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 訓 先 祖 崇 奉 선 조 숭 봉 宗 族 敦 睦 종 족 돈 목 後 孫 育 成 후 손 육 성 격월간 제72호 2015년 11월 2일 (월) 발행인:趙秀衡 편집인:趙炳夏 편집위원: 趙思善 趙連行 趙贊衡 趙承祿 趙善元 편집주간: 趙守衡 인쇄: 선명인쇄(주) 발행처:한양조씨대종회 03170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가길 28 광화문플래티넘 601호 전화 (02)738-4035~6 팩스 (02)738-4050 http://www.hanyangcho.net E-mail : hancho-news@hanmail.net 총관공 이하 4세위 선조님 을미년 단향제 봉행 10월 1일 파주시 월롱에서, 150여 명의 후손들이 참례하여 선조님의 음덕을 기리고 종족돈목을 다짐 구 분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 관 집 례 좌집사 우집사 2세 총관공 秀衡 春熙 玉元 仁行 宰行 成煥 3세 부원수공 舜衡 貞元 碩鎬 基榮 南哲 成都 4세 시중공 成德 宣基 丞紀 成薰 5세 양렬공 連行 敏行 長善 成吉 睦泳 成根 誠祖 成煥 成桓 종익 명예회장 송덕비 건립 결의 1997년 1월 대종회 결성을 발의하여 동년 5 월 20일 한양 조씨대종 가 창 립된 후 15년 간 (1~4대, 6대) 대종회장 직을 수행하며 한양조씨대종회를 반석 위 에 올려놓은 종익(鍾益, 22세, 양경 공파) 명예회장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송덕비를 건립키로 5월 15일 6개종 총관공이하 4세위 선조님의 을 미년 단향제가 지난 10월 1일 우 천으로 인해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덕은재(德隱齋)에서 경건하 게 봉행되었다. 궂은 날씨에도 전 국 각지에서 참석한 150여명의 후손들은 재실 입실이 제한되어 외 부 천막 등에서 선조님의 음덕을 되새기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돈목 을 다졌다. 20여명의 청장년위원 들이 솔선하여 제례의 일정부분(축 관)을 도맡았고, 도기록 작성, 제례 준비 등 봉사활동을 펼쳤다. 수형(秀衡) 대종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4세위 선조님께서는 북한지 역에 영면하고 계시기 때문에 시제 를 봉행키 위한 종재가 별도로 없어 후손들의 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 다. 고 안타까워하며 임원회비, 종 파회장 및 운영위원 합동회의에서 발 의되어, 7월 30일 회장단회의에서 결의하였다. 종익 명예회장은 15년 간 대종회장 직을 수행하며 1999년 동명서원 보 수와 2012년 복원 신축, 2002년 4세위단 건립, 2003년 한양조씨 대동세보 발간, 2004년 대종회 사 무실 및 원룸 구입, 2008년 한양조 씨대종회 통합10년사 발간, 2008 년 대전뿌리공원 한양조씨 조형물 영 원한 빛 건립, 2010년 제6차 세계 조족간친대회 를 유치하여 개최하는 등 수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결과 한양조씨의 정통성을 확립 하였고 대내외에 위상을 드높였으며, 숭조정신을 고취시켜 35만 종인의 자긍심을 함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 종회의 자립기반 구축과 활발한 숭조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되었으며 후손 육성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종익 명예회장의 공적을 칭송하기 위한 종인의 뜻이 모아짐에 따라 대 종회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문안 작성, 위치 선정 등 세부계획을 수립하여 송덕비를 건립할 예정이다. 한양장학생 보구독성금, 발전성금 등을 적극적 으로 납부해 숭조사업을 활발히 펼 칠 수 있도록 주변 종인들을 독려하 고, 종족돈목에 힘쓰자고 하였다. 총관공(휘 暉, 2세)은 함경남도 덕원군 북성면 신안리에, 부원수 공(휘 良琪, 3세)은 함경남도 영흥 군 덕흥면 용천리에, 시중공(휘 暾, 4세)은 함경남도 안변군 신리 면 어지리에, 양렬공(휘 仁璧, 5 세)은 황해도 개성군 흥교면 사천 리와 배위 정화공주 할머니는 경 기도 장단군 진서면 전재리에 영 면하고 계신다. 4세위 단향제 성금 현감공파(가천재공파) 수건 300매 가천재공파종회 100,000원 회곡공파종회 100,000원 72호 주요 내용 총관공 이하 4세위 단향제 봉행 /1면 종익명예회장 송덕비 건립 결의 /1면 을미년 추향제 봉행 빛을 남긴 선조 의정궁주조씨 묘소 참배 조광조와 남곤 2015년 11월 일 한양조씨병참공파종회 /5면 자랑스런 한국인 1차연평해전의 주역 조성태 前 국방부장관 /5면 타문중 소개 / 진주강씨 /6면 한양칼럼 족보에 대한 나의 깨우침 친목모임 공지 전화 (02) 544-1377~9(한양조씨병참공파종회) E-mail : byongcham@hanmail.net naver band 앱을 설치한 다음 밴드 검색창에서 <한양조씨 병참공파 장학친목회> 가입 /4면 성현의 일화와 깨달음 병참공파종회는 1975년 한양장학회를 설립한 이후 40년간 2,800여 명의 대학생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였습니다. 이 장학생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고 있음은 병참공 휘 련(憐) 할아버지의 크나큰 은덕입니다. 그러나 초기의 장학생이 회갑이 되도록 아직까지 서로 간의 친목을 위한 모임을 갖지 못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선조님의 유훈을 받들고 장학생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면서 상부상조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환류(還流)를 겸한 제2의 장학사업인 병참공파종회 한양장학생 친목모임 을 결성코자 합니다. 한양장학생 출신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연락 주시기 바라며, 이 <공지>를 보신 종친께서는 주위의 한양장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3면 /8면
2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한양조씨대종보 제72호 제7회 대전효문화뿌리축제에 대전종친회원 참여 문중 퍼레이드, 전시, 체험, 문화행사, 국제학술대회, 특별전 등 다양하게 열려 제7회 대전효문화뿌리축제가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대전시 중 구 침산동 뿌리공원 일원에서 나의 뿌리를 찾아서! 과거 현재 미래, 3대가 함께하는 효 한마당 이라는 주 제로 열려 성황을 이뤘다. 이번 축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 정한 2015 국가 유망축제 로 우리 문중은 태윤( 泰 允, 23세, 양경공파) 대전 충남종친회장 등 30여명이 대종회는 지난 9월 11일 시제 시 기를 맞아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였 다. 수형( 秀 衡 ) 대종회장이 주재한 운영위원회의에서 을미년 선조님 시제에 분과위원회 별로 철저하게 준비하여 만전을 기하고 종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하기로 하였다. 참여하여 전국 227개 문 중 3,600여명과 함께 문중퍼레이드 등에 참여 하여 한양문중을 널리 알 렸다. 효서당 효초리, 불 효자 옥살이, 문중스타경 연대회, 효골든벨, 효가족 캠프, 전통한복입어보기 등 100여개 전시 체 험 문화행사가 펼쳐졌으 며 특히 부모의 발을 씻어 드리는 가족사랑 효 세족식 은 부모의 은혜 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교감하는 시 간으로 축제의 의미를 더했다. 중국의 기업윤리와 일본의 효사상, 한국의 효복지문화 등 한중일 전문 가들이 토론한 2015 국제효학술대 회 와 한국족보박물관의 독립운동가 초상화 특별전 은 큰 호평을 받았다. 