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권심층-석교리-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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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인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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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4장 신앙생활 석교리는 인근에 있는 마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무속인이 많고, 마을 공동체 신앙과 가정신앙이 현재 에도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기독교와 천주교 등의 종교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기독교의 경우 정착과정에서 마을 사람들과 심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기독교 정착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양 상은 석교리 사람들의 신앙관을 잘 드러내 준다. 한편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에 마을이 포함되면서 마을 공동체 신앙이 그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 개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산신제와 탑제의 경우 점차 그 의미와 형식이 퇴색하던 것이 행정중심복합도시 189 석교리의 신앙시설물 11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 문제로 인해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마을 사람들은 더욱 마을제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다. 행정중 심복합도시 건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마을의 상황에서 마을제가 더욱 역동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마 을 사람들은 마을제에 그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탑제와 산신제를 지내며 탑신과 산신에게 마을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로 인해 없어지는 것을 막아달라는 구체적인 바람을 표현했다. 마 을의 공동체 신앙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상황에서 그 이전과는 다른 역동성을 가진 것이다. 이 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신앙을 크게 공동체 신앙, 무속, 가정신앙, 기성종교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공동체 신앙으로는 산신제, 탑제, 봉화제를 기술하였다. 봉화제는 개발 상황 속에서 올해 처음으로 생겨난 공동체 의례로, 생겨나게 된 배경과 진행과정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았다. 개별신앙으로는 무속, 불교, 기독 교, 천주교, 가정신앙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으며, 이중 무속에 대한 비중이 크게 기술되고 있다. 석교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무속인의 숫자가 월등하게 많다는 특징이 있었다. 그리고 더욱 특징적인 것은 무속인과 마을 사람들의 관계가 매우 가깝고 자연스러운 점이었다. 이것은 예전부터 마을에 무속인인 많았 던 석교리의 내력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또한 지금 살고 있는 무속인들이 주로 석교리로 시집을 와서 무업 을 시작한 배경과 깊은 연관이 있다. 무속 부분에서는 석교리의 무속인의 내력, 입무과정, 무업활동, 마을 사 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내용을 기술하였다. 1. 공동체 신앙 석교리의 공동체 신앙은 산신제와 탑제가 있다. 산신제와 탑제의 시작이 언제인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마을사람들은 조선시대 중기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와 탑제 를 지내고 있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해마다 거르지 않고 제를 지내고 있는 상황이다. 2004년 8월 11일에 석교리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지로 발표되면서 마을의 공동 의례는 많은 변화 양상을 보였다. 석교리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내에서 개발에 대한 극심한 반대양상을 보였는데, 이 과 정에서 마을의 공동의례는 기존의 의미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 면이 있었다. 기존에 산신제와 탑제가 마을의 무사와 안녕을 막연하게 기원하는 것이었다면, 개발상황에서는 국가의 건설 사업에 의해 사라질 위 기에 처한 마을을 지켜달라는 간곡한 바람이 제의 진행과정에서 시종 줄곧 표현되었다. 조선중기에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탑신과 산신을 모셔 그 위기를 모면했다면, 현재 마을 사람들은 국가의 건설 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을 지켜달라는 바람으로 공동 의례를 지내게 된 것이다. 한편 새로운 공동체 신앙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정월대보름 탑제가 끝나고 봉화제라는 마을 공 동제의가 만들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탑제가 끝난 후 달집을 만들어 태우는 의식을 봉화제라 명명하고 진행 하였다. 봉화제의 내용과 진행과정에는 개발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입장과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다. 마을의 공동체 신앙은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건설과정에서 그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변모하고 있으며, 조사자는 이러한 점에 유의하며 공동체 신앙을 살펴보았다. 제4장 신앙생활 117
3 1) 탑제와 산신제의 유래와 역사 산신제와 탑제의 시작은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는데, 마을 사람들은 조선시대 중기로 짐작하고 있다. 심 규만(1938년생, 남)씨는 임진왜란 전후로 그 시기를 짐작했는데, 어려서부터 마을 어른들이 임진왜란 때와 연관시켜 그 시작 시기를 얘기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기 임진왜란 전후에 마을 전체가 돌림병에 걸려 사 라질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지나가던 스님이 탑을 세우고 산신제를 정성껏 지내면 마을이 평안하게 될 것이 라고 하면서 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현재까지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는 음력으로 시월 초하루에, 탑제는 정월 대보름에 제를 지낸다. 심규만씨는 연기군 내에서 산신제와 탑제를 지내고 있는 마을이 흔치 않다며 마을의 토속문화 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심규만 노인회장이 이야기하는 산신제와 탑제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는데. 아주 옛날에는 왜. 지금은 홍역 마마 같은 것 예방주사를 놓잖아. 옛날에는 그게 없었잖아. 근데 홍역이 들으면 애기들이 싹 죽잖아. 싹 죽고 어른들도 마마 걸리면 얼굴이 얽고 그러 잖아. 이 부락이 역병이 부락에 들어서.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이거여. 어른들이 요 앞 중간 탑 옆에 묘가 있어. 지금은 많이 변화가 됐지만 이렇게 동산이었다고. 어른들이 거기 모여서 걱정을 한 거여. 동네가 역병이 들어 폐동을 하것다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어느 스님이 그 지금 말하자면 스님이 지 나가다가 동네사람들이 많이 앉아걱정을 하니까 같이 않아 얘기를 한 거여. 스님한테 물어 본거여. 어 떻게 해야 부락을 보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노승이 그런 얘기를 해주고 간 거여. 부락을 보존하려 면 저 지금은 여기가 큰길이지만 예전에는 거기가 큰길이라고. 고개 넘어오는데 거기 입구에다가 돌탑을 하나 놓고 중간에 하나 놓고 여기에 탑하나 놓고. 보름날 탑제를 지내라. 그러면 이 부락이 보존을 한다 해서 그때부터 시작이 됐다는 거여. 그게 그것이 우리 부 락에 임진왜란때 생겼는지 임진왜란이 1592년 정도 될 거여. 그때 탄생 했는지. 임오군란때 탄생했는 지 그때 그 시기로 보는 거여. 그 시기로 보니께. 이게 생겼고. 저 뒤에다가 산제당을 짓고 거기다 산신 제를 10월 초하루날 지내라 해가지고 산신제 지내고 탑제하고 그래서 부락이 유지됐다 이거여. 지금도 우리 부락같이 하는 데가 별로 없어. 지금도 잘돼. 우리 부락은 토속문화. 연기군내에서 자부를 해. 토속 문화로 자부를 한다고.(심규만, 1938년생, 남) 탑제는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미신타파를 하고 조국 을 근대화 한다는 명목으로 박정희 정권은 석교리의 탑제 역시 지내지 말고 탑을 때려 부수라 고 각 행정 단위에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심규만씨는 마을 이장을 보고 있으면서 탑을 없애지 않고 보호했 다고 한다. 오히려 탑 앞에 제단을 만들고 탑을 정비하는 노력을 보였다. 새마을 운동때, 박정희 대통령때 미신타파한다고 다 때려부수라고 하는데 내가 이장 볼 때 내가 안 때려부셨어. 다른 부락은 다 때려부셨어. 호탄은 다 때려부셨다가 다시 만들고. 우리 부락은 안 때려 부 셨어. 이렇게 잘 해놨어. 미신을 믿으니께 타파하라는 거지 토속문화아녀 11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4 석교리 탑제는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새마을 사업 때 다른 마을에서 탑제를 비롯한 마을의 제가 많이 사라 진 것과 달리 아직까지 그 의미를 유지하며 제가 진행되고 있다. 근래 들어 탑제에 관한 마을 주민들의 참여 나 금기에 관한 엄격한 규율이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1년 행사 중 탑제를 가 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2006년에 진행된 탑제는 그 이전과 비교해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마을이 개발상황에 직면하면서 마 을 사람들은 그 이전과는 다르게 탑제에 의미를 부여했다. 마을 사람들은 탑신에게 마을이 개발되지 않았으 면 하는 구체적인 바람을 기원했다. 마을 이장을 비롯한 마을을 이끌어가는 대표들은 탑제를 정성스럽게 올 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했다. 지난해보다 더욱 원칙적이고 활기 있게 탑제를 지내고자 하는 노력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서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며 고향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이 많은 만큼 탑제에서 기원하는 축원 또한 이러한 마을사람들의 소망이 깊게 반영되어 있었다. 2) 탑제 탑제는 음력으로 정월 대보름 아침에 진행된다. 예전에는 새벽 첫닭이 울기 전에 탑제를 지냈다고 하나 현재는 아침 9시를 전후로 제가 시작된다. 마을에서는 탑제를 지내기 위해서 제관과 축관을 선출하고 제를 준비한다. 제관은 제사에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고 탑제 당일 제사를 주관하며, 축관은 축문을 쓰고 탑제 당 일 제관을 돕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기복덕을 가려 제관과 축관을 선출했다고 하나, 현재는 이장이 제 관이 되고 노인회장이 축관이 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1) 2006년 탑제의 성격 2006년 정월대보름 탑제는 다른 해보다 더욱 활기차게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인 해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서 탑제가 더욱 형식과 내용면에서 강화되는 면을 보였다. 탑제를 지낼 당시 마을사람들은 토지공사의 실사를 거의 받지 않은 상태였으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에 대해 대항이 아닌 저 항의 움직임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마을 지도부와 마을 사람들은 탑제를 지내며 마을 사람들의 단합을 유도 하고, 마을의 역사성을 확인하며 개발에 대한 반대운동에 탄력을 얻고자 하였다. 마을 사람들 또한 탑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점차 의미와 형식이 약화되어가던 탑제가 행정중심복합도시 개발 상황에서 강화 되는 면모를 보인 것이다. (2) 2006년 탑제의 진행 과정 조사자는 2006년 2월 8일부터 2월 12일까지 탑제의 준비와 진행과정을 참여관찰 하였다. 아래의 내용은 참여 관찰한 내용을 시간순서대로 정리한 것이다. 2006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있었던 탑제의 준비과정, 진 행과정에 촛점을 두고 서술하였다. 제4장 신앙생활 119
5 표 년 탑제의 준비와 전개 과정 일자 내용 시간 2월 10일 제관선정 오후 7시 2월 8일 풍물 연습시작 오후 2시 2월 11일 (탑제 전날) 2월 12일 (탑제 당일) 축문 작성 왼새끼 만들기 마을 방송 탑제 장보기 부적쓰기 탑에 촛불 켜두기 탑제 음식 준비와 안내방송 1탑 탑제 지내기 2탑 탑제 지내기 3탑 탑제 지내기 지신밟기 오전 9시 오전 10시 40분 오후 1시 오후 2시 30분 오후 3시 30분 오후 6시 30분 오전 8시 50분 오전 9시 10분 오전 9시 35분 오전 10시 오전 11시 (3) 탑의 위치 석교리에 탑은 총 4기가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4개의 탑을 각각 1탑, 2탑, 3탑, 4탑이라고 부르고 있다. 1 탑은 석교리에서 장재리로 넘어가는 서낭댕이 고개에 비석 모양으로 세워져 있다. 서낭댕이 고개는 예전에 마을의 입구였으며, 1탑은 마을의 입구인 이 고개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마을 진입로가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삼성천 앞으로 도로가 생기면서 서낭댕이 고개는 마을 뒷길로 그 역할이 변화했지만, 마을 진입로 가 생기기 전에는 장재리와 대평리를 오고가는 마을의 입구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주로 농로와 서낭댕이 고개 밑에 사는 일부 마을 사람들이 대평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고개를 넘어 다니고 있다. 2탑은 1탑에서 마을 회관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남양홍씨들이 마을에 기증한 정자 옆에 돌탑의 형태로 세워져 있다. 정자를 만들면서 2탑은 본래의 크기의 절반이 땅속에 묻혀 예전 모양에서 많이 변형이 되었다. 3탑은 아랫마을 마을 창고 옆에 세워져 있는데, 돌 탑 꼭대기에 돼지모양의 돌이 올려 있다. 3탑 뒤에 있는 골자기 이름 또한 여기서 유래해 돼지골이라고 불린다. 3탑에 올려져 있는 돼지 모양의 돌에는 재미있는 이 야기가 전하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돼지 돌의 대가리 가 마을 앞뜰로 향하고 있고 동네 방향으로 똥 구녁 을 들이대고 있다는 것을 두고 돼지가 입으로 먹고 똥을 동네에 싸 동네에 복과 재수를 가져오게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4탑은 3탑 바로 앞으로 3m 정도 사이를 두고 있다. 길 옆 논둑 위에 서있으며, 탑 중에서 가장 크기가 작 다. 4탑의 위치는 2탑과 4탑의 일직선상에 자리 잡고 있다. 탑제를 지낼 때 4탑 앞에는 따로 진설을 하지 않 고, 3탑 제가 끝나면 제관이 술을 받아서 탑위에 뿌리는 것으로 제가 끝난다. 12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6 (4) 탑제의 준비 과정 탑제 준비는 탑제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다. 일주일 전부터 제관과 축관을 선정하는 논의가 시작되었으며, 탑제 전날 축문과 부적쓰기, 왼새끼꼬기, 제수장보기, 탑에 왼새끼 둘러치기, 탑에 촛불켜기 등의 대부분의 준비가 진행되었다. 1 제관선정 제관은 마을 이장으로 정해져 있으나 축관 선정을 두고 마을에서는 탑제 일주일 전부터 논의가 시작되었 다. 축관은 몇 년 전부터 노인회장이 하는 것으로 정해졌는데, 올해 노인회장이 이종희(76세, 남)씨에서 심 규만(71세, 남)씨로 바뀌게 되면서 누구를 축관으로 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이종희씨가 노인회 장을 내놓게 되었지만 다시한번탑제축관이되어축문을읽고싶다고하면서마을에서 논의들이 분분하게 진행이 되었다. 탑제 몇 일전에는 이종희씨가 축관이 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는 듯 했으나 다시 이장과 마을 대표들이 논의를 한 끝에 탑제를 이틀 앞 둔 날에는 최종적으로 현재의 노인회장인 심규만씨가 축관을 맡기 로했다. 예전에는 생기복덕을 가려 제관과 축관을 선정했다고 하나 몇 년 전부터는 마을의 이장과 노인회장이 자 동적으로 제관과 축관을 맡고 있다. 따라서 이번 제관 역시 마을의 이장인 이국환씨가 맡았는데, 이씨는 집 안에 초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탑제 제관을 맡았다. 예전에는 탑제 금기가 강해 상을 당한 사람은 탑제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하나 현재는 이러한 금기가 많이 사라져 제관인 이장이 상을 지냈음에도 탑제 제관이 되 는데 문제가 되지 않았다. 2 풍물연습 탑제를 4일 정도 앞두고 마을에서는 장구, 꽹과리, 북, 징을 마을 창고에서 꺼내와 마을회관에 가져다 두 었다. 몇 년 전부터 풍물을 치던 노인들이 작고하면서 마을에서 풍물은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에 석교리 풍물이 아주 대단했다 면서 정월대보름날이면 하루 종일 풍물패들이 지신밟기를 하며 참 푸지게 놀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때 풍물을 잘 다루던 노인들이 작고하면서 점차적으로 석교리 의 풍물은 쇠했다고 하며, 2004년도에는 외부에서 풍물패를 불러와 탑제를 지내기도 했다. 노인회 총무인 이종영(1944년생, 남)씨는 이장이 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로 인해 자리를 많이 비워, 대부 분의 마을 대소사를 고민하고 관여하고 있는데 이번 탑제를 예전처럼 풍물을 치고 제를 올리고 싶어 했다. 탑제 일주일 전부터 조사자가 마을회관에 가서 탑제 얘기를 하면, 이번 탑제에는 풍물을 치면서 탑으로 가야 하는데 하며 어떻게 풍물을 칠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였다. 이번 탑제에는 이종영씨가 적극적으로 풍물을 칠 것을 고민하게 되면서, 탑제 일주일 전부터 풍물 연습이 시작되었다.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서 연습이 이루어 진 것은 아니며, 이씨가 마을 창고에서 풍물을 꺼내 와 마을회관에 놓고 시간이 날 때 연습을 했다. 탑제 전에 두 번 정도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풍물 연습이 이 루어졌다. 풍물을 지휘하는 상쇠가 없어 조사자가 함께 가락을 맞추어주기도 했으며, 탑제 당일에는 금남면 신촌리에 사는 김아연씨를 초청해 상쇠를 맡기고 제를 진행하였다. 제4장 신앙생활 121
7 , 191 풍물연습 192 징을 치고 있는 윤찬진씨 193 그릇을 잡고 노는 임천순씨 3 축문쓰기 탑제 전날 아침 심규만씨는 집에서 축문을 썼다. 심씨는 아침에 축문을 쓴 후 바로 마을회관으로 와 마을 사람들에게 내용을 설명했다. 심씨는 마을회관 방에 둘러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한문으로 된 축문의 내용을 설명해 줬는데, 특히 축문의 내용 중 관재소멸 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관재소멸은 관에서 백성들에게 주는 고통이라고 설명하며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오면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지금의 마을 상황이 관재가 아니냐며 축문의 내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번 축문은 더욱이 예전 이장인 이국환씨 아버지와 전 노인회장인 이종희 씨가 만들어 놓은 축문을 그대로 읽지 않고 심씨가 마을 상황에 맞추어 다시 쓴 것이다. 이 축문을 가지고 심 씨는 시간이 나는 대로 마을 사람들에게 내용과 의미를 설명했다. 부락어른들이 탑에 축을 무슨 말을 읽는지 잘 모르시잖아. 이게 종희 형님이 읽던 축을 내가 그대로 베껴놨는디 약간만 두 군데만 내가 고쳤어요. 유세차 하는 것은 인제. 금년 병술년 아녀. 정월달이고 무 12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8 오라는 것은 초하루 일진입니다. 15일 오늘 일진이 임신일. 유학이라는 것은 나를 낮춰서 어린 배우는 사람. 여기는 축읽는 사람 이름을 쓰는거여. 감히 공경해서 이렇게 고해드립니다. 석탑지신이라는 것은 돌로 싼 탑의 신이시여. 어 이제 무엇을 할라고 하느냐하면 이제 석교리 이장 이국환이가 정성것 제물 을 올립니다 이런 얘깁니다. 고대궐상 높고 큰 집을 짓게하고 우리 동네가 크고 높고 훌륭한 집이 많이 들어서게 집을 짓게하고. 보호해주고 보호해주고. 또또 보호해주고. 이 부락을 이렇게 해주십사 하는 얘기여 이 탑에 신보고. 그렇게 해서 천년이 가도록 우리부락을 오래도록 잘 보존해주시오 그런 얘기 여. 그러고 사람은 번화하고 자식을 나면 잘크고 빛나게 해달라. 곡식 오곡이라고 안혀 오곡. 벼 보리 콩 이런것을. 여러 잡곡을 풍년되고 잘 되게 해주시오. 그 다음에 가축 집에서 기르는 짐승은 잘크게 해주 고 새끼도 잘 낫게 해주시오. 이러면 다 들어갔잖아. 훌륭한 집 다 잘 돼게 해달라고 했고. 그 다음 삼재 팔난여. 사람이 하늘에 비안오면 그것도 재해예요.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홍수나는 것도 재해아녀요. 큰 재해아녀요. 불같은 것 나도 큰 재해 아니냐이거요. 그런 재를 하고 사람이 살라면 얼마나 고생이 많 습니까 그런 어려운 것. 이런 것. 옛날에는 지금은 그런 것이 없지만. 옛날에는 술 조사하지 뭐 우리 동 네 같으면 행정복합도시 와가지고 언제 떠날지모르는 그런 관재아녀 이게. 벼슬아치들이 우리 백성들 에게 주는 고통 그런 것을 다 없애게 해달라 이런 얘기여. 삼재팔난하고 관재를 다아 없애주시오. 그거 를 누가 얘기하느냐. 석교리 동민이 한마음이되서 기도하고 또 원합니다. 이런 얘깁니다. 그래서 그냥 하면 안되잖아요. 이런 걸 빌라면 구신한테도 뭘 갔다줘야하잖아. 삼가서 술하고 삼사실과를 놓고서 정 성것 공경하고 공손하게 조옥 펴놓고 드립니다. 술은 마시고 떡같은 건 잡수고 가시오. 이게 그 얘기요. 이게 한문을 모르시는 양반들은 이게 무슨 얘기를 하는건지 모르잖아. 내가 설명을 했으니까 대충 알잖 아. 저런 뜻으로 읽는구나.(심규만, 1938년생, 남) 축문은 오후에 다시 한지에 붓글씨로 다시 작성이 되었는데, 이는 촬영팀 3) 의 요구에 의해서 붓글씨로 다 시 쓰게 된 것이다. 촬영팀은 탑제 기간 내내 마을 사람들에게 그림이 안나온다 는 표현을 하면서 이전과 는 다른 탑제 과정을 유도하고 전통식으로 진행되기를 원했다. 오후에 심규만씨는 붓을 가지고 한지에 축문 을다시썼다. 3) 2006년 탑제는 국립민속박물관 영상팀의 촬영이 함께 진행되었다. 영상팀은 탑제의 진행과정에서 좀더 전통적인 모습을 마을 사람 들에게 주문하기도 하였는데, 이를테면 제관의 복장을 한복으로 입어야한다는 것과 축문을 볼펜으로 쓸 것이 아니라 붓으로 썼으면 좋겠다는 것 등이다. 마을 사람들은 촬영팀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고, 촬영팀의 이러한 요구를 반기는 분위기였다. 마을의 탑제를 영 상으로 기록하러 왔다는 것에 대해 호의적으로 반응하고, 마을에 탑제가 영상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또 한 행정중심복합도시 반대 운동에서 방송국과 같은 매체에서 전혀 자신들이 이야기를 다루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러한 촬영팀의 등장은 마치 방송에 탑제 지내는 것이 방영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마을의 지도부들은 기자들까지 적극적 으로 섭외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으며,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마을의 탑제를 알리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내에 생태마을을 만들어 마을을 보존한다는 이야기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생태마을로 선정돼 마을이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다. 제4장 신앙생활 123
9 194 심규만씨가 쓴 축문 195 축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 4 왼새끼 꼬기 왼새끼는 탑제 전날 오전 10시 40분부터 꼬기 시작했다. 심규철(1942년생, 남)씨는 집에서 짚을 가져와 회 관 남자 노인방으로 가져왔다. 먼저 짚을 꼬기 시작하면서 옆에 앉아 있던 심규태(1936년생, 남), 이종명 (1930년생, 남), 이종영(1944년생, 남)씨가 함께 왼새끼 를 꼬기 시작했다. 마을 최고령인 김재원(1920년생, 남)씨도 잠깐 거들었는데, 이종영씨가 대신 왼새끼 를 이어받아 마지막까지 꼬았다. 왼새끼를 꼬는 도중 심규만씨는 심규태씨를 보고 형님은 왼손잽이라 왼새끼를 잘 꼰다고 둘러앉아 새 끼를 꼬는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고 심씨는 그거하고는 달라 이사람아 하며 대답을 하기도 했다. 이종영씨 는 왼새끼가 생각만큼 잘 안된다며 왼새끼 안돼네 이거. 내가 새끼 잘 꼬는디. 우리아버지하고 하루 저녁에 가마니를 두 개를 삼았는디 하며 오랜만에 꼬는 왼새끼를 어색해했다. 왼새끼는 20분 정도 꼬았으며, 방에 노인들은 꼬는 것을 바라보며 왁자하게 이야기를 했다. 새끼를 꼬며 마을 사람들은 언제 탑에 왼새끼를 둘 러 멜 것인지를 의논하였으며, 시간은 오후 4시나 5시 정도에 매자고 결정을 하였다. 그리고 저녁에는 탑 앞 에 촛불을 켜놓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 해 탑제에 왼새끼는 해질무렵 회관에 남자들이 둘러 앉아 꼬았다고 하며, 이것을 탑에 들고 가 탑에 둘러쳤다. 탑에 왼새끼를 둘러치면 어둑어둑했다고 한다. 이번에는 촬영팀이 마을에 탑제를 영상으로 기록 하게 되면서 이러한 마을의 탑제 일정들이 조정이 되었다. 저녁에는 촬영이 잘 안된다는 촬영팀의 요청에 196 왼산내끼 꼬기 197 구경하는 노인들 12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0 왼새끼 꼬는 것과 탑에 왼새끼를 둘러매는 것 은 작년보다 급하게 진 행되었다. 5 탑에 왼새끼 둘러 매기 탑에 왼새끼 둘러메 기는 왼새끼를 꼰 다음 바로 진행되었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이었다. 보통 탑에 왼새 끼를 둘러메는 것은 탑 198 왼새끼를 꼬는 심규철씨 199 왼새끼를 꼬는 이종영씨 제 전날 저녁에 진행되었다고 하나, 촬영팀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이번 탑제에는 오전에 진행이 되었다. 지 난 해에는 오후에 마을회관에서 남자 노인들이 왼새끼를 꼬고, 그 옆에서 심규만씨가 천하대장군 이라는 부적을 썼다. 마을 사람들은 왼새끼와 부적을 가지고 탑으로 가서 탑에 왼새끼를 둘러치고 그 안에 부적을 붙였다고 한다. 이번 탑제에는 촬영팀이 오게 되면서 아침에 왼새끼를 꼬고 바로 이것을 탑으로 가져가 둘러매게 되었다. 부적은 종이가 없어 쓰지 못하고 왼새끼만 들고 탑에 둘러메었다. 오후에는 부적을 써서 다시 탑으로 가서 부적을 새끼 줄 안으로 끼워넣는 과정이 반복되기도 하였다. 해지기 전에 촬영을 마쳐야 한다는 촬영팀의 요구에 탑제의 일정이 혼선을 빚으며 진행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촬영팀의 요청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그동안 해왔던 탑제 과정을 지키는 것보다 촬영을 통해 석교리의 탑제가 알려지고 영상으로 기록 되는 것에 의미를 더 가지고 있었다. 촬영팀을 두고 마을에서는 각각의 이해와 요구가 엇갈리고 있었는데, 한 쪽에서는 마을이 없어지니까 영 상으로 남겨놓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하는 입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영상으로 탑제 과정이 기록되면 200 1탑에 왼새끼 둘러매기 탑에 왼새끼 둘러매기 2 제4장 신앙생활 125
11 서 이러한 가치 있는 민속이 외부에 더욱 알려졌으면 하는 기대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이러한 복잡한 마 을 사람들의 입장이 엇갈리면서 촬영팀의 요구는 더욱 마을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 과정 에서 탑제의 준비와 진행은 예년과는 다른 분위기와 과정으로 전개되는 양상을 보였다. 점심 시간 전까지 2탑까지 왼새끼 둘러매기 과정이 진행되었으며, 3탑은 오후에 천하대장군 부적을 쓰 고 난 다음 왼새끼를 둘러맸다 탑을 청소 203 왼새끼가 매어진 2탑 204 3탑에 왼새끼 둘러매기 205 4합에 왼새끼 매는 모습 6마을방송 점심식사를 마치고 심규만씨는 집으로 짚을 가지러 갔다. 내일 있을 봉화제 를 준비하기 위해 동아줄을 엮을 짚을 가지러 간 것이다. 심씨는 집에 가서 먼저 가축들 밥을 주고 짚을 오토바이에 싣고 마을 회관으로 왔다. 마을회관에 와서 심씨는 마을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탑제와 봉화제가 내일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 는 내용이었다. 특히 봉화제를 하는데 있어 마을사람 개개인들의 소원을 적어서 태울 소지를 준비하라는 내 용을 강조해서 방송하였다. 마을의 분위기는 탑제를 앞두고 점점 활기를 띠고 진행되고 있었다. 12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2 부락 전 주민들에게 안내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내일은 정월대보름 날입니다. 물론 보름 탑제를 모든 부락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침 일찌감치 탑제를 모시겠습니다만은 탑제를 모신 뒤에 어~ 부락민들이 봉화제 준비를 하고자 합니다. 봉화제를 올려서 우리 부락민들이 모든 소원을 빌을 수 있도록 다같이 봉화제에다가 자기 소원을 달아가지고 불로 태워서 모든 소원이 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원을 하는 것입니다. 금년에는 여러 가지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라도 고통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라 도 탑제를 지낸 후에 봉화제를 오늘부터 준비를 해서 내일 해질 무렵에 아랫마을 제방 둑에서 식을 거 행하고자 합니다. 부락어른들께서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탑제와 내일 봉화제에 참석을 해주시기 바랍니 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왼새끼를 한발식이라도 꼬아가지고 거기다가 자기소원을 글로 종이에 써가 지고 산내끼에다 달아서 봉화준비한데다 걸어놓고서 불을 질러서 자기소원이 성취되도록 하는 식이 되 겠습니다. 지금부터 모든 준비를 하셔가지고 내일 탑제를 모신 뒤에 그 봉화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쓴 글과 동시에 산내끼다 달아서 왼새끼여야 됩니다. 왼새끼를 꼬아서 거기다 달아서 불을 질러 가지고 모든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금년에는 여러 가지 원하는 게 많이 있을 깁니다. 게중에도 출향하신 가족들이 잘 돼야지만 우리가 고향에서 편안한 거 아닙니까 그러한 소 원. 또 애기들이 잘 자라는 일취월장하게 하는 소원 또 노인양반들이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자는 듯 이 가게 해달라는 소원. 이러한 모든 소원을 달아서 내일 봉화제에 올리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 하오니 지금 방송을 듣는 데로 준비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내일 탑제를 모시 고 봉화제 준비를 해서 저녁 4시나 5시 경에 봉화제를 올리려고 합니다. 그 장소는 아랫마을 제방둑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설치 한 뒤에 그걸 올릴 려고 하오니 준비를 하오니 아까 말씀 드린 데로 그러한 준 비를 해가지고 나오셔서 자기 소원을 봉화제에다 달아 메고 불을 놓아서 이룰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 니다. 이상 말씀드렸습니다. 방송이 끝나자 회관으로 몇 명의 할머니들이 모였다. 방송을 잘 듣지 못한 할머니 몇 분이 무슨 일이 있는 지를 물어보러 온 것이다. 조선태 할머니는 심규만 어르신을 보고 예전에는 또랑또랑하니 알아듣게 잘 하 더니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예전처럼 못한다며 무슨 얘기를 했 는지 물었다. 전에 없던 봉화제를 하게 되면서 심규만씨와 봉화제를 함 께 의논한 마을의 남자들은 봉화제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마을 사람들 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206 마을 방송을 하고 있는 심규만 노인회장 7제수장보기 장보기는 탑제 전날 대평리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이장인 이국환(1960년생, 남)씨와 심규태(1936년생, 남)씨 둘이 마을회관에서 만나 장보기에 나섰다. 시간은 오후 2시 30분이었다. 탑제 장보기는 먼저 대평리 대운떡방앗간 에서 백설기 가루를 빻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떡방아를 맡긴 후에는 바로 맞은 편 밑 골목에 있는 미라상회 로 갔는데, 여기에서 대부분의 제수 장보기가 이루어졌다. 탑제 장보기는 3탑에 각각 제수 를 진설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품목으로 3군데 것을 구입했다. 이씨와 심씨는 주인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탑제 장보기를 하고 있으니 좋을 것으로 달라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 먼저 이씨는 명태를 보기 시작했다. 심 제4장 신앙생활 127
