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87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 -6.25 전쟁기를중심으로 - 배인교 목차 Ⅰ. 머리말 Ⅱ. 6.25 전쟁기북한의군중음악 Ⅲ. 6.25 전쟁기화선음악 Ⅳ. 맺음말 : 선군시대와화선 ( 火線 ) 음악 Ⅰ. 머리말 북한에서 조국해방전쟁시기 라고부르는 6.25 전쟁 1) 기는 1948 년남북한단독정부수립에이어남북분단고착의계기가된한국현대사의중요한사건이있었던시기이다. 그리고전쟁은남과북모두에게큰피해를준비극이었던점은재론할여지도없거니와북한에서는이시기에김일성유일체제의확립을위해소위남로당계가숙청되고연안파와소련파제거의계기를마련하였으며, 음악계도이러한정치적영향을받았다. 그러나그간남한의음악학계에서 1950 년 6월부터 1953 년 7월의전쟁기 * 이글은 2014 년정부 ( 교육부 ) 의재원으로한국연구재단의지원을받아수행된연구임. (NRF-2014S1A5B8067326) 1) 연구자의견해에따라이시기를칭하는용어로한국전쟁과 6.25 전쟁등을사용하나, 이글에서는남한정부에서공식적으로사용하고있는 <6.25 전쟁 > 이라는명칭을사용한다.
288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간동안있었던음악활동에대한연구는진행 2) 된바있으나전쟁중국군들에게전쟁을독려하고후방의민간인들에게는전쟁승리의희망을부여할수있는전쟁터의군인들을대상으로연행 ( 혹은공연 ) 되었던음악활동에대하여그간주목하지못하였던것이사실이다. 그러나남한과는달리북한에서는 화선음악 이라는특정명칭을부여하며연구를진척시켜왔다. 따라서이글은남한에서관심을갖지않았던전쟁기군대음악, 그리고그중에서도북한측의 화선음악 에대한연구를남한학계에알림으로써화선음악의의미를상정해보는글이라고할수있다. 6.25 전쟁기북한의음악활동을검토할수있는북한의문헌으로는해방후조선음악이있다. 이단행본은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가 1956 년에발행한것과 1979 년문예출판사에서발행한두종이있다. 이중 1956 년은북한에서반종파투쟁이진행되던시기이며, 1979 년은김일성유일체제의확립이후 1970 년대문화예술의 대전성기 로평가되던경험이반영된시기이므로각각의문헌에는약간다른정치적견해를보인다고할수있다. 그러나대체적인내용은대동소이하며 1979 년의것에는김일성의교시와말이매장의처음을장식하고있어 1958 년종파투쟁이후수령으로군림한이후의위상을드러낸다고볼수있다. 이와함께이시기에출판된인민교양을위한악보집과문건들을바탕으로전쟁기북한음악사의양상을살펴보도록하겠다. 이러한자료를대상으로 2장에서는전쟁기북한음악계의활동을군중음 2) 제갈삼, 한국전쟁기부산음악의실상 : 음악인 음악단체 연주회장 감상실등을중심으로, 음악학 ( 서울 : 한국음악학회, 2001), 제 8 호, 131-84 쪽 ; 김창욱, 한국전쟁기부산음악의사회사, 음악학 ( 서울 : 한국음악학회, 2001), 제 8 호, 85-129 쪽 ; 조성환, 한국전쟁당시의윤이상동요연구 : 1952 년에간행된국민학교새음악을중심으로, 남북문화예술연구 ( 서울 : 남북문화예술학회, 2008), 제 2 호, 303-37 쪽 ; 김희진, 20 세기중반대한민국군악조직의교육적기능, 음악학 ( 서울 : 한국음악학회, 2013), 제 24 호, 7-38 쪽 ; 조은정, 한국전쟁과문화 ( 인 ) 의배치 - 적치 90 일 의선전선동사업과문화공작대활동, 반교어문연구 ( 충남 : 반교어문학회, 2014), 제 38 집, 453-93 쪽 ; 김희진, 즐거움과국가 : 1950 년대음악교과서에담긴국가주의, 음악과민족 ( 부산 : 민족음악학회, 2016), 제 51 호, 157-82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89 악의관점에서정리할것이며, 3장에서는북한이말하는화선음악이무엇인지구체적으로검토해봄으로써이것이갖는현대북한의정치적, 혹은음악사적의미가무엇인지살펴보도록하겠다. 그러나전쟁기음악의이해를위해전쟁을전후한북한음악상황에대한검토가필요하므로경우에따라전쟁전의상황을서술해야할경우해당부분에서구체적인설명을덧붙이도록하겠다. 또한전쟁기북한의인민군이향유했던구체적인음악의내용과연주곡목, 그리고각각의음악작품분석과관련된사항은고를달리하도록하겠다. 남한과북한의전쟁발발후 70여년이되어가는시점에이와같은전쟁기북한음악에대한기초적인이해는남북한통일이후통합음악사서술의기초가될것으로사료된다. Ⅱ. 6.25 전쟁기북한의군중음악 1. 군중음악의창작 1946 년북한지역에서는사회주의적성향을가졌던정치지도자들이모여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구성하였으며위원장으로김일성이임명되었다. 그리고북조선음악건설동맹 (1946.3.25.~1946.10.10.)- 북조선음악동맹 (1946~1 951.3.5.)- 조선음악동맹 (1951.3.12.~1953.9.28.) 의주도하에북한에서는체제에부합하면서도인민성에기초한새로운음악을만드는작업에집중하였다. 이러한상황은북조선음악동맹의 1949 년과 1950 년창작계획표 3) 를보더라도북한체제성립초기의북한음악계의화두는새로운악곡창작에있음을알수있다. 3) 조선중앙년감 -1950 년판 ( 평양 : 조선중앙통신사, 1950), 357 쪽.
290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전쟁발발전인 1946 년에창작 보급된 < 김일성장군의노래 >( 리찬작사, 김원균작곡 ) 와 1947 에발표된 < 애국가 >( 박세영작사, 김원균작곡 ) 등과함께 1947 년부터 1953 년까지창작된악곡의수는 1,082 곡에이른다. 4) 조선작곡가동맹에서밝힌창작곡수와해방후조선음악에빠져있지만발견된악보집을더하여연도별로정리하면다음의 < 표 2> 5) 와같다. < 표 2> 1947 년 ~1953 년간창작곡수 가요 합창 실내악 관현악 무용곡 가극 악보집 1947 39 1 8 5 1 15 인민가요집 1948 22 11 10 4 4 14 1949 31 7 6 9 5 9 조쏘가요 100곡집 1950 50 19 5 8 3 12 인민가요 1951 122 56 56 15 22 2 1952 177 40 18 12 23 승리의노래영광의노래집 1953 140 46 19 31 5 합계 581 180 85 78 78 80 < 표 2> 에서 1949 년에출판된악보집조쏘가요 100 곡집은해방후조선 < 표 1> 音樂同盟創作計劃表 동요 가요 실내악곡 관악곡 가극 무용 통계 1949 140 180 12 20 5 1 358 1950 156 189 14 24 5 5 393 계 296 369 26 44 10 6 751 4) 무기명, 조선작곡가동맹연혁 1955 년 8 월현재 -, 해방후조선음악 ( 평양 :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 1956), 234-42 쪽. 5) 표 2 에서합창은오라토리오와칸타타, 실내악은독창곡, 가극은단막및창극, 오페렛타, 쓰켓취, 1949 년과 1951~1953 년의관현악에는영화음악을포함한다고하였다. 다만 1952~1953 년가요에는중창이포함되었다고밝히고있음에도 1953 년에중창곡을별치하였으나표 2 에서는포함하여작성하였다.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91 음악 (1956) 에는 100 곡집으로만언급된악보집으로, 원래이름인조쏘가요100 곡집으로넣었다. 그리고 1950 년에출판된인민가요는 1950 년 7월에출판된악보집이다. 모두 16곡을담고있으나해방후조선음악에언급되지않아추가하였다. < 표 2> 를보면 1950 년전쟁발발이후가요를비롯한성악곡의창작수가급격히증가한것을볼수있다. 특히전쟁기인 1951 년부터 1953 년에창작된가요는 439 곡, 합창곡 142 곡으로전체악곡수의절반을넘는다. 이는전쟁에참여하는인민군을독려하는동시에연주의기동성과빠른보급속도를고려한결과로보인다. < 그림 1> 조쏘가요 100 곡집표지 한편 1950 년 7월에평양에서출판된인민가요와같은시기에남한에서출판된악보집인인민가요집도언급할필요가있다. 남조선음악동맹에서편집하고 1950 년 7월 16일조선인민의용군본부문화선전부가발행한인민가요집에는모두 18곡이수록되어있으며인민가요의수록곡과동일한악곡들이보인다. 그리고인민가요는숫자보로기록되어있는반면, 인민가요집은 5선보로출판되었다.
