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Vol. 11, No. 10 pp. 3982-3987, 2010 한국사찰 ( 山神閣 ) 의건축적특성과성격연구 양상현 1*, 김예정 2 1 순천향대학교공과대학건축학과, 2 순천향대학교공과대학원 A Study on Sansinkak of Korean Temple Sanghyun Yang 1* and Yaejoung Kim 2 1 Department of Architecture, SoonChunHyang University 2 Graduate School, SoonChunHyang University 요약산신은우리나라의전통적토착신앙이불교내부에수용된것으로사찰안에이건립된것은 17세기이후에시작된것으로본다. 불교고유의신격이아닌까닭에의입지는불전의배후에떨어져산과가까운기슭에위치하고있는것이대부분이다. 대다수의사찰에서에중요한의미를부여하고있음에도그크기가작은까닭은산신신앙의개인성에서비롯한것이며또한이러한간결한형태를통하여산천정기가집약, 응축된장소임을강하게표현하려는상징적의도가나타난것이라고할수있다. 은산천의정기가사찰안으로흘러모여드는통로이자불교의고유한신앙체계가무한한자연의영역으로확장되는출구이기도하다. Abstract Sansinkak is the building which contains the picture or statue of mountain god(=sansin). It is also an expression of respect for the mountain god. This building is usually very small, so a few person can enter inside it. Because people pray to mountain god for personal purpose, sometime this wishes are exclusive and egoistic, so narrow space is more suitable. Sansin is not the original god of Buddhism, it is the god of folk belief of traditional Korea, so every Sansinkak is located in the back slope of the temples, away from Buddha's building, the center area. Sansinkak is not only the pathway of vital force from back mountains to the temple, but also the exit to the infinite nature as an extension of Buddhist belief. Key Words : Sansinkak, Sansin, Korean Temple, Buddhism 1. 서론 우리민족은예로부터산악을풍요와안전을보장하는신성한대상으로여겼으며, 산에는이를주관하는신격이있다고믿었으니이것이곧산신이다. 사찰내에이와같은산신을모신집을 ( 山神閣 ) 이라부른다. 과비슷한위계를지닌건물로나반존자를모신독성각, 수명장수신인칠성신을모신칠성각등이있는데, 이세신격을한건물에나란히봉안하여이라부르기도한다. 경우에따라, 독성각, 칠성각, 등유사전각모두를대표하여으로칭하기도한다. 본고에서도이들을함께부르는경우, 이라하 였다. 사찰건축의전각구성에대한한연구에의하면조사대상 45개사찰중산신을모신전각이존재하는경우는모두 34개소로, 일주문이 21개소, 천왕문이 24개소, 관음전이 11개소에그치고있음에비하여월등히큰빈도를보이고있다. [1] 이러한조사는산신신앙이불교내에서차지하는지위가상당함을알려주는것으로다른전각에비하여크기는비록작지만이사찰내에서없어서는안될지위를가지고있음을알게한다. 본연구는이어떠한과정을거쳐사찰내에자리잡게되었는지기존연구를통해정리하고, 산신이모셔져있는주요 34곳의사찰을대상으로그입지및건축 이논문은 2008 년도순천향대학교교수연구년제에의하여연구하였음. * 교신저자 : 양상현 (sonamu@sch.ac.kr) 접수일 10 년 08 월 12 일수정일 (1 차 10 년 09 월 28 일, 2 차 10 년 10 월 06 일 ) 게재확정일 10 년 10 월 15 일 3982
