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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포은선조 묘역 묘역 가꾸기 가꾸기 사업 사업 포은선조 포은선조묘소 정화사업이후의 달라진 모습 포은선조 묘소정화사업 이전의 닭장부지의 모습 포은선조 묘소 찾아가는 길도 확 바뀌었다. 포은교 도 새로 놓아지고 안내표지석도 커다란 자연석으로 세워졌다. 포은학회 제1차 국제학술대회 2008년 한해도 포은선조 묘역 가꾸기 사업은 계속 되었다. 그래서 포은선조묘역은 해마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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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중국 공자 고향에서 포은선조 다시 살아나시다 곡부시 공자연구원에 포은선조흉상 봉안 은선조님은 우리 영일정씨의 표상이십니다. 그러한 포은선조님께 포 서 올 6월 중국 땅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것도 유학의 발상지 인 중국 산동성 곡부시 공자(공부자)가 태어난 고향에서 말입니다. 지난 6월 6일 오전 중국 곡부시 공자연구원에서 있었던 포은 정몽주 선생 흉상 봉안식 에는 한국에서 우리 종약원 임원진과 포은학회 회원, 그리고 중국 공자연구원 임원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 행 되었습니다. 좌대에 높이 앉으신 포은선조의 청동으로 제작된 흉상 이사장 정 춘 영(鄭春永) 은 근엄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듯 마치 살아계시는 모습과 흡사(영정 과 닮음)했습니다. 본인과 대종손 그리고 양국 학계 인사들은 다시 살아 나신 포은 선조님 흉상 앞에 두 손 모아 차렷 자세로 엄숙하게 서 있었 습니다. 흉상제막을 알리는 고유문(告由文)을 봉독(奉讀)하는 저의 두 손은 한없이 떨리고 가슴 은 크게 뛰었습니다. 동방의 이학지조이신 포은선조님의 흉상이 공자의 고향 중국 땅 곡부 공자 東洋人으로는 처음, 세계적 명소인 中國 孔子硏究院에 연구원에 봉안되었다는 것은 우리 포은선조 후손으로서 무한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했습니 다. 이튿날은 포은학회에서 주관하는 제1차 한 중 국제학술대회까지 열려 포은선조의 학문과 정신이 중국 땅에서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포은선조의 후손은 물론이고 우리 국 민 모두의 자랑이고 기쁨입니다. 그리고 올 제6회 포은문화제는 그 어느 해 보다 잘 치러진 행사였다고 하겠습니다. 해마다 포은문화제때만 되면 문제시 되었던 영모재 앞 닭장부지가 말끔히 해결되어 넓은 행사장에서 3일 동안 한 자리에서 모든 행사를 치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닭똥 냄새와 환경오염 등으로 신 성 스러운 포은묘역을 뒤덮으며 말썽도 많았던 닭장 부지가 포은문화제 행사직전 우리 종약원 소유토지 와 맞 교환함으로써 해결된 것입니다. 이 일의 해결에 는 묘하의 종친들과 용인문화원 원장님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임을 감사히 생각하며 내년 제7회 포은문화제는 전국적인 문화축제로 발전하도록 우리 다 같이 노력하십니다.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선조 순절 670여 년 만에 다시 태어나시다. 그것도 유학의 발상지이 며 공묘(孔廟)가 있는 중국 산동성 곡부시 공자연구원(孔子硏究院) 본당 2층 동편에 동양인으로 서는 유일하게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시조이며, 단심(丹心)으로 쓰러져가는 고려를 지키다 개성 선죽교(開城 善竹橋)에서 이방원의 하수인 조영규 일당의 철퇴를 맞고 붉은 피를 쏟으며 순절(殉 節)한 동방 18현의 한 분이시며 한국의 위대한 인물 중 한 분이신 포은 정몽주 선조의 청동 흉상 (靑銅 胸像)이 제작되어 2008년 6월 6일 유교의 땅 중국 공자연구원 본관에 봉안되었다. 이날 제막식에는 포은선생 25세 직계 종손 정래정씨를 비롯하여 한국포은학회(회장 최병준) 회원과 영일정씨포은공파종약원(이사장 정춘영) 임원 20여명, 중국 공자연구원 공상림 부원장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제막식에는 중국측에서는 공산당위원회 서기인 이가평(李家平)이 축사를 했으며 우리측에서 는 포은학회 최병준 회장이 치사를 했다. 이어 포은학회 주관으로 제1차 한 중국제학술대회가 공자연구원에서 개최되어 앞으로 한ㆍ중 양국의 역사문화 교류가 한층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번 포은선조 흉상제작에는 직계종손인 래정(來晶)씨가 사비를 드려가며 국내로 들여 와 포항 포은도서관에 봉안하는 일까지 물심양면으로 많은 애를 썼다. 10 2008년 제12호 11

