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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아역사 자 료 총 서 35 明史 外國傳 譯註 2 外國傳 中 譯註 中國 正史 外國傳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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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北史 外國傳 譯註 明史 차례 외국 5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해제 / 359 점성(占城) / 363 빈동룡(賓童龍) / 406 진랍(眞臘) / 408 섬라(暹羅) / 414 조와(爪哇) / 438 사파(闍婆) / 450 소길단(蘇吉丹) / 451 설리(碟里) / 451 일라하치(日羅夏治) / 452 삼불제(三佛齊) / 452 참고문헌 / 462 차례 347

4 외국 6 발니 만랄가 소문답랄 수문달나 소록 서양쇄리 쇄리 람방 담파 백화 팽형 나고아 여벌 남발리 아노 유불 정기의 파나서 불랑기 화란전해제 / 469 발니 ( 浡泥 ) / 472 만랄가 ( 滿剌加 ) / 493 소문답랄 ( 蘇門答剌 ) / 514 수문달나 ( 須文達那 ) / 523 소록 ( 蘇祿 ) / 524 서양쇄리 ( 西洋瑣里 ) / 527 쇄리 ( 瑣里 ) / 529 람방 ( 覽邦 ) / 530 담파 ( 淡巴 ) / 530 백화 ( 百花 ) / 명사외국전역주 2- 외국전중

5 팽형 ( 彭亨 ) / 532 나고아 ( 那孤兒 ) / 534 여벌 ( 黎伐 ) / 535 남발리 ( 南渤利 ) / 535 아노 ( 阿魯 ) / 537 유불 ( 柔佛 ) / 538 정기의 ( 丁機宜 ) / 541 파나서 ( 巴喇西 ) / 541 불랑기 ( 佛郞機 ) / 543 화란 ( 和蘭 ) / 558 참고문헌 / 570 차례 349

6 외국 7 고리 가지 소갈란 대갈란 석란산 방갈랄 소납박아 조법아 목골도속 불랄와 죽보 아단 날살 마림 홀로모사 유산 비랄 손랄 남무리 가이륵 감파리 급란단 사리만니 저리 천리달 실랄비 고리반졸 날니 하랄비 기랄니 굴찰니 사랄제 팽가나 팔가의 오사랄척 감파 아와 타회 백갈달 흑갈달 불름 의대리아전해제 / 577 고리 ( 古里 ) / 581 가지 ( 柯枝 ) / 591 소갈란 ( 小葛蘭 ) / 598 대갈란 ( 大葛蘭 ) / 599 석란산 ( 錫蘭山 ) / 600 방갈랄 ( 榜葛剌 ) / 607 소납박아 ( 沼納樸兒 ) / 613 조법아 ( 祖法兒 ) / 613 목골도속 ( 木骨都束 ) / 명사외국전역주 2- 외국전중

7 불랄와 ( 不剌哇 ) / 616 죽보 ( 竹步 ) / 618 아단 ( 阿丹 ) / 618 날살 ( 剌撒 ) / 622 마림 ( 麻林 ) / 623 홀로모사 ( 忽魯謨斯 ) / 625 유산 ( 溜山 ) / 628 비랄 ( 比剌 ) / 630 손랄 ( 孫剌 ) / 630 남무리 ( 南巫里 ) / 630 가이륵 ( 加異勒 ) / 631 감파리 ( 甘巴里 ) / 632 급란단 ( 急蘭丹 ) / 633 사리만니 ( 沙里灣泥 ) / 633 차례 351

8 저리 ( 底里 ) / 633 천리달 ( 千里達 ) / 633 실랄비 ( 失剌比 ) / 634 고리반졸 ( 古里班卒 ) / 634 날니 ( 剌泥 ) / 635 하랄비 ( 夏剌比 ) / 635 기랄니 ( 奇剌泥 ) / 635 굴찰니 ( 窟察泥 ) / 635 사랄제 ( 捨剌齊 ) / 635 팽가나 ( 彭加那 ) / 635 팔가의 ( 八可意 ) / 635 오사랄척 ( 烏沙剌踢 ) / 635 감파 ( 坎巴 ) / 635 아와 ( 阿哇 ) / 명사외국전역주 2- 외국전중

9 타회 ( 打回 ) / 635 백갈달 ( 白葛達 ) / 636 흑갈달 ( 黑葛達 ) / 637 불름 ( 拂菻 ) / 637 의대리아 ( 意大里亞 ) / 641 참고문헌 / 656 차례 353

10 [상권 차례] 명사 외국전 해제 외국 3 일본전 해제 외국 2 안남전 해제 명초의 긴장관계 감합(勘合) 무역의 시작 안남의 기원과 진조(陳朝) 멸망 송소경(宋素卿)과 영파쟁공(寧波爭功) 여계리(黎季犛)의 권력 탈취 주환(朱紈)의 파견 영락제(永樂帝)와 여계리(黎季犛) 정벌 가정대왜구(嘉靖大倭寇)의 창궐 환관 마기(馬騏)의 수탈과 안남의 반란 왕직(汪直) 이후의 왜구 활동 여리(黎利)의 여조(黎朝) 창립 풍신수길(豊臣秀吉)과 임진왜란 막등용(莫登庸) 정권 참고문헌 가정제(嘉靖帝)의 안남 정벌론 여녕(黎寧)의 여조(黎朝) 부흥 막등용의 명조 투항 여유담(黎維潭)과 막씨 정권의 대립 참고문헌 외국 4 유구 여송 합묘리 미락 거 사요 눌필탄 계롱산 파 라 마엽옹 고마랄랑 풍가시 란 문랑마신전 해제 참고문헌 354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11 [하권 차례] 외국 8 달단전 해제 북원(北元)의 출현 외국 9 와랄 타안 복여 태녕전 해제 참고문헌 초기 달단(韃靼)의 활약 소왕자(小王子) 세계표 대원(大元) 대가한(大可汗) 연표 엄답한(俺答汗) 지도 임단한(林丹汗) 색인 참고문헌 차례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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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명사 ( 明史 ) 권 324 외국 ( 外國 ) 5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 占城 賓童龍 眞臘 暹羅 爪哇 闍婆 蘇吉丹 碟里 日羅夏治 三佛齊傳 ) 역주 : 권인용 교열 : 송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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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明史 外國傳 譯註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占城 賓童龍 眞臘 暹羅 爪哇 闍 婆 蘇吉丹 碟里 日羅夏治 三佛齊傳) 해제 명사 권324 외국전 은 동남아시아의 대륙부와 도서부에 각각 위치하는 주요 5개국과 인접하는 소국들을 다루고 있다. 주지하듯 동남아시아는 유라시아 대륙에 연해 있는 대륙부와 해안지대 또는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도서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에서 본전(本傳) 은 전자, 즉 대륙부에 속하는 점성(占城), 진랍(眞臘), 섬라(暹羅)와 후자, 즉 도서부에 속하는 조와(爪哇), 삼불제(三佛齊) 등의 사정을 주로 서술하면서 아울러 점성의 인국(隣國)인 빈동 룡(賓童龍)과 조와의 인국인 사파(闍婆), 소길단(蘇吉丹), 설리(碟里), 일라하치(日羅夏治) 등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대륙부의 주요국 가운데 첫 번째로 소개되고 있는 점성(占城)은 참파족이 세운 국가로서 오늘날 베트남의 중부 일대에 해당된다. 점성은 바로 참파를 한자로 표기한 국명이다. 불교를 받아들이는 등 인도문화의 강한 영향 하에 있던 점성은 지리적 이점 등을 이용하여 각국과의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많은 이익을 거두면서 세력을 확대시켜 갔다. 특히 점성은 북쪽으로 팽창하여 베트남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로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17세기 말에 베트남 에 의하여 멸망되고 말았다. 본권에서는 먼저 점성의 지리적 위치와 연원을 간단하게 소개하였다. 다음에는 주로 명 왕조 개국 초인 홍무(洪武) 2년(1369) 양국 사이에 책봉조공관계가 성립된 이래로 가정(嘉靖) 22년(1543) 점성의 조공사절 파견 기사에 이르기까지의 점성의 역사가 기본적으로 명조의 시각 속에서 소개되고 있다. 홍무 16년(1383) 섬라, 진랍과 함께 점성에게 가장 먼저 감합문책 (勘合文冊)이 발급된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명조와 점성 양국은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다만 이 책봉조공관계가 시간의 추이에 따라 편차가 있었음은 당연하였다. 홍치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해제 359

16 (弘治) 18년(1505) 점성의 책봉 요청에 대하여 형과(刑科) 급사중(給事中) 임양필(林良弼)이, 해외의 여러 번국(蕃國)은 별 일이 없으면 조공을 하지 않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특별한 일이 있으면 조공을 기회로 책봉을 청한다. 라고 한 언급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이후 점성의 책봉이 실제로 상당 기간에 걸쳐 행해지지 않았지만, 이러한 언급 자체가 그 이전부터 점성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각국과의 책봉조공관계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 혹은 명분과 실제 사이에 일정한 괴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본권에서는 점성의 대외관계 특히 그 북쪽에 위치한 안남(安南)과의 치열한 경쟁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즉, 안남과의 전쟁과 충돌 및 명조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외교적 각축 등이 서술되어 있는데, 보다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서는 안남을 대상으로 한 외국전 의 관련 내용과 비교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점성 기사 말미에는 점성의 기후, 산업, 풍습, 민풍, 특산물 등은 물론 악어가 사는 못과 특히, 시두만(屍頭蠻)에 대한 전설 등 흥미로운 내용이 실려 있다. 끝부분에는 점성의 근린 소국으로서 베트남 남부에 위치하는 빈동룡(賓童龍)의 위치와 풍속 등에 대한 소개가 부기(附記)되어 있다. 대륙부에 위치한 두 번째 주요국인 진랍(眞臘) 즉, 캄보디아는 원래 부남(扶南)에 예속되어 있던 크메르족의 일파가 6세기 중엽에 독립하여 세운 나라이다. 7세기 전반에 부남을 병합하 면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대국이 되었는데, 특히 8세기 말 자야바르만 2세 때 앙코르 지방에 수도를 두었다. 캄보디아 역사에서 전성기에 해당하는 이 앙코르 왕조시대는 14세기 후반부 터 타이의 아유타야 왕조의 침입을 받으며 위기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결국 15세기 중엽에 멸망한 뒤 동남 지역으로 천도하였고, 이후 영토가 점차 축소되었다. 캄보디아란 국명 은 16세기 후반의 만력(萬曆) 연간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한편 본전에서는 홍무(洪武)와 영락 (永樂) 연간에 걸쳐 비교적 집중적으로 전개된 양국 간의 책봉조공관계 기사가 주로 실려 있다. 영락 연간에는 점성에게 침략을 당한 사실도 소개하고 있으나, 정작 결정적인 타격을 받은 타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본 외국열전이 기본적으 로 명조와의 관계 위주로 서술되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한계인 듯하다. 한편 말미에는 부귀 한 진랍 이라는 관용어가 생길 정도로 진랍의 풍부한 물산과 풍습 및 종교 등에 대한 서술이 담겨 있다. 대륙부에 위치한 세 번째 주요국인 섬라(暹羅)는 태국의 고칭(古稱)으로서, 자칭의 므앙 타이 는 자유의 나라라는 뜻이다. 본전의 기사에 의하면, 섬라는 수당(隋唐)시기에 적토국(赤 360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17 土國)으로 불렸는데, 후에 섬(暹) 즉, 수코타이 왕국과 라혹(羅斛) 즉, 아유타야 왕국의 두 나라로 나뉘어졌다. 원대(元代)에 라혹국이 섬국의 토지를 병탄하면서 섬라혹(暹羅斛)이라 칭하였는데, 홍무 10년(1377) 홍무제가 하사한 인장에 섬라국왕지인(暹羅國王之印) 이란 글 자를 새기면서 이후 섬라라고 칭하게 되었다. 한편 본전에는 섬라의 대외관계가 소개되어 있다. 유구(琉球)와는 우호관계를 맺고자 하였으나, 인국(隣國)인 점성, 소문답랄(蘇門答剌), 만랄가(滿剌加) 등과는 적대적인 관계였음이 확인된다. 16세기 중엽의 융경(隆慶) 연간에는 미얀마 동만우(東蠻牛)의 침입을 받아 그 식민지가 되기도 하였는데, 만력 연간에 복수에 성공한 뒤 해상을 제패하였다. 특히, 만력 20년(1592)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비밀리에 원군 (援軍)을 보내어 일본을 공격하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비록 이 자원(自願) 요청은 현실화되지 는 않았지만, 조선의 역사 전개와도 일정한 관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말미에는 섬라의 풍속, 여성의 상대적 지위 향상, 종교, 그리고 명조(明朝)에 보내는 다양한 공물이 소개되어 있다. 도서부에 속하는 조와(爪哇)와 삼불제(三佛齊)는 모두 오늘날 인도네시아에 속하는데, 조 와는 주로 자바섬, 삼불제는 수마트라섬에 해당된다. 먼저 조와는 7 10세기의 스리위자야 왕국을 이어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에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마자파힛 왕조가 건립되었으나, 14세기 후반부터 급속도로 쇠퇴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힌두-불교 왕국이 사라지면서 인도네시아 전 지역이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되었다. 본전에서는 먼저 조와국이 원조(元朝)에 파견한 조공사절이 중국에 머물다가 명조(明朝)의 건국을 맞이하여 이를 받아 들이게 되었음을 전하였다. 다만 명 초기에는 조와에서 명조의 사신을 유인해서 살해하기도 하고, 명조의 사병(士兵)들이 조와의 저자에서 죽임을 당하는 등 양국은 긴장관계 아래에 있었다. 이러한 긴장 국면은 영락 연간에 들어서면서 해소되어 영락 16년(1418) 이후로는 조공사절이 대개 해마다 한 번씩 파견될 정도였으나, 정통(正統) 연간 이후 명조가 이에 부담 을 느끼게 되면서 이후에는 그 횟수가 줄어들었고, 홍치 연간 이후에는 거의 두절되었다. 한편 조와에 대한 기사 말미에는 조와의 위치와 풍습은 물론 통상(通商)의 발달 등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끝으로 인접하는 소국인 사파(闍婆), 소길단(蘇吉丹), 설리(碟里), 일라하치(日 羅夏治)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부기되어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 서부의 수마트라섬에 위치하는 삼불제(三佛齊)는 송대(宋代) 이후부터 불린 명칭이다. 7세기 이후 남부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한 불교 왕국 스리위자야는 11세기에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해제 361

