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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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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주제 : 응답하라 2024 자연과학강연일시 : 2014년 17 일( 월) 12:30 ~ 17:15 접수번호 : 비숙박_ 단체-02 신청학교 : 강동고등학교좌석 : 1층-마-16 ~ 1층-마-57 ( 총 42 명) 강연회장오시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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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2009 한 일 중고생교류 (고등학생단) 연 수 소 감 문 국 립 국 제 교 육 원

목 차 연수 일정표 1 연수단 명단 3 격려사(8단 인솔단장-경기도교육청 이현숙 장학관) 7 5 단 9 나의 첫 일본 방문기 추 정 묵 11 다름 이 아닌 같음 을 찾아서 이 현 구 15 일본을 다녀와서(몽유일본서( 夢 遊 日 本 書 )) 강 인 규 19 한일중고생교류연수를 마치며 이 종 혁 25 일본, 고마웠습니다. 김 경 원 34 낯선 땅에서 찾은 여행 이상의 것 서 동 선 39 길을 여는 여행 남 승 우 42 배울 것이 많았던 소중한 경험, 일본연수 김 지 훈 46 평생 잊혀지지 않을 추억 방일연수 성 진 우 49 한일 청소년 교류,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의 첫걸음 김 민 식 52 이제는 가까운 나라 일본 안 진 환 58 6 단 63 나의 첫 일본 방문기 한 예 슬 65 일본 연수 후 구 지 선 72 더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이 현 진 75 지금의 일본 과 지금의 한국 을 느끼다 이 예 지 80 연수, 즐거움 그리고 깨달음 김 정 아 84 2009 한일 중고생 교류 방일 연수를 갔다 와서 양 지 예 86 - i -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이 진 91 일주일간의 값진 시간을 보내고 이 민 경 94 정( 情 )의 나라 일본에 다녀와서 장 정 연 102 잊을 수 없는 7일간 박 선 미 105 일본에서 보내는 편지 심 세 진 113 일본에 다녀와서 경 혜 현 116 정( 情 )의 나라 일본 윤 소 라 119 일본 다시보기 정 예 지 124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방일연수를 마치고 이 브 128 고교생 방일 연수를 다녀와서 유 지 은 135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을 다녀와서 김 태 영 141 1주일동안 본 일본 함 송 연 146 7 단 151 일본을 다녀와서 김 기 범 153 방일연수, 낯설면서 친근했던 1주일 이 준 현 157 6박 7일 평생의 추억 김 명 곤 163 일본에서 받은 선물 이 정 우 171 일본을 다녀와서 봉 의 종 175 JAPAN 박 성 진 180 잊을 수 없는 한 주간의 짧고도 긴 여정 정 진 욱 185 일본에서 보고 느낀 새로운 것들 현 상 민 191 8 단 195 고교생 방일 연수를 다녀와서 전 재 은 197 내 인생의 첫 일본! (일본연수를 다녀와서) 신 재 진 201 오고, 만나고, 헤어지고 박 다 회 206 한일교류 -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힘 최 고 은 210 일본을 방문하고 나서 류 지 은 219 내 마음 속 또 하나의 세상 임 한 별 231 - ii -

일본을 다녀와서 정 유 진 235 이웃나라의 향기 김 지 영 238 직접 만난 일본, 이미지 실추의 한국? 장 영 은 244 6박 7일 일본 연수를 다녀와서 김 아 람 249 6박 7일 간의 길고도 짧은 연수를 마치고. 진 태 화 252 동참( 同 參 ) 김 수 현 255 일본에 다녀와서 : 사랑받는다는 것 김 레 나 258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김 민 혜 262 떠남, 그리고 돌아옴. 김 화 은 266 - iii -

연 수 일 정 표 - 방일 5, 6단 일자 5단(1팀) 일 정 6단(2팀) 9.24(목) 출국(OZ104) 나리타 공항 도착 동경 타워( 東 京 タワー) 전체회의 9.25(금) 9.26(토) 9.27(일) 9.28(월) 9.29(화) 외무성 방문 환영중식회 에도도쿄 박물관( 江 戸 東 京 博 物 館 ) 아사쿠사( 浅 草 - 浅 草 寺 仲 見 ) 방재교육체험 야마나시( 山 梨 )현으로 이동 홈스테이 대면식/홈스테이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단별회의 학교방문 - 大 月 (오오쯔끼) 市 立 大 月 短 期 大 学 附 屬 高 等 学 校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야마나시( 山 梨 )현 내 견학 단별회의 관서( 関 西 )지역으로 이동 방재교육체험 와카야마( 和 歌 山 )성 견학 단별회의 홈스테이 대면식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학교방문 - 和 歌 山 (와카야마) 県 立 星 林 (세이린) 高 等 学 校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와카야마( 和 歌 山 )현 내 견학 단별회의 9.30(수) 나리타 공항 출국 인천 공항 입국 해산 간사이 공항 출국 인천 공항 입국 해산 - 1 -

- 방일 7,8단 일자 7단(1팀) 일 정 8단(2팀) 10.29(목) 출국(KE715) 10:40 나리타 공항 도착 12:40 동경 타워( 東 京 タワー) 전체회의 10.30(금) 외무성 방문 환영중식회 에도도쿄 박물관( 江 戸 東 京 博 物 館 ) 아사쿠사( 浅 草 - 浅 草 寺 仲 見 ) 10.31(토) 방재교육체험 야마나시( 山 梨 )현으로 이동 홈스테이 대면식/홈스테이 방재교육체험 아키타( 秋 田 )현으로 이동 홈스테이 대면식/홈스테이 11.1(일) 11.2(월) 11.3(화) 11.4(수)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단별회의 학교방문 - 山 梨 (야마나시) 県 北 杜 (호크토) 市 立 甲 陸 (코료) 고등학교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야마나시( 山 梨 )현 내 견학 - 후지산 5부 능선, 잼 만들기체험 등 단별회의 나리타 공항 출국 김해 공항 입국 해산 홈스테이 홈스테이 종료 후 집합 단별회의 학교방문 - 秋 田 (아키타) 県 立 秋 田 南 (아키타 미나미)고등학교 (환영행사, 수업체험, 교류회 등) 아키타( 秋 田 ) 현 내 견학 -전통춤 체험교실, 교류발표회 동경으로 이동(국내선) 단별회의 - 2 -

연 수 단 명 단 - 방일 5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서울 이한준 반포고등학교 인솔 서울 문정선 반포고등학교 인솔 충남 정준모 충남서천교육청 인솔 서울 김동일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서울 이성용 강서공업고등학교 24 경기 박상현 평촌고등학교 2 서울 김정식 고명정산고등학교 25 경기 오해성 상일고등학교 3 서울 함지훈 덕수고등학교 26 경기 여대영 광명북고등학교 4 서울 이재윤 성수공업고등학교 27 경기 김지훈 안산동산고등학교 5 서울 조정호 세명컴퓨터고등학교 28 경기 정하현 평택기계공업고등학교 6 서울 김우성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29 경기 이은수 군포고등학교 7 서울 추정묵 숭실고등학교 30 경기 황현수 대신고등학교 8 서울 고인환 영동고등학교 31 경기 김상기 병점고등학교 9 서울 이정환 중앙고등학교 32 경기 성진우 이천고등학교 10 서울 이현구 한성고등학교 33 경기 권순주 이천제일고등학교 11 서울 강인규 자운고등학교 34 강원 박경일 원주공업고등학교 12 서울 이종혁 반포고등학교 35 강원 이청현 영월고등학교 13 인천 김경원 인천산곡고등학교 36 강원 안성기 여량고등학교 14 인천 정다운 운봉공업고등학교 37 강원 박건우 사내고등학교 15 인천 이승혁 인천원당고등학교 38 강원 차영호 기린고등학교 16 인천 추슬찬 인천남고등학교 39 충북 김민식 세광고등학교 17 인천 서동선 정보산업고등학교 40 충북 김규호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18 인천 신선익 학익고등학교 41 충북 지승우 충주고등학교 19 인천 강태형 인천남고등학교 42 충남 전으뜸 만리포고등학교 20 대전 조홍신 충남고등학교 43 충남 박창균 호서고등학교 21 대전 남승우 대전전민고등학교 44 충남 김상신 조치원고등학교 22 경기 신영하 수성고등학교 45 충남 안진환 청양정산고등학교 23 경기 구정현 분당정보산업고등학교 - 3 -

- 방일 6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서울 송순자 자운고등학교 인솔 서울 이강옥 자운고등학교 인솔 인천 정해영 인송중학교 인솔 서울 임미옥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서울 유혜주 광영여자고등학교 26 경기 노나은 의정부여자고등학교 2 서울 한예슬 금옥여자고등학교 27 경기 정윤경 동두천외국어고등학교 3 서울 이지원 배화여자고등학교 28 경기 박선미 백마고등학교 4 서울 하지은 서울문영여자고등학교 29 경기 황수진 퇴계원고등학교 5 서울 김진아 성동글로벌경영고등학교 30 경기 한예슬 금촌고등학교 6 서울 제하경 숭의여자고등학교 31 경기 이솔희 전곡고등학교 7 서울 구지선 이화여자고등학교 32 경기 이은샘 동남고등학교 8 서울 이현진 자양고등학교 33 경기 심세진 가평고등학교 9 서울 이예지 태릉고등학교 34 강원 이현규 춘천여자고등학교 10 서울 하소라 국악고등학교 35 강원 경혜현 평창고등학교 11 서울 홍새롬 자운고등학교 36 강원 윤소라 철원여자고등학교 12 서울 김정아 반포고등학교 37 강원 조수경 양구여자고등학교 13 인천 이도영 가정고등학교 38 충북 정예지 괴산고등학교 14 인천 김민지 가좌고등학교 39 충북 이유민 중산외국어고등학교 15 인천 양지예 부개고등학교 40 충북 이 브 충대부설고등학교 16 인천 이진 인화여자고등학교 41 충북 전보람 충북예술고등학교 17 인천 이소정 연수여자고등학교 42 충북 이경미 제천여자고등학교 18 인천 김은영 인천예술고등학교 43 충남 유지은 충남예술고등학교 19 대전 강문숙 대전반석고등학교 44 충남 김태영 서산여자고등학교 20 대전 황미수 대전이문고등학교 45 충남 정다연 예산정보미디어고등학교 21 대전 이민경 대전둔산여자고등학교 46 충남 함송연 충남외국어고등학교 22 경기 장정연 한국외국어대학교부속 용인외국어고등학교 47 충남 이연옥 논산여자고등학교 23 경기 김정민 일죽고등학교 48 충남 홍소연 건양고등학교 24 경기 김다슬 김포제일고등학교 49 전북 김도희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 25 경기 김보련 시흥고등학교 - 4 -

- 방일 7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대전 김동문 대전교육청 인솔 전북 이석준 정우중학교 인솔 전남 이성민 전남교육청 인솔 서울 장원창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부산 황명준 센텀고등학교 26 전북 김혜중 전북외국어고등학교 2 부산 정성범 화명고등학교 27 전남 이지원 광양백운고등학교 3 부산 문태욱 부산진고등학교 28 전남 봉의종 금성고등학교 4 부산 김기범 경남고등학교 29 전남 이동균 영광실업고등학교 5 부산 조상우 부산중앙고등학교 30 전남 곽준덕 전남조리과학고등학교 6 부산 이현준 부산강서고등학교 31 전남 박성진 한영고등학교 7 부산 김태완 부산고등학교 32 전남 김갈렙 함평골프고등학교 8 대구 김지수 영진고등학교 33 경북 정진욱 경주고등학교 9 대구 박선규 영남공업고등학교 34 경북 사공필 효령고등학교 10 대구 이대두 경원고등학교 35 경북 송형근 점촌고등학교 11 대구 이재석 대구달서공업고등학교 36 경북 진홍진 상주고등학교 12 대구 이준현 운암고등학교 37 경북 박규태 수비고등학교 13 대구 이호준 덕원고등학교 38 경남 배한솔 삼천포고등학교 14 광주 김명곤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9 경남 현상민 창원경일고등학교 15 광주 신창일 풍암고등학교 40 경남 배성진 창녕제일고등학교 16 광주 양은규 고려고등학교 41 경남 최낙환 함안고등학교 17 대전 이정우 명석고등학교 42 경남 홍형석 칠원고등학교 18 울산 서희찬 함월고등학교 43 제주 한승호 남녕고등학교 19 전북 고광철 진안제일고등학교 44 제주 오선제 서귀포고등학교 20 전북 정한규 전주제일고등학교 45 제주 이상협 영주고등학교 21 전북 안홍근 줄포자동차공업고등학교 46 제주 곽한솔 제주제일고등학교 22 전북 강재성 임실고등학교 47-5 -

