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도리가로가는길에, 화려한룬달레성 ( 城 ) 에취하다 3일차 (7월 17일, 일 ) 리투아니아의남쪽휴양도시, 그이름도긴도시 드루스키닌카이 에서출발하여제2의도시카우나스에서오전을보내고점심식사후시울라이의십자가의언덕을지나라트비아의국경에도착했다. 나라와나라간의국경이지만별다른출입국절차가없었다. 이곳에서잠시휴식시간을가진후, 국경을넘어다른나라로들어섰으나버스에서보이는창밖의풍경은리투아니아나라트비아나비슷했다. 버스안에서적당한오수를즐기며라트비아의첫번째볼거리라는룬달레성으로향했다. 1시간여를달려서넓은벌판을지나자, 우뚝서있는화려한모습의룬달레성이눈에들어왔다. 발틱지역에도이만한규모의아름답고품위있는성이있다는것을웅변하듯멋있게자리잡고있었다. 전체적으로건축물은직사각형 (104m 86m) 이었으나가운데출입문부분이사자상이얹혀있는쌍기둥으로열려있어 ㄷ 자모양으로대칭을이루고있었다. 건물외벽은고상해보이는노란색으로, 수준높은유럽의성-오스트리아의쉔부른, 페테스브르그의겨울궁전을연상시켰다. 건물에들어서자, 2층계단으로올라가는부분이꼭겨울궁전 ( 아미타지박물관 ) 을닮아있었다. 아닌게아니라피터대제의지시하에지은겨울궁전을건축한프랑스바로크건축의거장라스트렐리 (RastrellI) 부자중아들이 1736년에시작하여 1767년까지완공한것이라고한다. 얼핏보면 30여년에걸쳐공사한것처럼보이지만, 이곳을지배하던러시아왕실과의관계에따라공사가중단된적이있어실제건축기간은 10 년정도라고한다. 초기에비론과라스넬리가공사자재와건축기술자등의조달등어려움을극복하고 5년정도공사를진행했다. 이시기에비론이어린황제의섭정자리를두고벌어진권력투쟁에서밀려나 (1740) 시베리아로유배당했다가, 예카타리나 2세가즉위하면서복권 (1762) 되어궁전을완성시켰던것이다. 이궁전을무척사랑하던비론이죽자, 예카테리나대제가총애했던주고프공의차지가되었다가그가죽은이후에는그미망인이재혼한슈바로프라는실력자가문의소유가되었다고한다. 이곳도 - 18 -
1812 년나폴레옹의원정때약탈당했고, 1 차세계대전때에도손상을입 었으나많이복구되어오늘날라트비아의관광수입과국가의브랜드를높 이는효자노릇을톡톡히하고있다. 궁전은크고작은방 43개를공개하고있었는데가장대표적인 The Gold Hall( 황금의방 : 외빈접대및연회장 ) 은그야말로금빛으로휘황찬란하며천장벽화는화려함의극치를이루고있었다. 도자기방은중국산도자기로가득했고, 예배실로사용하고있는 The White Hall( 백실 ) 도은빛으로은은하면서화려함과품위를보이고있었다. 방마다하나하나가작품인인물들의초상화가걸려있지만여황제들, 소유주인대공들그리고그부인자녀가어떤인물인지는알수없었다. 프랑스의베르사유궁전이그렇듯이궁전도난방시설은잘갖춰진것같은데냉방시설은어땠는지궁금했고, 특히화장실없이요강만놓여있는것이기이했다. 관람시간이빠듯하여서둘러나오면서도창문으로보이는뒤쪽정원의빼어나게아름다운자태에시선을빼앗겼다. 어느궁전마다아름다운정원을가지고있지만이곳도무척공들여가꾼것같았다. 열을맞추어근사하게가꾼꽃들이예뻐일행들은그곳을배경으로열심히사진을찍으면서 - 19 -
