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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들의 선수에이전트에 관한 인식조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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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ion:

유대감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놀이문화 구태환 <목차> 1. 집단적 놀이문화의 전통 1-1. 농한기( 農 閑 期 )의 놀이 문화 1-2. 만나서 노는 광장-장터 1-3. 산 자들의 놀이 공간-상( 喪 ) 2. 공동체 중심의 집단적 놀이문화 2-1. 축제 2-2. 향우회, 동문회 2-3. 직장의 회식 3. 취향 중심의 집단적 놀이문화 3-1. 스포츠 관람 3-2. 인터넷 동호회 4. 정리하는 글 언젠가 추운 겨울날 새벽에 택시를 타고 호숫가를 지난 적이 있다. 그런데 호숫가에는 낚 싯대를 드리운 많은 낚시꾼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에 말이다. 그것을 본 택시 기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 돈 주고 시키면 절대로 저 짓거리 안 할 걸요. 놀이란 그런 것이다. 돈을 받고서 타의에 의해서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들여가 면서라도 자발적으로 즐기는 것이 놀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만들어낸다. 노동 없이는 삶에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을 확보할 수 없으며, 따라서 노동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불 가결한 요소이다. 그리고 노동을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후 노동을 위한 힘을 비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의 삶에서 노동과 휴식은 매우 중 요하다. 그런데 인간은 노동도 아니고 휴식도 아닌 무언가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놀 이 이다. 이러한 놀이는 간혹 노동의 연속이기도 하고, 휴식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 로 노동이나 휴식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 노동이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일상적인 문화라고 한다면, 놀이는 생존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비일상적인 일탈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노동과는 달리 놀이는 매일매일의 생활과는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1) 그리고 휴식은 노동 과정에서 지친 심신을 다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되돌리는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휴식 은 노동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비해서 놀이는, 놀이에 심취하다 보 면, 심신을 지치게 하는 경우도 있어서, 노동 능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1) 이기중, 술 문화를 통해 본 한국인의 일상과 일탈, 한국문화와 한국인, 사계절, 1998, 79쪽 참조.

이처럼 노동이나 휴식과는 달리 비일상적인 성격을 갖는 놀이지만, 시간과 공간에 따라 놀 이 문화가 달라지는 것을 살펴본다면, 일상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이라고 볼 수도 없을 것이 다. 즉 특정 시공간 속에 자리한 특정 사회에서의 놀이 문화는 시공간적으로 그와 다른 사 회의 그것과 다르며, 따라서 놀이 문화는 그 놀이 문화를 갖는 사회의 일상과 완전히 분리 된 것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놀이 문화의 성격을 살펴봄으로써, 한국인의 일상과 의식의 변화를 미 뤄보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다. 1. 집단적 놀이문화의 전통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농업에 종사했다. 그리고 농업에서 주된 생산품은 주식인 쌀과 보 리 따위이다. 쌀은 한국인들에게 주식의 상징으로서 흰 쌀 밥에 고깃국 은 바로 푸짐하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의미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주식인 쌀은 논에서 생산되 며, 논이란 풍부한 물이 있는 평지에서나 일굴 수 있다. 물론 산악지대의 다락논을 만들고 물을 끌어다가 벼농사를 짓는 경우도 있지만, 굉장히 고생스럽고 소출도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전체 국토의 70% 가량이 산악지대인 한국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물이 풍부한 평지 에 모여서 살았다. 그리고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답게 한 곳에 오랫동안 정착하면서 살 았고, 그러한 오랜 정착은 정착민들 사이의 집단적 유대를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벼농사라는 것이 모내기를 하거나 추수를 할 때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을 내의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계( 契 )를 형성하여 자연스럽게 집단적인 영농을 하게 되 었다. 예컨대 김씨, 이씨, 박씨, 최씨, 허씨 집안이 하나의 계를 만들었을 때, 오늘 김씨네 논에서 모내기를 한다면 나머지 집안 사람들이 모두 김씨네 논의 모내기에 참여하고, 다음 날 이씨네가 모내기를 한다면 마찬가지로 모두 거기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의 상호부조의 전통을 형성하며, 이런 모습은 추수 때나 여인들의 힘겨운 밭일 때에도 나타난 다. 