-생 략- ~ 번역문 : 대문(입구)의 원명은 강택민 주석이 손 수 써 제명한 것이다. 鄭圃隱先生 誕生六百年 紀念誌 유가(儒家)의 창시자 중국에는 공자, 한국에는 포은 정포은과 우리나라 유학(儒學) -생 략 태산(泰山) 태산은 대묘(垈廟)에서 동쪽으로 천외촌을 거쳐 중천문, 남천문을 모두 케이블카로 이동, 거의 태산 정상에 다 다른다. 태산에 올라 전후좌우를 바라보 는 시야는 그야말로 신성스러운 성지로 그 옛날의 제천지였던가 하고 회상케 했다. 또 정상에 올라서니 이런 속담이 생각났다. 태 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란 구절이다. 제남(濟南) 제남은 춘추시대 주(周)나라의 제후국으로 봉 해진 곳이다. 오늘의 제남은 산동성의 성급 중심 도시로 발전하여 인구 160만 명의 정치, 경제, 문 화, 교통의 중심지이다. 포은선조흉상제막식을 마친 필자가 작시한 시문을 낭송하고 있다. 孔子硏究院 奉安 圃隱 胸像 鄭 瀚 永 (宗約院 理事) 24 圃翁胸像孔安院 포은선생 흉상을 공자님 연구소에 봉안하니 維有東賢第一陞 오직 동방유현으로서는 제일 먼저 오르셨네 華國縉紳奉誠盡 중화민국 선비님네 정성 다해 받드시니 雲孫萬里到獻香 만리길 달려 온 후손이 향불을 드려 치제하네 2008년 제12호 기념 특집 정연가 종약원부이사장ㆍ명예기자 하동문화원장 주자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후기의 학 자 안향(安珦)에 의해서 였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 안향은 고려 때 첨의시랑찬성사 판판도사사라 는 고위직을 맡아 문교의 진흥을 위해 육영재단을 세웠고, 국학대성전을 낙성하여 공자의 초상화를 봉 안하고 제기 악기와 육경 제자사(諸子史)등의 서 적을 구입하는 등 유학발전을 크게 기여하니 우리나 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지칭되어 문묘에 배향되었다. 이리하여 그때 만해도 불교천국이던 고려에 들어온 주자학, 즉 유학은 인간의 성품과 원리를 다루는 학문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성 리학(性理學)이라 했다. 고려 말에 이르러 뛰어난 학자들의 노력으로 성리학은 유풍(儒風)과 학술이 일치된 학문으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중심 에 곧 우리 포은선조가 계셨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포은선조께서는 성리학을 순수하 게 연구하여 창의적으로 백성들이 생활화 하도록 기초를 닦으시니 사람들은 우리 포은선조를 우리 나라 성리학의 비조(鼻祖)라고 추봉(追奉)하였다. 중국 산동성 공자의 태생지인 곡부에서 2008 년 6월초 곡부시장까지 나와 축사를 해 준 공자 연구원의 포은선조 흉상 봉안식은 우리 후손들에 게 포은선조의 유덕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하 는 매우 의미 깊은 자리였다. 세계 역사상 500여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한 성씨가 세습으로 국가를 지탱했던 나라는 조 선조가 유일한데 이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포은선 조가 바로세운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았기 때 문이었다고 학자들은 밝히고 있다. 이번 중국 공자연구원의 포은선조 흉상봉안 행사는 결국 중국에 공자가 있다면 한국에는 포 은선조가 있다 는 견해가 다분히 스며있음을 읽 을 수 있었다. 인류의 지성(至聖) 공자의 터에 봉 안되신 포은선조의 흉상 옆에 서니 새삼 포은선 조의 후손됨이 더 없는 자랑으로 느껴졌다. *지난호(11호)에 이어 계속됩니다 글 싣는 차례 (1)포은 선생의 간략한 전기(차상찬) (2)정포은과 역사성(홍명희) (3)정포은과 우리나라 유학(이병도) (4)정포은과 고려말의 정계(문일평) (5)시인 정포은을 논함(이은상) (6)포은 선생 연보 (7)내가 보는 정포은(황의돈 외 15명) 이병도 (李丙燾 : 1896~1989) 종보 제10호(2007. 