13 씨는 옆에서 명태 양짝에 눈이 있는 것으로 달라고 해야혀 하며 이씨와 주인을 향해 이야기 했다. 명태는 탑에 2마리씩 올리기 때문에 총 6마리를 구입했는데, 양쪽에 눈이 있는 것을 일일이 살피고 신중하게 구입을 했다. 사과 또한 마찬가지로 심씨가 사과를 고르면서 마을 제사이기 때문에 썩은 것은 안 되고 좋을 것을 골 라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리 저리 사과를 뒤적였다. 심씨는 내가 우리 마누라 제사를 지내도 안 고르 는 데 첨 고르네. 내가 이게 흠이 있으면 나만 욕 얻어 먹는거 아녀 하며 마을 제사 장보기가 까다롭다는 것 을 설명했다. 과일을 고르는 중에 이씨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설 명절에 담은 동동주가 있느냐고 확인을 하고, 3병 정도만 내일 쓰자고 부탁을 했다. 이씨와 심씨는 과일과 명태 등을 다 고른 후 마지막으로 소지 종 이를 주인에게 달라고 하였다. 주인은 한 10장도 주면 되겠느냐며 묻고 이씨는 그렇다고 대답을 했다. 이씨 는 종이에 적어 놓은 제수 물품이 빠진 것이 없는 지를 확인하며 주인에게 계산을 부탁하였다. 계산기를 두 드리며 주인은 이씨에게 영수증을 써줘야 하느냐고 묻자 이씨는 써줘야지유. 동네 돈인데 내가 어떻게 장 부 없이 동네돈을 써유 하며 답을 했다. 장을 보고 마을회관에 도착한 시간은 3시 30분이었다 백설기 가루를 빻고 있는 모습 208 명태의 눈을 확인하는 심규태씨 209 장을 보고 마을회관에 도착한 이국한 이장 210 사과와 배를 고르는 모습 12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4 211 부엌에 놓아둔 제수 212 미라상회에서 구입한 제수 영수증 표9. 탑제를 위한 제수 구입 내역 날짜 품목 장소 참여인원 이동수단 비용 백설기 떡방아 대운방앗간 이국환 심규태 자가용 5,000원 2월 11일 배 9개, 사과 9개, 곶감 2줄, 밤 1되, 대추 1되, 명태 6마리, 소지종이 10장, 초 3개 미라상회 이국환 심규태 자가용 74,000원 동동주 3병 이국환씨 고모가 명절에 담은 술을 얻어옴. 8 天 下 大 將 軍 부적쓰기 제수를 구입하기 위해 장을 보고 오는 사이 마을회관 남성노인방에서는 심규만씨가 天 下 大 將 軍 부적을 쓰고 있었다. 남성노인방에 있는 책상에 있던 벼루를 꺼내어 손수 붓글씨로 부적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심 씨는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붓글씨를 썼는데, 붓글씨를 잘쓴다 는 어른들의 얘기에 중학교 때 8 개월 배운 것이라고 설명을 했다. 심씨는 먹을 갈 때는 팔의 기운으로 갈고, 쓸적에는 황소기운으로 쓰라는 213 부적을 쓰고 있는 모습 214 1탑에부적부치기 제4장 신앙생활 129
15 215 2탑에부적부치기 216 부적이 붙은 3탑 거여 이게 먹을 막 갈면 곱게 안 갈리거든. 먹을 갈 때는 팔의 기운으로 갈고 쓸 적에는 황소기운으로 써야 한다 하며 힘있게 부적을 써내려갔다. 부적은 총 4개의 탑에 붙일 4장을 만들었다. 부적을 완성한 후 심규만씨는 심규철씨와 함께 부적을 붙이 기 위해 탑으로 출발했다. 먼저 2탑으로 향했는데, 오전에 왼새끼를 둘러 매놓지 않아 먼저 서둘러서 2탑으 로 향한 것이다. 심규철씨는 금줄과 비를 들고, 심규만씨는 부적을 가지고 갔다. 심규철씨와 심규만씨는 먼 저 탑 주위를 비로 쓸고, 주위에 풀을 뽑아냈다. 탑 주위를 청소를 하는 도중 이종영씨, 이국환씨, 이종남씨 가 와서 일을 거들었다. 탑에 왼새끼는 심규만씨와 심규철씨가 메었으며, 그 다음에 부적은 심규만씨와 이 국환씨가 고정시켰다. 부적붙이기는 3탑, 1탑, 2탑의 순서로 진행이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2탑에 부적을 고 정시킨 시간은 오후 5시 10분이었다. 9탑에촛불켜기 탑제 전날의 마지막 준비는 탑에 촛불을 밝혀 놓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장 이국환씨는 탑에 불을 밝혀 놓 기 위해 1반 반장 김용태씨 집에 가서 양동이 를 얻어 와서 탑에 미리 놓아 두고 있었다. 심규만씨와 심규 철씨가 부적을 붙이고 있을 때 얻어 온 것이다. 양동이 에 촛불을 담아 놓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로, 이씨 217 1탑에촛불밝히기 218 2탑에 촛불 밝히기 219 3탑에촛불밝히기 13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6 는 예전에는 참기름으로 심지를 만들어 종발에다 놓고 불을 밝혀 놓았다며 예전 일을 이야기했다. 현재는 촛불을 켜놓고, 바람이 불어 꺼지기 때문에 양동이 를 씌워 놓아 꺼지는 것을 예방하고 있었다. 탑 앞에 밝 혀 놓은 촛불은 아침 탑제가 시작할 때까지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다 (5) 탑제 지내기 다음 날 아침 마을회관에서는 탑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조사자가 마을회관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분주하게 준비들이 진행이 되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이복분(1938년생, 여), 윤찬진(1940 년생, 여), 송영칠(1939년생, 여), 허순금(1936년생, 여)씨가 둘러 앉아 시루떡을 불에 올려놓고 커피를 마시 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허순금씨는 시루번 반죽을 했다. 이들은 아침 8시에 와서 시루떡 만들 준비를 했다고 한다. 남성노인들은 방에 서서히 모이고 있었는데, 심규만씨와 심규철씨가 두루마기 차림으로 회관에 앉아 달 집 태우기에 올릴 소지를 쓰고 있었다. 심규만씨는 심규철씨 소지를 대신 써주고 있었는데, 소지 종이에는 심광용 짝을 찾아 주세요 라는 심재철씨의 아들의 소원을 기원하는 내용을 대신 붓으로 써주고 있었다. 붓 글씨를 쓰고 있는 도중 남자들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으며, 신촌리의 김아연씨가 도착해 풍물 칠 준비를 하 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서서히 모이자 심규만씨는 이종영씨에게 장구치고 꽹매기 칠사람 나오라고혀. 사람들 많이 모 이고. 비디오 촬영한다고 히야 하며 방송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나오게 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종영씨가 마이크를 들고 9시부터 탑제를 시작하니 속히 마을회관으로 나오라는 탑제 안내 방송을 했다. 오늘은 정월대보름 탑제를 지내는 날입니다. 지금 탑제를 지내기 위해서 준비가 다 되어 있으니 부락 주민들께서는 많이 참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정월대보름 탑제를 모시는 날입니다. 부락의 액운을 때우기 위해서 탑제를 지내는 날이니 만큼 부락어른들께서는 지금 방송을 들으시는 데로 속히 마을회관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탑네 지낼 준비가 다 되어 있어서 9시부터 탑제를 지낼 예정이오니 방송을 들으신 데로 마을회관으로 속히 좀 나와 주시면 고맙겠습니 다. 이상 안내말씀 드렸습니다. 이씨의 탑제 안내 방송이 끝나자 1반 반장 김용태 씨는 반장들 다 나오라고 해야지 하고, 심규만씨는 크 게 해야지 크게 하며 이씨를 나무랬다. 이씨는 마이크에 대고 하는데 뭐 크게 하느냐고 심씨에게 대꾸를 했 다. 이씨는 저 양반 마이크만 잡으면 혈압이 올라 가꼬 죽을까 무서워 겁난다 며 행정중심복합도시 원천반 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심씨가 몇 일전 군수면담 자리에서 소리를 질러 쓰러질 번한 일을 두고 하는 얘기다. 심씨는 행정도시 찬성하는 얘기만 나오면 확 뒤집힌다 며 군수가 계속해서 행정중심복합도시 찬성하는 얘 기를 하니까 성질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고 설명하며, 그 날 하도 소리를 질러 집에 와서 잠을 못 잤다고 이 야기를 했다. 마침 이때 민속학자라고 하는 씨가 마을회관에 도착해 이 광경을 보고 태극기 밑에 투쟁! 생존권 사수 라고 적힌 머리띠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씨는 이 사진 한 장이 여기의 현실을 상징하는 것 같아 사진을 찍 제4장 신앙생활 131
17 는다는 얘기를 했다. 씨는 마을 분들이 여기를 다 떠나게 되고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와 자기가 이곳에 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으면 이 사진을 보면서 회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자, 심규만씨는 우리 마을은 원천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잘라 말했다. 방송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회관으로 모이기 시작하고, 이장 이국환씨는 시루떡과 어제 장을 봐온 제수 물 품을 챙겨 차에 실었다. 아침 8시 50분에 풍물패가 마을회관 남성 노인방에서 가락을 잠시 맞춰 본 후 마을 회관 앞에서 가락을 울리며 탑으로 출발하였다. 220 가락 맞추기 221 1탑으로 출발 11탑탑제 풍물패를 앞세우며 탑제 행렬은 1탑으로 향했다. 1탑으로 가는 도중 김용해씨의 축사 앞을 지나 던 중 풍 물소리에 소들이 놀라 잠시 풍물을 멈추고 축사를 통과한 다음 다시 풍물을 울리며 1탑이 있는 서낭댕이 고개로 올라갔다. 풍물패가 고개로 올라가고 있는 사이, 제관인 이국환씨는 제수를 차에 실어 먼저 1탑에 올라가 진설을 시 작하고 있었다. 이씨는 먼저 차에서 상을 꺼내 탑 앞에 놓았다. 상은 제수를 올려 놓을 큰 상과 술과 향불을 올려놓을 작은 상을 놓았다. 이씨가 상을 꺼내 놓은 도중 풍물패가 탑 앞에까지 와서 풍장을 치고 있었으며, 심규만씨와 심규철씨가 이씨를 도와 진설을 거들었다. 제상의 진설은 먼저 쌀이 담긴 대접을 올려놓아 밤새 워 켜놓은 촛불을 가운에 세우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다음으로 시루떡을 상위에 올리고, 그 위에 명태 2마리 를 동쪽으로 향하게 해서 올려놓았다. 이국환씨는 그릇을 여러 개 꺼내 그 위에 대추, 밤, 곶감, 사과, 배를 순서대로 제상에 올려놓으면서 진설을 마무리 하였다. 진설을 마무리 하고 향에 불을 피운 시간은 오전 9시 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탑제는 제관이 향불을 불을 피우면서 시작되었다. 축관인 심규만씨는 제관 옆에 앉아 먼저 제관인 이국한 씨에게 술을 조금 따랐다. 축관인 심씨는 잔을 가셔야지 하면서 술을 제관에게 주었고, 제관은 이것을 잔 에 조금 받아 흔든 다음 탑에 붙여놓은 부적 天 下 大 將 軍 에 술을 가셨다. 술을 가신 후 잔을 상위에 올리고 제관은 홀로 재배하였다. 재배 후 축관은 다시 제관에서 술을 따랐으며, 제관은 이것을 받아 제상에 놓았다. 축관의 축문이 시작되었다. 13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8 탑제축문 유세차 병술정월 무오사 십오일 임신유학 심규만 감소고우 석탑지신 금의석교리 이장 이국환 공수 고 대궐상 보호차첩 권립천년 인물번화 오곡풍양 가축첨착 삼재팔난 관재소멸 석교리 동민 일심기원 근위 주관 경신현언 흥향 축문 읽기가 끝나자 제관과 축관은 재배했다. 재배를 한 다음 첨작을 했는데, 첨작은 단작으로 하였다. 축 관이 제관에게 술을 따라 주고 제관은 이것을 받아 술잔에 첨작하였다. 첨작을 한 후 축관은 제상 옆에 비닐 봉투에서 소지 종이를 꺼내 소지를 올렸다. 심재철씨는 징을 들어 소지가 끝남과 동시에 징 하고 힘껏 징 을 쳤다. 마지막 소지에 징은 세 번을 크게 울렸다. 소지는 석장을 올렸으며, 축관이 소지 종이 하나를 올릴 때마다 각기 다른 축원을 하며 소를 했다. 이 소지는 다른 소지가 아니오라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부락 일년 안에 삼백육십오일을 지 낼수록 온 동민이 소원성취하시고 건강하게 해주시오 징 이 소지는 다른 소지가 아니오라 충청남도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동민들이 농사를 잘 짓게 하여 주 옵시고 모든 가축들이 일년 365 지나도록 모든 일이 소원성취하게 해주십사 소지를 올립니다. 징 이 소지는 다른 소지가 아니오라 우리 부락에서 자라나서 객지로 나간 출향인사들이 일년 365 일을 아무일 없게 해주도록 하여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해주십시오 징 징 징 소지 태우는 것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축관에게 행정수도나 못 오게 막아줬으면 좋겠어 잘 올라간다 고 하며 축관에게 당부를 했다. 소지가 끝난 다음에는 음복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음복을 하며 옛날 같으면 절 만 끝나면 떡 날라갔지 하며 예전에 제사가 끝나고 시루떡 음복이 치열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웃었다. 또한 (탑제)떡을 먹어야 1년 재수 있다는 거여. 예방으로 떡 쪼그만 먹는겨 하며 조사자에게 음복을 권하기도 했다. 이종영씨는 시루를 손에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시루떡을 나눠줬다. 1탑에서 제사를 지내고 음복까지 마 친 시간은 9시 30분 이었다. 다시 풍물패들이 악기를 들고 가락을 울리기 시작했다. 탑제 행렬은 2탑으로 향했다 탑에 도착한 탑제 행렬 223 진설하는 모습 제4장 신앙생활 133
19 명태 머리를 동쪽으로 놓는 모습 225 진설이 끝난 모습 226 향에 불을 붙이는 제관 227 축문을 읽고 있는 축관 228 소지를 태우고 있는 모습 229 제가 끝나고 시루떡을 나누어 주는 이종영씨 13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0 22탑탑제 탑제 행렬이 2탑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35분이었다. 제수 물품을 실은 제관의 차량이 풍물패와 함께 2 탑에 도착하게 되면서 진설은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 제관은 차에서 먼저 상과 향불을 꺼내고 돗자리를 가 져와 탑 앞에 깔았다. 심규태(1936년생, 남)씨는 제관의 차에 실린 바구니를 날라 제상에 진설을 도왔다. 김 철식씨는 1탑 제사 때 쓴 동동주를 가지고 다니다 2탑 앞에 가져다 놓았다. 제상에 진설이 다 끝난 다음 제관 은 향에 불을 붙이면서 탑제를 시작하였다. 2탑제의 순서는 1탑과 동일하게 진행이 되었다. 2탑 탑제는 마을 사람들이 더 참여를 하였는데, 2탑이 마을 안에 있어서 풍물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2탑 제사에는 마을 최고령 노인인 김재원(1920년생, 남)씨가 참석해 탑제를 지켜보기도 했다. 심규봉(1947년생, 남)씨의 경우에는 카메라를 들고 나와 탑제 과정을 촬영하였는데, 올 한해 동안 중요한 일들은 계속 사진으 로 남겨놓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탑의 탑제는 오전 9시 50분이 넘어 끝이 났다. 2탑에 모인 사람들 은 모두 음복을 하고, 풍물패를 따라 3탑으로 걸어갔다 탑 진설 231 음복을 하는 마을 사람들 232 3탑으로 탑제 행렬 출발 233 풍물패를 따라가는 마을 사람들 제4장 신앙생활 135
21 33탑탑제 3탑 탑제는 오전 10시에 시작하였다. 3탑 탑제에는 마을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서 참여를 하였는데 3탑 뒤 에 사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그 수가 많이 늘어난 것이다. 3탑 탑제는 촬영팀의 요청에 의해 연출 이 진행이 되었는데, 촬영팀은 옛날 방식으로 탑제 과정을 해보자고 하며 제수를 지게로 가져 올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제관은 지게를 준비해 지게에 제물을 싣고 3탑으로 걸어가 탑 앞에 지게를 놓고 제수를 진설했다. 3탑 탑제의 진행은 1탑, 2탑과 동일하게 진행이 되었으며, 축관의 소지 축문은 조금씩 다르게 구술 되었 다. 마을 사람들은 심씨에게 행정수도 꼭 오지 말라고 하라니까 계속 잊어버리는 겨. 여기 원탑에서 행정중 심복합도시를 막아달라고 하고, 토지공사 절대 못오게 해달라 며 심씨에게 소지 축원을 부탁했다. 하지만 축관인 심씨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오지 말게 해달라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에도 그런 소리는 안하는겨 하며 마을의 안녕, 나라의 안녕, 출향인사들의 안녕을 비는 축원을 되풀이 했다. 이 소지는 다른 소지가 아니오라 나라가 편해야 백성이 잘되고 나라가 편하게 하여주시어 백성들이 국태민안하기를 바라옵니다 징 이 소지는 다른소지가 아니오라 이 동네 주민들이 다 편하게 하고 출향인사들하고 자손들이 다 잘되 게 하여주기를 바라면서 소지를 올립니다. 석탑지신께서 잘 봐주시기를 바랍니다. 징 이소지는 다른 소지가 아니오라 우리 동네에서 객지로 나간 사람들이 잘 되게 하여주옵소서 징징징 3탑 탑제가 끝나고 바로 옆에 4탑에도 제를 올렸는데, 여기에는 제관과 축관이 제를 올리지 않고 이종남 (1947년생, 남)씨만 개인적으로 술을 올리는 것으로 끝이났다. 이 4탑에는 탑제 전날 天 下 大 將 軍 부적과 왼새끼를 꼬아서 달아 두었을 뿐 탑제 당일 마을 공동의 제사는 하지 않았다. 3탑 탑제가 음복을 하며 끝이나고, 마을 사람들은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마을 회관에 모여 남자들은 방에 서 잠시 휴식을 취했으며, 여자들은 주방에서 다과준비를 하였다. 다과 음식은 두부와 제사를 지내고 남은 과일이었다 탑 진설 235 향에 불을 켜는 제관 13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2 축문을 읽고 있는 축관 237 제관, 축관 재배 238 술올리기 239 첨작 240 소지 241 소지의 끝에 울리는 징 제4장 신앙생활 137
23 4 지신밟기 탑제를 마치고 마을 사람들은 지신밟기 준비를 했다. 탑제 때 풍물을 쳤던 마을 사람들은 다시 풍물을 들 고 회관 앞에 나와 가락을 맞추기 시작했다. 먼저 풍물패는 이장인 이국한씨 집으로 향했다. 노인회관에 있던 남자들이 다 나와 풍물패를 따랐다. 집에 있던 이국한 이장은 집으로 들어오는 풍물 소리를 듣고, 먼저 마당에 상을 가져다 놓았다. 상위에는 솥단지에 쌀을 담아 가운데 초를 꼽아 놓고, 그 앞으로 청수물 을 올렸다. 마당에 도착한 풍물패는 먼저 마당에서 가락을 한 참 친 후, 집을 한 바퀴 돌아야지 하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에 먼저 수돗가로 가서 가락을 치기 시작했다. 수돗가에서 한 참을 치다가 상쇠 김아연씨는 뚫어라 뚫 어라 물구녁만 뚫어라(개개갱 개개갱 개개개개 개개갱) 하고 외치며, 수돗가 앞에서 신나게 가락을 울렸다. 마을 사람들이 집을 한 바퀴 계속 돌라고 하자, 풍물을 치던 이종영씨는 이 집은 돌을 수가 없다 며 수돗가 만 돌고 마당으로 가라고 상쇠 김아연씨에게 소리를 질렀다. 마당으로 풍물패가 다시 오자, 이국한씨는 상 앞에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재배하고, 청수물 밑 에 돈을 3만원 눌러놓았다. 이씨의 재배가 끝나자, 심규만씨는 이씨의 부인을 가리키며 현미 애미가 있구 나. 오늘 돈 좀 나오게 생겼구나. 이장네집 부자 되라고 우리가 온겨 하며 절을 하라고 소리쳤다. 이씨의 부 인도 나와서 절을 올렸으며, 부인은 3번 절을 하였다. 부인 역시 돈을 청수물 밑에 꽂았으며, 절이 끝나자 이종영씨는 상쇠 김아현씨에게 계속 쳐 계속 쳐야 돈이 나오지 하며 악기를 치라고 하고, 김아연씨는 가락 을 다시 울렸다. 풍물패들은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풍물패의 반주에 노인회장 심규만씨가 굿거리 가락에 맞추어 소리를 했다. 풍물패들이 집의 지덕을 잘 눌러 이장 집이 부자가 되고, 이장 집이 부자가 돼야 우리 부락 이 잘 산다는 축원 덕담이었다. 계룡산 정기가 뚝떨어져서. 괴화산이 탄생하고 괴화산이 정기가 뚝떨어져서 어디 간줄을 몰랐더니 요런 명당이 생겼구나. 천지 갱매갱. 꾹꾹 눌러라. 이 터전이 어떤 터전이냐. 이씨 양녕대군에 13대 제 종가 제종가에 터전이라. 나갈적에는 빈발이요 들어올 적에는 찬발이라 갱매갱. 봉황이 집을 짓고 나 래를 탁탁치며 ---- 우리 이장이 부자돼야 우리 부락이 잘사느니라 갱매 갱매갱. 눌러라 눌러 이 터전을 눌러라. 꽹매갱 꽹매깽 심규만씨의 소리가 끝나자 마을 사람들은 노인회장님 반신이 들렸고만 그랴 하며 소리를 잘 한다고 연 신 칭찬을 해댔다. 심씨는 이장을 보고 형님 안같은가 하면서 예전 이장의 아버지하고 이국한 이장이 영낙없이 닮았다 며 다시 한 번 사람들과 웃음을 터트렸다. 소리가 끝나고 이국한씨 부인이 찌개와 술을 상으로 내왔으며, 풍물패와 마을 사람들은 한참을 웃고 떠들며 술을 마시며 놀았다. 지신밟기는 이국한씨 집만 하고 끝났으며, 이씨의 집 지신밟기가 끝나고 마을 사람들은회관으로 다시 모 였다.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저녁에 있을 봉화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13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4 집으로 들어오는 풍물패 243 수돗가에서 지신밟기 244 절을 하고 돈을 그릇 밑에 꽂는 모습 245 상위에 올려진 쌀과 청수물 246 축원 비나리를 하는 심규만 노인회장 247 술과 안주를 먹는 마을 사람들 제4장 신앙생활 139
25 248 술상에 올라온 김나는 김치 찌게 249 집에서 나오는 풍물패 3) 산신제 산신제는 매년 음력으로 시월 초하루에 지낸다. 산신제가 생긴 이후로 해마다 거르지 않고 마을 사람들은 제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 비해 산신제를 지내는 과정에서 금기는 많이 사라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산신제 를 여전히 중요한 마을의 행사로 인식한다. 석교리 뿐만 아니라 괴화산 산신제는 괴화산 밑에 있는 다섯 마 을이 예전부터 지내왔으며, 현재는 네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1) 괴화산과 산신제 괴화산 산신제는 다섯마을에서 지내왔다. 괴화산 아래에는 다섯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다섯 마을은 반곡리, 석교리, 장재리, 석삼1리, 석삼2리이다. 이 다섯 마을 중 현재는 4개 마을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 데, 장재리의 경우 10여 년 전부터 산신제를 지내지 않는다. 현재 4개 마을이 같은 날인 음력 시월 초하루에 지내고 있으며, 시간은 각각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반곡리와 석교리의 경우 저녁에 제를 지내고 있으며, 석 삼 1리와 2리의 경우 아침과 오후에 제를 지내고 있다. 석삼 1리의 경우 2005년 산신제 당일 토지공사의 실사가 있어, 아침 8시 경에 급하게 산신제를 지내는 것 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의 이장이 교회를 다니고 있고, 마을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과는 다르기 때문에 형식적 으로 제가 진행된 것도 있지만, 토지공사의 실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큰 것이어서 마을의 산신제는 더욱 간 소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이 마을의 산신제는 밤늦게 시작되었다고 하나, 점차 의미가 퇴색하면 서 시간이 점차 오후로 옮겨졌으며, 2005년 산신제는 토지공사의 실사문제로 인해 더욱 간소하게 제가 진행 되는 모습을 보였다. 2005년 석교리와 반곡리의 경우는 저녁 늦게 산신제를 지냈는데, 두 마을 다 통돼지를 잡아 제를 지내고 다 음날 마을 잔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석교리의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 반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이런 상황일수록 마을 제를 더욱 엄숙하게 지내야 한다는 마을 사람들의 의지 가 강했다. 14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6 (2) 석교리 산제당의 위치 산제당은 괴화산 동남쪽 중턱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산제당 밑으로는 무속인 사찰인 태국사와 대불사가 있고, 그 아래로는 홍뜸이 자리잡고 있다. 산제당은 지리적으로 산제당 바로 위에 바위가 있어 바람을 막고, 양 옆으로는 골자기 능선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어 안정감을 준다. 현재의 산제당이 건립된 시기는 1970년대 초기이다. 당시 마을에 홍뜸(1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현재 의 산제당 건물을 지었다. 1반 사람들은 마을에서 건립자금과 개인 인건비를 받아서 산제당을 지었다고 하 는데, 그 이전의 흙벽돌 건물로 돼있던 것을 개보수 했다. 산제당 옆에 흙이 좋아서 그 흙을 찍어서 올리고 새마을사업 지원물품이었던 시멘트를 흙벽돌 위에 메웠다. 지붕은 두 차례 보수를 했는데, 1970년대 초기에 기와로 올렸던 것을 슬레이트로 바꾸고, 1990년대 초기에 다시 한 번 슬레이트를 올렸다. 산제당의 구성은 제를 지내는 제실과 시루떡을 찌고 제수음식을 준비하는 부엌으로 나뉜다. 제실은 통돼 지를 제물로 올리고 어른 2사람이 들어가면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로 비좁다. 부엌 또한 마찬가지로 고양주 (제를 준비하는 사람) 1사람 정도가 시루떡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크기이다. 250 산제당 정면 251 산제당 측면 흙벽돌로 만들었던 산제당이 없었을 때에는 건물이 따로 없고 산제당 뒤편의 바위를 파내고 들어가 제를 지냈다고 한다. 윗말에 심규만씨는 자신이 어려서 어른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른들이 그때 급하니께 집을 못 짓고 그때 옛날에 밀대로 만든 밀대 방석이라는 것이 있어. 천궁 밀 대집으로 맨든. 그걸 가지고 가서 뺑둘러 놓고 촛불켜놓고서. 지붕은 없고. 거기 가보면 산신당 있는 디 가보면 큰 바위가 있어. 큰 바위기 이렇게 그 밑이 파고서. 거기서. 그 밑에서 지냈다는 거여. 우리가 어 렸을 때 보니까 돌막으로 흙을 묻혀가지고 돌담으로 이렇게 졌어. 집을 해올린 산제당이 있었어. 보기 도 무서워 우리 어렷을 때 보면은. 제4장 신앙생활 141
27 (3) 제관선정 석교리 산신제의 제관은 축관과 고양주로 나뉜다. 축관은 축문을 준비하고 산신제를 주관하며, 고양주는 산신제에 필요한 모든 실무적인 준비를 한다. 마을에서는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산신제에 앞서 제관과 축 관은 생기 복덕을 가려서 운에 닿는 사람으로 뽑았다. 하지만 갈수록 마을 인구가 고령화되면서 산신제의 축관과 제관을 뽑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고양주의 경우 산신제 당일 통돼지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제당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고양주가 노인으로 뽑혔을 경우 이러한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생기 복덕을 가려가면서 제관을 선정하는 절차에 변화가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2000년대 초반부터는 마을 이장단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마을 이장과 각 반(1~4반)의 반장이 산신제를 주관하게 되었다. 1990년대 말까지 지켜지던 제관선정과 산신제 준비 과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관 선정은 음력 시월 초 하루를 기점으로 3일 전에 이루어진다. 제관은 생기 복덕과 일진이 좋은 사람으로 선정된다. 산신제 3일 전 에 마을 회관에 동네의 어른들이 모여 갑자를 보며 적합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게 된다. 이렇게 선택된 축관과 고양주는 3일 전부터 목욕재계를 한다. 고양주는 할일이 많은데 산신데 3일전에 산제당에 올라가 청 소를 하며 문에 창호지를 바른다. 그 다음날 해가 넘어갈 즈음에는 산제당 아래에 있는 우물을 파놓는다. 또한 산신제 3일 전부터 제관의 대문(삽작) 앞에 양 옆으로 세 군데에 황토 흙을 갖다놓아야 하는데, 이는 부 정한 사람은 들어오지 말아야한다는 주의를 의미한다. 또한 이장은 3일 동안 동네에 방송을 한다. 10월 1일이 산제날이니 육식을 하지 말고 비린 것을 먹지 말며 살생을 하지 마라 는 내용을 방송하며 산신제를 환기시킨다. (4) 산신제의 진행과 변화 음력으로 시월 초하루가 되면 제관으로 선정된 축관과 고양주는 해가 넘어가면 제물을 가지고 산제당으 로 올라간다. 중심 제물은 마을에서 직접 잡은 통돼지이며 돼지를 2 3사람(축관, 고양주, 이장)이 교대로 지게에 짊어지고 산제당으로 올라가 놓는다. 그 후 명태, 떡, 사과, 배, 대추, 밤, 감을 산제당 제단 위에 진설한다. 떡은 쌀 한되서홉(세홉) 을 빻아 와 백설기를 만들고 고물을 넣지 않는다. 집사는 우물을 파놓은 물로 불을 떼어 시루에 백설기를 찐다. 명 태는 눈이 달렸고 깨끗한 것으로 두 마리 준비하고, 시루 꼭지에다 명태를 꼽아 꼬리가 밑으로 가게 한다. 떡 시루는 옛날에 사용하던 납작접시(백자로 만든) 를 사용하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시루가 조선시대부터 전 해오는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축관은 진설하고 나서 산제당 아래에 산 날맹이 에 내려와서 마짐시루를 떠다 놓으시오 라며 동네사람 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이 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들은 떡을 각자 집안의 젯상에 갖다 놓고 제사를 지낼 수 있다. 산제당에 맨 먼저 떡을 진설할 수 있는 것이다. 축관은 산날맹이 에서 외친 후 다시 산제상으로 올라 간다. 산제당에 진설해놓은 젯상으로 다가가 빌기 시작한다. 비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날이 세도록 비 는 것이다. 주로 축관은 자손 잘되게 뜻대로 잘되게 해주십시오 라며 동네 주민들에게 축원 덕담을 한다. 또한 축관은 마을 사람의 이름이 적힌 소지(소지종이)를 일일이 챙겨 가지고 올라가 태운다. 일일이 동네 가구주를 불러가며 격식을 갖추지 않고 축사와 집사가 교대로 아무것이 집이 잘되게 해주십시오, 올해 농사 잘되게 해주십시오, 길거리 재난 당하지 않고 잘 살게 해주십시오, 우리 부락에 나가 있는 자손들 잘 크게, 공부 잘하게 해주십시오 등등의 축원 덕담을 한다. 제관과 축관은 이날 잠을 자서도 안 되고 담배를 피워서도 안 된다. 새벽닭이 우는 시간이 되서야 축관과 14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8 고양주는 마을로 내려오게 된다. 돼지를 지게에 메고 내려온다. 아침에는 돼지를 동네 사람들에게 한 근이 나 반근씩 나눈다. 돈을 받고 골고루 나누어준다. 그 돈은 마을 기금으로 쓴다. 그 날 오후에는 마을총회를 열어 산제에 들어가는 경비, 운영, 앞으로의 일들을 얘기한다. 총회를 수시로 하지만 산제를 마치고 하는 총 회는 마을의 가장 큰 총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2000년 즈음부터 산신제는 많은 변화를 하게 된다. 이때부터 마을에서는 제관을 선정하지 못하였다. 갈수 록 마을의 인구가 고령화 되면서 축관과 고양주를 선정해 제를 지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통돼지를 고양주와 축관이 함께 산제당으로 가져가야 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제가 끝나고 다시 통돼지와 제물을 가지고 산으로 내려오는 일은 젊은 사람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마을에서 는 제관을 따로 선정하지 않고, 이장과 각 반의 반장들이 맡아서 진행을 하게 되었다. 4) 더불어 제관이 지키 던 금기도 많이 약화가 되어, 제관의 집 앞에 뿌려놓던 황토 흙을 더 이상 뿌리지 않게 되었다. 또한 제를 지낼 때 담배를 피우지 않고, 다음 날 새벽까지 농사 얘기만 하던 금기들이 약화가 되었다 년에는 산신제에는 행정중심복합도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했다. 제는 새벽 1시경에 끝이 났다. 2005년 산신제 일시 : 2005년 11월 2일(음력 시월 초하루) 장소 : 괴화산 산제당, 석교리 일원 252 산제당 주변 정리 253 제기를 깨끗이 닦는 모습 4) 5~6년 전부터 통돼지는 경운기를 통해 산제당까지 운반하고 있다. 각 반장들이 경운기 뒤에 타 돼지 다리 하나씩을 잡고 올라간다. 2005년 산신제에는 경운기를 사용하지 않고 4륜구동 트럭으로 산제당 중턱까지 올라가 거기서부터 김용태(1947년생, 남)씨가 통 돼지를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제4장 신앙생활 143
29 샘에서 제기 등을 닦는 모습 255, 256 산제당 청소 257 청소가 끝난후 다시 자리를 깐다. 258 산제당의 부엌 내부 259 주변정리가 끝난후 음료를 나눠 마시는 주민들 14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30 ~262 제물 구입 263~265 산제당 문종이 바르기 제4장 신앙생활 145
31 떡을 찔 시루를 준비 267 쌀가루를 시루에 붓는다. 268 시루번을 붙이고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269 산제당 주변에 불을 밝히는 모습 270 통돼지를 젯상에 올려 놓은 모습 271 통돼지와 제물을 올려 놓은 모습 14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32 마을회관에서 모인 주민들 273 음복 상차림을 위해 준비중인 여자주민들 274 국솥에 끓여내는 고기국물 275, 276 음복하는 주민들 제4장 신앙생활 147
33 (5) 산신제 금기와 변화 산신제를 앞두고서 마을이 매우 엄숙했으며, 금기 또한 엄격하게 지켜졌다. 먼저 부정을 탄 사람은 산제 를 지낼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부정은 다음과 같다. 마을 사람들은 산제를 기점으로 3일 전에는 비린 것을 먹지 않고, 살생을 금하고 또한 죽은 짐승을 보지도 않았다. 심규만씨는 예전에 산제 3일전에는 김치를 담더라도 새우젓을 빼고 담았다고 한다. 그리고 산신제 전에는 사돈이 와도 닭을 잡지 않을 정도로 살생을 엄하게 금지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산신제 제관으로 선출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부인이 생리를 하는 것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아예 젊은 사람들은 제관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다. 또한 젊은 여자가 아기를 낳는 것도 부정한 것 으로 생각하였다. 산제당에 대한 관리도 철저했는데 산신제 지낼 때는 산제당 부근에 소나, 돼지 등이 접근하면 부정탄다고 하여 짐승을 단속했다. 한편 마을에 초상이 있으면 산신제를 미루어 부정을 가린 다음 지내고, 개인이 초상 집을 다녀오면 산신제에 참여할 수 없었다. 제관으로 뽑힌 사람들은 몸단속을 잘해야 했는데, 먼저 산신제 3일부터는 산제당 아래에 샘에 와서 목욕 재개를 해야 했다. 제관 집의 삽작(대문) 앞에는 황토 흙을 양옆으로 세군데에 뿌려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산제당에서 제를 지낼 때에는 담배를 피우지지 않고, 새벽까지 농사이야기만 하면서 마을 사람 들의 안녕을 기원했다. 마을 사람들의 경우 산신제 저녁에 시루떡 고사를 가정에서 지내는데, 산제당에서 진설이 끝나고 고양주가 산 날맹이로 내려와 마짐 시루를 떠다 놓으시오 하고 외치기 전에는 절대로 시루떡 고사를 지내지 않았다. 현재 이러한 금기들은 많이 약화가 된 상황인데, 특히 제관이 된 사람이 지켜야 했던 금기들이 과거에 비 되 었다. 5~6년 전부터 제관선정이 생기복덕을 가려 일진에 닿는 사람을 뽑혀 산신제 금기가 어느 정도 유지가 되었다고 하나, 이장과 반장이 산신제를 주관하게 되면서는 산신제를 유지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마을의 고령의 여성들은 산신제에 대한 영험함과 믿음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정타서 벌받은 이야기 마을에서는 산제당 옆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를 베어 불을 땐 사람이 눈을 한쪽 못쓰게 되었다 는 얘기가 마을에 전한다. 또한 10월 1일 산신제 당일 동네 사람 중 한명에게 산제에 쓰일 돼지를 짊어지고 가라고 제관이 지시를 하니 그 사람이 왜 하필 나보고 그 무거운 제물을 지고 가라고 시키냐 며 투덜거리며 욕설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 사람의 입이 돌아가 한참 고생을 한후정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산신제는 더욱 엄격한 금기와 위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4) 개발 상황에서 만들어진 마을 제의 (1) 봉화제의 시작과 진행 5) 봉화제는 마을의 정월 대보름 행사이다. 이번 봉화제는 노인회장 심규만씨의 제안에 의해서 시작되어, 정 월 대보름 탑제 전날부터 갑작스런 준비가 시작되었다. 봉화제를 처음 해보는 것이라 마을 사람들은 나무를 14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34 어떻게 세워야 할지, 얼 만큼의 크기로 봉화를 만들지에 대한 분분한 논의가 있었다. 심규만씨는 탑제 전날 봉화제 안내 방송을 하며, 그 의미를 설명하고 봉화를 태우며 올한해마을과개인 의 소원을 빌어보자고 하였다. 심씨는 방송에서 이번 해에는 마을 주민들이 바라는 것이 많을 것이라면서, 그러한 소망들을 종이에 적어 내일 봉화제에 태워보자고 하였다. 심씨를 비롯한 마을의 대표들은 봉화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마을에 젊은 사람인 노민영씨에게 아는 기자들을 연락해 취재를 해가라고 하는 등의 홍보 전략을 고민하기도 했다. 탑제 전날 마을의 젊은 남자들은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들에서는 깻때 를 가져와 봉화를 만들기 시작했 다. 회관 앞에서는 마을사람 몇명이 봉화제에 쓰일 동아줄을 꼬는 작업을 하였다. 봉화는 당일 오후에 만들 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소원을 종이에 적었다. 이번 봉화제를 하면서 마을의 대표들은 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로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마을 상황을 돌 파해보자 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 최대한 마을의 행사를 홍보하고자 하는 노력과 함께, 마을 내부적으로는 탑제를 어느 해보다 원칙적이고 활발하게 치러 봉화제로 그 기운을 이어가 마을에 활기와 단 합을 유도해보고자 하였다. 이러한 대표들의 노력은 대전에 있는 교회 아이들을 불러 봉화제를 할 때 깡통 돌리기 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언론사에서 올 것을 감안하고 최대한 활기찬 마을의 봉화 제 분위기를 만들어 보려고 한 것이다. 봉화제는 저녁 9시가 넘어서 끝났다. (2) 봉화제 만장에 담긴 의미 봉화제 당일 심규만 노인회장은 만장을 제작했 다. 만장은 봉화제에 행진에 사용되었으며, 봉화가 타오를 때 소지로 타올랐다. 만장에는 마을 사람들 의 이름과 마을 공동의 소원을 적어 놓았다. 만장의 한 가운데에 큰 글씨로 온 동네 사람들 소원 발원, 남북통일 반드시 온다 삼재팔난, 관재소멸 등 을 적었다. 또한 심씨는 마을 방송에서 특히 봉화제의 의미중 에 관재소멸 이라는 내용을 강조하였다. 심씨는 지 금 행정중심복합도시 상황이 관(정부)에서 우리에게 재해를 입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재해는 정부에서도 277 봉화제 만장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없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자고 했다. 이 관재소멸 이라는 글귀에는 지금 이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봉화제를 왜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가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개발은 정부가 가져오는 재해의 다른 이름이 었다. 이들이 기원하는 것은 지금처럼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마을 사람들의 바람이 마을 공동의 봉화제를 만들게 하였으며, 만장의 글귀에는 이러한 봉화제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5) 심규만씨는 봉화제 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보통 달집태우기 라고 하지만 심씨는 봉화제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행사의 의미 와 성격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였다. 제4장 신앙생활 149
