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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훈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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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1 년도자원봉사교육생일정 Ⅰ. 이론교육 순번강의주제일시시간강사비고 1 인천지역의선사문화 1.29( 토 ) 14:00~16:00 2 김석훈 2 인천의고인돌문화 - 강화도를중심으로 1.29( 토 ) 16:00~18:00 2 강동석 3 미추홀의위치에대하여 2.12( 토 ) 14:00~16:00 2 김상열 4 삼국시대의인천 - 문학산성을중심으로 2.12( 토 ) 16:00~18:00 2 백종오 5 강도시기고려의문화 2.26( 토 ) 14:00~16:00 2 김형우 6 유적을통해본강도시대 2.26( 토 ) 16:00~18:00 2 이희인 7 7 대어향과고려시대의인천 3.5( 토 ) 14:00~16:00 2 강옥엽 8 조선시대인천의행정체계 3.5( 토 ) 16:00~18:00 2 남달우 9 조선시대인천의교육기관 3.12( 토 ) 14:00~16:00 2 연창호 10 고문서를통해본조선시대인천의인구 3.12( 토 ) 16:00~18:00 2 임학성 11 인천석남동출토복식 3.19( 토 ) 14:00~16:00 2 송미경 12 국가의보장지강화 3.19( 토 ) 16:00~18:00 2 배성수 13 근대열강의침략과인천의개항 3.26( 토 ) 14:00~16: 청일전쟁, 러일전쟁과인천 3.26( 토 ) 16:00~18:00 2 서민교 15 개항후근대문물의유입과조계설정 4.2( 토 ) 14:00~16:00 2 황은수 16 개화기 ~ 일제강점기인천의산업과경제 - 철도를중심으로 4.2( 토 ) 16:00~18:00 2 견수찬 17 일제강점기인천의도시발전과정 4.9( 토 ) 14:00~16:00 2 추교찬 18 목공예 ( 목가구 ) 4.9( 토 ) 16:00~18:00 2 황지현 19 고려초기청자및녹청자 4.16( 토 ) 14:00~16:00 2 이종민 20 토기의이해 4.16( 토 ) 16:00~18:00 2 박진영 21 고려시대청자 ( 상감청자포함 ) 4.23( 토 ) 14:00~16:00 2 장남원 22 분청사기 4.23( 토 ) 16:00~18:00 2 안성희 23 조선시대백자 ( 청화백자포함 ) 4.30( 토 ) 14:00~16:00 2 방병선 24 불상의이해 4.30( 토 ) 16:00~18:00 2 신은영 25 조선시대회화사 ( 초기 ~ 후기 ) 5.7( 토 ) 14:00~17:00 3 김현권 26 조선말기회화사 5.14( 토 ) 14:00~16:00 2 윤현진 27 한국근대회화사 5.14( 토 ) 16:00~18:00 2 이현아 28 금속공예 ( 범종, 은장도포함 ) 5.21( 토 ) 14:00~16:00 2 김윤정 29 설문조사및실무교육공지 5.21( 토 ) 16:00~17:00 1 ( 박물관 ) 합계 58
4 Ⅱ. 실무교육및시연평가 실무교육 - 교육기간 : 5. 23( 월 ) ~ 7. 2( 토 ) - 교육내용 : 전시실유물해설과체험교실운영교육 1차시연및평가 - 시연및평가기간 : 7. 11( 월 ) ~ 7. 23( 토 ), 평일및토요일 - 시연내용 : 전시실유물코너및체험프로그램중선호주제신청후 - 시연내용 : 시연실시 - 평가방식 : 박물관-자원봉사자공동평가단구성후시연성적평가 Ⅲ. 워크샵 수습봉사자오리엔테이션및답사 - 워크샵일시 : ( 토 ) 09:30~16:00 예정 - 인천지역관내박물관또는문화유적 Ⅳ. 수습봉사 수습자원봉사자활동 - 수습봉사기간 : 월 ~12월 - 수습분야 : 유물해설, 체험교사, 간행물편집, 영상기록등 - 의무수습봉사시간 : 40시간이상 Ⅴ. 2차시연및평가 2012년도위촉분야시연및평가 - 시연및평가기간 : 12월중 - 시연내용 : 11월중내년도위촉분야신청후심화된시연- 및평가 - 평가방식 : 박물관-자원봉사자공동평가단구성후시연성적평가 2 차평가후위촉자선정평가단회의에서종합평가후위촉및유급결정 실무교육및시연평가의세부일정은추후공지
5 / Contents 인천지역의선사문학 7 인천의고인돌문화 - 강화도를중심으로 23 미추홀의위치에대하여 37 삼국시대의인천 - 문학산성을중심으로 61 강도 ( 江都 ) 시기고려의문화 87 유적을통해본강도시대 99 7 대어향과고려시대의인천 111 조선시대인천의행정체제 129 조선시대인천의교육기관 143 고문서를통해본조선시대인천의인구 163 인천석남동출토복식 171 국가의보장지강화 181 근대열강의침략과인천의개항 193 청일전쟁, 러일전쟁과인천 207 개항후근대문물의유입과조계설정 221 개화기 ~ 일제강점기인천의산업과경제 철도를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인천의도시발전과정 251 한국의목공예 257 고려초기청자및녹청자 275 토기의이해 287 고려시대청자 ( 상감청자포함 ) 301 분청사기 315 조선시대백자 ( 청화백자포함 ) 323 불상의이해 333 조선시대회화사 ( 초기 ~ 후기 ) 347 조선말기회화사 367 한국근대회화사 379 금속공예 ( 범종, 은장도포함 )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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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석훈 ( 영선고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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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천지역의선사문화 9 김석훈 ( 영선고등학교 ) 목차 Ⅰ. 머리말 Ⅱ. 구석기시대 Ⅲ. 신석기시대 Ⅳ. 청동기시대 Ⅴ. 맺음말 Ⅰ. 머리말 2000년초부터최근까지인천지역의향토 ( 지역 ) 사에대한연구가활발히진행되고있다. 특히, 고고학적분야에서는택지개발이활발하게이루어짐에따라해방이후최대의전성기를맞고있다. 이러한사회적분위기속에서 인천 은종전까지수도권의그늘에가려져 주인없는도시 로인식되어왔던점을탈피하고, 이제는자라나는 2 세들을위한애향적분위기가제고되어야할시점이다. 특히, 2014년은우리고장에서는월드컵이개최되는의미있는해이다. 따라서인천을방문할국내 외손님에대해인천의내재된향토색을표출하며, 내고장의자랑거리를알릴수있는기회를갖어야하겠다. 이를위해서는무엇보다도정체성확립을위한지침서가필요하다고생각된다. 인천지역의정체성은개항이후개항장같은임해도시로서의발전과정에서특색이나타나듯바다와연관성속에서찾아야할것이다.
10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여기서는 그 일부로서 우리 고장의 밑뿌리가 되는 인천지역의 선사문화 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구석기 시대 인간의 자연 극복력이 부족했던 선사시대, 그 중 구석기시대는 자연환 경이 당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였다. 특히 자연 환경과 생활환경이 어우러진 장소에 동굴이나 물가에서 막집을 짓고 살던 구석기인은 사냥 어로 채집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이어갔고, 환경의 변화 에 따른 먹거리의 변화는 生과 死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임과 동시에 이동의 계기를 제공하였던 셈이다. 태초의 인천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를 살핌에 있어, 먼저 인천지역 에도 구석기 유물 및 유적은 존재할까? 더 밝혀질 가능성은 없을까? 그리 고, 선사시대부터 중요한 환경 요소로 작용했던 현재의 황해 모습은 언제 형성되었을까?라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1. 인천지역의 구석기 시대에 대한 특징은?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의 유형은 동굴유적(cave site)과 해안가 강가의 한데유적(open site)으로 구별되는데, 동굴유적의 경우 동굴 자체가 집 역할을 하였고, 내부에서는 각 동물 뼈화석들이 출토되어 구석기인들의 식생활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을 밝힐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 물가의 한 데유적은 주변의 자갈돌을 이용하여 뗀석기를 가공함으로서 그들의 석기 제작 기술은 물론 삶의 전반에 관한 단서를 파악할 수 있다. 인천지역의 경우 현재까지 구석기 시대의 단일 유적은 찾지 못했지만, 지형상 해안가에서의 존재 가능성이 크며, 해안가에 접한 야산의 동굴이 나 바닷가의 해식동 등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특히 강화도 북부 일대 는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기수역(汽水域)이며, 한강과 임진 예성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11 인천지역의 선사문화 인천지역 구석기 시대의 흔적은 무엇이 있을까? 구석기는 크게 격지(flake)와 몸돌(core)로 나뉜다. 격지는 연모로 쓰 기 위해 큰 돌에서 떼어낸 조각이며, 몸돌은 격지를 만들고 난 나머지 돌 을 말한다. 가장 이른 시기의 전기 구석기는 돌의 가장자리 양쪽을 엇갈려 떼어 S' 자 모양의 휘임날을 만들거나 모루에 대고 때려 직접떼기의 거친 수법으 로 다목적 연모를 만드나, 후기 구석기로 갈수록 간접떼기로 정교한 날을 가진 전문적 용도의 석기를 만들게 된다. 석기는 용도에 따라 주먹도끼 찍개와 같은 사냥도살용, 긁개 밀개의 부엌조 리용으로 나뉜다. 인천지역에서 찾은 유물을 살펴 보자. ① 주먹도끼(Hand-axe) : 사냥용으로 분류되는데, 석재의 가장자리에 엇갈림 떼기를 베풀어 날카로운 날을 만들었으며, 유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암을 사용하였다. 영종도 송산 유적(중산동 해안가)에서 지표 채집하였다. ② 사냥돌(Bola-stone) : 사냥용 연모로서 돌을 공처럼 둥글게 가공하 여 칡넝쿨과 같은 끈을 묶어 던져 먼거리에 있는 짐승을 잡는 연모이 다. 재질은 석영이며, 송산 유적에서 지표채집하였다. ③ 몸돌(Core) : 격지석기를 만들고 난 나머지 부분을 도구로 사용하였 으며, 사냥돌과 같은 둥근 모습이다. 재질을 석영제이며, 삼목도에 서 발견되었다. ④ 긁개(Side-scraper) : 격지석기로서 날 부분의 가장자리에 정교한 떼기를 베풀어 도구를 만들었다. 동물가죽 혹은 나무껍질을 벗기는 데 사용하는 부엌조리용 도구이다. 삼목도에서 발견되었다. 이밖에 강화군 오상리에서는 석영제 몸돌과 격지석기가, 장정리에서도 뗀석 기가 출토된 바 있다. 이 도구들은 구석기 시대의 전형적인 뗀석기이며, 주변에 널리 산재된 암석을 이용해 도구를 제작하였다. 또한 주로 해안가 및 야산에서 찾아지 고 있어 어로 사냥생활과 밀접한 당시 도구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들이
12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구석기 유적을 찾는데 단서를 제공해 줄 것이다. 또한 문학산이나 삼목도 발굴조사에서 구석기의 특징을 지닌 지층(고토 양층)이 찾아져 유적이 있을 가능성을 더욱 크게 하고 있다. 3. 인천지역에서 더 존재할 가능성은? 지금까지 인천과 주변도서의 조사 상황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인 천과 가까운 해안지역인 경기도 화성군과 평택지역에서 구석기가 찾아지 며, 충남 해역의 초락도 웅도 안면도 호도 빙도에서 몸돌 및 격지 석기와 함께 구석기 시대의 퇴적층이 확인되어 황해안 지역에서 구석기 유적의 존재에 확신성을 더해 준다. 현재 상황속에서 행정당국과 유관 학술 기 관의 끊임없는 지원과 활동을 위한 지혜가 모아져야 할 것이다. 4. 구석기 시대의 황해안은? 구석기 시대는 지질연대에서 신생대 제4기 갱신세(Pleistocene)에 해 당한다. 이 시대는 빙하기와 간빙기가 번갈아 발생하며, 우리 나라는 빙 하가 덮은 흔적은 없고 빙하주변지역(peri-glacial area)으로 남아 있었 음이 밝혀졌다. 빙하기에는 한국 중국 일본이 연륙(land-bridge)된 상태로서 걸어서 왕 래가 가능하였다. 마지막 뷔름빙하기는 지금부터 약 1만년 전에 끝나며, 점차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바다의 기원을 이룬다. 황해의 경우 빙하기에는 육지로, 간빙기에는 현재와 비슷한 바다가 형 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서 최후 간빙기로 추정되는 12~13만년 전의 해수면은 현재보다 적어도 3m 이상 높았으며, 그 이후 점차 빙하가 도래하면서 해수면의 하강과 한랭하고 건조한 기후에 따른 사막과 황토 화 작용이 중요한 환경 변화로 밝혀지고 있다. 빙하기에는 현재의 해수면 보다 낮은 지역에서 이동과 생활이 있었을 것이며, 당시의 흔적은 수몰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3 인천지역의 선사문화 13 Ⅲ.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약 1만년전에 끝남과 동시에 빙하가 물러가고, 따뜻한 자연환경 속에서 중석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다. 이 때 부터를 후빙기라 부른다. 현재 중석기 시대의 흔적들이 점차 밝혀지고 있으나, 황해 섬 지역에서는 신석기인이 남긴 삶의 흔적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 구석기 시대가 뗀(타제)석기와 이동 생활을 특징으로 했다면, 인천 섬 지역의 신석기인들은 간(마제)석기와 토기의 사용이 공통적 요소이다. 인천지역에서 신석기 유적이 확인된 섬은 경기만을 중심으로 위로부터 백령도 연평도 모이도 당도 강화도 석모도 주문도 볼음도 우도 덕적도 소야도 굴 업도 백아도 울도 문갑도 장봉도 시도 신도 모도 용유도 삼목도 영종도 작약도 영흥도 선재도 대부도 오이도 등 대부분의 섬에서 찾아지며, 모두 130여 곳 에서 확인되었다. 섬지역의 고고유적은 지리적 여건상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원형 보존이 가능한 곳이 많지만, 최근 지자체의 실시와 함께 개발(매립) 로 인한 형질변경과 주민들의 무관심이 어울려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인천 내륙지역의 경우도 송도 동막 등 해안가를 중심으로 많은 유적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구두로 전언되고 있어 아쉬움만 남는다. 섬지역도 더 훼손되기 전에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지금까지 나타 난 섬지역의 생활상을 중심으로 알아보자. 1. 섬지역에 신석기 유적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먹거리(어 패류)가 풍부하였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천 중심의 경기만 일대는 세계 5대 갯벌중의 하나로서, 어 패류가 자랄 수 있는 바다환경을 갖춘 식량자원의 寶庫이기 때문이다. 갯벌 형성의 유리한 점은 이 지역일 대가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이다. 약 8~9m에 이르는 간만의 차는 한 강으로부터 유입되는 부유물질을 바닷가에 차분히 가라앉혀 갯벌을 만들 기 때문이다. 또한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져 많은 어류가 자랄 수 있는 해 수공간을 이루고 있고, 수심도 깊지 않아 연해에서는 수중 어로생활도 가 능하였을 것이다.