라트비아의첫번째구경거리를마무리하였다. [ 룬달레성을배경으로필자부부 ] 2. Riga 구시가지의투어는자유의여신상에서부터우리가리가에서이틀을묵게될곳도빌뉴스에서처럼 래디슨블루호텔 이다. 3국의수도에서같은호텔체인이니무난한선택인것같다. 어제저녁체크인을하고호텔식당에서황규인사장의건배를시작으로그런대로저녁식사를마쳤지만계속비슷한패턴의메뉴에뭔가허전하고부족한느낌을받았다. 그러나오늘저녁은한국식당에서돼지불고기에육개장을먹는다고하니자못기대까지된다. 어제저녁식사를끝낸시간이저녁 9시였지만역시대낮같이밝아일행들은호텔앞다우가나 (Dahgana) 강가에서산책을하며담소를나눴다. 4일차 (7월 18일, 월 ) 아침, 산뜻한기분으로호텔을나섰다. 리가는라트비아의 30% 에가까운인구 ( 약 70만명 ) 가살며 동유럽의파리, 라스베이거스 로불리는유흥산업이많이발전한도시라고한다. 일찍이한자무역의중심도시중하나로발전해왔기때문이라고한다. - 20 -
오늘부터현지가이드는에스토니아에개신교선교사로와서 15년이넘었다는김정곤선생이담당하게되었다. 우리는먼저구시가지를중심으로역사의흔적들을둘러보기로하였다. 호텔앞의강을건너니바로구시가지였다. 버스에서내려투어를시작하면서가장먼저눈에띄는것은 라트비아의자유의여신상 이었다. 이자유의여신상은라트비아가다른두나라와함께독립한후인 1935( 혹은 1932년 ) 년에만든라트비아의주권과자유를상징하는조형물로구시가지가시작되는광장한가운데자리잡고있었다. 김선생의설명으로는자유의여신은라트비아건국신화에등장하는 밀다 를형상화한것이고이여신이하늘높이쳐든세개의별은라트비아의세지역을상징하고있지만현재는네개의지역으로구분된다고한다. 여신이서있는대리석탑아랫부분에는라트비아의대서사시 ( 라츠프레시스 : 곰을찢는사람이라는의미 ) 에나오는장면들이사면으로조각돼있었다. 이것을보면서라트비아의역사, 국민정신다시말해자신들의정체성 (Identity) 을일깨울수있겠다고생각되었다. 즉, 전면에칼과방패를들고있는모습은라트비아 조국 을상징하며그옆으로는 노래하는라트비아인, 일하는라트비아인, 적과맞서싸우는라트비아인 그리고 쇠사슬에묶여가는라트비아인 을나타내는조각상이차례대로있었다. 여신상을세운지몇년이안돼소련의지 - 21 -
배를다시받게되면서이여신상의철거문제가대두되었지만라트비아인들이강력하게저항하여무사할수있었다고한다. 자유의여신상주변에는평화로워보이는공원이있고, 공원입구자유의여신상맞은편에 LAIMA 라고쓰인, 그렇게크지않은시계탑 (1920년에세움 ) 이있는데리가시민의주요약속장소라고한다. 라이마는라트비아최대의초콜릿제과회사이름이며이시계는하루에두번위성에의해맞춰지고있어초까지표준시간이라고한다. 3. 화약창고유적-전쟁의냄새그리고대통령궁앞에서바로큰길을건너마주한원통형의구조물앞에서가이드가 이게무엇일까요? 했을때이곳에대해예습하고온필자도그게화약탑일거라고는상상도하지못했다. 잦은전쟁에대비하여망루겸화약보관장소로사용하였다는데스웨덴의점령 (1621) 시파괴되었다가 1650년에 2.5m의벽으로다시건축된빨강지붕의건물이었다. 지금은일부를전쟁박물관으로사용하고있었다. 화약탑과연결되어길게뻗은구시가지성벽 (13~16세기건설 ) 을 2~300m쯤걸어가니성벽에타원형문이나오는데이것이바로 스웨덴문 이라고한다. 이문에얽혀있는역사의일단을보면남쪽나라리투아니아와연맹을맺으며세력을떨치고있던폴란드가독일주교단이이끌던라트비아를잠시지배 (1581년이후 ) 하였다. 그러다북방의세력스웨덴과의전쟁에서패배하여밀려나게되었다. 그당시전쟁에서승리 (1621) 한스웨덴의아돌프 2세가말을타고이문을지났다고해서 스웨덴문 이라고한다. 말하자면작은개선문이라고할수있는데자세히보니타원형아치로된문위에는스웨덴의상징이었던사자장식이뚜렷하다. 조금더역사이야기를하자면그후스웨덴과러시아의피터대제와의전쟁으로이어졌고 1710년부터는러시아의지배를받게된다. 라트비아, 리가의시민은중세 500년동안독일-폴란드-스웨덴-러시아로이어지는외세의지배를받았지만꿋꿋하게민족의정체성을지켜오고있다. 성벽의건너편에노란색 2층건물이길게연결된옛날군대막사건물은쇼핑등여러가지상업용목적으로사용되고있었다. - 22 -
