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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천정명600년기념 지명과 지역 정체성, 그리고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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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술대회 순서 개회 (14:00 ~ 14:20) - 인사말씀 : 김교흥(인천광역시 정무부시장) 이준한(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원장) 주제발표 (14:25 ~ 15:35) : 사회-강옥엽(역사자료관 전문위원) - 제1주제(14:25 ~ 14:45) 인천 지명연구의 동향과 과제 김병욱(인천대학교 명예교수) - 제2주제(14:50 ~ 15:10) 定 都 600년의 기억, 서울시의 역사와 기념사업 나각순(서울시사편찬위원회 연구간사) - 제3주제(15:15 ~ 15:35) 미추홀2000년 인천정명600년, 인천의 역사적 성격 임학성(인하대학교 HK교수) 휴식(15:40 ~ 15:50) : 장내 정리 종합토론(15:55 ~ 17:00) : 사회-이영호(인하대 사학교 교수) - 제1주제: 최동국(인천대학교 명예교수) - 제2주제: 남달우(인하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제3주제: 이영태(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폐회(17: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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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주제 인천 지명연구의 동향과 과제 김 병 욱 / 인천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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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천 지명연구의 동향과 과제 김 병 욱 / 인천대학 명예교수 1.서론 1) 인천 정명 600년의 의의 조선조 태종은 태조의 창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동왕 13년(1413)에 고려조로 부터 당대까지 운용해오던 전국의 행정구역을 대폭 개편한 바, 미추홀( 彌 鄒 忽 ), 소성( 邵 城 ) 경원부( 慶 源 府 )에서 인주( 仁 州 )로 행정구역 명칭 변경되어 온 인주( 仁 州 )를 인천군( 仁 川 郡 )으로 개편하였다. 따라서 금년 2013년은 <인천( 仁 川 )>이란 행정구역 명칭이 정해진 <인천정명( 仁 川 定 名 ) 600년>이 되는 뜻 깊 은 해이다. 1) 인간, 지역 또는 사물은 이름이 부여됨으로써 비로소 규정, 또는 법적인 생 명력을 부여받고 당당히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며, 그것이 행정구역일 때는 그 명칭이 행정의 주체가 되는 존엄한 계기가 된다. 이렇게 출범한 <인천( 仁 川 )>이란 명칭은 조선조 말까지 邑 格 의 浮 沈 을 겪었으나, 광복과 함께 인천시 ( 仁 川 市 ), 인천직할시( 仁 川 直 轄 市 ), 인천광역시( 仁 川 廣 域 市 )로 시세가 확장, 승 격되는 구심력의 기능을 수행해 왔으므로 <인천정명( 仁 川 定 名 ) 600년>과, 1413년 10월 15일 <인천>이란 이름으로 呱 呱 聲 이 울려 퍼진 날을 <인천광역시 1) 서울특별시는 定 都 600년의 긍지가 있다. 그러나 서울특별시는 定 名 의 해를 정할 수 없다. 15세기의 문헌들에 셔 (용비어천가 18 등)이 기재된 이후 셔 >셔울>서울 로 변천했으나, 현재의 서울 로 변 천한 연도를 문헌으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8 시민의 날>로 제정하여 기념하는 것은 매우 妥 當 하고 合 目 的 的 인 동시에, 우리 인천광역시 시민의 긍지가 될 것이다. 인천이란 이름이 정하여진 후 600년을 맞은 2013년에 그간 인천 이란 지명의 작명에 이르는 과정에 관한 논의를 정리하고 지명연구의 과제를 고민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2) 목적, 범위 고유 지명은 고대국어가 化 石 化 한 우리말의 寶 庫 인 동시에 조상의 얼이며, 우리의 총체적 文 化 遺 産 이다. 우리 조상들이 우리의 疆 域 에 뿌리내리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명을 써왔을 터이지만, 고대국가들의 국명, 행정구역 명칭 들, 곧 三 國 史 記 등 고대 역사서나 역대의 < 邑 誌 > 등에 기재되어 있는 지 명들은 고유지명이라도 모두 漢 字 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정확한 우리말로의 再 構 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말과의 대응관계를 찾는 작업은 매우 至 難 한 바, 기원전부터 우리나라에 도입, 사용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漢 字 는 그 音 과 訓 이 우리말 속에서 2000년 이상 사용되어 오는 동안 우리말에 동화되어 우리 의 한자로 변해왔으나, 불행히도 고대로부터 사용해온 우리 한자음, 즉 東 音 의 발음에 관한 기록이 없고 국어 변천과정에 대한 역사적 자료와 정보가 태부족 인 상황이기 때문에 옛 문헌들에 등재된 지명, 나아가 온전한 고대국어사의 정 립에 어려움이 있다. 이 小 考 에서는 고대 지명의 이해를 위해 고대 지명의 해독 방법 을 간략 히 기술하고, 그 에 의해 買 召 忽 ㆍ 彌 鄒 忽 로부터 邵 城, 仁 州, 仁 川 까지 변천해 온 과정을 고찰한 다음, 인천지역에 대한 지명연구 성과 전반을 개괄적 으로 검토하고, 과제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고대국어의 특징 및 고대지명의 표기 방법 1)고대국어(~10세기)의 음운 특징과 고대지명 표기법 漢 字 로 기록된 고대어 자료에서 자음, 모음체계를 수립하기는 매우 어렵다. 東 音 을 재구할 수 없는 현재의 우리 학문 여건으로는 이들 체계의 수립을 위 - 8 -

9 해서는 중국의 韻 書, Karlgren(1923), 蕫 同 龢 (1968) 등의 聲 韻 學 理 論 을 원용할 수밖에 없는 바, 聲 母 로부터 재구할 수 있는 고대국어 시기의 자음체계에는 平 音 系 列 만 존재했고 有 氣 音, 硬 音 系 列 은 음소로 존재하지 않았고 ㅎ 의 출현 도 불확실하여 아직 k>χ, s>h'의 과도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三 國 遺 事 王 歷 에 기술된 味 鄒 尼 叱 今 一 作 未 炤 又 未 祖 又 未 召 처럼 ㅅ, ㅈ, ㅊ가 구별되지 않아 ㅅ으로 통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고대국어의 자음은 대략 ㄱ,ㄴ, ㄷ, ㄹ, ㅁ, ㅂ, ㅅ,ㅇ, (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고 대국어 자료에서 漢 字 로 표기된 韻 母 를 따라 추적해야 하는 모음체계는 매우 불확실한 요소를 배제하기 어렵지만 국어사 연구자들은 ㅏ. ㆍ, ㅗ, ㅣ, ㅓ, ㅡ, ㅜ의 7모음 체계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2) 음절말 자음은 外 破 音 으로 실현되었으므로 中 和 規 則 은 없었다. 3)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훈민정음 해례 終 聲 解 에 八 終 聲 可 足 用 也 라 한 기술로 국어사에서 중화규칙은 중세국어시기, 곧 15세기 초 무렵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고대국어 시기의 음절구조는 개음절 인 #xv...cv#로 상정할 수 있다. 訓 民 正 音 반포 이전 우리 조상들은 한문식 구조로는 표기할 수 없는 우리 말을 鄕 札, 吏 讀, 口 訣 로 표기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창안하였고, 이들 방법을 따라 표기된 자료들은 고대국어 이해의 로제타스톤의 기능을 해왔다. 4) 소중한 지명 자료인 동시에 고대국어의 보고인 三 國 史 記 지리지의 지명 자료들은 위의 방법을 응용하여 記 述 한 것으로 고대 지명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명표기 방식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ᄀ 音 借 法 ; 한자음을 차용해 고유어를 轉 寫 하는 방식 ; 徐 羅 伐 등 ᄂ 訓 借 法 ; 한자의 訓 차용해 적는 방식 ; 熊 津 (고마 ), 大 山 (한뫼) 등 ᄃ 訓 音 借 法 ; 한 지명에 위의 방식 겸용 ; 珍 惡 (돌악) 등 ᄅ 音 訓 借 法 ; 德 積 (덕물) 등 2) 이기문(1972;26~8), 김동소(1999;40,64)에 제시된 자음, 모음체계는 대동소이하다. 3) 三 國 史 記 지리지에 豆 夫 只 縣 一 云 同 福 縣, 古 尸 伊 一 云 岬 城 등이 좋은 예이다. 4) 중국식 漢 字 표기 방법으로 표기할 수 할 수 없는 음절말 자음의 표기를 위하여 ㄴ 隱, ㄹ 乙, ㅁ 音, ㅂ 邑, ㅅ 叱,, ㅈ 次 등을 사용했다. 日 人 학자 고바야시( 小 林 芳 規 )는 신라 고승 원효의 判 比 量 論, 고려 대장경에서 角 筆 표기를 확인하고 일본 카나 ( 假 名 )의 신라 표기법 起 源 說 을 제기하 였다

10 고대국어의 표기법은 일차적으로는 音 借 法 이라 할 수 있으나 이 방법만으로 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위의 여러 방법과 鄕 札, 吏 讀, 口 訣 등이 창안된 것이 다. 5) 또한 경덕왕 때 고친 지명들은 일차적으로 音 借 방식으로 작명되었던 고 유지명들을 대거 訓 借 방식으로, 또는 이전 지명과 관련 없이 상서로운 뜻을 가 진 漢 字 地 名 으로 機 械 的 改 名 을 시행해 고유지명이 대거 손상된 결과 고유어 를 상실하는 비극을 당하였고, 이러한 개정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반복되어 왔 다. 2) 인천 지명의 연구사 (1) 구시대의 지명 연구 三 國 史 記 지리지에는 신라 경덕왕 16년(757) 당시 통일신라의 疆 域 에 대 한 전폭적 개편 작업의 결과로 탄생한 지명들과 그들을 고려왕조에서 어떻게 수용했나 하는 내용이 아울러 기재되어 있는 바, 국력이 부족했던 고려의 변 방인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는 소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 때의 기록 내용 중에서 행정구역 명칭들과 그 연혁은 高 麗 史 지리지, 世 宗 實 錄 지리지, 龍 飛 御 天 歌 의 일부 지명 註 釋 6), 增 補 文 獻 備 考, 新 增 東 國 輿 地 勝 覽, 與 地 圖 書 등의 중앙에서 발행한 地 誌 書 들에 계승 등재되어 왔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전국적 규모의 지지서 속에 인천지역 기사가 간단하게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한편으로는 왕명으로 편찬해 上 送 한 1842, 1871, 1899년의 인천 의 각 고을의 邑 誌 들에도 관행적으로 郡 縣 의 명칭에 관한 기사가 沿 革 條 에 실려 있으나, 앞의 옛 문헌 자료의 답습일 뿐 지명의 검증에는 이르지 못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형상(1696)의 江 都 誌 와 같은 私 撰 邑 誌 도 옛 地 誌 書 들과 유사한 기술에 그치고 말았다. 5) 이기문(1972), 김동소(1999)의 국어사 연구서 김완진(1980;17)의 향가해독법( 訓 主 音 從 ), 도수희 (2004), 이병선(2004;128~36)의 지명 연구 중 차자표기 방법, 제18권까지 학회지를 낸 한국지명학회 의 地 名 學 등에 고대국어의 해독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小 倉 進 平 (1929)의 향가 및 이두 연구, 양주동(1942)의 고가연구 가 선구적 업적이다. 6) 龍 飛 御 天 歌 의 지명 註 釋 항들에는 15세기의 소중한 국어자료들이 무수하다. 인천과 관련되는 지명 의 예를 들면, 德 積 島 東 南 陽 府 海 中 召 忽 島 죠콜셤 ( 龍 飛 御 天 歌 6;58)이라 하여 죠-콜 이란 漢 字 音 과 窄 梁 손돌 在 今 江 華 府 南 三 十 里 許 ( 龍 飛 御 天 歌 6;59)의 손돌목 지명의 의미가 협착한 물목임을 기술한 것 등이 있다. 同 書 7;23에 실려 있는 여진어 지명을 우리말 구조가 아닌 닌 시 로 표기한 것은 15세기 우리말 발 음에 참고 되는 소중한 자료이다

11 결국 조선조 말까지의 옛 문헌에 행정구역 개편 사실을 지리지의 형태로 남 기거나, 州 郡 縣 들의 연혁에 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 인력, 조사 활동이 수반되어야 하는 예전의 지명연구였다고 할 수 있고, 그 결과로 만들어진 이러한 기록유산이 우리의 문화를 지켜온 또 하나의 원동력 이 된 것이라 하겠다. 일제강점 초기에 식민통치의 편의를 위해 당시 조선 全 道 의 행정구역을 개 편할 목적으로 대대적 지명 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를 기초 자료집 성격의 朝 鮮 地 誌 資 料 로 편한 다음 越 智 喩 七 이 新 舊 對 照 朝 鮮 全 道 府 君 面 里 名 稱 一 覽 (1917)이란 책으로 간행하였다. 전자는 마을 단위의 小 地 名 까지 망라하 고, 漢 字 지명과 함께 전승 지명을 언문이란 항목을 두어 한글로 병기한 방대 한 작업이었으나 그들 지명의 유래담이나 문헌 검증에는 이르지는 못했다. 후 자는 당시 전국적 범위에 걸쳐 郡 面 洞 里 의 통폐합 과정을 기재하였다. 한편 식민 지배를 위한 일제강점기의 仁 川 府 史 (1933)에는 弥 鄒 忽, 買 召 忽 은 水 城 의 의미이며, 일본어로는 물의 縣 이라 하고, 왜 물의 현인 지 판명되지 않지만 문자가 내포하고 있는 내용과 관련하여 해석되어야 한 다. 고 기술한 바(인천문화발전연구원, 2004;47, 번역본) 몇 행밖에 안 되지 만 지명유래에 관심을 두었으되 더 이상의 객관적 검증 과정은 없다. (2) 광복 이후의 지명 연구 광복 직후부터 1960년대 후반까지는 김형규(1949), 三 國 史 記 의 地 名 考, 권상로(1961), 韓 國 地 名 沿 革 考,김윤경(1962), 龍 飛 御 天 歌 에 나타난 지 명, 이기문(1964), 龍 飛 御 天 歌 의 어학적 가치(인명 지명) 등 지명학 에 눈뜨기 시작한 여명기였다. 위와 같이 지명학에 대한 기본 이론들이 마련됨에 따라 전국적으로 지명 연 구의 개화기를 맞게 된다. 도수희(1977)의 백제어 연구 등 개인 120여 편 의 논저, 이돈주의 서남지역에 대한 10여 편의 지명 연구논저, 이병선(1982)의 韓 國 古 代 地 名 國 名 硏 究 등 20여 편의 논저를 비롯하여 전체 대략 450여 편 의 지명 관련 논저가 작성되었고, 1998년에는 한국지명학회 가 창립되어 작 년까지 제18호까지의 地 名 學 이 발간되었다