292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 그림 2> 북한인민가요 < 그림 3> 남한인민가요집 < 그림 4> 인민가요중 < 인민항쟁가 > < 그림 5> 인민가요집중 < 인민항쟁가 > 전쟁직후인 1950 년 7월에같이출판된남북한의악보집을보면김순남작곡의노래가모두네곡씩수록되어있으며 1952 년김순남의숙청으로인해그의악보가수록된악보집이출판의중요성에도불구하고해방후조선음악에삭제된것으로보인다.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93 < 표 3> 인민가요와인민가요집의수록곡비교 인민가요 ( 국립출판사 ) (16 곡 ) 인민가요집 ( 남조선음악동맹 ) (18 곡 ) 쓰딸린대원수의노래 홍철민시 리면상곡 김일성장군의노래 리찬사 김원균곡 김일성장군의노래 리찬시 김원균곡 인민공화국선포의노래 김우철시 박한규곡 인민공화국선포의노래 김우철시 박한규곡해방의노래김순남곡 인민군행진곡 박세영시 정윤성곡 인민항쟁가 임화시 김순남곡 경비대행진곡 박세영시 김순남곡 구국투쟁가 리원우사 박한규곡 강철의부대 리호남시 박한규곡 투쟁가 김원균사 김원균곡 항공사의노래 김북원시 전태경곡 빨찌산의노래 박한규곡 해군행진곡 김순석시 박한규곡 제주도유격대가 박찬모사 김순남곡 빨찌산의노래김순석시 박한규곡인민군행진곡 작사작곡不記 4> 와다름 인민항쟁가 림화시 김순남곡 우리해방군 작사작곡不記 청년행진곡 김련호시 김원균곡 인민의영예 작사작곡不記 녀성의노래 리원우시 김옥성곡 건설의아침 리찬사 박광우곡 소년단행진곡 홍순철시 리면상곡 자랑하자조선 구경순사 리면상곡 로동자의노래 김순석시 김순남곡 인민행진곡 홍철민시 리면상곡 밭갈이타령 김우철시 전태경곡 로동자의노래 김순석시 김순남곡 조쏘친선의노래 박세영시 김순남곡 민주여성의노래 작사작곡不記 세계민주청년동맹가 청년행진곡 작사작곡不記 작사작곡不記 1950 년에보급된노래악보집에서보듯이성악곡은전쟁기에많이창작되었으며, 이는해방후조선음악에소개된창작악곡을검토해보아도알수있다. 이와함께전쟁이한창이었던 1951 년 6월에는작가와예술인에대한김일성의담화가발표되었으며, 문학예술 1951 년 3호에전체작가예
294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술가들에게주신김일성장군의격려의말씀 6) 이라는제목으로수록되었다. 김일성은이담화에서작가와예술인들은전쟁기에많은문학예술작품을창작하여야하며, 그안에숭고한애국심, 민족에대한높은자부심, 인민군대의영웅성과완강성의묘사, 인민과군대에승리에대한신심의고무, 적에대한증오심을담으라고요구한다. 1951 년김일성의담화는이후해방후조선음악의서술에영향을미쳤으며, 담화에서제시된내용을바탕으로음악창작상황과장르등을서술하였다. 1956 년판과 1979 년판해방후조선음악에소개된악곡명을정리하면다음의표와같다. 갈래 조국보위주제 군가, 행진곡 중창 로만쓰 - 가요 민요풍의노래 곡명 조국보위의노래 ( 리면상 ), 강철의대오는전진한다 ( 김원균 ), 조선인민군찬가 ( 건태경 ), 보위행진곡 ( 김옥성 ), 섬멸의노래 ( 김옥성 ), 전진또전진 ( 황학근 ) 해방지구인민의노래, 어뢰정의노래 ( 리면상 ), 서울전차사단의노래 ( 황학근 ), 후방전선의노래 ( 황학근 ), 락동강을건너서 ( 김원균 ) 정찰병의노래 ( 김옥성 ), 간호원의노래 ( 윤복기 ), 심산속의오솔길 ( 최수동 ), 통쾌한운전사 ( 정진옥 ), 저격수의노래 ( 모일영 ), 샘물터에서 ( 윤승진 ), 풍년맞이도리깨 ( 윤승진 ), 물레야돌아라 ( 김영규 ), 아무도몰라 ( 박한규 ), 우리님영웅되셨네 ( 정진옥 ) 김옥성작곡 : 전호속의나의노래리면상작곡 : 내고향의작은집, 어머니의노래, 문경고개, 압록강 2 천리 매봉산타령 ( 유정철 ), 얼룩소야어서가자 ( 김진명 ) 국제친선중국인민지원군찬가 ( 리면상 ), 북경에서온전우 ( 윤복기 ) 합창어랑천 ( 윤영기 ), 보천보의횃불 ( 황순현 ), 백두산 ( 김영배 ), 조선은싸운다 ( 리정언 ) 무용곡조국의아들 ( 윤복기 ) 씸포니 - 포에마 < 표 4> 1956 년출판해방후조선음악에소개된창작악곡 승리를향하여 ( 리정언 ) 단막가극앞마을뒷마을 ( 리면상 ), 우물가에서 ( 리면상 ) 6) 김일성, 전체작가예술가들에게주신김일성장군의격려의말씀, 문학예술 ( 평양 : 문학예술사, 1951), 6 월호 (4 권 3 호 ), 4-11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95 < 표 5> 1979 년출판해방후조선음악에소개된창작악곡 갈래 곡명 가요중창합창관현악 행진곡 서정가요 민요식의노래 남성중창 여성중창 가요합창 교성곡 무반주 교향시 연곡 우리의최고사령관, 결전의길로, 진군또진군, 청년유격대, 강철의대오는전진한다, 