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예문화지도 통영풍류 50선 주 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 관 :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 협 조 : 통영시 기획 디자인 : vergum 글 : 김경균 일러스트레이션 : 김도윤 Copyright 2012 KCDF. All right reserved. 이 제작물은 문화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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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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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예 문 화 지 도 통 영 풍 류 50 선

공예문화지도 통영풍류 50선 주 최 : 문화체육관광부 주 관 :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 협 조 : 통영시 기획 디자인 : vergum 글 : 김경균 일러스트레이션 : 김도윤 Copyright 2012 KCDF. All right reserved. 이 제작물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한 <지역공예마을육성시범프로젝트>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통 영 나 전 칠 기 Tongyeong Najeonchilgi

Tongyeong Najeonchilgi 통 영 나 전 칠 기 나전은 고려 시대부터 천 년을 이어온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품공 예다. 나전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일본에 전해 내려왔지만 중 국과 일본에서는 쇠퇴하고 우리나라에서만 독자적으로 발전한 전통 공예다. 예로부터 전복 껍데기를 귀하게 여겨 금조개라 불렀는데 이 금조개의 안 바닥을 얇게 켜낸 것을 자개라고 했다.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통영 앞바다에서 나는 전복은 오색영롱한 빛깔로 나전을 만 들기에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통영나전칠기는 임진왜란 당시 통 제영에 설치된 12공방 중 상하칠방에서 생산을 시작하여 한국의 주 산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전통을 이어나가기 위해 통영 전통공예전수교육관을 설립하여 운영 중이다. 이곳 전수교육관에는 나전장 송방웅의 공방이 있어 이수자들과 함께 왕성한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송방웅은 선친의 대를 이어 평생을 이 일에 몸바쳐온 통 영나전칠기의 산증인이다. 이 밖에도 박재성, 김종량, 정찬복, 김금 철 등의 뛰어난 장인들이 통영나전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C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 통영전통공예관 A4 F4

통 영 갓 Tongyeong Gat

Tongyeong Gat 통 영 갓 갓은 조선 시대 남자들의 전용물로 나들이 길에 쓰고 다니던 의관이 었으며 일반적으로는 흑립이라 부른다. 의관에서 제일 중시하던 것 이 갓이기 때문에 조선 후기의 갓 수공업은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선비들이 탐낸 것이 바로 통영갓이었다. 갓 을 만드는 일은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모자장과 양태장이 별도로 있 으며, 조립만 하는 입자장도 있었다. 모자는 갓에서 위로 우뚝 솟은 부분이며, 양태는 모자에 붙어 있는 둥근 테를 말한다. 모자는 제주 도의 말총을 재료로 만들고, 양태는 경기 이남 지역의 분죽으로 만 든다. 이렇게 세 종류로 분업화되어 있던 갓 일을 전부 배워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정춘모 장인이다. 갓 하나를 엮고 나면 시력을 버리고 온몸에 진이 빠져나간다. 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아니면 조선 전래의 명품 통영갓의 명맥이 끊어진다는 자부심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올을 엮고 있다. C 통영시 향토역사관 B3

통 영 누 비 Tongyeong Nubi

Tongyeong Nubi 통 영 누 비 통영의 누비는 전통의 손누비를 현대에 알맞게 계승하였고, 자연의 아름다움과 만든 이의 정성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으로 최고의 예술 품을 생활속에 옮겨 놓은 것으로 평판이 높다. 그 특성을 살펴보면, 두 겹의 천 사이에 얇은 솜을 넣고 밑실과 윗실을 꼬아 잘 풀리지 않 게 한 줄씩 촘촘하게 누빈 통영누비는 일반적인 기계누비와 달리 질 기면서도 부드러워 대를 이어 사용해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통영누 비는 최상품으로 인정받아 예로부터 혼수 이불이나 방석, 결혼 필수 품으로 사랑받아 왔다. 조성연 장인은 중학교 졸업 후 봉제 일을 해 오다 15년 전부터 통영누비에 전념하고 있다. 아마도 그 선택에는 통 영 토박이로 자라며 길러온 솜씨와 눈썰미가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 된다. 장인의 숙련된 솜씨로 한 줄 한 줄 촘촘하게 누빈 통영누비는 다른 지역의 대량 생산 기계 누비와는 차원이 다르다. 통영전통공예 관 및 통영 시내의 누비 제품을 판매하는 전문점에서는 고급화, 명품 화, 차별화로 통영누비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C 통영전통공예관 F4

통 영 대 발 Tongyeong Daebal

Tongyeong Daebal 통 영 대 발 전통 한옥에서 발 은 생활필수품이다. 발은 바람은 통하면서 강한 햇볕을 막아주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아 사생활을 보호하는 기능 을 한다. 특히 일반 대나무 발보다 훨씬 가늘고 섬세한 대오리를 정 교하게 엮은 통영대발은 양반집의 상징적인 생활 공예품이었다. 조 대용 장인은 통영대발의 전통을 잇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려서 부터 아버지가 소일 삼아 발 엮는 것을 보면서 몸에 익혔다고 한다. 180cm 가량의 대발 하나를 엮는데 약 석 달이 걸린다고 하니, 얼마 나 수없는 반복과 인내를 통해 완성되는 섬세하고 귀한 작품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조대용 장인은 앞으로 대발의 우수성과 가치를 알 리기 위해, 옛 왕릉에 있는 정자각에 전통 발을 복원하는 작업을 추 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C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 A4

