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http://dx.doi.org/10.15750/chss.56.201505.007 철학이란 무엇인가 -메를로-퐁티의 경우- 박 신 화 주제분류 현대유럽철학, 존재론, 언어철학 주요어 메를로-퐁티, 지각, 언어, 표현, 살, 발생, 철학적 물음 요약문 본 논문의 목표는 메를로-퐁티가 자신의 지각 철학 안에서 철학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특히 본고의 주 텍스트는 그의 유고작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 으로서 우리는 메를로-퐁티가 최후로 도달한 철학 개념을 밝히려 했다.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문제 는 지각과 언어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철학이 지각[경험]을 개념[언어]를 통해 사유하고 표현하는 것인 한, 철학이 무엇인가의 문제는 경험(자체)과 경험에 대한 언어적 표현의 관계는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사유 한다는 것의 의미, 말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의 문제이다. 그런데 메를로- 퐁티는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이미 지각과 언어의 동류성 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지각과 언어를 경험의 주관적 개별적 영역과 객관적 보편적 영역 으로 구분하는 전통적 이해와는 달리 발생 중의 언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드러 나는바 언어는 철저하게 지각(적 현상)이다. 그런데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 는 철학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기회를 제공할 뿐더러 나아가 메를로-퐁티 자신 의 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의미심장한 함축을 지닌다. 후기 메를로-퐁티의 살 철학의 성과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데, 사실 그의 살 철학의 성공 여부를 놓고 벌어지는 이 논란은 메를로-퐁티 자신이 살 개념과 관련하여 모순되는 듯이 보이는 주장들을 편 데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 는 논문에서 메를로-퐁티의 살 개념이 드러낸 이론적 난점을 지적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언급된 난점은 비단 메를로-퐁티의 살 철학에만 해
190 논문 당하는 것이 아니고 철학이 언어와 사유를 통해 진행하는 것인 한 철학 일반에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논문의 서두에서 왜 메를로-퐁티는 새로운 존재 론의 틀을 구상함에 있어 우선적으로 철학의 본성의 문제에 그토록 천착했을 까 를 자문했고, 이 물음을 그가 마지막에 도달한 철학 개념을 통해 해명함으로 써 그의 살 철학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191 Ⅰ. 들어가는 말: 문제로서의 철학 메를로-퐁티의 철학적 생애는 그다지 길지 않았다. 그는 1908년에 태어 나 1940년도 초 중반에 최초의 저작을 낸 후 1961년 그의 나이 53세에 새 로운 존재론 의 저작을 집필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철학은 평생 줄곧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고 죽음이 갑작스러워 그가 종국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사상이 무엇이었는지를 최종 확정짓기는 영원히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자들은 진리의 기원L'origine de la vérité 를 규명하고자 집필 중이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 비록 완성을 보지는 못했지 만 그의 철학적 생애 마지막 시기의 사유가 추구했던 바를 어느 정도 완결 된 형태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를로-퐁티 사후 르포르Claude Lefort에 의해 편집된 보이는 것과 보 이지 않는 것 (1964)은 크게 보아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교적 완성 된 원고 형태를 취하고 있는 160여 페이지 상당의 본문과 그의 살chair 철 학의 초안 1) 이랄 수 있는 30여 페이지의 짧은 교차-얽힘 장과 다양한 생 각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110여 페이지 상당의 작업노트 가 그것이다. 저 작 전체를 놓고 볼 때, 원고의 분량으로나 완성 정도에 있어서 단연 우위에 있는 160여 페이지 상당의 본문은 편집자의 보고에 따르면 저자가 애초 구 상했던 저작의 제 1부 네 개의 장들 중 첫째 장에 해당한다. 이 장에서 저자 는 시종일관 하나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 철학적 물음interrogation philosophique 이란 무엇인가가 그것이다. 왜 새로운 존재론의 저작이, 특히 편집자가 보고해주는바 책의 목차 초 안과 작업노트 의 다양한 항목들을 놓고 판단할 때 새로운 존재론의 세절 목을 체계화하려는 저작이 본론의 첫 장으로 철학적 물음의 본성, 간단히 철학의 본성에 대해 그토록 긴 논의를 필요로 했는지, 저자의 의도를 현 상 황에서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철학의 본성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깊은 관심과 그가 이 문제를 새로운 존재론을 시작하는 도입으로 삼았다는 사실 뿐이다. 그런데 철학의 본성의 문제는 1) Barbaras (1991) pp.175-176.
192 논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사실 이 문제는 메를로-퐁티의 초기의 주요 저작인 지각의 현상학 (1945)에서 현 상학이란 무엇인가 의 문제 형태로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부각된바 있다. 말하자면 철학의 본성의 문제는 메를로-퐁티 철학의 시종을 관통하는 문제 였고, 그 결과 이 문제는 그가 평생을 골몰했던 지각이란 무엇인가 의 문제 속에서 뒤얽혀 나타난다. 우리는 본고를 통해 철학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에 메를로-퐁티가 어떤 결론에 도달하였는지를 밝히고자 하는데, 이를 위해 우리가 그의 지각에 대한 논의로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2) 우리의 이상의 문제제기는 약간의 해명을 필요로 한다. 왜냐면 우리의 문제제기는 지금 까지의 메를로-퐁티 철학 연구에서, 특히 그의 후기 철학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철학적 쟁점 하나를 도입하고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기에 각 철학(자) 내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의 문제는 빈번하게 제기될지라도 사실상 논의되기가 어려 운 문제이자 나아가 다소 껄끄럽기 까지 한 문제인데, 왜냐면 이 문제는 내놓은 대답이 문제를 제기한 철학(자)을 구속하는 재귀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석을 통 해 철학의 본성이 무엇으로 밝혀지든 이렇게 밝혀진 철학의 본성은 분석을 수행한 철학 (자)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아는 한 메를로-퐁티 철 학에서 철학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연구는 오늘에 이르도록 거의 이루어진 바가 없 다. 물론 이와 유관한 연구들이 있었음은 사실이다. 가령 르포르Claude Lefort(1982) 의 연구나 리쉬르Marc Richir(1982)의 연구, 바르바라스Renaud Barbaras(1997)의 연 구나 비교적 최근의 노블Stephen Noble(2005)의 연구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 는 모두 메를로-퐁티의 철학 개념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긴 했으나 그 분석의 결과를 메를로-퐁티 철학 자체에 소급 적용하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문제제기에 따를 때 그 분석들이 공통의 아쉬움을 남긴다. 