해안포병의노래 내고향의정든집, 전호속의나의노래, 문경고개전사와처녀, 압록강 2천리, 어머니의노래, 아무도몰라 얼룩소야어서가자, 물레야동무야 자동차운전사의노래, 저격수의노래, 우리의자랑, 비행기사냥군조의노래, 풍년맞이도리깨 샘물터에서, 우리님영웅되셨네 합창곡으로작곡 : 결전의길로, 영웅들에게영광이있으라, 복수의노래합창곡으로편곡 : 조국보위의노래, 진군또진군, 민요련곡, 인민가요련곡 단악장 : 조선은싸운다, 보천보의홰불다악장 : 조국의고지, 백두산 건설의노래 승리를향하여, 승리 인민가요련곡 : 승리의거류민요련곡 : 보리타작, 다악장민요조곡 취주악가극경악극창극아동음악 근위기치앞으로, 전차행진곡가요련곡, 민요련곡 단막가극 : 진격의노래 / 서정가극 : 우물가에서경가극 : 앞마을뒤마을 노래부르며앞으로, 파종의노래, 모내기전선진달래, 즐거운마을 춘향전, 리순신장군 소년빨찌산의노래 위의 < 표 4> 와 < 표 5> 에서각각음영처리한작품은대표작으로언급된 곡이다. 먼저 1952 년전쟁기에숙청당한김순남작곡의곡은앞서언급한 바와같이 1956 년판에서이미제외되었음을알수있다. 또한 1956 년판의
296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군가및행진곡으로소개된노래들이 1979 년에는삭제된것을볼수있다. 국제친선과관련한부분외에도 < 해방지구인민의노래 > 와 < 후방전선의노래 >, 합창곡 < 어랑천 > 은조선노래대전집에도보이지않아삭제된이유에대한의문이남는다. 두시기의해방후조선음악을보면일부작품에서악곡명이바뀐것을볼수있다. 1956 년판의김옥성작곡 < 섬멸의노래 > 는 1979 년판행진곡항목의 < 결전의길로 > 이며, 악곡명이바뀐것이다. < 결전의길로 > 는 1951 년에창작되었으며 인민군의백절불굴의투지와대중적영웅주의를노래한전투적인가요 7) 이다. 이노래의가사는 3절로이루어진각절의끝부분에 나가자동무여섬멸의길로 가들어있고, 후렴의끝부분에는 나가자동무여결전의길로 를부르도록한것으로보아 1956 년이후 < 결전의길로 > 로악곡명이바뀐것이라할수있다. 이렇게곡명이바뀐것은리면상작곡의 < 내고향의작은집 > 에서도찾을수있다. 이노래는 1979 년판에서 < 내고향의정든집 > 으로바뀌어있다. 그리고 1956 년판의내용에비해 1979 년에는외래어장르를모두조선어로바꾸었으며, 대표곡으로제시한작품들도약간다르다. 먼저창작된악곡을주제별로나눈후에장르별로재배치하였다. 주제는 1951 년김일성의담화내용에따라 미제침략자들을반대하여싸우는인민군용사들과인민들의숭고한애국심과영웅성, 필승의신념과그에기초한혁명적락관주의, 원쑤에대한불타는증오심과영웅적인투쟁모습 8) 으로나누었다. 그리고조국보위주제중애국주의의대표곡으로 내고향의정든집, 전호속의나의노래, 녀성중창 봄노래 를, 인민군대와인민들이발휘한대중적영웅주의와완강성 을표현한작품으로 가요들인 결전의길로 와 문경고개, 합창들인 조선은싸운다, 조국의고지, 교향시 승리를향하여 를들고있다. 또한 전시생산을위한후방인민들의영웅적 7) 사회과학원, DVD 문학예술대사전 ( 평양 : 사회과학원, 2006). 8) 리히림, 해방후조선음악 ( 평양 : 문예출판사, 1979), 103-104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97 투쟁을표현한 가요 압록강 2천리, 가극 우물가에서, 앞마을뒤마을 을제시하였다. 그리고 인민군대와인민들에게승리의신심을북돋아주는데이바지 한작품으로중창 < 샘물터에서 > 와중창 < 자동차운전사의노래 > 를들면서이들노래들은 적의취약성을폭로하면서우리인민군대의혁명적락관주의정신을표현한작품 이라고평가 9) 한후장르별로악곡을소개하였다. 이에더하여 1979 년판은이전에없던새로운장르인무반주합창곡과관현악연곡 취주악 경악극 아동음악을추가하였다. 예를들어민요를편곡하거나민요선율에기초한무반주합창곡 < 건설의노래 > 10) 나가요나민요곡을묶어서관현악곡으로만든연곡형식의관현악 < 승리의거류 > < 보리타작 > 다악장 < 민요조곡 > 과전시취주악곡인 < 근위기치앞으로 > < 전차행진곡 > 과취주악으로연주하는 < 가요연곡 > 과 < 민요연곡 >, 경악극 노래부르며앞으로 파종의노래 모내기전선 등선동적인성격을가진것 과 진달래 즐거운마을 등생활적인것, 그리고창극은 < 춘향전 > 과 < 리순신장군 > 과아동음악 < 소년빨찌산의노래 > 11) 등이다. 그러나 1956 년에출판된것이든 1979 년의것이든전쟁시기에많은노래들이창작되어인민군대와후방의북한인민들에게보급하고부르게하며독려하였음을짐작할수있다. 2. 군중가요의보급체계구축 북한체제성립이후북한의문화정책은군중계몽과인민교양사업에 집중하였다. 그리고그중심에는군중가요의창작과보급체계를구축하려 9) 리히림, 앞의책, 104-105 쪽. 10) 리히림, 앞의책, 118 쪽. 11) 리히림, 앞의책, 120-24 쪽.