자료제공 泰 允 대전 충남종친회장 제3차 운영위원 을미년 시제 및 현안문제 논의 4세위단 관리위원장 선임장 수여, 운영위원에게 한국성씨연합회 위촉장 수여 회의에 앞서 6년간 대종 회 사무국장 직을 수행하 고 사임과 동시에 4세위단 관리위원장으로 선임된 정 인( 正 人, 26세, 양경공파) 에게 선임장을 수여 하고 기념품을 전달하였다. 또한 한국성씨총연합회 ( 秀 衡 대종회장), ( 宣 基 청장년위원장, 敏 行 장학미래 위원장, 大 行 대외협력위원장, 鎬 遠 감사), 전문위원( 春 熙 총무위원장, 炳 夏 문화홍보위원장), 자문위원( 秀 元 재정위원장, 成 德 前 4세위단관리위 원장)으로 위촉된 분과위원장에게 한 국성씨총연합회의 위촉장을 대종회 장이 대리 수여하였다. 조병화문학관 어린이 인문학교실 운영 9월 1일부터 5개월간, 책 읽기 철학하기 시 이해하기 일기 쓰기 기행문 쓰기 편지 쓰기 꿈 찾기 등 조병화문학관(관장 조진행, 25세, 양절공파)은 9월 1일 2016년 1월 31일까지 어린이를 위한 인문학교실 편운 아래서 인문학과 놀자 를 운영 하고 있다. 안성시와 인근지역 어린이를 대상으 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 고 인성교육을 통해 꿈을 키 워 지역사회를 이끌 인재로 키우자는 취지로 기획된 이 번 행사는 책 읽기, 철학하 기, 시 이해하기, 일기 쓰기, 기행문 쓰기, 편지 쓰기, 꿈 찾기 등을 주제로 어린이들 의 눈높이에 맞춰 체험 위주 학습으로 구성되었다. 또한 시 쓰기, 시 낭송, 편지 쓰기 등 분야별 전문가들의 특강도 준비 되어 있으며 미술관 등 예술 공연체 험을 통해 어린이들이 문화에 대한 교양과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기회 를 제공한다. 자료제공 조병화문학관 "도호부사 납신다" 청송 도호부사 행차 재연 30여명의 후손 초청되어 퍼레이드에 참여해 선조님 발자취 더듬어 10월 2일 경상북도 청송에서는 제22회 청송문화제 가 열렸다. 식 전행사로 조선시대 청송도호부사 행 대전종친회 정기총회 개최 회계결산 및 임원개선, 한양조씨 조형물 관리 등 숭조활동 다짐 대전종친회는 9월 12일 2015년 도 정기총회를 개최하여 회계결산과 추진사업을 논의하고 임기가 만료된 임원을 개선하였다. 現 태윤( 泰 允, 23세, 양경공파) 회 장을 만장일치로 재선출하는 등 임원 진을 구성하였다. 태윤 회장은 충남 과 대전지역 종인들이 많이 참여토록 홍보하고 선조님의 유훈을 되새겨 상 호 돈목하자. 고 하였다. 또한 대전뿌리공원 내 한양조씨 조 병참공(휘 련( 憐 ), 7세)파종회는 9월 19일 회의실에서 장학위원, 장학생 및 학부모 등 140여명이 참석한 가 운데 제81회 장학금을 수여하였다. 병참공 선조님의 유지를 받들어 제 정된 한양장학금은 154명에게 1억9 백만원, 현암출판사 창업주 현암( 玄 岩, 相 元, 23세) 선생이 법학도 1명 에게 수여하는 현암장학금 100만원, 우리나라 최초로 전자공학을 강의한 차 가 재현되었다. 조선 제12대(1490년 4월 ~1493년 윤5월) 청송 도호부사를 역임하신 휘 금( 嶔, 8세, 가천재공파) 선조님의 후손 영원( 永 元, 23세) 영천부사공파 종중 회장 등 30여명이 초청되어 퍼레이드에 참 석해 선조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자긍심을 고취시겼다. 자료제공 永 元 청송부사공파종중회장 형물 영원한 횃불 을 주기적으로 돌보 는 등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족보박 물관에서 찾고 있는 한양조씨족보 갑신보와 신묘보를 찾아 문화재로 지 정되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하였다. 회장 : 태윤 : 인선, 학윤 병양, 하청, 경철 : 태형, 성진 총무 : 근석 재무 : 영식 감사 : 덕행, 관신 : 영봉, 상철, 재국, 병주, 일수, 성국 자료제공 泰 允 대전 충남종친회장 병참공파종회 1억1천2백만원 장학금 수여 한양장학생 154명, 고은 현암장학생 각 1명 등 156명 후손에게 前 전북대학교 총장 고은 ( 高 隱, 成 萬, 26세) 박사가 전자공학도 1명에게 수여하 는 고은 장학금 200만 원 등 총156명에게 1억1천2 백만원을 수여하였다. 석호( 碩 鎬, 25세) 파종회 장은 한양인의 자긍심을 갖고 정진하여 한양문중과 대한민국을 빛내 달라 고 하였으며, 대종회 겸 전례위원장인 승록 ( 承 祿, 24세) 초빙강사는 자랑스런 한양인 이라는 제목으로 교양강연을 하였다. 장학생 대표로 건양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4학년 인선( 靷 先, 27 世 )양은 선조님의 은혜를 잊지 않 고 훌륭한 한양인이 되도록 노력하겠 다고 답사를 하였다. 자료제공 鎭 元 총무 한양조씨대종회 통합10년사 왜 읽어야 하나? 한양조씨대종회 통합10년사 를 읽으면 한양조씨의 역사를 공부하 여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고 선조님들의 유훈을 배워 명문거족으 로서 자부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가문의 필독도서로 후손에게 물 려줘야할 소장가치가 높은 한양조씨의 역사책입니다. 아직 소장하 지 않았거나 읽지 않은 종인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정가 : 2만원 연락처 : 02-738-4035~6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한양조씨대종보 제72호 3 충무공 절사 추향제 개국( 開 國 ) 3등공신으로 정사( 定 社 ) 좌명( 佐 命 ) 1등공신이시며, 우의정 등을 지내신 충무공 문정공 추향제 문간공 추향제 문간공(휘 絅, 13세, 양 경공파) 선조님의 추향제가 9월 15일(음 8, 3) 포천시 신평리 용연서원에서, 절사 가 10월 2일(음 9, 9) 포 천시 만세교리 영모재에서 지역유림과 후손 등 50여 명이 참례하여 높은 뜻을 되새겼다. (휘 英 茂, 5세) 선조님의 추향제가 10월 4일(추석 후 첫 일요일) 경기도 광 주시 퇴촌면 광동리 묘소 에서 40여명의 후손들에 의해 봉행되었다. 초헌관 義 東 아헌관 宣 基 종헌관 國 善 집례 容 南 축관 泰 景 전사 澤 浩, 光 善, 泰 鶴 문정공(휘 光 祖, 10 세, 양절공파) 선조님의 추 향제가 9월 13일(음 8월 中 丁 日 ) 용인 심곡서원과 10월 22일(음 9, 10) 도 봉구 도봉서원에서 봉행되 었다. 제례에는 지역유림과 후손 등 100여명이 참례하 여 높은 뜻을 되새겼다. 구 분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대축 집례 전사 전작 심곡서원 朴 漢 哲 趙 吉 生 趙 龍 熙 韓 宅 東 鄭 然 國 金 昌 植 朴 長 淳 도봉서원 李 東 秦 趙 淑 子 李 普 鎔 金 世 鍾 李 承 昌 李 甲 鉉 李 岡 東 구 분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대축 집례 전사 전작 용연서원 李 鍾 文 蔡 熙 榮 趙 玉 元 柳 金 烈 申 東 夏 李 甲 衡 李 一 柱 영모재 範 衡 輔 元 守 衡 得 衡 炳 夏 顯 葉 左 行 을미년 추향제 봉행 원훈순충분의좌명개국공 신( 元 勳 純 忠 奮 義 佐 命 開 國 功 臣 )에 책록되셨고 가정대부 ( 嘉 靖 大 夫 ) 중추부사( 中 樞 府 事 ) 한산부원군( 漢 山 府 院 君 ) 충정공(휘 仁 沃, 5세) 선조 님의 기제사가 10월 26일 (음 9, 14) 충북 음성군 금 왕읍 유촌리 충정사에 서 봉행되었다. 초헌관 준희 충정공 기제사 참판공 영양 입향 480주년행사 및 추향제 참판공(휘 源, 11세, 양경공파) 선 조님의 경상북도 영양( 英 陽 ) 입향 480주년을 맞이하여 선조님의 음 덕을 기리고 종의( 宗 誼 )를 다지는 행 사가 10월 24~25일 150여명의 후손들에 의해 종택( 思 義 精 舍 )과 선 조님의 묘역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24일에는 한영회( 漢 英 會, 회장 鎭 基, 24세)가 주관한 영양 입향 480 주년 기념식 이 열려 진기 한영회장과 일웅( 鎰 雄, 25세) 참판공 15대 종손 이 인사말을 하였고, 동원( 東 元, 27 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영양 입향 480주년을 맞으며, 준호( 峻 皓, 27 세) 박사는 참판공의 입향과 활동, 진 기 회장은 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세 계의 지향 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발표자들은 선조님께서 영양에 입 아헌관 성주 종헌관 중행 축관 정행 집례 성계 자료제공 重 賢 고창지회장 향하여 오늘의 명문거족으로 명 성을 떨치기까지 의 역경과 역사, 의병활동과 학덕 및 정신, 항일 운 동과 신교육에 대하여 발표하여 선조님들의 유훈 과 음덕을 되새 기고 문중의 앞날을 생각하는 시간 을 가졌다. 