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악 누 리 BIMONTHLY MAGAZINE GUGAKNURI National Gugak Center 2012 / vol.127 09+10 발간등록번호 11-1370132-000057-06 ISSN 1739-9599 2012 09+10 vol.127 국 립 국 악 원
09 + 10 National Gugak Center 2012 / vol.127 section. 1 19 24 34 42 04 05 카툰 담담 淡 談 연간 기획 공연 연보로 본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제주칠머리당영등굿 08 10 12 14 16 17 Focus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다시보기 1 정재, 조선의 역사를 품다 다시보기 2 2012 한국춤 젊은 안무가전 다시보기 3 코리아! 더 크게, 코리아! 더 세게! 다시보기 4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 다시보기 5 살아있는 전통, 숨쉬는 문화 발간등록번호 11-1370132-000057-06 발행처 국립국악원 발행인 이동복 편집 진행 김계채 김보람 성현경 이승재 박규담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번지 국립국악원 홍보마케팅팀 전화 02.580.3397 팩스 02.580.3322 홈페이지 www.gugak.go.kr 디자인 (주)에스앤에이커뮤니케이션즈 인쇄 삼립인쇄 제호 캘리그라피 강병인 캘리그라피 이규복 국악누리 표지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재생용지를 사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 19 22 24 28 30 세계와 함께, 국악 월드뮤직, 국악을 품다 무대 뒤, 국악 국악 공연에서의 무대 음향은 무엇이 다를까? Interview 서진희 section. 2 옥토끼의 놀애 신 나는 장단 놀이 국악과 공간 우리 음악을 향기롭게 듣는 법 민초들의 노래, 신들의 이야기로 풍요로운 제주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학자들이 모여 무속 巫 俗 과 민요 民 謠 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32 34 38 40 42 고궁 공연 창경궁의 아침 여행 중에 만난 사람 그리고 음악 상주민요 다르게 보기 아쟁산조 국악용어 알아보기 제 국악 명인열전 심소 김천흥( 心 韶 金 千 興 ) section. 3 바람이 들려주는 신의 소리 46 50 55 61 62 64 66 공연 및 행사 일정 공연 미리보기 국립국악원 소식 국악지음 국립국악원 후원회 예술단원 동정 국악, 이모저모 국악원 밖 소식 제10회 동양음악학 국제학술회의 9/20(목) 제주의 무속과 민요 9/21(금)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의 무속과 민요 9/22(토) 제주 무속 현지답사 문의_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 02.580.3076 COVERSTORY 탈춤 김성희 소재 선정 이유 국악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 중 개인적으로 연주와 춤이 어우러지는 삼현육각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어떤 음악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을 그릴까 생각하던 중에 탈춤의 도입부에 나오는 신나는 피리 소리가 어우러진 음악이 인상적으로 떠 올라서 표지그림의 소재로 선택하였습니다. 표지그림에 대한 설명 이 그림에서 표현된 말뚝이와 사자는 은율탈춤의 초입부에 등 장하는 인물들입니다. 탈은 지방마다 특색이 있지만 그 중 은율탈춤의 탈들은 그 모양새가 장식이 많지 않아 단순하면서도 해학적인 느낌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자가 다리가 6개이라는 점도 재미있어서 특별히 은율탈춤의 등장인물들을 선택하였습니다. 목판화로 다섯 가지 방향을 상징하는 색깔들, 즉 황(중앙), 청(동), 백(서), 적(남),흑(북)을 사용해 탈춤 공연 초입의 삼현육각을 들을 때의 흥겨운 느낌을 표현하였습니다. 프로필 저는 판화로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씁니다. 이제까지 쓰고 만든 책으로는 책나무 와 신수현 작가가 글을 쓰고 제가 그림을 그린 빨강연필 이 있습니다. shkimat@gmail.com
카툰 글, 그림 차승민 대금연주자 연간 기획 글 지기학 국립민속국악원 지도단원 제5부 공연 연보 年 譜 로 본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창극 唱 劇 은 오늘 여기에서 숨 쉬어야 한다. 쉽게 창극을 판소리의 갈래로 보아 전통예술이라고 간주 看 做 하기 쉬우나 창극은 마당이나 판 그리고 풍류방에서 놀던 전통 판소리와는 다르게 1902년 최초의 서구식 극장 원각사가 우리나 母 胎 라에 세워진 이후에 발생했다고 보기 때문에 판소리를 모태 로 한 근대극의 한 양식이라 말하 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물론 그 창극의 발생과 발전의 중심에는 판소리와 소리꾼들이 있었다. 文 物 아마도 1894 갑오경장 이후 서구의 새로운 문물 이 조선 사회에 급격히 유입되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 가운데는 음악, 연극, 미술, 춤 등 다양한 예술도 함께였을 것이다. 이 문화의 충돌 속 에서 판소리는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판소리를 전통 예술이라 귀히 여겨 2000년 창극 춘향전 국립민속국악원 개원 20주년 제1부. 국립민속국악원 20주년을 바라보며 제2부. 원로께 듣는 그 시절 민속국악원 이야기 제3부. 남원에서 맞는 봄 향기 春 香 제4부. 민속 국악의 보금자리 好 不 好 보존해 주는 무형문화재 제도도 없었고 관객의 호불호 에 따라 생계유지가 달린 전형적인 대중 예술가들이었을 테니 말이다. 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창극은 전통공연예술도 아니고 오 늘 이즈음을 살아가는 국악 예술가들이 다양한 현대의 공연 문화와 맞붙어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는 것처럼 1900년 서구와 조선의 문명이 만 나는 격동의 시대에 동시대를 숨 쉬고 살았던 소리꾼들의 크로스오버요, 하이브리드적인 열린 産 物 사고의 산물 이 아니었을까. 0405
2003년 창극 흥부전 2003년 창극 효녀 심청 2003년 소리 세계를 가다 2002년 창작창극 가왕 송흥록 공연 연보 年 譜 로 본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 개원 20주년 창극 16년 중요 공연으로 본 국립민속국악원 16년의 창극사 唱 劇 史 국립민속국악원 예원당에서 창극이 처음 공연된 것은 1997년 창극 춘향이었다. 이 공연은 국 립민속국악원이 제작한 것이 아니라 국립국악원에서 제작해 그 해에 개관한 국립민속국악원 현 청사의 개관 기념공연 작품으로 초대되어 예원당에서 공연했다. 이 작품에는 당시 국립민속국 악원 성악부 현 창극단 단원 10여 명이 함께 출연했다. 본격적으로 국립민속국악원이 기획 제작한 작품은 그 이듬해인 1998년 심청전에 뺑덕이네를 소재로 한 해학창극 <뺑덕이네>였고, 그해 가 을 창극 <흥보가>가 완판창극으로는 처음으로 기획, 공연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은 1999년 창극 수궁가, 2000년 창극 춘향가, 2003년 창극 심청가, 2006년 창극 적벽가 등 이른바 전승되는 판소리 다섯 마당을 바탕으로 한 창극을 年 譜 모두 공연 연보 에 올리게 되었다. 그 사이에 국립민속국악원 개원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2002년에 창작창극 <가왕 송흥록>이 祖 宗 공연되었다. 가왕 송흥록은 조선 후기 동편제 판소리의 조종 이라 불리는 송흥록의 예술과 인생을 다룬 창극이다. 新 2003년 창극 <다섯 바탕 눈대목전>이란 작품의 공연을 계기로 2004년 신 판놀음이란 작품 으로 발전시켜 공연하기 시작했다. 2005년 한일문화교류의 해를 기념해 국립민속국악원의 창극이 첫 해외 나들이를 한다. <판소 文 樂 리와 분라쿠 의 사랑이야기>는 판소리와 창극 그리고 일본의 전통 4대 예능 중에 하나인 분라 쿠와의 합동무대로 서울 국립국악원 예악당과 일본 도쿄의 국립극장에서 공연이 이루어졌다. 2006년부터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가족극 개념의 창극 공연물이 제작되었는데 2006년 어린이를 위한 창작창극 <깨비 깨비 도깨비>, 2008년 창작창극 <마당을 나온 암탉>, 2009년 청소년을 위한 열린 창극 <내 사랑 방자>가 제작, 공연되었다. 2005년에는 <창극 춘향전>이 2006에는 <창극 신판놀음>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 창극으 로 당당히 초대되어 성황을 이루었고, 2001년과 2004년 <창극 춘향전>, 2007년 창작창극 <깨 新 비 깨비 도깨비>, 2011년 <신 판놀음-창극 다섯 마당>이 전주세계소리축제에 초대되어 공연 을 펼쳤다. 특히 2011년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 공연된 신판놀음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저녁 10시까지 작품과 작품 사이에 휴식 시간을 가지며 창극 다섯 마당의 눈대목을 하루에 연속 공 연해 큰 호응과 화제를 낳았다. 또한 2008년부터는 주말에 연속으로 창극을 이어서 감상하는 토요주말창극 신판놀음 <어허 둥둥 내 사랑 춘향>이 4주 연속 공연을 이어갔으며, <흥부 놀부 박타령>을 6주 연속을 제작, 공연하는 등 창극의 주말 상설화 공연을 시도했다. 2011년 <창극 춘향전>, 2012년에는 <창극 심청>을 국립민속국악원 브랜드 공연으로 제작해 공연하고 있다.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공연의 특징 1997년 이후 국립민속국악원의 16년간 창극 공연 연보를 살펴보면 1999년부터 2006년 까지 8년에 걸쳐 판소리 다섯마당을 기반으로 만든 창극 공연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국립 민속국악원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상 <창극 춘향전>과 <창극 흥보전>의 공연이 유독 많다. 국립민속국악원 지도단원으로 근무하는 필자는 2001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10여 차례 <창극 춘향전>을 연출하고 있다. 이 창극 춘향전은 춘향제를 찾는 관객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물로 꼽는데 주저함이 없는 국립민속국악원의 대표 작품이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공연물을 꾸준히 제작해 왔는데 특히 혹부리 영 감 이야기를 소재로 한 창극 <깨비 깨비 도깨비>는 2006년 이후 올해 7월에 제주 박물관 공연장에서 열린 공연까지 6년 동안 약 72회 정도 공연되어 어린이들에게 우리 음악이 주는 재미와 감동을 전했다. 또한 공연 연보에 <신판놀음>이란 공연물이 많이 올라 있는데 이 신판놀음은 조선 후기 전문 예능인들이 벌이던 판놀음 양식을 현대 무대에 어울리도록 새롭게 해석해 낸 작품으로 판소리와 판굿, 춤, 기악 연주 등에 창극이 더해졌다. 그간 국악계의 수많은 명창, 명인, 명 무들과 함께하며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뿐 아니라 기악단, 무용단, 사물단 등 각 예술단 의 특징을 잘 드러낸 국립민속국악원 대표적인 공연물이라 할 수 있다. 창극은 연극도 아니고 판소리도 아니다 이즈음에 창극의 성격은 작품을 이끄는 연출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 러 분야의 연출가에 의해 재해석된 판소리가 다양한 모습으로 무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은 커다 란 즐거움이다. 그런데 창극을 꾸준하게 탐구해서 결과물을 내 놓는 전문 연출가가 드물다는 것은 창극 발 盲 點 전의 가장 큰 맹점 이 아닐 수 없다. 주로 타 장르에 매진하는 연출가들이 연출하는 창극은 전 창작창극 깨비 깨비 도깨비 2006년 단막창극 놀부와 마당쇠 통 예능을 학습한 인적 자원과 국가 예산에서 지원되는 물적 자원이 조금 넉넉한 특별 이벤트가 되기 일쑤이다. 판소리를 깊이 이해하고 창극을 만들어 낼 전문 연출가를 기대하려면, 판소리를 체득한 전공 자들이 창극 연출에 관심 갖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창극 발전에 중요한 과제다. 감히 단언하건 대 창극은 연극도 오페라도 뮤지컬도 아니고 창극이다. 또한 창극 배우와 판소리꾼은 다르다. 판소리는 문학을 바탕으로 한 예술이다. 창극 대본과 판소리의 사설은 문학적으로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근간이 다르다는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창조하는 예술가에게도 다른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창극 배우와 판소리꾼은 조금 다르게 교육되어야 한 다. 창극을 전문적으로 공연하기 위해서는 판소리 예능을 먼저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나 그 체득 된 판소리 예능은 창극 공연에 적합하게 적절히 바뀌어 한다. 판소리에 매진하는 명창들이 창극 하면 소리 버린다. 는 말을 흔히 하는데 이것을 흘려들으면 안 된다. 창극은 판소리가 아니다. 이즈음 몇몇 대학 국악과에서 창극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다. 창극사, 창극의 일반론, 창극 배 우론, 창극 연출론 등등의 연구물이 등장해야할 시기가 왔다. 이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는 무대 예술에 애정을 쏟을 연구자들의 관심과 학문적 체계가 절실하다. 0607 2004년 신판놀음