12 3) 인천지명의 연구 인천지역의 지명연구는 옛 인천 지명의 연구를 필두로 강화, 부평에 관한 연 구가 여러 논문들에 다른 지명들과 함께 연구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이들 지명 속에 있는 지명소들, 買, 彌 吐, 甲 比 古 次, 穴 등은 다른 지역의 옛 지명들에서도 두루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 買 召 忽 ( 彌 鄒 忽 ) > 邵 城 > 仁 州 > 仁 川 1990년대 이후에 발간된 市 郡 區 史 및 私 撰 의 지명관련 저서로 仁 川 市 史 (1993), 인천광역시사 (2002), 仁 川 地 名 由 來 (1998), 이훈익 仁 川 地 名 考 (1993)가 있다. 이외에 西 區 史 (1996), 영종용유지 (2008), 中 區 史 (2010) 등이 있으나 區 史 들에서는 고대지명에 관한 기술은 없다. 표제의 지명을 두 종의 <인천시사>, 仁 川 地 名 由 來, 개인의 지명관련 저술 중에서 해당 내용을 검토한다. 1 仁 川 市 史 (1993) 박광성(1993:15~6)은 인천의 명칭유래에서 彌 鄒 忽 의 彌 와 買 召 忽 의 買 에 대비되는 글자로는 대개 水, 川, 泉, 河 들과 대역되는데 유독 인천의 彌 와 買 에 대하여는 별로 뜻이 없는 邵 자로 대역되고 있어서 그 뜻을 짐작하는 데 어려 움을 주고 있다 고 한 다음 辛 兌 鉉 의 논문 三 國 史 記 地 理 志 의 硏 究 에서 논증한 내용, 즉 ㄱ. 買 는 음이 로 彌 와 같이 므 의 音 借 이고, ㄴ. 召 는 鄒 와 같이 促 音 借 이며, ㄷ. 忽 은 현재음이 홀 이나 옛 음이 곧, 골 로 서 골( 城 )을 음차한 것이라 하여 買 召 忽 은 믓골, 즉 水 城 이라 하였다. 이 에 반하여 이강로 교수의 설에 대하여는... 邵 와 卲 가 통하는 자라 하더라도 이 글자를 확대 해석하여 거친 들( 荒 野 ) 을 뜻한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 다 고 하였다. 결국 박광성은 邵 城 에 관한 믓골, 거친 들 의 두 결론 을 부정하였지만 자신의 견해는 유보한 것이다. 인천광역시사 (2002) 제1편에는 연혁만 기술하고 명칭의 유래는 기술하 지 않았다. 2 이훈익(1993), 仁 川 地 名 考

13 이훈익은 자신의 저서 仁 川 地 名 考 (1993:52)에서 買 召 忽 - 거치른 물 의 고장 이라 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믓골, 거친 들. 거치른 물의 고장 의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이하에서는 買 召 忽, 彌 鄒 忽 의 변천과정을 직간접으로 논한 논저들을 검토한다. 3 이기문(2009), 국어사개설 고구려에 물을 의미한 단어 ( 買 )가 미( 米 ), 미( 彌 )와 섞인 예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內 乙 買 一 云 內 尒 米, 買 召 忽 一 云 彌 鄒 忽 7) 4 최남희(2005), 고구려어 연구 買 召 忽 一 云 彌 鄒 忽 은 미소골(mi-so-kurV) 의 표기로 보이고, 매 는 물, 소 는 潭 (소), 그리고 골 은 城 을 의미한다. 8) 5 도수희(2004), 한국의 지명 買 : 水 의 대응--- 買 忽 > 水 城, 買 伊 > 水 入 買 : 川 의 대응--- 南 買 > 南 川, 省 知 買 > 述 川 買 : 井 의 대응--- 於 乙 買 串 > 泉 井 口, 於 乙 買 > 泉 井 買 召 忽 : > 邵 城 > 仁 州. 위의 買 가 水, 川, 井 의 대응을 보이므로 마지막 항의 는 水 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9) 6 이강로(1972), 기전문화연구 제1집 인천의 옛 이름 매소홀에 대한 어 원적 고찰 邵 城 縣 本 高 句 麗 買 召 忽 縣... 一 云 慶 源 買 召 一 作 彌 鄒 邵 城 縣 과 買 召 ( 趨 鄒 雛 ) 忽 의 대비에서 買 는 召 의 확대한 의미 ( 野 )의 음차 召 ( 趨 鄒 雛 )는 사잇소리. 표기로는 ㅅ 7) 이기문(2009), 국어사개설 ;45에서 요약 8) 최남희(2005), 고구려어 연구 ;84에서 요약 9) 도수희(2004), 한국의 지명 ;313~5에서 요약

14 忽 은 城 의 訓 借 인 골 買 召 ( 趨 鄒 雛 ) 忽 은 ㅅ 골 골의 음차이다. 를 매 로 바 꾸어서 현재로는 맷골 이다. 그리고 뜻은 거친 들이 특징적으로 돋보이는 고장 이란 뜻이다. 현재 인천의 옛 이름은 買 召 忽 彌 鄒 忽 로 옛 문헌에 기록되었으므로, 이 것을 그대로 음독하여 매소홀, 미추홀 등으로 읽는 것은 아주 잘못이다.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10) 7 이강로(1973), 기전문화연구 제2집 三 國 史 記 地 理 志 에 記 寫 된 買 자 연구 三 國 史 記 지리지에 기록된 買 자를 대상으로 하여 그 대역 관계 와 지역적 분포, 동음이사( 同 音 異 寫 ) 관계, 사계 연구학자의 학설들을 소개하 였다. 그 결과 몇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여 앞으로의 연구에 기대하고자 한다. 買 자가 과연 어떤 낱말을 음사한 것인가? 買 자와 다른 한자어의 대역관계가 본디의 낱말 추정에 어느 정도의 구실을 할 것인가? 위의 양주동, 신태현 두 학자는 買 邵 買 - 水, 買 - 安, 買 - 善, 買 來 들에서는 대역관계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買 를 水 의 훈차인, 므, 믈, 믓 들로 단정하고, 결론을 내리었는데 과연 그 방법이 타당 한 것인지 등등에 대하여 앞으로의 광범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기대된다. 11) 8인천광역시, 仁 川 地 名 由 來 (1998) 이강로는 결론으로 買 召 忽, 彌 鄒 ( 趨 雛 ) 忽, 邵 城 들은 멧골( 山 谷 ), 또는 밑 바탕이 되는 골, 으뜸이 되는 골, 지위가 높은 골 따위를 뜻하는 밋골(밑골) 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글쓴이가 畿 甸 文 化 제1집에서 거친 들이 특 징적으로 돋보이는 고장 인 밋골 로 해독한 것은 수정하게 되었음을 말하 여 둔다. 12) 다. 이상이 매소홀, 미추홀, 소성에 대한 견해들이며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 10)이강로(1972), 기전문화연구 1, 인천의 옛 이름 買 召 忽 에 대한 어원적 고찰 의 25쪽의 Ⅲ.마무리 11)이강로(1973), 기전문화연구 2, 三 國 史 記 地 理 志 에 記 寫 된 買 자 연구 의 30쪽 Ⅲ.마무리. 12)인천광역시(1998), 仁 川 地 名 由 來 의 부록, 이강로, 인천의 옛이름 미추홀의 어원 967쪽 결론

15 1 박광성 ; 신태환을 재인용; 買 = 彌, 召 = 鄒 (사잇소리) 따라서 믓골 ; 水 城 과 이강로의 믓골, 거친 들 설을 비판하고 자신의 견해 유보. 2 이훈익 ; 거치른 물의 고장. 3 이기문 ; 國 語 史 연구의 결과로 買, 彌 는 물의 뜻임을 입증. 4 최남희 ; 買 召 忽 一 云 彌 鄒 忽 은 미소골(mi-so-kurV) 의 표기로 보이고, 買 는 물, 召 는 潭 (소), 그리고 골 은 城 을 의 미한다고 했으나, 召, 潭 의 관계에서 召 가 潭 임을 논증 없이 제 시. 5 도수희 ; 買 召 忽 : > 邵 城 > 仁 州 의 공식에서 를 찾기 위해 용례를 들 고 논증을 통해 구한 후, 買 가 水, 川, 井 의 대응을 보이므로 마지막 항의 는 水 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買 = 水 를 증명. 6 이강로 ; 買 召 ( 趨 鄒 雛 ) 忽 은 ㅅ골 골의 음차이다. 를 매 로 바꾸어서 현재로는 맷골 이다. 그리고 뜻은 거친 들이 특징적으로 돋보이는 고장 이란 뜻이다. 7 이강로 ; 買 召 忽 의 해법에 관하여 의문 제기. 8 이강로 ; 6의 자신의 결론을 수정하고 멧골 - 밑바탕, 으뜸, 지위가 높은 골 로 추정하였다. (2) 신라 경덕왕의의 지명 개정 경덕왕 때의 지명개정은 형식적으로 종전의 1~4자 범위의 자유로운 우리말 지명을 2자 지명의 틀에 맞추느라 원의가 훼손되어 대응 관계가 성립하지 않 는 지명이 허다하다

16 고유어 1~4음절+ 郡 縣 > + 郡 縣 위의 형식에 맞춘 지명어들 중에 비교적 대응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지 명소들의 대응 관계는 극히 일부만 확인 되고 대부분은 알기 어려운 지명소 이다. ᄀ 忽 城, 吐 堤, 旦 呑 頓 谷 ( 失 ), 只 支 己 城, 扶 蘇 松, 那 乃 奴 地, 梁 門 (돌) 위의 글자들 이외에 다양한 대응을 보이는 伐 火, 夫 里 등이 있고, 買 彌 는 매우 광범하게 대응하고 있다. 다음의 지명들은 買, 彌 가 지명소로 사용된 것 들이다. o어두 買 字 지명 買 ᄂ 買 忽 군> 水 城 군, 買 旦 홀> 水 谷 성, 買 伊 현 一 云 水 入 현, ~ 買 珍 伊 현> 溟 珍 현, ᄃ 買 城 현> 來 蘇 군, 買 省 평> 首 原 현, 買 熱 次 현> 黽 白 현, 買 仇 里 현> 瞻 耽 현, 買 尸 達 현> 蒜 山 현, 買 省 군一 云 馬 忽 위의 ᄂ의 경우는 買 ~ 水 또는 유사한 의미로 대응하지만 ᄃ의 예들은 알 수 없다. o어말 買 字 지명 買 ᄅ 伊 珍 買 현> 伊 川 현, 內 乙 買 현> 沙 川 현, 伏 斯 買 현 一 云 深 川 현, 於 斯 買 一 云 橫 川 현, 南 買 현 一 云 南 川 현, 省 知 買 현 一 云 述 川 현, 薩 買 현> 淸 川 현, 也 尸 買 현 一 云 狌 川 군, ~ 其 買 현> 林 川 현, 於 乙 買 串 > 泉 井 口 현 위의 예들은 대부분 川 으로 대응하고, 의미장이 같은 井 이 마지막 지 명 예에 하나 있을 정도로 매우 정연하게 대응함을 알 수 있다. o어말 彌 字 지명 彌 ᄆ 居 叱 彌 현> 今 勿 현 13), 古 彌 현> 昆 湄 현, 巴 老 彌 현> 布 賢 현

17 위의 예 중에서 앞의 두 지명은 유사하게 물 의 의미를 나타낼 수 있으 나, 마지막 지명은 알 수 없다. 따라서 예가 충분하지는 못하지만, 彌 형의 지명도 물 의 의미와 넓은 범위에서 대응 한다고 할 수 있다. o 어말 彌 知 형 彌 知 ᄇ 古 馬 彌 知 > 馬 邑 현, 松 彌 知 현> 茂 松 현, 知 乃 彌 知 현> 化 昌 현 위의 예들도 어떤 규칙성을 발견할 수 없다. 다음의 예는 이강로(1998:962~3에서 양주동(1954:94~5)를 인용하여 彌 知 가 밋-, 믿( 信, 保 )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술한 것인 바, 豆 良 彌 知 현> 豆 也 保 > 西 幾 渟 의 彌 知 와 保 의 대응을 부각하여 검증하였다. 그러나 ᄇ의 대 응과 비교하여 의미 있는 대응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며, 彌 知 가 信, 保 의 의미로 사용된 다른 지명의 예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앞의 지명을 따라 검증한 買 *mɐi, 彌 *mjie 가 水 의 의미장을 가진 형태소라면 이들은 통시적 과정에서 알타이어들과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oaltai어와의 비교 ᄉ mʉ(에벤키), mö ren(몽고), muke(만주) ᄋ 일본어 ; mi-du( 水 ), mi-nado( 水 門 ), its-mi( 泉 ), a-me( 雨 ), na-mi( 波 ) 위의 ᄉ,ᄋ의 예들은 알타이어, 우리말과 대응관계가 다수 성립한다고 알고 있는 일본어와 대응에서 고대국가시기의 우리 지명형태소 買 *mɐi, 彌 *mjie 와 쉽게 비교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어 온 買 *mɐi, 彌 *mjie 의 화석 형들의 예를 든다. ᄌ 매 형 : -매(조수의 단위;10일-한매, 11일-두매 등), 매생이~ 買 加 도, 買 勿 도 13) 史 勿 현> 泗 水 현, 德 勿 현> 德 水 현의 예는 이 시기에도 *mʉr이 혼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 ᄎ 메 형 : 메마르-, 메-수수 등 (곡물 명사의 접두 형태소) ᄏ 미 형 : 미나리( 芹 - 水 乃 立 ;향약구급방; 15c 초 문헌), 미쟝이( 泥 水 匠 );동 문유해),( 미역, 미더덕) ~ 渼 今, 渼 沙 里, 해미 ᄐ 옛 지명 : 於 乙 味 ( 未 )도> 月 尾 도, 八 味 도( 未, 米, 尾 ) ~ 彌 法 도 이상과 같이 Altai어, ᄌ~ᄐ의 예들은 買 *mɐi, 彌 *mjie 계의 옛 지명형태소들이 모두 水 의 의미장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3) 8인천광역시, 仁 川 地 名 由 來 (1998)의 경우 이강로(1998), 仁 川 地 名 由 來 의 부록에서, 인천의 옛이름 미추홀의 어 원 967쪽 결론. 결론으로 買 召 忽, 彌 鄒 ( 趨 雛 ) 忽, 邵 城 들은 멧골( 山 谷 ), 또는 밑바탕이 되 는 골, 으뜸이 되는 골, 지위가 높은 골 따위를 뜻하는 밋골(밑골)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글쓴이가 畿 甸 文 化 제1집에서 거친 들이 특징적으 로 돋보이는 고장 인 밋골 로 해독한 것은 수정하게 되었음을 말하여 둔 다. 한 내용을 앞의 여러 결과에 비추어 고찰한다. 1 買 召 忽 - 彌 鄒 忽 > 邵 城 에서 音 讀 字, 釋 讀 字 의 구분과 대응자의 대 비 고대국어 자료, 특히 三 國 史 記 지리지의 지명 자료들에서 이들의 용례를 찾아 이전 지명(고유어 지명)과 경덕왕 때 개명한 지명(한자식 지명)과의 관 계 속에서 해결 시도 14) 한다. ᄀ 買 *mɐi : 彌 *mjie ; 유사한음으로 두 글자 모두 음독자로 고유 어 표기. 14) 再 構 한 漢 字 古 音 은 Karlgren(1923), 董 同 龢 (1981)를 원용