통 영 미 선 Tongyeong Miseon

Tongyeong Miseon 통 영 미 선 조선 시대 왕실에 단오 부채를 진상할 만큼 통영부채는 그 예술성 과 실용성이 뛰어나 조선의 3대 부채에 들어가는 명품이었다. 부채 는 더위를 이겨내는 실용적인 면도 있었지만, 선비와 아녀자의 장 식용품이기도 했다. 물고기 꼬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 진 통영미선의 특징은 부채살이 매우 가는 세미선으로 그 부드러움 이 도드라진다. 또한, 부채 자루 부분의 조각 문양이 입체적이고 정 교하기로 유명하다. 통영미선의 자루 문양 가운데는 밧줄을 꼬거나 매듭을 묶은 듯이 만든 것이 많다. 또한, 대나무 두 그루를 한데 합 친 독특한 모양의 자루도 있다. 이것은 왕실의 진상품으로 당파 싸 움을 걱정하여 내신들이 서로 뭉치고 화합하라는 의미의 문양을 조 각했던 것이다. C 통영시 향토역사관 B3

통 영 소 반 Tongyeong Soban

Tongyeong Soban 통 영 소 반 소반이란 음식을 먹을 때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으로서, 다리와 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소반은 목가구 중에서도 지방적 특색이 가 장 짙은 공예품이며, 특히 통영소반 은 전남 나주의 나주반, 황 해도 해주의 해주반 과 함께 유명하다. 통영소반의 천판은 타지 방에 비하여 단단한 나무인 괴목이나 느티나무 등을 사용했다. 통 영소반은 전을 붙이지 않고 통판을 파내어 변죽을 만들었으며, 가 장 좋은 옻칠로써 나뭇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소반장 추 용호 장인은 온 나라로 불려다니며 일을 할 만큼 소문이 짜하던 소 목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물네 살,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받 아 놓은 주문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 소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통 영 소반이라 하면 모든 여염집 여인들의 꿈이던 시절이 있었으나, 통영에서도 소반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소목장은 그 말고는 찾아보 기 힘들다. 물려받은 예술적 감각과 솜씨는 다른 통영 장인들로부 터도 인정받고 있다. C 통영시 향토역사관 B3

통 영 자 개 Tongyeong Jagae

Tongyeong Jagae 통 영 자 개 자개는 나전의 우리말이다. 나전의 나( 螺 )는 나선형 모양의 껍데기 를 가진 조개류를 뜻하고, 전( 鈿 )은 금, 은, 동의 얇은 금속판을 물 건 표면에 새겨 넣어 장식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나전, 즉 자개란 조개껍데기를 얇게 갈아내고 이를 무늬로 만들어 기물의 표면에 박 아 넣어 꾸미는 일, 혹은 그 완성품이다. 조개껍데기를 정밀하게 가 공하여 자개를 만드는 섭패장 이금동 장인은 통영 유일의 전통 자개 가공자로서 17세 나이에 자개제작공방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평생 을 섭패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섭패란 자개를 만드는 작업 전 체를 칭하는 말이다. 질 좋은 전복껍데기를 수집해서 선별하고, 세 척 과정을 거쳐 정밀하게 절단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이런 오 랜 경험과 전문적인 기술로 양질의 자개가 탄생하는 것이다. 최고 의 품질로 평가받는 통영의 자개는 이렇게 뛰어난 섭패 가공 장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C 통영옻칠미술관 A4

통 영 두 석 Tongyeong Duseok

Tongyeong Duseok 통 영 두 석 두석은 구리와 주석을 합금해 만드는 황동 장식으로 장석이라고도 한다. 그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장식물에 그치지 않고 가구의 이 음새를 견고하게 하며 여닫이 기능을 원활하게 해 주는 역할도 한다. 훌륭한 목가구는 두석으로 완성된다. 두석은 목가구에 덧대는 경첩, 손잡이 등과 같은 금속 장식으로, 만드는 기물이나 가구에 따라 크 기와 무늬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때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 한 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아들까지 5대째 두석을 만들고 있는 김극천 장인. 할아버지 때는 1년에 두석을 두 번만 만들어도 먹고살 정도로 벌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은 전통 목가구를 사용하는 사람 들이 많이 줄어들어 안타깝다고 한다. 김극천 장인은 현재 개인 작 업장에서 두석을 만들며 소목 일도 함께하고 있다. 가업을 잇는 아 들이 있어 든든하다는 장인은 앞으로 우리 목공예에 관한 관심이 더 욱 높아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C 통영전통공예전수교육관, 통영전통공예관 A4 F4

통 영 비 연 Tongyeong Biyeon

Tongyeong Biyeon 통 영 비 연 우리나라 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이 반란군 진압에 연을 전술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통영비연 역시 전술용 으로 쓰였기 때문에 보통 연보다 그 크기가 월등하여 어지간한 어린 아이 이불보다 크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이 비연을 띄워 학익진 등의 다양한 전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통영비연은 그 기하학적인 문양과 색의 조합이 매우 다양하다. 이것 은 해군 수기신호 체계의 원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통영비연은 소 수 장인에 의해 그 명맥이 이어져 오다가 1999년 통영문화원이 26종 의 통영 전통 연을 확정하고 발표하였는데 그 핵심 인물이 바로 통영 전통비연연구소장 김휘범이다. C 통영전통공예관 F4

