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아웃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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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정 金 井 은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사보 寺 報 로 범어사의 소식 및 교계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2 금정8경 金 井 八 景 목 차 의상대 義 湘 臺 사진. 석공 스님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가 절벽으로 솟아 있는 바위 위에서 동해를 바라보며 국태민안을 기구했던 신령스러운 자리가 의상대 義 湘 臺 이며 이곳에서 보이는 절경이 바로 금정8경 金 井 八 景 중 하나로 꼽히는 의상망해 義 湘 望 海 다. 범어사를 창건한 의상 대사 영정 4 처염상정 處 染 常 淨 선문촬요 혈맥론 禪 門 撮 要 血 脈 論 1_ 금정총림 범어사 조실 지유 대종사 8 범어사계 梵 魚 四 季 _ 석공 스님 10 법향의 숲 올바른 종교생활을 위하여_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14 특집1_ 금어연 金 魚 輦 범천의 물고기 금어, 불보살을 싣는 연 輦 으로 날다 금어연 金 魚 輦 제작 총도감 명천 스님_ 천미희 20 1_ 선 禪 범어사 금어선원 유나 인각 스님의 선 禪 이야기 2 불행에 빠진 세상을 깨우는 큰 울림, 선 禪 _ 편집부 말사순례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다, 신라시대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 仙 岩 寺 _ 편집부 절집 밥상 건강한 제철 봄나물, 두릅, 응개전_ 범어사 대성암 특집2_ 범어사 전통등축제 불기 2557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등불 의 의미를 찾아서 금정 金 井 에 내리는 부처님의 자비광명 慈 悲 光 明 등불로 빛나다_ 편집부 2_ 연꽃등을 닮은 범어사의 아름다운 얼굴들을 만나다_ 편집부 1_ 특별기획_ 하정은 한반도평화대회운영위원회, 현충원 참배 현장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 기리며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2_ 범어사 한반도평화기원 수륙재 현장을 가다 3_ 범어사 한반도평화기원 보살계 수계산림 보살이 열반한 도깨비 돼서는 안 된다 우리의 스승, 동산 대종사 2 미륵암 회주 백운 스님_ 천미희 특별기고 혜능을 통해 바라본 오늘의 한국 불교_ 신준봉 문 없는 문을 열다_ 영축총림 통도사 보광선원 보궁 속 보물, 여여한 수행의 향기 영축산을 장엄하다_ 주영미 선우 善 友 부산광역시 공무원불자연합회 김형양 회장_ 편집부 범어사 성보 聖 寶 범어사 삼층석탑 梵 魚 寺 三 層 石 塔 _ 범어사 성보박물관 63 행복한 나눔 금정청소년수련관 프로그램 Bravo My Life! 64 금정소식 및 알림마당

3 처염상정 處 染 常 淨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부처님을 고맙게 생각합니까? 부처님이 우리 보다 훨씬 뛰어나고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에게는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고통의 내용을 보면 재물, 명예, 권력, 자식 등에 대한 걱정이 많지 만 결국 자기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자신을 둘러싼 번뇌 망상으로 인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통은 결국 지혜의 부족 때문에 괴로움이 일어난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세속의 학문과 지식, 아는 것이 많은 그런 지식 분별이 아닙니다. 자기 마음속의 좋고 나쁨, 취사분별 取 捨 分 別 은 마 음이 산란하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지혜는 모든 산란함이 사라진 속에서 드러나는 밝은 지혜 깨달음의 지 智, 반야의 지혜 를 말합니다. 다만 자기가 부딪치는 면에만 집착하다 보니 이것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자기 뜻대로 마음에 드는 환경만 자기의 것이라 하고 싶지만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도 있고 나쁜 것이 있는가 하면 온갖 천차만별이 일어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러한 천차만별의 환경에 부딪치면서도 그것에 말려들어 가지 않으면서 적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고통의 내용이 무엇인가 깊이 살펴보면 처음에는 외부 환경에 그 원인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 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결코 하늘에서 떨어져 괴로움이 내 마음속으로 온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서 온 것도 아닙니다. 결국은 무엇입니까?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난 생각이라는 것은 스스로 일으킨 것이니 자신 이 처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법문 전에 했던 입정이라는 것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깨달아야겠다, 진리를 구해야겠다, 부처님을 만나야겠다 등, 이것은 이미 생각이 일어난 감정에 지나지 않 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자세가 입정, 그 전의 선과 악 등의 모든 감정이 있 을 수 없는 자리이며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 그 자리로 돌아가면 그만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로 그 자 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고 일체 중생이 똑같이 본래심을 갖추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본래심에 돌아가는 것이 입정입니다. 그 자리는 어떤 말과 생각이 필요 없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불심, 나의 본래 마 음자리에 돌아가도록 가르쳐 준 것이 부처님의 말씀, 즉 불설 佛 說, 모든 경전의 설이라는 것입니다. 입정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잠시 자기 마음을 돌이켜보면서 나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었구나. 를 깨달았을 때 여 태 헐떡거리고 있던 모든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선문촬요 혈맥론 1 禪 門 撮 要 血 脈 論 금정총림 범어사 조실 지유 대종사 법회 시작 전 마음을 가다듬는 뜻으로 죽비 소리에 맞추어 잠시 입정 入 定 을 했는 데 어느 법회 때마다 의례적으로 죽비나 목탁 소리에 맞추어 입정이라는 형식적인 자세를 취합니다만 입정은 형식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상생활에서 보고 듣고 외부 환경에 부딪치면서 자신도 모르게 좋고 나쁘고 화나고 슬프고 근심하고 즐거워하 는 모든 감정과 생각들이 항상 우리 마음속을 앞뒤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한 사람 의 고통, 괴로움이라 하는 것은 결국 무엇입니까?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소 화시키거나 처리하지 못해서 마음을 가리고 있다 보니 답답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오늘 선문촬요 중의 혈맥론을 강 講 하는 의식이 베풀어졌는데 선문촬요 혈맥론은 달마 대사께서 말씀하 신 것입니다. 혹자는 달마 대사께서 직접 설하셨겠나. 라고도 합니다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달 마 대사께서 이런 글을 지어서 설할 리가 만무하고 달마 대사께서 살아계실 때 모셨던 제자들이 스승께 들 었던 법문을 달마 대사의 뜻이고 말씀하신 것이니 글로 엮어서 책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선문촬요의 목판이 우리나라 사찰 중 오직 범어사에만 있는 것은 아주 뜻이 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종 역사로 볼 때 과거 의 경허 스님이 선문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그중에 가장 긴요한 것만 뽑아서 책으로 묶은 것이 선문촬요라 고 하셨습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를 빌려 선문촬요를 설명하라 하셔서 이 자리에 앉은 것인데 지금부터 약 30년 이전에 처음으로 보제루에서 대중의 요청에 의해 선문촬요 강 講 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나이가 80 이 넘었으니 새삼스럽게 30년 전 옛 생각이 떠오릅니다. 4 5

4 처염상정 處 染 常 淨 가 나에게 질문한 것이 곧 바로 너의 마음이요, 내가 너에게 답한 것이 바로 곧 나의 마음이다. 불교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것입니다. 너무 간단하고 쉽다보니 뒤집어 제일 어려운 것이 된 것입니다. 너무 가깝다보니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약무심 吾 若 無 心 이면 인하해답여 因 何 解 答 汝 하며 나에게 만일 마음이 없다고 하면 무엇을 일러 너에게 답을 할 줄 알며. 이런 나무토막이나 돌멩이들에게 물어보면 답을 합니까?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물 어도 답을 할 줄 모릅니다. 인간은 목석과 다릅니다. 소리가 나면 들을 줄 알고, 빛이 있으면 빛인 줄 알고, 찬 것을 느낄 줄 아는 이놈 이것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질문을 하는구나, 뭐라고 답을 해야겠다. 는 마음 을 갖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이 없다면 질문도 답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약무심 汝 若 無 心 이면 인하해문오 因 何 解 問 吾 리오. 그대에게 만약 마음이 없다고 하면 무엇으로 인해서 알겠느냐? 문오 問 吾 가 즉시여심 卽 是 汝 心 이니라. 나에게 질문한 바로 이것이 바로 너의 마음이다. 마음 이라고 이름 이제 교재를 보시면 초조 初 祖 달마 대사 達 磨 大 師 설 說 첫 구절이 심외무불성 心 外 無 佛 性 이라. 마음 밖에 불성이 없다. 라고 했습니다. 달마 대사가 어떤 분이냐 하면 남인도 향지왕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한때 달마 대사의 스승이 될 반야다라 존자가 여러 인연으로 향지왕을 찾아오셨어요. 달마 대사의 부왕이 선지 식이 오셨으니 공양을 올리고 왕자들을 불러 인사를 드리게 하였는데, 그때 왕이 존자에게 무가애보배(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 구슬을 바쳤어요. 그러자 존자가 이 보배 구슬을 들고 왕자들에게 물었어요. 무가애보배 가 무엇이냐? 각자 나름대로 답을 했지요. 그때 막내인 보리다라가 그것은 보배가 아닙니다. 세속에서는 그것을 보배라 하지만 참된 보배는 마음의 보배입니다. 라고 짧게 대답을 했어요. 반야다라 존자가 깜짝 놀 라면서 장차 자기의 제자가 되도록 한 인연이 있었고, 보리다라 라고 한 이름을 보리달마 라고 했습니다. 삼계혼기 三 界 混 起 가 동귀일심 同 歸 一 心 이니 전불후불 前 佛 後 佛 이 이심전심 以 心 傳 心 하시고 불립문자 不 立 文 字 하시니라. 삼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의 본래 한 마음이 미하고, 미한 생각으로 윤회하고 있 는 모습이 세 가지로 구분된 것이 삼계입니다. 탐진치 즉 탐내는 욕심이 욕계가 되고 성내는 진심 嗔 心 이 색 계가 되고 어리석은 치심 癡 心 이 무색계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이 탐진치 삼독입 니다. 그런 복잡한 삼계라고 할지라도 똑같이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 입니까? 역시 한마음에서 일어나서 한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의 전불, 미래의 후불도 마 음으로부터 전하시고 불립문자를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불교의 골자가 많이 외우거나 생각하거나 그런 것 이 아니고 말로써 설명할 수 없고 생각으로 따질 수 없는 마음으로 열어 보인 것입니다. 이심전심 이 자리 는 아무 말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문왈 問 曰, 약불입문자 若 不 立 文 字 인댄 이하위심 以 何 爲 心 이닛고. 물어 가로되 만약 문자를 내세우지 않는 다고 하면 무엇으로써 마음이라고 하겠습니까? 마음이라고 말이라도 해 주어야 마음을 알 것인데 그런 마 음이라는 이름도 내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마음이라고 알겠습니까? 답왈 答 曰, 여문오 汝 問 吾 가 즉시여심 卽 是 卽 汝 心 이오 오답여 吾 答 汝 가 즉시오심 卽 是 吾 心 이니 답에 가로되 네 을 붙인다고 해서 마음이 되고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마음은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종무시광대겁이래 從 無 始 曠 大 劫 以 來 로 내지시위운동 乃 至 施 爲 運 動 이 일체시중 一 切 時 中 과 일체처소 一 切 處 所 가 개시여 皆 是 汝 의 본심 本 心 이며, 개시여 皆 是 汝 의 본불 本 佛 이니 이 마음이 언제부터 시작했느냐? 지금 살고 있 는 자기중심으로 보면, 나이 50이라는 것이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 세상에 나온 때부터 50년이라는 것입 니다. 그러면 50년 전에는 나는 어디에 있었느냐? 엄마 뱃속에 있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느냐? 틀림없이 뱃 속에 있었는데, 여러분은 기억이 납니까? 우리는 기억이 없으니까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이라는 것이 어제, 그저께의 연결, 일 년 십 년 천 년, 만 년 전. 그 맨 처음과 끝이 언제입니 까? 맨 처음이 있습니까? 누군가가 이때부터 시작했다. 했을 때 그 전을 따지기 시작하면 불교에서는 시 작이 없다. 시작이 없는 것이 장차 미래, 수억만 년 후에도 없으니 역시 끝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시무종.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있다고 하면 끝없는 과거로부터 살아온 것인데, 인간의 몸인 이 육신이 생로병사를 하지만, 이 육신은 내가 아닙니다. 육신 속의 참나를 통해서 보고 듣고 냄새를 맡으며 주위 환경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식하고 있는 이 주인공은 육신이 왔다고 해서 같이 나고, 몸이 사라졌다고 해서 같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불생 불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득한 끝없는 과거로부터 내지 일상생활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운동 運 動 이라 했습니다. 일체시중 낮이나 밤이나, 일체처소 산, 들, 바다, 마을 등 장소를 막론하고 이것이 모두 나의 근본마음이 라는 것입니다. 산에 있는 것도 나요, 웃을 때도 괴로울 때도 자신입니다. 모든 행동, 하고 있는 것 전체가 자기 자신 입니다. 일체처 일체심, 이것이 근본 마음이며 이것이 너의 근본 부처님입니다. 부처라 하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본마음 자리를 부처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범어사 조실 지유 대종사의 선문촬요 혈맥론 법문을 편집부에서 정리하였습니다. 6 C 석공 스님 7

5 범어사계 梵魚四季 등불이 타오른다. 반야般若의 빛이 온 시방세계十方世界를 환히 비추고 있다. 어둠은 오직 밝은 빛으로만 물리칠 수 있나니 다만 그대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의 미움을 물리칠 수 있느니라. 법구경 사진. 석공 스님 8 9

