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생활 논단 전자 문서 시대의 띄어쓰기 신경구 전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1. 머리말 요즈음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는 듯하다. 사람들이 바빠지는 이유로는 개인적인 이유와 사회적인 이유가 있다. 개인적인 이유로는 게으름을 들 수 있다. 시간이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일을 미루다가 막판에 바빠진다. 컴 퓨터 게임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 우리를 바쁘게도 한다. 적당한 선 에서 마무리해야 하는 일에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들이는 완벽주의도 우 리를 바쁘게 한다. 아니요. 라고 거절을 못 하는 것도 바빠지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시작 단계에서 면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해서 잘못된 일을 바로잡느라 바쁜 경우도 많이 있다. 사람이 바쁘게 되는 데에는 사회적인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출현으로 정보 처리의 효율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정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오늘날 학생들이 해내는 숙제의 양은 20 년 전 학생들의 숙제에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양이다. 교통과 통신 수단이 발달하니까, 사람 사이에 더 많은 교통이 이뤄져서 더욱 바빠진다. 모임도 국어 생활 논단 149
많고 전화도 많다. 몸은 1,000년 전보다 진화한 것이 없는데, 처리할 일과 정보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영어가 필요 없는 분야에서까지도 취 업 시험에서 영어 성적을 요구하니, 우리를 필요 이상으로 바빠지게 하는 요인이다. 문자 생활도 우리를 바빠지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영어권 나라 사 람들은 자기 말로 글을 쓰면서도 사전을 보느라 바쁘고, 중국인들은 글자 하나를 치면서도 발음을 쳐서 나타난 수많은 한자 가운데서 글자를 고르 느라 바쁘다. 문자의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편리한 한글을 쓴다고 자랑하는 우리들에게도 불합리하고 불편한 문 자 사용의 사례가 많다. 이러한 불합리성은 시간 낭비를 촉진하고, 이러한 낭비는 우리 일상생활을 더 바쁘게 한다. 이 글에서는 전자 시대에 걸맞 지 않는 띄어쓰기를 중심으로 우리 문자생활의 비효율성을 따져 본다. 2. 본론 2.1. 띄어쓰기 다른 나라 말과 달리 우리말에서는 띄어쓰기가 매우 중요하다. 한글이 소리글자이면서도 닿소리와 홀소리를 모아 음절로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쓰기에는 맞춤법과 아울러 띄어쓰기 원칙이 중요하고, 한글 맞춤법 에는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 라는 규정을 두고 있 다. 국어원에서 글을 부탁하면서 보낸 공문의 일부를 다음 보기 (1)에 옮 겨 놓았다. 여기에서 소속은 한 낱말인데도 띄어쓰기를 했는데, 이러한 양 식은 먼저 우리말 띄어쓰기 원칙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한글 맞춤법에는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 한 낱말의 음절 사이를 띄어 써도 된다 라는 예 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150 새국어생활 제17권 제1호(2007년 봄)
(1) 양식 1-1 공개 대상 글이 실린 곳: 공개 대상 글의 제목: 소속: 이름: 주민등록번호: 2006년 10월 16일 (서명) 이와 같은 한글 양식의 두 번째 문제는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많은 글 자가 있다는 점이다. 위 양식에서는 소속, 주민등록번호 와 이름 이라 는 세 낱말의 넓이를 맞추기 위해서 16개의 빈칸을 남용하고 있다. 이렇 게 필요 없는 띄어쓰기와 들여쓰기를 없애면 타자해야 할 글자 수를 보기 (1)의 289자에서 보기 (2)의 65자로 그러니까 1/4로 줄일 수 있다. (2) 양식 1-2 공개 대상 글이 실린 곳 : 공개 대상 글의 제목 : 2006년 10월 16일 소속: 주민등록번호: 이름: (서명) 공간 배열을 고려하는 데에 들인 시간까지를 계산에 넣는다면 보기 (2) 에 들어간 시간은 보기 (1)을 만드는 데에 들어간 시간의 1/5 이하로 줄어 들 것이다. 혹시 글자 숫자와 멋을 고려한다면 보기 (3)처럼 신상 정보의 순서를 조정하고, 글자 정보와 개인 정보 사이에 빈 줄을 하나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국어 생활 논단 151