19 ᄂ 召 *tsau : 鄒 *tsiuo ; 두 음의 聲 母 ( 反 切 上 字 )가 모두 舌 音 으로 유 사 한 음독자 ᄃ 買 *mɐi, *mjie -(순음) ; 邵 *ziä u -(설음) ; 순음;설음으로 비대응. ᄅ 買 召, 彌 鄒 ; 邵 *ziä u) ; 음독, 훈독 모두 불일치. 위의 ᄀ의 지명소들은 동일한 의미장의 고유어를 音 讀 字 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되고 대략 * mɐi( >매). * mjie(며>미) 로 再 構 할 수 있을 것이 다. ᄂ은 音 讀 字 로 볼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진 지명형태소가 아닌 사잇소 리 의 표기로 추정되는 바, 召 (tsau), 鄒 (tsiuo) 는 앞의 2.1에서 간략히 기술한 바와 같이 고대국어 시기에는 ㅅ,ㅈ,ㅊ 가 별개의 음가로 분명히 구 분되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때 15), 이들은 모두 사잇소리 ㅅ 을 표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개국어 자료들에는 대략 다음과 같이 음차로 사잇 소리 또는 음절말 자음을 표기하였고, 이러한 용법은 삼국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ᄆ ㅅ. : 斯 ( 尼 斯 今 ), 師 ( 尼 師 今 ), 思 ( 高 思 曷 易 곳갈), 尸 ( 古 尸 곳), 叱 ( 味 鄒 尼 叱 今 ) 위의 마.의 예와 買 召 忽 : 彌 鄒 忽 에서의 召 : 鄒 는 분명 음독자로서 의미 나 문법적 직능을 나타내고자 했던 글자가 아니라 종성의 ㅅ 을 표기한 것 으로 추정된다. 이상 살펴본. 召 (tsau) : 鄒 (tsiuo)는 고대 추정음이 같은 聲 母 로 사잇소리 ㅅ 을 표기한 것으로 추정한 바, 이런 내용은 앞의 이강로 교수의 논증 과 정과 같다. 다음은 忽 [χuət]의 문제로 註 6의 召 忽 島 죠콜셤 ( 龍 飛 御 天 歌 6;58) 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15세기에도 忽 의 聲 母 는 h 로 정착하지 못했으므로 고대국어 시기에는 당연히 k'였을 것을 알 수 있는 예가 된다. 홀 은 k>χ>h 의 변천을 거쳐 현대 한자음으로 정착되었고, 上 古 音 의 舌 內 入 聲 韻 尾 t 는 東 音 에서 이른 시기에 t > r 로의 변천이 완성된 것 15) ㅅ,ㅈ,ㅊ 의 미분화음을 계승하는 한편, 후대에 이들 성모가 분리되어 한 글자가 複 數 音 을 갖게 된 결 과, 刺 (자,척), 狀 (상,장), 參 (삼,참), 著 (저,착), 切 (절, 체), 數 (수, 삭, 촉) 등으로 혼란을 준다

20 은 일반화된 사실이다. 따라서 忽 은 音 借 로 골 [kur]을 표기한 것이 고, 이 글자의 對 應 字 는 대부분 지명에서 城 이었고 이 지명소에 관한 한 이견이 없다. 우리는 위에서 옛 인천 지명 買 召 忽 - 彌 鄒 忽 이 音 讀 字 로 借 字 된 바, ㅅ 골 또는 미 ㅅ 골 로 추정되며, 그 의미는 Altai어와의 비교, 특히 일본어와의 다양한 대응, 우리말에 화석화한 예들을 통하여, 물 의 의 미장을 가진 지명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다음으로 ᄅ의 買 召 - 彌 鄒 忽 ; 邵 城 의 개정을 두고, 앞의 이강로 교수의 부록에서는 召 가 邵 와 통하고, 邵 는 卲 와 통용하는 글 자로 卲 는 康 熙 字 典 에 그 釋 이 高 也 라 했으므로 결론으로 買 召 忽, 彌 鄒 ( 趨 雛 ) 忽, 邵 城 들은 멧골( 山 谷 ), 또는 밑바탕이 되는 골, 으뜸이 되 는 골, 지위가 높은 골 따위를 뜻하는 밋골(밑골) 이었을 것으로 추정 하 고 종전의 결론을 수정하였다. 앞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이강로 교수가 買 召 忽, 彌 鄒 ( 趨 雛 ) 忽 을 음독 하여 멧골, 밋골(밑골) 로 추정하였으나, 買 召, 彌 鄒 ( 趨 雛 ) 의 의미장을 오직 몇 지명의 彌 知 중에서 유일한 예인 豆 良 彌 知 현> 豆 也 保 > 西 幾 渟 의 彌 知 ~ 保 를 설명한 양주동의 기술을 인용하여 밋(밑) 으로 再 構 하였 다. 이 교수의 추론 과정에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앞의 買 - 彌 계의 지명소가 지명의 語 頭 음절, 語 末 음절에 자유롭 게 분포할 수 있었고, 또한 위에서, 옛 인천 지명 買 召 忽 - 彌 鄒 忽 이 音 讀 字 로 借 字 된 바, ㅅ 골 또는 미 ㅅ 골 로 추정되며, 그 의미는 Altai어와의 비교, 특히 일본어와의 다양한 대응, 우리말에 화석화한 예들을 통하여, 물 의 의미장을 가진 지명이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강로 교수 자신도 召, 鄒 ( 趨 雛 ) 를 사잇 소리 의 표기로 보고도, 이들 글자가 경덕왕 때 고친 지명 卲 城 의 卲 와 통한다 하여 買 召 - 彌 鄒 를 유일한 용례로 추정되는 豆 良 彌 知 현> 豆 也 保 > 西 幾 渟 의 彌 知 ~ 保 에 대응시켜 멧골( 山 谷 ), 또는 밑바탕이 되는 골, 으뜸이 되는 골, 지위가 높은 골 따위를 뜻하는 밋골(밑골)이었을 것으로 추정한 것은 비약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덕왕 때 고친 지명 邵 城 은 그 이전 시대의 고유어 音 讀 字 지 명 買 召 - 彌 鄒 를 釋 讀 字 지명으로 바꾼 것처럼 보이나 내용은 지명 개정의

21 틀인 고유어 1~4음절+ 郡 縣 > + 郡 縣 에 억지로 맞춘, 전시대의 지명과는 音 釋 어느 편으로도 연관성 없는 지명이며, 이러한 예는 三 國 史 記 지리지에 衆 多 하여 헤아릴 수 없다. (4) 慶 源 郡 > 仁 州 > 慶 源 府 > 仁 州 > 仁 川 郡 慶 源 郡 ; 고려 숙종 10년(1105)인종 24년(1145) 仁 州 ; 인조(1146)~(1390) 慶 源 府 ; 공양왕(1390)~조선 태조 원년(1392) 仁 州 ; 원년 ~태종 13년(1413) 仁 川 郡 ; 태종 13년(1413) 3. 결론 및 과제 1) 요약 박광성(1993:15~6)은 인천의 명칭유래에서 신태현, 이강로의 추론을 비판하 고, 邵 城 에 관한 믓골, 거친 들 의 두 결론을 부정하였지만 자신 의 견해는 유보하였다. 이훈익(1993)은 仁 川 地 名 考 : 52에서 買 召 忽 -거치른 물의 고장 이라 하 였다. 최남희(2005), 고구려어 연구 : 84에서 買 召 忽 一 云 彌 鄒 忽 은 미 소골(mi-so-kurV) 의 표기로 보이고, 買 는 물, 召 는 潭 (소), 그리고 골 은 城 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도수희(2004)는 한국의 지명 : 315에서 買 召 忽 : > 邵 城 > 仁 州 의 과 정을 상정하고 마지막 항의 는 水 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강로(1972)는 기전문화연구 제1집: 25에서 거친 들이 특징적으로 돋보 이는 고장 이란 뜻으로, 이강로(1973), 기전문화연구 제2집:30에서는 買 의 연구가 심층적으로 이루어져야함을 역설하였고, 仁 川 地 名 由 來 (1998)에서는 자신의 결론을 수정하고 멧골 ; 밑바탕, 으뜸, 지위가 높 은 골 로 추정하였다. 우리는 위에서 옛 인천 지명 買 召 忽 - 彌 鄒 忽 이 音 讀 字 로 借 字 된 바,

22 ㅅ 골 또는 미 ㅅ 골 로 추정되며, 그 의미는 Altai어와의 비교, 특히 일본어와의 다양한 대응, 우리말에 화석화한 예들을 통하여, 물 의 의 미장을 가진 지명이었고 邵 城 은 買 召 忽 - 彌 鄒 忽 과 연관 없이 형식에 맞 춰 개정한 지명이었다. 2) 향후 지명 연구의 과제 인천의 지명을 연구하는 일은 인천문화, 나아가 민족문화 기술에 기여하는 것이다. 지명의 공시적, 통시적 연구를 축적하여 국어사 기술에 기여할 수 있 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 다. 1. 지명어의 연구 방법에 혁신이 있어야 한다. 국어사 연구자, 성운학 연구자, 한문전공자, 비교언어학자를 장기적 안목으 로 육성, 발굴 하여 근원적 연구를 시작하여야 한다. 2. 지명어 연구 방법론으로 지명어 음운론, 형태론, 변천사를 두루 원용하여 야 한다. 3. 전국적인 역사 지명자료, 소지명자료를 수집하고, 지역의 자료를 적극 수 집, 정리하여야 한다. 4. 광역시 전역을 포괄하는 지명사전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화로 사멸해가는 전래지명을 개발지역의 지명 제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새로운 명명, 지명정책개발에 지명연구자가 참여하여야 한다

23 참고 논저 강병륜(1998), 지명어 연구사 지명학 1, 한국지명학회. 강신항(1974), 조선관역어연구,광문사. 권상로(1961), 한국지명연혁고,동국문화사. 김무림(1999), 삼국사기복수음독지명자료의음운사적과제, 지명학 2. 김영일(2001), 고대지명에나타나는알타이적요소, 지명학 6. 김종학(2000), 고대지명어소 忽 에 대하여 지명학 3 김형규(1949), 삼국사기의지명고, 진단학보 16. 도수희 (1977), 백제어연구, 아세아문화사 (2004), 한국의 지명,대우학술총서553, 아카넷. 신태현(1959), 삼국사기지리지의연구,우종사. 이강로(1972), 인천옛이름매소홀의어원적고찰, 기전문화연구 제1집 (1973), 삼국사기지리지에기사된 買 자연구 기전문화연구 제2집. 이기문(1972), 국어사개설,개문사. 이돈주(1995), 한자음운학의이해, 탑출판사. 이병선(1988), 한국고대국명지명연구, 아세아문화사. 이숭녕(1961), 중세국어,을유문화사. 이훈익(1987), 인천지지, 미문출판사. ----(1993), 인천지명고, 인천지방향토문화연구소. 조규태(1986), 고대국어음운연구,계명대출판부. 최남희(2005), 고구려어연구,박이정. 황금연(2000), 잉-인-형 지명의 한 해석, 지명학 3. 김부식(1145), 삼국사기,아세아문화사 영인. 일 연(1285), 삼국유사,한국고전총서1. 한글학회(1992), 한국땅이름사전. 蕫 同 龢 (1981), 漢 語 音 韻 學, 범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향약채취월령 대제각, 훈몽자회,대제각영인. ----, 용비어천가,대제각영인

24 이형상(1696), 강도지,강화문화원. 강화군(1930), 강도지 강화부지,1783,1842,1894, 아세아문화사영인. 인천광역시(1993,2002), 인천시사, 인천광역시사. 越 智 惟 七 (1917),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라 명칭일람. 조선지지자료,영인본 Karlgren.B.(1923), Analitic Dictionary of Chines and Sino-Japaness, 영인본. Ramstedt,G.(1727), Studies in Korean Etymology, 영인본

25 토론문 인천 지명연구의 동향과 과제 최 동 국(인천대학 명예교수) 인천은 인천지역을 기반으로 축적된 문화와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인천문화 의 성격과 그 원형이 무엇인지, 인천문화의 여러 층위를 집약화 할 수 있는 개 념이 선명하지 않다. 인천문화의 像 이 한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개항 이후로 집약되어 있다. 인천의 역사를 2000년으로 하면서 그간에 축적된 특유의 문화 적 향기를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인천문화의 역사적 해석이 望 文 衍 義 로 해석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병욱 교수의 발표는 인천 이해의 새 지평을 열 수 있 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인천 지명 연구의 방법과 자세 및 앞으로의 과제를 지적하기까지 연구의 틀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 의가 있다고 본다. 발표문에서 지적하였듯이 고유지명은 조상의 얼이며 우리의 총체적 문화유산 이다. 문화란 인간의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보편적 가치들의 총체이자 인 간이란 자신이 뿜어내는 의미의 그물망 가운데 있는 거미와 같은 존재이며, 그 그물이 문화이다.(막스 베버) 이는 문화란 곧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 지 인천의 역사, 전통문화, 지명에 관한 연구업적들이 개별적 성과를 거두었으 나, 인천의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은 것 같다. 연구사 에서 검토되었듯이 미추홀, 매소홀, 소성 등의 의미는 믓골, 수성, 거치른 물 의 고장, 물, 맷골 < 水 >로 析 出 된 결과이다. 연구자들은 기존 자료를 국어학적

