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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도 나름대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시점이 된 거 같네요. 마흔 여덟번이나 계속된 회사 소식지를 가까이 하면서 소통의 좋은 점을 배우기도 했고 해상직원들의 소탈하고 소박한 목소리에 세속에 찌든 내 몸과 마음을 씻기도 했습니다. 참 고마운 일이지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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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U.S. Department of State / August 2009 Volume 14 / Number 8 http://www.america.gov/publications/ejournalusa.html 미 국무부 / 2009년 8월 통권 14권 / 제8호 http://www.america.gov/publications/ejournalusa.html International Information Programs: Coordinator Jeremy F. Curtin Executive Editor Jonathan Margolis Creative Director George Clack 국제정보프로그램: 코디네이터 Jeremy F. Curtin 편집국장 Jonathan Margolis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George Clack Editor-in-Chief Richard W. Huckaby 편집장 Richard W. Huckaby Managing Editor Charlene Porter 실무편집인 Charlene Porter Associate Editor Joshua K. Handell 부편집인 Joshua K. Handell Production Manager Janine Perry 제작부장 Janine Perry Graphic Designer Sylvia Scott 그래픽 디자이너 Sylvia Scott Copy Editor Kathleen Hug 카피편집 Kathleen Hug Photo Editor Ann Monroe Jacobs 사진편집 Ann Monroe Jacobs Cover Designer David Hamill 표지 디자인 David Hamill Reference Specialist Martin Manning 참조 전문가 Martin Manning Cover: Specially designed by Teshkeel Media for ejournal USA, our cover features three characters from the comic book series THE 99. Bari the Healer (center left) channels energy to heal wounds and mend broken bones. Jabbar the Powerful (center) has muscles that swell to make him supernaturally strong. Noora the Light (standing center) has the ability to perceive and confront others with the truth within themselves. The creator of THE 99, Naif Al Mutawa, is interviewed in the article Superheroes Arise From a Life in Two Nations. Cover Art: Ron Wagner Color: Steve Buccellato Lettering: Comicraft s Albert Deschesne THE 99 are copyright c 2009 Teshkeel Media Group 표지: 테쉬킬 미디어에서 전자저널 USA를 위해 특별히 도안한 이번 호 표 지에는 THE 99 시리즈의 주인공 캐릭터 3명이 등장했다. 힐러 바리(중앙 좌측)는 에너지를 모아 상처를 치유하고 부러진 뼈를 다시 붙이는 능력을 갖고 있다. 파워풀 자바(중앙)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근육을 보유 하고 있다. 라이트 누라(중앙에 서 있는 캐릭터)는 내면의 진실을 투시하여 상대방을 꿰뚫어보고 대항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슈퍼히어로를 탄생시킨 두 나라에서의 삶 에 THE 99 시리즈의 원작자인 나이프 알-무타와와의 인 터뷰가 실려 있다. 표지 작화: Ron Wagner 채색: Steve Buccellato 활자체: Comicraft s Albert Deschesne THE 99 are copyright c 2009 Teshkeel Media Group Opposite: Another hero of Al Mutawa s THE 99, Jami the Assembler is an engineering and electronics genius whose superpowers seem as suited to the classroom as they are in the fight for justice. Art: June Brigman and Roy Richardson Color: Steve Buccellato 맞은편 페이지: 역시 THE 99 시리즈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어셈블러 자 미는 공학과 전자 분야의 천재로 그의 초능력은 정의를 지키는 싸움보다 는 학교 교실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작화: June Brigman, Roy Richardson 채색: Steve Buccellato ejournal USA 2

The Bureau of International Information Programs of the U.S. Department of State publishes a monthly electronic journal under the ejournal USA logo. These journals examine major issues facing the United States and the international community, as well as U.S. society, values, thought, and institutions. One new journal is published monthly in English and is followed by versions in French, Portuguese, Russian, and Spanish. Selected editions also appear in Arabic, Chinese, and Persian. Each journal is catalogued by volume and number. The opinions expressed in the journals do not necessarily reflect the views or policies of the U.S. government. The U.S. Department of State assumes no responsibility for the content and continued accessibility of Internet sites to which the journals link; such responsibility resides solely with the publishers of those sites. Journal articles, photographs, and illustrations may be reproduced and translated outside the United States unless they carry explicit copyright restrictions, in which case permission must be sought from the copyright holders noted in the journal. The Bureau of International Information Programs maintains current and back issues in several electronic formats at http:// www.america.gov/publications/ejournalusa. html. Comments are welcome at your local U.S. Embassy or at the editorial offices: 미 국무부 산하 국제정보프로그램국은 전자저널 USA 제호 아래 매월 온라인 저널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본 저널은 미국의 사회, 가치, 사 상, 제도뿐만 아니라 현재 미국과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이슈 들을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매달 영어로 당월호가 발간되고 난 후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러시 아어, 스페인어 번역본이 후속적으로 게재됩니다. 필요에 따라 특정 호 는 아랍어, 중국어 및 페르시아어로 번역 발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각 각의 저널은 통권과 호수에 따라 분류됩니다. 본 저널에 실린 주장이나 의견들은 반드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나 정책을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 국무부는 본 저널에 링크된 웹사이트들의 콘텐츠나 접속 가능 여부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으 며, 그러한 책임은 오직 해당 사이트 운영자에게 있음을 밝혀둡니다. 본 저널에 게재된 기사나 사진, 도표들은 저작권 제한 문구가 명시적으로 표시되지 아니하는 한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에서 복제 또는 번역될 수 있습니다. 단, 저작권이 제한된 경우에는 본 저널에 명시된 당해 저작권 소유자로부터 사용 허락을 얻어야 합니다. 국제정보프로그램국은 최신 호와 지난 호들을 비롯해 앞으로 발간 예정인 저널들의 목록을 다양한 파일 포맷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http:// www.america.gov/publications/ejournalusa.html). 본 저널과 관련하여 의견이 있으시면 거주하시는 국가 주재 미국대사관이나 본지 편집국으로 문의 하시기 바랍니다. Editor, ejournal USA IIP/PUBJ SA 5, 1st Floor U.S. Department of State 2200 C Street, NW Washington, DC 20522 0501 United States of America E mail: ejournalusa@state.gov 편집인 ejournal USA IIP/PUBJ SA-5, 1st Floor U.S. Department of State 2200 C Street, NW Washington, DC 20522-0501 United States of America 이메일: ejournalusa@state.gov 미국대사관 자료정보센터 Ircseoul@state.gov 전자저널 USA 3

About This Issue c enturies before the Common Era, scholars traveled to Taxila, Pakistan, to study Buddhism. Greeks traveled to ancient Persia to study under Zoroaster. Romans studied the language and ways of the Greeks. In this month of August, hundreds of thousands of students will follow a fine old tradition as they leave home to seek higher education in another land. Through the course of this coming year, more than 600,000 young people are expected to come to the United States alone to pursue some form of study. They will enter the country and find their ways to campuses scattered across the 50 states, to be welcomed by diverse academic communities. At the same time, more than 200,000 American students will leave their country for study abroad. International education is an imperative for them, their families, and their schools, but it is also a matter of national policy. Advocacy of and support for international study programs has been a key element of U.S. foreign policy for decades. Restating its commitment to this endeavor just a few years ago, the U.S. Senate resolved that educating students internationally is an important way to work toward a peaceful global society. As international travel makes the world a smaller place, and a globalized economy makes business, commerce, and employment spill across national boundaries, it is increasingly evident that fluency in other languages and knowledge of other cultures are desirable skills for young people to develop. While the global economic downturn may defer the dreams of some would be international students in the short term, long term trends show that increasing numbers of young people are enticed abroad to seek higher education. Almost double the number of students travel abroad for an education today as compared with 20 years ago. And while economic and security concerns imposed short term declines in those coming to the United States in the past, the number of traveling students tends to drift back upward as normalcy returns. Clearly, the natural tendency for young people to look toward a distant horizon cannot be suppressed for long. In this issue of ejournal USA, we meet young people in the midst of an international study experience. We meet others who are just beginning to absorb the lessons of their recent study abroad. Some not so young people reflect on their experiences in international study and explain how their lives were reshaped by the lessons and ideas they discovered far away from home. And parents describe how their children grow from the study abroad experience to become bolder, brighter human beings. We also offer tips and guidance for the young reader who may close this book and decide that the next stage of learning lies abroad. The Editors ejournal USA 4

