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편 민속 799 제2장 세시풍속(歲時風俗) 세시 풍속은 1 년을 주기로 계절에 따라서 관습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행위를 말한다. 옛날부터 세시( 歲時) 월령( 月令) 시령( 時令)등으로 일컬어져 그 계절성이 강조되었으며, 세시풍속이 행해지는 날을 명절이라 하여 각별하게 여겨왔고,내용은 한 가정 및 집단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시민들의 생활환경이 크게 바뀌고,주민 대부분의 생업이 농업에서 2 3차 산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세시풍속 중에서도 단절된 풍속이 대부분 이고,새로운 풍속이 만들어지고 있다.오늘날까지 계속되는 세시풍속은 설,한식,추석 정도이다. 보령 지방에 전승되는 세시풍속은 타 지역과 공통성을 가지는 것도 있고,독특한 것도 있다.보령지방에 전승된 세시풍속을 조사하여 기술하고,현재 행해지는 새로운 풍속도 기술하고자 한다.현재 행해지는 풍속은 기원이 짧아 민속학적으로 세시풍속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현재 행해지는 풍속이며,앞으로 전승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보령지방에 전승된 세시풍속은 주로 필자의 경험과 화산동 박정순 선생님 내외분의 증언을 토대로 하였다. 1. 전통적인 세시풍속 1) 설 음력으로 1월 1일을 설 또는 신정과 대비하여 구정이라고 한다.일년의 운수는 그 첫날에 달려 있으므로,이날에는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몸가짐으로 근신하며,조상의 명복을 빌고,신이 주시는 복을 빌기 위하여 정성을 다한다. 정부에서 3 일 연휴의 공휴일로 지정하여,과거 신정을 강요하던 시절에 신정( 新正) 을 쇠었던 사람들도 모두 구정을 쇤다.
800 세시풍속 (1) 설빔 과거에는 설날이 특별한 명절이라 새 옷을 입었다.새 옷을 설빔 이라고 한다.각 가정에서는 몇 달 전부터 옷감을 마련하여 옷을 장만하는데 주로 아이들 것을 만들어 주고 어른 것은 깨끗이 손질하여 입는다.근래에는 설 전에 시장에 가서 아이들의 옷을 사 두었다가 설날 아침에 입혔다.설 추석 등 명절 전 시장은 대목장 이라고 하여 보통 장보다 몇 배의 물건이 팔렸으며,특히 옷가게는 많은 인파로 붐볐다. 19 60-19 70 년대의 아이들 설빔은 검은 학생복,나일론 잠바,골덴바지,나일론 양말, 고무신,운동화 등이었다. 요즈음에는 필요하면 언제나 옷을 사 입기 때문에 설날이라고 특별히 옷을 마련하지 않는다. (2) 차례(茶禮) 설날을 맞기 몇일 전에는 온 집안 청소를 한다.이는 지난 모든 나쁜 것을 쓸어 없애고 새해를 맞으려는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청소 후 섣달 그믐날에는 차례에 쓸 음식을 장만한다.설날 아침 일찍 각 가정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는데 이를 차례( 茶禮) 라고 한다. 옛날 사당이 있었을 때는 차례를 사당에서 지냈다고 하는데,현재는 사당이 없기 때문에 안방이나 대청에서 지방을 붙이고 차례를 지낸다.차례도 기제사와 마찬가지로 4대조인 고조부터 지내는데,모든 조상을 한 상에 모시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을에 큰댁이 있으면 큰댁에서 윗대 차례를 먼저 지내고 작은집의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차례상은 일반 제사상과 비슷한데 밥 대신 떡국을 쓰는 것이 보통이고 술은 한잔만 올린다.과거에는 술을 집에서 담가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대부분 청주를 사다가 사용한다. 요즈음은 차례를 지내지 않는 집도 늘어나고 있다. (3) 세배(歲拜)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서 세배를 한다.세배는 부모한테 먼저하고,웃어른부터 차례로 한다.집안에 따라서는 차례를 지내기 전에 세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세배할 때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올해는 대학에 꼭 합격해라 올해는 꼭 취직해야지 등의 덕담을 한다.덕담은 축원의 의미가 담긴 말로 한 해를 시작하면서 모두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인데,말은 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에 바탕하고 있다.
제9편 민속 801 이때 어린이들에게는 돈을 주는 풍습이 있는데 이것을 세뱃돈 이라고 한다.요즈음은 세뱃돈의 액수가 커지는 경향이 있다. 집안 식구들의 세배가 끝나면 남자들은 성묘를 다녀온 뒤 마을을 돌아다니며 친척이나 이웃에게 세배를 한다.친척이나 이웃에 대한 세배는 초사흘이나 닷새까지 하기도 한다. 이 때 덕담은 집안에서와 마찬가지이고,세배하러 오는 사람에게 술상을 차린다. 이렇게 술을 마시면서 여러 집을 다니다 보면 술에 취하는 경우가 많다.요즈음은 부모, 조부모,백숙부모 등의 가까운 친족에게만 세배하고,마을의 먼 친척이나 어른들에게는 세배하지 않는 경향이다.반면,직장 상사나 특별히 존경하는 사람에게는 세배하는 경향이 있다. (4) 성묘(省墓) 차례를 마치고 성묘를 간다.보통 가까운 친척 단위로 모여서 가며 아이들에게 조상 묘소의 위치나 업적 등을 설명해 준다.보령지방에서는 성묘할 때 제물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5) 설음식 설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떡국이다.과거에는 가래떡을 집에서 만들었으나 마을마다 정미소가 들어선 뒤에는 정미소에서 만들었고,요즈음은 떡방앗간에서 만든다.예전에는 꿩고기 국물로 끓였다고 하나 요즈음은 쇠고기 국물로 끓인다. 떡국의 고명으로는 쇠고기와 지단이 쓰인다.그리고 일반적인 제사 음식 외에 수정과, 식혜,만두,산자,강정 등을 많이 만들어 먹는다. 요즈음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떡국을 끓여 먹고,산자,식혜 등을 만들어 먹는다. 2) 정월 초 풍습 (1) 널뛰기 널뛰기는 젊은 처녀들의 놀이였다.두껍고 긴 널판 가운데에 단단히 묶은 짚단이나 가마니를 깔고 양쪽에서 교대로 뛰는 놀이이다.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던 여자들이 정초 에 널뛰기놀이로 흥겹고 발랄하게 놀 수 있었던 것이다.설날부터 보름까지 놀았던 놀 이이다.요즈음은 없어진 놀이이다.
