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소식지(4권)_0107(온라인업로드용)_용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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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고서의 목적과 개요 (1) 연구 목적 1) 남광호(2004), 대통령의 사면권에 관한연구, 성균관대 법학과 박사논문, p.1 2) 경제개혁연대 보도자료, 경제개혁연대, 사면심사위원회 위원 명단 정보공개청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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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채널 시청률 3% 시대 새 판 짜는 종합편성채널 <채널별 시청률 2% 이상 프로그램 개수> 속풀이쇼 동치미 (4.51%) 나는 자연인이다 (3.30%) 아궁이 (3.21%) 고수의비법 황금알 (3.17%) 엄지의 제왕 (2.91%) 천기누설 (2.86%) 신세계

감사회보 5월

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Transcription:

5 1 8 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 기억 과기록 4권 2018. 06 5 18기록관이 전두환 을 잡았다 노근리가 미국 을 잡았다 그 해 봄, 나 는 ' 5 1 8 ' 을 도 망 쳤 다 / 피 난 갔 다 생 환 한 ' 선 언 문 ' / 광 주 를 노 래 하 다 5 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어디있나요? 옛 광주가톨릭센터 건물이 5 18기록관입니다

칼럼 수장고에서 잠자는 진상규명용 문건들, 요청하면 응답하겠다 CONTENTS 작년 가을, 허풍 좀 쳤던 거 같다. 간판부터 갈아야겠어요. 01 칼럼 02 2018 더 베스트 <The Best>Ⅰ 광주광역시 5 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공모 때 이력서의 직무 관련 정보 칸에 요렇게 적어 넣었다. 하지만 아직껏 5 18-38년 만에 빛 본 5 18 필름 04 06 민주화운동기록관 이란 현판을 갈지 못했으니 허풍에 머물고 만 셈이다. 정말이지, 현판이란 게 우람한 건물 덩치에 견줘 조막만하다. 조막만하니 조막만 한 선전효과가 출력될 수밖에, 그런 생 2018 더 베스트 <The Best>Ⅱ 각으로 갈아야겠다 고 작정했지만, 제동이 왔다. 안 된다는 거였다. 현판에도 행정의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란다. 행정이 - 5 18기록관 헬기사격 물증 발굴 정해준 크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거 아닌가. 그해 봄, 나는 '5 18'을 도망쳤다 택시를 탈 때마다 잠시 머뭇거린다. 5 18기록관으로 가십시다, 옛날 가톨릭센터로 가십시다, 그것으로. 명색이 기록 - 스무 살 도망자 관장이란 자가 후자를 택할 낯이 없어 전자를 찍으면 대번에 거기가 어디예요? 뭐하는 데고요? 라는 물음이 돌아온다. 이 - 광주 대탈출의 기억과 오랜 부채감 게 뭣인가. 5 18의 광주화가 덜 된 증거라도 되는 것인가. 우리 광주만이 갖고 있는, 광주 밖 아무 땅에도 없는 역사의 자 - 죽음만큼 두려웠던 터미널 화장실 산 을 모아둔 기억의 창고 인데, 고여 오는 슬픔 자를 길 없다. - 원피스를 입으라며 눈물로 애원하던 어머니 - 진실말하기 운동 선봉으로 복귀하라 누구는 말한다. 5 18 광주는 진주조개다 고. 왜 그럴까. 진주조개처럼 저항 과 아픔 을 통해 민주 라는 영롱한 빛깔의 진주를 생산한 까닭이다. 11 장롱속 5 18, 기증해주셔요 12 피난갔다 생환한 선언문 가? 광주가 전 국민을 대신해 피를 흘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대한민국 압축민주화의 중심축이 바로 5 18 14 기록관을 나온 5 18 광주인 것이고, 1987년 6월항쟁과 노태우ㆍ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광주가 국민저항운동의 자양분이 되었다 - 특별기획전시Ⅰ Ⅱ Ⅲ 는 거 아니겠는가. 만약에 말이다, 5 18 광주의 피흘림이 없었다면 지금 이 땅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민주화가 가능이나 했겠는 역사는 그러므로 5 18을 실패한 성공 이라 적는다. 그 실패와 성공의 흔적들을 모아 아주 긴 시간 보관하는 곳, 그게 18 주문 글 22 오월, 그사람 24 광주를 노래하다 26 기록관 브리핑 5 18기록관이다. 기억은 짧고 기록은 긴 것. 5 18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건 2011년 5월 25일이었 고, 기록관이 문을 연 건 2015년 5월 13일이었다. 기록관에는 광주광역시가 오랫동안 각별한 공을 들여 국내외에서 수집한 5 18기록물 5만1387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시설과 장비를 최첨단 으로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기록관이 문을 연 지 3년이 지난 지금에도 택시기사들이 기록관이 어디 있는지,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고 있는 게 현실인 데도 기록관은 뒷짐만 지고 있을 것인가. 현판만 탓할 일은 아닌 거 같고 뾰족 수를 찾아야 기억과기록 2018. 06 vol.4 발행일 2018년 6월 30일 발행인 나의갑 편집인 이덕재 감수 김태종 고경석 발행처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한다는 생각이다. 기록관 외벽에 5 18 당시 사망자들(165명)의 영정을 줄줄이 내걸어 시 선을 집중시키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보다 더 큰 짐을 얘기하자. 5 18 진상규명이다. 올 2월 5 18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 었고, 9월이면 5 18진상규명조사위원가 뜬다 하지 않은가. 기록관, 가만히 손 놓고 있으면 직무유기가 된다. 수장고에서 잠자는 5 18을 꺼내 5 18연구자나 기자들한테 양식으로 내 61475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 221 (금남로3가) TEL. 062-613-8294 FAX. 062-613-8299 http://www.518archives.go.kr 줘야 한다는 작심을 굳혔다. 5 18 조작용 정훈교육용 도서와 조작된 군 기록, 군 문서 등 표지 설명 1980년 5월 27일(추정)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진압한 소준열(오른 편집 (주)대광 062-367-3877 쪽) 전남북계엄분소장(소장)이 활짝 웃으며 도청에서 나오는 모습. 그 디자인 용수인 옆 철모쓴 사람은 20사단장 박준병 소장으로 추정된다. 본지에 실린 외부 기고는 발행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5 18 관련 문건이 그 양식들이다. 엑셀 작업이 되어 있는 것만 해도 1만6000개에 이른다. 요청이 있을 경우 응답할 것이다. 나의갑 _5 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5 18기록관 소장 영상 촬영=광주일보 제공> 기억 과기록 1