35 봉화제의 진행 2월 11일 : 봉화제 전날 봉화제 준비는 2월 11일(음력 정월 열 나흗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봉화를 들깨대로 만들기로 하고, 봉화제 당일 오후부터 그 준비를 하기로 했다. 먼저 노인회장 심규만씨는 오후 1시에 마을 방송을 하였다. 내일 있을 탑제와 봉화제의 의미를 얘기하고, 개인적으로 바라는 소망을 적은 종이를 적어 서 내일 봉화에 태우자고 하였다. 마을 방송이 끝나고 심규만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러 가서 짚을 가져왔다. 심씨가 짚을 가져와 마을회 관 앞 길 바닥에 펼쳐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짚을 꼬기 시작했다. 짚을 꼬은 다음 구멍에 나무 막대기를 넣 고 한 사람이 그것을 잡고 돌리고, 다른 한 사람은 짚을 계속 이어주었다 짚준비 279 동아줄 꼬기 280 지켜보는 송지화씨 281 동아줄 2개를 하나로 합쳐꼬기 15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36 오후 4시가 되자 마을 사람들은 들깨대를 가지러 갔다. 심규봉씨, 김철식씨, 000씨가 트럭에 타고 밭 으로 갔다. 심규만 노인회장과 다른 마을 사람들은 내일 있을 탑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3탑에 금줄을 치 고 있는 도중에, 트럭을 타고 들깨 대를 가지러 가는 일행들을 만났다. 들깨대는 마을에서 농사를 많이 하 고 있어, 가장 흔하면서도 요긴하게 봉화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었다. 282 봉화제 땔감을 준비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 2월 12일 봉화제 당일 아침에 탑제를 마친 마을 사람들은 봉화제 준비로 부산했다.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각기 맡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마을에서 젊은 축에 속하는 이종남씨와 이승한씨는 봉화제에 사용할 깡통을 만 들고 있었다. 교회에서 아이들이 깡통돌리기를 하러 온다고 해서, 깡통을 그 전날부터 준비해 점심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오후 2시 부터는 마을 사람들이 들 깨대로 봉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제 미리 삼성천 공터에 가져다 둔 들깨대를 가지고 봉화를 만들었다. 283 깡통 만들기 그리고는 짚을 가져와서 공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 것은 봉화에 불을 피울 때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개인 가정에서는 소원을 담은 소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윗말의 심규철(1942년생, 남)씨는 마을회관에서 띠종이 위에 상용 사업 번창하여 소원 성취 望, 광용 짝을 주시옵소서 를 적었다. 아랫말의 홍아기(1930 년생, 여)씨도 직접 소원을 한지 종이 위에 적었다. 심규만 노인회장은 커다란 종이 위에 마을 공동의 소원을 적어 내려갔다. 284 마을 공동 소지 285 심규철씨 소지 286 홍아기씨 소지 제4장 신앙생활 151
37 저녁 6시 30분 정도가 되자 초등학생들을 태운 승합차가 마을회관 앞에 도착했다. 이 아이들은 교회에 다 니는 아이들로, 어제 석교리 앞에서 쥐불놀이를 하다가 봉화제 얘기를 듣고 오게 되었다. 봉화제 전날 심규 만 노인회장과 이국한 이장은 초등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사람에게 마을의 행사를 얘기하고 참여했으면 좋 겠다는 부탁을 하였다. 최대한 봉화제를 활기차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부탁을 한 것이다. 아이들은 마을 부 녀자들이 준비한 저녁을 마을회관에서 먹고 봉화제에 참여했다. 287 교회에서 온 아이들1 288 교회에서 온 아이들2 마을회관 앞에서 풍물이 울리기 시작했다. 태국사의 법사가 꽹과리를 잡고 풍물패를 이끌었다. 김용태씨 가 북을, 이종영씨가 장구를, 씨가 징을 잡았다. 풍물패는 마을을 한 번 돌았다. 마을을 돌면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풍물패가 아랫말 앞에 있는 삼성천 다리 앞에 서서 한참을 악기를 치며 사람들이 모이길 기 다렸다. 마을 사람들이 풍물패 주면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풍물패가 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앞에는 윗말의 씨가 만장을 들고 앞장을 섰다. 마을 사람들의 소원이 담긴 만장이 펄럭이며, 봉화 방향으로 걸어갔다. 봉화 앞에 풍물패가 도착하고, 마을 사람들이 봉화 주위에 둘러섰다. 풍물패는 봉화주위를 돌면서 가락을 울렸다. 심규만노인회장과 이국한 이장이 봉화 앞에 있는 짚 으로 만든 공을 들어 불을 붙인 후 봉화에 불을 지폈다. 심규만 노인회장은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 이 잘 되게 보살펴주십시오 하며 봉화를 바라보며 축원을 했다. 봉화에 불이 활활 타오르자 풍물패는 가락 을 더욱 크게 울렸다. 마을 사람들은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봉화가 다 꺼지고 난 다음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부녀회원들이 준비한 찌개와 술을 삼성천 다리 위에서 먹었다. 15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38 봉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풍물패 290 풍물패 291, 292 봉화제 행진 293 봉화에 불붙이기 제4장 신앙생활 153
39 294 타오르는 봉화 295 소원을 비는 마을 사람들 2. 무속 1) 석교리의 무속인 내력 석교리는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무속인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석교리에는 현재 총 5곳의 무속인 사찰 이 있어 일반적인 마을과 다르게 무속인의 집중 분포를 보인다. 무속인 사찰뿐만 아니라, 조계종에 속해 있 는 사찰이 있어 사월 초파일이 되면 인근 마을과 도외지에서 찾아오는 신자들로 마을은 활기를 띤다. 그래 서 인근마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석교리를 두고 무당이 많은 동네 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 사람들 또한 이러한 마을의 분위기를 전혀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우며, 자신들 또한 초파일 이나 백중과 같은 때에 마을에 살고 있는 보살들을 찾아가 연등을 달고 무사안일을 기원한다. 또한 일상적 으로 무속인들과 어울리면서 이들과 대화하고 생활하면서 무속이 신앙생활이라기보다는 마을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무속인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마을 사람 중의 하 나로 인식하고 있다. 아랫말에 살고있는 송정섭(1929년생, 여)씨에 의하면 마을로 시집오던 당시에 마을에 무당이 6명이 있었 다고 한다. 송씨는 이들을 선녀네 할머니(태산댁), 시알할머니, 동수네 할머니, 진산할머니, 옥환 15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40 네 할머니, 종덕이 어머니 라고 불렀다. 이들은 모두 신내림을 받아서 마을에서 무업을 행했다고 한다. 이 중 진산에서 시집온 진산할머니 가 가장 큰 굿을 했던 사람이었다. 이진산 할머니는 아픈 사람이 있을 때 굿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북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경을 읽고 앉은 굿을 했다. 현재 마을에서 무업을 하고 있는 사람은 총 5명이다. 5명 무속인의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 랫말에 수도사를 운영하는 배보살은 선녀네 할머니 가 시어머니이며,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2대째 무업을 하고 있다. 윗말에 위치한 석불암의 안기풍 법사는 마을에서 종덕어머니 라고 불리었던 어머니의 뒤를 이 어 무업을 하고 있다. 윗말에 위치한 태국사의 홍보살은 배보살과 6촌동서 사이로 배보살에게 내림굿을 받 아 무업을 하고 있다. 나머지 2명의 보살은 외지에서 유입된 사람이다. 마을 사람들은 석교리에 무속인이 많은 이유를 괴화산과 연관 짓고 있다. 괴화산을 영험한 산으로 믿고 산신제를 정성스럽게 지내온 마을 사람들은 괴화산이 계룡산과 마주보고 있어 더욱 영험한 기운이 산에 있 다고 믿는다. 그래서 무속인들이 괴화산 아래 석교리로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2) 무속인과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마을 사람들은 무속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마을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속인의 요란한 굿 소리에 도 불만이 없다. 오히려 이들이 굿을 보러가서 음식을 나누어 먹고 오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마을 사 람들은 새로운 무속인이 마을에 이주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는 다. 윗말에 사는 김용태(1947년생, 남)씨 는 이러한 마을의 분위기를 두고 교회는 반대해도 무당이 오는 것은 막지 않는다 고 이야기한다. 과거부터 마을에 무속인이 많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무속인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 을에 시집을 와서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행하는 것이 석교리 무속인의 특징이어서 마을 사람들은 더욱 이들 의 사정을 잘 알고 무업 활동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무속인과 마을 사람들은 거리감 없이 친 근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5명의 무속인 중 3명은 마을에서 살다가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행하고 있는 경우 이다. 수도사의 배보살과 태국사의 홍보살은 시집을 와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살다가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하고 있다. 홍보살의 경우는 무업을 하기 전 마을에서 부녀회장을 하기도 했다. 석불암의 안기 풍 법사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무업을 시작하고도 마을의 행사가 있으면 그전과 다름없이 참여해, 일상적으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린다. 석교리의 무속인은 마을의 평범한 일 원일 따름이다. 한편 외지에서 이주한 보살이 2명이 있는데, 이들 또한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 다. 마을 사람들과 겨울에는 회관에서 함께 점심을 해먹고, 화투를 치면서 일상적인 생활을한다. 그리고 큰 굿이 들어 왔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해 음식 준비를 부탁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이 하는 굿을 구경하기도 하고, 음식을 얻어먹고 오기도 한다. 제4장 신앙생활 155
41 마을 관광에 참여한 배보살과 마을 사람들 297 마을 관광에 참여한 홍보살과 마을 사람들 298 노인 잔치에서 노래를 부르는 조보살 299 석불암에 굿을 보러온 마을 사람들 3) 무속인과 무속시설 마을의 무속인은 2006년 4월까지 5명이 살고 있었다. 이 중 대불사의 조태진 보살이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인해 이주하게 되면서 현재는 4명이 살고 있다. 조태진 보살은 경남 상주로 이주하였으며, 이주 전 대불사 대웅전을 다른 사찰에 헌납하는 회향식을 가졌다. 다른 무속인들도 이주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는 입무과정, 석교리 정착과정, 무업활동 등을 통해 석교리 무속인의 내력을 살펴보고자 한다. 15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42 표10. 석교리 무속인의 특징 성명 사찰명 출생지/ 강신지 출생연도 신병유형 강신연령 입무방식 모시는 신 성장시 종교배경 무당인친지 배한순 (배보살) 수도사 충북 부강 /금남면 석교리 1930 정신적 신병 48세 내림굿 동자신 무속 시어머니 (선녀네 할머니) 홍숙자 (홍보살) 태국사 / 석교리 정신적 신병 43세 내림굿 미륵부처 기독교 6촌 동서 (배보살) 안기풍 (안법사) 석불암 / 석교리 정신적, 육체 적신병 동자신 무속 어머니 (종덕 어머니) 조태진 (조보살) 대불사 경북 선산 1940 정신적 신병 신내림 받지 않음 신내림 받지 않음 달마조사 무속 고모 최무진 (최보살) 금당사 1956 정신적 신병 내림굿 옥황상제 무속, 기독교 어머니 (1) 수도사 1 수도사 내력 수도사는 괴화산의 북서쪽의 비교적 산 높은 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부처님과 동자신을 모셔놓은 굿당 과 안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옥 뒷편에는 산신을 모셔놓은 제실이 있다. 굿은 주로 부처님과 동자신을 모 셔놓은 굿당에서 한다. 수도사는 배보살이 신내림을 받고 난 다음 밭으로 있던 땅에 건물을 지은 것이다. 배 보살 남편의 꿈에 지금의 수도사 위치에 법당을 지으라는 신몽을 받고 수도사를 짓게 되었다. 수도사는 배 보살이 거주하는 안방과 그 옆에 동자신과 부처님을 모셔놓은 굿 당으로 나뉘어 있다. 수도사의 배보살은 시어머니에 이어 석교리에서 2대째 무업을 이어오고 있다. 배보살의 시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에게 태산댁 과 선녀네 할머니 로 불리었다. 시어머니는 태산에서 시집을 왔으며, 큰손녀의 이름 이 선녀였다. 배보살은 48세에 신내림을 받았다. 당시는 병원이 많지않던 시절이라, 아픈 사람이 많이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병원이 생기면서 아픈 사람보다는 재수와 안녕을 기원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주로 정월과 시월 에 재수 굿 을 많이 하고 있으며, 4월 초파일과 백중에 마을 사람들과 인근 이웃마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2 배보살의 신내림 배보살의 고향은 선말(충청북도 부강면)이다. 배보살은 일제강점기에 보국대에 뽑히지 않기 위해 15살 어 린나이에 석교리로 시집을 오게 된다. 시집와서 배보살은 4~6마지기의 벼농사와 목화 농사를 지어 먹고 살 았다. 그때 당시 배보살은 신내림의 징조가 보이지 않았으며, 마을 사람들과 일상적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지냈다. 제4장 신앙생활 157
43 배보살이 신내림을 받은 것은 48세의 일로, 둘째 딸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신내림의 징조가 시작되 었다. 둘째 딸은 그때 당시 10대 후반 정도의 나이로 몇 달째 냉이 쏟아져 고생을 했다. 병원에서도 별다 른 치료를 할 수 없었다. 병원에 다녀도 둘째 딸의 몸 이 나을 기미가 없자 배보살은 어느 무속인에게 찾아 가 그 이유를 물었다. 무속인은 딸에게 신이 와서 그 러하며, 배보살이 신을 받지 않아 딸이 지금 고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보살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신내림을 받았다. 신내림을 받고 둘째 딸의 몸은 깨 끗하게 나았다. 300 수도사 앞 마당에서 배보살(우측) 배보살의 신내림은 공주에 사는 무속인에게 받았다. 내림굿은 배보살이 살 던 집 마당에서 했으며, 3시간 이 넘게 마당에 앉아 울면서 자신도 모르게 옛날에 고생하면서 살던 이야기를 쏟아냈다. 이를 지켜보던 마 을 사람들도 울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마을에서는 배보살의 신내림 굿을 한다고 해서 마을 사 람들이 와서 풍물을 쳐주었으며, 많은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배보살의 신내림 광경을 목격했다. 배보살은 슬하에 9남매를 두었다. 배보살은 신내림을 받지 않고 벼농사만 짓고 살았다면 9남매를 키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배보살은 현재 혼자 살고 있으며, 셋째 딸이 한 마을에 살고 있어 자주 왕래하고 있다. 현재는 나이가 들어 굿을 하지 못하는데, 굿이 생기면 대평리에 사는 법사를 굿당으로 불러 굿을 하고 있다. 배보살은 현재 77세의 나이로 무병을 조금씩 앓고 있다. 심장이 가쁘게 뛸 때가 많아 우황청심원을 상비 약으로 가지고 다닌다. 3 배보살 굿의 특징과 순서 배보살은 주로 정월달과 가을에 굿을 많이 한다. 5월과 6월은 액달이라고 해서 아픈 사람 아니면 굿을 잘 하지 않는다. 배보살이 주로 많이 하는 굿은 재수 굿과 병 굿이다. 배보살은 지랄병 이 난사람을두번고 쳤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지랄병이 와 엎어져 수도사를 찾았는데, 배보살이 굿을 해주고서 낫게 되었다. 그때 굿을 해서 나은 아이 한명이 결혼한다고 몇 달 전에 인사를 오기도 했다. 요즈음은 병원이 많이 생겨 이 러한 병굿보다는 재수굿을 많이 하고 있다. 배보살의 굿은 대략 순서가 정해져 있는데, 법당에서 굿을 할 때와 집에서 굿을 할 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법당에서 굿을 할 때는 산신제, 용왕제, 조왕제, 칠성제, 성주제, 조상제의 순서로 지낸다. 산신제는 법당 뒤 바위에서, 용왕제는 수도사 샘에서 지낸다. 그 다음 조왕제는 부엌에서, 칠성제는 장독에서 지낸다. 성주제 부터는 법당 안으로 들어와서 지내고 조상제를 지내게 된다. 일반 가정에서 할 때는 산신제와 용왕제를 따 로 지내지 않는다. 배보살이 사용하는 무구는 북, 꽹과리이다. 양 쪽 손에 하나씩을 들고 치면서 경을 읽는다. 대부분을 앉아 서 이렇게 경을 하면서 굿을 하는데, 굿머리의 마지막인 조상해원경을 할 때는 일어서서 경을 읽고 축원을 한다. 이때는 공수를 받아서 한다고 하는데, 조상의 신이 들어와서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이야기가 나온다. 15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44 북으로 하지. 장구칠종 모르고. 북하고 꽹매기 치고. 양짝 손에다 하나씩. 그리고 경을 읽는다. 부엌 에서도 앉아서. 우리 할때만. 다 앉아서 한다. 인제 끄트머리 조상 다 나갈때에는 서서하지. 조상 나갈 때서서. 남의조상온것다보낼라니께. 서서하는 것 그건 여간해 모를걸. 다 인제 공수받아서 하는겨. 어떻고 어떻고 너는 어떻고. 어떤 조상이 죽어서 어떻고 어떻게 나간다고 이렇게. 고맙다고 해줘서. 배보살은 친정 할머니와 시어머니 조상이 자신을 보살펴 준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서 배보살은 무업을 이어받았다. 한 마을에 살고있는 홍보살은 육촌동서 관계로 배보살이 신내림을 도와주었다. 배보살은 점을 잘 치는데, 점은 주로 엽전과 오방기로 한다. 배보살은 나 같이 원신이어야지 배워서 하는 건 소용없다 고한다. 엽전을 던지면 그 사람의 어떻다 하는 것을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오방기를 사 용하는데, 오방기를 집게 하면 나오는 기에 따라 그 사람의 운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배보살은 남색기와 파란 색기가 안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이 기를 잡으면 객신이 붙어있는 경우라고 한다. 그리고 빨강색기, 하얀색 기, 노란색기를 잡으면 운수가 좋다고 하는데, 빨간색기는 재수를 상징하고, 노란색은 조상인데 좋은 조상이 고, 하얀색기는 산신을 상징해 좋은 의미라고 한다. (점도 치나요?) 점치지. 엽전으로 한다. 다 나오지 어떻게 된다고. 그건 여간해 모를걸. 나같이 원신이 어야지 되지. 배워서 하는 건 소용없어. 점칠때는 엽전하고 오방기 남 새파랑 빨강, 하얀 것, 노란것. 빼 보면 알지 새파란 것 빼면 조상이고 객신이고. 뜬 객신. 빨강것은 재수. 노란것 잡으면 조상. 좋은 거고. 하얀것 잡으면 산신. 산신기라고 그것도 조상이 대감이라고 좋은 거여. 파란 것하고 남색이 안좋다. 남 색은 객신. 할 때 봐야 그것을 알지 그것 아나. 배보살의 경우 혼자 굿을 하기 힘들어 보통 둘씩 많이 하는데, 한 마을에 사는 홍보살과 더러 많이 했다 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조치원에 있는 법사와 굿을 함께 하고 있다. 배보살의 사월초파일 굿 2006년 5월 5일에는 수도사에 사월초파일 굿이 있었다. 조사자는 오후 2시부터 이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조사자가 수도사에 도착하니 반곡리 신도와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연등을 달고 있었다. 법당 안에는 조치원에서 온 법사가 축원을 하고 있었다. 법사는 북을 두드리면서 굿을 했는데, 북 위에는 절을 올리고 있는 신도의 가족관계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법사는 축원을 하는 중간에 이 가족들의 신상을 얘기하고 복을 빌었다. 법당 안에서 이루어지는 굿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신도가 법당에 들어오면 먼저 새로운 촛불을 꺼내 촛 불을 켰다. 배보살이 옆에서 술을 따라 주고 함께 도와준다. 신도는 공양하기 위해 가져온 과일, 떡 등을 부 처님 전에 올려놓는다. 그 다음에는 법사가 북을 두드리며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축원을 한다. 한 30분 정도 이렇게 축원을 하는데, 축원이 끝나고 법사는 신도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준다. 조상신이 법사에게 얘 기해 주는 것을 다시 법사는 신도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 차례의 굿이 끝나게 된다. 아침부터 찾아오는 신도마다 이렇게 제를 계속 지냈으며, 굿은 저녁까지 이어졌다. 제4장 신앙생활 159
45 굿 준비하기 302 향초에 불을 붙이는 신도 303 조치원에서온 법사와 신도 304 재수 음식을 나누어 주는 배보살1 305 마루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신도들 306 재수 음식을 나누어주는 배보살2 굿을 하고있는 중간에 마을 사람들이 연등을 달기 위해서 수도사에 찾아왔다. 아랫말에 사는 장은순(1933년 생, 여)씨가 연등을 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씨는 며칠 전부터 배보살에게 연등을 달아달라고 부탁을 했는 데, 연등이 걸려있지 않은 것을 보고는 배보살에게 안 좋은 소리를 했다. 장씨는 직접 자신의 가족 이름이 적힌 명암을 찾아서 연등을 달았다. 배보살은 장씨가 오고 나서부터 미리 부탁한 사람들의 연등을 찾아 달기 시작했다. 연등에 부착할 명함을 찾기 시작했다. 배보살은 따로 부탁을 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 것도 달아 주었는데, 국한네는 구장을 보니께 하나 달아주어야 한다 며 연등을 달았다. 배보살의 사월초파일 굿은 아침부터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졌다. 16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46 307 연등을 들고 있는 장은순씨 308 연등달기 (2) 태국사 태국사는 괴화산 산신을 모시고 있는 산제당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사는 홍보살이 운영하고 있다. 홍보살은 석교리로 시집을 오고 난 후 신 내림을 받았다. 43세에 신내림 받고 계룡산에서 수도를 하다 선몽 을 받고 석교리로 오게 되었다. 태국사가 세워진 자리는 원래 윗말에 살고 있는 심규만씨의 밭이었다. 홍보살은 미륵부처님이 꿈에 나타 나 절을 지으라는 계시를 듣고 태국사를 짓게 되었다. 또한 홍보살은 태국사가 있는 괴화산을 두고 영험이 깃든 산이라고 얘기한다. 괴화산은 청룡백호가 들어오는 명산이라고 믿고있다. 홍보살은 신내림을 받았지만 굿은 잘 안하는데, 자신은 조용히 빌어주는 일을 한다고 얘기한다. 주로 몸 이 아픈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홍보살은 이들의 아픈 곳을 짚어내고 그 원인을 상세하게 이야기 해준 다. 아픈 곳을 짚어 낼 때는 신이 몸에 들어와 그 사람의 가족 내력과 조상신의 이야기를 일러준다. 그런 다 음 몸이 좋아지는 처방을 일러준다. 1홍보살의신내림 홍보살은 석교리로 시집을 오기 전까지 교회를 다니며 새벽기도를 많이 했다. 석교리로 시집을 오고나서, 시어머니는 홍씨에게 교회를 다니지 말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몸이 아프면 경을 읽을 정도로, 무업만 안 했 을 따름이지 반 무당이나 다름없었다. 시집오고 얼마 후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홍씨에게 신이 오기 시 작했다. 홍씨의 남편도 몸이 아프다 죽었다. 홍씨에게 신이 오면서 집안은 이렇게 풍파가 나기 시작했다. 홍 씨도 계속 몸이 아파 약을 먹었다. 주위의 무당들은 홍씨가 신을 받지 않아 계속 몸이 아프고 풍파가 난 것이 라고하였다. 석교리에서 이미 무업을 하고 있던 수도사의 배보살이 홍보살을 보고 신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배보살은 홍씨의 시가로 6촌동서 사이다. 홍씨는 당시 심장병 증세를 보이며 사람만 봐도 무서웠다. 몸은 갈대처럼 말 라있었다. 홍보살은 빚을 얻어 신굿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신굿을 하고 나서 홍씨의 병세는 낫기 시작 했다. 당시 신굿은 배보살과 함께 장기면에 살던 최법사가 해줬다. 최법사는 현재 작고했는데, 홍보살은 최 법사와 배보살을 두고 말하자면 선생 이라고 했다. 홍보살이 신내림을 받고 1년 동안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믿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기 제4장 신앙생활 161
47 때문에 믿기가 힘들었다. 홍보살은 아픈 사람을 보면 그 증세를 알아맞히고 자신도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하면 그 사람이 나았다. 1년 정도 지나고서는 할아버지의 조화로 남을 살리는 월력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불 기도를 많이 하게 되었다. 지금도 1년에 한 번씩 홍보살은 내림굿을 받고 있다. 내림굿은 1년에 한번 저녁에 하게 되는데, 신령 대우 를 해주기 위해서이다. 자신이 신령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례를 1년에 한 번씩 제를 지내 고마움을 표현한다고 한다. 나도 지금 1년에 한번씩 내림굿을 해요. 하루 저녁 씩만 하지. 그래 인저 왜그러냐면 그게 대우를 신 령대우를 하는거야 말하자면. 내가 신령으로 벌어먹었으니까 누가 소개해주면 인사하듯이 내내 마찬가 지여. 신령도 인제 인사를 해서 대우를 하면서 벌어먹여야지 그냥 벌어먹으면 안 벌어져. 2 괴화산 선몽과 홍보살의 석교리 정착 홍보살은 신내림을 받고 석교리에 잠시 있다가, 꿈에 선몽을 받고 유성으로 이주한다. 유성에서 얼마 간 있다가 홍보살은 다시 석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는데, 괴화산 미륵부처의 선몽을 받고 석교리로 다시 오 게 된 것이다. 꿈에 미륵부처님이 나타나 괴화산 산줄기를 보여주었다. 돼지 열 마리가 홍보살을 아 다니면서 밟았 다. 미륵부처님이 내려 점점 더 가깝게 내려왔다. 홍보살은 동네 사람들한테 소리쳤다. 그 분은 하얀 소 복을 입은 미륵 보살이었다. 남미륵 보다 더 큰 미륵이 산 말랭이에서 내려온 것이다. 홍보살은 엎드려 기도를 했다. 미륵부처님이 얘기했다. 여기에 집을 짓고 살아라. 미륵부처님이 하늘에서 빙빙 돌아가며 계속 얘기했다. 산말랭이서 땅 속에서 산만큼 큰 미륵부처가 솟아나면서 나타난 것이다. 행정도시 들어 오기 전에도 꿈에 미륵보살이 나타났었다. 행정도시가 들어와도 너는 안 나가게 한다는 것이었다. 홍보 살은 미륵부처님의 계시대로 석교리는 행정도시 안 들어오게 빌고 있다. 이것이 나라를 위한 기도라고 생각한다. 괴화산은 청룡백호가 들어오는 산이다. 여기가 강을 둘러싼 터가 있다. 괴화산을 개발하고 까부시면 안 좋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기는 산부터 명산이다. 절이 암만 많아도 손님이 들어오는 곳 이다. 망했던 사람도 들어오면 좋은 터다. 홍보살은 괴화산을 두고 남한 일대에서 몇 안 되 는 명당이라고 이야기하며, 특히 괴화산은 산신줄보 다 미륵부처 줄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아픈 사 람이 오면 잘 낫는다고 한다. 홍보살은 병원에서 못 고친다고 하는 사람도 여기에 와서 자신이 일러준 처 방을 듣고 나은 사람이 많다고 했다. 홍보살이 얘기 하기를 나도 말허자면 일자무식인디 천상에서 호로 약줄을 받았다 고 자신의 신 줄을 이야기했다. 미륵 불의 약사 신 줄을 받은 이후 홍보살은 의사처럼 아 309 홍보살 16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48 픈 사람을 보면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귀신이 조화가 붙어 병이 잘 안 나으면 그걸 먼저 굿으로 걷어주고 약 처방을 해서 낫게 한다. 3 홍보살의 무업활동 홍보살의 경우 신도가 찾아오면 신도의 형편에 따라 복비를 받는다. 가난한 사람은 조금씩 받아 빌어주 고, 많은 사람은 그 형편대로 받는다. 언젠가 어떤 사람이 점을 보고 홍보살에게 찾아왔는데, 그 사람은 다른 곳에서 굿을 하는데 200만원이 든다고 얘기했다. 홍보살이 보니 그 사람은 다 죽게 생겼는데, 살펴보니 동토 가 걸린 것이었다. 홍보살은 그 사람에게 7만원만 가지고 오라고 했다. 당시 200만원이면 집을 한 채 살 정 도였다. 홍보살은 당시 7만원을 받고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 빌었다. 그날로 그 사람이 나았다고 한다. 홍보살에게 굿을 하고 나은 사람들이 소문을 내면서 아픈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보살에게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자식 일곱을 키우면서 홍보살은 때거리 가 없었을 때가 있었다. 신내림을 받고 무업 을 시작하고 7년 정도는 무료봉사 하다 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미륵부처님이 꿈에 찾아와 홍보살의 이 름을 부르며 홍숙자 복을 좀 주고 가야것다. 측은해서 복을 좀 줘야것다 하면서 그 다음부터 굳게(돈이 많 은) 손님들이 찾아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 빚을 갚고 자식들하고 먹고 살았다. 또 없는 사람들 은 그냥 차비를 대주고 돈이 없어 기도를 못한다 하는 사람은 기도비도 해주면서 살았다. 처음에 태국사 터 를 잡을 때도 외상 터 를 잡았었다. 현재 홍보살의 신도는 석교리 뿐만 아니라 대전, 유성, 서울 등지에서 찾아온다. 주로 몸이 아픈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홍보살은 아픈 사람들에게 처방을 해준다. 주로 민간치료와 비슷한 처방을 내리는데, 점술을 통해 그 사람의 안 좋은 곳을 말하고 처방한다. 주로 조상신이 어떻게 그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지를 많이 말 해주는데, 홍보살은 그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조상신들이 어떻게 그 사람에게 붙어있느냐에 다르다 고 한다. 아픈 사람의 고통이 단지 몸의 부작용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죽은 조상의 후생의 삶과 연관이 있다 고 이야기 한다. 4 조상신과 신도를 연결하는 중재자(혹은 상담자)로서의 역할 조사자는 2006년 7월 30일과 31일에 걸쳐 홍보살의 칠월칠석 재수굿을 볼 수 있었다. 매년 홍보살은 칠월 칠석 에 재수굿을 하는데, 이 굿은 찾아오는 신도들의 재수를 기원하는 내용을 가진다. 홍보살은 징을 두드 리고 경을 읽으며 신도 가정의 재수를 기원했다. 7월 30일(칠월칠석 전날)에는 찾아오는 신도들의 부정을 없애는 서낭제를 하고, 다음날에는 찾아 온 신도 들의 재수굿을 하였다. 재수굿 당일 오전에는 태국사 법당에서 홍보살이 신도 2명의 가택축원을 하며 재수굿을 하였다. 이들은 대전에서 왔는데, 1명은 태국사의 단골신도였고 1명은 단골신도를 따라 우연하게 온 경우였다. 홍보살은 경 을 읽으며 이 두 사람의 축원을 함께 해주고, 두 신도의 조상이 얘기해 주는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홍보살이 이 두 신도의 조상을 만나 조상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이것을 이들에게 얘기해주는 형식이었다. 이날 태국사에 처음 온 신도는 자신이 풀지 못하는 고민을 홍보살에게 털어놓았다. 그동안 말 못할 고민 으로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리다 우연한 기회에 태국사를 오게 되면서, 홍보살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다. 이 신도는 남편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은지 오래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는 가 제4장 신앙생활 163