성벽이있으면성이있어야하는데, 성벽들이사라진자리에는전쟁의흔적도없이궁전처럼보이는리가성이있다. 이성은 1330년경그당시는리보니아기사들이만든성으로전쟁으로여러번파괴되었다가복원되었다. 전쟁에이긴리가의점령자들이관저로사용하였고, 현재는대통령의공식집무실로사용하고있다. 리투아니아의대통령집무실은보초가없었지만, 이곳에서는본연의업무못지않게관광객들과사진찍기를즐기는두명의보초가여유로운모습으로근무하고있었다. 4. Riga의시작 (1201)-돔성당과국회, 일명삼형제빌딩투어의순서대로쓰고있지만사실시대순으로해서는제일먼저와보고설명해야할곳이바로돔성당 (The Riga Dome Church) 이다. 리가 ( 라트비아 ) 역사의시작은독일의알베르트주교가이땅에와서선교를시작한 1201년부터이다. 독일기사단의지원을받았지만비교적평화적으로원주민 (Local Livs) 에게서토지를사들여독일의정착지로설정하고돔성당을착공 (1211) 하였다고한다. 돔성당은발트 3국에서가장크게지어졌으며, 제단옆스테인드글라스에는리가의주요한역사가묘사되어있다. 약 7,000개의파이프로구성된성당내부의오르간도유럽에서가장큰규모라고한다. 돔성당은가톨릭성당이자 3~400년동안이지역을실질적으로지배한주교의사무실이었는데지금은오르간연주등콘서트홀로사용되며성당 - 23 -
옆수도원의역사박물관과연결되어있다. 리투아니아가자국의민족지도자에의해건국되고발전된것과달리라트비아와에스토니아는독일기사단을앞세운주교가들어와서신정일치 ( 神政一致 ) 를해왔다. 이에따른여러가지폐단으로종교개혁 (1517) 이발생하여개신교 ( 루터교 ) 가들어오고, 1710년이후는러시아의오랜지배의영향으로러시아정교회까지들어와공존하고있는실정이다. [ 돔성당 ] [ 라트비아의회 ] 돔성당근처에는특이한외벽의건물이있는데가이드김선생이외벽의색깔과모양이초콜릿같다고하면서이곳이라트비아의의회건물이라고소개하였다. 이건물의발코니에서 1991년당시대통령이라트비아의독립을선포했다고한다. 또다른특이한건물은높이 (6층정도 ) 와분위기는같지만, 색깔이다른세건물이나란히있는일명삼형제건물 (Three Brother s Building) 이다. 가장왼쪽은폭이제일좁고 15세기에지어졌으며, 다른두건물은각각 17, 18세기에지어졌는데색 ( 파랑, 노랑, 회색 ) 의묘한조화를이루어인기있는관광자원이라고한다. - 24 -
거리에있던트롬본연주악사가우리일행이한국인이라는것을알고 애국가를정확하게연주해주니그답례로우리는적지않은팁을주었다. 5. 구시청광장의베드로성당과수탉들의등장유럽의도시대부분은시청 ( 구시청 ) 이가장중심을이룬다. 이곳돔성당앞에도큰광장이있었지만우리는구시청광장 (The Town Hall Square) 으로나왔다. 광장에는돔성당과비슷한시기에건립 (1209) 된리가를대표하는또하나의성당, 성베드로성당이우뚝솟아있었다. 이성당의철탑이한때는유럽에서제일높았으며, 철탑꼭대기에서내려다보는리가시내의전경은대단히일품이고특히석양의풍경은환상적이라고한다. 그러나오늘은월요일로휴관일이라서올라갈수없어유감이었다. 대신성베드로성당뒤편에있는재미있는동물들의동상을보았다. 독일그림형제의유명한 브레멘의악사 에등장하는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이순서대로그등위에올라타고있는이동상은브레멘출신이었던알베르트대주교를기념하여독일브레멘시가기증했다고한다. 네동물중맨밑에서제일힘들어보이는당나귀발을많은사람이만져서그런지 - 25 -