14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또한내륙과섬사이에거리가매우가까워신석기인이섬지역으로유혹되었던것이다. 특히, 갯벌은선사시대인간의활동범위속에포함된다는점에서중요한의미를가지고있다. 2. 어떤방법으로바다를건넜을까? 인천지역의경우가까이는영종도부터멀리는덕적군도에이르기까지섬마다유적이분포하는데, 동력이없던신석기시대에어떻게이동하였을까가궁금증을더해간다. 유사한관련자료를통해가늠해볼수있겠다. 아직황해안에서는선사시대에배와관련된유물은찾지못했으나함북서포항유적에서뼈로만든노 ( 櫓 ) 가찾아졌다. 그리고, 이웃중국의경우기원전 6000년전에해당하는하모도유적에서나무노가여러개찾아져당시에도배를이용했다는확연한흔적을찾아볼수있다. 아마도몇년전신안앞바다에서침몰한중국 ( 원나라 ) 배가갯벌속에묻혀남아있었듯이, 당시의배도어떤형태로든지흔적의일부는남아있으리라생각된다. 따라서유물의보존환경이양호한해양토탄층의조사가절실히필요한것이다. 아마도통나무배나뗏목 ( 혹은떼배 ) 을만들어연안항해기법으로이동하였을것이며, 오랜경험에의해해류보다조류의흐름을적절히이용했을것이다. 가까운섬간의경우는썰물때드러난갯벌 ( 특히모래펄갯벌 ) 을통해건넜을것이다. 3. 삶의흔적 ( 유적 ) 은어떻게남아있을까? 황해섬지역의경우유적의형태는크게 2가지형태이다. 하나는한장소에서여러시기에걸친삶의흔적 ( 文化層 ) 이겹겹이층위 ( 層位 ) 를이루며나타나는유물포함층 ( 遺物包含層 ) 유적이며, 다른하나는패각이쌓여있거나경작지에널려있어형성된조개더미 ( 貝塚 ) 유적이다. 지금까지인천섬지역의경우조개더미유적이약 60여곳, 유물포함층유적이 20 여곳으로조개더미유적이훨씬많다. 유물포함층유적의대표적인예는영종도송산유적이며, 조개더미유적
15 인천지역의 선사문화 15 은 시도 숙이 백령도 말등 영흥도 소장골 덕적도 진리 등 각 섬마다 산재되 어 있다. 다음, 섬지역의 신석기인들은 어느 곳을 택하여 살았을까? 유적들이 분 포하는 위치와 주변 지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유물포함층의 경우 만(灣)에 형성된 사주(砂洲) 혹은 사구(砂丘) 지형 에 많이 형성되며, 또한 해안가에 평평하게 펼쳐진 대지(주로 경작지로 이용)에서도 그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다. 조개더미도 해안가 혹은 해안가로 뻗은 산자락(串)에 형성된 경우가 많 다. 물론 바다에서 떨어져 나타나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들의 공통된 특 징은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뒤로는 산이 둘러싸여 추운 바람을 막아주며, 앞으로는 갯벌 그리고 바다와 접하고 있으나 만(灣) 지 형의 특성상 외해로부터의 물난리는 그다지 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 지 밝혀진 유적의 높이는 해발고도 약 10m 이내에 집중 분포하고 있다. 현대 사람들이 보아도 아늑한 지형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대부분 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하였을까? 이 문제는 발굴된 유적을 통해서 살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옷에 대한 자료는 보존의 어려움으로 자료를 찾기란 힘들다. 오늘날까 지 남아 있는 예가 드물며, 짐승의 가죽이나 나뭇잎 등을 이용하였을 것 이며, 송산유적에서 출토된 가락바퀴(방추차)는 직조와 관련시킬 수 있는 한 예가 될 것이다. 식량은 유적의 성격에서 나타나듯 조개더미(貝塚) 유적이 대부분을 차 지함으로서 일부는 알 수 있다. 조개더미의 구성을 보면 인천 섬지역의 경우 90% 이상이 굴(石花)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굴이 풍부하여 주된 식 량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어류 및 기타 식량의 구체적 이름은 발굴 유적이 증가함으로서 밝혀져야 할 과제인 것이다. 눈들유적에서 씨앗의 일부가 확인되었으나 현재 분석중에 있다. 해안가 유적인 영종도 송산유적이나 삼목도 운서동유적에서 다수의 화 덕자리가 찾아졌는데, 그 용도는 아마도 이들을 조리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것이다.
16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집터는경기만지역중영종도운서동눈들유적에서모두 4기가발굴되었다. 형태는원형내지말각방형이며, 모두땅을파고만든움집이다. 바닥은단단히다지기위해점토를굳혀처리하였고, 기둥을세우기위한기둥자리도확인되었다. 집터내부는도구를저장하기위한저장구덩 ( 竪穴 ) 과취사나난방을위해만든화덕자리가확인되었다. 의식주문제는발굴유적의절대적증가를기다려야할것이며, 자료의축적이이루어지면삶의모습이선명해질것이다. 또한조개더미유적을통해해당유적에서살았던기간, 계절, 이동경로등이파악되어야할것이다. 5. 신석기시대의흔적 ( 유구 ), 유물종류는무엇이있을까? 유구의종류는화덕자리, 집터, 돌무지, 움 ( 저장구덩 ) 등여러가지가있으나, 가장많이확인된화덕자리를중심으로살펴보자. 화덕자리는불을피웠던곳이다. 역할은취사나난방, 밤에는조명의역할을하지만, 인천지역의경우 ( 영종도, 삼목도유적 ) 대부분은집터가없이집중되어있어주된용도는취사였을것이다. 단지, 바닷가이면서취사시설을갖추고있음에도조개더미나여타의유적이발견되지않은점이특이하며, 앞으로해결할숙제이다. 화덕의모양은원형내지타원형으로주변의모난돌을깔아만들었고, 크기는지름이약 1m 안팎의것이가장많다. 화덕주변에서는숯과불에그을린돌과모래가섞여있으며, 내부에서는토기조각들이출토되기도한다. 유물은발굴조사나지표조사에의해확인된유적에서공통적으로토기조각들이출토된다. 아마도신석기시대이지역주민에게는토기가생활의필수품이었던것같다. 토기의생김새는한반도의경우각지역마다다양한모양이나타나는데, 인천섬지역의경우반계란형 ( 혹은포탄형 ) 으로곧은입술에뾰족한바닥을하고있다. 토기의크기는입술조각으로보아암사동유물같은대형토기는없으며, 입술지름이 20cm 정도의소형토기가많이차지한다. 제작은주변의
17 인천지역의 선사문화 17 점성이 강한 진흙과 모래알을 혼합해 사용하였으며, 그릇을 단단허게 하 기 위한 보강제로서 활석 운모 장석과 같은 광물을 고루 섞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제작수법은 질그릇의 크기에 따라 다른데, 소형이라는 점과 그릇의 단 면을 관찰해 보면 손빚기(手捏法) 내지 테쌓기(輪積法)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릇 표면에 새겼던 문양은 주목적이 장식이지만, 작업을 하기전 그릇 부위별이나 공간 배치에 따라 머리속 구상을 먼저 하였던 것이다. 따라 서, 문양은 당시 사람들의 사유관념을 나타내주는 좋은 자료이나, 대개의 경우 풍요나 다산을 기원하는 경향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문양 역시 각 지역별 전통과 보수성이 강한 흔적으로 보인다. 인천 섬 지역의 경우 부위별로 문양을 보면 입술부분은 짧은 빗금무늬 (短斜線文), 몸통부분은 고기뼈무늬(魚骨文), 바닥은 무늬없이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문양은 새겨진 속성을 분류하여 유적의 연대를 가늠하는 요 소로 쓰이기도 한다. 석기는 토기에 비해 다양하지 못하고, 수적인 면에서 간석기 보다 뗀석 기 출토유적이 많은 편이다. 유적들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것은 돌화살 촉이며, 갈돌 그물추 돌도끼 숫돌 뗀석기 등이 출토된 바 있다. 6. 유적의 연대는 어느 정도일까? 연대측정방법은 2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숯자료를 이용한 방사성탄 소연대측정(절대연대측정법)이 있고, 다른 하나는 표준 유적의 유물을 기 준으로 비교 유적과 유물양식을 서로 비교하여 선후관계를 측정하는 법 (상대연대측정법)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절대 연대측정 자료는 송산유적의 경우 C14 측정 결과 지금부터 5,080~5,365년 전(신석기 중기)으로 측정되어 인천 섬 지역에서 는 가장 오랜 연대가 검출되었다. 시도 조개더미에서도 약 3,100년 전(신 석기 후기) 안팎으로 검출된 바 있다. 상대연대측정 방법에 의해 눈들유적은 신석기 중기~후기, 삼목도 유적 은 신석기 후기로 비정되며, 기타 지표채집에 의해 밝혀진 유적도 거의 대부분 신석기 후기(약 3,000년전)로 가늠되고 있다. 앞으로 신석기 유적은 내륙에서 찾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섬지역 만
18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큼은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기록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다. 7. 신석기 시대의 황해안은? 마지막 빙하가 약 1만년 전에 후퇴하고 후빙기가 되면서 현재와 비슷 한 자연 환경을 이루게 된다. 빙하기 동안 바닥을 드러내던 황해는 기온 상승에 따라 빙하가 녹고, 낮은 지역부터 점차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여 황해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해안가 생활을 주로 하던 신석기인은 해수면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했고, 그 변화에 맞춰 선사인의 살림터도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해수면 변동은 선사시대 연구에 한 몫을 한다. 신석기 시대 황해안이 형 성과정에 대해서는 충남 태안반도 일대 가로림만의 해수면 변동을 단계 별로 연구한 결과가 있어 참고해 보자. 가로림만 조간대의 해수면 변동 곡선은 표 1 과 같다. <표 1> 가로림만의 해수면 변동 곡선 표 1 을 살펴보면 지금부터 5,000년 전을 조금 지나 현재의 해수면 에 이르렀고, 그후 현재의 해수면 보다 2m 가량 상승했다가 약 1000년이 지난 4,050년을 정점으로 점차 하강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고고학적 유적에서 나타난 각종 자료를 통해 해수면 변동을 밝힌 예도 있다. 경기도 일산의 선사유적 조사에서 실시한 규조류 분석에서도 지금 부터 6,000~5,000년 사이에 해진극상기(海進極上期)가 있었고, 지금부터 3,050± 80~2,460± 70년 사이에 현재의 해수면 보다 적어도 5m 이상의
19 인천지역의 선사문화 19 해수면 상승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충청도 전라도 해안 즉 서남부 해안 지역의 지형학적인 연구를 통 해서도 지금부터 6,000~3,000B.P 사이에 현재 해수면 보다 2~3m 정도 높 았고, 그 이후 현재까지 안정적인 해면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이 밝혀지 기도 했다. Ⅳ. 청동기 시대 1. 청동기 시대의 일반적 특징은 무엇일까? 이 시대는 한반도의 경우 보통 기원전 10~4세기에 해당하며, 처음 금속 제 연모 즉 청동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청동제품 으로 대표적인 것은 청동검이며, 동검과 함께 간석기ㆍ민무늬토기ㆍ그리 고 무덤으로서 고인돌(支石墓)ㆍ돌널무덤(石棺墓)ㆍ독무덤(甕棺墓) 등이 대표적 유적ㆍ유물이다. 경기만 지역의 경우 현재까지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특징적 요소는 강 화도의 고인돌 유적군이며, 최근에 인천 서구지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집터가 밝혀지고 있다. 여기서는 최근에 새로 발굴된 집터유적을 중심으 로 살펴보고자 한다. 2. 인천의 청동기 유적은 어디에 위치할까? 이 시대의 집터는 일반적으로 낮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그러나 경기 만지역의 경우 내륙보다는 다양한 입지조건을 보이는데, 낮은 구릉지대는 물론 해안가에도 입지함이 밝혀졌다. 입지요인은 생계경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며, 구릉과 해안 즉 육지 와 바다를 이용한 광역화된 생업 경제 체제를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즉, 구릉에 위치한 유적이 한강수계에 이르기까지 중간에 김포평야가 펼쳐져 있어 한강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고, 경기만의 영종도 송산 유적이 나 도서지역의 고인돌을 고려하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대표적인 유적은 낮은 구릉에 위치한 원당동ㆍ동양동ㆍ검단동 유적이
20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있고, 해안가유적은영종도송산유적과고지형상해안가구릉지에해당하는문학산유적이있다. 특이한점은청동기유적이발견되는구릉지형에서대체로구석기유적이같이찾아진다는점이다. 이것은생활ㆍ생계양식의유사성을보여주는것으로유물을통한상세분석이필요하며, 해안지역의경우청동기유적과신석기유적이같이발견된다는점이다. 결국내륙처럼동굴이나강가에입지할수없는인천지역의경우생계에필요한경제활동이유리한지점을중심으로유적이형성되었음을의미하며, 시대별입지유형이구별되는내륙에비해경기만의지역성을띤다고볼수있다. 3. 인천지역의청동기유적은어떤성격을띠고있는가? 인천지역의집터는대부분움집이며, 평면형태는 ( 세 ) 장방형ㆍ방형ㆍ말각방형ㆍ원형등다양한형태가있지만장방형이 70% 로서가장많다. 이것은가옥구조를결정짓는속성으로서한강유역의특징을보여준다. 장방형의긴변은약 5~6m 정도, 짧은변은 2~3m 정도가평균적이며, 동양동집터의경우약 12m에달하는것도있다. 움의깊이는 20~40여cm로서신석기시대에비해낮은편이며, 일반적인움의깊이는 60~30cm에해당하고있어다른청동기유적과비교해도낮은편에속한다. 바닥은생토를그대로쓰거나점토다짐을하였으며, 화덕의설치여부는자료의한계상알수없다. 특히, 동양동유적의경우 3기가확인되었는데, 화덕시설이없다는점, 출토유물의유사성 ( 이중구연토기ㆍ석촉ㆍ석부ㆍ지석등 ) 등이상사점이고, 상이점은 1호가 2호에비해 2배정도의크기라는점이다. 발굴자도지적했듯이 2호는집터의기능보다석기제작지 ( 공방지, Factory site) 로서의역할을언급하고있지만, 필자는 1호의경우도같은기능을했던것으로보고자한다. 그이유는두집터모두연중거주에필수적인화덕시설을갖추지않았다는점이며, 추웠던시기를제외하고계절적으로일정한목적을갖고사용한공간으로해석되기때문이다. 두집터사이에는약간의차이점도발견되는데, 세분화된 1ㆍ2차가공
21 인천지역의선사문화 21 시설의구분이어느정도가능할것같다. 2호집터의경우망치돌과다수의석편조각이출토되었고, 1호집터는찰절도구가출토되는차이점으로볼때, 2호집터에서 1차가공을한다음더넓은공간에서마무리석기제작을한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아직보고서미간, 찰절도구등석기유물에대한상세설명부족등으로제한점이있어향후구체화된연구가필요하다. 4. 인천지역의청동기유적은어떤성격을띠고있는가? 인천지역에서발굴된집터수에비해출토유물은매우빈약한편이다. 토기는이중구연토기ㆍ무문토기가있으며, 간석기로는석촉ㆍ석창ㆍ반달돌칼ㆍ돌방추차ㆍ돌끌ㆍ달도끼등이있다. 특히, 달도끼는環狀石斧또는바퀴날도끼라하며, 중심구멍에나무를끼워사용한무기의일종인석기이다. 중심부의구멍부위가두껍고, 가장자리로갈수록얇아져날카로운날을이루도록하였다. 이유물은북부지방의고인돌에서주로발굴된바있으며, 팽이형토기와관련된유적에서출토되고있다. 인천지역의경우집터 ( 원당동 4구역 14ㆍ17호 ) 에서 2점이발굴되었다는주목할일이며, 집터내토기의형태도팽이형토기인지의여부에관심을가져야할것이다. 현재, 팽이형토기는강화도집터유적에서유일하게출토된바있다. 달도끼의용도에대해서는출토지가고인돌이아니라는점과희귀성을고려할때집단간의방어목적은물론집단내계층발생이있었음을시사하는것으로볼수있다. 즉인천지역의복합사회의실마리를제공한다고볼수있다. 따라서구체성을더하기위해서는집터의공간적위치ㆍ유물의구성을비롯한주변유적과의관련성을통해비교고찰이필요하다. 5. 인천지역의청동기유적은어느시기에해당할까? 청동기시대의유일한편년자료는불노동 3 구역청동기시대집터의방 사성탄소연대측정결과 BC. 730~470( 보정연대 ) 를얻었다. 이연대는주변
22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지역을이해하는상대편년자료가될것이며, 필자는강화도고인돌의상한연대를 BC. 8~7로고찰한바있어이를뒷받침한다. 또한돌널무덤의형식이이른시기이고, 문학산유적이전기로추정되고있다는점에서어느정도편년이일치됨을알수있다. Ⅴ. 맺음말 현재인천지역은옹진군지역이포함되면서우리나라에서단일행정구역으로가장큰면적을지니고있다. 더욱이수도권에위치하고있어개발의손길이광범위하게급속도로이뤄지고있어더욱더고고학적인관심이필요하다. 이제는이들을통한연구의심화와정리가필요한시기이며, 이를토대로인천의역사는재조명되어야할것이다. 즉인천지역의선사문화는바다와밀접한연관성을갖고있으며, 밑뿌리가되는섬지역및해안지역중심의선사분야야말로정체성구명작업에시금석이될것이다.