이번 호를 내면서 기 원전 수세기 동안 구도자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얻기 위해 파키스탄 탁실라를 순례했다. 그리스인들은 자라투스트라 밑에서 수학하기 위해 고대 페르시아 를 여행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언어와 방식을 탐구했다. 이번 달 8월에는 수십만 명이 인류의 오랜 전통에 따라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유 학길에 오를 것이다. 앞으로 1년간 미국 한 나라에만 60만 명 이상의 유학생이 제각기 공 부를 목적으로 입국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미국에 들어와 전국 50개 주에 흩어진 대 학 교정을 찾아갈 것이며 다양한 학교 공동체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20만 명 이상의 미국 학생들이 해외 유학을 목적으로 미국을 떠날 것 이다. 해외 유학은 유학생 본인과 그 가족 그리고 학교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적으로도 높 은 중요성을 갖는다. 해외 유학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과 지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외 교 정책의 핵심을 구성해왔다. 불과 몇 해 전에 미 상원은 해외 유학생을 교육하는 정책이 평화로운 글로벌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고 결의하면서 이 정책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해외 여행으로 세계가 좁아지고 글로벌 경제의 확산으로 사업과 교역 그리고 고 용이 국경을 초월하기 시작하면서 능통한 외국어 실력과 이문화에 대한 지식이 청소 년들이 함양해야 할 중요한 소양이라는 인식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세계적인 불황으로 단기적으로는 일부 학생들의 경우 해외 유학의 꿈이 뒤로 늦춰 지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해외 유학생의 숫자가 날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날 해외 유학생의 숫자는 거의 두 배에 육박한다. 과거의 경우 경제나 안보상의 문제로 일시적으로 미국 유학생이 감소한 적도 있지만, 상황이 정상화되면 원 래 수준을 회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수평선 너머 먼 이국을 동경하는 청소년의 자연스러 운 갈망을 언제까지고 억누를 수는 없다. 전자저널 USA 이번 호에서는 현재 해외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과 만남을 가 진다. 최근 유학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막 가슴에 새기기 시작한 유학생들도 만나 본 다. 이제는 젊다고 할 수 없는 유학 경험자들이 자신들의 유학 생활을 회고하면서 그들이 머나먼 이국 땅에서 습득한 교훈과 생각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설명한다. 아울러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 보낸 학부모들로부터 해외 유학이 어떻게 그들의 자녀를 당당하고 현명한 성인으로 성장시켰는지 들어본다. 또한, 이 책자를 덮고 나서 해외 유학 을 결심한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과 요령도 제시한다. 편집부 일동 THE 99 are copyright c 2009 Teshkeel Media Group 전자저널 USA 5

U.S. Department of State / August 2009 / Volume 14 / Number 8 http://www.america.gov/publications/ejournalusa.html Campus Connections What You ll Learn 8 Becoming a Cultural Broker A Panel Discussion Six international students at American University talk about their lives and experiences on a U.S. campus in Washington, D.C. 12 My Daughter Has Blossomed Vikram Murthy, the Indian father of a student in the American University discussion, reflects on the decision to send his daughter to the United States for her education. 16 A Family of International Students Sri Lankan father Mangala P.B. Yapa, an exchange student in the 1970s, contrasts his experience with that of his daughter at American University in the 2000s. 23 Six Years in Sweden Charlotte West An American goes to Sweden as an exchange student and finds her life s work. 26 Here I Am, a Young Tree Najwa Nasr A Lebanese linguistics professor explains how an exchange program to the United States led her to life changing discoveries about earlier generations of Arab immigrants. 29 Hope and Friendship Take Over Romain Vezirian A French exchange student of Armenian heritage recalls how he overcame a legacy of prejudice during a semester spent on a university campus in Oklahoma. 32 Superheroes Arise From a Life in Two Nations An Interview With Naif Al Mutawa A Kuwaiti psychologist s binational upbringing has led him to spread a message of diversity and understanding through the graphic novel series THE 99. 35 Writing for Tolerance Naif Al Mutawa s first writing project attempted to teach the youngest readers about accepting 미 국무부 / 2009년 8월호 / 통권 14권 / 제8호 http://www.america.gov/publications/ejournalusa.html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캠퍼스 커넥션 8 문화 중개자의 양성 패널 대담 아메리칸대학에 재학중인 6명의 유학생이 워싱턴 D.C.에 소재한 캠퍼스에 서의 삶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 한다. 12 성숙해진 나의 딸 아메리칸대학 해외 유학생 대담자로 나선 학생의 인도인 아버지 비크람 무르티가 자신의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기로 한 결정에 대해 회고한다. 16 해외 유학생의 가족 1970년대 교환학생이었던 스리랑카인 망갈라 P.B. 야파는 2000년대에 자신의 딸이 아메리칸대학에서 교환학생으로서 겪는 경험을 자신의 경험과 비교한다. 23 스웨덴에서 보낸 6년 샬롯 웨스트 한 미국인이 교환학생으로 스웨덴에 가서 자신이 평생 할 일을 찾는다. 26 여기 어린 나무인 내가 있다 나즈와 나스르 한 레바논 언어학 교수가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자신이 아랍 이민자들의 이전 세대들에 관한 삶을 바꿀만한 발견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29 희망과 우정의 승리 로메인 베지리안 아르메니아계 프랑스 교환학생이 오클라호마에 소재한 대학 캠퍼스에서 한 학기 동안 편견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회상한다. 32 슈퍼히어로를 탄생시킨 두 나라에서의 삶 나이프 알-무타와와의 인터뷰 쿠웨이트의 한 심리학자는 두 나라에서 성장한 경험 덕분에 생생한 소설 THE 99 시리즈를 통해 다양성과 이해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이 되었다. 35 관용을 희구하는 글쓰기 나이프 알-무타와가 첫번째 글쓰기 프로젝트에서 시도한 것은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 대해 나이 어린 독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ejournal USA 6

37 Chuck Norris and the Search to Find Myself Meghan Loftus A former American exchange student describes a semester in Spain when she learned about herself and what she shares with young people of other cultures. 40 My Journey to Harvard Siyabulela Xuza A South African student reveals how a science experiment in his mother s kitchen helped pave the way to Harvard University in the United States. 37 척 노리스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길 메건 로프터스 과거 교환학생이었던 한 미국인 여성이 자기 자신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가졌던 스페인에서의 한 학기와 그리고 자신이 다른 문화권의 젊은이들과 나누었던 바를 설명한다. 40 하버드로 가는 여정 시야불레라 수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학생은 자신이 어머니의 부엌에서 행한 과학실험이 하버드대학으로 가는 길을 닦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지 밝힌다. Why It s Important 43 The Case for International Education Allan Goodman, President and CEO, Institute of International Education Record numbers of U.S. and international students are leaving their home countries to study abroad. 47 Passport to Success Alumni of international study programs have achieved high levels of professional success. 50 Just the Facts Basic statistics about foreign students and exchange visitors in the United States. 왜 중요한가 43 국제적인 교육의 근거 앨런 E. 굿먼, 국제교육원(IIE) 회장 겸 CEO 기록적인 숫자의 미국 및 전세계 학생들이 유학을 위해 고국을 떠나고 있다. 47 성공으로 가는 여권 해외 유학 프로그램 졸업생들은 높은 수준의 직업적 성공을 성취했다. 50 숫자로 본 미국 유학생 현황 미국의 외국인 유학생들과 교환방문자들에 관한 기초 통계. How It s Done 52 The Basics on U.S. Visas Summarizes the basic steps to obtain a visa and corrects misconceptions about the process. 56 Social Networks and Study Abroad Charlotte West International students are using social networks to enhance their learning experience. 59 New Requirements at U.S. Borders New requirements for U.S. citizens traveling in and out of the country are taking effect in 2009 2010. 61 Get Ready, Here You Go Steps to prepare yourself for travel abroad. 65 Resource Guide Books, reports, Web sites, and other reference material focused on international study. 비자업무 52 미국 비자에 대한 기초지식 비자 취득을 위한 기초지식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절차에 관한 오해를 바로 잡는다. 56 소셜 네트워크와 유학 샬롯 웨스트 유학생들은 학습경험을 증진하기 위해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고 있다. 59 미국 국경 통과 시 달라진 규정 국내외를 여행하는 미국 시민들을 위한 새로운 규정이 2009년-2010년에 발 효된다. 61 출국, 어떻게 준비할까 해외여행 준비 단계 65 참고자료 해외 유학에 관한 서적, 보고서, 웹 사이트, 기타 참고자료 전자저널 USA 7