- 방일 8단 순 지역 성명 소속 단장 경기 이현숙 경기도교육청 인솔 경남 김옥증 경남교육청 인솔 대구 서호성 산격중학교 인솔 서울 김수경 국립국제교육원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연번 지역 성명 학교명 1 부산 김은비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26 전북 김시라 군산여자고등학교 2 부산 전재은 부산장안고등학교 27 전북 김지영 김제여자고등학교 3 부산 박수희 신도고등학교 28 전북 김우영 백산고등학교 4 부산 신재진 부산진여자상업고등학교 29 전남 은이슬 목포여자상업고등학교 5 부산 정은지 브니엘예술고등학교 30 전남 장영은 순천매산여자고등학교 6 부산 조아라 이사벨고등학교 31 전남 정희경 임자종합고등학교 7 대구 김윤하 상인고등학교 32 전남 김아람 전남예술고등학교 8 대구 박다회 와룡고등학교 33 경북 이난영 김천예술고등학교 9 대구 이은정 다사고등학교 34 경북 권희명 봉화고등학교 10 대구 임민정 경명여자고등학교 35 경북 이가람 성주여자고등학교 11 대구 주유란 원화여자고등학교 36 경북 진태화 영해고등학교 12 대구 최고은 포산고등학교 37 경북 조소리 지보고등학교 13 광주 고은희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8 경북 김정임 울진고등학교 14 광주 김다솜 상일여자고등학교 39 경남 김아라 삼천포중앙고등학교 15 광주 류지은 대성여자고등학교 40 경남 신효수 영산고등학교 16 광주 이도현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 41 경남 김수현 남해해성고등학교 17 광주 임한별 숭덕고등학교 42 경남 임정민 마산내서여자고등학교 18 광주 박지혜 보문고등학교 43 경남 오서희 진주중앙고등학교 19 대전 김샛별 대전둔원고등학교 44 경남 김지현 거제여자고등학교 20 대전 신은정 대전관저고등학교 45 제주 현윤아 서귀포여자고등학교 21 대전 오서영 대전여자고등학교 46 제주 김레나 신성여자고등학교 22 울산 이슬 성광여자고등학교 47 제주 김민혜 제주고등학교 23 울산 이현주 남창고등학교 23 제주 김현아 제주여자상업고등학교 24 울산 정유진 울산중앙여자고등학교 24 제주 김화은 제주사대부속고등학교 25 울산 전수진 울산컴퓨터과학고등학교 - 6 -

격 려 사 이 현 숙 (경기도교육청 국제협력담당 장학관) 아키타현은 자연환경이 아름답고 따뜻한 온천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 아키타현 사람들의 마음도 포근했습니다. 일본가정에서의 홈스테이 를 하고 와서는 그들의 친절과 배려에 대하여 감동을 받아 못내 헤어지기 아쉬 운 얼굴이었지요. 여러분들은 평생 잃을 수 없는 재산을 얻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 글로벌세계를 이끌고 나가야 할 젊은이들입니다. 이번 한.일 고등학교 교류프로그램을 통해서 내 가족이 아닌 지구상의 누구에게도 가 족과 같은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인류애를 배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아 키타 미나미 고등학교 방문을 통해서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도 같은 또래의 아 이들이 비슷함과 다른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과도 서로 소통하고, 그들의 생각을 서로 나누어야 함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은 이러한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고, 청소년들도 스스로 노력하여 더 많이 소통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이번 일본방문을 통하여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일본에는 일본고유의 독특한 문화가 많이 보전되어있고, 일본의 청소년들도 그것을 잘 유지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본이 세계 어디에서나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을 합니다. 즉 한 나라의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 해 주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은 두 가지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바로 문화의 중요성입니다. 세계 경제학자들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이 세계는 더욱 더 글로벌화가 빨라지고, 각 나라마다 자국의 경제의 이익을 위 하여 마치 두서너 개의 나라처럼 지역별 블록화가 될 것이라고들 합니다. 현재 도 EU유럽공동체가 그렇게 통합되어서 화폐도 유러화를 쓰면서 그들만의 블록을 - 7 -

만들어 경제활동을 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러 한 블록화는 더욱 많아질 것이고, 자칫 한나라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 니다. 그러나 일본처럼 그 나라의 문화를 잘 보전하고 발전시켜나간다면 그 정 체성을 잘 간직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것이 되는 것입 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의 '스모'나 '다도' 한국의 강강술래'나 '태권도' '사 물놀이' 등이 있겠지요? 다시 말해서 나라의 문화를 잘 보전하고 발전시켜 나가 자는 것이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외국어의 중요성입니다. 앞으로는 두서너 개의 외국어를 익히지 않고 서는 이 글로벌 시대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의 이 명박 대통령은 취임하시자마자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외국어구사능 력에 따라 나라와 개인의 소득이 달라질 것이며 앞으로 그 격차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한국과 일본학생들도 이번 기회에 외국어의 중요성을 많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학생들은 이번 일.한 교류프로그램으로 얻은 재산을 바탕으로 글 로벌시민으로서의 양식을 가지고, 안목을 좀 더 높고 멀리 하며, 보폭을 넓히시 기를 바랍니다. - 8 -

5 단 - 9 -

나의 첫 일본 방문기 추 정 묵 숭 실 고 등 학 교 출국 하는 날, 아침 6시 반에 기상. 잠은 푹 잘 잤다. 처음 해외로 나가는 비 행기를 타는 날임에도 잠을 설치기는커녕 수업시간에 잘 때 보다 더 숙면을 취 했다. 캐리어를 끌며 집을 나섰다. 왠지 이걸 끌고 걸으니 해외를 한 달에 한번 은 가는 사람인양 뿌듯했다. 하지만 인천공항 도착. 거대한 공항과 수많은 사람 들 사이에서 갑자기 자신감이 없어졌다. 내가 일본에 간다니.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이 섞여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순간, 교복을 입고 있는, 사전교육 때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는 학생들을 보자 꿀꿀한 기분이 싹 사라졌다. 그러고는 이제 실감이 났다. 내가 우리나라 대표로 일본에 가는구나. 의욕이 나름 생겼 다. 비행기 타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거기에 일본에 간다는 설렘까지 겹쳐서 나 의 설렘은 구름만큼 부풀었다. 드디어 일본 치바현 나리타공항에 도착. 솔직한 소감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였다. 두시간만에 도착한 곳은 아직 여기가 인천인 지 나리타인지. 멍한 상태로 수속을 밟고 버스에 올랐다. 첫 목적지인 외무성으 로 향하는 도중, 일본은 좌측통행이라던가, 도쿄의 유래 등을 들으면서, 창밖의 신기한 도쿄 거리를 구경하면서도 아직 내가 있는 곳이 생전 처음 밟는 땅이라 는 느낌이 오질 않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외무성에 도착. 티비에서나 본 회의실 에서 외무성의 높은 분과 만난다고 해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의외로 등장하 신 *지역조정관님은 친근하게 생긴 아저씨였다 게다가 한국말을 얼마나 잘하시 는지. 그분께 이 연수의 취지와 목적을 들으면서 민간 외교관으로 일본에 온 나 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도쿄타워에서 카레로 저녁을 먹고(카레의 맛은 비슷했다.) 호텔로 돌아왔다. 전체 회의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 입 장. 이렇게 일본에서의 첫날이 대단원에 막을 내렸다. 다음날 6시 기상. 아침은 호텔 뷔페로 해결. 맛은 한국과 같아서 좀 실망. 첫 목적지는 아사쿠사라는 곳이었다. 큰 절과 신사가 있는 곳이었는데, 더운 날씨 임에도 사람이 꾀 많았다. 물과 연기에 몸을 깨끗이 하고 기도를 드리는 일본인 - 11 -

들을 보며 그들의 신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길흉을 점쳐주는 오미쿠지 란 것을 팔기에, 재밌어 보여서 하나 뽑아보았는데, 결과는 흉( 凶 ). 얼른 묶어 서 매달아 두고 나왔다. 그 후 나카미세 거리에서 쇼핑을 하였는데, 이곳은 마 치 한국의 인사동과 흡사했다. 주변에선 일본의 정취를 맘껏 느낄 수 있었고, 거리에서 파는 기념품들은 모두 가지고 싶은 것들뿐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 고 북적거리는 곳에서 진정 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보았 다. 쇼핑 후 도쿄 미래 과학관에 방문 하고, 이번엔 미나토 임해도시 과학관에 도착했다. 약간 피곤한 상태여서 좀 귀찮아하고 있었는데, 창밖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언제 졸렸냐는 듯이 무언가 놀라움이 머릿속에 밀려왔다. 창밖에는 커 다란 항구와 바다가 있었는데, 정말 넓었다. 넓었다 라는 말로 표현하는 게 미 안할 정도로 그 바다는 너무나 푸르고 광대했다. 나는 죄송하게도 임해도시의 설명을 그냥 흘려보내며, 시선을 그저 바다에 고정시킨 채였다. 하늘만큼 끝이 없는 바다를 보며 내가 얼마나 좁은 세상에 살았었는지 통감했다. 왠지 이런 감 정을 느낀 것만으로도 일본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호텔로 돌아와서 모두가 홈스테이 설명을 들으며 들떠있을 때도 나는 아까 본 바다가 생각이 났 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이틀째가 지나갔다. 삼일 째. 오늘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홈스테이를 하는 날. 아마 모두가 이날을 가장 기다렸겠지. 아침에 방재교육체험을 마치고, 야마나시 현으로 이동 하였다. 중간에 길거리공연도 듣고 지하철에서 일본 사람들의 활기찬 일상도 느 낄 수 있었다. 신칸센을 탈 줄 알았는데 보통 기차라서 조금 실망한 채로, 야마 나시에 도착하였다. 의외로 시골이란 느낌이어서 약간 실망. 지역의 명물인 다 케다 신겐 동상에서 좀 쉬었다가, 대면식장으로 이동하였다. 대면식장에 들어설 때, 모여 있는 많은 분들을 보고 일본에서 와서 가장 긴장된 순간을 맛보았다. 모르는 사람, 그것도 일본인과 함께 지낸다니. 기대 반 걱정 반. 평소 붙임성이 없는 나로썬 이럴 수밖에. 그렇게 약간 떨면서 인사말을 듣고 서있는데, 갑자기 내 이름이 불려졌다. 이럴 수가! 내가 첫 번째로 불린 것이다. 갑작스레 불려 허둥지둥 그렇게 처음 홈스테이 가족과 만나게 되었다. 오토구로상 가족들. 하지메마시테 그렇게 연습한 첫인사를 하고 차를 타고 갈 때까지는 아직 좀 어색하고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 말도 잘 못하였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서(집은 정말 멋진 이층집이었다.) 강아지와 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긴장이 풀리는걸 느꼈다. 두 분은 정말 친절하고, 편한 분들이었다. 일본어를 - 12 -

잘한 친구 인환이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두 분의 딸들과도 친해지고, 저 녁도 함께 먹다보니 처음 만났을 때의 긴장감 같은 것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아야카는 친한 누나랑 똑같았고 집은 할머니 댁과 같았다. 그렇게 편한 마음으 로 아야카와 놀러도 가고, 목욕탕도 써보고, 다다미방에서 자고, 일본식 아침도 먹어보고, 전통의상인 유카타도 입어보고, 욘사마 이야기도 하고, 초밥도 먹고 하다 보니 금세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언제 하루가 지난건지. 좀 더 많은 것 을 함께 하고 싶었는데, 후회가 남았다. 시간 때문이란 걸 알면서도, 약간 분했 다. 한편으로는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가족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 이 들었다. 헤어지면서도 끝까지 손을 흔들며 이별을 하였다. 이번 홈스테이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바로 일본의 친근함 이었다. 연수라는 것을 통해 왔지만 굳이 연수를 할 필요가 있는가 할 정도로, 그들과 나는 비슷하였다. 나는 홈스 테이 내내 정말로 편했고,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문화적 차이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언어는 서로가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해결되는 장벽이었다. 한일 교 류를 저지하는 것은 그저 편견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1박 2일은 새로운 인연을 만든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었고, 너무나 짧았기에 나중에 꼭 다시 오토 구로상과 홈스테이를 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호텔로 왔고, 잠이 들었다. 어느새 5일째. 아침은 일본식으로 달걀말이와 연어등. 슬슬 한국의 음식이 그 리워졌다. 쌀밥에 김치하나 얹어서 먹었으면. 벌써 이러다니 나는 외국에서 살 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일정은 학교방문. 개인적으로 홈스테 이 방문 다음으로 기대되는 일정. 일본의 학교는 만화에서 정말 많이 봐왔기에, 실제로 어떤지 너무나 궁금했다. 호텔에서 학교까지 한 시간 정도가 너무나 길 게 느껴졌다. 그렇게 도착한 학교는 오래되고 낡았다는 느낌. 50년이나 된 시골 학교의 건물엔 그 세월의 역사가 새겨져 있었다. 환영식이 끝나고, 수업을 같이 받는 시간이 왔다. 쉬는 시간 복도를 걸으면서, 왠지 웃음이 피식 났다. 일본 학생들이 내 친구들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처음 보는 외부인이 오자 막 쳐다보기도 하고 어설픈 한국말을 외치기도 하고. 너무나도 비슷해서 계속 웃음 이 났다. 나와 똑같이 수업시간에 떠들기도 하고, 열심히 공부도 하는 것이 재 미있었다. 수업 후 쉬는 시간엔 서로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찍고, 메일주소도 교환했다. 이 연수의 목표인 한일 교류를 실행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말 크게 아쉬운 것이지만, 시간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도 - 13 -