49 족들에게도, 주위 아는 사람에게도 말 못할 고민이었다. 불공으로 이러한 것을 삭이고 있다가, 홍보살이 재 수 축원을 하면서 이러한 것을 신력으로 짚어내면서 자신의 고민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홍보살은 1시간 30분이 넘게 이 신도와 이야기를 하였다. 신도는 집안의 문제, 자식들의 진로, 남편과의 관계 문제를 상담하였다. 홍보살은 조상의 내력을 이야기하며 신도의 고민을 풀어 주려하였다. 홍보살은 신 도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신도는 자신의 어려움을 진솔하게 이야기하였다. 홍보살은 신도의 문제를 눈 에 보이지 않은 조상신의 내력으로 거슬러 올라가 신도에게 지금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을 이야기해주었다. 신도는 이러한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조사자는 석교리의 무속인을 만나며 정말 그들이 이야기하는 신의 세계가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 을 많이 가졌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일이니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속인을 만나면서 생각을 가다듬은 것은 무속인이 훌륭한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도들이 부담없이 찾아와 자 신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무속인은 이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과정 자체에 무속인의 큰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무속인이 신도에게 이야기해주는 관점이 현실의 문제를 보다 폭넓게 바라볼 수 있는 색다른 관점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현실의 문제를 조상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자신의 삶을 보다 근원적이고 폭넓게 돌아보게 하는 관점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칠월칠석 서낭제와 재수 굿을 보고 정리한 것으로, 재수 굿 부분에서는 홍보살과 신도의 대화를 그 대로 수록 정리하였다. 무속인과 신도가 어떠한 내용을 가지고 소통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 고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과 무속인의 역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가늠 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칠월칠석 서낭제 일시 : 2006년 7월 30일 장소 : 태국사 서낭당 조사자가 태국사 서낭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홍보살은 서낭 앞에 앉아 제수 음식을 놓고 있었다. 제수음식으로는 수수, 좁쌀, 쌀밥, 두부, 막걸리, 오곡잡곡이 놓였다. 홍보살이 얘기하는 제수 음식들은 하나 같이 부정을 풀어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수수는 집안의 나쁜 살을 제살하는 것이고, 좁쌀은 부정한 것과 상문 살을 풀고, 쌀밥은 서낭신이 먹고 재수를 달라는 것이고, 두부는 인간시비를 다 걷어 달라는 것이고, 막 걸리는 서낭 줄에 앉은 사람들 다 잡수고 도와달라고 비는 것이고, 오곡잡곡 볶은 것은 홍보살이 굿을 하고 뿌리고 싶은 데로 뿌려 제살을 하는 것이다. 제수음식을 놓은 서낭에는 태극기가 붙어 있었는데 홍보살은 이게 나라의 일을 관장하는 국사서낭이라고 했다. 예전 마을에 서낭당이 있을 때에는 서낭제를 마을 서낭당에서 지냈다. 하지만 홍보살이 이사 오고 얼 마 안 돼, 마을 서낭당이 없어지면서 태국사 앞에 있는 서낭에만 제를 올리고 있다. 홍보살은 마을에서 산신 제, 탑제를 지내거나 하는 큰 일이 있을 때 태국사 서낭 앞에서 축원을 해준다. 마을 서낭이 없어져 태국사 서낭 앞에서 마을의 일이 잘 풀리도록 축원을 한다. 이 날 서낭제 축원을 할 때도 국사서낭을 부른 다음에, 석교리 서낭을 불러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제수 음식 앞으로는 7개의 깃발과 부적이 있었다. 7개의 깃발은 겉에 태극기로 둘어싸여 있었다. 이에 대해 16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50 묻자 홍보살은 나는 천상에서 칠방기를 받았다 며 다른 사람은 5개의 깃발만 가지고 있는데 나는 7개를 가 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부적은 제사가 끝난 다음에 찢어버리려고 준비를 해놓았다. 부적을 펼쳐보니 여 러가지 무늬가 많았는데, 홍보살은 이게 백가지 살을 다 없애버리는 것이다 고 이야기했다 서낭에 향불을 꼽고 있는 홍보살 311 서낭제 진설 312 홍보살이 사용하는 칠방기 313 부적 314 국사서낭 깃발 315 수수밥 제수 음식과 깃발, 부적을 서낭 앞에 준비하고서 굿이 시작되었다. 서낭 바위 사이에 향불을 피워놓아 연 기가 자욱하게 올라갔다. 홍보살은 징을 들었다. 징을 치며 경을 읽었다. 징징징징~ 징징징징~ 하면서 서낭 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석교리 서낭신도 불렀다. 내일 재수굿이 있으니 여기 오는 신도들 부정 없게 해달라 고 축원을 하였다. 축원은 10분 정도 이어지다 징소리가 멈추었다. 홍보살은 부적을 찢었다. 옆에 검은 천이 있었는데, 꼬여 있 던 천을 이리 저리 흔들며 그 꼬여있는 고리를 풀어냈다. 풀어내면서 내일 굿이 잘 되게 해달라는 축원을 했다. 홍보살은 예전에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굿을 했는데 지금은 징으로만 하고 있다. 홍보살에 약사 신령이 제4장 신앙생활 165
51 316 막걸리를 올리는 홍보살 317 서낭제 경읽기 들어오면서 이 약사 신령은 홍보살에게 시끄럽게 굿 을 하지 말고 징만 울리면서 조용히 빌라고 하였다. 그래서 홍보살은 징만 가지고 대부분의 굿을 하고 있 으며, 법당에서는 주로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읽는다. 칠월칠석 재수굿 일시 : 2006년 7월 31일 장소 : 태국사 법당 318 살풀이 조사자가 태국사에 도착하니 이미 홍보살은 굿을 하고 있었다. 시간은 10시 30분 경 이었다. 홍보살은 앉 아서 경을 읽으며 찾아 온 신도들의 가정의 재수를 기원했다. 홍보살은 칠월칠석 재수굿은 칠성님을 위하는 칠성 불공 이라고 하였다. 홍보살은 대전에서 온 두 신도를 위한 가택 축원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두 신도는 대전에서 온 사람들 이었다. 먼저 굿을 하기 전에 이 두 신도는 자신의 이름, 가족의 이름, 주소를 종이에 기재하였다. 홍보살은 두 사람이 적어 놓은 종이를 보고 굿을 하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온 신도 중에 1명은 계속 홍보살은 찾는 단골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단골신도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두 사람은 아침에 아파트 엘리베이트 안에서 만나 함께 태국사에 오게 되었다. 이 날 처음 오게 된 신도는 평소에 자주 다니던 팔공산 절에 가는 길이었는데, 단골 신도가 태국사에 가는 길이 라고 하자 따라오게 되었다. 홍보살은 법당 가운데 앉아 징을 두드리며 경을 읽었다. 징이 울리고 홍보살은 관세음 보살, 석가모니, 약 사여래, 일곱 칠성을 소리로 불러냈다. 그리고는 오늘 칠월칠석에 일진 받고 생기복덕을 가려 이 정성을 발 원하오니 굽어 살펴주십시오 하며 축원을 이어나갔다. 16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52 징징징징 징징징징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생략).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 일곱칠성 산 신, 칠성님네 (생략). 금일 정성 발원을 할 때는 이천은 하고 칠월은 초이레에 일진 받어 생기 복덕 생기 일진 받아 두고 이 정성을 발원하오니 굽어살펴주옵시고(생략) 이어서 홍보살은 팔도명산 신령들을 다 불러내었다. 백두산부터 시작하여 한라산 신령까지 부르고 마지 막에는 괴화산 신령을 불러 내어 축원을 했다. 그리고는 신령님들이 나한테 일러 너희 다 잘 보살펴 준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라 고 소리를 하였다. 팔도명산 신령님네, 백두산 신령님네, 금강산 신령님네, 태백산에 신령님네, 지리산에 신령님네, 한 라산에 신령님네, 구월산에 신령님네, 삼각산에 신령님네, 계룡산 신령님네, 괴화산 신령님네, 동서 남 북 다 다녀도 사고 없이, 화재없이 해주시고, 인간구설 없게 도와주시고, 천리 운수 불러주시고 만리 운 수 불러 주시고(생략). 걱정마라 너의 운수, 너희 자손들 앞길 뒷길 경을 읽고 있는 홍보살 320 절하는 신도 이렇게 굿이 끝나고 홍보살은 단골신도에게 다 괜찮은데 너희 남편 간 조심해야 된다고 이야기했다. 남편 의 운이 간수치가 안 좋아 지는 운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작은 애 이달의 운이 안 좋으니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칠월만 조심해서 넘어가면 가정의 운수가 이어진다고 하였다. 신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지 않아도 이번 달에 남편 간 검사를 해보았다고 한다. 홍보살은 다시 한 번 검사를 해보고, 특히 남편이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홍보살 : 아저씨 간 조심 하라고 하네. 한 번 병원에 가서 검사 해봐. 간이 조금 나쁘다고 그러네. 딴 데는 괜찮은데. 단골신도 : 예 검사를 한 번 했는데 이상은 없었거든요. 초음파도 해보고 내시경도 해보고. 괜찮았어요. 홍보살 : 다시 한 번 해봐 피로 회복도 못하고. 하여간 술을 먹지 마라고 해야돼. 단골신도 : 예 홍보살 : 간수치가 나빠지는 운수야. 다른 데는 괜찮것어. 애는 괜찮것어? 단골신도 : 누구요? 홍보살 : 큰애. 근디 작은애 이달에는 부딪히는 운여. 이달 말이 지나면 괜찬은데, 조금 저기하더라도 다독다 제4장 신앙생활 167
53 독햐. 저 허자는데로 따라주고. 칠월만 넘어서면 괜찮것어. 아저씨 재수는 계속 이어졌어. 단골신도의 순서가 끝나고 오늘 처음 온 신도는 자신이 오늘 태국사에 오게 된 사정을 얘기하고 홍보살에 게 인사를 했다. 처음 온 신도는 복채를 주고 홍보살에게 자신의 신수를 물었다. 홍보살은 이 신도에게 말하 기를 시아버지가 엄칭이 밝혀준다 고 했다. 홍보살은 조상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집의 운세를 볼 때 조상이 잘 보살피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보았다. 처음 온 신도(이하 신) : 저는 오늘 절에 가려고 나왔어요. 팔공산에요. 보살님 얘기를 듣고 찾아왔어요. 홍보살(이하 홍) : 잘 했어요. 신:내 생일이라고 해서 절에 가려고 나와서 이 사람 만나서 따라 왔는데 부족하지만 조금만 놓을게요. 홍:아이고 괜찮아요(신도가 불상 앞에 2만원을 놓는다) 신:저는 몸 괜찮것어요? 홍:시아버지가 엄칭이 밝혀주네. 신:저요? 시아버지가요? 시어머니는 안 밝혀주고요? 홍:시어머니는 아직도 멀었는 디 뭘(버럭 소리를 질렀다). 돌아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자기도도 못 닦는디. 시아버지가 대감줄을 받아가지고 와가지고 엄칭이 밝혀. 그런디 집이 신경쓰고 고생하는 것 자꾸 막아 준디야. 시아버지가. 그래서 속마음 못 잡고 법당에를 가잖아. 저기 딴사람은 멀쩡한 사람 인디 힘든 것 누가 아느냐고 측은하고 불쌍하다고 그러네. 그렇게 해서 니 마음씨가 천심이니 천지신명에서 너를 불 러주자고 의논하고 공모했으니 걱정허지 마라. 천리라도 밤에고 낮에도 불밝히며 어사돌고 순찰돌고 내 가 이 몸둥이. 대감님네가 그 명당 들어가서 자손들 사업도 잘돼고 해주니께 니 자손이 간장에 조화가 올 거니까 술 먹지 말고 말하자면 간수치도 한 번 재보고 조심을 하라는 것여. 그러면은 수명장수 해서 잘 돼게 도와준다. 시아버지가 앞서서 해주니. 나는 지금 아까 할머니가 나오셔서 얘기하니까? 할머니 아직 멀었어. 더 닦어야 돼 세 번 닦았어. 대감을. 세 번 닦아도 한 칠팔년 돼야지 붙어. 잘된 곳으로 대 감을 들이니까 풀어주는 굿여. 그래 여기서 그런거여. 내가 여기서 너돈많이벌어줄테니까 혼자 쓰지 말고 대감되고 3년만 올해 했잖아. 내년 후년 까지 3년만 하고 그러고 3년에 한 번씩만 허랴. 그러면 니 가정에 자손들도 바람대로 이루고 고생안허게 도와준다고 하는디 나도 모르것어 하하하 (웃음) 신도는 다시 한 번 밝혀주시것죠? 하면서 홍보살에게 물었다. 홍보살은 눈을 감더니 알아듣지 못할 말로 주문을 30초 정도 외운 다음에 신도에게 말하였다. 아줌마는 산신에게 빌어야 한다고 했다. 시집올 때 가마 끝에 옥녀각시가 따라 와서 머리 위로 서있고, 양어깨로 진을 치고 있어 집안에 우환이 있다 고 했다. 그리 고 집안에 대접을 받지 못한 조상이 있으니, 부처만 니가 찾지 말고 대감(조상)을 짚어봐라 고 했다. 홍보 살은 신도 조상의 입을 빌어 복줄, 명줄은 부처님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고 토속신앙, 산신님, 칠성님, 아줌 마 조상님이 잡고 있으니 산제 불공이라도 해서 조상을 떼어내고 옥녀각시도 떨치라고 하였다. 신도는 여기 서 풀어달라고 홍보살에게 부탁했다. 홍보살은 다시 경을 읽으며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을 찾으며 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신도에게 아주머니의 부처님 정성은 갸륵한데 대감님(조상님) 정성이 부족하다고 하니 서낭 을 불러서 대감을 빌어야 한다고 다시 대답하였다. 16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54 신:밝혀주시것죠? 홍:주문을 외운다. ~~~~~~~~~ (30초 정도 조린다) 챠! 아줌마는 산신에 가서 빌어야 것네. 왜그냐면 아줌 마가 신명줄이 나같이 이런 직성이 세대요. 그래서 니가 시집올때 가마 끝에 따라온 옥녀각시가 머리 위 로 스기 주고 양어깨로 진을 치며 집안에 우환이 있다 질병이 있다 재수가 없다 변사 변화 주는 것을 왜 인제 까지 머리 위로 이고 다니내요? 그래서 원칙은 대감축을 하면 좋은데 그러지 않을 라면 산제불공을 하고 서낭을 풀어서 조상님네 풀어줘서 먹자고 하는 조상들이 있으니 그 조상들 다 풀어다 헤치고 1년에 한 번씩 서낭에 절을 허고 부처님만 찾지 말고 대감을 좀 짚어봐라. 니가 안 되는 일이 있나. 좋은 운세 도 많이 넘어 갔으니 어떡하냐. 복줄 명줄을 부처님이 줄줄 알았느냐. 부처님이 자비는 다 베풀어 주지 만 조화는 토속신앙. 산신님, 칠성님, 아줌마 조상님들이 잡고 있는거여. 이 정성 잘 받아서왔지만은 니 가 나중에 돈이 좀 필요하다고 하면 산제불공이라도 해서 조상을 떼어 내버려라. 자손마다 앞길 뒷길 다 풀어준다는 거여. 옥녀 각시는 내가 시집올때 가마 끝에 달렸었어. 신:오늘 여기서 풀어주세요? 홍:아녀 아녀. (홍보살 경을 읽는다 관세음 보살---- 석가모니불----- 징을 엎어놓고 경을 읽는다. ) 아줌마 정성이 부처님 정성은 갸륵하신데 신에 대감님 정성이 적다고 그러네. 그래서 그 말허자면 우리 집 아니 라도 어디가 서낭을 불러서 대감을 빌어야. 신도는 이야기를 듣고 홍보살에게 시집에 안 좋은 일이 많다며, 자신에게 안 좋은 얘기가 나오는 것이 시집 문제에서 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홍보살은 큰 집도 큰 집이지만 친정줄에 3대 할머니가 대감 줄을 밝혀주 려고 왔는데, 니가 한 번이라도 찾아줬냐고 한다고 했다. 평소 절에만 다니던 신도에게 할머니 조상이 그렇 게 얘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홍보살은 옥녀각시가 너에게 붙어 남편에게 안 좋은 일이 많다고 하였 다. 남편은 있지만 니가 외롭고, 하루 일과 넘어 갈 때 허탈감이 많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그것이 다 옥녀각 시가 변사를 부리는 것이니, 대감님한테 네가 빌면 잘 보살펴 줄 것이라고 신도에게 일렀다. 신:제가 여쭤 볼일이 있어요. 바쁘신데. 온 김에. 오늘 우연찮게 인연이 주어졌는데. 이게 뭐가 먼지 잘 몰 라요. 근데 듣다 보니까 저 형님이 굉장히 옛날에 빌어야만 변란을 막고 그랬거든요. 근데 우리 시집이 불 난이 많아요. 그래서 계속 그게 나오나 봐요. 내가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인데 몰라준 다고 그러는 것 같애. 이럴 것 같으면 해주지 이러는 것 같애요. 저희 집이 아니라 큰집 문제 때문에. 홍:거기도 있고 시집줄도 있지만 친정 줄에도 3대 할머니가 옛날이면 단골비선마냥 많이 칠성을 빌고서 저 기해서나 그 할머니가 너를 제자삼자. 니가 신의 조화가 많다고 제자 삼자는게 아니라 직성 대감줄로 밝 혀자고 왔대야. 한손에 명줄들고 한손에 복줄 들고 자손 성불 이루자고 왔는데 니가 나한번이나 찾아 줬 느냐. 명줄 복줄을 받아 온 대감을 찾아야지 니가 먹을 전 입을 전 들어주고 자손 만대 수명 장수 시킬 거 아니냐. 그러고 아저씨가 변사가 많허고 부부가 있다해도 먼산 보고 탄식하는 개벼. 근게 너는 너대 로 나는 나대로 무슨 심중을 모르고. 사는게 사는거지 아리따운 자손보고 사는거지 하루 일과 때워서 넘 어가는 겨. 그래서 아줌마가 하루일과 넘어가는데 허탈감이 많이 들으면 넘 모르게 한숨짓고 눈물짓고 흐르는 물은 한강수가 되건마는 너의 식구도 모를 것이다. 그러니 허송세월할 때도 가고 시도 가고 시 놓치고 때 놓쳐서 나이 먹고 어떻게 하느냐 그렁께 이걸 잘 풀어서 옥녀각시를 떼래요. 그런 걸 풀때 다 제4장 신앙생활 169
55 대감 님네 도와달라고 빌어가지고서 쉽게 말하자면 도와달라고 하고 빌며는 대감님 네가 아줌마네 명당 에 앉아서 자손들 잘되게 신 바람나게 도와주고 너희 부부도 합일 잘 되서 잘 도와준다. 그러고 아저씨 도 사대육천마디 아픈지도 모르게 쉬는 거래 내가 잘못 보나 몰라도. 피로도 자주오고 말도 안하고 자기 가 짜증나면 불쑥거리고 이러는 것도 있고. 그래서 아저씨도 보통직성이 아니래요. 신 : 맞아요 우리 아저씨는 참 꼬물꼬물 많이해요. 홍 : 긍게. 보통 직성이 아니라 앉어 천리 보는 직성이다. 그러니께 산제 불공이라도 해도 대감한테 빌어 가 꼬 서낭을 풀어라. 풀어서 옥녀각시를 띠래요. 그래서 아저씨 참. 이 자손도 옥녀각시 때문에 변사가 많 이 온대요. 조화를 자꾸 부린데요. 어지렀다 심장이 뛰었다 어떨 때는 불도 났다 소화도 안됐다 말하자 면 변사가 많대야. 그러니께 왜 자손까지 이거를 내려받게 하느냐 어서 받고 서둘러서 이 명당 이 터전 니가 올적에 쉬운디서 맺은 인연 의논해서 잘 좀 풀어봐라. 1년에 한 번이라도 니가 산신에게 가서 절을 하면은 안 될 일은 없을 것이라 걱정마라 그러는 거여. 글쎄 내가 대감님네 끌고서 아줌마네 집이가 앉 아서 빌었는데 여기서 말하자면 그렇게 나와. 이걸 진작 풀지 여태 짊어지고 댕겼냐고 그려 신 : 고맙습니다. 홍 : 딴거보다도 옥녀각시를 띠라고 그러네. 신 : 옥녀각시를요? 홍 : 응. 뜬 혼신이고 처녀 혼신여. 결혼할 때 뭐가 잘못되어가지고 따라 다닌데. -중략 -. 신도는 홍보살의 얘기를 듣고 고맙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남들이 몰라주는 것을 보살님이 잘 안다며 고마 워했다. 특히 남편이 있어도 항상 외롭다는 보살의 얘기를 듣고 고마워했다. 아저씨가 술, 담배를 안하고 착 실한 가장이지만 평생을 살면서 재미가 없다고했다. 가족들도 이런 것을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 을 몰라 부처님만 의지하며 산다고 했다. 신도는 계속 자신 집안 이야기를 했다. 큰 집에 21살먹은 아들이 있는데 애가 말을 안 한다고 했다. 애 어 머니가 신이 왔는데 받지 않아 몸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굿을 했는데도 애 몸이 낫지 않는 다고 했다. 그 집에서는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이 왔다고 믿는다고 한다. 홍보살은 이야기를 듣고 그 아이는 굿 을 해서 풀 것이 아니고, 상문살을 풀어야 된다고 했다. 상문살이 있는 것은 놔두고 조상신만 풀어주니까 소 용이 없다는 것이다. 홍보살은 자신이 상문살이 들린 아기를 낫게 해준 이야기를 했다. 홍 : 그런디 나 청주에 있는 앤디 걔는 3살 먹었나베. 걔가 돌 넘어가기 전에 왔는디 완전히 기형아야. 밥 젖 도 못 빨고 그냥 샘 키는데 보니께 상문 맞었더라고 병원에서. 근데 걔 낳고서 옆에서 애기덜 죽어서 나 가더라는겨. 그랬다는디 그냥 그걸 나둬서 주장을 맞어서 그이도 젊은 사람인데 내가 1년을 빌으면 괜 찮다고 했는데 고지를 안듣더라고. 한 3년되도 병원끌고다니다 안되니까 그때사 왔어요. 그래서 내가 늦었는디 어떻게 하냐 그러면 헛일 삼아 해보자 돈이나 많이 받아야지 하하하. 돈 70만원 받아가지고 했 는디 완전히 기형아야. 어떻게 한 대 할아버지가 3번만 빌으면 괜찮아 진디야. 아 그래서 허라는 데로 헌거아녀. 아 그리서 내입에서 그러는겨 다음달에 가보라고. 그거 뭐 완전 움직이지도 못하는 애를 어떻 게 기어댕기고 앉고 서고 헌다고 허것어. 아무 것도 못혀. 기도 못허고 두러누워 있다니까. 젖도 못빨아 먹고. 나도 헛일 삼아 해보자고 했지 그 사람들한테 늦었으니께. 내입에서 그러더라고 내가 불쌍하고 측 17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56 은해서 새달 가보랴. 다음달 가보면은 몸댕이 움직이면서나 돌아댕길라고 움직이고 이것저것 짚을라고 발버둥 칠것이다. 그래서 석달만 가면은 걸어댕긴다 소리 나오니께 아 근디 큰일났어. 근디 내입에서 나 오기는 했는데. 그렇게 생겼는디 어떻게 하냐고 내입에서 그렇게 나오는디 어떻게 자신을 허냐고 병원 에서도 못고치는 걸. 그랬는데 그 다음에 이사간다고 절허러 온다고 왔어. 그러면은 애기가 이렇게 좋아 졌다고 애기 안듣게 전화라도 해주야 되잖아. 세상 그렇게 미련혀. 나는 자꾸 빌었는디 할아버지가 자꾸 그러는겨. 그게 다음에 왔는디. 그게 막 기어 댕겨. 그래서 야 신기헌거 야 이 신명은 조화를 못막는겨. 막 이런 것 붙잡고 일어나고. 그러더랑께. 그래 세상에 이렇게 좋아졌으면 한턱내야지. 글쎄. 한번 전화 라도 해야지 전화도 안했냐. 그 양반 순진해서 친정엄마도 피익 웃고서 말았는디. 내년이 꼭 잊어버리지 말고 와서 빌어. 세 번은 빌어야 된다니까. 3년을 두고 빌어라 그러면 안전하것다. 칠월달가면은 선다 소리 나오니께 그런 줄 알어. 아 그렇게 하네. 아 그래서 내가 그려 신의 조화는 무궁하다는 거여. 신도는 다른 사람이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계속 홍보살과 얘기를 했다. 홍보살도 이에 개의치 않고 계속 해서 이 신도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신도는 계속해서 홍보살에게 넋두리를 했다. 우리집은 걱정이 없는데 아저씨가 멋이 없으니까 평생을 살고 있다는 얘기를 계속 돌려가며 했다. 그래서 자신이 계속 절에만 돌아 다니며 불공을 드리고 있다고 했다. 신도는 보살이 이런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해주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 다. 남자(조사자)가 옆에 있어 얘기를 못하겠다며 살짝 얘기를 돌렸다. 신도는 남편의 얘기를 계속 돌려가면 서 이야기했다. 신:나는 이제 가게 되면 3일이든지, 2일이든지 절에 가서 기도 하고 와요. 우리 아저씨가 하긴 잘해. 우리 아저씨가 미역국 끓여주데. 잘하지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하긴 잘해. 잘하는데 뭣이 없어. 애기 들 다 밥해서 채려주지. 근데 그런 것 못하면 어떻게 할거야. 우리 아저씨하고는 나니까 살지 못살어. 보 살님은 알거야. 그죠. 나니까 살어. 홍:못살어 못살아 신:나니까 살어 진짜로. 홍:그냥 부처님 의지로 돌아 댕긴 께 때워 넘기는 거여. 신:우리 신랑은... 남자 있어서 말 못하겠네(조사원을 보고). 부부가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그죠? 재미를 모르고 살아 평생을 그러려니 살어야지 뭐 어떡해 여. 홍:그럼여. 여태까지 살았는디 뭘. 신:바람이 났어도 12번은 났어 그죠? 이 사람 여기 앉아 계시지만 뭔소린지 알겠지. 하하하하 (다 같이 웃는 다) 내가 부처님 의지하고 하니까 살지 젊은 나이에 진짜 나니까 살지. 자기도 알거여. 내가 가끔가다 뭐 라고 하지. 나니까 살지 하고 그래요. 뒤에 사람 있는디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고. 홍:놀다 밥들 잡숫고 그래요. 신:저 오늘 마음 먹고 절에 갈려고 나왔는데 여기 있다가 절에 갔다와도 돼죠? 홍:예 그런 거 상관없어요. 신도는 자식들 얘기도 물어보았다. 큰 아들이 선생을 하는 것이 좋은지 공무원이 좋은지를 물어보았다. 홍 제4장 신앙생활 171
57 보살은 선생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고, 큰 아들이 개부정이 들었다고 했다. 머리가 좋고 똑똑한데 개부정 이 들어 실력 발휘를 못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계속 얘기한대로 대감을 풀어주면 집안에 좋은 일이 많이 생 긴다고 하였다. 신:우리 머스마 애기 큰애기 선생이 낫겠어요 공무원이 낫겠어요? 큰 맘먹고 왔으니 그거만 조금 할께요. 우리 아이들 얘기. 얘가 예전에 들어보니까 관운이 있다고 해서. 홍:얘는 공무원도 좋지만 선생 쪽이 낫거든요. 신:그래서 선생 쪽 될라고 찾아갔어요. 홍:근데 아줌마 얘는 난시 난 때에 개부정이 들었어. 개부정이 들어서 지 머리도 좋고 애가 똑똑하고 가다 가 그 실력을 살이 막아요. 그래서 아까 얘기한대로 아주머니 부정을 풀어서 대감을 위하면 좋은 경사가 많이 나요. 신:근데 얘 낫다가 죽다 살아났어요. 홍:개부정이 들었어요. 누가 개고기를 먹거나 만지거나 해서. 신:근데 그 사람은 개고기 입에도 안대요. 아이고 그 사람은 술 안먹지 담배 안피지 그렇다고 어디 바람피 는 것도 아녀. 절대 몸에 해로운 것을 안먹어. 내가 오죽허면 백살은 살겠다 그려. 홍:얘는 선생 쪽이 나슨데 개부정 풀어줘야 실력발휘해요. 그러고 진급이 자꾸 되고. 낭중에는. 그러고 얘 는 동서남북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져야돼요. 말하자면 탤런트 직업도 괜찮고 기자계통. 외국을 왔다갔 다 하는 아나운서 직업. 돌아댕기는 직업. 앉아서 가만이 앉아있는 직업은 안돼. 그런디로 가면 좋아. 신:우리 애들도 아들 딸 재수 시켰어. 아이고 내가 애들 키우느라 욕먹었어. 진짜 절도 절도 밤새도록 몇 천 배절도많이하고. 홍:애썼어요. 그러다가 신도는 다시 남편 얘기를 했다. 홍보살은 주문을 외우고 이야기를 했다. 신도는 남편이 성생활 을 못하는 것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홍보살은 여기에 남편에게는 지금 신경이 약한데다, 시집올 때 아주머니의 몸에 옥녀보살이 붙어 와서 조화를 부리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신도는 남편과의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남에게 얘기하지 못하고 가슴앓이 하던 얘기를 계속했다. 남편과 의 이러한 문제를 얘기하려고 처음부터 신도는 계속 뜸을 들이며 다른 얘기들을 한 것이었다. 신도는 이러 한 얘기를 아무한테 못하다 오늘 우연히 홍보살을 만나 그동안 맺힌 것을 풀어냈다. 부처님을 찾아다니며 이러한 문제를 속으로 삭이다 오늘 홍보살에게 자신의 고민을 다 털어놓았다. 홍보살은 이러한 문제가 다 신도의 조상을 잘 모시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하고, 특히 시집올 때 붙었던 옥녀보살이 조화를 부려서 생긴 것이라고 얘기했다. 또한 남편의 약해진 몸을 회복하는 처방도 일러 주었다. 신:참기도 많이 했지요. 홍:신명 달래느라고 그렇잖으면 신명 못 이겨. 부처님 전에 그래서 눌렸지 신 못 당해요. 신:예 눌렀지요. 내가 왜 그러냐면 우리 아저씨랑도 한참때 젊었을 때도 돌아다니면 맞는게 없어. 우리 아 저씨하고 성격이 안맞어. 성격 뿐 아니라 모든 게 맞지가 않지. 다 내가 안고 가니까. 나한테 불만 많지 17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58 요. 우리 아저씨도. (홍보사가 다시 주문을 또 외운다.) - 중략 -. 홍:긍께 아저씨도 쉽게 말하면 신체적으로 신경이 너무 약해요. 신체적으로 신경이 약해서. 그 조화도 붙 고. 나 처음 신이 들려서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께 예수 믿다 이런 걸 모르니께. 그랬는디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나도 우수운 얘긴데 총각있으면 어뗘 다 인간 살인디. 하하하. 결혼을 했는데 남자가 부 부생활을 못허는거야. 그래가지고서 이 여자가 고자를 만났다고 난리를 한겨. 그러니께는 큰 동서가 애 가 달은거여. 부모도 없는 것을 키워서 예우 살이 시키는게. 그 어떻게 해서 우리 집이 용하다 소리 듣 고 왔더라고. 점을 보니께는 동서보다 내일이 더 급하다고 그러는거여. 그래서 저는 저대로 빌고서 그 동서를 조상풀이를 해가지고 조상을 떠내버리면은 완전히 부부생활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공수가 내린 겨 말이. 근디 세상 별 병원을 다 댕겨도 안돼는겨. 완전히 죽어서. 그러니께는 그 동서가 껄껄껄 웃어 가면서 옛날에 돈 30만원이면 컸어. 그때 쌀이 20원 30원 했응게. 30만원을 갖고 굿을 하자 했더니 하자 고 하더라고. 이판 사판 이혼해도 들어가고 살으면 허자 그러카고. 그래서 굿을 했는데 내 입에서 그러 는겨 3일만 가면 원구청정을 시킨다니 그놈의 것을 원구청정을 시켜 나 별일을 다해봤당게. 그렇게 했 는디 그러카고서 걱정말라고 하고 집으로 보냈는데. 그때만해도 초구뜸이라 뭔지도 모르고 걱정이 되 더라고 괜히 손님 떨어지면 그때는 내가 신이 다 망해서 때거리가 없어 그거 벌어먹고 사는디. 안 받을 라고 아파가지고. 나 신인줄 모르고. 그렇게 해서 3일만 지나면 원구청정 시켜서 새달이 가면 애기 있다 소리 나오는디 그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고는 아줌마 거짓말아니지 그라는겨. 천지신명이 약속한 건디 설마 거짓말허시것어요. 내가 그렇게 해구서 믿고 따러야지 안 믿고 따르면 안돼요. 그게. 아 믿고 따를 께요 절을 열심히 하더라고. 그러더니 진짜 갔는디 소리가 없어. 근게 사는 거지 뭐야. 이혼헌다 소리가 없어. 그러더니 3개월되니까 애기가 있더라고. 3개월됐는디 애기가 있어. 그러면은 세상에 그러면은 쌀 한말이라도 올려야 될거아녀. 전화해본께 3개월되면 애기가 있으면 자주 댕기고 신명이 약속을 했어. 그러면 더 잘키워준다고. 그러더니 소식도 없어서 전화를 해봤더니 3개월만에 애기를 낳는데 남매를 낳는데 지금도 잘살어. 그이 왔다갔다 하는디. 그런 것도 있어. 조상이 만지면 그 성도 죽어. 그런디 나 이런거 허다 보면은 그 사람이 성이 있는지 이런 걸 알잖아. 그 사람이 약먹을 병이면 내 입에서 무슨 비방. 너희 식구가 어떻게 성교가 없으니까 그냥 두지 말고 무슨 약을 먹이면 살아난다는게 나와 또. 그 런디 그렇게 하면은 그 사람 약먹으면 그 사람 또 괜찮어. 그러니께 그 남자들이 더 많이 와. 크흐흐 열심 히 와서 절허고 가는겨. 그거 때메. 남자는 그게 죽으면 완전히 세상 꺼구로 되는지 알고 포기허더라고. 단골 신도 : 기가 팍 죽어버려요. 신: 근데 그게 죽은 사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선천적으로 약한 사람이 있잖아. 홍:그런 사람 있지. 그런 사람은 약을 많이 멕여 보충을 해야는디. 신경이 약하면 그래 빨리. 신:우리 아저씨는 신경이 예민해 잠도 잘못자. 홍:나는 아저씨 조상 그 옥녀각시가 지가 갖고 노는거야. 지가 꿈에 조종을 해서 생각도 안나게 허고. 스지 도 않게 이렇게 하는거야. 그러니께. 그걸 진작에 어디가서 빌었으면 부부간에도 합수도 되고 재수도 더 많이 벌었을 건데. 그렇다 하며 할머니가 그러는거여. 근데 그게 있어. 여자 귀신이 붙으면 그 남자하고 살을라고 둘이 싸워싸코 하는 원인이 거기에도 있어. 성질이 안맞는다만 못하게. 그게 확실하더라고. 신:나는 그래도 우리 애들 위해서만 살았어. 백일 기도를 4년을 했으니. 매일 기도하고 와서 생활하고 절에 제4장 신앙생활 173
59 가서 살잖아. 나 만약에 흔들리는 것 없으면 벌써 바람났어. 차고 갔을거야. 자기도 인정할거야. 내 딸이 21살 먹었잖아. 막내딸이 딸보고 하도 속을 썩이길래 내 옆에 있으면 우리 애들보고 슬슬. 우리 애들 방 이요 잠가놓고는 안살아요 다 열어놓고 살아요. 닫아놓고 자는 적이 없어. 그래 막내가 뭔 소리를 하길 래.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니까 깜짝 놀래. 현수야 내가 왜 사는지 아냐. 너 나 한테 잘해야돼 속석이 지 말고.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별 얘기를 다한대. 애가 대학생이고 뭐를 아니까. 내가 너네들 때문에 살았다. 아빠 운동좀 해요. 체격이 좋아요. 그러지만 하체가 약해서. 우리 딸이 그런다. 21먹으면 알어. 내가 그랬어. 내가 너네들 때문에 참고 살았어.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별 얘기 다한다. 아니까 얘기지. 우리 아빠가 어떤대. 그래서 신랑한테 그래 나니까 살지. 홍:근데 그 아저씨는 신경이 진작에 살렸으면 좋았는디 신경에서 조화가 나. 근디도 남자들이 계속 있다가 성약하면 그러면 약처방 다 제각각인디 부추 있잖아. 부추가 좀 매워. 근디 그 생즙내서나 하루에 말허 자면 소주컵으로 밥먹고나서 한 컵씩 두 번 아침저녁으로 일주일간 멕이면 암만 성 약헌사람도 살아나. 신:우리 아저씨는요 위장이 원래 약하고 음식도 매우면 난리나지. 매우면 안되고. 홍:신의 조화야 신의 조화. 신:우리 아저씨는 내가 보면은 직성이 있는 사람이야. 내가알아. 홍:아줌마는 없어 내가 보기엔 보통 직성이 아닌데 신:아이 아저씨는 더 있어. 나보다 더 있어. 떨어져 있는 걸로 붙어 사는 기지 안떨어져 있으면 오늘날 그렇 게 안나갔으면 못살아. 이 아빠 같은 경우는 예민해. 어디서 잠못자지. 술 담배 안해 꼼꼬옴하지. 그러려 니 하고 살아요. 내가 참 많이 참고 누르고 살았어. 그걸 우리 아저씨가 친구 분 부인이 무속인인데 그걸 물어봤대요. 내비두라고 돌아다니게 내비두라고 했대. 홍:신의 조화니께. 거 속이 아픈디는 오장의 저 꺼먹콩 약콩있잖아. 저기 깨 있지 하고 그거허고 바짝말려 섞어가꼬 꿀에다 환져가꼬 계속 그걸 한 숟갈씩 먹이면 위장고 고치고 혈액도 잘돌고 심장도 좋아지고 그려. 기운약헌지도 보충하고. 신:누가 딱 보면은 우리 신랑 부처님이시지. 인물은 얼마나 잘생겼어. 단골신도 : 부처님 흉으로 부처님 귀 간지럽것네.(뒤에 부처님을 보면서 다 웃음 하하하) 홍: 밥들 잡솨. 신:예. 우리 친구들 보면은 그런 신랑 어디서 만나냐고. 하하하하(다같이) 증작 애로 있는 것을 모르고. 신도와 얘기가 끝나고 점심이 되었다. 점심은 아랫말 에 사는 홍아기씨가 와서 준비를 했다. 홍아기(1930 년생, 여)씨는 홍보살이 무업을 하기 전 아랫말에 살 때 이웃으로 살았다. 그리고 같은 홍씨 집안이어서 돌봐주면서 살았다. 홍보살이 무업을 하고난 후에 홍 아기씨는 큰 굿이 있을 때 마다 찾아와 옆에서 도와 주고 있으며, 일상적으로도 태국사에 들러 홍보살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321 점심을 준비한 홍아기씨 17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60 (3) 석불암 석불암은 괴화산 산신을 모시고 있는 산제당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석불암이라는 이름은 사 찰 주위가 모두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붙여진 것이다. 건물은 법당과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법당은 마 을 앞에 앞산이 시원하게 보일정도로 전망이 좋다. 석불암은 최정예(1927년생, 여)씨가 만든 사찰이다. 최보살은 마을로 시집와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시작 했다. 마을에서는 종덕이네 로 불리었다. 최보살은 아랫말에 살고 있다가 1981년 3월 20일에 석불암을 만들고, 1994년 8월 29일에 사고를 당해 고인이 되었다. 석불암에는 이러한 최보살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 워져 있다. 이후 석불암은 현재 대평리에서 미라상회를 운영하는 안기풍씨가 무업을 이어받아 사찰을 관 리를 하고 있다. 안씨는 최보살의 수양아들로, 석불암에 상주하며 살지는 않고 일 년에 몇 차례 굿을 할때 석불암을 찾는다. 안씨는 석불암에서 굿을 할때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특히 윗말의 이복분(1938년생, 여)씨와 는 사돈관계로 석불암에서 큰 굿을 할 때 음식 장만을 부탁한다. 이씨는 당질 며느리를 안씨의 아들에게 중 매를 해주면서 안법사와 사돈관계가 되었다. 또한 이씨는 윗말의 이종분(1941년생, 여)씨와 함께 석불암 일 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윗말 사람들은 석불암에 굿이 있을 때 찾아와 떡을 얻어먹고 놀다 가는 경 우가 많다. 거기 그게 당질며느리를 내가 그이 집에 중신을 해줬어. 그 집이 가게를 보는 통이 사뭇 잘 가. 남들 은 농협에 가서 사고 그러는디, 나는 저렇게 벌어먹는 디 싶어서 그 집에서 사고사고. 그이들하고 친절 하게 넘어갔네. 그래서 그 집 딸을 여울 때가 돼서 우리 당질며느리를 중매를 했어. 그라니께 우리 사둔 이잖아. 한 번은 와서 우리 일좀 도와줘요. 아주머니라고 하지 사둔이라고는 안 혀. 나만 사둔이라고 하 고. 한 해 두해 해주다 보니께는 주인공이 어. 내가 다 알아서 혀. 대간 혀( 씨, 여) 공덕비 최정예 보살님은 1927년 11월 10일 출생하시어 꽃다운 나이 20세에 출가하셨다. 슬하에 2남 5녀를 두고 생활하시던 보살님은 40세에 자신도 모르게 꿈속에서 칠성님과 산신님이 수십차례 생시와 같이 승몽하시어 모든 것을 알려주겠으니 만민구제 구제중생을 다하라는 일 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204번지에 석불암을 창건하시고 그 후부터 모든 사물을 판별하시는 신통력을 얻게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길로 인도해주고 특히 몹쓸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영검을 통해 치료해주니 각처 에서 많은 환자들이 찾아와 병을 고쳐간 사람들이 많으며 불우이웃돕기에 앞장서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또한 청소년들에게 충효사상을 구회시키고 승공교육을 통해 승공계몽에 앞장서며 회원 복지 증진에도 앞장스셨던 보살님이시다. 보살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을 다하지 못하고 일 열반하셨다. 이에 그 뜻을 기리고자 공덕비를 세웁니다 년 음 7월 22일 건립 제4장 신앙생활 175