18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이후 이웃 나라들의 침략을 받으면서 국세(國勢)가 기울어져 14세기에 결국 조와에게 멸망당했고, 이후 점차 이슬람화되었다. 본전에서는 홍무(洪武) 초에 책봉조공관계 성립 이후 명조는 삼불제의 무역선에 대하여 상세(商稅)를 면제하는 등 보호의 자세를 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가지 못하여 조와에게 예속되면서 조공사절 파견도 끊어 졌음을 전하였다. 아울러 삼불제의 멸망 이후, 팔렘방은 구항(舊港)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곳으로 이주한 중국인이 점차 그 나라를 장악하였고, 명조는 이곳에 선위사(宣慰司)를 설치 하여 간접 관리를 도모하였지만, 조와에게 복속하고 조공사절의 파견이 끊어지는 등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362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19 明史 外國傳 譯註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占城 賓童龍 眞臘 暹羅 爪哇 闍 婆 蘇吉丹 碟里 日羅夏治 三佛齊傳) 역주 占城居南海中, 自瓊州航海順風一晝夜可至, 自福州西南行十晝夜可至, 卽周越裳地. 秦爲林邑, 漢爲象林縣. 後漢末, 區連據其地, 始稱林邑王. 自晉至隋仍之. 唐時, 或稱占不勞, 或稱占婆, 其王所居曰占城. 至德後, 改國號曰環. 迄周 宋, 遂以占 城爲號, 朝貢不替. 元世祖惡其阻命, 大舉兵擊破之, 亦不能定. 점성(占城)1)은 남해(南海)2)에 위치하는데, 경주(瓊州)3)로부터는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1) 占城: 참파(占城, )는 오늘날 베트남의 중부 일대에 위치한 참파족이 세운 국가이다. 초기에 중국 사료에는 林邑이라 불렸지만, 이후 참파라는 이름을 따서 占婆 또는 占城으로 바뀌었다. 참파족의 언어는 말레이-폴리네시아어계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인도문화의 강한 영향을 받아 南天竺의 문자를 사용 했고, 인도로부터 바라문교와 불교 등 이른바 인도종교를 받아들였다. 한편 중국으로부터는 築城術과 무기제조기술 및 생산기술 등을 전수받았다. 참파족이 주로 활동하던 베트남 중부 일대는 광활하고 비옥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생산력이 비교적 높아 일정한 인구 부양이 가능했고, 상아와 무소의 뿔, 침향 및 루비를 비롯한 각종 보석류 등 여러 진귀한 물산이 풍부했으며, 천혜의 良港들이 산재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뛰어난 항해술을 배경으로, 또 중국과 동남아시아 및 서아시아 일대 사이의 항로가 지나가는 곳이라는 지리적인 이점 등을 이용해서 각국과의 활발한 무역활동을 통해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宋代에는 이른바 占城稻가 중국에 전해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참파는 천연의 자연 장애물인 海雲關 너머 즉, 현 베트남의 꽝 남(Quang nan)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이후 남쪽의 푸난(扶南)과도 경쟁했지만, 주로 북쪽으로 팽창하였다. 따라서 그 희생자는 베트남이었다. 하지만 10세기 이래, 베트남 이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면서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레 호안(Le Hoan 黎桓)이 지휘하는 베트남軍의 원정으로 참파의 수도 인드라푸라(Indrapura)가 파괴되어, 그보다 훨씬 남쪽의 비자야(Vijaya; 현재의 빈 딘 Binh Dinh)로 천도하였다. 이는 참파와 베트남 사이에 벌어진 본격적인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63

20 순풍을 만나는 경우 만 하루면 도착하고, 복주(福州)4)로부터는 서남 방향으로 열흘이면 도착 하니, 곧 주(周)나라 때의 월상(越裳) 지역이다. 진(秦)나라 때는 임읍(林邑)이라 했고, 한(漢) 나라 때는 상림현(象林縣)이라 하였다. 후한(後漢) 말에 구연(區連)5)이 그 곳을 근거지로 삼고, 처음으로 임읍왕(林邑王)이라 칭하였다. 진(晉)나라 때부터 수(隋)나라 때까지 이 호칭 이 계속 사용되었다. 당(唐)나라 때에는 점불로(占不勞)라고 불렀고, 점파(占婆)라고도 불렀 는데, 그 왕이 거주하는 곳을 점성(占城)이라 하였다. [당나라 숙종(肅宗)] 지덕(至德) 연간 ( ) 이후에 국호(國號)를 환(環)이라 바꾸었다. 주(周)나라6)와 송(宋)나라 때에 이르 러 드디어 점성을 국호로 삼고, 조공(朝貢)을 멈추지 않았다. 원(元)나라 세조(世祖, ; 재위 )7)는 점성국이 명(命)을 따르지 않음을 미워하여 크게 군대를 동원하 전쟁의 시작이었는데, 이후 약 5세기에 걸쳐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참파는 베트 남의 세력이 남으로 확대되어가는 과정에서 그 공략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결국 17세기 말에 베트남의 응우엔(阮) 세력에 의해 멸망되었다(유인선, 2002: 61; 최병욱, 2006: 49 56; 馬歡 馮承鈞 校注, 1962: 1 6; 費信 馮承鈞 校注, 1962: 1 3). 2) 南海: 先秦시대에 南海는 九州 밖의 四海 가운데 하나로서 원래는 오늘날 중국의 東海와 南海를 가리켰는 데, 점차 그 범주가 廣東과 베트남의 海域을 넘어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한편 南海 는 南宋 이래로 東 西洋이라는 용어로 대치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明代 중엽 이후에는 南洋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邱炫煜, 1995: 19 33). 3) 瓊州: 오늘날의 海南省 海口, 瓊山, 瓊海 등 3市와 定安, 澄邁, 臨高 등 縣을 포괄하는 지역이다. 唐 貞觀 5년(631)에 처음 설치된 이후 그 명칭은 여러 번 바뀌었다. 明代에는 洪武 원년(1368)에 瓊州府로 개칭되 었는데, 2년(1369)에 瓊州로 강등되었다가 3년(1370)에 다시 府로 승격되었다. 4) 福州: 唐 開元 13년(725)에 閩州라고 불렸다. 治所는 閩縣으로서 오늘날의 福建省 福州市에 해당한다. 唐 玄宗時에 州의 서북방에 福山이 있었던 연고로 福州라고 개칭되었다. 宋元 이래로 선박을 통해 동남아 각지로 나갈 때에 出航의 起點이 되는 대표적인 항구였다. 구체적인 출발지점은 福州府 長樂縣 五虎門이 었다(馬歡 馮承鈞 校注, 1962: 1). 5) 區連: 生卒 연도는 未詳이다. 참파 첫 번째 왕조의 건립자인데, 後漢書 에서는 區怜라 칭하고, 梁書 에서 는 區達이라 칭한다. 區連 즉, 쿠 리엔은 원래 後漢 象林縣의 功曹였는데, 永和 2년(192; 一說에는 137년이 라고도 한다)에 거병하여 縣令을 죽이고, 전체 日南郡을 점령한 뒤 林邑王이라 자칭하였다. 後漢에서는 몇 차례에 걸쳐 區連을 제거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區連 사후 王位가 몇 번 계승되었으나, 후사가 이어지지 않아 결국 外孫 팜 홍(范熊)이 繼位하였다( 後漢書 卷86 南蠻西南夷列傳 ; 梁書 卷54 諸夷, 海南諸國, 林邑國 ). 6) 五代의 後周 정권을 가리킨다. 7) 世祖: 몽골제국의 제5대 칸이자 元朝의 始祖인 쿠빌라이(忽必烈)의 廟號이다. 칭기스칸의 손자이기도 하다. 1251년에 형 뭉케가 제4대 칸의 자리에 오르자, 그는 중국 방면의 大總督에 임명되었다. 그는 364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21 여 격파했지만, 평정하지는 못하였다.8) 洪武二年, 太祖遣官以卽位詔諭其國. 其王阿荅阿者先已遣使奉表來朝, 貢象虎方物. 帝喜, 卽遣官齎璽書 大統曆 文綺紗羅, 偕其使者往賜, 其王復遣使來貢. 自後 或比歲貢, 或間歲, 或一歲再貢. 未幾, 命中書省管勾甘桓 會同館副使路景賢齎詔, 封阿荅阿者爲占城國王, 賜綵幣四十 大統曆 三千. 三年遣使往祀其山川, 尋頒科 舉詔於其國. 홍무(洪武)9) 2년(1369)에 태조(太祖, ; 재위 )10)는 관원을 보내 즉 고비사막 남쪽의 金蓮川을 근거지로 삼고 지금의 雲南省에 있던 大理國을 멸망시켰으며, 티베트와 베트남 까지 공격하였다. 1259년에 南宋을 공격하던 4대 칸 뭉케가 四川의 병영에서 병사하자, 쿠빌라이는 國都 카라코룸을 지키고 있던 막내 동생 아릭 부케보다 먼저 중국의 開平府 즉 上都에서 大汗의 자리에 올랐다. 그 뒤로 양자가 싸우기를 4년, 마침내 아릭 부케를 굴복시킨 쿠빌라이는 도읍을 大都(오늘날의 北京)로 옮기고, 1271년에는 국호를 大元이라 칭하였다. 이후 1279년에 南宋을 멸망시키고 이민족으로서 최초의 중국 통일을 이루었다. 8) 元 世祖, 즉 쿠빌라이는 1279년 南宋을 멸망시키고 중국대륙을 통일한 후 이전 왕조들의 전통적인 남방 팽창정책을 이어받아 남해무역을 장악하려 하였다. 특히 참파는 남해항로의 요충이었기 때문에 1281년 참파에 行中書省을 두었다. 이는 참파에 대한 지배의 강화를 의미하는 데다 남해정벌에 필요한 식량까지 강요하자, 참파에서는 왕자 하리짓 등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元에 반기를 들었다. 이후 元軍의 남하로 인해 참파를 비롯한 베트남 지역은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元을 몰아내고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유인선, 2002: ). 9) 洪武: 明朝를 창업한 太祖 朱元璋의 年號이다. 明 太祖 以來로 1世1元, 즉 한 황제가 하나의 연호만을 제정하여 사용하는 제도가 확립되어 관례화하였다. 다만 예외적으로 明朝의 英宗만이 正統( ) 과 天順( )이라는 두 개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10) 太祖: 明朝를 창시한 洪武帝 朱元璋을 가리킨다. 原名은 重八이었으나, 紅巾軍 수령 郭子興의 사위가 되면서 元璋으로 개명하였다. 濠州(安徽省 鳳陽縣)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7세 때 전염병으로 부모와 큰 형을 잃고, 부근에 있는 皇覺寺에 들어가 중이 되어 3년여에 걸친 유랑생활을 하였다. 이후 그는 元 至正 12년(1352)에 고향인 濠州에 근거지를 둔 郭子興의 紅巾軍에 가담하였다. 郭子興이 죽은 뒤 실질적으로 郭子興 군단을 이끌면서 江蘇, 安徽, 浙江 등지를 경략하여 세력을 확대시켰다. 이 과정에 서 그는 儒者와 地主들을 대거 흡수하는 한편 白蓮敎의 색채도 점차 탈각시켜 나갔다. 특히 至正 23년 (1363)에 江西 지역에서 雄據하던 陳友諒 세력을 鄱陽湖 전투에서 타도하고, 1367년에는 江蘇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張士誠을 그의 근거지인 平江(현재의 蘇州)에서 멸하였다. 각지의 群雄들을 차례로 제압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65

22 위의 조서(詔書)로 점성국에 [자신의 즉위 즉, 명조(明朝)의 개국 사실을] 알렸다.11) 그 나라 왕 아답아자(阿荅阿者)는 이보다 앞서 이미 사신을 보내 표(表)12)를 받들고 입조(入朝)해서 코끼리나 호랑이 등의 방물(方物)13)을 바치도록 하였다.14) 홍무제(洪武帝)는 기뻐하고는 곧 관리를 파견하여 새서(璽書)15) 대통력(大統曆) 16) 문기사라(文綺紗羅)17) 등을 가지고 점 성의 사신과 함께 가서 하사하자,18) 그 왕이 다시 사신을 보내어 입조해서 공물(貢物)을 한 그는, 元朝를 타도하기 위한 북벌군이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던 1368년 정월, 應天府에 서 황제 즉위식을 갖고 국호를 大明. 年號를 洪武 라 정하였다. 31년의 재위 동안 명 왕조의 기틀이 되는 여러 가지 제도와 정책을 행했으며, 1398년 윤 5월에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諡號는 高皇帝, 廟號는 太祖로 追尊되었다. 11) 太祖實錄 卷38 洪武 2년 正月 乙卯條에, 遣使以卽位詔諭日本 占城 爪哇 西洋諸國 이라 하여, 洪武 2년 1월 乙卯日에 洪武帝는 占城뿐 아니라 일본, 爪哇와 西洋 즉 인도양의 각국에게도 자신의 즉위를 알리는 詔使를 파견했음을 알 수 있다. 12) 表: 謝恩, 축하, 청원 등의 목적으로 황제에게 올리는 외교문서의 일종으로서 表文이라고도 한다. 明 초기에 表文 등이 실제로 朝鮮과 明朝 사이에 외교적인 알력을 야기한 실상에 대해서는 朴元熇, 2002: 6 30 참조. 한편 明朝 내부에서 황제에게 바치는 문서도 表文이라 하였다. 洪武 14년(1381)에 進賀表箋 禮儀를 정하였는데, 황제의 생일인 天壽聖節 正旦 冬至에 在外 각 아문은 미리 상주문 즉 表文을 바치고 賀禮하였고, 天壽聖節인 경우에는 在外 5品 이상의 衙門은 단지 表文 1통을 바치며, 正旦과 冬至에는 中宮과 皇太子에게 箋文 각 1통을 더 바쳤다. 13) 方物: 그 지역의 특산물을 가리킨다. 14) 太祖實錄 卷39 洪武 2년 2월 乙巳條에, 占城國王阿荅阿者遣其臣虎都蠻貢虎象方物 이라 하여, 占城國 王 阿荅阿者가 파견한 사신 虎都蠻이 특산물을 가지고 入朝하였다는 점에서 明朝보다 앞서 사신을 파견 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5) 璽書: 秦漢시대에 기원하는데, 황제의 璽印을 찍은 문서의 총칭이다. 여기서는 御璽가 찍힌 외교문서를 가리킨다. 16) 大統曆 : 吳 元年(1364) 11월에 太史院使 劉基가 戊申大統曆 을 撰進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한 曆書인 데, 실은 元朝의 授時曆 을 극히 일부만을 바꾼 채 거의 그대로 사용하였다. 授時曆 은 元 世祖 때 元代 자연과학자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郭守敬이 만든 曆이다. 페르시아 曆學의 영향을 받았 고, 1년을 일로 한 太陰太陽曆이다. 明朝는 이 大統曆 을 朝貢國에게 1부씩 하사하였다. 한편, 후에 추산한 日蝕이 맞지 않는 일이 잦자, 개정 논의가 일기도 했으나, 明 末까지 변함없이 사용되었다. 崇禎 말년에 아담 샬 등이 서양의 曆法 등을 참조하여 崇禎曆書 를 만들었고, 이것이 淸朝에 이르러 時憲曆 으로 이어져 공식 曆書로 반포되었다. 17) 文綺紗羅: 무늬를 넣은 비단을 가리킨다. 18) 본문에서 홍무제가 다시 파견한 사신은 吳用을 가리키고, 璽書는 占城國이 자발적으로 朝貢사절단을 보낸 것을 치하하면서 大統曆 과 비단 등을 보낸다는 내용의 御璽가 찍힌 외교문서를 말하며, 文綺紗羅 즉 무늬를 넣은 비단이란, 바탕에 금실로 무늬를 넣은 비단 40필을 의미하고, 하사품을 함께 받은 366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23 바쳤다.19) 이후로부터는 매년 공물을 바치기도 하고, 격년마다 바치기도 했으며, 혹은 1년에 두 번 바치기도 하였다. 얼마 후에는 중서성(中書省)20) 관구(管勾)21) 감환(甘桓) 회동관(會 同館)22) 부사(副使)23) 노경현(路景賢)에게 명하여 조서(詔書)를 가지고 가서 아답아자를 점 성국의 왕으로 봉하고, 채패(綵幣)24) 40필 대통력 3천 부를 하사하였다.25) [홍무] 3년 (1370)에 사신을 보내 그 나라의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26) 얼마 후에는 그 占城의 사신은 虎都蠻 등의 조공사절단을 지칭한다. 이 부분에 대한 明實錄의 관련내용은 다음과 같다. (洪武二年 二月) 辛未, 遣吳用 顔宗魯 楊載等使占城 爪哇 日本等國. 賜占城國王阿荅阿者璽書, 曰: 今 年二月四日, 虎都蠻奉虎象至. 王之誠意, 朕已具悉. 不期王之使者先至, 誠意至篤, 朕甚嘉焉. 今以大統 曆一本 織金綺緞紗羅四十匹, 虎都蠻及從者亦賜文綺紗羅有差( 太祖實錄 卷39 洪武 2년 2월 辛未 條). 즉 洪武帝는 자신이 보낸 詔使가 도착하기도 전에 占城에서 먼저 朝貢使節團이 도착한 것을 크게 가상히 여기고는 吳用 등을 占城에 使臣으로 보내 이를 치하하면서 大統曆 한 부와 금실로 무늬를 넣은 비단 40필을 하사한다는 내용의 璽書를 보냈으며, 虎都蠻 등 조공사절단에게도 무늬가 있는 비단을 각각 差等있게 하사하였던 것이다. 19) 太祖實錄 卷45 洪武 2년 9월 丙午條에 占城國王阿荅阿者遣其臣蒲旦麻都等貢方物 즉 占城國王 阿荅阿 者가 신하 蒲旦麻都 등을 보내어 특산물을 바쳤다고 한다. 20) 中書省: 明 초기 중앙의 중추기구의 하나이다. 明朝는 건국 직후 元의 舊制를 답습하여 軍事를 담당하는 都督府와 糾察을 담당하는 御史臺 외에 政事를 총괄하는 中書省을 두었다. 중서성의 장관으로는 左 右相國을 두었는데, 相國의 이름은 洪武 元年에 丞相으로 바꾸었다. 洪武 13년(1380)에 左丞相 胡惟庸 의 모반 후 中書省을 없애고 그 휘하의 6部를 독립시켜 황제에 직속시켰으며, 영원히 그 부활을 금지하 였다( 續文獻通考 卷51 職官考 ). 21) 管勾: 본문의 管勾 는 管勾中書省架閣庫의 약칭이다. 架閣 즉, 中書省 西偏에 위치한 書庫에는 각종 圖書, 版籍, 金穀錢帛의 出納文書 등이 收藏되어 있는데, 그 架閣을 관장하던 관리로서 管勾 2명이 두어졌으며, 官品은 종7품이었다( 明史 卷72 職官志 內閣). 22) 會同館: 會同館은 元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는데, 소수민족 수령이나 외국의 使者를 맞이하고 접견하는 일 등을 관장하였다. 원래는 禮部 소속이었는데, 明代에 들어와 兵部로 예속이 바뀌어 京師의 驛傳에 관한 사무도 담당하였다. 大使와 副使 등이 설치되었는데, 明代에는 주로 외국사신의 숙소와 연회 장소 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明史 卷72 職官志 兵部 참조. 23) 會同館에는 副使가 2명이 두어졌으며, 종9품이었다( 明史 卷72 職官志 兵部). 弘治 5년(1492)에는 禮部의 主客淸吏司 主事가 會同館을 관장토록 하였다( 明史 卷72 職官志 禮部). 24) 綵幣: 무늬를 넣은 비단을 가리킨다. 25) 본문의 얼마 후는 洪武 2년 12월 甲戌을 가리킨다. 綵幣 즉 무늬를 넣은 비단 40필은 織金紗羅40필 즉 금실로 무늬를 넣은 비단 40필을 가리킨다. 大統曆 은 洪武 3년의 大統曆 을, 3천 부는 민간용으로 하사한 大統曆을 가리킨다( 太祖實錄 卷47 洪武 2년 12월 甲戌條). 26) 洪武 3년 正月 庚子에 사신을 安南, 高麗, 占城에 각각 보내어 그 나라의 山川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 太祖實錄 卷48 洪武 3년 春正月 庚子條).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67