802 세시풍속 (2) 윷놀이와 승경도(종경도) 놀이 윷놀이는 새해 초부터 보름까지 놀던 놀이이다.남녀노소 모두 즐겼다.요즈음은 계절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돈을 걸고 하는 경우가 많다.과거에는 승부 자체를 가지고 즐거워하였으며, 젊은이들은 벌칙으로 팔대맞기 라고 해서 팔뚝을 때리는 정도였다. 요즈음은 집안 식구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대부분 화투로 고스톱 놀이를 하고 화투놀이를 모르는 할머니들만 윷을 논다. 마을이나 직장,친목단체에서는 척사대회 라고 하여 윷 종경도(웅천읍구룡리,1932) 놀이가 성행하고,여름철 노인들이 자주 모이는 동대교 밑에서도 윷놀이가 성행한다. 윷은 과거에는 밤나무로 깎아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제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서 사용한다. 양반 집안에서는 승경도( 종경도)놀이도 하였다.승경도( 종경도)놀이는 말판에 관직명을 차례로 적어 놓고 윤목이나 윷을 던져 나온 숫자에 따라 말을 놓아 하위직 에서부터 차례로 승진하여 고위 관직에 먼저 이르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양반의 자제들은 이 놀이를 함으로써 그들이 나아가야 할 벼슬길을 이해하게 되고 선비의 자세를 익히게 되는 것이다.현재는 없어진 놀이이다.보령지방에서도 고문서 속에서 승경도( 종경도) 가 흔히 발견된다. (3) 신수보기 새해가 되면 1년의 미래가 궁금하여 토정 비결을 보거나 손금 사주 관상 등을 보는 경우가 많다.토정비결은 가정집에도 있는 경우가 많아 흥밋거리로 보며,손금 사주 관상 등은 전문 역술인을 찾아가서 보는 경우 가 많다.이런 풍속은 요즘에도 여전하다. 무속인 집(죽정동, 2008) (4) 부정 막기 정초 대문에 용( 龍),호( 虎) 라고 써 붙이는데 이것은 잡귀나 부정이 대문 안으로 들어
제9편 민속 803 오지 말라는 의미이다.또 잡귀를 막기 위하여 정초에 부적을 붙이거나 강태공하마처 ( 姜太公下馬處)소동파하마처( 蘇東波下馬處)등을 써 붙이기도 한다. 부정 막기(웅천읍 수부리,1994) 출입문의 부적 (청라면 황룡리, 2008.05) (5) 삼재(三災) 막기 동국세시기에 남녀의 나이가 삼재( 三災) 를 당한 자는 세 마리의 매를 그려 문설주에 붙인다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부터 행해진 풍습이다. 삼재는 수재( 水災) 화재( 火災) 풍재( 風災)또는 병란( 兵亂) 질역( 疾疫) 기근( 饑饉) 을 가리킨다.삼재법은 사( 巳) 유( 酉) 축( 丑) 이 든 해에 태어난 사람은 해( 亥) 자( 子) 축( 丑) 이 든 해에,신( 申) 자( 子) 진( 辰) 이 드는 해에 태어난 사람은 인( 寅) 묘( 卯) 진( 辰) 이 든 해에,인( 寅) 오( 午) 술( 戌) 년에 태어난 사람은 신( 申) 유( 酉) 술( 戌) 이 든 해에 각각 삼재가 든다는 것이다.생년으로부터 9년 만에 삼재가 들고,삼재에 해당 하는 3 년간은 모든 일에 삼가야 된다는 것이다.보령지방에서는 이 3 년을 처음 1년은 병이 들고,다음 1년은 병을 앓으며 마지막 1년은 죽을 수가 있으니 극히 조심해야 한다고 믿는다. 19 60-19 70 년대에는 삼재를 막기 위해 정초에 안택하는 가정이 많았다. 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6) 연날리기 겨울이 시작되면서 정월 보름까지,특히 정초에 많이 행하던 놀이이다.주로 남자 아이들이 만들어 놀았다.창호지로 각종 연을 만들어 띄웠는데 보령지방에는 직사각형의 방패연과 가오리 모양의 가오리연을 많이 만들었다.서로 연줄을 감아 싸움도 하였다. ( 연싸움). 정월 열나흘이 되면 겨우내 띄우던 연을 날려 보낸다.이것을 액맥이 보낸다 라고 하는데,연을 최대로 띄우고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내는 것이다.이 때 연에는 송액( 送厄)
804 세시풍속 또은 송액영복( 送厄迎福) 이라고 쓰기도 한다.이렇게 하면 가지고 있던 액( 厄) 은 사라지고 복( 福) 이 온다고 믿었다.그러나 액맥이를 보내려면 연 줄을 포기해야 하므로 줄을 구하기 어려웠던 옛날에는 연을 날려 보내기가 어려웠다.연줄은 노끈이나 잉아실( 무명 으로 만든 두꺼운 실) 이었다. (7) 정초의 근신 옛 사람들은 정월 초에 특히 근신하여 집 밖 출입도 삼갔다.가장 부정한 것은 피가 나는 것이었으므로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특히 여자들은 정월 초닷새 안에는 머리도 빗지 않았다고 한다. 요즈음도 정월에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이 많다.모두 정초에 근신하기 위함이다. (8) 복조리 갈퀴 사기 조리( 보령에서는 보통 조랭이 라고 함) 나 갈퀴는 복을 일어 오거나 긁어 온다고 생각 하여 집집마다 정월 보름 안에 구입하였다. 조리는 두 개를 사서 방 벽에 걸어 놓고, 그 안에 엿 성냥 등을 담아 놓았다. 엿은 재물이 나가지 말고 붙어 들어오라는 의미이고,성냥은 재물이 불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이다.엿은 정월 보름 이후에 꺼내 먹었고, 복조리와 성냥, 부적(1994, 화산동) 조리와 성냥은 다음 해에 다시 걸어놓고 사용하였다.설 때 사서 벽에 걸어놓은 조리를 복조리 라고 부른다. 3) 입춘(立春) 입춘은 2 4절기 중의 하나로 2월 3 4 일 경이다.옛날에는 음력을 주로 사용하였으나 농사철하고는 맞지 않아 양력을 차용해 사용하였다.예부터 사용하던 양력이 24절기 이다. 보령 지방에서 입춘은 가장 추운 때이기도 하지만 곧 풀려 봄이 시작된다.예부터 각 가정에서는 문 위,대문,천장 등에 입춘붙인다 라고 하여 축원의 글을 많이 써 붙였다. 붙이는 시간은 책력에 나오는 입춘시( 立春時) 이다.많이 써 붙이는 글귀는 아래와 같다.