가을호) 기념특집으로 鄭圃隱先生 誕生六百年 紀念誌 (조 선일보사 출판부편)에 실린 (1)포은선생의 간략한 전기(차상찬) (2)정포은과 역사성(홍명희) (3)정포은과 우리나라 유학(이병도) (4)정포은과 고려말의 정 계(문일평) (5)시인 정포은을 논함(이은상) (6)포은선생 연보 (7)내가 보는 정포 은(황의돈 외 15명) 등을 7회로 나누어 싣기로 했습니다. /편집자 (宣祖)때의 이율곡(李栗谷 : 이름은 珥)과 함께 우리 나라의 역사에 등장하였던 저명한 유자(儒者)정치가 가운데 후세 사람들의 추앙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세 선생은 비록 그 시대는 달랐지만 각기 자신 들이 몸담았던 시대에 활동하였던 유자들과 비교하 여 여러 측면으로 뛰어났던 인격자들로 사후에 모두 문묘(文廟)에 종사 (從祀)되는 영예를 누렸다. 이들은 그 탁월한 천부적 자질과 굳건한 지조, 출중한 언변 과 뛰어난 학문, 또 나랏일에 온 몸과 마음을 기울이 는 태도 등에서 서로 비슷하였다. 그 가운데 특히 포 은과 정암은, 비록 그 학문적 유산은 율곡에 크게 못 미쳤지만, 각각 정적의 음모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기 때문에 뒷사람들로 하여금 각별한 추모의 정을 갖게 하였다. 더욱이 포은은 대신(大臣)의 신분으로 고려 말의 혼란한 시국에 직면하여 왕실의 운명을 두 어깨 에 짊어지고 막강한 세력의 이성계 일파에게 저항하 다가 마침내 뜻하지 않았던 저격을 당함으로써 선죽 교의 선혈로 산화한 지극한 충정의 인물이다. 그러므 로 그의 빛나는 정의의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추억과 정 포은(鄭圃隱 : 이름은 夢周)은 조선 중종(中宗) 때의 조정암(趙靜菴 : 이름은 光祖)이나 선조 추모는 또한 정암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같은 고려말의 유신(儒臣)이었으나 포은과 달리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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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풍성한 행사였다 고 연일 이곳을 찾은 많은 관 제6회 용인포은문화제 / 제2회 포항포은문화축제 양대축제 성황리에 막 내려 람객들은 입을 모으며 마냥 즐거워했다. 셋째 날 : 5월 25일 2008년 5월에는 경기도 용인과 경북 포항 두 지역에서 포은 정몽주선생의 학문과 사상, 충효정신을 되새겨 제6회 포은문화제 행사 마지막 날인 5.24. 늦봄 보는 뜻 깊은 포은문화제 가 성황리에 열렸었다. 2008년 5월 23일 부터 25일까지 3일간 계속된 제6회 용인 날씨답게 하늘은 드높고 맑았다. 올해는 행사기 포은문화제는 경기지방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축제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하여 연일 찾아 간 내내 날씨가 좋아 주최 측의 걱정거리를 덜었 오는 많은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했다. 이 보다 앞서 제2회 포항포은문화축제도 5월 10일, 11일 이 다. 오전 11시부터 가설무대 앞에 자리 잡은 전국 틀 동안 포항시 오천읍 일원에서 많은 시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한시백일장에는 전국에서 모인 내로라 하는 200 여명의 시객(詩客)들이 유건에다 도포차림으로 시 첫째 날 : 5월 10일과 5월 23일 둘째 날 : 5월 24일 포항포은문화축제는 첫날인 지난 5월10일 오전 둘째 날인 5월24일 오전 11시부터 능원초등학교 오천서원에서 제2회 포은문화축제를 알리는 고유 에서 출발한 포은선생천장행렬이 포은묘소까지 제를 드렸고 5월23일에는 용인에서 제6회 포은 운행되는 동안 큰길 양 옆 근처에는 많은 관광객 문화제를 알리는 고유제가 포은선생묘소에서 포 들이 숨을 죽인 채 상여 소리꾼의 애끓는 선소리 은선생 종손인 정래정씨, 영일정씨포은공파종약 에 귀를 기울였다. 원 정춘영 이사장 등 많은 포은선생 후손과 일반 참배객들이 모인 가운데 올려졌다. 