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농 살구 속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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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마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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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별별시민열전 강연록 해방촌 게스트 하우스 빈집/빈가게의 유농/살구 돌아가면서 하려고 이렇게 둘이 강연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유농이구요. 이 친구는 빈집에 온 지 1년이 꼬박 넘었습니다. 오신 분들도 소개부탁드립니다. 1 : 저는 수원에 이사 온지 1년 넘었구요. 수원이 참 재밌고 보물이 숨겨진 느낌입니다. 평생 학습관에 왔는데 여기서 벌어진 것을 다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문학 강좌를 특히 좋아해 요. 새로운 것을 소개해주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이 강의 빈집 처음 듣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2 : 저는 수원산지 24~25년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러 가지 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3 : 저는 수원에 산지 10년 정도. 봉사활동이 필요해서 평생학습관이랑 인연 맺게 되었습니 다. 일 때문에 혼자 왔고, 재밌는 강연 기대합니다. 4 : 직장 때문에 수원에 있습니다. 강의 처음으로 보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인생학교 시리즈 책 중에서 세상이란 것에 대해 읽었는 데, 주제가 딱 맞아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서 왔습니다. 5 : 어렸을 때부터 수원 화성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해방촌 빈집 희망자 속에 계시는 한 분 덕에 오늘 오신다 해서 같이 듣고 싶어서 왔어요. 빈집에서 협동 작업을 통해서 집 문제에 대 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길 바랍니다. 강의에서 좋은 내용들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도 록 바랍니다. 6 : 여기 직원입니다. 공유할 수 있는 공간에 관심이 있는데, 마침 여기에 정보 없이 왔지만 새로운 아이디어 얻고 싶습니다. [해방촌 게스트하우스의 시작...] 원래 순서가 처음에 어떻게 생겼는 지에 대해 말씀 드리려다가 현재 어떤지 먼저 말씀 드리겠 습니다. 여기는 용산 이가동에 있는 해방촌이에요. 저기가 남산이구요. 남산에 남쪽으로 보면 대부분 많이 알고 계시는 이태원 지역이 있습니다. 저희 동네는 이태원 가기 직전, 남산 기슭 에 있구요. 남산 타워에 왼쪽으로 보이는 동네가 저희 동네입니다. 해방촌이라고 불리는, 예전 에 실제로 보이는 역사적으로 해방 이후에 무허가 집들이 생겼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 뒤로 는 북쪽에서 내려와 정착하신 분들도 많아요. 나이가 60대 70대 이러신 분들은 실제로 고향 이 북쪽이에요. 서울 중심 치고는 약간 낙후된 동네라 젊은 친구들 입장에서는 최근까진 월세 가 그나마 조금 싼 지역으로 알죠.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고, 골목길이 많아요.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는 분들이 골목 사진 찍으러 많이 오시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게를 하나 하는데 이 아가씨들은 거기서 공연하던 장면입니다. 이 고양이는 어떤 사 람들보다 오래 산 5년 가까이 산 고양이. 사회를 공유를 하고 집을 공유 하는 게 어떤 건가 저희도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집이라는 공간을 같이 공유한 다는 것이 실제로 계속 부딪히는 과정이에요. 해방촌 게스트 하우스 빈집이 우리의 공식적 이름이구요. 해방촌은 지역 이름입 니다. 게스트 하우스는 손님들의 하우스란 의미를 담고 있구요. 주인만 있는 집이 아닌 손님 들도 있는, 손님으로 와서 주인도 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작은 2008년 2월에 저하고 다른 남자사람 두명 이렇게 셋이서 시작했습니다. 저하고 제 짝궁이 이것을 시작하기 전에 1 년 정도 여행하면서 거의 노숙내지 텐트생활 하다가 집이 없이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 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다르게 살자고 생각하다가 친구들이랑 살자고 의견 제안을 했지요. 그 러나 그냥 세 명이 시작하게 되었어요. 돈 긁어서 집 구했구요. 30평 조금 될락 말락한 집을 구했어요. 문을 열고 같이 살 사람 더 구하자는 생각을 했구요. 손님방도 만들어 어떤 분이든 자고 갈수 있게 하였습니다. 1년 만에 집이 세 개 되었어요. 