298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는의지가있었다. 앞절에서가요를비롯한새로운악곡의창작에힘을기울였던음악동맹의활동상을작품을수록한악보집과당시에창작된악곡을중심으로살펴보았다. 이제이러한음악들이인민속으로파고들어가작동할수있는조직과체제의구축양상을살펴보아야한다. 북한체제성립초기의인민조직체계에대한연구 12) 에서사용된 북조선로동당강원도인제군당상무위원회회의록 (1948 년 2월 4일 ~1949 년 12 월 27일 ) 13) 에는전쟁전군중음악보급을위한조직적이고체계적인의양상을살펴볼수있다. 즉이지역에구축되기시작한민청 직맹 농맹 여맹등이군민들에대한선전과동원, 가창지도및악대동원, 연예조직구축, 농악대와학생가창대활동등을책임지면서기념행사를계획하고있는것 14) 으로보아군면리단위까지체계적으로다양한조직들이활동하였음을알수있다. 이러한인민대상의조직체와함께북조선직업총동맹군중문화부에서 1949 년에발간한음악써클원수첩 ( 군중문화총서 6), 영화써클원수첩 ( 군중문화총서 4), 연극써클원의수첩 ( 군중문화총서 1) 과같은출판물들을바탕으로체제성립초기부터인민들이자발적으로조직하는문화관련써클결성을추동하였고, 실제다양한서클이존재하였음을알수있다. 이중음악써클은 1948 년말부터 1949 년 3월에북한에조직된문화서클의수에서보듯이직장의경우 1740 개, 농어촌지역포괄서클에서는 12098 개가있었다 15) 고하니수적으로가장우세한분야였음을알수있다. 12) 임경화, 북한노래의탄생 사회주의체제형성기인민가요성립고찰 -, 북한연구학회보 ( 서울 : 북한연구학회, 2011), 제 15 권제 2 호, 327-52 쪽 ; 신효숙, 북한의문화형성과대중교육 ( 서울 : 교육과학사, 2001); 김태우, 1948 년 -49 년북한농촌의선전선동사업 : 강원도인제군의사례, 역사와현실 ( 서울 : 한국역사연구회, 2006), 제 60 호, 97-139 쪽. 13) 북한관계사료집 2( 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1984); 북한관계사료집 3( 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1985) 14) 임경화, 북한노래의탄생 사회주의체제형성기인민가요성립고찰 -, 북한연구학회보 ( 서울 : 북한연구학회, 2011), 제 15 권제 2 호, 343-45 쪽참조. 15) 임경화, 앞의글, 346 쪽. < 표 4> 북한에조직된문화서클수현황.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299 문예써클결성은군대도예외는아니어서 1950 년 3 월에민족보위성문 화훈련국에서출판한 군중문화사업참고재료제 1 집에의하면 중대음 악써클원가운데매개분대에서한명씩은다참가하고있을것이다. 16) 라고하고있듯이인민군대에는 6.25 전쟁발발이전부터군중문화사업의일환으로군대내음악써클이조직되어있었음을짐작할수있다. 이렇게인민군대내의노래보급은음악써클을통해조직적으로진행되었다. 그리고모든노래보급사업은반드시문화부중대장의계획하에계획적으로진행하여야한다고명시하였다. 군중문화사업참고재료제1집에의하면각분대의음악써클책임자는 새로나온노래를자기가연구했거나또는련대군악대에올라가서배워 써클원에게가르쳐야한다. 그리고음악써클책임자는써클원들만으로조직하여 2부, 혹은 3부합창으로부를수있도록하여야하며, 충분한감정표현을하여모범을보여야한다고하였다. 17) 특히합창의경우, 대체로제창이나 2부합창으로만들되, 독창 윤창 2부합창을다른형식과결합시켜 좀더재미있는형식으로발전 시키도록요구받았으며동시에연곡형식도만들어부르도록하였다. 이러한연곡형식은짧은곡들을세개혹은네개정도를골라하나의줄거리로만들어색다르게연주할수있도록하는데중점을둔것으로보인다. 연곡의종류는 민요련곡인민가요련곡군가련곡또는인민가요와민요를뒤섞어서연 16) 작자미상, 중대노래보급사업에대하여, 군중문화사업참고재료제 1집 ( 평양 : 민족보위성문화훈련국, 1950), 5쪽. 17) 작자미상, 중대노래보급사업에대하여, 군중문화사업참고재료제 1 집 (1950), 5 쪽.
300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주하는련곡 등이있으며, 독창과제창을결합한형식은 칭에나칭칭나네 같은것을말하고제창과륜창과독창을결합한형식은 쓰딸린대원수의노래 라고하였다. 18) 이렇게전쟁전에북한에서는지역의인민들을대상으로한문예조직이군면리단위까지이루어져있었으며, 군대내에서도다양한문예조직, 특히노래보급조직이구축되어있었음을알수있다. 이러한조직들은 6.25 전쟁시기에활동한인민군화선예술선전대의모체가되었다고할수있다. Ⅲ. 6.25 전쟁기화선음악 19) 화선음악은전쟁에서전투가벌어지는최전선에서있었던음악행위전반을뜻하는말로전쟁의최전선인화선 ( 火線 ) 에예술과공연, 악기등이결합하여화선예술, 화선공연, 화선악기등의용어를사용하고있다. 이장에서는전문음악단체가진행한화선예술공연과인민군대내의음악조직에서벌인화선음악으로나누어 6.25 전쟁기북한음악의양상을군중음악을중심으로검토해보도록하겠다. 1. 위문공연형태의화선예술공연 일반적으로전쟁시기에는전문음악단체의위문공연이주를이룬다. 남한 18) 작자미상, 앞의글, 6 쪽. 19) 화선음악은화선예술, 화선공연, 화선악기등을포괄하는용어로보인다. 또한화선음악은북한에서실제사용하는북한용어이다. 2015 년조선예술제 8 호에수록된김성남의글 백두산칼바람이우리를부른다 에는 적의아성을들부시는군단포의뢰성처럼드센공훈국가합창단의혁명군가가혁명의진군가로대오앞에서울리고인민군대의화선음악이천만군민의가슴에맹렬한힘을더해주고군인가족예술소조원들이안고온초소의봄향기가온나라에진동하였다. (5 쪽 ) 라는글에서도알수있다.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01 의경우 20) 일제강점기아악부의양악채보촉탁으로군무했던이종태의계획과발의로 9.28 수복이후국군장병을위문하기위한육군군예대 ( 軍藝隊 ) 를조직하였으며, 국악대 양악대 연예대등모두 3개소대를편성하였으며, 이중국악조에는제 3소대로, 성경린을대장으로하였으며, 김보남 김천흥 봉해룡 김성진 김기수 이덕환 김태섭 김만흥 강장원 김광채 심상건 이창배 고비연 이부용 김옥심 송백련 이청향 박금화등을대원으로두었다. 이들은 10월 25일서울에서출발하여평양국군병원에서상이군인에대한위문공연과극장공연을하였으며평양및사리원지고의일선위문과문화공작의임무를마치고 11월 3일에서울로돌아왔다. 그리고이후전선에서의활동내용은확인할수없다. 이러한국가적인차원에서의위문공연형태는개별적으로공연단체를결성하여지속되었던것으로보인다. 판소리명창박록주의증언에서비공식적으로, 혹은개인적인부의축적을위해순회공연이진행되었음은짐작할수있다. 박록주는한국일보에연재한 나의이력서 에서전쟁기에국극사단원들을이끌고동부전선을순회하며국극활동을했던기억을술회하였다. < 인용 1> 위문공연은거의가밤에했다. 낮에는싸우고밤이돼서총성이뜸해지면곳곳에서장병들이모여들어우리의연극을구경했다. 밤에공연하자니전등불이없어군용차의 헤들라이트 를켜고창극을했다. 꺼졌다켜졌다하는조명으로는지프의 헤들라이트 를이용했다. 그러나너무불이밝으면적의포격을받을까봐겁이나서수시로끄기도했다. 21) 한편북한의군부대위문공연은조직적인계획속에서이루어진듯하다. 남한에도잘알려진북한연주단체의공연은 1950 년 7월 14일에있었던조선인민군협주단의서울부민관공연이다. 이날조선인민군협주단의 서울해방경축공연 레퍼토리 22) 는합창 < 김일성장군의노래 >, < 어머니의노래 >, 20) 천영조, 국악연감 ( 서울 : 국립국악원, 1982), 59-61 쪽. 21) 박록주, 나의이력서 29. 다시일선에, 한국일보, 1974 년 2 월 15 일자기사. 22) 천현식, 북한의가극연구 ( 서울 : 선인, 2013), 503 쪽.
