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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 한 일 중고생교류 (고등학생단) 연 수 소 감 문 국 립 국 제 교 육 원

2 목 차 연수 일정표 1 연수단 명단 3 격려사(8단 인솔단장-경기도교육청 이현숙 장학관) 7 5 단 9 나의 첫 일본 방문기 추 정 묵 11 다름 이 아닌 같음 을 찾아서 이 현 구 15 일본을 다녀와서(몽유일본서( 夢 遊 日 本 書 )) 강 인 규 19 한일중고생교류연수를 마치며 이 종 혁 25 일본, 고마웠습니다. 김 경 원 34 낯선 땅에서 찾은 여행 이상의 것 서 동 선 39 길을 여는 여행 남 승 우 42 배울 것이 많았던 소중한 경험, 일본연수 김 지 훈 46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 방일연수 성 진 우 49 한일 청소년 교류,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의 첫걸음 김 민 식 52 이제는 가까운 나라 일본 안 진 환 58 6 단 63 나의 첫 일본 방문기 한 예 슬 65 일본 연수 후 구 지 선 72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이 현 진 75 지금의 일본 과 지금의 한국 을 느끼다 이 예 지 80 연수, 즐거움 그리고 깨달음 김 정 아 한일 중고생 교류 방일 연수를 갔다 와서 양 지 예 86 - i -

3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이 진 91 일주일간의 값진 시간을 보내고 이 민 경 94 정( 情 )의 나라 일본에 다녀와서 장 정 연 102 잊을 수 없는 7일간 박 선 미 105 일본에서 보내는 편지 심 세 진 113 일본에 다녀와서 경 혜 현 116 정( 情 )의 나라 일본 윤 소 라 119 일본 다시보기 정 예 지 124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방일연수를 마치고 이 브 128 고교생 방일 연수를 다녀와서 유 지 은 135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다녀와서 김 태 영 141 1주일동안 본 일본 함 송 연 단 151 일본을 다녀와서 김 기 범 153 방일연수, 낯설면서 친근했던 1주일 이 준 현 157 6박 7일 평생의 추억 김 명 곤 163 일본에서 받은 선물 이 정 우 171 일본을 다녀와서 봉 의 종 175 JAPAN 박 성 진 180 잊을 수 없는 한 주간의 짧고도 긴 여정 정 진 욱 185 일본에서 보고 느낀 새로운 것들 현 상 민 단 195 고교생 방일 연수를 다녀와서 전 재 은 197 내 인생의 첫 일본! (일본연수를 다녀와서) 신 재 진 201 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박 다 회 206 한일교류 -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힘 최 고 은 210 일본을 방문하고 나서 류 지 은 219 내 마음 속 또 하나의 세상 임 한 별 ii -

4 일본을 다녀와서 정 유 진 235 이웃나라의 향기 김 지 영 238 직접 만난 일본, 이미지 실추의 한국? 장 영 은 244 6박 7일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김 아 람 249 6박 7일 간의 길고도 짧은 연수를 마치고. 진 태 화 252 동참( 同 參 ) 김 수 현 255 일본에 다녀와서 : 사랑받는다는 것 김 레 나 258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김 민 혜 262 떠남, 그리고 돌아옴. 김 화 은 iii -

5 연 수 일 정 표 - 방일 5, 6단 일자 5단(1팀) 일 정 6단(2팀) 9.24(목) 출국(OZ104) 나리타 공항 도착 동경 타워( 東 京 タワー) 전체회의 9.25(금) 9.26(토) 9.27(일) 9.28(월) 9.29(화) 외무성 방문 환영중식회 에도도쿄 박물관( 江 戸 東 京 博 物 館 ) 아사쿠사( 浅 草 - 浅 草 寺 仲 見 ) 방재교육체험 야마나시( 山 梨 )현으로 이동 홈스테이 대면식/홈스테이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단별회의 학교방문 - 大 月 (오오쯔끼) 市 立 大 月 短 期 大 学 附 屬 高 等 学 校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야마나시( 山 梨 )현 내 견학 단별회의 관서( 関 西 )지역으로 이동 방재교육체험 와카야마( 和 歌 山 )성 견학 단별회의 홈스테이 대면식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학교방문 - 和 歌 山 (와카야마) 県 立 星 林 (세이린) 高 等 学 校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와카야마( 和 歌 山 )현 내 견학 단별회의 9.30(수) 나리타 공항 출국 인천 공항 입국 해산 간사이 공항 출국 인천 공항 입국 해산 - 1 -

6 - 방일 7,8단 일자 7단(1팀) 일 정 8단(2팀) 10.29(목) 출국(KE715) 10:40 나리타 공항 도착 12:40 동경 타워( 東 京 タワー) 전체회의 10.30(금) 외무성 방문 환영중식회 에도도쿄 박물관( 江 戸 東 京 博 物 館 ) 아사쿠사( 浅 草 - 浅 草 寺 仲 見 ) 10.31(토) 방재교육체험 야마나시( 山 梨 )현으로 이동 홈스테이 대면식/홈스테이 방재교육체험 아키타( 秋 田 )현으로 이동 홈스테이 대면식/홈스테이 11.1(일) 11.2(월) 11.3(화) 11.4(수)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단별회의 학교방문 - 山 梨 (야마나시) 県 北 杜 (호크토) 市 立 甲 陸 (코료) 고등학교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야마나시( 山 梨 )현 내 견학 - 후지산 5부 능선, 잼 만들기체험 등 단별회의 나리타 공항 출국 김해 공항 입국 해산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단별회의 학교방문 - 秋 田 (아키타) 県 立 秋 田 南 (아키타 미나미)고등학교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아키타( 秋 田 ) 현 내 견학 -전통춤 체험교실, 교류발표회 동경으로 이동(국내선) 단별회의 - 2 -

7 연 수 단 명 단 - 방일 5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서울 이한준 반포고등학교 인솔 서울 문정선 반포고등학교 인솔 충남 정준모 충남서천교육청 인솔 서울 김동일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서울 이성용 강서공업고등학교 24 경기 박상현 평촌고등학교 2 서울 김정식 고명정산고등학교 25 경기 오해성 상일고등학교 3 서울 함지훈 덕수고등학교 26 경기 여대영 광명북고등학교 4 서울 이재윤 성수공업고등학교 27 경기 김지훈 안산동산고등학교 5 서울 조정호 세명컴퓨터고등학교 28 경기 정하현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 6 서울 김우성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29 경기 이은수 군포고등학교 7 서울 추정묵 숭실고등학교 30 경기 황현수 대신고등학교 8 서울 고인환 영동고등학교 31 경기 김상기 병점고등학교 9 서울 이정환 중앙고등학교 32 경기 성진우 이천고등학교 10 서울 이현구 한성고등학교 33 경기 권순주 이천제일고등학교 11 서울 강인규 자운고등학교 34 강원 박경일 원주공업고등학교 12 서울 이종혁 반포고등학교 35 강원 이청현 영월고등학교 13 인천 김경원 인천산곡고등학교 36 강원 안성기 여량고등학교 14 인천 정다운 운봉공업고등학교 37 강원 박건우 사내고등학교 15 인천 이승혁 인천원당고등학교 38 강원 차영호 기린고등학교 16 인천 추슬찬 인천남고등학교 39 충북 김민식 세광고등학교 17 인천 서동선 정보산업고등학교 40 충북 김규호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18 인천 신선익 학익고등학교 41 충북 지승우 충주고등학교 19 인천 강태형 인천남고등학교 42 충남 전으뜸 만리포고등학교 20 대전 조홍신 충남고등학교 43 충남 박창균 호서고등학교 21 대전 남승우 대전전민고등학교 44 충남 김상신 조치원고등학교 22 경기 신영하 수성고등학교 45 충남 안진환 청양정산고등학교 23 경기 구정현 분당정보산업고등학교 - 3 -

8 - 방일 6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서울 송순자 자운고등학교 인솔 서울 이강옥 자운고등학교 인솔 인천 정해영 인송중학교 인솔 서울 임미옥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서울 유혜주 광영여자고등학교 26 경기 노나은 의정부여자고등학교 2 서울 한예슬 금옥여자고등학교 27 경기 정윤경 동두천외국어고등학교 3 서울 이지원 배화여자고등학교 28 경기 박선미 백마고등학교 4 서울 하지은 서울문영여자고등학교 29 경기 황수진 퇴계원고등학교 5 서울 김진아 성동글로벌경영고등학교 30 경기 한예슬 금촌고등학교 6 서울 제하경 숭의여자고등학교 31 경기 이솔희 전곡고등학교 7 서울 구지선 이화여자고등학교 32 경기 이은샘 동남고등학교 8 서울 이현진 자양고등학교 33 경기 심세진 가평고등학교 9 서울 이예지 태릉고등학교 34 강원 이현규 춘천여자고등학교 10 서울 하소라 국악고등학교 35 강원 경혜현 평창고등학교 11 서울 홍새롬 자운고등학교 36 강원 윤소라 철원여자고등학교 12 서울 김정아 반포고등학교 37 강원 조수경 양구여자고등학교 13 인천 이도영 가정고등학교 38 충북 정예지 괴산고등학교 14 인천 김민지 가좌고등학교 39 충북 이유민 중산외국어고등학교 15 인천 양지예 부개고등학교 40 충북 이 브 충대부설고등학교 16 인천 이진 인화여자고등학교 41 충북 전보람 충북예술고등학교 17 인천 이소정 연수여자고등학교 42 충북 이경미 제천여자고등학교 18 인천 김은영 인천예술고등학교 43 충남 유지은 충남예술고등학교 19 대전 강문숙 대전반석고등학교 44 충남 김태영 서산여자고등학교 20 대전 황미수 대전이문고등학교 45 충남 정다연 예산정보미디어고등학교 21 대전 이민경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46 충남 함송연 충남외국어고등학교 22 경기 장정연 한국외국어대학교부속 용인외국어고등학교 47 충남 이연옥 논산여자고등학교 23 경기 김정민 일죽고등학교 48 충남 홍소연 건양고등학교 24 경기 김다슬 김포제일고등학교 49 전북 김도희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25 경기 김보련 시흥고등학교 - 4 -

9 - 방일 7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대전 김동문 대전교육청 인솔 전북 이석준 정우중학교 인솔 전남 이성민 전남교육청 인솔 서울 장원창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부산 황명준 센텀고등학교 26 전북 김혜중 전북외국어고등학교 2 부산 정성범 화명고등학교 27 전남 이지원 광양백운고등학교 3 부산 문태욱 부산진고등학교 28 전남 봉의종 금성고등학교 4 부산 김기범 경남고등학교 29 전남 이동균 영광실업고등학교 5 부산 조상우 부산중앙고등학교 30 전남 곽준덕 전남조리과학고등학교 6 부산 이현준 부산강서고등학교 31 전남 박성진 한영고등학교 7 부산 김태완 부산고등학교 32 전남 김갈렙 함평골프고등학교 8 대구 김지수 영진고등학교 33 경북 정진욱 경주고등학교 9 대구 박선규 영남공업고등학교 34 경북 사공필 효령고등학교 10 대구 이대두 경원고등학교 35 경북 송형근 점촌고등학교 11 대구 이재석 대구달서공업고등학교 36 경북 진홍진 상주고등학교 12 대구 이준현 운암고등학교 37 경북 박규태 수비고등학교 13 대구 이호준 덕원고등학교 38 경남 배한솔 삼천포고등학교 14 광주 김명곤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9 경남 현상민 창원경일고등학교 15 광주 신창일 풍암고등학교 40 경남 배성진 창녕제일고등학교 16 광주 양은규 고려고등학교 41 경남 최낙환 함안고등학교 17 대전 이정우 명석고등학교 42 경남 홍형석 칠원고등학교 18 울산 서희찬 함월고등학교 43 제주 한승호 남녕고등학교 19 전북 고광철 진안제일고등학교 44 제주 오선제 서귀포고등학교 20 전북 정한규 전주제일고등학교 45 제주 이상협 영주고등학교 21 전북 안홍근 줄포자동차공업고등학교 46 제주 곽한솔 제주제일고등학교 22 전북 강재성 임실고등학교

10 - 방일 8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경기 이현숙 경기도교육청 인솔 경남 김옥증 경남교육청 인솔 대구 서호성 산격중학교 인솔 서울 김수경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부산 김은비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26 전북 김시라 군산여자고등학교 2 부산 전재은 부산장안고등학교 27 전북 김지영 김제여자고등학교 3 부산 박수희 신도고등학교 28 전북 김우영 백산고등학교 4 부산 신재진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29 전남 은이슬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 5 부산 정은지 브니엘예술고등학교 30 전남 장영은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 6 부산 조아라 이사벨고등학교 31 전남 정희경 임자종합고등학교 7 대구 김윤하 상인고등학교 32 전남 김아람 전남예술고등학교 8 대구 박다회 와룡고등학교 33 경북 이난영 김천예술고등학교 9 대구 이은정 다사고등학교 34 경북 권희명 봉화고등학교 10 대구 임민정 경명여자고등학교 35 경북 이가람 성주여자고등학교 11 대구 주유란 원화여자고등학교 36 경북 진태화 영해고등학교 12 대구 최고은 포산고등학교 37 경북 조소리 지보고등학교 13 광주 고은희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8 경북 김정임 울진고등학교 14 광주 김다솜 상일여자고등학교 39 경남 김아라 삼천포중앙고등학교 15 광주 류지은 대성여자고등학교 40 경남 신효수 영산고등학교 16 광주 이도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41 경남 김수현 남해해성고등학교 17 광주 임한별 숭덕고등학교 42 경남 임정민 마산내서여자고등학교 18 광주 박지혜 보문고등학교 43 경남 오서희 진주중앙고등학교 19 대전 김샛별 대전둔원고등학교 44 경남 김지현 거제여자고등학교 20 대전 신은정 대전관저고등학교 45 제주 현윤아 서귀포여자고등학교 21 대전 오서영 대전여자고등학교 46 제주 김레나 신성여자고등학교 22 울산 이슬 성광여자고등학교 47 제주 김민혜 제주고등학교 23 울산 이현주 남창고등학교 23 제주 김현아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24 울산 정유진 울산중앙여자고등학교 24 제주 김화은 제주사대부속고등학교 25 울산 전수진 울산컴퓨터과학고등학교 - 6 -

11 격 려 사 이 현 숙 (경기도교육청 국제협력담당 장학관) 아키타현은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따뜻한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 아키타현 사람들의 마음도 포근했습니다. 일본가정에서의 홈스테이 를 하고 와서는 그들의 친절과 배려에 대하여 감동을 받아 못내 헤어지기 아쉬 운 얼굴이었지요. 여러분들은 평생 잃을 수 없는 재산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 글로벌세계를 이끌고 나가야 할 젊은이들입니다. 이번 한.일 고등학교 교류프로그램을 통해서 내 가족이 아닌 지구상의 누구에게도 가 족과 같은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인류애를 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아 키타 미나미 고등학교 방문을 통해서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같은 또래의 아 이들이 비슷함과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과도 서로 소통하고, 그들의 생각을 서로 나누어야 함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은 이러한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청소년들도 스스로 노력하여 더 많이 소통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이번 일본방문을 통하여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일본에는 일본고유의 독특한 문화가 많이 보전되어있고, 일본의 청소년들도 그것을 잘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이 세계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즉 한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 해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두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바로 문화의 중요성입니다. 세계 경제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이 세계는 더욱 더 글로벌화가 빨라지고, 각 나라마다 자국의 경제의 이익을 위 하여 마치 두서너 개의 나라처럼 지역별 블록화가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현재 도 EU유럽공동체가 그렇게 통합되어서 화폐도 유러화를 쓰면서 그들만의 블록을 - 7 -

12 만들어 경제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러 한 블록화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자칫 한나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 니다. 그러나 일본처럼 그 나라의 문화를 잘 보전하고 발전시켜나간다면 그 정 체성을 잘 간직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이 되는 것입 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스모'나 '다도' 한국의 강강술래'나 '태권도' '사 물놀이' 등이 있겠지요? 다시 말해서 나라의 문화를 잘 보전하고 발전시켜 나가 자는 것이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외국어의 중요성입니다. 앞으로는 두서너 개의 외국어를 익히지 않고 서는 이 글로벌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이 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시자마자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외국어구사능 력에 따라 나라와 개인의 소득이 달라질 것이며 앞으로 그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한국과 일본학생들도 이번 기회에 외국어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학생들은 이번 일.한 교류프로그램으로 얻은 재산을 바탕으로 글 로벌시민으로서의 양식을 가지고, 안목을 좀 더 높고 멀리 하며, 보폭을 넓히시 기를 바랍니다

13 5 단 - 9 -

14 나의 첫 일본 방문기 추 정 묵 숭 실 고 등 학 교 출국 하는 날, 아침 6시 반에 기상. 잠은 푹 잘 잤다. 처음 해외로 나가는 비 행기를 타는 날임에도 잠을 설치기는커녕 수업시간에 잘 때 보다 더 숙면을 취 했다. 캐리어를 끌며 집을 나섰다. 왠지 이걸 끌고 걸으니 해외를 한 달에 한번 은 가는 사람인양 뿌듯했다. 하지만 인천공항 도착. 거대한 공항과 수많은 사람 들 사이에서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졌다. 내가 일본에 간다니.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순간, 교복을 입고 있는, 사전교육 때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 학생들을 보자 꿀꿀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그러고는 이제 실감이 났다. 내가 우리나라 대표로 일본에 가는구나. 의욕이 나름 생겼 다. 비행기 타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거기에 일본에 간다는 설렘까지 겹쳐서 나 의 설렘은 구름만큼 부풀었다. 드디어 일본 치바현 나리타공항에 도착. 솔직한 소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였다. 두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아직 여기가 인천인 지 나리타인지. 멍한 상태로 수속을 밟고 버스에 올랐다. 첫 목적지인 외무성으 로 향하는 도중, 일본은 좌측통행이라던가, 도쿄의 유래 등을 들으면서, 창밖의 신기한 도쿄 거리를 구경하면서도 아직 내가 있는 곳이 생전 처음 밟는 땅이라 는 느낌이 오질 않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외무성에 도착. 티비에서나 본 회의실 에서 외무성의 높은 분과 만난다고 해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의외로 등장하 신 *지역조정관님은 친근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게다가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시 는지. 그분께 이 연수의 취지와 목적을 들으면서 민간 외교관으로 일본에 온 나 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도쿄타워에서 카레로 저녁을 먹고(카레의 맛은 비슷했다.) 호텔로 돌아왔다. 전체 회의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입 장. 이렇게 일본에서의 첫날이 대단원에 막을 내렸다. 다음날 6시 기상. 아침은 호텔 뷔페로 해결. 맛은 한국과 같아서 좀 실망. 첫 목적지는 아사쿠사라는 곳이었다. 큰 절과 신사가 있는 곳이었는데, 더운 날씨 임에도 사람이 꾀 많았다. 물과 연기에 몸을 깨끗이 하고 기도를 드리는 일본인

15 들을 보며 그들의 신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길흉을 점쳐주는 오미쿠지 란 것을 팔기에, 재밌어 보여서 하나 뽑아보았는데, 결과는 흉( 凶 ). 얼른 묶어 서 매달아 두고 나왔다. 그 후 나카미세 거리에서 쇼핑을 하였는데, 이곳은 마 치 한국의 인사동과 흡사했다. 주변에선 일본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었고, 거리에서 파는 기념품들은 모두 가지고 싶은 것들뿐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 고 북적거리는 곳에서 진정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보았 다. 쇼핑 후 도쿄 미래 과학관에 방문 하고, 이번엔 미나토 임해도시 과학관에 도착했다. 약간 피곤한 상태여서 좀 귀찮아하고 있었는데,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언제 졸렸냐는 듯이 무언가 놀라움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창밖에는 커 다란 항구와 바다가 있었는데, 정말 넓었다. 넓었다 라는 말로 표현하는 게 미 안할 정도로 그 바다는 너무나 푸르고 광대했다. 나는 죄송하게도 임해도시의 설명을 그냥 흘려보내며, 시선을 그저 바다에 고정시킨 채였다. 하늘만큼 끝이 없는 바다를 보며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았었는지 통감했다. 왠지 이런 감 정을 느낀 것만으로도 일본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호텔로 돌아와서 모두가 홈스테이 설명을 들으며 들떠있을 때도 나는 아까 본 바다가 생각이 났 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이틀째가 지나갔다. 삼일 째.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홈스테이를 하는 날. 아마 모두가 이날을 가장 기다렸겠지. 아침에 방재교육체험을 마치고, 야마나시 현으로 이동 하였다. 중간에 길거리공연도 듣고 지하철에서 일본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도 느 낄 수 있었다. 신칸센을 탈 줄 알았는데 보통 기차라서 조금 실망한 채로, 야마 나시에 도착하였다. 의외로 시골이란 느낌이어서 약간 실망. 지역의 명물인 다 케다 신겐 동상에서 좀 쉬었다가, 대면식장으로 이동하였다. 대면식장에 들어설 때, 모여 있는 많은 분들을 보고 일본에서 와서 가장 긴장된 순간을 맛보았다. 모르는 사람, 그것도 일본인과 함께 지낸다니. 기대 반 걱정 반. 평소 붙임성이 없는 나로썬 이럴 수밖에. 그렇게 약간 떨면서 인사말을 듣고 서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졌다. 이럴 수가! 내가 첫 번째로 불린 것이다. 갑작스레 불려 허둥지둥 그렇게 처음 홈스테이 가족과 만나게 되었다. 오토구로상 가족들. 하지메마시테 그렇게 연습한 첫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갈 때까지는 아직 좀 어색하고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말도 잘 못하였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집은 정말 멋진 이층집이었다.) 강아지와 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긴장이 풀리는걸 느꼈다. 두 분은 정말 친절하고, 편한 분들이었다. 일본어를

16 잘한 친구 인환이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두 분의 딸들과도 친해지고, 저 녁도 함께 먹다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긴장감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야카는 친한 누나랑 똑같았고 집은 할머니 댁과 같았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 로 아야카와 놀러도 가고, 목욕탕도 써보고, 다다미방에서 자고, 일본식 아침도 먹어보고, 전통의상인 유카타도 입어보고, 욘사마 이야기도 하고, 초밥도 먹고 하다 보니 금세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언제 하루가 지난건지. 좀 더 많은 것 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후회가 남았다. 시간 때문이란 걸 알면서도, 약간 분했 다. 한편으로는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가족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 이 들었다. 헤어지면서도 끝까지 손을 흔들며 이별을 하였다. 이번 홈스테이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일본의 친근함 이었다. 연수라는 것을 통해 왔지만 굳이 연수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할 정도로, 그들과 나는 비슷하였다. 나는 홈스 테이 내내 정말로 편했고,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문화적 차이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언어는 서로가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해결되는 장벽이었다. 한일 교 류를 저지하는 것은 그저 편견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1박 2일은 새로운 인연을 만든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고, 너무나 짧았기에 나중에 꼭 다시 오토 구로상과 홈스테이를 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호텔로 왔고, 잠이 들었다. 어느새 5일째. 아침은 일본식으로 달걀말이와 연어등. 슬슬 한국의 음식이 그 리워졌다. 쌀밥에 김치하나 얹어서 먹었으면. 벌써 이러다니 나는 외국에서 살 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일정은 학교방문. 개인적으로 홈스테 이 방문 다음으로 기대되는 일정. 일본의 학교는 만화에서 정말 많이 봐왔기에, 실제로 어떤지 너무나 궁금했다. 호텔에서 학교까지 한 시간 정도가 너무나 길 게 느껴졌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는 오래되고 낡았다는 느낌. 50년이나 된 시골 학교의 건물엔 그 세월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수업을 같이 받는 시간이 왔다. 쉬는 시간 복도를 걸으면서, 왠지 웃음이 피식 났다. 일본 학생들이 내 친구들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외부인이 오자 막 쳐다보기도 하고 어설픈 한국말을 외치기도 하고. 너무나도 비슷해서 계속 웃음 이 났다. 나와 똑같이 수업시간에 떠들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도 하는 것이 재 미있었다. 수업 후 쉬는 시간엔 서로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메일주소도 교환했다. 이 연수의 목표인 한일 교류를 실행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말 크게 아쉬운 것이지만, 시간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도

17 안타까웠다. 일생의 한번 있을 기회라서 더 아쉬웠다. 그래도 일본 학생들과의 만남은 홈스테이처럼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호텔로 돌아 오는 버스에서, 한국에 가면 꼭 메일을 확인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였다. 6일째. 오늘의 아침식사 또한 일본식. 아 이제는 정말 먹기가 힘들었다. 얼큰 한 김치찌개가 이토록 그리울 줄이야. 오늘의 일정은 후지산 방문. 후지산은 추 울 것이라고 해서 옷을 잔뜩 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귀 가 멍멍해지는 것을 느끼며 후지산 5부능선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거센 바람. 일본 최고 명물 후지산의 상쾌한 바람을 느끼자, 한 국생각이 잠시나마 깨끗이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어느 곳이던 절경( 絶 境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일본최대의 영산에 올라와 있다는 느낌과 차가운 바람이 뒤섞여 감동이 밀려왔다.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점심 식사 후 블루베리 잼도 만들고 동굴도 들어갔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귀환. 마지막 날이 니 만큼 이곳에 와서 만난 친구들과 실컷 놀고 잠이 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5시 반에 기상. 아침도 대충 먹고 버 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반쯤 잠든 채 로 공항으로 향하면서, 지난 6일간 일본에 서 있었던 일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즐거웠던 일, 신기했던 일, 새 로 만든 무수한 인연들. 잠깐 잠들었을 때 꾼 꿈에는 일본 배경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나리타공항에 도착. 면세점에서 선물을 사면서, 마치 처음 입국했을 때 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아직 일본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지만, 이번엔 벌써 내가 한국으로 가야한다니- 라는 느낌이었다. 7일이란 건 정말 짧은 시간 이구나. 내가 갔던 곳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좀 더 깊이 느끼지 못했던 것 이 후회되었다.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해 앉으며,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여러 가지 후회되는 일, 너무나 즐거웠던 일, 새로 느낀 것들, 그런 것들을 다시 생 각해보았다. 그렇게 드디어 한국에 도착. 너무나 그리웠던 집으로. 이 보고서를 쓰면서. 처음 일본 교류연수를 신청했을 때는 사실 뽑힐 것이라 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만큼 내가 뽑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쁨은 정 말 컸다. 이번 연수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 다. 그럼에도 부족했던 것은 다음을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겠다. 이번 연수는 정말 뜻 깊었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나에게 약간 원망을 느끼며, 나에게 이런 연수 기회를 제공해준 국립국제교육원과 일한문화교류기금 에 감사하다는 마음도 전하고 싶다

18 다름 이 아닌 같음 을 찾아서 이 현 구 한 성 고 등 학 교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 적으로 일본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야쿠자, 애니메이션, 소심함 같은 것들이 었다. 불행했던 우리의 근현대사로 인해서 일본인과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 들의 이미지는 대게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그래서 이번 연수에 선발되어 난생처 음 일본을 방문한다고 생각해볼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저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한국의 고교생 대표로서, 외교관 자격으로 일주일간이나 연수를 받는 것이어서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첫날의 일정은 집에서 공항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최대한 단정한 옷 을 입었고, 고등학생이지만 일주일이나 집을 떠나는 것이어서 조금 떨리기도 했 다. 특히 내가 가장 걱정한 점은 일주일간이나 같이 생활하게 될 친구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행이 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나기도 전에 4명 정도의 친구들을 쉽 게 사귈 수 있었다. 모두들 각 학교를 대표하여 모인 친구들이라서 마음도 잘 맞고 생각하는 수준도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해서 인솔선생님들을 만나고 떨리는 마음으로 외무성 으로 출발했다. 솔직히 외무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귀찮고 형식적인 일정 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외무성에 들어가 회의실에 착석하자 비로소 한국고 교생 대표로서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또 한 우리를 환영해주신 동아시아 분쟁조정관님이 한국어로 환영사를 해주셔서 깜 짝 놀랐다. 환영사를 통해 조정관님이 한국으로 유학을 오셨던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 다. 두 번째 날은 아사쿠사를 방문했는데, 이동하면서 파나소닉의 사장이 아사쿠 사 신사에 질병치유를 위해 공양을 드렸고, 또 실제로 병환이 나아지자 번개 의 문 을 지어 헌납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때도 상당히 놀랐다. 세계경제

19 위의 대국인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파나소닉의 사장님께서 그런 미신 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일에 얽매이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일화가 일본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신들과 종교를 믿고 있으며, 그것을 그 들 나름의 전통이라 여기고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고도 생 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의 나카미세 는 역시나 관광객들로서는 상당 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일렬로 정돈되어 쭉 늘어서있는 가게에서는 가지각색의 물품들을 파는데, 그 물품들이 모두 일본의 색을 대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여러 상인들이 한국어로 인사해주고, 궁금한 한국어를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때 내가 한국인이라는 데서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 었다.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사람을 약간 꺼려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안도하기도 했다. 이것 또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 닫게 되었다. 아사쿠사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주최하는 중식 회에 참여했는데, 깔끔한 고층빌딩에서 식사를 대접받으면서 또 한 번 그 자리 에 참석해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행운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이런 설 렘은 그 다음 우리가 들른 곳인 도쿄 항구관에 가서 더욱 극대화 되었다. 관계 자분이 일본의 오다이바 를 부산에 비교하시면서 오다이바도 눈부신 성장 을 계속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부산항을 따라잡기엔 부족하다 고 말 씀하셨을 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석식을 먹었던 비너스포트 이야기를 빠뜨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천정에 하 늘 그림을 그려놓아서 정말 천국에 와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일본의 젊 은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쇼핑센터로서, 이곳을 둘러보면서 일본의 패션 트랜드랄까, 유행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날은 가장 기다렸던 홈스테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사실 홈스테이와 학교방문만으로 일주일을 다 보내리라고 기대하고 있던 나로서는, 홈스테이가 겨우 하루밖에 되질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이만저만 실망했던 게 아니었긴 했 었다. 아무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아침에 눈을 떠 방재체험관으로 이동했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비 결이 바로 우리가 방문했던 것과 같은 방재체험시설에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조차 모르는 데 비해서 일본은 그러한 시설들이 여러

20 군데 분포해있다고 들었을 땐 우리나라도 이런 점은 본받아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방재체험을 마치고 드디어 야마나시 현청에서 홈스테이 가족과 대면했 는데, 처음 보는 사람과, 그것도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앞으로 하루를 같 이 지내야한다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더욱 실망했던 점은 홈스테이 가정에 내 또래아이는 없고 나 혼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한국친구 한명과 같이 홈스 테이를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통해 어머님 이 한국 드라마를 꽤 보셨고 한국어도 간단한 한두 마디 정도는 쉽게 하신다는 걸 알았다. 한류열풍의 실상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 다. 그때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자랑스러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홈스테이를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식사시간이 되었다. 어머님 이 스끼야키 라는 전골 비슷한 요리를 해 주셨는데, 특이 하게도 개인접시에 날계란을 풀어 냄비에 있는 고기라던가 야채를 찍어먹는 요 리였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지만 다행히 입맛에 잘 맞아서 배부를 때까지 꽤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이튿날은 야마나시현의 명물인 전국시대 무장 다케다 신겐 의 흔적을 느껴 보는 것을 주제로 했다. 평소부터 일본의 전국시대 역사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터라 상당히 기대되는 여행이었다. 우선은 신겐의 사후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 해 건립된 에린지 를 방문했고, 그 다음으로 그의 옛성의 터에 건립된 다 케다 신사 에 방문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구경하는 동안 어머님 께서 한 국어 전자사전까지 펼쳐 가시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려는 태도에 감동했다. 우 리나라는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속에 위치해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반면, 일본은 어딜 가나 신사나 절을 발견할 수 있어서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다섯 번째 날에는 학교방문을 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 리 학교방문의 시간이 너무나 짧아서 실망한 채로 교문을 들어섰다. 하지만 막 상 수업이 시작되고 옆자리에 일본 학생이 앉자 그런 우울한 기분이 싹 사라지 고 이상하게 흥분하게 되어서 짧은 수업시간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학교방문을 통해 느낀 것은 일본의 학생들과 우리 학생들의 차이점보단 서 로 생활하는 방식이라던가 고민하는 것들이 너무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교 육 체제와 내용은 다소 다를지라도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다 닮은꼴이 아닐까 하는 동질감을 느꼈다. 즐거웠던 추억들을 뒤로한 채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

21 한, 일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후지산에 오르는 날이었다. 그저 사진이나 그 림으로만 봤던 후지산을 직접 올라보니, 그 웅장함과 높이가 경탄을 자아낼 정 도였다. 발아래 구름이 드리워있고 세찬 바람만 감돌았다. 그러면서도 아직 꼭 대기는 보이지 않아서 굉장히 위압적인 느낌을 받았다. 비록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그 정상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싶은 산이 었다. 또 전통마을이라던가 블루베리 마을로 이동하면서도 홀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든 느낌을 주는 면이 있어서 일본사람들이 왜 후 지산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지 이해가 갔다. 이번 연수는 정말 돌아오는 비행기가 도중에 사고가 나기를 바랄만큼 너무도 즐거웠고 또 일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유익한 경험이었다. 물론 여 행을 간 것이 아니라 연수를 간 것이라는 점에 제약을 받았던 면도 있고 시간에 좀 쫓기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연수를 통해 내가 느낀 점은 여 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다른 점보단 같은 점이 더 많 은, 닮은 나라 라는 점이 가장 와 닿는다. 언어의 장벽만 넘어서고 보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이나 생각하는 방식들이 너무도 서로 닮아있 는 것 같다. 연수 전에는 일본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지 만, 막상 그 일본에 다녀오고 나니 그렇게 짧은 몇 마디 말로는 미처 다 설명하 지 못할 매력이 있는 나라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역시 기회가 닿는다면 다음에 꼭 한 번 더 일본에 가고 싶다

22 일본을 다녀와서(몽유일본서( 夢 遊 日 本 書 )) 강 인 규 자 운 고 등 학 교 먼저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1447년 세종 29년의 안견은 자신의 후원자 였던 안평대군이 꿈꾸었던 세계를 그의 설명에 따라 몽유도원도( 夢 遊 挑 源 圖 )를 그리었다. 그걸 본떠서 2009년 10월의 난 일주일간에 꿈과 같은 여행을 내 가슴 과 머리가 해주는 설명에 따라 이 기행문을 써 보겠다는 마음에 몽유일본서( 夢 遊 日 本 書 )라 이름을 지었다. 이 여행의 첫 시작은 아마 WBC결승전 할 때였을 것 이다. 쉬는 시간에 야구를 보고 있던 나와 우리 반 얘들 앞으로 담임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일본 가는 얘들을 성적순으로 뽑는데 신청할 사람 있냐고 물으시는 것 이다. 물론 난 일본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에 바로 신청했고 그 우연한 용기 덕 분에 이렇게 일주일간에 여행을 다녀 올 수 있게 되었다.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난 너무나 들뜬 기분에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명함 만드는 것도 예전 같으면 2,3시간 걸렸을 일이지만 1시간 만에 서둘러 끝내버리 고 서둘러 짐 싸는 것에 몰두했다. 혹시 가서 필요한 것이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자 여러 가지 상상이 생겼다. 비 올지 모르니까 옷도 여러 벌, 우 산, 아 혹시 모르니까 비옷. 이렇게 짐을 싸자 큰 여행용가방도 금방 모자라게 되었다. 이렇게 즐거운 상상 속에 짐 싸기가 끝나자 이번엔 일본어회화가 문제 이었다. 떨리긴 했지만 히라가나 밖에 모르는 나로선 그냥 회화 책을 붙잡고 다 닐 수밖에 없단 생각에 잠도 자지 못하고 회화책을 들여다보았다. 일본으로 출 국 하는 날 난 마치 꿈속에 걸어 다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침 일찍 일어나 다녔기 때문에 졸려서 그런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타보는 공항리무진, 국제선 또 처음 가보는 일본! 그 사실 만으로 난 충분히 꿈속을 걷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고 다 같이 모여 버스를 탈 때까지 아직 내가 일본에 왔는지 그냥 제주도 여행을 온 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일본사람들 도 우리나라 사람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몇몇 사람을 빼고는 저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 같다는 느낌에 그냥 우리나라 공항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 러나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사소한 것에선 신호등

23 이나 운전기사의 위치 심지어 주변 자연 경관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던 것들 이었다. 특히 운전기사 위치는 우리나라와 반대였고 주행 또한 좌측주행이었다. 또 푸른색의 자연은 우리나라에서 못 본 식물과 더 많이 우거진 풀숲, 하늘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구름들이 버젓이 여기가 일본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주 었다. 일본의 자연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시청과 같 은 중심가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도쿄에 도착하여 외무성과 도쿄 타워를 구경 하였다. 아직 이때까지는 머릿속에서만 일본에 왔다는 라는 것 뿐 가슴은 느끼 질 못하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두 번째 날 난 일본의 과거와 미래와 또 그 미래를 준비하는 일본인들을 보았다. 먼저 일본의 과거를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내가 아사쿠사를 갔기 때문이다. 물론 아사쿠사의 절과 불상 등 을 보 기도 했지만 거기서 우연히 생긴 조그마한 일덕분에 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 부할 수 있다. 그 일은 친구가 날 실수로 민 것에서 시작된다. 친구가 날 밀었 기 때문에 난 뒤로 넘어졌고 실수로 뒤에 있던 일본할머니의 발을 밟고 말았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 일이 일어났다. 그 할머니께서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날 일으켜 세워주시고 가시는 것이었다. 난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화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시 면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가시다니. 난 이사건 덕분에 일본인들이 정말 친절하다 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꼈다. 두 번째로 미래를 보았다는 건 일본의 과학미래관 을 갔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본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발판인 과학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에도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 도 들었지만 여기만큼 잘되어 있을 곳은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자 씁쓸한 생각 마저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일본인들을 본건 동경항구관 이었다. 그곳에서는 일본인들이 매립지를 만들고 그곳에 건물을 세우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형도 만들어 설명해 주는 것을 들으니 과연 높은 건 물이 많지 않고 바람 길이 잘 나있으며 도시와 자연이 같이 있으며 지진에 대비 한 공원 또한 있었다. 여기서 난 혼자 감탄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 신도시라 해서 건설한 곳엔 자연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고 바람길 또한 잘 나있지 않았고 잘 나있는 경우엔 쓸데없이 길이 너무 넓어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일본에 이러한 곳은 정말 심사숙고했구나 라 는 생각에 일본의 관료제를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첫 날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숙소로 돌아오니 너무나 피곤해서 침대위에 엎드려 일

24 기 쓰던 채로 잠들어 버렸다. 일본에 도착한 세 번째날 난 드디어 내가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날은 아침부터 팀을 나누어 방재교육체험 하는 곳 으로 갔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한 곳이 많아 홈스테이가 기 전에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갔다. 여러 가지 체험들 은 나로 하여금 우리나라에도 혹시 모를 지진을 위해 이런 것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방재 체험 후 일본 기차를 타고 홈스테이 가정 들과 만나는 야마나시 시청으로 갔다. 거기 도착해서 보니 지나가는 일본 사람 볼 때 마다 혹시 나의 홈스테이 가정은 아닐까하여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 다. 잠시 후 대면식을 통해 내 가정을 만났을 땐 어떤 젊은 형이었기에 순식간 에 긴장이 눈 녹듯 녹아 버렸다. 다행이 그 형이 한국어를 잘 했기 때문에 편하 게 지냈는데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일본의 교통 문화였다. 내가 앞자리에 앉 아서 갔기 때문에 더욱 잘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싸우고 경적 울리 고 할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여기선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사람만 보 면 차가 속도를 멈추고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가하면 추월하는 차 한 대 없 고 신호를 어기는 차 한 대 없었다. 난 매우 놀라 나를 맡은 홈스테이가정 형 (사토시상)에게 물어 봤는데 그 사람은 별 반응 없이 원래 그렇다고 대답 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우리나라에서 꼭 배워가야 할 것 중 하나 인거 같다. 그 후엔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러 큰 대형 마켓으로 갔는데 여기서 난 또 다시 한번 놀랬다. 우리나라에선 큰 노래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시끄러운데 반면 일본은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 주는 데도 다 들릴 정도 이었다. 여기서 일본은 다른 사 람에게 피해를 잘 주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거기서 쇼핑하는 네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많은 제품들을 봤다. 포카리스웨이트 가루나 우리나라 에선 못 본 야채나, 신기한 음료수, 알코올이 없는 맥주 등 여러 신기한 제품을 보면서 역시 일본은 선진국이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렇게 신기한 쇼핑을 마치고 돌아와 바베큐 파티를 하는데 일본 사람들의 친절함을 충분히 느 낄 수 있었다. 우리가 나이가 어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먼저 권한 후 남은 것들을 자신들이 먹었다. 새롭게 느낀 건 일본인들은 크게 웃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우리와 농담도 하고 서로 크게 웃기도 하였다. 덕 분에 함께 친해 질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엔 여관에서 씻고 우리 홈스테이 가 정으로 가서 자게 되었는데 난 사소할 수 있지만 또 신기한 것을 느꼈다. 바로 검소함이었다. 일본에 마작 비슷한 게임이 있어 그 마작용 패가 담겨져 있는 듯

25 한 통이 있어 만져 보았는데 거기엔 나무로 된 마작용 패와 박스종이 위에 써진 마작용 패가 거이 비슷하게 들어 있는 것 이었다. 나 같으면 벌써 버리고 새로 샀을 물건이지만 이렇게 까지 검소하게 쓴 다는 것을 보니 나 스스로 다시 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잠이 든 후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를 하려고 거실로 나가보니 아직 삼형제중 한명이 자고 있었는데 뜻밖에서도 소파에서 자 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우리를 위해 거기서 자고 있구나 하는 생각 이 들어 일 본인들은 정말 친절하구나 라는 생각 이 다시 들게 되었다. 머리도 감고 아침도 먹고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어떤 언덕에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아 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후엔 회전 초밥집에 들어가 우리나라에선 먹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초밥도 먹어보고 난후 다시 처음 만났던 시청으로 오니 갑자기 서운 한 느낌이 들었다. 홈스테이 하루만 더 했다면 더 많은 것을 느꼈을 텐데 이때 느낀 생각 이지만 괜히 외국에 1년 나갔다가 오면 회화가 느는 게 아니구나 라 는 생각 도 더불어 느꼈다. 아무튼 서운한 생각에 사진도 찍고 손도 흔드니까 우리 가족이 아닌 일본 사람들도 같이 손 흔들어 주곤 해서 나도 반갑게 손 흔 들어 주었다. 정말 꿈만 같던 홈스테이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자 얘들 끼리 서 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다. 이때 서로 발견한 공통점 은 홈스테이 전엔 일본에 온지 몰랐는데 홈스테이가 끝나자 진짜 내가 일본에 왔구나 라는 생각 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온지 5일째 되던 날 난 일본을 외국으로 느끼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타 학교로 갔다. 그 학교에 있는 동안 모든 게 새로웠지만 내가 한수업만 여기 써보자면 1 교시로는 체육 수업을 하였다. 체육시간엔 골프 비슷한 것을 했는데 우리나라에 선 하지 않는 처음 보는 신기한 게임이었다. 골프공 비슷한 모형에 뒤에다 배드 민턴날개를 붙인 공은 플라스틱 고무로 만들어져서 치게 되면 멀리 높이 날게 생겼다. 이것을 골프채로 치는 데 일정한 거리에 있는 그물에다가 넣는 게임 이 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굉장히 힘들었지만 내 짝이 친절하게 보여주고 가르 쳐 주어 잘 해낼 수 있었다. 이때 짝 이름이 카와무라였는데 내가 메일도 보내 라고 명함주었는데 한국에 도착해 보니 메일 보내지 않았다. 아무튼 체육 수업 이 끝나고 나선 서예수업이었는데 이 수업 도한 우리나라에선 잘 하지 않는 수 업이었다. 난 중학교 2학년 때 이후로 서예를 안 해봐서 그런지 옆에 일본인 짝 에 비해 너무 못쓰긴 했지만 나름 열심히 쓰고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해서 친해 질수 있어 메일 주소도 주고 왔다. 애 이름은 카나에였는데 유일하게 메일이 도

26 착한 친구다. 그렇게 2가지 수업 모두 끝나고 회의실에 모여 간단한 도시락 점 심을 먹은 후 큰 강당으로 가서 본격적 교류회활동을 시작 하였는데 먼저 일본 학교에서 보인 건 오케스트라 였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절대 보기 힘든 풍경이 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오케스트라가 있다니 동아리 부장인 나로선 굉장히 부 러운 광경이었다. 그다음으로 보여준 것은 검도였는데 난 이게 가장 인상 깊고 부러운 것이었던거 같다. 사실 내가 중학교 때 검도를 해서 고등학교에 올라와 서도 검도를 계속 하고 싶었고 학교에서 검도부가 있길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 다. 또 일본 학교 얘들이 보여준 검도는 내가 배운 검도와 동일했기 때문에 매 우 신기 했다. 마지막으로 소림사 무술이 보여진 후 우리나라 공연이 시작했는 데 가장 먼저 한 것은 거문고였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대서나 볼 수 없는 광경이 었기에 우리나라 얘들 도 서로 보려고 난리였다. 그 다음으론 살풀이를 하였고 마지막으로 판소리와 거문고를 같이 하는 병창을 하였는데 난 여기서 감동을 받 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것이지만 나조차 실제론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 해 보니 그렇게 느끼는 내 자신이 창피했다. 우리나라 전통을 해외에서 보고 감동을 받다니, 또 왜 이런 공연을 난 지금껏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생각이 드는 학교 방문 후 우린 숙소로 들어와 내일의 일정과 여러 지역의 학교 특징 등을 이야기 하면서 밤새 이야기를 했다. 일본 떠나기 마지막 날에 난 소풍 온 듯이 여러 가지를 몸소 느껴보았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야마나시 현의 자랑이자 일본인들의 자랑인 후지산이었다. 참고로 야마나시 현에선 그냥 고개를 들면 보 일정도로 후지산이 잘 보였고 날씨만 좋다면 산 모양이 전부다 보일 정도였다. 아무튼 후지산에 버스타고 중턱까지 가니까 가장먼저 바람이 우리를 반겨 주었 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우리가 찍어도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너무 멋졌고 거기서 또 느낀 건 정말 하나도 쓰레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닥 어느 한곳을 보아도 담배꽁초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와 서로 상반된 자 연 풍경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 이 들었다. 거기서 내려온 후엔 잼만들기 공장으 로 가서 간단하게 잼을 만들어보고 일본의 전통 가옥이 몰려있는 일본 어느 마 을로 갔다. 거기선 일본의 전통 인형이 달려있는 핸드폰 고리도 간단하게 만들 어보고 그 마을 구경하는데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 가니까 죽마가 있는 것이었 다. 책에서나 보고 꼭 한번 타보고 싶었던 죽마를 보니 어떻게 타는 건지 몰라 해매고 신기해하며 얘들과 장난도 치고 함께 놀았다. 그 후엔 어느 동굴로 갔는

27 데 영하 -3도까지 내려가는 동굴로 안에 들어가자 얼음이 얼려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느낀 점은 우리나라에 비해 관광지 발달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다. 아까 일본 마을만 해도 신기한 게 많은 곳이지만 큰소리나 시끄러운 소리 없고 조용한 마을을 보여주고 있고 이곳 동굴 또한 하나의 기념품 파는 가게를 제외 하고 다른 가게도 없어 조용히 관광할 수 있게 해놓았고 동굴 폭을 따로 넓히지 않아서 불편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 덕분에 스릴있는 여행이 될 수 있게 해놓았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 배워가야 할 점인것 같다. 이렇게 마 지막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23명의 친구들과 밤늦게 까지 우정을 쌓으며 놀았다. 이렇게나 멋진 사람과 멋진 곳을 다시 여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밤인 것 같다. 이렇게 마지막 일정까지 모두 끝낸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 왔다. 물론 돌아오고 나선 집이 멀어서 빨리 출발 해야 하는 친구 등 각자 일상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지만 인터넷클럽을 만들어 나중 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해어지자 아쉬움이 덜했다. 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에서 이번 일본에서 느낀 점을 총 정리 해보았다. 먼저 일본이란 나라는 자연경 관이 아름다운 나라이며 또한 그것을 보존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나 라, 일본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면서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마음으로 소 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 인 것 같다. 이 밖에 내 표현력이 부족 하여 쓰진 못하지만 가슴으로 느낀 것이 정말 많은 여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다 짐 한 것이지만 난 우리나라를 현재의 우리나라에 여기서 배워온 많은 것을 접 목 시켜서 해외의 여러 사람들이 와도 나처럼 느끼는 게 많은 나라로 만들고 싶 다. 또 이런 꿈같은 여행을 다시 할 수 있게 그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꿈같은 이번 일주일의 여행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내가 만약 나중에 늙어서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가장 중요하게 써야 하는 그런 부분이 될 그런 여행이었다

28 한일중고생교류연수를 마치며 이 종 혁 반 포 고 등 학 교 지난3월 나는 담임선생님께 일본에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어서 우 연히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성적 때문에 결정이 되지 못했지만 여자한명 남자한명을 뽑게 되면서 운 좋게 내가 뽑히게 되었다. 이번 연수로 나는 중간고 사를 보지 않았고 수능이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나를 짓누르지만 그 래도 즐거웠던 일주일간을 회상하며 한일중고생교류연수의 후기를 쓰려고 한다. 9/24 출발하는 날 부모님차안에서 아직은 일본에 간다는 실감이 나지 않은 상태로 선생님과 같이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보고 있으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계속 다니고 있어 같이 가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 니 모두 키가 크고 덩치도 나보다 커보여서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도중에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이 있어 약간안심하며 출국 게이트를 나섰다. 해외 에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긴장했었지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여권을 제출 하고 비행기 표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비행기에 타고 일본 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옆에 앉은 아이는 자운 고등학교의 아이로 자주 말도하 고 일본에 가기 전에 친해지게 되었다. 드디어 일본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도착하자 일본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한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입국 심사소에 도착했다. 간단한 심사를 마친 후 짐을 찾고 출국게이트를 빠져나가니 통역선생 님들과 한일 문화 교류기금의 분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그때 우리들이 인사 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우리의 통역선생님은 우시오상과 강 상이었다. 이번 7일 동안 버스 앞에서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주시고 친 절하게 해주신 분들이다. 일단 짐에 명찰을 붙이고 버스에 타게 되었다. 주차장 에서 처음 본 2층 버스나 버스의 다른 위치에 있는 운전석이나 한국과는 약간 다른 차 형태들은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점점 실감하게 해주었다. 나리타에서

29 도쿄로 가는 도중에 통역선생님들이 일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일본이 우측통 행인 이유는 메이지시대에 무사들의 칼이 부딪히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라고 하 셨고 일본인구의 10%정도가 도쿄에 살고 있다고 하셨다. 중간에 오다이바가 약 간 보이자 오다이바는 매립지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설명이 있었다. 또 도쿄디즈 니랜드는 도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바현에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도쿄로 들 어갔다. 도쿄에 오자 고층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빌딩들은 한국의 빌딩보다도 높으면서 훨씬 더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본은 간판이 많이 붙어 있지 않고 있는 간판도 건물 안쪽 으로 들어가 있어 더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던 것 이었다. 이것을 보자 한국의 간판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강남역이 생각나 이런 점은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거리에 쓰레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번화가에는 이런저런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어서 거리의 미관을 해치 고 쓰레기 뿐 만 아니라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으면서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본에는 없었다. 이건 선진국과 후진국의 문화의 차이로 보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도중 천황이 사 는 황거의 모습과 국회의사당이 보이면서 우리는 외무성으로 들어갔다. 외무성 도 깔끔한 모습이었다. 외부 뿐 만아니라 내부도 넓고 깨끗해서 정말 이곳에 들 어가도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서 외무성의 테라사와의 연설, 단장님의 인사말을 듣고 학생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테라사와상은 우리나라에 서 다시 만들어진 꽃보다 남자를 예로 드시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적 차이 를 설명하셨다. 다음은 말씀을 요약해 본 것이다. "이번의 홈스테이와 학교방 문을 통해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감정적으로는 먼 나라라고 불려왔다. 서로 무역과 교류가 증가하고 있음에 도 국민감정이 남아있어 많이 가까워 질 수 없었다. 그래서 교류를 시작했지만 아 직은 작은 규모였다. 하지만 88년 올림픽과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설립으로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무역과 교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후로도 양국의 상 호이해를 위해 청소년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그 예이다." 다음은 학생 측의 질문과 답이다. Q 한국어 공부한 계기는 A 그때당시에 외국어로써 한국어를 택하는 사람이 없어 흥미가 있었고 재일교 포 등을 보고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30 Q 스모의 최고 계급인 요코즈나에 외국인이 있다. 그에 대한 반발이나 제지는 없나? A 예전부터 일본과 하와이는 관계가 깊었고 그것을 계기로 외국인들이 일본의 스모를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외국 사람들의 체격이 스모에 더 적합했고 일본 청년들의 전통에 관한 관심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외국인스모선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일본 국기에서 외국인에 대한 제지는 없다. Q 앞으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 A 얼마 전 un총회에서 여러 국가의 대표의 연설 중 일본과 한국의 연설이 있 었다. 일 총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더 교류하고 싶다고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가까운 관계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구축을 원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이해와 손해를 따지는 것 만 이 아니라 서로 이해해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가야 한 다고 본다. Q 제일교포가 이지메를 당한다거나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의 해결방안 은? A 귀화는 제도적인 개선이 되어있다 재일교포의 일본 귀화도 늘어나고 있다. 제일교포들도 자기들 끼리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 고 있다. 만약 재일교포들이 한국국적을 택하더라도 영주권을 주고 있으나 아직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한일간 합의를 통해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 다. Q 이번연수에서 알아야 할 점 A 홈스테이나 학교방문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교류해 나가면 새 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개인적인 교류를 이어갈 것 을 부탁한다. 이러한 식으로 좋은 말씀도 듣고 외무성을 나섰다. 다음일정은 도쿄타워1층에 서의 식사였다. 식사는 카츠카레였다. 이 음식은 카레를 일본식에 맞추어서 만 든 것이 어서 일본의 첫 식사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식사 후에는 도쿄타워를

31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잠깐 둘러봤지만 일본의 편의점 이라 던지 선물가게를 볼 수 있었다. 도쿄타워도 구경했지만 올라가보지 못했던 것은 아쉬웠다. 그 다 음은 호텔에 도착 전체회의가 있었다. 단장님과 일한문화교류기금측의 간단한 인사와 방배정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교류에서 가장 안 좋았던 점 이었다. 방 배정을 받자 모르는 2명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2명은 전국에서 뽑혀 왔다 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아이들이 굉 장히 많을 텐데 어떻게 호텔 안에 담배를 가져오는 아이들이 운 좋게 뽑힌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자기들 입으로는 폭력사건으로 경찰에 불려 간적도 있다고 말 을 하던데 교육청들이 좀 더 제대로 된 애들을 뽑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이렇게 하루가 끝났다. 숙소 배정 빼고는 모두 좋은 시간이고 일본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는 좋은 하루여서 내일이 굉장히 기대되었다. 9/25 아침 5시에 일어났지만 아무도 일어난 사람이 없었다. 너무 들뜬 나머지 일찍 일어나 호텔을 둘러보았다. 호텔은 너무 좋아서 정말로 이곳에 우리가 있어도 되나 할 정도로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모이고 다 음 일정이 시작되었다. 다음 일정은 아사쿠사 견학이었다. 아사쿠사는 신사를 말하고 센소지는 절을 말한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아사쿠사의 카미나리몬에 대 한 설명과 중간에 보인 아사히 맥주의 본사를 보고나서 아사쿠사로 들어갔다. 본전이 수리중이라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부를 보고서도 문화재가 굉장히 잘 보존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식으로 몸을 청결하게 한 후 본전 을 구경하고 신사에도 가봤다. 책으로만 봤던 오미쿠지나 에마같은 것을 보아서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 다음은 환영 중식회였다. 카스미가제 빌딩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빌딩은 1968년에 지워졌으면서도 안이 무척 깨끗해서 오래전에 지어진 빌딩이라고는 생 각할 수 없었다. 이 빌딩에서 나는 학생대표로써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이사님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일본어를 할 것을 기대했지만. 이 사님이 한국어를 너무 잘하셔서 내가 나설 기회가 없었다. 내 성격 탓도 있어서 결국 한마디도 못했다. 이 일을 통해서 내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 각을 하게 되었다. 이 교류회에서는 이사장님과 사진도 찍어보고 높은 곳에서 도쿄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능했다. 다음일정으로 오다이바에 가게 되었 다. 이곳은 매립지라고 하는데 지하에 모든 생활용관들이 묻어져있어 위로는 전

32 선이 나오지 않아 굉장히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일본 과학 미래 관에 방문했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과학기술을 체험 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과학관 의 상징인 led100만개를 박아 넣은 지구의 현재 상태를 볼 수 있는 지구본을 보 았다. 이 지구본의 영상은 일본 최초의 우주인 모리 마모루 박사가 여러 가지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로봇체험이나 인간의 게놈이나 신경을 모형화해 놓은 것은 굉장히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다. 다음일정은 도쿄 미나토관이었다. 이곳은 과거 와 현재의 도쿄만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100년 전의 도쿄만과 지금의 도 쿄만을 비교해 놓은 사진을 보았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얕은 곳의 모래를 퍼 서 새로운 땅을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오다이바를 만들 때 그 곳에서 어업을 생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상금을 지금 했다고 하는데서 우리나라의 마 구잡이 개발과는 다른 좋은 느낌을 받았다. 오다이바를 만들 때는 채권을 발행 해 완성된 후 땅을 팔아 생긴 돈으로 다시 돈을 갚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곳 에서는 오다이바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나중 에는 이 모형을 들어 올리셔서 지하의 생활관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곳은 20 층이라 오다이바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인보우 브릿지. 후지 텔레 비전의 본사빌딩, 도쿄 빅사이트, 아리아케의 모습은 아무 것도 없던 바다위에 세워 졌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저녁은 천장이 하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너스 포트라는 쇼핑몰에서 먹게 되 었다. 쇼핑몰을 예전의 유럽의 모습처럼 꾸며놓아 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안에는 도요타의 전시장이 있어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거나 미래의 차등을 전시해 놓아서 볼거리도 많았다. 9/26 어제와 같이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는 날이어서 다른 날보다 긴장되고 떨렸다. 일단 오전에는 방재센터를 방문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자연재해가 많아서 이러한 방재센터에서의 교육이 활성화 되어있다고 한다. 이 곳 에서는 지진, 화제 체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하지 못했던 갚진 경험이었다. 후에 역 앞에서 중식 후에는 기차 를 타고 야마나시 현으로 출발했다. 신칸센이라고 들어서 기대했지만 특급기차 였다. 그래도 가는 도중에는 일본의 풍경이 많이 보여서 나쁘지 않았다. 일본은 자연을 잘 보존해놓아 경관이 뛰어났다

33 그 다음 역 앞의 다케다 신겐의 동상 앞에서의 기념촬영 후에는 야마나시 현 청으로 이동 홈스테이 가족과의 대면식이 있었다. 나의 홈스테이는 이시하라상 의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때까지 일본에 와서 일본어를 쓸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홈스테이에서는 꽤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정에 가는 도중 저녁 찬거리를 사기위 해서 일본의 쇼핑몰에 들어갔다. 대체적으로는 한국의 쇼핑몰과 다르지 않았으 나 반액 스티커나 작게 포장해 파는 음식 등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한국 에서는 유통기한이 조금남아도 반액판매를 안 해 그대로 페기 처분이 되는 경우 가 많아 일본에서 반액 스티커를 봤을 때는 인상 깊었다. 일본에서도 김치를 팔 고 있어 반가웠는데 이시하라상의 말로는 한국의 김치보다는 덜 맵다고 했다. 역시 수출 할 때는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판매한다고 하셨다. 이시하라상의 가 족은 이때까지 10명의 홈스테이를 받고 아들 두 명도 한국으로 홈스테이를 갔다 고 하셨다. 홈스테이를 한사람들도 한국, 중국, 미국, 멕시코 등 매우 다양했다. 그래서 이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굉장히 부러웠다. 저녁은 외국에서 온 나를 생각해주셔서 일본 전 통식인 오코노미야키였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좋았다. 저녁 후에는 가족들이 가라테를 하러가자고 했다. 이 집은 일주일에 2번 가족이 모두 가라테를 하러간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학원에 갈 시간에 가족들이 이야기하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기르는 모습은 나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으로 보였다. 9/27 홈스테이 가정에서 조식을 먹었다. 일식을 기대했지만 평범하게 토스트였다. 이런걸 보면 약간은 한국에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침식사 후에는 다케다 신사에 대려다 주셨다. 일본에 와서 일본 전통의 신사라던가 다타미방이 일상 속에 녹 아 있는 것도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평소에는 그다지 전통에 대하여 신경 쓰 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외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 신들의 전통을 지키는 주체적인 모습은 받고 싶은 모습이었다. 이 신사에서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쇼우센 계곡에 갔다. 일본의 산과 한국의 산은 사이즈가 틀려 감격 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박지원은 요동벌판을 보고 울만한 곳이라고 했다던데 내 기분이 바로 그 기분이었다. 홈스테이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일본의 평범한

34 가정을 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소노스케와 신노스케와는 많이 대화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 호텔이 바뀌어 후지산 쪽에 있는 호텔에 갔다. 이곳에서는 일본의 공중목욕탕과 유카타, 일본 의 전통 정식을 체험하는 좋은 경험을 했다. 다음날은 드디어 학생대표로써 발 표하는 날이었다. 평소 어떤 곳 에서도 나서지 않던 나에게는 큰 모험이자 자신 을 바꿀 계기로 생각했다. 더욱이 이면 인사말은 일본어였다. 일본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하룻밤을 열심히 연습하니 나름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통역 선생님이나 문정선 선생님 교장선생님들이 연습을 봐주시고 많이 도와주셨다. 다음날 실수 하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했다. 9/28 학교방문의 날 이었다. 이 날을 위해 명함도 만들어 놓고 연설준비도 했다. 오오츠키 고등학교에 도착해서는 일단 수업을 받는 그룹별로 나뉘었다. 나는 서예와 체육수업을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 그룹의 가이드역의 학생은 학생회 부 회장의 마이상 이었다.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었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 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 서예를 배우고 커서는 서예를 한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지만 따라 써 보니 나쁘진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한국학생들이 일 본 학생들의 작품을 고르고 그 작품을 쓴 학생들과 악수를 했다. 나는 메일주소 도 같이 줬다. 체육시간에는 골프 비슷한 스포츠를 했다. 공간이 없는 일본에서 할 수 있게끔 골프공을 개조한 스포츠였는데 이렇게 주체적으로 외래문화를 수 용하는 점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아이2명과 짝을 지었는데 일 본 남자아이들은 말이 많이 없어서 이야기를 잘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체육시간 에는 풀어놓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모두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여러 가지 과목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골라하니 학생들의 의욕도 오르고 자신 의 특기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일본은 클럽활동으로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제공되어 있어 부러웠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은 후 복도에 나가니 일본아이들이 말을 걸어 주었다. 여학생들만 말을 걸어서 6명 정도의 여 학생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이걸 보고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 만 일단 메일주소를 줬다. 그다음 교류회에서 드디어 학생대표로써 인사말을 했 다. 약간 긴장했지만 한자도 틀리지 않았고 나중에 일본의 교직원으로부터 발음 이 좋다고 칭찬도 받았다. 열심히 연습한 만큼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그다음은 양국학생들의 특기 발표였다. 한국 학생들의 발표도 좀처럼 보기 힘든

35 공연이었지만 클럽활동으로 익힌 일본학생들의 발표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와서 메일을 보니 메일주소를 준 학생으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제 대로 연결 될까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답장도 제대로 오고 있다. 일본에 와서 일본 아이들과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앞으로도 메일을 통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쓰겠다. 저녁식사는 야마나시현 전통국수인 호토라는 것을 먹었다. 일본인들도 먹어 보기 힘든 음식이라고 하셨다. 일본식 방에서 전통식으로 먹은 것이 굉장히 기 뻤다. 9/29 후지산에 가는 날이었다. 일본의 상징인 산이라 굉장히 기대가 됐다. 가는 도 중보이는 울창한 산림과 운해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없는 광경이었다. 대부분 침 엽수림이었지만 중간 중간 활엽수도 섞여있었다. 활엽수는 후에 도로를 만들 때에 새로 심었다고 한다. 침엽수만 있으면 칙칙할 뻔했던 경치를 단풍이 드는 활엽수를 심어서 경관을 더 좋게 한 것은 일본의 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들 은 후지산 중턱에서 구경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에 왔을 때는 정상까지 가보고 싶을 정도로 경관이 좋았다. 후지산의 신 사에서 다음에도 꼭 올 수 있기를 빌며 산을 내려왔다. 점심식사 후에는 잼 만 들기 체험을 했다. 블루베리 잼이었는데 만들고 나니 맛은 있었지만 일본에 와서 왜 잼을 만든 건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음에는 이야시노 무라라는 일본 전통의 집들을 재 현해놓은 곳에 갔다. 이곳에서는 전통인형 만들기를 했다 일본에서는 부적의 의 미가 있다고 한다. 빨리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일본집의 가운데에는 불을 피우는 곳이 있어 물도 끓이고 거기서 나온 연기로 짚 지붕의 벌레도 죽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일본의 전통 집은 한국의 초가집과는 다른 멋이 있었다. 어떤 집에 들어가니 할 머니께서 차를 끓여주셨다. 이곳에서 장군이 입던 갑옷도 입어보고 후지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는 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전 체회의를 가졌다. 서로 자신이 일본에 대해서 가진 감정을 발표하고 선생님들의 작별인사가 있었다. 일본에 와서 너무 좋은 경험을 해서 한국에서 돌아가고 싶 지 않을 정도였다

36 9/30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됐다. 아침 일 찍부터 나리타에 가기위해서 서둘러서 짐을 쌌다. 정든 일본을 뒤로하고 돌아가 야 한다니 섭섭했다. 일본을 떠나며 꼭 이곳에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와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일상에서 다시 공부 라든지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본과의 교류를 이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기에 나는 다시 일본으로 갈 것이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느낀 점은 확실히 일본은 우리보다 발전해있는 선진국이 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했으며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가래침을 뱉 는 사람도 없었다. 표현의 자유로 일본은 에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의 엔터테이멘트 분야에서 세계 에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일본은 간척지를 만들 때에도 그곳에서 어업을 생업 으로 하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보상금을 지급하며 천천히 그리고 약자들이 피 해를 받지 않도록 개발을 진행했다. 나는 일본의 좋은 점만을 말했지만 일본도 완벽한 나라는 아니다. 일본이 한국의 10년 앞을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 리는 일본에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번6박 7일간의 연수는 나에게 있어서는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으며 나를 한 층 성숙하게 해주었다. 학생대표를 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원어민과 대화를 해보 며 나의 미숙함을 알았다. 이제 일상에서 더욱 성실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학업 에 충실해야한다. 이러한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국립국제교육원과 일한문화교류기금에 감사를 표한다

37 일본, 고마웠습니다. 김 경 원 인 천 산 곡 고 등 학 교 일본. 일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많은 것들이 그 한 단어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사전교육이 끝나고 나서 일본에 가야 한다는 생 각이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설렘 같은 것들을 떠들썩하게 가슴 속에 풀어놓았 습니다. 걱정을 하든 두려워하든 비겁해지지는 말자는 말이 저절로 귓가에 맴돈 것인지 일부러 제가 곱씹은 것인지 날짜는 당당하게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24일. 처음 가는 여행도 아니고, 처음 가는 국외 여행도 아니었지만, 처음 일본에 간다는 생각과 처음 만난 친구들과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며칠만 있으면 친해져서 헤어지기 힘 들 사이가 될 녀석들 앞에서 일부러 시무룩하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 까요. 모두 그렇게 첫 대면을 한 뒤에 비행기에 타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바보같이 어색했습니다. 두 시간을 날아 나리타 공항에 도착 했을 때 맞이한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분명 한국에서 맞는 바람은 제 땀을 식혀 주고 시원하게 해주는 포근한 바람이지만, 일본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바람은 제 게 여기는 너희 나라가 아니야. 긴장하는 게 좋을걸. 하며 볼을 차갑게 건드려주었습니다. 첫 번째 일정은 외무성 방문. 아직도 5단 단장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들립 니다. 여기에 온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해. 너희 한국에서 외교통상부 들어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니? 맞는 말씀이라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긴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의실로 올라가 질의응답을 했습니다. 여러 친구들이 좋은 질문 을 했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질문은 이 방일 연수의 목적에 관한 질문이었 습니다. 한일 양국 관계 개선. 간단명료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국권을 상실당한 상태였기 때문입니

38 다. 역사에 관심 많은 저로서는 그렇게 간단히 말하시는 외무성 관계자분이나, 그냥 수긍하는 분위기인 친구들에 대해 유감이었습니다. 그 백 년 전 역사는 저 희 이전 세대에게는 너무나 깊은 흉터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일본에서 용서를 구하는 발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저 흉터를 덮고 미래로만 나아 가려는 것 같아 속이 쓰렸습니다. 외무성 방문 후에는 일본에 와서 첫 식사를 하고, 도쿄타워를 높게 올라가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구경도 해보고 즐거웠습니다. 아직도 제가 있는 곳이 일본인 지 한국인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낸 호텔.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같은 방을 쓴 친구 두 명이 2팀으로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많이 착하고 좋은 친구들이었 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그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첫 밤을 보내고, 둘째 날 처음 간 곳은 아사쿠사. 신사와 절이 함께 있는 곳으로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예의는 이 세상 어 디에 가든 있다는 것이 조금 감격스러웠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고층 빌딩. 너무 높아서 귀가 멍멍했습니다. 주변이 다 창 문이라 도쿄의 중심이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때 통역 선생님께서 수상관저 와 국회의사당을 짚어주셨습니다. 그 곳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제게 야망을 갖도 록 부추겼습니다. 너무 작고 아래로 보이는 그 건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저 건물들에 들어가면서도 그러한 느낌을 느껴봤으면 하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경항구관과 과학미래관에서는 일본의 기술의 발전에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 다. 엄청나게 굉장한 일본의 모습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분명 조선 전기까지 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와 기술을 전수받던 나라가 어떻게 이다지도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지 너무나 궁금하고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전 뒤에는 환 경 파괴가 숨어있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립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잃었을까요. 26일 아침. 같은 방을 썼던 두 친구와 헤어질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 각에 슬퍼졌습니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2팀은 먼저 떠났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깐 언젠가 다시 만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방재체험은 제게 조금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소화기 사용은 많이 교육받았 던 것이지만, 지진과 화재 시 연기체험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것이기 때문입니

39 다.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여 이런 교육 센터까지 만들어 놓은 일본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야마나시 현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홈 스테이에 앞서서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할 것이고, 문화도 다를 것이고, 예절도 다를 것이고... 다행히도 한국말을 좀 하실 줄 아는 현청 관계자 분의 집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걱정했던 식사는 아주머니께서 일부러 저 희를 위해서 편하게 준비해주셨습니다. 또한 집에 오자마자 자신에게는 보물인 프라 모델을 꺼내놓는 초등학생 꼬마 아이도 너무 착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학교 3학년인 여자아이였습니다. 저희는 처음에 사춘기인 중3 여학생을 생각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키가 작고 소아마비인 듯 걸음을 이상하게 걸었습니다. 처음에 보고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걱정이 앞서게 되었습 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를 보고 밝게 웃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다행 이었습니다. 다음날은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이곳저곳 많이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낚시 터에 가서 낚시를 했는데, 낚시는 처음인 제게 아저씨께서 잘 알려주셔서 감사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잡은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생선을 싫어하는 저로서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유명한 목장을 갔습니다. 거기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뛰어놀았습니다. 그리고 승마를 하는 곳에 가서 승마를 했습니다. 한국에 서도 시간을 내어 하기 힘든 일들을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반나절 만에 다 한 것입니다. 전 그 체험이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 은 공존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길 것 같았던 홈스테이 일정은 그리 쉽게 끝나 고, 아저씨, 아주머니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려는데, 저는 참고 싶어서 이를 세게 앙다물었습니다. 계속 앙다물었습니다. 다음 날, 또 하나 걱정되는 일정이 다가왔습니다. 일본 학교 방문.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쏟아지는 환호와 인사. 몸 둘 바를 모른다는 것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한 음악수업과 영 어수업. 먼저 제게 말을 걸며 친해지고 싶어 했던 남학생들도 떠오르고, 부끄러 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영어 수업 시간의 여학생 짝도 떠오릅니다. 그런 학 생들의 순수한 모습들이 아마 제가 가지고 있던 반일 감정을 가장 많이 앗아가 지 않았을까요. 점심 후에 벌어진 행사. 우리나라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장기가 멋지게 펼

40 쳐졌습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음악이 일본 학생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 고, 태권도를 배우며 경쟁심리 때문에 싫어했던 검도도 일본 학생들이 시범을 보여주니 멋지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살풀이춤이나 가 야금연주, 병창 같은 것들도 평소에는 자주 접하지 않은 것인데도 정말 훌륭하 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학교 방문 후, 바로 호텔에 돌아와서 소감을 발표하고, 단장 선생님의 말씀 도 들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발전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 는 이야기였지만, 단장 선생님의 말씀 자체가 수긍이 가도록 설득력 있었습니 다.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듯이, 일본 사람들도 미국을 미워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들을 따르고 배워서 다시 재창조하는 일본인들의 자세도 충격이었지만, 더 큰 충격을 따로 있었습니다. 역사와 관련되어 일본의 발전에 대해 얘기해주신 단장 선생님께서는 수학 선생님이셨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과계열 과목 선생님 이 지나쳤다고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과목에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좋은 가 르침을 주기 위해 노력하신 모습에 적잖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은 후지 산에 올랐습니다. 구름과 함께 뒹구는 산봉우리를 보고 감탄 하지 않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보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장관이라고 생각하기도 했 습니다. 잼을 만든 곳도 좋았지만, 인형을 만들러 간 곳에서 인형을 다 만든 후에, 전 정말 좋은 체험을 했습니다. 화장실을 찾는데, 집에서 혼자 사시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께서 저희에게 자신의 집 화장실을 쓰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으 로도 감사한데, 추운데 그냥 가지 말고 난로 불을 좀 쬐며 차를 마시라고 하셨 습니다. 어떻게 사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오면서 너무 감사했고, 일본 사람들 모두 이렇게 인정이 많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이별의 날입니다. 통역 선생님들이나 기금 관계자 분들하고 헤 어지며,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공항에서는 그동안 정들어버린 친구들 과 헤어졌습니다. 슬픔도 한 가득이었지만, 행복도 한 가득이었습니다. 슬픈데 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기묘했습니다. 그렇게 제 일본 연수는 다 끝이 나버렸습니다. 하지만 친구들하고는 아직도 연락을 하며, 고마웠던 홈스테이 가족 분들에게는 선물을 보내려고 준비 중입니

41 다. 분명 제가 생각하는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증죄부증인' 이라는 말이 새삼 떠 올랐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친절하고 충분히 따뜻했습니다. 오 히려 한국 사람들끼리는 느낄 수 없는 정의 통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증죄부증인 을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국가 간의 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상 처와 아픔은 분명 양국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이지만, 일본인들 을 미워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전을, 그들의 자세를 높게 존 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잘 모르는 고등학생이 느낀 감정이지만, 제 게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였고,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이렇게 동해 건너로 외쳐주고 싶습니다. 일본, 고마웠습니다!

