다. 준비모임 끝에 베이징의 학생들은 5월 4 일 톈안먼[ 天 安 門 ] 에 모여 대시위를 거행하기로 했다. 이들 모임은 신문화운동에 적극적이던 학생들이 주동했다. 학생들 외에 국민외교협회 등의 단체에서도 강화조약 조인거부, 친일파 매국노 처벌 등의 요구를 하고, 외교협회 주관으로 5월 7 일에는 국치( 國 恥 ) 기념대 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학생들은 5 7대회에 앞서 독자적으로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었다. 35 쪽~39쪽 논쟁점을 두 가지 뽑아 서로 다른 생각을 제시하여 사건의 여러 측면을 보게 하고, 다양한 해석을 느껴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은 어떤 판단을 할지도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리포트 쓰기를 통해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해서 역사에 흥미롭게 접 근하는 과정도 제시하였다 운동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면서 일본인과 한국인이 서로 논리 대결을 펼친다. 과연 성공한 운동인지, 과정상의 허술함은 없었는지, 결과적으로 어떤 성과를 거두 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느 편에 서든 상대방 논리를 감안하면서 자기주장을 펴도록 한다. 1) 성공한 운동인가 - 운동의 성공 실패는 배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종전에는 주 로 외부적인 요인 때문에 운동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민족자결주의의 영향, 러시아 혁명, 2. 8 독립선언 등. 최근에는 내부적 요인에 관심을 기울여 일제의 잔인한 무 단통치, 경제적 착취, 이에 대한 민족역량의 축적 등을 꼽고 있다. 요컨대 3. 1 운 동은 외부적 요인을 이용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부적 노력 위에서 운동의 성과를 논한다면 외형적인 성패보다는 장기적으로 얼마나 결실이 있었나를 살피게 된다. 비록 임시정부이기는 하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하였다는 점은 운동의

41 목적이 부분적으로 이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즉각적인 독립을 요구하기 보다 는 일제의 야만성, 침략의 부당성, 독립요구의 정당성을 주로 제기하였기 때문에 국 제적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운동 초기에 기대했던 부분을 어느 정도 만 족시켰다. 더욱이 강압적인 무단통치를 일제 스스로 거두고 문화통치로 전환하였다 는 점은 운동의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2) 산만한 운동이 아닌가 - 어설프고 산만한 시위라는 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일찍이 민족대표 등의 지도부가 자수한 마당에 통합적인 운동의 지휘란 있을 수 없 었다. 따라서 자연발생적으로 시위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산만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초기 서울에서의 시위에서 지방시위로 생각을 바꾸면서 양상이 차 츰 달라졌다. 그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 시골 장터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적극 활용하여 시위를 확대시켰다. 또 이웃 마을을 다니면서 시위를 주도하여 운동의 열기를 드높였다. 개중에는 만세꾼이라는 불리는 사람도 나타났는데 시위 때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풍부한 시위경험과 일본군의 진압작전을 간파하고 효과적으로 움직이면서 우리 측의 피해를 줄이고 일본군의 진 압을 더디게 만드는 활동을 하였다. 갈수록 일제의 주요 식민지 시설이 공격을 당 한 것을 보면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 속에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 다. 이런 점에서 시위가 산만한고 어설픈 것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3) 운동 이후 달라진 것 운동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민족의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이 문화통치로 전환하였음 은 물론 한층 자신감 있게 민족운동이 벌어졌다. 조직적인 운동의 기틀이 마련되었 으며, 강렬한 항일 투쟁의 경험은 이후 독립운동의 바탕이 되어 체계적, 지속적, 전 국적 운동이 가능해졌다. 또 평화적인 시위와 국제정세에 호소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무장투쟁으로 정면 대결하는 의지로 독립군 운동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 다. 