이러한 오랜 정착과 집단 농경은 같은 마을 사람들 사이의 공고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이 러한 공고한 유대감을 갖고 있던 그들은 휴식과 놀이를 공유하였고, 한국 놀이 문화의 집단 적 성격을 형성한다. 1-1. 농한기( 農 閑 期 )의 놀이 문화 농경 사회에서 농작물을 파종하고 가꾸고 거두는 시기는 힘겨운 노동이 연속되었다. 특히 봄에 논에서 모내기를 하거나, 가을에 추수를 하는 시기는 노동력의 집중적 투입이 요구되 는, 농사에서 가장 바쁜 시기로서 농번기( 農 繁 期 ) 라고 했다. 이 시기에는 일손이 부족하였 기 때문에 아직 노동에 참여하기에 이른 나이의 아이들도 농민들이 먹을 음식을 나르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하는 등 일손을 도왔다. 심지어는 각급 학교에서 농번기 방학 이라 하여 잠시 휴교하고 학생들이 농사 일을 돕도록 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1970년대까지도 농촌 사회에서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처럼 바쁜 농사 일은 가을에 무르익은 벼를 거둬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을 추수( 秋 收 ) 라고 하는데, 추수를 마친 농민들은 마을 단위로 수확한 농작물로 떡과 술을 빚 고 정성스럽게 길러온 닭과 돼지를 잡아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농자천하지대본야( 農 者 天 下 之 大 本 也 ) 2) 라고 쓴 커다란 깃발을 앞세우고, 그 뒤로 꾕과리, 징, 태평소, 북, 소고, 장구를 든 사람이 신명나게 음악을 연주하며 인도하고 3), 동네 사람들 이 춤을 추며 따른다. 마을을 돈 사람들은 다시 모여서 마련한 음식을 함께 먹고 마시며, 음악에 맞춰 춤추며 즐겼다. 힘겨운 노동을 함께 한 이들끼리의 우애과 단합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이처럼 추수를 하는 시기는 대체로 한국인들이 가장 중시하는 명절 가운데 하나인 추 석 4) 과 겹친다. 한국인들은 추석에 차례( 茶 禮 ) 를 모심으로써 한 해의 풍성한 수확을 가능 하게 도와주신 조상에게 감사한다. 추석에는 다양한 놀이가 행해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강술래 이다. 강강술래는 정월 대보름 밤과 추석 밤에 주로 놀았다. 이 놀이의 준비 자세는 매우 간단 하다. 중앙을 바라보고 둥글게 서서 옆 사람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한 방향으로 천천히 혹 은 빠르게 돈다. 강강술래 놀이는 노래 소리에 맞춰 진행되는데, 그 노래의 박자가 처음에는 매우 느리다. 사람들은 그 노래 소리에 맞춰 천천히 둥글게 돈다. 그러다가 그 노래의 박자는 점차 빨라 져서 나중에는 발이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가 된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그냥 둥글게 돌지 만 이들 가운데 선두에 선 사람이 앞서 도는 사람의 손을 놓고서 인도하게 되면 8자 형태 를 띠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변형된다. 사람들은 이 노래의 박자에 따라 복잡한 형태를 따 라가다 보면 숨이 차고 다리에 힘이 빠지게 된다. 그러면 노래의 박자는 차츰 느려지고 나 중에는 처음의 형태로 돌아온다. 강강술래는 주로 여인들이 놀았는데, 남존여비 의식이 뿌리 깊었던 한반도의 가부장적 사 회에서 며느리나 성장한 딸들이 야밤중에 바깥에 나와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놀이를 놀 때만큼은 그것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더구나 젊은 처녀들은 어머니가 직접 마련해준 새 옷을 입고서 나와 놀았다. 이런 사실은 젊은 여인들이 이 놀이 에 참여하도록 권장되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은 강강술래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세시놀이였으며 의례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놀이를 노는 정월 대보름은 한 해를 준비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시기였고, 추석은 추수감사의례가 열리는 시기 였다. 이처럼 강강술래는 농경과 관련된 특별한 보름날 밤에 하는 놀이였다. 5) 요컨대 강상 술래는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고 감사하는 집단적 놀이면서 신성한 의식, 즉 사회 집단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따라서 여인의 정숙성을 중시하던 전통사회에서도 허용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권장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신성한 의식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여인들이 강제로 참여한 것은 결코 아니 었다. 강강술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놀이가 아니었고, 불리는 노래는 누군가를 위해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여인들, 특히 젊은 여인들에게는 순수하게 즐기기 위한 자족적으로 노는 놀이며 노래였다. 얼마나 즐겁게 열심히 놀았던지, 어떤 이는 땀에 젖은 옷이 몸에 딱 달라붙고, 다리가 아파 문지방을 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어떤 마을에서는 젊은 남자들이 함께 놀기도 하였고, 심지어는 놀이가 끝난 후 만남을 이어가기도 했다. 6) 2) 논어 의 구절로서, '농사란 천하의 커다란 근본이다'라는 의미이다. 3) 이들 악기 가운데 꾕과리, 징, 북, 장구 등 네 가지 타악기를 독립시켜서 연주하여, '사물놀이'라고 한다. 4) 한국인들이 중시하는 명절로는 설(음력 1월 1일)과 추석(음력 8월 15일)이 있다. 추석은 중국에서 '중추절( 仲 秋 節 )'이라고 하여 월병( 月 餠 )을 나누는 등 명절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며칠을 휴일로 지정하는 명절은 아닌 것 같다. 5) 김혜정, 우리 몸에 새겨진 삶의 노래 강강술래, 민속원, 2009, 20~21쪽 참조.

