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역사, 신정일 교수님의 글모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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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 역사, 신정일 교수님의 글모임4 초보산꾼

2 소개글 신정일 교수님의 매일로 온 편지를 모아논 글입니다

3 목차 1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8 2 숲이 무성한 길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는다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14 4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6 5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한 여름에 내외 선유동을 따라 걷는다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43 9 서해의 절경 흑산도와 홍도를 가다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관악산에서 느낀 성간의 소회, 섬진강 테마 강따라 길따라 도보 여행 계사년의 여름 걷기 학교- 월출산에서 청산도까지(선착순 90명) 천삼백 리 한강 네 번 째를 걷는다. 영월 거운리에서 단양 도담삼봉까지 신록의 계절에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다 인제 진동계곡과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가다 천삼백 리 한강 세 번 째를 걷는다..- 동강 가수리에서 어라연까지 다시 돌아본 동학농민혁명의 현장, <소백산 자락 길>중 온달 평강 로맨스 길을 오월에 걷는다 계사년의 사월 초파일 삼사 三 寺 기행과 영남지방의 문화유산을 찾아 그리운 미륵의 나라 꽃 피고, 또 피는 남원을 다녀와 금강 무릉도원 길을 걷는다, 년 섬 기행 <비렁길이 있는 여수 금오도를 가다.> 천삼백 리 한강 두번째를 걷는다. 97

4 26 네번 째 한강 천 삼백리 길에 나서며, 봄꽃을 보러 섬진강으로 가다 익산 미륵산 둘레길을 3월 30일 토요일에 걷는다 익산 미륵산 둘레길을 걷다 태백의 검용소에서 삼척시 하장면 갈전리까지 계사년 2월에 고흥반도 길을 걷다 봄맞이 섬 기행, 고군산군도의 선유도를 가다 [신정일의 길]삼남대로 옆에 웬 신 삼남길 (경향신문 (금)) 이청준 문학의 산실인 소록도와 장흥 회진을 걷다 통영의 섬(비진도. 대매물도, 소매물도)들을 걷다 섬진강 오백 삼 십리를 가다 영남의 4대 길지를 찾아 가다 상주에서의 하룻밤 맛과 멋이 함께하는 남도에서 해넘이와 해맞이를 하다 북촌과 경복궁을 다녀온 소회 영암사지나 해인사 가는 길에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옥정호를 감싸고도는 물안개 길을 걷는다 바닷바람과 소나무 향기를 맡으며 태안반도를 걷는다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을 보고 서강을 걷다 안면도 노을길을 걷는다 서해의 섬, 영흥도, 선재도 대부도를 걷는다 무주 금강변 마실길 - 복사꽃 만발한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 한탄강변의 철원을 가다 강화 남문에서 연미정까지를 걷다 섬진강 5백 삼십 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170

5 51 합천의 영암사지와 해인사가 있는 홍류동계곡의 소리길을 가다 새 책 '눈물편지'가 나왔습니다 남해의 절집들과 순천만을 가다 겨울의 초입 부석사를 답사하고 고치령을 넘다 늦은 가을에 성주사와 무량사를 거닐다 늦가을 조선 권력의 중심부였던 북촌과 경복궁을 거닐어 본다 늦은 가을에 의주로를 고양과 파주 일대를 걷다 섬진강에서 돌아와 다시 강물소리를 그리워하다 울릉도에서 보낸 며칠 만개한 가을에 남도에서 꽃 무릇(상사화)을 보다 오대산 옛길과 구룡령 옛길을 걷다 조선시대 옛길 관동대로를 일곱 번 째를 걷는다 남한강 변 단양에서의 하룻밤 <가슴 설레며 걷는 천년 고도 전주 옛길> 임진년 만추에 만나는 제주도 관동대로 여섯 번 째를 걷는다 김천 청암사에서 수도암으로 가는 길을 걷는다 그새 그리운 창녕의 용선대 영덕의 해파랑 길과 울진 십이령 길을 가다 제주 삼무공원에서의 하룻밤 제주, 그리운 제주, 바닷가의 고을 거제도와 역사의 고장 창녕 걷기 관동대로> 다섯 번째 문재에서 전재 너머 원주까지, 한여름 괴산 산막이 길을 가다 아침가리와 생태문화의 보고 곰배령을 가다. 268

6 76 백령도 너머 몽금포 해수욕장, 년 여름 걷기 학교. 바닷가의 고울 거제도와 역사의 고장 창녕 걷기 <관동대로>네 번째 하진부에서 모릿재 너머 여우고개까지, 한탄강변의 철원을 가다 서해의 외 딴 섬, 백령도를 가다 다시 지리산을 생각하며, <관동대로>세 번째 묵호항에서 대관령 너머 횡계까지, 임진년의 삼사기행에 초대합니다 천년 고도 전주의 옛길을 걷는다 교동도에서 보낸 하루 임진년 석탄일에 통도사에서 운문사로 이르는 길을 걷는다, 정기도보 답사 <관동대로>두 번째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동해시까지, 죽령 옛길과 병산서원, 그리고 낙동강 길을 걷는다 합천 해인사 천년길과 청량사 길을 걷는다 최시형 선생의 묘소를 찾아가다 불꺼진 방 - 바다가 육지라면 (안면도가 육지라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섬들이 있어 청송과 영양의 외씨 버선길을 걷는다 추석 연휴에 동해 바다 먼 곳에 있는 섬 울릉도를 갑니다 역사의 길 관동대로를 걷는다 봄꽃이 만개한 섬진강 길을 걷는다 남해 보리암과 김만중의 적소 노도,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을 보고 서강을 걷다 그 아름다운 남강 3번째 여정을 걷는다. 촉석루에서 정암나루까지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을 찾아가는 역사기행 342

7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23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8월 30일에서 구월의 초입인 1일까지 양구의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습니다. 가을 들판이 무르 익어가는 해안면 일대를 가칠봉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노란 화채그릇이나 운동장같이 보이는 그 풍 경 아래 펀치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곳을 걷고, 삼화사 지나 쌍폭까지 이르는 동해 두타산 아래 계곡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그 외에도 강릉 옥계 부근의 바닷가 길과 추암 일대를 답사하게 될 이번 여정에 참여 바랍니다. 펀치볼 둘레길, 한국전쟁의 상징인 국내 최북단 강원 양구의 일명 '펀치볼'에 둘레길이 조성돼 생태 및 안보관광 자원으로 활용된 다. 북부지방산림청(청장 윤영균)은 양구군 해안면 일원 펀치볼 둘레길 44km 구간을 내달 1일 개통한다고 29일 밝혔다. 이날 개통식에 이어 둘레길 구간 가운데 평화의 숲길 4Km를 걷는 '숲사랑 숲길 걷기' 행사가 진행된다. 펀치볼 둘레길은 테마별 순환노선으로 평화의 숲길(통일관~현리시내ㆍ12.3km) 구간과 오리나무 숲길(통일관~도솔천~ 현리교ㆍ14.6km), 만들벌판길(통일관~물골교ㆍ17km) 구간으로 조성됐다. 해안면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분지 하나가 1개면을 이루는 지역으로 세계 유일의 분단현장이 라는 DMZ의 가치와 전쟁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펀치볼은 한국전쟁 때의 격전지로, 외국 종군기자들이 가칠봉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 마치 '화채 그릇(Punch Bowl)'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두타산 아래 무릉계곡,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미로면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백두대간이 동해안을 따라 뻗어 내려오다가 삼척지방 해안가 에서 크게 한 번 용트림하여 세워진 산으로써 무릉계곡을 중심으로 청옥산(1404M)과 쌍둥이처럼 서있는 산이다. 두타 산과 청옥산은 거의 연결된 듯 보이나 형상이 매우 대조적 인데 두타산은 정상부가 첨봉을 이루고 주변은 급경사면 이어서 날렵한 산세를 자랑하고 청옥산은 완만하고, 묵직한 형상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청옥산보다 두 타산이 51m가 낮은데도 불구하고 이산 전체를 일컬어 두타산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 고장 모든 사람들도 그러하고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7

8 옛 문헌들이 다 그러하다. 삼화사 현판에도 두타산 삼화사라고 기록되어 있고, 윤두서의<동국여지지도 東 國 餘 地 地 圖 > 에도 청옥산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다가 신경준의 산경표 山 徑 表 에 이르러서야 청옥산이 보이는데 두타산보다 아랫 자락에 청옥산이 놓여있는 것이다. 두타산은 예로부터 삼척 지방의 영적인 모산 母 山 으로 숭상 되었으며, 동해안 지방에서 볼 때 서쪽의 먼 곳에 우뚝 솟 아 있기 때문에 이산은 정기를 발하는 산으로 여겨져 민중들의 삶에 근원이 된다고 여겼던 산이다. 그래서였는지 조 선 선조 때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동인의 중심인물 이였고 그 당시 삼척부사로 재 직했던 김효원은 두타산 일기 에서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다운 산을 두타산으로 꼽았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이 흐릿하게 내 눈 안에 가득차고 사람들의 발길에서 발길로 드러난 그 산길은 아슴프레 하다. 배낭을 벗고 떡과 물 그리고 사탕을 꺼내 놓는다.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땅 이 두타산이 그러할 것이다. 산스크 리트어의 두타(Dhuta) 에서 유래되었고 그것이 다시 한자음으로 표기된 두타에는 의식주에 대한 탐욕과 세상의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수행, 정진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므로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깨끗하게 불 도를 닦는 수행 처 라는 유래를 지닌 이 두타산은 불교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현재는 삼화사와 관음암, 천은사만이 남아 있지만, 불교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중대사, 상원사, 대승암, 성로암, 내화암 등 십여 개가 넘는 절이 있었다. 금강산 다음으로 아름다운 산 두타산을 중심으로 세 개의 하천이 형성된다. 하나는 박달골의 계류와 서원터골 계류가 함께 모여 장장 14Km에 이르 는 무릉계곡을 거쳐 살내가 되어 동해로 흘러들고, 남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하천은 골지천 과 합류하여 한강이 되고 동쪽 기슭에서 발원한 계류는 오십천과 합류하여 동해에 접어들며 두타산 아랫자락의 쉰음산(688M)에는 돌우물이 50 여개가 있어 오십정산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는 산 제당을 두어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으며 비가 오지 않을 때에는 기우제도 지냈다. 이산 아래 미로면에는 천은사 라는 옛 절이 있고 이 절에서 고려 충렬왕 때의 학자였던 이승휴가 은둔 생활을 하며 제왕운기 를 지었다고 한다. 두타산성에서 산들은 찬연하다. 아니 찬연하다 못해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가 없다. 산자락 마다 우뚝우뚝 서 있는 바위 들이 기립한 채 달려오고 건너편의 청옥산 관음암이 한 폭이 그림이다. 그 산 그 바위들이 나를 에워싸고 내 피 로함과 내 근심 걱정까지도 덜어내 준다. 일설에는 이 산성에서 관음암 사이에 허공 다리가 있어서 임진왜란 때 사용 되었다고 하나 아무래도 그 설은 낭설일 듯싶다. 태종 14년에 축성된 이 두타산성은 천연적인 산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쌓은 성으로 성을 한 바퀴 도는데 약 7일간이나 소요된다고 하며 성벽이 그렇게 견고하지는 않으나 천연의 요새로서 손색이 없다. 어느 새 구름 모두 걷히고 나는 쓰러 질 듯 한 몸을 바위 위에 기댄 채 산들을 바라본다. 저 골짜기 어디쯤에 오늘은 갈수 없는 문간재 가 있을 것이고 그리고 쌍 폭포와 용추폭포를 지나 넘는 박달재는 임계, 정선을 거쳐 서울로 가는 옛 사람들의 고갯 길 이다. 호랑이 바위, 베틀 바위, 학소대, 벼락 바위, 병풍 바위, 번개 바위, 문바위등 절경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 비경들이 우리들을 다시 오라고 부를 것이다. 일행들 중에 우리 몇 사람만 패잔병처럼 남아 아직도 내려가야 할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60~70cm도 안 되는 우리의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이산을 넘어왔는데 저 아래를 못 내려갈까. 힘들더라도 내려가야지. 두타산의 자연 성문을 지나 산길을 내려가자 계곡은 어둡고 침침하 였고 길은 삼화사로 이어진다. 절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에 자장율사가 이곳 두타산에 이르러 절을 짓고 흑연대라고 한 것이 효시였지만 경문왕 4년에 구산 선문 중 사굴산파의 개조인 범일국사가 중창하여 삼공암이라고 한 때부터 뚜렷한 사적을 갖는다. 일설에 는 신라 말에 세 선인이 회의를 하고 그 뒤 품일대사가 불사를 지어 삼불사라고 했다는데 고려 태조 원년에 삼창되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8

