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 士 學 位 論 文 許 氏 五 文 章 家 의 文 學 的 背 景 과 活 動 에 關 한 硏 究 指 導 敎 授 金 鎭 英 慶 熙 大 學 校 大 學 院 國 語 國 文 學 科 郭 貞 禮 2011 年 2 月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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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博 士 學 位 論 文 許 氏 五 文 章 家 의 文 學 的 背 景 과 活 動 에 關 한 硏 究 指 導 敎 授 金 鎭 英 慶 熙 大 學 校 大 學 院 國 語 國 文 學 科 郭 貞 禮 2011 年 2 月 日

3 博 士 學 位 論 文 許 氏 五 文 章 家 의 文 學 的 背 景 과 活 動 에 關 한 硏 究 指 導 敎 授 金 鎭 英 慶 熙 大 學 校 大 學 院 國 語 國 文 學 科 郭 貞 禮 2011 年 2 月 日

4 許 氏 五 文 章 家 의 文 學 的 背 景 과 活 動 에 關 한 硏 究 指 導 敎 授 金 鎭 英 이 論 文 을 博 士 學 位 論 文 으로 提 出 함 慶 熙 大 學 校 大 學 院 國 語 國 文 學 科 古 典 文 學 專 攻 郭 貞 禮 2011 年 2 月 日

5 郭貞禮의 文學 博士學位 論文을 認准 함 主審敎授 (印) 副審敎授 (印) 副審敎授 (印) 副審敎授 (印) 副審敎授 (印) 慶熙大學校 大學院 2011年 2月

6 目 次 Ⅰ. 序論 1. 硏究 目的 1 2. 硏究史 檢討 3 3. 硏究 對象 및 範圍 8 Ⅱ. 許曄 學統의 形成과 展開 1. 許曄 學問의 淵源 11 1) 長吟亭 羅湜 : 道德的 實踐의 指向 13 2) 松厓 李畬와 慕齋 金安國 : 博學 과 實用 의 風貌 19 3) 尹鼎叔과 灘叟 李延慶 : 學問的 柔軟性의 獲得 25 4) 花潭 徐敬德 : 獨創的 思惟의 方式 學脈의 繼承과 交遊 樣相 45 1) 許曄 : 人脈의 構築과 擴大 45 2) 許筬 許篈 : 先代의 理念 및 學脈의 繼承 57 3) 許筠 : 家學的 傳統의 收用과 變形 67 Ⅲ. 思惟의 開放性 및 文化的 自尊感의 具現 1. 許筬 : 氣一元論者의 認識 72 1) 箕田圖說後語 에 나타난 朝鮮 後期 實學思想의 萌芽 72 2) 文化交流의 側面에서 본 朝鮮儒學의 海外 傳播 83 3) 委巷文學의 胎動과 三角山 僧伽寺 詩會 의 意義 許篈 : 正學 과 異端, 그 思惟의 境界面 131 1) 海東野言, 思想的 指向의 探究 131

7 2) 朝天記 에 드러난 陽明學 辨斥의 眞義 許蘭雪軒 : 女性, 少數者로서의 글쓰기 165 1) 蘭雪軒에게 있어서의 正體性 問題 165 2) 蘭雪軒 文學의 硏究, 女性主義的 視覺에 대한 反省 許筠 : 多讀 과 博學 의 追求 192 1) 嗜好 로서의 藝術 文學 思想 192 2) 許筠의 天主敎 收入說 에 關한 檢討 211 Ⅳ. 家庭 內 文藝意識의 成長과 그 變因 1. 士林 遺風의 繼承과 道學에의 指向 文藝意識의 覺醒과 天才性의 發顯 文藝的 傳統의 樹立과 深化 255 Ⅴ. 結論 281 참고문헌 287 abstract 299

8 Ⅰ. 序論 1. 硏究 目的 우리 문학사에서 조선의 14대 임금인 선조 연간(宣祖年間)은 이른바 목릉성 세(穆陵盛世) 1)라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문인들이 대거 등장하여 문운(文運)의 절정을 이룩한 시기였다. 그 가운데에는 한 가문의 구성원들이 동일한 문화적 토 양 아래 각자의 재능을 펼침으로써 시대의 일가(一家)를 이루는 일도 적지 않았 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양천(陽川) 허씨 가문의 허엽(許曄)과 그 자녀들이다. 부친 허엽을 비롯, 그의 세 아들 성(筬) 봉(篈) 균(筠)과 딸 난설헌(蘭雪軒) 은 후대인들에 의해 허씨오문장가(許氏五文章家) 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다방면 에 걸쳐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했는데, 허균은 자신의 가문에 대한 자부를 이렇게 드러낸 바 있다. 우리 선대부(先大夫)의 문장과 학문, 절행(節行)은 사림(士林)에서 추중(推重)되 었다. 백형(伯兄)은 경전(經典)을 전해 받았고, 문장도 간략하면서 무게가 있었다. 중형(仲兄)은 박학(博學)하고 문장이 매우 고고해서 근래에는 견줄 사람이 드물다. 누님의 시는 더욱 청장(淸壯) 준려(峻麗)하여 개원(開元)ㆍ대력(大曆) 연간의 사 람들보다 뛰어났고, 명망이 중국에까지 전파되어 천신사부(薦紳士夫)들이 모두 칭 찬한다. (중략) 나도 우리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아 문예를 담론하는 사람 중에 이름이 참여되고, 중국 사람들에게도 제법 칭찬을 받는다. (중략) 그리하여 당시에 문헌(文獻)하는 집으로서는 반드시 우리 가문을 첫째로 꼽았다. 옛적에 유 효작(劉孝綽) 일가의 부자 자매가 함께 문장에 능하였는데 일찍이 스스로 자랑하 기를 허(許) 사(史)의 부귀와 왕(王)ㆍ사(謝)의 영화로움도 모두 우리 집 문헌에 는 미치지 못한다 고 하였는데, 나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2) 1) 목릉(穆陵) 은 선조의 능호로 목릉성세(穆陵盛世) 라는 명칭은 선조조의 문화적 치적(治 積)을 기려 붙여진 것인데 당대의 인물인 김귀영(金貴榮) 오건(吳健) 박순(朴淳) 및 후대 문인들의 문집, 실록의 기록 등에는 거의 모두가 목릉성제(穆陵盛際) 는 용어를 쓰 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2) 許筠, 惺所覆瓿稿 卷24, 說部3, 惺翁識小錄下, 我家門之文章學問節行 我家先大夫文 章學問節行 推重於士林 而伯兄傳經訓 文章亦簡重 仲兄博學 爲文章甚高古 近代罕比 姊氏 詩尤淸壯峻麗 其高出於開元 大曆 名播中州 薦紳士皆傳賞之 (중략) 雖不肖亦不墜家業 叨 竊名於談藝之士 中國人亦頗稱之 (중략) 當時文獻之家 必以余門爲最云 昔劉孝綽一家父子 - 1 -

9 위에 서술한 허균의 글이 아니더라도 이들 집안의 명성이 국내외에 전해진 사 실은 여러 문헌들을 통해 쉽게 확인된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에는 허 엽의 세 아들 성 봉 균과 사위인 우성전(禹性傳) 김성립(金誠立)이 모두 문사로 조정에 올라 논의하여 서로의 수준을 높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일컫기를 허씨가 가문들 가운데 가장 치성(熾盛)하다. 고 하였다 3)는 기록이 전해지며, 후대의 박지원(朴趾源)이 찬(撰)한 동의보감(東醫寶鑑) 의 서문에도 상고하건대 조선 사람들은 애초부터 문자를 알았고 글 읽기를 좋아하였다. 허(許)는 그 중의 세족(世族)이어서 만력(萬曆) 때 봉ㆍ성ㆍ균 등 형제 세 사람이 모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누이동생 경번(景樊)의 재명(才名)은 그 오빠들보다 더욱 더 뛰어났으니 (이들이) 구변(九邊)의 모든 나라 가운데 가장 걸출한 자들이었던 것 이다 4)라는 글귀가 남아 있어 이들 가문의 문명(文名)이 당파와 시대를 초월해 널리 전해진 사실을 알게 한다. 이 밖에, 명말(明末)의 전겸익(錢謙益)이 찬한 열조시집(列朝詩集) 에 허균 이 두 형 허봉 허성과 더불어 문장으로 동해(東海)에서 이름을 날렸는데, 허균 이 더욱 민첩하였던바 한 번 본 글은 잊어버리지 않고 시문을 모두 암송하였다. 허경번(許景樊)은 그의 누이동생이다 5)라는 언급이 있는 것이나, 이들의 시문이 명시산(明詩刪) 명시종(明詩綜) 황화집(皇華集) 정지거시화(靜志居 詩話) 등에 두루 수록되어 있는6) 것은 이들의 명성이 멀리 중국에까지 알려진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임에 다름 아니다. 본 연구는 인물 개개인의 문학적 성취가 아닌, 허엽 일문(一門) 전체의 집단적 성과와 그것을 낳게 한 배경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이 활동했던 명종~광해군 집권기는 사림 세력의 성장을 바탕으로 붕당 정 치가 실현되었고,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시련이 지나간 역사적 격변 기였다. 그런 가운데 당시 조선의 학계에는 주자성리학의 이론 탐구에만 매몰되 姊妹俱能文 嘗自詑以爲許史富貴 王謝蟬冕 皆不及渠家文獻也 不肖亦云 3) 宣祖修正實錄 卷14, 13年(1580) 庚辰 2月 1日, 三子筬篈筠 女壻禹性傳金誠立 皆以文 士登朝 論議相高 故世稱許氏爲黨家最盛 4) 朴趾源, 熱河日記, 口外異聞, 東醫寶鑑 按朝鮮俗 素知文字喜讀書 許又世族 萬曆間篈 筬筠兄弟三仁 俱以文鳴 女弟景樊才名復出厥兄之右 九邊諸國最爲傑出者也 5) 韓致奫, 海東繹史 卷69, 人物考3, 本朝 許筠與二兄篈筬 以文鳴東海 而均又敏捷 一覽 不忘 詩文皆能闇誦 景樊其妹也 허난설헌을 허균의 누이라고 소개한 것은 전겸익의 착 각에서 비롯된 오류이다. 6) 成百曉 譯註, 陽川世稿, 양천허씨대종회, 2000, p

10 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모색하는 데 전력했던 일단의 지성(知性)들이 존재했던 사실이 확인되는데, 남명(南冥) 조식(曺植)과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으로 대 표되는 이들 집단은 성리학 이해에 있어 어느 한 분야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 한 분야의 학문을 포용 절충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같은 변화의 중심에서 화담의 학통을 계승한 허엽과 그 자녀들은 성리학적 가치관에 고착되지 않은 다양하고 유연한 사유체계를 획득하였으며, 이를 바탕으 로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여기에는 (형님들은) 어려서 유미암(柳眉巖) 선생에게 사사하였지만 가정의 훈도(訓導)에서 얻은 것이 가장 많았다 7)는 허균의 고백에서도 알 수 있듯, 가학(家學) 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 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본고는 허엽 일문의 학통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가학 및 인 물들의 사상적 특질에 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인물들이 지닌 사유의 방식이 당대의 문학 및 사상계 전반에 걸쳐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개개인의 구 체적 활동을 통해 살펴 볼 것이며, 그들의 노력이 임진왜란을 전후로 한 문화 변동에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했는지를 밝히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또한 저술보다는 이학(理學) 에 치중했던 선대(先代)의 기풍이 여러 인물들을 거치며 어떻게 변모되어 갔는지 그 양상을 분석하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허엽 일문이 문예로서 이름을 얻게 되기까지는 가인들의 특별한 자질 외 에도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변인(變因)을 밝히는 과정을 통 해 조선 중기 문예의식의 정립과 그 특질을 어느 정도 구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 같은 노력이 소기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면 허엽 일문의 구성원들이 단지 뛰어난 문사로서만이 아닌, 학문의 실천성을 강조하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 했던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새로이 주목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2. 硏究史 檢討 허엽 일문의 학문과 문예에 관해서는 상당한 연구 성과가 집적되어 있으나, 7) 許筬, 岳麓集, 墓碣銘(金世濂 撰) 少師柳眉巖 得於家庭之訓最多 - 3 -

11 그 대부분이 허균과 난설헌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은 생각해 볼만한 문제이다. 부 친 허엽이 당대의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였고 사림에게 있어 한 가문의 학문적인 전수는 부자(父子) 형제 구생(舅甥) 등 가학(家學)이 중심이 되었 다8)는 사실을 상기할 때, 여타의 인물과 관련한 논의들이 인물 각자의 문학적 사상적 특질을 구명(究明)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허씨오문장가 라 칭하는 허엽 일문의 5인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끌었 던 인물은 역시 허균이다. 허균의 문학에 관한 본격적 논의는 홍길동전(洪吉童 傳) 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였는데, 1957년 최초의 논문9)이 발표된 이래 현재까지 약 180여 편의 학위 논문이 나올 정도로 홍길동전 은 학계의 집중적 인 조명을 받았다. 홍길동전 으로부터 촉발된 허균 문학에의 관심은 점차 전(傳) 문학과 문학 사상10), 시(詩)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갔는데, 이 같은 사실은 허균의 문학적 역량이 남달랐음을 말해 주는 동시에 여러 분야에 대한 총체적 연구가 이루어져 야 할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11) 허균의 시에 관한 초기 연구는 주로 그의 시 의식(詩意識)에 초점을 맞추어 8) 李樹健, 嶺南士林派의 形成,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9, p.7 9) 홍길동전 및 허균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는 1957년에 나온 손순규의 홍길동전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이다. 10) 허균의 사상에 대한 논의 대부분이 도교(道敎)와의 관련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이문규는 1986년의 박사 논문에서 허균의 전(傳)이 도교적 사고 의 일면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도교사상을 드러내고자 이 작품 들을 쓴 것은 아니다 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일사소설(逸士小說)에 나오는 신선 역시 신선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아와 세계의 심각한 대결을 표현하기 위해 이 용된 것 이라는 조동일의 견해에 대해 지지의 입장을 밝혔지만, 그 이후로 현재까지도 허균과 도교사상과의 관련성에 집중하는 연구는 꾸준히 양산되고 있다. 허균과 도교사상 과의 관련성을 논한 주요 업적들은 다음과 같다. 최삼룡, 韓國 傳奇小說의 道仙思想 연구 : 김시습과 허균의 소설을 중심으로, 고 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81 박영호, 許筠 文學 硏究 : 道敎思想을 中心으로, 한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 문, 1992 손길원, 古小說에 나타난 道仙思想 硏究, 경희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98 심동복, 허균의 도교사상에 대한 연구 : <홍길동전>과 그의 한문소설을 중심으로, 고소설연구 4집, 한국고소설학회, 1998 강민경, 大自由를 향한 逸脫, 許筠 遊仙文學 小考, 도교문화연구 21집, 한국도교 문화학회, ) 이문규, 許筠 散文文學 硏究, 삼지원, 1986, p