6 법향의 숲 올바른 종교생활을 위하여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우리는 불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신행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심오한 불법이 구태의연하고 기 복적인 종교의례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오늘날 불교신문과 불교TV 등 매스컴 덕분에 불교에 대한 개념이나 체계가 세워지고 있습니 다.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신도들이 허망한 믿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종교를 믿으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참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바로 알아서 자기 발전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불보살 전에 소원성 취를 비는 수준의 기복적인 신행생활에 집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것에 빠져서 그것이 종교생활의 전부인 줄 알고 한평생을 허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시야가 좁은 사람은 자기가 믿는 것이 옳다고 고집하기 때문에 넓디넓은 진리의 세계에 대해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분은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을 아무리 객관적으로 쉽게 얘기를 해줘도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천인사 天 人 師 이신 부처 님의 제자로서 바른 신행생활을 하려면 보다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까지 이해할 수 있어 야 하며 나아가서는 소화하지 못할 종교가 없을 정도로 툭 터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이 뚜렷하고 바른 가치관을 지닌 명분이 섰을 때 아!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신행생활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구나. 앞으로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믿어 들어가야 참으로 올바른 믿음과 실천을 통하여 분명한 결과를 볼 수 있겠구나. 그리고 우리 불교의 진정한 가르침은 바로 깨달음이구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까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스스로 깨닫는다는 것은 힘들겠지만 먼저 진리의 길을 밝힌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받는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깨달음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는 발심을 내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의 본령이기 때문 입니다. 다 드러났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진리는 모양이 없다고 했습니다. 모양이 없기 때문에 가장 크고 또한 가장 작다고 했습니다. 그리 고 모양이 없기 때문에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살아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진 리를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체득해야 됩니다

7 법향의 숲 그렇지 않으면 부처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우상인 불상 佛 像 이 부처인 줄 잘못 아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됩니다. 불상은 나무나 청동이나 흙으로 만든 우 상입니다. 그렇지만 우상을 믿게 만드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 라고 불상을 만들어 놓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상은 그것을 통해서 불교에 대 한 믿음이 상을 여읜 차원으로까지 점진적으로 나아가게 해주기 위해서 필요한 하나의 수단인 것입니다. 비유하면 일반적으로 초등학교 수준의 학생들을 바로 중학교로 올라가라고 하면 뭐가 뭔지 모르고 어리둥절해서 더 어리석어지겠지요.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나면 중학교 수준을 잘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것 우리는 불교를 믿는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신행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심오한 불법이 구태의연하고 기복적인 종교의례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은 종교를 올바르게 믿게 하는 수단, 즉 방편입니다. 실제 부처님은 모양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모양도 없는 허공 같은 것을 믿 으라고 한다면 믿겠습니까? 우상을 갖춰 놓고 이것이 부처다. 이 불상에게 귀의 하고 존경하고 예배하면 네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 라고 하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사다리를 통해 올라갈 수 있도록 시설해 놓은 것 입니다. 그래서 방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비유하면 쇳덩어리 들고 가다가 금덩 어리를 보게 된다면 쇳덩어리 버리고 금덩어리를 들고 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진실된 불자라면 수준 높은 차원의 불교를 배우고 실천해야 됩 니다. 믿는 목적이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에 회의가 생기지 않고 흔들림이 없습니 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것 같으면 자꾸 흔들리고 좌절하게 됩니다. 10년 이상 믿은 사람이 더 이상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조금 더 차원 높은 얘기 를 해주면 불교가 아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닌데 스스 로 회의가 일어나서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신심 내서 남보다 부지런히 오래 믿으면서도 초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 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믿어 온 신도들에게 그렇게 믿지 말고 이렇게 믿으십시오. 하 고 충고하면 여태까지 믿어 왔던 미련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들어보고 이치에 맞으면 어리석은 믿음은 그만 믿고 올바르게 믿어야 되는데도 고집이 있어서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불 자들은 좀 더 높은 차원의 불법에 대해 눈을 뜨는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 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복으로부터 벗어나 수행을 중심으로 하는 신행생활을 열 어가야 할 것입니다

8 특집1_ 금어연 金 魚 輦 연은 원래 왕이 거동할 때 타고 다니던 가마를 말하는데 불교에서 사용하는 연은 불보살의 연대 蓮 臺 를 상징하여 만든 것으로 부처님 진신 사리나 불경, 불구, 영가 위패 등을 이동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각 사찰에 연이 여 러 개 남아 있기는 하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드물다. 연을 재현하거나 복원해 낸 경우 도 없다. 그래서 범어사의 금어연 제작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범어사에서 제작되는 금어 연은 기존 연을 복원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 니다. 전통적인 연의 기록을 바탕으로 명천 스 님의 설계, 디자인, 각 분야 장인의 손길이 만 나 함께 만들어내는 순수 창작연이다. 이름도 새롭게 명명했다. 범천의 물고기 금어는 그 이 름부터 풍성한 이야기를 지닌다. 명 천 스 님 금 어 연 金 魚 輦 제 작 총 도 감 2013년 범어사, 다보탑 조성에 버금갈 만한 불사가 진행 중이다. 금어연 金 魚 輦 제작이 그것이다. 명천 스 님을 총도감으로 24개 분야 최고의 장인들이 참여해 진행되고 있는 금어연에는 실눈을 뜨고 자세히 들여 다보고 빈약한 상상력을 총동원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경전을 읽다 보면 나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우리가 본 적이 없는 진리의 세계, 마음의 실 상을 묘사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음의 문장을 읽으면서 그려지는 바를 상상해 보고자 하면 상상력 빈약 운운 하는 말에 더 쉽게 공감할지 모를 일이다. <부처님 앞에는 칠보의 탑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5백 유순(인도의 거리를 재는 단위. 1유순은 약 40리)이며 사방 길이가 2백5십 유 순이었다. 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머물고 있으며 가지가지의 보물로 장엄하였으니 5천의 난간과 천만이나 되는 방과 수없 는 당번 幢 幡 으로 장하게 꾸미었으며, 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탑 위에는 만억의 보배 방울을 달았으며, 사면에서는 다마라발전 단의 향기가 세계에 두루 차고 그 여러 번개 幡 蓋 는 금 은 유리 자거 마뇌 진주 매괴 등의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그 높이는 사천왕의 궁궐까지 이르렀다.> 5백 유순은 약 8천km, 공중에 떠 있는 8천km 높이의 탑은 향기가 두루 하고 보배 방울 소리가 들려오고 이름조차 낯선 보배로 장엄돼 있다. 시각, 청각, 후각을 모두 동원해야만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들, 화엄경의 견보탑품 에 묘사된 이 탑을 현 실 세계에 실현시킨 것이 다보탑이다. 그 시대 최고 장인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한껏 발휘해 조성한 다보탑은 세계가 인정한 아름다운 탑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13년 범어사, 다보탑 조성에 버금갈만한 불사가 진행 중이다. 금어연 金 魚 輦 제작이 그것이다. 명천 스님을 총도감으로 24개 분야 최고의 장인 16명이 참여해 진행되고 있는 금어연에는 실눈을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빈약한 상상력을 총동원해 야만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얼핏 스쳐보아서는 결코 볼 수도 알 수도 없는 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 범천의 물고기 금어, 불보살을 싣는 연 輦 으로 날다 들어지는 금어연 제작 과정을 총도감 명천 스님께 들어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 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참선을 통해 내면의 참다운 불성을 일깨우고 망념을 없애 중생 연 輦 이 뭘까? 그것부터 모르겠다. 연은 원래 왕이 거동할 때 타고 다니던 가마를 말하는데 불교에서 사용하는 연은 불보살 을 부처님의 마음으로 변화시키는 금정총림 金 井 叢 林 범어사 梵 魚 寺. 마음의 근원을 궁구하는 수행도량으로 1300여 년의 의 연대 蓮 臺 를 상징하여 만든 것으로 부처님 진신 사리나 불경, 불구, 영가 위패 등을 이동할 때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세월을 거쳐 온 범어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짚어 보았다. 글. 천미희 14 15

9 특집1_ 금어연 金 魚 輦 각 사찰에 연이 여러 개 남아 있기는 하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드물 다. 연을 재현하거나 복원해 낸 경우도 없다. 그래서 범어사의 금어연 제 작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범어사에서 제작되는 금어연은 기존 연을 복원 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연의 기록을 바탕으로 명천 스님 의 설계, 디자인, 각 분야 장인의 손길이 만나 함께 만들어내는 순수 창작 연이다. 이름도 새롭게 명명했다. 범천의 물고기 금어는 그 이름부터 풍성 한 이야기를 지닌다. 금빛 나는 물고기가 하늘을 난다. 물속을 벗어난 금 빛 물고기를 상상하는 것부터가 금어연이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짐작하는 열쇠다. 다 보니 작가가 원하는 것과 스님이 원하는 것이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의도적으 로는 아니지만 작가가 원하는 색깔이 아닌 것이 반복해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 다. 원하는 색감이나 모양이 나올 때까지 계속 시도해야 했다. 값비싼 재료에 심 혈을 기울여 그려낸 작품이 생각에 못 미칠 때도 있었다. 다시 하고 또다시 해도 안 되면 전체를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은 결정의 순간들, 그러나 시작도 끝도 없는 중중무진 重 重 無 盡 의 세계, 불보살의 세계를 드러내는 연이기에 최고의 완성도만을 마음에 두었다. 명천 스님에게도 장인들에게도 쉽지 않은 순간이었 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금어연을 두고 명천 스님은 감히 말한다. 현 존하는 연 중에서 제작 연대를 감안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작품성을 자랑하는 연이 될 것이라고. 금어연 제작이 시작된 것은 2012년 6월. 총도감을 맡은 명천 스님은 금 어연을 설계하고 그에 필요한 전문 분야를 나눴다. 그리고 스님의 머릿속 에 있는 금어연을 현실화해 낼 장인을 찾아 나선다. 금정산이 품은 부산 경남의 장인들을 우선으로 물색하고 발굴하라는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의 당부로 부산 경남 지역의 장인부터 서울은 물론 전국 각지를 돌며 발품을 팔았다. 각 분야 전문가를 선정하는 데만 5개월이 소요됐다. 제작 기간의 절반 가까운 시간이었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전문가를 선정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은 명천 스님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을 도안하고 그것을 전문가들과 공유하는 것. 스 님은 머릿속 상상들을 도안으로 그려냈다. 그림으로 안 되는 부분은 작가 이렇게 명천 스님이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직접 도안한 금어연은 여느 연에서 는 볼 수 없는 특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발. 일반적으로 가마의 바깥 부분에 치는 발을 연에서는 안쪽에 건다. 가는 대나무를 수작업으로 엮어 발 안쪽에 라 羅 나 사 紗 로 된 얇은 비단을 대는데 그 비단에 금니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은 밝은 곳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어두운 곳에 가면 그림이 드러난다. 그 도안도 명천 스님이 직접 했다. 또 한 가지는 가마 위에서부터 길이 6m, 폭 20cm 대 帶 를 길게 늘어뜨린 것. 그 대 帶 에는 금니로 꽃무늬를 그려서 바람이 불면 나풀나 풀 날리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꽃 30~40가지가 붉은 바탕에 금으로 그려진 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디자인됐거나 활용된 적이 없어 그 대를 칭하는 이 름조차 없다. 길게 드리운 이 천에 그려진 꽃들은 간다라미술에 나타난, 부처님 성도 이후 천인들이 꽃 넝쿨을 뿌리거나 화관을 공양 올리는 내용이 근거가 되긴 했지만 우리나라 꽃들로 대체되면서 이 땅, 이 시대의 미를 담아 공양 올리는 의 미가 담겼다. 들을 일일이 찾아가 말로 설명했다. 도안이 완성되기까지 금어연은 어떤 과정들의 합일까? 백골, 조각, 주물, 유소, 망수, 잔술, 직조, 발,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기를 반복했고 자다가 일어나 또 그 렸다. 도안이 작가의 손에 넘어갔더라도 이게 아니다 싶으 면 다시 달려가 생각을 합일시키는 작업을 거듭했다. 작가 들도 스님의 도안으로 작업을 하다가 의문점이 있으면 전화 로 문의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금어연의 부분 부분들이 하나 장석, 나전 등 24개 분야로 나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 과정들은 낯익은 것보 다 낯선 단어들이 많다. 일반인들은 그 과정을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총도감 명 천 스님은 그 모든 과정을 여러 권의 노트에 빼곡하게 정리해 두었는데 각 부분 에 필요한 20여 가지의 재료, 재료비, 재료 구입 종류 등을 상세히 기록해 두었 다. 실(여러 종류의 명주실), 비단(라, 주, 단) 대나무, 천연염색 재료, 황동, 금, 은, 춘 1 곽홍찬 (경기문형문화재 제39호 금속조각장)_ 발걸이 2 김관중 (전국관광공예품대전 문화관광부장관상)_ 나전 3 4 김정중 (문화재수리기능 제2391호)_ 옻칠 5 박윤미 (경상대 교수)_ 직조 6 이영애 (전통기능계승자)_ 유소, 망수 7 노희옥 (수원시전국규방공예공모전 장려상)_ 잔술 하나 정성스럽게 만들어져 갔다. 그러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게 어디 쉬우랴. 어떠한 자료도 견본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시행착 오가 없지 않았다. 천연재료로 전부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 양목, 무쇠, 금박, 주물, 금니, 한지, 나무, 옻, 석채(돌가루 물감), 산호 5mm, 진주 5mm 200개씩 등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연의 골격이 되는 나무는 우리나라 에서 제일 좋은 금강송을 남부지방산림청으로부터 기증받았다. 그 많은 목록 중, 실 구입 내역만 살짝 펼쳐 보니 어떤 매듭을 하기 위해서는 원사를 살 때