12 공방 12 Crafts Studio

12 Crafts Studio 12 공 방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수군들에게 각종 군수품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충무공 이순신이 설치하자 전국의 장인 들이 이곳 통영으로 몰려들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12라는 숫자는 12개의 공방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많다는 상징적인 숫자 12를 붙여 수많은 공방이 밀집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이런 공방활동이 자연스럽게 민간에 흡수되면서 그 맥이 400년이 넘게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통영의 이름 이 붙은 통영갓, 통영자개, 통영장석, 통영소반, 통영부채 등으로 칭 하며 통영에서 만들어진 각종 공예품을 최상품으로 일컫게 되었다.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무형문화재가 수준 높은 공예품을 만들 어내고 있는 곳이 바로 통영이다. C

이 순 신 Yi Sun-sin

Yi Sun-sin 이 순 신 통영이라는 지명은 이순신이 통제사로 있었던 삼도수군통제영에서 따왔다. 지금의 통영은 과거 통영군과 충무시로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었는데 충무라는 지명 역시 충무공에서 따왔다. 한산도의 제승당 을 비롯해 통영의 구석구석 이순신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다리에도, 등대에도, 축제에도, 공원에도, 하물며 밥상이나 막걸리까지 어디를 가도 이순신이 따라다닌다. 따라서 이순신이 곧 통영이요, 통영이 곧 이순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에서 불과 13척의 배로 133 척을 물리친 신화, 한산대첩을 큰 승리로 이끌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서 나라를 구한 명장으로서의 업적만이 아니라 이순신은 통영의 공 예문화 발전의 계기를 마련한 업적 또한 크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이순신이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하면서 수군에게 필요한 양질 의 군수물자를 공급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당시 전국 최고의 장인들을 모아 12공방을 만들었던 것이 지금의 통영이 뛰어난 공예 산지로 주목받게 된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P 세병관, 충렬사, 제승당 B3 B2 G8

유 치 환 Yu Chi-hwan

Yu Chi-hwan 유 치 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머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세기의 로맨티시스트, 청마 유치환의 시 행복 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 시의 배경인 중앙동 우체국 건너편 이문당 서점 옆이 바로 너 가 있던 곳이다. 청마는 이 우체국에 와서 너 이영도가 운영하던 수예 점 창문을 바라보며 매일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러나 청마는 이미 결혼을 했고, 이영도는 21살에 남편과 사별한 신세. 이루어질 수 없 는 사랑이었기에 더욱더 애절했던 편지. 20년 동안 그렇게 보낸 편 지가 무려 5천 통.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1967년 청마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이영도는 그의 편지 200여 통을 추려 서간집 <사랑하였 으므로 행복하였네라>를 출간했다. 중앙동 우체국 일대를 청마거리 라고 부른다. 청마문학관을 방문하면 그의 시 세계에서 보여 지는 강 한 어투와 호탕한 성품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P 청마거리, 청마문학관 C3 C4

이 중 섭 Lee Jung-Seob

Lee Jung-Seob 이 중 섭 태어난 고향으로 따지자면 이중섭은 분명 통영 사람이 아니다. 그의 통영시절은 겨우 2년에 불과하지만, 그 시기야말로 이중섭의 르네상 스였다고 평가된다. 한국전쟁으로 피난 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이중 섭은 동향 출신의 공예가 유강렬의 도움으로 1952년부터 2년간 나전 칠기기술원양성소에서 기거하며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게 되었 다. 서귀포에서의 가난에서 벗어나 숙식 걱정 없이 창작활동에만 전 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혁림, 장윤성, 유치환 등 통영의 예술가들 과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말술이었던 유치환과는 술자리도 자주 가 지면서 일본으로 떠나보낸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고 한다.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흰소, 달과 까마귀 등을 남긴 것도 바 로 이 시기였다. 그리고 세병관 풍경을 비롯한 30여 점의 풍경화를 그려 성림다방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최근 서울의 한 옥션에 이 중섭의 통영풍경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는데, 소장자는 성림다방의 개인전 당시 사들여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고 한다. P 이중섭거주지 C3

전 혁 림 Jeon Hyuck-Lim

Jeon Hyuck-Lim 전 혁 림 소년 전혁림의 꿈은 장대높이뛰기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연습 도 중 팔이 심하게 부러지는 부상으로 그 꿈은 화폭 위로 내려앉게 된 다. 그의 그림은 온통 깊은 청색, 아니 온통 통영의 바다와 하늘이 다. 미술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고 오로지 독학으로 고향의 풍경을 담아내는데 평생을 다 바쳤다. 그의 손가락은 늘 푸른 물감으로 물 들어 있었고, 그래서 바다의 화가 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깊은 청색은 우리 전통의 오방색과 결합하면서 구상과 추상을 넘나 드는 색채의 마술사 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게 된다. 그는 구십, 아직도 젊다며, 눈만 뜨면 그림을 그리고 머릿속은 늘 새로운 생각 들로 출렁거리고 아이디어가 용솟음쳐. 시력도 까딱없지 손놀림도 힘이 차지, 이건 하늘이 내게 준 복이야. 그리고 싶은 그림을 아직 절반도 못 그렸다며, 하루 여덟 시간 이상 붓과 씨름하는 뜨거운 열 정을 보였다. 미륵산 자락에는 30년 동안 그가 살던 집을 헐고 2003 년 개관한 전혁림미술관이 있다. P 전혁림미술관 F2