9 면서 세 나라를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을 지닌 삼화사라고 이름지어 졌다. 태조 이성계는 칙령을 내려 이 절의 이름을 문안에 기록하고, 후사에 전하게 하면서 신인이 절터를 알려준 것이니, 신기한 일이라 하였다. 삼화사는 그 뒤 임진왜란 때 전소 되었고 효종 때 중건 하였으며 몇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 에 이르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로는 적광전 과 약사전 그리고 요사채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대웅전 안에 안치된 철 불이 있다. 현재 국보로 심의 중인 이 철불은 삼화사 창건 설화에 관련된 약사 삼불가운데 맏 형의 불상이라고 전해 지고 대웅전 아래마당에 세워져 있는 삼화사 삼층 석탑(보물 127호)은 높이가 4.95m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는 고 려 시대의 탑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승휴가 이 절 가까이에 객안당을 짓고 거쳐 하였다고 한다. 삼화사의 일주문을 나서서 다리를 건너면 거대한 무릉반석이 나타난다. 천여 명이 앉아도 너끈할 널찍한 너럭바위를 흐르는 물줄기는 곳곳에 담을 이루고 그 너럭바위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글과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단종 폐위 이후 조선의 산천을 주유했던 매월당 김시습의 글도 있고 조선전기 4대 명필 중 한사람인 양사언의 무릉선원 중대 천석 두타동천 武 陵 仙 源, 中 臺 泉 石, 頭 陀 洞 天 " 이라는 달필들 속에 무슨 계 무슨 계 하며 적혀진 같은 계원들의 이름 들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이름들 속에 조선 시대 이 산에 숨어들었던 사람들을 잡기위해 왔었던 수많은 토포사 討 捕 使 (조선시대 포도대장)들이 새겨 놓았던 이름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신해 3년, 계미 3년 등의 글자들과 함께 토 포사 아무개, 토포사 아무개 등의 글씨들의 여미에 그 때 그들이 이 너럭바위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쪼아 댔을 날카로운 정의 끄트머리가 보이고 내리치는 망치의 불꽃들이 스러지는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 1981년 시인 김지하는 이곳 너럭바위에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죽어갔을 수천 명의 아우성 소리를 들었다 고 한다. 어버이를 부르는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상하게 떨리던 여인들의 귀곡성 머리를 잡아끌던 보이 지 않는 손길들 마치 썩어가는 시체처럼 거무칙칙한 절벽에서 빛나는 음산한 햇빛 검은 갈 까마귀들의 울부짖 음. 그는 달아나다 시피 파쏘, 비린내골 파소굽이라는 원한 서린 이름들이 남아 떠도는 이 골짜기를 떠났고 구술로서 검은 산 하얀 방 의 두타산을 이렇게 표현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산이 산을 그리워하던가./된장이 된장을 그리워하던가./양파가 양파를 그리워하던가./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이 것은 절대 지상 철학이다./나는 이것을 두타산에서 배웠다./개새끼들 너럭바위를 지나 금란정을 지난다. 1910한일합방 이후 향교가 문을 닫자 이 고장의 유림과 선비들이 나라 잃은 수치 와 울분을 이기지 못해 금란계를 만들어 기념정각을 세우려 했지만 일제의 반대로 세우지 못하였다. 해방이 된 그 후 그의 자손들이 북편에 있던 이 정각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신정일의 <사찰기행>에서 두 산의 힘을 모아 빚어낸 물줄기를 따르는 발품은 언제나 행복하다. 속세를 등지고 청정하게 불도에 전념한다는 두타행( 頭 陀 行 )과 어울리는 산길이다. 속세를 벗어난 발길은 어느덧 학소대로 이어진다. 왼쪽은 벼랑이고 오른쪽은 거 대한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바위 벼랑엔 4단 폭포가 그림처럼 걸려 있고 송림이 그 주변을 감싸듯 우거져 있 으니 그대로 한폭의 동양화다. 학소대를 지나면 산길 왼쪽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이 깊은 산중의 적막을 깨뜨린다. 두개의 골짜기에서 두줄기 폭 포수가 쏟아지는데 음양의 섭리처럼 하나로 만나는 쌍폭포다. 초록으로 우거진 숲과 거무튀튀한 암벽에 새하얀 모시 를 걸어놓은 듯하다. 쌍폭포 바로 위쪽엔 무릉계 최고의 절경으로 꼽히는 용추폭포가 손짓한다. 청옥산에서 흘러 내려온 계류가 3단으로 하얗게 부서지며 쏟아져 내리는 용추폭포는 무릉계곡 미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폭포수가 쏟아지는 각 단마다 담 ( 潭 )이 형성되어 있는데, 맨 아래 하담은 속을 알지 못할 정도로 깊다. 조선시대 삼척부사로 왔던 유한전이 폭포 오른쪽 하단 암벽에 ' 龍 湫 (용추)'라는 글을 새기고 제사를 올린 뒤부터 용추 폭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무릉계곡을 들어선 사람은 반드시 들렀다 가는 곳이고, 쌍폭과 용추폭포를 보지 않 으면 비록 무릉반석에서 탁족을 했다 해도 무릉계곡은 다녀온 게 아닌 셈이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탐승객들은 폭포 수 아래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가 발걸음을 돌린다.. <머니 투데이>에서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9

10 펀치볼 둘레길과 동해 두타산 아래의 무릉 계곡 길을 걷는다. 10

11 숲이 무성한 길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는다 :20 숲이 무성한 길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는다. 계사년 8월 마지막 주인 8월 31일 토요일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설된 옛길인 계립령, 곧 하늘 재와 문경새재를 넘 습니다. 여름의 막바지에 나라 안에서 가장 잘 정비된 길이자 역사가 깊은 길인 문경새재와 영남대로 옛길 중에서도 가장 원형이 그래도 남아 있는 관갑천 잔도와 고모산성과 미륵리 절터로 이어지는 하늘재(계립령)는 문화재청에서 명 승지로 지정한 길입니다. 그 길에 얽힌 유래와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이번 기행은 여름의 막바지와 가을을 첫 머리를 가슴 깊히 호흡하는 그런 시간이 될 것입니다. 너무 좋은 길이라서 치마를 입고도 걸을 수 있는 길, 그 길을 걸으실 분의 참여를 바랍니다. 길은 그리 길지 않지만 너무 아름다워서 천천히 오르고 싶은 이 길이 곧 계립령 하늘재다. 이 지역 사람들이 한티, 천티,마골령이라가도 부르는 계립령 즉 하늘재는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신라의 8대 임 금인 아달라 왕 3년인 156년에 개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계립령 鷄 立 嶺 은 마골점 혹은 마목현이라고 불렸는데 그 것은 껍질 벗긴 삼대를 겨릅(사투리로는 지릅)이라고 하니, 그것을 한자로 옮기면서 음을 따면 계립( 鷄 立 )이 되고 뜻 을 따면 마골( 麻 骨 ) 또는 마목( 痲 木 )이 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2년 뒤에 개척된 죽령과 더불어 오랫동안 백두대간 을 넘는 주요 교통로로 활용되었다. 고려 후기에 지름길인 문경새재가 개척되었어도 조선시대까지 주요 교통로 활용 되었지만 현대에 들어와서 이화령과 죽령에 터널이 뚫리면서 그 기능을 잃고 말았다. 이 고개는 포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새재를 떳떳이 통과할 수 없는 신분의 사람들이나 보부상들,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말이나 소를 동반한 사람들이 넘는 눈물고개였다. 소설가 김주영은 객주( 客 主 ) 에서 문경읍에서 여주 목 고개를 올라서서 대의산 자락을 오른쪽으로 끼고 여우목을 지나 중평리 계곡을 거쳐 포암산 중턱인 하늘재를 넘 어 수안보에 이르는 험로가 바로 이곳이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고개 마루를 넘어서면서 충청도 땅에서 경상도 땅인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이른다. 여기서부터 길은 포장도로다. 이곳 관음리 일대에는 관음리마애반가사유상( 半 跏 思 惟 像 )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 136호인 문경관음리석불입상을 비 롯한 여러 점의 문화유산들과 함께 아름다운 옛 지명들이 남아 있다. 신정일의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에서 조선시대 영남지역의 사대부들이 서울로 가던 길이 세 개가 있었다. 부산 동래에서 경주와 영천 안동영주 풍기를 거쳐 죽령 넘어 서울로 가던 길이 열닷새 길이었고, 양산, 삼랑진 밀양 대구 상주 낙동나루를 거쳐 문경새재 넘어 가 숲이 무성한 길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는다. 11

12 는 열나흘 길이었다. 마지막이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 청주로 해서 가는 길이 열엿새 길이었다. 그러나 벼슬길에 오르거나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은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넘지 않았고, 죽령은 죽 미끄러 진다는 속설 때문에 넘지 않고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의 새재를 넘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 난다 노다 가세 노다 가세 저 달이 떴다지도록 노다나 가세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며 날 두고 가는 님은 가고 싶어서 가느냐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살이 수심도 많다 아리 아이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진도 아리랑 속에 나오는 칠천만 우리민족의 노래아리랑 가락을 부르며 넘 는 고개가 바로 문경새재다. 문경새재가 있는 문경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 백제의 세력이 각축전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가슴 설레는 걷기 여행>에서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면서도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걷고자 하는 분들의 참여를 바 랍니다. 숲이 무성한 길 문경새재와 하늘재를 넘는다. 12

13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10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년 8월 첫 주 토요일 함양군 안의면으로 갑니다. 거창과 함양의 경계에 솟은 황석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시내와 용추 폭포, 그리고 아름다운 계곡에서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가을이나 겨울만 찾았던 나라 안의 절경 화림동계곡 을 걷습니다. 피서가 겹치지 않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함양의 용추계곡 깊은 계곡의 아름다움으로 진리 삼매경에 빠쪘던 곳이라 하여 삼진동이라고도 불리웠다. 기백산과 황석산에서 흘러 내리는 계류가 만나 형성된 계곡으로 지연경관이 수려하며 유학자 돈암 정지영이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1806년에 세 운 정자인 심원정이 자리하여 운치를 더해준다. 또한 계곡에는 높이 18m에 달하는 용추폭포가 자리하고 있는데 깊은 소와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어 여름철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 조선시대 안의 고을이었던 곳, 그 아름다운 정자들이 즐비한 화림동 계곡(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농월정 광풍각등 의 정자도 정자지만 화림동 계곡의 길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안의입니다. 육십령 아래 화림동계곡에는 거연정 동호정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정자가 있어 예로부터 정자문화의 보고라 불렀 다. 그 중 하나인 농월정( 弄 月 亭 )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知 足 堂 ) 박명부( 朴 明 溥 )가 정계에 서 은퇴한 뒤에 지은 것으로, 정면 3칸에 측면 2칸으로 뒤쪽 가운데에 한 칸짜리 바람막이 작은 방이 있다. 농월정이 라는 이름은 달을 희롱한다 는 뜻으로, 밤이면 달빛이 물아래로 흐른다고 한다. 또한 정자 앞에는 달바위라고 부 르는 1천여 평쯤 되는 너른 반석이 있으며, 흐르는 물길 너머로 줄지어 서 있는 소나무 숲은 바라만 봐도 가슴이 확 트인다. 천하의 일은 뜻을 세우게 되는 것이 우선이다. 뜻이 지극해진 뒤에는 기( 氣 )가 따르게 마련 이라고 했던 박명부의 기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농월정마저 2003년 가을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화림동계곡 아래에 안의가 있다. 비단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안의면 금천변에 광풍루( 光 風 樓 )가 우뚝 솟아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태종 12년(1412) 안의현감 전우( 全 遇 )가 객사의 누각으로 초창하여 선화루( 宣 化 樓 )라고 하였던 것을 성종 25년 정여창 이 현감으로 부임한 뒤 중건하고 광풍루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후 정유재란 때 불에 타버렸던 것을 다시 복구하고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13

14 숙종 때 중건하였다. 동계 정온의 옛집 덕유산 동남쪽에 있는 안음현( 安 陰 縣 )은 지금의 거창과 함양지방에 있었던 현이나 영조 4년인 1728년에 정희량( 鄭 希 亮 )이 변란을 일으키자 그 땅을 갈라서 함양과 거창에 편입시켰다. 동계( 桐 溪 ) 정온( 鄭 蘊 )의 고향으로, 지금의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강동마을에 정온 고택이 있고 종부가 그 집을 지키고 있다. 정온은 벼슬이 이조참판에까지 이르렀으며,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처형을 반대하다가 10여 년 간 귀양살이를 하였다. 병자호란 때에는 청나라 군사가 남한산성을 포위하자 정온은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은 옳지 못하 다 하였는데, 인조가 항복하려고 성에서 내려가자 스스로 칼로 배를 찔러 죽으려 했다. 정온의 아들이 창자를 배에 넣고 꿰매었더니 오랜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정온은 전쟁이 끝나고 청나라 군사가 돌아가자 곧 시골로 돌아가서 다 시는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의 4대 후손이 바로 정희량이다. 안음에 거주하다 순흥으로 이사를 간 그는 1728년 이인좌 박필현( 朴 弼 顯 ) 등과 함께 공모하였다. 영조가 임금에 오른 뒤 벼슬에서 물러난 소론일파의 호응을 받아 이인좌를 원수로 하여 군사를 일 으킨 뒤 청주를 습격하였는데, 한때 안음 거창 합천 삼가 등의 고을을 제압하였으나 오명항( 吳 命 恒 )이 이끄는 관 군에 패배하였다. 그 뒤 정희량은 거창에서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이로 인해 안음현은 폐현되었고 이 지역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게 된다. 동국여지승람 안음현 조에는 억세고 사나우며 다투고 싸움하기를 좋아 한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함양군 사람들이 흔히 안의 송 장 하나가 함양 산 사람 열을 당 한다 라는 말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 말은 그만큼 이곳의 사람들이 기질이 세다 는 말이다. 이중환이 안음 동쪽은 거창이고 남쪽은 함양이며 안음은 지리산 북쪽에 있는데, 네 고을은 모두 땅이 기름지다. 함 양은 더구나 산수굴( 山 水 窟 )이라 부르며, 거창 안음과 함께 이름난 고을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안음만은 음침하여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고 말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에서 팔월의 하루를 보내고 싶으신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함양의 용추계곡과 화림동계곡을 거닐다 14