302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 압록강 >, 노래와춤 < 해방된마을에서의휴식 >, 관현악 < 고향 > 이었다. 이후조선인민군협주단은 4개의소편대로나누어 1조는전선동부 ( 낙동강계선까지 ), 2조는전선서부 ( 대전과광주, 순천방면 ), 3조는평양주변, 4조는서울주변에서하루 2~3 차례의공연을벌여인민군대를고무 23) 하였다. 내무성협주단은서울국도극장에서 1950 년 7월부터 8월까지공연하였는데, 이들의공연레퍼토리는합창 < 김일성장군의노래 > < 인민공화국선포의노래 > < 법성포배노래 > < 방아노래 >, 독창 < 산업건국의노래 > < 밭갈이노래 > < 조국보위의노래 > < 진군또진군 >, 트럼베트독주와취주악합주 < 산으로바다로가자 >( 정시형지휘 ), 관현악 < 환희 >( 박한민지휘 ) 24) 이다. 그리고국립예술극장은 1951 년 6월 17일부터 7월 5일까지대남예술공작대를편성하여남한으로들어왔으며, 다시 7대의소편대로나누고조선인민군협주단과연합하여여수, 대구까지인민군부대를찾아가다양한종목의공연을 23회진행하면서화선예술활동 25) 하였다고한다. 전쟁이한반도전역으로확대되면서전시에중앙음악단체들과각도립음악단체들은상술한바와같이한반도전역으로순회공연을수행하였으나순탄한길은아니었다. 리히림은 피어린흔적 이라고하면서 그들은순회도중원쑤들의맹폭하에서때로는극중인물로분장한전우를잃었으며때로는평북도이동예술대와같이전원이희생 되었으며, 현지파견된종군작곡가인황학근과전태경, 평론가인박영근과리범준등이이때전사하였음 26) 을밝혔다. 전쟁초기에대규모의연주단이군대를따라남진하였고남한의공세와함께소편대로나누어순회공연을진행하였다. 이때소편대공연의형태는 23) 리히림, 앞의책, 128 쪽. 24) 천현식, 앞의책, 503 쪽. 25) 리히림, 앞의책, 127 쪽 ; 준박사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사회전문예술단체들의공연활동,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2), 제 7 호, 23-24 쪽. 26) 리히림, 해방후 10 년간의조선음악, 해방후조선음악 ( 평양 :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 1956), 43-44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03 제1부에서는독창과중창등음악소품들과무용소품들을, 제2부에서는단막가극혹은음악이야기들로묶어진것으로하여매우다채로웠으며따라서군인들과인민들의환영을받았다. 27) 고한다. 또한이시기에중창부문이크게발달하였는데, 손풍금반주에맞추어간단한생활적무대동작을배합하여작품의주제사상을대중에게친근하게전달하는새로운연주형식을개척 28) 하기도하였다. 중앙음악단체의화선예술은조선인민군협주단의연주활동으로집중된다. 6.25 전쟁시기조선인민군협주단 예술인들은공격전투를앞둔집결구역에서격식과틀이없이전투복장에위장을하고전투원들과함께어울려노래도부르고춤도 추면서자신들의임무를수행하였으며, 전투적분위기가절정에다달았을때조선인민군협주단배우들은때를놓치지않고혁명가요와민요를연주하면서전투원들과함께춤판을벌렸다. 29) 고한다. 1952 년이후전선이고착화되면서조선인민군협주단과해군협주단원 100 여명이전선사령부에배속되어공연활동을벌였다. 이시기인민군협주단의예술인들은전호 갱도 행군길 숲속의잔디밭등장소의구애됨없이화선예술활동을벌였다. 또한 낮에는위장을하고악기와의상을메고몇십리씩행군해가며공연을벌렸고밤에는자동차적재함을몇개씩합쳐놓고자동차전조등을조명삼아전투적으로공연을진행 하였으며, 소편대공연인만큼 성악배우가춤도추고무용배우는노래를불렀으며기악연주가들은재담과만담에도출연하는만능배우로 출연하였다. 그리고이들은전시가요 < 자동차운전사의노래 > 와 < 우리님영웅되셨네 > 와같은노래들을창작하기도하였다. 30) 27) 리히림, 앞의책, 130 쪽. 28) 리히림, 앞의책, 129 쪽. 29) 준박사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화선예술활동을벌릴데대한사상리론을내놓으시여,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1), 제 10 호, 23-24 쪽. 30) 학사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조선인민군협주단의화선에서전투적인공연활동 (2),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3), 제 3 호, 29-31 쪽.
304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2. 주체적화선음악공연과화선악기 전쟁기간동안중앙연주단체가소편대로나뉘어전선에서순회공연을했던것과함께각부대에서는화선예술선전대가조직되어최전선의인민군대를독려하였다. 전쟁발발이전북한에서는체계적인군중가요보급조직을이미갖추어놓았으며, 당연히인민군대에도조직체계는구축되어있었다고볼수있다. 이렇게전쟁이전인민군대내에조직화된다양한문예써클들이존재하였으며, 6.25 전쟁시기에조직된화선예술선전대는이들이주축이되어조직된단체라고할수있다. 즉화선예술선전대는 군단과사단들의군악대를기본모체로하여노래와춤, 화술부문에재간이있는군인들로조직 되며, 악기와함께총을가지고다니면서전투도벌리기도하여서 사단화선예술선전대를 나팔전투원 이라고도불렀다. 31) 고한다. 전시의화선예술선전대 32) 는전문예술단체와는달리항상인민군대와함께생활하면서그들에게 승리한다는확고한신념 을심어주는데노력하였다. 화선예술선전대의공연은 대체로공연을시작하기전에선전대장이새로운전투위훈에로불러일으키는연설을 2~3 분동안진행한다음공연에들어갔는데전반부에서는합창, 중창, 독창, 만창, 무용, 재담, 시랑송등다양한종목으로공연하였으며후반부에서는주로스케치또는단막극을공연 하였다. 공연의전반부에서불린노래들은인민군대의낙천적인생활을반영한노래들이많았으며, 바라이데 ( 노래와춤, 시들을배합한예술형식 ) 의장면들 에서도많이불렸다. 위에제시된종목중만창은 예리한풍자와조소의수법으로적들의부패상을폭로하는해학적인노래로서전시음악발전에서특별한자리를차지 하며 이시기창작공연된만창가운데서대표적인작품들은 공짜려행, 웃어라왓하하 등 이라고한것으로보아 31) 국립교향악단학사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조국해방전쟁시기화선예술선전대의전투적인예술활동,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6), 제 9 호, 26-27 쪽. 32) 준박사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제 2 전선부대에서의기동적인예술활동,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2), 제 6 호, 36-37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05 일제강점기의만요나만담과노래가섞여있는형태로보인다. 화선예술선전대원들은화선에서작품을자체적으로창작할뿐만아니라악기를비롯한공연기자재도모두자체해결하였다. 제2군단적후선전대가조직될당시에는 7대의관악기와 2대의현악기밖에없었으나그후적들의악기를로획하고또자체로만들어서완전히악기편성에맞게조직하여선전대활동을맹렬히 진행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적후화선예술선전대는혁명적이며전투적인예술작품을가지고기동적인예술선전활동을벌려제2전선에서싸우는인민군전투원들과인민들을힘있게불러일으키는데크게이바지 하였다고평가하였다. < 그림 7> 예술영화 < 화선에서부르던노래 >(1972 년작 ) 중 인민군의악기연주 한편 6.25 전쟁시기인민군대의화선에서의음악활동기록은 화선악기 로나타난다. < 인용 2> 흉악한원쑤를무찌르는화선에서전사들은노래를엮었다. 그들은원쑤들의폭격에쓰러진락락장송을다듬어거문고를만들었고저주로운원쑤의탄피를깎아라팔을만들었으며미제공중비적의날개를뜯어가야금열두줄을메웠다. 그들은이러한악기들로써새로운투쟁가요는물론선조대대로전해오던민요들을불렀다.( 중략 ) 그들은가렬한전쟁의 5년간에도전국군무자경연대회에빠짐없이참가하여원쑤를무찌