그리고 강강술래는 주로 한반도의 서남편인 전라남도 지역에서 행해졌는데, 일제시대의 자료를 보면 한반도 남동쪽인 북서쪽인 황해도 일부에서도 행해졌다 한다. 주요 지역인 전 라남도 지역이라 하더라도 강강술래의 놀이는 마을마다 달라져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7)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놀이로 변형되어다. 요즘은 보기 힘들어졌지만 과거에 대학 축제에서도 강강술래를 놀곤 했었다. 이 축제의 장에서는 당연히 남학생도 참여했는데, 과거의 전통적 놀이이기에 정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는 달리 본격적인 놀이가 전개되면 매우 동적이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학생들도 숨을 헐떡이며 그 매력에 빠져들곤 했다. 지금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축제에서는 간혹 강강술래를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각급 학교의 운동회 말미에 놀기도 한다. 강강술래가 과거에는 주로 젊은 여인들이 놀았지만, 지금은 그 놀이판이 벌어지는 공간에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이 놀이는 밖에서 지켜보는 것보다 그 놀이 안으로 들어가 함께 놀아보아야 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한국 어디선가 강강술래를 놀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그 속으로 뛰어들기를 바란다. 숨이 차오를 정도로 정신없이 뛰놀다 보면 다른 이들과 하나가 되는 쾌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1-2. 만나서 노는 광장-장터 농경을 주요 산업으로 하던 한반도에서도 상업은 발달하였다. 산악이 많은 지형적 특성상 산과 강에 의해 격리된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업의 발달이 필 수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장소에 점포를 차리고 항시적으로 물품을 판매하는 방식 의 상업은 한양(지금의 서울), 송도(지금의 개성) 등 일부 대도시에 국한되어 발달하였다. 대부분의 상업 활동은 물건을 운반하면서 판매하는 보부상들에 의해서 장터에서 이뤄졌다. 장터는 장이 서는 공간으로서, 예외적으로 해발 1,600m 이상 되는 곳에 장이 서는 경우 도 있었지만 8), 산과 강으로 격리된 여러 마을 가운데 가장 번화한 곳에 벌어지는 것이 일 반적이었다. 그리고 이 장은 상시 열리는 것이 아니라 며칠에 한 번씩 열렸다. 일반적으로 닷새에 한 번씩 열려서 5일장이라고 하는데, 장마다 정해진 날이 있었다. 그 날은 끝자리 숫자만 정해졌다. 예컨대 경기도 안성의 5일장은 매월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즉 끝자리 수가 2과 7일인 날에 열리기에 2 7장 이라고 불린다. 보부상들은 그 날에 맞춰 서 자신의 가진 물건을 가지고 가서 장사를 한다. 이때 장사라고 하면 상인들이 팔고 일반 백성들이 사는, 현대적 시장만을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장에서는 물물교환이 일반 적이었다. 즉 농민들이 자신이 수확한 농작물이나 직접 키운 닭 등을 가지고 가서, 그것을 팔아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사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가진 이와 물물교환 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한반도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보였고, 일부 지역에서 는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장터는 단지 상품 유통만이 아니라 인적 교류와 정보 공유가 이뤄지는 공간이었다. 농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매일매일을 자신의 땅만을 돌보며 산과 강에 격리되 어 살다가 다른 마을 사람들을 만나서 그 사람들과 교류하며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 6) 앞의 책, 28쪽 참조. 7) 앞의 책, 34쪽 참조. 8) 지리산을 종주하는 산꾼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여러 대피소 가운데 '장터목 대피소'가 있는데, 이곳은 해발 1,650m로서 과거에는 장이 서던 장터이다.

다. 장터는 농민들에게 좀 더 넓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인간관계를 맺는 데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술 한 잔 하자 는 것은 인간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자 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인간관계 형성의 장인 장터에 술이 없을 수 없었다. 일부 큰 장터에는 붙박이 주막이 있었 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간이 주막이 열렸다. 뿐만 아니라 일부 대형 장터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장터에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공연 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장터를 여는 이들 가운데 일부 부상( 富 商 )들이 돈을 추렴하여 광대 들을 고용했던 것이다. 이들 광대는 음악을 연주하고, 재담을 하고, 재주를 넘고, 줄타기를 하고, 탈춤을 추면서 시끌벅적하게 장터의 분위기를 띄우고, 이러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구경을 위해서라도 장터에 몰려들며, 그에 비례하여 장터에서 오가는 재화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광대를 고용할 정도로 큰 규모의 장터로는 송파, 양주, 안성, 북청 등이 대표적인 데, 이들 장터에서 공연된 광대들의 놀이는 각기 특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각 지역의 이 름을 붙여서 그 놀이들을 송파 산대놀이, 양주 별산대놀이, 안성 남사당놀이, 북청 사자놀음 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국가에 의해서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이 놀이들은 광대가 공연하고 장터 사람들이 구경하는, 배우와 관객이라는 서양 근대적 공연의 모습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광대들의 공연을 보는 사람들은, 잘한다, 얼 쑤 라는 추임새를 넣거나 악역을 맡은 광대에게 야유를 하는 등 일정 정도 공연에 참여했 다. 