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우 2 0 1 0 년 7 월 호 통 권 165 호 vol_ 165 KAERI MAGAZINE 2 0 1 0 J U L Y 작은 나무들이 자라 숲을 이루고 맑은 물 푸른 하천에 송사리가 돌아오는 신록이 푸르른 7월입니다. 행복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고충민원은 시원하게, 부패행위는 깨끗하게, 위법 부당한 행정처분은 공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억울함이 없는 나라,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한 국 원 자 력 연 구 원 고충민원 110 국민신문고 http://www.epeople.go.kr 부패신고 1398
C O N T E N T S 2010 +07 KAERI MAGAZINE 02 04 06 08 09 10 12 14 16 18 20 22 24 26 30 32 33 34 36 37 38 40 42 44 46 47 jungmin@kaeri.re.kr www.kaeri.re.kr 2010 7 165 2010 7 5 1045 150-1 042)868-4769, 8266 042)861-1428 042)255-8136~7 042)254-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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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신지식인 글 사진 허 경 진 연세대 교수 국문학 hur@yonsei.ac.kr 하 멜 보 고 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마주하기도 하고, 걸터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여 글로 써서 물었더니, 자 셋에다 나머지 6을 세고는 그 다음에 자기 가슴에다 고개를 숙였고, 또 자 둘을 그리고 6을 세고는 그 다음 눈을 감고 쓰러지는 시늉을 하였다. 생긴 모양이 괴이하고 옷도 이상하게 만들어졌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자기 가슴에다 고개를 숙인 뜻은 살아있는 자의 숫자이고, 눈을 감고 쓰러진 것은 죽은 자의 숫자이다. 생사자의 수를 조사해보니 과연 그러하였다. 그러나 몸짓으로는 살아남은 사람의 숫자 정도만 파악할 수 있었지, 자세한 정황은 파악할 수 없었다. 지영록 에는 하멜 일행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느 나라 말을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사람을 내세운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한어(漢語) 역관과 왜어(倭語) 역관, 유구국( 球國 오키나와)에 표류했다가 돌아온 자가 모두 말이 통하지 않으니 사정을 물어볼 길이 없었다. 남만서양(南 蠻西洋)의 사람일 것이라는 의심이 들어 조정에 아뢰자, 남만표래인(南蠻漂 人) 박연(朴延)을 내려 보냈다. 한글로 쓴 문답을 다시 한자로 번역하여 별지(別 紙)로 조정에 보고하였다. 쇄국정책을 실시했던 조선왕조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사신을 따라가는 역관의 역할이 중요했다. 중인 집안에서 대대로 외국어 공부를 가르쳤으며, 한어(漢語)와 왜어(倭語), 만주어(滿洲語), 몽고어(蒙古語) 시험을 보고 역관을 뽑았다. 그러나 역관들이 외국에 나가 원어민들에게 외국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책을 보고 배웠으므로, 왜어의 경우에는 일본에서 제대로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통신사가 평균 2-30년만에 한 차례 일본에 갔으므로, 실습을 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서양 여러 서울에서 내려온 박연(朴延)은 원래 벨테브레(Jan Janse Wltevree)라는 이름을 가진 네덜란드인이었다. 1627년에 조선에 표류했다가 귀화하여 박연 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조선 여인과 결혼해 자식까지 낳고 조선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병자호란 때에는 후금(청) 병사들과 싸웠으며,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일 네덜란드 VOC 대포 본인, 중국인을 거느리고 대포를 개발하기도 하다가, 서양인이 왔으니 통역 나라의 외국어는 배울 기회가 없었으므로, 이따금 서양의 상선이 표류해 오더라도 하라는 명령을 받고 제주도까지 내려온 것이다. 