12 전체적인 특질을 규명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허경진이 허균의 시 전체 구 조를 현실에 대한 불화와 그 극복 으로 보고 현존하는 허균의 시들이 그의 현 실 극복 과정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한 반면,12) 안병학 황위주 등은 허균이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와 실제의 현실 사이에서 심적 고뇌를 겪은 사실에 주목하고 이로 인해 방황하는 자의식을 표현한 것이 그 시작(詩作)이라 설명하였다.13)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근래에는 시작에 드러난 도교 불 교 풍속 등의 요소에 천착하거나 사행시(使行詩) 등에 집중한 연구들이 다수 생산됨으로써, 허균 시의 연구는 종합적 흐름에서 벗어나 점차 세분화되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14) 홍길동전 이나 전(傳) 문학 등 어느 일면에 국한된 지엽적 연구에서 벗어나 허균의 산문 전반을 논한 것으로는 이문규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15) 이문규는 허균의 산문 작품들이 거의 모두가 사회 고발 내지는 비판적 성격을 띠고 있으 며, 그 성격은 기(記) 에서 전(傳), 다시 홍길동전 으로 이행되어 가며 더욱 뚜렷해진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허균의 산문에서 현실 비판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문학이 자기 시대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허균의 의식이 표현된 것이며, 그가 삶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 주기 위해 산문의 창작에 힘쓴 것이라는 견해도 아울러 피력하였다. 이문규의 논의 이후 일각에서는 허균 산문의 종합적인 특질 규명에 힘을 기울 인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기 나 간독(簡牘) 등의 잡저(雜著)에 관심을 표명하 는 등 연구의 방향이 다각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최근의 학계에서는 작가나 작품과 관련한 일반적 연구에서 벗어나 시 비 평가 또는 시선자(詩選者)로서의 허균의 모습에 주목하거나 그의 문학 이론 및 문장론, 명대(明代) 문학과의 관계16)로까지 관심의 폭을 넓히고 있는데, 이미 축 12) 허경진, 許筠 詩 硏究,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 안병학, 許筠의 文學論과 內在的 超越,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79 황위주, 許筠詩 硏究 : 作品 世界의 變貌와 그 意味를 中心으로, 경북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데에는 허균 시의 분량이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2005년에 발굴된 을병조천록(乙丙朝天錄) 에 수록된 것까 지 합산하면 허균의 시는 약 1000여 수에 달하는데, 이로 인해 선학들의 상당한 업적 에도 불구하고 허균 시의 전체적인 특질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5) 이문규, 許筠 散文文學의 硏究,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986 정교주, 許筠文學 硏究 : 文學觀과 散文 作品의 갈래별 特性을 中心으로, 성신여자 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3 적된 연구 성과가 상당한 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미제(未濟)로 남아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은 허균 문학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허경진 이문규의 논의를 기점으로 허균 문 학에 관한 다양한 탐색들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물들을 종합 정리 하는 작업이 오랜 기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허균과는 비교가 될 수 없으나, 허난설헌에 관련된 연구 역시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 1960년 허난설헌에 관한 최초의 본격적 연구17)가 시작된 이래 현재까 지 약 50여 편의 학위 논문 및 관련 저작들이 발표되었는데,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허미자의 업적을 들 수 있다. 그는 1980년의 박사 논문에서 난설헌의 시에 나타난 물 과 공기 의 이미지를 그녀의 의식 세계와 관련 지어 설명하였으 며,18) 1984년의 저서 허난설헌 연구 에서는 난설헌의 문집 및 작품, 비평에 대 한 자료들을 종합 정리하여 난설헌 연구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19) 이숙희와 김명희 역시 원전(原典)에 입각, 난설헌의 시 세계를 총체적으로 규 명함으로써 연구의 수준을 한 단계 위로 끌어 올렸다.20) 16) 허균과 명대(明代) 문학과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에 들어 활발히 진행되었는 데, 현재까지의 주요 연구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신용철, 明淸 思想史의 成果와 課題 : 이탁오의 사상 연구를 중심으로, 명청사 연구 19집, 명청사학회, 2003 박현규, 許筠이 도입한 李贄 著書, 중국어문학 46집, 영남중국어문학회, 2005 우상렬 임향란, 李贄與許筠比較論, 중국학연구 41집, 중국학연구회, 2007 강명관, 안쪽과 바깥쪽, 소명출판, 2007 강명관,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소명출판, 2007 이병순, 前後七子에 대한 許筠의 인식, 한문학논집 27권, 근역한문학회, 2008 최영준 김춘희, 陽明學 志向者에게 보이는 狂 의식 考察, 양명학 21호, 한국양 명학회, 2008 안나미, 17세기초 公安派 문인과 조선 문인의 교유 : 丘坦과 許筠, 李廷龜의 관계 양 상, 한문학보 20권, 우리한문학회, ) 허난설헌에 관한 최초의 학위 논문은 장연숙의 허란설헌의 시에 관한 연구 (이화여 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60)이다. 18) 허미자, 韓國 女流 詩文學 硏究 : 意識의 物質 象徵과 內面性을 中心으로, 단국대학 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 허미자, 허난설헌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출판부, ) 허난설헌의 시문학에 대한 종합적 연구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이숙희, 허난설헌의 시 연구,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7 김명희, 許蘭雪軒 詩文學 硏究, 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7 장인애, 허난설헌의 시문학 연구, 세종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14 최근 난설헌 문학의 연구 동향이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에서21) 도교사 상과의 관련성 연구,22) 국내외 여성작가와의 비교 등으로 다각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그간 선학들에 의해 계속되어 온 난설헌 시의 기층 의식이나 이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어느 정도 일단락된 데에 기인한 현상으로 판단된다. 허엽 허성 허봉의 경우에는 그 대단한 재명(才名)에도 불구, 별다른 연구 성과를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을 자아내는데, 그나마 1990년대 들어 소수의 연 구자들이 허봉의 시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써 위안을 삼을 뿐이다.23) 하 지만 그마저도 전체 시작(詩作)을 주제별로 분류하거나 시와 작가의 삶을 관련 지어 설명하는 인상비평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허봉의 또 다른 저 작인 조천기(朝天記) 해동야언(海東野言) 에 관련한 연구24) 역시 초기의 논의에서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좀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고 하 21) 22) 23) 24) 한성금, 許蘭雪軒 漢詩의 美學, 조선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 2006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허난설헌 시를 분석한 연구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차옥덕, 許蘭雪軒에 나타난 페미니스트 의식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 위 논문, 1986 유임순, 허난설헌 시에 나타난 페미니즘 의식 연구, 공주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4 난설헌 문학을 도교와 관련지어 논한 것으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김명희, 許蘭雪軒의 <遊仙詞> 硏究, 한국문학연구 5집,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 구소, 1982 서재남, 許蘭雪軒과 그의 詩 硏究 : 神仙思想을 中心으로, 숭전대학교 대학원 석 사학위 논문, 1984 곽선희, 許蘭雪軒의 遊仙詞 考察,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정상균, 허난설헌의 <夢遊廣桑山詩> 연구, 고시가연구 8집, 한국고시가문학회, 2001 조연숙, 허난설헌의 <宮詞> 연구, 한중인문학연구 27집, 한중인문학회, 2009 허봉의 시문학에 관한 연구의 전체 목록은 다음과 같다. 손회문, 荷谷 許篈의 漢詩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2 김지연, 荷谷 許篈의 漢詩 硏究, 충남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6 송은정, 荷谷의 詩 世界, 동방한문학 12집, 동방한문학회, 1996 오현주, 荷谷 許篈 詩 硏究,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9 박수천, 하곡 허봉의 시문학, 한국한시작가연구 7집, 한국한시학회, 2002 허봉의 朝天記 및 海東野言 과 관련한 주요 연구는 다음과 같다. 한매, 허봉 <朝天記>의 硏究,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9 김동진, 허봉의 大明使行과 陽明學 辨斥, 문화사학 21호, 한국문화사학회, 2004 최강현, 허하곡의 <조천록>을 살핌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을 중심으로, 한 국사상과 문화 22집, 한국사상문화학회, 2003 최이돈, <海東野言>에 보이는 허봉의 當代史 인식, 한국문화 15집,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5 겠다. 허성의 문학에 대한 연구로는 졸고(拙稿) 악록(岳麓) 허성의 한시 연구 25)가 유일하며, 사상적 측면에서는 그의 사상적 특질을 퇴계 문인 김성일(金誠一)과 대비해 설명한 김정신의 논문이 주목할 만하다.26) 허엽의 경우에는 그가 저술을 거의 남기지 않은 탓에 관련 연구 역시 전무한 실정이지만 허엽이 그 자녀들에 게 끼친 영향이 실로 막대함을 생각할 때 그에 대한 연구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허엽 일문의 사상과 문학에 관한 그간의 연구는 허균과 난 설헌, 양인(兩人)에게만 극도로 치우친 감이 있다. 물론 이들의 문학적 역량이 그 누구보다 탁월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문학이 형성된 배경과 사상적 연원을 제대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지금껏 보조자의 위치에 머물러 있던 주변 인물들에 게까지 관심의 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이 계층의식보다는 학파(學 派)나 문파(門派)에 따라 움직였던 사림의 일원이었음을 생각할 때,27) 허엽 일문 의 가학적(家學的) 특질을 살피는 작업은 다양한 사유체계를 모색하고 그를 현 실 속에서 실천하는 데 전념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전모를 밝히는 일과도 상당 부분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3. 硏究 對象 및 範圍 본고에서는 중세적 사고에서 벗어나 근대로의 이행(移行)을 준비하던 조선 지 식인들의 모습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는 화담의 고제(高弟) 중 하나인 초당 허엽의 가문을 선택하였는데, 이는 다양한 지적 탐색을 통해 형 성된 허엽의 학문이 독특한 가학(家學)을 이뤄 그 자녀들에게 온전히 전수된 것 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대개 사림의 학문은 그 가정적인 학문의 전통이 기초가 되고 거기에 혈연적인 관계나 지연(地緣) 상의 유대가 얽혀 있는 것이 보통임을 25) 拙稿, 岳麓 許筬의 漢詩 硏究, 경희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 金貞信, 16세기 성리학 이해와 현실 인식 - 對日外交를 둘러싼 許筬과 金誠一의 갈등 을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13집, 2000, 조선시대사학회 27) 이종호.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 한길사, 2004, p

16 생각할 때, 허엽의 학문적 특질을 추출해 내는 작업은 그 자녀들의 문예나 사상 을 연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인물들의 저작 및 관련 활동에 드러나는 가학의 특질을 구명(究明)하는 데 초점을 두어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활동 의 개념이 문예의 방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정치 문화의 전 영역을 포괄하 는 것이란 점에 주의해야 한다. 이처럼 논의의 범위를 확대하게 된 데에는 잔존 하는 자료의 질과 양이 균일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였으며, 문 예 자료만으로 인물 각자의 성향을 밝히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 문이다. Ⅱ장에서는 먼저 허엽의 복잡한 사승(師承) 관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허엽은 서경덕 이외에 5~6명의 인물들로부터 학문을 전해 받았는데, 이렇듯 복잡한 허 엽의 수학 내력은 허엽 한 사람의 사상적 편력을 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 문제의 해결을 위한 당대 지식인들의 진지한 고민을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가문의 가학이 형성되고 전수된 양상을 살펴보는 일은 임진 왜란을 전후한 조선 사상계의 변화를 구명하는 작업으로서 또 다른 의의를 지닌 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허엽의 학문이 가학을 형성, 그 자녀들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 려진 바이나 그 대부분의 논의가 구체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내린 피상적 결 론이었다는 점에서 보완이 요구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헌 자료를 통해 드러난 인물들의 인적 교유 및 학맥의 계승 양상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허엽의 학통이 실제로 그 자녀들에게 이어졌던 사실을 입증하고자 한다. Ⅲ장에서는 인물 개개인에 내재된 사상적 특질이 구체적 현실 속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발현되었는지를 살피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먼저 허엽의 맏아들 허성이 지은 기전도설후어(箕田圖說後語) 를 분석하여 이미 그로부터 조선 후기 실학 의 기본 논점과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었음을 증 명하고, 허성이 1590년의 사행 당시 일본의 선승(禪僧)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 窩]와 교유하며 그에게 조선 유학을 전했던 일에 관해서도 논의를 전개할 것이 다. 다음으로는 허성이 젊은 시절 참여했던 시회(詩會)의 기록인 승가수창록(僧 伽酬唱錄) 을 고찰, 이 시회가 후대 위항시사(委巷詩社) 의 원형이 될 수도 있 음을 밝히고자 하며 특히 유희경(劉希慶)이 주도한 침류대시사(枕流臺詩社) 와 - 9 -