르포르의 연구는 메를로-퐁티의 독특한 은유 적인 용어법에 주목하며 그의 철학 안에서 감각sensibilité과 관념, 비-철학과 철학의 비단절적 관계를 분석하고 있고, 리쉬르의 연구는 메를로-퐁티가 살 개념을 전개함에 있어서 현상학적 환원 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후설과 하이데거의 환원 개념과의 비교 하에서 규명하고 있으며, 바르바라스의 연구는 메를로-퐁티 철학 의 목표의 관점에서, 곧 감각적인 것le Sensible 자체의 존재론적 의미에 대한 추구란 관점에서 그의 철학 개념을 분석하고 있고, 노블의 연구는 핑크Eugen Fink와의 비교 하에서 메를로-퐁티의 초월론적 현상학의 맥락 안에서 철학의 언어와 경험 세계 사이 의 애매하고 역설적인 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요컨대 이상의 연구들은 한편으로 메를 로-퐁티 철학 개념의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고는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작 철학이 란 무엇인가 의 문제가 가진 재귀적 측면[의미]까지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는 못했 던 것 같다. 반면 본 논문에서 우리는 생애의 마지막 시기에 메를로-퐁티가 도달했던 그의 철학 개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에서 그 개념의 귀결까지를 제시해보려 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 193 Ⅱ. 지각과 언어 메를로-퐁티가 규명해 낸 지각의 본성은 다양한 문제 측면에서 얘기될 수 있지만 그의 모든 분석을 관통하는 공통의 관점은 지각 대상의 주어짐 [주어지는 방식]에 충실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메를로-퐁티가 주되게 관 심을 가졌던 데카르트 철학 이후 현대까지의 철학사는 대상의 주어짐이라 는 문제에 있어서 두 가지 대립하는 입장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선, 경험주 의로 일컬어지는 사유 전통은 지각을 순수 감각으로부터 시작하는 정신의 자동화된 과정[연합]의 산물로 간주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식을 세계의 한 부분 으로 만들어버리는 실재론의 길을 열어놓았다. 이에 대해 지성주의 로 일컬어지는 또 다른 사유 전통은 지각을 감각에서 비롯하나 감각을 본질 적으로 넘어서는 해석 과 의미부여 작용으로 봄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세 계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이러한 두 가지 사유 전통은 각각 우리의 지각이 드러내는 다양한 측면들 중 어느 한 가지 측면 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는 있지만 한 가지 측면에만 주목 한 것인 만큼 온전한 것은 아니어서 지각은 보다 종합적인 사유를 필요로 한다. 철학사의 비판과 종합이란 맥락에서 문제의 핵심은 자신의 최초의 저 작인 행동의 구조 의 서두에서 저자가 명시하고 있는 바대로 의식과 세계 [자연]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3) 그런데 해당 저작이 전개되면서 이내 드러나는 바지만 메를로-퐁티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외견상의 비판철학적 개념 구분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사변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당시 비약적으 로 발전하던 행동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성과에 기반한 것이었다. 특히 메 를로-퐁티는 형태심리학Gestaltpsychologie에서 새로운 지각 이론의 가능 성을 보았다. 형태심리학은 지각 대상을 분석하는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공 했다. 경험 자체, 사태자체 로의 복귀라는 현상학의 요구에 공감했던 메를로- 퐁티에게 형태심리학의 연구 성과들은 지각을 사유할 때 풍부한 사유의 원 3) Merlelau-Ponty (1942) p.1: 우리의 목표는 의식과 자연 유기체적, 심리적, 나아가 사회적 의 관계들을 이해하는 데 있다.
194 논문 천이 되어 주었는데 그 핵심은 대상이 주어지는(나아가 존재하는) 방식으 로 언명된 형태Gestalt 혹은 구조structure 개념에 있었다. 메를로-퐁티 가 초기 저작에서부터 참조했던 프랑스의 형태심리학자 기욤Paul Guillaume은 모든 이론들은 각자 최초의 소여라고 간주한 것으로부터 시 작한다. 4) 고 말함으로써 형태심리학의 문제의식을 표현한 바 있는데 형태 심리학은 이 최초의 소여 를 형태라는 개념으로 재발견했다. 형태는 [ ] 요소들 을 전체 에 의존하게 만드는 감각장의 자발적 조직이다. 이 조직 은 이질적 질료 위에 얹히는 어떤 형식 같은 것이 아니다. 형식 없이는 질료 도 없다. 다소간 안정적이고, 다소간 분절된 조직들만이 있다. 5) 형태심리 학자들은 자신들의 형태 개념을 다양한 과학적[심리학적] 실험과 관찰을 통해 입증함으로써 6) 상기( 上 記 )한 지각에 대한 두 가지 사유 전통에 심대 한 타격을 가했다. 사실 저 두 사유 전통은 표면적인 대립에도 불구하고 의 미[대상성]를 연합을 통해서건 판단을 통해서건 이차적으로 감각에 부과 되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최초의 소여인 감각에서 공히 일체의 의미(성) 를 박탈했던 것이다. 자신을 구성하는 부분들을 통해 존재하지만 그 부분들의 합을 초과하는 형태의 존재는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형태의 존재는 현상 을 통해 실증되는 바로서 메를로-퐁티는 형태 개념을 정교화해가는 한편 지각 대상에 대한 자신의 분석에 이 개념을 적극 활용했다. 여기서 행동의 구조 에서 그가 제시한 형태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분석, 곧 형태는 자연 과 관념의 통일 7) 로서 존재한다는 주장은 의미심장하다. 왜냐면 이것은 지 각 대상이 가지는 의미[ 전체 ]의 차원이 오직 대상을 구성하는 감각들[ 부 분 ]을 통해, 보다 정확하게 말해, 감각들로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 문이다. 지각 대상이 드러내는 부분과 전체, 형식과 질료의 이 고유한 통일 성은 메를로-퐁티의 지각 이론이 도달한 문제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성취 였다. 4) Guillaume (1979) p.24. 5) Merleau-Ponty (1989) p.25. 6) 그 구체적인 예를 위해서는 상기한 Guillaume의 책 참조. 7) Merleau-Ponty (1942) p.227.
철학이란 무엇인가 195 그런데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에 충실할 때 언어현상 또한 다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곧, 언어도 지각적이다. 언어현상을 어떤 심리학 적 자동기제로 간주하는 경험론적 입장이나 들려진 소리에 대한 의미부여 내지 해석으로 간주하는 관념론적 입장은 모두 우리가 언어를 실제로 어떻 게 경험하는지를 간과하고 있다. 전자는 언어현상에서 본질적인 것은 주체 의 의도 라는 점을, 후자는 언어는 생성, 변화하는 것으로서 창조적 표현의 결과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특히 메를로-퐁티는 언어가 드러내는 후 자의 측면을 관념론적 철학에 대한 주된 비판점의 하나로 삼았다. 요컨대 만일 언어가 개별적 주체들이 감각소여들(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 다면, 우리들의 삶에서 부단하게 일어나는 언어의 학습, 곧 새로운 의미의 획득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의미의 경험이 주체의 의 미부여에서 성립하는 한 새로운 의미의 경험은 그 의미가 이미 획득된 것으 로 주체 안에 내재해 있을 것을 전제해야 하는데 이는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로 해서 우리는 언어의 역사성을 귀결하는 창조적 표 현이 주체 안에서 어떻게 발생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데, 왜냐하면 하나의 의미를 창조 이 경우 창조는 최초의 의미부여를 의미할텐데 하기 위해 서는 그 의미가 창조에 앞서 이미 주체 안에 선재해 있어야 하는데 이 또 한 모순이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의 이러한 비판의 요점은 언어를 소리 [기호]의 차원과 의미의 차원으로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관념론적 언 어이론은 언어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지각 대상이 형식과 질 료의 불가분의 통일성인 형태[게슈탈트]이듯이, 언어에서 의미는 기호들 을 먹어삼킨다 8). 다시 말해 의미는 기호들의 어떤 조직화, 기호들 사이의 주름 일 뿐이다. 의미는 기호들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순수 관념이 아니라 지각되는 게슈탈트인 까닭에 우리는 오가는 말들 자체에서 새로운 의미를 포착하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언어가 지각현상이라고 주장하는 메를로- 퐁티의 이러한 분석은 주로 창조적 표현의 문제와 관련되어서 전개된다. 그 는 말하는 말parole parlante 과 말해진 말parole parlée 의 구분을 통해 우리의 일상의 언어가 대부분 말해진 말 의 차원에 머무는 것으로 규정될 8) Merleau-Ponty (1945) p.213.