24 나라에 과거(科擧)의 조서를 반포하였다.27) 初, 安南與占城搆兵, 天子遣使諭解, 而安南復相侵. 四年, 其王奉金葉表來朝, 長 尺餘, 廣五寸, 刻本國字. 館人譯之, 其意曰: 大明皇帝登大寶位, 撫有四海, 如天 地覆載, 日月照臨. 阿荅阿者譬一草木爾, 欽蒙遣使, 以金印封爲國王, 感戴忻悅, 倍萬恒情. 惟是安南用兵, 侵擾疆域, 殺掠吏民. 伏願皇帝垂慈, 賜以兵器及樂器 樂人, 俾安南知我占城乃聲教所被, 輸貢之地, 庶不敢欺陵. 帝命禮部諭之曰: 占 城 安南並事朝廷, 同奉正朔, 乃擅自搆兵, 毒害生靈, 旣失事君之禮, 又乖交鄰之 道. 己咨安南國王, 令卽日罷兵. 本國亦宜講信修睦, 各保疆土. 所請兵器, 於王何 吝, 但兩國互搆而賜占城, 是助爾相攻, 甚非撫安之義. 樂器 樂人, 語音殊異, 難 以遣發. 爾國有曉華言者, 其選擇以來, 當令肄習. 因命福建省臣勿徵其稅, 示懷柔 之意. 이전에 안남(安南)28)과 점성이 군대를 일으켜 충돌하자, 천자(天子, 홍무제)는 사신을 보내 어 화해토록 효유(曉諭)했으나, 안남에서 다시 침공을 가하였다.29) [홍무] 4년(1371)에 점성 27) 洪武 3년 5월 己亥에 사신을 高麗, 安南, 占城에 각각 보내 科擧의 詔書를 반포하였다( 太祖實錄 卷52 洪武 3년 5월 己亥條). 28) 安南: 주로 현재의 베트남 북부부터 중부까지의 지역에서 베트남인에 의해 세워진 국가를 가리키는데, 安南이란 용어는 唐代에 설치된 安南都護府에서 유래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기원전 3세기 말 漢 武帝가 南越을 정복하면서 시작되었다. 10세기 전반에 독립하면서 베트남은 朝貢제도를 통해 중국의 침략을 방지하는 한편,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수용하였다. 明 太祖 朱元璋은 明朝 건립 후 베트남에 사신을 보내 자신의 즉위 사실을 알렸고, 이에 베트남이 조공사절을 파견하면서 두 나라의 관계가 시작되었다. 15세기 초에는 베트남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레이(黎) 왕조( )가 출현하였다. 이 시대에 베트남은 儒敎국가의 성격이 강화되었다. 다만 1527년에 莫登庸의 왕조 찬탈 사건 이후부터 18세기 말 레이 왕조가 멸망하기까지의 2세기 반 동안 베트남의 국내정세는 분열과 혼란의 연속이었다. 29) 洪武 2년 12월 壬戌 朔에 洪武帝는 翰林院 編修 羅復仁과 兵部 主事 張福을 安南과 占城에 각각 보내어 詔書를 통해 양국 간의 전쟁을 중지할 것을 권한 바 있다( 太祖實錄 卷47 洪武 2년 12월 壬戌條). 따라서 본문의 이전(初) 은 洪武 2년(1367) 당시를 가리키고, 점성에 보낸 사신 은 兵部 主事 張福을 가리킨다. 한편 元末 明初 安南 즉, 베트남 쩐(陳) 왕조 내부에서 종실의 분열 등의 이유로 왕조가 점차 쇠퇴해가는 도중 占城 즉, 참파의 공격을 받게 되어 이후 양측 간의 공방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368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25 의 왕이 금박(金箔)을 입힌 표(表)를 받들고 입조하였는데,30) 길이는 1척 여였고 너비는 5 촌31)으로서 그 나라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관인(館人)32)이 이를 번역했는데,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대명(大明) 황제께서 제위(帝位)에 등극하시어 천하를 어루만지시니, 마치 하 늘과 땅이 세상을 뒤덮고 해와 달이 만물을 비추는 듯합니다. 아답아자 저는 일개 초목에 비견될 뿐인데, 황공하게도 사신을 보내어 금인(金印)으로 국왕에 봉해주시니, 감격스럽고 기쁘기가 평소의 만 배에 달합니다. 다만 안남에서 병사를 일으켜 저희 영토를 침범해서 관리와 백성들을 살육하고 약탈하고 있습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황제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무기와 악기 및 악인(樂人)들을 내려주셔서 안남으로 하여금 저희 점성이 곧 성교(聲敎)33)가 미치는 곳이자 공물을 바치는 곳임을 알게 하신다면, 감히 저희를 능멸하지 못할 것입니다. 홍무제는 예부(禮部)에 명하여 유시(諭示)를 내리기를, 점성과 안남은 모두 우리 조정을 섬기며 같이 정삭(正朔)34)을 받들고 있는데, 곧 멋대로 병사를 일으켜 백성을 해치고 있으니, 이미 군주를 섬기는 예의를 잃은 것이고 교린(交隣)의 도리를 어긴 것이다. 이미 안남의 국왕 에게 문서로 통지하여 즉각 철병토록 하였다. 너희 나라도 마땅히 신의와 화목을 강구하여 각기 자신의 영토를 지키도록 하라. 청한 무기는 왕에게 어찌 인색할 것이 있겠냐만, 양국이 서로 다투는데 점성에게만 하사한다면, 이는 너희에게만 공격하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니, 위무(慰撫)하고 안정(安定)시키고자 하는 뜻에 심히 어긋나는 것이다. 악기 악인(樂人)은 언어가 다르니 보내기 어렵다. 너희 나라에 중국어를 하는 자가 있으면, 가려 뽑아서 입국시켜 마땅히 이를 익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어서 복건(福建)35)의 성신(省臣)에게 대략적인 내용은 유인선, 2002: 참조. 30) 본문은 점성의 왕 阿荅阿者가 직접 明朝에 入朝한 것처럼 서술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사신을 보내 表文을 전한 것이다. 太祖實錄 卷67 洪武 4년 7월 乙亥條에, 占城國王阿荅阿者遣其臣答班瓜卜農來朝, 奉表言 安南侵其土境 이라 하여, 答班瓜卜農을 使臣으로 보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31) 明代 1尺(즉 10寸)을 標準制로 환산하면 31,1cm, 營造尺으로 환산하면 32cm에 상당하니, 본문에서 表의 길이가 1척 여라면 약 32cm, 너비가 5촌이라면 약 16cm에 이른다. 32) 본문에는 館人이라 되어 있지만, 太祖實錄 卷67 洪武 4년 7월 乙亥條에는 譯者 라고 표현되어 있다. 會同館 소속의 통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33) 聲敎: 聲威와 敎化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占城國이 中華 의 영향을 받아 문화발달이 상당한 수준에 달했음을 과시함으로써 安南이 占城을 업신여기지 않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34) 正朔: 황제가 새로 반포한 曆法이란 뜻이다. 고대의 帝王은 易姓受命 이후 반드시 正朔을 바꾼다는 전설이 전한다. 물론 여기서는 明朝 건립 후 반포한 大統曆 을 가리킨다. 35) 福建: 尙書 禹貢 의 揚州에 상당하는 지역이다. 元代에 福建道宣慰使司를 두어 江浙行中書省에 예속시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69

26 점성으로부터 세금을 징수치 않도록 하여 회유(懷柔)의 뜻을 보여주었다.36) 六年, 貢使言: 海寇張汝厚 林福等自稱元帥, 剽劫海上. 國主擊破之, 賊魁溺死, 獲其舟二十艘 蘇木七萬斤, 謹奉獻. 帝嘉之, 命給賜加等. 冬, 遣使獻安南之捷. 帝謂省臣曰: 去冬, 安南言占城犯境; 今年, 占城謂安南擾邊, 未審曲直. 可遣人往 諭, 各罷兵息民, 毋相侵擾. 十年與安南王陳煓大戰, 煓敗死. 十二年, 貢使至都, 中 書不以時奏. 帝切責丞相胡惟庸 汪廣洋, 二人遂獲罪. 遣官賜王 大統曆 及衣幣, 令 與安南修好罷兵. [홍무] 6년(1373)에 [점성의] 조공사신37)이 아뢰기를, 해적 장여후(張汝厚) 임복(林福) 등이 원수(元帥)라 자칭하면서 해상에서 겁탈하였습니다. 저희 국왕이 이들을 격파하니, 적의 괴수는 익사했습니다. 그들의 선박 20척과 소목(蘇木)38) 7만 근을 노획하였으니, 삼가 [이를] 봉헌합니다 라고 하였다. 홍무제는 이를 가상히 여기어 등급을 올려 하사품을 내리도록 명하 였다.39) 겨울에 [점성에서] 사신을 보내어 안남에 대한 승전보를 올렸다.40) 홍무제는 중서성 켰다. 至正 16년(1356)에 宣慰司를 行中書省으로 고쳤다. 朱元璋의 吳 元年(1364)에 陳友定을 평정하면 서 관할하기 시작했는데, 洪武 2년(1369)에 福建等處行中書省을 두었다. 洪武 7년(1374)에 福州都衛를 설치하고, 이듬해 福州都衛를 福建都指揮使司로 고쳤다. 洪武 9년(1376)에 行中書省을 承宣布政使司로 고쳤다. 府 8, 直隸州 1, 屬縣 57곳을 관할하였다. 36) 太祖實錄 卷67 洪武 4년 7월 乙亥條에는, 幷諭福建行省, 占城海舶貨物皆免其徵, 以示懷柔之意 라 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의 省臣 은 福建行省의 장관인 承宣布政使를 가리키고, 세금 은 占城의 선박이 수송해 온 각종 貨物에 대한 세금을 가리킨다. 37) 太祖實錄 卷84 洪武 6년 8월 戊戌條를 보면, 본문의 조공사신은 점성의 국왕 阿荅阿者가 보낸 陽寶摩訶 八的悅文旦을 가리킨다. 38) 蘇木: 蘇枋 혹은 蘇方이라고도 하는 南方 특산의 喬木으로서, 재목은 楊弓을 만드는데, 주로 樹皮를 깎아 흘러나온 樹液 또는 대패질한 가루로부터 적색이나 紫色의 염료를 추출하는 데 쓴다(王圻, 續文獻 通考 卷33 土貢考 ; 大明會典 卷30 庫藏 1). 39) 太祖實錄 卷84 洪武 6년 8월 戊戌條를 보면, 홍무제는 조공사신 陽寶摩訶八的悅文旦의 上言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국왕 阿荅阿者에게는 금실로 무늬를 넣은 비단 40필을, 사신 陽寶摩訶八的悅文旦에게 는 紗羅 2필, 무늬를 넣은 비단 4필, 의복 1벌, 동전 1만 2천 錢을 하사했고, 사절단의 수행원들에게도 각각 差等을 두어 하사하였다. 40) 太祖實錄 卷86 洪武 6년 11월 己酉條에는, (洪武六年 十一月) 己酉, 占城國遣使上言: 安南以兵侵犯本 370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27 의 신하에게 이르기를, 작년 겨울에 안남에서 말하기를 점성이 국경을 침범하였다고 했고, 올해는 점성에서 안남이 변경을 교란하였다 하는데, 아직 양측의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았다. 사람을 보내 타이르고 깨우쳐, 각기 군대를 거두고 백성에게 휴식을 주어 서로 침략치 않도록 하라 고 하였다.41) [홍무] 10년(1377)에 [점성이] 안남의 왕 진단(陳煓)42)과 크게 싸웠는데, 진단이 패사하였다.43) [홍무] 12년(1379)에 [점성의] 조공사신이 도성(都城)44)에 이르렀는 데, 중서성에서 이를 제때에 상주하지 않았다.45) 홍무제는 승상 호유용(胡惟庸)46)과 왕광양 (汪廣洋)47)을 몹시 질책했고, 두 사람은 결국 죄를 얻었다.48) 관원을 보내 점성의 왕에게 國, 仗天朝威靈, 敗之境上, 謹使告捷. 이라 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의 겨울 은 홍무 6년 11월 己酉일 을 가리키고, 獻安南之捷 은 안남에 대한 승전소식을 보고한 것을 뜻함을 알 수 있다. 41) 太祖實錄 卷86 洪武 6년 11월 己酉條 참조. 42) 陳煓: 安南國 明宗의 제11子이자 藝宗 陳叔明의 동생이다. 洪武 5년(1372)에 國王으로 즉위하였다. 廟號 는 睿宗이며, 이름은 曔이었다. 治世는 짧았지만, 科擧制 실시, 군사력 증강, 도로 보수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편 남쪽에서 침범해 오는 占城을 막기 위하여 親征에 나섰으나 大敗하고, 자신도 죽음을 당했다(유인선, 2002: ). 43) 太祖實錄 卷111 洪武 10년 春正月條를 보면, 是月 安南陳煓與占城國構兵相功, 大敗於占城境上, 煓戰死 라 하여, 洪武 10년 정월에 점성이 안남과 전쟁을 벌여 점성이 대승을 거두고, 안남의 왕 陳煓이 전사한 내용이 실려 있다. 44) 본문의 都城은 당시 수도였던 應天府 즉, 오늘날의 南京을 가리킨다. 應天이란 명칭은 元 至正 16년 (1356) 朱元璋이 集慶路를 應天府로 개칭했고, 明 初에 이곳에 定都했는데, 正統 6년(1441)에 南京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편 淸 順治 2년(1645)에는 江寧府로 개칭되었다. 45) 太祖實錄 卷126 洪武 12년 9월 戊午條를 보면, 占城國王阿荅阿者遣其臣陽須文旦進表及貢象馬方物. 中書省臣不以時奏, 內臣因出外見其使者以聞. 上亟召使者見之 라 하여, 홍무 12년 9월에 占城의 조공 사신 陽須文旦이 入朝하였으나, 中書省에서 이 사실을 바로 상주하지 않았는데, 이를 환관이 발견하여 보고함으로써 洪武帝가 사절단을 접견했음을 알 수 있다. 46) 胡惟庸(? 1380): 중국 역사상 마지막 宰相으로 유명하다. 鳳陽府 定遠 출신으로 元末 至正 15년(1355) 에 和州에서 朱元璋 집단에 참가하여 元帥府奏差가 되었다. 洪武 3년(1370)에 中書省參知政事가 되었다 가 洪武 6년(1373)에 李善長의 추천으로 右丞相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뒤에 결국 左丞相이 되어 명실상부한 宰相으로서 홍무제의 총애를 배경으로 막강한 권세를 행사하였다. 다만 이후 專橫의 경향이 있던 데다가 皇權 강화를 위한 차원에서 逆謀 의 혐의를 받아 洪武 13년(1380)에 결국 피살되었다. 그 후 胡黨 즉 胡惟庸의 일당으로 지목받아 두 차례에 걸쳐 처형된 개국공신의 수가 약 3만에 달하는데, 특히 이 사건 이후에 中書省이 폐지되면서 중국 역사상 宰相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한편 胡惟庸 의 傳은 明史 卷308에 보인다. 47) 汪廣洋(? 1379): 揚州府 高郵 출신으로, 字는 朝宗이다. 經學에 능통했고, 篆書와 隸書에 능했으며, 詩歌에 뛰어났다. 元 末에 進士에 합격하였다. 朱元璋에게 발탁되어 元帥府 令史가 되었다가, 江南行省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71