10 특집1_ 금어연 金 魚 輦 타래를 샀는데 푼사(꼬지 않은 실)로 사고 홍색 염색을 한다고 적혀 있고 발걸 이는 9타래를 사는데 꼰사로 홍색 염색을 한다고 기록해두었다. 이처럼 실 의 쓰임이나 종류를 미리 염두에 두고 계산을 해서 사야하고 염색을 해야 하 는데 실을 살 때부터 잘못되면 새로 사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망수 달기 위해서 넓은 띠를 만드는데 3m 10cm의 길이를 짜는데 700시간, 약 100일이 걸렸다. 그 작업은 교수님 한 분이 손으로 직접 했다. 이처럼 각 과정은 이 시대 최고의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백골은 가구를 짜는 것으로 목수의 몫이다. 나전은 조개껍질, 거북 껍질, 금은동을 같이 사용하 는 평탈 기법을 이용해 작업했고 유소는 길게 늘어뜨린 매듭을 말하는데 장 식성을 우선할 때 쓰는 용어다. 망수는 실을 그물처럼 엮어 늘어뜨린 것을 말하며 수술 300개가 달린다. 발걸이는 앞면에는 법륜마크를 뒷면에는 부 처님 법이 오래 머물고 국가가 평안하고 국운이 융창하고 순조롭게 비가 와 서 풍년이 되고 선근이 증장되고 법이 완성되길 기원하는 내용을 풀어 담았 다. 금어연 제작의 원력과 서원이기도 하다. 1년 가까운 시간을 금어연 제작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매진해 온 명 천 스님, 어떻게 금어연 제작과 인연이 되었을까? 명천 스님은 제24회 대한민 국불교미술대전에서 복전의로 대상을 수상한 이력은 물론 미국 샌프란시스 코 아시아미술박물관에서 한국불화 제작과정 시연 행사를 가져 격찬과 호 응을 얻은 바 있다. 설민 스님과 함께 진행한 불화 시연 과정에서 불화를 단 득하기 시작하던 그때, 명천 스님이 최고의 불연 佛 輦 을 만드는 총도감이 될 인 因 순한 미술작품으로 보던 미국인의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곳에 전시 이 이미 뿌려진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된 탱화 앞 맨바닥에 엎드려 아침, 저녁 예불을 드리면서 불화는 단순한 미 명천 스님은 현재 머무르고 있는 함양 용추계곡의 향운암에서 지금은 입적한 술작품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어버이임을 인식시켰다. 시연과 전시가 끝날 성수 스님과 몇 년을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성수 스님께서 그때 이런 말씀을 하 즈음에는 음식 반입이 되지 않는 박물관의 규정을 깨고 불화 앞에 공양물을 차려놓고 점안의식을 치르는 이변을 낳았을 정도였다. 명천 스님이 불교 미 셨단다. 살아 있는 예술품을 하게 되면 내가 한번 업어주지. 지금 명천 스님은 금어연을 제작하는 전 과정에 온몸과 마음을 불어넣어 당대 최고의 연을 제작 술, 불교 예술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군 복무 시절 탱화 3 4 하겠다는 원을 발하고 있다. 홀로 하는 일이 아니기에 더 힘들기도 하고 또 힘 가 없는 법당에 포스트 물감으로 탱화를 조성하면서 불화의 아름다움을 체 1 1 설민 스님 (동국대학교 박사과정 중)_ 금니 2 2 임판선 (장석 제작 경력 48년)_ 장석 3 조대용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기능보유자)_ 발 3 4 장호민 (지정문화재 조각기능 제5039호)_ 투각, 조각 4 5 주춘권 (문화재기능보유자 제2028호)_ 소목 5 1 김복주 (단국대 박사과정 중)_ 염색 2 이진수 (문화재수리 제1503호)_ 배접 3 문쌍후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_ 고려불화원단 4 김태자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_ 자수 5 백골 조립 이 되기도 하는 금어연 제작. 한 마리 금빛 물고기처럼 범어사 도량을 날아오르 게 될 금어연의 시련이 기다려진다. 8월 21일(백중), 그날이 오면 자세히 오래오 래 금어연을 바라볼 것이다. 그래서 명천 스님과 16명의 장인이 그려내고자 했 던 아름다움을 알아채고야 말 것이다. 알아채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명 천 스님은 성수 스님의 등에 업힌 듯 행복하겠지. 금어연은 도량을 날고 우리 마 음은 살아 있는 예술품을 따라 범천을 날게 되겠지. 금어연 덕분에 나의 빈약한 상상력이 날개를 달았다

11 특집2_ 범어사 전통등축제 1 절 마당 가득한 연등이 봄바람에 눈부시다.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고 등을 만드는 불자들의 지극한 정성과 경건함으로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뻐하는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다. 불기 2557년 부처님오신날 특집 등불 의 의미를 찾아서 금정 金 井 에 내리는 부처님의 자비광명 慈 悲 光 明 등불로 빛나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의 유래와 역사, 범어사 전통등축제에 대해 알아보고 누구나 쉽게 등을 만들 수 있도록 등 만드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아울러 범어사에서 등 만들기 운력을 하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글. 편집부 정성을. 담은. 등 공양. 제 소원은 부처님께 등불을 밝혀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라하고 작지만 진심과 정성을 담아 이 작은 등불 하나 올립니다. 부디 이 작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은 불빛을 보시고 부처님께서 기뻐해 주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등 공양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무지로 가득 찬 어두운 세계를 부 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빛을 밝히는 것은 실체가 없는 무명 無 明 으 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지혜의 등불을 비추어 무명으로 고통 받는 모든 중생이 함께 고 苦 에서 벗어나 밝고 자유로우며 지혜롭게 살고자 염원하는 것이다. 현우경 빈녀난타품 을 보면 부처님이 영취산에 계실 때의 일로 밤이 깊어 다른 등 들은 다 꺼졌으나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서원과 정성으로 밝힌 등불만이 밤 이 깊어도 끝까지 밝게 빛나고 있었고 이것을 본 부처님께서 이 여인은 등불 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어 부처님 당시부터 등 공양의 풍습이 있게 되었다

12 특집2_ 범어사 전통등축제 1 연등의. 시작. 동녀등 목어등 연꽃등 범종등 우리 민족의 민속을 보여주는 동국세시기 와 고려사, 열양세시기, 경도잡지 는 우리 나라 등 놀이 문화를 다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불교의 경전에는 이 외에도 연등 燃 燈 을 만드는 방법, 등유의 종류 등에 관한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양한 등 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나 지금은 연화등이나 팔각등, 주름등(접이등)에 한정되어 있고 등 공양의 시기도 초파일로 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이며 중국에서 변형된 연등행사도 이때에 같이 전해졌다. 이때의 불교는 사상체계가 아닌 외향적인 수용에 있었다 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국가적 제전으로 봄의 연등회와 가을의 팔관회가 정착되었다. 이는 종교적 성격과 통치 차원의 행사 성격이 강하게 섞여 있는 보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사회적 재 난을 방지하고 왕궁의 후사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도 행해졌으며 전래의 제천의식과 농경의 례를 불교적으로 전개하는 데 일조했다. 연등회는 정월보름이나 2월 보름에 열었지만 불사 의 건립, 새로이 조성된 불상을 경찬할 때도 등 공양을 하였다. 그러던 것을 고려중엽 최이 가 4월 초파일로 옮겨가서 지금에 전한다. 연등회의 절차는 첫날 태조전(왕건 사당)에 참배하 고 다음날 왕의 참석 하에 왕에 대한 의례와 축제가 이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유교가 이념의 근본이 되었으나 연등을 불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태일성 숭배로 보는 견해가 있었기 때문에 강력한 폐지론에도 불구하고 초파일의 연등행사 만은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의 연등행사는 없었으며 실록에는 미신이 라 하여 강력히 반대하는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금의 명으로 궁내에서 조촐하게 연등회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등불놀이는 민간이 주가 되어 치뤄졌으므 로 지금처럼 초파일에 행하여지는 것은 물론이고 점차 민간 놀이화 되었으며 조선후기에 이 르러는 초여름이나 겨울철에도 즐기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초기 매일신보(1915년)의 기사에 따르면 등을 팔 고 사는 모습이 묘사되어 전통적인 연등 풍습이 이어지고 있 음을 볼 수 있고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강연회, 음악회 등 현대적인 문화행사의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초파일이 다 가오면 갖가지 연등용 등을 만들어서 종로 네거리에 등시 燈 市 가 섰다는 기사로 보아 민간의 풍습은 이어졌지만 관불 행사 가 불교단체 연합행사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연등행사 외에 법요의식, 강연회, 음악회 등의 다 양한 문화행사가 이루어졌으며 한국전쟁 이후 동국대에서 연 등행사를 활발하게 계승해 왔다. 1955년 조계사 부근에서 제등행렬을 한 것이 현대 연등행 사의 시작이 되었으며 1975년 사월초파일이 국가 공휴일로 제정되어 더욱 많은 인원이 연등행사에 참여하였고 1976년부 터는 여의도광장에서 조계사(종로)까지 이르는 제등행렬을 했 다. 이후 1996년부터는 동대문운동장에서 조계사에 이르는 연등행렬을 비롯하여 불교문화한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회향한마당(대동한마당) 등 행사를 추가하여 국민축제로 전환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통등을. 만들자. 연등축제를 준비해 오던 불교계가 봉축위원회를 통해 왜색 이 완연한 초파일 연등놀이의 등들을 한국적인 것으로 되찾 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전통적인 등이라 이름하였 다. 그 이후로 몇몇 젊은이들은 새로운(단절되었기 때문에) 등의 세계에 뛰어 들었고 그 맛과 멋에 흠뻑 젖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생긴 이름이 전통등 이다. 전통등 이라는 표현은 우리 민족이 써왔던 등을 통칭하는 개념이기도 하지만 이미 현대화되어 자취를 감춰버린 집 안팎 의 등잔들과 가로등과 손전등으로 대체된 여러 가지 제등과 는 다른 용도의 등을 말한다. 전통적인 연등놀이에서 우리민 22 23