2018 더 베스트 <The Best> Ⅰ 피흘리는 광주... 웃고 있는 그들 기독병원 응급실에 입관도 되지 못한 채 방치된 시신, 주먹밥을 나누고 궐기대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등장한다. 이후 27일 도 청 진압작전 이후에는 무기를 회수하는 계엄군, 체포되어 끌려가는 시민군, 거리 곳곳에 경계를 서고 시민들을 검문하는 계엄 군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도청진압작전 이후 헬기를 타고 광주를 방문한 계엄군들이 도청 앞에서 서로 악수를 하며 웃 고 있는 모습은 처참한 희생자들의 모습과 대비되어 그 잔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밖에도 국군광주통합병원, 망월동 안장 현장과 통곡하는 유족들의 모습 등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장면들과 광주 곳곳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침묵 속, 그날의 참상과 아픔 전해져 5 18기록관에서는 5월9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5 18민주화운동 미공개 영상기록물 상영회 를 개최했다. 240여 석의 좌석이 시민 들로 가득 차, 38년 만에 공개되는 영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은 매우 높았다. 무성(無聲) 영상이 시작되자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고, 태극기에 덮힌 시신의 모습과 유족들의 오열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탄식과 한숨이 나왔다. 주먹밥 을 나누고 도청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궐기대회를 하는 모 습을 보며, 저 때 저랬지 라며 당시 상황을 떠올리기도 했 으며, 처음 공개된 망월동 묘지의 수많은 관들과 오열하는 유족들의 모습이 나오자 흐느끼는 관객들도 있었다. 상영 회가 끝나고 시민들은 그날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라 가슴 이 먹먹하다 음성이 안 나오지만 우리한테는 다 들린다 라며 영상을 본 소감을 말했다. 미공개 영상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에 따라 이후에도 5 18기록관에서 영상상영회가 이어졌다. 5월10일부터 30 일까지, 20일간 1,500여 명의 시민들이 기록관을 방문해 영상을 관람했다. 38년 만에 공개된 영상이 궁금해서 온 시민, 자신과 가족 친구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어 온 시민, 5 18을 자녀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온 시민 등 다양한 관심 을 갖고 시민들이 방문했다. 관람 이후 시민들은 장소나 인 물에 대한 제보, 개인적 의견이나 궁금한 점을 묻는 등 영 상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철저한 고증, 진실규명 노력할 것 그동안 5 18 영상기록 물은 외신기자들에 의해 촬영된 일부 영상물이 공개됐을 뿐 이다. 당시의 생생한 기록이자 진실규명을 위해 중요한 영상 물이 거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5 18기록관이 이번에 수집한 영상물의 가치는 매우 크다. 비록 진실규명과 관련된 직접적인 장면을 담고 있지는 않지 만, 5월20일부터 6월1일까지 광주 곳곳을 생생하게 보여주 고 있어 5 18의 다양한 모습을 밝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 다. 이에 기록관에서는 영상에 대한 철저한 고증 작업을 진행 할 계획이며, 5 18진실규명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 도록 체계적으로 연구해 나갈 것이다. 글 양라윤_5 18기록관 학예연구사 2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3

2018 더 베스트 <The Best> Ⅱ 헬기 사격 증언 조비오 신부에 사탄 비난 하지만 검찰은 광주에 간 적이 없어 헬기사격과 무관하 다 는 전씨의 주장을 허위로 판단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1980년 5월23일과 6월10일 작성해 미국 국무성에 보낸 비밀문서가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문서는 20여 년 전 이미 비밀해제 됐으며 5 18광주민주 화운동 자료 총서 에 번역돼 수록됐지만 5 18진상규명 과 정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5 18민주화운동기록 관은 검찰수사과정에서 이 기록물을 발굴하고 증거로 제 출하는 등 전씨의 불구속기소를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6월10일자 기밀문서는 (5월21일 수요일) 군중들은 해 산하지 않으면 헬기 공격을 받을 거라는 경고를 받았고 실 제로 총이 발사되었을 때 엄청난 분노가 일어났음 이라고 적고 있다. 조 신부가 1995년 검찰에서 진술한 증언과 정 확히 일치한다. 이로써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전씨의 주장 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1980년 5월21일은 전남도 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발포로 광주시민 54명이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검찰은 주한미국대사관의 비밀전문과 국방부 5 18특별 조사위원회 조사결과, 수사 재판기록 등을 토대로 5 18당 시 헬기사격 사실을 확인하고 전씨에게 사자명예훼손 혐 의를 적용했다. 전두환, 광주서 재판받나 미 국무성 전문 80년 5월 표준시간 23일 10시 10분 당초 전씨의 5 18민주화운동희생자 명예훼손 혐의 에 대한 첫 재판은 5월2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릴 예정이었지 만 전씨측 변호인이 기일변경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7월로 연 기된 상태다. 전씨가 다시 법정에 서게 된다면 1995년 이후 23년 만의 일이다. 전씨는 12 12 군사반란과 5 18 당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그해 12월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된 뒤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구속 2년 만에 석방됐다. 광주시민과 5 18 관련단체들은 처벌과 과거사 청산을 위해 서라도 이번 재판에서 헬기 사격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고 전 씨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글 이덕재_5 18기록관 학예연구사 전일빌딩 헬기사격 총탄자국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5

