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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9월도서관웹용

효진: 노래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지만, 콘서트까지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잖아요. 석진: 네. 그런데 외국인들은 나이 상관없이 모든 연령대가 다 같이 가서 막 열광하고... 석진: 지 드래곤 봤어?, 대성 봤어?, 승리 봤어? 막 이렇게 열광적으로 좋아하더라고요.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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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비만예방 동화 연극놀이 글 김은재 그림 이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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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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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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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 - 다만 조금씩은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 - 2010생명평화활동가대회 자료모음집 2010년 11월 12일~14일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주최 : 2010생명평화활동가대회 준비모임 후원 : 모심과살림연구소, (사)무위당사람들 모심과살림연구소, 서울시 중구 장충동1가 31-6 5층, 02-3498-37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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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생명평화활동가대회에 초대합니다! 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 [다만 조금씩은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 모두가 같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 빨리 간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 나 혼자 해야하는 것도 아니잖아. 다른 모양으로, 다른 곳에서, 내 멋, 내 맘, 네 멋, 네 맘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언 제 : 2010년 11월 12일~14일(금.토.일) 어 디 :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방갈로 주 최 : 2010생명평화활동가대회 준비모임 후 원 : 모심과살림연구소, (사)무위당사람들 프로그램 시간 내.멋.대.로 11/12(금) 네.맘.대.로 11/13(토) 생.명.평.화 11/14(일) 08:00~09:00 하루시작 하루시작 09:00~10:00 전체 토론-서로 배움터 정리와 제안 10:00~11:00 11:00~12:00 (생명운동의 정치,지역,사상) 함께 걷기 12:00~13:00 점심식사 점심식사 13:00~14:00 안녕, 친구들 네맘대로 광장1 14:00~15:30 접수, 짐풀기 15:30~16:00 여는 공연 - 유기농밴드 휴식 16:00~17:00 반갑습니다! 17:00~18:00 소개와 인사 네맘대로 광장2 18:00~19:00 저녁식사 저녁식사 19:00~20:00 20:00~21:00 강연 - 김영주 선생님 (무위당만인회 회장) 21:00~22:00 달빛 데이트 22:00 뭔가 있는 번개 강강술래 워크숍 사이공연&뒤풀이 - 1 -

내멋대로, 네맘대로 해보세요 * 뭔가 있는 번개 : 하고 싶은 게 있는 당신, 누구라도 치세요 예) 밤마실, 선남선녀모임, 20대 모임, 타로점, 그사람이알고싶다(1인 인터뷰) 등 * 네맘대로 광장 : 모두가 주제를 만들고, 모으고, 이야기 할 수 있어요 미리 준비해와도 좋고, 즉석에서 만들어도 좋습니다. 진행/형식/장소/참석 자유 예) 연애와 결혼, 그 애매모호에 대하여 / 월세내다 허리가 휘어, 어디서 어떻게 살까 / 모여라, 가난뱅이 / 몸살림 같이 해봐요 / 다음 생명평화모임은 어떻 게 할까? / 청춘이 귀농한다는 건 등 이렇게 하면 좋겠어요 * 고민거리,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준비된 메모가 있으시면 미리 보내주세요. * 모임에서 직접 나눌 자료, 홍보물은 60부 정도 준비해 주세요. * 아침식사가 따로 준비되지 않습니다. 간단한 먹을거리, 과일 등 환영합니다. 함 께 나누어 먹어요. * 정해진 참가비는 없습니다. 낼 수 있는 것을(현물 가능) 낼 수 있는 만큼 냅니다. (전국 백수들은 마음만 가져와도 환영) 신청&문의 : 함께하실 분들은 아래 이메일로 이름/지역/전화번호를 보내주세요. 임수진 (lsj@hansalim.or.kr / 019-748-9755) 김정지현 (icougar@hanmail.net / 018-226-4084)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오시는길 홈페이지 : http://www.campcb.net/ 전화 : 043-833-8005 주소 :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287-4(속리산 국립공원 화양계곡내) 대중교통으로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충북자연학습원 행 버스를 타시면 됩니다.(1시간 20분 소요) 청주 자연학습원 배차시간 07:20/09:20/11:20/12:20/14:00/15: 00/17:00/19:00-2 -

2010 생명평화활동가대회 - 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 - 1. 행사 개요 행사일정 : 2010년 11월 12일(금)~11월 14일(일) 행사장소 : 충청북도 자연학습원(충북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287-4) 주제 : 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 [다만 조금씩은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 주최 : 2010생명평화활동가대회 준비모임 후원 : 모심과살림연구소, 무위당사람들 참석 : 전국에서 모인 50여명 2. 준비 및 진행 1) 준비모임 날 짜 모 임 함께한 사람 4/14 1차 모임 9/6 2차 모임 한혁준, 이근행, 오세영, 로키, 김도형, 김현, 김정지현, 임수진 / 총 8명 9/14 3차 모임 한혁준, 오세영, 신건준, 김도형, 김현, 조헌철, 김정지현, 임수 진, 이근행, 정봉연 / 총 10명 10/7 4차 모임 한혁준, 신건준, 김현, 김정지현, 임수진 / 총 5명 10/14 답사 장수 논실마을학교 : 김도형, 조헌철, 김정지현, 임수진 여주 한국노총중앙교육원 답사 : 신건준 10/18 답사 원주 승안동녹색체험마을 답사 : 오세영, 전미선 10/19 5차 모임 한혁준, 오세영, 조헌철, 김현, 김정지현, 임수진 / 총 6명 10/28 6차모임&답 사 한혁준, 조헌철, 김정지현, 김현, 임수진 / 총 5명 11/12~14 생명평화 활동가대회 전국 50여명 11/25 정리모임 오세영, 서경원, 김정지현, 임수진, 최경훈, 강대건, 김도형, 한 혁준, 신건준, 김현 / 총 10명 2) 홍보 - 10/26 웹자보 제작(모이라 님) 완료, 게시 시작 - 구글 그룹스를 이용한 메일링 lifepeace-player-groups@googlegroups.com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모심과살림, 생명평화결사 등 홈페이지 게시 - 지역별 전화확인 등 - 3 -

3) 주요프로그램 [내.멋.대.로] 첫째날, 11/12/금 시간 프로그램 준비 담당 * 선발대가 현수막 게시, 숙소 점검 및 대략적인 방배치, 안내표지 부착 등 14:00~15:30 접수, 숙소배정, 짐풀기 방배정표, 접수대, 명찰, 참가비영수증, 임수진 15:30~16:00 여는 공연 - 유기농밴드 공연준비, 음향시설 확인 김현, 한혁준 16:00~17:00 17:00~18:00 반갑습니다 고민 비행기&소개와 인사 비행기 종이 60개, 펜 60개, 마이크, 공간 확인 18:00~19:00 저녁식사 첫날 저녁 45인분 19:00~20:00 20:00~21:00 강연 - 김영주 선생님 강연료, 영수증 21:00~22:00 달빛 데이트 짝꿍 종이 22:00~ 뭔가 있는 번개 번개 게시판, 약간의 다과, 공간 확보 및 공지, 임수진 각자 1 여는 공연 - 김현(+유기농밴드), 한혁준의 공연으로 공식 프로그램 시작함 - 공연 준비와 진행 : 김현, 한혁준 2 고민 비행기&소개와 인사 - 각자의 고민(혹은 꿈)을 비행기에 적어 날리고, 다른 참가자들이 그 비행기에 댓 글을 달아 다시 날림. 이후에 함께 나누고픈 내용은 몇몇이 발표, 모든 비행기는 프로그램 이후 벽면에 게시 - 비행기 프로그램 이후, 전체 참가자들의 간단한 인사와 소개 3 김영주 선생님 강연 4 달빛 데이트(우연히 만난 한 사람!) - 제비뽑기 형식으로 참가자들을 짝을 지어 1:1 대화 시간을 가짐 -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각 짝끼리 결정 5 뭔가 있는 번개 - 하고 싶은 테마로 하고 싶은 사람이 모여 즉석 번개 진행 - 4 -

[네.맘.대.로] 둘째날, 11/13/토 시간 프로그램 준비 담당 08:00~09:00 아침식사 09:00~10:00 10:00~11:00 전체 토론 발제문, 토론문 등 미리 받아 준비 :생명운동 11:00~12:00 12:00~13:00 - 서로 배움터 점심식사 자료집 제본, 기록 연구모임 13:00~14:00 주제 게시판 각자(기록할 네맘대로 광장1 필요물품이 있다면 사전 신청 14:00~15:30 사람 필요) 각 주제별 준비, 진행 15:30~16:00 휴식 중간 점검, 재공지 주제 게시판 16:00~17:00 각자(기록할 네맘대로 광장2 필요물품이 있다면 사전 신청 17:00~18:00 사람 필요) 각 주제별 준비, 진행 18:00~19:30 저녁식사 19:30~21:00 강강술래 워크숍 강사비 영수증, 공간 확보 음향, 조명 확인 상상공장 21:00~ 뒤풀이 술, 안주 1 전체 토론 - 서로 배움터 : 생명운동의 지역, 정치, 사상 - 생명운동 연구모임 구성원들이 3시간 동안 진행 - 사회 : 유정길 / 대표발제 : 김용우 / 준비된 이야기 : 생명운동연구모임 - 여럿의 경험, 고민을 공유하고자 함. 어렵고 추상적인 발제가 아니라 편안한 언 어지만 고민거리는 분명하게 드러나는 토론을 기획했으나 대표발제와 토론 이후 참가자들의 의견을 듣는 형식으로 진행 됨. 2 네멋대로 광장 - 참여하는 사람들의 여러 요구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장을 만들고 몇 가지 주제로 모여, 관심 있는 주제별로 이야기 나누는 자리. 진행 장소, 형식 자유 - 영역별 준비는 각자가 하지만 몇 가지 주제는 미리 준비해가기로 함 - 행사 당일, 영역별 이야기 모임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기 보다는 산책, 운동, 휴식 등 참가자들의 요구에 따라 진행 됨 3 강강술래 워크숍 - 상상공장 정윤미 강사의 진행으로 강강술래 워크숍 진행 4 뒤풀이 - 한혁준&김현과 가수 사이 의 공연으로 시작하여 자유롭게 이야기 나눔 - 5 -

[생.명.평.화] 셋째날, 11/14/일 시간 프로그램 준비 담당 09:00~10:00 아침식사 10:00~11:30 정리와 제안 11:30~ 이동, 점심식사 1 정리와 제안 - 2박 3일 일정 마무리 소감과 이후 모임/만남 등 제안 - 정리와 제안 이후 함께 걷는 일정을 기획했으나 전체적인 일정이 늦어져 정리와 제안으로 마무리 함 4) 기타사항 - 참가비 액수를 정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받음 - 아침식사 2회는 자연학습원에 주문하지 않고 과일, 누룽지 등으로 식사 - 참가 신청을 받았으나 인드라망 마을학교에서 온 친구들 외에는 전화통화, 지인 연락 등으로 신청 함. - 대회 이후 구글 그룹스 메일링에 참가자들을 추가. 현재 총 100여명 등록. 3. 예산 (세부내역은 엑셀파일 참고) 1) 집행내역 총 수입 : 3,898,700원 총 지출 : 3,898,700원 2) 수입내역 항 목 내 역 금 액(원) 비 고 후원금 참가비 참가비 무위당사람들 후원금 모심과살림연구소 후원금 1,500,000원 충북자연학습원 이용료로 지출 2,199,700원 사전 준비비와 행사진행비로 지출 199,000원 수입계 3,898,700 충북자연학습원 이용료로 지출 후 잔액 34,000원 3) 지출내역 구 분 항 목 내 역 금 액 준비모임 회의비 1~6차 기획회의 저녁식사, 뒤풀이, 숙소비 635,000원 - 6 -

답사비 10/14 장수 논실마을 답사 교통비, 식사비, 주유비 176,600원 활동가대회 홍보비 강사비 대회 현수막 2개 제작 65000원 웹자보 제작비(문화상품권) 50000원 김영주 선생님 강연비 200,000원 강강술래 워크숍 진행비 300,000원 뒤풀이 공연비(사이) 200,000원 115,000원 700,000원 교통비 주유비, 고속도로비 153,500원 뒤풀이 뒤풀이 주류 148,100원 뒤풀이 안주 200,000원 348,100원 숙박비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8,000*45명*2일 720,000원 시설사용료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3,000*45명*2일 270,000원 식비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5,000*45명*3식 675,000원 준비팀(선발대) 식사비 47,000원 음료수 구입 24,500원 746,500원 정리모임 식비 원주 정리모임 음료, 다과비 34,000원 지출계 3,898,700원 4) 기타 후원내역 * 한살림 사업연합 물품 후원(50만원 상당 먹을거리) * 진안 고구마(조헌철) / 모시떡(백선희) / 11.14 점심식사(한살림 괴산생산자연합 회) / 그릇 대여(솔뫼농장) / (마시는)차 (원주) / 커피믹스(괴산) / 사과(로키) / 제 주감귤(제주소녀 김현 부모님) - 7 -