23 강동석 (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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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인천의 고인돌 문화 25 인천의 고인돌 문화 - 강화도를 중심으로 강동석 (문화재청) 목 차 Ⅰ.인천의 고인돌 분포현황 1) 강화도 지역 2) 인천내륙 3) 기타 도서지역 Ⅱ.강화도지역 고인돌의 입지와 분포 특징 Ⅰ. 인천의 고인돌 분포현황 1) 강화도 지역 강화도 지석묘는 일제강점기 이래 몇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지석묘 축조집단의 성격과 지석묘의 구조 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더욱이 1990년 대 초에 비롯된 각종 분포조사는 지석묘의 입지와 분포, 형식과 구조, 규 모 등에 대한 다양한 계량적 정보를 제공하였고, 이를 이용한 통계분석을 통해 강화 지석묘 축조집단의 사회성격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다. 강화 지석묘의 분포양상을 살펴보면, 남부지역에서 확인된 2개의 소군집 을 제외하고 대부분 북부지역에 밀집 분포된 양상을 보인다. 산지를 중심 으로 분포지역을 나누면, 크게 고려산 일대의 삼거리 고천리 부근리 망월리
26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지석묘군과 별립산-별악봉 일대의 교산리지석묘군으로 구분된다. ① 고려산일대의 지석묘군 고려산은 강화도를 동서방향으로 횡단하는 여러 산지 중 하나로, 봉천 산 별립산과 함께 강화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산의 남쪽은 혈구산과 연결되어 있어 대부분 산악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북쪽산록은 능선 들 사이로 곡간대지와 선상지가 발달해 있다. 고려산일대의 지석묘들은 대부분 북쪽산록과 기슭에 분포하고 있으며, 삼거리 고천리 부근리 오상리 망월리 지석묘군 등 모두 5개의 지석묘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거리지석묘군은 강화도 내의 여러 군집 중 가장 밀집도가 높은 곳이 다. 모두 30기의 지석묘가 분포하며, 4개의 소군집과 개별분포양상을 보 이는 지석묘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군집은 2~8기의 지석묘들이 개별분포 를 보이며 산기슭과 산사면, 능선 등에 축조되었는데, 산기슭에 입지하는 지석묘의 수가 가장 많으며, 능선 상에도 7기가 입지하고 있다. 능선에 입지하는 지석묘는 대부분 북방식지석묘라는 특징을 보인다. 소군집 내의 지석묘 형식은 개석식과 북방식 지석묘가 혼재되어 있기도 하지만, 대부 분 개석식 또는 북방식이 각각 하나의 군집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삼거리 지석묘군에 대한 발굴조사는 1967년에 국립박물관에 의해 한차례 이루어졌다. 당시 조사는 소동부락의 지석묘군에 대해 이루어졌는데, 강 화도의 북방식 지석묘의 축조방식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발굴조사였 다. 조사결과, 지석주변과 묘실바닥에서 작은 할석들을 깔아 지석을 보강 하였으며, 묘실내부도 마찬가지로 할석들이 깔아 시상을 마련하였음이 밝 혀졌다. 유물은 마제석촉 4점과 무문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지석묘 주변에 서도 방추차와 유경식석검이 출토되었는데, 이 석검은 서북한 지역에서 각형토기와 공반되는 유물로 소동 부락지석묘와 인접한 지역의 주거지에 서 발견된 각형토기와 함께 서북한지역과의 연관성을 추론할 수 있었다. 고천리 지석묘군은 고려산(436m) 정상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산마루를 따라 축조된 군집이다. 강화도의 대부분 지석묘는 능선이나 산기슭, 평지
27 인천의 고인돌 문화 27 또는 구릉에 분포하지만, 이 지석묘의 경우 해발 250~300m의 산마루에 입 지하고 있어 다른 지석묘군과 차별성을 보인다. 이 지석묘군은 20기의 지 석묘가 3개의 소군집을 이루고 있다. 산마루 남쪽의 약간 경사진 면에 위 치한 소군집은 북방식 2기와 개석식 1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방식 지석 묘 중 하나는 묘실의 단벽이 유실되어 내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삼거 리에서 고려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에 위치한 소군집은 가장 많은 지석묘가 분포하는데, 북방식 9기, 개석식 2기가 축조되어 있다. 고천리지석묘군은 북방식이 16기, 개석식이 4기로 북방식의 비율이 높으 며, 입지와 분포 면에서 볼 때 삼거리 지석묘의 축조집단에 의해 만들어 졌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왜냐하면 비록 고천리지석묘군이 삼거리와 오 상리 지석묘군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지만, 삼거리 지석묘가 분포하는 능선 과 연결되어 있고 모두 능선과 산마루라는 조망권의 확보가 유리한 곳에 지석묘가 축조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한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망월리지석묘군은 2001년에 수목의 간벌(間伐)작업 과정에서 발견 된 유적으로 여기에서 확인된 지석묘는 북방식이 대부분이며, 크게 두 개 군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하나의 군집은 곡간에 형성된 소하천과 인접한 완산사면에 위치하는데, 개석을 추정되는 석재와 묘실의 장벽 등이 노출 되어 있다. 이 곳에 분포하는 지석묘의 수는 약 10여 기 이상 될 것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소군집은 인접군집과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지 점에 위치한다. 민묘 조성과정에서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묘실의 장벽이 남아 있고, 주변에 개석으로 보이는 석재들도 산재해 있다. 오상리 지석묘군은 고려산의 남서쪽 산사면과 구릉에 분포하고 있는 지 석묘군으로 3개의 소군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분포 수를 보이는 군집은 선문대 고고연구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이 군집 은 얕은 구릉의 정상부를 따라 10기의 북방식 지석묘와 2기의 개석식 지 석묘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중 북방식 지석묘 10기가 발굴되었다. 조사결 과, 지석묘의 하부구조는 ㅍ 자 형태이고, 장축방향은 대부분 북동-남서
28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방향을 이루고 있었다. 묘실과 주변에서는 각형토기편을 비롯하여 마제석 촉, 환상석부, 관옥, 마제석검편, 반월형석도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마지막으로 고려산 일대에서 삼거리지석묘군 다음으로 가장 분포수를 보 이는 곳은 부근리지석묘군이다. 이 지석묘군은 하점면 부근리와 송해면 상도리 하도리에서 확인된 28기의 지석묘들인데, 주로 2~5기로 구성된 지 석묘들이 소군집을 이루며 분포한다. 부근리지석묘군은 사적 제137호와 같이 평지에 축조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구릉이나 산기슭과 같은 지석 묘 축조집단의 생활공간으로 추정할 수 있는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대 체로 개석식 지석묘들로 구성되어 있다. 부근리지석묘군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고려산과 봉천산을 잇는 좁 은 평지에 축조된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로서 남한지역에서 가장 규모 가 큰 북방식지석묘이다. 묘실은 판석 두 매를 놓고 단벽 또한 각각 한 매의 판석을 이용하여 막은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개석 은 장축 6.5m 단축 5.2m 두께 1.2m의 크기로 강화도 내에서도 가장 큰 지석묘이다. ② 별립산-별악봉 일대의 지석묘군 별립산과 별악봉은 강화의 최북단에 위치한 산지로 고려산과 마찬가지로 강화도를 동서로 횡단하고 있다. 간척이전 지형을 보면, 고려산과 별립산 -별악봉은 현재 사적 제137호인 강화 지석묘가 입지한 좁은 평지로 연결 되어 있다. 이 일대에서는 모두 42기의 지석묘가 발견되었는데, 주로 별 립산과 별악봉 사이의 구릉성 산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일부는 별립산 남 록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여 분포한다. 먼저 교산리지석묘군을 살펴보면, 교산리 지석묘군은 별악봉(167.3m)과 별립산(399.8m) 사이에 형성된 구릉성 산지의 능선과 산기슭에 입지하고 있다. 이 군집에서는 모두 28기의 지석묘가 확인되었는데, 삼거리 지석묘 군과 함께 강화도에서 가장 많은 개체수를 보이고 있다. 교산리 지석묘군은 7개의 소군집과 개별분포를 보이는 5기의 지석묘로
29 인천의 고인돌 문화 29 이루어져 있다. 이들 소군집들은 구릉과 산기슭, 능선상에 분포하고 있는 데, 개석식 지석묘로 이루어진 소군집들은 대개 구릉과 산기슭에 분포하 는 반면, 북방식 지석묘는 해발 100m이상의 전망이 좋은 능선 상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교산리 지석묘군의 형식에 따른 입지분포, 밀집도 는 삼거리 지석묘군와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한편 별립산-별악봉 일대에서 밀집된 양상을 보이는 교산리 지석묘군과 다르게 별립산 남록에는 1~2기의 지석묘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분 포하고 있다. 지석묘들은 모두 간척평야와 접한 해발 20m 내외의 낮은 산 기슭에 위치해 있어 간척이전에는 해안과 인접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③ 길상산 일대의 지석묘 길상산(해발 320m)은 강화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지로서 조선 중기까지 강화본도와 분리되어 별도의 섬을 이루고 있었다. 길상산 일대의 지석묘 는 구제발굴조사에 앞서 진행된 지표조사과정에서 확인되었는데, 지금까 지 강화도에서 조사된 지석묘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석묘는 길상산의 동북쪽에 자리한 선두리의 작은산뒤 마을에서 확인되었다. 지석 묘는 단독으로 분포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3기~9기의 소군집을 이루 고 분포하고 있다. 모두 20여 기가 발견되었다. 2) 인천내륙 최근까지 인천 내륙지역에 알려진 대표적인 지석묘는 시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된 대곡동지석묘군과 학익동 주안동 문학동지석묘 등이었으며, 강화도 에 비해 분포수나 밀집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 대 곡동지석묘군에 대한 본격적인 지표조사가 실시되면서 강화도 지석묘군과 비교되는 지석묘 축조집단이 인천 내륙지역에도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 내륙지역의 지석묘 밀집지역을 살펴보면, 크게 문학산과 가현산 일
30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대로나눌수있다. 1 문학산일대의지석묘문학산일대에는학익동에 7~8기, 주안동에 2기, 문학동에 1기가분포하고있었던것으로보고되었다. 1953년에발행된 韓國史前遺蹟遺物地名表 에의하면청학동에도고인돌 1기가있었다고하지만, 현재남아있는것은학익동고인돌 2기, 주안동고인돌 1기, 문학동고인돌 1기뿐이다. 학익동지석묘는모두 7~8기정도가있었으며, 몇기씩무리를이루어분포하고있었던것으로보인다. 이지석묘에대한발굴조사는 1927년이래몇차례진행되었다. 최초의조사는조선총독부에의해 3기가발굴조사되었다. 모두북방식이었으며, 지석묘내부에서무문토기편과석촉, 석도, 지석등이출토되었다. 이후 1927년의자료에의하면경성대학에서지석묘 3기를발굴한후 2기를복원하였다는기록으로볼때, 한차례더발굴이진행되었던것으로보인다. 이조사에서는석부와갈돌등다수의석기류가출토되었다고전한다. 이러한일제강점기의조사기록을보면, 학인동지석묘는일본인의인천지역거주또는빈번한왕래가이루어지면서일찍이주목받았던것같다. 그렇지만이지석묘군은소년형무소가들어서면서 1기만남았고 1998년에동일부지에남아있던북방식지석묘 1기더발굴되어현재인천시립박물관에모두이전복원되었다. 한편주안동지석묘는 1956년 仁川鄕土史料 에의하면, 3기의지석묘가있었다고전하지만, 사진자료를통해볼때자연암반으로추정되며완전한형태의지석묘는사미부락에있었던 2기의지석묘를들수있다. 이것은 1957년국립박물관과이화대학에의해발굴조사가이루어졌는데, 유물은출토되지않았지만단벽을갖춘북방식지석묘임을확인할수있었다. 이밖에문학산일대에는문학산서쪽도천현주변에문학동지석묘가있었다. 1962년에발굴조사가이루어졌으며, 유물은출토되지않았다. 현재인천수봉공원에상석만이전된상태이다. 이처럼문학산일대에분포하고있었던지석묘중원래위치에있는것은
31 인천의 고인돌 문화 31 한 기도 없으나, 문헌상에 나타난 지석묘 수는 모두 12기 정도로 보인다. 이들 지석묘는 대부분 북방식지석묘로 확인되어 문학산일대의 지석묘 형 식은 북방식이 우세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② 가현산 일대의 지석묘 가현산일대는 인천내륙에서 가장 많은 지석묘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 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석묘군은 대곡동지석묘군인데, 원래 김포시 대 곡리지석묘군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95년 경기도 김포시 검단면이 인천 광역시 서구로 편입되면서 인천의 지석묘군이 되었다. 그동안 대곡동지석 묘는 1977년에 간행된 문화유적총람에 소개된 이래 지속적으로 주목을 받 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분포조사는 2000년대 이후에 이루어졌다. 가장 최 근에 실시된 지표조사는 인하대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A~E군 등 5 개의 소군집에서 99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대곡동지석묘군는 현재 정확히 지석묘의 분포 수나 형식 등을 파악할 수 없지만, 인천북부지역의 대규모 지석묘군인 점은 확실하며, 주변의 마산 리 석모리지석묘군과 함께 하나의 통합된 지역공동체에 의해 축조된 지석 묘군 으로 보여 진다. 3) 기타 도서지역 강화도와 인천내륙을 제외한 영종도, 옹진군 일대의 도서지역에도 군집 을 이루지 않지만 지석묘가 발견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영종도 운남도 지석묘를 들 수 있으며, 그 밖에 덕적도, 백아도, 청라도 등에서도 지석 묘가 확인된다. 운남동지석묘는 영종도에 위치한 지석묘로서 1962년 인천고등학교 향토 반 학생들에 의해 처음 발견된 후 인천시립박물관에서 1963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이 지석묘는 지석과 폐쇄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주변에서 발견되어 북방식지석묘로 추정되며, 유물은 지석묘 내부의 부식
