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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완 전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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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올해의시 후 보 작

2 목 차 자동 페이지 사소한 가방 / 강미영 p003 마술쇼 / 김 재 현 p 004 없다 / 박 소 란 p 005 텀블링 / 박완호 p006 방랑괴객 / 박진성 p007 비트 4 / 신동옥 p008 설산 가는 길 3 / 윤 제 림 p009 우리들의 벤치 / 임솔아 p010 모나리자 도난사건 / 최형심 p

3 사소한 가방 / 강미영 가방을 수선했다 손잡이를 잘랐다 잎은 피어나지 않았다 놓아버린 손가락 매일 악수를 나눈 당신이 잘려나갔다 수선화 피는 봄이 아니고 수선 피우는 오후 잘린 가방으로부터 뜻밖의 가을이 얼굴을 내밀었다 당신과 악수는 나누지 못했다 나는 가방을 수선했다 유리창 속으로 거부당한 오후 2시는 햇살에 깔려 조각나고 다시 수선피우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다. 어깨에서 내려놓은 가방을 움켜쥐고 뛴다 사라진 두 손을 찾아 - Y는 느티나무

나누지 못했다 나는 가방을 수선했다 유리창 속으로 거부당한 오후 2시는 햇살에 깔려 조각나고 다시 수선피우지 않았다

4 마술쇼 / 김재현 객석은 어두웠고 무대는 눈부셨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 마술사는 땀을 닦으며 검고 긴 모자를 자랑했다 모자는 유일하게 조명이 침범하지 못한 곳이었다 상이한 감정들이 손바닥을 쬐는 얼어붙은 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빛에 모자의 어둠이 찢겨지면서 놀라워, 저것 봐! 객석도 무대도 아닌 곳에서 푸득거리는 비둘기 머리 위로 잿빛 깃털이 흩날리자 모자가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구나 확인되지 않는 캄캄한 구석에서 시작을 알 수 없는 박수가 텅, 하고 울렸다 작고 어지러운 소란이 순식간에 종결되었고 정연해진 감상이 시작되고 있었다 안간힘으로 그러쥔 손아귀에 타오르는 갈채가 옮겨붙고 있었다 시작 2014년 봄호 004

객석도 무대도 아닌 곳에서 푸득거리는 비둘기 머리 위로 잿빛 깃털이 흩날리자 모자가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되었구나 확인되지 않는 캄캄한 구석에서 시작을 알

5 없다 / 박소란 우체통을 들여다본다 길들여지지 못한 짐승의 아가리처럼 깊고 어둔 곳 어떻게 알았을까 당신은 이곳에 주소가 없다는 것을 집이 없다는 것을 상기된 표정으로 커튼을 열어젖히는 얼굴이 발갛게 피어나는 식탁이 풋잠을 머금은 나릿한 하품이 없다는 것을 벌써 오래 전 아침은 이곳으로 오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밤의 우체통을 들여다본다 주린 속 깊숙이 손을 찔러 본다 짐승은 파르르 떠는 또 다른 짐승의 야윈 손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짓궂은 장난 같은 차가운 피, 피가 흐르고 당신은 어떻게 알았을까 울음이 없다는 것을 컹컹 짖는 법을 나는 배운 적이 없다는 것을 오랜 침묵의 우체부인 당신은 어떻게 어떻게 알았을까 유심 2014년 4월호 005

우체통을 들여다본다 주린 속 깊숙이 손을 찔러 본다 짐승은 파르르 떠는 또 다른 짐승의 야윈 손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다 짓궂은 장난 같은 차가운 피, 피가 흐르고

6 텀블링 / 박완호 새가 텀블링하는 걸 본 적 있나요 출렁거리는 나뭇가지를 박차 고 하늘로 솟구치는 새는 한창 텀블링을 즐기는 중이지요 그걸 보 고 누구는 나뭇가지가 새를 집어던진다고도 했지만 숲에 가보면 알지요 이 가지 저 가지를 신나게 왔다갔다 하며 텀블링하는 새들 을 보면, 공중으로 까마득하게 솟구쳤다가는 새파랗게 물들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내려앉는 새들을 보면, 나무들은 새가 뛰어오르기 편한 박자로 자꾸 들썩이고 바람까지도 리듬을 맞춰가며 달려오지 요 댕그랗게 부푸는 오색의 숨결들, 축구처럼 야구처럼 땅 땅, 새들 은 아까부터 텀블링을 즐기는 중이라니까요 너무 많은 당신