술취한 사람이 공연에 끼어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가 공연을 완전히 망칠만큼 분위기 를 어색하기 하지 않는 한 강하게 제어하지는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술취한 사람으 로 인해서 공연이 더욱 재미있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공연 말미에는 흥겨운 음 악에 맞춰 광대와 장터 사람들이 하나로 어울려 춤판을 벌였다. 이러한 막판의 춤판은 대부 분의 장터 놀이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놀이의 일부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장터가 아니라 지정된 공연 공간에서 행해지지만, 마지막에 관객과 광대가 어우러져 관객을 공연 속으로 끌어들이는 모습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장터는 상업 행위가 행해지는 장소였을 뿐 아니라, 정보를 나누는 장소였고, 술을 마시며 인간관계를 맺는 장소였고, 공연이 벌어지는 장소였다. 장터는 장터에 온 사람들이 함께 즐 기는 놀이 공간이었던 것이다. 현대적인 대형 마트가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도 일부 중소 도시나 농촌 지역에는 여전히 5일장이 열린다. 물론 그곳에서는 더 이상 물물교환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여전히 몸소 수확한 농산물이나 집에서 기른 닭이나 강아지를 팔러 나온 사람들 을 쉽사리 볼 수 있다. 그리고 장터다운 흥겨운 음악과 간이주점도 빠지지 않는다. 그 장터 에 나오는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 즐기는 놀이 공간을 찾아 나왔을 것이다. 1-3. 산 자들의 놀이 공간-상( 喪 ) 임권택 감독의 영화 가운데 <축제>(1996년)라는 것이 있다. 9) 사자( 死 者 )를 보내는 의례 인 상례( 喪 禮 )을 말하면서 느닷없이 축제 를 말하니 의아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임권택 감독 의 영화 <축제>는 한 상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려낸다. 임감독은 영화에서 한국 상례의 9) 임권택은 2002년 제55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이들 영화 외에도 <씨받이>, <서편제> 등이 있다. 그리고 영화 <축제>는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축제적 요소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실제로 한국의 전통적인 상례는 축제에 가깝다. 이 영 화는 가장 슬픈 의례여야 할 상례가 한국 전통 사회에서 어떻게 해서 축제로 승화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별은 사람을 슬프게 하며, 특히 가까운 가족과의 이별, 특히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사 람을 슬픔의 극단까지 몰고 간다. 그리고 사자를 보내는 의례인 상례는 당연히 엄숙히 거행 된다. 그런데 그 엄숙함은 사자의 친족, 즉 상주들에게만 요구된다. 물론 상가에 문상하러 간 사람들도 사자의 넋을 기리고 상주에게 조의를 표할 때는 엄숙하다. 하지만 그곳을 물러 나오면 그에게 상가는 더 이상 엄숙한 장소가 아닌 축제의 장소가 되어버린다. 그는 오랜만 에 만난 사람들을 만나서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든다. 그리고 사자의 친족인 상주는 이들을 접대하느라 슬퍼할 틈이 없다. 상주는 극단적인 슬픔이 밀려오는 시기에 이러한 의례를 거 치면서 잠시 슬픔을 잊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말에 경사( 敬 事 )에는 안 가도 애사( 哀 事 )에는 간다 는 말이 있다. 결혼이나 생 일 등 경사에는 초대받지 않으면 안 가는 것이 예의고, 초대받았더라도 급한 일이 생기면 못갈 수도 있지만, 초상 등 애사에는 부르지 않아도 반드시 가는 것이 예의라는 것이다. 따 라서 상가에는 사자나 상주와 관계를 맺었거나 맺고 있는 많은 사람이 오간다. 이들 중 일 부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벗을 만나기도 하고, 오랫동안 사이가 좋지 못했 던 이와 화해하기도 한다. 물론 반대로 언성이 높아지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상가는 문상 온 사람들의 만남의 장인 것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상주가 차린 음식을 나눠먹으며 시 끌벅적하게 떠들어댄다. 뿐만 아니라 상가가 시골 마을에 있다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서서 상가의 일을 거든다. 남정네들은 상여나 묘혈을 준비하고, 아낙네들은 음식을 준비한다. 그 과정은 결코 엄숙하 지 않다. 마치 축제를 준비하는 것처럼 힘차고 활기차다. 어찌 보면 사자는 죽음으로써 문 상 온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축제의 장소를 마련해준 것이다. 축제( 祝 祭 )가 말 그대로 기원하는( 祝 ) 제전( 祭 )으로서, 공동체의 번영, 그리고 공동체 성원 의 단합을 꾀하는 행사라고 한다면, 한국에서의 상례는 분명히 축제인 것이다. 이러한 축제 의 장에서 살아있는 자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간의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2. 공동체 중심의 집단적 놀이문화 농경 사회의 전통 속에서 나타난 집단적 놀이문화들 가운데 일부인 강강술래나 놀이의 공 간 역할을 한 장터는 더 이상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지 않다. 일부 축제에서 강강술래를 놀 기도 하며 시골의 장터가 여전히 사람들의 만남과 놀이 공간이긴 하지만, 과거처럼 공동체 의 안녕을 기원하거나 종합적인 놀이 공간은 더 이상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전통적인 집단적 놀이와 놀이 공간은 농경 사회의 문화 속에서 나타난 것인데, 현 재 한국은 농경을 주요 산업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놀이는 오랜 시간동안 한 곳에서 함께 생활한 공동체의 안위와 단합을 추구한다는 의미도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동이 잦은 도시에 사는 산업사회의 한국인들은 오랜 시간동안 한 곳에서 생활하는 공동체 를 갖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예전의 놀이, 그리고 놀이 문화는 현대 한국인에게는 맞지 않 아 보인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들의 놀이 문화를 살펴보면 여전히 공동체를 중시하고,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끼리 집단적으로 놀면서, 공동체 성원들의 안위와 단합을 추구하는 면모가 드러 나기도 한다. 