안타까웠다. 일생의 한번 있을 기회라서 더 아쉬웠다. 그래도 일본 학생들과의 만남은 홈스테이처럼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호텔로 돌아 오는 버스에서, 한국에 가면 꼭 메일을 확인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였다. 6일째. 오늘의 아침식사 또한 일본식. 아 이제는 정말 먹기가 힘들었다. 얼큰 한 김치찌개가 이토록 그리울 줄이야. 오늘의 일정은 후지산 방문. 후지산은 추 울 것이라고 해서 옷을 잔뜩 가지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귀 가 멍멍해지는 것을 느끼며 후지산 5부능선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거센 바람. 일본 최고 명물 후지산의 상쾌한 바람을 느끼자, 한 국생각이 잠시나마 깨끗이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어느 곳이던 절경( 絶 境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다. 일본최대의 영산에 올라와 있다는 느낌과 차가운 바람이 뒤섞여 감동이 밀려왔다. 차가워진 몸을 이끌고 점심 식사 후 블루베리 잼도 만들고 동굴도 들어갔다. 그렇게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귀환. 마지막 날이 니 만큼 이곳에 와서 만난 친구들과 실컷 놀고 잠이 들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5시 반에 기상. 아침도 대충 먹고 버 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반쯤 잠든 채 로 공항으로 향하면서, 지난 6일간 일본에 서 있었던 일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즐거웠던 일, 신기했던 일, 새 로 만든 무수한 인연들. 잠깐 잠들었을 때 꾼 꿈에는 일본 배경의 꿈을 꾸었다. 그렇게 나리타공항에 도착. 면세점에서 선물을 사면서, 마치 처음 입국했을 때 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아직 일본이라는 실감이 들지 않았지만, 이번엔 벌써 내가 한국으로 가야한다니- 라는 느낌이었다. 7일이란 건 정말 짧은 시간 이구나. 내가 갔던 곳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좀 더 깊이 느끼지 못했던 것 이 후회되었다. 그렇게 비행기에 탑승해 앉으며,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여러 가지 후회되는 일, 너무나 즐거웠던 일, 새로 느낀 것들, 그런 것들을 다시 생 각해보았다. 그렇게 드디어 한국에 도착. 너무나 그리웠던 집으로. 이 보고서를 쓰면서. 처음 일본 교류연수를 신청했을 때는 사실 뽑힐 것이라 는 기대는 전혀 없었다. 그만큼 내가 뽑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기쁨은 정 말 컸다. 이번 연수를 위해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 다. 그럼에도 부족했던 것은 다음을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겠다. 이번 연수는 정말 뜻 깊었다는, 그런 상투적인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 나에게 약간 원망을 느끼며, 나에게 이런 연수 기회를 제공해준 국립국제교육원과 일한문화교류기금 에 감사하다는 마음도 전하고 싶다. - 14 -

다름 이 아닌 같음 을 찾아서 이 현 구 한 성 고 등 학 교 각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어떤 특정한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 적으로 일본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야쿠자, 애니메이션, 소심함 같은 것들이 었다. 불행했던 우리의 근현대사로 인해서 일본인과 일본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 들의 이미지는 대게 부정적인 것들뿐이다. 그래서 이번 연수에 선발되어 난생처 음 일본을 방문한다고 생각해볼 때, 여러 가지 걱정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저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한국의 고교생 대표로서, 외교관 자격으로 일주일간이나 연수를 받는 것이어서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첫날의 일정은 집에서 공항으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최대한 단정한 옷 을 입었고, 고등학생이지만 일주일이나 집을 떠나는 것이어서 조금 떨리기도 했 다. 특히 내가 가장 걱정한 점은 일주일간이나 같이 생활하게 될 친구들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행이 공항에서 일본으로 떠나기도 전에 4명 정도의 친구들을 쉽 게 사귈 수 있었다. 모두들 각 학교를 대표하여 모인 친구들이라서 마음도 잘 맞고 생각하는 수준도 비슷했기 때문일 것이다. 도쿄 나리타공항에 도착해서 인솔선생님들을 만나고 떨리는 마음으로 외무성 으로 출발했다. 솔직히 외무성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그저 귀찮고 형식적인 일정 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외무성에 들어가 회의실에 착석하자 비로소 한국고 교생 대표로서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긴장하게 되었다. 또 한 우리를 환영해주신 동아시아 분쟁조정관님이 한국어로 환영사를 해주셔서 깜 짝 놀랐다. 환영사를 통해 조정관님이 한국으로 유학을 오셨던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일본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 다. 두 번째 날은 아사쿠사를 방문했는데, 이동하면서 파나소닉의 사장이 아사쿠 사 신사에 질병치유를 위해 공양을 드렸고, 또 실제로 병환이 나아지자 번개 의 문 을 지어 헌납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 때도 상당히 놀랐다. 세계경제 2-15 -

위의 대국인 일본의, 세계적인 기업 파나소닉의 사장님께서 그런 미신 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일에 얽매이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일화가 일본인들이 얼마나 다양한 신들과 종교를 믿고 있으며, 그것을 그 들 나름의 전통이라 여기고 고수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고도 생 각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의 나카미세 는 역시나 관광객들로서는 상당 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는 곳이다. 일렬로 정돈되어 쭉 늘어서있는 가게에서는 가지각색의 물품들을 파는데, 그 물품들이 모두 일본의 색을 대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서 여러 상인들이 한국어로 인사해주고, 궁금한 한국어를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그때 내가 한국인이라는 데서 자부심을 느낄 수가 있 었다. 일본사람들은 우리나라사람을 약간 꺼려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안도하기도 했다. 이것 또한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 닫게 되었다. 아사쿠사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일한문화교류기금에서 주최하는 중식 회에 참여했는데, 깔끔한 고층빌딩에서 식사를 대접받으면서 또 한 번 그 자리 에 참석해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행운인지를 절감하게 되었다. 이런 설 렘은 그 다음 우리가 들른 곳인 도쿄 항구관에 가서 더욱 극대화 되었다. 관계 자분이 일본의 오다이바 를 부산에 비교하시면서 오다이바도 눈부신 성장 을 계속해 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부산항을 따라잡기엔 부족하다 고 말 씀하셨을 때,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석식을 먹었던 비너스포트 이야기를 빠뜨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천정에 하 늘 그림을 그려놓아서 정말 천국에 와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이곳은 일본의 젊 은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쇼핑센터로서, 이곳을 둘러보면서 일본의 패션 트랜드랄까, 유행의 흐름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날은 가장 기다렸던 홈스테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사실 홈스테이와 학교방문만으로 일주일을 다 보내리라고 기대하고 있던 나로서는, 홈스테이가 겨우 하루밖에 되질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이만저만 실망했던 게 아니었긴 했 었다. 아무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아침에 눈을 떠 방재체험관으로 이동했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비 결이 바로 우리가 방문했던 것과 같은 방재체험시설에 있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 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조차 모르는 데 비해서 일본은 그러한 시설들이 여러 - 16 -

군데 분포해있다고 들었을 땐 우리나라도 이런 점은 본받아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방재체험을 마치고 드디어 야마나시 현청에서 홈스테이 가족과 대면했 는데, 처음 보는 사람과, 그것도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앞으로 하루를 같 이 지내야한다니 눈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더욱 실망했던 점은 홈스테이 가정에 내 또래아이는 없고 나 혼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한국친구 한명과 같이 홈스 테이를 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이동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통해 어머님 이 한국 드라마를 꽤 보셨고 한국어도 간단한 한두 마디 정도는 쉽게 하신다는 걸 알았다. 한류열풍의 실상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 다. 그때 얼마나 다행스럽고 또 자랑스러웠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홈스테이를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식사시간이 되었다. 어머님 이 스끼야키 라는 전골 비슷한 요리를 해 주셨는데, 특이 하게도 개인접시에 날계란을 풀어 냄비에 있는 고기라던가 야채를 찍어먹는 요 리였다. 처음 먹어보는 요리였지만 다행히 입맛에 잘 맞아서 배부를 때까지 꽤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이튿날은 야마나시현의 명물인 전국시대 무장 다케다 신겐 의 흔적을 느껴 보는 것을 주제로 했다. 평소부터 일본의 전국시대 역사에 흥미를 느끼고 있던 터라 상당히 기대되는 여행이었다. 우선은 신겐의 사후에 그의 명복을 빌기 위 해 건립된 에린지 를 방문했고, 그 다음으로 그의 옛성의 터에 건립된 다 케다 신사 에 방문했다. 이리저리 둘러보고 구경하는 동안 어머님 께서 한 국어 전자사전까지 펼쳐 가시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시려는 태도에 감동했다. 우 리나라는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속에 위치해 접근이 수월하지 않은 반면, 일본은 어딜 가나 신사나 절을 발견할 수 있어서 부럽기도 했다. 드디어 다섯 번째 날에는 학교방문을 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 리 학교방문의 시간이 너무나 짧아서 실망한 채로 교문을 들어섰다. 하지만 막 상 수업이 시작되고 옆자리에 일본 학생이 앉자 그런 우울한 기분이 싹 사라지 고 이상하게 흥분하게 되어서 짧은 수업시간 내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학교방문을 통해 느낀 것은 일본의 학생들과 우리 학생들의 차이점보단 서 로 생활하는 방식이라던가 고민하는 것들이 너무 닮아있다는 점이었다. 비록 교 육 체제와 내용은 다소 다를지라도 그 안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다 닮은꼴이 아닐까 하는 동질감을 느꼈다. 즐거웠던 추억들을 뒤로한 채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 - 17 -

한, 일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후지산에 오르는 날이었다. 그저 사진이나 그 림으로만 봤던 후지산을 직접 올라보니, 그 웅장함과 높이가 경탄을 자아낼 정 도였다. 발아래 구름이 드리워있고 세찬 바람만 감돌았다. 그러면서도 아직 꼭 대기는 보이지 않아서 굉장히 위압적인 느낌을 받았다. 비록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그 정상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고 싶은 산이 었다. 또 전통마을이라던가 블루베리 마을로 이동하면서도 홀로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든 느낌을 주는 면이 있어서 일본사람들이 왜 후 지산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지 이해가 갔다. 이번 연수는 정말 돌아오는 비행기가 도중에 사고가 나기를 바랄만큼 너무도 즐거웠고 또 일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 유익한 경험이었다. 물론 여 행을 간 것이 아니라 연수를 간 것이라는 점에 제약을 받았던 면도 있고 시간에 좀 쫓기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번 연수를 통해 내가 느낀 점은 여 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일본과 우리나라는 다른 점보단 같은 점이 더 많 은, 닮은 나라 라는 점이 가장 와 닿는다. 언어의 장벽만 넘어서고 보면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이나 생각하는 방식들이 너무도 서로 닮아있 는 것 같다. 연수 전에는 일본에 대한 느낌을 몇 가지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지 만, 막상 그 일본에 다녀오고 나니 그렇게 짧은 몇 마디 말로는 미처 다 설명하 지 못할 매력이 있는 나라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역시 기회가 닿는다면 다음에 꼭 한 번 더 일본에 가고 싶다. - 18 -