그해봄, 나는 5 18 을도망쳤다 5 18 마지막날인 5 월 27 일, 광주금남로에자리한 5 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스무살도망자 출판기념회및 그 해오월광주엑소더스를말한다 는주제의집담회가열렸다. 이날의집담회는도망혹은탈출에얽힌오월의이야 물집잡힌어머니의발바닥 기역시오월의기억속으로편입시켜공적기록을해가기위한첫걸음이기도했다. 송강호의택시에그해오월의내가타고있었다 스무살도망자 김담연 광주가광주에게말한다 모든광주가 5 18 이라고 광주대탈출의기억과오랜부채감 80년 5월당시조선대 1학년이었던이형석씨는 광주대탈출의기억과오랜부채감 이란주제로광주역에서새벽열차를타고역무원들의도움을받아탈출했던이야기를들려줬다. 스무살도망자 의필자는택시로광주를탈출했는데, 저는 열차엑소더스 였습니다. 5월 18일을전후해줄곧도청앞시위에참여했던그는 5월 21일도청앞집단발포가있고난뒤광주탈출을꾀했다. 광주역정문은계엄군이바리케이트를치고지키고있어못들어가는상황이었고, 후문쪽철조망을걷고들어가면역무원들이안내를해줄것이라는이야기를전해들었습니다. 탈출을앞두고는가택수색의위험을피해하숙집의커다란옷장속에몸을숨기고거의하루동안을숨죽이고지냈다. 스무살도망자 책에도 하숙집슈퍼맘 들의활약이나오는데, 당시하숙집아주머니들은캄캄한저녁에옥상에올라가서계엄군이있는지없는지살펴보고봉화대처럼전달해주었습니다. 저역시저녁 10시무렵에하숙집아주머니가옷장에서나오라해서나갔고, 밖에아무도없다고이야기해줘서탈출을시도했습니다. 하숙집골목을야밤에나오는데계엄군에잡히지않기위해서, 눈에띄지않기위해서, 군대도다녀오지못한나였지만영화에서본것처럼포복을했던기억이납니다. 당시중흥동과광주역사이의도로가 2차선만포장돼있었고양옆은흙길이었는데, 그길을건너는게그렇게도길게느껴졌습니다. 광주역후문쪽의철조망이걷어진데로들어갔더니역무원이기관사들이쉬는방으로안내했습니다. 나무침대가있는쪽이천으로가려져있어거기로들어갔는데, 서울에서내려왔던건국대생과경희대생이먼저와있던상태였고, 한시간쯤있으니까또한친구가왔습니다. 역무원이각자고향을물어서적어갔습니다. 남광주역에서검문을한다고하니까낮에출발하는열차에태우지않고새벽에출발하는열차를태워줬습니다. 새벽두시몇분경에열차를타고순천으로갔지요. 역무원들이얼마나배려를해줬냐면기관실옆에학생들을태워주었습니다. 남광주역에서검문이있게되면바로기관실로들어가라고말해주었고요. 당시완행열차로는순천까지다섯시간이넘게걸렸다. 아침여덟시넘어순천역에도착해내렸는데햇빛이쫘악내리비치는거예요. 그순간갑자기머리가하애져버렸습니다. 같은나라의같은시간에광주라는곳에선죽음의위협을느끼며필사적으로빠져나왔는데순천은너무평온했습니다. 너무나큰혼돈이밀려와서순천역사앞에서한동안멍하니서있었던기억이납니다. 이형석민주당광주시당위원장 6 5 18 민주화운동기록관소식지 _2018.06. 7