사람들을 자신의 출신지, 출신 학교 등과 관련된 여러 공동체에 소속되고, 정 기적, 혹은 비정기적으로 모여서 함께 논다. 이러한 집단의 놀이 문화는 공동체의 안위와 단합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전통적 놀이 문화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농경 사회에서는 한 개인이 일생동안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문화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것과는 달리, 현대에서는 개인이 자신이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문화를 받아들일 지 아닐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2-1. 축제 현재 한국 사회에는 많은 축제가 있다. 각 대학에서는 매년 봄이나 가을이면 축제를 하 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축제를 개최한다. 그리고 시골 지역에서 는 봄, 가을에 열리는 초등학교 운동회가 지역 사회의 축제의 장이 되기도 한다. 대학 축제는 1970년대 이후로 계속되어 개최되었다.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매년 5월 경에 축제를 한다. 그 시기는 봄기운이 완연하여 만물이 생동하는 때 이다. 대학 축제의 일반적인 형식을 보자면 총학생회 주최의 본 행사와 학교 내의 각 소단 위 주최의 주점이나 놀이 행사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총학생회 주최의 본 행사는 일단 규모가 크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이동이 가장 많은 장소 에 연단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학교 성원의 주요 대표자들이 인사말을 함으로써 본격적인 축 제가 시작된다. 과거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이 행사가 곧 장 정권 규탄 시위로 이어지기도 했다. 또 다른 총학생회 주최의 행사로는 문화공연이 있 다. 과거에는 대부분 학과 대표나 학내의 동아리 학생들이 나와서 음악이나 춤 공연을 했는 데, 2000년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유명 연예인을 초청해서 공연을 하고 있다. 학내의 각 소단위의 행사는 주점이 대표적인데, 학교 내의 일정 장소에 천막을 치고 간이 주점을 만들어서 학생들이 손수 만든 음식으로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각 소단위에 속한 학생들은 자신이 속한 단위가 연 주점에서 일을 하거나 손님으로서 참여하여 함께 즐긴다. 예능 동아리의 경우에는 자그마한 공연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공연은 고전음 악, 대중음악, 전통적인 판소리나 사물놀이, 탈춤, 마당놀이 등 다양하다. 특히 판소리나 탈 춤, 마당놀이 공연 같은 경우에는 관객이었던 학생이 무대 중앙으로 뛰쳐나가거나 끌려나가 서 공연의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대학 축제는 원래 대학 구성원들의 단합을 꾀하는 행사이고, 한국 사회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에는 대학생들의 정권 규탄 시위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현대 에는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여 공연함으로써, 그 연예인을 좋아하는 인근 지역의 중고등학생 들이 와서 공연을 즐기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대학생들이 거액을 들 여 유명 연예인들을 초청하여 대중음악을 즐긴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대학 울타리 내의 구성원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도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어나간다는 긍정적인 의미 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 축제만이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의 축제도 눈여겨 볼만하다.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 력에 의해 1962년 사라진 지방자치제도가 1995년에 다시 시행된 이후에 각 지방자치단체 에서는 그 지역의 전통적인 축제나 지역 특산물을 알리는 축제 등을 열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축제를 이어가거나 되살린 것으로는 금산의 탑제( 塔 祭 ), 계룡산 산신제, 양주의 별산대놀이, 경산의 한장군놀이, 밀양의 백중놀이, 강릉의 단오제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의 특산물을 알리는 축제로는 대구의 섬유 패션 축제, 이천의 도자기 축제, 상주의 멍게 축제, 강진의 청자문화제, 광주의 김치대축제, 봉화의 송이축제 등이 있다. 10) 이들 지방자치단체의 축제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외부인들을 축제로 불러들임으로써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목적이 있다. 집단적 놀이문화의 성격을 띠는 경우는 많지 않다. 다 만 위에서 언급한 축제는 대부분 외부인들이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여 함께 놀며 즐길 수 있는 내용을 어느 정도 개발하였다. 하지만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열고 있는 대부분의 축제가 축제의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놀며 즐길 수 있는 장을 열어놓지 못 했다는 면에서 한국인의 놀이문화의 집단성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대신 아직도 많은 시골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그 시골 마을 구성원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 의 장이다. 초등학교의 운동회는 도회지나 농촌 지역이나 유사하게 이뤄진다. 전체 학생을 청군, 백군 양 팀으로 나워서 달리, 공굴리기, 학부모 참여 게임 등으로 승패를 가르는 것이 다. 시골 학교 운동회의 특징은 운동회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운동회에 참여하는 성원에 서 드러난다. 시골 초등학교 운동회에는 학부모도 아닌 동네의 어른들까지 참여하는 것이 다. 동네 어른들은 운동회가 있는 날 학교 운동장 나무 밑 그늘에 음식을 차려놓고 먹으며 어린 초등학생들의 재롱을 즐긴다. 뿐만 아니라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하는 게임도 준 비되는 경우도 많으며, 그들을 위해 경품 행사를 열기도 한다. 