따로 광고를 하거나 홍보를 하진 않았으나, 첫 해부터 손님은 많았습니다. [빈집과 빈가게 그리고 새로 생기는 문화들] 처음에 잠깐 오신 분들을 장기 투숙객이라 부르고, 주거를 쭉 하는 친구들도 장기 투숙객이라 불렀습니다. 3~4달 만에 장기 투숙객이 6~7명이었어요. 2009년 정도에는 집이 3개로 늘어났 습니다. 예상 했던 것 보다 빨리 집을 지어야 했죠. 같이 살면서 들어가는 경비는 같이 모았 습니다. 기본적인 건 같이 모으고 같이 썼습니다. 집들이 생겼다 없어 졌다 해요. 집마다 이름 이 다 다르구요.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전세나 월세로 살아 왔습니다. 현재 다 월세구요. 열 몇 개의 집들이 생겼고, 지금 남아 있는 집들은 7개 정도 됩니다. 그렇게 집이 늘어나고 해서, 돈을 벌수 없을까 해서 생긴 게 빈가게입니다. 만약에 한집에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면, 여러 사람들이 돈을 모아 다른 집을 마련해요. 다른 사람들이 이사를 갈 때, 집을 나눠서 다른 사람들이 더 들어오게 하자란 생각에 집이 엄청 많 이 생겼어요. 가능한 같은 동네의 마을에서 살려고 해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빈집 홈페이지의 빈집들 에 들어가 보면 회의하는 기록들이 올라와요. 본명을 쓰지 않고 유농 살구 같이 별명을 쓰기도 합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끼리는 존댓말을 쓰고, 나중에 친해지면 서 로 말도 놓고 하는 구조가 있어요. 홈페이지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빈집에 투숙하는 것에 대해서 물어보고, 회의하는 것들을 나 누게 되기도 합니다. 짝꿍들인 사람들이 빈집 얘기를 했을 때, 어떻게 여자랑 남자랑 사냐, 그 것도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랑 사냐라는 것도 많았습니다. 또한 그렇게 있다보면 연애도 안 하 냐 라는 질문들도 있는데, 연애를 해서 짝꿍이 되는 경우도 있고, 연애를 하다가 중간에 깨지 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몇 년 살아도 전혀 연애 안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람마다 다 다 른 것 같습니다. 같이 밭농사도 짓고, 3년 정도 된 카페도 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마을 잔치도 하고, 회의체 계도 있었는데 집들이 너무 많아져서 조금 바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활동들을 다 하는 건 아니구요. 오래 산 사람들도 있고, 최신에 산 사람들도 있어서 각자의 욕망이나 호기심이

다 달라서 그때그때 흥미 있고 생활에 도움 되는 것들이 생겼다가 사라졌다가 합니다. 빈농사 나 빈수레는 초기에 경제적인 부분들도 같이 시도해 보자는 고민에서 나온 것이고, 밭도 실제 로 같이 지어요. 빈가게도 실제로 같이 운영해보고, 빈마을금고도 있고, 마을잔치는 집들이 많 이 생기다보니 생긴 것이구요. 먹을 것에는 초콜렛이나 허브같이 비싼 것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만들어 먹고 해요. 또한 떡케익도 만들구요. 백수가 많을 때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로 여행가기도 합니다. 1박 2일 책 읽기는 진짜로 책 한권을 모여서 같이 읽는 것이에요. 닷닷닷 에는 그믐날 밤이나 보름날밤을 정해서 초만 쳐서 시 한수 읊거나 옛날 얘기도 나누고 했습니 다. 세 번째 집은 알던 친구들이 이사 와서 연 케이스인데요. 철저하게 채식위주의 식사를 했 고, 처음으로 짝궁방이 시도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경험도 있었구요. 2009년에 처음으로 아이 가 있는 엄마가 들어왔어요. 빈집이 세 개가 되면서부터 보증금을 어 게 모을 것 인지에 대 해 회의가 많았습니다. 첫 번째 가게가 있었을 때, 별 거를 다했어요. 술집 겸, 카페 겸 등등. 직접 만든 물건들을 팔 기도 했고, 차 같은 것도 서비스 하기도 했습니다. 세미나 같은 것도 하기도 했구요. 어떻게 보면 평생학습관처럼 공간은 작지만 비슷한 기능이었을 수도 있죠. 공부집이라고 지금까지 있 는 공부하는 공간인 집이 있었어요. 빈집사람들끼리 두물머리 사대강 문제 때문에 시끄러웠을 때 같이 농사짓기도 했어요. 팔당집은 두물머리 투쟁 중에 같이 했던 친구들 중에 실제로 1년 쯤 지나서 두물머리에 살고 싶다는 친구들이 생겨서 이사를 그 쪽으로 했어요. 그 다음은 가 게 사진인데, 지금 있는 가게 사진입니다. 동네에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 있는데, 예전에 첫 번째 가게랑 좀 먼 거리에요.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길로 가게를 옮기면서 공연도 하고 행 사도 많이 합니다. [같이 속상했지만 같이 그 다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예전 빈가게는 아무래도 빈집 사람들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많았지만, 해방촌이라는 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려고도 했지만, 쉽진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들의 얘기 를 해달라고 하시는데, 무슨 말을 드릴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저희는 근사한 성공 사례 대신 계속 부딪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저희의 힘은 실패를 위축으로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입니 다. 