26 견지에서 비교와 대응 등의 방법으로 치밀한 검증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물 과 관계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견해를 보이고 있으나 물의 내포에 대한 논의 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미추 등으로 명명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 추 소성이라는 명칭이 단순히 기호적 의미를 넘어서는 내포가 있다고 본다. 고 대 지명은 언어, 신앙, 세계관 등의 命 名 素 에 의해 이름지어지기 때문이기도 하 다. 이는 앞으로 지명들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면서 命 名 된 것에 대한 복원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명명되기까지의 문화현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될 줄로 본다. 고대 지명은 신화시대의 문화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국 신화 에 등장하는 自 然 ( 山 水 )은 신성성을 지니고 있다. 해, 달, 물, 바위, 나무 등을 고대인들은 崇 拜 했다. 곧 자연 숭배의 문화이다. 이러한 시대 문화와 共 感 하면 서 수집된 자료에 대한 분석과 검증을 통해야만 고유지명에 대한 이해가 균형 을 이룰 줄로 본다. 고대의 지명은 특수한 공간이고, 그 공간은 신성시됨으로 해서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되면서 규범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분석과 검증은 과학적, 논리적 해명을 통하여 明 澄 性 을 지닐 수 있으나 동양 문화는 그 방법으로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동양문화는 분석에만 치중하 여 그 정체가 露 呈 되는 것은 아니다. 동북아 문화권은 감성적이고, 총체적 감각 을 중시하고 통합적 사고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관적이라고 할 수 있 다. 여기에 관심을 둔 연구자가 발표문의 3. 2 향후 지명 연구의 과제 에서 밝힌 연구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구자로 참여함이 어떨지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인천지역문화에 대한 연구가 시, 구청, 문화단체 등의 주최로 인 천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세미나와 연구발표가 자주 이루어지고 있으나 개별적 단위의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있다. 앞으로 연구 영역간, 연구자간 상호 긴밀성 을 지닌 활동과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본다. 인천문화에 대한 행사 자체에 의미를 두기 보다는 연구의 일관성과 지금의 연구성과에서 진전되고 새로운 史 料 를 발견해 나가는 열정이 있어야 한다. 인천문화 연구는 앞으로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갖추어 인천문화의 원형(정체성)을 지향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리라고 본다. 인천의 정체성이 인천의 역사발전의 동력이 되면서 어떻게 작용하는가가 인천의 미래세계 건설로 기능할 때 인천의 특성적 문화가 창출되리라 본다. 이러한 토론자의 견해에 대해 발표자의 생각을 간략하게 듣고자 한다

27 제2주제 定 都 600년의 기억, 서울시의 역사와 기념사업 나 각 순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연구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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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定 都 600년의 기억, 서울시의 역사와 기념사업 나 각 순 / 서울시사편찬위원회 1. 서울의 역사 서울의 역사 문화는 한강과 서울의 진산( 鎭 山 )인 삼각산(북한산)이 어우러진 자연지리적 여건을 바탕으로, 이 땅에서 생활해 온 조상들의 흔적이다. 수도 서울의 역사와 문화는 삼각산을 진산으로 하고, 북악을 주산( 主 山 )으로 한 낙 산(타락산) 목멱산(남산) 인왕산으로 이어진 내사산과 한강이 주는 수리기능 과 그 유역을 이루고 있는 식량 생산의 토대인 경작지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나아가 서울지방은 교통 관방( 關 防 )의 기능이 더해져 주민생활 공간으로서 취 락 도시로 발달하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삶의 형태를 망라한 역사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서울 지역은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살기 시작하였고, 신석기 인류문명의 4 대 발상지가 강물을 이용해서 이루어졌듯이 한강을 끼고 선사문화( 先 史 文 化 )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를 농경생활을 바탕으로 한 한강문명의 기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서울지역은 의식주생활에 유리한 자연환경과 한반도 남북의 문화를 통섭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문환경을 바탕으로 선사문화를 계승하여 청동기 철 기문화를 이어 고대국가 백제의 건국 터전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하였다

30 백제는 기원전 18년 오늘날 서울의 송파구 강동구 광진구 일대를 중심으 로 궁궐과 위례성을 쌓고 이를 도읍지로 삼아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 아울러 삼국시대에 서울 지역을 중심한 한강 하류유역은 이 지역의 경략( 經 略 ) 여부에 따라 삼국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는 필연성을 가짐으로써 역사적 중요성을 갖는다. 우선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 백제 초기의 도읍지였다는 점 이외에 삼 국간의 군사적 쟁패지( 爭 覇 地 ) 또는 삼국 통일의 완수를 위한 당나라 군사 축 출의 최후 거점이었다는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 따라서 이후 우리 역사는 이 지역을 관할하는 자가 한반도를 지배하는 역사적 결정 요인이 되었다. 그 사이 서울 지방은 한성 한산 북한산주 남평양 신주 남천주 한산주 한주 한양군 등으로 불리었다. 고려시대 서울 지방은 초기에는 양주( 楊 州 )로 불리면서 해주와 더불어 수도 개경을 보좌하는 요지가 되었다. 문종 이후 충렬왕 때까지는 삼경( 三 京 )의 하 나인 남경( 南 京 )으로 승격되어 왕의 순행이 이어졌고, 연흥전 천수전 등의 궁 궐과 중흥산성이 경영되었다. 충선왕 이후 고려 말까지는 한양( 漢 陽 )이라고 불 리면서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따라 일시 천도 후보지로 주목되었고 남경으로 승격되기도 하였으며, 우왕과 공양왕 때는 한양 천도가 단행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은 왕조의 도읍지가 되어 우리나라 정치 군사 경 제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개경에서 즉위하고, 1394 년 10월 28일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이때는 도시시설의 설계만 이루어졌을 뿐 아직 한양 도성의 상징시설물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천도와 더불어 수도 건 설에 착수하였던 것이다. 주산인 백악 아래 경복궁을 두고, 그 좌우에 종묘와 사직을 두었으며, 경복 궁 앞에 주요 관아를 설치하고 시전( 市 廛 )을 설치함으로써 좌묘우사( 左 廟 右 社, 左 祖 右 社 ) 전조후시( 前 朝 後 市, 面 朝 後 市 )의 도읍 건설의 전범에 따라 수도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내사산을 연결한 km의 한양도성을 축조하였다. 아울 러 도성의 4방에 4대문과 4소문을 내고 도로를 닦아 전국으로 9개의 간선 교 통망을 연결하였다. 서울은 이제 지방도시의 하나로서의 한양에서 국왕이 상주하는 왕도이자 수 도가 되었다. 그 이름 또한 수도의 뜻인 경도( 京 都 ) 경사( 京 師 ) 경조( 京 兆 ) 뿐만 아니라 성곽으로 둘러싸인 특별한 도읍지라는 뜻의 도성( 都 城 ), 전국의

31 여러 고을 가운데 으뜸 고을이라는 도읍( 都 邑 ), 교화의 원천이요 천하의 모범 이라는 수선( 首 善 )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물론 도읍의 우리말인 서울( 徐 菀 ) 의 생명력은 유지되었다. 한편 태조 4년(1395)년 6월 6일 고려 후기에 불렸던 한양부( 漢 陽 府 ) 가 한성부( 漢 城 府 ) 로 개칭되어, 서울의 지명이 한성으로 정착되었다. 이어 6 월 13일 제1대 판한성부사( 判 漢 城 府 事 ) 성석린( 成 石 璘 )이 임명되었다. 한성부의 관할구역은 도성과 도성 밖 10리( 城 底 十 里 ) 지역이었다. 관할구역은 도성 안을 동 서 남 북 중의 5부로 나누고 성저십리 지역도 5부의 성외지역으로 편 제하였으며, 이를 다시 52방( 坊 )으로 구분하여 자연 취락 동 리( 洞 里 )를 포괄하 였다. 영조 연간에 방 아래 계를 설치하였으며, 갑오개혁 때 행정구역으로 동 을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서울은 47방 288계, 775동으로 구획되었다. 한성부의 인구는 조선 전기 임진왜란 전까지는 대체로 11만~12만 명으로 10 만 명 선을 유지하였으며, 현종 10년(1669)에는 19만 명으로 이후 조선 말기 고종 연간까지는 20만 명 선을 유지하였다. 고종 말기에 30만~40만 명에 이 르렀으며, 일제 말기에는 100만 명이 되었다. 수도이자 왕도인 한성에는 왕과 왕실을 비롯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이는 도성 내에서 거주지역의 차이를 보였으며, 특히 18~19세기에 이르면 정치 행정도시에서 상업도시로 성 격을 전환하면서 그 분화현상이 더욱 뚜렷이 나타났다. 17세기 후반에 경강상인( 京 江 商 人 )이 성장하고, 18세기 후반 정조 연간에 이 르면 시전상인들의 금난전권을 능가하는 이현 칠패시장이 성장하였으며, 마 포 뚝섬 누원 송파 등 도성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하기에 이르 렀다. 이러한 도시의 변화 과정은 우리나라 역사의 자본주의 발달의 초기 모습 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개항기를 거치면서 몰려든 외세와 이들에 의해 강요된 서울의 정치 사회 교역 교통 산업 등의 변화는 결국 조선을 식민지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일 제강점기에는 대체로 종로 이북은 원주민인 한국인 거주 지역, 을지로에서 남산 기슭 용산 원효로 일대는 일본인 거주 지역으로 2분화되었다. 시가지는 도성 밖으로 뻗어 나가 동쪽은 신설동 청량리 신당동 왕십리까지, 서쪽 은 아현동 마포까지, 남쪽은 용산과 한강을 건너 노량진 흑석동 영등포까 지 이르게 되었다

32 이는 1910년 한성부를 경성부로 지위를 낮추고 1914년에 행정구역을 축조하 였다가, 1936년에 73만 명으로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기 위하여 이들 지역을 포함한 시역을 확장한 것이었다. 일제 말기에 인구 100만을 가진 도시가 되 었다. 도심부의 세종로 태평로 일대는 업무가( 業 務 街 ), 종로는 한국인 상가, 충무로 명동 일대는 일본인 상가, 영등포 용산 답십리 일대는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공장지구 등으로 지역분화가 일어났다. 1943년 구제도가 실시되어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성동구 서대문구 용산구 영등포구 7개 구역소( 區 役 所 )가 설치되었고, 1944년에 마포구가 신설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서울은 혼란과 전쟁을 극복하며 급속도의 발전을 가져왔다. 1946년 9월 28일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었고,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 법>의 실시에 따라 9개 구청( 區 廳 )를 거느린 서울특별시가 되었다. 이해 서울 의 행정구역은 m2로 확장되었고, 인구는 14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950년 6 25전쟁으로 말미암아 서울은 궁궐 지역을 제외하고는 폐 허가 되었으며, 1953년 휴전협정과 더불어 전후복구에 온 힘을 기울여 수도로 서의 기능을 되찾았다. 1955년 인구 150만 명이 넘어섰으며, 1960년에는 250 만 명에 다다랐다.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제정으로 서울특별시는 내 무부 산하에서 국무총리 직속기구로 승격되어 자치적인 도시정부로서의 특별 시 면목을 과시하였다. 행정구역은 1963년 1월 km2로 확장되었으며, 1973년 3월 km2로 확장되었다. 1960년 후반기부터 1970년대에 급속히 진행된 이촌향도( 移 村 向 都 )의 도시인 구집중은 주거 교통 청소 교육 등 도시행정의 급증한 수요를 해결하여야 했으며, 급기야 한강 이남의 강남개발 영동개발이라는 시대용어를 만들어내 게 되었다. 따라서 행정구역의 분화로 1973년 관악 도봉구 신설로 11개, 1975년 강남구 신설로 12개, 1977년 강서구 신설로 13개, 1979년 은평 강동 구 신설로 15개, 1980년 구로 동작구 신설로 17개, 1988년 송파 중랑 노원 서초 양천구 신설로 22개, 1995년 강북 금천 광진구 신설로 25개 구가 되어 오늘에 이른다. 아울러 인구증가도 계속되어 1966년 380만, 1970년 540 만, 1975년 690만, 1980년 840만, 1985년 965만 명에 이어 1988년에는 인구 1천만 명이 넘어서게 되었다. 1980년 서울의 봄 은 짧았으나, 서울역 서울시청광장 명동성당 등지에

33 서 전개된 1987년 6월 항쟁 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헌이라는 민주화의 중 요한 전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의 양대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국제화를 앞당기게 되었다. 즉, 서울은 명실상부한 세계 속의 선진도시가 되어 국제도시로 발전하는 계기를 맞이하였 던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이 개최되던 해에 서울의 인구는 1천만 명을 넘어섰 고, 제2차 한강개발이 완성되었다. 서울특별시는 1991년 지방자치제도 실시의 원년을 맞이하여 주민자치의 기틀 을 마련하였으며, 나아가 급속한 도시개발 과정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고, 서울의 정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자기 성찰의 시기를 맞이하였다. 따라서 1994 년 서울이 조선왕조의 도읍이 된지 6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의 전통경관을 복 원하고, 서울의 역사 문화를 종합한 서울 연구를 체계화하는 등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한편 1990년대 말 서울은 IMF경제위기를 맞아 시민생활의 붕괴를 경험하였고, 이를 계기로 복지와 산업정책을 되돌아보 게 되었다. 이제 2000년대에 들어 서울특별시는 강남 강북 균형개발과 문화의 공동향 유를 위한 소통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나아가 붉은 악마 의 이름을 떨친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개최, 2010년 20개 주요 경제대국의 정상들이 모 이는 G20서울정상회의 개최,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 선정 등 세계유수의 국 제도시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2013년 현재 서울의 행정구역은 25개 구에 472개 법정동과 423개 행정동으로 이루어졌으며, 면적은 km2이며, 인구 1천만 명이 넘는 거대 국제도시가 되었다. 서울특별시는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60여 년의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압축 성장으로 표현되는 한강의 기적을 보여준 현장이며, 민주화 발전의 역사 적 현장으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그리고 도시화 과정의 여러 어려 움을 극복하고, 사회복지를 통하여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행정이 집 중되고 있으며, 도시 정비과정을 통하여 살기 좋은 도시, 쾌적한 환경을 갖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나아가 서울시민은 분단조국의 정치적 어려움과 절대 빈곤을 극복하고, 민족 의 자존을 위한 노력으로 문화시민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서울을 인류가 공 존하는 국제문화도시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34 2.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의 전개와 의의 1994년은 서울 정도 600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로, 연초부터 서울 600 년, 새로운 탄생 이라는 슬로건이 서울특별시청 정문에 걸렸다. 서울특별시는 1986년부터 서울 정도 600년을 맞는 생일 준비를 시작하였고, 1992년 6월 15 일 정도육백년기념사업시민위원회(위원장: 김원룡) 가 발족식을 거행하였 다. 위원회는 역사교육, 도시환경, 문화예술 3개 분야 전문가 53명이 참가하였 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여 역사문 화도시로서의 서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서울토박이회가 창 립되었다. (1) 기념사업의 주제와 형태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은 역사와 미래가 조화를 이룬 선진 문화도시 건설 이라는 핵심 기치를 내걸고, <다시 보는 서울>, <새로 (태어)나는 서 울>, <신명 나는 서울>, <열려 있는 서울> 등 4개의 큰 주제에 따른 하부 사 업으로 진행되었다. <다시 보는 서울>의 핵심 사업은 서울의 역사 지리 문화를 종합한 서울학 연구의 진흥과 다양한 서울 관련 시민강좌의 증설을 통한 일종의 서울시민의 주인의식을 높이고자 하는 서울 탐사 사업이었다. -서울학연구소 설립 : 1993년 6월 1일. 서울에 관한 기초연구, 사료탐사와 연구지원. <새로 나는 서울> 사업에는 난개발로 인해 크게 훼손된 남산제모습찾 기, 남산한옥마을(남산공방촌)조성, 북촌문화벨트조성 등이 포함되었으 며, 시청 신청사 건립 추진과 함께 시립박물관(역사박물관) 설립 계획이 포함 되었다. 이에 1994년 1월부터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을 남산한옥마을로 이전 복원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남산제모습찾기 : 서울의 상징인 남산의 제 모습을 찾는 다는 것은 생태계 복원과 함께 5 16군사정변 이후 권력의 상징으로 변한 남산 을 시민에게