15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0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 - 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한강 천 삼백리 도보답사의 여정이 여섯 번째로 실시됩니다. 원주시 부론면에서 실시될 이번 여정은 고즈넉한 폐사지 인 법천사지와 그윽한 숲길이자 남한강변에 펼쳐진 문체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인 <여강 길>과 남한강변 을 따라가는 여정입니다. 특히 남한강에 자리 잡은 신륵사에서 이틀을 머물며 펼쳐질 것입니다. 신륵사의 새벽예불과 신륵사에서 여명을 맞이 할 것입니다. 한편 이곳 흥호리 부근을 사람들은 삼합지점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겨울철 강물이 얼면 담배 한 대 필 참에 3 도 땅을 다 밟아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3도의 물이 한데로 모인다 해서 합수머리라고 부르기도 하 였다. 모여지는 것이 물뿐만은 아니었다. 3도의 물산과 세미들도 이곳으로 모여들어 남한강 뱃길을 따라 서울로 내려 갔던 곳이었다. 섬강교 바로 위쪽으로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섬강교 바로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서를 즐기고 있는 것이 보인 다. 섬강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설리 봉문산 서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원성군 부론면 흥호리 동매마을에서 남한강 에 합류한다. 송강 정철이 "한수를 휘어돌아 섬강은 어드메뇨 치악은 여기로다"라고 노래했던 아름답고 유서 깊은 이 강의 원래 이름은 달강 또는 달래강이었다. 강원도 원성군 지정면 간현리 강변에 병암이라는 바위가 절벽에 있는데, 이 병암 상류 50미터 지점에 한 마리 두꺼비 가 기어오르는 듯한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두꺼비바위이며 섬강의 이름을 탄생시킨 유명한 바위이다. 곧 두꺼비바위가 있어 이 냇물을 '두꺼비 섬 蟾 ' 자를 써서 섬강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호 1리 마을을 지나 북내면으로 접어든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들이며 논바닥에는 수많은 잠자리 떼들이 날아다니 고 들은 넓고도 넓다. 조선 초기의 학자였던 서거정이 "강의 좌우로 펼쳐진 숲과 기름진 논밭이 멀리 몇 백 리에 가 득하여 벼가 잘 되고 기장과 수수가 잘 되고 나무하고 풀 베는 데에 적당하고 사냥하고 물고기 잡는 데에 적당하며 모든 것이 다 넉넉하다"라고 말했듯이 여주군은 먹고 살 양식이 넉넉하게 나는 곳이다. 특히 "광주 분원 사기 방아, 여주 이천 자채 방아"라는 민요도 있듯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주군은 이천시와 더불어 쌀의 산지로 이름났다. 남한 강 언저리에 널려 있는 기름진 땅은 물이 늘 넉넉하여 벼농사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리지 에 서도 대동강 언저리의 평양과 소양강 언저리의 춘천과 함께 이곳을 나라 안에서 가장 살기 좋은 강촌으로 꼽았다.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5

16 소나무숲 우거진 길을 내려서자 신륵사 보제존자 부도비와 석등이 있는 유물전에 이른다. 태백에서부터 발원한 남 한강이 흘러내리며 만든 여러 물굽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한 군데가 신륵사 부근일 것이다. 한강의 상류인 이곳을 이 지역 사람들은 여강 驪 江 이라 부르는데 주변의 풍경과 그 수려함이 하도 뛰어나 옛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 길이 끊이질 않았다. 조선초기의 학자였던 김수온은 그가 지은 신륵사기 에서 "여주는 국도의 상류지역에 있으며 산이 밝고 물이 아름다워 낙토라고 칭하여 오는데, 신륵사가 바로 이 형승의 복판에 있다. "라고 썼는데 김수온이 말 했던 국도는 바로 충청도 충주에서부터 서울에 이르는 한강의 뱃길을 말함이었다. 신작로나 철길이 뚫리기 전까지는 경상도의 새재를 넘어온 물산이나 강원도, 충청도에서 생산된 물산들이 한강의 뱃길을 타고 서울에 닿았으므로 한강 의 뱃길을 '나라의 길'로 부른 것은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1974년에 팔당댐이 생기고 충주댐이 만들어지면서 '나라 의 길'이라고 일컬어지던 뱃길은 아예 사라지고 말았다. 전국의 3대 선원 고달선원 멀리 보이는 북내면 상교리에 남한강변의 이름난 폐사지 고달사가 있다. 도의 경지를 통달한다는 뜻의 고달사 高 達 寺 는 혜목산 아래에 있다. 아늑하게 감싸인 지형이 큰 소쿠리 속에 있는 듯하다.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창건되었다 는 기록만 있을 뿐 누가 창건했으며 어느 때 폐사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추정하기로 이때는 신라가 한강 유역을 장악했던 시기였고 남한강의 유리한 수로를 확보하기 위해 거대한 사원을 경영했을 때였으므로, 고달사를 신라시대 창건설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종대사가 창건했다는 설보다는 원종 이전 나말여초에 세력을 떨친 선종 계통 의 절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고달사는 구산선문 중 봉림산파의 선찰이면서 고달선원으로 불리었는데 창원에서 봉림 산문을 개창한 진경대사 심회는 원감국사 현욱의 제자였고 진경대사는 원종대사에게 법통을 넘긴다. 김현준이 쓴 이야기 불교사 에 "문성왕 2년(840년) 현욱선사는 거처를 여주 혜목산 고달사로 옮겼는데 사람들은 산 이름을 따와서 스님을 혜목산 화상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30년 가까이 선풍을 떨치다가 경문왕 9년에 입적하자 경문왕은 원감이라는 시호를 내렸다"라고 적고 있다. 고달사를 중흥시킨 신라 말의 고승이며 고려 초의 선승이었던 원종대사 찬유는 성은 김씨였고 자는 도광, 계림이며 하남에서 용의 아들로(경문왕 9년) 태어났다. 열세 살 때 상주 공산 삼량사에서 융제선사에게 배웠으나 융제는 그가 법기 法 器 임을 알고서 혜목산의 심회를 스승으로 모시게 하였다. 890년(진성여왕 4년) 삼각산 장의사에서 구족계를 받 았다. 광주 송계선원에 있던 원종은 심회의 권유에 따라 892년에 상선을 타고 당나라로 들어가 서주 투자산의 대동 大 同 에게 배우고 곧 도를 깨달았다. 그 뒤 중국의 여러 사찰들을 유람하다가 921년(경명왕 5년)에 귀국하여 봉리마에 머물렀고 원감국사 현욱에 이어 진경대사 심회에게 법맥을 이어받게 된다. 심회는 삼창사에 머물 것을 명하였고 3년 동안 머물렀던 원종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에 따라 경주 사천왕사로 가 게 되지만 다시 이곳 혜목산 고달사로 되돌아와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게 된다. 국사의 자리에 오른 원종대사는 이곳 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여 대선림을 이룩하였고 혜종과 명종은 가사를 내렸으며 광종은 그를 국사로 책봉하고 증진대사라는 호를 내렸다. 국사의 자리에 오른 원종에게 임금은 은병, 은향로, 수정염주, 법의 들을 내렸으며 고려 왕실의 막대한 지원에 힘 입 은 원종대사는 이곳 고달선원을 전국 제일의 사찰로 만들었다. 사방 30리가 모두 절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고 달선원은 희양원, 도봉원과 함께 전국 3대 선원으로 불렸다. 고달사지에는 석물만 남아 있고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6

17 현재 발굴중인 고달사터에 들어서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유물이 보물 8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불대좌이고, 석불대좌 에서 서북쪽으로 보물 6호인 원종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가 있다. 1915년 봄에 넘어지면서 8조각으로 깨진 비신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고, 이 곳에는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이색의 마지막을 지켜본 남한강 또한, 이중환은 택리지 에서 "웅장하거나 급하지 않고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다"라고 쓰고서 그 까닭을 "강의 상류 에 마암 馬 岩 과 신륵사의 바위가 있어서 그 흐름을 약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하였는데 여주읍 영일루 아래에 있는 큰 바위가 마암이다. 그곳에는 목은 이색에 얽힌 일화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 5년째 되던 오월 신록이 물들어 가는 이곳 여강에 한 척의 배가 떠 있었고 그 배에 는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3은인 목은 이색과 그를 따르는 젊은 선비들이 타고 있었 다. 당시 이색은 이태조가 사신을 보내 벼슬을 내리는 것을 거절한 채 초야에 살고 있었고 이색의 제자들 역시 새 왕 조에 참여치 않은 사람들이었다. 어떠한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는 몰라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연후에 목은 이색은 술 한 병을 꺼냈다. 이성계가 보낸 술이었다. 그 술을 한 잔 마신 이색은 그 배 위에서 그만 세상을 하직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이색의 제자들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했던 정도전과 조준이 꾸민 계획이었다고 주장했지만 이색의 의문사는 세월 속에 잠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도 남한강은 유유히 흐르고 그 마암 건너편에 신륵사가 있다. 벽절이라고 불렸던 신륵사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위치한 이 절은 신라 진평왕 때에 원화스님이 창건했다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 은 남아 있지 않다. 이 절 신륵사가 유명해진 것은 고려 말의 고승 나옹선사가 이 절에서 열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주 회암사에서 설법하던 나옹선사는 왕명에 의하여 병이 깊었는데도 불구하고 밀양의 형원사로 내려가던 중 이곳 에서 입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의 일을 이색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 이날 진시에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고을사람들이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산마루를 덮었다. 화장을 하고 유골을 씻고 있는데 구름도 없는 날씨에 사방 수백 보 안에 비가 내렸다. 이에 사리 1 백 55과를 얻었다. 신령스런 광채가 8일 동안이나 나더니 없어졌다." 이러한 연유로 퇴락해 가던 신륵사는 대대 적으로 중창불사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륵사의 절 이름에 얽힌 유래 두 가지는 이렇다.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서 용마가 자주 나타났는데 매우 거칠 고 사나워 누구도 다룰 수가 없었다. 그때 이 절의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다는 설이 하나이 다. 또 다른 전설로는 나옹선사가 이 사나운 용마에게 굴레를 씌워 용마를 길들였다는 전설인데 그래서 절 이름이 신 령한 '신'과 굴레 '륵'자를 써서 신륵사가 된 것이다. 또한 이 절 동쪽의 바위 위에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올린 다층전 탑이 있어 벽절이라고도 불리웠다. 나옹선사가 입적한 3개월 후 절의 북쪽 언덕에 진골사리를 봉안한 부도를 세우는 한편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이 절 또한 사세가 크게 위축되었다가 크게 중창된 시기가 광주의 대모산에 있던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이 인근에 있는 능서면 왕대리로 이전해 오면서부터였다. 세종의 깊었던 불심을 헤아려 왕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7

18 실에서는 신륵사를 원찰로 삼았고 절 이름도 잠시 보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이 절은 사대부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 전락되었다. 그러나 임진, 정유재란 때 전소되면서 그때에 지어진 건축물로는 드물게 대들보가 없는 조사당만 남아 있다가, 현종 12년에 계헌이 중건하면서 오늘날 신륵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거대한 기둥 두 개가 떠받치고 있는 신륵사 일주문을 들어서서 먼저 강월헌에 올라선다. 본래는 석탑 밑에 붙어 있었 다는데 큰 홍수로 떠내려가는 바람에 철근 콘크리트로 세운 6각 모양의 누각에서 우리 일행은 바위 위에 퍼지고 앉 아 강물이 흐르는 것을 바라본다. 강물은 유유히 흘러서 가고 강월헌에서 바라보면 날렵하게 솟아 있는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226호)이 보이는데 완성된 형태로 남아 있는 국내 유 일의 전탑이다. 탑이 대개 경내 중심부에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전탑은 금당의 본존불과는 무관하게 남한강과 그 건너 드넓은 평야를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탑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신라 말기 무렵이었고 도선국사가 활동하던 시대였 다. 그래서 풍수지리상 허한 곳을 보 補 하고 지기를 원활하게 하는 방법으로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데 설득력이 있다. 전탑 위쪽에 대장각기비가 있다. 신륵사에 있던 대장각의 조성에 따른 사정을 기록한 것으로서 목은 이색 집안의 애 달픈 사연이 어려 있다. 목은의 부친 이곡은 그 부친이 세상을 떠났을 때 명복을 빌기 위해 대장경을 만들려 했으나 미처 이루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자 목은 이색이 그 소원을 이루었다고 한다. 대장각기비문은 이숭인이 짓고 권주가 해서체로 썼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구룡루가 있다. 나옹선사가 아홉 마리의 용에게 항복을 받고 그들을 제도하기 위해 지었다는 전 설의 누각인 구룡루를 돌아가면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이 있다. 좌측으로 빼꼼 열린 요사채 대문 사이로 세 마리 의 개가 질서도 없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오수를 즐기고 있고 대웅보전 앞 다층석탑 앞에는 절을 찾은 사 람들이 탑을 바라보고 있다. 높이 3미터의 다층석탑(보물 225호)은 특이하게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상층기단의 면석에는 신라나 고려의 석탑 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룡문과 연화문, 그리고 물결무늬와 구름무늬의 조각들이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며 새겨져 있 다. 이 석탑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성종 3년(1427년)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대웅보전 좌측으로 돌아가면 나옹 대사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향나무 앞에 신륵사 조사당(보물 180호)이 서 있다. 대 들보가 없는 팔각지붕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자그마하면서도 예쁜 건물이다. 정면에는 여섯짝의 띠살 창호를 달고 양측면과 후면은 모두 벽체로 마감하였다. 이 조사당은 신륵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 태조가 무학대사를 추모 하기 위해 지었다는 설이 남아 있다. 조사당 뒤편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나옹선사 석종부도와 부도비, 그리고 석등을 만나게 된다. 언덕 일대가 나 라 안에 유명한 명당이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 나옹선사를 추모했던 수많은 제자들이 지극한 공력으로 만든 부도라 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영월루를 흐르는 남한강에는 아침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나는 영월루에서 여주 팔경을 회상해 본다. 여주 팔경이나 금사 팔경은 옛날부터 이름났던 이곳의 빼어난 경치 여덟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이색과 정몽주 그리고 이 곳에서 태어난 이규보와 같은 많은 선비들의 시구에 남아 있는 이곳의 경치는 아직까지 여주 팔경으로 불리고 있기 는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또 여주군의 형편이 바뀜으로써 더러 없어졌거나 바뀌기도 했다. 동국여지승람 은 이곳 의 팔경으로 반도낙안 여강 언저리에 내려앉은 기러기, 동대망월 동대인 청심루에서 바라본 달, 연탄귀범 포구로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8