(3) 양식 1-3 공개 대상 글이 실린 곳 : 공개 대상 글의 제목 : 2006년 10월 16일 소 속 : 주민등록번호 : 이 름 : (서명) 이렇게 잘못된 띄어쓰기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서 편집기인 글 의 문서마당 에 포함된 모든 공문서에서 똑같은 사례가 발견되는데, 이는 문서의 효용보다는 멋있게 보이게 하려는 전통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 다. 아래 보기 (4)에서 행정기관명과 발신명의는 띄어 쓸 수 없는 낱말임 에도 행정기관은 낱말의 음절 숫자가 5개이기 때문에 한 칸씩을 띄어 썼 고, 발신명의는 음절 숫자가 4개이기 때문에 낱말 사이를 더 띄어 쓴 것 으로 보인다. (4) 전자 기안문 원안 행 정 기 관 명 수신자 ( ) (경유) 제목 본문 발 신 명 의 기안자(직위/직급) 서명 협조자(직위/직급) 서명 검토자(직위/직급) 서명 결재권자 (직위/직급) 서명 시행 처리과명-일련번호 (시행일자) 접수 처리과명-일련번호 (접수일자) 우 주 소 / 홈페이지 주소 전화 ( ) 전송 ( ) / 공무원의 공식 전자우편주소 / 공개구분 152 새국어생활 제17권 제1호(2007년 봄)
세 번째 문제는 보기 (4)의 문서가 낱말 찾기를 어렵게 또는 불가능하 게 한다는 점이다. 위 전자 문서에 나타날 발신자 이름을 국립국어원장이 라고 할 때, 이는 다음 (5라)와 같이 표기될 것이다. (5) 가. 국립국어원장 나. 국 립 국 어 원 장 다. 국 립 국 어 원 장 라. 국 립 국 어 원 장 국립국어원장이라는 낱말이 들어 있는 문서를 인터넷이나 컴퓨터 안에 든 수천 개의 문서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찾기를 실행했을 때, 우리는 네 번째 시도에서 겨우 국립국어원장 찾기에 성공했을 것이고, 문서의 숫자 가 많을 경우, 엄청난 시간을 낭비했을 것이다. 즉 이렇게 띄어쓰기 원칙 을 지키지 않는 문서는 만드는 시간뿐 아니라 전자 정보 시대에 정보 찾 기의 효율을 크게 떨어뜨리는 관행이다. 위와 같은 문서를 기계로 읽어야 하는 경우 그 효율은 거의 0에 가까워질 것이다. 네 번째, 보기 (4)는 권위주의가 크게 배어 있는 문서로 행정 기관 이름 과 발신자 이름을 크게 그리고 굵게 처리되어 있다. 문서에서 기관 이름 과 발신자 이름은 당연한 정보이므로 크게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당연한 정보를 크고 굵게 처리하는 것은 문서를 만든 사람이나 기관 이름을 독자 에게 강요하는 행위이며, 독자의 정보 이해를 방해하는 행위이다. 문서를 만든 이는 중요한 정보를 제목과 본문에 보기 쉽게 담아 두고, 이를 독자 가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띄어쓰기 규정을 지키고 문자 사용 의 효율을 높이면서 내용 이해를 돕도록, 보기 (4)의 전자 기안문을 고치 면 보기 (6)와 같이 될 것이다. 국어 생활 논단 153
(6) 전자 기안문 개정 수신자: (경유): 제목: 행정기관 이름 본문: 발신자 직책 이름 기안자(직위/직급) 서명 검토자(직위/직급) 서명 결재권자 (직위/직급) 서명 협조자(직위/직급) 서명 시행 처리과명-일련번호 (시행일자) 접수 처리과명-일련번호 (접수일자) 우 주 소 홈페이지: 전화 ( ) 전송 ( ) 전자우편 (공개가/불가): 2.2. 빈 줄 넣기 다음 보기 (7)의 문서 역시 글 의 문서마당 에 포함된 각서 양식으 로, 비효율성의 본보기이다. 아래 보기에서는 줄 높이를 절반으로 줄였으 나, 실제 양식에서는 줄 높이를 일반 한글 문서의 두 배로 하고, 줄 사이 에 빈 줄을 넣어서 글자들이 A4용지에 꽉 차게 했다. (7) 각서 1 각 서 소 속 : 성 명 : 154 새국어생활 제17권 제1호(2007년 봄)