실패라는 게 살면서 막는 작용을 하지 않으면 좋은 것 같다. 빈집도 살면서 속상한 일도 많고 좋은 일도 많지만, 그 속상한 일들이 관계를 망치지 않으면 같이 속상 했지만 같이 그 다음을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저희의 재정원칙 중에 돈 갖고 있는 건 자랑이 아니다 라는 것도 있고, 개인적 소유를 인정한 다라는 것도 있고, 집으로 돈 벌지 않는다라는 것도 잇습니다. 중에서 분담금은 누구나 내야 하고,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잇는데, 그것은 얼마든 이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다 내야한다 는 것입니다. 물론 초기에는 최소한 이만큼은 내되, 능력이 되는 만큼 내야한다는 것이 원칙 이었지만, 지금은 다 사는 게 비슷해서 내는 것도 비슷합니다. 월세에 해당하는 부분과 잡비 이렇게 들어가는 비용은 달마다 집집마다 사람들이 걷습니다. 각 집에 월세도 다르고 해서 한 집의 사는 사람의 수만큼 각자 부담해서 냅니다. 가사 분담 같은 경우도 비슷합니다. 각 집마 다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가사를 나누는 경우도 잇는데, 저(유농)의 집은 좀 애매하게 진행 되요. 어쨌든 다 다르게 진행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같이 살면서 말을 안 하면 안되요. 속

상한 것이나, 잘한 것에 대해 조금은 얘기 하는 게 필요해요. 그래서 집 별로 회의 한번 씩 있는 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 같습니다. [적게 쓰고 적게 벌고 사람을 만나기 위한 시간을 벌저] Q : 빈가게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주세요. 가게는 6명정도 시작했구요. 지금은 빈집에 살고 있던 사람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돈 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하고 했는데 사실 돈을 벌진 못했구요. 재밌게 지냈어요. 가게와 집의 문을 여는 건 좀 달랐습니다. 가게를 열 때 더 편하게 다가온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여 전히 협동조합적 방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등록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마스터 가 4명, 저와 한, 두명 더 기획을 같이하여 프로그램을 마련합니다. 보통 보이는 까페와 그렇 게 많이 다르진 않구요. 동네에서는 쟤네들 뭔가 하고 어르신들 눈에는 궁금해 하시는 것 같 아요. Q : 빈집들의 지향점이 따로 있는지? 빈집이 40명 정도 되는 데 이미지가 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빈집이 여전히 권위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권위적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살구인 저 개인적으로 봤을 때, 사 회적으로 지적으로 보여야 하는 그런 삶을 쭉 대학을 갈 때까지 배우고 실제로 회사를 다녔 고, 사실 저는 대학 다닐 때 그런 것들이 참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놀고 싶은 데 그러지도 못하고 앉아는 있는 데 공부는 안하고 그런 학생이었는데, 다른 방법도 딱히 없었던 거죠. 그 렇게 살았는데, 인생이 너무 재미없는 거에요. 남는 것도 별로 없고. 그리고 회사라는 게 나라 는 존재가 딱히 필요 없는 것 같은 거에요. 그래서 꿈도 별로 없더라구요. 잘 생각해보니까. 서른 될 때까지 나는 뭐가 되고 싶은가 하고 고민을 했는 데 그 이후에는 꿈이 없으면 뭐 어 떤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적게 쓰고 적게 벌고 시간을 벌자 이런 가치로 살았어요. 시간을 벌면 재밌게 놀자에 집중했구요. 사람을 만나는 것에 시간을 벌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놀까를 고민했습니다. 가라오케 그런 놀이가 아니라. 그리고 돈을 벌면 다른 방식으로 써보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빈집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있어요. Q :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지 않나요? 부모가 있다고 하면 삶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요? 가정 형태는 없구요, 짝꿍들은 많이 있는데, 가족이 한꺼번에 빈집에 있었던 적은 있었습니다. 자기 의지로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회의를 하더라도 그 각각의 주체를 중요시 여 기고 있습니다. Q : 성미산 마을 같은 경우도 최근의 주택문제 가지고 소행주라고 하여 일정 공간 모임을 공 유하는 그런 형태를 하고 있는 데요. 저는 일단 그런 것들이 빈집에서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성미산 같은 경우는 사실 자본이 있어야 해요. 하지만 빈집은 경제적으로 그 정도 수준이 되 지는 않아요. 약간 젊은 층들이 빈집에 주로 기대는 것 같고, 가족이 결합되는 경우는 다른 형태인 것 같네요.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독립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가능해지겠지요.