What You ll Learn Becoming a Cultural Broker A Discussion With International Students at American University An estimated 600,000 international students will take their places on campuses in the United States in the weeks to come as a new university term begins. Another 200,000 Americans will head in the opposite direction and leave the familiarity of their own country for an education in a different culture. In those hundreds of thousands of lives, no two experiences will be exactly alike. But when international students begin to share their stories, common themes emerge about what it is like to find a place in a new country on a strange campus. ejournal USA Managing Editor Charlene Porter shared a couple hours with just such a group on the campus of American University (A.U.) in Washington, D.C.: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 문화 중개자의 양성 아메리칸대학 해외 유학생들과의 대담 앞으로 몇 주 후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약 60만 명으로 추산 되는 해외 유학생들이 미국 각지에 있는 대학 캠퍼스에 둥지를 틀게 된다. 한편, 20만 명의 미국인 학생들은 정든 고국을 떠나 다 른 문화권에서 수학하기 위해 출국 길에 오른다. 수십만 명에 이 르는 이들 국내외 유학생이 겪게 될 경험은 모두가 조금씩은 다 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유학생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털어 놓기 시작하면 낯선 나라나 낯선 캠퍼스에서 자리를 잡아간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일인지 공통적인 생각들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전자저널 USA에서 편집실장을 맡고 있는 샤를린 포터가 워 싱턴 D.C.에 소재한 아메리칸대학(A.U.) 캠퍼스에서 바로 그 집단 에 해당하는 유학생들과 대담의 시간을 가졌다. Akhmet Ishmukhamedov, Kazakhstan, 2009 Bachelor of Science, Political Science Shanika Yapa, Sri Lanka, Public Communications, undergraduate Gayatri Murthy, India, 2009 Master of Arts, International Communications José Henríquez, El Salvador, 2009 Master of Arts, International Development Stephanie Ayeh, Ghana, Economics/International Studies, undergraduate Gihae Song, South Korea, Arts Management, master s degree candidate. Jose Henriquez (third from left) explored the Shenandoah Mountains with A.U. friends Paul Colombini, Brigitte Basile, and Xingni Liang. 호세 엔리케(좌측에서 3번째)는 A.U. 학우인 폴 콜롬비니, 브리짓 바실레, 싱니 리 앙과 셰넌도어 산을 여행했다. Courtesy of Jose Hennquez 아크멧 이시무카메도프 (카자 흐스탄 2009년도 정치학 학사) 샤니카 야파 (스리랑카 공공 커뮤니케이션학 학부생) 가야트리 무르티 (인도 2009년 도 국제커뮤니케이션학 석사) 호세 엔리케 (엘살바도르 2009년도 국제개발학 석사) 스테파니 아예 (가나 경제학/ 국제학 학부생) 송지혜 (한국 예술경영학 석 사 예정자) Question: Akhmet, as a newly graduated student in political science, why did you think that Washington was the best place for you to study that subject? Akhmet: Actually I was studying under the presidential scholarship program Bolashak from Kazakhstan. When I provided all of my application documents for the scholarship, the government decided which university, which city it was going to send me. After taking into account my specialization, public administration, it selected Washington, D.C., because it is a city where major government institutions are located. My documents were sent to American University because the scholarship administrators had previously sent students to this university who were interested in public administration. 질문: 아크멧에게 묻겠다. 최근 정치학과를 졸업한 학생으로서 워싱턴이 가장 적합한 유학 장소라고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크멧: 사실 나는 카자흐스탄 정부에서 운영하는 볼라샤크 대 통령 장학생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았다. 장학생 신청 원서를 접 수하고 나자 정부에서 내가 유학할 대학과 지역을 지정해줬다. 정부에서는 내 전공이 행정학임을 감안하여 주요 정부 기관이 밀집한 도시인 워싱턴 D.C.를 선정했다. 장학생 담당자가 전에 도 행정학에 관심이 있던 학생을 아메리칸대학에 배정한 적이 있었던 까닭에 내 입학 원서도 이 대학에 접수됐다. ejournal USA 8

Furthermore, I was accepted to a highly ranked School of Public Affairs at American University. When I came here, I found that it was a great place to study and pursue my bachelor s degree in political science. 게다가 높은 평판을 얻고 있는 아메리칸대학 행정대학에서 내 입학을 허가해줬다. 실제로 현지에 도착해보니 정치학을 전공하 고 학위를 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As a presidential candidate, Barack Obama greeted students at American University during a January 2008 campaign stop. Gayatri Murthy credits Obama s speech with showing her the America that people imagined. 오바마 대선 후보가 2008년 1월 아메리칸대학을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사례하고 있다. 가야트리 무르티는 오바마의 연설이 자신에게 사람들이 상상해온 미국 을 보여줬다고 평가한다. c AP Images/Charles Rex Arbogast Q: The last year, a presidential election year, was quite a year to observe politics in Washington as the United States elected its first African American president. Tell me about your observations of these events. Akhmet: I am very glad that I was here at this elections. I observed how people were extremely excited about them. As a result, [there was] high voter turnout rate in general elections. Moreover, it was hard to predict who would win general elections. For example, last spring I asked one of my professors, Who do you think will win, McCain or Obama? He said, Probably, it will be McCain. Then in October he said, Probably Obama will win. When we were looking at primaries, caucuses, how politics works here is very different from any country in the world. Q: Shanika, you re a student of public communications, and certainly a lot of media issues were under debate during the presidential year. What were your observations? Shanika: I think it came with a lot of positive and negative things. Like the debates being available, that was very useful. A friend of mine actually decided who she was going to vote for based on the debates, which I thought was really strange, but that was how she did it. Q: Why did you think that was strange? 질문: 대선이 있었던 작년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당선됐 다는 점에서 워싱턴 정치권을 관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해였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관찰했는가? 아크멧: 대선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 다. 국민들이 대선에 얼마나 열광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 결 과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승자를 예측하기가 힘 들었다. 일례로, 지난 봄 교수 중 한 명에게 매케인과 오바마 중 누가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느냐? 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는 아 마도 매케인이 될 것 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10월에는 오바 마가 이길 것 같다 고 생각을 바꿨다. 예비선거와 전당대회를 지 켜보면서 미국의 정치 제도는 다른 나라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는 느낌을 받았다. 질문: 공공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하는 샤니카에게 묻겠다. 대선 기간 중에 언론에 관한 집중적인 토론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무 엇을 관찰했는가? 샤니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되어 있었다고 생각 한다.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로 대선 토론은 매우 유익했다. 친 구 중 한 명은 토론 결과를 참고하여 지지 후보를 결정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무척 이상했지만 그 친구는 실제로 그처럼 행동 했다. 질문: 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가? 전자저널 USA 9