윤 이 상 Isang Yun

Isang Yun 윤 이 상 국악과 서양 음악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윤이상의 음악은 현대 서양 의 연주기법을 통한 아시아의 정서를 표현함으로써 창조적인 새로 운 예술을 형성하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현존하는 현대 음악의 5대 거장으로 불렸던 그가 평생을 그리워했던 곳이 바로 고향인 통영 앞 바다였다. 내 음악은 조국의 예술적, 철학적, 미학적 전통에서 태 어났고, 고향은 나의 창작에 다시없이 귀중한, 정서적인 원천이 되 었으며 조국의 불행한 운명과 질서의 파괴, 국가권력의 횡포에 자극 을 받아 음악이 가져야 할 격조와 순도 한계 내에서 가능한 최대의 표현 언어를 구사하려고 했다. 2002년에 시작된 통영국제음악제는 이제는 아시아의 클래식 음악의 메카로 성장하였다. 또한, 윤이상국 제음악콩쿠르도 함께 개최되고 있다. 건축가 민현식이 설계한 독특 한 구조의 윤이상기념관에는 그의 악보를 비롯한 유품 등이 잘 정리 되어 있고, 주변은 기념공원과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통영국 제음악당(윤이상음악당)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P 윤이상기념공원 D2

김 춘 수 Kim Ch'un-su

Kim Ch'un-su 김 춘 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꽃 의 일부다. 김춘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시인인 동시에, 의미와 무의미 의 관계 속에서 언어의 절대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철학적 시어로 대 중에게는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한 시인이기도 하다. 언젠가 그는 이 렇게 고백했다. 요즘도 나는 화창한 대낮 길을 가다가 문득 어디선 가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환청이다. (중략) 바다는 나 의 생리의 한 부분처럼 되었다. 바다, 특히 통영 앞바다 - 한려수도 로 트인 그 바다는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 한다. 통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인생의 많은 시간을 타지에 서 보내야 했던 시인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명성에 비해 김춘수유품전시관은 좀 초라하지만, 육필 원고를 비롯한 많은 유품 이 전시되어 있다. P 김춘수유품전시관 E2

박 경 리 Park Kyung-ni

Park Kyung-ni 박 경 리 통영 항구의 동충 끝을 지나고 해명 나루 지나고 작은 통통배 용화산 뒤편을 휘돌아 가니 첫개라는 어촌이 있었다. 인가가 몇 채나 되는지 희미해진 기억 푸른 보석 같은 물빛만은 지금도 눈에 어린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 홍합 은 그녀가 얼마나 가슴속 깊이 고향 바다 의 물빛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 의 서문에서도 고향 바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확인할 수 있 다. 박경리의 문학 작품에는 고향 통영이 자주 등장한다. 서문고개, 북문안, 새터, 판데, 간창골, 명정골 우물, 갯문가 이런 곳에는 박 경리 문학의 배경이 되었다는 표석이 서 있다. 2010년 완공된 기념 관에서는 박경리의 문학 세계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묘소를 포함 한 일대는 박경리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P 박경리기념관 G8

세 병 관 Sebyeonggwan Hall

Sebyeonggwan Hall 세 병 관 1604년(선조 37)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 건물이다. 창건 이후 300 여 년 동안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수군을 총지휘했던 곳으로 당시 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 고 있다. 앞면 9칸, 옆면 5칸의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데 지붕 은 옆면이 여덟 팔( 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cm 정도 높은 단 을 설치하여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 闕 牌 )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 였다. 17세기 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 남관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로 그 역사적 문 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처마 밑의 웅장한 현판글씨는 제 136대 통제 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다. 세병관( 洗 兵 館 )이라는 이름은 은하수 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 는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것은 전쟁이 빨리 끝나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이 순신이 설치했던 통제영 12공방이 현재 복원중이다. H 세병관 B3

충 렬 사 Chungnyeolsa Shrine

Chungnyeolsa Shrine 충 렬 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위패를 모셔둔 사당으로 1606년(선조 39)에 건립되었다. 경내에는 정조어제기판( 正 祖 御 製 記 板 )과 명나라에서 이충무공에게 내린 8가지의 하사품이 보관되 어 있고, 정문 밖에는 타루비( 墮 淚 碑 ) 등의 주요 문화재가 있다. 이곳은 충무공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모두 6개의 문 을 거치도록 설계되었는데 방문자들은 이 문을 통과하면서 자연스 럽게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된다. 매년 충무공의 탄신제가 열리 는 4월 28일, 사당 앞뜰에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21호인 승전무가 시연된다. 이곳에는 충무공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이순신은 우람 한 장군의 용모가 아니고 항상 말과 웃음이 적고 용모가 단정하여 근 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안으로는 담기가 있었다 는 유성룡의 <징비 록>이 전하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1978년 정형모 화백이 그린 것으 로 1991년 이곳에 봉안되었다. 경내에는 수령 약 400년, 높이 6.5m 의 거대한 동백나무가 있는데, 특히 눈 속에 필 때가 가장 아름답다. H 충렬사 B2

제 승 당 Jeseungdang Shrine

Jeseungdang Shrine 제 승 당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 른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한산 대첩은 매우 불리했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대첩, 진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 의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싸움이었다. 1592년(선조 25) 이곳에 제승 당( 制 勝 堂 )을 짓고, 이듬해부터 1597년까지, 해군의 중심 진영으 로 삼아 해상세력을 장악하고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나갔다. 그러나 1597년에 제승당을 포함한 이곳 군영이 모두 불에 타서 폐허가 되 었다. 그 후 1739년(영조 15)에 제승당과 함께 제승당유허비를 세운 후 여러 차례 공사가 이루어졌고, 일제 강점기 때 지방 유지들에 의 해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지금의 제승당은 운주당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주변에는 제승당을 비롯하여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충무사와 한산정, 수루 등이 있다. H 제승당 G8