여러 과정을 통해서 혼자 지내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모이고 하는 것입니다. Q : 나이가 많이 되면 거기 있으면 짐이 된다든가 하는 경우에 대해서 있는지? 그게 표본적으로는 얘기는 나온 적이 있습니다. 상황이 애매한 갓난아이가 있었는데 이에 대 한 회의를 했고, 그 결과 아이를 키우자 하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상황적으로는 친척이 기르 신다고 하셔서 결론적으로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손님방을 폐쇄하고 몇 달 동안 아이를 키우 기로 결론을 내리고 닥치면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직장을 다니 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어울리며 살았는데, 아주 잘됐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 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물어봤어요. 아이를 받자고 했던 사람들이 아이를 키운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오히려 경험이 있더라구요. 그런 맥락으로 장애 인에 대한 논의도 가끔씩 있었어요. 실제로 아픈 친구가 있다면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 런 상황이 닥치게 되면 더 현실적으로 얘기하겠지요. 어쨌든 부딪혀보고, 받아들이자 쪽이죠. Q : 이것을 하게 된 계기는? 제가 30대 초반이었을 때였는데요. 보통 한 번씩은 이런 얘기하잖아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 아파트에 같이 살자는 둥. 근데 이런 것 잠시 잊고 살다가 그 나이 초반에 친구들이 혼자 살 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게 편하게 같이 살 수 있는 뭔가 포인트가 안모이더라구요. 계속 고 민하다가 뭘 하고 살까 고민하다가. 6명이서 인( 人 )계를 해보자 하는 얘기도 있었구요. 어쨌든 30대 초반 이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많이 했어요. 거기서 소위 빌어 살았던 거지요. 삶 을 지속하면서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았죠. 그 이후에 귀국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지. 이런 고 민을 했어요. Q : (살구님은) 아이를 낳으시면 혹시 빈집을 나가실 것인지? 처음 빈집 고민했을 때 정주도 중요하지만 떠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습니 다. 여전히 그런 고민은 사실 남아있어요. 하지만 해방촌 빈집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기 때문 에 떠나는 것은 아니고 또 다른 주거를 찾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지금 해방촌에서 지내면서 좋은 것은 빈집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내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친구가 되기도 하고. 가게를 하면서는 가게 사장님들과 얼굴 이 트기도 하고. 아는 사람들이 생겨나가는 과정도 겪습니다. 나를 보는 시선이 많아서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나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 덕분에 기분이 좋 아지기도 하고. 5분이면 마을버스를 탈 것을 30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섞여 살고 소통하며 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보통 20~30대가 그런 경험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해방촌 살면서 비슷한 30~40대 또래가 생기는 것이 좋더라구요. 틈틈이 그들이 직장생 활 하면서 우리와 시간 날 때 또 놀기도 하고. 특히 책읽기 모임이 잘 되요. 아침이나 저녁에 한, 두시간씩 읽기 하다 집에 가고 그렇죠. 빈집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내가 다른 어떤 일이 뭐가 있을까하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저도 그 답이 참 어렵더라구요. 뭘 하면 같이하면서 좋은 느낌을 느낄 수 있게 할까. 전 그것 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내 공간을 내주거나 다른 사람의 공간에 내가 들어가 살거나 등이 주는 의미가 크죠.