반질반질했다. 그발에손을얹고소원을빌면이루어진다는속설때문이 라는데, 세계어디를가든이와비슷한내용의속설은다있는것같다. 또재미있는것은리가의높은철탑위에수탉이앉아있는모습이었다. 그수탉의용도는풍향계로사용되고있는데, 일찍이리가가해양무역의중심지였다는것을보여주는것중하나이다. 바람의방향을알려주는수탉풍향계는수탉의부리가시내쪽을향하고있으면그날은배들이시내로들어오는날이므로광장마다큰장이섰다고한다. 원래라트비아의전통신앙에서새벽을가장먼저알려주는수탉은발트인들에게어둠을내쫓고빛을불러주는성스러운동물이라고한다. 수탉이성당철탑에처음등장한것은시청앞베드로성당이라고하는데그것은성경에서예수가붙잡혀십자가에못박히게된날, 수탉이울기전에베드로가예수를세번부인했다는이야기에서나왔다고한다. 6. 광장의검은꽁지머리전당과한자동맹그리고상인길드옛시청이라는곳에자리잡은것은특이하고엉뚱하게도 검은머리전당 이라는매우화려한건물이었다. 1334년처음지어진때로부터중세상인의모임인 검은머리길드 에서사용했기때문에검은머리전당이라고 - 26 -
하며길드상인들의수호신이오리셔스출신의흑인성인이었기때문에검은머리로이름붙였다고한다. 이곳은길드상인들의회의, 독신자 ( 원래가입조건이독일인등외국인이고독신자이어야함 ) 숙소, 창고등으로사용했다고한다. 2001년리가시 800주년을맞이하여전면적인보수를하였고현재는관광안내소, 콘서트홀, 박물관등으로쓰이는데역시월요일이라관람을못하니또한번유감이었다. 리투아니아와달리라트비아와에스토니아에상인길드가등장한것은일찍이독일을중심으로주교, 기사단이들어온이후상인들의상업활동이활발했기때문이다. 특히항구를거점으로 한자동맹 (Hanseatic League) 이결성 (1200년대 ) 되어독일의함부르크, 브레멘등발틱해안의주요도시 ( 한때 100개 ) 들이참여하기도하였다. 이동맹을통해서로세금부과를하지않게하거나경미하게하고, 상인들이해적들로부터보호받는등의이익을누렸다. 1300~1500 년대까지크게발전하던한자동맹은흑사병의창궐, 왕권의강화, 특히러시아의차르세력이강화되면서과세및잦은전쟁등으로점차쇠퇴해졌다고한다. 리가시내에검은머리길드말고도상인의규모에따라대 ( 大 ) 상인길드, 소 ( 小 ) 상인길드로나뉘어갈등과경쟁관계에있었다고하는데, 이를건물지붕 - 27 -
위에고양이, 개를상징물로했다는재미있는가이드의설명도있었다. 쇼핑에관심이있는사모님들과노상카페에앉아생맥주한잔을하고싶어하는회원들의희망을감안하여점심까지가장번화한알베르트거리에서자유시간을가졌다. 맥주잔을기울이며거리를지나다니는여인들의날씬한자태를감상하는것도여행객의즐거움이아닐까! 사방이돌벽으로둘러싸인 2~300년은된것같은지하식당에서점심을먹은후오후일정에나섰다. 7. 원주민리브족과의다툼의땅, 시굴다의옛성들오후일정인시굴다로이동하기전, 아름다운건물들로조성되어있는리가시내의아르누보거리를산책했다. 2명의천재적인건축가가일종의재건축, 리모델링으로바로크와로코코스타일의거리로일신하였다는데보기에도멋있고참신하였다. 다시버스를타고라트비아의스위스라는시굴다로이동하였다. 겨울에유일하게스키를즐길수있고뗏목, 카누타기, 번지점프등사계절스포츠를즐기는휴양지라고한다. 또한, 이곳도많은동굴과폐허가된성들이많은데그중유명한투라이다 (Turaida) 성으로가기로했다. - 28 -
