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ON 2015 R D Global Leader 2 0 1 0 6 164 vol_ 164 KAERI MAGAZINE 2 0 1 0 J U N E
C O N T E N T S 2010 +06 KAERI MAGAZINE 02 04 06 08 09 10 12 14 16 18 20 22 24 26 30 32 33 34 36 37 38 41 42 44 46 47 jungmin@kaeri.re.kr www.kaeri.re.kr 2010 6 164 2010 6 7 1045 150-1 042)868-4769, 8266 042)861-1428 042)255-8136~7 042)254-6638
klkoo@ulsan.ac.kr 4 June 2010 KAERI 2010 5
cspark3@kaeri.re.kr jungmin@kaeri.re.kr 268-021202-02-001 042)868-8266, 8232 042-477-4071~3 5.03 5.10 5.18 5.19 5.20 5.20 5.24 5.24 5.24 5.24 5.25 5.25 5.25 5.26 5.31 6 June 2010 KAERI 2010 7
hssuh@hk.co.kr cobra@yna.co.kr 8 June 2010 KAERI 2010 9
더불어 사는 삶 글 사진 한 상 현 자유기고가 p92411032@naver.com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새 옷 갈아입은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따사로운 햇살이 비친 경남 통영시 동피랑 골목은 오전부터 벽화 공모전 동피랑 블루스 에 참가해 담 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는 자원봉사자들로 북적거렸다. 그림을 그릴 벽의 위치가 확인되자 한 보따리가 넘는 그림 도구를 챙겨 동피랑의 좁은 골목을 힘차게 올라 간다. 산 중턱에 자리 잡아 하늘과 맞닿아 있는 동피랑 아래로 통영의 푸른 바다와 사람 냄새 깊게 나는 중앙시장이 발 아래로 보인다. 시민의 힘으로 개발에서 보존으로 벽화 작업의 시작은 연필로 벽에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부터다. 미리 준비한 원본과 밑그림이 다르지 않게 정성껏 그리다보니 자원 동피랑 은 동쪽에 있는 비랑(비탈의 지역사투리)이라는 뜻이다. 통영시 정량동, 태평동 일대의 산비탈 마을로 이 지역에 대한 재개발 봉사자의 이마에 땀이 맺힌다. 밑그림이 완성되자 쉴 틈도 없이 페인트 작업으로 넘어 간다. 하루만에 벽화를 완성하려면 시간이 빠듯 계획이 수차례 변경 수정되어왔다. 서민들의 오랜 삶터로 저소득층 주민들이 지금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덕마을에서 바라보는 해안 하기 때문이다. 벽에 형형색색의 페인트가 칠해지자 동피랑 마을이 새 옷을 갈아입은 듯 밝아 보인다. 자원봉사자들이 벽화를 그리는 도시 특유의 아름다운 정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시민단체 푸른통영21 은 이 지역을 일괄 철거하기 보다는 지역의 역사와 서민들의 동안 이번 공모전 소식을 듣고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은 자원봉사자들이 그린 벽화를 기록하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삶이 녹아있는 독특한 골목 문화로 재조명 하고 문화와 삶이 어우러지는 마을 만들기를 위해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2007년 10월 제 된다. 푸른 하늘과 울창한 나무, 예쁜 새들의 풍경화부터 통영을 대표하는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초상화와 중앙시장의 모습까지 상상하던 모든 것이 자유롭게 벽화로 옮겨지고 있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 담벼락에 그려져 있던 벽화 중 훼손된 벽에 새로운 벽화를 그려 넣거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공간에 새 벽화를 그려 놓는 제2차 벽화 공모전 - 동피랑 블루스 가 5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 동안 열렸다. 벽화전문가, 전업화가, 미술 전공 대학생부터 회사 홍보팀, 프로댄스팀, 외국인 영어 강사팀, 주부 등 다양한 직업과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에서 모두 41개 팀이 참여해서 동피랑 골목 벽을 캔버스 삼아 서민의 삶과 애환 그리고 희망을 벽화 속에 그려 놓았다. 백김치팀으로 참가한 외국인 아담씨는 공공미술로서의 벽화는 미국이 선도를 했지만 주로 개인에 의해서 그려지는데 동피랑 블루스 처럼 단체가 공모전 형식으로 참여하는 시스템이 참 신선하고 좋았으며 외국에서 친구들이 한국에 오면 동피랑을 꼭 소개 해주고 싶다고 한다. 10 통영의 망루 동피랑 June 2010 1차 벽화 공모전 - 동피랑 색칠하기 를 열어 전국 미술대학 재학생과 개인 등 19개 팀, 36명이 참가해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다. 전면 철거 계획에서 방향을 수정한 동피랑의 낡고 얼룩진 벽은 단절과 외로움의 벽이 아닌 소통의 캔버스로 통영을 체감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하루 500여명의 관광객이 찾는 동피랑에 구판장이 생겼다. 