28 대통력 과 의류 및 비단 등을 하사하고, 안남과 우호관계를 맺고 군대를 거두도록 하였다.49) 十三年遣使賀萬壽節. 帝聞其與安南水戰不利, 賜敕諭曰: 曩者安南兵出, 敗於占 城. 占城乘勝入安南, 安南之辱已甚. 王能保境息民, 則福可長享; 如必驅兵苦戰, 勝負不可知, 而鷸蚌相持, 漁人得利, 他日悔之, 不亦晚乎. [홍무] 13년(1380)에 [점성 국왕이] 사신을 보내 만수절(萬壽節)50)을 축하하였다.51) 홍무 제는 점성이 안남과 벌인 수전(水戰)에서 고전하였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칙서를 내려 효유하여 이르기를, 전에 안남에서 군대를 동원하였다가 점성에게 패했고, 점성이 승세를 타서 안남에 침입하니, 안남은 크게 굴욕을 당한 셈이다. 왕이 국경을 지키고 백성에게 휴식을 준다면 복을 길이 향유할 수 있겠지만, 반드시 병사를 내몰아 힘들게 싸우고자 한다면, 승패는 장담할 수 없을 뿐더러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다투다가는 어부가 횡재하는 법52)이니, 후일에 이를 후회하면 늦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다.53) 都事, 江西行省 參政을 거쳐 中書參政이 되었다. 洪武 3년(1370)에 中書省 左丞相이 되었다가 당시 右丞 相 楊憲과의 불화로 海南島로 좌천되었으나 이듬해 中書省 右丞相으로 복귀하였다. 그 후 몇 차례의 우여곡절 끝에 洪武 10년(1377)에 右丞相으로 다시 임명되었으나 결국 胡惟庸의 黨案에 연루되어 海南 으로 유배되었다가 도중에 死罪에 처해져 毒杯를 마시고 운명하였다. 48) 太祖實錄 卷126 洪武 12년 9월 戊午條를 보면, 占城의 조공사신이 入朝한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이유 로 홍무제가 中書省의 左右丞相이었던 胡惟庸과 汪廣洋을 크게 질책했고, 양인은 머리를 조아려 謝罪하 였다고 한다. 49) 太祖實錄 卷126 洪武 12년 10월 甲子條를 보면, 遣使賜占城國王阿荅阿者大統曆 銷金文綺殺 衣服等 物. 仍以璽書諭之曰 이라 하여 占城 국왕에게 大統曆과 금박 무늬가 들어간 비단과 의복 등을 하사하고 璽書로 安南과의 講和를 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50) 萬壽節: 황제의 생일을 가리킨다. 51) 占城 국왕 阿荅阿者가 洪武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使節 大幷崙 등은 洪武 13년 9월 18일에 入京하였다. (洪武 13년 9월) 是月, 占城使還, 詔賜文綺紗帛有差, 以璽書諭其國王阿荅阿者曰: 今年九月十 八日, 占城使至, 爲朕上壽 ( 太祖實錄 卷133 洪武 13년 9월 是月條) 52) 漁父之利 즉 쌍방이 다투다가 제삼자가 이득을 취한다는 것을 뜻하는 이 구절의 어원은 戰國策 燕策 2에서 유래한다. 즉 蘇代는 趙가 燕을 정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燕을 위해 趙惠王에게, 도요새와 조개가 서로 양보하지 않아 결국 양자 모두 어부의 차지가 되듯이, 燕과 趙가 장기전을 벌인다면, 秦이 횡재하도록 도와주는 격이 될 뿐이라고 설득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372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29 十六年貢象牙二百枝及方物. 遣官賜以勘合文冊及織金文綺三十二 磁器萬九千. 十 九年遣子寶部領詩那日忽來朝, 賀萬壽節, 獻象五十四, 皇太子亦有獻. 帝嘉其誠, 賜賚優渥, 命中官送還. 明年復貢象五十一及伽南 犀角諸物, 帝加宴賚. 還至廣東, 復命中官宴餞, 給道里費. [홍무] 16년(1383)에 [점성 국왕이] 상아54) 200개와 방물을 바쳤다.55) [홍무제는] 관원을 보내어 감합문책(勘合文冊)56) 및 직금문기(織金文綺)57) 32필과 자기(磁器) 1만 9천 점을 하사하였다.58) [홍무] 19년(1386)에 [점성 국왕이] 아들 보부령시나일홀(寶部領詩那日忽)을 보내어 입조해서 만수절을 축하하고 코끼리 54마리를 바쳤고, 황태자에게도 바쳤다.59) 홍무 53) 太祖實錄 卷133 洪武 13년 9월 是月條 참조. 54) 象牙: 宋代 및 明代의 朝貢物의 하나인데, 대개는 코끼리의 어금니를 말하지만 河馬, 野豬, 海象 등의 어금니도 상아라고 일컫는다. 상아는 예술품을 가공하는 재료나 장식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아랍의 여러 나라와 캄보디아 및 占城에서 산출하는데, 아랍산품이 질이 제일 좋고, 캄보디아와 점성 것이 그 다음으로 평가되었다. 諸蕃志 卷下 志物 참조. 55) 太祖實錄 卷152 洪武 16년 2월 庚子條에, 占城 국왕 阿荅阿者가 보낸 사신 楊麻加益 등이 상아 200개와 檀香 등 각종 특산물을 바쳤다고 한다. 56) 勘合文冊: 勘合 혹은 勘合符라고도 한다. 明朝에서 사절단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발행한 증명서이다. 즉 양측이 갈라진 한 면씩 보관하고 있다가, 사절이 도착하면 서로 맞추어보아 합치되어야 비로소 정식 사절로 인정하도록 하였다. 결국 明朝는 외국의 조공사절을 하나의 恩典으로 간주하여 1년의 회수, 선박의 수, 인원 등을 제한하고자 했던 것이다. 勘合符는 洪武 16년(1383)에 占城을 비롯하여 暹羅, 眞臘 등에 발급한 것이 최초의 일인데, 明의 改元 즉 기본적으로 새로운 황제가 등극할 때마다 새로 발급하였다. 57) 織金文綺: 금실로 무늬를 넣은 비단을 가리킨다. 58) 홍무제가 사신을 파견하여 勘合文冊을 하사한 것은 홍무 16년 4월 乙未의 일이고, (洪武 16년 夏四月) 乙未, 遣使齎勘合文冊, 賜暹羅 占城 眞臘諸國, 凡中國使至, 必驗勘合相同, 否則爲僞者, 許擒之以聞( 太祖 實錄 卷153 洪武 16년 4월 乙未條 참조) 비단과 자기 등을 하사한 것은 8월 乙未의 일이다. (洪武 16년 8월 乙未)遣使賜占城 國王織金文綺三十二必 磁器一萬九千事( 太祖實錄 卷156 홍무 16년 8월 乙未條 참조) 59) 太祖實錄 卷179 洪武 19년 9월 甲寅條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데 明史 본문의 내용만을 보면, 洪武帝에게 생일 축하용으로 코끼리를 바치고, 황태자 즉, 朱標에게도 코끼리를 선사한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明實錄 의 해당 부분을 찾아보면, 황태자에게는 상아, 犀角, 호추 등을 선물로 주어 차등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73

30 제는 그 정성을 가상히 여겨 하사품을 넉넉하게 주고,60) 중관(中官)61)에게 명하여 귀국할 때 호송토록 하였다. 이듬해 다시 코끼리 51마리와 가남(伽南)62) 무소의 뿔63) 등 여러 방물을 바치니, 홍무제는 [등급을] 올려 연회를 베풀고 하사품을 내려주었다.64) 귀국 시에 광동(廣 東)65)에 이르자, 다시 중관에게 명하여 연회를 베풀어 전별토록 하고, 여비를 지급해주었다.66) 60) 太祖實錄 卷179 洪武 19년 9월 甲寅條에 하사품의 내역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요한 것만 예시하면, 占城 국왕에게는 冠帶, 織金文綺, 襲衣 등을, 入朝한 왕자에게는 金 200량, 銀 1000량, 織金靑羅 衣와 紅羅衣 각각 2벌 등이 하사되었다. 61) 中官: 中官은 內職의 官, 京官 등의 뜻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宦官을 일컬으며, 閹人 寺人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周代부터 淸末까지 환관이 있었다. 明史 卷74 職官志 3, 宦官條에 의하면, 명대에는 宦官 十二監이 있었고, 이들의 기관에서는 政事에 관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司禮監은 그 중심에 있었고, 각 기관에는 太監(正四品) 小監(從四品) 監丞(正五品) 典簿(正六品), 從六品인 長隨 奉御 등 의 職官이 있었다. 명대 환관이 각 방면에 기용하기 시작한 것은 永樂帝 때부터이며, 이들을 해외의 使臣이나 外征의 지휘관으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永樂 18년(1420)에 비밀경찰기관으로 신설된 東廠 에 전권을 부여하여 경찰권을 위임하였다. 이후 錦衣衛까지 지휘를 하면서 官民의 행동을 감시하였으며, 宣宗시대 이후에는 정치 분야에 발언권을 증대시켜 국가의 정치를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 게 되었다. 明代의 宦官에 대해서는 데라다 다카노부, 2006: 참조. 62) 伽南: 沈香을 가리킨다. 伽南香 혹은 伽藍香이라고도 하고, 伽羅라고도 한다. 최고급 향료의 원료가 되는 팥꽃나무과에 딸린 常綠의 큰 키의 나무로서, 높이는 20m 이상이고, 줄기의 지름은 2m에 달한다. 생나무 또는 마른 나무를 땅 속에 묻어 樹脂가 적은 부분을 쓰는데, 줄기의 상처가 단면에서 흐르는 수지를 특히 침향 이라 한다. 예로부터 최고급의 향료로 알려졌는데, 인도와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산출 되지만, 그 중에서도 占城産이 최고로 일컬어졌다. 瀛涯勝覽, 占城國 條를 보면, 伽藍香惟此國一大山 出産, 天下再無出處, 其價甚貴, 以銀對換(馬歡 馮承鈞 校注, 1962: 3) 이라 하여, 占城에서 산출되는 沈香 의 가격이 매우 높아 銀과 바꿀 정도였다고 한다. 63) 犀角: 犀牛角이라고도 한다. 고대 帝王과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동시에 해독작용과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대개는 帝王이 사용하는 杯盞 등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交州記 에 犀에는 뿔이 두 개 있는데, 코 위의 뿔은 길고, 머리 위의 뿔은 짧다. 혹은 뿔이 세 개인 것은 水犀, 두 개인 것은 山犀이다 라고 묘사되어 있다. 64) 太祖實錄 卷184 洪武 20년 8월 丁卯條 참조. 한편 코끼리 내지 상아와 무소의 뿔 및 沈香 등 점성의 특산물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중국으로의 進貢 상황은 瀛涯勝覽 (馬歡 馮承鈞 校注, 1962: 3 6)과 星槎勝覽 (費信 馮承鈞 校注, 1962: 2 3) 등 참조. 65) 廣東: 尙書 禹貢 의 揚州의 지역 및 揚州 徼外 지역이다. 呂氏春秋 에서는 百越이라 칭했고, 史記 에 서는 南越이라 했으며, 漢書 에서는 南粵이라 했다. 越과 粵은 서로 통하여 廣東을 줄여 粵이라 하기도 한다. 대개 嶺南 일대 지방에 해당된다. 元代에 廣東道宣慰使司를 두었고, 江西行中書省에 속했다. 또 海北海南道宣慰使司를 두었고 湖廣行中書省에 속했다. 洪武 2年(1369)에 海北海南道를 廣西行中書省에 예속시켰는데, 4月에 廣東道를 廣東等處行中書省으로 고쳤고, 6월에는 海南海北道가 관할하는 지역을 374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31 眞臘貢象, 占城王奪其四之一, 其他失德事甚多. 帝聞之, 怒. 二十一年夏, 命行人 董紹敕責之. 紹未至, 而其貢使抵京. 尋復遣使謝罪, 乃命宴賜如制. 진랍(眞臘)67)이 코끼리를 공물로 바치자 점성의 왕이 그 가운데 4분의 1을 빼앗았고, 그 밖에도 잘못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68) 홍무제는 이 소식을 듣고 노여워하였다. [홍무] 21년 (1388) 여름, 행인(行人)69) 동소(董紹)에게 명하여 칙서로 질책토록 하였다. 동소가 아직 점성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점성의 조공사절이 경사(京師)에 이르렀다.70) 얼마 후 다시 사절 을 보내 사죄하자 평소대로 연회를 열고 하사품을 내리도록 명하였다.71) 時阿荅阿者失道, 大臣閣勝懷不軌謀, 二十三年弒王自立. 明年遣太師奉表來貢, 帝 惡其悖逆, 却之. 三十年後, 復連入貢. 廣東等處行中書省에 예속시켰다. 洪武 4년(1371)에 廣東都衛를 설치하였고, 洪武 8년(1375)에 都衛를 廣東都指揮使司로 고쳤으며, 이듬해에 行中書省을 承宣布政使司로 고쳤다. 明代에는 줄곧 廣東布政使司 가 府 10, 直隸州 1, 屬州 7, 縣 75곳을 관할하였다. 66) 太祖實錄 卷187, 洪武 20년 11월 戊戌條 참조. 지급한 여비는 寶鈔 20錠이었다. 67) 眞臘에 대해서는 후술. 68) 홍무 21년(1388) 4월에 安南에서 홍무제에게 上奏하면서, 眞臘에서 봉헌하는 코끼리 1/4과 象奴 15명을 占城이 강탈한 사건이 알려졌다. 한편 隣國과의 알력 외에 그 밖의 잘못 으로는 明朝에 象奴 2명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아 以小事大 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질책을 받은 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太祖實錄 卷190 洪武 21년 4월 壬子條 참조). 69) 行人: 行人司行人의 약칭으로 正八品이다. 行人司의 장관인 司正과 부관인 左右司副를 보좌하며, 捧節과 出使 등의 임무를 맡았다. 洪武 연간( )에 처음 두어질 때는 360명이나 되었으나, 永樂 연간 ( ) 이후 그 수가 크게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점차 閒職으로 취급되어 進士출신은 이를 맡지 않으려 하였다( 明史 卷74 職官志 3, 行人司條; 陸容, 菽園雜記 卷6 참조). 70) 洪武帝가 行人 董紹를 점성에 파견한 것은 洪武 21년(1388) 4월이고, 점성국의 사신이 伽南과 木香 등의 貢物을 가지고 入京한 것은 그 해 7월의 일이다. 董紹가 점성에 도착하고 점성의 사절이 출발한 정확한 날은 확인할 수 없으나, 董紹가 점성에 도착하기 전에 점성이 먼저 사절단을 明朝에 보냈을 것임은 짐작할 수 있다( 太祖實錄 卷190 洪武 21년 4월 壬子條; 太祖實錄 卷192 洪武 21년 7월조). 71) 太祖實錄 卷195 洪武 22년 정월 己卯條에, 점성 국왕이 사신을 보내 表와 특산물을 바치면서 잘못을 사과하자, 홍무제는 비단과 寶鈔 등을 하사토록 하였다.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75