42 낯선 땅에서 찾은 여행 이상의 것 서 동 선 인천 정보산업 고등학교 이번 연수는 평범하기만 했던 내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 다. 가까운 데 위치한 나라인 만큼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일본을 방문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만큼 부푼 가슴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같이 연수를 받을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 많은 친구들 속에서 절대 뒤쳐지지 말자 라는 굳은 결심을 했다. 문화의 나라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번 연수를 통해 꼭 식견을 넓히고 오자 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벅차오르는 가슴을 숨길 수가 없었다. 공항을 나설 때 우리 방일 연수단을 환영하는 외무성 측 직 원들의 환호는 우리가 일본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연수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첫 번째로 방문한 아사쿠사에서 수많은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 일본 특유의 진풍 경과 큰 신사를 보고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 환영중식회 때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일본 국회의사당과 새 총리로 부임하신 하토야마 총리의 거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멋질 뿐이었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겐 큰 자 극이기도 했다. 환영중식회가 끝난 후 오다이바에 위치한 동경미래과학관에 갔 다. 그 곳에서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기술소재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일 본의 첨단기술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과학관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동경항 구관에서는 땅을 매립하여 만든 신항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데, 생소하기만 한 소재라 처음에는 호기심만으로 설명에 집중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한 항구를 다 합쳐도 우리나라의 부산항만큼은 못 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를 시작한지 3일째 되던 날은 제일 기대했던 홈스테이가 있던 날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짐을 챙겨 숙소를 떠나면서 곧 만나게 될 호스트 가족 분들과 야마나시현의 모습, 그분들의 문화를 꼭 깊이 새겨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방재 교육체험 후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역 근처에서 중국식 마파두부와 고기를 먹

43 었는데, 일본에서 먹는 중국음식이라니...정말 색다른 경험이어서 아직도 생각 이 난다. 식사 후에 일본의 자연스러운 문화이기도 해서 한 번쯤 보고 싶었던 길거리 밴드공연을 봤는데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 어서 정말이지 신기했다. 기차를 타고 야마나시현으로 이동하는 길에 기차 창밖 으로 보았던 일본의 전원적인 풍경 또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면식 장소에 도착해서 만난 호스트 가족 분들은 아주 인상이 좋으신 분들 이셨다. 함께 홈스테이를 하게 된 선익이와 나는 그 분들이 짜 오신 일정대로 먼저 다케다신겐 장군 신사를 들렀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서야 집에 도착했는 데, 그분들은 일본 전통가옥이 아닌 아주 크고 멋진 2층 단독 주택에 살고 계셨 다. 집에는 우에노상 딸 분 가족들도 계셨는데, 어린 우에노상의 손자 손녀는 너무 귀여웠다. 짐을 풀고 나서 온천에 갔는데 일본의 자랑이기도 한 온천에 왔 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본을 반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손님을 잘 배려해 준다고 들었는데 그 분들은 정말로 작은 것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배 려해주셨다. 다음날은 난생 처음으로 와인제조공장에 갔다. 그 곳 포도밭에서 여러 포도를 맛보았는데 정말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오후에는 집에서 바비큐 파 티를 했는데 그 때 먹었던 요리들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홈스테이를 끝마칠 때가 되어서 짐을 챙겨 나오는데 우에노상께서 짧은 시간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서 만든 앨범을 건네주셨다. 그 때 느꼈던 일본사람 특유의 세심 함에 감격해서 눈물이 날 뻔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분들과 함께했던 시간 들을 평생 추억으로 남기리라 생각했다. 일본의 문화를 따뜻하게 전해주신 그분 들께 정말 감사하다. 연수 5일째 되던 날은 학교방문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오오츠키 고등학교 는 아담한 크기의 학교였다. 간단한 환영회 후에 일본 학생들과 체육수업, 서예 수업을 들었는데 그 곳 학생들은 체육수업으로 골프를 배우고 있었다. 필드가 없는 운동장에서 골프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는데 정말 효율적인 방식 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점심심사 후 학교 강당에서 교류회를 가졌는데, 일본학생들이 보여 준 검도와 소림무술은 정말 멋졌다. 거 기에 우리 학생들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깊은 농현소리, 판소리와 살풀이춤의 흥 겨움이 어우러져 강당은 더욱 멋진 화합의 장이 되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은 일본인의 긍지라 불리는 후지산에 올랐다. 5부 능선에 올라서서 본 후지산 전경은 지상낙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멋졌다. 하산 후에는

44 손수 잼도 만들고, 전통마을 방문도 했는데 일본 정통가옥과 전통놀이를 즐겨서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다. 저녁식사 후에 단별회의를 가지고 나서 친구들이 보 고 느낀 것을 발표하는 것을 들으면서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날. 귀국할 준비를 하는데 일본을 떠난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하지 만 내 스스로 이번 연수를 통해 얻어가는 것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만족하자고 마음먹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일본 문화를 뼛 속 깊이 알아서 돌아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거대 한 일본의 문화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정이라든가,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첫 날 일본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식견을 넓히고 오자고 다짐했던 나는 단순 히 안목을 넓히는 것 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어서 돌아왔다. 더불어서, 몇 십 년. 적어도 몇 년 후에는 학생의 신분이 아닌 성공한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짧은 추억이 깃든 일본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수를 통해 여행 이상의 추억을 얻어왔노라고 말할 수 있다

45 길을 여는 여행 남 승 우 대전 전민고등학교 일본 방문 연수단으로 뽑히고 몇 달을 기다려왔던 6박 7일간의 일본연수가 드디어 끝났다. 나의 개인적인 이번 연수의 주목적은 아무런 꾸밈도 없는 일본 생활을 체험해 봄으로써, 직접 체험한 일본과 그동안 내가 책이나 방송을 통해 알고 있던 일본 에 대한 지식을 비교하여 일본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고, 내가 그동안 갈고 닦 은 일본어 실력이 본고장에서 통하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 그리고 일본 대학으 로 유학을 가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내가 목표로 한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주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인 친구를 새롭게 얻었고 외무성과 같은 공공기관을 방문함으로써 자 긍심을 얻었으며 여러 가지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들을 너무나 많이 얻게 되어 이 글에 모두를 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내가 가게 될 길을 하나하나씩 열어주는 열쇠들이 될 것이다. 9월 24일 목요일. 새벽에 일어나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 을 때는 서로 초면인 사람들이라 무척 서먹하고 어색하여 이런 상황에서 무사 히, 그리고 의미 있게 일본연수를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하지 만 그런 걱정도 금방 사라지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엔 벌써 몇몇 친구들 을 사귀게 되었고, 하룻밤 같은 방에서 자고나서는 스스럼없는 친구사이가 되었 다. 첫 번째 공식일정은 외무성 방문이었다. 한국 고등학생을 대표해 한일 문화 교류를 여는 자격으로 외무성을 방문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 마음가짐 과 행동 하나하나에 많은 신경이 쓰였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더욱 적 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둘째 날은 아사쿠사와 일본과학미래관을 방문하였다. 아사쿠사에 갔을 때 제 비뽑기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아사쿠사에서는 좋은 것이 나오기 어렵다고 하셨

46 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경우 뽑자마자 대길( 大 吉 )이 나왔고, 나는 이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본과학미래관 에서는 우리나라의 국립중앙과학관보다 많은 것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일 본과학미래관에서 직접 로봇에 탑승하는 것과 같은 시뮬레이션체험과 인터넷 메 시지 체험은 아주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앞으로 이런 과학관 같은 것이 더욱 많 이 생겼으면 좋겠다. 셋째 날에는 1단과 2단이 서로 갈라져 서로 다른 일정을 가야했기 때문에 며 칠 동안 정들었던 룸메이트들과 헤어져 새로운 룸메이트와 방을 써야 했다. 처 음엔 아쉬운 감도 있었지만 그런 기회로 인해 더 많은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 숙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먼저 방재교육을 체험한 후 와카야마 성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에는 옛날 무기와 갑옷 등의 유물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런 것 보다는 그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자연 풍경에 더욱 눈이 갔다. 고소공포증 이 있어 밖의 테라스까지는 나가지 못했지만 한손으로 기둥을 꼭 잡고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였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 하늘에는 아주 약간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는데, 태양을 등지고 보니 정말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일본의 웅장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연수 프로그램이 하루하루 지나감에 따라 단원들과는 더욱 가까워졌다. 참여 한 학생들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어 며칠 뒤면 헤어진다는 생각에 하루하 루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넷째 날에는 모든 단원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실제 로 일본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그들의 생활문화를 접하고 일본인과 직접 의 사소통한다는 점에서 홈스테이가 무척 기대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일본어 가 잘 통할지, 내 식성이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호스트 가족과 잘 맞지 않으 면 어쩌나 하는 등의 걱정도 많이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집은 농촌에 사시는 오카 테츠오 씨의 댁이었다. 직업은 여쭤보지 않아 모르지만 한국의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복한 대가족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오카 테츠오씨 부부 는 60대이고 그 부모님들은 80대 후반이셨는데 아저씨 부부는 우리나라의 40대 초반처럼, 그 부모님들은 60대처럼 아주 건강해,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건강한 생활을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아주 친절하게 모든 것 하

47 나하나를 배려해 주셨다. 같이 뒷산을 돌아보기도 하고 TV의 퀴즈프로그램을 보 며 서로 퀴즈를 맞히면서 아주 좋은 하룻밤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해 알려드리고 일본에 대해서도 평소 궁금해 하던 것을 좀 더 여쭤 보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된다. 특히 내가 편식 이 심해 음식에 관하여 많은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아 정말 죄송하다. 다행인 것은 일본어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과 이를 통해 일본어 실력에 한 충 더 자심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아저씨와 이메일로 연 락하고 있는데 나중에 일본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한 번 더 찾아뵙고 싶다. 처 음에는 학생들 중 나만 시골 집으로 배정받아 좀 아쉽기도 했는데 오히려 시골 의 일본 정통 가정을 체험 할 수 있고 자기관리의 중요성과 배려의 미덕을 알려 준 최고의 홈스테이였다고 생각된다.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게 되어 정말 감사한다. 다섯 번째 날은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일본 학생들과 함께 직접 수업에 참여 하는 학교 생활체험의 날이었다. 이 일정은 내가 가장 기대하던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궁금하던 일본의 교육현장을 통해 일본 학생들의 수업방식 및 수업 내용 을 알 수 있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일본어로 수업을 들어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 곳은 세이린 고등학교였다. 먼저 강당에 들어가 우리 연수단의 우리문화 소개와 세이린 학교의 취주악부의 연주를 들었다. 우리 연수단의 학생들도 잘 했지만, 세이린 학교의 취주악부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하나의 프로 악단처럼 보였다. 그 후 내가 하루 종일 지내게 될 반을 배정받고 교실로 들어갈 때 내 심장은 엄청나게 힘차고 빨리 고동쳤다. 내가 이곳에 확실 히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학교생활 체험을 통해 일본의 학생들과 하루를 보내면서 그동안 내가 가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많은 상식이 잘못된 상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규율도 그리 엄하지 않았고 폐쇄적이지도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가 거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본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과 똑같이 웃고 떠들며, 장난치면서 활기차게 학교 생활을 즐기는 듯했 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나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단 지 한명하고만 이메일주소를 교환한 것이다. 어쨌거나 일본 학생들과 같이 수업 을 한 것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48 드디어 마지막 날. 일본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본을 뒤로 한 채 친구, 선생님들과 헤어지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이것이 작별이 아닌 또 하나의 시작이고, 또 다른 길을 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나는 일본 을 떠나면서 새로 알게 된 일본을 내 마음에 집어넣고 1년 반 후 다시 올 다짐 을 확실히 하였다. 이 글을 통해 국립국제교육원의 한일 학생연수 프로그램 담당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와 같은 한일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고 가슴 벅찬 경험을 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더 많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7일간의 이번 일본 방문은 분명 내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 었다고 확신합니다

49 배울 것이 많았던 소중한 경험, 일본연수 김 지 훈 안 산 동 산 고 등 학 교 이번 일본 연수는 처음 신청할 때부터 왠지 뽑히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에서 살다온 친구에게 일본어 지도도 받고 연수 중 갈 곳을 미리 조사도하며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래서 떨리거나 긴장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예비 소집일 부터, 몇 년 전 미국에 갔을 때보다 더 욱 더 떨리고 긴장되었다. 그런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간 일본. 그곳 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연수에 가기 전에 일본에 가서 보고 오겠다고 마음먹고 기대한 것은 크게 네 가지 정도였다. 먼저, 나는 크리스천이기에 일본의 종교에 대해 알고 싶었고 종 교에 대해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 태도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꿈이 정치와 관련이 있기에 일본의 교육정책 등 정책적인 부분을 알아보고 싶었다. 또, 평소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대표적인 것이 일본인들은 매우 조용 하다는 생각)이 사실인지 알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일본에 가서 이 네 가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일본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잘못 됐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인들은 매우 조용하고 사교성이 적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 왔기에 처음엔 편견을 가지고 연수에 임했는데 연수를 하면서, 특히 홈스테이와 학교방 문을 통해 그러한 편견들을 깰 수 있었다. 호스트 패밀리 중에는 조용한 분도 있었지만 유쾌하고 재밌는 분도 있었고 홈스테이를 했던 날 일본의 쇼핑몰에 가 서 함께 장을 봤는데 한국의 시장처럼 생기 있는 분위기였다. 세이린 학교를 방 문했을 땐 우리나라 학생들과 같이 활기차고 시끄러운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선 확실히 조용한 분위기였다. 일본인들이 어느 곳 에서도 조용하다는 것은 편견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남 을 배려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종교의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 세상에 수

50 많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말을 통역가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정말 방문한 곳마다 크건 작건 신사가 있었다. 종교개념 또한 불분명해 결혼은 교회에서 하 고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일본인들은 어떤 종교의 신자라는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같 았다. 일본인에게 종교는 신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로서 일상생활에 자리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연수 중 일본인에 대한 편견이나 종교의식에 대해서 확인한 것들도 소중한 경험이었으나 일본의 시민의식과 정책적인 부분을 확인하면서 더 많은 것을 느 끼고 배울 수 있었다. 연수 중 임해부도심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원래 얕은 바다 였고 교육, 인구분산 등의 목적을 갖고 간척사업을 해서 만든 매립지라고 했다. 그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도쿄 항구관에 방문했을 때 넓은 면적을 간척했는데 환 경단체의 반발이 없었냐는 질문을 했었다. 담당자 분이 엄격하게 환경 법률을 지켰기에 반발은 없었다고 대답해주셨다.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현대사회에서 반 발 없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이처럼 엄격한 법률 내에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임해부도심을 건설하는 과정 뿐 아니라 임해부도심의 시설에서도 배운 점이 있다. 임해부도심을 만들 때 모 든 건물들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내진 설계가 되어있고 가스관, 수도 등 라이프라인을 지진이 나도 끊이지 않도록 안전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쓰레기 처리 시설 등 사소한 부분도 사람들이 살기 편리하도록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 시설들을 보면서 임해부도심의 편리한 교통, 좋은 위치 뿐 아니라 우수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높인 안전성, 편리성이 그곳의 가치를 높 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임해부도심 건설 목적에 맞게 기업들이 활동하기 좋도록 위치, 편리성, 안전성 등을 고려하고 시설 하나 하나를 설치한 것은 우 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 생활가운데 녹아있는 일본인들의 의식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연수기간 중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일 본의 거리엔 정말 쓰레기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쿄뿐 아니라 와카야 마 같이 작은 도시의 거리에도 쓰레기가 없다는 것이 인상 깊었는데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그런 의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일본엔 우리나라에 비해 횡단보도가 많았는데 그 이유가 노약자에게 불편 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한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런 작

51 은 부분부터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었다. 일본연수기간 중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배워야 될 점을 보고 느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나와 나이가 비슷한 히로시와 한국과 일본의 차 이점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공통 점을 발견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저 녁에 알게 된 아키라라는 형도 유쾌하고 활발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또 호스트 패밀리의 분위기가 우리 집의 분위기와 비슷했기에 친근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학교방문을 했을 땐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까봐 걱정했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 지내다보니 금세 많은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홈스테이와 학교방문을 통해 일본인과 사람 대 사람 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일본인을 외국인이 아닌 똑같은 사람 으로서 만날 수 있었던 이 경험이야 말로 일본을 가장 제대로 경험하고 연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친구 들과 마음으로 소통할 때, 그들도 나와 같다는 것을 느낄 때 사라지게 되었으며 일본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앞으로의 관계에서도 조금 더 열린 마 음으로, 나와 똑같은 사람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이번 일본 연수. 난 이번 연수를 통해 내가 기대 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들과의 교제를 통해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일본에 방문하고 싶 을 정도로 일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 마음으로 소통했던 소중 한 추억도 얻었고 일본의 문화, 산업, 시민의식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일본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일본에 대한 잘못된 인 식이 많단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연수는 나의 생각과 경험 넓힐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52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 방일연수 성 진 우 이 천 고 등 학 교 3월에 이번 방일연수 신청을 하고 한 달 정도 뒤 내가 이번 방일 연수에 뽑혔 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놀랐었고 한편으로는 정말 방일 연수가 기대되었다. 평 소에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또 그로인해 책이나 인터넷 등 간접적인 매체 로만 일본을 접해오던 나에게 있어서 이번 방일 연수는 정말 백문이 불여일 견 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일본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 이 되었다. 연수 첫 날에는 외무성을 방문하게 되었다. 현재 외무성이 담당하고 있는 역 할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 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질문들이 나와서 조금 놀라게 되었다. 외무성 방문이 끝나고 도쿄타워로 이동하여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시간 관계상 도쿄타워에는 올라가 보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무척이나 아쉬웠다. 연수 둘째 날에는 첫째 날보다 훨씬 더 많은 곳을 견학하게 되었다. 첫 번째 로 견학한 곳은 아사쿠사였다. 아사쿠사는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로 센소 지, 도미나리문, 나카미세 도오리 등의 많은 볼거리가 있는 신사이다. 하지만 우리가 견학 갔을 때는 아사쿠사의 본당이라 할 수 있는 센소지가 외부 공사 중 이라 내부 밖에 보지 못하여서 정말 아쉬웠다. 아사쿠사 견학이 끝나고, 외무성 관계자분들과 함께 약 1시간 30분 정도의 환영 중식회를 가지게 되었다. 중식회 가 끝나고는 먼저 일본 과학 미래관을 견학하게 되었다. 일본 과학 미래관은 우 리나라의 박물관과는 달리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등등이 많았다. 일 본 과학 미래관 견학 후, 동경 항구관을 견학하였다. 이곳은 100년 전까지는 바다였지만, 지금은 매립을 하여 우리나라의 부산항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곳 이라고 한다. 연수 셋째 날에는 방재교육체험을 받게 되었다. 이 날 교육 받은 것은 소화훈 련, 지진체험, 연기체험, 삼각건 매기 등이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자연재 해, 특히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이기 때문인지 우리나라보다 방재 시스템이

53 훨씬 더 발달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재교육이 끝나고 난 뒤에는 비 행기를 타고 와카야마현으로 이동하였다. 와카야마현에 도착하고 나서 마지막 일정으로 와카야마성을 견학하였다. 와카야마성은 와캬야마시 중앙에 위치한 도 라후스산에 지어졌는데, 와카야마성 천수관에 올라가보니 와카야마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연수 넷째 날에는 이번 방일연수의 백미,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아침 10시 에 호텔에서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게 되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 데, 나랑 같이 홈스테이를 하게 된 친구인 은수가 일본을 잘하지 못하여서 홈스 테이 가족들과의 대화는 내 전담이 되어버려서 조금 힘들었지만 홈스테이 가족 이 친절하시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셔서 의사소통에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선물 마련을 위하여 일본의 슈퍼마켓을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갔었는 데, 우리나라에서는 보지 못했던 무인계산기를 보게 되어서 신기하였다. 2시간 정도의 쇼핑을 마친 뒤, 홈스테이를 하게 될 집으로 갔다. 우리가 홈스테이를 했었던 집은 2층의 작지만 아늑한 전형적인 일본의 가정집이었다. 점심으로는 오사카 라면을 끓여주셨는데 평소에 먹던 우리나라의 라면과는 다른 독특한 맛 이 났다. 점심을 먹은 뒤에 학교 동아리 활동에서 돌아온 세이렌 고교 3년생인 형과 중학교 1학년인 동생과 함께 플레이 스테이션, 닌텐도 will 등을 같이 플 레이하였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 함께 바닷가를 가자고 하셨는데 차가 좁아 서 아쉽게 형과 동생은 같이 가지 못하였다. 바다가 집과 10분 정도 밖에 걸리 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바닷가에 가서 생전 처음으로 낚시를 해보게 되었는 데 사람들이 왜 그렇게 낚시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연안이라서 잡히 는 물고기는 불과 8cm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주머니께 말씀해주시기를 우리가 낚시를 한 낚시터는 오사카에서도 낚시를 하러 올 정도로 낚시명소라고 가르쳐주셨다. 우리가 낚아 올린 물고기들은 그 날 저 녁식탁에 올랐었다. 직접 잡아서 그런지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저씨께서 바닷가 야경을 보러가자고 하셨지만 무척이나 피 곤하였기에 거절하고 일찍 잠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야경을 보지 못한 것이 좀 후회스럽다. 다음 날 아침, 즉 연수 5일차 아침은 일찍 일어나서 아저씨, 아주머니와 함께 학교방문 일정이 잡혀있는 세이렌 고등학교까지 걸어갔다. 홈스테이 가족들과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이번 방일 연수의 또 다른 백미인 학교방문을 하게 되

54 었다. 강당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우리 한국 학생 측에서 특기 발표를 할 때 내 가 사회를 보게 되었다. 생전 처음으로 수백 명 앞에서 사회를 보는 것이라 조 금, 아니 많이 떨렸었지만, 실수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나서는 각 교실로 들어가 일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일본 학생들 과 함께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 학생과 일본 학생들 간의 정서나 심리의 차이가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점과 수업분위기 가 우리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자유분방하다는 것이었다. 수업을 받는 도중 중간 중간 일본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셔서 조금 당황했지만 그럭저럭 무사히 답할 수 가 있었다. 학교방문 일정이 모두 끝나고 그동안 친해졌던 학생회장, 부회장과 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원래 일정에 없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모시는 신 사를 견학하게 되었는데, 연수 2일차 견학했던 아사쿠사의 임팩트가 너무 머릿 속에 강렬하게 남아서 딱히 기억에 남는 점은 신사의 계단이 108개라서 올라가 는데 좀 힘들었다는 것 정도이다. 연수의 마지막 날이라 할 수 있는 6일차에는 맨 첫 번째로 와카야마의 명물, 네고로칠기체험을 했는데, 생각보다 제대로 되지 않아서 조금 속상했었다. 칠기 체험이 끝나고 나서 약 30분 정도 칠기마을을 견학하였는데 2,300년 전의 건물 들이 거의 훼손돼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서 살짝 놀라움을 금치 못했 었다. 두 번째로는 잼 만들기를 하였는데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시중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달콤하고 맛있었다. 원래 일정은 잼 만들기 다음에 분하사라는 절을 견학하는 것이었지만 비가 와서 취소되고 대신 저녁을 먹게 된 곳에서 쇼핑을 즐기게 되었다....이것으로 장장 6박 7일에 걸친 방일 연수는 그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나 에게 있어서는 끝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같이 간 친구들 모두 이번 방일 연수를 통해서 새로운 점을 깨달았겠지만 나와는 조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번 방일 연수 전의 나에게도, 방일 연수 후의 나에게도 한국인이라 면 누구라도 대부분 가지고 있을 과거 감정에 의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 기 때문에 색안경을 벗고 제3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여러 문화를 보고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이번 방일 연수를 통하여 내가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 해보게 되는 귀중한 계기가 되었다

55 한일 청소년 교류,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의 첫걸음 김 민 식 세 광 고 등 학 교 첫째 날(9월 24일) 친구들의 부러움을 잔뜩 샀던 일본연수. 몇 달 동안 기다려왔던 일본연수가 드디어 오늘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공항리무진을 탔다. 연수에서 어떤 일 이 있을지 생각하다 보니 금세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모인 100명의 방일 연수단, 우리는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11시 반, 일본 나리타공항 으로 가는 비행기가 이륙했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의 기대감과 긴장감. 그 것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2시간정도 지났을까, 우리는 일본 나리타공 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도 한국어가 많이 써있어서 나리타공항 안에서도 일본에 온 게 실감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도로로 나가 일본어로 쓰여 있는 표지판을 보니 그때서야 일본임이 실감났다. 나리타공항이 있는 치바현을 지나 도쿄에 도착했다. 일본의 관청거리인 가스 미가세키( 霞 ケ 関,かすみがせき)로 향했다. 주위에는 일본의 국회도, 천황이 사 는 황거( 皇 居 )도 보였다. 외무성에서 동북아 외교담당자분과 얘기할 수 있는 시 간을 가졌다. 담당자께서는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 대해 더 잘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가져서 한일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국인을 대표하여 일본의 외무성을 방문할 수 있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외무성방문을 마치고 도쿄타워에 갔다. 도쿄타워에 올라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도쿄의 야경을 보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올라가지 못했다. 아직은 일본의 모습이 낯설다. 아직은 일본에 온 게 실감나지 않는다. 둘째 날(9월 25일) 6시 반 울린 모닝콜을 듣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호텔의 커튼을 걷으니 대 낮같이 환하게 아침햇살이 비쳤다. 우리나라와 시간은 같지만 일본이 동쪽에 있 어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해가 더 빨리 뜨고 빨리 졌다

56 첫 일정은 아사쿠사( 浅 草,あさくさ)였다. 아사쿠사에 있는 센쇼지( 浅 草 寺 )와 아사쿠사신사( 淺 草 神 社 )에 갔다. 그곳에서는 불교와 신도가 같은 곳에 위치해있 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종교가 같이 있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 는 특별한 모습이었다. 아사쿠사를 방문한 뒤에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주최하는 환영회에 참가했다. 환영회가 열린 가스미가세키 빌딩에서는 도쿄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새로 주인이 바뀐 총리관저와 국회의사당, 어제 방문했던 외무성과 도쿄타워도 볼 수 있었고 멀리에는 신주쿠도 보였다. 빌딩에서 내려다 본 일본의 모습은 우 리나라 서울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도쿄시내에는 서울보다 녹지가 많았고, 하늘도 훨씬 맑았다. 항상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서울의 도로와는 달리 도쿄의 거리는 한적했다. 대중교통의 이용이 보편화되어있어 깨끗한 도로를 유지하는 일본의 모습이 부러웠다. 다음에는 과학관인 미래관( 未 來 館, Miraikan)에 갔다. 미래관에는 여러 가지 체험활동이 마련되어 있어서 즐겁게 과학을 체험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오전에 아사쿠사에서는 일본의 과거를 봤다면 미래관에서는 일본 과학기술의 현재와 미 래를 볼 수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동경항구관이였다. 동경항구관에서는 일본이 만들고 있 는 임해부도심(お 台 場, 오다이바)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오다이바는 수십 년간의 계획 하에 도쿄만을 매립하여 만든 신도시이다. 섬을 네부분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이용계획을 세웠으며 건설시기까지도 구체적으로 계획이 세워져 있었 다. 신도시가 필요하면 주먹구구식으로 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철저하게 계획하여 최대효율을 창출해내려고 하는 일본의 모습을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반드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날, 넷째날(9월 26일~9월 27일) 오늘의 첫 일정은 방재교육체험이다. 지진, 태풍, 쓰나미 등의 갖가지 재해를 겪는 재해천국 일본답게 방재교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소화기사용법을 직 접 체험해보고 화재대피법도 실습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다. 방재교육시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진체험이다. 지진체험실에서는 진도 7까지의 지진과 고베대지진, 관동대지진 등을 체험할 수 있었다. 지진을 예고한 뒤에 흔들릴 때

57 도 당황스러운데, 내가 한국에서 살 때 갑자기 땅이 흔들린다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방재교육체험이 끝나고 특급열차를 타고 야마나시현( 山 梨 県 )으로 이동했다. 내가 살고 있는 충청북도와 자매결연을 맺은 도시를 대표로 방문하게 되어 감회 가 새로웠다. 야마나시현청에 도착해서 홈스테이가족들과 대면식을 가졌다. 대 면식에서 아주머니를 뵙고 서로 소개를 했다. 내가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몰랐지 만 아주머니가 영어를 할 줄 아셨다. 그래서 준비해간 자기소개만 일본어로 한 뒤에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먼저 식품점에 가서 저녁거리를 샀다. 동네에 있는 슈퍼마켓과 구조가 똑같아서 집 앞 슈퍼에 쇼핑 나온 기분이었다. 게다가 며칠 동안 못 먹었던 김치! 일본에서 한국김치를 보니 정말 반가웠다. 한국김치를 보 고 좋아하자 아주머니가 김치도 하나 사셨다. 쇼핑을 마치고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다. 홈스테이 집은 코후 시내에서도 20분을 들어가야 하는 산에 있었다. 집 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은 초밥과 전골이었다. 며칠 동안 기름진 음식만 먹다가 담백한 가정식을 먹으니 정말 꿀맛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가족들과 얘기를 했다. 먼저 우리가족 소개를 하고, 미니 홈피를 보여주면서 학교와 친구들 소개도 했다. 한류스타에 관해서도 얘기했다. 보아나 동방신기 외에도 일본에서 알고 있는 우리나라 스타는 정말 많았다. 한 류열풍이란 말을 실감했다. 아주머니는 여느 일본아줌마처럼 욘사마 배용준 을 좋아하셨다. 컴퓨터로 소녀시대를 보여줬을 때는 형이 큰 관심을 가졌다. 한 국과 일본의 문화는 여러 방면에서 상상 이상으로 많이 공유되고 있었다. 더 이 상 한국과 일본은 정치 경제적 측면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는 걸 느꼈다. 다음날은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관광을 했다. 야마나시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는 쇼센코에 갔다가 일본의 전통라면을 먹었다. 다음에는 밀레전이 열 리고 있는 야마나시 시립미술관에 갔다. 하루 동안의 짧은 홈스테이였지만 일본 거리에서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일본 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거리에서 부딪히기만 해도 스미마셍(죄송합니 다) 라 말하며 사과하는 깍듯하고 친절한 일본인의 모습과는 달리, 집안에서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와 너무 닮았다. 밥상에 둘러앉아 얘기하며 밥을 먹고, 같이 TV를 보며 웃고 떠들고, 형제끼리 장난도 치는 모습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여와 홈스테이하게 해준다는 것이

58 정말 어려운 일인데도 이렇게 초대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홈 스테이를 통해서 일본인의 참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다. 다섯째날(9월 28일) 홈스테이에 이어 가장 기대하던 행사 중 하나인 학교방문행사를 가졌다. 우 리 5단이 방문한 학교는 오츠키시립단기대학부속고등학교( 大 月 市 立 短 期 大 學 附 屬 高 等 學 校 )였다. 시골마을이여서 그런지 우리학교의 반도 안 되는, 한 학년에 네 반이 있는 작은 학교였다. 오전에는 일본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했다. 1교시 체육시간에는 골프를 했 다. 딱딱하고 위험한 골프공을 수업시간에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에 골프공에 셔 틀콕날개를 단 공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서툰 우리들과 달리 일본의 학생 들은 능숙하게 스윙을 했다. 여러 번 연습한 티가 났다. 항상 공만 주고 축구나 농구를 하는 우리의 체육시간과는 달리 일본의 체육시간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 고 있었다. 물론, 같이 뛰어놀 시간이 많은 우리나라의 체육수업이 학생들 간의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장점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수업을 통해 다양한 스포츠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교시 수업은 서예였다. 초등학교 미술시간 이후로 붓을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는 내가 붓글씨를 잘 쓸 리는 없었다. 수업이 지루해지자 몇몇 일본 여학생들 이 도라에몽이나 케로로같은 만화캐릭터를 그리며 장난을 쳤다. 비록 말은 안 통했지만 그림을 통해 서로 친해질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 선물을 교환하고 이메일과 연락처를 교환할 시간도 가졌다. 오후에는 교류회를 가졌다. 일본 오츠키고교에서는 취주악단의 공연과 검도, 소림사무술 시범이 있었다. 방일단에서는 가야금연주와 살풀이춤, 가야금병창을 공연했다. 교류회에서 일본의 공연을 보며 가장 놀라웠던 것이 공연준비가 학교 에 의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운영해오던 방과 후 활동 동아리 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항상 시험을 위해 학원에서 공부하기 바쁜 우리와 달리 자신들이 하고 싶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일본 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 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비록 6시간정도의 짧은 교류였지만 학교방문은 가장 뜻 깊은 시간이 됐다. 일본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고, 일본 학생들에 대 해서도 더 잘 알 수 있었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아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

59 만,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참 감동이었다. 이번 학교방문이 한 번의 교 류가 아닌 더 긴 끈이 되어 한일 학생 간에 교류가 꾸준히 이루어졌으면 좋겠 다. 여섯째날 넷째 날 저녁부터 끼기 시작한 구름이 더 어둑어둑해졌다. 어젯밤 일기예보 에서도 비가 올 거라는 소식이 들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후지산( 富 士 山 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컸다. 후지산은 오합목( 五 合 目, 5부)까지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게 돼 있어서 우리는 차를 타고 후지산 오합목으로 이동 했다. 이동하는 동안 주위에 보이는 산의 모습은 신비로웠다. 3천 미터가 넘는 거대한 봉우리, 그리고 그 중간에 걸쳐져 있는 구름의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쉽 게 볼 수 없는 경치였다. 오합목(약 2,300m)에 도착해서 등산객들이 등산하기 전에 들린다는 신사를 보고 전망대에서 경치를 감상했다. 높은 고도 때문에 후 지산은 이미 단풍이 들어있었다. 2천 미터가 넘지 않는 한국의 산만 봐오다가 3 천 미터를 훌쩍 넘는 산을 바라보니 우리나라의 산이 왠지 왜소하게 느껴졌다. 후지산에서 내려오고 잼만들기 체험을 했다. 집에서 잼을 만들 때처럼 블루베 리를 졸여서 블루베리잼을 만들었다. 잼만들기 체험 다음에는 민속촌에 가서 전 통인형 만들기 체험을 했다. 거의 완성해 놓은 제품을 실로 꿰매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였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민속촌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후지산의 모 습이었다. 후지산에 올라가서는 볼 수 없던 후지산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구름이 껴서 후지산 정상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일본에 와서 후 지산을 보고 갈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일곱째날 일주일간의 일본 연수가 지나고 한국에 가는 날이 돌아왔다. 새벽에 일어나 밥을 먹고 급하게 출발해서 나리타공항으로 향했다. 나리타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탔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동안 일주일간의 연수 일정이 영화 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일본의 여러 곳을 보면서 정말 배울 점이 많았다. 일본과학미래관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G20회의를 개최하는 중심국가가 되었다고 말하면서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음에도 더 나은 미

60 래를 위해 준비해나가는 일본처럼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하는지 생각해봤 다. 또한 많은 일본인들을 접하면서 한국인의 국민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봤 다. 우리가 외국 어디에 나가서도 부끄럽지 않은 친절하고 상냥한 한국인인지, 아니면 어글리코리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에게는 많은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분명히 단점도 있다. 우리에게 안 좋은 모습이 있다면 바 꿀 것은 바꿔야한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그리고 지금의 외교관계도 생각해 봤다. 홈스테이 때 가족 분들이 먼저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일제의 침략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일제의 침략행위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 고, 야스쿠니 신사참배 때문에 한국인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씀했다. 더 이상 과거사에 우리가 얽매여서는 안 된다. 청산해야할 과거사에 대해서는 명확히 하고 넘어가야겠지만, 과거의 일 때문에 현재의 이익을 버리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일본의 모습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서도 많은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전국 에서 모인 친구들과 밤새 호텔에서 얘기를 나눴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있는 친 구들이여서 진지한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각자의 꿈을 얘기하고 생각을 얘기하다보니 느낀 점도 많았다. 충북에 살아서 잘 모르고 있던 서울학생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내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봤다. 가장 크 게 느낀 것은 내가 우물 안 개구리 였다는 것이다. 나름 지역에서 인정받는 학교에서 상위권이라고 자만하던 나였지만 다른 학교아이들에 미하면 많은 부분 에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 인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던 순간, 일주일간의 꿈에서 깨어나는 기분 이었다. 그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방일연수에 참가하게 된 내가 정말 축 복받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일본여행에서는 체험해볼 수 없는 많은 것 들을 보고 느낄 수 있었고, 다른 지역의 친구들은 물론 일본의 학생들과도 소중 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이번 한일청소년교류 방일연수가 내 삶에서 가장 소 중했던 한 순간이 될 것 같다

61 이제는 가까운 나라 일본 안 진 환 청 양 정 산 고 등 학 교 평소 일본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방일 연수단에 참가하 게 되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학식이나 재능 등 여러 능력이 부족하겠지 만 일본의 문화를 배우고 느끼고 싶다는 마음 하나 만큼은 최고라 생각합니다. 제가 연수에 참가하는 100명의 학생 중 한명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 너무나도 기뻐서 잠시 정신이 공황상태가 되었다가 이번 연수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의 의식과 문화를 배우고 제가 세계로 도약 할 수 있도록 연수를 알차게 보내겠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6박 7일의 방일 연수가 시작되는 날인 9월 24일이 하루전 날인 9월 23일. 저는 충남에 살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보다 하루 먼저 서울에 올 라와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잤습니다. 내일이면 일본에 가는구나! 등 수만 가지 의 생각을 하며 서서히 잠에 빠졌습니다. 다음날인 9월 24일. 집합 시간 9시 30 분의 1시간 전인 8시 30분. 제 상체만큼 거대한 캐리어를 이끌고 요란스럽게 인 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직원, 회사원, 외국인관광객 등 수많은 사람들 과 활주로에 대기 중 인 비행기를 보니 정말 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습니다.9시쯤 되어 M카운트에 도착하니 단장님과 선생님 그리고 이번 연수 에 같이 참가하게 된 친구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모두들 긴장된 표정으 로 각자 자신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 해 Mp3를 들으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9시30분이 조금 넘은 시간. 선생님께서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나눈 후 인원체크를 하며 여권과 비행기 표를 나눠 주셨습 니다.그 후 각자 짐을 탁송한 후 비행기 게이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발걸음 한 발자국을 옮길 때 마다 육중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동시에 가벼운 바 람 같은 설렘이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11시가 돼서야 우리일행은 일본 나리 타 국제 공학으로 향하는 여객기에 탑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승객이 탑승하 고 시간이 흐른 후 비행기가 서서히 지정된 활주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 다. 속도를 낼 때 생기는 마찰음은 기대에 차 엔진처럼 뛰는 제 심장을 더욱더 빠르게 뛰도록 두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이며 구름 저편의

62 일본으로 향하기 시작했을 때 온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그리고 시간 이 흘러 점심시간이 되어 기내식이 나와 끼니를 대충 해결한 후 눈을 감았습니 다. 끼익 끼이익 요란한 괴음에 잠이 깬 후 창밖을 쳐다보니 어느덧 나리타 공 항에 도착해 여객기가 착륙을 하고 있었습니다. 출국심사와 비슷하게 입국심사 를 마친 후 외무성 관계자 분들과 통역사 분들은 만 난후 첫 방문지인 외무성으 로 향했습니다. 외무성으로 이동하면서 본 일본의 거리는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 다. 서울처럼 거대한 도시인 도쿄. 하지만 서울과는 달리 조용한 모습을 간직한 도시 였습니다. 도쿄의 모습을 감탄하는 찰나, 어느덧 버스가 외무성 앞에서 멈 추었습니다. 외무성 회의실에 들어가 환영사와 답사를 주고받은 후 학생들이 일 본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시간을 끝으로 외무성 반문을 마친 후 우리 일 행은 바로 도쿄타워에 있는 식당으로 가 저녁식사를 먹었습니다. 돈까스 카레가 메인 음식이었는데 인도의 고유 음식으로 잘 알려진 카레를 일본인의 맛, 나아 가 세계인의 입맛에 맞도록 변형시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음식 하나하나도 자 신의 문화로 만드는 일본인의 정신이 대단고, 한국인이 이런 정신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약간의 자유 시간을 만끽한 후 숙박 호텔로 향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하루일과를 정리하며 내일 일 정을 알리는 단별 미팅을 한 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일행이 받는 대 우가 상당히 크단 것 과 대우만큼 우리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크단 것을 느꼈습 니다. 3인실 호텔방이었는데 5명도 충분히 잘 수 있을 만큼 큰 호텔 방,시설도 상급인 호텔의 모습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수학여행 온 기분으로 행동하지 않고 한국 학생의 대표로써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 써야한다는 사명감이 다시 한 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다음날 과분할 만큼 맛있고 다양한 아침식사를 먹은 후 제2일 일정 중 첫 번째 방문지인 아사쿠사를 갔습니다. 아사쿠사에서 자유 시간 을 가졌는데 친구들과 같이 아사쿠사에 있는 100엔 샵을 찾아가 일본식 젓가락 을 구입했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 집합장소에 모인 후 환영중식회 장소로 향했 습니다. 화려한 환영중식회 시간을 가진 후 일본 과학 미래관에 갔는데 저는 문 과생이라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다문, 우주, 로봇분야는 관심이 있어 그 부분만 자세히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다음에 동경항구관에 갔는데 정말 인상 깊 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제가 서있던 곳이 사실은 바다였다는 것과, 지하엔 가스 와 수로 파이프가 있어 지진이 일어날 경우 자동으로 파이프가 끊어지는 설계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었습니다

63 일본의 자연재해 예방 기술에 매우 놀랐고, 그 기술력에 한 번 더 놀랐습니 다. 그 다음 후지 TV건물 앞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에 가 기념사진을 찍은 후 호 텔로 이동해 제 2일 일정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제3일은 그동안 함께 했던 100 명의 친구 중 50명씩 2팀으로 나뉘어 1팀은 야마나시현, 2팀은 와카야마현으로 이동하는 날이었습니다.2팀에 속한 저는 저를 포함한 50명의 친구들과 함께 와 카야마 현으로 향했습니다. 와카야마현에 가기 전에 소방서에 들려 방재 교육 체험을 했습니다. 지진, 화재대피, 화재진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지진체험 이었습니다. 환태평양 조산대 위에 위치한 일본 열도는 연간 평균 1000회 이상 지진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때문에 지진에 항상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지진 대 비 교육 시스템이 매우 철저했습니다. 각 진도 별로 지진을 간접 체험했지만 진 짜 지진처럼 매우 실감났고, 지진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재 체험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일본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3시경 오사카에 도착해 바로 다 음 일정지인 와카야마 성을 향해 갔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과거 무사들이 지냈던 와카야마 성을 직접 보게 되어 너무 기뻤습니다. 전 국시대무기와 중장갑들이 전시되어있어서 과거 사무라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에서 나온 후 주변을 한 바퀴 돌은 후 도쿄 인 이라는 일정이 끝날 때 까지 우리가 머물 호텔로 들어가 단별회의를 하고 다 음날 있는 홈스테이 일정을 기대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 날인 제 4일과 5일은 이번 연수에서 가장 특별한 시간인 홈스테이와 학교 방문 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처음으로 해보는 외국인집에서의 생활은 두려우면서도 가장 기대 되었습니다. 의사소통이 안 돼 불편한 점이 있겠지만 일본과 한국 양 국의 문화를 서로에게 알리고 배우기에 홈스테이처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생각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머문 곳은 후쿠오카상의 집이었는데 작은 3층집 구조였 습니다. 집 구조 중 다른 점은 화장실과 욕실이 분이되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후쿠오카상과 초등학교 운동회와 쇼핑을 다닌 후 스시를 포장해 후쿠오카 상의 남동생 집에 방문해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스시, 전골, 샤브샤브를 먹었는 데, 일본인들은 식초가 들어간 음식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고 손님에게 극진 한 대접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홈스테이를 마치고 다음날 학교 방문을 했습니다. 제가 들어간 반은 2-G클래스인데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는 못 했습니다. 제 서툰 일어 실력을 비웃는듯했고 저와 제 파트너에게 무관심한 태 도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친절한 모습을 보이고 저에게

64 도움을 주며 한국에 대하 물어보기도 해 매우 놀라기도 했습니다. 보기에는 무 섭게 생기고 불친절해 보이는 일본 학생이었지만 한국 친구처럼 저에게 너무 잘 해주고 지금까지 이메일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너무나 시간이 빨리 흘러 제 5일 일정도 알차게 마치고 다음날. 마지막 연수일인 제 6일이 시작되었을 때 내일이 면 우리의 일정이 끝나는구나 라는 생각에 마지막 일정은 최선을 다해 더욱더 알차게 보내자 생각했습니다. 칠기 전통 산업회관에서 칠기에 직접 문양을 새겨 넣은 후 칠기 마을을 한번 돌아본 후 잼을 만들러 갔습니다. 가끔 어머니께서 잼을 만드시긴 하지만 제가 직접 만들어 본적은 없기 때문에 매우 흥미로운 시 간이 되었습니다. 소중한 제6일이 끝나고 마지막 날이 와 우리 일행은 비가 내 리는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귀국하기 위해 짐을 챙겨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습니 다. 간사이 공항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으로 향하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고, 이 번 연수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빙산 의 일각일 뿐, 더욱 더 숨겨진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항상 싸웠던 것처럼 한국과 일본도 과거부터 마찰이 심해 지금까지 사이가 좋은 국가가 되지못하고 있어 일본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알고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을 하고 타 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키는 선진국문화를 소유한 훌륭한 국가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한 국과 일본 양국이 더욱더 교류를 많이 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좋 게 풀려 우호도가 높아져 동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끝으로 이번 연수가 아무 사 고 없이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함께한 인솔선생님께 감사하 단 말과 함께한 친구들에게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65 6 단

66 나의 첫 일본 방문기 한 예 슬 금 옥 여 자 고 등 학 교 담임선생님께서 방일 연수단에 뽑혔다고 이야기를 전해주실 때만해도 내가 일본에 간다는 것을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출국할 날짜가 다가와서야 일본어 로 말할 줄 전혀 모르는 것을 걱정했고 떠나기 전날에서야 부랴부랴 짐을 챙겼 다. 빠진 물건이 없는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수속을 밟고 공항을 나서는데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건물의 간판, 길거리의 표지판에 써있는 글씨가 모두 일본어인 것을 보자 가슴이 더욱 더 뛰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와 반대로 왼쪽차선에 서있는 차들, 왼쪽으로 타야하는 버스 출입문에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내가 탄 3호차에는 23명의 여자 아이들 이 함께 타고 있었다. 아직은 서로 어색해서인지 조용하던 차안. 선생님들의 주 도로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4호차에 한예슬이란 아이가 한 명 더 있어 서 아침부터 우리를 A,B로 구분했던 터라 아~ 제가 한예슬 A입니다! 만나서 반 갑고 잘 지내보자~ 라고 인사를 했다. 평소 남들에게 친해지자고 먼저 손을 내 밀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번만은 그러지 않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것이 연수 내내 도움이 된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우리가 향한 곳은 외무성이었다. 일 본의 중심 도쿄에서도 가장 중심인 가쓰미가세키에 위치한 외무성에 도착한 100 명. 일반인은 들어오지도 못한다는 외무성에서 아시아 지역 조정관님의 말씀을 들었다. 한국말을 아주 잘 하시던 조정관님께서 말하셨던 것의 요점은 이제는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들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 세대가 그 다리 역할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연설 중에 나에게 가장 많 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던 말은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마음으론 먼 나라 라 는 말이었다. 그리 넓지 않은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일본과 한국이지만 그 거 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은 마음의 골짜기가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 지만 그것이 두 나라간의 현실이며, 우리가 방일 연수단이 되어 이 일본까지 오 게 된 이유이고, 결국 우리가 해결해야할 문제임을 깨달았다. 과거에 있었던 일

67 들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바 라볼 순 있다. 또 두 나라간의 문화차이가 하루 만에 좁혀질 순 없다. 그러나 그 상대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언젠간 지리적으로도, 마음으로도 가 까운 나라 라고 서로를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정관님의 말씀이 끝나고 우리는 저녁도 먹고 구경도 할 겸 도쿄타워로 향했 다. 나는 도쿄타워가 방송 수신용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걸 들으 니 서울에 남산타워도 방송 수신용인가..싶기도 하고. 아무튼 사진으로 볼 때와 달리 너무 큰 규모에 깜짝 놀랐다. 타워 아래서 사진을 찍으려니 타워 꼭대기까 지 사진에 나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우리가 잠을 잘 쉐라톤 미야코 호텔에 도착했다. 정말 이번 연수가 아니면 내가 언제 또 이런 호텔을 와 보나 싶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호텔이었다. 호텔에 묵으면서 내가 정말 귀빈 대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만나볼 수 있었던 날이었다. 오전엔 아사쿠사를 갔다. 아사쿠사에는 절과 신사, 그리고 기념품 시장이 있었 다. 아사쿠사는 바다에서 관세음보살상을 건져 올린 어부와, 그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었다. 어부도 모신다는 말이 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수많은 신을 모 시는 일본이라 그러려니 했다. 심지어 지나가는 동네마다 신사가 꼭 하나씩은 있었으니 말이다. 아사쿠사를 구경하고 어제 갔던 가쓰미가세키에서 환영중식회 가 있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우리가 간 곳은 도쿄 미나토관 그러니까 도쿄 항구관이었다. 나는 도쿄가 항구도시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본 전국지도에서 도쿄를 볼 때도 분명히 도쿄가 바다에 접해 있다는 것을 봤으면서도 항구가 있 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넓은 도쿄항을 보면서 어찌나 미안하던 지.. 그런데 도쿄항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먼저는 관동대지진으로 초토화가 되었던 도쿄를 복구하기 위해 항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두 번째로는 태평양전쟁으로 다시 또 폐허가 되었던 도쿄를 복구하기 위해 그 전까지 있던 항구보다 훨씬 큰 항구가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도쿄에 접해있던 바다의 수심은 약 2m여서 항구를 만들면서 바닥의 흙을 파냈고, 그때 나온 흙으로 다른 곳들을 매워서 매립지를 만들었다. 그래서 100년 전의 도쿄와 지금의 도쿄를 지도로 비교해보면 엄청난 차이를 알 수 있다. 엄청난 인구 집중 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던 도쿄에서 매립지는 주거공간으로써의 역할을 담당하

68 고 있었다. 오다이바라는 이 매립지역은 7번째 부도심으로, 미래형도시로 계획 하여 지진에 대비한 라이프라인이 모두 땅속에 구축되어 있었다. 전기, 쓰레기, 가스, 수도 등 모든 것들이 땅속 파이프로 연결되어 공급되고 다시 빠져나가는 것이다. 지진이 워낙 많은 곳이라 지진에 대비한 어느 정도의 설계는 예상했었 지만 다이바의 라이프라인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여러 번의 위기가 만들어낸 하나의 걸작임에 틀림없다. 과학 미래관은 우리나라 과학관과는 달리 체험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부스가 참 많았다. 직접 움직여도 보고 만져도 보면서 돌아다 니니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돌아 다녔다. 도쿄에 있던 이틀 동안 가장 많이 느 낀 것은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공원이 참 많고, 거리가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서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도쿄 의 야경이 녹색 빛을 띤 이유가 바로 그 많은 공원과 녹지 때문이라는 걸 여실 히 느낄 수 있었다. 또 길거리가 너무 깨끗해서 쓰레기를 던져 버리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이었다면 보통은 바닥에 침을 뱉어도 그러려니 했을 텐데 말이다. 셋쨋날 오전엔 방재체험을 했다. 소화기 사용하는 법, 지진이 발생했을 때 대피하는 법, 화재시 연기에 대처하는 법 이렇게 3가지를 훈련했다. 한국에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인데 우리나라에선 이렇게 구체적으로 훈련을 받아 본 적도 없었고 이런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했다. 방 재훈련같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도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에게 시행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재체험이 끝나고 우리는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카이지를 타고 야마나시현으로 넘어왔다. 한국에서부터 걱정 반 기대 반이 었던 홈스테이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오자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나랑 함께 홈 스테이를 가는 혜주도 일본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었고 심지어 나는 학교에서 중 국어를 배우고 있고 우리에겐 전자사전도 아닌 그냥 일반 사전 한 권이 전부였 다. 나와 혜주가 가게 된 집의 가족은 엄마, 아빠, 할머니, 딸, 고양이 이렇게 이었다. 실제로 얼굴을 뵌 건 엄마인 아야코상, 딸인 유즈키짱, 고양이 깅가였 다. 아빠는 출장을 가신 것 같았고, 할머니는 다음날 아침인사로 한 1분간 만난 게 전부였다. 현청에서 아야코상을 만나서 차를 타고 움직이는 20분간 서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한마디를 하고 다음 말로 이어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혜 주도 나도 말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었다. 차가 멈추고 우리가 내린 곳은 집이 아니었다. 그곳은 유즈키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였다. 유즈키는 방과 후

69 활동으로 오케스트라에서 트럼본을 불고 있었다. 아야코상은 우리에게 온천을 가도 괜찮냐고 물으셨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들어서 서로 5분이 넘게 씨름을 했 다. 나와 혜주도 초면이었는데 아야코상과 유즈키까지 함께 온천에 가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하나의 계기 가 아니었나 싶다. 노천온천에 앉아서 온천에 데려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하 고 싶었는데 도통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서 결국 집에 오는 길에 가져갔던 일본어 책을 뒤지고 뒤져서 약 한 시간이 넘게 찾아보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저녁밥으로 메밀소바에 일본식 김밥을 먹었다. 특별 한 음식은 아니지만 평범한 일본 가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같이 wii 게임을 했다. 캐릭터를 만들고 균형 맞추는 게임 을 하면서 서로 점수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테이블에 아야코상의 노트북이 있 기에 내 미니홈피에 들어가서 가족들의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 다음날에는 야쯔 가타케라는 곳을 갔다. 야쯔가타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산이었다. 꽤 높은 곳 이어서 날씨도 선선했고 쭉쭉 뻗은 나무들이 서로를 감싸 만들어놓은 길을 지나 가며 계속해서 사진만 찍어댔다. 야마네라고 하는 쥐와 다람쥐의 사이쯤 될 것 같이 생긴 동물에 관한 자료들을 걸어놓은 곳을 구경하고 아래쪽으로 내려와 산 속의 여러동,식물에 대해 전시해 놓을 곳도 쭉 둘러보았다. 아야코상이 미리 신 청해 놓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야쯔가타케 안의 여러 식물들을 다시 보았 다. 식물 줄기로 잡아당기기 싸움도 해보고 솔잎을 뜯어서 향도 맡아보고 풀피 리도 불어보고 꽃의 모양이 칼모양과 비슷해 칼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물에 대해 서도 들었다. 일본어로 알아들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대충 가이드 언니가 하는 행동과 표정을 보고 눈치로 알아들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변기모양의 아이스크 림을 하나씩 먹으면서 왔다. 모양은 좀 꺼림칙했지만 맛은 끝내줬다. 점심으로 는 회전초밥식당에 가서 스시도 먹었다. 우리나라의 회전초밥집과는 어딘가 같 으면서도 다른 분위기였다. 5접시를 먹을 때마다 벽 쪽에 붙은 모니터에 귀여운 캐릭터들이 게임을 한판씩 해서 내가 선택한 캐릭터가 이기면 동그란 구슬이 하 나씩 굴러 떨어졌다. 그 속에는 핸드폰 고리가 있기도 하고 나는 이상한 종이가 있기에 꽝인 줄 알았더니 나갈 때 카운터에 그 종이를 보여줬더니 목욕세트라고 무언가를 줬다. 밥도 먹고 선물도 받고 참 재미있는 곳이었다. 집에 잠시 들러 서 메일주소가 적힌 종이와 짧은 편지를 써서 드리곤 우리에게도 아쉬운 이별이 찾아왔다. 딱 하루정도 같이 있던 것뿐인데 그새 정이 들어서 손을 흔들며 인사

70 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미 울고 있는 친구 홈스테이 가족들도 있었 는데, 나는 고맙고 기쁜 마음만 보여주고 싶어서 꾹! 참고 열심히 인사했다. 한 국에 돌아오면 꼭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더니 일본에 오면 또 놀러오라고 하시던 아야코상과 수줍음이 많아서 항상 뒤쪽으로 가있던 유즈키가 지금도 너무 보고 싶다. 내가 일본어를 좀 더 잘했다면 같이 있던 그 시간들이 좀 더 재밌었을 텐 데 그게 너무 아쉽다. 나와 혜주를 손님보단 가족같이 편하게 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고, 꼭 계속 연락해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 굉장히 걱정했던 홈스테 이인데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어서 다행이고 나중에라도 기회가 있다면 좀 더 길 게 홈스테이를 해보고 싶다. 그러면 지금과는 또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다. 다섯쨋날은 홈스테이 다음으로 기대했던 학교방문을 했다. 홈스테이는 일본 의 가정을 만나보는 거지만 학교는 말 그대로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을 만나 는 일이어서 그런지 좀 더 긴장이 되었던 건 사실이다. 이말 저말 하고 싶은 마 음은 굴뚝같았지만 일본어를 못하는 처지라 반에 계시던 통역선생님께 의존해서 몇 마디 한 게 고작이었다. 나는 1조여서 들어갔던 수업은 서예와 체육이었다. 서예수업은 초등학교 미술시간 이후론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일본아이들은 고등학교에서도 서예를 하고 있었다. 자기가 쓰고 싶은 글자를 써보라는 말에 그냥 한글을 적었다. 예상외로 그 반 아이들이 한글에 관심을 보였다. 안녕하 세요 라고 쓴 글씨를 가져가서는 똑같이 적어보고 맘에 들었는지 작품을 낼 때 도 그 글씨를 칠판에 걸어 두었다. 일본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한글로 적어줄 수 있냐는 말에 한글로 이름도 적어주었다. 나는 고마워ありがとラ 라고 써 서 걸어 놓았다. 칠판에 걸린 작품들 중에 하나씩 골라서 오라는 말에 안녕하 세요 라고 써있는걸 하나 집어 왔다. 그러자 엄청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가 나 에게 오더니 그 작품이 자기가 쓴 것이라고 했다. 이름은 미오 다. 그래서 내가 준비해간 선물 중에 머플러와 내 메일이 적힌 카드도 주고 미오도 자신의 메일주소를 알려주었다. 수업이 늦게 끝나서 같이 사진 찍을 시간도 없이 다음 수업으로 이동했다. 다음 수업은 체육이었는데 특이하게 운동장에서 골프를 쳤 다. 배드민턴공같이 생긴 공을 골프 클럽으로 쳐서 그물에 넣는 게임이었는데 학교에서 골프를 약간 배운 적은 있지만 역시나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그 운동을 하기 위해서 상황에 맞게 개량시키는 능력은 정말 최고인 것 같았다. 누 가 골프공을 배드민턴공처럼 만들어서 칠 생각을 한 건지 정말 대단하다. 수업 이 다 끝나고 1조를 데리고 다녀준 마이에게도 선물로 가져간 책갈피를 주고 메

71 일주소를 주고받았다. 처음엔 몰랐는데 교류회 때 보니 마이는 그 학교 부회장 이었다. 교류회에서 그 학교 클럽활동 중 취주악부, 검도부, 소림사무술 등 여 러 가지를 보았다. 일본 고등학교와 한국의 고등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클럽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클럽활동은 1년에 8시간 그것도 거의 형식 적으로 대충 시간 때우는 식의 활동밖엔 되지 않지만 일본은 달랐다. 동아리처 럼 방과 후에도 모여서 연습하고 활동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도 우리학교에 취주악부가 있었다면 당장 했을 텐데 말이다. 한국에 돌아오니 미오에게 메일이 와 있어서 너무 기뻤다. 미오가 일본어로 메일을 보내서 읽을 때마다 단어를 찾 아보는 수고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일본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여섯쨋날은 후지산에 올라갔다. 5부 능선까지 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높이가 높아질수록 나무에 나뭇잎이 좁아지고 나무도 옆으로 퍼지기보단 위로 곧게 자 라는 걸 볼 수 있었다. 3776m의 후지산은 매우 높아서 버스로 올라가다가 밖을 봤더니 지금 우리가 있는 곳 아래쪽 산에 구름이 깔려 있었다. 5부 능선에 내려 서 그 장엄한 후지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세 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 둘이 후지산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사람과 후지산을 두 번 오르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정상까지 한번 가봐야겠다는 목 표가 하나 늘어났다. 5부 능선에서 내려와서 후지산 안에 있다는 5개의 호수를 따라 달리다가 블루베리잼을 만들러 갔다. 엄마가 집에서 만드는걸 보기만 했지 직접 만들어 본 적은 없었는데 의외로 간단했다. 간단한데 비해 맛도 좋았다. 잼을 한 병씩 들고서는 일본식 초가집이 모여 있는 마을로 갔다. 거기서 츠루시 비나라는 작은 인형도 만들어보고 우리나라의 초가집과는 전혀 다른 일본식 초 가집들도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평균기온 3도라는 얼음동굴을 갔다. 정말 동굴 속에 얼음이 덩어리로 있었다. 가장 낮은 곳의 높이가 90cm밖에 되지 않는 다는 동굴을 지나면서 키가 177cm나 되는 민지는 몸을 폴더처럼 접어야 한다고 아이 들과 웃으면서 동굴을 지나왔다. 모두가 일본에서의 마지막 일정임을 알기에 일 부러 아쉬움을 미리 느끼고 싶지 않아서 서로 내색하지 않았다. 마지막 전체회 의에서 다른 아이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정말 다 같은 것을 보고 먹고, 같은 곳 을 다녔지만 느끼는 건 하나같이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남자아이들에게 지 기 싫어서 나도 나가서 발표를 했는데 도대체 앞에 나가서 뭐라고 한건지 정신 이 하도 없어서 자리에 들어와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에버그린호텔에 있