동피랑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며, 동피랑 방문객들이 이용 할 수 있는 공간 으로 꾸며졌다. 푸른통영21 관계자는 구판장이 주민들에게 작은 소득을 만들어 주기를 희망하며 구판장을 많이 이용해 달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한 때 철거위기에 처했던 동피랑은 시민단체의 아이디어로 벽화가 그려지면서 마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고, 벽화 또한 소중한 문화자산이 되어 가고 있다. 이번에 그려진 벽화들도 앞으로 2년 동안 마을 주민들은 물론 많은 관광객들과 추억을 만들어가며 생사고락을 함께 할 것이다. KAERI 2010 11
dream@donga.com 02 02 03 03 12 June 2010 KAERI 20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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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gwire@osen.co.kr 16 June 2010 KAERI 2010 17
hanazio@hanmail.net 18 June 2010 KAERI 2010 19
역사 속 신지식인 글 사진 허 경 진 연세대 교수 국문학 hur@yonsei.ac.kr 차고 시종원경 민영준을 찾아가 10년전 빼앗긴 땅을 되찾고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드렸다. 일본 육사 출신의 장교들이 소장 중장까지 고속 승진했지만, 그는 출세를 위해 친일파로 활동하지 않았다. 1907년에 고종이 헤이그밀사파견의 책임을 지고 황제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이희두, 어담 등의 군부 지휘관들과 함께 군대를 동원해 양위를 막으려다 발각되어 육군법원에 구속되기까지 하였다. 1908년 에는 이북 출신 인사들과 함께 서북학회를 설립해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내장원경 이용익이 몇 년 신한민보에 연재된 <츄뎡리갑> 1회분 기사 이갑이 LA에 있는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와 봉투. 러시아 극동 정세를 설명하고 있다. 전에 제일은행에 입금했던 33만원을 친일파 송병준이 착복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용익의 손자 이종호가 갑술년에 태어난 왕세자가 병술년(1886)에 12세가 되자, 고종이 갑술년 제일은행을 상대로 예금지급운동을 벌이자 내부대신 출생들만 응시하는 진사시(進士試)를 베풀었다. 응시자가 적어 합격하기에 송병준이 그를 승녕부로 불러들여 통장과 도장을 내놓으라고 협박하였다. 이용익의 개인 재산이 아니라 황실의 내탕금이 유리했으니, 왕세자의 동갑들에게 특전을 준 것이다. 평안도 숙천군에서 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갑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하세가와 군사령관을 찾아가 이종호를 풀어달라고 청했다. 이갑이 글공부를 하던 이갑( 甲 1877-1917)은 아직 9세 밖에 안 되었지만,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으므로, 하세가와는 이종호를 사흘만에 풀어주게 하였다. 부자였던 이갑은 이종호와 함께 재산을 나이를 속이고 응시해 당당히 합격하였다. 10세도 안된 어린이가 진사가 기부해 서울 인사동에 오성학교를 설립하고 인재를 길러냈다. 되었다는 것은 조선 역사상 유일한 예이다. 그러나 평안감사 민영준은 이를 축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를 옥에 가두고 고문과 협박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부자였기에 부정응시를 트집 잡아 재산을 강탈한 것이다. 아버지는 겨우 풀려났지만 고문의 후유증과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세가 되자, 이갑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독립협회에 가입하였다. 1907년 7월에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는데, 총리대신 이완용이 21일 순종에게 육군참령 이갑은 사회에 간섭하여 체모를 손상시켰다 는 이유로 해임시키라고 청하였다. 군대가 해산되리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그는 4월부터 안창호, 이종호, 이동녕, 이동휘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로 합병되자 그는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했으며, 치타에서 대한인정교보 를 발행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미국 교포들이 간행하던 기관지 신한민보 의 주필로 초청받아 미국으로 갔지만, 이민국에서 진단한 결과 병이 났다는 이유로 상륙허가를 받지 못해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안창호에게 러시아 정세를 알린 편지들이 남아 있다. 