19 돌아오는 돛단배, 학동모연 학동의 저녁 연기, 신륵종성 신륵사의 종소리, 마암어화 마암 아래에 떠 있는 고깃배 의 등불, 어릉춘수 두 영릉의 신록, 자수장림 팔대수의 우거진 숲 등을 뽑았다. 또한 이곳 여주, 이천 사람들의 기질을 나타내는 말로 "여주, 이천 사람은 참새에 굴레 씌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 곳 사람들이 참새보다도 더 약다는 이야기이다. 이중환이 택리지 에서 "여주에는 사대부의 집이 많아서 대를 이어 산다"고 기록했듯이 이곳에서 인물이 많이 났는데 명성왕후 민비와 민씨 집안의 세력에 도전하여 갑신정변을 일으켰 던 홍영식과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으로 알려진 이완용의 고향이 이곳 여주였다. 조선초기의 문신 임원준 任 元 濬 이 < 승목기 陞 牧 記 >에 북으로 서울과의 거리는 밤낮 이틀의 노정 路 程 이요, 남으로는 세 도 道 를 통하는 길이 읍 邑 밑에서 나누어진다. 진실로 국가의 상유 上 遊 를 눌렀고, 경기 京 畿 의 깊숙한 구역이 다. 라고 하였던 곳이 이곳 여주였다. 아파트 쇠창살 안에 갇힌 청심루터 여주여자종합고등학교를 지나며 길은 길대로 뻗어 있고 강은 강대로 길게 흐른다. 남한강에는 시베리아로 떠나지 못 하고 남아 텃새가 된 듯한 일곱 마리의 청둥오리들이 유유자적 헤엄을 치고 있고 여주문화의 거리 라고 씌어진 길은 한산하다. 아파트 쇠창살 안으로 옛 시절 청심루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보인다. 청심루는 동국여지승람 뿐만이 아니라 택리지 나 연려실기술 과 같은 옛 기록에 거의 다 나오는 이름난 누 각이었다. 고려 때의 가정 이곡, 목은 이색 또는 정몽주, 도은 이승인과 조선조의 서거정, 신용개 등이 시를 지어 현 판에 걸었었다. 대들보가 하나인데 칡으로 되었다 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청심루에 올라서면 여주 팔경을 거의 다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 누각은 해방이 되자마자 일어난 폭동 때에 불에 타서 없어졌다. 그 폭동은 제국주의 일본과 그 앞잡이들한테 시달렸던 이곳 사람들이 일으킨 것인데 그때의 여주 군수였던 강진수가 그 앞잡이 노릇을 워낙 지 독하게 했기 때문에 그 앙갚음으로 청심루 곁에 붙어 있던 그의 사택에 불을 지른 것이 청심루에 옮겨붙어 잿더미가 되었던 것이다. 능서면 왕대리에 있는 세종과 효종의 능인 영릉은 한자로는 틀리지만 읽기가 똑같아서 이릉이라고 부른다. 세종대 왕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인 영릉 英 陵 은 예종 대에 이곳에 옮겨졌는데, 택리지 에 따르면 "여러 능 중에서도 첫째로 꼽았다"고 한다. 또한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영릉 寧 陵 은 원래 양주의 건원릉 서쪽에 있었는데, 헌종 14년(1673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이곳 왕대리의 새능 동쪽 남한강에는 이기수, 여계수, 외계수라고 불리는 소가 있다. 이곳의 지형이 평양과 비슷하고 돈이 많으므로 술집과 여자가 모여들어 '소평양'이라고 불렀는데 1900년쯤까지만 해도 고급 요릿집이 즐비하고 술집 기생이 이백여 명이 넘어 고을의 풍기가 몹시 어지러웠다. 여주 목사가 이를 근심하던 끝에 꾀를 내어 모든 기생을 모아 뱃놀이를 하다가 이곳에 이르러 취흥이 무르익자 미리 준비한 대로 배 밑에 구멍을 뚫어서 모든 기생을 죽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비가 오면 여자들의 울음소리가 나고, 해마다 사람이 빠져 죽는 사고가 난다고 한다. 이포나루에서 여정을 풀다 드디어 금사면 이포리에 접어든다. 조선시대에 세곡과 물화를 싣고 풀던 큰 나루였던 이포나루는 배개나루, 배나루, 이포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지금은 간 곳이 없다. 천령현이었던 천령마을을 지나며 다리가 무거워진다.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19

20 이포떡방앗간, 이포우체국이라고 씌어진 간판들이 보이고, 기천서원이 있었던 원촌 서쪽에는 천령 최씨의 시조와 그 의 묘소를 잡은 무학대사 그리고 산신당을 모신 삼신당이 있다. 이포대교에 이르러 강물은 쏜살같이 흘러서 가고 길은 서울 양평`-`원주 여주 37번 국도로 나뉜다. 여기 이포대교에 서 마지막 4구간 여정의 막을 내린다. 멀리 양평 너머로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가다 보면 정약용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두물머리가 나오고 이제 서울이 멀지 않을 것이다. 천삼백 리 한강 여섯 번 째를 걷는다.원주 흥호리에서 에서 여주 이포나루까지 20

21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03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추천 :36 // 몇 년 전, 고조선 영역과 박지원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해관, 그리고 동이족의 조상인 치우천황의 사당이 남아 있는 탁록현을 답사했습니다. 그 답사 이후 이덕일, 김병기 선생과 함께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를 발간했고, 다시 몇 년이 지나 다시 그곳 으로 갑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인 열하와 함께 답사할 고조선의 옛 땅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아래의 글은 책에 실린 기행문의 일부입니다. 천하 제일문인 산해관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도착한 산해관,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 4십원이라고 한다. 그래도 들어가야지 하는데, 전형 적인 중국의 젊은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서 아주 싼 값인 10원에 천하제일관 天 下 第 一 關 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밑져야 본전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골목골목을 따라갔는데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황당할 수가, 산해관 후 문 앞 슈퍼에서 바라보면 산해관 정문을 볼 수가 있는데,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렇게 바라보는 값이 10원이라는 얘기였다. 우리가 난감해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그 안내원의 얼굴도 겸연쩍음으로 가득 차 있는데, 화를 낼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안내원도 서운하지 않을 금액을 주고 제 값의 입장료를 지불하고서 산해관을 들어갔다. 자욱한 안 개 때문에 산해관 주변의 경관을 제대로는 볼 수 없었지만 산해관 건물에서 바라본 산해관 일대를 바라보며 조선 사 신들이 이곳의 위용에 놀랐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박지원은 이곳 산해관에 도착하여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서는 중국의 큼을 모를 것이요, 산해관을 보지 못하고는 중국의 제도를 알지 못할 것이요, 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산해관을 1리쯤 못 미쳐 동향으로 모난 성 하나가 있다. 높이는 여남은 길, 둘레는 수백 보요, 한 편이 모두 칠첩( 七 堞 )으로 되었고, 첩 밑에는 큰 구멍이 뚫려서 사람 수십 명을 감출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구멍이 스물 네 개이고, 성 아래로 역시 구멍 네 개를 뚫어서 병장기를 간직 하고, 그 밑으로 굴을 파서 장성과 서로 통하게 하였다. 역관들은 모두 한( 漢 )이 쌓은 것이라 하나 그릇된 말이다. 혹은 이를 오왕대( 吳 王 臺 ) 라고도 한다. 오삼계( 吳 三 桂 )가 산해관을 지킬 때에 이 굴 속으로 행군하여 갑자기 이 대에 올라 포성을 내니, 관 안에 있던 수만 병이 일시에 고함을 질러서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관 밖의 여러 곳 돈대에 주둔했던 군대도 모두 이에 호응하여 삽시간에 호령이 천리에 퍼졌다. 일행의 여러 사람들과 함께 첩 위에 올라서서 눈을 사방으로 달려보니, 장성은 북으로 뻗고 창해( 滄 海 )는 남에 흐르고, 동으로는 큰 벌판을 다다르고 서 로는 관 속을 엿보게 되었으니, 이 대만큼 조망( 眺 望 )이 좋은 곳은 다시없을 것이다. 관 속 수만 호의 거리와 누대 ( 樓 臺 )가 역력히 마치 손금을 보는 듯 하여 조금도 가리어진 곳이 없고, 바다 위 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1

22 ( 樓 臺 )가 역력히 마치 손금을 보는 듯 하여 조금도 가리어진 곳이 없고, 바다 위 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 뾰족하 게 솟아 있는 것은 곧 창려현( 昌 黎 縣 ) 문필봉( 文 筆 峯 )이다. 박지원은 산해관의 돈대에 서서 이곳저곳을 바라보다가 내려오려 하였지만 아무도 먼저 내리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과, 벽돌 쌓은 층계들이 하도 가팔라서 내려다보기만 하여도 다리가 떨려 낭패를 당할 지경까지 이르러 저절로 어 지럼증이 생겼는데, 그 허물은 스스로의 눈에 있었노라고 적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비유법으로 벼슬살이도 역시 이와 같아서 바야흐로 위로 자꾸만 올라갈 때엔 일계 반급이라도 남에게 뒤떨어질까 보아서 혹은 남을 밀어젖히고 앞을 다투다가 마침내 몸이 높은 곳에 이르매 그제야 두려운 마음이 생기니 외롭고 위태로워서 앞으로는 한 발자국 도 나아갈 길이 없고 뒤로는 천인절벽이어서 다시 올라갈 의욕마저 끊어졌을 뿐더러 내려오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 법이니, 이는 고금이 없이 모두들 그러한 이가 많을 것이다. 라고 결론을 맺은 뒤 산해관을 설명한다.. 산해관은 옛날의 유관( 楡 關 )인데, 왕응린( 王 應 麟 )의 <지리통석( 地 理 通 釋 )>에 우( 虞 )의 하양(하양), 조( 趙 )의 상당 ( 上 堂 ), 위( 魏 )의 안읍( 安 邑 ), 연( 燕 )의 유관, 오( 吳 )의 서릉( 西 陵 ), 촉( 蜀 )의 한락( 漢 樂 )은 모두 그 지세로 보아서도 꼭 응거해야 하고 그 성으로 보더라도 꼭 지켜야 한다. 하였다. 명( 明 )의 홍무( 洪 武 ) 17년에 대장군 서달( 徐 達 )이 유관 을 이곳에 옮겨 다섯 겹의 성을 쌓고 이름을 산해관 이라 하였다. 태행산( 太 行 山 )이 북으로 달음질하여 의무려산 ( 醫 巫 閭 山 )이 되었는데, 순( 舜 )이 열두 산을 봉( 封 )할 때 의무려산을 유주( 幽 州 )의 진산으로 삼았다. 그 산이 중국의 동북을 가로막아 중국과 외국의 경계가 되었으며, 관에 이르러서는 크게 질리어서 평지가 되어 앞으로 요동 벌을 바 라보고, 오른편으로는 창해를 낀 듯하니, 이는 우공( 禹 貢 )의 오른편으로 갈석( 碣 石 )을 끼었다. 는 것이 곧 이를 두 고 일컬음이다. 그리고 장성이 의무려산을 따라 굼틀굼틀 굽이쳐 내려와 각산사( 角 山 寺 )에 이르며, 봉우리마다 돈대 가 있고 평지에 들어와서 관을 둔 것이다. 장성을 따라 다시 15리를 가서 남으로 바다에 들어서 쇠를 녹여 터를 닦 아 성을 쌓고는 그 위에 삼첨( 三 簷 ) 큰 다락을 세워서 망해정( 望 海 亭 ) 이라 하니, 이는 모두 서중산( 徐 中 山 )이 쌓 은 것이다. 이 관의 첫째 관은 옹성( 甕 城 )이어서 다락이 없고, 옹성의 남 북 동을 뚫어서 문을 내고 쇠로 만든 문 위의 홍예( 虹 霓 ) 이마에는 위진화이( 威 振 華 夷 ) 라 새겼고, 둘째 관에는 네 층 적루( 敵 樓 )로 되었는데 흥예 이마에 산해관 이라 새겼고, 셋째 관은 삼첨 높은 다락에다 천하제일관( 天 下 第 一 關 ) 이라는 현판을 붙였다. 삼사( 三 使 )가 모두 문무로 반( 班 )을 나누어 심양에 들어왔을 때와 같이 하다. 세관( 稅 官 )과 수비( 守 備 )들이 관 안의 익랑( 翼 廊 )에 앉아서 사람과 말을 점고하되 전에 봉성의 청단( 淸 單 )에 준한다. 대체 중국의 상인과 길손은 모두 성명 과 사는 곳과 물화( 物 貨 )의 이름과 수량을 등록하여 간사한 놈을 적발하며 거짓을 막음이 매우 엄하다. 수비들은 모 두 만인인데, 붉은 일산과 파초선( 芭 蕉 扇 )을 가지고 앞에 병정 백여 명이 칼을 차고 늘어섰다. 박지원이 그 당시 보았던 세관과 수비들이 사라진 자리를 입장료를 파는 사람들과 입장권을 받는 사람들 그리고 관 광객들의 주변에서 무엇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이 어슬렁거리는 중국인들로 대체되어 있을 뿐이다., 진시황과 조조가 올랐던 갈석산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도시인 창려현의 선태로 仙 台 路 를 따라가자 인공호수인 갈석호가 碣 陽 湖 가 나타나고, 우측 으로 중국에서 보기 드문 공동묘지를 바라보는 사이 갈석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자 천고신악 갈석산 千 古 神 岳 碣 石 山 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등산로 입구에 기록된 시 한편이 갈석산의 신비를 부추긴다. 神 岳 碣 石 신악이라는 갈석산은 觀 海 勝 地 바다를 바라보는 뛰어난 경승지라 九 帝 登 臨 아홉 명의 황제가 올랐다네 千 古 之 謎 何 解? 천고의 수수께끼를 누가 풀랴? 어디를 보아도 붉은 빛이 감도는 바위산인 갈석산 정상을 바라보자 봉수대 혹은 돈대 모양의 바위가 눈에 띄고 정상 에는 통신대의 송신탑이 있어 접근이 불가능할 것 같다. 천천히 올라가자 수암사 水 岩 寺 라는 절이 나타나고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갈석산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갈석산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2