이어서 문중사를 논의하는 정기총회 를 개최하여 회계 및 사업결산을 하고 임기가 만료된 임원을 개선하였다. 25일은 참판공과 판윤공(휘 光 仁, 참판공의 장자) 추향제가 비리골 묘 소에서 성대하게 봉행되었다. 특히 참례자들은 추향제 봉행 후 입향조 선조님 빙부( 聘 父 )의 묘역에도 성묘 를 하였다. 개선된 임원 회장 東 宰 감사 錫 建, 滉 基 총무 永 煥 참판공 분정 초헌관 鎰 雄 아헌관 鎭 基 종헌관 東 軾 집례 恒 基 축관 基 完 4세위단관리위원장 정인( 正 人 ) 선임 대종회 前 사무국장 정인 ( 正 人, 26세, 양경공파) 부 회장이 9월 1일자로 4세위 단관리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선임장을 받았다. 성덕( 成 德, 4세위단관리위원장 인사 경 기 도 파주 시 월롱 면 덕은 리에 있 는 4세 위단은 휴전선 북쪽에 영면하고 계 시는 선조님의 제사를 받드 는 제단입니다. 26세, 양경공파) 前 4세위 단관리위원장은 2006년부 터 임무를 수행하여 오다가 이번에 양경공파종회장에 선 임되었다. 2002년에 설단하여 세 형( 世 衡 ), 성덕( 成 德 ) 위원장 이 잘 관리하여 왔는데 이번 에 중책을 맡게 되어 막중한 책임을 느낍니다. 종인 여러분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며 통일이 되 어 선조님 산소를 찾아 성 묘하는 날까지 미력이나마 선조님을 모시는 일에 소홀 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 습니다. 역사학자 동걸( 東 杰 ) 국민대 명예교수 중학생 때 진 빚 갚아 70년 전 갚지 못한 여관비 50만원과 사연이 담긴 편지를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사무소에 보내 동걸( 東 杰, 27세, 양경공 파, 사진 좌) 국민대 명예교 수가 지난 8월 25일 경상 북도 청송군 진보면사무소로 현금 50만원과 사연이 담긴 편지를 보낸 것이 화제가 되 고 있다. 서울양정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5년 9월 해방이 돼 고향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로 가던 중 진보의 한 여관에서 유 숙하였는데 돈이 없어 여관비를 지불하지 못 하였다. 마음의 빚인 여관비를 갚으려 했으나 여관 은 없어졌고 주인도 찾을 수 없어, 진보면사 무소로 당시 사연이 담긴 편지(사진 우)와 현 금을 보내 진보면 숙박업소를 위해 사용해 달 라 고 당부하였다. 진보면(면장 權 寧 相 )은 지 역사회를 훈훈하게 한 돈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해 일명 양심 거울 을 만들어 숙박업소 6 곳에 기증해 미담소재 로 활용키로 했다. 2004년에는 과수 원을 운영하던 아버지 (휘 萬 泳 )가 관리인에 게 인건비로 송아지 1 마리를 주겠다고 약속 했지만,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뜨자 아버지 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관리인 배도상씨를 찾았으나 배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고, 공무원 인 그의 아들을 찾아내 56년 전 아버지가 진 빚을 갚는다며 송아지 한 마리 값인 200만 원을 보내 약속을 대신 지킨바 있다.
4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한양조씨대종보 제72호 의정궁주조씨 묘소 참배 - 도봉구 방학동 연산군 묘역 절효공의 따님으로 태종의 후궁에 간택 되었으나 혼인도 못하고 외롭게 사신 대고모님 안이 의정궁주 조씨 묘 지난 8월 지인이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 보자고 하기에 버스를 타고 우 이동까지 가서 세종대왕 둘째 공주인 정의공주묘가 있는 왕실묘역길 을 걸 은 적이 있다. 연산군( 燕 山 君 ) 묘역을 지나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말로만 듣던 의정궁주조씨( 義 貞 宮 主 趙 氏 ) 묘 소가 그곳에 있었다. 왠지 죄를 지은 듯 가슴이 아려오는 것은 바로 이 분 이 절효공 선조님의 따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행과 함께 참배를 하고 집으로 돌아와 의정궁주 조씨와 연산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 니 더욱 마음이 아팠다. 2006년 7월에 개방된 연산군묘 역( 燕 山 君 墓 域 )에는 5기의 묘로 조성 되어 있다.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 군( 李 隆, 1476~1506, 재위 12년) 과 거창군부인신씨( 居 昌 郡 夫 人 愼 氏, 1476 1537)의 묘, 태종( 太 宗, 李 芳 遠, 1367~1422년)의 마지막 후 궁인 의정궁주조씨( 義 貞 宮 主 趙 氏 )의 묘, 연산군의 딸과 사위 구문경( 具 文 景 )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연산군은 유배지인 강화도 교동에 서 31세에 병사하여 그곳에 장사( 葬 事 )됐다가, 1512년(중종 7) 에 부인 폐비 신씨의 상언( 上 言 )으로 사위(구문경) 능성구 씨( 綾 城 具 氏 )의 선영인 양주 군 해등면 해촌( 現 도봉구 방 학동)에 이장하여 왕자군의 예우로 개장했다. 묘역은 곡 장( 曲 墻 )을 두르고, 상석( 上 石 ) 1쌍, 장명등( 長 明 燈 ) 1 쌍, 망주석( 望 柱 石 ) 1쌍, 향 로석( 香 爐 石 ) 1개, 문인석( 文 人 石 ) 2쌍, 비석 1쌍 등이 세워져 있 으나 병풍석, 난간석, 석양과 석호, 무인석 등은 없으며,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2호로 지정되었다. 묘역 맨 아래는 연산군의 딸과 사위 구문경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고 의정궁주조씨는 묘역 정 중앙에 고 려풍인 사각의 호석으로 되어 있으 며 義 貞 宮 主 趙 氏 라 새겨진 비석과 상석, 문인석이 갖춰져 있지만 쓸쓸 하고 외롭게 홀로 잠들어 계신다. 의정궁주는 한양조씨로 부친은 절 효공( 節 孝 公, 휘 賚, 충정공의 장자) 이시다. 언제 태종의 후궁이 되셨는 지 알 수 없으나 "태종"이 총애하던 화빈김씨가 친정아버지의 탐학으로 인해 사가로 내쳐진 후, 상왕 태종에 게 문후를 올리던 세종부부가 홀로 문안을 받는 태종이 안쓰러워 세종 의 비 소현황후 심씨가 절효공의 따 님을 후궁으로 간택하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예( 禮 )를 올리지 못하고 친정 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의정궁주를 가례색( 嘉 禮 色, 왕과 왕세자의 가례를 준비하던 벼슬아치) 이 뽑았기에 세종은 빈으로 봉하고 자 하였으나 이원( 李 原 )이 예를 올리 지 못하였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여 빈으로 봉하지 못하였다는 내용과 세종 28년(1446년 3월 27일)에 세종의 정비 소현왕후 심씨의 국상 을 당하자 상왕 태종의 후궁들에 대 한 상제에 대해 수강궁( 壽 康 宮 )의 명 빈( 明 嬪 ), 의빈( 懿 嬪 )과 소혜궁주( 昭 惠 宮 主 ), 의정궁주( 義 貞 宮 主 ), 신소궁 주( 愼 昭 宮 主 ), 옹주( 翁 主 )는 모두 기 년( 期 年 ) 복을 입었으며, 의정궁주가 단종 2년(1454년 갑술월 8일)에 졸( 卒 )하니 상장( 喪 葬 )에 대한 모든 일은 인수부( 仁 壽 府 )로 하여금 조판 ( 措 辦 )하게 하였다는 내용 등 다수가 조선실록에 나온다. 그렇다면 의정궁주는 왜 연산군의 가족묘역에 잠든 것일까? 그것은 그 곳이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 후손인 전주이씨 오산군파의 선산으 로 이곳이 임영대군 소유지였고 후 사가 없었던 태조 이성계의 마지막 후궁인 성빈원씨( 誠 嬪 元 氏 ) 와 태종 의 후궁 의정궁주조씨( 義 貞 宮 主 趙 氏 ) 의 봉제사를 임영대군이 맡았기 때문에 이곳에 안장되셨다. 그렇다면 연산군은 왜 이곳에 있 을까? 