Focus 글 지서해 국립국악원 장악과 추석기획공연 한가위 아리랑 달빛 추석은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로,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1년 중 가장 밝은 달이 뜨는 날이다.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헤어져있던 가족들을 만나고,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올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 를 한다. 한 해의 농사는 마무리되고, 오곡이 익어 모든 것이 풍성하며 한가위를 기리며 즐거운 놀이 로 밤낮을 지낸다. 이렇듯 즐거운 추석을 맞이하여 국립국악원에서는 전국의 아리랑을 만나는 자리와 연희 난장을 통해 풍성한 추석의 의미를 선보이는 공연을 펼친다. 본조 아리랑, 구 아리랑, 긴 아리랑 등을 통해 이 시 대를 살아가는 외로운 현대인을 위한 공감과 위로의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밀양 아리랑 등 한반도 전역을 아우르는 여행의 아리랑, 반세기가 넘 도록 해결되지 않은 분단과 이산의 역사 속에서, 추석 명절을 맞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지만 닿을 수 없는 땅에 고향을 둔 사람들의 위해 조선족과 북녘의 아리랑 을 들어본다. 마지막은 추석의 즐거움과 고마 움을 진도 아리랑의 흥겨운 장단에 맞춰 몸에, 마음에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갖는다. 추석기획공연 <한가위 아리랑 달빛>은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이 펼치는 공 연으로 1부 아리랑 달빛 과 2부 한가위 달빛 으로 예악당과 광장에서 벌어 진다. 1부 아리랑 달빛 은 한반도 전역에 퍼져있는 다양한 종류의 아리랑을 만 나는 자리이다. 전국의 아리랑을 듣는 일은 한반도 곳곳의 다양한 지형과 풍광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일만큼이나 다채로운 심상을 가져다주는 일이다. 그만큼 아 리랑은 우리나라 전역에 펼쳐져 있으며, 각 지역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2부 한가위 달빛 은 광장에서 펼쳐지는 연희 난장으로, 2010년 새롭게 창단한 민속악단 연희부의 공연이다. 난장은 조선 시대 무허가 상행위인 난전에서 유래한 말로 난장을 튼다 거나 난장이 섰다 는 표현에서 특별히 열린 장에서 여러 사람들이 어지러이 섞여 뛰거나, 뒤 엉켜 뒤죽박죽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버나 대접 돌리기, 판굿, 살판, 무동놀이 등 신명 나는 연희 공연으로 관객과 하나 되는 시간이 마련될 것이다. 추석. 공연. 관련. 한. 말씀!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 을 서울에서 보내는 이들과 차례와 성묘를 마친 후 모인 가족들, 외국인들까지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 험하며 추석연휴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민족을 대표하는 우리의 노래 아리랑과 우리의 놀이판에서 연행되던 최고의 문화 전통 연희를 함께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이춘희- 연희는 광범위한 장르로써 지역마다 특색 있는 놀이문화를 일컫습니다. 특히 이번 연희난장은 추석을 맞이하여 수확한 농산 물을 조상들에게 바치는 흥겨움과 함께 놀고 즐기는 신명을 선보입니다. 버나 접시 돌리기, 판굿, 살판, 무동놀이 등 관객과 어 우러지는 한판을 벌이려고 합니다. 행여 악사가 버나를 돌리다 떨어뜨리면 얼른 가져가세요~ 떨어진 버나를 주워가면 나쁜 액이 물러가고,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연희부 악장 남기문- 몇 년 전 사할린 동포 위문공연에 아리랑을 불렀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그때 조선족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가슴이 찢어지 는 아픔을 느끼며 타국 땅에서의 설움이 복받쳐 묻어나오는 눈물임이 느껴졌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아리랑은 그 선율과 가사 의 내용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대변하듯 민족애의 끊을 수 없는 생명력을 가진 끈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때 만났던 사할린 동포들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눈물로 함께 불렀던 그 아리랑이 귓가에 울리는 듯 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우리의 따뜻하고 애절함이 담긴 아리랑! 우리 민족의 얼이 담긴 노래입니다. 국민 모두가 널리 부르 는 대표적인 민요이자 어쩌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구어낸 우리의 민족성을 대변하는 그 아리랑! 민요를 부르는 소리꾼으로 서, 삶이 노래고 노래가 삶인 우리 국악인들이 더 많이, 더 널리 부르고 또 불러야할 한민족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성악 악장 김광숙- 0809
다시보기 1 글 이동우 무용 평론가 국립국악원 무용단 기획공연 정재 呈 才, 언제부터인가 문화예술 이라는 단어가 주로 쓰이게 되면서 사람 들은 문화는 예술이다 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나 라의 문화가 발달한 나라치고 예술분야가 발전하지 않은 곳이 없 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위상을 과시하기 위한 척도는 문화이며 이 를 증명할 수 있는 분야에 있어서 예술만큼 적절한 것이 없기 때문 이다. 이런 생각은 500여 년 전 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임을 국립 呈 才 국악원 무용단 기획공연인 <정재, 조선의 역사를 품다>를 통해 배운다. 6월 28일과 2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는 당악정재와 향악 정재를 통해 조선 초기와 후기의 문화와 역사를 되돌아보는 공연을 가졌다. 1부에서 꾸민 당악정재에서는 이성계가 개국하기 전부터 이미 왕이 될 조짐이 있었다는 내용의 기록을 근거로 국립국악원 무 金 尺 용단 심숙경과 최경자가 재구성한 금척 과 수보록 受 寶 籙 을 공연 했다. 태조로 등극한 이성계가 대외적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당성과 정통성 확립을 가무악으로 서술한 작품이다. 대궐 안의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 조선의 역사를 품다 潛 邸 태조실록 1권에서는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잠저 에 계실 때에 神 人 꿈에 신인 이 금으로 만든 자 金 尺 를 주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가지 整 齊 고 국가를 정제 하십시오. 라 한 것과, 또 어떤 사람이 이상한 글 을 얻어 바치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숨기고 함부로 남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라고 한 것이 그 후 10여 년 만에 그 말이 과연 맞게 되었 으니, 이것은 모두 하늘이 오늘날의 일을 미리 알려 준 것입니다. 라 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의 이상한 글의 기록 이란 이성계가 왕이 寶 錄 될 것이라는 보록 이며, 이를 담은 책을 받았음을 대외에 알리기 위해 만든 춤이 수보록 인 것이다. 수보록 의 특징은 의물을 든 여 回 舞 령들이 창사를 하며 정재 전반을 회무 로 꾸민 것이 여느 정재 형 태와 다른 점이다. 이 두 작품은 각각 1980년과 1981년 김천흥 선생이 이 작품을 재 현안무를 한 적이 있으며, 이번 공연을 위해 고증에 기록된 대로의 의복과 무구들을 새로이 복원했다. 특히 복식과 머리장식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황초단삼을 입은 정재의 여령 이미지를 벗어나 조선 초기만 해도 아직 남아있던 고려 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1부에서 굵직한 두 작품을 소개했다면 2부에서는 시간을 조 影 池 舞 선 후기로 옮겨 효명세자가 창사 가사를 지은 향악정재인 영지무, 望 仙 門 망선문, 연화무 蓮 花 舞 그리고 끝으로 춘대옥촉 春 臺 玉 燭 과 같이 다양한 소품들로 꾸몄다. 효명세자는 부모인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자주 궁중잔치를 베풀었는데, 그때에 창작된 춤으로 알려져 있 다. 2부에서도 역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복식이다. 조선 후기 들 어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미지들의 복식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지 만 특히 하얀 깃털이 달린 의복인 백우호령에 백우엄요를 두르고 추 는 망선문 과 춘대옥촉 은 무대의 화려함과 더불어 흔히 접하지 못 女 伶 한 정재 작품 속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여령 대신 무동 舞 童 들이 추는 것도 2부의 특징이어서 여러모로 1부와는 상반된 분위 기의 연출은 다양한 형태의 정재에 대한 호기심을 막이 내릴 때까지 유지시켰다. 2부에 선보인 향악정재의 대부분은 현 국립국악원의 원로사 범인 이흥구가 1997년 재현, 안무한 것을 토대로 국립국악원 무용 단 하루미가 재구성, 안무를 한 것이다. 영지무 는 푸른 물과 흡사 碧 羅 袍 한 채색을 한 벽라포 와 잘 어울리는 백한삼과 바지를 입고 남 자들이 추는 춤으로 하나의 서정시와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망선문 은 이와 달리 화려함의 극치로 조선후기 정재의 절정기를 보 여준다. 그 사이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당악인 연화대 에 기원을 둔 연화무 는 잎을 나타내는 연화합립 위에 연꽃을 달고 같은 색의 녹라포에 연꽃 봉오리를 들고 추는 또 하나의 서정시다. 춘대옥촉 역시 화려한 춤으로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부족함 없어서, 작품 안 배에도 고심했음이 드러난다. 일반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회 자의 설명과 상세 설명이 담긴 프로그램, 더불어 태조실록 이나 순조무자진작의궤 등의 기록 이미지를 공연과 함께 비추었으며, 춤과 영상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게끔 연주자들의 모습을 샤막 뒤로 숨겼으며,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공연의 분위기는 연두색으로 물들 인 무대 바닥을 이용, 풀밭을 연상케 한 시각적 효과를 느낄 수 있 었다. 그간 위의 작품들의 재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부 작 품은 1990년대 이후 10여 년만에, 또 2부의 네 작품은 1997년에 舞 譜 정신문화연구원 소재 장서각에서 발견된 무보 를 토대로 하고, 의궤의 창사기록을 삽입하고 복식까지 갖추어 실로 오랜만에 다시 선보인 공연이라 더욱 의미가 컸다. 때문에 그 어느 공연보다도 상 연하기까지의 수고가 남달랐으리라 본다. 고증에서 재현까지 수고 한 국립국악원 무용단 단원들, 또 구성 안무의 심숙경, 최경자, 하 루미는 물론 고증의 이흥구 원로사범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국 악원 무용단의 취지를 알리는 서곡이 벌써부터 다음 공연작을 기대 하게 만든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이번의 시도는 그동안 우리가 제한적으로만 알고 있던 정재를 폭넓게 대외적으로 알림으로써, 전 통 민속춤 못지않게 정재의 보급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2012년 한 명옥 예술 감독의 취임 이래 선보인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첫 기획 공 연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접하기 쉽지 않은 정재 작품들 로 구성한 것은 앞으로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방향성을 십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기대치가 많을수록 이들의 더 많은 수고와 관계부 서의 지원이 따라야 할 것이다. 가무악 삼위일체를 이루던 우리네 예술은 춤의 발굴이 곧 음악 의 발굴이며, 복식의 발굴로도 이어진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국악원 내 협동 작업이 시대를 불문해 고려 시대는 물론, 삼 국 시대의 문헌 등에서도 재현, 발굴을 기치로 더욱 풍성한 문화 콘텐츠를 대중들에게, 그리고 세계인들에게 과시할 수 있기를 주 문해본다. 영지무 연화무 춘대옥촉 수보록 1011
다시보기 2 글 배학수 무용 평론가 2012 한국춤 젊은 안무가전 세 번째는 안주현 안무의 너울을 걷다 이다. 이 작품은 태 평무에 바다의 아름다움과 스페인 춤의 정열을 연결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처음, 파도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안주현은 파란 발자국 을 천에 남기며 해변을 산책하는 듯 걸어 나오고, 중반부에서 터벌 림 장단에 맞추어 네 명의 무용수가 약간 변형된 태평무를 보여주 며, 후반부에 안주현은 휘모리 장단에 맞추어 넋을 잃은 사람처럼 열정적 춤을 연출한다. 그런데 작품의 초반, 중반, 후반의 연결을 강하게 하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윤 안무의 고울사, 월하보 깁소매 바람이라 유선후 안무의 해살, 나비가 검 위에 앉았다 네 번째는 박연정 안무의 망구, 여든 한 살의 여행 이다. 이 작품은 탈춤의 할미 과장에서 현대적 의미를 추적한다. 초반부 에, 할멈 박연정 은 엎드려 무거운 짐을 밀면서 무대 왼편에서 등장한 다. 엉덩이를 좌우로 많이 흔드는 것을 보아 할미 춤을 흉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대 오른 편에 영감과 새색시가 보인다. 안무자는 할미 과장의 갈등 구조를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그러 나 할미의 반응은 다르다. 탈춤에서는 할미가 젊은 여자에게 남편 을 빼앗기고 서러워 그 여자와 싸우다가 죽는다. 그러나 현대의 할 미는 체념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선다. 체념이 그리 쉽지 않은지 안주현 안무의 너울을 걷다 그날 국악원에 간 것은 행운이었다. 지금까지 젊은 안무가 전 같은 기획은 실망스러운 것이 많았는데, 이번 공연은 달랐다. 출 연한 4작품 모두 고전을 현대화하는 과제에 성실하게 도전하였고, 대체로 성공하였던 것이다. 이런 성과는 국악원 기획팀이 공연의 의 도를 선명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심사위원들이 훌륭한 안무자를 선 정한 덕택이기도 할 것이다. 첫 작품은 정지윤 안무의 고울사, 월하보 깁소매 바람이 라 이다. 무대 왼쪽에서 남자가 흰 천에 춘앵전의 무기 舞 妓 를 실물 크기로 그린다. 얼굴, 머리 위의 꽃, 치마까지 세밀하게 묘사하여 그 림이 완성되자 전통 복식을 갖춘 춘앵전의 무기가 화문석 위에서 등 장한다. 그림 속의 인간이 마법의 힘으로 환생한 느낌이다. 마법은 계속된다. 무대 오른 쪽에 다시 현대식 드레스를 입은 무녀가 등장 하여 왼쪽에서 전통 무기가 추는 춘앵전을 가만히 지켜보고 흉내 내다가 그 동작을 바꾸어 춤춘다. 春 鶯 囀 관객은 고전과 현대의 춘앵전을 함께 보는 셈이다. 원래 춘앵전 은 봄의 꾀꼬리가 지저귄다는 의미처럼 꾀꼬리를 형상화한 춤인데, 효명세자가 어머니의 4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춤이라고 한 다. 정지윤은 효명의 감성을 품어와 작금의 몸짓으로 자유로이 풀 어놓고자 한다면서 춘앵전의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감성의 춤을 춘다. 그 감성이란 사랑의 갈구와 이별의 고통인 듯하다. 그런데 춘 앵전의 화전태를 변형하는 동작을 만드는 것처럼 좀 더 춘앵전에 충 실한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두 번째는 유선후 안무의 해살, 나비가 검 위에 앉았다 이 다. 이 작품은 평양검무를 소재로 만든 것이라 필자는 궁금했다. 평 양검무는 다른 지방의 칼춤과 달리 실제 무술 같았다. 검무를 추는 유선후는 칼을 느리고 크게 운용하여 적을 응시하고, 힘을 응축하여 칼을 힘차게 내어 찌르고, 빠른 북소리에 맞추어 날쌘 검객처럼 민첩 하게 움직였다. 유선후는 검무에 나비로 비유된 인생을 연결한다. 인 생의 분위기는 짜증을 내어선 무엇하나 의 구음과 당신은 언제 눈 물이 나는가? 와 같은 내레이션을 통하여 설정된다. 이런 정서를 배 경으로 검무의 내찌르는 동작은 미련을 던져버리는 것처럼, 느리고 큰 칼의 동작은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강인함처럼 보인다. 할멈은 짐을 풀고 꽃잎을 뿌리며 처절하게 한탄하는 절망의 춤을 춘다. 박연정은 무겁게 내려앉았다가 천천히 천근의 팔을 들어 올 릴 때, 손에서 꽃잎이 떨어진다. 무대 한편에서 각시와 영감은 서로 정답게 놀고 있는데, 할멈은 짐을 정성껏 싸서 길을 떠난다. 꽃이 다 떨어진 후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내내 물음이 머리에 맴돈다. 고전을 현대화한다는 것은 말은 쉽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작 업이다. 이번에 국립부산국악원은 네 명의 젊은 안무자를 초청하여 그런 임무를 맡겼고, 그들은 소임을 잘 수행하였다. 앞으로도 국악 원은 의욕 넘치는 예술가를 찾아 그들에게 도전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박연정 안무의 망구, 여든 한 살의 여행 국립부산국악원에서는 무용 창작활동 및 한국무용 활성화를 위하여 2013년도 한국춤 젊은 안무가전 발표자를 모집한다. 한국춤에 대한 열정과 실력을 갖춘 45세 이하 안무가로 전통춤과 전통음악에 토대를 둔 한국창작춤 신작이어야 한다. 작품 소요시간은 20분 내외로 10인 이하 출연진으로 제한한다. 접수 기간은 2012. 9. 17 월 -2012. 9. 28 금 까지이고, 우편 또는 직접 방문 접수 모두 가능하다. 선정된 작품은 2013년 7월 4일-5일 국립부산국악원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자세한 사항은 국립부산국악원 누리집 busan.gugak.go.kr 을 참고하면 된다. 1213