32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토층에서 청자편과 도기편이 출토되었다. 덕적도의 지석묘는 서울대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모두 2기가 발견되었는데, 이후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덕적도 진리 추정지석묘 1 2 로 명명하였다. 한편 백아도에서는 개석에 채석흔이 있고, 개석 밑에 지 석을 가지고 있는 지석묘 1기가 확인되었으며, 청라도에서도 지석묘 1기 가 조사되었지만, 덕적도 지석묘와 마찬가지로 지석묘의 형식은 확인할 수 없었다. Ⅱ. 강화도지역 고인돌의 입지와 분포 특징 강화도와 인천내륙, 도서지역에 모두 270여 기의 지석묘가 분포하고 있 다. 이 중에서도 강화도는 북부지역에 한정되어 160여 기가 지역별로 소 군집을 이루며 밀집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인접한 인천내륙를 포함한 경기지역과 비교하여 지석묘 형식, 입지적인 면에서 차별성을 지니고 있 다. 먼저 강화도 지석묘는 각 형식별로 규모와 입지가 뚜렷한 차이를 보인 다. 강화도에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의 형식은 서북한지역과 마찬가지로 북방식과 개석식만이 발견되었을 뿐, 남방식 지석묘는 확인되지 않고 있 다. 강화도에 분포하는 160여 기의 지석묘 중 형식구분이 가능한 132기에 서 북방식은 76기, 개석식은 56기로 북방식이 개석식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각 지석묘 형식별 개석크기는 북방식 지석묘의 경우 대체로 대 중 소의 구분이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대부분 소형에 속하며, 개석식과 혼재하거나 소군집을 이루며 분포한다. 그러나 신삼리, 점골 등 의 중형지석묘와 강화, 대산리, 양오리지석묘 등 대형지석묘는 군집과 분 리되어 단독분포를 보이며, 차별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개석식 지석묘의 크기는 전체의 약 85%가 0~4.0 에 해당하는 소형의 것들로 북방식과 같이 대형의 지석묘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지석묘 형식별 입지분포 양상을 살펴보면, 구릉과 산기슭에서는
33 인천의 고인돌 문화 33 북방식 33기, 개석식 46기로 개석식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능 선, 산사면, 산마루 등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개석식 지석묘의 분포비율 은 낮아지고, 북방식 지석묘의 수가 월등히 많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평 지에는 북방식 지석묘만이 입지할 뿐 개석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지석묘의 축조는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 적 사회적 여건에 따라 주변의 지형과 공간을 이해하고 그 이해방식에 따 라 지형적으로 입지하고 공간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산능선 이나 산마루, 산사면, 평지와 같이 매우 현저한 지형적 요건을 갖춘 곳에 북방식 지석묘가 주로 입지하고 있다는 것은 북방식 지석묘가 당시 지석 묘 축조집단의 사회정치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 다. 특히 부근리 점골, 양오리, 대산리, 부근리 강화 지석묘와 같이 대형 지석묘들은 모두 북방식으로 구릉의 정상부나 능선, 해안가와 접한 평탄 지에 단독으로 축조되어 의도적으로 특정장소에 대한 공간적인 배려가 있 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화도 지석묘와 비교하여 인천내륙의 대곡동지석묘군에도 강화도와 같 이 높은 밀집도를 보이며 대규모 군집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약 50%에 해당하는 지석묘의 형식을 알 수 없어 형식별 입지 분포현황을 파악할 수 없지만, 북방식지석묘의 경우 대체로 능선의 정상부에 분포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강화도 지석묘의 형식분포와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강화도 지석묘의 또 하나의 특징은 지석묘의 규모, 형식별 입지분포, 소 군집 분포양상 등을 고려하여 분포유형의 설정이 가능하다. 지석묘 분포 유형의 설정은 지역적인 차원의 연구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한 지석묘 축 조집단의 지역적 범위가 성립되지 않으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 강화도 는 한정된 지역적인 범위 내에 지석묘가 밀집분포하고 있는 지역으로, 지 석묘의 형식, 규모, 입지, 밀집도 등 제 양상들이 비교적 다양하게 나타 나고 있어 분포유형 설정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강화도 지석묘는 지석묘의 형식과 규모, 소군집 지석묘의 분포양상, 입 지 등을 고려해 볼 때 Ⅰ, Ⅱ, Ⅲ의 세 가지 분포유형 설정이 가능하며, 이들 분포유형들 사이에는 일정한 위계관계도 발견된다. 먼저 Ⅰ유형은
34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2~8기의 개석식 혹은 북방식 지석묘들이 소군집을 이루고 있는 것들로, 산기슭, 구릉과 같이 주거지, 경작지로 주로 사용되었을 생활공간 내에 분포하고 있다. 삼거리, 부근리, 교산리, 오상리 등 거의 모든 지석묘군 에서 나타난다. 입지적으로 이 유형의 지석묘들은 산지의 계곡에서 형성 된 소하천과 같이 음료수나 농업용수의 확보가 쉬운 곳에 인접하여 축조 되는 경향이 있으며, 단독으로 축조된 북방식 지석묘와 같이 차별화된 장 소에 입지하지 않고 생활공간 내에 위치해 있는 점으로 보아 사회내부적 으로 수직적 분화가 덜 진전된 단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Ⅱ유형은 Ⅰ유형에 비해 무엇보다도 입지적인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Ⅰ 유형의 지석묘들이 소군집을 이루며 산기슭이나 구릉과 같은 생활공간 내 에 축조되었다면, Ⅱ유형은 능선이나 산마루, 구릉의 정상부 등 전망이 좋은 곳에 입지한다. 또한 이 유형의 지석묘들은 교산리와 고천리의 일부 지석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석묘들이 북방식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채석과 축조과정에서 개석식보다 정교한 축조기술과 많은 노동력 이 투입되는 북방식의 지석묘가 해발 100m 이상의 산마루 능선과 같은 주 변지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에 차별적으로 축조되었다는 것은 지석묘 축조집단 내부의 계층분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 유 형의 지석묘 피장자는 이러한 계층화된 사회에서 정치적 권위를 소유하고 있었던 계급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이 유형의 지석묘들은 모두 삼거리와 교산리 지석묘군에 속하는 것들로 지역적인 편 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Ⅲ유형의 지석묘들은 사적 제137호인 부근리 지석묘, 양오리, 대산리 지 석묘와 같은 대형 북방식 지석묘들이다. 이 지석묘들은 고려산 일대의 지 석묘군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구릉의 정상부와 평지에 입지하고 있다. 사 적 제137호 강화 지석묘는 고려산과 봉천산-별립산을 연결하는 강화북부 지역 유일의 평지에 축조되었는데, 이 지석묘는 이러한 입지와 규모를 볼 때 사회적 이념적 행위의 반복을 위해 배려된 특정한 공간에 배치되어 기 념물과 같은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즉 지석묘 축조과정에서 이루 어지는 공동의 의례수행을 통해 집단간의 단일한 정체성을 확립시키고,
35 인천의고인돌문화 35 지역적인통합을확인하는중요한의미를가졌던것이다. 이러한대형지석묘는축조과정에서대규모의노동력을동원하고통제할수있는정치력과경제력이절대적으로요구되며, 또한입지적으로도어느지석묘보다차별성을보이고있기때문에 Ⅲ유형의지석묘는강화북부지역의지석묘사회에서최상위계층의무덤이며기념물로볼수있을것이다.
36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37 김상열 ( 인천광역시립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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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39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김상열 (인천광역시립박물관) 목 차 Ⅰ.미추홀과 인천 1.백제의 건국신화 2.彌鄒忽 牙山 密頭里說 3.彌鄒忽 楊洲ž坡州說 4.미추홀 인천설 Ⅱ.백제의 관문,능허대 1.대중국교통로서의 인천 2.능허대와 대진 Ⅰ. 미추홀과 인천 한강유역이 역사상에 뚜렷이 등장하는 것은 백제가 건국되면서부터이다. 문헌상 백제의 역사는 夫餘族인 沸流와 溫祚로 대별되는 집단이 남하하여 토착세력인 마한의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었던 한강유역에 이주하여 정착 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문헌사료와 고고학 자료가 빈약한 백제 의 역사는 건국과 성장과정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三國 史記 에 나타난 백제 초기기록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경향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近肖古王 이전의 삼국사기 기록을 부정하고 4세기 중반 이후 만주지역에 존재하던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세운 일종의 정복왕조로 보아 온조왕대의 백제형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고, 둘째는
40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후대의 사실들을 온조왕대의 기록으로 소급 부회한 것으로 보는 절충론적 인 경향이며, 끝으로 온조왕대의 국가형성으로 인정하려는 긍정적인 경향 이다. 이렇듯 근초고왕 이전의 백제역사는 사료의 신빙성 여부로 견해들 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3세기 이전 한강유역의 고고학적 자료 또 한 결핍되어 있어 백제의 건국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절 충론적인 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온조집단이 도읍하였던 慰禮城과 비류집단이 도읍 을 정했던 彌鄒忽의 위치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게속되고 있다. 위례성 에 대해서는 三國遺事 에 稷山으로, 삼국사기 에는 알 수 없는 곳(未 詳地分)이라 하였고, 미추홀에 대해서도 삼국사기 에는 今仁州로, 삼 국유사 에는 仁州 로 표기하여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온 조집단의 최초 정착지에 대해 정확한 위치를 지적하기는 어려우나, 백제 초기 지배세력의 성립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백제초기의 토성과 고분들 이 서울시 일원 한강 남쪽의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온조집단이 정착하였던 대략적인 위치는 현재 서울시 범주에 속해 있는 한강 남쪽의 평야지대로 보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백제의 국가형성은 온조집단과 비류집단의 결합을 통해 시작하고 있으므로, 비류가 도읍을 정하였던 미추홀의 위치 또한 서울과 가까운 인 천지역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근래에 미추홀의 인천설을 부정하는 견해들이 개진되고 있으므 로, 이들 견해에 대한 비판을 통해 인천지역의 초기 백제에 관하여 설명 하고자 한다. 1. 백제의 건국신화 1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백제의 초기역사는 사료의 박약함과 고고학적 근거의 결핍으로 인해 4세기 전반까지의 백제사를 분명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문헌사의 입장에서 백제의 국가형성은 서울지역을 중심으 로 한 온조집단과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한 비류집단의 결합을 통해 시작 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비류와 온조를 두 축으로 한 백
41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41 제의 건국신화이다. 백제의 건국신화에는 온조집단이 비류집단을 흡수하 는 것으로 백제의 건국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백제의 건국신화는 그 내용 은 빈약하지만 ① 溫祚傳承, ② 沸流傳承, ③ 仇台傳承, ④ 都慕傳承 등 다양한 전승을 가지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溫祚傳承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이며, 그의 아버지는 鄒牟이다. 혹은 朱夢이라고도 한다. 주몽이 북부여로부터 난을 피해 卒本夫餘에 이르자, 부여왕에게는 아들이 없고 다만 세 딸만 있는데, 주몽을 보고서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 고 둘째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 얼마 후에 부여왕이 세상을 떠나므로 주몽이 왕위를 이었다. 그리하여 아들 둘을 낳으니, 장자는 비류라 하고, 차자를 온조라 했다 혹은 주몽이 졸본에 이르러 月郡의 아가씨에게 장가 들어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그런데 주몽이 북부여에서 낳은 아들이 오자 태자로 삼으니,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하여 마침내 烏干, 馬黎 등 열 명의 신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가니, 백성 들이 그에게 따르는 이가 많았다. 그들은 마침내 漢山에 이르러 負兒嶽에 올라 살 만한 땅을 바라보았다. 비류는 바닷가로 가서 살려고 하니, 열 명의 신하가 간하기를 생각하건대 이 河南의 땅은 북쪽으로 漢水를 끼 고, 동쪽으로 높은 산악에 의거했으며, 남쪽은 비옥한 沃澤을 바라보고, 서쪽은 큰 바다로 가로 막혔으니, 그런 자연적인 요해와 지리는 얻기 어 려운 지세입니다. 도읍을 여기에 세우는 것이 어찌 마땅하지 않겠습니 까? 라고 하니, 비류는 듣지 않고 그 백성들을 나누어 彌鄒忽로 가서 살 았다. 온조는 河南慰禮城에 도읍을 정하고 열 명의 신하를 보필로 삼아 나라를 十濟라 했다. 이 때는 前漢 成帝 鴻嘉 3년(기원전 18)이었다. 비 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기가 많고 물이 짜서 편히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위 례성으로 돌아와 보니, 온조는 도읍을 새로 정했으며, 백성들이 편히 살 므로 마침내 부끄러움을 뉘우치고 죽으니, 그의 백성들이 모두 위례성으 로 돌아왔다. 그 후 줄곧 백성들이 즐겨 따르므로 나라 이름을 고쳐서 百 濟라 했다. 그의 세계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夫餘를 성으 로 삼았다( 三國史記 권23, 百濟本紀 1, 百濟始祖 溫祚王 卽位年條).