제9편 민속 805 입춘대길( 立春大吉),건양다경( 建陽多慶),국태민안( 國泰民安),가급인족( 家給人足), 소지황금출( 掃地黃金出),개문만복래( 開門萬福來),부모천년수( 父母千年壽),국유풍운경 ( 國有風雲慶),자손만세영( 子孫萬世榮),천상삼양근( 天上三陽近),인간오복래( 人間五福來), 천하태평춘( 天下泰平春), 사방무일사( 四方無一事), 천증세월인증수( 天增歲月人增壽), 춘만건곤복만가( 春滿乾坤福滿家),문영춘하추동복( 門迎春夏秋冬福),복납동서남북재( 福納 東西南北財) 입춘일에는 보리뿌리 점을 하였다.이날 보리 뿌리를 뽑아 뿌리가 두 가닥이면 흉년 이고 세 가닥이면 풍년이라고 하였다. 현재 보령 지역에는 보리를 심지도 않아 보리 뿌리 점도 없어졌다.노인들만 기억하고 있다.입춘붙이는 것도 극히 일부 가정에서 행해지고 있다. 청라면 내현리(2008.07) 4) 정월 보름 정월보름은 설 다음가는 명절로,작은 보름이라고 불리는 정월 열나흘과 함께 행사가 많다. (1) 오곡밥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집집마다 오곡밥을 해 먹는다.이 날은 특히 저녁을 일찍 해 먹는데 밥을 9번 먹어야 좋다고 해서 여러 번 먹기도 한다.이 때 복을 먹는다고 해서 김쌈을 제일 먼저 먹는데,김쌈 1개가 1년 먹을 쌀 1가마라고도 한다.이날 두부를 먹으면 살이 찌고,명태를 먹으면 마르며,김치를 먹으면 그 해 논에서 물고자리를 쐰다고 하였다. 현재도 행해지는 풍속이다.대부분의 가정에서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는 오곡밥을 해 먹는다. (2) 나물 정월 열나흘 저녁에는 많은 나물을 먹는다.집에서 준비가 가능한 나물 즉,시래기 머위 아주까리 고사리 호박오가리 취나물 등을 볶아먹는데 많은 종류를 먹어야 그 해 더위를 이긴다고 믿는다.지금도 행해지는 풍속이다.
806 세시풍속 (3) 밥 얻어먹기 그 해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은 정월 열나흘 밤에 세 집의 밥을 얻어먹어야 한다고 하였다.그래서 정월 열나흘에는 밥을 얻어먹기도 하였고,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밥을 훔쳐 먹는 경우도 있었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4) 안택 정월 열나흘에는 집집마다 떡을 하고 집안의 곳곳에 있는 가신( 家神) 을 위한 후 거리제, 성황제를 지냈다.모두 일년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5) 지신밟기 정초부터 대보름까지 동네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흥겹게 놀아주고 축원해 주는 것을 말한다.각 가정에서는 풍물패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밥상 위에 쌀을 가득넣은 말을 올려놓고,촛불을 켜 기원한 후 말에 담겨진 쌀을 내놓는다. 이 쌀을 귀밝이쌀 이라고 부르며 동제( 洞祭),상여( 喪輿)비용 등 마을 공동 기금으로 사용한다. (6) 야광이 쫓기 정월 열나흘 밤에는 달이 밝아 야광( 夜光) 이라는 귀신이 다닌다고 생각하였다.이 귀신이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의 신을 신으면 그 아이가 병이 든다고 믿었으며,잠자는 아이의 눈썹을 문지르면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믿었다.그래서 정월 열나흘 밤에는 신발을 다락에 감추고 잠을 자는 풍속이 있었다. 또한 야광이를 쫓기 위하여 대문 앞이나 기둥에 체나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가지 東桃枝 를 걸어놓았다.체는 수많은 구멍이 있어 야광이가 쳇구멍을 세다가 잊어버리고 다시 세다가 잊어버리는 과정을 계속하여 결국 밤을 새우고 닭이 울면 도망간다고 생각하였다.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귀신을 막는 힘이 있어서 걸어놓기만 하여도 귀신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그래서 제삿날 걸어 놓으면 큰일이라고 한다. 복숭아는 귀신을 물리치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에 사용하지 않는다.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부정을 물리치는 힘도 있어 나이 먹어도 시집이나 장가를 못가는 사람이 있으면 이것으로 부정을 떼었다.먼저 동도지( 東桃枝) 를 잘라 활과 화살을 만들고,수수떡을 하여 화살 끝에 끼워 나이 수만큼 준비한다.시집이나 장가 못간 사람의 머리에 바가지를 씌우고 마당 가운데에 세운 후,활을 당겨 바가지를 맞춘다. 이렇게 하면 부정을 떼어 시집 장가를 갈 수 있다고 믿었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요즘 사람들은 야광이를 알지도 못한다.
제9편 민속 807 (7) 달보고 점치기 정월 열나흘 달을 보고 그 해의 농사점을 쳤다.보령시 화산동의 경우 달봉재에 떠오 르는 달을 보고 북쪽으로 당겨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생각하였으며,남쪽으로 치우치면 가뭄이 심하고,중간에 있어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하였다.또 정월 보름 새벽에 지는 달이 붉은색이면 가뭄이 들어 흉년이 오고,순수한 달의 빛이어야 풍년이 든다고 생각 하였다.달점을 치기 위하여 노인들은 저녁 달 뜨는 광경을 지켜보고,새벽에도 일찍 일어나 달 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일부 노인들이 기억만 할 뿐 없어진 풍속이다. (8) 가릿대 쌓기 과거에는 정월 열나흘에 가릿대를 쌓았다.가릿대는 모든 곡식의 줄기를 모아 묶어 세우는 것이다.수숫대가 가장 튼튼하기 때문에 수숫대를 제일 밖으로 하여 그 안에 모든 곡식의 줄기를 넣어 왼새끼줄로 7군데를 묶어 집 뒤에 세운다.묶음의 크기는 한 아름 정도였고,키는 수숫대 길이 정도였다.만들어 놓은 모습이 꼭 송장 묶어 놓은 것 같았다고 한다.이것을 다음 날 아침 일찍 밖에 내다 불태웠다. 모든 곡식과 관련된 액을 왼새끼줄로 묶어 태움으로써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보여진다.노인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풍속이다. (9) 용 알 뜨기 정월 보름 새벽에 주부들이 마을 공동샘에서 가장 먼저 물을 뜨는 것을 용알뜨기 라고 하여 서로 뜨려고 경쟁하였다.