강 구 안 문 화 마 당 Gangguan Culture Plaza

Gangguan Culture Plaza 문 강 화 구 마 안 당 강구안 이란 강의 입구라는 의미로 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을 가리 킨다. 강구안은 중앙시장, 서호시장, 남망산 조각공원, 동피랑 마을 등이 전부 연결되는 통영항의 중심이다. 이곳에 문화마당이 조성되 어 있어 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또한, 강구안 문 화마당에 이동식 갤러리 디자인 큐브 가 설치되어 있다. 2개의 디 자인 큐브 안에는 통영의 뛰어난 공예작품과 장인을 소개하는 내용 이 2개월마다 바뀌어 전시된다고 한다. 통영항에는 거북선이 떠 있 는데 원래 서울 한강에 애물단지로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05년 남 북 분단 이후 최초로 한강 하류 비무장지대 뱃길을 열어 한산대첩 의 본 고장인 강구안 문화마당 앞바다로 가지고 오게 되었다. 거북 선은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어 그 내부 구조를 잘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한산대첩 당시 어떻게 거북선이 활약했는지 등 을 짐작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어 어린 학생들의 체험학습장으 로 인기가 높다. S 강구안 문화마당 C3

나 전 칠 기 기 술 원 양 성 소 Training School of Laquer Wares

Training School of Laquer Wares 기 술 원 양 성 소 나 전 칠 기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는 1951년 유강렬이 나전칠기 장인 김봉룡 과 함께 만든 나전칠기 명문 학교다. 2년 과정으로 시작하여 1959 년에는 본과 연구부가 신설되면서 3년제가 되었다. 이후 충무시 공예학원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으며, 1971년 연구부가 없어지고 1975년 완전히 문을 닫았다. 한국전쟁으로 떠돌이 피난생활을 하 던 이중섭이 유강렬과의 인연으로 이곳에 2년간 기거하며 학생들 에게 미술을 가르쳤다. 당시 이중섭은 생활의 안정을 되찾아 소, 부부 등 그 대표작을 남길 수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통영옻 칠미술관장인 김성수, 중요무형문화재 나전 장인 이형만 등 100여 명에 이르는 장인들이 이 학교를 통해 배출되었으며, 이들은 1970 년대 전국 각지에서 나전칠기 붐을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항남동 농협중앙회 통영지부에서 세관방향으로 50m정도 가면 적산가옥 이 아직 남아있다. S 나전칠기기술원양성소 C3

남 망 산 조 각 공 원 Nammangsan Sculpture Park

Nammangsan Sculpture Park 조 남 각 망 공 산 원 이곳은 원래 60년대 말 남망산 정상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지면서 충 무공원으로 조성되었다가 90년대 남망산 공원으로, 이후 시민문화 회관과 야외조각작품이 설치되면서 남망산 조각공원으로 이름이 바 뀌었다. 이곳에는 5,000여 평의 부지에 프랑스의 질 뚜야르, 베네 수엘라의 헤수스 라파엠 소토, 스웨덴의 에릭 디트망, 한국의 김영 원, 일본의 이토 다카미치 등 세계 유명 조각가 15인의 작품을 전시 하고 있어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조각들 사이에 청마 유치환을 비롯한 통영 출신 시인들의 시비가 함께 조성되어 있어 아 름다운 통영 바다를 조망하면서 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산책 코 스로 좋다. 또한, 이곳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다. S 남망산 조각공원 C3

동 피 랑 벽 화 마 을 Dongpirang Wall Painting Village

Dongpirang Wall Painting Village 벽 동 화 피 마 랑 을 통영에는 동피랑과 서피랑이 있는데 피랑은 벼랑의 사투리다. 따라 서 동피랑 마을은 통영의 동쪽 벼랑 위에 형성된 달동네다. 통영시는 도심의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던 이 달동네를 철거하고 원래 그 자리 에 있었던 통제영의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할 계 획을 세웠다. 그러나 철거에 반대하는 푸른통영21 이라는 시민단체 가 동피랑 색칠하기 전국 공모전 을 개최해 전국의 미술대학생들과 화가 지망생 등이 몰려들어 벽화를 그리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벽화 마을은 조금씩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공공미술의 대표적 인 성공 사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지금은 통영의 명소로 알려지면 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이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아무 때 나 몰려와 골목을 휩쓸고 다니면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바람에 오히려 주민이 불편해하고 있다니 방문할 때에는 주민의 일상에 방 해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기 바란다. S 동피랑 벽화마을 C3

통 영 옻 칠 미 술 관 Tongyeong Ottchil Art Museum

Tongyeong Ottchil Art Museum 옻 통 칠 영 미 술 관 나전칠기의 고향 통영에서 오랜 전통을 새로운 창작의 영역으로 발 전시킨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옻칠미술관이다. 김성수 관장은 대학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양성해 오다가 현대 칠예 작품을 본격적으로 감상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2006년 고향인 통영에 전문미술관을 건립하였다. 옻칠은 인체에 해가없는 자연 친 화적인 천연 도료로 가구나 식기 등에 방습, 방충용으로 선사시대부 터 사용해 왔다고 한다. 특히 통영은 나전으로 사용하는 양질의 전 복껍데기 등의 재료를 구하기 쉬운 장점과 함께 400년의 전통이 이 어지면서 칠기의 본고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옻칠미술관은 칠예, 옻칠장신구, 한국옻칠화로 구분된 3개의 전시실과 아트숍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특히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칠화를 만날 수 있 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아트숍에서는 모던한 옻칠공예 소품 을 구매할 수 있고, 창 넓은 카페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옻칠 냄새가 은은히 배어나는 목기에 차를 마시는 것도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다. S 통영옻칠미술관 A4