42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② 沸流傳承 일설은 이렇다. 시조는 비류왕이다. 그의 아버지는 優台로서 북부여왕 解扶婁의 庶孫이고 그 어머니는 召西奴로 졸본사람 延陁勃의 딸이다. 그 녀가 처음에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 둘을 낳았으니, 장자는 비류이고 차 자는 온조이다. 우태가 죽자 졸본에서 혼자 살았다. 후에 주몽이 부여에 서 용납되지 않으므로 전한 建昭 2년(기원전 37) 봄 2월에 남쪽 졸본으로 달아나서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 하고, 소서노를 아 내로 맞아 왕비로 삼았다. 그녀는 창업의 기반을 열 때 자못 내조가 있었 으므로 주몽은 그녀를 총애하고 비류 등을 대하기를 자기의 아들과 같이 하였다. 그런데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서 난 아들 孺留가 오자 이를 세워 태자를 삼고 왕위를 잇게 하였다. 이에 비류는 아우 온조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대왕이 부여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에 이르렀을 때 우리 어머니가 집안의 재산을 기울여 나라의 기업을 조성하는데 힘썼 는데 이제 대왕이 죽자 나라가 유류에게 들어갔다. 우리는 여기에 헛되이 있으면서 울적하게 근심하는 것 보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 좋은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하는 것이 낫겠다 하고 드디어 아우와 그 무리들을 거느리고 浿水와 帶水 두 강을 건너 미추홀에 이르러 여기서 살 게 되었다( 三國史記 권23, 百濟本紀 1, 百濟始祖 溫祚王 卽位年條). ③ 仇台傳承 백제란 그 선대가 대개 馬韓의 속국이었고 부여의 별종이었다. 仇台라는 자가 있어 帶方 옛터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웠다. 왕의 성은 夫餘氏이고 호를 於羅瑕라고 하였는데 백성들은 鞬吉支라고 불렀다( 周書 권 49, 列 傳 41, 異域 上). 백제의 선조는 고려로부터 나왔다. 그 나라 왕의 한 侍婢가 있었는데 홀 연히 잉태를 했다. 이를 기르도록 명하였는데 이름을 東明이라 하였 다 동명의 후예 구태라는 자가 있었는데 인신에 돈독하여 처음으로 대방 옛터에 나라를 세우니 요동태수 公孫度의 딸로서 아내를 삼게 했다. 점차 번창하고 강성해져서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隋書 권 81, 列傳 46, 東夷 百濟條).
43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43 ④ 都慕傳承 백제 太祖 都慕大王은 日神이 강령해서 부여를 떠나 나라를 열고 천제가 籙을 주어 여러 韓을 총괄하여 왕이라 일컬었다( 續日本記 권 40, 延曆 9 년 7월조). 위와 같이 백제의 시조에 대하여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는데 온조를 시조 로 하는 ①은 고구려의 주몽과 직결되는데 반하여, 비류를 시조로 하는 ②와 구태를 시조로하는 ③은 고구려와는 관련없이 부여와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④는 부여와 고구려를 포괄적으로 인식하는 속에서 나타난 것으 로 이해된다. 국내 기록인 ①과 ②에는 비류와 온조가 형제로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초기백제의 연맹체적 성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연맹초 기에는 비류집단이 연맹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가, 한강유역의 문화적 기 반을 토대로 성장한 온조집단이 왕위를 차지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는 비류 사후에 비류집단이 온조에 귀부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비류 집단을 흡수한 온조집단이 목지국을 비롯한 마한세력을 아우르면서 백제 는 고대국가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①과 ②의 전승에서 비류의 근거지로 알려진 미추홀은 비류집단이 남하하 여 정착한 도읍으로 위례성의 위치와 함께 초기백제사에 있어서 매우 중 요한 곳이다. 미추홀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으나, 삼국사기 백제본기 와 지리지에 미추홀이 인천으로 표기된 이래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彌鄒 忽國, 彌鄒國, 또는 沸流國 등으로 일컬어지며 인천지역이었음이 긍정되 어 왔다. 彌鄒國의 유적으로 문학산성이 지목된 것은 세종실록 지리지에 인천군 의 남쪽 2리에 南山石城이 있다고 기록된 이후부터이고, 이후 東史綱目, 輿地圖書, 京畿邑誌 등에서 문학산성을 비류와 연결시켜 이 산성 이 비류의 성 이라는 인식이 정착하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미추국의 중 심유적은 문학산성으로 믿어 왔다. 이는 세조 6년(1460) 관교동에 仁川都 護府의 官衙가 세워진 후 미추국의 범위를 가까운 문학산성으로 비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학산성은 백제의 성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백 제의 성은 평지에 흙으로 조영하는 평지성이나, 문학산성은 산정상에 포
44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곡식으로 쌓은 石城이기 때문이다. 즉 인천지역에 비류가 정착하였다는 고고학적 근거가 매우 박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미추홀로 비 정한 예가 많이 있다. 그 대표적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 彌鄒忽 牙山 密頭里說 ① 밀두리설의 착안 미추홀의 인천설에 가장 먼저 이의를 제기한 것은 牙山 密頭里說이다. 밀두리설은 金聖昊의 沸流百濟와 日本의 國家起原 (지문사, 1982년 초 간)에 충청남도 아산군 인주면의 밀두리를 미추홀로 비정함으로써 비롯되 었다. 김성호는 미추홀과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 삼국사기 에 미추홀을 今仁州, 위례성을 未詳地分 으로, 삼국유사 에는 미추홀은 仁州, 위 례성을 今稷山 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에 착안하여 今仁州 와 仁州 는 서 로 다른 지역이며, 삼국유사 가 가리키는 인주는 충청남도 아산군의 인 주면으로 비정함 ② 밀두리설의 근거 인천이 인주 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 고려 인종 때이고, 아산 인주 는 고려초에 성립 삼국사기 今仁州 에 대해 삼국유사 의 仁州 는 舊仁州 즉 아산 인주 에 해당 인천에는 미추홀에 해당하는 지명이 없는 반면 아산 인주 에는 밀두리가 있음 용을 미리(彌里 密) 또는 미(彌) 라 하였으며, 두(頭 tu) 와 (鄒 tu) 는 동음 밀두 와 미추 를 동일지명임 비류가 帶水를 건너 정착한 海濱彌鄒忽 은 土濕水鹹 한곳 임에도 정착한 이유는 선착 가능한 포구였을 것이므로, 밀두리는密頭川 하구에 위치한 海浦임 해빈미추홀 은 아산 인주 의 밀두리임.
45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45 ③ 밀두리설의 비판 인천과 아산의 지명에 대한 김윤우의 비판 - 인천 고려 인종 때부터 공양왕 2년(1390)까지 인주 로 불림 - 아산 고려초기에 인주, 현종 9년(1018)이후 명종 7년(1177)이전에 牙州 로 개명 삼국유사 편찬보다 약 100년~250여년 이전에 아주 로 개명되었으므로, 一然이 미추홀의 위치를 밝히는 註에서 옛 행정구역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기 어려움 삼국유사 에 나타난 인주 는 당시 통용되던 인천의 고려 때 행정구역 으로 보아야 함 - 밀두리 아산의 밀두리는 19세기경부터 불려왔으며, 조선시대이전에는 육지에 인접한 바다로 보이기 때문에 2천여년전의 비류의정착 지로 볼수 없다. 국어학계의 비판 - 밀두리의 두(tu) 자와 미추홀의 추(tu) 자를 동음자로 보고 있으나 추 의 고 음이 tu 가 아니고 음운 상으로 미추 밀두(miju miltu) 의 변화가 있을 수 없음. 미추홀이 선착 가능한 포구일 것이라는 견해는 타당함. - 비류가 土濕水鹹 한 미추홀에 정착한 것은 소금의 산지 또는 소금 교역망을 확보하고, 해상교통이 가능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 - 경기만 남부보다는 백제의 한성과 가까운 인천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 인천지역은 신석기시대 이후 한반도의 교역의 중심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임 영종도 송산선사유적의 흑요석과 금강식 토기 능허대 아래의 代津을 통한 대중국 교섭 3. 彌鄒忽 楊洲 坡州說 ① 양주파주설의 착안 삼국사기 지리지에 미추홀로 비정되어 있는 인천지역에는 삼국시대
46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성곽이나 대규모 주거지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반면, 양주인근에는 六 溪土城, 七重城, 哨城里城址와 大田里城址 등 모두 삼국시대 초기의 것으로 보이는 성곽이 발견됨. 인천의 고명인 買召忽은 양주의 고명인 買省忽과도 통함.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전승에는 택지개념이 보이고 있어 후대의 윤 색 가능성이 큼 ② 양주파주설설의 근거 광개토왕비문의 기술순서 - 광개토왕의 백제의 78성을 공취한 기술에 있어 순서상 미추성이 앞 부분에 위치 인주이씨의 정통성을 위한 삼국사기 의 윤색 - 삼국사기 의 온조전승에 나타난 풍수사상은 여말선초에 나타난 것 으로 백제초기에 풍수에 관한 개념이 없었을 것임 - 이러한 택지개념이 들어 있는 삼국사기 의 온조전승은 고려시대 혼 인정책을 통해 급부상한 인주이씨가 지역기반의 정통성을 밝히기 위 해 조작하였을 가능성이 큼 인천의 고고학 자료의 부족 - 미추홀의 중심으로 평가되는 문학산성의 규모와 축조시기에 의문이 있는 반면, 양주 일대에는 육계토성, 칠중성, 초성리성지와 대전리성 지 등의 삼국시대 성이 보임 - 미추홀에 대한 고구려의 지명인 매소홀은 양주고읍 고지명인 매성홀 과 음운상 통함 - 浿河를 대동강수계로 帶水를 임진강으로도 볼 수 있으므로, 구태설화 의 대방고지에 일정한 역사성을 부여하고, 우태와 구태를 동일인으로 이해한다면 비류집단의 정착지는 대방군의 인근 지역 곧 한강 이북에 서 찾는 것이 자연스러움 ③ 양주파주설의 비판 광개토왕비문의 공취성의 기술순서에 대한 비판 -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성의 기술 순서상 아단성(아차산성으로 비정)
47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47 이 먼저 나옴. 고모루성은 중원고구려비에도 나옴(충남 덕산, 충북 음성설이 있음). 이와 같이 불완전한 성의 기술 순서를 놓고 경기 북부 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을까는 의문 - 광개토왕의 미추성 공략을 고구려수군이 한강에 진입하거나 회군할 때 고구려선단의 후미를 차단할 수 있는 백제의 군항을 강타한다는 전략 적인 측면과 백제 왕실 직영의 소금산지 장악을 통해 백제에 대한 압박 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어 미추성의 위치 비정 은 재고의 여지가 있음 삼국사기 윤색에 대한 비판 - 인천지역이 고려 초기에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李子淵의 딸이 문 종과 결혼하여 숙종을 낳고, 그의 손자 李資謙의 차녀가 예종과 결혼 하여 인종을 낳게 되면서 정치적으로 급부상하게 됨 - 온조전승에 미추홀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표현한 해빈 과 토습수함 은 장자인 비류의 무지와 독선을 강조하고 그 세력의 몰락을 설명하 는 것으로, 인주이씨가 지역의 정통성을 밝히기 위해 부회하였다면 왜 멸망한 미추홀을 예로 삼았을까 하는 의문이 듬 -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은 인종 23년(1145)으로 이자겸의 난(인종 5년 1127)으로 이미 몰락한, 또 편찬 당시의 왕인 인종을 시해하려 하였던 인주 이씨의 본거지인 인천지역을 위해 문헌을 조작하였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 양주파주설에서 주장한 것처럼 인주이씨의 정통성을 위해 역사의 한 부분을 조작하였다면, 그것은 패망한 비류의 미추홀이 아니라, 중시 조인 이허겸의 연원에서 나타나듯이 왕비족인 가락허씨와의 연관성에 서 찾아보아야 할 것임 4. 미추홀 인천설 ① 역대 지리서와 사서에 미추홀을 인천으로 표기하고 있음 삼국사기 권35 잡지 4 지리 2의 기록 - 邵城縣은 본래 고구려의 買召忽縣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였고, 지금의
48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仁州 ( 慶原이라고도한다. 買召는彌鄒라고도한다 ) 이다 삼국유사 에는미추홀은인주이고, 위례는지금의직산이다라고표기함 온조전승에표기된바와같이부아악에올라가살만한땅을살펴보았는데, 서쪽으로는큰바다가막혀있다고한것과땅이습하고물이짜다라는기사를종합하여보면인천지역일가능성이큼 인천의건치연혁과관련된기록 문헌연혁관련기사비고 1 三國史記地理志 (1145 년 ) 2 洪元用記 (1450 년 ) 3 高麗史地理志 (1451 년 ) 4 仁川府陞號壁上記 (1460 년 ) 5 世宗實錄地理志 (1473 년 ) 6 東國輿地勝覽 (1481~1530 년 ) 買召忽縣一云彌鄒忽 郡之初則彌鄒國也至三國時降稱郡城縣其由則無聞焉當高麗睿宗時土姓侍中李資謙之女入爲睿宗妃誕仁宗以故加號曰仁州父老諺云高麗順宗肅宗時郡客舍後大廳作御室焉高麗之季定昌大君卽位推以爲七代之鄕陞爲慶源府賜紅鞓於首戶長逮壬申開國之後還降爲知郡仍收賜鞓至甲午年改州爲川因爲知郡事 仁州, 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趨忽新羅景德王改名邵城爲栗津郡領縣顯宗九年屬樹州任內至肅宗朝以皇妣仁睿太后李氏內鄕陞爲慶源郡仁宗時以皇妣順德王后李氏內鄕改今名爲知州事恭讓王二年陞爲慶源府王初卽位賜州戶長紅鞓 仁川卽古彌鄒忽國也在高句麗爲買召忽縣至高麗肅宗朝以皇妃仁睿太后李氏內鄕陞爲慶源郡仁宗以皇妃順德王后李氏內鄕改今名爲知州事恭讓二年崇七代鄕陞爲慶源府 仁川郡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鄒忽一云慶原 買召新羅改名邵城爲栗津郡領縣高麗顯宗戊午屬樹州任內至肅宗時以皇妣仁睿王后李氏內鄕陞爲慶源郡仁宗時以皇妣順德王后李氏內鄕陞爲知仁州事恭讓王二年辛未陞爲慶源府本朝太祖元年壬申復舊號爲仁州大宗癸巳例改爲仁川郡 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鄒忽新羅景德王改邵城爲栗津郡領縣高麗顯宗九年屬樹州肅宗朝以仁睿王后李氏之鄕陞慶源郡仁宗又以順德王后李氏之鄕改知仁州事恭讓王二年陞慶源府王初卽位以七代御鄕陞之且賜州戶長紅鞓本朝太祖元年復位仁州太宗十三年改今名例爲郡世祖六年以昭憲王后外鄕陞爲都護府 仁川府邑志 (11) 名宦條 姜希孟 (1424~1483) 7 東國輿地志本百濟彌趨忽高句麗以爲買召忽縣新羅景德王時改柳馨遠