35 돌려준다는 의미가 있다. 일제의 통감부와 총독부, 그리고 그들의 관저와 신사 신궁, 공포의 대상이었던 중앙정보부와 필동의 수도경비사령부, 미군 통신부대 와 종교휴양소, 그리고 외국인아파트 등을 이전 철거하여 남산을 공원화하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1994년 11월 20일 남산 외국인아파트 폭파가 그 정점이었다. 1972년에 지어진 남산의 남쪽 경관을 크게 훼손하고 잇던 것을 22년 만에 폭 파 철거한 것은 산업화시기에 우리가 훼손한 전통경관을 회복하고자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외세에 대한 자존심의 회복이었다. 또한 도심의 군사시설로서 옛 수도방위사령부 자리에 정도 600주년 타임캡 슐광장과 한옥마을을 건설한 것은 전통의 복원과 아울러 민주화 발전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타임캡슐광장에는 1994년 11월 29일 시민 1천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민들이 선정한 물품으로 벼 보리 등의 씨앗을 비롯한 항공사진필름 우황청심환 초중고교과서 버스토큰 등 600점을 보신각종 모양의 캡슐에 넣어 땅에 묻었다. 지하 15m에 묻힌 매장품은 400년 후인 2394년에 개봉되어 옛 사람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을 후손에게 보여주게 된다. -시립박물관(역사박물관) : 서울의 탄생과 성장과정, 그리고 발전상과 미래 를 보여주기 위한 상설공간으로 마련되었다. 1985년 가칭 서울특별시립박물 관 을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개관하기로 계획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건 립 부지가 경희궁터이다 보니 역사유적 훼손이라는 반대에 부딪쳐 8년간의 논 란을 거쳐 경희궁 숭정전 등 6개 전각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고 부지 동쪽에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1993년 12월 15일 기공, 4년 만 1997년 12월 31일 건물 완성, 다시 2001년 9월 29일 서울역사박물관 으 로 개칭하고, 2002년 5월 21일 개관하였다. <신명 나는 서울> 사업은 문화도시로 거듭 나는 서울 을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서울문화센터의 건립과 시민의 날 제정 등이 추진되었다. 서울특별시는 정도 600주년을 맞이하여 서울을 상징하는 상징물과 홍보를 위한 캐릭터를 제정하였으며, 서울600년 마스코트 다울이 4남매가 정해졌다. 또한 서울에 대한 긍지와 애착, 서울시민의 일체감을 조성할 목적으로 1994년 여러 차례 공청회를 거쳐 한양천도일인 음력 10월 28일을 양력으로 그대로 10 월 28일로 삼아 서울시민의 날 로 제정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1994년

36 월 28일 시민의 날 제정을 선포하고,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으나, 그해 10월 21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인하여 모두 취소되고 간단한 선포식 만 거행되었다. -자치구 축제의 활성화 : 1994년 이전에는 1979년 제기동 주민에 의한 선농 제, 1992년 성북구의 선잠제 등 전통제례와 명동축제, 인사동축제, 백제고분제 등 3개 향토문화축제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600주년을 맞이하여 <신명 나는 서울>이라는 기치 아래 향토문화축제가 불꽃같이 일어나 2000년에는 서울시내 거리 곳곳에서 1년 내내 열릴 정도로 늘어났다. 이들 향토축제는 지방자치제의 부활에 따른 민선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활동하는 자치시대를 맞이하여,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되돌아보고, 구민 상호간에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장이 되고 있다. 각 지역 축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강동구 선사문화축제, 종로구 인사전통문화축제, 성북구 선잠제, 동대문구 선농제, 도봉구 도봉서원향제, 관악구 관악산철쭉제, 양천구 백제군사 열병 및 진군행렬, 광진구 아차산성 작은예술제, 영등포구 청소년문화축제, 강남구 난 치병청소년돕기 한마음음악회, 광진구 광나루민속문화축제, 노원구 마들농요, 성동구 살곶이벌문화축제, 은평구 통일로파발제, 동작구 사육신추모문화제, 금 천구 정조 시흥백성과의 대화 장면 재현, 용산구 남이장군축제. (2) 전통문화 복원과 재현 한편 1994년에 들어 서울 정도600년 기념축제와 전통문화 복원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서울의 역사성을 되살리기 위한 사업에서 사라지거나 훼손된 문화 재를 복원하는 일 만큼이나 강조된 것이 전통문화의 복원과 재현이었다. 즉 사 라진 전통놀이나 전통예식 등 전통문화를 복원함으로써 서울의 정체성을 고취 하고, 우리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1994년 2월 24일 서울 정도 600년 기념 첫 행사로 한강다리밟기 가 진 행되었다. 조선시대 4대문 안에서 가장 성행했던 세시풍속인 청계천 답교놀이 를 70여년 만에 재현한 것이다. 이어 6월 5일부터 말일까지 서울의 형성과 성 장과정, 조선시대 생활상을 한 눈에 보여주는 전통축제가 잇따라 개최되었다. 서울의 뿌리와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정도제( 定 都 祭 ), 남촌제, 성저십리제, 경강제( 京 江 祭, 잠실지구 선착장), 마포나루굿 등이 그대로 복원 재현되었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복원된 사직대제( 社 稷 大 祭 )를 6월 4일에 서울

37 정도육백주년 기념으로 사직단에서 봉행하였다. 또 다채로운 궁중문화의 재현도 있었다. 정도 600년을 마무리하는 행사로 11 월 29일에는 조선조 한양입성 어가행렬 이 재현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왕 실과 문무백관을 대동하고 개성을 출발하여 한양으로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거리행렬로 형상화 하였다. 또 1894년 11월 갑오개혁으로 중단된 과거시험이 100년 만에 성균관에서 조 선시대 알성문과를 고증하여 복장에서 의식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재현되었다. 1994년 6월 11일 전국 233개 향교에서 선발된 100명의 유림과 일반 지원자 등 모두 210명이 응시하였다. 각본대로 부정행위를 하려고 쪽지를 숨겨들어 오다 가 몸수색에 걸려 퇴장당하는 등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재현은 정도 600주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1995년 5월 20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궁궐 수문장 교대식과 왕세자 행차 등이 재현되 었고,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1996년에도 경복궁에서 궁중의례가 다 채롭게 시현되었고, 운현궁 노락당에서는 130여 년 전에 있었던 고종과 명성 황후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이 가례의식은 왕비로서 책명을 받는 비수책의 ( 妃 受 冊 儀 )로 시작되어 어가행렬 궁중정재를 이어 국왕이 왕비를 맞는 친영의 ( 親 迎 儀 )로 구성되었다. 또 사직공원 뒤 황학정에서는 궁사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00여 년간 단 절되었던 장안골 편사놀이 가 재현되었다. 이러한 전통문화의 재현은 1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관광상품으 로 개발되어 행해지고 있다. 학생들에게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 고, 외국인들에게 우리문화의 유구함을 알릴 수 있는 장이 되고 있다. (3) 전시회 서울 정도 600년을 맞이하여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역사관련 전시 회가 풍성하게 개최되었다. 먼저 1993년 11월 29일부터 한양에서 서울까지 - 서울 600년 도시문화기행 이라는 주제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는데, 서울 의 성장과 발달사 580여 점을 보여주는 집중 기획 전시였다. 그 외 서울600년 문화답사, 영화로 보는 서울, 대한뉴스로 본 서 울, 서울풍경의 변천전(예술의 전당), 서울600년 도시문화기행전시회, 조선인쇄문화와 서울근대사진전(삼성출판박물관), 서울600년, 고궁현판

38 전, 한양여인 향취전, 서울600년, 새로운 탄생전(경희궁내 전시관), 서울600년, 무대미술 30년전(세종문화회관), 서울600년, 제20회 서울사 진대전(세종문화회관), 서울미술대전, 한국인의 얼굴전(한국민속박물 관), 시직원사진작품전-서울 서울사람, 정도육백년기념도서전(한국종합 전시장), 서울600년, 제7회 한국서예청년작가전, 서울600년, 문서와 삶 전(정도 이후 발간된 각종 시정문서 공개), 한국매듭작품전, 서울문화상 품전, 서예 큰잔치, 서울설화대전, 근대서울풍속화전 등 다채로운 전시회가 열렸다. (4) 기타 1) 베세토(BESETO) 연극축제- 한 중 일 삼국이 연극으로 서로 확인하고 교류하는 자리 2) 서울국제현대미술제- 주제 휴머니즘과 테크놀로지 로 회화 조각 판화 부분 40개국 초청작가 출품 94세계의 미술가 100인에 포함된 백남준 등 참가. 3) 1995년 미술의 해 이자 만화산업 진흥의 해 로 서울애니메이션센터 개관- 37개국 1,000여 점 등 총 25,000점 전시. 199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화영화 전문 영화제 97서울 에니메이션 엑스포(Anim Expo) 열 림. 4) 서울600년, 상하이심포니 초청공연 5) 정도육백년 국제민속 대축제- 88놀이마당 세종문화회관에서 11개 자매 도시 300여 명 참가 6) 서울600년 자매도시 친선축구대회 7) 서울학 국제심포지엄 8) <서울명소 600선> 발간 이렇게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사업>은 88서울올림픽 이후 높아진 서울특 별시의 국제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2천년 고도이자 조선왕조 정도 600년의 역사적 유구성을 바탕으로 문화적 측면에서 서울의 정체성을 확 립을 꾀하고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추진한 대규모 사업이었다. 따라서 서울의 역사 지리 문화를 종합한 서울연구를 체계화 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통경관

39 의 회복, 전통문화의 복원과 재현, 전통예술의 공연과 전시, 축제가 어우러진 거국적인 축제마당이었다. <참고문헌>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육백년사 연표(하),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서울공연예술사,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시민과 함께하는 서울 사진으로 보는 서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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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토론문 定 都 600년의 기억, 서울시의 역사와 기념사업 남 달 우(인하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 국가의 역사는, 일정한 영역에서 오랫동안 비슷한 문화와 사고를 지닌 사 람들의 인간 활동에 의하여 아주 조금씩 축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의 영역은 산이나 강 하천에 의하여 여러 지역으로 나누어지므로, 한 국가의 역 사는 지역사 연구가 축적이 된 토대위에서 이해가 될 때 논리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정치 경제사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사 등을 비롯한 제 분야는 반드시 지역사 연구가 종합이 될 때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인천은 인천 역사의 실체 를 규명하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인천지역의 단체가 주관이 된 많은 학술 발표회 및 전시회, 학술지 발 간, 시민을 위한 역사 교실, 인천 지역 답사 등 다양한 활동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정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지역사가 폐쇄적으로 경도 되는 위험성 또한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그 지방의 미풍 도덕 제도 체 제 문화에 대한 그 지역민들의 무조건적인 자부심은 편벽된 역사인식을 만들 어내는 것이다. 또한 역사 문화적인 모든 요소들이란 교류되거나 저절로 공유

42 하게 마련이므로, 지역사의 해석이나 인식에 있어서 독선이나 독단 그리고 부 정직( 不 正 直 )이나 당위성뿐만 아니라 미화( 美 化 )와 같은 것들은, 절대 그리고 엄격하게 피해야 한다. 2013년은 인천 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지 6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오늘의 학술발표 자리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마련된 것으로서, 인천 에 국한시키 지 않고 타 지역의 예를 통해 인천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함이다. 본인이 토론을 맡은 주제는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나각순 선생의 정 도 600년의 기억, 서울시의 역사와 기념사업 이다. 이 글은 첫째, 서울의 역 사를 선사시대부터 2013년까지 간략하게 정리하였으며 둘째, 서울 정도 600주 년을 기념한 행사의 내용과 이것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라는 특징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토론자가 공부가 짧아 이해하지 못하는 몇 가지 점을 말씀드리고 자 한다. 첫째, 서울은 삼각산을 진산( 鎭 山 )으로 하고 북악( 北 岳, 현재의 북한산)을 주산 ( 主 山 )으로 하였다는 기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의하면 삼각 산( 三 角 山 )은 화산( 華 山 )이라고도 하며, 신라 때에는 부아악( 負 兒 岳 )이라고 하 였다. 실은 경성( 京 城 )의 진산( 鎭 山 )이다 라고 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삼각산 과 북한산은 같은 산을 다르게 부른 것인데, 삼각산을 진산으로 보고, 북악을 주산으로 구분한 것이 어떠한 근거에서 인지 궁금하다. 둘째, 서울이라는 지명이 탄생되기 전, 타 지역에 비해 상당히 많은 지명 변천 (한성, 한산, 북한산주, 남평양, 신주, 남천주, 한산주, 한주, 한양군, 양주 등) 이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 군명조에 의하면 서울을 광릉( 廣 陵 ) 으로 불렀던 적이 있었다. 광릉( 廣 陵 )은 조선의 왕이나 왕비의 능호로도 사용된 적이 없는데( 光 陵 이라고 하면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을 말한다), 광릉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또 이 지명을 사용한 이 유가 무엇이었는가를 여쭙고자 한다