이 토지는 임영군 후손의 땅 이었으나 연산군이 사위인 능성구씨 문중에 하사한 것으로 사료되며 후 일 연산군은 사위에게 하사한 땅에 자신이 묻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 정으로 보아 "의정궁주조씨"의 묘가 먼저 이곳에 조성되었고, 의정궁주 묘를 중심으로 군( 君 )으로 강등되었 으나 한때는 왕으로 재위 하였던지 라 위쪽에 안장하고, 연산군의 딸과 사위가 아래쪽에 묻히게 되었을 것 이다. 폐위된 왕이기에 봉분 앞의 비석 전면에 "연산군지묘( 燕 山 君 之 墓 )"라 는 비명, 초라한 봉분과 호위하고 있 는 문인석의 표정 없는 얼굴에서 권 력의 무상함과 의정궁주의 외로운 삶이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폐주 연 산군과 태종 후궁으로 간택되었으나 혼인도 못하고 사랑도 받아보지 못 한 채 일생을 사신 의정궁주는 서로 아픔을 달래며 잠들어 있는 듯 한이 서린 묘역이라 느껴졌다. 묘역 앞에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됐 다는 수령 830년이나 된 높이 24m, 둘레 9.6m인 은행나무(서울 시 지정 보호수 1호)가 지지대의 부 축을 받으며 힘겹게 세월을 지키고 서 있고 은행나무 옆 약수는 600여 년 전 파평윤씨가 자연부락인 원당마 을에 정착하면서 옛 주민들의 식수로 사용했다는 원당샘 이 둘레길을 걷는 시민들의 목을 시원하게 축여준다. 의정궁주조씨가 궁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여인으로서 지아비 사랑을 받 아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 거웠고 이전부터 태조 이성계의 가문 과는 혼인이 여러차례 있었는데, 의 정궁주께서 태종의 왕자를 생산하셨 다면 문중의 앞날이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본다. 용식( 鏞 植 ) 27세, 충정공파 대종회 청장년위원 한양샘터 멍때리기 - 멍하니 아무 생각하지 않고 뇌를 편하게 쉬게 해 뇌력을 증진시키자 지난해 10월 27일 오후 서울광장 에서 열린 제1회 멍때리기 대회에서 9살 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우승 하여 화재가 된 적이 있다. 멍 때리다'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 니 있음'을 뜻하는 은어로 이 대회의 심사기준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 태에서 심박측정기에서 심박수가 가 장 안정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우승 자가 된다. 멍때리기의 효과는 하루 종일 바 쁘게 움직이는 우리 뇌를 쉬게 해주 어 뇌의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현대인들은 스마트폰, PC, 시끄러운 문명의 소음 등 주변 환경 에 항상 노출되어 있어 우리의 뇌는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휴식시간에 마음을 풀어놓고 편안하 게 음악을 듣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창밖을 보며 휴식을 취 하면 심신의 피로가 풀린다고 생각 하지만, 뇌는 그 시간에도 이목구비 ( 耳 目 口 鼻 )와 손발 등을 통해 느낀 오감( 五 感 )을 처리하느라 끊임없이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가끔씩 아무 생각 없이 멍 하게 있으면 그야말로 뇌가 편하게 쉴 수 있어 에너지가 재충전된다. 일 예로 잠을 자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잠시 쉬면 기분이 상 쾌해진다. 반면에 재충전을 한다며 멀리 외국 등으로 여행을 나가 푹 쉬 고 왔다지만 몸은 의외로 더 피곤함 을 느낀다. 이것은 쉰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경험과 식견을 넓혀 아이 디어를 얻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밑 거름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얻었을 지는 몰라도 진정한 휴식은 아니다. 즉 일상의 업무를 떠나 있었기에 분위기가 전환되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는 얻었겠지만 두뇌는 그 많은 지식을 처리하느라고 쉬지 못하였을 것이다. 스님들의 참선이나 명상이 정신 건 강에 좋은 것은 바로 뇌를 쉴 수 있 게 해주고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다음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중에 잠시 동안 우리 몸 중에서 제일 중요한 뇌가 쉴 수 있는 9~10월 대종회 방문 종인 시간을 마련해 뇌력을 증진시켜 백세 시대 건강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 볼 만한 멍때리기 를 바쁜 일상이지만 틈을 내서 한번 해보면 어떨까. 태경( 泰 景 ) 23세, 충무공파 대종회 청장년위원 명예회장 병하 정원 선기 목영 성훈 창원 춘희 수원 선원 옥원 승록 천기 석구 태흥 병세 경용 태경 진원 인원 기영 정익 도형 正 人 正 仁 周 泳 성길 장형 성조 병헌 성덕 희원 찬희 인행 병건 석호 성도 경화 炳 文 (병참공파) 炳 文 (총제공파) 連 行 (양절공파) 連 行 (충정공파)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한양조씨대종보 제72호 5 성현의 일화와 깨달음 조광조와 남곤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큰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신 정암의 어머니 여흥민씨 ß 편집자 註 정암( 靜 庵 ) 조광조( 趙 光 祖, 10세, 양절공파) 선조님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사상가이자 교육자, 성리 학자, 정치가이시다. 기묘명현 중 한 분으로 개혁정책을 펼치다가 희 생된 개혁가로 가선대부, 사헌부대 사헌 겸 동지경연성균관사에 이르 셨다. 인종 때 복관되셨고 선조 초 에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 의정에 추증되셨다. 김종직 학파로 율곡 이이에게 전해졌으며, 명종 말엽에 성인화, 성역화가 되셨다. 1591년(선조 24) 광국원종공신 1 등관에 추서되셨으며 동방오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셨다. 조광조와 남곤은 서당에 다닐 때부 터 절친한 친구였다. 두 사람은 열대 여섯 살이 되어 과거를 눈앞에 두고 학문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머리를 식힐 겸 가 까운 산으로 놀러가게 되었다. 산으 로 가는 길에 한무리의 아가씨들이 눈에 띄었다. 조광조는 아가씨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뛰며 얼굴이 상기 되고 부끄러우면서도 시선은 줄곧 아가씨들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앞으로 해야 할 공부가 많고, 어머니 말씀대로 나라 의 동량이 돼야 할 텐데, 왜 자꾸 아 가씨에게 마음이 쏠리는 것일까? 조 광조는 연신 아가씨들을 돌아보면서 걷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 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장차 무슨 일을 할 수가 있을까? 이래선 안 돼 라며 저만치 앞서가는 남곤을 쫓아 갔다. 친구 보기가 부끄러웠다. 역시 남곤은 나보다 났구나. 난 아 직도 수양이 부족한 거야 되뇌며 집 으로 돌아온 조광조는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고 낮에 있었던 일을 이야 기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난 어머니 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애야 그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란 다. 네 나이에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것은 죄가 아니고 네 나이 또래의 사내라면 누 구나 갖는 생각이란다. 