306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르던손에화선악기를잡고투쟁의노래를교환하였으며고상한사상예 술성을가진전사문예의자랑을떨쳤다. 33) 위의인용문에서보듯이인민군대의화선예술선전대원들은거문고와나팔, 가야금과같은악기를스스로제작하여연주에사용하였다고하며, 1953 년 5월 17일부터 28일까지모란봉지하극장에서개최되었던전국예술축전에서화선악기합주를선보여절찬 34) 을받았다. 북한의 1978 년작예술영화 < 축포가오른다 > 는이러한상황을잘보여준다. < 인용 3> 인민군전사들이혁명적락관주의에넘쳐불타는고지에서도악기를연주하고있을때 ( 중략 ) 돌출고지전투에서영웅적위훈을세운인철이네소대원들은자기들이지은노래와화선악기들을가지고평양에서열리는군문자예술축전에참가하여 ( 중략 ) 작품은가렬한싸움의불비속에서영웅으로, 화선음악가로자라나는인철, 영수, 덕삼, 은옥등인물들의다양한성격형상을통하여조국해방전쟁시기우리인민군전사들의 ( 중략 ) 무한한충실성과열렬한조국애, 불굴의투지와혁명적락관주의를생동하게보여주고있다. 35) 이영화에삽입된가요 < 화선악기좋구나 > 36) 에도전쟁중화선에서만들어 사용한새납과퉁소등의악기와이것이갖는음악적효과를가사에담고있다. 1 절 > 돌격전의만세소리새납에비껴담고 원쑤들의한숨소리퉁소통에울려보자 2 절 > 화선천리북소리두둥둥울리면 33) 리히림, 해방후 10 년간의조선음악, 해방후조선음악 ( 평양 :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 1956), 43 쪽. 34) 리히림, 해방후조선음악 ( 평양 : 문예출판사, 1979), 138 쪽. 1953 년전국예술축전에서특히사회적이목이집중된것은최전선의방어진지들에서온인민군용사들의화선악기합주였다. 화선악기합주는전시우리나라군중음악예술의획기적발전에크게기여한것으로하여축전에서높은평가를받았다. 35) 축포가오른다, DVD 문학예술대사전 ( 평양 : 사회과학원, 2006). 36) <https://www.youtube.com/watch?v=hu4jbg2wbtq>.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07 원쑤놈들얼빠져가슴이무너진다. 후렴 > 에헤에헤야 우리의자랑화선악기얼씨구좋구나 그런데 6.25 전쟁시기인민군대에서제작한화선악기의종류와수는역사적인시간의경과와함께점차확대서술되는경향을보인다. 1956 년에는거문고 가야금 나팔이었던것이 1979 년의서술에서는해금 만돌린 기타 바이올린 첼로 장구 북 나팔과함께탄피금과병금이라는악기도만들었다는것이다. < 인용 4> 슬기롭고지혜로운우리의영웅적인민군용사들은항일혁명투쟁시기조선인민혁명군대원들의자력갱생의혁명정신을본받아치렬한격전이벌어지는최전선의고지들에서손칼과도끼로피나무, 가래나무들을깎고다듬어서해금과가야금, 만도링과기타, 바이올린과첼로를비롯한정교한현악기들과장고와북등의타악기들을만들어냈다. 그들은또한포탄껍질을리용하여나팔을만들고미제의비행기잔해와락하산줄로가야금과바이올린의줄을메우고악기부속품들을만들었으며 탄피금 과 병금 도만들었다. 바로이것이조국해방전쟁시기인민군용사들의음악생활을빛나게장식한화선악기들이였다. 37) 그리고 1990 년대에가서는대폭확대되어 30여종의화선악기를만들었으며, 이는 화선악기제작소 에서제작, 보급되었다 38) 고한다. 1995 년의서술을좀더살펴보자. 우선화선악기의제작시점은 1951 년 9월동부전선의박달령과 1211 고지에서시작되었다는점이의미심장하다. 1211 고지는김일성이직접방문하여전투를격려했다는고지이며, 김일성고지라고도불린다. 박달령전투에서 타다남은구룡대나무그루터기를손칼로잘라그것을다듬어피리를만들 었고이러한사실을김일성이알고높이치하하면서 37) 리히림, 해방후조선음악 (1979), 137 쪽. 38) 리종우, 준박사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화선악기,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5), 제 9 호, 451 쪽.
308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1951 년 11월부터전선의여러지역들에서화선악기가만들어지기시작하였다고하며, 피리와퉁소, 해금과같은민족악기들 이만들어지기시작하였다. 이러한화선악기제작은전선에급속히일반화되면서 1952 년 2월에 1211 고지에서있은부대예술소조경연에서순수화선악기로만 50명이연주한기악합주 어제보다오늘은더강하리 는전투원들의대절찬 을받았으며, 당시의신문기사를인용하면서정확성을강조하였다. < 인용 5> 신문 조선인민군 1952 년 6월 20일부 3면에서도 1211 고지에있는화선악기제작소에서가야금 2대를비롯하여바이올린, 기타, 만도린및대고, 소고등 13개의악기를제작하여 1개대의 악대 를만들었다는소식과계속하여자기들이창안제작한모든악기들을각중대에까지보내주고앞으로트럼페트까지만들겠다고결심을전하고있다. 또한전선신문 승리를위하여 1953 년 5월 11일부는 4면전면에걸쳐 우리가만든화선악기 라는표제밑에전사준동무 ( 첫화선악기제작가 ) 의화선악기제작경험에대하여소개하였다. 그리고한련합부대군의소에서간호원들과환자들이지혜를모아 해금식기타 를만들었다는소식도전하고있다. 39) 이어각전선에서만들어낸화선악기를정리하면서 민족악기로는피리 단소 저대 퉁소 쌍피리등이었으며현악기로는가야금 ( 대 소 ) 아쟁 ( 대 중 소 ) 양금 소금 해금등이었다. 그리고타악기로서는장고 북 ( 중 소 ) 꽹과리 징, 양악기에서는 현악기로서는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드라바스 기타 만도리 만도린첼로 만도라등이었고, 타악기로서는대고 소고 제금, 그리고 그밖에타악기들과 탄피금 병금 목금등도만들어져화선의정서를돋구는데 많이이용하였다는것이다. 이러한서술들을검토해보면화선악기가전선에서제작되어군대내음악써클조직과함께보급되었으며, 1953 년의화선악기합주는조선중앙연감과전쟁직후의서술로보아실제기록이었음에는틀림없다. 다만처음 39) 리종우, 앞의글 (1995), 50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09 의소박한서술이점차확대되면서체제선전에이용되고있어보인다. 이와같이전선에서제작된화선악기를바탕으로 전선고지의영웅적인민군부대예술소조원들은화선구락부를거점으로하여화선악기합주와독주, 중주, 화선악기로반주하는합창과독창, 중창, 노래이야기, 민요제창등실로다양한종목으로전투적이며혁명적인공연을진행하여전사대중들에게필승의신념을안겨주고영웅적위훈에로힘있게고무 40) 하였으며, 1952 년 2월 1211 고지에서는순수화선악기로만 50여명이연주하는화선악기합주 어제보다오늘은더강하리 를연주하여전투원들의대절찬을받았으며미제침략자들을공포에떨게하고세인을그처럼경탄 41) 시키는등화선악기와화선음악활동은인민군대의 전쟁승리에대한확고한신심과혁명적락관주의와정신도덕적우월성의뚜렷한표현으로써조국해방전쟁시기인민군용사들과인민들이높이발휘한무비의대중적영웅성, 불굴의투지와함께그들의창조적지혜와예술적재능의불멸의상징 42) 이되었다. Ⅳ. 맺음말 : 선군시대와화선 ( 火線 ) 음악 이글은 1950 년 6월부터 1953 년 7월휴전협정이체결된기간에있었던북한에서의음악지형을북한음악사의관점에서정리하고전쟁이벌어지는최전선에서진행되었다는화선음악의실체를알아보는데목적을두었었다. 이를위해 1950 년대의문헌들을중심으로전쟁기음악의양상을군중가요의창작과연주라는측면에서살펴보았으며, 전쟁기최전선에서이루어졌다는화선음악을찾아보는과정에서소박했던서술이점점화려해지고부풀려지고있음을보았다. 이를보면, 전쟁기의음악이라고할수있는남한 40) 리히림, 앞의책 (1979), 137 쪽. 41) 리종우, ( 화선예술선동 ) 혁명적이며전투적인노래높이부르며싸워이긴 1211 고지방위자들,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7), 제 12 호, 50 쪽. 42) 리히림, 앞의책 (1979), 137-38 쪽.