그해 봄, 나는 5 18 을 도망쳤다 죽음만큼 두려웠던 터미널 화장실 원피스를 입으라며 눈물로 애원하던 어머니 80년 5월 당시 서강고 2학년이었던 신충균씨는 원피스를 입으라며 눈물로 애원하 던 어머니 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제 고향이 영암인데 그해 오월 어머니가 걸어서 광주까지 저를 데리러 왔다가 하루 를 설득해도 안되니까 그 다음날 자취집 주인 부부랑 합세해서 저를 설득해 데려갔습 니다. 어머니는 나를 여장시켜 탈출시키기 위해 마을에서 이웃집 아줌마한테 내 체구 에 맞는 원피스를 구하고 숙모님한테 여자 가발을 빌려서 보따리를 싸서 영암에서 광 주까지 길을 물어물어 57킬로 그러니까 150리를 혼자 걸어서 오셨습니다. 그때 저랑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남동생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두 아들을 데리고 가려고 걸어 서 걸어서 오신 거죠. 그에 앞서 휴교령이 내려졌던 당시 상황도 들려줬다. 아침 조회시간이 지나도록 담임선생님이 교실에 안 왔어요. 애들이 웅성웅성하고 있는데 한참 후에 선생님이 오셔서 계엄령이 선포됐다며 곧바로 집으로 가라, 목숨 을 소중히 여겨라, 학교는 무기한 휴교다 라고 조회와 종례를 동시에 해서 집으로 왔 어요. 그때 자취집 주인 부부의 아들인 대학생 형을 제가 굉장히 따르고 친했어요. 그 형 을 통해서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 등 대학생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그 형이 잡혀갔는지 어쨌는지 며칠째 소식이 없 었어요. 그 형의 동생이 제 또래여서 그 친구랑 같이 형을 찾으러 나가려 했는데 둘 다 다락방에 감금됐죠. 나중에 그 형이 상 무대 영창에 잡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식구들이 절대 못 나가게 교대로 지키고 때 되면 밥을 갖다주고. 저녁이면 총소 리가 들려오기도 하고, 바깥 소식이 몹시 궁금했어요. 그때 어머니가 찾아왔다. 지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난 어머니는 두 아들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저는 주인집 형이 돌아올 때까지는 못간다고, 형을 보고가야 한다고 떼를 썼어요. 광주에서 나주 남평까지 걸어가서 거기서 경운기를 얻어타고 영산포까지 간 다음 1톤트럭을 타고 영암 신북까지 간 뒤 택 시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오월 이후 늘 도망자로서의 부채의식을 갖고 살았던 그는 제대 이후 87학번 서클 후배들과 함께 광주 임동성당 지하실에 서 웅크리고 새우잠 자고 라면 먹으며 몇날며칠 밤새워서 사진첩 책자 오월 그날이 오면 2 만5천권을 제본해 서울과 부산 쪽으로 실어나르기도 했다. 그나마 오월의 진상을 알리는 데 조그만 역할을 했노라고 위안했지만 한번 도망자는 영원 한 도망자이지요. 김창승 8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신충균 5 18 당시 서강고 2학년 기억 과기록 9

그해 봄, 나는 5 18 을 도망쳤다 '진실말하기 운동' 선봉으로 복귀하라 장롱속 5 18, 기증해주셔요 5 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는 국민여러분께서 소장하고 계신 소중한 기록물들을 수집합니다. 그동안 장롱속이나 책상 속에 5 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일기장, 편지, 메모 등을 보관하고 계신분은 이를 인류의 유산으로 보존하기 위한 과업에 참여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수집대상은 1980년 5 18을 전후하여 이에 관련한 일기장, 취재수첩, 성명서, 선언문, 필름 및 사진, 테이프 등 아직까지 단체 개인에게 수집되지 않은 국내외 기관 단체 개인이 보유중인 5 18기록물 일체입니다. 수집대상 문건사료 : 5 18과 관련한 성명서, 자료집, 간행물, 팸플릿, 일기, 메모, 재판자료 박물사료 : 5 18과 관련한 현수막, 포스터, 의상, 걸개그림, 그림 멀티미디어사료 : 5 18과 관련한 오디오, 비디오, 사진, 슬라이드 필름 구술사료 : 5 18과 관련한 구술기록 모집 : 연중 문의 : Tel. 062-613-8205 / Fax. 02-613-8299 접수 :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61475]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221 http://www.518archives.go.kr/ 글 사진 송선태 10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11

피난갔다 생환한 선언문 광주서 어렵사리 서울로 도피 25년 만에 항쟁의 땅 광주로 25년동안 목숨처럼 간직해오다 5 18기록관에 기증 5 두 사람은 김선출이 1978년 전남대학교 교육지표 사건 으로 수배를 받아 도피하다가 알게 된 서울대 복 적생 황선진을 찾아갔다. 이들은 서울에서 5 18의 진 실을 알릴 방안을 논의했다. 황선진도 서울지역 운동권 학생들과 같은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김선출과 전용호 는 서울로 도피한 광대 팀 임영희 등과 함께 서울시 신 림동 소재 황선진의 후배 집에 머물며 5 18을 주제로 하는 카세트테이프를 제작했다. 테이프에는 항쟁일지 를 정리해 소개했고, 항쟁의 성격에 관해 함께 토론한 좌담도 실었다. 또 투사회보 와 선언문 원본을 황선진 에게 넘기며 잘 보관하고 활용해줄 것을 당부했다. 강제징집된 김선출은 군복무를 마치고 1986년 대학 을 졸업하자마자 신용협동조합연합회에 입사했다. 그 는 황선진에게 부탁한 선언문 원본의 보관 상태를 확인 했다. 황선진은 광주로 다시 가져가야 할 것으로 생각 하고 있었다 며 한 장도 빠짐없이 돌려주었다. 조아라 여사 집 서랍에 넣어둔 선언문 서울로 도피시켜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전남도청에 진입했다. 콩 볶는 듯 간발의 차이로 위기를 모면한 전용호와 5 18자료는 또 한 5 18 25주년을 앞둔 2005년 5월 16일 김태종(5 18민중항 한 총소리에 광주YWCA에서 잠을 자던 홍보팀원들은 놀라 번의 고비를 맞는다. 가방을 어깨에 메고 누나 집을 향해 조 쟁기념행사위원회 집행위원장), 김선출(광주정보문화산업진 일어났다. 계엄군의 진입은 미리 예상했었지만 현장 상황은 심조심 걸어가다가 계엄군의 검문을 당한 것이다. 계엄군은 대단히 급박했다. 김태종은 조아라 여사 집 서랍에 넣어둔 총을 겨누며 가방을 열라고 했다. 순간 전용호는 기지를 발 선언문을 고등학교 동창인 들불야학 강학(교사) 전용호(당 휘해 선언문 위에 신문지를 덮은 채 바닥에 쏟았다. 계엄군 시 전남대 경제학과 3년)에게 보관할 것을 부탁했다. 전용호 은 총으로 이곳저곳을 쑤셔댔다. 총기나 수류탄 따위를 찾 ' 김태종 전용호 김선출이 지켜내 ' 흥원 팀장), 전용호(메이엔터테인먼트 대표), 이규현(담양신문 주필) 등은 전남대 5 18연구소에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투사 회보 와 선언문 원본 15종을 전달했다. 모두가 5 18당시 도청 앞분수대(연단으로 사용)에서 낭독됐던 것들이다. 이 선언문 는 5 18 당시 투사회보 제작팀에서 활동하면서 서울 등 외 는 눈치였다. 때마침 도로 건너편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던 부에서 들어온 신문이나 유인물 등을 그날그날 꼼꼼히 챙기 매형이 그를 발견하고 달려왔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산으로 지정되는데 큰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선언문 원본은 현재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수장고에 보관중이다. 고 있었다. 전용호는 김태종이 피신하며 건네준 선언문 더 전용호도, 선언문도 이렇게 두 번째 살아났다. 나흘 뒤 전용 미를 투사회보 등의 유인물과 함께 가방에 넣고 인근 녹두 호는 광대 단원이자 5 18 당시 광주YWCA에서 함께 활동 서점으로 피신했다. 전용호는 이날 오전 9시경 녹두서점도 했던 고등학교 동창 김선출(당시 전남대 사회학과 4년)과 함 안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서점을 나섰다. 전용호는 나중 께 전남 장성으로 빠져나와 수원을 거쳐 서울로 피신했다. 원본 15종은 2011년 5월 5 18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 글 이덕재_5 18기록관 학예연구사 에 자신이 나선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계엄군이 녹두서점에 들이닥쳐 남아있던 사람들을 모두 연행해 갔음을 알았다. 5 18의 생생한 원본자료가 살아남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12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13