다시보기 3 글 이승재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 코리아! 더 크게, 코리아! 더 세게! 런던올림픽에 출전하는 우리 선수들을 오천만 국민의 성원 우울하다던 런던의 첫 아침은 무더운 서울의 날씨에 비해 의 을 모아 한국의 음악으로 응원하고자 시도한 오성과 한음 프로젝 외로 맑고 청량했다. 도착 후 첫 일정으로, 7월 29일 스위스와의 축 트. 6월말 응원가 코리아 를 발표한데 이어 7월에는 뮤직비디오를 구 응원을 위해 코벤트리 로 일찍 이동해야 했다. 런던에서 코벤트 촬영하고 선수단 결단식에 최초 공개했다. 그리고 쇼핑몰, 공항과 리까지는 버스로 약 3시간. 다들 올림픽 개최지에서 직접 응원해본 열차, 지하철, 주요 프로리그 경기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 경험은 전무하던 터라 이동 중에 버스에서 응원가를 활용해 수차례 서부터 방송 활용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 보급하기 위해 애썼다. 구호를 연습하며 호흡을 맞췄고, 현장에 도착해서는 경기장 입구에 문화체육관광부, 관계 기관의 협조가 더해지면서 국내 홍보 상황이 서 판소리와 응원가를 섞어가며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퍼포먼스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런던 현지 선수들에게 직접 응원가로 힘 벌였다. 교민들과 민간 응원단들도 합세해 응원에 참여했고, 방송 을 실어줄 수 있는 방법은 미약했다. 때마침 국립국악원 후원회에서 사에서 취재도 하며 시합 전 한껏 고무된 분위기로 경기장에 들어섰 중소기업 응원단과 함께 국악 응원단을 파견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다. 하지만 입장은 까다로웠다. 테러 위험이 높다는 이유로 경기장 응원 준비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1주일 만에 응원도구를 준비하고 으로 반입할 수 있는 물품에 제한이 있었던 것. 출국 전 꽹과리와 북 항공권과 숙박, 경기 입장권을 어렵사리 구해 윤곽이 잡혔다. 먼저 은 반입이 제한되는 것으로 확인했지만, 먼저 열린 멕시코와의 경기 파견된 민간 응원단과 연계할 계획도 세웠고, 전투에 대비한 무기를 에서는 허용되었던 것으로 보여 무작정 들고 가본 것이다. 입구에서 준비하듯 탈과 소고, 꽹과리, 북 등 국악 응원도구를 비롯해, 방송 보안 점검을 마치고 꽹과리와 북, 대금으로 실랑이를 벌이다 경기장 사에 배포할 자료도 모아 짐을 꾸렸다. 그렇게 7월 28일 이른 아침, 내에서 사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반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응원을 위 인천공항에 모여 응원단 출범식을 갖고 태극전사들에게 힘을 불어 해 지구 반 바퀴를 날아왔는데 들고만 다닐 수 있던가. 선수들이 넣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비행길에 올랐다. 입장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우리는 가져온 도구들을 모두 꺼내들고 목이 쉬어라 응원했다. 먼저 입장한 민간 응원단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붉 은악마 응원단과 합세하면서 함께 서 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목청을 높였다. 전반전은 팽팽한 기 싸움으로 득점 없이 마 쳤지만 후반 들어 터진 대한민국의 선제골로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 러나 얼마 되지 않아 동점골을 허용해 우리는 쉴 새 없이 더욱 가열 차게 응원했다. 그 기운을 받아서일까. 김보경의 결승골을 끝으로 2-1로 승리한 대한민국!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코리아~ 더 크게 를 외치고, 함께한 3만여 명의 관중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모 두 하나가 되었다. 경기가 끝나고 밖으로 퇴장하면서 우리는 깜짝 무대를 준비했다. 흥겨운 우리 소리로 승리의 뒤풀이 한바탕을 벌인 것. 동행한 조주선 명창의 판소리를 중심으로 북과 꽹과리로 장단 을 맞추자 뒤 따르던 외국인들과 스위스 응원단도 함께 승리를 축 하하며 춤을 추기 시작했고, 경기장 밖은 말 그대로 코리아 축제 한 마당 이 되었다. 모여드는 인파는 셀 수 없이 많아졌고, 흥겨움을 더 하는 축제의 순간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경기와 응원 모두 성공 적으로 마친 하루였다. 다음 날, 응원 일정은 세르비아와의 여자 배구 예선전. 여 자 배구팀은 전날 미국과의 첫 경기에서 3-1로 패한 상황이라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응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시차로 인한 피로에 응 원단의 몸은 무거웠고, 무리한 축구 응원으로 쉰 목소리 일색이었 다. 더구나 경기장에는 응원단으로 모여 뜨겁게 힘을 실어줄 사람 들이 우리 외에는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입장한 교민들은 각기 흩어 져 있었다. 18명의 우리 응원단과 현지에서 합류한 10명 남짓 되는 붉은악마 응원단은 다시 뭉쳤다. 선수들이 보이는 바로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선수 명단을 입수해 한명 한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코 리아 의 함성을 외쳤다. 신기하게도 응원을 할수록 무거웠던 몸은 점점 가벼워졌고, 목소리도 커졌다. 선수들의 이름을 외칠 땐, 선수 들은 신호를 보내주며 화답했고, 어느새 우리의 함성은 경기장 전 체를 울리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장내 캐스터는 마치 축구 경기장 에 온 듯하다 며 우리의 응원모습을 전광판에 자주 비췄고, 많은 1415 현지 관객들도 우리의 응원을 따라하며 함께 힘을 보태주었다. 그 래서일까, 한국과 역대 전적 전승을 기록한 세계랭킹 7위의 세르비 아는 3세트에서 단 한번 이겼을 뿐, 3-1의 스코어로 승리는 KO- REA 로 돌아갔다.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감 사의 인사를 건넸고, 우리 역시 감독과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며 응원으로 답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 선수단의 홍보 부스인 코리아하우스 에 서 응원가 뮤직비디오를 꾸준히 상영해 현지 관계자들에게 소개했 고, 한국문화원 에서는 응원 이벤트마다 응원가 KOREA 를 활용 해 응원전을 펼쳤다. 런던의 대표적인 명품 백화점인 해로즈 백화 점에서는 한국 제품 특별전 에 전시된 디스플레이 관련 제품에 뮤직 비디오를 상영하는 등 다양한 홍보 활동이 이어졌다. 그렇게 일정 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올림픽의 열기로 더욱 무더워진 서울로 귀국했다. 런던올림픽을 계기로 우리의 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추진했던 오성과 한음 프로젝트. 많은 분들의 힘이 모여 수차례 어 려움을 이겨내 여기까지 왔고, 아직도 넘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어디 한 번에 쉬운 일이 있던가. 메달을 따기 위해 4년을 기 다리며 흘리는 피땀 어린 선수들의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각오를 다진다. 적어도 선수들이 힘을 얻고, 세계인들을 흥겨운 한 마당으로 하나 되게 이끌었던 것. 국악이 지닌 이런 힘 을 확인했기 에, 응원가의 가사처럼 도전은 멈출 수 없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야, 한다 끝까지, 한국 사람이야!
다시보기 4 글 김보람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 다시보기 5 글 김보람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 국립국악원-가곡전수관 공동주최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 2012여수 세계박람회 한국문화주간 프로그램 / 한국의 날 살아있는 전통, 숨쉬는 문화 오늘은 기쁜 날이다. 모질고 잔인한 운명을 살아낸 국왕의 어머니가 회갑을 맞이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중략 1795년 정조는 60번째 생일을 앞둔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행원 1,800여 명을 거느리고, 어머니의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치러 드린다. 오늘은 마침내 기쁜 날이다. 국립국악원은 지난 7월 13, 14일 양일간 경상남도 창원에 위치한 성산아 트홀에서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을 선보였다. 올해 초 국립국악원과 업 무 협약을 맺은 가곡전수관 관장: 조순자 과 공동 주최한 첫 번째 공연으로, 창원 지역의 기업 및 단체의 참여와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국립국악원이 개원 50주년을 기념하여 2001년 초연한 <왕조의 꿈, 태평서 곡>은 정조가 베푼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고증하여 오늘날 무대에 어울리도록 재 구성한 작품이다. 궁궐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다채로운 궁중 정재뿐 아니라 복식과 찬 안까지 고스란히 재현하여 화려하면서도 격조 있는 궁궐의 잔치를 경험할 수 있다. 조순자(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의례 순서에 따라 장엄한 궁궐의 악가무가 펼쳐지는 <왕조의 꿈, 태평서곡> 은 왕실 잔치의 외양만 흉내 낸 공연이 아니다. 손짓 한 번, 걸음걸이 하나에도 질서 와 조화를 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음과 양, 나아감과 물러남, 빠름과 느림 이 고루 균형을 이룬다. 예법을 중시했던 조선의 정신문화를 정점에서 이끌었을 궁 散 花 궐 예식의 지엄함이 조명 한 점 들지 않는 곳에서 산화 의 예를 치르는 객석 산화상 궁의 손끝에도 깃들어 있다. 공연장 전체를 궁궐의 연회장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은 비단 출연자들만의 몫 이 아니다. 공연 첫머리에 관객들을 일으켜 세워 혜경궁 홍씨를 맞이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레 관객들에게 궁궐 잔치의 하객 역할을 맡긴다. 공연 내내 이 하객들은, 무대 맨 앞에 객석을 등지고 앉은 혜경궁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날의 잔치를 즐기게 된다. 이번 공연이 성황리에 진행되어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수출자유지역 인 이곳에는 외국 바이어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이 가곡전수관에서 공연을 보고는 품격 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해요. 궁중연례악과 같은 공연을 통해서 창원 시민들 에게도 우리 전통 예술의 품격 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가곡전수관의 조순자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관장은 앞으로도 국립국악원과 공연뿐 아니라 강사 파견을 통한 국악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역 문화 활 성화를 위해 국립국악원과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살아있는 연안, 숨쉬는 바다 라는 구호를 내걸고, 지난 5월 시 작된 2012여수 세계박람회가 7월 마지막 주, 무더위와 함께 절 정에 이르렀다. 국립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은 7월과 8월이 만 나는 한국문화주간 프로그램에 참가해 여수 세계박람회장을 더 욱 뜨겁게 달구었다. 미래 해양 도시를 표방한 그곳의 낯선 풍광 속에서, 사람들의 어깨는 들썩, 엉덩이는 씰룩, 얼굴은 방긋! 하 게 만들었던 그때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 보자. 종묘제례악 vs 진도 씻김굿 첫 공연은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이 함께 선보인 <종묘 제례악>이다. 세계가 인정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 종묘 제례악 은 그 명성에 비해 일반인들이 접하기 쉽지 않다. 공연이 열 린 엑스포 홀 로비는 조선 왕조의 장엄한 제례악을 구경하기 위해 공 연장을 찾은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공연장 문이 열리기 무 섭게 객석을 가득 메운 그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과거 이 땅 의 지배자들이 조상에게 예를 다해 바친 춤과 음악에 빠져들었다. 국립남도국악원이 가장 더운 오후 2시 야외극장에서 펼쳐 보인 <씻김굿>은, 구중궁궐의 제례악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617 씻김굿 은 망자의 넋을 달래고 남은 자들을 위로하는 민간의 장 례 의식이다. 삶에서 누구나 한 번은 맞닥뜨리게 되는 횡액을 축제 로 승화시키며 초탈의 경지에 이르렀던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게 된 다. <씻김굿> 공연은 초가망석-제석굿-다시래기-넋올리기-씻김- 고풀이-길닦음-액막음 의 순서로 진행되는데, 관객들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애초부터 무대이자 객석인 마당이 연주자와 배 우, 관객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으로 분 한 몇몇 배우가 관객과 나란히 앉고, 관객이 무대를 자유로이 오 가는 등 무대와 객석, 공연자와 관람객의 경계가 사라지자 이내 공 연장은 축제의 장이 되었다.