32 당시 아답아자(阿荅阿者)가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대신(大臣) 각승(閣勝)이 반란을 꾀하려는 마음을 품었다. [홍무] 23년(1390)에 왕을 시해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듬해 [각승이] 태사(太師)72)를 보내어 표(表)를 받들고 입조해서 공물을 바치니, 홍무제는 그 패역 무도함을 미워하여 이를 물리쳤다.73) [홍무] 30년(1397) 이후에 다시 연속해서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74) 成祖卽位, 詔諭其國. 永樂元年, 其王占巴的賴奉金葉表朝貢, 且告安南侵掠, 請降 敕戒諭. 帝可之, 遣行人蔣賓興 王樞使其國, 賜以絨錦 織金文綺紗羅. 明年, 以 安南王胡 奏, 詔戢兵, 遣官諭占城王. 而王遣使奏: 安南不遵詔旨, 以舟師來侵, 朝貢人回, 賜物悉遭奪掠. 又畀臣冠服 印章, 俾爲臣屬. 且已據臣沙離牙諸地, 更 侵掠未已, 臣恐不能自存. 乞隸版圖, 遣官往治. 帝怒, 敕責胡, 而賜占城王鈔幣. 성조(成祖, ; 재위 )75)가 즉위하자, [즉위의 사실을] 조서로 그 나라 (점성국)에 알렸다.76) 영락(永樂)77) 원년(1403)에 그 나라 왕 점파적뢰(占巴的賴)78)가 금박 72) 베트남에서는 리(李) 왕조( ) 치하에서 중국문화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1075년 에는 科擧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었고, 특히 1089년에는 관직이 정비되어 太師, 太傅, 太保 등을 정점으 로 하는 宋과 유사한 官制가 실시되었다(유인선, 2002: ). 占城도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 다. 따라서 본문의 太師는 결국 중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중앙의 최고위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73) 太祖實錄 卷214 洪武 24년 11월 己丑條를 보면, 閣勝이 阿荅阿者를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뒤, 太師 陶寶加直을 보내 金表와 犀牛, 番奴, 布 등을 공물로 바쳤지만, 홍무제는 禮部에 명하여 簒逆의 신하라는 이유로 받지 말도록 하였다. 74) 洪武 24년(1391)에 홍무제의 거부로 단절된 明朝와 점성 사이의 冊封朝貢관계는 그로부터 약 6년이 지난 洪武 30년(1397) 2월에 이르러 점성에서 조공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재개되었다( 太祖實錄 卷250 洪武 30년 2월 丙戌條). 한편 이듬해에도 점성에서는 조공사절단을 파견하였다( 太祖實錄 卷257 洪武 31년 5월 辛亥條 참조). 75) 成祖: 明朝 3대 황제인 永樂帝 朱棣를 가리킨다. 太祖 朱元璋의 4째 아들이었는데, 洪武 13년(1380)에 燕王에 봉해졌다. 太祖의 死後, 皇孫으로서 제2대 황제에 오른 惠帝 建文帝가 단행한 諸王 削藩策에 반발하여 靖亂의 變 을 일으켰다. 이 政變을 통해 결국 조카인 建文帝로부터 帝位를 찬탈하였다. 이후 그는 北京으로의 遷都, 漠北에 대한 대대적인 親征, 鄭和의 南海遠征 등 수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러나 그는 재위한 지 22년만인 1424년 北征에서 돌아오는 길에 病死하였다. 諡號는 文皇帝이며, 廟號는 太宗 이었으나 嘉靖 17년(1538) 成祖로 廟號를 바꾸었다. 376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33 을 입힌 표를 받들고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고, 또 안남이 침략한 사실을 보고하면서 칙서(勅 書)를 내려 이를 경계하고 타일러줄 것을 청하자, 영락제는 이를 받아들이고,79) 행인(行人) 장빈흥(蔣賓興) 왕추(王樞)를 점성국에 사신으로 보내 융금(絨錦)80) 직금문기사라(織金文 綺紗羅)81) 등을 하사하였다.82) 이듬해 안남의 왕 호호(胡 )가 상주하자, 조서를 내려 전쟁을 중지토록 했고, 관리를 보내어 점성의 왕을 훈유(訓諭)토록 하였다.83) 그런데 점성의 왕이 사신을 보내 상주하기를, 안남이 조서의 어지(御旨)를 따르지 않고 수군을 보내어 침공을 가했고, 조공사절이 돌아올 때 하사품을 모두 약탈당했습니다. 게다가 신(臣)에게 관복(冠服) 인장(印章)을 주어 신속(臣屬)케 하였습니다. 또 저희 사리아(沙離牙) 등지를 점거한 뒤에도 다시 침략이 끊이지 않으니, 신은 나라가 존속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청하옵건대 국토를 [명조(明朝)의] 판도에 예속시키고자 하니, 관원을 보내어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라고 하니, 황제는 노해서 칙서를 내려 호호(胡 )를 질책하고, 점성의 왕에게는 보초(寶鈔)84)와 76) 太宗實錄 卷12 洪武 35년 9월 丁亥條 참조. 이 때 永樂帝는 자신의 즉위 사실을 詔書 형식으로 安南과 占城 등에 통고하였다. 한편 永樂帝의 廟號 太宗은 嘉靖 연간( )에 成祖로 개칭되었기에, 太宗實錄 은 成祖 永樂帝의 實錄이며, 洪武 35년 은 建文 4년(1402) 을 가리킨다. 즉 영락제는 靖難의 役 성공 후에 찬탈자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조카 建文帝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차원에서 建文이란 연호를 없애고 洪武란 연호를 연장하여 사용토록 했던 것이다. 77) 永樂: 明 왕조 제3대 황제인 成祖 朱棣의 年號이다. 78) 占巴的賴: 자야 신하바르만 5세(Jaya Sinhavarman V, 재위 )를 가리킨다. Georges Maspero, 2002 참조. 79) 본문은 占城 국왕 占巴的賴가 직접 表를 가지고 입조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사신 婆甫郞 등을 대신 보내어 表와 공물 등을 바쳤고, 아울러 安南의 침공 사실을 전하면서 이에 대해 勅書를 내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太宗實錄 卷21 永樂 원년 7월 丁酉條). 80) 絨錦: 명청시대 福建省 漳州, 南京, 蘇州에서 생산된 겉에 융기가 있는 사직품을 뜻한다. 비단 표면에 융기를 만드는 작업을 중국어로는 기융이라 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일반 비단과는 다른 융모와 같은 느낌을 준다. 융금은 명청 시대 조정에서 일반적으로 주변 북방 민족의 수장에게 내렸으며, 제작 과정이 복잡하여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匹 로 계산하지 않고 段 으로 계산했다. 예를 들어 명 조정은 西藏의 최고의 高僧에게도 단 3단만을 지급했을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고 한다(吳明娣, 2007 참조). 81) 織金文綺紗羅: 織金文綺는 金絲로 무늬를 짜 넣은 두꺼운 비단을 말하며, 紗羅는 가볍고 엷은 명주와 삼으로 만든 織物로, 주로 여름옷을 만드는데 사용했다. 82) 太宗實錄 卷22 永樂 원년 8월 癸丑條 참조. 83) 訓諭 의 주요 내용은, 영락제가 安南의 왕에게 전쟁을 중지할 것을 전하자, 안남의 왕이 사죄하며 이에 따른다고 했으니, 점성도 안남과 화목하게 지내는 데 힘쓰라는 것이었다( 太宗實錄 卷27 永樂 2년 정월 丁巳條).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77

34 비단을 하사하였다.85) 四年貢白象方物, 復告安南之難. 帝大發兵往討, 敕占城嚴兵境上, 遏其越逸, 獲者 卽送京師. 五年攻取安南所侵地, 獲賊黨胡烈 潘麻休等獻俘闕下, 貢方物謝恩. 帝 嘉其助兵討逆, 遣中官王貴通齎敕及銀幣賜之. [영락] 4년(1406)에 [점성 국왕은] 흰색의 코끼리 등 방물을 바치면서 다시 안남의 침략 사실을 아뢰었다.86) 영락제는 크게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였고, 점성에게 칙서를 보내어 국경지대에서 경계를 엄히 하여 안남인이 경계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고, 체포한 자는 바로 경사로 보내도록 하였다.87) [영락] 5년(1407)에 [점성은] 안남이 침공한 땅을 공략 수복하고, 적의 일당 호열(胡烈) 반마휴(潘麻休) 등을 체포하여 그들을 궐하(闕下)88)로 보내었으며, 84) 寶鈔: 明代의 법정통용지폐인 大明通行寶鈔를 가리킨다. 明朝는 洪武 7년(1374)에 寶鈔提擧司를 설치하 고, 이듬해(1375)에 大明寶鈔를 만들어 민간에 통행시켰다. 桑穰 즉 뽕나무 가지껍질로 만든 섬유를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모양은 네모였고, 높이는 1尺, 폭은 6寸이었으며, 바탕은 청색이고, 바깥은 용의 문양과 꽃무늬였다. 횡으로 그 額面에 大明通行寶鈔 라 쓰고, 그 안의 상변 양쪽에 篆文으로 大明寶鈔天 下通行 이라 썼다. 가운데에는 동전꾸러미를 그려 넣었는데, 10串울 1貫으로 삼았다. 등급은 모두 여섯으 로 1관, 500문, 400문, 300문, 200문, 100문이었다. 처음에는 中書省으로 하여금 전담케 했으나, 中書省이 철폐가 된 뒤에는 戶部에서 만들도록 하였다. 보초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은 朴元熇 등, 2008: 참조. 85) 太宗實錄 卷33 永樂 2년 8월 庚午條에 관련 내용이 실려 있다. 점성 국왕은 사신 部該序罷尼를 보내, 안남의 침공에 시달리기보다는 차라리 국토를 明朝에 헌납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지만, 실제로는 안남 이 영락제의 명을 어기고 침공하였다는 점을 적시함으로써 영락제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외교술을 구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寶鈔와 비단을 점성의 국왕에게 하사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實錄에는 사신 部該序罷尼에 하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86) 이때 점성 국왕 占巴的賴는 자신의 손자 등을 入朝시키면서 貢物을 바치고 안남의 침공을 호소하였다 ( 太宗實錄 卷58 永樂 4년 8월 庚子條). 87) 이 勅書는 환관 馬彬 등을 통해 永樂 4년 8월에 전해졌다( 太宗實錄 卷58 永樂 4년 8월 壬子條). 한편 본문의 체포한 자 는 위 實錄을 보면 越境한 안남인 일반이 아니라 黎賊父子及其黨惡 이라고 지정되어 있다. 黎賊 은 당시 안남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黎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즉 黎蒼 父子와 그 일파를 체포하면 南京으로 보내라고 한 것이다. 한편 安南의 政變을 둘러싸고 영락제가 감행한 對安南 전쟁의 전개에 대해서는 夫馬進, 2007: 참조. 88) 闕下: 원래는 궁궐의 아래라는 뜻인데, 황제가 거처하는 宮廷 혹은 京城을 가리킨다. 378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35 방물을 바치고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89) 영락제는 점성이 적군을 토벌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을 가상히 여겨, 중관(中官) 왕귀통(王貴通)을 보내 칙서와 은량(銀兩) 및 비단을 가지고 가서 하사토록 하였다.90) 六年, 鄭和使其國. 王遣其孫舍楊該貢象及方物謝恩. 十年, 其貢使乞冠帶, 予之, 復命鄭和使其國. [영락] 6년(1408)에 정화(鄭和)91)가 점성국으로 출사(出使)하였다.92) [점성의] 왕은 손자 사양해(舍楊該)를 보내 코끼리와 방물을 바치면서 은혜에 감사를 드렸다.93) [영락] 10년 89) 太宗實錄 卷70 永樂 5년 8월 己亥條에 의하면, 점성에서 안남을 공략하여 빼앗겼던 땅을 수복한 것은 그 해 5월의 일이었다. 본문의 賊黨 은 쿠데타를 일으킨 黎蒼 일당을 가리킨다. 한편 賊黨 가운데 潘麻休는 위 實錄에는 潘麻那라고 기재되어 있다. 90) 太宗實錄 卷71 永樂 5년 9월 庚辰條 참조. 이때 영락제는 太監 王貴通을 보내 안남과의 전쟁에 도움을 준 것을 치하하였다. 91) 鄭和( ?): 洪武 4년(1371) 雲南 昆陽의 가난한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원래의 성은 馬氏였다. 明軍의 雲南 정복전쟁 중에 포로가 된 그는 거세되어 火者가 되었다가 燕王 朱棣 밑으로 들어가 환관으로 복역하였다. 후에 靖難의 役 이 일어나면서 큰 군공을 세운 그는 승진을 거듭하여 太監이 되었고, 영락 2년(1404)에는 鄭씨 성을 하사받았다. 특히 영락 3년부터 시작된 南海 대원정의 수반으로 활약했는데, 宣德 8년(1433)까지 28년 동안 모두 7차례에 걸친 大遠征에서 30여 개 국을 방문하고 가장 멀리는 아프리카 동해안과 紅海 지역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이와 같은 鄭和의 원정으로 明朝의 威名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는 물론이고, 인도를 비롯해서 걸프만, 홍해연안에서 아프리카 동해안에 이르는 지역에 널리 알려졌고, 또 이들 지역에서 수많은 진귀한 물품이 들어오는 등 획기적인 교류가 개시되었다. 또한 원정을 수행한 馬歡, 費信, 鞏珍 등에 의해 각기 瀛涯勝覽, 星槎勝覽, 西洋 番國志 등의 저작이 이루어짐으로써 중국인의 지리적 지식은 동남아시아는 물론 인도, 아프리카 방면 으로까지 확대되었으며, 그 결과로 많은 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 각지로 진출하였다. 이들 지역에서 정화는 그 후 神으로 받들어지고 있으며, 그를 제사하는 三寶廟는 현재에도 동남아시아 여러 지역에 존재하고 있다. 한편 鄭和의 사망 시기는 대개 마지막 원정 도중으로 보지만, 宣德 10년(1435)에 南京에 서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92) 太宗實錄 卷83 永樂 6년 9월 癸酉條 참조. 鄭和의 占城國 出使는 이른바 鄭和의 대원정 가운데 제2차 항해에 해당한다. 이 때 鄭和는 占城 등을 거쳐 말래카 해협을 통과해서 인도의 캘리컷까지 갔다가 돌아온 바 있다. 93) 太宗實錄 卷84 永樂 6년 10월 乙亥條 참조.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79