61 322 석불암 전경 칠월 백중굿 (2006년 8월 8일) 칠월 백중굿은 석불암 신도들의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오후 1시 경부터 시작되었다. 조사자가 석불암에 도착하니 이미 신도들이 석불암에 도착해 안기풍 법사와 함께 제를 지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석 불암 샘에서는 윗말에 사는 이복분씨와 이종분씨가 제상에 올릴 국을 끓이고 있었다. 조금 뒤에 윗말에 사 는 안갑례씨와 심수형씨가 절에 올라왔는데, 굿 준비를 보기 위해서 찾아왔다. 이복분씨는 안씨 일행이 마 을로 내려간다고 하자, 떡과 제수음식을 싸주었다. 323 국을 끓이고 있는 이종분씨 324 백중굿을 보러 온 윗말의 안갑례씨 오후 1시 40분경에는 법당과 요사채에 제사상이 다 차려졌다. 안기풍 법사와 신도들은 조상들의 위패를 찾기 시작했다. 위패는 법당 안쪽에 수납장에 모셔져 있었다. 신도들은 자신의 조상 위패를 찾아 각자 제사 상 위에 올려놓았다. 제사는 법당과 요사채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법당에서 지내는 제사는 요사채에서 지 내는 제사보다 그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고 했다. 안법사는 제사 지낼 모든 준비가 끝나고, 아직 오지 않은 사람에게 직접 연락을 하기도 했다. 석삼2리에 사는 박수길씨가 오지 않아 직접 전화를 해서 왜 오지 않느냐 고 묻기도 했다. 제사는 안법사가 소지 종이를 태우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안법사는 중얼중얼 하면서 소지 종이를 태워 올 렸다. 소지를 태운 다음 제사 지낼 옷으로 갈아입고, 법당에서부터 제가 시작되었다. 안법사는 목탁을 두드 17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62 325 백중굿 진설 326 신도에게 전화하는 안기풍 법사 327 위패를 꺼내주는 안기풍 법사와 신도 리며 경을 읽었다. 신도들은 옆에서 조상에게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법당 제사가 끝나고는 요사채에서 제 사를 지냈다. 안법사는 경을 읽으며 신도 조상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축원했다. 신도들은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328 소지 올리기 329 무복으로 갈아입기 330 목탁을 두드리며 경을 읽고있는 안기풍 법사 신도 중의 한명은 서낭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서낭 앞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안법사와 함께 제를 올렸다. 제 중간에는 안법사가 가지고 온 오방기를 신도와 함께 찢고 그것을 신도의 몸에 쓸어내렸다. 안법사는 신도 의 몸을 오방기로 쓸어내리면서 아픈 곳을 짚어냈다. 그리고 무엇무엇을 조심해야 한다고 신도에게 일렀다. 요사채에서 제사가 다 끝나고 다시 법당에서는 천도제가 진행되었다. 00에서 온 신도의 아들의 제사였다. 그 신도는 몇 년 전에 아들을 해외 유학 보냈는데 아들이 산을 등반하다가 죽는 사고가 있었다. 사고 이후 아 들의 위패를 석불암에 모시고, 영혼결혼식을 석불암에서 하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해마다 칠월 백중에 와 서 안법사와 함께 아들의 천도를 바라는 제를 지내고 있다. 천도제 준비는 먼저 법당 마당에서 법당으로 삼베를 깔아 놓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안법사는 석불암 마당에서 법 당 부처님 앞으로 다리를 놓듯 삼베를 깔았다. 그 다음에는 흰 천을 이리 저리 고리를 만들어 묶은 다음, 삼베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사온 한복을 먼저 흰 종이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가지런하게 놓았다. 안법사가 목탁을 들고 경을 읽기 시작했다. 아들을 잃은 여인은 제사상에 술을 올리고 절을 했다. 그리고 제4장 신앙생활 177
63 331 서낭제 332 재액풀이1 는 고리를 내서 만들어 놓은 흰 천을 안법사와 여인 이 잡고 잡아 당겼다. 이리저리 꼬아져 있던 흰 천이 말끔하게 풀렸다. 안법사는 이 흰 천을 길게 깔아 놓 은 삼베 위에 얹었다. 여인이 밖으로 나가 삼베 위를 걸어 법당으로 올라왔다. 양손에는 아들의 위패를 들 고 손을 가슴으로 모은채, 삼베를 밟고 법당으로 올 라왔다. 안법사의 경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그 여 인은 합장을 하며 부처님 앞에 절을 하며 천도제는 끝났다. 333 재액풀이2 334 명주로 고리 만들기 335 오색천 준비 336 망자를 위한 새 옷 17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64 , 338 재액풀이 339 오색천 찢기 340 아들 위패를 안고 법당으로 걸어가는 신도 조상 해원굿 (8월 10일) 8월 10일 오후 3시부터 석불암에서 대전에서 찾아 온 신도의 조상 해원굿이 있었다. 조사자는 오후 5시 정 도에 석불암에 도착하여 유보살의 축원과 안기풍 법사의 대잡이를 볼 수 있었다. 조사자가 태국사에 도착하니 굿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연기군 동면 내판 사에서 온 유보살이 굿당 에서 북과 꽹과리를 치며 조상해원경을 읽고 있었다. 북 가운데에는 오늘 굿을 하는 신도의 가족 이름과 생 년이 적혀 있었다. 제사상은 두 개로 나뉘어져 있고, 굿당의 바깥에는 간단하게 상이 차려져 있었다. 상 위에 는 떡, 과일, 밤, 대추, 밥, 술, 물, 두부, 촛불이 올려져 있었다. 상 아래에는 짚신이 3켤레 있었는데, 그 안에 돈을 놓았다. 굿당에는 큰 상에 가득하게 제수를 장만해 놓았으며 그 앞에서 유보살이 축원을 하고 있었다. 저녁 6시 30분경이 되자 유보살은 경을 끝마치고, 굿당 아래로 와서 신도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 7시가 되자 안기풍 법사는 이제 부터는 내가 한다 고 유보살에게 말하고 대나무로 만든 신장을 잡 았다. 안법사의 대잡이가 시작되었다. 유보살의 경이 이어지고 안법사가 신장을 잡고 숨을 골랐다. 안법사 의 신장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머리위로 신장이 올라가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굿당 마당으로 제4장 신앙생활 179
65 유보살의 경읽기 342 짚신에 놓아 둔 망자의 노자돈 343 조상 해원 굿 진설 344 북에 붙여 놓은 신도의 사주 345 저녁식사 346 진설된 수박 18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66 신장을 잡은 채로 나갔다. 안법사는 계속 숨을 고르며 마당으로 나가 신장을 하늘 위로 올려 세웠다 다시 내 렸다. 동서남북으로 돌며 합장을 했다. 안법사의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가빠지는 것처럼 보였다. 굿당으로 들어간 안법사는 신장을 머리 위로 올렸다. 제상으로 대를 가져간다. 상 앞에 제수들을 쓸어내 리고는 자신의 몸 위에 신장을 털었다. 배 위에 신장을 갖대대고 머리 위까지 올렸다. 신장이 이리 저리 흔들 리고 안법사가 뛰기 시작했다. 유보살의 북, 꽹과리 장단이 더욱 세게 울리며 굿당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안법사는 앉아있는 신도에게 다가갔다. 신장을 신도의 등에 대고 쓸어내렸다. 신도를 일으켜 세우고 신도의 온 몸에 신장대를 흔들었다. 신도의 등 뒤에는 명태 두 마리를 삼베로 둘러싼 것이 빨간 천으로 매어 있었다 공수 내리는 모습 348 신에게 절하는 모습 349 신장을잡고굿을하는모습 350 머리 위에서 신장이 떨리는 모습 안법사는 신도의 몸에 신장을 대고 여기가 아프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더니 신도에게 말하기를 손자들 집에 다녀오마 하며 신도의 집에 대한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이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조상님이 하는 말여 라고 말했다. 안법사는 신도의 몸에 계속해서 신장을 대면서 여기가 안 좋지 하며 묻는다. 신도 는 예 하며 안법사에게 합장을 한다. 신도의 며느리가 굿당으로 올라왔다.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안법사는 신장을 쓸어내리며 아픈 곳을 짚어내고, 시어머니에게 잘하라는 얘기를 했다. 안법사는 한참 어머니와 며느 리를 번갈아 가며 사설을 늘어놓으며 신장을 움직였다. 다음에는 신도의 큰아들과 손자들이 올라와 제상 앞 에서 절을 올렸다. 마찬가지로 안법사는 큰아들 몸에 신장을 대어 보면서 아픈 곳을 얘기하고 조심할 것을 일러줬다. 제4장 신앙생활 181
67 아픈 곳을 가리키는 신장 352, 353 신장굿 354, 355 재액풀이 356 음복 안법사는 어머니와 큰아들 앞에서 삼베를 고리를 만들어 꼬았다. 어머니와 안법사가 삼베를 잡고 길게 고 리를 만들어 꼬아 나갔다. 길게 고리를 만들어 꼬은 다음에 둘이 잡고 꼬인 것을 힘껏 잡아당기며 풀었다. 안 법사는 오방기를 가져와 어머니, 큰아들, 며느리에게 쥐어주고 힘껏 잡아 뺏다. 빠진 깃발을 제사상의 쌀그 릇 위에 꼽아 놓았다. 다음에는 빨간천, 노란천, 파랑천을 서로 붙잡게 하고 한꺼번에 잡아당기면서 찢어냈 다. 안법사와 가족들이 제사상에 술을 마시며 음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다시 초록색 천과 삼베를 함 께 붙잡고 잡아당기며 찢어냈다. 찢어낸 천들을 밖으로 다 내다 버린 후 안법사는 시어머니를 제사상에서 문밖을 보게 했다. 그리고 등 뒤 에 매고 있던 빨간 천을 풀어내 그 안에 들어있던 명태를 양손에 잡았다. 안법사는 손자를 오게 한 후 할머니 앞에 앉혔다. 안법사는 양손에 명태를 쥐고 할머니의 머리 위에서 흔들었다. 수차례 머리 위에서 명태를 흔 들어 댄 다음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고 빨간천을 둘이 잡고 갈기갈기 찢어 냈다. 다음은 아들이 굿당으로 올라왔다. 안법사는 아들의 생년이 적힌 명태를 손에 쥐고, 아들을 앉혔다. 빨간 천으로 아들의 얼굴을 덮었다. 안법사의 한 손에는 삼베로 감싸놓은 명태가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 18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68 칼을 휘두르며 액을 쫓는 안법사 358 재액풀이 359 삼베로 감아 놓은 명태를 흔들며 액을 쫓는 안법사 360 마당에 던져진 삼베로 감아 놓은 명태 고 있었다. 안법사는 명태와 칼을 아들의 머리 위에서 휘 휘 하면서 흔들어 댔다. 그러고는 명태와 칼을 문 밖으로 짚어 던졌다. 마당에 떨어진 칼이 아들에게로 향하고 있자, 밖에 있던 아주머니에게 칼과 명태를 다 시 달라고 하여 다시 한번 아들의 머리 위에서 휘 휘 흔든 다음 다시 문 밖으로 내던졌다. 그 다음에는 빨 간 천을 둘이 잡고 힘껏 잡아당기며 찢어 냈다. 그러고는 다시 굿당의 마루로 나가 아들을 앉힌 다음 빨간 천 을 덮어씌우고 그 위에 바가지를 씌웠다. 빨간 천을 이제는 온 몸에 둘러 씌웠다. 심규만 할머니는 콩을 가지 고와 바가지 위에 힘껏 뿌렸다. 안법사는 칼을 바가지에 내려 치며, 아들에게 놀라지마 가만이 있어 하며 진정을 시켰다. 그러고는 칼을 아들의 머리 위에서 휘 휘 흔들더니 마당으로 힘껏 내던졌다. 칼이 아들 방 향으로 떨어지자 다시 가져오라고 해서 던지기를 반복하였다. 안법사는 아들의 머리 위에 있던 바가지를 마 당으로 가지고 가 바가지를 발로 밟아 깨뜨렸다. 안법사는 다시 굿당으로 들어가 유보살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를 했다. 갈랍니다 갈랍니다 하며 제상에 있던 돈을 집어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구경하는 사람들에게도 돈을 나누어 마치 조상이 왔다 다시 돌 아가는 것처럼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제4장 신앙생활 183
69 361 빨간 천을 씌우기 액풀이 362 삼베로 길 만들기1 363 삼베로 길 만들기2 안법사의 소리가 끝나고 유보살이 계속 소리를 이어받았다. 유보살은 계속 축원을 하였다. 굿당으로 왔던 조상을 잘 보내는 축원이었다. 그리고 가족들은 안법사와 함께 석불암 입구에 있는 서낭으로 갔다. 가족들 은 조상의 사진이 있는 영정사진을 들고 따라왔다. 안법사는 서낭 앞의 공터에 영정사진을 던지고 태우라 하였다. 영정사진이 타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가족들에게 안법사는 절을 하라고 했다. 안법사는 타고 있 는 영정사진 위에 쌀을 뿌렸다. 안법사는 가족들에게 양석뿌리는 거요 한다. 유보살은 방에서 나와 서낭 앞에서 다시 경을 읽었 다. 한참을 앉아서 읽고 끝이 났다. 굿이 끝난 시간은 저녁 9시 10분이었다. 굿을 한 가족들이 안법사와 유 보살에게 인사를 하고 석불암을 나섰다. 안법사와 윗말의 씨가 굿당 정리를 시작했 다. 정리하는 도중 윗말의 심수영할머니와 심규한 할 머니가 석불암으로 올라왔다. 정리를 다하고 씨는 심수형할머니와 심규한 할머니에게 남은 제수 음식 을 싸주었다. 법당 청소까지 하고 모두들 석불암에서 내려왔다. 364 서낭제로 굿을 마무리하는 유보살 (4) 금당사 금당사는 석교리 5반 지역인 신촌 에 있다. 금당사는 스님과 보살이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이 석교리에 들어온 것은 1991년도의 일이다. 금당사의 원래 자리는 마을 회관 쪽에 있는 정화사가 있는 자리였다. 금당사 보 살이 나물 캐러 왔다가 지금의 금당사 자리에서 기운을 느끼고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신촌으로 온지는 7 8년 되었다. 금당사 보살은 주로 점을 봐주는 일을 하며 이 지역 일대와 전국에서 용하다고 소문이 나있다. 지금의 금당사 자리는 애장터 였다고 한다. 애장터 는 애기들의 시신을 묻어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꺼려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금당사 스님은 동자상을 모셔 애장터 의 기운을 다스리고 있다. 보살은 주로 점과 굿을 하고 있으며, 스님은 매달 초 하루에 정기법회를 열고 있다. 특별법회는 백중, 초파일, 동지, 입춘에 열고 있다. 18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70 금당사 전경 366 금당사 불상 367 산신각 368 금당사 장승 (5) 대불사 대불사는 윗말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제당이 있는 괴화산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대불사에는 부처님을 모 셔놓은 법당과 산신을 위하는 산제당이 있다. 대불사를 운영하고 있는 조태진(1940년생, 여)씨는 마을 사람 들에게 주머니할머니 로 알려져 있다. 조씨는 방에다 복주머니를 매달아놓아 방이 온통 복주머니로 가득 하다. 현재 복주머니 수 만해도 2만여 개가 된다. 여느 무속인과 달리 조보살은 신내림 받은 것을 거부했다. 그 이후로 백일기도를 하러 다니며 수행을 거듭했다. 석교리에 정착해서도 굿은 하지 않고, 수행을 하면서 신도들을 만난다. 복주머니는 석교리에 정착하고 난 다음 선몽을 받고서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복주머니를 만들어주며 대불사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복을 빌어주고 있다. 제4장 신앙생활 185
71 1 조보살의 입무 배경 조보살은 경상북도 선산군 죽장마을에서 조삼천 과 윤보해 사이의 7남매(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 났다. 조보살은 여느 무당처럼 신내림을 받지 않았 다. 자신은 전생에 업이 많아 이승에서 업을 닦아야 하며, 신기가 있어도 깨닫지 않고서 신내림을 받으면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믿고 있다. 조보살은 어려서부터 무속인에게 오는 신기가 있었 다. 그리고 커가면서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조보살의 어머니는 조보살이 5살이 되 었을 때 이상한 것이 서는 것 을 보았다고 한다. 369 복주머니 방에 앉아 있는 조보살 다섯 살 때 우리 어무이가. 낮에 친정에 약방하미 저쪽에 하령쪽인가. 아파서 우리 어무이가 거 가가 계시고, 나도 거 갔는데 해가 떴는데 이래 처마 끝에 앉아 보니께 별이 아주 별이 또록또록하게 보이는 겨. 별이 나와가 우리 어머니보고 저기 별 좀 보라 하니께 말을 그렇게 쥐꼬리만큼 할 적인데. 그런께 인 정을 안했겠지. 구름이 막 지나가는데 구름이 지나가면 별이 보이고 구름이 지나가면 별이 보이고 별 안에도 그렇게 보이더라고 이상하게. 그러니께 서른 여섯에 우리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서른 일곱에 우리 주인 양반 돌아가시고 그랬어. 조보살은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일을 잘하고 만들기를 잘했다. 조보살은 처녀가 되어서는 죽는 것 만큼이나 결혼하는 것을 싫어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절에 갈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끈질 긴 권유로 조보살은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보살은 이를 두고 아버지가 하도 희생을 하라고 해서 결 혼을 했다고 한다. 조보살이 결혼하고 난 다음, 집안에는 풍파가 나기 시작했다. 조보살이 서른여섯 되던 해 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바로 그 다음 해에 남편이 죽었다. 남편은 사고를 당했는데, 마을에 2명이 함께 죽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보살은 산을 돌아다니며 기도를 시작했다. 당시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어린 딸은 이런 조보살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 들이 모인 곳에서 조보살은 주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많이 했다. 딸은 하난데 딸은 저기 중학교 1학년인가 거 인제 터울이 져가지고 아들은 국민학교 5학년 막내는 2 학년 이랬는데 딸은 이제 그때 밖에 나가가지고 중학교 다녔지. 공부를 거서 그래했는데. 딸 이제 그거 중학교 자취하는데 가가지고, 내가 무신 전도사가 아이고 새마을 지도사가 아이고 사람이 모였는데 혼 자 막 이카고 지껄이는 기라. 이제 우리 딸이 나는 바른 말 한다고 하지만 우리 딸이 보면 이상하잖아 엄 마가 그칸께 아이고 마 여름에 홑이불 덮고 마루에도 뒤굴뒤굴 구불며 우는겨 엄마 다시 안이래 산다 해놓고 왜 이카는데. 우리 딸이 마 엄마 다시 안그런다 캐놓고 왜카냐. 개걸개걸 우는데... 울어도 말 한마디에 딸 뚝 그치게 만들었어 18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72 조보살은 백화산, 마이산, 속리산을 돌아다니며 100일 기도를 했다. 조보살에게 오는 신기를 막을 수 없었 다. 조보살은 내림굿을 받지 않고 산기도를 다니면서 이러한 기운을 눌렀다. 조보살은 자신이 수행을 한 다 음에 신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2 석교리 정착과정 조보살이 석교리 대불사에 들어 온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속리산 100일 기도를 마치고 우연한 기회에 석 교리 대불사를 소개받고 찾아오게 되었다. 당시 석교리 대불사는 망한 절이었다. 조보살이 입주하기 전 대불사에는 상철 어머니 로 불리는 할머니 보살과 며느리가 살고 있었다. 이 둘은 외지인으로 석교리에 들어와 무업을 하다 대불사를 1986년에 짓고 난후 서서히 망했다고 한다. 대불사가 망 하게 된 것은 대불사에 있는 살아있는 바위 와 연관이 있다. 아랫말에 사는 이종애씨는 대불사 내력을 자 세하게 알고 있었다. 대불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법당을 지은 이후이다. 그 이전에는 상철 어머니 라고 불리던 보살이 외지 에서 들어와 무업을 하고 있었으며, 현재 대불사 복주머니 방 자리에서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다. 이 상철 어머니 는 북한 지역인 신도안에서 온 사람으로, 마을에 오자마자 용한 사람으로 이름이 났다. 마을 사람들 은 이 보살을 두고 산에서 나온 이 라고 하였다. 그만큼 산 기도를 많이 한 사람으로 이름이 났다. 이렇게 상철어머니 라는 보살이 마을에서 무업을 하는 중에 서울에 살고 있는 며느리가 석교리로 이주 하게 되었는데, 며느리 또한 신기가 있었다. 며느리는 통이 크고 인물이 좋았다고 한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와 함께 무업을 하면서 대불사를 짓게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대불사 짓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대불사를 짓고 나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대불사를 짓고서는 외출을 하지 말고 만약 외출을 하게 되면 기도를 하 고가라 고 하였다. 하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 말을 잘 듣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며느리가 서울에 서 내려온 후 시어머니와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이후 며느리가 친정집에 가게 되었는데, 친정집에 도 착하고 며칠 후에 중풍이 들어 쓰러졌다. 그 뒤 남편이 암으로 죽고, 시어머니도 죽게 되었다. 이 집 짓고 서로 니가 어디를 나가려면 여기 서로 기도를 하고 어디를 가도 가야지, 너 그냥 무관심 하고서 어디 갔다는 너 해를 본다. 나가가지고서는 친정에 가가지고 서는 그냥 꼭구라져서 풍증이 왔 어. 그카고 서는 그 질로 남편 죽었지. 자기 풍증 걸렸지 그렇게 해서 망했어. 이 집에서 할머니 돌아가 시고 아들 암으로 죽고 마누라 어디 가지 말라고 하는거 가가지고 그 뒤로 풍이 왔어.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대불사를 지을 때 바위를 잘못 건드려서 그렇다고 했다. 대불사 건축당시 산 에서 뻗어온 바위를 일부 잘라내고 건물을 지었는데,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가 살아있는 바위라고 하였다. 시어머니가 절을 짓는 것을 반대한 것은 이러한 이유였다고 하였다. (대불사) 잘 지었으면 뭐햐. 이 절지어놓고 망했는 걸. 그 사람은 절지어놓고 망했잖아. 그래가지고 영 감죽고. 할머니가 저 집 짓고 그 뒤에 살았고. 바위를 안 깍어야 되는겨. 날개를 깍어 가꾸 그렇게 망했 다는 겨. 참 일도 잘하고 통도 크고 인물도 좋고 했는데. 제4장 신앙생활 187
73 조보살은 이렇게 망한 절을 사서 들어 온 것이다. 처음에 조보살이 절에 왔을 때는 절 수리가 덜 된 상태였다. 망한 절에는 하루 종일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조보살은 10년 있다 보자고 마음을 잡았다 고 한다. 조보살은 사람이 상처가 나면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아물 때가 돼야 낫는 법이라면서, 대불사 에 맺힌 아픔이 아물면 자연히 손님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대불사에 이주한 다음 조보살은 1년 6개월 동안 식 당에 다니며 일을 해야 했다. 하루는 간밤에 어지러 370 살아있는 바위 운 꿈을 꾸었다. 조보살은 이 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일을 다니다가, 갑자기 꿈에서 보았던 대로 법당에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누가 잘못을 했건 이 집 주인이 되었으니, 제가 공양을 다시 올린다며 제수 를 차려놓고 대불사에 제를 지냈다. 이렇게 제를 지내고 난 후에는 서서히 손님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하루는 식당에를 안가고 생각을 한께 저 그때 그 생각이 나는 겨. 그래 인제 시루 하나 요래 쪄다 놓 고 과일 조금하고 나물 하고 밥 조금 지이다 놓고 인제 상에다 놓고 신문 한 장 깔고 그래 절을 하메. 참 누가 잘잘못을 가리는게 아니라 이 이 집 주인으로서 어느때건 잘못을 했건 어옛건 이 주인으로서 이렇 게 참 마저 공양을 올린다고. 무신 말도 할 중도 안하고 뭐 나는 무당들 두드리고 안항께. 그래 나도 정 말 저 하나의 도꾼이여 도꾼... 그래 인제 그리고 났더니 한 십년 되간께 뭐 손님 하나고 둘이고 자꾸 모 이들더라고 이종애씨의 종 기증 조보살이 오기 전에 상철아주머니 란 분이대불사 에서 무업을 하고 있을 때, 아랫말의 이종애씨가 종을 기증했다. 상철아주머니는 이씨의 둘째 아들의 동토를 잡아주기도 하고, 이씨 집에서 굿도 여러번 해주었다. 이씨는 계속 상철아주머니를 믿고 따르다, 대불사가 만 들어지던 해에 종을 기증하게 되었다. 상철아주머니가 돌아가시고 대불사가 망한 절이었지만, 조보살이 새로 절에 들어오자 이씨는 계속해서 대불사와 인연을 맺고 지내왔다. 371 이종애씨가 기증한 종 대불사가 이주하게 되면서 이씨가 기증한 종 또한 충남 서산에 보인사라는 사찰로 가게되었다. 이씨는 보인사 법당으로 종이 가게 되면, 종소리를 듣기 위해 갈 것이라고 한다. 18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74 3 조보살과 복주머니 조보살이 주머니를 만들게 된 것은 대불사에 정착한 다음 선몽을 받고서다. 조보살이 어느날 꿈에 밤나무 밑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떤 할머니가 흰 소복을 입고 대불사 앞 삽작(대문) 앞을 지나가면서 두고 보 면알지 라며 법당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조보살은 할머니를 따라 법당에 들어갔는데, 할머니의 등 뒤 에 주머니가 가득 보였다. 할머니는 조보살에게 니가 주머니를 만들어야게겠다 하며 이야기를 했다. 꿈을 꾸고 난 이후 다음날부터 조씨는 아침, 저녁으로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11년째 주 머니를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옷 만드는 양복점에 가서 남는 천으로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하다 나중에는 양복점 주인이 유행이 지나 쓰지 않는 천을 조씨에게 직접 가져다주었다. 조보살은 복주머니를 만들어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고, 남는 것은 계속 방에 모셔두었다. 이 방을 복주머니방 이라고 부르는 데, 방에는 무려 2만개가 넘는 복주머니가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조씨는 이만하면 여기 오는 사람들의 복 을 다 빌어 줄 수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복주머니를 만들지 않겠다고 한다 복주머니를 손에 쥐고 있는 조보살 373 복주머니를 건네 받고 좋아하는 신도 374 바구니에 담긴 복주머니 375 법당에 놓여있는 복주머니 376 방안에 걸어 둔 복주머니 제4장 신앙생활 189
75 4 신내림을 받지 않으려는 조보살 조보살은 신내림을 받지 않고 있다. 자기를 두고 표현하기를 도꾼 이라고도 한다. 말그대로 도를 닦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조보살은 신을 받아서 굿을 행하는 무속인의 역할보다 깨달아 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한다. 조보살은 신내림을 받기는 받을 텐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몸으로 따지면 종기가 난 것을 짤 때가 되어야 짜는 것이지, 미리 짜버리면 상처가 더 깊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중요 한 것은 자신이 터득하고 공부를 한 다음 신이 터져야 한다 고 했다. 신이란 것은 똑같은 데 자신이 수준에 올라와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조보살이 설명하기를 자기 영에 닦고 닦고 해가 지고 보석이 되야지 해먹지 미리 내림굿만 한다고 너무 일찍 잘못하면 맥혀 버린다 고 하였다. 신을 나는 그래 알아 그거는 공식이 없고 철학적으로 배운게 아니고 이런데 내림굿이라 하는건데 받 기는 받는데 때가 안거는. 인제 어디 살이 어디 말하자면 종기가 나더라도 터져가지고 짤때가 되어야 짜지 안됐는거를 짜면은 시퍼란게 성이 나가지고 속에 더 깊이 드가서 곪은기여. 말하자면 이런데 나는 알기를 그래 알어 내가 신이 왔다 이래되면은 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공부를 해도 내가 해야 된 다는겨. 남이 실력이 있는 사람이 그걸 해준다 불질러 봐도 언젠가는 내가 공부를 해 가지고 터져야 돼...(중략)...,너는 전생에 업이 많은께 어떻게 어떻게 해라 하는게 자기 입으로 나와 가지고. 어느 어른이 나를 높이 도와주실라 하는가 하고 무당되는 거 가름 하는기지. 굿은 누가 해줘도 내림굿을 해도 나는 할 때가 돼서 해야지 소용없다는 그렇지 머 어떤 사람은 몇 번씩 해가지고 살림 다 망해먹어뿌리고 내주가서 결국은 누구 절에 가서 밥해주는 사람도 있고...(중략)... 이렇게 등급에 따라 자기 영에 닦고, 닦고 해가지고 보석이 되야지 해먹지. 미리 내림굿만 한다고 너무 일찍 잘못하면 맥혀 버려 그러고 내가 신이 들리잖아 말하자면 신이 들리든지 뭐 내가 뭐를 할라고 하는데 저 오는 사람이 나를 바라가지고 신풀이 해라 뭐 대감을 받아라 뭐를 어쩌라 하거든 자기도 그런 말을 해야지 벌어먹고 살고 떡값이라도 나오고 점하는 사람이 범신 받은 점이라도 잡신이 하나 들어가 있어야 해 잡신이 있어 야 지껄이고. 이런께 그러는데 나는 기도는 내가 해야 된다 신풀이는 내가 받들이고 가름을 해야 될 때 가 돼서 가름을 하라는 긴데 어떤 사람은 무당 그래. 조보살은 자신이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것을 잘한 일이라고 한다. 신내림을 받아서 잘 사는 사람이 있지만, 잡 신이 들어와 자신을 망치는 사람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내림을 받으면 춤을 추고, 꽹과리를 두드리 며 굿을 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런 것 보다는 죽을 때까지 박박히 기도하며 깨달아 가는 것을 더 원하고 있다. 그래서 조보살은 다른 무속인처럼 굿을 하지 않는다. 대신 복주머니를 만들어 주면서 그 사람의 복을 빌어주고, 아픈 사람이 찾아오면 입에서 나오는 대로 그 병세를 짚어주고 처방을 해준다. 그리고 매일 법당과 산제당에서 불 공을 드리고, 사월초파일이나 칠월칠석 때에는 대불사를 찾는 신도들의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무업을 행한다. 5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대불사의 이주 2006년 4월 30일에는 조보살이 경북 상주시 신천 1리로 이주 했다. 12년 동안의 대불사 생활을 마감하고 조보살은 무속인 중 처음으로 마을을 떠났다. 이주지인 경북 상주 지역은 조보살이 수행을 시작한 곳이다. 조보살은 자신이 처음 산기도를 했던 상주시의 백화산 기슭에 집을 구하고 땅을 샀다. 19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76 조보살이 이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대불사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대불사를 방 문해 떠나는 조보살의 얼굴을 보고 갔다. 아랫말의 이종애씨는 쌀을 가져와 조보살에게 보시를 했다. 또한 조보 살을 집으로 불러 저녁을 해주기도 했다. 이주하기 전날 조보살은 윗말에 사는 유정임씨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377 이주전날 조보살 378 쌀을 가져온 마을사람들 이주하는 날 아침에는 마을 사람들과 인근에 사는 신도들이 배웅을 나왔다. 이삿짐을 함께 운반해주고, 용달차를 기다리며 안부인사를 많이 하였다. 태국사의 0법사도 와서 조보살에게 인사를 했다. 며칠 전부터 조보살의 집에는 마을 사람들로 붐볐다. 평소 거리가 있어 왕래를 자주 하지 않던 아랫말 사람들도 많이 찾 아와 조보살에게 인사를 했다. 조보살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복주머니를 주며, 복 많이 받고 건강하게 살으 라는 덕담을 하기도 했다. 용달차에 짐을 다 싣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인근 마을에 사는 신도가 김치를 담아서 가져오는 중이라 기다 렸다 가기 위해서였다. 한참을 대불사 앞 마당에서 마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다 김치를 가지고 온 신도가 도착하고 조보살은 경북 상주로 출발하였다. 조보살은 5월 11일날 대불사 법당, 불상, 복주머니를 헌납하는 회향식을 할 것이니 그 날 보자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떠났다. 조보살은 마을 사람들에게 정들면 고향이여. 건강한 게 첫째여. 서운햐 했다. 조보살은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고 나오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대불사를 돌아보며 손으로 흐르는 눈 물을 닦아냈다. 379 짐을 다 정리하고 법당앞에서 380 조보살과 이종애씨 제4장 신앙생활 191
77 살아있는 바위에 앉아 있는 마을사람들 382, 383 대불사를 떠나는 조보살 384 눈물을 흘리는 조보살 대불사 회향식 일시 : 2006년 5월 11일 장소 : 대불사 조보살이 4월 11일에 경북 상주로 이주하고, 5월 11일에는 대불사 법당, 불상, 복주머니를 충남 서산의 한 사찰로 헌납하는 회향식이 열렸다. 대불사 회향식을 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조보살은 이주하기 전 토 지공사에서 보상만 받으면 대불사가 철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주를 하기로 했지만 잠이 안 올 정도 로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주를 앞두고서 하루는 스님 1명과 남자 1명이 대불사로 찾아왔다. 스님은 대한 불교 심인종에 소속되어 있었고, 같이 온 남자는 전문적으로 사찰을 짓는 사람이었다. 이 둘은 조보살에게 대불사를 그대로 옮기려 고 하니 헌납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보살은 마침 불상과 복주머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하고 있어 이들의 부탁이 반가웠다. 19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78 또한 이 둘은 애초에 대불사 법당과 불상을 기증하라고 하였지만, 조보살이 복주머니 만든 내력을 듣고는 복주머니도 함께 헌납을 해달라고 하였다. 스님과 같이 온 남자는 따로 천을 떠다가 조보살에게 108개 복주 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 조보살에 의하면 이 남자는 절을 지어야 하는 사주를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다. 무속인이 신을 받는 것처럼 이 사람은 절을 지어야만 자신의 영력을 닦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108개의 절을 지을 때까지 이렇게 절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조보살에게 108개의 복주머니를 부탁하였다. 회향식 날자는 심인종의 스님이 잡았는데, 사월 초파일을 지나서 하기로 해 5월 11일로 잡게 되었다. 대불사 회향식은 5월 11일 아침 9시 정도에 시작되었다. 먼저 회향식을 주관할 심인종의 스님과 보인사의 보살이 함께 대불사 회향식을 알리는 지방을 크게 붙였다. 이들은 크게 글씨를 써놓은 지방 종이를 줄로 걸 어 대불사 앞마당에 걸었다. 그리고 법당에도 마찬가지로 벽면에 지방을 붙이고, 스님은 부처님 앞에 오색 으로 된 띠종이를 붙였다. 조보살은 법당 뒤에 있는 산제당을 청소했다. 걸레를 가지고 제당 바닥을 깨끗하게 닦고, 산신 앞에 제단 위를 청소했다. 청소가 다 끝난 다음 청수를 떠와 제단 위에 올려놓고 기도를 했다. 조보살은 산신님을 부르 며,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인해 자신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를 드린 다음 제 단 위에 올려놓은 청수를 산제당 밖으로 뿌렸다. 조보살이 살던 요사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제수 준 비를 하고 있었다. 법당에서는 스님이 축문을 쓰기 시작했다. 스님은 보인사의 보살을 불러 주소와 이름을 물어가며 신위를 썼다. 그 다음에는 조보살의 주소, 이름, 나이를 신위에 적었다 대불사 회향식 386 지방붙이기 387 방안에 모여있는 마을사람들 388 식을 준비하고 있는 주지스님 제4장 신앙생활 193