[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 2010/11/12~14] 2010 생명평화활동가대회 김영주 선생님 강연 기록 일 시 : 2010년 11월 12일(금) 오후 7시~9시 장 소 :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본관 1층 강당 사 회 : 이근행 진 행 : 이경국 선생님의 인사말 이후 김영주 선생님의 강연 기록 및 정리 : 김현, 신건준 이경국 님((사)무위당사람들 이사장) 인사말 나는 사실 이 모임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까 처음에 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라고 그러기에, 이게 무슨 뜻인가 했어요. 밑에 다만 조금씩은 믿어 주고 기다려주고 지켜봐주기. 이게 여운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동안에 생명운 동을 해 오신 무위당 선생님의 뜻과 생각이 늘 같이 하는 청년들이기 때문에 이 땅에 좋은 지도자로서 그 일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할 것이냐에 대해서 워크숍하면서 1년 동 안 회고하고 다시 재조명해서 같이 변화하고 그러는데 오늘 모임의 뜻이 있는 게 아닌 가 생각이 드네요. 조금 이따 김영주 무위당만인회 회장님께서 말씀을 하시겠지만 저는 여러분을 환영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진심으로 환영하고 2박3일 동안 내용 있는 여러 분들의 모습이 되어서 돌아가도록, 그리고 여러분들 각자가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운동 하는 사람으로 여러분들 마음에 와 닿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경제가 각박하고 세상이 각박하고 정치문화가 엉망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생명평화 운동을 지켜나는 사람으 로 봉사하고 헌신할 수 있을지, 무위당 선생님도 바로 그런 운동 속에 고뇌하고 실천에 옮기시다가 세상을 뜨셨기 때문에. 잠깐 한살림 회장하던 박재일 회장 묘소를 갔다 왔 어요. 그 사람도 생명운동하다가 갔어요. 제일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2박3일 은 김용우 선생이나 이근행 선생이나, 심부름꾼이, 심부름꾼과 함께 뜻있게 좋은 내용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동지가 되도록 부탁을 드리면서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김영주 님(무위당만인회 상임대표) 강연 이경국 사무국장, 여러분의 대선배야. 저 양반이 원주에 지학순 주교님이 만드신, 무 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주도하신 사회개발사업, 생명운동을 태동시킨 모체, 거기에서 광 산지역사업을 담당하시던 팀장이야. 저 양반 광부 출신이 아닌데, 남자답잖아. 사회자께 서 얘기했지만, 술도 잘 먹고. 김지하 시인과 저 양반이 노래방 가면 김지하 시인이 두 - 8 -

시간, 저 양반이 두 시간, 그런 분들이야. 저 양반이 광산에 가서 15개 신협과 소비조합을 만들었어. 그때까지는 살벌한 지역이 었는데, 옆 사람 믿지 않으니까, 물가도 보통 지역보다 엄청 비싸고. 옆 사람 믿지 못하 니 돈 꿔주는 것 없고. 그런 살벌한 사회에 저 양반이 가서 신협도 만들고 소비조합도 만들고. 신협을 통해서 저축, 대출해서 생활을 안정시키고, 소비조합, 생활협동조합을 만 들어서 생활물자를 15개 조합이 합쳐서 3만5천 명 광부들이 조합원이 돼서 한꺼번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들이니 엄청나게 값이 싸질 수밖에 없지. 대표적인 게 광부들은 매 일 소주 한 잔씩 먹어야 하거든. 그 전에 소주 한 잔은 다른 도시에서 천 원 하면, 거기 에서는 1,300원, 1,500원 할 때야. 저 양반이 트럭으로 두 트럭씩 양조장에서 바로 사 가지고 와서 15군데 나눠주니까 소주 값이 반 이하로 떨어졌어. 물가를 평균 30% 다운 시킨 재주 있는 사람이야. 작년 여름에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이 와서 좋은 인물 좀 소개시켜줄 수 없냐, 했어. 원주에 물가를 한꺼번에 30% 다운시킨 사람이 있다, 눈이 동그래져. 실적을 가지고 있 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은 말할 권리가 있어. 그런 분이라고 생각하시고 여러분이 만난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뻐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여러분을 뵙고 희망하는 것은 여기 있는 동안에 한 사람이라도 친구 더 많이 사 귀고 그 친구하고 많이 대화해봤으면 좋겠어. 그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얘기를 하다 보면 어떤 가치도 생각이 되느냐, 이걸 좀 했으면 좋겠어. 그걸 여러분들이 잊지 마시고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부탁이 있어요, 무위당 얘기 중에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 가 나였다는 것을.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남이 아니다. 그 사람은 나의 또 하나의 분신. 그 사람이 바로 나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일이 된다, 라고 가르치는 말이에요. 서로 인 사들 했겠지만, 미처 난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악수 한번 씩 합시다. 무위당이라니까 굉장히 거룩하고 말하자면 예수님 같고, 부처님 같다고 생각하는 사 람이 많은데 우리와 똑같은 보통 사람이야. 보통사람이 뭐냐, 학교 다니고 학교 다닐 때 얻어맞고 대학 다니다 쫓겨나고, 군대 가서도 터지고, 사회 나가서도 일하다 보면 잘 안 되는, 이런 걸 겪은 사람. 제일 먼저 인생에서 겪은 게 뭐냐면, 서울대학의 전신인 서울공업전문학교에 입학했 어. 그때 미국 군정 때야. 미군이 들어와서 한국을 통치할 땐데, 학교 각 과별로 특수한 학교들을 만들어서 서울대학교라는 학교를 만들게 됐어. 이걸 만드는데 다 좋은데 총장 을 미국 군인 대령을 총장으로 내려 보낸다는 거야. 학생들이 미국군인 말고 조선 사람 을 총장으로 다오, 국대한반대사건이라는 게 있어. 그거 반대운동 한 거야. 무위당이 다 니던 공업전문학교의 반대운동에 무위당이 대장이야. 학생운동에.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 사람들이 서울대학교 만든 다음에 총장을 미국 군인이 왔다고. 저 오는 걸 반대하는 걸 놔둘 리가 없잖아. 자기 오는 것 반대한 애들 다 제적. 우리학교 해방 이후에 제적 처분 - 9 -

1호 패들이 있다고. 그게 무위당이야. 여기도 그런 분이 있을지 몰라. 대학 다니면서 처벌 받고 이런 걸 경험한 사람이 있 을 거야. 그 다음에 할 수 없이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금은 과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은데 그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미학과에 입학시험을 다시 쳐서 입학을 했어. 미학 과라는 게 아름다운 미자 쓰니까 미술하고 이런 게 아니라,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철학 과야. 그런데 몇 년 다니는 동안에 6.25가 터졌어. 고향이 원주니까 서울이 먼저 이북 군인들이 와서 점령, 거기서 빠져나와서 원주까지 오니까 거기도 벌써 이북 통치하에 들어갔어. 도망갈 수가 없으니까 거기서 피난을 했어, 아는 농가에 숨어서 살았어. 그때 는 사회 환경이 어땠냐면 이, 빈대, 석회 이런 게 있다고, 사람 몸에 기생하는 게. 머리 에 버러지들이. 여름이야, 7, 8월 제일 편한 게 머리를 박박 깎는 거. 머리를 박박 깎았 어. 남쪽 군인들이 쳐들어와서 다시 회복을 한 거지. 들어오는 군인의 속도가 도망가는 이북 군인보다 빨라. 도망가는 놈은 미처 다 도망 못 가는데 그 앞에 가 있단 말야. 도 망가는 놈이 숨어서 도망가려니까 죽을 고통이지. 앞에 가는 국군들이 들어오니까 모두 만세 부르고 환영하고 그랬잖아. 그런데 이 군인들이 이렇게 보다 여름이니까 맹구 모 자를 쓰고 있는데, 그걸 들어. 머리 박박 깎은 놈이 많단 말이야. 너 이리 와. 머리 깎은 놈은 이북군인이란 말이야. 그땐 남북을 어떻게 가렸냐, 머리 깎은 건 북이고 안 깎은 건 남이야. 머리를 깎았나 안 깎았나가 적이냐 아군이냐를 가르는 거야. 무위당은 빈대 이런 것 때문에 머리를 박박 깎았단 말이야. 좋다고 만세 부르는데 모 자를 들어보니까 머리 깎았으니까 이리와, 너 빨갱이지? 아닙니다. 무슨 아니야. 그래가 지고 머리 깎은 사람들 쭉 세우고 총살을 시키는 거야. 무위당 차례가 됐어. 이제 죽는 거야. 누가 증명할 사람도 없고. 이 사람은 천주교 신자거든. 천주교 신자는 죽을 때 성 호를 긋잖아. 죽을 때가 됐으니까 성호를 그었다고. 그걸 보던 지휘하던 군인이, 스톱. 너 천주교 다니느냐? 뭐 외워봐라, 뭐 외워봐라, 저 놈은 빨갱이 아니다, 이리 나와. 그 래서 살아났어. 죽고 사는 게 종이 한 장 차이야. 그런 경험을 겪으신 분이야. 그 다음에 군대 갔다 돌아와서 원주에 왔는데 원주라는 데가 주변 교통이 좋은 데여 서 피난민들이 많이 와 있지. 거기에 따라온 아이들이 학교를 다녀야 되는데, 그 아이들 이 고등공민학교에 다녀. 정식 학교가 아니고 그냥 가르치기만 하는 거야. 고등공민학 교, 중학교 과정만. 거기에 선생을 하는 거야. 그 학교 경영하시던 분이 못 하게 돼서 팔아먹게 된 거야. 그 양반이 애들 생각을 해서 친구들하고 돈을 모아서 그 학교를 인 수를 했어. 그럼 누가 교장을 할 거냐. 친구들이 같이 얘기를 하면서 니가 교장 해라, 너는 뭐 해라, 나눠서 하는데 무위당은 교장 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성욱고등공민학교 교장을 했다고. 애들을 졸업을 시켰어. 고등학교는 가야 할 거 아냐. 고등학교에서 안 받아줘. 정식 인가가 난 학교가 아니니까. 자격이 없으니까. 안되겠다.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야겠다. 문교부에 가서 이 학교 정식으로 허가 좀 내주시오. 고등학교 인가 내 주시 오. 돈 모아서 법인 만들어서 경영체를 만들어서 문교부에 얘기해서 인가를 냈어. 그 당 시 원주, 중앙 관청에서 좋은 관직에 있는 분이 있어서 그 분이 도와줬어. - 10 -

무위당이 그 학교 이사장이 된 거야. 이사장이 경영자잖아. 교장은 학교를 운영하는 사람이고 이사장은 경영자. 그런데 학교에서 뭘 하려면 문교부가 말썽이야. 문교부가 잘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주지 않고 만날 돈 달라 뭐 달라 귀찮잖아. 젊은 혈기에 약이 올 라. 니들 버르장머리 가르치려면 도리가 없다. 내가 국회의원을 해서 압력을 줘야겠다. 정치에 뛰어들어서 입후보했어. 두 번 입후보해서 다 떨어졌어. 나도 그때 국회의원 선 거할 때 봤지만 합동 정견발표를 해. 정견발표하면 제일 인기가 좋아. 박수가 막 터지고 기분이 당선된 것 같아. 투표해보면, 표가 없어. 어디로 갔느냐. 그때는 돈, 막걸리 돌리 고 그럴 때야. 투표 하루 전 여당 후보들이 다 갖다 먹이고, 박수 치던 사람들이 다 거 기 간 거지. 당선될 턱이 없잖아. 두 번을 그렇게 낙선되고. 두 번 다 당신의 꿈이 밟힌 거야. 그때 이 양반이 뭘 했느냐. 기회가 있기만 하면, 평화통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 어. 국가의 정책이 북진통일이야. 총 들고 이북에 쳐들어가서 평양도 뺐고 공산당 몰아 내야 된다. 북진통일이 정책이야. 이 양반은 그러면 안 된다. 6.25때 겪었지 않느냐, 많 은 사람들이 고생했고, 말이 되느냐. 싸움박질해서 하는 게 아니라 평화통일 해야 한다 고. 사람들이 다 끄덕끄덕 하지. 근데 5.16이 나서 박정희가 정권을 잡았어. 반공을 국 시로 했어. 반공이 국가 정책의 1번. 그런 슬로건을 내걸었다고. 빨갱이 잡아들여라. 강 원도에는 한 사람도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이 없어. 강원도에는 없습니다, 라고 보고하니 까 박정희가 화가 나서 150만 중에 한 사람도 없단 말이냐, 말도 안 된다, 찾아라. 죽어 라고 찾아도 없어. 찾다 찾다 보니까 평화통일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국가의 정책이 북진통일에 반대하는 평화통일 주장하니까 이게 빨갱이다. 그때는 평화통일을 얘기한다는 게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했어. 강원도를 대표하는 빨갱이로 군사재판에 회 부됐어. 8년 징역, 평화통일 주장했다고 8년 징역형을 받았어. 박정희는 어떤 사람이냐? 박정희는 진짜 빨갱이야. 그 사람은 군대에 있으면서 군대 빨갱이 조직의 대표 중의 한 사람이었어. 자기가 잡히게 되니 군대 내 공산당 조직의 명부를 다 정리해서 정보부에 갖다 바치고, 그걸 내건 조건으로 목숨 살아난 거야. 자기하고 빨갱이 운동 같이 한 사 람은 다. 진짜 빨갱이는 박정희. 빨갱이 잡아들이라고 해서 잡힌 사람, 무위당은 가짜 빨갱이. 진짜 빨갱이한테 가짜 빨갱이가 잡힌 거지. 재판을 받기 얼마 전에 무위당이 결혼을 했어. 재밌는 것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총각 한테 시집오는 색시는 서울 색시야. 지금은 안 그런데 옛날에는 고등학교, 중학교에 시 험을 쳐야 들어가. 여자가 들어가기 제일 어려운 중학교가 경기여고야. 부인 되시는 분 은 경기여고 졸업생이야. 대학은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나왔어. 여자로서는 머리가 아주 우수한 사람이지. 어떻게 돼서 무위당한테 시집오는 얘기가 나왔느냐. 친구가 너 평생 희망이 선생 하는 거 아니냐, 강원도에 너한테 딱 맞는 신랑감이 있는데 그 사람이 학 교를 새로 만들어서 이사장이야, 남편이 이사장하고 너는 선생하면 죽이 딱 맞아서 좋 은 배필이 될 것 아니냐. 선을 봤어. 선보는 날 이 규수가 뿅 갔어. 무위당은 왼쪽 귀가 어두워, 잘 안 들려. 색시가 꼭 왼쪽만 서서 같이 가는 거야. 무위당이 뭐라고 했냐면 내가 왼쪽 귀가 나쁜데 당신이 내 오른 쪽에서 같이 가면 안 되겠냐 라고 얘기했어. 거 - 11 -