세계와 함께, 국악 글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번역 김희선 국립국악원과 함께하는 신 나는 국악 여행 아직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해질녘, 해양광장에서 열린 국립국악 원 민속악단의 판굿은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길도 붙잡아 세우는 힘이 있다.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장단에 뱅글뱅글 돌리는 상모, 하 늘 높이 던졌다 받는 버나, 펄쩍펄쩍 뛰어오르며 연주를 이어가는 연희단의 공연은 말 그대로 재미와 감동을 함께 선사한다. 서산에 걸린 해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연주자에게 얼음물을 건네는 훈훈한 장면도 마당에서 펼쳐지는 전통 공연에서 만날 수 있는 풍 경이다. 민속악단이 연 무대를 창작악단이 이어받았다. 양방언의 프론티 어, 영화 음악인 산체스의 아이들 등 귀에 익숙하고 경쾌한 곡들이 여수의 밤을 반짝반짝 물들였다. 민속악단 강효주가 갖가지 아리 랑을 모은 아리랑연곡 을, 이주은이 국악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판소리 한 대목 창과 관현악 - 제비노정기 를 불러 흥을 더했다. 한국의 날 문화공연 환희의 너울 8월 1일은 여수 세계박람회가 정한 한국의 날 로 기념행사가 있었 다. 각계 인사의 축사 등 1부 의식행사에 이어 2부에는 환희의 너울 이라는 주제로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의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첫 공연은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연화대무와 처용무 등이었는데, 특히 연꽃의 꽃잎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무용수가 등장하는 장면은 객석 의 탄성을 자아냈다. 국립극장 국립무용단의 창작무용 사랑가와 부채춤이 차례로 무대에 올랐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연주하는 대 취타가 길을 열고 이어 공연된 무용단의 선유락 역시 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다. 국립무용단이 진도북춤을 선 보이고, 객석을 통해 입장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공연이 대미를 장식했다. 무대 위에 오른 연희단 공연이 색다르게 느껴졌는데, 그 흥겨움만큼은 마당에서 펼쳐진 공연에 비해 덜하지 않았다.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 궁중연례악 <왕조의 꿈, 태평서곡>은 한국의 날 기념식에서 선보 였던 연화대무, 선유락 외에도 다채로운 궁중의 춤을 만끽할 수 있 는 공연이다. 10여 년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펼쳐 호평과 찬사를 이끌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선착순 입장인 공연장의 특성상 사전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도, 관객들은 보기 드문 이 공연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다. 엑스포 홀의 1,000석에 가까운 공연장이 가득 들어찼는데, 좌석표 가 따로 없고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자리 를 뜨는 관객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여수 세계박람회에서 국립국악원이 꾸민 한국의 날 은 외국인들에 게 한국을 알리기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전통 문화를 재발견하 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살아있는 연안이 바다를 숨쉬게 하듯, 오랜 세월 우리 곁을 지켜온 전통 문화가 세계 속에 한국 문화를 수놓는 단 초가 될 것이다. 모쪼록 그날 자리를 지키며 우와! 하고 박수 치던 어 린이들이 그 흥겨움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 월드뮤직, 국악을 품다 말레이시아 페낭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토리 앙상블> 월드뮤직 페스티벌의 한국음악들 World Music 월드뮤직계의 가장 권위적인 잡지인 영국에서 출간되는 송라인즈에서는 몇해 전부터 한국음 악을 계속해서 소개하고 있다. 황병기의 음악과 가야금 단행본 저서가 소개되고 서울의 음악씬 이 소개되었고 국악 음반이 부록으로 첨가되기도 하였으며 가장 최근호 2012, 봄 에서는 판소리 특 故 집을 다루었다. 영국 BBC 라디오에서 고 찰스 질렛이 진행하였던 월드뮤직 방송에서는 한국 의 젊은 판소리와 거문고 연주자가 소개되기도 하였고 다양한 유럽, 아시아, 북미,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국제 월드뮤직 페스티벌에서도 이제 한국음악은 더 이상 낯선 음악 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음악은 70년대 이후 사물놀이와 풍물이 중심이었다면 지 금의 한국음악은 기존의 풍물이나 사물 중심의 단체에서 기악과 성악 레퍼토리를 주로 포함하 는 단체나 개인이 다수 포진하여 좀 더 내외연이 확장되었다. 1819
2000년대 들어 한국음악의 새로운 젊은 국악은 세계무대에 소 개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미뎀에 <가야금 앙상블 사계>, 캐나다 시나스에 <다악>, 전 세계 월드뮤직 엑스포인 워맥스에 <들소리>, <공명>이 쇼케이스에서 선정되어 공연을 하였고 2010년 워맥스 오 프닝 무대에 <토리 앙상블>, <비빙>, <바람곶>이 초대되었으며 2012년에는 <거문고 팩토리>가 쇼케이스에 선정되었다. 워맥스 공 연을 바탕으로 이후 <토리 앙상블>은 영국과 뉴질랜드의 월드뮤직 페스티벌인 워매드와 말레이시아 페낭 월드뮤직 페스티벌등지에서 공연하였고 <비빙>과 <바람곶>도 세계 유수의 공연장과 페스티벌 등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또한 <김주홍과 노름마치>, <소나기 프로젝트>, <강은일과 해금 플러스>, <곽수은과 라온G>등의 중 견 공연팀과 가야금의 박현숙, 김해숙, 이지영, 판소리의 안숙선, 채 수정, 이자람, 타악과 철현금의 유경화 등의 개별연주자들도 계속 해서 해외 페스티벌 무대에서 초청받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유럽과 북미에만 그치지 않고 아시아, 오세아니아, 남미의 다양한 무대와 페스티벌로까지 이어지는데 일례로 메르까도 브라질 Mercado Cultural과 같은 페스티벌에서도 한국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초청 을 하고 있다. 한국음악에 대한 월드뮤직계의 관심은 2000년대 이후 전세계 월 드뮤직 인사들의 한국 방문 이후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특히 2008 년 이후 한국을 방문한 월드뮤직 인사로 BBC의 찰스 질렛을 비롯, 네델란드 라사 세계문화센터의 센터장인 빌란트 에게르몬트와 예술 감독인 마틴 후버스, 유럽 스핑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자 유럽월 드뮤직페스티벌포럼연합 회장인 패트릭 드 그루트, 워맥스 창립이 사인 제럴드 셀릭먼과 벤 맨덜슨, 송 라인스 발행인 사이먼 브로튼 과 편집자 조 프로스트, 말레이시아 레인 포레스트 예술감독 랜디 벨기에 스핑스 페스티벌에서 공연 중인 <라온지> 국악의 국제무대에서의 약진은 한국음악과 젊은 국악인의 저력을 보여준다. 가장 독창적이고 고유하며 창의적인 음악만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고 통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연주자들의 고민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레이니로쉐, 호주 워맥스 총감독 사이먼 레이노, 프랑스 파리 세계 문화의 집 디렉터 아와드 에스베 등이며 이들은 적극적으로 한국음 악을 세계 무대에 소개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에서 진행 중인 월 드뮤직 페스티벌인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전주세계소리축제 등은 전 세계의 뮤지션을 초청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한국음악을 소개하는 창구가 되고 있기도 하다. 국제무대에서 국악의 약진은 한국음악과 젊은 국악인의 저력을 보여준다. 가장 독창적이고 고유하며 창의적인 음악만이 세계 무대 에서 인정받고 통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연주자들의 고민은 오 늘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음악은 예술적이고도 제의적이고 오락 적인 음악이며 가장 오래된 인간의 음악 형태이기도 하고, 인간의 감 정을 철학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해학적이고 역동적으로 풀어내 는 음악이기도 한다. 예술적이면서도 역사가 깊고 동시대적 감성에 열광하는 전 세계의 공연팬들에게 한국음악은 21세기형 음악으로 더욱 각광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한국음악의 미래를 위해 치 열한 무대를 만드는 연주자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싶다. 브라질 메르까두 쿨뚜랄에서 공연 중인 <소나기 프로젝트>, 사진제공 장재효 World Music, Embracing Gugak Korean Music in International World Music Festivals Written by Hee-sun Kim, Professor, Graduate School of Education, Kookmin University Translated by Hee-sun Kim Photo 1 <Tori Ensemble> in Malaysia Penang World Music Festival. Photo by courtesy of Hee-sun Kim Photo 2 <La-onG> in Sfinks Festival in Belgium. Photo by courtesy of Kwak Sooeun Photo 3 <Sonagi Project> in Mercado Cultural in Salvador de Bahia, Brazil. Photo by courtesy of Chang Jae-hyo Songlines magazine, a voice of authority in world music published in the U.K., has regularly introduced its readers to Korean music. They have covered the gayageum music of Hwang Byung-ki, a newly-published book on gayageum, and the music scene in Seoul. The magazine included a supplementary CD of Korean music, and a recent issue in 2012 specially focused on Korean pansori. On his BBC world music radio program, the late Charlie Gillett presented young Korean pansori and geomungo musicians. At world music festivals in Europe, Asia, Oceania, and the Americas, Korean music is no longer a stranger. In the 1970s, the most well-known genres of Korean music internationally were samulnori and pungmul; now, that list has broadened to include a greater variety of music, including instrumental and vocal repertoires, and various groups and individual artists. Since 2000, a new, young Korean music has appeared on diverse international stages: the <Gayageum Quartet Sagye> at MIDEM in France, <Daak> at CINARS (Canada), <Dulsori> and <Gongmyung> in showcases of world music at the WOMEX expo, and Chae Su-jung at APAP (USA). In 2010, the <Tori Ensemble>, <BeBeing>, and <Baramgot> performed at the opening of WOMEX, and recently, <Geomungo Factory> was selected for the 2012 WOMEX showcase. After their introduction at WOMEX, the <Tori Ensemble> was invited by WOMAD to appear in England and New Zealand, as well as at the Malaysia Penang World Music Festival; <BeBeing> and <Baramgot> have also given performances at several international festivals. Other groups, including <Noreummachi>, the <Sonagi Project>, <Kang Eunil and Haegeum Plus>, and <Kwak Sooeun and Ra-onG>; individual gayageum players Park Hyun-sook, Kim Hae-sook, and Yi Ji-young; pansori performers Ahn Sook-seon, Chae Su-jung, and Lee Jaram; and percussionist and chulhyungeum player Yu Kyung-hwa have also received invitations from several international world music festivals, including the Mercado Cultural (Brazil) in South America. Interest in Korean music has increased since 2000, with the support of and promotion from major figures in the world music field, including the late Charles Gillett of BBC Radio; former director Wieland Eggermont and program director Maartin Rovers of the RASA Center for World Cultures in Holland; director Patrick De Groote of Sfinks World Music Festival in Belgium and the European Forum of Worldwide Music Festivals; founding directors Gerald Seligman and Ben Mandelson of WOMEX; Simon Broughton and Jo Frost of Songlines; artistic director Randy Raine-Reusch of Malaysia Rainforest World Music Festival, director Simon Rayner of Australian WOMEX, and director Arwad Esber of Maison des Cultures du Monde in France. All have actively introduced Korean music into their festivals and institutions. At the same time, world music festivals in Korea, including events in Ulsan World Music Festival, Gwangju World Music Festival, and Jeonju Sori Festival, have invited musicians from around the world, and have become venues for introducing Korean musicians. The rapid progress of Korean music on international stages in recent times reflects the potential artistic power of young Korean musicians. The most unique, characteristic, and creative music can now be recognized and circulated on world music stages, while the struggles to create today s Korean music by Korean musicians are still on-going. Korean music is artistic, ritualistic, entertaining, dynamic, full of humor, and one of the philosophical musical expressions of human society. This artistic, historical, and contemporary Korean music is for fans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 and the music of the twenty-first century. I wish to express my sincere support for Korean musicians who endeavor to create the future of Korean music. 2021
