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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서묵상일기 3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김영석 Copyright c 2012 BCJC, 아름다운주님의공동체 www.bcjc.org 이 글은 2012년 열왕기상을 매일 묵상하며 적은 글입니다. 누구나 무료로 BCJC홈페이 지(http://bcjc.org)에서 PDF파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책자로 받아보시길 원하시 면 홈페이지나 이메일(bcjc@bcjc.org)로 신청하시면 됩니다. 이 책은 비매도서로 무료입 니다. 다만 이 글을 읽으시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하시는 마음이 생기신 다면 후원제 책값을 지불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후원은 상대적박탈감과 교육불 균형을 해소하는 비영리교육단체 다림교육(http://darimministry.org)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를 향한 아름다운 사역에 쓰여집니다. 신한은행100-029-060979 다림교육 4 열왕기상묵상일기3

차례 094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098 인간으로서 가장 추한 것은 자신이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어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101 내가 세상에 보여줄 것은 오직 말씀대로만 행하는 것 뿐이다. 105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열쇠이다 109 옛 자아는 나의 형편을 보고 인생의 결정을 하였지만 그리스도인은 자 신의 형편이 아닌 주님을 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112 도망가고 싶을수록, 숨고 싶을수록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서야 한다. 116 나의 경험과 상식에 근거하여 미래를 바라본다면, 그는 결코 새로운 길이나 기적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120 나에게 좋은 응답과 은혜가 있다는 것과, 내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누린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124 믿음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과 그분이 이기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다. 나에게 믿음이 있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서 승 리하는 것이다. 128 말씀을 품으면 말씀이 자라고 욕심을 품으면 탐욕이 자란다 133 목숨 거는 자는 존귀함을 받다 136 자신의 가치를 팔아서 무엇을 사는가? 가 바로 나의 인생이 된다. 141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위로받을 존재가 아니라 징계받을 존재라는 사 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145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149 선생님은 말로 가르치지만 부모는 삶으로 가르친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5

열왕기상묵상일기29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이 집 여주인의 아들이 병이 들었다. 그의 병은 매우 위 중하여서, 끝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러자 그 여인은 엘리야에게 이렇 게 말하였다. 하나님의 사람이신 어른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 게 저에게 오셔서, 저의 죄를 기억나게 하시고, 제 아들을 죽게 하십니까? 엘리야가 그 여인에게 아들을 달라고 하면서, 그 여인의 품에서 그 아이를 받아 안고, 자기가 머물고 있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를 자기의 침 대 위에 뉘어 놓고,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내가 머 물고 있는 이 집의 과부에게 이렇게 재앙을 내리시어, 그 아들을 죽게 하십 니까? 그는 그 아이의 몸 위에 세 번이나 엎드려서, 몸과 몸을 맞춘 다음, 주님께 또 부르짖었다. 주 나의 하나님, 제발 이 아이의 호흡이 되돌아오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엘리야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 아이의 호흡을 되돌아오게 하여 주셔서, 그 아이가 살아났다. 엘리야는,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내려와서, 아이를 돌려주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아들이 살 아났습니다. 그 여인이 엘리야에게 말하였다. 이제야 저는, 어른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이시라는 것과,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주님의 말씀이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열왕기상17:17~24 우리 인생은 늘 좋은 일만 있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이 되 었다고 나의 인생에서 좋은 일만 생기지도 않는다. 내가 부자가 되거나, 좋은 결혼을 하거나, 삶의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그 인생에 좋은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직 인생을 좋은 것으 6 열왕기상묵상일기3

로, 아름다운 것으로 만드는 수고가 있을 뿐이다. 복된 삶은 삶의 어떤 문제가 오든 그것을 좋은 일로 만드는 삶이다. 그것이 그리스 도인의 능력이기도 하다. 열왕기상17장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엘리야가 등장한다. 엘리 야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아니 성경을 대표하는 하나님의 사람 이다. 그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셨고 그는 담대히 이 땅에서 하 나님의 대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악한 지도자의 상징인 아합을 찾 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마치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는 그렇게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 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좋은 일로 활짝 핀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했다. 사람도 주 위에 없어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을 먹어야 했다. 설상가상 시 냇가의 물도 말라버렸다. 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곳 사르밧에서 만난 여인의 집은 먹을 것 조차 없는 집안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했 다고 인생이 늘 좋은 것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윗은 어린 시 절 하나님으로부터 왕의 기름을 부음받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의 인생이 바로 꽃이 핀 것과 같은 환한 대로가 열린 것은 아니다. 그 또한 도망자의 신세였고, 죽음의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으며 심 지어 왕이 된 이후에도 그에게 고난과 아픔은 멈추지 않았다. 요셉 에게도 어릴 적 하나님께서 요셉을 향한 계획을 보여주셨다. 이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위해 요셉을 쓰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렇지만 그의 인생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오늘 사르밧 여인의 인생을 돌아본다. 유추컨데 그 여인은 일찌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7

기 남편을 잃고 홀로 되었다. 집안은 가난했고, 하나 있는 아들은 건강치도 않았다. 있을 수 있는 안 좋은 일은 그 집안에 다 있다. 이 처럼 모든 것이 가망없다고 여긴 사르밧 여인은 이제 남은 밀가루 한 줌을 아들과 마지막으로 먹고 인생을 끝내려 한다. 그 때 그 집 안에 엘리야가 왔다. 황당하게도 엘리야는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그 여인은 자신조차 배를 채울 수 없는 먹을 것을 엘리야에게 주었 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났다. 그 집안에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이다. 나는 이 기적이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기적보다 더 주목하는 점은 그 다음이다. 그렇게 살리셨다면 그 집안은 이제 먹고 살만하고 좋은 일만 있 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들이 아파 죽고 만다. 아니 굶어 죽 으나 병들어 죽으나 죽는 것은 매 한가지인데, 그렇다면 밀가루 가 충족한들, 기름이 넘친들 무슨 소용있는가? 왜 이런 일이 벌어 져야 하는가? 우리 인생에서 깨달음이 있고, 기적이 있다고 아픔과 눈물이 끝 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인생에 고통이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고통을 다스리고 귀한 은혜로 바꾸는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결 국 엘리야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따지듯 부르짖다 가 부활의 기적을 보았다. 죽음의 고통이 없이는 부활의 기쁨을 누 리지 못한다. 배고픔의 아픔 없이는 풍족함의 은혜를 알지 못한다. 우리 인생에서 아픔이나 고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인생 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순 종해야 한다. 결국 아픔과 눈물은 순종하는 삶을 성장시키는 도구 8 열왕기상묵상일기3

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아픔 과 눈물을 묵상하지 말라. 우리가 묵상할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우리가 행할 것은 순종뿐이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9

열왕기상묵상일기30 인간으로서 가장 추한 것은 자신이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어 있음에도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오바댜가 아합에게로 가서, 이 사실을 알리니,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러 왔 다. 아합은 엘리야를 만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 롭히는 자요?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것이 아 니라, 임금님과 임금님 아버지의 가문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임금님께서는 주님의 계명을 내버리고, 바알을 섬기십니다. 열왕기상 18 :16-18 우리들은 꾸어준 것은 잘 기억해도 꾼 것은 곧잘 잊어버린 다. 준 사랑은 기억해도 받은 사랑은 잘 기억하지 못한 다. 해 준 용서는 잘 기억해도 받은 용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상 처를 받은 것은 잘 기억해도 준 상처는 잘 알지 못한다. 우리가 너 무도 자기중심적으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엘리야는 오랜 순종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하나님의 명령을 받 고 아합에게 간다. 아합은 역대 이스라엘 왕 가운데 가장 포악한 왕 이었고, 가장 영적으로 어두운 왕이었다. 3년 넘는 이스라엘의 가 뭄은 아합의 악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아합이 엘리야를 만 10 열왕기상묵상일기3

나고 하는 첫 마디는 참으로 가관이다. 열왕기상18:17,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가 너냐? 이 말을 듣는 우리는 참으로 허탈하다. 가뭄이 왜 벌어졌는지, 이스라엘이 왜 고통을 당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지 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 아가는 사람들은 공의롭고, 이타적인 삶이 오히려 자신을 괴롭게 하는 삶이 된다. 아합에게는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이가 엘리야일 수 밖에 없는 까닭이다. 우리는 많은 고통을 여러 곳에서 받는다. 우리 속에 불평들이 생긴다. 나는 잘하는데 왜 괴롭히는 자들, 태클거는 자들이 주위에 이 리도 많은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혹시 아합과 같은 자는 아닐까? 자기 중 심에 눈이 멀면, 자기 중심에 영이 어두워지면, 자신이 주위를 괴 롭게 하면서도, 자신이 세상을 힘들게 하면서도, 오히려 주위에, 오히려 세상에, 오히려 타인에 그 책임을 돌리고 분노하고 싸우 려 든다. 정치지도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면 자신이 세상을 힘들게 하고, 국민을 힘들게 하면서도 오히려 국민이 자신을 괴롭히고 있 다고 핏대를 올리고, 대응하고 싸우려 든다. 종교지도자들이 말씀 에 눈이 멀면 복음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기득권을 행사하며, 세 상을 힘들게 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핍박받고 환란을 당한다고 설레발을 친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11