기록관을 나온 5 18 공동 개최 100살 넘은 옛 도청, 광주역사 담아 여섯 개 얼굴로 표현 5월 15일부터 한달간 옛 도청 회의실 일제강점기와 독재정권 시절 도청은 지배와 통치기구 역 할을 하면서 저항의 대상이었지만, 1980년 5 18을 통과 하면서 도청은 한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일제강 점기 근대건축물들이 지배와 통치의 상징으로 역사적 의 미를 갖는다면, 전남도청은 저항과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 었으며, 이 역사는 오월영령과 광주시민, 그리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국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1980년 5월 억압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상 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했던 시민들의 실천이 도청 의 역 사적 장소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980년 시민들이 그 러했듯이, 도청은 시민들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 유경남_5 18기록관 학예연구사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15

기록관을 나온 5 18 기록관을 나온 5 18 특별기획전시Ⅲ_부마항쟁 노근리사건 서울서 부활한 5 18 하루 평균 3800명 다녀가 과잉진압 발포 현장 찾아 역사의 아픔 함께 나눠 부산민주공원 노근리 평화기념관 5 18기록관은 5 18민주화운동 38주 충북 영동 노근리평화기념관에서는 평화를 년을 맞아 부마항쟁이 일어난 부산과 노 위한 약속 이라는 주제로 5 18민주화운동기 근리 미군 양민학살사건의 충북 영동에 록물과 프랑스 인권선언 등 민주 인권 평화 서 진실과 평화를 위한 5 18기록물 순 관련 유네스코 세계기록물이 공개됐다. 노근 회전시 를 개최했다. 먼저 부산민주공 리평화기념관은 한국 전쟁기 미군에 의한 양 원에서는 발포 진실을 말한다는 것 민학살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당시 탄흔이 이라는 주제로 2016년 전일빌딩 10층 쌍굴 다리 에 남아 있다. 과 외벽에서 발견된 계엄군의 탄흔을 공 특히 이번 전시에는 노근리와 광주-근 현 간적으로 재현 전시했다. 또한 전일빌 대사의 아픈 상처인 탄흔 을 평화를 위한 약 딩 탄흔과 발포 관련 기록물, 광주청문 속 의 상징으로 기억하자는 주제를 담아 광주 회 기록물(한겨레 신문사, 5 18기념재 에서 발견된 전일빌딩 탄흔 기둥을 같이 전시 단 제공) 등을 전시해 시민들이 관련 기 했다. 록물을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했다. 16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17

