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Similar documents
銀 行 勞 動 硏 究 會 新 人 事 制 度 全 部


안 산 시 보 차 례 훈 령 안산시 훈령 제 485 호 [안산시 구 사무 전결처리 규정 일부개정 규정] 안산시 훈령 제 486 호 [안산시 동 주민센터 전결사항 규정 일부개정 규

문화재이야기part2

현장에서 만난 문화재 이야기 2

(001~010)206교과-앞부속(수정)

01정책백서목차(1~18)


<C1DF29B1E2BCFAA1A4B0A1C1A420A8E85FB1B3BBE7BFEB20C1F6B5B5BCAD2E706466>

회원번호 대표자 공동자 KR000****1 권 * 영 KR000****1 박 * 순 KR000****1 박 * 애 이 * 홍 KR000****2 김 * 근 하 * 희 KR000****2 박 * 순 KR000****3 최 * 정 KR000****4 박 * 희 조 * 제

愿묒쭊援??섏젙諛깆꽌?댁?0907

2 Journal of Disaster Prevention

단양군지

³»Áö_10-6

T hwp

03-교통이야기

- 2 -

**09콘텐츠산업백서_1 2

<C3CAC1A DC1DFB1B92E687770>

조사보고서 완본(최종인쇄본).hwp


토픽 31호( ).hwp

Y Z X Y Z X () () 1. 3

2013 국토조사연감 075 전국 대기오염도(SO2) 년 대기오염도(SO2) (ppm) 년 2012년

목 차

2014 경영학회_브로셔 내지

hwp

5월전체 :7 PM 페이지14 NO.3 Acrobat PDFWriter 제 40회 발명의날 기념식 격려사 존경하는 발명인 여러분! 연구개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중복투자도 방지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거센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 26

<표 1-2-1> 시군별 성별 외국인 주민등록인구 ( ) (단위 : 명, %) 구분 2009년 2010년 외국인(계) 외국인(여) 외국인(남) 성비 외국인(계) 외국인(여) 외국인(남) 성비 전국 870, , , ,

2011국립공원표지-수정

더바이어102호 01~09

CR hwp

untitled

안테나/한지해(001~025)

#7단원 1(252~269)교

2020 나주도시기본계획 일부변경 보고서(2009).hwp

<B1B9BEEE412E687770>

(연합뉴스) 마이더스

01¸é¼öÁ¤

2014학년도 수시 면접 문항

11+12¿ùÈ£-ÃÖÁ¾

Çѹ̿ìÈ£-197È£

경영학회 내지 최종

¼øâÁö¿ª°úÇÐÀÚ¿ø

¹ßÇ¥¿äÁö

±³À°È°µ¿Áö

1362È£ 1¸é

%±¹¹®AR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石 村 洞 百 濟 初 期 積 石 塚 이도학, (서울의 백제고분) 석촌동 고분, 송파문화원, 서울 特 別 市, 石 村 洞 古 墳 群 發 掘 調 査 報 告, 고창지석묘군 高 敞 支 石 墓 群 문화재관리국,

지발홍보책_도비라목차_0125

4-Ç×°ø¿ìÁÖÀ̾߱â¨è(51-74)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나하나로 5호

¹é¹üȸº¸ 24È£ Ãâ·Â

( 단위 : 가수, %) 응답수,,-,,-,,-,,-,, 만원이상 무응답 평균 ( 만원 ) 자녀상태 < 유 자 녀 > 미 취 학 초 등 학 생 중 학 생 고 등 학 생 대 학 생 대 학 원 생 군 복 무 직 장 인 무 직 < 무 자 녀 >,,.,.,.,.,.,.,.,.

ÃѼŁ1-ÃÖÁ¾Ãâ·Â¿ë2

< E5FBBEABEF7C1DFBAD0B7F9BAB02C5FC1B6C1F7C7FCC5C25FB9D75FB5BFBAB05FBBE7BEF7C3BCBCF65FA1A4C1BEBBE7C0DABCF62E786C73>

- 2 -

성인지통계

국어 순화의 역사와 전망

소식지수정본-1

쌍백합23호3

*부평구_길라잡이_내지칼라

복지백서내지001~016화보L265턁

<B9CEBCBCC1F828C8AFB0E6B1B3C0B0292E687770>

33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문 * 웅 입주자격소득초과 34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송 * 호 입주자격소득초과 35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나 * 하 입주자격소득초과 36 래미안신반포팰리스 59 최 * 재 입주자격소득초

<B9AEC8ADC0E7C3A2766F6C2E31325FBDCCB1DB2E706466>

5 291

src.xls

한류동향보고서 26호.indd

2015년9월도서관웹용

발간등록번호 제정 2010 년 6 월 개정 2012 년 9 월 국립환경과학원 National Institute of Environmental Research

03 ¸ñÂ÷

°¨Á¤Æò°¡

<C3E6B3B2B1B3C0B C8A32DC5BEC0E7BFEB28C0DBB0D4292D332E706466>

01 02

<C6C8B5B5C0E5C5CD20B8AEC7C3B7BF2E696E6464>

2003report hwp

<52452D30342DB3F3C3CCB0E6B0FCB0A1C4A1C6F2B0A1BFCDB0FCB8AEB9E6BEC B1E8B1A4C0D32E687770>

<5BB0EDB3ADB5B55D B3E2B4EBBAF12DB0ED312D312DC1DFB0A32DC0B6C7D5B0FAC7D02D28312E BAF2B9F0B0FA20BFF8C0DAC0C720C7FCBCBA2D D3135B9AEC7D72E687770>

고 시 서울특별시고시제 호도시관리계획 [ 용산지구단위계획구역 ( 서부이촌동일대 ) 및계획 ] 결정 ( 변경 ) 및지형도면정정고시 구분 도면표시번호 지구명 지구의세분 위치 면적 ( m2 ) 연장 (m) 폭원 (m) 최초결정일 비고 기정 1 미관지구 역사문화미관

197


<B5BFB5CEC3B520C1F6C7A5C1B6BBE720BAB8B0EDBCAD5B315D2E687770>

hwp

GGWF Report는사회복지분야의주요현안에관하여정책의방향설정과실현에도움을주고자, 연구 조사를통한정책제안이나아이디어를제시하고자작성된자료입니다. 본보고서는경기복지재단의공식적인입장과다를수있습니다. 본보고서의내용과관련한의견이나문의사항이있으시면아래로연락주시기바랍니다. Tel

목차 Ⅰ. 기본현황 Ⅱ 년도성과평가및시사점 Ⅲ 년도비전및전략목표 Ⅳ. 전략목표별핵심과제 1. 녹색생활문화정착으로청정환경조성 2. 환경오염방지를통한클린증평건설 3. 군민과함께하는쾌적한환경도시조성 4. 미래를대비하는고품격식품안전행정구현 5. 저탄소녹색

2013지발-가을내지1004-4

ad hwp

....pdf..


* pb61۲õðÀÚÀ̳ʸ

1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수일고등학교 윤 상 2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고2]-8월18일 ( 오전 )-MBL활용화학실험 구성고등학교 류 우 3 [2]2018개방실험-학생2기[

감사회보 5월

ITFGc03ÖÁ¾š

178È£pdf

Readings at Monitoring Post out of 20 Km Zone of Tokyo Electric Power Co., Inc. Fukushima Dai-ichi NPP(18:00 July 29, 2011)(Chinese/Korean)

<C0CEBBE7B9DFB7C92DC3D6C1BE2E687770>

A Time Series and Spatial Analysis of Factors Affecting Housing Prices in Seoul Ha Yeon Hong* Joo Hyung Lee** 요약 주제어 ABSTRACT:This study recognizes th

»ç¶ûÀÇ¿�¸Å7È£ÃÖÁ¾

Transcription:

1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1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Publish message 발간사

1981년 7월 1일 양주군에서 분리되어 동두천시로 승격된 지 어언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우리 시는 쾌적한 자연환경과 편리한 도시기반을 바탕으로 명품도시로 자립,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경기북부의 작은 도시인 우리 시는 6 25 직후 미군이 시의 중심부에 주둔함으로써 발전의 기반을 빼앗기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각종 불명예를 짊어지며 희생해 왔으나 우리 지역의 발전은 어려운 과제로 치부되고, 국가의 무관심 속에 낙후되어 왔습니다. 이에 우리 시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몸부림쳐 왔으며, 인구 10만을 내다보는 자그마하지만 알찬 도시로 발전해 왔습니다. 인고의 나날들을 이겨낸 자랑스러운 우리 지역의 역사를 되짚어, 우리 시의 소중한 가치를 되살리고 미래를 향한 우리의 역할과 지표를 담고자 동두천시30년사 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아픈 흔적도, 달라진 현재의 모습과 그 속에 밝은 미래의 희망도 함께 보듬어 담아 우리 지역사의 발전에 작은 밑거름이 되어 미래를 환하게 밝혀줄 것이라 믿습니다. 시 승격 30년에 즈음하여 2년여의 편찬과정을 거쳐 지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고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발전상을 재확인한 동두천시30년사 발간은 매우 의미 있는 일로, 향토사를 재발견하고 체계화하는 자료일 뿐 아니라 후세에 물려줄 정신적 지표로서 동두천시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애향정신을 고취시켜줄 소중한 문헌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특히 시 전역에서 구석기 및 신석기 시대의 유물, 유적이 발견되면서 우리 시의 역사가 고대사에도 면면히 이어져 있는 유서 깊은 고장임을 밝혀낸 것은 이번 동두천시30년사 의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 브랜드 슬로건인 과 같이 9만6천여 시민의 쉼 없는 두드림의 메아리가 담겨진 동두천시30년사 의 발간은 우리 시민들의 깊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널리 읽히고 또한 동두천시의 역사 자료로 귀중하게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동안 동두천시30년사 가 발간되기까지 열과 성을 다해 힘써주신 홍정덕 상임위원을 비롯한 시사편찬 위원님들, 집필에 힘써주신 분들 그리고 동두천문화원 등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음으로 양으로 응원해 주신 시민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동두천시 시장 오 세 창

Congratulatory message 축사

동두천시 승격 30주년을 맞이하여 동두천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동두천시30년사 가 발간됨을 매우 뜻 깊고 보람있게 생각합니다. 동두천은 수려한 자연과 경기의 소금강인 소요산이 있고 구수한 인정이 넘치는 전원도시로 응집력이 강하고 충절이 살아 숨쉬는 유서깊은 고장으로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6 25전쟁 등 전란의 역경 속에서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향토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이번에 발간되는 동두천시30년사 는 시로 승격되어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학계와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거쳐 쾌적하고 살기좋은 도시로 활기차게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 온 동두천의 생생한 현재의 모습과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유산을 가진 고장으로 역사, 문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각 분야별 총 7권으로 선조들의 숭고한 발자취를 진솔하게 담았으며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하는 과정에서 누락, 오탈자, 수정보완할 내용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미흡한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해와 조언을 바랍니다. 기록을 남기는 민족은 위대하다 는 말이 있습니다. 동두천시30년사 가 동두천시의 중요한 역사서로서 지역문화와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시민에게 애향심과 자긍심을 고양하는 한편, 향토문화 보존과 계승, 새로운 문화진흥을 위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길잡이로서 지역발전의 귀중한 사료로서의 가치를 다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동두천시30년사 발간을 계기로 동두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향토문화발전과 문화창달로 지역발전에 기여함으로써 희망을 주는 도시, 살고 싶은 동두천 아름다운 문화 도시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기를 기원합니다. 시사 편찬사업에 적극적인 지원과 추진을 해주신 오세창 시장님, 많은 성원과 협조를 해주신 임상오 시의회 의장님, 시사편찬위원회 여러분 그리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고의 노력으로 심혈을 기울여 온 홍정덕 시사편찬상임위원, 집필위원, 편집위원, 감수위원 여러분과 행정실무 담당 문화체육과와 문화원 사무국 등 모든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동두천시사편찬위원회 부위원장/동두천문화원장 안 민 규

Congratulatory message 축사

안녕하십니까? 시의회 의장 임상오입니다. 먼저 시승격 30주년을 맞아 동두천문화원에서 동두천시30년사 를 발간하게 된 것을 9만6천여 시민과 함께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이제 우리 동두천시는 시승격 3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먼저 전철 개통으로 수도권 전철시대를 맞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특히 특별법 시행령 제정으로 그동안 이중 삼중의 중첩된 규제 속에 낙후되었던 우리 시가 산업기반시설과 대학을 유치하는데 획기적인 기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동두천시는 수도권 전철이 개통된 이래 소요산 관광지를 찾는 관광객의 급격한 증가 로 지역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으며 특별법 제정에 따른 1단계 발전종합계획의 확정과 더불어 2지방산업단지 조성, 국도대체 우회도로 개설 그리고 택지개발을 통한 주거환경개선 등 비약적인 발전을 나날이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시는 많은 산적한 현안사항들이 있으며 특히 지원특별법에 의한 미군 공여지의 적극적인 발전방안을 모색하여 제1, 2단계 발전종합계획에 반영함으로써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도시 개발방안 마련에 우리 모두가 합심 노력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머지않아 우리 동두천시는 시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편안하고 활력 넘치는 자족도시, 찾아오는 행복도시로서 탈바꿈하게 될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번 동두천문화원의 동두천시30년사 발간을 다시 한 번 온 시민과 함께 축하드리며 우리 시가 희망찬 도시로 도약하는 데 동두천문화원이 중추적인 역할을 다해주실 것을 당부드리면서 안민규 원장님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동두천문화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의회 의장 임 상 오

동두천시 전경

소요산의 봄

소요산의 여름

소요산의 가을

소요산 설경, 자재암

왕방산 단풍 왕방산 해돋이

왕방산 해돋이

신천변 유채꽃

국화전시회

해룡산

우국용사 김승렬 선생 묘비 건립(1988.05.11 걸산동 묘역)

소요산 전경 소요산 해돋이행사

신천에서 발견된 천연기념물 노랑부리저어새

신시가지 거리

행단나무 암수 합헌식 동두천시 시계 초입(1981년)