무대 뒤, 국악 글 조은철 국립국악원 무대과 / 음향 어린이 역사음악극 그 아이, 유관순 리허설 국악 공연에서의 무대 음향은 무엇이 다를까? 무대 음향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객석에서의 소리지만, 객석만큼 중요한 것이 공연자 들을 위한 무대 모니터스피커이다. 무대에서는 모니터스피커 하나에 의존하게 되는데, 연주 자와 배우 두 팀을 서로 어긋나지 않게 하나로 동화시켜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지게 돕는 것 또한 공연을 보는 관객의 감동을 도모하는 스태프의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다. 현재 국립국악원은 유구한 역사와 정신 이 깃들어있는 전통 가 무 악을 보존함과 더불어, 새로운 세기의 국악을 실험하고, 창작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국악의 진정 한 메카로 재도약하기 위한 시점에 있다. 국악원에서 하는 다른 공연을 생각해보 면 공연 주체에 따라 추구하는 무대 음향 은 너무 차이가 크다. 국악 공연의 음향 종사자로서 필자는 국악기의 최대 장점 인 자연에서 나는 편안한 소리의 전달에 중점을 두고 있다. 8월 15-17일 우면당 어린이 역사 음악극 뜨거운 여름 더위가 막바지에 치닫고, 국악원 공연 종사자들도 뜨거운 여름을 보내면서 8 월 우면당에서 열리는 어린이 역사 음악극 그 아이 유관순 무대를 새롭게 펼쳐 보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국악기로 라이브 live 연주를 하는 음악극이라 음향 담당자로서 다른 공연보다 더 신경이 더 쓰인다. 객석으로 전달되는 연주자들의 연주가 조화롭게 이뤄져야하며, 배우 또한 대사 전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대 음향을 디자인 할 때는 음악과 대사가 모두 중요한 만큼 관객 입장에서 청각적으로 판단해 무대 음향을 디자인해야 한다. 다양한 음향 기기의 활용과 직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소리, 공간에 대한 밸런스 balance 등 많은 것을 세밀하고 새롭게 구성한다. 이번 공연의 주 관람객은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의 집중력은 보통 1시간 미만이다. (관객 의 연령층이 어떠한 지,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은 세밀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람의 감각은 시각보다 청각이 더 빠르게 반응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청각적으로 집중하게 하 려면 어떻게 해야 객석에서 관객이 더 공연에 몰입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국악 공연의 음향 담당은 - 국악의 아름답고 다정한 음악적 특성을 살려내는데 힘써야한다. - 국악 공연에 생생함을 더해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 국악 공연자의 편의와 음악적 욕구에 부흥하려 노력해야 한다. - 공연 시 음향사고 예방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 장비 보존 및 점검에 노력해야 한다. - 다양하고 새로운 국악공연에 발맞추려 노력해야 한다. - 새로운 음향기기와 음향기술을 습득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 국악 및 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여 국악공연음향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한다. - 음향, 전자, 전기 기기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살린다. 이는 내가 국악원에 근무하면서 좋은 무대 음향을 만들기 위해 항상 숙지하는 몇 가지 소 양들이다. 끝으로 한 가지 더 내용을 피력하자면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 즉 무대 스태프는 무대라는 큰 틀에서 바라볼 뿐 아니라 더 큰 틀인 관객의 시점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223
Interview 인터뷰 및 정리 김보람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사진 고대은 포토그래퍼 소리극 <황진이>의 오디션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었다. 하지만 경기민요, 서도민요, 춤은 물론 정가, 판소리 가야금 병창 중에도 하나를 택해 시험을 치러야 했다. 공연 제작진은 여러 분야 에 두루 능한, 정말 황진이와 같은 예인을 찾았던 모양이다. 그 공개 오디션을 통해 국립민속국 악원 창극단 단원 서진희가 발탁되었을 때, 모두들 깜짝 놀랐다. 서진희(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이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전문사 수료 제25회 전국국악경연대회 성악 부문 금상 수상 조소녀, 안숙선, 송순섭 사사 2012 국립민속국악원 대표브랜드 창극 <심청>-심청 역 외 다수. 오디션 자격 조건을 그렇게 걸었어도 소리하는 사람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하셨나 봐 요. 제 모교가 참 좋은 것이, 민요도 정가도 모두 1년 과정으로 가르쳐줬거든요.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것에 용기를 얻어서 시험을 봤어요. 4분짜리 안무도 아마추어로서 소화하기 힘들었지 만, 열심히 준비해서 기어이 했어요. 꼭 하고 싶었거든요. 다들 판소리 전공자가 소리극의 주인공이 된 데 놀랐지만, 그는 자신이 판소리 전공이기 때문 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판소리는 민중들을 웃고 울리던 극음악이었다. 판소리에는 당시 사랑 받던 모든 성악 장르의 선율 구조, 시김새, 발성 등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소리극에서 그가 불러야 하는 노래는 주로 창작곡이었고, 그는 그러한 판소리의 정신을 백분 활용했다. 곡을 해석하고, 선율에 어울리는 발성법을 연습했 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0일간 장기 공연한 소리극 <황진이>는 매회 매진이었고, 호평이 쏟 아졌다. 그때서야 비로소 서진희는 생각했다. 남원에서의 3년이 큰 공부가 됐구나 하고. 전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소리를 배운 서진희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 적인 소리꾼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하던 소녀는 전국에서 모인 또래들 가운 데 제일 잘한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오히려 소리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폈다. 그저 재밌어서 했던 소리가 그의 미래가 됐다. 대학을 다니며 그는 춘향 역을 도맡아 했다. 백대웅 선생이 작곡한 창작음악극 <영원한 사랑 I n t e r v i e w 춘향>에서도, 프랑스 낭트에서 공연한 한불수교 120주년 기념 전통연희극 <춘향>에서도 그의 역할은 춘향이었다. 극과 판소리의 만남이 친근하게 느껴질 무렵, 서진희는 서울 국립국악원에 온 국립민속국악원의 공연 <신판놀음>을 보게 된다. 우리의 색깔, 토속적인 향기를 물씬 풍기 면서도 세련된 느낌의 공연은 그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답답함에 해답이 될 것 같았다. 그날의 감동이 그를 남원으로 이끌었다. 의욕적이고 자신만만한 소리꾼은 국립민속국악원 예술단원 선발 시험에 덜컥 붙었다. 2010년 국립국악원 대표브랜드 소리극 <황진이>. 혜성처럼 나타나 만천하에 자신의 이름을 알린 배우가 있었다. 창작곡이 다수였다고는 해도 <황진이>는 경서도 민요를 위주로 한 소리극이다. 오디션을 통해 소리극 <황진이>의 주인공으로 깜짝 등장한 그는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 서진희다. 들어가자마자 창극에 투입이 된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 춘향이만 했지 다른 역할을 해 본 적 이 없었어요. 학교에서는 다 그렇잖아요? 춘향이 한 번 해 보고, 남자들은 이 도령 한 번 해보 고. 대형 창극은 자주 경험할 수 없으니까요. 처음 들어가 단체 신 scene 을 하는데, 그게 너무 어 려운 거예요. 어디에 서야 할지도 모르겠고, 저를 막 표현할 수도 없고, 마냥 감출 수도 없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제가 꿈처럼 여겼던 신판놀음 이라는 작품이 정말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무대에 세트가 거의 없어요. 작품의 극적 효과를 이끌기 위해 몸을 참 많이 써야 했죠. 메인 배 우가 작품의 꽃이라면 그 꽃을 피우게 하는 데는 주위의 수많은 배우들이 혼신과 열정을 쏟아 야 해요. 2425
한 번은 춘향 역의 언더스터디 understudy 를 맡았다. 모처럼의 기회였다. 대본을 보 서진희는 <황진이> 공연을 마치고 곧이어 서진희의 創 창 唱 창 콘서트 <금회지 고 선배 단원의 동선 하나하나 그려가면서 악착같이 연습을 했다. 그의 연기를 지 가 襟 懷 之 歌, 마음을 노래하다>를 열었다. 낯선 한자어에는 아무런 주석도 달지 않 켜본 선생님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았다. 다만 짤막한 글을 달았을 뿐이다. 그때는 똑같이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라고 하니까 점점 모르 나의 이야기, 나의 목소리, 나의 마음이 스며, 겠더라고요. 점점 자신을 드러내는 게 두려웠어요. 혹시 틀리다고 하지는 않을까. 혹시 부족한 게 들키지는 않을까. 두렵고 점점 제 자신이 작아졌어요. 가까이서 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너는 가지고 있는 게 많은데, 그걸 살리지 못하는 것 같 이제 나의 숨결이 되어버린 음악에 대한 갈망. 나의 노래에 대한 꿈. 마음을 노래하다. 아 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다 어느덧 깨달은 거예요. 잘하지 못함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자신감을 가지고 부족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라고. 제 자신을 내려놓게 된 순간이었어요. 3년 동안 군중 신을 하면서, 군무를 하면서 쌓았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던 거죠. 20대의 그는 욕심이 많았다 했다.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했다고도 했다. 서진희만의 소리, 서진희만의 음악을 하고 싶은 꿈이 가장 간절했다. 그래서 그는 직접 만든 음악을 들고 무대에 올랐다. 그때부터 생각이 긍정적으로 변했다. 각오도 한층 단단해졌다. 마음가짐을 새 롭게 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려 애썼다. 그 후 처음으로 국립민속국악원 무대에 춘 향이로 섰다. 2011국립민속국악원 대표브랜드 창극 <춘향전>은 그래서 그저 고 맙고 여러모로 뿌듯한 작품이다. 선조들이 하던 음악을 배웠지만 제가 현대인들의 감성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 는 것처럼, 그들도 제가 우리 음악에 감동받은 어떠한 지점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있었어요. 대중음악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소통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죠. 예를 들어 경기도당굿의 장단이 정말 매력적이었는 데, 그렇다면 판소리와 만나게 해보자. 굿음악이라 그런지 점점 감정이 고조되 이 작품의 정말 좋은 점이 배우들이 퇴장하지 않고 무대 곁에 앉아있는 것이에 요. 그렇게 앉아있는 사람들은 솔직히 정말 힘들어요. 풀어져 있는 척 하지만 분 명 긴장감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게 힘인 거예요. 신판놀음의 장점도 그 것이죠. 무대장치의 효과보다 배우들에게서 나오는 에너지가 무대를 이끌어가는 거예요. 무대 곁에서 추임새를 해주면, 객석에서도 훨씬 빨리 반응이 오거든요. 그 그렇게 춘향을 만나고 떠났다. 창극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던 그가 창극을 제대로 즐 길 수 있게 되었다. 책임감도 생기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한 번 길이 열리자 다 음 기회는 더 쉽게 찾아왔다. 2012국립민속국 는 매력이 있거든요. 그것과 가장 어울리는 대목이 심청가 에서 심청이 물에 빠지 는 데까지예요. 선율의 틀은 그대로 두고 장단을 바꿨어요. 고수가 장구를 치 고, 저는 징을 들어서 굿음악의 느낌을 살렸지요. 물에 빠진 심청이의 영혼을 불 러내어 위로해준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만든 곡이 범피중류, 심청이 도당에 빠 지다 예요, 만큼 관객과의 호흡이 수월해요. 악원 대표브랜드 창극 <심청>의 심청 역시 그의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저는 심청 역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스스로 효심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하 물며 부모님을 위해 목숨을 거는 심청이라니, 엄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희 공연 프로그램 북에는 빨간 목도리를 두른 소녀가 생긋 웃고 있다. 새뜻하고 아찔하다. 제 이름이 떨칠 진에 빛날 희예요. 이름이 참 크죠? 그런데 앞에 서가 천천할 徐 서 자를 써요. 그래서 배우는 것도 깨닫는 것도 굉장히 늦어요. 두가 안 나는 거예요. 걱정을 많이 했죠. 해볼 까? 잘 할 수 있을까? 제가 또 처음부터 잘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웃음) 그런데 연출을 맡 으신 김홍승 선생님께서 용기를 많이 북돋워주 셨어요. 좋아진다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그러 다보니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그래서 심청전도 무슨 말이건 해 놓고는 까르르 잘 웃는 서진희. 한때 신데렐라라 불린 황진이 였으나, 차세대 스타라 불린 춘향이었으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잰걸음 을 걷는 그가 참으로 미쁘다. 요즘 들어 판소리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지금의 서진희 역시, 우리를 매순간 새뜻하고 아찔하게 만드 는 꿈꾸는 예인 이다. 무사히 마쳤어요. 지금은 창극을 하길 참 잘했 다는 생각을 하죠. 2627