49 미추홀의위치에대하여 49 (17C 후반 ) 8 輿地圖書 (18C 중엽 ) 9 海東地圖 (18C 중엽 ) 10 增補文獻備考 (1770 년 ) 11 燃藜室記述 (18C 말 ) 別集 16, 地理典故 12 仁川府邑誌 (1843 년경 ) 13 仁川府邑誌 (19C 전반 ) 14 大東地志 (1861 년 ) 名邵城爲栗津郡領縣高麗顯宗時省八樹州肅宗時陞爲慶源郡仁宗時又改爲仁州肅宗時以王后李氏之鄕陞仁宗時又以順德王后李氏之鄕陞爲州恭讓王二年陞慶源府王初卽位以七代御鄕陞之且賜州戶長紅鞓本朝初復爲仁州恭定王十三年改爲仁川郡惠莊王六年陞爲都護府以昭憲王后外鄕陞 初則彌鄒國也至三國時降稱邵城縣當高麗睿宗時土姓侍中李資謙之女入爲睿宗妃誕仁宗以故加號仁州其後麗季定昌大君卽位以七代之鄕陞爲慶源府逮我朝還降爲知郡又其後改州爲川仍爲知郡事又其後陞爲都護府去戊辰八月以逆僧胎鄕降號爲縣丁丑二月復舊爲府此則邑誌與勝覽小異 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趨忽新羅景德王改邵城高麗顯宗屬樹州肅宗陞慶源郡仁宗改知仁州事恭讓王陞慶源府本朝太宗初復爲仁州太宗改今名爲郡世宗陞爲都護府使 百濟彌鄒忽高句麗買召忽縣新羅邵城縣高麗仁州顯宗入樹州肅宗陞慶源郡仁宗改仁州恭讓王陞慶源府朝鮮仁川郡初爲仁州太宗十四年改今名爲郡世祖五年陞府肅宗十四年降縣二十四年復舊 仁川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趨忽新羅改邵城高麗屬樹州後陞慶源郡改仁川恭讓王陞慶源府以七代御鄕賜戶長紅鞋太祖元年復爲仁州降郡爲縣太宗改爲仁州郡世祖庚辰還陞府昭憲王后外鄕 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趨忽新羅景德王改邵城爲栗津郡領縣高麗顯宗九年屬樹州今富平肅宗朝以仁睿王后李氏之鄕陞慶源郡仁宗又以順德王后李氏之鄕改知仁州事恭讓王初以七代御鄕陞慶源府且賜州戶長紅鞓本朝太祖元年復爲仁州太宗十三年改今名爲郡世祖六年以昭憲王后外鄕陞爲都護府 本高句麗買召忽縣一云彌趨忽新羅景德王改邵城爲栗津郡領縣高麗顯宗九年屬樹州今富平肅宗朝以仁睿王后李氏之鄕陞慶源郡仁宗又以順德王后李氏之鄕改知仁州事恭讓王初以七代御鄕陞慶源府且賜州戶長紅鞓本朝太祖元年復爲仁州太宗十三年改今名爲郡世祖六年以昭憲王后外鄕陞爲都護府 本百濟買召忽一云彌鄒忽國新羅景德王十六年改邵城爲栗津郡領縣高麗顯宗九年屬樹州肅宗陞慶源郡以文宗妃仁睿太后李氏之鄕卽肅宗母仁宗改知仁州郡事以睿宗妃文敬王后李氏之鄕卽仁宗母屬郡唐城屬縣載陽恭讓王二年陞慶源府以七代御鄕本朝太祖元年復爲仁州太宗十三年改仁川郡世祖五年以昭憲王后沈氏外鄕后外祖門必大陞都護府中宗二十一年移水原鎭于府三十年復還水原肅宗十四年降縣以逆僧胎鄕二十三年復陞 (1622~1673) 奎章閣古大 歷代典故 百濟屬國 : 彌鄒忽國.. 奎章閣奎 奎章閣奎 17362
50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⑮仁川府邑誌 (1871년) 本高句麗買召忽縣 一云彌趨忽 新羅景德王 改邵城爲 栗津郡領縣 高麗顯宗九年 屬樹州 今富平 肅宗朝 以 仁睿王后李氏之鄕 陞慶源郡 仁宗 又以順德王后李氏 之鄕 改知仁州事恭讓王初 以七代御鄕 陞慶源府 且 賜州戶長紅鞓 本朝太祖元年 復爲仁州 太宗十三年 改今名爲郡 世祖六年 以昭憲王后外鄕 陞爲都護府 ⑯仁川府邑誌 (1891년) 古號彌雛國 至三韓 降稱邵城縣 高麗睿宗朝 土姓侍 中李資謙之女 睿宗妃 誕仁宗 故加號曰仁州 其後麗 季 定昌大君卽位 以七代御鄕 爲慶源府 至本朝 還降 爲知郡 又其後改州 爲仁仍 爲知郡事 後陞爲仁川都 護府 ⑰仁川府邑誌 (1899년) 本高句麗買召忽縣 一云彌趨忽 新羅景德王 改邵城 爲栗津郡領縣 高麗顯宗九年 屬樹州 今富平 肅宗朝 以仁睿王后李氏之鄕 陞慶源郡 仁宗 又以順德王后李 氏之鄕 改知仁州事 恭讓王初 以七代御鄕 陞慶源府 且賜州戶長紅鞓 本朝太祖元年 復爲仁州 太宗十三年 改今名爲郡 世祖六年 以昭憲王后外鄕 陞爲都護府 ⑱仁川府邑誌 (1899년) 本高句麗買召忽縣 一云彌趨忽 新羅景德王 改邵城 爲栗津郡領縣 高麗顯宗九年 屬樹州 今富平 肅宗朝 以仁睿王后李氏之鄕 陞慶源郡 仁宗 又以順德王后李 氏之鄕 改知仁州事 恭讓王初 以七代御鄕 陞慶源府 且賜州戶長紅鞓 本朝太祖元年 復爲仁州 太宗十三年 改今名爲郡 世祖六年 以昭憲王后外鄕 陞爲都護府 奎章閣 奎 藏書閣 B15BB 17 奎章閣 古915.12In2b 藏書閣 貴 K ② 비류가 미추홀에 정착한 이유 海濱 미추홀이 土濕水鹹함에도 비류가 도읍한 이유는 미추홀이 해상활 동을 할 수 있는 교역이 가능하다는 점과 소금의 산지와 소금교역망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므로, 비류는 전통적으로 해상교통의 중심지 였던 인천지역에 정착하였을 것임 영종도 송산선사유적에서 黑曜石製와 소위 錦江式土器 가 출토되는 것은 인천 지역이 신석기시대부터 한반도의 동북부와 서남해안과의 교 역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임 백제는 고구려로 인해 육로가 경색되었기 때문에 凌虛臺 아래의 大津 을 이용하여 산동반도에 이르는 登州航路를 개발하여 중국과 통교하였 다. 別離고개, 사모지고개 (三呼峴), 妓巖전설 등 중국으로 떠나는 백 제사신들에 대한 전설은 백제 왕성 위례성과의 연결통로를 나타내는
51 미추홀의위치에대하여 51 것으로, 인천지역이백제전기까지해상교통의중심지임을보여주는것임 고대사회에있어서소금은매우중요한것으로철산지와소금산지의확보는국가적인관심사였고인천지역이근래까지많은소금을생산했던지역임은주지의사실로, 소금을매개로하는해상교역망을장악함으로써정치적성장을꾀하고자하였던비류는소금산지인이곳인천지역에정착하였을가능성이큼 3 미추홀은인천의어느곳인가 미추홀의중심유적으로지목되어온것은문학산성임 - 문학산성은둘레 577m의석성으로비류의도읍지로보기에는매우좁고높은곳이며, 토축성이며평지성인백제의성곽과차이가있다는비판이있음 - 최근고고학자료가축적되면서백제의석성의일반적인석축방식은외면을편평히다듬은돌로쌓는것인데, 문학산성성벽도백제의석성으로볼수있다는견해가있음 관교동-문학동분지 - 삼국시대초기의도읍은대체로평지에서벗어난구릉의대지에자리잡는것이일반적이다. 이러한조건을갖춘지역으로문학산과맞은편에위치한승학산이이루고있는관교동 문학동분지를들수있다. 문학산은노적산, 연경산, 문학산, 수리봉, 길마산등 5개의봉우리가동서로일렬횡대를이룬약 2.5km 길이의작은산괴이다. 동쪽으로남동염전의갯벌, 도장리에서승학천을따라승기로이어지는저지대가고대에는바닷물이들어오거나습지로되어있었기때문에문학산과승학산이이루는관교동 문학동분지는섬과같은지리적환경을이루고있어초기국가단계의도읍으로는좋은입지조건을갖추고있는곳이므로비류가도읍하기에적합한곳임 - 이를뒷받침하는것이백제토기의발견이다. 문학산동사면과무주말유물산포지에서백제토기의출토는이곳에백제시대생활권이형성되었음을뒷받침하는것임 문학산을중심으로한방백리의땅
52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 관교동 문학동 분지는 미추홀의 중심지이지 그 전체 범위는 아닌 것 으로 추측된다. 비류집단의 세력은 온조집단에 비견할 정도의 세력이 었을 것이므로, 미추국의 범위를 확대하여 볼 필요가 있다. - 온조가 남하 당시 마한왕이 동북지방 1백리의 땅을 주었다는 기사에 비추어 본다면, 미추국의 규모 또한 方百里 의 규모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문학산 주변과 동으로 인천의 진산인 소래산까지, 서쪽으로는 영종도까지 포함하는 지역으로 보는 것이 타 당함. ④ 미추홀 인천설의 반성 미추홀 인천설을 부정하는 이유는 지금의 인천지역에 비류가 도읍하였 다고 볼만한 적극적인 고고학적 근거, 즉 당시의 성 또는 고분과 같 은 확실한 자료가 없기 때문임 백제초기사는 삼국사기 의 백제 초기기록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백제초기사는 문헌으로서 삼국사기 를 제외하고는 마땅히 대체할 것 이 없는 실정으로, 기록의 적극적인 해석을 통해 역사적인 맥락을 잡 아야 하는 것처럼, 미추홀의 위치 비정도 같은 맥락에서 삼국사기 에 미추홀이 인천으로 비정된 이래 역대 지리지와 사서의 인천조에 한결 같이 수용하고 있는 기록에 대해서 그를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다. 그러므로 현재 서 울에서 멀지 않은 서해안 어느 지역에서 비류의 정착지로 볼 수 있는 토성 또는 고분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인천을 미추홀로 추정할 수밖에 없는 것임 미추홀 인천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한결같은 결론은 상술한 바와 같 다. 이와 반대로 인천설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인천설을 주장하는 학자 들이 새로운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새로운 견해에 대한 비판만을 함으로써 인천설을 지탱하고려만 한다고 비판한다. 남의 주 장하는 것은 매우 용이한 일이다. 그러므로 미추홀 인천설을 수성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원인천지구에 대한 적극적인 학술조사와 문헌의 적
53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53 극적인 해석을 통해 미추홀 인천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근거를 밝혀내야 함 Ⅱ 백제의 관문, 능허대 1. 대중국교통로서의 인천 능허대는 백제가 東晋과 교역을 시작한 近肖古王 27년(372)부터 熊津으 로 남천하는 蓋鹵王 21년(475)까지 중국으로 내왕하는 사신들이 머물던 客館으로, 1990년 인천광역시지정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 다. 이곳에 候風하던 사신이 府西 10리 多所面에 위치한 大津에서 배를 띄어 중국 산동반도의 登州 萊州에 도달하였다고 한다. 백제가 중국과 통교하기 시작한 것은 전성기를 이룬 근초고왕 때의 일이 다. 삼국사기 에 의하면 백제는 근초고왕 27년(372)에 중국의 晋에 처 음으로 사신을 보내 대중관계를 맺었고, 그 다음해에도 사신을 보내 조공 하였다고 한다.1) 이러한 사실은 중국측 사료에서도 확인된다. 咸安 2년 춘정월, 백제 林邑王이 각각 사신을 보내 方物을 바쳤다. 함안 2년 6월, 사신을 보내 백제왕 餘句를 배하여 鎭東將軍領樂浪太守로 하였다. ( 晋書 卷9, 本紀, 簡文帝紀) 위의 내용은 백제의 조공과 함께 동년 6월 근초고왕을 진동장군영낙랑태 수로 봉책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양측 사료에 모두 공식적인 외교적 행위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백제국 성장의 결과 이다. 같은 책에는 290년까지 마한이 여러 차례 진에 조공한 기사가 전하 여진다.2) 진서 에 마한이 사라지고 백제가 공식적인 외교대상으로 등장 하는 것은 성장을 계속하던 백제가 근초고왕대에 이르러 마한의 잔여세력 을 복속하고 한반도 서남부의 대표적 세력으로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다. 1) 二十七年春正月遣使入晋朝貢 二十八年春二月遣使入晋朝貢 ( 三國史記 권24, 百濟本紀 2, 近肖古王條). 2) 晋書 권97 列傳 67 馬韓條.
54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또한 이러한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당시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서 로의 필요에 의한 쌍방적인 외교행위로 해석된다. 4세기 이후 중국은 양 자강을 경계로 南朝와 北朝로 갈려져 있었다. 晋(265~316)이 유목민족인 5胡(흉노 갈 선비 저 강)의 침입으로 강남으로 밀려가 東晋(317~420)이 되 었고, 강북에는 5호의 여러 국가가 성립됨으로써 중국은 남북이 서로 군 사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동진은 그들 나름대로 한족을 중심 으로 하는 동북아시아의 지배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백제와의 관 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정세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남북의 대립으로 인해 진의 지배력이 동방에까지 미치지 못하자 고구려 美川王이 요동의 西安平을 공 격하고, 남쪽으로 낙랑군과 대방군을 점령함으로써 현도군과 요동군을 고 립시키는 동시에 남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 나 이로 인해 고구려는 서쪽으로는 前燕과 남쪽으로는 백제와 경계를 이 루게 되어 전연과는 요동군과 현도군을, 백제와는 낙랑군과 대방군의 땅 을 놓고 다투게 되었다. 고구려는 慕容皝의 침입을 받아 국도가 함락되자 전연과는 화의를 맺고, 고국원왕은 백제의 북경을 두 차례 침범함으로써 남으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그러나 고구려의 침입을 받은 백제는 근초고 왕 24년(369)3)과 26년(371)4)에 고구려군을 격퇴하였는데, 두 번째 전투 에서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이로써 백제는 남으로는 마한의 잔여세력을 복속하고 북으로는 고구려의 위협적인 존재 로 성장하면서 마한을 대신하는 한반도 서남부 지역의 중심국가로 부상하 면서 진과의 외교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그러나 고국원왕의 전사로 백제와 고구려는 구수관계에 놓이게 된다. 고 구려는 전연을 멸하고 등장한 前秦과 평화적 관계를 수립하고, 백제는 전 진과 대립하고 있는 동진과 통교함으로써 중국과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대 립하고 동서로 연결되는 형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북조와 백제 3) 二十四年秋九月 高句麗王斯由 帥步騎二萬 來屯稚壤 分兵奪民戶 王遣太子 以兵徑至稚壤 急 擊破之 ( 三國史記 권24, 百濟本紀 2, 近肖古王 24年條). 4) 二十六年 高句麗擧兵來 王聞之 伏兵於浿河上 俟其至 急擊之 高句麗兵敗北 冬 王與太子 帥 精兵三萬 侵高句麗 攻平壤城 麗王斯由 力戰拒之 中流矢死 王引軍退 移都漢山 ( 三國史記 권24, 百濟本紀 2, 近肖古王 26年條).