주님의 마음을 잃으면 우리는 세상을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된다. 주님의 말씀을 잃으면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주위를 괴롭히 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곤 오히려 괴롭힘을 당했다고, 상 처받았다고 울고불고 책임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존재, 무식한 존 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나도 모르는 사 이에 내가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어 있는 것이다. 12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1 내가 세상에 보여줄 것은 오직 말씀대로만 행하는 것 뿐이다. 이 때에 엘리야가 온 백성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백성들이 가까이 오니, 그는 무너진 주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다. 그리고 엘리야는, 일찍이 주 님께서 이스라엘이라고 이름을 고쳐 주신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 수대로, 열 두 개의 돌을 모았다. 이 돌을 가지고 엘리야는 주님께 예배할 제단을 다시 쌓고, 제단 둘레에는 두 세아 정도의 곡식이 들어갈 수 있는 넓이의 도랑을 팠다. 그 다음에, 나뭇단을 쌓아 놓고, 소를 각을 떠서, 그 나뭇단 위에 올려 놓고, 물통 네 개에 물을 가득 채워다가, 제물과 나뭇단 위에 쏟으라고 하였 다. 사람들이 그대로 하니, 엘리야가 한 번 더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들 이 그렇게 하니, 그는 또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세 번을 그렇게 하 니, 물이 제단 주위로 넘쳐 흘러서, 그 옆 도랑에 가득 찼다. 제사를 드릴 때 가 되니, 엘리야 예언자가 앞으로 나서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돌보신 주 하나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나는 주님의 종이며, 내가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만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는 것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응답하여 주십시오. 응답 하여 주십시오.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님이 주 하나님이시며, 그들의 마음 을 돌이키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의 불이 떨어져서, 제물과 나뭇단과 돌들과 흙을 태웠고, 도랑 안에 있는 물을 모두 말려 버렸다. 온 백성이 이것을 보고, 땅에 엎드려서 말하였다. 그가 주 하 나님이시다! 그가 주 하나님이시다! 열왕기상18:30~39 옛 말에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들은 유명 해지는 것을 원한다는 말일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자기 이름이 드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13

러나기를 좋아한다. 이것은 자기의 이름이 전세계에 울려퍼지거 나, 혹은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실리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다. 사 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자기 한 일들이 박수받 기 원하며, 자기 이름이 늘 기억되기를 원한다. 오래전에 독일 하이델베르그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는 학 생감옥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본래 대학에서 잘못한 학생들을 재 판하고 구금하는 곳이었다. 옛날 독일은 대학이 치외법권지역 이라 대학 자치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 이델베르그대학은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 가장 오래 된 학교이니만큼 학생감옥 또한 유명하다. 그런데 내게는 이곳이 창피함으로 기억되어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곳에 들어가보니 벽에 각종 낙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치 동물들이 영역확보를 표시하기 위한 행위처럼 각 나라의 글씨로 낙서가 되어있다. 그런 데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낙서가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글씨였다는 점이다. 바로 한글 낙서들이었다. 그 낙서들 앞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한글로 낙서하지 마세요. 하긴 사람들은 관 광지의 돌이나 나무에, 까페의 벽면에 다른 이들은 결코 알지도 못 하는 자기 이름을 그렇게 써댄다. 중국속담에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고, 돼지는 人 怕 出 名 猪 怕 壮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다. 유명해 지기를 꿈꾸는 마음에는 늘 독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독소를 우리는 자기의 Self-righteousness 라고 부른다. 시작은 순수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의가 드러나면 우리의 모든 계획은, 비록 그 계획이 계 14 열왕기상묵상일기3

획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래 서 잠언 기자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지키라 잠4:23 고 하였다. 그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엘리야를 이제 이스라엘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좋은 의미 로 알던, 그렇지 않던 3년반이 넘는 가뭄의 고통의 중심인물이기 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욱이 엘리야는 지금 성경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강력한 하나님의 이적을 보이는 자리에 서 있다. 아 마도 모든 이들 은 갈멜산의 기적을 말하면서 엘리야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셨는지 간증 하고 싶어 한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통해 이루 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고백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나를 통해 이 루신 일들을 사람들이 알길 원한다. 내 안에도 이런 마음 이 있다. 내 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꿈꾸고 살았는지, 어떤 비전 이 있었는지,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사람들에게 알 려주고 싶고, 또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오늘 하 나님은 내게 엘리 야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교만한 바람인지, 그것 이 얼마나 자기 의 에 충실한 꿈이었는지를 깨닫게 하신다. 엘리야 는 이렇게 기도한다. 열왕기상18:36, 나는 주님의 종이며 내가 오직 주님의 말 씀 대로만 이 모든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오늘 저들이 알게 하여 주십시오. 그가 알리고자 했던 것은 단지 자신이 얼마나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15

사는지... 단지 그것이었다. 무엇을 많이 했는지, 무엇을 이루었는 지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얼마나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말씀 대로만 사는지, 행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다. 불 이 떨어지 는 것, 놀라운 기적이 보여지는 것, 열매가 맺어지는 것, 그것은 엘리 야의 것이 아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만 행하 는 것을 보여주 는 것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이니겠는가! 나에 게도 하나님의 말 씀대로 살아가는 것만 보여지는 것이 유일한 소 망이 되길 원한다. 16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2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열쇠이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빗소리가 크게 들리니, 이제는 올라가셔서, 음식을 드십시오. 아합이 올라가서, 음식을 먹었다. 엘리야는 갈멜 산 꼭대 기로 올라가서, 땅을 바라보며 몸을 굽히고,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었 다. 그리고는 그의 시종에게, 올라가서 바다쪽을 살펴 보라고 하였다. 시종 은 올라가서 보고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다 시 그의 시종에게, 일곱 번을 그렇게 더 다녀오라고 하였다. 일곱 번째가 되 었을 때에, 그 시종은 마침내, 사람의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바다에서부 터 떠올라 오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엘리야는 아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서, 비가 와서 길이 막히기 전에 어서 병거를 갖추고 내려가라는 말을 전하 라고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이미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캄캄해지고, 바람 이 일더니, 곧 큰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아합은 곧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 로 내려갔다. 주님의 능력이 엘리야와 함께 하였기 때문에, 엘리야는 허리 를 동여 매고, 아합을 앞질러서, 이스르엘 어귀에까지 달려갔다. 열왕기상18:41~46 목사로써 받는 질문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기도에 관한 것이다. 뭐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을 하 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죄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이해될 수도 없기에 기도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도 난감할 때가 아 주 많다. 특히 가장 원초적인 질문이 그렇다. 우리가 끝까지 기도 하면 하나님은 들어주시는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면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등의 질문들 말이다. 대답을 몰라 서라기보다 곡해할 여지 때문에 대답을 선뜻할 수 없는 질문들이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17

많이 있다. 더 나아가 기독교신앙과는 다른 종교적 신앙관에 사로 잡힌 기도에 대한 인식이 우리에게 있어서 더욱 그렇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과 섭리로 일하시는 분이 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요구하여 우리를 창조하신 것도 아 니며,우리가 기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도 아니시다. 우 리의 공로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아들을 보 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계획이셨 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대로 일하신다. 좀 과격하게 말 하자면 하나님은하나님 마음대로 일하신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된 것은 그분은 한의 실수도 없는 분이고, 공의로운 분이라는 사실 때 문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기도한다고 일하시고 그렇지 않다고 안하시는 분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는지의 질문이 남는다. 내가 기 도하건 말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테니 말이다. 왜 기도해 야하는가?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해야할 이유가 있다. 바로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과 부으신 그 은혜를 알 게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가령 자그만치 30년동안 남편의 구원 을 위해기도했던 아내가 있다고 하자. 30년만에 남편이 교회에 나 왔다면 그아내는 어떤 감격이 있을까? 그 아내의 감격과 그런 기 도를 하지 않았던 이들의 감격이 같을 수 있을까? 기도했던 아내 에게 부어진 은혜의 크기와 기도하지 않은 자의 은혜의 크기가 같 을까? 우리에게는 그저 한 영혼이겠지만 기도했던 이에게는 그 이 상의 은혜와 감사가 있다. 왜냐? 기도했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건 18 열왕기상묵상일기3