원래알베르트주교가리가에상륙한 1201년에는리가주변으로리브인이라는민족이살고있었다. 주로어업과목축업에종사하고있던이들은현재의리투아니아인, 라트비아인과다른북쪽지방의핀란드인, 에스토니아인과비슷한핀우그리족이었다고한다. 독일인과접촉이많은해안지대에거주하고있었던관계로알베르트는그들이사는지역을 리보니아 즉 리브인들이사는땅 이라고이름붙였는데리보니아라는이름을 16세기까지보편적으로사용했다고한다. 그중라트비아에살고있던리브인들의역사를잘보여주는곳이그들의주거지역에침입하는독일인들과이곳가우야 (Gauja) 강을사이에두고자신의땅을지키기위해많은싸움을벌인시굴다인것이다. [ 투라이다성 ] [ 사랑의동굴 ] 우리가먼저간곳은 19세리브인처녀마이어의순애보 ( 殉愛報 ) 가얽혀있는동굴이었다. 동굴의모양이대단해보이진않았지만동굴벽에리브語들이새겨져있는것을보면서몇백년전, 사랑을위해죽은처녀의순수한영혼이느껴지는듯했다. 투라이다중세의성 ( 붉은벽돌의성 ) 은 1214년에처음짓기시작해 16세기까지계속규모가커졌다고하지만 1776년큰화재이후재건되지않아서당시의크기는짐작할수없었다. 성안에는그동안의역사와주요사건들을보여주는자료유물들을전시하고있었다. 이곳의총지휘관격인주교가가끔와서전황을점검하였다고한다. 결국, 주교와독일기사단에의해평정되었던이지역은리투아니아폴란드연맹국가의땅이되었던 (1569) 이후, 리가의경우처럼폴란드스웨덴의전쟁 - 29 -
(1620~1629) 터가되었고그후다시러시아의지배 (1710) 로이어졌다. 누가이지방을중심으로리보니아를차지하는가에따라라트비아의운명이결정되었던것이다. 이과정에서리브족이사라져버린것으로알려지기도했으나아직도자신들이리브족의후손이라고주장하는사람들에의해그명맥이면면히이어지고있다. 리가에는리브어로발행되는신문이있으며리브어를구사하는사람들의명단이소개되고있다고한다. 투라이다성과그주위잔디위의조각 ( 노래 ) 공원을걸을때쯤더운날씨에피곤이누적되어앉아서쉬는분들이많아졌다. 일행의평균연령이 60대중반을넘는데그만하면잘버텨내시는것이다. 8. 돼지불고기등으로저녁을, 그리고구시청광장에서 2차피곤한몸으로호텔로돌아온우리는한시간정도의휴식을취한후, 새로옷을갈아입고한결할랑한기분으로저녁을하기위해나섰다. 설악산이라는한국식당에들어서니벌써마음이푸근해진다. 허수창회장님이인천공항에서부터조심스레공수해온양주 ( 로얄쌀루트 ) 를마시려고우리총무 ( 손사장 ) 가소위남탕, 여탕식의좌석배치를하였다. 여행을시작하면서거의비슷한음식만먹다가간만에돼지불고기 ( 바비큐 ), 육개장, 김치가나오니입에짝짝붙고거기에아주훌륭한양주까지곁들이니모두가행복한표정이었다. 평소술을잘마시지않는사모님들도포도주잔을곧잘비우신다. 이럴때가무까지곁들인다면금상첨화인데여기선어쩔수없다. 훌륭한주효 ( 酒肴 ) 로맛있게먹고마시고도뭔가아쉬운마음이남아오늘오전에갔던시청앞광장으로진출하기로했다. 다리만건너잠깐의산책이면낮과는다른시청광장의저녁풍경을즐길수있다. 광장가운데까지온통바의테이블이놓여있고관광객들이가득하다. 노래하는밴드가있는카페로들어가우리일행 20명은가장큰테이블에앉았고생맥주를주문했다. 밴드의중년쯤되는가수가부르는 7~80년대감미롭고낭만적인노래를감상했다. 우리일행이열심히박수를치면서호응을해주니노래하던가수가우리에게일본에서왔느냐고물었다. 해외여행중외국인이동양인을보면먼저일본사람이라고보는그들의타 - 30 -
성이무리는아니다. 1시간여동안음악과맥주속에여행의낭만스러운분위기에흠뻑빠져있었다. 감사하게도이날저녁마시는것은모두자신의몫이라고하시면서맥주값도허회장님이후원해주셨다. 오늘 2차에안오신다른분들은무엇을하셨을까? 다우가나강을건너호텔로돌아오는길에잠시빗방울이비치기도했지만여행길내내좋은날씨는우리의축복이었다.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