72 는 동안 호텔 안에 있는 목욕탕을 애용했다. 여자아이들 중 한 열 명 정도가 매 일 고정 멤버로 목욕을 하러 나왔었다. 역시 목욕을 하고 나면 금방금방 친해진 다. 전체회의가 끝나고 여자아이들은 롤링페이퍼를 썼다. 6박 7일 동안 정말 많 이 친해졌었는데 또 다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다. 대부분 서로 집 이 너무 멀어서 다시 만나자고 해도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약 속만을 할 뿐이었다. 롤링페이퍼에 아이들에게 잘 지내라는 작별 인사를 썼지만 우리는 한국에 돌아온 다음날 바로 클럽을 만들었다. 소라가 주도하여 클럽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연수 7일 동안 찍었던 사진들을 올리고 서로 연락처도 써놓 고 해서 이번 기회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을 계속 이어 나가려고한다. 하나같이 다들 너무 재미있고 착하고 귀여웠던 23명의 여자아이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전국의 고등학생 중 몇 안 되는 숫자에 뽑혀서 이런 좋은 경험을 하게 되어 너무 재밌었고, 선생님들과 통역 선생님들 그리고 일본에 있을 때 도움을 주셨 던 분들 모두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이런 기회를 주신 국 립국제교육원에도 감사한다. 일본에 있는 동안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같이 공유 할 것이다. 그래서 초반에 말했던 것처럼 내가 다시 일본을 찾을 때는 예전보다 더 가까운 일본에 방문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73 일본 연수 후 구 지 선 이 화 여 고 기대감에 가득 차 시작된 일본 연수는 나에게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일 본에 처음 발을 내딛고, 도쿄에 도착하기까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참 선명한 도시다. 라는 것이었다. 깨끗한 길과 여러 가지 도시 관리가 그 선명함의 근본 이 되었던 것 같다. 또한 철저한 계획 하에 운영된 도시, 도쿄를 보고 왜 일본 이 선진국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외무성에서 들은 지리적으로는 가깝고, 마음으로는 먼 나라 라는 말은 아직까지도 입에 맴돌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 말은 현재 한일관계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하게 남아있는 반일감정을 생각나게 하는 표현이었다. 우리에게 과거와 역사 또한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넓고, 크게 나아갈 수 있는 미래 를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당당하게 직면하고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준만큼 우리도 이제는 과거를 받아들이고 더 큰 미래를 위해 한 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후 나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삼고 일 본 연수를 임하게 되었다. 일본 연수 프로그램 중 아사쿠사와 같은 일본의 전통 체험도 좋았지만 역시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것은 미래도시 오다이바였다. 특히 과학적으로 철저하 게 계획되고 구성된 임해 부도심 오다이바는 정말 충격이었다. 우리나라도 자연 을 과학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시설물이 있지만 이정도 규모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 인공적인 땅은 여러 가지 비판을 수용하고, 많은 시간과 사 람들의 노력이 묻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일에서는 반드시 반대와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오다이바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든 생각은 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느껴 졌고, 반대에 부딪혀서 계획이 무산되고는 하는 우리나라에서 정말 본받아야할 점이라고 생각되었다. 일본 연수에 임하는 내내 느꼈던 것은 도쿄라는 도시는 정말 고가도로가 많 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로에 차가 많이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신칸센, 특급

74 열차, 전차 등 수많은 대중교통이 있기에 볼 수 있는 도시 풍경이었다. 통역 선 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도쿄는 자가용이 있는 것이 불편한 도시라는 말씀이었 는데, 그 또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나라 서울을 보면 대중교통 활성화 를 위해 버스 중앙 차선을 만들고, 지하철도 개선하고 있지만 교통체증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나라의 정책도 정책이지만 국민들의 의식 또한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된다.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점들은 배워야하고 수용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연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홈스테이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일본 가족들이 내게 보여준 친절과 배려, 호의를 잊을 수 가 없다. 아니 평생을 가도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홈스테이를 하려고 일본 가 정을 방문했을 때, 그 가족들은 미리 받은 나의 정보를 보고 사전에 조사도 하 고 많은 준비를 해주셨다. 유카타도 준비해주시고, 고토라는 악기도 연주해주시 고, 차도도 배우게 해주셨다. 이러한 대접을 받고 일본의 전통을 배우면서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또한 자신들도 자주 해보지 않은 불꽃놀이를 준비해주셔서 같이 웃었던 기억은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리고 홀로 일본에 와서 어색해할 나를 위해 인터넷을 통해 내가 다니는 학교라든지 한국 드라마를 보여주시는 배려도 감동이었다. 만약 다른 외국인이 우리 집에 온다면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게 잘해주셔서 너무 행복했다. 내 주변에는 일본에 대한 악감정을 가진 사람도 있고, 민족성에 대해 나쁘게 말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우를 받고 온 내가, 또 그들이 이러한 가 정을 알게 되어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홈스테이 일박을 하고 온 후, 친구 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웃음과 헤어짐의 아쉬움, 눈물이 있었다. 그리고 한국 에 돌아와 벌써 이메일도 주고받았다. 이러한 교류는 내게 유익하고 평생 마음 속에 남을 것이다. 일본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앞서 말한 홈스 테이라고 말한다면, 그에 버금가는 체험은 방재교육센터였다고 생각한다. 방재 교육체험을 통해서 지진이라는 재해가 일본인들의 생활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영 향을 주는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나도 학교에서 지진 대피 훈련을 한 적이 있 다. 하지만 그 때 학생들은 지진이라는 큰 재난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그 위 험성을 크게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진지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일 본에는 이러한 전문적인 교육 센터뿐만 아니라 방석과 같은 사소한 생활 용품에 도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개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지진이 많은 일

75 본의 실정을 눈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에 관심이 많은 나는 후지산과 얼음 동굴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 다. 후지산을 비롯한 화산 지형을 기반으로 사는 사람들의 밑바탕을 알 수 있었 고, 또한 왜 일본 고교생들이 미술시간에 후지산을 그리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 하지 않는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문화는 역시 그들이 사는 환 경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고 후지산에서 경험 했던 자연이 만든 장관은 더욱 크고 넓게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내게 주었다. 후지산 오합목을 향해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침엽수가 많아지고, 화산에서 볼 수 있는 돌과,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생긴 호수와 얼음 동굴을 보며 교과서에서 나 볼 수 있었던 것을 몸으로 실감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또한 내 발밑의 구름을 본다는 것은 이 연수를 참가한 모든 친구들의 마음에서 떠날 수 없는 기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얼음 동굴은 정말 신기한 체험이었다. 계단 하나 차이로 느껴지는 온도차와 안경에 서린 김을 보면서 자연이 만든 신비로움 이 끝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화산이 폭발할 때 커다란 나무를 용암이 감싼 후 그 나무가 썩어 없어지고 나면 구멍이 된다는 사실을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는데, 그 통로를 내가 지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마지막 밤 미팅에서 나누었던 친구들의 생각 과, 단장 선생님의 말씀에 관한 것이다. 먼저 친구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으면서 똑같은 경험을 해도 저렇게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또한 친구들의 깊은 생각과, 이 연수에 목적을 생각하는 것과 얻어가는 것을 보고, 고교생을 위한 이 연수가 왜 계속 이어져야 하고, 얼마나 유익한 기회였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 연수를 임하는 내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연수가 끝나고도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클럽까지 만드는 친구들을 보며, 그렇지 못한 내 가 느꼈던 것 또한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 러한 어른스러운 면도 있지만 어린 점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단장 선생님에 말씀에서였다. 연수 내내 엄격한 모습을 보였던 선생님께서 일본이라 는 나라의 바탕과 사상, 그리고 21세기의 일본에 대해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엄 격했던 이유를 말씀해주시는 것을 보고, 아직도 우리가 배워야할 것이 많고, 생 각의 깊이도 더욱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정감 있고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우리 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했던 추억과 교류가 오래 가기를 바란다

76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이 현 진 자 양 고 등 학 교 국립국제교육원에서 주최한 2009 고등학생 방일 연수단원으로 뽑혀서 일주일 간 일본에 연수를 받으러 가게 되었다. 일본행 비행기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 일본사람 말고도 다양 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여러 나라 사람들을 보며 우리 사회가 다양한 사람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세계화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처음 일정인 외무성 방문. 외무성이란 어떤 곳일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 약간의 긴장감이 섞인 채 외무성을 방문했다. 아시아 지역 조정관님께서 나오셔서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 조정관님께서 우리에게 친숙한 꽃보다 남 자 이야기를 꺼내셨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 서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이 먼저 만들었 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 를 우리나라 입맛에 맞게 변형하지 않았다면 큰 인기 를 끌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꽃보다 남자 드라마로 한국과 일본 모두 인기를 끈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두 나라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하 지만 드라마를 우리의 입맛에 맞게 변형한 것을 보면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나라는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존재하므로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며 상대편의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의응답시간에 어떤 학생이 조정관님께 한일 학생 교류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질문을 하자 한국과 일본은 지형적으로는 가깝지만 과거에 있었던 좋지 않은 역사 때문에 마음의 거리는 멀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좀 더 가깝게 하 기 위해 이 교류를 실시했다고 하셨다. 두 번째 날 한일문화교류기금에서 초청한 환영중식회에 참석했다. 한일문화교류기금 이사장님께서 한일문화교류기금은 상대국에 대한 이해를 높

77 이며 교류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하 시면서 일본에 대해 많이 배우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고 동경 항구관으로 떠났다. 동경 항구관에서 놀란 점이 있는데 한 가지는 매 립한 땅이 지진이 나면 위험하기 때문에 땅 아래 콘 크리트에 라이프라인을 두어 전기와 가스를 저장해 두었다는 점이다.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일에 대해 철 저히 준비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가지는 땅 속에 쓰레기를 소각하 는 시설이 있어서 그 곳에 쓰레기를 넣으면 발생하 는 열로 냉 난방을 한다는 점이다. 또, 물을 재활용 하여 화장실 변기 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 점도 놀 라웠다. 이 말들을 듣고서야 이곳이 미래형도시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모 든 것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을 보니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행동이 떠올 랐다. 나는 더 이상 못쓰겠다고 생각한 물건은 물론 재사용 할 수 있는 것들도 아무렇게나 버렸었다. 이제부터는 이곳을 떠올리면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사 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동경 항구관은 나에게 올바른 인식을 심어 준 의미 있 는 장소로 기억 될 것이다. 동경 항구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일본과 학미래관에서는 우리나라 과학관에서 경험하지 못했 던 새로운 것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다. 말하는 로봇과 우주선 내부를 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모 형을 보며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 었던 점이 좋았다. 지금까지 배운 과학 지식이 나에 게 큰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오늘의 체험으로 그 재산이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날의 일정은 일본 가정에서의 1박 2일 홈스 테이가 있었는데 예지라는 친구와 같이 하게 되었 다. 홈스테이 가족으로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는 데 한 분은 호스트이시고 다른 한 분은 친구 분이셨

78 다. 아주머니께서는 아침밥을 먹을 때 우리를 위해 숟가락을 꺼내 주셨다.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은 원래 숟가락을 잘 쓰지 않는다. 또 다른 점은 앉을 때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이었다. 나는 원래 편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는 것이 습관 이 되어 있었는데 그것이 일본에서는 예의 없는 행동이여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일본으로 가기 전에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일본 의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가 아주머니께 기모노가 있냐고 여쭈어봤더니 집에 있던 기모노를 꺼내시면서 흔쾌히 입어보라고 하셨 다. 완벽하게 다 갖춰서 입진 않고 겉에만 걸쳐 보 았는데 일본에서 입으니 정말 일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다보면 기모노를 입고 외출하는 사람들이 많 았는데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한복을 자연스럽게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나서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 다. 네 번째 날 이번 연수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 었던 일정인 오오츠키시립단기대학부속고등학교에 방문하였다. 첫 번째 수업은 영어였는데 일본 사람 들은 영어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그 수업이 많이 기대가 되었다. 영어 시간에 자기소개 하는 활동과 짝과 영어로 대화하는 활동을 하였다. 내가 만든 명 함도 주고 선물도 주면서 일본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두 번째 수업은 음악이었는데 비틀즈의 let it be 라는 노래 를 다 같이 배우고 일본학생들이 따로 우리나라의 곡 고향의 봄 을 연습한 것 을 들려주었다. 발음도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곡을 연습하여 불러 주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감동을 받았다. 우리나라의 곡이 일본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래가 일본 학생들에게 소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모든 수업을 마치고 체육관에서 서로의 특기 발표 시간이 있었다. 먼저 일본

79 학생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었는데 정말 공연할 때 듣던 오케스트라와 별반 다른 점이 없었다. 연주 하 는 내내 옆 친구가 불러도 모를 정도로 푹 빠져서 공연을 보았다. 그 뒤 일본 학생들이 검도를 보여주 었는데 서로 아프게 목도로 쳐서 한국 학생들은 안 타까움과 걱정이 섞인 소리를 질렀다. 일본 학생의 마지막 공연은 소림무술 이었는데 학생회장과 선생 님께서 공연을 하셨다. 과격한 소림무술을 보여줘서 순간순간 깜짝 놀라는 부분 도 있었다. 오케스트라, 검도, 소림무술 등은 모두 방과 후 활동이다. 우리나라의 방과 후 활동은 거의 학습을 보충하기 위한 활동들인데 전문적으로 한 가지 종목을 연습할 수 있는 일본의 방과 후 활동을 보며 우리나라도 학생들의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방과 후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 학생의 특기 발표 공연을 마치고 드디어 한 국 학생의 특기 발표를 하였다. 첫 번째 공연은 국 립국악고 하소라 양의 가야금 연주였다. 텔레비전에 서나 들어봤던 가야금 연주를 직접 내 눈앞에서 들 을 수 있다니 정말 감회가 새로웠다. 그 다음 공연 은 충북예술고등학교의 전보람 양의 살풀이 춤이었 다. 보람이의 살풀이춤은 한국무용의 아름다움을 실 컷 보여주는 대단한 공연이었다. 마지막 충남예술고등학교의 유지은 양의 병창 공연이 있었다. 병창은 가야금 연주와 노래를 같이 하는 것이다. 곱게 한복을 입고 나와서 실수를 한 번도 하지 않고 공연한 지은이. 능숙하게 공연을 잘 했 기 때문에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 친구의 공연을 보니 이미 자기가 자신 있는 분야의 일인자가 되어있는 듯 했다. 이런 공연을 보려면 비싼 돈을 내고 가서 봐야 하고 그 공연도 우리와 친 숙하지 않아서 잘 보지 않게 되는데 일본에 와서 친구들의 멋진 공연을 보니 대 한민국을 대표하여 공연을 한 친구들이 자랑스러웠다. 이번 학교 방문을 계기로 일본 친구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고 이메일도 교환 하면서 서로 연락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었던 점이 뜻 깊었고 일본과 한국 학생 의 특기 발표를 볼 수 있었던 점 또한 좋았다

80 나는 원래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과거사로 인한 감정인데 우리의 문학작품에서조차 더 이상 가까워질 수 없는 일 본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들이 있고 그런 작품들을 많이 접해본 우리나라 국민으 로서는 일본을 그다지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친 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예전 생각은 이번 연수에서 일본 통역관님들께서 한 국 학생들을 딸과 아들 같이 챙겨주시면서 통역과 설명을 열심히 해주신 것, 외 무성에서 아시아 지역 조정관님께서 한국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 홈스테이 때 손녀처럼 친절하게 대해주신 것, 오오츠키시립단기대학부 속고등학교에서 특기 발표할 때 한국 학생들의 공연에서 감동을 받았다며 어떤 학생이 통역관님께 전해 달라고 했던 것 등 이런 모습을 보고 일본 사람들은 친 절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바뀌게 되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마음의 거리를 조금씩 가깝게 함으로써 두 나라 모두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며 지원군이 될 수 있는 관계 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이번 연수를 통해 일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내 주변 친구들과 일본 친구들과의 이메일 교류를 도와주면서 그 친구들도 일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생각이다. 연수를 마치고 와서 일본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지는 못했지만 일본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다. 일본학생과의 이메일을 통한 교류와 우리 학교에서 11월에 있 을 일본학생 방문에 도우미로 지원하여 학교 소개를 해주고 같이 홈스테이도 하 여 일본에 대해 더 알아볼 생각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 대해 조금씩 인 식이 바뀌는 나를 보면서 이번 연수에서 소중한 것을 배워 간다는 생각을 한다. 연수에서 많은 일본사람들을 만난 경험을 간직하여 훗날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외교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81 지금의 일본 과 지금의 한국 을 느끼다 이 예 지 태 릉 고 등 학 교 지금의 일본 과 지금의 한국 을 모두 느낄 수 있었던 6박 7일간의 연 수가 모두 끝이 났다.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에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 중 일본 을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라는 것이 있다. 농담이라 하기에는 정말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세계 제 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본을 깔보 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의 좋지 못한 역사 때문일까, 현재의 일본이 대 단한 나라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이번 연수 이전 에는 일본이 제 2의 경제 대국이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연수 를 통해 일본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내가 정말, 일본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본을 무시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소감문 발표를 할 때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나에게 가장 지금의 일본 을 느끼게 해준 것은 오다이바, 도쿄임해부도심이었다. 도쿄임해부도심은 도쿄 만에 위치한 인공 섬으로 크게 4개의 지구로 구분된다고 한다. 상업과 주택, 쇼 핑을 중심으로 하는 다이바, 일본 과학미래관이 위치하는 아오미, 국제 컨벤션 과 전시회가 다수 위치한 아리아케미나미, 주택과 스포츠, 학교를 중심으로 한 아리아케기타가 있다. 오다이바 자체의 미래력과 4개의 지구가 조화를 이뤄 오 다이바는 도쿄의 필수 관광 코스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오다이바의 특징 중 하나는 미래형 도시라는 점이다. 그 때문에 도시 지하에 life line이 매장되어 있어 지진 같은 재해가 발생했을 시에도 가스와 전기등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도시 모형을 통해 life line을 볼 수 있었는데, 시민의 안전 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임에도 어찌 보면 실청하기 어려운데 계획 도시여서 일까 제대로 잘 정비되어 있어서 놀라웠다. 관장님께서는 창밖으 로 보이는 동경항에 대해 설명해 주시면서 동경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이 세계 20위권에 머무는 데에 반해 부산항은 5위에 있다며, 한국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당시에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래도 이곳 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다이바는 내게 충격적인 인상을 남겼다

82 연수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좋았던 것은 오다이바를 관람했던 것이지만, 개 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일정은 홈스테이였다. 1박 2일이라는 정말 짧은 시간이었 음에도 정말 마음이 통하는 한 가족이 됐다고 느껴져서 이별이 너무나 아쉬웠던 것 같다. 사실 처음부터 만남이 즐거웠던 것은 아니었다. 전날 홈스테이 가정의 신상 정보를 처음 받고 나이 많으신 노부부만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걱 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상상했던 홈스테이는 내 또래의 아이가 있는 평범한 일본의 가정집이었는데 노부부 달랑 두 분만 사시는 집은 너무 적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걱정들은 정말 쓸데없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도 처음에는 과묵하신 것 같아 걱정이 됐지만 오히려 정이 많고 농담도 굉장히 잘하셨다. 할머니는 미국인이셨는데,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셔서 밤을 새 서라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나는 일본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영어 사용이 모두에게 편하다 보니 결국 일본 어를 전혀 배우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일본어를 조금만 더 잘했었더 라면 오히려 일본어를 더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기회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 이 남는다. 같이 같던 친구가 영어도 일본어도 서툴렀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어야했는데, 그러니까 3개 국어가 사용되었다. 할아버지의 일본어를 할머니가 내게 영어로 통역해 주시면, 나는 다시 친구에게 한국어로 통역해 주 어야했다. 영어를 가르쳤던 경험이 있으셔서 일까, 할머니가 상당히 영어를 쉽 게 써 주셔서 다행히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에 야마나시현에서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는 쉴라, 조이, 안젤라 라는 선생님 세분이 오셔서 스파 게티도 먹고 게임도 했다. 외국인이 느끼는 일본이라던가, 영어권 국가에서 비 영어권 국가로 원어민 교사로 하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됐다. Roberta가 꾸며준 우리 방은 정말 호텔보다 더 좋다고 느껴 질 정도로 아늑했다. 아로마 향기가 나는 소품들을 곳곳에 배치한 배려도 좋았 다. 다음날에는 밀레 전시회에 갔다. 100만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아무튼 밀레의 그림을 직접 봤을 뿐만 아니라 영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좋 은 기회였다. 책자를 받았는데, 한국에 오면서 잃어버리게 되어서 아쉽다. 점심 으로 라면을 먹고 쇼생쿄라는 협곡에 갔다. 차로 올라갔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몇 번이나 멈춰야했을 정도로 상당히 광경이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본사람들이 후지산 다음으로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은 곳이라는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 다. 홈스테이 가족과는 쇼생쿄를 마지막 일정으로 헤어져야 했는데, 정말 현청

83 에 도착할 때 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더니 다 같이 감사의 인사를 하자마자 눈 물이 왈칵 쏟아졌다. 두 분이 베풀어주신 배려와 친절은 정말 잊을 수 없는 것 이었다. 인솔 선생님 말씀처럼 이제 나에게 일본은 그냥 옆 나라 일본이 아니라 타카오상과 Roberta가 사는 일본으로 기억될 것 같다. 6박 7일간의 연수동안 느꼈던 것은 비단 지금의 일본 하나뿐 만은 아니었 다. 모순되게도 일본에 갔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 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같이 연수를 했던 22명의 친구들 덕분이었다. 친구들이 시간 약속을 잘 지켜주 고 인솔 선생님을 잘 따라준 덕분에 일정이 지연되지 않을 수 있었다. 시간을 잘 지키고 인솔 선생님을 잘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단체에서 지켜지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굉장히 질서 있게 지켜져서 모두가 즐겁게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비단 연수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다들 정 신적으로 성숙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래 계획에 대한 것만 봐도 요즘 아이들 은 직업이나 학과 선택을 대세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범위가 한정되는데 같이 이야기한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선택하는 직업의 폭도 넓고 미래 계획도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우가 많았다. 요즘 학생들이 버릇이 없다거나 자기 자신만 생각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는데 오히려 자기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남을 배려할 줄 아는 학생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학생들에 관한 것은 지금의 한국 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이지만 부정적인 느낌을 받은 것도 있다. 버스로 이동하는 도중에 일본의 화폐에 관해 잠깐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일본의 2000엔짜리 지폐 가 실패한 선례가 있음에도 한국이 아무런 보완책 없이 5만원 신권을 내 놓았다 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창피 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친구가 일본의 거리가 깨끗한 이유가 사람들의 사고방식 때문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교육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 할 때도 대충 얼버 무려 말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두 나라간의 상대성은 인정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기 때문에 당연히 더 나은 점이 많겠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를 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오히려 뒤 쳐져 가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점들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다는 점은 역시나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연수가 나 자신이 한 단계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다. 고등학교 생활이 절반을 지나면서, 왠지 모르게 스스로가 우물 안 개구리

84 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는데 이 연수를 통해 우물 밖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연수 자체로도 너무나 느낀 것이 많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 연수를 통해 느낀 것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여 행이 아니라 연수, 라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너무나 즐거웠고 좋은 친구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 뜻 깊은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이번 경험이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해줄 것이다

85 연수, 즐거움 그리고 깨달음 김 정 아 반 포 고 등 학 교 9월 24일, 설레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출발하는 날이 마침 중간고사가 시작하는 날이라서 기분이 더 묘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에 마음이 콩 닥거리기도 했다. 정말 신이 나서 일본으로 가는 내내 한숨도 자지 않았다. 나 리타공항에서 외무성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일본의 모습 하나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창문만 바라봤다. 옛날에는 해외여행을 해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제는 웬만큼 커서 그런지 이것저것 감탄하기도 하고 걷는 것을 제일 싫어했었는 데 그때는 여기저기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싶은데 왜 우리를 계속 버스에만 태 우나 싶었다. 도쿄에 가까워 올수록 건물의 높이도 높아지고 많은 사람들과 빌 딩들이 내가 정말 도쿄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첫날 일정은 외무성 방문 에 도쿄타워 견학이었다. 방일 연수에 참가하기 전만 해도 일본에 대해 관심도 없고 조금 부끄러운 일이지만 외무성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몰랐던 나 에게 외무성을 방문해서 다니가와 지역관님의 말씀도 듣고 대우를 받을 수 있었 던 것으로도 큰 공부였고 값진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첫날이라니 앞으로 남은 날들이 더욱 더 기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최고의 호텔에서 하루 동안 다른 버스라 만날 수 없었던 4팀의 친구들과 한 방이 되어 마치 오래 전부터 알 던 사이 인 것처럼 수다를 떨고 웃음 가득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날에는 꽤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를 전혀 힘들게 하 지 않았다. 특히 오다이바 견학과 저녁을 먹었던 비너스 포트는 그 중 최고였 다. 오다이바는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예술이었다. 비너스 포트 또한 정말 신기 했다. 그렇게 이틀 동안의 도쿄여행을 마치고 야마나시 현으로 이동했는데 도쿄 에서는 보고 듣고 먹는 것이 즐거웠다면 야마나시 현에서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왠지 감성적이고 스스로 심적 변화가 있었던 곳이었다. 도쿄는 서울이나 다른 나라의 도심 같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번화한 곳이었다면 도쿄보다는 시골이었 지만 그래도 tv에서나 보던 주택들도 많고 진짜 일본냄새(?)가 폴폴 나서 좋았 다. 홈스테이 후에 가족들과 헤어지면서 호스트 패밀리도 울고 나도 울었던 걸

86 생각하면 말이 안통해서 내 마음이 잘 전해졌을까 굉장히 걱정했었는데 그건 쓸 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알았다. 언어는 아마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는 단 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나보다. 오오츠키 고등학교 방문은 도착하자마자 건물 만 보고 실망했었지만 잠깐 뿐이었다. 수업을 하면서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서 그런 건 벌써 다 잊고 사진 찍으면서 아는 일본어는 모두 동원해서 한마 디라도 더 해보려고 했다. 떠나기 마지막 날은 밤이 오지 않았으면 싶었을 정도 로 아쉬움이 제일 큰 날이었다. 그러나 그 아쉬움 역시 야마나시 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잊어버린 것 같다. 후지산은 산신령이 나올 듯이 구름이 산에 머 무르고 있었고 공기도 좋고 단풍이 들어 경치는 정말 좋았지만 후지산이 세계적 으로 유명한 산인데 비하여 감동받을 만큼 빼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수학여행 갔을 때 한라산이 진정한 절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이번 여행을 하면 서 일본은 이렇게 좋은데, 깨끗한데 우리나라는 왜... 라고 생각한 적이 있 었다. 그리고 지금도 완전히 그 생각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임미옥 선생님이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 을 때 찌릿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경제적으 로도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情 만은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또한 사 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잘 어울리는 것도 우리나라 사람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먹 을거리도 훨씬 다양하고 한국요리의 색도 다채롭다. 마지막 날 밤, 단장님께서 오늘의 일본을 이룩한 실용정신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정말 가슴에 와 닿았고 진심으로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학교 친구들이 열심히 시험을 치고 있을 때 난 알찬 일본연수를 받았다. 일주일 이었지만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 니 전국에서 모인 친구들과도 정말 친해질 수 있었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6박 7 일이 짧게 느껴질 만큼 약간은 아쉽고 즐거운 여행이었던 만큼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이 같은 또 다른 기회를 향해 개척해 나아가야겠 다

87 2009 한일 중고생 교류 방일 연수를 갔다 와서 양 지 예 인천 부개고등학교 9월 24일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나선 나의 손에는 책가방이 아니라 캐리어 가방이 들려있고 발걸음은 학교가 아닌 인천국 제공항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날이 바로 6박 7일 동안의 한일 중고생 교류 방 일 연수를 시작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몇 달 전부터 공문을 받고 준비하거나, 사전 교육을 받으러 국립국제교육원으 로 갔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었는데 막상 출국하는 당일이 다가오자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빠 차를 타고 공항의 M카운터에 가서 앞으로 함께 지낼 친구들이 모여 있는 곳에 합류했다.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은 선생님들께 가서 출석체크를 하고 체온 을 재는 일. 요새 신종 플루가 한창 유행하고 있어서 각별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았다. 환전도 하고 짐도 부치고 아빠와 작별인사도 하다 보니 어느새 정신없이 비행 기에 타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 옆에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기내식도 먹고 영 화를 보며 잠깐 잠도 자니 2시간이 훌쩍 지나서 드디어 일본 땅에 발을 디뎠다. 일본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 여러 가지 수속을 하는 동안 수많은 일본인을 보 고 일본 안내판도 보았지만 내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 다. 어리둥절하게 공항으로 나오니 이미 공항에서는 앞으로 연수단을 안내해주시 고 이끌어 주실 통역 선생님들께서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계셨다. 나는 3호차를 타고 드디어 공항 밖 일본으로 나왔다. 일본에서의 6박 7일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도쿄타워, 아사쿠사, 레 인보우 브릿지와 자유의 여신상, 방재체험, 후지산, 가와구찌호 자연생활관에서 의 잼 만들기 체험, 민속마을 히나마쯔리 등등 일본의 유명 장소는 물론이고 홈 스테이, 외무성 방문, 일본학교 방문 등 나중에 내가 다시 일본에 온다고 해도 체험할 수 없는 값진 경험들도 했다

88 떠나와 있는 동안 한국 생각이 별로 나지 않을 정도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즐 겼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경험은 위에서 이미 꼽은 홈스테이, 학교 방문, 외무성 방문이 아닐까 싶다. 첫째 날에 시내 구경을 하고 바로 간 곳이 외무성이었다. 처음에는 외무성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인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무성은 일본의 외교 정 책을 담당하는 행정 기관인데다가 우리나라 대통령도 일본에 오면 이 외무성을 방문한다고 하니 일반인은 건물에 들어오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나는 아시아 지역 조정관 데라사와 상의 이야기도 들었으니 얼마 나 운이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일본 측에서 그만큼 우리 연수단을 배 려해 주고 대우해 주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했고 내가 이곳에 생각보다 큰 이름 을 달고 왔다는 생각에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이 밀려들었다. TV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에서나 본 듯한 마이크 달린 책상 앞에 앉아서 데 라사와 상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유창한 한국어 솜씨에 깜짝 놀랐다. 데라사와 상은 유명한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이야기를 하시면서 똑같이 일본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의 드라마와 일본의 드라마는 조금 다르다면서 그만 큼 문화가 달라서 받아들이기 나름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또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먼 나라라면서 이제는 심리적으로도 가까 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오래 전부터 역사 문제로 얽혀서 많은 부분에서 충돌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 문제도 더해져서 서로에 대해 안 좋은 감정들이 내재 되 어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제 세계화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언제까지나 서로를 미워하고만 있 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 일본의 모습에만 얽매여서 현재의 일본의 모습까지 부정하는 건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 다. 물론 과거 역사는 변하지 않고 그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정확하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일본을 잊지는 않으면서도 현재의 일본을 수용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앞으로 남겨진 숙제들이 많겠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고 이해하 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나라 일본이 보다 빨리 오리라고 생각한다

89 홈스테이는 연수 일정 중에서 제일 기대 되었던 일정이었다. 도쿄에 있다가 기차를 타고 야마나시로 옮긴 뒤에 홈스테이 대면식을 했는데 내 이름이 거의 뒷부분에 불려서 그때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있었는지 모른다. 드디어 내 이름과 같이 지낼 친구의 이름이 불리고 호스트 아저씨를 만났다. 수염을 근사 하게 기르신 아저씨셨는데 아저씨 집은 대면식 한 곳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서 후지산 밑에 있었다. 나는 일본말을 거의 할 줄 몰라서 1박 2일 동안 어떻게 대 화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아저씨께서 영어를 잘하셔서 그때부터 나는 아저씨 와 영어로 대화하게 되었다. 일본에 와서 영어를 늘려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저씨는 건축가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도착한 아저씨 집은 너무 멋있 었다. 집에 오자 아주머니께서 반겨주시고 아늑한 집 안에 들어서자 긴장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같이 저녁도 먹고 얘기도 하면서 처음보다 많이 친해지고 편해졌다. 저녁은 호텔에서 먹던 음식 못지않게 너무 맛있었다. 내가 준비해간 김 선물도 저녁 식 탁에 올랐는데 가족 분들 모두 노리,노리 그러시면서 맛있게 드셔 주셔서 기 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봤는데 마침 뉴스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여주었다. 일본에 있는 동안 한국 소식과 단절 되어 있었는데 이렇게 한국을 접하자 너무 반가웠고 다른 나라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도 미흡하게 나마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아주머니께서 10월 달에 한국을 방문하 신다고 하셔서 한국말을 알려드렸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이미 한국을 여 러 차례 방문하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셨다. 처음에 만났을 때 내가 인천에서 왔 다고 말씀드리면서 인천 국제공항 얘기도 같이 했더니 아저씨께서 인천 국제공 항의 디자인은 너무 아름답다고 칭찬해 주셔서 뿌듯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날 밤 자기 전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본의 문화체험을 했다. 바로 목욕이 다. 일본의 보통 가정에서는 깊은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담아서 그 물을 버 리지 않고 모든 가족이 쓰고 나온다. 나는 손님이라고 가장 먼저 들어가는 특권 (?)을 누렸는데 이미 몸은 다 씻고 마지막에 긴장을 풀고 몸을 녹이기 위해서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공중 목욕탕에서 사람들이 한꺼 번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과 한명씩 차례대로 들어간다는 시간차만 빼면 똑같지 않은가. 우리나라보다 깊은 욕조 덕분에 목까지 올라오는 물 속에 앉아 있으면 너무

90 따뜻해서 나오기 싫을 정도였다. 홈스테이 하기 전에 선생님들께서 목욕을 다하 고 나서 물을 버리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말씀대로 나는 고스 란히 몸만 빼서 나왔다. 다음날에는 아줌마 아저씨와 점심도 나가서 먹고 후지산, 기모노 박물관, 역 사전통 박물관 등 주변을 돌아다니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 보면 하룻밤 자고 가는 우리를 위해서 먹는 것에서부터 자는 것, 놀러 갈 곳까지 다 신경써주신 홈스테이 가족 분들의 정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홈스테이가 끝난 후에도 연수단 일정 중에 아저씨께서 CD에 그 동안 찍은 사진을 담아서 전해주기 위해 일부러 저녁을 먹고 있는 곳까지 찾아 와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곧 있으면 일본도 떠나고 얼굴을 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또 볼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다. 아저씨에게는 감사하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다 표현이 안 될 것 같다. 한국에 와서도 아저씨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일을 가장 먼저 보냈는데 금세 답 장을 보내주셨다. 영어 밑에 한글도 정성스럽게 쓰여 있어서 다시 한 번 따뜻한 진심에 감동을 받았다. 일본 학교 방문은 기대 이상으로 너무 기억에 남는다. 학교에 방문에서 처음 일본 아이들과 마주했을 때는 긴장감과 함께 살짝 거리감도 느꼈지만 학교 환영 식을 끝내고 일본 친구들과 수업을 들으면서 그런 느낌이 싹 가셨다. 나는 가정 과 미술 수업을 들었는데 가정 시간에 내 옆에서 같이 종이접기를 한 친구와 이 메일도 주고받고 사진도 찍고 한 시간 동안 부쩍 친해져서 나중에 헤어질 때 너 무 아쉬웠다. 내 손톱에 들인 봉숭아물을 설명해주자 스콧이~ 하는 모습도 너무 귀여웠는데. 미술시간에는 각자 자신의 작품을 만드느라고 일본 친구와 친 해질 틈도 없었다. 처음에는 두 시간 동안의 수업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 데 막상 듣고 나니 턱없이 짧고 부족하기만 했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 만 서로 관심을 갖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왠지 오래 지낸 친구 못지않은 끈끈 한 정이 생긴 것 같았다. 시간이 더 주어졌더라면 더 많은 친구들과 더 많이 친 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 짙게 남는다. 그렇게 짧은 두 시간의 수업을 듣고 강당으로 가서 교류회를 가졌다. 일본 학 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서로 전통 문화 등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는데 얼마 전에 일본학교에서 신종플루에 걸린 학생이 나와서 모든 일본인 친구가 함께 할 수

91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일본 친구들은 오케스트라와 검도 등을 보여주었고 우리 는 예술 고등학교 세 명의 친구들이 각각 가야금 연주와 한국 무용의 살풀이, 그리고 흥보가의 병창을 보여주었는데 나는 무엇보다도 한국 친구들의 공연이 너무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것이라지만 그런 연주를 볼 기회가 전혀 없을뿐더러 관심도 없었는데 교류회에서 접한 한국의 전통문화는 너무 아름답고 멋져서 전율이 일 정도였다. 부끄러운 것은 일본 친구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보여주는 자리가 더불어 한 국학생인 나에게도 생소하고 신기한 체험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가 얼마나 우리 것에 무지하고 무관심 했던 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 자신부터 우리 문화의 관심을 가지고 또 한국사람 모 두가 한국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단순하게 프로그램이 잘 짜여 진 일본 여행이라고만 생각하고 학교를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좋아하고 있었는데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리타 공항으로 일본을 떠날 때 너 무 아쉬워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연수를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너무 행운이고 감사하게 생각한 다. 무엇보다도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인연들을 만 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눈 연수단 친구들, 엄마 역할까지 해주신 선생님들, 홈스테이 가족, 일본학교 친구 모두 기억에 남 는다. 시간이 지나서 머리로는 연수의 세세한 추억들을 잊어버릴지 몰라도 마음 속으로는 모두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92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이 진 인천 인화여자 고등학교 나는 중학교 때부터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일본 드라마를 보거나 여러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또 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배우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방일 연수는 굉장히 소중하고 좋은 기회였다. 사실, 일본에 와보기 전에는 일본에 대한 여러 오해나 편견 같은 것들도 많 았는데, 이번 연수를 통해 그러한 것들도 많이 바뀌었다. 왠지 일본 이라고 하면 굉장히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인간미 가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번에 일본에 와서 홈스테이도 하고 여러 일본 사람들을 만나보니, 일본인들도 한국 사람들과 다름없이 다른 사람을 도울 줄도 알고, 잘 웃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또 과거에 있었던 좋지 않 은 일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우리에게 미안해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일본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많이 다른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들도 많았다.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길 이었다. 도로의 좌우 통행 방향과 운전석의 위치가 다른 것도 있었지만 더 두드러진 차이는 길가의 청결이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길가에 쓰레기통이 적은 것은 매한가지인데 일본의 길거리에 는 그 흔한 담배꽁초, 껌 자국 하나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일본은 제 2의 경제 대국인 선진국인 만큼 선진 문화 의식을 가진 진정한 선진 국가라는 생각 을 했다. 또 다른 것은 식사 였다. 우선, 우리도 다들 알고 있듯 식사법이 달랐다. 무릎을 꿇고 앉아 그릇을 손으로 들고 젓가락만을 사용해 먹고 국도 젓 가락으로 저어 그냥 마셨다. 한국이었다면 예의 없는 상놈이라고 된통 혼날 텐 데 이곳에서는 이게 올바른 예의라고 하니 굉장히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지만 서로의 식사예절이 다르다고 해서 한쪽을 무례하고 나쁘게 보는 것은 매우 편협 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불편하긴 했지만 그 나라 식으로 식사를 했다. 또, 일본 의 음식들은 예상 외로 대체로 달고 짰다. 일본은 소식( 小 食 )과 싱거운 간으로 장수국가라는 별칭을 얻었다는데, 어찌된 건지. 너무 달고 짜서 많이 먹지 못하

93 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또 달랐던 것은 반찬 등이 모두 개 인 앞에 따로 나온다는 것이다. 뭐든지 한 데 두고 함께 먹는 한국인들의 입장 에서 보면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위생과 편의를 고려한다면 좋은 방법인 것 같 았다. 선진국이니만큼 배울 점도 많았지만 문제점도 보였다.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자녀교육 이었다. 물론 요즘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내 가 본 일본은 정말 자녀교육이 올바로 되고 있지 않는 듯 했다. 때리거나 혼내 는 일이 없는 건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떼를 쓰고 소리를 질러도 부모들이 아이에게 맞춰주려고만 하는 것 같아서 너무나 이상했다. 물론 내가 너무 단면 적인 것만 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미국처럼 일본도 체벌이나 회초리를 사용하 는 등 훈육을 법적으로 금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적해보았다. 반면 일본과 비교해 보았을 때 한국의 문제점은 없는가 생각해보았다. 그것 은 교육 이었다. 물론 일본도 못지않은 입시 전쟁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렇 지만 지나친 조기 교육과 매일 밤 9~10시까지 학교에 붙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 하는 공부벌레가 되는 한국과 활발한 부 활동을 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일본 과는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비교하면 일본의 대학들이 결코 한국 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더 앞서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중의 성과 는 같은데 꼭 어린 학생들을 옭아매야만 할까? 그렇다면 한국 학생들의 머리가 더 나쁘다는 것일까? 그것은 분명 아니다. 우리 한국 고등학생들의 실력은 국제 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렇게 꿈을 키우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청 소년들을 책상 앞에만 묶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일본에는 여러 가지 배울 점도 많았다. 우선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의 문화 의식이다. 이번 연수에서 아사쿠사 신소-지, 후지산, 나루사와 빙혈, 이야시노 사토 등 여러 유명 관광지들을 많이 가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개만 살짝 돌 리면 바로 보일 수많은 낙서들이 단 한 개도 없었다. 한국인들이 외국에 관광을 가서도 어글리 코리안 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낙서들이지 않은가. 우리나라가 이런 오명을 벗으려면 이런 일본과 같은 선진 문화의식을 고양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타타미, 마네키네코, 유카타 등 곳곳 에 물들어 있는 전통문화의 모습들을 보며 우리나라도 우리의 전통을 현대에 맞 게 개량해 계속 이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소방 방재청에서의 재해 체 험 훈련은 굉장히 인상 깊었다. 물론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지진의 위험에 노

94 출되어 있어서 재해에 더욱 민감하지만, 재해는 자연 재해만 있지 않다. 요즘에 는 방화로 인한 화재 등 인공 재해도 많다. 물론 재해를 입지 않는 것도 중요하 지만 피해를 최소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도 학교에서 방재 체 험 훈련을 하지만 이렇게 체계적이고 자세하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도 만일을 대비해 이렇게 체계적인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다음은 신기 술의 활용이었다. 도쿄 미나토 관에서 오다이바 라는 얕은 바다를 메운 임해 부도심 설계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역시 일본이 높은 기술력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모든 생활에 필요한 전선, 수도관, 쓰레기 처리관 등을 모 두 지하에 묻는 등 편의에 맞게 여러 고도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 계획을 보니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일주일동안 일본의 모습과 문화를 배우면서 가까우면서도 많이 다르 다는 것을 새삼 느꼈고, 배울 점도 많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것을 알려 주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지구촌시대에 모두 함께 협력해야할 나 라라는 것 또한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홈스테이를 할 때 우리 호스트 분이 말씀 하시길 과거에는 한국과 일본이 안 좋은 기억도 많고 좋지 않은 감정이 많았지 만 일본 쪽에서도 미안해하고 회복하고 싶어 한다고 하고, 또 일본 외무성에서 테라사와 아시아 지역 조정관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우리는 지구 공동체로서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하는 나라인데 과거에 안주해 적대감만을 품고 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에서라도 더 많은 교류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이 관계를 점차 극복하여 서로 돕는 동반자로서, 또 지리적으로 가 까운 만큼 서로의 마음도 가까운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가 되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한다

95 일주일간의 값진 시간을 보내고 이 민 경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나서 얼마 후, 학기 초에 학교에서 2009 한일교류 학생 방문단 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평 소 우리학교에는 일본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도 많았고, 한일 정부 공동주도의 전액무료 연수에 홈스테이라는 흥미로운 조건 때문이었는지 처음부터 경쟁이 대 단하였다. 단지 가고 싶은 2학년 학생들만 교무실 앞에 모이라고 했을 땐 거의 50~60명에 달하는 친구들이 모였었고 그곳에서 일본어 회화가 가능하고 일본어 능력시험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학생들로 추려내니 나를 포함하여 6명의 후보 가 남게 되었다. 나는 일본인들과 펜팔경험도 있고, 이모께서도 일본에 살고 계 셔서 회화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당시 JLPT 자격증은 2급뿐이고 나보다 더 잘하 는 1급자격증을 가진 친구들이 2명이나 더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하지 만 마지막 최종후보 6명에게 자기소개서를 써오라고 부탁하셨을 때 학년부장 선 생님께서 나의 글을 좋게 봐주셨고 평소 일어공부를 열심히 해 온 나를 예쁘게 봐주신 담임선생님의 적극추천으로 내가 뽑힐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일본에 와서 함께 온 방문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우리학교만큼 경쟁이 치열 했던 학교는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학교의 대표로 뽑힌 후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 어깨가 무겁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인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일본에 오는 그 날까지 마음이 설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전교육 날까지만 해도, 일본에 간다는 설렘만 가득했지 정말로 일본에 간다는 실감은 나지 않았는데 24일 새벽, 일찍 일어나 대전을 떠 나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에 탑승해 점점 일본어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정 말 일본에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모두들 모르는 사 이라서 그런지 공항에서부터 통성명을 하면서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건 나중에 친해져서 호텔에서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공항에서 내게 처 음 말을 건 조 수경 이라는 친구는 사전교육 때부터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

96 비행기 표를 받자마자 내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생각지 못한 재미 있는 에피소드라며 다 같이 웃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수경이에게 참 고마운 일 이었다. 그렇게 일본에 도착하여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동경의 외무성이었다. 긴 자에 위치한 탓에 외무성으로 이동하는 내내 한국의 명동거리와 비슷한 긴자거 리의 화려함과 세련됨을 볼 수 있었는데 막상 외무성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사 뭇 엄숙하고 사무적인 분위기에 들떴던 분위기는 차츰 가라앉았다. 지리적으론 가장 가깝지만 감정적으로는 먼 가깝고도 먼 한일 양국의 앞으로의 관계와 교류 는 21세기를 이끌어 나갈 여러분들에게 달려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것이 정말 한 일교류를 위한 연수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고 같이 온 연수단원 친구 들이 준비해 온 조금 무겁고 진지한 질문에 단순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온 나 의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외무성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위해 도쿄타워로 이동하였 다. 도쿄타워는 평소에도 내가 너무나도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고, 가게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던 탓에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버스 안에서부터 흥분하기 시작했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건물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입을 다물 수가 없 었고, 일본에 와서 첫 식사인 카레 카츠동을 빨리 먹고 친구들과 나와서 기념품 도 구경하고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도쿄타워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땐, 일부러 일본인들에게 부탁했는데 그런 식으로 일본어를 사용하여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할 때가 가장 즐거웠다. 기념품을 구경할 때에도 상점 할머니께서 이것저것 한 국에 대한 이야기로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일본인들의 따뜻함과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첫째 날의 일정을 마치고 두 번째 날은 아사쿠사 신사에 갔다. 정말 일본의 모습과 종교를 깊이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일렬로 늘어 선 상점가에서 만쥬도 사먹으면서 기념품도 사고 자신의 행운을 점쳐보는 오미쿠지라는 것도 해봤는데 나는 흉이라는 운세가 나와서 그 곳에 종이를 묶어두었다. 선생님께서 운세가 나쁘게 나와서 그 곳에 종이를 묶어두면 나중에 신이 와서 악운을 모두 가져가버린다고 하셨다. 참배도 해보고 이것저것 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즐거웠던 경험이었다. 다음 환영중식회에서는 가스미카세키라는 빌딩의 맨 위층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오다이바로 이동했다. 먼저 오다이바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한눈에 알

97 수 있는 동경 항구관에 갔다. 오다이바에는 전에도 한번 와본 경험이 있었지만 옛날에는 얕은 바다였다가 땅을 매립하여 세운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창문 밖으로는 레인보우 브릿지, 팔레트타운, 후지테레비, 유리카모메 등등 오 다이바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고 항구에 쌓인 컨테이너 박스에서 한국의 한화 컨 테이너 박스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후 미래과학관에 가서 일본의 과학 산업의 모습을 보고, 재밌는 체험들을 해볼 수 있었다. 과학에는 통 관심이 없는 터라 내게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일정이었지만, 이것저것 체험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고, 특히 우주비 행선 내부의 모형을 한 곳에서 설명해주시는 할아버지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셔 서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그 곳에는 외국의 유명한 우주비행사들의 사인과 사 진이 있었는데 한국의 이소연 씨의 사인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러간 곳은 비너스포트라는 곳인데, 유럽풍의 건물 인테리어의 쇼핑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길을 다닐 때마다 천장의 하늘색 벽지의 색이 바 뀌는 모습과 비너스포트의 중앙에 위치한 아름다운 분수가 유명하다. 일본에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세 번 모두 비너스포트에 와서 정말 이 곳이 오다 이바의 명물인 장소라는 것을 느꼈다. 저녁식사는 이탈리아식 뷔페였는데 음식 들이 너무 맛있어서 식사하는 시간이 참 오래 걸렸다. 그래서 식사 후 비너스포 트와 바깥 오다이바의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 참 아쉬웠다. 레인보 우 브릿지의 불이 켜지고 팔레트타운의 모습 등 낭만과 로망이 가득한 오다이바 의 야경은 꼭 사진으로 담아가고 싶었는데 버스 안에서 밖에 찍지 못해 참 아쉬 웠다. 이 날은 아사쿠사 신사, 미래과학관, 동경 항구관의 방문으로 일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번에 다 본 듯 한 느낌이 드는 일정이었다. 다음 날은 1,2단과 3,4단이 나뉘어져 각각 도쿄와 와카야마로 이동했다. 나 는 3,4단의 와카야마팀이라 일본에서 나리타 공항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칸사 이 공항으로 가서 국내선을 타고 와카야마로 이동했다. 국내선이라 그런지 비행 기가 낮게 날아 비행 내내 구름이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와카야마에 도착하여 와카야마 성을 견학하였다. 와카야마성은 조금 높은 지대에 있어 올라가면 와카 야마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데 도쿄와의 차이점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도 쿄는 높은 빌딩들과 화려한 간판 등 북적대는 도시의 분위기인 반면, 와카야마 는 조용하고 주택들이 많으며 높은 빌딩도 그리 많지 않고, 정말 사람 사는 일

98 본의 동네 같은 분위기였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도쿄보단 와카야마 쪽이 더 좋 다. 도쿄의 화려하고 커다란 빌딩들은 한국의 서울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하 지만 일본냄새 물씬 풍기는 주택들이 늘어선 골목이라던지 조그만 상점들, 일본 인이 평상시 생활하는 일상의 모습을 더 가깝게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 는 그런 소박하고 꾸밈없는 와카야마가 더 좋았다. 다음 날은 한일교류 연수 방문단 프로그램 일정의 백미인 홈스테이. 아침 일 찍 호텔에 모여 홈스테이 가족 분들과 만나 친구들과 헤어져서 하루를 보낸다. 전날 받은 내가 방문하는 홈스테이 가족 분들의 소개서에는 한국드라마에 굉장 히 관심이 많으신 분이고, 한국에도 방문해본 적이 몇 번 있으시고 한국인 홈스 테이 경험도 있으신 분이라고 하셔서 조금은 긴장을 덜 수 있었다. 할머니 마스 타니 시게코상, 아주머니 카토 토시미상, 아저씨 카토 히토시상, 딸 카토 안나 쨩이 함께 살고 있는 4인 가족의 가정이었는데 특히 할머니께서 배용준의 팬이 셔서 할머니 방에서 욘사마 사진의 액자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카토 토시미 상도 한국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현재 한국어도 배우고 있다고 하셨다. 긴 문장까지는 많이 말씀하시지 못하지만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단어를 일본 어와 한국어를 같이 사용해주셨다. 토시미상의 집은 일본식 3층 주택이었는데 타타미방과 도코노마 등 일본어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이 정말 눈앞에 펼쳐져 있 었다. 그리고 정말 놀란 것은 토시미상 집에 김치가 세 종류나 있었다는 것이 다. 이웃에 사시는 한국인분과 친해서 그 분이 담가 주다고 들었는데 배추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까지 우리 집에 조차 없는 김치가 있었다. 맛도 한국김치와 거의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인은 마늘의 잘 먹지 않아서 김치에 도 마늘이 조금밖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씀해주셨다. 집에서 점심을 먹을 때, 내게 일본식 라멘과 유부 초밥 등을 만들어 주시고 토시미상께선 내가 방문할 때 드린 한국라면을 끓여 드셨는데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며 맛있다고 말씀해 주 셨다. 그리고 안나쨩의 컴퓨터로 안나쨩의 수학여행 사진이라던지 해외여행 다녀온 사진과 학교친구들 사진, 문화제사진, 블로그에서 스티커 사진들을 보았고 나도 한국의 싸이월드로 한국친구들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안나쨩이 다니고 있는 학교는 사립 고등학교였는데 운동장도 4개나 있고 수영장 도 있고 교복과 시험이 없는 학교라고 했다. 학교사진을 보았는데 마치 대학 캠 퍼스처럼 넓었다

99 점심식사를 하고 이즈미야 라는 곳에 가서 쇼핑을 했다. 이즈미야는 한 국의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대형할인 슈퍼매장이였다. 마침 친구들 과자도 사 야 되고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먹을 것들을 잔뜩 샀다. 쇼핑을 하 면서 또 놀란 것은 인스턴트식 한국음식을 많이 팔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머 니께서 말씀 안 해주셨다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지나갈 때 말씀해주셔서 보니까 김치찌개랑 설렁탕 같은 것들도 팔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관심도 높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쇼핑을 마치고 내게 하고 싶은 것들이 있냐고 물 어보셔서 일본의 프리쿠라(스티커 사진)를 찍고 싶다고 말하니까 안나쨩과 두 번이나 프리쿠라를 찍었다. 한국에도 여러 가지 일본 기계가 있지만 일본은 확 실히 프리쿠라 기계가 더 발달되어 있었다. 요즘엔 바람도 나오고 눈이 더 커 보이고 다리도 길어 보이는 기계도 있다고 했다. 사진을 찍고 또 들른 곳이 'Book Off'라는 곳이었는데 책이나 음반의 상태 좋은 중고물품들을 싸게 파는 곳이었다. 한국에는 중고품 시장이 많이 활성하지 않은데 일본에는 커다란 중고 품 매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에 놀랐다. 일본음반은 듣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잘 사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싱글 두 장을 구입했다. 보통이면 500엔 정도 했을 물건이 105엔에 판매되고 있었다. 이런 점은 한국에서도 꼭 도입되어 활발해졌 으면 하는 부분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기다리는 동안 안나쨩의 문제집을 사러 서점에 갈 겸 마을 구경을 했다. 집 앞에는 길게 늘어선 상점가가 있었는데 이즈미야같 은 대형마트와는 다르게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어 들어가 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서점에서는 일본의 잡지들을 보면서 한국 과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잡지를 보면서 느낀 점은 일본 은 정말 미용이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메이크업이라던지 헤어, 네일아트 등 다방면으로 전문화되어 있어 놀라웠다. 저녁식사는 집에서 타코야끼를 만들어 먹었다. 타코야끼 기계가 집에 있는 것에 놀라자, 아주머니께선 아마 오사카 지방에만 있을 것이라고 도쿄사람들도 집에서 타코야끼를 만들어 먹는 것을 보면 놀란다고 말씀해주셨다. 일본 방송에 서 동방신기가 타코야끼를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어려워보였는데 전혀 어 렵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익었을 쯤 동그랗게 만들려고 뒤집는 것이 재밌게 느 껴졌다. 문어와 양배추와 반죽 등을 넣고 만들어 먹고 치즈도 넣어먹었다. 가쓰 오부시와 타꼬야끼 소스와 마요네즈를 뿌려 먹었는데 판매하는 타코야끼보다 더

100 맛있었던 것 같다. 저녁식사 땐 대학교수이신 아저씨 카토 히토시상께서 한국에 출장 가셨다가 돌아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진주에 있는 경상 대학교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일본에서 가르치고 계시는 제자 중에 한국인 학생 들도 있는데 다들 일본어는 잘하지만 영어에서 성적이 많이 갈린다고 혹시 나에 게 유학할 생각이 있다면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느 나라건 영어는 중요한 것 같다. 또 한국 고등학교는 10시에 끝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고등학교는 정규수업만 하고 한국의 중학생들과 같은 시간에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은 급식문화가 더 발달해서 학생들은 거의 급식을 먹는다고 하니까 그 점도 일본과 큰 차이점이라고 하셨다. 중학교는 가끔 있을 지 몰라도 일본의 고등학교는 급식을 하는 학교가 거의 없고 모두들 오벤또(도 시락)를 싸서 다닌다고 한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알 수 있었다. 쇼핑이나 유명 관광명소에 놀러가는 것 보다 앉아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가장 즐거웠다. 특히, 나는 내 또래인 안나쨩 보다 아주머니와 더 많은 이야기 를 나눴는데 정말 한국에 관심이 깊으신 분이셔서 드라마나 연예인뿐만 아니라 정치 쪽에도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친절하게 대해주시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올 때도 이것저것 선물을 많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일본인들도 한국인들만큼이나 정이 많은 것 같았다. 다음 날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 해보니까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갔다 온 친구도 있었고 초등학교 운동회에 다녀 온 친구도 있었지만 전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즐거웠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다음 날은 와카야마의 세이린 고등학교의 방문 일정이 있었다. 홈스테이 다 음으로 기대되는 일정이었다. 강당에서 환영인사회를 마친 뒤 각자의 반으로 들 어가 수업을 받는 형식이었는데 내가 들어간 반은 1학년 A반이였다. 우리를 마 중 나와 준 친구들은 마나쨩과 유이쨩이었는데 특별히 한국에 관심이 있는 친구 들도 아니었는데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반에 들어가 HR시간 전 아침시간 에 친구들 소개도 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많이 친해지진 못했지만 다들 친절하 게 우리를 반겨주어 너무 기뻤다. 그 후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수업형식은 거의 한국과 비슷하였고 예체능 수업을 이동식으로 한다는 점만 조금 달랐다. 나는

101 예체능 시간을 우연히 6교시에도 들어가게 되어 음악수업을 받았는데 기타를 배 우고 있었다. 평소에도 기타는 배워보고 싶었는데 일본에 와서 처음 배워보게 되어 기뻤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기타를 가르친다는 것이 참 놀라웠다. 한국에 서는 음악시간이 있어도 실용적인 악기를 본격적으로 배우는 경우는 드문데 차 이점을 느낄 수 있었다. 기타는 처음엔 어려웠지만 옆에서 마나쨩이 계속 알려 줘서 금방 따라갈 수 있었고 또 재미있었다. 6교시를 끝으로 학교방문행사 일정을 마쳤는데 쉬는 시간이라던지 점심시간 이 너무 짧아서 친구들과 많이 얘기해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친구들 몇 명에게 한국의 작은 선물과 메일주소를 적은 카드를 줬 는데 한국에 와보니 그때 친해진 친구 2명에게 메일이 와있어서 너무 기뻤다. 일본의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져서 국경을 넘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즐거웠다. 다음 날엔 복숭아 쨈도 만들고 칠기체험도 해보고 직접 참여해 체험해보는 일정들이 많았다. 특히 칠기체험을 할 때에는 문양에 색을 입히고 나서 자신이 쓰고 싶은 문구라던지 그림을 더 그릴 수 있어서 자신만의 그릇을 만들 수 있어 서 더욱 즐거웠다. 이 날을 마지막으로 일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그 동안 방문단 친구들 과도 너무 친해져서 모두들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밤에 는 호텔방에서 모여 친구들과 과자도 먹고 각자 학교 이야기도 하면서 수다를 떨다 늦게 잠들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어서 또 가장 좋았던 점 중 한 가지는 좋은 인연 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 또 좋은 일본인 들... 정말 좋은 사람들만 잔뜩 만나고 헤어진다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날이 더욱 아쉬웠던 것 같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라 깊이 친해지지 못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 시간동안 함께 보낸 아이들의 얼굴은 아마 평생가도 잊지 못할 것이다. 또 우리를 일주일 내내 지도해주셨던 이정순 선생님, 후쿠시마상, 스즈키상, 아이상, 이강옥 선생님, 송순자 선생님 이외에 많은 분들... 정말 너 무 감사하고 좋은 분들이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헤어지는 날 우리를 울린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황수진 이라는 친구 가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할 때 할 일이 있다면서 아침을 거르는 것이었다. 친구 들은 다들 짐을 싸나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인천공항에서 친구들과 헤어질 때 수

102 진이가 7명의 친구들에게 한명 한명 편지를 써서 준 것이었다. 헤어져서 다들 아쉬운 분위기였는데 수진이의 편지덕분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도 대전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편지를 읽는데 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눈 물이 찔끔 날것만 같았다. 그 때 만난 친구들과는 연락처도 교환하고 인터넷과 문자로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다. 심지어 인터넷에 클럽도 만들어서 여행 중에 찍은 사진도 올리고 근 황 글도 올리면서 지내고 있다. 6일째 되는 날, 저녁에 호텔에 돌아와서 단체미팅을 할 때 소감발표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우리가 일본에서 일주일간 생활하면서 사용한 비용을 한 사람 당 계산하자면 얼마정도 나올지 추측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말로는 약 13만 엔, 즉 한국 돈으로 약 170만 원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연수단 프로그 램을 통해 얻어 간 추억들과, 인연, 경험들은 170만원 그 이상,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값진 시간이었다. 나를 이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주신 학교선생님들과 일주일 간 많 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 프로그램을 주최한 한국 국립국제교육원 분들까지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정말 학창시절 단순히 지나가는 여행이 아니라,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값지고 좋은 경험을 제공해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103 정( 情 )의 나라 일본에 다녀와서 장 정 연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속 용인외국어고등학교 가깝고도 먼 나라, 현재의 우리나라에게 있어서 이러한 국가는 바로 일본 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해 있다. 나는 일본 어를 전공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인식하되 배 울 부분은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교환학생으로서 일 본을 방문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없앤 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 한일교환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미 출국이 하루 전인 것처럼 설레었다. 단순한 관광객이 아닌, 한국 청소년 대표로서 일본에 갈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영광이기 때문이다. 출국전날까지 난 일본에 가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좋을까 몇 번이고 고민을 했다. 작년 1월에 한 번 일본에 간적이 있었지만, 이처럼 긴장되지는 않았었다. 9월 24일 우리는 일본 도쿄( 東 京 )에 도착했다. 일반적으로 도쿄라 하면 신주쿠( 新 宿 )나 시부야( 渋 谷 )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갔던 곳은 그런 곳들이 아닌, 외무성( 外 務 省 ), 아사쿠사( 浅 草 ), 도쿄 항구관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실망감이 컸다. 하지만 도쿄 항구관까지 모두 둘러보고 나는 내가 일 본에 온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일한교류기금은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일본의 현 재, 과거, 미래를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번 연수를 좀 더 진 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난 와카야마( 和 歌 山 )에 가서는 일본의 장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배우고 한국의 문화를 일본 친구들에게 알리는 가교 역 할을 해 보겠다고 다짐을 했다. 내가 와카야마에서 하루 동안 홈스테이를 했던 곳은 오쿠노 마유카( 奥 野 真 由 香 )의 집이었다. 처음에는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4명이라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장녀인 마유카는 정말 맏언니답게 의젓했다. 사실 나는 처음 마유 카의 가족과 있을 때 민폐를 끼치지 않게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 쿠노 가족 분들이 날 홈스테이 하는 학생이아니라 가족처럼 대해주셔서 나도 솔

104 직하게 그분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홈스테이를 마칠 때가 이번 연수 일정 중에서 정말 슬펐던 것 같다. 더군다나, 마유카의 어머니께서 써주신 편지는 내가 떠나는 발걸음을 떼기 더 힘들게 했다. 하지만 슬펐던 만큼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 되었다. 그리고 홈스테이를 마치는 날 방문한 세이린 고등학교( 星 林 県 立 高 校 )는 사실 내가 일본 고등학생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 다. 사실 수업 다섯 시간 중 3시간은 방일연수단 친구들이 더 많았던 수업이라 서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지만, 교실에서 들었던 세계사 수업과 생물 수업은 충 격적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많이 배우기도 했다. 3교시 세계사 수업시간에 선 생님은 심지어 나에게 나와서 칠판에 한반도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다행히 한국 지리 시험공부를 할 때 여러 번 그려본 덕에 실수 없이 무사히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그리는 동안은 자신이 없었다. 앞으로는 당당하게 한국을 그릴 수 있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 었던 것은 일본의 수업이 아니라 교실 친구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었다. 사실 연수단의 다른 친구들이 갔던 교실에서 세이린 학생들은 그 친구들을 특별하게 대우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갔던 2학년 E반 같은 경우는 나를 외국의 학 생이 아닌 전학생처럼 대해주었다. 예를 들어, 교실 친구들끼리 웃지 않고 버티 기 게임을 하게 되면 ジョンヨンちゃんも 一 緒 にしよう~(정연이도 같이 하 자~)"라고 말해주거나,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면서 나에게도 만화책을 주거나 했다. 선생님께는 죄송하지만, 친구들이 나를 정말 친구처럼 대해주는 것이 고 마워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친구들과 함께 딴 짓하는 것을 더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다. 만일 생물 선생님을 다시 만난다면 꼭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번 연수에 참여했던 친구들 모두 각각 다른 것을 배우고 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식적으로 일정에 탑재되어 있는 곳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배운 것도 많지만, 일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그런 것들보다 일 본인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느꼈던 것들이다. 만일 내가 이번 연수도 관광차원에 서 왔었더라면, 일본을 이만큼 많이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일본에 대한 나의 인식을 긍정적으로도 바꾸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사를 통해 온 관광과는 달리 한일고교생방일연수는 일본의 음식, 일본의 역사가 아닌 일본 그 자체를 느낄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연수를 시작할 때는 알 지 못했지만, 연수 일정을 끝마치고 나니 왜 선생님들께서 이 연수가 그토록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105 하신지 이해가 되었다. 이런 기회는 아마 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이번에 배운 것들을 잊지 않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외국 사람들을 만날 때 더 넓은 시각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106 잊을 수 없는 7일간 박 선 미 백 마 고 등 학 교 제1일 [ 9월 24일 목요일 ] -여행가기전날 밤 집에서 나는 일본을 가본 적이 없었지만 인터넷과 같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많이 접 해 봤다. 나는 일본에 이중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책에서의 악한이미지의 일본과 또 다른 하나는 개인적으로는 일본드라마를 통해 갖게 된 호감과 선진국이라는 좋은 이미지의 일본이다. 내일부터 시작될 한일고교생교류를 통해 내가 앞으로 일본의 생각은 어떻게 변할까? 아님 그대로일까? 라고 생각하며 설렜다. -나리타공항 도착 나는 다른 나라 공항에 딱 입국했을 때 그 나라만의 특유 냄새가 난다고 들 었었다. 그런데 나는 나리타공항에 도착했을 때 딱히 일본의 냄새라 할 것이 없 었다. 한글표지판과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 공항의 전체적인 풍경이 한국과 비슷해서 처음에 설렜던 마음과 달리 타국에온 여행자로서의 긴장감이 싹 사라 졌다. 공항에서 도쿄시내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밖의 풍경을 봤다. 공항에서 느 낀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과 다를 게 없네.. 시시하다 라고 생각했지만 창밖을 더 들여다볼수록 한국이아니라 일본이구나 를 느꼈다. 일단 차도가 좁고 좁 은 차도에 맞춰 자가용들이 앙증맞게 작았다. 또 도쿄는 우리나라의 서울과 같 은 대도시이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도심에 많은 나무와 빌딩이 조화롭게 자 리 잡고 있었다. 나는 산을 좋아하고 지구환경에 관심이 있는 나름 자연친화적 인 학생으로서 발전과 자연이 어울리는 이점이 가장마음에 들었다. -외무성방문 처음에 이 긴 건물은 뭘까 하며 뭣도 모르고 들어갔다가

107 갑자기 엄숙해지는 분위기와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맞나 싶은 수준 높은 질문으로 얼어버렸다. 사실 여행느낌의 연수겠구나 했던 나의 생각이 나의 마음 을 무겁게 만들었다. 외무성의 관계자분은 한국말을 잘하고 재일교포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그만큼 한국에 관심이 있으시겠구나 하는 생각과 우리들의 질문을 성심껏 답변해주 게 호감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한국에 관심을 갖는 일본인과 일본에 관심을 갖는 한국인이 많아진다면 옛날 일본과의 악감정 도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쿄타워에서의 맛있는 카레&돈가스 그 말로만 듣던 도쿄타워에 직접 가봤다. 도쿄타워로 가는 도중 어두운 버스 창밖으로 살짝살짝 보이는 도쿄타워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선생님의 설명 으로는 원래 도쿄타워는 모두 빨강색이지만 오늘같이 50주년을 맞은 특별한날은 흰색과 빨강색의 불빛을 같이 쏜다고 했다. 괜히 도쿄타워가 우리의 일본방문을 반겨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들떴다. 도쿄타워에서 먹은 카레 돈가스는 정말 맛있었다. 매콤한 맛이 살짝 느껴지는 우리나라의 카레 맛과는 달랐지만 입맛에 맞았다. -쉐라톤미야꼬 호텔도착 깨끗하고 넓은 방과 특히 우리방의 창에서 내다 볼 수 있는 초록빛의 예쁜 정 원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에 정원을 혼자 걸어봤는데 도시 속의 정원은 아담 하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직접 느껴보진 않았지만) 도시생활에 지쳐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졌을 회사원이 이 정원으로 들어가 앉아 있으면 정원이 따뜻하게 안아줄 것 같은 느낌이 났다. 호텔이 너무 좋아서 우리가 제대로 대접받고 있구나 조심히 행동 해야겠다 하 고 또 한 번 다짐했다. 제2일 [9월 25일 금요일] - 옛날의 일본(아사쿠사) 전날의 도시적인느낌의 도쿄타워와는 달리 요번엔 일본풍이 나는 센소지라는 절에 갔다. 신사를 갔을 때 건물들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지만 선이 더 얄상한 느 낌이 들었다. 향을 피우는 향로에 신의 입김이라 하며 아픈 곳에 향불을 쐬면