강을 달라고 기도한 사람만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은 건강한 하루 를 감사와 축복으로 여기며주신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우리가 평 범하게 여기는 여러가지의 것들을 평범케 여기지 않고, 그것으로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기도자였 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축복들이 넘친다. 어김없이 태양이 뜨 고, 아침이 오며, 어김없이 쉴 밤이 주어진다. 어김없이 계절이 오 고가고, 시간은 흐른다. 우리가 관여하지 않아도 역사는 진행되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펼쳐진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만이 이 모 든 것이 축복임을 안다. 소망하던 사람만이 그 일이 이루어지면 기 쁨을 누리듯이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계획이 축복으로 다 가오는 것이다. 엘리야는 비가 내리기 전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심각하게 기 도한다. 이미 하나님께서 비를 주겠다 열왕기상18:1 고 약속하셨는데도 그는 기도한다. 그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계획이 취소되 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기도한다. 기도하는 자는 비가 하나님 으로 인해 주어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자 는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고 계획임에도 그들은 그저 자연의 이 치로만 여길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자였기에 여섯번의 실패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 하는 자였기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에도 감 격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행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19

언제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될려면 우 리가 그것이 은혜인 것을 알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의 마음을 알고 그의 은혜를 아는 자들이다. 아는 자만이 그 은혜 를 만끽한다. 아는 자만이 행복하다.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열쇠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요구가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은혜를 아는 열 쇠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임했다. 이제 그 은혜를 은 혜로 받는 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에덴동산의 모든 것들은 창조되 었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누리면 된다. 그러나 그것을 은혜로 여 기지 못하면 우리는 누릴 수도, 참여할 수도 없다. 오직 기도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 오직 기도하는 자만이 은혜를 안다. 겟세마네 기도의 위대함은, 그 기도가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 음을 읽는 기도였기 때문이다. 나의 필요는 공의로우시고 신실하 신 하나님이 책임 지신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기도 함으로 알아가고, 기도함으로 기다려야 한다. 20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3 옛 자아는 나의 형편을 보고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형편이 아닌 주님을 보고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아합은, 엘리야가 한 모든 일과, 그가 칼로 모든 예언자들을 죽인 일을, 낱 낱이 이세벨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심부름꾼을 보 내어 말하였다. 네가 예언자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를 죽이겠다. 내가 내일 이맘때까지 너를 죽이지 못하면, 신들에게서 천벌을 달게 받겠다. 아니, 그 보다 더한 재앙이라도 그대로 받겠다.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 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 겨 두고,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 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 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열왕기상19:1~4 삽시간이다. 놀라운 기적도, 화려한 승리도 뒤를 돌아보 는 순간 순식간에 믿음은 사라져 버린다. 늘 궁금했다. 아름다운 에덴동산에서 뭐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인간이 어찌 사 단의 유혹을 그리도 쉽게 받았을까 하는 것이 말이다. 결론은 간단 하다. 사단의 유혹이 너무 그럴싸하고 강력한 것도 아니고, 인간이 부족해서 뭔가 더 가지려 한 것 또한 더더욱 핵심이 아니다. 실패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21

의 출발은 나의 형편을 보는 순간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떠한 사유로 종이 되었더라도 7년이 지나 면 자유의 몸이 될 권리를 얻는다. 출21:2~4 종은 그 권리 앞에서 선 택을 한다. 자유인이 되거나 혹은 주인과 함께 종으로 살거나... 그 종이 주인을 사랑하여 종으로 살기를 선언하면 주인은 그를 데리 고 재판장에게 가 귀를 뚫으므로 그 증표를 삼는다. 이제 그 종은 주인과 함께 인생을 살아간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주인에게 인 생을 맡기는 것이다. 이제 주인의 형편에 따라 자신의 형편도 결 정되는 것이다. 주인이 흥하면 자신도 흥하고 주인이 망하면 자신 도 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존재다. 그 십 자가에서 나는 죽고, 부활로 인해 그리스도만이 내 안에 사시는 존 재가 된다. 다시말해 이제 그리스도께 자신의 인생을 맡긴 삶이 되 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옛 자아는 나의 형편을 보고 인생의 결정 을 하였지만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형편이 아닌 주님을 보고 인생 을 살아 가는 것이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주님께 맡긴 내 인생에서 주님이 아닌 나의 형편을 보는 것이다. 믿음의 사람이 자신의 형편을 보는 순간 어김 없이 무너진다.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으심을 보고 자신도 물에 뛰어 들었다. 그는 주님을 바라볼 때 물 위를 걸었다. 그러나 곧바로 그는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형편은 끝도 없을 것 같은 깊이의 시꺼먼 바다물 위에 홀로 서있는 자신이었다. 22 열왕기상묵상일기3

언제라도 자신을 덮칠 것 같은 넘실거리는 파도와 바람 앞에 놓인 연약한 존재로 서 있는 자신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잡아줄 것 같지 않고, 구명 튜브 하나 손에 있지 않은 두려움 가득한 자신이었다. 그 형편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물에 가라앉고 말았다. 이 장면을 보 시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마태복음14:31,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제아무리 강력한 기적을 맛보아도, 제아무리 큰 승리를 얻어 도 내 안에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형편을 바라보면 쓰러진 다. 제아무리 강력한 믿음을 가졌다 해도, 세상을 뒤집을 만한 용 기를 가졌다해도 자신의 형편을 보는 순간 그 믿음은 순식간에 사 라진다. 그리스도인은 나의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편을 보고 사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창조주시며 모든 이름 위에 뛰 어나신 그분에게 나의 인생을 맡긴 삶이니... 안심하라.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23

열왕기상묵상일기34 도망가고 싶을수록, 숨고 싶을수록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서야 한다. 엘리야는 거기에 있는 동굴에 이르러, 거기에서 밤을 지냈다.그 때에 주님 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 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단 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 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셨다. 이제 곧 나 주가 지나갈 것이니, 너는 나가서, 산 위에, 주 앞에 서 있어라. 크고 강한 바람이 주님 앞에서 산을 쪼개고, 바위를 부수었으나, 그 바람 속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바람이 지나가고 난 뒤에 지진이 일었지만, 그 지진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지나가고 난 뒤 에 불이 났지만, 그 불 속에도 주님께서 계시지 않았다. 그 불이 난 뒤에, 부 드럽고 조용한 소리가 들렸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듣고서, 외투 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나가서, 동굴 어귀에 섰다. 바로 그 때에 그에게 소리가 들려 왔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열왕기상19:9~13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채 무대 위에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오래전 유행했던 가요가사 중 하나이다. 가장 고독한 시간 은 화려한 조명과 열띤 열기가 있은 바로 다음이다. 박 24 열왕기상묵상일기3

수와 환호, 놀라운 결과와 흥분의 시간이 흐른 뒤 우리 마음에는 갑 자기 고독이 밀려온다.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속사람의 욕심이, 이미 상황이 다 끝나버린 자리에서 더욱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인기를 먹고산다는 연예인들에게 가장 괴로운 시간이 바 로 이 시간이다. 그래서 연예인들은 그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 또 그런 자리를 만들거나, 무리를 해서라도 무대를 그리워한다. 때로 는 견디기 힘들어 마약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바로 연극이 끝나 고 난 뒤의 고독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영적인 침체나 고독을 느낄 때 숨어버린다. 소위 잠수 를 타는 거다. 이렇게 엘리야는 동굴에 들어간다. 영적 침체 에 빠지면 이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을 느낀게 된 다. 친구도 없는 것 같고, 나를 도와주거나 위로해 줄 사람 하나 없 어 보인다. 그래서 찾는 것이 동굴이다. 사단은 홀로 있는 자를 공략한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함께 가 아닌 홀로 있는 하와를 공략했다. 우리는 홀로 있는 존재가 아 니다. 기도하는 시간도, 골방의 시간도 결코 홀로 있는 시간이 아 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지 혼자의 시간이 아니다. 묵상하 는 시간도 결코 홀로 있는 시간이 아니다. 비록 육신은 홀로 있으 나 동행하시는 성령과 늘 함께 거하는 이가 그리스도인이다. 혼자 있겠다는 말은 다른 의미로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된다. 굴에 들어가고자 하는 속삭임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법률용어에는 불고지죄 라는 것이 있다. 범죄한 이를 보고도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25