포항포은문화 축제는 포은도서관에서 포은선생흉상 봉안식과 정포은의 단심가를 중심으로 한 란 포은문화 제 특강(임종찬 부산대 교수)에 이어 오후에는 포은선생 금의환향 가장행렬이 이어졌다. 작(詩作)에 몰두했다. 시제(詩題)는 송구성신록(頌 駒城新綠)이었으며 영예의 장원에는 정상호(鄭相 鎬 경북 안동시 와룡면 지내2리 135 사진)씨가 사람이 가로세로 길게 여러 줄로 벌이어 서서 추 차지했다. 올 는 춤)가 추모제례를 한층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 해 한시백일장 기로 이끌었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추모제례에 은 (사)한국한 이어 가설무대에서는 기념식이 열렸고 대회장인 시협회와 공동 이종민 용인문화원 원장의 개회사에 이어 서정석 주최함으로써 용인시장은 기념사를 통해 올해는 포은선생묘역 그 권위와 품 이 그 어느 해 보다 드넓고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격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이다. 입상자(장원서 참 내년부터는 포은문화제가 거시적으로 치러 질 수 방까지)는 다음페이지에 시(詩)와 함께 싣는다. 있게 되어 한층 기쁘다 고 했다. 영일정씨포은공 이 밖에 제6회 포은문화제 청소년백일장 입상 파종약원 정춘영 이사장도 인사말을 통해 이 자 자(초 중 고별 최우수상, 우수상까지)와 서예 리가 닭장이 있던 곳이라며 제6회 문화제를 불과 휘호대회입상자(일반부 학생부별 대상, 최우수 며칠 앞두고 우리 종약원이 닭장부지를 매입하여 상, 우수상까지) 명단과 작품도 다음페이지에 싣 오늘 이처럼 훌륭한 행사를 치르게 된데 대하여 는다. 한시백일장에 이어 경기민요 백암농악 저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며 이종민 용인문화 마당극 대감놀이 민지영 예술단의 한국무용 원장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했다. 기념식에 이어 가곡합창단 유진박 퓨전콘서트가 있었고 장 오후 행사로 시립청소년오케스트라 포천시립 외행사로는 충렬서원 향사 재현 전통성인식 예술단(민속예술) 드림피플중창단 용인대학 전통문화특강 등 다채로운 행사로 3일간의 제6 생의 국악한마당이 계속 이어져 많은 관중 들이 회 포은문화제의 대단원의 막은 내려졌다. 자리를 뜰 줄 몰라 했다. 무대외 행사로는 청소 년백일장 올해 처음 열린 서예휘호대회 전통 한편 포은선생묘전에서는 추모제례가 봉향되었는 데 초헌관에는 서정석 용인시장이 헌작(獻爵)했 다. 제례가 진행되는 동안 무희들의 일무(佾舞 : 문화특강(등잔박물관) 농특산물전시판매장 다양한 먹거리 장터 운영으로 지금까지 이어 온 포은문화제 역대 행사 중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 용인/글= 정연철 명예기자 34 2008년 제12호 포항/글= 박남희 포은문화연구회장 사진 = 정연웅 공병규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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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문화제 참관기 이어 줄 객 참관 체 단 버스로 광 관 아 후손 찾 생 이 선 많 포은 종친 서 위 에 단 국 전 가족 선 에 도권 수 등 서울 지난 5월에 있었던 제6회 포은문화제는 예년에 볼 수 없었던 많은 울주 반구서원(盤龜書院) 포은 정몽주 선생 등 3현 봉안 내년에 21억원 들여 옮겨 새로 짓는다 반구서원의 위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884-7 관람객이 찾아 포은문화제가 전국 축제로 자리 매김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연 3일 동안 포은선생묘역에서 진행된 올 해 포은문화제는 행 서 원 순 례 울주/글ㆍ사진_ 정문화 명예기자 반구서원의 연혁 사장이 지난해와 달리 넓고 아담하게정돈되어 있어 관람객들로부터 많 1712년(조선 숙종 38)에 언양의 사림(士林=儒林) 이위(李 ), 김영하(金英夏), 김지 (金志), 은 호평을 받았다. 정태구(鄭台耉), 정석구(鄭錫球), 박문상(朴文祥)등이 뜻을 모아 창건하였다. 특히 올해 치러진 포은문화제에는 전국에서 포은선생 후손들이 관 당시 서원의 구조는 정당 6칸, 강당 12칸, 동재 3칸, 지의문(知義門) 3칸이 처음으로 광버스를 대절하여 단체로 참관했는가하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가족 완성되었다. 