108 좋아진다고 해서 나는 머리가 좋아지라고 머리에 향을 쏘였다. 머리야 똑똑해져라~! - 과학적인 도쿄 (동경항구관 & 일본과학미래관) 도쿄가 햇빛이 우리나라보다 강하고 해양도시여서 그런지 바다에 비치는 햇빛 이 너무나도 예쁘게 반짝반짝거렸던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오늘 간 동경 항구관과 일본과학미래관은 역시 일본이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 각이 들었고 도쿄가 미래도시 같이 보이게 했다. 우리나라도 쓰레기를 매립해 만든 공원 하늘공원이 있었는데 일본은 더욱 발전하여 아예 인공섬을 만들었다. 놀란 점은 그 매립도시에 대한 계획이 장기적으로 쫙 짜여있었다는 점이다. 일 본의 계획적인 모습은 대단해보였다. 또 일본과학미래관에서 자원봉사를 하시는 노인 분들이 신기했다. 편견을 가지고 보면 어르신들은 영어를 잘 못 하실거라 고 생각했는데 영어도 잘하셔서 놀랐다. 우리나라의 어르신들을 떠올리면 동네 공원에 나오셔서 바둑 두시거나 혼자 외로워하시는 쓸쓸한 모습이 생각난다. 우 리나라도 노인분의 인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삶을 무기 력하게 살아오신 노인 분들도 일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셨으면 한다. -일본에서까지 이어진 나의 칠칠함 (오다이바 - 레인보우브릿지&비너스포트& 자유의 여신상) 오다이바에 갔다. 현대적이고 이국적(아사쿠사에서 봤던 일본의 느낌과는 다 른) 이여서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도시였다. 레인보우 브릿지와 자유의 여신상은 일본 같지 않고 미국에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풍경과는 다르게도 나는 사고를 쳤다. 내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 집에서 나 나름대로 다짐한 약속이 몇 개있었다. 그 중하나가 나의 칠칠맞음을 고쳐보자였다. 그.런.데. 칠칠맞은 나의 성격은 고쳐 지기는커녕 나를 더욱 곤란하게 했다. 사전 연수 때 주의하라며 칠칠맞음의 예를 들었을 때 나는 뭐 저런 아이가 있 냐며 남의 이야기인 듯 웃었다. 그때 비웃었던 내가 저런 아이 였다. 더 쥐 구멍으로 숨고 싶은 이유는 선생님이 계속 뭐 잊어버린 거 없냐고 힌트를 주시 는데도 나인지도 모르고 헬렐레 거렸다는 것이다. 나중에 내 핸드폰이 없어졌음 을 발견 했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등골이 서늘했었다. 정 말 그 칠칠맞은 핸드폰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09 나는 나를 속으로 질책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제3일 [9월 26일 토요일] -아직도 정신 못차렸니?? 아 진짜 이 일만 생각하면 내가 싫어진다. 핸드폰을 잊어 버린 지도 모른 채 해벌래 하다가 쪽팔림을 당한 게 바로 어제였는데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한 게 바로 어제였는데,, 이런 내가 슬퍼졌다. 차라리 어제의 핸드폰 사건은 귀엽게 느껴졌다. 핸드폰사건은 나에게만 수치 심이라는 불이익이 갔지만 오늘은 달랐다. 호텔의 키를 깜빡하고 들고 나와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었다. 더군다나 나와 방을 같이 썼던 친구들은 이제 막 호텔을 떠나 와카야마로 가는 나와 다른 야마나시팀이어서 곤란한 상황이 되었 다. 또 내 가방에서 호텔 키를 발견했을 땐 얘들이 속으로 아~또 쟤야? 하고 나 에 대한 평가가 칠칠이로 굳진 않을까하는 걱정으로 가득 찼지만 지금 모른 척 어물쩍댔다간 더 곤란해 질까봐 얼른 이야기를 했다. 버스의 통로를 통해 앞에 계신 선생님께 키를 전해주로 가는데 볼은 빨개지고 눈앞은 흐려졌다. 어느 여 행 책에서 읽었는데 여행 작가가 어쩌다 다른 나라 사람과 패키지체험으로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그런데 동행자중 한 여자가 지갑을 두고 온 것 갔다며 시간도 넉넉지 않은데 다시 돌아가자고 울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단체생활에서 는 차라리 성격이 좀 싸가지 없는 게 낫지 칠칠맞으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가가 기 때문에 칠칠맞은 게 더 나쁘다고 했다. 휴 내가 또 이럴 줄 몰랐다. 진짜 정신 차리고 다녀야겠다 하고 마지막 다짐 이 되리라 결심했고 그 뒤로의 깜빡 사건은 다행히도 없었다. 시작은 안 좋았지 만 나름대로 나의 다짐이 성공한 것 같아서 기뻤다. -일본인의 철저한 조심성 (방재교육체험) 일본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다 그만큼 지진에 대비할 준비도 철저하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대피연습을 하거나 방재교육체험관을 견학하면서 지진 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한 대응방법을 배운다. 어릴 때부터 체험을 통해서 지진 대피에 대한 단련이 잘 되어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사건사고가 일어난 후에 야 대응방법이 미비했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듣곤 했는데 우리도 앞으로 닥칠 지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110 제4일 [9월 27일 일요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홈스테이 사실 난 내가 가게 될 홈스테이 가족에 관한 정보지를 봤을 때 살짝 실망했었 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학교 일본어선생님이 우리의 회화능력은 딱 아기들 의 수준이라고 하셔서 회화의 시작을 아기들과 하고 싶었다. 나의 바람은 아이 가 많아서 시끄럽지만 화목한 집이었다. 그런데 종이를 보니 아이하나뿐인 집이 여서 실망했었다. 하지만 처음생각과는 다르게 단란함을 느끼고 왔다. 첫 대면식을 한 뒤 마사코 집으로 가는 차안에선 처음만난사람끼리의 어색함 을 풍기고 있었지만 나는 일본 연예인, 정민이는 만화로 마사코와의 공통관심을 찾아내 재잘대며갔다. 마사코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쇼핑몰, 유원지, 이탈리아 음식점등 여기저기 많이 데리고 가셨다. 쇼핑몰에선 마사코와 스티커사진도 찍 었다. 스티커사진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찍으니 실제 나와는 다르게 훨씬 예쁘게 나왔다. 여기저기 재미있는 곳도 많이 둘러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집으로 돌아와 마사코와 함께 중학교 때 앨범을 보거나 티비 게임을 하거나 과자를 먹 으면서 자기 전까지 웃고 떠들었을 때 이다. 그 때는 정말 마사코가 일본인이라 는 생각보다는 그냥 한국에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마사코 가족은 정민이(같이 홈스테이 한 친구)와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하시는 줄 아시고 번역기를 준비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밖에 못하는 일본 어로 말하는 것을 보시고는 신기해하고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조금하는 일 본어와 눈치코치로 의사소통을 했지만 그래도 마사코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도 많은데 대화가 안 될 때는 답답했다. 내가 훨씬 더 많은 일본어를 배우고 같으 면 좋았을 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일본어라 던지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제5일 [9월 28일 월요일] -아쉬운 홈스테이 종료 요번연수의 백미였던 홈스테이가 벌써 끝나서 아쉬웠다. 사실 난 직접자전거 를 타고 등교하고 싶었지만 마사코 집에서 학교까지가 멀어서 마사코 아주머니 의 차를 타고 갔다. 홈스테이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1박밖에 안했다는 게 너무나 도 아쉬웠다. 마사코랑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너무 짧았다

111 마사코와는 세이린 학교방문을 끝날 때가 마지막이었는데 학교를 떠날 때 결 국 정민이와 나는 울어버렸다. 짧은 만남이여서 컸던 아쉬움과 과연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라는 부정적인 마음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 미래에 또 마사코를 만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힘내자! -우리학교와 비슷한데..?! (세이린 학교 방문) 내가 들어간 반은 국제반이라서 프랑스인인 오드리라는 외국인친구가 있었다. 역시 적극적인 서양인답게 먼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한일본인 친구가 서로 다른 나라 아이들이 일본어로 대화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섭다고 놀라는 척을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학교 방문의 전체적인 느낌은 물론 차이점도 있지만 우리학교의 교실 풍경과 비슷했다. 영어시간에 가목적어 진목적어를 배우는 등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으 로 영어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또 수업시간에 친구와 소곤소곤 떠들거나 거울 을 보거나 자거나 하는 모습은 똑같아서 신기했다. 제6일 [9월29일 화요일] -와카야마에서의 체험(잼 만들기) 와카야마의 소박한 아주머니들과 잼 만들기를 했다. 옆집아주머니와 함께 하 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고 기대를 안 하고 갔었는데 잼 만들기가 생각보다 재 미있었다. 우리가 일본에 와서 잼 만들기 체험을 하러 온 것을 지방신문에서 취 재하러 나왔었다. 기자가 사진기를 들이 미실 땐 좀 더 열심히 만드는 척을 했 다. 열심히 만드는 척이 아니라 열심히 만들었더니 선생님께서 우리조것이 가장 맛있다고 하셨다. 칭찬에 즐거워진 우리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옛것을 보존하려는 일본(칠기체험&くろあ) 쿠로에(くろあ) 라는 옛 느낌이 나는 거리를 동네 할아버지가 직접 나오셔서 안내 봉사를 하셨다. 사실 평범한 동네를 소개하는 것이 별것인가 싶지만 외국 인에게는 일본의 평범한 길이라도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 다. 또한 옛 건물들도 잘 보존이 되어있어서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112 우리나라에서도 동네 길을 걸으면서 우리나라를 소개할 수 있는 체험이 마련 되었으면 싶다. -벌써 마지막이야???(전체회의) 이제 연수일정의 하이라이트인 홈스테이와 학교방문이 끝난 후로부턴 이제 점 점 일본을 떠나가야 된다는 생각이 벌써부터 마음이 꿀렁꿀렁해오기 시작했다. 오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날밤이라며 일본에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발표가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진심들이었고(심지어 한 남자아이는 울었었다.) 나와는 좀 다르게 생각한 점과 비슷하게 생각한 점을 비교하며 들었다. 지난일본에서 있던 일들이 벌써 과거의 추억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쓸쓸했다. 오늘이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다른 친구들은 홈스테이 친구들이 호텔 에 놀러 와서 즐겁게 놀다가는 것이 부러웠다. 나도 마사코가 보고 싶어졌다... 제7일 [9월 30일 수요일] -모두 안녕~~ 하지만 또 만나자 일본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또 금방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이제는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느라 몸도 지쳤고 이제는 익숙한 곳으로 돌 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헤어질 친구들과 선생님을 생각하면 아쉽기도 했다. 우 리는 헤어지는게 아쉬워서 공항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마구 사진을 찍어대었 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낯을 많이 가려서 친구사귀는 것도 걱정했는데 7 일간 적극적인 생각으로 연수를 임하니깐 저절로 모르는 사람과도 먼저 말 걸고 웃어줄 수 있었다. 못하는 일본어라도 먼저 웃으면서 들이대니깐 긍정적인 반응 이 돌아왔다. 낯선 것에 지레 겁부터 먹고 들어가는 내가 이렇게 행동했다는 게 대단했다. 연수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홈스테이와 학교 방문이었 다. 언어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 았다. 오히려 언어가 달라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과 눈빛을 주고받으 면서 한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다. 이 연수를 통해서 느낀 것은 많았다. 내가 어른이 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예전엔 추상적으로 세상은 넓다고 생각는데 직접 느낄 수 있었고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어나 영

113 어를 확실히 배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사실 요번에 내가 너무 일본에 가기 전에 예의 없게도 일본에 대한 사전지식을 머릿 속에 탑재해오지 안았던 것 같아서 후회가 되었다.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이런 기회가 왔을 땐 더 많은 것을 느꼈으면 한다. 강한자만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서 과거의 아픔은 서로 보듬어 주고 이제는 좋은 관계가 되었으면 한다

114 일본에서 보내는 편지 심 세 진 가 평 고 등 학 교 2009년 9월 24일 목요일 _ 친애하는 너에게. 안녕? 기대로 부푼 나의 마음을 너에게 전해주고 싶어 이렇게 도착하자마자 팬을 들게 됐구나. 이곳 일본의 날씨는 한국과는 달리 좀 더웠어. 혹시나 해서 긴팔만 챙겨 왔는데, 반팔도 챙겨올걸 하고 좀 후회가 되었지. 어쨌든 이동하는 동안 본 일본의 거리는 한국의 그것과는 좀 달랐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차를 보는 것을 좋아하잖아? 일본의 차는 한국 차보다 각지고 크기도 작더구나. 또, 택시 색깔도 굉장히 다양해서 마치 검은색 도화지 위에 색색의 물감들을 흘려놓 은 것 같았어. 잘 정돈된 시가지에 나란히 선 건물들, 많은 나무들, 또 그곳을 지나쳐가는 사람들. 같은 공기에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곳인데도, 단지 다른 땅 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들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그 느낌이 어찌나 기묘하 던지. 외무성으로 이동해 가던 내내 창밖의 세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너 무 감성적 인거 아니냐고 놀릴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건물들을 지나쳐 온 외무 성에서 환영 인사를 받았어. 은연중에 관광을 목적으로 생각한 나를 다시 한 번 연수를 목적으로 온 것이라는 걸 다시 인식하게 했지. 그리고 그 유명한 도쿄타 워에서 저녁을 먹었어! 안타깝게도 위층에 올라가 야경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 도 도쿄에서 홀로 우뚝 솟아 빛나는 그 모습이 무척 예뻤어. 그래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지금 내가 있는 이 호텔은 굉장히 좋아. 오늘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침대에 누우면 바로 잠이 들 것 같다. 사 실은 지금도 눈이 감기려고 하거든. 너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길 바라. 2009년 9월 27일 토요일 _ 화창한 날에 오늘도 너무 즐거운 하루였어! 너와 함께 올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걸. 한 국의 날씨는 어때? 여긴 정말 화창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어. 해가 쨍쨍 비치는 도쿄에서 우리는 아사쿠사에 갔다 왔지. 가는 길에 황성도 얼핏 볼 수 있었어. 우리나라도 여전히 왕이 있는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아사쿠사에서 오미쿠지를

115 뽑았는데 흉이 나와서 실망했다. 내 친구는 길이 나왔는데. 그 종이를 묶고 왔 어도 찝찝한 건 마찬가지더구나. 그 안에 무슨 장터처럼 있었는데 친구들이랑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좋았어. 또 방재교육체험도 했어. 우리나라에서는 좀 처럼 경험해 볼 수 없는 일이잖아? 일본만큼 지진이 잦은 것도 아니고. 고작 2 시간 정도 떨어진 땅인데도 이렇게 다른 세상을 사는 구나, 싶더라. 아쉬운 도 쿄를 뒤로하고 와카야마라는 지방으로 국내선을 타고 이동했지. 도쿄에서의 나 날도 좋았지만 여기 와카야마는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것 같아. 뭐랄까, 도시와 는 다른 정감이 있다고 할까? 어쨌든 그건 그렇고 내가 지금 어디 있게? 맞아, 난 지금 홈스테이 중이지! 일어회화를 잘 하지 못해서 걱정스러웠는데, 친절히 대해 주시고 또 영어, 몸짓으로 대충 의사소통은 되더라. 뭐, 제대로 된 대화는 하기 어렵지만. 내가 간 홈스테이 가정에서는 운동회를 하더라. 그래서 운동회 같이 가서 응원하고 오니기리도 먹고 즐거웠어. 우리나라 운동회와는 색다른 느 낌이었어. 그래도 그 조그만 아이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은 어느 나라나 참 보기 좋은 것 같아. 그리고 일본의 스파도 갔다 왔어. 전체적인 목욕을 다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의 스파는 온천을 축소시켜서 건물 안으로 들여보낸 것 같았어. 이리 저리 골라서 즐기는 재미도 있고. 그러 고서 일본에 와서는 꼭 초밥을 먹어봐야 한다면서 회전 초밥 집으로 저녁 먹으 러 가자고 하시더라고. 가서 맛있게 초밥도 먹고 오고, 스파도 갔다 오고, 맛있 는 디저트도 먹고, 대화도 하고 이리 저리 돌아다녀서 그런지 온몸이 노곤하다. 그렇지만 직접 일본 가정을 경험해서 그런지, 조금, 조금은 집이 그립기도 해. 2009년 9월 29일 _ 별이 빛나는 밤 어느새 시간이 다 지나고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구나. 오기 전엔 꽤 길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짧은 시간이었다는 걸 알았어. 여기 와서 사귄 친구들과도 헤어지기가 아쉽고. 마지막으로 홈스테이 패밀리들과 헤어질 때 정말 아쉬웠어. 내가 좀 더 일본어를 잘했다면 좋았을 걸. 평소에 공부를 좀 더 해 둘 걸 하고 후회했지. 내가 갔던 홈스테이 집에 내 또래의 아이가 있어서 같이 학교에 등교했어. 덕분에 기차도 타 보고 택시도 타 보고 일본의 교통수단 들을 경험해봤지. 하지만 사람들은 버스나 택시 보다는 기차나 지하철을 좀 더 이용하는 것 같아. 우리가 가는 학교는 세이린 고등학교인데 그 아이와 교실에 서 헤어지고 각자 들어가기로 배정되어 있는 교실로 들어갔어. 기대나 설렘 보

116 다는 걱정이 먼저 앞섰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말도 많이 걸어주고 재미있어서 다행이었어. 하지만 어느 학교나 지루한 수업은 꼭 있나봐. 일본어를 잘 못하는 나도 지루하고 좀 졸렸거든. 조는 아이들도 꽤 있었어. 그렇게 반 아이들과 수 다도 떨고 수업도 듣고 점심도 나눠먹었더니 꽤 정이 들었나봐. 헤어질 때 꽤 섭섭하더라. 반 아이들이랑 같이 기념사진도 찍고 이메일 주소도 주고받았어. 정말 학교 방문은 기대 이상이었지. 다른 아이들도 각자 들어간 반에서 만족했 는지 호텔로 돌아가는 내내 학교 얘기만 한 거 있지? 정말 기대 이상이었지. 그 리고 일본 칠기 체험을 했어. 우리나라 칠기하고는 또 다른 멋이 있더라고. 거 기 무늬가 다 마음에 들어서 고르기가 좀 힘들었지. 정말 그 색들이 어찌나 곱 던지. 또 내가 직접 만드는 거라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아. 돌아가면 내 작품 을 보여줄게. 또 애들이랑 같이 복숭아 잼도 만들었어. 생각보다 간단하더라고. 나중에 친구들끼리 앉아서 복숭아 잼을 넣고 만든 찐빵이랑 같이 먹었는데 달달 하니 맛있었어. 정말 지금 와서 가만가만 생각해보니 다양한 체험들을 많이 한 것 같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이 내게 좀 더 넓은 시야를 갖도록 해 주는 것 같아. 이 모든 일이 시간이 흐른 뒤의 나에겐 다 추억으로 남겠지? 이 아쉬운 밤을 친구들이랑 얘기하면서 보내려고 해. 너도 좋은 밤 보내

117 일본에 다녀와서 경 혜 현 평 창 고 등 학 교 우리가 일본에 대해 쉽게 가지는 편견들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한국인을 멸시 하는 일본인의 태도와, 본인의 나라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국민성. 나 역시도 그 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25년의 일제 식민지 하에 살아보진 않았지만, 역사에 대해 배우면서 그 당시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선생님께서 한 가지 좋은 제안을 해주셨고,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받아들였다. 물론, 내가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생각한다면 고민하고 거절했어야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가치관의 일부일 뿐, 배우는 학생으 로서의 가치관과는 다른 것이어서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그런 편견을 없앨 수 있었던 가장 놀랍고 큰 계기는 이 연수의 목적과 연수를 주체하는 단체 였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 연수를 주체하는 단체는 일 한 문화 교류 기금이 다. 설립 목적은 과거의 악화되었던 관계를 조금이라도 회복하고자 해서 학생 들의 연수를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가지고 있던 편견들이 눈 녹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편견들은 역사 속에서 온 것이지만, 내가 연수를 가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일본에 6일 동안 체류하면서 여러 가지 배운 것이 많다. 첫째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일본에 가서 첫째 날과 둘째 날은 도쿄에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서울과 같은 수도여서 규모 가 컸다. 길거리의 모습도 마치 서울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다 르다. 가장 눈에 띄게 다른 것은 쓰레기통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거리에 주워서 버릴 쓰레기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점가가 즐비하게 늘 어선 골목에도 쓰레기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본사람들이 깔끔하다는 이야기 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놀라웠다. 누군가가 주울 것이라고 생각해 서 쓰레기를 바닥에 버리는 한국인과는 다른 일본인들을 배워야, 환경이 깨끗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또 다른 깨끗한 환경은 바로 수많은 빌딩 속의 울창한 나무들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도 빌딩들 사이사이에 가로수들이 있지만,

118 도쿄는 한 종류의 가로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서있다. 높은 빌딩과 조화된 모습은 도시경관도 아름답게 해줄 뿐만 아니라 대 기오염도 줄여주고 있었다.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 이런 모습을 절실히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놀랍도록 잘 보존된 문화재도 선진국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는 지방인 와카야마에 가서도 느낀 것 이지만, 도심인 도쿄에서 보니 더 놀라웠다. 예를 하나 들자면, 지금 이 시간에 종묘나 경복궁을 찾는 한국인 들은 얼마나 될까?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을 보러 말이 다.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도쿄의 아사쿠사에 갔을 때, 많은 일본인들이 있어서 놀랐다. 물론 기도를 드리거나 절을 찾은 사람이 절반 정도 겠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과 문화재를 보러 오는 것 같았다. 그들은 역사 유적과 조상들의 흔적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보존이 잘 되어있는 것이 다. 그런 곳에 가기를 꺼려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조금은 부끄러웠고, 내 자신 도 같이 부끄러워졌다. 우리도 우리의 역사를 더 소중히 생각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는, 한국인이 아닌 이국인을 대하는 태도이다. 나를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의 일본의 세이린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것을 학수고대했다. 그 들에게 줄 명함을 만들고, 어떠한 이야기를 하게 될지 생각하며 말이다. 하지 만,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큰 법. 우리 측 학생들은 두 명이나 세 명씩 한 조로 나뉘어져 1A반부터 3E반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학교 측에서도 각 반 학생 들이 2명이나 3명씩 우리의 일일 안내 학생이 됐다. 나와 같은 조였던 학생과 나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대기실에서 5분 정도 기다리자, 우리조의 반인 2B 반에서 여학생 남학생이 1명씩 왔다. 우리는 어색하게 반으로 향했고,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학생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은, 환영 의 눈빛보다는 신기함과 낯설음의 눈빛이었다. 우리는 조금 당황했고, 맨 뒷자 리에 앉아서 누군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렸다(일본어는 서툴지만). 하지만 우 리의 기대와는 달리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그저 쳐다보 며 웃거나 몰래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한 태도는 학교 방문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고, 심지어 우리 측 학생들의 공연이 있을 때는 익숙지 않다 는 표현을 웃음으로 드러내었다. 난 매우 화가 났다. 그들도 우리의 방문에 대해 알고 있 었을 텐데 기대는커녕 반겨주는 것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입장을 바꿔 우리 학교에 외국인 학생이 온다면 우리도 똑같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

119 한국 학생들은 호기심에 가득 차 무슨 말이든 걸으려고 했을 것이다. 아직도 조 금은 남아있는 그 실망감에 대해서는 외국인을 대할 줄 아는 국제인의 태도를 배웠다. 정말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것을 몸소 느낀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6일간 일본에 지내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지금까지 말한 모 든 것을 종합할 수 있는, 바로 안목 이다. 이 안목 은 외국인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안목 이자,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를 비교할 수 있었던 안목, 그리고 나와 다른 세상을 알 수 있었던 안목 이다. 학교에서 사진으로만 보 던 곳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기억에 남는 체험을 했고, 많은 것을 배웠다. 언제 나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쇼킹하고 새로웠던 것들을 통 해 다양한 지식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머릿속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자 내가 살고 있는 현실보다 더 넓은 현실을 인정하는 안목 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아 기분이 정말 좋았다. 끝으로, 나는 이 소감문에 정말 내 소감 을 표현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 다. 일본에서 어디어디를 다녀왔는지 말하는 것 보다, 내가 어떤 것을 배우고 깨달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이러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신 국립 국제 교육원 담당자 분과, 학교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 사드린다

120 정( 情 )의 나라 일본 윤 소 라 철 원 여 자 고 등 학 교 일본에 가는 것이 확정된 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지만, 공항으로 떠나 기 전날 학교를 일찍 끝내고 짐을 싸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잠을 설쳤다. 덕분에 3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나 때문에 운전하셔야 하는 엄마 옆에서 말동무가 되어드리겠다는 다짐을 뒤로한 채 차에서 잠이 들고야 말 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언뜻 들려 깨어난 곳은 인천국제공항. 엄청난 크기에 기가 죽고 말았다. 예전에 서울에서 사셨다는 엄마도 처음 와보는 국제공항 앞에선 말을 아끼셨다. 그렇다. 나는 우리 가족 중에 최초로 국제선을 타는 것이었다. 맨 처음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 아이처럼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새삼 떠 올랐다.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로서 이번 연수를 멋지게 받아 보이겠다고 다짐 했다. 하지만 그 다짐도 잠시. 엄마는 다시 철원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난생 처 음 보는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 남겨졌다. 덜컥 겁이 났다. 엄마가 보고 싶고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평소 감정표현에 서툴러 뚱했던 엄마와의 작별인사에도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친구 들에게 말을 건넸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하나 둘 아이 들이 모이고 여권과 티켓을 건네받은 우리는 비행기를 타러갔다. 가슴이 뛰었 다. 잠깐 새 사귄 친구들과 나리타 공항에서 사진도 찍었다. 일본에 온 기쁨도 컸 지만 친구를 사귀었다는 기쁨도 그에 뒤지진 않았다. 100명의 아이들 중 가장 크고 많은 짐 가방을 든 나는 낑낑대며 버스에 올라탔다. 일본의 외무성. 건물 앞을 지키고 계신 여러 명의 건장한 남자 분들과 건물 안의 엄청난 압박감. 안 그래도 아직 어색한 친구들과의 사이를 어색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수준 높은 질문은 왠지 수 도권과 시골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었다. 일반인은 출입하기도 힘들다는 외무성 에서 그렇게 불편하게 시간을 보낸 후 우리는 도쿄타워에 가서 카레 돈까스를

121 먹고 Sheraton Miyako Hotel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엄 마 목소리를 듣자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집을 나와 있다 보니 잘못했던 일들 이 마구 스쳐가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엄마의 위로를 듣고 나서야 눈물 이 멈췄다. 옆에 모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꽤나 놀란 눈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구들과도 꽤 친해지게 되었다. 아침에 깨서 집이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실망한 나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아사쿠사로 향했다. 아사쿠사는 그냥 내가 생각하던 일본의 모습이었다. 신사, 길흉을 점치는 みくじ,물로 왼손 오른손을 씻은 뒤 입을 헹구는 きよみ까지... 처음 보는 것이라 놀랍긴 했지만 왠지 일본의 분위기가 풍겼다. 북적북적한 상 점가를 둘러본 후 이어진 점심식사. 최고층인 35층에서의 환영 중식회는 우리가 문화사절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오다이바의 동경항구관. 쓰레기는 지하로 바로 보내 태우도록 하고 그 열은 냉 난방을 위한 에너지로 쓰인다고 한다. 게다가 도시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전기선도 모두 지하에 묻었다고 한다. 전봇대가 하나도 없었다. 일본은 선진국 이었다. 20년이란 예상완공기간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도 속도에만 급 급해 할 것이 아니라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 다음은 일본 과학 미래관. 문과지만 과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무척이 나 설레었다. 엄청난 기술에도 놀랐지만,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어려운 것이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르는 과학을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무장해, 이것저것 체험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일본의 자유 의 여신상에 들른 후 비너스 포트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갔다. 꽤나 익숙해진 호텔이었는데 도쿄에서의 마지막 날이라니,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방재교육체험을 하러 갔다. 우리가 체험한 것은 지진-연기-화재진압 이었다. 우선 진도 5,6,7과 과거에 실제 있었던 지진의 체험은 엄청난 진동으로 나를 방 방 뛰게 만들었는데 내 꼴이 너무 우스워서 웃음이 계속 났다. 하지만 지진 체 험이 끝난 뒤 후쿠시마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나니 내가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사람들의 입장에선 언제 그런 지진이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것인데, 진지한 자세로 임해야 할 나는 웃고 있었으니 말이다. 죄송한 마음에 연기체험과 화재진압체험은 실제상황인 것처럼 열심히 했다. 그러고 나서 우린 와카야마행 비행기를 탔고 와카야마성에 도착했다. 과거 영주의 짚신까지 모셔 놓은 와카야마성의 섬세함이 놀라웠다

122 홈스테이 대면식을 한다기에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는 나의 가족들을 기 다리고 있었다. ゆうか와 할머님과의 첫 만남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일본어 도 현지인처럼 유창한 수준이 아니라 굉장히 집중해서 들어야만 했다. 대면식이 끝나고 1시간 40분 후에나 오는 버스 때문에 어디서 기다릴까를 고민하던 중 할 머님께서 어딘가에 가본 적이 있냐고 물으셨다. 어딘지를 못 들었는데 다시 여 쭤보기가 뭐해서 그냥 가본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열심히 걷다보니 어제 온 와카야마 성이었다. 결국 그냥 오르다가 한참 후에서야 말씀드리곤 내 려왔다. 우선 큰 백화점 같은 곳에 가서 오코노미야키와 오니기리를 먹었다. 일 본인들은 소식한다고 들었는데 아니었다. 나만 남겨서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었 다. 나갈 때가 되어서 내가 계산 하려고 하는데 할머니께서 됐다면서 자기가 사 주겠다고 하셔서 감사인사를 했더니 호탕하게 크게 웃으셨다.72세시지만 전혀 그래 보이지 않으셨다. 역시 일본은 장수의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우카가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냐고 해서 친구들 선물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Palm City로 데려갔다. 유우카는 그곳이 와카야마현에서 가장 큰 상점이라고 자 랑 아닌 자랑을 했다. 팜시티에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산 뒤 할머님 댁에 도착했 는데 4시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하셨다. 너 무 이른 게 아닌가 걱정하고 있었는데 준비가 다 끝나고 시계를 보니 6시30분이 었다. 엄청난 진수성찬이었다. 하지만 역시 일본인들은 소식하는 게 아니었다. 밥그릇에 엄청난 양을 퍼주신 할머님 덕분에 나는 배가 터질 듯이 빵빵해졌지만 같은 양을 먹은 유우카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마치 원래 그 정도 먹는다는 듯 이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마른걸까? 저녁식사 후 할머니께서 유우카의 핑크유카타를 입고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셔 서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은 뒤 사진을 찍었다. 할머님께서 옷도 다 입혀주시고 포즈까지 정해주셨다. 역시 유쾌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일 본의 전통게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고 같이 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모두 할머 님의 승리로 끝이 났다. 갑자기 쏟아져 오는 졸림에 최대한 빨리 씻고 방에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할머니께서 깨워주셨는데 안 그래도 정신없는 새벽에 일본어까지 들 리니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몽사몽으로 씻고 아침을 먹은 뒤 유우카와 세이린 고등학교로 떠나야 해서 할머님께 작별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눈물 을 글썽거리셨다. 깜짝 놀란 나는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똑바로 보려했지만 할머

123 니께선 급하게 뒤로 도시더니 다음에 일본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하셨다. 무거 운 마음을 뒤로 한 채 버스를 타러 유우카와 함께 뛰어갔다. 유우카의 집과 학교가 조금 먼 탓에 버스를 타고 전차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탄 뒤 몇 분 걸은 후에야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유우카는 버스에서 도 시락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원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하는데 왠지 내 탓인 것 같아 미안했다. 내가 들어가게 된 반은 2-C 이었다. 일본의 학교에 대해서는 이지메와 같은 무서운 소문을 많이 들어본 탓에 괜히 조금 겁에 질려 있었는데 도우미로 찾아 온 아이는 굉장히 착한 아이처럼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함께 교실에 도착한 후 조금 충격이었던 것은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떠들어도 선생님께서 제지하지 않으 신다는 것이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 주는 걸까? 서예수업, 한국어수업, 음악수업, 일본어수업 등 여러 수업이 있었지만 가장 즐거웠던 수업시간은 영어시간이었다. 각 반 수업을 듣는 시간이라 교실에 들어 가 있었더니 나만 덩그러니 한국인이었다. 그렇다보니 반에서 같이 웃고 떠들던 일본인 친구들이 영어 본문을 읽게 하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결국 나는 선 생님이 시키신 본문을 읽었고 친구들의 반응이 엄청 뜨거웠다. 다시 자리에 앉 은 후에도 이것저것 읽어보라고 시키는 탓에 조금 민망했지만 기분이 무척 좋았 다. 그리고 수업이 모두 끝난 후 반 친구들과 다 함께 사진을 찍고 나서 떠나려 고 하는데 친구들이 갑자기 편지를 주었다. 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얼 떨결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편지를 받았는데 너무 감동이었다. 그래서 나도 급하게 편지를 쓴 뒤 세이린 학교 선생님께 그 친구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드렸 다. 오히려 내가 먼저 그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은 것이 미안해졌다. 그렇 게 좋은 기분으로 세이린 학교를 떠나 도쿠가와 신사에 갔다. 모두들 다 친해진 때여서 다 같이 단체사진도 찍고 여태 함께 해주셨던 선생님들과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냥 학교에서 경주로 수학여행 온 분위기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사실이 슬펐다. 역시나 또 서양식 아침을 먹고 칠기체험을 하러갔다. 칠기라면 나전칠기처 럼 한국에도 있는 것이라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설명을 듣다보니 일본에 서가 아니면 해볼 수 없는 체험이라고 하신다. 색깔도 굉장히 예뻐서 마침 그 날 생신이셨던 엄마를 위한 선물로 드리기로 결정했다. 내가 그린 건 얼마 없었 지만 다 만들고 나니 왠지 뿌듯했다. 내가 만든 생신선물이라니

124 그러고 나서 우리는 여러 유적이 있는 마을을 살펴본 뒤 잼만들기 체험을 하 러갔다. 그냥 평범하게 딸기잼을 만들 줄 알았는데 특이하게 복숭아 잼이었다. 어떤 기자분이 우리가 만드는 모습을 찍고 계셔서 계속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있었다. 복숭아 잼이 만들어지는 동안 복숭아 찐빵을 만들었는데 굉장히 맛있었 다. 내가 만들었다는 생각에 더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그 후 우리는 절에 갈 예정이었는데 비가 내리는 바람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 약간의 쇼핑시간 이 주어졌고 바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던 샤브샤브 를 먹었다. 너무 아쉬웠다. 친구들과도 다들 친해졌고 이제 일본어도 일본 생활 도 익숙해져가고 있는데 말이다. 마지막 날이라 서로 꼭 연락하자며 친구들과 연락처도 교환했고 사진도 많 이 찍었다. 이번 연수에서 내가 느낀 것은 제목에서와 같이 일본사람들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란 것이다. 연수를 가기 전에 일본사람들은 겉과 속이 달라서 앞 에선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솔직히 조금 거부감도 있었고 나를 너무 보여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홈스테이와 세이린 학교에 다녀온 지금, 나의 생각은 많이 바뀌 었다. 단 하루였지만 나 때문에 눈물을 보이신 할머님과 단 몇 시간 동안 이야 기 했을 뿐인데 편지까지 써준 친구들까지 내가 지레 짐작했던 일본인의 모습과 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미안한 기분까지 들었다. 일주일동안 이렇게 한 나라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나 조차도 놀라웠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의 입장에서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한국 에 온 외국인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 감이 생긴 것 같다. 이번 연수를 통해 세계를 향한 눈을 넓힐 수 있었고, 일본 에 대한 인식이 좋게 바뀐 것 같아 기쁘다. 아직 일본에 대해 나쁜 인식을 가지 고 있는 주변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면서 훌훌 털어버리라 고 할 계획이다. 보람찬 일주일 이었다!

125 일본 다시보기 정 예 지 괴 산 고 등 학 교 많은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의 배웅을 받고 출발한 당일, 공항에 도착하자마 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아직은 어색해 서먹하게 인사를 하며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워낙 수줍 은 성격 때문에 그러지 못해 참 아쉬웠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오 래 걸리지 않았는데 외무성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같은 버스 에 탄 친구들 모두 다른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와 함께 일주일을 지내게 될 이화순 통역 선생님, 사카모토 상, 고이즈미 상 모 두 좋은 분이셨다.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한국과 눈에 띄게 다르지 않아서 여 기가 일본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사카모토상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일본과 우리의 다른 점이 참 많았다. 우선, 일본은 소방법 때문에 베란다의 창이 없고 모두 개방되어 있었다. 화 재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이웃집으로 쉽게 피신하기 위 해서 벽도 얇게 짓는다고 했다. 매년 발생하는 지진 때문에 여진으로 인한 화재 가 자주 발생하는데 그런 것을 대비하여 일본에서는 법까지 제정한다고 했다.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급하게 대처하는 식의 미흡한 대책 에 많은 것 같다. 이런 점을 고쳐서 우리도 예방법을 보강하는 정책이 시급히 나왔으면 한다. 여러 생각을 하며 외무성에 도착하게 되었다. 솔직히 연수를 오면서 무엇인가 배워간다는 것의 기쁨보다도 그저 일본에 간 다는 것이 더 설렜는데 외무성에서 조정관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아직 남아있는 갈등을 조금이라도 없 애기 위해 교류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전까지의 어리기만 했던 생각 이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간접적인 이야기보다 직접 체험하 면서 일본을 느끼고 알아가라는 뜻을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다음 날 연수를 임하게 되었 다

126 사실상 일본 연수의 첫날이었던 둘째날은 하루를 더 이상 알차게 보낼 수 없 을 만큼 바쁜 일정이었다. 일본의 인사동인 아사쿠사에 처음으로 갔는데 관세음 보살을 모시는 신사인 세소지와 도리이, 그리고 여러 기념품을 살 수 있는 나카 미세 거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아사쿠사를 오는 길에 통역관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어떤 형제 둘이 강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려 그 물체가 무엇인지 궁금 해 하던 차에 저명한 학자가 그것이 관세음보살임을 알아냈고 그 보살과 형제, 학자를 모시는 곳이 센소지라고 하셨다. 공사 중인 곳이 많아 자세히 보지 못했 지만 일본의 절과 신사문화를 현지에서 직접 체험해보고 일본의 공기를 맡아 볼 수 있어 좋기만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에서는 여러 신들을 믿고 있지만 종교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원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제일 필요한 조화정신을 일본은 그 옛날부터 누려왔을지도 모른다. 물론 천황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전 내의 신사를 없애던 적이 있다고도 했지만, 우리 나라도 그렇듯 종교 분쟁이 큰 논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는 많이 놀랐다. 이런 정신을 잘 계승한다면 한일 교류의 원활한 관계도 자연스레 이루어 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영 중식회를 마치고서는 동경 항구관과 일본과학 미래관을 가게 되었는데 두 곳 모두 문과인 내게도 과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곳이었다. 동경 항구관에서는 매립지인 오다이바의 구조와 과정을 보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일본의 항구는 관동 대지진과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좀 더 크게 발전했는데 우리나라 부산항의 콘테이너 취급량이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드는 반 면에 오다이바 항구는 일본의 다른 항구와 연합하여도 겨우 십 위권에 들 수 있 다고 말하는 가이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뿌듯했다. 항구에 대한 이야기를 다 듣고 오다이바의 매립 구조를 보게 되었는데 미래형 도시를 만들이 위해서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중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이 남달랐는데 쓰레기 처리 구멍이 따로 있어서 거기에 버리면 청소기처럼 흡수하여 한 곳에서 처리한다고 했다. 그 이유로 분리수거는 할 수 없는 단점이 있지만 미래형 도시라는 것을 생각해내고 계획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의 도 시로 만들어내는 일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세계 5위안에 드는 항구를 이어서 세계적인 미래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다음 날은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현인 야마나시라는 곳에 도착해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내가 홈스테이를 하게 된 집은 아주 넓고 멋진 곳이었는데 호스트 분이 혼자 사시는 할머니셨다. 이름은 타마에 상이라고 하셨는데 친구 분이 한류 스

127 타를 너무 좋아하셔서 한국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홈스테이를 함께 신청하셨다고 했다. 다행이 두 분 모두 친절하시고 유쾌하신 분 들이셔서 의사소통이 조금 불 편한 것을 빼고는 너무 좋았다. 두 분과 함께 미술관과 후르츠 공원에 갔었는데 어딘가를 갈 때마다 기념품점에 들러 우리에게 의미 있고 기념이 될 만한 선물 을 사주시려고 하셨다. 너무나도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두 분에게 자꾸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과한 선물은 해주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었는 데 일본어로 유창하게 대화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웠다. 한국에 돌아가 면 일본어부터 제대로 배워 두 분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식사를 하면서 두 분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사실 이야기를 했다기보다 무엇이 라도 전하려고 애썼다는 표현이 더 나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듣는 단어 몇 개로 또, 할 수 있는 말을 모아 힘들게 대화를 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우리가 아무 리 일본어를 못할지라도 참고 배려해주신다는 거였다.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어가며 해주시고 쉬운 영어 단어로 대신 설명해주시는 등 너무 사소한 것까지 신경써주셔서 감동을 받았다. 솔직히 두 분이 하시는 말씀 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친구 분인 사케테 상이 그랬듯 중요한 건 마음 이라고 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나 또한 친절한 행동으로 보답하려 했으니 두 분도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채시지 않았을까? 홈스테이 다음날은 학교 방문이 있었는데 내가 홈스테이 다음으로 기대해왔 던 일정이라 전날 잠을 설쳤다. 학교에 도착하니 요즘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신종 플루 때문에 우리를 보는 눈에 경계가 서려있긴 했지만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은 학교와 학생들을 보면서 일본과 우리의 교육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곳의 학생들과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수업 체험을 할 때 간간히 사귀었던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하면서 국제적인 교류를 위한 토대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사실 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했던 것이 메일 수신함 확인이었는데 정말로 일본인 친구에게 메일이 와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직은 일본어가 서툴러서 메일을 주고 받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해서 여러 친구와 사귈 수 있도 록 노력할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숨 쉬고 경험하고 문화를 느낄 수 있었던 일주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바쁜 일정 속에서 나는 타국의 문화와 전통

128 을 체험하면서 값진 배움을 얻었다. 매일 연수 일정보다도 빡빡한 학교 수업 속 에서 나는 너무도 작은 결과에만 만족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도 많 이 했다. 이번 연수를 통해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공부할 수도 있었지만 내게 제일 인상이 남는 것은 일본인의 따뜻한 정과 친절한 배려이다. 사실 연수 전에 는 일본에 대해 막연한 적개심과 분노를 가지고 있었는데 홈스테이와 학교 방문 을 통해서 내가 느끼고 있었던 것은 과거로 인한 지독한 편견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직도 우리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일본을 좋은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우리와 일본이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나간다면 지리적으로도 마음으로도 가까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런 교류에 일환으로 연수단에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홈스테이를 함께 갔던 친구 그리고 호스트 분과 약속한 것이 있는데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 일본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알게 되면 꼭 다시 호스트 가정으로 인 사를 드리러 가겠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다시 한국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게 되겠지만 일본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추억과 함께 우 리가 연수를 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겠다

129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 - 방일연수를 마치고 이 브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24일 새벽, 난생 처음 가보는 길다면 긴 6박 7일의 외국방문에 부푼 가슴을 안고 인천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매번 청주공항만 보다가 처음 인천공항을 보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생각도 들었고 오늘 일본으로 떠난다는 사실이 점 점 더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9시 30분이 다가오자 교복 입은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집합을 하기 시작했다. 인원점검을 하고 수속을 밟은 후 마침내 도쿄/나 리타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 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일본 땅을 밟을 때의 그 느낌은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설레고 짜릿했다. 중학교 때부 터 나에게 항상 마음속으로 가보고 싶은 나라 1위였던 일본에 내가 지금 있다는 사실도 잘 믿기지 않았다. 또 공항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판도 있고 그냥 한국의 공항과도 비슷해서 아직도 한국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공항을 떠나 차로 이 동하면서 본 바깥 풍경은 전처럼 한국어로 된 간판이 아닌 일본어로 된 간판이 었고 우리나라와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버스에 승하차하는 방향도 반대방향이었고 운전석도 차도도 우리나라와는 반대방향이어서 익숙하지 가 않았다. 그렇게 아직도 일본에 익숙해 지지 못한 채 선생님께서 안내해주시 는 말씀을 들으면서 고속도로를 통해 도쿄로 이동했다. 이동하면서 본 일본의 아파트들은 베란다에 유리창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일본의 소방법 때문에 그렇다고 하셨다. 이러한 이유를 듣고 지진의 위험이 높은 일본 은 한국보다 더 지진과 화재에 잘 대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 선생님께서 는 이동하면서 잠깐 스치듯 보이는 곳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셨다. 먼저 공업단지를 봤고 도쿄 디즈니랜드, 오다이바, 긴자 등 평소 알고만 있었던 곳들 을 잠깐이나마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신기했다. 이곳들을 지나 외무성에 도착 하여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 등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 외무성에서 직접 한 일교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좋은 말씀 을 많이 들었던 외무성을 떠나면서 '내가 이번 연수를 통해 한국대표로 외무성

130 에 온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다' 라는 생각도 했고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다시 와 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외무성을 떠나 저녁식사를 하러 도 쿄타워로 갔다. 저녁시간이라 불빛이 켜진 도쿄타워는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 씬 아름다웠다. 도쿄타워의 장관에 한 번 놀라고 생각보다 큰 크기에 한 번 더 놀랐다. 도쿄타워 구경을 끝마치고 호텔에 돌아가 그렇게 일본에서의 첫 날을 마쳤다. 둘째 날 아침,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바로 아사쿠사로 향했다. 아사쿠사에 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이 향 연기를 쐬던 것이었다. 향 연기를 쐬는 곳이 좋아진다고 해서 나도 머리를 대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사쿠사 센소지 에서부터 늘어진 상점가에서 먹을 것도 사고 구경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시간 이 다 되어 버스를 타고 카스미가세키 빌딩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이 날 점심은 특별히 방일연수단을 위한 환영 중식회였다. 우리를 환영해 주신다는 의 미에서도 좋았고 점심도 맛있었다. 환영 중식회를 마치고 동경 항구관에 도착했 다. 동경 항구관에서는 옛날부터 현재까지 동경만에서 수송의 변화와 무역에 관 해 들었다. 그리고 직접 동경만에서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을 봤는데 안내해주시 는 분께서 부산항은 항상 5위권 안에 들고 일본은 10위권정도라서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한국인으로서 참 뿌듯했다. 동경 항구관을 다 보고 일본 과학 미래관으로 갔다. 개인적으로 이과생인 내게 인상 깊은 장소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뇌 과학에 관한 내용이었다. 얼 마 전 뇌 과학에 관한 드라마를 보고 뇌 과학에 관한 궁금증이 생겼는데 직접 보고나니 아직 발전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래관을 보며 현재 일본의 발전된 과학기술에 대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 미래관 에는 한국어로 설명해주는 장치가 있어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미래 관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는데 그래서 여기는 나중에 일본 에 오면 다시 꼭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녁식사를 하러가는 길에 자유 의 여신상과 레인보우 브릿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비너스포트에서 저녁식사 를 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본 오다이바의 야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둘째 날의 일정도 무사히 끝마쳤다. 셋째 날은 홈스테이에 대한 기대 반 두려움 반 때문에 아침부터 친구들과 나 모두 설레기도 하고 와카야마로 가는 친구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하고 헤어져 서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아침엔 야마나시로 가는 친구들끼리 방재교육체험을

131 했다. 제일 먼저 소화기 사용법을 배우고 화재진압체험을 한 후 진도7의 지진체 험도 하고 마지막으로 미로에서 탈출하는 연기체험도 했다. 세 가지 체험을 하 며 일본은 잦은 지진 때문에 이렇게 철저하게 교육을 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한국도 이제 더 이상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니 이런 시설을 조금씩 늘려 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방재체험을 마치고 특별열차를 타고 야마나시현의 고 후 시에 도착하여 홈스테이 가족 분들과의 대면식을 했다. 나는 '코노 리사' 라 는 나와 같은 나이의 친구를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굉장히 떨려서 아무 이 야기도 할 수 없었는데 갈수록 편해져서 한국에 관한 이야기도 해주고 친해졌 다. 그 날 저녁 리사의 친구들과 시라네 고등학교를 구경하고 가족들과 함께 외 식을 했다. 회, 초밥, 덴푸라 등 일식을 먹었는데 일본에서 처음으로 먹는 일식 이었던 것 같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CD가게에 들러 구경을 하는데 생각보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많아서 깜짝 놀랐다. 나는 그 때 한류를 실감할 수 있었 다. 그리고 오는 길에 산에 올라가 야마나시의 야경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마침 그 날이 아버님의 생신이셔서 조촐한 생일파티를 한 후 이야기를 조금 나 누고 잠이 들었다. 호텔이 아닌 가정에서 맞는 넷째 날의 아침은 또 색달랐다. 하루밖에 지나 지 않았지만 아침을 함께 맞으니 리사와 가족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침식사 중에는 낫토 라는 일본음식이 있었는데 듣기로는 한국 사람들 입맛에 잘 맞지 않는다고 들었지만 먹어봤더니 맛있었다. 식사는 마치고 준비를 하고 포도밭으로 가서 내가 직접 포도를 땄다. 야마나시의 특산품인 포도를 직접 따 면서 먹으니 더 맛있었다. 포도 세 박스를 땄는데 어머님께서 한 박스는 직접 한국으로 보내주신다고 하시고 한 박스는 같이 연수 온 친구들을 위해 주신다고 하셔서 감사했다. 그 다음에 아버님께서 옷도 사주시고 선물도 사주셔서 계속 받기만 한 나는 너무 죄송스럽고도 감사했다. 마지막으로 리사와 스티커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처음 만났던 그 곳에서 리사와 앞으로도 계 속 연락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는데 하루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같이 있었지만 막상 헤어지려고 하니 너무 아쉽고 서운하고 슬퍼서 눈물이 났다. 다시 버스에 올라 친구들과 홈스테이에서 있던 일들을 얘기하다보니 어느 새 호텔에 도착했고 내일 있을 학교 방문에 관해 회의를 하고 일정을 마쳤다. 어느 덧 연수는 중반을 넘어 다섯 째 날이 되었고 기대되는 학교 방문을 하 는 날이 되었다. 나와 같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그런지

132 더 기대가 되었다. 우리는 오오츠키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처음 도착해서 본 외 관은 한국의 보통 고등학교와 비슷했지만 규모는 더 작았다. 환영회로 선생님들 의 인사 말씀을 듣고 학교소개 비디오를 본 후 본격적으로 수업을 들었다. 나는 영어와 음악 수업을 듣기로 되어있어서 첫 수업인 영어수업을 들으러 영어교실 로 갔다. 도착하니 멋진 외국인 선생님이 계셨다. 우리 한국 학생들이 먼저 도 착한 후 곧이어 일본 학생들이 도착해서 모두 16명 정도가 같은 수업을 들었다. 영어 시간에는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항상 하는 자기소개지만 할 때마 다 새로운 것 같았다. 3명의 친구가 자기소개 발표를 마친 후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나는 '미치에' 라는 친구와 커뮤니케이션 연습을 한 후 커뮤니케이션 발 표를 마쳤다. 수업 종이 친 후에도 우리는 한국 학생 일본 학생 가릴 것 없이 다 같이 모에'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음악수업을 받으러 갔다. 음악시간에는 누구라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비틀즈의 'let it be' 라는 노래를 배웠다. 비틀즈에 대해서 대략 배웠는데 비틀즈라는 이름만 알고 멤버 한 명 한 명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는데 음악수업을 통해 비 틀즈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처음엔 다 같이 부르고 그 다음엔 일본 학생 그 다음엔 한국 학생 이렇게 불렀는데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일본 학생들 이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비틀즈의 노래를 다 배운 후 일본 학생 들이 우리를 위해 준비했다는 '고향의 봄'을 들었다. 우리가 먼저 부른 후 일본 학생들이 불렀는데 어려운 발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방문을 위해 열 심히 연습해 준 것 같아 고마웠다. 그렇게 음악 수업 끝이 나고 회의실에서 점 달. 비틀다. 점달. 비고 나오는데 한 일본 학생이 나를 보며 해리포터를 닮았다 고 하며 사진. 찍자고 해서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점달. 다 비고 난 후 교류회를 위해 체육관으로 갔다. 교류회가 시작되고 제일 먼저 일본 측의 오케스트라를 봤다. 학생들의 오케스트라 라고는 믿을 이야기는 훌륭 한 연주였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끝나고 검도, 소림사무술도 봤다. 모두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의 특기발표였는데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측의 특기 발표가 끝이 나고 우리나라의 특기발표를 했다. 제일 먼저 가야금 연주를 했고 그 다음으로 한국무용 살풀이춤, 가야금 병창을 했다. 한국의 전통 음악, 무용 이지만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공연을 일본에서 보고 정말 잘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렇게 교류회를 마치고 호우토우라는 야마나시에서만 먹을 수 있는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내가 본 일본의 고등학교는 한국의 고등학

133 교와 정말 비슷했다. 생활에 대한 규제는 한국이 조금 더 심한 것 같았지만 수 업방식도 비슷했고 학생들의 생활양식도 비슷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학생들과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다섯 째 밤에도 잠이 들었다. 사실상 마지막 날인 여섯 째 날, 제일 먼저 후지산으로 갔다. 우리나라 사 람이 백두산을 볼 때의 자부심을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을 보며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의 대표적인 산인 후지산, 내가 직접 등산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시간관계 상 그건 불가능했고 오합목까지 버스로 올라가 구경하는 것 으로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그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 오합목에 올라가 내려다 본 후지산의 모습은 한국의 명산에서 보는 광경과는 또 다른 장 관이었다. 구름을 발아래 놓고 보는 그 느낌이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짜 릿하고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후지산에서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춥고 머리카 락도 휘날려서 여름에 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후지산의 신사도 구경 하고 이 곳 저 곳 가게도 구경하다보니 벌써 내려갈 시간이 다 되었다. 후지산 에 대해 '한 번도 올라가 보지 못한 바보가 있고, 두 번 올라가는 바보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두 번 올라가는 바보가 되더라도 다시 와서 꼭 내 힘으로 등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후지산을 내려와 잼을 만들러 갔다. 잼은 처음 만들어보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과정이 간단해서 집에서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을 챙겨서 사루보보를 만들 러 갔다. 사루보보는 어머니가 자녀의 건강과 다산을 기원하며 만드는 인형이 다. 사루보보를 보고 처음에는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바 느질하는 것부터 애를 먹어서 너무 어려웠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완 성한 후 그 근처를 돌아보았다. 다케다 신겐에 관한 것, 사계절에 관한 그림도 보았고 대나무로 된 기구도 타보았다. 구경을 마치고 얼음동굴로 갔다. 얼음동 굴로 가는 길에 자살 숲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는데 한 번 들어가면 어디로 나올 지 알 수 없어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셨다. 그만큼 울창하고 길도 없는 무서운 숲을 지나 얼음동굴에 도착했다. 얼음동굴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어 둡고 바닥도 미끄럽고 추워서 조심조심 걸으며 구경을 했다. 그리고 얼음동굴에 는 경사가 가파른 곳도 있고 천장이 낮은 곳도 있어서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면 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벌써 출구가 나와서 생각보다 짧은 길이에 조금 놀랐다. 또 오늘 갔던 곳들은 전부 후지산 근처여서 이동을 할 때

134 마다 큰 호수를 보며 이동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지막 관광지였던 얼음동굴 구 경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와서 마지막 회의를 했다. 연수기간동안 신경 많이 써 주신 현지 선생님들과의 아쉬운 작별인사와 같이 연수를 도와주신 한국의 선생 님들의 말씀을 듣고 6박 7일간의 친구들의 감상을 들었다. 친구들의 감상을 들 으니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나 의 연수에 대해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드디어 일곱 째 날 그리고 마지막 날, 오늘은 아무 일정이 없는 날이었다. 일본을 떠날 생각을 하니, 그리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든 친구들과 헤어질 생 각을 하니 아침부터 기운이 나질 않았다.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나리타공항으로 가는 차 안은 잠든 친구들로 조용했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후 선생님들과 작 별인사를 하는데 7일간 감사했던 마음에 눈물이 났다. 수속을 마친 후 1시 30 분, 마침내 비행기는 한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도 친구들끼리 아직 도 일본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며 입국했다. 곳곳에서 보이는 낯익은 한국간 판들이 반가웠고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도 반가웠다. 정든 친구들과도 헤어진 후 버스를 타고 청주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7일간의 연수를 통해 기본적인 예의, 음식에서부터 문화까지 보고 듣고 배 운 것이 많았다. 일단 그동안 배웠던 일본어를 실제로 사용했다는 것에서도 의 의가 있었다. 특히 홈스테이를 하면서 일본어를 많이 사용했었다. 그리고 목욕 후 물을 버리지 않는 것이나 신발을 벗은 후 문 쪽으로 돌려놓는 것처럼 일본 가정에서의 예의도 많이 배웠다. 음식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 일본 음식 이 전체적으로 달고 짜고 강한 맛이었지만 그것 또한 일본의 문화라는 것을 느 꼈고 일본에 있으면서 한 번도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았던 것도 좋은 경험이었 다.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것이 바로 일본에게 배워야 할 질서와 인사라는 것이다. 일본연수를 다녀온 내게 교장선생님께서도 이러한 말씀을 해 주셨다. 야마나시에서는 거리에 휴지조각 하나 떨어진 것을 못 본 것 같다. 그 리고 리사에게 한국에서는 쓰레기를 길거리에 그냥 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 기 해줬더니 리사가 굉장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 홈스테이 첫 날 외식을 끝 낸 후 직접 가게 주인 분을 찾아가서 '잘 먹었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 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모습을 보고 내가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만큼 일본 인들이 한국인들과는 인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고 이것만큼은 정말 한국이 선

135 진국이 되기 위해 꼭 본받아야할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일본에 오기 전에 그냥 들었던 이야기와 내가 직접 일본에 와서 체험한 것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고, 그저 '~하더라' 라는 말 뿐 이 아닌 내가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이미 지나가서 되돌릴 수 없는 역사라는 틀 안에서는 사실 일본이라는 나라 를 좋게 볼 수만은 없는 것이 바로 한국 사람이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현재의 일본은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고, 우리가 배울 점도 많이 있는 나라라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번 연수 기간 7일간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헤어진다는 것 이 슬프고 눈물이 나는 일이지만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고 홈스테이에서 만난 리사와 가족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그리고 같이 연수를 했던 선생님과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싶다. 그것이 연수의 목 적이자 진정한 의미의 한일 교류이며 이번 연수를 통해 얻은 또 하나의 선물이 라고 생각한다. 7일간 만난 모든 사람들, 내가 느낀 감정들, 보고 듣고 배운 지식들은 전부 이 보고서의 제목처럼 나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되었다

136 고교생 방일 연수를 다녀와서 유 지 은 충 남 예 술 고 등 학 교 내가 일본으로 방일 연수를 다녀온 것에 대해 연수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하였 을 때 그동안 일본에서 있었던 모든 연수를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기억을 떠올려서 나에게 있었던 많은 경험들을 적어보도록 하겠다. 9월 24일 인천공항을 가기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하고 집 밖을 나섰다. 어 머니의 배웅을 받으며 아직은 실감나지 않는 마음으로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 하였다. 인천공항 가는 표를 끊고 리무진 버스에 타서 가는 동안 잘 다녀오라는 친구들의 문자가 오기도 하고 선생님의 진심어린 걱정과 격려가 담긴 문자가 오 기도 하였다. 많은 문자와 연락을 받고 나서야 아 정말 가는구나. 하는 생각 이 들었다. 완전히 실감이 나진 않았지만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긴장한 탓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일본을 같이 가는 친구에게 문자를 하였다. 나는 인천공항을 처음 가본 것이기 때문에 그 친구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M카 운터 벤치에 도착할 수 있었다. 9시 30분이 되어서 인원체크를 하고 신종인플루 엔자에 걸리지 않기 위해 온도를 재고 여권을 받고 탑승 수속절차를 밟았다. 나 는 특기생 이였기 때문에 악기와 트렁크를 따로 보내야 했고 그때 이렇게 해 야 하는 거구나.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비 행기에 탑승을 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신기해서 비행기 안에서의 기분을 만끽하다가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벌써 나 리타공항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리타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6박 7일 동안 우리를 지도해주실 일본 인솔선생님 2분과 우리 측 선생님 2분과 함께 차를 타고 외무성을 방문하게 되었다. 외무성 이라는 곳이 일반인은 출 입할 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학생의 신분을 가지고 있는 우리가 외무성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큰 자부심이 들었는 지 모른다. 사실 특기생으로 일본 방일 연수를 오게 되었다지만 처음부터 우리

137 에게 이런 대접을 해 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쁠 따름 이였다. 외무성 에 들어가 일본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과 궁금증들을 해소할 시간이 주어졌었는 데 이때 내 또래 아이들의 질문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나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부분들까지 진지하게 질문해 가며 답변을 듣는 모습을 보고 같은 나라의 사람이고 같은 나이를 가진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많은 생각과 폭 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감명 받았고 나 또한 저런 친구들을 본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도쿄타워로 이동해 실내에서 저녁식사를 하였 는데 우리가 즐겨 먹는 카레와 돈가스를 겸비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일본음 식 맛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였다. 일본에 와서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 카레와 돈 가스를 겸비한 음식 이였는데 우리나라와 별반 다를 게 없었고 매우 맛있었다. 디저트도 너무 달콤하고 좋았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식으로 인사도 하였는데 젓 가락을 들기 전에 두 손을 모아 이따다끼마스 라며 잘 먹겠다는 표현을 한 뒤 식사를 시작하였다. 다 먹고 난 뒤에는 고치소우사마데시다 라며 잘 먹었 다는 표현을 하였다. 그렇게 일본을 온 첫 날의 하루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 다. 호텔에 도착하여 전체 미팅을 하고 앞으로 남은 6일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에 관한 이야기와 한국인을 대표하여 일본에 온 학생으로서의 갖춰 야 할 덕목 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숙소로 올라와 짐을 풀고 오늘 하루 동안 있었던 일본에서의 경험을 일지에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 하였다. 내가 일지에 썼었던 글들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찾아내는 솜씨를 발휘하지 못 했지만 부족하게나마 그날 하루에 있었던 경험을 적어놓았다. 지금에서야 기억 나는 것은 외무성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마음으로는 먼 나라 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때 그 말을 들으면서 마음 한곳이 찡하기도 하고 너무 정곡을 찌른 것 같아 소름이 쫙 돋기도 하였다. 마음으로 빨리 가까워질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9월 25일 6시 30분에 기상을 하였다. 아침을 먹고 호텔을 출발해 아사쿠사로 향하였다. 일본의 절을 가게 되었는데 대학을 붙기 위해 기도를 하러 가는 사람 들도 많고 일본의 기념품을 많이 파는 곳이라서 유명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여기서 많은 기념품을 샀고 향을 두는 터 같은 곳이 있었는데 그 향을 자 신이 원하는 부위에 쐬면 그 부위가 좋아진다는 설이 있어서 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목을 많이 쐬었다. 다른 아이들은 머리를 많이 쐬었고 무용을 하는 친구는 몸 전체를 쐬었다. 일본의 절의 형태를 보니 외형적으로는 우리나

138 라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의미나 내적인 면에서는 약간씩 차이를 보였다. 환영 중식 회를 하고 동경 항구 관에 가서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니까 일본이 왜 선진국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도쿄임해부도심을 알고 난 뒤 에는 일본에 큰 감동을 받았다. 왜 선진국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 다. 도쿄임해부도심을 보면서 전망이 탁 트인 게 너무 보기 좋았고 일본이 활성 화 돼있는 모습에 내가 다 뿌듯했다. 집합 후 일본 과학 미래 관으로 이동했다. 우리의 신비한 인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사가 절로 나왔고 미래관이라는 말 이 너무 적절하게 와 닿았다. 여러 군대를 둘러보며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너무 신비롭고 과학적인 면모를 많이 보여주고 있었다. 여러 군대를 둘러 보고 나서 시간이 다 되어 집합 후 이동을 하였다. 식사는 여성을 위한 비너스 포트에 가서 구경도 하고 식사도 하였다. 이번 식사는 지중해 뷔페에서 먹었는 데 너무 맛있었고 제일 기억에 남는 음식이 퐁듀 였다. 색다른 맛이었고 너 무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비너스 포트를 구경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호텔에 도 착해 일찍 씻고 쉬었다. 이 날 하루는 한 것도 많고 본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았다. 여러 분야에서 나에게 많은 공부를 하게 해준 하루였다. 9월 26일 토요일 6시 30분에 기상을 하여서 방재교육체험을 하기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3가지 체험을 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그 중 연기체험은 내 목에 이상이 올까봐 하지 못하고 지진 체험과 실제로 불이 났을 때를 대비 해 수화기 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체험을 하였다. 둘 다 너무 유익하고 재미있 는 수업이었고 연기체험은 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공부 가 되어서 좋았다. 일본이 지진으로 위험한 지역이니 이런 체험은 일본인들에게 도 너무 유익한 체험이 될 것이고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는 것에 대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일본으로 연수를 하러 온 우리에게 꼭 필수적인 부분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3가지 체험이 다 끝난 뒤 야마나 시 현으로 이동하였다. 홈스테이를 하기 위해서다. 내가 일본에 와서 제일 걱정 되었던 순간이 바로 이순간이다. 홈스테이가 나에게 얼마나 떨리고 무서운 존재 였는지 모른다. 나와 함께 할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기 전에 나와 함께 할 가 족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부터 시작해 내가 과연 정말 잘 할 수 있을 까. 까지 너무 많은 생각과 궁금증을 머리에 가지고 있어서 머리 안이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몇 분 뒤 나와 함께 할 홈스테이 부부를 만나고 나와 함께 지낼 친구 한명과 함께 이동을 하였다. 처음 들린 곳이 한국 연예인들이

139 붙어있는 거울, 양말, 손수건 등의 물건들을 파는 상가였는데 아마도 우리가 한 국인이다 보니 일본에 있는 한국의 물건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 다. 이 점에서 이 분들이 우릴 배려하고 있구나. 라는 것 을 느꼈고 한 층 가까워 질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분들 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했다. 처음 집을 보 았을 때는 굉장히 특이했다. 왜냐하면 집 안에 물건들이 모두 서양식 이였기 때 문이다. 그 이유는 할아버지는 일본인이시고 할머니는 미국인이셨기 때문에 모 두 아메리카에서 수입해 오셨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영어와 일본어가 모두 부 족하지만 내 룸메이트인 예지는 영어가 상이여서 일본어를 못해도 영어로 대화 를 해서 할머니가 일본어로 다시 할아버지께 알려드리고 예지가 한국말로 내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번거롭긴 하였지만 대화에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분 뒤에 원어민 선생님 3분이 오셨다. 처음엔 나도 누군가 했는데 할머니께서 외국인이시다 보니 알게 되신 분들인 것 같았다. 우리도 오고 그래서 할머니께 서는 우리가 심심할까봐 그래도 젊은 층의 사람들을 부른 듯 해 보였다. 우린 함께 식사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였다. 대화가 안 통해도 몸짓 손짓 발짓 모든 제스처를 다 해 보이니 알아듣고 또 유쾌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그날 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냈다. 다음날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밀레의 미술관 에 가서 그림을 감상을 하였고 또 점심시간이 되어서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주 가시는 라면식당에 가서 라면과 김치 볶음밥을 먹었다. 주인집 아줌마 아저씨께 서 우리가 한국인인 걸 알아차리시고는 김치볶음밥을 해주셨는데 매우 맛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너무 컸다. 내가 일본에 와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이다. 그리 고 차를 타고 산으로 이동해서 경치를 마음껏 즐기며 그 산에 유명한 포도 아이 스크림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매 시간마다 주시는 선물을 감사히 받으며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처음 만났던 현 청으로 가는데 그때부터 마음이 너무 찡 해왔다. 결국 헤어질 때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지금도 보고 싶은 마마와 파 파를 난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별의 순간이 내 마음에 너무 컸었는지 나머 지 하루는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그 날 하루 밤까지 눈물을 흘 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자니 코끝이 찡해진다. 지금은 시간이 지나서 메일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 다시 한 번 찾아 뵐 수 있었으면 좋겠 다. 이 생각을 하니 내가 꼭 성공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내 홈스테 이 부모님이 건강히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항상 행복한 일도 가득했으면 좋겠 다