고지하지 않은 죄를 불고지죄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동굴에 들어 가는 것은 특별한 죄로 여겨지지 않을 지도 모른다. 동굴에 들어 가는 것 자체가 범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것은 영 적인 불고지죄에 해당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영혼이 동굴에 들 어가면 자신 조차도 가름할 수 없는 수많은 공격들에 노출되는 것 이기 때문이다. 죄의 출발은 나만의 동굴에서 이루어진다. 그 동 굴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두번이나 말씀 하신다. 열왕기상19:13,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우리가 서야할 곳은 동굴이 아니라 여호와 앞이다. 부끄러워도, 창피해도 우리가 서야할 곳은 여호와 앞이다. 도망가고 싶을수록, 숨고 싶을수록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서야 한다. 숨고 싶을 그 때가 바로 여호와 앞에 드러낼 때이다. 동굴을 찾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할 때이다. 찬양에도 이런 가사가 있다.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주 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드리네 주님을 향한 노래 이상의 노래 내 맘 깊은 곳에 주께서 원하신 것 화려한 음악보다 뜻없는 열정보다 중심을 원하시죠 주님께 드릴 마음의 예배 주님을 위한 주님을 향한 노래 중심잃은 예배 내려놓고 이제 나 돌아와 주님만 예배해요. 동굴이 그리운 그 시간이 주님 앞에서 예배해야할 시간이다. 우 리가 정말 기도해야할 시간은 바로 그 고독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26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5 나의 경험과 상식에 근거하여 미래를 바라본다면, 그는 결코 새로운 길이나 기적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 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제 단을 헐었으며, 주님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 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에 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이켜, 광야길로 해서 다마스쿠스로 가거라. 거기에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시리아의 왕으로 세우고,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라. 그리고 아벨므홀 라 출신인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네 뒤를 이을 예언자로 세워라. 하사엘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예후가 죽일 것이고, 예후 의 칼을 피해서 도망하는 사람은 엘리사가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스 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 열왕기상19:14~18 간혹 교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다가 낙심하는 친구들을 만 나게 된다. 보통 낙심은 무언가를 열심히 하다가 생기 는 병이다. 열심이 없으면 낙심도 없다. 혹시 낙심했는가? 그렇다 면 이것만은 알아두라. 내가 열심과 열정이 있었구나! 열정이 없 는 사람이 낙심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뒤바꾸어 이야기하면 낙심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27

은 열정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열정이 왜 낙심으로 변하느냐 면 일을 하다보니까 자기밖에 일하는 사람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또 일을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이 많으면 많을수 록 자신의 눈에 자신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더 나아가 자신 혼자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언제나 앞서가는 사람이 길을 닦는 수고를 하게 되고, 언제나 열정있는 사람이 더 많 은 일을 하는 시간의 손해를 보게 된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가장 암흑기에 고군분투하던 선지자다. 암흑기에는 모두다 숨을 죽이고 살게 된다. 철권통치, 독재통치에 는 그 많던 믿음의 사람들은 어디갔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예수님 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그 때에도,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은 어딜갔는지 찾을 수가 없다. 독재의 권력이 이기는 것 같고, 철권통 치가 승리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우리의 상식이나 경험으로는 한 두 사람이 분연히 일어난다 해도 그들의 최후는 죽음 뿐임을 안다.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오직 나만 남겨진 것 같다. 우리의 인생에서 경험과 상식에 근거하여 미래를 판단하고 계 획한다면 결단코 새로운 길이나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들을 맛보 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 경험으로는 광야에 길을 날 수도, 사막에 강이 흐를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만드시 고, 사막에 강을 흐르게 하신다.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으로는 나이 가 여든이 넘어 태가 끊긴 여자의 몸에서 생명이 잉태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태에 생명을 주신다. 사람의 상식에는 죽으 면 끝이지만하나님의 손에는 부활의 능력이 있다. 28 열왕기상묵상일기3

1960년대 중국에는 10년이 넘는 문화혁명의 기간이 있었다. 중국에 복음이 전해진 이 후 한 때 공산화로 인해 교회가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교회의 문이 닫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화혁명기 간에는 모든 교회가 닫히고 목회자가 쫓겨나는 등 기독교 근간이 뿌리채뽑힐만한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교회학자들은 중국교회가 이제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끝난 이 후 중국교인의 숫 자는 이전보다 더 늘어났다. 하나님 손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7,000명이 있다. 하나님 손에는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계획과 섭리 가 있다. 하나님 손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꿈꿀 수도 없는 동 역자가 있다. 나만 남았다고 여기는 엘리야에게 가장 놀라운 동역 자 엘리사처럼 말이다. 낙심했는가? 지쳤는가? 이젠 끝난 것 같은가? 그간 보아온 상식 에 비추어, 경험에 비추어 이젠 도저히 가망이 없어 보이나? 정말 끝이 보이는 것은 나의 상식과 경험에 비추어 미래를 판단하는 나 의 좁아터진 시각이다. 이제 상식과 경험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볼 차례다. 7,000명을 만날 차례이고, 둘도없는 동역자를 만날 차례다. 우리가 동굴에서 나온다면 말이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29

열왕기상묵상일기36 나에게 좋은 응답과 은혜가 있다는 것과, 내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누린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그 때에 예언자 한 사람이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와서 말하였다.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이렇게 큰 군대를 본 적이 있느냐? 그러나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줄 것이니, 너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아합이 물었 다. 진 앞에는 누가 섭니까? 예언자가 대답하였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 를, 지방장관들의 젊은 부하들을 앞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다시 물었다. 누가 총지휘를 합니까? 그 예언자가 대답하였다. 임금님이 십니다. 그래서 아합이 지방장관들의 젊은 부하들을 점검하여 보니, 그들 은 모두 이백서른두 명이었다. 그런 다음에, 그가 이스라엘 군대를 모두 점 검하여 보니, 모두 칠천 명이었다. 정오가 되자, 아합의 군대가 공격을 시작 하였다. 그 때에 벤하닷은 자기를 돕는 지방 영주 서른두 명과 함께 막사에 서 술에 취해 있었다. 지방장관들의 젊은 부하들이 먼저 공격을 시작하였 다. 벤하닷의 정찰병들이 벤하닷에게, 적군들이 사마리아 성에서 나오고 있 다고 보고하였다. 보고를 받은 벤하닷은, 그들이 화친을 하러 나왔더라도 사로잡고, 싸움을 하러 나왔더라도 사로잡으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지방 장관의 젊은 부하들과 그들을 뒤따르는 군대는 이미 성읍 바깥으로 나와서, 저마다 닥치는 대로 벤하닷의 군대를 무찔렀다. 그래서 시리아 군인들은 다 도망하였고, 이스라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하였다. 시리아 왕 벤하닷도 기병 들과 함께 말을 타고 도망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왕은, 첫 싸움에서 많은 말과 병거를 격파하고, 시리아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열왕기상20:13~21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은 무엇 이 있을까? 보통 우리들은 나에게 주시는 놀라운 은혜 나 축복이 임할 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상상 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사 람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하고, 하는 일마다 잘 되는 역사를 보면 30 열왕기상묵상일기3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이 부러워 진다. 나에게도 그런 기적이 있기를 바라고, 그런 특별한 사랑과 은 혜가 충만하기를 늘 바란다. 그런데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믿 는 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십자가를 위해 아들을 보내신 것은 믿는 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 께서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요3:16 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시간은 믿는 자에게도, 믿지 않는 자에게도 동일 하게 주어지며,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 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십니다. 마5:45 아람왕 벤하닷과 그 주변 32명의 왕이 함께하는 연합군이 아합 을 공격하려 왔다. 우리는 이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악한 자 의 말로가 그럴 것이라고 말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악한 자를 그 냥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오늘 이 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에게 하나님의 은 혜가 임한다. 열왕기상20:13, 나 주가 말한다. 네가 이렇게 큰 군대를 본 적 이 있느냐? 그러나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줄 것이니, 너 는,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악한 왕 아합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사실에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뿐만 아니라 반대하고 탄 압했던 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아직 돌아선 것도 아니고, 회개한 것은 더더욱 아닌 아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31