통 영 전 통 공 예 관 Tongyeong Traditional Arts and Crafts Hall

Crafts Hall Tongyeong Traditional Arts and 전 통 통 영 공 예 관 이곳에서는 통영나전칠기의 400년 전통을 이어가는 중요무형문화 재 기능보유자들이 가구의 기본 틀을 짜는 것부터 마무리까지의 작 업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복, 소라 등의 조개껍데기로 만든 통영의 명물인 나전칠기를 비롯하여 갓, 소반, 부채, 누비, 연, 대발 등 통영의 전통공예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이다. 특히 공예관 안 에서는 한복, 두루마기, 이불, 베게, 방석, 보료 등 수십 종에 이르 는 누비 상품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섬세한 손 기술로 만들어지는 통영누비는 땀 흡수와 통풍이 잘되어 여름용품으로 인기가 높고 가 벼우면서도 부드러운 촉감은 상쾌함을 더해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이게 사랑받고 있다. S 통영전통공예관 F4

통 영 시 향 토 역 사 관 Tongyeong Folk History Museum

Tongyeong Folk History Museum 향 통 토 영 역 시 사 관 통영향토역사관은 선사시대부터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 금에 이르기까지 통영의 변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통제영 12공방과 중요무형문화재 역시 충실히 소개하고 있 다. 이곳은 통영과 연관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를 발굴하고 수 집, 보존, 정리하여 통영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하고 있 다. 또한, 이러한 전시 이외에도 향토사는 물론 문화재, 유적, 관광 등을 소개하는 한편 사회교육활동 등을 통한 향토 전통문화유산의 홍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통영향토역사관은 조 만간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지난 2005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 로 지정된 옛 군청건물에 통영시립박물관이 오픈하게 된다. S 통영시 향토역사관 B3

해 저 터 널 Undersea Tunnel

Undersea Tunnel 해 저 터 널 일제 강점기인 1932년 건설된 동양 최초의 해저 구조물이다. 해저 터널로 연결되기 전에는 통영과 미륵도는 밀물 때에는 섬이지만 썰 물 때에는 걸어서 왕래가 가능한 상태였다. 일제 강점기 일본 어민 의 이주가 본격화됨에 따라 두 지역 간 이동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해저터널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당시 일제가 건설하기 쉬운 다리가 아니라 터널을 선택한 이유가 재미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한산대첩 당시 썰물 시점에 맞춰 이곳으로 적의 선박을 유인해 기습을 가함으 로써 배의 바닥이 걸려 꼼짝 못하게 된 수많은 왜구를 수장시킨 곳 이었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조상의 영혼 위로 다리를 세워 건너다 닐 수 없다는 이유로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공법을 동원해 동양 최초 의 해저터널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썰물 때에도 다시는 배가 바닥 에 걸리지 못하도록 통영과 미륵도 사이에 운하를 파게 되었던 것 이다. 한일 양국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 치가 높다고 하겠다. S 해저터널 D1 E1

전 통 시 장 Traditional Market

Traditional Market 전 통 시 장 통영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은 역시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이다. 두 시 장은 여객선 터미널을 끼고 길게 이어져 그 끝이 맞닿아 있다. 새벽 에는 서호시장을, 오후에는 중앙시장을 찾는 것이 통영 여행의 상 식이다. 통영의 아침을 가장 먼저 여는 곳이 바로 서호시장이다. 새 벽 4시면 시장은 이미 불야성을 이루고, 시락국집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새통이다. 반면 활어회로 유명한 중앙시장의 초장 골 목은 해가 떨어지면서 더욱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두 시 장은 비슷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생존전략을 택함으로써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시락국집을 비롯해서 졸복국, 빼떼기죽, 우짜, 충무 김밥 등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은 대부분 이들 시장을 끼고 형성되 기 시작했고, 통영의 명물 다찌집 또한 이들 시장에서 공급되는 싱 싱하고 싼 해산물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영의 펄 떡이는 바다와 그보다 더 활기찬 사람 냄새를 맡고 싶다면 역시 전 통시장이 정답이다. S 중앙시장, 서호시장 C3 C2

미 륵 산 에 서 본 한 려 수 도 Hallyeosudo Seen from the Summit of MT. Mireuksan

of MT. Mireuksan Hallyeosudo Seen from the Summit 한 미 려 륵 수 산 도 에 서 본 한려수도는 한산도에서 여수까지의 뱃길이라는 뜻인데, 통영에서 가장 높은 미륵산에 올라 바라보는 한려수도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마치 부드러운 곡선의 조선 사발을 엎어놓은 것처럼 올망졸망 떠있 는 섬들을 보고 있노라면 통영을 왜 바다의 땅이라고 부르는지 이해 할 수 있다.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일출과 일몰, 보 석처럼 반짝이는 통영의 야경도 아름답고, 맑은 날이면 거제도 너머 멀리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정상까지는 다양한 코스의 등산로도 있지만, 케이블카가 연결되어 있어 10분 정도면 누구나 편하게 오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긴 길이를 자랑하는 케이블카를 타고 조망 하는 한려수도는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케이블카는 날씨에 따 라 운행하지 못하는 때도 있고 계절에 따라 운행 시간이 달라지니 미 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I 통영케이블카 F3

제 승 당 앞 바 다 The Coast in front of the Jeseungdang Shrine on Hansando Island

dang Shrine on Hansando Island The Coast in front of the Jeseung- 제 승 당 앞 바 다 통영항 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면 거북선 등대를 지나 아름다운 바 다 풍경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금방 한산도에 도착한다. 이순신 장군이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나라를 걱정하며 바라보던 바 로 그 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제승당을 둘러본 다음에는 망 산에 올라 보자. 이름 그대로 임진왜란 당시 망을 보던 산이라 망산 이라고 한다. 400년 전 피비린내 진동하던 전쟁의 흔적은 그 이름에 만 남아있을 뿐, 망산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저 평화롭기만 하다. 망산 정상까지는 7.2km에 이르는 한산도 역사길이 조성되어 있어 천천히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I 제승당 G8