까마득하게 솟구쳤다가는 새파랗게 물들어가는 소리를 지르며 내려앉는 새들을 보면, 나무들은 새가 뛰어오르기 편한 박자로 자꾸 들썩이고 바람까지도 리듬을

7 방랑괴객 / 박진성 빈집에 들어가 빈 식탁에 물병을 놓고 온 적 있다 시집에 꽂아둔 승차권을 더듬는 저녁엔 손가락이 기억하는 방향이 있고 승차권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고 죽은 개가 죽어갈 때 처음 기도를 했다고 네가 말했었지 봄이 오는 기척으로 방랑괴객 放浪怪客 이란 단어 를 만드는 일, 방랑하며 괴상한 객이 되어 빈집에 들 어가보는 일, 다른 봄을 걸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고 어떤 시인은 말했지만 빈집에 저녁이 들어앉고 사나흘쯤 들어앉아 저녁이 빈집의 주인이 되면 물병에는 물 대신 시간이 고인다 몇억 광년 별빛이 처음으로 도착한다 자기 몸속 낯선 사람의 물병을 바라본다 물병을 들고서 언덕을 올라가면 유기견이 따라오는 다른 저녁이 있다 동물은 버려질 때 다른 종을 앓는 방랑괴객을 피 대신 흐르게 한다 처음 해보던 기도를 피 대신 흐르게 한다 이리로, 이리로 오렴, 문장들의 식탁인 시집에 물병을 얹어 놓고 늙은 개를 어루만지는 밤이 있다 물병을 들면 도착하지 못하는, 떠도는, 수백억 광년의 별빛,별빛 들이다 식물의 밤

되면 물병에는 물 대신 시간이 고인다 몇억 광년 별빛이 처음으로 도착한다 자기 몸속 낯선 사람의 물병을 바라본다 물병을 들고서 언덕을 올라가면 유기견이 따라오는 다른 저녁이 있다 동물은 버려질 때 다른 종을 앓는 방랑괴객을 피 대신 흐르게

8 비트 4 / 신동옥 잊힌 탄도의 조율 방식과 탄착군의 슬픈 족보를 되돌리려는가, 눈보라 속을 날아 새가 돌아오는 계절 돌고 돌고 돌고 철을 맞추어 날아가고 날아온다는 것 끌어당기는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위장막에 꽂힌 나뭇가지와 사위어가는 유도등 불빛이 만드는 견고한 고리를 하늘에 그려놓고 반복해서 소용돌이치는 파동의 반지 속으로 빠져든다는 것 격발의 음악, 그 가운데 말갛게 떠오는 고리는 인간이 최후에 잠들 수 있는 곳이리라. 수풀과 아스팔트를 손 갈퀴로 긁으며 버려진 탄피를 찾다가 밤이면 초록색 이불이 덮인 소파에 앉아 돌아오지 않는 너를 생각 한다. 표적이 된다는 것은 반짝이는 은수저를 식탁에 놓고 손 모아 기도하는 마지막 자리가 되는 일 누구도 기다리지 않았다 이 집에서 우리의 방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너를 두고. 나는 오늘 탄피의 과거를 지우려 한다. 지금까지 만든 것과 앞으로 만들 것들 이기려면 강해져서 돌아가야 한다. 마셔라 내 새끼, 남의 것일랑 탐내지 말고 우리가 담근 술로 목을 축여라. 피를 덥혀라. 철길을 따라 은하 끝까지 가능하면 멀리 도망가서 영영 붙박여라. - 문학 선 2014년 여름호 008

수풀과 아스팔트를 손 갈퀴로 긁으며 버려진 탄피를 찾다가 밤이면 초록색 이불이 덮인 소파에 앉아 돌아오지 않는 너를 생각 한다.

9 설산 가는 길 3 / 윤제림 설산 눈 녹은 물에 빨래를 처덕이며 이국의 사내를 올려다보는 산골 처녀의 눈망울이 염소 같다, 소 같다 저만치 검은 소와 염소가 누이를 걱정하듯 이쪽을 본다 육이오 때, 버덩 개울물에 빨래하던 우리 엄마도 저렇게 숨죽이며 염소처럼 소처럼 북진하는 흑인 병사를 쳐다보았을 것이다 저만치서 외할아버지와 어린 외삼촌이 겁먹은 얼굴로 낯선 얼굴들을 흘끔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일행 중에 누군가 휘이잇 휘파람을 불었다 처녀는 놀란 얼굴로 검은 소와 염소를 쳐다보았다 검은 소가 무어라고 고함을 질렀고 염소는 떨리는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며 줄달음쳤다 시집 새의 얼굴