합에게 기적과 같은 승리가 주어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당신은 무 슨 마음이 드는가? 믿지 않는 사람도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악한 사람에게도 하나 님의 은혜는 동일하게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하시 면 말이다. 그러니까 은혜를 누리는 것, 승리하고 기적을 맛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응답과 은혜가 있다는 것과, 내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누린다는 것은 다른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내 삶에 기적이 있고, 놀라운 은혜 의 체험이 있어야 믿음이 증명되는 듯이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심 지어 우리 삶에 표증이 없으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라고 말하 기도 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기적을 경험해도 우리는 한 때 뿐임 을 성경에서 누누이 보아왔다. 우리에게 진정한 은혜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누리는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거닐 듯 그와 같은 관계 말이다. 좋은 관계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때론 밍밍할 수도 있 고, 때론 건조해 보이기도 한다. 뭔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이 특별한 것이다. 조용히 그분과 거니는 것, 잠 잠히 그분 앞에 서 있는 것, 늘 그분과 동행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은혜요 축복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보다 늘 함께 사는 가족이 더 좋은 것이다. 특별한 날 찾아가는 스승보다 늘 모시고 사는 스 승과의 관계가 더 깊은 법이다. 우리의 믿음을 어떤 특별한 일의 응답으로 증명하지 말라. 우리의 믿음은 하루하루 그분과의 관계 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32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7 믿음은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과 그분이 이기 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나에게 믿음이 있어 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서 승리 하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가까이 와서,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주님께 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리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산의 신이지, 평 지의 신은 아니라고 하니, 내가 이 큰 군대를 모두 네 손에 내주겠다. 이제 너희는 곧,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 양쪽 군대는 서로 대치하여서, 이레 동안 진을 치고 있었다. 드디어 이레째 되는 날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 스라엘 군대가 시리아 군대를 쳐서 하루만에 보병 십만 명을 무찔렀다. 그 나머지는 아벡 성으로 도망하였으나, 성벽이 무너져서, 나머지 이만 칠천 명을 덮쳐 버렸다. 벤하닷도 도망하여서, 그 성 안의 어느 골방으로 들어갔 다.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왕가의 왕들은 모두 인정이 많은 왕이라고 들었습니다. 우리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목에 줄을 동여 매고, 이스라엘 왕에게 가면, 어쩌면 그가 임금님의 생명을 살려 줄지도 모 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목에 줄을 동여 매고 이스 라엘 왕에게 나아가서 왕의 종 벤하닷이,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애원 하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니, 아합 왕이 말하였다. 아직도 그가 살아 있느 냐? 그는 나의 형제다. 그들은 이것을 좋은 징조로 여기고, 얼른 말을 받 아서 대답하였다. 예, 벤하닷은 임금님의 형제입니다. 그러자 왕이 말하 였다. 가서 그를 데려오너라. 벤하닷이 아합 왕에게 나아오니, 왕은 그를 자기 병거에 올라타게 하였다. 벤하닷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나의 부친이 왕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성들을 다 돌려드리겠습니다. 나의 부친이 사마리 아 안에 상업 중심지인 광장을 만든 것 같이, 임금님께서도 손수 다마스쿠 스 안에 그러한 광장들을 만드십시오. 그러자 아합은 그러면 나는 그런 조 약을 조건으로 하고, 당신을 보내드리겠소 하고 말한 뒤에, 그와 조약을 맺 고서, 벤하닷을 놓아 주었다.. 열왕기상20:28~34 믿음이라는 말처럼 쉽게 사용하고 쉽게 이해되지만 또한 그 뜻이 완전히 왜곡되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33

는 영적단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늘 믿음이 있어야 한 다고 주장해 왔다. 마치 믿음이 영적 동기를 불러 일으키는 거대 한 물리적 도구처럼 사용해 왔다. 물론 믿음이 모든 영적 흐름의 기초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나의 믿음이, 역사하는 힘 은 아니다. 우리가 믿어도, 믿지 않아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일하신다. 우리의 긍정이나 부정으로 하나님의 계획과 일하심이 제한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은 역 사하시고, 하나님이 반드시 이기신다는 것을 믿는 것 뿐이다. 그 런데도 우리는 마치 믿음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사용하려 든다. 내 게 믿음이 있으니까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내게 믿음이 있으니 까 바라는 대로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하 다. 내게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을 나는 긍 정하겠다고 하는 것이지 나의 믿음이 있어서 내 뜻대로 할 수 있 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아합을 통해 믿음이 무엇인지를 공부한다. 하나님은 악 한 왕 아합에게도 은혜를 베푸신다. 그가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일하신 것이 다. 그런데 전쟁은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전쟁이 예고되 었다. 그리고 아합 앞에 하나님께서 다시한번 승리를 주실 것이라 는 예언이 놓였다. 보통 우리는 엉겁결에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의 놀라운 역사하심에 감격하기도 한다. 그러 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똑같은 일이 엉겁결이 아니라 평범하고 예 34 열왕기상묵상일기3

측가능한 상황에서 주어질 때 우리의 믿음이 시험받다. 이번에도 하나님 역사하실까 의 의심부터, 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 면 지난 번 승리는 우연이었을거야 라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똑같 은 상황 앞에서 믿음은 흔들리고 초라해진다. 아합은 두 번째에도 전쟁에 이겼지만 이기게 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인간적인 계산하에 벤하닷을 살려준다. 믿음은 신념도 아니고 세뇌는 더욱더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 Lord 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믿음이 상황을 바꾸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바꾸고 미래를 계획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 시다. 믿음은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 나님을 믿기보다 나의 믿음 자체를 믿는 신앙에 빠지기 쉽다. 그래 서 이런 왜곡된 믿음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더욱 관철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 다. 자신의 믿음을 보임으로 상황을 바꾸어 보려고 고행도 하고, 금식도 한다. 내가 보여야할 믿음은 내가 얼마나 강한 믿음인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하나님 하시는 일을 인정하는가이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1: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 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운동선수가 반복된 훈련을 통해 기술이 자라나듯이, 무용수가 반복된 연습을 통해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듯이 우리의 믿음도 반 복된 상황을 통해 내가 아닌, 나의 능력이 아닌, 나의 꼼수가 아닌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35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의해 나의 인생이 펼쳐진다 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오늘도 우리 인생은 나의 믿음이나 행함이 있어서 승리하는 것 이 아니다. 오직 내 곁에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승리한다. 나 는 오늘 그 하나님을 믿는다. 36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8 말씀을 품으면 말씀이 자라고 욕심을 품으면 탐욕이 자란다. 그 뒤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 땅에 포도원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원은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궁 근처에 있었 다.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원이 나의 궁 가까이에 있으 니, 나에게 넘기도록 하시오. 나는 그것을 정원으로 만들려고 하오. 내가 그 것 대신에 더 좋은 포도원을 하나 주겠소. 그대가 원하면, 그 값을 돈으로 계 산하여 줄 수도 있소.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제가 조상의 유산을 임 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입니다. 아합은, 이스르 엘 사람 나봇이 그 포도원을 조상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양도하기를 거절하 였으므로, 마음이 상하였다. 화를 내며 궁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얼굴 을 돌리고, 음식도 먹지 않았다. 열왕기상21:1~4 우리는 늘 자신에게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을 더 귀하게 생각한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말이다. 이것을 성경은 탐욕 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각각 의 달란트와 환경들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똑같은 것을 주 시지 않으셨다. 각자에게 맞는 것을 주시고, 또 적절한 것을 주신 다. 그런데 우리는 남의 것이 더 좋아 보여 그것을 부러워하고, 바 라며 산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세상의 풍조와 세상의 유행을 타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시기와 질투가 생기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37

고, 비교와 불평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아합은 아람연합군과의 2번의 전투에서 크게 이겼다. 누가봐도 이기기 힘든 전쟁이었는데 그는 승리했다. 물론 우리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성경을 통해 잘 안다. 그렇다면 아합은 알았을 까? 알다시피 아합은 탁월한 왕이다. 눈치도 빠르고 줄을 잘 설 줄 알며, 영적으로도 민감한 왕이다. 우상에 빠진다는 것은 영적 민감 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적민감성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면 우 상에게 향하게 되어 있는 것이 자명하다. 그런 왕이 이 일이 하나 님께서 하신 일이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사실 을 왜 모르는 것일까?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한 마디로 말하 면,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 나봇을 죽이고 빼앗았다는 이야기다. 이 말씀이 주는 위치는 참으로 기묘하다. 전쟁의 승리로 들뜬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전에 나봇 포도원이야기 나온다. 아합 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다. 아합은 자신에게 주 어진 승리, 자신에게 주어진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그 가치를 누리 기도 전에, 가치를 감사하기도 전에 그는 다른데 눈을 돌린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가치와 축복이 아닌 포도원에 눈을 돌리는 것이 다. 이것이 탐욕이다. 너무도 바보같은 것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인데 남의 것을 넘 보는 것이다. 이것은 아합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대기업들은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한다. 대형활인점으로 그치지 않고 38 열왕기상묵상일기3