CONTENTS 제1권 목차 동두천시30년사는 8권으로 제작하였습니다. 002 004 008 발간사 축사 화보로 보는 30년 그리고 오늘 048 제2장 동두천시 연혁 050 제1절 동두천시명 유래 034 036 036 제1장 동두천시 소개 제1절 동두천시 소개 1. 기본 현황 050 051 051 052 053 053 1.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 2. 사천( 沙 川 ) 3. 이담( 伊 淡 ), 일담( 一 潭 ) 4. 가정자( 柯 亭 子 ) 5. 북도천( 北 道 川 )과 동도천( 東 道 川 ) 6. 동두천( 東 頭 川 )과 동두천( 東 豆 川 ) 036 2. 우리 시 상징 마크 055 제2절 동두천 관할 영역의 변천 037 3. 도시브랜드(BI) 워드마크 기본형 057 제3절 역사적으로 살펴본 동두천의 연혁 038 038 038 039 039 039 4. 상징 캐릭터 1) 소람이 요람이 2) 아롱이 다롱이 5. 위치 및 면적 1) 경위도상 위치 2) 지형과 기후 057 058 059 060 060 061 062 1. 선사시대 2. 원삼국시대 3. 삼국시대 4. 통일신라시대 5. 고려시대 6. 조선시대 7. 근 현대 041 6. 동두천시민의 노래 044 7. 홍보대사 064 제3장 지리 047 9. 시민헌장 066 제1절 자연 환경 066 1. 위치와 면적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067 067 069 069 070 070 071 074 076 076 078 080 081 082 084 086 086 086 092 094 095 095 1) 수리적 위치 2) 지리적 위치 3) 관계적 위치 4) 면적 2. 지질 및 지형과 토양 1) 지질 2) 지형 3) 토양 3. 산과 하천 1) 산 2) 하천 4. 기후 1) 기온 2) 강수 3) 동두천의 사계절 제2절 인구 1. 인구 변천 2. 인구 현황 제4장 식물 제1절 동두천 식물 1. 초본식물 1) 가지과 096 096 097 106 106 107 112 113 113 114 115 116 116 117 118 118 120 120 121 124 125 126 126 127 128 129 129 130 130 132 132 133 2) 고사리과 3) 괭이밥과 4) 국화과 5) 꼭두서니과 6) 꽃고비과 7) 꿀풀과 8) 난초과 9) 노루발풀과 10) 닭의장풀과 11) 도라지과 12) 돌나물과 13) 마타리과 14) 메꽃과 15) 무궁화과 16) 물레나무과 17) 미나리아재비과 18) 바늘꽃과 19) 박주가리과 20) 백합과 21) 범의귀과 22) 벼과 23) 벽오동과 24) 봉선화과 25) 부처꽃과 26) 붓꽃과 27) 비름과 28) 사초과 29) 삼과 30) 석죽과 31) 속새과 32) 수선화과 33) 십자화과

134 135 136 138 139 140 141 141 142 142 142 143 145 145 146 147 148 148 148 149 149 150 150 150 151 151 152 153 154 154 155 155 156 159 159 161 163 163 164 34) 앵초과 35) 양귀비과 36) 여귀과 37) 용담과 38) 장미과 39) 제비꽃과 40) 쥐방울과 41) 쥐손이풀과 42) 지치과 43) 질경이과 44) 천남성과 45) 콩과 46) 파리풀과 47) 풍접초과 48) 현삼과 49) 현호색과 2. 목본식물 1) 겨우살이과 2) 녹나무과 3) 능소화과 4) 다래나무과 5) 단풍나무과 6) 때죽나무과 7) 마편초과 8) 목련과 9) 무궁화과 10) 물푸레나무과 11) 미나리아재비과 12) 버드나무과 13) 범의귀과 14) 보리수나무과 15) 인동과 16) 장미과 17) 진달래과 18) 층층나무과 19) 콩과 20) 포도과 21) 화살나무과 22) 회양목과 166 168 170 171 171 172 173 173 174 174 175 176 176 177 177 178 178 179 179 179 179 179 180 180 180 180 181 181 182 182 제5장 언어 제1절 개관 제2절 조사 개요 제3절 동두천지역 어휘 체계의 특성 1. 농사 관련 어휘 2. 가옥 관련 어휘 3. 음식 관련 어휘 4. 의복 관련 어휘 5. 육아 관련 어휘 6. 인체 관련 어휘 7. 인륜 관련 어휘 8. 경제 관련 어휘 9. 물고기 관련 어휘 10. 식물 관련 어휘 11. 자연 관련 어휘 12. 상태 관련 어휘 13. 동작 관련 어휘 제4절 동두천지역 언어의 문법체계 1. 대명사 2. 조사 3. 경어법 4. 시제 5. 사동, 피동 6. 연결어미 7. 보조용언 8. 부사 제5절 동두천지역 언어의 음운 체계 1. 단모음 체계 2. 음운 변화 1) 전설모음화 현상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182 183 183 184 2) 고모음화 현상 3) 비원순모음화 현상 4) 움라우트 현상 5) 된소리화 현상 214 제8절 동두천의 연표 (1945. 8. 15~2010. 11. 30) 184 3. 자음탈락 현상 250 제7장 동두천의 문화재 185 제6절 동두천지역 언어의 특성 252 제1절 문화재의 개념 186 제6장 동두천 연표 252 252 252 252 1. 유형문화재 2. 무형문화재 3. 기념물 4. 민속자료 188 189 189 190 190 제1절 선사시대 제2절 삼국시대 1) 백제 2) 고구려 3) 통일신라 253 253 253 254 254 254 255 제2절 문화재의 종류 1. 지정문화재 1) 국가지정문화재 2) 시 도 지정 문화재 3) 문화재자료 4) 등록문화재 5) 비지정문화재 192 194 197 제3절 고려시대 제4절 조선시대 제5절 대한제국 256 256 256 256 257 제3절 동두천 문화재 1. 유적 통계 1) 지정문화재 통계 2) 시대별 유적 통계 3) 종류별 유적 통계 200 200 201 202 209 제6절 한말 1. 독립신문 2. 황성신문 3. 대한매일신보 4. 한말 근대 법령 258 258 2. 유적 목록 1) 지정문화재 및 향토유적 목록 210 제7절 일제강점기 212 1. 동아일보

CONTENTS 전체 목차 동두천시30년사는 8권으로 제작하였습니다. [ 2권 ] 8장 역사 제1절 선사시대 동두천 제2절 동두천 고대사 제3절 삼국시대 동두천 제4절 통일신라시대 동두천 제5절 고려시대의 동두천 제6절 조선시대의 동두천 제7절 근대의 동두천 제8절 대한제국기의 동두천 제9절 일제강점기의 동두천 제10절 동두천 현대사 제11절 한국전쟁과 동두천 11장 행정 제1절 행정 개황 제2절 역대 면 읍 시장 제3절 훈 포장 수훈자 및 대통령표창 수상 제4절 시민의 장 수상자 제5절 동 행정 제6절 동두천시의회 제7절 부서별 업무 제8절 각급 행정 사법기관 제9절 동두천시 직제 및 공무원 현황 [ 4권 ] 9장 고고학 자료로 본 동두천 12장 문화원 제1절 제2절 제3절 새로 찾은 동두천 고대문화 상봉암동 황희터 안흥동, 담안 제1절 문화원사( 史 ) 개관 제2절 문화사업 지표 및 역점사업 추진방향 제3절 문화지향 변천과정 개설( 槪 說 ) 제4절 문화원 기구 제5절 향후 주요사업 추진 사항 [ 3권 ] 10장 정치 제1절 지방자치와 동두천 제2절 선거 제3절 정당 제4절 시민의 정치의식과 정치참여 13장 문화 예술 제1절 동두천의 고전문학 제2절 동두천의 현대문학 제3절 동두천의 사진 제4절 동두천의 예술 단체 14장 종교 제1절 제2절 불교 기독교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제3절 천주교 제4절 동두천 유림( 儒 林 )의 성장과 변화 제5절 기타 종교 15장 민속 제1절 동두천시의 일생의례 제2절 정월 제3절 민요 제4절 설화 제5절 속신어 속담 수수께끼 19장 교통 제1절 도로 교통 서설 제2절 도로의 건설과 이용 제3절 철도의 건설과 이용 제4절 대중교통의 변천과 이용 제5절 차량 주차장 현황 및 교통관련 단체 20장 관광 제1절 개요 제2절 동두천의 관광자원 [ 5권 ] 21장 보건 위생 16장 산업 제1절 제2절 공중위생과 식품위생 환경위생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제5절 제6절 제7절 제8절 농업 임업 축산업 공업 광업 금융 상업 서비스업 22장 의료 제1절 우리나라 의료의 변천 제2절 동두천시의 의료의 변천 제3절 동두천시의 의료현황 제4절 동두천시의 의료관련 단체 제5절 질병관리 17장 도시계획 23장 언론 제1절 도시계획 제1절 제2절 신문 방송 18장 건축 제1절 주택

[ 6권 ] 24장 사회단체 제1절 동두천 시민사회운동 개요 제2절 동두천의 시민사회 단체 25장 새마을운동 제1절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배경 개관 제2절 새마을운동의 출범 제3절 새마을운동의 기본정신 제4절 새마을 교육 제5절 농어촌 새마을 지도자 교육 제6절 새마을운동 단체 제7절 SMU 새마을운동 <2010년 향후 전망> 제10절 지역사회복지의 전달체계 제11절 지역사회복지기관의 구분 제12절 지역사회복지 실천방법론의 위상정립 제13절 동두천시 사회복지사업의 과제 제14절 동두천시 사회복지사업 활성화를 위한 시책 제15절 동두천시 사회복지 기관 현황 28장 묘지 제1절 장례( 葬 禮 )의 시원( 始 原 ) 제2절 우리나라 장례 및 분묘의 변천 제3절 동두천의 전통 무덤 제4절 동두천 지역의 전통 묘역 제5절 산송( 山 訟 ) 제6절 동두천 묘지의 현황 29장 여성 26장 보훈 제1절 개요 제2절 동두천 보훈사업의 현황 제3절 보훈관련 단체 제4절 동두천 보훈사업의 미래와 전망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제5절 제6절 동두천시 여성 현황 여성의 정치 및 사회 참여 동두천시 여성복지 동두천 여성관련 단체 동두천과 기지촌 동두천 여성을 위한 발전 방향 27장 사회복지 30장 교육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제5절 제6절 제7절 제8절 제9절 사회복지의 개념 사회보장제도 한국의 가족복지 지역사회복지 지역사회복지의 목표 지역사회복지의 이념 지역사회복지의 원칙 지역사회복지의 법적 근거 지역사회복지의 주체와 대상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제5절 제6절 제7절 제8절 제9절 교육의 개요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 일제( 日 帝 )의 침탈기 일제 교육의 피해 동두천의 교육 공립유치원 사립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제10절 고등학교 제11절 대학교 제12절 평생교육 제13절 대안교육 제14절 사회교육 제15절 동두천 교육의 과제와 전망 제2절 제3절 제4절 제5절 제6절 제7절 고려시대 조선시대 조선시대 효자, 열녀 근대 현대 자료편 31장 체육 제1절 동두천 체육의 과거와 현재 제2절 동두천시체육회 제3절 동두천시생활체육회 [ 7권 ] 32장 지명 유래 제1절 동두천시의 위치 제2절 면적과 지형 제3절 동두천시의 연혁 제4절 행정 연혁 제5절 행정구역과 자연부락의 변천사 제6절 맺는 말 33장 세거 성씨 35장 금석문 제1절 신응구 묘갈명( 申 膺 榘 墓 碣 銘 ) 제2절 정명호 묘지명( 鄭 明 湖 墓 誌 銘 ) 제3절 신량 묘비명( 申 湸 墓 碑 銘 ) 제4절 조종저 묘지명( 趙 宗 著 墓 誌 銘 ) 제5절 박수소 묘갈명( 朴 守 素 墓 碣 銘 ) 제6절 박주 묘갈명( 朴 守 墓 碣 銘 ) 제7절 정석조 묘갈명( 鄭 錫 祚 墓 碣 銘 ) 제8절 신벌 묘갈명( 申 撥 墓 碣 銘 ) 제9절 이지운 묘표( 李 祉 運 墓 表 ) 재10절 이세근 묘갈명( 李 世 瑾 墓 碣 銘 ) 제11절 목행선 묘갈명( 睦 行 善 墓 碣 銘 ) 제12절 김충렬 묘갈명( 金 忠 烈 墓 碣 銘 ) 제13절 김협 묘갈명( 金 鋏 墓 碣 銘 ) 제14절 조중려 묘갈명( 趙 重 呂 墓 碣 銘 ) 제15절 이중경 묘음기( 李 重 庚 墓 陰 記 ) 제16절 홍약 신도비명( 洪 約 神 道 碑 銘 ) 제17절 정사호 신도비명( 鄭 賜 湖 神 道 碑 銘 ) 제18절 정이주 비명( 鄭 以 周 碑 銘 ) 제19절 정장공 신도비문( 貞 莊 公 神 道 碑 文 ) 제20절 방륜 신도비명( 方 輪 神 道 碑 銘 ) 제21절 신용개 신도비( 申 用 漑 神 道 碑 ) 제1절 제2절 동두천 세거 성씨의 개관 동두천의 세거 성씨 일람 36장 고문서 34장 인물 제1절 고대 제1절 교지 1 제2절 교지 2 제3절 교지 3 제4절 호구대장 1

제5절 호구대장 2 제6절 호구대장 3 제7절 호구대장 4 제8절 호구대장 5 제9절 호구대장6 제10절 호구대장 7 제11절 호구대장 8 제12절 고목 제13절 시호 제14절 재산 분할 기록[ 分 財 記 ] 제15절 간찰( 簡 札 ) 제16절 토지매매문서 제17절 成 績 戶 口 帳 [호구대장] 제18절 진정 및 청원서[ 白 活 ] 제19절 진정 및 청원서[ 白 活 ] 2 제20절 동두천의 지도 37장 문헌자료 제1절 고려사 제2절 조선왕조실록 제3절 추강집( 秋 江 集 ) 제4절 율곡전서( 栗 谷 全 書 ) 제5절 졸옹집( 拙 翁 集 ) 제6절 창랑집( 滄 浪 集 ) 제7절 기언별집( 記 言 別 集 ) 卷 之 九 제8절 중암선생문집( 重 庵 先 生 文 集 ) 卷 之 二 제9절 기봉집( 騏 峯 集 ) 卷 之 一 제10절 용헌집( 容 軒 集 ) 제11절 편양당집( 鞭 羊 堂 集 ) 제12절 윤치호 일기( 尹 致 昊 日 記 ) 9 卷 제13절 한국 근현대 잡지 자료 제14절 매월당시집( 梅 月 堂 詩 集 ) 卷 之 十 제15절 계곡선생집( 谿 谷 先 生 集 ) 卷 之 二 十 七 제16절 일제시대 독립군 체포 보고 제17절 東 豆 川 郵 便 所 ( 楊 州 郡 伊 淡 面 東 豆 川 ) 제18절 삼천리 제8권 제6호 제19절 동두천 소재 회사 제20절 해방 후 신문 기사 [ 8권 ] 38장 동두천의 옛사진 제1절 제2절 제3절 제4절 제5절 미군기지 초창기 교회 농촌 풍경 동두천 시가지 교육 39장 동두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제1절 동두천 사람들 제2절 동두천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들 제3절 동두천 사람들의 말과 주장 제4절 동두천 시장 풍경 제5절 동두천 신앙 현장 제6절 동두천 교육 현장 제7절 동두천의 노포 제8절 동두천 기행문 제9절 동두천 쟁점들 제10절 동두천 축제 제11절 동두천에서 사라져버린 것들 제12절 동두천 사건ㆍ사고 제13절 동두천 민속신앙