옥토끼의 놀애 글 박희정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 잘록한 허리 맵시 뽐내는 장구통에 붉은 실에 가죽 메워 장단 놀이 하여 보세. 그윽한 줄풍류에 도드리로 멋을 내고. 덩 궁 기덕 궁 더러러러 덕 덩 궁 기덕 궁 더러러러 덕 소고춤 상모놀이에 자진모리가 제격이네. 덩 덩 덩따궁따 더궁 더궁 덩따궁따 장쾌한 대풍류에 타령으로 춤을 추네. 덩 덩 덩따궁따 더궁 더궁 덩따궁따 덩 기덕 덕 궁 기덕(얼쑤) 덩 기덕 덕 궁 기덕(절쑤) 땅 울리는 동살풀이에 오방진을 풀어내고. 덩 덩 덩덩 따따 더구궁 더구궁 덩덩 따따 음악의 3요소가 멜로디, 리듬, 화성이라는 것은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나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초적 이론이다. 이 3요소 중 독창성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리듬이다. 멜 로디는 특정음에 리듬이 가미되어 만들어지고 화성 또한 배음이론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음들을 집합적이나 분산적으로 나열하여 만든다. 하지만 리듬은 음과 화성이 없어도 독자적인 하나의 음악 장르가 될 수 있다. 드럼 연주나 사물놀이 공연 등은 음과 화성이 없이도 다양한 리듬만으 로 사람들에게 흥분과 감동을 가져다준다. 또 어떤 특정곡을 다양한 리듬으로 재편곡해서 연 QR코드를 스캔하시면 음악을 들어보실 수 있어요. 흐드러진 춤사위에 굿거리로 흥을 돋고. 덩 기덕 덩더러러 궁 기덕 궁덕 덩 기덕 덩더러러 궁 기덕 궁덕 구성진 세마치에 온동네가 들썩이네. 덩 덩덕궁덕 덩 덩덕궁덕 덩 덩덕궁덕 더궁 덩딱 덩 덩 덩덩 따따 더구궁 더구궁 덩덩 따따 바람처럼 몰아치는 휘모리로 맺어 보세. 덩 따다 궁따궁 덩따다 궁따궁 덩 따다 궁따궁 따구궁따 궁따궁 덩 따다 궁따궁 덩따다 궁따궁 덩 따다 궁따궁 따구궁따 궁따궁 주하면 전혀 다른 느낌의 음악이 되기도 한다. 이상은 서양 음악을 기초로 한 것이고 리듬을 국악의 요소에서 찾아보면 장단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국악은 화성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멜로디와 장단으로 국악이 구성된다고 볼 수 있 신명 가득 굿판에서 엇모리가 한창이고. 덩 덕궁 궁 덕궁 더궁덕궁덕 궁 딱궁 신명 나고 멋스러운 우리 가락 좋을씨고. 재미나고 흥겨운 우리 장단 좋을씨고. 다. 국악의 음계는 5음계이고 계면조는 3음계의 음악이다. 서양 음악의 최대 음계인 12음계에 비교한다면 최소 절반 이상은 적은 음으로 음악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속 작사 최경희 작곡 계성원 음악에서 수많은 음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서양 음악에서와 마찬가 지로 바로 장단 때문이다. 서양 음악에서의 리듬이 정해져 있는 틀이라면 국악에서의 장단은 정해져 있는 틀은 있으나 어 떤 누구도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 살아 있는 장단이다. 그래서 국악에서는 장단을 연주하는 고 수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일 고수 이 명창 이라는 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장단을 익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례로 국악동요 제에 출품된 곡들의 대부분이 굿거리, 동살풀이, 엇모리 등의 장단을 사용하여 곡을 썼다고 하 지만 실제 연주된 MR을 들어보면 오묘하게 그 장단을 흉내 낼 뿐 정확히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것은 학교에서 우리의 민요를 피아노로 반주하면서 가르치고 배운 결과 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여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 우리 장단을 노래로 부르면서 배우고 체득할 수 있도록 신 나는 장단 놀이 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장단의 구음과 강약을 노랫말로 만들고 그 장단에 맞게 작곡했다. 노래를 부르고 손장단을 치면서 장단을 바로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책상에 앉아서 칠 판에 그려진 악보를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또 머리로 익 힌 내용은 잊혀지기 쉽지만 몸으로 익힌 것은 오래도록 남기 마련이다. 2829
국악과 공간 글 김경희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 우리 음악을 향기롭게 듣는 법 높은 천장에 수없이 매달린 조명기구가 환하게 빛을 쏘 아대는 무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관객. 우리가 생각하 는 일반적인 공연장 모습일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 음악 이 이러한 무대에서 공연되었을까? 그것은 1902년 고 종 황제의 등극 40년 1903 을 기념하기 위하여 국가의 제 사 祭 祀 와 시호 諡 號 에 관련된 업무를 맡아 보던 관청이었던 봉상시 奉 常 寺 건물의 일부를 터서 만들었던 희대 戱 臺 라는 극장이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가진 서양식 극장의 처음이 라고 한다. 이후 1903년부터 희대는 협률사 協 律 社 로 불리 게 되었고 국악을 중심으로 일반인에게 흥행을 위한 공 연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전의 우리 음악이 펼쳐지는 공간은 떠들썩하게 판을 벌린 장터이거나 마을의 넓은 공터, 그리고 고즈넉한 풍류가 흐르는 선비의 사랑방이 나 동네 아낙들이 함께 일을 하는 어느 집 안방과 같이 모두가 함께하는 곳이었을 것이다. 1999년경 국악연구실에서는 서울대학교 음향공학연구실과 함께, 평생 국악기를 연주해 오신 원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우리 악기에 맞는 공연장의 음향 잔향 소리의 울림이 얼마만큼 오래 지속되는가 에 대해 설문 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서양 악기의 음향을 가장 아름답게 들 을 수 있는 잔향 조건이 약 1.5초나 1.6초 정도라는 서양 공연장 음 향학적 결과에 비해, 우리 원로 선생님들은 1.1초에서 1.2초미만의 잔향이어야 우리 악기 음향을 가장 우리 악기답게 들을 수 있다고 답했었다. 1.1초라는 것은 거의 잔향이 없어야하는 것이고 이는 방 안에서 울리는 음향 조건과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 우리는 우 리 음악에 맞는 공연장은 천장이 낮고 방안과 같은 규모의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었다. 그동안 각종의 조명과 무대 장치로 인해서 천장이 높은 서양식 공 연장에서 전기적인 음량증폭장치 마이크와 스피커 없이 우리 악기가 가진 고유의 음향을 들을 수는 없을까하는 고민을 많이 해왔다. 한국 음악발전연구원이라는 단체에서 특히 이러한 고민을 많이 해왔고 그 고민의 결과들을 무대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빈 항아리를 객석 쪽을 향하여 뉘어놓기도 했고, 연주자들이 무대 뒤쪽보다는 앞쪽으로 많 이 나와서 연주하기도 했다. 여러 노력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음향을 들려줬던 무대는 소나무로 평상을 만들어서 그 위에서 현악기 연주 를 했던 무대였다. 우리 현악기가 가진 부드럽고 온유하며 청량한 멋 이 더욱 증폭되어 더 이상일 수 없이 맑은 음색을 들려주었다. 소나 무의 단단한 성질이 현악기의 상판인 오동나무와 밑판인 밤나무의 부드러운 성질을 더욱 확대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근래에 와서는 서양식 무대에서 전자 장치로 음색이 바뀐 우리 음악을 듣는 데서 벗어나 고택이나 고궁, 정자와 같이 고유의 공간을 찾아 공연하는 시도들이 많이 있어왔다. 국립국 악원에서도 전국의 분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러한 우리 음악을 가 장 우리 음악답게 들을 수 있는 방 안 공간 규모의 기획공연이 만들 어져 진행된다. 우선 국립국악원에서는 현대극장의 공간을 벗어나 전통예술이 펼 古 宮 쳐지던 원형공간인 고궁 에 우리 음악으로 숨을 불어넣어 살아있 는 공간으로 만드는 <창경궁의 아침> 공연이 지난 4년간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아침, 고궁, 풍류 라는 주제로 이에 맞는 프로그램을 구 성하여 전문해설자를 두고 관람객에게 차분하고도 깊이 있는 해설 로 풍류 음악의 단아함과 깊은 예술성을 선보이는 이 공연은 일반적 인 공연시간을 벗어나 하루가 시작되는 이른 아침 시간인 오전 7시 30분에 예약 관람객을 대상으로 9월까지 공연된다. 이 <창경궁의 아침> 공연은 명정전 뒤뜰 야외와 통명전 내부 공연 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명정전의 긴 처마 아래에서 하는 연주는 처마 가 음향반사판의 역할을 하여 소리를 감싸 안아주어 뒤뜰 전체를 울 리는 음향 효과로 고즈넉함을, 통명전 내부 공연은 나무 바닥과 천 장을 교차하며 울리는 울림이 한 자리에 앉은 관객의 몸 전체를 공명 시켜서 훨씬 큰 감동을 안겨준다. 3031 서울의 고궁에서 아침을 맞았으면 이제 남원으로 넘어가볼 일 이다. 남원의 광한루원의 완월정에서도 4월부터 한 달에 두 번씩 <광한루원 음악회>가 열린다. 정자에서의 국악공연이 주는 음향은 궁정에서의 음향과는 또 사뭇 다른 느낌이다. 통명전이 완전한 방 안 음향을 주었다면, 완월정은 사방이 트인 나무 바닥에 지붕이 있 는 공간이므로 소리가 흐트러지는 듯 분산되었다가 지붕을 부딪쳐 서 다시 모아지는 느낌의 음향 효과가 있다. 그래서 꽤 넓은 정자라 서 매 공연 때마다 150여 명이 함께 관람하는데도 기계 장치의 도움 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국악 공연장은 정자의 형 태를 잘 이용해서 짓는다면 150명이 들어가는 정도의 공간에서는 별 도의 전기와 기계 장치의 도움 없이 우리 음악이 가지는 고유한 음색 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국립남도국악원에서도 작년까지 <정원의 오후-뜨락에서 자연을 듣다>라는 공연이 있었다. 전남 지역의 정자와 고택 등 유명 유적지 에서 자연 질감 그대로의 음악을 제공함으로써, 선비 문화 속에서 숨 쉬던 음악이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의 삶과 함께하는 국악으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기획공연이었다. 전라남도 해남군에 소재한 윤 선도 고택 가운데 지금도 해남윤씨 종손이 주거하시는 안채인 녹우 당에서 봄, 가을 토요일 오후 2시에 펼쳐졌다. 연주는 툇마루에서 진 행되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ㄷ자로 이어지는 처마들이 소리를 모으 고 툇마루가 음향을 반사하면서 마당으로 소리가 쏟아지듯 울려 내 려온다. 오래 묵어 단단할 대로 단단해진 마루와 처마의 나무들은 악기와 목소리를 더욱 맑고 풍성하게 증폭시켜서 마당에서 듣는 그 음악은 가슴속을 파고들게 된다. 우리 음악을 가장 향기롭게 듣는 방법. 그곳이 고궁이든 정자나 고택이든 상관없다. 바로 오래된 한옥에서 듣는 것이다. 창경궁과 광한루원을 찾아 우리 음악의 고유한 음색으로 몸과 마음을 맑게 씻어보시길 권해드린다.
고궁 공연 글 김보람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 창경궁의 아침 가곡 춘앵전 거문고산조 영산회상 8월 11일, 올림픽 축구 경기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연일 계속된 무더위와 열대야에 주말 아침 늦잠이 더욱 달콤했을 시간. 2012년 <창경궁의 아침> 첫 공연이 있었습니다. 눈에 잠이 그득한 아이들을 이끌고, 곱게 단 장한 노모의 손을 잡고, 혹은 삼삼오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창경궁 홍화문 보물 제384호 을 들어서 는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가곡이 공연의 문을 엽니다. 설게 느끼는 이 많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 노래가 바로 가곡입니다. 시조시를 선 율에 얹은 노랫말이 초심자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남성 가객과 여성 가객이 차례로 부르 는 언락 과 우락 은 모두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들입니다. 가객의 노래가 반주하는 악 기들과 조화를 이루며, 창경궁의 아침을 깨웁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은, 가곡, 춘앵전, 거문고 산조, 대금 독주, 영산회상, 천년만세. 그리고 넓은 하늘과 오래된 숲에서 불어온 바람, 이른 아침의 고요. 홀로 추는 춤이지만, 어디든 꽃돗자리 하나 펼치면 주변을 온통 환하게 물들이는 공연이 있 습니다. 효명세자가 만든 궁중 춤, 춘앵전입니다. 곱디고운 앵삼을 입고 사뿐사뿐 움직이는 모 양새가 금세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끕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공연이 끝나버렸나요? 부끄러워 말아요. 당신을 위해 마지막으로 준비한 것은, 잠깐 동안의 평화롭고 달달한 휴식이었으니까요. 여름내 땀 흘려 일한 당신에게, 창경궁의 아침을 선물합니다. 國 樂 休 息 국악 은 휴식 입니다. 轉 기승전결 중 전환에 해당하는 전 의 순서에 거문고 산조 를 연주합니다. 여러 반주 악기를 편 성해 화려하고 웅장하게,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고조되던 공연이 거문고와 장구, 단 두 악기만 으로 흥겨워집니다. 소박한 가락에 담아내는 풍부한 감정이 가히 민속음악의 꽃이라 부를 만 합니다. 마지막으로 영산회상 한바탕이 대미를 장식합니다. 닮은 듯 다른 선율이 속도를 달리하며 이 어지는 20여 분은, 그간의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고 우리 음악의 청청하고 단정한 기운으로 심신 을 온전히 채우는 시간입니다. 음과 음 사이의 여백에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지고, 관객들의 호 흡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고궁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창경궁을 산책하며 곳곳에 숨어있는 정취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국립국악원이 여는 <창경궁의 아침>은 9월 1일 통명전, 8일 명정전 공연 예정이며, 9월 1일 통명전 공연에서는 영산회상 을 대신해 청성곡 과 천년만세 를 연주합니다.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인해 [세계의 궁중무용] 연재를 중단합니다. 3233