13 특집2_ 범어사 전통등축제 1 족이 보여주었던 재기발랄하고 창조적인 등들, 공동 체의 염원과 개인의 소망이 한데 어우러져 한바탕 난 장을 펼쳤던 문화 속에서 발견한 소중한 등이다. 스 스로 만들어 즐기는 놀이문화가 산업화에 밀려 일본 과 중국, 대만의 전통적인 등과 등축제는 알고 있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등은 초롱과 등잔뿐인 줄 알고 있는 현실이다. 다만 우리의 전통적인 등문화가 있었고 그 것이 전통등 이란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그리 하여 일본등 중국등 과 같이 역사와 정체성이 분명한 골조작업 구상한 디자인에 철사를 구부려 등의 틀을 만드는 과정을 말 하는데 밑그림은 실제 사이즈기 때문에 구상한 디자인 밑그림을 바닥에 놓고 그 선을 따라서 뼈대를 구부리며 제작한다. 철사는 다양한 굵기로 시중에 나와 있으며 저렴하게 구할 수 있고 약간 의 힘만 들이면 쉽게 모양내기가 가능하다. 철사를 고정할 때는 케이블타이를 이용하여 임시고정하고 모양이 나오면 그 부분에 실과 순간접착제로 고정하며 뼈대를 완성해 나간다. 한국등 을 제대로 뿌리내리고 꽃피우고자 하는 것이 다. 이러한 맥락에서 범어사에서는 해마다 초파일을 앞두고 전통등 공모전을 실시한다. 범어사 신도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되는 등 만들기 행사와 전통등 공모 전은 등문화 홍보 및 등 제작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이고자 계획된 행 사로 출품작은 범어사 전통등 축제 때 보제루에 전시하고 봉축등 설치에 활 용된다. 아울러 공정한 심사를 거쳐 수상작에는 상금과 상장도 수여한다. 배접 한지를 골조(뼈대)에 붙이는 과정을 말하는데 한지를 골조에 붙 일 때는 오공풀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배접은 먼저 종이를 골조 면에 대고 손으로 눌러 본을 뜨고 그 자국 부위를 중심으로 약 0.5cm 정도 시접을 두고 가위로 오린 다음 오려진 한지를 시접 면에 바른 후 신속하게 뼈대에 붙이면 된다. 한지를 붙일 때는 앞 면과 뒷면을 구분하여 붙여야 후에 채색을 할 때 발색이 잘된다. 등. 만드는 과정. 채색 (꾸미기) 디자인 구상 등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작업으로 무슨 등을 만들 것인가, 어 떠한 재료와 순서, 용도 및 보관에 이르는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 한 단계다. 디자인 할 때는 완성된 후를 상상하고 구상하고 될 수 있으면 채색된 모습까지 디자인하는 것이 좋다. 도면을 그릴 때는 평면도(정면), 측면도(측면), 입면도(윗면)를 치수와 함께 그려서 대 략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실제 등으로 만들 수 있 어야 한다. 등 꾸미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먼저 문양 오려 붙이기 는 각종 도안집의 문양을 보고 선택하여 오려 붙이는 방법이다. 두 번째로 문양 베끼기는 문양을 선택 후 복사하여 기름종이를 그 위에 올려놓고 연필로 그리는 방법이 있다. 이때 문양이 그려 진 기름종이의 반대편에 연필로 그림을 따라 한 번 더 그린 다음 배접된 한지등에 대고 눌러서 그려주면 정확한 문양을 그릴 수 있 다. 마지막으로 채색하기가 있는데 이때는 한국화 물감을 사용 하면 좋은데 한국화 물감을 물에 풀어 가면서 농도를 조절하는 것이 등의 채색기법 중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14 특집2_ 범어사 전통등축제 2 연꽃등을 닮은 범어사의 아름다운 얼굴들을 만나다 글. 편집부 해요. 그래서 문양이 많은 법고등 같은 경우는 채색하는 데만 3 주가 걸립니다. 그리고 단청의 기본 5가지(청 적 황 백 먹) 색만 선경자, 이순동, 윤미자_ 한마디로 범어사는 저에게 큰 종갓집 이에요. 큰스님이 계셨던 곳이고 지금도 계신 곳이기도 하고 앞 으로도 계실 곳이죠. 청정도량이 다 똑같겠지만 범어사라는 큰 절은 그 자체만으로 제게 긍지를 안겨 줍니다. 범어사 일주문 을 지나면 복잡했던 마음도 편안해져요. 그래서 자주 찾게 되 는 절이에요. 이번 부처님오신날 제등행사로 범어사가 두각을 나타낼 것 같아 기쁩니다. 자등명 自 燈 明 법등명 法 燈 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 을 활용해서 원하는 색감을 내기도 생각보다 녹록지 않아요. 자귀의 自 歸 依 법귀의 法 歸 依, 스스로가 의지처가 되고 진리를 의지처로 삼으라. 단청문양을 찬찬히 살펴보는 공부도 필요하고요. 김귀선, 박춘희, 진면목_ 주지이신 수불 스님께 깊은 감사의 뜻 을 전하고 싶어요. 범어사가 점층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할 준비로 범어사 경내는 온통 찬란하 지금 하는 전통등은 연꽃등에 비해 손수 밑그림을 그리고 일일 불자들의 손끝에서 광명 光 明 의 세계가 하나하나 만들어진다. 보는 일은 저희에게 행운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절이 살아 있는 다. 불교에서 지혜와 해탈, 자비, 선행, 제생 濟 生 을 의미하는 등 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과정이 어렵기는 하지만 참 재미있습 이는 부산불교의 중흥을 위한 불사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무엇 느낌이 들어요. 범어사가 열린 사찰의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불은 현대사회가 추구하는 평화의 공존과 상통한다. 불빛 앞 니다. 마음을 내는 일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 보다 정성이 담긴 등을 만들어 이 시대를 위한 서원을 세우고 부 요. 지금처럼 문화행사를 이어가는 열린 사찰로 사람과 사람이 에 꺼지지 않는 어둠은 없듯 등불은 중생들을 미혹과 무명에서 어요. 처님의 마음을 내어 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만나 서로 마음을 나누는 자리를 많이 가졌으면 합니다. 깨어나게 하는 불법 佛 法 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온 법계가 부 처님의 광명으로 형형색색 물들고 있다. 박신향_ 힘든 여건이었지만 모두가 한뜻으로 힘을 냈습니다. 박종규_ 화합과 소통의 자리였습니다. 시민참여형 문화행사 꽃등보다 더 고운 그들의 표정에서 부처님의 환환 미소를 본 범어사 설법전 앞마당, 은행나무 옆 야외 천막에서는 20대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골조(뼈대)를 전영일공방의 도움을 가 단발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지속되길 기대하 다. 언제고 손수 잔일과 뒷정리 작업을 하는 설태자 보살, 주말 서 70대에 이르는 불자들 20여 명이 전통등축제 막바지 준비로 받아 진행했기 때문에 독창적인 등이 없다는 거예요. 부단히 노 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정년은퇴를 한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을 체험활동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는 선경자 보살을 비롯해 매일 연신 분주하다. 1월 두 차례의 등강습회(행렬 장엄등)를 통해 력해서 머지않아 범어사의 사천왕상처럼 범어사와 관련된 것을 구상하고 있는 중인데, 그 자리에 손수 제작한 등을 전시해도 같이 준비해 온 중참으로 작업에 힘을 보태는 윤미자 하명희 보 전통등에 관심 있는 불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월 배접 작업 등으로 제작해보고 싶어요. 3년째 되는 해에는 가능하지 않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 종교의 차이를 초월해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김효림 씨까지 을 시작으로 현재 채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월 13일 등공방 까요? 연령과 직업, 성향이 달라도 부처님 이름 이 설치된 후 2개월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도 빼 20여 명의 신도들 가운데 유일한 청일점이자 범어사금정불교 아래서는 모두가 하나다. 참마음을 놓지 않고 등 제작에 매진했다. 불심 佛 心 으로 내디딘 첫걸음이 강애진, 박신향_ 전통등을 만들어내는 일은 보기보다 시간과 대학 총동문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박종규)는 알고 내어 정진하고 힘을 모으면 장엄한 었다.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에요. 한지는 물 조절을 제대로 하 보니 하명희 보살과 부부 사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 연등 불빛 안에서도 지 않으면 금세 색이 번져버리기 때문에 농도 맞추는 작업이 중 신실하고 열성적인 삶을 일구고 있는 부산 불자들에게 범어사 극락세계가 피어난다. 신춘옥_ 예전엔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연꽃등을 만들어서 나 요합니다. 특히 한국화 물감의 색을 제대로 표현해 내려면 한 는 어떤 절일까. 눠주곤 했는데 그게 마치 불법 佛 法 을 전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지에 색이 충분히 들 때까지 덧칠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해야 26 27

15 특별기획 1 추모단에는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언덕을 보호하리. 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어 참배단은 한국전쟁 희생자 가운데 유해를 찾지 못해 위패로 모셔진 10만 4000여 위의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자리로 이 동했다. 이 영단에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묘소에 안장할 수 없는 무명용사들의 유 해자 2000여 위도 함께 모셔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참배단은 한국전쟁 전몰장병들의 묘소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면서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참배를 마치고 지원 스님과 수불 스님이 참배단을 대표해서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지원 스님은 호국영령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한반도에 평화기 깃들기를 기원합 니다. 라고 썼고 수불 스님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 한 넋을 기리며 극락왕생하소서. 라는 글을 남겼다. 참배단은 현충원 내 호국지장사 를 방문하기도 했다. 한반도 평화는 자비심의 세계화 불사 한반도평화대회운영위원회, 현충원 참배 현장 호국영령의 숭고한 넋 기리며 부디 극락왕생하소서 글. 하정은(불교신문 기자) 사진. 신재호(불교신문 기자) 사부대중 3000여 명 통도사 남북통일기원법회 옴 삼다라 가닥 사바하 옴 삼다라 가닥 사바하. 전쟁의 상흔으로 한 맺힌 원혼들의 한을 달래주는 혜원결진언이 60번 울려 퍼졌다. 한반도평화대회 운영위원회와 통도사는 4월 30일 양산실내체육관에서 사부대중 3000 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반도평화기원 및 남북통일 기원법회를 봉행했다. 여기 모인 사부대중의 간절한 기도에 감응하시어 남과 북이 통일되고 온 세계에 부처 님의 자비광명이 두루 하여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하여지기를 원하오 니 가피하여 주소서. 이날 법회는 호국선열과 평화를 위한 기도로 시작됐다. 수불 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은 위로와 경의,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와 희망을 주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올해 대대적으로 봉행될 한반도평화대회가 서울 현 충원 참배로 본격 개막됐다. 한반도평화대회운영위원회(봉행위원장 총무원장 자승 스님, 상 임운영위원장 수불 스님)는 3월 15일 오전 11시 사부대중 100여 명과 함께 현충원을 참배 했다. 조계종 포교원장 지원 스님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 군종교구장 자광 스님, 중앙종회의원 경륜 스님 등 스님들과 한반도평화대회 자문위 원단장을 맡고 있는 김정훈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등이 참석, 묵 념과 헌화, 분향 등의 순으로 추모의식을 올렸다. 제로 지난 3월부터 오는 9월까지 서울과 부산, 그 외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 행 중에 있다. 며 한반도평화대회는 우리와 남북한 국민 그리고 동북아의 모든 국가와 국민은 물론 세계에 자비심을 불어넣고 공고히 하는 자비심의 세계화 불사이며 사람과 생명 중심의 화해와 회통의 철학을 세계에 퍼지게 하는 일 이라고 말했다. 재가불자와 정계인사들의 기원문 낭독도 이어졌다. 이날 법회는 평화영상과 대북취타, 경과보고 등 의 순으로 진행되었으며 참가내빈들의 헌화에 이어 양산시립합창단과 통도합창단의 평 화의 노래가 펼쳐졌다

16 특별기획 2 범어사 한반도평화기원 수륙재 현장을 가다 이 장엄한 천도의 법석에서 진리를 향음하소서. 제를 봉행한 곳이자 전장에서 귀향한 향토 출신 전사자들의 유해를 처음 안치한 성 지 라며 우리는 이 역사성을 계승하여 자비희사 慈 悲 喜 捨 의 사무량심 문화를 세계인 과 공유하고자 한다. 고 밝혔다. 이날 수륙재는 이윤희 중앙신도회 부회장, 허남식 부산시장, 김정훈 국회의원, 김 석조 부산시의장, 정호섭 해군작전사령관 등의 추모사도 이어졌다. 한반도평화대회 자문위원단장 김정훈 의원은 전 세계서 유일하게 유엔이 승인한 유엔평화특구가 있 는 부산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는 뜻깊은 역할을 불교계가 앞장서서 한국전쟁 당시 희생영가들을 범어사 원응료(현재 강원채)에 모시고 당시 범어사 조 실 동산 스님과 대중 스님들이 함께 날마다 분향을 하고 추모했던 기억이 새롭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을 맞아 생사에 따라가지 않는 맑은 주인공으로 깨어나길 바 란다. 지난 3월 26일 부산 범어사에서 봉행된 한반도 평화기원 수륙재에서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은 법어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한반도평화대회운 영위원회(봉행위원장 자승 스님, 상임운영위원장 수불 스님)가 주최한 수륙재에는 사부대중 3000여 명이 참석했다. 범어사 부주지 범산 스님의 경과보고를 시작으로 한반도평 화대회 수석부위원장이자 조계종포교원장 지원 스님이 봉행사를 낭독했다. 민족의 아픔 속에 산화한 호국영령들과 속절없이 죽어간 한 맺힌 영령들의 영혼들이여, 이 장엄한 천도의 법석으로 오셔서 주린 배를 채우고 진리의 향기 또한 마음껏 향음하 펼치고 있는 모습에 큰 박수를 보낸다. 고 말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은 21세기 세계 지도자에게 보내는 메시지 를 낭 독했다. 원산 스님은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지구촌으로 장엄할 힘과 의무가 있는 분들이 바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 이라며 이웃 나라의 국민이 행복해지는 일 은 내 나라의 국민들에게도 기쁨이 되는 일. 군비 증강을 위해 계획했던 예산을 되돌 려 평화를 증진하는 일에 써주십시오. 라고 천명했다. 이날 수륙재는 현재 범어사 대웅전에 소장된 1905년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11m 에 달하는 대형괘불을 내걸고 바라춤과 함께 범어사 어산팀이 수륙재 의식을 펼쳤 다. 범어사 입구부터 경내에는 오방번 150기와 만장 200기가 휘날렸다. 수륙재가 열리는 동안 맑고 푸른 하늘에 영롱한 무지개가 피어올라 참가자들의 환호와 탄성 을 자아냈다. 소서. 시방삼세 두두물물이 화엄의 바닷속에서 생명의 대자유를 발원하고 우리 민 족 모두가 원융무애하게 하나로 뭉쳐 한반도는 물론 세계평화의 훌륭한 선례가 되 도록 수륙대재의 거룩한 음성이 법계에 가득하기를 발원한다. 이어 한반도평화대회 상임부위원장 수불 스님은 대회사를 통해 해양과 대륙을 연 결하는 국제항구도시 부산의 범어사는 한국전쟁 당시에도 각 지구 전선에서 사망한 장병들의 영현을 모신 가운데 동산 큰스님께서 법주 法 主 가 되시어 전국군경합동위령 30 31

17 특별기획 ③ 이날 저녁 7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설법전에서는 범어사 한반도평화기원 보살계 수계산림 범어사 주지 수불 스님의 특별법문 시간도 이어졌 보살이 열반한 도깨비 돼서는 안 된다 다. 비가 오는 가운데 날이 저물자 기온이 내려가 한 겨울 추위를 방불케 했지만 법문을 듣는 불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수불 스님은 마음에 그릇된 산란 함이 없어야 그것이 선정이자 곧 자성의 계 라며 계 율을 수지함으로써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지는 인연 으로 거듭나 올바른 가르침에 눈뜨는 지혜를 만나 야 한다. 고 설했다. 수불 스님은 또 모든 것을 걸 러낼 수 있는 계를 바탕으로 속거나 속이지 않는 힘 보살계를 받았다고 으스대고 법사의 법문을 가볍게 듣고 실천과 행동 을 길러야 한다. 며 자신의 전신이 눈(目)이어야 생 보다 말이 앞서는 보살은 열반한 도깨비와 같다. 몸을 바르게 갖고 청정 활 속에서 분별하지 않고 자기 갈 길을 원만하게 갈 하게 계를 지키면서 살아라. 청정한 계는 가장 안온한 공덕이 머무는 곳 수 있다. 고 말했다. 설법전을 가득 메운 1000여 명 임을 알아라. 의 불자들은 큰 박수를 보내면서 스님의 법문을 가 슴 깊이 새겼다. 보살계 수계산림이 이어지는 가운데 24일에는 전 32 + 지난 4월 23일 부산 범어사 대웅전. 총림 승격을 날 흐린 날씨와는 달리 쾌청한 기운 속에서 수계식 맞이하면서 처음 열리는 한반도평화기원 보살계 수 을 회향할 수 있었다. 갈마아사리 정관 스님은 자 계산림에서 오랜만에 법상에 오른 전계대화상 고산 기성찰과 자기제도의 원력심이 바로 계의 내용 이라 스님은 보살계 법문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고산 스 며 그 원력심은 100세 삶의 동반자가 되어 허전하 님은 이날 2시간 반에 걸쳐 48경계를 하나하나 설명 고 쓸쓸하고 고독한 삶이 아니라 항상 바쁘고 건강 한 뒤 계를 수지하게 될 불자들을 향해 열반한 도깨 한 내가 되는 힘으로 작용할 것 이라고 말했다. 교 비를 빗대 아집과 아상을 경계하라고 강조했다. 수아사리 무비 스님은 1300년간의 역사를 간직한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도 6000 범어사가 총림으로 승격되는 역사적인 금년 보살계 여 명의 불자들은 법문을 경청하면서 진지한 자세로 를 수지하는 불자들에게 긍지를 갖길 바란다. 며 수계에 임했다. 고산 스님은 계를 잘 지니면 향기가 미동도 않은 채 계율 한 조목 한 조목 경청하는 여 시방에 풍기고 명성이 멀리 퍼지며 하늘과 사람이 사 러분의 신심에 감격했다. 고 치하했다. 사부대중 랑하고 공경하며 소원을 모두 얻는다. 면서 계는 6000여 명이 참회진언과 함께 연비를 시작했다. 온갖 법이 머무는 자리 라고 강조했다. 이번 범어사 서울 조계사에서 20년 전 보살계 수계를 받고 이 보살계 수계산림은 전계대화상 고산 대율사를 비롯 날 범어사에서 두 번째 계를 수지한 김수연 씨는 지 갈마아사리에 정관 대율사, 교수아사리에 무비 대 난 20년간 몸과 마음에 묵은 때를 씻어내고 새롭게 율사 등이 삼화상으로 계를 설했다. 유나아사리는 태어나는 마음으로 범어사에서 또다시 계를 받게 돼 수진 스님, 인례사 오산 스님과 영명 스님, 집탁에는 흐뭇하다. 면서 깨어 있는 불자로 쉼 없이 정진하 금륜 스님과 설총 스님이 각각 의식을 봉행했다. 고 공부하는 삶을 살고 싶다. 고 말했다