기에 홀랑 넘어간 거야. 처음 만나는 때 자기가 귀가 안 들린다는 약점을 아무 기탄없 이 쉽게 얘기하는, 참 양심적이고 순진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결혼한 거야. 며칠 있다가 5.16이 나서 무위당이 잡혀갔어. 서울 규수가 시골에 시집 왔는데 남편이 잡혀서 서울 에서 재판을 받게 됐어. 옥바라지 해야지, 돈이 필요하잖아. 시집 온 새색시가 시댁에 돈 달라고, 그 말이 안 나오잖아. 친정은 서울이야. 친정에서 돈 달랄 수도 없잖아. 그땐 출가외인인 시절이야.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돈 달란 말을 못해서 할 수 없이 평화시 장에 미싱사들이 일하는 3층, 거기에 가서 그 당시 미싱사 그 밑에 시다, 조수를 했어. 실밥, 단추 달고 그 조수 노릇하면서 번 돈 가지고 남편 옥바라지. 시집한번 잘못 가는 바람에 고생한 거지. 근데 3년 세월이 흘러서 박정희가 다 안정이 되니까 석방을 했어. 8년 징역이지만 3년 만에. 원래 이사장하던 학교 이사회에서 나왔으니까 도로 이사장 하라고 해서 다시 이사장이 됐어. 남편이 이사장으로 복직을 했으니까 학교 선생만 하 면 꿈꾸던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본 거야. 그때는 취직을 하려면 경찰서에 신원조회를 해야 돼. 이 사람 우리 학교 직원으로 쓰겠습니다. 그럼 경찰서에서 좋다, 안 된다 하는 거야. 그 부인을 남편이 이사장 하는 학교에서 쓰겠다고 했더니 안 된다. 왜 안 되느냐 알아봤더니 무위당은 정치정화법에 해당돼. 때가 많이 묻은 사람은 정치하면 안 된다. 반공법에 빨갱이로 몰렸으니까 때가 묻은 사람이다. 저희들끼리 해 먹겠다는 거지. 정치 판에 못 들어가는 거지. 사회안전법. 사회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때는 재판 없이 아무 때 나 잡아넣을 수 있다. 해당자야. 사회안전법에 걸리면 재판 없이 아무 때고 집어넣는 거 야. 원주에 해당되는 사람이 셋 있었어. 지학순 주교, 무위당, 김지하. 사회안전법 해당 자야. 재판 거치지 않고 아무 때고 집어넣어. 박정희 정부가 얼마나 독재가 심했는지 증 명하는 거지. 남편이 그러니까 이 여자는 안 된다. 내가 농담으로 그런다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나와도 선생을 못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지금도 살아계신데 평생 선생을 못 했어. 남편이 이사장인 학교에 취직이 안 되는 거야. 얼마 있다가 큰 사건이 생겼어. 지금 대 통령이 6.3동지회 회장을 했거든, 이명박이. 한일 국교정상화해서 일본에서 돈을 받아서 박정희가 돈을 쓰려고 하는데 학생들이 반대운동을 한 거야. 그걸 6.3사태라고 그래. 서 울에서는 대학생이 나와서 하는데 원주에서는 대성학교, 무위당이 만든 고등학교 학생 들이 나와서 시위를 했어. 박정희가 야마 돌은 거지. 이게 번져서 서울에서 고등학생이 거리로 나오면 치안이 유지가 안 된다. 고등학생 60명을 집어넣은 거야. 조사를 한 거 야. 와서 캐 보니까 원인을 잘 못 찾아. 추측이 어떻게 되느냐. 무위당이란 사람이 빨갱 이였었는데, 이 사람이 이사장이니 뒤에서 조정을 했어. 추궁한 거야. 무위당이 하도 기 가 막히니까 좋다, 내가 책임을 지고 이사장 그만두겠다. 학생들 60명 잡아간 거 다 풀 어라. 학생들은 풀려나고 무위당은 사표 내고 이사장에서 쫓겨난 거야. 그 다음에 무위 당은 한 번도 취직을 못 했어. 다행히 그 집안이 농토가 많아. 큰 지주는 아니어도 땅이 좀 있는 사람이니 그 집에 있는 땅에 포도나무를 심고 포도농사를 하는 거야. 머리에 먹물 많이 있는 사람은 농사 - 12 -

지으면 잘 되나?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농사지으면, 무위당도 똑같아. 강태공의 낚시마냥 세월 보내기 위해서 한 거지, 포도농사 지어서 돈 벌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집에서 뭘 해야 돼. 시간 나는 대로 붓글씨 쓰고 책 읽고. 붓글씨 쓰는 게 뭐냐. 이 양반이 어릴 때 붓글씨를 아주 잘 쓰는 선생님이 있었어. 그 밑에서 배워서 기초가 있는 거야. 그 기초를 가지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을 해서 글씨를 잘 쓰게 됐어. 그렇게 세월을 보내는 거지. 얼마나 화가 나겠어. 이 양반 얘기가 있어. 그때 저녁에 드러누워서 자려면 바깥에서 여름에 벌레가 운다고. 나 같아도 벌레가 울 면 우는가보다 할 텐데 이 양반은 그걸 민감하게 들었어. 아, 저 놈이 나보다 낫구나. 그 벌레는 자기 울음을 통해서 자기주장을 하는데, 나는 벌레보다 훨씬 낫다는 인간임 에도 불구하고 자기주장을 못하잖아. 내가 저 벌레만도 못하구나. 저 벌레가 나보다 낫 구나. 저놈이 내 선생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거야. 거기에서 시내를 다니는 거야. 보통 걸으면 10분이나 15분이면 갈 거리를, 그 제방 둑이나 그런 데 풀이 많이 있잖아. 풀을 밟고 지나갔다가 다음날 보면 밟힌 풀이 서 있 잖아. 저놈이 나보다 낫다. 저놈은 밟혀도 그 다음날이면 딱 서 있는데 난 밟히면 그 다 음날 못 서 있잖아. 차라리 저 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 양반이 쓴 책, 말한 얘기에, 차라리 풀이 되었으면 좋겠네. 내가 저 풀만도 못한 거야. 그런 가슴에 맺힌 한을 가지 고 산 거야. 세상이 운이 좋으려고, 지학순 주교라는 분이 원주에 천주교 주교로 왔어. 지주교란 사람은 이북에서 고생해서 남쪽에 내려온 그것도 맞지만, 로마 신학교에 유학을 갔는데 전세계 천주교를 바꿔야 된다, 바꾸기 위해서 세계 진보적인 학자 300명을 모아 놓고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겠느냐. 이 과제를 해결하고 나에게 보고해라. 그게 제 2차 바티 칸 공의회야. 그 당시 세계에서는 아주 진보적인 300명이 모여서 보고서를 냈어. 그대로 실천해서 교회를 바꾸는 거야. 그걸 로마에서 유학하면서 현장에서 다 본 거야. 아주 진보적인 사 상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학교 교수하다 일반 교회에서 일을 하다 원주교구 교 구장이 된 거야. 김수환 추기경하고 고등학교 동기동창이야. 이 양반은 이북에 가서 38 선이 막히는 바람에 못 내려와서 6년 늦게 신부가 됐어. 그 김수환 추기경보다도 먼저 지학순이란 사람이 주교가 됐어. 강원도 원주에서. 그만큼 진보적이지만 실력을 알아주 었던 분이야. 이 양반이 교구장이 돼서 와서 일하려고 보니까 손잡고 같이 일할 평신도 가 필요한 거야. 장일순이라는 사람이 빨갱이로 몰렸는데 사람은 똑똑하니 만나봐라, 몇 번 만나서 얘기를 해봤더니 딱 얘기가 맞는 거야. 좋다, 그래서 38살 먹은 사람을 원주 교구 평신도 회장을 시켰어. 획기적인 거지. 다른 것 말고 교육만 해라. 청년들 교육, 교 회 신자들 교육. 그때 청년 교육을 해서 교육받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많이 들어갔는데 아까 인사하신 무위당사람들 이사장님도 그때 한 사람이야. 그때 원주에 어지간히 똘똘한 젊은 사람들 은 다 무위당이 가르쳐서 성장했어. 무위당이 얼마나 우수한 사람이냐면 지주교님하고 - 13 -

손잡고 기독교 목사들하고 신부들하고 친하게 만나게 했어. 목사들이 성당에 와서 설교 를 하는 거야. 신부는 일반 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스님들이 우리도 끼자, 해서 스님들 이 성당에 와서 법문하고. 종교가 달라도 다른 종교에 대한 얘기를 신자들이 바꿔 가면 서 들었어. 지주교님이 한 달에 한번 씩 다 모여라, 해서 같이 밥 먹고 그랬다고. 원주 라는 데가 묘한 게 천주교, 기독교, 불교가 하나가 된 거야. 하나가 된 재밌는 사건이 생겼어. 지주교가 민청학련 사건 때 감옥에 갔다가 7개월 만에 석방돼서 돌아왔어. 원주역에서부터 성당까지 행진을 하는데 그 당시에 원주교구 라는 게 13만 밖에 안 됐어. 천주교 신자는 6천 명이야. 근데 거리에 나와서 지주교를 환영한 사람은 3만 명이야. 기독교 신자도 천주교 주교를 자기네 성직자로 생각한 거야. 불교 신자도 똑같고, 하나가 된 거야. 그렇게 밑바닥에서 토대를 만든 게 무위당이야. 교회일치운동, 종교가 하나의 운동을 한 거야. 그렇게 바닥을 다지니까 이제는 얘기가 달라진 거지. 신부들, 목사들, 서울에 교수들, 일류 교수들 불러다가 강의를 시킨 거야. 전문가들이 아주 기쁜 마음으로 원주에 와서 가르쳐. 지금 우리가 일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 당시에 보면 무위당이 일한 게 획기적인, 다른 사람은 감히 생각도 못하는. 그렇게 해서 사회를 바꾸기 시작한 거야.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 사회개발위원회, 재해대 책사회위원회라고, 70년대 남한강에 홍수가 났는데 지학순 주교라는 분이 독일에 가서 우리 남한강유역에 큰 홍수가 났는데 우리한테 돈 좀 달라고, 독일 원조기관에서 이름 도 없는 시골주교가 건방지게. 가지고 있는 돈이 네 돈이냐? 하느님이 너한테 맡긴 돈 이지 네 돈 아니잖느냐. 하느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내놓아야 될 것 아니냐. 담당하던 놈 이 기가 찬 거지. 이 양반이 돌아오기 전에 독일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했어. 독일 너희 들이 내는 원조금을 우리가 세계에 뿌리는데 다 좋은데 내가 보기에 너희들은 있는 사 람은 더 받고 편안하게 사는 사람만 더 잘살게 하고 진짜 가난한 사람은 슬슬 비켜가고 엉뚱한 데 돈을 쓰지 않냐, 이렇게 의심한다. 이게 1면에 나왔어. 독일 정부가 발칵 뒤 집힌 거야. 정부가 어떻게 해? 원조 주는 기관에 아우성을 쳤지. 거기는 세금이 종교세 라는 게 있어. 기독교 신자 수, 천주교 신자 수 비례해서 원조기관에 세금을 나누어주고 그걸 받은 사람들이 기독교 기관에선 기독교를 통해서 세계에 원조하고 천주교는 천주 교를 통해서 원조하는 거지. 지주교가 사흘 후에 왔는데, 그 기관에서 쫓아왔어. 우리가 뭐 해드리면 되겠냐고. 웃으면서 왜 왔느냐, 뭐라고 나한테 그랬냐. 방침이 바뀌었다. 그 래서 수해 난 지역을 둘러봤는데 한심하지. 저희들이 얼마든 돈을 주겠다고. 그 돈이 그 때 돈으로 3억6천만 원이야. 그게 어느 정도 크기냐면 충북 단양군 1년 예산이야. 엄청난 돈. 그걸 받으니까 한국 정부에서, 제까짓 게 돈을 받아서 어쩔 거야, 우리한테 다 가져오겠지. 지주교란 사람이 나는 안 건드리겠다, 내가 지명한 사람들, 아홉 사람을 지명해서 너희한테 맡길 테니 알 아서 돈을 써라. 내 희망이 있다, 공짜 절대 주지 마라. 한국 사람들 공짜 주니까 국민 성이 망가지는데 절대 공짜 주지 마라. 협동체를 조직해서 협동체를 통해서만 줘라. 무 슨 작목반이든 단체를 만들어서 서로 합쳐서 사업을 하겠다면 그때 줘라. 개인은 절대 주지 마라. 그때까지는 돈이 얼마가 들어오든 신부, 목사가 앉아서 자기 입맛에 맞는 사 - 14 -