여행 중에 만난 사람 그리고 음악 글, 사진 김수남 여행작가 한때 상주는 삼백 三 白 의 고장 으로 이름을 날렸다. 삼백 三 白 은 흰 쌀과 하얗게 고치를 짓 柹 雪 는 누에, 시설 이 하얗게 오르는 곶감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곶감의 명성은 자자한데 전 국 생산량의 약 60%가 상주 땅에서 나올 정도로 특화되어있다. 시월 중순에서 십일 월 중 순이면 상주의 곶감농가들은 곶감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감을 깎아서 건조대에 너는 작업 이 이루어지는 시기인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황금빛 가을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사진가들이 몰려들 정도다. 특히, 남장동은 곶감 농가가 밀집되어 곶감마을로 알려졌다. 황금빛 곶감이 내걸린 곶감 건조장의 이색 풍경을 둘러본 뒤 목각탱 으로 유명한 남장사를 돌아보는 코스는 가을의 여유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여정이다. 상주하면 떠오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자전거다. 상주는 자타가 인정하는 자전거 도시 다. 85,000여 대의 자전거가 보급되어 있는데 이는 가구당 2대 꼴이다. 전국 최대 수준이 다. 시청 조직 안에 자전거계가 따로 있다는 것도 재밌다. 도남동에는 큼지막한 규모의 상 주자전거박물관이 있는데 자전거의 역사는 물론이고 국내외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 재미 있는 자전거 이야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자전거 체험도 가능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세발 자전거가 있고 연인들을 위한 커플 자전거도 있어서 취향에 맞춰 타볼 수 있다. 자전거박물관 앞으로는 강물이 유유히 흐른다. 낙동강이다. 박물관 바로 위에 상주 제 1경이라 불리는 경천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 물줄기는 참으로 평화롭다. 유 장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다사다난한 영욕의 시간들을 말없이 보듬었다. 4대강 논란으로 세상이 시끄러울 때에도 물은 묵묵히 흘렀다. 그래서 더욱 거룩하고 듬직하다. 1 1 상주 제일경 경천대와 낙동강 2 상주 자전거박물관 3 공갈못의 연꽃 2 3 상주민요의 무대, 공갈못 공검면에는 공갈못 이라는 오래된 저수지가 있다. 공검못, 공검지라고도 하는데 상주는 경상도 초입이랄 수 있는 서북쪽 끝에 위치해 있다. 인구 10만 정도의 작 은 도농복합도시지만 조선 시대만 해도 경상도 감영이 있었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 이다. 경상도라는 지명의 어원이 경주와 상주를 합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에서 도 상주의 무게감을 헤아려볼 수 있다. 제천 의림지, 김제 벽골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원삼국시대 저수지다. 일찍 이 상주 지역에서 벼농사가 성행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헌을 보니 못 둑의 길이가 布 帛 尺 860보요, 못 둘레가 16,647척이라고 되어있다. 조선 영조 때 통용되던 포백척 에 따라 현재 거리로 환산해보니 8km가 넘는 대형 저수지다. 못이 얼마나 큰지 콩 서너 되를 들고 한 알씩 먹으면서 말을 타고 돌았을 때 콩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그 밖에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다. 사람이 죽어 저승 갔을 때 상주 공갈못을 구경해봤 느냐고 묻는데 이때 못 봤다고 하면 구경 한 번 하고 오라고 돌려보낸다고 한다. 함창 읍 지 기록에는 연꽃이 만개한 공갈못의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중국의 전당호에 견줄 정 도라고 나왔다. 이름에 대한 유래도 전해지는데 옛날 못을 만들 때 공갈 이라는 어린 아이 를 묻어서 공갈못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 신이한 내용이다. 거대하고 아름답고 유용했던 저수지는 이제 애초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스 런 일은 논으로 변했던 저수지를 일부 복원하여 옛 모습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켰다는 점이 다. 3,000여 평의 복원된 저수지 입구에는 공갈못 옛터 라는 비석이 세워져있다. 평소에는 찾는 이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인데 백련이 피어 장관을 이루는 7월에서 8월엔 관광객들이 가끔 찾아든다. 공갈못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연꽃에 홀려 놓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차도 옆에 세워진 공갈못 노래비다. 3435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 연밥 줄밥 내 따줌세 이내 품에 잠자주소 잠자기는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 가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큰 아가 연밥 줄밥 내 따 줌세 백 년 언약 맺어 다오 백 년 언약 어렵잖소 연밥 따기 늦어 간다. # 능청능청 저 벼리 끝에 시누올케 마주 앉아 # 나도 커서 시집가면 우리 낭군 섬길라네 연밥 : 연꽃이 지고나면 익어가는 연 열매 / 줄밥 : 꽉 들어찬 연밥 / 벼리 : 낭떠러지 # 표시된 두 행은 노래비에 적혀있지 않음. 공갈못 노래 로 알려진 상주민요의 모심기 소리다. 상주민요에서도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데 소재가 공갈못의 연밥 따는 처자다보니 공갈못 노래 또는 연밥 따는 노래 채련요 라고 불리는 것 이다. 그런 사연이 있으니 공갈못에 노래비가 세워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그렇지만 채련 요가 상주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낙동강 연안을 따라 경북 내륙으로 널리 전파되었으며 심지어 는 울릉도에서도 채련요가 채록되었을 정도다. 채련요를 비롯한 상주민요를 제대로 들으려면 공갈못에서 약 8km 가량 떨어진 초산동을 찾아가야 한다. 상주시로부터 민요마을 로 지정된 곳이다. 상주민요를 부르는 사람들 민요마을 이라는 아치형 간판을 지나니 고즈넉한 부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풍요로움 한국전쟁과 같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선생은 자연스레 농악, 농 요를 섭렵한다. 초산동이 민요마을로 알려진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왔다. 시청에 서 전국대회 나갈 팀을 찾는 중이었는데 때마침 소문을 들은 초산 동 이장이 덜컥 신청서를 써내고 말았고 마을 주민들은 얼떨결에 소 리연습을 하게 되었다. 공갈못 노래가 원래는 2절이었는데 대회에 나가기엔 너무 짧아 끝에 두 줄을 더 붙여 3절을 만들었다. 그 결 과, 1986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게 된다. 민요가 원래 그렇듯이 공갈못 노래도 작자를 알 수 없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를 심던 총각이 공갈못에서 연밥 따는 처자를 향해 진한 농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 연밥은 연꽃이 진 뒤에 익어가는 큼 지막한 열매를 말한다. 껍질을 까서 먹으면 생밤 맛이 나는데 주전 부리가 많지 않았던 옛날에는 연밥이나 연근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되었다. 공갈못의 연꽃엔 다른 못에서 자라는 연꽃에 비해 연밥이 유독 꽉 차 있었다고 한다. 육종덕 선생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 던 선비가 노랫말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연못 옆에서 잠 시 쉬다가 연밥 따는 처녀를 보고 직접 노래를 지어 불렀을 것이라 는 추론이다. 선비의 짓궂음은 그대로 노랫말이 되었다. 농사의 고 단함을 덜고 능률을 올리기 위해 많은 이들로부터 불리면서 연밥 따 는 처자 이야기는 마침내 농요 속에서 완전한 자리를 잡게 된다. 상주의 농요는 상주민요 라는 이름으로 정리되어 전승되고 있 는데 농사의 전 과정을 담고 있다. 즉, 모심기 공갈못 노래 를 필두로 하 여 논매기 소리(호미를 사용하는 아시 논매기와 손으로 매는 두불 논매기로 나뉜다)와 논을 다 매고 상일꾼을 걸채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부르는 치나 칭칭나네, 타작소리 자리개타작, 도리깨 타작 로 세 분되어 있다. 유일하게 벼 베는 과정만 빠졌다. 나락 빌 때는 어디든 노래 안 해요. 바쁜데 숨차고 노래 부를 시 간이 없어요. 또 노래 부르다가 손 비고로... 손놀림이 빨라지고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대목이라 사고 위험도 있기 때문이란다. 요즘 육종덕 선생은 노래를 좀처럼 하지 않는다. 팔십이 넘으면 서 기억력도 쇠하고 노래도 예전처럼 안 된다고 한다. 세월 앞에 장 사가 어디 있으랴. 선생으로부터 민요의 맥을 잇는 보유자와 전수 장학생 등이 있으나 모두 고령이다. 젊은 회원이 없어서 전승의 한 계를 보이고 있다는 게 상주민요의 고민거리다. 모 심는 사람도 줄 었고 처녀들도 이제 더 이상 연밥을 따지 않는다. 특별한 무대가 아 니라면 노래를 부를 일도 들을 일도 없다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 나마 공갈못이 있는 공검면에 채련요 보존을 목적으로 한 자발적인 단체가 활동 중이라는 소식은 반갑기만 하다. 여행메모 (지역번호 054 공통) 시월에 열리는 상주곶감축제에 상주민요보존회의 정기공연이 열릴 예정이다. 육종덕 보유자 532.1360 상주시청 문화체육과 737.7209 상주자전거박물관 534.4973 남장사 531.0047 이 느껴지는 논과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살림집들이 여느 농촌의 풍경과 다를 바가 없다. 주민 수 는 60가구에 150여 명 정도. 60세 이상이 전체 주민의 70~80% 될 정도로 고령화되었다는 점조 차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함이라면 마을 초입에 상주민요보존회관이란 건물이 들어서 있다 는 점이다. 정자거리 라고 불리는 마을 초입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다. 마을을 수 호하는 노거수와 넓은 평상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한담을 나누고 있는 부녀자들에게 상주민요 를 이야기하니 모인 사람 대부분이 보존회원이라고 한다.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상주민요 보유자가 살고 있는 집을 가리켜 준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노래라요. 모 숨굴 심을 때 할망네들이 허리 아프고 심심하고 지워버리니 깐 지겨우니깐 불렀던 노래요. 나그네를 맞이한 상주민요 보유자 육종덕 82 선생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쩌렁쩌렁한 육성으로 상주민요의 내력을 이야기한다. 선생은 소리를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한다. 풍장 풍물놀이 칠 때는 1 2 3 4 5 장구잽이로 활동했었는데 장구 선생이 없어서 다른 마을 사람 데려다가 잠깐 배운 것이 전부란 다. 마을 풍장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일제가 대동아전쟁을 치르 느라 꽹과리와 징 등 자원이 될 만한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징발했기 때문이다. 중단된 풍장은 해 방이 되고나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선생은 16세 되던 그해 길립 상모 을 쓰게 된다. 그 뒤에도 1 공갈못 노래 2 연밥 3 초산동민요마을과 주민들 4 육종덕 상주민요 보유자 5 곶감마을 남장동의 10월은 곶감 만들기로 분주하다. 3637
다르게 보기 아쟁연주자 윤서경이 이야기하는 아쟁산조 라디오 PDJ(PD겸 DJ) 김우성이 이야기하는 아쟁산조 1 글 윤서경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2 글 김우성 국악방송 PDJ 아쟁, 아쟁산조 강물처럼 흐르는 만물공용어 1), 아쟁산조! 사람들은 해금과 아쟁을 잘 구분하지 못 한다. 그나마 예전보다는 나아졌지 하겠다. 명인이라는 칭호를 부여 받은 선생님들의 연주가 모두 그러하겠지만, 울음은 세상만물의 공용어 새로움이 채워질 수 있는 것, 어미와 자식처럼 아쟁산조는 스승이 맺어놓고 다 만 아직도 잘 모른다. 악기를 들고 택시를 타면 기사 아저씨들이 어 그거 해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음정 하나하나마저도 손때가 묻은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 처음 배우는 유일한 언어는 울음 이다. 슬픔이나 괴로움의 시 풀어내며 흐른 텅 빈 물줄기를 새로운 세상, 시간, 감성을 공감하며 흐르는 금 아니에요? 라고 자주 질문한다. 그만큼 국악기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얘기 소리 성 聲 자에 소리 음 音 자를 써서 성음 聲 音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표현이 표현 아니라.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언어, 말과 글 이전의 언어가 울음이기 제자의 맺어놓고 풀어내는 가락으로 흐른다. 서용석과 서영호가 나란히 눈을 다. 그래서 이들이 최소한 해금과 아쟁을 헷갈리지 않도록 아쟁에 대해 간단하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성음이란 규칙적인 농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새가 운다. 한 여름 매미가 울고, 매서운 겨울바람도 운 맞추었을 아쟁산조병주가 그렇고 윤윤석의 아쟁과 윤서경의 징이 멀리서 같은 게 설명하고, 아쟁산조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고자 한다. 현 위에 안정적인 음정, 박자라 하겠고 그러한 좋은 습관들이 뼛속 깊이까지 다. 모두 슬퍼서 우는 것인가? 단지 그들의 유일한 언어가, 소통의 방식이 울 진폭으로 울었을 아쟁시나위가 그렇다. 아쟁산조의 음악은 그렇게 강물에 기대 파고들었을 때 무한한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성음이라는 표현에 가 음 이기 때문이다. 울음 은 사람과 자연과 세계가 함께 사용하는 만물공용어, 어 수천 년을 다른 모습이지만 같은 감성의 유산을 공감하며 살아온 역사처럼, 해금과 아쟁은 찰현 악기 활대로 현을 문질러 소리 내는 악기 로써 서양 악기에서 찾 깝다고 생각한다. 