한국사찰 ( 山神閣 ) 의건축적특성과성격연구 적특징을분석하여이한국사찰에서갖는성격과그종교적공간으로서의의의를조명하고자한다. 2. 산신과의기원 2.1 불교에서의산신 원래의불교에서산신은주된예배의대상이라기보다는다양한잡신의하나로간주되었고여러경전에서부처나고승들에게감화되어불법에귀의하거나혹은소극적으로협조하는정도의역할에그치고있다. 때로는수도와성불을방해하는대립적존재로그려지기까지한다. 산신이불경에등장하는사례중대반열반경에는 여러산신들이부처님께예배하고물러나앉았다 고되어있으며, 불설해용왕경은부처가용궁으로행차할적에산신이보살, 봉황신, 용, 제석범천등여러신과함께협시하였다고기록하고있다. [2] 불가의경전에서산신이비교적단일한성격으로나타난사례로화엄경 80권본을보면, 부처를따르는 39위신중의하나로금강신 ( 金剛神 ), 주성신 ( 主城神 ), 주림신 ( 主林神 ), 주해신 ( 主海神 ) 등과함께주산신 ( 主山神 ) 이등장하고있다. 이와같이불가의경전에서언급되고있는산신은여러자연물에대응된신들중하나에그쳐, 특별히두드러지는지위를갖고있다고볼수는없다. 따라서여러신중압도적인숭앙을받아온우리의전통적인산신신앙과불가의산신은일정한거리를두고있다고보아야할것이다. 그러나경전에서언급된산신의존재는불교적수용의근거로제시되어신앙적이질감을해소하는기능을하였을것으로짐작된다. 2.2 의기원산신이불가에서본격적으로수용되기시작한것은조선중기이후의일로추정되는데, 1573년에공림사에서간행된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 ( 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 ) 의산왕청문 ( 山王請文 ) 을비롯하여이후의여러기록에서산신과관련된내용을찾을수있다. 산신이우리나라의불교에수용되기시작한초기의기록은삼국시대로거슬러오른다. 진평왕때여승지혜가불전을새로짓고벽에여러천신과 5악의신들을그려모셨다는이야기를삼국유사에서찾을수있다. 통일신라나고려시대의불교와관련된자료에는산신이나타나고있지않다. 1827년에간행된작법구감 ( 作法龜鑑 ) 에는 산왕경 ( 山王經 ) 이라는명칭이등장하는데, 산신을불러오기위한산신청문이 경 이라는명칭으로승격된것을보면산신신 앙이불가전반에광범위하게유포되어있었음을짐작할수있다. 조선시대를관통한숭유억불정책으로왕실과귀족층에서지원을얻지못한불교는스스로의존립을위해기층민중의신앙적요구를적극적으로반영하고자하였으며이과정에서구복적인산신신앙이불교내로유입된것이다. [3] 한편산신이불교에수용된것은사찰의입지조건과도무관하지않다. 조선시대에이르러대부분의주요사찰이산중에위치하게된바, 산에본래부터주인으로자리잡아온산신과의일정한신앙적동거가불가피해진다. 사찰과그거주민들의안녕을위해서도산의터줏대감격인산신의보호를담보하고자하는요구가생겨났을것이다. 이러한사정역시사찰안에이수용되기시작한하나의요인으로작용했다. 현재남아있는의대부분은조선후기이후최근에이르기까지지어진것들로 [4], 기록에서볼수있는가장오랜자료는 18세기후반의기록인인악집 ( 仁嶽集 ) 에수록된해남은적암의기 ( 山靈閣記 ) 이다. 또한안에봉안된산신탱화역시대부분 19세기이후의것으로, 현재명문이남아있는산신도가운데서가장앞선것은 1817년에그려진은해사박물관소장산신도이다. [5] 이러한사실로보아산신신앙이불교내에널리확산, 수용되고이에따라사찰내에이독립된전각으로지어지는시기는 17, 18세기의일로보아야할것이다. 건축특징 사찰명 위치 배치및위성사진 사진 1 무량사 ( 부여 ) 정면 3 칸측면 1 칸 극락전후면 3. 사례분석 본장에서는조신시대의주요사찰건축중,, 등산신을모신전각이있는 34곳의사찰을선정하여해당전각의사찰내입지와건축적구성, 규모와형태등을분석하였다. 일부의사례는비교적최근에지어진것들도존재하고있으나이들도전통적의법식을그대로따르고있어본조사에포함시켰다. 지면관계상분석내용을아래의표로요약, 정리하였다. [ 표 1] 사례분석 3983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 제11권 제10호, 2010 2 선암사 (순천) 및 대웅전 후면 (북쪽) 대웅전 후면(서쪽) 12 송광사 (순천) 13 성불사 (천안) 정면5칸 측면3칸 3 대흥사 (해남) 응진당과함 께 쓰이는건물 14 측면 2칸 쌍계사 (하동) 대웅보전 측면 4 개심사 (서산) 15 전등사 (강화) 5 선운사 (고창) 16 무위사 (강진) 대웅보전 측면 6 고운사 (의성) 1998년 지음 극락전 후면 17 금산사 (김제) 7 용문사 (예천) 보광명전 후면 대적광전 후면 8 법주사 팔작지붕 (보은) 다포 18 동화사 (대구) 9 봉정사 (안동) 대웅전 측면 19 부석사 팔작지붕 (영주) 10 화암사 (완주) 정명1칸 20 보광사 (파주) 무량수전 측면 극락보전 측면 21 장곡사 (청양) 11 송광사 팔작지붕 (완주) 3984