지역마다 작은 구멍가게들을 초토화시키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서민들의 창업 1순위었던 피자나 치 킨가게는 통큰 피자니 통큰 치킨에 의해 문닫게될 위기이다. 심지 어 빵집이며 국민간식 떡볶기까지 대기업 딸들이 독식하기 시작했 다. 돈이 되는 것이면 뭐든지 하려고 한다. 내 것보다 남의 것, 남의 떡을 눈여겨 본다면 자신의 달란트는 死 藏 사장 된다. 나에게 있는 은사는 쓰지 않으면서 남에게 있는 은사 를 부러워한다면 그 속에 탐욕이 자란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 는 99.9%를 다 소유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것, 그 동산 중앙의 나무들을 탐내다 죄에 빠졌다. 탐욕은 우리를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게 한다. 탐욕은 우리에게서 아름다운 달란트를 오히려 빼앗기 게 만든다. 탐욕은 우리를 누릴 수 있는 자리마저 빼앗기게 만든다. 象 牙 宮 아합은 성경을 보면 상아궁 에 살았다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 이나 비싸기로 말하면 엉청난 코끼리이빨로 만든 궁에서 살았는 데 그가 탐내던 포도원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탐이 났 을까? 오늘 본문 2절을 보면, 채소밭을 삼게하라 고 되어 있다. 아니 채소가 없어서 식음을 전폐하면서까지 그 포도원을 탐내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우리는 싸우고 불평하고 다툰다. 일 만달란트 빚진 자의 탕감은 생각지 않고 백 데나리온 빚을 고소하 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생명을 은혜로 받았는데 알 량한 자존심, 알량한 재산가지고 시금을 전폐하고 싸우려 든다. 李 最 應, 1815~1882 조선말기 권력자 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 은 세도가 였다. 그의 집 곡간은 9칸이나 되었는데 7째 곡간은 생선으로 가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39

득찼단다. 그러나 그 생선은 다 먹지 못하고 썩어 썩는 냄새가 수 백리까지 진동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태복음6:19~20,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줌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만약, 아합이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과, 받은 은혜를 기뻐하고 집중했더라면 그는 유능하고 멋진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 얼마나 많은 축복이 임하였는지에 는 관심이 없었다. 말씀을 품으면 말씀이 자라고 욕심을 품으면 탐 욕이 자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져주셨다. 우리는 온전히 이미 다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다. 그러나 내게 주신 은혜와 은 사를 누리고 감사하기보다 다른 곳, 다른 이들의 것에 눈을 돌리면 우리는 이미 주어진 은혜마저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게 주어 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만족을 주신다. 당신에게는 누구에게도 없는 달란트가 있고, 은혜가 있다. 오늘 나 에게 주시는 은혜, 그것을 붙잡으라! 40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9 목숨 거는 자는 존귀함을 받는다.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제가 조상의 유산을 임금님께 드리는 일은, 주 님께서 금하시는 불경한 일입니다. 열왕기상21:3 나봇은 포도원의 주인이다. 그러나 왕이 그 포도원을 빼 앗으려하자 저항하다 죽임을 당하였다. 어찌보면 나봇 은 성경상 순교자들 중에서 가장 작은 일로 순교한 사람일지도 모 른다. 혹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다 죽은 욕심의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봇의 죽음이 의미있는 것은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포도원이 아니라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3 절의 말씀이다. 열왕기상21:3,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이 말씀은 레위기말씀을 지킨 것이다. 레위기25:23, 토지를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나봇은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다니엘이 아름다운 사람 인 이유는 그가 지킬 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41

광고 카피에 보면 지킬 것은 지킵니다 라는 말이 있는데 각자 신분 에 따라 지킬 것이 있다. 무엇을 지키느냐에 따라 그 신분이 결정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명예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칭함을 받 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는 자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떠들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떠들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지키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은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인줄 알게 되는 것 요13:35 이다. 그동안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거나 선교여 행을 계획할 때를 보면 함께 하는 사람들의 한 가지 패턴을 보게 된다. 그것은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이들, 열심히 일하는 이들 일수록 수련회 혹은 선교일정의 참석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에 놀랍게도 시간이 많이 남고,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이들일수록 참석율이 저조한 것을 보게 된다. 열심 있는 이들의 참석율이 높은 이유는 딱 한가지다.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회사의 일을 하더라도 목숨 걸고 한다. 그러다 교회의 일, 선교의 일에도 목숨을 거니 회사에서도 어떻게 못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 지 않는 이들을 세상은 얕잡아 본다. 나봇은 죽음이 앞을 가려도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뜻을 세우면 그것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에게 지 킬 것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린다. 우리의 권위는 목숨을 걸 고 지킬 것을 지키는데서 나온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을 다 른 이들은 무시하지 못한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사람은 누구도 함 부로 하지 못 하고, 사단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 결국 목숨 걸고 일 42 열왕기상묵상일기3

하는 사람들이 뜻을 이루고,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무시당하기 싫 은가? 그러면 목숨을 걸고 열정을 다하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 만인 삶을 버리라. 예수님께서는 차갑던지 뜨겁던지 하라 계3:15 고 우리게 명령하셨다. 목숨 걸면 존귀해진다. 말씀을 붙잡는데 목숨 을 걸면 그 말씀이 이루어진다. 뜻을 세운 것에 목숨을 걸면 뜻이 이루어진다. 주신 은사와 허락하신 자리에서 열정을 다하고, 가진 것에 목숨을 걸라.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43

열왕기상묵상일기40 자신의 가치를 팔아서 무엇을 사는가? 가 바로 나의 인생이 됩니다. 주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사마리아에 있는 이 스라엘 왕 아합을 만나러 내려가거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려고 그 곳으로 내려갔다. 너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네 가 살인을 하고, 또 재산을 빼앗기까지 하였느냐? 나 주가 말한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바로 그 곳에서, 그 개들이 네 피도 핥을 것이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 이렇게 말하였다. 내 원수야, 네가 또 나를 찾아왔느냐? 그러자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또 찾아왔습니다. 임금 님께서는 목숨을 팔아 가면서까지,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만 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재앙을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너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는 종 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씨도 남기지 않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없애 버리겠 다. 네가 이스라엘 사람에게 죄를 짓게 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였으니, 내가 네 가문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가문처럼,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가문처럼 되게 하겠다. 주님께서는 또 이세벨을 두고서도 개들이 이스르 엘 성 밖에서 이세벨의 주검을 찢어 먹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 합 가문에 속한 사람은, 성 안에서 죽으면 개들이 찢어 먹을 것이고, 성 밖에 서 죽으면 하늘의 새들이 쪼아 먹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아내 이 세벨의 충동에 말려든 아합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이렇게 악한 일을 하여 자기 목숨을 팔아 버린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아합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눈 앞에서 쫓아내신 그 아모리 사람이 한 것을 본받아서, 우상을 숭 배하는 매우 혐오스러운 일을 하였다.) 열왕기상21:17~26 마태복음25장을 보면 달란트의 비유가 나온다. 주인이 타 국으로 떠나면서 종에게 맡긴 각각의 달란트를 나중에 44 열왕기상묵상일기3

와서 결산하신다는 내용의, 잘알려진 본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부터 이 본문이 참 많이 불편했다. 그 이유는 주인이 종에게 준 달 란트가 각기 달랐다는 것 때문이다. 어떤 이는 다섯 달란트를, 어떤 이는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시는 것이 불공평해 보였기 때문이 다. 게다가 가장 적게 받은 종의 결과는 그 불공평해 보이는 불만에 더욱 부채질을 한다. 나도 많이 받았다면 많은 결실을 할 수 있었 을거야 라는 비교의식이 어디서부턴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저 의 눈에는 늘 주어지는 공평에 대한 시각이 있다. 탐욕의 출발은 언제나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는 부족해 라는 단 서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끊임없이 불평하며 살아간다. 제 시각도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어느 날 저는 달란 트 비유에서 2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한 가지는 돌아온 주 인이 종을 칭찬하는 장면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이든, 두 달란 트를 받은 종이든 공히,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 라고 하신 사실을 발견했을 때였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에게, 달란트의 차이는 크 고 적음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달란트는 각기 그 의 분량에 맞는 것을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는 나에게 가장 적절하고 최고의 것이 된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 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하나님 편에서는 다섯이나 둘이나 매한가 지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적절한, 그리고 감당 할 수 있는 달란트다. 깨달은 다른 한 가지는, 하나님은 적든 크든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을 키워나가는 나의 성실을 보신다는 것이다. 우리교회에 생명을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45