일본을 다녀와서(몽유일본서( 夢 遊 日 本 書 )) 강 인 규 자 운 고 등 학 교 먼저 제목에 대한 설명을 하겠다. 1447년 세종 29년의 안견은 자신의 후원자 였던 안평대군이 꿈꾸었던 세계를 그의 설명에 따라 몽유도원도( 夢 遊 挑 源 圖 )를 그리었다. 그걸 본떠서 2009년 10월의 난 일주일간에 꿈과 같은 여행을 내 가슴 과 머리가 해주는 설명에 따라 이 기행문을 써 보겠다는 마음에 몽유일본서( 夢 遊 日 本 書 )라 이름을 지었다. 이 여행의 첫 시작은 아마 WBC결승전 할 때였을 것 이다. 쉬는 시간에 야구를 보고 있던 나와 우리 반 얘들 앞으로 담임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일본 가는 얘들을 성적순으로 뽑는데 신청할 사람 있냐고 물으시는 것 이다. 물론 난 일본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에 바로 신청했고 그 우연한 용기 덕 분에 이렇게 일주일간에 여행을 다녀 올 수 있게 되었다. 일본으로 출국하기 전날 난 너무나 들뜬 기분에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명함 만드는 것도 예전 같으면 2,3시간 걸렸을 일이지만 1시간 만에 서둘러 끝내버리 고 서둘러 짐 싸는 것에 몰두했다. 혹시 가서 필요한 것이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하자 여러 가지 상상이 생겼다. 비 올지 모르니까 옷도 여러 벌, 우 산, 아 혹시 모르니까 비옷. 이렇게 짐을 싸자 큰 여행용가방도 금방 모자라게 되었다. 이렇게 즐거운 상상 속에 짐 싸기가 끝나자 이번엔 일본어회화가 문제 이었다. 떨리긴 했지만 히라가나 밖에 모르는 나로선 그냥 회화 책을 붙잡고 다 닐 수밖에 없단 생각에 잠도 자지 못하고 회화책을 들여다보았다. 일본으로 출 국 하는 날 난 마치 꿈속에 걸어 다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아침 일찍 일어나 다녔기 때문에 졸려서 그런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타보는 공항리무진, 국제선 또 처음 가보는 일본! 그 사실 만으로 난 충분히 꿈속을 걷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받고 다 같이 모여 버스를 탈 때까지 아직 내가 일본에 왔는지 그냥 제주도 여행을 온 건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았다. 일본사람들 도 우리나라 사람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에 몇몇 사람을 빼고는 저 사람이 우리 나라 사람 같다는 느낌에 그냥 우리나라 공항에 있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그 러나 버스에서 보이는 풍경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사소한 것에선 신호등 - 19 -

이나 운전기사의 위치 심지어 주변 자연 경관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던 것들 이었다. 특히 운전기사 위치는 우리나라와 반대였고 주행 또한 좌측주행이었다. 또 푸른색의 자연은 우리나라에서 못 본 식물과 더 많이 우거진 풀숲, 하늘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구름들이 버젓이 여기가 일본이다라는 사실을 알려주 었다. 일본의 자연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시청과 같 은 중심가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도쿄에 도착하여 외무성과 도쿄 타워를 구경 하였다. 아직 이때까지는 머릿속에서만 일본에 왔다는 라는 것 뿐 가슴은 느끼 질 못하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두 번째 날 난 일본의 과거와 미래와 또 그 미래를 준비하는 일본인들을 보았다. 먼저 일본의 과거를 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건 내가 아사쿠사를 갔기 때문이다. 물론 아사쿠사의 절과 불상 등 을 보 기도 했지만 거기서 우연히 생긴 조그마한 일덕분에 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자 부할 수 있다. 그 일은 친구가 날 실수로 민 것에서 시작된다. 친구가 날 밀었 기 때문에 난 뒤로 넘어졌고 실수로 뒤에 있던 일본할머니의 발을 밟고 말았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 일이 일어났다. 그 할머니께서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날 일으켜 세워주시고 가시는 것이었다. 난 순간 머릿속이 멍해지고 말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화냈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시 면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가시다니. 난 이사건 덕분에 일본인들이 정말 친절하다 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꼈다. 두 번째로 미래를 보았다는 건 일본의 과학미래관 을 갔기 때문이다. 이곳은 일본이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발판인 과학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한편으론 우리나라에도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 도 들었지만 여기만큼 잘되어 있을 곳은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자 씁쓸한 생각 마저 들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일본인들을 본건 동경항구관 이었다. 그곳에서는 일본인들이 매립지를 만들고 그곳에 건물을 세우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모형도 만들어 설명해 주는 것을 들으니 과연 높은 건 물이 많지 않고 바람 길이 잘 나있으며 도시와 자연이 같이 있으며 지진에 대비 한 공원 또한 있었다. 여기서 난 혼자 감탄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 신도시라 해서 건설한 곳엔 자연이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섞이지 못했고 바람길 또한 잘 나있지 않았고 잘 나있는 경우엔 쓸데없이 길이 너무 넓어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일본에 이러한 곳은 정말 심사숙고했구나 라 는 생각에 일본의 관료제를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첫 날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숙소로 돌아오니 너무나 피곤해서 침대위에 엎드려 일 - 20 -

기 쓰던 채로 잠들어 버렸다. 일본에 도착한 세 번째날 난 드디어 내가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날은 아침부터 팀을 나누어 방재교육체험 하는 곳 으로 갔다. 일본은 지진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러한 곳이 많아 홈스테이가 기 전에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갔다. 여러 가지 체험들 은 나로 하여금 우리나라에도 혹시 모를 지진을 위해 이런 것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방재 체험 후 일본 기차를 타고 홈스테이 가정 들과 만나는 야마나시 시청으로 갔다. 거기 도착해서 보니 지나가는 일본 사람 볼 때 마다 혹시 나의 홈스테이 가정은 아닐까하여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었 다. 잠시 후 대면식을 통해 내 가정을 만났을 땐 어떤 젊은 형이었기에 순식간 에 긴장이 눈 녹듯 녹아 버렸다. 다행이 그 형이 한국어를 잘 했기 때문에 편하 게 지냈는데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일본의 교통 문화였다. 내가 앞자리에 앉 아서 갔기 때문에 더욱 잘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싸우고 경적 울리 고 할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여기선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 사람만 보 면 차가 속도를 멈추고 사람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가하면 추월하는 차 한 대 없 고 신호를 어기는 차 한 대 없었다. 난 매우 놀라 나를 맡은 홈스테이가정 형 (사토시상)에게 물어 봤는데 그 사람은 별 반응 없이 원래 그렇다고 대답 하는 것이었다. 이건 정말 우리나라에서 꼭 배워가야 할 것 중 하나 인거 같다. 그 후엔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러 큰 대형 마켓으로 갔는데 여기서 난 또 다시 한번 놀랬다. 우리나라에선 큰 노래 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시끄러운데 반면 일본은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 주는 데도 다 들릴 정도 이었다. 여기서 일본은 다른 사 람에게 피해를 잘 주지 않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거기서 쇼핑하는 네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많은 제품들을 봤다. 포카리스웨이트 가루나 우리나라 에선 못 본 야채나, 신기한 음료수, 알코올이 없는 맥주 등 여러 신기한 제품을 보면서 역시 일본은 선진국이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그렇게 신기한 쇼핑을 마치고 돌아와 바베큐 파티를 하는데 일본 사람들의 친절함을 충분히 느 낄 수 있었다. 우리가 나이가 어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먼저 권한 후 남은 것들을 자신들이 먹었다. 새롭게 느낀 건 일본인들은 크게 웃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안 할 줄 알았는데 우리와 농담도 하고 서로 크게 웃기도 하였다. 덕 분에 함께 친해 질 수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엔 여관에서 씻고 우리 홈스테이 가 정으로 가서 자게 되었는데 난 사소할 수 있지만 또 신기한 것을 느꼈다. 바로 검소함이었다. 일본에 마작 비슷한 게임이 있어 그 마작용 패가 담겨져 있는 듯 - 21 -

한 통이 있어 만져 보았는데 거기엔 나무로 된 마작용 패와 박스종이 위에 써진 마작용 패가 거이 비슷하게 들어 있는 것 이었다. 나 같으면 벌써 버리고 새로 샀을 물건이지만 이렇게 까지 검소하게 쓴 다는 것을 보니 나 스스로 다시 돌아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잠이 든 후 아침에 일어나서 인사를 하려고 거실로 나가보니 아직 삼형제중 한명이 자고 있었는데 뜻밖에서도 소파에서 자 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우리를 위해 거기서 자고 있구나 하는 생각 이 들어 일 본인들은 정말 친절하구나 라는 생각 이 다시 들게 되었다. 머리도 감고 아침도 먹고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나 어떤 언덕에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가 아 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후엔 회전 초밥집에 들어가 우리나라에선 먹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초밥도 먹어보고 난후 다시 처음 만났던 시청으로 오니 갑자기 서운 한 느낌이 들었다. 홈스테이 하루만 더 했다면 더 많은 것을 느꼈을 텐데 이때 느낀 생각 이지만 괜히 외국에 1년 나갔다가 오면 회화가 느는 게 아니구나 라 는 생각 도 더불어 느꼈다. 아무튼 서운한 생각에 사진도 찍고 손도 흔드니까 우리 가족이 아닌 일본 사람들도 같이 손 흔들어 주곤 해서 나도 반갑게 손 흔 들어 주었다. 정말 꿈만 같던 홈스테이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오자 얘들 끼리 서 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하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다. 이때 서로 발견한 공통점 은 홈스테이 전엔 일본에 온지 몰랐는데 홈스테이가 끝나자 진짜 내가 일본에 왔구나 라는 생각 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온지 5일째 되던 날 난 일본을 외국으로 느끼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타 학교로 갔다. 그 학교에 있는 동안 모든 게 새로웠지만 내가 한수업만 여기 써보자면 1 교시로는 체육 수업을 하였다. 체육시간엔 골프 비슷한 것을 했는데 우리나라에 선 하지 않는 처음 보는 신기한 게임이었다. 골프공 비슷한 모형에 뒤에다 배드 민턴날개를 붙인 공은 플라스틱 고무로 만들어져서 치게 되면 멀리 높이 날게 생겼다. 이것을 골프채로 치는 데 일정한 거리에 있는 그물에다가 넣는 게임 이 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라 굉장히 힘들었지만 내 짝이 친절하게 보여주고 가르 쳐 주어 잘 해낼 수 있었다. 이때 짝 이름이 카와무라였는데 내가 메일도 보내 라고 명함주었는데 한국에 도착해 보니 메일 보내지 않았다. 아무튼 체육 수업 이 끝나고 나선 서예수업이었는데 이 수업 도한 우리나라에선 잘 하지 않는 수 업이었다. 난 중학교 2학년 때 이후로 서예를 안 해봐서 그런지 옆에 일본인 짝 에 비해 너무 못쓰긴 했지만 나름 열심히 쓰고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해서 친해 질수 있어 메일 주소도 주고 왔다. 애 이름은 카나에였는데 유일하게 메일이 도 - 22 -

착한 친구다. 그렇게 2가지 수업 모두 끝나고 회의실에 모여 간단한 도시락 점 심을 먹은 후 큰 강당으로 가서 본격적 교류회활동을 시작 하였는데 먼저 일본 학교에서 보인 건 오케스트라 였다. 우리나라 학교에선 절대 보기 힘든 풍경이 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오케스트라가 있다니 동아리 부장인 나로선 굉장히 부 러운 광경이었다. 그다음으로 보여준 것은 검도였는데 난 이게 가장 인상 깊고 부러운 것이었던거 같다. 사실 내가 중학교 때 검도를 해서 고등학교에 올라와 서도 검도를 계속 하고 싶었고 학교에서 검도부가 있길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 다. 또 일본 학교 얘들이 보여준 검도는 내가 배운 검도와 동일했기 때문에 매 우 신기 했다. 마지막으로 소림사 무술이 보여진 후 우리나라 공연이 시작했는 데 가장 먼저 한 것은 거문고였다. 우리나라에선 아무대서나 볼 수 없는 광경이 었기에 우리나라 얘들 도 서로 보려고 난리였다. 그 다음으론 살풀이를 하였고 마지막으로 판소리와 거문고를 같이 하는 병창을 하였는데 난 여기서 감동을 받 았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것이지만 나조차 실제론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 해 보니 그렇게 느끼는 내 자신이 창피했다. 우리나라 전통을 해외에서 보고 감동을 받다니, 또 왜 이런 공연을 난 지금껏 보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여러 생각이 드는 학교 방문 후 우린 숙소로 들어와 내일의 일정과 여러 지역의 학교 특징 등을 이야기 하면서 밤새 이야기를 했다. 일본 떠나기 마지막 날에 난 소풍 온 듯이 여러 가지를 몸소 느껴보았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야마나시 현의 자랑이자 일본인들의 자랑인 후지산이었다. 참고로 야마나시 현에선 그냥 고개를 들면 보 일정도로 후지산이 잘 보였고 날씨만 좋다면 산 모양이 전부다 보일 정도였다. 아무튼 후지산에 버스타고 중턱까지 가니까 가장먼저 바람이 우리를 반겨 주었 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우리가 찍어도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너무 멋졌고 거기서 또 느낀 건 정말 하나도 쓰레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바닥 어느 한곳을 보아도 담배꽁초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나라와 서로 상반된 자 연 풍경을 보면서 씁쓸한 생각 이 들었다. 거기서 내려온 후엔 잼만들기 공장으 로 가서 간단하게 잼을 만들어보고 일본의 전통 가옥이 몰려있는 일본 어느 마 을로 갔다. 거기선 일본의 전통 인형이 달려있는 핸드폰 고리도 간단하게 만들 어보고 그 마을 구경하는데 어느 순간 어느 장소에 가니까 죽마가 있는 것이었 다. 책에서나 보고 꼭 한번 타보고 싶었던 죽마를 보니 어떻게 타는 건지 몰라 해매고 신기해하며 얘들과 장난도 치고 함께 놀았다. 그 후엔 어느 동굴로 갔는 - 23 -