310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의화선음악과북한화선음악의차이는인민군대의주체성의문제로귀결된다고할수있다. 즉남한의경우국군은대체로수동적인입장에서의음악수용자로한정된다고할수있다. 그러나이에비해북한에서는수용자로써의인민군대를위한음악공연외에이들의자발적인음악활동참여에방점이찍히면서 인민주권 의실현으로화선공연활동을활용하였으며, 인민군대또한자발적참여를통해어려운난관속에서도미래에대한낙관성을놓치지않는혁명적낙관주의를일관적으로견지했다는점이다. 한편우리는 1956 년, 1979 년, 그리고 1990 년대라는시점에집중할필요가있다. 상술한바와같이 1956 년은해방후 10년이지난시점에사회주의예술의발전상을보여줄뿐만 전쟁승리 의역사를서술하는과정에서김일성중심체제로가는출발선이라고할수있다. 그리고 1979 년은 1967 년주체사상의확립이후김일성유일체제를주창하고이러한정치체제의우월성을과시할만한시간이되었다는것을의미한다. 마지막으로 1990 년대는김정일체제로가는서막이며, 1990 년대화선음악에대한기록은김정일에의해 우리민족제일주의 가주창된시기이기도한 1987 년함덕일의조국해방전쟁시기음악예술 43) 에서시작된다. 즉 1956 년과 1979 년해방후조선음악에서모두언급되지않았던김정일의업적이 1992 년 화선예술활동 으로노출되기시작하였다. 전쟁기간동안한반도에거주하지않았던김정일이 10대의어린시절에김일성의전시예술활동을함께하였으며, < 축복의노래 > 와 < 조국의품 > 과같은불후의고전적명작가요를만들어김일성을보좌하는한편 언제나싸우는인민군군인들과함께계시면서그들을혁명적락관주의와전쟁의최후승리에로힘있게불러일으키시여전시예술활동에대한위대한수령님의령도를적극보좌 하였다 44) 는등김정일수령만들기작업이시작된것이다. 43) 함덕일, 조국해방전쟁시기음악예술 ( 평양 : 사회과학원, 1987). 44) 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몸소노래를불러주시며,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2), 제 3 호, 20-21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11 항일무장투쟁을이끌었던김일성에비해군인이었던적이없었던김정일을군사지도자로만들기위해, 화선예술활동의이름을부여한것이라고할수있다. 그리고이어진김일성의사망과고난의행군시기는화선음악에대한강제소환을요구한셈이다. 즉전쟁시기동료의죽음을겪으면서도승리에대한낙관을유지하며화선연주회를벌였던것처럼전쟁기간과같은고난의행군시기도화선예술을통해충성심과투쟁정신, 혁명적낙관주의로무장시키고자함이다. 북한은 2000 년대초반에 1995 년 1월김정일이다박솔초소를현지지도한날을선군정치개시일로삼기도하였는데, 1997 년대말고난의행군종료를알리면서선군정치시대의개막을알렸으며, 이어선군정치와음악을결합하여선군음악정치라는정치용어를만들어발표한후 2000 년대초반에화선음악에대한글들이조선예술에수록되기도하였다. 2011 년 12월김정일의급작스러운사망과함께새롭게등장한김정은체제는김정일의선군정치, 음악정치를계승하였다. 그리고외신에대서특필된모란봉악단을창단하여모란봉악단의화려함을부각시키는반면반당분자들을숙청하고제거해나갔다. 한편 2012 년 7월에시범공연을했던모란봉악단은그다음달인 8월 28일선군영도개시일에즈음하여항일혁명군대와비슷한복장을한채 <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김정은동지를모시고진행한 8.25 경축모란봉악단의화선공연 > 45) 을벌였다. 그리고그다음해인 2013 년 4월 11일에도모란봉악단은 < 조선인민군제630 대련합부대를축하방문하고화선공연진행 > 46) 하였다. 김정은시대의화선공연이라는제명은여전히남과북은분단상태이고전쟁이잠시멈춘휴전상태이며, 언제든전쟁이일어날수있다는, 지금이시기도전쟁기라는것을암시한다고할수있다. bigmuse@hanmail.net 45) <https://www.youtube.com/watch?v=ugh46k6p3l8>. 46) <https://www.youtube.com/watch?v=ai3xxwdfvfy>.