Shanika: Because I have noticed here at A.U. that people are either Democratic or Republican. They are very strong in their convictions, and there are very few people who are not strongly affiliated with either party. Q: Your friend was different from other Americans you had observed, then? Shanika: Yes. And I know she missed one debate, and it really helped her that she was able to watch it online later. But at the same time, I thought the media was biased towards the male candidates when compared to the female candidates. I m minoring in women and gender studies so it matters, and I talked about it quite a bit in my courses. That was really not fair. I felt I was in a majority who had a problem with that, and especially how Senator [Hillary Rodham] Clinton and Governor [Sarah] Palin were treated by the media. They were scrutinized in a way that the male candidates weren t. Gayatri: When I came here in August 2007, it was the first time I had ever been here. My idea of America was popular culture and literature and what my dad would tell me. For me, my picture of America was Simon and Garfunkel and people marching on the Mall [a site of many demonstrations in Washington, D.C.]. (laughter) That was what my dad would tell me about, but my first semester didn t match up to that idealistic picture of America. Then I remember the spring semester of 2008, Obama came to A.U. and spoke, and that was the speech where he was endorsed by [U.S. Senator] Ted Kennedy, and it all happened here. My friends were saying, We have to go! I remember waking up at five in the morning and standing in line for that. From that moment on, the rest of 2008, I could see that idealism. Whatever side of the spectrum you were on, people were talking and had things to care about. For me, I could see the America that people imagined, especially my parents generation. When they imagine America, they imagine Vietnam War protests, Beat Generation poetry, and I could see that. It was just a little more alive. Q: Tell us about that day of the speech at five in the morning. Were your friends dragging you out of bed? Gayatri: No, I was, like, This I want to see. Because I am studying international communications, I am impressed by someone who can speak well and communicate with a range of people. So I was interested, but it wasn t like I had to go. November 4th [the U.S. election day in 2008], I was excited. January 20th [Inauguration Day], I was excited. By that time, I thought, I have to go. It would be stupid to miss this moment. Q: Enough politics, let s talk about your academic experience. Gayatri, you re warmed up. Tell me about the differences in how classes are conducted in the United States and in India. 샤니카: 이곳 A.U.에 와서 안 사실인데 사람들이 민주당 아니면 공화당 둘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지지 성향이 확고했고 어느 당 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질문: 그렇다면 자신이 관찰한 다른 미국인들과 그 친구가 달랐 다는 말인가? 샤니카: 그렇다. 그리고 그 친구가 TV 토론을 못 보고 지나친 적 이 한번 있었는데 나중에 인터넷으로 다시 시청할 수 있었던 것 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만, 언론이 남성 후보와 비교하여 여 성 후보에게 편향된 태도를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전공으 로 여성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에 관심이 있었고 강의 시간에 상당한 비중으로 다뤘다. 매우 불공평했다. 그 문제에 불 만을 가진 사람들이 나 이외에도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언론이 클린턴 상원의원과 페일린 주지사를 다루는 방식이 특히 더 그 랬다. 여성 후보들은 남성 후보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방식으 로 언론의 검증을 받아야 했다. 가야트리: 2007년 8월에 난생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 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은 대중문화와 문학 그리고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전부였다. 미국을 상상하면 사이먼과 가펑클 그리고 내셔널몰 (워싱턴 D.C.에서 많은 시위가 벌어지는 장소 중 한 곳) 에서 행진하는 시위대가 떠올랐다. (웃음) 하지만 아버 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과는 달리 미국에서 보낸 첫 학기는 그 런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후 나는 오바마가 A.U.를 방문해 서 연설을 했던 2008년 봄 학기를 기억한다. 테드 케네디(상원 의원)의 지지를 확보했던 그 연설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고 고집했다. 당일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떠서 줄을 섰던 기억이 난 다. 그날을 시작으로 2008년 한 해 동안 나는 미국의 이상주의 를 목격할 수 있었다.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해 있던 간에 사람 들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고 관심을 기울일 대상이 있 었다. 나는 사람들이 상상하던, 특히 내 부모님 세대가 상상하던 미국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미국을 상상할 때면 베트남전 반전 시위와 비트족을 상상하곤 했고,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지 조금 더 생동감이 넘쳤을 뿐이었다. 질문: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뜬 날에 대해 말해 달라. 친구들이 침 대에서 억지로 끌어냈는가? 가야트리: 그렇지 않았다. 말하자면 직접 보고 싶다 는 느낌이었 다. 내 전공이 국제커뮤니케이션학인 까닭에 언변이 뛰어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 이 많다. 그래서 흥미는 있었지만 꼭 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아니 었다. (2008년 대선 투표일이었던) 11월 4일에 나는 흥분했다. (대통령 취임일이었던) 1월 20일에 나는 흥분했다. 그 당시 나는 꼭 가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친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라고 생 각했다. 질문: 정치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각자의 학업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가야트리가 몸이 풀렸으니 미국과 인도의 강의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달라. ejournal USA 10

Gayatri: It depends on what you study, but to a large extent, classes are very top down in India. The professor comes with a very fixed idea of what he or she has to cover in class. I went to a very big Jesuit college; each class had about 300 people in it. It was difficult to have a class discussion, and that leads to a level of indifference. And our system was all about exams in the end, like the British system. You sit in class all year, and one day at the end of the year you regurgitate everything you learned, and that s the end of it. No term papers, no presentations. The one exception, my literature class was more discussion oriented and smaller. When I came here, the difference was that you are encouraged to give your opinion, to raise your hand in class and disagree. To say, My world view is different. We all learn then, and so that s the beauty of the American classroom. José: I agree. I studied in Guatemala, and it was very similar to what Gayatri described. Discussions were not really promoted, and sometimes professors used to show that they had the authority; to argue with them was risky. To me that was the main difference. I really loved the way we had discussions with multiple points of view in the international development program. Q: For you personally, was it difficult to adjust to the different mode of conduct in classes? José: The first semester it was difficult. I had some English, but we had to read hundreds and hundreds of pages in English, and I didn t have the speed reading for that. And I didn t understand the dynamics of expressing a totally contrary point of view to a classmate or the professor, like saying, I m sorry, I don t agree on that. So it was a process of getting used to that. Stephanie: It was definitely difficult in the beginning to get used to just jumping in. Sometimes I felt like people were just jumping in [the discussion] trying to show they were smart. That s where I had issues. Where is the line between respecting the professor and expressing your own views? Sometimes I feel that line is crossed. Even now, I m in my final year, and I still find it difficult to just cut in like that. Gihae: I totally agree. I thought that some of the students acted really rude to the professor. I thought the professor is here to act more like a facilitator than an instructor, without acting on a lot of authority. When I came here for the first semester, I had to do a lot of reading. I was afraid that my understanding of the reading might be wrong, so I stopped talking in the classroom. I lost some self confidence then. That made other classmates and some professors think that I did not do the reading or that I don t have any thoughts or opinions on the topics they addressed. And it wasn t the culture that I was raised up. We had to listen, not talk, in the classroom. So the first semester was really hard. 가야트리: 전공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도에서는 대개 하향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교수는 그날 강의 주제와 관련하 여 상당히 정형화된 생각을 품고 강의실에 들어온다. 나는 규 모가 매우 큰 예수회 대학에 다녔는데 매 강좌의 수강 인원이 300여명에 달했다. 토론식 수업은 어려웠고, 그 때문에 수업에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인도의 강의 방식은 영국과 유사 하게 기말시험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 해 내내 강의만 듣다가 기말에 하루를 정해 그때까지 배운 모든 지식을 쏟아낸다. 그 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과제물 제출도, 발표도 없다. 예외가 있 다면 문학 수업만큼은 소규모로 편성되어 토론식으로 진행됐 다. 이곳 미국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수업 시간에 손 을 들어 반대 의견을 표현하도록 권장한다는 차이가 있었다. 내 세계관은 다르다 고 말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면서 배 우게 되고, 거기에 미국식 수업의 강점이 있다. 호세: 동의한다. 나는 과테말라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가야트리 가 묘사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토론은 권장되지 않을 뿐 아 니라 교수가 권위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교수와 논쟁을 벌 인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내가 볼 때 그 점이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판단된다. 국제개발학 교육과정에서 다양한 시각들 을 바탕으로 토론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질문: 개인적으로 전혀 다른 수업 방식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 지 않았는가? 호세: 첫 학기에는 힘들었다. 영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 지만 수백 페이지를 탐독해야 했는데 내게는 속독 능력이 부족 했다. 게다가 죄송하지만 그 점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처럼 급우나 교수를 상대로 상반된 의견을 제시하는 효과적인 방법 을 잘 알지 못했다. 이처럼 적응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스테파니: 처음에는 끼어드는 데 익숙해지는 것이 굉장히 어려 웠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잘난 척 하려고 (토론에) 끼어드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내게는 그 점이 문제였다. 교 수를 존경하는 것과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의 경계선은 어 디인가? 간혹 그 경계선을 넘는 경우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졸업반인 지금도 그런 식으로 끼어드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지혜: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부 학생들은 교수에게 정말로 무례 하게 행동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교수들은 권위를 앞세 우는 일이 거의 없어서 강사라기보다 진행자에 가깝다는 느낌 이 든다. 미국에서 맞이한 첫 학기에 엄청난 분량의 교재들을 소화 해야 했다. 내가 옳게 이해했는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자신감을 잃었다. 그러자 다른 급우들과 일부 교수들은 내가 수업 교재를 미리 읽지 않았거나 강의 시간에 다루는 주제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 이나 의견도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내가 익숙해져 있던 문화 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말하기가 아닌 듣 기에 집중하도록 교육받았다. 그래서 첫 학기는 정말 힘들었다. 전자저널 USA 11