23 아래 뾰족하게 솟아오른 봉우리에 잘 지어진 정자 하나, 내가 날아오를 수 있는 새라면 날아가서 앉고 싶지만 바라 보면 정자는 하늘만큼 멀고 마음만 날아 갈 뿐이다. 수암사, 생각보다 정갈하고 아늑하다. 천왕문에 들어서자 건물이 꽉 들어차게 네 분의 사천왕상이 이국적인 풍모를 보이며 앉아 있고, 향로 뒤에 본전 건물 너머 갈석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먼저 간 이덕일 선생과 김병기 선생의 그림자라도 남아 있을세라 뒤따라가지만 어느새 갔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권태균 기자와 함께 갈석산 오르는 초입에 들어서자 돌로 만든 종 석고가 산속에 홀로 앉아 있다. 어둔 밤에 이 길 을 걸을 때 석고 石 鼓 에서 울리는 낭랑한 종소리 들린다면 얼마나 좋으랴 만 지금은 대낮이고, 그리고 돌로 만든 종 이 어떻게 소리를 내겠는가? 부질없는 생각을 지우고, 천천히 산을 오르면서 <소창청기 小 窓 淸 記 > 중의 한편을 떠올 린다. 아름다운 경치와 유람을 논하는 사람은 반드시 명승지를 탐방하기에 알맞은 신체적 조건을 우선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렇다. 그 사람의 정취 情 趣 가 아름다운 경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산을 오르고 물을 건널 때 스스 로 정신이 왕성해짐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잘 달릴 수 있는 건각 健 脚 을 가졌더라도 갑자 기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산에 오르거나 길을 걷기에 가장 알맞은 체격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도 않으니, 체중 때문에 걸어가면서 느끼는 부담이 적고, 집만 나서면 집을 잊어버리고, 경이 로운 세상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 헤어나지를 못하니 이 얼마나 산천유람을 위해 타고난 육체이고 자유로운 영혼인 가? 하고 느끼는 적도 있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이 힘겹게 보낸 세월을 어느 누가 보상해준단 말인가? 이렇게 척박해서 먼지만 풀풀 날리는 산이고, 그래서 가끔가다 생기를 잃어가는 소나무만 듬성듬성 서 있는 이 산을 오르며 반도의 조그마한 땅에서 신선처럼, 아니 먼지처럼 날아온 나는 이 산의 의미나 역사를 떠올리기보다 아직도 내 살아온 날의 아쉬움을 생각하며 천천히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갈림길에 이르고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수가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 니다. 라고 노래한 로버트 프로스트 의 <가지 않는 길>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위로 가는 길도 자신이 없고, 아랫길도 의심스러워 망설이고 있는 사이에 요란스레 떠들며 한 무리의 중국 인이 산에서 내려왔다. 종이에 정상 頂 上 을 어디로 가는가, 적어 내밀자 위쪽으로 난 길을 손짓해준다. 산을 오르는 마음은 다 같지만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해서 필담을 나누어서야 통하는 이렇게도 어설픈 관계가 어 디 이 산에서 만 있으랴만,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3

24 우우 소나무 잎 스치는 소리에 오르던 발길을 멈추고 그냥 돌계단에 앉는다. 소나무 잎 사이로 언뜻 보이는 푸른 하 늘이 마치 잘 닦아 빛나는 푸른 구슬과도 같아 보이고, 수암사 너머 올망졸망한 집들을 지나 펼쳐진 갈석호는 한 폭 의 그림을 펼쳐 놓은듯 하다. 다시 산을 오르자 바로 위쪽에서 쉬고 있던 두 사람이 일어나는데, 사십대 후반의 여자는 오이,와 감자등 생필품이 가득 담긴 대 광주리를 짊어지고 삼십대 후반의 건장한 남자는 그 뒤를 따라가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오르고 있 다. 그래서 이 산 정상 어느 부근에서 좌판을 펼치고 팔기 위해 짐을 짊어지고 오르는 아주머니를 마음씨 좋은 젊은 남자가 말동무해주며 오르는 것이겠거니 지레 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그 남자는 갈석산 정상에서 근무를 하는 사 람이고, 그 여자는 그 남자에게 50원의 돈을 받고 짐을 올려주는 중이었다. 맨 몸으로 걸어 오르기도 힘든 이 바위산 을 겨우 50원을 받고 물건을 져 나르는 것이 가슴이 아픈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떤 때는 10원에서20원을 받고도 짐 을 운반하기도 한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 힘든 이곳의 실정에서 그렇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것도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중의 보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창려 일대가 환히 내려다뵈는 지점의 바위벽에 해탈문 解 脫 門 이라고 쓰여 져 있다. 그 해탈문을 힘겹게 올라가는 그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지속되는 삶은 도대체 무엇이고, 해탈은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 본다. 이 문을 넘어서면 번뇌 煩 惱 와 속박 束 縛 에서 벗어나 속세간 俗 世 間 의 근심이 없는 편안한 심경 心 境 에 이르게 될까? 그리하여 미망 迷 妄 에서부터 해방이 되고 이 문을 넘어서면 선정 禪 定 으로 공 空. 무상 無 想. 무원 無 願 의 세 가지를 얻게 되어 마침내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도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다 그래, 마음속에 부처도 있고 마음속에 악마도 있을 것이다. 해탈문을 지나 내려다보자 멀리 바다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바위벽에는 흡사 개의 형상을 한 호랑이가 그려 져 있으며 머리 부근에는 임금 왕 王 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망해장랑 望 海 長 廊 과 관해정 觀 海 亭 을 지나 팔선대 八 仙 臺 까지 올라가면 일반인은 오를 길이 없다. 갈석산(695m) 정상 은 선태정 仙 台 頂 이라고 하며 지금 나는 갈석산의 팔선대에 서있다. 이 갈석산은 열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서 바다의 경치와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고 알려져 있고 갈석산의 10경이 이름 이 있다고 하는데, 마이산이나 비슷하게 암산 巖 山 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나마 현재는 나무들이 많지 않아 옛날의 빼 어난 경치를 즐길 수는 없을 듯싶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이상한 것이라서 힘겹게 올라온 산이지만 막상 올라서서 바 라보면 오르면서 느낀 고단함이나 견디어낸 시간들이 까마득하게 잊혀지고 만다. 바람 부는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 면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생애가 가여워지고, 성냥갑처럼 자그마하게 보이는 세상자체도 불현듯 우스워진다. 문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4

25 득 외롭다 는 생각과 함께 아득하게 보이는 마을과 사람들과, 나 자신마저도 어쩌면 그렇게 한없이 작아지고 안 타까운지, 멀리 용솟음치며 달려 올 듯 한 바다와 드넓게 펼쳐진 들녘을 내려다보고 있자, <지비록 知 非 錄 >의 한 구절이 생각났 다. 일찍이 높은 산에 올라 성시 城 市 를 내려다보았다. 성이 개미집처럼 보이니, 모르겠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은 얼마 나 되겠는가? 높은 데에서 내려다보니 세상사는 것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이 산이 성의 높이보다 과연 얼마나 더 높겠는가, 그런데도 이렇게 보이는데 진정으로 진짜 신선이 하늘 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본다면, 사람 사는 집이 마치 개미집같이 보이고 사람 역시 개미나 별반 달리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와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이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였는데,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제 2부 독 서와 저술 에서 산에 올라 느낀 심정을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그대들은 높은 곳을 갈망할 때 위를 쳐다본다. 그러나 나는 높은 곳에 있으므로 아래를 굽어본다. 그대들 가운데 웃으며 높이 오를 자가 누구인가? 가장 높은 산에 오른 자는 온갖 비극과 비참한 현실을 비웃는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이 갈석산과 이 산에 올랐던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해보니, 이 산의 위상이 얼마나 높고 위대한 것인지를 알 것도 같다. <고문관지 古 文 觀 止 >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높다고 해서 다 산이 아니니, 신선이 있어야 이름이 날 수 있고, 깊다고 해서 다 물이 아니니, 용이 있어야 영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 山 不 在 高 有 仙 則 名. 水 不 在 深. 有 龍 則 靈 ) 영험한 산이라고 여겨서 그랬을까? 조선시대에 이곳에 왔던 서거정은 갈석청조 碣 石 晴 照 라는 시를 남겼다. 해문은 예로부터 풍랑이 거세게 치는데 한 줄기 황하수가 끝없이 콸콸 흐르누나. 나는 당장 갈석산을 부여잡고 올라가서 술잔보다 작아 뵈는 바다를 굽어보고 싶네. 海 門 從 古 浪 奔 雷 一 帶 黃 河 衰 衰 來 我 欲 琴 綠 登 碣 石 俯 看 溟 勃 小 於 杯 그래 저렇게 멀리에 바다가 있어 바다가 보이는 산이고, 뒤에 조성되었지만 갈석호가 저렇게 푸르고 푸르니 저 바다 나 호수에 용이 살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오기원전 215년에 동쪽을 순행 巡 行 했던 진시황이 올 라 갈석문 碣 石 門 이라 새기고 그의 이세 황제인 호해 胡 亥 가 올랐고, 뒷날에 서한 西 漢 의 무제 武 帝. 당 태종( 唐 太 宗 ),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5

26 북위 문선제( 北 魏 文 宣 帝 )등 일곱명의 황제가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갈석산에는 당나라 때의 빼어난 문장가인 한유 韓 兪 을 제사 지내는 한문공사 韓 文 公 祠 라는 사당이 있는데, 그런 연유 탓인지 갈석산 아래 자리 잡은 도시 창려 昌 黎 는 한유의 호 號 이다. 그리고 동한 東 漢 말기를 살았던 그 불세출의 영웅 조조 曺 操 는 요서 遼 西 의 오환족 烏 桓 族 을 치고 개선하여 돌아가던 길에 이 산에 올라 <관창해 觀 滄 海 步 出 夏 門 行 >라는 시를 남겼다. 동으로 갈석에 이르러 푸른 바다를 바라보노라. 바다는 어이 이리도 출렁이고 섬은 우뚝 솟았는가. 수목은 울창하고 백초 百 草 는 무성하네. 가을 바람 소슬한데 큰 파도가 솟구치는구나. 일월 日 月 의 운행은 이 바다에서 솟고 은하수의 찬란함은 이 바다에서 떠오르네. 그 얼마나 다행한가, 노래 불러 뜻을 읊노라. 東 臨 碣 石 以 觀 滄 海 水 何 澹 澹 山 鳥 竦 峙 樹 木 叢 生 百 草 豊 茂 秋 風 蕭 瑟 洪 波 通 起 日 月 之 行 若 出 其 中 星 漢 燦 爛 幸 甚 至 哉 歌 以 咏 志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난 1950년 가을 이곳을 찾았던 혁명가 모택동은 <낭도사 浪 淘 沙 >라는 시 한편을 지었으며 북대 하의 응각정 앞에 새겨져 있다. 연 燕 나라 땅엔 큰 비가 쏟아지고 흰 파도는 하늘까지 넘실거리네. 진황도 바깥 고깃배는 아득한 바다에 보이지 않네. 어디로 갔는지 아는가. 천년도 지난 아득한 옛일 위무제 魏 武 帝 는 채찍을 휘둘러 동으로 갈석에 와서 시를 남겼는데, 소슬한 가을바람은 그때나 다름없지만 사람은 바뀌었으니. 大 雨 落 幽 燕 自 浪 天 秦 皇 島 外 打 魚 船 一 片 汪 洋 都 不 見 知 向 護 邊 往 事 越 天 年 魏 武 揮 鞭 東 臨 喝 石 有 遺 篇 蕭 瑟 秋 風 今 又 是 換 了 人 間 역사의 기록들에는 이곳 갈석산이 진나라의 국경이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기 史 記 > <진시황본기 秦 始 皇 本 紀 >에는 이곳 갈석산에 관한 글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6