<빈 줄 2개> 위 본인은 회사 소유(임차) 사택(합숙소)에 입주함에..., 만약 위 사항을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회사의 여하한 조치도 감수하겠습니다. <빈 줄 4개> 2007년 3월 15일 성 명 : 귀 하 보기 (7)의 첫 번째 문제는 정보가 넓게 퍼져 있어서 정보가 한눈에 들 어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가 문서의 정보를 이해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이 들게 된다. 이 문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즉 감수하겠습니다. 라는 문장 뒤에 위의 내용을 무효로 만드는 조건문 이 끼어들어서 법적인 분쟁을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세 번째 문 제는 콜론(:) 앞에 필요 없는 빈칸이 있다는 점이다. 문장 부호는 단지 부 호이기 때문에, 다음 보기 (8)에서처럼 낱말의 뒤에 따라 붙이거나 앞뒤에 붙여 써야 한다. (8) 문장 부호의 자리 (가) 뒤에 붙임: 아침을 먹고 나서, 모두들 차를 마시기로 했다. 비철금속: 알루미늄, 니켈, 아연, 동 등 (나) 양쪽에 붙임: 내일 일찍 출근해요. 다음 주 목요일(17일)에 만날 예정 줄 높이를 300m에서 160m로 줄이고 필요 없는 빈칸을 없애면, 보기 (7)의 문서는 보기 (9)와 같이 바뀐다. 보기 (7)을 만드는 데에 입력된 글 자 숫자가 모두 292이었으나, 보기 (9) 문서에서는 글자 숫자가 111에 지 국어 생활 논단 155
나지 않는다. 보기 (9)는 종이 한 장으로 여러 장의 각서를 만들 수도 있 어서 시간뿐 아니라 자원을 아끼는 방법이기도 하다. (9) 각서 2 각서 소속: 성명: 위 본인은 회사 소유(임차) 사택(합숙소)에 입주함에..., 만약 위 사항을 이행 하지 아니할 때에는 회사의 여하한 조치도 감수하겠습니다. 2007년 3월 15일 이름: 귀하 각서 2보다 각서 1이 보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러나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보기에 좋음 의 기준은 실용과 깊은 관계 가 있다. 각서 2가 정보의 생산 및 처리 과정에서 효율이 높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눈 역시 곧 각서 2가 보기에도 더 좋은 것으로 해석 하게 될 것이다. 2.3. 문장 부호를 헤프게 또는 잘못 씀 공문을 만들 때에, 수신자의 눈을 끌기 위해서 (10)에서처럼 붙임표(-) 를 자주 쓴다. 이 문장 부호 역시 비합리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우리를 바 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156 새국어생활 제17권 제1호(2007년 봄)
(10) 문장 부호를 헤프게 씀 - 다 음 - 1. 귀하의 글을... 국내외 이용자에게 무료로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2.... 다음은 2월 1일 어떤 중앙 일간지에 나온, 문장 부호를 잘못 쓴 보기이 다. 콜론(:)으로 사례를 늘어놓을 때 이를 구분하는 부호로 잘못 쓰는 일 이 잦다. 그러나 본래 콜론(:)은 이미 주어진 낱말의 구절의 바로 뒤에 붙 이고, 다음에 이에 대한 설명이나 추가 정보가 따라 온다는 사실을 예고 한다. 보기 (11)은 보기 (12)과 같이 고침이 옳다. 아래의 보기 (11)에서는 부호가 본문보다 과하게 눈에 띄어 문장 부호를 헤프게 쓴 사례이기도 하 다. (11) 문장 부호를 잘못 씀 대 수강신청 승인제도 : 지도교수와 상담 거쳐야 대 장바구니 시스템 : 미리 찜하고 시간차 신청 (12) 문장 부호를 고쳐 씀 대 수강신청 승인제도 : 지도교수와 상담 거쳐야 대 장바구니 시스템 : 미리 찜하고 시간차 신청 국어 생활 논단 157
3. 결론 한글은 합리성이 뛰어난 글자이지만, 우리의 글자 생활에는 허례허식과 권위주의에서 비롯된 비효율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 그래서 문서가 쓸데 없이 길어지는 일이 많다. 외국 책 한 권을 번역하고 나면 한글로는 쪽수 가 늘어나고, 결국은 책 두 권이 되어, 아까운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많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자 생활의 효율을 높여서 한글 정신을 생활화해야 할 것이다. 필요 없는 칸 과 줄을 없애고 간결한 문서를 만드는 버릇은 전자 문서 시대에 우리 생 활을 단순하게 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문자 생활은 일상생활의 효율을 높여 우리를 덜 바쁘게 만들 것이다. 158 새국어생활 제17권 제1호(2007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