물론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의 중심을 잡은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며, 중국이나 인도 등의 이웃 나라의 독립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도 큰 성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성과는 우리 자신의 용기와 애국심을 회복했다는 데 있다. 10년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악랄한 무단통치를 겪으며 독립을 거의 포기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던 당시에 조국해방을 부르짖으며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모두가 도전하여 당장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나라 안팎 에서 주목받는 운동을 펼친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무력하 고 피동적으로 끌려다니기 쉬운 식민지 백성의 삶을 벗어던지고 나라를 되찾기 위 한 활기찬 운동의 대열에 대다수 국민들이 참여했다는 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면 서 큰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이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42 민족대표로 알려진 인물들이 실제로 운동을 지도하였는지, 그들의 속뜻은 무엇인지, 운동 이후의 삶도 민족을 대표할 만한 것이었는지를 살펴본다. 대규모 민족운동의 영광에 가려 제대로 살피지 못한 민족대표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내리는 자리이다. 1) 실제로 시위를 주도하였나 무단통치 시기 활동이 가능한 것은 종교단체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각 종교단체 에서 개별적으로 이루어졌던 활동은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각 단체 를 묶는 대연합전선이 절실하였다. 천도교와 기독교는 1919년 3 1운동의 초기 조 직단계에서 민족 대연합전선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독립선언서의 작성은 천도교 측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이에 독립선언서는 천도교 측의 독립선언서 원고 지침에 따라 최남선이 기초하였다. 독립선언서의 인쇄는 천도교 측의 오세창( 吳 世 昌 ) 이 총책임을 담당하고, 천도교 직영의 인쇄소인 보성사 사장 이종일( 李 鍾 一 ) 이 총실무를 담당했다. 이종일은 보성사의 직공 신영구와 감독 김홍규에게 지시하여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면서 극비리에 2월 27일 독립선언서 2만 1000장을 인쇄하 였다. 독립선언서의 배포는 오세창의 총책임 아래 천도교, 그리스도교, 불교, 학생단 등 으로 분담하였다. 독립선언서는 그 자체가 독립만세시위를 지시하는 기능과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따라서 적어도 독립선언서가 사전에 배포된 범위까지는 초기 조직 단계의 활동가들에 의하여 3 1 운동이 사전 조직화된 범위라고 볼 수 있다. 독립선 언서가 사전에 배포된 지역은 서울, 평양, 선천, 원산, 개성, 서흥, 수안, 사리원, 해 주, 대구, 마산, 전주, 군산 등이었다. 민족대표의 선정은 교단별로 추천을 받았다. 천도교 측에서는 손병희( 孫 秉 熙 ), 권동진( 權 東 鎭 ), 오세창, 임예환( 林 禮 煥 ), 나인협 ( 羅 仁 協 ), 홍기조( 洪 基 兆 ), 박준승( 朴 準 承 ), 양한묵( 梁 漢 黙 ), 권병덕( 權 秉 悳 ), 김완규 ( 金 完 圭 ), 나용환( 羅 龍 煥 ), 이종훈( 李 鍾 勳 ), 홍병기( 洪 秉 箕 ), 이종일 최린( 崔 麟 ) 등 15 명이 선정되었다. 그리스도교측에서는 이승훈( 李 昇 薰 ), 박희도( 朴 熙 道 ), 이갑성( 李 甲 成 ), 오화영( 吳 華 英 ), 최성모( 崔 聖 模 ), 이필주( 李 弼 柱 ), 김창준( 金 昌 俊 ), 신석구( 申 錫 九 ), 박동완( 朴 東 完 ), 신홍식( 申 洪 植 ), 양전백( 梁 甸 伯 ), 이명룡( 李 明 龍 ), 길선주( 吉 善 宙 ), 유여대( 劉 如 大 ), 김병조( 金 秉 祚 ), 정춘수( 鄭 春 洙 ) 등 16 명이 선정되었다. 불교측 대표로는 한용운( 韓 龍 雲 ) 과 백용성( 白 龍 城 ) 이 서명 날인했다. 이 33인이 없었다면 아마 3. 1 운동은 일어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이 기 폭제 역할을 한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무단통치 시기에 용감하 게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점도 높이 사야 한다. 그러나 3. 1 운동을 지도했느냐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그들은 실제 민중들의 움직임이 자신들의 생각을 뛰어넘어 과열될 우려가 있자 스스로 운동의 지도를 포기하고 일본 경찰에 자수하였다. 그들 에게는 끝까지 운동을 지도할 이념과 자신감이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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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51역사지도서3 III 배운내용 단원내용 배울내용 120 121 1 2 122 3 4 123 5 6 124 7 8 9 125 1 헌병경찰을앞세운무단통치를실시하다 126 1. 2. 127 문화통치를내세워우리민족을분열시키다 1920 년대일제가실시한문화 통치의본질은무엇일까? ( 백개 ) ( 천명 ) 30 20 25 15 20 15 10 10 5 5 0 0 1918 1920 (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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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é¹üȸº¸ 24È£ Ãâ·Â 2009.가을 24호 2_ . 02 03 04 08 10 14 16 20 24 28 32 38 44 46 47 48 49 50 51 _3 4_ _5 6_ _7 8_ _9 10_ _11 12_ _13 14_ _15 16_ _17 18_ 한국광복군 성립전례식에서 개식사를 하는 김구(1940.9.17) 將士書) 를 낭독하였는데, 한국광복군이 중국군과 함께 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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