196 논문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미 형성된 의미가 단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 말 해진 말 의 차원에서 볼 때 언어는 기호와 의미로 구분될 수 있을 듯이 보인 다. 왜냐하면 말해진 말 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언어의 반복적이고 실용 적인 사용을 위해 필요한 기호와 의미의 구분이지, 기호와 의미가 분할 불 가능한 통일성 속에서[통일성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표현의 창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해진 말 들조차도 처음에는 창조적 표현으로 발생 했다는 것과, 매순간의 발화 행위에서 끊임없이 창조적 의미변형을 겪음으 로서 언어의 역사성을 형성해 나간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메 를로-퐁티는 언어를 규정함에 있어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말하는 말 의 분석이 보다 본질적임을 시사했다. 새로운 말의 발생은 무로부터 일어나 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재하는 말의 반복적 수행의 과정에서 일어난다는 것, 언어에 있어서 이미 구성된 말의 반복적 사용은 그 자체로 새로운 말의 발생과 뒤얽혀 있다는 사실이 가진 논리적 함의는 분명해 보인다. 곧 말하 는 말 과 말해진 말 은 비록 개념적으로는 구분될지라도 여전히 언어를 분석 하고자 도입된 추상적 구분으로서, 우리의 실제의 언어는 실제의 언어는 오직 현행적인 말하기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두 가지 말로의 구 분이 사실상 불가능한, 다시 말해 기존 ( 말해진 말 )과 창조 ( 말하는 말 )의 구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지각과 마찬가지인, 어떤 전체성의 경 험이다. Ⅲ. 살chair 개념과 발생의 문제 형태로서의 지각 대상이 드러내는 자연과 관념의 통일(성) 은 메를로- 퐁티에게 있어서는 지각 주체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유도한다. 요컨대 지각 은 지각 주체와 지각 대상 사이의 이중적 관계를 요구한다. 한편으로 지각 주체는 지각 대상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속해야 한다. 주체와 대상 사이에 초월론적 거리를 가정하는, 다시 말해 지각 주체를 끊임없이 세계 외부적인 초월적 존재로 상정하는 관념론의 관점은 지각 대상을 순수한 관념으로 간
철학이란 무엇인가 197 주함으로써 지각의 참된 의미를 놓치고 있다. 말하자면 지각은 주체가 대상 의 앞(혹은 옆, 뒤, ) 에 있어야 한다.(관념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다 른 한편 지각 주체가 대상과 맺는 이러한 시공간적 관계는 객관적 존재자들 사이의 그것으로 이해되면 안 된다. 지각 주체로서의 내가 책상 앞에 있는 것과 의자가 책상 앞에 있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말하자면 전자는 의식 적 지향적 관계인 반면 후자는 객관적 관계이다. 그런데 지각이 드러내는 주체와 대상의 이러한 이중적 관계는 메를로-퐁티로 하여금 처음부터 신체 의 문제에 주목하게 했다. 왜냐하면 이 이중성의 담지자는 우리의 고유한 신체(corp propre, 혹은 살아있는 신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유한 신 체는 순수한 정신일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데카르트적 의미의 연장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메를로-퐁티는 고유한 신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데카르트적 이원론적 개념을 넘어서고자 했는데, 그러나 이를 상론( 詳 論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는 아니다. 9) 그보다 그의 초기 저작에서 나타난 고유한 신체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분석에 주목해 보자. 결론은 이렇다. 그는 여전히 코기토의 진리성을 의심하지 않았음으로 즉 지각하는 나 는 지각되는 여타의 사물들 과는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가진다 고전적 의식 개념을 견지하면서 그것에 우리의 신체성이 함축하는 바 세계에 속해 있음 의 규정을 결합시키려 했다. 지각 주체는 세계 내부적 존재로 환원되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세계와의 사이에 주체/대상의 초월 론적 거리가 가로놓여도 안 된다. 그 결과 초기 저작에서의 유일한 해결의 방식은 나의 존재와 세계존재의 동시적 접촉contact simultané avec mon être et avec l'être du monde 10) 을 주장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고유한 신체 의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고전적 의식 개념에 신체성의 차원을 결합시키는 것이 얼마나 성 공적일 수 있는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 한 작업노트에서 메를 로-퐁티는 썼다: Ph.P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해결불가능한데 왜냐하면 나 는 거기서 주체 / 대상 의 구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1) 그의 이러한 9) 이에 대해서는 주성호(2003)를 참조. 10) Merleau-Ponty (1945) p.432.
198 논문 자기비판은 지각의 현상학 의 주된 목표가 바로 주체/대상의 구분 이것 은 관념론의 구분인데 을 넘어서는 데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인데, 실로 메를로-퐁티의 이러한 자기비판은 당면한 문제가 훨 씬 더 철저한 철학적 분석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각에 대한 전통 의 두 가지 환원주의적 입장 실재론적 입장과 관념론적 입장 을 넘어서고 자 지각을 의식의 자기(관계)성 과 신체(존재)가 드러내는 세계에의 속 함 의 어떤 통일성, 곧 위에서 말한 나의 존재와 세계존재의 동시적 접촉 으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기는커녕 문제를 정식화하는 것일 뿐인 데, 그것은 우리의 경험 일반이 드러내는 이중성을 명시할 뿐 그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명시적인 해답도 제공하지 않 는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떻게 존재론적으로 구분되는 두 존재자 (의식과 세계)가 환원 불가능한 존재론적 차이를 견지하면서도 동질성 속에서 관계 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즉 고유한 신체는 데카르트적 의미에서의 신체[대상 신체]와 의식의 어떤 불가해한 통일성이 되고, 그와 동시에 의식, 곧 지각적 의식conscience perceptive은 존재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세계를 필요로 하면서도 왜냐하면 그것은 지각적 의식이므로 다른 한편으로는 배제하는 왜냐하면 그것은 지각적 의식 이므로 역설적, 모순적 존재가 된다. 12) 이렇듯 의식철학적 개념들로부터 출발한 것이 지각의 현상학 을 실패 로 이끌었다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 핵심적 목표는 고전적 의 식 개념을 근본적으로 개혁 13) 하여 새로운 존재론의 기초를 확립하는 것 이었다. 경험을 이미 구분된 존재자들인 의식 과 세계, 혹은 의식 과 신 체 로부터 시작하여 구성하던 종래의 사유방식과는 정반대로 살 이라는 하나의 존재론적 범주로부터 시작하여 경험의 현상적 다양성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후기 철학의 핵심 개념인 살 을 구상하면서, 메를로-퐁티는 11) Merleau-Ponty (1964) p.253. 12) 지각의 현상학 과 같은 해에 나온 메를로-퐁티의 1945년 논문(Merleau-Ponty 1945a p.89) 참조: 한편으로 인간은 세계의 부분이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세계를 구성하는 의식이다. 13) Merleau-Ponty (1964) p.292.