18 선 禪 범어사 금어선원 유나 인각 스님의 선 禪 이야기 2 혼탁과 망상, 착각으로 불행에 빠진 세상을 깨우는 가장 큰 울림이 선이다. 시끄러운 소리로 넘쳐나는 세상을 향해 화두 라는, 그 어떤 소음과도 비교될 수 없는 소리를 질러 세상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게 선이다. 이 세상만사에 선이 깃들어 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화두 라는 굉음에 세상의 모든 잡음이 묻히고 나면 그때 비로소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불행에 빠진 세상을 깨우는 큰 울림, 선 禪 딱 100년 전인 1913년, 금정총림 범어사가 선찰대본산으로 확정되었다. 1899년 성월 스님이 11월에 금강암에서 임시선회를 열고 12월에 선원을 개설한 이후 전국 의 수좌들이 범어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범어사 최초의 선원 금강선사를 개설하 면서 경허 스님을 조실로 모셨다. 이후 산 중 암자인 안양암에 안양선사, 내원암에 내원선사, 계명암에 계명선사, 원효암에 원효선사를 차례로 개설했고 원응료에 원 응선사, 대성암에 대성선사, 금어암에 금어선사를 개설해 전국의 수좌들이 범어사 로 모여들어 정진의 힘을 가다듬었다. 산내 암자 선방마다 수행 대중들의 맑은 기 운이 넘쳐났을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환희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범어사는 이렇게 선풍을 진작하며 1911년 선종수찰 禪 宗 首 刹 로 공표했고 이후 1913년 선찰대 본산으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좌들의 선기 禪 氣 가 범어사를 한 국 선의 중심축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범어사 일주문에 선찰대본산 이 라는 편액이 붙어 있는 것은 그냥이 아니다. 선풍을 진작하며 근대 선원 진원지가 된 범어사의 또 다른 이름표인 셈이다. 선찰대본산이라는 이름표 아래 모여 살아가 는 금정총림 대중들은 그 이름에 걸맞은 살림을 꾸려가야 한다는 사명감과 자긍심 으로 촌음을 아끼며 지내야 할 것이다. 한때 범어사에는 500여 명의 대중이 함께 머문 적도 있었다 때는 특히 납자 들이 많이 모여서 어려운 나라 여건 속에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중이 많 아지다 보니 탁발을 하지 않고서는 절 살림을 꾸려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스님들 이 탁발을 했다. 1964년으로 기억되는데 조실 스님이 앞장서고 50여 명의 대중 스 님들이 줄을 서서 탁발을 나갔다. 그 당시에는 탁발이 있는 날은 라디오 방송을 해 서 알려줬는데 그 방송을 듣고 신도들이 나와서 앞다투어 보시를 했다. 스님들의 발우가 넘쳐날 정도로 보시금이 많이 들어왔는데 그것이 바람에 날려가도 아랑곳 이게 선의 시작이다. 우리 조계종은 화두선을 하는 간화선이다. 화두는 마치 깜깜한 밤에 촛불 하나 켜면 어둠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잃을지언정 화두를 놓치지 마라. 이것이 수자들의 근본 사상이다

19 선 禪 하지 않고 탁발을 이어갔는데 장관이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인데 수행자를 향해 그토록 지극하게 합장하고 공양 을 올릴 수 있었던 건 부산시민들의 깊고 간절한 신심의 발로 發 露 였을 것이다. 수행 자를 외호하려는 그 신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범어사 도량이 있고 선이 더 뿌리를 내 릴 수 있었으니 그 은혜를 갚으며 살고 있는지, 전체를 위하는 대장부의 살림을 살 고 있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시은 施 恩 을 갚는 일, 선찰대본산 범어사가 세상을 이 롭게 하는 중심이 되어야 하고 부산은 물론 세계인의 행복을 위하는 도량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혼탁과 망상, 착각으로 불행에 빠진 세상을 깨우는 가장 큰 울림이 선이다. 시끄 러운 소리로 넘쳐나는 세상을 향해 화두 라는, 그 어떤 소음과도 비교될 수 없는 소 리를 질러 세상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는 게 선이다. 이 세상만사에 선이 깃들어 있 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화두 라는 굉음에 세상의 모든 잡음이 묻히고 나면 그때 비로소 내면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이게 선의 시작이다. 우 리 조계종은 화두선을 하는 간화선이다. 화두는 마치 깜깜한 밤에 촛불 하나 켜면 어둠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명을 잃을지언정 화두를 놓치지 마라. 이것 이 수자들의 근본 사상이다. 삶의 무상을 느끼고 발심하여 공부를 이어가다 보면 수많은 마장이 온다. 능엄 경에는 96종의 마장이 나온다. 갖가지의 경계 중 가장 먼저, 가장 심하게 일어나는 것이 망상이다. 망상이 사그라들 만하면 혼침이 생긴다. 그것 역시 마장이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장 큰 것이 수마라고 했다. 그러나 수마도 실제로는 있는 게 아 니다. 보통 일주일씩 용맹정진을 할 때는 졸기만 하면 죽비로 두드려서 못 자게 하 는데 그럴 때는 일주일씩 못 자도 산다. 결과적으로 잠이라는 것도 원래는 없는 것 이다. 본래 없는 것인데 있다고 착각을 하고 사는 것이 곧 마장이다. 그 착각 때문 에 환과 경계가 항상 드러나는 것이니 그것에 휩싸이지 않아야 한다. 어떤 때는 법 열이 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슬프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신통이 나오기도 한다. 그 러나 이 모든 것이 마장임을 알아차려야 하며 그러지 못하고 섣불리 나는 다 됐다 는 생각을 내면 근본 공부를 이어 갈 수가 없다. 그러니 착각과 혼돈을 없애는 등 불이 화두다. 그래서 어떠한 마장이라 하더라도, 96종이 아니라 천종의 마장이 오 더라도, 화두 하나만 들고 있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 화두를 놓쳤을 때 마장이 라 한다. 부처님은 복과 지혜를 구족하신 분이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하다 보면 복 지을 새가 없다. 그래서 공양주 자원을 많이 한다. 만공 스님, 설봉 스님 같은 분 들도 공양주를 많이 살았다. 나도 한때 2년 동안 공양주를 자청해서 산 적이 있다. 그 당시는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려웠다. 절 땅을 농사지은 농가에서 주는 쌀을 곡수 라고 했는데 그 곡수는 팔고 남은 쌀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쌀에는 흙이 많 이 섞여 있었다. 그 흙을 전부 골라낸 후에야 밥을 지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하다 보면 잠 잘 시간이 없었다. 밤새 쌀에서 흙을 고르는 그 일도 일구월심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었다. 또 나는 밥 지어놓고 남은 시간에 꼭 대중들의 신발을 닦아주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밥 안쳐 놓고 더러운 신발 씻어다가 엎어놓고 와서 솥뚜껑 열고 퍼 보면 딱 알맞게 밥이 되어 있었다. 단 한 번도 밥을 태우거나 설익게 한 적이 없으니 칭찬을 많이 받았다. 그때 지은 크지 않은 복이나 마 있어 지금도 누리고 사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또한 나는 그 시 절을 지나며 뭘 하든 온 힘과 정성을 쏟으면 안되는 게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모 든 걸 걸어라. 이게 선의 정신이다. 다 놔야 다 얻는 도리, 선이 그러하고 우리의 삶 또한 그러하다. 세상사 모두가 선이라 하나 일상사 가운데서 공부를 하는 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꼭 이 공부를 해야겠다는 발심이 섰으면 아침저녁으로 한 시 간이라도 꾸준히 해 보길 권한다. 그러다 보면 공부하는 길이 나온다. 화두하는 사 람은 화두하는 것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하는 것으로 끊어지지 않게 해야 한 다. 뭘 하든지 변소에 가서도, 설거지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다. 이 공부는 공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연필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마음만 가지면 되는 공부다. 세속 에서도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이 공부다. 부설 거사의 가족 이야기는 따로 풀 어내지 않아도 속세에 살면서 공부를 이뤄낸 좋은 롤모델(role model)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부처님 오신 5월은 우리들에겐 발심의 계절임이 분명하다. 산야에 일렁이는 푸르 른 생명력을 우리 안으로 들여놓아야 한다. 저마다의 마음 가운데 불성의 싹을 틔 워야 한다. 그 출발이 발심이다. 우리 곁에 오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은 미륵불보다 뒤에 오셨으나 용맹정진으로 성불을 앞당기셨다. 용맹스러워야 한다. 5월엔 미혹 과 어리석음을 용맹스럽게 깨부수는 참다운 공부인들이 금정총림에 들어 금정산의 오는 것이다. 오직 화두일념만 되면 마장은 본래 없는 것이며 그것은 어떠한 공부에 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공부를 이어감에 있어 양식이 되는 것이 복이다. 그것을 일러 복혜구족이 바람 소리를 함께 들었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정리. 편집부 36 37

20 우리의 스승, 동산 대종사 2 우리 시대의 스승인 동산 스님과 한 제자의 이야기 미륵암 회주 백운 스님 글. 천미희 1952년 9월, 범어사. 백운 스님은 동산 스님을 찾아 범어사에 당도했다. 마당에 들어서니 당대의 선지식 동 산 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열무를 다듬고 있었다. 백운 스님은 걸망을 내려놓고 동산 스님을 향해 땅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백운 스님을 향한 동산 스님의 첫 말씀은 여기서 날려고(지내려고) 왔나? 걸망 놓고 와서 일해. 였다. 그래서 걸망을 내려놓고 열무를 다듬었다. 그것이 이후 4년 동안 동산 스님을 시봉하면서 살게 된 첫 인 연이었다. 며칠 지내면서 가만히 보니 추운 날 큰스님께서 걸레로 마루를 닦아. 그래서 내가 시봉을 도맡아서 하기 시 작했어. 알고 보니 스님을 시봉하던 스님이 직지사로 공부하러 가서 결제가 되어도 안 돌아오니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시봉은 공석이었던 거야. 내가 시봉을 해야겠다 싶더라고. 원래 시봉이었던 스님이 돌아올 때까지만 하자고 한 일인데 그 스님이 안 와. 우리 스님이 호랑이처럼 무서운 분이어서 시봉을 잘 안 하려고 했어. 허허. 다른 스님들이 무섭고 어려워 마다하는 호랑이 스님 시봉을 왜 자청한 것일까? 내가 다섯 살에 절에 가서 노스님 밑에서 자랐어. 그러니 노스님을 잘 따르고, 어른 스님하고 지내는 게 몸 에 익었지. 당시 우리 스님 세수가 예순 셋이었는데 그때부터 예순 여섯 되시던 해까지 함께 지냈어. 그런데 우 리 스님은 평소에도 누구한테든 하대를 잘 안 하셨거든. 처음에 내가 시봉할 때도 말씀을 하실 때 뭐했소, 뭐 뭐 하시게, 이렇게 경어를 하셔서 스님 그러시면 제가 많이 불편합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래? 하시고 는 그때부터 말씀을 놓으셨지. 백운 스님은 어린 시절 단명한다는 말에 명을 잇기 위해 다섯 살부터 절에서 자랐다. 노스님들이 스님의 부모 이자 친구였다. 학교 공부를 위해 아홉 살에 속가로 내려왔던 스님이 다시 출가를 결심한 것은 전쟁의 참상을 겪으면서였다.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한순간에 잃고 세 번이나 끌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출가 의 마음을 세웠다. 몇 걸음만 더 걸어가면 총살을 당하게 돼 있었어. 구덩이를 파 놓은 곳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끌려가는데 머릿속이 하얗고 아무 생각도 없어. 그런데 그곳으로 나를 끌고 가던 이들이 내 초등학교 동창이거나 집안사 람이거나 해서 나를 도망시켜 준 거야. 그렇게 세 번을 살아났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세속에는 뜻이 없 어져 버려. 내가 다시 살게 된다면 다시는 속세로 내려가지 않고 부처님의 제자로 살겠다는 원을 세우게 된 것 이지. 그 길로 다시 절에 들어가 공부를 이어가던 중 견성성불의 길을 묻고자 동산 스님을 찾아 나선 길이었다. 그 렇게 동산 스님의 문하에 들어 엄하면서도 자상한 스승의 그늘에서 마음자리의 터전을 다지고 뿌리를 내릴 수 하늘같았던 은사, 동산. 이제 백운 스님은 그 하늘을 방 안에 걸어두고 올려다본다. 모시고 있던 때에 은사 스님이 머무시던 방 앞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제자의 그리움을 다 달래주진 못하지만 마음속 은사의 표상 表 象 을 되살려 언제나 은사 곁에 머물 수 있게 해준다. 있었다. 지척에서 바라 본 은사 스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정말 호랑이같이 무서운 스님이었을까? 은사 스님은 내게 하늘이었어. 지금도 내 방에 붙여 놓고 늘 올려다보는 우리 스님 사진이 있어. 그 사진은 38 39