따라서 이날은 단지 초등학 생과 교직원, 학부모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즐긴다. 그리고 운동회가 파할 때가 되면 초등학생들의 잔치가 아니라 마을 어른들의 마을 잔치가 되어버리 곤 한다. 2-2. 향우회, 동문회 향우회는 출신지가 같은 사람들끼리의 모임이고, 동문회는 출신 학교가 같은 사람들끼리 의 모임이다. 이 둘은 유사한 성격을 갖고, 두 모임의 성원이 겹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서 농촌 인구가 도시로 대거 유입되면서 도시, 특히 수도 서울은 여러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은 고향을 그리며, 같은 고향 사람들 을 찾아서 모임, 즉 향우회를 결성한다. 그리고 같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출신들끼리 동문회 를 구성한다. 같은 고향 사람들로 구성된 향우회의 모임에서 사람들은 주로 어릴 적의 추억을 되돌아보 는 내용의 담소를 나눈다.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의 시공간들은 이들을 하나로 만들고, 이들이 함께 사용하는 지방의 사투리는 이들 사이의 유대를 공고히 한다. 향우회의 모임은 주로 식당의 술자리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최근에는 건강을 위하여 동문회 단위로 등산 등 의 스포츠를 즐기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 이들은 이처럼 함께 어울려 놀면서 고향 지역의 현안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고, 어떤 경 우에는 고향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는 데 힘을 합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그 모임에 사 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그 지역 출신 학생들을 위한 기 숙사를 짓거나 장학금을 기탁하기도 하며, 고향 지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사회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이들은 함께 모여 놀면서 고향에 대한 추억을 공유할 뿐 아니라 고향을 더 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기도 하는 것이다. 동문회는 향우회와 달리 모임의 규모를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선후배를 아우르는 전 10) 이들 축제 이름은 김흥우, 한국의 놀이와 축제, 집문당, 2002를 참조했다.

체 동문회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해에 입학하거나 졸업한 이들에 한정되는 동기회이다. 이 이외에는 모임의 형식이나 내용적인 면에서 향우회와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이들은 함께 다닌 학교라는 추억의 공간을 공유하며, 학교 현안에 대해서 논의하거나 그 현안 해결에 도 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향우회나 동문회는 간혹 그 모임의 성원 이외의 사람들에게 배타성을 갖는 집단주 의적 성격을 띠기도 한다. 내가 속한 향우회나 동문회의 성원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한다는 심리가 모임 성원들 사이에 공유되면, 그러한 심리가 사회적 가치와 배치되는 형태로 드러 나기도 한다. 즉 모임 자체가 이익 집단화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 모임의 놀이 문화는 자발적 즐김보다는 이익 추구의 수단이라는 형태를 띤다. 향우회나 동문회 모임이 이처럼 부정적인 측면으로 흐를 수 있지만, 그 모임이 성원들에게 자신이 혼 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성원이라는 심리적 안도감을 주며, 지역이나 학교 현안에 대한 실질 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는 면은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2-3. 직장의 회식 아마도 세계적으로 한국의 직장인들처럼 자주 회식을 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죽 둘러앉아서 술을 들이켜는 모습은 매우 생소한 모양이다. 한국 직장인들의 회식 문화는 매우 단순하다. 우선 회식 자리에서의 화제 는 대부분 직장의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다. 물론 누가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낳았거나, 승 진했거나, 자녀가 대학에 입학했거나 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일들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리고 화제는 대부분의 그날 회식을 주관한 상사가 주도한다. 상 사가 주로 말하고 부하 직원들은 맞장구를 친다. 뿐만 아니라 회식의 형식도 거의 동일하다. 우선 같은 직장의 같은 부서 사람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를 갖는다. 주요 메뉴는 술과 고기다. 그 자리를 마친 후 2차로 맥 주집에 가서 맥주를 마신다. 그리고 3차로 노래방에 가서 함께 노래를 부른 후 헤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이후로 술자리가 이어지기도 한다. 회식에서 중요한 것은 술이다. 한국 사람들은 흔히 한국 땅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아가기란 정말 힘들다고들 하는데, 이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짜여진 사회, 문화적 풍토 때문이다. 문화란 집단 구성원끼리 공유한다는 특성이 있는데, 집단성 또는 집단 문화가 강한 한국문 화에서는 더욱 실감나는 말이다. 11) 회식은 대부분 술이라는 것을 매개로 서로가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다. 이렇게 보았을 때 직장에서의 회식은 대부분 업무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고, 직장의 회식 문화를 놀이문화에 포함시키기에는 부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회식 문화를 통해서 한국인들의 집단적인 문화의 일면을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3. 취향 중심의 집단적 놀이문화 앞에서의 공동체 중심의 집단적 놀이문화에서의 공동체는 개인의 출생지, 출신학교에 따 라 저절로 형성된다. 물론 그 공동체에 참석할 것인가 여부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기 11) 이기중, 앞의 글, 81-2쪽.