한국 사찰 (山神閣)의 건축적 특성과 성격 연구 22 통도사 (양산) 대웅전 측면 및 31 미황사 (해남) 32 은해사 (영천) 33 개암사 (부안) 대웅보전 측면 23 천은사 (구례) 34 도갑사 (영암) 24 도리사 (구미) 극락전 후면 : 25 (벽돌) 정수사 (강화) 4. 의 건축 특성 26 위봉사 (완주) : 불 전 4.1 의 입지 대부분의 경우 의 입지는 사찰 영역의 맨 배후 극락전 후면 에, 후면의 산림과 만나는 접경 지역에 위치한다. 서산 개 정면2칸 27 관룡사 (창녕) 심사와 같이 본 절 영역에서 떨어져 아예 산 속으로 올라 28 범어사 (부산) 주심포 가 위치하기도 한다. 앞 장에서 살핀 36개의 사례를 보면 불전의 뒤편, 배후의 산림 가까이에 존재하는 경우가 모 두 29개소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달리 불전의 측면에 이 위치한 사례들은 대 흥사, 화암사, 부석사, 통도사, 봉정사, 청룡사, 개암사 등 7곳인데 이들 모두 사찰의 진입 과정에서 보면 이 불전보다 나중에 나타나게 되므로 참례자의 입장에서는 29 청룡사 (안성) 대웅전 측면 은 불전 배후의 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인 지된다. 의 입지가 이러한 까닭은 산신 신앙이 본래의 불교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부처를 모신 본전과 거리를 두어 배치함으로써 신앙적 위계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명부전이나 관음전, 응진전 등의 보 30 내소사 (부안) 살전에 해당하는 전각들보다도 불전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입지하는 것은 2.1장에서 살핀 대로 불교 본연의 신앙체 계와 산신 신앙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전통적 지리인식과 관련하여 사찰 경내와 산림이 만나는 접경 부위 즉, 사찰 배후 주산의 맥이 흘러들어오는 곳에 을 두어 산천정기가 사찰 3985
한국산학기술학회논문지제 11 권제 10 호, 2010 의내부로순치되어스며들수있도록하는의미부여라고해석된다. [6] 4.2 의형태와의장특성 표 2에서보이듯산신만을봉안하는은단칸인경우가가장많으며칠성, 독성, 산신을모신인경우는그규모가정면 3칸, 측면 2칸인경우가많았다. 그러나정면의크기가 3칸에이르는경우라하더라도그간사이가다른건물에비하여좁고, 건물의높이또한낮아서내부공간의크기는부처, 보살및여러신중을모시는사찰의여러의례용전각중에서가장협소한규모인경우가많다. 공포의형식에있어서도비교적규모가큰보은법주사은예외적으로다포를취하고있었으나이를제외한 35개은대부분소박한혹은주심포양식을취하거나따로공포를두지않는경우도 13개소에이르렀다. 지붕형태에있어서도 33개소가맞배를택하고있어매우소박한인상을취한다. 전체적으로의형태는소박하고아담하여주변의자연과이질감이없다. 이사찰중심영역에서떨어져존재하는점이나산에동화되어조화를이루게하려는의도가반영된선택이라고할수있다. 규모 공포 [ 표 2] 의형태와의장 분류수수 합계 ( 백분율 %) 3 2 1 10 11(31) 3 1 4 7 11(31) *2 3 1 0 1(3) 2 1 1 0 1(3) 1 2 1 0 1(3) 1 1 9 2 11(31) 다포 0 1 1(3) 주심포 1 0 1(3) 8 12 20(56) 8 6 14(39) 총계 지붕형태 17 16 33(92) 36 팔작지붕 0 3 3(8) 합계 17 19-36 *2 3칸의규모로조사된것은대흥사으로건물의전면은모두 5칸이나, 좌측 3칸이응진당으로쓰이고있어에해당하는부분만산입하였다. 