21 우리의 스승, 동산 대종사 2 내가 시봉할 당시 찍으신 것인데 그때는 같이 사진 찍을 생각을 감히 내지도 못했어. 하늘과 땅 차인데 어찌 감 히 옆에 서나? 지금 생각하면 같이 한 장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후회도 되지만 그때는 그런 엄두가 안 나. 그만 큼 크고 높았어. 백운 스님에게 하늘 같았던 은사 동산 스님. 동산 스님은 사부대중의 화합을 가장 으뜸의 가치로 여겼다. 그 런데 사건이 터졌다. 늘 주먹이 앞서 대중들 사이에 문제를 일으켰던 스님이 지대방에서 또 사고를 친 것이다. 대중공사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동산 스님은 대중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당장 나가라. 는 퇴방 방침을 내렸다. 조실 스님의 말씀이니 따를 수밖에. 그 스님은 걸망을 챙겨 들고 하직 인사를 드리기 위해 동산 스님 방 앞에 섰다. 그 스님이 옆에 걸망을 내려놓고 조실 스님, 가겠습니다. 하고 울면서 인사를 해. 그러면 조금 전 퇴방 명령 을 내린 우리 스님은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셔. 이런 도량에서 성불 못하면 어디를 가서 해. 대중화합해서 살아 야지. 하시고는 야 지형아~ 하고 나를 불러. 그러고는 당장에 걸망 제자리에 갖다 놔. 그러시거든. 그러면 나는 그 스님 걸망을 들고 대중방으로 다시 갖다 놔. 그러면 대중방에서 하는 말들이 조실 스님 또 그러실 줄 알았어. 하는 거야. 하하하. 그만큼 우리 스님이 제자들을 아꼈어. 쫓아내는 법이 없어. 열다섯 번 잘못하면 열다섯 번 그러셨을 정도였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분이셨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제자들이 공부해서 성불 하기를 늘 염원하셨지.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죄송하고 그래. 백운 스님도 한차례 쫓겨날 위기를 넘겼다. 은사 스님의 한약을 태운 날이었다. 이 약도 다 시주물인데 그것을 태우다니 당장 나가라고 불호령을 내리셨거든. 가라 그러셨으니 가긴 가야 하잖아. 그래서 법당에 가서 108배를 했어. 그러고 나서도 갈 곳이 없으니 은사 스님 방 뒤로 연결돼 있던 방 두 칸 가운데 하나로 들어갔어. 그리곤 울다가 잠이 들었나 봐. 우리 스님은 밤 아홉시만 되면 의복 벗고 주무 시는데 그러면 그 의복을 내가 차례차례 정리를 해 드렸거든. 그런데 시간이 되어도 내가 안 오거든. 우리 스님 께서 도량 여기저기를 찾아 다니셨나 봐. 깜깜한 도량을 찾아다니시다가 방 앞에 놓인 까만 고무신을 보시고 하늘 같던 은사의 지난 과거를 들은 제자는 스승의 인간적인 면모와 더불어 공부 이야기에서 다시금 발심하는 계기를 만났다. 시봉하는 틈틈이 공부한 경계를 말씀드리면 늘 화두를 타파해야 된다. 며 조금 더, 조금 더 정진하라. 고 자상하게 일러주던 은사였다. 그래서 스님은 은사 곁을 떠나 지리산 상선암에 들어갈 결심을 하게 된다. 스승 의 당부대로 화두를 타파해 볼 요량이었다. 그곳에 토굴을 짓고 살았다. 시간을 잊고 화두를 참구할 때가 잦 았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한쪽 벽면을 가린 거적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내다보니 호랑이였 다. 호랑이가 내려오는 날이 잦았다. 호랑이가 나타나면 지켜주는 듯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공부를 이어가던 중, 우연히 필사본에서 <태백호승가 太 白 胡 僧 歌 >라는 시를 읽게 되었다. 지형이 여기 있나? 하고 부르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났지. 그때가 밤 열한 시쯤이었어. 우리 스님은 주 무시는 시간을 넘기면 못 주무셨어. 그래서 그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스님의 출가 때 이야기, 공부 이야기, 젊 었을 때 이야기, 가정사 이야기 등을 새벽 예불 전까지 다 들려주시더니 내 사생활 이야기는 이 세상에 와서 너 한테 처음이다. 그러셔. 그러고 나니 더 존경스럽더라고. 산승년기나득지 山 僧 年 紀 那 得 知 수종청송금십위 手 種 靑 松 今 十 圍 심여장강공청정 心 如 長 江 共 淸 淨 신사부운무시비 身 似 浮 雲 無 是 非 산승의 나이는 알기 어려우나 손수 심은 나무는 열 아름이나 되고 마음은 흐르는 물처럼 그지없이 맑고 몸은 마치 뜬구름 같아 시비를 떠났다네. 태백호승가를 읽고 부운 浮 雲 을 백운 白 雲 으로 고쳐 스승을 찾아가 법호를 바꾸고 싶다고 말씀 올렸다. 그러 자 스승은 백운은 근거가 없다. 동에서 바라보면 서로 가고 서에서 바라보면 동으로 간다. 그렇게 근거가 없 지만 수행인으로서는 그것이 좋다. 하며 허락하셨다. 그렇게 스님은 은사 스님께 전법게를 받을 때의 송월 松 月 에서 백운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백운 스님은 범어사, 송광사, 화엄사 등의 강원에서 17년 동안 강주를 지낸 대강백이다. 그러나 교학에만 머 물러 있지 않고 은사 동산 스님으로부터 받은 무자 화두를 지금도 참구 중이다. 스님은 은사 스님 생전에 공 초의선사 해동다맥을 잇고 있는 백운 스님의 청암사 다맥 전수 모습 부인으로 인정한 제자는 현재 조실인 지유 스님뿐이었다며 스승 생전에 화두를 타파한 공부인의 모습을 보여 40 41

22 우리의 스승, 동산 대종사 2 특별기고 드리지 못해 죄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승 가신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은사가 떠나신 줄도 모르고 산중에서 정진 중이었던 백운 스님은 삶의 실상을 이미 봐 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소식을 묻는 기자에 게 백운 스님은 앞에 놓인 떡을 가리키며 그거 먹어. 라고 답을 대신했다. 떡 맛이 좋았다. 스님은 두 차례 뇌경색을 겪으면서 기억의 많은 부분을 잃었다고 하였지만 은사 스님을 회고하는 대목에선 날짜와 당시 은사의 몸짓 하나까지 또렷하게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스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산 스님 은 불교정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다. 전국의 모든 사찰이 대처승이 주지였는데 불교정화가 시작되면서 협상이 시작됐지. 청담 스님이 하루는 우 리 스님을 찾아왔어. 효봉 스님과 함께 있는데 청담 스님이 보고를 하는 거야. 지금 대처승들이 삼보사찰만 양 보하겠다고 하다가 이제 15개 사찰을 양보하겠다고 합니다. 하니 우리 스님이 청담 스님에게 야~ 우리가 불교 의 전통을 바로 세우려는 것이지 절 몇 개 얻으려고 하는 거야? 절 몇 개에 연연해서 안 된다. 고 호통을 치셨지. 그리고 을미년 양력 1월 1일에 대통령을 직접 만나 다른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 손을 잡고 한 시간이나 이야기를 나눈 끝에 국법으로 대처승을 몰아내겠다는 유시가 내려오게 된 거야. 혜능을 통해 바라본 오늘의 한국 불교 글. 신준봉(중앙일보 기자) 사진. 유철주 불교 정화의 급물살 속에서 백운 스님은 동산 스님과 여러 어른 스님들을 지키며 쪽잠을 잤다. 그때 잠을 쫓 기 위해 미제 커피에 맛을 들이기도 했다며 웃었다. 지금 우리는 불교 정화의 정신이 퇴색되지 않도록 맑게 깨어 있는지, 백운 스님의 웃음 앞에서 돌아보게 된다. 백운 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범어사는 지금의 범어사와의 사정과 사뭇 다르다. 끝없이 대중을 수용하 는 동산 스님 덕에 먹을 것이 부족해 하루 세끼 국수로 내리 사흘을 먹고 나면 어김없이 설사를 했던 시절, 복 덕심이라는 신도집을 찾아가 쌀 3-4가마를 시주해 와 쌀과 수수를 섞어 하루나 이틀 먹고 나면 설사가 멈추었 다고 한다. 먹을 것 없던 시절, 시주 은혜를 지금도 잊을 수 없어 시주자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있는 백운 스님. 스님은 세상에 진 빚을 잊지 않고 사는 수행자였다. 그래서 뇌경색이 조금 호전되자마자 15~16년 전부터 재가자들을 위해 설해 왔던 금강경오가해 강의부터 다시 시작했다. 금강경오가해 를 강의 교재로 택한 이유는 선승들이 선적인 입장에서 게송으로 금강경을 풀어놓아 선교를 두루 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지 금도 한 달에 2번, 한 번은 부산에서 또 한 번은 담양 용흥사에서 공부를 이어오고 있다. 그 강의를 꾸준히 들 어온 한 보살은 처음에 스님이 호랑이처럼 무서웠다. 며 그때나 지금이나 스님께서는 가르치기 전에 꼭 다시 읽어보고 정리를 하실 정도로 가르치는 일에 철저하시다. 고 했다. 스님 역시 요즘 읽고 있는 책을 묻는 질문에 금강경오가해 라고 답했다. 그것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앞서 스스로의 공부가 늘 우선이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스님이 경전과 조사어록 등을 비롯 일평생 곁에 두고 읽고 공부했던 서책들은 3천여 권. 모두 용흥사에 서고 를 지어서 정리했다. 동국대학교 학술원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문화공보부에 등록했다. 문화공보부에 등 록하면 3억 원이 나오는데 그것은 불교학술원 기금으로 사용했다. 스님의 손때 묻은 서책은 그렇게 회향되었 는데 스님이 내면에 품고 있는 선교의 진수는 어떻게 세상에 전해질까? 세상을 적실 법우 法 雨 를 품은 흰 구름, 백운 스님을 뵙고 돌아오니 봄비 속에 피어났던 봄꽃은 떨어지고 열매 맺을 채비에 한창이었다. 지난 3월 하순 중국 선종의 종조 宗 祖 로 일컬어지는 육조 六 祖 혜능( 惠 能 )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의 출생지인 광둥성 廣 東 省 신싱 新 興 현부터 광저우 廣 州 시와 사 오관 韶 關 시, 성 省 경계를 넘어 후베이 湖 北 성 황메이 黃 梅 현까지 혜능이 머물렀던 공간을 차례로 순례했다. 면적으로나 인구로나 광둥성 하나가 남한 전체를 능가하고도 남 는 규모이다 보니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대륙의 스케일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고 할 까. 그가 주석했던 사찰들을 두루 찾아다니기에 계획했던 3박 4일 일정은 빠듯했다. 동아시아 선종사에 혜능이 끼친 영향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만큼 그 의 자취는 선명하고 뿌리 깊다.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 점은 그의 가르 침이 여전히 싱싱하고 강렬하게 살아 숨 쉰다는 점일 게다. 가령 그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풍번문답 風 幡 問 答 은 딱히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 에게도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다. 바람에 날리는 깃발 이라는 지각 대상에서 실제로 움 직이는 것은 무엇이냐. 바람이냐 깃발이냐, 하는 소득 없는 논전을 벌이고 있던 아둔 한 승려들 사이에 끼어들어 움직이는 것은 당신들의 마음일 뿐이라고 했다는 이야기 는 마음의 작용과 실제를 중시하는 아시아인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린다. 혜능의 휘하에서 선종사를 장식한 숱한 선사들이 배출됐다거나 인도에서 건너온 중 국 선종의 초조 初 祖 달마의 법맥이 2조 혜가 慧 可, 3조 승찬 僧 璨, 4조 도신 道 信, 5조 홍 인 弘 忍 을 거쳐 혜능에게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혜능의 높은 위상을 재확인시키는 알리 바이일 뿐이다. 남화선사에 있는 혜능 진신상 42 43