주문 글 5 18, 서울은 지금 몇시인가? 김미선 지인을 통해 광주의 참상을 전해 듣고 십시일반 모금을 하여 성당 신부님을 통해 성금을 전달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후에 그 5 18 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면서도 더 이상 5 18 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를 읽고 감 동을 받아 동네 도서관에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를 빌려 읽었다는 중3 학생. 5 18 전시를 보기 위해 과천에서 일 부러 왔다는 소녀는 비록 몸은 가냘팠지만 마음만은 당찬 아주 기특한 관람객으로 기 억된다. 이곳은 낮지만 웅장한 안산자락길이 근처에 위치해 있어서 등산복을 입은 어르신들도 자주 볼 수 있는 곳이다. 나이가 70 전후쯤 되었을까, 서너 분의 일행이 대강 훑어보고 이동하면서 광주는 폭동이야, 폭동. 지도자들이 민주화운동이라고 미화 해 준거야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가시기도 하고, 지만원 교수님의 책을 사서 다 봤어. 그 책에 다 나와 있어. 저거 다 거짓말이야. 라고 강변하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또 주위 사람들이 5 18전시회 때문에 오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궁색하지만 나름 우회적으로 점잖게 항의하는 분도 만났는데 불만을 나타내는 분들은 대체로 확증편향을 보이는 50대 이상의 어르신들 이었다. 그럴수록 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부채감, 그리고 점점 꿈틀대며 올라오는 열정 같은 것들이 나를 잠시도 앉지 못 하고 관람객 주위를 서성이게 만들었고,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세히 봐주고 더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커져가 게 했다. 그래서인지 원래 기획대로 전시하지 못했던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비디오를 활용한 전시는 집중력과 전 달력, 이해력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안이 뭘까 늘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글자 크기나 위치, 내용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제목을 붙여보는 것, 사소한 것들이라도 한 번의 눈길이라도 더 머무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간절해지는 시간들이었다. 다투듯 화사한 꽃들을 피워내는 5월. 우리도 그 때 저 꽃처럼 피어나는 젊은이였다. 그러나 이제는 인생의 선배가 되어 광 주정신을 계승시킬 책임을 져야하는 위치가 되었다. 세계적인 민주화의 대표 도시 광주에서는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져 나 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수도 서울이 가지는 대표성과 확장성을 고려한다면 서울에서 5 18 정신을 배울 수 있는 환경과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해진다. 그래서 5 18기록관과 연계한 전시 기회가 더 많아져 5 18을 왜 곡하고 폄훼하는 세력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진실을 규명하고 더 나아가 평화로운 대동 세상을 이루어 나가는 꿈을 함 께 꾸었으면 좋겠다. 살아남은 자의 묵은 빚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심정으로 뜨겁게 보낸 5월이었다. 18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19

주문 글 장편소설 출간을 계기로 피해자들은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대책위원회 를 창립하여 주한 미국대사관을 방문해서 진정서를 제출하는 등 한미 양국정부 와 국회를 상대로 20차례 가까이 진정서를 제출하며 사건해결을 위해 진력 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정부는 노근리사건을 외면했다. 그러나 피해자대책위는 포기하지 않고 1997년 미국 기독교교회협의회를 통해 미국 정부에게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노근리사건 현장에 미군이 없 었다. 는 거짓말 답변을 해왔다. 이에 사건현장에 미군이 주둔했음을 증명 하는 기록 증거를 제시하자 이번에는 사건현장에 있었으나 사건에 개입한 1960년대 노근리 쌍굴다리 정보는 없다 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에 피해자대책위는 노근리사건에 관련된 새로운 문서증거를 발굴에 주력했고, 새로운 기록들이 찾아질 때마다 내외신 언론기관에게 제공해주는 등 4년 가까이 노근리사건 홍보에 매진했다. 이런 헌신적인 노력 으로 노근리사건이 세상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1998년 3월, AP통신이 노근리사건 취재에 착수했다. 고 정은용 회장과 정구도 대변인은 노근리 소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소장하고 있는 노근리사건 관련 기록들과 역 사학논문 등을 AP취재팀에 제공하며 취재를 힘껏 도왔다. 또한 피해자대책위 정구도 대변인은 학문연구도 병행하여 노근리사건에 관한 최초의 역사학논문과 국제법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며, 미국과의 기록전쟁에 불을 붙였다. 이 같은 피해자들의 끈질긴 활동 결과로 1999년 9월말, 드디어 AP는 노근리 사건에 대한 탐사보도를 했다. 그런데 AP는 한국전쟁 당시 노근리사건에 관련된 새로운 미군 전사기록들을 추가로 발굴해 서 보도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여론이 크게 비등하였다. 이에 압박을 느낀 한미양국은 노근리사건 진상조사를 시작했고, 2001년 1월 12일, 한 미 양국은 1년 3개월간의 공동조사를 마치면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노근리사건 피해 자와 한국 국민에게 유감표명성명서를 발표했다. 사과 성명서가 아니라서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성과는 강대국 미국 노근리사건은 한 미 기록전쟁이었다 을 상대로 피해자들이 반세기동안 벌인 기록전쟁이자 역사전쟁 끝에 얻어낸 의미 있는 승리라고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세계경찰국가로서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을 수행했고, 지금도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노근리사건과 같이 참전미군에 의한 사건들이 대한민국에만 약120건에 이르고, 다른 전쟁에서 도 미군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노근리사건 이외에는 미군관련 사건들에 대해 서 유감표명이나 사과 성명서를 낸 적이 없다. 노근리 학살현장을 답사하는 학생들 2017년 4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을 계기로 5 18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 실규명 문제가 다시 대두되었다. 그런데 그 핵심은 당시의 정확한 진상을 5 18 관련 군 5 16 사기록 등 관련기록을 통해서 밝혀야 한다 는 점에 있다. 5 18도 노근리사건과 같이 진 실규명을 위한 기록전쟁이고, 그런 의미에서 노근리정신은 5 18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 정구도 20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각한다. 기억 과기록 21