용알을 떠야 그 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그래서 첫닭이 울기 전에 마을 공동샘에는 많은 주부들이 와 기다렸다가 첫닭이 우는 순간 물을 길어간다.집에 가져가 밥을 해서 냉수와 함께 성주,조왕 등 집안의 신에게 정성을 들였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10) 뱀, 벼룩 쫓기 정월 보름날 새벽 아궁이에 수숫대를 태우면 그 해 집에 뱀이 보이지 않고,생 노간 주나무를 태우면 벼룩이 극성부리지 않는다고 하여 수숫대와 노간주나무를 태웠다.수 숫대는 길어서 뱀과 같기 때문이라고 하고 생 노간주나무는 탈 때 탁탁 소리를 내기 때문에 벼룩이 뛰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11) 나무 시집 보내기 과일나무가 잘 열지 않으면 정월 보름에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잘 열리지
808 세시풍속 않는 감나무가 있으면 그 가지를 꺾어 잘 여는 감나무에 몇 차례 문지르고 원래의 자리에 묶어 놓거나 걸쳐 놓는 것이다.잘 여는 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안 열리는 나무에 걸쳐 놓기도 하였다.이렇게 하면 과일이 잘 열린다고 믿었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12) 아이 이 갈지 않게 하기 정월 보름날 집 근처의 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으면 아이들이 이를 갈지 않는다고 믿었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13) 샘 시집보내기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샘은 정월 보름에 시집을 보냈다.물이 잘 나오는 샘에 가서 병에 물을 담고 병 끝을 솔잎으로 막아 거꾸로 하여,물을 흘리면서 물이 잘 안나오는 샘으로 가져가 붓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잘 나오는 샘물 줄기가 따라와 잘 나온다고 믿었다. 이럴 경우 잘 나오던 샘물이 안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인 몰래 했다고 한다.현재는 없어진 풍습이다. (14) 불맥이 정월 열나흘 저녁 뜨물을 받아서 집을 돌면서 벽,추녀 등에 뿌리면서 불맥이요. 불맥이요 한다.이렇게 하면 1년 동안 화재가 나지 않는다고 믿었다.현재는 없어진 풍습이다. (15) 그림자 점 정월 열나흘 밤에 그림자 점을 친다.서서 그림자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그 해 잘못 되고,반듯해야 좋다고 하였다. (16) 쥐불놀이 정월 열나흘에 놀았던 아이들의 놀이이다.달이 뜰 무렵 들에 나가 불을 지른다. 이것은 잡초를 태워 해충을 막고,들쥐를 잡으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새해 첫 보름달이 뜨는 밤에 온 세상을 불로 태워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열나흗날 낮에 산에 가서 관솔을 따다 잘게 쪼개고,고무신 떨어진 것을 잘게 조각내어 준비한다.또한 깡통에 사방으로 구멍을 뚫고 철사로 줄을 매어 불깡통 을 준비한다. 날이 어두워지면 마을 어귀로 나와 쥐불을 놓는다.먼저 불깡통에 관솔과 고무를 넣고 불을 당겨 논둑,밭둑을 태우고,깡통을 돌려 불장난을 하기도 한다.이 때 이웃 마을끼리
제9편 민속 809 쥐불싸움 이라고 해서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깡통이나 돌을 던지는 등 싸움이 격렬해 지기도 하였으며 부상 당하기도 하였다. 대천 지역에서는 궁촌천을 경계로 갈머리 사람들과 남포 사람들이 대대로 싸워왔다고 전한다.오랏과 궁촌 사람들도 자주 충돌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거의 없어진 풍속이다. 쥐불놀이(성주면 성주리 1999. 1) 불깡통(성주면 성주리,1999.1) (17) 쇠점 정월 보름날 이른 아침 소 구유에 나물과 밥을 가져다준다.이 때 밥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들고,나물을 먼저 먹으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19 90 년대에도 화산동 등지에서 더러 행해지던 풍속이었으나 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18) 부럼깨기 정월 보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밤,호도,잣,은행,땅콩 등 겉껍질이 단단한 과일을 깨무는데 이렇게 하면 1 년 동안 질병 특히 부스럼( 피부에 나는 종기) 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요즈음도 많이 행해지는 풍속으로 정월 보름 무렵,시장에는 이런 과일들이 많이 나온다. (19) 귀밝이 술 정월 보름 이른 아침에 술을 한 잔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하여 모두가 먹는데 이를 이명주( 耳明酒) 라고 한다.반드시 찬 술을 마신다.거의 없어진 풍습이다. (20) 농사 점치기 정월 보름날 집에 키 큰 사람이 제일 먼저 들어오면 벼의 키가 커 풍년이 들고,작은 사람이 들어오면 벼의 키가 작아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그래서 마을의 키 큰 사람은