그러나 너무 오랜만에 고국 통역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만난 박연은 정작 모국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멜 일행은 붉은 수염의 박연을 보고 낯선 이국 땅에서 고국 사람을 만났다고 반가워했지만, 26년 동안 모국어를 쓰지 않던 박연은 어휘를 거의 다 잊어버려 한동안 손짓 발짓으로 의사를 소통하다가 떠듬떠듬 네덜란드어를 하기 시작했다. 박연의 보고서를 통해 몇십년 만에 고국인을 만났지만 말이 통하지 않다 20 July 2010 하멜 일행의 신원이 분명해졌지만, 이들은 13년 동안 조선에 묶여 살게 되었다. 숙종 때에 제주목사를 지낸 이익태( 益泰 1633-1704)가 표류민들을 심문한 기록을 몇 년 뒤에 또 서양 상선이 난파되어 제주도에 도착했는데, 박연은 너무 늙어 모아 1696년에 지영록(知瀛 ) 이란 책을 썼는데, 이 책에는 효종, 현종, 숙종 때에 풍랑이 심한 제주 바다를 건널 수 없었다. 그래서 하멜 일행 가운데 조선어를 제주도 일대에 표류해 왔던 중국인, 네덜란드인, 일본인 등의 기록이 14가지 실려 있다. 잘 배운 네덜란드인 3명이 제주도로 내려갔다. 박연의 제자들이 사역원에 소속 하멜표류기 를 지은 네덜란드인 핸드릭 얌센 하멜(Handrik Y. Hamel) 등 64명의 되지 않은 서양어 통역으로 활동한 것이다. 하멜 일행은 끝내 조선에 귀화하지 네덜란드인이 1653년 7월 24일에 제주도 대정현 서귀포 앞바다에 표류해 왔는데, 26 않고 일본으로 탈출해 하멜표류기 를 짓고 조선을 서양에 알렸지만, 박연은 명이 익사하고 2명이 병사했으며, 36명이 살아남았다. 제주도 관원이 이들을 심문했지만 처자식과 함께 조선에 정착해 새로운 집안을 일으켰다. 지영록 에 실린 박연의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으로 의사를 통했다. 기록을 통해, 하멜표류기 와는 다른 입장의 서양 인식을 엿볼 수 있다. KAERI 2010 21
kyuhee373@hanmail.net 815imag@hanmail.net 22 July 2010 KAERI 20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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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만화 공동기획 한국원자력연구원 전자신문 <16화. 휘발유여 안녕! 깨끗한 수소가 온다> 이현세 작화 공동제작 : 정준영, 전영옥 아 이 꽃! 하는 독자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미리 들리는 듯하다. 눈에 익은 독자가 많을 것 같은 금낭화는 양귀비과 금낭화속의 다년초로 천하일색 양귀비를 닮은 아름다운 꽃이다. 얼마 전까지는 이 꽃이 물 건너 온 외래 관상식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그러나 금낭화는 우리나라의 이 산 저 골짜기에 사는 반 음지식물로 홀로 꽃 피우고 씨 뿌려 대를 이어내린 대한의 자랑스러운 토종 자생식물이다. 예전에는 깊은 산이나 계곡 언저리에 가야 볼 수 있었던 금낭화, 그래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꽃이 지금은 작은 화단. 큰 정원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 화분에 기를 정도로 인기 높은 관상화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다. 50센티 정도의 작은 몸체에 긴 가지를 드리우며 5~7월 빨간 꽃망울을 이학영 한국생태환경연구원 원장 koreafish@hotmail.com 연등으로 줄줄이 달아 놓을 때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매력을 지닌 꽃이다. 금낭화의 꽃말이 당신을 따르렵니다. 이듯 꽃송이가 피어있는 모습에서 마치 수줍은 새색시가 양 머리를 땋아 다소곳이 얼굴을 붉히며 서방님을 맞는 모습이 연상되지 않는가? 또한, 꽃 모양이 여인들이 돈을 차고 다니던 복주머니를 빼 닮아서 시골 산간지역에 따라 복주머니꽃, 며느리주머니 또는 모란처럼 화려하다 해서 넝쿨모란 등의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눈으로 금낭화를 감상하면서 귀를 기울여보라. 종처럼 달린 저 꽃송이에서 여러분들에게 금빛 행복을 빌어주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올 것이다. 금낭화 복 종소리가. ❶ 붉고 하얀 마음으로 피어나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는 금낭화 ❷ 어둠 속에서 희망의 등불을 비춰주고 있는 듯 한 밤에 핀 금낭화 ❸ 화단에 심은 금낭화 군락 1 46 July 2010 3 2 KAERI 2010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