오월, 그사람 광주시민여러분, 계엄군이쳐들어오고있습니다우리는끝까지도청을사수할것입니다 가야금강사에 중범죄자요시찰악질정신이상 등주홍글씨합수부서한달여고문수사 극심한고통에통합병원서자살시도했다 그녀는보안대에서 2~3일조사를받은뒤 5월말광산경찰서로이첩됐다. 날마다담당수사관입회하에합동수사본부수사관의취조를받았다. 한달정도조사를받으면서고문당하는사람을숱하게봤어요. 몽둥이질은기본이고수건을얼굴에올리고물고문을했어요. 한마디로인간취급도안했어요. 내아픈것은모르고남의고통을보면서가슴이무너져내렸습니다. 너무많이아파서먹지도잠을자지도못했습니다. 조아라, 이애신씨등이그녀를국군광주통합병원으로이송해달라는진정서를냈지만받아들여지지않았다. 그녀는 6월말중앙합동수사본부가철수하고전남합수부에서조사를마친후인 7월중순쯤통합병원으로옮겨갈수있었다. 통합병원에서생활도고통의연속이었다. 지금까지가족들때문에밝히지않은내용이지만통합병원에서자살시도까지했어요. 매일저녁빨리죽었으면하는심정이었지요. 검찰에서새벽방송을했으니사형이라협박하고그때고문당했던사람들이떠올라매일악몽에시달렸거든요. 그녀는재판에서 1년형이확정된후교도소로이감됐다가 1980년 10월31일형집행면제로석방됐다. 그녀의죄목은계엄법위반, 내란부화수행등이었고신군부는중범죄자, 요시찰, 악질, 정신이상등의주홍글씨를새겨넣었다. 그녀의인생행로가뒤바뀐것은 1980년 5월21일오후 1시전남도청앞에서계엄군의집단발포가있던날이었다. 그녀는광주여고앞에서총상을입었던남학생과우연히조우했다가분노로가두방송을하게됐 1978년광주여고가야금강사시절의박영순씨다. 당시그녀는송원대학 2학년생으로전남여고와광주여고에서가야금을가르치던특기적성강사였다. 지금도그때를생각하면가슴이먹먹하고떨려요. 그날이후학교도못다니고호적에는빨간줄이올랐지요. 악질, 감시대상, 중범죄자취급을받으며살았어요. 인생이망가지고하고싶은일도제대로못하며살았어요. 스물한살학생이극복하기에는너무힘든트라우마였습니다. 가족몰래신경안정제를복용하며살아야했어요. 그녀는 1987년사면복권을받은후 2016년재심청구끝에무죄판결을이끌어냈다. 현재는오월민주여성회부회장으로활동중이다. 글정영대 _ 자유기고가 22 5 18 민주화운동기록관소식지 _2018.06. 23

광주를 노래하다 광주를 노래하다 는 1980년 5 18 이후 각종 매체와 장르에서 생산된 5 18관련 작품을 알리고 집적하는 코너 이다. 앞으로 시 소설 사료 등 각종 출판물과 영화 TV 등 영상물, 연극 음악 미술 춤 등 다양한 장르의 5 18 기록물을 시기별 사안별로 체계적으로 정리, 소개한다. 극 애꾸눈 광대 어머니의 노래 5 18 5 18 5 18 5 18 힌츠페터 스토리 시 만인보 박금희 헌혈하고 돌아오는 길 / 헬기 쏜 총 맞아 피 쏟아 전남여상 3학년 여고생 박금희 / 헌혈한 사람 모아 / 함께 가 는 길 / 기독교병원 헌혈하고 돌아오는 길 / 탕탕탕 / 헬기에서 쏜 / 총 맞아 / 거리에 피 다 쏟아버렸다. / (중략) / 박금희를 / 김금희로 잘못 쓴 / 베니어판 관 속에 누워 / (중략) / 망월동 묘 지 / 무더기 시쳇더미 / 하나하나 아무렇게나 / 흙구덩이 파 집 어 던졌다. / 김금희 아닌 / 박금희 집어넣었다. 시인 고은은 만인보 제29권 단상 3689에서 5 18 당시 계엄 군에 희생된 박금희(당시 17세)양이 헬기사격으로 사망했음을 시사했다. 1980년 전남여상 3학년 학생이었던 그녀는 5월21 일 광주기독교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배에 총상을 입고 절명했다. 검찰은 사인을 M16 총상 으로 실형성 및 혈흉, 복부, 흉부, 맹관(장) 총상 이라고 기재했다. 2008년 발간된 5 18민중항쟁 의료 활동에 대한 재조명 사업 연구용역 보고서 를 보면 박금희의 사망원인에 대해 보다 구체 적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응급실장이었던 김성봉은 헌혈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여학생이 캘리버 50에 맞 았다 며 소태동에서 헌혈버스가 가는데 (계엄군이) 쏴 버렸다 고 밝혔다. 캘리버 50은 미국에서 생산한 중기관총으로 공격헬 기에 정착 가능하다. 지난해부터는 5 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이 사실임을 밝혀 주는 각종 증언과 기록이 속속 드러나면서 박금희의 죽음이 새 삼 조명을 받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옛 전일빌딩 10층 내부 헬기 탄흔에 대한 공식감정서, 1980년 5월22일 육군본부 작전지침 헬기 작전계획을 실시하라, 주한미대사관이 1980년 6월10일 미 국무성에 보낸 헬기사격에 관한 비밀전문 등 헬기 사격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속속 발굴되면서 수많은 박금희 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전남대 광주민중항쟁도 회화분야에서는 지난해 전남대학교 광주민중항쟁 도 복원이 큰 주목을 받았다. 광주민중항쟁도는 1990년 6월 5 18민주화운동 10주년을 기념해 사범대 1호관 오른쪽 벽면에 그려졌다. 벽화의 규모는 가로 10m, 세로 16m 크기로 화면 정 중앙에는 총을 든 시민군이 자리하고 있고 위쪽으로는 백두산 천지와 통일운동에 나서는 청년학생들의 모습이, 아래쪽으로는 주먹밥을 만드는 광주시민들과 시민군의 활약상을 표현했다. 총 을 든 시민군의 시선이 전남도청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 품은 5 18민주화운동에 대한 오마주로 해석하는 관점도 있다. 광주민중항쟁도는 1980년 5 18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첫 번 째 벽화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하지만 제작 후 27년 동안 개보수작업 없이 방치되면서 작품 곳곳에서 칠이 벗겨지거나 퇴색하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작품복원에는 전 남대 그림패 마당, 예술대학 미술패 신바람, 사범대 미술교육과 출신 전문가 20명이 벽그림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400여 명 의 일반인이 채색작업에 참여했다. 기억 과기록 25