철학이란 무엇인가 199 그것이 어떤 철학에도 이름이 없고, 형이상학의 그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음을 말하면서도, 14) 살은 그 자체로 사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 찌하여 그러한가는 세밀한 논증을 요하는 작업이지만 여기서는 그 분석의 줄기만을 보이기로 하자. 논의의 관건은 지각이 드러내는바 지각 대상과 지 각 주체의 관계를 보이는 것과 우리 사이에서 성립하는 바다와 바닷가 사 이의 교제처럼 그렇게 밀접한 교제 15) 의 관계로 이해하는 데 있다. 우리는 세계를 보지만 그렇다고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며, 여전히 세계에 속 해 있으면서 보이는 세계 내 사물들과 예정 조화적 관계 16) 에 있다. 예컨 대 우리가 방안을 거닐면서 주위를 지각할 때 사물들과 음영들은 아무렇게 주어지지 않으며, 비록 우리가 그 예기( 豫 期 )되어지는 것을 명시적으로 규 정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운동하는 내 신체의 어떤 예기 속에서 특정한 방 식으로만 주어진다. 일상의 친숙함 속에서 대개의 경우 주어짐들은 운동하 는 내 신체의 예기를 충족시켜주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그 예기가 깨어질 때 우리는 놀람을 경험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다음의 사실, 곧 매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예기는 한편으로 신체의 운동을 가능하게 하고 왜냐 하면 신체의 운동은 반드시 어떤 의도 속에서 일어남으로 다른 한편으로 그 예기는 오직 신체의 운동을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왜냐하면 예기는 신 체가 지각하는 현재적 실제적 소여들에 기반한 예기임으로 예기와 신체 운동의 동시성의 관계이다. 나는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내가 아니지만, 나는 세계에 속하고 세계는 나에게 나타난다. 같은 말로, 나는 보이는 것 le visible에 속하나 보이는 것과의 차이(화)를 통해 보는 자le voyant로 존 재하고, 보는 자이나 여전히 보이는 것에 속해 있다. 언뜻 볼 때 메를로-퐁 티가 도달한 이 테제는 초기 저작의 그것을 단순히 반복하고 있는 듯이 보 인다. 즉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구분은 의식/세계[주체/대상]의 구분을 다 르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곧, 14) 왜냐하면 살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며 실체도 아니며 (p.184), 마찬가지로 신 체와 정신의 결합체도 아니며(p.185), 심지어 그것은 사물과 관념, 시공간적 개별성과 보편성의 구분자체를 폐기시키기 때문이다.(p.184, 188) 15) Merleau-Ponty (1964) p.173. 16) Merleau-Ponty (1964) p.175.
200 논문 문제는 더 이상 이미 구분되어진 보이는 것과 보는 자가 어떻게 관계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에 있지 않고 이것은 여전히 주체/대상의 이분법에서 시 작하는 사유이다 어떻게 지각이 보이는 것과 보는 자의 동시적 발생일 수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경험을 보이는 것 과 보는 자 의 구분으로부터 시작하여 회고적으로 구성해서는 안 되고, 발생하는 경험 l'expérience en genèse을 그 자체에 즉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경험을 그것의 발생의 지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사유하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비록 철학적 사유의 철저성에서 발로했을지라도 한 가지 중요한 이론적 난 점을 동반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발생하는 경험은 존재론적 절대 적 무차별성indifférence absolue을 넘어서 있음과 동시에 이미 이루어진 보이는 것 과 보는 자 의 구분 이전에 위치한다. 존재론적 절대적 무차별 성으로부터는 어떠한 경험도 발생할 수 없고, 설령 발생한다하더라도 우리 로서는 그 어떻게 를 알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리고 우리의 논의에 있어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인데, 보이는 것 과 보는 자 의 구분은 발생 의 결과 만을 전할 뿐 그 양자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그 발생 자체의 구조 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말하자면 발생으로서의 경험에 대 한 기술은 보이는 것 과 보는 자 의 구분 이전 에 위치해야 한다. 편집자 에 의해 철학의 가능성 이란 제목이 붙은 1958~1959년 강의에서 메를로- 퐁티는 철학의 문제는 유일한 존재의 유일하고 거대한 분화Une seule grande différenciation d'un seul Etre 17) 를 밝히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문제인데 이러한 분화를 그 자체에 즉해서 분석, 기 술하려는 시도는 시작하자마자 치명적인 한계, 곧 그것은 오직 분화된 것 들 을 통해서만 사유되고 언표될 수 있다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리고 분화 된 것들 을 통해 분화 자체를 구성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반드시 이론적 모 순에로 귀결되는데, 왜냐하면 분화 자체는, 완전하게 구분된 분화된 것들 에 앞서 있어서, 자신을 구성하는 계기들 사이의 어떤 근원적인 동질성(미 분화) 의 차원을 여전히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전통 형이 상학의 무( 無 ) 개념에 대한 베르그손의 비판에 동의하면서, 매순간 다시 17) Merleau-Ponty (1996) p.200.