My Daughter Has Blossomed Vikram Murthy Vikram Murthy, the father of international student Gayatri Murthy on the American University panel, tells another side of the story about international education. Murthy is an electrical engineer who lives and works in Mumbai, India. 성숙해진 나의 딸 비크람 무르티 아메리칸대학 해외 유학생 대담자로 나선 가야트리 무르 티의 아버지 비크람 무르티가 해외 유학의 또 다른 측면에 대 해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무르티는 전기공학자로 현재 인도 뭄 바이에 거주하고 있다. Courtesy of Vikram Murthy/Photo by Narayan Raju Vikram Murthy (right) says that studying in the United States has benefitted his daughter Gayatri. 비크람 무르티(우측)는 미국 유학이 자신의 딸인 가야트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M y wife and I both welcomed the idea when Gayatri told us she was determined to pursue a postgraduate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We did not put up any resistance, but what did bother us were two things: How would we raise sufficient funds to finance her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and how would Gayatri be able to live independently in a strange environment? We were very fortunate in meeting and engaging a consultant in Mumbai who counseled us through some of those problems and set many of our apprehensions to rest. After meeting him, Gayatri, my wife, and I were able to go through the whole process with a relative degree of comfort and confidence. Later Gayatri won a prestigious scholarship to study at American University, so that eased our financial concerns and, of course, made us very proud. When it came time to face the actual separation, my wife and I were certainly more nervous. Gayatri had never lived away from home for the 22 years that she had spent with us in Mumbai. We were most apprehensive about Gayatri s first few weeks she would spend in Washington as we had no close acquaintances there to greet her or guide her or advise her. 가 야트리가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때 나와 아내는 그 결정을 환영했다. 우리는 조금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미국 유학에 필요한 학자금을 마련할 것이며, 또 가야 트리가 과연 낯선 환경에 홀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가 걱정 이었다. 그러던 차에 우리가 고민하던 문제들을 상담해주고 우리 부부의 근심을 상당 부분 해결해준 뭄바이의 어느 컨설턴트 를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나와 아 내 그리고 가야트리가 함께 상담을 받고 난 후에는 비교적 마 음의 안정과 확신을 갖고 유학 준비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나 중에 가야트리가 아메리칸대학에서 유학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권위 있는 장학금을 탈 수 있었던 까닭에 금전적 부담은 크게 줄었고 우리 부부는 딸아이가 무척 자랑스러웠다. 막상 헤어져야 할 순간이 오자 나와 아내의 근심은 커졌 다. 가야트리는 뭄바이에서 22년을 살면서 한번도 가족과 떨 어져본 적이 없었다. 워싱턴 현지에서 딸아이를 맞이하거나 도움이나 조언을 줄 가까운 친척이 없었던 탓에 혼자서 지낼 처음 몇 주가 특히 걱정이 됐다. ejournal USA 12

Gayatri was determined to travel alone, without either of us. In the end, she did locate a lady in Washington who was the sister of a close friend from India. This acquaintance received Gayatri and offered her a place to stay for a few weeks before she found her own residence. In fairness I would say both we, the parents, and Gayatri suffered from the separation. We missed the presence of our only child each day in the evenings when we both returned from work, and she missed the warmth and comfort of home, as well as the familiarity and confidence of living in Mumbai. Though we have missed her, my wife and I have seen a welcome change in Gayatri in the two years she has lived in the United States. She is so much more confident and articulate. She is able to take decisions in her personal and professional life with ease and without the need to consult us. She has become a center of conversation amongst most audiences and does it with great ease and flair quite in contrast to her reticence and quiet nature as a child. A change in her personality began at St. Xavier s College in Mumbai, but she has blossomed in the U.S. environment. Other parents might ask me if they should send their child to another country as we did. I don t have a straightforward answer. I believe that the background and adaptability of the child to an alien environment will depend a lot on his or her upbringing. A child from a semi urban or rural background is going to find it harder than one brought up in cities where life is challenging and children learn to adapt more easily. The parents and their socioeconomic backgrounds will have a lot of influence on the child s adaptability to change also. The child s familiarity with the English language is another factor. This is natural to many Indian students who go to the United States, but not at all to others. Notwithstanding all I have said, my advice to any parent from India is that an education abroad is an experience that will transform their child into a confident person who can live independently and take both personal and professional decisions to his or her benefit. 가야트리는 나나 아내를 동반하지 않고 혼자 여행하겠다 는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결국에는 인도에 있는 친한 친구의 자매를 수소문해서 워싱턴 현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되 었다. 이 여성은 가야트리가 숙소를 정할 때까지 몇 주 동안 자신의 거처에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부부와 가야트리 모두 이별이 고통 스러웠다. 우리 부부는 매일 저녁 집에 돌아오면 외동딸의 빈 자리를 아쉬워했고, 딸아이는 뭄바이에서의 익숙하고 안정된 삶과 푸근하고 편안한 집을 잊지 못했다. 나와 아내는 딸이 무척 보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2년 동 안 생활하는 동안 가야트리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딸아이는 전보다 자신감이 넘쳤고 매사가 분명했다. 부모의 도움 없이도 본인의 사생활과 진로에 관한 결정을 척척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과묵하고 조용했던 유년기 와는 전혀 다르게 어느 모임에서나 능숙하고 편안하게 대화 를 주도했다. 딸아이의 인성이 싹을 틔운 것은 뭄바이의 성사 비에르대학이었지만 비로소 꽃을 피운 것은 미국이었다. 다른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를 나처럼 해외로 보내야 할 것인지 내게 묻곤 한다. 나는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이질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나 배경은 당사자의 성장 과정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도시나 농촌에서 자란 아이는 경쟁적인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법을 보다 쉽게 익힐 수 있는 도시 아이보다 어려움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부모와 그들의 사회경제적 배경 역시 아이의 적응력에 지대한 영향 을 미친다. 영어에 대한 친근함도 요인이 된다. 미국으로 유학 을 떠나는 다수의 인도 학생들에게는 퍽 자연스러운 일이지 만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해외 유학을 통해 자녀가 독립심을 키우고 본인의 사생활과 진로 에 대한 유익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인도의 모든 학 부모들에게 내가 전하고 싶은 조언이다. 전자저널 USA 13

Q: Did you become more active in the classroom discussion over time? 문: 시간이 지나면서 토론에 활발하게 참여하게 되었는가? Gihae: I m still quiet. But I began to talk with professors, saying if you can give me some time to talk, rather than me speaking up and jumping in, I can answer questions. I asked professors each time when the semester begins. They understood my culture differences, and when the chance was given I was prepared. Q: Understanding language in the classroom is one thing, but understanding American students and how they talk and interact, that might have required even further adjustment for you. Did you find informal communication difficult among your peer group? Hailing from India s warm west coast, Gayatri Murthy (left) huddles with friends Shanti Shoji (top) and Maria Fiorio (right) on a snowy December day at American University. 따뜻한 인도 서해안 출신인 가야트리 무르티(좌측)가 눈이 내리던 12월 의 어느 날 아메리칸대학 교내에서 친구 섄티 쇼지(위) 그리고 마리아 피오리오(우측)를 꼭 부둥켜 안고 있다. Courtesy of Gayatri Murthy 지혜: 나는 지금도 말수가 적 다. 하지만 자진해서 발표를 하거나 토론에 끼어들지는 않 지만 교수가 발표 기회를 주면 의견을 개진하기 시작했고 질 문에 답을 할 수도 있다. 매 학 기가 시작될 때마다 교수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들은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주었고 내가 준 비가 되었을 때 기회를 주었다. 질문: 수업 시간에 사용되는 언어 를 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미국 인 학생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들이 말하고 교류하는 방식을 습 득하기 위해 별도의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학우들 간의 평상 시 의사소통이 힘들지 않았는가? Gayatri: I grew up with English as my first language, so that was an immediate advantage. That culture shock didn t exist. I come from a big city, Bombay [Mumbai], so coming from a city of 20 million people, my idea of space is very different. We re just not used to it. Private space is nonexistent. Space is a big thing [issue between people], and it even infiltrates the definition of friendship and your boundaries, what you can expect or not expect from a friend. Initially my gut reaction was, I miss home. I can t call my friend at two in the morning and ask them for something. I was sad, and I would compare and contrast the two different places. Eventually, you reach a point where you see both cultures for what they are. You begin to see the societies as both an outsider and an insider. Here, I ve become the Indian spokesperson. I go home and I m the kid who came back from America who can tell us how they really are. Q: Does that mean you get past the compare andcontrast stage and take circumstances and cultural ways for what they are? Gayatri: Yes. They are different systems of existence. Just as traffic rules are different in America and different in India. That s the system, that s how it evolved, and you see it for what it is. But it has a disadvantage because you become an outsider everywhere, like you re falling between two worlds. I learned this term in a cross cultural class once: a cultural broker. Hopefully you become a broker between cultures. 가야트리: 나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 자랐기 때문에 그 점이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래서 문화 충격은 일어나지 않 았다. 나는 2천만 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인 봄베이 출신인 까닭 에 공간에 대한 개념이 무척 상이하다. 단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그러한 개념에 익숙하지 않다. 사적인 공간이라는 것이 아예 존 재하지 않는다. 공간은 중요한 개념이며, 자신이 예상했건 그렇지 못했건 간 에 친구와의 우정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경계를 규정하는 영역 까지 침범하곤 한다. 내가 처음 받은 느낌은 고향이 그립다. 새 벽 두 시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할 수도 없다 였다. 나 는 서글펐고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장소를 비교하고 대조해보곤 했다. 종국에 가서는 두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외부인의 관점과 내부인의 관점에서 사회를 파 악하기 시작한다. 이곳 미국에서 나는 인도를 대변한다. 내가 귀 국하면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미국의 실제 모습을 말해줄 수 있는 유학생이 된다. 질문: 그 말은 자신이 비교 대조의 경지를 넘어 현 상황과 문화 적 양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인가? 가야트리: 그렇다. 둘은 서로 다른 존재 시스템이다. 미국과 인 도의 교통 법규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시스템이고 그것이 발전해온 방식이며 그 본질을 파악하게 된다. 다만, 두 세계 틈새에 빠진 것처럼 양쪽 모두에서 외부인이 될 수도 있으 므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나는 비교문화 수업에서 문화 중개자라는 용어를 접한 적이 있다. 희망컨대, 두 문화를 연결하는 중개자가 될 수 있다. ejournal USA 14