기록관 브리핑 기록관에서 만났어요Ⅰ 인도네시아 청년작가들 고 안병하 전남도경국장 유품 기증 5 18기록관과 고 안병하 전남도경국장 유족은 지난 5월10일 기록관 7층 세미 나실에서 유품기증 협약식을 체결했다. 유족 전임순(부인)씨와 안호재(막내 아 기록관 전시 공간 서사 구성방식 인상 깊어 들)씨는 이날 고인이 남긴 A₄용지 6장 분량의 친필 메모와 치안감 추서 계급장 5 18보며 88년 자카르타사건 고민하게 돼 임명장, 훈 포장, 사진 등 총33점을 기록관에 기증했다. 협약식 후 부인 전씨는 자택 장롱구석에서 비망록을 발견했다 며 1988년 국회청문회를 앞두고 남몰 래 쓴 것으로 추정되며 같은 해 10월10일 돌아가셨으니 사실상 유서와 다름없 다 고 말했다. 기록관에서 만났어요Ⅱ 제주 삼성여고 3명 수장고 공개 5 18기록관은 지난 5월14일부터 25일까 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기록물을 일반인에 5 18처럼 4 3때도 빨갱이 로 매도 당해 당시 학생일기보니 역사현장 온 기분 게 공개했다. 주요 전시물로는 5 18 당시 광주 여고 3학년이었던 주소연씨가 작성한 일기장, 5 18을 취재해 광주의 진실과 참상을 전 세계 에 알린 독일 외신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여권 이유림 학생은 주변에 금은방 같은 것이 많았 다는데 5 18 당시에 하나도 털리지 않고 시민의 식을 지키면서 운동을 한 것이 굉장하다 며 특 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저항한 것이 아니라 시민 과 학생, 직장인들이 똘똘 뭉쳐 군부독재에 저 임수현 학생 항한 것은 요즘 시대에도 배워야 한다 고 강조 과 안경,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 범시민궐기대회에서 낭독된 시민사회단체의 성 명서 원본, 동아일보 광주주재 기자였던 김영택 씨의 취재수첩 등이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기록관에는 문서와 사진, 필름, 시청각 자료 등 총 3만4143점의 자료가 보존돼 있다. 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제주도에도 5 18처럼 고민지 학생 국가에 의해 무고하게 도민들이 희생된 4 3사 프랑스 대학생들 방문 건이 있다. 4 3때 제주도민들도 빨갱이로 몰렸 프랑스 파리 에스트 마른 라발레 대학교수와 웹문화기술학과 대학원생들이 는데 5 18 때 광주시민들도 그랬다고 들었다. 5 18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지난 5월 8일 5 18기록관을 방문했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 며 제주도에서 다. 다큐제작 학생들은 광주를 방문하기 전 5 18민주화운동에 대한 사전교육 4 3은 모두 알고 있는 사건이니 만큼 5 18도 을 진행하고 촬영장소와 인터뷰 대상자까지 잠정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 같이 설명해주면 될 것 같다 고 말했다. 큐의 가제는 한국현대사의 주요사건으로서의 5 18민주화운동 으로 알려졌다. 다큐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대학원생 소니아 르 꽁뜨씨는 프랑스에서 배우지 못한 5 18에 대해 알게 된 것을 계기로 한국현대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 다 고 말했다. 26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기억 과기록 27

기록관 브리핑 5 18진상규명 포럼 집담회 열어 4 16사진전 및 집담회 (3. 24 ~ 5. 10 / 5. 27) 5 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어디있나요? 옛 광주가톨릭센터 건물이 5 18기록관입니다 업무협약 5 18 개인소장 자료 기증 운영시간 교통편 평일 : 09:00 ~ 18:00(주말 및 공휴일도 같음) 버스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및 1월 1일, 추석 설 당일 한국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관리기관 업무협약식 체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금호36, 송정98, 운림51, 지원45, 151, 관람료 첨단09, 95, 419, 518, 1187 무료(상설전시실) 금남55, 58, 59, 문흥80, 석곡87, 수완12, 풍암61, 공항1000 *특별,기획전시는 유료로 진행될 수 있음 금남로공원 송정98, 지원150, 151, 공항1000 나의갑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관장, 양숙자 市 교육청 민주인권생활교육과 과장 층별안내 예술의거리 입구 1,2,3층 상설전시실 문흥39, 대총170, 송암74, 수완49, 충암60, 용전184, 4층 열람실 대총70, 진월07 5층 수장고 6층 윤공희대주교실 7층 다목적 강당 28 5 18민주화운동기록관 소식지_2018.06. 지하철 금남로4가역 / 4번 출구

* 작품설명강연균作, 하늘과땅사이 1 (1981) 작가는 1980년 5 18을직접목격한화가로서광주의상황을고발하고광주의진실을언젠가는알려야겠다는사명감으로학살당한힘없는민중들의모습을있는그대로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