람한테 막 줄 때야, 제 돈 쓰듯이. 지주교는 지금 얘기하는 그런 여러 가지 원칙을 둬 서, 무위당이 지주교님한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그 돈 가지고 부락이 개발 이 되는 거야. 단체가 생기고. 그 돈이 왜 중요하냐. 그때까지는 밑에서부터 자율적으로 올라가는 단체는 없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단체만 있었어.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제일 먼저 한 게 뭐냐. 지방자치 해산시킨 것. 다 임명제로. 더 기가 막힌 건 농협 조합장을 선출 못해, 임명제로 해. 전부 다 중앙으로부터 임명한 거야. 이게 독재체제야. 우리가 역사를 잘 알아야 되는데 잘 모르는 게 많아. 박정희가 정권을 쥐자마자 민주적인 요소 는 싹 없애버린 거야.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다. 그럴 땐데 지주교가 돈 내고 그 일을 하는 위원회에다 밑에서부터 선거해서 민주적인 조직을 통해서 만들어진 데다 돈을 줘라, 이때까지 겉으론 인사했지만 속으론 넌 너고 난 나고, 잘 알지도 못하고 거래도 안하고 이런 사람들이, 이젠 하나의 단체를 만들어놓 고 돈을 받아서 같이 사업을 해야 하니까 옆 사람이 잘못하면 안 되잖아. 제일 쉬운 게 소 기르는 일인데, 다 소를 한 마리씩 갖다 기른 거야. 소 사는 돈을 원조 받아서. 그 원금만 갚으면 되는 거야, 이자는 없어. 원금도 몇 년 거치고, 거저 받다시피 한 거지. 송아지 한 마리 받았는데 송아지 한 마리 사서 갚으면 되는 거야. 근데 열 명이면 열 명이 같이 돈을 받았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떼먹고 날라가면 연대보증 서니까 같이 갚 아야 되잖아. 옆 사람은 그냥 놔두면 안 되잖아. 소 먹이 잘 먹였어? 어디 아픈 데 없 어? 서로 관심을 가지고 봐야 되잖아. 농촌의 조직이 바뀐 거야. 옆 사람이 남이 아니 야. 옆에 있는 네가 남이 아니고 나로구나. 옆에 있는 농가가 죽을 쒀 먹든지 알 필요 없이 살았는데, 이제 저 사람이 소 먹이를 잘 안 주면 내가 손해야. 잘 줬냐? 소 아픈 데 없냐? 그 대신에 협동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돈은, 교육은 다 해줘라. 축산수 의사들이 다니면서 교육해주는 비용은 다 대 줘라. 그런 식으로 되니까 농촌에 협동조 직이 생기는 거야. 한 바퀴 도니까 기왕이면 더 좋은 사업을 해야겠다. 사업이 자꾸 단 계적으로 올라가는 거야. 그때 그냥 있으면 안 되잖아. 그 기회를 이용해서 무위당이 주 동이 되는 원주재해대책팀들이 농가에, 쌀을 유기농법으로 지을 수 없느냐 한 거지. 왜 그러냐. 농민은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사람, 먹을거리를 생산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먹 을 수 있게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 생명을 키우는 사람, 살리는 사람이다. 여러분들이 잘못해서 농약을 치고 화학비료 치면 그건 살인하는 것이다. 살리느냐 죽이느냐 갈림길 에서 당신들은 죽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원래 농부는 살리는 사람이다. 그걸 무위당은 아주 쉽게 얘기했어. 농자성군. 농사를 짓는 사람이 성군이다. 백성을 하늘같이 모시는 임금을 성군이라고 했어. 농사를 짓는 사람은 원래 성군이다. 다른 사람을 하느님같이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들인데 어떻게 농약을 치고 화학 비료를 쓰느냐, 그것 그만두자. 그 운동을 해서 그동안 협동조직 운동하던 사람이 다 찬동해서 유기농산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거야. 벼를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고 얼마나 짓기가 힘들어. 농약 천지인데. 2, 3년 동안은 손해가 많거든. 그걸 무릅쓰고 유기농산물을 생산했는데 팔리지 않는 거야. 그때 - 15 -

도시의 주부들은 유기농이 뭔지 몰라. 그런 데 대한 개념이 없어. 안 팔리는 거야. 더 많이 비싼 값을 주고 사야 하는데 거꾸로 싼 값으로 다운시켜서 사려고 해. 보기가 나 쁘니까. 배추도 벌레 먹은 구멍 뚫린 배추니까 형편없는 거야. 그래서 도시 주부들한테 유기농산물이 건강에 좋고 여러 가지로 좋다는 것을 알려야 되잖아. 서울에서 주로 성당 부녀회를 중심으로 유기농산물 선전, 교육하러 다녔어. 무 위당께서 서울에 있는 주부들한테 여러분들은 뭐가 가장 소망입니까. 가족 건강을 지 키는 게 주부 역할 아닌가. 농약 친 쌀 먹으면 건강해지겠습니까. 화학비료 쓴 야채 먹 으면 되겠냐고. 그런 걸 안 해도 건강한 먹을거리를 하느님이 이 사람을 통해 보낸 사 람이 농부라고. 여러분한테는 유기농산물 생산하는 사람이 하느님과 같은 사람이라고. 하느님과 같이 생각하고 감사히 받아야 되지 않겠냐고. 했지. 농촌에 가서 당신들 자식들을 서울로 보내면 건강하고 좋은 먹을거리를 먹여야 되지 않겠나. 여러분이 농약 치고 화학비료 줘서 키운 농작물을 서울로 보내면 당신들 자식 이 먹는 거다. 그럼 되겠느냐. 양쪽을 설득해서. 그걸로 부족하니까, 조직적으로 이 운동을 해야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농촌에 농민들과 도시의 주부들을 하나로 묶어야겠다. 그 운동을 해야겠다. 필요성이 나 온 거야. 그걸 하기 위해 그 일을 맡아 한 사람이 박재일, 그게 한살림이다 이 말이다. 그렇게 시작이 된 거야. 일을 열심히 해 가다 보니까 그것만 가지고 안 되잖아.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서 이제 까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생각해야 돼. 높은 차원으로 생각한 게 뭐냐면 생명이라는 차원으로 봐야 한다, 단순화시켜서, 밥이 하느님이다. 그걸 공식적으 로 발표한 사람이 김지하 시인이야. 김지하의 밥 이라는 시가 있고, 글이 많아. 밥이 하 느님이다. 목사, 스님들이 밥이 하느님이면 우린 뭐냐. 그래. 생각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김수환추기경도 우리는 다 밥이 됩시다. 남편은 아내의 밥이 되고 아내는 남편이 밥이 됩시다. 생명의 힘을 넣어주는 게 밥, 생명을 주는 사람이 하느님. 구체적으로 밥을 통 해서 주는 것. 원주에서는 무위당이 중심이 돼서 그 운동을 제대로 펼친 거야. 이걸 조리 있게 문서 로 만들어보자. 토론을 하고 해서 내놓은 게 한살림선언이야. 처음에 나온 한살림선언은 말이 어려워. 문리대 나와서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자기네 많이 아는 어려운 문자로 써 놓으니 이게 어렵다고. 무위당은 어려운 말 싫어하지만, 뜻은 맞으니까. 요새는 그게 어려우니까 쉬운 말로 풀자 해서 제2세대가 쉬운 말로 풀어서 썼는데, 훨씬 쉽게 나온 것 같아. 무위당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 생명이라는 가치관을 내세울 때까지는 생명이라는 말 이 없었어. 지금은 생명 자 안 들어가면 일이 안 되잖아. 더 재미있는 건 천주교서울대 교구라는 데가 얼마나 조직이 커. 거기에 슬로건이 생명이야. 옛날에 생명 소리 하니까 서울에 있는 신부들이 그럼 우린 뭐냐 이렇게 얘기했는데, 이젠 거꾸로야. 그런 일을 무 위당이 주도적으로 했다는 거지. - 16 -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느냐. 무위당이 처음부터 예수같이 그런 사람이 아니야. 갖은 시련을 겪고 얻어터지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이런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다듬어져서 생각이 올라간 거야. 그런 사람이다, 이걸 쉽게 얘기한다는 게 이렇게 오랜 시간 걸쳐서 얘기했어. 생명운동이라는 것은 전체를 모시고 가는 하나의 생활운동이 아닌가. 그러니까 이 구 석을 봐도 모심이고 저 구석을 봐도 모심이고 모심이 아닌 것이 없지요. 성실하게 우리 스스로 살아가고 이웃도 그렇게 살아가길 권하고 이런 과정에서 남들이 스스로 살기를 원하면 되는 거지. 무위당은 항상 당신을 따라다니는 후학들에게 세 가지를 부탁했어요. 첫째는, 엎드려 기라고 했어요. 모든 일에 있어서 엎드려서 상대방을 떠받들면서 밑바닥에서 기라고. 다 른 말로 쉽게 설명하면 상대방을 모셔야 된다. 모심의 생활을 해야 한다. 엎드려 기라고 했어요. 원주에 어떤 분이 있는데 그 양반이 아주 콧대가 세고 아주 건방져. 아주 소문 난 사람이야. 근데 이 사람이 무위당 선생한테 나한테 글 하나 써달라고 했어. 무슨 글 이든지 마음대로 써도 되냐, 된다. 저를 위해 하나 써 달라. 그 사람이 열어봤어. 뭐라고 써 있냐면, 아무개야, 목에 힘 빼. 안 그러면 너는 죽어. 그 사람이 화가 나서 패대기쳐 버렸어.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한테 그런 얘기 한 사람 아무도 없어. 무위당 만 직설적으로 얘기했어. 내가 뭘 잘못한 거구나. 다시 봉투에 넣어 놓고 안 보이는 데 집어넣었어. 서너 달 뒤에 다시 꺼내서 보니까 조금 납득이 되는 거야. 요샌 자기 집 앞 에 딱 걸어놓았어. 목에 힘 빼라는 거야. 두 번째 가르쳐준 게 계산 보지 말라는 것. 내가 요렇게 하니까 넌 저렇게 해. 내가 너한테 10만원 어치 썼으면 너도 그만큼. 그렇게 계산하는 것 하지 마라. 당신이 사랑 하는 후배가, 돈이 좀 있는 사람이야, 기한이 돼서 날짜가 돼서 갚아야 되잖아. 돈이 있 는 게 분명한데 돈을 안 갚는 거야. 약이 바짝 올라서, 선생님 저 놈을 내가 혼쭐을 내 줘야겠다. 너 그 돈 없으면 죽냐? 그렇진 않죠. 그럼 좀 참고 있어. 돈이 있으면 갚지 안 갚겠냐? 그 다음에 무위당이 봉투를 하나 보내왔어. 딱 보니까 아무개야, 계산 보지 마라. 이 사람이 화가 나 가지고 내가 그렇게 존경하는데 나를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 냐. 그 다음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일리가 있는 거야. 참았어. 소송하는 거를. 석 달 뒤 에 그 사람이 돈을 가져왔어. 너 왜 석 달 동안 안 갚았냐니까 그때 갚으면 다른 사람 빚 때문에 한꺼번에 차압이 들어올 염려가 많아. 그걸 잘 넘겨서 안정이 된 다음에 니 걸 갚으려고 했다, 그때 후회가 된 거야. 저놈은 나한테 갚으려고 노력을 했는데. 무위 당한테 가서 선생님 덕에 제가 잘 됐다고. 계산 보면 안 된다고 그랬어. 세 번째가 과실을 탐하지 마라. 이 양반이 직설적으로 한 얘기가, 독립운동 하는 독립 투사가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내가 대통령을 하겠다, 그래서 난 독립운동을 하겠다 하면 그건 가짜다, 민주화운동 하는데 민주화만 되면 내가 장관 해야지, 그놈들은 다 가 짜다. 과실을 탐하지 말라. 집 앞에 과실나무 심었는데 커서 열매가 열렸어. 열매가 열 리면 먹고 싶은 사람 다 따먹으면 되는데 꼭 너 혼자만 먹어야 되느냐. - 17 -

그래서 무위당을 가깝게 모시는 사람들은 다 그 세 가지를 잘 지켜요. 무위당을 가깝 게 모시던 사람들이 이런 것 때문에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이 없어. 딱 한사람 빼고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어. 여러분한테 환영사 하시던 이경국 이사장도 국회의원 하자면 진즉에 했어. 근데도 무 위당이 그 따위 잘못된 생각 갖지 말고 일이나 제대로 해. 그때 그 양반이 일한 게 신 용협동조합 중앙회 사무처장이야. 그 일이나 제대로 해. 국회의원 할 생각 하지 말고. 남한테 엎드려 기고 섬기는 일을 해야지, 왜 국회의원들같이 지배하려는 그런 일을 하 느냐 한 거지. 무위당이 항상 머리에 둔 게 있어. 교학상장.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 서로 발전해야 된다. 가르친다고 해서 내가 너희들 가르친다, 이건 아니다.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 주고받고 해서 교육을 해야 된다. 농촌을 개발하기 위해서 농촌 청년들, 광부들 교육하는데 처음에 우리가 들어갔는데 우습지, 저런 놈들이 농촌에서 뻐기고 있구나. 나중에 보면 그 사람들이 훨씬 머리가 좋 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우리보다 훨씬 나. 그걸 알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려. 지금 여러분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것 같은 사람도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어. 생명운동이라 는 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그 사람을 같이 모시고 가는, 모심의 생활. 생명운 동가의 생활은 모심의 생활이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고 같이 일하는 분들을 위 해서 다 모시는 그런 생활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떨 때 문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 무위당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거야. 내가 보는 눈이 아니라 무위당의 눈 으로 봤을 때는 이걸 어떻게 보겠느냐.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일하고 다른 생각이 난다 고. 아, 이건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다시 반성하게 되고, 다시 고치게 되고. 여러분도 여러분 생각이 꼭 옳은 건 아니니까 다른 각도에서 보는 눈. 많은 친구를 사귀고 가라고 부탁하는 것은 여러분 혼자의 생각만이 아니라 여러분 옆 사람이 바로 나지, 내 눈이라고 해서 똑바로 보는 게 아니라 각도가 다를 수 있으니까 다 같이 좋은 각도의 세상을 보는 그런 속에서 일을 해 달라는 거야. 그런 생각을 여러 분들이 가지고 일을 하면 틀림없이 좋은 성과를 내고 올바른 인생을 가지 않겠나. 무위당 선생은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가 얼굴을 내밀고 나서는 일이 없었어. 그 양반 은 교회에 가서는 얘기하지만 밖에서는 얘기를 안 했어. 사도회 회장이니까 말을 하지 만 바깥 사회에서는 축사 한 마디 못했어. 축사 잘못하면 그 조직이 망하니까. 그러면서 도 열심히 그 양반은 했어. 안하는 일이 하나도 없고 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무위당 이라는 게 남을 위해서 하나도 역할이 없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으면서도 할 일 다 한다. 그 양반 넥타이 맨 모습을 보면 그 날이 주례 서는 날이야. 동네 선생님이지. 집 에서부터 시내까지 15분밖에 안 걸린다고 했는데 긴 때는 엄청 시간이 걸려. 리어카 끈 사람 만나면 손주 봤어? 어떻게, 잘 커? 그 사람들 다 그 집에 주례 서줬다고. 그때는 주례 모시기가 어려울 때였는데 무위당한테 만큼은 누구든지 부탁했어. 그렇게 살아가 - 18 -