27 진제국 秦 帝 國 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대해 大 海 와 조선 朝 鮮 에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임조 臨 와 강중 羌 中 에 이르렀 으며,, 남쪽으로는 북향호 北 響 戶 에 이르렀고, 북쪽은 황하 黃 河 를 근거지로 하여 요새 要 塞 를 만들어 음산 陰 山 과 나란 히 요동 遼 東 에 이르렀다. 32년, 진시황이 갈석산에 가서 연나라 사람 노생 盧 生 을 시켜 신선들이 지은 선문 羨 門 과 고서 高 誓 를 찾도록 보내면서 이곳 갈석산에서 전송한 뒤에 갈석산의 석문에 비문을 새겼다. 진시황은 그 비문에다 그가 황제에 오른 뒤에 천하 天 下 가 태평 太 平 해졌다고 쓴 뒤에 한종 韓 終. 후공 侯 公. 석생 石 生 을 시켜 영원히 죽지 않고 살게 하는 신선의 약을 구하도록 하였다고 하는데, 사마천은 요동을 갈석산 지역으로 보 았다.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진시황의 아들인 이세 황제가 이곳 갈석산 일대를 순행하였으며, 그 때의 상황이 <사기> 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진제국 秦 帝 國 2세 二 世 황제가 조고 趙 高 와 더불어 의논하기를 짐 朕 이 나이가 어려 처음 즉위 했을 때는 백성들이 짐 을 따르지 않았다. 선제(진의 진시황)께서는 군현 郡 縣 을 순행 巡 行 함으로써 진제국의 강함을 나타내셨고, 해내 海 內 를 위엄으로 복종시켰다. 지금의 짐은 안일하여 순행을 하지 않으니, 그것은 바로 짐이 약한 것으로 보여 신하로 따 르는 사람이 없는 천하가 되었다. 고 하였다. 봄에 2세 황제는 군현을 순행하였는데, 이사 李 斯 가 따랐다. 갈석산 碣 石 山 에 이르러 그곳으로부터 바다를 따라 남쪽 으로 회계산 會 稽 山 에 이르렀다. 그때 시황제 始 皇 帝 가 세었던 비석 碑 石 에 글씨를 새겼는데, 비석의 한쪽에 대신으로 서 따라간 사람의 이름을 새김으로서 시황제의 성공 成 功 과 성덕 盛 德 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순행이 끝난 후에 황제는 말하기를 금석각 金 石 刻 은 모두 시황제께서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짐은 시황제께 서 사용하셨던 칭호를 물려받고 있으면서도 금석각사 金 石 刻 辭 에 시황제를 칭송하지 않았으니 후사 後 嗣 가 영원무궁 하게 계승해야 할 그 성공과 성덕을 칭송하지 않은 것이다. 라고 하였다. 승상 丞 相 이사와 거질 去 疾, 어사대부 御 史 大 夫 덕 德 은 잘못되었음을 빌고 말하기를 신 臣 등이 청하옵건대 조서 詔 書 를 자세하게 각석에 새겨 황제의 뜻을 명 백하게 하겠습니다. 신 등은 죽음을 무릅쓰고 그렇게 해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황제는 그렇게 하도록 승낙하였다. 신하들은 마침내 요동 遼 東 에 이르렀다가 돌아왔다. 위의 글을 보면 진시황제의 2세가 동부지역을 순행 하는데, 당시 황제를 수행했던 신하들이 진시황이 갈석산에 세워 놓은 비석에 그들의 이름만을 새긴 것을 알고서 나무라자 신하들이 다시 가서 진시황제의 송덕비를 세웠다는 것이 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 갈석산이 진제국의 국경이었으며 갈석산은 요동 땅이었고, <한서 漢 書 >의 < 武 帝 記 >에 는 서한 西 漢 무제가 태산 泰 山 으로부터 다시 동쪽의 바닷가를 따라 순행하여 갈석에 이르렀다. 그리고 요서 遼 西 에 서부터 순행하여 북쪽 변경의 구원 九 原 에 이르렀고, 5월에 돌아가 감천궁 甘 泉 宮 에 도착했다. 라고 써 있는데 요서 군 遼 西 郡 이 서부 유역에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글이다.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7

28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리는 밤, 다시 그날의 추억에 잠기다 보면 꿈속에서라도 산해관에서 갈석산으로 가는 버스에 탈 수 있을까? 계사년 칠월 초나흘 밤 고조선의 땅이자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를 가다. 28

29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01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추석 연휴에 고조선의 옛 땅이자, 진시황을 비롯한 중국 천자 여덟 명이 올랐던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산해관, 열하, 북경 일대를 돌아보며,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할 것입니다.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29

30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0

31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1

32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2

33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3

34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4

35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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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7

38 TEL: FAX: 주소: 서울시 중구다동131번지 삼덕빌딩208 고조선의 땅, 갈석산과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현장을 답사합니다. 38

39 한 여름에 내외 선유동을 따라 걷는다 :58 한 여름에 내외 선유동을 따라 걷는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 선생이 금강산 이남의 산수 중 가장 빼어난 경치를 두고 문경과 괴산 일대에 펼쳐진 내와 선 유동과 화양동 계곡을 들었습니다. 문경시 가은읍의 가은 선유동의 아홉 경치와 대야산 자락의 용추, 그리고 괴산군 송면의 괴산 선유동의 아홉경치와 송시열 선생의 자취가 남아 있는 화양동 구곡이 바로 그곳입니다. 그 내외선유동을 따라 걷는 여정이 7월 21일(일요일>일에 실시됩니다. 어딜 보나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경관도 경관이지만 푸르고 맑게 흐르는 계곡의 냇물이 아름다운 곳이 바로 내외선유 동입니다. 그 계곡을 걸으며 한 여름의 하루를 보내실 분은 참여 바랍니다. 이번 여정은 강가를 거닐게 될 것이므로 오래된 트레킹화(물에 젖어도 될 신발)을 준비하면 훨씬 마음과 몸이 편안한 기행이 될 것입니다. "가은 선유동과 용추 계곡은 바라만 보아도 서늘해지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칠성대 서쪽으로 백두대간을 넘으면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에 있는 외선유동이다. 이곳 송면리는 조선 선조 때 붕당이 생길 것을 예언했던 동고 이준경이 장차 일어날 임진왜란을 대비하여 자손들의 피난처로 정했다고 한다. 선유 동 입구에는 바위절벽에 선유동문 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위에는 천연적으로 문이 뚫려 있고 선유구곡이 펼쳐져 있다.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화양동구곡에서 동쪽으로 14킬로미터 지점 화양천 상류에 있는 선유동구곡은 옛 신라의 고운 최치원이 이곳을 소요하면서 선유동이라는 명칭을 남긴 데서 유래된 곳으로 그 이후 퇴계 이황이 칠송정에 있는 함 평 이씨 댁을 찾아왔다가 이곳의 비경에 사로잡혀 아홉 달을 돌아다닌 뒤 아홉 개의 이름을 지어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주자학을 창시한 주희( 朱 熹 )는 성리학을 탐구하기에는 굽이굽이 돌아가는 계곡이 이상적인 장소라고 보았다. 그 는 그러한 형세를 갖춘 계곡을 중국 남부에서 발견한 뒤 무이구곡( 武 夷 九 曲 ) 이라고 이름을 지은 뒤 1곡에서 9곡 에 이르는 물의 구비마다 그 모양새에 합당한 이름을 붙인 뒤 성리학의 경지에 비유했다. 일반적으로 문경의 소금강이라 부르는 선유동구곡은 30미터 높이의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뚫려 있는 선유동문 이 라는 글씨가 음각된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기암절벽으로 절경을 이룬 경천벽, 옛날에 암벽 위에 청학이 살았다는 학 소대, 계류변에 있는 바위 위 중앙이 절구통같이 생겼다는 연단로, 와룡이 물을 머금었다 내뿜는 듯이 급류를 형성하 여 폭포를 이룬 와룡폭, 방석같이 커다란 모양의 난가대, 바둑판의 형상을 한 커다란 암반인 기국암, 거북같이 생긴 한 여름에 내외 선유동을 따라 걷는다. 39

40 구암, 두 바위가 나란히 서 있고 뒤에는 큰 바위가 가로 놓여 그 사이에 석굴이 있는 은선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위의 수석층암과 노송이 어우러져 세속과는 거리가 먼 이상향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데 그중 난가대와 기국암 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서려 있다. 조선 명종 때의 일이다. 한 나무꾼이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하러 갔다가 바위에서 바둑을 두는 노인들을 발견하고 가 까이 가서 구경을 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여기는 신선들이 사는 선경이니 돌아가시오. 했다. 그 말에 정신을 차 리고 옆에 세워둔 도끼를 찾았는데 도끼자루는 이미 썩어 없어진 뒤였다.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니 낯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누구인가 물었더니 그의 5대 후손이었다. 그곳에 간 날을 헤아려보니 그가 바둑 구경을 한 세월이 어느 사이에 150년이나 되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도끼 자루가 썩은 곳을 난가대 라고 불렀고, 노인들이 바둑을 두던 곳 을 기국암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송시열과 화양구곡 선유동에서 송면리를 지나 화양천을 따라 내려가면 화양구곡에 이른다. 택리지 에는 화양동계곡에 대한 기록이 다 음과 같이 실려 있다. 화양동 華 陽 洞 (충북 괴산군 청천면)은 파곶 葩 串 아래에 있는데, 파곶 물이 이곳에 와서 더욱 커지고 돌도 또한 더욱 기이한 것이 많다. 우암 송시열 宋 時 烈 이 주자의 운곡정사 雲 谷 精 舍 를 모방하여 여기에 집을 지었다. 또 주자 朱 子 가 대 의를 회복 恢 復 하던 옛일을 모방하여, 고을(동중 洞 中 )에서 명나라 명종 明 宗 과 신종황제를 제사지내다가 후일에 사당을 세운 뒤 만동묘 萬 東 廟 라 하였다. 일찍이 송시열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푸른 물의 야단스러움이 성난 듯 하고, 푸른 산의 말없음은 찡그리고 있는 것 같다. 1975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화양동계곡은 원래 청주군( 淸 州 郡 ) 청천면의 지역으로서, 황양목( 黃 楊 木 :희양목)이 많으 므로 황양동( 黃 楊 洞 )이라 불렸다. 그러나 효종( 孝 宗 ) 때의 정치가인 우암( 尤 庵 ) 송시열( 宋 時 烈 )이 이곳으로 내려와 살 면서 화양동( 華 陽 洞 )으로 고쳐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현천리( 玄 川 里 )를 병합하여 화양리라 해서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되었다. 화양구곡과 만동묘 그리고 화양동서원이 있는 이곳 화양동계곡은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 이지 않는 곳이다. 우암 송시열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 골짜기에 들어앉아 글을 읽으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자신을 주자에 비유했던 송시열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본떠서 화양동계곡의 볼 만한 곳 아홉 군데에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이라 했다. 입구에 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1곡부터 9곡이 펼쳐진다. 화양천 건너편에 높이 치솟은 바위벽으로 큰 바위가 공중에 높이 솟아 마치 하늘을 떠받친 듯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다. 경천벽 아래쪽에 화양동문( 華 陽 洞 門 ) 이라 쓴 송시열의 글씨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다리를 넘어서면 화양구곡 중의 제2곡인 운영담( 雲 影 潭 )이다. 계곡에서 빠르게 내려온 맑은 물이 잠시 고여 숨을 가 다듬은 뒤 내려간다는 이곳 운영담의 바위 위에는 주자( 朱 子 )의 시인 천광운영공배회( 天 光 雲 影 共 徘 徊 ) 의 뜻을 따 서 운영담 이라는 글씨 석 자가 새겨져 있다. 제3곡인 읍궁암( 泣 弓 岩 )은 계곡을 향해 퍼져 누운 너부죽한 바위인데 그 바위 위에서 송시열은 돌아간 효종임금을 기 리며 매일 새벽과 효종의 제삿날인 5월 4일에 엎드려 곡을 했다고 한다. 순임금이 죽은 후 신하가 칼과 활을 잡고 울었다. 는 고사에서 유래했다는 읍궁암을 지나면 하마비를 만나게 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이곳을 지나는 길에 한 여름에 내외 선유동을 따라 걷는다. 40

41 말에서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패대기질을 당했다는 하마비 우측에 그 이름 높았던 화양동서원과 만동묘가 있다. 화양동서원( 華 陽 洞 書 院 )은 1695년(숙종21)에 이곳에 머물며 후진을 양성했던 송시열을 제향하기 위하여 그의 문인인 권상하, 정호 등의 노론계 관료와 유생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 온 나라에 걸쳐 44개 소에 이르는 송시열 제향의 서원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서원이 된 화양동 서원은 건립 당시 소론 측의 반대를 받아 중단될 뻔하기도 했다. 노론 측의 강력한 요구와 임금의 특별배려로 설립된 이 서원은 1696년 대사성 이여가 사액( 賜 額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 름을 지어 그것을 새긴 편액( 扁 額 )을 내리던 일)의 필요성을 역설한 뒤 사액을 받았고 영조 때에 송시열이 문묘에 배 향되자 이 서원의 위세는 날로 더하면서 국가의 물질적 지원은 물론이고 유생들이 땅을 기증하여 강원도를 비롯한 삼남 일대에 토지가 산재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 서원은 민폐를 끼치는 온상으로 변해갔다. 제수전 징수를 빙자하여 각 고을에 보내는 이른바 화양묵패 ( 華 陽 墨 牌 )를 발행하여 때로는 관령( 官 令 )을 능가할 정도였다. 서원의 제수 비용이 필요하니 어느 날까지 얼마를 봉 납하라. 는 명령을 거부하는 수령들에 대해서는 통문을 보내어 축출을 했고 복주호( 福 酒 戶 )와 복주촌( 福 酒 村 )을 운영 하며 양민들에게 피역( 避 役 )을 시켰다. 또 그 대가로 돈을 거두어들이며 이를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사형을 시키 기도 했다. 이러한 폐습이 심화되자 1858년 영의정 김좌근이 복주촌 폐지를 요청했고 1871년에는 노론사림들의 반대 에도 불구하고 서원이 철폐되었다.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우리 산하 에서 한 여름에 내외 선유동을 따라 걷는다. 41