36 (1412)에 [영락제는] 점성의 조공사절이 관대(冠帶)를 청하자 지급해주고, 다시 정화에게 점성국으로 출사하도록 하였다.94) 十三年, 王師方征陳季擴, 命占城助兵. 尙書陳洽言: 其王陰懷二心, 愆期不進, 反 以金帛 戰象資季擴, 季擴以黎蒼女遺之, 復約季擴舅陳翁挺侵升華府所轄四州十一 縣地. 厥罪維均, 宜遣兵致討. 帝以交阯初平, 不欲勞師, 但賜敕切責, 俾還侵地, 王卽遣使謝罪. 十六年, 遣其孫舍那挫來朝. 命中官林貴 行人倪俊送歸, 有賜. [영락] 13년(1415)에, 왕사(王師)95)가 바야흐로 진계확(陳季擴)96)을 정벌할 때 점성에 명 하여 협조하도록 하였다. 상서(尙書) 진흡(陳洽)97)이 아뢰기를, 점성의 왕이 속으로 두 마음 을 품어 약속을 어기고 진격하지 않고는 도리어 금백(金帛) 전투용 코끼리를 진계확 측에 제공하였고, 진계확이 여창(黎蒼)98)의 딸을 보내자 다시 진계확의 외삼촌 진옹정(陳翁挺)과 약속하여 승화부(升華府)99) 소속의 4주(州) 11현(縣)100)의 땅을 침공하였습니다. 그의 죄는 94) 占城의 사신에게 冠帶를 하사한 것은 永樂 10년 8월의 일이고, 鄭和를 占城 등에 파견(제3차 항해에 해당)한 것은 그 해 11월의 일이다( 太宗實錄 卷131 永樂 10년 8월 甲子條; 太宗實錄 卷134 永樂 10년 11월 丙申條). 95) 王師: 원래 天子의 군대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明朝의 군대를 가리킨다. 96) 陳季擴: 쩐(陳) 왕조 14대 왕인 쩐 꾸이 코앙으로서 一名 쩐 꾸이 코아익이라고도 한다. 愍王의 庶子로서 重光帝이다. 明朝의 베트남 지배에 대한 저항세력의 대표자인 쩐 쿠이(陳頠; 쟌 딘 데[簡定帝])의 조카이 기도 하다. 처음에는 쩐 쿠이와 경쟁 관계 속에서 저항운동을 벌였으나, 후에는 서로 화해해서 쩐 꾸이 코앙은 쩐 쿠이 즉 쟌 딘 데를 上皇에 앉히고 자신은 저항세력의 주도권을 쥐었다. 다만 明軍의 적극적인 공세 하에 1414년 결국 쩐 꾸이 코앙은 생포되어, 北京으로 압송된 뒤 처형되었다(유인선, 2002: ). 97) 陳洽( ): 常州府 武進 출신으로 洪武 연간( )에 布衣신분으로 천거되어 兵科給事中 이 되었고, 永樂 연간( )에 승진을 거듭하여 吏部左侍郞, 大理司卿이 되었다. 張輔를 도와 安南 공략에 성공한 뒤 兵部尙書가 되었다. 본문의 尙書 는 바로 兵部尙書를 뜻한다. 한편 宣德初에 安南을 공격하다가 실패하자 자결하였다. 98) 黎蒼: 陳叔明 死後 명실상부한 安南 즉 베트남 최고의 권력자가 된 黎季犛(字는 理元으로서 黎一元 혹은 胡季犛라고도 함)의 아들이다. 黎蒼은 후에 부친 黎季犛에 의하여 胡 로 改名되었고, 安南의 國王 이 되었다. 99) 升華府: 永樂 12년(1414)에 交阯布政司에 예속되었다. 治所는 黎江縣으로 오늘날 베트남 廣南 일대에 380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37 [진계확과] 동일하니, 마땅히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해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101) 영락제 는 교지(交阯)102)를 막 평정하였기 때문에 병사를 수고스럽게 하지 않으려 하여, 다만 칙서를 내려 몹시 질책하고는 침략한 땅을 돌려주도록 하니,103) [점성의] 왕은 즉각 사신을 보내어 사죄하였다.104) [영락] 16년(1418)에 손자 사나좌(舍那挫)를 보내 입조케 하였다.105) [영락제 는] 중관(中官) 임통(林貴) 행인(行人) 예준(倪俊)에게 명하여 사나좌가 귀국하는 데 호송토 록 했고, 물품을 하사하였다.106) 宣德元年, 行人黃原昌往頒正朔, 繩其王不恪, 却所酬金幣以歸, 擢戶部員外郞. 선덕(宣德)107) 원년(1426)에 행인 황원창(黃原昌)108)이 점성국에 가서 정삭(正朔)을 반포 해당한다. 宣德 2년(1427)에 安南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 100) 4州 11縣은 升華府 소속으로서, 升州 관할 하의 黎江縣, 都和縣, 安備縣과, 華州 관할 하의 萬安縣, 具熙縣, 禮悌縣과, 思州 관할 하의 持平縣, 白烏縣과 義州 관할 하의 義純縣, 鵝懷縣, 溪錦縣을 가리킨다. 101) 兵部尙書 陳洽의 上言은 太宗實錄 卷170 永樂 13년 11월 辛酉條에 상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 102) 交阯: 15세기 초에 베트남 지역에 설치된 承宣布政使司의 명칭이다. 영락제는 胡季犛 토벌을 명분으로 베트남에 出兵하여 永樂 5년(1407)에 이곳을 병합하는 동시에 交阯承宣布政使司를 두어 통치하였다. 그러나 이윽고 黎利를 首長으로 하는 독립군이 일어나면서 明軍과 전쟁에 돌입하는데, 결국 明軍이 패배하면서 宣德 2년(1427)에 交阯布政使司를 폐지하고 베트남을 放棄하였다. 한편 이 곳은 옛날 南交 의 땅으로서 周代에는 越裳氏의 땅이었고, 秦始皇 初에 百粤과 병합하여 桂林, 南海, 象郡을 두었다. 그 후 南海尉로 되었다. 前漢 武帝 元鼎 6년(전111)에 南越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9郡 중의 하나인데, 후에 交州로 개칭하였다. 元帝(재위 전48 전33) 때 交阯刺史가 七郡을 다스렸는데 交阯, 日南, 九眞이 지금의 안남 땅에 해당된다. 교지는 지금의 통킹만 지역, 구진은 통킹만 남쪽 해안지대로 淸化, 乂安, 河靜省 등 지역, 일남은 구진의 남쪽인 廣平, 廣治, 承天省 등 지역을 가리킨다. 103) 太宗實錄 卷170 永樂 13년 11월 辛酉條 참조. 104) 太宗實錄 卷181 永樂 14년 10월 壬申條를 보면, 점성 국왕은 사신을 行在 즉 오늘날의 北京으로 보내 謝罪하였다고 한다. 105) 太宗實錄 卷203 永樂 16년 8월 辛巳條 참조. 106) 太宗實錄 卷204 永樂 16년 9월 戊辰條를 보면, 하사한 물품은 점성 국왕 占巴的賴에게 보내는 금박의 紗羅였다. 107) 宣德: 明朝 제5대 황제인 宣宗 朱瞻基의 年號이다. 108) 黃原昌: 福建 建寧 출신으로 字는 德順이다. 永樂 13년(1415)에 進士가 된 뒤 行人에 제수되었다. 기개가 있고 청빈했으며, 宣德 원년 점성에 出使해서는 사신으로서의 모범을 보였다. 귀국 후 戶部 員外郞으로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81

38 했는데, 그 왕의 잘못을 바로잡고109) 선물로 준 금과 비단을 물리치고 귀국하자, 호부(戶部) 원외랑(員外郞)110)으로 발탁하였다.111) 正統元年, 瓊州知府程瑩言: 占城比年一貢, 勞費實多. 乞如暹羅諸國例, 三年一貢. 帝是之, 敕其使如瑩言, 賜王及妃綵幣. 然番人利中國市易, 雖有此令, 迄不遵. 정통(正統)112) 원년(1436)113)에 경주(瓊州) 지부(知府)114) 정영(程瑩)115)이 아뢰기를, 점 성은 해마다 한 번씩 공물을 바치는데 인력과 경비의 소모가 실로 많습니다. 청컨대 섬라(暹 羅)116) 등 여러 나라의 예와 같이 3년에 한 번씩 공물을 바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니, 정통제(正統帝)는 이를 옳다고 여겨 점성의 사신에게 칙서를 내려 정영의 건의대로 하도록 하고, 점성의 왕 및 왕비에게 채폐(綵幣)를 하사하였다.117) 그러나 번인(番人)118)들은 발탁되었으나, 官界의 치열한 경쟁 풍조를 싫어하여 스스로 노년을 핑계대고 致仕한 뒤 낙향하였다 ( 福建通志 卷48 人物 ; 明一統志 卷78). 109) 福建通志 卷48 人物 조의 관련 원문을 소개하면, 宣德改元, 頒詔占城, 宣王化, 正朝典, 占城君長, 叩首請罪 라 되어 있다. 결국 본문에서 점성국왕의 잘못을 바로잡았다는 것은 黃原昌이 占城에 出使해 서 王化를 선창하고 조정 내의 의례를 바로잡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110) 戶部 員外郞: 戶部 諸淸吏司員外郞의 略稱이다. 즉 각 淸吏司의 長인 郞中을 보좌하는 속칭 副郞 으로서 종5품이다. 111) 福建通志 卷48 人物 ; 明一統志 卷78 등 참조. 112) 正統: 명 왕조 6번째 황제인 英宗 朱祁鎭의 연호이다. 영종은 중국 황제 가운데 유일하게 1435년 1449 년과 1457년 1464년에 걸쳐 두 번 재위했는데, 그 첫 번째 시기의 연호가 정통이며, 두 번째 시기의 연호는 天順이다. 113) 英宗實錄 卷31 正統 2년 6월 甲申條에는 正統 元年이 아니라 正統 2년으로 되어 있다. 114) 知府: 府의 장관으로 관품은 正4品이다. 知府는 1인이 두어졌다. 知府는 한 府의 정무를 주관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옛 官名에 따라 太守 혹은 郡守라고도 한다. 직무는 한 府의 풍속과 교화를 發揚하 고, 訟事를 공평히 하며, 세금과 요역을 균등히 하여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3년마다 소속 관리의 賢否를 살펴 그 성적의 고하를 매겨 省에 보내고 吏部에 보고하였다. 115) 程瑩: 湖廣 羅田 출신이다. 吏員의 신분으로 禮部郞中으로 발탁되었다. 廣東 瓊州知府를 역임하였다. 어려서 부친을 잃었지만, 모친은 물론 타계한 부친을 기리는 思親圖를 그려 朝夕으로 봉양했으며, 義田을 두어 제사의 비용으로 충당하였다. 瓊州知府 시에 각종 惠政을 펼쳤는데, 후에 瓊州人들이 正瑩의 사당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湖廣通志 卷48 鄕賢志 ). 116) 暹羅에 대해서는 후술. 382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39 중국과의 교역을 이롭게 여겨, 비록 이 명령이 내렸지만 끝내 따르지 않았다. 六年, 王占巴的賴卒, 其孫摩訶賁該以遺命遣王孫述提昆來朝貢, 且乞嗣位. 乃遣給 事中管曈 行人吳惠齎詔, 封爲王, 新王及妃並有賜. 七年春, 述提昆卒於途, 帝憫 之, 遣官賜祭. 八年遣從子且揚樂催貢舞牌旗黑象. [정통] 6년(1441)에 [점성] 국왕 점파적뢰(占巴的賴)가 타계하자, 그 손자 마가분해(摩訶賁 該)119)가 유언이라며 왕손 술제곤(述提昆)을 보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고, 또 자신이 왕위를 잇게 해줄 것을 청하였다.120) 이에 [정통제는] 급사중(給事中)121) 관동(管曈)122) 행 인 오혜(吳惠)를 보내 조서를 가지고 가서 그를 왕으로 봉하고, 새로운 왕 및 왕비에게 [물품 을] 하사하였다.123) [정통] 7년(1442) 봄에 술제곤(述提昆)이 귀로 중에 죽자, 정통제는 그를 불쌍히 여겨 관원을 보내 제사를 지내주도록 하였다.124) [정통] 8년(1443)에 [점성국왕의] 조카 차양락최(且揚樂催)를 보내 무패기(舞牌旗)와 검은 색의 코끼리 등을 공물로 바쳤다.125) 117) 英宗實錄 卷31 正統 2년 6월 甲申條 참조. 118) 番人: 원래 소수민족이나 외국인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占城人을 가리킨다. 119) 明史 의 校勘記 에 의하면, 여기서는 摩訶賁該를 占巴的賴의 손자라고 했지만, 뒤에서는 占巴的賴의 妻弟 즉 처남으로 보았다며 서로 모순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런데 英宗實錄 卷156 正統 12년 7월 己亥條와 國榷 卷 쪽 및 卷 쪽에서 모두 후자의 설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본문에 서 摩訶賁該를 占巴的賴의 손자 라고 한 것은 잘못으로 보아야 할듯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20) 英宗實錄 卷80 正統 6년 6월 己卯條 참조. 121) 給事中: 六科의 각 科마다 給事中 약간 명을 두었다. 官品은 종7품이었다. 그 직무는 侍從, 規諫, 補闕, 拾遺와 六部 및 각 官府를 稽察하는 등의 일이었다. 明史 卷74 職官志 3, 吏戶禮兵刑工六科 참조. 122) 明史 의 校勘記에 의하면, 管曈 은 英宗實錄 卷81 正統 6년 7월 丙午條와 國榷 卷 쪽에는 모두 舒曈 이라 기재되어 있음을 밝혔다. 한편 역자가 四庫全書를 검색해 본 결과, 管曈 은 한 건도 그 이름을 찾아낼 수 없었던 반면 舒瞳 은 福建通志 를 비롯한 몇 개의 지방지 등에서 검색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성씨는 舒 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 123) 英宗實錄 卷81 正統 6년 7월 丙午條 참조. 正統帝는 이 때 占城에 보낸 사절단 구성에서 給事中 管曈을 正使로, 行人 吳惠를 副使로 임명한 바 있다. 124) 英宗實錄 卷90 正統 7년 3월 庚午條 참조. 125) 英宗實錄 卷103 正統 8년 4월 己丑條 참조.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83