23 특별기고 광저우 시 외곽 조계산에 위치한 남화선사의 샘(우물) 벽장식에 새겨진 금강경 한 구절 응무소주. 이 구절을 듣고 혜능의 마음의 문득 밝아져 깨쳤다고 한다. 혜능의 득법게. 오조사 정문 오른쪽 혜능 선 사상의 핵심은 무엇일까. 혜능 성지 聖 地 답사는 실은 그 점을 캐보려는 것이었다. 순 례길을 함께 한 스님의 도움을 얻어 책 몇 권을 준비해 갔다. 성철 스님이 현토하고 번역한 돈 황본 육조단경, 일본 학자 나카가와 다카( 中 川 孝 )가 흥성사본을 저본 삼아 번역한 육조단경, 역시 일본 불교학자인 야나기다 세이잔( 柳 田 聖 山 )의 선의 사상과 역사, 원로 언론인 이은윤의 육조 혜능평전, 김영욱 가산불교문화원 책임연구원의 왕초보 육조단경 박사 되다 등이다. 그리고 현지 사찰에서 얻은 몇 권의 절 소개 소책자들. 전문가들의 안목은 크게 두어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깨달음에는 차별이 없다는 불성 평등사 상. 알려진 대로 혜능은 일자무식에 나무꾼이었다. 이렇다 할 수행 경력도 없는 그가 우연찮게 흘려들은 금강경 한 구절에 홀연 마음이 밝아진다. 그리곤 일약 거대한 중국 불교의 최고 자 리에 오른다. 요즘 감각으로도 환상적인 이 성공 스토리는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1300년 전 중 국에서는 가히 획기적인 이야기였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의 평등사상은 누구나 다 자신의 마음 안에 불성 佛 性 을 소유하고 있다는 혜능 특유의 선사상으로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내 안에 부처 가 있기 때문에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혜능의 선사상이 경쟁자와의 치열한 적통 嫡 統 논쟁을 거친 승리자의 사상이라는 점도 연구자 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심지어 혜능 선사상의 핵심적인 부분까지도 후대의 개작 을 통해 오늘의 모양을 갖췄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게 혜능의 득법게( 得 法 偈 깨달음의 노래) 중 핵심 구절인 본래무일물 本 來 無 一 物 이다. 본래부터 텅 비어 아무것도 없다, 쯤으로 번역되는 이 구절은 돈황본 육조단경 에는 나오지 않는다. 돈황본에는 대신 불성상청정 佛 性 常 淸 淨 이라는 구절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카가와는 책 뒤 해설에서 두 구절의 차이를 상세히 비교했 다. 그는 불성상청정은 법의 法 意 에서는 통하지만 산문 형식이요, 죽은 글귀요, 설명구로 끝나 고 만다. 고 깎아내린다. 그에 반해 본래무일물은 생동하는 활성구 라고 평한다. 돈황본은 제작 연도가 가장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혜능의 본뜻에 가장 충실한 판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라진 불성상청정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현존하는 돈황본 자체에 문제가 있거나 후대에 불성상청정을 대신해 본래무일물이 추가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나카가와는 이와 관련 혜능의 스승 홍인과의 연관성을 밝힌다. 그에 따르면 홍인은 제자들 에게 더러운 풀 나부랑이나 흙 부스러기를 말끔히 청소해 없애버리면 일물 一 物 도 역시 없다. 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홍인의 일물역무 一 物 亦 無 가 혜능의 본래무일물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 렇다면 본래무일물은 스승 홍인의 사상 속에 이미 그 씨앗을 감추고 있었던 셈이 된다. 가히 혜 능의 선사상이 중국 선가의 도도한 집단지성이 완성시킨 은은한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감사 大 鑑 寺 와 남화선사 南 華 禪 寺, 광효사 光 孝 寺, 오조사 五 祖 寺 등 혜능이 머물렀던 사찰들에 서 그의 선사상의 핵심을 역력히 느꼈다고 하면 과장일 것이다. 오히려 지식인과 연구자들의 존 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혜능이 중국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가 더 흥미 로웠다. 신준봉 한마디로 혜능은 신과 동격이었다. 남화선사의 혜능 진신상 주변은 중국 특유의 길쭉한 향을 한 움큼씩 바치는 신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중국의 사찰은 관광사찰화 돼 있다는 누군가의 경 험담이 실감 났다. 풍번문답의 현장인 광효사의 주지 헝바오( 恒 寶 ) 스님은 혜능은 중국 사람들 에게 하나의 문화 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일상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추앙된다는 뜻일 게다. 오조사는 유명한 불성무남북 佛 性 無 南 北, 또 본래무일물이 들어 있는 득법게의 현장이다. 그래 서 혜능의 스승 홍인이 주석했던 곳이지만 혜능을 더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느낌을 준다. 하지 만 안타깝게 혜능이 8개월 동안 행자 생활을 하며 찧었다는 디딜방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절 안에 전시된 건 모형, 진품은 후베이성의 성도 省 都 인 우한 武 漢 의 박물관에 있다고 했다. 사찰은 혜능의 열반 130여 년 후 자리를 옮겨 지어진 것이었다. 원래 오조사 자리를 찾아갔 다. 사찰 뒤편 대나무 숲 산길을 5분여 올랐을까. 1000여 명의 대중이 있었다는 대형 사찰 자 리치고는 비좁아 보이는 공터가 나타났다. 사찰 주변에서 태어나 평생 살았다는 80대 노파가 끈질기게 향을 사줄 것을 요구하다 끝내 들어주지 않자 화를 냈다. 노파는 혜능의 스승 홍인이 처녀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는 이른바 투태설 投 胎 說 을 마치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줄줄이 꿰고 있었다. 노파에게 혜능과 홍인은 밥줄이자 가장 소박한 의미의 신앙 대상이었다. 혜능과 관련된 믿음의 양태는 실로 다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맹목적인 기복신앙 신봉자부 터 중국 정부의 통제 속에서도 묵묵히 갈 길을 가는 외로운 수행자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을 목 격했다. 그런 두툼한 스펙트럼은 실은 혜능의 선불교를 이어받은 한국 선종의 모습에 다름 아 니었다. 성철 스님 백일법문 앞부분에 소개된 타 종교와 비교되는 불교 만의 특징은 절대자에 의지 하지 않고도 인간의 노력 여하에 따라 영원한 행복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자력신앙이라는 점 이다. 기복신앙이 잘못됐으니 당장 집어치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제는 좀 냉정하게 불교에 접 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자기 복만을 비는 맹목적 시주, 불투명한 회계, 불안한 수행 자의 노후. 이런 것들이 복합 작용해 가끔씩 드러나는 한국 불교의 치부를 형성한 건 아닐까. 적어도 육조단경 속 혜능의 가르침은 절을 짓고 보시하는 것보다 자기 안의 불성을 보는 게 먼저라고 가르치고 있다. 중앙일보 스포츠부 사회부 국제부 기자를 역임하였고 현재 문화부 차장(종교 담당)을 맡고 있다.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문화학 석사학위Goldsmiths College Cultural Studies MA를 받았다

24 말사순례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다 신라시대 천년고찰 백양산 선암사仙岩寺 글. 편집부 寺, 선암사仙岩 산 양 백 부산 法의 닮은 불법佛 을 松 古 송 고 에 있었다. 곳 그 가 계 세 에서 變萬化 앞 千 화 만 세상의 천변 긴긴 세월을 는 넘 이 천년 안은 채 고스란히 껴 데에서도 세속 한가운 法林을 무성한 법림 었다. 이어오고 있

25 말사순례 마하사 摩 詞 寺 와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 꼽히는 선암사( 仙 岩 寺 부산진 구 부암3동 628)는 부산 도심 속에 뿌리 깊게 자리한 사찰이지만 절 주위가 신록으 로 가득하다. 세월의 속도에 맞춰 도시가 점차 커지고 뭇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 연스럽게 도심을 늠름하게 지켜내는 자리에 서게 됐다. 창건 시기는 본사인 범어 사보다 3년이 앞선다. 675년(신라 문무왕 15년) 원효 대사가 창건했을 당시, 견강사 見 江 寺 라고 불렸으나 뒷산 절벽 바위에서 신라의 국선 화랑들이 수련했다하여 선 암사 仙 岩 寺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선암사가 전국적인 사찰로 부상한 것은 근현대로 들어서면서부터라고 한다. 조 선을 거쳐 경허 스님에 이르러 선의 등불이 되살아났다고 전해지는데 경허 스님이 선암사 일주문이 가파른 계단 위에 위엄 있게 서 있다. 고개를 들고 가만 올려다 보니 대웅전 편액이 계단 아래에서도 보인다. 일주문은 가운데 문을 중심으로 2개 의 작은 문이 양옆으로 덧붙여진 모양이다.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마주하고 있고 그 옆으로 관음전과 명부전이 위치해 있다. 도량 아래로 고층 아파 트 숲이 내려다보인다. 저 멀리 반짝이는 부산항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인지 선 암사에는 해안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용왕단이 선암폭포 앞쪽에 놓여 있다. 선암바 위(신선암) 사이로 흐르는 폭포 소리가 시원하다. 번뇌와 망상을 씻어내는 청정수 열반하고 그의 제자인 혜월 스님이 1921년 선암사로 오면서 남방의 선도량으로 거듭났다고 한다. 전국의 선지식들이 부산 선암사로 찾아들었고 1923년 문을 연 소림선원이 1930년까지 선풍을 떨쳤다고 전해진다. 선암사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하는 문화공간인 추모관이 있다. 1층에 위 패를 봉안할 수 있는 추모관과 전시실, 도서관이 있고 2층에 법당과 문화관이 마 련되어 있다. 지역 교육과 추모문화를 추구하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겸하 고 있는 것이다. 다. 용왕단과 대웅전 사이 위쪽으로 극락전과 칠성각, 산식각이 자리해 있다. 극 락전 앞마당에는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53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려 후기에 조성된 삼층석탑이 놓여 있다. 크기는 크지 않지만 아담한 기품이 느껴진다. 용왕당과 산 신각이 함께 있는 절은 흔치 않다는 한 보살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눈으로 사찰 곳곳을 매만져 본다. 선암사 도량은 정결하면서도 초연한 얼굴이다. 시야 가득 부처님의 세계가 들어찬다. 평일인데도 선암사를 찾은 이들이 제법 많다. 인지상 정 人 之 常 情, 좋은 절, 좋은 길, 좋은 자리는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을 찾게 만든다. 부처님의 광명은 어둠을 가르고 그 빛을 닮아 절의 역사는 깊고도 찬연하다. 절에 들어오기 전에는 부처님을 몰랐어. 친구들과 모여 앉았는데 흥에 겨웠는 지 한 친구가 숟가락을 방바닥에 탁탁탁 치면서 중얼중얼 대는 거야. 순간 무언 가가 머리를 뚫고 지나가는 강한 느낌이 들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천수경인지 반 야심경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소리가 나와 한 몸으로 엮여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이 드는 거야. 친구는 알고 보니 범어사에 있던 스님이었어. 생전 절이라고는 모르 고 있었는데도 단걸음에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 범어사로 직행했지. 친구가 숟가락으로 바닥을 두들기는 그 소리를 저녁 7시에 듣고 홀로 부산으로 내려와 다음 날 아침 7시에 머리를 깎은 거야. 그때가 1974년 4월 30일, 초파일 바로 다 음날의 일이었어. 이처럼 불연 佛 緣 은 적막 산중을 한순간에 적시는 봄비처럼 부지불식간에 찾아드 는지도 모른다. 선암사 주지 원범 스님은 전생부터 이어져 온 부처님과의 깊은 인 48 49

26 말사순례 연 덕이라고 단언했다. 부산 범어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19살이던 1974년 흥교 스님을 은사로 입산수도하였다. 1977년 법주사승가 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스님은 청원 천주암 주지, 범 어사 재무국장을 역임하였고, 제14대 15대 중앙종회의원, 생명나눔 실천 부산지역본부 본부장,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범어사는 부처님을 모르던 19살의 청년을 하루아침에 불문 佛 門 에 들어서게 한 고향의 다른 이름이었다. 절에 들어간 그다음 해였는데 자정이 넘은 어느 밤, 한 스님이 소 신공양 燒 身 供 養 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었지. 고개를 들었 는데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데도 실감을 못할 정도로 하늘이 온 통 부처님으로 가득했어.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밤하늘이 이상하게 훤했어. 가히 여기가 부처님 세계로구나 했지. 부처님의 광명은 어둠을 가르고 그 빛을 닮아 절의 역사는 깊고도 찬연하다. 범어사보다 긴 역사를 지닌 선암사는 도심 속에서도 여 전히 푸르고 무성한 부처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靑 山 疊 疊 彌 陀 窟 청산첩첩미타굴 蒼 海 茫 茫 寂 滅 宮 창해망망적멸궁 겹겹이 쌓인 청산은 아미타불의 법당이요 망망한 푸른 바다는 부처님의 궁이로다. 物 物 拈 來 無 물물염래무가애 두두물물 모든 것은 가고 옴에 걸림 없는데 幾 看 松 亭 鶴 頭 紅 기간송정학두홍 소나무 위 머리 붉은 학을 몇 번이나 보았던고. 선암사 대웅전 정면에는 靑 山 疊 疊 彌 陀 窟 蒼 海 茫 茫 寂 滅 宮 (청산첩첩미타굴 창해망망적멸궁) 이라고 쓰인 주련이 걸려 있다. 청산은 아미 타불의 법당이요, 푸른 바다는 부처님의 궁이라는 뜻이다. 7, 8년 전 범어사 재무국장으로 있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6시 30분만 되면 뒷산을 오르곤 했어. 정신없이 40여 분을 걸어 올라간 금정산 능선에서 동서남북을 향해 절을 하면서 일체중생의 만복을 빌었는데 어느 날 절을 하고 일어서는 순간 이 글귀가 머리에 딱 박 히는 거야. 온 우주 만물이 부처라는 진리를 머리가 아닌 몸과 가슴으로 절절하게 깨우친 이들은 안다. 일체중생실유불성 一 切 衆 生 悉 有 佛 性, 마 음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불성을 가지고 있고 인연 없이 존재하는 것은 실로 없다는 것을. 이를 체득하면 산 아래 드넓게 펼쳐져 있는 대지를 채우는 뭇 사람들과 생명들을 향한 자비의 눈이 생긴다. 2005년 선암사 주지를 맡은 원범 스님은 생의 마침표를 찍는 모든 존 재들을 보거나 듣게 될 때 언제 어디서고 나무서방정토 南 無 西 方 淨 土 극락세계 極 樂 世 界 라는 말을 떠올리며 염불을 한다고 한다. 이 땅에 서 살다가 죽어간 이들에 대한 연민이자 예의, 지극한 축원의 마음이다. 비탈길의 작은 풀 한 포기, 돌 하나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겹겹이 쌓여 제각각 다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것이라는 스님의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온 우주가 다 내 것이니 따로 을 알면서도 움켜쥔 손을 쉽사리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얼굴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스님의 목소리를 가만 듣고 있노라 니 마음을 들쑤시던 상념들이 어느새 잠잠해진다. 원범 스님은 선방에서 공부하듯이 참선과 불법 佛 法 을 배울 수 있도록 3개월에서 1년간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전 세계 인텔리 외국인들을 대상 으로 한국 불교문화와 전통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선암사 템플스테이 는 스님의 오래된 염원이다. 국제 포교를 통해 세계 속의 명찰 名 刹, 선암사를 하나하나 그려 내고 있는 중이다. 스님의 가르침을 안고 나선 길, 도처에서 우짖는 산새 소리가 법문처럼 들려온 다. 마음 한 편에 따뜻하고도 분분 芬 芬 한 봄의 훈풍이 분다. 선암사, 흔들림 없는 본래의 불성 佛 性 이 그곳에 성성하게 살아 있었다. 챙길 것이 없다. 제 이익만을 쫓는 우리의 근시안적 태도가 번뇌와 갈등을 쉼 없이 만들어낸다. 언젠가는 연기처럼 끝날 생이라는 것 50 51