79 389 위패를쓰고있는스님과보살 390 위패를쓰고있는스님과조보살 스님은 축문을 다 쓰고 옷을 갈아입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승복이었다. 스님은 큰 징을 자신의 앞에 엎어 놓고, 앞에 목탁을 들어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보인사의 보살과 스님이 옆에 앉아 같이 불경을 외우고 절 을 올리며 기도를 했다. 불상 앞에는 큰 시루떡, 토마토, 배, 사과, 청수 등을 올려놓았다. 조보살이 법당으로 올라왔다. 곱게 한복을 입고 스님의 불경 소리에 맞추어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올렸 다. 네 명이 부처님 앞에서 제를 지내게 되었다. 한참을 스님의 불경에 맞추어 절을 하고 기도를 하다, 조보 살은 부처님 전에 돈을 공양하였다. 그리고 그 앞에서 절을 계속 했다. 391 부처님 앞에서 제지내기 392 불경을 읽고 있는 스님 393 부처님 앞에 선 조보살 조보살은 먼저 부처님 앞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 법당의 왼편 벽면에 조상님의 신위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 냈다. 보인사의 보살과 스님이 먼저 제를 올렸다. 조상님 제상에는 밥, 두부, 대추, 나물 등이 놓여 있었다. 조보살의 조상님 제사가 이어졌다. 조상님에게도 이주하게 되었다는 것을 고하고 절을 올렸다. 절을 계속 하며 조보살은 눈물을 쏟아냈다. 스님의 불경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법당 밖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이 광 경을 보고 있었다. 제사가 끝나고 스님은 불경을 멈추고 일어났다. 일어나더니 종을 들고 불경을 다시 외우기 시작했다. 스님 은 법당을 돌며 계속 불경을 외웠다. 그 뒤에 조보살, 보인사 보살과 스님이 뒤를 이었다. 법당을 한 참 돌다 스님은 부처님 전에 합장을 하고, 다시 법당 밖으로 나와서 종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웠다. 밖에 있던 신도는 19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80 394 조상님께 제 지내기 395 조상님께 절하는 조보살 396 조상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조보살 법당 마당에 걸어두었던 종이들을 다 걷어내 스님 뒤를 따랐다. 뒤를 따르던 보인사의 스님이 목탁을 쥐고 두드렸다. 스님은 법당 마당을 한 참 불경을 외우며 돌다 복주머니 방 앞으로 갔다 법당을도는모습 398 법당을 돌고있는 조보살 399 부처님께 합장 400 법당앞을 돌고 있는 회향식 행렬 제4장 신앙생활 195
81 401 복주머니 방으로 향하는 회향식 행렬 402 소지준비 복주머니 방 앞에서 다섯명이 나란히 섰다. 스님, 보인사 보살과 스님, 조보살, 대불사 신도 이렇게 다섯 이 그 앞에 모여 부처님께 올렸던 축문, 조상님의 신위 등을 그 앞에 놓고 소지할 준비를 했다. 조보살은 자 신의 신위를 태우기 시작했다. 불이 활활타오르며 스 님의 불경소리가 대불사를 덮었다. 스님이 써놓은 모 든 축문, 신위들이 불에 탔다. 조보살은 또 울면서 그 앞에서 절을 하고 기도를 했다. 소지를 다 태우고 난 다음 모두 복주머니 방으로 들어갔다. 복주머니 방에는 조보살이 대불사에 온 뒤 403 소지 태우기 로 만들었던 복주머니가 방안 가득히 있었다. 그 안에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복주머니의 회향식이 열렸 다. 조보살은 스님에게 절을 하며 복주머니를 주었다. 스님은 보살님이 이제껏 만들어 놓은 복주머니를 잘 받아 절에 보관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스님 또한 조보살에게 절을 했다. 법당 마당에는 마을 사람들과 인근 마을에서 온 신도들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장재리 길재에서 온 신도들 이 많았다. 모두 법당 마당에 모여 식사를 했다. 마을 사람들과 신도들은 조보살이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을 아쉬 워했다. 404 복주머니까지 회향하는 조보살 405 복주머니 방에서 회향식을 마치고 19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82 406 점심식사를 하는 마을사람들1 407 점심식사를 하는 마을사람들2 408 대불사 앞마당에서 마을사람들과 함께 3. 가정신앙 마을의 각 가정는 다양한 가정신앙이 전승되고 있다. 둥구나무제, 시루떡고사, 터주고사, 삼신고사, 성주 고사, 소 부정 가리기 등이 그것이다. 마을 내 가정신앙은 예전에 비해서 약화되고 있는데, 가정신앙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부녀자들이 고령화 되면서 고사를 지내지 않거나, 형식을 간소화해서 제를 지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다음은 현재 전승 되고 있는 마을내 가정신앙의 모습과 그 내력이다. 제4장 신앙생활 197
83 1) 둥구나무제 마을에서 둥구나무집 으로 불리고 있는 황선순(1954년생, 여)씨의 집에서는 둥구나무제를 지낸다. 보통 둥구나무제는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를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황씨의 집에서는 개인적으로 제를 지내 고있다. (1) 둥구나무제 내력 황씨의 집 뒷마당에는 수령이 얼마인지 모르는 오래된 둥구나무가 있으며, 정월 열나흗 날 저녁에 제를 지 내고 있다. 황씨가 둥구나무제를 지내는 것은 집안의 내력과 관련이 있다. 황씨는 20세에 이웃에 살던 이승 한씨와 연애결혼을 하게 된다. 이씨는 집안의 6대 독자로 집안은 대대로 손이 귀했다. 황씨가 시집을 와서보 니, 시어머니는 둥구나무를 엄청 위하고 있었다 고 한다. 시어머니는 6대째 자식이 귀한 집안에서 둥구나 무를 위하며 자손이 번창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둥구나무 앞에 있는 당산 을 정 성스럽게 관리하며 평소에도 둥구나무를 정성으로 위했다. 둥구나무제는 이승한씨의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지내왔는데, 이러한 집안의 정성이 전달되었는지, 황선순 씨는 결혼하고 4남매를 낳았다. 이렇게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보면서 시어머니는 엄청 좋아했다 고 한다. 시어머니는 황씨가 자 식들을 낳고 얼마 안 돼 중풍으로 고생하다 돌 아가셨다. 이후부터 황 씨가 둥구나무 제사를 물려받아 지내고 있으 며, 시어머니는 돌아가 시기 전까지 둥구나무 제를 잘 지내야한다고 황씨에게 얘기했다. 그 후로 황씨는 해마다 거 르지 않고 제를 지내고 있다. 409 둥구나무 410 황씨의 시부모 (2) 둥구나무제 진행과 금기 둥구나무제는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지낸다. 정해진 시간은 없으며 날이 어두워지면 지낸다. 제는 두 군 데에서 지내게 되는데, 둥구나무 앞과 장독대이다. 황씨의 집 뒤에는 산능선이 바로 맞 닿아있는데, 둥구나 무는 집 뒤편의 산 아래에 자라고 있다. 제사는 둥구나무가 잘 보이는 황씨의 집 뒷마당에서 지낸다. 집을 신 축하기 이전에는 뒷마당에 언덕처럼 솟아오른 당산 이 있어 이 위에 시루떡과 제수음식을 진설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집이 현대식 만들어지면서 마당에 당산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후부터는 평평해진 뒷마당 가운데 19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84 정도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진설하고 제를 지내게 되었다. 제사 순서는 다음과 같다. 황씨는 먼저 둥구나무가 잘 보이는 뒷마당에 먼저 짚을 평평하게 깐다. 짚은 시 루떡과 쌀그릇을 진설할 수 있을 만한 정도로 깐다. 짚을 깔고 하얀 백설기 시루떡을 짚 위에 먼저 놓는다. 그 옆에 청수물을 사발에 담아 올려놓으며, 쌀을 마찬가지로 사발에 담아 그 가운데 초를 꽂고 불을 붙인다. 쌀은 밥공기 정도 크기의 그릇에 담는다. 음식을 진설하고 촛불을 켠다음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가족들 숫 자만큼 준비해서 올린다. 소지종이는 한지를 사용하며 장에서 사온다. 소지종이는 가족의 이름을 새기지 않 는다. 가족의 숫자만큼 소지를 올리고 황씨는 동서남북으로 돌며 절을 한다. 이때 가족들 잘 되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동서남북으로 절하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소원을 빈다. 이렇게 하면 둥구나무 제사가 끝나 며, 이후 장독대로 자리를 옮겨 제를 지내게 된다. 장독대에는 시루떡을 올리지 않고 짚을 깔아 놓은 다음 그 위에 쌀과 청수물만 올린다. 제수의 진설은 둥구나무제와 같은 시간에 해 놓으며, 제사는 둥구나무제가 끝 나고 지낸다. 둥구나무제는 정월 대보름 저녁에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부정한 일이 생기면 칠월 엿새날 저녁으로 날을 잡는다. 부정한 일은 초상이 마을에 나거나, 집안에 아픈 사람이 생기는 등의 우환이 있을 때이다. 이러 한 금기는 시어머니가 전한 것으로 시어머니는 정월달에 우환이 생겨 하지 못하면 칠월칠석에라도 꼭 지내 라는 당부를 했다. 그렇게 해야 집안이 편안하다며 둥구나무제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2006년에는 정월 열나 흗날 저녁에 둥구나무제를 지냈다. (3)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인한 이주 문제와 둥구나무제 황성순씨는 마을에서 이주를 하게 될 때까지 둥구 나무 제를 지낼 것이라고 한다. 시어머니의 당부가 있어 아직도 구식을 못 버리고 있다 는 황성순씨는 이제 자식도 많이 생기고 해서 제를 그만두려고도 했 지만, 제를 지내다 갑자기 안하면 이상하고 불안해서 계속 지내고 있다고 한다. 어른들이 하던 것을 안 하 면 마음이 꾀꺼롬(불편) 하다고 한다. 황씨의 집은 아직 토지공사의 실사를 받지 않아 이주계획은 세우 고 있지 않은 상황이지만, 내년 정월에 둥구나무제를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411 황선순씨 내외와 큰딸 2) 용왕제 용왕제는 윗말의 양사예(66세, 여)씨가 음력으로 정월 열나흗 날 집 앞 우물에서 지내고 있다. 양씨의 집 앞에 있는 우물은 수돗물을 사용하기 전까지 1, 2반 사람들이 이용하는 마을의 공동우물이었다. 공동우물이긴 하지만 용왕제는 개인이 지내왔다고 한다. 양사예씨는 1960년대에 이 집으로 이사를 와서 현 재까지 용왕제를 지내고 있다. 제4장 신앙생활 199
85 양씨가 이사 오기 전에는 전 집주인인 이종두씨가 용왕제를 지내고 있었다. 이종두씨는 이사를 오는 양 사예씨에게 용왕제를 잘 지냈으면 하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양씨가 이사를 오고 나서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지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양씨가 지내게 되었다. 용왕제는 매해 음력으로 정월 열나흗 날 저녁에 지낸다. 열사흗 날부터 용왕제의 준비가 시작된다. 먼저 음력 열사흗날에 한 시암 되는 물을 우물에서 품어낸다고 한다. 우물에 물이 많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타루박(두레박) 으로 물을 품었다고 하나, 지금은 양은 양동이 끈을 메달아 물을 품는다. 이번 용왕제에는 막내딸이 와서 물 품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렇게 우물에 물을 깨끗하게 품어 낸 다음, 그 다음 날 저녁에 해가 지고 껌껌해지면 용왕제를 지낸다. 우 물 앞에 시루떡, 청수를 놓고 그 옆으로 촛불을 밝힌다. 동서남북으로 돌면서 절을 하면 제는 끝이 난다. 제 를 지낼 때 남자가 지나가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반 면 여자가 지나가면 마수 없다고 한다. 양씨는 이제 것 제를 지내면서 여자가 지나간 적은 없고 남자가 지나간 적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양씨가 제를 조심스럽게 지내기 때문인지 양사예씨가 다니는 절 에서는 믿음이 강하다는 얘기를 한다. 특별한 질문이 없는데도 양사예씨는 행정중심복 합도시 문제로 이주를 하게 될 경우, 주방에 떠놓고 라도 제를 지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양씨는 그렇게 라도 제를 지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양씨는 용 왕제를 정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412 용왕제를 지내는 우물 3) 시루떡 고사 마을 사람들은 일 년에 3차례, 음력으로 정월 열나흗날, 칠월 엿새, 시월 초하루에 시루떡 고사를 지낸다. 각 가정에서는 보통 정월 열나흗날이나 시월 초하루 중 하루를 잡아 고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근래 들어 마을에서는 시루떡 고사가 약화되고 있는데, 이는 고사를 지내왔던 여성들이 고령화되면서, 고 사를 간소화해서 지내는 가정이 늘고있기 때문이다. 현재 마을에는 시루떡을 하지 않고, 청수만 올려 제를 지낸다고 한다. (1) 심규철씨 댁의 사례 윗말에 살고 있는 심규철(1942년생, 남)씨 댁에서는 음력으로 정월 열나흗 날 시루떡 고사를 지낸다. 심씨 내외는 마을이나 가정에 우환이 있을 때는 제를 지내지 않는다. 그리고 초상집에 다녀왔을 때에도 고사를 지 내지 않는다. 심규철씨가 환갑이 되기 전까지는 성주고사도 지냈다고 하나 현재는 시루떡고사만 지내고 있다. 2006년 2월 12일 심씨 내외의 시루떡고사를 참여관찰 하였다. 조사원이 도착한 시간은 5시 30분경이었는데, 임천순(1943년생, 여)씨는 정월 대보름 절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루떡고사 준비는 저녁식사 후 시작되었다. 20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86 정월 대보름 시루떡고사 (2006년 2월 11일) 오후 5시 30분 정도에 조사자가 심규철씨의 집에 도착하니, 부인 임천순씨는 취나물, 시래기나물, 토란 대, 생채나물을 만들고 있었다. 주방 바닥에 앉아 임씨는 나물을 다듬고 양념을 버무렸다. 6시가 넘어 저 녁 준비가 다 끝나자 내외는 거실에 상을 펴고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 임씨의 사촌 동생이 찾아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바로 임씨와 남편은 고사 준비를 했다. 임씨는 백설기 가루를 시루에 쏟아냈다. 백설기 가 루는 며칠 전에 남편과 오토바이를 타고 대평리에 있는 정미소에 가서 찹쌀 1되를 빻아서 만든 것이다. 임씨 는 백설기 가루를 시루에 쏟은 다음 시루 밑에 검은 솥단지를 놓았다. 검은 솥단지에는 물을 부어 놓았다. 임 씨는 시루번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루번은 양은 시루와 그 밑에 검은 솥이 만나는 곳에 붙여 놓았는데, 김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임씨의 남편 심규철씨는 무쇠솥 뚜껑을 밖에서 찾아와 시루 위에 덮었다. 가스에 불을 켜고 가열하기 시 작했다. 40분 정도 가열한 다음 임씨는 뚜껑을 열고 떡이 익었는지를 확인하였다. 남편 심씨도 와서 함께 떡 이 익었는지를 살폈다. 임씨는 떡이 익은 것을 확인하고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욕실에서 나와 임씨는 정성을 드리기 전에 세수라도 해야지 하며 조사원을 보고 웃었다. 임씨는 장독으로 가서 제 지낼 준비를 했다. 먼저 장독에 짚을 깔아 놓았다. 짚은 열십자가 아닌 일자로 편 편하게 깔았다. 청수물을 욕실에 가서 받아와서 짚 위에 올려놓았다. 주방으로 들어가 임씨는 쌀을 밥그릇 백설기 가루 준비 414 시루번 만들기 415 시루번 붙이기 416 시루떡을 찌고 있는 두 내외 제4장 신앙생활 201
87 에 수북하게 담고, 그 가운데 초를 세워두었다. 장독대로 가져가 청 수를 옆에 두었다. 모든 제물의 준비가 끝나고 임 씨는 촛불에 불을 켰다. 남편 심씨 는 옆에서 조용히 바라보았다. 임 씨는 먼저 장독을 바라보며 삼배 를 했다. 삼배를 하고 다시 동서남 북으로 몸을 돌리며 합장을 몇 번 씩 했다. 마지막 합장은 길게 허리 를 굽힌 다음 일어났다. 417 시루 뚜껑을 준비하는 두 내외 418 세수를 하고 난 임천순씨 임씨는 주방으로 들어와서 음복 준비를 하였다. 냉장고에서 동치미를 꺼내고 상위에 올려놓았다. 장독으 로 가서 시루떡을 가져와서 함께 먹고 제가 끝이 났다. 419 청수 올리기 420 시루떡과 고사 진설 모습 421 동서남북으로 절하기 20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88 (2) 이종희씨댁 사례 이종희(1934년생, 남)씨 댁에서는 1년에 3번 시루떡고사를 지낸다. 정월 열나흗날, 칠월 엿새, 구월 그믐 저녁으로 지내고 있다. 이종희씨는 시루떡고사의 의미에 대해서 칠성에 고사시루 해놓는 것은 자손들 잘되 라고 하는 마음에서 하는 거지 라고 설명 한다. 이씨의 부인 허순금(1936년생, 여)씨는 시집와서 시어머니 의 대를 이어 시루떡고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씨 부부는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는데, 몇 해 전 큰 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더욱 이씨 부 부는 정성스럽게 시루떡고사를 지내며 칠성님에게 자손 잘되라는 바램을 기원하고 있다. 또한 금남면 황룡사 주지스님이 시루떡고사를 괴화산에 있는 이씨의 증조할아버지 산소에서 지내면 좋 다고 하였는데, 허순금씨는 다리가 아파 산에 올라가지를 못해 증조할아버지 묘소를 보고 제를 지내면서 절을 한다. 칠월 엿새에 이씨 부부의 시루떡고사를 지켜볼 수 있었다. 조사자가 온다고 해서 허순금씨는 시간을 조금 앞당겨서 고사를 지냈다. 저녁에 하면 조사자가 사진 찍기 힘드니 저녁 전에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 정시간보다 앞당겨 고사 지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종희씨 댁 시루떡고사 : 2006년 7월 30일 (음력 칠월 엿새) 조사자가 집에 도착하자 허씨는 주방에서 가스렌지 위에 시루를 올려놓고 떡을 찌고 있었다. 허순금씨는 오후 6시 정도에 시루떡을 올려놓았다. 그전에 허씨는 조왕에 촛불을 밝히기 위해 남편 이종희씨에게 황룡 리농협에 가서 초 사올 것을 부탁하였다. 이종희씨는 촛불을 사다 놓고, 집 앞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있었다. 6시 30분이 조금 넘자 허씨는 시루의 뚜껑을 열어보고 떡이 다 쪄졌다 며 가스에 불을 껐다. 시루에 뚜껑을 열어 놓고, 허씨는 씽크대 위 조왕신을 위해 올려놓은 쌀 그릇 가운데에 촛불을 밝혔다. 바로 허씨는 장독대에 고사 지낼 준비를 했다. 시루떡, 청수물, 쌀그릇을 가지런히 놓았다. 허씨는 진설된 제수를 보며 절을 한 번하고, 동서 남북으로 돌아가며 절을 했다. 절을 하며 이렇게 카메라 가지고 와서 찍 고 하니 밝혀주고 받들어주고 다 등재해 주십시오 하며 축원을 했다. 그리고는 증조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괴화산을 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가족 돌봐주십시오. 거기까지 갈래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합니다 하며 축원을 했다. 422 초에 불 밝히기 423 장독대로 가져가기 제4장 신앙생활 203
89 이렇게 해서 고사가 끝이 났다. 허씨는 잠시 후 시루떡을 장독대에서 꺼내와 음복을 했다. 이종희씨도 농 약을 끝내고 샤워를 한 다음 함께 시루떡을 먹었다. 음복이 끝나고 저녁식사를 했다. 424 시루떡 고사 진설 425 동서남북으로 절하기 426 칠성님께 절하고 있는 허순금씨 4) 터주고사 <홍아기씨 댁의 사례> 홍아기씨(1930년생, 여)의 고향은 공주군 성덕면이고 석교리에 들어 온 것은 중매를 통해 혼인하면서이다. 시어머니는 평소에 모시던 터주 단지를 홍 할머니에게 물려주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장독대에서 터주 고사를 지내게 되었다. 홍씨의 터주고사는 음력으로 시월 초이튿날 새벽에 지낸다. 이날 새 벽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홍씨는 새벽 3시에 일어나 터주 안에 모 시기 위해 미리 준비한 쌀을 다시 체로 쳐서 깨끗하게 하고 난 다음 쌀 을 터주단지 안에 모신다. 그 안에 있던 묵은 쌀은 시루떡을 해서 다시 터주신에게 바친다. 홍씨는 터주신을 일곱 칠성님 이라고 부른다. 427 홍아기씨 우리는 별다르게 안하고서. 초이틀날 새벽같이 일어나서 남 일어나기 전에 3시나 이렇게 해서 그 나 락을 벼를 깨끗하게 털어서 깨끗하게 집에 말려가지고서 새벽에 그냥 채로 다시 까불러서 새벽에 인나 기전에 나락을 들인다고. 초이틀날 새벽에 일어나서 남 일어나기 전에 한 3시 정도 해야돼. 홍씨가 새벽 3시에 제를 지내는 것은 부정한 것을 볼까봐서라고 한다. 2005년도에 터주고사를 조사하면 서 조사자가 홍씨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는데, 그 일 이후로 홍씨는 며칠 동안 병이 났었다 고 한다. 홍씨는 이를 두고 터주신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조사자가 마을에 살면서 홍씨와 친해지면서 이러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20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90 (새벽 3시에 하는 이유가 있나요?) 부정한 것 볼까봐. 그렇게 가리는 거여. 그때 학생이와서 그 다음 내가 병이 났는디. 아이고 함부러 저기해서 그런가 얼마나 걱정이 되든지. 내가 알 수가 없어 그냥. 고여 니 내가 병이 나더라고. 한편 홍씨가 터주단지를 더욱 정성스럽게 위하게된 계기는 몇 년 전의 일이다. 몇해전몸이많이아픈적 이 있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았다. 홍씨는 석교리에 있는 태국사의 홍보살에게 그 이유를 물었는데, 홍보살은 터주단지를 정성스럽게 모시지 않아 터주신이 노한 것이라고 하였다. 장독대에 짐승들 이 와서 터주단지가 부서진 적이 있었는데 이를 크게 노하여 병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후 홍씨는 터주단지 앞에서 정성스럽게 몇 날을 기도한 후 비로소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홍 씨는 터주단지를 더욱 정성스럽게 모시게 되었다. 다음은 홍아기씨와 조사자의 터주고사에 대한 인터뷰 내용이다. 조사자(이하 연) : 할머니 터주는 시집오셔서 계속 지내셨어요? 홍아기(이하 홍) : 아니 이것은 옛날에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해야만 자손들이 잘큰다 해가지고서로 그거를 했잖아. 어머니 지시를 받아서 그냥 버릴수가 있어. 그렁께 나도 어머니 하던 식으로 나도 열 씸히 하는거지. 연:할머니 시집오셔가지고 바로 이어받으셨어요? 홍:인저 어머니가 하시는데 연영이 높아지니께 못하것다고 그러니. 연:할머니가 몇 세 정도 되었을 때? 홍:그런께 한 40대에서부터 한 것 같아. 연:할머니가 고사 지낼 때 누구한테 비세요? 홍:터주대감님 일급(곱)칠성님. 칠성이거든. 연:터주가리 준비는요? 홍:그거는 새벽에 일어나서 깨끗이 해놨다가가 새벽에 일어나 엮어서 해가지고 쌀넣어가지고 씌우는겨. 연:쌀은 단지에다 넣고요? 홍:응 이만하지(팔을 벌려 크기를 설명). 한 말들어. 연:어디서 빻아요? 홍:그전에는 도구통에다 쪘는데 힘들으니께 안하고 지금은 방아들이 있응게. 개인용 방아. 우리 것으로 했 는데 비아링인가 오래는디 5만원인가 든다고 해서 안고쳐. 그거를 고칠래도 내가 방아도 못찧것어. 왜 그러냐면 연영이 높아지니까. 벼짝 움직이기도 힘들어서. 안하는게 좋다고. 힘든일 안할라고 방앗간에 보내서 했어. 해마다 보내야. 연:햅쌀이죠? 홍:그렇지. 연:짚은 씻어서 하나요? 홍:아니. 그냥 짚으로 엮어야지. 논에서 나락 비면 논에서 바짝 마르잖어. 그라면 깨끗할 적에 비 맞기 전에 걷어다 말려서 걷어다 놨다가 그놈 씰어서 하는겨. 연:제수 음식은 어떤 것? 제4장 신앙생활 205
91 홍:청수도 모시고. 그냥 짚 깔고. 열십자로 짚 깔고. 진설 방법은? 홍:가운데 떡시루 놓고, 청수모시고. 연:촛불은 쌀에다 놓나요? 홍:촛불은 쌀에다 놨는디 자꾸 초가 녹아가지고 접시다가 받치고 쌀에다. 쓸만한 그릇 찾아가지고. 연:음식차리고 절은 하나요? 홍:절해야지. 자손들 잘되게 해달라고 빌지. 터주대감 일급칠성님 전에 우리 자손들 잘되게 해달라고 하지. 연:터주신말고 성주신은 안위하나요? 홍:그것도 옛날에 모셨는디. 애들이 싫어하고 하니까 안햐. 애들이 그런거 하는거 싫어햐. 연:자식들이 교회에 다녀요? 홍:아닌디도. 친정이 우리 막내 며느리 큰집이 절이를 무지하게 열심히 댕겼대야. 근디 자손을 못뒀어. 그 렇게 열심히 모셔서 자손을 못두는디 그런 것 뭐하러 하냐고. 며느리는 싫어햐. 나는 어머니가 했던 일 이니께 지시를 받았응게 나는 나대로 해야것다 저희대 가서는 어떻카든 나는 나대로 해야지. 428 터주단지 429 홍아기씨와 인터뷰하는 조사자 5) 심규만씨 댁 성주고사, 삼신고사, 조왕고사 심규만씨 댁에는 예전부터 성주고사, 삼신고사, 칠성고사, 조왕고사를 지내왔다. 현재에는 성주고사, 칠 성고사, 삼신고사를 지내고 있다. 성주고사는 안방 천정에 매달아 놓은 성주 앞에서, 칠성고사는 장독대에 서, 삼신고사는 안방 천정에 매달아 놓은 삼신전대 앞에서 지낸다. 성주고사와 칠성고사는 정월 사흗날과 시월 초사흗날 양일에 지내고 있으며, 삼신고사는 시월 초사흘에만 지내고 있다. (1) 성주고사 심규만(1938년생, 남)씨 내외는 음력으로 정월 초사흗날과 시월 초사흗날에 성주고사를 지낸다. 심씨의 부 인 이복분(1938년생, 여)씨가 성주고사를 지낸게 된 배경은 시어머니에게 성주고사를 물려받으면서 부터다. 20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92 이복분씨는 심규만씨와 음력 시월에 혼인을 했는데, 그 다음 해 3월에 남편 심씨는 군 입대를 한다. 시어머니 는 며느리 이복분씨에게 당장 먹고 살기 힘들지만, 성주 앞에 시루떡을 해서 정월과 시월에 고사를 꼭 지내라 고 당부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씨는 먹고 살기도 힘이 드는데 시루떡 고사를 지내야 하는지 걱정을 했다. 성주 만드는 것은 석교리 옆 마을인 길재에 사는 정각에게 부탁을 했다. 이 정각은 이복분씨의 친정 이모 부였다. 이씨는 1년에 한 번씩 이모부를 불러 성주를 만들고 고사를 지냈다. 성주를 방안에 매달 때는 정각 이 감나무 가지를 잘라서 벽에 고정을 시켰다. 정각이 굿을 하고 감나무를 꺽어 성주를 방안에 매달면, 성주 앞에 시루떡과 과일, 고기를 차려놓고 고사를 지냈다. 현재 이씨는 정각을 불러서 굿은 하지 않고 있다. 남편 심규만씨의 환갑이후로 굿은 하지 않는다고한는 데, 그 이유는 환갑 이후에는 남의 나이를 먹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우리 아저씨 환갑전에는 했어. 그랬는디 환갑넘어가면 남의 나이라 안하는 것 이라고 해서 그렇게 그답 안하는겨. 이후 현재까지 이씨는 정월 초사흗날과 시월 초사 흗날 시루떡과 청수를 성주 앞에 놓고 절을 하며 성 주고사를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고사를 지내기 전에 비린 것도 안 먹고, 부정한 것들을 보지 않아야 했다. 비린 것을 가리기 위해 고사 전후로는 김치에 새우젓 도 넣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고사를 지내기 전에 초상집을 다녀오지 않거나, 피치 못해 다녀오게 되면 고사를 지내지 않는 금기가 지켜지고 있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약해진 상태다. 현재에는 고사를 지내 는 것 자체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 430 방안에 받아 둔 성주 (2) 삼신고사 이씨의 시어머니는 계룡산에 있는 암자인 왕과 봉 불암사 에 다녔는 데, 거기만 다녀오면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아들 5명과 딸 1명을 두었다. 그래서 시어머니는 이씨에게도 그 암자를 다니게 했다. 시어머니는 방안에 삼신전대를 만들어놓고 고사를 지냈다. 삼신고사는 현재 시월 초이튿날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 시월 초하루 산 신제가 끝나고 내려오면 초이튿날 새벽이 되는데, 그 날 저녁에 고사를 지 낸다. 고사를 지내기 전 삼신전대에 있던 묵은 쌀을 꺼내고 한 해 농사를 지 어 수확한 햅쌀을 반 되 넣는 준비를 한다. 묵은 쌀은 밥을 해서 삼신고사 앞 에 상 위에 놓는다. 삼신 고사 상에는 묵은 쌀로 한 밥과 미역국, 청수를 올 린다. 고사상이 다 차려지면 이씨는 동서남북으로 절을 하며 제를 지낸다. 431 삼신전대 제4장 신앙생활 207
93 저건 인저 시월 초하루날이면 우리 산제 올라가잖어. 저건 쌀을 쪄서 깨깟이 해서 한 되씩 해서는 인저 시월 초하루날 제사 지내고 내려오는 초이틀날 미역굴 끌여좋고 저 쌀을 갔다가 싹싹 딱아서 밥으로 해서 그 밥 떠 다놓고 미역국 끓여놓고 그렇게 절하는겨. 1년동안 놓았던 것을. 올해 초이튿날에도 할 거여. 고사를 지내고 나서 두 내외는 고사를 지낸 밥과 미역국을 먹는다. 예전에 삼신전대에는 쌀 1되를 넣었다고 하나, 이제 두 내외만 집에 살게 되면서 1되를 다 먹지 못해 반 되로 그 양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씨는 방안에 있는 성주나 삼신전대를 자신이 죽어 상여가 나가면 거기에 매달아 없애겠다고 한다. 절에는 며느리가 내 지적 받아서 댕겨. 그런디 인저 저런건 나 죽으면 상여나갈 때 띠우라고 할라고 며느리까지 저걸 하것어. 저게 대간햐. 비린것도 안먹고. 옛날에는 우리 시어머니가 그렇게 하더라고. 지금은 한 되씩 놓으면 밥을 먹덜 못햐 그렇게 해서 반되씩 넣는겨. 그렇게 해서 우리 할아버지하고 나 하고 먹는겨. 둘이 어떻게 다 먹어. 더군다나 묵은 쌀을. (3) 조왕고사 조왕고사 또한 이복분씨가 시집와서 계속 지내고 있었으나,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에서 장례를 치르 면서 조왕에 떠놓은 그릇이 없어져 고사를 지내지 않고 있다. 당시 초상이 나면 상주들은 부엌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장례가 끝나고 이씨가 부엌에 가보니 조왕에 물 떠놓은 그릇이 없어져 버렸다. 이는 장례를 도와 주던 마을 사람들이 그릇이 부족해 조왕을 모셔놓은 그릇을 사용한 것이다. 아는 노인들에게 이 사정을 얘 기하니, 사정이 그러하면 그만해도 된다고 하였다. 그 이후로 조왕고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사뭇 물 떠놨는디 우리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저기 그전에는 집이서 장사들을 치렀잖아. 저기 장례 치르 고서 나가 보니께 조왕 있는 걸 다 없애버렸더라고. 엣날에는 상제들은 부엌에 못들어오게 했잖아. 우리가 5형제 손이거든. 장례 치르고 가 보니께 부엌에 조왕에 물 떠논 걸 그릇이 없으니께 받아먹어 버렸더라고. 아는 노인네한테 물어 보니께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그렇게 했걸랑 싹 끊어버리라고 하더라고. 그답 안하고 432 심규만씨 집안에 붙여 놓은 부적과 글씨들1 433 심규만씨 집안에 붙여 놓은 부적과 글씨들2 208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94 ~439 심규만씨 집안에 붙여 놓은 부적과 글씨들 6) 송아지 출산과 부정가리기 2006년 6월 7일 심규철(1942년생, 남)씨 집에서는 송아지를 낳고, 두 내외가 3일 동안 부정을 가렸다. 심 규철씨는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1973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 소를 1마리 사서 키우게 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소를 키우고 있다. 현재 축사에 3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으며, 2006년 6월 7일에 새끼를 한 마리 낳게 되면서 4마리가 되었다. 소에 대한 애정과 부정가리기 심규철씨에게 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집한 채였던 심씨에게 무엇보다 큰 경제적 도움을 주었던 것은 소였다. 소는 시골에서 큰 재산으로 1970년대 당시 쌀이 한 말에 칠백원할때소 1마리의 가격은 6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쌀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쌀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비쌌 다. 심씨는 소를 키워 우시장에 나가 팔고 그 돈으로 자식들 교육을 시키고, 그 돈을 아껴 논을 장만한다. 자 기 땅 없이 남의 일을 다니고, 봉기리 근처에 있는 한일콘크리트를 다니면서 소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제4장 신앙생활 209
95 소가 귀중한 재산이었던 만큼 심씨의 소에 대한 애정을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소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전 전긍긍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잘낳지못하면소앞에상을놓고그위에깨끗한물을올려놓고 순순히 새끼 낳게 해달라 고 빌었다. 새끼를 낳고 송아지가 이상하면 무당을 불러 경을 읽히기도 했다. 심씨 뿐만 아 니라 마을 사람들도 무당을 더러 부르는 일이 있었다. 아랫말에 사는 조선태(1942년생, 여)씨는 1990년대 초 반까지 소를 키웠다고 하는데, 소가 새끼를 낳으면 축사 앞으로 금줄을 걸어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했다. 조사자는 심씨의 축사 옆에 있는 방에 세를 살면서 아침, 저녁으로 소밥을 주고 정성껏 소를 관리하는 심 씨의 모습을 보았다. 이런 가운데 어미소가 송아지 새끼 낳고 3~4일 정도 지날 때까지 부정을 가리는 심씨 내외의 가정신앙을 살펴볼 수 있었다. 송아지 출산과 부정가리기 : 2006년 6월 7일 2시 ~ 4시 30분 심재철씨는 소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낳지 않는다고 며칠 동안 어미 소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 미 소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어미 소가 있는 바로 옆 방에서 생활을 하는 조사자는 새끼 낳기 전 밤새 워 울어대는 어미 소 소리에 깨는 일이 몇 번 있었다. 심재철씨는 새끼 낳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송아지 를 거꾸로 낳으면 송아지가 죽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럴 경우 사람이 직접 송아지를 잡아서 빼줘야 산다며, 나에게 같이 옆에서 빼줄것을 부탁했다. 심씨는 자기가 지키고 있는 금기를 얘기해줬는데, 송아지 새끼를 낳은 다음 주인이 초상집을 다녀오거나 죽은 것을 보고 난 다음 축사에 출입하면 어미 소가 그것을 금방 알아챈다고 한다. 부정한 것을 보고 온 주인 을 보고 어미소는 송아지에게 젖을 안 먹인다고 한다. 심씨는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이유는 모르나, 어미 소는 정확하게 그런 것을 알아챈다고 한다. 또한 심씨의 부인인 임천순(1943년생, 여)씨는 새끼를 낳은 어미 소 앞에서 송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송아지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면 소가 금방 알아채 고 주인을 내친다는 것이다. 어미 소가 새끼를 낳기 전 소밥을 주러 오는 심씨 내외에게 조사자는 이러한 얘 기를 몇 차례 들었다. 그만큼 새끼 낳기 전에 전부터 심씨 내외는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가 새끼를 낳은 것은 2006년 6월 7일 2시 경이었다. 점심을 먹고 쉬고 있던 조사자는 축사에서 어미 소 가 우는 것을 듣고 나갔는데, 새끼를 낳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상황이 급박해졌다. 어미 소는 새끼의 머리 부터 뽑아내고 있었다. 조사자는 축사 밖으로 나와 심재철씨에게 전화를 했다. 새끼를 낳고 있는 축사에서 전화를 하며 시끄럽게 하는 것이 별로 안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심씨 내외에게 금기와 부정에 대한 얘기를 많이들은 터라 혹시 송아지가 잘못될까봐 조사자 또한 긴장 한 상태였다. 심씨는 전화를 계속 받지 않다가 뒤늦게 받았다. 새끼 낳고 있다고 하자 다른 말없이 알았어 하며 재빨리 전화를 끊고 달려왔다. 조 사자가 축사에 들어가니 이미 새끼가 바닥에 나와 있었다. 어미 소는 새끼 몸에 묻어 있는 물기를 연신 혀로 훔쳐내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2시 10분이 조금 넘었다. 어미소가 새끼 몸에 물기를 혀로 계속 닦는 중에 새끼의 눈이 뜨였다. 새끼의 눈은 크고 맑았다. 심씨가 달 려와 바로 짚다발을 가져와 새끼 밑에다 깔아주었다. 가져온 수건으로 송아지의 물기를 계속 닦아주었다. 심씨는 송아지 새끼의 배를 뒤집어 보았다. 새끼는 암소였다. 심씨는 계속 수건으로 물기를 계속 닦았다. 고 삐에 매어 있는 암소가 목을 길게 빼고 새끼에게 더 다가가며 빨아주고 있었다. 심씨는 축사 기둥에 묶여 있 는 고삐 줄을 늘려주었다. 아주머니가 왔다. 아주머니는 조용히 아무 말하지 않고 축사 기둥에 매달려 어미 소가 새끼를 빨아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웃지도 않고 얘기도 하지 않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210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96 혀로 새끼 소를 핥아 주는 어미소 441 짚을 가져다 주는 심규철씨 442 고삐를 늘려주는 심규철씨 443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임천순씨 444 새끼소의 물기를 닦아주고 있는 심규철씨 나는 심씨 내외가 조심스럽게 이 상황을 풀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씨는 짚을 한 다발 더 가 져와서 송아지 옆으로 자리를 넓게 깔았다. 옆에 있던 소들도 울지 않고 개들도 짓지 않았다. 3시 30분경에는 송아지가 발을 딛기 시작했다. 바닥이 미끄러워 주춤 주춤 하면서 발에 힘을 주고 힘을 썼다. 어미 소는 옆에서 지켜보고, 옆에 있는 심규철씨도 지켜보는 가운데 송아지는 땅 바닥에 구부러진 앞 발을 펴기 시작했다. 동시에 뒷발에도 힘을 쓰면서 몸이 일어났다. 앞뒤로 조심스럽게 송아지는 움직여본 제4장 신앙생활 211