한 산 대 첩 축 제 Tongyeong Great Battle of Hansan Festival

of Hansan Festival Tongyeong Great Battle 한 산 대 첩 축 제 지금으로부터 420여 년 전 여름,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함선 60여 척을 침몰시켜 크게 이긴 한산대첩은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기록 되고 있다. 이런 한산대첩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축제가 매년 8월 중순 통영 시내 일원에서 펼쳐진다.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략으로 일본해군을 섬멸한 한산대첩을 역사적인 고증을 거쳐 그대로 재현 하는 축제현장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행렬, 한산대첩 재 현 등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또한,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펼쳐 지는 해변음악회와 통영 시민이 함께하는 행렬 퍼레이드, 통영오광 대 공연과 승전무 공연은 물론, 통영의 맛있는 음식 체험 역시 빼놓 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Fe

졸 복 국 Jolbokguk

Jolbokguk 졸 복 국 통영에서 먹지 않으면 후회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복국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하하 의 배경으로 복국 전문점이 등장할 정 도로 통영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남해안 일대에서는 복국을 많이 먹 지만 통영에서는 졸복을 사용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졸복은 일반 복 어와 비교하면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졸병 복어라는 의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졸복국은 귀여운 졸복 여러 마리에 콩나물과 미나 리만 넣고 1인분씩 맑게 뚝배기에 끓여주는데, 그 살은 쫄깃하고 국 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다. 졸복국은 특히 숙취 해소에 그 효과가 탁 월해 졸복국 전문점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새 괴롭혔던 속을 달래려 는 주당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서호시장 주변에는 졸복국을 맛있게 잘하는 식당이 밀집되어 있다. 그 가격은 1만 원 전후로 사계절 즐 길 수 있지만 역시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가 제철이 다. 최근에는 졸복에 항암성분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더욱 그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F 호동식당, 만성복집, 부일식당, 남옥식당 C2 C2 C2 C2

굴 Oyster

Oyster 굴 통영 앞바다에 촘촘히 떠 있는 하얀 부표는 대부분 굴 양식장이다. 따라서 싱싱한 굴을 먹기에 통영은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하루 굴 거래량만 100톤 이상, 우리나라 굴의 80%가 바로 이곳 통영에서 생 산된다. 생굴, 굴전, 굴젓, 굴튀김, 굴무침, 훈제굴, 굴구이, 굴찜, 굴솥밥, 굴국밥 등 그 먹는 방법도 다양해 굴 전문점에서는 이런 다 양한 요리를 코스로 즐기는 경우가 많다. 굴은 콜레스테롤을 억제하 고 혈압을 저하하며 피를 맑게 해주는 보양식으로 잘 알려졌다. 또 한, 굴에는 멜라닌 색소를 분해하는 성분과 비타민A가 풍부해서 피 부를 희고 곱게 하므로 여성에게 좋고, 아연 성분은 남성호르몬의 활성에 효과적이어서 남자에게도 좋다고 한다. 하지만 굴은 산란기 에는 독을 뿜어내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서는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서양에서는 R이 없는 달, 그러니까 5~8월에는 굴을 먹지 말라고 한 다. 우리나라는 벚꽃이 핀 다음부터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굴을 먹지 말라고 한다. F 대풍관 C3

꿀 빵 Kkul Ppang

Kkul Ppang 꿀 빵 지금은 통영 시내 어디서나 꿀빵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50년 전통 그 원조의 유래가 재미있다. 유명 제과점에서 일하던 제빵사 가 1963년 독립해서 배급받은 밀가루로 간판도 없이 자기 집 앞에 가판을 차려놓고 만들던 꿀빵이 입소문이 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래서 단골들은 그 옆에 있던 오미사 라는 세탁소 이름을 붙여 오미 사 꿀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세탁소는 사라졌지만, 그 이 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외형으로 는 별 특징이 없지만, 팥 앙금을 소로 하고 있고 겉에는 물엿과 깨 를 발라 고소하면서도 달콤하다. 꿀빵은 충무의 습한 날씨에서도 오 래 두고 먹어도 그 맛에 변함이 없어 옛날부터 뱃사람들이나 섬사람 들에게 인기 간식거리였다고 한다. 원조 오미사 꿀빵집은 하루 생산 량이 한정되어 있어 오후가 되면 동나는 경우가 많으니 될 수 있으 면 일찍 찾아 나서는 것이 좋다. 요즘은 전국 어디에서도 주문하면 택배로 받아볼 수 있다. F 오미사 꿀빵 본점, 오미사 꿀빵 도남점, 꿀단지 C2 E2 C3