1 DONGDUCHEON HISTORY OF 30 YEARS 1981-2011

제1장 동두천시 소개 제1절 제 1 절 동두천시 소개 동두천시 30년사

제1권 제1장 동두천시 소개 제1절 동두천시 소개 동두천시 30년사 1. 기본 현황 인구 (2011. 4. 30 현재) 세대 : 38,173 남 : 46,925명 / 여 : 46,703명 / 합계 : 93,628명 면적 : 95.66km2(경기도 면적의 0.9%) 임야 : 전체 면적의 65.02km2(68%) 도시계획구역 : 전체 면적의 33.09km2(34.5%) 군사시설보호구역 : 전체 면적의 22.99km2(24%) 미군 공여지 : 전체 면적의 40.63km2(42%) 행정구역 : 8동 149통 1,183반 행정기구 : 실(2), 과(16), 사업소(3), 동(8), 직속기관(1), 의회 공무원 수 : 정원 - 514명 2. 우리 시 상징 마크 전체적으로 동두천시의 한글 이니셜 ㄷ 의 이미지와 소요산 그리고 소요산 단풍을 모티브로 하여 환경 중심의 미래지향형 전원도시를 형상화 하였다. 또한 역동적인 붓터치는 동두천시가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도약하는 모습을 나타냄으로 무한 성장하는 동두천시의 가능성을 형상화한 것이다. 초록색은 맑고 깨끗한 동두천시의 자연환경을 나타내며, 붉은색은 단풍으로 물든 소요산의 자태를 표현함과 동시에 통일을 향한 동두천 시민의 강한 열정을 나타낸다.

036 + 037 제1장 동두천시 소개 3. 도시브랜드(BI) 워드마크 기본형 영문타입 국문타입 소요산을 상징하는 단풍을 그래픽 모티브로 활용하여 청정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동두천시의 다양한 모습과 미래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트 형태는 사랑, 화합, 조화 를 상징하고 있으며 시민에 대한 사랑과 민관의 화합, 미래발전에 대한 조화로움을 상징하고 있다. 나뭇잎 형태는 동두천시 천혜의 자연환경 을 상징하며, 사람 형태는 시민이 중심이 되는 동두천시 를 상징하고 있으며 시민 중심의 행정을 펼쳐가는 동두천시와 살맛나는 미래도시 동두천을 상징하고 있다. 단풍의 형태는 소요산의 단풍을 형상화하여 관광도시로서의 동두천시를 상징하고 있다. DO Dream 로고는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동두천시의 모습을 표현해줄 수 있도록 명조계열의 타입을 사용하였으며, D 의 형태를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이미지가 표현되도록 하였으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제1권 제1장 동두천시 소개 동두천시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고, 동두천 의 시명은 강인하게 보이도록 캘리그래피를 적용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해 보이도록 하여 강한 응집력을 가지도록 하였다. 천 자의 길게 뻗어나간 받침은 지속적으로 발전해갈 수 있는 동두천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두천시 30년사 4. 상징 캐릭터 1) 소람이 요람이 소요산에서 서식하고 있는 다람쥐 남녀 한 쌍으로 형상화하였다. 평화를 사랑하며 부지런한 습성을 지닌 다람쥐는 동두천 시민의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정신과 성실 근면함을 나타낸다. 단풍잎을 들고 있는 모습을 통해 동두천시의 자랑인 소요산 단풍의 수려함을 암시하도록 하였으며, 동두천시를 찾는 사람들이 친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귀엽고 깜찍한 형태로 구성하였다. 2) 아롱이 다롱이 소요산 단풍의 이미지를 귀엽고 천진난만한 단풍요정 으로 형상화하였다. 또한 붉고 푸른 소요산 단풍의 수려함을 나타내기 위해 잎새를 머리의 형태로 표현하였으며 단풍요정의 밝은 미소는 동두천시의 희망찬 미래를 상징한다. 닮은꼴의 남녀 표현은 동두천 시민이 한 가족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038 + 039 시목 : 은행나무 시목 : 황매화 시목 : 파랑새 제1장 동두천시 소개 5. 위치 및 면적 동두천시는 경기도 북단에 위치한 도시로서, 동단은 탑동동이 포천시에 접하며, 서단은 상패동이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접해 있다. 남단은 송내동이 양주시 봉양동에 접하며, 북단은 하봉암동이 연천군 전곡읍과 접하여 있다. 길이는 동서로 12.9km, 남북으로 15.3km이며 총면적은 95.66km2이다. 1) 경위도상 위치 시청소재지 극단경도 극단위도 동경 127 03 49 동단 127 09 24 남단 37 50 34 북위 37 54 00 서단 127 00 37 북단 37 58 50

제1권 제1장 동두천시 소개 2) 지형과 기후 동두천 일대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동쪽으로는 국사봉을 주봉으로 왕방산, 해룡산이 둘러쳐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천보산의 회암령에서 서북으로 칠봉산이 솟아 그 지맥이 여러 갈래로 높고 낮은 봉우리를 펼쳐 남계( 南 界 )를 동두천시 30년사 형성한다. 서쪽으로는 마차산이 에워싸고 북으로 뻗으며 옥녀봉이 북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들은 광주산맥이 태백산맥의 철령 부근에서 갈라져 서울 근처에 달하는 산으로서 동두천 일대 험준한 산지는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동북쪽은 높이가 4~5백 미터 이상이나 되는 높은 산들로 꽤 험한 산지를 이루며 국사봉 서록( 西 麓 )에 우리 시의 자랑인 소요산이 솟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또 남쪽으로는 양주시와 의정부시를 지나는 단층으로 이 단층은 주변 보다 침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평탄하므로 주요한 교통로(국도3호선, 경원선)로 이용된다.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우리 시는 기온 연교차가 큰 북부의 대륙성 기후와 남부의 난ㆍ온대 기후의 점이적 특색을 나타내며 특히 겨울의 기온은 북서 계절풍이 바람받이에 해당하여 위도에 비해 심한 저온을 나타낸다. 연평균 기온이 11 내외이고 1월 평균기온은 5.5 이며, 8월 평균기온은 25.2 로 연교차가 30 가 넘는다. 최한월( 最 寒 月 )과 최난월( 最 暖 月 )의 기온은 그 차이가 매우 커서 여름철은 열대기온을 이루는가 하면 겨울철은 한대기온을 이룬다. 여름철은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기단의 지배로 고온이 되고 겨울철은 한랭 건조한 시베리아기단의 내습으로 저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강수량은 연평균 1,515mm이고, 연평균 상대습도는 67.3%, 연평균 일조시간은 5시간이다. 우리 시의 평균초설( 初 雪 )은 11월 20일 경이고, 종설( 終 雪 )은 3월 20일 전후 이며, 평균초빙( 初 氷 )은 10월 20일 경, 종빙( 終 氷 )은 4월 초순으로 경기도의 평균 치와 거의 같다.

040 + 041 6. 동두천 시민의 노래 제1장 동두천시 소개

제1권 제1장 동두천시 소개 꿈과 희망의 도시 Do Dream 동두천 -꿈이 실현되는 원년- 동두천시 30년사 찾아오는 동두천, 살맛나는 미래도시 시/정/방/침 시민과 함께하는 참여행정 따뜻이 감싸주는 서민복지 미래를 약속하는 교육문화 희망을 펼쳐가는 지역개발 중/점/추/진/과/제 레포츠 관광도시 녹색도시 조성 비전있는 미래도시 실천 교육 문화도시 복지 행정도시

042 + 043 레포츠 관광도시 특성있는 관광 레저 인프라 확충, 산불진화용 취수댐 건설 및 삼림욕장 조성, 소요산 관광인프라 확충 비전있는 미래도시 동두천지원특별법 제정 추진, 동두천 지원도시 조성사업 추진 반환공여구역 개발계획 추진, 전통시장 시설 및 경영 현대화 추진 산업기반시설 확충 및 기업지원, 경쟁력있는 농 축산업 육성 주 간선도로 확충, 도시계획도로 개설 수도권 연계 광역 교통망 조기 확충, 맑고 깨끗한 안정적인 물 공급 제1장 동두천시 소개 녹색도시 시민의 쉼터 푸른 신천 만들기 추진, 푸른 도시 조성, 쾌적한 도시환경 조성 교육 문화 도시 교육환경 개선 및 교육 인프라 구축, 경쟁력 있는 대학 유치, 평생교육기반 확립 건전하고 개성있는 청소년 육성, 지역 문화 예술단체 육성 및 지원 생활체육 활성화 및 체육진흥사업 추진 복지행정도시 모든 주민이 행복해지는 OK 주민서비스, 불우한 소외계층의 생활안정 도모 장애인 자립 도모를 위한 지원 강화, 여성의 복지 증진 및 사회참여 확대 노인 및 아동복지 증진, 수준 높은 보건 의료서비스 제공 동두천경찰서 부지조성 사업, 다함께 참여하는 열린 행정 시민감동의 맞춤행정 실현, 전자시정 구현 및 지식 정보화 사회의 조기 구축 깨끗한 공직사회 조성 및 신뢰받는 행정 구현

제1권 제1장 동두천시 소개 7. 홍보대사 동두천시 30년사 성 명 : 유현상 직 업 : 가수 학 력 : 광운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위 촉 일 : 2010. 10. 21 경 력 : 1971년 그룹 Last Chan, 사랑과 평화 기타리스트, 리드싱어로 데뷔 1982년 그룹 백두산 결성 1991년 트로트 가수 전향 여자야 발표 2008년 그룹 백두산 재결성 2009년 119 홍보대사 주요활동 : 1981년 그것이 사랑인줄 1991년 여자야, 갈사람 2003년 갈테면 가라지 2009년 우리가 대한민국이다 저 서 : 2010년 꿈을 향해 소리쳐

044 + 045 제1장 동두천시 소개 성 명 : 신상훈 직 업 : 개그작가, 교수 학 력 :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졸업 위 촉 일 : 2010. 10. 21 경 력 :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개그코미디학부 학부장 KBS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한반도 유머 총집합 작가 1998 미국 라디오코리아-휴스턴 설립, 초대 방송국 사장 주요활동 : 2004년 KBS 연예대상 최우수 작가상 MBC : 일요일 일요일밤에, 뽀뽀뽀 방송작가 활동 KBS : 코미디일번지, 웃음천국, 서세원 김미화의 코미디세상 만사, 마주보며 사랑하며, 시사터치 코미디파일, 폭소클럽 등 방송활동 SBS : 순간포착 당신이 특종 방송작가 저 서 : 2007년 애드립의 기술 2009년 애드립 사전 2010년 유머가 이긴다 외 다수

제1권 제1장 동두천시 소개 동두천시 30년사 성 명 : 유민상 직 업 : 개그맨 학 력 : 경복대학 관광과 졸업 위 촉 일 : 2010. 10. 21 경 력 : 2005년 KBS 20기 공채 개그맨 주요활동 : 2005년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우수코너상 <마른인간 연구 X-파일> 개그콘서트 : <소비자고발> 초대손님 역, <성공시대> 해설가 역, <부러워서 그려>, <뮤지컬> <하얀 옥탑>, <보고 싶다>, <파라킹 홈쇼핑> 폭소클럽 2 폭소클럽 : <마른인간 연구 X-파일> 연구소장역 <한반도 유머 총집합>

046 + 047 8. 시민헌장 우리 동두천은 날로 발전하는 평화로운 전원도시로서 구수한 인정과 수려한 자연을 보람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손만대에 길이 물려줄 살기 좋은 복지도시로 가꾸기 위하여 마련한 이 헌장을 우리 모두 꾸준히 지킵시다. 제1장 동두천시 소개 1.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히 살림하며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1. 온 시민이 한 식구처럼, 온 도시가 한 집안처럼, 따뜻하고 즐겁게 생활합시다. 1. 예의 바르고 질서를 존중하며 협동, 봉사, 창의의 능력있는 시민이 됩시다. 1. 향토 문화와 자연을 지성스레 가꾸어 자랑스러운 문화 도시를 이룩합시다. 1. 어른을 받들고 어린이를 아끼며 젊은이의 꿈을 키워줍시다.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제1절 제 1 절 동두천시명 유래 제 2 절 동두천 관할 영역의 변천 제 3 절 역사적으로 살펴본 동두천의 연혁 동두천시 30년사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제1절 동두천시명 유래 동두천시 30년사 1.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 동두천 지역의 백제 이전 지명을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 동두천 지역의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자료는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통치하던 당시의 지명으로 이때는 이 지역을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지명의 의미를 이해하는 단초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매( 買 ) 또는 미( 米 )라는 이두( 吏 讀 )로 표현된 고대 우리말인데 이는 마홀( 馬. 忽 ), 매성( 買. 省 ), 미추홀( 味. 鄒 忽 ), 관미성( 關 彌. 城 ) 등의 고대 지명에 나타 나는 마( 馬 ), 매( 買 ), 미( 味 ), 미( 彌 ) 등의 지명으로 이는 강( 江 ) 또는 하천( 河 川 )을 뜻한다. 그렇다면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는 내을( 內 乙 ), 내이( 內 尒 )를 접두사로 가진 하천( 河 川 ), 즉 내을천( 內 乙 川 ), 내이천( 內 尒 川 )이라는 하천, 강 지역을 의미하게 된다. 두 번째는 삼국통일 이후에 경덕왕이 고대 우리말 지명을 한역( 漢 譯 )하면서 동두천지역의 지명으로 채택한 사천( 沙 川 )이라는 지명이다. 경덕왕의 한자식 지명 개정은 대부분 현지의 우리말 지명을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을 겪었으므로 사천( 沙 川 ), 즉 모래내 는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의 한자식 번역이라고 보아야 하므로 결국 내을( 內 乙 ), 내이( 內 尒 )는 모래 의 우리말 표기임을 알 수 있다. 즉 모래가 많은 하천, 모래내 의 우리 고대어가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 라는 이두식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다.