17 의 관련성에 초점을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허봉의 경우에는 그의 저작들에 드러난 사유적 특질에 중점을 두어 연구를 진 행할 것이다. 먼저 허봉이 편찬한 야사서 해동야언 을 살펴보고 이 책에 드러 난 그의 사상적 지향에 관해 논할 것이며, 1574년의 사행록인 조천기 의 분석 을 통해 허봉이 사행 당시 펼쳤던 양명학 변척의 배경과 그 진의(眞義)를 찾아 보는 일에 주력할 것이다. 난설헌의 경우에는 그녀의 글쓰기 행위가 갖는 의미 자체를 밝히는 일에 집 중하여 논의를 전개하려고 한다. 우선 조선조 사대부 여성으로서 난설헌이 겪어 야 했던 정체성 의 혼란에 주목하고, 그것이 그녀의 문학 행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또 지나치게 여성성 을 강조하는 쪽으로만 편향되었 던 그간의 연구 방법을 반성하고, 이를 토대로 난설헌 문학 연구의 새로운 방향 을 제시하려 한다. 허엽 일문의 학문적 특질은 박학 및 개방성 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 같은 특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인물이 바로 허균이다. 본고에서는 예술, 문학, 사상 전반에 걸친 허균의 폭넓은 관심을 살펴보고 그의 맹렬한 지적 호기심이 가학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허균의 천주 교 수입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 볼 것이다. 이어 Ⅳ장에서는 이들 가문 내에서 문예에 관한 의식이 정립되고 확산되어 간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허엽은 기묘사림의 유풍을 이어 저술보다는 경학의 연 구에 전력하였는데, 자녀들 대에 이르면 그 양상이 조금씩 달리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훗날 이들이 허씨오문장가 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을 만큼 세상에 서 문재(文才)를 인정받게 된 데에는 각자의 재능 및 기질, 개인의 경험, 당대 문단의 변화 및 교유 관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던 바, 그 각각 의 변인(變因)을 살핌으로써 허엽에서 허균에 이르는 가정 내 문예의식의 변모 과정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여러 작업들은 허엽 일문이 지녔던 사유의 개방성 및 문화적 자존감의 전모를 밝히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생존했던 당시 에는 사림 세력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유체계의 모색 및 그 실천에 주력하려는 일군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는데, 허엽 일문에게서 성리학 이해에 있어 어느 한 분 야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포용 절충하려 했던 새로운 지식 인들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8 Ⅱ. 許曄 學統의 形成과 展開 1. 許曄 學問의 淵源 허엽(許曄 : 1517(중종12)~1580(선조13))의 호는 초당(草堂), 자는 태휘(太 輝)로 군자감 부봉사(軍資監副奉事)28)를 지낸 허한(許澣)과 창녕 성씨(昌寧 成 氏)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허엽의 증조부인 허창(許菖)의 관직이 신계현령 (新溪縣令)과 정육품 전적(典籍)에 머물렀고 조부인 허담(許聃)이 금화사 별제 (禁火司 別提)29)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선대에는 비교 적 가세가 한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허엽은 24세이던 중종 36년, 진사시에 합격했고 명종 1년(1546년)에 문과에 급제, 성균관(成均館) 전적ㆍ직강(直講), 예조(禮曹) 병조(兵曹) 이조(吏曹)의 좌랑(佐郞) 및 정랑(正郞), 사간원(司諫院) 정언(正言), 사헌부(司憲府) 장령(掌 令)과 집의(執義) 등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명종 17년(1562년)에 형조 참의(刑曹參議), 대사성(大司成)이 되었으나 이 해 가을, 야대(夜對)에서 조광조의 신원(伸寃)을 주장하고 구수담(具壽聃)을 사사(賜 死)한 잘못을 논한 일로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아 체직되었다. 명종 22년(1567 년) 다시 도승지(都承旨)가 되어 윤원형(尹元衡)과 이기(李芑)에게 죄를 줄 것과 이황(李滉)을 극진한 예(禮)로써 부를 것을 주청하였고, 학행(學行)이 있는 서얼 (庶孼) 박형(朴泂)에게 녹(祿)을 주도록 청해 윤허를 받기도 했다. 이듬해인 1568년(선조1)에는 진하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다시 1년 뒤에는 부제학(副提學)이 되어 이황과 조식에게 한조(漢朝)의 고사(古事)에 따라 세미(歲米)를 지급하고 장리(長吏)가 때때로 존문(存問)하며 제생(諸生)이 28) 군자감(軍資監) 은 조선시대 군량미 등 군수품의 저장 관리 출납을 맡아보던 관청 으로 부봉사(副奉事) 는 정9품의 말직(末職)이었다. 29) 금화사(禁火司) 의 원명(原名)은 수성금화사(修城禁火司) 로, 이는 조선시대 궁성 도성(都城)의 수축(修築)과 궁궐 관청 시내 민가의 소화(消火)를 관장하던 관청이 었다. 별제(別提) 의 직급은 장부를 조사하던 정(正) 종(從) 6품의 관직으로서, 원래 는 무록관(無祿官 : 조선시대 녹봉(祿俸) 없이 전지(田地)만 지급 받은 관원)이지만 360일을 근무하면 다른 관직으로 옮길 수 있었다. 허엽의 조부인 허담의 과거 급제에 관한 기록은 국조방목(國朝榜目) 을 포함한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지만, 노수신이 찬한 허엽의 신도비(神道碑) 에서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19 가서 효제충신(孝悌忠信)의 도(道)를 배울 것을 청하였다. 허엽은 이후 대사간과 성균관 대사성 등을 지내며 사습(士習)을 크게 혁신하 였으며, 1575년(선조8)의 동서분당 당시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영수(領袖)가 됨 으로써 그 이름이 크게 알려졌다. 선조 12년(1579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백 성의 교화에 힘을 쓴 바 한 달도 안 되어 군읍(郡邑)이 크게 다스려졌으나 이듬 해 봄, 병으로 사직하고 돌아오던 중 상주(尙州)의 객관(客館)에서 64세를 일기 로 졸(卒)하였다. 그는 사후에 화담서원(花潭書院)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초당 집(草堂集) 이 전한다.30) 허엽은 30년간이나 관직에 있으면서도 청렴결백하여 청백리(淸白吏)에 녹선 (錄選)되었고, 아홉 번이나 성균관을 맡아 개연(慨然)히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자임(自任)하고 선(善)을 붙들고 악(惡)을 막았으며 폐지되고 실추된 것들을 일 으켰다는 평가를 받았다.31) 그는 중종반정의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녹훈(錄勳)된 서평군(西平君) 한숙창(韓叔昌)의 딸과 혼인하여 맏아들 악록(岳麓) 허성(許筬)과 두 딸(박순원 (朴舜元)과 우성전(禹性傳)의 처(妻)32)을 낳았다. 후에 첫 부인과 사별하고 다시 예조참판(禮曹參判) 김광철(金光轍)의 딸을 재취로 얻어 2남 1녀를 얻었는데, 이 들이 바로 당대의 재인(才人)으로 이름이 높았던 하곡(荷谷) 허봉(許篈)과 난설 30) 허엽의 생애에 관한 내용은 양천허씨세고(陽川許氏世稿) 와 한국문집총간 초당집 (草堂集) 의 해제를 참고했다. 31) 陽川許氏世稿, p.255, 九領太學 慨然以作人自任 扶善遏惡 起廢墜 32) 허엽의 맏사위 박순원(朴舜元)의 자는 응초(應初),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그는 송월 당(松月堂) 호원(好元)의 아우이다. 1567년(명종2)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으며 음사(蔭仕)로 관직에 진출, 동몽교관(童蒙敎官)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및 안 성, 덕산, 고성 등지의 현감(縣監)을 지냈다. 이후 평양서윤(平壤庶尹)과 안산군수, 영천 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1596년(선조29) 덕산 현감을 지낼 당시 이몽학(李夢鶴)의 난 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청난공신(淸難功臣)에 봉해졌고 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에 증 직(贈職)되었다. 둘째 사위 우성전(禹性傳)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경선(景善), 호는 추연(秋淵) 으로 그는 이황의 문인이다. 1568년(선조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檢閱) 봉 교(奉敎) 수찬(修撰) 등을 지냈으며 1583년 응교(應敎)에 오르고, 사인(舍人)을 역 임하였다. 우성전은 후에 남인(南人)의 거두(巨頭)가 되었으나 1591년 서인 정철(鄭 澈)이 물러날 당시, 북인의 책동으로 삭직(削職)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기도에서 수천 명의 의병을 모집, 추의군(秋義軍)이라 하고 강화에 들어가 김천일 (金千鎰) 등과 함께 도처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대사성에 특진되었으나 의병장으 로서 활동을 계속하여 퇴각하는 왜군을 의령까지 추격하였으며,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 증되었다. 저서에 역설(易說) 이기설(理氣說) 계갑일록(癸甲日錄) 등이 있다

20 헌(蘭雪軒) 초희(楚姬), 교산(蛟山) 허균(許筠) 남매이다. 허엽의 학풍과 사상이 그의 세 아들, 성 봉 균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고 허균 역시 형님들이나 누님의 글은 가정(家庭)에서 나왔다 는 언급을 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그 자녀들에 대한 부친 허엽의 영향력이 상당한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그 자녀들의 학문적 사상적 특성을 논하 기 위해서는 부친 허엽의 학통을 세밀히 검토하고 그 특질을 추출하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1) 長吟亭 羅湜 : 道德的 實踐의 指向 허엽의 지기(知己)였던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은 허엽의 신도비명(神道碑 銘) 에서 그의 학문적 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공(公)은 기상과 도량이 일찍 이루어져 7~8세에 효도와 공경이 보통 사람보다 크게 뛰어났다.(중략) 하루는 홀연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정자(程子)와 주자(朱子) 이전에 학문이 어둡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논하여 이르는 바는 볼 만 한 것이 많았다. 정자와 주자 이후로 학문이 밝아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얻 은 바가 도리어 한(漢) 당(唐)만 못한 것은 어찌 스스로 터득함과 남의 말을 얻 어 들은 것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하고 인(因)하여 나식(羅湜) 공에게 질문하였 다. 또한 공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이 인종(仁宗)에게 심경부주(心經 附註) 를 강(講)하도록 권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찾아 읽고 놀라워하며 학문 의 바른 길을 찾았고, 진천(鎭川)의 이여(李畬) 선생이 수학(數學)에 정통하며 주 역(周易) 에 이해가 깊다는 말을 듣고 다시 나아가 전수 받았다. (허엽 공은) 후에 화담 서경덕 선생에게 사사했는데 (화담이) 위독해지자 원리기(原理氣) 등 여섯 편의 논문을 공에게 구술해 전하게 했다.33) 위의 기록은 허엽이 점차 정주학(程朱學) 일변도로 고착되어 가는 당대의 학 33) 許曄, 草堂集, 附錄, 神道碑銘 公之器宇夙成 七八歲 孝友絶人 (중략) 一日忽喟然 嘆曰 程朱未出 學非不晦 論人所到 多有可觀 程朱以後 學非不明 其所樹立 反下漢 唐 豈自得與聞見有異也與 因質之羅公湜 聞晦齋李先生勸仁廟講心經附註 索而讀之 怳有蹊徑 可尋 鎭川李先生畬精數學 尤邃於易 復進受 後事文康于花潭 疾革 口占原理氣等六篇遺公 (이 같은 내용은 정구(鄭逑)가 찬한 허엽의 행장(行狀) 에도 동일하게 나타나 있다.)

21 풍에 대해 회의를 가졌으며, 이를 자득(自得)의 묘(妙) 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음 을 보여 준다. 또한 윗글에 나타난 허엽의 사승 관계를 상고해 보면 그의 학문 과 사상의 연원이 개혁 사림파의 전통에 잇닿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허엽의 스승들 중 최초로 언급된 나식(羅湜 : 1498(연산군4) 1546(명종2))34) 은 을사사화(乙巳士禍)의 피화자로서 사림의 계보를 잇는 인물인데, 을사사화는 표면적으로는 명종대 윤씨 외척간의 싸움이었지만 실제로는 사림에 대한 훈구파 의 공격으로서 기묘사화의 연장선에 있는 사건이었다. 조선조 새로운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등장한 유학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사림 을 중심으로 한 도학 정신이 정통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러나 연산군대에 있었던 무오(戊午) 갑자(甲子)의 두 사화와 뒤 이어 일어난 기묘사화 을사사 화를 거치면서 사림은 크게 위축되었고, 성현의 책이 오히려 화란(禍亂)의 씨앗 으로 인정되어 기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학자들은 사림파들이 위기지 학(爲己之學)을 위한 기본적인 율신서(律身書)로서 중시하던 소학(小學) 이나 성리학 입문서로서의 근사록(近思錄) 등을 감추어 두고 읽지 못하게 하였으며, 이로 인해 산림에 은거하여 학문에만 침잠하려는 풍조가 성행하게 되었다.35)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허엽이 나식을 찾아가 학문을 전수 받게 된 계 기는 그 아들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기묘년에 선비들이 화(禍)를 당한 후로는 인가(人家)에서는 소학 과 근사록 을 말하기 꺼렸고 자제들에게 배우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나의 선친께서는 젊었을 때에 장음(長吟) 나식(羅湜)에게서 배웠다. 한번은 외가에 갔다가 낡은 함 속에서 좀이 슬고 다 떨어진 소학 네 권을 보았다. (그것을) 펴서 읽어 보고는 학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첫째 권을 소매 속에 넣고 나 공(羅公)에게 가서 보이니, 공이 깜짝 놀라면서 네가 어디서 이런 귀신 붙은 물건 을 얻었느냐? 하고는 눈물을 흘리며 사화로 죽은 전현(前賢)들의 불운을 슬퍼하였 34) 을사사화(1545) 당시 화를 입은 인물들의 전기를 모은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에는 다 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나식(羅湜)의 자는 정원(正原)인데, 호협하고 의(義)를 좋아하였 다. 참봉(參奉)이 되었으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을사년의 화가 일어나자 이휘(李徽)의 공사(供辭)에 연루되어 장형(杖刑)에 처해지고, 흥양(興陽)에 귀양 가 안치(安置)되었다 1670년에 간행된 권별(權鼈)의 해동잡록(海東雜錄) 에도 본관은 비안(比安) 안정현 (安定縣)이고 자는 정원(正源)이며 자호를 장음정(長吟亭)이라 했다. 자질과 성품이 빼어났 으며 절세의 천재로서 시가 담박하고 예스러웠다.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먼 변방으로 귀양 갔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는 기록이 있다. 35) 한국사상사연구회 編著, 朝鮮儒學의 學派들, 예문서원, 1996, p