것이다 저만치서 외할아버지와 어린 외삼촌이 겁먹은 얼굴로 낯선 얼굴들을 흘끔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일행 중에 누군가 휘이잇 휘파람을 불었다 처녀는 놀란

10 우리들의 벤치 / 임솔아 이 벤치에서 두 사람과 헤어졌다 다른 시간에 다른 사람이 여기에 앉아 나를 기다렸다 이 벤치를 지날 때마다 둘 중 한 사람이 여기에 앉아 있다 오늘은 햇빛이 한 사람의 정수리를 통과하고 있다 그에게는 그림자도 없다 오늘은 빗방울이 한 사람의 무릎을 통과하고 있다 사람을 통과한 비를 나는 만질 수 있다 오늘은 여기 없는 다른 한 사람이 손끝에 있다 한 나뭇잎은 허옇게 마른 그대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다른 한 나뭇잎은 허옇게 마른 그대로 떨어져 멀리 사라져버린다 죽은 채로 매달려 있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죽은 채로 떨어져 내린 나뭇잎을 일일이 셀 수는 없다 한 사람에 대해서는 매일 덧칠을 하고 한 사람에 대해서는 매일 사라짐을 경험한다 그래 우리 그만하자는 말 좀 그만하자 미안하지 않아도 미안함은 너무 오래 간다 너무 오래 비어 있는 의자는 누군가 맡아놓은 자리 같다 010

그대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다른 한 나뭇잎은 허옇게 마른 그대로 떨어져 멀리 사라져버린다 죽은 채로 매달려 있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죽은 채로 떨어져 내린 나뭇잎을 일일이 셀 수는 없다 한 사람에

11 모나리자 도난사건 / 최형심 미술가들의 날짜변경선이 다가오고 있답니다. 한 컵의 물감을 마시고 우리는 눈썹이 없는 자들의 콘서트에 가야하지요. 눈동자를 품은 새들, 손수건이 없는 울음을 연습 중입니다.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진공관 속 페루지아 4인조는 모자를 묘지로 읽 기로 했어요. 삐걱거리는 방에는 열 두 개의 방위가 시시각각 생겨날 거예요. 소문으로 테두리가 나날이 두꺼워지는 그림을 벽에서 떼어내요. 고가의 웃음소리는 방탄유리를 뚫고 이제 특이증상이 없는 생각만 공중에 붕붕 뜨겠군요. 아폴리네르는 순결한 마녀들에게 줄 부고장을 집필 중입니다. 숨소리의 수식을 고민하고 있는 그는 심인성 서정시를 앓고 있어요. 벌레 먹은 사과를 위한 거짓말에 붓질을 하는 마리 로랑생 손차양을 하면 눈썹 아래 세상이 생겨나지요. 미소의 연금술사가 되기 위해서는 원색에 순한 이름을 붙여야 해요. 은방울꽃은 반쯤만 잊혀져야 하니까요. 눈썹이 궤도를 벗어나고 있어요. 벽은 새벽잠을 설쳤습니다. 꼬리가 긴 방들이 생기는 이곳은 풍선껌을 닮은 세상 찡그린 얼굴과 맞물린 현실이 모작( 模作 )의 오후를 만나고 있답니다. 피카소의 기울어진 밀실이 웅성웅성 부풀고 있어요. 011

고가의 웃음소리는 방탄유리를 뚫고 이제 특이증상이 없는 생각만 공중에 붕붕 뜨겠군요. 아폴리네르는 순결한 마녀들에게 줄 부고장을 집필 중입니다. 숨소리의 수식을 고민하고 있는 그는 심인성 서정시를 앓고 있어요.

12 본 전자책은 인쇄본 배열과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문장록을 엮어가는 미학의 기록자들 정현옥 강희안 박기동 김 륭 김옥전 마경덕 문성희 박지웅 오홍진 최형심 012 인쇄_박기동 발행 _ 미학 웹진

13 인쇄본 구독 신청 농협 정현옥 년 2014년 리 뷰 중에서 등록번호 등 록 일 I S S N 주 소 전 화 이 메 일 서초 바 년 12월 20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호 symh201 1@hanmail.net 미학 인쇄

S N 주 소 전 화 이 메 일 서초 바00086 2010년 12월 20일 2234-2354 서울시 서초구 서초3동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