42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55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에서 계사년(2013) 10월 3일(목)에서 6일(일요일까지)에 제주를 갑니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10 월에 제주도와 제주 올레를 답사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제주로 가는 교통편(비행기, 배)은 각자 알사서 구입하시기 바립니다. 황금연휴기 때문에. 미리 미리 구입하십시오. 제주의 억새가 하얗게 나풀거리고, 노란 감귤이 올래(올레) 길과 돌담을 수놓는 계절에 제주의 길과 제주의 역사를 만날 분들은 미리 신청하십시오. 북쪽으로 큰 바다를 베개 베고 남쪽으로 높은 산에 대하고 한라산 북쪽은 제주읍이다. 이곳은 옛 탐라국으로 신라 때 부속국이 되었다. 원나라에서 방성에 해당하는 지역이라 하여 말과 소를 놓아 먹여서 목장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지금도 좋은 말이 생산된다. 제주읍 동쪽과 서쪽에 있는 정의 旌 義 대정 大 靜 두 고을은 풍속이 제주와 대략 비슷하다. 목사와 두 고을 수령이 예 부터 본토에서 왕래하였으나 풍파에 표류하거나 빠져 죽은 일이 없고, 또 조정에 벼슬하던 사람이 여기에 많이 귀양 왔으나 역시 풍파에 떠밀리거나 빠진 일이 없었다. 이것은 왕의 덕화 德 化 가 멀리 미쳐서 온갖 신이 받들어 순응하였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중환 李 重 煥 의 <택리지 擇 里 志 > 산수 山 水 편에 실린 제주도에 관한 글이다. 한 시절 전만 해도 제주도 사람들은 육지의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백두산을 한 본 보기를 소원했다. 그와 반대로 육지 사람들은 아열대 식물이 자라는 한반도의 남쪽 바다 건너에 있는 제주도를 보고자 했다. 지금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올 수도 있고 돌아갈 수 도 있는 제주도를 두고 사람들은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그리워한다. 낙원의 섬, 하늘의 축복을 받은 섬 휴양지, 누구나 가보고 싶고, 살아보고 싶은 그리움의 섬 이 제주도 라고, 그러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면 눈물과 한숨이 없이는 가까이 할 수 없는 한 많은 땅이 제주도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기쁨은 모래알처럼 작았고, 시련은 바위처럼 컸다 라는 말로 제주도를 비유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제주도와 관계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제주도 바다의 역사를 다 읽었다면 그 역사를 제주 의 눈물, 눈물, 눈물 이라고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제주 해협의 바다는 곧 제주 사람들이 역사에 바 친 눈물의 양으로 출렁거린다. 고 말하기도 했다.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42

43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제주가 고향인 고득종 高 得 宗 은 제주의 형승을 <홍화각기 弘 化 閣 記 >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북쪽으로 큰 바다를 베개 베고 남쪽으로 높은 산에 대하였다. 집집마다 귤과 유자요 곳곳마다 준마로다. 제주는 멀리 남해 가운데에 있으며, 큰 산이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한라 漢 拏 라고 부른다. 한라산 은 은하수를 붙잡을 수 있다 하여 붙여졌다. 다른 이름으로는 원산 圓 山 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생김새가 활 모양으로 굽어져서 둥글기 때문이다. 제주는 조선 태종 16년인 1416년에 세 고을로 나누어졌다. 동쪽을 정의라 하고 서쪽을 대정이라고 하여 나누어 다스 렸다. 옛날에는 동영주. 탁라. 또는 탐라라고도 불렀으며, 시대에 따라 바꿔 부른 것이 사적에 기록되어 있다. 정이오 鄭 以 吾 는 그의 서 序 에서 본토에서 탐라를 바라보면 큰 바다 아득하고 먼 가운데에 따로 한 구역이 되어 부 속국과 같다. 고 하였다. 고려 의종 13년에 제주도의 안무사 按 撫 使 로 근무했던 조동희 趙 冬 曦 는 조정에 들어가서, 탐라는 험하고 치고 사우는 것이 미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라고 하였다. <동문감 東 文 鑑 >에 남해 가운데에 있어 물길로 무려 백리나 되고 그 가운데가 대단히 넓다. 고 하였던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우리나라의 가장 먼 곳의 행정구역 제주 한반도의 최남단, 즉 바다 건너 가장 먼 지역에 있는 제주도는 우도를 비롯 상추자도와 하추자도 그리고 가파도를 포 함한 50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사람이 살고 있는 섬은 우도를 포함하여 몇 개 뿐이다.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가 제주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도가 최남단이다. 제주시 한 경면 고산리 차귀도가 가장 서쪽이고, 동쪽은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가 가장 동쪽이다. 목포에서 141.6km 떨어져 있으며, 부산에서는 286.5km 떨어져 있고,일본의 대마도에서는 255.1km쯤 떨어져 있다. 제주도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濟 州 特 別 自 治 道, Jeju Special Self-Governing Province로 관리되고 있고,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포함하여 2시. 7읍 5면 31동으로 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km2이다. 주호인이 살았던 제주도 어느 곳에서건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그 아래로 시원스럽게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고 한라산을 볼 수 있는 곳이 제 주도인데, 이곳 제주도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을까? 가장 앞 선 기록이 <삼국사기>중 백제 본기 중 서기 476년 4월의 일이다. 탐라국이 특산물을 바쳤으므로 임금이 기뻐하며 그 사자에게 은솔 恩 率 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삼국지>와 <위지>그리고 <후한서>와 <동이전>등의 고문들에는 제주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호족 이라고 실려 있다. 육조 시대에 범엽이 지은 <후한서>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자. 마한 馬 韓 서해의 큰 섬에 주호족이 있는데, 그 인종은 몸집이 작고 언어는 한족과 같지 않으며 머리를 짧게 깎아 선비족과 비슷하다. 그들은 가죽옷을 입고 있는데, 윗도리만 걸치고 아랫도리는 입지 않고, 소와 돼지를 잘 기르며,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43

44 배를 타고 한나라와 왕래하며 교역한다. 그런 주호족을 두고 일부에서는 도서 족 계통, 즉 일본의 원주민이이었던 고루보그족이나 아이누족으로 보기도 한다. 그들은 일본 열도 전역에서 살았던 종족으로 체구는 작고 옷도 상의만 입었고 하의는 입지 않고 생활했으며 사냥과 고기잡이를 주업 主 業 으로 삼았던 종족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았던 제주도 사람들은 1세기쯤에 있었던 한라산의 화산폭발로 멸망하고 말았다. 그들이 살았던 제주도는 제주 신화의 주인공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제주의 신화가 시작되다. 원래 탐라국( 耽 羅 國 ) 또는 탁라( 羅 )라고 불렸던 제주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에 따르면, 제주의 역사는 고을나 高 乙 那 양을나 良 乙 那 부을나 夫 乙 那 라는 세 을나( 乙 那 )에 의하여 시작된다. 제주의 시조가 되는 세 을나가 독특하게도 제주 1동에 자리 잡은 삼성혈( 三 姓 穴 )의 모흥혈 毛 興 穴 이라고 부르는 세 구멍에서 솟아났다고 한다. 가야나 신라 고 조선 부여 등의 다른 나라 시조들이 하늘에서 내려오거나 알에서 태어난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시조가 한 사 람도 아니고 셋인 점도 다르다. 당초 세 사람은 바로 신인이었는데 서로 짝 지어 해 뜨는 동쪽에 와서 살았네. 오래도록 세 성씨만 서로 혼인을 한다더니 듣건대 그 남아 전하는 풍습 주진 朱 陳 과 비슷하구나. 조선 초기의 문장가인 점필재 김종직의 시이다. 그런 연유로 의병장 고종후 高 從 厚 가 의병을 모집하면서 세 성씨가 모두 같은 후손임을 언급한 글이 유성룡이 지은 < 난중잡록>에 실려 있다. 제주. 정의. 대정. 3 고을. 고성. 양성. 부성. 43가문호의 모든 어른들에게 고하나이다. 옛적 태고 때에 인물이 생기 던 시초에 하늘이 3신을 한라산 밑에 내려 보내시니, 고씨. 양씨. 부씨라. 또 아름다운 여인과 망아지. 송아지의 종자 를 함께 주어 한 지방에 터를 여는 조상이 되어 이제에 이르러 인구의 번성함과 말( 馬 )을 길러냄이 대개 3 신인의 덕 택이 아닌가 하옵니다. 그 후세에 자손이 혹은 바다에 떠서 이리저리 여러 곳에 흩어져 사니, 세상에서 이른바 제주 고씨, 제주 양씨는 모두 그 후손입니다. 삼성혈에서 솟아난 세 을나는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고 나물을 캐서 먹으며 이동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를 타고 온 벽랑국( 碧 浪 國 )의 세 공주를 각자의 배필로 맞아들였으며, 그들이 가져온 오곡종자와 송아지 망아지 등 육 축으로 농경생활을 했다다.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 婚 姻 池 )는 세 을나가 벽랑국의 공주들과 혼례를 올린 곳으 로 알려져 있다.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44

45 농업과 목축업을 시작한 뒤 점차 제 몫의 땅이 필요해진 세 을나는 각자 자기가 살아갈 터전을 결정하는 데 화살을 이용했다. 활을 쏘아 화살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세 을나가 쏜 화살은 각각 일도 이도 삼도에 떨어졌 고, 일도 이도 삼도동이 여기서 유래하였다. 세 을나가 활을 쏘았던 장소가 바로 제주시 봉개동과 아라동에 걸쳐 있는 제주도 말로 쌀손장오리( 射 矢 長 兀 岳 사시장올악)라고 하며, 세 을나가 쏜 화살이 박힌 돌을 모아둔 곳이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삼사석( 三 射 石 )이라 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들은 제주 시조의 탄생 이후 바다를 통하여 발달된 외래문 화가 유입되었고 비로소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 때까지가 제주도의 신화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제주가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때는 삼국시대부터이다. 삼국사기 의 기록을 보자. 백제 문주왕 2년(476)에 탐 라국이 백제에 토산물을 바치자 벼슬을 주었고, 동성왕 20년(498)에는 탐라가 조공을 하지 않으므로 왕이 친히 정벌 하기 위해 지금의 광주에까지 이르자 탐라국의 왕이 그 소식을 듣고 사죄하였으며, 백제가 멸망한 이후 신라 문무왕 2년에 탐라국의 왕이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독립국이었던 탐라국이 신라의 속국이 되었다. 신라의 속국이 된 탐라국 탐라 耽 羅 로 표기 된 제주가 <당회요 唐 會 要 > 권 100 탐라국 耽 羅 國 에 다시 등장한다. 탐라는 신라의 무주 바다 위에 있다. 섬에는 산이 있고, 주위는 모두 바다에 접하였다. 북쪽 백제와 배를 타고 5일 에 갈 만한 거리이다. 그 나라 왕의 성은 유리이고, 이름은 도라인데, 성황은 없고, 다섯 마을로 나뉘어 있다. 그들의 집은 동굴에 돌담을 둘러서 풀로 덮혔다. 호구는 8천 가량 된다. 활과 칼 및 방패와 창이 있으나 무기는 없고, 오직 귀신을 섬긴다. 항상 백제의 지배아래 있었고, 용삭 원년(661년) 8월에 조공 사신들이 당나라에 이르렀다. 고 실려 있다. 그 뒤로 별 다른 기록이 전해지지 않다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숙종 10년에는 탐라군으로 바뀌었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제주도) 중에서 10월 3(목요일)일 오전 8시 관덕정 앞 집결, 제주 관아 답사, 오후 제주 올레 19코스를 걷고 11월 9일(금요일) 신평곶자왈에서 무릉곶자왈코스를 걸을 예정입니다. 11월 10일(토요일)은 날이 맑으면 한라산을 오르고 그렇지 않으면 사려니 숲길을 길게 걷거나 한라산 부근을 걸을 예 정입니다. 11월 11일(일요일)은 아름다운 제주 올레 중 서쪽 서귀포에서 모슬포, 그리고 한림일대와 역사유적을 돌아보고 해산 할 예정입니다. 비행기나 배편은 각자가 예약하여 제주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회원 분들이 좋은 곳 추천해주시면 일정에 반영하겠습니다 계사년 시월에 걷는 제주도의 제주 올레 45

46 서해의 절경 흑산도와 홍도를 가다 :52 서해의 절경 흑산도와 홍도를 가다. (사)우리 땅 걷기에서 2013년 섬기행의 일환으로 홍도와 흑산도를 갑니다.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알려져 있는 홍도와 다산 정약용의 형님인 정약전과 면암 최익현의 유배지로 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흑산도를 갑니다. 7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출발하여 일요일까지 이어질 이번 기행은 선착순 45명입니다. 목포 앞바다의 섬들로 이루어진 군이 신안군이다. 신안군이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69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지도 군이었으며, 1914년에는 무안군에 소속되었다가 1969년에 신안군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져 나왔다. 안좌도 압해도 암태도 장산도 대흑산도 등을 비롯, 유인도 111개와 무인도 719개로 이루어져 있다. 흑산도는 우리나라 3대 파시 즉 흑산도. 위도 연평도의 조기파시 중 제일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성어기 때 어항에서 열리는 생선시장. 넓은 의미로는 해상에서 열리는 어시장( 魚 市 場 )뿐만 아니라 연안의 육지시장까지도 포함한다. 파시에서는 어선( 漁 船 ) 과 상선( 商 船 ) 사이에 또는 어업자와 어부들 간에 매매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세종실록 世 宗 實 錄 과 신증동국여 지승람 新 增 東 國 與 地 勝 覽 에는 매년 봄에 열리는 파시의 광경을 묘사한 기록이 있으며, 칠산해( 七 山 海 )의 칠산도( 七 山 島 )는 조기의 어획장으로 성어기( 盛 漁 期 )에 파시가 형성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에서 파시가 형성되는 곳은 주로 조기의 산란장으로 유명한 대흑산도 위도 칠산도 개야도 녹도 고군산군도 어청도 연평도 등지의 서해안이다. 조기는 제주도 남서쪽 및 중국의 상하이[ 上 海 ] 동남쪽 근해에서 겨울을 지낸 후 2월경에 북상하여 전라남도 영광군의 칠산해, 옹진군의 연평도 근해, 평안북도의 대화도 근해 등지에서 산란하게 되는데, 이 시기가 3~6월경으로 파시는 주로 이때 일시적으로 열리며, 특히 4월 하순부터 5월 하순경까지 이루어지는 연평도 근해의 조기어장은 전국 최대의 어장으로 파시 또한 유명하다. 파시가 열리게 되면 인근 어촌은 외부로부터 어부와 상인들이 모여들어 호황을 누렸으며, 일시적인 촌락이 형성되기도 했다. 거문도 청산도 추자도 등지의 남해 안에는 이 지역에서 많이 잡히는 고등어 멸치 등이 성어기를 이룰 때 파시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 늘날에는 그동안의 남획으로 인해 서해안으로 회유해오는 조기가 적어짐에 따라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흑산도는 나라의 술꾼들이 즐겨 찾는 홍어와 홍탁삼합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홍어하면 떠올리게 되는 흑산도 홍어는 흑산도 근해에서 잡히는 홍어다. 흑산 홍어는 인천이나 군산에서 잡히는 홍어 와 달리 육포 자체가 씹으면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차지고 맛이 좋다. 이 홍어를 먹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다. 껍질을 벗겨 날 것 그대로를 초고추장이나 겨자를 넣은 간장에 찍어먹거 나, 막걸리와 같이 먹는 홍 탁, 삶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고 배추김치와 함께 먹는 삼합 三 合, 양념을 묻혀 구어 먹는 서해의 절경 흑산도와 홍도를 가다. 46