140 9월 28일 월요일 오늘도 어김없이 6시 30분에 기상을 해 아침 식사를 하고 오 늘은 학교를 방문하는 날이라서 공연준비도 한창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분주했는지 모른다. 학교에서의 시간은 너무 빨 랐다. 도착 시와 함께 대면식을 하고 수업체험을 하였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시 간이 짧게만 느껴져 아쉬웠다. 그리고 교류회를 할 때 한복을 입고 멋진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많은 다짐을 하고 무대에 섰을 때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자신감이 나와서 너무나 좋았다. 그래도 일본 학생들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매우 뿌듯하였다. 내가 일본에 온 순간에 제일 뿌듯한 순간이다. 목적도 이것이 지만 막상 달성하고 나니 기분이 말로 표현이 안 되었다. 그렇게 나에겐 제일 큰 행사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한 후 이제 일본에 있을 하루하루 가 점점 줄어간다는 생각과 허탈함에 일찍 씻고 누워서 많은 생각을 하였다. 9월 29일 화요일 이 날은 후지 산을 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매우 설 레었다. 후지 산으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날씨는 매우 어두웠다. 비도 조금씩 왔고 괜스레 날씨 걱정 때문에 설레긴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들긴 했었는데 막 상 정상에 도착하니 날씨가 어두워도 멋진 풍경은 다 보였다. 정말 입이 다물어 질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계속 사진기를 들이대며 사진만 연방 찍은 것 같다. 너무 멋진 광경 이였고 나에게 눈물이 날 만큼 소중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후지 산은 날씨변동이 심하다고 하였다. 그날 바람도 매우 많이 불었었고 정말 추웠 기 때문에 밖에 오래 있지는 못하였다. 후지 산을 마음껏 구경한 뒤 집합 후 잼 을 만들러 가기 위해 이동을 하였다. 잼을 만드는 곳에 도착해 잼을 만들 때도 너무나 색다르고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또 이 잼을 준다고 하여서 더욱 정성껏 만들었다. 잼을 다 만들고 나서 집합 후 야마나시 현에 있는 사이코이야시노사 토 넨바에 가서 예쁜 핸드폰 고리를 만들었다. 그 핸드폰 고리의 의미는 악마를 물리쳐준다는 뜻이 있는데 일본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존재로 쓰이고 있는 것 같 았다. 또 일본의 한 부분을 공부하고 온 기분이 들어 뿌듯하였고 그 핸드폰 고 리를 예쁘게 만들어서 어머니께 선물하였다. 여기서는 풍경이 너무 멋졌고 후지 산 바로 아래였기 때문에 광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자연에 흠뻑 심취해서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음동굴에 가서 마음껏 시원함을 맛보고 왔다. 그 옆에는 주카이 나무바다 라는 산이 있었는데 일명 자살 산 으로 불린다고 한다. 거기에 들어가게 되면 나무길이도 비슷하고 길도 따로 나아 있지 않아서 절대 다시 나올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무서운 체험까지 이날

141 하루 동안 너무 많은 경험을 하였던 것 같다. 마지막 일본에서의 하루라 그런지 정말 빡빡하고 신기한 경험이 많은 하루였던 것 같다. 저녁식사도 보통 식사와 달랐다. 물론 지난 4일 동안에도 정말 맛있고 이색적인 음식을 많이 맛볼 수 있 었지만 이날 가는 식당은 뷔페였는데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라면, 우동, 스시, 아이스크림, 삼겹살, 갈비, 주물 럭, 조개, 새우, 조각 케익, 각종 음료수, 과 일, 타코야끼 까지 이밖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들도 매우 많았고 정말 배부 르게 먹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제일 좋았던 것은 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치를 그날 한포기는 먹은 것 같다. 그렇게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후 숙소에 들어와 그동안 있었던 일본에 대한 느낀 점이나 일본에 와서 바뀐 생각 등을 공 유하며 단별 회의를 마쳤고 일본에 함께 했던 22명의 친구들과 롤링 페이퍼를 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 이렇게 뜻 깊고 소중했던 6일의 밤이 마무리 되었고 이날 밤에 많은 생각을 하고 깨달음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깨달음이라 하면 내가 앞으로 커서 더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또 내가 이렇게 받은 만큼 나도 커서 많이 베풀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있어야 되겠다. 라는 다짐을 하였 다. 이런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신 분들께 항상 감사하고 또 감 사하게 생각한다. 9월 30일 수요일 일본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오늘은 전보다 한 시간 빠른 5 시 30분에 기상을 하여서 6시 50분에 식사를 시작하고 7시 30에 나리타공항으로 우리를 데려다 줄 버스에 짐을 싫고 아쉬운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벌써부터 헤어짐을 생각하니 서운하고 섭섭한 부분이 정말 많았다. 3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리타공항에 도착해 짐을 부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별하는 순간에 일 본 선생님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 마음이 울컥 해 눈물을 보이고 났던 뒤라 마음이 축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비행기 안에선 눈을 감고 많은 생각을 하였고 인천 공항에 도착해 일주일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선생님과 이별을 하였다. 일주일동안에 길고도 짧았던 일본여행에 대해 너무나 많은 감사함과 뿌듯함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일본 연수를 다녀온 학생으로써의 명예와 자부심을 잃지 않고 항상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

142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다녀와서 김 태 영 서 산 여 자 고 등 학 교 사실 이번 연수를 결정하게 되기까지 중간고사 결시와 신종 플루의 유행이 라는 악조건들이 많았지만 연수를 통해 얻게 될 것들이 다른 어떤 것들 보다 더 클 것이라는 믿음 가운데 연수를 결정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사실로 돌아 왔다. 24일 아침 공항에서 처음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어색하기만 했고 7일간 같이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모두 다 착하고 친절했고 조금만 이야기를 나누 자 우리는 곧 친해지게 되었다. 일본의 수도 도쿄에 도착하고 나서의 우리의 첫 일정은 외무성 방문이었다. 외무성은 그냥 보통 건물과 다를 바 없었는데 우리 는 회의실로 보이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서 아시아 지역 조정 관계자께서 유창한 한국말로 환영인사를 해주셨다. 선물교환식과 질의응답시간도 함께 가졌 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질문이 나와서 많이 놀랐었다. 개인적인 질문에서부터 재 일동포문제까지 질문이 나왔다. 사실 방일연수단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관광을 간다는 안일한 생각이 있었는데 이렇게 직접 관계자께서 방일연수의 목적과 취 지를 설명해주시니 나의 안일했던 생각이 반성되었다. 그리고 방일연수단의 한 국대표로써 마음가짐을 다시 다잡게 되었다. 방문을 마치고 도쿄타워에서 석식 을 하고 잠깐 상가를 관광 했는데 놀랐던 것이 손님이 있는데도 시간이 되면 미 련 없이 문을 닫고 나간다는 것이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서 문화의 차이 를 느끼게 되었다. 저녁미팅을 끝나고 배정받은 방에 갔을 때 좋은 방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굉장히 좋은 호텔에서 좋은 방을 쓰는 것을 통해 우리가 정 말 얼마나 대접받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둘째 날의 일정은 아사쿠사 신사에서 시작했다 아사쿠사 신사는 굉장히 큰 신사였는데 신사도 신사였지만 쭉 늘여선 상가도 굉장히 큰 볼거리였다. 그곳에 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두부맛과 장미맛 등 특이한 맛들이 많아 일본인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오미구지도 체험해봤는데 대흉이 나와 서 신사에 묶어두고 나왔다. 아사쿠사에서는 일본인의 종교생활과 활기찬 모습

143 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적절한 장소였다. 중식은 일한문화교류기금이 제공해준 중식을 먹었다. 그 뒤 바다를 메워서 많은 인공 매립섬인 오다이바로 향했다. 그곳에서 인공섬 계획인 임해부도심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굉장히 많이 놀라 고 일본인들의 계획성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시안 적인 시아를 가진 우 리나라의 정책과는 달리 일본의 정책은 수십 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지는데 인공 섬 계획도 그중하나이다. 수심이 얕은 도쿄만의 특징을 이용해서 총 4만 명의 인구수용을 목표로 20년으로 계획된 임해부도심계획은 미래까지 생각한 친환경 계획이다. 케이블 같은 선을 지하에 파묻어 깔끔한 외관을 자랑하고 거기에다 쓰레기를 태운 열로 난방을 하고 물도 정화해서 재사용하는 시스템은 정말 기발 한 아이디어였다. 또한 건물높이도 제한하고 간판도 제한하는 등 도시미관을 위 해 꼼꼼히 노력하는 모습을 봤을 때 왜 도쿄가 세계적인 대도시임에도 불과하고 이렇게 깨끗한 도시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서울과는 비교도 안 되게 공기가 깨끗했고 도시 곳곳에 있는 숲들이 도시미관을 더하고 있었다. 높은 건물과 탁한 공기가 있는 서울과는 반대의 모습이었다. 그 다음 미래 과학관에 갔다. 선진 일본의 기술이 집약되어있는 곳으로서 직접 체 험해 볼 수 있도록 조성해놓아서 더욱 재미있었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ASIMO 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미래의 기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으로 밥을 먹기 전에 자유의 여신상을 잠깐 들렸다. 이곳은 프랑스가 미국에게 자유의 여신상을 주기 전에 1년 정도 전시를 해놓았던 곳으로 미국으로 주고 나 서 조그마한 모형을 세워놓은 곳이다. 이렇게 미국의 유명한 상징물조차도 이곳 일본에 와서는 오다이바의 새로운 명소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셋째 날 정들었던 1팀의 룸메이트와 헤어지고 우리가 향한 곳은 방재센터였 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3개의 판이 경계에 있는 지진국가이다. 따라서 지진에 대한 대책이 정말 체계적으로 잘 잡혀있는 나라이다. 우리가 체험했던 것은 지진체험, 연기체험, 소화기체험과 그리고 붕대 감는 법도 배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베 대 지진을 체험해 본 것인데 정말 앉아있기도 힘든 그 진동에 우리는 웃으면서 체험했지만 아마 실제 상황이었다면 정말 살 떨리는 경 험이었을 것이다. 그 뒤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여 간사이 공항으로 갔다. 간사이 공항역시 매립지 위에 건설되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가라앉는 중이라고 한다. 그 뒤 약 40분을 달려서 우리가 머물 와카야먀현에 도착했다. 다음으로 도요토미 히데나가가 1585년 축조했다고 알려지는 와카야마성을 관광했다. 이동하는데 기

144 운을 소비해서 그런지 계단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지만 다 오르고 난 뒤 산위에 서 느끼는 풍경은 예술이었다. 이 날 저녁을 마치고 내일 있을 홈스테이에 대한 긴장으로 일어를 공부하다 잠이 들었다. 넷째 날 친구들의 관심사는 오직 홈스테이의 호스트패밀리에 있었다. 나의 호스트패밀리는 안도가였는데 아버지가 의사라고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대면식 을 진행했는데 진행하는 내내 나의 가족을 찾아보느라 바빴다. 드디어 1:1만남 이 있고 내 이름을 제일 처음 불렀는데 정말 자상하게 생기는 아주머니와 예쁜 꼬마아이가 같이 일어났다. 내가 긴장해 있는 줄 아셨는지 능숙하게 먼저 한국 말로 인사를 건네주셨다. 알고 보니 현빈을 좋아하는 아줌마 팬으로 2년 동안 한국말을 배우셨다고 한다. 우리는 아줌마끼리 친한 사이여서 같은 방일연수단 인 도희와 또 호스트패밀리인 아줌마와 같이 다녔는데 마트와 100엔샵에서 쇼핑 을 하고 회전 초밥집에서 밥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회전초밥집은 가본적이 없었 기 때문에 굉장히 신기했고 맛도 있었다. 다 먹은 뒤에는 아줌마집에 가서 도희 와 기모노를 입어봤는데 혼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과는 다르게 굉장히 복잡했 다. 입는 법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교실이 따로 있다고 한다. 대략 입는데 30분 정도 걸렸는데 허리부분을 조여서 좀 답답한 감이 있었고 다리고 좁게 걸어야 했기 때문에 넘어질 뻔도 하였다. 기모노는 굉장히 예쁜 옷이었지만 실용성 면 에서는 우리의 한복이 앞서는 것 같다. 또 유쨩이 트럼프를 가지고 와서 한국의 원카드게임을 가르쳐 드려서 같이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다른 식구들 까지 모여서 각 집에서 음식 한가지씩을 준비해서 나와 도희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한 아주머니께서는 2pm의 again&again의 춤을 추셨는데 다시 한 번 우 리나라의 한류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다 먹은 뒤에는 일본의 게임과 한국의 게 임을 번갈아가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후루츠 바스켓이나 얼음땡 같은 놀이들을 했는데 특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달마상이 코롱다 같은 게임은 너무나도 비슷해서 놀랐다. 집에 돌아와서 한국의 야심만만을 보며 재미있게 놀다가 11시 에 잠들었다. 다음날은 학교방문이 있는 날이었다. 아주머니께서 친절하게 세이엔 고등학 교까지 데려다주시고 아쉬운 이별을 하였다. 먼저 반으로 가서 간단한 조례를 먼저 한 뒤에 나왔는데 내가 일어를 못해서 그런지 다들 무시하고 말도 걸지 않 았다. 체육관에서 장기자랑을 했는데 판소리병창을 할 때는 다들 어색해서 그런 지 일본학생들 중에 웃는 학생들도 많았다. 다시 반으로 들어가서 수업참관을

145 하고 같이 점심도 먹으면서 보냈는데 다른 반 여학생들은 적극적으로 말을 걸으 며 친해지려고 노력했다는데 내 반은 3학년이라서 더 그런지 나를 무시했다. 그 래서 좀 속상했지만 꾹 참고 생활했다. 다른 반에 들어갔던 친구는 속상한 일을 당해서 울기 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지 홈스테이와는 다르게 학교방문은 별로였 고 별로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 되진 못했다. 그래서 일본의 고등학교의 모습은 충분히 체험하고 왔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4시정도면 수업이 끝나고 클럽활동을 하는데 밴드나 기악부 또는 요트부 같은 다양한 활동이 있어서 학교 생활 중에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8시에 가서 10시까지 학교에 틀 어박혀 있어야하는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생활과는 완전 다른 풍경이었다. 공부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일본의 고등학생들이 부러웠다. 학교방 문이 끝나고 도쿠가와의 자손을 모셔놓은 신사에 방문했는데 계단을 오르내리느 라고 너무 더웠다. 그래서 에어콘을 틀어줬으면 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탄소 방 출량을 줄이느라고 불필요한 에어콘은 틀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 번 감탄했다. 환경을 생각해서 내가 덥더라고 조금만 참는 미덕을 일본사람들은 실 천하고 있던 것이다. 6일째에는 주로 체험위주로 활동했다. 칠기체험이나 마을을 돌아보고 잼 체 험 등을 했다. 아쉽게도 비가 와서 마지막일정인 절 방문은 취소가 되었다. 하 지만 잼 체험은 정말 재미있게 했는데 선생님께서 우리조의 잼이 제일 맛있게 됐다고 칭찬도 해주셨다. 또한 지역 신문사에서 나와서 촬영과 인터뷰를 해갔는 데 기분탓인지 몰라도 우리조의 사진이 제일 많이 찍힌 것 같았다. 아마 다음날 신문에 우리 조 친구들이 실렸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밤이라서 그런지 내일 헤어져야 한다는 아쉬움에 친구들 방에서 밤까지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마지막 날에 우리는 모두 아쉬운 마음에 공항에서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인 천공항에 도착하고 헤어지기까지 정말 아쉬웠고 모두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며 계속연락하자고 약속했다. 이번 연수를 하면서 느꼈었던 일본인들의 장점중 하나는 바로 경쟁력이었다.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놓치기 쉬운 세세한 것에서 상품성을 발견하여 상품화하는 것 그것이 일본인들의 장점 중 하나였다. 와카야마의 역 종착점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사는데 일본인은 이 고양이에게 역장의 직책을 주어 상품화하여 관광명 소로 개발했다. 우리나라에도 역에 고양이는 살겠지만 이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 했을 것이다. 또 하나 느낀 것은 남의 것이라고 자신의 것 즉 일본화 시키는 응

146 용력이다. 앞서 말했던 자유의 여신상이나 카레 등 외국의 것을 일본적으로 재 해석하여 일본의 것으로 재탄생 시키는 것이야 말로 일본인들이 가진 장점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일본에 대해 깊은 과거사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고 나 또한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짧다면 짧은 7일간의 일정을 통해 변화 되었다. 내가 만났던 일 본사람들은 누구나 예의바르고 또한 친절하였다. 또한 한류의 영향으로 나보다 도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연예인에 대해 잘 알았고 이웃나라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알고 싶어 했다. 나의 호스트패밀리인 안도상만 하더라도 나에게 한국말 을 좀 더 알고 싶어 하면서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현재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미래세대의 주역인 우리들 이 앞장서서 한일의 관계를 개선시킨다면 우리는 정말 이웃나라로서 굉장히 탄 탄한 관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수를 통해 누군가가 일본이 어떤 나 라였냐고 물으면 나는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나라였다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이번 일정 하나하나 정말 느낀 점이 많았던 프로그램이었고 정말 이러한 좋은 기회에 내가 참가하게 되어서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다

147 1주일동안 본 일본 함 송 연 충남외국어고등학교 저는 이번에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청소년 방일단으로 발탁되어 9월 24일, 일 본에 다녀왔습니다. 일본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방문해서 인지 호텔, 식사, 프 로그램 등에서 상당히 대접받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좋은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일본이 국가 이미지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 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이 점은 방문하게 된 관광지에서도 많이 느낀 것인데, 일본의 관광지는 우리 나라의 관광지에 비해서 전체적으로 굉장히 깔끔한 이미지를 주었습니다. 오래 된 가옥이 많이 모여 있는 마을이나 임해부도심을 찾아갔을 때, 이런 것도 관광 화 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관광지는 그저 오래된 것을 구경하세요, 라고 표만 팔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면 일본은 관람 시스템이 확실히 정비되어 있어서 입구로 들어가서 출구로 나올 때까지 혼란이 없었습니 다. 또 관광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봉사활동으로 참여해서 설명해 주시는 것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쿄에 있는 일본 미래관에서 한 할아버지가 거기 전시되 어 있던 우주생활실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실제로 우주에 쏘아 올리고 자 제작되었는데 우주선 발사 실험이 실패하면서 미래관에 기증된 물건이라고 하시면서 중력이나 구심력 등에 대해 열심히 설명 해 주셨습니다. 원하시면 영 어로도 해주실 수 있다고 하셔서 저희는 당연히 전문가 분이시구나, 라고 생각 했는데 입고 있는 조끼를 보니 봉사활동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또 전 통 마을을 안내해 주셨던 분도 봉사활동으로 해주시던 것이었습니다. 실버 시대 인 요즈음,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시는 노인 분들이 많으시고 또 체계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저희가 처음 방문했던 도쿄는 세련미가 있는 도시였습니다. 한국의 서울에 해당하는 도쿄. 버스 창 너머로 본 도쿄는 예전부터 일본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꼭 해주었던 말, 거기 거리엔 쓰레기가 하나도 없더라. 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 주었습니다

148 이번에 제일 많이 느꼈던 부분이, 일본은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큰 정책에 이르기까지 환경 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포장지엔, 아무 리 작은 포장지라도 재활용 표시가 달려 있습니다. 거의 모든 물건에 어떻게 재 활용을 하는지 표시가 되어 있었고 페트병은 병에 붙어있는 비닐을 손쉽게 떼어 내서 병과 비닐을 따로 버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호텔에도 그냥 쓰레기 와 재활용 쓰레기를 따로 버리도록 쓰레기통이 두 개 있었습니다. 또 거리에 걷 는 사람이 50이라면 자전거를 탄 사람도 50은 되어 보였습니다. 직장인, 여성, 학생 할 것 없이 자전거를 많이 탔습니다. 학교 방문 때 같이 수업을 받았던 하 루 짱에게 너도 자전거로 통학 하니? 라고 물어봤더니 집에서 학교까지 자 전거로 40분이 걸리는데도 자전거로 통학을 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은 쓰레기로 매립지도 만들었습니다. 일본이 한창 산업화가 진행될 무렵 도쿄는 넘쳐나는 산업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 때 나온 아이디어가 쓰 레기로 섬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그 매립지가 바로 저희가 방문했던 임해부도 심, 오다이바였습니다. 오다이바는 도쿄 임해부도심 지구 중 한 곳으로 쓰레기로 만든 섬 치고는 낭 만으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아쿠아시티, 팔레트타운, 비너스포트 등 관광, 쇼 핑의 명소이고 후지 텔레비전 등의 유명 기업의 본사도 위치해 있는 오다이바. 오다이바는 일본의 계획성 을 무엇보다도 잘 보여줍니다. 쓰레기를 기반으로 섬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도 매우 기발한데 이를 실현했다는 것에서 저는 경악했 습니다. 워낙 규모가 큰 계획입니다. 그런데도 추진될 정도의 계획서가 써진 겁 니다. 그리고 일본은 계획서만 보고 계획의 비전을 봐 주었다는 게 놀라웠습니 다. 마지막으로 관서 지방의 와카야마. 저희 2팀은 3일 째에 일본 국내선을 타고 와카야마로 갔습니다. 와카야마는 풍취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도쿄에서 본 빌딩 과 아스팔트로 차있던 풍경과는 달리 산이 있고 단독 주택이 늘어선 전형적인 일본 마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쿄에 있을 때보다 더 일본 같다, 고 느꼈습니다. 특히 홈스테이, 학교방문 프로그램이 있어서 일본인들을 더 가 까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홈스테이를 하기 전, 호스트이신 히라미네 아야 상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 다. 아야 상과 초등학생 아오이 짱, 그리고 유치원 생 사쿠라 짱의 얼굴을 알고 있어서 회장에서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첫인상대로 굉장히 정이 많고 여러모로

149 신경을 많이 써 준 가족이었습니다. 특히 그 때 감동을 받았던 것은 이웃 분들 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그런 모습들이었습니다. 골목 끝에 위치한 아야 상네 집 과 앞집, 옆집 그리고 학교 친구인 저 쪽 골목집까지 두루두루 친해서 같이 여 행도 가고 골목에서 파티도 많이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와 다연이가 간 날이 마 침 동네 남자아이의 생일이라 서프라이즈 파티 겸 바비큐 파티를 했는데 저희도 초대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이 제일 보기 좋 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시골이라고 해도 골목친구가 별로 없어서 안타까웠습니 다. 어릴 때부터 함께 해 온 친구가 없는 저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부러웠습니다. 세이린 고등학교를 방문했을 때에도 좋은 것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아 이들의 에너지가 느껴졌습니다. 나중에 호텔까지 찾아온 세이린 학생이 있었는 데 그 아이가 말하길, 집에 있어도 재미가 없잖아. 학교는 재밌어. 수업은 재 미없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들과 만나면 웃게 되고, 그래서 학교 끝나고도 같이 놀아. 다들 그렇다고 생각 없이 노는 건 아냐. 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거지. 라고 해서 같은 고등학생으로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또 다들 화장도 하고 왁스 도 바르는, 자신을 꾸미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이번 방문 때 예전부터 공부해오던 일본어가 유용하게 쓰여서 기분이 좋았습 니다. 특히 한글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의 것을 알리려면 우선 다른 다라의 말과 문화를 익혀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을 상 대로 우리나라를 알리려면 우선 일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의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외무성에서 우리를 맞아주셨던 테라사와 지역조 정관께서도 우리에게 한국어로 연설을 해주셨습니다. 당연히 통역을 통해 들을 줄 알았던 저는 깜짝 놀랐고, 그 분이 꽃보다 남자 얘기를 해 주셨을 땐 더 놀랐습니다. 우리를 맞이하고자 많이 신경을 쓰셨다는 게 느껴졌고, 그것이 그 분의 일본사랑, 즉 애국의 일환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때 저희는 확실히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받았고 그걸 한국에 전할 것이기 때문입니 다.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고 그 중에는 외국어를 배우거나 해외로 진출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번 방문이 단순히 관 광이 아니고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시대를 어떻게 개척하겠느냐, 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던 기회라는 걸 느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느꼈던지, 시험기간이라 걱정도 많이 되지만 수업 듣고 자습하는 것보다 훨씬

150 많은 걸 얻어간다. 고 말했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정말 좋은 기회였고, 이 런 멋진 기회가 앞으로도 찾아올 수 있도록 멋진 사람이 되자고 각오를 다졌습 니다. 이 각오가 제가 이번 방문을 통해 얻은 가장 빛나는 보물이 아닐까 싶습 니다

151 7 단

152 일본을 다녀와서 김 기 범 부산 경남고등학교 첫 날, 6시에 일어나서 일본 갈 준비를 했다. 대부분의 준비는 전 날 다 해 놔서 딱히 챙길 것은 없어서 빨리 씻고 7시에 김해 공항으로 아빠 차를 타고 갔 다. 8시 30분에 탑승 수속을 시작해서 끝내고 나니 시간이 10시쯤 되었다. 사실 부산 친구들은 사전 모임도 부산이고 해서 어색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전국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있는 가운데 같은 지역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금방 친해졌 다. 10시 20분쯤에 KE 715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12시에 착 륙했는데 나머지 아이들이 너무 늦게 와서 엄청난 더위에도 불구하고 마이를 입 고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야 했다. 2시쯤 모든 수속이 끝나고 1번 버스를 탔다. 40인승 버스에 20명 정도의 사람이 탔기 때문에 무척 넓고 쾌적한 탑승이었다. 3시 30분쯤 동경 타워에 도착했다. 사실 150m 높이에서는 별 감흥이 없어서 기 념품샵에 갈려고 했는데 어디서 들은 계단으로도 갈 수 있어 라는 말만 믿고 부산 친구들과 함께 계단으로 내려갔다. 약 500개의 계단을 딛고 내려가고 있는 데 거기로 내려가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단다. 다시 500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이 사건 덕분에 친구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저녁은 동경 타워 1층에서 카 레를 먹었다. 하지만 오렌지 주스는 얼음이 동동 띄워진 채로 우리를 오래 기다 려서 많이 희석된 상태였다. 이때는 다 먹어 가면 자꾸 할머니가 오셔서 더 드 실래요? 라고 물어봐서 다이죠부데스! 라고 말하는 건 필수였다. 일본 오기 전 에는 일본은 다 싱겁게 먹어 라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정말 맛있는 카레였다. 2일 째, 외무성을 방문하기 위해 버스를 탔다. 9시 30분쯤 돼서 외무성에 도착해서 관계자 분들께 좋은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11시 40분쯤에 어떤 공원 에 잠깐 들러서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1시쯤 돼서 환영 중식회를 했다. 뷔페였 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그리고 우리 남자애들은 미라이칸이라고 불리는 일본과 학미래관에 방문을 했다. 기술혁신과 미래, 정보과학기술과 사회, 생명의 과학 과 인간, 지구환경과 프론티어 4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몇 십 년 후의 미

153 래를 먼저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미나토칸을 가서 도쿄 주위 신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전신주가 땅 밑에 있을게 정말 깔끔하고 보기 좋았다. 그리고 5시쯤에는 아쿠아시티 오다이바에서 경치 구경을 하고 5시 30분쯤에 중국음식을 먹고 아키타 팀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대망의 홈스테이를 하는 날이다. 하지만 학교 방문은 오후에 있기 때문에 야마나시로 떠나기 전에 방재교육체험을 했다. 제일 인상에 남는 건 역시 지진 체험이었다. 진도 7의 지진을 체험했는데 탁자를 잡고 있어도 몸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지진이 많이 나지 않는 나라에 살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야마나시행 특급열차를 타고 1시쯤에 출발했다. 이것저것하고 홈스테이 대면식을 했다. 우리 가족의 성은 콘도우다. 친구인 소이치는 다음 주가 시험이 라고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온다기에 나랑 부모님은 할로윈데이 기념 호박 케이 크를 먹고 이리저리 이야기를 했다. 난 일본어를 잘 하는 편이 아니어서 많이 고민을 했는데 부모님은 국제고등학교를 나오신 브레인이셨다. 그래서 만국공통 어인 영어를 사용해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아 버지는 회사원이시고 어머니는 한문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오후 6시쯤 돼서는 소이치도 합류해서 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샀다. 다들 걱정이 되는지 이거 먹을 수 있니? 저거 먹을 수 있니? 물어보셨다. 그래서 난 전 부산에서 왔으니까 해 산물은 다 잘 먹어요! 라고 했다. 그러니까 다들 안심한 표정으로 마음껏 해산 물을 구입하셨다. 그리고 집으로 가서 덴무스라고 부르는 튀김과 주먹밥을 섞은 특제 엄마표 음식을 해주셨다. 진짜 배가 터질 것처럼 많이 먹었다. 그 다음 오 후로 체험을 했다. 정말 따뜻해서 거기 안에서 잠자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왔다. 10시쯤 되자 자동으로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 족들이 잠이 오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그렇다고 하니까 이불을 세팅해주셨다. 대부분이 침대 생활을 하는 줄 아셨는지 이불로 높게 침대를 만들어주셨다. 구 름 안에서 자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가 뜨니 아침 10시! 아끼고 아 껴야 하는 시간이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그래도 일어나니 부모님께서 반갑다 고 인사를 해주셨다. 재빨리 서양식 아침을 먹고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 리고 다케다 신겐의 동상을 보러 갔는데 마침 거기에 태욱이와 나오토코가 있었 다. 그래서 딱 인원이 맞기에 같이 야마나시 시민회관에 가서 여러 그림들과 공 연을 봤다. 입장료가 무료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까지 해줬다. 그리고 야마나시 백화점에 가서 이리저리 구경하다보니 벌써 마칠 시간

154 인 4시가 가까워져왔다. 제일 처음에는 도대체 24시간동안 뭘 해야하나하는 생 각이었는데 너무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쉬웠다. 눈물을 꾹꾹 참으며 주소를 교환 했다. 5일 째, 슬슬 끝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영원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두 다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고료고등학교에 방문해서 수업을 했 다. 나는 점심시간을 1학년 4반에서 보내고 체험학습은 1팀이었다. 그런데 1팀 에는 친한 친구들이 다 모여 있어서 정말 기뻤다. 먼저 학교에 가서 일본 친구 들의 노래와 춤을 보고, 한국 학생들의 무용과 판소리를 들었는데 역시 내가 한 국인이여서 그런지 한국 학생들이 더욱 더 잘한 것 같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 어서 1학년 4반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근데 사실 나랑 같이 앉은 애들이 똘망똘 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질문세례를 퍼부어서 밥을 많이 먹지는 못했다. 옆 모둠 애들은 조용한 것 같은데 우리만 시끄러워서 조금 미안했다. 짧디 짧은 40분이 지나고 수업 체험을 했다. 나는 1팀이어서 다도-서예-음식 순으로 체험 을 했는데 이때 더욱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물론 일본의 문화 또한 배울 수 있어서 정말 값졌지만 다도 시간에는 다리가 너무 아팠다. 6일 째, 원래 계획은 후지산 5부 능선을 탐험할 계획이었으나 2000m쯤에는 눈이 와서 1200m쯤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했다. 그래도 가깝게 보이는 후지산과 같이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그 다음 야마구치 강에도 잠시 들러서 친구들과 사 진을 찍었다. 그리고 블루베리 마을에서 블루베리 잼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준 비가 되어 있어서 그냥 시간 맞춰서 재료들을 투입하면 되는 간단한 체험이었지 만 정말 맛있는 블루베리 잼을 완성해서 뿌듯했다. 그리고 츠루시비나라는 아기 원숭이를 만들었는데 귀신들을 쫓아내고 오래 살게 해준다고 한다. 역시 우리는 남자라서 할머니가 우리들을 배려해주셨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이들은 모두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했다. 모두들 하는 말 우리 그냥 여기서 학교 새로 짓고 살자 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들 마음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조차 현 실은 믿기지가 않았다. 내일이면 야자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과 이렇게 친해져버린 애들과 헤어져야하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1시쯤에는 나리타 공항 의 면세점에 들러서 선생님들 드릴 선물을 샀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는 내가 쓸 화장품과 누나의 선물을 샀다. 그리고 1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김해공항. 발 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1주일간의 여정이 끝이 나는구나. 이번에 헤어지면

155 도대체 언제 볼 수 있을까. 등등 많은 생각을 했지만 우리들은 모두 컴퓨터 세 대니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친구들과 헤어졌다. 우리 남학생들은 애써 태연한 척 눈이 촉촉한 채 작별 인사를 했지만 여자 아이들은 다들 대성통 곡을 했다. 대학생이 되면 다시 다 같이 모여서 여행을 가고 싶다

156 방일연수, 낯설면서 친근했던 1주일 이 준 현 운 암 고 등 학 교 한 일 중고생 교류. 국립국제교육원과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주관하는, 내가 이번에 참가했던 연수의 이름이다. 처음 학교에서 추천을 받고, 대구와 부산에 서 사전교육을 받으면서 일본으로 연수를 가는 것에 대해 더 큰 기대를 가졌다. 기간은 무려 6박 7일. 일반적인 경우라면 일주일이나 되는 시간동안 일본에 머 물 수 없었겠지만, 정말로 좋은 기회였다. 10월 29일, 김해공항. 여권과 비행기표를 받으면서 설렜다. 처음으로 가보는 외국이었고, 처음으로 타보는 국제선이었다. 비행기로 약 2시간을 이동해 나리 타 공항에 도착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가 들렸고, 한국에서 한글이 쓰여 있던 자리에는 일본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익숙한 낯섦, 처음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한국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건물들과 길거리, 그리고 사람들의 모습. 다만 낯설게 들리는 언어와 한국에 있을 때와는 반대쪽에서 달리는 차를 보면서 위화감을 느낄 뿐이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일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도쿄 타 워에서 도쿄의 모습을 천천히 감상했다. 낮고 높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빽빽한 건물들. 친구들과 사진도 찍고 그저 멍하니 도쿄의 모습을 내려다보기도 하면 서, 일본에 왔다는 생각에 잔잔한 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약간은 흐린 날씨 에 먼 곳의 모습까지 볼 수 없어 정말 아쉽긴 했지만. 저녁까지 먹고 나왔을 때, 어두운 하늘 아래 불을 밝히고 서 있는 도쿄 타워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모 두 자리를 옮겨가며 사진만 하염없이 찍을 정도로. 호텔에 도착해서 일한문화교 류기금 측 직원들과 함께 단체 회의를 했다. 연수의 목적과 전체 일정, 그리고 일한문화교류기금 및 통역 선생님들에 대한 소개 등을 들었다. 피곤한 탓인지 졸고 있었던 친구들이 기억이 난다. 회의가 끝난 후 방으로 돌아가서 룸메이트 와 서로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면서 친구들 과 웃고 떠들면서 그렇게 첫 날 밤은 저물어 갔다. 다음날, 아침부터 외무성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외무성은 우리나라

157 의 외교통상부에 해당하는 부서이다. 우리는 니시무라 전무관님과 만날 수 있었 는데, 외무성에서 세 번째로 높은 직책에 해당하는 분이었다. 갑작스럽게 일본 이 이번 연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어쨌든 30분이라 는 짧은 시간동안 환영사와 답사가 오고 갔고, 질의응답 시간도 있었다. 외무성 을 방문한 후에는 황궁으로 향했다. 물론 황궁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황궁의 모습을 밖에서는 볼 수 있었고 사진 역시 몇 장 찍을 수 있었다. 환영오 찬회는 霞 が 関 (카스미가세키) 빌딩에서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준비로 열렸다. 나 는 7단 대표로 얼떨결에 A테이블에 앉게 되었는데, 7 8단 단장님과 선생님들은 물론이거니와 기금의 이사장님 또한 앉아 계셨다. 덧붙이자면 내 자리는 이사장 님 맞은 편. 내 옆자리에는 같이 대구에서 온 주유란이 앉게 되었다. 처음에 이 사장님께서 한국어를 잘하셔서 놀라기도 했다. 서울에서 외교관 일도 하셨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식사가 진행 되는 동안 약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 도중, 내년에 한국에서 G20 도 열리는 등으로 보아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것 같은데 내 생각은 어떠냐고 물 으셨다. 우리나라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 라다. 하지만 그 화려한 경제성장 뒷면에는 그늘에 숨어있던 문제들이 많이 있 고, 지금에 이르러서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들 또한 많이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단순히 한국의 문화적, 의식적 성장이 경 제적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문화지체현상이 나타난다는 내용을 간단하게 답했다. 비록 지금은 주춤하고 있지만, 일본은 명실상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다. 일본은 그 성장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 뒷면에 어떤 문제점들이 있었을까, 우리나라와 어떤 점에서 같았고 달랐을까. 그런 생각이 점심을 먹는 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외에도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공계기 피현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 문제점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 식사는 괜찮았던 것 같다. 오찬회가 끝난 다음에는 일정이 바뀌어 일본 미래관, 도쿄 미나토관 두 곳을 들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래관은 둘러보고 나서 약간 실망했다. 올 해 여름, 과천과학관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로 인상 깊었다. 하지만 미래관 에 있던 전시물들은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노벨 상 수상자도 여러 명 있고, 필즈상 수상자는 무려 세 명이나 된다. 일본의 발전 된 과학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게 지나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짧은 시간동

158 안 일본어로 된 전시물들을 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일까. 꽤나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도쿄 미나토관에서는 현재의 도쿄로까지 발전하는 모습을 알 수 있었 다. 임해부도심의 건설 과정에서 에너지재활용과 녹지 조성 등이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자원 소비량이 많은 편이고 증가율 또한 높다. 앞으로 환 경, 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해결책이 필요할 때가 올 것이 다. 하지만 해결책은 곧장 제시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나 이런 환경문제와 관련 되어있다면. 수십 년, 심지어는 수백 년이 걸려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도 존 재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우리는 고려해본 적이 있던가, 어쩐지 부끄럽게 느 껴졌다. 셋 째날, 이때부터 1팀과 2팀이 나뉘어서 활동했다. 나는 1팀으로, 야마나시 현으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오전에는 방재교육센터로 갔다. 소방서와 방재 센터가 붙어 있었다. 인공호흡 심장마사지, 연기 체험, 지진 체험, 소화기 사용 이렇게 4가지를 순서대로 진행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지진 체험이었다. 진도7로 설정해 체험을 했는데, 진동이 커서 움직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일본 은 방재 시설과 교육이 잘 되어있고, 또 경험도 많이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한 국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한다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교육은 받으니 괜찮다고 가 정하더라도, 방재 시설은 제대로 확보가 되어 있으려나? 방재교육센터에서 교육 및 체험을 마치고서 특급열차(신칸센이 아니라서 아쉽긴 했다.)를 타고 야마나 시 현으로 이동했다. 4시에 학교 강당에서 홈스테이 대면식 때, 각자 호스트 패밀리와 만나서 흩 어졌다. 나는 츠치야 아키라 학생의 가족과 만났다, 다행히도 혼자가 아니 라 호준이도 같이 배정되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척이나 불편했고, 어색했 다.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키라 군이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호준이의 사전으로 단어를 검색해가면서, 단어 단위로 의사소통 을 했다. 말하는 것이 불편하니, 말을 잘 안하게 되었고 더 어색해졌다. 불편하 긴 했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꽤나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양국민의 서로에 대한 생각, 학교생활의 공통점과 차이점, 좋아하는 것 등. 내가 친구들을 통해 서 알고 있던 일본의 가수들 덕분에 그 이야기를 할 때는 좀 더 편할 수 있었 다. 백화점에서 선물을 사고( 잊어버려서 공항에서 압수당해서 슬프지만), 저 녁은 회전초밥을 먹었다. 한국에서만 이상하게 회전초밥이 비싼 음식인 걸까, 가격이 비싸지 않고 오히려 싼 것 같았다. 한 접시에 100엔~200엔 정도였으니

159 까. 일본 음식이 싱겁다는 이야기도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지역 차이가 있는 건지 잘못된 이야기인 건지 모르겠다. 내가 연수 기간 동안 먹었던 일본 음식들 은 달거나 짠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온천에 갔다. 규모는 작아서 목욕탕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아키라 군의 가족은 별 일 없는 이 상, 거의 매일 목욕을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샤워는 매일 하더라도, 목욕을 매일 하는 경우는 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본인들은(성급하게 일반화하는 느낌 이긴 하지만 목욕을 즐겨 하는 가보다. 다음 날 아침, 일반 가정의 식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생선, 미소 된장국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몇몇 반찬은 알아보지 못했다. 반찬을 남겨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끝내고, 일본의 절(절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헷갈 린다.)에 가보았다. 일본은 외침이나 큰 전쟁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문화재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갔던 곳은 약 500년 정도 된 곳 이었는데, 건물이 상당히 멋있었다. 건물들의 양식이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 을 잘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불탑이 하나 있었는데, 한국과는 모습이 많이 달라 서 처음에는 잘 알아보지 못했다. 아키라 군과 볼링을 하기도 했는데, 일본 학 생들 사이에서 볼링이 인기 있다고 했다. 반대로 당구는 크게 인기가 없다고 들 었다. 또 한국에서는 축구와 야구 둘 다 인기가 있고, 비교하자면 축구가 약간 우세라고 생각하는데, 일본은 야구가 인기가 훨씬 좋은 것 같았다. 5일째, 10시 정도에 학교를 방문했다. 홈스테이 대면식 때 이미 한 번 왔던 장소지만 다시 찾으니 또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환영사와 답사, 그리고 기 념품 증정식. 연수단 측에서 준비한 선물과 코료 고등학교 측에서 준비한 선물 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일본 측 발표는 고도 연주, 합 창, 춤 세 가지였다. 고도는 일본 전통 악기로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비슷한 느 낌이었다. 고도 연주는 일본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고, 느낌도 괜찮았다. 하 지만 솔직히 합창과 춤은 뭔가 어정쩡한 느낌이었다. 물론 합창 때, 아리랑이나 고향의 봄 등을 부를 때는 확실히 놀라기는 했었지만. 한국 측 발표 때는 내가 사회진행을 맡게 되었다. 학생대표 인사를 포기한 대가이긴 한데 아쉽다. 내 사진을 찍어달라고 옆에 있던 성범이에게 맡겼는데, 멀어서 사진이 흔들려서 나 와서 곤란하다. 교방무, 판소리, 태평무 세 가지 발표가 있었는데 모두 정말 잘 했던 것 같다. 특히 춘향가 를 발표했던 판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환영행사 가 끝나고 점심교류회를 진행했다. 환영행사가 예정보다 조금 길어져 버려서 시

160 간이 촉박했다. 학교에 급식이 없고 모두 도시락을 준비해서 밥을 먹는 것 같았 다. 내 맞은 편에 앉았던 학생이 영어를 꽤 잘해서 다행히 대화를 할 수 있었 다. 꿈이 영어 선생님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영어를 잘 했던 것 같다. 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학생들은 어느 나라를 가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 다. 각자 꿈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고. 그래도 학교에서 공 부하기 싫은 사람들마저 붙잡아 두는 건 우리나라만 하는 것 같아서 어째선지 서글퍼졌다. 밥은 다 먹기도 전에 결국 시간이 끝나버렸고, 나와 이야기를 해주 던 그 학생도 밥을 다 못 먹었다. 선물 숫자가 모자라서 점심을 같이 먹었던 학 생들에겐 줄 수도 없어서 더 미안했다. 내가 포함되어 있던 3팀은 요리, 다도, 서예 순으로 체험활동을 했다. 요리는 お 好 みき(오코노미야키) 라고 해서 우 리나라의 부침개 비슷한 것을 만들었다. 철판이 안 좋아서 힘겹게 요리(무려 볶 아대던)하던 기억이 난다. 같이 요리했던 학생들에게 선물을 하나씩 주었다. 조 그만 한국 인형이었는데, 남학생들도 마음에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요리 다음은 다도. 차를 마실 때의 예절과 순서가 꽤 복잡하고 엄격했다. 일본 학생들 중에 서도 착각하는 경우(1학년들이었던 것 같다)가 있었을 정도로. 차가 쓰기 때문 에 먼저 단 과자를 주었는데, 차가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먼저 과자를 다 먹 었기 때문인 것 같긴 하지만. 끝날 때 무렵에는 다리가 꽤 저렸다. 창일이와 나, 그리고 일본 학생 두 명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다만 사진 한 장이 일본 학 생 휴대폰으로 찍혀서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서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 사진은 메일로 받을 수 있었다. 서예는 한국에서 하던 것과 같았다. 그저 히라 가나를 처음 써보았을 뿐. 그래도 서예를 어릴 때 하던 것 빼고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다. 모든 체험을 끝내고 나서 건물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 다 시 아키라 군을 만날 수 있었다. 서예 쪽에서 활동을 했는지, 손에 먹물이 약간 묻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보지 못했지, 내가 체험할 때는 없었나? 헤어지기 전 약간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떠나려고 하니 정말로 아쉬웠다. 둘러보니 많이 아쉬운 탓인지 울먹이는 학생도 보였다. 3일에 걸친 홈스테이와 학교 방문 이 모두 끝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허전하고 아쉬웠다. 손을 흔들어주면서 버스 를 타고, 결국 호텔로 돌아갔다. 6일째, 사실상 마지막 연수일. 마지막 날은 이동하는 데 전부 시간을 쓰기 때문이었다. 후지 산에 올라가는 것을 정말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1200m정도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중간에 쌓인 눈 때문에 버스가 제대로 이동

161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후지 산의 정상에 눈 쌓인 모습하며 정말로 아름다운 모습을 낮은 곳에서만 볼 수 있어서 정말 아쉬웠다. 2400m까지 올라갈 수 없어 서 정말 아쉬웠다. 후지 산을 대신해서 신사를 방문했다. とりい 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신기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기모노를 입은 사람을 몇 명 볼 수 있었 고, 그 외에도 설명을 들었던 몇 가지가 보였다. 비록 참배는 하지 않았지만 직 접 방문한 것만으로도 일본의 신사가 어떤지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외에도 잼 만들기 등 여러 곳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호텔 로 돌아왔다. 연수 기간 동안의 감상문 발표를 듣고 설문조사를 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다. 아련한 그리움이, 그리고 아쉬움이 느껴졌다. 언 제 다시 일본으로 올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방으로 돌아가 짐을 정리하고 피곤한 탓에 일찍 잠들어버렸다. 마지막 날, 버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까지 이동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같이 버스에 있었던 일한문화교 류기금의 기카이 상, 통역을 담당하셨던 이정순 선생님과 사카모토 상, 모두 헤 어지려고 하니 아쉬웠다. 정말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아쉬움을 뒤 로 하고 출국수속을 하는 동안, 선물로 사고 잊어버렸던 화장품을 압수당하는 바람에 면세점에서 새로 하나를 살 때는 짜증이 났지만.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 항에 도착해서 모두 헤어질 때, 친했던 친구들이 모두 헤어지는 것이 정말 아쉬 웠다. 1주일, 짧았지만 결코 짧기만 했던 시간은 아니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한국을 벗어나서 일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미래는 알 수 없고,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내가 일본에서 만났던 혹은 같이 연수에 참가했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기회가 한 번은 있지 않을까. 그 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그들과 다시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연수는 끝났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나중에 아쉬운 시간이 되지 않게, 이 순간을 영원히 반복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그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162 6박 7일 평생의 추억 김 명 곤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첫째 날 10월 29일 목 날씨 맑음 처음으로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모국을 떠난다는 두려움과 새로운 경험이라 는 것에 대한 설렘이 앞섰다. 지역에서 면접을 하고 여권을 만들었던 것이 바로 며칠 전 같은데 한 달 전 미리 예비소집을 한 후 벌써 출국을 할 날짜가 되었 다. 일주일동안 학교를 빠지는 것이라서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러한 경험은 무 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새벽 3시 반 광주지역 친구들과 시교육청에서 만났다. 2시 반까지 뒤척이다 가 잠을 자지 못한 나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기대감에 벅차 잠이 오지 않는 듯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새 버스는 김해공항에 도착했고, 아침을 먹은 뒤 같이 갈 100명의 학생들과 선생님을 기다렸다. 8시 반, 모두가 모여서 짐을 부 치고, 출국 심사를 거친 후 비행기를 탔다. 거의 처음 타 본 비행기가 이륙을 하자 이제 내가 외국에 간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이륙할 때에는 귀도 먹먹해지 고 가슴도 답답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비행기의 고도가 높아지고, 기내식도 먹 은 후 일본은 어떨지, 친구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얼마 하지도 않아 금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들어서자 안내판과 주의사항 등이 일본어로 적혀 있어 정말 일본에 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서 우리를 일주일동안 안내해 주실 이정순 선 생님과 사카모토 상을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저 관광 가이드 정도겠지 하 고 생각했는데, 정말 고마우시고 일주일동안 우리를 어머니같이 챙겨주신 소중 한 분들이다. 먼저 도쿄타워로 향했다. 나리타에서 도쿄까지는 한 시간정도 걸리는 거리 로, 가는 길에 디즈니랜드와 도쿄의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차에서 바라본 일 본의 도로 모습은 매우 깨끗했으며, 이정표가 큰 것이 특징이었다. 도쿄타워에 오른 후 높이는 별로 높지 않았으나, 한국과 달리 고층빌딩이나 아파트가 밀집 해 있지 않아 탁 트인 시야로 주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안개와 같은 흐린 날씨

163 때문에 후지산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본의 건물을 관찰하기에 정말 좋았다. 4층 전망대에서 한 층 한 층 내려오면서는 여러 가지 전시관을 보고, 1층에서 저녁 을 먹었다. 처음 먹는 일본에서의 음식이었는데, 카레와 돈가스의 조합은 새로 웠다. 저녁을 먹고 나오자 날은 이미 어둑해져서 도쿄타워에는 조명이 비춰지고 있 었다. 아름다운 도쿄타워를 뒤로하고 호텔로 갔다. 우리가 간 호텔은 Sheraton Miyako 호텔이었다. 지하 1층에서 열린 전체회의가 시작되기 전, 어떤 일본 분 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셨다. 호텔 직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한일문화 교류기금의 키카이 상 이었다. 한국 여자 분과 결혼하셨다는 키카이 상 역시 고 마운 분으로 일주일 동안 많은 정이 들었다. 전체회의에서는 한일문화교류기금 에 대한 설명과 이러한 방일의 목적을 설명해 주었다. 새로운 환경으로 바뀌어 서 그런지 피곤한 몸에 잠이 솔솔 왔지만, 회의를 끝까지 듣고,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둘째 날 10월 30일 금 날씨 맑음 일본 방문의 둘째 날이 밝았다. 외무성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1층 뷔페에서 식사를 한 후 조금 빨리 버스에 올랐다. 이러한 외무성 방문은 일반 관광객 자격이나 일본 내 국민에게도 방문할 기회가 거의 없을 텐데 환영식까지 한다는 것이 감명 깊었다. 우리 일행을 환영해준 니시무라 대신전무관은 여성분 이었는데, 친구들이 한일 관계에 대해 질문하자 환경, 지역 평화의 측면에서 협 력해야 한다고 말씀했다.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황궁에 들렀다. 황궁의 날씨는 매우 더워 30도에 육박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의 막바지에 접어들 고 있는 날씨였지만, 도쿄지방의 날씨는 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환 영 오찬회는 토카이 유니버시티 클럽 35층에서 열렸다. 건물에서는 일본 국회도 보이고, 문부과학성이 가까이에 있는 등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오후는 도쿄만을 매립해서 만들었다는 임해부도심 오다이바를 방문했다. 먼 저 일본의 과학관인 미라이칸(미래관)을 들어갔다. 정말 넓고, 한국에서 가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과학관을 갈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특히 평소에 이해가 되 지 않던 양자 역학에 대한 지식을 체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크게 놀랐다. 크게 4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한 시간 반은 매우 부족해 서 다음에 다시 한 번 방문 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시간을 아 쉽게 생각하며 미나미칸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도쿄만의 간척 과정과 현재 도쿄

164 항, 7번째 부도심인 임해 부도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전선을 지하에 매설 하는 등 지진에 대비한 철저한 계획도시에 일본인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아쿠아시티로 가서 도쿄 자유의 여신상과 레인보 우브릿지의 야경을 감상한 후 호텔로 향했다. 셋째 날 19월 31일 토 날씨 맑음 홈스테이를 한다는 것에 긴장을 하며 일어났다. 아침에는 방재 교육 체험을 했는데 지진체험, 연기체험, 인공호흡, 소화체험을 했다. 그중 특히 진도 7의 지진 체험은 생각했던 것 보다 매우 강해서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었 다. 방재센터에서 야마나시 현으로 가는 기차를 탈 신주쿠 역으로 이동하는 도 중 야스쿠니신사를 보았다. 지난해 자민당 정부까지만 해도 한창 논란이 되었던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바로 그 야스쿠니 신사를 보니 일본과 한국의 바람직한 관 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을 식민지화 한 국 가인데 그러한 전범 영웅들에 대한 신사 참배를 하는 것은 동북아 국제 평화에 누를 끼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바뀐 민주당의 하토야마 총리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국제 평화를 중시한다고 한다고 말한 점은 다행이다. 신주쿠 역은 매우 큰 역이였다. 일본 사방으로 출발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 이었고, 유동 인구도 매우 많은 듯 했다. 야마나시 현을 거쳐 가는 기차인 마쓰 모토 행 기차를 탔다. 1시에 기차가 출발하고, 말로 만 듣던 기차 도시락 에키 벤을 먹었다. 도쿄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갈수록 스카이라인이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도도 점점 높아지고 산간 지역으로 향했다. 3시 반 쯤 고부치 자와역에 도착했다. 고부치자와역은 해발고도가 881m여서 그런지 쌀쌀했다. 고 부치자와역을 출발해서 우리가 친구들을 만날 호쿠토시의 코료 고등학교로 향했 다. 코료 고등학교는 역에서 30분정도 떨어진 거리로 학교 앞에는 배드민턴장, 활쏘기장 등 여러 시설을 볼 수 있었다. 강당에서 교장선생님의 환영 인사를 들 은 후 한명 한명씩 불려 바로 홈스테이로 향했다. 정말 홈스테이를 바로 시작하 니 매우 긴장되었다. 먼저 불려나가는 친구들에게 다음날 만날 것을 인사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다. 내가 만난 가족은 호소다 가족으로 부모님과 고2 친 구 유타로군, 중3인 여동생 유리코양이 있었다. 처음 만나서 강당의 뒤쪽 문으 로 나가서 가족들과 함께 차에 탔을 때에는 정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 다. 일본어는 학교에서 2학년이 되고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평소에 일본 애니

165 메이션 등에 관심은 있었지만 일본어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사 소통도 걱정 되었다. 차에 타기 전, 우선 저는 일본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호소다 가족의 아들 친구 고2 유타로는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미래에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꿈꾸고 있는 유타로는 뉴질랜드로 홈스 테이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으며, 다음 주에 또 미국으로 홈스테이를 갈 예정이 었다. 덕분에 의사소통은 영어로 쉽게 통할 수 있었다. 먼저 쇼핑을 갔다. 아이 스크림 전문점이 31일이라고 행사를 하고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은 뒤, 다 음날 할 바비큐 파티 재료를 사고 차에 올랐다. 가는 길에 비디오 렌탈점에 들 려 비디오도 빌리고 저녁으로 먹을 스시도 샀다.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한 국어 책을 가지고 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음식의 한국말을 알려주려고 했다. 아 버지, 유타로군과 독도와 동해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 유타로군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한국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매우 민감하다고 말하고 올바른 사실을 알려주었 다. 식사 이후 빌려온 영화를 보고 일본의 목욕 문화인 오후로 를 경험한 후 잠을 잤다. 넷째 날 11월 1일 일 날씨 맑음->비 8시쯤 일어났다. 먼저 일어났어요 라고 말해야 하는지 몰라서 있었는데 8 시 반 쯤 어머니께서 잘 잤냐며 인사를 해 주셨다. 씻고 머리를 감고 9시에 아 침으로 빵을 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일본 가정은 일요일 아침 은 빵을 먹는다고 했다. 바비큐 파티가 예정 되어있었기 때문에 기대를 하고 있었다. 10시쯤 아버지 가 여행용 차를 가져오셔서 30분정도 거리의 무카와 공원으로 갔다. 그곳은 여 행객들이 바비큐 기구를 빌려서 쉽게 요리해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이웃집 모리야 가족과 친구 야마사카 다이치군을 만났다. 야마사카 다이치 군 역시 코료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바비큐 그릴이 구워질 동안 배드민턴을 쳤다. 내가 운동실력이 좋지 않아 힘들었지만 일본 친구들은 그것을 양해해 주었다. 10시부터 시작된 바비큐 파티는 2시까지 이어졌다. 고기를 구어 먹고 꼬치를 먹 고 야키 소바도 직접 만들어 먹고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가족과 헤어질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집에 가서 옆집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께 인사

166 를 하고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집에 있기로 해서 작별 인 사를 했다. 그때는 그저 헤어진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친구들과 만나 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 그리웠다. 학교로 돌아와 어머님과 유타로 군과도 인사를 했다. 날씨는 조금씩 흐려서 비가 조금씩 내렸다. 어머님은 다음에 일본 에 오면 나리타공항까지 차를 타고 와주신다고 까지 말해주셨다. 어머님께는 전 날 밤 자기 전에 사전을 찾아가며 삐뚤삐뚤한 글씨로 쓴 편지를 전달했다. 유타 로와는 메일을 하기로 했다. 국제적으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데 얼굴까지 아는 친구를 사귀다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홈스테이를 경 험하니 마음속에 뭔가가 남았다. 일본인에 대한 생각과 일본에 대한 느낌도 많 이 변했다. 또 미래의 나의 장래 희망을 조금 더 확실히 결정할 수 있었다. 감 동에 벅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모든 친구들이 자신의 호스트 가족과 이틀 을 지내며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아서 헤어짐을 모두 아쉬워했다. 호텔로 가는 길에는 야마나시 현의 특색적인 음식인 호또를 먹었다. 호또는 해물 수제비 같은 맛이었는데 면이 넓은 것이 특징이었다. 밤에는 온천이 있는 다이와 호텔에서 잤다. 친구들과 온천욕을 하면서 많이 친해지고 공부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온천에서는 아주머니가 탕 안까지 들어 오는 것이 가능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다섯째 날 11월 3일 월 날씨 맑음 학교방문이 있는 날이었다. 홈스테이를 한 친구가 있는 코료 고등학교에 도 착하자 코료 고등학교에서 가야금과 비슷한 일본의 전통 악기인 고도를 연주했 다. 합창과 댄스공연을 보고나서 한국 측의 황진이 춤과 태평무, 판소리 공연을 했다. 일본 학생들의 공연은 일반 학생들의 공연이라 어설펐지만, 우리를 환영 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점심 교류로 각 교실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나 는 2학년 2반 교실에 들어갔는데 반장은 타이시군이었다. 일본 학생들의 영어 실력은 모두 기본적인 회화는 가능했다. 자기소개를 일본어와 영어로 모두 하고 나서는 세 가지 문화 체험을 했다. 서예와 요리, 다도를 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 에 남는 것은 요리와 다도이다. 요리시간에는 일본 학생 아이와 료이치로가 같 이 했다. 그들도 학교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함께 만든 오코 노미야끼는 우리나라의 전 같은 것이라고 했는데 밀가루와 계란을 사용한다는

167 점만 같을 뿐 넣는 재료와 맛은 많이 달랐다. 치즈를 많이 넣은 것이 정말 좋았 다. 가쓰오 부시, 양파, 파 등 많은 재료를 넣었는데 매우 맛있었고 함께한 한 국 친구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다도 시간에는 호스트 친구 유타로 군이 있었 다. 유타로군의 부활동이 다도였기 때문인데 환영식 때 인사를 했던 전교 회장 학생 역시 다도부였다. 어제 만난 다이치군도 같이 참여를 했다. 다도를 체험할 때 무릎을 꿇고 하느라 다리가 매우 아팠다. 옆에 앉은 다이치군 역시 아파했 다. 그러나 생각보다 다도시간은 빨리 끝나서 교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 진도 찍고 유타로군과도 못한 이야기도 했다. 유타로 군은 나에게 이틀 동안 찍 었던 앨범을 주었다. 친구들과 아쉽게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다. 삼일동안 정 든 유타로와 오늘 하루 동안 같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한 일본 학생들, 우리를 맞 아준 교장선생님과 다른 선생님들과 헤어진다니 너무 슬펐다. 개인 자격으로는 방문할 수 없을 학교를 방문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 처음 보는 학생들 을 반갑게 맞아주고 헤어질 때 인사를 해 준 코료 고등학교 학생들은 정말 기억 에 남았다. 코료 고등학교를 뒤로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유타로가 준 앨범을 보았는데 유타로의 정성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유타로의 정성이 느껴져 서 눈물이 날 뻔 했다.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찬 감동이 계속 된다. 홈 스테이와 학교방문 모두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고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여섯째 날 11월 2일 화 날씨 맑음 우리가 잔 호텔은 후지산이 나무 사이로 보이는 멋있는 곳이었다. 새벽에는 친구들과 나가서 오리온자리 등 별자리를 볼 수 있었다. 아침부터 눈 덮인 후지 산도 보였다. 그러나 날씨는 예사롭지 않았다. 8시 뉴스를 보니 홋카이도 지방 은 폭설 피해가 있었고 강풍에 피해를 입은 곳도 많았다. 저기압이 통과한 뒤 기온 역시 큰 폭으로 떨어졌다. 9시에 호텔을 출발해서 2305m인 후지산 5부 능선에 올라가기로 했다. 2305m 이면 내가 태어나서 있는 곳 중 가장 높은 위치인데, 그러한 곳에 간다니 정말 기대가 되고 마침 어제 눈도 와서 얼마나 멋있는 곳을 구경할 까 기대가 되었 다. 가는 길 내내 후지산을 볼 수 있었다. 날이 맑아 하루 종일 후지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몇 백 년 전 상당히 최근까지의 폭발을 통해 완성된 후지 산은 휴화산이라고 했다. 후지산의 웅장한 모습을 감상할 생각을 하고 있던 도 중 날 벼락같은 소식을 들었다. 위로 눈이 쌓이고 길이 얼어서 5부 능선까지 가

168 지 못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기대를 했는데 정말 아쉬웠다. 1부 능선인 1291m에 서 밖에 구경을 할 수 없었는데 아쉬워서 속상하기까지 했다. 후지산의 대체로 오시오하카미라는 일본 생수를 만드는 곳으로 갔다. 멋있는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지만 후지산에 대한 아쉬움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 후 후지산의 신사인 셴 겐 신사에 들려서 일본의 신사를 직접 구경할 수 있었다. 점심은 후지산 폭발로 인해 생긴 5개의 호수 중에 가와구치 호의 옆에 있는 한 식당에서 먹었다. 빙어 튀김 등 음식과 우동이 나와 맛있게 먹었고, 후지산을 뒤로 하고 가와구치 호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와사비 후리카게라는 밥에 뿌려먹는 김가루와 같은 것은 짭조름해서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쨈만들기 체험을 통해 블루베리쨈을 만들었다. 어딜 가 나 뒤로 보이는 후지산이 사진찍기에 적당한 좋은 배경을 만들어 주었다. 쨈만 들기 체험 후 일본 전통 집이 있는 야시노사토에 갔다. 산간 지역의 집같이 경 사진 지붕 모양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영화 촬영에 썼다는 일본 무사 갑옷을 입 을 기회가 있었다. 나와 친구 성법이가 갑옷을 입고 칼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정말로 무거운 갑옷이었다. 이후 빙굴에 들렸는데 밖이 워낙 추웠기 때문에 빙 굴의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여러 가지 체험을 하니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해는 이미 지고 저 녁을 먹으러 갔다. 최후의 만찬답게 일본의 일반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기 도 구워먹고 스시도 마음껏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솜사탕 만드는 것이 재 미있어서 친구들에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다음날이면 일본을 떠나 현실의 삶으 로 돌아간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든 친구들과 일본 측의 가이드 선생님 들과도 떨어져야 한다. 일곱째 날 11월 3일 수 날씨 맑음 마지막 날이다. 후지산 중턱에 있는 호텔로부터 나리타 공항까지는 300km에 달하는 먼 곳이었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공항을 향해 이동했다. 모두들 지쳐 버스에서는 잠을 잤는데, 아쉽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휴게소에 몇 번 들르 고 나리타공항에 도착했다. 짐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가는데 일본측 선 생님들과 헤어지면서 너무 슬펐다. 일주일간의 여행을 책임져주신 고마운 분들, 매일 아침 건강을 물어봐주시던 분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멀어 지는 일본의 모습도 보고 비행기 왼편으로 맑은 날씨에 후지산까지 보였다. 비 록 날씨가 추워지긴 했지만 행복했던 일본 여행,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여행. 아

169 쉬운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일반적인 관광 목적으로 갔다면 이러한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체가 교류 목적으로 갔기 때문에 학교 도 방문할 수 있었고, 외무성을 방문할 수 있었다. 목적인 교류에 맞게 홈스테 이 친구와 인생의 친구가 되었다. 같이 갔던 우수한 한국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 소중한 경험, 잊을 수 없는 경험... 이번 방일 기회를 인 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새로운 목표를 가지게 되어서 정말 기쁘고, 이러한 기회 를 마련해준 한일 양측 기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170 일본에서 받은 선물 이 정 우 대전 명석고등학교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평소에도 적잖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동 경이라는 말이 조금 더 옳은 표현 일지도 모르겠다. TV나 만화, 책등 간접적인 매체들에 의해 일본을 상상하며, 어느 새 일본에 대한 환상은 짝사랑을 가슴에 품은 자의 과대한 망상처럼 끝없이 부풀어 있었다. 그렇기에 일본에 대한 연수 가 결정되었던 날 나의 마음엔 걱정과 기쁨이 함께 떠돌았다. 어렸을 적 대부분의 시간들을 외가에서 보냈던 나는 사람들의 온기라는 것에 두터이 감싸여 심적으로 무척 부유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모두가 가족이고 형 제였던 옛 기억 속 그 동네는 지금도 떠올리는 것만으로 뭔가 배부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따뜻했다. 그러나 지금 나를 감싼 모든 것은 너무나 차가웠다. 나 눔과 이해는 이미 보기 힘들어졌다. 솔직히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른다. 이사한지 반년이 되어가는대도 말이다. 일본은 예절과 예의를 중시하는 곳이라 고 들어왔다. 마음 없는 형식, 형식 없는 마음을 벗어나 양자를 모두 행하려 모 두가 노력하는 그런 곳이라고 들어왔고 봐왔으며 믿어왔다. 그래서 사실 일본을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며 나는 어렴풋이 예전 이웃 아주머니의 웃음과 목소리를 기대했던 것 같다. 일본 공항에 처음 도착 했을 때, 솔직히 일본이라는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공항 출구에는 한글이 표기되어 있고 주변에는 온통 한국 사람들이 있어서였나 보다. 하지만 수속을 마치고 우리를 지도해주실 일본인 선생님과 통역선생님을 만나고 동경의 시내를 바라보며 이곳이 일본이구나 라고 생각되었다. 외국이 라는 생각이 이미 머릿속에 박혀서 이었을까.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곧 새로 운 경험이요, 신기롭고 경이로운 첫 만남이었다. 눈에 보이는 거리들은 너무도 깨끗하였고 더욱이 건물들마저 깨끗하고 앙증맞은 인테리어를 지닌듯했다. 생각 해보라. 일본의 수도 도쿄의 시가지 한복판에 우뚝 솟은 그 높기만 한 건물이 마치 작은 장난감을 보듯 아기자기하게 느껴진 것이다. 외국의 환상이 나의 눈 에 색안경을 씌어준 탓도 인정하겠지만, 그 지루하지만은 않은 부드럽고 안정적