22 다. 선친께서 이를 배우기를 청하니, 나공이 매우 칭찬하고는 소학 과 근사록 을 가르쳤다. 그러나 남들에게는 알리지 못하게 하였다.36) 나식은 전고대방(典故大方) 에 조광조의 문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고 동유사 우록(東儒師友錄) 에는 조광조와 윤정숙(尹鼎叔)에게 사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37) 나식의 스승인 정암(靜菴) 조광조(趙光祖)는 김종직(金宗直)과 김굉필 (金宏弼)로 이어지는 조선 유학의 도통(道統)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특히 소학 과 근사록 을 중시하였다. 김굉필 조광조 김안국 이황 등 소위 도학파들은 인격 형성을 위한 도덕 적 실천 규범을 소학 에서 찾았으며, 이 책을 학문적 연마에 선행하는 일상생 활의 실천적 행동 규범에 대한 기본 과목으로 인식하였다. 또 근사록 은 주자 가 정리한 송대(宋代) 도학의 교과서적 저술로서 정암 도학사상의 원리적 배경 이 되기도 했다.38) 따라서 허엽이 정암의 문하에서 수학한 나식으로부터 이 책 들을 사사(師事)했다는 사실은, 그에게 사림의 도학적 이념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직접적 계기가 마련되었음을 뜻한다.39) 실제로 허엽은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기묘사림 들의 철학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현실 정치에 반영하고자 하 는 노력을 평생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묘사림들은 16세기 초반의 조선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는 권력의 도덕화가 필요하고 그것이 집권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40) 공맹(孔孟)의 사상과 도를 정치, 경제나 백성의 교화에 실 제로 현실(現實)시키는41) 실천적 유학을 지향했다. 그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조 36) 許筠, 惺所覆瓿藁 卷23, 惺翁識小錄 中, 己卯士禍後人家諱言小學近思錄 己卯士類 敗後 人家諱言小學 近思錄 一切禁子弟不學 先人少日受學於羅長吟湜 曾見外家廢龕中有 小學四卷 蠹毀散亂 展看則知其學者之不可不讀 袖初卷詣羅公 公驚曰 你安得此鬼朴來耶 因流涕悼前賢之厄死 先人因請學 羅公甚嗟賞之 遂敎小學及近思錄 然勿令人知之 37) 한국학문헌연구소, 典故大方, 아세아문화사, 1975, p.190 朴世采 編, 東儒師友錄, 韓國敎會史硏究所, 불함문화사, 1977, p.11 참조 38) 李相星, 정암 조광조의 도학사상, 심산, 2003, pp.102~103 참조 39) 明宗實錄 卷8, 3年(1548) 6月 25日條 기사에서도 허엽과 나식에 대한 언급이 발견 된다. 허엽이 지금 정언(正言)으로 체임(遞任)되었는데, 엽(曄)은 일찍이 나식의 고 제(高弟)로서 당시에 명사로 알려졌다(許曄今遞 正言曄 嘗以羅湜之高弟 見稱於時) 는 기록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허엽과 나식이 일시적으로 종유(從遊)한 관계가 아니라 진 정한 사제(師弟)의 관계로 공인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40) 정호훈, 16 7세기 <警民編> 刊行의 推移와 그 性格, 韓國思想史學 26輯, 한국사 상사학회, 2006, pp.121~

23 광조 등은 향약(鄕約)을 중시하고 온 나라에 시행할 것을 적극 주장하였는데, 이 들은 향약을 행하는 고을에서는 양민을 강압하여 천인으로 만들고 관채(官債)의 납부를 막는 일들은 보지 못하였다 42)고 하며 향약의 시행을 통해서만이 공권 (公權)의 정상적 작동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43) 하지만 기묘사림들의 이 같은 시도는 사화로 인해 중지되었고 모든 성과는 혁파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약 50여 년 후인 1572년, 당시 대사간이었던 허엽은 선조에게 향약 을 설치하자는 주청을 올렸지만 이는 우활(迂闊)하여 세속을 소란하게 할 뿐이 라고 하여 거부당했고,44) 1573년과 1574년에도 거듭 향약의 시행을 시도했으나 조정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허엽은 어떤 정치 이념과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향약의 설치를 적극 주장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실록 의 기록 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1574년, 선조가 향약의 일을 대신들에게 의논하도록 했다가 기한(飢寒)에 허 덕이는 백성에게 억지로 권하여 예를 행하게 할 수는 없다 는 이이의 권고로 논 의를 중지시킨 일이 있었다. 이 일로 인해 허엽과 이이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촉발되었는데 민생(民生)이 극도로 곤궁한데도 향약을 시행한다면 과연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순화시켜 태평 시대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가? 라는 이이의 질 문에 대하여 허엽은 그렇다. 고 답했으며, 백성이 도탄에 빠졌는데도 예속(禮 俗)을 제대로 이룬 경우가 있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도 지금 세상 사람은 선한 자가 많고 선하지 않은 자는 적기 때문에 향약을 시행할 수가 있다. 고 대 답하였다.45) 41) 玄相允, 朝鮮儒學史, 민중서관, 1977, p.47 42) 中宗實錄 卷34, 13年(1518) 9月 5日(壬寅) 行鄕約之邑 如壓良爲賤 拒扞官債之納 如此等事 皆已未見 43) 정호훈, 앞의 논문, p ) 宣祖修正實錄 卷6, 5年(1572) 10月 1日(甲寅) 大司諫許曄 請設鄕約 上以爲 迂闊駭 俗 不聽 45) 宣祖修正實錄 卷8, 7年(1574) 2月 1日(丙午) 以鄕約事 議于大臣 大臣獻議可否不一 上命停之 (중략) 珥曰 公意以爲 民生雖極困瘁 若行鄕約 則果能化民成俗 治升大猷乎 曄 曰 然 (중략) 珥曰 公之治家 奚待上命 自古民墜塗炭 而有能成禮俗者乎 父子雖至親 若 不念飢寒 日撻而勸學 必至相離 況百姓乎 曄曰 今世之人 善者多 不善者少 故可行鄕約 정구(鄭逑)가 찬한 허엽의 행장 에는 이와 관련하여 팔도 군읍의 사민(士民)에게 향약을 시행할 것을 상(上)에게 권하여 상이 허락하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조정의 여론이 합치되지 못했으므로 향약을 끝내 시행하지 못했다.(又勸上行鄕約於八道郡邑士 民 上許之 未幾 朝論不合 鄕約遂不行) 는 기록이 전해진다

24 그런데 허엽의 이 같은 생각은 도덕으로 교화하는 정치는 사람의 마음을 감 동시키고 마음의 감동은 사람들을 선한 데로 인도할 수 있다 고 한 정암의 주장 과 서로 통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천하의 도(道)를 함께 함으로써 나와 더불어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인도하 고, 천하의 마음으로 함께 함으로써 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마음을 감화시키면 천하의 마음도 내 마음의 정당함에 감화되어 감히 그 바름에 하나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를 인도하여 나의 도(道)로 이끌면 천하의 사람들은 내 도의 위 대함을 좋게 여겨 감히 선(善)한 데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46) 전술(前述)한 바 정암의 도덕적 교화에 대한 견해는, 그 동안 폐조(廢朝)의 폭 력 정치에 시달려 온 인민들의 삶을 위무(慰撫)하고 윤리적인 풍토를 조성하여 사습(士習)과 민풍(民風)이 선(善)을 지향하도록 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제였 다. 그가 우리 향촌 사회에서 최초로 시행했던 향약 은 바로 이러한 도덕교화론 의 강력하고 현실적인 측면에 주목한 구체적 실천 사례라 할 수 있는데,47) 허엽 은 이 같은 정암의 사상을 계승하여 세도(世道)의 승강(升降)에는 천명이 있는 것 이므로48) 올바른 도덕으로써 백성을 감화시키고 교화하면 더 이상의 정치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고, 이를 향약을 통해 실천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비록 그 같은 시도가 결실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는 관찰사로 부임한 영남 지방에서 경민편(警民篇) 49)과 삼강행실도 오륜행실도 수천 권을 인쇄하 46) 趙光祖, 靜菴集 卷2, 對策, 謁聖試策 以共天下之道 道與我爲一之人 以共天下之心 感與我爲一之心 感之而化其心 則天下之心 化於吾心之正 莫取不一於正 導之而導於吾道 則天下之人 善於吾道之大 莫敢不歸於善 47) 이상성, 앞의 책, p ) 宣祖修正實錄 卷8, 7年(1574) 2月 1日(丙午) 世道升降 有命存焉 奈何 49) 경민편(警民篇) 은 김안국(金安國)의 아우인 김정국(金正國)이 1519년(중종14), 황 해도 관찰사로 있을 당시 향촌 사회에 사는 민(民)들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혹은 범죄 를 저지를 수 있는 여건을 스스로 조성하지 못하도록 계도(啓導)할 목적으로 만든 책 인데, 김정국이 기묘사림 의 일원이었던 만큼 이 책 또한 16세기 기묘사림 의 정치적 사유를 반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경민편 의 재간행은 1579년 경상도 관찰 사로 부임한 허엽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1656년(효종7) 이후원(李厚源)에 의해 다 시 한 번 개간(改刊)되었다. 김정국이 편찬한 경민편 이 민간에 널리 보급되지 못 했는데도 허엽이 어떻게 이 책에 주목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으나, 김안국과 의 사승 관계 등을 감안할 때 이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5 여 배포하였으며 이르는 곳마다 문묘(文廟)를 참배하고 유생들에게 학문하는 방 법을 써 보이는 등 백성들의 교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결국 이러 한 여러 사실들은, 허엽은 개혁 사림파의 전통을 계승한 인물 50)이라는 평가가 정당한 것임을 확인케 한다. 개인적으로도 허엽은 장음정유고(長吟亭遺稿) 의 서문을 쓰는 등51) 나식과의 공고한 사제 관계를 과시했다. 이 글에서 그는 나는 선생의 마을에서 나고 자라 어린 시절부터 직접 그 모습을 뵈었다. (나식이) 윤정숙 선생을 좇아 배웠는데 민기(閔箕) 종성령(鍾城令) 이구(李球) 이항(李恒) 등이 함께 그 문하에서 덕 행과 학문을 닦아 모두 대유(大儒)가 되었다 52)고 술회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허엽이 나식과 같은 마을에 살아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알고 지냈던 사실과 나 식이 조광조와 윤정숙의 문하에서 수학한 내력 등이 확인된다. 허엽은 또 모재(慕齋 : 金安國) 선생이 물러나 여강(驪江)에 은거할 때, 항상 문인들에게 나모(羅某)를 만나 보았느냐고 물었다. 아직 만나지 못했다고 하면 꼭 그를 만나 보라고 권했다 든가 (나식) 선생이 서화담을 만나 보길 원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해 탄식하곤 했다. 가정(嘉靖) 병신년(丙申年, 중종31) 가을, 화담 이 강원(姜源)의 집에 와 머물렀을 때 내가 그를 위하여 선생을 만나러 갔다. 두 번째 갔을 때 격한 논쟁이 벌어져 밤중이 되어서야 끝났다. 화담이 사례로 부채 에 시 두 편을 써 주었다 53)와 같은 기록을 남겼는데, 이는 나식이 뒤에 서술할 허엽의 또 다른 스승들과 종유한 기록이어서 흥미롭다 하겠다. 허엽, 경민편 간행과 관련해서는 정호훈의 앞 논문을 참조함 50) 신병주, 花潭學과 近畿士林의 思想, 국학연구 7집, 한국국학진흥원, 2005, p.56 51) 나식의 시문(詩文)은 저자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사사(賜死)되었기 때문에 거의 산일 (散逸)되었다. 그의 사후(死後) 30여 년이 지난 뒤 전라도 관찰사 심방숙(沈方叔)이 이우 춘(李遇春)이 소장하던 나식의 시 50여 수를 얻어 이를 간행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그 문인 허엽에게 서(序) 를 부탁하였다. 허엽은 자신이 수습한 시 수십 편을 보태고 서 (序) 를 붙여 1578년, 장음정유고(長吟亭遺稿) 를 간행하였다. 이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 지 않는다. 52) 羅湜, 長吟亭遺稿, 序 曄生長先生之閭 自童稚時 親接儀容 (중략) 初從尹鼎鼎叔先 生學 與閔右相箕宗室鍾城令球李一齋恒 考德問業於其門 皆得爲大儒 이는 나식이 조광 조 뿐 아니라 윤정숙에게도 사사했다는 동유사우록 의 기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53) 羅湜, 위의 글, 先生欲見徐花潭而不得 發於言嘆 嘉靖丙申秋 花潭來寓姜源家 曄爲之見 之 再往極論 夜分乃罷 玩花潭謝扇詩二篇

26 2) 松厓 李畬와 慕齋 金安國 : 博學 과 實用 의 風貌 허균의 성옹지소록 에는 허엽의 또 다른 사승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다. 이 여(李畬)와 김안국(金安國)에 관한 내용이 그것이다. 나의 선친은 소시(少時)에 교리(校理) 이여에게서 주역 을 배웠다. 여(畬)는 진 천인(鎭川人)으로 그의 형 치(菑)와 함께 성리학에 밝았다. (중략) 치(菑)도 높은 벼슬에는 이르지 못하고 박사(博士)로 죽었는데, 진천의 유사(儒士)들이 두 분을 위하여 서원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 선친이 살아 계실 때에는 매번 제사를 주선하 여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이곳 선비들이 잇달아 과거에 급제하고 고을의 풍속 도 좋으니 이는 모두 이 교리의 교화이다. 54) 이여(李畬 : 1503~1544)의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유추(有秋), 호는 송애 (松厓)이며 이색(李穡)의 후손이고, 진사 이인로(李仁老)의 아들이다. 그는 김안 국의 문인으로 1531년(중종2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正言) 지평(持 平) 등을 역임하였다. 관리로 재직하는 중에도 학문에 전심(專心)하였으며 특히 역학(易學)에 정통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고, 인종이 세자로 있을 때 김안국을 대 신해 문학(文學)55)에 임명되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유학을 강론하기도 했다. 실록 에 여(畬)는 성리학에 뜻을 두고 영리(榮利)를 좋아하지 않아 마음이 담박(淡泊)하였다 56)거나 역학에 정통하여 터득한 것이 매우 높았으므로 진강 (進講)할 때에는 깊은 뜻을 분석하고 예(例)를 끌어대어 비교하면서 반드시 덕 (德)을 진취하게 하려고 정성을 다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57)는 기록들이 남 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학문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은 인물이었음을 알 수 54) 許筠, 惺所覆瓿藁 卷23, 惺翁識小錄 中, 李畬與兄菑俱明理學 先君少日問易於李校理 畬 畬鎭川人也 與其兄菑 俱明理學 (중략) 菑以博士不顯而卒 鎭川儒士爲立書院祀之 先君 在日 每經紀不輟 至今士子聯擢科第 鄕風亦淑 皆校理之化也 55) 문학(文學) 은 조선시대 정6품~정5품의 벼슬로 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을 담당했 다. 56) 中宗實錄 卷93, 35年(1540 庚子) 8月 23日(壬午) 畬有志於性理之學 不慕榮利 泊如 也 57) 中宗實錄 卷101, 39年(1544 甲辰) 1月 15日(甲寅) 精於易學 所得甚高 故進講之際 分析蘊奧 引援譬喩 期於進德 至誠不怠