철학이란 무엇인가 201 시작하는 우리의 경험을, 달리 말해 존재의 유일하고 거대한 분화 자체를 궁극의 실재로 이해했다. 존재는 존재론적 절대적 무차별성이 아니라 그 자 체로 어떤 분화의 운동인데, 따라서 그것이 이러한 분화의 양상에 대한 기 술인 한 보이는 것과 보는 자의 구분은 여전히 유효한데, 문제는 이 구분이 대상 / 주체 의 그것으로 이해되면 안 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 기에, 바로 여기에 철학일반이 경험을 분석, 기술하고자 할 때 예외 없이 취 하는 회고적rétrospective이고 실체론적인 사유의 뿌리가 있다. 말하자면 발생 자체로서의 경험, 분화 자체로서의 경험이 문제일 때, 철학은 이미 완 료된 경험들에서 그 계기들을 찾아내는 것으로, 그리고 각각의 계기들을 실 체론적으로 개념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메를로-퐁 티가 자신의 살의 존재론 을 구성할 때도 예외가 아닌 듯이 보인다. 실제로 그는 경험의 발생을 가시성visibilité 일반으로서의 살의 개념을 통해 분석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곧, 세계의 살은 신체의 살을 통해 설 명되지 않는다. 또는 신체의 살은 그것에 거주하는 부정성 혹은 자기soi를 통해 설명되지 않는다. 이 세 가지 현상들은 동시적이다. 18) 살은 주체와 세계의 예정 조화적 관계 를 나타내기 위한 개념임을 상기하자. 즉 세계는 즉자적 객관적 존재가 아니라 본질상 이미 주체의 경험(혹은 살)에 의해 삼 투되어진 세계이며, 주체는 구성하는 의식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살로 세계 의 살에 속해 있는 자이다. 그러나 세계의 살, 신체의 살, 그리고 부정성 혹 은 자기, 이 세 가지 현상들 의 구분은 그것이 아무리 경험에 충실한 기술 에 바탕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회고적이고 실체론적인 분석일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해, 이러한 구분은 그 구분의 유의미성을 견지하면서, 다시 말 해 현상적 계기들 사이의 환원 불가능한 차이를 견지하면서 이렇게 구분된 계기들 사이의 동질성의 차원을 동시에 마련해야 하는 양립 불가능한 과제 를 제기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메를로-퐁티 자신의 문제적인 다음의 작업노트가 놓여 있다. 곧, 세계의 살은 나의 살처럼 스스로를 감각하지는 se sentir 않는다. 세계의 살은 감각적일 뿐 감각하는 자non sentant는 아니 다. 19) 우선 여기서 메를로-퐁티 철학의 한 연구자인 바르바라스가 설득력 18) Merleau-Ponty (1964) p.304.
202 논문 있게 제기한 메를로-퐁티의 살의 개념에 대한 비판의 요점을 소개하자. 바 르바라스에 따르면 신체의 살을 스스로를 감각함 으로 정의하면서 동시에 감각하는 자 가 아닌 세계(존재)를 마찬가지로 살로 규정하는 것은 개념의 모호한 사용만을 초래할 뿐이고, 이것은 메를로-퐁티의 살의 존재론이 여 전히 데카르트적 이원론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20) 살 개념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분석과 이 분석에 대한 바르바라스의 비판 에 대한 요약이 뒤얽히면서 본 논의가 다소 난해해져버렸으나 문제의 핵심 은 지극히 분명해 보인다. 즉 메를로-퐁티는 발생 자체로서의 경험, 분화 자 체로서의 경험을 분석하고자 했으나 현상적 확실성 속에서 주어지는 분화 의[분화된] 계기들(세계, 신체, 자기)로부터 분석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동일성 곧 살 일반으로서의 세계의 살 과 차이 곧, 서로 구분되 는 세계의 살과 신체의 살 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이론적 아포리에 빠졌 다. 언급한 바르바라스의 비판은 바로 이 아포리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르바라스가 제기한 이러한 비판은 메를로-퐁티의 살 개념 의 아포리를 지적하는 것으로는 타당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우리는 바르바라스가 메를로-퐁티 철학의 실패 로 규정 한 이 아포리는 그 실패 의 자명함이 암시하듯 메를로-퐁티 자신에 의해 이미 충분한 방식으로 인지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제의 핵심은 또한 분 명하여 이렇다. 발생하는 경험, 혹은 분화 자체를 이해하고자 함에 있어서 이미 발생된 계기들 혹은 분화된 것들을 경유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유와 철학의 조건인 한, 철학은 발생하는 경험, 혹은 분화 자체를 복원하기 위해 발생된 계기들 혹은 분화된 것들로 구성된 개념적 정합성의 체계를 깨야한 다. 한 마디로 말해, 철학은 그 자체가 분화의 운동을 구현해야 한다. 혹은 철학은 정합적 개념들의 체계를 부단히 깨뜨리는 활동적 모순contradiction opérante이어야 한다. 지금 여기서 이 테제를 해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 테제는 언어에 대한 또 다른 분석을 요구하는바 우리는 절을 바꾸어 논 의를 계속하고자 한다. 19) Merleau-Ponty (1964) p.304. 20) Barbaras (2008) 특히 pp.73-85 참조.
철학이란 무엇인가 203 Ⅳ. 표현경험으로서의 철학 철학자들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일단 철학[ 사유 ]을 시작할 때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누구라도 철학이 사유와 언어[개념]를 통 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철학자들의 방 금 언급한 편안함 은 그들이 의식적이건 그렇지 않건 다음의 전제, 곧 경 험(의 의미)은 언어와 사유로 표현될 수 있다 는 전제를 기정의 사실로 받 아들인 데서 기인한 것이다. 도대체 경험이 사유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는 지 없는지도 모르는데 철학을 시작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의 사 유와 언어가 경험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한 것인가? 그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실 이상의 물음들은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철학에 근본 적인 하나의 문제, 즉 현대 철학이 주제화시킨 세계와 언어의 관계의 문제 를 지시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사유가 언어 없이 작동할 수 없는 것이 사실 이라면, 다음의 문제, 즉 언어는 세계의 질서를 표현하는가[표현할 수 있는 가] 아니면 언어는 세계와 의미론적으로 단절되어 있는가의 문제는 철학의 존재 이유까지를 부정해버릴 수 있는 파괴력 있는 문제로 떠오른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메를로-퐁티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의 도처에서 의 미론적 철학들philosophies sémantiques 에 대해 언급하며 그 오류를 지적 했다. 세계를 언어의 질서로 환원하는 의미론적 철학들은 철학 자체가 언 어활동이고 언어에 의존하고 있다 21) 는 사실로부터 세계의 존재의미에 관한 문제를 단어들의 정의 언어의 연구, 언어능력들 연구, 언어 작동의 실제적 조건들의 연구로부터 끌어낼 수 있을 의 문제 22) 로 간주한다. 그 러면서 이들은 존재와 세계를 의도적이건 아니건 관념들의 체계로 환원한 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 것이 아닐까? 철학이 혼잣말 이건 대화건 말하는 데 있다면 결국 남는 것은 말해진 관념들의 모임일 뿐이 아닐까? 그러나 메 를로-퐁티에 따르면 철학을 언어 연구의 한 분야쯤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관 점은 우리의 실제적 언어경험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21) Merleau-Ponty (1964) p.168. 22) Merleau-Ponty (1964) p.131.