시던 분, 평범한 분, 훌륭한 삶의 태도를 가지신 분. 우리는 그 양반한테 삶의 모습을 닮아야 하고 삶을 배우려고 해야 돼.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여러분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 친 구 많이 사귀시고, 다른 사람 얘기 많이 듣고, 그 사람들하고 인연이 맺어졌으니까 인연 이 계속되도록 서로 주고받고, 서로 찾아가고, 슬럼프에 빠졌을 때 쫓아가서 달래주고 기운 내게 해주고, 북돋아주고, 그 사람이 바로 나니까. 여기 있는 옆에 있는 분들이 다 나란 말이야. 우리가 이 일을 하는 큰 목표를 쉽게 설명하면 커다란 나를 만들어야 돼. 나를 키워서 커다랗게 만드는 것. 이게 우리가 해 나가는 방향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무위당이 살아서 여기 계셨으면 오늘 저녁에 춤 한번 췄을 거예요. 그 양반 노래는 아주 유치해. 잘 하는 노래는 검은 장갑 낀 여인이라는 노래. 당신이 감옥에 계 실 때 부인께서 면회 오는데 그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가 검은 장갑 긴 여인이라는 노래 야. 부인한테 하나도 해 주는 것 없이 부인이 고생하는 걸 보니까 그게 애처롭잖아. 그 래서 감옥살이하고 나와서 우리하고 같이 일하실 때도 검은 장갑 낀 여인을 노래한다 고. 가사는 다 맞아. 음정이 맞느냐 말이야. 고저장단이 마음대로야. 음치야. 평범한 사 람이라고. 그러나 옆에 있으면 즐겁고 마음이 든든한 사람. 그 양반은 듣는 거 아주 선 수야. 그 양반이 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난 그렇게 생각했어. 위암이 안 걸리면 이상하 다. 서울에서 학생운동하고 뭐 하는 후배들이 찾아와서 가슴에 끊는 이야기를 하면 그 걸 다 들어준다고. 상대가 그만둘 때까지 다 듣거든. 특별히 중요한 운동의 지도자들이 오면 그 양반 집은 감시 대상이니까 개울가에서 둘이 소주 마시면서. 돌아가신 다음에 보니까 그 양반은 글씨 한 장도 돈을 받고 판 게 없어. 근데 누구든 글씨 써달라고 하면 다 써줘. 그 양반 글씨를 돈 주고 샀다는 사람은, 민주화운동단체에 서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작품을 줘서 팔았지. 그 돈이 무위당한테 갔느냐, 아니다. 한 살림이 경영이 잘 안되니까, 글씨를 팔아서 고대로 한살림에. 당신은 한 번도 자기 주머 니에 글씨를 팔아서 돈을 넣은 적이 없어. 원주에 꽤 돈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이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비석을 세우기 위해서 무위당한테 글씨 써 달라 그랬다고.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했더니, 돈 줄라고? 알았다. 오천만원만 내라. 지금 돈이면 오 억쯤 되는 거야. 아무 말도 못하고 나왔어. 친구들한테 무위당한테 글씨 좀 써 달라 그 랬더니 오천만원을 달라고 그러더라. 그 분은 돈 달라고 할 분이 아니다. 니가 돈 준다 고 하니까 그럼 돈 많으면 오천만원만 내라고 했겠지. 내가 지금까지 안타까운 건 부인 이 남편 월급봉투 한 번 받아보지 못했어. 아직 살아계셔. 이 양반이 돌아간 뒤에 보니 까 아들들한테는 글씨가 남아있는 게 없어. 한 장도 못 받았다고. 돌아가신 다음에 약이 올라서 글씨를 하나 가져야되는데. 글씨 가진 사람이 판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달라는 것보다 돈을 더 주고 샀어. 한이 맺혀서 돈을 더 주고 그걸 사갖고 걸어놓은 거야. 그렇 게 살다 가신 분이야. 그 양반은 주머니에 돈이 있잖아, 누가 아쉬운 소리 하면 세지도 않고 갖다 쓰라고 줬어. 그렇게 사신 분. 우리가 그분의 삶의 모습을 닮아가겠다고 생각해서 무위당사람들 - 19 -

이고 만인회고 만든 거야. 평생에 책 한 권 쓴 적이 없다고. 법에 여러 가지 걸리는 것 도 있고 해서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그 사람이 어디 가서 얘기한 걸 모아서 책을 낸 거지. 기회 되시면 그런 책도 좀 보시고 여러분도 그 양반의 삶의 태도를 배우고 그런 길을 가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되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생명운동, 이런 걸 이름을 붙였는데 그것도 연유가 있어요. 옛날에 원주에서 재미있는 일이 생겼어. 삥땅심포지움. 삥땅이란 게 뭐냐면 옛날엔 버스에 차장이 있었 어, 앞에다 가방을 두르고 차비를 받았던. 그 차장 중에 한 사람이 자기가 받는 월급가 지고 못 사는 거야. 그래서 노동문제연구소에다 편지를 보냈어. 내가 하루에 열여섯 시 간 버스 차장으로 일하는데 거기에서 받는 돈 가지고 내 입에 풀칠도 못한다고. 할 수 없이 내가 받는 돈 중에서 하루에 3백원 씩 삥땅해서 그 돈으로 고향에 있는 아버지 어 머니한테 생활비로 보내드리고 내 남동생이 중학생 다니는데 학비 쓰고 나도 입에 풀칠 하는 데 보태 쓰고 있는데 이게 죄가 되는지 생각이 들어서 편하게 못 쓴다고 난 어떻 게 했으면 좋겠냐고 노동문제연구소에 편지를 보냈어. 그걸 받은 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이 기독교인데, 받고 목사님들한테 이걸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했는데 대답하는 사람 이 한 사람도 없어. 도둑질이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만두라 그러면 이 사람은 쫓겨나 야 되잖아. 그러니까 이게 무위당한테 부탁을 했어. 와서 얘기할 수 있는 분은 지학순 주교 밖에 없으니까 부탁해 보라고. 이 대답을 해야 되는데 이게 분기점이야. 노동운동 의 분기점이 되는 거라고. 당신이 지주교님이 선봉에 서서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소? 지주교님이 심포지움에 참 석을 했어. 참석하기로 하니까 차장이 낸 편지를 읽은 거야. 거기에 대해서 대답을 좀 해 달라고 하니 지주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걔한테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선진 국가에서는 하루 8시간만 일을 해도 자기 먹을 건 먹고 남는 돈 가지고 자기 행복도 추구하고 사는데 두 배인 16시간을 일하고도 자기 입에 풀칠을 못한다면 말이 됩니까. 걔를 나무랄 수 없습니다.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십시오. 회사 사장님, 당신 월급 얼마 탑니까. 당신은 그 월급만 가지고 삽니까. 당신네 회사 종 업원이 이렇게 삥땅을 해서 먹고산다는 걸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 지역의 구청 장님. 당신은 월급을 얼마 받소? 거기에 안 나와 있지. 대신 집어넣은 거야. 경찰서장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얘를 잡아넣을 거요? 국회의원들, 당신을 이런 백성들의 사 정을 압니까? 이 사정을 알면 당신들은 어떻게 얘기할 거요? 장관님들, 나라를 어떻게 운영합니까?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대통령님께서 수출 얼마 했다고 크게 자랑하셨는 데, 그 속에서 이런 애들이 있다는 생각 해 보셨습니까? 이 애들은 당신 백성 아닙니 까? 난리가 났어. 그날 저녁부터 신문, 방송 다 그거 못 내게 덮었어. 그게 생존권이라는 것을 다시 우리가 확인하는 계기가 된 거야. 그때까지는 생존권을 저리 가라, 뭐가 주 냐. 기독교, 천주교 이런 종교단체 사람들이 반독재운동을 많이 할 때니까 사람은 하느 님의 노상을 닮아서 태어나는데 그런 사람들이 짓밟히고 인권을 유린당해서 되겠느냐. - 20 -

이 주장만 한 거야. 원주에서 지주교님이 대표로 그것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생존권 이 있어야 한다. 먹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두 개의 권리를 합친 것을 생명, 이라고 보 게 된 거야. 생명이라는 말이 그때부터 나온 거야. 여러분들이 뭐 이러쿵저러쿵 얘기했 지만 모든 운동은 다 기초가, 토대가 생명이라는 것을 토대로 일을 하고 있다. 각 분야 에서 일을 하지만 합쳐 보면 그게 하나의 생명이다. 여러분들도 생명의 운동가다. 나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일이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하고 있는 거다. 한살림운동이든 무슨 운동이든 그게 다 합쳐서 생명이라는 눈으로 봐야 한다. 여러분들 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여러분들이 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 낮은 차원에서 보지 말고 높은 가치관, 생명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보시고 여러분들이 일을 하시면 훨씬 좋은 일을 하지 않겠나. 더 멀리 앞을 내다보고, 일을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무위당을 잘 모시고 일을 했는데, 우리들 흔히 얘기할 때, 흔히 1세대 라고 얘기해요. 그 다음 세대가 2세대, 여기 계신 분들은 굳이 분류하면 3세대 정도 되 겠죠. 하지만 운동은 같이 하는 것, 같은 운동장에서 같이 뛰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 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여러분들이 생명운동 열심히 해야 돼요. 그런 생각을 가지시고 여러분들이 생명운동의 주역이 돼서 역사를 뒤집는 일의 주역이 돼 주시기를 간절히 바 랍니다. 좋은 동료, 좋은 친구들 만나서 평생 한 길을 갈 수 있는 좋은 친구들 만나시기 바랍 니다. 앞으로 현장에서 좋은 일 많이 하시고 무슨 일이 있거든 나한테 편지를 한번 하 시라 이겁니다. 나도 기뻐할 것 아닌가 말이야. 기쁨도 슬픔도 같이 나누는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1 -

[내 멋대로, 네 맘대로, 생명평화 2010/11/12~14] 2010 생명평화활동가대회 서로배움터 기록 일 시 : 2010년 11월 13일(토) 오전 10시~오후 1시 장 소 : 충청북도 자연학습원 본관 1층 강당 사 회 : 유정길 진 행 : 김용우 님의 발제 이후 함께 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이야기 나눔 기록 및 정리 : 김현, 신건준 첨 부 : 생명운동의 젊은 도반들께 드립니다(김용우, 2010.11) 김용우 (원주 한알학교) - 발제 우리는 쌀, 벼, 밥,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영어로는 다 rice 아니에요? 언어라는 게 그 런 거지요. 자유라는 말 많이 하는데, 영어로는 liberty, freedom이라고 이야기합니다. liberty는 ~로부터의 자유, freedom은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자유예요. 이런 이야 기를 드리는 까닭은, 영어문화권에서는 벼 가 주식이 아니니까 그냥 문화적으로 언어 가 하나인 거예요. 근데 이 나라에서는 그나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자유였던가 봐요, 철학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liberty라는 건 고삐 풀린 망아지라면, freedom은 내면의 깨침이 있는 자유라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자유, 이렇게 쉽게 이야 기하는 거죠. 이 자유 가 대체 무엇인가. 한동안 제 안에서 고민하다가 정리를 했어요. 동양적 언어로 정리하면 자유가 아니 라 자율 이더라. 율 자가 법률, 리듬 율이에요. 법이기도 하고 리듬이기도 한 거예요. 동양에서도 자유란 자연 그 상태로 머무르는 것, 고삐 풀린 망아지. '자율 이란 것은 내 면에 내재율로써의 리듬과 법이 있는 거예요. 그런 삶이라야 생명운동의 사회성이라는 문제에 접근할 수 있지 않는가. 고삐 풀린 망아지로는 사회적으로 접근하기 좀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여러분들한테 묻고 싶은 것은,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가, 자율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런 얘기입니다. 혹시 누가 억압해서, 붙잡아서, 시켜서 사는 게 아닌 삶을 살 고 싶다, 그럼 좋다, 근데 정말 길 가다가 성경에 나오는 대로 강도를 당해 쓰러진 사 람이 있으면 업고 갈 자신이 있는가. 저는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자율이라고 생각합니 다. 자유와 자율 사이에 이런저런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도반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늘 공부를 하셨으면 좋겠는데, 공부의 세 가 지를 저는 이렇게 봅니다. 하나는 자연으로부터 배우셔야 한다, 는 겁니다. 밤하늘에 총총 떠있는 별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인류가 45억 년의 역사, 30만년의 역사, 이런 많이 얘기하지만 처음에 우주가 생성되고 137억 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확장되고 있어 요. 그 사이에 살고 있는 거예요. 우주는 137억 년이 1초일지도 몰라요. 그 순간에 지 - 22 -

구라는 별에 살고 있을 뿐이에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건. 팍 하고 터지는 순간부터 지금까지가 우리의 삶에 녹아 있는 거예요. 제가 얼마 전에 <별>이라는 책을 보니 그 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날 보니 무위당 선생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만고장공의 일조, 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만고, 아주 오랜 역사적인 시간, 장공, 아주 광활한 것 아니에요? 우주 죠. 시공간이 함께. 여러분들께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자율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셔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자연으로부터 배우십시오. 자연무사. 늘 그렇게 배우려고 하시 고, 두 번째가 사실은 인간이 누구나 다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깨치면 좋은데 그게 잘 안 되니까 선현들로부터 배우셔야 되잖아요. 경전 읽으세요. 경 자 들어가는 건 다 좋 습니다. 도덕경, 불경, 성경, 바가바드기타, 화엄경, 금강경 굉장히 많은데 경 자는 그냥 붙은 게 아닙니다. 말씀 경 자 이거든요. 말 경 이 아니라 말씀 경 이에요. 깨달 음의 말씀. 이걸 공부하셨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성찰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두 가지 하다 보면 성찰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굳이 쓰지는 않았지만, 방점을 찍어서 얘기한 다면, 성찰적인 사람이 되어야 자기 안에 무엇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제대로 볼 수 있 을 거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두 번째로, 이런 걸 공부해서 어디 쓰려고요? 라고 한다면, 지역으로 가셔야 합니다. 왜 지역이냐면, 자기 삶터가 생명 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고리를 이루고 있어요, 그게 마을이고 지역이에요. 손을 잡을 수 있는 이웃이 있고, 또 자연 만물도 구체적으로 나 무 한 그루, 물 한 그릇, 이런 게 아주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데가 지역이에요. 그럼 그 지역에서 무얼 할 거냐? 욕망의 경제에 대비한 자족의 경제 체계를 구축해 나가는 공 동체 운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욕망의 경제라는 것은 욕망의 소유, 노동 과 생산, 거래. 욕망의 소유, 자꾸 무언가 가지려고 하는 것, 이것 때문에 늘 문제가 되 는 거예요. 욕망의 노동과 생산. 노동자들이 80년대까지는 잔업특근 안 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요즘은 스스로 알아서 잔업특근 합니다. 왜 할까요? 돈 때문에 하는 거죠. 그 돈의 실상은 뭐예요? 티코 끌던 사람이 프라이드 끌고 싶고, 프라이드 끌던 사람이 그랜저 끌고 싶고, 냉장고 큰 거 쓰고 싶고, 애들 학원도 영어학원만 보내다가 국영수 학원 다 보내고 싶고, 서울대 보내고 싶고, 자전거도 10만 원짜리 자전거에서 수백만 원짜리 자전거 타고 싶고, 주말에 가까운 데 놀러가다가 세계여행 가고 싶고. 그런 게 욕망 아니겠어요? 이 욕망이 노동을 강제하는 겁니다. 욕망의 노동입니다. 자기가 죽을 동 살동 하는지도 모르고 노동하는 거예요. 자연스럽지 않은 거죠. 생산 문제 굳이 하 나 얘기할게요. 제가 풍산금속이라는 회사를 아는데, 상당히 큰 회사입니다. 근데 이 회사가 왜 안 알려져 있냐면 방위산업체이기 때문이에요. 이 회사가 총알, 포탄, 탱크 만드는 회사예요. 아주 세계적인 회사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근데 풍 산금속에 다니는 후배가 와서 제가 형님이 얘기하는 생명평화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풍산금속부터 그만둬라. 다 좋은데 니가 - 23 -