함께 독립운동을 펼치던 이범진이 자결하자 정신적인 충격을 이기지 못해 시베리아 일대를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다 20 June 2010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1898년 일본으로 유학간 이갑은 육군사관학교 15기로 졸업하고 1917년 7월 26일자 신한민보 에 부고가 실렸는데, 음력 4월 25일 시베리아 소황령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였으며, 8월 1903년에 견습사관으로 도쿄근위사단에 배속되었다. 이듬해 러일전쟁이 9일자 신문 1면 대부분을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논설로 채웠다. LA를 비롯한 각지에서 추모회가 열렸으며, 그의 생애를 일어나자 일본군 장교 신분으로 귀국해, 압록강 남만주 등의 격전에 참전 기록한 츄뎡리갑 이란 글이 9월 20일부터 이듬해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신한민보 에 동해수부라는 필명으로 연재되었다. 했다. 일본이 승리하면서 친일내각이 들어서자, 한국군 수뇌부도 일본 그는 딸을 육사 후배 이응준에게 부탁했는데, 그의 끝없는 나라 사랑은 대한민국 초대 육군참모총장이 된 사위 이응준을 육사 8기부터 15기까지로 바꾸었다. 일본이 조선을 장악할 음모를 단계 통해 이어졌다. 대한민국 육군 군번 1번인 이형근 대장이 바로 이응준의 사위이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62년에 이갑 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한국군 장교로 임관된 이갑은 군도(軍刀)를 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KAERI 2010 21
donghwa@korea.com 815imag@hanmail.net 22 June 2010 KAERI 2010 23
jaekim@cnu.ac.kr 24 June 2010 KAERI 20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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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yi@kaeri.re.kr jungmin@kaeri.re.kr sungwoo@kaeri.re.kr jungmin@kaeri.re.kr 36 June 2010 KAERI 2010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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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ERI news www.kaeri.re.kr 42 June 2010 KAERI 2010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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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만화 공동기획 한국원자력연구원 전자신문 <15화. 고준위폐기물 처분연구> 이현세 작화 공동제작 : 정준영, 전영옥 시골길이나 논두렁을 걷다보면 인기척에 놀라 펄쩍 뛰어 저만치 달아나는 제법 덩치가 큰 곤충을 만날 수 있다. 긴 더듬이를 가지고 생김새도 늘씬하며, 무엇보다 쭉 빠진 뒷다리가 일품인 이 친구는 이름도 재미난 방아깨비 다. 행동이 다른 풀벌레에 비해 느린 편인 방아깨비는 어린 아이들에게도 잘 잡힌다. 두 뒷다리를 모아 손으로 잡고 있으면 마치 절굿공이로 방아를 찧는 것처럼 온 몸을 까딱거린다. 이런 특이한 습성을 보고 우리 조상들이 아주 걸맞은 이름을 주신 것이 바로 방아깨비. 방아깨비는 중년 세대들의 재미난 놀이 대상이자 배고픈 시절의 간식거리가 되기도 했다. 요즈음은 비포장길을 보기 힘들고 농약과 환경오염으로 흔하게 보이던 방아깨비도 어느 사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학영 한국생태환경연구원 원장 koreafish@hotmail.com 암컷이 수컷보다 체구가 훨씬 커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메뚜기과의 곤충 중에서는 가장 몸길이가 길다. 사람들에게 잡히는 것은 주로 행동이 느린 암컷이고 수컷은 매우 민첩하고 잘 날아다닌다. 수컷이 비행할 때 앞날개와 뒷날개를 부딪쳐 내는 소리로 인하여 때때치 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식성은 초식성으로 주로 벼과식물을 강한 턱으로 잘게 씹어 먹고, 유충과 번데기를 거치지 않고 성충이 되는 불완전변태를 한다. 방아깨비가 아이들의 손가락 사이에서 쿵더쿵 방아를 찧어대는 동심의 추억을 다시 돌려주도록 노력해보자. 이 초여름 우리나라 들녘에서 방아깨비가 무럭무럭 자라 결실의 가을에 풍년방아를 찧는 소리를 다 함께 들어봄이 어떠한가. ❶ 방아깨비 ❷ 갈색 방아깨비 ❸ 초록 방아깨비 1 46 June 2010 3 2 KAERI 2010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