43 셋째, 서울 약사 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피면 주로 서울의 행정제도의 변화 상과 그에 따른 인구의 증가, 관할 지역의 확장 과정 등이다. 이는 역사의 진 행과정 안에서 타 지방 역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겠다. 즉 서울은 단지 수도 라는 특징 이외에 타 지역과의 차별성이나, 서울 자체의 특수성이 보 이지 않고 있다. 물론 수도 라는 것 자체가 타지역과의 비교에 있어 특수성 을 보이지만, 이 외에도 서울을 부각시킬 수 있는, 아니 한국적 특징을 보여주 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다른 지역의 역사 연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되 지 않을까 싶다. 필자의 고견을 듣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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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제3주제 미추홀 2000년 인천정명 600년, 인천의 역사적 성격 임 학 성 / 인하대학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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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미추홀 2000년 인천정명 600년, 인천의 역사적 성격 임 학 성 / 인하대학교 년 전의 인천사: 沸 流 의 남하와 彌 鄒 忽 ( 國 ) 건국 인천이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한국 最 古 의 官 撰 史 書 인 三 國 史 記 이다. 해당 기사는 아래와 같다. 三 國 史 記 (1145년) 百 濟 本 紀, 始 祖 溫 祚 王 條 : 백제의 시조 온조왕의 아버지 는 鄒 牟 인데 혹은 朱 蒙 이라고도 하였다. 北 扶 餘 에서 난을 피하여 卒 本 扶 餘 에 이르렀다. 부여 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 있었는데 주몽을 보고는 보통 사 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둘째 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주몽은 두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은 沸 流 라 하였고, 둘째 아들은 溫 祚 라 하였다. <중략>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 마침내 烏 干 馬 黎 등 열 명의 신하와 더불어 남쪽으로 갔는데 백성 들이 따르는 자가 많았다. 그들은 드디어 漢 山 에 이르러 負 兒 嶽 에 올라가 살 만한 곳을 바라보았다. 비류가 바닷가에 살고자 하니 열 명의 신하가 간하였 다. 이 강 남쪽의 땅은 북쪽으로는 漢 水 를 띠처럼 띠고 있고, 동쪽으로는 높

48 은 산을 의지하였으며, 남쪽으로는 비옥한 벌판을 바라보고, 서쪽으로는 큰 바 다에 막혔으니 이렇게 하늘이 내려 준 험준함과 지세의 이점은 얻기 어려운 형세입니다. 여기에 도읍을 세우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비 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을 나누어 彌 鄒 忽 로 가서 살았다. 온조는 강 남쪽 慰 禮 城 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좌로 삼아 국호를 十 濟 라 하였다. 이 때가 前 漢 成 帝 鴻 嘉 3년(B.C.18-인용자 註 )이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 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어서 慰 禮 에 돌아와 보니 도읍은 안정되고 백 성들도 평안하므로 마침내 부끄러워하고 후회하다가 죽으니, 그의 신하와 백 성들은 모두 위례에 歸 附 하였다. 후에 내려 올 때에 百 姓 들이 즐겨 따랐다고 하여 국호를 百 濟 로 고쳤다. 이 기사에 따르면, 고구려에서 이주해온 주몽의 두 아들 중 형인 沸 流 의 집단(세력)이 바닷가에 도읍을 정하고 그 명칭을 彌 鄒 忽 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인 前 漢 鴻 嘉 3년, 즉 기원전 18년 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위 기사 내용만으로는 미추홀이 현재의 인천에 해당하는 지를 알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사료 地 理 志 부문에서 미추홀(즉, 매소홀)이 후대에 邵 城 (통일신라시대) 및 仁 州 (고려시대)로 개명되었음을 비정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인주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仁 川 으로 그 명칭을 변경 하게 된다. 三 國 史 記 地 理 志 邵 城 縣 條 :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買 召 忽 縣 이다. 景 德 王 (재위 742~765년-인용자 註 )이 (소성으로)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시대- 인용자 註 )은 仁 州 로 일명 慶 源 이다. 買 召 는 한편 彌 鄒 라고도 쓴다. 위에서 제시한 사료를 정리하면,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들인 沸 流 가 남 하하여 바닷가에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가서 B.C.18년에 彌 鄒 忽 國 을 세웠 으나 국가가 흥하지 않아 곧 몰락하였고, 후에 그 지역을 買 召 忽 (고구려 領 域 時 )이라 부르다가 신라 景 德 王 이후로는 邵 城,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는 慶 源, 仁 州 라 부르다가 조선시대 때 仁 川 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彌 鄒 忽 ( 國 ) = 仁 川 說 이 정설화 되었다. 그런데 위 삼국사기 온조왕조의 기사를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49 사실을 추단해 볼 수 있다. 첫째, 비류가 미추홀(인천)에 정착하고 온조가 위례에 정착하였다는 것은 이들이 각각 미추홀과 위례에서 小 國 을 세운 것을 의미한다. 둘째, 비류와 온조가 형제로 나오는 것은 두 세력(집단)이 초기에는 연맹을 형성한 것을 의미하며, 또 비류가 형으로 나오는 것은 초기에는 비류집단이 연 맹의 주도권을 잡은 것을 의미한다. 셋째, 비류가 죽자 미추홀국의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위례에 귀부하였다는 것은 초기의 연맹 관계가 깨지면서 위례 세력(온조 집단)이 미추홀 세력(비류 집단)을 병합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비류 집단과 온조 집단을 대척으로 보면서(특히 漢 水 쪽에 도 읍을 정하자는 신하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비류가 바닷가에 도읍을 정했다는 내용이 그러하다), 결국 승자 온조를 백제의 始 祖 로 간주하는 이른바 온조백 제 정통설로 자리 잡았다. 반면, 삼국사기 온조왕조의 위 기사에 이어 기록된 다음 사료는 기존의 온조백제 정통설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조 沸 流 王 의 아버지는 優 台 로 북부여왕 解 夫 婁 의 庶 孫 이었고, 어머니는 召 西 奴 로 졸본 사람 延 陀 勃 의 딸이었다. 소서 노는 처음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큰 아들은 비류라 하였고, 둘째는 온조라 하였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부 여에서 용납되지 못하자 前 漢 建 昭 2년(B.C.37-인용자 註 ) 봄 2월에 남쪽으로 도망하여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였으며, 소서노 를 맞아들여 왕비로 삼았다. 주몽은 그녀가 나라를 창업하는 데 잘 도와주었 기 때문에 총애하고 대접하는 것이 특히 후하였고, 비류 등을 자기 자식처럼 대하였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禮 氏 에게서 낳은 아들 孺 留 가 오자 그를 태 자로 삼았고, 왕위를 잇기에 이르렀다. 이에 비류가 동생 온조에게 말하기를 처음 대왕께서 부여의 난을 피하여 이곳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 우리 어머 니가 가산을 내주어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위업을 도와주었으니, 어머니의 조 력과 공로가 많았다. 그러나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나라가 유류에게 돌아갔다. 우리가 공연히 여기에 있으면서 쓸모없는 사람같이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50 것 보다는, 차라리 어머님을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살 곳을 선택하여 별도로 도읍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 고 하고, 마침내 그의 아우와 함께 무리를 이끌 고 浿 水 와 帶 水 를 건너 彌 鄒 忽 에 와서 살았다고 한다. <중략> 어느 주장 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즉, 위 기사에서는 비류와 온조 두 집단 간의 연맹 및 대척 사실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온조 집단의 존재(세력)는 미미하여 드러나지 않고 있다. 뿐 만 아니라 비류를 백제의 시조로 표출시키고 있다. 바로 비류백제 說 인데, 현재 학계에서는 이 설을 正 史 가 아닌 野 史 로 인식하고 있다 년 전의 인천사: 仁 川 定 名 2000년 전 미추홀 로 시작된 인천이 仁 川 으로 定 名 된 시기는 조선 시대 太 宗 13년(1413)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世 宗 實 錄 地 理 志 의 경기도 仁 川 郡 條 에서 찾을 수 있다. 인천군은 본래 고구려의 買 召 忽 縣 인데 혹은 彌 趨 忽, 慶 原 買 召 라고도 한다. 신라가 邵 城 으로 고쳐서 栗 津 郡 (현, 과천-인용자 註 )의 領 縣 으로 삼았고, 고려 顯 宗 무오년(1018년-인용자 註 )에 樹 州 (현, 부평-인용자 註 )의 任 內 로 붙였다 가, 肅 宗 때에 이르러 皇 妣 仁 睿 王 后 李 氏 의 內 鄕 이라 하여 慶 源 郡 으로 승격 했고, 仁 宗 때에는 皇 妣 順 德 王 后 李 氏 의 內 鄕 이라 하여 知 仁 州 事 로 승격했다. 恭 讓 王 3년 신미년(1391년-인용자 註 )에 慶 源 府 로 승격했다. 조선 太 祖 원년 임신년(1392년-인용자 註 )에 옛이름인 仁 州 로 복구했다가, 太 宗 계사년(1413년 -인용자 註 )에 규정에 따라 仁 川 郡 으로 고쳤다. 위 기사에서 언급한 규정( 例 )이 무엇이었는 지는 太 宗 實 錄 권 26, 13년 10월 신유(15일)조에서 확인된다

51 각도 각 고을의 이름을 고쳤다. 임금이 河 崙 에게 이르기를, 全 州 를 이제 完 山 府 라고 고치고서도 오히려 전라도 라고 칭하고, 慶 州 를 이제 鷄 林 府 라 고 고치고서도 오히려 경상도 라고 칭하니, 고치는 것이 마땅하겠다 하니, 河 崙 이 말하기를, 유독 이 곳만이 아니라, 東 北 面 과 西 北 面 도 또한 이름을 고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옳도다 하였다. 드 디어 완산을 다시 전주 라고 칭하고, 계림을 다시 경주 라고 칭하고, 서 북면을 平 安 道 로 하고, 동북면을 永 吉 道 로 하였으니, 平 壤 과 安 州, 永 興 과 吉 州 가 界 首 官 이기 때문이다. 또 각 도의 單 府 고을을 都 護 府 로 고치고, 監 務 를 縣 監 으로 고치고, 무릇 郡 縣 의 이름 가운데 州 字 를 띤 것은 모두 山 字 또는 川 字 로 고쳤으니, 寧 州 를 寧 山 으로 고치고, 衿 州 를 衿 川 으 로 고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 의 경기도 果 川 縣 및 경상도 梁 山 郡 의 기사에서도 그 규정을 읽을 수 있다. 果 川 縣 은 본래 고구려의 栗 木 郡 인데, 신라가 栗 津 郡 으로 고쳤고, 고려에서 果 州 로 고치어, <중략> 조선 태종 13년 계사에 例 에 의하여 果 川 縣 監 으로 고 쳤다. <중략> 대개 州 府 郡 縣 은 각기 등급이 있다. 國 初 에 고려의 옛 제도에 따라 知 官 으로써 州 로 일컬은 것이 있으니, 仁 州 槐 州 등이며, 監 務 官 으로써 州 로 일컬은 것이 있으니, 果 州 衿 州 등이다. 名 實 이 서로 혼동되어, 사람들이 식별하기 어려웠더니, 이에 이르러 지관과 감무관으로써 州 로 일컫 던 것을 모두 山 과 川 의 두 字 로써 대신하였다. 뒤에 대개 例 에 의하 여 某 山, 某 川 으로 고쳤다고 한 것은 모두 이 해의 일이다. 梁 山 郡 은 신라 문무왕 5년에 上 州 下 州 를 베어서 처음으로 歃 良 州 를 설치하 였는데, 경덕왕이 良 州 로 고쳐서 9 州 의 하나로 갖추었다. 고려 태조 23년 경 자에 梁 州 로 고치고, 顯 宗 무오에 防 禦 使 를 두었는데, 조선 태종 13년 계사에 例 에 의하여 梁 山 郡 으로 고쳤다. 이 해에 留 守 府 大 都 護 府 牧 등의 官 을 제 외한 州 字 를 가진 單 府 및 郡 縣 은 모두 山 과 川 으로 고쳤다

52 전국 지방의 행정 구역 명칭을 개정하면서 單 府, 즉 종2품관 고을에 해당되 지 않으면서도 지명에 州 字 를 가진 고을을 모두 山 字 나 川 字 로 고치게 했는데, 이로써 조선 太 祖 원년(1392)에 仁 州 로 復 名 된 인천이 州 字 대신 川 字 로 고쳐 졌던 것이다. 그러면 太 宗 13년의 규정이 적용되어 邑 號 가 개정된 군현의 현황은 어떠했 을까? 세종실록지리지 에 기록된 각 군현의 沿 革 을 토대로 그 현황을 정리한 것이 아래 <표>이다. 유형 道 名 州 山 型 <표> 태종 13년(1413) 改 名 邑 현황 (단위: 邑 數 ) 州 川 型 소계 기타 계 경기 충청 전라 경상 강원 황해 평안 함경 계 20(36.4%) 35(63.6%) 55(100%) 5 60 <참고> 1 州 山 (총 20 邑 ) 충청도(6 邑 ): 槐 山, 瑞 山, 牙 山, 寧 山 ( 改, 天 安 ), 竹 山, 韓 山 전라도(3 邑 ): 錦 山, 益 山, 珍 山 경상도(3 邑 ): 善 山, 梁 山, 蔚 山 황해도(2 邑 ): 鳳 山, 平 山 평안도(6 邑 ): 嘉 山, 郭 山, 雲 山, 麟 山, 慈 山, 鐵 山 2 州 川 (총 35 邑 ) 경기도(5 邑 ): 果 川, 衿 川, 漣 川, 仁 川, 抱 川 충청도(7 邑 ): 沔 川, 木 川, 舒 川, 沃 川, 林 川, 堤 川, 鎭 川