만드는 총알, 포탄, 이게 꼭 누구한테 쓰여야 하는 거 아니냐, 그거 폐기 안 되지 않느 냐, 그것 때문에 전쟁 일어나는 거 아니냐. 아무리 먹고사는 노동이라고 해도 나는 풍 산금속에서 노동하면서 생명평화 이야기하는 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인 정할 범주 내에서 놀았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일은 늘 해야 해요. 앞의 얘기와 같이 붙여서 다시 얘기합시다. 우리가 자족 하는 마음이 없으면, 욕망에 대비되는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자립에 도달하 기 어렵습니다. 왜냐, 욕망은 끝이 없잖아요. 그럼 자족하는 게 있어야 해요. 마찬가지 로 노동도, 고용노동, 뭐, 사회가 그러니 인정해야죠. 그런데 고용노동도 정말 거부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자립이라고 할 때는 지역에서 정말 그것이 아닌, 자연에도 이 롭고 인간에도 이로운 노동을 하려고 해야 해요. 일 안 하고 백수로 놀려고 하면 그건 옳지 않아요. 전 돌아가신 무위당 선생이 전백련 초대 회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2대 나 3대 회장쯤 하고 싶어요. 근데 백수가 일을 안 하는 게 백수가 아니고, 고용 노동을 안 하는 겁니다. 그럼 창조적인 노동을 하셔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들한테 자족의 노동, 생산, 이런 일을 찾아가시라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정치에 대한 것입니다. 근대정치, 근대 사회는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근대 정치는 근대국가와 관련되어 있죠. 근대국 가는 권력, 근대민주주의와 권력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동전의 앞뒷면입니다. 떼어놓고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두 번째, 근대자본주의. 이것 떼어놓고 얘기하면 안 됩니다. 상품 시장 생산. 문제는 이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얘기예요. 우리가 생명운동 이라고 하는 것은, 잘 보세요. 사실 다른 얘기가 아닙니다. 생명현실이라는 것은, 4대 강이 사실 우리 현실입니다. 내 현실이에요. 내 모습을 거기서 안 보십니까? 내가 그것 을 원하니까, 내가 경제적인 부를 요구하니까, 그렇지 않아요? 이명박이 경제적 부를 만들어보겠다고 4대강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 모습 아닐까요? 욕망, 이런 것. 근대 민 주주의와 관련지어서 이런 얘기를 한번 해봅시다. 정당이란 뭐예요? 권력 잡자는 게 정당입니다.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됩니까? 선한 권력이 있습니까? 저는 없다고 생각 합니다. 지구상에 선한 권력이 한 번도 있어본 역사가 없다고 봅니다. 권력, 근대정당 에 대한 맹신주의에서 우리가 벗어나야 합니다. 근대정치에 대한 패러다임, 1인1표로 권력을 형성하고 근대에서 아주 최상의 정치 해보겠다, 이것은 수직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권력을 잡아서 민중에게 혜택을 주겠다, 백치화시키는 사고에 다름 아닌, 근대라 고 하는 것은 계몽주의적 사고예요. 아무리 좋은 진보도 저는 근대 안에서 갇혀 있는 진보는, 결국은 내가 권력을 잡아서 잘해보겠다, 이런 얘기지, 그 정도를 못 벗어난다, 이런 얘기입니다. 생명운동 진영에서는 그런 진보보다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영장이란 신령스러운 우두머리, 라는 뜻인데 우리 지금 신령스러운가요? 전 그렇지 않 은 것 같습니다. 좀 신령스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신령스러운 우두머리답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께 그런 사는 문제에 대한 얘기를 드리는 거예요. 그럼 결국은 이런 존재들이 수평적인 정치에 대한 문제를 고민했으면 좋겠어요. 사 - 24 -

실 자치는 수평적인 정치입니다. 무위당 선생이, 앞으로 나가는 게 진보가 아니라 옆 사람 손을 잡는 것이 진보라고 했어요. 확장하는 것이 진보라는 것이지 앞으로 나가는 게 진보라고 얘기하지 않았어요. 확장한다는 것은 옆의 손잡는 것, 평등하다는 의미고, 소통하고 참여한다는 얘기예요. 그런 의미에서 자치는 수직적 정치의 하위단계로서의 자치가 아니라 말 그대로 민중의 자치로서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할 기본단위로서의 자치다. 그런 자치 운동을 지역에서부터 해나가야 하는데, 제가 얘기하는 community party라고 표현하는데. party라는 말 자체가 당파적이라 그런 말을 쓰고 싶지 않은데, 제 능력에 한계가 있어서 그것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창조적으로 해석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자치를 통한 지역사회의 정치를 통해 서 지역과 지역이 만나서 전국적인 네트워크 정치, 그래야 구체적인 정치가 되고 구체 적인 자치가 되고 구체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래야 아마 세상이 지금보다는 진일보, 이 말 참 안 맞지만, 하여간 제 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래도 한 발 나아간다면 그냥 흘러가겠죠. 근데 사람은 진보보다는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진화를 멈춘 존재가 아니에요. 인간의 남아 있는 진화적 영역이 뭐냐면 영적인 인간으로서의, 신령스러운 영장, 그게 저는 생명평화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못 깨치면 안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 걸 깨쳐야 폭탄 떨어뜨리는 것 막고, 4대강 막고, 그런 것 안 할 것 아니에요? 이명박 도 진화 좀 했으면 좋겠어. 만물의 영장답게. 제가 드리고자 하는 얘기는 진화하자.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면 영장답게 진화한 인간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이 속에서 어떤 문제를 생각해보고 큰 벡터를 잡아보자. 저렇게 사는 게 부럽구나, 이런 생각을 해야 하는데, 흔들리는 개인을 보면서 주변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정말로 행복하고 좋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야지만 주 변에 직장생활하다 힘들고 지친 사람이 와서 너처럼 살고 싶다 하며 그런 삶이 확장될 것이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 활동을 통해서 지역 내 자립적인 활동을 만들고, 그런 것 이 토대가 되어 자치가 이루어져나가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정호 (인드라망생협) - 생명평화활동가라는 이름에게 생명평화활동가대회, 지금이 세 번째인데, 제가 불교계 혹은 사회활동가들과 연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때가 90년대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계신 선배들과 제 가 처음 만났던 자리가 환경활동가워크숍이었던 같아요. 유정길 선생님께서 주로 세팅 을 하시고 저희가 와서 놀았는데요, 그때는 이름이 좀 셌죠. 환경활동가라는 이름으로 만남이 시작된 거죠. 그때 이곳에 계셨던 대부분의 선배 분들도 환경활동가라는 이름 으로 그 속에서 만났습니다. 기존 환경활동가와는 결이 다른, 다양한 주제들이 환경활 동가 워크숍에서 토론이 되었는데, 결이 다른 주제들이 제출이 되었었어요. 유기농업이 라는 주제를 제안하기도 했고, 생활협동조합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고 제안했었고. 지 - 25 -

금이야 유기농업이나 귀농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로서는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 었죠. 환경활동가들의 주요한 논제들은 큰 국책사업의 환경이슈, 이런 걸 중심으로 그 걸 반대하는 운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그건 저항의 에너지였죠. 대안의 에너지를 형성해보자, 라는 주제를 제안한 거죠. 그러면서 그런 노력들을 했 어요. 사회적으로는 지리산살리기 운동이라든가, 우리쌀 살리기 100인 100일 걷기 등 을 제안했죠. 살리기라는 단어를 지금은 많이 쓰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4대강 살리기라 고 그러잖아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살리기 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았어요. 주로 반대 운동이었죠. 그 시절에 우리가 진정으로 댐을 반대한 것은 지리산을 제대로 가꿔나가 는 것이 진정한 반대다, 이런 식의 사고체계가 그때 당시에 제안이 되었던 거죠. 그런 문제의식에 동의했던 분들이 지금 여기 계신 분들과 소위 생명평화라는 단어가 생겨나 는 시점에 만났던 분들입니다. 그런 추억이 있어요. 아, 그랬었구나, 우리가. 90년대 말 에, 2000년대 초에 그랬었어, 하는 기억이 있고요. 그런데 오늘은 여러 후배 분들이나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 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데 생명평화활동가대회라고 이름 짓고 있어요. 이건 10년 만에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 구나,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그렇게 부르고 있구나, 이런 큰 변화인 거죠. 두 번째로는, 저는 불교귀농학교나 실상사귀농학교를 초창기부터 해왔던 사람이라서 귀농에 대해 아주 익숙합니다. 귀농이란 단어도 10여 년 전에는 우리사회에 없었던 거 잖아요. 없었으니까 알지 못했던 거죠. 없었던 단어가 생겨난 거고 그것이 10여 년 만 에 지금은 국민들 대다수가 그 단어와 개념을 알아요. 귀농이란 것은 도시에서 있다가 이러저러한 도시문명에 대한, 또는 생태적 각성 이런 것들 때문에 농촌을 가는 거구나, 자세히는 모른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내용을 안다는 거죠. 대부분 언론에서 도 그걸 프로그램화시킨 경우도 많이 봤구요. 10년 만에 새로운 단어가 생성돼서 사회 적 언어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경험하고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굉장한 혁명이 일어 난 거예요. 그것에 대해 주목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명히 그런 언어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우리 경험인 거죠. 경험 속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 거고. 그 두 가지는 굉장히 추억이 많습니다. 세 번째로는, 생명평화활동가 대회에 대한 기대, 지금은 잘 몰라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그게 현실이 된다,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우리가 바라는 생명평화의 가치라든가, 그리고 그 가치에 따라서 내가 그 삶을 산다든가, 나와 너의 삶이 모여서 우리 사회가 생명평화의 사회로 바뀌어 나간다던가, 하는 이런 것들이 신비적 힘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어우러져 현실이 되는 과정일 거 라고 생각합니다. 관건은 끈질기게 얘기하고 살고 행동하면 되는데 꾸준히 갈 수 있느 냐가 문제인 거죠. 우리가 지치지 않고 가면 됩니다. 근데 우리가 지쳐요.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그런 문제인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생명평화의 핵심은 꾸준히 가는 거 다, 꾸준히 생각하고 꾸준히 얘기하고 꾸준히 가는 것, 이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것으로 잘 정리하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 그건 대중화의 과정인 거고, 대중화 이전에 뭔가 현실에 있게 하는 주체들은 내가 지치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이 관건이지 - 26 -

않은가 생각합니다. 제가 10여 년 전에 많이 고민했던 주제가 꾸준하게 가기에는 이 일이 고통스럽고 재 미없다, 그 당시에 유행이던 것이 재미난 일을 하자는 거였어요. 자유롭고 싶다. 재미 난 것을 하자. 재미난 거란 뭐냐? 재미라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나의 것으로 넘어가야 하느냐. 그런 것들을 많이 고민했어요. 결론은 그거였 던 것 같아요. 사람이 사는데 어떻게 재미나는 일만 나에게 걸리겠어요? 재미없는 일 도 나에게 걸릴 수밖에 없는 게 삶이잖아요. 나는 재미난 일도 걸릴 수 있고, 재미없는 일도 걸릴 수 있는 게 사실인데 내가 재미난 일을 찾는 재주를 많이 익히는 것보다는,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재미있게 그 일을 할 수 있는 재주를 익히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한 거죠. 아마 꾸준하게 끈질기게 간다면 그 재주를 우리가 익히 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무슨 일이든지 나에게 다가오는 일이 나의 인연이라고 생각 한다면 어떤 일이든지 그것을 재미나게 할 수 있는 재주, 저는 그 재주를 익히는 노력 과 재미난 일을 찾는 노력이 비슷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보다 더 지혜로운 방법은 어떤 일이든지 재미나게 일할 수 있는 재주를 익히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생각합 니다. 마치겠습니다. 윤호창 (생태유아공동체) 생명평화활동가대회, 올해 세 번째잖아요. 첫 번째 모임이 준비모임이었던 것 같고, 두 번째, 세 번째에 계속 참여해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명이 뭐냐, 생명 평화가 뭐냐 물어보면 약간 뜬구름 잡는 느낌도 있고, 아직까지 저 스스로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김용우 선생님께서 생명운동을 어떻게 할 건지 세 가지로 정리해주셨는데 상당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정의를 해 주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운동이 뭐냐, 생명평화운동이 뭐냐 라고 했을 때, 서로가 나 름대로의 정의라든지 답변을 만들어 가야 할 것 같고, 저도 이쪽 영역에서 활동을 해 오면서 그게 스스로 확립해 나가면서도 우리와 함께하는 일반 시민들한테 그런 애매함 들을 빨리 정리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생명운동, 그러면 보통 한살림 에서 하는 것처럼 유기농직거래 하는 식으로 치환되어 버리곤 하는데, 우리가 생명운 동을 지역에서 뿌리내리려고 한다면 좀 더 다양한 영역으로 넓혀가야 할 것 같아요. 유기농직거래운동 뿐만 아니라 보육, 교육, 돌봄, 일공동체 등 다양한 영역이 있을 수 있을 텐데, 그런 다양한 삶의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게 필요할 것 같고요. 저 같은 경우도 그랬어요. 생명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어떤 영역에서 일을 할 건지 고민하다 가 애를 키울 때 공동육아조합을 만들었는데, 광명에서 육아 조합을 했어요. 아이 키우 는 문제를 가지고 하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고, 책에서 20년 동안 배운 민주 주의 교육보다 몇 년 동안 육아조합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민주주의를 배운 것 같아 요. 몇 년 하다 보니 좀 더 사회화된 형태가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몇몇 선배들과 이 걸 좀 더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차원에서 어린이집이나 보육시설 원장님들하고 같이 조 합을 만들어보자 해서 생태유아공동체란 협동조합을 만들게 됐거든요. 이런 식으로 새 - 27 -