050 + 051 그리고 이 내을매( 內 乙 買 ), 즉 모래내 가 바로 우리 동두천을 관통하여 북류( 北 流 )하는 신천( 莘 川 ) 의 본래 우리 이름인 것이다. 여지도서 를 비롯한 여러 고지도에 현재의 신천을 <사천( 沙 川 )>으로 표기한 것도 이 사실을 방증한다. 2. 사천( 沙 川 ) 이 지명은 앞에서 설명한 대로 우리 동두천의 본래 지명인 <모래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 사천( 沙 川 )은 경덕왕이 <모래내>를 개명한 이래 고려시대까지 동두천 지역의 지명으로 공식 사용되었다. 사천( 沙 川 )은 처음 포천의 속현( 屬 縣 )으로 배정되었으나, 후에 견주( 見 州 )에 이관되고 후에 양주( 楊 州 )의 속현이 된다. 제2장 동두천시 연혁 3. 이담( 伊 淡 ), 일담( 一 潭 ) 조선 건국 이후 양주인 한양에 신도( 新 都 )가 건립되자, 본래 한양 지역을 일컫던 양주는 위치를 견주 지역으로 옮겨 설치하게 되었다. 양주가 견주 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동두천 지역을 지칭하던 사천( 沙 川 )은 이담( 伊 淡 ) 이라는 이름으로 양주의 한 면( 面 )이 되었다. 이후 동두천 지역은 일관되게 양주군 이담면 으로 불리게 된다. 일부 자료에 이담 이 혹은 일담( 一 潭 ) 으로도 불렸다는 기록이 나타나지만 양주읍지 를 비롯한 각종 기본 자료에는 일담( 一 潭 )이 이담( 伊 淡 )을 대치하여 나타나는 예가 없다. 따라서 <동두천대관> 등 일부 자료에 나타나는바 조선 전기에는 일담( 一 潭 ), 조선 후기에는 이담( 伊 淡 )으로 불렸다는 기술은 그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단, 천주교 순교자 관련 자료에 나타나는 일담( 一 潭 )은 양주군 일담리( 一 潭 里 ) 로 명기( 明 記 )되어 있어 일담( 一 潭 )은 이담면( 伊 淡 面 )의 한 리로 분명히 표기되어 있다.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그렇다면 이들 일담( 一 潭 ), 이담( 伊 淡 ) 등의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천주교 순교사록 에는 동두천 출신의 순교자 홍성원이 일담리의 세거인 ( 世 居 人 ) 즉, 대대로 이 지역에 살아온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일담( 一 潭 ) 이라는 지명이 오래된 지명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지명 일담( 一 潭 ) 은 큰 연못 이라는 뜻이다. 큰 연못 이라는 이 지명은 이담( 伊 淡 ) 동두천시 30년사 역시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고, 현재 동두천의 동명인 생연( 生 淵 ) 과도 통한다. 모두가 큰 연못 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생연( 生 淵 ) 지역에는 남양 홍씨 문중이 세거하여 왔고 이 문중에서 연못 을 팠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므로 천주교 순교사료에 등장하는 홍성원이 일담의 세거지인( 世 居 之 人 ) 이라는 기록과도 정확히 부합한다. 4. 가정자( 柯 亭 子 ) 여지도서 를 비롯한 많은 고지도 자료에 우리 동두천 지역을 나타내는 대표 지명으로 기록된 것이 바로 가정자( 柯 亭 子 ) 이다. 가정자( 柯 亭 子 )는 동두천의 세거문중인 전주 이씨 전성군파의 입향조 이중경 ( 李 重 庚 )이 공조판서를 지낸 후 현재의 동두천동으로 물러나와 만년에 지은 정자의 이름이다. 동두천은 삼방로 상에 위치한 지리적 입지로 말미암아 금강산 지역으로 여행 하는 풍류객들의 교통로였고 아울러 소요산을 찾는 시인 묵객들의 탐승처였으 므로 풍광좋은 곳에 위치한 가정자( 柯 亭 子 )는 이들 여객과 탐승객들에 의하여 동두천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로 소문이 났고 그 결과 이담면 지역의 대표 지명 으로 각종 자료와 고지도에 등재되었던 것 같다. 가정자( 柯 亭 子 )는 동두천이라는 지명이 이담면의 대표지명으로 대체되는 일제 강점기 이전의 우리 동두천을 지칭하는 지명이었다.

052 + 053 5. 북도천( 北 道 川 )과 동도천( 東 道 川 ) 이 두 지명은 임원경제지( 林 園 經 濟 志 ) 를 비롯한 경제 관련 고문헌에 장시( 場 市 ) 항목에 나타나는 지명이다. 북도천장( 北 道 川 場 )은 지금의 봉양리 지역에, 동 도천장( 東 道 川 場 )은 미 2사단 주둔 지역에 서던 장으로 특히 동도천장은 가래비 장, 송우리장과 더불어 한수 이북의 주요한 큰 장이었다. 장터와 관련한 이들 지명은 지명에 나타나는 대로 동두천 지역을 관통하여 흐르는 신천( 莘 川 )과 그 지류 를 지칭한다. 북도천( 北 道 川 )은 지명 그대로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 으로 현재 신천 의 옛 지명이다. 그리고 동도천( 東 道 川 )은 동쪽에서 흘러오는 개울 의 의미로 현재 미 2사단 경내를 흘러 신천에 합류하는 동두내 를 의미한다. 이후 동두천은 이 동두천장터를 중심으로 시가를 형성하며 발전하였고 결국 이 동도천( 東 道 川 )이 현재의 지명인 동두천( 東 豆 川 )의 직접적인 연원( 淵 源 )이 되는 것이다. 제2장 동두천시 연혁 6. 동두천( 東 頭 川 )과 동두천( 東 豆 川 ) 이 두 지명은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들어오면서 사용되어 우리 지역의 지명으로 보편화한 지명이다. 동두천( 東 頭 川 )과 동두천( 東 豆 川 )은 그 의미가 같다. 모두가 동쪽에서 흘러오는 하천 의 의미로 동두내가 서류( 西 流 )하여 시내를 관통하며 북류( 北 流 )하는 신천에 합류하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 두 지명의 의미는 같으나 가운데 두 의 한자 표기가 다른데 동두천( 東 頭 川 ) 과 달리 동두천( 東 豆 川 ) 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두( 豆 ) 는 콩 이라는 의미로 이 경우에는 동두천( 東 豆 川 ) 이 해석이 불가능해진다. 단, 두( 豆 ) 를 두( 頭 ) 의 약자( 略 字 )로 이해하여야만 이를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두천( 東 豆 川 ) 은 동두천( 東 頭 川 ) 을 간략히 약자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식의 약자 표기는 일본인들의 문자 습관이므로 글자를 간략히 쓴다는 의미 외에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표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동두천( 東 頭 川 ) 또는 동두천( 東 豆 川 )이라는 지명 표기는 구한말, 일제 강점기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동두천장 지역의 의병 활동을 탄압하면서 관련 자료에 다수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그 후 일제가 경원선 철도를 부설하고 동두천역( 東 豆 川 驛 )을 설치하면서 소요산 탐승객들이 급증하자 이에 관한 보도자료, 기행문 등에 이 지명이 널리 확산되었다. 동두천시 30년사 구한말에 혼용되던 두 지명 표기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동두천( 東 豆 川 ) 으로 단일화해 현재에 이른다.

054 + 055 제2절 동두천 관할 영역의 변천 삼국사기 를 비롯한 각종 자료에 동두천 지역은 마한의 영토였다가 후에 백제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의 영토가 되고 그 후 고구려의 침공으로 고구려의 지배를 받았고 신라가 한강 유 역을 차지하고 결국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 다. 고구려 지배 당시의 지명은 내을매( 內 乙 買 ) 또는 내이미( 內 尒 米 )였는데,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이를 사천으로 변경하여 견성군( 堅 城 郡, 현재 포천군)의 영현( 領 懸 )으로 삼았다가 고려 현종 9년(1081)에 양주에 예속되었고 조선에 들어와서 세 조 12년(1466) 1월 관제개정( 官 制 改 正 )에 따라 양주가 목( 牧 )으로 승격되어 진이 두 어졌다. 그 당시 양주의 속현으로는 견주 풍양 사천이 있었으며 목의 34개 방리 중의 하나인 이담이 동두천시의 근원이 되었다. 1789년 <호구총수( 戶 口 總 數 )>에 나타나는 이담면의 관할은 다음과 같다. 이담면 송라리( 松 羅 里 ), 사당리( 舍 堂 里 ), 황매음리( 黃 梅 陰 里 ), 광암리( 廣 巖 里 ) 걸산리( 傑 山 里 ), 가정자리( 柯 亭 子 里 ), 안흥리( 安 興 里 ), 봉암리( 鳳 巖 里 ) 이 방리 체제는 인구 증가에 따라 계속 확대되어 1912년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구한국의 지방 조직을 정리하여 보고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 일람( 舊 韓 國 地 方 行 政 區 域 名 稱 一 覽 ) 에 따르면 1789년 당시와는 많이 다른 행정 조직이 나타난다.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이담면 송라리( 松 羅 里 ), 생골리( 生 骨 里 ), 보안리( 保 安 里 ), 안흥리( 安 興 里 ), 하봉암리( 下 鳳 岩 里 ), 동막동( 東 幕 洞 ), 내동리( 內 洞 里 ), 연동리( 淵 洞 里 ), 창동리( 倉 洞 里 ), 걸산리( 傑 山 里 ), 황매동( 黃 梅 洞 ), 가정자리( 柯 亭 子 里 ), 행단리( 杏 丹 里 ), 지동리( 紙 洞 里 ), 동두천리( 東 豆 川 里 ), 하봉암동( 下 鳳 岩 洞 ), 유산리( 杻 山 里 ), 광암리( 廣 岩 里 ) 동두천시 30년사 그리고 1914년 우리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면서 구한국 당시의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동두천 지역의 행정 구역이 다음과 같이 개편 조정되었다. 행정구역 세부지역 하봉암리 상봉암리 동두천리 안 흥 리 보 산 리 생 연 리 광 암 리 송 내 리 하봉암리, 상봉암리, 동막동 각각의 일부 상봉암리, 하봉암리, 동막동, 안흥리, 창말 각각의 일부 가정자리, 창말, 싸리말, 보산, 안흥리 각각의 일부 안흥리 일부 동두천리, 보산, 싸리말, 황매동 각각의 일부 못말(연동리), 황매동, 생골, 싸리말, 종이골 각각의 일부 광암리 일부 안골(내동리), 송라리, 행단 각각의 일부 이후 1912~1914년 18개 리, 1914~1942년 16개 리로 운영해 오다가 그 해인 1942년 다시 10개 리로 축소했다. 이 10개 리는 1914년 행정 개편 당시의 9개 리 에 걸산리( 傑 山 里 )가 추가된 것이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그대로 유지되던 관할 지역은 1953년 인구 증가에 따라 행 정의 편의를 위하여 말단 행정 단위를 세분하여 23개 리가 되었으며, 1963년 이 담면이 읍( 邑 )으로 승격되면서 이담이 동두천으로 지명이 바뀌게 되었고, 이후 1981년 7월 1일 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9개 행정동으로 재편하였으며, 1983년 2월 15일 양주군 은현면 상패리가 동두천시 관할로 편입되어 1개 행정동이 증가하였 다. 따라서, 동두천시는 12개 법정동과 10개 행정동이 되었다. 이후 행정동이 병 합 분할되면서 그로 인해 동명( 洞 名 )이 달라지게 되었다.