53 경상도(5 邑 ): 基 川, 榮 川, 永 川, 甫 川 ( 改, 醴 泉 ), 陜 川 강원도(2 邑 ): 春 川, 通 川 황해도(3 邑 ): 白 川, 信 川, 豐 川 평안도(10 邑 ): 价 川, 德 川, 博 川, 宣 川, 成 川, 隨 川, 肅 川, 順 川, 泰 川, 熙 川 함경도(3 邑 ): 端 川, 文 川, 宜 川 3 기타 (총 5 邑 ) 경기도(2 邑 ): 高 陽 ( 高 峯 + 德 陽 ), 龍 仁 ( 龍 駒 + 處 仁 ) 경상도(1 邑 ): 眞 寶 ( 甫 城 ) 함경도(2 邑 ): 高 原 ( 高 州 ), 定 平 ( 定 州 * 평안도 定 州 와 同 名 ) 전국적으로 읍호가 개명된 군현은 총 60개 고을인데, 이 가운데 州 字 를 가 지고 있어 山 字 로 개명된 고을이 20개, 川 字 로 개명된 고을이 35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해당 고을의 地 理 를 읽으면 山 字 와 川 字 로 개명된 고을의 차이를 발 견할 수 있다. 대체로 바다와 접했거나 큰 江 을 끼고 있는 경우는 川 字 를 붙였 고, 그렇지 않은 고을만 山 字 를 붙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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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토론문 미추홀 2000년 인천정명 600년, 인천의 역사적 성격 이 영 태(인천개항장연구소 연구위원) 발제문을 통해 인천이란 지명이 생성된 연원 및 변천과정에 대해서 일별할 수 있었습니다. 2000년 전의 인천사와 600년 전의 인천사(정명)를 전적에 기 대 잘 설명하셨습니다. 물론 다른 지역의 개명 과정 및 사례를 통해 인천의 정 명이 독자적으로 전개된 게 아니라 여타 지역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졌다는 것 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발제문의 제목에서 기대했던 부분이 등장하지 않아 몇 가지 문제제기 를 할까 합니다. 이것은 이 발표회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묻고 싶은 부분이기 도 할 것입니다. 첫째, 미추홀에서 인천으로 정명되는 과정에서, 공간의 영역이 바뀌거나 또 는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해당 공간에 대한 위상도 바뀌었을 텐데, 이에 대 한 고려를 해야 역사적 성격이 거칠게나마 드러나는 게 아닐지요? 예컨대 미 추홀에서 인천으로 변개되는 것을 적시한 데서 좀 더 나아가 해당 공간의 중

56 심지가 바뀌거나 그에 따른 공간의 위상이 달리 인식된 사례를 제시했으면 좋 았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문학산 기슭에 위치한 거점이 개항을 계기로 중구 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기존의 거점과 새로운 거점이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 것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는 데까지 진전돼야 할 것입니다. 둘째, 흔히 인천이란 공간을 제시할 때 인후지지 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 것이 양가적 의미로, 중요 거점도시이면서 동시에 홀대를 받아들여야 할 운명 적 표현으로 인식되기 싶습니다. 실제로 인천 관련 구전설화에서도 서울을 향 한 막연한 짝사랑, 서울을 향한 대답없는 메아리 를 확인할 수 있는바, 발 제자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참고로, 발제문의 <도표> 태종 13년 개명읍 현황과 관련하여, 개명된 군현을 총 60개로 산정했는데 원래 59개가 아닌지요?(이수건에 의거) 셋째, 정명 600년의 과정에서 독립된 여타지역이 인천이란 지명으로 한데 묶이기도 했습니다. 계양 강화 옹진 부평이 이에 해당합니다. 해당 지역들은 인천이란 지명으로 포괄돼 있지만 여전히 독특한 정체성( 色 )을 지니고 있습니 다. 광역화에 따른 필연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역성과 광역성을 조화롭게 혼용하여 나갈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발제자가 조선시대사를 전공했기에 조선시대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넷째, <인천 지명 연구의 동향과 과제>와 관련하여 사적인 생각을 진술하겠 습니다. 논거를 튼실하게 확보한 발표문을 통해, 지명 논의에서 단순히 심상이 나 억측에 기대 지명유래를 운운하는 향토사가(?)들에게 전문가의 참여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3.2 향후 지명 연구의 과제 에 전적으로 공감을 하지만, 새로운 명명, 지명 정책개발에 지명연구자가 참여 하여야 한다 는 명제를 염두에 두면 신도시의 도로명, 동명, 지하철명 등을 선정할 때, 전문가가 참여해야 할 당위마저 느끼게 됩니다

57 부 록 인천의 지명의 재발견 인천역사 6호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 2009)에서 발췌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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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일제 강점기 인천의 지명 실태 개항 직후의 전통 지명 개항 직후인 1896년, 조선은 지금까지 실시해 오던 부제( 府 制 )를 개정하여 수 도인 한성부를 제외하고 전국을 13도( 道 ), 1목( 牧 ), 9부( 府 ), 329군( 郡 )으로 개정하였다. 각 부와 군은 5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인천은 1등급 인천부( 仁 川 府 )였다. 당시 인천부의 면( 面 )과 동리( 洞 里 )는 다음과 같다. 부내면( 府 內 面 ) - 내동, 외동, 평동, 금곡리, 율목동, 용동, 만석동, 답동, 우 각동, 화촌동, 신창동, 화개동 다소면( 多 所 面 ) - 화도동, 수유동, 신촌리, 송림리, 송현동, 장천리, 독각리 원우이면( 遠 又 爾 面 ) - 옹암리, 묵암리, 동막리, 망해리, 척전리, 한진리, 함박 리, 대아도리, 소아도리, 치동, 옥동 주안면( 朱 雁 面 ) - 상십정리, 하십정리, 석촌리, 간촌리, 성리, 구월리, 지상리, 전자리 남촌면( 南 村 面 ) - 염촌, 냉정리, 능동, 논현리, 도림리, 오봉산, 고잔리, 사리 동, 여무실리, 제리동, 경신리 조동면( 鳥 洞 面 ) - 설래리, 곡촌리, 독곡리, 안락리, 음실리, 노상리, 수월리, 담방리, 동촌 서래리, 음상리, 하음리, 만의동 신개고면( 新 介 古 面 ) - 산정리, 후음리, 시산리, 안다리, 사동, 방곡리, 검암리, 행정리, 목하동, 재동 황등천면( 黃 等 川 面 ) - 목과면, 각하리, 중림리, 두길리, 계일리, 고공리, 구음 리, 내동, 풍동 풍 전반면( 田 反 面 ) - 양지리, 안혁리, 가대리, 매착리, 장락동, 도리현, 도두리, 신촌, 진촌, 강창리, 검의동, 율도리, 백전리, 육내리, 무 지천리

60 이포면( 梨 浦 面 ) - (동명 미상) 이 가운데 이포면 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인천도호부 조( 條 )에 남양접 자 관문 남거 일백리( 南 陽 接 自 官 門 南 距 一 百 里 ) 즉 인천도호부 청사가 있 는 관교동에서 남쪽으로 1백 리가 떨어진 남양( 華 城 郡 )과 접해 있다. 고 한 것으로 보아 그 권역이 지금의 경기도에 속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행정구역 개편 그 후 1914년 10월 조선총독부에 의해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그에 앞서 조 선총독부는 1911년 전국의 지명과 지지( 地 誌 ) 사항을 조사 정리하여 조선지 지자료 를 펴냈는데 이 자료에는 당시의 순우리말 지명과 한자 지명을 병기 하고 있어 주목된다. 조선지지자료 에 나타나 있는 순우리말 지명과 한자 지명을 보면 다음과 같다. -부내면( 府 內 面 ) 용동( 龍 洞 ), 외동( 外 洞 ), 내동( 內 洞 ), 평동( 平 洞 ), 화개동( 花 開 洞 ), 만석동 ( 萬 石 洞 ), 우각동( 牛 角 洞 ), 금곡동( 金 谷 洞 ), 율목동( 栗 木 洞 ) 신창동( 新 昌 洞 ), 화촌동( 花 村 洞 ), 답동( 畓 洞 ) -다소면( 多 所 面 ) 화동리( 禾 洞 里 ㆍ슉골), 옥정동( 玉 井 洞 ㆍ옥우물꼴), 비룡동( 飛 龍 洞 ㆍ비령이), 은행정( 銀 杏 亭 ㆍ은은졍이), 독정리( 讀 亭 里 ㆍ독졍이), 사미리( 士 美 里 ), 성촌 ( 城 村 ㆍ잿말), 양지지동( 陽 地 之 洞 ㆍ 양지겻), 충훈리( 忠 勳 里 ㆍ츔부), 송내촌 ( 松 內 村 ㆍ솔안말), 션앙당이, 도마리( 道 馬 里 ), 청대곡( 靑 岱 谷 ㆍ쳥대골), 월랑 촌( 月 朗 村 ㆍ달랑이), 여의리( 如 意 里 ㆍ여의실), 장천리( 長 川 里 ㆍ장사래), 신기 ( 新 基 ㆍ새터), 독각리( 獨 脚 里 ㆍ독갑다리), 송림리( 松 林 里 ), 매화지( 梅 花 址 ), 신촌( 新 村 ㆍ새말), 간촌( 間 村 ㆍ새꼴), 만취당( 晩 翠 堂 ), 송현리( 松 峴 里 ), 수문

61 통( 水 門 桶 ㆍ수문통거리), 화도리( 花 島 里 ), 수유리( 水 踰 里 ㆍ무넘이), 신촌리 ( 新 村 里 ㆍ새말), 션앙당이(한자명 미상), 약우물터(한자명 미상) -주안면( 朱 安 面 ) 전재동( 全 在 洞 ㆍ젼재울), 상십정리( 上 十 井 里 ㆍ웃말), 석암리( 石 巖 里 ㆍ석바 위), 하십정리( 下 十 井 里 ㆍ아래말), 성리( 城 里 ㆍ셩말), 구월리( 九 月 里 ), 석촌 ( 石 村 ㆍ돌말), 간촌( 間 村 ㆍ샛말) -구읍면( 舊 邑 面 ) 도장리( 道 章 里 ), 학산리( 鶴 山 里 ), 산성리( 山 城 里 ), 향교리( 鄕 校 里 ), 관청리 ( 官 廳 里 ), 승기리( 承 基 里 ), 학익리( 鶴 翊 里 ) -서면( 西 面 ) 신기( 新 基 ), 표산( 瓢 山 ), 마리( 麻 里 ), 늑현( 勒 峴 ), 경고지( 更 古 之 ), 간촌( 間 村 ), 부수지( 浮 水 之 ), 신촌( 新 村 ), 묵동( 墨 洞 ), 후곡( 後 谷 ), 내곡( 內 谷 ), 청 릉( 靑 陵 ), 야곡( 冶 谷 ), 가곡( 稼 谷 ), 동촌( 東 村 ), 척전( 尺 前 ), 동막( 東 幕 ), 옥 동( 玉 洞 ), 옹암( 瓮 岩 ), 한진( 漢 津 ), 대암( 大 岩 ) -남촌면( 南 村 面 ) 고잔리( 古 棧 里 ), 내동( 內 洞 ㆍ안말), 갈산현( 葛 山 峴 ㆍ갈뫼), 석정( 石 井 ㆍ돌우 물), 괴화동( 槐 花 洞 ㆍ괴얏말), 논현리( 論 峴 里 ㆍ논고개), 운봉( 雲 峰 ), 산후동 ( 山 後 洞 ㆍ산뒤), 동촌( 東 村 ㆍ동역), 신촌( 新 村 ㆍ새말), 수곡( 水 谷 ㆍ슉골), 이 무실( 伊 茂 室 ), 사리동( 沙 里 洞 ㆍ사리울), 도림리( 桃 林 里 ), 능곡( 陵 谷 ㆍ능꼴), 사리( 四 里 ), 일리( 一 里 ), 와우동( 臥 牛 洞 ㆍ원우꼴), 염촌( 鹽 村 ㆍ번말), 경신리 ( 慶 信 里 ), 냉정( 冷 井 ㆍ찬우물), 관곡( 官 谷 ㆍ관허꼴) -조동면( 鳥 洞 面 ) 수현( 水 峴 ㆍ무너미), 조곡( 鳥 谷 ㆍ샛골), 담방리( 淡 方 里 ㆍ담방이), 장자동( 壯

62 字 洞 ), 곡촌( 谷 村 ㆍ골말), 설내( 雪 乃 ), 운곡( 雲 谷 ㆍ음실), 연락동( 宴 樂 洞 ㆍ연 내골), 만의동( 晩 宜 洞 ㆍ만의골) -신현면( 新 峴 面 ㆍ새오개면) 산정리( 山 井 里 ㆍ산우물), 고잔( 高 棧 ), 다자동( 多 子 洞 ㆍ다자골), 죽원( 竹 院 ㆍ 다니), 방곡( 芳 谷 ㆍ방꼴), 사음리( 舍 音 里 ㆍ말음이), 국동( 局 洞 ㆍ국시랑), 포 동( 浦 洞 ㆍ포촌), 구곡( 鳩 谷 ㆍ구심이), 사곡( 寺 谷 ㆍ졀골), 임리( 林 里 ㆍ슈풀 이), 고기동( 古 基 洞 ㆍ여터골), 미산( 米 山 ㆍ살미), 한정( 寒 井 ㆍ찬우물), 검암 ( 儉 巖 ㆍ금바위), 은행정( 銀 杏 亭 ), 상기동( 上 基 洞 ㆍ우터골), 신촌( 新 村 ㆍ새 말), 사천장( 蛇 川 場 ㆍ뱀내장), 대야동( 大 也 洞 ㆍ댓골), 재궁곡( 齋 宮 谷 ㆍ재궁 골), 방아교( 方 牙 橋 ㆍ방아다리) -전반면( 田 反 面 ㆍ밧뒤면) 양지동( 陽 支 洞 ㆍ양지말), 송내동( 松 內 洞 ㆍ솔안말, 일명 길마재), 가대동( 家 岱 洞 ㆍ가대말), 장락동( 長 樂 洞 ㆍ장락골), 매착리( 梅 着 里 ), 신기촌( 新 基 村 ㆍ새터 말), 율동( 栗 洞 ㆍ밤배셤), 도두리( 道 頭 里 ㆍ도두머리), 강창리( 江 倉 里 ), 진촌 ( 陳 村 ㆍ진말), 검의리( 儉 義 里 ㆍ검월리), 도현리( 桃 峴 里 ㆍ도리재), 은행동( 銀 杏 洞 ㆍ일명 뭇지내), 중동( 中 洞 ), 신흥동( 新 興 洞 ), 능내동( 陵 內 洞 ) -황등천면( 黃 等 川 面 ㆍ누릿내면) 두곡( 杜 谷 ㆍ두무져리), 목과동( 木 果 洞 ㆍ모가울), 불아위( 佛 阿 尉 ), 중림( 重 林 ), 탄평( 炭 坪 ㆍ숫두루지), 식곡( 食 谷 ㆍ식골), 두길( 斗 吉 ), 어연( 魚 淵 ), 옥 련동( 玉 蓮 洞 ), 함박리( 咸 朴 里 ), 계일( 桂 日 ), 수로곡( 壽 老 谷 ), 구미( 九 美 ), 가 일( 佳 日 ), 건정리( 乾 井 里 ㆍ건쥬물), 고공리( 古 孔 里 ), 내곡( 內 谷 ㆍ안골), 후곡 ( 後 谷 ㆍ뒷골), 덕석곡( 德 石 谷 ㆍ덕셕골)