로운 영역을 개발하는 거죠. 여러 가지 삶의 영역으로 생명운동이 진화 발전했으면 좋 겠다고 생각이 들고, 많은 분들이 스스로 백수를 자임하고 있는데 그런 다양한 영역들 을 개발하고 그걸 자기 활동 영역을 가지고 앞으로 활동에 대한 공유, 무얼 할 건지 고민도 구체적으로 나누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생명운동의 핵심은 지역사회가 되어야 한다. 과거 사회주의 운동 같은 경우 에, 형평이라든지 이런 문제가 핵심 요소가 됐다면, 생명운동의 중심은 뭐냐? 이걸 물 어보면 김용우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결국 생명운동의 핵심은 모든 생명들이 꿈틀거리 며 살고 있는 지역사회가 핵심이 되어야 하고, 그 지역 사회 속에서 다양한 영역들이 유기적으로 결합이 될 때 우리가 생명운동을 좀 구체적으로 실천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너무 대안 중심으로 이야기하다보니, 현실을 놓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반대운동을 하다 보니 생명운동이 대안운동처럼, 많이 진행해 와서, 요즘 돌이켜보니까 너무 대안에 치중하다 보니 현실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MB 시대 와서 민주주의, 인권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사회 현안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우리 같은 경우 많이 놓치고 있죠. 현실을 박차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 최근에 회의가 들고 있고, 만일 필요하다면 생명운동 그룹 내에서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할 그룹을 만드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어떤 현실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그림이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고 골치가 아프죠. 오늘 같은 자리가 우리 역량이 얼마 나 있는지 점검해보는 자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각 지역에서 활동을 해 오고 있다가 뭔가 새롭게 해보고 싶은. 우리의 힘과 역량이 얼마나 있을지,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있는 활동가대회에서 함께 점검하고 공동의 모색을 할 게 있으면 해보는 그런 차원에 서 저도 참석을 했고. 우리가 지치지 않도록 우리가 갖추고 있는 힘과 에너지의 상태를 같이 점검해보는 것이 오늘 같은 자리인 거고, 발제자가 얘기했던 대로 우리의 내적 에너지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문제의 본질을 깊이 공부해보는 게 에너지를 좀 더 많이 생성시키고 앞으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힘의 근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규호 (모심과살림연구소) 말씀을 들으며 약간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데요, 기획팀하고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마련할까 할 때, 쭉 말씀하고 짝짝짝 박수치고 끝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거든요. 그렇 게 되지 않도록 탁월한 진행자께서 잘 해주시리라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어제 김영주 선생님 말씀처럼 이런 자리를 통해서 친구와 벗을 사귀고 마음을 나누 는 자리, 오늘 이 자리는 동지로써 뜻을 나누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 배움 터라는 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배우는 자리 같은데요, 잠깐 이러한 자리를 가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자면, 생명운동으로 치면 2세대, 2.5세대 되는 사람들이 올해 초에 생명운동 연구모임을 만들었어요. 우리도 정말 진지하게 같이 고 - 28 -

민을 하고 공부를 하면서 생명운동의 흐름과 과제들을 같이 좀 짚어보자, 이런 이야기 를 하는 과정 속에 사상에 대한 공부와 지역과 정치라는 게 생명운동에서 중요한 영역 인 것 같다, 우리도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니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생명운동 활 동가분들과 같이 이야기 나누면 훨씬 더 지혜가 모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활동가대회 를 마련하는 기획팀에 요청을 드렸고,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 니다. 토론자의 역할은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지 않도록 윤활유 역할이고 사실 중간 중간에 토론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어제 오신 분들 다들 말씀을 잘 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토론문 만들어 놓은 것을 다시 보니 굉장히 어색합니다. 김용우 선생님 발제하신 내용에 비추어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공부에 대한 말씀, 사 상에 대한 공부가 굉장히 필요하단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에 대한 공부 역시 필요하지 않을까, 윤호창 선생님 말씀처럼, 생명운동의 사회화를 위해 서는 생명운동을 좀 더 구체화하고 현실화하고 그리고 이것이 좀 보편성을 가지도록 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을 통해서 생명운동의 폭과 깊이가 확장되게 하면 좋겠다. 그런 측면에서 도대체 우리가 하려고 하는 생명운동은 뭘까, 고민하다가, 생명운동은 위아래 가 아니라, 가로지르기다. 영역과 경계의 장벽을 넘어서서 가로지르기를 하는 것이 생 명운동이 아닐까. 또 생명운동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의 다양한 영역에 다양한 색깔로 맹아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따로따로 흩어지지 않고 어떻게 잘 꿰어낼까 이것이 과제일 것 같고, 결국은 생명운동이 아까 확산이라는 말씀도 하셨고, 스며들기 인 것 같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런 것입니다. 생명운동을 가로지르기 하기 위해서는 우 리가 갖고 있는 욕망, 편견, 무지 이런 것들이 있을 텐데, 내가 만들었든 사회가 만들 었던 그 장벽들을 좀 뛰어넘었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일각에서 생명운동이 어렵고 추 상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넘어설까.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어떤 것이냐에 대해서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진단할 필요는 있겠다. 이미 그런 각종 증상들, 징후들 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걸 모아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각종 경제, 사회, 심리적 통계 지표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그런 것들을 모아보면 정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지금 현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상태로 갔을 때 다가올 가까운 미래는 어떤 것인지, 그것이 아닌 다른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가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 가 필요한지, 상당히 보편성과 긴장감을 갖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은 생명운동의 촉수이자 메시지를 전달하는 나팔수 역할로서, 생명운동 정보센터든 생명운동 블로그 네트워크든 그런 걸 가지고, 거기에 들어가면 국내외 각종 사건과 지표와 통계자료들, 생명운동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의미 있는 작업들이 모여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런 부 분들이 있지 않을까. 앞서는 그런 것들에 대한 여러 가지 지표들을 보면 되지 않을까 해서 이미 지속 성 장이나 동반 성장, 정부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완전고용이랄까, 이런 신화는 이미 다 붕괴가 되었거든요. 여전히 붕괴된 현실들을 확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정보들을 우 - 29 -

리가 못 갖고 있다, 종합해서 그렇게 하면 참 좋겠다 생각이 들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이미 우리 사회에 굉장히 소중한 구슬들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어떻 게 무엇으로 꿰어 낼까. 이게 고민일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 결국 사람들의 마 음을 움직이지 않는 운동, 제도의 변화, 이런 것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 같다. 마음자리 혁명을 바탕으로 한 꿰어내기가 필요할 것 같고요. 기존의 계급사회나 위험사회에서의 생명운동이 갖고 있는 꿰어내기의 동력들, 정말 옛날 영화 와이키키브라더스에서 너는 행복하니 란 질문을 던지잖아요. 그런 질문에서 연봉, 소득이 얼마든, 지위고하, 남녀노 소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 국민 대다수는 아니라고 답을 하고 있거든요. 아니라고 하는 그 답의 마음들을 무엇으로 꿰어낼까. 이게 생명운동이 영역들을 확장시켜가는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고, 스며들기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기반이 지역이고 생활현장이 아닐까 생각이 들 고, 정치와 관련해서는 저도 아직 많이 생각이 부족한데 한살림선언에 다시 보니까 짧 게 소개가 되었더라고요. 상전 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그 기원을 찾아보니 동학에 이런 내용이 있더라. 제가 좀 더 공부를 해야겠습니다마는, 흔히 생명평화 그러면 아름답고 고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앞서 말씀하셨던 분들이 한살림선언을 읽고 투쟁, 싸움이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미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자체가 반생명적인 이 사회 현 실 속에서 생명운동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한편으로는 치열함과 절박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동학의 삼전이라고, 도전, 제전, 언전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도 덕적 정치적 투쟁도 필요하고, 사회경제적 투쟁도 필요하고, 사상문화적 투쟁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투쟁이라는 것이 죽임이 아니라 살리는 싸움이겠죠. 윤호창 선생님처럼 생명운동이 곧 유기농직거래, 어쨌든 사회경제적 영역에서 대안의 영역들을 만들어온 게 있는데, 나머지 영역, 도덕적, 정치적 투쟁의 영역이랄까 이런 부분이 많이 비어 있 는 부분인 것 같고, 또 한편으로는 사상문화적, 생명운동의 메시지를 담는 그릇인 언 어, 담론 부분에 있어서도 우리가 많이 준비가 부족하구나. 이런 영역들이 서로 잘 중 심을 잡아가면 2010년 현재 생명운동을 보다 훨씬 더 기운차고, 또 더 어려운 조건 속 에 있는 많은 영역들도 함께 살릴 수 있는 그런 운동이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장정화 (초록당사람들) 떠오르는 부분을 말씀드릴게요. 오늘 자리도 네트워크의 자리인데요, 저희 초록당사 람들도 초록정치를 하자, 초록운동을 하자, 하다 보니까 네트워크로 운동을 많이 하거 든요.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랑, 녹색위원회 분들이랑 같이 연대도 하고, 최근에는 4대강 활동으로 지속가능한 청년모임이라고, 대학생들과 청년 분들과 네트워크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게 성공했는지 모르겠는데요, 12일, 어제, 코엑스 주변에서 저 희들이 풍선 띄우기를 했거든요, 과감하게. 친구랑 통화도 못할 정도인 거예요, 도청 당할까봐. 4대강을저지하는청년학생연대 학생들과, 풍선 수십 개를 달아서 밑에 플랜카 드를 달아서 새벽같이 가서 친구들이 같이 풍선띄우기 작전을 짰어요. 저는 전날 회의 는 못 갔는데, 그게 성공했으면 언론을 타자고 한 건데, 그, 작전을 주도한 친구의 말 - 30 -

이 인상적이어서 옮기자면, 연대활동이란 게 상당히 쉽지가 않더라고요. 근데 그 친구 가 자기를 희생하는 부분이 있어야 될 것 같다 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직장 인인데 새벽같이 나가서 친구들과 같이 회의를 하고 모인 친구들은 직장인도 있는데 자기가 휴가를 내고 참여하고 그러더라고요. 요즘에는 참 직장인도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4대강에 몰입하고 계신 여자 분들이 여러 분 계시거든요. 그래서 네트 워크라는 게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조금 더 희생하고 한 가지라도 계속적으 로, 페이스북이든, 저희 초록실천단 카페든, 와서 꾸준히 거기에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고 있고 댓글 한 줄이라도 달면, 그런 자그마한 관심, 글을 올리면 안부 말을 하거나 반응을 보여주는 것, 그걸 꾸준히 하면 네트워크가 튼튼히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훈 (무위당사람들) 저는 무위당사람들 사무국 일을 맡은 지 3개월 됐습니다. 따끈따끈합니다. 커밍아웃 하면, 사실 생명운동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경우입니다. 뭐냐면, 삶 의 태도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나름 고민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생명운동에 대한 주 제의식을 놓고 고민해본 적이 많지 않아서 쉽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아닐 것 같고요, 혼자서 만약 무위당 선생님 모임에 와서 내가 하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할 때 생각했던 것만 잠깐 말씀드리면, 생명이 곧 평화랑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고 싶고요, 생 명이란 용어 자체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뭇생명과 자연과 공존을 이야기한다면 그것 이 곧바로 평화와 상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평화라는 것은 폭력에 대한 반대적 개념이라고 생각되고요, 그렇게 할 경우, 현재 전지구적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서, 폭력적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만약에 내가 무위당 모임에서 사무국 일을 하게 되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많은 차별 적, 폭력적인 상황에 대해서 무위당 모임이 좀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 예를 들면 여성문제, 아동, 이주노동자 문제, 비정규직 문제 등 그런 사회적 이슈 들 또한 여전히 우리가 맞아야 할 해결 지점의 목표이기 때문에 무위당 사무국에서 직 접적으로 뭘 하고자 하는 것보다는 이런 애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고 싶다, 는 생각으로 사무국 일을 맡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와서 새롭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많은 관심 을 가져 주시고 저의 홈페이지 오셔서 고민들 많이 건네주시면 저희도 같이 해결 방안 을 모색해볼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서동재 (한살림서울생협) 발제하신 것, 토론 잘 들었습니다. 들으면서 생각했던 제 거친 생각을 좀 말씀드리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는 윤호창 선생님의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에 관심이 많이 있거든요. 죽임의 시대 라고도 하지만, 죽임을 당하는 것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대 같아요. 그럴 때 - 31 -