데 영하 -3도까지 내려가는 동굴로 안에 들어가자 얼음이 얼려 있었다. 여기서 또 하나 느낀 점은 우리나라에 비해 관광지 발달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다. 아까 일본 마을만 해도 신기한 게 많은 곳이지만 큰소리나 시끄러운 소리 없고 조용한 마을을 보여주고 있고 이곳 동굴 또한 하나의 기념품 파는 가게를 제외 하고 다른 가게도 없어 조용히 관광할 수 있게 해놓았고 동굴 폭을 따로 넓히지 않아서 불편하긴 하지만 오히려 그 불편함 덕분에 스릴있는 여행이 될 수 있게 해놓았다. 이 또한 우리나라에서 배워가야 할 점인것 같다. 이렇게 마 지막 일정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와 23명의 친구들과 밤늦게 까지 우정을 쌓으며 놀았다. 이렇게나 멋진 사람과 멋진 곳을 다시 여행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밤인 것 같다. 이렇게 마지막 일정까지 모두 끝낸 우리는 버스를 타고 나리타 공항으로 가서 안전하게 한국으로 돌아 왔다. 물론 돌아오고 나선 집이 멀어서 빨리 출발 해야 하는 친구 등 각자 일상으로 서둘러 돌아가야 했지만 인터넷클럽을 만들어 나중 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해어지자 아쉬움이 덜했다. 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에서 이번 일본에서 느낀 점을 총 정리 해보았다. 먼저 일본이란 나라는 자연경 관이 아름다운 나라이며 또한 그것을 보존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나 라, 일본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면서 서로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 마음으로 소 통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 인 것 같다. 이 밖에 내 표현력이 부족 하여 쓰진 못하지만 가슴으로 느낀 것이 정말 많은 여행이었다. 마지막으로 다 짐 한 것이지만 난 우리나라를 현재의 우리나라에 여기서 배워온 많은 것을 접 목 시켜서 해외의 여러 사람들이 와도 나처럼 느끼는 게 많은 나라로 만들고 싶 다. 또 이런 꿈같은 여행을 다시 할 수 있게 그 때까지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꿈같은 이번 일주일의 여행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내가 만약 나중에 늙어서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가장 중요하게 써야 하는 그런 부분이 될 그런 여행이었다. - 24 -

한일중고생교류연수를 마치며 이 종 혁 반 포 고 등 학 교 지난3월 나는 담임선생님께 일본에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어서 우 연히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성적 때문에 결정이 되지 못했지만 여자한명 남자한명을 뽑게 되면서 운 좋게 내가 뽑히게 되었다. 이번 연수로 나는 중간고 사를 보지 않았고 수능이 일 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이 나를 짓누르지만 그 래도 즐거웠던 일주일간을 회상하며 한일중고생교류연수의 후기를 쓰려고 한다. 9/24 출발하는 날 부모님차안에서 아직은 일본에 간다는 실감이 나지 않은 상태로 선생님과 같이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보고 있으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계속 다니고 있어 같이 가는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 니 모두 키가 크고 덩치도 나보다 커보여서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도중에 말을 걸어주는 아이들이 있어 약간안심하며 출국 게이트를 나섰다. 해외 에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긴장했었지만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여권을 제출 하고 비행기 표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드디어 비행기에 타고 일본 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옆에 앉은 아이는 자운 고등학교의 아이로 자주 말도하 고 일본에 가기 전에 친해지게 되었다. 드디어 일본이 보였다. 하지만 아직은 일본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에 도착하자 일본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한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 빠른 걸음으로 입국 심사소에 도착했다. 간단한 심사를 마친 후 짐을 찾고 출국게이트를 빠져나가니 통역선생 님들과 한일 문화 교류기금의 분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셨다. 그때 우리들이 인사 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우리의 통역선생님은 우시오상과 강 상이었다. 이번 7일 동안 버스 앞에서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주시고 친 절하게 해주신 분들이다. 일단 짐에 명찰을 붙이고 버스에 타게 되었다. 주차장 에서 처음 본 2층 버스나 버스의 다른 위치에 있는 운전석이나 한국과는 약간 다른 차 형태들은 일본에 왔다는 사실을 점점 실감하게 해주었다. 나리타에서 - 25 -

도쿄로 가는 도중에 통역선생님들이 일본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일본이 우측통 행인 이유는 메이지시대에 무사들의 칼이 부딪히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라고 하 셨고 일본인구의 10%정도가 도쿄에 살고 있다고 하셨다. 중간에 오다이바가 약 간 보이자 오다이바는 매립지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설명이 있었다. 또 도쿄디즈 니랜드는 도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치바현에 있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도쿄로 들 어갔다. 도쿄에 오자 고층빌딩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빌딩들은 한국의 빌딩보다도 높으면서 훨씬 더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일본은 간판이 많이 붙어 있지 않고 있는 간판도 건물 안쪽 으로 들어가 있어 더럽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던 것 이었다. 이것을 보자 한국의 간판이 덕지덕지 붙여져 있는 강남역이 생각나 이런 점은 일본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거리에 쓰레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의 번화가에는 이런저런 쓰레기가 많이 버려져 있어서 거리의 미관을 해치 고 쓰레기 뿐 만 아니라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으면서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일본에는 없었다. 이건 선진국과 후진국의 문화의 차이로 보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는 도중 천황이 사 는 황거의 모습과 국회의사당이 보이면서 우리는 외무성으로 들어갔다. 외무성 도 깔끔한 모습이었다. 외부 뿐 만아니라 내부도 넓고 깨끗해서 정말 이곳에 들 어가도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에서 외무성의 테라사와의 연설, 단장님의 인사말을 듣고 학생들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테라사와상은 우리나라에 서 다시 만들어진 꽃보다 남자를 예로 드시면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문화적 차이 를 설명하셨다. 다음은 말씀을 요약해 본 것이다. "이번의 홈스테이와 학교방 문을 통해 서로 가까운 사이가 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감정적으로는 먼 나라라고 불려왔다. 서로 무역과 교류가 증가하고 있음에 도 국민감정이 남아있어 많이 가까워 질 수 없었다. 그래서 교류를 시작했지만 아 직은 작은 규모였다. 하지만 88년 올림픽과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설립으로 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무역과 교류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후로도 양국의 상 호이해를 위해 청소년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와 같은 프로그램이 그 예이다." 다음은 학생 측의 질문과 답이다. Q 한국어 공부한 계기는 A 그때당시에 외국어로써 한국어를 택하는 사람이 없어 흥미가 있었고 재일교 포 등을 보고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 26 -

Q 스모의 최고 계급인 요코즈나에 외국인이 있다. 그에 대한 반발이나 제지는 없나? A 예전부터 일본과 하와이는 관계가 깊었고 그것을 계기로 외국인들이 일본의 스모를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외국 사람들의 체격이 스모에 더 적합했고 일본 청년들의 전통에 관한 관심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외국인스모선수가 증가하게 되었다. 일본 국기에서 외국인에 대한 제지는 없다. Q 앞으로의 한국과 일본의 관계? A 얼마 전 un총회에서 여러 국가의 대표의 연설 중 일본과 한국의 연설이 있 었다. 일 총리는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더 교류하고 싶다고 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가까운 관계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의 구축을 원한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이해와 손해를 따지는 것 만 이 아니라 서로 이해해서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가야 한 다고 본다. Q 제일교포가 이지메를 당한다거나하는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의 해결방안 은? A 귀화는 제도적인 개선이 되어있다 재일교포의 일본 귀화도 늘어나고 있다. 제일교포들도 자기들 끼리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과의 교류도 활발히 하 고 있다. 만약 재일교포들이 한국국적을 택하더라도 영주권을 주고 있으나 아직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한일간 합의를 통해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 다. Q 이번연수에서 알아야 할 점 A 홈스테이나 학교방문은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교류해 나가면 새 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개인적인 교류를 이어갈 것 을 부탁한다. 이러한 식으로 좋은 말씀도 듣고 외무성을 나섰다. 다음일정은 도쿄타워1층에 서의 식사였다. 식사는 카츠카레였다. 이 음식은 카레를 일본식에 맞추어서 만 든 것이 어서 일본의 첫 식사로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식사 후에는 도쿄타워를 - 27 -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잠깐 둘러봤지만 일본의 편의점 이라 던지 선물가게를 볼 수 있었다. 도쿄타워도 구경했지만 올라가보지 못했던 것은 아쉬웠다. 그 다 음은 호텔에 도착 전체회의가 있었다. 단장님과 일한문화교류기금측의 간단한 인사와 방배정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교류에서 가장 안 좋았던 점 이었다. 방 배정을 받자 모르는 2명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 2명은 전국에서 뽑혀 왔다 기에는 약간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오고 싶어도 못 오는 아이들이 굉 장히 많을 텐데 어떻게 호텔 안에 담배를 가져오는 아이들이 운 좋게 뽑힌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자기들 입으로는 폭력사건으로 경찰에 불려 간적도 있다고 말 을 하던데 교육청들이 좀 더 제대로 된 애들을 뽑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 이렇게 하루가 끝났다. 숙소 배정 빼고는 모두 좋은 시간이고 일본에 대한 기대를 부풀게 하는 좋은 하루여서 내일이 굉장히 기대되었다. 9/25 아침 5시에 일어났지만 아무도 일어난 사람이 없었다. 너무 들뜬 나머지 일찍 일어나 호텔을 둘러보았다. 호텔은 너무 좋아서 정말로 이곳에 우리가 있어도 되나 할 정도로 좋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모이고 다 음 일정이 시작되었다. 다음 일정은 아사쿠사 견학이었다. 아사쿠사는 신사를 말하고 센소지는 절을 말한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아사쿠사의 카미나리몬에 대 한 설명과 중간에 보인 아사히 맥주의 본사를 보고나서 아사쿠사로 들어갔다. 본전이 수리중이라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일부를 보고서도 문화재가 굉장히 잘 보존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식으로 몸을 청결하게 한 후 본전 을 구경하고 신사에도 가봤다. 책으로만 봤던 오미쿠지나 에마같은 것을 보아서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었다. 그 다음은 환영 중식회였다. 카스미가제 빌딩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빌딩은 1968년에 지워졌으면서도 안이 무척 깨끗해서 오래전에 지어진 빌딩이라고는 생 각할 수 없었다. 이 빌딩에서 나는 학생대표로써 일한문화교류기금의 이사님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나는 일본어를 할 것을 기대했지만. 이 사님이 한국어를 너무 잘하셔서 내가 나설 기회가 없었다. 내 성격 탓도 있어서 결국 한마디도 못했다. 이 일을 통해서 내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꿔야겠다는 생 각을 하게 되었다. 이 교류회에서는 이사장님과 사진도 찍어보고 높은 곳에서 도쿄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이 가능했다. 다음일정으로 오다이바에 가게 되었 다. 이곳은 매립지라고 하는데 지하에 모든 생활용관들이 묻어져있어 위로는 전 - 28 -

선이 나오지 않아 굉장히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일본 과학 미래 관에 방문했다. 이곳에서 여러 가지 과학기술을 체험 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과학관 의 상징인 led100만개를 박아 넣은 지구의 현재 상태를 볼 수 있는 지구본을 보 았다. 이 지구본의 영상은 일본 최초의 우주인 모리 마모루 박사가 여러 가지 어드바이스를 해주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로봇체험이나 인간의 게놈이나 신경을 모형화해 놓은 것은 굉장히 유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었다. 다음일정은 도쿄 미나토관이었다. 이곳은 과거 와 현재의 도쿄만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100년 전의 도쿄만과 지금의 도 쿄만을 비교해 놓은 사진을 보았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얕은 곳의 모래를 퍼 서 새로운 땅을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오다이바를 만들 때 그 곳에서 어업을 생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보상금을 지금 했다고 하는데서 우리나라의 마 구잡이 개발과는 다른 좋은 느낌을 받았다. 오다이바를 만들 때는 채권을 발행 해 완성된 후 땅을 팔아 생긴 돈으로 다시 돈을 갚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이곳 에서는 오다이바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다. 굉장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나중 에는 이 모형을 들어 올리셔서 지하의 생활관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이곳은 20 층이라 오다이바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인보우 브릿지. 후지 텔레 비전의 본사빌딩, 도쿄 빅사이트, 아리아케의 모습은 아무 것도 없던 바다위에 세워 졌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인상 깊었다. 저녁은 천장이 하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비너스 포트라는 쇼핑몰에서 먹게 되 었다. 쇼핑몰을 예전의 유럽의 모습처럼 꾸며놓아 관광자원으로 손색이 없었다. 특히 안에는 도요타의 전시장이 있어 시뮬레이션을 체험하거나 미래의 차등을 전시해 놓아서 볼거리도 많았다. 9/26 어제와 같이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는 날이어서 다른 날보다 긴장되고 떨렸다. 일단 오전에는 방재센터를 방문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자연재해가 많아서 이러한 방재센터에서의 교육이 활성화 되어있다고 한다. 이 곳 에서는 지진, 화제 체험을 했다. 한국에서는 하지 못했던 갚진 경험이었다. 후에 역 앞에서 중식 후에는 기차 를 타고 야마나시 현으로 출발했다. 신칸센이라고 들어서 기대했지만 특급기차 였다. 그래도 가는 도중에는 일본의 풍경이 많이 보여서 나쁘지 않았다. 일본은 자연을 잘 보존해놓아 경관이 뛰어났다. - 29 -