Q : 우리나라는 큰 공간을 좋아하지만 일본은 작은 집에서도 사는 데, 우리나라는 집 욕심이 많구요. 그런 공간에 대한 것은 물론 그렇고. 굉장히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살고 있는 사 람 같아요. 저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봤을 때 여성에게 빈집은 더 어려울 것이 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빈집에 자신이 투자해줘야 하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마음을 투자하고 마음을 낼 의지는 있어야 해요. 사실 애매할 때는 있어요. 저희가 누구의 보호자는 아닌데, 십대 애들이 들어오면 부모님들은 저희들이 그런 보호자가 되기를 바라시기도 하지요. 우리가 보기엔 그저 같이 사는 동거인이 기 때문에요. 그래서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리죠. 저희가 보호해 드릴 수 없다. 뭐 그런 것들을 얘기해드리죠. Q :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구성원들과 함께 산다는 것에 두려움은 없었나요?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문턱이 없는 집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어요. 물론 문턱을 좀 높 이길 원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요. 빈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좋으면 당연히 그렇게 묶이고. 좋은 의지, 좋은 의도, 분명한 시각이 내부적으로 계속 잘 만들어 가면 나쁜 마음을 먹고 왔더라도 나쁜 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구요. 종교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제 의미는 자연스럽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거에요. 그 사람의 과거가 중요할 이유는 없지요. 그리고 같이는 안살아도 빈마을에 친구들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지원 사격을 받을 수 있을 거 라는 의식적이진 않아도 도움이 필요할 땐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 스스로 자정능력이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네. 그래서 사실 굉장히 느려요. 누군가 해답을 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선생님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핵심을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도 오래 걸리죠. Q : 최근에 마을 사업하고도 연계가 되어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의 상황은? 어떤 방식으로 기존의 사업들 행정적이든 그런 부분을 어떻게 연결을 맺을까는 고민이에요. 가게에서 하는 사업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받으려고 해요. 정부에서 주는 돈은 제한이 너 무 많아요. 그래서 좀 더 생각중이구요. 근데 주거 때문에 신청하는 것은 저희도 알고 있는 것은 없구요. 문화 강좌 등을 하고 있는 데 그런 부분에 관해서 지원받는 부분이 있으면 해보자 하는 얘기가 나온 것이구요. 작년에 문화관광부에서 받아서 한 것은 있었어요. 늘 하던 것을 했는 데 좀 달라졌다면 예전에는 어 떻게든 아껴서 했다면 이번에는 좀 쓰면서 프로그램을 준비할 수 있었죠. 사실 빈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것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서울시 같은 경우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되면서 마을 사업, 청년 일자리 사업이 굉장히 많아요. 빈집이나 마을 관 련 사업은 불투명한데 청년 일자리 사업은 마을 일자리, 청년 일자리 이름이 바뀌고 그 일자 리에 관해서 빈집에서 그것을 구해서 일을 해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희는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구요. 어쨌든 우리가 해결한다 그 런 의지는 여전히 있구요. 앞으로는 저희도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없어요. 금고를 만들고 경제적 여건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전혀 없어요. 아까 잠 깐 나오긴 했지만 다른 공동체와 함께 가는 것을 모색해보려고 해요. 같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보고자 해요.