312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참고문헌 < 악보집 > 남조선음악동맹편집. 인민가요집. 조선인민의용군본부문화선전부, 1950. 인민가요. 평양 : 국립출판사, 1950. 조쏘가요 100곡집. < 단행본 > 군중문화사업참고재료제1집. 평양 : 민족보위성문화훈련국, 1950. DVD 문학예술대사전. 평양 : 사회과학원, 2006. 리히림외. 해방후조선음악. 평양 :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 1956. 리히림. 해방후조선음악. 평양 : 문예출판사, 1979. 북한관계사료집 2. 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1984. 북한관계사료집 3. 서울 : 국사편찬위원회, 1985. 신효숙. 북한의문화형성과대중교육. 서울 : 교육과학사, 2001. 조선중앙년감 -1950 년판. 평양 : 조선중앙통신사, 1950. 천영조. 국악연감. 서울 : 국립국악원, 1982. 천현식. 북한의가극연구. 서울 : 선인, 2013. 함덕일. 조국해방전쟁시기음악예술. 평양 : 사회과학원, 1987. < 논문 > 김태우. 1948 년-49 년북한농촌의선전선동사업 : 강원도인제군의사례. 역사와현실 ( 서울 : 한국역사연구회, 2006), 제60 호, 97-139 쪽. 임경화. 북한노래의탄생 -사회주의체제형성기인민가요성립고찰-. 북한연구학회보 ( 서울 : 북한연구학회, 2011), 제15 권제2호, 327-352 쪽. < 신문및잡지글 > 김성남. 백두산칼바람이우리를부른다.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출판사, 2015), 제8호, 4-6 쪽. 김일성. 전체작가예술가들에게주신김일성장군의격려의말씀. 문학예술 ( 평양 : 문학예술사, 1951), 6월호 (4권 3호 ), 4-11 쪽.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13 리종우. ( 화선예술활동 ) 화선예술활동을벌릴데대한사상리론을내놓으시여.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1), 제10 호, 23-24 쪽.. ( 화선예술활동 ) 몸소노래를불러주시며.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2), 제3호, 20-21 쪽.. ( 화선예술활동 ) 제2전선부대에서의기동적인예술활동.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2), 제6호, 36-37 쪽.. ( 화선예술활동 ) 사회전문예술단체들의공연활동.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2), 제7호, 23-24 쪽.. ( 화선예술활동 ) 화선악기.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5), 제9호, 49-51 쪽.. ( 화선예술활동 ) 조국해방전쟁시기화선예술선전대의전투적인예술활동.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6), 제9호, 26-27 쪽.. ( 화선예술선동 ) 혁명적이며전투적인노래높이부르며싸워이긴 1211 고지방위자들.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7), 제12 호, 49-50 쪽.. ( 화선예술활동 ) 조선인민군협주단의화선에서전투적인공연활동 (2). 조선예술 ( 평양 : 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3), 제3호, 29-31 쪽. 박록주. 나의이력서 29. 다시일선에. 한국일보. 1974 년 2월 15일자.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hu4jbg2wbtq>. <https://www.youtube.com/watch?v=ugh46k6p3l8>. <https://www.youtube.com/watch?v=ai3xxwdfvfy>. 국문요약 이글은 1950 년 6월부터 1953 년 7월휴전협정이체결된 6.25 전쟁기간과이기간전후에진행된북한음악의양상을파악하는동시에북한에서말하는화선음악 ( 火線音樂 ) 의실체를알아보는데목적을두었다. 북한의체제성립초기부터체제에부합하면서도인민성 ( 人民性 ) 에기초
314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한새로운음악을창작하는데노력하였다. 특히전쟁기인 1951 년부터 1953 년에창작된가요는 439 곡, 합창곡 142 곡으로전체악곡수의절반을넘는다. 이는전쟁에참여하는인민군을독려하는동시에연주의기동성 ( 機動性 ) 과빠른보급속도를고려한결과로보인다. 그리고이렇게만들어진곡은농어촌을포함한노동현장, 그리고학교에이르기까지직맹 ( 職孟 ) 농맹 ( 農孟 ) 여맹 ( 女孟 ) 등다양한조직체계를기반으로광범위하게보급되었으며, 군대에서도군대내음악써클을통해다양한형식의노래가창 ( 歌唱 ) 이이루어졌다. 체계적인조직의구축과이를기반으로한음악활동은전쟁기에인민군대내에서혁명적낙관주의를보급하는역할을하였다. 화선에서진행된인민군협주단 ( 人民軍協奏團 ) 을비롯한전문음악단체의위문공연과함께인민군대스스로화선예술선전대 ( 火線藝術宣傳隊 ) 를조직하여최전선에서전투에매진하는인민군대를독려하였다. 특히이들은거문고와나팔, 가야금과같은악기를손수제작하여연주에사용하였으며, 전쟁기간중인 1953 년 5월에있었던군무자예술축전 ( 軍務者藝術祝典 ) 에참가하여위용을뽐내기도하였다. 그러나인민군대의화선악기 ( 火線樂器 ) 에대한서술은전쟁이후점차확대되어체제선전에이용되는경향을보였다. 즉, 김정일 ( 金正日 ) 을군사지도자로만들기위해화선예술활동의이름을부여하였으며, 1990 년대고난의행군시기에화선음악을소환하여전쟁과같은고난의행군시기도화선예술을통해충성심과투쟁정신, 혁명적낙관주의로무장시키고자하였다. 김정일사후김정은 ( 金正恩 ) 계승이후북한의대표적인악단인모란봉악단 ( 牡丹峰樂團 ) 은 2012 년과 2013 년연이어화선공연 ( 火線公演 ) 을진행하였다. 김정은시대의화선공연이라는제명은여전히남과북은분단상태이고전쟁이잠시멈춘휴전상태이며, 언제든전쟁이일어날수있다는, 지금이시기도전쟁기라는것을암시한다고할수있다. 주요검색어 : 화선음악, 군중음악, 음악써클, 인민군협주단, 화선악기, 화선예술활동, 혁명적낙관주의, 모란봉악단, 화선공연
북한의화선 ( 火線 ) 음악 315 Abstract The Fire Line Music in North Korea - Focusing on the Korean War Period - Bae, Ihngyo Pae In-gyo The purpose of this writing is to understand the condition of North Korean music developed during the Korean War period from June 1950 to July 1953 when the Cease-Fire Agreement was executed and before and after the said period while examining the substance of the fire line music, i.e. hwasŏn ŭmak 火線音樂, referred to in North Korea. From immediately after the establishment the North Korean regime, the North Korean government made effort to create new music that conforms to the regime while being based on the nature of the people. In particular, the songs created between 1951 and 1953, which was the war period, were 439 solo pieces and 142 choruses accounting for more than a half of the entire number of musical pieces. This is considered attributable to the North Korean government s intention to encourage people s soldiers that participated in the war while considering the mobility of musical performance and high diffusion speed of music. The musical pieces made as such were widely spread based on diverse organizational systems such as workplace federations, agricultural federations, and female federations in many regions ranging from agricultural and fishing villages to labor spots and schools and diverse forms of songs were sung in the army through music circles in the army. The construction of systematic organizations and the music activities based on the organizations played the role of spreading the revolutionary optimism in the People's army during the war period. Along with the performances professional
316 한국음악사학보제 57 집 music groups including People's army concerto ensembles held at fire lines, the People's army organized fire line art propaganda squads by itself to encourage the People's army that was striving for combats at the front line. In particular, the fire line art propaganda squads made musical instruments such as kŏmun go (6-stringed zither), horn, and kayagŭm (12-stringed zither) by themselves and used them in performances. They also participated in the civilian military employee art festival held in May 1953 during the war period to show of their dignity. However, the People's army s narration about fire line musical instruments was gradually expanded after the war and showed a tendency to be used for regime propaganda. That is, the name of fire line art activities was given to Kim Chŏng-Il 金正日 to make him into a military leader and fire line music was called in the period of North Korean famine in the 1990s to make the people armed with loyalties, combat mentality, and revolutionary optimism in the period of North Korean famine that was like a period of war. After Kim Chŏng-ŭn 金正恩 succeeded to the presidency after the death of Kim Chŏng-Il, Moranbong Musical Band called Moranbong aktan ( 牡丹峰樂團 ), which is a representative musical band in North Korea, successively gave fire line performances in 2012 and 2013. The title fire line performance in the age of Kim Chŏng-ŭn can be said to allude that South Korea and North Korea are still in a divided state, a state of truce in which the war has stopped for a while, and that the war can occur at any moment, and that this moment is also in a war period. Key words: fire line music, crowds music, music circle, People's army concerto ensemble, fire line musical instrument, fire line art activity, revolutionary optimism, Moranbong Musical Band, fire line performance 투고일자 심사일자 수정및완성일자 2016 년 5월 28일 2016 년 11월 2일 ~12 월 12일 2016 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