171 인 디자인과 색채의 건물들은 분명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 도쿄타워, 도쿄의 상징과도 같은 그 곳이 우리가 첫 발을 디딘 곳이었다. 조 금 이른 감이 있지만 벌써부터 트리를 장식하고 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도쿄 타워의 그 높은 상층부에서 내려다 본 도쿄는 한 눈에 이곳은 일본입니다. 라고 알려주는 듯 했다. TV에서만 봤던 신사라던지, 일본식 묘지등도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빽빽이 들어선 건물들은 마치 잘 정돈된 도미노 같아서 혼란스럽 지 않았다. 때마침, 인근 학교에서 학생들이 견학을 온 듯 했는데, 그들의 웃음 을 보니 아, 여기도 한국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사는 곳 이구나 싶어 조금은 편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다. 도쿄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너무 많이 보고 느끼고 놀란 것에 감당 못하며 일찍 잠에 취해버렸다. 둘째 날 역시 도쿄의 많은 곳을 방문했다. 외무성부터, 과학기술관등 여러 곳을 다니며, 부족한 일본어 실력으로 부단히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어려움만 가득했다. 그래서였는지, 둘째 날은 온종일 머릿속에 돌아가 면 반드시 일본어 공부부터 할 테야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 면 연수에 대한 준비를 그토록 안일하게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 만 그런 부단한 노력들 중 느낀 것은 일본인들은 생각대로 친절하다는 것이다. 서투른 일본어로 답답히 말해도 계속 웃어주며 끝까지 들어준다. 물론 약간 오 해를 사서 작은 문제도 있었지만, 그 어려움들이나 곤란했던 일도 그 훈훈했던 그들의 웃음에 의해 언제까지나 좋은 기억들로 간직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일본연수를 떠올리며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아사가히 요시타카의 가 족들과 지낸 그 하루이다. 홈스테이에 대해서 처음엔 정말 걱정이 앞섰다. 나의 빈약한 일본어 실력으로는 침묵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계속 생각되었기 때문 이다. 처음 요시타카와 어머니를 만났을 때, 어색함과 긴장과 당황으로 입이 바 짝 바짝 말랐다. 결국 생각 끝에 겨우 뱉어낸 말이 교과서에 나와 있는 인사말, 곤니찌와, 와따이와 이정우또 모시마스, 도오죠 요로시쿠 였다. 한국말로 표기 한 이유는 그만큼 내가 듣기에도 한국말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딱딱했기 때문 이다. 1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곧이어 요시타카상과 어머니의 웃음을 보았다. 나도 웃었다. 그것이 첫 만남이었다. 요시타카의 집은 스와라는 학교에서 상당히 먼 도시에 있었다. 도보로 30분 전철로 50분, 등교시간이 1시간도 넘는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요시타카는 우리 나라 고등학생들의 야자가 더 놀랍다고 했다. 어머니께선 자신을 그냥 오까상

172 (어머니)라고 칭하라 하셨는데, 어머니께서도 영어에 능하셔서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은 거의 없었다. 개인적인 여담이지만 요시타카의 어머니께서 우리 어머 니와 정말 닮으셔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주변 100엔 백화점에 서 선물을 잔뜩 사고 요시타카의 집에 도착했다. 첫 느낌은 어라? 외갓집이잖 아? 였다. 묘하게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어렸을 적 외갓집과 같아서 신기하고 더 친근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시작했는데, 나는 사실 일본요리를 정 말 좋아 하는 터였고 더욱이 어머니께서 정말 잘 차려주셔서 일본에서의 그 어 떤 식사보다 최고의 식사였다. 게임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이웃들도 많이 방 문해서 정말 분주하게 하루의 밤이 저물어 갔다. 다음날은 신사에 갔다. 마침 七 五 三 축제였기에 사람들도 많고 떠들썩한 분위 기였다. 또한 실제로 일본 신사에 방문하여 보니 신기하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 했다. 七 五 三 축제는 5세의 남자아이와 3세, 7세의 여자아이를 데려와 신께 그들 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축제라고 한다. 기모노와 하카마를 입은 아이들의 모습 이 앙증맞기 그지없었다. 퍼레이드 같은 행렬, 많은 사람들, 먹을 것들, 물건 들, 웃음들, 모두가 나의 마음마저 떠들썩하게 띄워주는 귀중하고 즐거웠던 경 험이었다. 그러나 즐거움은 언젠가 끝이 있기 마련이듯, 어느 새 이별의 때가 왔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시간을 탓하는 마음으로 인사만을 계속 했다. 끝까지 챙겨주시던 어머니를 보며 자꾸만 울음이 터지려해서 홀로 손가락을 깨 물며 버티었다. 한 번 맺어진 아름다운 인연은 거리가 멀다거나 못 만난다거나 잊혀진다고 해서 끊이지 않는다. 언젠가 요시타카와 어머니의 얼굴이나 목소리, 함께 했던 이야기나 그날 먹었던 식사가 잊혀지는 때가 와도 그 소중한 인연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내 가슴이 기억하는 한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남을 것이 다. 물론 그전에 요시타카를 만나러 꼭 갈테지만,,,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의 고려고등학교, 바로 요시타카의 학교에 방문 했던 것이다.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웃고 어울리며 느 낀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학생들은 똑같다는 것이다. 별거 아닌 내용, 예를 들어 게임이나 스포츠, 모 연예인에 대한 기사들, 그런 것들로 우리는 얼마든지 웃으며 놀고 즐길 수 있다. 그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어서 생각보다 정말 편하 고 즐거웠던 것 같다. 나미쯔라는 친구가 기억에 남는데, 요리실습을 같이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기 등을 나누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그날의 흔적은 요시타카나 나미쯔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의 사진 몇 장이 전부이

173 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것이 머리와 가슴에 새겨져 이렇게 글을 쓰는 종일 웃 음과 흐뭇함이 넘쳐나는 것 같다. 이번 연수는 나에게 정말 많은 것을 주었다. 전국에서 온 친구들과도 선생님 과도 일본의 많은 이들과도 이토록 소중한 인연을 만들며 즐겁고 뜻 깊은 기억 들을 새겼다.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나의 기대는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나의 두 눈에 새겨졌다. 정말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것이 정말 좋았다. 끝으 로 내 머릿속에 담아온 것은 우리 한국도 그렇게 되는 날이 올 것이란 믿음이 다. 더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귀중한 경험을 하고 한국 속에서 그 경험들을 저 마다 빛낸다면 언젠가 한국과 일본이 정말 가족 같은 나라가 되고 우리나라 속 에서도 일본의 그런 좋은 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분들이 그것을 위해 노력해주시니까, 나는 단지 나의 이 자리에서 내가 받은 많은 것들을 다른 이들에게 되돌려주며 노력하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언젠가 내가 바라던 그 따뜻한 웃음을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따뜻한 한국이 되지 않을까

174 일본을 다녀와서 봉 의 종 금 성 고 등 학 교 일본에 가다 사전교육에 참가한 후에도 나는 일본에 간다는 느낌을 못 느끼고 있었다. 학 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출발 며칠 전까지도 책과 씨름하며 점수 걱정을 하고 있 었다. 그래도 출발 날은 예정대로 다가왔고 나는 주말을 이용해 싼 짐을 들고 아버지와 함께 김해공항으로 향하였다. 목요일 아침 공항에 도착하자 덜컥 즐거 운 생각보단 걱정스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어 한마디 잘 못하는 내가 외무성과 학교 방문, 홈스테이 같은 묵직한 일들을 실수 없이 잘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 이었다. 여러 가지 일로 머리가 복잡한 가운데 김해공항에서 100명의 대한민국 소년소녀들을 실은 비행기는 날아올랐고 곧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였다. 첫째 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일본어로 된 간판이 보였다. 공항 직원들은 서툰 한국 말로 우리에게 입국 수속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 람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적응은 잘 되지 않았다. 얘들이 다 모인 후 현지 선 생님들과 만나고 출발 하였다. 전세버스로 이동하며 처음 보는 일본 풍경을 구 경하였다. 방금 도착해서 그런지 한국과 다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차선도 다르고 차종도 다르고 사람들 옷 입은 모습이나 헤어스타일의 미묘한 차이도 보 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도쿄 타워였다. 몇몇 친구들과 섞여 어색한 가운데 일 단은 사진을 찍는데 열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가 뭔지 몰라서 그런지 별 느 낌이 없었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일본 분들 만나다보니 시간은 다가고 약간 허무(?)하게 첫 날 일정은 끝이 났다. 상당히 고급으로 보이는 호텔로 와 잠깐 회의를 하고 방 배정 받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둘째 날 외무성, 우리나라로 치면 외교통상부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이 날 아침 갑자 기 대한민국 대표로서의 의무감이 든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일단 나는 줄서서 나란히 질서 있게 들어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우리가 뵌 분은 니시

175 무라씨라고 외교통상부 장관의 비서 정도 되시는 분이셨다. 친근한 인상에 말씀 도 편하게 해주셔서 어느 정도 긴장을 풀 수 있었다. 화목한 분위기 가운데 큰 일 없이 끝이 났다. 일본 환궁에서 잠깐 사진 촬영시간을 가진 뒤에 일본 쪽에 서 준비한 환영 오찬회에 참가했다. 맛은 기가 막혔다. 밥을 먹은 뒤 도쿄미래 박물관을 방문했다. 로봇, 우주, 영상. 다분히 미래 지향적인 키워드로 가득 찬 곳이었다. 운 좋게도 일본 한 학교 여고생들이 견학을 같은 시간에 와서 그들과 함께 포토타임도 가질 수 있었다. 이어서 수상박물관에도 들렀는데 도쿄의 과거 상과 미래 상, 수상도시로서의 역사 등을 공부할 수 있었다. 친절히 잘 설명해 주셔서 여러모로 견문을 많이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같은 호텔로 와 하룻밤을 또 보내었다. 홈스테이 셋째 날 아침에는 방재교육체험을 했는데 그다지 기억에 남지가 않는다(그곳 인솔 선생님께서 꽤나 활기차고 즐거우신 분 이셨던 것 정도가 생각난다.). 아 무래도 이 날 있었던 홈스테이의 즐거움이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방재 교 육체험을 끝을 내고 우리 팀은 아키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있는 데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되었다. 내가 가는 집은 한국 문화에 상당히 관심이 많 은 집이었는데 가족 소개서에 같이 한국 음식을 만들어요. 라고 나에게 꽤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잠 깐 새우잠을 잤다. 홈스테이 대면식이 있었는데 나와 만날 가족만 아직 안온 상 태였다. 그래서 대면식 도중에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만나 는 장소를 잘못알고 다른 곳에서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만나기 전에 인 사말이나 처음 건넬 말들을 진짜 많이 연습했는데 막상 만나니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학교에서 배워두었던 만국공용어인 영어가 도움이 되었는지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었다. 잠깐 몇 가지 대화를 나누며 영 어로 의사소통하는 요령을 익히자 거의 대화에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대 화내용은 주로 한국에 대한 궁금증을 내가 답하는 식이었다. 한국 교육 문제나 성형수술의 유행, 남자들의 군대 문제 같은 꽤나 심오한 질문들도 하셔서 약간 곤혹스럽기도 하였다. 날 그 집으로 초대한 건 켄지상 이라고 나와 동갑인 친구 인데 정말 특별한 친구였다. 한국 학생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많은 재주를 가진 친구였다. 한식, 양식요리에 피아노 연주, 드럼 연주, 전자 기타 연주 등 갖가 지 재주를 선보여 주며 입시공부에 매달리고 있는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주었

176 다. 13살 동생 마사야와 켄지가 함께 보여준 락 음악 연주는 이번 연수에서 가 장 잊지 못할 기억일 것이다. 저녁에는 그 쪽 가족 친척 분들도 같이 오셔서 한 국식으로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매일 호텔에서 양식을 먹다보니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참인데 맛있게 해주셔서 참 고마웠다. 내가 준비한 선물도 드렸다. 천 연염색 스카프였는데 너무 좋아하시면서 홈스테이 하는 동안 계속 두르고 다니 셨다. 저녁을 먹은 뒤 온천에 켄지네 아버지와 마사야와 함께 갔다. 사우나에서 쪄 죽을 뻔 한 것만 빼면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음 날은 대뜸 내 종교를 묻더니 무교라고 하자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다. 교회에서 여러 분들을 만났는데 한국어를 공부하시는 분이 계셔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독학으로 공부하셨다는데 서투른 솜씨였지만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 말 아름다우셔서 대단하다고 말씀드렸다. 오전 동안 교회에서 성경을 공부 했는 데(한국어 성경책을 구해다 주셨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뜻 깊 은 것 같다고 하니 나보고 앞에서 성경책 몇 구절을 읽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우 리가 일본어 발음에 놀라듯이 한국어 발음에 매우 놀라시는 것 같았다. 어쨌든 또 짧은 시간을 뒤로하고 점심을 먹었다. 꼭 가고 싶었던 회전초밥 집에서 점심 을 함께 한 뒤 중고샵과 백엔샵, 식물원, 일본 시장 등을 차례로 돌았다. 선물 로 무슨 술잔 같은 것을 사주셨는데 이름 있는 사람이 만든 것이니 소중히 간직 하라고 하셨다. 사실, 이런 선물 없어도 너무 소중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충 분히 고마웠다. 너무 황송한 대접을 받은 느낌. 어느덧 하루가 다 지나갔다. 헤 어질 때 준비했던 일본말이 잘 나오질 않았다. 사요나라, 아리가또고자이마스 만 백번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하루는 정말 짧았다. 그 날은 우리 모두 잠을 못 이루었다. 학교방문 홈스테이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학교방문이라는 큰 행사가 또 다가왔다. 사실 우리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이벤트이기도 했다. 우리가 간 학교는 아키 타 미나미 고등학교였는데 공립학교로서 그 지역에서는 명문학교 중 하나라고 한다. 환영식을 받고 그 쪽 고등학생들을 만나 일본 문화에 대한 영어 프리젠테 이션을 모둠별로 나누어 들었다. 이쪽이나 우리 쪽이나 영어실력은 비슷비슷해 보였다. 종이에 흘겨 쓴 영어 문장을 힐끗힐끗 보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 (?)을 느꼈다. 학교 시설을 전체적으로 견학하고 우리 담당 파트너를 만나 영어 로 각자의 문화, 학교, 취미 등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 서먹서먹했

177 는데 내가 자꾸 먼저 여러 가지 되는대로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자 마음을 열어 주는 것 같았다. 이름은 호나미, 타쿠미 이고 고1이라고 자신들을 소개 했다. 점심 도시락도 같이 먹고 한국어랑 일본어를 서로 가르쳐 주는 시간을 가 지며 점점 더 친해져 나중에 가니 이제 그 쪽에서 농담이나 장난을 치기 시작했 다. 이제야 말이 좀 트이구나 싶었는데 학교 환영행사하고 헤어질 시간이란다. 어제 켄지도 그렇고 정말 말 좀 더 하고 싶은데 헤어지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었다. 어쨌든 선배로서 훈훈하게 끝내기 위해 헤어지는 와중에 호나미와 타쿠미 를 찾아 들어가 준비한 일본어로 인사를 하고 사요라나 하며 손 흔들고 나와 주었다. 학교를 떠나는 버스에 탔는데 우리들 파트너들이 다 같이 뛰쳐나오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감동. 얘들이 모두 일본에서 살고 싶다고, 저 학교 다니고 싶다고 소리쳤다. 숙소로 돌아와서 우리는 학교방문 이야기를 하며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을 보냈다. 11.3(화) 이날은 일정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큰 행사들을 끝내고 이제는 정리하는 기분으로 모두들 일정에 참여했다. 전통 춤 배우기였는데 예상과는 달리 상당히 박력이 넘치고 귀여운 춤동작을 접하게 되었다. 현대에 맞게 재해석을 했다고 하는데 처음 볼 때는 웃음이 나올 뻔 했다. 우리 팀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은 바리상 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데 우리 남자애들 23명보다 더 큰 에너지를 발산하시는 분이셨다. 춤이 처음보기에는 웃 겨보였는데 막상 배우려니 쉽지가 않았다. 밖에는 첫눈이 오는데 우리는 땀까지 흘려가며 열정을 불태웠다. 다 같이 모여 음악에 맞추어 열심히 췄는데 제대로 췄는지 잘 모르겠다. 내 예상에는 한 바탕 코미디 쇼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우리 나름대로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니 상관없다. 한바탕 춤판을 끝내고 도쿄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탔다. 아키타 현. 정말 추억을 가득 안겨준 고마운 곳이었 다. 이곳으로 온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말았다. 얘들과 이제 막 친해지려고 하는데 헤어지는 딱 그 기분. 일본에 적응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딱 떠나야 하 는 그 기분. 속에서 뭔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 동안 같이 생활하며 친해진 친구들과 일본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공항에서 보냈다. 다들 웃고는 있었는데 섭 섭한 모습을 숨길 수는 없어 보였다. 마침내 정말 우리들 아들처럼 대해주시며

178 잘 해주셨던 현지 가이드 선생님들(후쿠시마 선생님, 이화선 선생님 두 분 모두 너무 고마우신 분들)과도 이별하고 김해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게 되었 다. 면세점에서 얘들과 마지막 일본 가게, 사람을 만나고 물건들을 만지작거렸 다. 2시 쯤 김해로 향하는 비행기에 방일 교류연수단 전원 탑승했다. 다녀오고 나서 호텔 대신 기숙사. 뷔페 대신 급식. 일본어 대신 한국어. 이제는 일상으로 다 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나는 이 연수를 7일 동안 쉬고 온다는 생각으로 신청 했었다. 7일 동안이나 학교에 빠지면 뒤처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 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진짜 바보 같은 생각들이었다. 나는 7일 동안 쉬지 않고 엄청난 것들을 보고 느꼈다. 7일 동안 아이들이 학교 일상에 시달릴 때 나는 일생에 한번 하기 힘든 값진 경험을 했다. 우리 동네 나주에서 거의 벗 어나 본 적이 없는 내가 해외까지 나가 견문을 쌓을 수 있었고 난생 처음 만나 는 외국인들과 열심히 대화를 시도했다. 정말 멋지고, 즐겁고, 훌륭하고, 또 감 사했던 연수였다. 친구 한명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 학교가기 싫다! 7 일은 정말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다

179 JAPAN 박 성 진 한 영 고 등 학 교 먼저 이글을 쓰기 전에 이번 연수에 참가하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 니다. 정말 보고 많은 것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연수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신 여러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저는 처음 해보는 해외여행이라서 처음에 긴장을 했는데 비행기도 타보니 그 렇게 위화감도 들지 않았고 출국심사도 별로 까다롭지 않아서 별로 해외여행이 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지요. 일본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도 주변에 일본인이 있음에도 여기가 일본이라는 느낌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항을 벗어나 자 한국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지더군요. 길거리에는 휴지한조각 찾아보기 힘들고 차들도 정말 반듯하게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저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컬 쳐쇼크였습니다. 또 도쿄타워를 가는 중에도 도쿄가 일본의 수도인건 분명한데 차들의 경적소리는 한 번도 들을 수 없었고 차들도 정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더 군요. 이러한 점들이 제가 아 내가 외국에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고 조금은 무섭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국인이라서 일본인들에게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일본인을 대하는 게 무섭게 생각되었죠. 그 래서 도쿄타워에 올라가서도 일본 초등학생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있었지만 결 국 같이 사진 찍자는 말도 못해보고 도쿄타워를 내려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호텔에서도 같은 방에서 배정된 친구들과는 그전에 별로 친해지지 않아서 그냥 어영부영 밤을 보냈죠. 그리고 그 다음날 우리는 외무성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 니다. 그런데 겉모양도 그냥 구청같이 생기고 쉽게 들어가서 이게 외무성이라는 곳인지 조차도 모르겠더군요. 외무성을 나와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식사 를 하는 곳 창밖으로 국회의사당과 일본의 총리가 머무는 청와대 비슷한 곳 그 리고 일본의 천황이 기거하는 황거가 한눈에 보이는 전경이 펼쳐지더군요. 정말 제가 풍경을 보고 감탄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오며 제가 우물 안 에서만 살았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그 다음에 간곳이 오다이바 였는데 매립지 라고 해서 그냥 바다만 메워 놓은 곳인 줄 알았는데 딱 와보니 건물은 적은데

180 보이는 건물마다 엄청나게 크고 전부다 신기한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오다이바 에서 처음 간 곳이 미래관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는 각종 과학자료와 미 래의 기술들을 보고 만질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수많은 led를 붙여서 만든 지구본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과거의 지구의 모습을 비춰주면서 거기 직원분이 설명해주시는데 말은 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흥미 깊게 봤죠. 그리고 항구관과 자유의 여신상을 들르고 나서 다시 호텔로 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제가 호텔 키를 방에다가 놔두고 오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 다.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해결하자면서 문제를 일으킨 저를 로비에서 떠밀더군 요. 그래서 저는 하는 수 없이 자신 없이 일본어로 제가 호텔 키를 방에다가 놔 두고 와버렸다고 말했는데 호텔직원분이 다알아듣고 문을 열어 줄 테니 방문 앞 에서 기다리라더군요. 거기서 진짜 자신감이 붙더군요. 내가 알고 있는 그 나라 의 언어가 통한다니 정말로 신기하고 재밌더군요. 정말 그 일로 친구들한테서 칭찬도 받고 그 계기로 말도 붙이고 엄청 친해질 수 있었죠. 그래서 그날 밤에 는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일본 방재관 이라는 곳을 방문 했는데 그 곳 에는 일본의 지진재해의 사진들과 함께 화재의 초기진화 훈련, 지진체험, 화재시의 피난훈련 등의 재해시의 대처방법 등을 체 험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재해 대처와 관련해서 그다 지 교육받은 적이 없어서 이런 훈련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지진피해 자료를 보니 정말 이런 지진이 일어나 건물과 도로가 무너졌음에도 지금의 일본 을 돌아보면 그런 재해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정말 내가 있는 곳이 그 지진대국으로 유명한 일본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렇게 방재관을 떠나서 드 디어 홈스테이를 하기 위해 아키타로 향했죠. 처음 아키타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됐을 때 완전히 도쿄와 떨어져 있어서 아~! 완전히 시골로 가는구나. 야마나 시현가는 얘들 부럽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키타 공항에서 내 리자 주변은 완전히 숲들 뿐 이더군요. 그래서 역시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아키 타시에 들어서자 주변에 큰 건물들이 줄지어서 서있었는데 정말 우리나라의 중 소도시와 비교해서 전혀 덜하지 않고 오히려 훨씬 나은 도시모습에 솔직히 놀랐 습니다. 솔직히 한국만 하더라도 조금 지방만 가면 완전히 시골인데 일본은 이 렇게 떨어져 있는 곳임에도 이렇게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이 정말 부러웠 습니다. 그렇게 아키타시내를 거쳐 드디어 홈스테이 대면식장에 도착했습니다. 얘들도 거의 모두 홈스테이는 처음이라서 긴장해 하는 것 같았죠. 그렇게 대면

181 식이 시작되고 제 옆에 앉으신 분은 어느 중년여성분이셨는데 한국인이라고 하 셔서 조금 당황하고 안심이 됐죠. 그런데 같이 홈스테이를 가는 얘의 옆에 앉은 사람은 일본의 남학생이었는데 인상이 정말 험악해서 정말 무서웠는데 제 옆의 앉으신 아주머니의 아들인 진건 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일본어 밖에 할 줄 몰라서 제가 같이 간 친구의 통역을 해줘야 했습니다. 그렇게 대면식이 끝나고 홈스테이 집으로 가는데 아주머니랑 진건이랑 막 얘기하면서 어디를 데려가고 무얼 먹는 게 좋을 지 계속 얘기하시는 거애요. 거기서 조금은 이 사람들이 좋 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온천을 갔는데 처음 가보는 온천이라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조금 당황했는데 진건이가 모두 어떻게 해 야 되는지 가르쳐 주더군요. 그리고 노천탕에 들어가 진건이랑 얘기를 나누는데 정말 진건이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정말 순진하게 커서 정말 얘가 착하더라고 요. 얘기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배려심과 순진함이 넘쳐흘러서 같이 간 얘도 말 은 안 통하지만 정말 마음은 통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진건이랑 셋이서 모두 온천 안에서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간곳이 국수집이었는데 거기서 처음 일본의 메밀국수를 먹었는데 국수를 그냥 간장에다가 찍어먹어서 조금은 당황했습니다. 게다가 양도 우리들이 일본음식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게 무척이나 많이 나와서 다 먹지도 못하고 운동을 해서 많이 먹어야 하는 진건이에게 양보했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진건이와 노는데 진건이가 중학교 때의 앨범을 가져와 즐겁게 이야기 하면 놀았습니다. 일본 얘들도 우리랑 같이 노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그렇게 저녁 늦게까지 얘기하며 놀다가 내일 아침 일찍부터 운동부의 연습이 있는 진건이가 조금 피곤해해서 저희도 일찍 잠 자리에 들었습니다. 아키타는 조금 춥고 게다가 일본은 온돌같은게 없어서 방안 의 공기가 차가워서 어떻게 할까 했는데 아주머니 저희들을 배려해서 겨울용 이 불을 꺼내줘서 정말 따뜻하게 잣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일본의 쇼핑몰에 갔었 는데 거기서 기념품도 사고 신기한 물건도 구경도 하면서 즐겁게 보냈고 일본의 오락실 비슷한데도 안에 있어서 거기서 인형 뽑기도 해봤는데 역시나 비싸더군 요. 그리고 조금 돌아다니는데 서점이 있어서 정말 기뻐하면서 서점을 구경하면 서 제가 평소에 사고 싶었던 책들의 일본 원서를 구입하면서 엄청 행복한 시간 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돼서 중앙홀에서 일행 분들과 모였는데 거기 서 나리타의 전통 난타 비슷한 나마하게라는걸 봤는데 정말 북소리가 전신을 강 타하는데 정말로 소름이 돋고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전부 다 보려

182 고 생각했었지만 배가 고파서 하는 수없이 밥을 먹으로 갔는데 한국 사람들이 일본의 라면은 맛없다고 해서 저는 호기심에 라면을 먹으로 갔는데 생각 외로 맛이 있었습니다. 김치가 조금 생각나긴 했습니다마는 그래도 별로 거부감 없이 전부다 먹었죠. 라면까지 먹고 나니 정말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서 가지는 편견들이 너무 많고 그런 것들 중에서 얼마나 거짓된 게 많은지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더군요. 얼마나 아쉽던지 정말로 홈스테이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었는데 진짜 홈스테이 가 얼마나 타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지 가슴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 아쉬워서 진건이랑 제가 차고 있는 시계랑 진건이의 입던 옷 이랑 교환을 하고 인터넷 전화번호를 받아서 언제든지 전화하고 다시 아키타로 놀러 오라더군요. 정말이지 일본사람들은 정말 정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홈스테이 분들과 헤어지고 나서 그 다음 날 저희는 일본 학교에 방문을 했는데 처음 일본 학교에서 학생들을 보는데 전부다 저희를 신기하게 봐서 조금 위축되 더군요. 학교구경을 끝내고 일본 학생들의 영어로 자신들의 클럽을 소개하는 시 간이 있었는데 거기서 같은 취미의 학생을 만나면 반가워서 손도 맞잡고 즐거워 해서 일본 학생들도 우리들과 좋아하는 건 별로 다르지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들 었고 일본학생들이 한국학생들에게 가지는 이미지도 정말 좋아서 스스럼없이 다 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본 학생들과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이 들자 어느 새 학교를 떠나는 시간이 되어 있더군요. 얼마나 아쉬웠던지 그래서 프로그램이 끝났음에도 일본학생들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밖에 까지 마중 나와서 손을 흔들어 줬죠. 저희도 얼마나 손을 흔들었는지 팔이 다 아프더라고요. 하지만 그 래도 계속 흔들었습니다. 이제 한번 헤어지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별로 없으니 정말 아쉬웠으니까요. 진짜 홈스테이와 학교방문에서 인간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느끼고 이렇게나 착한 일본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제가 본받아야 한다고 느껴지더군요. 또 아키타를 떠나는데 홈스테이 하셨던 분들이 오셔서 직 접 마중까지 나와 주시는 거예요. 저희 홈스테이 가족 분들은 오시지 않으셨지 만 옆에서 서로 아쉬워하고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에 정말로 제 가슴까지 훈훈해 지더군요. 이렇게 아키타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이 번 일본연수가 저에게 정말 여러 가지 교훈과 느낀 점들을 주었습니다. 먼저 제 꿈이 생기더군요. 일본에서 저희를 지도해 주시는 가이드 분들의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주일동안 살았음에도 정말 일본이 잊히지

183 가 않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 제 진로에 대해서 고민 했었는데 이번 연수로 인 해 제 진로를 확실히 정할 수 있어 이제 그 길로 달려보려고 하고 있고요. 그리 고 인간관계를 정말 소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보며 정 말이지 제가 만나본 일본인들처럼 예의바르고 상냥하게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 럼 여기까지 저의 일본에서의 느낀 점과 생각들 이었습니다

184 잊을 수 없는 한 주간의 짧고도 긴 여정 정 진 욱 경북 경주고등학교 처음 일본에 간다고 정해졌을 때가 4월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10 월이 언제 오나 하고 투덜거렸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시간은 참 빨리 흘러 사 전연수 교육도 다녀왔고, 출국 날짜 D-Day도 하루씩 하루씩 줄어들고 있었다. 드디어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 일어 나 김해공항으로 가는 7시 버스를 탔다. 경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1시간 정도 달 리니 어느덧 공항에 도착하였다. 처음 타게 된 국제선 비행기라 막막했지만 차 근차근 가져온 짐가방을 부치고, 게이트로 들어가 출국심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비행기에 탔다. 대한민국 부산 김해공항을 출발한 KE 715편 비행기는 도쿄 나리 타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비행기에서 앞으로의 일정을 살펴보고, 일본 외 국인 입국카드를 작성했다. 입국카드는 작년에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을 때 작성해본 경험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어느덧 나리타 국제 공항에 착륙했다. 입국수속을 밟고는 수하물을 찾았고, 세관을 지나 드디어 일본 땅에 발을 내디 뎠다. 우리가 일본에서 가 볼 첫 명소는 바로 도쿄타워였다. 그 유명한 도쿄타 워에 가보게 되었다니! 우리는 도쿄타워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 비행기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사진도 찍고 아래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기도 하며 즐거 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고, 밤에 본 도쿄타워의 야경 은 숨을 멎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도쿄의 명물 도쿄타워를 프레임에 좀 더 담 아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이동하여 Tokyo Sheraton Miyako Hotel에 도착하 였다. 지하 2층 홀에서 전체 회의를 했다. 이 한일 청소년 교류 사업은 대한민 국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과 일본 외무성 산하 일한문화교류기금 에서 하는 것이었다. 이 날 회의는 우리 연수단의 간단한 일정과 함께 일한문화 교류기금 단체가 하는 일, 우리가 이번 연수를 통해 얻어가야 할 연수의 목적 등 연수 전반을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피곤했지만 설레던 첫 날밤은 흘러갔다. 둘째날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우리 방일연수단을 일본으로 초청해준 외무

185 성을 표경 방문 해야 했기 때문이다. 10시쯤 우리 연수단을 환영하는 환영회가 시작되었다. 외무성 측에서는 니시무라 치나미( 西 村 智 奈 美 ) 대신정무관이 행사 에 참석하였다. 환영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외무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 거' 광장에 갔다. 넓은 잔디와 많은 나무, 그리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벤치도 있었다. 그 후 우리는 방일 연수단 환영 오찬회에 가게 되었다. 일한문화교류기 금에서 연 오찬회, 이것 역시 공식적인 행사였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오다이 바로 향했다. 오다이바로 간 우리는 일본과학미래관을 방문했다. 일본과학미래 관의 상징이자 명물이었던 것은 발광다이오드(LED) 판 100만 개를 이용해 '우주 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을 꾸며놓은 것이었다. 그리고는 도쿄 미나토 관으로 향했다. 도쿄 항구관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항구도시 도쿄의 매립지 역 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관람을 끝낸 후 이동하여 자유의 여신상을 보 러 갔다. 일본 도쿄에 웬 자유의 여신상? 1998년 일본의 한 그룹이 프랑스의 해 를 맞이하여 프랑스의 그 자유의 여신상을 대여하여 전시했는데 일본 국내에서 인기가 좋아 이를 복제하여 전시한 것이라고 한다. 이 자유의 여신상은 뒤로 레 인보우 브릿지와 도쿄타워가 보여 야경이 그만이다. 공식적인 행사로 긴장을 많 이 했던 둘째 날 밤도 이렇게 저물어 갔다. 셋째날은 매우 떨리는 날이었다. 일본인 가정에 홈스테이를 하는 날이었기 때 문이다. 아키타 현으로 떠나기 전에, 먼저 메구로구 방재센터로 향했다. 일본에 서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인지 방재센터를 통한 교육이 철저했다. 지진 체험과 소화기 사용 체험, 연기 체험을 해보았다. 방재센터를 방문하고 나서 우리나라도 체계적인 방재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 었다. 안심하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재해를 만난다면 인명피해나 재산 피해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방재센터에서 체험을 마치고 하네다 공항으로 향했다. 하네다 공항에서 우리는 일본 국내선 ANA 875편 기를 타고 아키타 현 아키타 공항으로 갈 것이다. 아키타 현은 평양과 동일 위도 상 에 있기 때문에 매우 추운 곳이었다. 한국의 겨울 날씨였다. 아키타 공항에 착 륙한 우리는 홈스테이 호스트 패밀리와 대면식이 있을 아키타 현청으로 갔다. 내가 가게 될 집의 가정에는 고등학교 2학년의 남학생이 있었다. 이름은 사토시 코다마. 괜히 내가 가서 실례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다. 떨리고 긴장 되어 마른 침만 삼켰었다. 드디어 대면식이 열렸고, 나는 드디어 가족 분들과 만났다. 사토시 군은 학교에서 시험이 있어서 오지 못했고, 어머니께서 오셨다

186 어머니께서는 참 다정한 분이셨다. 피곤하지는 않느냐고 물어주셨고, 다음날 일 정도 미리 이야기 해주셨다. 그리고 괜찮은지도 물어봐 주셨다. 대면식이 끝나 고 집에 도착하여 어머니와 나는 본격적인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국에 대해 많 이 알고 싶은 것이 많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대로 이 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사토시 군이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가족 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어머니께서는 저녁으 로 아키타 전통 음식을 준비해주셨는데, 정말 맛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내 입맛 에 맞지 않을까 많이 염려하셨다고 했다. 두 그릇이나 먹고는 우리 고장 경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져간 선물을 드렸다. 어머니께는 한국 김을, 사토시 군에게는 경주 엽서와 경주 문화재 책갈피, 경주 안내 일본어 책자를 건 넸다. 그 후 우리는 식탁에 둘러 앉아 할로윈 데이를 기념하여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파티를 했다. 차를 마시고, 과일과 케이크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일찍 자두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잠자리에 들었다. 일본에서의 셋째날 밤은 아주 낯선 곳이었지만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으 로 잠들 수 있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잠이 일찍 깼다. 그리고는 이불 정리를 하고 어머 니께서 준비해 주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나른한 편안함이 온몸을 에워쌌다. 아침 식사는 쌀밥과 된장국, 일본 김과 연 어, 일본 청국장 낫토, 매실장아찌 우메보시 등이었다. 9시 45분쯤, 사토시 군 의 학교 친구와 가족들과 함께 사토시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공장에 견학을 가 게 되었다. 사토시 아버지께서는 15대째 가업을 이어 정종(사케)과 된장(미소), 간장을 만드는 회사의 사장직에 계시다고 했다. 그곳에서 사토시 군 어머니의 친구 분 가족과, 그 가족에 홈스테이 하러 온 우리 팀원 여학생을 보았다. 그들 도 함께 구경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공장장님께서 해주시는 설명을 전혀 알아 듣지 못해서 어머니께서 영어로 많이 통역해주셨다.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 였다. 그리고 사토시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 거대한 저택도 구경했다. 그 후, 우 리는 근처에 바다를 보러 갔다. 아침부터 비가 왔기 때문에 바로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비오는 날의 가을 바다는 꼭 한 번 가볼만한 곳이었다. 운치가 멋졌다. 드디어 오후 4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꼬박 하루를 함께 지 냈다지만 정이 정말 많이 든 것 같았다. 섭섭하고 고마웠다. 미안하고 감사했 다. 사토시 군과 어머니께서도 많이 서운해 하셨다. 만나자마자 떠나야만 했지

187 만, 나는 좋은 친구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이메일을 주고받고, 좋은 친구 가 되자는 말로, 감사했고 신세 많이 졌다는 말로, 건강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 는 말로 작별했다. 항상 생각날 것이다. 아키타, 사토시 군과 가족들. 여러 친 구들과 함께 홈스테이의 추억들을 나누며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아키 타에서의 둘째 밤이자 일본에서의 넷째 밤을 지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교복을 단정히 차려입었다. 가장 중요한 행사 중 하나인 학교 방문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할 학교는 아키타현립아키 타남고등학교( 秋 田 県 立 秋 田 南 高 等 學 校 )였다. 9시 30분쯤 학교에 도착하여 교장 선생님의 환영인사 말씀을 듣고, 4개의 조로 나누어 학교시설을 견학했다. 다양 한 특별실이 많았고, 가장 부러웠던 것은 동아리마다 동아리실이 있었다는 것이 었다. 일본 학생들이 자신의 학교와 학교생활을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해주었다. 그 후 일본 친구들과 조를 나누어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 러고 나서는 우리 연수단을 학교 측에서 환영하는 환영회가 체육관에서 열렸다. 여기에는 전교 학생들이 모두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일본 측 검도부 학생들 의 검도 시범과 한국 학생들의 가야금 등 특기를 선보였다. 그 후, 일본의 다도 체험을 하게 되었다. 다도부 친구들이 우리에게 한 잔씩 대접해준 일본 전통 차 는 씁쓸했지만 향이 좋았다. 다도 체험을 한 후에 우리는 일본 친구들에게 한국 어를, 일본 친구들은 우리에게 일본어를 가르쳐주었다. 아쉽지만 이제는 학교를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일본 친구들도 우리들도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사진을 찍고,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였다. 비가 오는 데도 일본 친구들은 떠나는 우리를 배웅하러 밖으로 나와 주었다. 비록 짧은 시간동안이었지만 우리는 이렇게도 깊 은 사귐을 나눈 것이다. 국적과 언어가 다른 것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는 데에 전혀 장애가 되지 못했다. 비록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비록 살아온 문화 적 환경이나 지리적 환경이 많이 달라도 우리는 가슴으로 통하였다. 10대 고등 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에 함께 웃음 짓기도 했듯이 말이다. 이렇게 또 다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비록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서로를 떠올리며 웃음 지을 수 있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번 연수를 통해 만난 일본 학생들과 우 리는 훗날 한ㆍ일 양국 간에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연수의 목적이 아니었던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 는 타자와코 예술관으로 향했다. 거기에서 일본 벚꽃나무 껍질로 간단한 공예품 을 하나씩 만든 후에 바로 옆에 있는 호텔로 갔다. 그 호텔에는 온천이 마련되

188 어 있었고, 따뜻한 물에 몸을 좀 담그고 나서 친구들과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 리의 연수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함께 이야기했다. 늦은 시간까지도 친해진 전 국 각지의 친구들과 함께 있느라 얼마 자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다섯째 밤은 지 나갔다. 아침을 먹고 난 후, 타자와코 예술촌 내에 있는 극장에 갔다. 거기에서 우리 는 현대적인 리듬에 맞게 변형시킨 북해도 소란부시 춤이라는 전통 춤을 배우게 될 것이었다. 북해도 지역에서는 청어가 많이 잡히기 때문에 청어를 잡으며 불 렀던 일종의 노동가에 맞춰 추는 춤이었다. 땀 흘려가며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춤을 췄다. 그러고 나서 아키타 공항을 향했다. 아키타를 떠나기가 아쉬웠다. 아키타의 자연환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봄이면 벚꽃이 아름답게 피고, 여름이면 녹음의 푸른 나무가 빽빽이 자라며, 가을에는 단풍이 곱게 들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산과 나무 위에 살짜기 내려 덮는 아키타의 사계절 자연은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비록 엽서와 사진으로만 보고 가지만, 꼭 언젠가는 사철의 아키타를 맛 보고 싶어졌다. 또, 나는 여기서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한 추억을 함께한 많은 일본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을, 그들과 함께한 잊지 못할 추억을 뒤로 하고 아 키타를 떠나왔다. 아듀, 아키타! 아키타는 정말 매력적인 도시였다! 아키타 공 항을 떠나온 ANA 876편 기는 도쿄 하네다 공항에 내렸다.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 은, 지금까지의 연수를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일본 그 자체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서의 마지막 밤은 이런저런 생각에 뒤척이면서 지새웠다. 이제 마지막 날이다. 아쉽게도 일본을 떠나야하기도 했지만, 1주 동안 정든 단원 친구들과도 헤어져야 했다. 나리타 공항에 내렸던 첫날이 어제 같기만 한 데 벌써 6박 7일의 빡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를 태운 KE 716편 기는 오후 2시 도쿄 나리타 공항을 출발하여 부산 김해 국제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비행기가 고도를 높여갈 때마다, 일본에서 떠나가고 있 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듀, 도쿄! 아듀, 일본! 2009년 10월 29일부터 11월 4 일까지, 이번 일본 방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뜻 깊은 기간이 될 것이다. 드디어 비행기가 착륙했다. 우리 방일 연수단은 무탈하게 연수를 잘 마 치고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해냈다. 이젠 정말 친구들과도 작별해야 한다. 서로 건강하라는, 자주 연락하자는 말로 작별을 갈음하는 친구들의 얼굴 에는 섭섭하고도 아쉬운 표정이 한 가득이었다. 한 주간 잊을 수 없는 추억을

189 함께 나눈 우리,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우선, 이렇게 좋은 기회를 통해 일본의 참모습을 보게 되어 영광이고 행운이 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수많은 대한민국의 청소년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민간 외교관의 책임과 의무를 지고 다녀온 이번 연수는 참 뜻 깊었다. 이번 방 일 연수를 통해 나는 일본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일본과 일본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난 역사의 문제와 독도 문제 등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의 가까운 이웃이다. 이제는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깝고도 먼 이웃인 일본과 함께 손잡고 세계화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에 대한 나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려면 일 본을 일본 그 자체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번 연수는 그러한 기 회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수를 통해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할 때 다른 편견 과 고정관념을 개입시키지 않고 일본 그 자체, 일본에서 내가 직접 겪었던 일본 그 자체의 모습만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일본인들은 한국이라는 곳에서 온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항상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한국인과 일본인 이 아닌, 인간 대 인간,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관계를 맺었다. 내가 한 주간 보 고 온 모든 것이 일본과 일본인들의 참모습은 아닐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일본의 모습이 있 다는 것은 확인했다. 이번 연수는 국제적인 감각을 익히고, 다른 나라의 문화도 직접 체험해봄으로써 글로벌 인재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기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일본 문화의 직접 체험, 많은 일본 청소년과의 교류를 통 해 상호이해의 기반을 마련하며 국제적 안목을 배양하여 한일 간의 관계를 개선 하고, 우호를 증진하여 궁극적으로는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조국의 동량 지재로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190 일본에서 보고 느낀 새로운 것들 현 상 민 창 원 경 일 고 등 학 교 6박 7일간의 방일연수를 끝내고 돌아왔다. 일본에 처음 가봤는데 일본에서 느낀 것들은 새로웠다. 김해공항을 출국해 나리타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여 기가 일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일상생활 중에 있던 반가운 여행이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도쿄를 둘러보는데 도시가 끝이 없 었다. 도쿄타워에 도착해서 도쿄타워에 올라서서 도쿄를 둘러보았다. 눈에 보이 는 끝에서 부터 반대편 끝까지 도시가 끝이 없었다. 일본에 가기 전 까지만 해 도 일본이 이렇게 크다는 생각은 가져보지 못했다. 뉴욕에 갔을 때 만해도 이런 감정은 없었는데 일본의 거대함에 놀라웠다. 도쿄타워에서 도쿄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도쿄타워는 전파통신용으로 세워졌는데 지금은 더 높은 탑을 세우는 중이라고 한다. 앞으로 도쿄타워는 관광용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첫째 날은 도쿄타워를 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둘째 날에는 먼저 외무성을 방문 하게 되었다. 관광객이 외무성에 방문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다. 하지만 우리는 방일연수단으로서 외무성 대신정무관과 환영회를 가졌다. 그 리고 시간이 남아서 일본 천왕이 사는 황궁으로 가게 되었다. 도쿄 시내의 거대 한 숲에 황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가보니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큰 광장이 자갈로 돼있었는데 자객의 침입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황궁 근처로 많은 고 층 빌딩이 위치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우리를 위해 환영 중식회를 열었다. 그 기금의 높으신 분들이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초고층 빌딩 의 35층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일생에 그런 기회는 별로 없을 것이다. TV에 서만 보던 환영중찬회를 나도 경험해 보게 되어 기뻤다. 그곳에서도 일본을 둘 러 볼 수 있었다. 수상관저, 국회의사당, 방위성 등 일본의 주요 기관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끝이 없는 도시를 보고 대단한 도시란 걸 느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일본과학미래관에 가게 되었다. 도쿄만을 매립해서 세운 오다이바에 위치 하고 있다. 그곳에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일본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많이 온 것 같았다. 그곳은 우리 한국의 과학관 보다 더 괜찮은 것 같았다. 많

191 은 자원봉사자 분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신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체험할 수도 있게 되어 있다. 일본의 아이들이 이런 걸 보고 배워서 그렇게 강대국이 됐다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이런 좋은 박물관은 우리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 했다. 다음 으로 임해부도심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있는 곳인 항구박물관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임해부도심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오다이바는 상업, 주거, 레 저 등 복합적인 도시다. 많은 건물들이 지금도 세워지고 있었고 거대한 부두도 있었다. 그 부두는 부산항에 비하면 아직 작지만 부산항을 따라가려고 노력중이 라고 한다. 관계자분의 얘기를 들어보니 일본은 상당히 노력 중인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앞선다고 해서 그냥 있지 말고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셋째 날에 는 방재 체험관에 먼저 갔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빈번히 일어나는 나라다. 그래 서 건물들도 지을 때 자연재해를 막기 위해 설계하고 있었다. 방재 체험관은 그 런 재해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안전지대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는데 조금은 본받았으면 한다. 점심을 먹고 홈스테이를 하는 아키타현으로 가게 되었다. 하네다 공항을 이용했는데 일본에선 지금 하네다 공항을 키우기 위해 노력중이라 한다. 아키타 현은 작은 지방이었다. 인구밀도도 작다고 하였다. 홈스테이 대면식을 하기 전 까지 무척이나 긴장되었다. 외국인과의 대화도 별로 해본 적이 없었고 외국인의 집은 더욱 부담스러웠다. 나는 고2 여자애로 아키타미나미고교에 재학 중인 아 이였다. 월요일 우리가 방문하는 곳이기도 했다. 아키타의 세리온이란 데를 먼 저 가게 되었다. 관광용으로 세워진 탑이었다. 아키타의 여러 지역을 볼 수 있 었다. 저녁경이라 야경을 볼 수 있었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내가 살던 곳에서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그다음은 홈스테이 집으로 향했다. 일본 집이라 정말 낯설어서 긴장이 심하게 되었다. 집은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주로 2층에서 생 활하였다. 집은 듣던 대로 작았다. 하지만 내가 잔 방은 약간 큰 편이었다. 저 녁을 먹는데 다른 점이 많아서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스트 패밀리 분들은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많이 웃어주셨다. 정말 친절하고 화목한 가정이라 생각 했다. 일본의 전통적인 방인 다다미위에서 자게 되었다. 아키타는 추운 지역인 데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다음날에는 신사도 가보고 댐에도 가보았다. 그리고 회전초밥도 먹어보게 되었다. 회전초밥은 신기하게 운영 되었다. 아키타전통음 식인 기리단보도 먹어보았다. 아키타현의 전통놀이도 구경하게 되었고 전통축제 도 보았다. 가이드선생님 말씀으론 일본은 전통이 잘 보존돼있다고 하셨는데 정

192 말 그런 것 같았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약간 반대인 것 같았다. 전통을 지키면 서 앞으로 나가는 온고지신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즐겁고 아쉬웠던 홈스테이를 끝내고 다음날에는 학교방문을 했다. 아키타미나미고등학교를 방문했는데 그 학 교는 교류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일본의 학교와 우리의 학교의 차이점은 클럽 활동이다. 일본은 클럽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정말 부러웠다. 입시에만 찌들려 사는 우리 학생들과 달리 매우 행복한 얼굴들이었다. 학교방문에서 일본 학생들 과 교류 하면서 정말 재미있었고 일본 학생들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 다. 정말로 아쉬운 학교방문을 끝내고 온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일본 온천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일본에서 온천이란 자연적인 온천만을 의미했다. 좋은 물 에서 편히 쉴 수 있어서 몸이 개운했다. 그곳도 다다미방이라 친숙하기도 했다. 그 다음날에는 일본 전통 춤을 배웠다. 어부들의 노래를 현대에 와서 재해석한 것을 배웠다. 약간 웃긴 춤이기도 했지만 배우기 쉬웠고 재미있는 춤이었다. 소 리를 내어가며 하는 힘든 춤이었지만 다 같이 추니까 재미있었고 즐거운 춤이었 다. 춤을 가르쳐주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 같았다. 자기가 진정 즐거워 하는 일에 빠져 사시는 분들이셨다. 나도 그런 보람찬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 각했다. 우리가 떠날 때는 그분들이 뛰어 오시면서 손을 흔들어 주시는 것을 보 고 진심으로 감동받았다. 그 뿐 아니라 일본학생들, 호텔 직원 등 많은 분들이 우리의 헤어짐을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런 점들은 대단하 고 우리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정이 많은 것 같았고 모두들 친절하신 것 같다. 춤을 배우고 도쿄로 돌아와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마지막 밤에 일본연수 중 경험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다음날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마지막 헤어질 때에 모두들 아쉬워하며 우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이번 방일연수에서 배운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먼저 일본인들의 생각과 사고를 알 수 있었다. 똑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세계가 넓다 는 사실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쿄에서 본 거대한 도시에서 우리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 한국인은 반일 감정이 강하다. 하지 만 무조건 일본이 싫다고 해선 안 되고 좋은 점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가기 전 반일 감정이 강한 아이였다. 하지만 다녀온 뒤로 생각이 변하게 되었다. 좋은 점은 배우고 또 나쁜 점은 바로 잡아야 한다. 일본이 먼저 우리에 게 사과를 하고 역사의식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이다. 한일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는 정무관대신의 말씀처럼 앞으로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193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교류를 더 늘려야 하고 많은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어야 한다. 좋은 기회를 잡게 되어 일본에 갔다 오게 된 것이 정 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이런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국가 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194 8 단

195 고교생 방일 연수를 다녀와서 전 재 은 부산 장안 고등학교 10월 29일, 이른 아침부터 나는 부푼 기대를 품고 김해공항으로 갔다. 나와 같 이 일본에 떠나는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니 그들도 들뜬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사전 교육을 받기는 하였지만 아직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어색 하였는데 다른 아이들은 이미 서로 조금씩 친해 진 듯하였다. 그러다 나도 어느덧 그들의 틈에 끼게 되었고 다들 친절하고 착해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과 함께 한 일본에서의 일주일은 내 인생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하나 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들을 써 보고자 한다. 야경이 너무 아름다웠던 도쿄타워,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외무성, 미래 의 과학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일본과학미래관 등도 멋있었지만, 도쿄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방재교육체험을 했던 혼조 방재관이다. 이곳에서는 일본에 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재해인 지진에 대한 대처 외에도 불로 인한 연기에 대한 대처, 소화를 하는 방법, 응급처치방법, 폭풍우체험 등을 체험 할 수 있다. 우 리는 먼저 3D씨어터에서 지진에 대한 영화를 보고 연기체험, 소화체험, 그리고 응급처치체험을 하였는데, 실제 재해가 난 것처럼 재현한 공간은 감탄을 자아냈 다. 연기체험을 하는데 (실제 불이 났을 때 나오는 위험한 연기는 아니지만) 손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려도 점점 코와 입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연기 때문에 본능 적으로 체험 전 가이드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더 몸을 숙이게 되는 것을 몸소 느끼면서 아.. 이래서 간접체험이 중요한 것이구나. 라고 느꼈다. 소화체험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우리 학교에도 소화기는 있고 우리 집에 도 소화기는 있지만, 여태껏 나는 소화기작동법을 몰랐었다. 나와 같이 체험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학교에 소방관 분들이 오셔서 교육을 해주시 지만, 그런 교육을 받지 않은 학교도 많다. 이번 소화체험에서 실제 불은 아니 지만 스크린에 나오는 불을 소화기로 내가 직접 꺼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소화 기의 종류와 불은 위에서 끄는 것이 아니라 불 밑쪽을 꺼야한다는 새로운 사실 도 많이 알았다. 한국에 가면 꼭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

196 엇보다도 내가 가장 감탄하였던 체험은 바로 응급처치체험이다. 사람형상의 인 형에 직접 심장부분을 압박도 해보고 인공호흡도 해보았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이런 응급 환자가 생길 가능성은 있다. 그럴 때 응급차가 혹은 구조대 가 오기 전까지 방치해 두었다가 더 큰 일이 날 수도 있는데, 이번 체험을 통해 서 만약 내 주위에 이런 일이 있더라도 내가 한 사람을 살릴 수 도 있겠다는 생 각을 하니 기뻤다. 응급처치체험을 끝내고 가이드 선생님이 이끈 곳에는 상상 이상의 물건이 있었다. 바로 휴대용 AED(심폐소생술을 하는 기계)이었다. 이 기 계는 덮개를 열면 안내하는 목소리가 다 작동 설명을 해줘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 AED가 일본 학교는 물론 곳곳 공공장소(빌딩 등) 에 다 있다는 것이다. 가이드 선생님은 AED를 보여주시면서 만약 체육수업을 하 다가 공이 급소에 맞거나 하면 이 기계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고 하였다.(내 가 홈스테이 간 곳에서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그 곳은 학년 당 반이 하나밖에 없는 작은 시골 초등학교였음에도 AED가 있었다.) 정말 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일본은 이런 체험 관이 도쿄에만 세 곳 정도 있고 거의 도시마다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에도 시급 히 이런 체험관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아무리 이론으로, 책으로 재해 대비요령을 익힌다고 하여도 직접 그 재해에 부딪히면 경험이 없어서 당황하게 되기 마련이다. 특히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이런 체험관 이 한국에도 많이 생겨서 사람들이 많은 간접체험을 할 수 있다면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도쿄에서의 3일 중 마지막으로 간 곳이었지만 가장 뜻 깊 은 체험이 되었던 것 같다. 도쿄를 뒤로하고 간 야마나시에서 나,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게 되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야마나시의 조용한 곳에 자리한 코료 고등학교 였다. 이 학교는 내가 다니는 부산 장안고등학교와 비슷한 점이 아주 많았다. 시골에 있어서 먼 곳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가 있다는 점과 한 학 년 당 120명 정도밖에 안되어서 반이 4반밖에 없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서양 풍의 학교외부는 정말 예뻤다. 홀에 들어가서 홈스테이를 하게 될 가족을 기다 리니 여태껏 긴장되지 않았던 마음이 점점 쿵쿵 뛰기 시작 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지고, 밖으로 나가니 어느 여자아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유키, 나와 동갑이다. 서로 악수를 하고 밖으로 나가니 유키의 어머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키의 집은 야마나시가 아닌 나가노였다

197 그래서 우리는 차를 타고 오랫동안 가야 했다. 일본어로 말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어디에 나서는 성격이 아니라서 말을 어떻게 붙일까하고 한참이나 고민 만 하다가 몇 십분 이나 지나가버리고.. 그녀와 그녀어머니는 내가 일본어를 못 하는 줄 알고 말을 걸질 않고..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하니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것에 대해 많이 놀란 눈치였다. 유키의 집은 정말 굉장하였다. 유키의 집은 농사를 하였는데, 큰 딸기하우스와 배추밭을 가지고 있고 중국인 3명을 고 용하고 있으며 집 또한 일본 전통집으로 아주 컸다. 가족들 또한 아주 따뜻하게 맞이해 주어서 감사했다. 첫째 날 밤에는 유키가 빌려온 영화를 보고 우리를 위 해 마련해준 다다미방 침실에서 밤늦게까지 한국과 일본의 학교 얘기, 시험 얘 기 등을 하였다. 특히 유키는 우리나라 고등학생이 보통 밤 10시까지 자습한다 고 하니 매우 놀랐다. 코료 고등학교는 도쿄대 등 진학률이 매우 높고 우수한 학생들만 다닌다고 하였는데 자습을 10시까지 한다는 내 말에 매우 놀라서 그 모습에 내가 더 놀랐다. 일본 학생들은 늦게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자 기만의 스케쥴로 공부를 하는 듯 하였다. 유키의 경우에는 10시쯤에 자서 아침 5시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고 하였다. 그렇게 자기만의 시간대로 움직이는 게 더 효과가 있을 것도 같다. 내가 일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고 하니까 자기 담임선생님께 대학 자료를 부탁해 주는 등 유키는 참 친절한 아이였다. 둘째 날 에는 유키집의 딸기 하우스와 배추밭을 구경하고 유키가 다닌 초등학교에 산책 을 하는 등 도쿄에서는 체험할 수 없었던 일본의 조용한 시골을 체험 할 수 있 었던 뜻 깊은 날이었다. 산책을 하고 난 뒤 유키를 따라 일본의 백화점도 가 보 고 스티커 사진도 찍는 등 정말 오래 된 친구처럼 시내를 구경하였다. 비록 하 루라는 짧은 시간 이었지만 진심으로 서로를 대한 만큼 더욱 더 가까워질 수 있 었던 것 같다. 처음 하는 홈스테이었지만 유키, 그리고 유키의 부모님, 할아버 지, 할머니, 남동생이 친절하게 잘 대해 주어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것 같다. 유키가족과의 아쉬운 작별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그 다음날 다시 코료고등 학교를 찾았다. 이번에는 학교 수업을 체험하러 갔는데, 그들과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가장 남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조를 나눠서 어느 한 반에 들어가서 같 이 교류를 하며 점심을 먹었는데, 나는 1학년 2반에 가게 되었다. 1학년 2반에 간 우리나라 학생들 중에서 나만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조별로 앉아서 밥을 먹 었지만 결국 조를 합쳐서 놀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내 옆에 앉았던 료타군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시나 1학년 2반 친구들도 나를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는

198 데 내 옆에 앉아있던 한 소년만 유독 아무 말도 않고 마스크를 쓴 채 밥도 먹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말을 건네니, 곤란한 표정으로 하 필 오늘만 수염을 깎지 않아서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고 하였다. 나는 괜찮다고 밥을 먹어라 하였고 그 소년은 끝까지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곤란한 웃음만 지 으며 미안하다고 하였다. 반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그 일을 계기로 그 친구와는 메일도 주고받는 친한 사이가 되었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내가 가져온 한국 과 자를 신기해하면서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니 정말 기뻤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헤어질 때에는 정말 아쉬웠다. 그 외에도 서예수업, 요리수업, 다도수업을 하였 는데 수업을 보조하러 온 코료 고등학교 친구들은 친절하게 하나하나 다 설명해 주면서 우리를 지도했다. 멀리서 온 우리를 경계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이해준 그들에게 정말 감사했다. 마지막 학교를 나설 때 우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도 슬픔이 밀려왔지만 다시 만난 료타군과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1학년 2반친구 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고 다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일주일..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다. 처음 이틀간은 언제 끝나지.. 일주일 너무 길다. 라고 생각 했지만 홈스테이, 학교 방문 등을 하면서 같이 온 아이들과 점점 친해지고 지역을 넘어선 우정으로 나흘째를 넘어서자 한국 으로 돌아가기 싫다.. 계속 이렇게 아이들과 있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의 마음도 같았다. 어떤 아이는 이렇게 100명으로 학교를 따로 만들어서 다니고 싶다라고 말하였을 정도이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나리타공항에서부 터 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마지막은 정말 웃으면서 보내고 싶었는데 나도 눈 물이 멈추질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공항에서 창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들 의 슬픈 표정을 보니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꾹꾹 눈물을 참은 아이들도 김해공 항에서 내려서 선생님께서 해산이라고 하였을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모두 가 끌어안고 울었다. 아무리 같은 나라에 산다고 하여도 지역이 다르다 보니, 게다가 우리는 좀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잘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다 알 고 있다. 아무도 집에 일찍 가려 하지 않고 한명 한명씩 작별 인사를 하였다. 정말 잊지 못할 친구들.. 꼭 다시 만나기를 기도하며 공항을 나섰고, 다시 우리 는 일상생활로 돌아왔다. 이 연수가 앞으로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된 것 만은 확 실하다. 이번 연수로 느꼈던 일본사람들의 친절함과 따뜻함을 기억하며 학업에 더 열중에서 일본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연수에 참가 시켜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199 내 인생의 첫 일본! (일본연수를 다녀와서) 신 재 진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두근두근 10월28일 날 밤. 다음날은 내가 여름방학 날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본연수가날! 너무 떨리고 너무 기대가차서 밤을 설치고 또 설쳤던 기억이 있 다. 그리고 대망의 10월29일. 처음 가는 일본에 대해서 여기저기 조사하고 또 조사하여 머릿속에 넣은 자료들은 어느 샌가 새하얗게 되어버렸었다. 아침에 일 찍 일어나 엄마와 함께 공항 가는 버스 201번의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 내고 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들어서 자 이미 많은 친구들이 공항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들 긴장되어있는 모습이었다. 몇 분 후 비행기 표를 받고 우리들은 비행기에 탑승 하였다. 그때부터 나의 심장은 다시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한국의 땅에서 올려 보던 높은 하늘은 이미 지금 내가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일본에 도착! 모 든 것이 신기하였다. 공항도 사람들도 그리고 물도. 그렇게 첫날! 꿈에 그리던 동경타워를 향해 우리가탄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말 깨끗한 도시였다. 나무가 정말로 많은. 도시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고 공기 좋고, 자동차 빵빵 거리는 소리조차도 하나 없는 깨끗한 도시. 항상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풍 경들이 나의 눈앞에 펼쳐지니 너무 신기했다. 동경타워는 1958년에 세운 높이 333m의 철탑으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일본에 관광 온 사람들 뿐 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좋아하는 그런 장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말로 내가 한국에서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보던 그런 동경타워 였다. 정말로 크고 예뻤다. 야경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할 만큼 예뻤다. 그렇게 도쿄타워를 구경하고 호텔로 향해서 전체회의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그 전체회의 할 때 한국을 대표해 이곳에 왔다는 선생님 분들의 말씀을 듣고 난 일 본에 있는 동안엔 정말로 한국 대표로써 바른 몸가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정말로 오고 싶어 하던 일본에서 그렇게 하루를 지내고 나니 상상했던 이상으로 기분이 이상하고. 오묘한 그런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두 번째 날 10월30일! 드디어 한국의 대표로써 정말로 큰! 마음

200 가짐을 안아야하는 그런 날이었다. 무려 외무성 방문! 일본에 오는 날보다 훨씬 긴장되었었다. 그날 느꼈다. 아..내가 단지 일본을 관광하러오는 것이 아니구나. 라고. 뜻 깊은 경험이었 다. 그리고 그 후 우리들은 오다이바로 향하여 레인보우브릿지와 일본의 자유여 신상을 보았다.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3일째인 10월31일. 1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은 팀이 두 개로 나눠져서 아키타현과 야마나시 현으로 나눠졌다. 내가있는 팀은 아키타현으로 향했다. 방재체험과 홈스테이 등을 하러! 우선 방재체험 한 국에서는 경험 할 수없는 체험이었다. 가끔 학교에서 일 년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하는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일본은 이런 교육을 꼭 받아야 한다고 한 다. 일본은 예전에 고베지진이 있던 이후로 이런 교육을 더 강화하여 사람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교육 시킨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진이 잘 일어나지 않는 나 라이지만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교육에 앞서 우선 지진 관련 영상을 3D로 보고 의자에 진동을 주어 실제 그 상황을 눈으로 확인시켜주었다. 만약 내가 그 영상안의 한 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진지하게 생각 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지진뿐만 아니라 화재 시 대피요령과 인명구조 체험을 해보았다. 소화기 사용방법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직접 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 생소하였다. 이렇게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여서 집중을 최대한 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두근두근 홈스테 이. 홈스테이는 이번에 방문하는 우리들이 처음으로 시도해본다고 한다. 그로인 한 부담감과 역시 일본가족의 집에서 하루를 지낸다는, 통역 해 주시는 분 없이 나 혼자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그런 긴장감에 전날 저녁에 받은 가족들에 대해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적어든 대화 리스트를 손에 꼭 쥐고 가족들을 만나러 향 하였다. 일본가족을 만나러 향하는 버스 안은 다들 일본어를 매우 열심히 하고 있었다. 모두들 긴장하여 대면식 장소인 한 학교인 고등학교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모두들 소리를 지르고 매우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우리들 1팀이 간 학교는 코료 고등학교라는 정말 엘리트 고등학교였다. 멀리서도 학생들이와 학교에 기숙사까지 있는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대면식을 하였다. 처음엔 다들 어색해서 그냥 서로 바라보고 웃고 있었다. 홈스테이의 친구 이름은 아리사 이었다. 처음에 만나서 함께 저녁식사 준비를 하기위해서 재료를 사러 근처에 있는 마트에 가서 함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준비를 하였다. 저녁은 초 밥. 함께 초밥을 만들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가족과 저녁식사를

201 하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을 못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땐 이미 난 일본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함께 하고 있었다. 처음에 'いただきます' 부터 시작 해서 ごちそうさまでした 로 끝날 때까지 일본어로 식사를 하며 한국과 일본 에 대해 차이점을 서로 물어가며 밥을 먹었다. 일본의 가정음식은 입에 맞지 않 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지만 정말로 맛있었다. 일본에 이 연수를 와 서 뷔페식도 먹고 호텔의 음식도 먹었지만 몇 일간 먹었던 밥 중에 제일 맛있던 밥이었다. 그렇게 식사가 끝난 후도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웃고 진지해지며 여러 가지 이 야기를 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대부분이 저녁9시나10시까지 학교에서 공 부를 하고 그 후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들도 있다는 등 그런 이야기를 하고 여러 생활의 차이점등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인 11월1일 아침 에 일어나서 기모노를 입어보았다. 우리나라 한복도 특별한 날 아니면 자주 입 지 않는다. 일본은 예전은 자주 입었지만 요즘 한국같이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자 주 입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기모노를 입는데 만 10분이 걸렸다. 하 나를 입을 때 오래 걸리면 20분을 넘을 때도 있다고 한다. 요즘은 입는 방법을 잘 모르는 젊은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정말로 일본의 한 가정에서 눈을 뜨고 아침을 보내고 아침의 신사로 향했다. 신사는 일본의 신을 모시기 위해 지 어둔 건물이다. 마침 우리가 간 날 결혼식이 딱 열리는 날이었다. 신사에서 결 혼식을 하는 커플들은 드물다고 한다. 이번에 온 타이밍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사 집 근처의 상점축제가 열리는 곳에 갔다. 정말로 일본 만화와 드 라마에서 봤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경품추천부터 공연 그리고 파는 물품하 나까지 전부 신기했다. 그렇게 홈스테이와 함께하는 1박 2일이 끝이 났다. 헤어 질 때는 처음 가족과 만났던 코료 고등학교에서 헤어졌다. 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눈물이 흘렀다. 정말 짧은 단 하루의 시간이었지만 많이 정이 들었 나보다. 눈물이 계속 흐르고 흘렀다. 한국가면 꼭 연락 하겠다고 정말 하루 동 안이었지만 정말 감사하다는 말만 하였다. 그다음날인 11월2일 코료 고등학교를 다시 한 번 방문하게 되었다. 쿄료 고등학교에서 우리를 위해서 공연을 준비했 었다. 한국의 가야금과 비슷한 일본의 악기 우리를 위해서 한국노래를 불러주는 합창 그리고 댄스 등 3가지의 공연 모두 멋있었다. 한국 학생들 또한 일본학생 들을 위해서 공연을 준비해갔었다. 한국무용 두 개와 판소리 우리나라 공연 또 한 매우 멋있었다. 그리고 점심식사. 각자가 배정받은 반으로 가서 일본학생들

202 과 함께 밥을 먹었다. 처음엔 매우 어색했다. 하지만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 궁 금한 점을 물어보며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수업 참관. 우리 팀은 다도 서예 요리 순서로 들어갔다. 처음 다도 수업. 우리나라에도 차 문화가 있 지만 우리나라와 살짝 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았다. 한국의 다도 수업을 제대로 받아 본적이 없어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지만 일본의 차를 접 할 수 있어 좋았 다. 그리고 다음은 서예. 물론 한국에도 서예문화는 있다. 한글과 한자로 글을 쓰지만 역시 일본이기에 일본어와 한자로 글을 적었다. 처음에 글씨를 쓰고 실 패작을 밑에 두기에 살짝은 부끄러움이 있어 쓰기를 꺼려했지만 나중에는 좀 더 나은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 열심히 적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적을 수 있어서 좋 았다. 마지막으로 요리수업. 한국의 부침개와 비슷한 오코노미야키를 만들었다. 오코노미야키라는 음식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들어 보고 만들고 먹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스로 오징어도 다듬어 보고 여러 가지를 해보았다. 만 들면서 들어가는 재료는 많지만 기본 양배추이기 때문에 양배추 맛만 날것이라 고 생각했지만 다 만들고 시식을 해보고 나니 생각했던 맛이랑 매우 다른 맛이 었다. 만족하는 맛이었다. 그렇게 학교에서의 하루도 끝이 났다. 또다시 헤어지 는 시간. 친구들과 헤어지기만 하면 우는 우리아이들. 이날 역시 눈물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11월2일도 지나갔다. 11월3일 이날은 후지산을 오르는 날이었다. 전날 밤에 눈이 살짝 내려서 걱정을 했었다. 이날 그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었다. 후지산에 눈이 너무 많이 내려와서 오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없이 근처에서 사진 등을 찍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이날은 후지산 뿐 만 아 니라 기대하던 체험이 많았었다. 잼을 만들거나 일본 전통 인형 등을 만들었다. 바느질에 소질이 없었던 나였지만 어떻게 완성은 했다. 새끼원숭이 인형이었는 데 이 인형에는 얼굴 표정이 없다. 이 인형을 3년간 들고 다니면서 바라던 것이 이뤄지면 감사하다는 의미로 얼굴의 표정을 그려주는 것 이라한다. 3년 후 꼭 내가 이 인형의 표정을 그리길 빌었다. 그렇게 살짝은 아쉬웠던 마지막 날이 지 나갔다. 11월4일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 모두들 아침부터 기운이 살짝 좋지 않았었다. 처음엔 다들 어색하던 사이었지만 일주일 만에 마치 1년을 함께 있었 던 친구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모여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 했을 때 우는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었다. 울지 않는다고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지만 역 시 헤어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도 소중한 친구들이 생겼 다. 일본에도 그리고 지금 있는 한국에도. 모두 함께 다짐했다. 모두 함께 다시