056 + 057 제3절 역사적으로 살펴본 동두천의 연혁 1. 선사시대 제2장 동두천시 연혁 동두천은 한반도의 중앙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아주 이른 시기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동두천을 가로지르는 신천 주변은 선사 시대인들이 터를 잡고 살기에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고 있다. 석기시대에는 돌을 깨뜨려서 만든 뗀석기를 주된 도구로 하여 수렵 채집경제 생활을 하였는데 한 군데에 정착하기보다는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면서 생활하였다. 거주 환경이 좋은 강가에서 구석기시대인들은 채집과 수렵생활을 하며 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던 것이다. 동두천 지역에서는 하봉암동, 동두천동, 안흥동, 상패동 등지에서 구석기 시대의 석기편이 수습되었고, 특히 하봉암 일대의 구석기 유적은 인근 전곡리 구석기 유적보다 시대가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석기시대는 인류의 생활에서 농경 목축 정착생활이 이루어지는 시기로서 특히 농경생산을 바탕으로 잉여생산이 가능해져 인구가 크게 증가하던 시기이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주거지, 무덤, 패총 등이 대표적이며 한강, 대동강, 두만강 등의 하천유역에서 많이 발견되었다. 동두천에서는 마제 돌도끼, 마제 돌어망추, 마제 돌창 등의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동두천에 신석기시대가 존재하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청동기시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변화를 겪게 되었고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경제활동의 증가에 따라 부의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집중과 독점이 이루어지게 되어 움집의 규모도 커지고 인구도 상당히 늘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기에 이르고 초기국가 형성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동두천지역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많은 선사인들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주거지와 같은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고인돌들이 동두천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청동기 동두천시 30년사 시대의 동두천을 파악할 수 있다. 지행동, 송내동 일원에서 고인돌이 확인되었고 안흥동 담안, 지행동, 상패동에서 고인돌과 선돌이 추가로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일정한 규모 이상의 세력집단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에 고인돌을 축조할 만한 세력집단이 동두천 일대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원삼국시대 동두천은 원삼국시대에 진국( 辰 國 )이라는 거대한 연맹체 국가의 일원으로 자리잡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기( 史 記 ) 의 <조선전( 朝 鮮 傳 )>에 황해도 이남을 진( 辰 ) 으로 불렀다는 기록으로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진국이 정확히 언제 성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국이 중국과 직접 통교하려고 할 때 위만 조선의 우거왕이 방해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위만조선 시기에 이미 진국이 성립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진국은 계속 발전하다가 위만조선 유 이민의 유입으로 지배층이 해체되어 대규모의 이동을 겪게 된다. 이렇듯 진국연맹체는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위만 조선에서 남하하는 대규모 유 이민 파동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는 결국 삼한의 태동을 가져온다. 진국의 한강유역 점유와 함께 진국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동두천은 당시 지방제도에 관한 기록이 없어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그 위치로 보아 한강보다는 임진강유역의 중요한 거점으로 역할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국의 여러 나라 중 동두천지역을 지배한 것은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058 + 059 신분고국( 臣 濆 古 國 ) 이었다. 신분고국은 한( 漢 ) 군현인 대방( 帶 方 )과 싸워 기리영 전투에서 태수를 전사시킬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한 강국이었다. 그러나 임진강 유역에 말갈이 자리잡고 북쪽 국경을 침범하자 당시 해상으로 남하해 온 온조 집단에게 동두천, 양주, 의정부 일대를 떼어주어 백제를 건국하게 하고 이로써 말갈의 침입을 방어하게 하였다. 이로써 양주 일대는 백제의 건국지가 되었다. 3. 삼국시대 제2장 동두천시 연혁 한수 이북의 부아악( 負 兒 岳, 북한산)을 근거로 백제를 건국한 온조 집단은 거듭되는 말갈의 공격과 국내사정으로 한수 이북에서 이남으로 천도하며 세력 근거지를 옮기게 된다. 그러나 백제와 말갈의 사투는 계속되었고 동두천은 그 주요한 전장이 되었다. 근초고왕대에 이르러 국가체제를 정비한 백제는 해외의 영토를 확보하는 동시에 북진정책을 취하여 낙랑군과 대방군을 멸망시킨 고구려와 격돌하게 되고 이후 남진정책을 강화한 고구려와 치열한 전투를 벌여 마침내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에게 한강 유역을 상실하게 된다. 광개토태왕의 정복활동에 의해 한강 유역을 포함한 지역이 고구려에게 점령당할 당시 동두천도 고구려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474년(개로왕 20) 백제는 고구려의 침입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개로왕이 전사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의 뒤를 이은 문주왕이 도읍을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이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고구려는 한강 유역을 정복하고 양주지역에 남진 근거지인 남평양과 북한산 군을 설치하고 그 예하에 매성현( 買 省 縣 ), 내을매현( 內 乙 買 縣 ) 등의 지방행정 기구를 설치하였다. 고구려 때 내을매현이 현재 동두천 일대이다. 그 후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삼국을 통일한 이후 내을매현은 한자식 이름인 사천현( 沙 川 縣 )으로 개명되었다. 신라와 당이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격돌하는 삼국통일전쟁 시기에는 동두천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일대를 무대로 그 유명한 매초성( 買 肖 城 )전투가 벌어져 당의 20만 대군과 신라 군이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후 동두천지역에는 당의 재침에 대비한 소규모 보루성들이 소요산, 마차산 일대에 축성되기도 하였다. 동두천시 30년사 4.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는 효율적인 중앙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삼국을 실질적으로 통합 하기 위하여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다. 9주는 삼국에 각각 3개씩의 주를 설치하여 주 단위로 지방을 통치하는 행정관이 중앙에서 파견 되었던 것이고, 소경은 복속민을 회유하거나 지배층을 본래 주거지에서 옮김 으로써 신라에 반항적인 세력의 형성을 억제하는 한편,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친 경주의 행정력을 전국에 효율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고안된 특수한 행정 구역이었다. 통일신라시기에 동두천은 양주군 일대와 더불어 한산주( 漢 山 州 )에 소속 되었다. 한산주는 대당 교역에 관심이 높은 곳이었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관심은 결국 지역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으며, 따라서 동두천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도 항상 긴장된 지역이었던 것이다. 동시 에 한강을 통한 활발한 물물교역이 이루어져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도 있었다. 5. 고려시대 동두천은 고려시대 초기 양주에 속했으며, 고려시대의 양주는 지금의 서울 지방, 즉 한양을 가리켰다. 양주라는 명칭은 898년(효공왕 2) 궁예가 왕건으로 하여금 양주, 견주를 정벌하게 했다는 기록과 고려에 투항한 견훤에게 양주를 식읍으로 주었다는 기록 등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지방제도는 주현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데, 고려

060 + 061 초기에는 지방 호족들의 세력이 강해서 중앙에서 수령을 파견할 수 없었다. 성종 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방제도가 정비되어 중앙집권체제가 이루어 지게 되면서 지방호족세력을 억제하고 지방행정 거점으로 삼기 위해 전국에 12목을 설치하였는데, 이때 양주목이 설치된 점으로 보아 양주가 고려의 지방 행정 조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12목제는 995년(성종 14)에 10도 12절도사제 로 개편되고, 이때 동두천지역은 해주 ( 海 州 )의 우신책군( 右 神 策 軍 )과 어울려 좌신책군( 左 神 策 軍 )의 임지가 되었다. 1012년(현종 3)에는 12절도사제가 폐지되고 5도호 75도안무사가 설치되었는데, 거란의 침입으로 이 제도는 지속되지 못하였으며 1018년(현종 9)에 이르러 4도호부 8목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이 설치되어 실질적으로 중앙 집권 체제가 강화되었다. 이때 견주는 양주로 편입되고 1036년(충렬왕 34)에 양주는 한양부로 개칭되는 등 명칭과 영역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고려시대에 양주는 개경과 인접하여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한강수로를 이용하여 세곡을 운반하고 양주를 통하여 개경으로 운반하는 한편 봉수전달체계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지방조직에서도 동두천 일대는 지방행정과 교통통신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2장 동두천시 연혁 6. 조선시대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동두천은 양주부의 관할이 되었다. 1394년(태조 3) 한양부로 도읍을 옮김에 따라 주치를 아차산 남쪽 대동리로 옮기고 지양주사를 두었으나 곧 부로 승격되었다. 1397년(태조 6)에 부치를 다시 지금의 양주군 주내면으로 이전하여 양주로 하였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430년(세종 12)에 다시 목으로 승격되었는데, 이는 수도의 외곽지역으로서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세조 대에 이르러 사천현이 양주목으로 통폐합되었다. 사천현은 지금의 양주군 은현면, 동두천시 일원으로 고구려 때 내을매현 이던 곳이며 신라 때 사천으로 개칭된 이래 고려 때도 사천으로 불리어오다가 양주에 병합된 곳이다. 한편 1504년(연산군 10)에 왕의 유행처가 되었다가 1511년(중종 6)에 목으로 환원되었다. 이러한 부 목으로의 승강( 昇 降 )은 군역( 軍 役 )을 비롯한

제1권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조세( 租 稅 ) 수취( 收 取 )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러한 변화는 정치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 농업생산력의 증가에 따른 사회적인 변화는 행정구역의 개편을 초래하는 계기였다. 더욱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대 전란의 피해를 복구하고 동두천시 30년사 점차 향촌질서가 정착하면서 자연마을을 단위로 문중조직이 활성화했는데, 이는 성리학적인 지배질서를 강화시킴과 동시에 제도상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즉 최하위 행적구역인 이른바 면리제( 面 里 制 )가 정착되기에 이르렀고, 현 동두천시 지역에는 이담면이 설치되었다. 여지도서( 輿 地 圖 書 ) 에 의하면 이담면은 안흥리, 하봉암리, 동막리, 내동, 연동, 창동, 걸산리, 황매리, 가정자리, 행단리, 지동, 동두천리, 상봉암리, 유산리, 광암리 등 18개 동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7. 근 현대 동두천은 조선 후기까지 양주군의 이담면( 伊 淡 面 )으로 지금의 시 관할 구역 과 거의 비슷한 안흥리, 하봉암리, 동막리, 내동, 연동, 창동, 걸산리, 황매리 등 1914년 일제는 전국의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동두천 지역을 9개의 리로 편성하 였다. 6 25 동란으로 미 보병 7사단이 주둔한 이래 급격히 인구가 증가하여 근대 도시로 발전하면서 1963년 이담면이 동두천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2월 14일 양주군 조례 제351호로 광암출장소가 개설되고, 이어 1979년 5월 1일 양주군 조례 제629호로 생연 보산 소요출장소가 개설되었다. 1973년 7월 1일 법률 제6542호로 포천군 포천면 탑동 3개 리가 동두천읍으로 편입되었다. 1981년 7월 1일 법률 제3425호로 동두천읍이 동두천시로 승격되면서 양주군 에서 분리되었다. 이때 생연1~7리가 생연1~4동이 되고, 보산1 2리와 걸산리가 보산동으로, 생연리 지행1 2리와 송내리가 내행동으로, 동두천 1 2리와 안흥1 2리가 동안동으로, 상봉암리 하봉암리가 소요동으로, 광암 1 2리와 탑동 1 2 3리가 광암동으로 개편되는 등 총 9개 동으로 개편되었다.

062 + 063 1983년 2월 15일 양주군 은현면 상패리 등 3개 리가 상패동으로 편입되면서 12개 법정동과 10개 행정동을 갖춘 행정체제가 되었다. 10개의 행정동은 생연1 2 3 4동, 보산동, 내행동, 광암동, 동안동, 소요동, 상패동이다. 1998년 11월에는 생연3동과 생연4동이 합쳐져 중앙동이 되었으며, 내행동과 광암동이 합쳐져 불현동이 되었으며, 동안동과 소요동이 합쳐져 소요동이라는 행정동이 되었다. 현재는 8개 행정동을 갖춘 행정체계로 생연1동, 생연2동, 중앙동, 보산동, 불현동, 송내동, 소요동, 상패동이 있다. 제2장 동두천시 연혁

제3장 지리 제1절 제 1 절 자연환경 제 2 절 인구 동두천시 30년사

제1권 제3장 지리 1) 공우석,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표준분류 대체 정립을 위한 분석, 검토, 워크숍, 요지문 한국정신 문화연구원, 2001, 34~36쪽 2) 공우석, 지역의 자연환경 분석 과 지리교육에의 적용 한국지리 환경교육학회지, 2005, 45쪽 제1절 자연 환경 동두천시 30년사 어떤 장소의 지리적 특성을 보기 위해서는 지형, 기후, 토양, 식생, 동물, 해양 등 자연경관과 인구, 도시, 교통, 가옥, 촌락, 경지, 관개수로, 저수지, 항만, 건물, 도로, 철도 등의 문화경관을 알아야 한다. 1) 예로부터 각 지방별 특색을 기록한 지지( 地 誌 )에서는 산천, 도서 등의 자연지리 요소와 함께 인문지리적 요소를 중요하게 다루었다. 지역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위치와 면적, 지형과 지질, 토양, 기후, 하천, 자연재해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2) 동두천시의 지리적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위에서 제시한 다양한 자연지리적 요소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1. 위치와 면적 어느 지역의 영역은 영토 영해 영공으로 구성되며, 지역의 위치는 경 위도에 따른 수리적 위치와 육지와 해양 등의 자연경관과 관련한 지리적 위치, 주변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보는 관계적 위치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지역의 위치는 자연환경, 문화, 역사 등 주민의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준다. 동두천시는 조선시대에 양주군 이담면( 伊 淡 <그림 1-3-1> 동두천의 위치 面 )으로 한일합방 당시 이담면 9개 리 중 가정자리 ( 柯 亭 子 理 )가 동두천리( 東 豆 川 里 )로 개칭되었

066 + 067 는데, 농업 위주의 근교 농촌이었으나 1950년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미 2사단이 주둔하면서 군사도시로 탈바꿈하였고 1981년 동두천시로 승격되면서 소비도시적 특성이 나타났으며 최근 전철 개통 이후 주거 및 행정 기능을 갖춘 도시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동두천시는 국도 3호선과 수도권 전철이 통과하는 서울 위성도시로 근래에 농업인구가 급감하고 주거기능 베드타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동두천시 면적은 95.66km2이고 행정구역은 8동 149통 1,183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3장 지리 1) 수리적 위치 수리적 위치란 경 위도 상의 위치로, 동두천시는 경기도의 북부 내륙에 위치한 도시로서, 수리적 위치의 4극 중 동서로 극동은 탑동동 왕방산 정상(동경 127 09 24 ) 지점에서 포천시에 접하며, 극서는 상패동 사천리 서단(동경 127 00 37 )으로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에 접해 동서간 약 12.9km이다. 남북으로는 극남은 송내동 동남쪽 조산의 칠봉산 정상(북위 37 50 34 )으로 양주시 봉양동과 접하며, 극북은 하봉암동 옥녀봉 정상(북위 37 58 50 )이 연천군 전곡읍과 접하여 남북간 약 15.3km로 남북이 다소 긴 고구마형을 하고 있다. <표 1-3-1> 동두천시 수리적 위치 4극 소재지 극 경도와 위도의 극점 지명 경도와 위도의 극점 경도와 위도의 극점 거리 동 탑동동 왕방산 동경127 09'24" 동서간12.9km 동두천시 생연동 438(시청길27) 서 상패동 사천리 동경127 00'37" 남북간15.3km 남 송내동 조산 칠봉산 북위37 50'34" - 북 하봉암동 옥녀봉 북위37 58'50" - 2) 지리적 위치 지리적 위치는 육지, 해양 등 자연지물의 위치를 뜻한다. 동두천시는 경기도의 정북 쪽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포천시와 만나고, 서쪽과 남쪽으로는 양주시에 접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동두천의 양 어깨인 소요산과 마차산이 연천군과 마주한다.