단위로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이 많았다. 기미년 3 1 서울탑동공원공 1713년(조선 숙종 39)에 포은 정몽주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원에서 조선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도창(導唱)한 수양산인 정재 1728년(조선 영조 4)에 화재가 나 서원이 소실되었으나 이듬해(1729년)에 중건하였다. 용(首陽山人 鄭在鎔) 선생의 손자인 정덕화(鄭德和 서울시 종로구 송 1871년(조선 고종 8)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월동 32-16)씨 등 많은 포은선생 후손, 가족들이 포은문화제 행사장을 1885년(조선 고종 22)에 송찬규(宋璨奎), 권필운(權珌運) 등이 포은대영모비(圃隱臺永慕碑)를 찾았다. 백로 정덕화 사장은 지난 5.24. 포은문화제 이틀째를 맞은 날 세우다. 부인 (김성숙)과 딸(혜연), 사위 오세창(의사)과 함께 포은문화제 행사장 1890년(조선 고종 27)에 송찬규, 권필운 등이 포은대실록비(圃隱臺實錄碑) 세우다. 에 들려 포은선조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오후 늦게까지 행사장 이 곳 1901년(광무 5)에 언양의 유생들이 협력하여 반구서원 유허비 실기를 세우다. 비문은 당시 언 저곳을 돌아보며 뜻 깊은 하루를 보냈다 는 포은문화제 참관기를 투고 양군수 최시명이 찬술하고 김효동이 글씨를 썼다. 해 왔다. 이 밖에 정화용씨 가족 등 서울에 거주하는 포은선생 후손들 1905년(광무 9)에 비각을 세웠다. 이 전례 없이 많이 찾아 주어 그 어느 해 보다 풍성한 포은문화제가 되 었다./ 편집실 1947년(광무후2)에 반구서원에 전래해 온 논은 2두락으로 반구계를 설립하여 그 소득으로 서 왼쪽부터 백로 정덕화, 부인 김성숙, 딸 혜연, 사위 오세창 원의 운영에 따른 비용을 충당했다. 1955년(광복후 10년)에 이 곳 유림 권병옥과 사림들이 서원 유허지에 제단을 세우고 매년음력 54 2008년 제12호 55

포은선조 직계종손인 故 鄭哲洙 종손의 一代記 특별 기획(7) 유고집 연속연재 (遺稿集 連續連載) 북지리입향조이신 입향조이신경모 경모정원교공의 정원교공의묘소 묘소 북지리 입향조이신 경모 정원교공의 묘소 북지리 친에 대한 지극한 효행을 기리는 뜻으로 1810년 극한 효행으로 아버지를 봉양 하였다. 부친께서 (조선 순조 10)에 영일정씨 문중에서 효자비와 비 75세에 돌아가시자 5km나 떨어진 묘소에 비가 오 각을 세워 후손들이 추앙하고 있다. 효자비에는 나 눈이오나 가리지 않고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 환주공의 효행이 아래와 같이 씌어져 있다. 이 묘소를 지켰으며 묘소 앞 같은 자리에는 웅덩 주(註) : 길에 떨어진 물건도 자기 것이 아니면 이 패어 비가 오면 물이 고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주어가지 않는다는 청도인(淸道人)의 인심(人心) 그 뒤편에는 순수한 인심 못 지 않은 백행의 근본(百行의 根本) 인 효(孝)의 정신이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다. 감동한 산속의 호랑이도 언제부터인가 환주공과 열부비(烈婦碑) 북지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열부비는 순조(順祚)의 남 편인 입향조 경모공의 9세손 이종해(李鍾海)씨가 일본 징용으 년 만에 집으로 돌아 왔으나 병 62 이 낫지를 않자 소문에 인육(人 肉 : 사람의 고기)을 먹으면 완 수많은 효자 효부 중 효자인 환주(煥 )는 매 전면 북지리에서 가정이 빈곤한 가운데서도 하루 벅지 살을 떼어내 육회라고 속 세끼를 별미 음식으로 부모에게 공양 하였으며, 여 남편에게 먹여 중풍병을 고 어느 해 겨울 아버지께서 오랜 병환으로 몸져 누 쳤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은 시 워있으면서 물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며느리의 아픈 다리 상처를 캐물어 알 그날 저녁 강가에 나가 얼음을 깨고 고기를 잡아 게 되었으며 소문은 마을주민을 비롯하여 면민 다가 추어탕을 끓여 드렸다. 또 아버지께서 뱁새 군민이 모두 알게 되어 청도군에서 사림장 포상 (붉은 머리 오목눈이 새)탕을 먹고 싶다기에 빈 집 (士林狀 褒賞)과 동시에 열부비를 세워 오늘날까 에 그물을 쳐서 뱁새 10마리를 잡아 끓여 드렸으 지 추앙하고 있다. 2008년 제12호 글 싣는 차례 1. 