27 있다. 보통은 허엽 일가가 주역 에 밝았던 까닭을 서경덕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설 명하지만, 허엽이 생전 이여가 제향(祭享)된 진천의 백원서원(百源書院)에 매번 제사를 주선했던 것이나 허균이 직접 이여의 찬(贊) 을 지었던 사실 등은 허엽 의 학문에 끼친 이여의 공(功)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특히 허균은 교리(校理) 이여의 찬[李校理畬贊] 을 통해 내가 일찍이 사신 (史臣)이 되어 여러 도서관에 간직된 귀중 문서를 참고해 보았으나 선생의 사적 은 전혀 볼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패관(稗官)ㆍ장고가(掌故家)까지 찾아보았 으나 역시 이렇다 할 것이 없었다 고 전하면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일찍이 선생에게 주역 을 물은 적이 있었으므로 어렸을 적에 집안에서 들은 이야기가 이와 같았다. 그런데 너무 오래 지나면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를 위해 찬을 짓는다 58)고 하여 특별한 저술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즉, 이 글은 이여에 관한 문헌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탓에 허균이 어린 시절 아버지 허엽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었던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문헌에 도 언급될 만큼 비상한 기억력을 가졌던 허균의 저작임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의 신빙성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더해 허균이 직접 이여의 사적을 찾고 자 시도했던 사실은 허엽의 가인들이 부친과 이여의 사승 관계를 분명히 인정하 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러 자료들을 통해 포착된 이여의 학문 세계가 상당 부분 서경덕의 학문적 경향과 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格致大學 대학(大學)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 배우고 誠明中庸 중용(中庸)에서 성(誠)을 밝혔는데 公也學之 공(公)은 이를 배우면서 曾武思蹤 증자(曾子) 자사(子思) 법(法) 받았네 三聖之易 복희(伏羲) 문왕(文王) 공자(孔子)의 주역 爻象吉凶 효(爻)와 상(象)과 길(吉)과 흉(凶)을 公也明之 공(公)은 다 밝히면서 師頤師雍 정이(程頤) 소옹(邵雍)을 스승 삼았네59) 58) 許筠, 惺所覆瓿藁 卷14, 文部11, 李校理畬贊 臣嘗忝史臣 考諸石室祕文 先生之事 不少槪見 旁求於稗官掌故家 亦別無著 先臣嘗質易於先生 故少日聞於家庭者如是 恐其久而 失傳 爲之贊而紀之

28 여타의 관련 기록이나 저술이 남아 있지 않아 상세한 사실을 알 수는 없으나 윗글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여의 학문 세계를 추론해 보면, 그의 역학은 정이의 의리학(義理學)과 소옹의 상수학(象數學)을 절충하는 경향을 띠었을 것으로 생 각된다.60) 전술한 허엽의 신도비명 에도 이여가 수학에 정통하며 주역 에 이 해가 깊다 는 언급이 있었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여와 서경덕의 학문적 지향이 일면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여가 이 같은 학문 적 성향을 갖게 된 데에는 그 스승인 김안국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으로 짐작된 다. 김안국(金安國 : 1478(성종9)~1543(중종38))의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국 경(國卿), 호는 모재(慕齋)이며 김굉필의 문인으로 사림의 학통을 계승한 인물이 다. 그는 1501년(연산군7) 생원진사시에 합격했고, 1503년 별시문과에 을과(乙 科)로 급제하였다. 이후 부수찬(副修撰) 부교리(副校理) 등을 지내다가 1507 년 다시 문과 중시(重試)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여 지평 장령 대사간 공조 판서 등을 거쳤으며 1517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김안국은 관찰사 시절, 교화로써 사람들을 감화시키기에 힘썼고 그 방안으로 여씨향약언해(呂氏鄕約諺解) 를 간행하여 여러 고을에 배포하는 등 여씨향약 보급에 가장 많은 공적을 쌓았다.61) 하지만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성리학 의 실천적 입장을 중시한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고, 이후 1537년에 재등용되어 예조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대제학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안국은 단지 이념으로서만이 아닌, 실천적 학문의 입장에서 성리학을 중시 했지만 조광조의 경우와 같은 급격한 정치 개혁에는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었으 며, 학문의 실용성을 중시하여 천문 병법 등에 해박하였고 닥나무를 이용해 종 이를 만드는 방법도 연구하였다. 59) 許筠, 위의 글 60) 소옹(邵雍) 은 북송(北宋)의 학자로 도가사상의 영향 하에 유교의 역철학(易哲學)을 발 전시켜 특이한 수리철학(數理哲學)을 만들었다. 그는 음(陰) 양(陽) 강(剛) 유(柔)의 4원(四元)을 근본으로 삼아 4의 배수(倍數)로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개진하였다. 61) 여씨향약(呂氏鄕約) 은 11세기 초, 중국 북송대에 여대충(呂大忠) 여대방(呂大防) 등 4 인이 향촌을 교화 선도하기 위해 만든 자치 규약으로서, 소학(小學) 에 수록되어 있 기 때문에 소학 의 보급과 더불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씨향약 보급과 관련 한 내용은 한국사 28권 (국사편찬위원회, 탐구당, 2003) 을 참조했다

29 이언적(李彦迪)은 그의 학문에 대해 모재는 박학(博學)하지만 존양(存養)의 공력은 적었다 고 평했으며 이식(李植) 역시 모재는 박학하고 문장을 잘하였지 만 수약(守約)의 공부는 적은 듯하다 62)고 언급하였다. 실록 에서도 김안국은 박학하여 계고(稽古)하고 선(善)을 좋아하여 선비들을 교훈했다 63)거나 중종조 의 명신 김안국은 박학 계고하고 사람을 사랑하였으며 선을 좋아하고 나랏일에 마음을 다해 정신과 힘을 쏟았다 64)는 류(類)의 기사들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모재의 학문이 성리학 일변으로 흐르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는 박학 풍의 특색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안국은 천품이 강직하고 학문이 해박하여 전고(典故)를 환히 알고 시 무(時務)에 익숙히 달통하였으며, 성격이 치밀하고 주도하여 일에 빈틈이 없었 다. 산경(山經) 지지(地誌) 유편(幽編) 비록(秘錄) 음양(陰陽) 의(醫) 불(佛)의 책까지도 그 이치를 깊이 연구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으며, 한때의 사대 표주(事大表奏)와 교린서찰(交隣書札)이 모두 그 손에서 나왔다 65)는 사평(史評) 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양한 영역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모재가 이렇듯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짐과 동시에 성리학의 이 론 탐구보다는 그 실천에 주력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66) 그의 학문에 개방적이 고 절충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온 세상의 평론이 모재는 선을 좋아하고 선비를 사랑하며, 전고 에 널리 통하였으나 학문상의 공부에 이르러서는 별로 공력을 기울이지 않았 다 67)는 윤근수(尹根壽)의 전언이나, 앞서 존양의 공력은 적었다, 수약의 공부 는 적은 듯하다 고 했던 이언적과 이식의 언급은 모재가 성리학에 전심(專心)하 지 않고 박학에 힘을 쏟았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여 또한 개방적 면모를 지닌 김안국의 문인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학문 적 성향 역시 사변적 원리적 측면에만 머무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그런 62) 張志淵 著 李民樹 譯, 朝鮮儒敎淵源, 명문당, 2009, p.74 63) 宣祖實錄 卷8, 7年(1574 甲戌) 2月 1日(丙午) 金安國博學稽古 好善訓士 64) 宣祖實錄 卷8, 7年(1574 甲戌) 4月 23日(丁卯) 希春曰 中廟朝名臣金安國 博學稽古 愛人好善 盡心國事 畢精竭力 65) 中宗實錄 卷7, 33年(1538 戊戌) 7月 25日(丙申) 安國天資剛毅 學問精博 曉暢典故 練達時務 綜緻 周密於事無所遺 至於山經, 地誌 幽編 秘錄 陰陽醫佛之書 無不究極其理 一時事大表奏交隣書札 皆出其手 66) 신병주, 南冥學派와 花潭學派 硏究, 일지사, 2000, p ) 尹根壽, 月汀漫筆 一時之論 以慕齋樂善愛士 博通典故 而至於學問之功 不甚着工云

30 측면에서 허엽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여의 스승인 김안국으로부터 허엽이 직접 학문을 배운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허엽은 전고대방 에 서경덕과 이황의 문인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68) 동유사우록 에는 서경덕과 김 안국, 윤정숙의 문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는데,69) 허엽이 김안국에게 사사한 사실 은 그 아들 허균의 문집 속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어 있다. 형님들이나 누님의 글은 가정에서 나왔는데 선친이 젊어서 모재에게 배웠고 모 재의 스승은 허백(虛白) 성현(成俔)으로 그는 형인 간(侃) 및 괴애(乖崖) 김수온 (金守溫)에게 배웠는데, 이 두 분은 모두 태재(泰齋) 유방선(柳方善)의 제자요, 유 공(柳公)은 바로 문정공(文靖公 : 이색(李穡))의 마음에 들었던 문인(門人)이었 다.70) 조정암(趙靜庵)이 화를 당한 뒤로 이(理) 와 성(性) 을 궁구하는 성리학에 대하 여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모재만이 여강(驪江 : 여주)에 은거하며 선비 를 만날 때마다 성현의 일을 인용하여 논설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회재(李 晦齋)는 영남(嶺南)에서 여강을 오가며 반드시 질문하고 변란(辨難)하였으며, 퇴계 도 단양군수(丹陽郡守)로 부임할 때, 공의 집에 들러 비로소 성리학의 연원에 대해 들었다. 모재는 이처럼 두 분을 계도한 공이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있다. 나의 선친은 어린 시절, 모재에게 배웠으므로 이 사실을 두루 알고 있었다. 대개 공은 평소 문장가로 칭송을 받았고 성품 또한 위세를 부리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문인으로만 여겼기 때문이다.71) 허엽이 어떤 경로로 모재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는 모 재의 외가가 양천 허씨라는 사실과 상당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안국 의 모친은 영월군수를 지낸 허지(許芝)의 따님으로, 그녀는 조선조 명의(名醫) 68) 典故大方, p.191, 196 참조 69) 東儒師友錄, p.16 참조 70) 許筠, 惺所覆瓿藁 卷10, 文部7, 答李生書 而先大夫少學於慕齋 齋慕之師成虛白俔 學 於其兄侃及金乖崖守溫 二公皆柳泰齋之弟子 柳公是文靖公得意門人 71) 許筠, 위의 책, 卷23, 惺翁識小錄 中, 慕齋說性理淵源 方靜庵被禍之後 人無敢言窮理 盡性之學 獨慕齋退居呂江 逢士人則輒引聖賢事業 論說不怠 李晦齋自嶺南往來 必質問辨難 而退溪赴丹陽日 亦過公廬 始聞性理淵源 幕齋之於二公 有啓益之功 而人不之知也 先大夫 少學於慕齋 備知之 蓋公素以文章得譽 而性且不威 世唯以文人視之故也

31 허준(許浚)의 조부인 허곤(許琨)의 큰누이이기도 하다. 즉, 허지는 모재의 외조 부이자 허준의 증조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모재는 양천 허씨 문인 68인의 시를 합편(合編)한 양천허씨 세고(陽川許氏世稿) 의 서문을 쓰기도 했는데, 허엽과 허준이 10촌지간이며 허 준의 평생 후원자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유희춘(柳希春)이 허엽의 아들 성과 봉의 스승이자 모재의 문인이라는 사실은 허엽과 김안국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허엽은 후에 김안국의 장남인 김유부(金有孚)와 동서지간이 되 었으며72) 김안국의 사후, 그의 차남 김여부(金汝孚)의 부탁으로 모재집(慕齋 集) 의 교정을 보고 발문을 짓기도 했다.73) 모재 역시 허엽의 또 다른 스승인 화담 서경덕과 돈독한 우의를 쌓는 등 허엽과의 관계를 다각도로 지속해 나갔 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허엽은 집안끼리의 관계에 힘입어 일찍이 모재 의 문하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후 나식에게 소학 과 근사록 을, 이 여에게서는 주역 을 배웠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추측을 가능케 하는 몇몇 단서들이 허엽이 찬한 이여의 행장 에 보 인다. (이여 선생이) 일가의 형뻘이었던 생원 나식 선생과 훈도(訓導) 송경(宋 瓊)을 벗으로 삼고 매번 송경을 풍류를 아는 호걸이라 칭했다 74)는 구절이 그 것인데 이를 통해 나식과 이여가 인척지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글에 는 나식이 먼저 조광조에게 사사하고 이후 윤정숙에게 학문을 배운 사실과75) 허엽이 이여에게 역학을 배우게 된 계기에 관해서도 언급되어 있다. 내가 같은 마을에서 살며 늘 (나식 선생을) 좇아 학문을 배웠는데 (선생이) 항상 72) 서평군(西平君) 한숙창(韓叔昌)은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는데, 그 중 셋째딸을 김안국 의 장남 김유부(金有孚)에게 출가시켰고 막내딸을 허엽에게 시집보냈다. 73) 한국문집총간 해제 참조 : 김안국의 시문은 가장(家藏)되어 오다가 유희춘이 저자의 아 들 김재부(金在孚)에게서 얻어 간행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그 후 저자의 문인 허충길(許忠吉)이 영천(榮川) 군수로 부임하여 감사(監司) 노진(盧禛)과 김계휘(金繼輝)의 도움을 받아 1574년(선조7), 영천에서 판각하였다. 이것을 저자의 관향(貫鄕)인 의성(義 城)에서 현령(縣令) 노종원(盧從元)이 개간(開刊)하고 그 판각을 의성서원(義城書院)에 보관하였다. 이 초간본은 아들 김여부(金汝孚)의 부탁으로 허엽이 교정을 보고 발(跋) 을 지었으며, 또한 유희춘이 서문 을 지어 권(卷) 수미(首尾)에 각각 붙인 바 있다. 74) 許曄, 草堂集, 行狀, 李文學先生行狀號松厓 與族兄生員 羅湜正源 訓導宋瓊公瑾爲友 每稱宋瓊爲風流人豪 75) 許曄, 위의 글, 正源號長吟亭 少受業趙靜菴先生之門 長而師尹鼎