55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55 는 남조와만 통교한 것은 아니다. 장수왕은 남북조 모두 통교하였고, 백 제는 개로왕 18년(472) 北魏에 사신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는 등 당시 양국의 사정에 따라 중국의 남북조와 관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와 구수관계에 놓인 백제는 육로를 통해 중국과 통교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해로를 이용하여 통교하여야만 하였다. 백제가 이 때 이용한 해상 교통로가 登州航路였다. 등주항로는 한강 하류역인 인천을 출발하여 德物 島(덕적도)를 거쳐 중국 산동반도의 등주에 이르는 항로이다. 이는 백제 를 공격할 때 唐의 蘇定方이 이용한 항로가 산동반도의 萊州에서 덕물도 를 거치는 항로였음에서도 알 수 있다.5) 인천이 백제사신의 출항지가 된 것은 백제의 한산에서 서해로 빠지는 한강 하류역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 다는 지리적인 조건과 함께 상술한 바와 같이 인천은 전통적인 해상활동 의 중심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등주항로는 비교적 안전한 항로였다고 는 하지만,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6)에도 나타나듯이 당시의 조선기 술이나 항해술로 비추어볼 때 사신을 중국으로 파견한다는 것은 쉬운 일 은 아니었다. 한성백제시대의 대중관계7) 중국사서 번호 연도 내용 삼국사기 기년 조공 봉책 조공 조공 조공 봉책 조공 봉책 봉책 (진) (진) (진) (진) (진) (진) (진) (진) (송) 근초고왕 27년 근초고왕 28년 근구수왕 5년 침류왕 원년 전지왕 2년 전지왕 12년 함안 함안 서명 2년 2년 晋書 晋書 태원 9년 태원 11년 晋書 晋書 의회 12년 영초 1년 宋書 宋書 5) 朴廣成, 凌虛臺에 대하여 韓國中世史硏究, 인하대학교, 1991, 쪽. 6) 謹遣私署冠軍將軍駙馬都尉弗斯侯長史餘禮 龍驤將軍帶方太守司馬張茂等 投舫波阻 搜徑玄 津 託命自然之運 ( 三國史記 권25, 百濟本紀 3, 蓋鹵王 18年條).
56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조공 (송) 견사 (송) 조공 (송) 조공 (송) 봉책 (송) 조공 (송) 조공 (송) 조공 (송) 기타청구 (송) 허가 (송) 관작청구 (송) 봉책 (송) 관작청구 (송) 봉책 (송) 조공 (송) 조공 (송) 조공 (송) 기타청구 (위) 견사 (위) 견사 (위) 비유왕 3년 비유왕 4년 비유왕 4년 비유왕 14년 개로왕 18년 개로왕 년 정평 원가 원가 원가 원가 원가 원가 원가 원가 원가 대명 대명 대명 대명 대명 태시 태시 연흥 연흥 연흥 2년 2년 6년 7년 7년 17년 20년 27년 27년 27년 1년 1년 2년 2년 7년 3년 3년 2년 년 5년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宋書 冊府元龜 宋書 宋書 魏書 魏書 魏書 표에서 보듯이 근구수왕 5년(379)에 동진으로 파견된 사신은 악풍을 만 나 회항하는 등 총 65회 중 3차례나 중도에 회항한 사실에서도 알 수 있 다.8) 그러나 백제는 舫 으로 표현된 대형선박을 이용하였고, 또 488~490 년의 해전에서 북위 선단을 격파할 정도로 비상한 해전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중국과 통교할 수 있었다.9) 2. 능허대와 대진 현재는 해변이 매립되어 해안도로가 옆을 지나고, 주변에 아파트가 둘러 져 있어 능허대의 옛모습은 찾을 수 없다. 다만 1988년에 능허대공원 정 7) 유원재, 백제의 대외관계 한국사 8, 1995, 118쪽에서 전재. 8) 三國史記 권 24, 百濟本紀 2, 近仇首王 5년 및 권26, 백제본기 3, 文周王 2년 東城王 6 년조 참조. 9) 李道學, 새로 쓰는 백제사, 푸른역사, 1997, 371~372쪽.
57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57 화작업을 통해 정자가 세워지고 연못이 조성되어 그나마 고풍스러운 느낌 을 갖게 할 뿐이다. 능허대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전해진다. ① 대진은 부서 십리 多所面에 있으며, 삼국이 鼎峙하였을 때 고구려에 의하 여 백제의 조천로가 경색되었으므로 중국으로 들어가는 사신이 이곳에서 배를 띄워 산동반도의 등주 래주에 도달하였다. 능허대가 부서 10리 원우 미면(또는 원우금면)에 있는데 청량산 여록이 해변으로 들어가 100척의 높이로 가파르게 솟아 있고 위에는 30여 명이 앉을 만하며 대양을 바라보 매 막힘이 없었다. 대진은 백제가 조천할 때의 출선처이다. 그 밑에 기 암이 있다. 전하기를 백제사신이 기녀를 데리고 와서 候風하다가 막상 배 에오르던 날 遠別의 정을 이기지 못한 기녀가 바위에 떨어져 죽었기 때문 에 후인들이 그 바위를 기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輿地圖書 仁川都護府 形勝條) ② 능허대는 부서 10리에 있으며 바다에 임하여 높이 100척으로 솟아 있어 대양을 바라보매 막힘이 없다. 밑에 대진이 있는데 삼국이 정치하였을 때 고구려에 의하여 백제의 조천로가 경색되었으므로 중국으로 들어가는 사 신이 이곳에서 배를 띄워 산동반도의 등주 래주에 도달하였다.( 仁川府邑 誌 古蹟條) ③ 가는 벼랑으로 나 있는 오솔길, 넓은 모랫벌에 끊어진 언덕.(權諰, 凌虛 臺 炭翁集 권 1) ④ 능허대 아래는 곧 서해 바다가 드나드는 포구이다. 대는 겨우 10여장의 산인데 바닷가 포구에 높게 솟아 있어 자루와 같다.(李奎相, 一夢稿 권19) ①과 ②의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①에서는 대진과 능허대가 각 각 다소면과 원우미면에 소속되어 있어 조금 떨어져 있는 것으로 표현한 반면 ②에서는 능허대 아래에 대진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17년 작성된 근세조선오만분지일지도 에도 능허대는 현재의 위치와 일치하지 만, 대진은 송도역 맞은편의 송도시장 부근으로 표시되어 있다. 즉 능허 대는 해안 섬처럼 솟아있는 전망대 구실을 한곳이고, 중국으로 향하던 선 박의 발선처는 대진이었다는 것이다. 즉 19세기 후반에 작성된 ②의 기록
58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에 따라 능허대가 포구처럼 인식하게 된 것이다. ③과 ④의 기록처럼 능 허대로 통하는 길이 오솔길인 점에서 그곳이 포구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0) 능허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부천시 쪽에서 인천시 구 산동을 거쳐 만수동으로 넘어오는 고개를 別離峴이라 하고, 인천구읍 관 교동에서 능허대 쪽으로 이르는 문학산 서편고개를 三呼峴(사모지고개)이 라 부른다. 중국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배를 타고 중국으로 향할 때 한 산에서 부평의 별고개를 넘고 이 고개를 넘어 능허대에서 배를 타고 떠났 다. 그 때 사신을 배웅하러 따라 나왔던 가족과 친지들은 별고개에서 전 송하며 이별을 나누었다 하여 별리현이라 불리었고, 사신들도 사모지고개 에 오르면 멀리 보이는 별고개에 아직도 서 있던 가족들을 바라보며 큰소 리로 세 번 부르며 아쉬움을 달랬다 하여 삼호현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柳馨遠의 東國輿地志 에는 능허대를 客官, 鄕射堂과 함께 宮室條로 분류 하고 있다. 별리현 삼호현전설과 ①의 기암전설, 그리고 동국여지지 의 분류를 보면, 능허대는 후풍하는 백제사신들의 객관이 있었던 곳이며, 주 변의 대진에서 출항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능허대라는 명칭은 인천부읍지, 여지도서, 대동지지 에 모두 능허 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1933년 일본인에 의해 편찬된 인천부사 구 적명소조에는 凌壺臺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어 발음에 따른 오 기인 것 같다. 능허대의 능허는 하늘높이 나른다 는 뜻으로 중국의 옛 시구에 자주 나타나는 말이다. 능허대라는 명칭은 蘇東坡의 赤壁賦 에서 글자를 따다가 합자한 것으로 보인다. 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이라 한 데서 만경을 건넌다 는 능만경의 凌 자와 浩浩乎如憑虛御風 이라 한 데서 바람을 타고 하늘에 오른다 는 빙허어풍의 虛 자를 따서 만경창파 를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르듯 건넌다 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 다. 소동파는 송대 사람이므로 능허대라는 명칭은 백제 당시가 아닌 후대 에 붙여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11) 능허대를 통해 중국과 통교한 것은 근초고왕대에서 개로왕 21년(475)까 10) 尹龍九, 인천의 百濟文化 연보 10, 인천광역시립박물관, 2000, 34~36쪽. 11) 朴廣成, 앞의 글, 1991, 346~348쪽.
59 미추홀의 위치에 대하여 59 지의 100여년간에 불과하다.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침입을 받아 도읍을 熊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 백제와 중국사이에는 조공 봉 책 견사 청구 및 허락 전쟁 회맹 등의 관계가 지속되었다. 그 내용을 정리 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최초로 대중관계를 맺은 진과는 372년 간문제가 근초고왕을 鎭東將軍領樂浪太守 로 봉한 이래 8차례나 통교하였으며, 그 내용은 모두 조공과 봉책에 관련된 것이었다. 진을 대신하여 宋이 서자, 벡제는 송과 통교를 계속하였다. 송은 腆支王을 鎭東大將軍 으로 봉책하 여 진의 외교관계를 계승하였다. 조공과 봉책의 관계를 지속하면서 毗有 王은 易林 式占 腰弩 등을 요청하는 등 백제가 문화적 욕구를 위해 적극적 으로 대중관계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로왕대에는 왕에 국한된 봉 책관계에서 신하들에게까지 관작을 요청하기도 하고, 남조에 국한하지 않 고 북위와 적극적으로 접촉하는 등 심화된 대중관계의 일면을 보여준 다.12) 대중국 통교의 관문이었던 능허대의 역할은 백제가 한강유역을 상 실하면서 끝이 난다. 웅진으로 남천한 백제는 백마강을 통하여 통교하였 고, 고구려는 한강을 점령한 후에도 육로를 이용하였으며, 한강유역을 점 령한 신라는 남양의 黨項城을 통하여 중국과 통교하였다. 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신라는 남양만의 唐城(당항성)과 영암방면에서 흑산도를 항로로 이용하였다. 후백제가 오월과 통교한 곳도 나주였으며, 고려 역시 북쪽에 거란이 막고 있어 예성강을 통하여 통교하였으므로, 능허대가 있는 인천 지역은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 다.13) 12) 兪元載, 百濟의 歷史와 文化, 學硏文化社, 1996, 244~248쪽. 13) 朴廣成, 앞의 글, 1991, 349~250쪽.
60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61 백종오 ( 충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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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삼국시대의 인천 63 삼국시대의 인천 - 문학산성을 중심으로 백종오 (충주대학교) 목 차 Ⅰ.머리말 Ⅱ.문학산성의 현황 Ⅲ.문학산성의 변천과 인천 Ⅳ.맺음말 Ⅰ. 머리말 문학산성(文鶴山城)은 인천광역시 문학산 정상부(해발 232.8m)에 위치 하고 있는 석축성이다. 문학산은 서쪽의 학익동, 청학동에서 시작하여 문 학동, 연수동을 거쳐 동쪽의 곡창지대인 선학동까지 이르는 동서로 긴 산 지로서 남쪽에서 인천의 중심지를 감싸고 있는 인천을 대표하는 산이다. 지리적으로 문학산성은 북쪽으로 인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으 로는 서해바다가, 남쪽으로는 연수구의 신시가지가 조망이 되고 있다. 해 안과 2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해안 인접지역에 해당된다. 조선시대 실학자인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 에서 백제 초기 도읍 지인 비류성으로 언급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이 성은 조선시대의 각종 기록에 이미 고성(古城) 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조선후기까지 성내
64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에 봉수대(烽燧臺)가 있었다. 선조실록 에는 임진왜란 중 인천의 사민 (士民)이 왜병을 격퇴하였으며 숙종실록 에는 양란이후 문학산성의 수축 논의가 이루어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문학산성에 대한 근 현대조사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의 산림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기본 자료로 작성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가 있다. 이 책에는 유적 의 위치와 명칭, 규모를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해방이후인 1949년 인천시 립박물관의 조사와 1958년 향토사학자들에 의해 동문지 복원과 표석 설치 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 미군기지 건설이 발의되고 1960년부터 문학산 정상부와 서문지를 헐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년 이후 미군부대와 한국군이 주둔하면서 통제구역으로 설정되었으며, 현 재는 군사시설에 의해 현상변경과 파괴가 심하게 이루어진 상태이다. 1997년 인천광역시에서 유적의 보호 및 정비를 위한 계획수립차원에서 지 표조사가 실시되었고14) 1999년과 2002년 인하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학산 일대의 문화유적을 정밀지표조사를 진행하면서 산성과 그 주변 문화유적 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였다.15)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의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문학산성의 현황을 문헌 검토와 축조방법, 등으로 나누어 정리한 후 문학산성의 시기별 변천과정 을 인천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맺는말에서 는 인천지역 성곽 조사연구의 향후 과제에 대해서 나름의 생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문학산성은 간단한 지표조사만 이루어졌기 때문 에 그곳에서 채집된 유물 역시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문학산성의 현황과 그 변천 과정을 살핀다는 것은 무리가 따 를지 않을 수 없다. 추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문학산성의 실체가 보다 명확히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14) 仁川廣域市, 1997, 文鶴山城 地表調査 報告書. 15) 인하대학교 박물관, 1999, 문학산 일대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 인하대학교 박물관, 2002, 문학산의 역사와 문화유적.