204 논문 언어분석과 관련해서도 이제 본질적인 점은 언어를 발생의 관점에서 분 석하는 데 있다. 지각의 구조가 보이는 것과 보는 자, 실제적 주어짐과 예기 ( 豫 期 )의 동시적 발생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그것도 화자와 청자, 기호와 의미의 동시적 발생에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메를로-퐁티의 작 업노트의 한 대목을 다소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도록 하자. 맨체스터에서 택시 기사가 내게 브릭스톤 가가 어디에 있는지 경찰에게 물 어 보겠다고 말했을 때 (어찌나 단어들이 엉겨 있었 던지 나는 몇 초 후에 야 그의 말을 이해했다) 마찬가지로 담배 가게 부인의 모두 함께 포장해 드려요? 라는 말도 얼마 후에야 그것도 단번에 이해했다. 어떤 사람을 인 상착의에 따라 알아본다든가 또는 대체적 예측에 의해 사건을 알아보는 경 우와 비교할 것. 요컨대 의미가 일단 주어지면 기호들은 기호들 로서의 가 치를 완전히 갖는다. 그러나 우선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의미는 어떻게 주어지는가? 언어적 사슬의 일부가 인지되면서 기호들을 변 경할 하나의 의미를 투사하는 것이 아닐까 왕복 운동이라고(베르그손) 말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과 무엇 사이인가를 이해해야 하며, 둘 사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일련의 추론 절차들 이 아니다 그것은 형태화Gestaltung이며 회귀 형태화Rückgestaltung이 다. 참된 것의 퇴행 운동Mouvement rétrograde du vrai, 일단 생각되어 버린 것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현상, 그것을 질료들 자체에서 재발견 하는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23) 이 텍스트는 우리의 문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두 가지 논점을 담고 있다. 첫째, 실제의 언어는 지각과 마찬가지로 게슈탈트, 곧 기호와 의미의 불가 분성인 전체성의 경험이다. 기호들이 선재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그렇더라 도 이 기호들은 반드시 무엇의 기호들일 것이므로 기호의 존재는 이미 그 것의 무엇, 곧 의미의 주어짐을 전제한다. 기호들을 기호들 로서 존재하 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의미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구성하는 의식이 선 재해서 기호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주어진 하나의 기호 에 부여되는 의미는 임의적이지 않으며 이것은 의식의 그 의미부여가 기호 와 의미의 어떤 비분리적 전체적 통일성에 의해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을 말 23) Merleau-Ponty (1964) pp.242-243. 참된 것의 퇴행 운동 이하 필자 강조.
철학이란 무엇인가 205 해준다. 요컨대 기호 와 의미 로의 구분 이전에 성립하는 전체성의 형성 Gestaltung이 근원적이며, (언어)주체와 의미는 이 전체성의 두 가지 계기 일 뿐이다. 둘째, 인용한 텍스트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논점은 일단 이 루어진 전체성의 경험은 참된 것의 퇴행 운동 에 의해 기호 와 의미 로 의 구분을 회고적으로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근원적 사실로서의 장champ의 발생 그 자체는 분명 완료된 주체 와 의미, 기호 와 의미 의 구분에 앞서 있지만, 일단 발생이 완료된 (언어)장은 방금 언급한 구분들에 의해 철저하게 규정되어진다(될 수 있다). 그리고 기호 와 의미 의 이 구 분 위에 철학의 고전적 물음인 지시référence 의 문제가 놓여 있다. 즉 순 수한 일반성의 존재인 의미 와 세계의 개별적 특수적 사실들 사이의 대응 관계가 문제인 지시의 문제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결국 전통적 의미에 서의 지시의 문제는 발생으로서의 언어를 보지 못하고 이미 설립된[구성 된] 의미 에만 주목한 언어에 대한 회고적 개념에서 기인한 문제였던 것 이다. 우리는 앞서 줄곧 철학은 사유이자 언어라고 말했는데, 만일 그렇다면 철학(함)은 철저하게 사유와 언어의 논리에 종속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메를로-퐁티의 언어분석이 자신 안에 이미 모종의 철학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철학자들은 늘 경험과 세계와 존재에 대해 말하 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그 자체로서의 세계(혹은 존재)와 말해진 세계(혹은 존재)의 관계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의미론적 철학들 은 세계를 우리 의 관념화와 통사론으로 환원된 세계 24) 로 간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분 명 오류 이지만, 어찌 보면 그 오류는 우리로서는 불가피한 것이 아닐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철학 자체가 언어활동이고 언어에 의존하는 한, 우 리가 말하고 사유하는 세계는 오직 언어의 질서에 따라 구성된 세계가 아닐 까? 그리고 바로 이 때 철학적으로 유의미한 세계는 오직 관념들의 체계 로서의 세계가 아닐까?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사실 철학(함)과 관련한 언 어의 이중성이 있다. 곧 한편으로 철학은 언어 없이는 불가능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언어는 근본적으로 철학이 겨냥하는 사태를 가린다. 후자의 논점 24) Merleau-Ponty (1964) p.139.
206 논문 과 관련하여 말할 때, 언어는 우리를 경험과 결부시키는 연속적인 조직을 끊어버리고, 이 조직과 우리 사이에 장막처럼 자리를 잡는다. 25) 메를로-퐁 티에 따르면 바로 여기에 철학(자)의 다음의 역설이 있다. 철학자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자의 타고 난 약점, 설명할 수 없는 약점이다. 사실 철학자는 침묵을 지켜야 할 터이며, 말없이 [존재와] 합치하 고, 존재 가운데 벌써 형성되어 있는 철학을 존재 가운데서 만나야 할 터이 다. 그런데 반대로 일의 진행상을 보면 마치 철학자는 자기 내면의 어떤 침 묵을 들으며 이 침묵을 글로 옮기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의 저작 전체가 이러한 부조리한 노력이다. 26) 자신의 사유 혹은 언어가 그것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경험 자체, 세계 자체 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도 묻지 않은 채 경험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는 철 학(자)들의 대담함은 이렇듯 사실 철학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 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의 분석들은 철학의 불가능함을 말하고자 함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경험, 세계, 존 재에 대한 철학은 가능한데, 왜냐하면 우리는 신체와 감각들, 시선 그리고 말을 이해하고 말을 하는 능력에 의해, 존재에 대한 척도mesurants를 가지 고 있기 27) 때문이다. 저자의 이 테제의 의미를 숙고해 보자. 발생으로서의 경험은 분화로서 분명 어떤 이분법적 계기들을 구현하지 만, 그리고 이러한 분화를 우리는 현상적 확실성에 입각해 보이는 것과 보 는 자로의 분화로 규정할 수 있지만, 이 때 이 보이는 것과 보는 자를 어떻 게 이해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우리는 앞서 분화를 그 자체에 즉해서 사유 하려는 시도의 근본적인 난점을 제시했는데, 그 요점은 보이는 것과 보는 자의 구분 자체가 우리를 실체론적 사유로 이끈다는 것이었다. 곧 보이는 것을 보는 자와의 차이로, 그리고 보는 자를 보이는 것과의 차이로 규정할 때, 보이는 것과 보는 자 이 각각에 대한 토대론적, 실체론적 정의가 뒤따르 25) Merleau-Ponty (1964) p.166. 26) Merleau-Ponty (1964) p.166. 27) Merleau-Ponty (1964) p.140. 우리가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지만, 하이데거의 철학의 불가능성 테제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있다. Merleau-Ponty (1996) pp.91-148 참조.
