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서라대한제국, 대한제국건축을찾다 (3-3) 옛러시아공사관비밀통로의비밀 (03) 사진으로본옛러시아공사관건축물의해설 이건축물은진정아름다운건축물이었을까? 자세히살펴보자. 사진을통해서라도... 우선배치상황을살펴보자. 베베르는이건축물을세울때정면을남쪽으로한다고했다. 그리고조선의궁결과연결된큰길로출입구를낼것이라고밝혔다. 1) 그렇다면아래의지도에표시된건물의평면적모습은방위상으로틀린것이아니다. 그리고옆의사진과비교했을때왼쪽의페디먼트형지붕이있는방향이남쪽이될것이다. 그렇다면우측의지도에서탑신이있는부분은 자의우측익랑부후면일것으로보인다. 그러나따찌아나심비르짜바는정면에서봤을때오른쪽에탑이있었을것으로분석하고있다. 2) 조금사소하기는하지만사진에나타난것을보면필자의주장이맞지않을까하는생각이든다. < 그림 1> 왼쪽사진은남동쪽현재의미국대사관저쪽에서찍은것으로보인다. 오른쪽위치도는건물이여러동으로구성되었음을보인다. 특히초기로부터후기에이르면서부속건물이증축되었음을예측케한다. 우측상부의배치도는 ( 문화재청. <20세기초건축물사진실측조사보고서 >. 2000년. 65 쪽 ) 에수록된것이다. 대체로 ㄷ 자세움모양의평면형태를갖고있고후면에안마당이있었을것으로보인 다. 3) 따라서위의여인이있는사진은이후정 ( 後庭 ) 에서촬영된것으로본것이다. 더욱이 1) 홍웅호. 위책. 264-265 쪽. 2) 따찌아나심비르짜바. 위논문 3) 카르네프외공저. 위의카프네프의인용글참조.
위의사진에서 별동 으로추정되는부분은아래지도에서좁게그려진부분으로탑의뒤쪽에연결되었지않았을까추측이가능하다. 아래사진에서탑의뒷부분에굴뚝이하나올라가고있음을볼수있고위의여인이있는사진의왼편에올라간굴뚝은동일한것으로추정되기때문이다. 이사진에서볼수있는전체적인지붕의구성은우진각지붕에전면현관상부에페디먼트 를댄박공지붕으로이었고, 여러개 (7-8 개 ) 의굴뚝이올라와있다는것이다. 평면적으로보았을때이건물의전면 ( 남쪽 ) 은대칭이었을까? 따찌아나심비르짜바는대칭으로추정하고있다. 따찌아나는현관과그위의박공면을 대칭축 으로봤다. 그러나필자의견해로는건물의남측면전체가대칭은아니라고본다. 자형평면의양쪽모서리에다른점이나타나고있기때문이다. 즉, 우측의모서리에알코브공간을가진다각형의공간이구축되어있다고보기때문이다. 좌측에서는그와같은것을볼수없고다른형상이보이기때문이다. ( 붉은점선안참조 ) 나아가건물의좌측면과우측면도서로똑같은입면을가지고있다고볼수없다. 회랑의아치가좌측에는 4개가, 우측에는 3개가보인다. 또아치형회랑좌우의모습도다르다. 좌측면에서는양측에매시브한벽면이나타나고있으나우측면에서는위에서말한다면체형상과탑신이아치형회랑의양쪽에나타나고있기때문이다. 또한가지이들사진에서판단할수있는것은지붕의처마가건물의벽선바깥으로나오지않았다는점이다. 다시말하자면성채를본딴패러핏 ( 지붕난간 ) 이처마부분을장식하고있으며그안쪽에경사지붕의끝 ( 처마끝 ) 이와있다는말이된다. 즉경사진지붕의끝과패러핏사이에슬래브부분이있을수있다는말이된다. 이것은건물의기능성보다는장식성에좀더치중하고있음을볼수있는대목이다. < 그림 5> 러시아공사관본관을전면을중심으로좌측에서본것 ( 좌측사진 ) 과우측에서본것 ( 우측 사진 ). 여기에나타난것은이건축물이완전한좌우대칭건축물이아니었다는것. 특히점선안의 형태는서로다른모습을하고있다. 더구나회랑의아치는그수에서다르다. ( 사진김수정제공 ) 한편공사관본관건물외에도부속채가있었다고판단된다. 이것은 큰건물이외에도작 은건물이네채있었다 는 1895 년말 - 1896 년초조선을탐방했던카르네프일행의언 급에서도나타난다.