810 세시풍속 정월 보름날 일부러 이웃집을 다니기도 하였으며 작은 사람은 외출을 삼갔다.현재는 없어진 풍습이다. (21) 더위팔기 정월보름날 식전( 食前)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이름을 불러 대답을 하면 내더위 라고 말하고 이렇게 하면 더위를 판 것이다.더위를 팔면 그 해에는 더위를 먹지 않고 상대방이 더위를 먹는 것이다.이때 상대방은 니더위 하거나 니더위 맞더위 또는 니더위 내 더위 맞더위 라고 한다.따라서 정월 보름날 식전에는 누가 불러도 좀처럼 대답을 하지 않았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5) 2월 (1) 2월 초하루 ① 노래기 날 음력 2 월 초하루를 노래기날이라고 해서 콩을 볶아 사방에 뿌리고 먹는다.이 때 노래기 다리라고 하여 솔잎을 함께 넣어 볶는다.이렇게 해야 그 해 여름 노래기가 끼지 않는다고 믿었다. 옛날 초가지붕 시절에는 집안에 노래기가 많아 문제되었었다. 19 60-19 70 년대까지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풍속인데 현재는 없어졌다. ② 돼지떡 2월 초하룻날 사모 세 번 쓴 사람( 세 번 장가간 사람) 네 집 보리밭에 가서 보리를 뽑아 떡을 해 먹으면 그 해 온 집안 식구가 무병하다고 한다.이 떡은 남을 주지 않고 식구끼리 먹기 때문에 남 주지 않고 먹는 떡을 돼지떡 이라고 한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③ 바람 점 2월 초하룻날 바람이 장닭 꼬리가 흔들릴 만큼만 불어도 흉년이 든다고 한다.이 날 바람이 불면 마을 사람 모두 흉년 걱정을 한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④ 닭 점치기 2월 초하룻날 집안에 다른 집 여자가 먼저 들어오면 그 해 닭이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날 이른 아침엔 남자들이 일부러 이웃을 다니고 여자들은 다니기를 삼갔다. 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제9편 민속 811 (2) 2월 초엿새의 별점 2월 초엿새날 좀생이별과 삼형제별의 위치를 보고 점을 친다.이 날 저녁 좀생이별이 삼형제별을 앞서면 흉년이 들고 뒤서면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삼형제별이 밥을 이고 들에 나가는 형국인데 아이들( 좀생이별) 이 뒤에 따라가야 들에 가도 먹을 것,집에 와도 먹을 것이 있어서 먹을 것이 많다는 것이다.과거에는 노인들이 이날을 기다려 꼭 점을 쳤다. 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3) 경칩 24절기 중의 하나로 양력 3월 5일경이다.온갖 벌레들이 동면( 冬眠) 에서 깨어나는 시기이다.이 때 개구리가 나와 알을 낳는데,알 무더기가 우무같이 뭉쳐있다.이것을 경칩이라고 하여 즐겨 먹었다.이것이 남자들의 낭습( 囊濕) 에 특효가 있고,여러 가지 병에 좋다고 전해져 많은 사람들이 먹었다.1 990년대까지는 전문적으로 떠다가 파는 사람도 있었는데 현재는 먹는 사람이 드물다. 6) 3월 (1) 삼월 삼짇날 음력 3월 3일에는 강남에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고 한다.제비는 중구일( 重九日)즉, 9월 9 일에 강남으로 갔다가 춘 3 월 상사일( 上巳日) 에 또다시 옛 주인집으로 찾아든다. 이 때 나비도 새로 나오는데,만일 흰나비를 보면 상복을 입게 되고 노랑나비나 호랑 나비를 보면 그 해 연운( 年運) 이 대통( 大通) 이고 몸이 건강하다고 한다.뱀을 보면 게을러진다고 한다.현재는 없어진 풍습이다. (2) 청명과 한식 한식은 동지로부터 10 5일째 되는 날인데 청명절과 같은 날이 되기도 하고,청명절 다음날이 되기도 한다.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에는 청명절( 淸明節) 에 느릅나무와 버드 나무로 불을 일으켜 각 관청에 나누어 주었는데,이것은 중국에서 옛날부터 전해 오던 제도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였다. 또 한식을 춘추시대 진( 晉) 나라 사람들은 냉절 ( 冷節) 이라 불렀고,또 숙식( 熟食) 이라 하였는데,이것은 개자추( 介子推) 라는 사람이 불에 타서 죽은 것을 마음 아파하고 가련히 여겨 불을 금하는 유속( 遺俗) 이라고 하였다.
812 세시풍속 이것은 봄을 맞이하여 행하던 개화의례( 改火儀禮) 의 제도이다.나라와 집의 활력의 근원이 되는 불은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개화( 改火) 함으로써 그 활력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한식날은 예부터 조상에 성묘하고 차례 지내는 날로 전해져 왔는데,요즈음에도 4 대 봉사( 奉祀) 가 끝난 조상 중에서 1 0 월에 시제를 지내지 않는 조상에 차례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옛날에는 주로 1 0월에 시제( 時祭) 를 지냈으나,요즈음 새로 발생하는 시제( 새로 5대조가 되는) 는 주로 한식날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식날은 지신( 地神) 이 상소( 上疏) 하러 하늘나라에 가는 날,또는 지신이 하늘 나라로 결재 받으러 가는 날이라고 하여,손( 부정) 이 없는 날이라고 믿는다.따라서 한식날 묘를 옮기는 면례( 緬禮) 를 하거나 묘에 상석( 床石),비석( 碑石)등 석물을 하거나, 봉분을 높이고 잔디를 심는 사초( 莎草)등 묘역 관리를 하여도 아무 탈이 없다고 한다. 보령지방에는 예부터 석공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한식날 석조물을 세우기 위해 한식 전 몇 달이 가장 바쁘다.또 한식날은 큰 명절로 생각하여 석공을 배우는 제자들에게 휴가를 주었었다. 요즈음도 한식차례,묘역관리 등을 하는 특별한 날로 여긴다. 7) 4월 (1) 사월 초파일 음력 4 월 8 일은 욕불일( 浴佛日)즉,석가탄신일이다.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에 의하면 우리나라 풍속에 이날 연등( 燃燈) 함으로써 등석( 燈夕) 이라고 한다.수삼일 전부터 집집 마다 등대를 세우고 위쪽에 꿩의 꼬리를 장식하고,채색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단다. 작은 집에서는 등대 꼭대기에 노송을 붙들어 맨다.그리하여 집안의 자녀 수대로 등을 매달고,그 밝은 것을 길( 吉) 하게 여긴다.이와 같은 행사는 9 일에야 그친다. 라고 하여 집집마다 등을 달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요즘에도 많은 사람들이 4월 초파일이 되면 절을 찾아 등을 단다.절에 돈을 내면 절에서 준비한 등을 달아주는데,등에 축원하는 사람의 주소와 이름을 적어 놓는다. 대개는 절 밖에 줄을 매고 등을 매단다.적어도 세곳의 절을 찾아 등을 달아야 소원성취 한다고하여 여러 절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요즘에는 4월 초파일이 절에 가서 노는 날로 잘못 인식되어 음식을 장만하여 절 주변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노는 좋지 못한 풍속도 있다.