철학이란 무엇인가 207 지 않는 한 분화 자체를 이 두 계기 사이의 어떤 관계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아무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게 되는데, 왜냐하면 보이는 것과 보는 자 각각의 의미는 거꾸로 이 양자의 관계를 통해 규정될 분화 자체의 의미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분화의 계기들과 분화 자체 사이에 의미규정 에 있어서의 순환이 있게 된다. 자신의 최초의 저작에서부터 그토록 비판하 고 경계했던 토대론적, 실체론적 사유를 메를로-퐁티가 끝내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살 개념을 보이는 것과 보는 자 사이의 다양한 상호함축관계로 기술하더라도, 정작 이 양자가 각각 그 자체로 무 엇인지 를 정의하지 않고서는 분석은 결국 공허해진다. 그는 신체를 스스 로를 감각함 으로, 그리고 세계를 감각될 뿐 감각하지 않는 것 으로 정의 함으로써 의미규정에 있어서의 순환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보았 듯이 이 벗어남은 개념의 모호한 사용이라는 더 크고 중대한 이론적 어려움 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이러한 사실은 경험을 사유함에 있어서 그 어떤 것이건 이미 구성된 의미, 이미 구분된 개념들로 시작하려는 철학 일 반의 뿌리 깊은 경향성에 경종을 울린다. 사유가, 언어가 한 번 찢고 지나간 존재의 자리는 그 어떤 형용어로도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인데, 이러한 사실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철학이 언어 를 버려야한다는 주장에로 귀결되지 않는다. 정반대로 오히려 그것은 언 어도 또한 살아 있는 상태에서 또는 탄생 중인 상태에서 취할 수밖에 없 다 28) 는 것과, 언어 또한 존재의 심해에서 태어났기에, 언어는 존재에 씌 워진 마스크가 아니요, 언어는 우리가 언어를 그 모든 뿌리들과 모든 싹들 과 함께 포착할 줄만 안다면 존재에 대한 가장 가치 있는 증인이라는 점 29) 을 의미한다. 새로운 철학의 이념과 철학적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한 메를로 -퐁티의 테제는 바로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발생 으로서의 경험의 의미는 또 다른 발생으로서의 경험에 의해서만, 즉 언어적 의미의 탄생을 경험함으로써만 알 수 있는데 간접적 혹은 측면적 앎 왜 냐하면 지각과 언어는 발생의 차원에서 볼 때 동일한 존재론적 구조를 가지 28) Merleau-Ponty (1964) p.167. 29) Merleau-Ponty (1964) p.167.
208 논문 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각과 언어는 동일하게 전체성의 경험임으로 지각 (혹은 경험)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서는, 즉 발생으로서의 경험의 존재론적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발생하는 중의 언어(의미)를 경험해야 한다. 메를로- 퐁티는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데서 초래되는 바가 있으니, 철학을 가장 많 이 담고 있는 말들은 필연적으로 이 말들이 말하는 것을 담고 있는 말들이 아니고, 그보다는 가장 정력적으로 존재를 향해 열리는 말들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 말들은 보다 밀접하게 모든 것의 삶을 표현하며, 우리들의 일 상적인 자명한 점들을 뒤흔들어서 어그러뜨리기 때문이다. 30) 그것이 어 떤 언어가 되었건 철학적 언어 또한 예외 없이 언어는 참된 것의 퇴행 운 동 에 의해 일단 표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마자 자신의 뒤에 기호 와 구분된 의미 만을 남긴다. 발생 시 기호와 의미의 구분 자체를 넘어서 있던 어떤 의미적 전체성이 발생이 완료되자마자 임의적인 기호 의 영역과 본 질적인 의미 의 영역으로 나뉘면서 지각세계와 대립적인 의미세계 를 연 출해낸다. 그리고 그 결과로 언어가 의미세계 에 속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한, 철학은 언어와 의미들의 질서에 갇혀서 지각세계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 지 못한다. 곧 철학은 의미론적 철학 으로 변질되면서, 지각세계로부터 단 절되어 버린다. 이렇듯 철학은 그 자신이 발생하는 경험일 때만, 곧 새로운 표현의 창조일 때만 본래적 의미에서의 철학 으로서 존재할 수 있고, 반면 기호 와 의미 의 구분 이전인 이 표현적 전체성이 발생과 동시에 순수한 의미 로 전락할 때 자신의 존재를 상실한다. 그런데 메를로-퐁티의 고유한 철학 개념이 바로 이 점에 있다. 곧, 쉼 없 이 완료되는 새로운 의미의 발생이 또 다른 새로운 의미의 창조(발생)로 이 어질 때 바로 거기에만 근본적 의미에서의 철학이 있고, 따라서 철학은 이 미 구성된 의미들을 단순 반복하는 일상적 (철학적) 언어 사용을 넘어서, 단어들의 의미의 자연스러운 얽힘에 의해, 은유의 신비스러운 교역에 의 해 31)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철학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 이 아닌가? 왜냐하면 언어 또한 하나의 경험인 한, 그것은 그저 창조적인 방 30) Merleau-Ponty (1964) p.139. 31) Merleau-Ponty (1964) p.167.
철학이란 무엇인가 209 식으로 언어를 경험하자 가령 시인들의 그것처럼 는 말 이상은 아닌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전통의 지시의 문제 를 보 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철학은 분명 우리들의 경험의 한 양상에 속하지만, 여타의 경험을 표현하고, 의미하고, 지시하는 특수한 경 험이다. 그런데 앞서의 분석들이 말해 주듯이 만약 우리의 경험 일반이 지 각적이라면, 그리고 철학 또한 경험의 한 양상일 뿐이라면, 내가 이 책상을 보듯이, 철학은 그저 새로운 표현의 발생을 지각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 고 이 새로운 표현은 아직 기호 와 의미 로의 분화를 겪지 않았으므로, 그 것은 자신의 존재만을 표현할 뿐 자신 외의 경험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아 닌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우리가 보기에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발생하는 표현으로서의 철학은 (자신 외에)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 는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은 여전히 하나의 경험으로서, 경험 일반의 존재론적 구조를 반복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철학이 자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경험과 세계와 존재에 대하여 지각적인 방식 으로[ 침묵으로 ] 말할 수 있 는 이유다. 요컨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살아 있는 철학은 아무것도 표 현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표현하는데, 왜냐하면 일체는 경험이기 때문 이다. 그런데 여기서 해명을 요하는 하나의 문제가 있다. 곧, 철학이 이렇듯 지각적 경험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철학만이, 혹은 언어만이, 자신 과 다른 지각적 경험들을 의미하고 표현하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어디에 있 는가? 그것은 바로 참된 것의 퇴행 운동 이 언어에서 가장 극명한 형태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발생하는 창조적 표현은 그 자신 외에 아무것도 표현하 지 않지만, 달리 말해 창조적 표현은 그 자신이 지각세계에 속함으로서만 간접적으로 지각세계를 표현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어적 창 조적 표현은 이미 구성된 언어와 의미들 속에서만, 다시 말해 앞서 구성된 언어와 의미들과의 분화[차이화]로서만 발생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항시 자신을 넘어서 세계를 지시한다는 착각 을 일으킨다. 메를로-퐁티의 견지 에서 보자면, 그리하여 둘 중의 하나다. 한편으로 어떤 철학(자) 은 이미 구 성된 표현과 의미들에 만족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언어적 삶까지를 포함하