27 문 없는 문을 열다 영축총림 통도사 보광선원 보궁 속 보물, 여여한 수행의 향기 영축산을 장엄하다 연둣빛 초목을 간질이던 봄 햇살이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며 막 영축산 능선을 넘어갔다. 너른 잔디마당을 뒹굴던 긴 빛줄기도 해를 따라 홀연히 자취를 감추자 기다렸다는 듯 가사를 수한 스님 한 분이 법당에서 나와 마루 끝 소종 앞에 앉았 다. 이윽고 들리는 소리. 덩 덩 덩. 영축총림 통도사 보광선원 오후 6시. 선방 안에서는 소종 소리의 바통을 잇는 삼배의 죽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고요. 해제 기간임에도 선원에서는 저녁 예경과 정진까지 산철결제가 이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4월의 마지막 주말, 영축총림 통도사 산문 앞 에서는 연등축제의 시작을 알리느라 풍물패의 어우러짐으로 한창 시끌벅적할 때 글. 주영미(법보신문 기자) 사진. 광우 스님(통도사 교무국장) 도량 내 보광선원寶光禪院은 늘 그렇듯 고요히 봄의 정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53

28 문 없는 문을 열다 영축총림 통도사 보광선원 는 좀처럼 안을 들여다보기 힘든 곳이 바로 보광선원이다. 그렇게 일반에는 다소 멀게 느껴지는 공간이라 할지라도 통도사의 역대 어른 스님들 은 한결같이 보광선원을 가깝게 오갔다. 구하 스님, 전강 스님, 경봉 스님, 월하 스님 등 통도사의 근현대 역사를 일군 기라성 같은 스님들이 선방 외호에 항상 힘쓴 것은 물론 틈나는 대로 자주 선원을 찾아 젊은 스님들과 함께 입정에 들었던 것이다. 1980년 통도 사가 영축총림으로 거듭나면서 선원의 위상은 더욱 견고하고 탄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었다. 어른 스님들의 외호와 수행은 보광선원의 가풍으로 남아 그대로 지혜로운 정진으로 자리매김했다. 스님들은 어렵고 힘든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수좌는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다. 며 용맹정진보다는 꾸준한 수행과 자기 관리를 강조했다. 보광선원이 용맹정진 대신 결제든 산철이든 항상 하루 9시간 수행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이유도 어른 스님 들의 가풍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천진 스님의 설명이다. 천진 스님은 어른 스님들의 가풍을 오롯하게 이어가는 이 시대의 손꼽히는 보물 수좌 통도사 보광선원 능견난사문 能 見 難 思 門 에 들어서다 출입금지 푯말 앞에서 선원을 바라보며 서성이던 객을 유나 천진 스님이 먼저 알아보 았다. 들어와도 좋다는 손짓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별한 용건 없이는 외부 사람 로 정평이 나 있다. 스님은 지금까지 한 철도 놓치지 않고 35년째 참선 수행을 이어왔 다. 전국 제방 선원 가운데 방부 들이지 않은 곳이 없었고 역대 기라성의 스님들을 제방 곳곳에서 친견하고 가르침을 구했다. 수행이란 망상을 끊어내는 것이다. 정진하는 그 시간만큼은 바깥일에 대한 생각을 일체 끊고 오직 자연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 이라 는 참선에 대한 지론도 명확하다. 스님은 1968년 강원을 졸업한 이후 처음 선원으로 방 부 들일 때를 회상했다. 들을 만나지 않는 수좌 스님을 향한 걸음은 취재를 목적으로 하는 순간에도 쭈뼛거려 졌다. 그만큼 도량을 수없이 오고 간 객에게도 선원은 여전히 낯선 곳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공간은 참으로 넉넉한 품을 갖추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른 잔디, 연 둣빛 푸른 마당 중앙을 가로지르는 포행석 양 끝에는 이제 막 꽃잎 떨어진 목련나무, 이 제 막 연두 잎이 피기 시작한 감나무가 금강역사처럼 선원을 외호하고 있는 정갈한 풍경 덕분이었다. 그 왼편은 스님들이 머무는 방사요, 또 저쪽 끝에는 정진하는 스님들을 위 한 별도의 세면장이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보광선원은 2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통도사를 대표하는 참선수행 공간이다. 영축 산 자락 평평한 대지 위에 단단하게 자리한 통도사는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으로 전각 의 공간을 나누어 부른다. 이 가운데 적멸보궁과 방장실, 주지실 등이 위치한 상로전은 영축총림을 어미새라고 할 때 그 어미새가 보호하는 둥지 같은 곳이라고 할까. 특히 상 로전의 전각 가운데서도 주지실과 금강계단 사이, 객의 키만 한 담이 둘러 있어 밖에서 54 55

29 문 없는 문을 열다 영축총림 통도사 보광선원 당시에는 의욕만 앞섰지 결코 성성치 못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지겹고 졸음 이 쏟아졌습니다. 애쓰는 시간이 3년 즈음 지났을까요. 이제 아, 좀 앉을 만하다. 라는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런데 요즘 수좌 스님들은 미안한 얘기지만 너무 끈기가 없어 요. 무엇보다 간화선 수행을 쉽게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구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합 니다. 정보화 시대, 수많은 수행법을 한 자리에 앉아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 면서 종단의 2만여 스님 가운데 불과 2천여 명만이 선방에 방부를 들이는 실정이고 그 가운데서도 간화선 수행을 하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래서 보광선원에서만큼은 간화선 수행을 하자는 것이 수좌 스님들을 위해 스님이 항상 당부 하는 말이다. 것을 하루 9시간 정진 중 잘 지켜 나가면 5~6회를 돌게 되는데 거리상 4km가 넘어요. 누 군가 제게 건강의 비결을 물으면 저는 항상 정진 중 포행을 열심히 하는 데 있다고 이야 기합니다. 2004년 보광선원 유나를 맡아 6년을 보내고 2011년 현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의 취 임과 더불어 유나 소임을 다시 맡게 된 스님은 소임을 쉬는 7년 동안에도 제방의 선원을 찾아 방부를 들였다. 그러한 스님의 철저한 수행자의 삶은 구참과 신참을 넘어 선방 문 고리를 잡으려는 누구에게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보광선원이 항시 결제 철에는 30 여 명이 모여들고 산철에도 7~8여 수좌 스님들이 철저한 일과를 이어가는 선방으로 탄 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유도 여일한 수행, 그 바탕에 유나 천진 스님은 든든한 기둥임 이 분명했다. 스님의 법담을 듣고 방문을 나서자 벌써 해가 기울고 달빛이 초롱초롱하게 떴다. 선 방에서는 아직 정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시 보니 수행을 하는 큰방에는 보광전 寶 光 展 이외에도 무상선원 無 上 禪 院, 제일강산 第 一 江 山, 천하제일선원 天 下 第 一 禪 院 등 시대를 달리 망상을 끊어내고 오직 자연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수행 하는 여러 개의 편액이 연이어 달려 있다.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정진하고 그 성성한 수행의 기운을 짧은 한 구절의 말로 옮긴 것이리라. 편액 하나하나 주옥같은 말 이라고 읊조리는 천진 스님께도 한 구절을 부탁했다. 손사래를 치며 사족을 달 필요 없다는 스 님은 대신 게송을 하나 읊었다. 지난해 하안거, 저녁 정진을 마치고 선방을 나설 때 문 득 떠올라 쓰게 된 게송인데 자연스레 외워져 생각날 때마다 읊조린다고 했다. 외국에 나가서 많은 좋은 음식들을 맛보는 것도 좋지요. 하 지만 한국 사람은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간화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조 스님 이후로 지금까지 한국 불 교에서 그 역사를 이어온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맞는 수행이라는 말입니다. 철저한 대중생활과 결제 기간 중에는 산문 밖을 나가지 않는 만고금우산석호 萬 古 金 牛 産 石 虎 용사혼잡가무소 龍 蛇 混 雜 歌 舞 笑 삼라만상방광설 森 羅 萬 象 放 光 說 준동함령사자후 蠢 動 含 靈 獅 子 吼 오래된 금송아지가 돌호랑이를 낳고 용과 뱀이 같이 노래 부르고 춤추며 노니로다. 두두물물이 그대로 방광을 하니 목숨 있는 모든 생명들이 법문하더라. 청규를 중요시하는 것과 더불어 스님이 강조하는 또 한 가지 정 진 잘하는 비결 은 바로 포행이었다. 법당에서는 부처님을 위하는 수행은 보통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탑돌이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참선 중 50분간 좌 선을 하고 10분 동안 포행을 할 때는 왼쪽으로 돌게 됩니다. 왼 보광선원을 나와 도량을 빠져나오는 길, 산문 앞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연등 축제의 야단법석이 한창이었다. 마침 사중 소임을 맡은 국장급 스님들도 모두 나와 주 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 시끌벅적함과 더불어 산문 안에서는 정진이 이어질 것이다. 보광선원에서 마주했던 달이 이곳 야단법석 현장에도 두둥실 떴다. 고요 히 내리비치는 달이 오늘따라 유난히 평온하다. 쪽은 체 體. 오른쪽은 용 用 을 뜻합니다. 부처님과 내가 똑같다 는 의미로 왼쪽으로 도는 것이지요. 그 10분 동안 포행을 하는 56 57

30 절집 밥상 건강한 제철 봄나물 울타리 안의 텃밭에 푸성귀와 봄나물이 제법 많이 올라와준 덕분 에 밥상이 풍성하게 채워졌다. 사계절 중 봄이 가장 먹거리가 많은 recipe 듯하다. 겨울을 이겨내고 모습을 드러낸 봄나물은 냉이, 쑥, 참나물, 취나물, 머위, 돌나물, 응개, 민들레 등 다양하다. 이 같은 봄나물에 두릅, 응개전 는 비타민과 칼슘이 풍부해 면역력을 높이는 효능이 있다. 산중 생 활을 하는 스님에게는 그야말로 건강에도 이롭고 맛 또한 훌륭한 으뜸 건강식품이라고 하겠다. 글 사진 범어사 대성암 봄나물들은 한때 시기가 지나면 먹기가 힘들다. 너무 커버리면 억 세져 버리고, 응개같은 것은 두세 번 정도 따고 나면 가시가 크고 단 길고 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앙상한 가지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빛깔로 옷을 입기 시작했다. 연둣빛, 초록빛, 노란빛, 그리고 진달래의 분홍빛까지 가을 단풍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 땅 속의 생명들과 땅 위의 생명들, 그리고 가지가지 맺힌 여린 새순과 봄꽃들, 이 모든 생명이 힘차게 활동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단해지기 때문이다. 적당한 때를 잘 맞춰 먹어야 맛과 영양을 고루 다 빠짐없이 챙길 수 있다. 또한 봄나물 중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두릅은 참두릅, 개두릅, 땅 두릅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참두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두릅나 ① 두릅과 응개를 다듬는다. 무 새순으로 나무두릅이라고도 한다. 땅두릅은 돋아나는 새순을 적당량의 물을 끓인다. 땅을 파내어 잘라낸 것이고, 개두릅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음나 무(엄나무, 응개나무)에서 나오는 새순을 말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 는 응개가 바로 개두릅이다. ② 끓는 물에 소금을 조금 넣고 잘 다듬어진 두릅과 응개를 넣어 데쳐 낸다. ③ 우리밀에 된장과 고추장을 2:1로 넣고 두릅은 다른 채소에 비하여 단백질이 많고 무기질, 비타민 또한 풍부하며 쓴맛을 나게 하는 사포닌 성분이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에 피로회복에도 효과적이다. 참두릅보다는 개두릅이 향이 훨씬 강하 물을 넣어 반죽을 만든다. ④ 데쳐 낸 두릅과 응개를 분리하여 끝부분을 살짝 찧어서 부드럽게 해준다. 고 약효도 더 뛰어나다고 하여 개두릅을 제일로 친다. 위장병과 신 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장병에도 효과가 뛰어나 주로 앉아서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큰 약이 ⑥ 분리한 두릅과 응개를 반죽에 버무린 후 될 수 있는 귀한 음식들이다. 주로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거나 2~3개 정도씩 가지런히 크기를 맞추어 나물, 전 등으로 먹지만 장떡과 비슷한 방법으로 전을 부쳐 먹으면 팬에 올려 구워준다. 그 맛이 훨씬 좋다. 이번에는 진달래, 두릅, 응개를 가지고 봄 내음 가득한 음식을 한번 만들어 보았다. 진달래 두부 진달래는 기관지염이나 감기로 인한 두통, 고혈압, 신경통 등에 좋은 약효를 가지고 있어 흔히 술을 담그거나 전을 부쳐 먹기도 하지만 직접 두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가마솥에 물 이 끓으면 콩물과 간수, 미리 따서 말려놓은 진달래 꽃잎을 갈아 함께 어우러지도록 넣는다. 방금 딴 싱싱한 꽃잎을 깔고 그 위에 두부를 넣고 두부가 굳어지길 기다린다. 최고의 향과 영양을 자랑하는 진달래 두부 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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