잉태한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작게 낳아 크게 키운다 는 말을 한다. 아이를 크게 낳는다고 장래에 더 커지는 것도 아니고 작게 낳는다 고 미래가 작지도 않다. 문제는 어떻게 키워가느냐 하는 것이다. 예 수님도 이 땅에서 키와 지혜가 자라셨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 라 어떻게 키워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아합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경고를 받았다. 열왕기상21:20, 자신을 팔아 악한 일을 하였다 아합은 무능력한 왕이 아니었다. 악함을 전파하는 것도 영향력 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사탄도 영향력없고 무 능력한 자를 애써 유혹하지는 않는다. 아합은 영향력도, 주어진 달 란트도 분명히 많은 왕이었다. 그러나 아합의 문제는 자신에게 주 어진 영향력,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팔아 하나님의 나라를 확 장하고 전파하는데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일에 사용하 였다는 것이다. 예전에 신앙의 선배들은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신 앙을 팔아먹는 일은 절대 하지마라 청년에게는 젊음이 달란트이다. 몸을 움직이고, 실패를 두려워 하지말고, 젊음을 쓰라고 주셨다. 그런데 어느덧 청년들이 젊음을 사용하지 않는다. 두려움 앞에 몸을 사리고, 어떻게 하면 실패를 덜할까? 어떻게 하면 고생을 덜할까? 어떻게하면 편히 살 수 있을 까?를 고민한다. 젊음을 안락에 팔아버리는 삶을 산다. 돈은 쓰라 고 주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돈에 쩔쩔매며 살아간다. 내 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쓰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46 열왕기상묵상일기3

우리의 가치를 팔아서 돈과 바꾸고, 명예와 욕심과, 그리고 안락함 을 사버리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잊어버리고 자 신을 팔아 개의 먹이가 되게 한다. 내게 있는 영적 권위를 팔아 사 단의 종노릇하고, 내게 주어진 재능들을 팔아 고작 자신의 말초신 경을 만족케하는데에나 사용한다. 우리가 얼마나 영향력의 사람인데 그 영향력을 팔아 악에게 주 고 있는가? 내 안에 주신 사랑을 팔아서 분노와 미움에 퍼주고, 내 안에 주신 눈물을 팔아서 이기심, 나만 아는 자기중심에 퍼주어 버 린다. 내 안에 주신 헌신을 팔아서 착취와 욕심에 퍼준다. 우리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팔아 우리는 더 크고 아 름다운 나라를 사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가치를 팔아 소망을 사야 한다. 나의 가치를 욕심이나 분노, 좌절이나 낙심에 팔아먹어 서는 안 된다. 나의 가치를 세상의 유행과 풍조에 팔아먹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나의 가치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사용될 가치 다. 나의 가치는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가치다. 나는 그렇게 하 나님께 관심받는 가치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47

열왕기상묵상일기41 진정한 겸손은 자신이 위로받을 존재가 아니라 징계받을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세 해 동안이나 전쟁이 없었다. 그런데 삼 년 째 되는 해에,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 왕을 찾아갔다. 이스라엘 왕 은 자기의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길르앗에 있는 라못은 우리 땅인데도, 우 리가 그 땅을 시리아 왕의 손에서 다시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소. 경 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소? 그리고 그는 또 여호사밧에게도 말하였다. 길 르앗의 라못을 치러 나와 함께 올라가시겠습니까? 그러자 여호사밧이 이 스라엘 왕에게 대답하였다. 나의 생각이 바로 임금님의 생각이며, 내가 통 솔하는 군대가 곧 임금님의 군대이고, 내가 부리는 말이 곧 임금님의 말입 니다. 그러면서도 여호사밧은 이스라엘 왕에게 말하였다. 그러나 먼저 주 님의 뜻을 알아 봄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왕은 예언자 사 백 명 가량을 모아 놓고서, 그들에게 물었다. 내가 길르앗의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그만두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예언자들은 대답하였다. 올라가십시오. 주님께서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겨 주실 것 입니다. 여호사밧이 물었다. 이 밖에 우리가 물어 볼 만한 주님의 예언자 가 또 없습니까? 이스라엘 왕은 여호사밧에게 대답하였다. 주님의 뜻을 물어 볼 사람으로서,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라고 하는 예언자가 있기는 합 니다만,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 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합니다. 여호사밧이 다시 제 안하였다. 임금님께서 예언자를 두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 러자 이스라엘 왕은 신하를 불러서 명령하였다.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를 빨리 데려 오너라. 열왕기상22:1~9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용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 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용서를 구하는 태도다. 그러나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용 서를 해야할 대상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용서를 구하는 대상에게서 48 열왕기상묵상일기3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 앞에서 늘 죄인이다. 도무지 선한 일을 한 적이 없고, 늘 죄 짓는데는 빨랐으며, 내 자신을 교정하는데는 늘 느렸다. 주 님께서 나를 버리신들 나는 할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내 안 엔 그분의 위안이나 어떤 영적인 은총도 받을 만한 자격이 조그만 치도 없다. 나의 눈물이 바다를 이룬다고 할찌라도 그분의 위로를 얻을 만한 자격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나를 용 서해 주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이 자리에 있게 하셨다. 나에 게 자격이 있어서 용서함 받은 것이 아니요, 나에게 의로움이 있어 서 은혜를 입은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가 주님의 자비로우심 때문 이다. 그러하기에 그분 앞에 나아갈 길은 오직 겸손함 밖에 없다. 아합왕 시절에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었다. 그를 아합은 이렇 게 표현한다. 열왕기상22:8, 그는 한 번도 나에게 무엇인가 길한 것을 예언한 적이 없고, 언제나 흉한 것만 예언하곤 한다 그래서 아합은 그를 싫어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 신에게 주어지는 쓴말들을 싫어한다. 특별히 오늘날 교회에서는 강한 메시지, 강력한 도전의 가르침을 싫어한다. 광야의 외치는 자 의 소리와 같은 경고들을 싫어한다. 대놓고 위로의 말씀을 달라고 요구한다. 좋은 말씀을 달라고, 축복의 말씀을 달라고 요구한다. 자신을 깨뜨리는 복음의 강력한 메시지는 점점 사라지고 그런 교 회와 목회자는 점점 터부시 된다. 반면에 번역의 신학, 번영의 메시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49

지만이 교회에 판을 친다. 그런 교회들이 부흥하고 그런 메시지에 심취한 사람들이 취미삼아 봉사하며, 헌신하며 자신의 것, 자신의 울타리는 강력하게 지킨 채 그리스도인 행세를 한다. 아합에게는 달콤한 메시지를 전하는 400명의 선지자들이 주위 에 있었다. 왕의 마음을 알아 그 마음에 달콤한 이야기만 하는 이 들이 주위에 많았다. 우리는 유유상종으로 끼리끼리 만난다. 그리 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좋은 말들을 나누며 산다. 그런데 교회에 서까지 그런 말들을 요구한다. 선지자가 있어야할 이유를 망각한 채 말이다. 당신 주위에는 진정한 삶의 선지자들이 있는가? 미가야의 독설 은 아직 남아있는 하나님의 애정의 증표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 앞 에 놓인 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이다. 토마스 아 캠피스는 그의 저 서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자신을 위로보다 징계받을 자로 여기 라 고 하였다. 그것이 겸손이다. 위로와 은혜와 강복은 그분에 의 에서 허락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거론할 것이 못된다. 나는 여전히 죄인임을, 위로를 요구하기는 커녕 주신 위로를 냉큼 받기도 민망 하고 받을 자격조차도 없는 죄인임을, 언제나 나는 당신의 경고와 가르침으로 내 영을 깨워야 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존재임을 고 백하는 것, 그것이 겸손이다. 갈1: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는가? 아니 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는가?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 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50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42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에 있는 타작 마당에 마련된 보좌에 앉아 있고, 예언자들은 모두 그 두 왕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었다. 그 예언자들 가운데서, 그나아나의 아들 시 드기야는 자기가 만든 철뿔들을 가지고 나와서 말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철로 만든 이 뿔을 가지고, 너 아합은 사람들을 찌르되, 그들 이 모두 파멸될 때까지 그렇게 할 것이다 하십니다. 다른 예언자들도 모 두 그와 같은 예언을 하면서 말하였다. 길르앗의 라못으로 진군하십시오. 승리는 임금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미 그 성을 임금님의 손에 넘기셨습 니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신하가 미가야에게 말하였다. 이것 보시오. 다 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예언자께서도 그 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미가야가 대 답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 씀하신 것만을 말하겠습니다. 열왕기상22:10~14 다수결의 힘을 아는가?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사회에서 의 사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원칙은 다 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조금 양보하여 다수의 의견이 합리적이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화와 타협의 정신 에 근거한 다수결 원칙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 되었 다. 우리는 이 원칙에 입각하여 선거도 한다. 단 한표라도 더 나온 사람이 선출되는 것이 다수결 원칙이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51