제1권 제3장 지리 서부에 추가령지구대( 楸 哥 嶺 地 溝 帶 ) 라고 부르는 저지대가 있는데 이를 따 라 신천(강화천)이 흐르며, 서쪽에는 마차산(587.1m)이 있고, 동쪽에는 국사 봉(754m)을 주봉으로 소요산(535.6m)을 비롯하여 수위봉(649.4m) 왕방산 (737.2m) 해룡산(661m) 등의 높은 산이 있고, 북쪽에는 육녀봉(411m), 남쪽에 는 칠봉산(506m)과 소래산(227.5m)이 있고 이들 산지 사이에 낮은 안부( 鞍 部 )가 동두천시 30년사 있는데, 이 협곡상( 峽 谷 狀 )의 신천(강화천) 연안에 소규모의 배후 습지로 평지가 있을 뿐 넓지 않다. 동두천시는 2006년 수도권 광역전철 1호선 연장구간인 의정부-소요산 전철이 개통된 뒤 전철 교통이 편리해 서울로 접근성이 용이해져 유동 인구가 지속적으 로 늘고 있다. 또한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컫는 소요산과 마차산 등 전철을 이용 한 등산 인구의 급증 등으로 수도권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표 1-3-2> 동두천시의 행정구역 (단위 : 개) 연도별 동별 (km2) Area 면적 동 구성비(%) 행정동 법정동 Composition Administrative Legal 2004 95.68 100.0 7 12 2005 95.66 100.0 7 12 2006 95.66 100.0 7 12 2007 95.66 100.0 8 12 2008 95.66 100.0 8 12 2009 95.66 100.0 8 12 생연1동 2.16 2.3 1 생연동 생연2동 0.72 0.7 1 생연동 중앙동 0.85 0.9 1 생연동 보산동 13.68 14 1 보산동, 걸산동 불현동 33.37 34.9 1 생연동, 광암동, 탑동동, 지행동 송내동 5.52 5.8 1 지행동, 송내동 소요동 31.31 32.7 1 동두천동, 안흥동, 상봉암동, 하봉암동 상패동 8.05 8.4 1 상패동 (자료 : 동두천시 통계연보)

068 + 069 3) 관계적 위치 관계적 위치는 인접한 지역과의 관련성을 고려한 위치를 말하는데 이는 주변 지역과의 인적 물적 교류, 교통과 행정관계 등이 연관된다. 동두천시의 동쪽에 탑동으로 포천시와 연결되어 있으며, 서쪽은 양주시 은현면과 동서로 334번 지 방도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남북으로는 국도 3번과 전철교통으로 연천군과 양주 시를 연결하는 교통이 발달되어 서울에서 전철 30분이면 소요산과 마차산에 닿 을 수 있어 산악레포츠나 등산인구의 급증과 관련하여 최근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제3장 지리 동두천시 하천은 남에서 북으로 관류( 貫 流 )하는 신천(강화천)과 동에서 서로 흘 러 신천으로 유입되는 동두천을 비롯한 지천들이 있다. 4) 면적 지역의 면적은 총면적, 행정구역별 면적뿐만 아니라 토지의 용도별 면적 등을 통계지도로 나타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좋다. 동두천시의 면적은 2010년 기준 95.66km2로 경기도 면적의 0.9%이고 이 중 임 야가 65.02km2로 전체 면적의 68%를 차지하여 평지보다 산지가 많아 산지이용 에 대한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도시계획 구역이 33.09km2로 전체 면적의 34.5% 이고, 2사단 야전군 사령부가 위치한 보산동 일대를 비롯하여 군사보호구역이 22.99km2로 전체 면적의 24%를 차지하고 미군공여지가 40.63km2로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하여 주민들의 재산권 행사에 큰 장애 요소가 되고 있는데 최근 공여 지반환특별법이 제정되어 활용방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제1권 제3장 지리 2. 지질 및 지형과 토양 1) 지질 동두천시와 같이 소규모 지역에서의 지질은 한국 동두천시 30년사 <그림 1-3-2> 지질 및 지형 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발간한 1:50,000지질도를 이용 하면 이해하기가 편리하다. 경기도 대부분 지방의 지질은 아직 만족할 정도로 조 사가 되어 있지 않아 자세한 상태는 알 수 없으나, 전국 의 지질 계통과 대비하면 지층에는 시생대( 始 生 代 )의 연천계 회색화강편마암( 灰 色 花 崗 片 麻 巖 ), 중생대( 中 生 代 )의 대동계( 大 同 系 ) 경상계( 慶 尙 系 )로 대부분 화강 암류이다. 3) 이의한, 광주 양평 지역의 지형경관, 환경부, 2005 경기도 북부 분포암류( 分 布 岩 類 )는 북부 변질수성암지대( 變 質 水 成 岩 地 帶 )와 북부 화강암지대의 2종류가 있는데, 먼저 북부수성암지대는 대체로 남북과 남서의 방향이고, 경기도의 동북부인 연천군에서 시작하여 파주 지방을 지나 고양 김포에 이르러 서해로 빠진다. 북부 화강암지대는 경기도의 서울 부근 관악산 소래산을 기점으로 포천 김화군을 지나 금강산 서북을 거쳐 통천군에 이른다. 양주 동두천 의정부 일대는 거의 대보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지질은 편마암계나 화강암을 모암으로 하는 사질양토가 많아 산지가 많고 평지가 적어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32%에 불과하다. 경기 북부 지역 지질은 대부분 경기변성암복합체로 화강암질편마암, 호상 편마암, 반상변정질편마암 등으로 구성되며, 운모편암, 결정질석회암, 규암 등이 섞여 있다. 대부분 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반암의 구성변화가 심하며 심한 화강암화 작용 등으로 일괄하여 경기변성복합체로 본다. 3) 남쪽에는 옥천대( 沃 川 帶 )가 있고 북쪽에는 평남분지( 平 南 盆 地 )가 위치한다. 암석은 결정편암( 結 晶 片 巖 ), 화강편마암, 불국사화강암( 佛 國 寺 花 崗 巖 )으로 되어

070 + 071 있다. 또한 암석의 시대와 성질로 보아 영남지괴와 거의 같으며, 평북개마지괴의 변성암 또한 변성암 복합체와 거의 같다. 이들은 시생대 또는 원생대의 기반암 류로서 고생대와 상원계 분포지 아래에 연속적으로 분포되어 앙가라 대륙의 남부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동두천시의 지질은 암석지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평야가 발달되지 못하였다. 4)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5) 한국지명요람, 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148쪽 6) 광주시사편찬위원회, 광주시사, 2010 편마암은 변성암의 일종으로 호상구조가 뚜렷하지만 쪼개짐이 약하고 중간이나 거친 입자로 이루어진 암석이다. 화학성분은 화강암과 비슷하여 석영, 장석, 운모 입자 등의 광물이 많아 넓적하게 나타나는 판상구조는 뚜렷하지 않지만 줄무늬 모양의 구조가 있다. 편마암( 片 麻 巖 )은 진흙, 모래질의 퇴적암이 고온에서 변성작용에 의해 생성 되며, 때로는 지표에 가까운 기존의 암석이 관입한 마그마의 열에 의한 변성 작용으로 형성된다. 제3장 지리 화강암( 花 崗 巖 )은 석영과 장석류를 주성분으로 하는 거친 입자를 가지며 완전한 결정을 이루는 암석이다. 장석은 칼륨장석과 사장석으로 이들의 함유 비율에 따라서 화강암을 분류한다. 4) 동두천시 북부의 지질( 地 質 )은 대부분 석영반암( 石 英 班 岩 )과 분암으로 소요산 일대 대부분의 지질이 이에 속하며, 동부 국사봉에서 왕방산 칠봉산 일대는 화강암질( 花 崗 巖 質 )로 이루어졌다. 이 사이의 동두천분지에는 얇은 퇴적층 ( 堆 積 層 )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 퇴적층의 대부분은 동두천의 시가지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동두천 유역에는 농지가 산재하고 남서부와 강화천 유역에도 좁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5) 2) 지형 땅의 모양인 지형을 결정하는 요소는 산지의 고도, 면적, 방향 등에 중점을 두고 현지조사에서 지형도 상에 나타나지 않는 소규모 경관이나 산지의 구성 물질 특성 등을 조사한다. 현지조사에서 사용되는 지형도는 주로 1:5,000, 1:25,000, 1:50,000 지세도가 가장 잘 이용된다. 6)

제1권 제3장 지리 7) 경기도(http://portal.gg.go.kr) 사람들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 주변의 자연환경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연 식생을 훼손하는 일이 적지 않다. 경기도의 지형은 대체로 추가령 구조곡을 경계로 북부산지와 남부산지로 나뉘는데, 북부는 마식령산맥, 남부는 광주산맥과 차령산맥이 각각 그 골간을 이루고 있으며, 서쪽 해안에 가까워질수록 고도가 낮아져 평야나 구릉성 산지로 동두천시 30년사 바뀐다. 7) 산지는 황해도와 경기도 사이의 마식령산맥, 강원도 북부에서 남서로 달리는 광주산맥, 경기도와 충청북도로 나누는 차령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북부 지방은 고도가 높고 서남부로 갈수록 산지가 적어지며 해안지방에는 평야가 발달해 있다. 동두천시와 양주 남양주 연천 포천 가평 등의 군을 포함한다. 전반적으 로 산이 많다. 광주산맥의 주맥이 강원도 화천지방에서 뻗어내려 높은 산지는 동쪽에 주로 분포한다. 포천과 화천 간의 광덕산(1,047m), 포천과 가평 간의 국망봉(1,168m), 남양주의 천마산(812m) 등은 광주산맥의 주봉들이다. 주민의 생활은 골짜기를 따라 펼쳐진다. 골짜기 중에는 지질구조선을 따라 대략 남북방향으로 뻗은 것이 많다. 그래서 남북 간의 교통은 편리하나 동서 간의 교통은 그렇지 못하다. 수계는 크게 둘로 나뉜다. 연천 양주 포천은 임진강 유역, 가평 남양주는 한강 유역에 속해 있다. 동두천시는 지형적인 제약으로 전반적으로 경지율이 낮다. 서울의 인접지역 또는 주요 도로의 주변지역은 채소 과수의 재배와 젖소 돼지 닭의 사육이 활발하며, 영세 제조업체가 많이 들어섰다. 동두천은 한탄강으로 북류하는 신천의 좁은 골짜기에 자리한다. 추가령 구조곡의 일부인 이 골짜기 양쪽에는 변성퇴적암의 산지가 솟아 있다. 소요산 (536m)은 기암괴석이 특출하고 가을단풍이 빼어나 경기도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동두천은 시가지가 신천 동쪽 산록의 평화로를 따라 약 4km에 걸쳐 길게 발달되어 있다. 경원선철도의 작은 역전취락이었던 동두천은 한국전쟁 후 미군의 기지촌을 기반으로 급성장하여 1963년에 읍이 되었다. 평화로변의 미군기지 주변에는 미군을 상대로 하는 상점과 위락시설이 분포하며, 기지촌으로 형성된 불량주택지구가 퇴락한 채 남아 있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두천은 시로 승격했고, 이후 시가지의 확장과 더불어 서울의

072 + 073 위성도시 내지 지방중심도시로 틀을 잡아 왔다. 그러나 평화로와 나란히 시가지를 통과하는 철도는 도시의 발전에 적지 않은 지장을 주고 있다. 2006년 말부터 의정부-소요산 전철 개통 이후 지행동을 중심으로 동두천신시가지를 형성하여 아파트형 주거단지의 조성으로 지역 인구의 이동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동두천 남쪽 의 신천 상류지역에는 하천변의 범람 원과 함께 화강암의 차별침식에 의한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성 지형이 넓게 펼쳐진다. <그림 1-3-3> 소요산 중심의 말굽 산악지형 제3장 지리 동두천시 일대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국사봉을 주봉으 로 왕방산 해룡산이 둘러쳐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천보산의 회암령에서 서북으 로 칠봉산이 솟아 그 지맥( 地 脈 )이 여러 갈래로 높고 낮은 봉우리를 펼쳐 남계( 南 界 )를 형성한다. 서북으로는 마차산이 에워싸고 북으로 뻗으며, 옥녀봉이 북계( 北 界 )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산들은 광주산맥이 태백산맥의 철령( 鐵 嶺 ) 부근에서 갈라져 서울 근처에 달하는 산으로서 동두천시 일대에 험준한 산지는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이중환은 택리지 에서 이 지방의 지형에 대해 함경도 안변부 철령의 일맥이 남으로 5~6백 리를 달려서 양주의 여러 작은 산이 되고 동북쪽에서 비스듬히 돌아들면서 갑자기 솟아나 도봉산의 만장봉이 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동북쪽은 높이가 4~5백m 이상이나 되는 높은 산들로 꽤 험한 산지를 이루며 국사봉 서록( 西 麓 )에 소요산이 솟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또 남쪽으로는 양주군과 의정부를 지나가는 단층이 있는데, 이 단층은 주변보다 침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평탄하므로 주요한 교통로로 이용된다. 강화천이 저위침식( 低 位 侵 蝕 ) 구릉지를 북류하면서 연안에 좁은 충적지

제1권 제3장 지리 8) 동두천시사편찬위원회, 동두천시사, 1998 ( 沖 積 地 )를 형성하여 동두천 주민들에게 생활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8) 3) 토양 인류의 의식주 생활은 옛날부터 그 기반을 농림업에서 구하여 왔는데, 이는 동두천시 30년사 토양을 토대로 하고 있다. 토양은 모암이 오랜 세월동안 풍화 침식작용을 받아 사립상이 되어 그곳에 퇴적되거나 바람 유수에 의하여 다른 곳에 퇴적되어 이루어진다. 논 토양의 분류는 계, 통, 구로 하는데 최소단위는 토양구이다. 이는 토양 생성양식이 동일하며 토층 단면의 형태가 유사하고 또 재배작물의 생육상황과 수량이 거의 근사한 지역을 말한다. 동두천시의 논토양은 신천 유역 식양토구와 사양토구로 크게 나뉜다. 식양토구는 점토를 37.5~50% 포함하고 있는 토양으로 점토분이 많은 식토와 점토가 비교적 적은 양토의 중간 성질을 띤다. 식토는 토양 알갱이가 서로 달라붙는 힘인 점착력이 크고 양토보다는 경작이 어렵지만 보수력이 커서 벼 재배에 적합하고 밭작물 재배도 가능하다. 사양토는 모래참흙이라고도 한다. 토양 입자가 세밀한 점토, 중간 입자의 실트, 거친 입자의 모래로 나눌 때 모래가 많은 토양이다. 신천의 범람으로 이루어진 지행동 일대의 배후습지나 범람원 지형에서는 소규모 평야는 논농사가 이루어지다가 최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주택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밭 토양은 충적토가 드물고 잔적토가 많은 편으로 산지가 많은 동두천시의 지형 특색을 반영한다. 충적토가 비교적 평탄한 곳에 발달하는데 비해, 잔적토는 모암의 성질과 기후에 크게 영향을 받는 풍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동두천이나 상패천, 안흥천 등의 계곡 하상에 분포하는 충적토는 유기물이 풍부하며 대부분 점토나 실트 퇴적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지류의 충적층에는 모암이 대부분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약간의 둥근 자갈을 볼 수 있다. 평탄지의 토양은 주로 논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도로용지나 택지 등으로 전용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다.