97 다. 심재철씨는 어미 소 젖꼭지를 손으로 잡아 우유를 뽑아낸다. 어미 소의 젖꼭지에서 젖이 직선으로 분출 한다. 심씨는 손바닥에 우유를 뽑아 내 그것을 송아지에게 먹여주었다. 축사에서 나와 심씨는 잠시 그늘에 서 쉬었다. 심씨는 어미 소에서 탯줄이 다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일을 해야겠다며 한 참을 밖에서 쉬었다. 탯줄이 다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이제 끝났네 하며 다른 일을 하러 갔다. 송아지를 낳고 심씨 내외는 부정을 가리기 위해서 노력했다. 초상이 나지 않아 초상집에 갈 일이 없었지 만, 3일 정도는 죽은 것도 안 보려고 하고 다른 부정한 것을 가리고자 했다. 심씨의 부인은 절대 소 앞에서 안 좋은 얘기를 하면 안 된다며 조사자에게 주위를 주었다. 4. 기성종교 1) 기독교 1998년에 석교리에 석교교회가 건립되면서 마을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 통적으로 무속과 가정신앙을 강하게 지키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기독교의유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 였다. 우리 마을은 무당 들어오는 것은 반겨도 교회 들어오는 것은 막는다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는 이러한 분위기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실제 석교교회 목사가 입주 당시 마을 안에 건물을 지으려고 했으나, 마을 주민의 반대로 마을에서 벗어난 곳에 교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마을 주민들과 교회의 갈등은 첨예하게 나타나기도 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교회가 생기자 목사에게 찾아가 산신제 회비를 받으려고 하면서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석교교회 목사는 다른 지역보다 석교리가 무속이나, 미신을 신봉하는 기운이 세다며 선교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석교리에 기독교 신자는 7~8명 정도인데, 2명만이 석교리 토박이이다. 나머지는 모두 외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다. (1) 석교침례교회의 설립 석교침례교회는 1998년 3월 신촌 지역에 건립되었다. 신촌 지역은 외지인들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만들어 진 지역으로 그 이전에는 불과 3~4집정도 밖에 안 되던 곳이다. 교회는 마을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아랫말 과 윗말과는 상당히 떨어진 지역에 세워졌다. 위남현 목사는 석교교회를 세우기 이전에 대전 송광동에 북부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했다. 송광동에 는 북부교회 말고도 교회가 많았다. 대전에서 교회의 분포도가 가장 많은 곳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가 많고 상가 용지는 좁아 한 건물 안에 교회가 몇 개 있을 정도로 밀집되었다. 교회가 많다보니 자연히 서로 간 의 신도를 사이에 둔 경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위목사는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 을 계획했다. 1997년 위목사는 교인들과 함께 석교리 지역을 돌아보게 되었다. 위목사 일행은 당시 다른 마을에는 교회 212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98 가 다 있는데, 석교리에만 교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을에 일반 사찰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목사는 이런 곳에 교회가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위목사는 1년 정도 이 지역에 대한 조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 전도를 하면서 1998년 3월에 교회 건물을 완공했다. 대전에서 함께 목회활 동을 했던 교인 3가구와 함께 마을로 들어왔다. 입당예배는 1998년 3월 8일에 있었다. 위목사는 자신의 쌍둥 이 딸의 생일이 3월 6일이고 그 다음 다음 날 입당예배를 했다며 정확하게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입당예 배는 연기군 지역에 있는 목사님 몇 분과 교인 몇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이 되었다. 입당예배를 하고 처음 에는 대전에 있는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교회를 찾아와 전도하는 일을 도와줬다고 한다. 현재 석교교회의 신도수는 25~30명 정도이다. 금남면 지역인 봉기리, 황룡리, 달전리 사람들과 대전에서 오는 사람이 많다. 마을 내의 신도는 몇 명 되지 않는데, 아랫말과 윗말을 통틀어서 2명이 교회에 다니고 있 으며, 최근 외지에서 이주해 온 몇 사람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 위목사는 석교리가 다른 마을 보다 영적인 기운이 많이 안 좋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는 석교리에 무당 사찰이 많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위목사는 마을 내의 이러한 분위기로 인해 석교리에 교회를 세우고 마을 사람들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 산신제 회비 사건과 주민과의 마찰 교회를 세울 당시 위남현목사는 석교리의 윗말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 딪쳐 결국 신촌 지역에 교회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교회가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반갑게 생 각하지 않았다. 무당이 들어오는 것은 반겨도 교회가 들어오는 것은 막는다고 마을 사람들은 얘기한다. 그 만큼 석교리는 무속과 가정신앙의 뿌리가 깊은 곳이었다. 위목사가 석교리에 이사와서 주민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산신제 회비를 두 고서였다. 1998년에 석교교회가 생기고 산신제를 앞두고 마을 이장은 위목사에게 산신제 회비를 받으러 왔 다. 마을에 공동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석교교회도 마을의 일원으로 회비를 내야한다며 이장이 교회를 찾 은 것이다. 위목사는 당황했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설명을 하며 회비를 못 내겠다는 뜻을 이장에게 얘기했다. 이 일을 두고 마을에서는 말이 많았다고 한다. 이장과 젊은 사람들은 목사의 말을 부분적으로 이해했는데, 마을의 노인들은 목사도 주민의 한 사람이면 당연히 회비를 내야한다 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위목사는 마을에 무당이 많아,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도 노인들과 똘똘 뭉치는 모 습을 보였다고 한다. 위목사는 마을의 신도들에게 산신제 회비를 내지 말 것을 교육하면서 이러한 얘기가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마을 주민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위목사는 초상집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고 하는데, 초상집에서 마을 사람들과 있다가 교회로 가려고 하는데 우산을 마을 사람들이 숨겨 비를 맞고 교회로 돌아온 일이 있었 다. 위목사는 마을 사람들과 이러한 갈등을 겪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마을에 노인들을 유성온 천이나 금남면 부용리에 있는 금강사우나에 해마다 모시고 갔다.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 서서히 마을 사람들 과의 갈등을 서서히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제4장 신앙생활 213
99 (3) 이주 문제와 마을 사람들과의 연대 석교교회 또한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되면서 이주를 준비하고 있다. 위남현 목사는 현재 교회 대책위에서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교회대책위에서는 건립 된지 50년이 넘은 반곡교회를 보존해야 한 다는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위목사에 따르면 현행 법 상으로는 종교건물 중에서 사찰 정도만이 문 화재 가치를 얻어 개발상황에서 보존이 되는데, 반곡교회는 이 지역에서 50년이 넘은 역사적인 기독교회의 충분한 보존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고있지 못한 현실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문제 뿐만 아니라 교회대책위에서는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 내에 있는 교회의 이주 문제와 관련한 사안들을 토지공사와 협상 중에 있다. 위남현 목사는 교회대책위의 간사를 맡아 활동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더 가까워졌다고 이야기한다. 위목 사는 석교리의 노민용씨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 앞에서 단식을 할 때 지지방문을 하고 대책위 활동의 방향을 고민하기도 했다. 석교리는 다른 마을에 비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반대하는 대책위에 가입되어 있 는 주민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마을 사람들과 여러 가지 고민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석교교회를 만들고 여 러 가지 갈등을 겪어내며 그동안 마을에서 적응하는데 힘이 들었던 것이 사실인데,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인 한 이주 문제등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게 되면서 어느때보다 훨씬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고 위목사는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한다. 2) 불교 <정화사> 정화사는 고인돌이 있는 괴화산의 북서쪽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정화사는 석교리에서는 유일한 조계종 사찰이다. 건물은 2층 조립식이며, 2층에는 부처님을 모셔놓은 법당이 있다. 1층에는 스님과 사찰을 관리하 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내외가 거주하는 방과 거실, 주방이 있다. 정화사가 마을에 들어온 것은 1994년의 일이다. 정화사는 조계종 사찰로 마을에 있는 무속인 사찰과는 다 른 면이 많다. 법회가 엄격하게 진행되며, 스님은 신도들의 복을 빌어주는 것이 아니라 불교의 경전을 낭송 하며 깨달음의 가르침을 전달한다. 그래서 정화사는 주로 스님을 찾는 불자들이 왕래한다. 신도들은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이 수시로 와서 스님에게 법문을 청한다. 정화사에 다니는 마을 사람은 없으며, 신도들은 서울, 대전, 조치원 등지에서 많이 찾아 온다. 이번 사월초 파일에는 서울의 한 문화센터의 수강생들이 정화사를 찾았다. 이들은 스님이 진행하는 문화센터의 법회 프 로그램의 수강생들로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출발해 사월초파일 법회를 참석하고 다시 서울로 갔다. 214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00 불기 2550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연등 법회 안내 삼보에 귀의하옵고 오는 5월 5일( )은 (음력 사월초파일) 석가모니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 오신 참뜻을 오늘에 되살려 상구 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고 반듯하고 신행이 투철한 신자가 되어 진실한 복지 사회를 이룩하는데 힘써 나가겠습 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우리 모두 정성을 모아 연등공양을 올리고 소원 이루시길 바랍니다. 신도님의 가정이 평 화롭고 사업이 번창하여 하시는 일들이 원만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봉축연등법회 : 5월 5일( ) 오전 10시 30분(음력 4월초파일) 연등공양 : (1년등 10만원, 대등 5만원, 중등 3만원) 송금계좌 : 농협 박창원 앞 / 우주불교 법안명상회 보덕현호 합장 주소 : 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510 전화 : 041) 홈페이지 : 정화사 일일 수행시간표 3시 ~ 기상, 세면 개인수련 5시 ~ 예불, 좌선 6시 ~ 기공, 경행 7시 ~ 조식 공양 8시 ~ 경행 9시 ~ 좌선 10시 ~ 경행 11시 ~ 기도, 법회 12시 ~ 중식 공양 13시 ~ 경행 13시 ~ 경행 14시 ~ 좌선 15시 ~ 경행 16시 ~ 좌선 17시 ~ 석식공양 18시 ~ 경행 19시 ~ 예불, 기공 20시 ~ 좌선 21시 ~ 경행 22시 ~ 수행일기, 와선, 꿈속 관찰 제4장 신앙생활 215
101 부처님 오신날 정화사 법회 (2006년 5월 5일) 부처님 오신날 법회 446 정화사 주지스님 447 신도들과 기념 사진 448 점심 공양 449 주지스님의 점심 공양 450 정화사 운영자 씨 216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
102 3) 천주교 마을에 천주교 신자는 박화자(1946년생, 여)씨 한 명이다. 근처에 성당이 없어 박씨는 주일 아침마다 버스 나 남편의 자가용을 타고 대평리의 금남공소 에 다니고 있다. 박씨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성당에 다 녔다. 이종영(1944년생, 남)씨와 결혼하고 석교리에 살면서 박씨는 시부모님의 반대가 있어 성당에 다니지 못했다. 박씨가 금남공소에 다니게 된것은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라고 한다. 박씨는 농사일이 바빠도 주 일미사에는 참석을 하고 있다. 451 금남 공소 452 금남 공소 앞마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 453 성당에 다녀온 박화자씨 제4장 신앙생활 217
2±Ç3Æí-1~4Àå_À°±³
464 465 466 467 468 469 470 471 472 473 474 475 476 477 478 479 480 481 482 483 484 485 486 487 488 489 490 491 492 493 494 495 496 497 498 499 500 501 502 503 504 505 506 507 다 뿌리경에다가 아스팔트 포장을 하다 보니까
Gwangju Jungang Girls High School 이상야릇하게 지어져 이승이 아닌 타승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고 먹 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념 아래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피곤하니 빨리 자라는 선생님의 말 씀은 뒷전에 미룬 채 불을 끄고 밤늦게까지 속닥거리며 놀았다. 몇 시간 눈을 붙이는 둥 마 는 둥 다음날 이른 아침에
5권심층-양화1리-1~172
526 527 528 529 530 531 532 332 333 332 사갑 제례 음식준비 334 335 333 진설 334 사갑제례 335 음복 8시부터 8시 30분 사이에 제사에 참여했던 가족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고인의 부인은 제사에 참여한 이 들에게 제사 음식과 반찬거리(깻잎 등)를 골고루 싸 주었고 마을에 거주하는, 제사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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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입대하기 전까지만 해도 왜 그렇게까지 군대를 가려고하냐, 미친 것 아니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는 없다.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조차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군대는 하루하루를 소종하게 생각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점점 변해가는 내 모습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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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ㅣ반딧불이ㅣ뒤엉켜 버린 삶, 세월이 흘러도 풀 수 없는.. 실타래 벌써 3년째 시간은 흘러가고 있네요. 저는 서울에서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가족들과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답 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엄마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였습 니다. 그러다 여기서 고향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분들의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KR000****4 설 * 환 KR000****4 송 * 애 김 * 수 KR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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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v vi vii viii ix x xi 61 62 63 64 에 피 소 드 2 시도 임금은 곧 신하들을 불러모아 나라 일을 맡기고 이집트로 갔습니다. 하 산을 만난 임금은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했어요. 원하시는 대로 일곱 번째 다이아몬드 아가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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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스승님이 스승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말씀하시기를 알라는 위대하다! 위대하다! 알라는 알라는 위대하다! 특집 특집 기사 특집 기사 세계 세계 평화와 행복한 새해 경축 세계 평화와 평화와 행복한 행복한 새해 새해 경축 경축 특별 보도 특별 특별 보도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도가니! 스승님과의 스승님과의 선이-축복의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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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04 06 08 10 12 13 14 16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지나가고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소현이가 이 곳 태화해뜨는샘에 다닌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네요. 해샘에 처음 다닐 때는 대중교통 이용하는 것도 남을 의식해 힘들어하고, 사무실내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신경 쓰여 어려워했었습니다. 그러던 우리 소현이가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152*220
152*220 2011.2.16 5:53 PM ` 3 여는 글 교육주체들을 위한 교육 교양지 신경림 잠시 휴간했던 우리교육 을 비록 계간으로이지만 다시 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우 선 반갑다. 하지만 월간으로 계속할 수 없다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솔직히 나는 우리교 육 의 부지런한 독자는 못 되었다. 하지만 비록 어깨너머로 읽으면서도 이런 잡지는 우 리
2015년9월도서관웹용
www.nl.go.kr 국립중앙도서관 후회의 문장들 사라져 버릴 마음의 잔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해에도 배추농사에서 큰돈을 남은 평생 머릿속에서 맴돌게 될 그 말을 다시 떠올려보 만졌다 하더라도 지난 여름 어느 날 갑자기 들기 시작한 았다.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에이드리언의 문장도 함께. 그 생각만은 변함없을 것 같았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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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 객사(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8호) 객사는 영조 35년(1759년)에 지어진 조선 후기의 관청 건물입니다. 원래는 가운데의 정당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대청, 오른쪽에 서대청, 앞쪽에 중문과 외문 그리고 옆쪽에 무랑 등으로 이 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정당과 동대청만이 남아있습니다. 정당에서는 전하 만만세 라고 새 긴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할렐루야10월호.ps, page 1-12 @ Normalize ( 할 437호 )
www.hcc.or.kr [email protected] Hallelujah News PHOTO NEWS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제437호 2007년 10월 7일 (주일) 화요청년찬양부흥회 날짜: 10월 16일, 11월 6일, 11월 20일 12월 4일, 12월 18일 (매달 1 3주 화요일) 장소: 할렐루야교회
학부모신문203호@@
02 05 06 08 11 12 2 203 2008.07.05 2008.07.05 203 3 4 203 2008.07.05 2008.07.05 203 5 6 203 2008.07.05 2008.07.05 203 7 8 지부 지회 이렇게 했어요 203호 2008.07.05 미친소 미친교육 촛불은 여전히 건재하다! 우리 학부모들은 근 2달여를 촛불 들고 거리로
Drucker Innovation_CEO과정
! 피터드러커의 혁신과 기업가정신 허연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Doing Better Problem Solving Doing Different Opportunity ! Drucker, Management Challenges for the 21st Century, 1999! Drucker, Management: Tasks, Responsi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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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vol.89 www.tda.or.kr 2 04 06 8 18 20 22 25 26 Contents 28 30 31 38 40 04 08 35 3 photo essay 4 Photograph by 5 6 DENTAL CARE 7 Journey to Italy 8 9 10 journey to Italy 11 journey to Italy 12 13 Shanghai
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캥거루는 껑충껑충 뛰지를 못하고, 여우는 신경질이 많아졌어요. 동물 친구들이 모두 모두 이상해졌어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멧돼지네 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염소 의사 선생님은 상수리나무 숲으로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했답니다. 상수리나무 숲에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는 지 우리 함께 숲으로 가볼까요? 이 동화책은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041~084 ¹®È�Çö»óÀбâ
1998 60 1 1 200 2 6 4 7 29 1975 30 2 78 35 1 4 2001 2009 79 2 9 2 200 3 1 6 1 600 13 6 2 8 21 6 7 1 9 1 7 4 1 2 2 80 4 300 2 200 8 22 200 2140 2 195 3 1 2 1 2 52 3 7 400 60 81 80 80 12 34 4 4 7 12 80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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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2012.7.25 6:14 PM 페이지1 2012년 8월 1일 수요일 16 종합 고려대장경 석판본 판각작업장 세계 최초 석판본 고려대장경 성보관 건립 박차 관계기관 허가 신청 1차공사 전격시동 성보관 2동 대웅전 요사채 일주문 건립 3백여 예산 투입 국내 최대 대작불사 그 동안 재단은 석판본 조성과 성보관 건립에 대해서 4년여 동안 여러 측면에 서 다각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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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2288-5854 Print ISSN 2289-0009 online DIGITAL POST KOREA POST MAGAZINE 2016. APRIL VOL. 687 04 DIGITAL POST 2016. 4 AprilVOL. 687 04 08 04 08 10 13 13 14 16 16 28 34 46 22 28 34 38 42 46 50 54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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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제 의식의 원칙 논문은 주제 의식이 잘 드러나야 한다. 주제 의식은 논문을 쓰는 사람의 의도나 글의 목적 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 협력의 원칙 독자는 필자를 이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다. 따라서 필자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나 표현을 사용하여 독자의 노력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3) 논리적 엄격성의 원칙 감정이나 독단적인 선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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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02 8 9 32 33 1 10 11 34 35 가족 구조의 변화 가족은 가족 구성원의 원만한 생활과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다양한 기능 사회화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의 행동 가구 가족 규모의 축소와 가족 세대 구성의 단순화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 1인 또는 1인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거 및 생계를 같이 하는 사람의 집단 타나는 가족 구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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ÀÚ¿øºÀ»ç-2010°¡À»°Ü¿ï-3
2010 희망캠페인 쪽방의 겨울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하늘 높은지 모르고 오르는 기름 값은 먼 나라 이야기 마냥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내 몸 하 나 간신히 누일 전기장판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겨울을 보내야 합니다. 한 달에 열흘정도 겨우 나가는 일용직도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어, 한 달 방값을 마련하 기 어렵고, 일을 나가지 못하면 밖으로 쫓겨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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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anhak Foundation News VOL. 150 * 2011. 12. 30 논단 이슈별 CSR 활동이 기업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국가별 및 산업별 비교분석 최 지 호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Ⅰ. 서론 Ⅰ. 서론 Ⅱ. 문헌 고찰 및 가설 개발 2. 1. 호혜성의 원리에 기초한 기업의 사회적 투자에 대한 소
기본소득문답2
응답하라! 기본소득 응답하라! 기본소득 06 Q.01 07 Q.02 08 Q.03 09 Q.04 10 Q.05 11 Q.06 12 Q.07 13 Q.08 14 Q.09 응답하라! 기본소득 contents 16 Q.10 18 Q.11 19 Q.12 20 Q.13 22 Q.14 23 Q.15 24 Q.16 Q.01 기본소득의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06 응답하라
내지-교회에관한교리
내지-교회에관한교리 2011.10.27 7:34 PM 페이지429 100 2400DPI 175LPI C M Y K 제 31 거룩한 여인 32 다시 태어났습니까? 33 교회에 관한 교리 목 저자 면수 가격 James W. Knox 60 1000 H.E.M. 32 1000 James W. Knox 432 15000 가격이 1000원인 도서는 사육판 사이즈이며 무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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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Vol.159 www bible ac kr 총장의 편지 소망의 성적표 강우정 총장 매년 1학년과 4학년 상대로 대학생핵심역량진단 (K-CESA)을 실시한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이 진 단은 우리 학우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직업인으로서 핵심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었나를 알아보는 진단입니다. 지난번 4학년 진단 결과는 주관처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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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48.6% 남 51.4% 40대 10.7% 50대 이 상 6.0% 10대 0.9% 20대 34.5% 30대 47.9% 초등졸 이하 대학원생 이 0.6% 중졸 이하 상 0.7% 2.7% 고졸 이하 34.2% 대졸 이하 61.9% 직장 1.9% e-mail 주소 2.8% 핸드폰 번호 8.2% 전화번호 4.5% 학교 0.9% 주소 2.0% 기타 0.4% 이름
*표지-결혼과가정 2012.10.23 3:59 PM 페이지1 태산아이인쇄그룹(국) 2261-2488 2540DPI 175LPI James W. Knox 시리즈 성령의 열매 James W. Knox 지음 김영균 옮김 도서출판 킹제임스 신국판 352쪽 값 12,000원 성경적 종말론 James W. Knox 지음 김영균 옮김 도서출판 킹제임스 신국판 220쪽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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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이 책에서는 단순히 가난한 관리들의 이야기보다는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사심 없이 헌신한 옛 공직자들의 사례들을 발굴하여 수록하였습니다. 공과 사를 엄정히 구분하고,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공무를 처리한 사례, 역사 속에서 찾은 청렴 이야기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관아의 오동나무는 나라의 것이다 최부, 송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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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vol.126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 vol.126 www.fsb.or.kr 20163 + 4 Contents 20163 + 4 vol.126 www.fsb.or.kr 26 02 08 30 SB Theme Talk 002 004 006 SB Issue 008 012 014