그 다음 역 앞의 다케다 신겐의 동상 앞에서의 기념촬영 후에는 야마나시 현 청으로 이동 홈스테이 가족과의 대면식이 있었다. 나의 홈스테이는 이시하라상 의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이때까지 일본에 와서 일본어를 쓸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홈스테이에서는 꽤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가정에 가는 도중 저녁 찬거리를 사기위 해서 일본의 쇼핑몰에 들어갔다. 대체적으로는 한국의 쇼핑몰과 다르지 않았으 나 반액 스티커나 작게 포장해 파는 음식 등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한국 에서는 유통기한이 조금남아도 반액판매를 안 해 그대로 페기 처분이 되는 경우 가 많아 일본에서 반액 스티커를 봤을 때는 인상 깊었다. 일본에서도 김치를 팔 고 있어 반가웠는데 이시하라상의 말로는 한국의 김치보다는 덜 맵다고 했다. 역시 수출 할 때는 현지인의 입맛에 맞춰 판매한다고 하셨다. 이시하라상의 가 족은 이때까지 10명의 홈스테이를 받고 아들 두 명도 한국으로 홈스테이를 갔다 고 하셨다. 홈스테이를 한사람들도 한국, 중국, 미국, 멕시코 등 매우 다양했다. 그래서 이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 사람들과 만났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굉장히 부러웠다. 저녁은 외국에서 온 나를 생각해주셔서 일본 전 통식인 오코노미야키였다.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좋았다. 저녁 후에는 가족들이 가라테를 하러가자고 했다. 이 집은 일주일에 2번 가족이 모두 가라테를 하러간다고 한다. 한국이라면 학원에 갈 시간에 가족들이 이야기하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기르는 모습은 나에게는 이상적인 가족으로 보였다. 9/27 홈스테이 가정에서 조식을 먹었다. 일식을 기대했지만 평범하게 토스트였다. 이런걸 보면 약간은 한국에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침식사 후에는 다케다 신사에 대려다 주셨다. 일본에 와서 일본 전통의 신사라던가 다타미방이 일상 속에 녹 아 있는 것도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는 평소에는 그다지 전통에 대하여 신경 쓰 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외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자 신들의 전통을 지키는 주체적인 모습은 받고 싶은 모습이었다. 이 신사에서는 일본의 전통적인 신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에는 쇼우센 계곡에 갔다. 일본의 산과 한국의 산은 사이즈가 틀려 감격 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박지원은 요동벌판을 보고 울만한 곳이라고 했다던데 내 기분이 바로 그 기분이었다. 홈스테이 기간은 매우 짧았지만 일본의 평범한 - 30 -

가정을 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소노스케와 신노스케와는 많이 대화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낼 생각이다. 호텔이 바뀌어 후지산 쪽에 있는 호텔에 갔다. 이곳에서는 일본의 공중목욕탕과 유카타, 일본 의 전통 정식을 체험하는 좋은 경험을 했다. 다음날은 드디어 학생대표로써 발 표하는 날이었다. 평소 어떤 곳 에서도 나서지 않던 나에게는 큰 모험이자 자신 을 바꿀 계기로 생각했다. 더욱이 이면 인사말은 일본어였다. 일본어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하룻밤을 열심히 연습하니 나름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통역 선생님이나 문정선 선생님 교장선생님들이 연습을 봐주시고 많이 도와주셨다. 다음날 실수 하지 않도록 열심히 연습했다. 9/28 학교방문의 날 이었다. 이 날을 위해 명함도 만들어 놓고 연설준비도 했다. 오오츠키 고등학교에 도착해서는 일단 수업을 받는 그룹별로 나뉘었다. 나는 서예와 체육수업을 체험하게 되었다. 우리 그룹의 가이드역의 학생은 학생회 부 회장의 마이상 이었다.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준 사람이었고 호감이 가는 사람이 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 때 서예를 배우고 커서는 서예를 한 적이 없어 자신이 없었지만 따라 써 보니 나쁘진 않았다. 수업이 끝나자 한국학생들이 일 본 학생들의 작품을 고르고 그 작품을 쓴 학생들과 악수를 했다. 나는 메일주소 도 같이 줬다. 체육시간에는 골프 비슷한 스포츠를 했다. 공간이 없는 일본에서 할 수 있게끔 골프공을 개조한 스포츠였는데 이렇게 주체적으로 외래문화를 수 용하는 점은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아이2명과 짝을 지었는데 일 본 남자아이들은 말이 많이 없어서 이야기를 잘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체육시간 에는 풀어놓는 것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모두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여러 가지 과목 중에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골라하니 학생들의 의욕도 오르고 자신 의 특기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일본은 클럽활동으로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기회도 많이 제공되어 있어 부러웠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먹은 후 복도에 나가니 일본아이들이 말을 걸어 주었다. 여학생들만 말을 걸어서 6명 정도의 여 학생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이걸 보고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했지 만 일단 메일주소를 줬다. 그다음 교류회에서 드디어 학생대표로써 인사말을 했 다. 약간 긴장했지만 한자도 틀리지 않았고 나중에 일본의 교직원으로부터 발음 이 좋다고 칭찬도 받았다. 열심히 연습한 만큼 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그다음은 양국학생들의 특기 발표였다. 한국 학생들의 발표도 좀처럼 보기 힘든 - 31 -

공연이었지만 클럽활동으로 익힌 일본학생들의 발표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 와서 메일을 보니 메일주소를 준 학생으로부터 메일이 와 있었다. 제 대로 연결 될까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답장도 제대로 오고 있다. 일본에 와서 일본 아이들과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앞으로도 메일을 통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힘쓰겠다. 저녁식사는 야마나시현 전통국수인 호토라는 것을 먹었다. 일본인들도 먹어 보기 힘든 음식이라고 하셨다. 일본식 방에서 전통식으로 먹은 것이 굉장히 기 뻤다. 9/29 후지산에 가는 날이었다. 일본의 상징인 산이라 굉장히 기대가 됐다. 가는 도 중보이는 울창한 산림과 운해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없는 광경이었다. 대부분 침 엽수림이었지만 중간 중간 활엽수도 섞여있었다. 활엽수는 후에 도로를 만들 때에 새로 심었다고 한다. 침엽수만 있으면 칙칙할 뻔했던 경치를 단풍이 드는 활엽수를 심어서 경관을 더 좋게 한 것은 일본의 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들 은 후지산 중턱에서 구경 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음에 왔을 때는 정상까지 가보고 싶을 정도로 경관이 좋았다. 후지산의 신 사에서 다음에도 꼭 올 수 있기를 빌며 산을 내려왔다. 점심식사 후에는 잼 만 들기 체험을 했다. 블루베리 잼이었는데 만들고 나니 맛은 있었지만 일본에 와서 왜 잼을 만든 건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음에는 이야시노 무라라는 일본 전통의 집들을 재 현해놓은 곳에 갔다. 이곳에서는 전통인형 만들기를 했다 일본에서는 부적의 의 미가 있다고 한다. 빨리 마치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일본집의 가운데에는 불을 피우는 곳이 있어 물도 끓이고 거기서 나온 연기로 짚 지붕의 벌레도 죽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일본의 전통 집은 한국의 초가집과는 다른 멋이 있었다. 어떤 집에 들어가니 할 머니께서 차를 끓여주셨다. 이곳에서 장군이 입던 갑옷도 입어보고 후지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보는 등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일본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 전 체회의를 가졌다. 서로 자신이 일본에 대해서 가진 감정을 발표하고 선생님들의 작별인사가 있었다. 일본에 와서 너무 좋은 경험을 해서 한국에서 돌아가고 싶 지 않을 정도였다. - 32 -

9/30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됐다. 아침 일 찍부터 나리타에 가기위해서 서둘러서 짐을 쌌다. 정든 일본을 뒤로하고 돌아가 야 한다니 섭섭했다. 일본을 떠나며 꼭 이곳에 어떤 형태로든지 다시 와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도착하고 이제 현실로 돌아왔다. 일상에서 다시 공부 라든지 해야 할 일이 많다. 일본과의 교류를 이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기에 나는 다시 일본으로 갈 것이다. 이번 일본 방문에서 느낀 점은 확실히 일본은 우리보다 발전해있는 선진국이 라는 것이었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했으며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가래침을 뱉 는 사람도 없었다. 표현의 자유로 일본은 에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의 엔터테이멘트 분야에서 세계 에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일본은 간척지를 만들 때에도 그곳에서 어업을 생업 으로 하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보상금을 지급하며 천천히 그리고 약자들이 피 해를 받지 않도록 개발을 진행했다. 나는 일본의 좋은 점만을 말했지만 일본도 완벽한 나라는 아니다. 일본이 한국의 10년 앞을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 리는 일본에서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미래를 준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번6박 7일간의 연수는 나에게 있어서는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었으며 나를 한 층 성숙하게 해주었다. 학생대표를 하며 자신감을 얻었고 원어민과 대화를 해보 며 나의 미숙함을 알았다. 이제 일상에서 더욱 성실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학업 에 충실해야한다. 이러한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국립국제교육원과 일한문화교류기금에 감사를 표한다. - 33 -

일본, 고마웠습니다. 김 경 원 인 천 산 곡 고 등 학 교 일본. 일본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많은 것들이 그 한 단어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사전교육이 끝나고 나서 일본에 가야 한다는 생 각이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설렘 같은 것들을 떠들썩하게 가슴 속에 풀어놓았 습니다. 걱정을 하든 두려워하든 비겁해지지는 말자는 말이 저절로 귓가에 맴돈 것인지 일부러 제가 곱씹은 것인지 날짜는 당당하게 다가왔습니다. 드디어 24일. 처음 가는 여행도 아니고, 처음 가는 국외 여행도 아니었지만, 처음 일본에 간다는 생각과 처음 만난 친구들과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듯 했습니다. 재밌는 것은 며칠만 있으면 친해져서 헤어지기 힘 들 사이가 될 녀석들 앞에서 일부러 시무룩하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 까요. 모두 그렇게 첫 대면을 한 뒤에 비행기에 타고,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인사를 했습니다. 바보같이 어색했습니다. 두 시간을 날아 나리타 공항에 도착 했을 때 맞이한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분명 한국에서 맞는 바람은 제 땀을 식혀 주고 시원하게 해주는 포근한 바람이지만, 일본에서 처음으로 맞이한 바람은 제 게 여기는 너희 나라가 아니야. 긴장하는 게 좋을걸. 하며 볼을 차갑게 건드려주었습니다. 첫 번째 일정은 외무성 방문. 아직도 5단 단장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들립 니다. 여기에 온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해. 너희 한국에서 외교통상부 들어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니? 맞는 말씀이라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긴장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의실로 올라가 질의응답을 했습니다. 여러 친구들이 좋은 질문 을 했습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질문은 이 방일 연수의 목적에 관한 질문이었 습니다. 한일 양국 관계 개선. 간단명료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국권을 상실당한 상태였기 때문입니 - 34 -

다. 역사에 관심 많은 저로서는 그렇게 간단히 말하시는 외무성 관계자분이나, 그냥 수긍하는 분위기인 친구들에 대해 유감이었습니다. 그 백 년 전 역사는 저 희 이전 세대에게는 너무나 깊은 흉터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일본에서 용서를 구하는 발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그저 흉터를 덮고 미래로만 나아 가려는 것 같아 속이 쓰렸습니다. 외무성 방문 후에는 일본에 와서 첫 식사를 하고, 도쿄타워를 높게 올라가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구경도 해보고 즐거웠습니다. 아직도 제가 있는 곳이 일본인 지 한국인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도쿄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낸 호텔. 너무 좋은 곳이었습니다. 같은 방을 쓴 친구 두 명이 2팀으로 처음에는 많이 어색했지만, 많이 착하고 좋은 친구들이었 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그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렇게 첫 밤을 보내고, 둘째 날 처음 간 곳은 아사쿠사. 신사와 절이 함께 있는 곳으로 기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예의는 이 세상 어 디에 가든 있다는 것이 조금 감격스러웠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간 고층 빌딩. 너무 높아서 귀가 멍멍했습니다. 주변이 다 창 문이라 도쿄의 중심이 다 내려다 보였습니다. 그 때 통역 선생님께서 수상관저 와 국회의사당을 짚어주셨습니다. 그 곳을 내려다보는 느낌이 제게 야망을 갖도 록 부추겼습니다. 너무 작고 아래로 보이는 그 건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저 건물들에 들어가면서도 그러한 느낌을 느껴봤으면 하 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경항구관과 과학미래관에서는 일본의 기술의 발전에 대해 충격을 받았습니 다. 엄청나게 굉장한 일본의 모습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분명 조선 전기까지 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와 기술을 전수받던 나라가 어떻게 이다지도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인지 너무나 궁금하고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전 뒤에는 환 경 파괴가 숨어있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립을 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잃었을까요. 26일 아침. 같은 방을 썼던 두 친구와 헤어질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 각에 슬퍼졌습니다. 하지만 그럴 틈도 없이 2팀은 먼저 떠났습니다.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깐 언젠가 다시 만나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괜찮아졌습니다. 방재체험은 제게 조금 색다른 체험이었습니다. 소화기 사용은 많이 교육받았 던 것이지만, 지진과 화재 시 연기체험은 한국에서는 생소한 것이기 때문입니 - 35 -