47 것, 겨울철에 푸르게 자란 보리 싹과 내장을 넣어 끓인 국, 날 것을 옹기그릇에 담아놓았다가 며칠 뒤 꺼내먹으면 입 안이 화끈하게 퍼지는 매운 맛이 일품이다. 또한 신안군 흑산면에 수려한 단애절벽이 장관을 이루어 남해의 소해금강 이라고 불리는 홍도가 있으며, 전국의 새우 생산량의 절반쯤을 생산하는 전장포가 임자도에 있고 전란마도 삼백 三 白 의 하나로 손꼽히는 신안 소금이 예로 부터 이름이 높다." 신정일의 신 택리지> 서해의 절경 흑산도와 홍도를 가다. 47

48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50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 - 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한강 천 삼백리 도보답사의 여정이 다섯 번째로 실시됩니다. 단양군 단양읍에서 출발하여 충주댐의 상류에 있는 장회 나루에서 충주호 유람선을 타고 충주댐에 닿을 예정입니다. 탄금대를 지나고 충주호 조정지댐에 있는 중원탑과 고구려비를 돌아보고 목계나루에 이릅니다. 신경림 시인의 절창인 <목계나루>를 지나며 아름답게 펼쳐진 남한강변의 유서 깊은 폐사지들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청룡사, 거돈사, 법천사 지에 있는 국보와 보물들을 보고 여정은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에 이를 예정입니다. 남한강과 섬강, 그리고 청미천이 만나는 이 곳까지 이어질 다섯 번째 여정은 남한ㄱ상의 물길이 얼마나 도도하고 양양한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도전리가 신단양으로 바뀌게 된 것은 1984년 8월 이후였다. 32만 평의 대지 위에 단양읍 중도리 시루섬의 모래, 자갈, 조약돌을 옮겨다 군청 소재지를 거의 옮기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시 대이동 공사에 투입된 공사비는 총 1천억원 이었다. 강을 끼고 있는 산촌마을에 불과했던 도전리는 겨울이면 눈이 제일 먼저 녹고 325가구쯤의 농민들이 고추와 양잠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곳이었는데 충주댐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신단양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은 물이 줄어 삭막해 보이는 남한강가의 장미꽃길을 지나며 강물 소리를 듣는다. 조용하다. 사람 소리도 차 소 리도 그 어느 소리도 허락하지 않고 오직 흐르는 강물 소리만 들릴 뿐이다. 아침부터 날이 저물도록 찻길을 따라 걸 으며 들었던 그 소음에서 벗어나 이토록 호젓한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여느 때 같으면 강 폭 가득히 강물이 흘렀을 텐데, 그랬더라면 도담삼봉에서부터 배를 타고 충주나루까지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렇듯 줄어들 대로 줄어든 강물이 힘없이 흐고 있을 뿐이다. 오월 말에서 유월 초의 어느 날 단양에 다시 오리라. 그래서 신단양읍의 수변공원길을 다시 걸어볼 것이다. 떨어진 장미꽃잎을 밟으며 장미가시에 찔려서 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떠올리며 "올 때는 문득 오고 갈 때는 문득 간 다"는 게송 한 구절을 읊어볼 것이다. 삼십여 년 전만 해도 저 푸른 초원이 펼쳐진 곳의 행정구역상의 지명은 단양군 단양면 중도리 시루섬이었다. 모양이 시루처럼 생겼고 시루떡처럼 모래자갈 등이 켜켜이 쌓여진 8만여 평쯤이 되는 시루섬은 퇴적호가 쌓이고 쌓여 단양 에서 비옥하다고 소문난 땅이었다. 그런데 72년 8월 19일 이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날 며칠간 비가 퍼붓더니 오후 3시쯤에 물에 완전히 잠기고 말았다. 그때의 상황을 박동중(55세) 씨에게서 듣는다.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48

49 "잠종사업소에 근무하던 아가씨가 40여 명이 있었고 35가구 190여 명이 있었는데 방법이 없잖아요. 우선 잠종사업소 물탱크 우로 사람들을 올려보냈어요. 다 올려보내고 나니까 더이상 올라갈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은 젊은 사람들 은 소나무 우에로 올라갔지요. 동생하고 나하고 팬티바람에 같은 소나무에 올라가 '오늘 우리 죽는갑다' 했는데 다행 히 우리가 매달린 소나무는 떠내려가지 않고 다른 소나무들은 떠내려가 버려 그날 밤 8명이 죽었지요. 그런데 신기하 게도 다른 짐승들은 다 떠내려갔는데 소들은 섬 주위를 맴돌면서 한 마리도 안 떠내려갔어요. 그래서 소는 영물이다 생각했죠. 그 다음날 물이 빠지고 보니까 물탱크 우에 어린 아이 하나가 깔려서 죽어 있더라고요. 다음 날 도지사가 오고 내무부장관이 오고 해서 그 근방에다 집을 지었지요. 그런데 몇 달 후에 나이든 노신사가 찾아온 거예요. 누가 이곳에 집을 지으라고 했느냐 물어서 전후 이야기를 했더니 '당신들하고는 상관이 없구만' 하고 가더니 그 다음날 바 로 단양 군수가 온 거예요. 그 사람이 땅 주인인데 남의 땅에 집을 지었으니 당신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거예요. 밝은 대낮에 날벼락이라더니, 그래서 마을 몇 사람이 청와대를 찾아갔지요. 하여간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예요. 보 상도 제대로 못 받고 떠나간 사람들 많았어요." 나는 박동중 씨의 말을 들으며 섬진강댐을 막으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운암 정읍 사람들을 떠올렸고 동시에 용담 댐의 보상 문제를 떠올렸다. 영악할 대로 영악해진 몇 사람들과 그 담당부서 직원들이 짜고 치는 화투로 A마을로 실 사를 나간다 하는 정보가 돌면 B와 C마을 농기구들과 소, 돼지, 심지어 개들까지 A마을로 원정을 나갔다고 한다. 뿔 이 괴상하게 구부러진 아무개네 집 소는 다섯 번에 걸쳐 보상을 받았다는데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년 1월 6일 단국대 조사단이 적성산성을 조사하던 중 비 하나를 발견했다. 높이는 1m가 채 안 되고 윗너비 1m 가량, 아랫너비가 0.5m 남짓한 역사다리꼴 화강암 비는 발견 당시 지붕돌이나 받침돌 없이 비석만 땅에 묻혀 있었다. 예서에서 해서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국 남북조 초기의 글씨로 비문은 모두 440자 가량으로 추정되지만 288 자가 남아 있었다. 그 내용은 진흥왕이 이사부, 이간, 내예부, 대야간, 무력 등 10여 명의 고관에게 일러 야이차의 공 을 표창하여 앞으로도 야이차와같이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포상을 내리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비문에 씌어진 바로는 진흥왕 6년에서 11년 사이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남아 있는 비문에선 적성이라는 말이 세 번쯤 나오는데 그 당시 적성은 고구려 땅이었다. 그것을 보면 진흥왕 때에 적성현을 빼앗고 본격적인 거점을 마련 한 것으로 보인다. 적성산성은 사적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고 적성비는 국보 19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적성산성을 바라본 우리들은 다시 내려와 단성향교를 지난다. 단양군수 지종원, 군수 박초양, 관찰사 이아무개의 비 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우리는 다시 포장도로에 접어들어 우화교 羽 化 橋 를 지난다. 중방과 하방리를 이어주었던 단양천의 대표적인 우화교는 당초 돌다리였다가 수해를 입고 콘크리트로 모습을 바꾼 다리이다. 이곳 장회에는 조선 영조 때의 구두쇠였던 조륵에 관한 얘기가 남아 있다. 음성에서 살던 자린고비가 어느 날 장독 뚜껑을 벗겨 햇볕을 쬐고 있던 중 파리 한 마리가 날아와 장을 빨아먹고 날아갔다. 이를 본 자린고비는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까와 파리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충주를 지나 단양까지 쫓아온 자린고비는 남한강을 건너는 도중 그만 파리를 놓치고 말았다. 자린고비는 발을 동동 구르며 '장외 장외'라고 소리치며 분해했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파리를 놓친 이 곳을 장외라고 불렀고, 세월이 흐르면서 장회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의 장회여울은 남한강 줄기에서도 급류가 심한 곳이라 노를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지 않고 노에서 손만 떼면 금 세 도로 흘러 내려가므로 오가던 배와 뗏목이 무진 애를 써야 했던 곳이다. 적성면 성곡리 석지로 건너가는 나루가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49

50 장회나루였고 장회여울 남쪽에 있는 삿갓여울은 기암절벽이 흐르는 물을 막고 있어서 삿갓여울이라고 불렀다. 장회탄 아래에 있는 구담봉 龜 潭 峰 은 소 가운데에 있는 바위가 모두 거북 무늬로 되어 있고 절벽의 돌이 모두 거북처 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울같이 맑은 물이 소를 이루어서 봄꽃, 가을 단풍 때 아름다운 경치가 물 속에 비치니 배를 띄우고 놀면 아래위로 꽃 속이 되어 그야말로 신선놀이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급제 황준량, 율곡 이이 등이 이곳의 경치를 시를 지어 극구 찬양하였다. 옥순봉 玉 筍 峰 은 희고 푸른 암봉들이 비온 후 죽순이 솟듯 이 미끈하고 우뚝하게 줄지어 있으며 소금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강 건너가 교리이고 배는 "갈수록 물은 겹겹이요, 또 산은 거듭거듭인데 약간의 민가는 그림 속이로다"라고 신개라는 사람이 노래했던 청풍나루에 닿는다. 청풍나루에서 북진나루로 건너던 나루터는 제 기능을 잃어버린 채 옅은 운무 속 에 잠겨 있을 뿐이다.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군 청풍면은 1985년 충주 다목적댐이 완공되면서 27개 마을 가운데 겨우 두 마을만이 온전히 남고 나머지는 충주호에 잠기고 말았다. 조선시대까지 제천 지역의 중심역할을 했던 청풍은 악성 우륵의 고향이었고 조선 현종 때는 왕후의 관향이라고 하여 충청도에서 유일한 도호부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청풍면의 중심지였던 읍리의 강가에 있는 한벽루가 시인 묵객들을 불러들였고 남한강가 북진나루에 서던 청풍장은 제천 지역을 주무르던 가장 큰 시장이었다. 소금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과 비누, 석유, 성냥 등 온갖 농산물이 거래되 었던 청풍장의 북진나루에는 서울에서 오는 돛단배들이 가지고 오는 여러 물품들을 받는 봇짐장수들의 발길이 부산 했다고 한다. 번성했던 읍내와 북창진 그리고 북진나루를 지키던 느티나무도 물에 잠겨버리고 수몰지구에 서 있던 문 화재들은 물태리에 있는 청풍문화재단지에 옮겨지게 되었다. 충주시 종민동과 중원군 동량면 조동리 사이의 남한강에 '중부지방의 지도를 바꾼' 충주다목적댐의 착공식을 가졌던 것은 1980년 1월 10일이었다. 높이가 97.5m 길이가 464m로 국내 최대규모의 콘크리트 중력댐인 충주다목적댐은 총저 수량이 27억 5,000만 톤이며 댐의 연평균 유입량은 44억 8200만 톤이며 만수위 때의 수면 면적은 97km2로 우리나라 최대의 담수호라고 할 수 있다. 1985년에 완공된 충주다목적댐으로 인하여 충주시와 중원군, 제원군, 단양군의 101개 마을의 8,217가구가 물에 잠겼고 66.48km2가 수몰되었으며 수몰주민 49,627명을 위하여 곳곳에 수몰이주단지 및 단양 신도시가 건설되었다. 댐의 건설로 13억 톤의 생활용수와 12억 톤의 관개용수, 8억 톤의 공업용수를 공급하게 되었고 홍수 조절량은 6억 톤이다. 시설발전용량은 40만kw로 연간 5천만 달러의 유류대체 효과를 얻게 되었다. 이 댐의 건설은 서울과 인천을 포함한 한강 유역권에 사는 사람들의 물 문제를 해결해 줌으로써 그 혜택은 외지 사 람들이 더 많이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강 건너 봉골의 만마루마을은 아침 안개 속에 고즈넉하다. 그렇다. 흐르는 물길 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 이 행복감은, 강길을 따라 걸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고적 조에 탄금대는 견문산에 있다. 푸른 벽이 낭떠러지가 져서 높이가 20여 길이요, 그 위에 소나무. 참나무가 울창하여 양진명소 楊 津 溟 所 에 굽어 임하고 있는데, 우륵 于 勒 이 거문고를 타던 곳이다. 고 실 려 있는 탄금대는 임진왜란 때에 신립 장군이 휘하에 8,000여 병사를 거느리고 배수진을 치고서 문경새재를 넘어 밀 고 올라오던 왜장 가등청정과 소서행장을 맞아 분전하였으나, 참패하자 천추의 한을 품고 투신 자결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천삼백 리 한강 다섯 번 째를 걷는다.단양읍에서 충주댐 거쳐 원주 부론면까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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