어머니 그렇지 않습니다. 제 친구 남곤은 여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 고 꼿꼿이 걸었습니다. 조광조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물 었다. 그게 정말이냐? 예, 어머니 남곤은 확실히 저와는 다릅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난 어머니는 수 심이 가득한 얼굴로 한 동안 말없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단호하 게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오늘 밤에 남 의 눈에 띄지 않게 를 가야겠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 말 말고 이삿짐을 싸도록 해라. 조광조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결정 에 어리둥절해 하며 황급히 짐을 꾸 려 어머니를 따라 한밤중에 다른 고 을로 를 했다. 어머니 이렇게 야반도주하듯이 이 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얘야 사람은 자기감정에 솔직해야 된단다. 남자가 옆에 있는 예쁜 여자 에게 눈길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이치 다. 남곤은 자기의 감정을 숨기고 목 석처럼 행동했지 않느냐? 그것을 보 면 그 아이가 얼마나 차디찬 사람인 지 알 수 있다. 사람은 따뜻함과 너 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엄격함과 꼿 꼿함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단다. 엄히 다스려야 할 때도 있지만 너그 럽게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할 때도 있단다. 앞으로 남곤은 여러 사 람을 어렵게 하고 냉혹한 사람이 될 것이니 두고 보거라. 조광조는 갑자기 를 한 어머니 의 깊은 뜻을 헤아리고 고개를 숙였다. 인원( 寅 元 ) 23세, 양절공파 대종회 청장년위원 제2연평해전을 소 재로 한 영화 연평 해전 이 지난 6월 개봉되어 1천만 명 넘는 국민이 관람하 여 희생된 장병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당시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등은 장례식마저 외면하 였지만 늦게나마 대전현충원에 합동 묘역이 조성되어 덜 미안하고, 윤영 하함, 한상국함, 조천형함, 황도현함, 서후원함, 박동혁함 등 그들의 이름 으로 명명된 유도탄고속함이 우리 해상을 지키고 있어 가슴 뿌듯하다. 제2연평해전은 한 일 월드컵 3 4위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 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 2척 이 우리 해군 참수리-357호에 기습 공격을 가해 우리 해군 6명이 전사 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하였고 고속 정이 침몰되었다. 불과 3년 전 제1연평해전에서 압승 을 거둔 우리 해군이 북한의 치밀한 도발에 일방적으로 당하였다. 유비무 환( 有 備 無 患 )이라는 말이 절로 되뇌어 진다. 제1연평해전 당시 국방장관이 었고, 제2연평해전 때는 국회 국방위 원이었던 조성태( 趙 成 台, 26세, 양경 공파, 사진) 前 국회의원은 제2연평 해전에 대해 이전에 차단기동에 성공 했다고 또 그런 방식을 구사한 멍청 1차 연평해전 승리의 숨은 주역 조성태 前 국방부장관 대통령의 모순된 지침 바로잡고, 2함대사령관 지휘권을 보장해 줘 거둔 유비무환의 승리 한 해군 이라고 질타하였다. 1999년 6월 15일 일어난 제1연 평해전은 북한 함정 7척이 서해북방 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관할해역 을 침범해 벌어진 교전으로 북한의 어뢰정 1척 침몰, 대형 경비정 대파, 중형 경비정 2척 반파, 소형 경비정 2척을 파손시켰으나, 우리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이 경미하게 파손되 었고 장병 9명이 경상을 입었을 뿐 큰 피해가 없는 대승이었다. 조성태 국방부장관은 북한의 침범 이 빈번하게 발생하던 6월 6일부터 11일까지 박정성 2함대사령관과 매 일 밤 1시간 이상 통화를 하며 만일 의 사태에 대비해 대책을 숙의하여 대비태세를 갖추었으며 상황이 발발 하면 함대사령관 전화를 차단하라 는 명령을 내려 상급부대와 기관의 개입으로 빚어질 혼란을 차단하여 2 함대사령관의 지휘권을 보장해 줬다. 상황이 발발하면 빗발칠 청와대, 한 미연합사, 합동참모본부, 해군본부, 해군작전사령부 등의 전화는 참모장 또는 작전참모가 받고 그 내용을 사 령관에게 보고하지 말라고 하여 소 신껏 작전을 펼칠 수 있게 지휘권을 보장해 주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조 前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과 면담 에서 국방을 책임진 사람으로서 의 무를 다할 테니, 의무를 어디까지 해 야 하는지 지침을 달라 고 하니까 우 리 군이 먼저 발포하지 말고, 충돌이 벌어져도 더 큰 사태가 일어나는 확 전을 하지 말라. 는 지침을 받았지만 국방부장관으로서 현명하고 적절하 게 조치를 하였기에 거둔 승리다. 또한 NLL 상황과 해군작전을 정 확히 알지 못했던 조 장관은 자기주 장만 하지 않고 2함대사령관의 말을 경청하였고 옳으면 전적으로 맡겼다. 박정성 2함대사령관은 그때 조 장 관과 같은 분과 작전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고 하였다. 해군 전투부대는 함대-전단-전 대-편대-고속정 단위로 구성된다. 현장 지휘관은 편대장이며 박 사령관 은 편대장과 계속 대화해 편대장이 자신 있게 결심할 수 있게 해줬다. 조 장관이 함대사령관하고만 소통 했듯이 그도 현장 지휘관과 소통을 독점하였다. 상명하복 체계에 길들여 진 군인들은 청와대 등 상급기관이 11월 12일(음 10. 1) 시조단 시제, 충정공 절효공 판사공 시제 11월 13일(음 10. 2) 양절공 시제 11월 14일(음 10. 3) 양경공 시제 11월 15일(음 10. 4) 검한성공 부사공 참판공 가천재공 시제 11월 16일(음 10. 5) 남원공 시제 11월 21일(음 10. 10) 양경공 기제사 11월 24일(음 10. 13) 참의공 시제 11~12월 대종회 일정 나 부대에서 내리는 지시가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없애는 것이 정무직 인 장관의 몫이다. 상급 기관의 뜻이 라고 해서 불합리한 지침을 받아들 인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와 장비로 무장하고 있어도 승리할 수 없다. 제 1연평해전은 조성태 국방부장관, 박 정성 2함대사령관, 325정장 안지영 대위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조 前 장관의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툭툭 털고 일어나 대한민국과 한양문 중을 위해 더 큰일을 하길 기원한다. 귀형( 貴 衡 ) 25세, 양경공파 대종회 청장년위원 11월 25일(음 10. 14) 한흥군 배위 정부인 풍천임씨 기제사 12월 17일(음 11. 7) 충무공 배위 정경부인 신천김씨 기제사 12월 31일(음 11. 21) 문간공 배위 정경부인 안동김씨 기제사 11월 9일 운영위원회의 11월 하순 6개종파 회장 회의 12월 초순 회의 및 송년회