074 + 075 <표 1-3-3> 토지 지목별 현황자료 1 연도별 동 별 주차장 Parkinglot 주유소용지 Service stationsite 창고용지 Warehouse site 도로 Road 철도용지 Railway 2004 23,116 37,583.5 16,554 2,026,633.3 348,881 2005 27,022.0 37,905.5 21,156.0 2,051,854.0 348,881 2006 31,769.0 42,463.5 27,756.0 2,148,610.0 348,881.1 2007 31,904.0 44,497.5 25,329.0 2,181,708.0 348,911.1 2008 39,494.0 44,497.5 43,538.0 2,219,041.0 348,881.1 2009 38,864.0 48,149.5 54,389.0 2,240,099.7 348,881.1 송내동 1,121.1 3,217.0 6,209.0 200,058.4 43,905.3 지행동 10,306.9 4,142.5-285,760.3 23,771.8 생연동 7,888.0 5,345.0 2,401.0 574,188.8 44,924.0 광암동 940.0 - - 82,049.0 - 걸산동 - - - 45,487.0 - 보산동 32.0 - - 105,562.0 21,516.0 동두천동 886.0 9,555.0 198.0 214,552.2 110,104.0 안흥동 1,420.0-1,662.0 51,570.0 - 상봉암동 5,778.0 12,670.0 2,662.0 113,109.0 41,349.0 하봉암동 75.0 5,015.0 8,663.0 135,854.0 63,311.0 탑동동 8,182.0-2,211.0 237,796.0 - 상패동 2,235.0 8,205.0 30,383.0 194,113.0 - 제3장 지리 <표 1-3-3> 토지 지목별 현황자료 2 연도별 동별 양어장 Fishfarm 수도용지 Waterreservoirs 공원 Park 체육용지 Sportingfacilitiessite 유원지 Recreationarea 2004-28,487 237,980.7 1,390,281 45,924 2005-28,487 239,082.7 1,390,280.9 45,924 2006-54,956.0 254,373.7 1,390,280.9 45,924.0 2007-54,956.0 254,373.7 1,398,658.9 45,924.0 2008-54,956.0 254,373.7 1,407,778.9 45,924.0 2009-54,956.0 249,575.7 1,407,778.9 45,924.0 송내동 - - 62,149.2 2,964.9 - 지행동 - 5,467.0 99,510.1 - - 생연동 - 622.0 36,095.4 121,013.0 - 광암동 - 2,550.0 1,527.0 - - 걸산동 - - - - - 보산동 - - 3,095.0 - - 동두천동 - - 45,938.0 - - 안흥동 - - - 4,754.0 - 상봉암동 - - - - 33,475.0 하봉암동 - 46,317.0-1,259,658.0 - 탑동동 - - - 1,891.0 12,449.0 상패동 - - 1,261.0 17,498.0 -

제1권 제3장 지리 3. 산과 하천 1) 산 (1) 왕방산( 王 方 山 ) 동두천시 30년사 왕방산은 시의 동쪽 포천시 포천읍과의 경계에 솟아 있는 높이 737m 산으로 북쪽에 국사봉이 있고, 남쪽에는 오지작고개가 있다. 포천시의 진산( 鎭 山 )으로 많은 전설과 유래가 전하는 명산이다. (2) 국사봉( 國 師 峰 ) 국사봉은 시의 동단 탑동 왕방마을 동북간에 솟은 산이다. 포천시 신북면과 경계를 이루며 높이 754m로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많은 전설과 일화를 안고 있으며, 남쪽의 왕방산과 독립된 산계( 山 界 )를 형성하고, 북서쪽에 명승지인 소요산이 펼쳐져 있다. (3) 해룡산( 海 龍 山 ) 해룡산은 회암령인 천보산에서 따로 산계를 형성하고 동북으로 뻗어 탑동 왕방마을 오지재에서 끝나며 왕방산과 접한다. 탑골(일명 장림)마을 동쪽에 위치하며 산의 높이는 661m이다. 이 산 정상에는 천호( 天 湖 )가 있었다고 동국여지승람 에 적혀 있다. 조선 시대의 명필 봉래( 峯 萊 ) 양사언( 楊 士 彦 )이 자주 올랐다고 전하며 산세 또한 아름답다. (4) 칠봉산( 七 峰 山 ) 칠봉산은 송내동 동남쪽, 탑동 조산마을 남쪽에 위치하여 양주시 봉양리와 경 계하고 있는 산으로, 높이는 506m이며 일곱 봉우리로 되어 있다. 천보산의 지맥( 地 脈 )으로 회암령에서 서향을 뻗고 지세가 약해지며 분기( 分 岐 ) 하는데, 한줄기가 북으로 달리며 여러 갈래로 구릉지를 형성하고 보산동에 다다 라 소요산을 마주하며 그 맥( 脈 )이 끝난다. 서쪽으로의 분지가 송내동 지행동 생연동 보산동이 펼쳐져 있고, 동향으로는 광암동과 탑동 조산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076 + 077 (5) 천보산( 天 寶 山 ) 칠봉산이 옛적에는 천보산이었을 가능성이 있거나 일곱 개의 봉우리 가운데 하나가 천보산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옛날부터 광암동이나 탑동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칠봉산이라 부르지 않고 천보산이라 불러 왔다. (6) 아차산( 峨 嵯 山 ) 아차산은 칠봉산의 서향 끝봉으로 송내동 아차노리마을 남쪽 앞산이다. 높이 299m로 양주군 회천읍 봉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산에 대한 전설이 전해지며 소군골( 召 軍 谷 ), 무자골( 無 子 谷 ), 청풍골( 淸 風 谷 ) 등이 있다. 제3장 지리 (7) 소래산( 蘇 萊 山 ) 소래산은 남향에 있는 산으로 강화천과 경계하며 양주군 은현면 선암리에 위치한다. 228.8m의 높이로 동국여지승람 에는 소라산( 所 羅 山 )으로 기록되어 있다. (8) 마차산( 磨 嵯 山 ) 마차산은 감악산의 지맥으로 시의 서북쪽을 감싸고 있으며 동안동 서단에 위치하면서 연천군 전곡읍과 경계를 이룬다. 산의 높이는 587m이다. 동두천시의 진산으로 소요산과 마주한다. 산 정상엔 축성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산 남쪽에 마고개가 있고 북쪽에는 옥녀봉이 솟아있다. (9) 옥녀봉( 玉 女 峰 ) 시의 북쪽 하봉암동과 연천군 전곡읍과의 경계에 솟은 옥녀봉의 높이는 411m이다. 남쪽의 마차산과 능선이 이어져 있다. (10) 소요산( 逍 遙 山 ) 시의 북쪽에 솟은 산으로 높이는 535m이다. 예로부터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려온 명산이다. 봄철의 철쭉과 가을의 단풍은 유명하여 불의 경치를 이루며 자재암 청량폭포 원효대 원효폭포 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독립암 원효정약수 달암사지 의상대 사자암지 소요사구지 금송굴 대암굴

제1권 제3장 지리 선녀탕 비룡폭포 팔선폭포 등이 있다. 자재암은 신라 중엽 원효대사가 개산( 開 山 )하였으며, 고려 광종 25년(974)에 각규대사가 왕명을 받아 정사를 세웠으나 고려 의종 7년(1153)에 소실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재건과 소실을 되풀이하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1년에 동두천시 30년사 재건하였다. 소요산에는 이 외에도 신라 29대 무열왕녀 요석공주가 원효대사를 사모하여 이곳에 공주궁을 짓고 설총을 길렀다는 주초( 柱 礎 )의 흔적이 남아 있고, 또한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행궁지( 行 宮 址 )도 남아 있다. (11) 수위봉( 首 位 峰 ) 수위봉은 시의 동쪽 탑동 왕방마을 북단과 포천시 신북면과의 경계에 솟은 산이다. 높이는 649m이며 국사봉과 마주하고 그 사이에 새목고개가 있으며 독립된 산계를 이루고 있는데, 비교적 높은 산이다. (12) 어등산( 於 登 山 ) 시 중앙에 위치하여 생연동과 광암동 간의 동계를 이루며 산 높이는 279m이다. 일명 이필봉( 伊 筆 峰 )이라고도 하며, 조선 초기 성종이 산에 올라 사냥을 했다는 연유로 어등산이라고 불려지게 되었다. (13) 제1봉( 第 一 峰 ) 제1봉은 광암동의 동쪽에 솟은 산으로 수위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우뚝 솟아 험한 산세를 이룬다. 높이가 393m이다. 저지대에 광암동이 펼쳐 있다. 2) 하천 동두천시의 하천은 크게 강화천( 江 華 川 ), 동두천천( 東 豆 川 川 ), 상패천 ( 上 牌 川 ) 등으로 나뉜다. 강화천은 양주시 남면 신산리 감악산에서 발원한 신천의 하류로 시의 남단에서부터 북류( 北 流 )한다. 신천은 양주군 남면 광적면 백석면 회천읍 등으로부터 흘러드는 지류를 모아 북류하고

078 + 079 송내동 남단으로 유입하여 강화천이 되어 북류하며, 상패천이 동류하여 입수되고 동두천천이 서류하며 합류되어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여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를 지난 한탄강으로 들어간다. (1) 강화천( 江 華 川 ) 강화천은 준용하천( 準 用 河 川 )으로 전장( 全 長 )이 38.5km이며 관내의 길이는 13.3km이다. 여기에 입수( 入 水 )되는 지류들의 길이를 살펴보면 송내천 2.75km, 지행천 2.07km, 상패천 3.85km, 생골천 0.85km, 연동천 1.24km, 황매천 0.56km, 동두천천 14.4km, 안흥천 4.5km, 소요천 2.68km, 봉동천 <그림 1-3-4> 하천 유역체계 1.78km, 동막천 2.88km, 복골천 0.82km, 말뚝천 1.82km 등이다. 제3장 지리 (2) 동두천천( 東 豆 川 川 ) 동두천천은 준용하천으로 전장이 14.1km로 관내에서는 가장 긴 하천이다. 여기에 입수되는 지류들의 길이를 살펴보면 탑골천 4.52km, 왕방천 0.64km, 쇠목천 3km, 빈양천 1.24km, 탑개천 1.1km 등이다. (3) 상패천( 上 牌 川 ) 상패천은 준용하천( 準 用 河 川 )으로 전장이 3.85km이며 마차산 남곡(신천마을 동곡)에서 흘러내리는 소류와 인사적골에서 남류하는 소천이 입수되어 동류하여 강화천으로 들어간다. 이상 동두천시 전역을 관통하는 주요 하천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주요 하천의 지류현황을 살펴보면 <표 1-3-4>과 같다. <표 1-3-4>에 나타난 바와 같이 대다수 지류의 유로 길이는 3km이며 강화천과 동두천에 모두 합류한다.

제1권 제3장 지리 <표 1-3-4> 동두천시의 하계망 일련 번호 하천명 연장 관할생성구역 연장 폭 시점 종점 (km) (m) 관할동 통(마을) 1 강화천(준) 양주경계 연천경계 13.3 140 시관할 2 동두천천 (준) 탑동 왕방리 보산동58통 14.1 14 광암동, 보산동 11.5통 동두천시 30년사 3 상패천(준) 양주, 은현 시계 4 지행천(소) 내행,종이골, 행당 11통 무궁화유지 생연2동 모래밭 3.85 31 상패동 11통 2.07 31 상패동 11통 5 생골천( ) 내행,생골 0.85 5.9 대행, 생연2 2,12,1통 6 송내천( ) 내행,안골 내행7통 2.75 6 내행동 7통 7 연동천( ) 생연1동, 연동 연동 1.24 4.8 생연1동 8통 8 황매천( ) 생연1동, 황매동 황매동 0.56 3.6 6통 9 안흥천( ) 동안동 윗안흥 10통 4.5 1.0 동안동 1~10통 10 빈양천( ) 동안동 5통 5통 1.24 1.6 5통 11 소요천( ) 소요 1통 2통 2.68 7.5 소요동 1통 12 봉동천( ) 소요 3통 3통 1.78 5.6 3통 13 요골천( ) 5통 4통 2.88 6 5통 14 복골천( ) 통 6통 0.82 7.3 6통 15 말뚝천( ) 4통 4통 1.82 10 4통 16 세목천( ) 광암세목 좌기동 3 14 6통 17 왕방천( ) 탑동, 왕방리 왕방리 0.64 7.8 11통 18 탑골천( ) 탑동, 탑골 조산 4.52 10 8.9통 19 탑개천( ) 덕수동,설산 점말 1.5 6 보산동 걸산동 계 73.1 4. 기후 한 지역의 기후 특색을 알기 위해서는 기온, 바람, 강수, 습도, 증발량, 운량, 일사량, 일조량 등의 기후요소와 위도, 수륙분포, 해발고도, 지형, 지리적 위치,