생명평화운동을 어떻게 해나가야 될까, 고민이 좀 있습니다. 토론을 좀 들으면서 제 귀에 잘 들어왔던 단어가 세 가지가 있는데요, 재미가 없다, 애매하다,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그 빈틈이랑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보거 든요.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를 고민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빈틈이잖아요. 근데 이 자리가 생명평화활동가대회인데, 생명평화활동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 몇 이 있으며,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스스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확인을 해보는 것도 굉장히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저는 생협에 서 일하는데, 생협에 있는 직원들을 잘 들여다보면 스스로 생명평화활동가는 말할 것 도 없거니와 스스로 협동조합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거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운동역학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생명평화 라는 담론이 우리 안에 어떤 식으로 운동역학으로 작동하고 있는가, 라고 생각했을 때 많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보는 거죠. 그건 아까 말씀드렸던 그런 빈틈하고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고, 아까 제가 귀에 잘 들어왔던 세 가지, 재미없음, 애매함, 어려움 과도 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제 나름대로 짧은 고민이지만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정도가 선행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한 가지는 생명평화에 대한 언어가 섬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 생각합니다.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굉장히 훌륭한 작업들을 하고 계시지만 생명평 화언어연구소라는 것이 생긴다면 어떨까, 이런 고민을 좀 하고 있습니다. 재미없음과 애매함과 어려움이라는 것은, 어딘가에 있을 우리들의 허세를 좀 털어낼 필요가 있다 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더 분화를 촉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안에도 다양한 생각들이 있을 거거든요. 근데 그것들이 뭉뚱그려져서 이야기가 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딛고 선 땅은 그래요. 다른 곳은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분화를 촉발시켜야지만 상상력이 더 풍부해질 것 아닙니까? 생명평화운동이 그 어떤 운동보다 상상력이 풍부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점이 늘 아쉬움이 있거든요. 그런 지점 을 같이 고민을 나눠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고요. 전 사실 제가 딛고 서 있는 땅이 어딘지 보려고 왔습니다. 스스로도 불안한 시대이 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긴 한데요, 그런 걸 같이 고민을 나누고 싶고, 불온하지만 거친 제 생각을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진우 저는 활동가로서가 아니라 활동가 분들 토론하시는 것 보고 배우려고 왔는데요. 여기서 얘기되고 있는 생명평화운동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추상적인 것으로 흐를 수 있는데, 그런 걸 현실적으로 담아내는 토대가 척박하다고 느낍니다. 대안을 얘 기하는 게, 현실, 주류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것을 계속한다는 게 많이 힘들다고 느 껴지고 대안을 시도할 수 있는 토대 자체가 청년들에게는 많이 힘든 것 같다, 그런 생 각을 가지고 있고요. 이게 저 같은 20대가 당면한 문제라고 생각하구요. 어떻게 해야 - 32 -

될지 많이 고민해 보겠습니다. 자연 활동가는 아니고 배우고 있고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사람입니다. 없어도 잘 살자는 얘기는 알겠고, 노력은 하는데 사실은 방법을 잘 모르겠어요. 귀농 에 대해서도 생각은 하고 있고, 자급의 삶에 대해 생각은 하지만, 집의 소유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저에게는 안타까운 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유기농에 대해 서도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땅의 전환기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한데, 없이 살려 고 하면 돈이 또 필요한 상황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게 돼요. 즐기는 노동, 창의적인 노동을 통해서 삶을 바꿔 나가고 싶은데 어떤 방편이 있을까, 제가 어떻게 쓰일 수 있을까, 이게 요즘 가장 큰 고민이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구체적 인 것들이 불확실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가고 싶습니다. 이우광 활동가라기보다는 생명평화를 어떻게 내 삶에 담아낼 것인가에 대해서 친구들과 궁 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냥 재미있게 생명평화하자, 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게 살 다 보니까 생명평화와 접점이 있다고 생각되고요. 막상 귀농을 하고 싶은데 어느 공동 체가 토반이 잘 되어 있거나, 땅값이 얼마거나, 농기구를 빌리는 문제, 그런 것들이 궁 금하기도 하고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 공동체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긴 하지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자꾸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 고 그 안에서 또 친구들과 서울에서 도심을 떠나서 지방에 산다고 해서 귀농하고 전원 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똑같이 문화적인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충 분히 재미있는 뭔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도 품고 있습니다. 조세훈 (원주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좀 많이 무거운 것 같습니다. 좀 더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기도 하고. 어제 같이 온 친구와 두 시간 넘게 차타고 오면서 저희 일과 관련된 이런 저런 고민들 같이 얘기하면서 왔는데, 요즘 고민은 자율, 자립, 자치 중요한데 그걸 혼자서만 할 수는 없 는 거고 지역에서 구체적인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제가 하는 일을 통해 만들어갔 으면 좋겠다는 게 있습니다. 혼자서 하는 건 사실 되게 쉽잖아요.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지역의 생명평 화활동가라고 이름붙인, 그렇게 구분되기 어려운 지역, 이웃들과 함께 어떻게 만들어갈 까 하는 문제인데 그게 굉장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잘 안 되기도 하구요. 의도했던 대 로 자율, 자립, 자치 이렇게 갔으면 좋겠는데, 이를테면 구분이 좀 그렇지만 안과 밖으 로 나누면 밖에 있는 분들은 그런 생각이 잘 없으시기도 하고. 그런 분들과 함께 섞여 서 그런 걸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면서 생기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저는 생명평화운동의 사회화, 이런 과정에서 겪는 문제인 것 같은데요, 우리 안에 - 33 -

들여다 놓고 생각해보면 한살림, 생협, 제가 일하고 있는 이런 곳들이 그런 관점, 생각 을 가지고 움직이는 곳인데 그 안에서 그게 잘 작동되고 있는지, 생명평화운동의 사회 적 역할, 책임은 우리 안에서 확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안에서 자율적인 노동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건지, 자립, 자치가 잘 작동이 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생 각합니다. 잘 작동이 안 되고 있다면 어디를 해결해야 하는지,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어떤 노력, 어떤 프로그램으로 해봤더니 그게 되더라, 더 넘어서야 되는 건 뭐더라, 이 런 게 구체적으로 나왔으면 좋겠구요, 그건 사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비판이나 성찰의 평가도 필요한 것 아닌가. 우리 안에서 자율노동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하면 사회 화시키는 데 많은 제약이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 대한 해답을 같이 만들어갔으 면 좋겠습니다. 김지한 귀농에 대해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하다 인연이 되어 이 대회에까지 오게 되었습니 다. 처음에는 활동가가 아닌데 가도 되나, 이런 생각을 했지만 그래, 가서 배우자, 라는 생각으로 오게 됐습니다. 어제오늘 강의 듣고 배우고 이야기 나누고 하다 보니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알고 있으면 누구나 다 생명평화 활동가가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됐습니 다. 나도, 생명 평화 활동가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됐구요. 생명평화활동가가 가진 실천 적 과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봤는데, 제가 얘기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아직 잘 모르니까 배워야 할 게 많으니까, 그런데 나부터 그리고 주변 친구들, 고시와 스펙 쌓기 이런 것에 열중해 있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그 친구들에게 이런 게 삶의 전부가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고, 나부터 귀농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가치 있 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잘 살아서 아, 쟤처럼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이렇 게 부러워하게끔 그렇게 만드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지현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 어차피 자기 얘기 하는 거니까요, 저는 사랑밖엔 날 몰라, 이런 얘기 하고 싶은데요. 작년 대회에서 우리 집은 어디인가, 이걸 제목으로 걸었었잖아요. 나는 누구랑 사는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작년 대회 때 그런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너무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진천 님이 발제할 때 헌신 대신 호신, 투쟁 대신 부쟁. 저도 그러고 싶거든요. 나는 헌신은 전혀 안중에도 없고, 돈 줘도 할 수 없고, 투쟁 은 너무 무섭고. 그래서 아까 개인이 행복해야 한다, 는 얘기에 너무 동의하거든요. 하 시는 모든 말씀이 완전히 혹 하게 하는 말씀이긴 한데요,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 정말 동의해요. 저는 호신하고 부쟁하면서 사랑밖에 난 몰라, 이러고 싶은데. 왜 술 취한 사람이 집에 갈 때 비틀비틀 기분 좋아서 가는 것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집에 가잖아요. 그렇게 해서 집에 가면 좋고, 못 가도 어쩔 수 없고 그런 생각이 있는 데 그렇게 갈 때 같이 사는 사람, 집에 가서 만날 사람, 누구와 사는가, 이런 것들이 저한테 되게 중요하거든요. 행복한 나, 어떤 게 행복인가, 이런 건 달라질 수 있는 거 - 34 -

잖아요. 말씀하신 것들이 지역정치, 다른 행복들을 우리가 느껴야 된다는 얘기를 하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것들을 느껴가는 것이 저마다 자기 삶이 무겁고 고민도 있고 이런 거잖아요. 같이 사는 사람과 얘기하면서 그런 것들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 요. 저 같은 경우는. 사랑밖에 난 몰라, 에 보면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이런 게 나오거든요. 행복한 당신을 보고 싶고. 그 눈빛이 너무 좋은 그 당신과, 당신에게 행복한 나를 전염시킬 수 있는, 그러고 싶은 건데 이러기 위해서 저는 지금 30대 말인데, 20대, 10대와 나는 어떻게 얘기해야 되는가. 뭐라고 얘기를 틀 수 있을 까. 그들이 나에게 왔을 때. 내가 일을 딱 끊고 얘기를 같이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 의 고민을 선배들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내가 선배들한테 가면 법사님께서 일을 멈추고, 김정지현도반 오셨소, 얘기를 하고, 그럴 수 있을까. 그런 것들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선배들은 다 바빠 보이거든요. 근데 내가 바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가 같이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바쁘거나 말거나 내가 가서 문을 두드릴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그걸 끊을 수 있을까. 우리 다 미친 듯이 바쁜 사람들 너무 많 잖아요. 그리고 20대 애들은 백수, 뭐 이런 것들, 어제 보니까 돈 얘기 진짜 많던데, 그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행복한 김정지현, 그 눈빛이 너무 좋은 김정지현에게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게 너무 어려운. 그렇다고 내가 얘기를 안 하고 싶은 건 아닌데. 그래서 그런 게 저의 가장 고민이에요. 하여튼, 생명평화활동가 뒷부분에 잘 얘기해주신 것 같아요. 준비모임도 하고 그랬는데. 전 준비모임 들어갈 때 부터 난 생명평화활동가 아니야,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마음이 편안하더라구 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사랑밖에 난 몰라니까, 난 누구랑 살지, 그게 제일 저의 고민 입니다. 신건준 (한살림충주제천) 이정호 선생님, 잘 만나서 얘기들을 자꾸 하다보면 이런 것들이 화두가 되고 사회적 으로 얘기가 될 것 아니냐, 이런 말씀하고 윤호창 선배님, 사회화에 대한 말씀들 하셨 는데, 깊이 동감이 되면서 왜 그럼 그것을 가로막는 부분들이 뭘까 생각해봤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요? 나부터 콤플렉스,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대회 준비모임 할 때도 보면 생명평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모이긴 참 힘든 것 같다, 이게 사실은 사람들이 좀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이런 저런 조건 없이 오면 좋을 것 같은데, 저 이름에서 오는 중압감이 너무 크다는 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활동가라는 게 붙어 버리니까, 나는 그렇게 실천적으로 활 동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이런 것들 때문에 또 부담스러워하는, 이런 경향들도 보이고 하던데. 그런 것 같아요. 사회화의 문제, 이런 것들도, 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게 왠지, 좀 이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적극화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 습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그래서 계속 과제로 가져가야 할 부분인 것 같 고. 마지막에 선배님 말씀을 해주시겠지만,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보려고 합니다. 정치적 - 35 -

인 것을 생명평화 관점에서 보는 시각들도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보이는 데, 아예 터부시하는 관점도 있을 거고, 아주 현실정치에 근접하게끔 대안정치를 얘기 하는 그룹도 있던데, 말씀하신 걸로는 착한 권력은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본질적인 것을 보면 권력을 통한 사회적인 변화, 이런 게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정치 환경에서의 정치가 보여지는 모습인 건데 어떤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 건가. 이게 대안적인 정치 패러다임 이런 것들을 말씀하신 건 같은데, 어떤 시스템이나 형식, 내용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제안해주시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근행 (모심과살림연구소) 지난주에 동아시아평화포럼이라는 걸 했어요. 2050년 동아시아, 국가주의를 넘어서. 한중일의 내노라하는 NGO 평화활동가, 연구자, 이름 대면 알 만한 분들이 모여서 생 명평화 포럼을 했는데,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를 놓고 영토에 대한 얘기를 나눴 어요. 오히려 예민한 얘기를 한번 해보자 해서. 한중일이니까 복잡한 게 많잖아요. 그 런데 얘기하는 분위기 속에서 보면 국가주의를 넘어서 란 주제를 놓고 그 국가를 전혀 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NGO 활동가들이고 다른 관점으로 지금의 우리 앞에 있 는 이 과제를 넘어서 고민해보자고 모인 사람들조차 그걸 넘지 못하는 부분들. 특히나 국가라는 이름으로 모아 놓으니까 더. 지금 우리가 생명평화, 자율, 자치, 자립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아 인슈타인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죠. 어떤 문제를 일으킨 방식이나 또는 그 사고의 틀, 그것으로서는 절대로 그 문제를 풀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아까도 지적했지만 둘째 날 아침에 왜 이렇게 칙칙하고 재미없는, 흥이 안 나는 분위기일까, 이게 사실 이 세션 을 준비한 약간은 선배라는 그룹들이 구태의연한 방식을 전혀 넘지 못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과제들을 소통하려고 하는 틀 때문에도 이걸 우리가 지금 넘지 못하는 게 아닌 가. 새로운 과제들을 어떻게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사고의 틀로서 풀어나갈 수 있을까. 늘 고민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자율, 자립, 자치의 삶이라는 게 가능하게 하는 우리 삶의 어떤 틀, 자급적인 토대들, 이런 부분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게 많이 얘 기했던 돈만은 아니고, 그런 삶의 체계들, 예를 들면 개개인들이 아무리 행복을 추구하 고 기쁨을 누리면서 살려고 발버둥 쳐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25%의 식량자급과 97% 가 넘는 에너지 해외의존을 갖고 있는 한은 분명히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 다. 그런 부분들을 우리 스스로 내 삶에서도,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자급적인 토대들을 갖춰 나가려고 하는 과정에 내가 함께 간다면 조금은 더 자율, 자립, 자치의 삶에 조금 씩 더 가까이 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누리 (원주 친환경급식지원센터) 지난해와 이번에 와서 약간의 불만은, 주제, 생명평화운동에 대해서, 그 단어에 대한 노골적인 토론을 계속 한다는 거죠. 그게 저는 좀 불만인 거예요. 왜냐면 개인적인 필 - 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