4.3 의내부구성 의내부에는대부분탱화형태의산신도가봉안 36 36 된다. 이산신탱화는중심인물이남자인경우와여자인경우로구분할수있다. [7] 표 3의사례에서볼수있듯이남자산신은흰수염, 긴눈썹, 백발노인으로표현되며, 호랑이는산신의지시에따르는영물로서산신옆에그려진다. [8] 반면, 지리산, 계룡산, 속리산등여성이산의주신으로인식되고있는경우그인근사찰의에는할머니의모습을한여산신을모시게된다. 그대표적인예를속리산천황사, 지리산실상사약수암, 계룡산동학사, 하동쌍계사, 쌍계사국사암등에서찾을수있다. 탱화속에서여산신은트레머리에댕기를두르고치마저고리를입고있으며, 호랑이에걸터앉거나기대어손에는대게불로초를들고있는모습으로그려지는경우가많다. [ 표 3] 산신도 산신 ( 男 ) 여산신양산통도사안성청룡사하동쌍계사국사암 내부공간의크기로보아대부분의은작고아담하여여러사람이동시에들어가거나마주앉아강설을하는것은불가능하다. 그림 1의경북군위인각사과같이감실형태의작은건물안에산신도만을모셔두어아예안으로들어갈수없는경우도있다. [ 그림 1] 경북군위인각사이와같은의구조는산신신앙의개인적측면과관련된다. 산신신앙의특성상에서는자식과재물, 개인의복락을기원하는지극히개인적인성격의산신기도가행해지게된다. 산신에게올려진불가의한제문에는, 중생이복을구하면복을주고재물을구하면재물을, 아들을구하면아들을준다 는기원이보이고있다. [9] 경우에따라이러한기도는배타적, 이기적인면을 3986
한국사찰 ( 山神閣 ) 의건축적특성과성격연구 지니게되기도한다. 이와같이현실기복적이며지극히개인적인소원이희구되어지는장소로는타인의이목에대한부담없이혼자만이들어갈수있는작고폐쇄적인공간이적합하다. 대웅전등의불전에서이루어지는의례가보다공개적이며사회적인성격을지니는것과대비되어이해할수있다. 연구, 중앙대학교석사학위논문, p.16, 2007. [3] 윤열수, 산신도, 대원사, p.35, 1998. [4] 윤열수, 조선후기산신탱화연구, 동국대학교석사학위논문, p.38, 1998. [5] 손진, 한국불교의산신신앙연구, 동국대학교석사학위논문, pp.41-42, 2008. [6] 신영훈, 절로가는마음, 책만드는집, p.64, 1995. [7] 곽춘섭, 사찰의의미와배치형식에관한연구, 전남대학교석사학위논문, p.39, 2001. [8] 장양경, 19세기불교산신도연구, 경주대학교석사학위논문, p.19, 2007. [9] 이송희, 앞논문, pp.23-24. 영주부석사대구동화사 [ 그림 2] 내부단청 내외부의단청에그림이그려지는경우초화나십장생문양이많이나타나는데, 의성격을반영하여산에서볼수있는자연물을그려넣은것으로보인다. 양상현 (Sanghyun Yang) [ 정회원 ] 1993 년 8 월 : 서울대학교공과대학원건축학과 ( 공학석사 ) 1999 년 8 월 : 서울대학교공과대학원건축학과 ( 공학박사 ) 2000 년 3 월 ~ 현재 : 순천향대학교건축학과교수 5. 결론 은우리의고유한산신신앙에서비롯한산천에대한예경의불교적표현이다. 이장소는산천의정기가사찰안으로흘러모여드는통로이자불교의고유한신앙체계가무한한자연의영역으로확장되는출구이기도하다. 대다수의사찰에서을빠짐없이두고있으리만치에중요한의미를부여하고있음에도크기가작은까닭은산신신앙의개인성에서비롯한것이며그형태에있어소박하고아담하여주변의자연과이질감이없는외형을통하여산천정기가집약, 응축된장소임을강하게표현하려는상징적의도의반영이라고할수있다. 한칸의일주문에서시작된사찰의배치구조는산문과불전, 보살전등을지나맨뒤에놓인한칸의에이르러배후의산, 자연을향해열려진끝으로맺어진다. < 관심분야 > 한국건축사, 건축계획및설계 김예정 (Yaejoung Kim) [ 정회원 ] < 관심분야 > 건축계획및설계 2006 년 2 월 : 순천향대학교공과대학건축학과 ( 공학사 ) 2009 년 2 월 : 순천향대학교공과대학원건축학과 ( 공학석사 ) 참고문헌 [1] 양상현, 조선시대사찰배치의서사구조,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p.153, 1999. [2] 이송희, 17 18세기사찰내건립배경에관한 3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