32 한수(韓脩)와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마땅히 이여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 다. (이여는) 안정되고 담박하여 시주(詩酒) 이외의 것은 일삼지 않으니 진실로 배 우는 자의 스승이라 할 만하다. 하고 나로 하여금 (이여 선생에게) 역학을 배울 것 을 권했다. (중략) 드디어 나아가 주역 을 배울 것을 청하여 역학계몽(易學啓 蒙) 과 주역 을 모두 마쳤다. 지금 향하여 나아갈 곳을 알게 되고 장차 역학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모두 나식 선생이 베풀어 주신 바다. 선생이 지은 역학범수 설(易數範數說) 을 예전에 듣고 지니고 있었지만 (그것을) 취합(聚合)하지 못하여 산실되고 말았으니 애석하도다.76) 위의 글에는 허엽이 스승 나식의 권유로 이여를 찾아가 역학을 배우게 된 사 실과 자신이 학문의 방향성을 찾고 역학에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을 스승 나식의 공로로 돌리고 있음이 드러난다. 또한 역학범수설 운운(云云)하는 글귀를 통해 이여 뿐 아니라 그의 족형(族兄)인 나식 역시 역학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인물 이었음을 알 수 있다. 3) 尹鼎叔과 灘叟 李延慶 : 學問的 柔軟性의 獲得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 또 하나 있는데 그는 전고대방 에 조광조 와 더불어 나식의 스승으로 기록되어 있는 윤정숙(尹鼎叔)이다. 우리가 그에게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동유사우록 에서 서경덕 외에 허엽과 윤 정숙의 사승 관계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77) 윤정숙의 본명은 윤정(尹鼎 : 1490(성종20)~1536(중종31))으로 본관은 파평 (坡平), 자는 정숙(鼎叔)이다. 그의 형인 윤내(尹鼐)가 성종의 여덟째 딸인 경휘 옹주(慶徽翁主)와 혼인하여 영원군(鈴原君)에 봉해진 사실을 참고할 때 윤정은 비교적 유력한 가문 출신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78) 그러나 그는 과거에 뜻을 76) 許曄, 위의 글, 曄居一閈中 常從而學焉 每說與韓修及曄曰 爾輩當師有秋 恬靜淡泊 無詩 酒外事 眞學者師也 勸曄學易于先生 (중략) 遂就請學易 易學啓蒙及元經 皆得卒業 至今知 向方 將有得於易學 長吟亭之賜也 先生所著易數範數說 舊聞有之 而無聚集 至於散亡 惜哉 77) 동유사우록, p.16 참조 78) 이긍익(李肯翊)이 편찬한 연려실기술 卷6 성종조 고사본말(成宗朝故事本末) 에는 경 휘옹주의 남편이 영원위(鈴原尉) 윤정(尹鼎)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

33 두지 않고 두문불출하며 주역 만 읽었다고 하며, 조정에서 그의 의(義)를 가상 히 여겨 의금부도사에 임명하려고 하자 절로 피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평생 을 은사(隱士)로 살아가며 학문에만 전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79) 허엽이 윤정에게 사사한 사실을 스스로 밝힌 적은 없으나, 문집인 초당집 에 윤정에 관한 기록을 남겨 두고 있다. 윤정숙의 이름은 정(鼎) 으로 파평 사람이며 인품이 고상하다. 학문을 처음 시작 할 때에는 아직 바로 선 바가 바가 없었으나 (그 뜻을) 이루고자 힘써 연마하고 밤에 잠도 자지 않기를 삼 년 만에 스스로 호연지기가 생겼다. 나식 선생과 종성 령(鍾城令) 이구(李球) 민기(閔箕) 이항(李恒) 등이 모두 그를 존경하여 스승으 로 삼았다. 또 연방(蓮坊 : 이구의 호)은 윤정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화담의 문하 에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80) 관련 자료가 소략한 탓에 자세한 사실은 알 수 없지만, 동유사우록 의 기록 이나 여러 정황들을 참조할 때 허엽이 윤정으로부터 직접 사사했을 가능성은 충 분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전고대방 과 유교연원록 등에 윤정과 서경덕이 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허엽의 학문이 윤정과 서경덕을 거슬러 이연경과 직접 연관되었을 가 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연경(1484(성종15)~1548(명종3))의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장길(長吉), 호 는 탄수(灘叟) 용탄자(龍灘子)로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이세좌(世佐)의 손자 이다. 그의 조부 이세좌는 갑자사화 때 윤비(尹妃)의 폐위를 극간하지 않고 형방 승지(刑房承旨)로서 윤비에게 사약을 전하였다 하여 자진(自盡)의 명을 받고 자 결하였는데, 이연경 역시 이 일에 연좌되어 섬에 유배되었다. 그는 1507년(중종 2)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518년 방환(放還)된 뒤 재행(才行)을 겸용한 인물이라 하여 원사인자손(寃死人子孫) 으로 천거되어 선릉참봉 조지서사지(造紙署司 다. 79) 윤정이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은거한 탓에 그에 관한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실록 에 윤내의 아우 윤정(尹鼎)과 윤자(尹鼒)가 모두 학식이 있었다(有弟二人曰鼎曰鼒 皆有學 識) 는 언급이 있다. ( 明宗實錄 卷13, 7年(1552 壬子) 3月 22日(甲辰) 기사 참조) 80) 許曄, 草堂集 附錄, 摭錄 尹鼎叔名鼎 坡平人 人品甚高 始學 未有所立 礪志成就 通 夕不寐 如是三年 浩然之氣自生 正源羅湜叔玉鍾城令球 號蓮坊 景說閔箕恒之 李恒 號一齋 皆師尊之 又曰 蓮坊受業尹鼎 卒業於花潭

34 紙) 공조좌랑이 되었으며, 이듬해 현량과(賢良科)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과 홍문관 교리를 역임했다. 이연경은 조광조와 매우 가까운 관계였으므로 이로 인해 기묘사화에 연루, 축 출될 뻔하였으나 중종이 친히 찬인록(竄人錄) 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버려 화 를 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관한 기록은 지금도 여러 문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탄수(灘叟) 이연경(李延慶)이 교리로 있을 때, 한번은 중종이 야대(夜對)에 나왔 다. 아뢰는 자가 지금 태평을 이룩하려면 모름지기 당대에 제일가는 사람을 발탁 하여 정승으로 삼아야 합니다. 라고 말하니, 이연경이 앞으로 나와 이는 조광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조광조가 진실로 훌륭하기는 하지만, 지금 사람을 쓰는 데 있 어서는 경력이 많아지고 인망(人望)이 흡족해지기를 기다린 뒤라야 큰 책임을 맡 길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조광조가 그 소문을 듣고 달려가 이연경을 보 고 울면서 감사를 표했다. 뒤에 사화가 일어나자 남곤ㆍ이빈(李蘋) 등이 귀양 보낼 사람의 성명을 적어서 보고했는데, 이연경의 이름이 첫머리에 있었다. 상(上)이 붓 으로 (그 이름을) 지우며 전교하기를 이연경은 내가 그 사람됨을 아니 귀양 보내 지 말라. 고 하였다.81) 위의 기록은 이연경이 조광조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그가 신진 사 림의 한 축으로서 정암의 개혁에 힘을 실어 주었던 인물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연경은 조광조와 함께 김굉필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82) 사림의 주력 사업이었 던 향약의 실시에 앞장서 중종에게 직접 향약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등83) 여타의 81) 李廷馨, 東閣雜記 下, 本朝璿源寶錄 2, 李灘叟延慶爲校理 中廟嘗御夜對 有啓者 方今 欲致太平 須擢相當代第一人 延慶進曰 是指趙光祖也 光祖誠賢矣 然今之用人 須踐歷多人 望洽 然後可授以大任 光祖聞之 馳見延慶 泣謝之 及黨禍作 南衮李蘋等 錄啓流竄人姓名 延慶爲之首 御筆抹去 且敎曰 廷慶予知其爲人 其勿竄, 허엽이 편찬한 전언왕행록(前 言往行錄) 과 이황의 퇴계집(退溪集), 이유원의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에도 동일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82) 趙光祖, 靜菴集 卷5, 靜菴先生續集附錄, 門生錄 참조 83) 中宗實錄 卷36, 14年(1519 己卯) 7月 26日(丁巳) 불시에 소대(召對)에 나갔다. 상 이 이르기를 향약이 백성을 교화하기에는 제일이니 사람들이 모두 향당(鄕黨) 안에서 (이를) 익히고 착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야 함을 알게 된다면, 어찌 교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힘써 하도록 함이 가하다. 하니 시강관 이연경이 아뢰기를 신이 외방 에 있으면서 보니까 과연 향약이 풍속을 바르게 개선하였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본디 착 한 것이어서 착한 일로써 지도하면 저절로 교화되기 쉬운 것이니, 만일 선량한 사람을

35 기묘사림들과 동일한 정치적 행보를 이어 갔다. 그는 훗날, 조광조가 사사되자 위험을 무릅쓰고 장지(葬地)에 가 제(祭)를 올리는 등84) 끝까지 신의를 지켰으 며, 현량과가 혁파되자 관직을 버리고 충주로 낙향, 이자(李耔)와 더불어 평생을 은거하였는데 이때에 김안국 성수침(成守琛) 이황 조식 등과 교유한 것으 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기묘사림들은 경전에 대한 강론을 중시하는 격물치지(格物致知)보 다는 마음을 함양 성찰하는 존덕성(存德性) 공부에 치중했던 경향이 있었고 중 종대에 김안국의 건의로 상산집(象山集) 이 간행되기도 했음85)을 생각할 때, 그들의 학문은 정주학을 기저로 하되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인 학풍을 전개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묘사화 이후 이연경과 이자, 김세필 등이 충주에 머무르며 학문을 논 하였는데 이들은 사화로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던 기묘사림들의 학문을 후대에 전승시킨 주역들 중 하나이므로 이연경의 학문적 성향 역시 기묘사림들의 그것 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유고(遺稿)가 모두 산실된 까닭으로 이연경의 학풍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그 문인이자 사위인 노수신의 학문이나 관련 기록 등을 통해 그 일단(一端)을 엿볼 수 있다. 소재 노수신은 17세에 이연경의 사위가 되었는데, 이후 장인이자 스승인 이연경으로부터 소학 등 심성을 수양하는 학문을 배웠 으며 열여섯 해 동안이나 그 문하에 있었다. 이연경의 학문과 사상은 소재의 학 얻어 약정(約正)을 삼는다면 족히 습속(習俗)을 변경시켜 사람들이 모두 선(善)에 나아가 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한충이 아뢰기를 신의 집이 청주(淸州)에 있으니 충주와 는 거리가 멀지 않습니다. 충청도에서 향약을 행하는 것이 다른 도(道)보다 낫고 충주가 도내에서도 제일인데 당초 약정(約正)이 되었던 사람이 교리(校理) 이연경으로, 이 사람 이 약정이 되어 지도하고 거느렸기 때문에 제일이란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라고 하였 다. (御不時召對 上曰 鄕約 於化民爲最 人皆知習於鄕黨之中 而不爲不善之事 則其於敎化 之補 豈不大哉 使勉力爲之可也 侍講官李延慶曰 臣在外方 見鄕約 果速於善俗矣 人性本善 以善事指導之 則自爾昜化 若得善人 以爲約正 則足以變習俗 而人皆樂趨於善矣 韓忠曰 臣 家在淸州 與忠州相距不遠 忠淸一道鄕約 勝於他道 而忠州爲最於道內 其初爲約者 乃校理 李延慶也 此人爲約正 以導率之 故稱最焉) 84) 李肯翊, 燃藜室記述, 中宗朝 古事本末, 己卯士禍 소 수레로 관을 용인(龍仁)으로 옮 겨다가 이듬해 봄, 선산인 심곡리(深谷里)에 장사 지냈다. 성수종(成守琮), 홍봉세(洪奉 世), 이충건(李忠楗) 등이 장사(葬事)에 달려 왔고, 이연경 또한 와서 제사 지내고 잔을 드리며 서로 붙들고 크게 통곡한 후에 돌아갔다. (以牛車返櫬于龍仁 明春葬于先壠 成守 琮洪奉世李忠楗等赴葬 李延慶亦來會祀獻相携長慟而返) 85) 신향림, 16C 전반 陽明學의 전래와 수용에 관한 고찰 - 金世弼 洪仁祐 盧守愼의 양명학 수용을 중심으로, 퇴계학보 18집, 퇴계학연구원, 2005, pp.188~