다수결의 힘은 비단 사회 제도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생각 과 판단에도 다수결의 힘이 작용을 한다. 마치 더 많은 사람들이 먹 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쓰는 것이, 더 옳고, 더 나은 것 같이 느 껴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더 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이, 더 바 르고, 더 맞는 것 같이 생각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많 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을, 나도 걸어야 하고, 나도 따라야 할 것만 같게 느낀다. 이것이 다수결의 힘이다. 유행이라는 것의 흐름도 이 다수결의 힘에 근거한다. 다른 사람 이 하니까 나도 해야할 것 같고, 안 하면 시대흐름에 뒤떨어지는 것 같고, 세련되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할 것 같다. 유행뿐이겠는가? 가장 심각한 것은 영적인 가치를 다루는 흐름에도 이 다수결의 힘 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문화도 유행을 탄다. 시대마다 유행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복음이 각색된다. 사 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서 말씀을 선포한다. 아는 한 교회는 개척을 하면서 그 지역을 분석했다고 한다. 지 역을 알고, 지역의 성향을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교 회는 그 지역과 지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슨 말씀을 원하는 지, 어떤 메시지를 선호하는지를 조사하여 철저히 그 틀에 맞춰 메 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그 결과 그 교회는 지금 뒤늦은 개척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최대교회가 되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 더 많은 사람이 따르는 것이 진리처럼 여겨진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52 열왕기상묵상일기3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아합의 주위에는 400여명이나 되는 선지자들이 있었다. 그들 은 한결같이 아합의 결정을 찬양하였다. 그에 반해 다른 말을 하 는 선지자는 미가야 단 한사람 뿐이었다. 아합의 신하는 미가야에 게 이렇게 말한다. 열왕기상22:13, 다른 예언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였으니 당신도 그들이 한 것 같이 왕의 승리를 예언하시 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러나 미가야는 이렇게 대답한다. 열왕기상22:14, 주님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나는 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만을 말하겠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 진리는 다수가 따르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모든 사람이 가기 때문에 진리가 아니다. 진리는 하나님이시기에 진리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가건, 적은 사람이 가 건, 많은 이가 따르건, 적은 이가 따르건, 진리는 하나님의 마음이 기에 진리이지 우리의 선택이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수 천 명 이 모인다고 그곳이 반듯이 진리가 선포되는 것도 아니며, 작은 교 회라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분량 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 임재의 차이다.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53

열왕기상묵상일기43 선생님은 말로 가르치지만 부모는 삶으로 가르친다 유다의 여호사밧 왕 제 십칠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 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그는 두 해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주님께 서 보시기에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리게 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걸은 길 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걸은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는 바알을 섬기 고, 그것에 절을 하여서, 그의 아버지가 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하였다. 열왕기상22:51~53 우리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희망교육센터 다림교육에서는 매달 부모교육을 한다. 벌써 12회를 훌쩍 넘었다. 처음 에는 자녀들 교육기관에서 왜 부모교육을 하느냐는 질문들을 많 이 받았다. 게다가 부모교육을 성실히 나오지 않으면 자녀가 다림 교육에서 더이상 교육받을 수 없는 규율이 있는터라 더더욱 사람 들은 의아해 했다. 무료교육기관인 다림에서는 부모님들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자녀들이 징계(?)를 받는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부 모교육 때문에 다림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다. 부모교육 을 통해서 가정의 변화를 느끼신 분들이 추천을 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말로 밖에는 가르칠 수가 없다. 선생님들은 올바른 가 54 열왕기상묵상일기3

치관과 세계관, 미래에 대한 꿈을 말에 담아 가르친다. 선생님들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가르쳐도 그 능력은 말에 국한된다. 그러나 부모는 다르다. 부모는 아무리 말을 잘해도 그의 삶으로 자녀를 가 르친다. 아무리 좋은 말, 좋은 꿈을 말해도 자녀들은 그 말이 아닌 그의 삶으로부터 배운다.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모님들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님들 가운데는 나는 자녀에게 아무런 잔소리도 하지 않았는데 왜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자녀는 부모에게서부터 말이 아 니라 삶으로 배우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림에서는 부모님들 교육만 했을 뿐인데 자녀들의 학 습 능력이 향상되는 경우를 보고 있다. 부모의 가르침, 부모의 관 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육 을 외부에서 받아도 부모로 인해 받는 영향력을 뛰어 넘을 수는 없 다. 우리나라에 밤 늦게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학원들을 보면 가슴 이 아플 때가 있다. 진정 교육은 학원이 아니라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교육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족이다. 더 욱이 왕의 자녀라 하면 그를 가르치는 석학들만도 즐비했을 것이 다. 아마도 과목마다 선생이 붙어 가르쳤을지도 모른다. 세계 정세 와 경제에 대한 가정교사도 있었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덕목 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고, 왕의 품위와 자세에 대해서도 배웠을 것 이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자란 두 명의 왕 이름이 나온다. 바로 아 사의 아들 유다왕 [여호사밧]과 아합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아하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55

시야]이다. 아마도 이 둘은 교육에 관한한, 선생에 관한한 좌웅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에게 많은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 데 그들의 인생은 판이하게 달랐다. 하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왕이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길을 가는 왕이 되었 다. 그 이유는 선생이 적어서도, 교육이 나빠서도가 아니다. 단 한 가지, 그의 아버지의 모든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자녀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삶으로 낳는 것이다. 제자 또 한 말이 아닌 삶으로 만든다. 다시말하면 겉 모양이 아닌 중심에서 만드는 것이다. 나의 중심을 다른 것으로 대처하지 말라. 나의 중 심을 교회생활로 바꾸지 말라. 나의 중심을 십일조나 행위로 대신 하지 말라. 나의 중심을 겉모양으로 포장하지 말라. 오직 나의 열 매는 나의 중심에서만 나온다. 56 열왕기상묵상일기3

열왕기상묵상일기3 순종의 삶은 아픔과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성장한다 김영석 감리교 목사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선교학을 공부했습니다. 감리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목사가 되었습니다. 극동방송복음성가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찬양하는사람들]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대표와 책임프로듀서를 지냈습니다. 찬양하는 사람들 1집 앨범 [그사랑]을 출반했습니다. 주찬양선교단 뮤직디랙터를 했습니다. 주찬양선교단 10집 앨범 [회복]을 강명식, 김도현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예수전도단, 박종호, 손영진, 다윗과요나단, 찬양하는사람들, 박희봉 등의 앨범에 작, 편곡, 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얼마나아프실까], [상심한 내 마음속에서] 등이 있습니다. 그렇게 찬양사역자로 지냈습니다. 미국감리교선교사훈련을 에모리대학에서 했습니다. 공동체에 관심이 있어 미국과 유럽의 선교공동체를 탐방했습니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아 한국감리교선교사로 중국에 갔습니다. 명색이 선교사였지만 오히려 만5년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선교사 생활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귀국 후 아름다운교회를 꿈꾸며 아름다운주님의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건물없는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15년동안 때론 부딪기며, 때론 부둥켜 안고 울며 공동체와 보냈습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교회는 건물도 간판도 없습니다. 그렇게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나자 헌신자들이 생기면서 할일들이 생각났습니다. 아름다운동역자들과 함께 지역을 바꾸는 진정한 교회를 꿈꾸었습니다. 그러다가 비영리교육기관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다림줄로 올바른 가치관과, 세상을 다림질하는 균등의 교육을 기치로 다림교육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게 지역을 바꾸는 소셜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아름다운주님의공동체 책모음 안내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복음이다 로마서묵상일기 Ⅰ 우리의 믿음은 인정받을 만해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의롭게 여겨주셨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이다 로마서묵상일기 Ⅱ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자네는 그저 물을 주게나 로마서묵상일기 Ⅲ 값어치 있는 것일수록 요란하지 않다 로마서묵상일기 Ⅳ 내가 머물러야 할 자리는 나의 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사무엘상묵상일기 Ⅰ 하나님의 사랑은 흘러야 더 커집니다 사무엘상묵상일기 Ⅱ 우리의 나눔이 하나님의 공평을 이루는 도구입니다 사무엘상묵상일기 Ⅲ 오직 생명을 위해 산 일만 기억됩니다 사무엘상묵상일기Ⅳ 고귀한 선택 이 시대의 교회 2016 고난주간묵상집 2013 고난주간묵상집 창조적파괴 예레미야서묵상집 내가 죽지않고 살아서 야고보서묵상집Ⅰ 흠없는 경건 야고보서묵상집 Ⅱ 황홀한 기다림 야고보서묵상집 Ⅲ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성경인물에서배우는영성Ⅰ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라 성경인물에서배우는영성 Ⅱ 자녀를 사랑한다면 광야로 보내라 성경인물에서배우는영성 Ⅲ

아름다운주님의공동체 초판인쇄 2016년 5월 1일 비매도서(후원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