6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한양조씨대종보 제72호 타 문중 소개 매년 전국체육대회 개최, 진주시에 시조역사공원 조성을 위한 150억원 모금, 중앙장학재단 육성 진주강씨의 시조는 고구려 병마도 원수( 兵 馬 都 元 帥 )를 역임한 명장 강 이식( 姜 以 式 ) 장군이다. 강이식 장군 은 597년(고구려 영양왕 8) 수( 隋 ) 문제( 文 帝 )가 침략의 야욕을 품고 무 례한 국서( 國 書 )를 고구려에 보내오 자, "글로써 대답할 것이 아니라 칼 로써 대답하자."고 주장하고 이듬해 병마원수( 兵 馬 元 帥 )로 정병 5만 명을 이끌고 출전하였고, 이듬해 대병력을 이끌고 요서( 遼 西 )에서 요서총관 위 충( 韋 沖 )과 교전하였으며, 당( 唐 )의 시조단조감도 경남진주시 진성면 동산리 산10-1번지 수군총관 주라후( 周 羅 喉 )의 30만 수 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단재 신채호( 申 采 浩 )의 조선상고 사 에 의하면 묘( 墓 )는 만주( 滿 洲 ) 심 양현 봉길선 원수림역 앞에 병마원 수강공지총( 兵 馬 元 帥 姜 公 之 塚 )이라는 큰 비석이 있었으나 중국 문화혁명 때 소멸되었고, 돌조각과 거북좌대만 묘역에 남아있다. 고 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71-1번 지에 시조를 모신 봉산사가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0일 제향을 올린다. 진주에 세거한 것은 강진( 姜 縉 )이 신라 헌강왕 875년경 과 거에 장원급제 후 태중대부판내 의령( 太 中 大 夫 判 內 議 令 )을 역임 하다가 진양후( 晋 陽 侯 )에 봉해 진 이후이다. 이때부터 진주강 씨의 본관을 진주( 晉 州, 진양, 진산으로 불리기도 함)로 하게 되었다. 2000년 통계청 발표에 따 르면 진주강씨는 325,288가 구, 총 1,044,386명이다. 실 제로는 130만 명 이상인데 일 본, 미국 등 외국과 북한의 현 종들은 집계에 빠졌다. 남한의 전체 인구 중 7.29%로 여 섯 번째로 인구가 많은 단일본 성씨 이다. 진주강씨는 크게 은렬공파, 인 헌공파, 박사공파, 소감공파, 관서공 파 등 다섯 파가 있으며, 은렬공파가 가장 먼저 발원하였지만 규모는 박 사공파가 가장 크다. 인헌공파는 고 려시대 명장 강감찬 장군의 호인 인 헌( 仁 憲 )을 따른 것으로 장군의 출생 지가 금천이라 하여 금천강씨라 부 르기도 한다. 항렬은 오행( 金 水 木 火 土 ) 상생법을 사용하며 파별로 한 자는 상이하다. 중앙종회는 종로구 창경궁로16길 42(연지동)에 있고 임원들의 회비로 운영하며, 중앙종회장은 화진화장품 대표 회장인 현송( 顯 松 ) 회장이다. 중 앙청년회가 주최하는 제29회 진주 강씨 전국체육대회 가 금년에는 경남 남해에서 21개 팀 2,100여 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으며, 매년 20~25명의 후손에게 장학금을 수 여하며,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 산리 산 10-1번지에 33,058m2(1 만여 평)에 150여억원을 들여 시조 구국공신 강이식 장군 역사공원 을 조성 중이며 시도 종회별로 적극적 으로 모금에 참여하고 있다. 진주강씨는 훌륭한 인재를 수 없이 많이 배출한 명문거족으로서 시조 역사공원 조성사업, 장학재단 육성 사업, 전국체육대회 등 숭조사업, 후 손 육성사업, 종족돈목 사업을 활발 하게 전개하는 것은 무릇 타 문중에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자료제공 진주강씨대종회 오늘의 징비록 국민 모두 화합하여 국력을 신장시켜 후손에게 행복한 미래를 물려주자 얼마 전 KBS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징비록( 懲 毖 錄 ) 을 보면 조정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 싸움을 하느라 국론이 분열되고 심약 한 선조( 宣 祖 )는 무사안일하게 정사 를 돌보다가 임진년(1592)에 일본의 침략을 받아 7년 동안 국토가 유린 되어 사상자가 15만 명 발생하였고, 농경지 1/3이 유실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조정에 서 파견한 통신사 2명이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부와 일 본의 정세를 돌아보았으나 일본을 다 녀온 통신사 김성일(( 金 誠 一 )은 일본 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람 됨됨이 졸렬하고 전쟁을 일으킬만한 인물이 못 된다고 보고하며 백성들이 전쟁 에 대한 공포심을 갖지 않고 생업에 종사케 해야 한다. 고 거짓으로 보고 하였고, 황윤길( 黃 允 吉 )은 왜란을 예 고했지만 심약하고 무사안일한 선조 와 김성일의 서인이 주도하던 조정은 국가의 장래보다 집권을 중시하고 동 인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실정을 범했다. 오늘날 여야도 국민의 안정 을 위해서 라면서 쇠고기 파동 사태, 미국과 FTA협정, 세월호사건 등 국 가 중대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 가와 국민을 위한 마음으로 대처하지 않고 상대방을 곤경에 빠트리려야 집 권할 수 있다고 싸우는 것은 조선통 신사 김성일과 서인들이 양심을 속인 것과 다를 바 없다. 선조와 조선 조정이 7년 동안 전 쟁을 하면서 그래도 나라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유성룡( 柳 成 龍 ), 이항복( 李 恒 福 ), 이덕형( 李 德 馨 ), 정철( 鄭 澈 ), 윤두수( 尹 斗 壽 )와 같은 신하가 위기 때마다 목숨을 내놓고 무능한 왕을 설득하고 의병들과 함께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역사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은 역사를 통해 시대상을 재조명하 여 정치인에게 경각심을 주고, 국민 에게는 교훈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국가가 누란의 위기 에 처했을 때 육지에서는 곽재우, 김 천일, 정문부, 사명대사 등이 이끄는 의병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고, 바다 에서는 이순신( 李 舜 臣 ) 장군이 남해 를 장악함으로서 일본을 물리쳤다. 그런데 한반도는 남북이 분단된 지 70여년이 됐고, 북한은 핵을 보유하 고 고고도 미사일 실험까지 하며 남 침야욕을 불태우고 있는데,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들은 자신들의 이득만 취 하려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집단이 기주의가 팽배해 국론을 분열시켜 국 민의 국가관이 퇴색되어 안타깝다. 행주산성 전투에서 화포와 화살이 부족하자 부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돌 을 날라 왜병을 물리친 역사의 교훈 앞에 그들은 무슨 말을 할지 묻고 싶 다. 왜군보다 절대적으로 열세인 군 사력임에도 불구하고 무능한 임금과 당파싸움으로 병든 조정은 아무 일도 못했지만 남녀노소가 요원의 불길처 럼 일어난 민초들의 굳은 결의와 진 정으로 민족과 백성을 걱정하던 관리 가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주변국으로부터 군 사적, 경제적, 외교적, 문화적 압력을 받는 상황인데 한국의 외교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인접국가와 혈맹인 미국 사이에서 과연 어떤 외교 전략 을 펼쳐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국력 을 신장시킬 수 있는지 국민 모두가 생각해야 할 때이다. 명재상 유성룡의 징비록 은 임진 왜란을 겪고 나서 임진왜란을 되짚어 보고 위정자를 징계하며 후세에 교훈 秀 衡 대종회장 500,000원 章 衡 (가천재공파) 300,000원 善 元 (가천재공파) 100,000원 舜 衡 (충정공파) 76,000원 도형(가천재공파) 30,000원 7~10월 대종회 발전기금 접수 현황 을 주고자 반성한 책이다. 따라서 오늘에 사는 우리도 정치인 들이 정파싸움만 한다고 욕만 하지 말고 우리의 대표를 잘 선택해야 한 다. 또한 정부당국과 정치인은 국민 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민심을 바 로 파악해서 정치, 경제, 외교적 난관 을 극복하기 위해 여야를 초월해 국 정을 논의해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 을 위한 국민의 대변자와 위정자가 되려면 오늘의 징비록 을 함께 쓰고 늘 국민과 함께 유비무환( 有 備 無 患 ) 의 태세를 공고히 해야 한다. 