탈출 -방황 -야밤의 별빛 -탈출 -무엇보다도 큰 힘 -한집식구 *지난호(제11호)에 이어 계속됩니다. 4. 화북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화북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故 鄭哲洙 우리 대오는 날로 늘어났다. 하남점 분쟁의 집만으로는 다락방까지 치우고 상하 이층 생활을 하였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1944년 여름도 가고 서늘한 9월이 닥쳐왔다. 추워 지기 전에 숙사준비도 하고 계속 찾 아 드는 새 동지들을 맞이할 경리부만 남기고 그 곳에서 서남쪽 언덕 약 3리 되는 난좡이란 마을로 이사하였다. 전에 절당으로 쓰던집을 말끔히 소제하고 화북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 학교라는 간판까지 걸고 들게 되 치 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허 고름을 빨아내고 지우초를 부쳐 낫게 하는 등 지 나의 청춘 정철수저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3 2. 태항산을 찾아 -외유내강(外柔內剛) -눈물 -끝없는 평원, 첩첩한 산, 무수한 항일영웅 로 끌려 갔다가 중풍이 걸려 3 며 부친이 70세 때에 다리에 종기가 나자 입으로 이 같은 환주공의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행에 함께 묘소를 지키는 동무가 되었다고 한다. 북지리 영일정씨 경모공 후손 집성촌의 문장이신 정연명(83)씨. 연명씨는 경모공의 8세손이다. 북지리 입향조 경모공 8세손 정연택씨의 유고문 북지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순조의 열부비 3. 태항분맹생활 -태항분맹 -당년의 문오활동 -첫번째 임무 -황당한 세상, 지옥의 최하층 -동맹생활의 이모저모 4. 화북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화북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위문 참관 -망루와 군사봉쇄선 -일제의 투항, 앞으로 할 일 -잘 있거라 오지산아! 잘 있거라 태항산아! 었다. 교장은 무정, 교도주임에 김창만, 조직사업에 김영숙, 정치 교원 에 양계, 박무이고, 군사교원으로는 서휘, 이익성, 한경 등 동지들이 전 방부대로 부터 전근되어와 책임지게 되었다. 근간에 또 기동 (冀東)으로 부터 약 80명의 새 부대가 와서 합쳤으니 이젠 2백명은 착실히 되었다. 그들은 모두가 강제징병, 징용을 반대하여 우리를 찾아 온 천진, 북경 등지에 있던 조선청년들이었다. 새로운 정세하에서 부대도 새로 편성하 였으니 간부중대 중대장은 이익성, 노동중대 중대장은 한경, 그 밑에 각 각 3개 소대, 각 소대에 4개 분대씩 한 분대에 3개 전투소조, 한 소조에 전투원 4명씩 두었다. 조직이 정돈되니 모든 게 질서정연하고 대오가 확대되니 생활이 흥성흥성해졌다. 간부 중대는 정치와 군사이론 학습이 위주가 되었다. 학습, 훈련, 사업, 생활은 매일과 같이 긴장한 하루였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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迎日鄭氏 家門의 자랑 인물 Ⅰ 인천 강화 정신의 뿌리 강화학파 정제두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제1회 하곡제 봉향 정몽주선생 넋 공유(共有) 용인시ㆍ영천시 자매결연 부친 정연출 씨 형제 종약원 방문 조선시대 유교 포은 정몽주 사상의 거대한 실 선생의 넋을 공 학사상과 학맥을 유(共有)하고 있 구축해 온 강화 는 경기도 용인 학파 의 시조 정 시와 경북 영천 제두 (1649~1736) 시가 2008년 9 선생을 기리는 월 9일 자매결연을 했다. 용인시청에서 열린 결연식에 제1회 하곡제(霞谷祭) 가 2008년 9월 10일 오전 10시 는 서정석 용인시장과 김영석 영천시장을 비롯해 두 도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정제두 묘소(인천지 시의 시의회 의장과 문화원장, 포은선생숭모사업회장 방기념물 제56호)에서 열렸다. 하곡은 정제두 선생의 (이남철) 일행 등 관계자 50여명 이 참석했다. 호이다. 