36 문과 인격 형성에도 큰 영향을 주어 소재 역시 공리공론적인 학문보다 실천궁행 (實踐躬行)하는 삶의 지혜를 중시하게 되었으며, 스승에 대한 정 또한 각별하여 이연경과 자신의 관계를 주자와 주자의 사위인 황간(黃幹)에 빗대어 의(義)는 주자의 사위 황간보다 무겁다[義重幹甥朱] 라고 읊을 정도였다.86) 선사(先師) 탄수 선생이 (이언적) 선생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아직 발(發)하지 않은 때에 관하여 논하시고 나에게 그 상세한 전말을 말씀해 주셨다. 나는 내심으 로 이것은 자공(子貢)이 들을 수 없었던 것이니, 아아! 지극하도다. 라고 하며 감 탄하였다.87) 노수신은 젊은 날, 스승 이연경으로부터 그가 이언적과 더불어 미발(未發)의 기상에 대하여 논한 토론의 전말을 전해 들었다. 노수신은 스승의 말을 듣고 이 것이 바로 자공이 들을 수 없었던 성(性)과 천도(天道)에 관한 가르침임을 알고 감탄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은 노수신이 스승의 영향을 받아 미발의 심체(心體)가 바로 본성이자 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 준 다.88) 소재의 이러한 생각은 후에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 (1559)과 곤지기발(困 知記跋) (1560) 등의 저술을 통해 구체화되는데, 이는 나흠순(羅欽順)이 지은 곤 지기(困知記) 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나흠순은 도심(道心) 은 미발(未發)의 체 (體) 로서 성(性) 이며 인심(人心) 은 이발(已發)의 용(用) 으로서 정(情) 이라고 하여 인심도심체용설(人心道心體用說) 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이기 합일지묘(理氣合一之妙) 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정주(程朱)의 설과 는 사뭇 다른 것으로서, 정주의 설에서는 도심 이나 인심 을 모두 정(情)으로 보기 때문에 순선순리(純善純理)의 도심 역시 성 이 아니고 정 이라 설명한다. 그런데 나흠순은 도심 을 정 으로 보지 않고 성 으로 간주하여 마침내 도심 을 체 라고 하는 데 도달하게 되었으니 그의 견해는 출발점에서부터 정주의 설과는 그 전제를 달리하였던 것이다.89) 86) 황구하, 蘇齋 盧守愼의 心學, 陽明學 10輯, 한국양명학회, 2003, p ) 盧守愼, 穌齋集 卷7, 晦齋先生集序 旣而 先師灘叟先生與先生論喜怒哀樂未發 爲予 道其詳 予又 竊自嘆曰 此子貢所以不可得而聞 嗚呼已矣 88) 신향림, 위의 논문, pp.202~203 89) 최영성, 韓國儒學通史 上, 심산출판사, 2006, p

37 실록 에서는 이와 관련해, 노수신이 나흠순의 곤지기 를 추존하였으며 인심 (人心) 도심(道心) 집중(執中) 등의 설(說)을 자기 나름대로 지어 주자의 견 해에 이론을 제기하자, 이황이 그르다 하였다 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그가 주자 학 뿐 아니라 육학(陸學)의 종지(宗旨)를 참작하여 사용했음도 함께 전하고 있 다.90) 이렇듯 노수신의 사상적 경향이 다소 이단적이며 개방적이었던 사실을 고려할 때 그 스승인 이연경의 사상 역시 개방적인 성향을 띠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특 히 이연경의 미발(未發) 에 대한 학문적 탐구가 노수신의 사상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연경은 불교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 승려 문원(文遠)과 가깝게 지내며 시를 지어 주기도 하였고, 사위 강유선(康維善)에게 그를 직접 찾아가 담론을 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결국 한 시대의 유종(儒宗)으로 평가 받았던 이연경과 노수신의 사상이 전승 되지 못하고 주자학 일변도의 조선 후기 학계와 정계에서 그 이름이 점점 잊혀 지게 된 것은 그들이 주자학을 지향하면서도 상산학이나 불교 등 소위 이단 에 대해 학문적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91) 그런 맥락에서 이연경의 문인인 서경덕과 윤정의 학문적 성향을 재고(再考)하 면 일련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 일례로 서경덕의 문인 집단인 화담학파가 주자 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고 노장사상이나 양명학 등 다양한 사상에 경도된 모습 을 보였으며,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학풍을 가졌다92)는 연구 결과를 상기한다면 이 같은 생각이 결코 억측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학풍이 윤정과 서경덕을 통해 허엽에게 이어지고 다시 그의 아들들에게로 계승되어 조 선 중기 사상사의 일단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설명 역시 타당한 것이라 생각된 다.93) 90) 宣祖修正實錄 卷24, 23年(1590 庚寅) 4月 1日(壬申) 其學初甚精博 儒林之望 先於李 滉 及在海島 推尊羅欽順困知記 改著人心道心執中等說 立異於朱訓 李滉非之 蓋我國道學 至李滉出而大明 而守愼獨參用陸學宗旨 後人或慕嚮稱述焉 여기서의 육학(陸學) 은 육 구연(陸九淵)의 학문, 일명 상산학(象山學)을 지칭한다. 91) 권오영, 灘叟 李延慶의 性理學的 삶과 思想, 朝鮮時代 廣州 李氏의 삶과 學問, 서 울역사박물관 外, 2007, pp ) 신병주, 앞의 책, p.216, 조선 유학의 학파들, p.130 참조 93) 이연경의 문인들과 허엽 일가가 대를 이어 친분을 이어 간 사실은 이들의 사상적 정 치적 노선이 근접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연경의 사위인 노수신과 허엽은 평생 동안 우의(友誼)를 나눈 지기(知己)였으며, 이연경의 외손이자 노수신의 문인이었던 심희수(沈喜壽)는 허엽 일가의 인근에 거주하면서 허성, 허봉 형제와 절친한 관계를 유

38 허엽의 수학기인 16세기 초 중반, 사림의 핵심 세력이었던 김안국과 조광조 등은 소학 의 학습과 향약의 보급을 통해 새 시대를 열고자 하였다. 조광조는 성리학에 토대를 둔 지치주의를 표방하였고, 김안국은 소학 과 주자증손여씨 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 등의 보급 및 정속(正俗) 의 간행을 통해 당시의 풍 속을 성리학적 예속(禮俗)으로 변화시키려고 하였다. 이들은 또한 이륜행실도 (二倫行實圖) 의 간행을 통해 장유(長幼)의 질서와 붕우(朋友)의 신의를 중시하 는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였다.94)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성장한 허엽은 사림의 주요 일원이었던 김안국과, 조광조의 문인 나식에게 사사함으로써 기묘사림의 개혁사상을 직접 수용할 수 있었다. 특히나 김안국은 서경덕에 버금갈 정도로 허엽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예를 들면 김안국은 관직에 머무는 동안 성균관 유생들과 교류하며 학 문적 연대를 깊이 하였고 학생의 천거를 통해 사림파 인물들을 등용하였으며, 지 방의 관찰사로 나갈 때마다 향촌의 교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향촌 내 사림 세력의 지배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서 향약의 보급과 향교 교육을 강화하였는 데,95) 이는 후일에 보인 허엽의 행보와 거의 근사(近似)한 것이어서 주목된다고 하겠다. 허엽은 실천 을 중시했던 기묘사림과 마찬가지로 향약의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등 인민의 교화에 앞장섰고, 사습의 혁신을 위해 경학(經學)의 중요성 을 역설하였다. 또한 마음으로 선류(善類)를 보호하려 애썼고 평생 동안 경학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96)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훌륭한 인재를 기 르는 데 있어 적임자라는97) 평가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지함과 동시에 서경덕의 문인인 강문우(姜文佑)에게 사사한 사실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이연경의 문인인 종성령 이구 또한 허엽과 함께 서경덕의 문하에서 수학한 바 있다. 94) 권오영, 앞의 논문 p ) 조선 유학의 학파들 p.95 96) 宣祖修訂實錄 卷14, 13年(1580 庚辰) 2月 1日(辛未) 동지중추부사 허엽이 졸(卒)하 였다. 허엽의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이다. 젊어서 화담 서경덕을 따라 배웠고 노수신과 벗하였으므로 사류(士類)로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가정(嘉靖) 병오년, 문과 에 등제하여 즉시 간원(諫院)에 들어갔다. 그는 일시의 원칙 없는 논의에 대해 비록 의 사를 달리하지는 못하였으나 마음속으로 선류(善類)를 보호하려고 하여 일에 따라 구제 한 점에 있어서는 칭찬할 만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경훈(經訓)을 독실히 좋아하여 늙도 록 게을리 하지 않았으므로 세상에서 이 점에 대해 훌륭하게 여겼다. (同知中樞府事許曄 卒 曄字太輝 號草堂 少從花潭徐敬德學 與盧守愼爲友 以士類著名 登嘉靖丙午文科 卽入諫 院 其於一時橫議 雖不敢作異 心護善類 隨事救正 有足稱者 (중략) 然篤好經訓 至老不懈 世以此賢之)

39 그는 또한 민본(民本)사상과 위민(爲民)사상에 근거하여 언로(言路)와 공론(公 論)을 중시했던98) 기묘사림을 본받아 직간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이렇듯 시세 와 타협하지 않는 허엽의 태도는 그의 전정(前程)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정도 였다.99) 여기에 그의 또 다른 스승인 윤정과 서경덕 역시 김굉필의 학통을 이은 이연 경의 문인이라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허엽의 사상적 기반이 기묘사림의 학통에 이어져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97) 宣祖實錄 卷196, 39年(1606 丙午) 2月 12日(辛亥) 기묘년과 을사년 사이에 큰 사화 가 잇달아 일어나면서 선비들의 사기가 떨어질 대로 떨어졌으나 다행히도 성상께서 즉 위하시어 이황이 소명을 받들고 오게 되었습니다. 관학(館學)의 제생(諸生)이 강론을 같 이 하지는 못하였으나 송연(竦然)히 긍식(矜式)하는 데가 있어서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우러르고 신명처럼 믿었으므로 사습이 크게 혁신되었고 사람들이 모두 격앙되었습니다. 거기다 허엽 유희춘 기대승 등의 무리가 뒤를 이어 대사성이 되어 교도하였으므로 그 뒤 얼마 안 되어 사습이 점점 혁신되었습니다. (己卯乙巳年間 大禍繼出 士氣摧沮 而 幸賴聖上卽祚 李滉承召而來 館學諸生, 雖不得相與講論 而竦然有所矜式 仰之如山斗 信之 如神明 故 士習丕變 人皆激昻 而如許曄柳希春奇大升之輩 相繼爲大司成 而導迪之矣 厥 後未幾 士習漸變) 仁祖實錄 卷2, 1年(1623 癸亥) 5月 11日(庚子) 지사 신흠(申欽)이 아뢰기를 선비를 기르는 책임은 전적으로 대사성에게 달려 있으니, 반드시 적임자를 얻은 뒤에야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훌륭한 인재를 기를 수 있습니다. 선(先)왕조 때에는 오직 허엽과 구봉 령(具鳳齡)이 적임자였습니다. 지금 자리가 비어 있으니 작질(爵秩)에 구애받지 마시고 반드시 적임자를 얻는 데 힘을 기울이소서. (知事申欽曰 養士之責 專在於大司成 必得其 人 然後可以正士習 養賢才也 在先朝 惟許曄 具鳳齡, 能稱其任 今方有闕 請毋拘爵秩 必 以得人爲務) 98) 趙光祖, 靜菴集 卷,2 司諫院請罷兩司啓一 언로가 통하는 것과 막히는 것은 국가에 가장 긴요하다. 언로가 통할 때는 나라가 다스려져서 편안하며, 막힐 때는 어지러워져서 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임금은 언로를 넓히는 데 힘써야 한다. 위로는 공경(公卿)으로 부터, 아래로는 여항(閭巷)과 시정(市政)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기 말을 할 수 있 어야 한다. (言路之通塞 最關於國家 通則治安 塞則亂亡 故人君務廣言路 上自公卿百執事 下至閭巷市井之民 俾皆得言) 99) 다음 실록 의 기사에 그 같은 사실이 드러난다. 明宗實錄 卷30, 19年(1564 甲子) 7月 20日(庚申) 허엽은 마음을 세움이 조심스러웠 고 올바랐다. 지난날 승지로 경연에 입시하여 기묘년간의 사람들을 구제해 줄 것을 아뢰 었는데 언론이 간절하고 곧았으나 상께서 달갑게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직(內職)에 머 물러 있지 못하고 외직(外職)을 구해 지방에 보직되었으나 또 이양(李樑) 등에게 밉보여 파직되었다가 오래지 않아 다시 서임되었다. (許曄爲慶州府尹 立心近正 頃爲承旨 入侍經 席 申救己卯之人 言論切直 上厭聞之 不得留內 求出補外 又爲奸臣李樑等所忤見罷 未久復 敍 )

40 4) 花潭 徐敬德 : 獨創的 思惟의 方式 허엽의 학문은 나식 김안국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의 복잡한 사승 관계 속 에서 형성되었지만, 그들 중 허엽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화담 서경 덕이다. 허균이 나의 선친께서는 화담 선생에게서 가장 오래 배웠다 고 증언한 것이나,100) 실록에 소재한 기록들은 허엽과 화담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했는지를 보여 준다.101) 앞에서 인용한 노수신의 글에는 허엽이 여러 스승들을 거친 뒤 가장 마지막에 야 서경덕에게 사사한 사실이 드러나는데, 이들이 서로를 만나 사제의 관계를 맺 게 된 계기는 초당집 의 기록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올해 2월, 내가 관서(關西)에서 돌아오는 도중 옛 도읍인 개성에 들러 화담 서 선생을 찾아뵈었다. 정유(丁酉, 1537) 무술(戊戌, 1538) 연간에 선생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오셨으므로 나는 일찍이 숙소에서 (선생을) 두 번 만나 뵌 적이 있었 다. 이때에 나는 비로소 학문에 뜻을 두게 되어 거듭 절하며 가르침을 청했고, 선 생은 도(道)에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일러 주셨다. (당시) 나는 우둔하여 그 말씀하신 바를 깨닫지 못하였고, 물러나와서까지 그것 100) 許筠, 惺所覆瓿稿 卷23, 說部2, 惺翁識小錄 中, 徐花潭六日不食而無飢乏之色 先大 夫學於花潭先生最久 101) 허엽과 화담 서경덕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실록 의 기사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明宗實錄 卷14, 8年(1553 癸丑) 5月 25日(庚午) 허엽(許曄)을 홍문관 교리에 임명하였 다. 허엽은 일찍이 화담 처사(花潭 處士) 서경덕(徐敬德)에게 수학하여 얻은 바가 꽤 있 었다. (曄嘗學於花潭處士徐敬德 頗有所得) 明宗實錄 卷28, 17年(1562 壬戌) 1月 25日 (庚戌) 허엽은 화담 서경덕을 스승으로 모 셔 학문과 조행(操行)에 볼 만한 점이 있었다. 처음에 서경덕을 따라 배우던 자가 매우 많았으나 서경덕이 죽자 모두들 배반하고 떠났는데 오직 허엽과 박순(朴淳)만이 변치 않 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화담의 제자를 말할 때에는 이 두 사람으로 으뜸을 삼는다.(曄 師事花潭徐敬德 學問操行 有可觀者 初從敬德學者甚衆 敬德卒 無一人不叛去 惟曄與朴淳 不變 故至今稱花潭弟子者 以二人爲首) 明宗實錄 卷29, 18年(1563 癸亥) 8月 17日 (癸亥) 삼척 부사 허엽 일찍이 화담 서 선생의 문하에 종유하여 대략 학문의 길을 알아서 언제나 옛사람을 사모하는 뜻이 간절 했다. (三陟府使許曄 曾遊於花潭徐先生之門 粗知爲 學之方 常切慕古之志 宣祖修正實錄 卷14, 13年(1580 庚辰) 2月 1日(辛未) 동지중추부사 허엽이 졸하였다. 허엽의 자는 태휘(太輝), 호는 초당(草堂)이다. 젊어서 화담 서경덕을 따라 배웠고 노수 신과 벗하였으므로 사류로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朔辛未 同知中樞府事許曄卒 曄字太 輝 號草堂 少從花潭徐敬德學 與盧守愼爲友 以士類著名)