제9편 민속 813 광불사의 연등(동대동,1992) 거리의 연등(동대동, 2008. 05) (2) 등바루놀이 해당화 꽃이 만발하는 음력 4 월 2 7 일경,장 고도와 고대도 등지의 섬 지역에서 1 5 세 전후 의 처녀들이 놀던 놀이인데 장고도의 등바루놀 이가 최근까지 전해졌다. 놀이 전날이 되면 처녀들( 1 0-1 5 명) 은 아침을 먹고 명장섬 근처의 등바루 놀이터 로 가서 둥근 모양의 돌방 을 만든다.놀이날 새벽에 처녀들은 작업복 차림으로 화장품과 예쁜 옷 장고도의 돌방(1993년 5월) 을 들고 돌방으로 간다.가져온 것들을 돌방에 넣은 뒤,돌방을 해당화 꽃으로 장식하 고,바다에 나가 굴을 딴다. 점심때가 되면 처녀들은 돌방으로 모이고,처녀의 부모들이 밥과 갖은 반찬을 가지고 나와 함께 식사를 한다.식사가 끝나면 처녀들은 모두 돌방에 들어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한 후,바닷가 모래사장으로 나와 춤을 추며 한바탕 신나게 논다. 해가 떨어질 무렵이 되면 돌방을 부수고 각자 집으로 간다. 8) 5월 (1)단오(端午) 음력 5월 5일은 단오( 端午) 라고 하여 연중 4대절( 大節,설날,한식,단오,추석) 의 하나로써 성대한 행사를 하였다.수릿날이라고도 한다.이 날 창포 삶은 물로 머리를 감으면 머리가 부드러워진다고 하여 여인들이 머리를 감았으며,창포 삶은 물을 먹기도 하였다.이 날 상추잎에 내린 이슬을 받아다 분을 녹여 바르면 얼굴이 부드러워진다고
814 세시풍속 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고 한다. 또 단오날 뻗어나오는 칡순의 싹을 잘라 머리에 꽂으면 머리가 칡순처럼 잘 자란다고 하여 여자들이 즐겨 꽂고 다녔다.이 날은 마을마다 남자들은 씨름을,여자들은 그 네뛰기를 하였다.그네는 주로 동네의 정자나무에 매었다. 보령지방에서 단오제를 지냈던 마을은 주산면 화평리 삿갓재 마을이다. 삿갓재 마을에서는 단오날 정자나무에 그네를 매고,참 나무 밑에 있는 동자상에 제를 올린 후,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음식을 나누어 먹고 놀았다.몇 년 전부터는 단오제도 지내지 않고 그네도 매지 않는다.현재 보령지방 주산면 화평리 삿갓재 마을의 그네(1999년 6월) 에 단오 풍습은 없다. 9) 6월 (1) 유두(流頭) 음력 6 월1 5 일로 부인들이 물가에 가서 찬물로 머리를 감는 풍속이 있었다.또한 이날 떡을 하여 작은 도랑의 물 건너는 곳에 놓기도 하였다. (2) 삼복(三伏) 6월에는 복날이 있다.복에는 초복,중복,말복의 삼복이 있다.초복이 든 날에서 10 일이 되면 중복이 되고,중복에서 10 일이 지나면 말복이 되는 것이 순서이다.그러나 말복은 흔히 월복( 越伏) 하는데,그렇게 되면 중복이 지난 뒤 20일 만에 말복이 되는 것이다. 복날이 되면 개를 잡아먹는 풍속이 있다.개인적으로 집에서 잡기보다는 주로 남자 들이 이웃이나 직장 동료들과 산 계곡이나 바닷가에 개를 잡아가지고 가서 끓여 먹는다. 간단하게 식당에서 보신탕을 사 먹기도 한다.복날 개고기를 먹어야 떨어진 밥맛이 살아나고 여름을 건강하게 넘길 수 있다고 믿는다. 또한 과거에는 복날마다 팥죽을 쑤어 먹기도 하였다.이 팥죽을 복막음 이라고 하였다. 동지팥죽처럼 액을 쫒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제9편 민속 815 10) 7월 (1) 칠석(七夕) 7 월 7 일은 칠석이라고 해서 농가에서는 으레 비오는 날이라고 전해져 온다.그 이유는 견우( 牽牛) 와 직녀( 織女) 의 전설 때문인데,견우와 직녀는 하늘의 은하수( 銀河水) 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만나고 싶어 애태우다가 1년에 한 번 칠석날에야 만나게 된다. 이 날 그들을 만나게 하기 위하여 지상의 모든 까마귀와 까치가 하늘로 올라가 은 하수에 다리를 놓기 때문에 칠석이 지나면 까마귀,까치들은 머리가 벗겨져 돌아온다고 한다.이 은하수에 놓은 다리를 오작교( 烏鵲橋) 라 하고 이 날 오는 비는 그들이 너무 기뻐서 나오는 눈물이라고 하며,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만나자마자 이별하는 작별 의 눈물이라고 한다. 칠석날 칠성제( 七星祭) 라는 집안 고사를 지내기도 하였다.이 날은 쌀밥에 미역국, 호박나물을 만들어 조왕,성주 등을 위했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2) 백중(百中) 음력 7월 1 5일로 중원( 中元) 이라고도 한다.들꽃을 따다가 떡을 해 먹었다.이 날은 머슴들의 생일로 알려져 있다.머슴들은 시장에 가야 술과 음식을 자기 뜻대로 먹을 수 있었으므로 백중 전후의 5일장을 백중장이라고 하여 하루를 즐겼다.보령 지방의 백중 장은 전통적으로 7월 15 일 다음에 오는 장이었다.이 날은 머슴들에게 새 옷을 마련해 주고 용돈도 두둑히 주어 하루를 놀도록 하였다. 머슴들은 이 날을 위하여 미리미리 농사일을 끝마쳤다.논매기도 만물( 끝매기) 까지 끝마치고 논두렁도 말끔히 깎아 수확만 남겨 놓는 것이다.그래서 이 날 노는 것을 호미씻기 라고도 한다.논에서 호미를 사용하는 일( 매는 일) 은 다 끝내고 논다는 뜻이다. 11) 8월 (1) 벌초(伐草) 금초,참초라고도 한다.추석 전에 조상의 묘에 찾아가서 풀을 깎아준다.과거에는 날을 보아 깎기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친족들이 모이기 쉬운 일요일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벌초(2008, 청라면 장산리)
816 세시풍속 여러 형제들이 모여 조상묘의 풀을 깎음으로써 친족의 단합을 다지는 역할도 한다. 평소에 일하지 않던 사람들도 이날은 조상의 묘지를 손수 깎는다.요즘에는 예초기로 벌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조상을 극진히 위하는 사람은 1 년에 두 번 벌초하기도 한다. (2) 추석(秋夕) 음력 8월 15 일은 가위,한가위,중추절( 仲秋節),가배일( 嘉俳日) 이라고도 한다.추석의 기원에 관해서는 삼국사기( 三國史記)권 제일( 卷第一)신라본기( 新羅本紀)제일( 第一) 유리이사금( 儒理尼師今)9년조( 九年條) 에 아래와 같이 전한다. 왕은 이미 육부( 六部) 를 정한 후에 이를 두 패로 가르고 왕녀( 王女)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 部內) 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갈라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 六部) 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는데,밤 늦게야 일을 파하고 팔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 功) 의 다소를 살펴가지고는 진편에서는 주식( 酒食) 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는데 이를 가배( 嘉俳) 라 하였다. 이 때 진편의 한 여자가 일어나서 춤을 추면서 탄식하되 회소( 會蘇)회소 라고 하니 그 소리가 애처롭고 아담하였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노래를 지어 회소곡 ( 會蘇曲) 이라고 이름하였다. 추석은 설과 함께 민족의 2대 명절로 꼽혀 대부분 사람들이 고향을 찾기 때문에 민족의 대 이동이라고도 표현하고 교통체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추석날 하는 주요 행사는 차례와 성묘이다.설날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는데,제물의 특징은 반드시 송편을 마련하여 올리는 것이다.어떤 집은 송편만 올리고,어떤 집은 밥과 송편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추석은 추수 감사의 의미도 있어 가능하면 햅쌀과 햇과일을 제물로 마련한다.차례가 끝나면 설과 같이 성묘를 간다. 성묘 후에는 집안 어른들을 찾아 뵙고 인사를 하고,술과 음식을 먹고 논다.이 때도 설빔과 마찬가지로 각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새 옷을 마련하여 주었다.과거에는 아직 더위가 물러가지 않았는데도 다가오는 추위에 대비하여 겨울옷을 마련해 주어 추석날 겨울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놀기도 하였다. (3) 추석 달맞이 추석날 달맞이를 하여 적당한 구름 속에서 달이 잘 보여야 풍년이라고 하였다.비가 오거나 구름이 한점도 없으면 보리농사가 흉년이라고 하였다.현재는 없어진 풍습이다.