다. 하지만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에 대비하여 이런 교육 센터까지 만들어 놓은 일본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야마나시 현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홈 스테이에 앞서서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말도 잘 안 통할 것이고, 문화도 다를 것이고, 예절도 다를 것이고... 다행히도 한국말을 좀 하실 줄 아는 현청 관계자 분의 집에서 묵게 되었습니다. 걱정했던 식사는 아주머니께서 일부러 저 희를 위해서 편하게 준비해주셨습니다. 또한 집에 오자마자 자신에게는 보물인 프라 모델을 꺼내놓는 초등학생 꼬마 아이도 너무 착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중학교 3학년인 여자아이였습니다. 저희는 처음에 사춘기인 중3 여학생을 생각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키가 작고 소아마비인 듯 걸음을 이상하게 걸었습니다. 처음에 보고 예상했던 것 보다 더 걱정이 앞서게 되었습 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를 보고 밝게 웃어주는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다행 이었습니다. 다음날은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이곳저곳 많이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낚시 터에 가서 낚시를 했는데, 낚시는 처음인 제게 아저씨께서 잘 알려주셔서 감사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잡은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생선을 싫어하는 저로서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유명한 목장을 갔습니다. 거기서 아이스크림도 먹고, 뛰어놀았습니다. 그리고 승마를 하는 곳에 가서 승마를 했습니다. 한국에 서도 시간을 내어 하기 힘든 일들을 홈스테이 가족과 함께 반나절 만에 다 한 것입니다. 전 그 체험이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만남과 헤어짐 은 공존하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길 것 같았던 홈스테이 일정은 그리 쉽게 끝나 고, 아저씨, 아주머니와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려는데, 저는 참고 싶어서 이를 세게 앙다물었습니다. 계속 앙다물었습니다. 다음 날, 또 하나 걱정되는 일정이 다가왔습니다. 일본 학교 방문.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쏟아지는 환호와 인사. 몸 둘 바를 모른다는 것이 이럴 때 쓰이는 것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본 학생들과 함께한 음악수업과 영 어수업. 먼저 제게 말을 걸며 친해지고 싶어 했던 남학생들도 떠오르고, 부끄러 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영어 수업 시간의 여학생 짝도 떠오릅니다. 그런 학 생들의 순수한 모습들이 아마 제가 가지고 있던 반일 감정을 가장 많이 앗아가 지 않았을까요. 점심 후에 벌어진 행사. 우리나라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장기가 멋지게 펼 - 36 -

쳐졌습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음악이 일본 학생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 고, 태권도를 배우며 경쟁심리 때문에 싫어했던 검도도 일본 학생들이 시범을 보여주니 멋지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살풀이춤이나 가 야금연주, 병창 같은 것들도 평소에는 자주 접하지 않은 것인데도 정말 훌륭하 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학교 방문 후, 바로 호텔에 돌아와서 소감을 발표하고, 단장 선생님의 말씀 도 들었습니다. 일본의 이러한 발전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 는 이야기였지만, 단장 선생님의 말씀 자체가 수긍이 가도록 설득력 있었습니 다.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듯이, 일본 사람들도 미국을 미워할 것이 분명한데도, 그들을 따르고 배워서 다시 재창조하는 일본인들의 자세도 충격이었지만, 더 큰 충격을 따로 있었습니다. 역사와 관련되어 일본의 발전에 대해 얘기해주신 단장 선생님께서는 수학 선생님이셨던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과계열 과목 선생님 이 지나쳤다고 미안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과목에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좋은 가 르침을 주기 위해 노력하신 모습에 적잖이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은 후지 산에 올랐습니다. 구름과 함께 뒹구는 산봉우리를 보고 감탄 하지 않는 사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보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장관이라고 생각하기도 했 습니다. 잼을 만든 곳도 좋았지만, 인형을 만들러 간 곳에서 인형을 다 만든 후에, 전 정말 좋은 체험을 했습니다. 화장실을 찾는데, 집에서 혼자 사시는 것처럼 보이는 할머니께서 저희에게 자신의 집 화장실을 쓰게 해 주셨습니다. 그것만으 로도 감사한데, 추운데 그냥 가지 말고 난로 불을 좀 쬐며 차를 마시라고 하셨 습니다. 어떻게 사양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오면서 너무 감사했고, 일본 사람들 모두 이렇게 인정이 많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이별의 날입니다. 통역 선생님들이나 기금 관계자 분들하고 헤 어지며,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공항에서는 그동안 정들어버린 친구들 과 헤어졌습니다. 슬픔도 한 가득이었지만, 행복도 한 가득이었습니다. 슬픈데 도 행복하다는 느낌이 기묘했습니다. 그렇게 제 일본 연수는 다 끝이 나버렸습니다. 하지만 친구들하고는 아직도 연락을 하며, 고마웠던 홈스테이 가족 분들에게는 선물을 보내려고 준비 중입니 - 37 -

다. 분명 제가 생각하는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 준 나라입니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증죄부증인' 이라는 말이 새삼 떠 올랐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도 고맙고 친절하고 충분히 따뜻했습니다. 오 히려 한국 사람들끼리는 느낄 수 없는 정의 통로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증죄부증인 을 통해 제가 내린 결론은 국가 간의 일로 인한 우리 민족의 상 처와 아픔은 분명 양국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주어야 할 문제이지만, 일본인들 을 미워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발전을, 그들의 자세를 높게 존 중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잘 모르는 고등학생이 느낀 감정이지만, 제 게 일본 사람들은 너무나도 고마운 존재였고, 멋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이렇게 동해 건너로 외쳐주고 싶습니다. 일본, 고마웠습니다! - 38 -

낯선 땅에서 찾은 여행 이상의 것 서 동 선 인천 정보산업 고등학교 이번 연수는 평범하기만 했던 내 일상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 다. 가까운 데 위치한 나라인 만큼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일본을 방문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만큼 부푼 가슴을 안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같이 연수를 받을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 많은 친구들 속에서 절대 뒤쳐지지 말자 라는 굳은 결심을 했다. 문화의 나라 일본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이번 연수를 통해 꼭 식견을 넓히고 오자 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벅차오르는 가슴을 숨길 수가 없었다. 공항을 나설 때 우리 방일 연수단을 환영하는 외무성 측 직 원들의 환호는 우리가 일본에 있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연수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는데, 첫 번째로 방문한 아사쿠사에서 수많은 상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 일본 특유의 진풍 경과 큰 신사를 보고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가 있었다. 환영중식회 때 유리창 너머로 보이던 일본 국회의사당과 새 총리로 부임하신 하토야마 총리의 거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저 멋질 뿐이었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겐 큰 자 극이기도 했다. 환영중식회가 끝난 후 오다이바에 위치한 동경미래과학관에 갔 다. 그 곳에서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여러 기술소재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일 본의 첨단기술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과학관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동경항 구관에서는 땅을 매립하여 만든 신항에 관한 설명을 들었는데, 생소하기만 한 소재라 처음에는 호기심만으로 설명에 집중했다. 그런데 일본의 유명한 항구를 다 합쳐도 우리나라의 부산항만큼은 못 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를 시작한지 3일째 되던 날은 제일 기대했던 홈스테이가 있던 날이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짐을 챙겨 숙소를 떠나면서 곧 만나게 될 호스트 가족 분들과 야마나시현의 모습, 그분들의 문화를 꼭 깊이 새겨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방재 교육체험 후 기차를 타러 가는 길에 역 근처에서 중국식 마파두부와 고기를 먹 - 39 -

었는데, 일본에서 먹는 중국음식이라니...정말 색다른 경험이어서 아직도 생각 이 난다. 식사 후에 일본의 자연스러운 문화이기도 해서 한 번쯤 보고 싶었던 길거리 밴드공연을 봤는데 영화 속에서만 보았던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 어서 정말이지 신기했다. 기차를 타고 야마나시현으로 이동하는 길에 기차 창밖 으로 보았던 일본의 전원적인 풍경 또한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대면식 장소에 도착해서 만난 호스트 가족 분들은 아주 인상이 좋으신 분들 이셨다. 함께 홈스테이를 하게 된 선익이와 나는 그 분들이 짜 오신 일정대로 먼저 다케다신겐 장군 신사를 들렀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서야 집에 도착했는 데, 그분들은 일본 전통가옥이 아닌 아주 크고 멋진 2층 단독 주택에 살고 계셨 다. 집에는 우에노상 딸 분 가족들도 계셨는데, 어린 우에노상의 손자 손녀는 너무 귀여웠다. 짐을 풀고 나서 온천에 갔는데 일본의 자랑이기도 한 온천에 왔 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일본을 반을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손님을 잘 배려해 준다고 들었는데 그 분들은 정말로 작은 것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배 려해주셨다. 다음날은 난생 처음으로 와인제조공장에 갔다. 그 곳 포도밭에서 여러 포도를 맛보았는데 정말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오후에는 집에서 바비큐 파 티를 했는데 그 때 먹었던 요리들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홈스테이를 끝마칠 때가 되어서 짐을 챙겨 나오는데 우에노상께서 짧은 시간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서 만든 앨범을 건네주셨다. 그 때 느꼈던 일본사람 특유의 세심 함에 감격해서 눈물이 날 뻔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분들과 함께했던 시간 들을 평생 추억으로 남기리라 생각했다. 일본의 문화를 따뜻하게 전해주신 그분 들께 정말 감사하다. 연수 5일째 되던 날은 학교방문이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오오츠키 고등학교 는 아담한 크기의 학교였다. 간단한 환영회 후에 일본 학생들과 체육수업, 서예 수업을 들었는데 그 곳 학생들은 체육수업으로 골프를 배우고 있었다. 필드가 없는 운동장에서 골프수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는데 정말 효율적인 방식 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점심심사 후 학교 강당에서 교류회를 가졌는데, 일본학생들이 보여 준 검도와 소림무술은 정말 멋졌다. 거 기에 우리 학생들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깊은 농현소리, 판소리와 살풀이춤의 흥 겨움이 어우러져 강당은 더욱 멋진 화합의 장이 되었다. 프로그램 마지막 날은 일본인의 긍지라 불리는 후지산에 올랐다. 5부 능선에 올라서서 본 후지산 전경은 지상낙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멋졌다. 하산 후에는 - 40 -

손수 잼도 만들고, 전통마을 방문도 했는데 일본 정통가옥과 전통놀이를 즐겨서 정말 뜻 깊은 시간이었다. 저녁식사 후에 단별회의를 가지고 나서 친구들이 보 고 느낀 것을 발표하는 것을 들으면서는 어딘지 모르게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날. 귀국할 준비를 하는데 일본을 떠난다는 게 정말 아쉬웠다. 하지 만 내 스스로 이번 연수를 통해 얻어가는 것이 정말 많았기 때문에 만족하자고 마음먹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가 일본 문화를 뼛 속 깊이 알아서 돌아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거대 한 일본의 문화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정이라든가, 아름다움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첫 날 일본을 향하는 비행기에서 식견을 넓히고 오자고 다짐했던 나는 단순 히 안목을 넓히는 것 보다 더 값진 것들을 얻어서 돌아왔다. 더불어서, 몇 십 년. 적어도 몇 년 후에는 학생의 신분이 아닌 성공한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짧은 추억이 깃든 일본을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연수를 통해 여행 이상의 추억을 얻어왔노라고 말할 수 있다. - 41 -