41 을 생각하였으나 역시 깨닫지 못했으며, 아무리 골몰하여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인간의 타고난 천성은 민멸(泯滅)하지 않는 것에 있으므로 3~4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선생이 말씀하신 뜻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한 잔의 물에 물 한 모금을 더한 것과 같았으니 나의 기쁨을 알 만하다. 만일 다시 선생을 뵙게 된다면 장차 얕은 깨달음을 바로잡을 수 있을 듯하여 다시 만나 뵙길 청하였고 이 번에 가게 된 것이다. 선생을 따라 하루를 기다려 그날 밤, (선생에게) 나아갔다. 선생은 말에서 떨어 져 팔을 다치고 상처를 입었는데도 좌정(坐定)한 채 몇 마디를 나에게 물었다. 전 에 한양에 있을 때 두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을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 네. 만난 지가 오래 되었는데 혹 깨달은 것이 얼마나 되는가? 하시니 나는 머리를 숙이고 답하여 깨달은 바가 없음에 용서를 구하고 명덕(明德)에 관해 묻기를 청하 였다. (하략)102) 위의 글은 허엽이 노수신에게 지어 보낸 것으로서 글의 말미에 그 날짜가 가 정(嘉靖) 계묘(癸卯) 3월 로 표기되어 있는데, 계묘년 은 1543년(중종38)이다. 이 글에는 당시 허엽이 관서 지방을 돌아보고 귀향하는 길에 개성에 들러 화담 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는데, 아마도 이때로부터 화담과 허엽 간의 사승 관계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허엽이 화담으로부터 원리기 등을 구술해 전해 받은 것이 화담의 몰년(沒年)인 1546년의 일이었으므로, 허엽이 실 제 화담의 문하에서 수학한 기간은 대략 4년 정도였음을 알 수 있다. 허엽의 화담에 대한 존숭은 실로 대단한 수준이어서 명종은 허엽에 대해 화 담을 높이는 사람은 극존하고 낮추어 보는 사람은 악평을 한다. 고 힐난할 정도 였고, 퇴계 역시 스승의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리지 않고 극존(極尊)한 다. 는 평을 글에 남기기도 했다.103) 허엽은 화담의 사후에도 그의 추숭(追崇)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며, 화담의 학문이 오직 횡거(橫渠)에게서 나왔다고 논평한 이이와 심각하게 대립하는 등104) 끝까지 화담에 대한 경모의 자세를 잃 102) 許曄, 앞의 책, 序, 送盧寡悔序 歲仲春余之自關西還也 道由開州舊都 投謁于徐可久先 生 丁酉戊戌間先生之赴擧於國都也 余嘗兩得見于舍館 於時也 余始有志於學 再拜而請敎 先生語之以進道之方 余尙蒙昧 莫悟其所謂也 退而思之 亦未得焉 雖汩沒間斷 不知其紀極 而秉彝之天 有不盡泯滅者 經過三四年後 始怳然似有得夫先生所詔之旨 杯潦之量 勺水加之 其私喜可知也 如得更見于先生 則將撥正其鄙得而請益焉 是行也 隨尊長 不擅留一日 當夜 而進 先生以墜馬傷肱新瘡坐定數語 問之曰 曩在國都 兩度接話 吾尙不忘 隔面亦云久矣 若 所得幾何 曄伏而唯唯 謝無有所得 請問明德 (하략) 103) 황광욱, 화담 서경덕의 철학사상, 심산, 2003, p.14 참조

42 지 않았다. 이렇듯 허엽은 때로 지나치다는 평을 들을 만큼 화담 문인으로서의 자기 존재 를 적극적으로 표방하였는데,105) 이러한 허엽의 태도는 화담이 그의 삶에 있어 어느 정도의 위상을 지닌 존재인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 허엽이 죽은 뒤 화담을 모신 화곡서원(花谷書院)에 함께 배향된 사실 역시, 이 같은 사실을 입증하는 하 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조보감(國朝寶鑑) 에서는 화담 서경덕의 생애와 학문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고(故) 처사(處士) 서경덕을 의정부 우의정에 증직하였다. 경덕은 개성(開城) 사 람인데 가세가 외롭고 한미하였으며 농사를 생업으로 하였는데 몹시 가난하였다. 경덕은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였고 스스로 학문에 분발하였다. 일찍이 어버이의 명 령으로 과거에 응시하여 진사에 올랐으나, 곧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다시는 응시하 지 않았다. 화담(花潭) 곁에 집을 짓고 도의(道義) 공부에 마음을 쏟았는데, 그의 104) 李肯翊, 燃藜室記述 卷9, 中宗朝故事本末, 中宗朝遺逸 명종조에 호조 좌랑을 증직했고 선조조에 더 증직할 것을 청했는데 박순ㆍ허엽은 그 의 문인이기 때문에 그 의논을 더욱 힘써 주장했다. 이때에 임금이 이르기를 경덕이 저술한 책을 내가 가져다가 본 즉 몸을 수양하는 일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니, 그 러면 이것은 수리학(數理學)이 아닌가? 그 공부가 의심할 점이 많다. 하니 이이가 아뢰 기를 경덕의 학문은 횡거(橫渠)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의 저술한 글이 성현의 뜻에 꼭 맞는지는 신이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고 조예가 심원하여 스스로 터득 한 묘리가 많으니 문자나 언어의 학문은 아닙니다. 하였다. 임금이 드디어 명하여 우의 정을 증직했고, 시호를 문강(文康)이라 하였다. 석담일기 허엽이 매양 공을 존경해서, 기자(箕子)의 정통을 이을 만하다. 하였는데, 이이가 경 덕의 학문이 횡거에게서 나왔다고 논했다는 것을 듣고 허엽이 이이를 책망하여 그대의 말이 이와 같으니 내가 깊이 근심하는 바이다. 만일 화담의 학문이 소강절ㆍ장횡거ㆍ정 자ㆍ주자를 겸했다고 하면 옳을 것이니, 그대가 전심하여 10여 년 글을 읽은 뒤에라야 화담의 지위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니 이이가 말하기를 만일 내가 글을 더 오래 읽으면 읽을수록 공의 의견과 반대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이보다 먼저 허엽이 이황에 게 화담은 횡거에게 비할 만합니다. 라고 하니 이황이 화담이 지은 글 중 무엇을 횡 거의 정몽(正蒙) 에 비할 것이며 무슨 글을 횡거의 동서명(東西銘) 에 비할 수 있는 가? 하였다. 이에 허엽이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더욱 심히 과장하 였으니 알지 못하고 망녕되게 말한 것이었다. 석담일기 105) 李植, 澤堂集 別集 卷15, 雜著, 追錄 허초당(許草堂)은 화담을 너무나 지나치게 앞세워 주장하곤 하였으므로 퇴계가 항상 그의 집착하는 병통을 지적하였다. (草堂主張 花潭太過 退溪常病其執滯)

43 학문은 오로지 궁리(窮理)ㆍ격물(格物)을 일삼아서 혹은 여러 날 묵묵히 앉아 있기 도 하였다. 그가 궁리 공부를 하는 데 있어 하늘의 이치를 궁구하려면 천(天) 자 를 벽에 써 놓고 연구하였고 이미 궁구한 뒤에는 다시 다른 글자를 써 놓고 차분 히 생각하고 힘써 연구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여러 해를 이와 같이 하여 자 신도 모르게 환히 꿰뚫은 뒤에 독서하여 터득한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스승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에 많은 공력을 들였다. 그러나 후세 사람이 나의 말을 따르면 나와 같은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의 학설은 대부분 횡거(橫渠)의 학설을 주장하여 정자(程子)ㆍ주자(朱子)와는 약 간 달랐으나 마음에 자득(自得)하여 만족스럽게 스스로 즐기며 세상의 시비(是非) ㆍ득실(得失)ㆍ영욕(榮辱)에는 털끝만큼도 개의하지 않았으며 집에 먹을 것이 자주 떨어져도 태연스럽게 지냈다.106) 위의 글에는 화담의 학문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각과 평가가 드러나 있다. 화 담의 공부 방식은 대개 자득(自得) 이란 말로 압축되는데, 이는 화담 자신이 자 득 을 강조한 것과 이이가 화담의 학문을 일러 스스로 터득한 맛이 많다 고 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107) 많은 이들이 화담의 학문을 평가함에 있어 스스로 얻어냈기 때문에 독창적이다 라거나 도통(道統)과 다르거나 그에 근거하 지 않았기 때문에 이단(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이다 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08) 실제로 이이가 그가 저술한 것이 성현의 설과 꼭 들어맞는지는 모르겠다 고 하면서도 세상의 이른바 학자라는 자들은 성현의 말만을 모방하기 때문에 마음 속에 얻는 것이 거의 없지만, 경덕은 깊이 사색하고 독자적인 조예를 가져 스스 106) 國朝寶鑑 卷2, 宣祖朝3, 8년(乙亥, 1575) 107) 李珥, 栗谷全書 卷10, 書, 答成浩原 요사이 정암(整菴)ㆍ퇴계(退溪)ㆍ화담(花潭) 세 선생의 설을 보니 정암이 최고고 퇴계가 다음이며 화담이 또 그 다음인데, 그 중 정 암과 화담은 스스로 터득한 맛이 많고, 퇴계는 본받은 맛이 많습니다. (중략) 화담은 총 명이 남보다 뛰어났으나 묵직함이 부족하며 그 독서와 궁리가 문자에 구속 받지 않고 자기의 의사를 많이 썼습니다. (중략) 화담은 하나의 기가 오래 존재하여 가는 것도 지 나가지 않고, 오는 것도 잇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화담이 기 를 보고 이(理) 로 아 는 병통이 있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부분적이건 전체적이건 간에 화담의 견해는 스스로 터득한 것입니다. (近觀整菴 退溪 花潭三先生之說 整菴最高 退溪次之 花潭又次之 就中整 菴花潭 多自得之味 退溪多依樣之味 (중략) 花潭則聰明過人 而厚重不足 其讀書窮理 不拘 文字 而多用意思 (중략) 而花潭則以爲一氣長存 往者不過 來者不續 此花潭所以有認氣爲理 之病也 雖然 偏全閒 花潭是自得之見也) 108) 황광욱, 앞의 책, p.133 참조

44 로 터득한 묘리가 많으므로 언어나 문자만을 힘쓰는 학문은 아니다 라고 높이 평 가했던 것은 화담의 학문을 바라보는 당대의 이중적 시각을 보여 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109) 이렇듯 화담 학문의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되는 자득 은 학문의 이해에 있어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바탕이 되는 만큼, 그의 학문에서 나타나는 개 방적이고 탄력적인 측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110) 이는 즉, 화담의 철학에 주 자 철학 뿐 아니라 소옹(邵雍)과 장재(張載), 그리고 일부나마 도가적 경향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화담 철학의 다양한 면모는 퇴계의 철학이 정주 학을 정통으로 하여 다른 사상을 이단으로 배척한 것과는 대조적이며, 그런 연장 선에서 퇴계와 율곡이 화담 철학을 비판했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111) 다음의 글을 보자. 또한 질문하기를 허공(許公) 엽은 자기 스스로 학문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십니 까? 하니 스스로 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했다. 박여룡(朴汝龍)이 질문하기를 그의 학문은 원류(源流)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화담은 물건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비록 마땅하지 못한 공궤(供饋)라도 받 고 주는 자가 없으면 여러 날을 굶고 앉았더라도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는데, 이것 은 선도(禪道)와 같은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허엽이 배워 온 바입니다. 라고 답 하였다.112) 율곡과 그 문인들 간의 문답에서 알 수 있듯, 율곡은 화담의 학문이 선적(禪 的) 인 요소를 강하게 띠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 같은 경향이 그의 문인들에게 서도 나타난다고 보았다. 후대인들의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아, 김인후(金麟厚) 는 화담의 설이 돈오(頓悟)의 첩경(捷徑)으로 빠질까 염려했다 113)고 하며 유수 원(柳壽垣) 역시 화담의 학문에 노자나 장자의 기미가 스며 있어 후대인들이 다 109) 國朝寶鑑, 앞의 글 110) 신병주, 南冥學派와 花潭學派 硏究, 일지사, 2000, p ) 황광욱, 앞의 책, pp.15~16 112) 李珥, 앞의 책, 卷31, 語錄 上 又問 許公曄 自以爲擔當學問乎 曰 自以爲擔當矣 汝 龍問其學無乃有源流乎 曰 花潭 有與者則雖不宜之饋 皆受 無與者則飢坐累日 亦不求於人 此似禪道 是許之所從來也 113) 宋時烈, 宋子大全 卷154, 碑, 河西金先生神道碑銘 於花潭則慮其弊流於頓悟之捷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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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수정본-1 2010. 7 통권2호 2 CONTENTS Korea Oceanographic & Hydrographic Association 2010. 7 2010년 한마음 워크숍 개최 원장님께서 손수 명찰을 달아주시면서 직원들과 더욱 친숙하게~~ 워크숍 시작! 친근하고 정감있는 말씀으로 직원들과 소통하며 격려하여 주시는 원장님... 제12차 SNPWG 회의에 참석 _ 전자항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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