제9편 민속 817 12) 10월 (1) 시제(時祭) 농사일을 모두 끝낸 한가하고 풍요로운 계절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이다.4 대조까지는 각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5대조부터는 음력 1 0월 상순에 날을 잡아 제사 지내는데 이것을 시제라고 한다.시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고,매년 정기적인 자금 조달을 위해 토지를 마련해야 되기 때문에 이때부터 종중이 형성된다. 시제(남포면 월전리 2008. 11. 9) 과거에는 많은 자손들이 모였고,제사 후 모인 자손들에게 조금씩이라도 제물을 나누어 주는 풍습이 있었다.시제에 쓰이는 떡은 여럿이 나누어 먹기 쉽도록 얇게 만들었다. 명당자리일수록 많은 후손들이 모인다고 한다. (2) 갈떡 김장이 끝나면 적당한 날을 잡아 대문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놓고 떡을 하여 가신( 家神) 에게 바친다.이것은 보통 가을에 연례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갈떡 이라고 한다.이 때 떡은 무,호박 등 여러 종류의 켜로 하지만 고물은 반드시 붉은 팥을 쓴다. 이것은 팥의 붉은 색이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떡은 집안의 모든 신에게 바치는데,시루는 우선 장독대에 놓고 축원을 한 다음 안방의 윗목에 가져다 놓고 축원을 한다.다음에는 떡을 떼어 바가지에 한 덩어리씩 담아 각 방,마당,장독,광,뒤주,변소,샘 등에 늘어놓고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현재 일부 농촌 지역을 제외하고는 없어진 풍속이다. 13) 11월 (1)동지(冬至) 동지는 24 절기 중 대설( 大雪) 과 소한( 小寒)사이에 있는 절기로 태양이 남회귀선에 이르기 때문에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짧고,밤이 가장 긴 날이다.음력 1 1 월은 동지가 끼어있어 일반적으로 동짓달이라고 부른다. 동짓날에는 팥죽이나 떡을 해 먹는다.동지가 1 1월의 초순에 있으면 애동지,중순에
818 세시풍속 있으면 중동지,하순에 있으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애동지에는 어린이가 많이 죽고,중동지 에는 젊은이가 많이 죽고,노동지에는 늙은이가 많이 죽는다는 속설이 있다.중동지 노동지 에는 팥죽을 쑤어 먹고,애동지에는 팥떡을 해 먹는다.팥죽보다 더 귀한 팥떡을 하는 것이다. 팥죽은 찹쌀가루를 개어 새알처럼 만든 새알심 을 넣어 끓인다. 동지시( 冬至時) 에는 이 팥죽을 솔잎에 묻혀 집의 벽,대문 등 곳곳에 뿌린다.이렇게 해야 부정이나 액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붉은 색이 지닌 축귀( 逐鬼) 축사( 逐邪) 의 의미 때문이다. 요즈음도 대부분 팥죽을 쑤어 먹지만,부정을 막기 위해 집 안에 뿌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14) 12월 (1) 묵은세배 섣달 그믐날 저녁 일년 동안 잘 지냈음을 감사하며 사당에 가서 절을 하고 어른들에게 세배하는 것을 묵은세배라고 한다.과거에는 성행하였으나 요즈음은 없어진 풍속이다. (2) 수세(守歲) 섣달 그믐날 밤에 마루나 부엌에 밤새워 불을 켜 놓는 것을 수세( 守歲) 라고 한다. 이 날은 화롯불도 밤새 꺼지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현재는 없어진 풍속이다. (3) 등불써기놀이 도서 지역인 장고도 고대도 원산도 효자도 등지에서 1 5 세 전후의 소년들이 풍어를 기원하는 뜻에서 매년 섣달 그믐날 행하던 놀이인데 장고도의 놀이가 최근까지 전승 되었다. 섣달 그믐이 되면 소년들은 창호지에 부레풀을 바른 4 각등을 만든다.창호지에 부레 풀을 발라 말렸기 때문에 대나무채로 치면 쨍쨍 소리가 난다.섣달 그믐날 초저녁이 되면 소년들은 등을 들고 동무댁이( 동산) 에 모이는데,이때 등을 켜지 않은 채로 있다. 이 무렵 이웃 섬인 고대도 소년들도 동무댁이에서 마주 보이는 봉화산 에 모여 등불써기 놀이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만일 등불을 켜다가 이웃 섬의 소년들에게 들키면 놀이에서 지게 되므로,등불을 조심해서 켠다.예들들어 장고도 소년들이 등불을 켜다가 고대도 소년들에게 발각되면, 고대도 소년들은 등을 먼저 들고 고대도가 이겼다. 고 소리친다.