< 그림 11> 이사진에는본관이외도우측으로부속채로보이는건축물이있다. 카르네프일행은큰건물이외에도작은건물이네채있었다고했다. ( 미국주간지하퍼스위클리 1897년 7월 24일자에실린사진. 촬영 : 윌리암헨리젝슨 (1843-1942) 1896년촬영. 김수정제공 ) 프론트게이트, 로마의개선문을연상시키다 이른바 프론트게이트 (Front Gate) 로불린정문을살펴보자. < 그림 12> 러시안게이트 앞에많은사람들이모여있다. 필시뭔가행사가있던날이아니었을까? 게이트의양쪽기둥에는대나무장대같은것들이꽂혀져있다. 1895-1896년사진 ( 부분 ). 러시아육군대련카르네프와중위미하일로프의기행문에등장하는사진 ([ 내가본조선, 조선인 ]. 도서출판가야넷. 2003. 6.) 이게이트에대해서는필자는 독립문 을설명하는글에서도언급하였지만, 그야말로로마의개선문을본떠서아름답게구성한공사관의정문이다. 전체적으로는석조건축물처럼보이지만아치위의문양은이건축물이벽돌로이루어졌음을보인다. 양쪽각각의기둥은상하두개의띠를두고띠사이에는음각으로파내어장식효과를높이고있다. 아치는사진상으로는판독하기힘들지만반원형띠 ( 선 ) 가 3겹정도로중첩되어곡선을강조하고있다. 게이트의안쪽에는열고닫을수있는문이있고그문의상부에는부챗살 ( 혹은자전거바큇살 ) 모양의장식물이있는것으로보인다. 필시사바찐은조국으로부터멀리떨어져오랜외국생활중자신의조국을위한건축물을 설계한다는자부심으로자신의국가를상징할수있는멋진건축물을만들고자하지않았을 까? 우선건립초기의것으로보이는사진을살펴보자. 공사현장이요즘처럼깔끔하지는않지만 공사중인모습이확실하게보인다. 주요부분공사를거의끝났고수장공사만남아있다.
바닥에여러가지자재부스러기들이나딩굴고있고창문에는창틀거푸집이아직남아있는곳도있다. 땅바닥으로부터올라온기초 ( 벽 ) 부분 (wall foundation) 은환기구가설치되어있는것으로봐서실내의바닥은목조였을가능성이크다. 말하자면우리네온돌식난방은아니었다는이야기가된다. 서양식목조건축에서는 ( 반 ) 지하의이부분을크롤스페이스 (crawl space) 라고한다. 이공간을사용하게되면지하층이되고습기차단이나상부바닥건조를위한공간으로설치되었다면크롤스페이스가된다. 러시아공사관은일부에지하층이있었으므로지하층을위한환기구가되었을가능성도있다. 그러나기초벽이이처럼높이올라오는경우에는창문이있을것이니크롤스페이스의환기구로보는것이맞을것이다. < 그림 13> 건립초기의공사광경. 회랑의기둥을벽돌로쌓아올린모습과그위의아치를만들기위해목재로거회랑을이루는복도의외측에벽푸집을댄것을볼수있다. 아치를틀기위해아직보조지지기둥을대고있으며그아래사닥다리도보인다. 지돌로쌓은기둥들이올라가고있붕쪽에는아직철거하지않는비계가나뭇가지사이로는것을볼수있다. 완성된건물보인다. 삼각형페디먼트를벽돌로만들었는데표준형벽에서는마치석조처럼보이지만돌을사용했는지명동성당에서처럼마구리변형벽돌을공사중인이사진에서는벽돌로제작하여사용했는지분명치않다.( 사진제공 : 김수정 ) 쌓고있는것이확연하다. 이기둥의하부에인방처럼띠를두르고있고상부에도마찬가지다. 장식적효과가클것이다. 이회랑의기둥사이에아치가구성되었으나이사진에는상인방이지나가는것처럼보조부재가끼워져있다. 아직아치를틀기에양생이덜된모습이다. 그러나기둥상부 ( 주두 ) 장식은거의완성된것으로보인다. 이제건축물의완성된모습을살펴보자 우선미려한아치회랑의기둥을볼수있다. 사바찐의거의모든건축물에나타나는모습이다. 이회랑은 3면을두르고있었다고추정된다. 앞서건축물이완전대칭은아니라고진단한사진에서도볼수있었다. 이회랑은아케이드를이루고있고그기둥들은그옛날로마의원형기둥들로부터진화하여방형기둥이되어아치를지지하는르네상스풍을이루었