길을 여는 여행 남 승 우 대전 전민고등학교 일본 방문 연수단으로 뽑히고 몇 달을 기다려왔던 6박 7일간의 일본연수가 드디어 끝났다. 나의 개인적인 이번 연수의 주목적은 아무런 꾸밈도 없는 일본 생활을 체험해 봄으로써, 직접 체험한 일본과 그동안 내가 책이나 방송을 통해 알고 있던 일본 에 대한 지식을 비교하여 일본에 대해 보다 정확히 알고, 내가 그동안 갈고 닦 은 일본어 실력이 본고장에서 통하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 그리고 일본 대학으 로 유학을 가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지는 기회를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내가 목표로 한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주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인 친구를 새롭게 얻었고 외무성과 같은 공공기관을 방문함으로써 자 긍심을 얻었으며 여러 가지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들을 너무나 많이 얻게 되어 이 글에 모두를 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은 앞으로 내가 가게 될 길을 하나하나씩 열어주는 열쇠들이 될 것이다. 9월 24일 목요일. 새벽에 일어나 대전에서 버스를 타고 인천 공항에 도착했 을 때는 서로 초면인 사람들이라 무척 서먹하고 어색하여 이런 상황에서 무사 히, 그리고 의미 있게 일본연수를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 하지 만 그런 걱정도 금방 사라지게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엔 벌써 몇몇 친구들 을 사귀게 되었고, 하룻밤 같은 방에서 자고나서는 스스럼없는 친구사이가 되었 다. 첫 번째 공식일정은 외무성 방문이었다. 한국 고등학생을 대표해 한일 문화 교류를 여는 자격으로 외무성을 방문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 마음가짐 과 행동 하나하나에 많은 신경이 쓰였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다면 더욱 적 극적으로 참여하고 싶다. 둘째 날은 아사쿠사와 일본과학미래관을 방문하였다. 아사쿠사에 갔을 때 제 비뽑기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아사쿠사에서는 좋은 것이 나오기 어렵다고 하셨 - 42 -

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 경우 뽑자마자 대길( 大 吉 )이 나왔고, 나는 이 덕분에 이번 여행에서는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일본과학미래관 에서는 우리나라의 국립중앙과학관보다 많은 것이 전시되어 있는 것 같았다. 일 본과학미래관에서 직접 로봇에 탑승하는 것과 같은 시뮬레이션체험과 인터넷 메 시지 체험은 아주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앞으로 이런 과학관 같은 것이 더욱 많 이 생겼으면 좋겠다. 셋째 날에는 1단과 2단이 서로 갈라져 서로 다른 일정을 가야했기 때문에 며 칠 동안 정들었던 룸메이트들과 헤어져 새로운 룸메이트와 방을 써야 했다. 처 음엔 아쉬운 감도 있었지만 그런 기회로 인해 더 많은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친 숙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는 먼저 방재교육을 체험한 후 와카야마 성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에는 옛날 무기와 갑옷 등의 유물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런 것 보다는 그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자연 풍경에 더욱 눈이 갔다. 고소공포증 이 있어 밖의 테라스까지는 나가지 못했지만 한손으로 기둥을 꼭 잡고 열심히 사진촬영을 하였다. 마침 해가 지고 있어 하늘에는 아주 약간 붉은빛이 감돌기 시작했는데, 태양을 등지고 보니 정말 그 어디에서도 다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져 일본의 웅장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연수 프로그램이 하루하루 지나감에 따라 단원들과는 더욱 가까워졌다. 참여 한 학생들 모두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어 며칠 뒤면 헤어진다는 생각에 하루하 루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넷째 날에는 모든 단원들이 정해진 장소에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다. 실제 로 일본인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그들의 생활문화를 접하고 일본인과 직접 의 사소통한다는 점에서 홈스테이가 무척 기대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일본어 가 잘 통할지, 내 식성이나 생활습관과 사고방식이 호스트 가족과 잘 맞지 않으 면 어쩌나 하는 등의 걱정도 많이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집은 농촌에 사시는 오카 테츠오 씨의 댁이었다. 직업은 여쭤보지 않아 모르지만 한국의 가정과 별반 다르지 않은 행복한 대가족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오카 테츠오씨 부부 는 60대이고 그 부모님들은 80대 후반이셨는데 아저씨 부부는 우리나라의 40대 초반처럼, 그 부모님들은 60대처럼 아주 건강해, 평소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건강한 생활을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그 분들은 아주 친절하게 모든 것 하 - 43 -

나하나를 배려해 주셨다. 같이 뒷산을 돌아보기도 하고 TV의 퀴즈프로그램을 보 며 서로 퀴즈를 맞히면서 아주 좋은 하룻밤을 보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해 알려드리고 일본에 대해서도 평소 궁금해 하던 것을 좀 더 여쭤 보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후회가 된다. 특히 내가 편식 이 심해 음식에 관하여 많은 걱정을 끼쳐드린 것 같아 정말 죄송하다. 다행인 것은 일본어로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과 이를 통해 일본어 실력에 한 충 더 자심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아저씨와 이메일로 연 락하고 있는데 나중에 일본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한 번 더 찾아뵙고 싶다. 처 음에는 학생들 중 나만 시골 집으로 배정받아 좀 아쉽기도 했는데 오히려 시골 의 일본 정통 가정을 체험 할 수 있고 자기관리의 중요성과 배려의 미덕을 알려 준 최고의 홈스테이였다고 생각된다.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인연을 만들게 되어 정말 감사한다. 다섯 번째 날은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일본 학생들과 함께 직접 수업에 참여 하는 학교 생활체험의 날이었다. 이 일정은 내가 가장 기대하던 것이었다. 내가 그토록 궁금하던 일본의 교육현장을 통해 일본 학생들의 수업방식 및 수업 내용 을 알 수 있고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으며 일본어로 수업을 들어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간 곳은 세이린 고등학교였다. 먼저 강당에 들어가 우리 연수단의 우리문화 소개와 세이린 학교의 취주악부의 연주를 들었다. 우리 연수단의 학생들도 잘 했지만, 세이린 학교의 취주악부는 내가 생각하기에 이미 하나의 프로 악단처럼 보였다. 그 후 내가 하루 종일 지내게 될 반을 배정받고 교실로 들어갈 때 내 심장은 엄청나게 힘차고 빨리 고동쳤다. 내가 이곳에 확실 히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학교생활 체험을 통해 일본의 학생들과 하루를 보내면서 그동안 내가 가진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많은 상식이 잘못된 상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규율도 그리 엄하지 않았고 폐쇄적이지도 않았다.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가 거기라고 말하는 것처럼 일본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과 똑같이 웃고 떠들며, 장난치면서 활기차게 학교 생활을 즐기는 듯했 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나의 내성적인 성격 탓에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 단 지 한명하고만 이메일주소를 교환한 것이다. 어쨌거나 일본 학생들과 같이 수업 을 한 것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 44 -

드디어 마지막 날. 일본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일본을 뒤로 한 채 친구, 선생님들과 헤어지게 되어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나의 마음에는 이것이 작별이 아닌 또 하나의 시작이고, 또 다른 길을 여는 시작점이라고 믿는다. 나는 일본 을 떠나면서 새로 알게 된 일본을 내 마음에 집어넣고 1년 반 후 다시 올 다짐 을 확실히 하였다. 이 글을 통해 국립국제교육원의 한일 학생연수 프로그램 담당자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이와 같은 한일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를 더 알아가고 가슴 벅찬 경험을 하여 미래를 설계하는 더 많은 꿈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7일간의 이번 일본 방문은 분명 내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 었다고 확신합니다. - 45 -

배울 것이 많았던 소중한 경험, 일본연수 김 지 훈 안 산 동 산 고 등 학 교 이번 일본 연수는 처음 신청할 때부터 왠지 뽑히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에서 살다온 친구에게 일본어 지도도 받고 연수 중 갈 곳을 미리 조사도하며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 그래서 떨리거나 긴장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예비 소집일 부터, 몇 년 전 미국에 갔을 때보다 더 욱 더 떨리고 긴장되었다. 그런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간 일본. 그곳 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연수에 가기 전에 일본에 가서 보고 오겠다고 마음먹고 기대한 것은 크게 네 가지 정도였다. 먼저, 나는 크리스천이기에 일본의 종교에 대해 알고 싶었고 종 교에 대해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 태도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꿈이 정치와 관련이 있기에 일본의 교육정책 등 정책적인 부분을 알아보고 싶었다. 또, 평소 일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대표적인 것이 일본인들은 매우 조용 하다는 생각)이 사실인지 알고 싶었고 마지막으로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일본에 가서 이 네 가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일본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이 잘못 됐다는 사실이었다. 일본인들은 매우 조용하고 사교성이 적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들어 왔기에 처음엔 편견을 가지고 연수에 임했는데 연수를 하면서, 특히 홈스테이와 학교방 문을 통해 그러한 편견들을 깰 수 있었다. 호스트 패밀리 중에는 조용한 분도 있었지만 유쾌하고 재밌는 분도 있었고 홈스테이를 했던 날 일본의 쇼핑몰에 가 서 함께 장을 봤는데 한국의 시장처럼 생기 있는 분위기였다. 세이린 학교를 방 문했을 땐 우리나라 학생들과 같이 활기차고 시끄러운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선 확실히 조용한 분위기였다. 일본인들이 어느 곳 에서도 조용하다는 것은 편견이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남 을 배려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종교의식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이 세상에 수 - 46 -

많은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말을 통역가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정말 방문한 곳마다 크건 작건 신사가 있었다. 종교개념 또한 불분명해 결혼은 교회에서 하 고 장례는 불교식으로 치르는 사람이 많다고 하셨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일본인들은 어떤 종교의 신자라는 분명한 경계가 없는 것 같 았다. 일본인에게 종교는 신앙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문화로서 일상생활에 자리 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연수 중 일본인에 대한 편견이나 종교의식에 대해서 확인한 것들도 소중한 경험이었으나 일본의 시민의식과 정책적인 부분을 확인하면서 더 많은 것을 느 끼고 배울 수 있었다. 연수 중 임해부도심을 방문했는데 그곳은 원래 얕은 바다 였고 교육, 인구분산 등의 목적을 갖고 간척사업을 해서 만든 매립지라고 했다. 그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도쿄 항구관에 방문했을 때 넓은 면적을 간척했는데 환 경단체의 반발이 없었냐는 질문을 했었다. 담당자 분이 엄격하게 환경 법률을 지켰기에 반발은 없었다고 대답해주셨다. 환경문제가 대두되는 현대사회에서 반 발 없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선 이처럼 엄격한 법률 내에서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임해부도심을 건설하는 과정 뿐 아니라 임해부도심의 시설에서도 배운 점이 있다. 임해부도심을 만들 때 모 든 건물들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도록 내진 설계가 되어있고 가스관, 수도 등 라이프라인을 지진이 나도 끊이지 않도록 안전하게 배치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쓰레기 처리 시설 등 사소한 부분도 사람들이 살기 편리하도록 신경을 써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 시설들을 보면서 임해부도심의 편리한 교통, 좋은 위치 뿐 아니라 우수한 과학기술을 이용해 높인 안전성, 편리성이 그곳의 가치를 높 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임해부도심 건설 목적에 맞게 기업들이 활동하기 좋도록 위치, 편리성, 안전성 등을 고려하고 시설 하나 하나를 설치한 것은 우 리나라가 배워야 할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상 생활가운데 녹아있는 일본인들의 의식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연수기간 중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일 본의 거리엔 정말 쓰레기가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도쿄뿐 아니라 와카야 마 같이 작은 도시의 거리에도 쓰레기가 없다는 것이 인상 깊었는데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선 그런 의식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일본엔 우리나라에 비해 횡단보도가 많았는데 그 이유가 노약자에게 불편 을 덜어주기 위해서라고 한 것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런 작 - 47 -

은 부분부터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었다. 일본연수기간 중 많은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배워야 될 점을 보고 느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일본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다. 홈스테이를 하면서 나와 나이가 비슷한 히로시와 한국과 일본의 차 이점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그 가운데 공통 점을 발견하고 가까워질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저 녁에 알게 된 아키라라는 형도 유쾌하고 활발해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또 호스트 패밀리의 분위기가 우리 집의 분위기와 비슷했기에 친근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학교방문을 했을 땐 내가 일본어를 잘 못해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까봐 걱정했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함께 지내다보니 금세 많은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이렇게 홈스테이와 학교방문을 통해 일본인과 사람 대 사람 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일본인을 외국인이 아닌 똑같은 사람 으로서 만날 수 있었던 이 경험이야 말로 일본을 가장 제대로 경험하고 연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친구 들과 마음으로 소통할 때, 그들도 나와 같다는 것을 느낄 때 사라지게 되었으며 일본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앞으로의 관계에서도 조금 더 열린 마 음으로, 나와 똑같은 사람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 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이번 일본 연수. 난 이번 연수를 통해 내가 기대 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배우고 얻어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들과의 교제를 통해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일본에 방문하고 싶 을 정도로 일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 마음으로 소통했던 소중 한 추억도 얻었고 일본의 문화, 산업, 시민의식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일본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일본에 대한 잘못된 인 식이 많단 것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연수는 나의 생각과 경험 넓힐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 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