210 논문 는 실제의 세계를 이미 구성된 언어에 기초해 있는 관념화된 세계로 대체한 다. 다른 한편으로 어떤 철학(자)은 몸소 표현의 발생에 참여함으로써 본래 적 의미의 철학을 실천한다. 그러나 이 때 철학은 단지 발생하는 의미에 대 한 지각적 경험이 된다. Ⅴ. 맺는 말: 철학의 자기물음. 메를로-퐁티의 철학으로 본 메를로-퐁티의 철학 철학은 어떤 가지적 세계 로의 상승이기는커녕 철저하게 지각적 경험이 라는 것, 지각적 경험은 참된 것의 퇴행 운동 으로 인해 완료되자마자 자신 의 구성적 계기들로부터 분석을 시작하는 회고적 사유를 정당화한다는 것, 때문에 철학은 발생에로 쉼 없이 복귀함으로써만 본래적 의미에서의 철학 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러기 위해서는 발생과 동시에 순수 의미로 전락 해가는 표현을 또 다른 창조적 표현으로 끝없이 갱신해야 한다는 것, 이것 이 본고가 도달한 메를로-퐁티의 철학 개념이었다. 그런데 메를로-퐁티의 이러한 주장은 철학의 운명 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함축을 가지는 듯이 보 인다. 우선 철학은 지각적 경험들의 연속적 조직을 구분된 개념들을 통해 일단 끊어 놓고 다시 이으려는 회고적 시도이다. 다음으로 지각적 경험들의 연속적 조직을 구분된 개념들을 통해 다시 이으려는 철학의 시도는 오직 개 념들의 그 구분을 넘어섬으로써만 가능해지며 바로 여기에 철학 일반에서 관찰되는 모순적인 말하기 방식 의 이유가 있다. 끝으로 철학이 그 근본적 의미에서의 철학, 곧 창조적 의미의 경험으로서의 철학으로 존재하는 한, 이러한 철학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매순간 새롭게 시작되는 우리들의 삶 일 뿐이므로 철학은 그 정의상 끝날 수가 없다. 지각의 문제가 철학의 시작 과 더불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 는 인간에게 철학할 시간이 짧았기 때문도 아니고, 우리의 지성과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다만 우리가 회고적으로 작동하는 언어와 사유를 통해서만 철학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를로-퐁티
철학이란 무엇인가 211 의 철학은 어떤가? 그것 또한 언어와 사유의 산물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철학 개념은 이 철학 개념에로 이끈 그 자신의 철학의 진리까 지를 부정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보기에 사실 그렇다! 메를로-퐁티 철학을 좇아 말할 때, 메를로-퐁티의 철학은 철학자 자신의 지각적 경험으 로 존재했을 뿐, 경험과 세계에 대한 어떠한 불변의 보편적 진리 도 말해주 지 않는다. 철학의 본령이 문제에 답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메를 로-퐁티는 말한다. 답변이 우리를 만족시키는 경우 그것은 단지 우리가 답 변에 깊은 주의를 기울여듣지 않았거나 우리가 집에 편안히 있다고 믿고 있어서이지, 답변 자체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32) 철학은 하나의 지각적 경 험을 다른 지각적 경험에로 돌려보내는 데 있고, 지각적 경험은 발생 자체, 분화 자체인 까닭에 경험될 수 있을 뿐 사유 될 수도 언표 될 수도 없다. 철 학은 자신의 뒤에 그 어떤 불변적 진리도 남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메를로- 퐁티를 따라 말하자면 우리 삶의 궁극적 실재성은 다만 존재의 쉼 없는 분화 가 부과한, 매순간 다시 시작하는 물음들의 연속일 뿐인 것이다. 투 고 일: 2015. 02. 11 심사완료일: 2015. 03. 23 게재확정일: 2015. 03. 24 박신화 서울대학교 32) Merleau-Ponty (1964) p.141.
212 논문 참고문헌 주성호, 2003, 왜 메를로-퐁티는 신체의 현상학에서 살의 존재론으 로 이행하는가?, 한국현상학회 철학과 현상학 연구, 20권. Barbaras R., 1991, De l'être du phénomène: Sur l'ontologie de Merleau-Ponty, Millon., 1997, Merleau-Ponty, coll. <Philo-philosophes>, Ellipses, 2008, Introduction à une phénoménologie de la vie, Vrin. Guillaume P., (1937) 1979, La psychologie de la forme, Flammarion. Lefort, C., 1982, Philosophie et non-philosophie, Esprit, Seuil. Merleau-Ponty, M. 1945,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Gallimard; 류의근 옮김, 2002, 문학과 지성사. (1946) 1989, Le primat de la perception et ses conséquences philosophiques, Cynara. 1964, Le visible et l'invisible, Gallimard; 남수인 옮김, 2004, 동문선., 1996, Notes de cours 1959-1961, Gallimard., 1942, La structure du comportement, PUF., (1945a) 1996, La querelle de l'existentialisme, Sens et non-sens, Gallimard. Noble S., 2005, Entre le silence des choses et la parole philosophique: Merleau-Ponty, Fink et les paradoxes du langage, Chiasmi International 6, Vrin, Mimesis/University of Memphis. Richir M., 1982, Le sens de la phénoménologie dans Le visible et l'invisible, Esprit, Seuil.
철학이란 무엇인가 213 ABSTRACT What is Philosophy? - In the Case of Merleau-Ponty- Park, Shin-Hwa The aim of this essay is to consider what Merleau-Ponty thinks about the nature of philosophy. Especially, the main text of this essay is his posthumous work,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with which I tried to clear up Merleau-Ponty's final concept of philosophy. For Merleau- Ponty, the problem of the nature of philosophy comes from the separation between perception and language. Inasmuch as philosophy is interested in thinking about and expressing perceptions [experiences] through concepts [language], the problem of the nature of philosophy lies in the relation between experience itself and the linguistic expression of experience. And the latter problem returns to what thinking is and what saying is. In his earlier works, Merleau-Ponty paid attention to the structural identity of perception and language. According to him, language turns out to be perceptual, if we analyze it from the point of view of genesis. By the way, such a conception of language gives us a new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of philosophy and an important insight concerning the philosophy of Merleau-Ponty itself as well. The problem of how to evaluate Merleau-Ponty's philosophy of flesh, whether it is successful or not, has caused a lot of controversy among annotators. And Merleau-Ponty himself provides an explanation for this controversy; he makes an assertion that seems
214 논문 to contradict his concept of flesh. In this essay, I indicated what difficulty his concept of flesh involves. But, by extension, I argued that such a difficulty is not only applicable to Merleau-Ponty's philosophy of flesh, but also to philosophy in general, inasmuch as philosophy proceeds through language and thought. I asked at the very beginning of this essay: Why does Merleau-Ponty consider the problem of the nature of philosophy so serious in the development of a new ontology? With regard to this question, I tried to reach a more profound understanding of his philosophy of flesh by studying his final conception of philosophy. Keywords: Merleau-Ponty, perception, language, expression, flesh, genesis, philosophical interro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