Q: Let s go around the table with that question. What was your most difficult cultural adjustment? Akhmet: I m a very open person, and I m glad to face new challenges. Before coming to the United States, I went to South Korea for an exchange. I went through adaptation process to Korean culture. From that international experience I was prepared for some of the challenges in the U.S., for example, a challenge that arises from different communication styles. I noticed that American students are very open to talk about any topic. However, I was not comfortable talking about religion with them because I rarely discussed it with my peers in Kazakhstan. By being open, trying to understand American students point of view and asking many questions, I easily adapted to these kinds of conversations. Another kind of culture adjustment was getting used to the professor student relationship. Professors here want your contribution and active participation in the class all the time. They encourage students to join class discussion. In Kazakhstan, even if professors want that, they do not explicitly articulate that. In the United States, you have to express your opinion explicitly because otherwise the other person will have hard time in understanding you. Sometimes, for example, I did not say details of something because I thought it was too obvious. I thought that my friend with whom I talked will understand. But then he would say, Why didn t you tell me? I didn t know what you were thinking. So I became more explicit person, more so than I would be in Kazakhstan. 질문: 이 물음에 대해 각자의 대답을 들어보도록 하자. 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 아크멧: 나는 매우 개방적인 성격이다. 또한, 새로운 도전을 반 긴다. 미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간 적이 있다. 한 국에서 현지 문화에 대한 적응 과정을 밟았다. 그 경험을 바탕으 로 미국에서도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문제 같은 여러 문제들에 대처할 준비를 갖출 수 있었다. 미국 학생들은 어 떠한 주제에 관해서건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 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만, 고향 카자흐스탄에서는 학우들과 종교에 관해 토론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주제는 내게 불편했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미국 학생들의 시각을 이해 하려고 애쓰며 많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이러한 종류의 대 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문화적 적응이 필요했던 또 다른 분야는 교수-학생 관계에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이곳 교수들은 학생의 활발한 수업 참여 와 기여를 항상 요구한다. 그들은 학생들이 토론에 동참할 것을 권장한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설사 교수가 토론을 원한다 하더라 도 겉으로는 그 같은 의중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자신 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이해를 얻기 힘 들기 때문에 의견을 분명하게 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나 는 대화 상대였던 친구가 내 생각을 이해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나중에 왜 내게 말하지 않았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몰랐다 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나는 카자흐스탄에 있을 때보다 의사 표현이 확실한 사람이 되었다. Stephanie: Making friends was very difficult. I used to think I could make friends with anybody, that it was easy to talk about anything. But after a while here, I figured out that the things I find funny, other people don t find funny. Something I might want to talk about for hours and hours, people I met here were, like, What is that about? Just getting along with people was fine, but really bonding with people and feeling, like, You see me. You know what I mean, that was very difficult. When you are in that state, it s very easy to just chill with your African friends because they understand what you re talking about. So it was easier to make friends with people from other countries, more than it was with Americans. I like it if they listen to my opinion, and I want to hear their opinion, says Gihae Song, who encourages exchange students to focus on their language skills. 송지혜는 교환 학생들에게 어학 능력을 기를 것을 조언하면서 나는 그들이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좋고 나 또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고 말한다. 스테파니: 친구를 사귀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나는 어떤 주제에 관해서건 쉽게 대화를 풀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하고나 친 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은 별로 재 미있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몇 시간이고 수다 를 늘어 놓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 들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 는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 단순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진정 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내 말이 무 슨 뜻인지 알겠지 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정말로 어려웠다. 그럴 때면 아프리카 출신 친구 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할 수 Courtesy of Gihae Song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 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미 국인 친구들을 사귀는 것보다 쉬 웠다. 전자저널 USA 15

A Family of International Students Mangala P.B. Yapa When he sent his daughter Shanika to American University, Mangala Yapa knew that she was still just a phone call away from Sri Lanka less distance than separated him from home when he studied abroad 30 years ago. Yapa is a shipping executive in Colombo, Sri Lanka. 해외 유학생의 가족 망갈라 P.B. 야파 망갈라 야파는 딸 샤니카를 아메리칸대학으로 유학 보내 면서 전화 한 통이면 자신의 딸과 언제라도 연락이 닿을 수 있 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30년 전 자신이 고국 스리랑카를 떠나 유학할 때와 비교하면 훨씬 가까워진 거리였다. 야파는 스 리랑카 콜롬보의 한 운송업체에서 중역으로 재직하고 있다. Courtesy of Mangala Yapa Mangala Yapa (center) and his wife Chandrika (right) both studied abroad. Their younger daughter, Malika (left), will follow her sister to the United States for college. 망갈라 야파(중앙)와 그의 아내 찬드리카(우측)는 모두 해외에서 유학 했다. 둘째 딸 말리카(좌측)도 언니의 뒤를 이어 미국 대학에서 유학할 계획이다. Y ou might say that my daughter Shanika s path to become an exchange student began with my own similar journey in the 1970s. I went to Canada when I was about 17 years old, and spent three months in the youth exchange program Canada World Youth. I was there for a short period, but I really liked that experience and the exposure to North America. I returned to Sri Lanka and tried to continue my higher studies. At that time, young people in Sri Lanka didn t get the choices they have today. You could not decide exactly where to pursue your higher studies. The opportunity I got was in Russia. One might ask, why Russia? Well, that was the opportunity I got, and fortunately that was a fully paid scholarship. My parents could not have afforded any higher education abroad for which they had to pay. So I did my university education in Russia, and that gave me a completely different kind of exposure in life. This, of course, was the time of the Cold War, and since I had been in North America and then to Russia, I started to understand the world more comprehensively and differently from what I would have otherwise. I had seen both sides. While I was in Russia, I travelled a lot. In fact, during the latter part of my Russian education, my wife, then my girlfriend, was in UK for some higher education and work experience. She is a doctor today, but in those days we used to meet in UK or elsewhere in Europe. As a result of these travels and experiences, we had a more open approach to a lot of things. We had quite a good knowledge of what was going on the world. 내 딸 샤니카가 교환 학생의 길을 가게 된 것은 1970 년대에 나 자신이 겪었던 비슷한 여정에서 비롯됐다 고 말할 수 있다. 나는 17세 때 캐나다로 건너가 석 달 동안 캐나다 월드 유스에서 운영하는 교환 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북미 대륙을 접한 경험은 내게 매우 소중했다. 스리랑카로 돌아온 나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당시 스리랑카에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누리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 지지 않았다. 개인은 자신이 공부하고 싶은 나라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내가 얻은 기회는 러시아였다. 혹자는 왜 러 시아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당시로서는 그것이 내가 얻은 기회였고 운 좋게도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내 부모님은 유학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없었 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학부 과정을 러시아에서 마쳤고, 이 를 계기로 완전히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무렵 세계 는 냉전 상태였고 북미와 러시아를 차례로 경험한 나는 세계 를 보다 포괄적이고 새로운 시각에서 파악하기 시작했다. 나 는 양쪽을 모두 관찰한 사람이었다.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여러 곳을 여행했다. 러시아 유학 시절의 후반부에 당시 연인이었던 지금의 내 아내는 학 업과 실무 경력을 쌓기 위해 영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지금은 의사가 된 아내와 나는 당시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에서 만나 곤 했다. 이처럼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경험은 우리 부부가 다 양한 사물에 대한 보다 개방적인 태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 가 되었다. 우리는 국제 시사에 대한 매우 정확한 지식을 얻 을 수 있었다. ejournal USA 16