080 + 081 지면의 상태, 해류 등 기후인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기상청에서는 관측한 기후 자료를 기초로 기후 개요, 기온, 강수량 등의 월별 자료를 제공한다. 가장 높거나 낮은 수치의 극값은 관측 이래의 극값, 월별, 연도별 극값을 확인할 수 있다. 요소별 일별 값에서는 기온, 강수량, 풍속, 습도, 구름양 등의 다양한 자료가 날짜별로 수록되어 있다. 이외에도 한반도의 규모별 지진 발생 빈도, 계기 지진자료 분포도와 태풍자료를 제공한다. 9) 9) 기상청 (http://www.kma.go.kr) 10) 광주시사편찬위원회, 광주시사 2010 제3장 지리 경기도의 기후는 북부지방에서 남부지방의 기후 특성으로 바뀌어가는 점이적인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연평균 기온은 11~13 C 정도로 북부 산간 지역이 다소 낮으며 내륙으로 갈수록 한랭하고 기온의 연교차가 커진다. 북동부의 내륙지방은 북한강과 임진강의 상류로 지형성 강수량이 많아 1,400mm 내외이다. 10) 1) 기온 한반도의 중앙부에 의치한 동두천시 지역은 기온의 연교차가 큰 북부의 대륙성 기후와 남부의 난 온대 기후의 점이적 특색을 나타내며 특히 겨울 기온은 북서계절풍이 바람받이에 해당하여 위도에 비해 심한 저온을 나타낸다. 동두천시의 연평균 기온은 11.5 C 내외이다. 1월 평균기온은 -3.5 C이며, 8월 평균기온은 29.4 C로 연교차가 33 C가 넘는다. 최한월과 최난월의 기온은 그 차이가 매우 커서 여름철은 열대 기온을 이루는가 하면 겨울철은 한대 기온을 이룬다. 여름철은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기단의 지배로 고온이 되고 겨울철은 한랭 건조한 시베리아기단의 내습으로 저온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두천시의 북동쪽은 고산지가 많아 산지의 기복이 심하고 산간계곡이 많은 내륙지역에 위치하여 서울보다 여름은 2~3 C 정도 높고 겨울은 2~3 C 낮은 기온 분포를 나타낸다. 동두천시의 최근 기온을 살펴보면 겨울철 최저기온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고 여름철 최고기온이 고온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이상 현상은 자연조건과 함께 인위적인 경관의 변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제1권 제3장 지리 알려져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큰 기후변화의 범주에서 동두천시도 예외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으로 도시화로 인한 식생 피복의 감소와 증발량의 증가, 대기오염의 급증, 인공열 방출 증가 등 원인이 기온의 극치를 높게 하고 있으며 이는 특히 농업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결국 지역 주민의 생활에 직 간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동두천시 30년사 봄가을의 기온 하강 시에 안개일수가 증가하여 연간 50일 정도로 교통사고의 큰 원인이 되고 있으며 농작물의 냉해 피해와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2) 강수 1996년 동두천기상대가 관측을 시작한 이후 자료를 근거로 보면 연평균 강수일수가 110일 전후하여 연평균 강수량은 1,400mm 내외로 우리나라에서 다우지역에 해당된다. 강수량( 降 水 量 )은 다우지를 이루는데 이는 여름철 남서계절풍( 南 西 季 節 風 )이 다량의 습기를 몰아오고 양쯔강 유역과 중국 대륙으로부터 이동하여 오는 저기압의 영향과 왕방산, 해룡산, 칠봉산, 소요산, 마차산 등이 동두천의 동북부에 위치하여 여름철 남서기류의 유입 통로와 바람받이 사면으로 비교적 강수량이 풍부하다. 해에 따른 강수량의 연변화도 큰데 이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와 비슷한 경향으로 자연재해 원인이 되기도 하며 하상계수와 강수편의율이 높아 1990년대 수해로 인해 큰 피해를 입기도 하였으나 이후에 배수펌프장과 하천 정비 등을 통하여 수해를 줄이고 있다. 월별 강수량은 8월이 연강수량의 35% 이상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그것도 집중호우가 며칠 사이에 집중되어 해마다 신천 범람피해나 산간계곡 홍수로 인한 피해가 발생되고 있으며, 자연재해에 대한 방재시스템 정비와 하천 정비를 통하여 지속적인 수해예방이 필요하다. 다음 표는 최근 연도의 동두천시 일기 일수를 나타낸 자료로 동두천시 통계연보 자료를 기준으로 하였다.

082 + 083 <표 1-3-5> 일기 일수 맑음 구름 조금 구름 많음 흐림 강수 서리 안개 눈 뇌전 폭풍 황사 2004 113 91 109 98 36 16 18-2005 123 96 94 92 45 22 28-2006 89 97 109 63 50 18 22-2007 89 105 122 90 63 19 26-15 2008 100 86 111 79 43 15 20-12 2009 110 109 70 76 110 66 46 19 22-9 1월 20 7 2 2 3 23 1 4 - - - 2월 7 8 5 8 6 11 5 3 - - 1 3월 9 10 7 5 9 10 2 3 - - 3 4월 12 9 5 4 7-2 - 2 - - 5월 11 9 2 9 9-4 - - - - 6월 6 7 9 8 13-1 - 4 - - 7월 1 9 9 12 18-1 - 4 - - 8월 5 9 7 10 14-2 - 4 - - 9월 10 9 7 4 4-6 - 1-1 10월 12 14 3 2 9-10 - 6-1 11월 4 12 8 6 8 6 6 3 1 - - 12월 13 6 6 6 10 16 6 6 - - 3 제3장 지리 <표 1-3-6> 기상개황 평 균 평 균 최 고 기온 ( ) 강 최 고 극 값 평 균 최 저 최 저 극 값 수 량 (mm) 상대습도 (%) 평균 해면 평 균 최 소 2004 11.2 17.8 35.6 5.8-19.6 1,534.5 64.0 8.0 1,016.6 3.7 4.6 2,146.0 19.2 1.7 12.4 18.8 2005 10.3 16.9 34.8 5.1-18.0 1,378.2 64.0 7.0 1,016.4 3.0 4.6 2,168.0 34.7 1.8 12.5 18.7 2006 11.2 17.8 34.8 6.1-17.5 1,360.1 67.0 8.0 1,016.4 4.5 5.0 1,972.1 7.2 1.6 10.0 17.7 2007 11.5 18.0 34.3 6.6-13.8 1,286.3 67.0 20.0 1,016.1 5.0 5.2 1,547.0 12.6 1.6 8.4 15.4 2008 11.7 18.2 37.7 6.6-26.2 1,518.2 67.9 26.0 1,016.0 5.2 4.7 2,137.1 7.7 1.6 5.7 9.4 2009 11.7 17.9 34.1 6.7-15.0 1,527.8 67.0 12.0 1,015.8 4.9 4.6 2,087.1 2.5 1.7 10.6 28.7 1월 -3.5 3.5 12.6-8.8-15.0 2.9 59.0 14.0 1,025.5-11.2 2.3 209.2 2.4 1.6 8.5 13.0 2월 2.1 7.9 16.3-2.9-11.2 40.7 62.0 12.0 1,020.5-5.4 5.4 126.5 1.2 1.7 10.5 18.7 3월 5.4 11.9 23.8-0.3-5.9 58.7 57.0 14.0 1,019.1-3.6 4.4 185.3 1.7 2.4 9.4 28.7 기압 (hpa) 이 슬 점 온 도 ( ) 평 균 운 량 (1/10) 일 조 시 간 최 심 신 적 설 (cm) 평 균 풍 속 바람 (m/s) 최 대 풍 속 최대 순간 풍속

제1권 제3장 지리 4월 11.6 19.5 28.4 5.0-1.2 69.5 57.0 12.0 1,015.2 1.8 4.0 192.1-1.9 7.8 13.9 5월 18.3 25.3 32.1 12.4 6.8 115.7 62.0 15.0 1,012.1 9.4 4.4 234.1-1.8 8.9 14.2 6월 21.3 27.1 31.9 16.6 11.7 124.6 72.0 20.0 1,005.0 15.3 5.3 176.2-1.8 8.9 14.4 7월 23.3 28.5 32.1 19.4 16.5 476.6 80.0 40.0 1,005.1 19.3 6.6 134.9-1.7 9.4 17.9 8월 24.4 29.8 34.1 20.0 13.6 448.3 76.0 30.0 1,008.9 19.5 5.6 164.6-1.4 6.5 12.1 9월 19.8 26.3 29.3 14.7 10.6 24.0 74.0 23.0 1,014.0 14.4 4.3 197.2-1.1 5.4 8.1 동두천시 30년사 10월 13.9 21.3 27.1 8.5 2.0 78.3 70.0 23.0 1,016.9 7.7 3.3 209.9-1.5 9.0 17.3 11월 5.7 11.1 22.0 1.5-7.8 68.8 68.0 19.0 1,023.9-0.2 5.3 119.0-1.5 7.1 15.6 12월 -2.1 3.0 10.5-6.3-15.0 19.7 65.0 15.0 1,023.2-8.4 4.1 138.1 2.5 1.7 10.6 14.4 <표 1-3-7> 강수량 연도 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2004 1,534.5 15.2 72.0 31.5 104.7 163.4 56.1 593.0 130.1 246.0 31.0 67.5 24.0 2005 1,378.2 3.8 28.3 9.2 75.7 61.1 196.7 364.1 335.7 231.8 21.9 42.5 7.4 2006 1,359.5 34.5 8.5 19.0 79.0 125.0 167.5 718.0 72.5 13.5 69.0 41.0 12.0 2007 1,286.3 3.6 4.6 79.1 47.1 112.0 62.4 242.0 441.9 216.8 40.4 23.0 13.4 2008 1,518.2 6.7 8.5 44.3 36.3 89.6 155.2 725.6 233.1 123.3 37.1 23.9 34.6 2009 1,527.3 2.9 40.7 58.7 69.5 115.7 124.6 476.6 448.3 24.0 78.3 68.5 19.5 3) 동두천의 사계절 서리 눈 얼음의 초 종일과 식물의 개화( 開 化 ), 철새의 이동 등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서리의 초상일은 지방에 따라 다르나 지형과 해류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경기도는 대체로 10월 중에 처음 서리가 내리고 다음 해 4월 중에 끝난다. 동두천지역의 서리와 평균 초상일은 경기도 내륙지방의 일반적인 특징과 같다. 초상일은 야채 상목 등에 영향을 주며 면작과 관련이 깊다. 경기도의 초설( 初 雪 )은 초상( 初 霜 )보다 약 1개월 정도가 늦어지는 것이

084 + 085 보통이다. 경기도의 평균 초설은 11월 20일 경이고 종설( 終 雪 )은 다음 해 3월 20일 전후인데, 동두천지역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경기도의 평균 초빙( 初 氷 )은 10월 20일 경이고, 평균 종빙( 終 氷 )은 다음 해 4월 초순인데 동두천지역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11) 동두천시사편찬위원회, 동두천시사 1998 동두천 기상 현황은 중부지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김포 등지의 서해안 평야지대와는 달리 안개 일수가 적고, 강원도 등지의 산간지대에 비해 지형성 강우도 상대적으로 적다. 평야지대와 산간지대의 중간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동두천시의 식물 개화시기( 開 花 時 期 )와 철새의 도래시기( 到 來 時 期 )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부족하지만, 지리적으로 비슷한 서울 지방과 비교하면 개화시기가 5~7일 정도 늦은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서울의 도시열섬 현상으로 개화시기가 점점 빨라지는데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20년 전, 10년 전, 현재 벚꽃과 개나리 개화시기를 비교할 때 평균 7일 정도가 당겨지는데 자연환경의 산지와 주민생활 공간인 공원, 아파트 화단 등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이미 온난화의 명백한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앞으로 진행 추이를 면밀히 분석해서 기후변화에 대응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3장 지리 계절을 알리는 화분식물로서 일반적인 것은 매화 복숭아 벚꽃 진달래 개나리 등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일찍 봄을 알리는 것은 개나리이다. 서울 지방은 4월 3~4일이 개화기이고 15일 경에는 만개한다. 다음으로 피는 꽃은 4월 8일의 진달래, 4월 14일의 벚꽃, 4월 21일의 복숭아 등이 있다. 11)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동물로는 철새와 곤충이 있다. 철새 가운데 기러기가 찾아오는 날은 비교적 규칙적이다. 가을이 되면 만주 시베리아 방면에서 차차 남하하여 서울 지방에는 11월 4일 경쯤 도착한다. 제비가 처음 오는 날은 4월 3일 경이고, 매미는 7월 22~23일 경이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제1권 제3장 지리 제2절 인구 동두천시 30년사 1. 인구 변천 인구현상은 인구성장과 인구구조를 통해 파악된다. 주어진 시기 사이의 인구 변동을 지칭하는 인구성장은 모든 인구학적 논의의 기초적 역할을 한다. 또한 인구구조와 분포는 주어진 인구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주로 사용된다. 과거 양주군 이담면의 인구에 관하여서는 다른 몇몇 참고문헌에 나타나는데 1871년 간행된 양주읍지 에 의하면 양주 총호수가 12,251호에 인구 60,389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0년대에 양주군 이담면 동두천리의 인구는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급격한 증가세가 나타난다. 1963년 읍 승격 당시의 인구는 45,056명으로 늘었으며 1981년 동두천시 승격 당시 60,030명이었으며 이후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 2006년 의정부 - 소요산 전철 1호선 연장선이 개통되면서 의정부와 서울에서 유입인구가 늘어 2011년 현재 38,173가구, 93,628명(남자 46,925명, 여자 46,703명)으로 인구 1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 2. 인구 현황 인구증가율은 2002년 기준 2.76%이고 세대 당 인구는 2.53명으로 전국 평균을 상회하고 있으며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14% 수준으로 고령사회로 진입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별로는 불현동과 송내동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건립으로 각각 9,068명, 9,221명으로 가장 많고 미군철수 계획과 관련하여

086 + 087 1970~1980년대 주한미군을 상대로 가장 번화한 상가지구를 이루었던 보산동이 1,596명으로 급감하고 있다. 인구동태를 보면 2009년 기준 출생 871명, 사망 623명으로 나타나며 혼인 644쌍, 이혼 349쌍이고 전입 24,246명, 전출 22,224명으로 전출보다 전입이 약 10% 정도 많아 유입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외국인 수는 2,568명, 남자 1,167명보다 여자가 1,401명으로 많은데 이는 미군부대와 관련하여 서비스업종에 종사자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필리핀 여자가 735명으로 전체 외국인 여자의 50%가 넘으며 외국인 총수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보산동을 중심으로 하는 주거지역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나 미군부대 이전 계획과 관련하여 안정적이지 못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외국인과의 혼인이 644건으로 전국적으로 외국인과의 혼인이 높은 지역으로 인식되는 것 또한 동두천 지역의 인구 역사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제3장 지리 <표 1-3-8> 인구 추이 인구Population 연도별 세대 Number of households 총수 Total 남 Male 여 Female 한국인 Korean 남 Male 여 Female 외국인 Foreigner 남 Male 여 Female 1990 19,144 71,448 35,268 36,180 71,448 35,268 36,180 1991 20,012 68,114 34,237 33,877 68,114 34,237 33,877 1992 20,886 69,534 35,028 34,506 69,534 35,028 34,506 1993 21,939 71,502 36,143 35,359 71,502 36,143 35,359 1994 22,603 72,023 36,493 35,530 72,023 36,493 35,530 1995 23,228 72,879 36,868 36,011 72,879 36,868 36,011 1996 23,791 73,314 37,045 36,269 72,860 36,718 36,142 454 327 127 1997 24,543 74,165 37,442 36,723 73,644 37,099 36,545 521 343 178 1998 24,209 74,173 37,358 36,815 73,625 37,082 36,543 548 276 272 1999 25,014 75,509 38,050 37,459 74,665 37,736 36,929 844 314 530 2000 25,599 76,758 38,668 38,090 75,529 38,204 37,325 1,229 464 765 2001 25,884 75,699 38,021 37,678 74,266 37,545 36,721 1,433 476 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