203 일본에 찾아오자고. 내가 처음에 가진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모두 없애주는 그런 일주일 이었다. 내가 이 경험을 하길 정말 잘했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경 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내가 한국에 와서 이렇 게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을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에게 말로다 설명 할 수 있을 지도 걱정 될 정도였다. 가깝고 먼 나라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 일본. 하지만 더 이상 내마음속에서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매우 가까운 나라 일본. 단지 가까울 뿐 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여러 가지 교류를 하여 가깝고 깊은 나라로 발전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발전을 위해 내 꿈인 통역사가 되어서 꼭 나도 노력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10월29일부터 11월4일까지 일주일간 함께 여행했던 선생님과 친구들 모두 소중하고 감사하다. 많은걸 배우고 돌아온 것 같다. 정말 일주일간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만약 다음연도 후배에게 이런 기회가 온다면 꼭 추천 해주고 싶다! 정말 뜻 깊은 일주일이었다

204 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박 다 회 와 룡 고 등 학 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 중 하나인 신주쿠 역. 갈 곳을 위해 표를 사는 사람과 열차를 놓칠 세라 표를 손에 쥔 채 바삐 뛰어가는 사람. 그 속에 섞인 우리도 야마나시를 가기위해 우리가 타기로 했던 특급열차를 향해 빠른 걸 음을 옮긴다. 아직 우리가 타기위한 특급열차가 도착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 은 상태. 정신없이 걸어온 탓에 화장실도 가지 못한 사람은 화장실을, 목이 마 른 사람은 매점으로 가 목을 축인다. 그렇게 해서 조금은 긴장이 풀어지는 듯 했다. 특급 열차가 오는 소리가 울리고 멈춰진 열차에 타는 우리는 떨리는 마음 을 잡고 열차에 올라탔다. 외부는 보통 기차와 비슷했고 내부는 우리나라의 ktx 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일본에서는 열차를 타면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그 래서 준비된 우리의 도시락과 음료 녹차. 한국의 도시락과는 달리 일본의 도시 락은 밥의 종류가 다양했었다. 간이 이미 배여 있는 볶음밥 형태의 밥, 작은 우 메보시 하나와 하얀 쌀밥, 밥 위에 알과 계란가루가 뿌려진 밥, 반찬은 일본식 단에 자주 오르는 연어구이, 튀김, 등이 있어서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함 께 먹었던 녹차는 한국의 녹차와는 달리 많이 써서 녹차의 또 다른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두 시간의 열차의 달림 끝에 도착한 야마나시. 따뜻했던 도쿄와는 달리 야마나시의 날씨는 쌀쌀했고, 공기도 한층 상큼하게 다가와 나의 코끝을 간질였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될 야마나시의 공기를 가슴 속까지 들이마시며 홈 스테이 가정과 대면식이 있는 학교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30분쯤 걸렸었나, 창문을 통해 학교가 보이기 시작하고, 학교의 주차장에는 우리의 홈스테이 가족 의 차량으로 보이는 차들이 나란히 주차가 되어 있었다. 학교 안에서는 우리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대면식이 있는 강당에 들어서는 순간. 큰 박 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릴 미소와 박수로 맞이해주는 사람들. 그렇게 박수를 받 으며 우리는 의자에 앉았고, 드디어 대면식이 시작되었다. 일본가족의 이름을 부르고 한국학생의 이름이 불리면 뒤쪽으로 나가는 형식으로 치러진 대면식. 한 명 한명의 이름이 불리고 친구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나도 긴장을 하지 않

205 았던 내가 조금은 긴장하는 마음으로 나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 오자와 가족과 박다회 학생.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뒤쪽으로 걸 어갔다. 그곳에는 다섯 명의 가족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나의 친구 오자와 미나미와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두 명. 이렇게 구성된 가족이었다. 만 나기 전에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만나는 순간에 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고작 첫마디가 곤니치와 이었다. 그런 나의 긴 장의 기색을 보아서인지 마음을 편안히 하라며 릴렉스, 릴렉스,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차에 올랐고, 집에 가기 전 마트에 들렀다. 장 을 보러 가려고 하나보다. 하는 생각으로 따라 나섰다. 알고 보니 나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위해 장을 보러왔다고 하셨다. 재료하나하나를 고르시며 나에게 어 떠냐고 물어보시는 오토상과 오카상. 그런 마음 씀씀이에 감동 하였다. 나에게 뭘 좋아하냐고 미나미가 물어 일본푸딩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 게 미나미와 둘째 호나미, 셋째 리호가 나를 푸딩 코너도 이끌었다. 한국에서 한 종류의 푸딩만 보다가 푸딩 코너가 따로 있는 것을 보고 내 입은 활짝 폈었 다. 다 좋아서 어떤걸 먹어야 할지 몰라 하자 미나미가 추천을 해 주며 나를 배 려해 주었다. 한참을 푸딩코너에 있다가 과자코너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우마 이봉 발견. 좋아한다고 미나미 자매에게 말하자 신기 해 했다. 한국에 있는 친 구들에게 사주고 싶다고 말했더니 직접 맛있는 맛들을 골라주었다. 서점에 가서 한국 연예인들이 있는 잡지를 보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본 배우 아오이유우 의 사진을 찾아보기도 하고, 미나미와 호나미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여주며 어 떠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 했다. 장을 다보 고 집으로 가는 길. 오자와 가족은 학교와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아서 금방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조금은 산골에 자리한 집. 집안으로 들어서자 일본집 특유의 냄새가 났다. 나를 오늘하루 내가 지낼 방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폭신 폭신한 분홍색 이부자리가 준비되어있었다. 한국은 집전체가 따뜻하지만 일본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래서 조금 쌀쌀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나를 걱 정해 주셔서 추우면 덮으라고 두툼한 두 개의 이불을 더 준비해 주셨다. 저녁식 사를 기다리는 사이. 내가 준비한 자료들을 미나미 자매에게 보여주었다. 한국 의 일본어 교과서를 보여 주니 정말 신기 해 했다. 그러곤 한글은 배우는 게 어 렵다고 하였다. 미나미의 학교에서 한글은 조금 배우고 있는 듯 했다. 또 한국 의 전통 옷 한복, 청국장과 팥빙수, 학교명찰 교복 등. 여러 가지를 보여줬지만

206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이 팥빙수였다. 일본의 빙수는 얼음을 갈아 넣은 뒤 시럽을 붓는 게 전부지만 한국은 팥빙수라 해서 팥도 넣고 떡도 넣고 과일도 넣는다고 하자 일본이랑은 너무 다르다며 꼭 먹어보고 싶어 했다. 이다음에 한국에 오면 내가 꼭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했다. 한복은 이미 알고 있어서 놀랬 다. 저고리를 정확하게 발음해서 또 한 번 놀래기도 했다. 일본의 낫또와 한국 의 청국장이 비슷한 걸 신기해했고 짧은 일본의 교복치마와는 달리 한국의 교복 치마는 길다고 하자 귀엽다고 칭찬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같은 점과 다 른 점을 찾으며 즐거워했다. 저녁식사가 다 되고 부엌으로 갔더니 나를 위해 준 비 했다며 신기한 음식들이 많이 놓여 있었다. 식사 습관도 한국과는 다르다는 것을 책으로만 보다가 몸소 겪으니 와 닿았다. 무릎을 꿇고 먹는 것, 나무로 된 젓가락으로 만 밥을 먹는 것, 국을 먹을 땐 두 번 휘저은 다음에 마실 것. 등 여러 가지를 배웠다. 갑자기 오카상이 수저를 내 주어서 놀랐다. 나를 위해 준 비한 것이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배려에 나는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 다. 그렇게 나에게 다가 오고 있었다. 나를 위해 준비 해주신 오카상 덕분에 신 기하게 반찬들이 다 입맛에 맞았고 맛있게 배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가족 모두와 조금은 힘든 대화가 시작되었다. 가져간 전자사전을 이용하기 도 하고, 준비한 자료를 보여주기도 하고, 힘들 땐 그림을 그려서 대화를 하기 도 했다. 나도 가족들도 힘든 점이 많았지만, 내가 설명을 할 때 마다 귀를 기 울이고 최선을 다해 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그들이 정말 고마웠고 감동적 이었다. 다음에 올 땐 꼭 일본어를 더 많이 배워서 오겠다고 미나미와 약속 했다. 대화 를 나누다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 생각나 전해 주었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김 과, 라면, 그리고 전통조각인형. 집의 곳곳에 조각인형들을 보고 잘 사왔구나 했었는데 좋아해주어서 좋았다. 오자와 가족이 준비한 나의 선물은 나의 가족 한명한명을 위해 준비한 손수건과, 나를 위한 핀. 정말 놀랐던 것은 나의 한국 친구들 중 그 누구도 핀을 받은 친구가 없었다. 나는 핀을 정말로 좋아하고 핀 을 모으는 게 취미이기도 한데 그것을 가족들이 미리 알았을 리도 없을 텐데... 핀을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 지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꽂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웃음으로 보답해주는 오자와 가족들. 그렇게 우리는 4시간동안이나 그 자리에서 대화를 하며 웃음의 꽃을 피웠다. 잠자리에 들 시간. 세면대와 욕실이 따로 있 어서 양치는 욕실 밖에서 하게 되어있었다. 미나미와 양치를 하는 사이 호나미 와 리호도 와서 넷이서 오순도순 양치를 하고 내 방으로 들어와 오늘을 잊지 않

207 기 위해 장문의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세심히 배려해주신 오카상 덕분 에 몸은 따뜻하게 잤지만 얼굴은 내 밀고 잔 터라 중간 중간에 잠을 깨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란 생각에 전혀 힘들다거나 싫지 않았다. 아침 식사도 다 같이 하고 견학을 하기위해 집을 나섰다. 가장먼저 간 곳은 2000년 된 벚꽃나무를 보러 간 것이었다. 내가 전날 벚꽃나무를 좋아한다 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해주시고 나를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다음 간곳은 일본의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일본은 따뜻해서 이제 단풍이 물든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경치가 아름다움을 글로 다 표현 하지 못한 다는 것이 아쉽다. 처음으로 후지산을 보기도 하고, 신사에 가서 소원을 빌기도 하고,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그리고 케이블카에 내려와서 무지개 폭포를 보러 갔다. 폭포가 내려오는데 자연적으로 무지개가 생기는 폭포였는데 신기하고 아 름답고, 내려가고 올라오는데 힘이 들었지만, 힘듦보다 오자와 가족에게 고마움 과 기쁨에 대한 생각에 견딜 수 있었다. 땀을 흘리는 날 오토상이 보시고 아이 스크림도 사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견학을 하고 점심을 먹으러 스시식당에 갔 다. 처음 보는 일본의 회전초밥집. 물을 마시는 대신 따뜻한 녹차를 마시는 곳 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골라 나에게 권해주고 나중에는 배가 너무 불러서 괜찮 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나를 배려해주고 생각해주는 그들의 모습이 나를 순간 순간 감동 시켰다. 스시를 먹고 차에 올라. 이제 헤어지러 가는 길. 아직 학교 에 도착하지도 않았지만 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 는 친구가 되기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라고 말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오자와 가족에게는 달랐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누구보다 친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 말이 통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국적은 언어는 달라도 마음만 통한 다면 그 정도는 아무 문제 될게 없었다. 그러는 사이 학교에 도착하고 이제 헤 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가족들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헤어진다는 생각에 슬픔을 참을 수 없었고 마음이 너무 아팠 다. 내가 흘리는 눈물에 미나미도 눈물을 훔쳤다. 괜찮다고, 다음에 꼭 볼 수 있을 거라고, 또 오라고 하시는 오토상의 말에 나의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만큼 가까워졌었고, 친구로 말할 수 있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오토상.오카상.미나미, 호나미,리호. 정말 고마웠습니다

208 한일교류 -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힘 최 고 은 포 산 고 등 학 교 관광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온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우리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를 위한 외교관으로서 일본을 방문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왔기 때문에 부담스럽기 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다. 한일교류연수 기 간 동안 연수 일정을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동안 알지 못 했던 새로운 일본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결코 좋지만은 않던 일본에 대해서 새롭 게 생각의 변화를 가 져오게 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무조건 적으로 나쁘다, 좋지 않다 라고 생 각했던 나에게 이제 일본은 그 어느 나라 보다 좋다고 느끼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특히 한일교류연수팀 중 유일하게 홈스 테이 라는 아주 특별한 경험도 하게 되었 는데 이 홈스테이가 나의 생각을 변화시키 는데 가장 큰 계기가 되었다. 처음으로 홈스테이를 하기 위해 코료 고등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항상 만나왔던 익숙 한 가족들과 친구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크기는 기대감을 따라오지 못했다. 드디어 코료 고등학교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려 학교를 올려다보는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런 학교였다. 하나의 웅 장한 성처럼 느껴졌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감탄하기에 바빴다

209 선생님의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 홈스테이 대 면식이 열리는 학교 본관 옆 어느 홀로 갔다. 홈스테이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올라가는 그 계단 하나하나가 너무나 크고 높게만 느껴졌다. 입구에 서부터 일렬로 서서 끊임없는 박수를 받으며 들어가는 그 순간만큼은 레드카펫 을 밟는 어느 배우도 부럽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홈스테이 가족들이 앉아있는 곳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 가족과 눈이 마주쳤고 얼떨결에 인 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중에 홈스테이 가족을 발표하는 그 때 나의 홈스테이 가 족이라는 것을 알아 챈 나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홈스테이가 점점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나의 부 족, 아니 거의 바닥인 일본어 실력으로 가이드 선생님과 떨어져 홈스테이 가족 들과만 함께 있게 된 그 순간부터 나의 시련은 시작 되었다. 게다가 그 날 하필 이면 홈스테이 친구의 발표회가 있어 부모님과 막내 동생만 나를 마중하기 위해 나왔다. 우리는 서로 짧은 영어 실력을 보이며 발표회장으로 향했다. 발표회장에 도착해 대기 실에 있던 나의 친구 리카를 드디어 만났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두 볼이 빨갛게 물든 양 갈 래 머리의 리카는 순박한 시골 소녀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수줍어하면서도 나의 두 눈을 피 하지 않은 채 인사하던 그 모습이 정말 순수해 보였다. 자신이 선보일 코또라는 악기를 설명 해 주고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맨 앞줄에 앉아 친구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진지 하게 코또를 연주하는 리카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의 가야금과 비 슷한 코또는 가야금 소리와는 또 다른 소리를 들려주었고, 그 소리는 코또만의 아름다움을 들려주었다. 코또를 통해서 또 하나의 일본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210 발표회를 마치고 우리 는 리카의 집으로 향 했다. 꼬불꼬불한 산 길을 지나 눈앞에 펼 쳐진 작고 귀여운 시 골 마을의 모습과 깨 끗한 공기는 지금까지 긴장하고 있던 내 마음과 쌓여있던 피로를 한 번에 날려버릴 정도로 마음을 편 하게 해주는 힘이 있었다. 비슷한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도시를 벗어나 일본의 진정한 시골 마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포함해 한국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모습 이 공존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수도권과 같이 대도시 이외에는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뚜렷하 지 않다. 그런 모습은 한국인인 나도 한국다움을 느 끼지 못하는데 다른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본 다면 그 느낌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 다. 야마나시에 넓게 펼쳐진 논과 밭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좀 더 뚜렷한 그 곳 만의 개성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붉게 타는 노을을 따라 도착한 리카의 집은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하늘로 뻗은 하얀색의 큰 2층집과 마당을 따라 넓게 펼쳐진 푸른 정원은 내가 꿈꿔왔던 그런 동화 속의 집이었다. 감탄도 잠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쿠미를 만나게 되었다. 사진 찍는 것이 취미라는 할아버 지 덕분에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우리는 모 두 방 한가운데에 모여 앉아 가족사진을 찍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찍던 사진 이었는데 사진을 찍는 내내 기뻐하시는 할아버지 의 보습을 보니 기분이 참 좋았다. 사진을 찍은 후 첫 저녁식사. 나를 위해 사왔다면서 내 주신 종갓집 김치를 보면서 일본에 온 뒤로 처음으로 한국이 그리워져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집을 구경했다. 처음 집에 왔을 때 유난히 눈 에 띄던 상장과 트로피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리카와 이쿠미, 켄토는 예체능의

211 모든 분야의 일인자들이었다. 서예와 그림, 피 아노 연주 등 정말 우월한 DNA를 가진 남매들 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방마다 한 면 가 득 서예, 또 한 면 가득 그림, 그리고 마지막 으로 피아노 연주 도 들려주었을 뿐 만 아니라, 나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코또를 연주 해 주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 저녁엔 온 가족이 모 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리카는 그동안 궁금해 해왔던 한국에 대해 하나 둘 씩 묻기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이야기 하 면서 리카가 얼마나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알 게 되었다. 나의 짧은 영어 실력과 전혀 하지 못하는 일본어 실력으로 리카에게 더 많은 것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없어 원망스럽기도 했다. 다음에 올 때 는 꼭 더 열심히 공부해서 능숙한 일본어 실력으로 설명해 주기로 약속했다. 다 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함께 아침식사를 한 뒤 우리는 아빠가 교편을 잡고 계시는 초등학교로 향 했다.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넓은 운동장 한가운 데에서는 귀여운 야구부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공부 외에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가이드 선생님 의 말씀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곳곳을 둘러보면서 많은 새로운 것을 보고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은 공부만을 강조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러 방면으로 장점을 키워 주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음악, 미술, 체육 등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 지를 능숙하게 하는 리카 남매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좀 더 방과 후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을 활성화 시킨다면 좀 더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교육 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계시는 중학교도 잠깐 들린 뒤, 쇼핑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우리는 쇼핑몰로 향했다. 처음 본 일본의 쇼핑몰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일본의 쇼핑문화를 보고 듣고 느끼게 해 주시려는 부모님들 덕분에 그 큰 쇼핑몰을 힘든 줄도 모르고 누비면서 다녔다. 쇼핑몰의 마지막 장

212 소는 놀이공간이었 다. 우리나라의 하늘 공원과 비슷했다. 거 기서 우리는 스티커 사진도 찍고 함께 게 임도 하면서 소중한 추억을 또 하나 만들었다.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사실 일본의 전통식이 어떤지 알고 싶었는데 우리 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게 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맛은 정말 최고였다. 그리고 아사쿠사 형제의 기념관에 갔다. 일본인인 아사쿠 사 형제가 한국미의 매력에 빠진 뒤 한국에서 생활 하면서 남긴 한국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나라 사람 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한국인인 나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아사쿠사 형제를 보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을 나와 아사쿠사 형제의 묘 에 들린 후 다시 집에 돌아왔다. 기모노에 관심이 많다는 내 말을 기억하셨는지 유카타를 준비 해 두 셨다. 유카타를 입혀 주시는 내내 기모노를 입혀 주지 못 해 미안해하시는 모습은 오히려 더 죄송스러운 마음을 들 게 했다. 유카타를 입고 사진을 찍는 동안 우연히 일본에 서 생일을 맞이한 나를 위해 리카는 직접 만든 케이크로 생일파티를 열어주었다. 케이크만으로도 엄청난 감동이었 는데 다른 선물들도 한 가득이었다. 한국의 가족들과 함께 하지 못한 내 생일을 조금도 부족함 없이 채워주신 세상에서 가 장 행복한 생일 파티 였다. 생일 케이크를 먹으면서 일본에 대 해 잘 알지 못하는 날 위해 일본 문화를 직접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잘 못 알고 있었던 진정한 일본다움을 보여주

213 기도 했다. 생일 선물로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선물은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담은 할아버지의 사진첩이었다. 홈스테이를 통해 함 께하는 기쁨과 행복이 어떤 것인지 배울 수 있었다. 내게 홈스테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 다. 하지만 연수 기간 동안 홈스테이만큼 내게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바로 도쿄 미나토 오바이다(항 구관)와 미래관이었다.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을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일본다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300년 가까이 외국과 교류하지 않던 일본이 150년 전 미국인 페리 의 요구로 교류를 시작하면서 항구 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다른 항구들과는 달리 동경만은 2~4m 밖에 되지 않는 얕은 바다라는 것을 이 용해 모래나 흙을 쌓아 땅을 개간해 매립지를 만들었 다. 땅을 매립하면서 간선도로, 고속도로, 공항, 열차 등 교통시설을 확충해 근접성을 쉽게 함으로써 임해 부도심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모습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뿐만 아 니라, 24시간 안전하게 지켜주는 첨단 기술은 한층 더 믿음직스러웠다. 통신, 정보 케이블, 전기, 가스, 상하수도 등 모든 생활에 첨단 기술을 이용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안정성과 신뢰성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도 쿄항의 깨끗한 모습은 뭔가 아이러니했다. 한국은 발달하는 대도시일수록 하늘 가득 검은 구름의 모습만 볼 수 있지만 도쿄 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 는 바로 토지의 30%이상을 푸른 숲으로 만드는데 힘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214 이 도쿄의 임해 부도심을 세우 는 이유가 우리 나라에서 부도 심을 세우는 이 유와 같았지만 녹지대가 많다 는 점에서 확연 하게 차이가 났 다. 도쿄항의 쾌적한 도시환경을 위해 많은 부분이 공원이 나 녹지대 등 푸른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또, 수많은 곳에서 생겨나는 쓰레기를 지정장 소에서 모아 Clean Center로 투입시키는 모습 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부도심 전체의 냉 난방이나 물을 정수시키는 데 사용한다는 것 을 알았다. 이외에도 전신주와 전선 없이 Lifeline의 모든 것이 지하로 통하게 하는 등 순환형 도시로 발전 하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하는 모습 을 볼 수 있었다. 일본연수 중 여러 곳을 다니면서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또 다시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일본 사람들의 검소하고 절약하는 정신이 일본이 세계의 선진국으로 세워지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 같았다. 우리나라가 조금만 일 본의 절약정신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한국도 머지않아 일본과 같이 앞서나가 는 선진국이 될 수 잇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 있는 일주일 동안 열심히 몸에 익혀서 한국에 돌아와 일본의 절약정신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도 쿄 미나토 오바이다의 감동도 잠시, 또 다른 일본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미 래관에 도착했다. 그곳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 분

215 야들을 하나하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 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 몸을 조 금씩 확대시켜 세포 속의 DNA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예전 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과학의 힘을 확 인하면서 이런 과학이 의학 분 야와 함께 힘을 합쳐 아직 고칠 수 없는 수많은 병들에게 고통 받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도쿄 미나 토 오바이다와 미래관을 둘러 보면서 일본이 얼마나 과학이 나 신기술의 발 전에 관심이 많 은지 알게 되었고 일본이 선진국으로서 세계를 향해 한발 한발 내딛는 모습이 우 리나라가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일본 에 대해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강하 게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일본의 장점을 받아

216 들인다면 한국도 좀 더 세계적으로 나 아가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이곳을 둘러보면서 한일교류단으로서 일본에 도 한국의 우수한 문화와 기술들을 알 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 한일교 류연수기간동안 상당히 많은 것을 배 웠고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생각지 도 못했던 일본의 또 다른 점을 볼 수 있었다. 한일교류단이 앞으로 한국과 일본의 교류관계에 발판이 되어 서로 협력하면서 한일외교 관계에 큰 힘이 되었 으면 좋겠다

217 일본을 방문하고 나서 류 지 은 대 성 여 자 고 등 학 교 첫째 날 드디어 일본 가는 날, 긴장되는 날이었다. 새벽 3시까지 교육청에 도착해야했 기에 2시에 일어나 엄마와 분주하게 준비했다. 버스를 타고 3시간을 걸려 도착 한 김해 공항. 광주 공항만 가본 경험 밖에 없는 나에게는 정말 어마어마한 규 모였다. 이른 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항은 저마다 목적지를 가지고 있는 사 람들로 붐볐다. 8시에 가까워지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인지 아직은 어색했고 그 중 몇 명은 과 연 고등학생인가 싶을 정도로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도 있었다. 과연 그 아이들 과 친해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었다. 제주도 여행이 고작인 나에게 2시간동안의 비행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기내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일본이어서 다행이지 친구 말로는 태국 갔을 때의 기내식은 정말 못 먹을 음식이라고 한다. 기내식으로는 닭볶음 덮밥에 빵 과 간단한 후식이 나왔다. 공중에서 점심을 먹는 느낌은 사뭇 색달랐다. 일본에 거의 도착했을 쯤에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안정한 기류 때문에 흔들렸는데 동시에 내 마음도 불안했다. 혹시 이대로 추락하는 것은 아닐까 하 며 나의 손은 땀에 젖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비행기는 착륙할 준비를 하였다. 착륙할 때 급하강하는 비행기 때문에 귀가 굉장히 아프기도 했 지만 공항 전체가 일본어 간판으로 덮여 있는 것을 보고 그 아픔은 씻겨 나가는 듯했다. 아, 드디어 일본에 도착했구나를 새삼 몸으로 느끼면서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한 후 우리는 바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는 우리를 6박 7일 동안 안내해주실 통역사 2분과 우리와 함께 한국에서부터 동행한 선생님 2분이 계셨다. 도쿄로 이동하는 동안 통역사께서는 일본의 역사와 가는 길에 보았던 여러 가지 건물들을 설명해주셨다. (설명 집어넣기)

218 도쿄의 모든 광경을 다 볼 수 있는 도쿄 타워에 도착하였다. 도쿄 타워는 프 랑스의 에펠탑과 같은 모습인데 그 높이는 333m 이다. 35층까지 쉬지 않고 빠르 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덕분에 무중력 비슷한 것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약 200m의 높이에서 바라다 본 도쿄는 그야말로 건물의 집합소였다. 건 물들 자체의 높이가 거의 다 서울의 63빌딩정도 이었고 더 높은 건물들 또한 많 았다. 일본의 건물의 특징적인 것이 건물의 창문이며 규격자체가 레고를 쌓아놓 은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했고 한 층의 높이 또한 길지 않아 한 건물 내에 층수가 굉장히 많았다. 서울의 경우 도시 전체가 이런 건물들로 가득 차 있는 반면에 일본의 수도인 도쿄의 경우 물론 건물들도 많지만 동시에 산림 등 을 잘 조성하여 덜 답답해보이게 하였다. 단순히 나무나 숲을 살려놓은 것이 아 닌 주변의 환경에 맞게 잘 꾸며놓았다. 도쿄 타워에서 바라보면서 단순히 일본 이 선진국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 타워에는 한국 학생뿐만 아니 라 견학 온 일본 초등학생들과 수학여행 온 잉글랜드 학생들 등 다양한 인종이 섞여 있었다. 일어 시간에 배운 일어를 맨 처음으로 써먹기 위해 "しゃしんをどってください"를 시도했더니 성공! 한국에서 교과서로 배운 말을 직접 써보니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았고 나도 일본어를 말할 수 있다 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러나 상점에서 노트를 사려고 노토 노토 이렇게 했 더니 상인이 못 알아먹었다. 왜 그러나 싶어서 일본어를 잘 하는 친구에게 물어 보았더니 노-토 라고 길게 발음해야한단다. 일본어는 쉬운 듯하면서 발음을 조금만 잘 못하면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되니 참 어려운 언어이다. 도쿄타워의 1 층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했었는데 비행기를 탈 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일본 사람 들은 덮밥을 참 좋아하고 식사 후에는 꼭 후식이 있다. 후식으로는 푸딩이나 조 그만 케익같은 것이 나왔는데 나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었다. 도쿄 타워 방문 후 한국에서도 예고되었던 최고급 호텔에 도착하였다. 개인적 으로 여행 왔을 때 꿈도 꿀 수 없는 최고급 호텔이었다. 상들리에 하며 바닥에 는 카페트가 라이브 카페에서는 음악이 흐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방에 바로 들 어가지 못하고 우리는 회의를 가졌다. 말이 회의지 그냥 이 연수를 주체하시는 분들의 당부사항 같은 것이라고 할까. 다소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시간을 통해서 좀 더 일본에서의 행동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것 같 다. 호텔에서 방 배정을 할 때 우리는 지역적으로 자기를 원했었는데 주체하는 쪽에서 좀 더 다른 지역과의 교류를 위해 지역별로 한 명씩 방 배정을 해서 3명

219 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 순간에는 조금 불만이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그렇 게 해 주신 것에 대해 정말로 감사드린다. 다른 지역 아이들과 같은 방을 쓰면 서 다른 지역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사투리를 배워서 엄마한 테 전화했었을 때 일본어 배운 게 아니라 사투리 배우냐는 핀잔까지 듣기도 했 었다. 원래 이런 데 오면 늦게까지 자지 않고 놀아야 하는 건데 왜 이렇게 몸이 피곤한지... 6일 동안 가장 빨리 잠들었던 날이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일본 여행이 시작되는데 몹시 기대된다. 둘째 날 6박 7일의 여정 중 가장 딱딱하면서 긴장 타야하는 날이 바로 오늘이다. 왜냐 하면 한국 학생들의 대표로서 이 연수를 주체하기도 한 외무성을 방문하기 때문 이다. 통역사 분께 듣기로는 일본의 천황 다음으로 서열 3위인 분을 만나는데 여자 분이시라고 하셨다. 만나기 전 내가 머릿속에 그려본 이미지는 딱딱한 정 장을 입고 엄한 얼굴을 가지신 분이었다. 외무성에 들어선 순간 건물이 하나의 미로와 같았다. 좁은 복도에 양 옆으로 사무실이 즐비해있었다. 그리고 천장도 매우 낮아서 첫째 날 내가 외관상으로 느낀 건물의 모습과 일치했다. (왜 이런 구조를 가졌을까는 다음날 방재 체험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는데 이유는 그 때 언급하겠다.) 길고 긴 미로를 지나 큰 연회장에 도착하였다. 몇 분 기다린 후에 서열 3위시라는 분을 만났는데 내가 생각했던 인상하고는 딴판이셨다. 키가 매 우 크시고 얼굴도 온화하셔서 마치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인상을 주셨던 것 같 다. 질의 응답시간에 말씀하시기를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서 한일 교류를 증 진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하시면서 한국 음식을 매우 좋아하신다고 하셨다. 딱딱할 것으로 생각했던 외무성 방문이 별다른 긴장감 없이 기분 좋게 끝났다. 외무성 방문 이후 천왕이 살고 있는 황궁 앞 공원에 잠깐 들러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다. 그곳에는 일명 안경다리 라고 하는 다리가 있는데 다리가 동 그란 모양이어서 물 위에 비췄을 때 안경이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주위에 있던 한 사람에게 일본어로 사진 좀 찍 어달라고 부탁하니 흔쾌히 찍어 주었다. 그러면서 그 주위 일행들이 우리와 합 류하면서 사진을 함께 찍었다. 알고 봤더니 중국에서 일본으로 여행 온 사람들 이었는데 우리가 신기한지 사진 부탁하기 전부터 우리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서로 이메일주소를 교환하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언어가 안 되어

220 도 충분히 다른 나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 다. 공원에서 간단히 사진을 찍은 후 35층 건물의 꼭대기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이 건물은 1960년대에 세워진 건물로서 그 당시로서는 가장 큰 건물이었다. 지 금은 주위에 더 높은 건물들이 세워진 터라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당시 의 상황으로 볼 때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그 건물의 꼭대기에서 먹는 밥은 기 내식이나 호텔의 뷔페와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음식이 여러 가지가 나오기 는 했었는데 내 입맛이 워낙 신토불이라서 다소 몸에 안 맞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도쿄 타워에서 본 광경과는 다른 광경을 보고 느 낄 수 있었다. 차는 쌀알 크기만 하였고 건물들 또한 작은 건물들은 장난감 같 아 보여 내가 거인이 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일본의 얕은 바다를 매립해 그 위에 신도시를 세워 미래형 도시로서 거듭나고 있는 임해부도심을 방문하였다. 임해 부도심은 편리한 교통, 첨단 기술, 쾌적한 도시환경, 브랜드의 4가지를 내세워 미래 도시로서의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았다가 그것 을 태워 도시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있다. 첨단 기술에 의해 환경오염을 막고 거리의 간판 설치를 불법화하여 깨끗한 도시 환경을 만들고자 하였다. 또한 개 발 지역의 30%는 녹지대를 조성하여 쾌적한 환경을 만들었다. 일본의 보통 도시 의 경우 지진이 발생하게 되면 가스, 물, 전기 등의 우리 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들이 자동적으로 끊기게 되는데 임해부도심의 경우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이 런 요소들이 지하에서 공급이 되기 때문에 끊이지 않는다. 이런 시설들을 둘러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개발하면 할수록 오히려 깨끗해지는 나라이며 먼 미 래를 내다볼 줄 아는 나라이다. 우리나라도 일본 하면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 라 배워야 할 것은 확실히 배워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 다. 임해부도심을 방문 후에는 레인보우 브릿지라는 다리를 건너 도쿄로 돌아와 미래 박물관을 방문했다. 서울에는 이런 박물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광 주에서는 볼 수 없는 박물관이기에 한층 기대가 되었던 곳이다. 이곳에서는 첨 단 나노 기술을 이용한 여러 가지 기술을 선보이며 동시에 향후 전망이 밝은 항 공 우주 산업에 대해서도 전시를 해놓았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직접 우주 음식 등을 살 수 있었다. 실제 우주선의 모양을 전시해놓아서 그 속에 우주인들이 사

221 용했던 화장실이나 잠자는 곳을 보여주었다. 또한 인체의 각 부분을 직접 현미 경으로 보고 자신의 손바닥에 있는 DNA를 확대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놓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일본은 교육면에 있어서 한국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박물관이 전시된다면 어린 학생들에게 과학자의 길을 더 열어주는 계기가 되어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 기술 개발의 선진국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미래 박물관까지 둘러보니 다리와 허리에 통증이 와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내 일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던 것 같았다. 석식 시간에 석식을 먹 고 내일 갈 홈스테이에 대한 프로필을 먼저 받아보았는데 취미가 스포츠에 등산 이어서 굉장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다행히 광주 친구와 같은 집을 가게 되어 안심이 되었지만 일본 사람들과의 1박이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실수를 해서 한국의 이미지를 망치면 어떡하지, 음식은 잘 맞을까, 일본어로 어떻게 소통하 지 등의 여러 가지 걱정이 내 머리 속을 헤집어놓았다. 너무 불안한 마음에 같 이 방을 쓰는 친구와 벼락치기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는 다. 부디 잘하게 도와주세요... 셋째날 드디어 홈스테이 하는 날의 해가 떴다. 우선 홈스테이에 가기 전 일본의 방재 교육을 체험하였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학교를 개학하게 되면 초, 중, 고등학생들은 이 방재 교육을 한 후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방재 교육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일본의 각 현마다 배치가 되어있어 누구든 지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이런 교육을 통해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지진 의 사태에 대비하여 큰 사고를 막자는 것이 일본의 취지이다. 우리는 먼저 3D영 상을 통해 실제 지진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을 체험해보았는데 우리가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나라는 일본보다는 아직 안전지대이어서 이런 큰 지진을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언제 우리나라를 강타할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도 해놓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가 너무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생각이 든다. 영상을 다 보고 나서 지진이 났을 때의 위급 상황을 대비하여 연기가 자욱한 건물 통과하기, 소화기로 불끄기, 지진 경험하기, 인공 호흡하는 방법을 배웠 다. 연기 통과할 때 물론 몸에는 해롭지 않은 연기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목이

222 따가웠고 무엇보다도 앞이 보이지 않아 실제 상황이었다면 당황했었을 것 같았 다. 소화기로 가상 불을 끌 때도 한국에서는 이론적으로 이렇게 하면 된다고 배 웠는데 직접 소화기를 가지고 안전핀을 뽑아서 안의 내용물을 분사하는 과정까 지 체험해보니 그 느낌이 달랐다. 지진 경험할 때는 가상의 집 안에서 지진의 진도를 0~7까지 조절해 실제 그 느낌을 체험했다. 체험하기 전 많은 주의 사항 과 안전에 주의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도 7을 느낀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비록 가상이었지만 몸 속 뼈까 지 몸서리 칠만큼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인공호흡을 배웠다. 사람 인형을 앞에 두고 직접 의식이 없는지 있는지 확인하여 인공호흡을 하면서 장차 의사가 되어 서도 다시 배우겠지만 그 때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매일 매 일 느끼고 깨달으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백만 번 칭찬을 해도 부족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유비무환의 나라라고나 할까? 정말 무섭고도 소름끼치는 경험이었다. 방재 체험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가 월요일에 방문할 예정인 쿄려고등학교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낼 홈스테이 가정을 만났다. 나와 나이가 같은 ふみか는 웃을 때 정말 순진해 보이는 아이였다. 홈스테이 가정을 만나고 각자 자신들의 집으 로 가는데 ふみか는 나와 내 친구를 학교 뒷골목으로 데려갔다. 별 일이야 있겠 냐는 마음이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train station"이란다. 기차역? 아빠가 차장이신가? 어제 프로필 보았을 때는 공무원이시라고 하시더니... 설마... 하지만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 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ふみか는 우리에게 기차표를 나누어주며 기차를 타자고 했다. 기차표에 적힌 가격을 본 순간 뒤로 넘어질 뻔 했다. 7300엔 (7300*13원 = 94900원)이었다. 왜 이렇게 기차표가 비싸지 하는 의문을 가지고 기차에 올랐 다. 기차 안은 저녁 시간이 아직 안되어서 인지 한적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 고 기차는 멈출 기미를 안보였다. 그래서 ふみか한테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어보 았더니 1시간이란다. 숫자는 익숙하지 않아서 혹시나 잘못 들었나했더니 진짜로 1시간에 걸려 ふみか네 마을의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역 앞에는 ふみか의 아 버지께서 우리를 맞아주셨다. ふみか의 아버지 차를 타고 다시 30분을 타고 도 착한 ふみか네 집은 아담한 시골집 같았다. 뭐랄까... 왠지 짱구는 못말려 에서 많이 본 듯한 집이었다. 이동 시간이 긴 탓에 그날 저녁에 놀러가지는 못 하고 집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대화의 시간을 많이 나누었다. 집 안의 모습은

223 그냥 검소한 가정집의 모습이었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고타쯔가 있었다. 고타쯔 란 큰 탁자에 이불을 깔아놓은 모습으로 그 속에 몸을 넣으면 속에 있는 스토브 에 의해 몸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그리고 바닥에는 타다미가 깔려 있었고 진짜 로 욕실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다.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물을 내렸는데 갑 자기 변기통 위에 조그만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와 그 아래에 있던 방향제가 젖 으면서 향기를 내뿜었다.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일본인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ふみか네 가족을 소개하자면 ふみか의 아버지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 만 (すみません!)공무원이셨고 머리가 살짝 벗겨지셨지만 훤칠한 키에 인자해 보이시는 분이셨다. 이틀 동안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노력하셨다. 어머니의 이름은 エミ이셨는데 내가 한국에서 엄마를 애미 라고 하기도 한 다고 하였더니 신기해 하셨다. 배부른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제공해주셔서 남겼을 때 죄송한 마음을 가지시게 한 분이셨다. ふみか는 쿄로고 등학교 2학년으로 들리는 말로는 공부를 잘한다고 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웃 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그리고 ふみか의 부모님과 우리와의 대화를 옆에서 통역해주기도 하였다. ふみか의 여동생은 speed skating을 해서 그 다음날까 지 돌아오지 않아 얼굴을 보지 못했다. ふみか의 남동생인 だいせい는 활달한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스포츠를 굉장히 잘하기도 하고 좋아해서 집에 있는 wii 게임기로 나에게 탁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하기 도 했지만 나중에는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밥을 먹을 때 한국에서 공부 할 때 일본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에는 맛있다. 라는 말을 자주 해주어야 무 뚝뚝하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서 우리가 한 번밖 에 안했더니 남동생이 오히려 우리에게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이것을 계기로 분 위기가 좀 더 환해져 남동생한테 정말 고마웠다. 일본어 공부를 제대로 해놓지 않은 탓에 의사소통에 있어 불편한 점이 다소 없지는 않았지만 세계 공통 언어 인 바디 랭귀지와 되지도 않는 영어를 섞어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전하지 못했던 말은 사전을 통해 주고 받았다. (새삼 사전의 소 중함을 깨달았다.) 잘 시간이 되자 우리에게 목욕 하라고 권하였는데 진짜 일본 어 시간에 공부한 것처럼 목욕탕의 물을 온 가족이 돌려썼다. 샤워하고 원래는 욕조에 들어가야 하는데 미안해서 그냥 안 들어갔다. 목욕 후에는 우리가 잘 방 을 보여주었는데 바닥에는 타다미가 깔려 있고 날씨가 그 날 추운 탓에 이불 두 꺼운 것을 여러 겹 깔아주셨다. 잘 때는 전기 스토브를 끄고 자야 하기에 따뜻

224 하게 입고 자야하는데 이불 두꺼운 것만 믿고 잤더니 다음날 후회했었다. 내일 더더욱 대화를 나눠봐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잠이 들었다. 넷째 날 긴장해서 그런지 늦잠 자지 않고 7시에 눈이 떠졌다. 가족들에게 자신 있게 아침 인사를 하고 아침 식사를 했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를 한 순간 어제 내 가 했던 실수를 떠올렸다. 아버지께서 차에서 내리셔서 직접 문을 열어주시기에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 할 것을 오하요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아침인 사) 라고 했다. 아버지께서 웃으시면서 Good morning?" 하셨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지만 다시는 그 두 말이 헷갈리지 않을 것 같다. 아버지께서 직접 영어로 오늘 일정에 대해 써주시면서 4시까지 다시 학교에 도착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렇게 친절하고 정말 엄마, 아빠 같은 가족과 10시간 도 같이 못 있게 된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오전에는 아버지와 ふみか와 함께 등 산을 갔다. 프로필에서 본 것처럼 취미가 등산이셨기에 조금 가파른 산임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 없이 올라가셨다. 반면에 나와 내 친구는 언제쯤 도착하느 냐고 서로 신호를 보내며 점점 지쳐갔다. 그렇게 많이 오른 것도 아닌데 우리를 보시고는 안쓰러웠는지 다시 내려가자고 하셨다. 정말 죄송했지만 속으로는 쾌 재를 불렀다. 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ふみか가 다녔던 중학교를 방문했었 는데 우리나라의 중학교는 차원이 다를 만큼 규모면에서 매우 컸다. 그리고 학 교에 외계인같이 생긴 동상이 있었는데 심장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무엇을 의 미하는지 보려고 간판을 보았으나 일본어여서 안타깝게도 알지 못했다. 아버지 는 우리에게 되도록 많은 추억을 남겨주시려고 사진기로 계속 사진도 찍어주시 고 좋은 풍경이 있으면 차를 멈춰서 사진을 찍도록 해주셨다. 오전을 그렇게 보 내고 시내로 나가서 스시를 맛보았다. 일본에 처음 왔을 때 스시와 라면은 꼭 먹어보고 가야지하는 결심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스시의 고장인 일본, 그 이름 만큼이나 맛있고 값이 쌌다. 한국에서는 초밥 2개가 들어있는 한 접시에 가장 싼 것이 2500원에서 3000원정도 하는데 일본에는 한 접시당 105엔에서 125엔이 었다. 원화로 환산하면 1365원에서 1625원 정도였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그 신 선도 면에서 한국을 능가했으며 초밥의 종류 또한 다양했다. 이렇게 한국보다는 쌌어도 얻어먹는 입장이었기에 선뜻 나의 양을 채우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아버 지께서 우리에게 되도록 많은 것을 맛보게 하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역력하셨

225 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셨는데 곧 있으면 헤어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찡해졌다. 스시를 먹고 정말 고맙게도 우리를 위해서 100엔 마트(우리나라에서 는 1000원 마트라고 한다.)를 가주셨다. 돈이 얼마 없는 우리를 위해서 한국 친 구들과 선생님들 선물을 사라고 데려가 주신 배려심에 감동받았다. 하지만 시간 이 별로 없어서 재빨리 산 후 학교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허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도착하기 직전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젓 가락과 안경통 주머니를 선물해주셨다. 책에서 읽을 때 일본 사람들은 선물을 받으면 꼭 작은 것이라도 다시 선물을 해 준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우리에게 선 물을 안겨주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선물을 주시지 않으셨어도 우리들이 그 가 족에게서 받은 모든 배려와 친절이 우리에게는 더 큰 선물이었다. 1박이라고 하 지만 우리들을 위한 잠자리에서부터 씻는 것, 먹는 것 하나하나 신경 써야할 일 이 많다. 그런 고생을 하신 거에 비하면 우리가 드린 선물은 보잘 것 없을 것이 다. 드디어 가족과 이별하는 순간이 왔다. 짧은 1박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집을 떠 나는 마냥 마음이 허전했다. 정말 울고 싶은데 눈물이 안 나와서 내 자신이 미 웠다. 나와는 다르게 같이 홈스테이 했던 친구는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일생에 한 번으로 끝날 수 있는 홈스테이의 경 험은 일본의 문화를 직접 느끼고 한국에서의 가족 간 유대감의 연장선으로 마음 이 훈훈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메일을 꼭 보내겠다는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오늘은 일정이 이것으로 끝이어서 일찍 호텔에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기 전 내일 방문할 쿄려고등학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교육 열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처럼 일본도 장난이 아니어서 쿄려고등학교 또한 학 구열이 대단한 학교라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내일 10시 30분에 학교에 도착 하게 되는데 그 전에 학생들은 먼저 1교시 수업을 하고 우리와 대면식을 갖는다 고 한다. (참고로 이 학교의 1교시 수업시간은 90분이다.) 배정된 반과 체험할 활동 조를 발표한 후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한국의 고 등학교와 일본의 고등학교는 어떤 면에서 차이가 있을까? 다섯째날 10시 30분에 도착이기에 오늘 아침은 다른 어떤 날보다 늦게 일어나도 괜찮았 다. 모처럼 늦잠을 잔 후 개운한 마음으로 쿄로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외관상으

226 로 볼 때는 한국의 고등학교는 무엇인가 권위가 느껴지고 삭막하기까지 느껴지 는데 여기 고등학교는 박물관에 온 느낌이 들었다. 건물 전체가 그리스 로마 신 화에 나오는 신전 같아 웅장해보였다. 그리고 한국의 건물보다 훨씬 깨끗하고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고등학교에 다니면 정말 다닐 만하겠다는 생각 이 든다. 대강당에 모여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학교 회장의 한국말 인사를 들었다. 한국말에서 특히 받침의 발음이 어려웠을 텐데 또박또박 잘 읽었다. 우 리 측에서도 단장님이 인사를 하시고 대표 학생이 일어로 인사했다. 그리고는 축하 공연을 보았는데 먼저 우리나라의 가야금하고 비슷한 고도 라는 악기를 학생들이 연주했다. 우리나라의 가야금은 동양적인 미가 소리마다 배어있는 반 면에 이 악기는 동양과 서양의 소리가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했다. 플랫과 샾을 넘나들며 연주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 소리에 매료되어 정신이 빠져 감상했던 것 같다. 다음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이번에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올 학생들이 모여 고향의 봄 같은 한국 노래를 합창하였다. 낯선 땅에서 우리나 라의 동요를 들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우리나라의 합창단은 무조건 크게 부르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입을 맞추는데 일본의 합창단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 음이 하나하나 모여 조화를 이루었다. 인공적이지 않고 자연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마지막으로는 학교의 댄스 동아리가 춤을 보여주었는데 화 려하기 보다는 소박하면서도 귀엽다고 해야 하나? 그 다음으로는 우리 측에서 특기생으로 뽑힌 애들이 한국 무용과 판소리를 보여주었다. 예쁜 한복을 입고 우리 고유의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역시 나에게는 한국의 미가 더 맞는다 는 생각이 든다. 다소 지루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표정 하나며 손동작 하나하나 에 집중하다보니 금방 끝이나 아쉬웠다. 이렇게 환영 행사를 마치고 각자 배정 된 반에 들어가 반 아이들과 점심을 함께 했다. 난 2학년 2반에 들어갔었는데 내가 다니는 학교와는 달리 이 학교에서는 각자 도시락을 싸왔다. 실장은 우리 와 학생들 간의 소통을 위하여 큰 원을 만들어 같이 식사를 하도록 하였다. 어 색해진 분위기를 무마시키기 위해 각자 자기소개를 하였다.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하는 우리들을 위해 학생들이 먼저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영어로 다시 소 개했다. 점심시간이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같 이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서예, 요리, 다도를 체 험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요리였는데 한국의 부침개 격인 음식을 만들었 는데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음) 잘 하려고 하다가 결국 전이 아닌 죽이 되고

227 말았다. 겉은 타버리고 속은 익지 않아서 거의 먹지 못하고 남겼다. 요리를 같 이 할 때 한국 학생 3명, 일본 학생 2명이 어울려 했다. 확실히 같이 무언가를 하면 금방 친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학교 방문이 짧은 순간에 이루어져 일본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어 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아쉽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일본의 학교에 대해서 듣기로는 일 본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까지 동아리 활동을 계속하게 되는데 공부만 시키려는 한국과는 달리 체력이나 교양까지도 기르게 하려는 교육 철학 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우리나라도 그런 교육을 본받는다면 더욱 다니기 좋은 학교가 될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못한 교육 현실이 안타깝다. 학교 방문은 이렇게 해서 끝이 났다. 고등학교 시절에 다른 나라의 고등학교 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좋은 기회였고 나중에 일본에 여행을 오면 이 학 교를 방문해 외관이라도 다시 보고 싶다. 내일만 지나면 아쉽게도 한국에 돌아 가기 때문에 남은 일정 더욱더 알차게 보내야겠다. 여섯째날 일정의 마지막 날이자 체험하는 것이 많았던 여섯째날은 바쁘게 돌아갔다. 아침 에 후지산 중턱까지 올라가려고 하였으나 전날 눈이 와서 올라가지는 못하고 아 래에서 구경만 해야 했다. 우리를 위해 하늘이 도와준 덕분인지 그렇게 보기 힘 들다는 후지산을 아주 깨끗하게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높은 산은 처음 보았는데 산의 중간 정도까지 하얗게 눈이 덮여 있어 아름다웠다. 그리고 주변의 구름들 도 산 보다는 아래에 있어 산의 흰 부분 주위로 구름이 둘러져 있었다. 도쿄에 서는 일본의 다소 인공적인 면을 많이 보았다면 여기서는 자연적인 미를 훨씬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대신 기온이 매우 낮아서 오랫동안 구경하지 는 못했다. 다음으로는 블루베리 마을로 가서 잼만들기를 하였다. 엄마가 집에 서 딸기 잼이나 포도 잼을 만드는 것을 보기는 했어도 만드는 것은 처음이어서 실수도 많았다. 내가 성질이 급해서 끓기도 전에 재료를 다 부어서 거기 계신 분에게 혼나기도 했지만 내가 직접 만든 잼을 먹어보니 그 맛이 한층 더 맛있게 느껴졌다. 짧은 시간 동안 체험 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인형을 만들었다. 솔 직히 말해서 인형이라기보다는 스폰지밥 에서 나오는 뚱이 를 반으로 접 어 얼굴만 단 모양이라고 할까? 내 생각하고는 많이 달라서 실망했다. 마지막으로 신사를 갔었다. 일본에서는 모든 사물에 신이 있다고 믿고 이 신

228 들을 위해서 신사를 세워 참배를 한다. 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연물뿐만 아니 라 만약에 어떤 지역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지의 말이 떠돌면 그 사람의 혼을 위해 신사를 지어 신으로 모신다. 우리가 갔 었던 신사는 후지산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였다. 신사에서는 3살에서 7살이 되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들이 기모노나 양복을 입고 부모님과 함께 예식을 치렀 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옛날에는 어린 아이들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여자는 3살, 7살, 남자는 3살, 5살에 이 신사에 와서 의식을 치른다. 조그만 아 이가 기모노를 입고 종종거리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고 우리나라에 는 기왓장이나 등불에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작은 나무판자 에 소원을 적어 걸어둔다. 이것을 애마 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옛날에는 이 런 신사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말을 1마리씩 가져와 바쳤다고 한다. 그러나 가 난한 사람들은 말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대신 말 그림을 그리고 갔 다고 한다. 말 그림을 축소해 그 소원을 쓰도록 한 것이 바로 애마 이다. 빨 리 빨리 보고 이동한 탓에 애마를 쓸 여유는 없었지만 우리 모두는 신사 앞에서 저마다의 소원을 빌고 왔다. 이렇게 해서 6박 7일 동안의 여행이 모두 끝났다. 대학교 가기 전까지는 해외 는 꿈도 못 꿀 줄 알았던 나에게 이번 기회는 못 잊을 추억이 될 것이다. 일본 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나라이어서 인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것은 없고 일본인들의 생김새도 한국인과 비슷하여 일본어 간판과 곳곳에서 들리는 일본어만 없었다면 한국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의사소통 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 세계적인 언어인 바디 랭귀지와 영어, 간단한 일본어 회화로 마음을 전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그것을 느꼈다. 학교에서 제 2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시점에서 직접 그 나라를 체험한다는 것은 소중 한 교육의 기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 다는 결심을 서게 해 주었다. 앞으로 한,일 교류하는 기회를 늘려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런 교육의 장을 열어주었으면 좋겠고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인 도, 미국과도 이런 프로그램이 진행되어 교육의 세계화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 다

229 내 마음 속 또 하나의 세상 임 한 별 숭 덕 고 등 학 교 2009년 10월 29일 새벽 3시 광주광역시교육청 앞 집합. 그렇게 나를 포함한 광주 9명은 저번 9월 24일 부산 모임 이후 거의 한달 만에 다시 모였다. 부산으 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뜨니 어느새 김해공항 앞. 간단히 아 침식사를 하고나니 우리와 동행하는 각지에서 온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 설레고 반 걱정되는 심정으로 인원체크를 하고 출국심사를 한 후,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 편에 올랐다. 1시간 30분 정도 비행 하고 나서 일본 나리 타공항에 도착해서도 아직은 일본에 온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귀가 멍멍하다는 것이 비행기를 탔다는 유일한 흔적일 뿐이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실 통역가이드 분들과 처음으로 만나 뵈 었다. 일본인이신데도 굉장히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셔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로 옮겨 타서 일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들으며 일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동경타워로 향했다. 동경 시내로 진입해 도로를 달리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우리나라와 반대 차선을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것보 다 직접 체험하니 생생함이 남달랐다고나 할까.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금세 동경타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파리의 에펠탑을 모델로 하였고 333m의 높이이고 처음에는 전망대가 아닌 전파탑의 역할을 위해 세워졌다는 사실에 놀라며, 150m높이에 있는 대전망 대에 올라 탁 트인 창으로 내려다보는 동경 시내는 과연 장관이었다. 특히 아래 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창 위에 섰을 때는 내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은 것 마냥 감회가 새로웠다. 또 친구와 함께 일본어 회화를 연습해 볼 대상을 물색하 면서 외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하기가 어려워 애를 먹었었다. 하지만 그만큼 세계 각지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확실 히 무언가가 다르구나,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아직은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래 식당에서 밥을 먹고

230 나니 동경타워에 환하게 불이 들어온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어둠까지 밝게 밝혀주는 것만 같았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렇게 호 텔로 들어가 단별 회의를 개최함으로써 첫날을 마무리했다. 푹 자고 일어나 신종플루의 여파 때문에, 열을 재고 나서 아침을 먹은 후 외무성으로 출발했다. 외무성은 일본의 행정기관으로 외교 정책 사절 통상을 맡 아보는 부서이다. 평상시 일반인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시설인데다가 일 본의 장관급 인사가 나와 우리를 환영해주시는 것을 보고 내가 한국의 대표로서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특히 질의응답 시간 때 나도 용기를 내 서 일본과 한국의 관계 발전을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무엇이 십니까? 라고 질문 드렸다. 아직도 그런 용기를 낸 내 자신이 대견하다. 그러 고 나서 에도성으로 가는 길에 일본 에도막부정권시절에 관한 전반적인 역사이 야기를 들었는데, 학교에서 책으로만 배웠을 때와는 달리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런 걸 보고 살아있는 교육 이라고 하는 것일까. 에 도성에서 사진 찍는 시간을 가졌는데, 관광 온 외국인들과도 함께 사진 찍고 메 일도 교환했다. 잠깐이지만 국제적인 세계화를 경험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세 번째 날, 야마나시 현으로 향하는 팀과 아키타 현으로 향하는 팀 으로 나뉘는 날이었다. 나는 야마나시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특히 이 날은 홈스테이를 같이하는 일본인 가족 분들을 만나는 날이라 전날부터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야마나시는 같은 일본인데도 도쿄와는 또 다른 색을 가지고 있는 현이었다. 산 중턱에 위치해서인지 약간 시골분위기가 나기도 했지 만, 그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홈스테이 를 할 친구들이 다니는 코료고등학교로 향하는 길에 짧게나마 일본어 연습을 하 고 드디어 첫 대면식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서면으로만 보았던 Ayu(Ozawa ayumi-자신을 Ayu라고 불러주라고 했다)를 직접 만났던 그 순 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Ayu 어머님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에 영어에 얼마 안 되는 일본어에 몸짓 발짓 모든 것을 섞어서 의사소통을 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일본어는 다 어 디로 갔는지 머릿속에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몇 개월 동안 일본에 관해 좀 더 준비하고 일본어도 더 공부해올걸 하는 생각이 뼈에 사무치게 들었다. 그래도 마음은 통하기 마련이었다. Ayu집에 도착해 아버지와 남동생을 소개받고 한국에 서부터 준비해갔던 선물인 김, 소주, 탈액자를 선물하면서 본격적인 홈스테이가

231 시작되었다. 바로 저녁을 먹으면서 내가 선물해드린 소주를 드셔주실 때 얼마나 기쁘던지. 저녁에 쇼핑센터에 갔는데, 한국과 비슷한 점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 었다. 그 때 Ayu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증표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날이 10월 31일 할로윈이라 일본 과자를 선물 받 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일본식으로 목욕까지 개운하게 하고 나니 일본 문화 에 완전히 적응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Ayu와 말은 잘 안 통하였 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Ayu의 남자친구가 일본인과 한국인의 혼열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역시 한국과 일본은 생각보다 가까운 나라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11월의 첫 날, Ayu집에서 눈을 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일본의 3대 성 중 하 나인 마츠모토 성에 갔다. 현존하는 일본 최고의 오중 천수각에 어울리는 풍격 의 환경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역사적 문화적 미적가치까지 놓치지 않는 모 습이었다. 게다가 더 인상 깊었던 점은 성 내부를 관람할 때의 모습이었다. 차 례차례 질서정연하게 한 줄로 서 있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또 마츠모 토 성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한 신사에도 잠깐 들렀는데 소원도 빌고 공부 잘하는 부적도 선물 받아 연신 ありがとう ございます. 를 외쳤다. 무엇보다 일본 거리를 나의 일본인 친구 가족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게 굉장히 기분 좋 은 일이었다. 게다가 일본이라는 다른 나라에 나의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든든한 느낌도 들고 조금 더 친숙 한 느낌도 들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의 미소라면도 먹었는데, 처음에는 입맛에 맞지 않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굉장히 맛있었다. 그렇게 아쉬운 하룻밤이 지나가 버리고, 가족들과의 아쉬운 헤어짐을 뒤로 하고 Ayu와는 내일 학교 수업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가족들 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정말 일본어 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본 문화를 바로 옆에서 경험하고 직접 체험한 것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와시쯔에 앉아도 보고 코타츠에서 Ayu와 함께 게임도 하고 일본가정식도 먹고 각국 연예인 이야기에서부터 학교생활 얘기까 지. 역시 언어적 장벽은 마음으로 부딪치면 깨트릴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 다. 하지만 일본어를 굉장히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괜스레 Ayu한테 의사소통 이 잘 안 되는 내가 미안해지기도 하였다. 그래서 다음번에 꼭 다시 일본에 오 겠다고 그리고 다시 일본에 올 때는 꼭 일본어를 열심히 배워 오겠다고 약속했

232 다.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 날, 코료고등학교로 다시 돌아가 난 2학년 4반에서 일본 아이들과 점 심을 먹었다. 짧은 시간 때문에 밥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 른 채 대화하고 또 대화하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난 1팀에 속해서 다도, 서예, 요리 순서로 일본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다. 우리나라와 다른 수업 때문인지 친구들과 함께해서인지 수업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고 굉장히 즐거웠다. 특히 요 리수업을 하면서 함께 만들고 또 같이 나눠먹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인 지 한발자국 더 가까워짐을 느꼈다. 요리를 같이한 친구들한테 한국에서 준비했 던 작은 핸드폰 고리를 선물하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일본의 일상에 직접 뛰어 드는, 함께하는 느낌은 이번 연수가 아니었다면 평생 느껴보지 못했을 듯싶다. 어느새 연수가 끝을 보이고 있었다. 6번째 날은 후지산에 올라갈 예정이었 으나, 간밤에 후지산 정상에 내린 폭설 때문에 버스가 올라갈 수가 없어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해야만 했다. 비록 올라갈 수는 없었지만, 그 주변 어느 곳에서 보든 후지산은 굉장했다. 정말 장관이었다. 원래 후지산은 조금만 날씨가 흐려 도 안개 때문에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데, 우리는 운이 좋아서 그 깨끗하 고도 신비로운 모습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후지산에 오르지 못하는 대신 오시노 핫까이과 후지 센세이 신사에 들렀다. 귀여운 기모노를 입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일본아이들을 또한 잊을 수 없을 듯하다. 블루베리 잼 만들기 체험 도 하고 직접 만든 잼도 가져가고 아름다운 후지산을 배경으로 실컷 사진도 찍 었다. 글을 쓰면서 기억을 더듬으니 추억이 새록새록 하다. 글로 모든 걸 다 표현 할 수가 없어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난 이번 연수를 통 해 결코 평생 잊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얻어간다. 추억도, 친구들도, 배움도. 내 핸드폰 고리를 볼 때 마다 일본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더 이상 단순한 이웃나라가 아닌 내 마음속에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233 일본을 다녀와서 정 유 진 울산중앙여자고등학교 나에게 있어서 일본이란 나라는 연수를 가기 직전까지만 해도 막연히 멀고 도 가까운 나라였다. 이런 나에게 있어서 방일 연수는 일본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꾼 또 하나의 계기였다. 3월 달, 학교 추천으로 인해 방일 연수에 참가하게 된 나는 9월이 지나가고 10월의 마지막 주, 드디어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이제 일본에 가는 구나. 일본은 두 번째로 가는 거였지만 또 다른 기대 감과 걱정이 밀려왔다. 방일 연수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홈스테이와 학교 방문 이었지만 둘째 날의 임해부도심, 미래관, 그리고 셋째 날의 방재교육체험도 말 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될 만큼 정말 인상적이었다. 첫 날 우리는 가볍게 도쿄 타워를 견학하고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연수를 시작했다. 둘째 날 우리의 공식적인 첫 방문지는 외무성이었는데 니시무라 사토 시 나미 외교 정무대신께서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 마를 가지신 니시무라 정무대신은 우리의 방일 연수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깊은 우호관계를 바란다고 하셨다. 여러 질의응답시간에 지 금 드시고 싶은 한국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았을 때 삼계탕이라고 말씀하시는 센 스가 정말 남달랐다. 일한 문화교류기금에서 마련한 환영중식회도 무사히 마친 우리는 임해부도심 지역으로 향했다. 우리나라도 간척사업을 해서 국토를 늘리고 있는데 이와 비슷 하게 일본은 바다를 매립을 해서 하나의 도시를 형성했다. 오다이바라고 통칭되 는 이곳은 도심과 15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네트워크 의 거점이라고 불리고 있다. 또한 전기, 물, 가스가 지하 깊숙이 라이프라인으 로 도시 전체가 연결, 중앙에서 관리하고 있어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경우 자동 적으로 차단이 되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한 일본은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자연 경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건물을 110m 이상 짓거나 전광판 을 세우지 못하게 해서 재해에 대비하는 모습도 보였다. 또한 개발면적의 30%정

234 도를 녹지공간으로 만들어 친환경적인 미래형 도시를 계획했다는 것도 인상적이 었지만 각 건물에서 버려지는 쓰레기를 클린센터라는 곳에 모아 쓰레기를 태우 고 그 열에너지를 가지고 도시의 냉난방을 할 때 이용 된다는 것이 무척이나 획 기적이었다. 마치 미래의 도시 형태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최근에는 환 경을 생각해서 개발을 하기는 하지만 오다이바 지역을 보니 우리나라도 지금보 다도 친환경적 도시에 대한 생각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다이바의 과학관 미라이칸은 나에게 과학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가져다 준 곳이다. 학교에서는 이론으로만 배웠던 DNA구조 뇌의 생김새, 양성자 충돌 반응 등을 이곳에서는 직접 눈으로 보고 만지고 체험할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여러 체험들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내 손바닥을 직접 스캔을 한 후 일 정한 부분을 점차적으로 확대해 나가 내 DNA구조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 다. DNA 구조에 대해서는 일본에 오기 전 잠시 배운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막상 체험을 해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그 외에도 인터넷 정보가 이동하는 방법을 비 유해서 나타낸 전시물, 손으로 직접 만지면 반응하고,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로 봇 등은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재미있었다. 빡빡했던 둘째 날의 일정이 지나가고 셋째 날 오전 우리는 방재교육체험을 하러 갔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방재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이 지방마다 하나씩은 꼭 있다고 했다. 우리는 3D 영화를 간단하게 보고 4팀 으로 나눠져서 각각 4개의 체험을 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지진체험과 연 기 체험이었다. 강도 7의 지진을 직접 체험했는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 을 미리 알고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너무 무서 웠다. 상자로 만든 가구가 떨어지고 책상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난 후 며칠간 꿈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장면이 나타나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지 진체험을 마친 후 통역선생님 중 한분이 실제로 고베지진을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았다. 1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때 느꼈을 공 포가 나에게도 오는 것 같았다. 소화기 사용법, 인공호흡 방법을 거쳐 마지막 연기체험. 이것은 화재로 인해 연기가 자욱한 건물 안에서 탈출하는 훈련이다. 모니터로 우리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보여 지고 센서가 있어 우리가 일정 높이 이상으로 서있으면 주의 하라는 경보가 울린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 경보가 울 릴 쯤 우리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조금은 섬뜩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이 방 안에서 무사히 탈출하면 성공, 경보음이 울리거나 탈출하지 못하면 실패! 우

235 리 조에선 실패하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나의 경우 선생님께서 비상구 유도등을 끄는 바람에 엄청나게 당황 했었다. 그나마 유도등으로 인해 보였던 길이 유도 등을 끄고 나니까 사방이 어두워 바로 앞에 있는 비상구를 찾지 못해 헤매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호텔에서 화재가 난 적이 있었는데, 방 안에 유도등이 없 어서 복도로 나오지 못해 많은 사람이 질식사 했다고 한다. 연기가 입과 코 등 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상구의 유도등을 찾는 것도 무척이 나 중요함을 깨달았다. 방재교육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일본인들의 재 난 방지를 위한 교육이 무척이나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는 일본처럼 재난 방지를 위한 건물을 세워 따로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학교에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방재 체험도 아이들이 대충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에 지진이 일어나면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 다. 우리나라도 재난이 일어났을 때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듯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썩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아마도 좋지 않은 이미지의 대부분은 우리의 역사 때문일 것이다. 그렇 지만 이제는 21세기이다. 일본인의 검소함, 환경을 생각하고 재난에 대비하는 철저함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우리는 과거에 연연해하다가는 절대 발 전할 수 없다. 서로가 좋은 점을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가 되어있다면 더욱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가 더욱 더 발전 해 나갔으면 한다