When Shanika said she really wanted to go out of Sri Lanka to study, both myself and my wife encouraged it because of our own experiences. We were happy to send her out and expose her to new cultures. Of course it was a big decision in the family, but we were not apprehensive. Today it is a completely different world from when we were international students. I missed my family when I was abroad at her age in Canada and Russia. Communications were very poor; there was no e mail, no telephone communications. We only had letters, and they would take weeks and weeks to arrive, so it was tough. But today, communications are much easier. You can talk on the telephone. You can even see each other in a videoconferencing. If my daughter needs me, she can call me, text me, e mail me. There are so many ways. If there is an emergency, she can get a flight quickly to come back to Sri Lanka. In those days, you couldn t transfer money very quickly, you couldn t buy a ticket so easily. You couldn t afford it. There were a lot of issues. Even if communications were available, they weren t so practically accessible for everyone. But now I think this globalization has taken the whole world into a different kind of level, which is fantastically good because it makes life easier for everyone. And perhaps my daughter will find when she starts working that a totally new world is beginning to emerge. Globalization and global citizens these are the things of the futur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a great place to be at this time of development, and she can be better prepared for and more involved in the change to come globally. Change is the theme of President Obama, so why not be part of it? So I m quite pleased that Shanika has had the opportunity to be there at this time of changes taking place in America. I have encouraged the second daughter to take a similar approach to her education, and now she s going to study design and architecture at the Pratt Institute in New York this fall. 그래서 샤니카가 스리랑카를 떠나 해외에서 유학하고 싶 다고 말했을 때 우리 부부는 자신들의 체험에 비추어 딸아이 의 생각에 찬성했다. 우리는 샤니카가 해외로 나가 새로운 문 화와 조우하는 것이 기뻤다. 물론 우리 가족에게는 중요한 결 정이었지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우리 부부가 유학하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세 상이 되었다. 내가 딸아이 나이에 캐나다와 러시아에서 유학 할 당시에는 가족을 무척이나 그리워했다. 그때는 통신 수단 이 매우 열악했다. 이메일도 없었고 전화도 없었다. 오직 서신 만이 왕래가 가능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몇 주씩 걸리곤 했다. 그처럼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통신 수단이 크게 나 아졌다.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화상전화로 서로 얼굴 을 볼 수도 있다. 딸아이가 원하기만 하면 내게 전화나 문자 혹은 이메일을 보낼 수 있다.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긴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그 즉시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로 날아올 수 있다. 내가 유학하던 시절에는 외화 송금에 시간이 많이 걸 렸고 쉽게 항공권을 구입할 수도 없었다. 그럴 만한 경제력이 없었다. 그 밖에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통신 수단이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지 않은 상 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화로 전세계가 전혀 새로운 경 지에 도달했다. 모든 사람의 삶이 편해졌다는 점에서 무척이 나 반가운 일이다. 아마도 내 딸이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세상 이 펼쳐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로벌화와 글 로벌 시민이 둘은 미래를 대표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오늘날 과 같은 발전의 시대에 개인이 경험해볼 만한 최고의 장소이 며, 딸아이는 글로벌 차원의 변혁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고 보 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은 오바마 대통령 의 상징이다. 그 일부분이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나는 샤니카가 이 같은 변혁의 시기에 미국에 머물 수 있 는 기회를 잡은 것에 대해 무척이나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둘 째 딸에게도 언니와 같은 길을 가도록 권해 왔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둘째 딸아이도 뉴욕 프랫대학에서 디자인과 건축을 공부할 예정이다. 전자저널 USA 17

Shanika: I was trying to think of something that really, really shocked me, and I couldn t think of anything. I was really surprised actually at how similar our thoughts and views were, and how comfortable I was with American students. It wasn t that I was expecting to be uncomfortable around them, but I wasn t expecting a level of comfort where I could be walking along with a friend and we d both start laughing at the same time because of something funny we saw on the street. I felt very fortunate that I happened to stumble across a group of people who were very similar in opinion and world view to me. There is one friend I made in my freshman year. I was just really surprised that we grew up on different sides of the planet and we have such similar opinions that it is creepy sometimes. And I have more than one friend whom I have that bond with. Gihae: South Korea is very westernized, so I don t have any shock. My difficulty is with the language. Whenever I talk with a person casually, I don t want them to feel that I m different, that I m a foreigner. I like it better if they listen to my opinion, and I want to hear their opinion. So whenever I don t understand some of the language they use, I just smile. I don t want to bother them with a question about language. I think that is my problem. So language is my greatest difficulty. I tried to do phone texting with an American friend, but I couldn t understand anything. I m trying hard to adjust to that part of the culture. José: I find that the way people are friendly here is not the way I am used to in Latin America. That matters when you are starting to get into relationships with others. You go a certain number of degrees latitude north, and people are not as friendly as in the south, in general. It is not something I really like. The other thing that bothered me, and it s probably becoming a worldwide trend, you are invited here to spend, to consume. Sometimes, I find it hard to observe. I remember the first time I went to a large store with a pet section, and I couldn t believe all the merchandise. (laughter) Q: So they had dog sweaters in a variety of styles, and leashes in six colors, and hats for dogs? José: Yes, yes, I couldn t believe it. But that s becoming more of a worldwide thing. Shanika: I think I had been here a week when someone took me grocery shopping. I wanted to get cereal. I go to the cereal aisle, and I m staring up and there are more different kinds of cereal than I can see. I ve always had the same kind of cereal. I ve never tried anything else. There s just too many options. 샤니카: 내가 충격을 받았던 일을 기억해내려고 아무리 애를 써 봐도 그런 기억이 전혀 없다. 오히려 내 경우에는 미국인 학우들 의 생각이나 시각이 나와 너무나 흡사하고 그들과 지내는 것이 편하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들과 불편한 관계를 예상했던 것 은 아니지만 함께 길을 걷다 재미난 광경을 보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와 생각이나 세계관이 매우 흡사한 또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한다. 내가 1학년 때 사귄 친구 하나는 서 로가 지구 반대편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놀랄 만 큼 비슷했기 때문에 어떤 때는 두렵다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내 게는 유대감을 나누는 친구가 여러 명 있다. 지혜: 한국은 고도로 서구화된 나라인 까닭에 충격 을 받지는 않았다. 내가 어려움을 겪은 부분은 언어였다. 누군가와 격의 없 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내가 그들과 다르다거나 외국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이 내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좋고 나 또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싶다. 그래서 그들의 표 현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는 웃음으로 넘어가곤 한다. 모르 는 표현을 자꾸 질문해서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게는 그 점이 문제인 것 같다. 이처럼 내가 가장 큰 어려움을 겪 은 부분은 언어였다. 미국인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으려고 시도 해보았지만 무슨 뜻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문화적 인 부분들에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호세: 이곳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방식은 내 가 남미에서 익숙해져 있던 방식과는 달랐다. 누군가와 막 친분 을 맺기 시작한 경우에 그런 부분은 문제가 된다. 대개 지도에서 북위가 높아질수록 남쪽에 비해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다. 내가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점이다. 또 하나 내가 불편하게 느꼈던 점은, 아마도 전세계적인 경 향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초대받은 이유가 돈을 쓰고 소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간혹 그것이 쉽지 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처음 대형 애완동물 매장에 갔던 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그곳에 전시된 온갖 상품들을 보고 내 눈을 믿 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웃음) 질문: 매장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애완견 스웨터와 6색 목줄과 모자 따위를 팔고 있었는가? 호세: 맞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세 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샤니카: 이곳에 온 지 1주일쯤 지났을 때 누군가와 식료품을 사 러 나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시리얼을 사고 싶었다. 시리얼 매 대로 가보니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만큼 다양한 시리얼 제품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항상 같은 종류의 시리얼만을 먹어 왔다. 다른 종류는 시도해본 적조차 없다. 한마디로 선택의 폭이 너무 넓다. ejournal USA 18