65 삼국시대의 인천 65 Ⅱ. 문학산성의 현황 삽도 1 문학산성 위치 및 성곽 분포도 삽도 2 문학산성 위치도(1917)
66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1. 문헌검토 문학산성에 관한 기록은 조선시대 각종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봉수 에 대한 기록을 제외한 문학산성과 관련된 문헌기록 및 이전 조사보고 내 용을 정리하면 다음 <표 1>과 같다. 표 1 문학산성 관련 자료16) 出 典 資料 ① 世宗實錄地理志 ② 新增東國輿地勝覽 ③ 東史綱目 內容 南山古城은 군 남쪽 2里에 있다. 둘레는 1백60보이며, 사면이 높고 험하다. 안에 작은 샘이 있다. 남산고성은 돌로 쌓았으며 둘레는 430척이다. 문학산 정상에 비류 성터가 있고 성문의 扉板이 아직도 남아있 고 성내에는 沸流井이란 우물이 있는데 물맛이 맑다. 勝覽 에서 기록하지 않은 것이 개탄스럽다. ④ 輿地圖書 ⑤ 大東地志 ⑥ 京畿誌 ⑦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彌鄒王의 옛 도읍지이며, 石城의 터가 있고, 임진왜란시 부사 金善敏이 古城을 增修하여 성을 지키면서 여러 차례 무찔렀다. 古城은 文鶴山에 있으며 둘레 430척이다. 彌鄒忽古城 혹은 南山古城이라고도 한다. 부의 남쪽 1리 문학 산에 있으며 둘레는 사백삼십척이다. 성벽은 동문 부근 석축으로서 높이 7~8척, 길이 7~8칸, 둘레 약600칸의 토루의 자취를 보인다. 문학산성 동문으로부터 서북으로 약 150m 되는 한층 얕은 곳에 석축의 우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석축이 倒壞되어 태반이 매몰되 ⑧ 仁川鄕土史料 었고 몇 십년 전까지도 맑은 물이 항시 넘쳐흐르고 있었다 한다. 표고 280m 가까운 높은 산상에 이 같은 우물이 있는 것은 지질 학적으로 보아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이 우물을 판 것은 산 성의 축조와 때를 같이하였으리라고 본다. 성은 內 外城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성은 석축의 성벽으로 둘 레 약 200m로 되어있고, 내성은 토축의 성벽으로 둘레 약 100m ⑨ 文化遺蹟總攬 로 되어 있다. 자연의 험지를 이용하여 문학산정에 이룩한 성벽 은 5m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성중에는 우물이 있고 성벽 은 현재 대부분 붕괴되어 그 석조물이 산기슭에 흩어져 있으며 동북면이 다소 완전하게 남아있다.
67 삼국시대의인천 67 위 < 표 1> 을보면 18세기에편찬된안정복의 동사강목 에서백제비류성으로언급하고있다. 이와관련해서는 문화유적총람 ( 文化遺蹟總覽 ) 에서토축내성이있음을보고하고있어이토축성이백제에의해축조된것으로볼수있으나현재까지내성은지표상에서확인되지않아단정하기가어렵다. 조선초기 세종실록지리지 의기사에서는성벽이석성 ( 石城 ) 으로축조되었으며성내에봉수 ( 烽燧 ) 가있다는기록이있어이미봉수가건립되었으며당시까지성곽의기능을유지하고있던것으로여겨진다. 다음으로 1531년에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에서는 고성 ( 古城 ) 으로칭하고있어 16세기에는이미성곽이퇴락하여폐성 ( 廢城 ) 된것을알수있다. 또한 여지도서 ( 輿地圖書 ) 의기록에임진왜란시성벽을증수 ( 增修 ) 하여이곳에서왜적과의전투가있었음을언급하고있다. 산성의명칭에대해서는남산석성 ( 南山石城 ), 남산고성 ( 南山古城 ), 비류성 ( 沸流城 ), 문학산성 ( 文鶴山城 ), 미추홀고성 ( 彌鄒忽古城 ) 등으로불리고있다. 성의둘레는 세종실록지리지 에서만 160보 ( 步 ) 이며나머지기사에서는모두 430척 ( 尺 ) 으로기록하고있다. 2. 구조및축조방법 문학산성은문학산정상부를중심으로축조된테뫼식의석축성이다. 토 축의내성이있었다고하나현재확인되지않는다. 4) 성곽의규모는둘레 3) 1 世宗實錄 卷 148, 地理志仁川郡條. 2 新增東國輿地勝覽 卷 9, 仁川都護府山川條. 3 東史綱目. 4 輿地圖書, 仁川都護府古跡條. 5 大東地志 卷 4, 仁川城池條. 6 京畿誌, 仁川府邑誌城池條. 7 朝鮮總督府, 1942,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8 史料收集委員會, 1956, 仁川鄕土史料. 9 文化公報國文化財管理局, 1977, 文化遺蹟總攬. 4) 문학산성의내성은 1949 년기록을통하여처음확인되는데둘레약 100m 의토축성벽으로 1950 년대초까지남아있었음을알수있다.( 李慶成, 1949, 文鶴山城, 仁川의名所古蹟, 32 쪽.) 그러나 1959 년이후군부대를지으면서山頂을削平하고후미진곳은覆土하였으므로현재는확인되지않는다.( 인하대학교박물관, 1999, 앞의책, 88~89 쪽.) 이내성은봉수대가운
68 년신규자원봉사자교육 577m 이며, 면적은 20,800 m2 (6,300 평 ) 이다. 평면형태는동서방향을장축 으로하는마름모꼴로북벽이길고남벽이짧다. 각성벽의현황 5) 은다 음의 < 표 2> 와같다. 표 5 성벽현황 북벽 동벽 남벽 서벽 계 길이 227m 110m 112m 128m 577m ( 잔존 339m) 구간 NO.19~246 NO.246~355 NO.356~467 NO.468~0~NO.18 시설 동문지, 수구 서문지 성내고도는북서쪽이높고남동쪽이낮은지형을이루고있다. 산의 8~9부능선을이용하여축조하였는데동 서벽쪽으로능선이이어지고있으며남 북벽아래로는가파른급경사를이루고있다. 성벽은동벽과남벽의잔존상태가양호하며북벽과서벽은군사시설로인해현상파괴가이루어졌다. 잔존성벽의길이는 339m이다. 성돌은다듬은장방형석재를이용하여단과열을맞추어맞물리게축조하여평면모습이 품 ( 品 ) 자형을이루고있다. 성돌의크기는높이 12~30cm, 너비 25~80cm, 뒷심길이 30~60cm 내외이다. 간간히뒷심이긴심석 ( 深石 ) 을이용하여뒷채움석재들과맞물리게하였다. 성벽하단에지대석은보이지않으며아래에서위로오르면서석재의크기가작아지고있다. 일부구간에서는돌출된자연암반을그대로체성벽으로이용한것이확인된다. 성벽기저부는암반층을정지하여그대로성벽을쌓거나기초부에석재다짐층을조성한후성벽을축조하였다. 석재다짐층이확인된구간의높이는 1.3m이다. 암반층을기저부로이용한경우에는성벽하부에서보강석축시설이일부확인된다. 성벽의단면형태는하단은거의수직을이 영되면서조성한방호벽일가능성이매우높은것으로여겨진다. 5) 구간은 文鶴山城地表調査報告書 를참조하였으며, 이를중심으로四方성벽의기준을설정하였다.
69 삼국시대의 인천 69 루고 있으며 상단으로 가면서 약간 안으로 들여쌓기하여 규형(圭形)을 이 루고 있다. 삽도 3 장미산성 북서벽 <삽도 4 장미산성 북벽 문학산성의 성벽을 구성하는 성돌의 경우, 가로와 세로 비율이 2:1, 3:1의 장방형 석재를 사용함과 동시에 판석형 석재를 일정비율 혼용하여 축조하였다.19) 그리고 문학산성 성벽은 웅진 사비기 충남지역에서 확인되 고 있는 백제석성의 성돌의 장방형 석재의 가로와 세로 비율이 동일하다. 그렇다면 웅진 사비기 정착된 석성의 성돌 규격이 한성기 어느 한 시기에 정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근한 예로 장미산성과 설봉산성의 발굴결 과에서도 판석형 석재를 일정비율 혼용하여 축조한 양상이 관찰된다. 이 러한 축조양식은 백제 한성기 석축산성의 중요한 특징으로 파악된다. 또 성벽 하부에 석재 다짐층을 조성한 후 성벽을 축조 하였고 보강석축을 하 부에 조성하였는데 이는 앞에서 예를 든 두 산성에서도 공히 나타나는 축 조양상이다.20) 따라서 이와 같은 자료들은 고대 성곽의 축조주체 문제를 19) 고대 석축산성으로 보고된 유적은 설봉산성, 설성산성, 망이산성, 자미산성, 반월산성, 장미산성 등이 있다. 이러한 유적에서 확인된 축조방법 중 먼저 성벽의 면석을 살펴보면 세장방형 석재와 장방형 석재를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웅진 사비기 석축산성에서 보이는 가로:세로 비 가 2:1 또는 3:2의 장방형 석재의 사용 예와 대조를 보인다.(서정석, 2002, 百濟의 城郭, 학 연문화사, 233~240쪽.) 설봉산성의 경우 2차 서문지구간 외벽은 쐐기돌 없이 장방형 석재를 2~3단 쌓고 그 위에 세장방형 석재를 1단 올리거나 세장방형 석재 위에 장방형 석재를 1단 쌓 는 방법이 확인된다. 특히 장방형 석재는 사각추 형태로 다듬어 사용하였다. 이러한 축조기법은 고대 산성의 축조기법으로 알려져 있다.(金虎俊, 2004, 利川 雪峰山城 築城技法 考察 文化 史學 21, 韓國文化史學會. ) 20) 한성기 석축성의 축조기법은 지형에 따라 계곡부와 능선 상면의 2가지 경우에서 볼 수 있다.
70 년 신규 자원봉사자 교육 살필 수 있는 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외 성곽 관련 시설물로는 봉수대 와 문지, 우물 등이 있다. ① 삽도 5 설봉산성 북벽 봉수대는 세종실록지리지 를 비롯한 각종 지지(地誌)와 읍지(邑 誌)에도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대 부분 성산봉수(城山烽燧) 로 표기되어 있다. 대응노선은 남으로 안산 정 왕산봉수(正往山烽燧)와 북으로는 부평 축곶봉수(杻串烽燧)를 연결하는 연변봉수이다. 1942년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에 는 지름 2칸의 만두형(饅頭形)의 봉수대가 남아있고 이를 미추왕릉(彌鄒 王陵)으로 보는 전승이 있다고 한다.21) 1949년의 조사에서는 봉돈이 토 축(土築)의 원루(圓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22) 군부대 건설시 완전히 멸실되었다. ② 문지는 성벽 파괴가 심하여 지표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현재 성 내로 진입하는 도로가 서벽에 개설되어 있는데 원래 주출입문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문지는 1958년 인천시에 의해 개수(改修)되었 계곡부의 성벽은 성 안쪽을 성벽 상면까지 점토다짐으로 채우는 특징이 있다. 이 토축부는 외벽 까지 이어지며 초축시기를 가늠하는 자료로 이용된다. 이러한 토축부는 성벽 상면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성내부에 평탄지 확보와 빗물 등의 성내 用水가 성벽으로 침투하는 것 을 막고 원활한 배출을 위한 용도로 쓰였으며 뒷채움석을 고정시켜 성벽이 밀려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도 하였다. 능선 상면은 편축법에 의해 성벽이 축조되었는데 능선의 경사가 심한 경우에는 암반을 ㄴ 자로 깎아낸 후 기저부를 계단식으로 조성하였다. 이러한 계단식 기저부는 성벽이 성밖으로 밀려나가는 것을 방지할 목적으로 굴착한 것으로 성벽 하중의 분산과 마찰면의 확보를 위해 계단식으로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연약지반과 지하수의 침투가 예상되는 구간에서는 암반층까지 퇴적토를 걷어내고 점토와 잔돌, 대형석재를 이용하여 1m 정도를 다진 후 성벽을 축조하기도 하였고, 계곡부에는 외벽의 기저부를 점토로 덧 데고 기단석을 올리는 경 우도 있다.(白種伍, 2007, 仁川沿岸의 古代城郭에 대하여 文化史學 27, 韓國文化史學會, 177~178쪽.) 21) 朝鮮總督府, 1942,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5쪽. 22) 봉수대가 산 정상에 볼록하게 솟아있는 관계로 문학산을 일명 배꼽산으로 불리웠다.(李慶成, 1949, 烽燧, 文鶴山方面古蹟傳說調査報告書, 仁川市立博物館, 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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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2) 2호 주거지 주거지는 해발 58.6m의 조사지역 중앙부 북쪽에 3호 주거지와 중복되어 위치하고 있다. 주거지는 현 지표층인 흑갈색사질점토층(10YR 2/3)을 제거하자 상면에 소토와 목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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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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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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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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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299)206지도서2-3 2012.9.17 21:21 페이지284 mac01 T 세계화 시대의 지역화 전략 1 단원의 개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서 물자와 사람들의 지역 간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세계 각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경쟁력 있는 특성을 발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역의 독특한 자연 세계화 시대의 지역화 전략 교 통과 통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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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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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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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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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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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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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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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NATIONAL PARK SERVICE For the nature as it is, for the future generations Tel : 02-3279-2700, 02-3279-2701 Fax: 02-3278-2785~6 E-mail: webmaster@knps.or.kr www.knps.or.kr About This Reports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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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간 등 록 번 호 54-3540000-000057-01 2012년도 정비사업 추진 지연에 따른 갈등요인 길라잡이 INCHEON METROPOLITAN CITY BUPYEONG-GU INCHEON METROPOLITAN CITY BUPYEONG-GU 1970년대 부평의 전경 1995년 부평의 전경 2011년 부평의 전경 백운2구역 재개발지역 부평4동 재개발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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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호 5.0 4.0 3.0 2.0 1.0 (%) 2.6 2.8 2.4 1.2 주택매매가격 0.8 주택전세가격 1.6 0.4 0.0-1.0-2.0-0.1-0.6-0.2-0.9 02.1 3 5 7 9 11 03.1 3 5 7 8 160 140 120 100 80 60 40 20 0 (천호) 149 2001년 2002년 2003년 46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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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연구 http://www.kbc.go.kr/ 텔레비전의 폭력행위는 어떠한 상황적 맥락에서 묘사되는가에 따라 상이한 효과를 낳는다. 본 연구는 텔레비전 만화프로그램의 내용분석을 통해 각 인 물의 반사회적 행위 및 친사회적 행위 유형이 어떻게 나타나고 이를 둘러싼 맥락요인들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를 조사하였다. 맥락요인은 반사회적 행위 뿐 아니라 친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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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056-094 2013.1.9 7:22 PM 페이지67 MDPREP_RipControl 2007 개정 5학년 검정 지도서 각론 알짜 정리 67 영양소 힘을 내는 일(탄수화물/지방/단백질) 몸의 조직 구성(지방/단백질/무기질/물) 몸의 기능 조절(단백질/무기질/비타민/물) 식품 구성 자전거의 식품과 영양소 식품군 곡류 탄수화물 우리가 활동하는데 필요한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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