다. 더욱, 아치는로마의콜로세움의외벽이나원형경기장의외관으로부터진화하여중앙에키스톤 (keystone) 을둔족보있는형상을이루고있다. 아치의하부에난간도그런패턴을벗어나지않고있다. 이들모두팔라디안페디먼트와결합하여르네상스풍을이어받고있다. < 그림 14> 이사진에도시선을끄는것은건물보다는건물앞의여인이다. 가족앨범에서나온 1923 년경의사진으로소유자인키릴치르낀 (К.С. Чиркин, 캘리포니아헤이워드거주 ) 씨이다. ( 사진 : 따 찌아나심비르짜바. 위논문 ) < 그림 15> 중명전에서볼수있는사바찐설계의회랑모습. 좌측은최근에복원한회랑의아치모양이고, 우측은중명전준공직후인 1900년대초에 ( 미국영사관안에서 ) 찍은것으로보이는사진으로다소차이가나타나고있으나이건축물을통하여사바찐건축물의회랑건축형태를추정할수있다.
그회랑위로성채를본딴패러핏 ( 지붕난간 ) 이지붕주위를두르고있고그모습은이건물의장중함을더해준다. 그패러핏중간에향로 ( 香爐 ) - 따찌아나는 꽃병 이라하였지만 - 와같은장식물이올려져있고그장식에는사자머리형상의손잡이가보인다. 최대의장중함을나타내는로마풍의장식이다. 우리는위의사진에는잘려져안보이지만중앙현관상부의페디먼트박공면형상을자세히 볼필요가있었다. 어쩌면이건축물을가장상징적으로표현하고있다고도볼수있기때 문이다. 중앙현관의상부는, 위의사진에서는잘보이지않으나, 그박공지붕을지지하고있는기둥모양의부조도그냥넘어갈수없는이건물의위용을나타낸다고볼수있다. 역시위사진의우측에페디먼트를받치고있는원형기둥둘은사바찐이독립문에서화강석기둥을끼워넣은고전적역사의식과상통한다고봐야할것이다. 말하자면인간성회복이라는르네상스를표현하고있음에도여전히로마의고전성을잊을수없는바탕으로이루었다고볼것이다. 이제사진몇장을가지고이미사라진건축물에대해서너무장황하게상상을벌리지말 자. 사바찐이설계한다른건축물들, 특히돈덕전, 구성헌, 관문각등의자료가나타나면더 심도있는그의건축특성을논의해볼수있을것이다. 벽돌집이이렇게우람할수있을까? < 그림 19> 1969년서울시유형문화재제39호로지정될당시의벽체모습. 대부분벽돌로구성되어있으며그위에몰탈을발랐던것으로보인다. < 그림 18> 2009 년수리공사를하면서수습된 건물의잔해들. 붉은색벽돌과아치부분몰딩 의잔해가보인다. 현재남아있는옛러시아공사관의탑은외벽을백색으로칠해본래의벽돌벽의색체를알기힘들다. 설계자사바찐이가장선호하는벽돌을쓴것이다. 한국전쟁당시파괴된것을보면탑신이나 1층부분의건물본체도벽돌로구성되어있는것을볼수있다. 그벽돌위에몰탈을바른것이대부분이다. 석재가많이사용되었을것이라는외형상의추측은맞지
않는것같다. 석재는기단석이나장대석등에사용된것으로보이며건물의본체에는거의사용되지않는것으로보인다. 실제현장에는기초석이나토대석이남아있는것을볼수있으나벽체부분에석재가사용된것은발견되고있지않다. 특히보수공사를하면서수습된잔해들에는석재는보이지않고벽돌과몰탈장식등이눈에띈다. ( 계속 ) 이글은작성중입니다. 인용은삼가주시기바랍니다. 2010. 8. 21. 김란기 ( 한국역사문화정책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