236 이웃나라의 향기 김 지 영 김 제 여 자 고 등 학 교 일본. 중학교 때부터 이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 고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여러 작은 문화들, 간단한 일어회화 등을 그냥 그 두근거림이 좋아서 혼자서 끙끙대면서도 그 나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 각만으로 매달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서 비록 작은 노력일지도 모르 지만 그 노력은 나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이번 일본 문화 교류 방일단이라는 굉 장한 계획에 선택되었다. 이것은 엄청난 행운이며, 내가 인생에 한발자국 다가 서는 기회다. 출국전날 기대감이라던가 긴장감에 억눌려 잠이라도 못 이룰 것 같았지만 실 감이 나질 않아서인지 잠은 의외로 평범히 쏟아졌다. 눈을 떴을 때도, 짐가방 들고 나갈 때에도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고, 공항에 도착해 모두와 출국하고 일 본의 땅을 밟게 될 때 비로소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첫 날 이동한 도쿄타워는 TV나 책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자유로우면서 도 위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일본을 떠오르게 하는 흰색과 붉 은색의 조화는 굉장히 질서 있어 보였다. 전망대로 올라가자 도쿄가 한눈에 들 어왔다. 아래에서는 전혀 몰랐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도쿄는 여태껏 한번도 건물이 높다 라는 느낌을 받아보지 못한 나에게 너무나도 간단히 그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뭔가가 자유롭다는 느낌의 도쿄전역은, 공간 임에도 불구하고, 넓다는 느낌보단 높다는 느낌이 와 닿았다. 어느 정도 도쿄타 워가 눈에 익숙해졌구나 라고 생각하며 도쿄타워의 정문을 나왔을 땐 도쿄타워 가 금황빛으로 물들어 빛나고 있었다. 금황빛 도쿄타워를 봤을 땐 나도 모르게 환호성과 함께 카메라를 머리위로 들어 올려 그 모습을 담아내고 있을 정도였 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정성이 듬 뿍 담긴 저녁식사를 먹었다. 서로 얼굴은 아직 낯설지는 몰라도 함께 일본에 왔 다는 감정이 더 강했는지 식사분위기는 의외로 화기애애하게도 모두가 두 손을

237 모아 식사에 대한 감사의 인사와 마음을 표시했다. 그리고 그 인사로 비로소 나 는 또다시 일본에 왔다는 실감을 느끼게 되었다. 모두가 지쳤지만 이웃나라에 왔다는 사실에 비로소 가벼운 발걸음으로 호텔에 묵게 되었다. 랜덤하게 배정된 호텔배정에 불만보단 걱정인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 걱정이던 아이들을 감싸주고 배려해가며 모두가 따뜻한 첫 날을 보냈던 것 같다. 두 번째 날에는 첫 날과는 다르게 좀 더 가볍게 걸을 수 있었다. 일본의 산뜻 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외무성에 방문했다. 외무성이라고 하기에 무척이나 무거 운 분위기일 줄 알았지만 외무성은 의외로 평범한 행정기관 같았다. 건물의 분 위기와 같이 외무성에선 니시무라 라는 굉장히 환한 미소를 지은 분이 나와 우 리 방일단의 질문을 들어주셨다. 질문 중에서는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 가?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역시 이때도 무거운 이미지일 것 같다는 생각과 반 대로 니시무라씨는 왠지 귀여운 느낌으로 겨울연가와 장금이라고 말씀하자 한국 일본 할 거 없이 모두가 즐겁게 웃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미식 가인 니시무라씨는 한국요리는 종류가 많아서 계속 먹고 싶었다며 재미있는 말 솜씨와 함께 삼계탕이야기를 꺼내셨고 그 모습에 나는 딱딱했던 일본 행정의 이 미지가 완벽하게 깨어짐과 동시에 새로운 지식과 함께 다시 지식의 벽을 쌓아 올린 것 같았다. 외무성 방문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난생처음 유리카모메 라는 사람이 아 닌 컴퓨터가 조종하는 전차를 보게 되었다. 어떻게 사람 없이 컴퓨터가 조종할 수 있는 걸까? 라는 의문도 들었지만 유리카모메를 보는 순간 일본은 한 면으로 보면 우리 한국과 매우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앞서 나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 번째 날, 방재교육체험을 하러 이동하였다. 건물의 겉모습을 보는 순간 그 냥 평범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갔을 땐 대단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설에 대한 감정도 있었지만 사실 나에게 있어선 시설 보다는 그러한 방법으로 이런 시설을 만들었다는 그 생각자체가 대단하다고 생 각되었다. 한국에는 지진이나 화재 등이 잦은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일까 왠지 안전체험 쪽에는 일반인들에게 그다지 기회라던가 일상생활에서 당연하다는 느 낌이 들어야하는데 그런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부럽기도 했다. 이곳에선 소화기로 불 끄는 법과, 지진체험, 방재체험을 수행했는데 이곳에

238 와서 처음으로 소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은 화재나 지진 등 이 일어났을 경우 언제든지 이웃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게 일정 거리마다 소화기 를 방치해둔다고 한다. 준비성이 철저하다는 것도 있지만 소화 작업을 혼자인 경우만이 아닌 모두가 도울 때를 생각하여 방치했다는 게 굉장히 정감 갔다. 또 우리 한국에서도 여러 군데에 안전을 위해 소화기를 방치하지만, 소화기를 직접 사용하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 일 생활에서 소화기라는 존재를 인식하기 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방재교육체험에서 소화기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사용법을 이해하니 화재의 위험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되었다. 소화기체험의 다음에는 방재체험이었다. 사실 방재체험이라는 말에 한곳에 불 을 피우고 소화하는 작업을 보여주리라 생각했지만, 정말 의외로 인체에 무해한 인공 연기가 가득한 방에 직접 몸을 숙여 탈출하는 식으로 제공되어있었다. 시 설도 신기했고 이 방재체험은 직접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연기속에서의 상황과 화재의 위험도를 알기위해선 정말 좋은 학습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방재체험 다음에는 지진체험이었다. 시설은 대충 화면에선 진도에 따른 상황 을 스크린에 비추어줬고 원형모양의 탈것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화면의 진도에 따라 지진처럼 흔들리는 구조였다. 일반 사람들, 특히 지진이 드문 우리 한국에 서는 분명 지진의 진도에 따른 강도를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 강도를 아는 사람은 대 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체험을 통해서 비록 실제 지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강도일 지라도 그 상황에 따른 올바른 대처법과 그렇지 못한 대 처법을 확실히 구분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정말 더 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경험이자 지식을 배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순간 같았다. 방재체험이 끝나고 드디어 7팀과 8팀은 각자의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내가 속 한 팀은 8팀으로 하네다 공항으로 가서 아키타 현으로 이동하는 일이었다. 사실 일본에 오기 전 7팀은 후지산에 신칸센을 타고 이동한다는 말에 솔직하게 부럽 지 않을 수 없었다. 아키타라는 말에 살짝 실망도 해봤고, 서운하기도 했었지만 앞으로 있을 아키타에서의 추억은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한 나에 대해 반성의 마음을 안겨주었다. 아키타에 도착하고 매우 기대했던 홈스테이의 날이었다. 과연 어떤 분일 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걱정과 기대는 자꾸만 부풀어 올랐다. 그리 고 대면식 날 기나긴 회장을 한걸음 내딛으며 내 번호가 적힌 자리를 향해 걸어 갔다. 굉장히 여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회장을 걸어가니 주위 환경이

239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이 들었던 방일단 친구들도 그랬는지 회장은 다소 조 용했다. 그리고 마침 내 번호가 보였을 땐 앞만 보고 자리에 앉았지만 눈앞이 깜깜했던 나에게 선뜻 건네주었던 고마운 그 인사말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잊 을 수가 없다. 많이 긴장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는지 아직 얼굴도 확인 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있던 내 손을 잡아 웃는 얼굴로 인사해 주시자 굳어있던 내 얼굴도 환하게 펴져갔다. 대면식이 끝나고 마치 가족처럼 다정하게 손을 잡 고 서로 춥지 않냐 며 짧은 걱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홈스테이 가정이라서 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써 너무나도 따뜻한 배려를 받은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고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집에 도착해서도 더욱더 커져갔다. 막 만났다고 부르기엔 어려울정도로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어렸을 적 입으셨던 유 카타를 꺼내 입혀주시거나, 아키타의 명물음식 키리탄뽀라는 음식을 만듦과 동 시에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홈스테이 가정에는 미하루라는 여자아이와 림이라 는 남자 꼬마아이가 있었는데 많이 경계하지 않을까 많이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마치 태어난 지 얼마 안 됀 아이들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 국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였고, 그때마다 나는 기대에 실망하지 않게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그러면서 유대감도 깊어졌는지 어느 샌가 모두와 함께 웃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정말 일본에 왔을 때 길거리에 쓰레기라던가, 정지선 지키 기 등 모두 일부러 짜고 배려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 에게서 느껴진 온정은 정말 오래전부터 생활습관이었듯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자 연스러웠다. 그리고 그 자연스러움 덕분에 부담보단 고마움을 느끼며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홈스테이 가정과 헤어질 때 모두가 눈물바다가 되어 이별을 안 타까워했다. 마치 정말 피를 이은 가족들이 먼 곳을 떠나는 것처럼 등을 토닥여 주는 모습을 보고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다. 정말 일본에 오게 된다면 반드시 이 곳에 다시 찾아와 웃는 얼굴로 다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안타까움의 밤을 지내고 학교방문을 위해 아키타 미나미 고등학교로 이 동하였다. 전날의 홈스테이의 이별 때문인지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앞으로 처음 만날 학생들을 생각하며 가볍게 숨을 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학교 에 도착했을 땐 왠지 커다란 규모에 놀라게 되고, 내부에 들어가선 깔끔함에 놀 라게 되었다. 교내는 너무나도 깨끗하고 단정하게 정리되어있고 학생모두가 너 도나도 할 것 없이 질서를 지켜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일본의 학생들은 표정이 너무나도 밝았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눈에 비친 미나미고등학교의

240 학생들은 모두가 어우러져 한 가정처럼 지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눈에 비친 일본 학교는 교복도 교실도 선생님들도 학생도 모두 신기 했지만 더 신기한건 학생들의 결속력이었다. 안 좋은 이미지일지라도 그래도 왠 지 악동 같은 느낌으로 소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모두가 자리에 앉아 단정한자세로 모두를 맞이했다. 그렇다고해서 딱딱한 느낌도 아니었다. 한 국어를 가르쳐주자 그 한국어를 이해하고 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귀엽기도 하고 대견스럽기도 했다. 발음이 틀리면 고개를 슬며시 들어 멋쩍게 웃어 보이며 다시 한 번 가르쳐달라며 얘기하던 아이들의 모습에 왠지 나도 함 께 끌려들어가게 됐고 그러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친구가 되어있었다. 이별의 시 간이 다가오자 모두가 바삐 움직여 주소를 주고받고 포옹하며 서로의 등을 토닥 였고, 아쉬운 눈을 하고 있었다. 버스가 떠나는 동안에도 일본 학생들은 눈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눈비 속으로 뛰쳐나와 우리들의 버스의 뒤를 쫓아 손을 흔들어주었다. 홈스테이 때도 그랬지만 일본사람들의 정에는 정말 못 이긴 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가든 얼마큼 시간을 보내든 그들에게는 무의미하다 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있어선 얼마만큼 같이 있느냐 라는 시간의 양보다는 얼 마만큼 인정을 베푸냐는 인심의 양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것도 딱히 누군가 가 인정을 베풀라며 지정해준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솔선에 의한 순수한 정이 말 이다. 홈스테이와 학교방문이 끝나고 묵었던 호텔에서는 평소에도 그랬지만 그날은 특히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창문을 몇 번이나 바라보며 홈스테이의 가족들이 나 학교의 모두를 생각하며 벌써부터 머릿속으로 안부를 묻거나 그리워하거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정말 사람간의 정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 전통춤인 소란부시 를 배우러 이동하였다. 굉장히 고상하면서 도 조용한 춤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연습실에 도착하자 감상한 소란부시는 굉 장히 힘차고 재미있는 춤이었다. 처음엔 모두 부끄러워했지만 음악의 리듬, 그 리고 무엇보다 춤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의 힘찬 목소리에 모두가 힘을 입고 그 힘입음이 온몸에 퍼져 모두가 부끄러움 따위 잊고 한마음 한 몸이 되어 춤을 배 워나갔다. 쉬는 시간에도 선생님에게 다음 동작을 물어보며 연습하는 아이들, 반복하는 아이들, 이런 광경들을 보고 있다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뭉치고 결속될 수 있다는 걸 실제로 보게 되니 굉장히 멋있었고, 그렇게 되니

241 나도 좀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런 수많은 경험들을 쌓고, 모두 집에 돌아가 기위해 너무 아쉬운 마음으로 짐을 꾸렸고, 그렇게 길다고 생각했던 일주일간의 연수는 막을 내렸다. 이번 연수를 통해 생활의 경험도 쌓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낀 것은 국경 을 넘어도 모두의 감정은 통한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은 언제든지 유대감을 형 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직 한 번도 확실히 느끼지 못했던 사람과의 정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뚜렷하고 듬뿍 느낀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을 받다보니 더 열심히 하고싶다라는 생각과 더 해드리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마구 솟구쳐 올랐다. 정과 함께 느껴진 것은 역시 일본의 문화였다. 목욕문화라던가 식생활 문화가 약간씩 다르다는 얘기를 듣고 약간이나마 걱정을 했지만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설령 다르더라도 모두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불편 한 것은 없냐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주었다. 꼭 생활 문화만이 아닌, 일본 의 전통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점을 느꼈다. 비록 과거에는 서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는 몰라도 이렇게 직접 가 서 일본의 여러 역사나 전통문화를 조사하고 관람하니 정말 일본이란 곳도 여러 시련과 고난을 버텨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갈 때마다 이러한 연수에 선택된 것이 정말 너무나도 행운이고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욕심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가 나에게 또다시 주어진다면 나는 일본의 새로운 문화와 역사, 그리 고 또 다른 부분의 정을 알기위해 언제든지 함께 하고 싶다. 전부터 정말 바래 왔던 이웃나라, 그런 이웃나라의 향기는 우리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한편으론 그 나라만의 특유의 향을 소중히 보존하고 있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고 그 경 험은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를 밝은 세상 밖으로 이끌어주었다

242 직접만난 일본, 이미지 실추의 한국? 장 영 은 순천 매산여자고등학교 가서 네 일본어가 어디까지 통하는지 확인하고 와라 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29일 오전에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그렇게 까지 자신 있는 실력도 아니고, 해외에 나가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 있어서 처음이기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 히려고 갖은 애를 써봤지만 그래도 두근거림은 완전하겐 진정되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서 연수도중 만났던 두 사람과 사소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일본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탑승시간을 기다렸다. 10시 반경 기억 에도 희미하게 밖에 남아있지 않은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전날 잠을 푹 자버려서인지 비행중의 단2시간 정도가 매우 길게 느껴진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느리게나마 흘렀고, 연수단은 치바현의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약 한 시간 정도 걸려 일본의 수도 도쿄에 도착했다. 신호등 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소리가 나고, 눈에 보이는 유동인구의 수는 문자 그대로 막대하고, 과연 도쿄가 세계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거대한 도시라는 사실 을 실감할 수 있었다. 헤이세이 이전의 연호인 쇼와33년에 지어진 도쿄타워를 가서 여기저기 기념품들도 기웃거리고, 친구의 권유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 으로 3층까지 천천히 내려오면서 풍경을 본 도쿄타워는 과연 도쿄의 상징이었 다. 어디에서나 타워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 반대로 타워에 서 도쿄의 구석구석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란도셀을 맬만한 초등학생에서부터, 교복을 입는 중고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도쿄의 셰라톤호텔로 향했다. 룸메이트들과는 이전까지 연락도 해보지 않은 상태라 조금은 어색했지만, 그래도 나름 즐겁게 보냈다. 국제전화 를 거는 방법을 몰라서 프론트의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쪽지에 적어 줘서 감사했다. 그리고 두근거리며 집에 전화를 해봤지만, 집이 부재중인건지 통화는 할 수 없었다. 이튿날 카스미가세키에 있는 외무성을 방문해서 니시무라 정무관을 만났다. 꽤 젊은 편에 속하는 여성이었기에 자민당의 집권 때와는 또 다른 일본의 민주당정권을 만난 느낌이 들었다. 천황이 기거하는 궁에도 가긴

243 했지만 그 곳은 일 년에 딱 두 번, 새해의 두 번째 날과 천황탄신일(12월 23일) 에만 일반인들은 들어갈 수 있다기에 그저 멀리서만 구경을 하고 왔다. 지금 떠 올려보면 과연 외국인이 가장 많은 장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도쿄의 매립지인 오다이바에 가서 미나토관에 가서 오다이바에 관한 설명을 사사키씨에게서 들었 다. 그러던 도중 아직까지 빈 공터가 남아있다 길래 무슨 용도로 쓸 계획인지를 물었더니, 전에는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물 건너 가버린 이야기라 아직 까지 구체적인 예정은 없고, 그 곳을 어떻게 쓸지가 관건이라는 소리를 하셨다. 그래서 오다이바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된다고 대답했더니, 공터가 메워질 쯤에 는 다시 한 번 오다이바에 와 달라고 하셔서 꼭 다시 방문하겠다고 했다. 다음 으로는 마찬가지로 오다이바에 있는 미라이칸에 갔는데 그곳은 미래공상과학관 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걸맞은 호칭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여러 분야의 과학기 술을 접할 수 있었다. 또 인상이 깊었던 점은 그곳에서는 연세가 높으신 분들이 조끼를 입고 계셨는데, 아가씨 설명해 줄까? 라며 말을 걸어오시던 할아버지 께서 말씀하시길 모두 전직 선생님들이시라는 것이다. 자원봉사로 사람과 만나 며 무언가를 설명해주신다는 그분들의 얼굴에는 학교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설명 해주실 때의 표정, 그것이 그대로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기 전, 잠깐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을 가서 사진을 찍을 시간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레인보우브릿지가 선명하게 나오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31일 방재교육시설에 가서 시다씨에게서 이런저런 설명을 들어가며 불을 꺼보 기도, 연기 속을 체험하기도, 지진의 강도를 체험하기도 하며 일본이 재해에 대 처하는 방법을 실제로 경험해보았다. 도중에 궁금증이 생겨서 시다씨에게 관동 대지진에 대해서 물어보았더니, 관동대지진은 일본의 지진강도 표기상으로는 진 도7의 강한지진이었고, 다이쇼12년에 시나가와현에서 일어났지만, 시나가와현의 피해는 극히 미미했고, 오히려 도쿄에서 크게 피해를 입어 도쿄로 유명하다고 시다씨께서 아주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설명을 듣고 나니 떠날 시간이라서 인 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하네다 공항으로 국내선을 타기 위해 출발했다. 부산에서 도쿄를 향할 때 보다 더 짧아서인지 지루하다고 느낄 새 없이 아키타에 도착했다. 과연 훗카이도에 근접한 지역이어서인지, 한국에서 는 덥게 느껴지던 외투가 적당하게 느껴질 정도의 기온이었다. 아키타현의 현청 소재지가 있는 아키타시를 향하며 홈스테이가족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대면식이 이루어질 장소에 도착해서 문 앞에 있었다. 어쩌면 이때가 가 장 가슴이 두근거린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순서를 맞추어서 들어가자, 내가

244 들어갈 자리에 앉아있던 것은 나를 맞아줄 호스트 가족인 와키사카 타카코씨였 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세지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라는 어눌한 내 일본어를 들으시고 타카코씨는 어머, 잘 왔어요. 편히 쉬고 즐겁게 지내다 가 요. 라고 말하시고는 어른이지만 해맑게 웃으셨다. 잠깐의 인사말씀과 이야기 시간이 지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긴장 이 많이 풀렸다. 집에 도착해서 잠시 동안 선물과 TV이야기를 하고 있더니 가장 이신 마사노리씨와 딸인 한나가 들어왔다. 타카코씨는 마사노리씨들에게 일본 어 엄청 술술 이야. 초 럭키! 라는 과분한 말씀을 하셨고, 그 말을 듣고 내게 말을 시켜본 두 사람은 대답하는 나를 보더니 타카코씨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장보러 가지 않겠냐는 물음에 나와 한나는 흔쾌히 따라 나섰고, 한나 는 마트에서 이거 좋아? 라는 물음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과자류를 늘려나갔 다. 너무 많이 산다고 저지하려는 내 반응에 타카코씨에게 쪼르르 달려간 한나 는 이거 한국에서는 엄청 비싸대 그러니까 언니 사주자, 사주자. 라는 말을 하며 내 간식거리를 엄청나게 골랐다. 장을 다보고 집에 돌아가, 나베를 먹기 위해 1층 료코씨의 집으로 내려가서, 또 다시 인사를 했더니 료코씨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tv를 보고 이야기를 하며, 나베를 먹으며, 외국인이 먹기 꺼린다는 초간장이나 와사비등을 자연스럽게 먹는 내 모습에 와키사카가 가족들은 또 한 번 놀라워했다. 식사 후에는 드라마를 보다가 컴퓨터를 하다가 다음날을 위해 소등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키타가 추운지역이긴 해도 타카코씨의 배려로 매우 따뜻한 잠자리였다. 1일, 취미가 만화나 게임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내 말에 역 앞의 서점으로 향 한 우리는, 거기서 한참을 보내고, 게임CD를 파는 매장에서 한참을 보내다가 매 우 거대한 도서관도 들리고, 점심으로 햄버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도 있는 매장이지만, 맛은 전혀 달랐다. 책을 선물 받고, CD도 선물 받고. 너무 미안해서 자꾸 거절했는데도, 10일의 내 생일 선물이라면서 막무가내로 떠맡긴 한나였다. 점심을 먹고 비가 오는 까닭에 집에서 책들을 읽으며 있다가, 한나에 게 메일 주소를 알려주고 연락을 꼭 해달라고 부탁하고 나니, 집합시간이 다가 와 있었다. castle호텔에 바래다주고 회장까지 같이 온 타카코씨와 한나와 사진 을 찍고, 기어코 두 사람의 소매를 붙잡고 눈물을 흘려버렸다. 단 하루만의 만 남이었는데도, 이렇게나 아쉽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음날 리허설을 하 고, 저녁을 먹고, 새로 친해진 새 룸메이트들과 TV를 보고 취침했다. 2일 미나미고교에 갔다. 일본학생들의 생활모습과 한국에 대한 의식들을 가장

245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영어를 쓰라는 소리엔 꿈쩍도 하지 않고, 당당히 일본어로 수다를 떨고 있었던 내가 흠이라면 흠이랄까. 야스나와 키리코라는 두 사람의 일본학생 친구를 만들고, 또 다시 메일주소 교환을 했다. 점심으로 히나이 토종닭 도시락을 먹었는데 매우 맛있었다. 두 사람 다 한국에 여행 올 것이 걱정이라고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성심성의껏 대답하려 고 했지만 역시 소도시에 살기 때문에 서울에 관한 건 그리 빠삭하지 못해서, 애매하게 대답한 것도 있었다. 차를 대접받고, 이야기도 해보고, 헤어질 때에는 비가 옴에도 불구하고 버스를 배웅하러 나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후에 공방에 들러 벚꽃나무 껍질로 만드는 공예품을 만들고, 온천이 딸린 다다미방 여관식 호텔에 도착했다. 유카타가 있기에 입고, 녹차를 마시며 한 때의 한가로움을 즐 겼다. 하지만 같이 온 연수단 일행들이 너무 소란스러워 조금 민망한 감이 있어 서 온천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TV에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진행하는 뉴스가 나오기에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갑자기 문을 쾅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프론트 직원인가 싶어서 벌떡 일어나기는 했지만 직원이라면 전화로 알릴 것이 분명 했기에 술 취한 투숙객이나 연수단의 누가 장난치는 걸로 간주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려했으나, 찝찝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후일에 들었지만 그건 연수단 중 한 사람이었단다. 민폐라고 면박을 주고 싶었으나 친하지 않은 관계 상 깊이 연관되고 싶지 않아서 무시했다. 3일 아침을 먹고 근교의 극단으로 가서 그곳에서 훗카이도에서 청어 잡는 어 부들이 췄다는 소란부시의 현대식 버전을 배우고 거기서 가르쳐준 아키쨩에게서 와라비 극단은 뒤쪽에 있는 공연장에서 공연도 실제로 하고 있으니 다음에 한번 보러 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점심을 먹고, 버스에 올라타고 있으니, 아키가 어 느 샌가 와서 손을 흔들고 있어서 그 틈에 후다닥 선물을 건넸다. 다시 아키타 공항으로 가서 국내선을 타고, 도쿄로 되돌아와서 고급 술집이 많은 긴자에서 밥을 먹고, 셰라톤 호텔로 다시 향했다. 회의를 하면서 장학사님이 하시는 말씀 이 유포포 호텔에서 시끄럽게 군 학생들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는 어제의 쾅쾅 주인공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옆 사람과 민폐라며 중얼거리다가 방으로 올 라갔다. 다시 아이돌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고, 소감문을 쓰고 시간이 돼서 잠자 리에 들었다. 4일 마지막 날이니 더욱이 빨리 눈이 떠졌던 것 같다. 샤워하고 교복을 갖춰 입어도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길래, 로비로 내려가서 인터넷을 하고 있자, 첫 날의 그 친절한 언니가 다가와서 미안한 듯이 손님이 아닌 건 알고 있고, 죄송

246 합니다만 새벽에 한국 학생 몇몇이 시끄럽게 굴고 왔다갔다 거렸다고 다른 손님 에게서 민원이 들어와서 그러니 자제 좀 시켜 달라 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얼굴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빨개진 채로 민망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직원이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서 한국 학생이라고 단정 지었을 리는 없고, 결국은 한국 어로 떠들었다는 것인데. 결국 나라 위신을 추락시킨 것 밖에는 되지 않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몇 번이고 굽실거리면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고 방으로 후다닥 올라가 버렸다. 내가 외국에서 말이 통한다는 쾌감을 느끼고 있 는 사이, 다른 일행들은 저러고 있었구나 하는 사실에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었 다. 올라가서 짐정리 하고 아침을 먹고 버스에 올랐다. 어차피 비싸서 다시 갈 까 말까 한 호텔이지만, 뭔가 죄스러웠다. 나리타공항에 도착하고, 비행기를 기 다렸다가 탑승하고, 김해에 도착했다. 부산 사상으로 가서 순천으로 도착하니 친구들의 야자1교시가 끝날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니 나를 맞아주는 건 엄 마의 미소와 포옹이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을 정도로 멋진 체험이고 추억이었다. 새로운 친구와 가족 이 생긴 것, 실제로 일본인과 대화해본 것, 학교에 가본 것, 유카타를 입어본 것 일본어를 하는 것에 자신감이 붙고, 몰랐던 일본어와 문화를 새로 알게 된 것 등등 전부 멋졌지만. 우리와 접한 일본인들이 얼마나 우리나라를 좋게 인식 해 줄지는 미지수다. 내가 실수했던 것도 많았겠지만, 기본적인 매너 부족의 학 생들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똑같이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인이라면 오히려 유치 원생들이 더 나았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적어도 매너까지 망각한 채로 민폐를 끼치지 않았을 테니까. 다음에 만일 우리 학교 후배가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다면, 그 아이의 평소의 행동거지가 바람직하지 못하다거나 적어도 기본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일어가 되지 않는다면, 특히 전자가 되지 않는다면 보내지 말아 달라고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 그리고 일본어 선생님께 신신당부했다. 학 교망신도 시킬뿐더러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킨다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배워갈 노력은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차후에는 남의 집 아이를 강아지 부르듯이 하지 말고, 귀엽다와 불쌍하다 두 단어의 차이 정도는 아는 아이들이 가서 일본을 경 험하고, 일본과 만나고, 일본만의 매력에 사로잡혔으면 한다. 누차 말하지만 이 것은 연수이지 관광이 아닌 것이다

247 6박7일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김 아 람 전남 예술 고등 학교 처음 일본 연수를 가게 되었을때는 그냥 멍 했었다. 이제까지는 학원에서 같은 식구들끼리 해외 공연을 다녀봐서 낯설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1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친구들과 함께 간다는 건 정말 최악이었다. 특히나 1차 모임 때 개인 사정으로 인해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던 나는 더더욱 걱정이 되었었다 일본으로 떠나는 날 같은 지역에 사는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김해공항으로 향하고 있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상상도 못했다. 공항에 딱 도착하자 나는 순간 얼고 말았다. 역시나 처음 보는 친구들이라 낯 설기만 했는데 그때 한 친구가 안녕? 나는 김우영 이야 어디서 왔어? 라고 예쁜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친구 한명 한명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걱정했던 것들이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마음속으로 이번엔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권을 받아들고서 입국심사를 했다. 모든 입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 섰다. 드디어 6박7일 연수가 시작되는구나. 잠을 한숨 자고 나니 벌써 일본에 도착했었다. 꿈인 줄 알았는데 볼을 꼬집어 보니 역시나 현실이었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는 마음속으로 처음부터 돌 아갈 때까지 열심히 하자! 이렇게 외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일본이라는 곳을 분명 걷고 있는데 그때까지도 실감을 하지 못했는데 여기저 기서 일본 언어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깐 그때서야 실감을 했다. 첫날은 도쿄타워에 갔는데 정말 멋있었다. 화려한 불빛에 높은 탑 위에서 보 는데 무척 어지럽고 또한 스릴 있었다. 몇몇 친구들을 사귀고 이날은 선생님들 께 드릴 선물도 구입했었다. 일본에 오기 전에 입맛이 달라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특별히 신경을 써주신 탓인지 너무너무 맛있었다. 둘째 날 평소 때보다 1시간정도 일찍 일어났다. 아침부터 서양식 스타일로 근 사한 호텔에서 먹게 되었다. 이날은 특별히 외무성에 방문 하였다

248 장관님께서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학생들의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셔서 너 무너무 감사했다. 환영중식회에도 참여했는데 우리에게 뜻 깊은 추억을 만들게 해주신 일.한 문화교류 기금 이사장님과 관계자 분들께도 감사했다. 이렇게 도쿄에서 2틀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이면 야마네시팀과 아키타팀 으로 나누어져 떨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서운하고 한편으로는 친해지지 못한 몇 몇 친 구들 때문에 아쉬웠지만 서로가 응원해주며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가는 그날 공 항에서 만나기를 약속했다. 아키타로 가는 날이다.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아마도 오늘은 정말 내 인생에 있 어서 가장 특별한 날이 될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홈스테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언어라는 장벽을 두고 정말 한숨이 나왔다 어떻게 해서 1박2일 짧은 시간에 그 가정에게 소중한 추억을 남겨줄 수 있을까 하고 많은 고민도 했다. 그때 마친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또 다른 나 가야금이었다. 우리 한국 전통 음악에 대해 많은걸 들려주고 싶었다. 홈스테이 대면식을 맞 추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서로의 말을 못하기 때문에 서툴지만 영어 로 모든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재밌고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아키타지역에서 유명한 키리탐포 라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한자리에 모여서 밥을 먹는 건 정말 신기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었다 연주소리 가 맘에 들었는지 가족들은 박수와 함께 대단하다는 신호를 함께 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음악인 국악에 대해 많은걸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한 국에서 고민 끝에 특별히 준비한 작은 선물도 전해 드렸다. 그런데 내 조그마한 선물 하나에 너무 감사해주시고 기뻐해 주시는 바람에 나 또한 행복했다. 다음날 일찍 밥을 먹고 쇼핑에 나섰다.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 한 일정이었다. 사진도 찍고 한국에 돌아가면 줄 선물도 구입했다. 서서히 시간 이 지날수록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찡해 오기 시작했다. 헤어질 시간이 다 가오고 있었다. 홈스테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친구들이 울고 있었다. 가족들 과 하루사이에 많은 정이 들은 것 같았다. 물론 나도 헤어지기 싫어 그만 눈물 을 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꼭 만날 것을 약속 했다.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시고 너무나 편하게 해주신 타마키상 가족들에게 너무 너무 감사했다. 홈스테이는 정말 나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고 가슴

249 속에 깊이 간직할 것이다. 내일은 드디어 기다리던 공연 발표하는 날이다. 직접 스스로 소개를 해본 적 이 없었던 나는 무척이나 떨렸다. 떨리는 마음을 갖고 무대에 올라섰다. 앞이 캄캄했다.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고 있는데 내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소개가 끝나고 연주를 시작했다. 정말 멋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정말이 지 하늘이 도운 거 같았다. 한 번의 실 수 없이 완벽하게 공연을 마무리 하였다 정말 행복했다. 학교방문은 정말 재미있었다. 일본 학생들과 한국 학생이 함 께 모여 수업을 듣는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치고 돌 아왔다. 6박7일이 나에겐 길 줄만 알았는데 하루가 지날수록 시간이 지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친구들과 많은 정도 들어버린 것 같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다. 일본 전통춤을 배우는 날이다. 전통춤이라 해서 재미 없을 줄 알았는데 반면에 너무 흥겨워서 더 열심히 한 것 같다. 이렇게 모든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호텔로 돌아가면서 친구들과 내내 정말 집에 가기 싫다 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마지막 회의를 하면서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짜증한번 내시지 않고 친절하게 가이드 해주신 통역 선생님들께도 감 사하다는 말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친구들 얼굴엔 슬픔이 가득 찼다. 출국 하면서도 비행기를 타서도 서로 헤어지기 싫다면서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 하였다. 드디어 부산에 도착하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바보같이 울기 싫었는데 친구들과 너무 많은 정이 들어버렸는지 헤어지는 게 무척 아쉽기만 하고 함께 더 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다들 한 번씩 안아보고 잘살아 열심히 하고 나중에 꼭 보자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모두 헤어졌다. 이번 연수는 나에게 보물 같은 존재였다. 일본에서 가장 배운 것은 친절이었다. 한국에 돌아간다면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한 내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어야겠다. 마지막으로, 한.일 방일 연수단팀을 갈 때부터 돌아 오는 날까지 아무 탈 없이 잘 돌봐주신 선생님들께도 너무나 감사드리고 또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신 한.일 문화교류기금 관계자 분들께도 다시 한 번 고 개 숙여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방일연수단팀 6박7일 동안 너무너무 수 고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50 6박 7일 간의 길고도 짧은 연수를 마치고. 진 태 화 영 해 고 등 학 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새벽같이 일어나, 공항으로 향했다. 사전 연수 때 많은 친구들을 사귀어두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6박 7일이라는 길고도 짧은 기간 동안 과연 내가 잘 적응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이번 연 수는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학생들만 선별한 것 같아서 우연찮은 기회로, 그저 운이 좋아 참가하게 된 내가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또 인솔 선생님과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기우였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또래의 학생들과 모여 있기 때문일까, 의외로 모두가 서로 잘 친해질 수 있었다. 전에도 한 번 방일 경험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여행을 하러 온 것이 아니 었기에, 느낌은 색달랐다. 그리고 그 나라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알고 가는 것 과, 하나도 모르고 가는 것의 차이는 엄청났다. 손짓 발짓만으로 의사소통을 하 는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라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처음 일본에 도착해서, 도쿄에서는 같은 팀의 친구들과 어색함을 풀고 친해지 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전 연수 때 한 번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친해질 기회가 없어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던 우리는, 시간이 차차 지남에 따라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연수 프로그램 중에 홈스테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솔직한 심정으로 처음에는 그것이 너무나 싫었다. 예의를 중요시 생각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낀 탓이다. 2년여 간 일본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다져진 나의 형편없는 일어실력으로 의 사소통이 될까 걱정이 앞섰다. 다른 사람 앞에서 일본어로 말을 해본 적도 없거 니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홈스테이 대면식 당시에는 정말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로 만나보 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내가 이 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 고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외로 대화는 막힘이 없었다. 대부분의

251 의사소통은 영어와 몸짓으로 할 줄 알았던 내가, 그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고 그 들이 하는 언어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홈스테이로 인해, 내 일본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 양국 간 의 문화나 생활의 차이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일본 학생들은 스트레이트파마가 규정에 어긋난다는 점이었다. 홈스테이 가정의 아주머니께서 내 머리를 보고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에서 모범생의 표본 헤어스타일로 꼽을 수 있는 스트레이트가 금지되어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홈스테이 가족들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인 나에게 정말 가족처럼 잘 대해주셨다. 게다가 내 또래의 카호리코는 한국문화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가지 고 있었고, 한국에서의 홈스테이 경험도 있다고 했다. 아줌마 역시 한국에 대해 상당히 좋게 생각하고 계시고,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뻤 다. 우리나라의 가수와 음악에 대해서 특히 많은 관심이 있다고 했다. 아저씨와 아줌마는, 내가 일본 라면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했더니, 그 날 저녁 바로 라면 가게에 데려가 주셨다. 한국의 라면은 인스턴트 밖에 없 다고 들었다며 일본의 라면의 맛을 알려주겠다고 하셔서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면 종류를 먹을 때, 한국과 달리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것을 보면서 또 한 번 문 화의 차이에 대해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밑반찬을 돈을 내고 사먹는 것을 보고 조금 씁쓸했다. 한국은 기 본 메뉴와 함께 나오는 반찬만 십 수가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김치 하 나를 먹을 때도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다. 물론, 한 국은 그런 점으로 인해서 음식을 많이 낭비하게 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의 그 런 문화를 적절히 섞어 기분도 좋고, 낭비하는 일도 없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홈스테이 둘째 날에 나를 또 한 번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카호리코, 그리고 카호리코의 친구들과 함께 인형 뽑기를 하기 위해 쇼핑센터 안에 위치한 게임센터에 갔는데, 기계 안의 인형들이 전부 유리창을 한 번 톡, 하고 치면 떨 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 걸려있는 것이었다. 카호리코의 친구 나호와 아이나는 인형을 뽑으려고 돈을 넣기도 전에, 인형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자 망설임 없이 점원을 불렀다. 순간, 어차피 떨어진 건데 그냥 가져가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252 일본의 음식인 소바도 먹었다. 한국의 국수와 비슷해. 라는 카호리코의 말 을 들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전혀 다른 맛이었다. 나무그릇에 담긴 시원한 면 을, 간장 같은 소스에 푹 담가먹었는데, 카호리코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방 법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나는 외국인이라 그런지 상당히 어설펐다. 헤어지는 순간에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다. 호텔에 도착해서 울고 있는 친구 들을 보고, 그들을 의아하게 여겼던 내가, 아줌마가 눈물을 흘리며 나를 꼭 안 아주자 울음을 터트렸다. 홈스테이는 정말 내게 좋은 추억이 되었고, 전 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그램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홈스 테이 기간이 너무나 짧았다는 점이었다. 다음 날은 정말 기대했던 학교방문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쉬웠던 점이 많은 것 같다. 일본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한 점이 특히 그랬 다. 제일 감동받았던 것은, 그 추위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데도 우 리가 탄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학생들이 나와 손을 흔들어 주었다는 점이었다. 그 전에는 최고급 호텔에서만 묵었던 지라, 침대가 없는 다다미방의 숙소에 간다는 말을 듣고 조금 서운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숙소에 도착하 고 나니 깡그리 사라지고 없었다. 우리의 이번 연수는 호화여행이 아니라 일본 의 문화를 체험하고 느끼는 것이라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다. 저녁 8시 즈음에는 온천에 들어갔는데, 물도 너무 좋고 밖의 야경도 너무 좋아서 그 날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을 느꼈다. 다만, 좀 불편했던 점은 벽 하나만을 사이에 두 고 있던 남탕의 남자아이들이 너무나 시끄럽게 떠들고, 일부러 벽을 치면서 고함 을 지르는 등의 철없는 행동을 해서 여유롭게 온천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도 더러 보였다. 비록 고 작 일주일, 홈스테이 기간을 빼면 6일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했지만 상 당히 정이 들어 나 역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웠다.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쉽다 며, 연락을 주고받기로 했고, 공부에 매진해야 할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에 또 한 번 모이자며,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지게 됐다. 나에게는 이 일주일이라는 기간이 너무나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 나는 무척이 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 혼자서 놀러왔다면, 결코 남길 수 없는 추억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학교방문이나 홈스테이, 그리고 외무성 방문과 같 은 경험은 이런 좋은 기회가 아니고서야 체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253 동참( 同 參 ) 김 수 현 남 해 해 성 고 등 학 교 스미마셍 실례합니다. 저는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다녀온 일본에서의 보고, 듣 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6박 7일의 일정을 여기다 모두 상세히 담 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인상에 깊이 남았던 내용들을 중심으로 담아보겠습니다. 처음으로 TV가 아닌 제 두 눈으로 바라 본 일본은 그저 한국과 똑같은 모습 이었습니다. 단지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일본어 밖에 없었죠. 그것 말고는 비슷해서 오히려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도로도 우리나라랑 똑 같은 도로 같이 보이는데 오른쪽, 왼쪽 반대로 차들이 달리고 있고, 버스도 똑 같은 버슨데 타는 곳이 반대였습니다. 일본이었습니다. 제가 일본에 온 게 확실 했습니다. 그제야 실감을 하게 되었죠. 저는 평소에 일본에 대해서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독도 문제로 붉어지는 언론, 수업시간에 배우는 일제강점기 때의 문학들. 일본은 그저 우리에게 적이다. 라는 생각이 먼저 머릿속에 박혔습니다. 그래 서 그런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본 가수들이나 배우들에게도 신경을 써지 지 않고, 일본어 수업시간에도 크게 집중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 가 저의 생각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일본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저는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저 들리는 말로 만 일본을 단정지어버리고 인식하게 되어버린 것이었지요. 일본은 제가 생각했 던 것보다 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연수는 영광스럽고 귀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외무성에 방문 할 수 있는 일, 학교방문, 호텔마저도 이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제가 누리기엔 너무나 호화 스러운 혜택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조금 더 관찰하고, 조금 더 발견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에 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유독 속상한 일 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일본의 문화를 배우는 일, 관찰하는 일 다 좋지만 그들 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럼에도

254 불구하고 저는 제 눈으로 직접 보면서 느끼는 것이 더 뜻 깊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일본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자꾸만 들려오는 일본어에 저는 작아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어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인사뿐이라 인사 이후엔 그 저 침묵을 지키는 것이 제 일이었죠. 환영중식회 를 할 때 테이블마다 함께 움직여주신 통역사분들과 함께 식사를 했는데 말씀을 하실 때마다 언제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앉아있었고, 속에 할 말이 많아도 입 밖으 로 내뱉을 수 가 없으니 답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조금 더 알아 볼 수 있는 일본의 문화를 놓쳤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속상했죠.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일본어에 관심이 가 져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활동들이 기억에 남고 생각이 나지만 방재교육체험을 할 수 있었던 시 설이 있었던 것이 떠오릅니다. 일본은 자연재해 중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나라 이고, 그에 따른 예방이 철저하고 준비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고 있 는지 궁금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예고 없이 닥치는 자연재해에서 당황하지 않도록 그런 시설에서 자신이 직접 체험을 한번 해봄으로써 다음번에는 침착하게 대처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고 느꼈습니다. 특히나 지진을 직접 느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지진이 일어나는 상황의 화면이 실감나게 보였습니다. 비록 진도를 알고 체험을 하다 보니 그저 여유롭게 흔들림을 느꼈지만 진짜 지진이 일어난다면 겁에 질리고 무서울 것이라 생각되었 습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지진에 하루하루가 두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으론 유익했던 홈스테이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화목하고, 참 따뜻한 가 정이었습니다. 친절하게 대해주실 뿐만 아니라 덕분에 직접 일본 가정을 체험해 보는 기회를 가져서 기뻤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관심이 많았고 가르쳐 드릴 수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혹여나 실수를 하게 될까봐 몇 번을 돌아보게 되기도 했죠. 목욕할 때 실수를 하게 될까봐 하나와 30분가량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엔 머리만 감게 되는 일도 있었고, 밥 먹을 때도 눈치를 봐가면서 먹게 되었습니다. 아침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오이시이~(맛있다) 는 반드 시 했습니다. 아키타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었고 차를 마시는 법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저는 저와 또래인 하나양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서로 의 의견을 나누었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도 오고 갔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 고구마튀김이 있었고, 저를 배려하시는 마음으로 김치도 준

255 비해주셨습니다. 반짝 떠오른 생각에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마와 김치를 함께 먹 는다고 가르쳐 드리니 하나도, 아빠도, 엄마, 심지어는 동생까지도 한 번씩 먹 어보시며 오이시이 라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우리나라를 알 리는 것이 신이 나던지 그 뒤부터 생각나는 것은 하나씩 하나에게 설명해주고 일본과 비교하며 이야기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에 앨범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유독 사진을 많이 찍으셔서 신기하게 생각했는 데, 그 동안 찍은 사진들을 모두 인화하여 앨범으로 엮어서 주신 것이었습니다.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던지 자꾸만 눈물이 흘렀습니다. 호텔에 도착한 뒤 헤어지려던 순간에 외웠던 인사들을 하려 고 했는데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고, 하려고 준비했던 말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했던 사요나라 라는 말이 아주 슬픈 말이 되고 말 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기뻤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눈물을 보인 일. 저 때문에, 그것도 떠나는 저를 위해서 눈물을 보이신 분들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것이 더욱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교감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분들을 만나 너무나 기뻤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되는 프로그램이었던 학교방문. 제 꿈이 선생님인지라 일본교육은 어떤지, 학교는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고, 꼭 확인해보고 싶었습니 다. 아키타미나미고등학교 에서 준비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면서 우리나 라 학교와 다른 점들을 발견하면서 개인적인 희열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만나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관심사도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하니 더욱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마치고 나서 비가 왔었는데 마중해주기 위 해서 나온 학생들이 비를 맞으면서까지 손을 흔들어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버스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모습은 학교에서도 어딜 가든지 볼 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왠지 모를 훈훈함이 느껴졌습니다. 동참( 同 參 )하려고 합니다. 지금은 힘들어도 미래에 일본과 우리나라의 원활 한 교류를 위해서 조그마한 저의 힘을 보태려고 합니다. 제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친구들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제가 받았던 것들도 모두 돌려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일본에 대해서 잘 모르고 말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 세워주고 싶습니다. 저에게 훌륭한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

256 일본에 다녀와서 : 사랑받는다는 것 김 레 나 신 성 여 자 고 등 학 교 첫날 일기를 쓰면서도 나는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내가 정말 일본에 온 것일까? 일주일 전부터 조마조마 애태우며 그리던 그 곳에 정말 온 것일까? 의문을 던지는 머리 위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쭉 떠올랐다. 나리타공항에 서 들려오던 일본어 방송, 우시오さん이 333m라고 설명했던 도쿄타워와 그 안에 서 만난 일본 초등학생 아이들, 그리고 일한문화교류기금에 대한 전체 미팅. 그 제야 내가 정말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실감이 들면서 밀려드는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곳을 찾아간다는 것은 항상 설렘을 동반한 다. 이번 연수 역시 첫날 밤 느꼈던 설렘을 시작으로 하루하루 설렘의 연속이었 다. 두 번째 날 우리는 외무성에 방문하여 관계자분들의 말씀을 듣고 질문과 답변 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외무성에 들어가면서 문득 가톨릭 돈 보스코 성인 의 말씀이 떠올랐다.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내 가 만약 고등학생이 아니었다면 외무성에 들어올 기회가 있었을까? 아마 앞으로 평생 보안이 철저한 외무성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단지 한국 고등학생 연수단에 한 명이라는 이유로 외무성에 들어가 관계자분을 뵙고, 나중에는 학교 방문에 수업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누리는 특권이 얼마나 크고 축복받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외무성 방문 후 황거 앞 이중교를 잠시 구경한 후 오다이바로 옮겨가 일본 미 래 항구 도시를 재현해놓은 미나토관과 일본미래과학관(Miraikan)을 구경했다. 미나토관에서 본 임해부도심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과거 관동 지진 피해를 계기 로 세워진 항구 도시는 미래형 도시를 기획하여 만든 계획도시였다. 아오미 지 구, 아리아케 미나미 지구, 아리아케 기타 지구, 다이바 지구로 나눠지는 임해 부도심은 지하에는 밸브를 심어놓아 에너지 전달, 내진 등에 용이하고 지상에는 하네다 공항, 모노레일 유리카모메, 수상 버스 등을 통해 수도권과의 연결을 긴 밀하게 잇는 역할을 한다. 나는 문득 이 도시를 보며 제주도를 떠올렸다. 대륙

257 과 해양을 긴밀하게 잇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해부도심만큼 쾌적 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계획도시화 시킨다면 우리나라 에도 이러한 미래 도시가 세워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날, 나는 하루 종일 긴장상태였다. 홈스테이 대면식이 오후에 있기 때문이었다. 전날 받은 홈스테이 가정의 구성원과 편지로 이미 SAYAKA와 가족들 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지만 내 서툰 일본어로 실수를 하지는 않을까, 말이 통하 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손이 달달 떨렸다. 하지만 SAYAKA와 가족들은 그런 내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한국어로 나를 맞아주었다. 다국어 활동이 온 가족에 취미라는 SAYAKA의 말처럼 내가 가게 된 홈스테이 가정은 다국어를 할 수 있는 집이었다. 비록 가족들의 한국어 실력이 내 일본어 실력처럼 서툴고 간 단한 대화만 가능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부터가 내게는 얼마 나 가슴 따뜻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한국 드라마 팬이라는 아주머니께서는 한국 드라마 책을 가지고 와 나와 한참 이야기를 나눴고 한국에서 열흘 간 홈스테이 를 한 경험이 있는 SAYAKA와는 한국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요 리가 취미라고 써놓은 내 자료를 기억하신 아주머니와 함께 아키타의 특산물인 きりたんっぼ도 만들어 먹었고 일본식 욕조에서 목욕도 해보았다. 다음 날 오빠 와 여동생 MIO는 학교에 갔고 나와 SAYAKA는 부모님과 함께 아키타의 관광지 두 곳을 돌아보았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울먹거리는 내게 아주머니께서 아키타 를 떠나는 날 공항으로 가겠다고 다독여 주셨고 그렇게 홈스테이는 끝이 났다. 홈스테이를 하며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타국, 타인임에도 불구하고 친절 하게 맞아주는 가족들에게서 사랑과 나눔을 배웠고, 저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 보았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 는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대중매체는 일본에 대해 부풀려 보도하는 경우가 있 다. 한 사람의 잘못된 발언을 일본 전체의 생각인 것처럼 보도하여 일본에 대한 감정을 나쁘게 하거나 일본 국민 모두를 함께 욕하는 것이 그런 예이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만나본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만큼이나 친절했고 한국에 대해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올바른 문 화와 나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 5일 째, 홈스테이 다음으로 기대해 왔던 학교 방문을 했다. 학교 교실, 특별실 등을 돌아보았는데 대부분이 한국에 학교와 비슷했다. 한 가지 赤 い 本, 즉 빨간책이라고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각 대학별 자료를 모아 만든 책이었

258 다. 상담 시에 사용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저렇게 체계화 하여 책을 만들어 상담도 하고 학생들이 열람할 수도 있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는 아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취미, 일본 학교 일정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기 도 하고 파트너를 만나 식사를 같이 하며 이야기하고 서로 일본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어진 교류회에서는 가야금 연주, 국술원 시범, 검 도, 다도 등을 통해 한일 문화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또래 친구를 만난 다르면 서도 같은 것을 공유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 이 뭉클했던 것은 떠날 때 인사해주던 아이들이었다.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학교 교정 나무에 버스가 가려 우리가 보이지 않자 달려 나와 비를 맞으 며 배웅해주던 아이들. 하루도 안 되는 시간동안 함께한 아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곳에서 나눈 말로 할 수 없는 무엇인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섯 째 날, 마지막 날은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는 것이 전체 일정이기에 공식 적인 일정이 끝나는 날이었다. 다시 도쿄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8단은 시간이 꽤 촉박했다. 그래서 오전에 전통 춤을 배우는 것이 마지막 일정이었다. 전통춤 이라고 하면 왠지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분함에 조금은 꺼림칙한 일정이었 다. 더군다나 몸이 서서히 지쳐가고 있는 상태여서 춤추는 일정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춤은 내가 상상하던 춤과는 전혀 다른 춤이었다. 소 란부시라고 불리는 춤은 홋카이도 지방에서 생선잡이 할 때 부르던 노동요를 현 대식에 맞춰 만든 춤이라고 했다. 굉장히 빠른 템포로 움직이는 춤을 따라잡다 보니 서툰 동작에 웃음도 나왔고 함박눈이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땀이 흘 렀다. 유쾌하게 2시간가량 춤을 배우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나는 홈스 테이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약속해주셨던 대로 아주머니께서 MIO와 함 께 나를 만나러 와주셨다. 갈 때까지 손을 잡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 지기 전 내 손에 아주머니께서 예쁜 종이를 한 장 쥐어주셨다. 한자 두 자가 새 겨져 있었는데 일본어로 레나 라고 읽는다고 했다. 내 이름이 한자가 없는 한글 이름인 게 못내 아쉬웠다는 듯이 예쁘고 신선하다 는 뜻의 한자를 곱게 적어오신 것이었다. 그리고 I'm your Japanese mother"라고 말하며 내가 비행 기에 탑승하기 직전까지 손을 흔들어주셨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 짐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고는 하지만 못내 아쉬운 헤어짐이 있기에 마련이다. 이번 연수동안 만났던 홈스테이 가족들, 학교 친구들, 연수단 아이들, 선생님

259 들, 통역사분들 모두가 그랬다. 너무 행복한 추억만 가지고 있어 그랬을까? 그렇게 공식적인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도쿄에서 또 한 번 도시 불빛으로 만 들어진 도시 별을 구경하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이번 연수를 떠나기에 앞서 나는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수 험 생활 시작 열흘 가량을 앞두고 학교를 일주일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큰 모 험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일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며 나는 내 선택에 큰 감사를 느꼈다. 교과서 몇 번 더 읽은 것 보다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수를 통해 나는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 고,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으며 일본의 문화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나누는 것을 배웠다. 앞으로 내가 고3 수험생활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번 연수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60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김 민 혜 제 주 고 등 학 교 저는 이번에 일한문화교류기금이 주최한 한 일 중고생 교류에 참여해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처음으로 외국으로 다녀왔기 때문에 다녀오고 나서는 처음으로 간 외국이 일 본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녀와서 제가 느낀 점을 쓰려고 합니다. 먼저 저희는 10월 29일 부산 김해공항에 모여 일본으로 출국했습니다. 나리타공행에 도착해 맨 처음으로 향한 곳은 도쿄타워, 도쿄타워로 향하는 버 스 안에서 본 도쿄거리는 매우 깨끗했습니다. 보고 있자니 이젠 습관이라도 된 듯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제 모습이 떠올 라 얼굴을 붉혔습니다. 도쿄타워에 올라가 전망대에서 본 풍경도 아주 좋았습니 다. 미니어쳐 같은 도쿄에 시선을 뺏겼고, 버스 안에서 통역사인 강정애상이 설명 해주신 죠죠지도 보였습니다. 전망을 다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게임센터, 놋폰군 굿즈샵 등 볼거리도 많았습니다. 실컷 구경하고 선물도 사고 시간이 되자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 모여 저녁을 먹고 밖에 나가보니 도쿄타워는 낮에 봤던 홍백의 도쿄타워가 아닌 부드러운 오 렌지색의 도쿄타워 이었습니다. 다시 버스에 타 호텔로 이동하여 가보니 상상보다 더 좋은 호텔이어서 놀랐습 니다. 처음 본 아이들이었지만 방에서 얘기도 하며 친해지고 즐겁게 잠들었습니 다. 다음날엔 일본 외무성에 갔습니다. 가는 도중 일본의 관청서나 도쿄거리도 한 번 더 구경했습니다. 외무성에 가서 니시무라 대신 정무관의 이야기를 듣고 한 국과 일본의 교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나중에 받은 것 이지만 외무 성에서 받은 볼펜은 지금도 편리하게 쓰고 있다. 다음은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준비해준 환영중식회에 갔다. 점심은 물론 디저 트로 나온 케이크가 너무너무 맛있었다

261 다음으로는 미나토칸, 미라이칸에 갔다. 미나토칸은 꽤나 흥미로웠다. 바다가 얕은 곳에 신도심을 만든 것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미라이칸 에서는 정말 재밌는 것이 많아서 즐거웠다. 홀 가운데 있던 거대한 지구가 제일 맘에 들었다. 또래 정도의 일본 여학생도 있었는데, 우리가 갑자기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 해도 싫은 얼굴 안하고 응해주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저녁은 중화요리였다. 한국의 중화요리랑은 많이 틀렸다. 슈마이 맛있 었다. 저녁을 먹으며 다음날 홈스테이가정의 정보도 받았다. 이 날 저녁은 홈스테이에 대한 기대로 잘 잘 수 없었다. 다음날 우린 메구로구 방재교육관으로 향했고 소화훈련, 연기훈련, 지진체험 등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 일본은 역시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 그런 것에 대한 대응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홈스테이 가정과의 대면식을 하러 아키타로 향 하였다. 야마나시현으로 가는 1팀은 신칸센에 탔다. 사실 나도 신칸센은 타고 싶었지만, 아키타 홈스테이가정으로 간 것은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하네다 공항으로 향하여 국내선을 타고 아키 타로 향했다. 아키타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버스를 타고 아키타현청으로 갔다. 홈스테이 가정과 대면식을 마치고 홈스테이 가정으로 갈 때는 정말 긴장했다. 일본어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한국에 있을 때 얘기이고 원어민인 일본인 에게 통하는 걸까 하고 굳어져 있었지만, 조금 엉터리여도 알아들어주고 모르는 말이 있으면 제대로 가르쳐주고, 아무튼 홈스테이가정에 있었던 1박 2일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마치 자기 가족처럼 맞아주었기 때문에 너무 기뻤다. 꼭 한국에 돌아가서도 연락해야지 하며 아키타 캐슬 호텔에서 홈스테이 가정과 헤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눈물 바다여서 이 날 밤은 대단했다. 다음날은 아키타 아키타 미나미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아키타 미나미 고등학교는 영어과가 있다고 하여 우리는 1학년 영어과 아이들 과 교류를 가졌다. 난 영어를 더 모르겠어서 난해했지만. 그렇게 영어과 학생과 교류를 가지고 체육관에서 환영회를 받고 아키타 미나 미 고등학교의 검도부의 연습을 보고 또 한국 아이들의 특기발표도 봤다. 우리 학교도 검도부가 있어서 연습은 자주 봤지만, 아키타 미나미 고등학교

262 학생들의 기백은 뭔가 또 다른 것 같았다. 또 그렇게 아키타 미나미 고등학교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비가 오는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우리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려 나와 손을 흔들어 줬다. 일본만의 인사법이라고는 들었지만, 정말 그렇게 해주니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이때 또 생각한 것이 우리는 학교에 밖에서 손님이 와도 인사도 잘 하지 않아 선생님이 인사하라고 지도할 정도로 잘 하지 않는데 하며 반성했다. 학교 방문이 끝나고 타자와코 예술촌으로 향했다. 이 곳 에서는 벚꽃나무의 껍질로 만드는 공예를 했고, 그다음은 온천여관으로 갔다. 정말 기대하던 온천 여관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게다가 온천에 우리만 들어갈 수 있게 배려도 해 주어서 정말 기뻤다. 온천에 들어갔다 나오고 내일이면 벌써 도쿄에 돌아가는 구나하며 아이들과 잡담을 했다. 다음날 예술촌에서 전통춤인 소란부시 를 배웠다. 이 날 춤을 배우며 첫눈을 봤는데 엄청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춤을 배워 추위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소란부시는 어부가 생선잡이를 나갈 때 부르는 노래에 어부 의 행동을 춤으로 형상화 한 것 이라고 한다. 힘차고 즐거운 춤이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태고도 쳐 주었는데, 소란부 시의 태고버전과 풍년을 바라는 태고도 들려주었다. 힘차고 즐거운 표정으로 태 고를 치셔서 보는 이쪽까지 즐거워졌다. 그렇게 즐거운 땀을 흘리고 다시 도쿄로 돌아가기 위해서 아키타 공항으로 향 했다. 도쿄로 돌아가고 단별회의를 하고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나리타공항으로 이동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이렇게 긴 듯 짧은 듯한 일주일의 일본연수를 다녀왔다. 정말 갔다 와서 느낀 점이 정말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일본인의 타자의 대한 친절함이나 배려, 이것에 대해서는 정말 하루하루 감동 했다. 미라이칸에 갔을 때 자판기를 못 찾아 옆에 있던 분에게 물었으나 그 분도 알지 못하는데도 같이 자판기를 찾아 주었다. 이 땐 정말 의아해했다. 한국인이라면 그냥 넘어 갈 상황 이었을 텐데 하며 홈스테 이 가정도 그렇고, 아키타 미나미 고등학교 아이들도 그렇고, 정말 한국에 돌아 오며 우리도 이런 정서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홈스테이 가정에 가져갈 선물을 첫날 호텔에 실수로 놔두고 와버렸 는데 마지막 날이 같은 호텔이어서 찾았다. 그래서 그걸 한국에 가면 홈스테이

263 가정에 보내려고 했지만,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나온 쿠보야마상이 자신이 대신 보내준다며 뭔가 말 할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해주셨다. 정말 이렇게 보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한데, 여러 가지 신경 써주셔서 감사했 다. 정말 일주일동안 행복하고 즐거웠고,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일한문화교류기 금에서 주최하는 방일단에 참가하고 싶다

264 떠남, 그리고 돌아옴. 김 화 은 제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귤양~~귤양~~~ 아직도 귓가에서 맴돈다. 이름이 어색할 만큼 귤양 이라는 별명이 내게 익숙해졌다. 언제나 그랬듯 여행은 내게 너무나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이번 일본 방문은 내 개인적인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은 아니었다. 어 쩌면 그래서 더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순간 내가 느끼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으리. 일본에 대한 인식변화는 물론이고, 내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도 더 단단해졌으며, 단체생활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었고, 더욱이 우리 팀에 제주지역 학생은 나 혼자 뿐이라 더 다른 지역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좋 은 기회였던 것 같다. 처음엔 서로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려웠고, 긴장했다. 대표 라는 부담감에 평소 하지 않던 비행기 멀미까지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떠난 다는 것을 실감했고, 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도쿄는 조용히 있던 내 심장을 마구 뛰게 만들었다. 도쿄타워에서 내려다본 도쿄의 장관은 입을 쩍 벌리게 만들었다. 솔직히 공항 에서 도쿄 타워로 이동 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니 더욱 실감이 났다. 우리나라의 63빌딩에서 내려다본 서울과는 사뭇 다른 느낌. 하늘을 찌를 듯한 빌딩들 속에 자리하고 있는 공원들. 우리나라에 일반적으로 서있는 가로수 와는 다른 느낌 이었다.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된 잔디와 나무들. 도시인들의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이 있어야 할 곳은 자연과 조화를 이 룬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265 하지만, 우리는 발전에만 치우쳐 우리의 고향 인 자연을 까맣게 잊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런 저런 많은 생 각을 하는 동안 내 눈앞에는 석양이 지고 있었다. 도쿄에서의 첫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와 올려다본 도쿄 타워는 카메라 셔터를 절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333M. 파리의 에펠탑 보다 조금 더 높은 높이. 오렌지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도쿄타워가 아직도 눈에 어른거린다. 도쿄에서의 첫날 밤. 내일은 일본에서의 첫 공식적인 행사가 있는 날이다. 바짝 긴장을 하고 잠이 들었다. 아침. 도쿄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나라도 치면 외무부 장관을 뵈러 가는 길. 조금은 무거운 우리의 발걸음. 복장을 단정히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대표가 된 느낌으로 한걸음 한 걸음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의 경직된 박수 속에 모습을 드러내신 분은 너무나도 유쾌한 분이셨다. 훤칠한 키에 밝은 표정으로 등장하신 미모의 주인공. 우리들의 질문에 적극 답변해 주셨고, 지금 현재 가장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은 삼계탕이라며 재치 있는 대답도 해주셨다. 처음엔 과연 우리의 일본 방문이 앞으로의 양국의 문화 교류에 얼마나 기여할 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외무성을 다녀오고, 또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 온 지금은 충분히 기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장 놀랐던 곳. 오다이바

266 오다이바에서는 우리나라가 뭔가 뒤쳐졌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릴 적 과학 의 날 행사에 항상 등장했던 과학상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내가 타임머신을 타 고 미래의 도시에 서있는 것 같은 느낌. 공중으로 전깃줄 하나 지나지 않는 도시. 모든 쓰레기와 오물들은 지하 통로로 보내어진단다. 항상 환경을 먼저 생각 하는 일본의 모습을 잘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미래박물관. 미래박물관은 현대의 일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 같았다. 꼭 기회를 봐서 과학자를 꿈꾸는 우리 동생을 꼭 데려 와 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나도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우리를 허락하지 않아 한 층 밖에 둘러보고 오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 까울 뿐이다.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 그 어느 날 보다도 우리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오늘은 홈스테이 하러 가는 날. 아, 그 전에 방재 체험을 하고 말이다. 일본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재해가 많은 대표적인 나라이 다.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체험하기 힘든 일. 지진 체험. 체험 전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은 물러서있으라는 말에 더 긴장이 된다. 화재체험이나, 응급 치료, 연기체험 보다도 진도 7 의 지진 체험이 우리에게는 더 긴장 되는 순간 이었다. 30초의 짧은 체험이지만, 다리를 후들 거리게 만들었다. 체험관에서 나오면서는 겁나서 일본에서는 오 래 머물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267 기차에서 내려 야마나시에 처음 내딛은 발걸음, 내가 대한민국의 사람으로서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올 수 있을지, 막대한 부담감과, 오만가지의 걱정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핸드폰을 열었다. 바탕화면엔 가슴 뛰는 일을 하라 가 크게 씌어져 있었다. 그 순간은 가슴 뛰는 일이 아닌 가슴 터질 것 같은 일이었다. 일본에 오기 전 했던 생각들과는 또 달리 진짜 바로 눈앞에 닥쳐온 일. 그렇게 나와 24시간을 함께할 가족들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드디어 코료 고등학교 에 도착했다. 교장선생님의 환영 인사가 끝나고, 우 리 연수단 학생들 이름과 24시간을 함께할 가족의 명단을 불렀고, 점점 내 순서 가 다가오고 있었다. 김. 화. 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들고, 다리를 후덜거리며 자 리에서 일어섰다. 돌아보니 머리를 동그랗게 올려 묶은 귀여운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이름을 물을 정신도 없었다. 굳어서 아무 말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저 웃기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마미의 집으로 가는 차안에서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보다 더 걱정인 것은 어떻게 말을 하냐는 것. 할 말은 많은데 말을 할 줄 몰라 못한다니. 살다보니 참 별 희한한 경험을 했다 싶다. 평소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기를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문이 따로 없었다. 마미가 물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느냐고, 나는 도리질을 쳤다. 이런, 잘못 해 라는 말쯤은 일본어로 할 수 있었는데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 다음, 영어를 할 줄 아냐는 말에, 잘한다고 하기도, 못한다고 하기도 좀 애매했다. 그래서 손으로 조금 이라는 뜻을 표현했다. 마미네 가족이 나를 처음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정말 궁금하다. 혹시 벙어 리로 생각하진 않았을지. 너무 긴장한 나머지 평소 하지 않던 차멀미도 했 다. 만난 지 몇 분 되지도 않는 사람들 앞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268 주시는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고 남김 것도 죄송하고, 묻는 말에 빨리 성심껏 대답해 드리지 못한 것에 대해 가장 죄송한 마음이 든다. 절대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말 대답하고 싶었음에도 말로 잘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주시리라고 생각하련다. 그리고 내가 가장 놀랐던 것. 솔직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피 해 의식이 있다.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가슴 한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홈스테이에서의 첫 저녁 식사에서 굉장한 말을 듣고 말 았다. 마미의 아버지께서 가타카나로 써진 한글 인사를 읽으 시고는 하시는 말씀이, 대뜸 한국을 존경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 었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가 우리나라 전 통 예술가가 꿈이라는 말을 들으시고 하신 말 씀이셨다. 일본의 도자기나 서예들은 다 옛날 한국에서 전해져 들어온 문화라고 하시며 정말 존경한다 고 하셨다. 이 말에 나는 또 말문이 막혀버렸 다. 정말 뜻밖의 말. 전통예술을 하는 사람으로 서, 아니 그전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 조국을 존경한다며, 고맙다고 말하는 외국인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 주어 야 하나.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게 많은 배려를 해주시고, 많은 것을 보여주시려고 애 쓴 가족들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공부를 해서 갔더라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것이다. 내 전공분야인 미술관에 가서도, 신사에 가서도, 과자박물관에 가서도, 한국

269 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했을 테고, 일본에 대한 더 많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홈스테이가 끝나고 버스에 올라타니 애들이 울고 있었다. 나도 눈물이 핑 도는걸 참고 버스에 올라탔는데 이미 그때는 눈물이 뚝뚝 떨 어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정이 들어 아쉬워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근데 나는 좀 달랐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만,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질책 의 눈물이라고나 할까. 언제나 자신만만하게 내가 하는 일과 행동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려 노력하는 나 로서는 누구보다도 힘든 24시간 이였다. 물론 그만큼 얻은 것도 많았던 24시간.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결코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몸소 느꼈다. 여행은 항상 내 자신을 변하게 만든다. 내가 조금 불편해도 내가 조금 양보하면 모두가 편할 수 있고, 내 작은 습관 을 잠시만 보류해 두면 모두가 즐길 수 있다. 우리는 7일 동안 정말 정이 많이 들었다. 특히 우리 야마나시 팀의 선생님과 친구들. 만난 지 7일 만에 우리 라는 이름을 걸고서 다함께 웃었다. 7일을 만난 사이가 아닌 7년을 만난 사이처럼. 앞으로 70년을 더 만날 수 있기를. 나의 이런 바람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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