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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안/ 원/ 유/ 유/ 출/ 사/ 고/ 현/ 장/ 의 / 료/ 지/ 원/ 태/ 안/ 원/ 유/ 유/ 출/ 사/ 고/ 현/ 장/ 의 / 료/ 지/ 원/ 태안은 태안 원유 유출 사고현장 중! 쟁 전 지금 우리 봉사팀은 나름대로 준비한다고 하였는데, 1회용 마스크와 파스가 모자라 더 나누어 주지 못해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많았다. 처음 의료봉사를 나갈 때의 경솔하고 무지했던 내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의료봉사라는 명목으로 이렇듯 편하게 의료약품을 나 구토, 두통, 감기 등 지역주민과 자원봉사자 몸살 앓아 누어 주고 있는데, 그것마저 다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고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파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잠시 얄팍한 생각이 들었지만 찬 바닷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방제작업을 하는 주민들과 자원봉사 자들의 모습, 그리고 실의에 차있는 그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하면서 너무도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바뀌어갔다. 글_ 김영화 홍성의료원 간호과 간호사 한평생을 그것만 바라보고 삶의 터전으로 일구어 놓았을 텐데 바닷가에 검게 드리워진 기름 띠 만큼이나 어민들의 마음도 시커멓 게 타버리지 않았을까? 해가지고, 밀물이 들어와 기름제거 작업을 마무리 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한 바가지라도 더 기름을 스치듯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은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소식. 제거하려는 모습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의료봉사를 나가라는 병원의 지시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 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만리포 해수욕장으 아직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태안에는 많이 있다. 완전한 회복을 하는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리지 모르지만, 온 국민 로 출발했었다. 그러나 경솔했던 나의 생각도 잠시. 이 하나 되어 태안 방제작업을 돕는다면 아름다운 태안의 바다가 우리에게 기적같이 돌아오지 않을까? 썰물로 바닷물이 빠진 해안은 검은 그림자를 드러내며 온통 기름범벅과 머리가 아플 정도로 코를 찌르는 악취로 뒤덮여 있었다. 여기저기 기름을 제거하기 위해 쌓여있는 화학물품, 빈 양동이, 바가지, 흡착포, 큰 굉음을 울리며 하늘에서 떠다니는 헬기들. 온 몸에 시커먼 기름을 두른 채 방제작업을 하는 어민들과 절박한 심정으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봉사자들의 모습들. 이곳 태안 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전쟁터와 다르다면 총, 칼 대신 양동이와 바가지를 들고 있는게 다를 뿐. 입이 백조가 된 미운 오리새끼 학암포 원유 유출 사고 현장을 다녀와서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현장은 심각하였고, 순간 가슴이 뭉클하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글_ 박정수 천안의료원 응급의학과 과장 우리 홍성의료원 의료지원팀은 사고 현장에 도착해 가지고간 의료약품과 세트들을 펼쳐놓을 자리를 찾아보았다. 하지만 작은 책 2007년 12월에 일어난 태안 원유 유출 사고 소식은 나에게는 스쳐지나가는 뉴스였을 뿐이고, 항상 그렇듯이 언론이 설레발치는 상하나 펼칠 장소를 마련하기도 어려울정도로 그곳은 온통 기름 범벅이었다. 걸로 생각했었다. 매일 언론에서는 현재 기름띠가 어디까지 퍼졌으며 최소한 어느 곳 까지는 막아야 한다고 보도하고 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구석에 자리를 마련하여 준비해간 응급의약품들을 풀어놓았다. 첫 날 홍성의료원 의료팀에 도움을 청해왔던 약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걱정하는 건 양식장이 아수라장이 됐으니 아! 회하고 해산물 값 많이 오르겠네!! 라는 어리 100여명의 사람들 대부분의 증상은 기름으로 인한 악취로 인한 구토와 두통. 또한 뼈 속을 찌르 석은 생각뿐이었다. 는 바닷바람으로 감기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원유 유출 사고가 장기화 되고, 자원 봉사자들이 줄지어 다녀갔다는 소식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면서 나도 자원봉 가끔은 휘발된 원유성분으로 인한 피부염과 알러지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사?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 때쯤, 병원(천안의료원) 관리팀으로부터 원유 유출 사고 현장으로 의료 봉사를 가야한다는 통보를 받 장시간의 힘든 방제작업으로 온몸이 뻐근하다며 허리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 았다. 빗자루 든 놈보고 마당 쓸라 한다. 라는 속담처럼 처음에는 왠지 명령처럼 들려 공중보건의사로 있는 나에게는 썩 달갑지 었다. 만은 않았다. 우리 천안의료원이 봉사를 나갈 곳은 학암포 해수욕장이었다. 