제9편 민속 819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이렇게 상대편에게 일단 발각되면 본격적으로 놀이를 시작한다. 두 패로 갈려 우물로 내려온 소년들은 우물을 돌며 등아,등아,아하 등아 이엉,이엉,아하 이엉 영소리가 아하 이엉 하는 노래를 부른다.이어서 한 쪽에서 서서 다음과 같이 여러 번 외친다. 뚫어라 뚫어라 물구녕만 뚫어라. 이어서 자루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문엽쇼,문엽쇼,수문대장 문엽쇼,괭괭괭 괭 이엉 이엉 아하영 이엉서리가 아하영 라고 한다.그러면 집집마다 떡과 과일 등 음식을 성의껏 준다.이어서 떡과 과일을 얻어 처음 모였던 동무댁이로 올라가 사방팔방에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떡과 과일을 차려놓고 정성을 들인다. 15) 윤달 음력에는 2-3 년마다 윤달을 둔다.윤달이 있는 해는 1 년이 1 3 달이 되는 것이다.따라서 윤달은 가외로 있는 달이다.예부터 윤달은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 고 할 정도로 손이나 액이 없는 달로 쳤다.그래서 이 달에 부정을 가리는 꺼림칙한 일을 모두 해치운다. 미루었던 이사를 이달에 가고,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죽어서 입을 수의( 繡衣) 를 장만 한다.수의를 만들 때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와서 만들어 주며 주인집에서는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였다.또한 묘 앞의 석물이나 이장도 모두 윤달에 한다.동티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윤달이 있는 해,특히 봄철에 윤달이 있으면 각 문중에서 석물을 하느라고 보령지방 석공장이 매우 바쁘다. 2. 새로운 세시풍속 1) 신정 요즈음은 모두 양력을 사용하므로 신정이 지나면 새해라고 생각한다.모든 주민들의 의식으로는 신정이 해가 바뀌는 첫날이고 설 ( 구정) 은 명절일 뿐이다. 해맞이 행사(동대동, 2008.1)
820 세시풍속 (1) 해맞이 행사 1 월1 일 새벽 매년 성주산에서 해맞이 행사를 한다.성주산 구도로의 정상 바래기재에 서 하는데 각자 촛불을 켜 들고 소망을 빈다.문화원에서 행사를 주관하는데 해마다 천 여 명의 주민이 모인다. (2) 충혼각 참배 해맞이 행사가 끝나면 시장 교육장 경찰서장과 시청 경찰서 등의 간부공무원들이 충혼각에 모여 참배하였다.이어서 남포면 옥서리 경찰묘지를 참배하고 청소면 죽림리 김좌진 장군 묘소에 참배한다.순국 선열에 참배하고 새해 각오를 다지는 것이다.2 00 9 년부터는 새로 이전한 궁촌동 충혼탑을 참배한다. 충혼각 참배(대천동, 2008.1) 밀가루뿌리기(한내여중, 1999) 신년교례회(대천문화원, 2008.1) 경찰묘지 참배(2008.1) (3) 시무식 모든 직장은 양력을 기준으로 근무하므로 새해 첫 출근을 하면 간단한 시무식을 한다. 전 직원이 모여 간단한 식을 하고 기관장의 새해 포부를 듣는다.
제9편 민속 821 (4) 신년 교례회 새해 첫 출근하는 날 보령시 각 기관단체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 서로 새해 인사를 한다.대천문화원에서 주관하여 행사를 하는데,신년교례회 명부를 만들어 배부하고 경품을 추첨하며,모두 떡국으로 점심을 먹는다. (5) 덕담 1 월 초에는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전화 통화를 할 때 새해 인사를 한다.대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말한다. 2) 2월 (1) 졸업 양력으로 2 월에는 각종 졸업식이 있는 달이다.대개 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학생들이 밀가루,달걀을 던지고,교복을 찢고 자기들만의 축제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 (2) 2월 14일 발렌타인(Valentine)데이 양력으로 2월 14일이다.서양풍속을 상인들이 이용하면서 최근에 생긴 풍속이다. 발렌타인은 3 세기경 로마제국에서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황제의 허락없이 결혼시켜 준 죄로 순교한 사제의 이름이다. 그가 죽은 날이 발렌타인데이인데 지금은 연인들의 날로 알려져 있다.특히 이날은 여자가 평소 좋아 했던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허락되는 날이다.사랑을 전하는 매개체로 초콜렛이 이용되는데 그것은 초콜렛의 달콤함 때문이다. 보령 지방에서도 이 날이 되면 가게에 초콜렛이 진열되고 중 고등학생들이 즐겨 산다. 3) 3월 14일 화이트(White)데이 양력으로 3 월 14 일이다.서양에는 없고 동양에만 있는 이날은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에게 사탕을 선물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날이다.우리나라에서 화이트데이의 의미는 발렌타인데이에 사랑을 고백한 여자의 마음을 남자가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에 있다. 마음을 받아들일 경우라면 사탕을 선물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지나친다. 연인들에게는 남자가 발렌타인데이에 받은 선물을 답례하는 날로써 의미를 가진다. 보령지방에서도 이 날이 되면 여러 가게에 사탕이 진열되고 중 고등학생들이 즐겨 산다.
822 세시풍속 4) 5월 (1) 어린이날 양력 5월 5일 어린이날은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어린이를 위해 소풍을 가거나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한다. 종합운동장에서 매년 어린이를 위한 행사를 어린이날 행사(종합운동장, 2008.5) 한다. (2) 어버이날 양력 5 월 8일은 어버이날이다.부모를 찾아뵙고 카네이션 꽃을 달아드리고,용돈을 드리기도 한다.근래에 생겨난 풍습이지만 효도 관행과 결합되어 하나의 풍습이 되었다.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하더라도 카네이션 화분을 보내거나 최소한 전화라도 드리는 풍습이 정착되어가고 있다. 꽃 달아드리기(대천동, 2008.5) 카네이션 화분(대천동, 2008.5) (3) 스승의 날 양력 5월 1 5일이다.스승의 날을 전후하여 옛 스승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날이다.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전화로 인사드리기도 한다.근래에 생겨난 풍습이지만 점차 정착되어가고 있다. 5) 9월 운동회 추석 무렵이면 각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를 연다.학무모는 물론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교에 모여 즐겼다.요즈음에는 농촌인구의 급감으로 학생수가 줄어들어 모이는 사람도
제9편 민속 823 적고,학부모 이외의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경우도 없다.도시 지역의 운동회도 과거 같지 않다. 6) 11월 12월 시험일 양력으로 11월 12월은 각종 시험이 있는 달이다.11월에는 수학능력시험이 있고,12 대농국민학교 운동회 (1985년 9월 30일) 월에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다.이때 수험생의 후배나,친구,친지들은 수험생에게 시험을 잘 보라고 또는 합격하라고 엿,찹쌀떡 등을 사주는 경향이 있다.잘 붙으라는 의미이다. 7) 성탄절과 연말 (1) 성탄절 양력 1 2월 25 일은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한 성탄절이다.이 날은 공휴일로 되어 있어 직장이 휴무한다.성탄 전일인 12 월 24 일 밤은 크리스마스 이브라 해서 크리스트교를 믿지 않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명절로 보내는 경향이 있다.일부 젊은이들은 이 날 밤 늦도록 남녀가 어울려 술 마시고 노는 것으로 인식하여 탈선하는 경우도 있다. 성탄절 전에 성탄과 새해를 축하한다는 카드를 주고받았으나,근래는 줄어들고,휴대 전화에 문자로 보내는 사람이 많다. (2) 연하장 연말이 가까워지면 존경하는 분,또는 친구들에게 새해를 축하하는 덕담이 담긴 연하 장을 교환하는 풍습이 있다.연하장에는 대개 그림이 인쇄되어 있다.최근에는 연하장 보다 휴대전화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3) 망년회, 종무식 연말이 가까워지면 동창회,향우회 등 친지들이 모여 망년 모임을 갖고,각 직장에서는 12 월 31 일에 종무식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