40 十一年敕諭摩訶賁該曰: 邇者, 安南王黎濬遣使奏王欺其孤幼, 曩已侵升 華 思 義 四州, 今又屢攻化州, 掠其人畜財物. 二國俱受朝命, 各有分疆, 豈可興兵搆怨, 乖睦隣 保境之義. 王宜祗循禮分, 嚴飭邊臣, 毋恣肆侵軼, 貽禍生靈. 幷諭安南嚴行備禦, 毋 挾私報復. 先是, 定三年一貢之例, 其國不遵. 及詰其使者, 則云: 先王已逝, 前敕無 存, 故不知此令. 是歲, 貢使復至, 再敕王遵制, 賜王及妃綵幣. 冬復遣使來貢. [정통] 11년(1446)에 칙서를 보내 마가분해(摩訶賁該)에게 효유하여 이르기를, 근자에 안남의 왕 여준(黎濬)126)이 사신을 보내 아뢰기를, 왕127)이 자신이 고아인데다 나이도 어리다 고 업신여겨 이미 승주(升州) 화주(華州) 사주(思州) 의주(義州) 등 4주(州)128)를 침공했 고, 지금 다시 여러 차례 화주(化州)129)를 침공하여 그 지역의 백성과 가축 및 재물을 약탈하 였다고 한 바 있다. 양국은 모두 우리 조정의 명을 받들고 있고, 각기 자신의 영토를 소유하고 있는데, 어찌 전쟁을 벌여 원망을 만들어, 이웃나라와 화목하게 지내고 국경을 지켜야 되는 도리를 어길 수 있단 말인가! 왕은 마땅히 다만 예의와 분수를 지켜, 변방을 지키는 관리를 엄히 단속하여, 멋대로 방자하게 침범함으로써 화를 백성에게 주지 말도록 하라 라고 하였 다.130) 아울러 안남에게도 깨우치기를, 엄히 대비하고 방어하되 암암리에 보복하려는 마음을 품지 말라고 하였다.131) 이보다 앞서 3년에 한 번 공물을 바치도록 하는 규정을 정했지만,132) 126) 黎濬(년 똥[仁宗], 재위 ): 레(黎) 왕조의 제3대 왕으로서 생후 14개월의 갓난아이로 즉위하 였다. 이에 母后 응우옌(阮)씨가 섭정하였다. 한편 어린 년 똥이 즉위하자 점성 즉 참파가 1444년부터 변경 지방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1446년 원정군을 보내 반격을 가하여 참파의 수도 비자야를 함락하고 참파의 왕 마하 비자야(摩訶賁該)를 생포하였다. 년 똥은 1453년부터 親政을 시작했 으나, 1459년 이복형 응이 전(宜民)의 쿠데타로 모후와 함께 화를 입었다(유인선, 2002: ). 127) 여기서 왕 은 점성의 왕 摩訶賁該를 가리킨다. 128) 이 4州는 모두 升華府 소속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관련 주석 참조. 129) 化州는 오늘날 베트남의 順化 일대에 해당한다. 永樂 5년 6월에 順化府를 설치할 때 2州 11縣을 관할하 였다. 化州는 그 2州 가운데 하나로서 모두 7縣이 속해 있었다(郭紅 靳潤成, 2007: 242). 130) 英宗實錄 卷142 正統 11년 6월 癸亥條 참조. 131) 이 구절도 바로 위의 英宗實錄 卷142 正統 11년 6월 癸亥條를 보면, 원래는 점성 국왕 摩訶賁該에게 내린 칙서의 내용 중에 포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아울러 안남 국왕 黎浚에게도 또한 마땅히 엄히 대비하고 방어하되, 암암리에 보복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도록 깨우친 바 있으니, 이렇게 된다면 피차가 서로 안정을 취하게 되고, 짐의 一視同仁하려는 뜻에 부합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이 생략된 384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41 점성국에서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그 사신133)에게 힐문하니, 대답하기를, 선왕께서 이미 서거하시어 전에 받은 칙서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까닭에 이 명령을 알지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134) 이 해에 조공사절이 다시 이르러 재차 왕에게 칙서를 내려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고 왕 및 왕비에게 비단을 하사하였다.135) 겨울에 다시 사절단을 보내어 공물을 바쳤다.136) 十二年, 王與安南戰, 大敗被執. 故王占巴的賴姪摩訶貴來遣使奏: 先王抱疾, 曾以 臣爲世子, 欲令嗣位. 臣時年幼, 遜位於舅氏摩訶賁該. 後屢興兵伐安南, 致敵兵入 舊州古壘等處, 殺掠人畜殆盡, 王亦被擒. 國人以臣先王之姪, 且有遺命, 請臣代位. 辭之再三, 不得已始於府前治事. 臣不敢自專, 伏候朝命. 乃遣給事中陳誼 行人薛 幹封爲王, 諭以保國交鄰, 幷諭國中臣民共相輔翼. 十三年敕安南送摩訶賁該還國, 不奉命. [정통] 12년(1447)에 [점성의] 왕이 안남과 전투를 벌였지만, 크게 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타계한 왕 점파적뢰(占巴的賴)의 조카 마가귀래(摩訶貴來)가 사신을 보내어 상주하기를, 선 왕(先王)이 병중에 일찍이 신을 세자(世子)로 삼아 왕위를 잇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신은 당시 나이가 어려 왕위를 외삼촌 마가분해(摩訶賁該)에게 양보하였습니다. 후에 여러 번 군대 를 일으켜 안남을 정벌했지만, 적군을 구주(舊州)137)와 고루(古壘)138) 등지에 불러들여 백성 것이다. 132) 正統 元年, 瓊州知府 程瑩의 건의를 받아들여 1년 1공을 3년 1공으로 바꾼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앞의 正統 元年條 참조. 133) 점성 국왕 摩訶賁該가 보낸 사신 制班을 가리킨다( 英宗實錄 卷143 正統 11년 7월 己巳條). 134) 英宗實錄 卷143 正統 11년 7월 己巳條 참조. 135) 이 구절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즉 앞에서 점성의 사신에게 3년 1공의 규정을 준수하라는 힐문을 한 뒤에 다시 점성에서 사절단을 보낸 것처럼 이해할 수 있으나, 英宗實錄 卷143 正統 11년 7월 己巳條를 보면, 이 구절의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즉 사신 制班이 조공사절로 도착한 뒤에 점성의 왕과 왕비에게 전하는 하사품과 함께 3년 1공의 규정을 준수하라는 요지의 칙서를 전하도록 했던 것이다. 136) 英宗實錄 卷146 正統 11년 10월 丁酉條를 보면, 점성 국왕이 族兄과 사신을 다시 보내 특산물을 바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137) 舊州: 舊所, 舊縣, 舊都 등으로도 불린다. 오늘날 베트남 중부의 廣南, 峴港省 일대에 해당한다.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85

42 과 가축이 거의 살해되고 약탈되었고, 왕도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139) 국인(國人)들은 신이 선왕의 조카인데다 유언도 있다는 이유로 신에게 왕위를 이을 것을 청하였습니다. 재삼 이를 사양하였지만, 부득이하여 비로소 왕부(王府)에서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은 감히 스스로 결정할 수 없어,140) 삼가 조정(朝廷)의 명을 기다리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정통제는] 급사중 진의(陳誼) 행인 설간(薛幹)을 보내어 그를 왕으로 봉하였으며, 나라를 지키고 이웃 나라와 우호관계를 맺도록 깨우치고, 아울러 점성국내의 신민(臣民)들에게 함께 그를 보좌하 도록 타일렀다.141) [정통] 13년(1448)에 [정통제는] 안남에 칙서를 보내어 마가분해(摩訶賁 該)를 점성국에 돌려보내주도록 하였으나, 명을 따르지 않았다.142) 景泰三年遣使來貢, 且告王訃. 命給事中潘本愚 行人邊永封其弟摩訶貴由爲王. 경태(景泰)143) 3년(1452)에 [점성은] 사신을 보내 입조해서 공물을 바쳤고,144) 왕의 부음을 138) 古壘: 格烈, 格列 등으로도 불린다. 오늘날 베트남 중부의 義平省, 廣義 일대에 해당한다. 후에 安南이 점령한 뒤에는 思州와 義州로 바뀌었다. 139) 安南 즉 베트남은 胡氏 정권시대에 占城을 정벌하고 현재의 Quang-nam Quang-ngai省 지방에 상당하 는 그 북부 영토(Amaravati 지방)를 빼앗고는 이곳에 升州 華州 思州 義州를 두었다. 이윽고 明朝가 호씨를 멸하고 이 지방을 升華府 관할 하에 두었다. 그런데 陳氏의 난이 발생하자 이를 기회로 점성은 옛 영토의 탈환을 시도하였다. 그 후 黎朝의 여린은 化州(承天省 지방)를 엿보고 여준의 시대가 되자 침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여준은 正統 9년(1444)에 점성 정벌을 행하여 正統 11년(1446)에는 점성의 수도 闍槃城(Binh-dinh)를 함락하고 국왕 摩訶賁該를 포로로 잡았다. 이에 대해서는 山本達郞, 1975; 285 참조. 140) 實錄의 해당 기사 원문은 다음과 같다. 其王位未敢自專( 英宗實錄 卷156 正統 12년 7월 己亥條) 결국 摩訶貴來는 부득이하여 왕으로서의 업무는 임시로 맡고 있지만, 정식 왕위 취임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면서 그 결정권을 正統帝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왕위 취임의 승인을 요청했던 것이다. 141) 英宗實錄 卷156 正統 12년 7월 己亥條 참조. 142) 英宗實錄 卷166 正統 13년 5월 己亥條 참조. 143) 景泰: 明朝 제7대 황제 代宗 朱祁鈺의 年號이다. 144) 明史 의 校勘記에 의하면, 明史 卷11 景帝紀 에는 景泰 4년의 일로 되어 있음을 밝혔다. 英宗實錄 을 살펴보면, 확실히 景泰 4년 8월 乙未條에 점성 국왕 摩訶貴由가 通事 陳眞 등을 입조시켜 특산물을 보낸 기사가 실려 있다. 반면에 景泰 3년 조에 점성의 조공사절이 왔다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는 듯하다. 다만 景泰 3년 7월 壬辰條에 摩訶貴來의 타계에 조문을 하고, 그 아우 摩訶貴由를 새로운 왕으로 봉하기 386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43 고하였다. [경태제(景泰帝)는] 급사중 반본우(潘本愚) 행인 변영(邊永)에게 명하여 왕의 아 우 마가귀유(摩訶貴由)를 [새로운] 왕으로 봉하도록 하였다.145) 天順元年入貢, 賜其正副使鈒花金帶. 二年, 王摩訶槃羅悅新立, 遣使奉表朝貢. 四年 復貢, 自正使以下賜紗帽及金銀角帶有差. 使者訴安南見侵, 因敕諭安南王. 九月, 使 來, 告王喪. 命給事中黃汝霖 行人劉恕封王弟槃羅茶全爲王. 천순(天順)146) 원년(1457)에 입조해서 공물을 바치자, 점성의 정사(正使)와 부사(副使)에 게 꽃을 아로새긴 금대(金帶)를 하사하였다.147) [천순] 2년(1458)에 왕 마가반라열(摩訶槃羅 悅)148)이 새로 왕위에 올라, 사신을 보내 표(表)를 받들고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도록 하였 다.149) [천순] 4년(1460)에 다시 공물을 바치자 정사 이하에게 사모(紗帽)150)와 금은의 각대 위해 사절단을 보낸 사실이 기재되어 있는데, 점성의 사정이 어떻게 明朝에 알려졌는지는 더 구명되어 야 하겠지만, 적어도 景泰 4년에 파견된 점성의 사절단이 왕의 부음을 알렸다는 것은 시간상 성립 불가능이기 때문에 校勘記 의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145) 英宗實錄 卷218 景泰 3년 7월 壬辰條 참조. 景泰帝는 潘本愚를 正使로, 邊永을 副使로 하는 사절단을 점성에 보냈다. 146) 天順: 명 왕조 제8대 황제인 英宗 朱祁鎭의 연호이다. 1435년 1449년 사이에 재위했던 영종이 토목보 의 변(1449)으로 생포되었다가 돌아온 후, 당시 景泰帝로 있었던 자신의 이복동생을 몰아내고(奪門之 變) 다시 복위하여 연호를 天順으로 고쳤다. 명 왕조는 태조가 一世一元制를 세웠으나 영종만은 위의 사정으로 두 개의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했다. 147) 英宗實錄 卷276 天順 元年 3월 甲子條 참조. 이 때 占城 뿐 아니라 暹羅의 副使에게도 꽃을 아로새긴 金帶를 하사하였다. 148) 摩訶槃羅悅(재위 ): P an-lo T ou-yue 或 Bàn La Trà Duyệt으로 표기한다. 摩訶槃羅悅은 본래의 이름으로 盤羅茶悅이라고도 하는데, 槃羅茶全이 동생이다. 국왕인 摩訶貴由를 죽이고 나라를 빼앗고는 동생 槃羅茶全에게 왕위를 전했다. 大越史記全書 卷12 黎紀 참조. 明側의 자료에는 槃羅茶 全이 형이고 盤羅茶悅이 동생으로 되어 있으나, 베트남 자료에는 槃羅茶全이 동생이다. 槃羅茶全이 포로로 잡히고 明朝가 하사한 印章과 符節도 모두 없어지자, 槃羅茶悅은 국왕으로 책봉해줄 것과 인장 과 부절을 청하자, 明朝는 正統 연간( )에 世子 摩訶賁來를 책봉해준 사례에 따라 처리하였 다. 憲宗實錄 卷105 成化 8년 6월 丁亥條 참조. 149) 英宗實錄 卷292 天順 2년 6월 丁卯條 참조. 150) 紗帽: 비단실로 짠 모자로서 魏晉시대에서부터 유래한다. 紗帽에는 황제가 쓰는 白紗帽와 文人 및 관료가 쓰는 烏紗帽 등이 있다. 본문의 紗帽는 물론 烏紗帽를 가리킨다. 明代에는 이 烏紗帽가 官帽의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87