다 찌 집 Dajji Jip

Dajji Jip 다 찌 집 통영 토박이 주당들은 아지메, 빠께스로 주소 이 한 마디로 모든 주문이 끝난다. 죽을 포함한 기본 안주가 깔리면 얼음으로 채워진 빨간색 플라스틱 양동이에 소주와 맥주가 적당히 섞여 나온다. 그다 음부터는 회는 물론이고 무침, 구이, 찜 등의 제철 안주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통영을 전부 맛보려면 다찌집에 가라는 말이 있 다. 술값을 조금 비싸게 받고 안주는 공짜로 제공되는 방식이기 때 문에 그날그날 시장 상황에 따라 안주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다찌집 의 특징이다. 술을 추가하면 할수록 안주는 더욱 고급스럽게 이어진 다. 다찌 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의 영향으로, 서서 간단하게 마신다 는 의미의 일본어 다치노미( 立 飲 ) 에서 유래되었다고 짐작되지만 소주 한 두 병정도 적당히 마시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그야말로 주당들을 위한 술집이다. 토박이들이 가는 집을 기준으로 1인당 예산은 3만원 내외로 잡으면 된다. F 벅수실비, 대추나무, 통영다찌 C3 C3 E1

멍 게 비 빔 밥 Meongge Bibimbap

Meongge Bibimbap 멍 게 비 빔 밥 멍게는 표면의 우툴두툴한 돌기 때문에 바다의 꽃이라고 부르는데 서양에서는 그 생김새 때문에 바다의 파인애플 또는 바다의 물총이 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멍게 전체 생산량의 70%가 통영에서 나오는 만큼 통영은 멍게 요리로도 유명하다. 새콤달콤하면서도 쌉 싸래한 맛과 독특한 향이 입맛을 돋우기 때문에 멍게를 좋아하는 사 람이 많지만, 그래서 싫어한다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통영 에서는 각종 채소와 해초에 다진 멍게 회를 듬뿍 올리고 김 가루에 참기름,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다. 식당에 따라서는 성게나 날치 알, 개조개를 양념해서 볶은 유곽 등을 함께 넣어주기 때문에 평소 멍게 의 독특한 향을 싫어했던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요즘 은 멍게를 사계절 언제라도 즐겨 먹지만 역시 찬바람 불기 시작할 때 부터 늦은 봄까지가 제철이다. F 멍게가, 통영맛집, 원조밀물식당 C3 C3 C3

빼 떼 기 죽 Ppaettegijuk

Ppaettegijuk 빼 떼 기 죽 빼떼기죽은 원래 먹을 것이 변변치 못한 시절 허기를 달래주는 가 난의 상징이었다. 빼떼기는 썰어서 말린 고구마를 말한다. 쌀농사가 불가능했던 욕지도는 주로 고구마를 심어 먹고 살았기 때문에 지금 도 고구마 산지로 유명하다. 쌀이 부족한 욕지도에서는 가을에 수확 한 고구마를 썰어서 말려두었다가 겨우내 죽을 끓여서 허기를 달랬 던 것이다. 지금은 다이어트 바람을 타고 고구마가 웰빙 음식으로 떠 오르면서 빼떼기죽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전에는 고구마만 끓여 죽 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팥이나 조, 강낭콩, 찹쌀 등을 넣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의 영양가 높은 건강식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예전 가 난한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인 빼떼기죽이 이제 현대인들에 게는 통영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로 통하고 있다. 빼떼기죽을 파는 식당은 대부분 우동 위에 자장 소스가 올라간 우짜를 같이 파는 경우 가 많은데 우짜는 그 조합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막상 먹 어보면 오묘한 맛의 조화에 중독성을 느끼게 된다. F 원조할매우짜죽 C2

시 락 국 Silakguk

Silakguk 시 락 국 통영의 새벽을 깨우는 서호시장, 4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시락국 골목은 시장 상인들은 물론이고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인 주당들에 게도 그야말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다. 시락국은 말린 무청으로 끓 인 시래깃국의 사투리다. 일반적인 시래깃국과 차별되는 맛의 비법 은 장어 뼈와 머리를 가마솥에서 밤새 고아 만들었다는 그 진한 국물 맛에 있다. 메뉴는 시락국뿐이니 따로 주문할 필요도 없다. 자리에 앉으면 바로 앞에 여러 종류의 밑반찬이 담겨 있어 알아서 덜어 먹 으면 된다. 시락국이 나오면 부추무침, 다진 청양고추, 김, 산초가루 등을 취향대로 넣어 먹으면 된다. 국물에 밥을 말아 한 입 뜨면 구수 한 된장 맛을 바탕으로 장어를 고아 만든 진하고 깊은 맛이 어우러 지면서 쓰린 속을 달래준다. 양이 부족하다 싶으면 밥이나 국의 리 필이 가능하니 망설일 필요가 없다. 단, 욕심 부리지 말고 덜어 먹는 반찬은 남기지 않도록 조심하자. F 원조시락국 C2

충 무 김 밥 Chungmu Gimbap

Chungmu Gimbap 충 무 김 밥 유명한 먹자골목에는 항상 원조집 논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충 무 김밥은 뚱보할매깁밥으로 잘 알려진 어두이 할머니가 처음 만들 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해방 직후인 1947년부터 부산에서 여수를 연결하는 뱃길의 중간 기착지인 통영 항구에서 일반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습하고 무더운 날씨로 쉽게 상해 버리는 문 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두이 할머니가 처음으로 밥과 반찬을 분 리해서 팔기 시작한 것이 원조라고 한다. 무를 어슷하게 썰어 멸치 젓갈로 맛을 낸 섞박지와 매콤하게 버무린 오징어무침 옆에 손가락 굵기의 맨 김밥이 전부다. 요즘은 시락국이 같이 나오지만, 예전에 는 여객선이 멀리서 들어오면 김밥 장사들이 작은 쪽배를 타고 나가 바다 위에서 팔던 테이크아웃 음식이었기 때문에 상차림은 그야말로 심플하다. 그래서 뱃머리 김밥이라 부르기도 한다. F 뚱보할매김밥, 한일김밥, 소문난 3대 할매김밥 C3 C3 C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