소계 : 누계 : 수기( 壽 紀 ) 27세, 양경공파 의정부문화원장 1,006,000원 42,092,790원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5-502-400024 예금주 : 한양조씨대종회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한양조씨대종보 제72호 7 대종회는 종재가 넉넉하지 않아 임원 및 님들이 보내주시는 회비로 운영하고, 한양조씨대종보 는 구독성금을 받아 독립채산으로 발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임원 및 님들의 회비납부가 저조하여 숭조사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구독성금 납부 도 원활치 않아 2012년에는 1회 결간하였고, 2013년에는 6개파종회에서 부족금액을 보전하였으며, 2014년에는 30,000원으로 구독성금을 인상하였습니다. 물가는 날로 상승하는데 반하여 회비와 종보 구 독성금 납부는 더욱 저조해 숭조사업과 종보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다소 어렵더라 도 임원 및 회비와 종보 구독성금을 납부하여 대종회를 반석 위에 올려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선조님의 유업을 되새겨 받드는 숭조사업은 후손된 도리이며 종친 간 돈목을 도모하고 후손을 육성하 는 것은 한양조문의 앞날을 기약하는 일입니다. 기왕에 납부하실 바에는 지로용지, 발송비용 등을 절약 할 수 있도록 일찍 납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연 회 비 종 보 회 장 고 문 이 사 구독료 50만원 20만원 30만원 15만원 5만원 3만원 연 회 비 구독성금 발전기금 계 좌 번 호 우리은행 1005-701-464728 우리은행 1005-101-464726 우리은행 1005-502-400024 한양조씨대종회 한양조씨대종회 한양조씨대종회 지로번호 6324117(지로대체용지사용시) 한양조씨대종회 2015년 연회비를 보내주신 임원 및 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1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회장 秀 衡 광진구 감사 鎬 遠 관악구 道 熙 종로구 成 到 수원시 충무공파 基 昌 연천군 柄 洛 강남구 泰 勳 양주시 長 善 고양시 春 熙 관악구 奎 文 임원회비 납부현황 입금자/대상자 구분 총 원 회장 감사 총 원 190/369 1/1 14/26 3/3 21/51 52/105 99/183 충무공파 28/54 3/5 1/1 3/8 8/14 13/26 검한성공파 2/15 1/1 /3 1/11 충정공파 10/41 2/4 1/7 5/15 2/15 양절공파 12/37 1/3 1/1 1/4 3/16 6/13 양경공파 106/183 5/10 1/1 13/27 27/47 60/98 가천재공파 32/39 1/1 3/4 2/4 9/10 17/20 禹 善 충주시 敬 東 수원시 澤 浩 음성군 庸 熙 칠곡군 柄 萬 칠곡군 영동 용산구 泰 鶴 마포구 鍾 奉 인천시 基 俊 연천군 宗 煥 강동구 斗 善 강동구 孝 東 음성군 泰 振 대전중구 晟 熙 성남분당 泰 洪 제주시 光 熙 관악구 泰 陽 聖 東 淵 東 子 英 一 煥 노원구 포천시 여주군 춘천시 대구서구 검한성공파 怔 行 충주시 誠 泏 남양주시 충정공파 轍 玉 마포구 成 郁 강남구 慶 雲 충주시 潤 行 泰 衡 정읍시 光 日 함평군 誠 琫 광주북구 鏞 植 강남구 玉 男 중랑구 鍾 萬 부여군 連 行 성북구 양절공파 庸 堣 강남구 連 行 수원시 正 熙 용산구 계희 영천군 炳 贊 횡성군 成 鎭 전주시 基 衡 횡성군 弘 燮 欽 春 춘천시 順 衡 원주시 양경공파 洪 植 하남시 行 三 송파구 世 衡 도봉구 成 珉 성남분당 斗 熙 중 구 熙 元 부천시 正 元 고양시 秀 元 성북구 宣 基 중랑구 慶 煥 중랑구 炳 柱 관악구 炳 夏 노원구 容 玉 광주시 誠 鎭 강남구 成 德 파주시 成 薰 마포구 병문 용인수지 2015년도 종보 구독 성금을 보내주신 종친님 9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대단히 감사합니다 正 人 慶 元 讚 熙 昌 元 庸 洹 世 元 祥 熙 鎭 元 庸 準 貞 元 慶 華 炳 卨 鉉 行 炳 雲 炳 文 炳 小 相 俊 炳 洋 文 行 仁 行 韶 永 睦 泳 炳 勳 성린 碩 鎬 一 靑 松 元 誠 勳 강북구 양평군 중랑구 노원구 파주시 전주시 강남구 동대문구 강릉시 화성시 의왕시 구리시 고양시 마포구 인천시 대전서구 은평구 노원구 원주시 안양시 의정부시 성남분당 양양군 하남시 중랑구 종각 在 國 대전유성 종일 淇 鎬 도봉구 열원 錫 潤 고양시 영원 萬 行 강릉시 재원 富 衡 전주시 京 容 인천시 좌형 남양주시 상원 양천구 錫 允 노원구 玉 元 서대문구 東 稷 예천군 容 奐 봉화군 義 煥 부산연제 澤 元 강릉시 逸 漢 영주시 正 仁 중랑구 千 衡 익산시 信 元 포천시 東 炫 영암군 補 元 포천시 得 文 화천군 홍윤 대전유성 益 衡 원주시 炳 哲 인천서구 誠 恂 병일 常 泳 復 基 誠 建 炳 賢 成 甲 允 基 震 英 基 燦 成 都 仲 基 誠 白 炳 宅 成 澤 承 珍 成 俊 성우 彭 起 東 一 興 熙 忠 熙 武 烈 慶 錫 수남 우신 정기 廣 燮 泰 行 錫 珙 양양군 안동시 안동시 강릉시 포천시 청주시 중랑구 성북구 대구수성 충주시 영양군 전주시 평창군 금천구 예천군 관악구 파주시 영주시 양평읍 노원구 연천군 남양주시 남양주시 영주시 부천시 성북구 의정부 昌 洙 마포구 가천재공파 運 行 聖 行 송파구 海 衡 용산구 敏 行 양천구 貞 元 충주시 吉 元 수원시 律 衡 단양군 병석 제천시 성각 강동구 병흥 제천시 寬 熙 병하 단양군 靈 行 과천시 필형 제천시 山 元 성모 제천시 善 元 송파구 成 國 단양군 贊 行 성철 장형 양평군 문희 안산시 연행 단양군 成 日 여주군 석형 단양군 성형 제천시 成 煥 관희 단양군 성군 남양주시 승희 춘천시 宰 行 특별후원 종인 명예회장 50,000원 청송부사공파종회(가천재공파) 1,000,000원 관희(가천재공파) 100,000원 목영 명예회장 20,000원 60,000원 회장 517,000원 창원 164,000원 정원 158,000원 목영 98,000원 옥원 65,000원 수원 76,000원 선원 42,000원 승록 41,000원 광희 24,000원 병하 33,000원 영행 48,000원 병훈 39,000원 춘희 현금 찬조 60,000원 論 語 講 習 (논어강습) 팔일편 서 울 석만 강동구 기홍 강서구 성만 동대문 인승 송파구 충원 강동구 수형 노원구 배경 강서구 태헌 강진구 경해 서초구 정열 관악구 태근 영등포 관영 노원구 병호 강북구 춘희 관악구 동형 성동구 도희 종로구 태학 마포구 은영 강동구 영섭 송파구 태행 성북구 세종 영희 종촌동 병남 소정면 대 구 규영 남구 영원 남구 은희 동구 병대 수성구 인 천 병철 서구 종규 옹진군 광 주 기선 동구 성동 남구 대 전 인선 서구 성호 서구 종국 중구 울 산 석원 남구 강 원 성연 횡성군 택원 강릉시 병기 횡성군 성만 원주시 청용 철원군 완기 강릉시 만식 원주시 병억 양양군 승원 홍천군 경 기 연석 포천시 인재 평택시 목희 고양시 성권 고양시 두원 근형 수원시 병용 화성시 성한 광주시 세형 대형 성남시 기영 포천시 동현 화성시 법행 성남시 항기 의정부 병성 군포시 봉동 양주시 인행 여주시 보형 남양주 대형 안양시 승기 수원시 성희 성남시 목영 안양시 석윤 고양시 신원 포천시 우신 남영주 태윤 연천군 동식 성남시 홍희 군포시 경 북 상재 포항시 병용 칠곡군 재희 영천시 국원 봉화군 승목 예천군 석탑 안동시 승기 영주시 용기 안동시 강섭 영주시 병철 영천시 성정 경주시 수희 영천시 전 남 모형 장흥군 성형 곡성군 용기 여수시 전 북 판사공파종회 김제시 병인 고창군 충 남 성재 서천군 건행 당진시 은동 공주시 근원 보령시 충 북 유나 옥천군 천묵 음성군 인희 단양군 천희 음성군 태윤 보은군 정원 충주시 병구 충주시 제 주 창실 제주시 미확인 9/15 우리 수유동지점? 9/16 대구은행 중구? 9/16 신협 전의? 9/18 새마을 수원평동? 9/16 기업 구로가산디지탈 정혜? 9/24 국민 대전 중촌동 용호? 입금하였는데 확인되지 않은 분은 연락 주십시오 禮 與 其 奢 也 A 寧 儉 (예 여기사야 영검) 喪 與 其 奢 也 B 寧 戚 (상 여기사야 영척) 예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 소하여야 하고, 장례는 잘 갖추는 것보다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팔일편( 八 佾 篇 )에 보이는데 임 방( 林 放 )이 예( 禮 )의 근본( 根 本 )에 대해 물으니 공자( 孔 子 )께서 말 씀하신 내용이다. 與 其... 寧... 뭐 하기보다 오히려로 해석함이 좋겠고, 문장 A, B로 나누면 A는 B만 못 하다로 해석함이 옳다. (직역은 꼭 같지는 않지만) 夫 祭 (부제)는 與 其 敬 不 足 而 (여 기경불족이) 禮 有 餘 也 (예유여야) 與 其 敬 不 足 而 (여기경부족이) 敬 有 餘 也 (경유여야) 喪 與 其 喪 不 足 而 (상 여기상부족이) 禮 有 餘 也 (예유여야) 不 若 禮 不 足 而 (불약 예불족이) 哀 有 餘 也 (애유여야) 제사는 경이 부족하고 예가 유 여한 것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경 이 유여함만 못하며, 상은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유여하기보다는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유여함만 못하다는 것이 여기에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임할 것 인가? 생각해 보자. 승록( 承 祿 ) 24세, 양경공파 대종회 전례위원장