Q : 저는 사실 노후가 좀 걱정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희는 이것을 잘 하는 게. 끝까지 함께 사람들과 사는 것이 노후 준비 인 것 같아요. Q : 정말 창의적이고 기발한 얘길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사실 나이를 계속 먹으면서 지금 한국 단위에서 노후를 생각해보면 자식에 매달리는 것 밖에 없어요. 그나마 자기 것 챙기는 사람이 자기 직장 가지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60대 때보면 스스로 루트를 찾아야 하는 건데, 그것을 잘 찾으면 되는 것 같아요. 아프면 병원 같이 가주 고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은거죠. Q :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친목회와 함께 농사도 하면서 같이 사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해 요. 저도 결혼을 해야 하고, 또 혼자 생활하는 게 만족스럽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그런 고 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꼭 한집이 아니더라도 가깝게 모여 사는 것도 좋죠. Q : 저는 궁금한 것 보다 이게 노후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저도 동의하거든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모여서 공동체가 모이고 많아지고. 경쟁 안하고 좀 편하게 살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살 수 있구나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게 매우 중요한 것 같아 요. (시민의견) 거기서 살면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삶의 형태에 대한 고민은 하고 있었는데 참 신선하고, 실험, 대안 그런 것이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 나이에 대단한 생각을 감히 못했던 사람인데, 옛날에는 이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어느 순간 현실에서 만나질 때 이상이 실현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상황 속에서. 어느 시점에서 만나지게 되는 데, 오늘 이렇게 가까이 강연을 통해 듣게 되어서 참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Q : 저는 궁금한 게 돈을 적게 벌고 적게 쓰자고 하셨잖아요. 인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기도 하거든요. 많은 걸림돌이 생기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제일 큰 것 중 하나가 부모님이 엄 청 편찮으실 때 제가 돈을 대줄 수 없을까봐. 그게 걱정이거든요. 그 걱정 당연히 하지요. 그런데 저만의 걱정이 아닌 것 같아요. Q : 일종의 사회보장제도가 방안이긴 한데, 우선 예방차원으로 접근해서 하는 것도 좋지 않을 까요? 저희 언니 두 명이 정말 근면하게 살아요. 너무 열심히 일하니까 오히려 더 아파요. 그리고 속이 상한 일도 너무 많구요. 언니들은 일 때문에 힘든 것이지만 저는 빈집에서 좋은 사람들 과 함께 있어서 힘든 부분인데 이런 것도 감내할 수 있고 좋더라구요. 남들보다 덜 아프고. 제가 행복하면 부모님도 행복할 것 같아요. 저희(유농) 부모님 같은 경우는 제가 부모님의 노후의 방어벽이라기보다 오히려 저와 대화하 고 더 같이 놀려고 하세요. 그런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실을 잘 사는 것 이 중요한 것인데, 오늘 번 것 오늘 쓰면서 흥청망청 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대와 같은 노후준비는 사실 답이 아닌 것 같아요.

Q : 젊은 친구들의 경제력 부담이 이렇게 컸었나요? 의외로 엄청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주류사회에 들어가겠다는 강압이 더 큰 것 같아 요. Q : 백세시대다 하면서 사회에서 압박을 주니 마음이 병들어 있는 것 같아요. 많이 버는 친구들 그러니까 의사들도 심지어 자신이 버는 돈이 모자르다고 말하잖아요. 이해 가 안되는 거죠. 이상하죠. 참. 그리고 실제로 지금 이십대는 부모세대보다 부자가 될 가능성 이 거의 없죠. 사회구조적으로. 사실 덕 보는 케이스가 더 많죠. 이러지 않으면 스스로 존립하 는 것이 불가능한 세대에요. 지금 빈집에 있는 학생 중 한 친구는 대학학자금 대출 갚는 것 때문에 몇 년씩 하기 싫은 일 해야 하고 그런 상황이죠. 보통은 전세자금 대출하면 또 애가 생겨나고 노후든 건강이든 간에 내 탓이 아니라 같이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태어났 고, 태어난 만큼 제 역할을 하며 살았고. 사회악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사실 힘든 시기가 찾 아오는 건데, 그 사람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 사회적으로 책임지고 받쳐주는 노 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시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 국민연금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이 듭니다. 그런 것을 잘 만드는 거. 그게 사회적으로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