FSB-12
CONTENTS 02 10 14 18 22 26 30 34 38 42 46 50 52 03 02 September Future Strategy & Business Development 03 02 September Future Strategy & Business Development 05 04 September Future Strategy & Business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안 경 광 학 과 세부내용 - 남을 도와 준 경험과 보람에 대해 말해 보세요. - 공부 외에 다른 일을 정성을 다해 꾸준하게 해본 경험이 있다면 말해 주세요. - 남과 다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 지금까지 가장 고민스러웠던 또는 어려웠던 일과 이를 어떻게 해결하였는지? - 자신의 멘토(조언자) 또는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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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도서관총서 1 경기도 도서관 총서 경기도도서관총서 1 지은이 소개 심효정 도서관 특화서비스 개발과 사례 제 1 권 모든 도서관은 특별하다 제 2 권 지식의 관문, 도서관 포털 경기도 도서관 총서는 도서관 현장의 균형있는 발전과 체계적인 운 영을 지원함으로써 도서관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간되 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를 통해 사회전반의 긍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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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44 45 2012 46 47 2012 48 49 추억의 사진 글 사진 최맹식 고고연구실장 죽음을 감지하고 미리 알아서 죽은 미륵사지 느티나무 이야기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 미륵사지는 가장 오랫동안 발굴 작업이 이뤄진 곳 미륵사지는 발굴 종료 당시,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가장 오랫 동 안 발굴했던 유적이다. 1980년 7월 7일 발굴을 시작해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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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리-내지(6장~8장)최종 2007.8.3 5:43 PM 페이지 168 in I 덕수리 민속지 I 만 아니라 마당에서도 직접 출입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장팡뒤의 구조는 본래적인 형태라 고 할 수는 없으나, 사회가 점차 개방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폐쇄적인 안뒤공간에 위치하던 장항 의 위치가 개방적이고 기능적인 방향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아닌가 추론되어진다.
춤추는시민을기록하다_최종본 웹용
몸이란? 자 기 반 성 유 형 밀 당 유 형 유 레 카 유 형 동 양 철 학 유 형 그 리 스 자 연 철 학 유 형 춤이란? 물 아 일 체 유 형 무 아 지 경 유 형 댄 스 본 능 유 형 명 상 수 련 유 형 바 디 랭 귀 지 유 형 비 타 민 유 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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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vol.124 Cover Story Seed Money Bank Savings Banks + vol.124 www.fsb.or.kr 201511 + 12 201511 + 12 Contentsvol.124 www.fsb.or.kr 002 026 034 002 004 006 008 012 014 016 018
4 7 7 9 3 3 4 4 Ô 57 5 3 6 4 7 Ô 5 8 9 Ô 0 3 4 Ô 5 6 7 8 3 4 9 Ô 56 Ô 5 3 6 4 7 0 Ô 8 9 0 Ô 3 4 5 지역 대표를 뽑는 선거. 선거의 의미와 필요성 ① 선거의 의미`: 우리들을 대표하여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을 말합니다. ② 선거의 필요성`: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의 일을 의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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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송재룡 / 편집장 : 박혜영 / 편집부장 : 송영은 경희대학교 대학원보사 1986년 2월 3일 창간 02447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 26 전화(02)961-0139 팩스(02)966-0902 2016. 09. 01(목요일) vol. 216 www.khugnews.co.kr The Graduate School News 인터뷰 안창모 경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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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77 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78 2. 1 2 3 4 5 6 7 8 9 10 11 12 79 80 II 81 82 II 83 84 II 85 86 II 87 s t r e t c h i n g 88 II 89 90 II 91 d a n c e s p o r t s 92 II 93 ;4#; 94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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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국민과 경찰이 함께 하는 역사와 체험의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국립경찰박물관은 우리나라 경찰 역사의 귀중한 자료들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박물관은 역사의 장, 이해의 장, 체험의 장, 환영 환송의 장 등 다섯 개의 전시실로 되어 있어 경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광주시향 최종22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2 PM 페이지1 VOL.7 2015. 09 9월 4일(금) Masterwork Series Vl 프랑스 기행 9월 22일(화) 가족음악회 팝스콘서트 광주시향 최종22 2015.8.26 4:23 PM 페이지23 20세기 이전의 유명한 작곡가가 쓴 비올라 곡은
(연합뉴스) 마이더스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2012. 04 Vol. 98 Cover Story April 2012 _ Vol. 98 The monthly economic magazine www.yonhapmidas.co.kr Contents... 14 16 20 24 28 32 Hot News 36 Cover Story 46 50 54 56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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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학회지 2004;25:721-739 비만은 심혈관 질환, 고혈압 및 당뇨병에 각각 위험요인이고 다양한 내과적, 심리적 장애와 연관이 있는 질병이다. 체중감소는 비만한 사람들에 있어 이런 위험을 감소시키고 이들 병발 질환을 호전시킨다고 알려져 있고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을 호전시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런 믿음을 지지하는 연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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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Journal of the Korea America Friendship Society (KAFS) LASTING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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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85 86 87 88 89 1 12 1 1 2 + + + 11=60 9 19 21 + + + 19 17 13 11=60 + 5 7 + 5 + 10 + 8 + 4+ 6 + 3=48 1 2 90 1 13 1 91 2 3 14 1 2 92 4 1 2 15 2 3 4 93 1 5 2 6 1 2 1 16 6 5 94 1 1 22 33 55 1 2 3 4 5 6
정부3.0 국민디자인단 운영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과 참여로 정책을 함께 만들 수 있었고 그 결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정책 개선안을 도출하며 정책의 완성도를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서비스디자인 방법론을 각 기관별 정부3.0 과제에 적용하여 국민 관점의 서비스 설계, 정책고객 확대 등 공직사회에 큰 반향을 유도하여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내지(교사용) 4-6부
Chapter5 140 141 142 143 144 145 146 147 148 01 02 03 04 05 06 07 08 149 활 / 동 / 지 2 01 즐겨 찾는 사이트와 찾는 이유는? 사이트: 이유: 02 아래는 어느 외국계 사이트의 회원가입 화면이다. 국내의 일반적인 회원가입보다 절차가 간소하거나 기입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정보 항목이 있다면 무엇인지
750 1,500 35
[email protected] 750 1,500 35 Contents Part 1. Part 2. 1. 2. 3. , 1.,, 2. skip 1 ( ) : 2 ( ) : 10~40 (, PC, ) 1 : 70 2 : 560 1 : 2015. 8. 25~26 2 : 2015. 9. 1 4 10~40 (, PC, ) 500 50.0 50.0 14.3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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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분당판 21권 7호 2015년 2월 15일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활동상황 생명순 보고는 토요일 오전까지 마쳐주십시오. 보고자 : 김연호 목사 010-9251-5245 보고 : 각 교구 조장님께서 교구 사역자에게 보고해 주세요. 분당판 21권 7호 2015년 2월 15일 생명순활동상황 전도실적은 전도 한 분이 소속한 교구의 생명순에 전도한 인원수를 추가합니다.
가해하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쌍해서이다 가해하고 나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을 것 같아서이다 보복이 두려워서이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화가 나고 나쁜 아이라고 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 따돌리는 친구들을 경계해야겠다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중학생 고등학생 남 여
0.筌≪럩??袁ⓓ?紐껋젾001-011-3筌
3 4 5 6 7 8 9 10 11 Chapter 1 13 14 1 2 15 1 2 1 2 3 16 1 2 3 17 1 2 3 4 18 2 3 1 19 20 1 2 21 크리에이터 인터뷰 놀이 투어 놀이 투어 민혜영(1기, 직장인)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가치가 있는 일을 해 보고 싶 어 다니던 직장을 나왔다. 사회적인 문제를 좀 더 깊숙이 고민하고, 해결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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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어: 노무현대통령 참여정부 참여의 확대 갈등의 증폭 통합의 정치 세대.27 *** 이념 -.17 ***.12 *** -.18 *** -.06 * 여야 성향 정치 효능감.24 *** -.32 *** -.33 ***.01 탄핵 찬성여부 대통령 정부 만족도 -.02.19 *** -.35 *** 한나라당 지지 (지역)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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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P. Vol. SUMMER Vol. WINTER 2015. vol 53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4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5 Pearl S. Buck Foundation Korea 프로그램 세계문화유산 걷기대회 Walk Together 탐방길곳곳에서기다리고있는조별미션활동! 남한산성 탐방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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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128.491 156.559 12 23 34 45 안녕하십니까? 본 설문은 설악산과 금강산 관광연계 개발에 관한 보다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자 만들어졌습니다. 귀하께서 해주신 답변은 학문적인 연구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다가오는 21세기 한국관광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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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 Song 1 Finger Family 한글 해석 p.3 아빠 손가락, 아빠 손가락. p.4 p.5 엄마 손가락, 엄마 손가락. p.6 p.7 오빠 손가락, 오빠 손가락. p.8 p.9 언니 손가락, 언니 손가락. p.10 p.11 아기 손가락, 아기 손가락. p.12 p.13 p.14-15 재미있게 부르기 (Sing and Play Time)
심장봄호수정-1
www.heart.or.kr 2008 www. heart.or.kr 2 C O V E R S T O R Y 03 04 08 10 12 14 16 19 20 22 26 27 3 2008 www. heart.or.kr 3 01. 02. 4 2008 www. heart.or.kr 5 03. TIP 6 2008 www. heart.or.kr 7 8 2008 www.
사용설명서 의료용 진동기 사용설명서는 언제나 볼 수 있는 장소에 보관하세요. 사용전 안전을 위한 주의사항 을 반드시 읽고 사용하세요. 사용설명서에 제품보증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제품은 가정용 의료용 진동기이므로 상업용 또는 산업용 등으로는 사용을 금합니다. BM-1000HB www.lge.co.kr V V V V 3 4 V V C 5 6 주의 설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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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융합 과학 2011년도 1학기 중간고사 대비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1 빅뱅 우주론에서 수소와 헬륨 의 형성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른 것은? 4 서술형 다음 그림은 수소와 헬륨의 동위 원 소의 을 모형으로 나타낸 것이. 우주에서 생성된 수소와 헬륨 의 질량비 는 약 3:1 이.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전기적 중성인 중성자
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석진: 안녕하세요. 효진 씨. 효진: 안녕하세요. 석진: 안녕하세요. 여러분. 효진: 오늘 주제는 한류예요. 오빠. 석진: 네. 한류. 저희 청취자분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효진: 맞아요. 한류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석진: 네. 효진: 오빠는 한류 하면은 뭐가 먼저 떠올라요? 석진: 저는 이거 봤을 때 정말 충격 받았어요. 효진: 뭐요? 석진: 프랑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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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람을 위한 생활 문화 매거진 235 Cover Story ISSN 2005-2820!!2 3! 3 201002 002 !!4 5! 201002 !!6 44 7! 201002 !!8 February 2010 VOLUME 35 Publisher Editor-in-Chief Editor Planning & Advertising Advertising Design
문화재이야기part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100 No.39 101 110 No.42 111 문 ᰍℎ᮹ šᯙŝ $* ᗭ} 화 재 이 야 기 De$** 남기황 ᰍℎ šᯙŝ $* ᗭ} 관인은 정부 기관에서 발행하는, 인증이 필요한 의 가족과 그의 일대기를 편찬토록 하여 그 이듬해 문서 따위에 찍는 도장 이다. 문화재청은 1999년 (1447) 만든 석보상절을 읽고나서 지은 찬불가(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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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009. CONTENTS 014 016 018 021 026 048 062 080 100 102 105 108 110 120 122 125 CHINA Neimenggu CHINA Sichuan INDIA Chennai 02 014 015 016 017 018 019 020 > 022 023 wh a t makes YOU HAPPY?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발행일 : 2013년 7월 25일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2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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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eyesurfer. All rights reserved.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04면 종합 -9- 2007년 11월 14일 수요일 [내일신문] 17면 산업/무역 - 11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매일경제신문] 37면 인물 - 16 - 2007년 11월 15일 목요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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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GONS JEONNAM DRAGONS FOOTBALL CLUB MATCH MAGAZINE VOL.136 / 2014.10.16 Preview Review News Poster PREVIEW K LEAGUE CLASSIC 32R JEONNAM VS SEOUL / 14.10.18 / 14:00 / 광양축구전용구장 서울과 뜨거운 한판 승부! 전남드래곤즈가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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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의 여성인력 현황 및 전문화 방안 연구 한국여성개발원 발간사 Ⅰ....,.,....... .. Ⅱ. :...... Ⅲ.,,. ..,.,.... 9 1 1.. /.,. PD,,,,, / 7.93%. 1%... 5.28% 10.08%. 3.79%(KBS MBC), 2.38 %(KBS MBC) 1%...,. 10. 15.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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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연구보고서 220-10 대학평생교육원의 운영 방안 한국여성개발원 발 간 사 연구요약 Ⅰ. 연구목적 Ⅱ. 대학평생교육원의 변화 및 외국의 성인지적 접근 Ⅲ. 대학평생교육원의 성 분석틀 Ⅳ. 국내 대학평생교육원 현황 및 프로그램 분석 Ⅴ. 조사결과 Ⅵ. 결론 및 정책 제언 1. 결론 2. 대학평생교육원의 성인지적 운영을 위한 정책 및 전략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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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icbp.go.kr ISSN 2005-8632 4 2010. Vol.168 The Bupyeong Saramdul 02 Vol.168 Vol.168 03 04 Vol.168 Vol.168 05 06 Vol.168 Vol.168 기획 孝 2010년 3월 25일 발행 07 미니뉴스 부평구민 DNA에는 효(孝)가 있다 부평장애인복지관의 나눔 행사
3 Contents 8p 10p 14p 20p 34p 36p 40p 46P 48p 50p 54p 58p 생명다양성재단 영물이라는 타이틀에 정 없어 보이는 고양이, 날카롭게 느껴지시나요? 얼음이 따뜻함에 녹듯이, 사람에게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도 곁을 내어주면 얼음 녹듯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길 위에 사는 생명체라 하여 함부로 대하지 말아주세요. 싫으면 외면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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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 이야기 항공기에 숨어 있는 과학 및 비밀장치 항공기에는 비행 중에 발생하는 현상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과 학이 스며들어 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객실 창문에 아주 작은 구멍이 있고, 주 날 개를 보면 뒷전(trailing edge) 부분이 꺾어져 있다. 또 비행기 전체 형 상을 보면 수직꼬리날개가
1 1 만 알아보기 1000이 10개이면 10000입니다. 이것을 10000 또는 1만이라 쓰고 만 또는 일만이라 고 읽습니다. 9000보다 1000 10000은 2 다섯 자리 수 알아보기 9900보다 100 9990보다 10 9999보다 1 큰 수입니다. ⑴ 1000
1 큰 수 이 단원은 만의 도입에서 시작하여 억, 조와 같은 큰 수의 읽기와 쓰기, 자릿값과 자릿수, 수의 계열, 대소 관계를 알고, 이를 문제 해결에 활용합니다. 1 1 만 알아보기 1000이 10개이면 10000입니다. 이것을 10000 또는 1만이라 쓰고 만 또는 일만이라 고 읽습니다. 9000보다 1000 10000은 2 다섯 자리 수 알아보기 9900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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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희은 강 석우의 커버스토리 인기코너 남자는 왜 여자는 왜 를 이끌어 가고 있는 김용석, 오숙희 씨. 2007 06 I 여성시대가 흐르는 곳 I 04 >>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의 소순임 씨를 찾아서 I 창 가 스 튜 디 오 I 08 >> 여성시대의 남자 김용석, 여성시대의 여자 오숙희 I 편 지 I 14 >> 아이들의 용돈 외 I 여성시대 가족을
1960 년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1960 년대 1960 년 35 1960 년 3 월 31 일, 서울신문 조간 4 면,, 30 36 37 1960 년 [ è ] 1851 1 [ ] 1 é é é 1851 É 1960 년 2 1 2 11 1952 22 38 1961년 1961년 39 1961 년 3 월 14 일, 한국일보 4 면, 2 3 2 3 40 1962년 1962년 41 1962 년 1
#7단원 1(252~269)교
7 01 02 254 7 255 01 256 7 257 5 10 15 258 5 7 10 15 20 25 259 2. 어휘의 양상 수업 도우미 참고 자료 국어의 6대 방언권 국어 어휘의 양상- 시디(CD) 수록 - 감광해, 국어 어휘론 개설, 집문당, 2004년 동북 방언 서북 방언 중부 방언 서남 방언 동남 방언 제주 방언 어휘를 단어들의 집합이라고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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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hipping Association 조합 뉴비전 선포 다음은 뉴비전 세부추진계획에 대한 설명이다. 우리 조합은 올해로 창립 46주년을 맞았습니다. 조합은 2004년 이전까 지는 조합운영지침을 마련하여 목표 를 세우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왔습니 다만 지난 2005년부터 조합원을 행복하게 하는 가치창출로 해운의 미래를 열어 가자 라는 미션아래 BEST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 대상자의속성 -. 연간가수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평균 ( 만원 ) 전 국,........,. 지 역 도 시 지 역 서 울 특 별 시 개 광 역 시 도 시 읍 면 지 역,,.,.,.,.,. 가주연령 세 이 하 - 세 - 세 - 세 - 세 - 세 - 세 세 이 상,.,.,.,.,.,.,.,. 가주직업 의회의원
연구노트
#2. 종이 질 - 일단은 OK. 하지만 만년필은 조금 비침. 종이질은 일단 합격점. 앞으로 종이질은 선택옵션으로 둘 수 있으리라 믿는다. 종이가 너무 두꺼우면, 뒤에 비치지 는 않지만,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두꺼우면 고의적 망실의 위험도 적고 적당한 심리적 부담도 줄 것이 다. 이점은 호불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일단은 괜찮아 보인다. 필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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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비계획의 기본구상 5.1 유적 및 유구 정비 복원 사례연구 5.1.1 미륵사지(彌勒寺址) 미륵사지는 삼국유사 백제 무왕조에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師子寺)로 가는 길에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에 의하여 이곳을 메우고 3개의 불당과 탑, 회랑 등을 세웠 다는 기록이 있으며, 미륵사의 배치는 삼원병렬식(三院竝列式)으로 동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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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05 17 18 2006. 05 19 20 2006. 05 21 22 2006. 05 23 24 01 26 2006. 05 27 28 2006. 05 29 30 2006. 05 31 32 2006. 05 33 02 34 2006. 05 35 36 2006. 05 37 38 2006. 05 39 03 04 40 2006. 05 41 05 4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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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 2 - - - - 4 - - 5 - - 6 - - 7 - - 8 - 4) 민원담당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의 결과와 함의 국민신문고가 업무와 통합된 지식경영시스템으로 실제 운영되고 있는지, 국민신문 고의 효율 알 성 제고 등 성과향상에 기여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치 메 국민신문고를 접해본 중앙부처 및 지방자 였 조사를 시행하 였 해 진행하 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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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명 Indigo 14 1958년부터 사자표 라는 상표로 국내외의 많은 분께 사랑 받고 있는 라이온미싱은 가정용 재봉기 전문 회사입니다. 구입하신 제품은 직선/지그재그 바느질과 다양한 바느질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정성이 가득한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데 조그마한 보탬을 드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본 설명서는 제품개선을 위하여 부분사양이 예고 없이 변경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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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날을 그리다 안전한 나날을 그리다 01 16 22 28 32 36 40 44 50 54 58 02 62 68 90 94 72 98 76 80 102 84 03 04 106 142 110 114 118 122 126 130 134 148 154 160 166 170 174 138 05 178 182 186 190 194 200 204 208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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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October 2005 현 대는 이미지의 시대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버거는 이미지를 새롭 게 만들어진, 또는 재생산된 시각 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에 따르 면, 이미지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혹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의 믿음이나 지식에 제한을 받는다. 이미지는 언어, 혹은 문자에 선행한다. 그래서 혹자는
쌍백합23호3
4 5 6 7 여행 스테인드글라스 을 노래했던 하느님의 영원한 충만성을 상징하는 불꽃이다. 작품 마르코 수사(떼제공동체) 사진 유백영 가브리엘(가톨릭 사진가회) 빛은 하나의 불꽃으로 형상화하였다. 천사들과 뽑힌 이들이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하며 세 겹의 거룩하심 가 있을 것이다. 빛이 생겨라. 유리화라는 조그만 공간에 표현된 우주적 사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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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부 제2부 제1 부 과학적 탐구기능 창의적 기능 창의적 성향 물체와 물질에 대해 알아보기 생명체와 자연환경 소중하게 여기기 자연현상에 대해 알아보기 간단한 기계와 도구 활용하기 멀리 보내기 변화시키기 띄우기 붙이기 궁금한 것 알아가기 적절한 측정 유형 선택하기 적절한 측정 단위 선택하기 적합한 측정 도구 사용하기 측정 기술 적절하게 적용하기 알고 있는
Microsoft Word - windows server 2003 수동설치_non pro support_.doc
Windows Server 2003 수동 설치 가이드 INDEX 운영체제 설치 준비과정 1 드라이버를 위한 플로피 디스크 작성 2 드라이버를 위한 USB 메모리 작성 7 운영체제 설치 과정 14 Boot Sequence 변경 14 컨트롤러 드라이버 수동 설치 15 운영체제 설치 17 운영체제 설치 준비 과정 Windows Server 2003 에는 기본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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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핸드(삼침) 요일 및 2405 요일 시간, 및 요일 설정 1. 용두를 2의 위치로 당기고 반시계방향으로 돌려 전날로 를 설정합니다. 2. 용두를 시계방향으로 돌려 전날로 요일을 설정합니다. 3. 용두를 3의 위치로 당기고 오늘 와 요일이 표시될 때까지 시계방향으로
한국어 표준 설정안내 서브 초침 시간 및 설정 1. 용두를 2의 위치로 뽑아냅니다. 2. 용두를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돌려(모델에 따라 다름) 를 전날로 설정합니다. 3. 용두를 3의 위치로 당기고 현재 가 표시될 때까지 시계방향으로 돌립니다. 4. 용두를 계속 돌려 정확한 오전/오후 시간을 설정합니다. 5. 용두를 1의 위치로 되돌립니다. 169 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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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DVD CHOICE dvd dvd?!!!! [1] [2] DVD NO. 1898 [3] Days of Being Wild 지금도 장국영을 추억하는 이는 많다. 그는 홍콩 영화의 중심에 선 배우였고,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거짓말 같던 그의 죽음은 장국 영을 더욱 애잔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 이 장국영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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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심미안창30호본문 1976.4.7 12:24 AM 페이지3 CTP175 특집기획 광주비엔날레의 혁신과 과제 스무 살의 광주비엔날레, 어디로 가야하나 조덕진_ 아트플러스 편집장 광주비엔날레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담론의 새로운 정립을 통한 혁신 과제 김옥조_ 미술평론가, 편집국장 광주비엔날레와 문화사대주의 정인서_ 서구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