José: And then there s Starbucks. How complicated does it have to be to get coffee? Choose between four levels of caffeine, 24 varieties, eight types of sugar. But the point is, Starbucks is everywhere, not just here. I was in El Salvador, and I went to a mall offering the same. They have become one of these global places, places that are the same in every country you go to. I don t know to what extent you want to call that consumerism a culture clash, or is that just something we have to face as global citizens? Q: People in the United States have been questioning how extreme consumerism has become here in the last few months as the economy has declined so sharply. A lot of people are reevaluating their spending and the acquisition of possessions. What have been your perceptions of how that self examination has unfolded in 2009? José: That depends on how affluent you are in the United States. I live in the Petworth neighborhood of [Washington] D.C., and it s a low and middle income level neighborhood. People there haven t been spending too much because they don t have much. This downturn makes them think twice, but I haven t seen many changes. But I have seen, in the news, how people do keep spending, and it has been interesting to watch. I have a big loan so I keep my spending low. Q: I phrase the question in the context of U.S. consumerism, but it has been a global downturn, making us all aware of the interrelated nature of markets today. Does it make you more aware of your status as global citizens? Akhmet: Yes. International students have to understand how economic events affect various regions of the world and your future career. You have to understand the international arena. This global downturn is a lesson for everyone about tying the world together and coming up with solutions that will help to prevent similar events in the future. Stephanie: It definitely makes you think. If I m buying a book or a pair of shoes, it makes you think not just as a person who wants something, but about how you re contributing to the GDP [gross domestic product] of the United States. If I contribute to the GDP of the United States, maybe the United States will import more from Africa. You recognize that if something is going wrong in one country, there is definitely a ripple effect. I start wondering how my actions are going to affect someone back home. It makes me start thinking about where to buy something and what to buy. 호세: 그리고 스타벅스를 빼놓을 수 없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 데 얼마나 더 복잡해져야 하는지. 4단계 카페인에 24종의 메뉴, 8가지 설탕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요지는 스타벅스가 이곳 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 가도 있다는 점이다. 내가 엘살바도르 에 있을 때에도 똑같은 매장에 간 적이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차이가 없는 글로벌 매장 중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그 같 은 소비지상주의를 어느 선까지 문화 충돌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 아니면 글로벌 시민으로서 우리가 필연적으로 직면해야 할 대상인지 모르겠다. 질문: 미국인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경기가 급락하면서 미국의 소비지상주의가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았는지 자문하기 시작했 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소비와 구매 행태를 다시 돌아보 고 있다. 그와 같은 자기 평가가 2009년 한 해 동안 어떻게 진행 됐다고 생각하는가? 호세: 미국 내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유한가에 달려 있다. 나는 워싱턴 D.C. 내 주택가인 펫워스에 살고 있는데 이 지역에는 주 로 중 하류층이 거주한다. 여기 주민들은 가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소비가 많지 않았다. 이번 불황은 그들이 자신 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지만 별로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지출을 줄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나는 대출이 많기 때문에 지출을 자제하고 있다. 질문: 미국의 소비지상주의라는 측면에서 질문을 했지만 이번 불황은 전세계적인 상황으로 각국 경제의 상호의존성을 확인하 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사태로 자신이 글로벌 시민이라는 인식 을 더욱 굳히게 되었는가? 아크멧: 그렇다. 해외 유학생이라면 세계 경제 상황이 세계 각 지역과 자신의 향후 진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제 무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글로벌 경제 위기는 세계 각국이 협력해서 앞으로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 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스테파니: 분명히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든다. 책 한 권 혹은 신발 한 켤레를 살 때도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의 입장이 아 니라 미국의 GDP에 일조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만약 미 국의 GDP에 일조한다면 미국은 아프리카에서 더 많은 상품을 수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문제가 발생하 면 당연히 그에 따른 파급효과가 미치기 마련이다. 나는 내 행동 이 고국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래 서 어디서 어떤 물건을 구매할 것인지 고민하곤 한다. 전자저널 USA 19

And in the United States, people are thinking, Do I really need all this stuff? Is it necessary to spend beyond your means? I see people who have 20 pairs of jeans. I wonder, Why do you need 20 pairs of jeans? When you come from another country and you see that people have so much in the United States, you ask why is that necessary? Then after you re here for a while, you think, I probably need some more jeans. (laughter) So like Gayatri said, you re the outsider, and you think that there are things that need to be changed. This has been a rude awakening for everyone, just to make people think a little more before they spend. Q: The term cultural broker was used. How do you see yourselves in that role? Gihae: I am thinking of going back to South Korea ultimately. When I go back, I am planning to teach at university, and I definitely think that I will be teaching what I have been taught in the United States way, rather than teaching in the Korean way. I m dreaming of being a professor more like professors here, facilitating debates rather than teaching everything that I know. That way, I ll be not only an individual getting a degree here and going back to teach, but I ll be the connecting person who also teaches culture in Korea. Shanika: I have no idea what I might do yet. I agree with Gayatri that after you have been here for a while, a part of you is at home here and a part of you is at home where you grew up. But neither place is completely home. Gayatri: It s schizophrenic. At times you don t know who you are any more. For me, when I am here, people obviously think my accent is Indian. And it is. But I ll go back to Bombay [Mumbai], and my friends say my accent is Americanized. It s the weirdest feeling. You don t know who you are any more. Here, you are very obviously an international student. When you go back, how could you not change? It s a role I m not comfortable with, but I m going to have to get comfortable with it. 미국에 오면 사람들은 저 많은 것들이 정말로 내게 필요한 가? 라고 묻게 된다. 과연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할 필요가 있는 가? 나는 청바지를 스무 벌이나 가진 사람들을 보곤 한다. 나는 그들에게 왜 청바지가 스무 벌이나 필요하냐? 고 묻는다.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은 미국인들의 엄청난 소비를 보고 왜 그래야 하냐고 질문한다. 하지만 얼마 후에는 청바지가 몇 벌 더 필요하다 고 생각하게 된다. (웃음) 그래서 가야트리가 지적한 것처럼 외부인의 시각에서 변화 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돈을 쓰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보라는 충고는 무례한 참견이 될 수 있다. 질문: 문화 중개자 라는 말이 나왔다. 자신이 그 역할을 수행하 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혜: 내 경우에 궁극적으로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한국 에 돌아가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계획이며 확신하건대 한국 식이 아닌 미국식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이다. 자 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토론을 유도 하는 이곳 교수들 같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이곳에서 학위를 따서 고국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문화를 매개하는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 다. 샤니카: 아직은 장래에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전혀 모르겠다. 이 곳에서 얼마간 지내다 보면 자신의 일부는 이곳에서 고향을 느 끼고 또 다른 일부는 자신이 성장한 곳에서 고향을 느끼게 된다 는 가야트리의 생각에 동의한다. 하지만 어느 쪽도 완전한 고향 이 되지는 못한다. 가야트리: 정신분열증을 일으킬 정도다. 어떤 때에는 더 이상 자 신이 누구인지 모를 경우도 있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이곳에서 는 누구나 내 발음에 인도 억양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내가 봄베이로 돌아가면 친구들은 내 발음이 미 국식으로 변했다고 지적한다. 참으로 묘한 느낌이 든다. 더 이상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곳에서는 분명히 해외 유학생 신분 이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변화가 없을 수 있겠는가? 내 게 불편한 역할이지만 편안해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Shanika: If I went back in the next two and a half years, I feel that my experience would affect me as a person, but I don t think it would affect Sri Lanka. I wouldn t be doing what Gihae wants to do, influencing others through my experience. Gayatri: I want to say another thing. I don t think this is always a depressing experience. Q: You mean schizophrenic in a good way? (laughter) Gayatri: Yes, in a good way! In Bombay [Mumbai], I was 샤니카: 2년 반 후에 집으로 돌아가면 이 경험이 나 개인에게 영 향을 미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스리랑카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혜가 원하는 역할, 내 경험 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야트리: 한마디 덧붙이자면, 나는 이것이 항상 우울한 경험만 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질문: 긍정적인 의미에서 정신분열증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웃 음) 가야트리: 그렇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다! 봄베이에 있을 때 나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ejournal USA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