44 (角帶)를 차등 있게 하사하였다.151) 사신이 안남에게 침공을 받았음을 호소하자, 칙서를 내려 안남의 왕을 타일러 경계하였다.152) 9월에 사신이 와서 왕의 타계를 고하였다. 급사중 황여림 (黃汝霖) 행인 유서(劉恕)에게 명하여 왕의 동생 반라차전(槃羅茶全)153)을 왕으로 봉하도록 하였다.154) 八年入貢. 憲宗嗣位, 應頒賜蕃國錦幣, 禮官請付使臣齎回, 從之. 使者復訴安南見 侵, 求索白象. 乞如永樂時, 遣官安撫, 建立界牌石, 以杜侵陵. 兵部以兩國方爭, 不便遣使, 乞令使臣歸諭國王, 務循禮法, 固封疆, 捍外侮, 毋輕搆禍, 從之. [천순] 8년(1464)에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 헌종(憲宗, ; 재위 )155) 이 황위를 계승하여, 응당 번국(蕃國)156)에 비단을 내려주어야 했는데, 예부의 관원이 [비단 대명사가 되었다. 151) 英宗實錄 卷318 天順 4년 8월 甲寅條 참조. 152) 英宗實錄 卷318 天順 4년 8월 己未條 참조. 英宗이 안남 국왕을 경계한 것은 禮部의 건의를 받아들이 는 형태를 취하였다. 153) 盤羅茶全(재위 ): P an-lo T ou-ts iuan 혹은 Bàn La Trà Toàn으로 표기한다. 憲宗實錄 에 는 盤羅茶全 이 아니라 槃羅茶全 으로 표기되어 있다. 憲宗實錄 卷104 成化 8년 5월 丁巳條 참조. 天順 4년(1460) 9월에 점성왕 摩訶槃羅悅(즉 盤羅茶悅)이 죽자, 명조는 그의 동생 槃羅茶全이 성품과 자질이 순하고 돈독하다며, 給事中 王汝霖, 行人 劉恕를 보내 占城國王으로 책봉한 바 있다. 英宗實錄 卷319 天順 4년 9월 丙戌條 참조. 154) 英宗實錄 卷319 天順 4년 9월 丙戌條 참조. 155) 憲宗: 明朝 제9대 황제 成化帝의 廟號이다. 英宗의 長子로서 처음 이름은 見濬이었다. 英宗이 포로가 되어 오이라트[瓦剌]에 머무르고 있을 때 皇太后가 명하여 皇太子로 삼았다. 景泰 3년에 폐위되어 沂王으로 격하되었으나, 天順 元年에 皇太子로 복귀하면서 이름을 見深으로 바꾸었다. 天順 8년 正月 英宗이 죽자 帝位에 올랐고 이듬해를 成化 元年으로 정하였다. 道敎와 佛敎를 過信하고, 淫蕩에 젖어 政事를 등한시하였다. 이에 환관의 세력이 증대하였는데, 특히 汪直이 西廠을 提督하는 등 專橫을 일삼았다. 156) 蕃國: 藩國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周代에 九州 밖에 세워진 나라로서, 명의상으로는 歸屬하지만 실제로 는 周王室의 제어를 받지 않는 나라를 가리켰는데, 후에 諸侯國 혹은 중국 이외의 국가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본문에서는 占城國을 가리킨다. 蕃國의 의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邱炫煜, 1995: 6 18, 참조. 388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45 을] 사신에게 주어 가지고 돌아가도록 하자고 청하니, 그 청을 받아들였다.157) 사신이 안남이 침공해서 흰색의 코끼리를 요구하고 있다고 다시 하소연하고, 영락 연간( ) 때와 같이 관리를 보내어 위로하여 어루만지고, 경계를 표지하는 비석을 세워 침공과 능멸을 막기 를 청하였다. 병부에서는 양국이 현재 다투고 있어서 사절단을 보내기 어려우니, 사신으로 하여금 귀국해서 국왕에게 효유하여, 힘써 예법을 따르고 경계를 견고히 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도록 하고, 가벼이 화를 불러일으키지 말도록 하자고 청하니, 그 청을 받아들였다.158) 成化五年入貢. 時安南索占城犀象 寶貨, 令以事天朝之禮事之. 占城不從, 大擧往 伐. 七年破其國, 執王槃羅茶全及家屬五十餘人, 劫印符, 大肆焚掠, 遂據其地. 王 弟槃羅茶悅逃山中, 遣使告難. 兵部言: 安南吞幷與國, 若不爲處分, 非惟失占城歸 附之心, 抑恐啓安南跋扈之志. 宜遣官齎敕宣諭, 還其國王及眷屬. 帝慮安南逆命, 令俟貢使至日, 賜敕責之. 성화(成化)159) 5년(1469)에 입조하여 공물을 바쳤다.160) 당시 안남에서는 점성에게 무소, 코끼리와 보화 등을 강요하며, 천조(天朝)를 섬기는 의례(儀禮)로서 섬기도록 하였다.161) 점 성이 이에 따르지 않자, 크게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였다. [성화] 7년(1471)에 점성을 격파하 고, 국왕 반라차전(槃羅茶全)과 그 가속(家屬) 50여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인부(印符)를 빼앗 고, 크게 멋대로 불사르고 약탈해서 드디어 그 땅을 점거하였다.162) 왕의 동생 반라차열(槃羅 茶悅)은 산속으로 도주하여 사신을 명조(明朝)에 보내어 그 화난(禍難)을 보고하였다.163) 157) 憲宗實錄 卷3 天順 8년 3월 戊午條 참조. 158) 憲宗實錄 卷3 天順 8년 3월 庚申條 참조. 159) 成化: 명 왕조 9대 황제인 憲宗 朱見深의 年號이다. 160) 憲宗實錄 卷72 成化 5년 10월 甲寅條 참조. 占城 국왕 槃羅茶悅이 사신 布沙帕婆羅始 등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 161) 安南에서 占城에게 무소, 코끼리와 보화 등을 강요하려 보낸 사람에게 天朝의 사신을 받들 듯이 대우해 줄 것을 바랐다는 말이다. 憲宗實錄 卷104 成化 8년 5월 丁巳條 참조. 162) 成化 7년 2월에 벌어진 사건이다. 憲宗實錄 卷104 成化 8년 5월 丁巳條 참조. 163) 槃羅茶悅이 임시 국왕의 신분으로 사신 樂沙來를 明朝에 보내어 보고하였다. 憲宗實錄 卷104 成化 8년 5월 丁巳條 참조.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89

46 병부에서 아뢰기를, 안남이 우방을 집어삼켰는데, 만약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점성 의 [천조에] 귀부(歸附)하려는 마음을 잃게 할 뿐 아니라 안남의 발호의 뜻을 조장시킬까 싶습니다. 마땅히 관원을 보내어 칙서를 가지고 가서 타일러서, 점성 국왕과 그 가속을 돌려보 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64)라고 하였다. 황제는 안남이 명령을 거역할까 염려하여 안남의 조공사절이 도착하는 날을 기다려, 그에게 칙서를 주어 추궁하도록 하였다. 八年, 以槃羅茶悅請封, 命給事中陳峻 行人李珊持節往. 峻等至新州港, 守者拒之, 知其國已爲安南所據, 改爲交南州, 乃不敢入. 十年冬還朝. [성화] 8년(1472)에 반라차열(槃羅茶悅)이 국왕으로 책봉해 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에 황제 는 급사중 진준(陳峻) 행인 이산(李珊)에게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165) 진준 등은 신주항(新州港)166)에 이르렀지만, 이곳을 지키는 자가 상륙하지 못하도록 하자, 점성이 이미 안남에게 점거되어 교남주(交南州)로 바뀌었음을 알고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였다. [성 화] 10년(1474) 겨울에 귀국하였다.167) 安南旣破占城, 復遣兵執槃羅茶悅, 立前王孫齋亞麻弗菴爲王, 以國南邊地予之. 十 四年, 遣使朝貢請封, 命給事中馮義 行人張瑾往封之. 義等多攜私物, 旣至廣東, 聞齋亞麻弗菴已死, 其弟古來遣使乞封. 義等慮空還失利, 亟至占城. 占城人言, 王 164) 兵部尙書 白圭 등이 논의 끝에 成化帝에게 보고한 내용이다. 憲宗實錄 卷104 成化 8년 5월 丁巳條 참조. 165) 占城의 임시 국왕 槃羅茶悅이 국왕의 승계를 승인해줄 것과 印符를 내려줄 것을 청하자 禮部에서 正統 연간( )의 예를 준용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工科右給事中 陳峻과 行人司行人 李珊을 파견하였다. 憲宗實錄 卷105 成化 8년 6월 丁亥條 참조. 166) 新州港: 占城 즉 베트남 중부의 平定省에 위치한다. 新州港은 옛 新安府로 지금은 海陽承政司이다. 東西洋考 卷1 西洋列國考 交阯 新州. 167) 陳峻 등은 占城의 新州港口에 이르렀지만 상륙이 불허되자, 적재한 私貨와 동행한 상인의 이익을 고려 하여 풍랑을 만났다는 핑계를 대고 滿剌加國으로 越境하여 交易하고는 그 국왕에게 入貢을 권유한 뒤에 成化 10년 12월에 귀국하였다. 憲宗實錄 卷136 成化 10년 12월 乙未條 참조. 390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47 孫請封之後, 卽爲古來所殺, 安南以僞敕立其國人提婆苔爲王. 義等不俟奏報, 輒以 印幣授提婆苔封之, 得所賂黃金百餘兩, 又往滿剌加國盡貨其私物以歸. 義至海洋病 死. 瑾具其事, 幷上僞敕於朝. 안남이 점성을 격파한 뒤, 다시 병사를 보내어 반라차열을 체포하고는 전 국왕의 손자인 재아마불암(齋亞麻弗菴)을 왕으로 세워, 점성국의 남쪽 변경지대의 땅을 그에게 주었다.168) [성화] 14년(1478)에 사신을 보내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면서 [왕으로] 책봉해 줄 것을 청하 자,169) [황제는] 급사중 풍의(馮義) 행인 장근(張瑾)에게 명하여 가서 책봉하도록 하였다.170) 풍의 등이 사물(私物)을 많이 휴대하여 광동에 이르렀는데, 재아마불암이 이미 죽었고, 그 동생 고래(古來)가 책봉해 줄 것을 요청하는 사신171)을 보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풍의 등은 빈손으로 돌아가면 손해가 됨을 염려하여 바로 점성으로 갔다. 점성인이 말하기를, 국왕 의 손자가 책봉을 청한 이후 바로 고래에게 살해되었는데, 안남에서 위조 칙서로 안남인 제파태(提婆苔)를 왕으로 세웠다고 하였다. 풍의 등은 상주(上奏)하여 보고하지도 않고, 바로 인장(印章)과 폐백(幣帛)을 제파태에게 주어 [왕으로] 책봉하고는 뇌물로 황금 100여량을 받고, 다시 만랄가(滿剌加)172)국으로 가서 자신들의 사물(私物)을 다 판 뒤 돌아왔다. 풍의는 168) 이 소식은 齋亞麻弗庵이 보낸 숙부 波羅亞弟 및 사신 羅四 등의 보고를 통해 明朝에 전해졌다. 이에 대해서는 憲宗實錄 卷180 成化 14년 7월 乙丑條; 권181, 成化 14년 8월 乙未條 등 참조. 한편 實錄에는 齋亞麻弗庵 의 이름이 齋亞麻勿庵 으로 기재되어 있다. 169) 憲宗實錄 卷180 成化 14년 7월 乙丑條 참조. 170) 禮科給事中 馮義와 行人 張瑾을 占城에 보내 齋亞麻弗庵을 國王으로 봉하도록 하였다. 憲宗實錄 卷 181 成化 14년 8월 乙未條 참조. 171) 哈那巴를 가리킨다. 憲宗實錄 卷220 成化 17년 10월 丙辰條 참조. 172) 滿剌加: 말라카(Malacca)왕국을 일컫는다. 팔렘방(Palembang)의 왕자인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 에 의하여 1400년경에 건국되었고 하는데, 그가 스리위자야(SriVijaya) 왕실 가계의 왕자인지는 분명 하지 않다. 1377년 마자파힛(Majapahit) 왕국의 공격으로 팔렘방이 패하자 파라메스와라와 그의 추종 자들은 해상으로 탈출하여 말레이 반도 방향으로 이동하여 이동하였는데, 처음 정착한 곳이 트마섹 (Temasek)섬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파라메스와라는 사자를 보았다고 하여 이 지역을 사자의 도시 또는 사자의 나라 라는 뜻의 싱가푸라(Singapura)라고 불렀는데, 여기에서 싱가포르라는 명칭이 유래 되었다. 이후 이들은 1402년에 다시 말라카로 이동하여 말라카 왕국을 세우고 스리위자야를 잇는 해상 국가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말라카의 지배자들은 국제 교역상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점성 빈동룡 진랍 섬라 조와 사파 소길단 설리 일라하치 삼불제전 역주 391

48 바다에서 병사하였다. 장근이 그간의 사정을 진술하고 아울러 위조 칙서를 조정에 바쳤다.173) 十七年, 古來遣使朝貢, 言: 安南破臣國時, 故王弟槃羅茶悅逃居佛靈山. 比天使齎 封誥至, 已爲賊人執去, 臣與兄齋亞麻弗菴潛竄山谷. 後賊人畏懼天威, 遣人訪覓臣 兄, 還以故地. 然自邦都郞至占臘止五處, 臣兄權國未幾, 遽爾隕歿. 臣當嗣立, 不 敢自專, 仰望天恩, 賜之冊印. 臣國所有土地本二十七處, 四府 一州 二十二縣. 東至海, 南至占臘, 西至黎人山, 北至阿本喇補, 凡三千五百餘里. 乞特諭交人, 盡 還本國. 章下廷議, 英國公張懋等請特遣近臣有威望者二人往使. 時安南貢使方歸, 卽賜敕詰責黎灝, 令速還地, 毋抗朝命. 禮官乃劾瑾擅封, 執下詔獄, 具得其情, 論 死. 時古來所遣使臣在館, 召問之, 云: 古來實王弟, 其王病死, 非弑. 提婆苔不知 何人. 乃命使臣暫歸廣東, 俟提婆苔使至, 審誠僞處之. 使臣候命經年, 提婆苔使者 不至, 乃令還國. [성화] 17년(1481)에 고래(古來)가 사신을 보내어 입조하여 공물을 바치면서 아뢰기를, 안남이 신의 나라를 침공했을 때,174) 고(故) 국왕의 아우 반라차열이 도주하여 불령산(佛靈 山)에서 기거하였습니다. 천조의 사신이 책봉의 칙서를 가지고 이르렀을 때175)에는 [반라차 열이] 이미 도적의 무리176)에게 붙잡혀갔고, 신과 형 재아마불암은 몰래 산과 계곡 사이로 데 주력하고, 교역 기반시설을 확충했으며, 매우 정교하고 효율적인 법과 행정체계를 세움으로써 해상 왕국으로 흥기할 수 있었다(최병욱, 2006: ). 말라카 왕국은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 면서 1470년경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여, 말레이 반도 전역과 수마트라 중동부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이후 말라카 왕국은 점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특히 16세기에 접어들어 말라카왕실은 내분에 휩싸이고 있을 때인 1511년에 인도 고아(Goa)를 점령한 포르투갈의 아퐁소 드 알부케르케 (Afonso de Albuquerque)가 군대를 이끌고 말라카를 공격하는데, 결국 여기에서 패배함으로써 멸망하 였다. 173) 憲宗實錄 卷220 成化 17년 10월 丙辰條 참조. 한편 이 사건으로 인하여 斬刑으로 판결된 張瑾은 일단 下獄되었는데, 成化 20년 減刑되어 廣西의 邊衛로 유배되었다. 憲宗實錄 卷257 成化 20년 10월 己未條 참조. 174) 天順 5년(1461) 4월의 일이다. 憲宗實錄 卷219 成化 17년 9월 丁酉條 참조. 175) 成化 6년(1470)의 일이다. 憲宗實錄 卷219 成化 17년 9월 丁酉條 참조. 176) 占城으로 침공한 安南人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392 명사 외국전 역주 2 외국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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