8 한양조씨대종보 2015년 11월 2일 월요일 진영 인영 헌영 종인 엄친의 글 모아 수주집(守洲集) 발간 진영(震英, 26세, 양경공파) 은 엄친(守洲, 東翰) 의 시, 서예, 제문 등 일생 동안 쓴 옥 고와 안동, 예천 지 방 서원, 선비촌 등 의 건축물 현판, 비 석 글씨를 모아 책으로 엮어 수주집 을 발간하였다. 진영 종인 형제들은 수주공이 평소 詩와 書를 즐기고, 예 천군 공직, 중등교원, 예천군 면의원 으로 봉직한 후 예천향교 전교, 유도 회원 등 향토의 후학과 유학진흥에 힘쓴 엄친의 유고를 정리 발간함으로 서 효를 실천하였다. 수영 종인 미래창조과학부장관표창 수상 수영(秀泳, 26 세, 양경공파) 종인 이 지난 9월 6일 미래창조과학부장 관(崔楊姬) 표창을 수상하였다. 수영 종인은 경 북 포항에 거주하고 있으며 활발한 기업경영 (주)서보엔지니어링 대표이 사 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봉사활 동으로 이웃사랑을 솔선 실천하여 지 역사회에 귀감이 되고 있다. 21세기 저탄소 녹색성장과 에너지 절약 실천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 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래창 조과학부 장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각계 각층에서 인정받는 활동을 기대한다. 한양 칼럼 결혼 병로(炳魯, 24세, 양경공파) 대종 회 의 장녀 은일양이 9월 6일 코가치 료 군과 화촉을 밝혔다. 족보에 대한 나의 깨우침 돈독하다. 그런데 이 귀중한 일을 잊고 살아온 젊은 날의 나를 되돌 아보고 족보의 중요성과 자긍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고향인 용인에서 형의 사업을 5년여 동안 돕다가 29세인 1965년 12월 서울에 직장을 정하 고 올라와 일에 파묻혀 살며 고향 을 잊고 살았다. 고향에는 명절과 큰일이 있을 때만 잠시 들리니 선 조님 시제 등 종중사를 멀리하게 되고 친척 간에도 거리가 생겨 집 안일에는 숙맥이 되어버렸다. 종중사에 소홀하고 친척의 소중 함도 잊은 채 살다 1996년 정년퇴 임을 한 후 협력업체 임원으로 일 하고 있을 때 한국인의 족보 라는 책자를 판매하러 온 사람이 족보의 중요성과 족보에 대한 이야기를 하 며 구입하기를 권하였다. 어려서 집안 어른들이 애지중지 하던 족보를 먼발치에서 보기는 했 어도 직계 선조님도 잘 모르고 족 보에 어떤 내용이 수록되었는지도 족보란 동족의 세계(世系)를 기 록한 역사이기 때문에 족보를 통해 시조로부터 현재의 동족원까지 세 계와 관계를 알 수 있고 횡적으로 는 현재의 동족 및 상호의 혈연적 친소원근(親疎遠近)의 관계를 알 수 있어 친목과 우의를 도모하고 선대의 미풍양속을 따르며 계통을 명확히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족보는 씨족 간에 형성된 가족 의 계통을 기록한 책으로 선조의 충효절의(忠孝節義) 등 사적과 공적 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가계의 연속을 실증하는 것이므로 가계의 영속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다. 더구나 선조 중에 국가와 사회 에 큰 공적을 남겨 숭앙을 받는 명 망 있는 인물이 있을 때는 그 유업 을 찬양하고 스스로 그 후손임에 긍지를 갖게 되므로 더욱 중요시 되고 있다. 또한 족보는 개인의 권 위나 자유보다 가정이나 종중을 중 심으로 생각하는 단결과 협동심이 예지동 함흥면옥 회의, 모임 등 단체손님 환영합니다 전 화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사 장 길 趙珉鎬 예지동 시계골목 世 良敬公派) 제72호 종인 예술품 소개(서예) 작가 복기(復基) 24세, 양경공파 작품명 : 조인벽님 오언율시(해서체) 제 목 : 海月亭 (휘 仁璧, 5세) 선조님 詩 중 일부 크 기 : 35 140 詩 감상 蝶翅勳名簿(접시훈명박) 공훈과 명예는 나비 날개같이 얇기만 하고 龍惱富貴輕(용뇌부귀경) 용뇌 같이 여기는 부귀는 가볍기만 하여라. 萬事驚秋夢(만사경추몽) 모든 일은 가을 밤 싸늘한 꿈에 놀다 깨는 것이니 東窓海月明(동창해월명) 다 잊고 동창에 비친 바다의 달이나 쳐다보자. 淡淡西山月(담담서산월) 서산에 걸친 달은 희끄무레하고 靄靄空中雲(애애공중운) 공중에는 구름이 길게 뻗쳤네. 山人不畏虎(산인불외호) 산 사람이 범도 두려울 것 없어 永野不庵門(영야불암문) 밤새도록 문도 닫지 않네. 1행 翅(날개 시)는 족보에는 趐(나아갈 혈)로 되어 있음 모르는데 그 책을 구입하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내 족보도 아 직 모시지 못했는데 구입할 수 없 다. 고 하니 나에게 직계 선조님 등 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었다. 어린 시절 어르신들이 사랑방에 서 나누시던 선조님과 종중 이야기 는 고리타분한 옛것이라며 귀담아 듣지 않고 흘렸고 이러한 문중 일 은 집안 어른들과 형들이 하는 일 이라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책을 팔기 위한 족보박사(?)의 능 수능란한 화술에 두 손 두 발을 들 었다. 얼굴은 화끈거렸고 할아버지 께 한양조씨는 훌륭한 선조님의 후 손으로 양반 이라는 말씀을 듣고 자 라왔는데 과연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참으 로 부끄럽고 무관심하게 살아온 것 을 깨닫게 되었다. 그때부터 수첩에 족보를 그려 넣 기 시작했고, 지금 와병 중인 대종 회 윤원(潤元) 재종 형님의 지 도와 권고로 대종회 으로 발을 들여놓고 시제에 참석하는 등 종사에 참여한지 15년이 되었다. 살면서 평소에 공기의 고마움과 중요성을 모르듯이 선조님에 대하 여 명확하게 알고, 족보에 가족이 모두 올라 있으면 선조님에 대한 감사함과 종중의 애뜻함을 모르고 살게 마련이다. 탈북자나 조선족들 이 뿌리를 찾아달라고 애걸복걸 매 달리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을 보 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조금은 종사에 눈을 뜨게 되 었고, 종중의 귀중함과 종인 모두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니 35만 한 양조씨 모든 종인이 사랑스럽고 선 조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와 같이 어리석게 생각해 창피를 당하 지 말고 종사에 적극 참여해 명문 거족의 자긍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 음에서 짧은 졸필을 올린다. 선원(善元) 23세, 가천재공파 대종회 종보편집위원 알림 갑신보(甲申譜)와 신묘보(辛卯譜) 원본을 찾습니다 1524년 발행된 한양조씨의 최초 족보인 갑신보(甲申譜, 단권)는 족보 발간 역사에 귀중한 자료이며, 1651년 두 번째로 발행된 신 묘보(辛卯譜, 3권) 역시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족보로 족보박물관 에서 원본 열람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대종회 차원에서도 상기 두 족보의 원본을 찾고 있으니 소장하고 계신 분이 있으면 대종회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족보가 발굴되어 족보박물관 등에 전 시가 된다면 한양조문의 자랑이며 자긍심이 높아질 것입니다. (02) 738-40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