연주자들은 이런 성음을 얻기 위해 수십 년간 아니 지금까지 유일한 공감의 언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말 이전의 언어로 우리를 소통하게 한다. 는다면 해금은 바이올린과 흡사하고, 아쟁은 첼로와 흡사하다 할 수 있다. 바 도 눈만 뜨면 연구하고, 연습의 연습을 거듭한다. 우리 악기 아쟁은 울음의 악기이다. 특히 산조아쟁은 인간이 가진 울음을 가 이올린과 첼로처럼 해금과 아쟁은 악기 크기에서부터 큰 차이가 있다. 소리도 장 가깝게 공감하면서 또한 우리가 닿지 못한 울음의 세계까지 표현한다. 태고 울음, 울림이 되다! 작은 악기인 해금은 고음역대 악기고, 큰 악기인 아쟁은 저음역대이다. 음~ 더 아쟁 산조의 연주 시간은 보통, 10분 이상이다. 10분가량의 산조를 짧은 산 의 울음을 품은 아쟁은 가로의 줄을 세로의 활로 가로지르며 세상에 그어내는 울음을 과학적으로 바라본다면 아마도 일정한 진폭을 가진 곡선형태의 주 간략히 얘기하자면, 해금은 2줄이고 작다. 아쟁은 8줄이고 크다. ^^ (이젠 확 조 라 칭하고 30분 이상의 산조를 긴 산조 라고 한다. 요즘처럼 급변하고, 자 감정의 좌표이다. 그 좌표위에서 역시 가로의 세상 위에 세로로 서서 살아가는 파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첨단을 달리는 디지털 시대는 이런 곡선이 아니라. 실히 아시겠죠?) 극적인 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클래식한 이 긴 곡을 차분히 듣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삶과 아쟁산조는 닮은꼴이다. 아마도 먼 훗날 세상의 가로와 같은 방향 0과 1의 정보가 구현하는 99.999%의 모방을 추구한다. 가장 진짜와 가깝지만 요즘 금방 같이 동요되어 즐길 수 있는 개그가 대세다. 그렇게 재미있는 것도 으로 나란히 누워 침묵하는 날 전까지 삶은, 아쟁은 이 감정의 좌표위에 무수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는 디지털, 어쩌면 그런 시대에 인간은 0과 1의 디지털이 산조 散 調 는 기악독주곡 형식을 지칭하는 용어로 흩은조, 흩은가락 이라는 아닌데 웃을 거리가 많이 없어서 나 또한 습관처럼 찾아보게 된다. 광고에도 한 곡선을 그리며 함께 울 것이다. 아닌 부드러운 아날로그의 곡선에 더 목말라 있을지도 모른다. 모방이 될 수 없 뜻을 담고 있으며, 19세기말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산조는 가야금곡으로 개그맨들이 득실득실하다. 열심히 사는 개그맨들에겐 미안하지만 다르게 보면 는 진짜 삶의 모습이 바로 그 곡선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더욱 건조하 처음 짜여졌고 이어서 독주가 가능한 다른 악기들도 악기의 특성에 따라 가락 슬픈 생각도 든다. 그만큼 주변에 재미거리가 없다는 얘기다. 쉽게 얻으면 그 아쟁산조는 삶의 그늘이다. 고 팽팽한 직선의 모습으로 미래를 향해 질주할 때, 잠시 멈춰 서서 아쟁산조 을 짜 독립된 악곡으로 연주하여, 산조 라는 형식은 독주곡의 대명사가 되었 게 귀한 지를 잘 모른다. 국악 관련 방송이 공중파를 타고 나오면 소싯적 필자 이 아름다운 곡선이 그려낸 삶의 방정식은 울지 못하는 시대, 눈물과 슬픔은 를 들어보자 투박한 개나리 활도, 말총으로 잘 다듬어진 활도 모두 팽팽한 직 다. 각 악기마다 2-3종류 이상의 가락이 전해지는데 그 가락을 만든 사람의 도 채널을 돌리곤 했다. 그만큼 국악적, 나아가 음악적 학습이 얕았으니. 숨겨야 할 것이 되어버린 감정의 사막에서 감로수를 찾는 길을 알려준다. 기쁨 선이 아니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울음을 운다. 그 울음이 정겹고 편안하다 이름을 따서 OOO류, OOO제 라고 부른다. 우리 음악은 너무나도 깊어 쉽게 듣기 어렵고 쉽게 연주할 수가 없다. 그러나 과 웃음이 대량 생산되는 뙤약볕의 현대사회에서 울음 은 삶의 그늘이 되어준 면 나는 아쟁의 울음을 함께 울 줄 아는 강물 같은 사람이다. 그 순간은 울음이 개인적으론 너무나 재미있다. 원래 복잡하고 어려운 게 재미있지 않은가! 일반 다. 그 그늘 아래에서 맺히고, 막힌 것들이 풀리고 흐른다. 그렇게 우리 음악이 비로소 울림 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소리굽쇠가 서로 닿지 않고서도 소리만 민속 음악에서 주로 쓰이는 아쟁은 8줄이 얹어져 있고, 2옥타브로 조율하여 인들은, 국악은 지겹고 어렵다는 고정관념과 선입견 때문에 처음부터 거부감 된다. 아쟁이 운다. 울지 마라 가 아니라 맘껏 울어라 라고 하며 우리가 잊 으로 함께 떨 수 있듯이 아쟁산조의 음악은 진양에서 중모리로, 중중모리, 자진 활대로 문질러서 소리를 내는 찰현 악기이기 때문에 국악기 중 표현력이 가장 을 갖고 잘 들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음 었던 울음의 언어를 되살려주며 아쟁이 운다. 그 울음을 거쳐서 아파야 할 것 모리, 다스름까지 둥글게 굽이치는 삶과 함께 울림! 사는 것의 적적함과 아픔을 풍부한 악기라고도 할 수 있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음악가 박성옥 악을 계속 들으려 한다면 영화를 보고 별점을 주듯이 언젠가는 산조를 듣고도 들이 제대로 아플 수 있다. 비로소 이 공감의 시간을 통해 희로애락의 4계절이 알아주고, 울지 못하는 자들을 울게 하는 해소의 신내림이다! 1908-1983이 궁중에서 쓰이는 정악아쟁의 크기를 줄여 복판을 이중으로 만들고 평가를 할 수 있는 귀명창들이 늘어날 것이다. 만들어진다. 아쟁산조는 그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음악이다. 줄도 가는 줄을 사용, 산조나 민속 음악을 연주하기 쉽게 개조해서 창극 반주 아쟁산조가 찾아낸 진심의 언어! 등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에 들어 한일섭 韓 一 燮, 1929-1973 명인이 좋은 것이 있으면 요즘 사람들은 귀신같이 잘도 알고 그것을 구매하거나 또 아쟁산조는 강물이다. 뉴스를 보다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스포츠를 보다가 혹은 훌쩍 떠난 사 아쟁산조를 연주하기 시작하였고. 한일섭 선생의 가락은 박종선, 윤윤석, 박대 는 즐긴다. 그러니 국악인들은 맹목적 홍보보다는 찾게끔 하는 음악을 만드는 산조는 한 사람이, 한 생을 통해 완성한 독주곡이다. 그냥 삶 이라고 부르 람의 빈 공간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운다. 그 울음에는 고마움, 미안함, 감격, 성 명인에게, 정철호 명창의 가락은 서용석 명인에게, 장월중선 명인의 가락은 일이 최우선이고 그것이 갖추어지면 찾게끔 하는 마케팅이 절실히 필요하다 면 그대로 어울릴 음악 산조. 아마도 삶의 곡선과 산조의 곡선은 놀랍도록 비 슬픔, 고통 등 가장 깊은 진심이 담겨있다. 누군가에게 배운 표현이 아니라 가 김일구 명창에게 전해져 연주되고 있다. 여기까지 산조아쟁 역사를 간략하게 생각한다. 필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아쟁이라는 악기에 깊이 빠져있다. 슷한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곡선 중에서 아쟁산조는 특히 강 장 찬란한 유산으로 내 문화적 유전자 속에서 전해 내려오는 숙명 같은 진심의 정리하였고, 지금부턴 개인적 견해를 기술해 보겠다. 이 단선율 악기를 50년~60년 연주하는 명인들을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그 물 의 곡선과 닮아있다. 서두름 없이 마음껏 굽어 흐르는 아쟁산조는 곡선의 음 언어, 울음! 이제 라디오를 켜고, 공연장에 가서 아쟁산조를 만나보자. 눈물이 들처럼 같은 고민을 할 것이고,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멋지고 좋은 것을 입 악이다. 강물의 음악이다. 목적지에 가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옥한 농 금지된 시대, 진심의 문을 열어줄 울음이 기피되는 시대, 웃음과 재미의 대량생 아쟁산조가 만들어진 역사는 짧다고 볼 수 있으나 가락을 구성하고, 연주하 으로 알리지 않고 스스로 찾아서 즐기게끔 만들 것이다. 최소한 모두가 아쟁과 토로, 맑은 생명수로 제 몫을 나누며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아쟁산조는 공감 산이 감성의 가뭄을 만든 이 시대에 내가 미처 공감하지 못한 눈물을, 울음의 는 연주자들의 기량이 매우 출중하여 각 유파의 산조는 가히 흠 잡을 것이 없다 해금을 구분할 수 있게끔 국악인으로서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하듯 느슨하게 때론 굽이치며 마음을 흐르는 강물의 산조, 강물의 음악이다. 그 언어를 되찾아 줄지 모른다. 가을 초입의 하늘을 꿈꾸는 저 강물 같은 아쟁 소 래서일까? 아쟁전공자 1호인 이태백과 그의 스승 박종선이 빚어내는 아쟁산조 리에 문득 눈가가 젖는다. 는 맺혔다가 풀리는 강물 같은 음악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나가 맺히고 다시 풀 리는 것. 그것은 생명의 탄생과도 같다. 하나가 비워질 때 비로소 그 텅 빈 곳에 1) 세계의 공통언어는 자멘호프가 고안한 에스페란토 어. 하지만 만물공용어 는 사람만이 아닌 자연과 시간까지도 공유하는 공통언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3839
국악용어 알아보기 글 한정원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제. 制 문화 예술의 전통과 창작. 이것은 한편 대립의 개념일 수도 春 香 歌 판소리가 언급되는 최초의 문헌은 춘향가 의 내용을 柳 振 漢 1711~1791 있지만, 상호 보완적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음악에서 이러 2백여 구의 한시로 기록한 유진한 의 만화집 晩 華 集 制 한 예가 있다면 국악 용어 제 의 의미에 담겨있다고 하겠다. 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판소리는 조선 숙종조 1675~1720 를 전 제는 스승의 가락을 충실히 이어가며 전통을 보존하는 동시 후하여 생겼고, 판소리의 전성기는 정조조로부터 철종 연간으 에, 자신의 독창적이고 특징적인 가락을 창작하여 덧붙임으로 로 본다. 서 전통과 창작의 조화를 이뤄낸 결과물인 것이다. 이러한 제 초기 판소리는 판에서의 줄타기와 같은 공연을 담당했던 광 時 調 唱 의 의미를 성악곡인 판소리와 시조창, 기악곡인 줄풍류, 대들의 소리에서 나온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19세기 들어 단 散 調 산조 에서의 그 쓰임을 통해 확인해보자. 가가 판소리와 함께 불리게 되었고 새로운 대목을 덧붙여 현 재와 같은 모습의 판소리가 완성되었다. 원래 춘향가 심청가 먼저 판소리에서 제의 쓰임이다.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배비장타령 옹고집타 꾼이 북 반주에 맞추어 소리와 대화체의 아니리 사설, 극적 표 령 강릉매화전 장끼타령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의 열두 마 현을 위한 발림 몸짓 을 통해 표현하는 공연 예술이다. 1964년 당이 전했는데, 현재 소리와 함께 전승되고 있는 것은 춘향가 12월 24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3년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이다. 판소리의 11월 7일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유산걸작 으로 선정 주된 향유층이 일반 평민층에서 양반층으로 점차 옮겨가면서 漢 文 口 되어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신재효와 같은 양반 및 중인에 의해 한문구 등의 가사가 추가되었고, 다양한 음악 어법들이 수용되었다. 그리고 지역 적 특성을 반영한 동편제와 서편제 등의 유파가 성립된다. 1) 여기서 제 란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때는 유파 流 波 를 뜻한다. 판소리에서 제의 쓰임은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2) 유 調 파 더늠 바디 조 등의 의미로 크게 나누어진다. 동편제 서 편제 중고제 등의 제는 지역에 따라 전승되어 오는 판소리의 특성이나, 그러한 특성을 전승시킨 명창들의 유파의 뜻으로 사용된다. 판소리를 가르친 스승과 제자, 소리꾼의 출신 지역 에서 비롯되었는데, 오랜 세월에 걸쳐 개별적인 노래의 흐름과 가창법, 이론 등이 확립되었고, 큰 줄기에서 갈라진 몇 개의 작은 유파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판소리의 유파는 동편제 와 서편제의 양대 산맥으로 크게 분류되는데, 지방에 따라 동 편제와 서편제 외에도 중고제 등이 있다. 더늠의 뜻으로 사용되는 제는 권삼득제 제비가 송흥록제 동풍가처럼 어떤 명창의 최고 장점으로 꼽히는 짧은 소리대목 을 말한다. 바디는 어느 명창이 짜서 부르던 판소리 한마당 모두를 지 칭하는 용어로, 송만갑제 춘향가 정응민제 춘향가 정정렬제 춘향가 등의 제가 바디를 뜻하는 경우이다. 또 설렁제 서름제 호령제 석화제 산유화제 강산제의 제 는 웅장하고 씩씩한 대목에 주로 사용되는 우조, 슬픈 느낌 調 을 주는 계면조 등과 더불어 선법과 선율의 형태를 뜻하는 조 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시조와 기악곡 줄풍류에서의 제 는 경제 京 制 향제 鄕 制 등 지방 의 음악적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음악적 특성이 란 음계 선율형 종지음과 같은 구조적인 측면과 시김새 꾸밈음, 음악이 주는 느낌 등 표현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경제는 주 로 수도권에서, 향제는 지방에서 행해지던 것을 포괄하는 것 이다. 여기서 사용되는 제 의 개념은 음악적 특성을 나타내는 다양한 방식이다. 1) 국립국악원 홈페이지 국악사전 중 판소리 김혜정 글 참조. 2) 판소리제에 대한 연구, 이보형, 한국음악학논문집 韓 國 音 樂 學 論 文 集, 한국정신문화연구원(1982). 3) 국립국악원 구술총서 3, 황병기 편, 국립국악원 발간(2012). 4) 국악용어 통일안 해설, 이숙희, 국악소식 2000년 겨울호, 국립국악원 발간(2000). 또한 기악 독주곡인 산조에서도 제 가 사용되는데, 산조에 서의 제 는 어느 한 사람이 구성한 산조 한바탕을 뜻한다. 1997년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가 정남희제 황병기류 산조 를 발표하면서 처음으로 제 류 라는 용어가 등장한 다. 산조의 바탕을 짠 사람의 이름에 제 를, 이를 전수받아 발 전시킨 사람의 이름에 류 를 붙이는 방식이다. 류 의 개념을 처음 산조에 도입한 것 또한 황병기라고 한다. 3) 지금은 박종 기제 박환영류 대금산조, 서용석제 한세현류 피리산조 등 가 야금 외의 여러 악기의 산조에도 사용된다. 판소리의 경우 제 에 따라 가사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창법을 쓰는데 비하여, 산 조의 경우 제가 달라도 가락의 골격에는 큰 차이가 없다. 이와 같이 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지만 결국 어떤 지 역적 특성 음악의 전체적 특성 부분적 특성 개인적 특성 등 이 법제화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4) 우리 조상들과 함께 역사를 이어온 우리의 음악인 국악이 지만, 다소 생소한 용어와 사설 때문에 현대 사회를 살아가 는 우리들에게는 어려운 전통 일 수 있다. 조금 더 쉽고 가깝 게 국악을 듣고 싶다면, 제 에 대한 이해를 통해 연주자의 개 인적 특징, 그것이 전해지던 지역의 특성을 떠올리며 감상하 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4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