63 일본식 정명( 町 名 )의 등장 그러나 1914년 4월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해 부군면이 통합되어 인천부의 판도 는 종래 10개 면 가운데 부내면 전역과 다소면 일부만이 편입되고 나머지는 신설된 부천군에 흡수되었다. 이 때 경기도 고시 제8호에 의해 정해진 인천부 의 정ㆍ리( 町 里 ) 명칭이 대거 일본식으로 바뀌었다. 당시의 정ㆍ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곡리( 金 谷 里 ), 화평리( 花 平 里 ), 내리( 內 里 ), 용리( 龍 里 ), 외리( 外 里 ), 우각 리( 牛 角 里 ), 부도정( 敷 島 町 ), 도산정( 桃 山 町 ), 송림리( 松 林 里 ), 송현리( 松 峴 里 ), 율목리( 栗 木 里 ), 만석정( 萬 石 町 ), 사정( 寺 町 ), 산근정( 山 根 町 ), 용강정 ( 龍 岡 町 ), 신정( 新 町 ), 궁정( 宮 町 ), 빈정( 濱 町 ), 화정( 花 町 ), 신화수리( 新 花 水 里 ), 해안정( 海 岸 町 ), 본정( 本 町 ), 유정( 柳 町 ), 중정( 仲 町 ), 산수정( 山 手 町 ), 항정( 港 町 ), 지나정( 支 那 町 ), 화방정( 花 房 町 ), 송판정( 松 坂 町 ) 그 후인 1936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는 부천군 다주면과 문학면의 일부를 병 합하여 부역( 府 域 )을 확장하였다. 그 결과 인천부는 인구 10만 3백3명, 총면 적은 Km로 전보다 약 4배가 권역이 늘어나게 됐다. 이 때의 행정 구역은 본정( 本 町 ), 중정( 仲 町 ), 궁정( 宮 町 ), 욱정( 旭 町 ), 빈정 ( 濱 町 ), 해안정( 海 岸 町 ), 항정( 港 町 ), 산수정( 山 手 町 ), 산근정( 山 根 町 ), 만석 정( 萬 石 町 ), 화방정( 花 房 町 ), 송판정( 松 坂 町 ), 용강정( 龍 岡 町 ), 미생정( 彌 生 町 ), 도산정( 桃 山 町 ), 신정( 新 町 ), 화정( 花 町 ), 부도정( 敷 島 町 ), 유정( 柳 町 ), 율목정( 栗 木 町 ), 화평정( 花 平 町 ), 화수정( 花 水 町 ), 용운정( 龍 雲 町 ), 서경정 ( 西 京 町 ), 경정( 京 町 ), 창영정( 昌 榮 町 ), 금곡정( 金 谷 町 ), 송현정( 松 峴 町 ), 송 림정( 松 林 町 ), 앵정( 櫻 町 ), 대화정( 大 和 町 ), 일지출정( 日 之 出 町 ), 주안정( 朱 安 町 ), 학익정( 鶴 翼 町 ), 송도정( 松 島 町 ) 등이었다.<인천부세일반 > 이로써 인천부의 지명은 예로부터 전해오던 고유의 땅이름에 일본식 행정단위 명칭인 정( 町 ) 을 붙이거나 일본에서 흔히 사용해 오던 지명들을 그대로

64 차용한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게 되었다. 언어의 쇠말뚝 들을 박기 시작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천부사( 仁 川 府 史 ) 에서 일본인들조차 시가 지 전부를 우리 (일본)마을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중략) 우리 마을 이름을 명하는 것은 다소 온당치 못한 점이 있지만,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일반의 호 칭이 되기를 바란다. 며 자신들의 명명행위( 命 名 行 爲 )가 부당했음을 자인하 고 있었다. 일본색으로 바뀐 인천 지명 1940년 4월 1일, 인천부는 2차로 부역( 府 域 )을 확장했다. 당시 부천군 관할이 었던 서곶( 西 串 ), 문학( 文 鶴 ), 남동( 南 洞 ), 부내( 富 內 ) 등 4개 면이 편입되었 는데, 새로 확장된 면적은 Km, 인구는 171,000명으로 늘어났다. 이 때 편입된 지역의 정명( 町 名 )들은 일제가 얼마나 집요하게 식민지화를 획책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정명들은 과거와는 달리 더욱 왜색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학면( 文 鶴 面 ) 원정( 元 町 ㆍ관교리), 문학정( 文 鶴 町 ㆍ문학리), 무학정( 舞 鶴 町 ㆍ도장리), 청학 정( 靑 鶴 町 ㆍ청학리), 연수정( 延 壽 町 ㆍ연수리), 동춘정( 東 春 町 ㆍ동춘리), 목월 정( 木 越 町 ㆍ간석리), 정지정( 鄭 志 町 ㆍ구월리) -남동면( 南 洞 面 ) 만수정( 萬 壽 町 ㆍ만수리), 장수정( 長 壽 町 ㆍ장수리), 운연정( 雲 宴 町 ㆍ운연리), 낭속정( 浪 速 町 ㆍ서창리), 수정( 壽 町 ㆍ발산리), 신도산정( 新 桃 山 町 ㆍ도산리), 오보정( 五 寶 町 ㆍ와우리), 논현정( 論 峴 町 ㆍ논현리), 일향정( 日 向 町 ㆍ고잔리) -부내면( 富 內 面 ) 대도정( 大 島 町 ㆍ십정리), 소화정( 昭 和 町 ㆍ대정리), 백마정( 白 馬 町 ㆍ산곡리),

65 천상정( 川 上 町 ㆍ청천리), 서정( 曙 町 ㆍ효성리), 대정정( 大 正 町 ㆍ부평리), 작전 정( 鵲 田 町 ㆍ가현리), 동운정( 東 雲 町 ㆍ도두리), 삼립정( 三 笠 町 ㆍ후정리), 길야 정( 吉 野 町 ㆍ갈월리), 명치정( 明 治 町 ㆍ마분리), 향취정( 香 取 町 ㆍ항동리), 이등 정( 伊 藤 町 ㆍ구산리) -서곶면( 西 串 面 ) 천간정( 淺 間 町 ㆍ가좌리), 촌산정( 村 上 町 ㆍ대정리), 구수정( 久 水 町 ㆍ포리), 현 무정( 玄 武 町 ㆍ신현리), 천대전정( 千 代 田 町 ㆍ가정리), 일진정( 日 進 町 ㆍ심곡 리), 흑전정( 黑 田 町 ㆍ공촌리), 정상정( 井 上 町 ㆍ연희리), 이가정( 李 家 町 ㆍ고잔 리), 춘일정( 春 日 町 ㆍ시천리), 과생정( 瓜 生 町 ㆍ검암리), 운양정( 雲 揚 町 ㆍ백양 리) 이처럼 제1차, 제2차의 부역 확대에 따라 편입된 위 정명들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인천부의 지명으로서 존속하였는데, 특히 제2차 확대 때 편입된 지역의 정명( 町 名 )들은 군국주의적 성향이 특히 짙게 나타나 주목된다 년 4월 당시 사용되던 인천부의 정명 중 전통 지명을 제외한 것들을 유형별로 대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왕호( 王 號 ) 차용 - 명치정( 明 治 町 ㆍ부개동), 대정정( 大 正 町 ㆍ계산동), 소화정( 昭 和 町 ㆍ부평동) 공신명( 功 臣 名 ) 차용 -화방정( 花 房 町 ㆍ북성동), 이등정( 伊 藤 町 ㆍ구산동), 정상정( 井 上 町 ㆍ연희동) 무관명( 武 官 名 ) 차용 -대도정( 大 島 町 ㆍ십정동), 과생정( 瓜 生 町 ㆍ검암동), 목월정( 木 越 町 ㆍ간석동), 천상정( 川 上 町 ㆍ청천동), 촌상정( 村 上 町 ㆍ서곶 고잔리) 일정명( 日 町 名 ) 차용 -본정( 本 町 ㆍ중앙동), 중정( 仲 町 ㆍ관동), 산수정( 山 手 町 ㆍ송학동), 항정( 港 町

66 ㆍ항동), 빈정( 濱 町 ㆍ사동), 궁정( 宮 町 ㆍ신생동), 욱정( 旭 町 ㆍ답동), 유정( 柳 町 ㆍ유동), 도산정( 桃 山 町 ㆍ도원동), 미생정( 彌 生 町 ㆍ선린동), 송판정( 松 坂 町 ㆍ송월동), 용강정( 龍 岡 町 ㆍ인현동), 산근정( 山 根 町 ㆍ전동), 경정( 京 町 ㆍ경 동), 서경정( 西 京 町 ㆍ내동), 운용정( 雲 龍 町 ㆍ용동), 앵정( 櫻 町 ㆍ도화동), 일 지출정( 日 之 出 町 ㆍ용현동), 신도산정( 新 桃 山 町 ㆍ도림동), 일향정( 日 向 町 ㆍ고 잔동), 원정( 元 町 ㆍ관교동), 오보정( 五 寶 町 ㆍ남촌동), 백마정( 白 馬 町 ㆍ산곡 동), 향취정( 香 取 町 ㆍ일신동), 현무정( 玄 武 町 ㆍ신현동), 흑전정( 黑 田 町 ㆍ공촌 동) 군함명( 軍 艦 名 ) 차용 -운양정( 雲 揚 町 ㆍ백석동), 부도정( 敷 島 町 ㆍ선화동), 춘일정( 春 日 町 ㆍ시천동), 서정( 曙 町 ㆍ효성동), 길야정( 吉 野 町 ㆍ갈산동), 대화정( 大 和 町 ㆍ숭의동), 삼립 정( 三 笠 町 ㆍ삼산동), 천간정( 淺 間 町 ㆍ가좌동), 천대전정( 千 代 田 町 ㆍ가정동), 일진정( 日 進 町 ㆍ심곡동), 동운정( 東 雲 町 ㆍ서운동), 춘일정( 春 日 町 ㆍ시천동), 낭속정( 浪 速 町 ㆍ서창동), 송도정( 松 島 町 ㆍ옥련동) 일제 잔재 지명 말소해야 왕호나 공신의 이름을 차용해 정명으로 삼은 것은 내선일체( 內 鮮 一 體 )와 같은 관념의 동일선상에서 식민화 획책 저의를 드러낸 것이며, 청일ㆍ노일전쟁에 참여한 무장( 武 將 )이나 군함의 이름을 거침없이 정명( 町 名 )으로 삼은 것은 군 국주의 일본의 단말마를 그대로 드러낸 예로 판단된다. 특히 군함명 차용의 경우, 소위 운요호 사건 을 일으킨 운양호( 雲 揚 號 ) 를 위시해 청일ㆍ노일전쟁에 참전해 승리한 전함, 순양함, 장갑순양함, 구축함, 수뢰정 등을 망라하고 있는데 이는 인천항을 모항처럼 드나들던 일본 제국주의 군함들의 전승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는 군국 일본이 자랑해 오던 삼경함( 三 景 艦 ) 도 포함되어 있다. 삼경( 三 景 ) 이란 일본의 3대 절경 즉 미야기 현의 송도( 松 島 ), 교토의 교 립( 橋 立 ), 히로시마의 엄도( 嚴 島 )를 가리키는데 일본 해군은 그 이름을 딴 순 양함 3척을 취항시켜 소위 3경함 이라 이르며 해군의 자랑으로 삼아왔다. 3경함 가운데 한 척인 송도함 은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

67 들던 4천 톤급 순양함이었는데 청일전쟁 때는 연합함대 기함으로, 노일전쟁 때는 제3함대 제5전대로 참전한 바 있다. 그러다가 1908년 4월 대만 마공( 馬 公 ) 지역에서 선내 폭약고 폭발로 침몰, 370명 중 270명이 사망했다. 일제는 그 후 나가사키 사세보 해군기지에 이들의 순난자의 비 가 세웠다. 송도호 는 침몰한 지 28년이 되는 1936년, 인천부 문학면 옥련리의 정명 ( 町 名 )으로 부활하였다. 일찍이 인천에 송도( 松 島 ) 란 이름의 섬이 없었으 며, 육지 한가운데의 지역을 소나무 섬 이라 칭한 얼토당토않은 명명( 命 名 )은 국군주의 일본이 전승을 과시하는 한편 무력의 위세를 암암리에 과시하 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정명에 군함의 이름을 14개나 차용한 것이 바로 그러 한 정황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23일 인천의 유일한 국문신문 대중일보 는 8ㆍ 15해방 이후에도 아직 거리에는 가증스럽고 더러운 왜색이 일소되지 못하고 국치적인 정명( 町 名 )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대단히 한심스러운 일이었 다. 며 이에 따라 시 당국은 정명개정위원회를 조직하고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정( 町 ) 을 동( 洞 ) 으로 고치고, 정목( 町 目 ) 을 가( 街 ) 로 개칭하기로 하고 이를 1946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비로소 우리 고유의 동명(동명)을 찾게 됐는데, 명치정( 明 治 町 )은 부 개동, 대정정( 大 正 町 )은 계산동, 소화정( 昭 和 町 )은 부평동, 이등정( 伊 藤 町 )은 구산동, 대도정( 大 島 町 )은 십정동, 목월정( 木 越 町 )은 간석동, 산수정( 山 手 町 ) 은 송학동, 미생정( 彌 生 町 )은 선린동, 운양정( 雲 揚 町 )은 백석동, 춘일정( 春 日 町 )은 시천동, 길야정( 吉 野 町 )은 갈산동, 삼립정( 三 笠 町 )은 삼산동, 천간정 ( 淺 間 町 )은 가좌동, 천대전정( 千 代 田 町 )은 가정동, 낭속정( 浪 速 町 )은 서창동, 송도정( 松 島 町 )은 옥련동 등으로 환원되었다. 일제강점기 35년사는 이렇듯 땅이름의 수난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 근 인천시연수구지명위원회가 이 같은 지명사( 地 名 史 )를 모른 채 관할 신도시 의 법정동 명칭을 송도동( 松 島 洞 ) 이라 한 것은 역사의 시계바늘을 되돌려 놓은 몽매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1) 역사상 인천광역시 관내에는 송도( 松 島 ) 란 이름의 섬이 없 었고, (2) 신도시 지역은 섬이 아닌 동시에 소나무와도 무관하므로 송도( 松 島 ㆍ소나무 섬) 일 수 없으며 (3) 1936년 일본이 승전을 기려 군함 명칭을 육지의 정명( 町 名 )에 사용한 14개 정명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이를 파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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