영천시는 포은 정몽주 선생이 태어난 곳이고 용인시 강화문화원과 한국양명학회가 인천정신 의 사상적 는 포은선생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두 도시는 포은선 뿌리인 강화학파를 재조명하고 하곡선생의 유업과 그 생이 갖은 특별한 인연으로 오래전 부터 포은선생의 사 정신을 기리기 위해 올 해 처음 마련한 행사이다. 상과 학문, 정신을 기리는 추모행사를 따로 갖기도 했 하곡 정제두 선생은 포은선생의 11세손으로 조선 숙 었다. 두 시는 이번 자매결연을 계기로 포은선생과 관 종 35년인 1709년 강화도 하일리에 정착하여 실사구시 련된 행사를 치를 때마다 민간차원에서 서로 초청하고 (實事求是 :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의 참여하는 등 교류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학풍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사업을 통해 공동번영을 위해 협력하면 두 도시의 발전 66회에 걸쳐 쓴 양명학 연론 과 국학산고 를 통해 강 에 큰 도움이 될 것 이라고 했다. 김영석 영천시장 일 화학파를 크게 소개 하기도 했다. 행은 자매 결연식이 끝난 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능 임) 김영석 영천시장은 포은 (栢松 鄭時鍾)씨 선생 묘소 참배를 마친 뒤 헌 를 비롯 영일정씨 성금 30만원, 이남철 숭모사 포은공파 후손과 업회회장이 헌성금 20만원, 하곡 제례봉행관 영천시의회회장이 스카프 계자 등 100여명 20매를 종약원 정춘영 이사 이 참석했다. 장에게 전달했다. 104 2008년 제12호 제6회 포은문화제 때 포은선조 묘소를 찾아 축하 인사까지 한 인기가수 신화그룹의 신혜성씨(본명 정필교 포은선조 22세손)의 아버지 정연출씨와 큰아버지 연구씨 형제가 최근 집안에서 대대로 보 존 간직해 오던 족보, 교지, 장충접 등 여러 가지 고문서(古文書)와 서적 등을 가지고 영일정씨 포은공파종 약원을 찾아주었다. 서책 중에는 정천석(鄭千碩) 선조의 교지(고종13 광서원년 1876) 를 가장 소중하게 여 긴 다고 정씨 형제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했다./ 편집실 선조의 교지를 앞에 놓고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정연출 (왼쪽)ㆍ정연구 (오른쪽)씨 형제. 연출씨는 인기가수 신 혜성(본명 정필교)의 부친이다. 원리 포은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별행글은 고유축문 인 백송 정시종 글 사진_ 정연석 종약원 상임이사 올 서정석 용인시장은 두 지자체가 상호 협의한 교류 국문학자 정인보 선생은 1933년 동아일보에 무려 이 날 제1회 하곡제 봉행에는 하곡선생의 직계종손 인기가수 신혜성 (본명 정필교 포은선조 22세손)의 글 사진_ 정연웅 종약원 사무국장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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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시작한 산학협동체제는 지금은 시범학교가 되어 다른 학교에서 견학을 오는 등 매우 잘되고 있다. 현재 교남전자학교의 명예교장선생님으로 있는 정회장은 남애전자 연수생의 가정집 300여 가구도 방문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못가는 자녀들을 위해 청도 제2직업학교와 뜻을 같이하여 학교에 공장도 세 워주기도 했다. 정회장은 그렇게 활발하게 운영하던 남애전자를 지난 2006년 12월에 미련 없이 매각 정리했다. 이제는 좀 쉬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포은선조를 추모하는 기념사업 같은 일 등 문화예술계 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다 며 2008년 9월 26일 강남대학교에서 있은 제1차 포은학회 국제학술대회 를 기하여 포은학회에 연구비 성금으로 200만원을 쾌척하여 포은선조 후손들로부터 뜨거운 찬사를 받 았다. / 편집실 현대 사회에서의 유학과 유교사상 기문을 빛낸 인물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일정씨가문에서 세분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어 가문의 영예를 누렸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유교 또는 유학사상을 고리타분한 것이고 실천적이지 못하며 현대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구시대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사실 필자의 생각 또한 그래왔던 것이 사실이며 실제 우리의 모습은 유교, 유학 전혀 사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듯하다. 