는 하지만, 특정 출생지나 출신학교라는 일정한 자격이 있어야만 이러한 공동체에 속할 수 있고, 그들의 집단적 놀이문화를 공유할 수 있다. 그에 비해서 여기에서 말하는 놀이문화는 일정한 취향이나 취미를 공유한 이들끼리 공유할 수 있다. 출생지, 출신학교, 소속이 아니라 취향이나 취미에 따라서 선택해서 함께 노는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문화에서 드러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 전통적인 공동체는 거의 붕괴되 었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앞에서 말한 동문회, 향우회 등에 소속되어 위안을 삼기도 한 다. 하지만 그러한 동문회, 향우회는 현대의 다양화된 개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어떤 이는 그러한 모임에 참석함으로써 심리적 위안을 갖지만, 어떤 이는 불편함을 느낀다. 그곳에서의 획일성과 강제성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향우회에서의 화제는 고향에 관 한 것일 수밖에 없으며, 한 번 참석하고 나면 지속적으로 참석하라는 압력이 계속된다. 개 인의 자유로운 취향에 의한 놀이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향우회는 불편한 모임이기 쉽다. 이 런 사람들에게는 공동체 성원으로서의 심리적 안도감을 주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바탕으로 놀이를 즐길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공간이 바로 운동 경기장, 인터넷 동호회 모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일정한 경제적 성취로 인한 여가 생활의 증가와 그와 맞물린 다양한 놀 거리의 발달이 있을 것이다. 3-1. 스포츠 관람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에 서울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매운 붉은 물결을 기억할 것이다. 그 당시 붉은 옷을 입고서 서울 시청 앞 에 운집하여 대형 스크린에 나오는 축구 실황중계를 보면서 대한민국 축구선수단을 응원하 던 사람들 수가 수십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세계 언론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보도하며 매 우 기이하다고 하였고, 어떤 언론 매체에서는 한국인의 dynamic함을 보여주는 현상 이라 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에 텔레비전이 없는 가정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텔레비전의 중독성 등이 싫어서 일부러 갖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로 갖지 못하는 이들은 거의 없 을 정도로 한국에는 텔레비전이 예전부터 고루 보급되어 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각 방송사는 앞다퉈 한국 축구선수단의 경기를 실황중계했다. 다시 말해서 그냥 집에 서 편안하게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관람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갖춰졌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집이 아니라 식당이나 술집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 당시에 많은 술집에서 손 님들을 끌기 위해서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했고, 지금도 한국의 술집에는 그때의 흔적으로서 대형 텔레비전이 구비된 곳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도 부족해서 거리로 뛰쳐나와 응 원을 한 것이다. 그들은 왜 편안한 집을 벗어나 술집으로 가고, 그것도 모자라서 거리로 나 온 것일까? 그것은 하나의 사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어떤 이와 대화 를 한 적이 있다. 그는 한 프로야구단의 열성 팬으로서 야구장을 자주 찾는다. 하루는 그가 야구장에 가서 관람을 했는데, 그날 홈런이 3개나 나왔단다. 하지만 그는 홈런 장면을 한 차례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그럼 그 시간에 뭘 했느냐고 했더니 그냥 맥주를 마시며 군중들과 함께 응원했다고 대답했다. 황당한 느낌을 받은 내가 홈런 장면도 보지 못 할 것을 도대체 야구장에 왜 갔느냐, 집에서 텔레비전 보는 것이 야구 관람에 훨씬 낫지 않 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그의 답은 가서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것 이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이들도 이런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물론 한국 축구단을 응원 하고 한국 축구단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즐기기 위해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응원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놀이로서 즐긴 것이다. 그리 고 놀이는 여럿이 함께 할 때 즐거움이 배가된다는 생각이 그들의 뇌리에 박혀있었던 것이 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의 집단적 놀이문화를 보여준다. 응원의 인파 속에 묻혀서 소리치고, 노래하고, 춤추다 보면 자신은 집단 속에 녹아들게 된다. 이러한 행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그림 1> 야구장에 놀러 온 가족 이러한 스포츠 관람 문화, 혹은 응원문화에서 특이한 점이 있다. 2002년 당시에 시민들은 응원이 끝난 후 자신이 있었던 자리를 청소하였다. 일부 사람들이 거리를 질주하기도 했지 만, 폭력적인 행태를 띠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행위를 하는 이들이 있으면 응원하러 나온 사람들에 의해 제어되었고, 지탄받았다. 경기에서 진 경우에도 무질서나 폭력은 거의 없었다. 이는 면면히 이어져 온 집단적 놀이문화 정신의 유산이 아닐까 한다. 집단적 놀이 공간을, 군중 속에 자신을 감추고서 자신의 울분을 폭력적으로 분출시키기 위한 장으로 보 는 것이 아니라, 집단과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자신을 그 일원으로 녹여내는 장으로 여 기는 정신 말이다. 이 속에서 공동체의 안녕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질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2002년의 응원 문화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프로야구 경기의 응원 문화 속에도 보인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에 따르면 2011년 프로야구 누적관중 수는 6,809,965명일 정도로, 프로야구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몇 년 전에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는 한 야구장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 야구장에서는 관중들이 경기가 끝난 후 자신이 있던 자리를 치우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쓰레기를 담는 봉지를 지급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 가 관중들이 그것을 머리에 리본처럼 묶고서 응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쓰레기 담는 봉 지는 그 구장 특유의 응원 도구가 되었고,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 후 그 봉지로 자신이 놀던 자리를 깨끗하게 치우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스포츠 관람 문화에서는 경기 자체보다는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중시 한다. 함께 즐겁게 놀기 위해서는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이러한 의식은 전통적인 집단적 놀이문화와 그 맥을 같이 한다. 2002년의 응원문화를 통해서 나타난 사회 현상 하나를 더 소개하도록 하자. 한국의 모든 건강한 남성은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군대 생활을 한다. 그리고 군대에서 가장 많이 하는 스포츠가 축구일 것이다. 그에 반해 여성들에게는 그러한 의무가 없으며, 예전에 대부 분의 한국 여성은 스포츠에 무관심했다. 따라서 남성들의 대화 주제 가운데에서 여성들이