학을 닮은 바위가 있다하여 학암포 라 불리는 이 해수욕장은 태안 magazi ne 우리함께 2008 vol.9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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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강/ 문/ 화/ 만/ 들/ 기/ 사/ 랑/ 과/ 봉/ 사/ 청주의료원 자원봉사자 허경윤 포천시민의 생명은 우리 손에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면 어김없이 정신과 병동을 찾아오는 허경윤 선생님. 예순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 기지 않을 만큼 늘 활기차고 고운 분이다. 청주의료원 정신과병동은 허 선생님이 오시기 전까지 프로그 램 준비에 여념이 없다. 환우들이 선생님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까지 흐뭇하게 한 다. 청주의료원에서 아름다운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허경윤 선생님의 이야기를 만나본다. 포천병원 CPR 아카데미 팀 / 글 사진_포천의료원 관리과 정용성 내 생애 가장 보람 있는 일 글_ 허경윤 포천병원에서는 포천시민의 생명은 우리 손에 있다는 의지아래 2006년부터 자체적으로 CPR(심폐소생술) 아카데미 팀 을 운영 중에 있으며, 2007년 12월 집계기준 620명을 수료하였다. CPR 아카데미 팀은 응급의학과 김상철 과장을 필두로 5명의 심폐소생술 실습강사, 행정 직 2명으로 구성을 하고 있다. 심폐소생술 교육은 1회 30~ 35명을 기준으로 3시간 교육을 실시하며, 1시간의 이론 교육과 2시간의 실습 교육이 이루어진다. 이론 교육은 심폐소생술의 중요성과 기초지식에 관한 교육을 통해 이론적인 지식을 갖도록 하였 으며, 심폐소생술 실행 방법과 심 정지 시간에 따른 환자의 위험성,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지 못해 사 망하는 사람들의 예와 심폐소생술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의 예를 통해 심폐소생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실습 교육은 우선 이론 교육을 마치고 실제 실습용 마네킹을 통해 직접 심폐소생술을 하는 기본적인 방 법을 익히고 난 후 실제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갖춘 간호사 앞에서 직접 교육받은 내용을 실행하여 ①의 식확인, ②구조요청, ③기도유지, ④호흡확인, ⑤구조호흡, ⑥흉부압박, ⑦최종회생 확인까지의 순서를 정확하게 실시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개별 테스트를 거쳐 합격자에 한해 수료증을 발급해 교육을 받 은 사람들에게 성취감까지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포천유관기관 및 초 중 고 대학교, 복지시설, 장애시설 등을 대상으로 응급처치의 지식과 기술을 제공 하고 있으며, 2006년도에 비해 교육수료자 약 67%가 향상되어 높은 관심과 응급처치의 필요성을 느 끼고 있다. CPR교육을 수료한 장애시설종사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는 교육이 생소하였으나, 차츰 좋아지는 나를 보니 뿌듯하고, 이런 교육은 우리 같은 장애 시설에 있는 종 사자에게는 꼭 필요했던 교육이다. ) 교육 포천의료원 CPR(심폐소생술 포천병원에게 감사를 드린다. 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포천의료원은 지역주 문의: 031-539-9472 민들의 응급상황 대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응급의학 김상철 과장을 중 포천의료원 관리과 심으로 앞으로도 계속적으로 CPR의 중요성을 홍보하고 확대할 계획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어머니께서는 오갈 곳 없는 사람을 집에 들이셨다. 이 시기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너도나도 모두 없이 사는 시절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밥을 얻으러 온 사람들을 한 번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온갖 보따리 장사는 우리 집이 여인숙인양 잠을 재워 주셨다. 어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곤 하였다. 1964년부터 2000년까지 보건소에서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퇴직 후 본격적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하였다. 2005년 1월 처음 청주의료원에서 봉사의뢰가 들어오자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며칠을 고민하며 천주교 신자로서의 내 사명감에 대해 수없이 생각하였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독백을 하며 청주의료원 사회복지사에게 전화를 한 것이 봉사의 시작이었다. 환우들과 함께 한 시간이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시간동안 내가 청주의료원 환우들에게 봉사를 받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려주었으니 말이다.티 없이 맑은 눈동자, 가식 없는 표정, 악수를 청하는 환우들의 모습에는 순수함이 있었다. 새해가 되자 예쁜 강아지가 담긴 카드를 선물로 건네주며 쑥스러워 하던 그 표정은 지금도 지워지질 않는다. 내 생애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청주의료원 환우들과의 만남의 시간이라고 하겠다. 난 여기서 사랑을 배우고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병동에 입원한 환우들의 치유를 기원한다. magazi ne 우리함께 2008 vol.9 1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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