정의화 (鄭義和ㆍ60) 4선ㆍ한나라당 부산 중ㆍ동구 정희수 (鄭熙秀ㆍ54) 재선의원ㆍ한나라당 경북 영천 정국교 (鄭國敎ㆍ47) 민주당비례대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유교, 유학사상의 틀 아래서 자라 왔으며 우리사회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역시 유교의 문화가 깊게 뿌리 박혀 작용해 왔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 고 조선시대의 유교, 유학은 상당히 실천적 성격의 학문이었다는데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유교사상은 모두 인간을 본으로 하고 현세를 중시하며 인문주의적 예제문화(禮制文化)와 합리적 정 신을 중요시 한다. 또한 이상적 사회체계와 개인의 도덕적 수신과, 행동규범에 관한 사상을 이념으로한 영일정씨영동지구종친회 하기 수련대회 개최 다. 유교의 의미는 개인의 도덕적 행동지침, 국가체제에 대한 이상적 모델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인 산업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 해마다 영동지구 7개 시 군별로 순회 개최하 는 영일정씨 영동지구 하계 수련대회가 2008년 6 월 16일(월) 오전 강릉시내 행복예식장에서 영동 지구 7개 시 군에서 200여명의 남녀 종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었다. 수련회는 정이교 대회장의 개회사에 이어 종약 원 이사장을 역임한 정의철 고문의 축사와 강릉종 친회정도교 회장의 환영사로 이어졌다. 특히 경남 진주에서 도암공 후손 정문화씨와 93세의 고령인 삼척시에 사는 정천교씨도 참석하여 많 은 종친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받았다. 또 강릉의 정연길씨가 종사의 남다른 공로가 인정돼 감사패를 받는 등 이번 대회는 어느 지역 대회 때 보다 더 성대하였다. 한편 2009년도 하기 수련회는 태백지역에서 개최키로 했다. 강릉 정광화 종약원 명예기자 126 2008년 제12호 지만 지나친 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 인명경시 풍조, 사회의 기강문란 등으로 인한 고통을 함께 겪고 있으며 심각한 사회문제로 까지 대두되고있다.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 정치와 사회지도자들이 앞장서 모범(修身齊家)을 보여야 할 것이며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 노블리스오블리지를 실 천하고자 하는 지닌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절실하며 이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려는 신념의 중요성이 요망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은 스스로의 성찰과 자기 수양을 통해 얻어질 수 있으며 이런 기류의 중심에 유교사상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본다. 아울러 고도화 되고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교육, 신문, 방송매체 등을 통한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홍보와 함께 유교, 유학을 현실에 맞게 이해하고 발전 적용시킨다면 현재 우 리가 처한 정신적 어려움과 사회문제들이 잘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편집실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