싫어하는 것이 군대 생활 이야기, 축구에 관한 이야기 며, 가장 싫어하는 대화 주제는 군 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여성들이 공유할 수 없는 주제라 는 것이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에 많은 여성들이 전문가에 버금가는 축구 지식을 갖게 되었고, 다른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리고 상당히 엄격한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남성의 몸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말하는 경우도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월 드컵을 겪으며 여성들이 축구선수들의 멋진 몸매에 대해서 말하게 되었고, 이제는 여성이 남성의 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의 축구장이나 야구장은 과거 에 자신의 감정과 취향을 표현하지 못했던 여성들이 그것을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장이며, 타인과 함께 응원하면서 자신이 집단의 성원임을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다. 3-2. 인터넷 동호회 2009년 한국 가정의 인터넷 보급률은 80% 이상으로서 세계 1위이다. 그리고 그에 걸맞 게 한국의 인터넷 공간에는 수많은 동호회가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동호회에 가 입되어 있다. 동호회의 성격도 스포츠나 레저, 영화, 게임, 경제, 음악, 과학, 인문학, 외국 어, 만화, 연예인 등 매우 다양한데, 어떤 이들은 이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 이러한 인터넷 동호회의 성격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철저히 개인의 취미나 취향에 따라 자발적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입과 탈퇴 역시 자유롭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공간은 예전과는 달리 철저하게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해서 가입하는 놀이의 장이다. 동호회에 가입한 사람은 그 동호회에서 자신의 취미와 관련된 정보를 공유한다. 만약 그 동호회가 자신의 가입 목적에 부합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자신이 놀기에 적합하 면 그 동호회에 계속 남아있고, 그렇지 않다면 탈퇴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터넷 동호회의 특이점은 그러한 동호회가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 속에서 형성되지만 간혹 현실 공간에서 모임이 이뤄지는 것이다. 소위 off-line 모임을 가짐으로 써 모임 구성원들은 가상공간에서 만나던 상대들을 현실 공간에서 만난다. 물론 이러한 모 임에 반드시 참석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취미에 관한 더욱 고급 정보를 들을 기회이기에 사람들은 그곳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 주제는 당연히 동호회의 성격 에 맞는 것이다. 이러한 off-line에서의 만남이 만족스러웠다면 그 동호회는 더욱 활성화되 고, 현실에서의 만남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그리하여 출신 지역, 출신 학교, 직업, 소속이 전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새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어떤 경우에는 그 공간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기도 한다. 이제 한국에서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은 더 이상 가상으로만 머물 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터넷 공간은 결국 새로운 인간관계 형성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가상 공간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의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장이다. 지금도 서울의 중심부 찻집이나 술집에 가보면 인터넷 동호회원들의 모임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주말에 산 에 가보면 등산을 취미로 하는 인터넷 동호회원의 모임을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 동호회 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새로운 장인 것이다. 4. 정리하는 글 어느 사회나 그러하듯, 한국 사회는 지속적인 변화 속에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계속되는

변화 속에서 어떤 것을 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문화라 할 것인가? 이것을 하나로 규정하기 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세계화 의 급물살 속에서 한국의 문화 역시 다른 국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하지만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문화들 속에서도 한국만의 특별한 것이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집단적 놀이문화를 통해서 한국 문화의 특 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세계적으로 개인당 알콜 소비량이 높기로 소문난 한국인들은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 지 않다. 일부 대단한 애주가나 알콜 중독자가 아닌 한, 그리고 혼자라도 술을 마셔야 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 있지 않은 한, 한국인들은 좀처럼 혼자 술을 마시지 않는다. 많은 한국 인들이 술 마시는 것도 놀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의 의식 속에는 혼자 노는 것보다는 여럿이서 노는 것이 즐겁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즉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여럿이서 함께 노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집단적인 놀이 속에서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 놀이의 흥을 깰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분출시키지는 않는다. 놀이 집단 속에 개인을 은폐시키고 그 집단의 힘을 믿고서 과 도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본문에서도 사례로 들었던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축구 경기에 흥분한 수많은 응원 인파가 운집해 있었으면서도 별다 른 사고가 이뤄지지 않고 질서가 지켜진 것에서 증명된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와 사회성원 의 안녕을 추구하며 놀았던 전통적인 집단적 놀이 문화의 정신의 계승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